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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다 “독도엔 영토분쟁 있고, 센카쿠엔 없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아전인수식 영토 의식을 내비쳤다. 노다 총리는 1일 개각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는 우리나라의 역사상, 국제법상 고유 영토지만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영유권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니 국제사법기관에서 흑백을 가리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서는 “국제법상으로도, 역사상으로도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라는 것이 틀림없고 현재 (일본이) 유효하게 지배하고 있다.”며 “따라서 ‘영유권 문제는 없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며 주도적으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생각은 없다.”고 설명했다. 노다 총리의 생각과 달리 2일 센카쿠열도 해역에 중국 해양감시선들이 또다시 진입하는 등 중국과의 영유권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10분쯤 중국 해양감시선 4척이 일본 측 접속 수역에 진입하고 한때 일본이 주장하는 영해까지 침범했다. 중국 어업지도선 2척도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과 대치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공직열전 2012] (41) 농림수산식품부 (상) 고위공무원

    [공직열전 2012] (41) 농림수산식품부 (상) 고위공무원

    봄에는 이상 한파와 가뭄, 여름에는 홍수에 태풍, 가을에는 수확량 변동에 따른 물가 폭등, 겨울에는 조류인플루엔자·구제역 등 계절이 바뀔 때마다 걱정거리가 태산인 곳이 있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바람 잘 날 없는 농림수산식품부(당시 농림부)를 교육부, 복지부와 함께 ‘3D 부처’로 꼽았다. 내년 예산도 전 부처 가운데 유일하게 제자리걸음이다. 총지출 증액률인 5.3%에 한참 못 미치는 0.2%(2000억여원)가 증액됐지만 농촌진흥청의 전남 나주 이전 예산(2800억원)을 빼면 사실상 줄어들었다. 그래도 요즘 조직 사기는 어느 때보다 높다. 그간 정치인, 학자, 재경직 공무원이 오던 장관 자리에 농업직(기술고시)으로는 처음 서규용(기술고시 8회) 장관이 임명됐기 때문이다. 서 장관은 2002년 농림부 차관으로 공직을 떠나고서도 농어민신문사장, 로컬푸드운동본부장 등을 하며 계속 농업계를 지켜 왔다. 장관 취임 이후 현장과 상황실을 지키며 점심, 저녁을 자주 도시락으로 해결해 ‘도시락 장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상길(행정고시 24회) 1차관은 2008년 미국산 소고기로 인한 촛불집회 때 주무국장인 축산국장, 2010~2011년 구제역 사태 때는 주무실장인 식품실장이었다. 위로 장관, 차관, 실장까지 사퇴하고 아래로 담당 국장, 과장, 팀장이 감사원 징계를 받았지만 이 차관은 이 일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돼 산림청 차장을 거쳐 1차관으로 승진했다. 이렇게 관운이 좋은 이유를 부하 직원들은 소신 있으면서도 융통성 있는 일 처리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오정규(행시 25회) 2차관은 지난해 6월 부임한 이후 농식품부 정책을 세련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무총리실이나 재정부 등 타 부처와의 소통도 강화돼 직원들의 작은 아이디어가 곧바로 정책화되고 있다. 구제역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해 재발을 막은 것도 큰 성과다. 이양호(행시 26회) 기획조정실장은 지난해 9월까지 농업정책국장으로 있으면서 ‘50년 숙원 과제’인 농협의 신용·경제 분리를 마무리했다. 이전에는 이해관계자들도 많고 이원화로 힘을 잃을까 염려하는 농협중앙회의 영향력 행사로 논의만 했었다. 그래서 2011년 3월 농협법 개정과 2012년 3월 사업구조 개편은 이 실장과 전임 농정국장(김경규 주미농무관), 당시 기조실장(박현출 농촌진흥청장) 세 사람의 ‘개인기’가 발휘된 결과라는 평가를 받는다. 많은 사람과의 협상, 조정이 반복되는 험난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정황근(기시 20회) 농업정책국장은 4월까지 2년 2개월간 농어촌정책국장으로 있으면서 귀농귀촌사업을 국가 정책으로 만들었다. 일자리와 농촌 고령화는 물론 베이붐세대(1955~1963년생)에 대한 사회적 비용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모델로 귀농귀촌을 제시했다. 이천일(행시 33회) 유통정책관은 ‘배추국장’이다. 올여름 태풍이 세 번이나 왔는데 배추값은 안정세다. 배추 상시 비축 제도를 도입한 이 국장의 공이 크다. 정영훈(기시 22회) 수산정책관은 올 1월 어업정책을 어획량·수입 증대에서 어선·어선원 중심으로 바꿨다. ‘쪽잠 자기도 어려운 어업 환경에서는 인재들이 어업인이 되려고 하지 않고 그러면 어업의 미래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매년 5월 10일을 ‘바다식목일’로 지정하고 망목(網目)은 그물코로, 천해(淺海)는 얕은 바다로 용어를 바꿔 일반인과 어업인이 소통할 수 있도록 수산용어를 정리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中 해양감시선, 센카쿠 해역 재진입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던 중·일 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이 다시 충돌 일보 직전으로 고조되는 분위기다. 중국 해양감시선과 어업지도선이 6일 만에 다시 센카쿠 해역에 진입했다. 중국 해양감시선 ‘해감 66호’와 ‘해감 46호’는 24일 오전 6시 40분쯤 구바섬 영해에 진입, 일본 순시선의 퇴거 요구를 묵살한 채 7시간가량 머물렀다. 또 오전 10시 40분쯤 어업지도선 ‘위정(漁政) 310’호가 다이쇼섬 북서쪽에서 다이쇼섬 영해로 진입했다가 오전 11시 30분 밖으로 나갔고, 오후 1시 30분에는 어업지도선 ‘위정 201호’가 우오쓰리섬 영해에 들어가 약 30분간 머문 뒤 빠져나갔다. 중국 국가해양국은 이를 계기로 센카쿠열도는 물론 한국의 이어도, 필리핀과 분쟁 중인 황옌다오(스카보러 섬) 등 주요 영유권 분쟁도서에 대해 오는 2015년까지 무인기 감시·감측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히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또 중국은 전날 자국의 첫 항공모함인 바랴크함을 해군에 인도한 데 이어 항모의 핵심인 함재기를 갖추고 있음을 확인했다. 공군 소장 차오량(喬良)은 이날 인민망이 주최한 네티즌과의 대화에서 “중국은 함재기를 가지고 있고 성능도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대화 가능성도 차단하고 나섰다. 전날 중·일 국교 정상화 40주년 기념식을 취소한 데 이어 이날 공산당 고위간부의 방일 계획도 무산시켰다. 양옌이(楊燕怡) 대외연락부 부장조리(차관보급)는 당초 이날부터 나흘간 일본의 여야 지도부와 회담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중국은 아울러 25일로 예정된 유엔 총회에서 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에 대한 공세도 예고했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이날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센카쿠열도에 대한 입장을 천명할 예정이라고 소개한 뒤 “일본은 유엔을 국제 질서에 도전하는 장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한편 타이완 어선 70척은 일본의 국유화 조치에 항의하고, ‘댜오위다오 주권’을 선포하기 위해 이날 오후 이란(宜蘭)항을 출발해 센카쿠로 향했다. 다른 항구에서 출발한 어선까지 합류해 선단 규모는 100여척에 이를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中 ‘반일 파업’… 日 ‘반중 시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중국과 일본에서 각각 반일·반중 시위가 열렸다. 중·일 우호협회가 오는 2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기로 한 양국의 국교정상화 40주년 기념식도 무기 연기되는 등 양국 간 분쟁이 장기화 국면을 맞고 있다. 23일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바랴크호가 인민해방군 해군에 인도된 가운데 센카쿠 주변 수역에선 새로 파견된 중국 어업감시선 ‘위정(漁政) 310호’를 포함해 어업지도선과 해양감시선 10척이 발견됐지만 양측 간 충돌 없이 소강상태를 이뤘다. 전날에는 어업지도선 10척과 해양감시선 2척 등 12척이 있었으나 이날은 2척이 줄었고, 모두 일본 측 접속수역 밖으로 물러났다. 중국에서는 정부의 시위 억제에도 불구하고 이날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최대 3000명이 집결한 반일 시위가 열렸다. 타이완에서는 민간 활동가와 시민 등 1000여명이 일본교류협회 타이베이 사무소 앞에 모여 센카쿠 국유화 조치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다. 타이완 행정구역상 센카쿠를 관할하는 이란(宜蘭)현 어민들은 24일 오후 어선 60여척을 동원, 센카쿠로 출항해 해상 주권 시위를 벌인다. 일본 보수단체인 ‘힘내라 일본! 전국행동위원회’는 지난 22일 오후 도쿄 롯폰기의 아오야마공원에서 ‘중국대사관 포위, 중국의 센카쿠 침략 저지, 긴급 국민대행진’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센카쿠에 자위대 상주를’이라거나 ‘중국인 관광객과 유학생은 필요 없다’는 등의 팻말을 목에 건 시민 1500명이 참석했다.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일제 자동차가 수난을 겪고 있다. 토요타, 닛산, 혼다자동차의 공장이 있는 산둥성 장먼시에서는 반일 시위가 절정을 이룬 지난 18일까지 5일간 일제차 78대가 차량털이 피해를 입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위대가 일제차를 부수고 금품 등을 털었다가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지난 15일 격렬한 반일 시위가 있었던 산시성 시안에서는 일제 승용차를 몰던 중국인 남성(51)이 시위대의 습격으로 부상해 반신불수가 됐다. 반대로 일본스케이팅연맹(JSF)은 오는 11월 상하이에서 열리는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시리즈 3차 대회 ‘컵오브차이나’에 자국 선수들의 안전이 보장될 때만 출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이 25일부터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한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양 부장과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의 중·일 외교장관 회담이 이뤄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태풍피해에 성난 農心

    태풍피해에 성난 農心

    볼라벤, 산바 등 잇단 태풍으로 피해를 본 농민들이 21일 서울역 광장에서 정부에 현실적인 피해보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한 뒤 명동으로 행진하던 중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농민들은 현행 ‘농어업재해대책법’으로는 보상이 제대로 안 된다며 새로 ‘농어업재해보상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박지환기자 popocar@seoul.co.kr
  • 양식 참조기 가을 밥상에

    양식 참조기 가을 밥상에

    양식 참조기가 이르면 가을부터 식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국립수산과학원 미래양식연구센터는 21일 양식산 참조기 (20.6t) 생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센터는 제주어류양식수협의 요청으로 참조기 양식 산업화를 위해 지난해 수정란 200만개와 치어 15만마리를 제주 양식어업인에게 분양하고 기술을 이전했다. 이들 5개 양식장에서 참조기 종묘를 시범 사육한 결과 월동에 성공해 1년 만에 평균 23.5㎝(체중 140g)로 성장했다. 이에 따라 이중 일부 양식장에서는 출하 준비를 앞두고 있다. 수산과학원은 양식 환경이 나은 제주도에서 사육을 시도, 지난 3년간(2008~2010) 3세대에 걸쳐 수정란 및 대량 종묘생산 양식 기술에 성공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中, 인민해방군 3급 전투대비태세 발령

    中, 인민해방군 3급 전투대비태세 발령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간 대치가 군사 충돌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센카쿠열도 대치 국면은 중국의 해양감시선, 어업지도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사이의 비무장 근접 대치와 양국 군함 간 원거리 무장 대치라는 복잡한 양상으로 변했다. 중국은 센카쿠열도 부근 해역에 군함을 파견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인민해방군 산하 7대 군구 가운데 5대 군구에 3급 전투대비태세(전비태세)를 발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군의 전비태세는 4단계로 1급이 발령되면 임전태세에 돌입하고 3급이 발령되면 전투 요원의 휴가, 외출 금지와 장비의 검사 및 보충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중국 군은 남중국해에서 긴장이 고조됐을 때도 3급 전비태세를 발령한 바 있다. 중국은 무력 시위의 수위를 한껏 높이는 기세다. 중국 내부적으로는 ‘영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면서 국제 사회에는 센카쿠열도가 분쟁 지역임을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센카쿠열도 주변 해역에 어업지도선과 해양감시선을 증강해 상시 배치하기로 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중국 농업부 어정국 관계자는 “국가의 주권을 지키겠다는 의사를 보여주기 위해 상시적으로 댜오위다오 주변에 감시선을 파상적으로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어선 보호를 명목으로 필요할 때마다 감시선을 파견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센카쿠열도 해역에 연중 감시선과 지도선을 배치하겠다는 뜻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내에서는 일본의 자위대가 센카쿠열도에 출동할 경우 군사 행동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잇따르고 있다.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인 문회보에 따르면 지난 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한 중국군 장성 5명 가운데 한 명은 “일본 자위대가 댜오위다오의 중국 해역 12해리 내에 진입하거나 중국의 민간 선박이 공격받을 경우 단호하게 군사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나머지 4명도 주전론을 전개했다. 반일 시위는 지난 18일 이후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센카쿠열도로 가려던 홍콩 시위대는 출항을 포기했다.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 때문에 ‘수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이 제안한 림팩(환태평양훈련)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첨예한 대치 상황에서도 양국은 대화 통로를 열어 놓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센카쿠열도 국유화 의도 등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에 특사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외교부도 대변인 브리핑 등을 통해 “일본 정부는 담판을 통한 문제 해결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며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한편 중국 세관 당국은 일본 상품에 대한 통관을 전방위로 강화하며 보복 조치에 나서고 있다. 20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중국 톈진시 세관 당국은 복수의 일본계 기업에 대해 전자제품 등의 원재료 수입과 관련한 검사 비율을 강화하겠다고 통보했다. 상하이 세관 당국은 일본에 수출되는 화학제품 원재료를 대상으로 통상 10% 정도의 검사 비율을 100%로 올려 전량 검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 일본 정부의 센카쿠열도 국유화 이후 일본 제품에 대한 중국의 통관 강화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中, 센카쿠에 군함 2척 파견… 무력충돌 위기

    중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부근 해역에 군함을 파견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과 일본 양국 간 무력 충돌이 우려된다. 일본 후지TV는 20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 센카쿠열도 서북쪽 80㎞ 해상에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호위함 2척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센카쿠열도 근해에 중국 군함이 접근한 것은 처음이다. 중국이 센카쿠열도 해역에 군함을 파견한 것은 최근 일본이 40㎜ 기관포를 장착한 1000t급 순시선 아소함을 추가 배치한 데 대한 대응 조치로 분석된다. 센카쿠열도 해역에서는 현재 중국의 해양감시선, 어업지도선 16척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들이 대치하고 있다. 중국 해군 함정과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은 100㎞ 이상 떨어진 원거리에서 레이더와 군사위성 사진 등을 통해 서로의 움직임을 감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해군 함정에는 기본적으로 사정거리가 긴 함대함 유도탄이 장착돼 있어 양측은 언제든 서로를 타격할 수 있는 상태다. 하지만 중·일 양국이 대화를 모색하는 여러 징후가 포착되고 있어 실제 양국이 무력 충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현재로서는 유력하다. 중국은 전날부터 전국적인 반일 시위를 사실상 중단시켰고 오는 27일 중·일 수교 40주년 기념행사를 베이징에서 개최하겠다고 일본에 통보했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강원, 동해 남북 경계수역 바다목장 추진

    강원도가 북한 수역을 통과하는 ‘직항로’ 개설에 나서고 조업을 다시 추진한다. 강원도 환동해본부는 20일 중국 어선의 북한 수역 싹쓸이 조업으로 어업인들의 고충이 커지는 가운데 남북경계 수역에 ‘평화의 바다 공원’을 조성하고 러시아 수역 입어 어업인들을 위해 북한 수역 통과 직항로를 개설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평화의 바다 공원 조성은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 20㎞, 연안 20마일 이내 수역을 대상으로 강원도 어업인들이 어선·그물 등 장비와 간부 선원을 제공하고 북한에서 일반 어업인들이 참여해 고기잡이를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이 지역에 인공어초를 투하하고 치어를 방류하는 등 바다 목장화 사업도 함께 추진할 방침이다. 직항로 개설은 러시아 수역에 입어하는 동해안 오징어 채낚기 어선이 북한 수역을 우회하지 않고 고기잡이할 수 있게 추진된다. 강원 고성 지역에서 러시아 나홋카와 올카항 인근 연안 앞바다에서 조업하기 위해 북한 수역을 통과하면 현재 24시간에서 13시간이 걸려 11시간이나 단축되는 효과를 얻는다. 100t 규모의 어선이 10노트로 운항할 경우 기름 소모량도 1920ℓ에서 880ℓ로 대폭 줄어든다. 도는 2005년과 2006년 북한 수역 조업을 위한 정부와 북한 측의 긍정적인 답을 얻고 이를 추진했지만 남북 관계 경색으로 실패했다. 이후 중국 어선들이 대규모로 북한 수역 조업에 나서며 어족 자원의 씨가 말라 동해안 어민들이 어려움을 겪어 왔다. 도 환동해본부 어업지원과 이중철 지도협력계 담당은 “중국 어선의 싹쓸이 조업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동해안 어업인 지원 특별법 제정 추진과 함께 우리 어업인들이 북한 수역에 들어가 고기잡이를 하는 방안도 단계적으로 강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발언대] 300만 농민 “응답하라 정치”/전광훈 NH생명 콜센터장

    [발언대] 300만 농민 “응답하라 정치”/전광훈 NH생명 콜센터장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그 정치도 대권을 향한 것이기에 국민적 관심이 팽배한 것이 요즘이다. 그런데 기후온난화시대인 지금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서는 안 될 것이 식량 확보와 지속가능한 농업이다. 1961년 종합농협이 탄생되고 2000만 농업인이 주체가 되어 일으킨 녹색혁명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업생산의 터전 위에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통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였고, 오늘날 한국이 저개발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현재 한국농업인은 300만명을 밑돌고 있으며 농림어업의 부가가치는 국내총생산(GDP)의 4.1%인 51조원이다. 국내 식량 자급률은 26.7%인데, 문제는 이러한 절박한 먹거리의 생산 현실이 전 지구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그플레이선 태풍’으로 지칭되는 농산물 공급부족 사태(올해 전세계적으로 부족한 식량은 약 4000만t임)는 농업이 1차산업이란 차원에서만 볼 수 없는 사회경제적 문제가 내포돼 있다. 어떤 관점에서는 18대 대선과 2013년 경제성장의 주안점이 정보혁명의 기치 아래 고부가가치 하이테크 위주의 산업구조로 더욱 변화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다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경제를 지탱하는 석유의 고갈과 가격 급등은 자유무역협정(FTA)과 그 경제효과도 미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은 아직 요원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지성은 화석연료시대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자연순환농업’ 정착과 ‘로컬푸드화’로 지역공동체를 안정시키는 것이 지구온난화시대의 초미의 현안으로 보고 있다. 대선에 임하는 후보들도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농업은 이제 농업인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상생가치 실현과 산업부문 간 전문지식의 융합과 산학협동 속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시대의 테마이기 때문이다.
  • 시진핑 “美, 댜오위다오 개입말라” 직격탄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19일 중·일 간 분쟁 중인 센카구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관련, “댜오위다오 매입은 웃기는 짓”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에 대해서도 “개입하지 말라.”고 목청을 높였다. 시 부주석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을 방문 중인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을 만나 이같이 말한 뒤 “일본은 잘못된 행동을 자제하고 중국의 주권과 영토를 저해하는 말이나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또 미국에 대해서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하고 댜오위다오 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특히 중·일 간 갈등을 격화하고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미국이 겉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센카쿠열도가 미·일 상호방위조약 대상이라는 점을 재확인함으로써 일본 편에 선 데다 방중 직전 일본에 들러 미사일방어(MD) 시스템과 관련된 고성능 레이더 기지를 일본에 추가 설치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중국 봉쇄’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 부주석은 이 같은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낸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은 양국이 센카쿠열도 인근 해역에서 경쟁적으로 관공선을 늘리면서 격화되고 있다. 만주사변 81주년 기념일인 지난 18일 최고조에 달했던 중국 내 반일 시위는 이날을 기해 거의 열리지 않고 있으나 해상 충돌 가능성은 고조된 것이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이날 전체 순시선(경비함) 121척 가운데 약 50척을 센카쿠 해역에 배치해 중국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배치된 순시선 가운데는 40㎜ 기관포를 장착한 1000t급 아소함이 포함됐다. 무장 공작선 나포 등 준전투 상황에 투입되는 함정이다. 중국도 일본 측의 저지를 무력화하기 위해 이날 센카쿠 인근 해역에 배치한 관공선을 16척까지 늘렸다. 해감총대 소속 해양감시선 10척과 농업부 산하 어정선(어업관리선) 6척이다. 이 중 4척은 이날 오후 8시 현재 센카쿠 접속수역(12~24해리) 안에 머물렀다. 해양감시선 6척은 오후 센카쿠 주변 해역을 떠나 중·일 중간선 너머로 사라졌으나 철수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남은 감시선은 특별한 추가 행동을 하지 않고 있어 대치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아울러 일본이 이미 자위대 함정을 센카쿠열도 주변으로 이동하게 했고, 중국 군부도 경고음을 내고 있어 최악의 경우 양국이 무력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난징(南京) 등 4대 군구에서 미사일 등을 동원해 센카쿠 상륙 및 탈환 실전 훈련을 집중 실시하고 있다. 공격형 핵잠수함을 자국 어선단 후위에 배치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일본은 중국 측이 일본으로부터 수입되는 상품의 통관을 늦추는 방법으로 사실상 경제보복에 나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중국 상무부의 선단양(沈丹陽) 대변인도 “(일본의 센카쿠 국유화는) 중·일 경제무역 관계에 반드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해 경제 보복 가능성을 내비쳤다. 2010년 9월 센카쿠열도 해역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 충돌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중국은 희토류 수출 중단과 일본 상품의 통관 지연으로 보복조치에 나서 일본을 항복시킨 바 있다. 중국은 일본에 사이버 공격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부처, 법원, 병원 등 적어도 19곳의 웹사이트가 명백히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고 일본 경찰청이 밝혔다. 이들 웹사이트는 접속할 경우 “댜오위다오는 중국 땅”이란 메시지가 나오도록 조작돼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만주사변 81돌… 中 100개市 反日시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일으킨 만주사변이 81주년을 맞은 18일 중국 100여개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인 반일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만주사변일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오전 9시 18분 중국 전역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랴오닝(遼寧)·간쑤(甘肅)·윈난(雲南)·쓰촨(四川)·안후이(安徽)성 등의 지방 정부는 만주사변 희생자 추모 차원에서 사이렌을 울렸다. 시위대는 “9·18을 잊지 말자.”,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는 중국 땅”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오성홍기,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 등을 들고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을 부르면서 거리를 누볐다. 베이징 시내 량마차오루(亮馬橋路)에 있는 일본 대사관에는 1만여명의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시위대 가운데 일부는 플라스틱 물병과 계란을 일본 대사관에 던졌고 공안(경찰)은 대사관으로 돌진하려는 시위대를 제지했다. 상하이에서도 4000여명의 시위대가 일본 총영사관에 모여 일본의 센카쿠 국유화를 비난했고 만주사변이 시작된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는 4500여명이 훼손된 일장기와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사진을 들고 항의했다. 중국 공안 당국은 평화적인 시위는 용인하겠지만 폭력, 파괴, 약탈 행위는 엄중 처벌하겠다고 경고하며 시위대를 통제했다. 센카쿠 상륙을 시도했던 홍콩 댜오위다오보호행동위원회는 선박검사증명서를 받지 못해 출항하지 못했다. 관영 신화통신 등의 언론 매체들도 이성적인 애국을 강조하면서 폭력 행위 자제를 촉구했다.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는 구내 800곳의 일본계 기업에 하루 동안 임시 휴업할 것을 권고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칭다오 등에 있는 일본인 학교도 하루 휴교했다. 저장(浙江)성과 푸젠(福建)성의 어선 1000척이 몰려갈 것으로 예고된 센카쿠열도 해역에서는 중국 어업지도선 ‘위정(漁政) 35001호’와 해양 감시선 10척이 접속수역 12∼24해리(22∼44km)에서 항해해 긴장을 고조시켰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센카쿠열도 주변에 대형 순시선 7척과 소형 어선을 추적할 수 있는 순시정을 배치했으며 방위성도 비상 상황에 대비해 자위대 함정을 센카쿠열도와 가까운 해역으로 이동시켰다. 일본 정부는 또 총리관저 위기관리센터에 정보연락실을 설치했다. 앞서 이날 오전 9시 30분쯤에는 일본인 2명이 센카쿠열도에 기습적으로 상륙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이들이 사전 허가 없이 섬에 상륙한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선 ‘중일 교전’이 하루 종일 인기 검색어 목록에 오르는 등 네티즌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소금, 쌀 등의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는 모습도 목격됐다. 저장성 원저우(溫州)시의 소금을 관리하는 염무국은 전날 시민들을 상대로 “2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소금이 있다.”며 사재기를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일본에서도 반중 감정이 고조되면서 17일 오후 6시쯤 후쿠오카 주재 중국 총영사관에 연막탄 두 발이 날아들었지만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中 국방장관 ‘추가 행동’ 언급… 무력충돌 치닫나

    량광례(梁光烈) 중국 국방부장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과 관련해 ‘추가 행동’을 언급했다. 중국 군부의 수뇌부 가운데 한 명이 무력대응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량 부장은 18일 중국을 방문한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의 행태가 잘못됐음을 주장해 왔고, 사태의 진전을 예의 주시해 왔다.”면서 “동시에 우리는 추가 행동을 취할 권리도 유보해 왔다.”고 밝혔다. 일본이 센카쿠열도 국유화 조치를 거두지 않는다면 유보해 온 추가 행동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중국은 동중국해에서 실탄 사격훈련을 포함한 각종 군사훈련을 잇따라 실시하는 등 무력시위에 나서고 있지만 직접적인 군사력 개입은 하지 않았다. 어업지도선과 해양감시선을 센카쿠해역으로 파견했지만 이들의 소속은 농업부 어정국과 국가해양국이다. 이에 따라 량 부장이 언급한 ‘추가 행동’은 군함 또는 군용기 등 군사력 배치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며, 일본도 해상자위대 함정 등을 파견해 맞대응하게 되면 실제 양국 군의 무력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량 부장도 이 같은 상황의 심각성을 의식한 듯 “이 문제가 평화적인 방식과 협상을 통해 적절하게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러면서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이 국유화 조치를 실행한 일본 정부에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을 제외하고, 군부의 최고 실권자인 쉬차이허우(徐才厚)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최근 산시(山西)성의 한 부대를 방문해 국가주권과 영토 수호를 위해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말고 군사투쟁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뉴스&분석] 쭈꾸미 어민들 어획량 급감 한숨 왜?

    [뉴스&분석] 쭈꾸미 어민들 어획량 급감 한숨 왜?

    주꾸미가 사라지고 있다. 재미로 하는 ‘거미 낚시’와 별 생각없이 끓여먹는 ‘주꾸미 라면’이 주범이다. 거미는 주꾸미 치어를 뜻한다. 어린 주꾸미의 생김새가 거미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몇 년 전부터 가을마다 서해안에는 거미 낚시 인파가 줄을 잇고, 직접 잡은 ‘거미’를 넣어 배 위에서 끓여 먹는 라면이 큰 인기다. 이 바람에 다 큰 주꾸미 어획량이 급감하고 있어 어민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수산당국은 주꾸미 산란기를 아예 주꾸미 낚시 금지기간으로 정하는 방안 등을 심각하게 검토 중이다. 14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주꾸미 어획량은 2009년 4285t에서 지난해 2596t으로 2년 새 39.4%나 줄었다. 주꾸미 어획량이 가장 낮았던 1996년(3709t)보다도 훨씬 적다. 주꾸미 어획량이 3000t 밑으로 떨어진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는 것이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유사 어종인 낙지의 2009~2011년 어획량이 6445~7013t으로 별 차이가 없는 것과 비교해도 주꾸미 급감은 매우 이례적이다. ●2년 새 주꾸미 가격 두 배 껑충 이는 어민들의 손실로 이어진다. 주꾸미 어업생산액은 2009년 520억원에서 지난해 381억원으로 감소했다. 어업 손실이 139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주꾸미가 귀해지면서 가격도 오르고 있다. 서울시농수산물공사에 따르면 주꾸미 가격은 5㎏ 한 상자당 이날 현재 평균 1만 7000원에 거래됐다. 전날보다 25% 올랐다. 주꾸미가 가장 맛있어 가격이 가장 비싼 3월과 비교하면 가격 급등세가 더 두드러진다. 2010년 3월에는 한 상자에 3만원이었으나 올 3월에는 5만 3000원까지 올랐다. 2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뛴 셈이다. “그마저도 없어서 못 판다.”고 식당 주인들은 아우성이다. 권대현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박사는 “2년 전부터 9~12월에 충남 태안·서산·서천 등 서해안 일대에서 거미 낚시가 큰 유행”이라면서 “어린 주꾸미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바람에 본격적인 주꾸미 생산철인 3월에도 주꾸미를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산과학원은 이달 안에 서해안 일대의 유어(遊漁·재미로 하는 낚시) 실태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가을이면 서해안 포구에 낚시인파 인산인해 충남도청에 따르면 주꾸미 낚시꾼은 서해안 포구당 주중 200~300명, 주말 2000~3000명 정도다. 한 사람이 한 번에 적게는 5~6㎏, 많으면 20㎏ 이상씩 새끼 주꾸미를 잡아간다. 5만원에서 10만원만 내면 초보자도 쉽게 낚시를 할 수 있는 데다, 최근에는 주꾸미 낚시 인터넷 예매 사이트까지 생겨 주꾸미 낚시 인구가 급증하는 추세다. 충남도청 수산과 관계자는 “서해안 포구마다 밤낮을 안 가리고 주꾸미 낚시를 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주꾸미 낚시에 쓰이는 추에 대부분 납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납 성분 허용치를 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꾸미 낚시 특성상 추가 끊어지는 일이 빈번해 주꾸미뿐 아니라 다른 해양자원 오염도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것이 자치단체들과 어민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재미로 하는 도시인 낚시에 어민들 죽어난다” 떨어진 낚시추가 어민들의 그물에 걸리는 것도 큰 문제다. 43년째 충남 서천에서 꽃게·주꾸미 잡이를 하는 어민 김영규(66)씨는 “끊어진 낚시추가 어구에 걸리면 그 부분을 아예 가위로 잘라내야 하기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면서 “걸린 낚시추를 모아 보면 하루에 한 대야는 충분히 나온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이대로 계속 가면 주꾸미 씨가 마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남 보령에서 36년째 어업을 하는 김상태(50)씨도 “어민들은 교육을 받아서 치어는 잡아도 놔주는데 도시 낚시꾼들은 아무리 계몽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주꾸미 낚싯배로 장사하는 사람들도 죄다 도시인들”이라면서 “도시인들의 낚시 놀이에 소득이 40% 이상 줄었다.”고 울상지었다. 강인구 농식품부 어업정책과장은 “법령이나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고쳐 산란기에는 주꾸미 낚시를 못하도록 하는 등 관련 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1965년 독도서 움막생활 시작… 81년에 첫 독도 주민증”

    “1965년 독도서 움막생활 시작… 81년에 첫 독도 주민증”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1925~1987)씨의 생활상을 담은 책자가 발간됐다. 독도최종덕기념사업회(공동대표 박해선·박영희)가 오는 16일 최씨 사망 25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펴낸 ‘영원한 독도인 최종덕’. 280쪽 분량의 책자에는 평남 순안 출신인 최씨가 울릉도로 이주한 뒤 1965년 독도 서도 물골에서 움막집을 짓고 어업 활동을 하게 된 동기를 비롯해 현재 주민 숙소가 있는 서도 어민 숙소 건립 및 증축 등 무인섬 독도에 주민이 거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애쓴 모습들이 자세히 소개됐다. 또 최씨가 1981년 10월 14일 최초로 독도로 주민등록지(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 산63)를 옮겨 ‘독도 주민 1호’가 됐다는 기록과 함께 독도 전복 양식장과 수중 창고, 선착장을 손수 짓는 장면과 헬기장 공사에 참여했던 활동 모습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이와 함께 최씨가 1987년 9월 태풍 다이아나로 파손된 서도의 집과 선가장(배를 뭍으로 끌어 올리는 장소) 시설 복구를 위한 자재 구입차 방문한 대구에서 뇌출혈로 숨질 때까지의 독도 생활(22년)과 관련해 독도 출신 해녀와 울릉도 주민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담아 냈다. 1965년부터 1992년까지 27년간 해마다 최씨와 그 가족들이 독도에서 생활한 일수(日數)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 밖에 최씨의 독도 생활과 관련한 각종 연구 및 사진 자료, 언론 보도 내용 등도 수록했다. 독도최종덕기념사업회는 20일 오후 7시 기념사업회 사무실이 있는 경기 성남시청 한누리관 3층에서 출판 기념회를 열 예정이다. 최씨의 둘째 딸로,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인 경숙(49)씨는 “평생 독도를 가꾸고 지키셨던 아버지 독도 사랑 정신을 기리고 국내외에 독도가 우리 땅이란 사실을 재확인시키기 위해 책자를 발간하게 됐다.”면서 “특히 일본 정부가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신문 광고를 시작한 즈음에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입증하는 독도 최초 주민과 관련한 기록이 처음으로 정리돼 책으로 출판된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후진타오 “日 센카쿠 매입은 무효” 강력 반발

    일본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로 중국과 일본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0일 오후 각료회의에서 센카쿠 열도의 5개 무인도 가운데 우오쓰리시마, 미나미코지마, 기타코지마 등 3개 섬을 개인 소유자로부터 20억 5000만엔(약 296억원)에 매입해 국유화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11일에는 각의를 열어 센카쿠 매입을 위한 예비비 지출을 결정하며, 섬 소유자와 매매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이에 중국 정부가 강력 반발하며 일본 성토에 나섰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지난 9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노다 요시히코 총리를 만나 일본의 센카쿠 매입은 불법이고 무효라고 주장했다. 후 주석은 “중국 정부는 영토주권 수호에 결연한 태도로 임할 것”이라면서 “일본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노다 총리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대국적 관점에서 대응하자.”며 갈등 진화를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다 총리는 센카쿠를 ‘평온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유화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피력했다. 하지만 후 주석의 반발이 이어져 센카쿠 갈등의 완화와 전략적 호혜관계의 심화를 시도한 노다 총리의 노력이 무위에 그쳤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앞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해 영토 주권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어떤 조처를 할지 밝히지 않았지만 인적 교류 중단이나 경제 제재, 어업감시선·해양감시선 파견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완 외교부도 10일 공식 논평을 내고 일본의 국유화 조치에 항의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기고] 해경 59주년, 새로운 60년을 준비하자/고충석 이어도연구회 이사장

    [기고] 해경 59주년, 새로운 60년을 준비하자/고충석 이어도연구회 이사장

    10일은 해양경찰이 창설된 지 59주년이 되는 날이다. 해양경찰 창설일은 2010년까지만 해도 12월 23일이었다.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치안국 소속으로 1953년 해양경찰대가 출범한 날이다. 지난해부터 배타적경제수역(EEZ)법이 발표된 9월 10일로 변경됐다. 해양 영토를 굳건히 수호하는 데 해경이 더욱 앞장서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해경은 1953년 6척의 배와 600여명의 인력으로 출발을 알렸다. 이후 장비와 인력 규모가 크게 늘어 현재 289척의 함정, 20대의 항공기, 1만여명의 인력을 갖춘 조직으로 성장했다. 대한민국의 해경은 어느덧 세계적인 해상치안 기관으로 발돋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양경찰의 성장과 발전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숱한 어려움과 질곡, 과제들이 해양경찰 앞에 놓여 있었다. 이를 이겨낸 것은 해양경찰의 투철한 역사적 사명과 해양안보 의식이다. 그리고 해양 현장에서 우리나라 해양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해양경찰의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해경의 치안 범위는 국토 면적의 4.5배에 달한다. 각국은 국력 신장의 기점으로 광활한 해양 영토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해양 영토를 한 뼘 더 확보하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중·일 3국이 맞닿은 동중국해는 해양 영토 쟁탈전이 가장 치열한 해역 중 하나다. 해양경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막중한 이유다. 해경은 올 들어 독도·이어도 해역의 해상경비력을 보강했다. 특히 지난 6월 제주해양경찰청이 신설됨으로써 이어도를 포함한 제주 해역의 수호 및 단속에 더욱 효율성을 기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현재 상황을 마냥 낙관할 수는 없다. 특히 이어도 해역은 정치·안보적으로 민감한 곳이다. 이어도 해역에 대한 중국과의 해양경계획정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해경이 중국 어민의 흉기에 숨을 거둔 서해도 마찬가지다. 불법 조업에 따른 중국 어민들의 횡포가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어업자원뿐만 아니라 어민들의 목숨까지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사고 이후 해경은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더욱 엄정한 법 집행으로 강력한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안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해경은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당장 해양 영토의 치안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해양 영토에 대한 분쟁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하고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관련 민간기관·단체 등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인력과 장비 보강 문제도 빨리 풀어야 한다. 특히 해경은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에 따라 북한 의심 선박 검색기관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대응하기 위한 장비와 인력은 너무 부족하다. 나아가 해역에서 발생하는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체계적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 ‘세계 5대 해양강국’ 목표에 걸맞은 전문 우수 해양인력의 양성과 연구기관의 수립도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특히 회갑을 맞는 내년 해경은 국민들에게 더욱 신뢰받는 해양 주권의 최후 보루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해가 중요하다. 변화의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6)‘개화파’ 김옥균 vs ‘그를 죽인’ 홍종우

    [선택! 역사를 갈랐다] (26)‘개화파’ 김옥균 vs ‘그를 죽인’ 홍종우

    ●혁명가 인정받는 ‘김옥균’ vs 테러리스트 된 ‘홍종우’ 정부 차원에서 주요한 역사적 개념을 규정하는 북한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갑신정변을 ‘근대 부르주아 혁명운동’으로 변경했다. 한국에서 김옥균(金玉均·1851~1894)과 갑신정변에 대한 견해는 연구자들 간에 일치하지 않으나 대체로 근대국가 수립을 위한 최초의 혁명적·진보적 개혁운동으로 보고 봉건제 청산을 위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전개하였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일본이라는 외세 동원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변혁 주체로서의 역할은 인정하는 편이다. 반면 이와 대비시켜 우리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홍종우(洪鍾宇· 1850~1913)는 대다수 사람들이 갑신정변 주도 인물인 김옥균 암살범이자 독립협회와 대척점에 있던 황국협회를 주도하던 반(反)개화, ‘테러리스트’로만 이해하고 있던 인물이다. 당연히 그 평가는 부정적이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보수반동 성향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갑신정변’ 3일천하… 실패한 비운의 개화파 김옥균 조선을 개혁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일으킨 1884년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난 뒤 반역자로 처단된 고균(古筠) 김옥균. 권력과 세력을 잃고 망명지를 떠돌다가 목숨을 잃고 주검마저 능욕을 입은 비운의 개화파…. 갑신정변의 실패는 정변의 주체들과 일정 부분 이해를 같이했던 윤치호의 아버지이자 군부대신 등 고위관료를 역임한 윤웅렬도 예견하고 있었다. 그는 갑신정변의 실패 요인을 다음의 여섯가지로 꼽았다. 1. 군주를 위협한 점 2. 외세를 믿고 의지한 점 3. 민심이 따르지 않은 점 4. 청국의 군사력을 과소 평가한 점 5. 왕과 왕비의 의향을 어긴 점 6. 당붕(黨朋)의 도움 없이 일을 조급하게 처리한 점 갑신정변의 행동대장으로서 정권의 핵심인사 살해에 앞장섰던 서재필은 후일 회고담에서 실패 원인을 ‘민중의 무지몰각’에 돌리고 있다. 그는 광범위한 민중의 원동력과 잠재력을 믿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매도했다. 정변은 국민적 동의 없이 진행된 것이다. 후일 김옥균은 일본을 ‘이용’했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이용당한 것이고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봉건제도 청산을 위한 노력에만 초점을 맞추었지만 상대적으로 제국주의 침략 세력에게는 관대하거나 이를 생각하지 못한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와 친한 일본인들은 후쿠자와(福澤諭吉), 도야마(頭山滿), 고도(後藤像二郞) 등 ‘대아시아주의자’이자 한국 침략을 적극 옹호한 인물 일색이었다. 말년의 김옥균은 이른바 삼화주의(三和主義)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흥아지의견’(興亞之意見)에 기초해 이를 설명했는데, 그 골자는 ‘삼국제휴 서력방알’(三國提携 西力防?)을 통해 아시아를 부흥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제창하게 된 것도 정신적 스승인 후쿠자와의 영향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흥아지의견’은 현재 남아 있지 않아서 과연 김옥균이 후쿠자와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삼국이 대등한 관계에서 평화롭게 공존공생하자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904년 러일전쟁 직후 그동안 일본에 망명했던 갑신정변과 을미사변 관련자들은 모두 귀국하여 복권되고 식민지 시기 대다수는 친일의 거두로서 식민지 지배의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김옥균에게는 유신(維新)을 처음 제창한 사람이고 문명의 선각자로서 충달공(忠達公)이라는 시호가 융희 4년(1910) 7월 27일에 추증되었다. 김옥균 추종 세력은 이후 1920년대에 들어와서도 그의 이전 활동을 과장·미화하였다. 식민지 시대 말기에 이르면 일제는 만주 침략을 시작으로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대동아공영권을 통한 아시아 지배와 조선 민중에 대한 무제한의 통제 명분을 김옥균이 주장한 삼화주의에서 찾았다. 김옥균의 삼화주의는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숱하게 왜곡되어 갔다. ●홍종우, 실정 맞는 근대화 추구… 佛르피가로도 ‘개화인사’ 인정 경기도 몰락한 선비의 가문에서 출생한 홍종우는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빈곤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886년 3월부터 프랑스행을 결심하여 1888년 나가사키와 규슈, 오사카를 거쳐 도쿄에 도착했다. 이어 1890년 12월 파리로 들어갔다. 그는 프랑스 유학 후 거의 2년 동안 파리 기메박물관에서 연구보조자로 활동하면서 춘향전, 심청전, 직성행년편람(直星行年便覽) 등 한국의 고전과 점성술책, 일본과 중국의 고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일에 종사했다. 홍종우는 프랑스어 번역본 ‘다시 꽃이 핀 마른 나무’(심청전)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공화국에 사는 데 습관이 된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우리 선조가 세운 정부 형태에 우리가 집착하는 것을 탓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이것은 기질의 문제이다. 기후가 국민의 관습에 끼치는 영향은 오래전에 증명되었다. 그 누구도 인디언들이 에스키모인과 같이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라마다 다른 정체(政體)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부 형태를 유지하면서, 이번에는 우리가 유럽문명을 이용하고자 한다. 이 일에 있어 우리를 돕고자 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존경과 애정을 바칠 것을 미리 약속한다.” 홍종우의 정체관이 그간의 시대 담론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목표는 조선의 전통과 서양 문화를 조화·절충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대중을 계몽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성리학적 질서와 체제를 유지하고자 했던 척사위정론자들과 다른 것이었으며, 민족 주체성과 민족 문화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화 지상주의론자와도 구분되었다. 1893년 귀국을 결심한 그는 그해 12월 일본에 도착하였다. 이때 고종의 밀명으로 도쿄에 온 이일직과 만났고, 그로부터 김옥균 암살을 제의받게 된다. 홍종우는 김옥균을 만나 프랑스 정국을 소개하고 세계 대세와 동양 정세를 논하는 한편 그의 상하이행을 유도했고 상하이 동화양행에서 김옥균은 결국 홍종우가 쏜 세 발의 총탄을 맞고 즉사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는 아관파천 이후부터다. 그는 국왕을 황제로, 세자를 황태자로 높이는 한편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건원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는 대한제국 수립과 황제 즉위식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홍종우는 대한제국 성립 당시 비서원승으로 활약한 이래 각 방면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차례 전반적인 개혁을 주장하였다. 경제 문제에 관한 개혁론은 대외적으로 열강의 조선 이권 침탈에 대한 절대불가론으로, 내적으로는 국가재정의 확충과 국내 상인의 몰락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론인 보호주의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은 한러은행 설치 반대, 외상의 도성 개잔(開棧)과 내지행상 반대, 절영도 석탄고 임대 및 광산이권 양도 반대, 조선 연해어업 및 홍삼 사매(私買) 반대, 방곡실시, 광무연호 주조, 상권보호 등이다. 정치·사회 문제에 관한 개혁론은 군주권의 절대화, 군권(軍權)의 확립과 군사권 간섭 반대, 각부 고문관과 각국 공사의 내정 간섭 반대, 불평등 조계 개정, 만국공법의 철저한 준수, 공정한 인사정책, 민선의원(民選議院) 설립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근대적 지도체제의 확립을 위해서는 정부의 자립과 과감한 개혁이 이를 보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러일전쟁을 거쳐 1910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식민지가 되자 그는 ‘개화당의 영수’ ‘조선독립의 혁명가’ 김옥균 암살범으로 다시 각인되었고, 근대화를 저해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그는 명실상부한 개화인사였다. 프랑스 저명 신문 르피가로지도 그렇게 보고 있다. 잘 알다시피 홍종우는 프랑스 최초의 한국 유학생이자 많은 부분 우리 실정에 맞는 근대화를 도모하였다. 그가 수구파라는 결정적인 근거도 없고 그 역시 수구적인 언급을 한 바 없다. ●편견 지우고 입체적으로 보아야 김옥균과 홍종우는 조선을 근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같다 하더라도 양자 간에는 분명한 대립각을 갖고 있었다. 김옥균과 달리 홍종우는 조선이 근대국가로 이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외국으로부터의 도전이라고 인식하고 자주적 근대화를 추진하려고 했다. 그는 조선의 역사와 현실을 서구에 알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선에서 근대화가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것이다. 현실 사회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부재 상태에서 문화적 전통과 제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서구 및 일본의 제도를 무차별하게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그 나라의 발전에 커다란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김옥균처럼 문명개화를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보면서 제국주의 이웃 강국을 끌어들여 근대화를 달성하려는 방식은 정당화되기 힘들다. 만약 그럴 경우에는 자칫 국가를 상실할 위험이 뒤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갑신정변 당시와 지금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의 국제 정세는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조재곤(동국대학교 연구교수)
  • 여·야, 해병대 독도상륙훈련 취소 ‘한목소리’ 질타

    7일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터져 나오고 있는 일본의 망언과 한·일관계 악화,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이 쟁점이었다. 특히 여야 모두 이날 열린 독도방어훈련에서 해병대 독도상륙훈련이 취소된 것에 대해 배경을 따져 물으며 정부의 대일 외교정책을 비판했다. 민홍철 민주통합당 의원은 “독도 상륙훈련을 취소해달라는 일본 측의 요청을 우리 외교통상부가 받아들였다는 정보가 있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이 입김을 넣었다는 의혹도 있다.”고 밝혔다.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도 “우리 땅 독도에서 우리 해병대가 훈련을 못 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고, 지난번 한·일정보보호협정은 파행을 거듭했다.”고 지적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에 대해 “매년 훈련 시나리오에 따라 훈련 내용이 바뀌는데 올해는 민간 선박이 독도 영해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을 가정하고 훈련했기 때문에, 해병대 상륙훈련을 취소했다는 것은 오해”라고 답했다. 유성엽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치밀한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진 탓에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는커녕 일본과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과 분쟁만 불러온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며 독도 문제 해법을 캐물었다. 반면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5월 민주당은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채근했지만 이번 방문 이후에는 ‘아주 나쁜 통치행위’라는 입장을 표명했다.”면서 “중요한 외교 문제는 당을 떠나 여야가 한목소리로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과 김 총리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추 의원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자 김 총리는 “정략적인 이유로 영토 방문을 자제할 수도 있지만 독도문제는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게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추 의원은 “정략적인 것은 총리다. 질문을 못 알아들으신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 총리도 “질문을 이해하는지 안 하는지는 여기 계신 의원들이 판단할 것”이라면서 맞받아쳤다. 신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고 재협상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다른 지역은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35마일로 하면서도 울릉도 기점에서는 33마일까지만 설정해 독도를 우리 EEZ 밖에 놓았다.”면서 “이를 근거로 일본이 국제사회에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무모한 도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일 어업협정을 파기하고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남해 火電 주민투표로 결정

    찬반 논란이 거센 경남 남해군의 화력발전소 유치 여부가 주민투표로 결정된다. <서울신문 8월 11일자 13면> 6일 남해군에 따르면 남해 에너지파크 유치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남해에너지파크는 한국동서발전㈜이 남해군 서면 중현리 일원 175만㎡에 건설하려는 4000㎿ 규모의 화력발전소를 말한다. 정 군수는 “남해 에너지 파크 유치는 주민의 복지와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남해군은 주민투표 실시 동의서를 군의회에 제출했다. 남해군은 의회에서 동의안이 통과되면 주민투표 청구요지 공표 발의 등의 절차를 거쳐 남해군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오는 10월 10일 주민투표를 할 예정이다. 남해군은 지난해 7월 한국동서발전㈜이 중현리 일대에 8조 6000억원을 들여 4000㎿ 규모의 화력발전소를 포함한 남해에너지파크 건설을 제안하자 타당성 용역조사를 하는 등 유치를 추진해 왔다. 동서발전은 2013년부터 2021년까지 1·2단계로 나눠 에너지파크를 건설할 계획이다. 남해군은 서면 일대에 추진하는 조선산업단지에 참여 기업이 없어 무산되자 대안으로 에너지파크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발전소 유치를 놓고 건설예정지 주민 등은 찬성하고 있으나 환경단체와 농·어민, 농·어업 관련 단체들은 환경오염 등을 우려하며 반대하는 등 찬반 논란이 거세다. 남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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