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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일 사람과 향기] 문제 해결의 답을 사람에서 찾자

    [김병일 사람과 향기] 문제 해결의 답을 사람에서 찾자

    얼마 전 보육교사에 의한 유아 학대를 계기로 상정됐던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의무화 법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그 이유는 보육교사에 대한 감시보다 사랑의 마음을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말을 못 하는 어린아이를 보낸 어머니들의 반응은 실망을 넘어 분노 수준이다. 어린이집 유아 학대 외에도 세월호 침몰, 군대 내 가학행위, 이른바 땅콩 회항 등 안타까운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건 사고도 가슴 아프지만, 원인 규명과 대책 논의 과정에서 무수한 논쟁과 비방이 오가고도 모두가 동의하는 해결 방안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어 더 안타깝다. 그것은 이해집단 간에 부담할 고통은 회피하거나 상대에게 떠넘기고 국민 부담만 가중시키는 예산 증액과 인력 증원처럼 손쉬운 길을 찾으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 과정에서 정작 사고 발생의 원인 주체인 사람의 문제가 간과되고 있다. 세월호 사고가 그처럼 커진 것도 선장, 선원 등 관련된 사람들의 잘못된 가치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승객들에 대한 구명 조치는 외면하고 몰래 자신들만 먼저 탈출해 목숨을 건졌던 것이다. 최근 우리 군대에서 발생한 각종 사고 역시 그 근저에는 사람의 문제가 있다. 사병들 간 가학행위는 물론이고 고위 장교들의 성추행과 방산비리 등이 모두 그곳 사람들의 그릇된 의식과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도 사람에서 찾아야 한다. 법과 제도의 보완과 예산지원도 의미가 있겠으나, 그 운영 주체인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바뀌지 않는 한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다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유아 학대 사례를 보자. 현재 많은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비체계적이고 단기적인 교육을 받고 선발돼 배치되고 있다. 그들은 지금 만족스러운 보수도 받지 못하고 자긍심을 느낄 직업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반면에 어린아이를 키워 보지 않은 젊은 보육교사들이 많게는 20여명에 이르는 한창 말썽을 일으킬 나이의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것이 현장의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돌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것을 직시하고 대책을 찾아야 한다. 보육교사 자격취득 요건을 강화하고 보수를 인상하며 CCTV를 설치해 감시 감독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보육교사에게 유아교육 이론도 가르쳐야 한다. 이러면 다시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현장에서 보육교사가 아이들을 내 아이나 동생처럼 보듬도록 하는 것이다. 보육교사의 마음과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이 함께 변화해야 한다. 먼저 보육정책과 지원을 담당하는 관계 인사들부터 어린이를 내 자녀처럼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고 현장을 보살피면서 보육교사들이 사랑의 마음을 갖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은 곧 맑아진다. 경험이 풍부한 할머니들이 젊은 보육교사들을 돕는 방안도 찾아보자. 우리 주변에는 자녀와 손자를 희생과 사랑으로 키워 내고 이제는 여유 있게 살아가는 할머니들이 많다. 그런 분들을 보육 현장으로 안내해 젊은 교사와 함께 활동하도록 하자. 할머니들이 행동으로 보여 주는 유아 사랑을 보면서 젊은 교사들의 가슴은 점차 뜨거워지고 닮아 가게 될 것이다. 진정한 교육은 말이나 글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 주는 가르침(身敎)이다. 이와 관련해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가 있다. 현재 60세 전후한 3000명의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들이 일주일에 한 번 전국 근 1만여개 유치원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야기 할머니들은 친손자들에게 못다 준 사랑을 어린이들에게 쏟으며 변변찮은 보수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 유아들과 부모들의 반응도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이 사례를 보육교사를 비롯한 문제의 현장에 응용해 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답은 그곳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변화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 [커버스토리-마을로 뛰어든 청년들] 청춘이 뭉쳤다 골목이 변했다 마을이 웃는다

    [커버스토리-마을로 뛰어든 청년들] 청춘이 뭉쳤다 골목이 변했다 마을이 웃는다

    산업화 이후 사실상 해체된 ‘마을’이란 관계망 안으로 뛰어드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창작공간을 찾아 나서거나 공동체 복원을 꿈꾸는 이들은 물론 경쟁사회에서 만족할 만한 삶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혼자’라는 느낌을 위로받기 위해 나선 이들도 있다. 혹자는 이들을 ‘낙오자’ 또는 ‘돈키호테’로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은 많이 못 벌더라도 내가 뿌리내리는 공간에서 이웃들과 함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청년들의 용기는 이미 조용한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빌라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 담벼락을 수놓은 꽃 모양의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어른들 솜씨다. 맞은편 담벼락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아이들이 그린 흔적이 역력했다. 20~30대 디자인 작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문화예술 창작 모임인 ‘일상예술창작센터’(이하 센터)의 어린이 벽화반에 참여한 아이들의 솜씨다. 최현정(33·여) 사무국장은 “(센터가 운영하는) 공방에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5월 출범한 센터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가치를 표방한다. 센터는 ‘새끼’라는 이름(새끼줄을 꼬듯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작업한다는 뜻)의 공방에서 주민들을 위해 바느질, 그림, 목공예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강사로 마을 주민이 나서기도 한다. 신문자(33·여) 교육팀장은 “80대 중반에도 세련되고 젊은 감각의 패션을 뽐내는 할머니를 바느질반 선생님으로 초빙해 강의를 부탁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센터가 마을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한 계기는 무엇일까. 최씨는 “창작작업을 주민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문화활동에 대한 주민 욕구와 맞아떨어졌다”며 “마을시장을 열면 이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직접 쓰던 물건이나 만든 물건, 재배한 작물 등을 사고판다”고 덧붙였다. 동대문구 이문동의 ‘도꼬마리’는 1년여 전 청년 8명이 모여 만든 생활공동체의 이름이다. 도꼬마리의 창립 멤버이자 상근활동가 이선화씨는 “이문동에 사는 대학생, 대학원생, 회사원뿐만 아니라 40~50대 주민들도 회원으로 있다”며 “처음에 우리 활동을 보고 ‘새롭다’, ‘신선하다’는 호기심에 회원이 된 마을 주민들도 있다”고 말했다. 도꼬마리가 운영하는 카페는 때로 요리 공간, 공연장, 공부방으로 활용된다. 지난해 10월에는 ‘반찬모임’을 만들었다. 자녀들을 학교나 유치원에 보낸 어머니들이 매주 화요일 낮 시간에 모여 코다리조림, 겉절이, 파래무침 등의 맛깔난 반찬을 만든다. 이 밖에도 영화·다큐멘터리 상영회, 마을 토크콘서트, 수제비누 만들기 강좌, 세미나 등을 열어 주민들을 맞는다. 또 과거 ‘아나바다 운동’을 연상시키는 ‘되살림 물품’도 판매하고 있다. 주민들이 기증한 옷, 모자, 신발, 소품 등을 저렴한 가격에 되파는 사업이다. 이씨는 “마을이 안고 있는 문제를 발굴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도 도꼬마리가 마을과 공존하고 마을에 공헌하는 방법 중 하나”라며 “소비자 권리를 알리는 강연을 연 뒤로, 강연에 참석했던 주민 중 일부가 소비자 권리 알기 모임을 만들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꼬마리는 반찬모임을 청년과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반찬가게’로 진화시키고, 그 판매수익으로 마을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까지 만들 계획이다. 성북구 정릉동에는 협동조합 ‘성북신나’가 있다. 지난해 2월 출범한 성북신나는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공존하는 마을을 목표로 문화·교육 관련 활동을 기획한다. 조합원 구성도 다양하다. 20~30대 청년들이 다수지만 문화예술 활동을 하거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40~50대도 조합원 30여명 안에 포함돼 있다. 성북신나의 상근활동가인 오창민(26)씨는 “정릉동이 가진 고유한 지역 자원을 활용해 재개발·재건축 등을 하지 않고도 마을을 매력적인 공간으로 가꿀 수 있는 활동들을 고민하고 있다”며 “정릉동에 있는 사람, 공간, 이야기를 발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북신나는 사양길을 걷고 있는 전통시장을 살려 보자는 취지에서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지난해 정릉동 재래시장인 정릉시장 상인들과 함께 정릉천에서 ‘개울장’이라는 이름의 마을장터를 열었다. 단순히 먹거리만 팔지 않고 인디밴드를 초청해 공연도 했고, 아이들이 이면지를 활용해 공책을 만들거나 요구르트병으로 악기를 만들어 보는 체험 행사도 열었다. 오씨는 “자동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마을장터에 얼마든지 보고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성북신나는 주민들을 상대로 꽃꽂이 방법을 알려주는 특별 강좌를 진행하는가 하면 지난달에는 중·고교생을 위한 ‘동네 탐험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학생들이 성북구 동선동 탐방코스를 만들어 그동안 몰랐던 공간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정릉동은 북한산 국립공원하고도 가깝고, 한옥 가구도 많은 데다, 굿당이 밀집해 있어 ‘샤머니즘 박물관’과 같은 이색 장소도 있어요. 평소 학교, 학원, 집만 오가는 10대들에게 ‘정릉도 재미있는 게 많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성북신나는 청년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또 다른 목표도 있다. 오씨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청년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며 “상근활동가가 외부에서 봤을 때는 직업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마을에서 (성북신나가) 하고 있는 여러 사업을 통해 활동가란 직업도 청년들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속적인 활동이 곧 지역 생태계에 기여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 사원으로 통하는 우사단길에서는 ‘청년장사꾼’을 비롯한 20~30대 청년 창업가들이 ‘우사단단’을 조직해 마을과 공존을 꾀하고 있다. 우사단길은 2003년 뉴타운 재개발 지역으로 묶인 뒤로 10년 넘게 재개발이 지체돼 침체에 빠져 있다. 미묘한 변화가 시작된 것은 2~3년 전 청년들이 게스트하우스, 카페, 작업실 등을 차리면서부터다. 우사단길 청년들은 마을을 살리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태원 계단장’이라는 이름으로 벼룩시장을 열고 우사단길을 배경으로 마을 지도와 신문도 만들었다. 14일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소품, 잡화, 의류 등을 판매하는 총 40여개의 상점이 참여하는 야시장 ‘열정도(원효로 인쇄소 골목 동네를 살려 보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시작한 프로젝트 이름) 공장’ 행사를 앞두고 있다. 청년장사꾼의 오단(26) 활동가는 “마을에 먼저 자리를 잡은 주민들과 어떻게 공존할지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필요하다”며 “무언가를 할 때 첫 번째 기준은 ‘마을 사람들과 우리(활동가)가 즐거울 것’인지에 달려 있다. 다 같이 재미있게 놀자고 시작한 일이 누군가에게 희생을 요구하거나 힘든 노동이 되어 버린다면 지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수용소는 안다, 인간 이하의 삶을

    수용소는 안다, 인간 이하의 삶을

    인류/로베르 앙텔름 지음/고재정 옮김/그린비/465쪽/1만 9500원 인류(人類·mankind). 생물학적으로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 이르는 말이다. 인류의 명명 아래 어떠한 다른 차별과 구분은 없다. 현실은 다르다. 인류의 이름으로 인류를 착취하고, 군림하며, 인간 이하의 삶을 강제한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평등과 존엄이라는 명제가 오랜 이상(理想)일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인간으로 남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가 여전히 숙고되는 이유다. ‘인류’는 전후 프랑스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제2차 세계대전의 ‘수용소 문학’ 중 가장 중요한 기록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고전이다. 로베르 앙텔름은 알제리 전쟁 반대, 68혁명에 참가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아왔으며 모리스 블랑쇼, 자크 데리다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줬다. 그는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다 1944년 6월 체포됐다. 독일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간더스하임을 거쳐 다하우 강제수용소로 옮겨진 뒤 1945년 4월 미군에 의해 해방되면서 풀려났다. 앙텔름은 그곳에서 겪은 인간 이하의 비참한 삶과 고통스러운 기억을 때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때로는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성찰과 사유로 풀어낸다. 독일 강제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하며 오로지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했던 열 달의 시간이다. 그의 기록은 간더스하임으로 이송되는 시간에서 시작된다. 머리말에서 밝혔듯 그곳에는 가스실도, 시체 소각장도 없었다. 대신 ‘어둠, 지표의 절대적 부재, 고독, 끊이지 않는 억압, 점진적 소멸’ 등이 있었고 노역, 구타, 추위, 굶주림 등의 공포는 거대하지 않고 일상이 됐기에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인간다움의 지점은 삶에서,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13일 동안 갇힌 채 내달리는 열차에서 “내가 죽을 자리를 내 달라”는 말을 남기며 앉은 채 죽어 가는 사람을 보면서 앙텔름은 삶에 대한 예의보다 죽음에 대한 예의가 사라질 때 인간의 존엄성이 더 심각하게 훼손됨을 직시한다. 또한 수용소 철망 바깥에서 무심히 자신들을 바라보며 키득거리던 평범한 독일 처녀들, 농부들의 모습 속에서도 절망을 느낀다.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해 가져야 하는 책무에 대한 지적이다. 책은 독일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인 ‘어머니들’을 표지로 썼다. 서로 어깨를 보듬으며 웅크린 사람들은 불안한 눈빛 속 사람다움을 결코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앙텔름이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전쟁·가난·질병… 판화로 담아낸 인간의 삶과 고통

    전쟁·가난·질병… 판화로 담아낸 인간의 삶과 고통

    “우리가 전쟁에 내보내려고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다!” 전쟁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을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이는 독일을 대표하는 판화 예술가 케테 콜비츠(1867~1945)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18세에 불과했던 둘째아들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고 예술가로서 전쟁의 광기와 참혹함을 알리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콜비츠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회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사진갤러리 1, 2에서 열리고 있다. ‘독일 민중예술의 어머니’로 불리는 콜비츠는 전쟁의 비참함 외에 가난, 질병, 실직, 매춘 등 인간의 삶과 고통을 직시하며 이를 검은색, 회색, 흰색의 선 굵은 판화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작가 루쉰이 1930년대 중국에 소개하면서 처음으로 아시아에 소개된 후 20세기 아시아 민중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울시립미술관과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전시에는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판화 55점과 조각 1점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을 기점으로 전쟁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그의 작품이 소개된다. 콜비츠는 전쟁 이전에는 빈민, 노동자 계층의 억압받는 삶을 표현한 반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의 참상으로 가난, 죽음, 어머니의 사랑 등을 주로 다뤘다. 콜비츠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주요 판화 작품인 ‘직조공 봉기’ ‘농민전쟁 연작’ ‘전쟁 연작’ ‘죽음 연작’, 그리고 브론즈 입체 작품인 ‘피에타’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전쟁 연작은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슬픔을 표현한 작품으로 이 중 ‘어머니들’(1922~23년 작)은 작가 개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브론즈 조각 ‘피에타’는 종교적인 피에타와 달리 인간의 고통을 넘어서 죽음에 대한 애도와 평화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그의 후기 작품 세계를 대변한다. 또 다른 연작 ‘농민전쟁’은 ‘밭 가는 사람’으로 시작해 ‘능욕’ ‘날을 세우고’ ‘무기를 들고’ ‘폭발’ ‘전투’로 이어지다 ‘잡힌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마무리된다. 새로운 인간 공동체를 꿈꾸며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작가의 적극적인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북서울미술관은 이번 전시와 연계해 ‘콜비츠의 고향을 가다’ ‘콜비츠의 삶과 예술’ ‘콜비츠 그림 읽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전시는 4월 19일까지. (02)2124-8800.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아하! 우주]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와 태양계 가족사진

    [아하! 우주]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와 태양계 가족사진

    지구에서 인간이 찍었건, 우주공간에서 망원경이 찍었건 간에 지금까지 찍어온 모든 천체사진 중 가장 ‘철학적인 천체사진’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다. 이 사진이 지난 14일 밸런타인데이에 25번째 생일을 맞았다. 이 사진이 촬영된 날은 지난 1990년 2월 14일로 대중 천문학 책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한 故 칼 세이건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당시 명왕성 부근을 지나고 있던 보이저 1호의 망원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지구의 모습을 찍어보자고 칼 세이건이 제안했던 것. 그러면 이 우주 속에서의 지구 위치를 보다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세이건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가 만만찮았다. 그것이 인류 의식을 약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과학적으로는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게다가 망원경을 지구 쪽으로 돌린다면 자칫 태양빛이 망원경 주경으로 바로 들어갈 위험이 크다. 이는 끓는 물에 손을 집어넣는 거나 다름없는 위험한 행위라고 미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은 생각했다. 조그만 망원경으로 태양을 바로 보더라도 실명의 위험이 있을 만큼 태양빛은 망원경과는 상극이다. 이런 상황이라 칼 세이건도 아쉽지만 한 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새로 부임한 우주인 출신 리처드 트룰리 신임 국장이 결단을 내렸다.  "좋아, 그 멀리서 지구를 한번 찍어보자!" 그래서 그날 태양계 바깥으로 향하던 보이저 1호에게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지구-태양 간 거리의 40배나 되는 60억km 떨어진 곳에서 보이저 1호가 잡은 지구의 모습은 그야말로 ‘먼지 한 톨’이었다. 칼 세이건은 이 광경을 보고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라고 시작되는 감동적인 소감을 남겼을 뿐만이 아니라,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기도 했다. 이때 보이저 1호가 찍은 것은 지구 뿐이 아니었다. 해왕성과 천왕성, 토성, 목성, 금성 들도 같이 찍었다. 이 모든 태양계 행성들은 우주 속에서는 역시 먼지 한 톨이었다. 사진에 보이는 지구 주변의 붉은빛은 행성들이 지나는 길인 황도대에 뿌려진 먼지들이 태양빛을 받아 만들어내는 빛깔이다. 보이저 1호는 쌍둥이 탐사선으로, 보이저 2호(1977년 8월 20일 발사)보다 보름 늦게 발사됐는데도 ‘1호’라는 명칭을 얻었다. 2호보다 더 빨리 우주를 탐험하도록 설계돼 현재 지구-태양 간 거리의 130배가 넘는 190억㎞ 거리에서, 그리고 2호는 150억㎞ 거리에서 태양계 바깥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인간이 만든 물건으로 가장 멀리 날아간 셈이다. 보이저 1호의 수명은 애초 20년으로 예상됐으나, 플루토늄 배터리를 이용해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수명 예측은 이제 2025년 혹은 2030년까지 늘어났다. 그때까지 지구로 보내올 최초의 태양계 밖 탐사자료에 대한 기대는 벌써 천문학계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아래는 칼 세이건 박사의 ‘창백한 푸른 점’ 육성 소감이다. 다시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여기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그네들의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총량, 수없이 많은 그 강고한 종교들,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최고 지도자들,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기-햇빛 속을 떠도는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지구는 우주라는 광막한 공간 속의 작디작은 무대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 속의 한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장군과 황제들이 흘렸던 저 피의 강을 생각해보라. 이 작은 점 한구석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구석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잔혹함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자주 서로를 오해했는지, 얼마나 기를 쓰고 서로를 죽이려 했는지, 얼마나 사무치게 서로를 증오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라. 이 희미한 한 점 티끌은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의 선택된 장소라는 생각이 한갓 망상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은 거대한 우주의 흑암으로 둘러싸인 한 점 외로운 티끌일 뿐이다. 이 어둠 속에서,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구는,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에서, 삶이 깃들일 수 있는 유일한 세계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해 살 수 있는 곳은 이 우주 어디에도 없다. 갈 수는 있겠지만, 살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 인류는 당분간 이 지구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천문학은 흔히 사람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인격형성을 돕는 과학이라고 한다.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인간의 오만함을 더 잘 드러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자각을 절절히 보여주는 것이 달리 또 있을까?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해외여행 | 멕시코의 마법사들 Magic Cities in Jalisco, Mexico①매직시티 Pueblo Magico

    해외여행 | 멕시코의 마법사들 Magic Cities in Jalisco, Mexico①매직시티 Pueblo Magico

    내가 아는 세상의 가장 근사한 마법은 사랑이다. 그리고 두 번째 마법은 여행이다. 멕시코 서부의 할리스코주를 여행하는 동안 3개의 매직시티를 방문했고, 도처에서 마법사들을 만났다. 매직시티 Pueblo Magico 멕시코에서의 ‘마술같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2001년 멕시코 정부가 주도한 프로그램으로 현재 83개의 도시가 매직시티로 지정되어 있다. 멕시코의 역사, 전설, 상징, 축제와 전통을 간직한 작은 도시들은 해변휴양지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멕시코의 내밀한 속살을 보여 준다. 매직시티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심의 전깃줄을 모두 지중화해야 하고 공공장소에 무료 와이파이를 설치하는 등 도시정비와 편의시설 확충을 진행해야 한다.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할리스코Jalisco주에는 총 5개의 매직시티(산 세바스티안 델 외스테, 타팔파, 테킬라, 라고스 데 모레노, 마사미틀라)가 있는데, 그중 3곳을 방문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Pueblo Magico Ⅰ San Sebastian del Oeste 산 세바스티안 델 외스테 산골 마을의 금빛 추억들 300년 동안 금과 은이 쏟아지던 광산도시의 부귀영화는 사그러들었지만 꺼지지는 않았다. 스스로 반짝반짝 빛나는 방식을 선택한 매직 시티는 보석처럼 귀하다. 어느새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해변의 휴양도시 푸에르토 바야르타를 출발해 시에라마드레 산중으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졸음에 겨워 누웠더니 돌덩이들의 비명이 귓가를 스쳐가는 듯 생생하다. 그렇게 도착한 해발 1,650m의 고원에는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 있었다. 불과 한시간 반 전에 머물렀던 도시와 전혀 다른 풍경. 일단 공기부터가 달았다. 여전히 쨍쨍한 햇볕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훨씬 상쾌해졌다. 산 세바스티안 델 외스테는 1605년부터 금과 은을 캐어 온 노다지 땅이었다. 1785년쯤에는 25개 이상의 광산이 세워졌고 1900년대에는 주민이 2만명에 육박했을 정도였다. 유명한 휴양도시인 푸에르토 바야르타는 당시 이 마을로 오기 귀한 관문에 불과했다니 격세지감이 크다. 1910년 멕시코 혁명 이후 쇠퇴하기 시작해 이제는 인구 600여 명의 고즈넉한 마을이 됐지만 그렇다고 을씨년스러운 폐광촌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바로크 양식으로 세워진 교회 건물은 산중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우아하고 석재와 석회질 점토로 세운 오래된 건물들이 여전히 보존되어 있다. 채굴한 금과 은, 동을 보관하던 건물은 현재 파벨론 호텔Pabellon Hotel로 사용되고 있는데 건물 뒤로 돌아가면 경비병들이 숨어서 망을 보던 망루가 아직도 건재하다. 오래된 풍경 사이로 동네 주민을 태운 말들이 말발굽을 또각거리며 지나갈 때, 이곳이 매직시티로 지정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을은 작지만 하루 정도의 나들이에 최적화되어 있다. 하나하나 다 들러 보고 싶은 레스토랑, 바, 카페들이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멕시코 전통요리를 먹고 싶다면 레스토랑 ‘라 루피타La Lupita’를, 좀더 익숙한 요리를 원한다면 이탈리아 출신의 부부가 운영하는 ‘몬테벨라Montebella’를 추천한다. 후식으로는 마을의 명물인 100% 천연 아이스크림을 강추한다. 그리고 커피는! 커피만을 위한 장소는 따로 있다. 마을 초입에 위치한 ‘카페 데 알투라Cafe de Altura’는 5대째 대를 이어오고 있는 커피농장이다. 커피나무 사이로 걸어 들어가니 온통 벌레투성이. 지난 125년 동안 농약 한 번 치지 않은 유기농 농장임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한 해 생산하는 아라비카종과 로부스타종을 모두 합치면 30톤 정도인데, 인근에서 다 소진되기 때문에 마을 밖으로 빠져 나갈 틈이 없다. 그 자체로 유물이라고 할 만큼 낡은 로우스팅 기계는 여전히 바쁘게 원두를 볶으며 변함없는 완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가업을 잇고 있는 라파엘 산체스Rafael Sanchez씨는 어머니 마리아씨가 개발한 여러 가지 디저트도 함께 상품화해서 판매하고 있었다. 신선한 유기농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의 궁합 앞에 지갑이 환히 열렸지만 짐이 될까 봐 한 봉지밖에 구입하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Cafe de Altura San Sebastian del Oeste, Jalisco +52 322 297 2845 에스프레소 원두 1kg 180페소 산 세바스티안 컬처 투어 +52 322 132 5417 www.tourculturalsansebastian.com ●Pueblo Magico Ⅱ Tapalpa 타팔파 여전히 꼿꼿한 멕시코의 자부심 200년 이상 태어난 자리를 지켜 왔던 타팔파의 가옥들은 이 마을에 대한 힌트다. 굳게 닫혀 있지만 두들기면 쉽게 열린다. 그 안에 진짜 멕시코와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타팔파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도시였다. 나무 기둥 위에 타일로 지붕을 얹고 벽을 하얀색과 붉은 색으로 나눠서 칠한 집들은 17~18세기부터 이어온 역사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1650년대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세운 산 안토니오 교회건물이 노쇠하자 1976년 바로 맞은편에 새로 지은 과달루페성모성당은 마을의 거대한 랜드마크였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곳이다. 도시는 오래된 풍경뿐 아니라 보수적인 가치관까지 이어오고 있다. 타팔파의 시장님보다 마을 신부님의 권위가 더 높아서 아직도 “우리 신부님이 말씀하시길…”이라는 말이 통하는 곳. 인구가 6,000여 명 정도라서 이웃이 모두 가족처럼 지내는 공동체적 마을이다. 사제에 대한 이 마을의 존경심은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1530년경 이곳에 도착한 스페인의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아타코Attaco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타팔파에서 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수도사들은 교회보다 원주인들을 위한 병원Hospital de Indios을 먼저 짓고 환자와 고아, 과부들을 돕기 시작했다. 또 선교사들은 병원을 지역 주민들이 살 수 있도록 내어주고 타팔파에 땅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아타코와 타팔파의 규모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현재 아타코의 인구는 1,000여 명으로 타팔파의 6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옛 병원은 현재 ‘파르마시아 비비엔테Farmacia Viviente’로 사용되고 있는데 허브를 재료로 멕시코 전통방식으로 생약을 제조하는 여인들의 협동조합 사무실이자 매장이다. 대를 이어 전해 온 선조들의 지혜를 전수받은 17명의 여인들은 허브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심지어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묘약도 만들 수 있는데 너무 많이 쓰면 신경을 마비시키는 부작용도 있어서 잘 만들지 않는다(원래 사랑은 이성을 마비시키지 않는가). 몇가지 크림을 사고 돌아서는데 소화불량에 특효라며 녹즙처럼 생긴 물약을 함께 넣어 준다. 줄곧 과식을 해온 것을 어찌 알았을까. 연륜의 통찰이 내 안색을 훑고 지나갔나 보다. 방문할 만한 또 다른 조합은 수공예품을 만드는 타팔파 우먼스 협동조합이다. 가방, 장식물, 털모자, 캔디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어서 직접 보고 구입할 수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다. 단 일요일에만 문을 여니 일정을 확인할 것. 타팔파에 머무는 동안 마침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성모알현 퍼레이드가 열렸다. 메르세드성모성당Templo de Nuestra Sra de La Merced의 성모상을 앞세운 퍼레이드 행렬이 마을을 도는 동안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밤이 늦도록 축제를 즐겼다. 토착신앙에 스며든 멕시코의 가톨릭이 성모에 대한 유난스러운 애정을 보이는 이유가 어쩌면 지난 며칠 동안 타팔타에서 만났던 여인들, 전통을 수호하고 가족을 보호하고 부양까지 하는 멕시코들의 어머니들 때문이 아닌지, 마법 같은 깨달음이 왔다. 타팔파 관광정보 www.tapalpaturistico.com ●Pueblo Magico Ⅲ Tequila 테킬라 시간을 빚는 마을, 기다림이 빚은 술 테킬라를 마신다는 것. 그것은 시간을 마시는 일이라고 했다. 테킬라 마을에 가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왜 테킬라라는 술에 시간이, 그리고 멕시코의 자부심이 담겨 있는가를. 와인은 포도로 만든다. 맥주는 보리와 홉으로, 소주는 쌀로 만든다. 그렇다면 테킬라는? 아가베agave·용설란로 만든다. 생김새가 알로에와 비슷하지만 더 크고 단단하며 잎 끝이 가시처럼 뾰족하다. 테킬라는 아가베의 줄기를 원료로 만드는 술이다. 열매나 곡물을 이용하는 다른 술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원료를 얻기 위해 적어도 8년, 길게는 1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테킬라에 대한 나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갑자기 독한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테킬라 술병 앞에 서면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이었다. 10년 가까운 기다림도 기다림이지만, 수확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테킬라를 수확하는 과정을 히마Jima라고 하는데 아가베는 자라는 동안 몇 번씩 잎을 잘라 주어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은 아가베가 더 튼튼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의 운송수단은 나귀였는데, 이것만큼은 현대화되어 자동차를 이용한다. 아가베를 재배하고 수확하고 운송하는 모든 노하우는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로 전수된 중요한 기술들이다. 이들을 히마도르Jimador라고 부른다. 이렇게 수확된 아가베가 테킬라가 되는 과정을 보기 위해 테킬라 마을로 들어갔다. 테킬라는 술의 이름이기 전에 마을의 이름이다. 해발 고도 1,000m에 자리한 테킬라 마을은 화산토질이어서 특별히 블루 아가베 재배에 더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테킬라 품질 보증을 위해 멕시코 정부가 아가베 생산지역을 제한하면서 테킬라 마을은 멕시코의 테킬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됐다. 유네스코도 2006년에 테킬라 마을의 농장과 주조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여전히 작고 한적해 보이는데, 모든 영광을 흡수한 것은 요새처럼 자리잡고 있는 ‘문도 쿠에르보Mundo Cuervo’, 즉 쿠에르보 월드다.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대중적인 테킬라 브랜드가 탄생한 바로 그곳이다. 남미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양조장 라로옌La Rojen과 테이스팅장, 상점, 호세 쿠에르보 가문의 저택 등으로 이뤄져 있다. 20년 이상 일해 왔다는 안나씨는 “데칼라는 멕시코의 역사이고 문화이자 인내심의 산물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자신들의 역사가 바로 테킬라의 역사라는 것. 250년의 역사를 이어 오고 있는 호세 쿠에르보는 100% 블루 아가베Agave Azul만을 사용한다는 자부심을 부르짖지만 대량생산을 위해 수액을 믹스한 대중적인 상품도 판매하고 있다. 양조장 지하 저장고에는 1890년대의 테킬라도 보관 중이다. 오크통에서 막 따라 낸 테킬라는 휘발이 되지 않아서 도수가 무려 51도나 됐다. 귀한 것은 알겠는데, 홀짝 넘겨지지가 않았다. 내게 시간의 앙금은 여전히 쓰기만 한가 보다. 호세 쿠에르보 익스프레스Jose Cuervo Express 2012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호세 쿠에르보 익스프레스는 테킬라 마을로 가는 유일한 기차이자 멕시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객열차다. 선택하는 객차에 따라 서비스가 다른데 다이닝 객차를 선택하면 영광스러운 과거로의 여행은 무제한 테킬라 시음과 함께 시작해 샌드위치, 꼬치요리, 토스타다, 화지타 등의 간단한 음식이 제공된다.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과달라하라의 페로멕스Ferromex역에서 출발해 테킬라 간이역까지 60km를 달리는 동안 아가베 농장과 열차를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생긴다. 출발 시간 매주 토요일 11:00, 금요일과 일요일 운행은 별도로 문의할 것 프로그램별로 1,350~1,700페소 +52 800 523 977 377 www.josecuervoexpress.com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멕시코정부관광청 www.newmexico.org Mundo Cuervo Jose Cuervo 73 46400 Tequila, Jalisco, Mexico 양조장 투어(1시간 소요) 180페소, VIP 투어(테이스팅 포함, 2시간 소요) 430페소, 농장방문 및 VIP 투어 650페소 +52 374 742 0050 www.mundocuervo.com
  • [김병일 사람과 향기] 평범한 어머니도 자식을 훌륭하게 기른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평범한 어머니도 자식을 훌륭하게 기른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율곡 선생의 외가가 있는 강릉에서 퇴계 선생의 고향인 안동으로 예상치 않은 손님들이 두 차례나 방문했다. 2월부터 방영 예정인 강원의 자랑스러운 역사 인물을 조명하는 ‘뿌리 깊은 강원’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지역 방송국 관계자들이다. 첫 번째 소재로 퇴계 어머니 춘천 박씨와 율곡 어머니 신사임당을 다룬다고 했다. 두 분이 어떻게 해서 자식을 위대한 인물들로 키워 냈는지 널리 알리려는 취지에서다. 두 어머니는 매우 대조적이다. 강릉이 고향인 신사임당은 그야말로 삼척동자도 다 아는 훌륭한 어머니의 표본이다. 반면 춘천 박씨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어머니다. 고향도 강원도가 아니다. 본관은 춘천이지만 이미 고조부 때 경상도 용궁(경북 예천)으로 이사 온, 굳이 말하면 경상도 사람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두 분을 비교 조명하려는 이유는 왜일까? 자녀 교육에 열중하는 오늘의 어머니들에게 역사에 널리 알려진 어머니 못지않게 묻혀 있는 평범한 어머니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고 관심도 더 끌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옳은 판단이다. 성공한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 인생 뒤에는 어머니가 계셨다고 말한다. 퇴계 역시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어머니라고 했다. 춘천 박씨는 과연 어떤 분이고 또 어떻게 자식을 길렀기에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존경받는 퇴계가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을까. 자신이 직접 지은 어머니 묘갈지(묘비글)에서 퇴계는 회상한다. “어머니는 덕망 있는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타고난 품성이 아름다웠으며 시어머님 섬기는 데 정성을 다했고 제사를 성심껏 모셨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33살의 어머니 앞에는 나이 어린 7남매가 있었다. 삼년상을 마친 후 밤낮으로 농사짓고 누에 치는 일에 매달렸고, 자식들이 성장하자 가난을 벗기 위해 더욱 힘을 쏟으셨다. 자식들이 원근의 스승을 찾아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늘 훈계하시기를 문예(지식)만 치중하지 말고 몸가짐과 행실에 주의를 기울이거라, 또 세상 사람들이 과부의 자식은 교양 없다 비방하니 너희는 남보다 백배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다. 비록 글을 배운 적은 없으나 평소 아버님의 가르침과 아들들이 공부하는 것을 곁에서 듣고 깨쳐 학식과 생각이 여느 선비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이를 안으로만 지니고 겉으로는 항상 고요히 품고만 있었을 뿐이다.” 어머니의 이러한 삶은 아들의 삶에 나침판이 됐다. 어떤 점에서였을까. 먼저 불우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 태도다. 젊은 나이에 홀로 된 어머니는 안살림과 밖의 일을 가리지 않고 밤낮없이 일해 가정을 일으키고 자식 교육에 헌신했다. 쉼 없이 학문에 정진해 조선 최고의 학자가 된 퇴계는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다. 다음으로 지식보다 사람됨을 더욱 중시하는 가정교육 분위기다. 사람은 지식보다 행실이 더 중요함을 자식들에게 독려하며 어머니 스스로 먼저 솔선해 실천하는 모습이 자식에게 절실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퇴계가 늘 겸손과 배려를 실천한 것도 이 점을 어머니로부터 배워 몸에 배게 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자를 모르는 어머니도 자식을 훌륭하게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을 몰라 지식이 얕아도 끊임없이 견문을 얻어 지혜를 터득해 가면 올바른 처신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자녀로부터 얼마든지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자녀 또한 이를 본받아 훌륭하게 자랄 수 있다. 퇴계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식음을 전폐해 꼬챙이처럼 말라 목숨을 잃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 지극한 효도는 삶의 정신적 멘토를 잃은 아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훗날 어머니 묘소 앞에 묘갈지를 직접 써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시대 여성의 묘갈은 드물다. 그럼에도 퇴계는 어머니의 것을 직접 만들어 세웠다. 존경의 마음이 시대적 관행과 문화를 뛰어넘게 한 것이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오늘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자녀를 훌륭하게 기르고 효도까지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어떤 것인지 잘 가르쳐 주는 사례다.
  • 색점 위에 색점 : 누군가의 흔적 위, 지난 시간을 감추고 새로운 시간을 덧입히다

    색점 위에 색점 : 누군가의 흔적 위, 지난 시간을 감추고 새로운 시간을 덧입히다

    작가 양주혜(60)는 2006년 광화문 제자리찾기 공사장에 바코드와 색점으로 광화문을 그려 설치됐던 대형 가림막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있었던 프랑스문화원 설치(1993)에서 시작해 옛 문화관광부 청사 건물, 아르코미술관 외벽, 용산구 한남동 일신빌딩 공사장 펜스, 바닷가, 공터 등 공공적인 성격의 설치 작업과 조형물 작업을 주로 해 온 그가 이번에는 생활에서 친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직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서울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위치한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시간의 그물’에는 누군가 사용했던 보자기, 방석, 이불보, 타월과 같은 일상용품과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색점을 찍어 작업한 작품 3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천에 그려진 작품들에서는 공사장 가림막, 미술관 외벽 등 공공적 성격의 설치작업과 달리 보다 개인적이고 친밀감이 느껴진다. 유학 시절 읽어 내기 어려운 프랑스어로 된 책 위에 글자를 지워 나가듯 색칠을 한 것이 그가 30여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 색점 작업이다. 하나의 색점 위에 또 다른 색점을 찍어 나가면서 지난 시간을 감추고 새로운 시간을 덧입힌다. 전시 오픈에 맞춰 기자와 만난 작가는 “내게 색채는 빛의 흔적이고, 점을 찍는 작업은 시간을 시각화하는 방법”이라면서 “색깔의 배열은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이하게도 이번 전시에 사용된 소재들은 모두 누군가 사용했던 것들이다. 심지어 캔버스도 지인이 외국으로 떠나면서 선배들이 남기고 간 것으로 물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에 덧칠을 해 사용했다. 그는 “누군가의 흔적이 있는 바탕에 작업을 했더니 마음이 더 편하더라”라면서 “재료와 작업과정 등을 돌이켜 보면 앞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시간과 그 위에 작업했던 시간들이 작품에 중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천은 직조에 따라 그 위에 칠해진 물감과 조응해 자연스러운 구김과 우그러짐을 만들며 형태가 변했다. 바탕 천 위에 그려진 점과 선은 직물의 성격과 형태의 흐름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시간과 함께 오래 곰삭아 세상에 나온 작품은 물감을 엄청나게 빨아들이는 탓에 무게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작가가 작품과 함께 보낸 시간의 무게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면서 세 아이를 키워야 했던 그는 “한다고 했지만 엄마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 같다”면서 “요즘은 누빈 천에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고 있다. 어머니들의 손바느질처럼 무의미하다고 여겨졌던 작업들에 대한 오마주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시는 2월 25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두란노 아버지학교 창립 20년 김성묵 상임이사·한은경 본부장 부부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두란노 아버지학교 창립 20년 김성묵 상임이사·한은경 본부장 부부

    두란노 아버지학교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국내외 61개국에서 30만명이 수료했다. 많은 아버지들이 이 학교를 통해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좋은 남편으로 거듭났다. 이혼 직전까지 갔던 위기의 가정이 회복되는 등 놀라운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16년 전에 시작된 두란노 어머니학교도 40개국에서 수료자 10만명을 배출하며 많은 변화를 이끌고 있다. 가정 해체가 속출하는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가정회복운동을 이끌어온 김성묵 두란노 아버지학교운동본부 상임이사와 한은경 두란노 어머니학교운동본부장 부부를 만났다. 이들은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정체성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비결로 “삶의 실천을 통한 관계 변화”를 꼽는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바우뫼로 두란노 아버지학교운동본부에서 진행됐다. →아버지학교를 시작한 계기는. -김 이사) 온누리교회의 고 하용조 목사가 1991년 가정사역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내게 말한 게 계기가 됐다. 교회에 등록한 지 1년도 안 됐고 처음 본 내게 그런 말을 하기에 ‘그런 게 있으면 우리가 들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당시 우리 가정이 깨지기 일보직전 상태였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며 접대한답시고 1년 365일 술 먹고 밖으로 돌다 보니 그 지경에 이르렀다. 아내는 이미 이혼을 결심했으나, 초등학교에 다니던 큰아들에게 “이혼하면 누구와 살래”라고 물었다가 “나는 엄마도 좋지만 아빠도 필요해”라는 한마디에 이혼을 접었단다. 열심히 살았지만 방향과 관계가 엉망이니 가족이 힘들어졌다. 뒤늦게 “내가 잘못 살았구나”라고 깨닫고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너희를 준비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한숨과 함께 “하나님의 뜻인가 보네. 해보자”는 답을 얻었다. 우리는 싸우고 인내하며 준비했다. 그러면서 부부 관계가 회복됐다. 아버지가 관계의 뿌리라는 것을 깨닫고 1993년 온가족이 참여하는 가정훈련학교로 가정사역을 시작했다. 이어 1995년 10월 아버지학교가 시작됐다. 1기로 참여해 ‘참 필요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1997년부터 맡아서 운동으로 전환해 지금까지 하고 있다. 초기에는 사람들이 하도 안 와서 문을 닫을 뻔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가 터지자 고개 숙인 아버지들이 몰려왔다. (아버지학교는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슬로건 아래 진정한 아버지의 권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함으로써 건강한 가정문화를 만들어가는 사회운동이다. 초기에는 기독교인 대상 일반아버지학교로 시작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일반인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비기독교인 대상 열린아버지학교가 2004년부터 개설 운영되고 있다. 강의와 함께 가족에게 편지 쓰기와 안아주기 등 과제를 하고 반응 등을 공유하기, 아내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 등이 관계 변화의 촉진제가 된다. 미혼 남성을 대상으로 한 예비아버지학교, 재소자를 상대로 한 교도소아버지학교, 부부가 함께하는 부부학교 등도 열린다. 해외 60개국 247개 도시에서 열린 아버지학교에 교민뿐 아니라 현지인까지 포함해 5만여명이 참여했다.) →아버지학교를 통해 개인과 가정에 큰 변화를 일으킨 비결은. -김) 요즘에는 삶의 실천의 장이 없다. 아버지학교는 과제를 통해 상대방의 반응을 공유하니 역동이 일어난다. 안아주니 아내가 좋아하더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도 하게 된다. 그런 게 관계 변화를 이룬다. 그러니 행복해지고, 행복해진 사람은 그 행복을 유지하려고 한다. 교육은 듣고 끝나지만 실습의 장을 계속 열어놓는 것이 좋은 효과를 내고 계속 하고 싶게 자극한다. →20주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를 텐데. -김) 전문가도 아닌데, 대장암 3기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며 개인사업을 내려놓고도 여기까지 온 게 감사할 뿐이다. →보람과 성과는. -김) 아버지학교를 통해 부부가 10년씩 따로 살다 회복되거나, 알코올중독에서 회복되거나, 이혼 직전에 회복된 가정이 무수히 많다. 아이들이 아빠에게 상처를 받았다가 회복되는 등 관계회복 사례는 끝이 없다. 삶의 방향을 돌린 사람들도 많다. “아버지학교 덕택에 우리 가정이 살아났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 →교도소나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가정, 노숙자 등 소외계층을 위한 아버지학교의 반응은. -김) 어려운 사람일수록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인성회복 프로그램으로 모든 교도소에서 다 열린다.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고 소중하게 느낀다. 교도소에서 세수와 목욕을 전혀 안 하던 분이 아버지학교를 하면서 세수와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어서 교도관이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학교 사람들이 나를 안아주는데 냄새가 나면 안 된다”고 하더란다. 노숙자가 가정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결국은 사랑과 보살핌, 배려가 중요하다. →가부장제가 심한 나라를 비롯한 해외에서도 현지인 대상 아버지학교가 활발한 이유는. -김) 해외도 원리는 똑같다. 문화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전 세계적으로 아버지들의 부재, 무책임이 문제다. →아버지학교가 성년을 맞아 새롭게 도약할 계획은. -김) 주 고객이 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아내와 자녀들이더라. 마케팅 개념을 도입해 그들에게 더 적극 다가가려고 한다. 새로운 시대 요청에 따라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젊은 아빠들을 위해 5주 대신 3주 코스로 압축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야 할지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은퇴자에 대해서는 노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령화사회를 미리 준비하도록 할 계획이다. (어머니학교는 올바른 자아상을 회복함으로써 행복한 아내이자 좋은 어머니가 돼 가정을 회복시키도록 하기 위해 1999년 시작됐다. 기독교인 대상 일반어머니학교와 비기독교인 대상 열린어머니학교를 운영한다. 시어머니와 장모, 재소자와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어머니학교도 열린다.) →어머니들은 어떤 걸 배우나. -한 본부장) 여성들이 강해지다 보니 남성을 비하하는 유머가 많이 나오는데 원인을 깨우쳐야 한다. 엄마보다 전문직 여성이 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머니가 건강하고, 아버지를 살려야 가정이 건강해진다. →시어머니와 장모 학교가 눈길을 끄는데, 효과는. -한) 신혼부부가 깨지는 과정에 어른들의 개입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애를 1~2명 낳아 전력투구하다 보니 쉽게 떠나 보내지를 못해 간섭과 조종을 하게 된다. 자녀를 대리 배우자로 삼아서 문제다. →교도소나 다문화가정 대상 어머니학교는 어떤가. -한) 반응이 굉장히 뜨겁다. 평생 한 번도 안겨본 적이 없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여성들이 많다. (한 본부장은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다’에서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여성이 행복한 아내로, 따뜻한 엄마로 설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나 자신과 화해해야 건강한 엄마가 되고, 부부가 하나가 돼야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아내가 되며, 자녀를 경건하게 양육해야 건강한 사랑을 베푸는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좋은 남편 되기 프로젝트’를 통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을 이루라 ▲모든 일에 아내와 의논하라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라 ▲자녀 양육에 적극 참여하라 등 존경받는 좋은 남편이 되는 21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가정이 위기라고 한다. 가정을 바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바람직한 역할은. -한)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하는데 완벽한 엄마는 없다.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이면 충분하다. 가정이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줘야 한다. 엄마가 자녀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긍정적으로 경험시키는 것이다. -김) 어머니는 가정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해서, 아이들의 가장 소중한 존재인 어머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독립을 성취하게 해야 한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풍요로운 아이들이 사회성이 높다. 부부가 하나가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부모와 자녀 관계보다 먼저 부부가 하나 되지 않으면 효도든 자녀 양육이든 모두 어렵다. →맞벌이 부부가 직장과 가정생활을 모두 잘하려면. -김) 물이 위험한데 좋다고 그냥 들어가면 빠져 죽는다. 수영을 배워야 한다. 부부 생활도 마찬가지다. 익사율이 높다. 특히 맞벌이 부부는 집안일과 양육문제 등을 감안할 때 관계 훈련을 더 받아서 가정을 어떻게 꾸릴지에 대해 일치된 방향을 가져야 한다. 투자한 만큼 행복해진다. →결혼을 안 하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안 낳는 사람들이 많다. -김) 그분들의 심정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결혼 생활의 가장 큰 기쁨은 자녀를 키우는 재미다. 아이를 키우며 성숙해지고 삶이 풍성해진다. 사회적 의무 차원에서도 아이를 낳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은 국가의 심장이다. 국가에는 국민과 국토, 주권이 있어야 하고, 그중 국민이 가장 중요하다. 국민은 가정에서 만든다. 결혼을 잘 안 하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이혼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인구가 회복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가정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김) 가난해도 알콩달콩, 오순도순, 싱글벙글 좋은 관계 속에서 부모가 가정을 지키고, 서로 양보할 줄도 알고, 노인을 공경하는 그런 게 행복이다. 가족 관계가 행복해야 한다. -한) 돌아갔을 때 편안하다는 느낌을 주고, 돌아갈 곳이 되어주는 것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100세 시대를 맞아 노후를 보람 있게 보내려면. -김) 건강과 재정, 취미활동도 좋지만 부부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사는 데 가장 고귀한 것은 봉사활동 등 의미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는 부부들에게 조언한다면. -한) 이기적인 사람들의 만남이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갈등을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보면 좋겠다. 결혼하면 행복해지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은 위험하다. 서로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고 살 필요도 있다. -김) 갈등이 있으면 잘못 만났다고 탓할 게 아니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배워야 한다. 갈등의 원인이 성격 차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거짓말이다. 성격은 돌이킬 수 없으나 연애할 때는 행복했다. 아버지학교를 거쳐도 성격은 변하지 않지만 행복하다. 관계훈련을 하기 때문이다. 가정이 무엇인지, 행복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훈련해야 한다. 한국인이 사회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가정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똑똑해지지만 양보하고 배려하는 인성과 사회성은 무너지고 있다. 가정에서부터 인성교육이 안 되고 상처와 분노가 생기기 때문이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 김성묵 상임이사·한은경 본부장 부부는… 김성묵(67) 상임이사와 한은경(65) 본부장은 캠퍼스 커플이다. 고려대 사학과 4년 선후배인 이들은 학창시절부터 열렬히 사랑하며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김 이사는 대학교수의 꿈을 포기하고 취업하며 1974년 마침내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혼 직전까지 갔다가 가정사역을 계기로 회복했다. 김 이사는 외국항공사 등을 거쳐 1991년부터 개인사업을 하다가 2002년 대장암에 걸린 뒤 접었다. 한 본부장은 중학교 교사를 6년간 하다가 육아를 위해 전업주부가 됐다. 그러던 중 아버지학교와 어머니학교를 맡으면서 강사 등으로 국내외에서 맹활약 중이다.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석사과정을 나란히 수료했다. 아들 둘에 손자가 4명이다.
  • 40억 호화 빌라… 집안이 명품관이다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富’] 상위 1%의 주거

    40억 호화 빌라… 집안이 명품관이다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富’] 상위 1%의 주거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도로는 역시 ‘강남 중의 강남’답게 각종 외제차로 붐비고 있었다. 갤러리아백화점에서 청담사거리까지 이어지는 800여m의 ‘명품매장 거리’를 걷다가 한강 방향으로 나 있는 골목길로 들어서자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아기자기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카페와 갤러리, 스튜디오 등을 지나자 길바닥에 쓰레기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골목길 양쪽으로 5층 이하의 고급 빌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3~4m 높이의 웅장한 담벼락과 십수 미터 간격으로 설치돼 있는 폐쇄회로(CC) TV가 ‘이방인’을 노려봤다. 청담중학교와 청담사거리, 영동대교 남단을 경계로 한 1.5㎢ 정도 면적의 ‘청담동 빌라촌’이다. 이 중 한 빌라의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밀번호 없이는 빌라 안에 발을 디딜 수 없다. 주민이 인터폰을 통해 열어 줘야 건물에 들어설 수 있다. 문이 열리자 50대 경비원이 경계 섞인 눈으로 낯선 이를 맞았다. 이윽고 취재를 위해 어렵사리 섭외한 중소기업 사장 부인 A(52)씨의 빌라에 들어섰다. A씨의 집은 256㎡(77평) 규모로 40억원을 호가한다. 현관을 지나자 20세기 초 유럽풍의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넓은 거실 창으로 들이친 오후의 햇살과 구석마다 놓여 있는 스탠드 불빛이 집안을 부드럽게 감쌌다. 짙은 갈색 톤의 원목 마루가 깔린 50㎡ 정도 넓이의 거실 위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펜디’ 카펫이 놓여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프랑스 명품 가구인 ‘로셰보보아’ 소가죽 8인용 소파와 2인용 패브릭 소파가 직각으로 자리하고 있다. 집주인이 직접 고른 추상 회화와 조형 작품들도 거실 벽면과 주변을 꾸미고 있다. A씨는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살리기 위해 네오클래식풍으로 했다”면서 “얼마 전 유명 영화배우가 ‘웃돈을 얹어 줄 테니 집을 팔라’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거실 창쪽으로는 1억 3000만원대의 독일제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다. 지난해 초 영국 명문대에 입학한 외아들에게 입학 선물로 사 준 것이다. 부부 침실에는 빅토리아풍 침대와 패브릭 소파 등이 놓여 있다. 아들 방 역시 원목 침대와 소파, 책상 등이 갖춰져 있다. 주방 찬장에는 덴마크의 유명 식기 브랜드인 ‘로얄 코펜하겐’ 접시들이 우아함을 뽐내고 있다. A씨는 “아들과 영국에서 지낼 때 사 모았던 가구들을 이삿짐으로 갖고 들어온 게 많지만 요즘도 취미 삼아 틈틈이 수입가구 전문점에서 사들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스탠드를 더 사오면 집을 나가겠다’고 협박했지만 아직 집에 잘 들어오는 걸 보니 본인도 인테리어에 만족하는 눈치”라며 웃었다. 수도권에서 운수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2년 전 서울 한남동의 한 고급아파트 단지로 이사 왔다. 옛 단국대 부지에 자리한 이 아파트는 2009년 한국의 ‘베벌리힐스’를 표방하며 분양을 시작했다. 이 단지의 생명은 보안이다. 단지 입구에서부터 경비요원이 낯선 이를 막아섰다. 11만㎡ 규모의 단지 안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는 것은 물론 청색 유니폼을 입은 경비요원과 관리소 직원들이 수시로 단지 길가를 오가고 있었다. 거래가가 30억원이 넘는 B씨의 284㎡(86평)형 아파트에 들어서자 70㎡가 넘는 거실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바닥과 대부분의 벽이 크림색 대리석으로 돼 있었다. 드레싱룸을 지나 욕실에 들어서자 변기 뚜껑이 자동으로 열린다. 센서로 사람이 들어서는 걸 인식한다. 욕실 크기만 10㎡ 가까이 된다. 웬만한 호텔 스위트룸 화장실보다 넓다. 욕조 앞에는 미니 TV도 설치돼 있다. 안방 베란다로 나가니 한남동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파트를 나와 커뮤니티센터(입주민센터)로 향했다. 단지 안은 거대한 ‘야외 갤러리’다. 생태연못, 소나무 가로수길, 생태수로 등이 있었고 곳곳에 해외 유명 작가들의 조형 작품들이 보였다. 센터 앞에는 난꽃 모양을 한 영국 작가 마크 퀸의 ‘욕망의 고고학’이 자리하고 있다. 마티외 메르시에, 베르나르 베네 등 다른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눈에 띈다. 센터에 들어서자 온갖 꽃들을 모아 그린 마크 퀸의 대형 유화 작품과 크리스마스 트리, 샹들리에 등으로 장식된 로비가 눈에 들어왔다. 영어로 재잘대는 아이들과 젊은 어머니들이 수영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로비 안내원에게 라커룸 키를 받아 실내수영장으로 들어섰다. 네댓 명의 아이들이 강화 유리 천장에서 내려온 햇살을 받으며 4개 레인에서 물살을 가르고 있었고 안락의자에 앉은 엄마들의 웃음소리가 간간이 수영장의 허공에 울려 퍼졌다. 2층에는 구사마 야요이의 조형 작품 ‘호박’을 중심으로 카페가 마련돼 있었다. 커피와 음료수 등이 3000원 남짓으로 저렴한 편이다. 센터를 이용할 때는 현금이나 카드를 쓰지 않는다. 입주자 카드로 먼저 결제하고 관리비 등으로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사우나와 스크린골프장 등 다른 시설들도 5성급 호텔 수준이다. B씨는 “단지 가구 수가 600가구 정도지만 여기 주민센터는 2000가구 규모의 강남 아파트보다 훨씬 넓다”면서 “이곳 가격이 3.3㎡당 4000만원이 넘는 데다 관리비만 매달 200만원 가까이 나오지만 시설이나 입지 조건, 입주민들의 수준 등을 감안하면 서울 시내에서 여기만 한 곳이 없다”고 했다. 중형 전문병원 원장의 부인인 C(52)씨는 부자의 군집화(群集化)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C씨 남편의 병원은 경기 성남시에 있지만 집은 서울 압구정동이다. 가장 큰 요인은 ‘동네 분위기’였다. C씨는 “병원 인근의 분당 지역은 삭막한 주상복합으로 가득 차 있어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았다”면서 “압구정동은 친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데다 동네 분위기도 아늑해서 좋다”고 했다. 부촌은 공기도 다르다. 청담동 빌라에 거주하는 변호사 D(47)씨는 “거리를 청소하는 집진 차량이 하루에도 두세 번씩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집 먼지가 덜하고 공기도 좋다”면서 “강남 쪽이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 수명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가로등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아 밤에 상대적으로 덜 어둡다고 한다. 부자들은 집을 재테크 수단으로 삼지 않아도 되니 살기 좋은 곳에 오래 눌러앉는 경우가 많다. 복지재단 이사장 E(73)씨는 1980년대 초반 이후 인생의 절반을 ‘방배동 주민’으로 살아왔다. 그동안 세 번의 이사를 했지만 모두 방배동 안에서만 맴돌았다. 인근 호텔 레스토랑 회원권도 가지고 있어 약속도 가능하면 주변에서 잡는다.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만 고집했다. 지금 사는 집도 대지 400㎡, 건평 150㎡의 2층 단독주택으로 시가 40억원 정도다. 1년에 2~3번은 가족끼리 가든파티도 연다. E씨는 “방배동은 강남치고는 조용한 편이어서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라며 “밤에 서너 번씩 순찰차가 다니는 데다 보안업체 서비스도 이용하고 있어 불안감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지방대 교수인 F(55)씨도 올해로 21년째 목동 주민이다. 유산 등으로 순자산만 50억원이 넘지만 지금 사는 단지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다. 주중에는 학교가 있는 지방 도시에 머물지만 주말 생활만 목동에서 해도 만족스럽다. 아이들이 외국에서 몇년 생활하다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적응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주변에 외국 생활을 한 학생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F씨는 “주변에 목동에 사는 아이들끼리 연애나 결혼을 하는 사례가 많은 걸 보면 과거 ‘여의도 키드’처럼 ‘목동 키드’라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역 커뮤니티도 활발한 편이다. 자녀 학교나 학원 등을 매개로 한 모임도 만들어진다. D씨는 “타워팰리스 문화에 끼기 위해 타워팰리스나 아이파크에 월세로 사는 사람들도 주변에 꽤 있다”면서 “특히 사업 하는 사람들은 이웃 인맥을 통해 비즈니스를 한다”고 했다. A씨는 “청담동 주민들은 부모가 고위 관료나 전문직, 기업인인 경우가 대다수여서 어릴 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면서 “안정적으로 살아왔으니 비슷하게 자란 사람들 사이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상위 1%는 집 내부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중소기업 사장 G(65)씨는 20여년 전 압구정동 아파트 꼭대기층 중형 평수 2채를 산 뒤 벽을 터 합치는 식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거실 천장을 강화 유리로 만들어 햇빛이 그대로 실내로 들어올 수 있게 했고 작은 연못까지 만들었다. G씨는 “아이들이 최근 모두 결혼해서 이젠 큰 집이 필요 없지만 집안 구석구석 손때가 묻어 쉽게 팔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외국계 기업 한국지사장인 H(44)씨는 4년 전 싱가포르에서 귀국하면서 동부이촌동의 아파트 180㎡형을 15억원 정도에 샀다. 그리고 시스템 에어컨, 대리석 자재 등 시설 확충과 구조 변경에 2억원 넘게 썼다. H씨는 “외국에 살 때처럼 모던한 분위기로 바꿨다”고 했다. 한 은행 PB는 “유명 건축가에게 의뢰해 집을 아예 갤러리로 짓거나 한옥을 사들여 인테리어에만 수억원을 쓰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 기자 douzirl@seoul.co.kr
  • [김준의 바다맛 기행] 동해서 건진 겨울의 맛 ‘도루묵’

    [김준의 바다맛 기행] 동해서 건진 겨울의 맛 ‘도루묵’

    “횟감으로는 암컷보다 수컷이 좋드래요. 암컷 도루맥이는 구이용이래요.” 강원도 사투리만큼이나 정겨운 생선이 도루묵이다. 겨울이면 두세 차례 주문진, 속초, 삼척의 어시장을 기웃거리다 보니 강원도말도 이제 귀에 쏘옥 들어온다. 도루묵은 10월부터 12월 무렵에 1000~2000개의 알을 낳는다. 알은 막이 두껍고 점액질이 있어 모자반 등 해조류에 덩어리로 붙어 산란한다. 1년 정도 자라면 10㎝, 4년이면 약 20㎝까지 자란다. 알 밴 도루묵을 ‘알도루묵’, 수컷을 ‘수도루묵’이라 하며, 살이 희고 지방질이 많아 부드럽고 고소하다. 동해안에서 잡은 도루묵이 크기가 작은 것은 채 자라지 않은 것을 잡기때문이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급속 냉동을 시켜 일 년 내내 요리하는 집도 있다. 한때 원폭 피해자들에게 좋은 음식이라는 소문에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일본의 북부지방에서는 염장해서 먹기도 하며, 정월이면 알을 요리해 먹는 풍습이 있다.도루묵은 도루묵이, 도루맥이, 은어(銀魚), 목어(木魚), 환목어(還木魚), 환맥어(還麥魚)라고도 부르는 농어목 도루묵과에 속하는 냉수성 어류다. 우리나라 동해와 일본의 중부 이북, 캄차카 반도, 알래스카 해역에 분포한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진흙이나 모래로 이루어진 수심 200m에 머물다가 산란기인 11월에서 12월에 연안으로 올라온다. 강원도 연안에서는 여름에 도루묵이나 명태가 많이 잡히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한류성 어종이 여름에 많이 잡힌다는 것은 냉해가 우려된다는 의미다. 일본에서는 도루묵이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는 겨울에 잘 잡혀 뇌어(魚)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거친 바다에서 다른 물고기들이 바위 밑으로 숨을 때 알을 낳는 지혜로운 고기다. 모래를 좋아해 영어 이름이 ‘샌드 피시’(sand fish)다. 모래가 발달한 강원도 연안에서 많이 잡히는 것은 이런 생태적 특징 때문이다. 도루묵의 유래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임진왜란 당시 피란길에 오른 선조가 한 어부가 바친 ‘묵’이라는 물고기 맛을 보고 흡족하여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전쟁이 끝난 후 피란길에 먹었던 은어가 생각나 다시 찾았다. 하지만 피란 시절과 달리 산해진미가 수라상에 오르는데 옛날 맛을 느낄 리 없었다. 자신의 변한 입맛은 모르고 선조는 수라상을 물리며 ‘도로 묵이라 불러라’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 이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냉수성 어류인 도루묵이 동해가 아닌 황해 의주에서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함경도와 강원도의 특산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루묵은 20, 30년 전만 해도 즐겨 먹지 않던 생선이었다. 오죽하면 어부들이 그물에 도루묵만 가득하면 ‘말짱도루묵’이라 푸념을 했을까. 하지만 지금은 구이, 찌개 등 동해안을 찾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잡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연안의 수초에 알을 낳기 위해 찾아온 도루묵은 방파제에서 낚시뿐만 아니라 통발과 뜰채로도 쉽게 잡을 수 있다. 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여행객들이 방치한 통발이 도루묵에게는 치명적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새벽시장을 둘러본 뒤 서둘러 삼척의 장호항으로 향했다. 동해 위로 뜨는 해를 보고 싶었다. 장호항은 울릉도와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어항이다. 해가 뜨길 기다리는 동안 손이 시리다 못해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아쉽게 구름 속에서 떠오르는 해로 만족했지만 갈매기의 군무를 앞세우고 만선으로 돌아오는 도루묵 잡이 배를 만날 수 있었다. 배가 들어오자 따뜻한 물에 잠깐 손을 적신 어머니들의 손놀림도 바빠졌다. 글 사진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joonkim@jeri.re.kr ■어떻게 먹을까 배 은빛으로 반짝이고 등은 얼룩 선명해야 좋아 회는 아가미·지느러미 제거하면 뼈째로 ‘꿀꺽’ 도루묵은 배 색깔이 은빛으로 반짝이고 등의 얼룩이 선명하며 살이 단단한 것이 좋다. 도루묵은 주로 구이, 찌개, 회, 조림으로 요리한다. 간단하게 술을 한 잔 하려면 도루묵 구이가 좋다. 구이는 수컷보다는 알도루묵이 좋다. 톡톡 터지는 알 맛 때문이다. 찌개를 끓였을 때는 팍팍한 느낌이지만 구이는 온기를 가득 담은 반숙의 상태로 입안에서 터진다. 특히 싱싱할수록 알 속에 있는 점액질이 끈적끈적하고 진하다.. “도루메기는 겨드랑이에 넣었다 빼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다 자란 도루묵이 26㎝ 정도인데 알은 3~4㎜ 정도다. 몸의 크기에 비해서 알이 크다. 명태나 대구의 알보다 훨신 크다. 보통 알을 익히면 푸석거리는데 도루묵 알은 두꺼운 껍질의 식감과 쫀득거리며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술에는 역시 얼큰한 도루묵 찌개가 좋다. 냄비 바닥에 무나 감자를 도톰하게 썰어서 깔고 잘 손질한 도루묵을 올린다. 그리고 고춧가루, 후춧가루, 다진 마늘을 넣고 약한 불에 보글보글 끓인다. 구이에 비해 수컷이 찌개에 좋다. 도루묵은 비린내가 나지 않고, 피부와 양기에 좋아 남녀노소 즐길 수 있다. 구이나 찌개와 달리 회는 산지 어시장이 아니면 구경하기 힘들다.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제거하면 뼈째 씹어 먹을 수 있다. 겨울철이면 강원도 바닷가에서 도루묵을 말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겨울 해풍에 말린 도루묵은 일 년 내내 밑반찬으로 상에 오른다. 도루묵을 비롯해 가자미, 명태, 횟대 등 동해안에서 나는 생선은 염장보다는 해풍에 말려서 조림으로 많이 해 먹었다. 함경도에서는 식해를 만들어 먹던 겨울 저장음식이었다. 식해는 생선에 양념을 해서 삭혔다 먹는 젓갈의 일종이다. 내장과 머리를 제거한 도루묵을 잘 씻은 다음 소금을 뿌려 사흘 정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꾸덕꾸덕 말린다. 그리고 기장으로 밥을 해서 고춧가루, 다진 마늘, 생강, 소금과 버무린 다음 항아리에 도루묵 한 줄에 밥 한 줄씩 켜켜이 담고 보름이나 스무날 정도 숙성시킨다. 엿기름 물을 이용해서 삭히기도 한다. 그후 무를 넓적하게 썰어 소금에 절여 물기를 짜낸 다음 삭힌 도루묵과 고춧가루, 다진 마늘, 생강을 넣고 버무려 다시 삭힌다. 빠르면 일주일 만에 먹을 수 있다.
  • 15. Q여사에게 (5)사랑하니까 더 걱정스러운 우리 가족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5. Q여사에게 (5)사랑하니까 더 걱정스러운 우리 가족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아무 때나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것은 물론 제 속옷 갈아입는 것까지 참견을 하십니다. 우리 두 내외를 너무 갓난애 다루듯 하셔요. 매일 화를 낼 수도 없고 가끔 우울하고 불행한 기분에 빠져버립니다.” 인생살이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한참 전, 활자 매체도 그리 풍부하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대중 미디어를 통해 고민을 상담하곤 했습니다. 과거 선데이서울도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라는 고정 코너를 운영하며 많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마다 아픈 사연들이 하얀 편지지에 적혀 선데이서울 편집국으로 속속 배달됐고, 기자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40여년 전 그 시절의 고민들은 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코너의 주요 내용을 발췌, 몇회로 나눠 전달합니다. (답변 중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적절하게 보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내용 자체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보시기 바랍니다.)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5)사랑하니까 더 걱정스러운 우리 가족 [Q여사에게] 지나친 어머니의 간섭 세상의 어머니들은 왜 그리 눈치가 없을까요. 저는 결혼 9개월의 새색시입니다. 저는 무남독녀 외딸이고 남편은 7남매의 넷째. 저의 부모님이 외로우실까봐 저희는 살림을 친정에서 차리기로 했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순조롭게 되어 나가고 있습니다만 어머니의 너무 자상한 관심이 요즘은 귀찮은 간섭으로 변해가는 것이 탈이에요. 밤이면 불 끄고 일찍 자라고 성화이시고, 아침에는 사위가 식사를 많이 안 한다고 꾸중이십니다. 아무 때나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것은 물론 제 속옷 갈아입는 것까지 참견을 하십니다. 우리 두 내외를 너무 갓난애 다루듯 하셔요. 매일 화를 낼 수도 없고 가끔 우울하고 불행한 기분에 빠져버립니다. 무슨 묘안이 없을까요. <서울 성북동에서 이경아> 어서 아기를 낳아드리세요 하루빨리 아기를 낳아 드리세요. 그것이 최선의 해결책이 될 거예요. 부모의 눈에는 육순의 자식도 어린애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따님을 시집 보낸 지 벌써 9개월이 지났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따님을 어른으로 인정하기가 싫으신 거예요. 살림을 따로 났더라도 그럴 텐데 같은 집안에 그대로 살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 수 밖에요. 아기를 얼른 낳아 드리면 싫더라도 현실을 인정하시게 될 거예요. 그러고 나면 어머니의 관심은 모두 손주에게로만 쏠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 가서는 오히려 따님과 사위에게 무관심한 어머니를 서운하게 생각할 걸요. 당신은 귀염둥이 아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어머니와 다투지 않을 마음의 준비나 해두시죠. <Q> -선데이서울 1969년 3월 2일자 ▒▒▒▒▒▒▒▒▒▒▒▒▒▒▒▒▒▒▒▒▒▒▒▒▒▒▒▒▒▒ [Q여사에게] 누드 보는 고교생 아들, 불량해진 게 아닐까요 저의 외아들은 올해 16세의 고등학생입니다. 지금 같아서는 성격이 쾌활하고 공부는 보통보다 상(上),스포츠도 몇 가지 취미로 하고 있는 데다 어른들에게 사근사근한 모범소년입니다. 누이도 없이 자란 외아들이어서 어떨까 싶어 가끔 교회의 학생회(남녀)를 집에 초대하는 정도로 여학생 교제를 허락하고 있어요.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저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얘가 글쎄 누드가 실린 잡지나 책을 탐독하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그 애가 훔쳐다 보는 명화집을 열어보니 맨 나체화예요. 요즘은 또 아버지가 보시는 어른 잡지(물론 그 중에는 선데이서울도 끼어 있음)를 열심히 보는군요. 아이가 갑자기 불량소년으로 변신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서울 정릉에서 김> 강압적으로 막지 말고 자꾸 사주는 것이 좋아 애지중지 곱게 키운 외아드님에 대한 그런 걱정은 어머니로서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틈에 여자의 나체사진을 보고 싶어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어서 아마 퍽 놀라셨겠죠. 그러나 벌써 열 여섯 살이라니 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싶어할 나이입니다. 강압적으로 금서(禁書) 목록을 제시하거나 책을 압수해 버리려 들지는 마셔요. 아드님 같은 모범소년이 반항적인 소위 불량소년으로 변하는 첩경은 바로 어른의 강압적인 명령이니까요. 아무 힌트도 주지 말고 당신이 원하시는 양서를 자꾸 사주시는 길 밖에는 없을 것 같군요. 그리고 한 가지 김부인, 성범죄나 폭력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춘화도 같은 것을 즐기는 계층이 아닙니다. 오히려 외설물을 즐기는 사람들은 건전한 상식인이라고 미국의 심리학자 데오도어 루빈 박사가 말하고 있으니 이 일 한 가지 때문에 아드님의 불량성을 걱정하는 것은 기우가 아닐까요. <Q> -선데이서울 1968년 11월 3일자 ▒▒▒▒▒▒▒▒▒▒▒▒▒▒▒▒▒▒▒▒▒▒▒▒▒▒▒▒▒▒ [Q여사에게] 구식 엄마가 싫어요 18세 밖에 안된 고등학교 3년생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18세란 몸차림을 단정하게 꾸미는 것이 이상할 만큼 어린 나이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어린 것이 모양만 낸다고 늘 꾸중을 하세요. 이제 마흔 밖에 되지 않은 어머니가 왜 그렇게 구식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집에서도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싶고 지저분한 차림으로 밖에 나가는 것은 질색이에요. 며칠 전에는 어머니께서 동생의 생일떡을 돌리라고 심부름을 시키시기에 머리를 빗고 거울을 들여다본 뒤 블라우스로 갈아 입었거든요. 그랬더니 펄펄 뛰시면서 불같이 화를 내시잖아요. 꼭 저희 친할머니를 닮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의 시어머님을 말예요. 2, 3년 전까지도 우리는 정말 의좋은 모녀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의가 좋기는커녕 서로 미워하는 사이라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슬퍼서 못 견디겠어요. <서울 수유리에서 이현자>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참으세요 정말 얼마나 슬플까요. 10대 때의 그런 슬픈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랍니다. 나도 어른이기 때문일까요. 일을 감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와 따님이 마찬가지 아닌가 싶군요. 어머니 편에서 보면 따님이 다 커서 심부름 같은 것도 잘 해주지 않고 어쩐지 자기 품에서 떠나 버리는 것 같은 데다가 몸차림에 마음을 쓰는 것도 어른이 되어 버리는 듯 해서 싫다는 느낌이 드셨던 거죠, 아마. 어머니께서 따님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납득하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를 권하고 싶군요. 지금 새 사실에 당황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자꾸 대항하면 어머니는 아마 현자양이 어머니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걸로 오해하실까 겁나는군요. <Q> -선데이서울 1968년 10월 6일자 ▒▒▒▒▒▒▒▒▒▒▒▒▒▒▒▒▒▒▒▒▒▒▒▒▒▒▒▒▒▒ [Q여사에게] 자식에 무관심한 부모 저는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엄마 아빠에게는 외딸이면서 맏이입니다. 국민학교 2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남자동생 둘이 있어요. 엄마는 학교 선생님, 아빠는 회사원인데 두 분 모두 바쁘게 나돌아 다니기만 합니다. 엄마는 주간과 야간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이고 아빠는 일이 끝나면 술을 마시게 되기 때문이래요. 저는 가끔 우리는 ‘사는 것 같지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에게 한번 그렇게 말했더니 깔깔 웃기만 하시잖아요. 일하는 아줌마가 있지만 동생들을 구박하니까 물 떠다 주고 사과주스 갈아주는 것은 제가 해요. 남의 엄마들은 집에서 전병도 부쳐주시고 카레 라이스도 해주지요. 저는 그런 점이 제일 부러워요. 일요일에도 아빠는 회사 나가시고 엄마는 엄마방에서 쿨쿨 주무십니다. 이런 엄마 아빠가 세상에 또 있을까요? <서울 전농동에서 이정연> 불평만 늘어놓기보다 예의를 지키도록 정연양! 착하고 예쁜 정연양의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동생들에게 물 떠주고 사과주스를 만들어 준다니 정연양의 동생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리고 엄마 아빠는 정연양이 동생들을 그렇게 잘 보살펴 주니까 더욱 행복하시겠죠? 정연양은 국민학교 5학년이면서 벌써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군요. 얼마나 흐뭇하고 기쁜 일이에요? 엄마 아빠도 남들처럼 정연양에게 카레 라이스도 해주고 함께 즐기고 싶으시겠죠. 그런데 보통 때는 바쁘시고 일요일이면 피곤해서 주무시겠죠? 어른들, 특히 밖에서 일하는 어른들은 그렇게 피곤하답니다. 그런 엄마를 위해 일요일에 정연양의 손으로 사과주스를 만들어 드려보세요.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는 기쁨이 더 클 것입니다. <Q> -선데이서울 1969년 3월 30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김준의 바다 맛 기행] 달콤 쌉싸래한 향 가득한 ‘감태’

    [김준의 바다 맛 기행] 달콤 쌉싸래한 향 가득한 ‘감태’

    하얀 눈이 수북이 내리는 섣달. 전남 무안시장에서 만난 건어물상 주인은 “입안에서 녹는다”며 한사코 파란 감태김을 찢어 입에 넣어 주었다. 뒷걸음질 치면서 받아먹은 그 맛은 나를 무안의 뻘밭으로 안내했다. 감태는 녹조류 갈파랫과에 속하는 가시파래를 일컫는 말이다. 몸은 대롱처럼 속이 비어 있고 가지가 많으며, 그 가지는 다시 가지를 내어 길이가 수미터에 이른다. 감태는 매생이, 파래, 김과 함께 겨울철 조간대에서 자라는 해조류 사총사 중 하나다. 감태, 매생이, 파래는 녹조류, 김은 홍조류다. 감태 줄기는 매생이보다 굵고 파래보다 가늘다. 매생이, 파래, 김은 대나무나 그물로 만든 발에 포자를 붙여 양식한다. 하지만 감태는 갯벌에 포자가 자리를 잡고 자라는 자연산이다. 제주 바다에는 다시마목 미역과에 속하는 갈조류의 진짜 감태가 있다. 전복이나 소라가 먹고 물고기들이 알을 낳는 해중림의 하나다. 감태는 말리면 단맛이 더욱 강해진다. ‘자산어보’에 “모양은 매산태를 닮았으나 다소 거칠고, 길이는 수자 정도이다. 맛은 달다. 갯벌에서 초겨울에 나기 시작한다”고 했다. 이끼처럼 생긴 것이 단맛이 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코끝이 시릴 만큼 바람이 매섭던 날, 무안 갯벌에서 감태 뜯는 어머니들을 만났다. 함지박 묶은 줄을 허리에 동여매고 두 손을 휘저으며 갯벌에서 푸른 감태를 채취하는 모습이 마치 무논에서 김을 매는 것과 같다. 그래서 ‘감태를 맨다’고 한다. 감태뿐 아니라 매생이나 옛날 지주식 김도 똑같은 방식으로 채취한다. 감태를 매기 위해 발이 푹푹 빠지는 펄갯벌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녀야 한다. 카메라를 든 필자의 손은 추위에 감각이 무뎌지건만 어머니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감태는 갯벌이 썰물에 오랜 시간 드러나지 않고 민물의 영향을 받는 곳에서 잘 자란다.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갯벌, 고금면 내동갯벌, 고흥군 포두면 오취리 갯벌, 무안군의 현경면 용정리, 해제면 마산리, 망운면의 탄도리, 성내리, 내리 등 무안과 탄도만 갯벌, 강진군의 도암만 갯벌, 신안군 안좌면 소곡리 갯벌, 장흥군 회진면 회진갯벌, 충남 태안군 이원면 사창리 갯벌, 서산시 팔봉면 호리 갯벌에서 많이 자란다. 옛날에는 부산 가덕도, 경남 사천 등에도 많았다. 하지만 간척과 매립, 환경오염 등으로 서식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감태는 수온과 오염에 민감해 조간대의 지표식물로 손색이 없다. 태안 기름 사고 이후 인근 지역의 어민들은 갯벌에 감태가 자라는 것을 보고 갯벌이 회복됐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태안의 가로림만 주변에 태포(苔浦)마을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지명을 ‘감태가 많이 나는 포구’로 해석한다. 태는 김(해태), 파래(감태), 매생이(매산태)를 일컫는 한자어이며, 포는 조간대를 의미한다. 해조류가 많이 자라는 갯마을이다. 이 마을은 40여 가구 중 10여 가구가 감태를 맨다. 채취한 감태는 공동 우물 ‘찬샘’에 씻어 김을 만들어 판다. 매고, 뜯고, 뜨는 과정은 모두 수작업이다. 감태 작업을 하는 어민들은 한 가구당 일 년에 1000톳을 생산해 2억원 정도의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감태김은 한 톳(100장)에 3만~4만원에 팔리고 있다. 일반 김의 한 톳 값에 비하면 매우 비싸다. 하지만 엄동설한에 갯바람에 맞서 하는 일을 생각하면 그리 여길 것만도 아니다. 글 사진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joonkim@jeri.re.kr ■ 어떻게 먹을까 흐르는 물에 조물조물… 오래 씻으면 향 달아나요 감태는 청록색이 선명하고 만졌을 때 물러지지 않으며 부드러운 것이 좋다. 갯벌에서 자라기 때문에 채반에 담아 흐르는 물에 조물조물하며 씻는다. 너무 오래 씻거나 물에 담가 두면 감태의 쌉쌀하고 달콤한 맛이 달아난다. 다 씻은 후 물기를 꽉 짜내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요리를 해야 다른 식재료와 잘 섞이고 먹기도 좋다. 가장 손쉬운 요리는 감태김치와 감태무침이다. 감태김치는 조선간장, 참기름, 다진 마늘, 다진 고추를 넣고 무친 다음 통깨를 뿌리면 된다. ‘감태지’는 우선 맑은 물에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쏙 뺀 감태를 송송 썬 풋고추와 멸치액젓에 고춧가루를 넣어 갠 양념에 넣는다. 그리고 다진 마늘과 다진 생강을 넣고 사흘 정도 숙성시킨 다음 먹는다. 다시마 국물을 넣어 국처럼 먹기도 한다. 이를 감태지라고 부른다. ‘지’는 ‘김치’의 전라도말이다. 감태무침은 감태에 무를 채 썰어 양념해 새콤달콤하게 무친다. 싱싱한 굴을 넣기도 한다. 서산에서는 감태김으로 큰 소득을 올리고 있다. 감태김은 구우면 줄기나 잎이 너무 가늘어 쉽게 타며 잘 구웠다 하더라도 단맛보다 쓴맛이 강해진다. 그냥 위생장갑을 끼고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손가락에 묻혀 쓱쓱 바른 다음 가는 천일염을 살짝 뿌려 그냥 먹거나 데운 팬 위에서 살짝 구워야 한다. 감태국은 무와 굴을 넣고 끓인다. 김국처럼 시원하고 향이 좋다. 칼국수나 수제비 등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면 반죽을 할 때 감태를 넣어 요리하면 좋고, 감태부침개를 만들어 어린이 간식으로 내놓아도 좋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향이 강해지는 것이 감태다. 뭍에 오르려는 봄과 바다로 향하는 겨울의 틈새에서 숙성되는 농익은 맛이다. 그 기운을 받아들여 잘 다스리면 올겨울은 물론 내년 봄에도 ‘안녕’할 것이다.
  • ‘집 밥’이 어머니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집 밥’이 어머니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누구에게나 ‘집밥’에 대한 향수가 있다. 타지생활을 오래 한 이들이라면 어머니의 손맛을 대변하는 ‘집밥’의 이미지는 긍정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집밥을 만드는 어머니들에게는 집밥이 그다지 이롭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집에서 요리하는 시간이 길수록 우리 어머니들의 건강은 더욱 나빠진다는 것이 연구진의 주장이다. 미국 시카고의 러시대학교 연구팀은 14년간 40대, 50대, 60대 여성 2755명을 대상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지, 대사증후군 등 현재 건강상태는 어떤지 등을 조사했다. 놀랍게도 요리시간이 길수록 실험대상자들의 건강상태는 나빠졌으며, 원인은 다름 아닌 ‘간을 보는’ 습관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음식을 만들면서 버터나 소금 등 건강에 유해한 재료들을 지나치게 섭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습관은 고혈압, 고 콜레스테롤 그리고 비만으로 이어진다. 어머니들이 오랫동안 주방에서 집밥을 만들고, 뿐만 아니라 아깝다는 이유로 남은 음식을 ‘해치우는’ 습관은 고혈당,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죽상경화증 등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대사 증후군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주장했다. 집에서 요리하는 시간이 길수록 대사증후군에 걸릴 가능성은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빠르게 증가했다. 이는 즉, 집에서 요리를 덜 하는 여성일수록 건강상의 문제를 겪지 않을 확률이 높아짐을 뜻한다. 연구를 이끈 브래드 애펠핸스 박사는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상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과거 30~40년간 우리가 먹는 요리 중 ‘집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감소했다. 동시에 비만 유병률은 증가했다. 일부 건강 전문가들은 비만의 유행을 억제하고 심장계 및 당뇨 질환의 발생을 낮추는 방법으로 ‘집밥’을 제안해왔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이 같은 상식과 정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에서 요리를 하는 2700여 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오랜 시간 조사한 결과, 이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수록 심장질환과 당뇨의 위험도 높아졌다”면서 “정확한 인과관계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건강한 요리와 즉석식품의 이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건강한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자주 요리하는 것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예방의학저널’(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최신호에 실렸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모두를 위한 정의를” 흑인 엄마들 뭉치다

    “모두를 위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으니까요.” 13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인근 프리덤플라자. 추운 날씨에도 수천명의 시위대가 단상을 바라보고 박수를 치며 “정의”를 외쳤다. 지난 8월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백인 경찰의 총에 목숨을 잃은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의 어머니와 뉴욕에서 백인 경찰에게 목 졸려 숨진 에릭 가너의 어머니, 그리고 지난 11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흑인 소년 타미르 라이스의 어머니가 잇달아 연단에 섰다. 2012년 2월 플로리다주에서 자경단원의 총에 맞아 사망한 트레이번 마틴의 어머니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여러분의 지지에 감사하다.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 더는 우리 자식들이 억울하게 죽는 것을 볼 수 없다”며 인종차별 철폐와 인종 프로파일링 금지, 경찰 개혁 등을 요구했다. “우리는 더 강해질 것”이라고 강조한 어머니들과 시위대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를 따라 의회 의사당까지 행진했다. 시위를 주도한 전국행동네트워크(NAN) 측은 이날 시위가 사건 발생 이후 최대 규모였다고 밝혔다. 경찰은 워싱턴DC 시위에 전국 각지에서 2만 5000명가량이 참가했고 뉴욕 맨해튼에도 지난 4일 시위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2만 5000여명이 운집했다고 잠정 집계했다. 기자는 이날 오전 워싱턴DC행 지하철에서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와 ‘나는 숨을 쉴 수 없다’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집회장으로 향하는 20대 여성 2명을 만났다. 한 명은 흑인, 다른 한 명은 백인이었고 이들은 학교 친구라고 밝혔다. 흑인 여성은 “죄 없는 흑인들이 희생당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며 2주일째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인 여성은 “인종차별 문제이기도 하지만 경찰 공권력 남용도 문제”라며 “흑백, 남녀노소 모두에게 평등해야 할 정의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흑인 친구들과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사당 근처에서 만난 40대 흑인 남성과 10대 아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교에서도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가르치고 있지만 시위 현장에서 보다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함께 나왔다”고 밝혔다. 50대 백인 여성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책을 밝혔지만 경찰 보디캠으로는 부족하다”며 법적 대책을 촉구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집밥’, 과연 당신의 어머니에게도 이로울까요?

    ‘집밥’, 과연 당신의 어머니에게도 이로울까요?

    누구에게나 ‘집밥’에 대한 향수가 있다. 타지생활을 오래 한 이들이라면 어머니의 손맛을 대변하는 ‘집밥’의 이미지는 긍정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집밥을 만드는 어머니들에게는 집밥이 그다지 이롭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집에서 요리하는 시간이 길수록 우리 어머니들의 건강은 더욱 나빠진다는 것이 연구진의 주장이다. 미국 시카고의 러시대학교 연구팀은 14년간 40대, 50대, 60대 여성 2755명을 대상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지, 대사증후군 등 현재 건강상태는 어떤지 등을 조사했다. 놀랍게도 요리시간이 길수록 실험대상자들의 건강상태는 나빠졌으며, 원인은 다름 아닌 ‘간을 보는’ 습관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음식을 만들면서 버터나 소금 등 건강에 유해한 재료들을 지나치게 섭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습관은 고혈압, 고 콜레스테롤 그리고 비만으로 이어진다. 어머니들이 오랫동안 주방에서 집밥을 만들고, 뿐만 아니라 아깝다는 이유로 남은 음식을 ‘해치우는’ 습관은 고혈당,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죽상경화증 등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대사 증후군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주장했다. 집에서 요리하는 시간이 길수록 대사증후군에 걸릴 가능성은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빠르게 증가했다. 이는 즉, 집에서 요리를 덜 하는 여성일수록 건강상의 문제를 겪지 않을 확률이 높아짐을 뜻한다. 연구를 이끈 브래드 애펠핸스 박사는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상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과거 30~40년간 우리가 먹는 요리 중 ‘집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감소했다. 동시에 비만 유병률은 증가했다. 일부 건강 전문가들은 비만의 유행을 억제하고 심장계 및 당뇨 질환의 발생을 낮추는 방법으로 ‘집밥’을 제안해왔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이 같은 상식과 정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에서 요리를 하는 2700여 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오랜 시간 조사한 결과, 이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수록 심장질환과 당뇨의 위험도 높아졌다”면서 “정확한 인과관계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건강한 요리와 즉석식품의 이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건강한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자주 요리하는 것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예방의학저널’(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최신호에 실렸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훌륭한 어머니들을 다시 기대하며

    [김병일 사람과 향기] 훌륭한 어머니들을 다시 기대하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인물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이와 관련된 너무나 유명한 고사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읜 퇴계 선생도 홀로 되신 어머니가 어려운 생활 속에서 몸소 보여 주시는 훈도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술회했다. 이는 옛날만의 일이 아니다. 2년 전 일반의 예상을 깨고 의사로서 세계은행 수장 자리에 오른 김용 총재도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존중하며 대화 상대자가 돼 주신, 세계적인 퇴계학 연구자인 어머니 전옥숙 여사의 영향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머니의 영향은 왜 이렇듯 중요할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어릴 때 가정에서 보고 배운 어머니의 행동들이 그 사람의 평생에 걸친 삶의 습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볼 때 한국의 부모, 특히 어머니들의 교육열은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육열은 우리 사회가 단기간에 큰 발전을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와 같은 성과들을 무색하게 하는 현상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못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올해 어린이·청소년(초4~고3) 행복지수 국제비교조사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6년째 최하위다. 또 다른 조사에 의하면 우리 아동의 삶의 질 만족도 역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어른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10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특히 노인 자살률은 매년 높아지고 있는데, 자살 충동을 느낀 노인들의 85%가 자녀를 포함한 가족으로부터 받는 학대가 주된 원인이라고 응답했다. 우리 자녀 교육열의 어두운 면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지표들이다. 자녀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 왜 이러한 문제들이 일어날까? 지식 교육에만 몰두하고 인성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기 몸값을 올리기 위한 지식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남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성 교육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그 폐해가 본인은 물론 가정과 사회의 불행으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즈음 고3, 중3 학생들이 입시를 치렀거나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시험 자체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시험이 끝나면 결과와 상관없이 학생들이 목표 의식을 잃고 방황하거나 탈선하는 경우가 많다. 100세 장수시대에 인생의 5분의1도 채 살지 않은 아이들에게 매우 우려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아이들에게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향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필자가 몸담은 선비수련원도 이 문제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지난달 중순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끝낸 고3 교실을 찾아가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지식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남에게 존경받는 삶이 가장 중요함을 일깨우고, 인성이 바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내용이다. 반응이 아직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중3 교실까지 포함해 예상 외로 많은 학교에서 신청하고 있어 기대를 하게 한다. 이에 앞서 얼마 전부터는 학부모를 수련원에 직접 모시거나 학교로 찾아가는 일도 시작했다. 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우고 학부모 자신도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지식 교육보다 인성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떻게 솔선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프로그램이다. 참가한 학부모 어머니들은 표정이 금방 진지해지며 반응도 어느 수련생보다 뜨겁다. 이러한 열기가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져 모두 훌륭한 어머니가 되시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 자식들이 살아가면서 평생 본으로 삼는 어머니들이 많아지는 사회, 더디지만 더 좋은 사회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 송도국제도시를 빛내는 프리미엄 아파트 “송도 더샵 퍼스트파크”

    송도국제도시를 빛내는 프리미엄 아파트 “송도 더샵 퍼스트파크”

    국제업무단지의 핵심 입지에서 분양 중인 ‘송도 더샵 퍼스트파크’가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송도국제도시 내에서도 ‘노른자위’로 꼽혀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은 송도국제업무단지는 더블 역세권 입지에 위치해 수요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인천 송도국제업무단지 F13-1, 14, 15블록에 조성될 ‘송도 더샵 퍼스트파크’는 지하 2층, 지상 최고 44층, 15개 동의 총 2,597가구 규모이다.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은 전용 85㎡ 이하 중소형 주택형을 전체 공급물량의 75%로 구성했다. 전용 면적 기준으로 F13-1블록은 68~108㎡ 856가구, F14블록은 59~108㎡ 869가구, F15블록은 59~108㎡ 872가구로 이뤄진다. 송도 더샵 퍼스트파크는 인천 송도국제업무단지(IBD)의 핵심 입지에 위치해 있으며 인천지하철 센트럴파크역과 인천대입구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더블 역세권으로 M버스를 이용한 서울시내 접근도 편리하다. 교육환경도 우수하다. 2015년 9월에는 단지 앞에 초등학교가 개교하며, 2017년 3월에는 중학교도 개교할 계획이다. 또 단지 주변에 유치원을 비롯해 고등학교, 과학예술영재학교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또한 상업·문화 등 풍부한 편의시설과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제업무단지 내에 이미 조성된 커낼워크, 롯데마트를 비롯해 이랜드몰, 롯데몰이 조성될 예정이어서 편리한 생활환경을 누릴 수 있다. 특히 단지 앞에 글로벌 대형 마트인 코스트코 인천점이 들어설 예정으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또 센트럴공원, 워터프론트 호수 등도 단지에 인접해 있어 도심 속에서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친환경 단지로 꼽힌다. 송도국제도시를 대표하는 ‘더샵’ 아파트답게 단지 곳곳에는 특화 설계되는 커뮤니티 시설, 조경 공간도 조성될 계획이어서 기대감을 높인다. 입주민들의 연령층에 맞게 실버존, 맘스&키즈존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들이 조성된다. 아이들을 위해 동화 속 테마를 주제로 한 ‘동화 속 상상놀이터’, 어머니들을 위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맘스카페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단지 곳곳에 벚나무, 매화나무, 대왕참나무 등 다양한 나무와 꽃을 심어 힐링 가로수 길을 조성해 자연 속에서 휴식을 갖도록 할 계획이며 실버존에는 전원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가든팜도 조성해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자연학습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블록별로 단지 중앙에 국제 축구장 규격 이상의 중앙광장을 조성해 개방감과 쾌적함을 극대화할 예정이며 버퍼존, 외부산책로, 자전거도로, 에듀존 등도 설치한다. 또 대단지 아파트로서 입주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단지 내 ‘지키ME’ 통합 보안 시스템(Safe)도 설치한다. 어린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키즈존과 단지 내 보안 지역에 CCTV 카메라를 설치하고 어린이 놀이터 CCTV 영상을 집안의 월패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 엘리베이터 내부를 탑승 전 로비층에서 미리 확인할 수 있는 부녀자 안심 시스템도 운영한다. 1순위 청약 접수가 이뤄져 높은 인기를 입증한 송도 더샵 퍼스트파크는 F15블록의 계약을 진행한 결과에서도 91%의 높은 초기 계약률을 기록하고 있다. 분양가는 3.3㎡당 평균 1,245만원으로 주변 시세와 발맞춘 합리적 가격이다. 모델하우스는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송도 더샵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문의전화 : 1688-7760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김준의 바다 맛 기행] (24) 전남 벌교 섬마을 꼬막밭 트는 날

    [김준의 바다 맛 기행] (24) 전남 벌교 섬마을 꼬막밭 트는 날

    전남 보성군 벌교읍 장도의 섬마을, 물이 빠지고 있는 갯벌에 ‘널배’를 챙겨 든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일찍 도착해 모닥불을 피우고 추위를 쫓는 사람도 있었다. 어젯밤 늦게야 알고 광주에서 택시를 타고 왔다는 주민도 있었다. 마을 꼬막밭을 ‘트는’ 날이다. 한 집에서 한 명씩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참석하지 못할 경우 벌금을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연말 배당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서울이나 부산으로 자식들을 만나러 갔던 사람도 이날만큼은 열 일 뒤로하고 귀향한다. 나이가 많아 일을 하기 어려운 집은 자녀는 물론 사위까지 대신 참석할 정도다. 바닷물이 빠지자 어촌계장의 신호에 따라 수십 명이 널배를 타고 미끄러지듯 꼬막밭으로 향했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 못해 장엄하다. 꼬막은 꼬막, 새꼬막, 피조개로 나뉘며 연체동물 돌조개과에 속하는 이매패류다. 이 중 꼬막을 ‘참꼬막’이라고도 부른다. 참꼬막의 ‘참’은 진짜라는 말이지만 으뜸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반면 새꼬막은 ‘똥꼬막’이라 부른다. 새꼬막은 썰물에도 갯벌이 드러나지 않는 깊은 곳에 살지만 참꼬막은 바닷물이 빠지면 바닥이 드러나는 갯벌의 5~10㎝ 깊이에서 자란다. 따라서 추위와 더위를 견디기 위해 껍질이 매우 두꺼울 수밖에 없다. 반대로 새꼬막은 껍질이 얇아 채취할 때 쉽게 부서진다. 참꼬막은 상품이 되려면 4, 5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새꼬막은 2년이면 팔 수 있을 만큼 자란다. ●전라도서는 망자의 상에도 반드시 올려 집 앞 골목시장에서 참꼬막 1㎏에 2만원, 새꼬막은 1만원에 샀다. 피조개는 세 개를 덤으로 얻었다. ‘꼬막 맛이 떨어지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산 자는 말할 것도 없고, 죽은 자도 꼬막 맛을 잊지 못한 것일까. 전라도에서는 망자의 상에도 반드시 올려야 하는 음식이 꼬막이었다. 잔칫상에도 홍어와 함께 참꼬막이 오르면 ‘걸게 장만했다’는 말을 들었다. 상을 잘 차렸다는 전라도말이다. 참꼬막은 새꼬막에 비해 짭조름한 맛이 강하다. 또 달다. ●참꼬막은 살이 검붉은 색·새꼬막은 희멀건 색 맛의 차이는 삶아서 껍질을 까 보면 알 수 있다. 참꼬막은 살이 검붉은 색을 띠며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지만 새꼬막은 희멀건 색을 띤다. 얼마나 다행인가. 짭짤함 없이 달기만 했다면 꼬막은 진즉 갯벌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자산어보’에서는 참꼬막을 ‘감’(?), 새꼬막을 ‘작감’(雀?)이라 했다. ‘달콤한 조개’라는 뜻이다. 그리고 작감은 속명을 ‘새고기’라 하고 ‘참새가 물에 들어가서 된 조개’라 했다. 채소를 손질하다 건져내야 할 시간을 놓쳤다. 몇 개는 벌써 입을 벌리고 살이 오므라들었다. 꼬막 살을 꺼내 보니 모습이 꼭 새를 닮았다. 그래서 새고기라 하지는 않았을까. ‘우해이어보’에서는 껍질이 지붕의 기왓골을 닮았다고 해서 ‘와농자’라 했다. 그런데 정약전은 정말 꼬막을 보기나 했을까. 갯벌도 없고 조류도 거센 흑산도에서 말이다. 그가 쓴 ‘자산어보’의 ‘원편’에는 꼬막이 없었던 것 같다. 나중에 이청이 자신의 경험과 중국 문헌을 보고 보충해 집어넣었다. 이청은 다산이 강진 유배 생활을 하며 가르쳤던 제자다. 그곳 ‘도암만’은 지금도 꼬막이 잡히고 있으며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들기 전에는 보성 벌교에 뒤지지 않는 서식지였다. 참꼬막은 전남 여자만과 가막만이 주산지다. 그중에서도 보성 벌교와 고흥 남양에서 많이 생산된다. 충남 서산과 전남 여수 등지에서도 꼬막이 잡힌다. 모두 파도의 영향을 적게 받는 내만이거나 섬과 섬 사이의 펄갯벌이 발달한 곳이다. 이들 지역은 펄의 깊이가 수m에서 10여m에 이르러 물이 빠져도 걸어 다닐 수 없다. 그래서 어민들은 길이가 어른 키보다 길고 폭이 어깨 넓이만 한 ‘널배’(뻘배라고도 부른다)를 타고 이동한다. 어머니들이 널배를 타고 갯벌을 누비는 것을 보면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힘이 많이 들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한 발을 기다란 널배 위에 올려놓고 다른 발로 갯벌을 밀어 이동한다. 꼬막을 잡을 때는 가슴을 판자 위에 올려놓은 물동이에 대고 엎드려 조금씩 이동해 가며 양손으로 열심히 갯벌을 휘젓거나 주물러 꼬막을 찾는다. 긴 판자에 갈퀴처럼 철사로 심을 박아서 만든 도구를 널배에 붙이고 밀어서 잡기도 한다. 글 사진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joonkim@jeri.re.kr ■ 어떻게 먹을까 씨알 굵고 살짝 입 벌린 놈 골라 끓는 물 식혀 80℃로 삶으랑께 꼬막은 씨알이 굵고 무늬가 선명하며 입을 꽉 다문 것보다 벌어져 있는 것이 좋다. 물에 소금을 좀 뿌리고 박박 문질러 개흙과 이물질을 제거한 후 소금물에 담가 한두 시간 동안 해감한다. 꼬막을 삶을 때 썩은 것이 한 개라도 들어가면 같이 삶은 꼬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잘 선별해야 한다. 꼬막을 삶을 때는 펄펄 끓는 물을 약간 식힌 후(75~80℃) 꼬막을 넣어 같은 방향으로 십여 차례 저은 후 꺼낸다. 꼬막은 따뜻할 때 먹어야 하며 특히 새꼬막은 식은 후에는 맛이 떨어진다. 최근에는 꼬막무침, 꼬막장조림, 꼬막된장국, 꼬막전 등 꼬막요리가 많이 개발됐다. 꼬막의 고장이라는 벌교에는 갖가지 밑반찬에 꼬막탕수육, 꼬막전, 삶은 꼬막(꼬막찜), 꼬막꼬치, 꼬막초무침 등으로 ‘꼬막정식’을 내놓는 식당이 인기다. 문학기행만 아니라 소설 ‘태백산맥’의 꼬막 맛을 찾아온 사람도 많다. 꼬막무침은 오이, 미나리, 풋고추, 배, 시금치 등의 야채에 삶은 꼬막 살을 넣고 고추장과 양념을 넣은 후 버무리는 것이다. 보성에서는 특산물인 녹차 분말을 섞은 밀가루에 꼬막 살을 넣어 녹차꼬막전을 내놓기도 한다. 또 김치를 송송 썰어 꼬막과 함께 전을 부치기도 한다. 메추리알, 소고기 등으로 만드는 장조림에 꼬막을 더해 만드는 장조림은 짭짤한 밥반찬으로 좋다. 벌교시장은 꼬막과 숭어로부터 겨울이 온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면 꼬막을 삶아주는 집이 있다. 한 됫박 사서 먹다 남은 꼬막은 까서 밥 한 공기에 남은 반찬을 넣고 참기름을 얹어 쓱쓱 비벼 먹으면 추운 겨울도 거뜬하다.
  • 이설아 ‘엄마로 산다는 것은’ K팝스타4 심사위원 반응 살펴보니

    이설아 ‘엄마로 산다는 것은’ K팝스타4 심사위원 반응 살펴보니

    ‘K팝스타4’ 참가자 이설아가 자작곡 ‘엄마로 산다는 것은’를 선보였다. 지난달 30일 오후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K팝스타4’ 본선 1라운드에 참가한 이설아는 자작곡 ‘엄마로 산다는 것은’을 불러 시청자들과 심사위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날 이설아는 ‘K팝스타3’에 도전했지만 등급 테스트에서 떨어져 재도전한 사연을 밝혔다. 이설아의 ‘엄마로 산다는 것은’ 무대를 접한 심사위원 양현석은 “곡이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넘어선 거 같다. 듣고 계신 어머니들은 눈물 많이 흘리실 거 같다”고 평가했다. ‘엄마로 산다는 것은’을 들은 유희열은 “이런 곡 들고 나오면 반칙이다”며 “곡에 대해서는 ‘참 잘했어요’를 누르고 싶다. 멋 안 부리고 이런 목소리로 담백하게 가사를 전달하는 여성 뮤지션은 없다”고 전했다. ‘엄마로 산다는 것은’을 접한 박진영도 “이설아 씨 곡은 혼자 끄적인 거 같은 느낌이다”면서 “그게 사람들한테 확 와닿는다”고 극찬했다. 이설아 ‘엄마로 산다는 것은’ 소식에 네티즌들은 “이설아 ‘엄마로 산다는 것은’ 대단하다”, “이설아 ‘엄마로 산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이설아 ‘엄마로 산다는 것은’ 빠져들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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