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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용산구청장 “아닌 밤중 홍두깨”

    尹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용산구청장 “아닌 밤중 홍두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 발표와 관련해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아닌 밤중 홍두깨로 느닷없이 보도듣도 못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성 구청장은 서울시청에서 열린 용산역사박물관 개관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용산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지 묻자 이같이 답했다. 성 구청장은 “(미군 기지 이전으로) 용산이 기지개를 켤 기회가 왔는데 집무실이 들어옴으로 인해 개발 계획이 무산되거나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그렇게 된다면 용산 사람들은 정말 참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대통령 당선인이 추가 규제할 계획이 없다는데, (부정적 영향은) 뻔하지 않으냐”며 “교통통제부터 시작해 청와대 앞까지 늘 데모가 끊임없이 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 구청장은 집무실 용산 이전 발표가 구와 사전 협의 없이 이뤄진 결정이라는 점도 강조하며 당선인 측을 향해 비판했다. 그는 “어떤 사람도 (집무실 이전에 대해) 구청장에게 귀띔해준다던가,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전혀 이야기조차 없는데 그것이 소통인가. (용산구는) 나머지 뒤치다꺼리만 하는 것이 소통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저는 물러갈 사람이지만 앞으로 당선될 용산구청장과 반드시 의논을 좀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성 구청장은 자신과 윤 당선인을 부부에, 구민은 자식에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우지 말아야 한다”며 “아버지를 사랑하냐 어머니를 사랑하냐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 우크라 난민 위해 폴란드 호텔 통째로 예약, 149명 실어나른 부부

    우크라 난민 위해 폴란드 호텔 통째로 예약, 149명 실어나른 부부

    폴란드 부부가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20일(이하 현지시간) 인디펜던트지는 영국에 거주하는 폴란드 출신 부부가 우크라이나 난민을 구하기 위해 호텔 전체를 예약했다고 보도했다. 2004년 영국으로 이민한 폴란드인 야쿠프 골라타(42)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고국 폴란드로 향했다. 마침 아내가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휴직계를 내고 폴란드로 간 터였다. 골라타는 “온 힘을 다해 우크라이나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 경험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우선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생각하고 국경으로 갔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르비우와 인접한 폴란드 국경으로 향한 골라타는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목격하곤 그 길로 난민 구조에 뛰어들었다.골라타는 우선 작은 버스 한 대를 빌려 우크라이나 난민을 폴란드로 실어 날랐다. 폴란드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난민을 인도해주었다. 하지만 그거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라타는 “갈 곳 없는 난민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해줄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어딨겠느냐. 우크라이나 여성과 어린이가 폴란드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정착할 수 있도록 보살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호텔 하나만 빌리면, 지역 사회 봉사자들을 찾아 난민을 좀 더 세심하게 돌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하지만 자금이 부족했다. 회사를 오래 쉴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그때 영국에 있는 그의 상사가 손을 내밀었다. 골라타의 상사는 그가 마음 놓고 난민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장기 휴가를 허락하고, 호텔 임대료도 지원해줬다. 폴란드에 지부를 둔 영국 자선단체를 수소문해 추가 자금 조달까지 도왔다. 그 덕에 골라타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할 작은 호텔 하나를 빌릴 수 있게 되었다. 골라타는 폴란드 비드고슈치 근처에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문을 닫은 호텔을 찾아 통째로 임대했다. 침대 180개가 있는 작은 호텔이었다.이후 골라타는 본격적인 난민 수송에 들어갔다. 48인승 버스를 몰고 국경으로 가 난민을 싣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왕복 1200㎞ 여정을 하루 16시간씩 반복했다. 1200㎞면 부산에서 평양까지 직선 왕복 거리 수준이다. 골라타는 특히 최악의 폭력사태가 빚어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난민 구조에 초점을 맞췄다. 지금까지 골라타가 호텔로 실어나른 난민은 149명에 달한다. 골라타는 “호텔을 난민 수용 거점으로 만들고 싶다. 이후에는 난민을 장기 수용할 지역 가구원과 연결하는 게 목표다. 난민 수용 거점 호텔은 난민에게 기본적인 안전을 제공하는 동시에, 지역 가구원과 마찰이 생겼을 때 난민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난민을 수용할 폴란드 지역 가구원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고 있다. 그들도 지원이 필요하긴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했다.마지막으로 골라타는 “그냥 자리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위기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우크라이나인 수십만 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는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부터 19일까지 우크라이나에서는 10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 중 국외 피난민은 338만 9044명으로 집계됐다. 그 가운데 200만 명 이상이 폴란드로 넘어갔으며, 나머지는 루마니아와 몰도바공화국,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으로 도피했다.
  • “14세 딸 출산해 난 할머니 됐다” 英 ‘다섯아이 엄마’의 사연

    “14세 딸 출산해 난 할머니 됐다” 英 ‘다섯아이 엄마’의 사연

    영국에서 만 30살에 할머니가 된 젊은 여성의 사연이 화제다. 그는 16살이 되던 해에 딸을 낳았는데 딸은 엄마보다 2년 더 빠른 14살 때 아들을 출산했다. 덕분에 젊은 엄마는 영국에서 가장 ‘어린 할머니’로 기록됐다. 21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런던 서부지역에 사는 켈리 힐리(33)는 3살 난 외손자가 있다. 딸 스카이 솔터(17)가 2018년 8월 14살이란 나이에 손자 베일리를 낳았기 때문이다. 당시 켈리의 나이는 겨우 30세였다. 지금까지 영국에서 최연소 할머니 기록은 33세에 손주를 얻은 제마 스키너였다.젊은(?) 할머니 켈리는 현재 다섯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켈리는 딸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황당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30대가 넘었지만, 여전히 난 20대 초반 때처럼 구는 철부지일 뿐”이라면서 “밖에 나가면 다들 손자를 내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 역시 ‘손자가 있다’고 하면 다들 까무러치게 웃는다”고 말했다. 딸은 임신 전까지 이혼한 친부와 함께 살았다. 남자와 깊은 관계까지 가는 일이 생기는 바람에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이미 임신 36주였다. 딸은 “의사로부터 임신한 지 너무 오래돼 낙태는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사실 낙태할 생각도 없었다. 초음파 화면에서 아이의 심장이 마구 뛰는 모습을 봤는데 너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또 “아이 아버지는 내 또래의 동네 청년”이라고 덧붙였다. 요즘 영국은 늦은 결혼과 출산 때문에 고민인 나라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의 평균 결혼연령은 2017년 기준 여성은 35.7세, 남성은 38세다. 사진=페이스북
  • 애월 고내리 해안도로에서 아우디가 갑자기 과속·추락 왜?

    애월 고내리 해안도로에서 아우디가 갑자기 과속·추락 왜?

    제주 애월읍 고내리 해안도로 인근 20m 절벽 아래 해상으로 차가 추락해 80대 노모는 숨지고 운전자인 40대 아들은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21일 제주서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전 4시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해안도로에서 40대 운전자 A씨의 아우디 승용차가 높이 20m 정도의 절벽 아래 바다로 추락했다. A씨는 사고 직후 스스로 탈출해 인근 펜션으로 가 구조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당시 조수석에 타고 있던 A씨의 어머니 80대 B씨는 크게 다쳐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A씨도 다치기는 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며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의 차는 사고 지점 인근 펜션 주차장에 정차해 있다가 급가속하더니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과 인도를 구분하는 철제 볼라드, 차량 추락 방지용 콘크리트 방호벽, 보행자 추락 방지 난간을 잇달아 들이받고 곧바로 추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사고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확보하고, A씨를 상대로 고의성, 급발진 여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STOP PUTIN] 부모도 없이 묻힌 스물하나 우크라이나 병사

    [STOP PUTIN] 부모도 없이 묻힌 스물하나 우크라이나 병사

    러시아 침공 사흘째인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간) 남부 헤르손에서 숨을 거둔 우크라이나군 병사 드미트로 코텐코의 무덤이다. 서부 르비우의 리차키우 공동묘지에 안장됐는데 부모가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은 것은 이틀이 지나서였다고 영국 BBC가 21일 전했다. 부모는 두 남동생과 함께 이곳으로부터 965㎞ 떨어진 수미 시에 살고 있었는데 철저히 고립된 채 러시아군의 포탄 세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고인은 스물하나 안타까운 나이에 첫 작전에서 스러졌다. 아들의 전사 소식은 아들의 친구이며 포병인 바딤 야로벤코가 알려줬다. 그는 부모에게 친구의 죽음을 알려야 하는지 밤새 고민하다 르비우의 벙커에서 전화를 돌려 알리게 됐다. 친구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해 그도 죽었다는 사실만 부모에게 알리게 됐다. 둘은 군사학교에 입학한 열다섯 살에 처음 만났다. 이웃 마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금세 친해졌다. 코텐코의 아버지는 트럭 기사, 어머니는 현지 농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야로벤코는 “군에 입대하며 세상에 나왔다. 드미트로가 입대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가족은 가난했다. 동부 러시아와 접경이라 러시아어를 쓰는 작은 마을에서 세 아들을 기르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인의 압제로부터 구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돌아봤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크름) 반도를 병합하고 이어 동부 돈바스의 내전이 계속된 것도 입대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야로벤코는 “우리는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면서 “우리는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전시에 왜 군대 가느냐고 묻자 코텐코는 “내가 아니면 누가 가느냐?”고 되묻곤 했다고 했다. 군사학교에서 틈나면 둘은 낡은 차나 모터바이크를 수리해 시골길을 함께 달리곤 했다. 외둥이였던 야로벤코는 코텐코에게 형제애같은 것은 느꼈다. “둘 다 도시의 클럽 같은 여흥을 좋아하지 않았다. 낚시나 사냥, 피크닉 등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과 강에 놀러가는 것을 좋아했다.” “드미트로의 부모님은 아들을 사랑했고, 아들도 부모를 사랑했다. 그는 늘 수리하는 일로 남들을 돕고 싶어했다. 그 일을 잘했다. 학교에서도 아카데미에서도 그는 늘 도왔다. 부모에게도 잘했다. 그 가족이 다퉜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야로벤코는 포병이 되고 싶어했고, 코텐코는 공수대원이 되고 싶어했다. 아카데미에서의 2년 뒤 둘은 헤어졌다. 야로벤코는 르비우로, 코텐코는 남부 오데사로 향했다. 하지만 매일 문자를 주고받았다.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코텐코가 르비우에 진주하면서 재회했다. 주말에 만나 함께 달리곤 했다. 그 해 마지막 날 둘의 가족들과 새해 인사를 주고받았다. 한 달 뒤 코텐코가 남부로 떠난다며 르비우를 찾아와 밤늦게 얘기를 나눈 것이 마지막이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 남쪽에 진을 치고 침공 명령만 기다리던 때였지만 르비우에서는 먼 얘기로만 느껴지던 시점이었다. 다음날 둘이 작별한 뒤에도 계속 문자를 교환했는데 지난달 26일 코텐코가 답장하지 않았다. 야로벤코는 느낌이 좋지 않아 코텐코의 상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박격포탄 파편에 맞아 숨을 거뒀다고 했다.어렵사리 아들의 전사 소식을 전했던 그는 장례 절차를 알려주려 했는데 수미의 상황이 나빠져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부모도 없이 코텐코의 시신은 르비우로 옮겨져 안장됐다. 성 베드로와 바울 교회에서 장례를 치렀는데 8년 전 크름 반도 합병 때 아들을 여읜 신도들이 코텐코와 다른 두 병사의 영면을 기원했다. 러시아 침공 전에 이 교회는 한달에 한두 번 병사 장례를 치렀는데 이제는 하루에 두세 명의 병사를 안장한다고 했다. 이제 죽은 이들의 사진을 붙일 담의 공간도 남아 있지 않다. 코텐코 등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소련의 지원을 받아 돈바스 전투에 나섰다가 희생된 이들의 묘역 옆에 안장됐다. 한 보병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여기 르비우에서는 아직 교전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해서 우리는 조국을 지키려다 산화한 병사들을 안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야로벤코는 지금도 코텐코 부모들에게 연락하려고 하는데 여전히 회선이 죽어 있다고 했다. 수미에 그대로 갇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혼자 안장식을 지켜본 야로벤코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 친구가 묻히는 것을 봤다. 참배객도 없이 군인들만 지켜봤다. 쓸쓸하기만 했다. 우리는 전선에서 만나지도 못했다. 이제 남은 희망은 코텐코 부모들과 아들의 추억을 나누는 일뿐이다. 그 일을 기다렸다가 하는 것 뿐”이라고 쓸쓸히 말했다. 한편 그동안 비교적 평온했던 르비우의 국제공항에도 러시아군이 18일 아침 일찍부터 미사일 공격을 단행해 몇 시간 동안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항 근처 군용기 정비 시설과 버스 수리 시설이 파괴된 것으로 전해졌다..
  • 中네티즌 “헨리 논란? 韓 외국인 혐오 올림픽으로 심화” 황당 주장

    中네티즌 “헨리 논란? 韓 외국인 혐오 올림픽으로 심화” 황당 주장

    일부 중국인, 헨리 ‘애국심’ 탓에 한국서 비판받는다 인식헨리, 중국인 아냐…활동 의식한 ‘친중 행보’ 해석가수 겸 방송인 헨리의 ‘친중 행보’ 논란에 중국 네티즌도 가세했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에는 20일 ‘헨리가 애국심 탓에 사과를 강요받고 있다’는 제하의 글이 게재됐다. 작성자는 헨리에 대해 “중국에선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며 “한국의 급진적 네티즌들이 헨리에게 온라인 폭력의 잔혹성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월 동계베이징올림픽 이후 한국에서의 외국인 혐오가 증가하고 있다”며 “헨리가 서울 마포경찰서 학교 폭력 예방 홍보대사에 임명되자 한국 네티즌들이 화가 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헨리 홍보대사 위촉 소식에 반발하는 글이 가득하다”며 “헨리가 한국인이 아니고 친중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 이유다”라고 적었다. 그는 “한국 네티즌들은 헨리가 한국에서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한다”며 “그런 사람에게 청소년 대상 본보기의 기회를 줄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첨언했다. 그러면서 헨리가 SNS에 중국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옹호글을 올린 사실, ‘중국 사랑’ 마스크를 착용했던 사실 등을 한국 내 반발 정서가 커진 이유로 나열했다. 작성자는 “한국 네티즌들은 헨리에게 한국 말고 중국으로 가라고 하고 있다”며 “우리 중국인들은 헨리가 한국인들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헨리가 처한 상황은 한국에 있는 중국인들 이야기의 축소판이다”라며 “한국의 반(反)외국인 정서가 급진화되고 일부 네티즌들의 비판 내용이 저급하다. 이런 상황은 중국인들에게 더 많이 나타날 것이니 한국에 진출한 중국계 스타들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른 작성자도 이날 ‘헨리가 한국 네티즌들에게 공격받았다’는 제하의 글에서 같은 주장을 내놨다. 그는 “헨리에게 미안하다”며 “한국인들이 그의 혈통을 이해하길 바란다. 중국 애국자들을 항상 응원한다”고 적었다. 또다른 작성자도 “중국 본토 팬들은 안타까워 하고 있다”며 “한국인들은 사이버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과 달리 헨리는 홍콩인 아버지와 대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캐나다 국적 소유자다. 이 때문에 국내서는 중국에 대한 애국심이 아닌 방송 활동을 위해 친중 행보를 보였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쿠바인들이 기억하는 체 게바라의 마지막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쿠바인들이 기억하는 체 게바라의 마지막

    살아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가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1928∼1967년)다. 실은 볼리비아 군이 총살 형을 집행한 뒤 시신 모습이다. 볼리비아의 퇴역 군인 마리오 테란 살라사르가 이 나라 동부 산타크루스의 군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사실이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알려졌다. 한때 영원한 혁명의 아이콘처럼 떠받들린 그이지만 미국 마이애미 등에 망명한 쿠바인들에게는 반역 재판을 통해 500명 이상을 처형한 악한으로 기억된다. 마이애미의 쿠바 이민사회가 일제히 테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일간 마이애미 헤럴드의 20일 오피니언 면에 기고한 루이사 야네즈는 주장했다. 본명이 에르네스토 게바라인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의대생 시절 친구와 오토바이로 남미 대륙을 여행하면서 남미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혁명가가 됐다. 특히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손잡고 1959년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키며 혁명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1965년 쿠바를 떠나 아프리카 콩고로 가 혁명을 도모했던 게바라는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이듬해 볼리비아로 갔다가 1967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군에 체포됐다. 레네 바리엔토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곧바로 게바라의 처형을 명령해 체포 다음날인 10월 9일 서른아홉 살의 게바라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 바로 테란이었다. 당시 병장이었던 테란이 집행자로 결정된 경위에 대해서는 자원했다는 설과 상관에 의해 지명됐다는 설이 엇갈린다. 테란은 그 뒤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 생애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그 순간 체(게바라)가 매우 거대하게 보였다.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가 내 위에 있는 것 같았고 날 뚫어지게 본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며 “그가 나에게 ‘진정하고 잘 조준하시오. 당신이 사람을 죽일 것이오’라고 했다. 한발 물러서 눈을 감고 총을 쐈다”고 말했다. 테란은 군에서 30년을 복무한 후 준위로 조용히 제대했다. 언론 노출을 피해온 그는 자신이 게바라를 처형한 사람임을 부인한 적도 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쿠바 망명객이며 피그만 전투 참전자이며 CIA 작전에 가담한 펠릭스 로드리게스는 게바라 최후의 날, 그와 얘기를 주고받은 몇 안되는 인물 중 한 명인데 테란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볼리비아 정부는 그가 콩고를 떠난 뒤 이 나라로 와 마르크시즘 봉기를 조직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고 CIA 작전에 협력했다. 로드리게스는 쿠바 망명객들을 모아 체포조를 결성하는 한편, 게바라를 추적하는 볼리비아군 병사들과 접촉했다. 6개월 뒤 볼리비아 병사들이 게바라와 그의 반군들과 맞닥뜨려 교전했고 게바라가 다리를 다친 채 붙잡혔다. 로드리게스의 고민이 시작됐다. 죽일 것인가, 포로로 취급할 것인가였다. 일단 볼리비아 정부 고위층이 결정할 때까지 게바라를 학교 기숙사에 가둬두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도 게바라를 미워했지만 한 사람의 최후 얼마 동안 있었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게바라에게 왜 그렇게 많은 쿠바인을 죽여야 했느냐고 일깨웠다고 했다. 마침내 대통령으로부터 “게바라를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나쁜 소식을 전하자 게바라는 “날 죽이지 마라. 난 죽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훨씬 값어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는 “유감인데 사령관님(comandante)은 처형당할 것”이라고 답했다. 게바라는 이에 “체포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물론 통역을 통해 건네진 말이라 정확한지는 의문이다. 로드리게스는 게바라와 함께 있던 쿠바인들은 투항하지 말고 자결하라는 지침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바라는 두 가지를 더 얘기했는데 “혁명이 계속될 것이며 더 퍼져나갈 것이라고 피델에게 말해달라. 그리고 재혼하라고 아내에게 얘기를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로드리게스는 게바라가 파이프를 자신에게 건네고 나중에 테란에게 건넸다고 했다. 자신은 총격 소리만 들었을 뿐 처형 순간을 직접 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로드리게스는 게바라를 우상으로 떠받드는 풍토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게바라의 잔인함을 드러내는 한 장면을 들려줬다. 눈물 범벅인 쿠바인 어머니가 정치범 수용소에 찾아와 반군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10대 아들을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게바라 사령관님, 제발 우리 아들을 풀어주세요. 그 녀석은 겨우 열다섯이랍니다. 자신이 뭔일을 하는지도 몰라요. 2주 동안 여기 붙잡혀 있어요. 해서 전 잠 한 숨 못 잤답니다.” 게바라가 소년을 데려 오라고 했다. 어머니는 애원을 들어주는가 보다 싶었다. “너 때문에 네 엄마가 2주 동안 잠을 못 잤다고 하잖아!” 소리를 지르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고는 씩 웃으면서 어머니 앞을 지나가버렸다. 로드리게스는 “쿠바인들에게 게바라에 대한 기억은 이런 것들”이라고 말했다.
  • “최송하고...” 어눌한 한국어 입장문 논란에 다시 해명한 헨리

    “최송하고...” 어눌한 한국어 입장문 논란에 다시 해명한 헨리

    가수 헨리 측이 최근 불거진 헨리의 친중 논란과 이에 대한 해명과 관련해 공식입장을 밝혔다. 21일 헨리 소속사 몬스터엔터테인먼트는 공식입장을 통해 “앞서 헨리가 직접 SNS를 통해 심경을 토로하였는데, 부정확한 표기와 정제되지 못한 표현으로 혼란을 초래한 점 송구스럽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오해를 먼저 풀고 싶은 생각이 너무 앞섰습니다”라고 밝혔다. 소속사는 “널리 알려진대로 헨리는 유년시절 캐나다에서 교육 받으며 자랐고 평생 음악에만 몰두해왔습니다. 그러한 탓에 여러가지 생소하고 부족한 영역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활동하며 모두를 존중하는 마음 하나로 팬들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음악은 그 어떤 장벽이 없어 서로 더 가깝게 연결되고, 긍정의 에너지가 확산된다는 점에 큰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번 학교 폭력 예방 홍보대사 역시 그 일환으로 매우 뜻깊은 활동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오해와 부정적인 시선에 매우 안타깝고 무거운 마음입니다”라고 해명했다. 소속사는 유튜브 채널에 달린 특정 댓글을 관리했다는 의혹에 대해 “매우 악의적”이라며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같이 헨리’처럼 유소년이 시청하는 콘텐츠가 많기 때문에 건전한 분위기 조성을 최우선으로 여겨왔습니다. 따라서 소재를 불문하고 미성년자에게 유해한 내용이나 악플, 비방, 분란 조장의 모든 댓글들은 불가피하게 삭제해왔고 구독자들의 신고로 필터링 되기도 합니다. 의도적인 짜깁기로 캡처한 뒤 유포되고 있는 루머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헨리는 오로지 음악·예술 분야에만 집중해온 아티스트입니다. 확장된 분야가 있다면 아이들, 더 가깝게는 음악 영재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국적을 초월하여 동시대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즐겁게 교류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에 삶의 가치를 두며 활동해왔습니다”라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러한 가치를 잃지 않을 것이며,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헨리는 중국 국적의 홍콩계 아버지와 대만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헨리의 부모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현재 헨리의 국적은 캐나다다. 앞서 지난해 헨리는 중국을 방문하며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그림에 ‘사랑해 중국’이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공항에 나타나는 등의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어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하는 댓글은 내버려둔 채 중국과 중국인을 비판하는 댓글은 즉시 삭제하는 조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최근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후 반중 정서가 심해진 가운데, 서울 마포경찰서가 헨리를 학교폭력 예방 홍보대사로 위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시민들은 위촉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전날 헨리는 직접 사과문을 공개했지만, ‘죄송합니다’를 ‘최송합니다’라고 쓰는 등 기본적인 한국어 표현을 틀리게 쓰면서 팬들을 더욱 실망하게 했다.
  •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동아시아의 어떤 연대감/번역가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동아시아의 어떤 연대감/번역가

    하타노 이소코의 ‘소년기’(우주소년·2018)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공습을 피해 시골에 피신해 있던 한 어머니와 중학생 아들이 나눈 4년간의 편지를 묶은 책이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일왕의 항복 방송이 나온 뒤,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거리에 나갔다가 즐거워하는 어머니의 표정을 읽고 그날 편지에서 분노를 표한다. “어머니가 전쟁을 싫어하셨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모두 패전을 슬퍼하는데 어떻게 즐거워하실 수가 있죠? 안 그런 척 숨기실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이다. 나라를 위해 자기도 전장에 나가고 싶다고 한 ‘애국 소년’으로서는 당연한 항의였다. 비슷한 장면을 중국 작가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2012)에서도 본 적이 있다. 1976년 9월 어느 날 아침 고교 2학년이었던 위화는 모든 교사와 친구들과 함께 학교 강당에 불려 간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의 위대한 영수 마오쩌둥 주석이 불행히도 지병으로 서거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곧장 강당은 울음바다가 됐다. 1000여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우는 통에 위화도 덩달아 울긴 했지만 문득 이렇게 풍부하고 다채로운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모두 울음소리 경연을 벌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이 나왔고 놀라서 앞 의자에 두 팔을 올린 채 그 위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친구들은 어깨까지 떨며 가장 슬프게 울더라고 그를 위로했다. 위 두 장면을 읽고 이른바 ‘동아시아적 연대감’을 느꼈다. ‘동아시아’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게 한중일 외에 대만과 북한의 역사에도 저 연대감에 속할 만한 장면이 숱하게 많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적 연대감은 자랑할 만한 장면들의 소산은 아니다. 모두 어린 시절 우상의 배반에서 비롯된다. 내게 그것은 매일 오후 6시 국기강하식 시간의 전국적인 ‘얼음 땡 놀이’의 기억으로 상징된다. 해가 질 무렵 학교와 관공서의 스피커에서 사이렌이 흘러나오면 길거리의 남녀노소, 자전거, 손수레까지 멈춰 서서 국가와 애국선열을 떠올리며 장중한 묵념에 빠졌다. 정확히 1971년 3월부터 1989년 1월까지 18년 동안 나와 친구들은 군사정권의 그 제식 놀이에 농락당했다. 우리는 우상의 시대에 태어나 우상화 교육을 받았기에 그것이 놀이인 줄 몰랐고 놀이가 끝났을 때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아이들의 순진한 정신까지 마비시키는 국가주의 교육의 시대는 우리에게서는 다행히 끝났다. 하지만 얼마 전 “대만은 우리 땅이에요. 그걸 부정하면 당연히 강제 점령해야죠”라는 중국인 제자의 말을 듣고 중국에서는 그것이 끝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야 하지? 대만인도 같은 중국인이라면서?”라는 내 물음에 그는 머뭇대다가 “모르겠어요. 학교에서 그렇게 배워서인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 “이 금메달, 내 조국 우크라 국민과 군인께”

    “이 금메달, 내 조국 우크라 국민과 군인께”

    “이 메달은 조국 우크라이나와 모든 국민과 군인을 위한 겁니다.” 육상 여자 높이뛰기 선수 야로슬라바 마후치크(21·우크라이나)가 금메달을 조국 우크라이나에 바쳤다. 마후치크는 19일(한국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스타크 아레나에서 열린 2022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02를 뛰어 우승했다. 2위는 2m00을 넘은 엘리너 패터슨(26·호주)이 차지했다. 마후치크는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유니폼에 그려진 우크라이나 국기를 감쌌고, 우승이 확정된 뒤에는 국기를 어깨에 감싼 채 트랙을 뛰었다. 스타크 아레나를 찾은 많은 팬도 “우크라이나”를 외쳤다. 그는 “우크라이나에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내 휴대전화에 폭격, 위험을 알리는 수백 통의 메시지가 왔다”면서 “대체 러시아가 무슨 명분으로 전쟁을 벌이는지 모르겠다. 많은 러시아인이 가짜뉴스에 속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버지만 우크라이나에 남겨 두고 어머니, 언니와 함께 세르비아에 도착한 마후치크는 “훈련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래도 코치와 가족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필드에서 싸워 달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내겐 정말 중요한 경기였다”고 말했다. 마후치크는 당분간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수 없다. 그는 “독일로 이동해 훈련할 계획이다. 4월에는 꼭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가족, 친구들과 만났으면 한다”고 밝혔다.
  • 김치 품은 아프간 할랄 한 상… “우릴 구해 준 한국서 잘살 겁니다”[나를 살리는 밥심]

    김치 품은 아프간 할랄 한 상… “우릴 구해 준 한국서 잘살 겁니다”[나를 살리는 밥심]

    일상에 균열이 생겨도, 예기치 못한 일로 무너져 내려도 먹어야 삽니다. 시간이 지나 눈물 속에 먹던 음식이 ‘솔푸드’로 기억되기를, 살기 위해 억지로 먹은 밥이 일상을 되찾는 먼 훗날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를 막연히 기대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밥심으로 삽니다. 서울신문 사건팀이 밥심의 현장을 찾아 응원합니다. 이번에는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피해 한국으로 온 무함마드 나위드(31)씨와 자마니 타예브(31)씨의 가족 밥상에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문화를 지키면서도 한편으론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며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온 가족이 바닥에 둘러앉아 식사 지난 12일 경기 남양주에 있는 낡은 5층짜리 아파트. 이곳은 한국에 자리잡은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나위드씨와 그의 아내, 두 아들과 두 딸이 사는 보금자리다. 서툰 한국어로 ‘나위드 집’이라 적힌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자 아프가니스탄 대중가요가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올해 5살인 딸은 한국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 ‘반짝반짝 작은별’을 한국어로 불렀고 각각 9살·7살인 두 아들은 여느 한국 아이처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수다를 떨었다.주말 오후 1시부터 비대면으로 한국어 강의를 듣는 부부는 조금 일찍 점심을 준비했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음식을 차린 후 가족이 주변에 빙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식문화는 좌식 문화다. 바닥에 카펫과 쿠션을 깔고 그 위에 앉아 음식을 먹는다. 돗자리 가운데에는 아프가니스탄식 볶음밥인 ‘커블리 팔라우’(Kabuli Palaw)가 놓였다. 한국 쌀과는 다른 긴 쌀(안남미)과 소고기 또는 양고기, 채 썬 당근과 건포도 등을 함께 조리해 먹는 요리다. 그 옆에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구운 ‘블러니’(Bolani), 시금치 무침과 비슷한 반찬인 ‘사브지’(Sabzi),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한국의 밥처럼 주식으로 먹는 빵이 차려졌다. 집에서 직접 만든 아프가니스탄식 플레인 요거트 ‘머스트’(Mast)와 우유 푸딩과 비슷한 디저트인 ‘프리니’(Feereny)까지 풀코스 요리였다. 나위드씨의 식사 자리에는 김치도 올라왔다. 나위드씨는 “한국 음식 중 야채 위주로 만든 김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위드씨 가족은 다행히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아랍 식재료와 ‘할랄 푸드’(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를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재료를 사서 대부분의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이튿날인 13일 인천 서구에 사는 타예브씨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도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사브지와 프리니 대신 미트볼을 넣고 끓인 국인 ‘슈르바’(Shurwa)와 야채를 넣고 끓인 국인 ‘숄라’(Shola)가 눈에 띄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주식인 빵을 머스트나 슈르바에 찍어 먹는다. 커블리 팔라우와 고기 등을 싸서 함께 먹기도 한다. 네 아이를 둔 타예브씨 가족의 식사자리는 전쟁터였다. 부부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7살 큰딸과 한 살 아래인 둘째 딸이 접시에 남긴 음식을 마저 먹었고 이제 겨우 2살인 셋째 딸이 온 입과 옷에 머스트를 묻히자 닦아 주기 바빴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막내아들이 배고파 울자 타예브씨 부인은 식사를 멈추고 아이에게 달려갔다. ●“이사 앞두고 한국어 서툴러 걱정” 나위드씨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 한국직업훈련원에서 자동차를, 타예브씨는 영어를 가르쳤다.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한 자들을 잡아들인 탓에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아내와 아이들만 데리고 한국으로 왔다. 타예브씨는 “한국으로 온 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우리집을 수색했다”면서 “어머니 등 남은 가족이 두려움에 떨었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나위드씨와 타예브씨 가족은 한국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 나위드씨는 한국의 선진적인 정보기술(IT) 시스템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GPS(위성항법장치)가 잘돼 있어 지도를 보기 편하고 스마트폰이나 대중교통, 은행 현금자동인출기(ATM) 등 시스템이 너무 잘돼 있다”고 극찬했다. 한국 음식에도 점차 적응해 가고 있다. 타예브씨는 “한국 음식은 건강한 방식으로 조리돼서 너무 좋다”고 했다. 타예브씨는 지난달 설날을 맞이해 직장에서 동료와 함께 떡을 나눠 먹기도 했다.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2010~2014년 매년 한국을 방문했던 나위드씨, 2016년 한국에 3주간 연수를 왔던 타예브씨와 달리 가족은 한국이란 나라가 처음이다. 나위드씨의 부인과 생후 10개월인 막내딸은 이달 초 코로나19에 걸렸으나 잘 이겨 냈다. 나위드씨의 두 아들과 타예브씨의 첫 딸은 3월부터 한국 초등학교에 다니는 중이다. 아직 익숙지 않은 한국어는 이들 가족에게 큰 장벽이다. 나위드씨는 “가족이 6명인데 이 인원으로는 택시를 탈 수 없다. 한국 운전면허를 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면서 “곧 새집을 구해 이사도 해야 하는데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타예브씨는 “현재 한국어 강좌를 따로 듣고 있지 않다”면서 “직장 일이 바빠 여수에서 받은 한국어 책을 한 페이지도 펼쳐 보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북적북적했던 대가족은 그리워” 지난해 8월 탈레반을 피해 급히 한국으로 입국할 당시 타예브씨 부인은 임신 중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아이를 낳은 여성은 20일간 산후조리를 한다. 그사이 여성의 어머니가 와서 산후조리를 돕는다. 타예브씨는 “아내가 몸을 회복하고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만큼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듯이 아프가니스탄은 ‘야크니’(Yahni)를 먹는다. 돌봐 줄 가족도 마음 편히 회복할 여유도 없지만 야크니만은 고국에서처럼 만들어 먹으며 출산 후 몸을 돌보고 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남겨 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도 싸워야 한다. 나위드씨와 타예브씨 모두 고국에 부모님과 다른 형제가 남아 있다. 부모·형제들과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아프가니스탄인에게 부부와 어린 자녀로만 구성된 핵가족 문화는 외로움을 자아냈다. 나위드씨는 “아프가니스탄은 가족이 많아서 북적였던 점이 좋았다”면서 “지금은 한국에서 같은 동네에 사는 다른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 6가구와 함께 주말마다 만나며 가족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온 지 8개월째 된 이들은 한국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타예브씨는 “옷 두 벌만 들고 아프가니스탄을 급히 떠나 왔다. 우리의 집, 재산 등 모든 걸 잃었다”면서 “아프가니스탄의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 가족을 구해 줘서 한국 정부에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나위드씨는 “미국 정부와 일했던 사람들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미국 땅으로 갔다”면서 “미국으로 간 동료와도 종종 연락하는데 미국보다 한국의 지원이 훨씬 좋아서 자랑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한국에 잘 정착해서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타예브씨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햇빛이 드는 집으로 이사하고 아이들을 훌륭히 교육시키고 가족들을 잘 돌보고 싶다”며 한국에서의 목표를 전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위드씨는 언젠가 한국에 음식점을 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족들과 직원이 25명이나 되는 큰 음식점을 운영했었다”면서 “나중에 한국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음식점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 ‘직업이 있는’ 퍼스트 레이디, 그들이 가진 커리어의 역사 [클로저]

    ‘직업이 있는’ 퍼스트 레이디, 그들이 가진 커리어의 역사 [클로저]

    자신의 일을 하던 역사 속 퍼스트 레이디는 누가 있을까커리어 있는 여성에 초점…정치가부터 기록가까지우리는 오는 5월 10일부터 직업이 있는 퍼스트 레이디를 한국 근대 역사 처음으로 갖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지난 10일 당선된 데 따라 부인 김건희 여사가 퍼스트 레이디가 된 것이죠. 김 여사는 아직 감감무소식입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론도 조명됐죠. 퍼스트 레이디는 말 그대로 ‘the First Lady’를 일컫습니다. ‘the’가 붙죠. 단 하나밖에 없는, 대상이 특정된, 모두가 알고 있는 것에 붙이는 관사입니다. 국가 원수나 대통령의 부인을 부르는 말이고요. 지도자 위치에 있는 여성을 부르기도 하죠. 우리에게 직업이 있는 퍼스트 레이디가 생겼다는 점에만 중점을 두고요. 그렇다면 우리 역사 속에서 조선 시대 내명부의 수장으로 일했던 왕비의 역할 말고 주도적으로 일을 했던 왕가의 여성들이 있었는지 살펴봅시다.● 고려 여인의 기상, 정치가 신덕왕후 ”강씨(康氏)를 세워 현비(顯妃)를 삼았다.“ (태조실록, 태조 1년) 조선 최초의 퍼스트 레이디가 된 신덕왕후(神德王后)에 대한 기록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부인 이야기인데요. 철저한 유교사회였던 조선과 달리 고려는 비교적 자유분방했죠. 덕분에 여성의 뜻을 펼치는 것도 자유로웠습니다. 신덕왕후는 고려에서 재상까지 지낸 가문 소속이었으니 역량을 못 펼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의 가문은 힘이 셌죠. 아버지 강윤성과 작은아버지 강윤충·강윤휘 형제들은 충혜왕·공민왕 때 재상권문가로 세도를 떨쳤습니다. 그 스스로도 이성계의 서울 부인을 일컫는 ’경처‘였기에 목소리를 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죠. 경처란 무엇이냐고요. 고려 시대는 조선과 달리 지역별로 부인을 두곤 했습니다. 지역에 뒀다면 향처고요. 수도에 두면 경처였죠. 신덕왕후의 아들 방간·방석은 어린 시절엔 형 이방원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신덕왕후는 이방원을 아들처럼 대했고 그가 정몽주를 죽여 이성계의 분노를 샀을 땐 보호하기도 했죠. 그럴 수 있다고 말입니다. 문제는 세자 책봉 때부터입니다. 정치력이 뛰어났고 현명했던 신덕왕후 덕일까요. 태조가 10살 아들 방석을 세자 자리에 앉힌 건데요. 물론 이성계의 판단이 컸겠지만요. 왕의 자리가 그리 가볍게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흔들리는 자리는 아니니 세자가 어리고 신덕왕후 가문의 힘이 세다는 정치적 판단이 있었을 겁니다. 조선 건국 초기, 명민했던 신덕왕후의 정치적 도움을 생각해야 했을 것이고요. 태조실록에 나오는 기록을 볼까요. 어린 서자 이방석을 세워서 왕세자로 삼았다…(중략)…나이와 공로로써 청하고자 하니 임금이 강씨를 존중하여 뜻이 이방번에 있었으나 이방번은 광망하고 경솔하여 볼품이 없으므로 공신들이 이를 어렵게 여겨 사적으로 서로 이르기를 ”만약에 반드시 강씨가 낳은 아들을 세우려 한다면 막내 아들이 조금 낫겠다.“ 고 하더니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누가 세자가 될 만한 사람인가?“ 라고 물으니 장자로써 세워야만 되고 공로가 있는 사람으로써 세워야만 된다고 간절히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극렴이 말하기를 ”막내 아들이 좋습니다.“ 하니 임금이 드디어 뜻을 결정하여 세자로 세웠다. 세자 책봉 후 이방원은 신덕왕후에게 배신감을 느낍니다. 자신이 세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훗날 신덕왕후는 병을 얻어 사망하게 되는데요. 이방원과의 갈등도 컸고요. 끊임없이 이성계를 도와 일해야 했죠. 조선 건국 전 이성계의 식솔을 챙겨 도망다녀야 했으며 자신에게 기대는 주위의 정치적 압박이 컸기에 병을 얻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 청계천에서 매일 만나는 후대 백성 왕이 현비가 평안하지 못하여 중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부처에게 기도하게 하고 중외의 이죄 이하의 죄수는 석방하게 하였다. (태조실록, 태조 4년) 임금이 현비의 병환으로 구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하였다. (태조실록, 태조 5년) 현비의 병환이 위독하여 판내시부사 이득분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하였다. 밤에 현비가 이득분의 집에서 훙하였다. 임금이 통곡하고 슬퍼하기를 마지 아니하였고, 조회와 저자를 10일간 정지하였다. 봉상시에서 현비의 존호를 신덕왕후라 하고 능호를 정릉이라 의논해서 올렸다. 신덕왕후를 취현방 북녘 언덕에 장례하고 정릉이라 이름하였다. (태조실록, 태조 6년) 고려 말 권문세족 가문의 힘에 자신의 정치력을 더해 남편에게 힘을 보탰으나 신덕왕후는 결국 사망합니다. 조선 첫 왕세자인 아들도 그의 사후 잃고요. 분노한 이방원이 스스로 태종이 된 후 이미 사망한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격하시키고 그의 묘를 파헤치는 만행도 저질렀습니다. 자신의 생모인 향처 한씨를 태조의 유일한 부인으로 기록하려 말이죠. 태조가 덕수궁 뒤에 만들었던 신덕왕후의 묘를 파괴해 이는 현재 서울 성북구로 태종에 의해 강제로 이장돼 있고요. 주변 석상 등은 파괴해서 현재의 청계천 다리로 만들었습니다. 저자의 백성들이 마구 밟게 하도록 하겠다고 말이죠. 실제 현재의 여러분이 서울 청계천을 가서 보는 그 다리 말입니다. 태상왕이 거가를 움직이니 회안군 이방간과 각사의 관원 한 사람씩이 따랐는데 길이 정릉을 지나니 두루 살펴보고 머뭇거리면서 또 말하기를 ”처음에 한양으로 옮긴 것은 오로지 내 뜻만이 아니었고, 나라 사람과 의논한 것이었다.“ 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갔다. (정종실록, 정종 1년) 태종이 자신이 왕이 되기 전 잠시 왕으로 내세웠던 형 정종 재위 당시의 기록입니다. 태상왕은 태조인데요. 신덕왕후의 흔적을 보며 눈물짓는 태조를 통해 그와 함께 정치적 결정을 내렸던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뛰어난 정치가였으나 정적에 의해 묘가 파헤쳐지고 태종의 의도대로 매일같이 거리의 백성들에게 묘 석상은 밟히고 있는 걸 안다면 말입니다. 세상이 바뀌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각광받죠. 매일같이 서울 청계천에서 국민을 만나니 지상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는 것, 정치가로선 좋은 걸까요. ● 펜은 나의 힘, 기록가 혜경궁 ”왕비를 높이어 왕대비로 삼고 혜빈(惠嬪)을 혜경궁(惠慶宮)으로 삼았으며“ (정조실록, 정조 3년) 이로부터 약 400년이 흘러 오로지 기록 하나로 자신·남편·아들을 지킨 여성도 있습니다. 부지런히 글을 남긴 기록가 혜경궁 홍씨입니다. 비교적 조선시대 왕 중 인기가 높은 개혁군주 정조의 어머니라 친숙한데요. 100여명을 살해한 사도세자의 만행, 아들 정조를 지키기 위해 효명세자에게 입적한 스스로의 판단, 화완옹주의 정조에 대한 집착, 영조의 사도세자를 향한 연이은 양위 소동·13년간의 대리청정을 통한 ’가스라이팅‘ 등은 혜경궁 홍씨의 한이 담긴 기록 한중록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사도세자가 어떤 만행을 저질렀고 궁인들이 어떻게 두려워했으며 주변의 옹주들과 혜경궁 스스로도 그를 조심했다는 사실, 거기에는 아마도 영조의 변덕·정신적 괴롭힘·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죠. 사도세자는 분명 주변인을 마구 살해했으나 그 앞의 이야기까지 더해줘 비극적 주인공으로 오늘날 묘사되곤 합니다. 정조의 뛰어남을 칭찬한 영조의 말도 사도세자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혜경궁 스스로 전달을 일부 막은 사례 등 상세하게 나와 있는데요. 이런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선 알 수 없죠. 이런 기록 덕분에요. 훗날 고종은 한중록을 통해 정조가 사도세자·혜경궁 홍씨를 황제·황후로 추존하려 했다는 사실을 읽고 그렇게 시행합니다. 덕분에 현재는 대한제국 추존 황제·황후가 됐죠. 한중록을 부르는 또다른 말이 있죠. 읍혈록. 피눈물의 기록이란 뜻입니다. 한이 가득한 구주궁궐에서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궁을 제 발로 나가고 죽은 남편의 형에게 호적을 입적시키는 등 당시로선 현명한 판단을 통해 아들을 지켰죠.  기록이 훗날 힘을 발휘한 순간을 볼까요. ”아, 우리 장헌세자는 슬기로운 자태가 탁월하고 좋은 이름이 일찍이 드러났습니다. 영조를 효성스럽게 섬겨서 순 임금이 섭정했던 것과 같이 큰 공을 세워 도왔고 정조(正祖)를 낳아 계처럼 어진 아들로 천명을 잇게 하여 명을 받고 정사를 대리한 지 자그마치 14년이나 됩니다.“ (고종실록, 고종 36년) ”정조는 하늘이 낸 성인으로서 바다와 같은 효성을 지녔으며 어렵고 큰 왕업을 이어 빛내는 일에 힘을 썼으니, 온 세상을 경륜하는 학문으로 문화를 발전시켰고 나라의 임금으로서 백성들을 사랑하여 만물이 다 함께 혜택을 입었습니다. 임금 자리에 있던 25년 동안 지극한 인과 두터운 은택이 온 세상에 차고 넘쳐서 사람들이 오늘까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가 혜경궁께서 지어 내린 책을 살펴보건대…“ 고종에게 당시 특진관 서상조가 상소로 청한 내용입니다. 100여명을 죽인 살인자도 사도세자도 아닌 장헌 세자로 불리는 것에 더해 슬기롭다고 평하고 있죠. 개혁군주 정조라는 아들의 덕도 있지만 그 속내를 낱낱이 기록했던 혜경궁이 아니었다면 사후 추존은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남편은 세자, 아들은 왕이었으나 퍼스트 레이디는 될 수 없던 혜경궁은 결국 죽어서 자신의 커리어인 책으로 이름을 찾았네요. 주변인의 이름까지 드높였고요.
  • “이 메달은 조국 우크라이나를 위한 것”

    “이 메달은 조국 우크라이나를 위한 것”

    “이 메달은 조국 우크라이나와 모든 국민과 군인을 위한 것” 육상 여자 높이뛰기 야로슬라바 마후치크(21·우크라이나)가 금메달을 조국 우크라이나에 바쳤다. 마후치크는 19일(한국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스타크 아레나에서 열린 2022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02를 넘어 우승했다. 2위는 2m00을 넘은 엘리너 패터슨(26·호주)이 차지했다. 마후치크는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유니폼에 그려진 우크라이나 국기를 감쌌고, 우승이 확정된 뒤에는 국기를 어깨에 감싼 채 트랙을 뛰었다. 스타크 아레나를 찾은 많은 팬도 ‘우크라이나’를 외쳤다 그는 “우크라이나에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내 휴대전화에는 폭격, 위험을 알리는 수백 통의 메시지가 왔다”면서 “대체 러시아가 무슨 명분으로 전쟁을 벌이는지 모르겠다. 많은 러시아인이 가짜 뉴스에 속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버지만 우크라이나에 남겨두고 어머니, 언니와 함께 세르비아에 도착한 마후치크는 “훈련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래도 코치와 가족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필드에서 싸워달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내겐 정말 중요한 경기였다”고 말했다.2위를 차지한 패터슨도 “마후치크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대단한 성과를 냈다. 마후치크의 우승을 축하한다”면서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인 손톱을 내보였다. 마후치크는 당분간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수 없다. 그는 “독일로 이동해 훈련할 계획이다. 4월에는 꼭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가족, 친구들과 만났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는 여자 높이뛰기 세계 1위 마리야 라시츠케네(29·러시아)가 세게육상연맹의 러시아, 벨라루스 선수 출전 금지 조치에 따라 출전하지 못했다.
  • ‘한국 생활 7개월차’ 아프간 기여자…팔라우와 김치의 절묘한 조화로 푸짐한 한끼

    ‘한국 생활 7개월차’ 아프간 기여자…팔라우와 김치의 절묘한 조화로 푸짐한 한끼

    일상에 균열이 생겨도, 예기치 못한 일로 무너져 내려도 먹어야 삽니다. 시간이 지나 눈물 속에 먹던 음식이 ‘솔푸드’로 기억되기를, 살기 위해 억지로 먹은 밥이 일상을 되찾는 먼 훗날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를 막연히 기대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밥심으로 삽니다. 서울신문 사건팀이 밥심의 현장을 찾아 응원합니다. 이번에는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피해 한국으로 온 무함마드 나위드(31)씨와 자마니 타예브(31)씨의 가족의 밥상에 함께 했습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문화를 지키면서도 한편으론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며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가족이 빙 둘러앉아 식사…인근 할랄 푸드 가게서 구입 지난 12일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낡은 5층짜리 아파트. 이곳은 한국에 자리 잡은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나위드씨와 그의 아내, 두 아들과 두 딸이 사는 보금자리다. 서툰 한국어로 ‘나위드 집’이라 적힌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자 아프가니스탄 대중가요가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올해 5살인 딸은 한국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 ‘반짝반짝 작은별’을 한국어로 불렀고 각각 9살·7살인 두 아들은 여느 한국 아이처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수다를 떨었다. 주말 오후 1시부터 비대면으로 한국어 강의를 듣는 부부는 조금 일찍 점심을 준비했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음식을 차린 후 가족이 주변에 빙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식문화는 좌식 문화다. 바닥에 카페트와 쿠션 깔고 그 위에 앉아 음식을 먹는다. 돗자리 가운데에는 아프가니스탄식 볶음밥인 ‘커블리 팔라우(Kabuli Palaw)’가 놓였다. 한국 쌀과는 다른 긴 쌀(안남미)과 소고기 또는 양고기, 채 썬 당근과 건포도 등을 함께 조리해 먹는 요리다. 그 옆에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구운 ‘블러니(Bolani)’, 시금치 무침과 비슷한 반찬인 ‘사브지(Sabzi)’,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한국의 밥처럼 주식으로 먹는 빵이 차려졌다. 집에서 직접 만든 아프가니스탄식 플레인 요거트 ‘머스트(Mast)’와 우유 푸딩과 비슷한 디저트인 ‘프리니(Feereny)’까지 풀코스 요리였다. 나위드씨의 식사 자리에는 김치도 올라왔다. 나위드씨는 “한국 음식 중 야채 위주로 만든 김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위드씨 가족은 다행히 집에서 차로 15분거리에 아랍 식재료와 ‘할랄 푸드(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를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재료를 사서 대부분의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이튿날인 13일 인천 서구에 사는 타예브씨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도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사브지와 프리니 대신 미트볼을 넣고 끓인 국인 ‘슈르바(Shurwa)’와 야채를 넣고 끓인 국인 ‘숄라(Shola)’가 눈에 띄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주식인 빵을 머스트나 슈르바에 찍어 먹는다. 커블리 팔라우와 고기 등을 싸서 함께 먹기도 한다. 네 아이를 둔 타예브씨 가족의 식사자리는 전쟁터였다. 부부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7살 큰 딸과 한 살 아래인 둘째 딸이 접시에 남긴 음식을 마저 먹었고 이제 겨우 2살인 셋째 딸이 온 입과 옷에 머스트를 묻히자 닦아주기 바빴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막내아들이 배고파 울자 타예브씨 부인은 식사를 멈추고 아이에게 달려갔다. “한국 선진 시스템에 놀라…한국어 익숙하지 않아” 나위드씨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 한국직업훈련원에서 자동차를, 타예브씨는 영어를 가르쳤다.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한 자들을 잡아들인 탓에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아내와 아이들만 데리고 한국으로 왔다. 타예브씨는 “한국으로 온 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우리집을 수색했다”면서 “어머니 등 남은 가족이 두려움에 떨었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나위드씨와 타예브씨 가족은 한국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 나위드씨는 한국의 선진적인 정보기술(IT) 시스템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GPS(위성항법장치)가 잘 돼 있어 지도를 보기 편하고 스마트폰이나 대중교통, 은행 현금자동인출기(ATM) 등 시스템이 너무 잘 돼있다”고 극찬했다. 한국 음식에도 점차 적응해가고 있다. 타예브씨는 “한국 음식은 건강한 방식으로 조리돼서 너무 좋다”고 했다. 타예브씨는 지난달 설날을 맞이해 직장에서 동료와 함께 떡을 나눠먹기도 했다.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2010~2014년 매년 한국을 방문했던 나위드씨, 2016년 한국에 3주간 연수를 왔던 타예브씨와 달리 가족은 한국이란 나라가 처음이다. 나위드씨의 부인과 생후 10개월인 막내딸은 이달 초 코로나19에 걸렸으나 잘 이겨냈다. 나위드씨의 두 아들과 타예브씨의 첫 딸은 3월부터 한국 초등학교에 다니는 중이다. 아직 익숙지 않은 한국어는 이들 가족에게 큰 장벽이다. 나위드씨는 “가족이 6명인데 이 인원으로는 택시를 탈 수 없다. 한국 운전면허를 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면서 “곧 새집을 구해 이사도 해야 하는데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타예브씨는 “현재 한국어 강좌를 따로 듣고 있지 않다”면서 “직장 일이 바빠 여수에서 받은 한국어 책을 한 페이지도 펼쳐보지 못 했다”고 우려했다. “북적했던 대가족은 그리워…아프간 음식점 열고 싶다” 지난해 8월 탈레반을 피해 급히 한국으로 입국할 당시 타예브씨 부인은 임신 중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아이를 낳은 여성은 20일간 산후조리를 한다. 그 사이 여성의 어머니가 와서 산후조리를 돕는다. 타예브씨는 “아내가 몸을 회복하고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만큼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듯이 아프가니스탄은 ‘야크니(Yahni)’를 먹는다. 돌봐줄 가족도 마음 편히 회복할 여유도 없지만 야크니만은 고국에서처럼 만들어 먹으며 출산 후 몸을 돌보고 있다.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도 싸워야 한다. 나위드씨와 타예브씨 모두 고국에 부모님과 다른 형제가 남아 있다. 부모·형제들과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아프가니스탄인에게 부부와 어린 자녀로만 구성된 핵가족 문화는 외로움을 자아냈다. 나위드씨는 “아프가니스탄은 가족이 많아서 북적였던 점이 좋았다”면서 “지금은 한국에서 같은 동네에 사는 다른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 6가구와 함께 주말마다 만나며 가족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온 지 8개월째 된 이들은 한국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타예브씨는 “옷 두벌만 들고 아프가니스탄을 급히 떠나왔다. 우리의 집, 재산 등 모든걸 잃었다”면서 “아프가니스탄의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 가족 구해줘서 한국 정부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나위드씨는 “미국 정부와 일했던 사람들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미국 땅으로 갔다”면서 “미국으로 간 동료와도 종종 연락하는데 미국보다 한국의 지원이 훨씬 좋아서 자랑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한국에 잘 정착해서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타예브씨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햇빛이 드는 집으로 이사하고 아이들을 훌륭히 교육시키고 가족들을 잘 돌보고 싶다”며 한국에서의 목표를 전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위드씨는 언젠가 한국에 음식점을 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족들과 직원이 25명이나 되는 큰 음식점을 운영했었다”면서 “나중에 한국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음식점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 ‘친중 논란’ 헨리 “잘못된 말, 행동 다 죄송”

    ‘친중 논란’ 헨리 “잘못된 말, 행동 다 죄송”

    최근 친중(親中) 논란에 휩싸인 가수 헨리가 “잘못된 행동이나 말 다 죄송하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헨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잘못한 행동이나 말, 다 죄송하다”며 “저는 사람들에게 음악, 무대, 예능 등 어디서든 즐거움이나 감동, 웃음을 주려고 했던 사람인데 요즘엔 그러지 못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제가 절대 어디를 버릴 사람이 아니다”며 “요즘 코로나 때문에 어디 간다면 최소 몇 개월 동안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죄송하다. 저도 여러분 너무 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헨리는 “요즘 유튜브나 기사가 나는 것에는 사실이 아닌 게 너무 많다”며 “사람들이 진짜 믿을 거라고 생각 안 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있었는데 이젠 제가 직접 만난 사람들이 그런 거 보고 믿어서 얼마나 심각한지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저뿐 아니라 많은 공인이 같은 피해를 받았을 것 같다”고도 했다. 이어 “진짜 마음이 아픈 건 댓글 읽으면서 알게 된 건데, 대부분 저의 행동이나 말 때문에 불편한 게 아니라 저의 피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제가 하고 싶은 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하는 건데, 만약 제 피 때문에 불편한 사람들 있다면 저는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헨리는 중국 국적의 홍콩계 아버지와 대만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헨리의 부모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현재 헨리의 국적은 캐나다다. 앞서 지난해 헨리는 중국을 방문하며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그림에 ‘사랑해 중국’이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공항에 나타나는 등의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어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하는 댓글은 내버려둔 채 중국과 중국인을 비판하는 댓글은 즉시 삭제하는 조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최근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후 반중 정서가 심해진 가운데, 서울 마포경찰서가 헨리를 학교폭력 예방 홍보대사로 위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시민들은 위촉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헨리가 직접 사과문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헨리는 마지막으로 “우리 팬 여러분에게 제일 죄송하고 항상 좋은 얘기하고 좋은 모습으로만 나타날 거라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우크라 이르핀에서 처참하게 스러진 페레베이니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우크라 이르핀에서 처참하게 스러진 페레베이니스

    우크라이나의 스타트업 기업 ‘SE 랭킹’에 근무하는 크세니아 키르보니나는 동료였던 타티아나 페레베이니스(43)의 사진을 보여주자 금세 알아봤다. 지난달 조지아의 회사 휴양시설에서 워크숍을 개최했을 때 페레베이니스가 입었던 밝은 분홍색 파카 때문이었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정부군 병사가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소도시 이르핀 거리에서 피투성이가 돼 쓰러진 일가족을 살피는 모습을 담은 5단 크기의 사진을 다음날 실었다. 이르핀 외곽으로 대피하던 일가족은 러시아군의 박격포탄 파편에 맞아 애꿎게 희생됐다. 바로 페레베이니스와 아들 미키타(18), 딸 알리사(9)였다. 세 사람은 즉사했고, 이들의 피신을 돕던 봉사자 아나톨리 베레즈니는 다쳤다. 베레즈니는 얼마 뒤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으로 그는 목숨을 건졌다고 인사이더 닷컴이 18일 전했다. 세계 주요 언론사들은 사망자의 시신이나 죽음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을 게재하는 행위를 지양해 왔다. 하지만 NYT는 이런 편집 방침이 러시아군의 잔악무도한 공격 행위를 은폐하는 문제점을 낳는다는 일부의 지적을 받아들여 이 사진을 1면에 크게 보도했다. 트위터 직원 브라이언 라이스는 “그녀는 푸틴의 박격포탄에 희생된 길거리 시신으로 알려지는 것보다 응당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을 갖고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디지털 마케팅 장비들을 만든 회사에 속한 “동료 테크 일꾼”을 잃어버렸다고 아쉬워했다. 페레베이니스는 온라인 검색 결과를 순위로 매기기 위해 창업한 지 9년 밖에 안된 스타트업 기업 SE 랭킹의 수석 회계사로 지난 6년 동안 이 회사의 키이우 사무실에서 일해왔다. 모험심도 있고 유머 감각으로 동료들을 즐겁게 했고, 자녀들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자랑하곤 했던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미국 뉴욕의 우크라이나 태생 벤처캐피털 투자자인 알렉스 이스콜드는 생전에 그녀를 몰랐지만 그녀의 죽음은 “너무 끔찍하며 무감각하며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를 돕는 모금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페레베이니스와 함께 일해 본 이들은 한결같이 안타까움에 몸서리를 쳤다. 샌프란시스코의 금융회사 챔버 파트너스의 공동창업자 스콧 어윈은 링케딘에 올린 글을 통해 “타니아는 정기적으로 함께 일하고 지난 4일에도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새 친구이자 동료였다”면서 “가슴 찢어질 뿐만아니라 사악하고 불공정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어윈의 회사는 재작년에 SE 랭킹에 투자했다. 페레베이니스는 생전에 몇몇 매체 보도를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있는 테크기업 직원이라고 소개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SE 랭킹은 동유럽을 주요 시장으로 여기며 100명가량의 직원들이 키이우와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일하고 있다. SE 랭킹 홈페이지에는 팔로알토 주소도 있고, 영국 런던 주소도 기재돼 있다고 인사이더 닷컴은 전했다. 이 회사의 홍보팀장인 키르보니나는 미국인 투자자와 파트너들이 있다면서도 신원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2016년에 입사한 페레베이니스는 승진을 거듭해 회사의 재정상태를 감독하는 위치에 올랐고, 사실상 최고재정책임자(CFO) 역할을 했다고 했다. 그녀가 남편 세르히이와 키이우로 이사한 것은 러시아 반군들이 도네츠크에서 봉기한 2014년이었다. 2018년에 이들 가족은 이르핀의 아파트를 사들였다. 고인은 밝고 늘 미소 지으며 늘 기분좋게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돌아봤다.또 늘 동료들을 도우려 했고 재정상태까지 살피곤 했다. 최근에도 페레베이니스는 키르보니나의 신용카드를 업그레이드하는 일을 도와줬다.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큰누나 같은 존재였다.” 해서 아들 미키타가 대학 입학을 시도하자 사무실의 모두가 도왔다. 전쟁이 터지고 회사 직원들이 폴란드와 아랍에미리트(UAE)로 피신했다. UAE에 머무르고 있는 키르보니나는 페레베이니스 가족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 때문에 이르핀을 떠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들이 징집 연령이었던 이유도 있었다. 다른 동료 아나스타샤 아베티시안은 직원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긴급 자금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건물 지하에 숨어 있떤 페레베이니스가 “낙관적이었으며 회사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특수 구조작전을 펼쳐야 할지 모른다고 단체 채팅방에서 농담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SE 랭킹은 직원들의 위치를 파악해 탈출 계획을 수립했는데 그 과정에 지난 6일 페레베이니스와 자녀들이 탈출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 키르보니나는 텔레그램을 통해 페레베이니스 가족이 이용하려는 인도주의 대피 통로가 러시아군의 포격 대상임을 알아냈다. “가슴 졸였다. 난 그들이 당하지 않길 기도하고 있었다.” 회사의 담당자가 그녀에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결국 가족들이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들이 온라인에 올라왔다. “그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무기를 들고 있지도 않았다. 러시아 병사들을 향해 말한마디도 나쁘게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녀는 단지 버스를 향해 뛰고 있었다.”
  • “전쟁하기 싫어”…러 병사들, 돌아가려 다친 척 ‘자해’까지

    “전쟁하기 싫어”…러 병사들, 돌아가려 다친 척 ‘자해’까지

    러 병사들, 다친 척 ‘자해’까지“자해 안 들키려 우크라軍 총알 구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이 22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길어진 전투에 양국 병사들도 점점 지쳐가고 있다. 특히 러시아 군인들 중에는 단순히 군사 훈련인 줄 알고 우크라이나에 왔다가 뒤늦게 전쟁이라는 것을 알고 패닉에 빠진 이들도 있다고 전해졌다. 17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 ‘더선’ 등 외신에 따르면, 일부 러시아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스스로 총격을 가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는 우크라이나 보안국이 러시아군과 어머니 사이의 통화 내용을 도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대화에서 한 러시아군 병사는 “우린 민간인을 죽이고, 그들의 집에 침입해 음식을 훔쳐먹고 있다”며 “14일 동안 총을 쏘고 있는 지금 현실이 너무 무섭다”고 토로했다. 다른 병사는 “러시아군 병사들 중에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다리에 총을 쏜 사람도 있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병사는 “자해한 것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 우크라이나군 총알을 찾아 헤메는 사람도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러시아 군이 사용하는 총알 대신 우크라이나 군이 사용하는 총알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120명 정도가 이런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고 덧붙였다. 잔혹한 전쟁 속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명분을 찾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병사들이 많아지면서 러시아군의 사기가 전체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푸틴이 나를 주검이 되도록 전장에 던져놓았다” 미 CNN 방송에 따르면 러시아군 병사로 참전했다 포로가 된 한 병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범죄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푸틴이 지난주 나와 동료 병사들을 주검이 되도록 전장에 던져놓았다”며 “푸틴은 거짓말쟁이다. 집에 가고 싶다. 여기 있고 싶지 않다. 부끄럽다”며 울부짖었다. 당초 러시아군은 월등히 강한 군사력으로 1~4일 만에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함락할 것이라 점쳤으나 예상보다 강한 우크라군과 시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美 정보당국, 러시아군 7000명 전사 추정…“사기 저하”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3주도 안 돼 7000명 이상의 전사자를 낸 것으로 미국 정보당국이 추산했다. 미 정보당국은 뉴스 보도, 우크라이나 측 발표(13만5000명), 러시아 측 발표(498명), 위성사진, 영상 등을 분석해 이 같은 추정치를 내놨다. 불과 20일 만에 발생한 러시아군 전사자 7000명은 지난 20여 년 동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각각 전사한 미군 숫자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고 신문은 지적했다.NYT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단일 부대의 사상률이 10%에 이르면 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로 판단하는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은 이러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한 병력이 총 15만 명 이상이고, 이 중 1만4000∼2만1000명이 다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를 담당했던 전직 국방부 고위 관리 에벌린 파카스는 “이 정도의 병력 손실은 사기와 부대 결집력에 영향을 미친다”며 “특히 병사들이 왜 싸우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 더더욱 그렇다”고 지적했다.
  • 한국어 제목 ‘엄마’ 미국 영화 개봉…샌드라 오 주연, 초자연 공포물

    한국어 제목 ‘엄마’ 미국 영화 개봉…샌드라 오 주연, 초자연 공포물

    다큐 베테랑 한국계 아이리스 심 감독 연출심 “쫓아내려 했던 유령이 자신의 엄마라면”“엄마들의 경험 실패와 개인 고통 이해 중요”‘스파이더맨 시리즈’ 샘 레이미 제작사 참여NBC “아시아계 女 세대간 트라우마 담아”‘미나리’,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가운데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제목으로 내세운 할리우드 공포영화 ‘엄마’(UMMA-Mother)가 미국에서 개봉한다.  배급사 소니픽처스는 18일(현지시간)부터 엄마가 영화관에서 상영된다고 17일 트위터를 통해 공지했다. 이 영화는 한국계 스타 배우 샌드라 오가 주연을, 한국계 아이리스 심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공포영화 ‘이블 데드’, 토비 매과이어 주연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잘 알려진 샘 레이미 감독의 레이미 프로덕션이 제작사로 참여했다. 엄마는 한국계 미국인 어맨다(샌드라 오 분)가 겪는 초자연적인 공포를 그린다.시골 농장에서 딸과 함께 살아가는 어맨다는 어느 날 한국에서 홀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해를 친지에게 전달받는다. 이후 어맨다는 어머니의 유령을 보게 되고 자신이 숨진 어머니로 변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인다. NBC 방송은 이 영화가 아시아계 여성의 세대 간 트라우마와 죄책감 등의 감정을 장르물로 녹여낸 영화라고 평했다. 심 감독은 “대부분의 유령 이야기에서 등장인물은 유령을 쫓아내는 방법을 알아내려고 노력하지만 유령이 자신의 엄마라면 어떻겠는가”라면서 “우리의 엄마들이 경험했던 실패와 개인적인 고통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 감독은 비극으로 끝난 시카고 한인 이민자 가정의 아메리칸 드림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 하우스 오브 서’(The House of Suh, 2010)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로 미국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을 이어가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엄마는 심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기생충’, ‘미나리’ 이어 ‘오징어게임’미 크리틱스초이스서 韓드라마 첫 수상 최근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성공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차별화된 콘텐츠와 배우들의 정서적 공감을 끌어내는 섬세한 연기력으로 K콘텐츠에 대한 한류 열풍이 지속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평단이 수여하는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서 2관왕에 올랐다. 27년 역사의 크리틱스초이스 어워즈에서 한국 드라마가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크리틱스초이스협회(CCA)는 이날 로스앤젤레스(LA)에서 시상식을 열고 TV 드라마 부문 최우수 외국어 시리즈 수상작으로 오징어 게임을 선정했다. 오징어 게임은 애플TV플러스의 코미디물 ‘아카풀코’(멕시코)와 넷플릭스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프랑스), ‘뤼팽’(프랑스), ‘종이의 집’(스페인), ‘나르코스:멕시코’(멕시코)를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이정재, 미 남우주연상 휩쓸어  주연 배우 이정재는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정재는 최근 미국배우조합(SAG)상과 미국 독립영화 시상식인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에 이어 크리틱스초이스까지 품에 안았다. 이정재와 정호연, 박해수 등 출연 배우 3명은 이번 시상식에서 TV 리미티드 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나란히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크리틱스초이스는 미국 방송·영화 비평가들이 작품성과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을 평가해 주는 상으로, TV와 영화 부문으로 나눠 수여된다. 오징어 게임과 이정재는 한국 드라마와 배우 가운데 최초로 이 상을 받았다. 앞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2020년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한인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그린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과 아역상(앨런 김)을 차지했다.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인 오징어 게임은 미국 주요 시상식인 고섬어워즈, 피플스초이스, 골든글로브, 미국배우조합상, 스피릿어워즈 등에서도 수상했다. 미국 잡지 포브스는 “오징어 게임이 크리틱스초이스 2관왕에 오르는 등 더 많은 상을 받으며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평했다.
  • 사진 한 장에 담긴 전쟁의 참상…러 미사일에 엄마 잃은 아들

    사진 한 장에 담긴 전쟁의 참상…러 미사일에 엄마 잃은 아들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의 참상을 한 눈에 보여주는 사진이 보도돼 안타까움을 주고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은 이날 아침 우크라이나 키이브(키예프)의 한 아파트 땅 바닥에 주저앉아 시신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한 남성의 사연을 보도했다.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이 남성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하고 있는데 시신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다. 그의 어머니가 목숨을 잃게 된 이유는 너무나 안타깝다. 이날 아침 러시아군의 미사일이 수도 키이브로 날아왔으나 우크라이나 방공망이 이를 격추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미사일 잔해 일부가 이 아파트에 떨어졌고 이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만약 러시아 미사일이 그대로 도시를 강타했다면 수많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어 격추된 것이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 뜻하지 않은 희생자가 나온 셈이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주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민간인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는 러시아군의 예상과 달리 모든 전선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 원인이다. 이에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대한 무차별적인 포격으로 압박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하고 있다.유엔 인권사무소 측은 16일 기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숨진 민간인 수가 726명에 달한다고 집계했으며 이중 어린이는 52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미 수천 명이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최근 폭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마리우폴에서만 적어도 24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 군대는 마을과 도시를 폭격한 바 없다"면서 민간인 살상을 부인했다.
  • “빠져나갈 길 찾지 못했어” … 병원에 갇혔던 미국인 러軍 포격에 사망

    “빠져나갈 길 찾지 못했어” … 병원에 갇혔던 미국인 러軍 포격에 사망

    우크라이나인 아내의 치료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머물던 미국인이 러시아군의 포격을 당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히우의 중환자실에 입원한 배우자와 함께 병원에 머물던 그의 페이스북에는 전쟁의 공포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의 메시지가 남아있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히우를 공격한 16일(현지시간) 이 지역의 한 병원에 머물던 미국인 남성 제임스 휘트니 힐(68)이 사망했다. 체르니히우는 수도 키이우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러시아의 ‘동맹’인 벨라루스와 키이우를 잇는 통로인 탓에 러시아의 침공 초기부터 격렬한 교전이 이어져왔다. 그의 친구들은 미 아이다호 지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이라’라는 이름의 우크라이나인 아내가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어 지난해 12월 치료를 위해 체르니히우로 향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교전이 계속되면서 병원에 갇힌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과 아내, 체르니히우의 상황에 대한 게시물을 올렸다. 최근에는 “아이라가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면서 “이곳을 떠나고 싶지만 도시를 빠져나갈 안전한 길을 찾지 못했다”고 적었다. 지난 14일에는 “내일 탈출을 시도할 수 있지만 아이라의 어머니가 원하지 않는다”면서 “매일 사람들은 탈출하다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밤마다 폭탄이 떨어진다. 어떻게 하든 위험하다”고 적었다. 이어 “나는 하루에 와이파이를 몇 시간밖에 이용하지 못한다. 아직 식량은 며칠동안 충분하다”고 밝혔다. “엄청난 폭격에도 아직 살아있다”는 글도 있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그의 페이스북 게시물에는 그를 추모하는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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