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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매 어머니’ 둔 김정숙 여사 “누구도 치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치매 어머니’ 둔 김정숙 여사 “누구도 치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21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환자이며 2024년쯤에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니 누구도 치매로부터 자유롭다 할 수 없겠다”면서 “치매에 대한 공포와 편견에서 벗어나 누구라도 치매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도록 ‘치매 친화사회’를 만들어야겠다”고 밝혔다. 김 여사는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3회 치매극복의 날 영상 축사에서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의 세상에서 치매환자와 가족분들은 누구보다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고 계실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어르신들께서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키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 여사의 치매 환자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치매를 앓는 친정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치매환자 가족의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직접 겪어본 데서 비롯됐다. 김 여사는 지난해 청와대 인근 종로구 치매안심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후 ‘치매파트너’ 수료증을 받았다.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12월 서울 강북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에는 “제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셔서 딸도, 대통령 사위도 알아보지 못하신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함께한 해외 순방길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현지 치매요양시설 등을 찾았다. 문 대통령도 취임 초기인 2017년 6월 대선공약이기도 한 ‘치매국가책임제’와 관련 ‘찾아가는 대통령’ 현장 일정으로 서울 강남구 서울요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치매는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감당하기 힘든 병으로, 치매환자를 본인과 가족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하기에 제가 공약을 했다”면서 “저도 우리 집안 가운데 심하게 치매를 앓은 어르신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김정숙 “치매 친화 사회 만들어야…저 ‘치매 파트너’ 수료증 받았다”

    김정숙 “치매 친화 사회 만들어야…저 ‘치매 파트너’ 수료증 받았다”

    “치매는 국민 모두의 문제”2018년 “친정엄마도 치매” 소개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21일 “공포와 편견에서 벗어나 환자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치매 친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여사는 자신이 ‘치매 파트너’ 수료증을 획득했다는 점도 알리며 어르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여사는 이날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3회 치매극복의 날 기념식 영상 축사에서 “치매는 국민 모두의 문제”라며 이렇게 말했다. 김 여사는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다. 누구도 치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언급했다. 김 여사는 “정부는 환자들이 언제라도 치매안심센터를 방문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저 역시 지난해 치매안심센터에서 교육을 이수하고 ‘치매 파트너’ 수료증을 받았다”고 강조했다.김 여사는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 속에 치매환자와 가족들은 누구보다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고 계실 것”이라면서 “어르신들이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여사는 과거에도 자신의 모친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점을 밝히는 등 치매 문제에 대해 꾸준히 메시지를 내왔다. 김 여사는 2018년 5월 8일에는 경기 남양주 치매안심센터를 찾아 “친정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저를 알아보지 못한다. 오늘 이곳에 오니 우리 어머니를 뵙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위치 파악 빨랐다면”...‘라면 화재’ 형제 안타까운 사연

    “위치 파악 빨랐다면”...‘라면 화재’ 형제 안타까운 사연

    부모가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화재가 발생해 중상을 입은 초등학생 형제가 화재 신고 당시 자신들이 사는 빌라의 이름 등을 알렸으나 같은 이름을 쓰는 빌라가 인근에 여러 곳이 있는 탓에 소방당국의 신속한 현장 도착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형제의 집과 직선거리로 불과 17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119안전센터가 신고 직후 출동했다면 1∼2분 정도면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당시 소방당국이 빌라의 위치 확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실제 현장 도착까지는 최초 신고 후 4분이 넘게 걸린 것으로 파악됐다. 21일 인천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 빌라 화재로 크게 다친 초등생 A(10)군과 B(8)군 형제가 최초로 119에 신고를 했던 시간은 지난 14일 오전 11시16분55초다. 이때 B군은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며 빌라의 이름과 동·호수 등을 소방 당국에 알렸다. 소방당국은 B군의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 등을 토대로 신고 위치가 미추홀구 용현동인 것까지 파악했으나 같은 이름을 쓰는 빌라가 인근에 여러 곳이 있어 정확한 신고자의 위치는 특정하지 못했다. 실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용현동에 C빌라와 같은 이름을 가진 곳은 모두 4곳으로 나온다. 소방당국은 당시 신고자의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를 토대로 신고 지점으로 추정된 미추홀구 용현동 인천대로(옛 경인고속도로) 인근 지역으로 1차 출동대를 보냈다. 출동대에는 인천 미추홀소방서 지휘차, 구조대, 도화119안전센터, 주안119안전센터와 인천 중부소방서 송현119안전센터, 송림119안전센터, 중앙119안전센터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형제의 집과 직선거리로 불과 17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미추홀소방서 용현119안전센터는 1차 출동대로 편성되지 못했다. 소방당국은 결국 당일 오전 11시18분18초 다른 주민 신고를 받은 뒤에야 화재가 발생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 뒤 미추홀소방서 용현119안전센터 등을 현장에 출동하도록 했다. 현장에는 용현119안전센터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최초 신고 후 4분이 넘게 지난 11시 21분이다. 당시 화재로 크게 다친 초등생 A군 형제는 이날 현재도 서울 모 화상 전문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 형제는 화상뿐 아니라 화재 당시 검은 연기를 많이 흡입해 자가 호흡이 힘든 상태여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 소방당국의 한 관계자는 “신고 당시 바로 위치가 파악돼 용현119안전센터가 도착했더라면 형제가 좀 더 빨리 구조될 수 있었다”며 “이미 지나간 상황이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인천소방본부 관계자는 “빌라 이름만 아는 상황에서 최대한 신속히 출동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최초 신고 후 현장 도착까지 4∼5분이 걸린 것을 출동이 지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한편, A군 형제는 지난 14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한 4층짜리 빌라의 2층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일어난 화재로 중화상을 입었다. 이들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한 여파로 등교하지 않고 비대면 수업을 하는 중에 외출한 엄마가 없는 집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다가 변을 당했다. A군 형제와 어머니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로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매달 수급비와 자활 근로비 등 160만원가량을 지원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US오픈에 1913년이 없었다면/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US오픈에 1913년이 없었다면/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사건에는 늘 단초가 있다. 미국과 영국의 ‘골프 전쟁’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게 라이더컵 골프대회다. 지금은 유럽 각국에서 선발된 ‘연합군’이 미국과 겨루지만 처음에는 영국과 미국의 국가대항전으로 출발했다. 트로피를 기부한 영국인 사업가 새뮤얼 라이더의 이름을 딴 이 대회는 1927년 처음 열려 1977년까지는 영국과 미국 각 10~12명의 선수가 2년마다 맞붙었지만 1979년부터 아일랜드가 참가하면서 ‘유럽 연합군’이 등장했다. 1959년부터 10연승을 거두며 어느새 ‘거인’으로 성장한 미국 골프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미국이 처음부터 독주를 한 건 아니다. 1913년 US오픈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프랜시스 위멧이라는 인물이 아니었더라면 세계 골프는 지금도 영국 주도로 흘러갔을지 모른다. US오픈은 35년 먼저 창설한 디오픈(브리티시오픈)에 맞서고자 1895년 만들어졌다. 영국인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진정한) 골프대회’라는 의미로 ‘디오픈’이라고 부른다. 미국인은 ‘브리티시오픈’이라며 우회적으로 이를 거부한다. 첫 16년 동안 우승자는 대서양을 건너온 영국 골퍼였다. 1912년에야 19세의 존 맥더모트가 첫 미국인 챔피언이 됐으며, 그는 이듬해까지 2연패를 달성했다. 그러자 영국은 고민했다. 이미 테니스, 육상, 요트 등에서 미국에 밀리면서 위기의식을 느꼈던 터라 골프만큼은 미국에 내줄 수 없다는 메시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내세운 이가 당대의 최고 스타 해리 바든이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골프채를 잡는 ‘오버래핑 그립’ 혹은 ‘바든 그립’의 창시자이기도 한 그는 앞서 디오픈을 5차례나 정복하고 1900년 US오픈에서도 우승한, 현재로 말하면 타이거 우즈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바든은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의 ‘더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1913년 대회에서 US오픈 타이틀 탈환에 나섰지만 이 동네의 캐디 출신 20세 청년 위멧에게 18홀 연장 끝에 패해 물러나야 했다. 2017년 미국 ‘골프채널’은 세계 골프 3대 역전극 중 1955년 US오픈에서 벤 호건을 제친 잭 플렉, 2009년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따돌린 양용은보다 위멧의 역전승을 첫손에 꼽았다. 영화 ‘지상 최고의 게임’ 속 위멧은 11살 때부터 동네 골프장인 더 컨트리클럽에서 캐디를 하며 골프를 배웠다. 노동자 아버지를 둔 그는 가난했던 탓에 골프를 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절대 그 길을 건널 수 없다”던 아버지의 말을 17번 홀 건너 자신의 집 부엌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의 모습과 오버랩시키며 연장 승부의 도화선이 된 동타 버디를 뽑아냈다. 아마추어 선수이자 캐디였던 위멧의 우승은 미국 골프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골프는 일부 계층의 것이 아닌 소시민의 스포츠로 다시 자리매김했다. 골프가 대중화되면서 1912년 35만명이었던 골프 인구는 1922년 200만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매년 6월에 치러지던 US오픈이 21일 새벽(한국시간) 120번째 대회를 무사히 마쳤다. 144명의 선수는 뉴욕의 윙드풋에서 악명 높은 코스를 감내했을 게 뻔하다. 특히 올해 대회는 1913년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9월의 US오픈’이었다. 107년 전 ‘골프 특사’ 바든이 6월의 디오픈을 먼저 치르도록 일방적으로 일정 조정을 요구했기 때문인 것과 달리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석 달이나 미뤄졌다. 코로나19는 윙드풋의 길고도 질긴 러프보다, 심술궂게 사방에서 불어대는 바람보다, 수두룩하게 아가리를 벌린 벙커보다 더한 고난이다. 위멧이 남긴 골프 명언으로 새삼 위로를 받는다. ‘골프는 어떠한 불운도 감수하는 미덕이다.’ cbk91065@seoul.co.kr
  • 자연 닮은 이준관의 동시… 슬픔의 치유자와 만나다

    자연 닮은 이준관의 동시… 슬픔의 치유자와 만나다

    이준관 시인의 눈망울은 선한 사슴의 그것을 닮았다. 하늘 높은 초가을, 한국시인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시인의 눈동자는 동시를 평생 써온 맑음과 깊이를 온전하게 담고 있었다. 올해로 시력(詩歷) 50년째를 맞는 시인은 여전히 수줍은 미소로 자신이 세상에 흘려보낸 아름다운 순간들을 꼼꼼하게 회상해주었다. 척박하기만 했던 우리 아동문학 현장에서 ‘이준관’이라는 이름은 탁하고 거친 세상의 흐름을 역류하여 평생 동시를 써온 뚜렷한 지표로 우뚝하다. 지금 같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그의 동시가 치유의 손길을 건네는 순간이 거기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까.“전북 정읍 이평면 하송리, 배들평야라고 부르는 평야 지대가 제 고향입니다. 동학혁명 발상지였고 전봉준 장군 집이 근처에 있었어요.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만석보와 혁명군이 첫 승리를 거둔 황토현도 가까이 있었습니다.” 시인은 동학혁명과 백제가요 ‘정읍사’가 자신의 문학적 젖줄이 되었노라고 고백한다. “어릴 때 통신표를 보면 담임 의견란에 하나같이 온순하고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라고 적혀 있어요. 공부보다는 들녘을 뛰어다니는 일에만 정신이 팔렸던 하루하루가 축제와 같던 시절이었지요. 고향의 자연 체험이 훗날 제 동시의 밑바탕이 되어주었습니다.” 시인의 아버지는 온유하고 자애로운 분으로 청빈한 선비의 삶을 살다 가셨다. 어머니는 활달하고 이웃에게 베풀기를 좋아한 분이었다. 어머니의 교육열로 전주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이준관 시인은 가정형편으로 한 학기만 다니고 중퇴했다.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에 시를 만났습니다. 호롱불 밑에서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으며 아무 종이에나 글을 썼습니다. 그것이 제가 처음 쓴 시였습니다.” 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된 뒤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과 그 자신 속에 있는 천진한 동심을 발견했다고 떠올렸다. 글짓기를 지도하면서 자신도 동시를 함께 써보았는데, 그것이 순수서정을 좋아했던 자신의 성정과 고스란히 맞았다고 한다. 그에게 ‘동시’란 무엇이었을까?“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되어 동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어효선 선생이 뽑아주셨어요. 그리고 박목월 선생이 창간한 ‘심상’에 시가 당선되어 1974년에 시인으로도 등단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이 ‘아동문학가’로 남기를 원했다. 등단 후 반세기 동안 그는 동시를 쓰면서 나이도 잊어버리고 언제나 ‘어른 아이’로 살아왔고, 자신은 결국 아름다운 동시를 세상에 남긴 사람으로 기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시는 제게 구원입니다. 제가 시를 통해 슬픔을 치유했듯이 제가 쓴 시를 읽고 사람들이 슬픔을 치유하기 바랍니다. 특별히 저의 동시는 따뜻한 긍정과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 따뜻한 동시가 사람들의 슬픔을 치유하여 삶의 구원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런데 신춘문예 당선작 ‘초록색 크레용 하나로’는 기존 동시의 틀을 깨뜨린 작품이었다. 마냥 즐거운 동심이 그려져 있기보다는 “휴전선/ 녹슨 철조망 위에도/ 아, 끊임없이 펄럭이는/ 푸르른/ 남북 없는 깃발의/ 물결” 같은 구절은 당대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공동체적 표현을 담고 있었다. 그의 동심에는 남북으로 나뉜 현실에 대한 아픔도 흐르고 있었고, ‘정읍사’도 ‘전봉준’도 다 들어 있었던 셈이다. 그에게 ‘동심’이란 원형적이고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기억과 함께, 아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힘이기도 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을 때 칠판에 썼던 것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였습니다. 제 시가 추구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과 동심의 아름다움입니다.” 그의 동시는 초기에는 고향의 아름다운 자연을 크레파스 그림 같은 이미지로 묘사했다. 그 후에 서울로 직장을 옮기면서는 골목길 아이들의 일상을 대화체와 구어체로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초기에 자연이 친구였다면 후기에는 아이들이 친구가 되어 함께 호흡하는 동시를 쓴 것이다. 서울로 올라와 처음 자리 잡은 곳이 하필이면 초등학교 후문 쪽이었는데 아이들이 늦도록 숨바꼭질을 하고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를 노래하면서 놀았는데 시인의 귀에는 그것이 소음이 아니라 행복하게 노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후로도 아이들 세계를 알아보려고 퇴근하면 놀이터로 달려가 아이들과 어울렸습니다. 그네도 미끄럼도 함께 타고 잠자리도 함께 잡으러 다녔습니다. 공터에 꽃씨도 함께 심고요. 아이들이 저를 ‘아찌’라는 애칭으로 불러주었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이준관의 동시’는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고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맑고 순수한 마음의 동시’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동심을 바탕으로 하되 시적 요건을 갖춘 동시를 그는 지향한다. 아이들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해주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는 따뜻하고 사랑으로 가득 찬 동시 말이다. 특별히 마흔 살 때 만난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통해 그는 자연과 삶이 한데 녹아 있는 소박하고 진솔하고 따뜻한 긍정의 세계를 발견한다. 그때부터 자연과 인간과 동심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시를 쓰자고 마음먹었다. 시쓰기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며 빌딩 창문에 매달려 유리창을 닦는 사람처럼 이 세상 모든 창문의 혼탁한 먼지를 닦아 아름다운 풍경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중퇴하고 암담한 시간을 보내던 때 박목월 선생의 ‘청노루’를 만났습니다. 저에게 많은 위로를 준 그 작품을 통해 저는 청운사에 봄눈 녹듯이 슬픔이 녹기를 바랐던 것이죠.”그는 박목월 선생을 1974년 ‘심상’ 신인상 시상식에서 만났다. 목월 선생은 크고 부드러운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시와 동시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긴 선생은 그때로부터 이준관 시인의 선행 모델이 돼주었다. 동시의 스승으로는 어효선 선생을 들었다. 신춘문예 심사위원이었던 선생은 정읍까지 오셔서 결혼 주례까지 해주셨다. 선생이 별세하기 하루 전날 인터뷰를 했는데 그게 선생과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시인은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해마다 ‘어효선 동요 음악회’를 개최하여 선생이 지은 유명 동요 ‘파란 마음 하얀 마음’, ‘꽃밭에서’, ‘과꽃’을 사람들과 함께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자신의 대표작으로는 무엇을 꼽을까. “‘씀바귀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초기 동시집이고 ‘우리 나라 아이들이 좋아서’는 골목길 아이들의 일상을 쓴 중기 동시집입니다.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는 자연과 아이들이 조화를 이룬 후기 동시집이고요. 이 세 권이 대표작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아끼는 작품으로는 ‘길을 가다’, ‘별 하나’, ‘나비’,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를 들었다. “길을 가다 문득/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다가가 그 곁에 가만히 서 보고 싶다./ 잎들이 다 지고 하늘이 하나/ 빈 가지 끝에 걸려 떨고 있는/ 그런 가을날,/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내 어깨와/ 아기새의 그 작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든 걸어 보고 싶다./ 걸어 보고 싶다.”(‘길을 가다’) 이준관 동시는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모두 열세 편이 실려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고 정편이 나 있다.또한 그의 ‘구부러진 길’은 ‘광화문 글판’ 30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발표된 시 중에서 독자 투표로 10편을 선정했는데 나태주 시인의 ‘풀꽃’과 함께 뽑힌 명편이다. 들꽃도 피어 있고 별도 떠 있는 구부러진 길처럼 느리고 아름다운 그의 동심이 읽히는 듯하다. 그에겐 “훗날 한국어린이문학관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아동문학을 알리고 어린이들의 종합 문학공간으로 삼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시인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사랑받는 아동문학을 위해 지금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때만 해도 동시를 쓴다고 하면 주변에서 그까짓 것 뭐 하러 쓰느냐고 타박하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50년을 꾸준히 한눈팔지 않고 동시를 써왔네요. 작은 힘이나마 동시 발전에 기여했다는 보람을 느낍니다.” 시인은 앞으로도 항상 어린이다운 마음과 감성으로 동시를 써서 어린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의 사랑을 받는 서정시의 파수꾼이 되고자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삶이 힘들어질 때마다 이준관의 동시를 읽으면서 그가 흘려준 동심의 세계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내내 그리워할 것이다. 깊고도 지속적인 그의 치유와 긍정의 시쓰기가 요즘 같은 감염병 시대에 근원적 존재 탐구와 치유로 끝없이 이어져갈 것을 믿게 되는 순간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단독]안 찾아가고 전화상담…‘라면 형제’ 비극 뒤 보호기관 방임 있었다

    [단독]안 찾아가고 전화상담…‘라면 형제’ 비극 뒤 보호기관 방임 있었다

    인천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지난 14일 라면을 끓이다 난 화재로 일주일째 사경을 헤매고 있는 A(10)군과 B(8)군 형제의 보호·상담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보호기관은 코로나19를 이유로 방문보다는 전화 상담에 치중하면서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인천가정법원은 지난달 27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신청한 형제들에 대한 격리보호명령 청구를 기각하면서 형제의 친모 C(30)씨는 1주일에 한 번씩 6개월간, 아동은 12개월간 방문 상담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법원의 기각 판결 닷새 후인 지난 1일 처음 형제의 집을 방문했으며, 이후로는 지난 9일(2회)과 10일 전화로 확인만 했다. 특히 경찰이 지난달 27일 C씨를 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 및 방임 혐의로 기소했었다. 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닷새가 지난 1일 처음 형제를 찾아갔고, 일주일이 훨씬 지난 9~10일에는 전화로만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인천 미추홀구 관계자는 “2년 전 학교에서 형제를 저소득 아동 사례 관리 대상으로 추천해 형제 및 친모를 상대로 심리와 정서 안정을 위한 프로그램 수업을 진행해 왔다”면서 “프로그램에 잘 참여해 고위험군으로 분류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부터 모자에 대한 상담 내용을 보고받지는 못해 방임하는 줄은 물랐다”고 밝혔다. 지난 5월 12일 이웃 주민이 방임에 대해 3번째 신고를 했을 때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현장 방문보다는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학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형제를 직접 찾아간 것은 신고 한 달여가 지난 6월 25일과 7월 16일, 8월 14일 등 3차례뿐이다. 전화는 6월 4일부터 8월 20일 총 9일간 했다. 해당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사건 발생 이후 현재까지 언론의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후관리를 게을리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A군 형제를 학대한 혐의를 받는 어머니인 C씨가 형제의 건강 상태를 언론에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구청 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추홀구청 관계자는 “최근 병원 측이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더는 아이의 상태를 알려주지 않고 있어 아이 어머니에게 확인하고 있다”면서 “형제의 모친은 건강상태를 알려주면서도 언론에 건강상태를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 구청에서는 더이상 언론에 아이들 건강 상태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 줄 수 없다”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여기는 중국] 학교 관두고 9살부터 전국 헤맨 아들, 17년만에 아버지 살인범 붙잡아

    [여기는 중국] 학교 관두고 9살부터 전국 헤맨 아들, 17년만에 아버지 살인범 붙잡아

    아버지를 살해하고 도주한 범인을 잡기 위해 전국을 떠돈 남성이 17년 만에 원수를 갚았다. 19일 ‘펑파이신원’(澎湃新闻) 등은 20년 전 중국 윈난성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얽힌 기구한 사연을 전했다. 2000년 8월 27일, 윈난성 자오퉁시 전슝현의 한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9살 소년이었던 샹밍첸(向明钱, 29)은 그날의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샹씨는 “동네 개울에서 친구 장쥔(张军, 가명)과 돌을 던지며 물놀이를하다 시비가 붙었다. 그 자리에 있던 여동생이 나를 도우려 했지만 많이 맞았다”고 밝혔다. 애들 싸움은 어른 싸움으로 번졌다. 양쪽 집 어른들도 거친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다 해가 저물었고 일단 모두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날 저녁, 소식을 들은 샹씨 아버지가 자초지종을 들어야겠다며 이웃집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 샹씨의 어머니와 삼촌, 샹씨도 장씨네 집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장씨네 집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어머니와 삼촌이 부랴부랴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장씨네 사람 중 한 명이 삼촌 등에 칼을 휘둘렀다. 장씨네 집 큰아들도 어머니를 찌르려고 달려들었다. 삼촌과 어머니는 겨우 그 집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빠져나오지 못했다.샹씨는 “빠져나오려는 아버지를 안에서 여러 사람이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가 “너무 춥고 배고프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다른 이웃이 아버지를 둘러업고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고도 덧붙였다. 사건 직후 아버지를 죽인 장씨 사람은 줄행랑을 쳤다. 신고했지만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날, 샹씨 가족은 직접 경찰서를 찾았다.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법의학관이 아버지를 부검하긴 했지만, 수사는 도통 진척이 없었다. 겨우 장씨네 사람 몇을 불러 조사를 하고는 아무도 입건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경찰이 장례비 1000위안(당시 환율기준 약 13만 원)을 지원해줄 테니 더는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며 입막음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샹씨는 “아버지는 가슴과 목, 종아리, 아랫배 등 모두 18곳을 찔렸다”며 원통해했다.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어머니 홀로 버겁게 생계를 꾸리는 게 안타까웠던 샹씨는 10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던 날이 잊히지 않았다. 가족들은 짐을 꾸려 마을을 떠났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잡아야 했다. 장성해서는 샹씨 홀로 전국을 이 잡듯 뒤졌다. 작은 단서라도 흘려넘기지 않고 17년 동안 범인 찾기에 열중한 끝에 샹씨는 2017년 드디어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아냈다.샹씨는 범인이 푸젠성 난안시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공장 근처에서 사흘 밤낮을 잠복한 샹씨는 너무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범인을 발견했다. 샹씨 가족을 지옥으로 내몬 범인은 이름을 바꾸고 결혼해 자식까지 낳고 잘살고 있었다. 샹씨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러나 범인의 신원 확인이 어렵다며 난감해 했다. 범인의 주민등록이 말소된 것이었다. 샹씨가 고향 파출소에 확인할 결과 관련 법령에 따라 범인 주민등록은 2015년 말소된 상태였다. 샹씨는 가슴을 쳤다. “경찰이 수배령을 내리지 않은 것 같다. 그랬다면 주민등록이 말소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억울해했다. 우여곡절 끝에 범인은 살인죄로 기소됐다. 범행을 자백하고 피해를 보상하려는 노력을 보였지만 2018년 10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샹씨는 사건 당일 아버지가 입고 계셨던 피묻은 옷을 17년 동안 간직하다 증거로 제출했다. 문제는 샹씨 삼촌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샹씨 아버지 역시 찔렀을 가능성이 높은 또 다른 장씨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샹씨는 현지언론에 “아버지 살인범을 잡고 한 달 후 또 다른 장씨도 붙잡혀 재판에 회부됐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샹씨는 “또 다른 장씨도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 그 짧은 시간에 18번이나 칼에 찔릴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범인이 이름을 바꾸고 숨어 살며 다른 지역에 취업하도록 돕고 여자까지 소개시킨 장씨 가족 모두가 공범이라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사건 기록이 모두 사라져 사실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샹씨는 누군가 일부러 폐기한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샹씨 변호사도 인위적으로 사건 기록을 은폐한 정황이 의심된다고 확인했다. 당시 현장에 곧바로 출동하지 않고, 범행에 사용된 흉기도 수거하지 않는 등 부실 수사를 펼친 경찰을 은폐 주체로 의심하고 있다. 샹씨는 “분명 아버지 부검하는 걸 봤다. 그런데 부검 기록조차 없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일자 자오퉁시 전슝현선전부는 18일 공식 위챗 계정에 “누군가 사건 자료를 고의로 파기했다는 의혹에 대해 관계 부처가 사찰 중”이라면서 “규율 위반 적발 시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9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무참히 살해되는 것을 지켜본 샹씨. 아버지의 원한을 풀기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아직도 죄책감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샹씨는 “만약 그날 내가 도랑에서 돌을 던지지 않았다면 이런 불행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단독] ‘라면 화재 형제’ 보호에 “아동보호전문기관 너무 안일했다”

    [단독] ‘라면 화재 형제’ 보호에 “아동보호전문기관 너무 안일했다”

    인천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지난 14일 라면을 끊이다 난 화재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B군 형제(10살, 8살)의 보호·상담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보호기관은 코로나19를 이유로 방문보다는 전화 상담에 치중하면서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인천가정법원은 지난달 27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신청한 형제들에 대한 격리보호명령 청구를 기각하면서 형제의 친모 A(30)씨는 1주일에 한 번씩 6개월간, 아동은 12개월간 방문 상담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법원의 기각 판결 닷새 후인 지난 1일 처음 형제의 집을 방문했으며, 이후로는 지난 9일(2회)과 10일 전화로 확인만 했다. 특히 경찰이 지난달 27일 A씨를 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 및 방임 혐의로 기소했었다. 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닷새가 지난 1일 처음 형제를 찾아갔고, 일주일이 훨씬 지난 9~10일에는 전화로 만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인천 미추홀구 관계자는 “2년 전 학교에서 형제를 저소득 아동 사례관리 대상으로 추천해 형제 및 친모를 상대로 심리와 정서 안정을 위한 프로그램 수업을 진행해 왔다”면서 “프로그램에 잘 참여해 고위험군으로 분류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부터 모자에 대한 상담 내용을 보고받지는 못해 방임하는 줄은 물랐다”고 밝혔다. 지난 5월12일 이웃주민들이 방임에 대해 3번째 신고 했을 때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현장 방문 보다는 전화기 만 붙들고 있었다. 학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형제를 직접 찾아 간 것은 신고 한 달 여가 지난 6월25일과 7월16일, 8월14일 등 3차례 뿐이다. 전화는 6월 4일 부터 8월 20일 사이 총 9일간 했다. 해당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사건 발생 이후 현재까지 언론의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후관리를 게을리 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B군 형제는 엿새째 위중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추홀구 관계자는 “화재로 크게 다친 형제는 이날 오전 현재 서울 화상 전문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었다”면서 “이후 상태 공개에 대해서는 어머니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라면 화재’ 인천 초등생 일주일째 의식불명…“돕겠다” 후원 잇따라

    ‘라면 화재’ 인천 초등생 일주일째 의식불명…“돕겠다” 후원 잇따라

    보호자가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일어난 불로 중상을 입은 초등학생 형제가 일주일째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 빌라 화재로 크게 다친 초등생 A(10)군과 B(8)군 형제는 이날도 서울의 화상 전문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형제는 심한 화상뿐 아니라 화재 당시 검은 연기를 많이 흡입한 탓에 자가 호흡이 힘들어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군 형제와 어머니는 기초생활 수급 가구로,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생계·자활 급여 등을 받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A군 형제 치료비 등을 기부하는 온정의 손길과 후원 문의가 관계 기관에 이어지고 있다. 후원을 주관하는 사단법인 학산나눔재단에는 지난 17, 18일 이틀 동안 시민 140여명이 A군 형제에게 3000만원가량을 기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들이 “병원 치료비로 써달라”며 적게는 1만원, 많게는 1000만원까지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산나눔재단 관계자는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며 “기부금이 기금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되지 않도록 미추홀구와 협의해 집행하겠다”고 말했다. A군 형제는 지난 14일 오전 11시 10분쯤 인천시 미추홀구 한 4층짜리 빌라의 2층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일어난 화재로 중화상을 입었다. 이들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한 여파로 등교하지 않고 비대면 수업을 하는 중에 외출한 엄마가 없는 집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다가 변을 당했다. A군 형제와 어머니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로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매달 수급비와 자활 근로비 등 160만원가량을 지원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꽃바구니 들고 방문해 일가족 살해…우발적 주장

    ‘그것이 알고싶다’ 꽃바구니 들고 방문해 일가족 살해…우발적 주장

    제주 원룸 방화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19일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미해결 사건인 2006년 제주 소재 원룸 방화 살인사건을 재조명한다. 지난 2014년 9월, 한 여성의 집에 꽃바구니를 들고 방문해 해당 여성은 물론 어머니와 중학생 딸까지 무참히 살해했던 남자. 김 씨는 연인관계였던 여성이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해 우발적으로 살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시간 만에 세 사람을 차례로 살해한 김 씨에 대해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처음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침착성, 대담성, 잔혹성이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뒤 제작진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제보자는 몇 년을 망설이다 이제야 ‘꽃바구니를 든 살인범’에 대한 의혹을 고백할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당시 그의 범행은 첫 살인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살인사건이 또 있다는 충격적인 제보였다. 그를 둘러싼 의혹은 과연 무엇일까? 제보자는 “얘는 큰 범죄를 숨기기 위해서 작은 범죄를 하고 들어온 거다. 물론 성폭력도 큰 범죄지만, 그 느낌을 나는 강력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14년 전, 제주의 한 교도소에서 처음 김 씨를 만났다는 제보자. 김 씨는 2006년 3월 한 대학 여자기숙사에 침입해 성범죄를 저질러 징역을 살게 됐다고 한다. 김 씨는 범행 이후 자신이 누군지 알리는 메모를 현장에 남기는가 하면 경찰서에 스스로 찾아가 자수하는 등 일부러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는 행동을 했다고 전해졌다. 제보자는 그의 이런 행동이 어딘가 석연치 않아 보였다고 했다. 제보자가 품었던 의혹은 김 씨가 성범죄를 벌이기 한 달여 전인 2006년 2월에 발생한 제주시 노형동 소재 원룸 방화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부각되며 확신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사건이 발생한 205호 원룸에서 발견된 유일한 증거, 담배꽁초에서 김 씨의 DNA가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사건은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게 됐다. 김 씨와 그의 가족은 사건 발생 당일 감식에선 아무런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사흘 뒤 진행된 현장 감식에서 김 씨의 타액이 묻은 담배꽁초가 발견된 것을 문제 삼았다. 경찰이 김 씨를 범인으로 몰아가기 위해 담배꽁초를 현장에 가져다 두고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이 김 씨를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이 담배꽁초의 증거력을 문제 삼으며 증거불충분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이 그 반증이라고 했다. 의혹을 풀기 위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과 검찰 관계자를 접촉했지만 당사자들은 모두 묵묵부답. 취재가 난항에 빠진 상황에 제작진은 원룸 방화 살인사건의 경찰 의견서와 검찰 불기소 결정서를 기적적으로 입수할 수 있었다. 총 13장의 문서를 토대로 제작진은 다시 한번 205호 원룸의 방문자에 대한 취재를 이어나갔다. 과연 김 씨에게 제주 원룸 방화 살인사건은 억울한 기억일까, 아니면 살인의 추억일까? 19일 오후 11시 10분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파헤친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라면 화재’ 의식 잃은 형제 돕는 손길…3000여만원 모여

    ‘라면 화재’ 의식 잃은 형제 돕는 손길…3000여만원 모여

    부모가 없는 집에서 단둘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다 불이나 중태에 빠진 형제를 돕겠다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19일 후원을 주관하는 학산나눔재단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 기준으로 형제를 돕겠다고 140여명이 나섰다. 기부금은 적게는 1만원대 미만부터 많게는 1000만원이 전달돼 지금까지 3000여만 원이 모였다. 재단 측은 사고 소식이 알려진 뒤 하루 평균 50~60건 기부 문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민원인 중에는 “아이들이 (회복하고) 성장했을 때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거나 “지속해서 형제를 꾸준히 후원하고 싶다”며 구체적 방법을 묻기도 했다. 재단 측은 모금액을 형제가 직접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우선 사용처가 지정되지 않은 기부금은 시급한 치료비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나머지 사용처가 지정된 금액은 용도에 맞게 전달할 방침이다. 공공기관들도 발 벗고 나섰다. 인천소방본부는 이들 형제에게 ‘119원의 기적’ 성금으로 치료비 5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해당 성금은 화재 등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인천 소방관들이 매일 1인당 119원씩 기부해 적립하는 성금이다. 담당 구청인 미추홀구도 의료비로 300만원을 긴급 지원하고 나머지 치료비는 형제가 입원한 병원 사회사업실이 후원하기로 했다. 또 형제 어머니가 병간호 기간에 병원 근처 모텔이나 원룸에서 지낼 수 있도록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천도시공사는 화재로 지내던 자택에는 거주가 어려운 점을 고려해 집을 수리하는 기간 다른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할 방침이다.앞서 형제는 지난 14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한 4층짜리 빌라의 2층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일어난 화재로 중화상을 입었다. 이들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서 비대면 수업을 하는 중에 집에서 단둘이 끼니를 해결하려다가 변을 당했다.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는 화재 당시 지인을 만나기 위해 집을 비운 상태였다. 화재로 형은 전신의 40%에 3도 화상을 입어 위중한 상태이며 동생은 상태가 다소 호전돼 일반 병실로 옮길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둘 다 부상이 심해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초등생 형제 엄마, 병원에 있다” 형제는 여전히 의식불명

    “초등생 형제 엄마, 병원에 있다” 형제는 여전히 의식불명

    초등생 형제 의식불명…의식불명·산소호흡기 의존 비대면 수업으로 등교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불이 나 중화상을 입고 중태에 빠진 초등학생 형제가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로 19일 전해졌다. 18일 오후 한때 동생에 이어 형까지 의식을 되찾았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인천시 미추홀구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전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 빌라 화재로 크게 다친 초등생 A(10)군과 B(8)군 형제는 이날도 서울 모 화상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군은 온몸의 40%에 3도 화상을, 동생 B군은 다리 등에 1도 화상을 입었다. 형제 모두 화상뿐 아니라 화재 당시 검은 연기를 많이 흡입해 자가 호흡이 힘든 상태여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 B군의 경우 전날 호흡 상태가 다소 나아짐에 따라 의료진이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려고 시도했지만, 산소호흡기를 제거한 뒤 재차 자가 호흡이 되지 않아 이날 오후까지도 계속 중환자실에서 형과 함께 치료를 받는 상태다. A군도 화상이 심해 의료진이 수면제를 투여해 치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시와 미추홀구는 애초 A군 형제가 의식을 되찾고 B군은 전날 일반병실로 옮겨졌다고 밝혔다가 “확인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며 말을 바꿨다. 경찰 관계자는 “오늘 오후까지도 두 아이 모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동생의 경우 화상보다는 연기흡입으로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어제(17일) 동생이 자가 호흡을 하는지 보기 위해 의료진이 잠깐 산소호흡기를 뗐던 것”이라며 “상태가 안 좋아 계속 산소호흡기 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A군 형제의 엄마가 연락 두절 됐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엄마는 이날도 아이들이 입원한 병원에 머무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들 엄마가 어제부터 전화를 안 받는 것은 맞지만 비판 보도로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며 “엄마의 가족과는 계속 연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A군 형제는 지난 14일 오전 11시 10분에 인천시 미추홀구 한 4층짜리 빌라의 2층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일어난 화재로 중화상을 입었다. A군 형제와 어머니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로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매달 수급비와 자활 근로비 등 160만원가량을 지원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핵심은] ‘라면 형제’처럼 방치된 아이들이 어딘가 또 있다

    [핵심은] ‘라면 형제’처럼 방치된 아이들이 어딘가 또 있다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치솟는 불길 속에서 아이들은 ‘살려달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겨우 10살, 8살에 불과한 형제였습니다. 화재 당시 부모는 집에 없었습니다. 지난 14일 인천 미추홀구 빌라에서 아이들끼리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불이 났습니다. 형은 온몸의 40%에 3도 화상을, 동생은 다리에 1도 화상을 입고 현재 화상 전문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둘 다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곳곳에 아이들이 방치돼 있다는 걸 꼭 사고가 난 다음에야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아프고 다치고 학대당하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알아챌 방법은 없는 걸까요? 이번 주는 ‘라면 화재’ 사건을 중심으로 아동 방임의 현실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핵심 ① 부모가 매시간 아이를 보살필 순 없어 그날 아이들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는 비대면 수업 중이었고, 지역아동센터에 맡길 수도 없었죠. 어머니는 사고가 나기 전날부터 집을 비웠습니다. 단둘이 남아 끼니를 해결하려다 참변을 당하게 된 겁니다. 사고가 나기 전 8일에는 형제가 편의점을 찾은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히기도 했죠. 둘은 배가 고파 새벽 3시에 도시락을 사러 갔습니다. 형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아침을 조금 먹은 뒤로는 (밤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을 어디다 맡길 만한 형편도 되지 않았습니다. 홀로 형제를 키우는 어머니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입니다. 수입은 매달 나오는 수급비에 자활 근로비를 합쳐 16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지난달엔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면서 자활 근로 사업이 중단돼 급여마저 끊겼습니다. 가난한 집엔 사랑을 베풀 여유도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방치한다는 이웃 신고가 세 차례나 접수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법원에 어머니와 아이들을 분리해달라는 피해아동보호명령 청구를 했습니다. 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어머니와 아이들 모두 지속해서 상담을 받으라는 처분을 내렸습니다. 경찰은 어머니를 주의력 결핍 장애를 앓던 형을 때리고 동생을 방치한 혐의(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 및 방임)로 입건하고 지난달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핵심 ② 비극이 벌어지고서야 해결책을 찾는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방치된 아이들을 찾아야 합니다. 정부는 취약계층 아동의 실태를 살피기로 했습니다. 전날 복지부는 이달 22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취약계층 사례 관리(드림스타트) 아동 7만여 명을 대상으로 돌봄 공백과 방임 등 학대가 발생하지 않는지 집중적으로 점검하겠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취약계층 아동에게 급식 지원 등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연계하고, 비대면 수업 확대에 따른 긴급돌봄 서비스의 필요성도 조사할 예정입니다. 아이들끼리 집에 있다 화재 사고가 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재난대비 안전 교육도 하겠다고 했습니다. 현재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이 집에서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긴급돌봄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지없이 사각지대는 발생하기 마련이죠. 실제 형제가 다니던 학교도 돌봄교실을 운영 중이었지만, 이를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복지부는 아동들이 긴급돌봄 서비스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게 보호 조처를 강화해달라고 지방자치단체와 센터 등에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인천시교육청은 인천시 모든 가정에 돌봄교실 이용 방법을 적극적으로 안내하는 등 후속 조치에 나서겠다는 방침입니다. 복지부는 또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자 지난 7월 해결책으로 내놓은 ‘아동·청소년 학대방지 대책’에 따라 전문가를 중심으로 아동학대 처벌강화 전담팀을 구성하고, 아동학대 발생 시 적절한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원과도 협의할 계획입니다.■ 핵심 ③ 사회와 이웃이 나서서 최소한의 보호해야 지난 5월 창녕에서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가 부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잠옷 차림으로 탈출한 사건 기억하시나요. 아이는 눈에 멍이 들고 머리가 찢긴 상태로 뛰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나치지 않았던 한 주민이 아이를 편의점에 데려가 먹이고 신고도 도왔습니다. 방치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주위 어른들의 관심입니다. 형제는 부상이 심해 1년 이상 병원에서 치료와 재활을 이어가야 합니다. 소식을 접한 이웃들이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후원을 주관하는 학산나눔재단에는 하루 수십 건의 후원 문의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공공기관들도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인천소방본부는 형제에게 치료비 5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담당 구청인 미추홀구도 의료비로 300만원을 긴급 지원합니다. 나머지 치료비는 형제가 입원한 병원 사회사업실이 후원하기로 했습니다.‘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 속 한 구절입니다. 열네 살 모모의 어머니는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합니다. 아버지는 얼굴조차 모릅니다. 아이를 기를 형편이 안 됐던 어머니는 창녀들의 위탁모 노릇을 하던 로자 아줌마에게 모모를 보냅니다. 부모의 사랑을 느껴본 적 없는 모모는 그럼에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모 대신 사랑을 가르쳐준 로자 아줌마와 이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었지만, 아이에게 삶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혼자서 살아갈 힘도 물려줍니다. 세상 모든 아이가 따뜻한 가정에서 성숙한 부모를 만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는 받을 수 있어야겠죠. 더는 아이들이 위험한 환경에 남겨진 채로 굶주리다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토요일 아침, 한 주간 가장 뜨거웠던 이슈의 핵심을 짚어드립니다.
  • ‘환각 질주’ 포르쉐에 치인 오토바이 운전자 “평생 장애 안고 살 수도”

    ‘환각 질주’ 포르쉐에 치인 오토바이 운전자 “평생 장애 안고 살 수도”

    대마 환각상태로 ‘해운대 활주극’을 벌인 포르쉐에 치인 오토바이 운전자가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해운대 7중 추돌사고로 다친 오토바이 운전자의 큰누나가 쓴 글이 올라왔다. 오토바이 운전자 A씨는 지난 14일 발생한 7중 추돌 사고 때 가장 크게 다친 피해자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포르쉐 승용차에 사실상 맨몸으로 부딪치며 30여m를 튕겨 나갈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A씨가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고 같은 방향으로 달리다 사고가 나면서 ‘기적의 생존’이라고 불릴 정도로 목숨은 건졌지만, 향후 장애가 남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A씨는 현재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씨의 누나는 “제 동생은 유명한 피트니스강사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에 이번 사고를 당했다”며 “현재 두 번에 걸친 수술과 수개월에 걸친 치료를 받아도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고 상태를 전했다. 이어 “중환자실에서 고통에 몸부림 치면서도 노모를 걱정해 어머니께 알리지 말라고 하는 동생과는 달리 포르쉐 운전자는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며 “이 사회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범법자이자 범죄자다. 이 죄인에게 합당한 벌을 내려달라”고 분노했다.한편 지난 14일 대마를 흡입하고 포르쉐를 운전한 B씨(45)에 의해 해운대 중동 일대에서 7중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 A씨 등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김태우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사안의 내용이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포르쉐 운전자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포레스트 검프’ 원작자 윈스턴 그룸 77세로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포레스트 검프’ 원작자 윈스턴 그룸 77세로

    1994년 영화로 제작돼 아카데미상을 여섯 부문, 골든글로브상을 세 부문이나 수상한 소설 ‘포레스트 검프’의 작가 윈스턴 그룸이 17일(이하 현지시간)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전했다. 미국 앨라배마주의 케이 아이베이 지사는 페이스북에 고인이 1965년 앨라배마 대학을 졸업했다면서 “우리 주에서 가장 재능을 인정받은 작가 중 한 명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돼 슬프다”고 적었다. 아이베이 지사는 “포레스트 검프란 캐릭터를 창안한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그는 재능 많은 기자이며 미국 역사를 전문으로 다룬 유명 저자이기도 했다.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유족들에게 전한다”고 밝혔다. 앨라배마 대학도 그를 “졸업생 레전드 중 한 명”이라고 기렸다. 앨라배마주 남부 페어호프의 카린 윌슨 시장은 페이스북에 고인의 죽음을 알렸다. 현지 장례식장도 이를 확인했다. 하지만 사인을 밝히지 않았다. 학위를 딴 뒤 그는 미국 육군에 입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뒤 기자로 전업했다. 포레스트 검프를 쓴 것은 1985년이었고 책은 다음해 발간됐다. 톰 행크스가 정신 지체지만 따듯하고 친절한 마음씨에 어린아이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낙관하는 미국인의 천성을 완벽하게 소화해 남우주연상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작품상을 수상했다. 샐리 필드가 어머니로, 로빈 라이트가 검프가 짝사랑한 여인으로 호흡을 맞춰 6억 8300만 달러(약 7930억원)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모습과 검프의 엉뚱한 기행이 한 화면에 담기고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비화 등이 그려져 화제를 모았다. 검프는 미국 대륙을 달려 횡단한 끝에 어릴 적부터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했던 라이트와 재회하는 소원을 이룬다. 그룸은 1995년 속편 ‘검프와 친구(Gump and Co)‘와 미국 남북전쟁을 다룬 넌픽션도 내놓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라면 형제 돕고 싶다” 문의 쇄도…1700만원 모금

    “라면 형제 돕고 싶다” 문의 쇄도…1700만원 모금

    초등학생 형제 아직도 의식 못 찾아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발생한 불로 중태에 빠진 초등학생 형제를 돕겠다는 문의가 쇄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18일 후원을 주관하는 학산나눔재단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기준으로 ‘라면 화재’ 사고로 중태에 빠진 초등학생 형제를 돕겠다고 나선 40여명으로부터 약 1700만원이 모금됐다. 기부금은 적게는 1만원 미만부터 많게는 1000만원까지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 측은 사고 발생 뒤 하루 평균 50~60건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민원인 중에는 “당장이 아니라도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면서 방법을 문의하는 이도 있었고, 어떤 이는 “지속적으로 형제를 꾸준히 후원하고 싶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 측은 모금액을 후원 용도별로 분류해 형제에게 직접 사용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우선 사용처가 지정되지 않은 기부금은 형제의 치료비로 우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나머지 사용처가 지정된 금액은 용도에 맞게 전달할 방침이다. 다만 최악의 경우 형제의 상태가 악화할 경우 기부금 반환도 검토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현재 다양한 방법으로 형제들을 돕고 싶다는 후원인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면서 “용도에 맞게 형제들에게 오롯이 후원금이 쓰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형제는 지난 14일 오전 11시 10분쯤 인천시 미추홀구 한 4층짜리 빌라의 2층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일어난 화재로 중화상을 입었다. 이들은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등교하지 않고 비대면 수업을 하는 중에 엄마가 집을 비운 상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다가 변을 당했다. 이날 한때 형제가 의식을 되찾았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형제 모두 심각한 화상뿐만 아니라 화재 당시 검은 연기를 많이 흡입해 자가 호흡이 힘든 상태여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형제에 대한 지정 기탁 문의는 사단법인 학산나눔재단(032-230-1420)으로 하면 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여기는 중국] 38년 전 유괴된 아들과 극적 상봉한 노부부의 사연

    [여기는 중국] 38년 전 유괴된 아들과 극적 상봉한 노부부의 사연

    중국의 한 부부가 38년 전 유괴된 아들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17일 중국 관영중앙(CC)TV의 미아찾기프로그램 ‘나를 기다려(等着我)’는 38년 전 아들을 잃어버린 부부의 사연을 소개했다. 1982년 5월 12일 새벽. 중국 산시성 안캉시 한빈구의 한 산마을에서 두 살 아기가 납치됐다. 아버지가 문을 잠그지 않고 집을 비운 사이 누군가 어머니 옆에서 잠든 아기를 유괴했다. 아이들과 함께 자다 새벽녘 화장실을 가겠다고 보채는 딸의 성화에 깬 어머니는 아들이 없어진 걸 알고 기함했다. 아버지는 “아내와 아이 둘을 두고 친척 집에 가면서 문을 잠그지 않았다. 금방 돌아올 거로 생각한 게 잘못”이라며 가슴을 쳤다.소박하지만 단란했던 가정의 행복은 산산조각이 났다. 유괴 신고를 받은 공안 당국은 오랜 기간 수사를 펼쳤지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부부도 사라진 아들을 찾아 방방곡곡을 수소문했지만 어디에도 아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칠십 노인이 된 부부의 머리도 희끗희끗해졌다. 비탄에 젖은 어머니는 정신질환까지 얻었다. 하지만 아들을 찾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부부는 방송국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방송국은 공안 당국과 협력해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DNA 정보를 샅샅이 뒤졌다. 혹시 몰라 쓰촨성과 베이징 등 여러 성시를 돌며 30여 명의 혈액 표본도 채취해 비교 분석했다. 남은 건 기다림뿐이었다.얼마 후, 부부는 아들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죽기 전에 꼭 한번 잃어버린 아들을 만나보고 싶다던 부부의 소원이 이뤄진 것이다. 상봉의 날,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아 막연히 부모를 그리워했던 아들 수이펑(苏义锋)은 부부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38년 만에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부부의 눈에서도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아들아 벌써 38년이 흘렀구나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아들의 얼굴을 부여잡았다.부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내 장례비를 모으고 있었다. 죽으면서까지 가족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죽기 전에 잃어버린 아들 얼굴 한 번 보는 게 소원이었다. 꿈만 같다”며 어쩔 줄을 몰랐다. 수씨는 친부모집과 1100㎞ 떨어진 허베이성에 아내,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유괴 후 불법 입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아기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는 매년 7만 건의 유괴 및 납치 신고가 접수된다. 인신매매는 고질적 사회문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값싼 노동력과 매매혼, 불법 입양 수요가 끊이지 않는 탓에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이민정 “배우이자 엄마·아내…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 커”

    이민정 “배우이자 엄마·아내…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 커”

    ‘한 번 다녀왔습니다’로 첫 가족 주말극 마쳐“초등학생 팬도…현장 분위기도 화기애애 영화 갈증 커…스릴러 등 장르도 도전할 것”“아이가 처음 생겼을 땐 그런 내용의 작품에 더 끌렸었어요. 작품을 고를 땐 도전의식이 중요한 기준이지만, 경험이 많아지면 연기에 분명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이번엔 나희가 임신인 걸 알고 얼마나 벅찰까,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KBS 주말 가족극 ‘한 번 다녀왔습니다’(한다다)의 송나희로 열연한 배우 이민정은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첫 주말 가족극을 마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가 처음 KBS 주말 가족극에 출연한다고 했을때는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2003년 데뷔때부터 미니시리즈와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결혼 8년차, 다섯 살 아들의 엄마이기도 하다. 엄마가 되고 작품을 고르는 눈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시청층이 넓은 ‘한다다’가 눈에 들어온 건 “어른들, 아이들이 같이 볼 수 있는 훈훈하고 따뜻한 드라마이기 때문”이었다. 아들도 같이 드라마를 보고, 남편인 배우 이병헌도 ‘매의 눈’으로 모니터링을 해줬다고 한다. 현장 분위기도 좋아 “배우들끼리 음식도 나눠먹고 웃고 떠들다 보니 2~3㎏가 쪘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임신을 알게 되는 부분이었다. “엄마에게 유산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저도 엄마에게 속 얘기를 잘 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엄마가 힘들까 봐 말 못했다고 얘기하는 나희 감정에 공감이 많이 됐어요. 나중에 임신을 알았을 때 나희와 규진이 얼마나 벅찰까 하는 생각에 몰입도 많이 됐고요.” 극 중 나희에 비해 실제 이민정은 잘 웃고 친절한 편이지만, 육아와 일에 관해서는 공감할 요소가 많았다. 그는 “시어머니가 옷을 선물해 주셨을 때 나희가 상처를 줬다면, 나는 ‘잘 입을게요’하고 잘 받았을 것 같다”면서 “배우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일과 가정 모두에서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크다”고 덧붙였다. 장편 주말드라마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한 이민정은 “이번엔 완급 조절을 많이 배웠다”며 다음 연기에 대한 계획도 내비쳤다. “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어요.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작품 자체가 많지가 않아서 힘든 부분이 있지만, 대신 여자 영화가 잘되면 그만큼 임팩트가 크다는 것도 알고, 늘 마음을 놓지 않고 있어요. 다음에는 스릴러나 사극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인천 ‘라면형제’ 엄마 “애들 돌본다”며 한달 간 자활근로 불참

    인천 ‘라면형제’ 엄마 “애들 돌본다”며 한달 간 자활근로 불참

    지난 14일 배가 고파 라면을 끓이다 화상을 입은 인천 초등학생(4·2학년) 형제 어머니가 아동보호전문기관 보호명령 청구를 이유로 ‘아이를 직접 돌봐야 한다’며 화재 당일 자활 근로에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18일 인천 미추홀구 등에 따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어머니 A(30)씨가 아이들만 두고 종종 집을 비운 사실을 확인하고 인천가정법원에 아이들을 분리해 달라는 피해아동 보호명령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분리보다는 심리 상담이 바람직하다며 지난달 27일 상담 위탁 보호 처분 판결을 내렸다. A씨는 이번달 코로나19로 자활 근로가 재개되지 않아 화재 당일과 전날 근로 일정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자활 근로를 전혀 하지 않은 7, 8월에도 각각 70만원과 13만원 근로비를 지급받았다. 지난해 7월 자활근로를 시작한 A씨는 미추홀 지역자활센터에서 알선한 사회 서비스형 자활 근로를 하고 있다. 하루 4시간 근무제를 택해 종이 가방 제작이나 포장 작업을 했다. 코로나19로 센터가 휴관하면서 자활 근로도 멈췄고 지난 7월 27일 영업을 재개하면서 센터 측은 다시 일을 하러 나와 달라고 통보했으나 그는 등교하지 않은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며 지난달 25일까지 한 달 동안 자활근로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구에 따르면 자활 근로자들은 코로나19로 휴업한 기간에 일하지 못하더라도 4시간 근로 기준 2만 6000원 정도를 지원받을 수 있다. 2015년 12월부터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은 A씨는 매달 140만∼160만원가량 생계·자활·주거 급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추홀구 관계자는 “B씨에 따르면 ‘법원에 보호명령이 청구된 상태로 아이들과 분리되지 않으려면 직접 돌봐야 한다’며 일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활 근로를 불참하며 생계급여를 삭감하지만 A씨가 사유가 있어 한 달 넘게 유예 기간을 줬다”고 밝혔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사설] 3차례 학대·방임 신고에도 보호받지 못한 ‘인천 초등생 형제’

    보호자가 장시간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배고픔을 해결하려고 라면을 끓이다 발생한 화재로 중화상을 입은 인천 초등학생 형제 사건은 우리 사회의 취약아동 보호 시스템이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피해 아동들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있다는 이웃들의 신고가 2년전부터 잇따랐지만 아이들은 어머니와 격리되지 않은채 돌봄 사각지대에서 구타와 폭언, 방임에 시달려왔다고 한다. 그동안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때마다 우선적으로 피해 아동 보호에 나서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과 당국의 다짐 및 약속, 제도적 보완 등이 있었지만 말만 앞섰을 뿐 인천 초등생 형제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고통받아왔던 것이다. 이들 형제가 또래보다 체격도 작고, 마른 것을 의아해한 이웃들은 2018년 9월, 지난해 9월, 지난 5월 모두 세차례에 걸쳐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학대 및 방임 신고를 했다고 한다. 형제의 개인위생 상태, 주거환경, 영양상태 등은 극히 열악했다. 특히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를 앓는 형은 자주 맞았다는 게 이웃들의 전언이다. 조사 결과 어머니가 아이들만 놔두고 집을 비우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기관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법원에는 아이들을 격리해 보호해야 한다며 피해아동 보호명령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격리보호 대신 상담치료 및 위탁 보호 처분 판결을 내렸고, 그마저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여지껏 상담 한번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일을 비롯해 아이들은 집에 방치된채 사실상 예고된 참변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동학대 의심 사례에 대해서는 이웃과 아동보호기관, 경찰, 법원 등이 모두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야 피해아동을 위기에서 구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또 다시 확인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동 10명중 4명이 돌봄 사각지대에 있다고 한다. 어른들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방임, 방치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언제고 인천 형제 사건같은 불행한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방임 및 방치 또한 학대라는 인식을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면서 적극적으로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아동들을 찾아내 보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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