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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매가족휴가제’ 신청 땐 연간 최대 8일 돌봄서비스 [알아두면 쓸데 있는 건강 정보]

    Q.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모시는데 며칠간 집을 비워야 한다. 급히 이용할 돌봄 서비스가 있을까. A.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라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치매가족휴가제’를 신청할 수 있다. 치매가 있는 장기요양 1~5등급이나 인지지원등급 수급자라면 월 한도액과 관계없이 1년 최대 8일까지 ‘단기 보호’나 ‘종일 방문요양’을 골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종일 방문요양은 장기요양 1~2등급을 받은 치매 환자만 지원한다. Q. ‘단기 보호’와 ‘종일 방문요양’의 차이는 무엇인가. A. 단기 보호는 주야간보호센터에서 치매 환자를 돌본다. 하루 이상 신청해야 하고 장기요양등급에 따라 하루 2940~9070원이다. 종일 방문요양은 집으로 요양보호사가 찾아온다. 1회당 12시간씩 16회까지 이용할 수 있다. 같은 기관을 2회 이상 연속으로 이용하면 간호사·간호조무사가 1회 이상 방문한다. 1회 1만 3100원으로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야간 가산이 적용돼 최대 2620원이 추가된다. Q. 신청은 어떻게 하나. A.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1577-1000),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 보건복지콜센터(129)에서 신청·문의가 가능하다.
  • 아베 살해범 “처음엔 폭탄 만들려고 생각”

    아베 살해범 “처음엔 폭탄 만들려고 생각”

    지난 8일 일본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 중이던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암살한 야마가미 데쓰야(41)가 처음에는 총이 아니라 폭탄을 사용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요미우리신문이 수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데 따르면 전 해상자위대원인 야마가미는 “처음에는 폭탄을 만들려고 했지만 핀포인트로 대상을 골라 죽일 수 있는 총으로 마음을 바꿨으며 올해 봄쯤 (총기 제작을) 완성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폭탄은 관계없는 사람까지 죽이기 때문에 그만뒀다”고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 시설 향해 사제 총 시험발사 야마가미가 아베 전 총리 암살을 철저하게 준비해 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하기 전날인 지난 7일 나라시에 있는 종교단체 시설을 향해 사제 총을 시험 발사했다. 건물의 주민들은 당일 오전 4시쯤 ‘팡’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 소리와 관련해 당시 경찰에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없었다. 또 도쿄신문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해 범행에 사용한 총을 만들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종교 들여온 기시의 외손자 죽여” 그가 왜 아베 전 총리를 노렸는지도 밝혀지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이번 사건의 원인이라고 밝힌 원한을 품은 특정 종교 단체에 대해 “(해외에서 만들어져 일본에) 불러들인 건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기 때문에 (외손자인) 아베 전 총리를 죽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야마가미는 자신의 어머니가 전 재산을 탕진할 정도로 특정 종교에 빠진 데 대한 원한을 갖고 있었다. 교도통신은 “해당 종교는 국내외 정치인과 관계를 구축해 왔고, 기시 전 총리는 이와 관련한 정치 단체 설립에 관여했으며, 아베 전 총리도 지난해 관련 단체의 행사에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고 전했다. ●“총격범의 가정 파탄 사실” 해당 종교로 지목된 옛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는 이날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1990년대 후반부터 옛 통일교 신자였다고 밝혔다. 다나카 도미히로 회장은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최근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회 행사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야마가미의 가정이 파탄 났던 것은 사실로 파악했다고도 밝혔다.  
  • [영상] 아베 살해범 “처음엔 폭탄 만들려 했다…표적 압축 위해 바꿔”

    [영상] 아베 살해범 “처음엔 폭탄 만들려 했다…표적 압축 위해 바꿔”

    아베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에 반감인터넷 불명확 정보 보고 믿어현장 경찰관 다수…경호 실패 논란日 관방장관 “경호·경비에 문제 보고 받아”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직접 만든 총으로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41)는 원래 폭탄을 사용할 생각을 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11일 보도했다. 그는 “최초에는 폭탄을 만들려고 했지만, 핀포인트로 대상을 골라 죽일 수 있는 총으로 했으며, 올해 봄쯤에 완성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수사 관계자가 전했다. ● 야마가미 “총, 표적 압축 쉬워” 야마가미는 “폭탄은 관계없는 사람까지 죽이기 때문에 그만뒀다”며 표적을 압축하기 쉬운 총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가을쯤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하려고 결심하고 집에서 무기 제작을 시작했다고 조사를 통해 밝혔다. 다만 야마가미가 언제부터 범행을 준비했는지와 관련해서는 일본 언론 보도 내용이 다소 엇갈린다. 아사히신문은 야마가미가 “지난해 봄 무렵부터 총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수사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종교단체 시설에 총 발사” 야마가미는 범행 전날 원한을 품은 종교단체 건물을 향해 사제 총을 시험 발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관계자는 “야마가미가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하기 전날인 7일 나라시에 있는 종교단체 시설을 향해 사제 총을 시험 발사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야마가미는 건물을 향해 총을 쏜 후 “맞았는지 건물 밖에서 살펴봤으나 손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산케이신문은 “야마가미가 아베 전 총리 살해 때 사용한 것과 같은 총을 종교단체에 쐈으나 소리가 커서 당황해서 도망쳤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 ‘팡’ 파열음 울렸지만 경찰 신고 無 종교단체 건물 주민들은 요미우리에 7일 오전 4시쯤 ‘팡’하는 큰 파열음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 소리 관련해 당시 경찰에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없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한 주민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소리라 집 밖에 나왔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며 “아베 전 총리가 총에 맞는 소리를 뉴스로 듣고 비슷한 소리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앞서 요미우리는 10일 야마가미가 경찰 조사에서 특정 종교단체의 이름을 거론하며 “어머니가 신자이고 많은 액수를 기부해 파산했다”며 “반드시 벌을 줘야 한다고 원망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야마가미는 본래 이 종교단체 지도자를 노렸으나 접근이 어렵자 “아베가 이 종교를 일본 내에 확산시킨 것”으로 믿고 살해 대상을 아베로 바꿨다고 진술했다.● 인터넷 불확실 정보 믿고 반감 표출 교도통신에 따르면 그는 이 종교단체를 해외에서 일본으로 “불러들인 것은 기시 노부스케(1896∼1987) 전 총리다. 그래서 아베 전 총리를 죽였다”고 말했다. 나라현 경찰본부는 야마가미가 인터넷 등에서 접한 불확실한 정보를 의심 없이 믿고서 기시 전 총리에 대한 반감을 외손자인 아베 전 총리에게 표출한 것으로 보고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교도통신은 기시 전 총리가 관련된 단체의 설립에 관여한 것으로 여겨지며, 아베 전 총리도 2021년에 별도의 관련 단체 행사에 메시지를 보내기는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기시 전 총리가 해당 종교단체를 일본에 불러들였다는 주장은 근거가 불명확하며 실제로는 해외 신자가 전도 활동을 담당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 “유튜브 동영상 보고 총 제작” 도쿄신문은 야마가미가 범행에 사용한 총을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야마가미가 동영상을 참고로 총을 반복해서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총격 사건 발생 후 야마가미의 집을 수색해 범행에 사용된 것과 유사한 구조의 총을 적어도 5개 압수했다. 그가 범행에 사용한 총은 길이 40㎝, 높이 20㎝로 금속관을 2개 묶어 나무와 테이프로 고정한 형태다. 한 번 발사하면 1개 관에서 6개의 총알이 발사되는 구조다. 야마가미는 총의 부품과 화약류는 인터넷에서 샀다고 밝혔다. 야마가미의 승용차 안에서는 구멍이 뚫린 판자가 발견됐는데 야마가미는 “판에 시험 발사를 했다”고 했다. ● 야마가미, 아베 전 총리 제작 총으로 살해 야마가미는 8일 오전 11시 30분쯤 나라현 나라시에서 자민당 참의원 선거 후보에 지원 유세에 나섰던 아베 전 총리를 자신이 제작한 총으로 쏴서 살해했다. 현장에는 다수의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야마가미가 접근하는 것을 통제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경호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경호·경비에 문제가 있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 통일교 “아베 살해범 신자 아냐…母는 회원, 파산 알고 있었다”

    통일교 “아베 살해범 신자 아냐…母는 회원, 파산 알고 있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회) 일본교회 회장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사건 용의자에 대해 “가정연합에 속한 신자가 아니다. 그의 어머니가 교회 신자로서 한 달에 한 번 행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다나카 도미히로 통일교 일본교회 회장은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만행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행위”라며 “일본 국민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위대한 지도자를 잃어 매우 가슴이 아프다”고 말문을 열었다. 피격 사건 용의자인 야마가미 데쓰야(41)는 체포 이후 경찰 진술에서 어머니가 종교 단체에 빠져 파산했고, 아베 전 총리가 이 종교 단체와 연관돼 있는 것으로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다나카 회장은 “야마가미 용의자는 당법인의 신자가 아니며 과거에도 당 법인의 신자였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야마가미 용의자의 어머니는 해당 법인의 교회원으로 지금까지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빈도로 행사에 참여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야마가미 용의자의 범행 동기나 헌금 문제와 관련해선 현재 경찰 수사 중이므로 이 자리에서 언급은 피하겠다”며 “경찰의 요청이 있으면 전면적으로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해서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행사에 메시지만 보냈을 뿐 회원으로 등록되거나 고문이 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통일교 일본지부의 간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교단의 정회원이 되고 나서 오랫동안 교단에 나오지 않다가 2~3년 전부터 다시 교회원과 연락을 취해 최근 반년 동안 한달에 한 번 정도 행사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이 간부는 야마가미의 가정이 파산한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파산 후에도 교단 측이 헌금을 요구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답했다. 앞서 전날 요미우리신문은 야마가미가 경찰 조사에서 특정 종교단체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어머니가 신자이고 많은 액수를 기부해 파산했다. 반드시 벌을 줘야한다고 원망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 아베 암살범 “해당 종교 들여온 아베 외조부에게 원한 있어 죽였다”

    아베 암살범 “해당 종교 들여온 아베 외조부에게 원한 있어 죽였다”

    지난 8일 일본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 중이었던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암살한 야마가미 데쓰야(41)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에 대한 반감으로 그의 외손자인 아베 전 총리를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전 해상자위대원인 야마가미는 이번 사건의 원인이라고 밝힌 원한을 품은 특정 종교 단체에 대해 “(해외에서 만들어져 일본에) 불러들인 건 기시 전 총리이기 때문에 아베 전 총리를 죽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야마가미는 자신의 어머니가 전 재산을 탕진할 정도로 특정 종교에 빠진 데 대한 원한을 갖고 있었다. 교도통신은 “해당 종교는 해외에서 만들어졌고 보수적 사상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외 정치인과 관계를 구축해 왔고 기시 전 총리는 이와 관련한 정치 단체 설립에 관여했으며 아베 전 총리도 지난해 관련 단체의 행사에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해당 종교로 지목된 ‘옛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1990년대 후반부터 옛 통일교 신자였다고 밝혔다. 다나카 도미히로 회장은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교회 행사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전 재산을 갖다 바칠 정도로 고액의 헌금을 했다는 진술에 대해 “경찰이 수사 중이라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야마가미의 가정이 파탄 났던 것은 사실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또 “아베 전 총리가 교회의 관련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메시지를 보낸 것은 맞다”고 밝혔다. 한편 야마가미가 아베 전 총리 암살을 철저하게 준비해 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하기 전날인 지난 7일 나라시에 있는 종교단체 시설을 향해 사제 총을 시험 발사했다. 이 건물의 주민들은 그날 오전 4시쯤 ‘팡’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 소리와 관련해 당시 경찰에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없었다고 알려졌다. 또 도쿄신문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해 범행에 사용한 총을 만들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의 자택에서 사제 총이 여러 정 발견되기도 했다.
  • “코로나 이후 척박한 시간… 바이올린으로 생명력과 활기 찾고 싶었죠”

    “코로나 이후 척박한 시간… 바이올린으로 생명력과 활기 찾고 싶었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척박한 시간을 보냈잖아요. 그 어려움 속에서 생명력과 활기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임지영(27). 2015년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아티스트다. 지난해 포브스 선정 ‘30세 이하 아시아 리더’에 한국인 클래식 연주자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오는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013년 같은 대회 2위를 차지한 프랑스 피아니스트 레미 제니에(30)와의 듀오 리사이틀로 관객을 만난다. 국내 리사이틀은 2년 만이다.최근 서울 동작구 뮤직앤아트컴퍼니에서 만난 임지영은 “낭만주의 시대부터 현대까지 표현의 폭이 넓은 프로그램으로 여러 감정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며 “열정적인 제니에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폭넓게 수용하는 피아니스트”라고 말했다. 그가 ‘로맨티시즘부터 리얼리즘까지’라는 부제를 붙인 이번 공연은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중동음악축제에서 제니에를 처음 만나 의기투합하며 성사됐다. 모리스 라벨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1번’,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구노의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을 들려준다. 임지영은 “첫 곡인 라벨의 왈츠는 제니에의 진가를 보여 주기 위한 피아노 솔로곡”이라며 “저와 같이 연주하는 슈트라우스 곡은 활기·열정·패기 등의 다양한 감정을 담았고,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는 2차 대전 당시 작곡된 곡이라 시대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바이올린 거장이자 작곡가인 비에니아프스키가 사용한 1717년 제작 스트라디바리 ‘사세르노’로 연주하고 있는 그는 “이 좋은 소리를 매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며 “비에니아프스키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 마지막 곡을 선택했다”고 덧붙였다.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먼저 배운 임지영은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 때 교내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우승하며 재능을 발견했다. 피아노는 예선 탈락으로 어머니를 실망시켰다는 그는 “피아노를 치는 분들이 아직도 부럽다. 끝까지 배우지 못한 게 한”이라며 웃었다. 임지영은 최근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이룬 한국예술종합학교 후배 임윤찬과 마찬가지로 국내 재학 중 국제 콩쿠르 정상에 선 공통점이 있다. 이후 연주에 매진할 것이라는 주변의 기대와 달리 대학원 진학과 독일 유학을 선택했다. 그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으며 음악가로서 더 겸손해졌다고 돌아봤다. 아울러 그는 “임윤찬군이 잘 헤쳐나가겠지만, 그에게 쏟아지게 된 기대에 따른 중압감이 이해된다”라며 “아티스트가 어떤 행보를 가든지 이를 그대로 존중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음악 자체가 위대해 저란 존재는 그 앞에서 한없이 겸허해지더라고요. 겸손하지 않으면 음악이 아니라 연주자인 제가 주인공이 된다고 여길 수 있어요. 콩쿠르를 통해 성공할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게 마련인데 콩쿠르는 하나의 기회일 뿐이에요. 음악을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난 예수 믿는다” 무슬림 ‘공짜’ 요구 거절한 기독교인 사형 선고

    “난 예수 믿는다” 무슬림 ‘공짜’ 요구 거절한 기독교인 사형 선고

    파키스탄이 이슬람 수행자의 ‘공짜’ 요구를 거절한 기독교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8일(이하 현지시간) 데일리메일과 크리스천포스트는 파키스탄 법원이 신성모독 혐의로 기소된 기독교인에 대해 사형 판결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 펀자브주 라호르 지방법원은 4일 신성모독 혐의로 법정에 선 아쉬팍 마시흐(34)에게 파키스탄 형법 295조 C항에 따라 사형을 선고했다. 해당 조항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날 법정에서 마시흐는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근거도 없는 거짓이다. 모두 경쟁 업체가 꾸민 일”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전거 정비소를 운영한 마시흐는 2017년 6월 한 무슬림 손님의 ‘공짜’ 요구를 거절했다가 신성모독 혐의로 고소당했다. 무죄 탄원서에서 마시흐는 “한 손님이 자신은 피어 파키르(무슬림 고행자) 추종자이며, 사람들은 자신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수리비를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독교인인 마시흐는 무슬림인 손님의 종교적 지위에는 관심이 없다며 요구를 거절했다. 그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다. 피어 파키르를 믿지 않는다”며 “내 노동의 대가를 달라”고 했다.  뿔이 난 무슬림 손님은 마시흐의 경쟁 가게 주인에게 곧장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그 주인은 신성모독 혐의로 마시흐를 고소했다. 마시흐는 “오토바이 정비사인 무함마드 나비드는 내 가게 앞에 가게를 차렸다. 그런데 내 사업이 잘되고 지역 내에서 좋은 평판을 얻자 나를 질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건 며칠 전 나비드와 싸우고 나서 내게 이런 끔찍한 일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마음과 영혼으로 예언자 무함마드를 존경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마시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 판결에 대해 항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판결 후 마시흐는 다시 교도소로 이송됐다.마시흐의 형은 “사형 선고 후 나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법정 밖으로 나가 엉엉 울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세상이 끝난 것 같다”며 “내 유일한 형제다. 아내와 딸이 있는 동생을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파키스탄의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위한 법률 및 정착 지원센터(Centre for Legal Aid, Assistance and Settlement, 이하 CLAAS)도 “가혹한 판결”이라며 비판 성명을 냈다. CLAAS 나시르 사에드 국장은 “마시흐는 사건 이후 이미 5년이나 감옥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사이 마시흐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에드 국장은 또 “기독교인에 대한 사형선고는 한 달 사이 벌써 두 번째”라고 밝혔다. 파키스탄 법원은 지난 6월 11일 한 기독교인 형제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다. 사에드 국장은 “직장에서 동료들과 언쟁을 벌인 후 인터넷에 신성모독적 글을 올렸다는 누명을 썼다”고 설명했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파키스탄은 2억 2000만 인구의 97%가 무슬림이다. 미국 국무부는 2021년 발표한 ‘국제 종교자유 보고서’에서 파키스탄을 ‘세계 최악의 종교 자유 침해국’ 10곳 중에 포함시켰다.  2022년에는 기독교 박해감시단체 오픈도어가 파키스탄을 기독교 박해 국가 8위에 올렸다. 국제종교자유연구소(IIRF) 보고서에 따르면 1987년부터 2021년 8월까지 파키스탄에서 신성모독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1865명이다. 2020년에만 200명이 해당 혐의로 기소됐다.
  • 아베 총격범 “유튜브 보고 총기제작…저격 전날 종교단체 건물 시험 사격”

    아베 총격범 “유튜브 보고 총기제작…저격 전날 종교단체 건물 시험 사격”

    선거 유세 중인 아베 신조(67) 전 일본 총리에게 총을 쏴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41)가 사건 전날 자신이 원한을 품은 종교단체 건물을 향해 사제 총을 시험 발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당초 이 종교단체의 지도자를 범행 대상으로 노렸으나, 접근이 어려워지자 목표를 아베 전 총리로 바꿨다고 진술했다. 요미우리신문은 11일 수사 관계자를 인용해 “야마가미가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하기 전날인 7일 나라시에 있는 종교단체 시설을 향해 사제 총을 시험 발사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야마가미는 건물을 향해 총을 쏜 뒤 “맞았는지 건물 밖에서 살펴봤으나 손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케이신문은 “야마가미가 아베 전 총리 살해 때 사용한 것과 같은 총을 종교단체에 쐈으나 소리가 커서 당황해서 도망쳤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종교단체 건물 주민들은 요미우리에 7일 오전 4시쯤 ‘팡’하는 큰 파열음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 소리와 관련해 당시 경찰에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없었다. 앞서 요미우리신문은 전날 야마가미가 경찰 조사에서 특정 종교단체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어머니가 신자이고 많은 액수를 기부해 파산했다”며 “반드시 벌을 줘야 한다고 원망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야마가미는 애초 이 종교단체의 지도자를 노렸으나 접근이 어려워지자 아베 전 총리가 해당 종교 행사에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을 근거로 “아베가 이 종교를 일본 내에 확산시킨 것”으로 믿고 살해 대상을 아베로 바꿨다고 말했다. 도쿄신문은 야마가미가 범행에 사용한 총을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야마가미가 동영상을 참고로 총을 반복해서 만든 것으로 봤다. 야마가미는 범행에 사용한 총기를 인터넷에서 구매한 부품으로 직접 만들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8일 그의 거처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아베 전 총리 저격 현장에서 사용한 총뿐 아니라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총기 여러 점과 화약이 발견됐다. 야마가미의 승용차 안에서는 구멍이 뚫린 판자가 발견됐는데 야마가미는 “판에 (사제 총의) 시험 발사를 했다”고 말했다. 야마가미는 지난 8일 나라현 나라시에서 자민당 참의원 선거 후보에 대한 지원 유세에 나섰던 아베 전 총리에게 접근해 자신이 제작한 총으로 총격을 가해 살해했다. 아베 전 총리는 어깨를 관통한 두 번째 총탄에 동맥이 손상되는 치명상을 입고 약 5시간 후 사망했다.
  • [데스크 시각] 미래지향적이어야 할 표절 논란/홍지민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미래지향적이어야 할 표절 논란/홍지민 문화부장

    하도 개념이 다양해 사전과 뉴스 등을 뒤져 봤다. 우선 표절.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시나 글, 노래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 일부를 몰래 따다 쓰는 행위를 말한다. 그다음 모방. 다른 것을 본뜨거나 본받음이라고 정의된다. 오마주도 있다. 개방형 국어사전 우리말샘에서는 영화를 촬영할 때 다른 감독·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가 만든 영화 대사나 장면을 인용하는 일이라고 규정한다.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하는 단어라는데 이제는 영화에만 국한되는 개념은 아니다. 이 밖에도 대중음악계에서는 샘플링과 레퍼런스, 클리셰라는 용어도 흔히 사용된다. 샘플링은 저작권이 있는 음원 등의 일부분을 따와 그대로 사용하는 일종의 작곡 기법을 말한다. 레퍼런스는 특정 편곡이나 화성 전개 방식을 참고하면서 멜로디나 흐름을 바꿔 새로 곡을 만드는 행위다. 클리셰는 특정 장르에서 반복적으로 쓰이는 멜로디나 화성, 리듬을 가리킨다. 이쯤 살피니 2000여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겼다는 그 유명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법적으로, 관행적으로, 양심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용인되는지를 떠나서 말이다. 이미 수천년 동안 사람들은 창작과 모방 그리고 표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는지도 모른다. 자고로 표절 논란을 겪지 않은 예술 분야가 없겠지만 특히 요즘 국내 대중음악계가 시끄럽다. 십수년 동안 가요계에서 실력과 대중성을 겸비한 창작자로 평가받으며 여러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중과 만나 오던 방송인이자, 이제는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도 운영하는 사업가가 논란의 진앙지라 파장이 적지 않다. 우리 대중음악이 ‘케이팝’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걸쳐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시기에 불거진 일이라 이번 논란을 케이팝의 위상과 신뢰에 대한 부분과 연결 짓는 시선도 있다. 표절 시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 대중음악의 세계화 이전 황금기라 불리는 1990년대도 표절 논란으로 일부 얼룩져 있다.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세계 팝 역사상 최고의 밴드로 꼽히는 비틀스도 자신들이 존경해마지 않던 로큰롤의 선구자 척 베리와 소송을 겪었다. 2015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등을 차지한 샘 스미스의 노래도 표절 시비 끝에 공동 저작권을 인정하고 저작권료 일부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논란이 매듭지어졌다. 이번 논란을 보며 가장 아쉬운 대목은 비판은 파편으로 남고, 미래지향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과의 진정성, 방송 하차 등을 놓고 공방만 뜨겁다. 창작자 양심에 기대는 것 외에 우리 대중음악계 스스로 표절과 거리두기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은 없어 보인다. 과거 공연윤리위원회에서 표절 문제를 다루기도 했지만 이제 공적 판단은 법원 몫이 돼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소송 자체가 드물고 대개 화해와 합의로 슬그머니 마무리돼 판결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표절이 아니지만 억울한 딱지가 붙은 경우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논란이 불거진다. 논란을 논란으로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 이참에 대중음악 관련 단체와 한국저작권위원회,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이 뭉쳐 표절 논란에 능동 대처하는 자율 기구를 만들었으면 한다. 표절이라면, 그렇지 않고 억울한 논란이라면 어째서 그러한지 제대로 알려야 창작자에게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한편으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잦아들게 하지 않을까 싶다.
  • 충무공 흉탄 맞자 대신 함대 지휘…진중 온갖 일 논의 참모 중의 참모[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충무공 흉탄 맞자 대신 함대 지휘…진중 온갖 일 논의 참모 중의 참모[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이 방답진첨절제사 이순신(李純信)의 부임 인사를 받은 것은 1592년 1월 10일이다. 그런데 1월 16일자 ‘난중일기’에는 ‘병선(兵船)을 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답진의 군관과 관리에게 곤장을 쳤다’는 내용이 보인다. 훗날의 충무공(忠武公)이 역시 무의공(武毅公)이 되는 신임 첨사의 군기를 단단히 잡은 모양새다. 무의공은 이후 충무공의 가장 충실한 참모가 되어 모든 해전의 선봉에 섰고, 노량에서 충무공이 흉탄에 맞아 쓰러지자 대신 수군 함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무의공 이순신(1554~1611)은 태종의 세자이자 세종대왕의 큰형인 양녕대군의 6대손이니 조선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종친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과 우리말 이름이 같지만 무의공은 전주, 충무공은 덕수로 본관부터 다르다. ●임기 초 긴장관계 빠른 시간에 극복 조선시대에는 남자가 성인이 되면 이름이 아닌 자(字)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충무공의 자는 여해(汝諧), 무의공의 자는 입부(立夫)다. ‘난중일기’에는 ‘이(李)입부가 다녀갔다’거나 ‘입부와 무엇무엇을 했다’는 글귀가 140차례나 나온다. 무의공이 임기 초의 긴장관계를 빠른 시간에 극복하고 충무공의 ‘측근 중 측근’으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다. 경기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무의공의 무덤은 KTX가 서는 광명역에서 가깝다. 입부의 집안은 양녕대군의 3대손인 증조할아버지 이윤의 때부터 당시의 시흥땅에 살았다. 입부는 아버지 이진과 어머니 복주 김씨 사이 다섯 아들의 막내로 태어났다. 입부 형제의 이름은 순서대로 이순인·이순의·이순례·이순지·이순신이다. 맹자가 인간 본성의 네 가지 덕(德)이라 지칭한 인(仁)·의(義)·예(禮)·지(智)에 믿음을 뜻하는 신(信)을 보탠 것이다. 입부의 넷째 형 비변랑 이순지는 충무공이 한성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나왔을 때 옥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난중일기’에 적혀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의공도 거쳐 간 비변랑(備邊郞)은 비변사의 종6품 무관이다. 입부의 두 아들 이탁과 이숙도 1603년 계묘 정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미수 허목(1595~1682)은 입부의 묘갈(墓碣)에 ‘공은 젊었을 때에 유학에 전념했으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25세에 알성시 을과에 급제했다’고 했다. 무의공도 처음에는 문과 급제를 꿈꿨지만 여의치 않자 무과로 선회한 것 같다. 무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던 조선 중기까지는 양반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무의공의 둘째 아들 이숙이 아버지만큼이나 충무공의 측근이었던 흥양현감 배흥립의 사위가 됐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을 정점으로 하는 조선수군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충무공의 리더십에 무의공과 효숙공 같은 참모진의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해지면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효숙(孝肅)은 배흥립의 시호다. 무의공은 충무공보다 아홉 살이 적다. 충무공은 31세이던 1576년(선조 9), 무의공은 24세이던 1577년(선조 10) 각각 무과에 급제했다. 두 사람의 ‘관계 개선’은 부임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2월 8일자 ‘난중일기’에는 ‘우후 이몽구가 방답에서 돌아왔는데, 첨사가 방비에 진력하더라고 극찬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우후(虞侯)는 수군절도사나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이다. 충무공은 2월 19~27일 전라좌수사 휘하의 순천·광양·낙안·보성·흥양과 방답진·사도진·여도진·발포진·녹도진에 대한 검열에 나섰다.방답진 검열은 5관 5포 가운데 마지막으로 26~27일 이루어졌다. 충무공은 ‘장편전(長片箭)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선(戰船)은 어느 정도 완전해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장편전은 긴 화살인 장전(長箭)과 작은 화살인 편전(片箭)을 가리키니 ‘화살 준비가 매우 불충분하다’는 표현이다. 충무공은 검열을 마치고 북봉(北峯)에 올라 진성 안팎의 지형을 살펴보고는 ‘외롭고 위태로운 섬이라 사방에서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성안의 연못 또한 지극히 엉성하여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첨사가 애는 썼으나, 미처 시설을 갖추지 못했으니 어찌하랴’고 했다. 한 달 전 부임한 첨사가 진성의 방어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출 수는 없다는 것은 충무공도 잘 알고 있었다. 방답진은 여수 앞바다 돌산도에 있었다. 방답진성 자리는 이제 어항(漁港)이자 여수시의 돌산읍 소재지로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다만 방답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옛 진성 주변은 군내리로 불린다. 그러니 동헌과 군관청, 비석 등이 남아 있는 방답진의 흔적을 둘러보려면 내비게이션에 ‘군내리’를 입력해야 한다. 미수의 묘갈에는 ‘공은 처음에는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김성일 공이 한번 보고는 그의 현명하면서도 재능이 뛰어난 것을 알아 극력 추천한 것’이라고 했다. 학봉 김성일이라면 1590년 조선통신사의 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 왜란 발발 이후 파직되기도 했지만, 이후 경상도초유사로 전란 수습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참모장으로 충무공 출정명령 하달 그해 4월 13일 왜군선이 부산포 앞바다에 몰려오면서 무의공의 존재는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출정 직전인 5월 1일자 ‘난중일기’에는 ‘진해루에 앉아 방답첨사 이순신, 흥양수령 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렀다. 그들은 모두 매우 분하여 격동했으며, 자기 한 몸을 잊어버릴 정도였으니, 과연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할 만하다’고 했다. 행간에서 한시라도 빨리 전선으로 나가자고 재촉하는 참모들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마침내 5월 3일 녹도만호 정운과의 대화에서 결심을 굳힌 충무공은 중위장인 방답첨사 이순신을 불러 다음날 새벽 출정한다는 명령을 전군에 하달토록 한다. 중위장(中衛長)이라면 참모장이다. 당시는 순천도호부사 권준이 전라좌수영의 중위장이었으나 전라도관찰사가 호출하는 바람에 자리를 비워 무의공이 대신한 것이다. 도호부사와 첨절제사는 종3품으로 품계는 같지만 순천부사는 광양·낙안·보성·흥양을 모두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던 만큼 전라좌수영에서는 선임이었던 듯하다.무의공은 옥포·합포·적진포로 향한 1차 출전에서 왜적의 대선(大船) 1척씩 모두 3척을 깨뜨리는 눈부신 전과를 거두었다. 사천·당포·당항포로 2차 출전한 5월 29일에는 권준이 중위장으로 복귀함에 따라 무의공은 전부장(前部將)으로 나선다. 6월 5일 당항포해전에서 조선수군은 26척으로 이루어진 적 함대를 공격해 25척을 가라앉혔다. 무의공은 남은 한 척이 도주할 것으로 예상하고 다음날 새벽 잠복하고 있다가 적선을 침몰시키고 100명 남짓한 왜적을 몰살시켰다. 무의공은 직접 활을 쏘아 왜장을 사살했다. 무과 시험장에서 선조의 눈에 들었던 그의 활쏘기 실력은 충무공을 앞섰다. 7월 6일 3차 출전은 한산대첩으로 이어진다. 충무공은 조정에 올리는 장계에 ‘방답첨사 이순신은 왜적의 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서 온전히 사로잡아 왜군의 머리 4급을 베었는데, 다만 사살하기에만 힘쓰고 머리를 베는 데는 힘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2척을 쫓아가서 일시에 불살랐다’고 썼다. 당시 전공을 평가하는 기준은 적의 머리, 곧 수급의 숫자였다. 그런데 충무공은 적을 사살하고 적선을 분멸(焚滅)하는 데 초점을 맞추되 공로를 인정받고자 무리하게 접근해 적의 머리를 베는 데 급급하지 않도록 했다. 이렇듯 무의공은 충무공이 제시한 전투 원칙에도 가장 충실한 장수였다. 무의공은 1594년 4월 충청수사에 오른다.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로 줄곧 충무공을 지원한 이억기와 더불어 충무공이 가장 신뢰하는 무의공이 서·남해 방비를 책임지는 지휘부가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 환상의 지휘 체계를 깨뜨린 원균이 칠천량에서 처참하게 패한 것은 우리가 모두 안타까워하는 사실이다. 무의공은 통제사에 복귀한 충무공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두 달 남짓 지난 1597년 11월 다시 경상우수사에 임명됐다. 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은 1598년 11월 19일 새벽 시작됐다. 통제사 이순신을 잃었지만 조선과 명나라 연합수군은 200척 남짓한 적선을 쳐부수는 대승을 거뒀다. 무의공은 1604년 선무공신 3등에 올랐고 1607년 완천군(完川君)에 봉해졌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시절 군영에서 세상을 떠났다.
  • “어머니가 종교단체에 빠져 파산… 아베와 관계있다고 생각”

    “어머니가 종교단체에 빠져 파산… 아베와 관계있다고 생각”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암살한 야마가미 데쓰야(41)의 범행 동기는 ‘정치 신념’이 아닌 ‘특정 종교단체에 대한 원망’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의 어머니가 파산에 이를 정도로 한 종교단체에 막대한 돈을 기부했는데, 이 종교단체에 아베 전 총리가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특정 종교단체에 대한 원망이 일본 우익의 상징을 쓰러트렸다. 10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외신에 따르면 전직 해상자위대원인 야마가미가 이날 경찰 조사에서 특정 종교단체의 이름을 거론하며 “어머니가 신자이고 많은 액수를 기부해 파산했다”며 “반드시 벌을 줘야 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라현에 거주하는 야마가미는 지난 8일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찰에 붙잡힐 때 그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자위대에서 3년 근무한 이력이 있지만 무직이며, 범죄 이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야마가미를 살인 혐의로 전환해 검찰에 송치했다. 야마가미는 처음부터 아베를 범행 대상으로 삼은 건 아니다. 처음엔 이 종교단체 지도자를 노렸으나 접근이 어려워지자 범행 대상을 바꿨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아베의) 정치 신조에 대한 원한 때문이 아니다”라며 “아베가 (종교단체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보고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NHK에 따르면 그는 해당 종교 시설에서 최근 총기의 시험 발사를 하기도 했다. 일본 시사주간지 슈간겐다이는 이 종교단체로 ‘옛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 가정연합)를 지목했다. 겐다이 등에 따르면 통일교 산하 민간 국제기구인 천주평화연합(UPF) 집회에 아베 전 총리가 온라인으로 참석해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해 노력해 온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단체 홍보 관계자는 도쿄신문에 “(야마가미 어머니가) 오랜 기간 신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경제적인 사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야마가미의 아버지는 건설회사를 운영했으나 야마가미가 어릴 때 숨지면서 어머니가 회사를 물려받았다. 이후 어머니는 종교 활동을 열심히 했고 많은 기부금을 내면서 가산을 탕진했다. 어머니는 2002년 나라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고 2009년에는 건설회사도 문을 닫았다. 야마가미의 친척은 아사히에 “야마가미가 종교단체를 계속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야마가미를 포함한 세 자녀가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친척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보도했다.
  • 아베 총격 이유가 통일교? “과거 신자 확인… 지금은 안 나와”

    아베 총격 이유가 통일교? “과거 신자 확인… 지금은 안 나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41)의 어머니 종교가 통일교라는 보도에 대해 “현재는 신자가 아닌 것 같다”고 해명했다. 통일교 관계자는 10일 “추측성 기사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 상황인데 과거에는 범인의 어머니가 교회를 다녔던 근거가 있는데 지금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야마가미는 어머니가 종교에 너무 빠져 많은 기부를 해 가정이 어려움을 겪었고, 아베 전 총리가 해당 종교와 관련 있다고 생각해 저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현지 언론은 야마가미가 수사당국에 모친이 빠진 종교가 통일교라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애초 이 종교의 지도자를 노렸던 야마가미는 접근이 어려운 탓에 아베를 목표로 바꿨고 총격을 가했다. 야마가미는 아베가 지난해 9월 통일교 관련 단체인 천주가정연합이 공동 개최한 ‘싱크탱크(THINK TANK) 2022 희망전진대회’에 특별연설한 것을 보고 아베와 통일교가 관련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교 측에서도 헌금 규모나 출석한 교회 등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파악이 안 된 상황이다. 통일교 관계자는 “분파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분파 쪽에 있는 건지 확인이 안 돼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설명했다. 통일교는 2012년 문선명 총재 사후에 내부 분열을 겪으면서 다양한 소수 분파로 나뉘었다. 통일교 관계자는 “신속하게 알아보는 중인데 현재는 교회를 안 나오는 상황이다. 확인하고 공식 입장이 나오면 알리겠다”고 설명하며 추모의 뜻을 전했다. 
  • “종교에 빠진 어머니의 파산, 아베 탓이라 생각”

    “종교에 빠진 어머니의 파산, 아베 탓이라 생각”

    살인 혐의로 검 송치된 야마가미아베 인사말 영상 보고 범행 결심日주간지 “옛 통일교” 지목건설사 운영한 부친 사망 뒤 고생친척들 “먹을 게 없다고 전화도”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암살한 야마가미 데쓰야(41)의 범행 동기는 ‘정치 신념’이 아닌 ‘특정 종교단체에 대한 원망’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의 어머니가 파산에 이를 정도로 한 종교단체에 막대한 돈을 기부했는데, 이 종교단체에 아베 전 총리가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특정 종교단체에 대한 원망이 일본 우익의 상징을 쓰러트렸다. 10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외신에 따르면 전직 해상자위대원인 야마가미가 10일 경찰 조사에서 특정 종교단체의 이름을 거론하며 “어머니가 신자이고 많은 액수를 기부해 파산했다”며 “반드시 벌을 줘야 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라현에 거주하는 야마가미는 지난 8일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찰에 붙잡힐 때 그는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다. 자위대에서 3년 근무한 이력이 있지만, 무직이며 범죄 이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야마가미를 살인 혐의로 전환해 검찰에 송치했다. 야마가미는 처음부터 아베를 범행 대상으로 삼은 건 아니다. 처음엔 이 종교단체 지도자를 노렸으나 접근이 어려워지자 범행 대상을 바꿨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아베의) 정치 신조에 대한 원한 때문이 아니다”라며 “아베가 (종교단체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보고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日주간지 슈간겐다이 종교단체로 ‘옛 통일교’ 지목 일본 시사주간지 슈간겐다이는 이 종교단체로 ‘옛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 가정연합)를 지목했다. 겐다이 등에 따르면 통일교 산하 민간 국제기구인 천주평화연합(UPF) 집회에 아베 전 총리가 온라인으로 참석해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해 노력해 온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 단체 역시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해당 단체의 신자임을 확인했다. 단체 홍보 관계자는 도쿄신문에 “(야마가미 어머니가) 오랜 기간 신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경제적인 사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야마가미 아버지는 건설회사를 운영했으나 야마가미가 어릴 때 숨지면서 어머니가 회사를 물려받았다. 이후 어머니는 종교활동을 열심히 했고 많은 기부금을 내면서 가산을 탕진했다. 어머니는 2002년 나라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고 2009년에는 건설회사도 문을 닫았다. 야마가미의 친척은 아사히에 “야마가미가 종교단체를 계속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야마가미를 포함한 세 자녀가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친척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보도했다.
  • 자위대 출신 아베 총격범…안경 벗고 덤덤한 표정[포착]

    자위대 출신 아베 총격범…안경 벗고 덤덤한 표정[포착]

    전직 해상자위대원 출신인 총격범 야마가미 데쓰야(41)가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마가미는 지난 8일 유세 중이던 아베 전 일본 총리 등 뒤 7∼8m 떨어진 거리까지 걸어가 자신이 직접 만든 사제 총으로 두 발을 쏴 아베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체포 당시 안경을 썼던 야마가미는 10일 검찰에 송치되면서는 안경을 벗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서를 나서면서 취재진 카메라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기도 했다. 야마가미는 총격 당시 경찰관의 제지를 전혀 받지 않고 아베에게 접근해 총을 두 발이나 쏘았다. 당시 현장 경비를 담당했던 총책임자는 경비에 문제가 있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현장 동영상을 보면 첫 총성이 울린 뒤에도 아베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는 경찰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베 전 총리는 총격으로 인한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빠진 종교에 아베 전 총리가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직접 만든 수제총…집에서 추가 발견 아베 전 총리를 저격하는 데 사용한 총기는 범인이 직접 만든 수제총으로 한번에 6개의 탄환이 동시에 발사되는 구조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장에서 압수된 수제총은 길이 약 40㎝, 높이 약 20㎝였고, 경찰은 범인의 집에서 여러 정의 수제총을 추가로 발견했다. 나라현 경찰은 용의자가 시제품을 여러 번 제작하면서 살상 능력을 높인 것으로 보고 있다. 야마가미는 “2개의 금속 통을 묶어 목판과 접착테이프로 고정했으며 6개의 탄환을 담을 수 있는 캡슐을 통에 넣는 구조”라고 진술했다. 그는 “인터넷으로 화약을 구입했다. 처음에는 폭탄을 만들려고 했지만 잘 안돼 총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 “아베 살해범, 어머니 ‘통일교’ 심취해 재산 탕진하자 범행” <日 언론>

    “아베 살해범, 어머니 ‘통일교’ 심취해 재산 탕진하자 범행” <日 언론>

    아베 신조(安倍晋三·67) 전 일본 총리를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41)가 어머니가 빠진 종교 단체와 아베 전 총리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가운데, 해당 종교 단체가 옛 통일교회(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라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왔다. 10일 일본 겐다이비즈니스(現代ビジネス)는 야마가미가 경찰 조사에서 '통일교회'를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내 어머니는 통일교회 신자이며, 아베 신조가 통일교회와 친한 것을 알고 노렸다"고 진술했다. 야마가미는 또 "(애초) 통일교회의 지도자를 노렸지만 어려울 것 같아 아베 전 총리를 노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겐다이비즈니스는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회 행사에 동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본 야마가미가 둘 사이에 접점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했다. 해당 매체는 "통일교회와 적대관계인 일본 공산당 기관지 ‘신분 아카하타(しんぶん赤旗)’에 의하면 지난해 9월 12일 통일교 산하 민간 국제기구 천주평화연합(UPF) 집회에 아베 전 총리가 온라인으로 참석했다"고 보도했다.아베 전 총리가 당시 "오늘에 이르기까지 UPF와 함께 세계 각지의 분쟁 해결, 특히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해 온 한학자 총재를 비롯한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아베 전 총리는 2021년 9월 12일 경기 가평군 청심월드센터에서 열린 '싱크탱크'(THINK TANK) 2022 희망전진대회'(UPF,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공동 개최) 자리에서  "세계인권선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 기초적 집단단위로서의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UPF 평화 비전에 가정의 가치를 강조하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라는 온라인 연설을 한 바 있다. 행사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온라인으로 참석했다. 겐다이 취재에 따르면 야마가미 모친은 통일교회에 심취해 재산을 탕진했다. 야마가미 모친이 통일교회에 많은 돈을 기부하다 2002년 8월 21일 파산 선고를 받은 것으로 겐다이 취재진은 확인했다. 겐다이는 "야마가미가 가정이 무너진 것에 대해 통일교회와 아베 전 총리를 향한 원한을 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 "야마가미의 어머니는 열렬한 통일교 신자로, 지금도 해당 종교를 믿고 있는 것 같다"는 현지 수사 관계자 말을 전했다.겐다이는 이어 "보수 정치인의 두목이었던 아베와 통일교의 관계는 ‘나카타초(永田町·일본 정계) 관계자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덧붙였다. 또 “통일교회 계 정치단체인 국제승공연합은 1968년 창설된 보수파 그룹으로 자민당의 보수계 의원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인터넷상에서는 진작부터 아베와 승공연합의 관계가 거론돼 왔다”고 주장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야마가미가 경찰 조사에서 '해외에서 유입된 특정 종교단체'의 이름을 거론하며 "반드시 벌을 줘야 한다고 원망해왔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통일교 관계자는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통일교회 신자였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와 일본 본부 쪽에 확인을 해보니 예전에 통일교회 신자였는데, 지금은 교회를 나오지 않는 것 같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야마가미 어머니가 헌금을 얼마나 냈는지, 언제까지 교회에 다녔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일본 언론에서 기사들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 일본 경찰에서 관련 문의가 온 것은 없다"며 "일본 경찰에서 공식적인 발표를 하든가 조사를 요청해오면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 “엔진에서 불꽃이” 공포의 2시간 비행…불안에 떤 대한항공 승객들

    “엔진에서 불꽃이” 공포의 2시간 비행…불안에 떤 대한항공 승객들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엔진 결함이 발생했다. 여객기가 긴급 착륙하기까지 2시간가량의 비행 동안 승객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10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한국 시간으로 이날 0시 25분 이스탄불 공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KE9956편(A330-200)은 이륙 1시간 50분만인 오전 2시 14분쯤 2번 엔진(오른쪽)의 진동 메시지를 감지해 최근접 공항인 바쿠공항으로 목적지를 변경 운항·착륙했다. 승객 215명, 승무원 10명이 탑승한 이 여객기는 당초 오전 10시30분쯤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일부 승객들은 엔진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목격했으며, 항공기 오른쪽 날개 좌석에 앉은 승객들은 진동과 소음은 물론 열기까지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승객들이 승무원을 부르는 순간 기내 모니터가 꺼지며 어둠이 깔렸고, 승객들 사이에선 공포감이 엄습했다. 여객기에 탑승했던 김민재(22)씨는 연합뉴스에 “처음에는 바다에 빠지거나 엔진이 터져서 죽는구나 했다”고 전했고, 최모(30)씨는 “스마트폰에 유서를 쓰고, 어머니와 누나의 손을 잡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기장이 “위험한 상황이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항공기가 안전한 상태로 운항하고 있다”고 안내했지만, 아제르바이잔 바쿠 공항 착륙까지 2시간가량이 걸리면서 승객들은 하늘 위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다. 여객기는 엔진 결함 감지 이후 2시간만인 오전 4시 15분쯤 바쿠 공항에 안전히 착륙했다. 이번 비상 착륙으로 다치거나 병원에 이송된 탑승객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은 이들 승객 수송을 위해 동일 기종 임시편을 투입할 계획이다. 임시편의 인천 공항 출발은 10일 낮 12시5분이고 인천 도착은 오는 11일 오전 7시5분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승객들의 원활한 인천 입국을 위한 사전 조치를 진행하겠다”며 “하루 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대부분의 승객이 PCR 검사 기한인 48시간을 초과하기 때문에, 인천공항 검역소 입국 시 PCR·신속항원검사 유효기간 연장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 노량해전에서 경상우수사로 ‘충무공의 최후’ 지키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노량해전에서 경상우수사로 ‘충무공의 최후’ 지키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이 방답진첨절제사 이순신(李純信)의 부임 인사를 받은 것은 1592년 1월 10일이다. 그런데 1월 16일자 ‘난중일기’에는 ‘병선(兵船)을 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답진의 군관과 관리에 곤장을 쳤다’는 내용이 보인다. 훗날의 충무공(忠武公)이 역시 무의공(武毅公)이 되는 신임 첨사의 군기를 단단히 잡은 모양새다. 무의공은 이후 충무공의 가장 충실한 참모가 되어 모든 해전의 선봉에 섰고, 노량에서 충무공이 흉탄에 맞아 쓰러지자 대신 수군 함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무의공 이순신(1554~1611)은 태종의 세자이자 세종대왕의 큰 형인 양녕대군의 6대손이니 조선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종친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과 우리말 이름이 같지만 무의공은 전주, 충무공은 덕수로 본관부터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남자가 성인이 되면 이름이 아닌 자(字)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충무공의 자는 여해(汝諧), 무의공의 자는 입부(立夫)다. ‘난중일기’에는 ‘이(李)입부가 다녀갔다’거나 ‘입부와 무엇무엇을 했다’는 글귀가 140차례나 나온다. 무의공이 임기 초의 긴장관계를 빠른 시간에 극복하고 충무공의 ‘측근 중 측근’으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다.   경기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무의공의 무덤은 KTX가 서는 광명역에서 가깝다. 입부의 집안은 양녕대군의 3대손인 증조할아버지 이윤의 때부터 당시의 시흥땅에 살았다. 입부는 아버지 이진과 어머니 복주 김씨 사이 다섯 아들의 막내로 태어났다. 입부 형제의 이름은 순서대로 이순인·이순의·이순례·이순지·이순신이다. 맹자가 인간 본성의 네가지 덕(德)이라 지칭한 인(仁)·의(義)·예(禮)·지(智)에 믿음을 뜻하는 신(信)을 보탠 것이다. 입부의 넷째 형 비변랑 이순지는 충무공이 한성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나왔을 때 옥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난중일기’에 적혀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의공도 거쳐간 비변랑(備邊郞)은 비변사의 종6품 무관이다. 입부의 두 아들 이탁과 이숙도 1603년 계묘 정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미수 허목(1595~1682)은 입부의 묘갈(墓碣)에 ‘공은 젊었을 때에 유학에 전념했으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25세에 알성시 을과에 급제했다’고 했다. 무의공도 처음에는 문과 급제를 꿈꿨지만 여의치 않자 무과로 선회한 것 같다. 무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던 조선 중기까지는 양반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무의공의 둘째 아들 이숙이 아버지 만큼이나 충무공의 측근이었던 흥양현감 배흥립의 사위가 됐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을 정점으로하는 조선수군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충무공의 리더십에 무의공과 효숙공같은 참모진의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해지면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효숙(孝肅)은 배흥립의 시호다.  무의공은 충무공보다 9살이 적다. 충무공은 31세이던 1576년(선조 9), 무의공은 24세이던 1577년(선조10) 각각 무과에 급제했다. 두 사람의 ‘관계 개선’은 부임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2월 8일자 ‘난중일기’에는 ‘우후 이몽구가 방답에서 돌아왔는데, 첨사가 방비에 진력하더라고 극찬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우후(虞侯)는 수군절도사나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이다. 충무공은 2월 19~27일 전라좌수사 휘하의 순천·광양·낙안·보성·흥양과 방답진·사도진·여도진·발포진·녹도진에 대한 검열에 나섰다. 방답진 검열은 5관 5포 가운데 마지막으로 26~27일 이루어졌다. 충무공은 ‘장편전(長片箭)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선(戰船)은 어느 정도 완전해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장편전은 긴 화살인 장전(長箭)과 작은 화살인 편전(片箭)을 가리키니 ‘화살 준비가 매우 불충분하다’는 표현이다. 충무공은 검열을 마치고 북봉(北峯)에 올라 진성 안팎의 지형을 살펴보고는 ‘외롭고 위태로운 섬이라 사방에서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성안의 연못 또한 지극히 엉성하여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첨사가 애는 썼으나, 미처 시설을 갖추지 못했으니 어찌하랴’고 했다. 한달 전 부임한 첨사가 진성의 방어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출 수는 없다는 것은 충무공도 잘 알고 있었다.  방답진은 여수앞바다 돌산도에 있었다. 방답진성 자리는 이제 어항(漁港)이자 여수시의 돌산읍 소재지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방답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옛 진성 주변은 군내리로 불린다. 그러니 동헌과 군관청, 비석 등이 남아있는 방답진의 흔적을 둘러보려면 내비게이션에 ‘군내리’를 입력해야 한다.  미수의 묘갈에는 ‘공은 처음에는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김성일 공이 한번 보고는 그의 현명하면서도 재능이 뛰어난 것을 알아 극력 추천한 것’이라고 했다. 학봉 김성일이라면 1590년 조선통신사의 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 왜란 발발 이후 파직되기도 했지만, 이후 경상도초유사로 전란 수습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이해 4월 13일 왜군선이 부산포앞바다에 몰려오면서 무의공의 존재는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출정 직전인 5월 1일자 ‘난중일기’에는 ‘진해루에 앉아 방답첨사 이순신, 흥양수령 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렀다. 그들은 모두 매우 분하여 격동했으며, 자기 한 몸을 잊어버릴 정도였으니, 과연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할 만 하다’고 했다. 행간에서 한시라도 빨리 전선으로 나가자고 재촉하는 참모들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마침내 5월 3일 녹도만호 정운과 대화에서 결심을 굳힌 충무공은 중위장인 방답첨사 이순신을 불러 다음날 새벽 출정한다는 명령을 전군에 하달토록 한다.  중위장(中衛長)이라면 참모장이다. 당시는 순천도호부사 권준이 전라좌수영의 중위장이었으나 전라도관찰사가 호출하는 바람에 자리를 비워 무의공이 대신한 것이다. 도호부사와 첨절제사는 종3품으로 품계는 같지만 순천부사는 광양·낙안·보성·흥양을 모두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던 만큼 전라좌수영에서는 선임이었던 듯 하다.  무의공은 옥포·합포·적진포로 향한 1차 출전에서 왜적의 대선(大船) 1척씩 모두 3척을 깨뜨리는 눈부신 전과를 거두었다. 사천·당포·당항포로 2차 출전한 5월 29일에는 권준이 중위장으로 복귀함에 따라 무의공은 전부장(前部將)으로 나선다. 6월 5일 당항포 해전에서 조선수군은 26척으로 이루어진 적 함대를 공격해 25척을 가라앉혔다. 무의공은 남은 한 척이 도주할 것으로 예상하고 다음날 새벽 잠복하고 있다가 적선을 침몰시키고 100명 남짓한 왜적을 몰살시켰다. 무의공은 직접 활을 쏘아 왜장을 사살했다. 무과 시험장에서 선조의 눈에 들었던 그의 활쏘기 실력은 충무공을 앞섰다.  7월 6일 3차 출전은 한산대첩으로 이어진다. 충무공은 조정에 올리는 장계에 ‘방답첨사 이순신은 왜적의 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서 온전히 사로잡아 왜군의 머리 4급을 베었는데, 다만 사살하기에만 힘쓰고 머리를 베는 데는 힘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2척을 쫒아가서 일시에 불살랐다’고 썼다. 당시 전공을 평가하는 기준은 적의 머리, 곧 수급의 숫자였다. 그런데 충무공은 적을 사살하고 적선을 분멸(焚滅)하는데 초점을 맞추되 공로를 인정받고자 무리하게 접근해 적의 머리를 베는데 급급하지 않도록 했다. 이렇듯 무의공은 충무공이 제시한 전투 원칙에도 가장 충실한 장수였다. 무의공은 1594년 4월 충청수사에 오른다.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로 줄곧 충무공을 지원한 이억기와 더불어 충무공이 가장 신뢰하는 무의공이 서·남해 방비를 책임지는 지휘부가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 환상의 지휘 체계를 깨뜨린 원균이 칠천량에서 처참하게 패한 것은 우리가 모두 안타까워하는 사실이다.  무의공은 통제사에 복귀한 충무공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두 달 남짓 지난 1597년 11월 다시 경상우수사에 임명됐다. 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은 1598년 11월 19일 새벽 시작됐다. 통제사 이순신을 잃었지만 조선과 명나라 연합수군은 200척 남짓한 적선을 쳐부수는 대승을 거뒀다. 무의공은 1604년 선무공신 3등에 올랐고 1607년 완천군(完川君)에 봉해졌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시절 군영에서 세상을 떠났다.
  • 아베 총격범 “어머니 빠진 종교에 아베 ‘영상메시지’ 보내…범행 결심”

    아베 총격범 “어머니 빠진 종교에 아베 ‘영상메시지’ 보내…범행 결심”

    아베 신조(67) 전 일본 총리에게 총을 쏴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41)는 어머니가 빠진 종교에 아베 전 총리가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10일 현지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야마가미가 경찰 조사에서 특정 종교단체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어머니가 신자이고 많은 액수를 기부해 파산했다”면서 “반드시 벌을 줘야 한다고 원망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야마가미는 애초 이 종교단체의 지도자를 노렸다. 하지만 접근이 쉽지 않자 “아베가 이 종교를 일본 내에 확산시킨 것”으로 믿고 살해 대상을 아베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아베 살해 이유에 대해 “(아베의) 정치 신조에 대한 원한 때문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고 “아베가 (종교단체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보고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이 단체는 일본이 아니라 해외에서 생긴 종교로 인터넷에는 이 단체 대표들이 설립한 민간활동단체 행사에 보낸 아베의 비디오 메시지 영상이 올라와 있다. 해당 종교단체에 따르면 야마가미의 어머니는 이 종교 신자로 등록돼 있다. 이 종교단체의 홍보 관계자는 도쿄신문에 “(야마가미 어머니가) 오랜 기간 신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경제적인 사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야마가미 아버지는 건설회사를 경영했으나 야마가미가 어릴 때 갑자기 숨지면서 어머니가 회사를 물려받았다. 이후 종교활동에 빠진 어머니가 단체에 많은 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2002년 어머니는 나라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고 2009년에는 어머니의 건설회사도 문을 닫았다. 야마가미의 친척은 아사히에 “야마가미가 종교단체를 계속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아베 전 총리는 지난 8일 오전 11시 30분쯤 나라현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쓰러진 뒤 병원으로 이송됐고, 같은 날 오후 5시쯤 사망했다.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이 참의원 선거(10일) 다음날인 11~12일 거행된다. 11일에는 친척과 지인들이 유족을 위로하며 밤을 새우는 쓰야(通夜)가 진행되고 12일에는 장례식이 치러진다. 
  • 아베 총격범 동창생들 “얌전한 우등생이었는데…”

    아베 총격범 동창생들 “얌전한 우등생이었는데…”

    아베 신조(67) 전 일본 총리에게 총을 쏴 숨지게 한 야마가미 데쓰야(41)는 학창 시절 얌전한 우등생이었다는 동창들의 증언이 나왔다. 9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야마가미의 중·고교 동창생들은 그를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인물로 기억했다. 중학교 동창생으로 함께 농구부 활동을 한 남성은 NHK에 “공부 잘하고 얌전한 우등생이라는 인상이었다”며 “말수는 적었지만 친구들도 있고 (야마가미가) 고립된 듯한 분위기는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야마가미는) 농구부에서도 중심적인 존재로 3학년 때는 주전으로 활약했다”며 “공부도 잘해서 현(縣)내 유수의 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내신 점수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이 남성은 “중학교 3학년이 되면 머리를 염색하거나 귀를 뚫는 학생도 있었지만, 야마가미는 그런 적이 없고 말썽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아베 전 총리 총격범이 야마가미라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는 다른 동창생도 “학급에서 얌전하고 눈에 띄지 않는 우등생 스타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며 “사건을 일으킬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놀랐다”고 말했다. 야마가미는 전날 나라현 나라시에서 자민당 참의원 선거 후보에 대한 지원 유세에 나섰던 아베 전 총리에게 접근해 7~8m 떨어진 거리에서 자신이 제작한 총으로 총격을 가했다. 그 자리에서 쓰러진 아베 전 총리는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과다 출혈로 숨졌다.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종교) 단체에 빠져들어 많은 기부를 하는 등 가정생활이 엉망이 됐다”고 진술했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그가 특정 종교단체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원한이 있었다”며 “이 단체의 리더를 노리려 했지만 어려워 아베 전 총리가 (그 단체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노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날 일본 언론들은 그가 경찰에서 “아베 전 총리에게 불만이 있어서 죽이려고 했지만, 정치 신조에 대한 원한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한 바 있다. 야마가미는 자민당 홈페이지에서 아베 전 총리가 8일 오전 나라현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 거리 유세를 하는 일정을 파악하고 전철로 범행 현장에 도착했다고 말했다.요미우리신문은 야마가미가 범행 전날인 7일에도 (나라시에서 210km 떨어진)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에서 열린 아베 전 총리 유세 현장에도 갔었다며 “살해하기 위해 총을 만들어 (아베 전 총리의) 유세지를 따라다녔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2002∼2005년 해상자위대에서 임기제 자위관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소총의 사격과 해체 조립에 대해서 배운 그는 인터넷에서 부품을 사서 스스로 총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야마가미는 2020년 가을부터 간사이 지방에 있는 제조업체에 근무하다가 ‘힘들다’는 이유로 올해 5월 퇴직해 무직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당국은 그가 특정 정치단체나 폭력단에 소속되지 않았으며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은 “용의자가 자신이 직접 만든 총을 사용한 ‘외로운 늑대’형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 아베 총격범, 직접 총 제작한 ‘외로운 늑대’… 日언론, 부실 경호 지적

    아베 총격범, 직접 총 제작한 ‘외로운 늑대’… 日언론, 부실 경호 지적

    아베 신조(67) 전 일본 총리에게 총을 쏴 사망케 한 야마가미 데쓰야(41)의 범행이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개인적인 이유라고 진술하면서 ‘외로운 늑대’(단독으로 행동하는 테러리스트)가 일으킨 참사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을 막지 못한 부실 경호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9일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종교) 단체에 빠져들어 많은 기부를 하는 등 가정생활이 엉망이 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는 특정 종교 단체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원한이 있었다”며 “이 단체의 리더를 노리려 했지만 어려워 아베 전 총리가 (그 단체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노렸다”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용의자가 거론한 종교 단체 간부는 사건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베 전 총리에게 불만이 있어서 죽이려고 했지만, 정치 신조에 대한 원한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민당 홈페이지에서 아베 전 총리가 8일 오전 나라현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 거리 유세를 하는 일정을 파악하고 전철로 범행 현장에 도착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검은 테이프로 감긴 사제 총을 압수했으며 자택 압수수색에서도 사제 총 몇 정과 화약류를 압수했다. 야마가미는 “인터넷에서 부품을 사서 스스로 권총을 만들었다. 권총을 많이 만들었다”고 경찰에 말했다.그는 2002∼2005년 해상자위대에서 임기제 자위관으로 재직할 당시 소총의 사격과 해체 조립에 대해서 배운 것으로 확인됐다. 2020년 가을부터 교토부에 있는 창고에서 지게차 운전 일을 했으나 힘들다며 올해 5월 퇴직해 현재는 무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당국은 야마가미가 특정 정치단체나 폭력단에 소속되지 않았으며 단독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용의자가 자신이 직접 만든 총을 사용한 ‘외로운 늑대’형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설했다. 일본 언론에서는 또 요인 경호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8일 오전 11시 30분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가두 유세를 하던 도중 야마가미가 7~8m 떨어진 거리에서 쏜 총에 맞고 쓰러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야마가미가 아베 뒤에서 천천히 다가가는 모습이 찍혀있지만, 총성이 울릴 때까지 제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야마가미는 첫 발 명중에 실패한 뒤 더 다가가서 다시 한 발을 더 쏜 후에야 제압됐다.현장엔 나라현 경찰관과 요인 특별 경호를 담당하는 경시청의 SP(Security Police) 요원도 있었다. 경찰은 사건 당시 구체적인 경비 인력 상황을 밝혀지 않았지만, SP 1명과 나라현 사복 경찰관 등 수십명이 배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비 병력은 아베 전 총리를 중심으로 사방 360도를 지켰으나 범행을 저지하지 못했다. 경시청에 근무한 한 전직 경찰관은 “당시 영상을 보면 사건 전에 용의자가 가방을 멘 채 주위를 서성이거나 아베 전 총리에게 곧바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이런 경우 의심스러운 인물을 현장에서 떨어지게 한 뒤 질문하고 소지품을 검사하는 것이 원칙인데 경비에 허점이 있었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요인 경호 전문가인 전직 경찰 간부도 “경찰관이 용의자에게 질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 완전히 경찰의 실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야마가미가 쏜 총에 맞고 쓰러진 아베 전 총리는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과다 출혈로 같은 날 오후 5시 3분에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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