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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선 침몰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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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선 침몰’ 韓·中 외교분쟁 조짐

    지난 18일 서해에서 불법 조업한 중국 어선과 한국 해경 경비함이 충돌한 사건이 한·중 외교분쟁으로 비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은 전력을 다해 실종 선원 구조에 나서고 사고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며 한국의 책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장 대변인은 한국이 중국 선원들의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보상하는 한편 철저한 조치를 취해 앞으로 유사 사건을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 사건에 대해 엄정한 태도로 한국 정부와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한 그는 “어떤 해역에서든 어선과 충돌해 인명 피해를 내는 것은 생겨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중국 어선이 한국 경비함을 들이받았다는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와는 반대 주장을 폈다. 또 “한·중 양국의 어업협정에 따르면 양국 어선은 모두 이 (사고) 해역에 들어갈 수 있고 양국은 각자 자국 어선에 대한 법 집행만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사고 어선의 불법 조업 사실도 부인했다. “만약 불법 행위가 있더라도 상대국에 통보를 해야 하며 상대방 어선에 승선할 권리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당시 해경이 촬영한 동영상 등 명백한 증거자료가 있다.”면서 “중국 정부가 원한다면 언제든 공동조사할 용의가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 18일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 북서방 72마일 해상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50여척 중 요영호(63t급)가 단속에 나선 우리 해경 경비함(3000t급)을 들이받고 침몰해 선원 1명이 실종되고 1명이 숨졌으며 8명이 구조됐다. 한편 제주해양경찰서는 21일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불법조업한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선적의 쌍타망어선인 요대금어 75037호(178t)와 75038호(178t), 요대감어 15361호와 15362호 등 중국 어선 4척을 나포했다고 밝혔다. 해경에 따르면 요대금어 75037호와 75038호는 20일 오후 1시35분께 제주 차귀도 남서쪽 58.4㎞(EEZ 내측 81㎞) 해상에서 조기 등 잡어 8만 4000여kg을 포획한 뒤 해당 어획량을 조업일지에 축소 기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제주해경은 지난 20일부터 불법조업 중국어선에 대한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번 단속기간에 모두 6척의 중국 어선을 나포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서울 김상연기자 제주 황경근기자 stinger@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독자들의 인식변화 이끌어야/이종혁 경희대 언론정보학 교수

    [옴부즈맨 칼럼] 독자들의 인식변화 이끌어야/이종혁 경희대 언론정보학 교수

    옴부즈맨 칼럼을 쓰면서 서울신문의 위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저널리즘 관련 논문에서 서울신문을 거의 접하지 못한 탓에 궁금증이 일었다. 학술 세미나에서 서울신문이 논의되지 않는 데 대한 섭섭함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찾아 보았다. 우선, 구독률이나 열독률 조사에서 서울신문은 순위 안에 소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수많은 저널리즘 논문들이 신문 기사에 대해 내용분석을 하지만, 서울신문을 대상으로 한 경우는 찾기 힘들었다. 일제시대나 해방 전후 우리 신문의 역사를 다룬 경우에는 일부 등장했다. 하지만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연구였지, 이에 뿌리를 둔 현재의 서울신문은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서울신문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인식도 긍정적이진 않았다. “정부출연기관 아니냐.”는 질문이 돌아와 “사원이 최대 주주”라고 하면, “언제 그렇게 바뀌었냐.”고 되묻는다. 서울신문의 정체성은 여전히 정부 소유의 친정부 신문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모두 개인적 경험이지만 이를 토대로 서울신문의 현재 위상을 진단하자면 그리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상황이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서울신문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다. 서울신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신문을 읽지 않을 것이며, 열독자가 적은 신문은 학계의 연구 대상이 되기 힘들다. 그렇다면 현재의 서울신문 지면은 어떠할까? 일반의 인식대로 정부와 대통령 관련 기사가 대부분일까? 필자는 미디어 다양성의 개념으로 이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미디어 정책 학자인 나폴리(Napoli)에 따르면, 미디어는 다양한 출처(source)를 사용해 다양한 주제나 관점을 전달해야 하며, 수용자도 다양한 내용에 대한 접근이 보장되어야 미디어 다양성이 확보된다고 한다. 필자는 서울신문 보도의 다양성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한 주간(13~18일) 1면에 게재된 27개 기사들의 주제와 주요 취재원들을 분류해 보았다. 주제에서는 정치 6건, 국방 6건, 경제(기업, 생활, 정책 등) 4건, 국제(외교) 2건, 교육 2건, 사건·사고 2건 등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문화·연예, 미디어, 휴먼스토리, 법률, 환경 등이 1건씩으로 나타났다. 국방 관련 기사들을 포함해 정치, 경제, 외교 등 정부나 공적 기관 관련 기사들이 비교적 중요하게 다뤄졌다. 취재원을 분석해 보면, 정부 관계자가 18건(대통령 2건, 청와대 2건 포함)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어 국제 인물이나 기관 3건, 정치권 인사 2건 등이었다. 대법원, 민간경제연구소, 방송국, 금융권 등이 각 1건씩이었다. 연평도 포격 이후 국방부가 주요 취재원이 되는 특수 상황이 있었지만, 정부 취재원이 지나치게 많은 편이었다. 해양경찰청(원양어선 침몰), 교육과학기술부(평가 하위 교사 재교육), 국토해양부(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방송통신위원회(지상파 MMS 검토) 등이 그 사례들이다. 분석 기간 동안 구제역 확산은 매우 중요한 뉴스였다. 주요 취재원들은 농림수산식품부, 행정안전부, 경상북도, 시·군 관계자 등이었다. 농민들의 목소리도 일부 전달됐지만, 충분치 않았다. 저널리즘 연구에서 뉴스 미디어의 공적 엘리트 취재원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늘 문제로 지적된다. 물론 이들이 소유한 정보가 사회적으로 중요하며 신뢰도 높은 내용임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보도의 시각을 전환하면 어떨까? 농림수산식품부에서 구제역 발생을 확인하고, 현장 농민의 하루 일과를 밀도있게 보도하는 방식이다. 행정안전부의 구제역 방역 대책을 확인하고, 민간 전문가들을 통해 그 효과를 검증하면 어떨까? 필자의 간단한 분석만으로 서울신문의 보도를 평가할 수는 없다. 체계적 분석을 통해 바로잡을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신문 독자들의 서울신문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면, 이러한 분석이 그 노력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재치만점’ 통큰치킨 장례식…송혜교 세계미인 18위 뽑혀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재치만점’ 통큰치킨 장례식…송혜교 세계미인 18위 뽑혀

    ‘통큰치킨’이 지난주에도 인터넷을 달궜다. 이번엔 장례문화(?)와 접목되며 ‘통큰치킨 장례식’(왼쪽)이 네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지난 13일 롯데마트가 ‘통큰치킨’의 판매를 중단하자 네티즌들이 패러디물을 게재한 것. 게시물들은 ‘통큰치킨’의 영정사진을 만들고, 드라마를 패러디하는 등 재치가 반짝였다. 2위는 ‘지하철 폭행남’. 지하철 1호선에서 20대 여성의 머리와 뺨을 세 차례 때리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면서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이 여성을 때린 남성은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몸을 부딪친 여성이 사과도 하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자 홧김에 주먹질했다고 진술했다. 이 남성은 사건 직후 체포돼 불구속 입건됐다. ‘원양어선 침몰’ 소식은 네티즌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지난 13일 남극 해역에서 원양어선 제1민성호가 침몰, 5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실종됐다. 침몰 어선에는 한국인 8명을 포함해 다른 국적 승조원 42명이 타고 있었으며, 한국 선원 8명 가운데 1명만 구조되고 2명은 사망, 5명은 실종됐다. 4위에 오른 ‘김길태 감형’ 소식은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을 야기했다.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무참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길태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지난 15일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하자 논란이 일었던 것. “사형은 국민 여론을 의식한 가혹한 처벌이었다.”는 의견과 함께 “말도 안 되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반박이 나왔다. 탤런트 김성민의 마약 복용 여파가 전창걸에게로 옮겨갔다. 개그맨 전창걸이 검찰에 구속된 소식이 5위에 올랐다. 김성민과 전창걸은 서로 집을 오가며 대마초를 나눠 피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구속수감된 두 사람을 상대로 마약 공급책과 함께 흡연을 한 인물들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다. 연예인 마약 후폭풍이 어디까지 불지 관심이 모아진다. 6위는 ‘송혜교, 가장 아름다운 얼굴’(오른쪽)이다. 미국 영화 전문 웹사이트가 발표한 ‘가장 아름다운 얼굴 100’에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18위에 이름을 올린 것. 1위는 미국 섹시스타 카밀라 벨이, 2위는 엠마 왓슨이 차지했으며, 3위는 탐신 에거튼이다. 가수 김장훈의 기부 소식이 또 인터넷을 달궜다. 연말을 맞아 총 7군데의 사회 단체에 10억원을 나눠서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 김장훈은 “일부 기부재단의 비리가 기부 문화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무척 안타깝다.”면서 “하지만 기부는 재단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감동을 줬다. 이 밖에도 한 만화가가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대해 자신의 웹툰을 표절했다고 문제를 제기, 이에 드라마 제작사 측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시크릿가든 법적대응’이 8위에 올랐다. 박지성이 새해 1월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뜻을 비친 소식도 네티즌의 광클을 이끌어 냈으며, 가수 아이유가 SBS 인기가요에서 좋은 노래 실력을 보여 ‘ 아이유 인기가요’도 순위권에 들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불법조업 중국어선, 경비함과 충돌 2명 사망·실종

    불법조업 중국어선, 경비함과 충돌 2명 사망·실종

    지난 18일 전북 군산시 어청도 인근에서 중국 어선이 우리측 해양경찰청 경비함과 충돌해 침몰하면서 선원 2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사건에 대해 중국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관영언론과 홍콩 언론들은 사건 초기부터 비중있게 보도하면서 처리 과정을 시시각각 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19일 한국 언론과 중국내 소식통들을 인용, 사건 소식과 함께 “중국 구조선이 18일 밤 사고 해역에 도착,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상세히 보도했다. 홍콩의 봉황위성TV 등은 한국 해경이 연막탄을 터뜨리고, 물을 뿌리며 중국 어선에 승선하는 장면 등을 반복적으로 내보면서 우리 측의 무리한 단속 여부를 집중 부각했다. 앞서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18일 이 사건과 관련, 주한 중국대사관 총영사에게 전화를 걸어 유감을 표명했다. 당국자는 전화에서 “사망자가 생겨 가슴 아프다.”라며 “사후처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잘 알겠다.”라며 “필요한 협조를 해나가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9일 군산해경에 따르면 18일 오후 1시쯤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 북서방 72마일 해상에서 불법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들 중 요영호(63t급)가 단속에 나선 3000t급 해경 경비함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어선이 전복·침몰하면서 중국 선원 1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으며, 8명(중국 선단 5명, 해경 3명)이 구조됐다. 또 단속을 위해 어선에 오르려던 군산해경 소속 문상수(26) 순경이 중국 선원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팔 골절상을 입는 등 4명이 부상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당시 해경 경비함은 우리 영해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측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어선 50여 척을 발견하고 고속단정을 이용해 검문검색을 시도했다. 그러나 중국선원들이 승선을 시도하던 경찰관들에게 쇠파이프와 삽, 몽둥이 등을 마구 휘두르며 저항했다고 해경은 밝혔다. 이 과정에서 요영호가 해경 경비함을 들이받고 전복하는 바람에 선원들이 모두 바다에 빠졌으나 8명이 해경과 중국 선단에 의해 구조됐다. 해경은 경비함과 보트 등을 동원 실종자 수색을 계속하는 한편 중국 선단의 불법 조업 사실과 사건 경위 등을 중국 영사에 통보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군산 최치봉기자 stinger@seoul.co.kr
  • ‘남극사고’ 실종자 수색난항

    남극 해역에서 조업 중 침몰한 원양어선 제1인성호 실종자 17명에 대한 이틀째 수색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4일 외교통상부와 남해지방해양경찰청에 따르면 현지 구조팀은 제707홍진호 등 한국 어선 3척과 뉴질랜드 어선 2척을 동원, 사고 해역에서 실종자 수색을 벌였지만 실종자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뉴질랜드 선박은 실종자들이 살아있을 확률이 적다며 더이상의 구조를 포기했다. 하지만 정부는 실종자 수색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외교부와 남해해경은 “정부가 뉴질랜드 수색 구조본부에 구조 요청을 계속하고 있다.”며 “15일 사고지점 인근에서 조업하던 러시아 어선 한척이 수색작업에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사고는 기상악화에 따른 너울성 파도로 침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제1인성호에서 구조된 선원 2명이 인성실업에 보낸 사고 보고서와 처음 선원 구조에 참여한 707홍진호 선장의 사고 보고서에 담겨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수온 낮아 실종자 생존 가능성 희박

    남극 해역에서 조업 중 침몰한 원양어선 제1인성호의 사고 원인은 일단 기상악화로 밝혀졌다. 특히 사고 해역의 수온이 낮아 인명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명 피해가 컸던 원인으로 해역의 낮은 수온을 꼽았다. 해경은 사고 해역의 수온이 0~1도라고 설명했다. 국제해사기구(IMO) 수색구조 매뉴얼에 따르면 특별한 보호복을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2도 이하 수온에서 생존 가능 시간은 45분에 불과하다. 2~4도의 수온에서도 1시간 30분 이상 살아 있기 힘들다. 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지는 저체온증에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체온이 35도 이하가 되면 심장, 뇌, 폐 등 주요 장기의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한다. 해경은 전체 승조원 42명 가운데 구조 또는 숨진 것으로 확인된 25명이 사고 직후 배 밖으로 탈출해 찬물 속에서 구조를 기다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근 조업 선박이 구조에 참여해 비교적 신속한 구조 작업이 이뤄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수온이 워낙 낮아 선원 대부분이 저체온증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망자 5명 가운데 1명인 한국인 최씨는 구조 후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수온이 높았다면 당연히 살아남았겠지만 저체온증 때문에 구조 직후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실종자 17명의 생존 가능성 또한 높지 않은 것으로 해경은 보고 있다. 실종자 가운데는 국제 옵서버 자격으로 승선한 김진환(38)씨도 포함돼 있다. 국제 옵서버란 어장환경 같은 조사업무를 맡는 사람으로, 남극 인근 바다에서 조업하려면 반드시 국제 옵서버가 조업 선박에 승선해 어장환경 조사를 하도록 돼 있다. 인성실업은 메리츠화재에 최대 300만 달러까지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을 들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선원법에 따라 선주는 사망한 선원 유족에게 선원별로 승선 당시 평균 임금 1300일분을 보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평균 임금의 120일분을 장례비로 별도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실종 선원 가족에게 우선 통상임금 1개월분과 승선 당시 평균임금 3개월분을 지급하고, 실종 기간이 1개월을 초과할 때는 사망한 것과 같은 보상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인성실업 부산지사는 오전 10시 30분쯤 사고 소식을 듣고 사고 수습에 나섰다. 사무실은 선원 가족들의 오열로 가득했다. 유영섭 선장의 처남 김선수(50)씨는 “TV 뉴스를 보고 달려왔다.”면서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1등 기관사 문대평(44)씨의 어머니 이순애(74)씨는 아들의 실종 소식이 믿기지 않는 듯 목 놓아 울었다. 한편 부산해양경찰서는 구조된 1등 항해사가 귀국하는 대로 불러 사고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부산 김정한·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사망자 ▲최의종(33·1등 항해사·서울 강일동) ▲하종근(48·1등 기관사·경남 창녕) ▲조디(28·선원·인도네시아) ▲도디 푸노모(23·선원·인도네시아) ▲엔구엔 트엔(24·선원·베트남) ●실종자 ▲유영섭(45·선장·경남 양산) ▲안보석(53·기관장·부산 동삼동) ▲문대평(44·1등 기관사·전남 장흥) ▲조경열(55·조리사·부산 동광동) ▲김진환(37·옵서버·부산 거제동) ▲파오시(27·선원·중국) ▲이강건(23·선원·중국) ▲리우롱윤(41·선원·중국) ▲팡킹송(39·선원·중국) ▲반타안(21·선원·베트남) ▲반손(25·선원·베트남) ▲송하오(28·선원·베트남) ▲수파로디(47·선원·인도네시아) ▲사푸트라(30·선원·인도네시아) ▲사나디야(27·선원·인도네시아) ▲마스쿠르(31·선원·인도네시아) ▲헤르마완(23·선원·인도네시아)
  • 남극해역 원양어선 침몰 한국인 22명 사망·실종

    남극해역 원양어선 침몰 한국인 22명 사망·실종

    뉴질랜드 남쪽 남극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원양어선이 침몰해 한국인 2명을 포함한 5명이 숨지고 17명이 실종됐다. 13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오전 4시 30분쯤 뉴질랜드에서 남쪽으로 2593㎞ 떨어진 남극 해역에서 조업구역으로 이동 중이던 부산 선적 원양어선 제1인성호(614t급)가 침몰했다. 이 사고로 한국인 선원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됐다. 침몰한 어선에는 한국인 8명을 포함해 중국인 8명, 인도네시아인 11명, 베트남인 11명, 필리핀인 3명, 러시아인 1명 등 모두 42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 직후 인근에 있던 우리 어선 3척과 뉴질랜드 어선 2척이 구조작업에 나서 김석기(46)씨 등 20명은 구조됐다. 구조된 20명과 시신은 인근에 있던 한국 선적 제707홍진호로 옮겨졌다. 사고는 제1인성호가 남극의 유빙 사이로 항해하던 중 기상이 악화돼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해군 고속정 충돌 무리한 운항 원인”

    지난달 10일 제주해역에서 발생한 해군 고속정 충돌 사고는 고속정의 무리한 방향 전환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침몰한 해군 고속정 참수리 295호에서 실종장병으로 추정되는 시신 2구가 발견됐다. 제주해양경찰서는 2일 해군과 함께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제주항 복귀 지시를 받은 해군 참수리 고속정(150t급)이 갑자기 90도로 방향을 전환(대각도 변침)하면서 한림항으로 향하던 어선 106우양호(부산선적, 270t급)와 충돌했다.”고 밝혔다. 박석영 제주해경 수사과장은 “사고 당시 2.5m 이상의 높은 파도가 이는 등 기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서서히 방향전환(소각도 변침)을 했어야 하지만 해군 고속정이 이를 소홀히 하면서 레이더 탐지나 감시 임무에도 제한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특히 무리한 방향전환으로 해군 고속정이 요동치면서 레이더 탐지를 하지 못해 방향전환 5분 뒤에 우양호와 충돌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양호는 선장의 음주 운항이나 자동항법장치 운항 사실은 없지만 기상악화 시 해야 할 전파탐지기 감시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고속정 정장 박모(28) 대위 등 해군 관계자 2명과 우양호 선장 김모(48)씨 등 선원 3명이 업무상과실치사와 선박매몰혐의 등으로 입건됐다. 해군은 민간 잠수부 등을 동원, 수심 35m까지 끌어올려진 고속정을 수색하던 중 실종된 임태삼(25) 하사와 홍창민(22) 이병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함수 쪽 침실에서 발견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집잃고 조업 못하고… 살길이 막막…”

    “무차별 포격에 조업금지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네요.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인천 옹진군 연평도를 비롯해 인근 서해 5도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북한의 포격 도발로 연평도 어민들은 삶의 터전이 망가졌고, 인근 도서지역 어민들 역시 꽃게·우럭·노래미철임에도 군 당국의 출어금지 조치로 생계가 막막하다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연평도 등 서해 5도 어민들은 대부분 연근해에서 꽃게, 홍어, 까나리 등을 잡아 생활하고 있다. 연평어장에서는 9월 들어 여름철 금어기가 해제되면서 꽃게 조업이 한창이었다. 연평어장은 인천 꽃게 어획량의 4분의1을 차지하는 큰 어장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살이 올라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조업 중단으로 어민들은 더 이상 꽃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번 포격으로 인한 조업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당장 국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수입이라도 해야 할 형편이다. 옹진군청 수산과 관계자는 “조업이 중단되면서 어구에 잡힌 꽃게가 폐사하는 등 추가 피해를 볼 수 있다.”면서 “어민들의 생계 유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평도 주민 최모(51)씨는 “마을에 직접 포탄이 떨어지고, 조업이 중단되니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이 없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인근 서해 5도 주민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서해 5도에는 235척의 선박이 등록돼 있다. 전체 인구 8300여명 가운데 2000여명이 어민이다. 옹진군청 관계자는 “서해 5도 어민들이 하루 조업을 못하면 지역경제에 수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인천~연평도 등 4개 항로가 통제되면서 서해 5도의 민박집과 횟집 등을 찾는 관광객도 모두 끊겼다. 백령도의 경우 올 초 천안함 침몰사고 직후인 4~8월 관광객은 3만 123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만 2078명에 비해 25%가 급감했었다. 백령도 어민 이모(46)씨는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남북 긴장이 완화되는 줄만 알았다.”면서 “연평도 포격 등 긴장 분위기는 조업 활동은 물론 지역경제에 직격탄”이라고 말했다. 대청도 어민 손모(66)씨도 “연평도 포격 전에는 중국 어선들이 물고기 씨를 말리고 어구를 훔쳐가는 등 피해가 컸다.”면서 “포격까지 더해져 설상가상이 됐다. 힘든 상황이 빨리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고속정 - 어선 충돌 쏟아지는 의문점들

    지난 10일 제주항 인근에서 어선과 충돌해 승조원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된 고속정 침몰 사고와 관련해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고성능 레이더를 장착한 고속정이 어선을 피하지 못해 충돌한 점 등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침몰한 해군 3함대 소속 고속정(참수리-295호·150t급)은 9일 오후 10시 50분쯤 제주항 서북방 약 10㎞ 해상에서 어선 106우양호(270t급)와 충돌했다. 사고 고속정은 오후 8시에 출항해 야간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12노트(약 22㎞) 속도로 제주항으로 복귀 중이었다. 당시 해상의 파고는 2m, 가시거리가 5.4㎞ 정도로 경비 임무를 수행하기에 나쁘지 않은 날씨였다. 특히 고속정은 2대가 편대로 운항 중이였기 때문에 앞선 고속정이 어선과 충돌한 뒤 승조원들은 뒤따르던 고속정에 의해 구조됐다. 하지만 이런 정황은 여러 의문점을 낳고 있다. 일단 고속정에는 해상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레이더가 있다. 어선이 11노트의 속도로 운항 중이었다는 해군의 설명에 따르면 충돌 전부터 이미 우양호는 참수리 295호의 레이더상에 들어왔어야 한다. 게다가 해상의 배가 점으로 나타난다고 해도 두 배가 비슷한 속도로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으므로 위험을 알릴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해군 제주 방어사령부 등에서 레이더로 해상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두 배의 충돌은 더욱 많은 물음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에 해군은 “당시 100여척의 어선이 인근에서 조업 중이였고 레이더에 점으로 표시되는 것들을 하나하나 군 작전선에 접근하는 것으로 세밀하게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정확한 원인을 조사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군의 이 같은 설명은 우양호가 크기로는 고속정보다 4배가량 크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우양호의 뱃머리 아래 돌출 부분이 고속정 뱃머리에 닿을 만큼 우양호와 고속정의 선체 규모가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우양호가 고속정에 접근하기 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고속정을 지휘하는 정장 등은 선상에 나와 있었고 견시병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우양호를 육안으로 식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편대로 이동하며 뒤따르던 다른 고속정에서 우양호의 접근을 육안으로 볼 수 있지 않았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현재 해군은 승조원들에 대한 개별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해양경찰의 조사 등과 종합해 사고 원인을 결론 낼 예정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고속정 침몰원인 엇갈려

    지난 10일 밤 제주항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고속정은 함수(艦首·뱃머리)좌현에 파공(구멍 뚫림)이 생겨 바닷 물이 급속히 유입돼 침몰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원인과 관련, 해군 관계자는 11일 “고속정의 함수 좌현을 우양호의 뱃머리 아래에 있는 돌출부분이 정면으로 들이받아 구멍이 생기면서 침수됐다.”면서 “해군 사고대책본부에서 승조원을 대상으로 한 개별조사와 침몰 고속정 탐색 등을 통해 사고원인을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양호 선장 김모(48)씨는 해경 조사에서 달리 진술했다. 제주해양경찰서 박석영 수사과장은 “김모 선장은 ‘해군경비정이 받았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사고해역에는 채낚이 어선이 많이 있었고, 사고 해역 파도는 3m 정도였으며 돌풍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해군은 “사고 고속정은 새벽 1시 25분에 바닷속으로 완전히 침몰했다.”면서 “구조함을 투입해 실종자 수색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인양작업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 해상의 파고가 높아 수색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3함대 소속 고속정(참수리-295호) 1척은 전날 오후 8시에 출항해 경비임무를 수행하고 12노트의 속도로 제주항으로 복귀하던 중 10시 50분께 제주항 서북방 약 10㎞ 해상에서 11노트로 운행 중이던 270t급 어선 106우양호와 충돌했다. 사고 고속정은 또 다른 고속정과 함께 경비임무를 수행 중이었으며 승조원 30명 중 28명은 뒤따라 오던 편대 고속정에 의해 구조됐다. 구조된 승조원 가운데 다리를 심하게 다친 노가빈 일병은 후송 직후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또 임모 하사와 홍모 이병은 충돌 직후 실종된 상태다. 제주 황경근·서울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설] 어처구니없는 해군 고속정·어선 충돌사고

    G20 정상회의 개막을 하루 앞둔 그제 제주항 근해에서 150t급 해군 참수리 고속정이 250t급 어선과 충돌해 수병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다. 30명이 탑승한 고속정은 경비임무를 마치고 귀항 중이었으며 충돌 2시간 34분 만에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사고원인에 대해 해군은 고속정의 선수 좌현과 어선의 정면이 충돌했으며 고속정에 뚫린 구멍을 통해 물이 차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고원인은 승조원이나 선원 등에 대한 조사와 더불어 고속정을 인양해봐야 가려지겠으나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다. 하지만 교전상황이 아닌 평상 임무 중에 해군의 주력 함정이 어선과 부딪쳐 침몰했다는 것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다. 어떻게 망망대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상상이 안 된다. 게다가 G20 정상회의를 위해 전군에 최고 수준의 군사대비태세가 발령된 상태가 아닌가. 천안함 침몰로 국민의 가슴에 든 피멍이 채 아물기도 전이다. 우리가 궁금한 점은 충돌 당시 고속정의 정황이다. 해군에 따르면 고속정은 11노트의 속도로 자동항법장치를 이용해 항해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장과 당직자, 그리고 레이더전탐자가 정상근무를 하고 있었다면 접근하는 어선을 확인했을 것이고, 상응하는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이는 고속정의 이동경로가 파악되는 같은 조 초계함이나 고속정은 물론, 해군 3함대의 상황실에도 모두 해당된다. 또 해군은 함체에 뚫린 구멍을 보수하는 방수훈련을 하고 있고,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데 손을 쓰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야간항해 때 육안으로 주변을 경계하는 견시(見視)를 정상적으로 세웠는지도 확인해야 할 사항이다. 국방부와 합참, 해군은 고속정 충돌사고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래야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해 격침되고서도 진실을 의심 받는 천안함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 해군고속정, 어선과 충돌…군인 3명 사망·실종

    해군 3함대 예하 제주방어사령부 소속 130t급 고속정(참수리정) 1척이 10일 밤 11시20분 쯤 제주항 서북방 5.4마일 해상에서 야간 해상 경계 임무 수행 중 우리 어선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군 관계자는 11일 “승조원 30명 중 27명을 구조했고, 1명은 사망, 2명은 실종된 상태”라면서 “사고를 당한 고속정은 침몰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고 현장에 고속정과 해경정, 링스헬기 등을 투입해 구조작업 중이며 추가 구조전력을 투입해 실종자 수색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고속정과 충돌한 어선은 207t급으로, 인명피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이석기자 window2@seoul.co.kr
  • 인천서 어선 침몰… 9명 사망·실종

    인천서 어선 침몰… 9명 사망·실종

    8일 오전 9시 28분께 인천 옹진군 덕적면 울도 서방 31마일(57㎞) 해상에서 인천 선적 저인망어선 17동양호(93t급)가 악천후에 따른 피항 도중 침몰했다.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9명의 선원 가운데 박현중(53) 선장을 비롯한 한국인 5명, 샤림(33)을 비롯한 인도네시아인 2명 등 7명이 실종됐다. 김종대(41)씨와 장학철(37)씨는 오전 11시 35분쯤 사고해역 인근 해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7동양호는 오전 5시를 기해 서해 중부 전 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지자 조업을 펴던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 인근 해상에서 가덕도로 대피하다 사고를 당했다. 해경은 17동양호와 짝을 이뤄 조업한 18동양호가 “1㎞ 안팎의 거리를 두고 앞서가던 17동양호가 파도에 부딪혀 옆으로 기운 뒤 침몰했다.”고 밝힘에 따라 17동양호가 기상악화에 따른 높은 파도 때문에 침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고가 나자 해경 함정 4척, 해경 헬기 2대, 해군 함정 2척 등이 수색에 나섰으나 사고 해역에 초속 20∼24m의 강풍이 불고 높이 4∼5m의 파도가 일어 어려움을 겪었다. 17동양호는 지난 8월 2일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항해 3개월이 넘게 서해상에서 조업을 해 왔다. 실종자 ▲박현중(53·선장·인천 용현동) ▲서복용(54·인천 용현동) ▲김태원(49·인천 항동) ▲오기환(50·부산 남항동) ▲노상빈(54·인천 신흥동) ▲샤림(33·인도네시아) ▲타주리앤디(21·인도네시아) 사망자 ▲장학철(37·충남 아산) ▲김종대(41·대구 평리동)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제주 어선침몰 3명 실종

    제주 해상에서 조업하던 어선이 투망한 그물 위를 지나는 화물선에 끌려가다 침몰해 선원 3명이 실종됐다. 제주해양경찰서에 따르면 18일 오전 7시 30분쯤 제주 한경면 차귀도 북서쪽 11㎞ 해상에서 부산선적 선망어선인 506우일호(59t)가 침몰했다. 이 사고로 어선에 타고 있던 선원 8명 중 선장 황모(51)씨 등 5명은 같은 선단의 507우일호에 의해 구조됐지만, 이종철(30·부산시 영도구), 임종대(69·부산시 기장군), 신동배(56·울산시 울주군)씨 등 3명은 실종됐다. 침몰한 506우일호는 본선인 505우일호(129t)와 고등어 조업을 위해 약 2㎞의 그물 고정밧줄을 잡은 상태에서 파나마선적 화물선인 코토쿠 포춘(KOTOKU FORTUNE·739t)호가 그물 가운데로 항해해 끌려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해경은 3000t급 태평양2호 등 경비함정 10척과 헬기 1대를 사고 현장으로 급파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천안함 6개월 취재기자의 비망록]정부 신중대응…춤췄던 기사…아련했던 진실

    [천안함 6개월 취재기자의 비망록]정부 신중대응…춤췄던 기사…아련했던 진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26일로 꼭 6개월이 됐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이 사건은 16년 전 언론인의 밥을 먹으면서부터 숱한 대형사건을 다뤘던 기자도 감당하기 벅찼던 취재대상이었다. 아직도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믿지 않는다는 국민이 30%가 넘는다고 한다. 기자도 신(神)이 아닌 이상 100% 진실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동안 신문에 싣지 못했던 남은 비화들을 추려 보도함으로써 독자들의 판단에 얼마간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기자는 천안함 사건을 취재하면서 개인의 이념이나 성향, 호불호, 선입견을 버리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도했다고 자부한다. 독자들도 이 글을 읽는 순간만큼은 개인의 이념이나 성향, 호불호, 선입견을 떠나 공정한 심판자의 자세로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헤아려 봤으면 한다. 3월 26일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금요일 밤이었다. 자잘한 기사 하나 올라오지 않았다. 밤 10시 야간 회의에서 “특별한 것 없습니다.”라는 보고를 하고 회사를 나섰다. 그날 따라 버스에 타고 있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집 앞 정류소에 내려 신선한 밤 공기를 들이켜는 순간이었다. 주머니 안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울렸다. 회사였다. ‘이 시간에 무슨….’ 조금은 불길한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야근 중인 김정은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달려들었다. “선배, 서해에서 군함이 침몰했대요.” 버스로 돌아 온 길을 택시를 잡아타고 한달음에 되밟았다. ‘혹시 북한이? 설마…단순 사고일 거야. 그런데 만약 북한이라면 보통 일이 아닌데….’ 회사로 향하는 그 길지 않은 시간에 머릿속에 온갖 상념이 난무했다. 11시30분쯤 회사로 돌아오니 편집국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모든 부서의 야근자들이 TV 긴급뉴스를 체크하며 정치부의 야근을 거들고 있었다. 마감이 1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방부와 청와대 쪽에서 들어오는 제한된 정보를 취합해 1면 스트레이트와 3면 박스 등 최소 3~4개 기사를 출고해야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사의 방향, 즉 북한 소행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처음엔 북한의 도발 같다는 정보가 청와대 쪽에서 들어왔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해설 기사를 쓰고 있는데 청와대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북한 연관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기사를 다시 고쳐야 했다. 일단 이날은 내부폭발에서부터 외부공격, 암초충돌까지 모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안전한’ 톤으로 신문을 만들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처음에 청와대 쪽에서 여과 없이 나온 정보, 즉 북한 소행인 것 같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취재를 집중했다면 진실에 더 빨리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과적으로 사건 초기에 청와대가 북한 연관 가능성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을 두고 사려깊었다는 호평이 나중에 국내외에서 나왔다. 처음부터 북한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냉전시대식 접근법과는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부 외신에서는 한국 정부가 어떤 동기로 이런 변화된 자세를 보였는지를 취재하러 입국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천안함 침몰 다음날 미국 쪽에서 “북한군의 개입은 감지되지 않았다.”는 공식 반응이 나왔다. 세계 최고의 첨단 탐지장비를 운용하는 미군의 얘기였기에 무시하기 힘들었다. 3월 28일 하지만 일요일인 28일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을 뒤쫓다가 당한 것 같다는 정보가 국방부를 출입하는 오이석 기자의 취재망에 걸렸다. 이 역시 지금 돌이켜보면 진실에 좀 더 근접한 정보였지만, 당시는 기사로 채택하기 어려웠다. 책임있는 당국자의 발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날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도 기자가 ‘북한 잠수정이 침투했다면 미군 첨단 장비가 못 잡아낼 리 있겠느냐.’고 묻자 “아무리 미군이라도 물밑에서 움직이는 잠수정을 100% 잡아낼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이 역시 되돌아보면 의미 있는 발언이었으나, 당시만 해도 북한 관련성 부분은 워낙 민감한 사안이었던 탓에 정색하고 보도하지 못했다. 언론의 취재가 본격화하면서 각종 의혹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튀어나왔고, 침몰 원인에 대한 온갖 분석이 홍수를 이뤘다. 어뢰공격 가능성, 기뢰폭발 가능성, 내부폭발 가능성, 암초충돌 가능성에 더해 일각에서는 노후한 선체가 저절로 쪼개지는 ‘피로 파괴’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여러 가능성에 대해 기술적으로 파고들수록 더욱 진실이 아리송해지는 역설이 펼쳐졌다. 모든 가설에 모든 반론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4월 1일 이런 와중에 국방부는 북한 잠수정의 침투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정부의 공식 발표였기에 내용을 1면톱으로 크게 보도했다. 하지만 바로 며칠 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한 소행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고, 이때부터 침몰 원인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북한’ 쪽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4월1일의 국방부 발표는 결과적으로 언론의 오보를 유발한 셈이다. 이 즈음 기자가 쓴 기사는 한마디로 춤을 췄다고 할 수 있다. 군함 침몰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고 정부 발표가 못미더운 상황에서 찔끔찔끔 드러나는 정황과 많지 않은 전문가들의 견해에 입각해 진실에 접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이때 기자가 쓴 기사는 어제는 내부폭발 가능성, 오늘은 어뢰공격 가능성 하는 식이었다. 당시 몇몇 지인들은 기자가 천안함 사건 취재 현장에 있다는 이유로 사석에서 진짜 침몰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곤 했다. 그러면 기자는 뭔가 깊은 정보를 알려준다는 투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는데 결과적으로 틀린 것이 많아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4월 7일 사고 당시 정황과 관련한 국방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국방부는 환자복을 입은 천안함 생존 병사들을 TV 카메라 앞에 앉히는 ‘극약 처방’을 불사했다.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생존장병들은 “쿵” “꽈앙~”하는 폭발음이 2차례 연속으로 들렸고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암초충격설과 피로파괴설을 부인했다. 이 회견으로 외부충격설이 좀 더 설득력을 얻었으나 이 가능성을 상쇄시키는 발언도 있었다. 한 병사가 “당시 갑판 위 함교 옆에서 배가 진출하는 쪽을 관찰하기 위해 나와 있었는데 물기둥 같은 특이한 점은 볼 수 없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4월 15일 침몰 원인을 놓고 분분하던 분석들은 천안함 함미(艦尾)가 인양되면서 북한 어뢰 공격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물 밖으로 드러난 함미의 절단면이 단순 사고로 보기엔 너무 처참하게 찢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민간 해양·선박 전문가들은 TV 화면으로 나타난 절단면만 보고도 이구동성으로 어뢰 공격을 침몰 원인으로 꼽았다. 기자가 인터뷰한 전문가 중 피로파괴나 암초충돌, 내부폭발, 기뢰폭발 가능성을 거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만 어뢰에 의한 직접 타격이냐, 버블제트(비접촉 수중 어뢰폭발)에 의한 절단이냐에 대한 견해만 갈렸다. 피로파괴는 절단면이 깨끗해야 하는데 천안함은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었다. 암초충돌이라면 배 밑바닥에 강하게 긁힌 자국이 있어야 하는데 천안함은 그렇지 않았다. 내부폭발이라면 배 안에 폭탄이 터진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민·군 합동조사단에 따르면 그런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 기뢰 폭발이라면 배가 산산조각 나야 하는데 천안함은 두 동강이 났고, 미군 오폭설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배를 요격하려면 여러 관측장비를 동원해 정조준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무심코 무슨 단추 하나를 잘못 눌러서 오발탄을 날리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가 개인적으로 만난 일반시민들의 견해는 전문가들과 차이가 났다. 북한 소행이라고 보는 시민들은 많지 않았고, 정부가 뭔가를 숨기고 있을 것이라는 음모론 쪽에 더 치우쳤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를 대지는 못했다. 정황상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정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불신이 뿌리깊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4월16일 민·군 합동조사단은 “내부폭발보다는 외부폭발 가능성이 높다.”고 처음으로 북한 소행일 가능성에 공개적으로 무게를 실었다. 5월 2일 기자는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결정적인’ 발언을 들었다. 합조단의 조사가 상당히 진척된 시점에서 나온 언급이라 의미가 컸다. 이 관계자는 기자가 ‘한국 정부가 너무 북한 어뢰 쪽으로 몰아가는 건 아니냐.’고 공격적으로 묻자 “북한이 아니라면 누가 했겠느냐.”고 정색하고 답변, 기자를 놀라게 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까지 나온 증거와 정황으로 판단할 때 어뢰 공격일 가능성이 99% 이상 확실하다.”고 했다. 이후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 발표일인 5월20일까지 관심은, 합조단이 과연 북한을 꼼짝못하게 할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을 제시할 수 있느냐에 집중됐다. 5월10일을 전후해 엇갈린 정보들이 포착됐다. 외교부 쪽에서는 합조단이 결정적 증거를 찾아낸 것 같은 기류가 감지됐으나 국방부 쪽에서는 스모킹 건을 찾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결국 20일 발표에서 합조단은 불과 5일 전인 5월15일에야 결정적 증거물인 어뢰 추진체를 해저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발표대로라면 드라마와 같은 기적이 막판에 일어난 셈이다.) 20일이 임박하면서 정부 관계자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확연했다. 그동안 지나치게 신중한 답변으로 취재진의 원성을 샀던 한 외교부 당국자는 5월19일 기자들이 ‘국제사회가 합조단 조사결과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에 “증거가 말해줄 것”이라고 한 줄로 자신있게 답해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5월 20일 조사결과 발표에서 외국 전문가들까지 참여한 합조단은 예상을 뛰어넘는 스모킹 건을 제시했다. ‘1번’이라고 씌어진 어뢰 추진체를 증거로 공개한 것이다. 합조단 윤덕용 공동단장(민간측)은 “천안함은 북한제 CHT-02D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 폭발(버블제트)의 결과로 침몰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합조단에 참여했던 미군의 에클레스 준장은 “여러 가지 증언과 과학적 상상을 통해 분석했다.”면서 “현재 결과에 모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합조단 발표 이후 어뢰 추진체에 손으로 숫자를 쓴 점이 이해가 안 된다거나 바닷물 속에서 잉크가 지워지지 않은 점, 그리고 북한은 ‘1번’이 아니라 ‘1호’라고 표기한다는 식의 또 다른 의문들이 제기됐다. 한마디로 ‘1번’이라는 표기가 너무 ‘남한스럽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합조단은 과거의 예를 들어 북한도 ‘1번’이란 표기를 하며, 손으로 쓰는 경우도 있고, 바닷물에서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씌어졌다고 설명했다. 5월 24일 합조단의 최종 조사결과 발표가 나온 지 나흘 뒤 정부는 외교·통일·국방부 합동으로 전방위 대북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이어 6월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사건을 회부했다. 6월10일 감사원은 천안함이 북한 어뢰 공격에 침몰한 직후 군 당국의 대응이 허점투성이였다고 발표했다. 감사원 조사 결과는 ‘전쟁을 치르지 않는 군대’가 얼마나 형편없는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늑장보고, 허위보고, 근무태만, 기강해이 등 온갖 부조리가 드러났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같은 지휘관만 군에 있었어도 천안함 사건과 같은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7월 9일 이후 결국 유엔 안보리는 7월9일 만장일치로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중국의 반대로 북한을 공격 주체로 직접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전체적인 문맥으로는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했으며 이에 따라 안보리는 북한을 규탄한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정부는 “이번 의장성명은 강력하고 충분한 정치적 메시지”라고 자평했다. 반면 북한도 직접적 문구가 없다는 점을 들어 ‘외교적 승리’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면서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북핵 6자회담을 운운하며 ‘대화공세’를 폈다. 이를 두고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당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증거를 차치하고라도, 북한이 진정 결백하다면 저런 반응을 보이겠느냐. 볼펜 한 자루 훔쳤다는 누명을 써도 분통이 터지고 화병이 나는데 북한이 정말 누명을 썼다면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이제 그만 대화하자고 할 수 있겠는가.” 다른 당국자는 “북한 소행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도 북한 잠수정이 어뢰로 천안함을 쏘는 동영상이 있다 하더라도 조작됐다며 믿지 않을 것”이라면서 “합조단 조사결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믿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라도 했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 어느 언론보다 치우침 없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하는 기자도 사견을 말하자면, 이런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합조단 조사결과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뒤집어보면 이런 말이 될 수 있다. 즉, 천안함 생존장병 58명이 모두 진실을 숨기기로 입을 맞추고, 합조단 조사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도 군 당국과 짝짜꿍이 돼 모두 거짓말을 하고, 역시 합조단에 참여한 스웨덴(북한과도 수교하고 있는 나라), 호주 등 제3국 전문가들도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얘기다. 인터넷이 날아다니는 개명한 시대에 이렇게 완벽한 다국적·다층적·대규모적 사기(詐欺)가 가능한가. 더욱이 북한을 비호한다는 중국, 러시아도 북한에 대한 징계에는 이견을 보일지언정 합조단 조사결과가 틀렸다고 밝히지는 않았다. 한편에서는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극소수 핵심라인만 관여했기 때문에 대다수 북한 당국자들은 실제 알지 못하는 일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우리로 치면 과거 실미도 부대원 같은 비밀 특수부대가 감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돌이켜보면 이런 일도 있었다. 천안함 수색작업에 참여하고 돌아가던 저인망 어선 금양 98호가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던 4월2일도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3월26일과 비슷한 야근 상황이었다. 당시에도 별다른 일이 없어 밤 10시가 넘어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는데, 도중에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택시로 귀사해야 했다. 그날 “선배, 배가 또 침몰했대요.”라고 전화한 야근자는 3월26일 밤 전화로 천안함 침몰 사실을 알린 김정은 기자였다. 기자는 지금 밤 11시 넘어 휴대전화가 울리면 깜짝깜짝 놀라는 트라우마(trauma)를 안고 산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운명 바뀐 사람들

    지난 3월26일 밤 느닷없이 발생한 천안함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하루아침에 바꿔 놓았다. 군 서열상 최고 꼭짓점에 있던 이상의 당시 합참의장은 사건 당시 행적에 문제를 드러내 결국 옷을 벗었다. 김기수 당시 합참 전략기획본부장도 전역지원서를 냈다. 이 전 의장은 현재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전 본부장도 최근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 단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책임을 지고 옷을 벗은 인물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군 관련 직책을 맡자 ‘무늬만 징계’라는 비판이 나왔다. 군을 정무적으로 대표하는 김태영 국방장관은 경질론의 대상이었으나 최근 개각에서 살아남았다. 천안함 사건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어 형사처벌을 할지 여부는 지금까지 논란이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최원일 함장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국방부는 추석연휴 이후 김태영 장관의 결심을 거쳐 기소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 함장은 현재 해군본부 기록물관리단에 근무하고 있다. 천안함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고 해군은 전했다. 부하들을 잃은 데다 각계의 주목을 받은 터라 한때 최 함장이 이민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군내에 돌기도 했다. 하지만 뜬소문으로 확인됐다.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말이 최 함장 동료들의 설명이다. 천안함 침몰 후 생존한 장병은 최 함장을 포함해 모두 58명이다. 이 가운데 5명의 병사는 전역해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신모 하사도 다음달 중순 전사한 전우들을 가슴에 묻고 전역할 예정이다. 나머지 51명 중 6명의 부사관은 다시 배를 타겠다고 지원해 함정 근무를 하고 있다. 악몽을 딛고 일어선 셈이다. 하지만 45명의 장병들은 끝내 그날의 참혹함을 떨치지 못하고 육상근무를 지원했다. 이들은 잠이 들면 침몰 당시가 생생히 꿈에 떠올라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국방부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 만화…의혹풀까?

    국방부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 만화…의혹풀까?

    국방부가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다는 목적으로 제작한 만화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을 공개했다. 32쪽 분량의 만화에는 천안함 잔해와 실험을 통한 사건정황을 제시하고 있어 관심을 증폭시켰다. 국방부는 지난 13일 “천안함은 북한 잠수함이 발사한 음향유도어뢰의 수중 폭발로 침몰됐다”는 내용의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 결과 보고서’를 한글과 영문으로 발간했다. 동시에 쉬운 이해를 돕고자 제작한 국방부 만화를 배포했다. 만화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 (만화 강촌)은 가상인물 강호룡 기자의 천안함 취재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강기자는 ‘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천안함 사건의 실체는 좌우가 아닌 자. 물증을 근거로 추측기사를 쓰지 않는 최고의 기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본격적인 천안함 취재를 시작한다. 강기자는 천안함 침몰사건이 벌어진 전후의 일들을 되짚으며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최초 침몰정황을 다루는 과정에서 합조단이 지난 5월 20일 발표한 천안함 침몰시각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을 그대로 명시하고 있다. 침몰시각은 최초 사건이 일어난 기점을 기록한 중요 부분이다. 하지만 명시된 시각은 목격자들의 증언과 엇갈려 “실제 침몰시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혹을 낳은 바 있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제작됐다는 취지와는 사뭇 다르게 해석된다. 만화 속에서 적극적으로 해명하고자 나선 부분은 바로 “초기에 천안함 구조 활동이 늦어졌다”는 것. 만화는 “계속되는 기상악화로 인해 수색작업 중이던 저인망어선 금양98호가 실종, 3월 30일에는 UDT대원 한주호 준위가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서술하며 군은 최선을 다했다고 결론 맺고 있다. 가장 핵심이 된 ‘1번 어뢰’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에 앞서 “이 결정적인 증거물은 어민들과 함께 작업했으니 ‘물증’을 조작이라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테고…”라는 의견을 덧붙이며 시작했다. 만화는 앞서 발표된 내용과 동일하게 어뢰가 북한이 수출 목적으로 배포한 설계도면과 일치하는 점, 2003년 포항 앞바다에서 습득한 북한어뢰에도 ‘4호’라는 표기가 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북한어뢰의 의한 침몰로 확정했다. 배포가 확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을 통해 자세한 사건 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양한 실험, 전문가 의견을 첨부해 풍성한 근거를 제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최초의 원인을 규명하는 부분에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사진 = 국방부 만화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 서울신문NTN 전설 기자 legend@seoulntn.com ▶ 엠넷, 4억 명품녀 김경아 조작설 반박 "4가지 증거 확보"▶ 유재석, 김태희 매력에 시크남 변신 실패한 사연▶ 이선균+최강희, 빗속에서 ‘벼락키스’…’쩨쩨한 로맨스’▶ ’30대’ 김나영, 사람들이 ‘20대’로 알고 있는 사연 공개▶ ’쪼쪼 브라더스’ 뇌구조 공개…김현중 머릿속에는?▶ 한국계 힙합그룹, 美빌보드 21위 돌풍 ‘성공시대’
  • 냉동가공선 뉴질랜드서 침몰…한국인 1명 등 6명 사망·실종

    뉴질랜드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냉동가공선 오양 70호가 18일 새벽 바운티 섬 부근에서 침몰해 3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됐다. 오양 70호를 운영하고 있는 사조오양과 뉴질랜드 구조센터에 따르면 길이 82m의 어선에는 선원 51명이 타고 있었고 이 중 45명은 인근에 있던 아마탈 애틀랜티스호에 의해 구조됐다. 숨진 3명은 모두 인도네시아인으로 확인됐고 실종된 3명은 이 배의 선장인 한국인 신모(42)씨와 인도네시아 선원 2명으로 알려졌다. 오양 70호에는 한국인 8명, 인도네시아인 36명, 필리핀인 6명, 중국인 1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게이츠 “20년만의 DMZ방문… 北 변한게 없다”

    게이츠 “20년만의 DMZ방문… 北 변한게 없다”

    21일 낮 12시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 앞. 한국과 미국의 외교·안보 장관들이 검은색 우산 2개를 나눠 쓰고 함께 서 있었다. 유명환 외교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김태영 국방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각각 짝을 이루고 있었다. ●힐러리 “동맹국에 확고한 방어 제공” 밝은 표정의 네 장관 중 게이츠 장관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세 번째 비무장지대(DMZ) 방문이다. 제가 여기 전망대에 올라와서 DMZ를 마지막으로 본 이후 거의 20년만인데 북쪽은 거의 변한 것이 없다. 북한에서는 고립과 박탈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우리가 천안함 침몰 사건에서 봤던 것처럼 북한은 예상치 못한 도발적인 행동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힐러리 장관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다음 말을 받았다. 힐러리 장관이 JSA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먼저 “여기 전망대에서 남북한 사이 3마일 정도 분리된 국경을 내려다보니, 이것이 가까운 선일지는 몰라도 이 두 곳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한국은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공통의 가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은 고립에 빠져 있을 뿐 아니라 국민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 왔다.”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북한에 ‘다른 길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그들이(북한이) 방향을 바꾸기 전까지 미국은 한국 국민과 정부를 대신해서 굳건히 서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동맹국과 파트너들에게 확고한 방어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게이츠 장관과 힐러리 장관은 당초 계획보다 1시간 늦은 오전 10시10분쯤 경호차량 6대의 호위를 받으며 JSA로 이동했다. 출발 때부터 짙게 낀 먹구름에서 내리던 보슬비는 DMZ가 가까워지면서 굵은 빗줄기로 변했다. 유 장관과 김 장관은 헬기를 이용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오전 11시14분쯤 한국군과 미군 등 15명이 캠프 보니파스에 도착한 두 장관을 맞았다. 두 사람은 15분 뒤 군사분계선(DML)에서 불과 25m 거리에 있는 오울렛 초소(241초소)에 도착했다. 유엔사 JSA 경비대대 에드워드 테일러 중령은 5분간 북한의 지형 등을 브리핑했다. 브리핑을 들은 뒤 클린턴 장관은 진지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망원경을 들고 북측 지역을 살폈다. ●전쟁기념관 유엔군 명비에 헌화 헬기를 이용해 먼저 도착해 있던 유·김 장관과 합류한 두 장관은 5분간 초소에 머문 뒤 ‘자유의 집’으로 향했다. 30명의 한국군과 미군이 이들을 맞이했다. 네 사람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며 자유의 집으로 들어섰다. 오전 11시55분쯤 JSA내 군정위 건물(T-2)로 들어선 장관들은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건물 창문 너머에 있던 북한군이 건물 속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장관들은 5분간 건물에 머물다 나와 짧은 발언을 시작했다. 오후 1시40분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네 장관이 다시 만났다. 힐러리 장관과 게이츠 장관은 회랑을 걷다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그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문구 앞에서 발길을 잠시 멈췄다. 이후 두 장관은 유 장관, 김 장관과 함께 전쟁기념관 회랑 입구에 있는 유엔군 전사자 명비에 헌화했다. 또 천안함 전사자 명비로 이동해 46명의 용사들에게도 헌화하고 묵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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