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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말을 했길래…” 20대 남성 동거녀 살해

    “남자에게 할 말이 따로 있지.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중국 대륙에 한 젊은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정력이 형편없다며 성능력을 조롱하는 말을 했다가 살해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 톈허(天河)구에 살고 있는 한 20대 남성은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 친구보다 정력이 떨어진다는 비아냥거리는 말에 격분,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붙잡혀 쇠고랑을 차게 됐다고 북경일보(北京日報) 인터넷신문 천룡(千龍)망이 최근 보도했다. 천룡망에 따르면 사건의 장본인은 돤양즈(段揚志·가명).그는 지난 2005년초 늘씬하고 해사한 간샤오룽(甘小龍·여·가명)씨를 처음 만났다.이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두 사람의 앙가슴에 ‘큐피드의 화살’이 꽂혔다. 첫눈에 반한 이들 두 사람은 곧바로 동거에 들어갔다.하지만 간씨는 6개월쯤 지나자 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급속히 식어갔다.해서 결국 두 사람은 이별을 고했다. 그런데 간씨의 남성 편력도 보통이 아니었다.두사람이 헤어진지 얼마되지 않은 그해말 간씨는 새로운 남자친구 양좡(楊庄·가명)씨를 만나 불꽃같은 사랑에 빠졌다.이들 두남녀는 곧바로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돤은 화가 머리 꼭뒤까지 치밀었다.2006년 2월 14일,그는 간씨에게 연락해 다시 만났다.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옛날로 돌아가 같이 잘 살아보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3일 뒤,돤이 간씨의 집으로 찾아갔을때 간씨는 약속을 파기하겠다고 통보했다.이들 두 사람은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다.화가 난 돤은 핸드폰 충전기의 줄로 간씨의 목을 조르며 “나에게 돌아오라.”고 욱대겼다.하지만 간씨는 “죽었으면 죽었지,절대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더이상 참지 못한 돤은 전선줄로 그녀를 폭행하자,간씨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흐느꼈다.이에 마음이 너누룩해진 그는 부드러운 말로 간씨를 달래며 다독여 ‘태풍’은 지나갔다.마음이 풀린 두 사람은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봤다. 30여분쯤 지났을까.간씨가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그녀는 돤을 보며 “양좡에 비하면 너의 정력은 형편없이 떨어진다.”고 비아냥거린 것이다.이 말을 듣자마자 돤은 화가 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거며 두 손으로 간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돤은 살해 흔적으로 없애기 위해 그녀의 시신의 목에 남은 지문 등을 지우고 시신을 방안으로 옮겼다.주방에서 과도를 가져와 두번에 걸쳐 그녀의 배를 찔러 완전 범죄를 가장했다. 이어 시신을 방 침대 밑으로 밀어넣은 뒤 간씨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달아났다.이후 또다른 남자친구 양씨에게 그녀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문자 메세지를 보내는 치밀함을 보였지만 돤은 끝내 덜미를 잡혀,쇠고랑을 찼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사설] 정신질환의사 진료 방치했다니

    정신질환으로 군 면제를 받은 의사들이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은 채 병·의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해 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문제가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병무청의 통보를 받아 확인한 결과 2004∼2005년 군의관 입대를 앞두고 신체검사를 받은 의사들 가운데 6명이 정신질환으로 군 면제판정을 받았고 판정 이후부터 지금까지 의사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질환 가운데는 군생활에는 심각한 지장을 주지만 의사 직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있다. 하지만 군 면제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정신질환을 가진 의사가 환자들을 제대로 진료할 수 있을지는 상식선에서 봐도 의문이다. 그들을 믿고 의지해 온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번 사태는 복지부와 병무청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결여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수요자인 환자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적 실책이다. 복지부는 현재 이들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며 곧 청문회 등 행정절차를 거쳐 면허취소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면제판정을 받은 뒤 질환이 완화·완치된 상태라면 개별 청문회에서 구제의 기회를 주되, 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정되면 즉각 면허취소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울러 병무청의 복지부에 대한 통보 의무를 명문화하고, 복지부 차원에서는 군 면제판정을 받은 의사는 즉각 면허를 정지 혹은 취소한 뒤 완치·완화된 것이 확인되면 면허 재개 혹은 재교부하도록 조치할 것을 주문한다.
  • [사설] 어이없는 대학병원의 性차별

    서울에 있는 한 대학병원이 인턴을 채용하면서 조직적으로 여의사들을 차별 대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병원은 인턴 40명을 뽑는 과정에서 성적에 상관없이 여의사는 11명만 합격시켰다. 그 결과 지원성적이 30등 안에 든 여의사 7명이 탈락한 반면 남자 의사는 67등까지 합격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 병원은 채용 계획을 발표하면서 여성 몫이 11명에 불과하다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한편 여의사들에게 지원을 포기하도록 종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근육을 쓰는 육체노동자가 아닐진대 여성을 차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의사로서의 자질·능력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인턴 채용 기준에 따라 평가하면 된다. 그런데도 그 결과를 무시하고,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성적이 우수한 여의사들을 배제하였으니 이는 자신들이 수행하는 의사라는 직업의 전문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짓이나 다름없다. 해당병원은 이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고는 채용을 제한하는 이유가, 레지던트 지원 단계에서 여의사들이 원하는 전공 과에 쉽게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이지 여성차별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어리석고도 해괴한, 가부장적인 의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주장이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당당히 제 몫을 해내는데 의료계에서만은 아직도 여성이 윗사람 지시에 순종하고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 환자는 실력 있는 의사를 원하지 남자의사를 바라지 않는다. 전근대적인 사고의 틀에서 헤매는 대학병원측의 맹성을 요구한다.
  • 공중보건의 탈락 한의사 거센 반발

    “행정 실수다. 재조정 문제를 논의하겠다.”(보건복지부) “우리 소관 아니다.”(병무청) ‘공중보건한의사’ 제도 도입 후 탈락자가 무더기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는데도 관련 부처 간에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병무청의 ‘나 몰라라식’ 외면으로 탈락된 한의사 77명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현역병으로 무더기 입영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방공공보건사업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사태의 발단은 복지부의 수요 예측 착오에서 비롯됐다. 복지부는 지난해 공중보건한의사의 올해 수요를 234명으로 정하고 병무청에 통보했다. 병무청은 이 숫자만큼만 공중보건한의사로 편입시키고 나머지 77명은 탈락시켰다. 탈락된 이들은 ‘현역입영대상 한의사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7일 정부 대전청사를 항의 방문하고 기자회견도 가졌다. 이들은 “지자체의 한방공공보건의료사업 희망자(423명)뿐 아니라 올해 제대하는 공중보건한의사 303명에도 미치지 못한다.”면서 “행정소송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보건복지부는 자체 조사를 벌여 행정착오로 인해 수요 예측을 잘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복지부는 실수를 인정하고, 지난달 26일 병무청에 100명 추가 증원을 요청했지만, 병무청은 ‘불가 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무조정실에 업무 조정을 요청한 상태로 금주 중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련 부처간 조속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탈락자들의 입대 거부 등 사회적 파장이 우려된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사설] 나사 풀린 대한민국 공군

    지난달 13일 서해 바다로 추락한 KF-16 전투기 사고의 원인이 정비불량으로 드러났다. 엔진 날개판 지지대를 제때 교체하지 않아 발생한 인재(人災)였던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400억원이 넘는 전투기를 잃고, 조종사의 소중한 생명을 잃을 뻔한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공군의 기강이 얼마나 해이해져 있는지, 또한 우리 공군의 전투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나사 풀린 공군의 기강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번 KF-16기 추락사고 나흘 전에도 대구 공군기지에서 1대 가격이 1000억원인 최신예 F-15K 전투기를 지상에서 옮기다 땅이 꺼지는 바람에 왼쪽 날개를 부러뜨리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0월에는 F-15K 전투기에서 투하된 연습용 포탄이 목표지점을 벗어나 농가 주변에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사고도 있었다. 이보다 넉달 앞선 6월에는 F-15K 추락사고로 조종사 2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원인이 부품 결함이든, 정비 불량이든, 조종 미숙이든 모두가 공군의 총체적 부실을 상징하는 일들이다. 지금 우리 공군은 전투기의 64%가 31년을 넘긴 기종일 정도로 노후화돼 있다. 그만큼 장비 현대화에 만전을 기해야겠으나 이에 못지 않게 군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는 일이 절실하다. 수십명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전역을 시켜달라며 군 당국과 법정 싸움을 벌이는 지금의 전투력과 사기로 어찌 한반도의 영공을 사수할 수 있단 말인가. 전시작전권 환수에 대비,2012년까지 수십조원을 들여 다목적 위성과 공중조기경보기 등 첨단장비를 들여온다지만 이런 기강으론 제 아무리 첨단인들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공군은 정비실태를 전면 조사하겠다며 법석을 떨 것이 아니라 장병의 기강부터 바로잡을 대책부터 세워야 한다.
  • [사설] 어이없는 아베 총리의 위안부 망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제의 군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취지의 망언을 했다.88주년 3·1절 기념식을 치른 날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역사적 진실을 존중하는 태도와 실천이 필요하다.”라고 당부했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한 일본의 자세를 강조한 지 불과 몇시간 후 일본총리가 비웃기라도 하듯 행한 발언이다. 군 위안부 동원에 일본군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를 승계하겠다던 아베 총리는 이날 언급으로 약속을 스스로 뒤집었다. 일본에서는 침략과 식민지배의 잘못을 인정하는 종래의 ‘가학적 사관’은 오류라는 극우적 주장이 세를 얻고 있다. 태평양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세대가 적잖게 동조한다. 한·일간에 분쟁을 낳은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좋은 예이다. 군 위안부에 관해서도 일본군이 개입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게 이들이다. 아소 다로 외상은 미 하원에 계류 중인 위안부 결의안에 대해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라고 공공연히 발언할 정도다. 자민당의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들 모임’도 고노 담화의 수정을 아베 총리에게 요구키로 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지도층의 역사인식이 이래서야 제대로 된 한·일관계를 기대하기 힘들다. 일본의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고노 담화 수정은 없다고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행태를 경계하고 나섰다.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저지하러 미국 의회에 달려갈 일이 아니다. 역사적 진실은 가린다고 해서 가려지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3·1망언을 취소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것만이 피해자의 아픔을 달래고 일본 스스로 떳떳해질 수 있는 길이다.
  • [女談餘談] 가짜 그림 권하는 사회/최광숙 공공정책부 차장

    사회 초년병시절 그림을 좋아하는 선배를 따라 화랑가를 누볐다. 그러다 어쭙잖게 그림을 몇점 사기에 이르렀다. 월급이 몇푼 안 되던 시절이라 몇달에 걸쳐 그림 값을 갚았다. 요즘 집에 있는 그림을 보노라면 “혹 가짜가 아닐까?” 슬며시 걱정된다. 최근 변시지(80) 화백의 가짜 유화 한 점이 진품으로 둔갑한, 어처구니없는 일을 보면서 그런 걱정은 더욱 커졌다. 국내 최고의 미술감정협회인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로부터 ‘진품’이라는 ‘감정서’까지 발급받은 그림을 누가 감히 가짜라고 생각했을까 싶다. “신이 아니니까 (감정에)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엄중구 미술품감정연구소 대표의 얘기를 들으면 더욱 믿기 어려운 것이 미술시장이다. 진품 감정을 받은 미술품도 믿기 어려운 세상이다. 화랑가에서 나도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 미술계도 요지경이다. 한 미술계 인사는 “화랑가 주변에는 돈 100만원 쥐어주고, 술 한 잔 사면 유명화가의 그림을 똑같이 그려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 “가짜그림을 조직적으로 화랑가에 유통시키는 ‘나카마’(거간꾼의 일본식 표현)들도 있다.”고 했다. 가짜그림 파문은 늘 그렇듯 결론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진위 논쟁을 벌이다가 가라앉으면 몇년 뒤 다른 화랑에 나타난다. 유명화가의 그림을 똑같이 베낀 모사품을 화랑에다 내다 파는 ‘나카마’도 활동무대 등에 따라 ‘인사동 나카마’ ‘전국구 나카마’ ‘국제 나카마’ ‘컬렉터 나카마’ 등으로 나뉜다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아예 가짜그림을 양산하는 ‘미술공장’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예술의 세계에 숨겨진, 검고 추한 거래. 예술을 매개로 한 ‘사기’는 바람직하지 못한 고수익을 창출한다. 싸구려 그림 한 장이 진품으로 둔갑하면 수천만원, 수억원씩에 거래된다. 죄질이 나쁜 범죄이고, 가짜 그림을 그리고 유통시키는 범인을 잡아야 하는 이유다. 더구나 요즘 미술품이 재테크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직장인들도 작은 소품 하나 가지려고 경매에 뛰어드는 현실을 보면 미술계의 정화가 절실하다. 최광숙 공공정책부 차장 bori@seoul.co.kr
  • 차동엽신부 “도올은 궤변가”

    차동엽신부 “도올은 궤변가”

    천주교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인 차동엽 신부가 성경 해석을 놓고 개신교계와 논란을 빚고 있는 도올 김용옥 세명대 석좌교수를 ‘궤변가’로 치부했다. 차 신부는 28일 평화방송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연출 오동선)와의 인터뷰에서 “도올의 주장은 궤변이어서 그의 이야기를 따라다니면서 반박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차 신부의 이같은 발언은 김 교수가 지난 6일 EBS 외국어학습 사이트를 통해 ‘영어로 읽는 도올의 요한복음’ 강의를 시작하면서 구약 폐기론 등 기존 신학과 다른 견해를 밝힌 것에 대해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김 교수가 “인간의 원죄를 주장한 것은 부활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사도 바울의 사상일 뿐 예수는 원죄를 말한 적이 없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차 신부는 “신학교 시절에 조금 배웠다는 옅은 지식을 가지고 수십년간 공부한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너무 경솔하게 뒤집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의 구약 폐기 주장에 대해서는 “구약은 신약으로 도약하는 발판 역할을 했는데 그것을 없애버리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라고 반박했다. 차 신부는 성경해석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대응하자니 어처구니가 없고 무대응하자니 선의의 신자들이 흔들릴 수 있어서 기독교 일각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라며 “상식이 있는 분들이 건전한 판단을 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미국 할리우드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제작한 ‘예수의 무덤’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에 대해 “스캔들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돈을 벌어보려는 무책임한 상업주의 발상이어서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김 교수의 ‘요한복음 강의’에 대해서는 “상업주의 목적이라기보다 본인의 영지주의적 신앙이나 우주관이 창조론이나 신의 존재 등과 모순·충돌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퇴장당한 박주영 UAE경기 출전 못해

    ‘천재’ 박주영이 예멘전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는 수훈을 세우면서도 한순간의 흥분을 참지 못해 올림픽 대표팀에 적지 않은 누를 끼치게 됐다. 박주영(22·FC서울)이 후반 18분 양동현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한 장면에선 천재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청소년 대표 때부터 발을 맞춰와 눈빛만 보고도 마음을 알 정도라는 김승용(22·FC서울)과 2대1 패스를 주고받으며 겹겹이 싸인 예멘 수비진을 교란시켰다. 남미 선수들이나 할 수 있는 세 차례 터치를 받으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 공은 무인지경의 양동현에게 전달돼 결승골로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골이 들어간 직후, 한국 축구가 ‘완벽한 패스에 의해 상대 골문을 파고든’,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는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후반 40분 박주영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말미암아 이같은 찬사는 빛이 바랬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상대 수비수 모하마드 하산 야신(18·알 미나)이 연거푸 뒤쪽에서 발을 거는 바람에 넘어진 박주영은 벌떡 일어나 야신에게 배를 내밀었다. 손가락을 내저으며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던 야신은 ‘할리우드 액션’으로 넘어졌고 중국인 하이탄 주심은 곧바로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해 독일월드컵 결승에서 지네딘 지단의 박치기 장면과 매우 비슷한 장면으로 판정에 이의를 달 수 없는 비신사적 행위였다. 박주영은 이제 예멘 전보다 한층 중요해진 14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원정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물론, 국제축구연맹(FIFA)의 비디오 리플레이를 통해 사안의 경중을 따져 추가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특히 박주영은 지난 시즌 프로축구 K-리그와 독일월드컵에서 겪었던 슬럼프를 극복하고 소속팀 동계훈련을 내실있게 소화해 부활을 알리고 있는 시점이어서 개인적으로도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애국지사에까지 ‘악플’ 화살

    ‘윤봉길 의사가 테러리스트라고?’네티즌들의 악성 댓글(악플)이 위험수위를 넘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연예인들에 대해 쏟아지던 악플의 화살이 이번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애국 지사인 매헌(梅軒) 윤봉길(1908∼1932) 의사를 겨냥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26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 따르면 1932년 4월 ‘훙커우 의거’ 직후 일본 군경에 끌려가는 윤 의사의 사진이 진위논란에 휩싸이면서 한 출판사의 국사 교과서에서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25일부터 각 포털 사이트와 뉴스 게시판 등에는 윤 의사를 비하하는 글이 상당수 올라오고 있다. 자신을 희생하며 나라를 구한 애국지사를 겨냥한 악플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다. 게시판에는 “요즘으로 치면 그저 빈 라덴과 같은 테러리스트에 불과한데 무슨 애국자냐?”,“당시 중국에서만 그를 ‘의사’로 치켜세웠을 뿐 전 세계는 그저 테러리스트로밖에 여기지 않았다.”,“봉건적 조선왕조에 충성하던 사람에게 무슨 애국자냐?”는 등의 댓글이 적지 않다. 네티즌 사이에서도 이러한 악플러(악플을 일삼는 네티즌)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함께 인터넷 세계에 아예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전쟁에 책임이 있는 전범만을 겨냥한 ‘의거’와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테러’도 구별하지 못하냐?”,“우리가 이 정도라도 살고 있는 것이 다 윤 의사를 비롯한 열사들의 희생 덕분인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가진 네티즌을 보면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는 등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한 네티즌은 “자신을 희생해 나라를 구한 위인들까지도 댓글 조회수를 높이는 데 이용하려는 일부 악플러들의 생각없는 행동은 우려의 수준을 넘어 매국노와 같은 행동”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또 다른 네티즌은 “악플 화면을 통째로 다운받아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겠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에서 사회심리학을 강의하는 차운아(31) 박사는 “그동안 인터넷 실명제 등 사이버 공간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없다보니 악플러들에게 ‘사이버공간은 상대방을 늘 일탈이 허용된다.’라는 규범이 성립된 상태”면서 “이들은 윤 의사에 대한 명확한 가치판단 없이 그저 ‘어떻게든 내 자신이 이슈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에 큰 희열을 느끼게 된다.”고 분석했다.서울대 국사학과 권태억 교수는 “한 인물을 놓고 개인의 평가가 엇갈릴 수는 있지만 윤 의사를 수백명의 무고한 미국인을 희생시킨 오사마 빈 라덴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한국인으로서의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한 관계자는 “고인에 대한 악플의 경우 가족 등 법정 대리인이 고소를 할 경우 사자 명예훼손에 대해 수사할 수 있다.”면서 “김형은, 유니, 정다빈 등 고인에 대한 악플 자정노력이 거센 가운데 또 다시 고인에 대한 악플논란이 이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류지영기자superryu@seoul.co.kr
  • [사설] 정말 충격적인 ‘학사모’의 기부금 요구

    교복값 거품없애기 운동을 주도해 온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학사모)’이 교복업체에 상당액의 기부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업체들 주장으로는 수십억원대에 이른다. 학사모는 업체들이 부당하게 취한 이득을 사회환원금 명목으로 내놓으라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단체가 쓸 돈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교육청 등에 기부하라고 한 것이므로 떳떳하다는 뜻이다. 명분이야 어찌 됐든 시민단체가 감시 대상인 기업에 후원이나 기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시민의 권익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단체가 압력을 가하고 돈을 내라고 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단체는 순수성과 존재이유를 잃게 된다. 학사모는 개학을 앞둔 시점에서 교복값 현실화 운동을 벌여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교복물려주기 운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일부 업체들의 자발적인 교복값 인하도 유도해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교복착용 시기를 5월로 늦추도록 권고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업체들의 교복값 담합 조사를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런 학사모가 교복업체의 계열회사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뒤편에서 사회환원금을 요구한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교복값을 내리겠다는 활동이, 업체들에 기부를 요구함으로써 가격 인하를 못하도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옳지 않은 처신이었다. 그래서야 시민단체의 우월적이고 특권적 지위를 오남용했다는 지적을 면할 길이 없다. 경실련·흥사단 등 4개 시민단체가 그제 시민단체의 책임성을 높이겠다고 나섰다. 민주화를 증진하고 사회를 감시해 온 시민단체가 영향력은 커진 반면 권력화됐다는 안팎의 비판을 수용한 결과이다. 모처럼 자성하겠다는 마당에 드러난 학사모의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시민단체의 도덕성을 의심하게 하고 고립을 가속화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 설 연휴 잇단 사건·사고

    설 연휴 전국에서는 가스폭발 사고로 일가족 4명이 숨지고, 방화로 추정되는 연쇄 화재가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화재가 잇따랐다. 경찰이 엉뚱한 피의자를 석방했다가 뒤늦게 붙잡히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일어났다.●가스폭발 일가족 4명 참사 설 명절인 18일 오전 4시30분쯤 경기 고양시 행신동 소만마을의 한 아파트 12층 김모(39)씨 집에서 가스 폭발과 함께 불이 나 김씨와 부인 양모씨, 큰아들, 막내딸 등 일가족 4명이 숨졌다. 경찰은 추가 현장 감식을 실시했으나 화재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19일 오전 4시7분쯤 서울 마포구 아현1동 재개발지역 주택 6가구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잇따라 발생, 주민 김모(60)씨 등 2명이 다치고 2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경찰은 반경 50m 내의 주택에서 거의 동시에 불이 났고, 현장에서 심지로 쓰인 종이상자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방화로 추정하고 수사하고 있다.●엉뚱한 피의자 석방 해프닝 경찰이 유치장에 갇혀 있는 피의자 두 명을 헷갈리는 바람에 엉뚱한 사람을 풀어줬다가 7시간여 만에 다시 붙잡는 소동도 벌어졌다.18일 오전 6시15분쯤 서울 금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 중 석방 지시가 내려진 임모(43)씨가 잠이 든 틈을 타, 성이 같고 나이가 비슷한 다른 임모(41)씨가 석방 당사자 행세를 하면서 풀려났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경찰은 휴대전화 통화 목록을 뒤져 행방을 추적한 끝에 이날 오후 1시40분쯤 임씨를 붙잡았다.전국종합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강태규의 연예 in] 연예인 관리 제대로 되고 있는가

    연예계 초유의 사태가 또다시 벌어졌다. 한달새 연이어 인기 여자 가수와 배우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주목받는 삶의 뒤란에 고개숙인 연예인의 우울한 얼굴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연예인들의 자살사건을 연예기획사의 관리 부재라고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이 여기까지 벌어진 마당에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숙제로 남았다. 소속 연예인 관리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각별한 관심과 예방에 만전을 기할 시점이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획사와 연예인은 동업자다. 물론 대형스타로 입지를 굳힌 연예인의 경우는 기획사의 입김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그 수는 손을 꼽을 정도여서 예외로 두자. 일반적으로 기획사는 신인 연기자와 계약을 할 때 연예활동에 따른 제반 경비를 제외하고 5대5의 수익분배를 한다. 그러니 당연히 동업자의 입장이라는 주장도 틀린 말이 아니다. 기획사는 연예활동을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계약서 상에는 존재한다.‘모든 지원’이라는 포괄적 의미를 기획사마다 어떻게 판단하고 실천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모든 지원’이라는 의미는 활동에 필요한 제반경비뿐만이 아니다. 계약서 상에 활자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심리적 안정’과 ‘인격적 대우’도 포함되어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이를 실천하고 있는 기획사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연예인이 회사의 부를 창출해야 하는 부속품쯤으로 생각하고 대우한다면 그것은 자기 얼굴에 침뱉기다. 연예인은 대중에게 상품적 가치로 평가받지만, 회사와 스태프들에게는 엄연한 인격체이며 서로 공존하는 파트너다. 즉, 가족인 셈이다. 소속 연예인을 가족처럼 대한다면, 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계약을 실천한다면 성년이 된 신인 여자 연기자에게 민망할 정도의 언어폭력을 감히 행사할 수 있겠는가.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 교육을 받지 않은 연예계 입문 2∼3년차 정도의 한 매니저가 폭력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언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어처구니없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진다. 이것 역시 기획사의 매니저 관리 부재다. 매니저 관리도 엄격히 안 되는 마당에 어떻게 연예인 관리를 운운할 수 있겠는가. 갓 데뷔한 연예인이 이런 악조건속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연예활동을 하고 성장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전쟁터와 같은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단이 무리는 아니다. 일부 기획사들의 이같은 제도적 문제는 연예인의 파행적 돌출행동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음은 과장된 말이 아니다. 연예인의 기본적인 인성 자체가 부족해 교육도 그때뿐이라는 기획사의 푸념도 적지 않다. 그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애초에 자질이 부족한 연예인을 계약한 기획사의 몫이다. 품에 따뜻하게 안지 못할 거라면 이곳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것도 진정 그들을 위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대중문화평론가
  • ‘여자는 구혼거절 못한다’는 결혼법

    ‘여자는 구혼거절 못한다’는 결혼법

    「아프리카」의 소국 「잔지바르」의 「카루메」대통령은 기분 내키는대로 정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최근엔 어처구니없는 결혼법을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 그의 결혼법은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그녀에게 구혼하는 남자의 청을 거부할 경우 남자에게 실격 사유가 없는 이상 처녀 부모를 징역에 처할수 있고, 약혼한 처녀는 일주일 이내에 결혼하지 않으면 약혼이 무효다. 그리고 어떤 처녀도 「잔지바르」이외의 곳에서 결혼 하고자할 경우는 그 남자가 먼저 7천 8백「달러」(약 2백50만원)의 신부세를 내지 않으면 출국할 수 없다는 것. [선데이서울 70년 6월 21일호 제3권 25호 통권 제 90호]
  • [길섶에서] 필름 끊김/송한수 출판부 차장

    “엄만 접시꽃, 난 패랭이꽃∼.” 그녀는 ‘쐬주’ 몇 잔이라도, 얼큰히 취하면 이렇게 ‘주정’을 해댄다. 어머니가 하늘로 올라가신 날 어찌나 울었던지 어깨를 못 썼을 정도였단다. 똑같은 말을 술자리를 벗어날 때까지 몇번이나 읊조리곤 했다. 그런데 다음 날 만나 그 얘기를 꺼내면 “거짓말 말라.”고 잡아뗀다. ‘만드레’라는 별명을 지닌 후배의 일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초면의 제주도 선배와 학교 얘기가 나와 ‘누굴 알겠네?’ 하며 인사를 건네는가 싶더니 대번에 삿대질이다. 친구 아무개 얘기에 곧바로 혀가 꼬이더니 말썽을 피우고 말았다. 그러나 이튿날 역시나 기억에 없단다. 술에 취하면 필름이 끊기는 사람들이 있다. 사무치는 추억이 어떤 계기를 만나 고개를 치켜들면서 두뇌의 기억회로를 짓눌러 버리는 게 아닐까.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어떤 이는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읍소해 잊으려 하고, 어떤 이는 나쁜 기억을 지우려 안 하던 짓(?)을 하고…. 송한수 출판부 차장 onekor@seoul.co.kr
  • [잘 가거라 2006년] 나의 올해는 지긋지긋 했다

    [잘 가거라 2006년] 나의 올해는 지긋지긋 했다

    글 이유경 시인, 본지 편집주간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지긋지긋한 한 해’로 손꼽히는 경우는 올해 말고 한 번이 더 있었던 것 같다. 50여 년 전 일이다. 세월의 간격이 있긴 하지만 사안의 힘겨웠던 과정은 둘 다 비슷하다. 그러나 어렸을 때의 그 첫 힘겨웠던 경험은 나에게 달콤하고 아련한 추억으로, 마음의 양식으로 남아 있다. 첫 번째의 것은 내가 열세 살 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무렵이었다. 나에게는 여덟 살 위의 형이 있었는데 그가 부산에서 고교 졸업반을 다녔다. 시골의 가난한 우리 집은 아들 둘을 도시로 유학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한 해 ‘재수’의 고역을 치르게 된 것이다. 동급생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나는 패잔병처럼 남아 시골 골목과 들길을 고개를 푹 꺾고 헤매 다녔다. 지겨운 1년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고독한 방황’이 훗날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사물을 들여다보고 언어를 생각하고 표현의 길을 홀로 모색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올해의 것은 날벼락이었다. 다들 그렇겠지만 나 역시 ‘날벼락 같은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혹은 나를 비켜가는 어떤 경험 세계라고 생각해 왔었다. 처음 나는 실제 이 날벼락 같은 상황을 당하고, 한동안 어처구니없게도 웃음이 나왔다. 아픔이 몰려왔을 때야 비로소 ‘당했구나!’했으니까. 지난 3월 1일 저녁 무렵이었다, 독일 월드컵축구를 앞두고 가나와의 시범경기가 서울 상암 스타디움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나는 서두르며 집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개천의 좁은 다리를 지나가는데 빠르게 지나가는 트럭 바퀴에서 튕긴 철판이 느닷없이 나의 오른 쪽 대퇴부를 강타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풀썩 주저앉은 나는 찢겨져나간 바지 사이로 부러져 삐죽이 튀어나온 나의 허벅지 뼈를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119를 불러달라고 했고 마침 집에 와 있던 딸아이를 휴대폰으로 불렀다. 사고 난 지점은 집과 가까운 거리였다. 사람들은 나를 둘러싸고 입을 모아 “기어이 올 것이 왔구먼!”했다. 나는 몰랐는데, 철판은 그때까지 흉물로 방치돼 ‘사건’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구급차가 와서 현장을 수습하고, 진통제로 의식을 뺏은 나를 병원으로 싣고 갔다. 응급실에서 4시간 동안의 대수술을 받은 나는 그때부터 한 달을 깁스한 상태로 입원실에서 시간을 까먹어야 했다, 병원 정형외과에 장기 입원해본 사람은 안다. 우울한 병실의 침묵과 창백한 견딤의 지루함을! 그것은 몸속으로 간헐적으로 지나가는 아픔을 삼키고 있는 자의 형이상학적 자화상일 것이다. 상대방을 외면하고 자아만을 들여다보는, 외로운 시인과도 같은 모습 말이다. 새벽잠이 없는 나는 그 한 달 동안 병원 휴게실의 무미건조한 풍경 속에서 봄을 맞았다. 병실에선 다른 사내의 앓는 소리나 코 고는 소리를 듣고 누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휠체어에 실려서, 쇠막대기 같이 무거운 한쪽 다리를 수습해가며 휴게실의 새벽 한두 시간을 나는 견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퇴원해서도 6개월 동안을 나는 지팡이 신세를 지고 있다. 나이 때문인가, 손상된 뼈와 근육이 쉽게 재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아지고 있다는 징조와 희망사항이 금방 무너지거나 아픔으로 앙갚음해 오던 적이 부지기수였다. 밤중에 오는 가느다란 통증은 감당하기가 힘이 드는 적일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나는 지팡이 신세로 이사를 해야 했는데, 지대가 조금 높은 곳의 아파트다. 이게 나에게 말썽을 부렸다. 오르막보다 내리막을 걷는 것이 더 힘겨웠고, 그래서 수습돼 가던 뼈와 근육의 조화를 손상시켰는지, 염증은 없으면서도 부상 입은 다리가 붓고 걸으면 통증이 재발하곤 했던 것이다. 담당의사는 다시 한 달 동안 목발을 권했다. 근육운동을 않았던 다리는 더욱 불편해졌고, 통증도 여전했다. 한 달 후로 예약한 날짜에 갔더니 의사는 많이 좋아졌다면서 다시 한 달 동안 목발 짚기를 명했다. 그 한 달이 다 가고 있는 지금에도 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 일어나거나 쉬고 나서 걸으면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지방도로에서 당한 이 사고에 대해 지방 보상심의위원회는 보상을 할 수 없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지방관청이나 국가가 만들지 않은 길에서의 사고에 대해선 관리의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대법원판례를 내세우고서였다. 걸어 다니지 않아도 아프고, 열심히 걸어도 아픈 이런 불편의 악순환에서, 나는 올해 안에 벗어날 수 있을까? 지겹게 긴 2006년이여, 제발 어서 가버려라!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강태규의 연예in] 에릭 클랩튼이 한국인이었다면

    지난 23일 세계적인 뮤지션 에릭 클랩튼의 공연이 열렸다. 그의 나이 63세. 어쩌면 이 공연이 한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팬들의 기대는 자못 남달랐을 게다. 1만여 관객이 몰려든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의 열기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가진 명성과 인기는 여전했다. 지난 1997년 내한공연에서는 팝 위주의 선곡으로 팬들을 열광시키더니, 이번에는 질퍽한 농도의 블루스 음악으로 또 다른 맛을 안겨주었다. 관객에게 별다른 인사도 없이 2시간 동안 관객을 몰아치며 칼날 같은 음악적 이음새를 선보인 에릭 클랩튼. 국내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Wonderful Tonight’ ‘Layla’를 연이어 부르면서 객석을 열광케 했다. 이미 약관의 나이에 ‘기타의 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세계의 팬들을 주목시켰던 에릭 클랩튼. 그는 이날 공연에서 록의 황금기 속에 녹아든 자신의 절정기,70년대 곡들을 중심으로 무대를 채워나갔다. 거장 뮤지션에 대한 탄식은 공연장 구석구석에서 새어나왔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한참 동안 곱씹다가, 또 일제히 거장에게 아낌없는 경의를 보내는 관객의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다 불현듯 심통이 불쑥 솟아났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일지 모르겠지만 에릭 클랩튼이 만약 이 땅,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저만한 인기와 굳건한 아성을 과연 쌓을 수 있었을까? 2006년 여름부터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아시아와 뉴질랜드에서 마무리되는 월드투어로 세계 음악팬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중 84번째 공연 도시가 바로 자신의 고향인 서울에서 국민들의 성원과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저 무대에 설 수 있었을까? 에릭 클랩튼의 음악적 완성도와 깊이를 폄하하자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세계의 음악적 지형도와 힘의 논리가 결국 대중의 함몰적인 음악적 편견을 낳고 있다면 그것을 마땅히 경계하고 싶다.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고 국가 경쟁력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내실있는 우리의 음악적 토양의 부재가 못내 서글프다. 천재적 뮤지션의 탄생은 튼튼한 음악산업 속에서 대중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 가요의 음악적 실종을 읽어내리면서 그 주범이 누구인지를 뒤돌아보는 일은 세계적인 뮤지션 에릭 클랩튼의 공연을 보면서 열광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산 지 오래되어 버렸다.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 [김종면기자의 책안세상 책밖풍경] 言衆의 도리

    최근 한 지상파방송 아나운서가 쿠사리라는 일본어를 순수한 한국말이라고 잘못 방송했다가 망신을 샀다. 또 불필요한 외국어를 멋인 양 주워섬기는 유명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한글문화연대로부터 ‘우리말 해침꾼’으로 선정되는 수모를 겪었다. 글이 인격의 반영이라면, 말은 인격 그 자체다. 그러나 우리는 부적절한 말이나 글을 일상적으로 남발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맞춤한 한국말이 있는데도 굳이 외국어를 골라 쓰는 풍경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세계는 지금 ‘영어와의 전쟁’을 벌이며 자국어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뒤섞인 프랑글레(Franglais)를 몰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영어식 독어 뎅글리시(Denglisch)가 판치는 독일은 자국어의 소멸을 막기 위해 헌법으로 독일어를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도 스페인어의 침투에 맞서 상원에서 영어가 미국의 공식언어임을 선언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우리는 어떤가. 유치원에서조차 영어 인증시험이 유행이다. 우리말의 뉘앙스도 깨치기 전에 외국어에 무분별하게 노출돼 영문도 모르고 영어를 지껄이고 있으니. 그들이 쓰는 우리말이 ‘영어식’ 한국어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영어에 ‘과몰입’돼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그 어처구니라는 우리말의 뜻이라도 한번 가르쳐 주자. 궁궐 같은 건물 추녀마루 끝에 한줄로 놓인, 흙으로 만든 조각이 바로 어처구니다. 잡상(雜像)으로도 불리는 이 작은 조형물은 옛날에 귀신을 쫓기 위해 병사를 지붕 위에 올린 데서 유래했다. 마침 ‘어처구니 이야기’(비룡소)라는 어린이 그림책이 나와 수천부가 팔려나가고 있다.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얘기다.자국어만이 아름답다거나 우월하다는 주장은 곧 언어 제국주의요, 언어 패권주의다. 그러나 자기 나라말을 사랑하고 가꿔나가는 것은 언중(言衆)으로서의 도리다. 그런 점에서 현행 표준어 일변도의 음운정책 폐지를 요구하며 헌법소원까지 낸 지역말 연구모임 ‘탯말두레’의 활동은 단연 돋보인다. 이 모임의 간사인 박원석 도서출판 소금나무 대표는 “지역 언어의 보존 차원에서도 각 지역의 사투리, 즉 탯말 교육은 절실하다.”며 “탯말을 공용어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기야 ‘빈대떡’이란 방언이 경쟁관계에 있던 표준어 ‘빈자떡’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사례도 있고 보면, 탯말이 언제 표준어를 대신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영어 인증시험에 얼이 빠진 유치원생,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 창피를 당한 아나운서, 되잖은 외래어를 남용해 우리말 해침꾼이 된 디자이너…. 이들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빛나는 우리 말·글 책을 선물하고 싶다.jmkim@seoul.co.kr
  • [씨줄날줄] 석궁의 진실/진경호 논설위원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괴상망측한 생김새의 오크족들이 사용한 석궁의 위력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하다. 수백m를 날아가서는 철갑을 뚫고 인간과 엘프족들을 살상한다. 쉬잉∼ 하며 날아가는 소리도 괴기하기 짝이 없다. 이 판타지 영화 탓일까. 16일 아침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서울고법 부장판사 석궁 피습 사건 보도가 물리학적으로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범했다. 피해자 박홍우 판사가 복부에 1.8㎝ 깊이의 비교적 가벼운 상처를 입은 데 대해 많은 언론이 박 판사와 석궁의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수사경찰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박 판사가 외투를 입은 데다 1m 거리에서 화살이 탄력을 받기 전에 맞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인터넷 포털사이트엔 “석궁의 경우 70∼80m 정도 날아갔을 때 가장 파괴력이 크다.”는 총포류 판매상의 말이 버젓이 나돌았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류다. 석궁처럼 별도의 추진동력 없이 날아가는 비행체는 발사 직후부터 위력(속도 에너지)이 떨어진다. 날아가는 화살에는 공기의 저항과 지구 중력만이 작용할 뿐 더 빨리, 더 멀리 날도록 하는 그 어떤 추진력도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탄력 받을 이유도, 파괴력이 증가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고려대 물리학과 조동현 교수는 “물리학적으로 석궁의 화살은 발사 직후부터 위력이 떨어진다.”며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보도”라고 지적했다. 석궁의 실제 위력도 ‘반지의 제왕’이 묘사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석궁 대다수의 유효사거리는 30∼40m로, 위력이 크지 않아 사냥보다는 레저용으로 쓰인다. 역사적으로도 백년전쟁을 영국의 장궁(잉글리시 보)이 프랑스의 석궁(크로스보)에 승리한 전쟁으로 보는 해석(활이 바꾼 세계사, 김후 저)도 있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가는 탄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발사 직후 회전력에 의한 파괴력 증가가 있을 수 있으나 무시할 정도라는 것이다.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는 “탄환의 전체 운동에너지 가운데 속도에너지가 줄어드는 만큼 미미한 정도로 회전에너지가 늘 수는 있으나 파괴력을 결정짓는 것은 속도에너지이기 때문에 발사 직후 위력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조선은 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비참한 환란을 겪어야 했을까. 한마디로 17세기초 명·청 교체기의 격랑 속에 조선 지배층이 국제정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007년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370년이 되는 해이다. 북핵 문제를 놓고 6자 회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듯,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정세는 예측불허다. 우리가 과연 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러시아·일본 등과의 숨가쁜 외교전에서 북핵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가며, 미래를 당당하게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 병자호란을 살피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에 외교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되짚어보기 위해서이다. 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의 눈을 통해 ‘병자호란´의 안과 밖을 살펴본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이 매주 목요일 연중기획으로 독자를 찾아간다. 편집자 주 ●준비 없이 전쟁을 선택하다 1636년(인조 14년) 봄. 조선 조정에서는 청나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하느냐의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해 3월, 청의 수도인 선양(瀋陽)에서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皇太極)가 황제로 즉위한다는 소식이 조선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척화파(斥和派) 신료들은 “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 추장에게 황제 칭호는 가당치도 않다.”며 “정묘년(丁卯年,1627년)에 그들과 맺은 맹약을 파기하고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들은 이어 ‘황제 운운’하는 내용을 담은 국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의 목을 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주화파(主和派) 신료들은 “청이 명을 능멸할 정도로 세력이 강해진 현실을 인정하여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사신을 박대해서도 안된다.”고 맞섰다. 최종 결정권자인 국왕 인조는 양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척화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곧 이어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조정이 청과 맺은 맹약을 파기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장차 발생할지도 모르는 청의 침략에 대비하라는 내용으로 인조가 평안감사에게 보내는 극비교서(敎書)를 가져가던 금군(禁軍) 전령이 용골대 일행에게 교서를 빼앗긴 사건이었다. 자신의 목을 치라는 험악한 분위기에 놀라 황급히 달아나고 있던 용골대 일행에게, 다른 곳도 아닌 조선 영토 안에서 국왕의 밀찰(密札)을 빼앗긴 것이다. 척화냐, 주화냐를 놓고 정쟁만 무성했던 와중에 정작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어지는 정보 전달체계가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1636년 12월6일. 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질풍같이 내달렸다. 병자호란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병력을 의주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大路) 바깥에 위치한 산성들 속으로 집결시켰던 조선군은 청군의 침입 사실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청군이 조선군과의 접전을 피해, 곧장 서울로 진격하는 속전속결의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임진강 이북의 방어를 책임진 도원수 김자점(金自點)은 청군이 침입했다는 최초의 보고를 묵살하고 조정에 제때 알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적이 다가오자 싸우지도 않고 도주해 버렸다. 청군이 이미 개성을 지나 양철평(良鐵坪-지금의 은평구 녹번동)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전해진 12월14일. 서울 도성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아이들과 노약자들, 부녀자들의 울부짖음속에 피란행렬이 줄을 이었고, 조정 신료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인조는 왕실 가족들과 종묘에 모셔져 있던 역대 국왕의 신주(神主)들을 강화도로 먼저 옮기도록 했다. 이어 자신도 강화도로 들어가려 했으나 청군이 이미 김포에서 강화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해 버렸다. 인조는 어쩔 수 없이 남대문까지 갔다가 강화도 행을 포기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돼지´에게 무릎을 꿇다 1637년(인조 15년) 1월 중순. 준비 없이 들어왔던 남한산성의 상황은 참혹했다. 청군이 산성을 완전히 포위했고, 삼남으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군량이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청군은 연일 서양식 최신 대포인 홍이포(紅夷砲)를 쏘아대면서 항복하라고 종용했다. 조선 조정이 목이 빠져라 고대하던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동상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성을 지킬 의욕을 잃은 장졸들 가운데는 항복하자고 시위를 벌이는 자들까지 나타났다. 그 와중에도 신료들은 척화와 주화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인조는 눈물을 보이며 대책을 호소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1월26일.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청군은 바다에 익숙하지 못하여 수전(水戰)을 치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강화도 조선군 지휘부의 방심이 불러왔던 결과였다. 청군은 이에 앞선 1월22일, 조선에서 노획한 선박에 홍이포까지 싣고 강화도에 대한 상륙작전을 벌였다. 조선군이 변변한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강화도는 함락되었고, 피란했던 왕실 가족과 중신들은 전부 포로가 되었다. 강화도의 함락 소식은 남한산성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1월30일. 인조는 남한산성의 서문을 나와 현재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삼전도(三田渡)로 향했다. 이윽고 그는 높다란 수항단(受降壇) 위에 앉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의 예를 바쳤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번 큰절을 올리고, 한번 절할 때마다 세번씩 머리를 바닥으로 조아리는 오랑캐식 항복 예식이었다. 원래 조선의 지식인들은 홍타이지를 포함한 여진족들을 인간이 아닌 ‘금수(禽獸)’로 경멸했다. 일부 인사는 심지어 청 태종을 ‘황태극(皇太極)’ 대신 홍태시(紅泰豕)라고 불렀다.‘붉고 큰 돼지’란 뜻이다. 그런데 인조가 ‘인간’도 아닌 ‘돼지’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청 태종은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은 뒤 사로잡은 포로들을 이끌고 철수길에 올랐다. 그러면서 인조에게 또 다른 다짐을 받아냈다. “내가 끌고 가는 조선인 포로들 가운데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도망치는 자는 불문에 부친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 단 한발짝이라도 청나라 땅을 밟은 뒤에 도망쳐 오는 포로는 조선 조정이 도로 잡아 보내야 한다.” 무시무시한 약조였다. 날이 갈수록 영토는 넓어지는데 인구가 부족했던 청은 조선인 포로들을 보배로 여겼다. 그들은 훌륭한 노동력이자 값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청은 10만이 훨씬 넘는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인조로부터 이같은 다짐을 받아냈던 것이다. 훗날 실제로 청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왔던 포로들은 이 ‘약조’ 때문에 청으로 다시 박송(縛送)되었다. 그리고 그 포로들은 청군에 끌려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에 신음해야 했다. 호란 후에도 인조는 어렵사리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의 통곡소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누가 안추원의 비극을 책임질 것인가? 1664년(현종 5년). 항복 후 27년이 지나 한 남자가 청에서 도망쳐왔다. 마흔한살의 안추원(安秋元)이 그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 개성 부근에서 살았던 열세살의 소년 안추원은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란했다. 하지만 이듬해 강화도가 함락될 때 그는 청군의 포로가 되었고, 선양으로 끌려갔다. 그는 선양에서 한족 출신 대장장이에게 팔린 신세가 되었다. 호란이 끝난 뒤, 포로로 끌려왔던 조선인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몸값을 치르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하지만 안추원은 그렇지 못했다.1644년 명이 멸망하자 청은 베이징에 입성한다. 베이징을 새로운 수도로 정한 청 조정은 선양의 거주민들에게 베이징으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물한살이 된 안추원은 그의 주인에게 이끌려 베이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18년이 지난 1662년(현종 3). 서른아홉의 장년이 된 그는 조선으로의 탈출을 결행한다. 산해관(山海關)을 통과하여 만주 벌판을 가로질러야 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산해관에서 청군에 붙잡히고 말았다. 베이징으로 송환된 그는 이마에 글자가 새겨지는 묵형(墨刑)에 처해졌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비원(悲願)은 처절했다. 다시 2년이 지난 1664년, 안추원은 마침내 청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정확히 27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가 사선을 뚫고 조선에 도착했을 때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여전히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금지하고 있던 청의 존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27년만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자국 백성을 어찌 차마 돌려 보내겠는가. 청이 알까봐 쉬쉬하는 가운데 안추원은 내륙으로 옮겨졌다. 안추원은 고향을 찾았다. 하지만 고향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자호란으로 그의 가족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목숨을 걸고 다시 찾은 고향이었지만 그는 당장 생계조차 막막했다. 조정은 그를 받아주었을 뿐 생계대책을 마련해 주지는 않았다. 귀향의 감격도 잠시 뿐 배고픈 그에게 아무런 피붙이도 남아 있지 않은 고향은 그저 또 다른 이역이었을 뿐이다. 안추원은 절망 끝에 베이징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청으로의 귀환은 탈출보다 훨씬 위험했다. 1666년(현종 7). 그는 결국 고국을 탈출하려다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 그가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처형되었을 것이다.2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던 그가 온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백성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 영의정까지 올라 안추원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하지만 위정자들의 오판에 떠밀려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비극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까? 병자호란을 통해 수많은 ‘안추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비극’을 불러왔던 최고책임자인 인조는 왕위를 유지했고, 책임을 져야할 신료들의 상당수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전쟁 발생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적과의 싸움마저 회피하여 국왕과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은 인조 말년 최고위직인 영의정까지 올랐다. 오늘날. 병자호란의 참상을 떠올리면서 현실을 돌아본다. 꼭 10년전 ‘IMF 외환위기’가 불러온 칼바람 속에서 스러져갔던 수많은 민초들. 비극을 초래한 책임자들의 과실 또한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수많은 생령들을 도탄에 빠뜨려 놓고도 자신의 과실을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들의 ‘무책임’은 시공을 초월하여 유전되는 것일까. 비극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지 못하면 또 다른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소용돌이치고 정치권의 난맥상과 민생의 어려움 때문에 걱정이 쌓여가고 있는 오늘, 370년전 병자호란의 비극을 되돌아보는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교수> ●필자 한명기 교수는 ▲1962년생 ▲1985년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졸업 ▲1997년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졸업(문학박사) ▲1998∼2001년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 ▲현재 명지대 사학과 교수.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논저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광해군’(2000) 외 다수 ●청태종 송덕비(위 사진) 병자호란 이후 청이 조선에 강요해서 세운 청 태종 송덕비. 병자호란의 전말을 적었다. 사진은 일제시대에 촬영된 것으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 삼전도에 있었다. 현재도 삼전동에 있으며 사적 101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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