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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출 모집인들 ‘고객잡기 전쟁’

    대출 모집인들 ‘고객잡기 전쟁’

    “휴대전화 벨이 울리지 않는 날이 바로 이 세계에서 도태되는 날입니다.” 외국계 은행에서 4년간 대출모집인으로 활동하다 최근 우리은행의 대출전문 자회사인 ㈜우리모기지로 옮긴 김형우(34)씨. 그는 아침이면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 중개업소로 ‘출근’한다. 주택담보대출 모집을 전문으로 하는 김씨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악어와 악어새’ 관계다. 중개업소에는 아파트 등을 담보로 빚을 내 다른 부동산을 사려는 대출 수요자들의 정보가 가득하기 때문에 이곳을 통하지 않고서는 고객을 확보하기 어렵다. 중개업자들도 매매를 알선하면서 대출 관련 서류 등 온갖 금융서비스를 혼자서 해결하지 못해 대출모집인에게 매매자를 소개시켜 준다. 그러나 아무리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개업자라도 김씨에게만 고객을 소개시켜 주지는 않는다. 결국 김씨는 다른 은행과 계약을 맺은 대출모집인들과 한 명의 고객을 놓고 피말리는 ‘대출 세일’ 전쟁을 벌인다. 김씨는 “우리 상품의 장점과 경쟁 은행 상품의 허점을 집중적으로 알리려면 모든 은행들이 판매하는 대출 상품의 특성을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각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환방식, 한도, 설정비, 인지대 등을 죄다 외우고 있었다. ●스키장 슬로프에서도 전화 상담 아파트에 뿌리는 전단지는 자신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하루에 2000∼3000장씩 뿌리면 2∼3건의 문의전화가 온다. 대출을 문의하는 전화는 김씨의 ‘밥줄’이자 ‘생명줄’이다. 한 고객과 2∼3시간씩 통화하는 것은 기본이 됐다. 심지어 스키장 슬로프 중간에 서서 1시간이나 대출 상담을 한 적도 있다. 대출모집인의 또 다른 고객 확보 수단은 ‘입소문’이다. 한 고객의 대출을 완벽하게 성사시키면 온갖 상담이 ‘입소문’을 타고 달려 온다. 김씨는 “고객이 안방이나 사무실에 앉아 대출금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업무를 차질없이 진행시켜야 한다.”면서 “낮은 금리보다 ‘친절’과 ‘집요함’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이 바로 생사의 갈림길 김씨는 전에 있던 외국계 은행에서 프라이빗뱅커(PB) 제의까지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4년여 동안 구축한 ‘인맥’을 잘 활용하면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출모집인들은 통상 대출해주는 금액의 0.3∼0.4%를 갖는다. 그래서 건 당 대출금이 수억원에 이르는 강남 지역에 대출모집인이 몰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김씨는 “잘나가는 사람들은 한달에 150억원 이상을 끌어와 3000만원 이상을 수입으로 챙긴다.”고 귀띔했다. 김씨는 투기지역 추가 대출이 금지되는 등 주택담보대출 요건이 엄격해진 요즘이 바로 대출모집인들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라고 소개했다. 대출 수요가 급격하게 준 만큼 능력있는 모집인과 도태되는 모집인이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것이다. 모집인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고객들에게 ‘퇴짜’를 맞지만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너무 친절해 사기꾼으로 오해받을 때도 있고, 대출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다는 싸늘한 시선도 부담스럽다. 그러나 김씨는 “선진국에서는 ‘모기지 브로커’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곧 대출모집인이 명실상부한 금융 컨설턴트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책은행도 대출모집인 활용 특정 은행과 업무위탁계약을 맺고 대출수요자와 은행을 연결시켜 주는 대출모집인은 그동안 외국계 은행들의 전유물이었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대출모집인 규모를 ‘1급 비밀’로 유지하며 치밀하게 운영하고 있다. 국내 은행 중에는 하나은행만이 2001년부터 대출모집인 제도를 실시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형 시중은행은 물론 국책은행까지 대출모집인 조직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대출모집 전문 조직을 만들어 자회사로 편입시켰고, 국민은행도 최근 100명 규모의 조직을 꾸렸다. 지난 3월에는 기업은행이, 지난달 29일부터는 농협까지 대출모집인들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편 은행들의 대출모집인 과열 경쟁과 관련,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편법이나 소비자 권리 침해 등이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이들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웰컴 투 동막골-포연속에 핀 ‘동화같은 인간애’

    남북의 대치상황을 모티프로 한 영화, 더군다나 그 장르가 휴먼드라마라면 으레 몇가지 편견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왠지 신세대 코드와는 엇박자를 탈 것같고, 어쩐지 감정 과잉의 신파로 부담을 줄 것도 같고…. 새달 4일 개봉하는 ‘웰컴 투 동막골’(제작 필름있수다)은 단언하건대 그런 편견들은 접어둬도 좋겠다. 동심을 일깨우는 동화같은 화면, 맺힌 데 없이 순도 높은 드라마가 사이좋게 손잡은 휴먼드라마다. 감독과 배우의 이름값으로 작품의 기대치를 따지는 관성으로 보자면 영화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게 사실. 관객의 압도적 소구대상인 톱스타가 버티고 있지도, 덮어놓고 신뢰를 보낼만한 인기감독을 내세우지도 못했다. 영화는 ‘맥도날드’‘교보생명-최민식편’ 등 CF를 찍어온 박광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정재영-신하균-강혜정의 ‘3인4각’ 호흡맞추기는 그러나 한순간도 균형을 잃지 않고 절묘한 화음을 빚어낸다. 딴판인 세 배우의 개성을 파열음 없이 매끈히 톱니를 물린 건 전혀 초보티가 나지 않는 감독의 연출 역량 덕분이다. ●한순간도 균형 잃지않는 절묘한 화음 장진 감독 원작의 동명 연극을 모태로 한 작품은,6.25전쟁의 포연 속으로 관객을 밀어넣되 마구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넉넉한 화면을 풀어헤치며 “긴장할 것 없다.”고 최면을 건다.‘아이들처럼 막 살라.’ 해서 이름붙여졌다는 첩첩산중의 작은 동네 동막골. 정치적 이념은 커녕 전쟁이 일어난 사실조차 모르는 순박한 산골주민들 사이에 우연찮게 국군과 인민군, 비행기에서 추락한 미군 등 외부인들이 섞여들어 엮는 에피소드들로 드라마는 살을 붙여간다. 연극무대에서 이미 인기검증을 받기도 했지만, 영화의 가장 큰 재주는 쉼없이 늘어놓는 재담이다. 수류탄을 보고도 “어디다 쓰는 돌멩이냐?”고 묻는 주민들의 무공해 대사 퍼레이드로 코미디의 질감을 부풀려 박장대소를 이끌어내기 일쑤. 시점이 어느 주인공 하나에 고정되지 않는 ‘산골 시트콤’같은 드라마는 이렇듯 돌발성 코믹대사들로 관객들을 이완시키며 중반 고개를 훌쩍 넘어간다. ●돌발성 코믹대사 ‘산골 시트콤´ 같은 드라마 가까스로 살아남아 떠도는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비정한 전쟁논리를 못 견뎌 탈영한 국군 표현철(신하균) 일행도 어찌보면 드라마의 요철을 일궈내기 위해 투입된 큼지막한 ‘장치’라는 느낌이 들 정도. 기실, 기자시사회장에서 “배우들보다 극중 소품이나 장치 쪽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같다.”는 정재영의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도 했다. 그러나 대중의 시청각적 소구점을 정확히 꿰뚫는 CF출신의 감독은, 소품처럼 흩뿌려 놓았던 인물들을 감동의 두름에 하나로 꿰어내는 센스도 놓치지 않았다. 강원도 평창의 수려한 풍치를 배경으로 개그쇼 같은 언어유희를 즐기던 관객들은, 총부리를 겨누던 수화-현철의 화해과정조차 몽롱하게 지켜보게 된다. 영화의 최대 동력은 팬터지. 수화-현철의 갈등이 우정으로 반전하는 상황에도 만화같은 팬터지 기법(곳간의 옥수수가 수류탄에 터져 천지사방에서 팝콘이 흩날린다)이 동원됐을 정도다. 번번이 인물들의 대치·긴장관계를 풀어주는 귀엽게 실성한(?) 마을소녀 여일(강혜정)의 캐릭터도 그렇다. 현실과 비현실을 무중력 상태로 넘나드는 다분히 환상적 인물로 웃음과 감동을 끌어낸다. 암팡진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조연의 이미지를 털기 어려웠던 강혜정을 재발견하는 건 영화의 큰 수확이다. ●조연이미지의 강혜정 재발견이 큰 수확 많은 장점을 아우른 영화는 그러나 속도조절에는 실패했다. 하염없이 느리게 굴러가는 이야기에 조급증이 난다는 평들이 적잖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엄청나게 공들인 막판 폭격신은 보기엔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다. 하지만 감상의 맥락을 급전직하시켰다는 지적이 나올만하다.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리플레이 밴드’ 결성한 김정민

    ‘리플레이 밴드’ 결성한 김정민

    “완전 대변신이지. 변신이라기보다 새로운 신인그룹이 맞겠군…어찌보면 완전 스타일 변신인데…우리 밴드는 트랜스 뮤직 밴드야. 하우스+테크노+록을 혼합한. 결코 가볍지 않고 난해하지도 않고 간단·단순한 멜로디에 너무 무겁지도 않은 새로운 분위기?…이번에 팀 앨범 나오면 신인처럼 인사도 꾸벅꾸벅 잘하고 다닐라고. 아주 공손히.ㅋㅋ신인이니까…”-김정민의 홈페이지 일기 ‘나는 김정민이다’중에서- 가수 김정민(35)이 2년반만에 새 앨범을 내고 가수 활동을 재개한다. 그런데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그동안 해 온 솔로 활동을 접고 밴드 활동에 나선다. 그는 전 플라워 멤버인 고성진(33·기타), 김우디(33·베이스)와 의기투합해 ‘리플레이(Replay)’라는 이름의 3인조 밴드를 결성했다. 새달 중순 ‘리플레이 1집’이라는 제목의 첫 앨범을 발표한다. “휴∼이제야 하게 됐네요. 데뷔 이후 13년을 기다렸어요. 이제 당분간 ‘솔로 김정민’은 없을 거예요.(웃음)” 강남구 청담동의 한 녹음실에서 만난 김정민은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지난 1992년 데뷔 이후 이렇게 ‘재미있게’ 녹음한 적이 있었나 싶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슬픈 언약식’‘마지막 약속’‘애인’ 등 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최고 인기 가수로 이름을 날린 그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밴드 활동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단다. “대학때 ‘보헤미안’이라는 밴드로 음악을 시작했죠. 솔직히 저에게는 밴드 활동이 ‘몸에 딱 맞는 옷’인데, 그동안 음반 제작사와의 관계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솔로 활동에 전념했어요.”(정민) 특히 KBS 2TV ‘올드미스 다이어리’에 출연하는 등 연기 외도에 한창인 김정민은 “‘가수’ 이미지도 되찾고 싶었다.”며 미소 지었다.“길거리를 지나가면 ‘연기자 김정민 간다.’고 하더라고요. 김정민이란 가수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더라고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웃음)” 사실 이들 3인조는 오랜 음악 친구들. 김정민과 김우디는 대학때 보컬 그룹을 조직해 활동했고, 고성진은 김정민의 히트곡 ‘마지막 약속’ 등을 작곡하는 등 인연을 맺어왔다. 고성진과 김우디는 얼마전까지 고유진과 함께 그룹 ‘플라워’로 활동했다. “서로 다시 만나 이전과는 차별화된 음악을 선보이자는 취지에서 그룹 이름을 ‘리플레이’라고 지었어요, 우리말로 하면 ‘재생 밴드’죠.(성진)” 이들은 모두 그동안 록 음악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리플레이’ 결성과 함께 새로운 음악적 실험에 나선다.“국내 가요계에서는 생소한 음악일거예요.‘일렉트로니카’에 백인 음악인 ‘트랜스 음악’을 접목했죠. 록도 가미돼요. 새로운 음악 장르를 개척해 보려고요.”(우디) 모두 12곡이 수록된 ‘리플레이 1집’은 고성진과 김우디가 각각 6곡씩 작곡했다. 발라드, 보사노바 리듬이 가미된 미디엄 템포, 빠른 곡이 각각 4곡씩 담긴다. 빠른 곡 가운데 2곡은 클럽 공연용으로 멜로디 없이 비트 위주로 녹음했다. 현재 마무리 녹음작업에 열중인 이들은 “홍대앞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으로, 일단 들으면 저절로 머리를 ‘흔들흔들’하게 만드는 편안한 음악”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방송이 아닌 공연 위주의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첫 앨범이 나오면 곧바로 콘서트를 연다. 특이한 점은 첫 콘서트 컨셉트를 ‘청각장애자를 위한 공연’에 맞췄다는 것. 콘서트에서 철저하게 소외돼 온 청각장애인들을 초청해 정상인과 함께 노래를 즐길 수 있는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단다.“자막과 수화 등을 이용해 가사와 공연장의 분위기를 전달하려고요. 수익금의 일부도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보청기 구입 비용 마련에 쓸거예요.”확실히 ‘재생 밴드’인 이들이다. 글 사진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MBC ‘이별에 대처’ 출연하는 김민종

    MBC ‘이별에 대처’ 출연하는 김민종

    “드러나는 장면이 얼마나 많은가 적은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민종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뒤를 이어 27일부터 시작하는 MBC 수목드라마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연출 이재동 극본 민효정)에 출연한다. 하지만 맡은 배역의 비중이 여느 때와는 다르다.‘귀염둥이’ 최강희와 ‘신예’ 심지호 커플의 이야기가 주된 흐름. 그가 맡은 사진작가 이서진 역은 이들 뒤를 받쳐주는 캐릭터다. 데뷔 초기 이후 줄곧 ‘톱’을 지켜왔던 그에게는 상당한 변화. 1,2회에서는 얼굴을 비치는 장면도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드라마 홍보를 위해 김민종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김민종의 마음은 어떨까. 그는 최근 열렸던 제작발표회에서 “드라마 시놉시스가 당초 받아봤던 내용과 달라 갈등도 없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으며 “하지만 이미 출연을 하겠다고 한 만큼 감독님과 동료들을 믿고 앞만 보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민종은 또 “지금이 나에게는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고, 과도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전면에서 승부를 펼치는 것도 좋지만, 전체적인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릴 수 있는 역할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출연 장면이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그 드라마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이서진은 남에 대한 배려보다 자기세계에 대한 집착과 자기주장이 강한 역할이다. 어찌보면 차갑기도 한 캐릭터. 첫 촬영 때는 머리를 기른 상태였는데 극중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것 같아 머리도 짧게 자르고, 난생 처음 귀도 뚫은 채 다시 찍기도 했다. 전문 사진작가를 표현하기 위해 자세나 손동작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어깨 너머 배운 터라 최대한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강희, 지호,(김)아중이 그리고 나 사이에서 애정 관계가 얽혀가는 과정에 따라 부드럽고 인간적인 모습도 나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SBS ‘섬마을 선생님’ 이후 1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는 그가 맞붙는 작품은 김정은과 정준호가 나오는 SBS ‘루루공주’.“모두 연예인 봉사활동 모임 ‘따사모’의 회원들이라 서로 열심히 하자고 격려했다.”면서 “루루공주도 좋은 느낌의 드라마지만, 우리도 그에 못지 않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스크린 쪽에서는 거제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 영화 ‘종려나무 숲’의 촬영을 끝내고 다음달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김민종. 그는 “아직 그런 계기가 없었는데 ‘처절하게 악한’ 연기를 정말 해보고 싶다.”며 또 다른 연기 변신을 예고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박범준·장길연 지음

    사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행복한 삶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또 많은 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때’라고 답한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그래서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을 보면 다시 한번 올려다보게 된다. 만일 그가 단단한 사회적 통념의 굴레를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전북 무주 진도리란 산골마을에서 사는 30대 초반의 박범준·장길연 부부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결혼과 함께 도시를 버리고 산간오지의 흙집을 빌려 2년째 살고 있는 이들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정신세계원 펴냄)란 책을 냈다. 특이한 것은 이 두 사람이 거창한 생태주의자거이거나, 복잡한 문명세계를 탈출하고자 한 방외지사를 꿈꾸고 산골마을까지 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똑떨어지는 논리도, 산골 삶에 대한 고집스러운 예찬도 없다. 다만 예전부터 복잡하고 바쁜 도시보다 시골이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고, 이제 그같은 삶을 실제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통념상 이들은 도시에서의 삶이 더 어울리는 커플이다. 남편 박범준은 서울대 독문과를 나와 벤처기업 이사를 지냈고, 아내 장길연은 과학고와 카이스트를 졸업한 재원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까지 배운 교육과 지식에 매달리기보다, 낯설고 새롭지만 스스로 원하는 삶을 택했다. 박씨는 친구들과 벤처 창업후, 사업 규모가 커지고 직원도 수십명으로 늘면서 사회적 성공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도 심해졌고 사람간 갈등도 심해지면서, 자신이 원하는 행복한 삶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연애 중이던 아내도 도시의 삶을 유독 힘들어했다. 하지만 시골에만 가면 생기가 넘치는 것을 보며 결국 함께 도시를 떠나기로 마음을 모았다. 산골에서 뾰족한 생계대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박씨는 궁여지책으로 드라마 극본 공모에 응했지만 떨어졌고, 번역일에도 기웃거렸다. 한데 번역을 부탁한 출판사에서 그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보고, 글을 써보라고 해 요즘은 글쓰는 게 가장 큰 일이다. 아내 장씨는 예전에 틈틈이 배워두었던 조각보와 천연염색 솜씨를 발휘, 인근 학교 등에서 강습을 한다. 과학영재 소리를 듣던 사람이 바느질로 먹고 산다는 게 어찌보면 아이로니컬하다. 하지만 생계대책에 대한 이들의 개념은 일반인들과 조금 다르다. 이들은 먼저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과 행복에 대한 그림이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경제적인 계획이 나올 때 진정한 생계대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발 딛고 있는 곳에서 행복찾기를 추구한다. 월 5만원씩 내고 빌린 흙집은 400여평의 텃밭까지 끼고 있다. 여기에 감자와 고추, 배추, 상추, 양배추, 딸기, 참외 등을 가꾼다.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스스로 만든 퇴비만으로 이들을 정성스럽게 키운다. 아이주먹만한 감자가 주렁주렁 달려나오는 것을 보며 이들은 아이처럼 좋아하며 기념사진까지 찍는다. 초여름 땡볕에 새빨갛게 익은 딸기를 한 바구니 따서 시원한 그늘에 함께 앉아 먹는 재미는 예전에 결코 맛보지 못한 것이다. 부족하지만 내 손으로, 내 오줌을 뿌려서, 제철에 키운 딸기의 맛에 이들은 행복감을 느낀다. 도시에서 그렇게 힘들어하며, 여위기만 하던 장씨는 시골생활 1년만에 살이 붙었다. 남편 박씨가 보기에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이들도 이따금 도시를 향한 향수에 빠진다. 그럴 땐 트럭을 타고 전주에 나가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 또 대학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신다. 이들은 단순히 자연이나 생태적 삶을 예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실천하고자 한다. 선생님과 부모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나가던 두 엘리트 젊은이에게 높은 연봉이나 사회적 지위는 그 자유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지 못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자신의 자유로운 이상을 일상의 삶에서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99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케이블TV 수신료 인상 논란

    케이블TV 수신료 인상 논란

    한창 디지털 전환 중인 케이블TV들이 수신료를 올릴 수 있을까. 7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한국언론학회, 한국지역언론학회 공동 주최로 열린 ‘케이블TV출범 10주년기념 세미나’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권호영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과 오정호 세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우선 케이블TV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역성 구현이라는 정책목표에 따라 대자본 참여를 금지하고 시장을 잘게 쪼갰던 정책을 이제라도 철폐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통신융합시대를 맞아 IPTV 등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저가 가입경쟁만으로 소규모시장을 나눠먹는 데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논리이다. 이들은 문화의 침탈을 막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외국자본과 대자본 진출 제한 조치가 취해졌지만 연구 결과 이런 조치가 케이블TV시장을 더 교란시켰다면 규제가 철폐돼야 한다고 말했다.SO·PP에 대한 외국자본의 소유제한이 33%에서 49%로 올랐지만 국내 방송시장이 잠식되거나 장악될 위험성도 없고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부분적으로나마 허용한 것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지나친 규제는 방송·통신산업간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이 때문에 유료방송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한국의 상황에서 디지털화를 통해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찌보면 디지털화가 수신료를 올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반면 ‘케이블TV의 경쟁력 제고방안’을 발표한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김무곤·김관규 교수는 수신료 인상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 교수는 현재 케이블TV에 가입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지상파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위해 가입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즉,“양질의 콘텐츠 확보전략이 없다면 디지털 서비스로 전환한다는 이유만으로 수신료를 인상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길섶에서] 귀향/양승현 경영기획실장

    귀향(歸鄕)을 보는 동·서양의 이미지가 조금은 다른 것 같다. 진짜 남편이냐, 아니냐는 인간 내면의 본질적 갈등을 영상화한 ‘마틴 기어의 귀향’이나 베트남전의 후유증을 그린 제인 폰다의 ‘귀향’이나, 우리네 탯자리의 정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우리에겐 수구초심(首丘初心)이 주는 의미가 더 살갑다. 대대로 한 곳에서 오순도순 살아온, 정착이 불가피한 농경문화 인자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도 귀향이 마음 한구석에만 살아있을 뿐, 조금씩 낯설어지고 있다. 어머니에 곧잘 비유되는 고향은 익숙함이다. 넉넉하고 편함이다. 학교를 졸업한 뒤 20년 넘게 기사를 쓰며 살아온 기자라는 직업도 어찌보면 내겐 고향이나 매한가지다. 업무 쪽으로 자리를 옮긴 지 1년4개월만에 다시 글을 써보면서 잠시 감회에 젖어 귀향을 떠올려본다. 하나,‘사오정’이 보편화되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제2의 직업’이라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 요즈음이다. 어쩌다 우리는 안팎으로 고향을 지키고 살기도 힘든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지…. 양승현 경영기획실장 yangbak@seoul.co.kr
  • ‘변호사들’ 그들의 사랑과 한숨

    ‘변호사들’ 그들의 사랑과 한숨

    MBC가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가 진한 아쉬움을 남겼던 ‘환생-넥스트’의 후속으로 4일부터 새 월화드라마 ‘변호사들’(연출 이태곤·극본 정성주)을 준비했다. 이 드라마는 법률회사 ‘송현’을 배경으로 변호사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뜨거운 경쟁과 이에 얽힌 음모·사랑을 다루게 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시킨다는, 어찌보면 이상적인 직업인 변호사. 하지만 이들이 일하는 법률회사는 다른 어느 곳보다 돈과 권력에 민감하고, 그릇된 욕망으로 넘쳐난다. 반대로 정의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고민과 한숨이 높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법률회사의 여비서와 악인으로 변해 나타난 옛 연인, 그리고 정직한 중견 변호사가 하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데뷔작 ‘애드버킷’ 이후 7년 만에 다시 변호사를 연기하는 김상경이 특수부 검사 출신 서정호로 나와 정의감을 불태운다. 반면 자본의 논리를 좇아가는 악덕 변호사 윤석기는 김성수가 맡아 변신을 시도한다. 현재 임신 중인 정혜영이 법률회사 여비서 김주영으로 나와 ‘불새’의 악녀 이미지를 털어내며 옛 연인 윤석기, 이혼남 서정호와 삼각관계를 이룬다.MBC 드라마에 첫 출연하는 한고은은 발랄하고 매력적인 여비서 양하영을 맡았다. 추상미 이휘재 등이 동료 변호사로 얼굴을 비친다. ‘12월의 열대야’를 만들었던 이태곤 프로듀서는 “주인공이 변호사라서 법정 드라마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은 드라마를 전개해 나가는 도구일 뿐, 기본적으로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멜로드라마”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문학! 아시아를 말하다] (하)인도네시아

    [문학! 아시아를 말하다] (하)인도네시아

    “포스트 포스트-식민주의를 꿈꾼다.”식민지배를 경험한 국가들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는 식민유산의 청산이다.‘청산’이라 해서 무조건 쓸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어찌보면 어떤 시대든 한 시대가 지나면 그 시대에 대해 평가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그 작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포스트-식민주의다. 이 작업은 프랑스 식민지배 경험이 남긴 알제리의 혼란을 형상화한 프란츠 파농의 작업에서 시작됐다. 나이지리아의 치누아 아체베,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에드워드 사이드, 인도계 미국인 가야트리 스피박과 호미 바바의 작업들이 대표적인 포스트식민주의론으로 꼽힌다. ■ 김재용 원광대 교수 제시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조태성특파원|식민지배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다 90년대 초반 페미니즘이 활성화되면서 급격하게 유입됐다. 그러나 이들의 포스트식민주의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들 이론가들이 서양중심적인 시선 대신 스스로의 시각을 되찾자며 내세운 동양은 바로 서양제국주의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놓였던 아프리카와 아랍·인도 등 서아시아다. 같은 동양인인 일본에 침략과 지배를 받았던 동아시아국가들과 경험이 비슷할 수 있을까. 포스트-식민주의의 ‘뒤에 오면서, 동시에 뛰어넘는’ 포스트(post)가 하나 더 붙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평론가인 김재용 원광대 교수의 문제의식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인도네시아 국립대 심포지엄에서 발제에 나선 김 교수는 한국문학의 과제로 두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중심주의를 피한다며 만들어진 아시아주의의 함정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1940년대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라는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구호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했습니다. 유럽중심의 근대라는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동아공영권에서 보듯 이들의 아시아주의는 순수하지 못한 아시아주의다. 김 교수는 ‘본질주의적 아시아주의’와 ‘역사적 아시아주의’를 구분하자고 제안했다. “아시아인이기에 아시아는 하나여야 한다는 본질주의적 아시아주의는 기본적으로 폭력성을 안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아시아의 개별성을 인정해주는,‘역사적 아시아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동·서양을 동시에 안고 또 넘어서야 합니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시민사회단체와 예술인들의 자발적인 연대를 강조했다. 일본식 국가주의 연대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인도네시아의 역할에 기대감을 표시했다.“인도네시아는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연결해주는 거점입니다. 역사적 아시아주의를 가꾸어 나가는 데 인도네시아가 지적 교류의 다리가 되어 줬으면 합니다.” 김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8월말쯤 인도네시아에서 국제학술회의를 열 예정이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주변국과 함께 식민지배의 경험과 청산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한국에는 ‘인도네시아와 타이완 등은 한국과 역사적인 경험이 달라 식민지가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이 널리 퍼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학술대회를 통해 그런 한국의 통념도 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cho1904@seoul.co.kr ■ 이다 국립대 인문대학장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조태성특파원|인도네시아 국립대 구내에는 ‘태극기 휘날리며’‘올드보이’‘연애소설’ 등 한국영화 상영을 알리는 포스터가 꽤 눈에 띈다. 약하긴 하지만 한류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 화교 중심이지만 서서히 번질 조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없다. 인도네시아 국립대가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박사급 연구자가 부족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심포지엄 뒤 열린 국립대와 ACN 관계자간 미팅에서 국립대는 이 문제를 강하게 거론했다. 이다 순다리 후센 인문대학장은 한국측의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불문학을 전공했다는 이다 학장은 “이번 심포지엄은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대단히 적절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학과를 만드는데 양국의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박사급 인력 5∼6명이 필요하다.”면서 “이들 인력의 양성·배치 방안과 한국측의 지원방안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면 초기에는 한국에 의존하겠지만 몇년 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학을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다 학장은 또 양국 대사관을 통해 양쪽 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인력풀 체계를 확립하는 것도 교류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cho1904@seoul.co.kr ■고영훈교수가 말하는 한·인니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조태성특파원|인도네시아 말은 매우 간단하다. 그래서 아주 문학적인 표현이나 고도의 전문용어가 아니라면 1년 살았거나 30년 살았거나 언어능력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정도다. 과거·현재·미래 시제도, 동사 변화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한 언어가 있을 수 있을까. 비밀은 다양한 인종, 민족, 언어 구성에도 불구하고 2억 4000만 인구의 거대한 근대국가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19세기 말까지 인도네시아어 구어는 카스트에 따라 9단계의 존비법이 있는 대단히 복잡한 말이었다 한다. 그러나 근대국가건설과 국가통합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옛 구어는 폐지됐다. 대신 가장 간략한 말레이어 계통을 이어 받으며 문자는 알파벳을 차용했다. 단일민족국가인 한국과 공통점이 있을까. 인도네시아 또한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나라다. 중국보다 1년 앞선 1920년 아시아 최초의 공산당이 창당됐고, 저 유명한 ‘반둥회의’를 통해 제3세계 비동맹중립외교를 주창했다. 노무현-김정일을 연결해줄 수 있는 인물로 꼽혀 화제를 모았던 메가와티는 인도네시아의 국부 수카르노의 딸이다. 수카르노와 김일성은 제3세계 동지였다. 수카르노의 모나스타워와 김일성의 주체탑이 닮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반공국가 한국과 공통점이 있을까. 동시에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가이기도 하다. 미국·일본 대사관에 장갑차가 진주해있고, 한국의 까다로워진 입국절차에 맞서 한국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대우를 철회하는 등 9·11 테러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는 나라다. 미국 중심 세계관에 젖어 있는 한국과 공통점이 있을까. 한국외대 고영훈 교수는 그럼에도 식민지 경험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봤다.250여년간의 네덜란드 통치 경험에 이은 3년반 정도에 걸친 일본의 식민통치. 일제는 백인에 맞서 황인의 이익을 지키자고 외쳤고, 네덜란드에 저항하던 인도네시아인들은 온 몸으로 일제를 환영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250년간 통치보다 3년반의 통치가 훨씬 더 가혹했던 것. 일제의 통치기법은 단순했다. 바로 한국을 36년간 통치한 기술을 그대로 옮겨와 적용하는 것.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에는 ‘Koreanlization’(한국화하다)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여기에다 66년 수하르토 장군을 중심으로 한 반공우익 군부집단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일본에 경제 성장을 의존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자들을 억압한 것도 비슷하다. cho1904@seoul.co.kr ■노벨문학상 후보 거론 ‘파프람’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조태성특파원|프라무디아 아난다 토르.‘파(Pak·선생님)프람’이라는 존칭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 문학의 거장이다.‘식민지배와 독립’이라는 민족주의 주제를 파고든 그의 소설은 외국에서 높게 평가받았다. 그 때문에 80년대 중반 이래 끊임없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에도 대표작 ‘밍케’ 등 몇몇 중·단편소설 등이 번역·출간됐다. 그러나 반공우익 독재정권에게 강력한 민족자주노선은 어디서나 거북스러웠던 모양이다. 수하르토 독재정권은 80년대 초반 그의 책 모두를 금서로 지정했다. 금서로 지정되기 직전까지 수하르토 정권의 부통령은 ‘젊은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사를 쓰고 있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진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독재정권이 붙인 금서딱지는 외려 품질보증서였던 셈이다. 지금은 18년간의 수감생활과 고문에 지친 80세의 노인이 됐다. 하지만 ACN과의 심포지엄이 있다는 소식에 억지로 참석해 심포지엄 내용을 꼼꼼히 챙겨 듣고 있었다. 여유도 잃지 않았다.“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제 치매에 걸릴 나이”라더니 “기억력도 예전만 못해서 받을 빚 외에는 자꾸 잊는다.”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한국과의 만남에 대한 느낌은. -먼 나라인데다 어찌보면 역사적으로 크게 관계가 없는데도 이렇게 찾아와줘서 놀랍기도 하고 너무도 반갑다. ▶최근에 쓰고 있는 작품은 있나. -나는 이제껏 충분히 썼다. 더 이상 작업하는 것은 노욕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이제껏 모아뒀던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60년대 이후 인도네시아 문학과 역사에 대한 문제를 정리해둬야겠다는 생각이다. ▶자신만의 문학적 모티프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국가를 통합하고 근대를 이룩해낸 작업에 대해 관심이 많다. 물론 이는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니고 외려 부정적인 의미에 가깝다. 근대국가를 이룩한다는, 그 진취성이 남긴 폐해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나는 참여문학에 대해 고민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런 고민은 인류의 행복을 위한 고민이고 동시에 인류 공통의 고민이라고 본다. cho1904@seoul.co.kr
  • [현대미술의 향수] (5.끝) 빛과 색채의 화가 르누아르

    [현대미술의 향수] (5.끝) 빛과 색채의 화가 르누아르

    르누아르(1841∼1919)는 인간의 영원한 아름다움에 매달렸다. 밝은 태양을 사랑한 그의 화폭에 어두운 구석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굳이 해설이 없어도 된다. 아름다움을 느끼면 될 뿐, 미술사적 의미나 구구한 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시공을 초월해 르누아르가 사랑받는 이유다. 그의 작품은 몰아치는 속도와 경쟁에 시달리는 우리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그늘이자 ‘오아시스’다. “나에게 그림은 적어도 사랑스러운 가치가 있어야 하고 즐거울 수 있어야 된다. 특히 아름다워야 한다. 세상에는 즐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고 그런 즐거운 것들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르누아르는 평생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다. 어찌 세상이 아름다울 수만 있을까?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예쁜 여자 아이와 통통하게 살찐 풍만한 여인의 나체, 꽃과 나무 같은 아름다움의 상징이 말을 건넨다.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전시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크렘스. 푸른 도나우 강이 시골 마을을 끼고 흐르고, 흐드러지게 널려 있는 포도밭에는 포도주 향기가 넘쳐나는 고장이다. 저 멀리 언덕바지에 고성과 수도원이 자리잡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이곳은 백포도주 맛이 좋다. 농가의 주민들은 앞마당에 식탁을 몇개 차려놓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자신이 빚은 포도주에 햄, 소시지 같은 요리로 지나가는 이들을 유혹한다. 농부의 땀이 배어든 오스트리아 가정식 요리다. 르누아르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오스트리아의 이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 자리한 쿤스할레 미술관에서 자신의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척 기뻐할 것이다. ‘르누아르와 인상파 화가의 여성’(4월2일∼7월31일)을 테마로 한 이 특별전에는 그의 작품 40점을 포함, 동시대에 활동한 인상파 화가 19명의 작품 120점이 전시되고 있다. 인구 2만∼3만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주말에는 2000∼3000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타이푼 벨진(49) 미술관장은 “빈으로 출장 온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맨들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르누아르를 만나기 위해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르누아르의 사랑스럽고 따뜻한 작품 성격 때문인지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아름다운 것이 좋아 미술관 1층에는 19세기에 활동한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 르누아르의 그림과 당대의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비교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풍경화에선 한가롭게 노닐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 좋고, 여자 인물화에선 젖가슴이나 등을 손으로 만져 보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 좋다.” 르누아르의 이같은 생각을 담은 작품들은 2층 전시실에 펼쳐져 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그림은 ‘책 읽는 가브리엘’(1906년).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책을 읽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 도무지 나쁜 짓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성경책을 넘기고 있는 것 같다. 르누아르가 가장 이상적인 여성으로 생각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던 유모 가브리엘. 그가 즐겨 그린 둥글둥글한 품새의 얼굴과 엉덩이를 가진 여인에서는 깊은 영혼의 향기가 풍기고 있다. ‘아기를 안은 알게리아인’(1882년)은 ‘빛’이라는 특성을 잘 활용한 전형적인 인상파 색채의 작품이다. 아기를 안은 여인의 옷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옷도 아니다.”고 비웃었다. 심지어 “그림도 아니다.”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였다. 타이푼 벨진 미술관장은 “르누아르는 흰 옷에 파란색을 칠해 명암을 표현했는데 이는 당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화법이었다.”며 “그늘진 곳을 검은색이나 회색으로 표현했던 당시 화풍에선 엄청난 ‘혁명’이었다.”고 말했다. 르누아르는 여성의 벗은 몸이나 목욕하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에게 여성의 나체는 아름다움이 샘솟는 원천이었다. ●르누아르에게 여성은? 르누아르의 여성은 당대 다른 화가들과 사뭇 다르다. 많은 화가들이 여인을 그렸지만, 그처럼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향기를 가진 여인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거리에 나앉은 채 젖을 물리고 있는 어두운 표정의 여인을 그린 페르난드 펠레츠의 ‘집없는 사람들’(1883년), 깨진 그릇과 빵조각이 흩어진 문가에 기대 앉은 한 노파가 등장하는 에드가 드가의 ‘로마의 구걸하는 여인’(1857년) 등을 보면 도무지 같은 시대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이번 전시장에는 르누아르와 드가의 작품 세계가 나란히 전시, 확연히 비교되도록 했다.‘나는 춤추는 사람을 그리는 화가’라고 얘기한 것처럼, 드가는 발레리나를 많이 그렸다. 그의 발레리나는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다. 힘든 동작을 취하기 위해 힘들게 ‘노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펠레츠의 발레리나도 힘들고 무표정한 표정이다. 미술관 연구원으로 전시장 가이드를 맡은 미하일 폴츨(27)씨는 “르누아르는 기분을 좋게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자세로 작업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10년은 손에 붕대 감고 작업 실제로 그가 그린 여자들은 모두 아름답고, 그가 그린 아이들은 모두 착한 아이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우울한 그림을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는 유일한 화가가 르누아르가 아닐까? 그러나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그림에서 가난과 고민스러운 날들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는 생애 마지막에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붓을 직접 들 수 없어 다른 사람이 마비된 손가락 사이에 붓을 고정시켜줘야만 했다. 그가 변함없이 아름다운 인간의 몸을 그리려고 한 것은 어찌보면 자신의 몸이 불편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르누아르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말년 작품에서는 그의 육체적 고통이 절절하게 배어나온다.‘사람이 있는 카뉴슈메르의 풍경’(1916년)에는 손을 제대로 들 수 없어 높은 위치의 붓질을 하기 힘들어했고, 그 붓질마저 현저하게 힘이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는 끝내 놓지 않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헬가 킨스키(75)씨는 르누아르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르누아르의 그림은 밝고 따뜻해서 좋아요. 말년에 휠체어를 탈 정도로 건강이 나빴지만 삶의 즐거움을 표현했잖아요?” ■ 크렘스 쿤스할레 미술관 타이푼 벨진 관장 “일본을 두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일본인들이 경쟁사회에서 힘든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봤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가 르누아르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점차 살기가 각박해질수록 우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평화와 안식을 얻고자 한다.” 타이푼 벨진(49) 크렘스 쿤스할레 미술관장은 르누아르가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문화역사학 박사로 독일인인 그는 1년6개월 전부터 이곳 미술관의 최고책임자로 일하고 있다.2년의 준비 끝에 40여군데에서 그림을 빌리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이 전시회는 “이 작은 미술관에서 10년에 한번 할까 말까한 전시회”라고 자랑했다. 인상파 성격의 그림은. -르누아르는 ‘아기를 안은 알게리아인’에서 여자의 흰 옷에 파란색을 칠했다. 인상파 화가들은 아무리 흰 옷이라도 밝은 날 햇볕을 쬐게 되면 파랗게 보이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파란색으로 그늘을 그려 명암을 표시했다. 르누아르와 드가를 비교하면. -둘 다 목욕하는 여자의 모습을 그렸다. 드가는 여자를 목적물로 그렸다. 여자의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는데 마치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반면 르누아르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이 특징이다. 여자 모델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의식 속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성을 아름답게만 본 것은 르누아르의 한계가 아닌지. -예술에는 어떤 이념이 없다. 그는 여성을 존중, 드가처럼 창녀를 그리지 않고 유모 등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여성을 그렸고, 여자를 무시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르누아르가 갖는 차별성은.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그림을 그렸다. 작품은 화가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를 갖는데, 피카소의 경우는 점점 더 각져 갔다. 여성의 모습도 딱딱하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둥글게 표현하고 있다. 최광숙기자 문화부 차장 bori@seoul.co.kr 협찬 Sharp Travel
  • [씨줄날줄] 빨간 조끼/우득정 논설위원

    윌리엄 오벌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해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강성 노조가 붉은 띠를 두르고 빨간 조끼를 입고 투쟁하는 모습이 외국 언론에 보도된다.”면서 한국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투적 노조의 대표적 이미지로 붉은 띠와 빨간 조끼를 거론했다. 그런가 하면 리츠칼튼 호텔은 지난 3월23일 오강현 사장의 해임안을 의결하기 위해 주총 장소를 임대한 한국가스공사에 대해 ‘주총 당일 빨간 조끼를 입고 호텔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가스공사측은 1인당 100만원의 변상금을 낸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체결했다. 투쟁의 상징이었던 빨간 조끼가 어느새 기피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럼에도 단체교섭 현장이나 임단협 조인식 보도 사진을 보면 사용자측은 작업복 차림, 노조측은 빨간 조끼에 붉은 머리띠가 단골 복장이다. 빨간 조끼가 대의원 이상 노조 간부의 전유물로 등장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일반 노조원과 구분된 복장을 착용함으로써 투쟁 대오를 효과적으로 관리·감독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TV에는 투쟁의 선두에 서서 조합원들을 독려하는 빨간 조끼만 부각됨에 따라 빨간 조끼는 선동과 과격 노동운동의 대명사처럼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지난해 말부터 노조 간부들의 채용비리가 불거지면서 ‘룸살롱을 점거한 빨간 조끼들’이라는 증언이 나오더니 노조원들에게도 빨간 조끼는 타기해야 할 특권의 상징처럼 비쳤던 모양이다. 현대차 노조원의 73.6%가 빨간 조끼를 없애자고 응답했다니 말이다. 빨간 조끼만 걸치면 놀아도 월급 주고 근무시간 중 회사를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다니 그럴 만도 하다. 회사로서는 빨간 조끼는 라인 작업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한까지 주어져 있으니 눈치볼 수밖에. 그래서 썩고 곪아터진 것이 올 들어 보도된 비리들이다.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을 선언한 현대중공업 노조가 가장 먼저 대의원들의 빨간 조끼를 벗어던지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하겠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노조조직률(11%)에 도덕성 위기까지 겹치면서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유일한 활로는 노동운동의 초심으로 돌아가 순수성과 도덕성을 회복하는 길뿐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3)진해와 포르투갈인 세스페데스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3)진해와 포르투갈인 세스페데스

    진해는 일본인들이 붙인 지명이다. 원래 웅천읍성이 자리했던 곳으로, 그 웅천 바닷가에는 ‘세스페데스 방한 400주년(1553~1993)기념’이란 설명문이 붙은 조각상이 서 있다. 그의 고향인 포르투갈 톨레도의 니야누에다 데알카르데테 시민들이 우정의 정표로 기증한 것이다. 그는 1593년 12월27일에 웅천포에 도착해 1년여를 이곳 왜성에서 묵었다. 그 34년 뒤인 인조 6년(1628)에 네덜란드인 벨테브레가 부산 근처에 표착했고, 그로부터 59년 뒤인 1653년에는 하멜이 표류해 왔다. 그러고 보면 그는 표류가 아닌, 자의로 이 땅에 온 최초의 서양인이다. 그가 머물렀던 웅천 남산왜성을 올랐다. 돌들이 웅장하다. 틀림없는 왜성인데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1593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축성했고 정유재란때 재침해 수축한 것이다. 경상도에는 유난히도 왜성이 많다. 웅천 안골포 양산 영등포 마산 고성 사천 남해왜성 등등 아예 장기 주둔을 염두에 두고 진을 쳤던 흔적들이다. 진해에는 웅천왜성 바로 건너편 안골포에도 왜성이 있다. 사면이 두루 보여 그만한 요새가 없다. 세스페데스가 웅천까지 온 이유를 알자면 조금의 설명이 필요하다. 임진왜란때 평양성을 공격했던 고니시 고니시는 포르투갈 예수회에 의탁한 천주교도였다. 고니시의 딸 마리아는 당시 19대 대마도주 소오 요시토시(宗義智)의 아내였는데, 소오는 임란 직전까지 대마도 병마사로 조선의 녹봉을 받았다. 그 역시 천주교 신자였다. 소오는 조선의 지리를 꿰뚫고 조선말에도 능통해 왜군의 앞잡이로 선봉에 섰다. 세스페데스는 이때 일종의 종군 신부로 온 것이다. 그의 수기에 의하면 조선의 훌륭한 문화재는 모두 고니시와 소오가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임진왜란은 문화전쟁이었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들은 문화재 약탈뿐 아니라 사람들도 엄청 붙잡아 갔다. 오죽했으면 강항이 ‘간양록’에서 ‘배 600∼700척이 몇 리에 걸쳐 바다를 메우고 있는데, 배마다 조선 남녀의 통곡소리가 바다와 산을 진동시킬 정도’라고 기록했을까. 고니시도 평양성 전투에서 6살 난 전쟁고아 소녀를 데려가 ‘오타’란 이름을 지어주고 길러 ‘줄리아’라는 세례명까지 얻게 했다. 도요토미가 죽은 뒤 천하의 패권을 두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벌인 대격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고니시는 패하여 처형된다. 줄리아도 이때 외딴 섬으로 귀양가 신앙을 지키며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죽음으로써 하나의 ‘신화’가 됐다. 한편 고니시의 사위인 대마도주 소오는 마리아와 이혼하고 도쿠가와의 가신으로 들어간다. 세스페데스는 1597년 3월에 다시 내한했다가 도쿠가와의 선교사 추방령으로 수박골에 피신해 있다 두달 후 일본으로 되돌아간다. 임진왜란이라는 한·일간의 유쾌하지 못한 전쟁통에 묻어 오기는 했지만 서양인의 첫 방문은 역사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왜성이 위치한 안골포는 임란 전승지로 유명한 곳.1952년 7월 왜 수군의 주력부대가 한산도에서 참패를 당하자 그를 따르던 가토 기요마사의 42척 제2 주력부대가 당황한 나머지 안골포에 옮겨 정박한 것을 이순신이 추격, 격파한다. 한산도해전과 더불어 안골포해전은 왜 수군 주력부대를 격멸한 큰 전공지였다. 이듬해인 1593년 2월부터 한달동안 이순신 함대는 웅포에 무려 7차례나 출격해 해전을 치렀는데, 이때 웅포 남산왜성의 왜 육군이 엄호하여 많은 고초를 겪었다. 세스페데스는 그 해 겨울 웅천으로 들어왔다. 안골포에는 굴강(掘江)이 남아 있다. 방파제와 선착장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전남 여천에 선소(船所)와 굴강이 남아 있을 뿐 거의 사라진 지금 이곳의 해양문화사적 의미는 크다. 이순신의 대격전지에 이같은 해양 유적이 전해지고 있어 감회가 새로운데 머잖아 간척될 계획이라 운명이 풍전등화다. 매립하여 공원을 조성하고 바닷물을 끌어들여도 굴강만은 살릴 계획이라지만 이 희귀한 문화유산이 전해지는 임진왜란 대첩지를 매립해 땅을 얻어 써야겠다는 문화적 반달리즘을 두고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진해는 대마도를 거쳐서 규슈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다. 마산에서 여몽연합군이 후쿠오카쪽으로 진격해 들어갔듯 최단거리에 있는 곳이다. 그래서 조선 초기에는 본디 최초의 왜관이 자리잡은 곳도 또한 이곳 웅천이다. 왜관은 모두 세 군데에 있었으나 삼포왜란 이후에 변란을 걱정해 웅천왜성은 폐지되어 부산의 초량 왜관으로 통합됐다. 이같이 일본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진해에 다시 왜인들이 나타난다. 근 300여년 만에 이번에는 왜가 아니라 일본제국주의로 변신해 나타났으니, 그들은 지형·정서적으로 가장 잘 아는 곳부터 점령을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진해만을 동양 제일의 대군항으로 키우기 위해 한반도 최초로 조직적·계획적 도시계획을 입안한다. 진해라는 말부터가 일인에 의해 처음 쓰여졌고, 옛 웅천읍성과 무관하게 신도시로 재탄생했으니 식민지 항구도시 건설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당시 비동 현동 좌천 등 여러 마을을 합해 진해라 부르고 진해만 군항지를 편의상 진해만이라 칭한 것이다. 군항지 경영에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돈인 800만원을 퍼부어 10개년 사업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바닷가 염습지와 황무지를 매립하여 땅을 얻고 농민들의 땅을 강제수용했다. 러일전쟁 직전인 1904년 1월12일에는 해군 함정을 거제도 송진포 연안에 대놓고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기도 했다. 송진포에 ‘일본제국 해군 가근거지 방비대’를 설치하고 러시아와의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일제는 1905년 러일전쟁의 여세를 몰아 웅천지역의 토지를 강탈하기에 이른다. 당시 시가지는 12만평이었으며, 계획도시답게 모범적 시가를 만들기 위해 도로는 방사형으로 설계했다. 그래서 오늘날 진해의 중원로터리 등을 보면 사방팔통으로 도로가 교체하는데, 여타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미관을 엄격히 고려하고 토지를 1∼3등으로 3분하여 건축을 제한했다. 건물은 2∼3층을 원칙으로 하고 4층 이상은 허가를 받아 짓도록 했다. 이곳 토지를 불하받은 일인은 히로시마 후쿠오카 도쿄 사세보 사가 조슈 나가사키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한국에 오래 전에 나와있던 용산, 마산, 부산 등지의 일본인들도 이곳으로 몰려 왔다. 이로써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일본인의 신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조선인도 참여할 수 없었으며, 목포나 군산처럼 본래의 조선인촌과 병존하게 하지도 않은 식민도시였다. 그리하여 일제 해군본부가 들어서고, 한국뿐 아니라 극동의 군항으로 자리잡아 오늘날까지 한국 해군의 본거지로 자리매김했다. 진해에서 몇 가지 재미있는 풍경을 읽는다. 방사선으로 뻗어나간 로터리 모퉁이에 고색창연한 진해우체국이 서있어 식민지 시대를 전하고 있다. 도로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는 일장기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충무공 동상으로는 전국 최초인 1951년에 창원 통영 고성 김해 마산 등에서 갹출해 북원광장에 조성한 것이다. 일장기형 도로와 이순신의 동상이 주는 이중창이 묘한 갈등으로 다가온다. 자고로 벚꽃이 유명하여 4월 초순에는 군항제가 열린다. 충무공의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벚꽃도 즐기는 최대의 행사인데, 일본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벚꽃이 휘날리는 풍경 속에 서 있는 충무공 동상의 이미지는 왠지 좀 거북한 느낌이었다. 제황산정에는 웅장하게 솟은 탑이 있다. 일인들이 세운 러일전쟁 기념탑을 광복 후 철거하고 1967년 해군의 기함사령탑을 상징하는 이 탑으로 교체했다. 시내 로터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진해를 방문했을 때 남긴 기념휘호를 각인한 비석이 있는데 가장자리가 깨져 있다. 의도적으로 훼손한 것을 땜질해 붙여놓았다. 로터리 중심의 나무에 가려져 있어 외부인은 그런 비석이 있는 줄도 모른다. 반면에 진해 바닷가에는 도지정 무형문화재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과 전용 낚시터, 장제스를 만났다는 육각정 등이 잘 보존돼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본디 일본군 통신대가 쓰던 건물이다. 진해 사람들도 나름대로 불만이 많다. 해군기지와 해군사관학교가 있다 보니 도시의 주요 토지들은 모두 군용으로 묶여 발전이 없다. 군사도시인 탓에 규제가 심해 발족 당시의 인구에서 별반 늘어난 게 없다. 게다가 부산시와의 갈등도 내연 상태다. 신항만 건설부지의 80%를 내놓았지만 명칭이 부산신항만으로 결정되는 분위기여서 폭발 일보 직전이다. 부산신항인지, 부산·진해신항인지를 놓고 대격돌을 벌이는 중이라 이래저래 군사도시의 고충이 깊은 요즘이다.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군항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 게다가 이웃 거대도시 부산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에 진해 사람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어찌보면 가장 쾌적하고 맞춤한 인구, 공장이 적은 대신 맑은 숲과 바다를 지닌 천혜의 미항 진해이건만 미래가 투명하게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벚꽃 펄펄 날리는 조건에서도 소작쟁의는 물론 동양제사 노동자들의 대투쟁, 그리고 각종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주기철 목사같이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진정한 종교인을 배출한 곳이 진해 아닌가(황정덕의 ‘진해 항일독립운동사’ 참조). 진해예술촌장을 맡아 군사도시 속에서 문화를 가꾸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박차생 진해문화원장이 망산도로 안내하면서 간절하게 전한 말은 이랬다.“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인 아유타국 허왕옥 공주가 처음 내린 망산도도 진해지요.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국제 항구도시였으니 부산·진해신항으로 결정돼 사람들 시름 좀 덜었으면 합니다.”
  • [누드 브리핑]안상수시장의 ‘전시성 기자회견’

    안상수 인천시장은 최근 일주일 새 세번이나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18일(수)은 자신의 북한 방문과 관련된 내용이었고,19일(목)은 유엔 산하기관 인천 유치에 관한 것이었다. 또 주말을 보낸 뒤 23일(월) 실시한 기자회견은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가 화두(話頭)였다. 그러나 이 가운데 두번 정도는 시장이 직접 나서지 않고 담당 실·국장이 기자회견을 해도 괜찮을 만한 내용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두번 모두 속된 말로 ‘영양가’가 별로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번째 기자회견은 시장이 직접 나서는 점으로 미뤄 정씨를 인천시향 지휘자로 영입한다는 내용일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으나, 결과는 크게 빗나갔다. 정씨가 인천에서 비상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으로, 서울시 및 일본과 지휘자 계약이 돼 있는 정명훈에게 그야말로 ‘가욋일’을 제공하는 정도였다. 때문에 “정명훈에게 아르바이트 거리를 준다는 수준의 내용까지 시장이 발표하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일련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안 시장이 내년 선거를 의식하고 있다.”는 곱지않은 시각을 내비쳤다. 또 어떤 이들은 “본래 일에 열정적인 분 아니냐.”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설사 안 시장이 재선을 의식해 ‘이벤트’를 한다 해도 내실만 기한다면 그리 탓할 일만도 아니다. 다만,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은 지난해 인천을 떠들썩하게 했던 굴비상자 사건을 떠올린다. 안 시장은 지난해 7월30일 기자회견을 자청, 굴비상자로 건네받은 2억원을 클린센터에 신고한 사실을 자랑스레 공표했다가 결과적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언론은 안 시장의 선행(?)보다 안 시장에게 돈을 건넨 주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집중적으로 이 사건을 파헤쳤다. 급기야 안 시장은 이후 해명성 기자회견을 2차례나 가졌지만 의혹이 가라앉기는커녕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어찌보면 억울한 측면도 있는 안 시장은 사석에서 언론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안 시장은 지난 2월17일 이 사건에 대한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부 많이 했다.”는 뼈있는 말을 던졌다. 듣기에 따라서는 “언론의 생리를 비로소 알았다.”는 말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를 지켜볼 때 ‘안 시장의 공부가 부족하지 않았나.’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서울광장] 지금 가계대출에 무슨일이…/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지금 가계대출에 무슨일이…/우득정 논설위원

    요즘 금융권의 화두는 ‘블루 오션(푸른 바다·Blue Ocean)’이다. 물고기 한 마리가 평화롭게 놀고 있는 블루 오션에 물고기떼가 몰려와 한정된 먹이를 먹어치우면 그 바다는 금방 ‘레드 오션(붉은 바다·Red Ocean)’으로 바뀐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블루 오션에는 한국씨티은행 출범과 더불어 촉발된 은행권의 무한경쟁으로 개인대출시장이 레드 오션으로 바뀌면서 안정된 수익원을 바라는 은행권의 염원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블루 오션이 없다.”는 말로 은행권의 과당경쟁을 경고한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중 85%가 시장금리에 따라 이자가 바뀌는 변동금리형인 탓에 가계대출 과당경쟁은 금융불안을 불러올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케네스 강 국제통화기금(IMF) 서울사무소장은 지난 18일 열린 유로머니 콘퍼런스에서 한국 경제가 회복하려면 내수가 활성화돼야 한다며 가계부채 조정이 경제회복의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신용불량자 구제대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고, 늘어난 소득이 소비로 연결되는 선순환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경쟁을 부실위험 징후로 파악하는 반면 IMF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소비 회복의 필요조건인 것처럼 해석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지금 가계대출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이처럼 상반된 처방이 내려지고 있는 것일까?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친 가계신용 잔액은 카드사의 길거리 모집 등에 힘입어 2000∼2002년 연평균 24.7∼28.5% 급증했다. 외상 버블은 신용불량자 양산과 내수 침체로 이어졌다. 당국의 개입으로 가계 채무조정에 들어가면서 가계신용 증가세는 2003년 1.9%,2004년 6.1%로 급락했다. 그러나 올 들어 은행권이 무한경쟁체제에 돌입하면서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18개월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하는 등 과열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대출 증가가 서울 강남의 재건축단지에 대한 대규모 대출에 기인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4∼5년 전처럼 대출이 집값 상승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붙들어 매고 있는 저금리 기조가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유동성 과잉 공급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집값을 잡기 위해 세정(稅政)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는 당국으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경고음 발령이라고 볼 수 있다. 금리나 통화가 이미 경기조절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이상,‘행정지도’라는 전가의 보도를 빼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초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이자 부담에 대한 국민의 감각이 무뎌진 것도 감안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경제 회복의 관건인 내수를 살리려면 대출의 물꼬를 마냥 죌 수도 없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정부가 돈줄 역할을 하기에는 벌써 추경 편성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벌여놓은 사업이 많다. 가계대출 증가를 소비 회복의 신호로 반기면서 동시에 금융위기의 변주곡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먼저 공급측면에서 옥죄고 있는 정책 접근방식을 수요쪽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초저금리라 하지만 대출이자를 뛰어넘는 집값과 땅값 상승이 기대되기 때문에 돈을 빌리는 것으로 봐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이 최근의 은행권 대출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수요 충족을 통해 집값, 땅값 상승 기대심리를 잠재울 수 있다면 비소비성 가계대출 증가세는 쉽게 제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판교신도시 공급 물량을 줄이면서 분양가를 붙들어매려는 정책은 잘못됐다. 거듭 강조하지만 정부의 역할은 경제의 혈류를 정상화하고 감시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주전 선수는 민간이지 정부가 아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여담여담] 결혼이 ‘벤처’인 사회/김미경 문화부 기자

    남녀공학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주변 ‘싱글’들이 부탁하는 소개팅이나 선을 주선해온 지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그동안 다행스럽게도 멋진 몇 커플을 탄생시키며 명성(?)을 얻었다. 지금도 싱글친구들과 선후배, 출입처 지인들이 기자의 ‘오지랖’을 믿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활약상’이 예전같지 않다. 근래 들어 성공률이 현저히 떨어져서다. 또 주변에 이혼이 늘어나는 등 척박한 현실도 한몫한다.‘내가 연결해준 커플이 갈라선다면?’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는 예외가 없다. 그래서 머뭇거리게 된다. 부러움속에 결혼했던 커플들이 갈라섰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세 커플 중 한 커플은 갈라선다.’는 통계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경제난 등 여러 이유로 헤어지는 부부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자랑스럽게 청첩장을 돌렸던 친구가 ‘혼수’갈등으로 결국 결혼식장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까지 생겼다. 이제 이혼이나 파혼은 결혼하는 것만큼 일상적인 일이 된 것일까? 이러다 보니 주변에 화려한 ‘싱글족’이나 ‘딩크족’이 늘어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결혼하면 불행하다.”고 외치는 싱글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각종 모임을 만들어 나름대로 즐거운 삶을 영위한다. 이제 결혼은 적령기도, 당위성도 없는 힘빠진 관습이 돼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사회의 기본 근간이다. 가정의 붕괴는 출산율 저하는 물론, 정신적인 혼란을 초래해 결국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큰 요인이 될 것이다. 오죽하면 최근 한 민간 경제연구원이 저출산을 막기 위해 독신에게 ‘독신세’를 물리자고 주장할 정도가 됐을까? 이런 의미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혼을 유도하지 않는 건강한 사회를 추구하는 것은 모든 이들의 책임일 것이다. 국내 유수의 결혼정보회사가 최근 ‘자동매칭시스템’특허를 내 벤처기업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회사측은 이 시스템을 통해 회원들을 사회계층, 생활스타일, 생물학적 특성별로 지수화해 이에 맞는 이성을 자동으로 연결해준다. 매칭시스템을 통해서라도 천생연분을 만나면 좋으련만, 결혼이 ‘100개 생기면 1개 살아남는’ 벤처와 같이 어려운 ‘사업’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미경 문화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12) 서강대학교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12) 서강대학교

    서강대 법학과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여느 명문 법대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40명 정원의 법학과가 매년 10명 안팎의 사법시험 합격자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합격자 수만 놓고 보면 국내 대학 중 10위권의 성적이지만, 정원대비 합격비율을 따져보면 4위권의 성적을 자랑한다.‘소수정예’란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다. 정원은 단 40명. 설립 17년째로 전통을 말하기도 어렵다. 웬만한 대학들이 법과대학으로 승격시켜 규모를 늘리고 있는 마당에 예전의 법학과 그대로다. 역사도 짧고 규모도 작다. 그래도 명색이 장안의 명문대인데 서강대 법학과의 단면은 어찌보면 초라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서강대 법학과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여느 명문 법대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40명 정원의 법학과가 매년 10명 안팎의 사법시험 합격자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합격자 수만 놓고 보면 국내 대학 중 10위권의 성적이지만, 정원대비 합격비율을 따져보면 4위권의 성적을 자랑한다.‘소수정예’란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다. ●“가족적 분위기로 교육효과 배가” 이 대학 법학과는 지난 1988년 설립됐다. 설립 당시 학생 40명으로 출발해 17년이 지났지만 정원엔 변함이 없다. 규모는 매우 단출해도 덕분에 교육효과가 높다는 것이 학교측의 설명이다. 일례로 서강대 법학과 교수진들은 학생 한명 한명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한다. 대규모 강의가 아니라 소규모 강의로 진행되다 보니 가능한 일이다. 교수진과 학생 간의 친분이 돈독해 수업 시간 외에도 개별지도가 언제든 가능하다. 동문들은 “교수진들의 배려로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지도’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며 질적인 측면에서 만족감을 나타냈다. 수업 강도 역시 만만치 않다. 학교측은 “한 학기에 과목당 10번 이상 시험을 치르고 있다.”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 외에 수시로 시험을 봐서 학생들의 공부정도를 평가하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높은 사시 합격률은 성의있는 강의와 학생들의 학구열이 만들어 낸 ‘합작품’인 셈이다. ●내년부터 100명으로 정원확대 하지만 로스쿨 유치를 코앞에 두고 내실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는 게 학교측의 판단이다. 때문에 우선 내년부터 현재 40명인 정원을 1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또 학생 수가 늘어나는 만큼 교수진도 충원한다는 방침이다. 학교측에 따르면, 올해 전반기에 5명의 학자출신 교수진을 충원하고, 후반기에도 실무 전문가를 7명 정도 뽑기로 했다. 로스쿨을 위한 전용공간의 확보도 놓칠 수 없는 부분. 최근 공사를 시작한 6500여평의 복합관 중 3000평 정도를 로스쿨 전용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오는 2006년 말쯤 완공될 복합관에는 대형강의실과 세미나실, 모의법정, 로스쿨전용도서관 등 첨단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동문들까지 힘모아 지원 서강대 법학과측은 지난해 연말에야 비로소 로스쿨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일부 법대들이 이미 10년 전부터 추진한 것에 비하면 한참 늦었다. 하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 학교측이 고민을 다소 덜게 됐다. 서강법조동문회가 지원군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법학과 출신, 서강법조인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의 서강동문들로 구성된 로스쿨추진후원회가 올해 초 발족돼 후원행사 등을 통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후원회 공동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원규 법학과 동문회장은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로스쿨 유치에 도움을 주기 위해 모이게 됐다.”면서 “금전적인 부분과 더불어 서강대가 다른 대학과 다른 특색있는 로스쿨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고민을 함께 나눌 것”이라고 소개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로스쿨, 경영대학원과 통합 검토” 홍성방 법학과장 서강대 법학과는 로스쿨을 유치하게 되면 경영대학원과 통합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홍성방 법학과장은 15일 “서강대가 경쟁력을 자랑하는 경영대학원과 로스쿨을 통합,JD(법학)와 MBA(경영학) 학위를 동시에 취득할 수 있도록 통합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소개했다. 기존의 핵심분야를 적극 활용해 기업법무분야를 특화시키겠다는 얘기다. 그뿐만 아니라 법률시장 개방에 발맞춰 국제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미국·일본 등의 예수회 대학들과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홍 학과장은 “서강대가 예수회 대학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예수회 대학과 관계가 긴밀하다.”면서 “이들 대학과 연계체제를 갖춰 교환학생제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교육만으로 국제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1년 정도 현지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서강대 법학과측은 특히 예수회 대학 중에서도 일본의 상지대학과 미국의 조지타운대에 관심을 두고 있다. 홍 학과장은 “로스쿨을 유치하더라도 상지대학이나 조지타운대처럼 작은 규모의 로스쿨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측에서 정원을 결정할 수 있다면 100명 정도의 입학정원이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한다.”면서 “법학과가 그래왔듯이 로스쿨도 숫자경쟁이 아닌 교육의 질로 최고를 추구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스쿨 역시 교육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소수정예로 운영하겠다는 것이 서강대 법학과측의 바람이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서강대 출신 80여명 가운데 13명이 연수원생 ‘젊은 법과’ 법조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서강대 출신은 80여명 정도.8명의 검사와 12명의 판사가 재직 중이고, 변호사는 5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이제 막 법조계에 진출한 ‘신참’들이다. 서강대 출신 사시 합격자 87명 가운데 13명이 아직 사법연수생의 신분이다. 법학과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이들 서강대 동문들은 “서강법조의 탄탄한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직까지는 미약하지만 잠재력을 기반으로 서강법조의 명성을 쌓아가겠다는 각오다. 서강대가 배출한 법조인 1호는 안승규(65학번) 변호사다. 안 변호사는 사시 19기로 수원지검, 부산지검, 서울고검, 부산고검, 청주지검 등을 거쳐 인천지검 부장검사를 끝으로 18년간의 검찰생활을 마쳤다. 현재 인천에서 활동중인 안 변호사는 서강대에 법학과가 개설되기 훨씬 전 독학으로 사시에 합격한 케이스. 그는 “법조계에 입문했을 때 주위에 동문이 없어 외롭게 검찰생활을 했지만, 최근 후배들이 대거 법조계에 진출하는 걸 보면 든든하다.”고 자랑했다. 법학과 출신으로는 장현우(사시 41회) 변호사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88학번인 장 변호사는 법과 1회 졸업생. 그는 모교 법학과에 대해 “역사는 짧지만, 학구적인 면모로는 최고”라고 치켜 세웠다. 장 변호사는 또 “동문 법조인들의 경력이 짧다보니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전문성은 아직 갖추지 못했지만, 서강 출신들은 학풍의 영향으로 법조인의 공익적 역할에 많은 고민을 한다.”고 소개했다. 역시 법학과 1회 졸업생인 이원규(사시 42회) 변호사는 서강대 법학과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강점으로 꼽았다. 이 변호사는 “규모가 작다 보니 교수진과 학생들간의 관계가 가족 못지않게 가깝고, 학생들도 개인 가족사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면서 “면학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97학번으로 막내뻘인 최모(사시 42회) 검사도 돈독함을 첫손에 꼽았다. 신참 검사로 실명을 밝히기를 조심스러워한 그는 “교수진과 학생간의 단합된 힘은 서강대 법학과의 원동력”이라며 “동문들도 1년에 분기별로 만나 학교와 법학과의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등 졸업한 뒤에도 조직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돈독함을 자랑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동문들은 특히 “합격자 수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합격률은 최고 수준”이라며 실력에 대해서도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서울광장] 연금 잣대부터 통일하라/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연금 잣대부터 통일하라/우득정 논설위원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부모세대는 근대화에 기여하고 자녀들을 고등교육시킨 세대”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이들은 공적지원체계에서 배제돼 있을 뿐 아니라 핵가족화로 자녀들에게도 소외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그럼에도 40대 이전 세대는 노인 부양을 위해 새로운 보험(노인요양보장제도)을 만들자고 하면 반발한다.”면서 “그들을 부양하는 것은 부양받은 우리 세대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연금전문가도 “연금역사 100년에 부모세대에 대해 나몰라라 하는 제도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면서 “우리의 연금제도는 한마디로 이기주의의 극치”라고 꼬집었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63만명의 저소득층 노인에게 월 3만 1000∼5만원의 경로연금을 지원한다지만 그게 ‘연금’이냐고 반문했다. 국민연금 개혁안의 4월 임시국회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 간 가운데 연금 이기주의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안의 핵심도 현 세대가 덜 내고 미래세대의 몫을 가로채 더 받는 얌체구조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현재의 수급체계를 지속할 경우 세대간 갈등이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래세대가 연금납입을 책임질 무렵이면 부모세대를 사회안전망밖으로 내팽개친 현 세대에 대해 책임 추궁이 따를 것이라는 우울한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는 별도로 현 세대의 이기주의, 미래 세대와의 갈등 가능성을 제기한 이러한 주장은 틀린 게 아니다. 하지만 국민연금만 그럴까. 어찌보면 군인·공무원·사학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의 이기주의는 훨씬 더 심각하다.1973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매년 수천억원씩 국고지원을 받는 군인연금은 말할 것도 없고 공무원연금도 올해 6344억원, 내년 1조 754억원 등 2010년까지 11조원 이상의 혈세를 쏟아부어야 한다. 2030년에는 공무원 보수예산의 절반이 연금 적자보전에 투입돼야 할 판이다. 현 세대 공무원들의 연금비용을 다음 세대 공무원과 다음 정부에 떠넘기는 구조로 된 탓이다. 지난 2000년 공무원연금법 개정 당시 공무원과 정부가 적자발생액의 절반씩 부담토록 돼 있던 조항을 전액 국고에서 부담토록 바꾸었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은 투입원가 대비 연금수급액이 4.22∼6.16배에 이른다. 소득대체율 50∼76%도 선진국에 비해 10%포인트가량 높다. 사학연금도 2019년부터 적자로 전환돼 2026년에는 재정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추정된다.2047년에 재정이 고갈되는 국민연금은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미 바닥이 났거나 훨씬 일찍 바닥을 드러내게 돼 있음에도 재정지원에만 의존하는 특수직역연금 개혁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국은 공무원연금은 퇴직공무원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국민연금은 ‘노후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납세자인 국민은 ‘기초생활’만 하라고 하고 세금으로 월급을 받아온 공복(公僕)은 안정된 노후 삶을 누리겠다니 황당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제기구들도 ‘미래세대로의 부담 전가 유혹’을 경계하면서 수지상등의 원칙과 세대간 형평성을 무너뜨려선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연금 개혁을 원한다면 특수직역연금도 함께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외환위기 과정을 거치면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초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과거 민간부문의 노후생활을 담보했던 ‘이자소득’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군인연금에 이어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그리고 최후에는 국민연금까지 재정에 손을 내미는 사태를 막으려면 잣대를 통일해야 한다. 그래야만 연금 이기주의도 바로잡을 수 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사설] 공기업비리 마사회 뿐인가

    검찰이 밝힌 마사회 전 회장과 간부들의 뇌물수수 수법과 비리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다. 공기업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추진된 아웃소싱이 온통 청탁성 뇌물로 얼룩져 있다. 뒷돈을 대가로 사업을 몰아주고 납품단가를 올려줬으니 구조조정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다. 게다가 회장은 수억원대의 급여와 판공비로도 모자라 편의제공의 대가로 수시로 뇌물을 챙기고 ‘카드깡’으로 공금을 빼돌렸다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뇌물파티는 다음 회장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하지 않은가. ‘간고등어 상자 3000만원’‘곶감 상자 2000만원’‘초밥 도시락 300만원’ 등 현금 전달 수법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회장부터 이처럼 악취를 풍겼으니 ‘월사금’이 전달되지 않은 다음 달에는 전달치까지 챙길 정도로 직원들의 도덕성 불감증이 극에 달했던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지 모른다. 마사회가 비리 경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뇌물문화에 감염된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층의 측근이 낙하산으로 기용되는 등 잘못된 인사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본다. 조직 상층부가 온통 연줄로 채워지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이권부터 챙기는 분위기가 은연 중에 확산된 것이다. 최근 부패와 비리를 척결하는 방편으로 투명사회협약을 체결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치권과 공직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공기업과 민간기업도 실천강령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구조적인 비리의 고리가 단절되지 않는 한 결의대회는 전시성 요식행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수자원공사에 이은 마사회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썩은 부위가 완전히 도려내질 때까지 사정의 칼날이 멎어선 안 된다. 이에 앞서 전문성과 상관없는 낙하산 인사의 중단이 전제돼야 한다.
  • [사설] 검찰 내부의 정의실현 회피 우려

    안대희 서울고검장의 취임사가 검찰 안팎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안 고검장은 “인권과 친절도 더없이 중요한 가치이지만 이를 핑계로 정의 실현을 폄하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전임 송광수 총장 시절 불법대선자금을 수사하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법과 원칙’으로 맞선 검찰권의 상징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김종빈 검찰총장이 ‘인권검찰’을 강조하면서 연성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검찰 내부 기류를 경계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김 총장이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인권수사와 권력의 부정부패 척결은 검찰권의 양 날개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검찰권 행사는 어찌보면 비리척결보다 상위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김 총장의 취임사와 대비해 안 고검장의 발언이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특수수사권 발동 제한, 대검 중앙수사부의 연구기능 강화 등 일련의 움직임이 ‘권력형 거악(巨惡)’과는 한걸음 거리를 두려는 게 아니냐는 항간의 의구심과 무관하지 않다. 인권을 앞세워 권력과의 충돌을 회피하려는 속내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는 것이다. 전임 송 총장은 퇴임식에서 검찰의 ‘소금론’을 강조하면서 정도를 벗어나 눈치를 보다가는 소금은커녕 공공의 적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계한 바 있다. 더구나 공직부패수사처 신설 논란에서도 드러나듯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아직 반석에 올랐다고 보기 어렵다. 한순간 방심했다가는 지난 2년 동안 쌓았던 국민의 신뢰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수식어를 동원하든 검찰권이 외풍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대검에 부착돼 있는 이 말은 불변의 진리다.
  • [서울광장] 혁신이 지겨운 이유/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혁신이 지겨운 이유/이목희 논설위원

    일본 메이지유신을 주도했던 오쿠보 도시미치는 1871년부터 2년 동안 미국과 유럽을 돌았다. 선진문물을 배운다는 취지였다. 유럽의 주요 학습대상은 프랑스였다. 막상 도착해 보니 프랑스를 꺾은 프로이센이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지도 아래 유럽의 후진국 프로이센이 독일제국으로 탄생하고 있었다. 오쿠보는 프로이센을 철저히 본받기로 결정했다. 그 중심이 엘리트 관료주의였다. 최고 인재를 관리로 임명해 경제·사회의 선봉에 서도록 했다. 공무원들의 신분은 확실히 보장해줬다. 후발국 일본·독일이 단기간에 영국·프랑스를 넘어설 수 있는 원천에는 관료주의의 힘이 컸다. 우리도 개발경제시대 엘리트 관료주의가 위력을 발휘했다. 일본·독일류를 변형시킨 한국의 공무원제도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다른 개발도상국의 모범이 되었다. 1990년대부터 공직사회 개혁이 강조되고 있다. 요즘은 용어가 혁신으로 바뀌어 대통령·총리 주재나 부처별 토론회가 연일 열리고 혁신안이 경쟁적으로 쏟아진다. 하도 몰아치니까 ‘혁신피로증’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냉소 분위기가 만만찮다. 혁신하자는데 왜 코웃음치고 반발할까. 귀찮고, 밥그릇이 깨질까 두려워서 그렇다고 치부하는 것은 단견이다. 공무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두가지 원인이 표출된다. 첫째는 선악의 개념으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관료주의의 성과를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시대적 선택의 문제로서 변화가 추구되어야 한다. 관료주의를 악으로 규정하면 자칫 공무원 자체가 타도의 대상이 된다. 그 연장선에서 코드인사 논란이 나온다. 둘째는 큰 틀의 컨셉트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혁신안은 대부분 미국의 성과주의를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직업공무원제의 포기인지, 절충형 추구인지 알 수가 없다. 노사제도처럼 여러 나라의 좋은 점을 짜깁기하다가 문제가 많아지는 우를 범할까 걱정된다. 컨셉트의 모호성은 이율배반을 낳는다. 사회·경제 개혁의 선봉이 돼야 한다고 공직사회를 독려하는 것은 여전히 관료주의적이다. 규제철폐, 봉사자세 확립, 부정부패 엄단은 탈(脫)관료주의적이다. 방향성없는 전방위 혁신 추진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사업을 하는 선배가 공무원을 단순분류했다.A)돈을 안 받고 융통성을 발휘한다,B)돈을 받고 융통성을 발휘한다,C)돈을 안 받고 규정만 따지며 융통성을 안보인다.A가 가장 좋으나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업하기엔 C보다 B가 낫다고 말했다.B는 개발시대 관료로 상징할 수 있다. 새로운 컨셉트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혁신·부패척결만 강조하다 보면 C유형의 공직자가 양산될 우려가 있다. 독일-일본-한국으로 이어진 관료주의가 변해야 하는 게 대세다. 변화가 성공하려면 C(규제)유형의 자리를 대폭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공무원의 위치를 어디에 놓을 것인지부터 규정해야 한다. 먼저 ‘관료우위 포기’를 과감히 선언해야 할 것이다. 공무원 개인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세계화·개방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을 공직사회가 따라가지 못하는 게 어찌보면 당연하다. 때문에 삼성을 배우자는 것도 우스운 얘기다. 독자적인 한국형 공직 컨셉트를 개발해야 한다. 사회적 부나 이윤 창출은 기업에 맡기고 기업이 못하는 틈새에 눈을 돌려야 한다. 모두를 청렴하고 일 잘하는 공직자를 만들겠다는 이상론에서 벗어나 규제와는 관계없는 직책을 늘려야 한다. 사회복지 분야가 대표적이다. 공무원들을 봉사하는 쪽으로 집중배치하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다. 온갖 위원회와 고위직을 늘리는 일을 중지하고, 고달픈 국민을 직접 보살피는 공무원 수를 확대하는 개편안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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