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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늦되는 아이/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늦되는 아이/임창용 논설위원

    뇌의 발달에 관한 책을 읽다가 얼마 전 어린아이를 둔 지인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아이가 돌이 지난 지 한참인데 걷지를 못 해 너무 걱정스럽다고 했다. 부모로선 아이가 생기면 뒤집기부터 앉기, 서기 등 성장 과정 하나하나가 신기하다. 하지만 좀 늦다 싶으면 덜컥 걱정부터 하게 마련이다. 막상 병원에 가면 정상 범위에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는데도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 책을 보니 인간의 뇌 발달은 5세 이전에 80~90%가 완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고등동물일수록 운동 외의 고차원적 기능을 담당하는 뇌를 발달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해 운동 발달은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것이다. 하긴 말이나 소는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기까지 하지 않나. 인간은 고도의 지능을 바탕으로, 덩치가 큰 동물은 운동 능력부터 발달시켜 생존토록 진화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런 관점에서 운동 능력이 늦되는 아이가 좀더 지능도 높고 공부도 잘하지 않을까 싶다. 지인에게 꼭 이 말을 전해 걱정을 덜어 줘야겠다.
  • 리코더·빗자루·골프채… 아동 폭력의 민낯, 작품으로 녹여내다

    리코더·빗자루·골프채… 아동 폭력의 민낯, 작품으로 녹여내다

    리코더, 단소, 파리채, 먼지떨이, 테니스 라켓, 야구 배트, 골프채, 빗자루…. 전시장 한 공간을 차지한 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도구들. 언뜻 공통점이라곤 없는, 색도 모양도 저마다 다른 물건들이 키재기를 하듯 꼿꼿이 서 있다. 별다른 설명도 없지만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시선이 옮을 때마다 관객은 사물의 ‘진짜 용도’를 서서히 깨닫는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해할 때 쓰인다는 것. 김수정 작가의 작품 ‘The war: 가장 일상적인(사진)’의 일부다.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집, 가정이란 응당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만, 어떤 가정은 ‘야생의 장소’에 불과하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밤을 넘는 아이들’은 이처럼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정에서의 아동 폭력을 주제로 한 전시다. 김 작가를 포함해 고경호·권순영·노경화·나광호·민진영·성희진·신희수·왕선정·정문경 등 3040 작가 10명이 참여했다. 전시는 작가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고스란히 녹여낸 작품이 많다는 게 특징이다. 고 작가는 보수적 기독교 집안의 아들로서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과 이 과정에서 겪은 괴리감을 거센 붓질로 표현한다. 돌 사진, 나들이 사진, 졸업 사진 등 가족 앨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을 그렸는데, 얼굴이 모두 지워진 그림 속 인물들은 가족이 때로는 굴레임을 시사한다. 노 작가는 피해자이자 관찰자, 폭로자로서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여럿 다뤄 왔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어린이가 자란다는 건 더 좋은 선택을 할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내가 어릴 때 나쁜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더 빨리 좋은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과거를 돌아봤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작품이 그저 어둡거나 우울하지만은 않다. 식물, 태양, 땅 등 수호신에 어린아이의 얼굴을 그려 넣은 노 작가의 그림은 동화처럼 밝고 아기자기하다. 그는 “어린 시절 마음이 구겨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렇다고 그때의 웃음이 거짓은 아니었던 것 같다”며 “구겨진 날들은 있어도 밝은 마음, 웃는 모습은 진심이란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권 작가는 돌봄에서 소외된 이들의 고통과 상처를 세밀한 터치로 표현한다. 크리스마스 장식과 소복하게 내린 눈이 캔버스를 채우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몸이 절단되거나 꿰뚫린 캐릭터가 뒤섞여 있다. 참담한 상처와 함께 따뜻한 연민이 공존하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내민다. 아동 폭력 피해와 소외의 경험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전시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한편,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더 많은 아이들이 폭력에 노출되는 현 상황에 경종을 울린다. 3월 13일까지.
  • 경주서 루지월드서 7세 어린이, 가드레일 충돌 사고로 숨져

    경주서 루지월드서 7세 어린이, 가드레일 충돌 사고로 숨져

    경북 경주의 한 유원지에서 어린아이가 놀이기구를 타다가 숨져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17일 경주경찰서와 경주소방서 등에 따르면 16일 오후 3시 40분쯤 경주 신평동 보문관광단지 내 사계절 체험시설인 루지월드에서 놀이기구인 루지를 타고 내려오던 초등학생 A(7)양이 가드레일과 충돌해 넘어졌다. A양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후 6시 10분쯤 숨졌다. A양은 친척과 함께 이 놀이기구를 탄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루지월드에서 운영하는 루지는 썰매날 대신 바퀴를 장착한 특수 제작 카트를 타고 특별한 동력장치 없이 트랙을 내려오는 놀이기구다. 경주루지월드는 지난해 11월 개장했고 사고가 난 다음날인 17일 임시 휴장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한편 경주 루지월드는 2020년 500억 원을 들여 신평동 보문단지 7만 6840㎡에 조성됐다. 루지 트랙 2개 코스(총 3㎞), 리프트(350m), 힐링 탐방로, 상업·편의시설 등을 갖췄다.
  • “루지 타다가 가드레일과 충돌” 경주서 7세 여아 숨져

    “루지 타다가 가드레일과 충돌” 경주서 7세 여아 숨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져 경북 경주에서 일곱 살 여자아이가 놀이기구를 타다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7일 경주경찰서와 경주소방서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 40분쯤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경주루지월드에서 루지를 타고 내려오던 A(7)양이 가드레일과 충돌해 넘어졌다. 이후 A양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후 6시 10분쯤 숨졌다. 동계스포츠에서 유래한 루지는 썰매날 대신 바퀴를 장착한 특수 제작 카트를 타고 특별한 동력장치 없이 땅의 경사와 중력만으로 트랙을 달리는 놀이기구다.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탈 수 있어 최근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경주루지월드는 지난해 11월 개장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 “외교관 딸도 포함” IS의 신부가 된 57개국 여성들 

    “외교관 딸도 포함” IS의 신부가 된 57개국 여성들 

    예멘 외교관의 딸로,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자란 호다 무타나(27)는 2014년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로 떠났다. 무타나는 SNS상에 IS의 테러 공격을 칭송하거나 미국인들에게 IS가입을 독려하는 글 등을 올렸다. 그는 “이곳에 아주 많은 호주인들과 영국인들이 있다. 미국인들은 어딨는가? 일어나라, 겁쟁이들아”라고 썼다. 무타나는 IS와 함께 생활하는 동안 아이를 출산했고, 아이의 아버지는 이후 사망했다. 무타나는 한때 아들과 함께 시리아의 난민 캠프에 머물렀으나 현재 소재지는 불분명하다. 무타나는 2019년 CNN을 통해 자신이 미국을 떠나 시리아로 갔을 때는 “순진하고, 화가 많은, 거만한 어린 여성”이었다고 말했다. 또 당시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 몰래 대학을 자퇴하고, 등록금을 빼내 터키행 비행기 표를 사는 데 사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IS에 가담했던 것을 깊이 후회하고 있다며, IS를 홍보하는 게시물을 올린 것에 사과한다고 밝혔다. 미 당국은 무타나가 시리아에 있는 동안 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여권을 말소했다. 아버지 아메드 알리 무타나는 딸이 미 국무부에 의해 시민권을 인정받았고, 2004년에는 미국 여권까지 받았다며 입국 금지 결정에 대해 항소했지만, 대법원은 특별한 논평없이 항소를 기각했다.영국인 ‘IS신부’ 최소 16명…고국에 SOS 국제단체들은 시리아 난민수용소에 영국 여성이 최소 16명, 영국 어린이들은 35∼60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IS에 합류했던 영국 출신 니콜 잭(35)은 영국 정부에 자신을 다시 받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잭은 2015년 10월 남편, 네 자녀와 함께 런던을 떠났다. 친척들에겐 소말리아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말했지만, 그들이 향한 곳은 IS 치하였다. IS에서 3년을 지내는 동안 남편은 전투 중에 사망했다. 잭은 다른 IS 대원과 결혼했지만, 그 또한 공습으로 죽었다. 이때 잭의 10살 아들도 목숨을 잃어서 이제 세 아이만 남았다. 잭의 12살 딸은 할머니가 보고 싶고 영국에 돌아가서 학교에 다니며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아이들을 데려올 의향이 있다는 입장이지만, 잭은 아이들만 영국으로 보낼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IS 가족과 친인척 수용소에서 난민생활 쿠르드족이 장악한 시리아 북동부에는 IS 조직원의 가족들이 살고 있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IS 조직원의 가족과 친인척 약 5만 명이 수용소에서 사실상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대부분 IS 조직원의 아내와 그 자녀들로 여성과 어린이로 이뤄져있다. 4만 명은 IS의 본거지였던 시리아와 이라크 출신 여성과 그 자녀들이고, 나머지 1만 명 중 2000명은 57개국에서 온 여성들로 이른바 ‘IS 신부’로 불린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외국인 수용자의 출신국에 이들을 데려갈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만이 송환이 이뤄지고 있다. 영국은 샤미마 베굼과 자국 출신 IS 선 전 요원 잭 레츠 등 100명이 넘는 자국민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이들의 입국을 불허했다. 조국을 배신하고 IS에 가담한 자를 다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은 이곳에 수용된 어린이들이 음식과 깨끗한 물, 건강 관리와 교육 등 필수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송환을 촉구했다. AI의 시리아 연구원인 다이애나 세만은 “60여 국에 연고가 있는 어린이들이 죽음 앞에 버려졌다”고 비판했다. 세이브 칠드런 시리아 대응팀 소니아 쿠시는 “이 어린이들은 어떤 어린이도 겪지 말아야 할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있다”라며 “성별과 나이를 근거로 국가 안보 위험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월드피플+] 생면부지 이웃 목숨 걸고 구한 뉴욕 아파트 화재 영웅

    [월드피플+] 생면부지 이웃 목숨 걸고 구한 뉴욕 아파트 화재 영웅

    위기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시민 영웅’은 뉴욕 아파트 화재 현장에도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화재 현장에서 시민 영웅은 생면부지 이웃 가족을 데리고 화염을 뚫었다.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브롱크스 19층 아파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3층 침실에서 시작된 화재 연기는 단 3분 만에 아파트 전체로 퍼졌다. 주민들은 시커먼 연기 속에서 탈출로를 더듬었다. 9층에 살던 파티마 우드도 아이 둘을 데리고 대피에 나섰다. 하지만, 뿌연 연기가 눈앞을 가려 한 발자국 내딛기도 어려웠다. 우드는 “계단이 검은 연기로 가득했다. 애들 둘을 데리고 불난 아파트에 갇힌 거나 다름없었다”고 밝혔다. 그때 처음 보는 이웃이 다가왔다.이웃 남성은 발만 동동 구르는 우드 가족을 끌어냈다. 겉옷을 벗어 우드의 3살 막내딸 크윈을 둘둘 말아 안고는 주저 없이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우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웃이 도와줘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막내딸을 부탁했고 이웃은 앞장서서 우리 가족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 덕에 우드 가족은 무사히 화재 현장을 빠져나왔다. 이웃 남성과 함께 먼저 병원으로 옮겨진 우드의 막내딸도, 이웃 남성 뒤를 따라 우드가 안고 탈출한 큰아이도 다친 데 없이 무사했다. 우드는 “밤늦게 병원에서 막내딸과 재회했다. 딸을 안고 종일 울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절박한 순간 도움을 건넨 생면부지 이웃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우드는 “그는 영웅이다. 그분 도움 아니었으면 끔찍한 일을 겪었을 것이다. 덕분에 장례식장 대신 숙소를 알아보게 됐다”고 전했다.우드 가족을 이끌고 화재 현장을 탈출한 시민 영웅은 아파트 꼭대기 19층에 사는 모하메드 케이타였다. 그는 “어린아이가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하고 나왔더라. 아이를 품에 안고 아파트를 뛰쳐나왔다. 그저 옳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화마는 주민 1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중 8명은 어린이였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13명의 중상자를 거론하며 “희생자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불은 아파트 3층 침실에 있던 전기난로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뉴욕소방국은 3층 주민이 고장 난 전기난로를 며칠 동안 쉼 없이 틀어놨다고 설명했다.화재 연기는 마침 열려 있던 현관문을 통해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퍼졌다. 87명이 사망한 1990년 브롱크스 나이트클럽 방화사건 이후 30여 년 만에 최악의 인명 피해가 난 이유다. 뉴욕시는 모든 아파트에 화재 발생 시 자동으로 닫히는 방화문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으나 해당 가구 문에는 이 기능이 고장 난 것으로 확인됐다. 애덤스 시장은 ABC방송에 출연해 “현관문 유지보수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문제도 조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다만 화재경보기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아파트 옆에 사는 주민이 경보를 듣고 화재 신고도 했다. 하지만 화재경보기 오작동이 잦았던 터라 경보를 무시한 주민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주민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화재경보기가 하루 5~6번씩 울리는 통에 주민들이 경보를 무시하곤 했다”고 밝혔다. 불이 난 아파트는 120채 규모로 1972년 지어졌다. 아파트에는 주로 정부 주거보조금을 받는 이민자가 산다. 뉴욕타임스(NYT)는 특히 아프리카 감비아 출신 이슬람교 신자가 많다고 전했다.
  • 쉬려고 제주에 왔느냐, 오름도 쉬고 싶다

    쉬려고 제주에 왔느냐, 오름도 쉬고 싶다

    제주 힐링여행을 하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그냥 ‘쉬멍’하기에 딱 좋은 오름이 사람들의 발길에 치여 몸살을 앓고 있다. 대부분 해발 200~300m 정도 높이로 어린아이들까지 쉽게 오를 수 있는 오름이 많아 등산로가 허물어지고, 급경사지가 훼손되고, 파헤쳐지는 등 성한 데가 없다. 영광(?)의 상처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정작 오름은 이젠 정말 쉬고 싶다. 제주엔 오름(화산의 방언)이 368개나 된다. 이중 탐방로가 개설된 오름은 121곳이다.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되면 출입통제 뿐 아니라 입목 벌채, 토지 형질 변경, 취사, 야영행위가 제한된다. 이를 어길 시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라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학술조사 및 연구, 천재지변의 원상복구 등 예외사항에 한해 출입이 가능하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올해 도 홈페이지에 ‘자연휴식년제 오름 연장’을 고시한 데 이어 한라산처럼 오름탐방 사전예약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오름 훼손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자연휴식년제를 더 연장하는 오름은 물찻오름(제주시 조천읍 교래리)과 도너리오름(한림읍 금악리와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문석이오름(구좌읍 송당리) 등 3곳이다. 물찻오름과 도너리오름은 2008년 12월 1일부터 2021년 12월말까지 13년간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번에 1년 더 연장했으며, 문석이오름은 2019년부터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현재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하는 오름은 이 3곳을 포함 총 6곳. 연예인의 입소문 덕에 유명세를 탄 구좌읍 용눈이 오름이 대표적이다. 부드러운 능선과 가을이면 억새가 장관이어서 사진작가들도 많이 찾는 이곳은 2021년 2월부터 2023년 1월말까지 휴식년을 맞았다. 2020년부터 통제하고 있는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백약이오름 역시 일출 일몰을 보고 싶어도 올 7월말까지는 갈 수 없다. 가파도와 마라도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대정읍 상모리 송악산 정상부와 일부 등산로는 2015년부터 올 7월말까지 통제된다. 송악산을 아침마다 가볍게 산책한다는 이은경(55.안덕면 동광리)씨는 “사람도 아프거나 힘들면 안식년을 맞는데 오름도 마찬가지”라며 “훼손은 쉽게 되지만, 회복은 오래 걸리기 때문에 꼭 자연휴식년제는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함윤이

    [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함윤이

    화마는 나흘 만에 잡혔다. 두툼한 잿더미와 무너진 바위들만 남기고서. 녹원은 결심했다. 담배를 끊자. 한 번에 끊어 버리자. 대신 그는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몇 시간 내내 산불 사진만 바라보자니 눈이 따끔거렸다. 사진 속 불길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웠다.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타오르는 가지들이 밤을 붉게 밝히고, 바위를 감싼 불꽃은 날개처럼 솟구쳤다. 녹원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폈다. 어떤 사진 앞에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줄에 묶인 채로 화마의 먹이가 된 개들, 산 위로 녹아내린 짐승들의 잿더미. 지난 나흘간 몇 장의 사진을 보았더라? 수십 장, 어쩌면 수백 장에 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진도 녹원이 찾는 것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래서….” 녹원은 도시락통을 열면서 말했다. “주말에는 산에 다녀올까 해요.” 노아가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언제나 그랬듯, 탕비실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읍내의 백반집에 갔을 터였다.                    어쩌다가 노아와 매일 점심을 먹게 되었더라.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노아는 점심 도시락을 싸 들고 탕비실에 찾아왔다. 언젠가, 센터의 다른 직원들이 노아에게 슬그머니 질문하는 순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었다. 노아씨는 박 주사가 안 무서워요? 노아가 물었다. “전에 일하던 곳 가시는 거예요?” 녹원이 답했다. “네,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네요. 그냥 한 번 직접 보고 올까 싶어요.” 노아가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녹원은 그를 빤히 지켜보았다. 그날, 노아의 대답을 떠올리면 언제든 웃음이 나왔다. 질문을 받은 뒤, 노아는 양손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다가 말했었다. 글쎄요. 녹원 주사님 요리를 엄청 잘하시는데… 맨날 나눠 주세요. 노아가 불쑥 말했다. “주사님,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주말에 가실 때요.” “산에요? 왜요?” “그냥… 마음이 쓰여서요.” 녹원이 웃었다. “아니, 누가 주말에 직장 상사를 만나요.” “아니, 그래두 그거랑 다른 게, 저희는 친하잖아요.” 노아는 그렇게 말하고서 고개를 떨어트렸다. 젓가락을 툭 내려놓는 손짓까지, 그 모든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녹원은 빠르게 백기를 들었다. “아니, 가고 싶으면 같이 가요. 토요일 아침에 출발할 거예요.” 노아가 웃었다. 녹원 역시 웃어 버렸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희뿌연 유리창 너머로 검게 번진 산맥이 펼쳐졌다. 새카맣게 그을린 산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붉거나 노란빛으로 번득거렸지. 지지 않는 태양처럼 사흘 내내 빛났다. 녹원은 그것을 보면서 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너덜너덜해진 손끝을 보며 생각했다. 무엇을 생각했냐면, 그러니까. 그것이 거기에 있을까? 그 산에서, 아직도 살고 있을까?            그해, 한 통의 전화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지리산에서 걸려온 전화는 사무소 곳곳을 돌아 우도근 과장의 손에 도착했다. 전화를 끊은 과장은 눈썹을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곰이 왔다구 그러네요. 녹원은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곰이요? 직원 중 하나가 물었다. 곰이요. 우도근이 덧붙였다. 아마 또 그 곰이겠죠.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원은 몇 분간 말없이 기다렸다. 곰이라는 게 무엇인지, 진짜 동물을 뜻하는지, 혹은 일종의 암호인지. 누구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사무소 사람들 대부분이 녹원을 어려워했다. 그들은 녹원이 신입이라는 것을, 그가 대학을 갓 졸업했으며 이 사무소가 첫 직장이라는 사실을 잊은 양 굴었다. 낯선 상황은 아니었다. 녹원이 어느 집단에 녹아들기까지는 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대개 녹원을 불편해했다. 처음에는 그의 거대한 몸집에 압도당하고, 이후에는 그의 무표정이 난처하다고들 했다. 어쩔 수 없지. 녹원은 생각했다. 불편한 건 피차 마찬가지니까. 녹원이 손을 들자, 사무실의 눈길 모두가 그에게로 쏠렸다. 녹원은 모른 척 말했다. 과장님. 저는 곰이 뭔지 모르는데요. 아 맞네. 박 주임 들어오기 전에 생긴 일이구나. 잠깐 와 볼래요? 과장에게로 가려면 사무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야 했다. 통로 측 직원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자신의 의자를 당겼다. 녹원은 그들 사이를 느리게 지나갔다. 우도근 과장이 빈 의자를 꺼내어 툭툭 두드렸다. 녹원은 의자에 앉았다. 과장은 사무소 내에서 녹원을 꺼리지 않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위 탓인지, 경력 덕인지, 혹은 한평생 산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우도근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체로 온화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지위나 나이 상관없이 존댓말을 쓰고, 자잘한 실수는 웃으며 넘어갔다. 정말이지 괜찮은 상사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녹원은 생각했다. 나는 왜 사람이 이토록 불편할까. 아니, 사실은, 불편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우도근은 불편하고… 께름칙한 존재였다. 이 곰이 그 곰이에요. 과장이 컴퓨터를 가리켰다. 화면 중앙에서 어린 곰이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가슴의 흰 반달을 환히 내보인 모습이었다. 과장이 말했다. 우리끼리는 도돌이라구 불러요. 녹원이 물었다. 도도리요? 우도근이 정정했다. 도돌이. 도돌이표 할 때 그 도돌이요. 그가 곰의 얼굴을 툭툭 두드렸다. 이 녀석이 말이에요. 매년 돌아오거든요. 아무리 내쫓아도 포기하질 않아요. 그래서 도돌이에요. 멈추지 않고 되돌아와서요.      노아는 반쯤 감긴 눈으로 차에 탔다. 어깨에 멘 가방 입구로 스테인리스 보온병이 비죽 나와 있었다. 그는 차가 출발했을 때부터 꾸벅거리며 졸다가, 고속도로에 진입할 무렵에는 푹 잠들었다. 녹원은 라디오 소리를 줄였다. 양쪽 창 너머로 산기슭이 형태를 드러냈다. 새카맣게 탄 자국이 군데군데 보였다. 녹원이 기사에서 찾아본 대로였다. 산은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기사들은 특정한 단어들을 되풀이했다. 재앙, 재난, 상실. 평소에도 산불이 자주 나는 지역이었으나, 이번 피해는 유난히 참혹했다. 처음에는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로부터 불씨가 솟아올랐다. 불씨는 때마침 불어온 강풍을 타고 날아올랐다. 마치 누군가 사주한 양, 화마는 적절한 환경 속에서 긴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현장의 직원들은 검은 재로 뒤덮인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를 했다. 마스크를 벗으면 까만 코피가 쏟아져요. 그들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매일 목이 아픕니다. 그들의 말은 녹원을 슬쩍 스치고 사라졌을 뿐이다. 녹원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는 곰을 생각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곰에 대한 질문만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괜찮을까? 살아 있을까? 산속에서, 이제는 폐허로 변한 그곳에서? 녹원은 흘끗 조수석을 보았다. 노아는 덜컹거리는 창에 이마를 댄 채 잠들어 있었다. 녹원은 뒷좌석의 목 베개를 찾으려다가 관두었다. 괜한 배려를 해 준답시고 잠을 깨우는 건 아닐까. 상사와 여행을 한다는 생각에 가득 긴장하여 잠들지 못한 건 또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손이 움츠러들고 말았다. 녹원은 한숨을 내쉬고서 속력을 올렸다. 여전히 이런 일들이 어려웠다. 어느 정도 친밀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조차 무엇을 해 주는 게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노아는 톨게이트를 지날 즈음에 깨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로 좌우를 살피고서 웅얼거렸다. “주사님. 커피 안 드셨죠. 드셔야 해요. 제가 직접 내렸는데. 맛있을 텐데.” 그는 보온병 뚜껑에 커피를 따라 건네고서는, 다시금 까무룩 잠들었다. 녹원은 홀로 웃다가 커피를 마셨다. 노아의 말이 맞았다. 커피는 맛있었다. 알맞게 따뜻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한국의 마지막 야생 반달곰은 설악산에서 죽었다. 천구백팔십삼년, 녹원이 태어난 해였다. 곰은 살해당했다. 웅담을 노린 밀렵꾼의 총알이 곰의 척추를 뚫었다. 곰은 총알이 박힌 몸으로 마등령 계곡까지 달아났다. 바위들 사이에 웅크려서 며칠을 울어댔다. 그의 죽음을 다룬 기사는 울음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으엉, 으엉. 글자로 적힌 울음은 처절하기보다 우스꽝스러웠다. 으엉, 으엉. 짐승은 보름 가까이 앓다가 죽어 버렸다. 우도근은 말했다. 그 후로 이 산에는 곰이라고는 없었거든요. 그러나 사십여 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녹원이 입사하기 삼 년쯤 전에, 곰 한 마리가 설악산에 나타났다. 아홉 살배기 암곰이었다. 백오십오 센티미터의 신장에 백 킬로그램, 날렵하다고 할 만한 덩치였다. 몇 해 전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중 하나인 양 싶었다. 주말 등산회 사람들이 그를 처음 발견했다. 당시 암곰은 폭포를 어슬렁거리며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신고인은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곰이 도토리를 먹는다니까요. 곰이 원래 도토리를 먹어요? 사무소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지리산에 방생한 곰들이 다른 국립공원으로 넘어간 일은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설악산이라니. 이 정도의 거리를 이동한 야생동물은 한 번도 없었다. 곧 남부보전센터에서 인력을 파견했다. 설악산 국립공원 쪽에서도 직원들을 내보냈다. 모두의 목적은 최대한 빠르게 곰을 생포하여 지리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당시 계장이던 우도근을 포함하여, 현장직 몇몇이 포획 조에 가담했다. 그들은 방패와 밧줄을 지고서 산을 올랐다. 암곰은 폭포에 있었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후다닥 참나무에 올라가서 버텼다. 우도근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녹색 그물을 설치했다. 보전센터 직원이 마취총을 쐈다. 십여 분이 지나고, 정신을 잃은 곰이 그물 위로 떨어져 내렸다. 기절한 곰은 꽁꽁 묶인 채 지리산으로 돌아갔다. 그쯤에서 마무리가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한 달이 지났을 때 암곰이 새끼를 남기고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설악산에서 낳은 새끼인지, 설악산까지 데리고 온 새끼인지는 모르겠으나 야생에서 태어난 개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곰에게 어떤 발신기도 붙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새끼 곰은 폭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홀로 남은 새끼를 잡는 일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당시의 도돌이는 약 육십 센티미터 정도였다. 포획되는 순간에는 나무 뒤에 숨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더랬다. 촉촉한 코나 동그란 귀가 어찌나 귀엽던지, 현장에 나온 직원들 모두가 끙 소리를 냈더랬다. 붙잡힌 도돌이는 어미와 마찬가지로 헬리콥터를 타고 지리산으로 갔다. 현장에 간 직원들은 은은한 얼굴로 말했다. 그 녀석, 돌아가서 엄마랑 다시 만났겠지? 이것 참, 이산가족 상봉이네…. 그들 중 누구도, 그 곰이 귀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새끼 곰이 무수한 위험을 무릅쓰며 산맥을 넘어오다니. 우도근이 손가락을 튀겼다. 그런데 진짜로, 이 녀석이 돌아온 거예요. 이 년 만이었다. 이번에는 대피소의 직원이 먼저 곰의 흔적을 발견했다. 대피소 부근의 물푸레나무에 커다란 발톱 자국이 남아 있노라고 했다. 족제비나 오소리의 발톱 같지는 않다. 그보다 훨씬 거대하고 깊은 자국이다. 꼭 곰이 남긴 흔적처럼 보인다고. 무인카메라를 추적한 결과, 그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다. 다시금 보전센터의 직원들이 오고, 또 한 번 포획 조가 꾸려졌다. 우도근은 지난 포획에 참여한 경력을 인정받아 두 번째로 방패를 들었다. 곰은 나무 위 벌집을 습격하던 중에 붙잡혔다. 마취총에 맞아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보전센터 직원들이 직접 나무에 올라가 몸을 밧줄로 묶어야 했다. 그들은 곰의 왼쪽 귀에서 조그만 기계를 하나 발견했다. 배터리가 닳은 발신기였다. 수의사는 말했다. 배터리를 교체하기 전에 서식지를 탈출한 모양이네요. 곧 그들은 몇 가지 사실을 더 알아냈다. 수의사는 곰이 세 살이 조금 안 된 암컷이며, 또한 두 해 전 이 산에서 퇴출당한 바로 그 새끼 곰이라는 사실까지 밝혀 주었다.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얘가 그 곰이라고? 우리가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그 아기곰 말이야? 수의사가 말했다. 뭐, 이제 아기라고 부르긴 뭐하죠. 그의 말이 맞았다. 철창에 갇힌 짐승은 일 미터하고도 오십팔 센티미터였다. 몸무게는 백사십오 킬로그램, 울부짖는 모양새는 가히 맹수라고 부를 만했다. 곰이 또다시 지리산으로 돌아간 후에도, 다들 찜찜한 느낌을 걷어내지 못했다. 과장이 말했다. 물론, 그 느낌이 맞았죠. 일 년 만에 지리산에서 전화가 왔어요. 위치 추적을 했는데, KF-75가 그곳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요. ‘돌아갔다.’ 그쪽에서도 돌아갔다고 표현하더군요. 설악산의 직원들은 혀를 찼다. 독한 곰이다. 지독한 놈이야. 쑥덕거렸다. 곰 방사 계획 같은 거 대체 누가 짠 거냐? 낮은 목소리로 불만을 토했다. 심지어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나뭇가지마다 흰 서리가 열매처럼 맺혀 있었다. 다른 반달곰들은 지리산 곳곳에 웅크려 동면을 취하고 있을 텐데. 단 한 마리의 곰만이 얼어붙은 산맥을 넘어 고향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직원들은 곰을 도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며칠간 추적이 이루어졌다. 곧 곰이 설악산에서 동면을 취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번에는 사무소에서도 차분하게 대응책을 마련했다. 어느덧 세 번째로 이곳에 방문한 보전센터의 직원들과 함께 동면포획을 준비했다. 산속의 굴 어딘가에 잠든 곰을 끌어내는 방법이었다. 녹원이 끼어들었다. 잠든 중에 끌어낸다고요? 네, 그래서 동면포획인 거죠. 무서운 방법이네요. 음, 사실은 그게 가장 평화로운 방법인데요. 곰의 입장에서는, 잠든 사이에 세상이 뒤바뀐 거잖아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요. 우도근이 턱을 괴고서 녹원을 바라보았다. 곰의 입장이라. 과장이 중얼거렸다. 곧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녹원은 그 미소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우도근이 말했다. 박 주임은 곰이 불쌍한가 봐요. 나는 우리 직원들이 불쌍한데. 매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짐승 하나 때문에. 안 그래요? 녹원은 허리를 꼿꼿이 폈다. 우도근의 앉은키는 그보다 훨씬 작았다. 백육십 센티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키에 가느다란 팔다리. 그와 비슷한 외양의 남자들은 대체로 녹원을 불편하게 여겼다. 경계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은 녹원의 몸을, 그의 크기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듯했다. 과장은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내보인 적 없었다. 외려 그는 어린아이를 대하듯 녹원을 대하곤 했다. 이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박녹원 주임님. 이번 포획 작전에 같이 가 볼래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곧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 좋아요. 그럼 좋을 것 같습니다. 우도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좋다. 그럼 정해진 거지요? 이제 자리로 돌아가세요.      사무소는 녹원이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늙은 소나무 두 그루가 정문 양쪽에서 가지를 맞대고 있었다. 진입로 안쪽으로 목조 건물이 엿보였다. 여기까지는 화마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녹원은 정문 건너편에 차를 세웠다. 막 깨어난 노아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녹원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노아씨. 제가 왜 여기 왔는지 설명을 먼저 드려야겠는데요.” “아, 네, 네.” “그러니까…. 여기에 곰이 한 마리 있었거든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시작점이었다. 녹원은 가장 건조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개체, 포획, 복원 프로젝트, 서식지, 정부 지침. 그런 단어들이 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보이게 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도돌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 차 안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노아는 찌푸린 얼굴로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녹원은 내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마침내 고개를 돌린 노아가 활짝 웃었다. 녹원은 물속에서 나온 사람인 양 참던 숨을 토해냈다. 노아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사님. 진짜로 엄청난 사연이네요. 저라도 여기 왔을 거예요. 잘 오셨어요.” 녹원은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양 뺨이 화끈거렸다. 곧 코끝까지 시큰거릴 듯했다. 녹원은 노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에서 내렸다.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푸른 기를 머금은 하늘은 투명해 보였다. 녹원은 길을 건넜다. 사무소 정문 기둥에 기대고 서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시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의 기억대로라면, 사무소의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약 사십 분이 남아 있었다. 건너편에서 달칵, 소리가 트였다. 곧 우도근이 소리를 쳤다. - 아니, 뭐야. 박녹원 주임이 건 거예요? “네, 안녕하세요, 과장님. 제가 지금 사무소 앞에 와서요. 인사라도 드리려고 했어요.” 우도근이 정문으로 나오기까지는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녹원은 금세 그를 알아보았다. 깡마른 몸집과 산양처럼 총총거리는 걸음걸이. 과장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그를 비껴간 듯 보였다. 머리가 더 벗어지지도, 주름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우도근은 어설픈 인사치레로 시간을 잡아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질문부터 던졌다. “아니, 진짜로, 뭐 때문에 왔어요?” “도돌이 말이에요. 무사한가요?” “에? 도도리?” “도, 돌, 이. 아시잖아요. 되돌아오는 곰이요.” 우도근이 아아― 길게 소리를 냈다. 탄식 같은 소리였다. 녹원은 지금껏 내내 연습한 얼굴, 가능한 한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는 얼굴로 버티고 섰다. 과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박 주임, 그거, 곰 때문에 온 거예요? 그거 물어보러?” “네. 맞습니다.” “세상에… 박 주임 대단하네요. 아니지, 지금은 주임이 아니지요? 뭐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보통 주사라고들 불러요.” “그래요. 박녹원 주사님. 얼마나 걱정이 됐으면 거기서 여기까지 왔어요. 한 시간은 걸릴 텐데. 굉장하네, 정말로 굉장하네요.” 녹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과장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우도근이 한숨을 내쉬면서 웃었다. 눈에 익은 표정이었다. 그는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요새는 산불 뒤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재난안전과고 자원보전과고 할 거 없이 다들 난리거든요. 곰까지는 신경 쓸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나도 몰라요. 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발신기는요? 센터 쪽에서 확인 들어가지 않았어요?” “발신기 그거.” 과장이 수염 자국조차 없는 턱을 어루만졌다. “어디 보자…, 그 얘기는 들은 것 같은데. 잠깐 기다려 봐요. 지금 몇 시죠?” “점심시간 끝나려면 아직 삼십 분 남았어요.” 과장이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녹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마침내 우도근 쪽에서 손을 들었다. “좋아요. 알아봐 줄게요.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데.” “감사합니다.” “사무소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래요?” “괜찮습니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차 안에 있을게요.” “친구? 박 주임 친구요?” “네. 직장 동료 겸 친구요, 같이 왔어요.” 과장이 눈을 치켜떴다. 입은 헤 벌어졌다.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이상하리만치 환한 웃음이 그의 얼굴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녹원은 어찌할 바 모른 채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과장의 미소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도근은 사뭇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금방 올 테니까 기다려요.” 녹원은 그의 뒷모습이 사무소 안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자신이 과장의 안부에 대해서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삼차 포획은 이른 새벽 중에 진행되었다, 직원들은 사무소 정문 앞에 모였다. 푸르스름한 새벽빛 속으로, 우도근의 이야기에 등장하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수의사는 녹원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젊었다. 그와 함께 온 보전센터 직원들은 대부분 점잖은 인상으로, 말수가 적고 걸음이 빨랐다. 설악산에서도 꽤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 녹원과 우도근을 포함한 공원사무소의 직원들 외에도, 곰이 머무는 구역 근처의 분소 직원들 역시 합류했다. 보전센터 직원들은 여섯 다리가 달린 은색 안테나를 들고 왔다. 그것으로 곰을 찾아냈다고 했다. 곰은 탐방로로부터 머지않은 계곡을 배회하는 중이었다. 도돌이가 홀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바로 그 계곡이었다. 사람들은 장비지원조와 마취조, 추적조로 나뉘었다. 녹원은 장비지원조에 배치되었다. 곰을 붙잡아 데려오는 데 필요한 장비를 운반하는 역할이었다. 우도근은 추적조에서 움직이기로 했다. 우도근의 조가 선두에, 녹원의 조가 후미에 섰다. 행렬은 흔들다리를 건너고 금강문을 거쳐서 산길을 올랐다. 폭포로 가는 방향이었다. 그들은 곧 탐방로를 벗어나 숲 안쪽을 가로질렀다. 나무로 둘러싸인 공터에서 멈춰서 짐을 풀었다. 녹원은 가방을 내려놓고 장비를 하나씩 꺼냈다. 녹색 안전그물과 구조용 밧줄, 헬멧과 방패 등이 손에서 손을 타고 넘어갔다. 이제 마취조와 추적조가 공터 너머의 폭포로 가서, 곰을 데리고 올 것이라고 했다. 녹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수풀 뒤에서 조끼를 걸치는 우도근이 보였다. 녹원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우도근이 인사를 건넬 듯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녹원은 그 몸짓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물었다. 곰이 여기에서 살 수는 없나요? 예? 뭐라고요? 곰 말이에요. 세 번이나 돌아왔잖아요. 여기가 자기 고향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닐까요. 원하는 곳에 놓아주는 게 불가능한가 해서요. 침묵이 흘렀다. 과장이 천천히 헬멧을 썼다. 턱에 매는 끈을 고정한 뒤 녹원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웃음기조차 없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박녹원 주임님. 네, 우도근 과장님. 저건 맹수예요. 말이 천연기념물이지, 사실은 유해조수라고요. 그리고 여기는 국립공원이에요. 매일 사람들이 오가는 산이요. 이해하겠어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올라오는 말을 삼키려 했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녹원이 말했다. 저도 알아요. 그의 목소리가 나무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저도 안다고요. 과장님. 매일매일 사람들이 여기에 오잖아요. 자연이 좋다거나, 건강해지고 싶다거나, 취미 생활이라면서 산에 오르내리죠. 그런데 제 말씀은요, 과장님, 그건 그 사람들 선택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 곰의 경우는 다르다고요. 쟤는 이 산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계속 되돌아오는 거겠죠. 여기에서 살아야 하니까. 여기서 살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녹원은 입을 다물었다. 턱이 떨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과장은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거의 탄식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는 녹원이 건네준 가방 안에서 보호구를 하나씩 끄집어냈다. 그는 팔꿈치와 무릎 위로 보호구를 주섬주섬 끼우며 말했다. 우리 박녹원 주임님은 말이야. 여기에 오면 안 되는 사람이었네요. 녹원은 그를 쳐다보았다. 질문들이 입안을 맴돌았다. 여기란 어디이며, 대체 무엇이 안 되는 거냐고, 여기가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론, 녹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도근은 낡은 지프를 타고 되돌아왔다. 도돌이가 사라진 지점까지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미리 얘기해 놓았다고도 덧붙였다. 과장은 왜인지 들뜬 듯 보였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과장이 따라나서 준다면, 훨씬 간편히 산을 돌아다닐 수 있을 터였다. 노아와 녹원은 우도근의 지프 뒷좌석에 올라탔다. 과장이 몸을 돌려서 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 반갑습니다. 박녹원씨 직장 동료라면서요.” “네.” 노아가 그와 악수하며 답했다. “네, 동료 겸 친구예요.” 우도근이 빙긋 웃더니, 다시 앞으로 돌아앉았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 녹원은 우도근의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박녹원씨라니. 생경한 호칭이었다. 우도근 과장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전, 저 산속에서. 우도근의 지프는 금세 산중도로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는 까맣게 탄 산맥이, 왼쪽으로는 잿빛 강이 이어졌다. 검은 산에서부터 흩날린 잿가루가 차창에 달라붙었다. 지프는 강의 굽이를 따라서 모퉁이를 돌았다. 국립공원의 시작점을 알리는 아치형 입구와 함께, 강변을 따라 선 갖가지 가게들이 나타났다. 잿빛 먼지에 휩싸인 편의점과 식당, 분사무소와 등산로로 향하는 흔들다리. 우도근은 다리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차창을 내리고 강 건너편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녹원과 노아는 창밖으로 목을 뺐다. 강 건너로 접근금지 테이프를 친 약수터가 보였다. 폭포 방향으로 입산하는 사람들이라면 필수적으로 거치는 구간이었다. 몇 해 전 녹원이 삼차 포획 행렬에 낀 채로 지나갔던 지점이기도 했다. 우도근이 약수터 위쪽을 가리켰다. “저쪽 산허리에서 발신기를 발견했어요. 아주 훼손되었다던데. 억지로 뜯어 버렸나 봐요.” “그 외 흔적은 못 찾았고요?” “네, 사체 같은 건 전혀 없었고….” 과장이 룸미러로 녹원의 얼굴을 흘긋 보았다. 그가 시동을 끄면서 말했다. “산에 다녀오고 싶으면, 지금 다녀와요. 나는 여기에서 기다릴 테니까.” 녹원은 머뭇거렸다.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지금껏 우도근을 오해했던 것일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과장은 친절하고 온화한 남자였다. 녹원의 기억 속에서 보여 주던 적대적인 태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허탈한 웃음이나 경시하던 눈길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아군처럼 보였다. 녹원은 차에서 내렸다. 노아가 그를 뒤따라왔다. 그들은 다리를 건너고 약수터를 지났다. 숲은 고요했다. 산으로 향하는 계단의 난간은 새까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바삭하게 타오른 나무들은 식물보다는 불꽃의 잔재처럼 보였다. 보이는 곳마다 회색 재가 휘날렸다. 새들이 지저귀지 않고 잎사귀도 흔들리지 않았다. 도돌이를 처음 만난 날과는 모든 게 달랐다.         추적조와 마취조는 숲 너머로 떠났다. 장비지원조는 공터에서 짐을 가지고 대기하기로 했다. 녹원은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채, 숲속을 바라보았다. 물푸레나무와 박달나무, 피나무, 소나무, 벚나무. 여름의 샛노란 볕뉘가 나뭇가지 사이를 환히 비췄다. 곧 낯선 소리가 그 풍경을 뒤흔들었다. 쿵. 높은 곳에서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바위에 기댄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잎사귀들이 흔들렸다. 산 전체가 몸을 털어내는 듯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아득하게 번져 왔다. 얼마 후, 그들이 나무 그늘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행진이라도 하듯 한 줄로 선 채 숲을 가로질렀다. 수의사와 과장이 선두에 서 있었다. 그 뒤로 들것을 붙든 남자들이 내려왔다. 녹원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들것 안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짐승이 있었다. 포로처럼 눈과 입, 팔다리를 묶인 채. 녹원이 지고 온 밧줄이 곰의 몸을 엑스자로 붙잡고 있었다. 수의사의 목에 둘렀던 파란 천은 곰의 눈을 가리는 데 쓰였다. 벌어진 입 사이로 붉은 혀가 늘어져서 달랑거렸다. 녹원은 행진을 쫓는 아이처럼 곰을 따라서 걸었다. 필사적으로 들것을 쫓아가며 곰을 보았다. 그의 귀에 새로 부착된 발신기를, 어깨와 가슴을 가로지르는 흰 반달을, 마른 땅처럼 갈라진 발바닥을 보았다. 남자들은 공터 정중앙에 들것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들도 보호구를 주섬주섬 벗었다. 녹원은 장비들을 챙기는 일도 잊고, 내내 곰만 바라보았다. 바로 옆에 다가온 사람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한번 만져 봐요. 녹원은 놀라서 옆을 돌아보았다. 우도근 과장이었다. 그가 부드러운 얼굴로 곰을 가리켰다. 쓰다듬어 보라니까요.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어요. 머뭇거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녹원은 곰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 검은 털은 까슬까슬하고 서늘했다. 피부는 몹시 단단했다. 녹원과는 전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털과 살, 그 안에서 흐르는 피가 손바닥 아래에서 두근거렸다. 녹원은 눈을 깜빡였다. 곰의 치욕과 자존심, 곰의 마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끊임없이 돌아온다는 뜻의 이름도 곱씹었다. 짐승이 꿈틀거린 순간에도,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나중에 과장과 수의사를 비롯한 몇 사람이 물어보았다. 왜 손을 떼지 않았어요? 왜 달아나지 않았습니까? 녹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느꼈던 소속감을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 그토록 아늑하고 달콤한 마음은 처음이었다. 극복해 낼 수도 없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곰은 소리를 질렀다. 으엉, 소리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밧줄의 매듭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곰은 순식간에 들것에서 벗어났다. 그는 녹원이 보았던 사진처럼 양팔을 벌리고, 가슴의 흰 반달을 환히 드러낸 채로 일어나 섰다. 도돌이는 잠시 휘청거리다가 녹원을 끌어안았다. 끌어안았다―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표현을 썼다. 끌어안았다. 곰이 그를 끌어안았다고. 녹원은 등 뒤의 바위로 쓰러졌다. 그 순간이 녹원의 목숨을 구했다. 곰의 무게는 녹원의 몸을 지나 바위 아래로까지 분산되었다. 만약 선 채로 힘겨루기를 했거나, 땅바닥에 곧바로 쓰러졌다면, 녹원의 뼈는 모조리 부서지고 말았을 것이다. 녹원은 그 접촉을 기억했다. 그날의 다른 어떤 때보다 더욱 선명히 기억했다. 늑골을 짓누르는 냄새와 촉감. 곰은 녹원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작았다. 그런데도 어찌나 무거운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녹원은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도돌이는 저를 끌어안지 않았어요. 걔는 저한테 기대어 있었죠. 수의사도 그의 말에 증언을 보태 주었다. 곰이 박녹원씨를 고목이나 바위, 혹은 어떤 기둥처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서, 박녹원씨에게 매달린 거죠. 파란 천이 흘러내리며 초점을 잃은 눈이 드러났다. 입가에서 흰 거품이 끓었다. 남자들이 곰을 끌어냈다. 녹원은 바위벽에 기댄 채로 주저앉았다. 흐릿한 사람들이 소리쳤다. 괜찮아요? 숨 쉴 수 있어요? 녹원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괜찮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렇지가 않았다. 호흡할 때마다 갈비뼈가 조각나듯 아팠다. 결국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곰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사에서 읽은 기묘한 울음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채우고 있었다. 정말로 으엉, 으엉, 하고 우는구나. 녹원은 생각했다. 정말로 울어버리듯이 우는구나. 바로 앞에서는, 누군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녹원씨. 박녹원씨. 녹원은 고개를 돌렸다. 우도근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는 몇 해는 더 늙어버린 양,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여기에서 일하면 안 돼요.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해. 과장은 몇 번이나 말했다. 박녹원씨. 산에서 내려가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요.              “날이 늦었으니, 우리 집에서 자고들 가요.” 우도근은 주장했다. 녹원과 노아가 연거푸 손사래를 쳤는데도,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그의 집은 산기슭 끝자락에 있었다. 녹원과 노아는 빨간 지프를 따라서 시멘트 언덕 위를 올라갔다. 새하얀 돌벽에 노란 지붕을 올린 집이 나타났다. 옅은 녹색 잔디를 깐 마당에는 흔들 그네와 스프링클러, 평상이 놓여 있었다. 집의 뒤뜰은 산사면과 바로 맞닿았다. 천만다행으로 이쪽 능선까지는 불길이 오지 않아서 피해를 면했노라고 했다. 녹원은 자신의 트럭에서 내려와 주위를 살폈다. 우도근의 집은 언덕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언덕 앞뒤로 보이는 것은 산과 강뿐이었다. 주위에 놓인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녹슨 가로등 하나가 전부였다. 우도근이 노란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란이. 나 왔어.” 녹원은 어깨를 움츠렸다. 우도근에게 부인이 있다는 사실은 들은 적 있었다. 직접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우도근이 부인을 부르는 광경을 보다니. 란이, 라고 부르다니. 그가 누군가를 저토록 친근하게 부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곰을 부를 때만 제외하면. 저녁 시간은 한없이 평화롭게 흘러갔다. 그들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란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아름 꺼내 녹원의 품에 안겨 주었다. 별구경하다가 자세요. 란은 오래전부터 녹원을 알아온 양 친근한 어투로 말했다. 마당 평상이 별구경하기 딱 좋거든요. 맥주 곁들이면 그만 한 휴가도 없어요. 막상 부부는 평상 휴가에 동참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아홉 시만 되어도 눈꺼풀이 감겨서, 먼저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도근은 평상에 담요를 깔아 주었다. 조카에게나 건넬 법한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재밌게 놀고 푹 자요. 알겠지요?” 마당에는 녹원과 노아만 남았다. 두 사람은 평상에 나란히 앉았다. 다리를 죽 편 채 맥주를 홀짝거렸다. 산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살갗을 서늘하게 적셨다. 부부의 말대로, 마당에서 보는 별은 몹시 선명했다. 허공에 멈춘 불씨처럼 반짝거렸다. 녹원은 언덕 너머에서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두 갈래로 나뉜 물길이 다시 한 길로 합쳐지는 지점까지 살폈다. 강 뒤편의 산은 부드러운 어둠에 잠겨 있었다. 녹원이 불쑥 말했다. “천 킬로미터예요.” 노아가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하셨어요?” “곰이 이동한 거리 말이에요. 한 번에 삼백사십사 킬로미터, 세 번 돌아오면 천백삼십이 킬로미터 정도 돼요. 서울에서 도쿄까지가 그 정도 거리래요.” 노아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했다. “지독한 곰이네요.” 녹원은 동의했다. 정말이지 지독한 곰이었다. 세 번째 귀환 이후, 이 독한 곰은 제법 유명해졌다. ‘되돌아오는 곰.’ 그런 유의 머리기사와 함께. 도돌이라는 이름 역시 앙증맞게 실렸다. 설악산 측은 이 사건을 일종의 기회로 삼았다. 설악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시작점을 ‘되돌아오는 곰’으로 삼자. 마침내 도돌이는 설악산으로 방사되었다. 몇 가지 복잡한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서, 사무소 내부에도 곰의 위치를 주기적으로 추적하는 절차가 투입되었다. 반응은 썩 괜찮았다. 이토록 강력한 의지를 가진 곰이 번번이 돌아오던 고향. 한 기자는 도돌이를 천구백팔십삼년에 죽은 곰의 환생인 양 묘사하기도 했다. 수십 년의 한이 이제야 풀렸노라고. 녹원이 말했다. “어릴 때 제 별명이 웅녀였거든요.” 노아가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웃어도 돼요?” 녹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가 웃는 사이에,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열세 살쯤 때 이미 키가 백칠십을 넘었어요. 그때 짝꿍이 되게 웃기던 애였거든요. 저를 맨날 웅녀라고 불렀는데, 그게 못내 좋았어요. 그전에는 한 번도 별명을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녹원은 설악산에서 마지막으로 살던 곰의 최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의 마지막 야생 곰, 그가 태어나던 바로 그해 엉엉 울어버리다가 죽은 짐승. 녹원은 곰이 죽은 날짜도 찾아보았다. 곰은 칠월 말일, 녹원이 태어나기 바로 전날에 죽었다. 그 숫자 간의 관계를 깨달은 순간, 녹원의 머릿속으로 괴상한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누구에게도 이것에 대해 말한 적 없었다. 가뜩이나 자신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가는 어떻게 반응할지 뻔했다. 녹원은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나야말로, 그 곰에게서 돌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번에 노아는 웃지 않았다. 녹원은 말을 이었다. 그 생각은 오래도록 그를 옭아맸다고. 누구나 이상한 믿음 하나 정도는 있잖아요, 그런 말로 뭉뚱그리기에는 지나치게 묵직한 믿음이었다. 자신이 그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존재라면, 왜 이토록 사람들이 어려운지 설명할 수 있을 듯했다. 사람에게 죽은 짐승은,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역시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바로 그런 경우는 아닐까.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에서 마음을 떼어낼 수 없었다. 꼭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래서요. 도돌이와 나 사이에도 무언가 이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녹원은 고개를 들었다. 노아는 끌어안은 무릎에 턱을 괸 채로 잠들어 있었다. 녹원은 평상에 깐 담요를 펼쳐 노아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고개를 드니 보름달이 떠 있었다. 희고 선명한 달이었다. 두 갈래의 강 위로 두 개의 달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밤 동물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녹원은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양팔을 죽 펼친 순간, 그대로 멈춰 섰다. 그는 빳빳이 굳은 채로 귀를 기울였다. 눈앞으로는 밤의 어둠을 타고 흐르는 산의 능선만 보였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등 뒤 어딘가에서, 아마도 뒤뜰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낮게 숨 쉬는 소리가 울렸다. 녹원은 그 숨소리를 알고 있었다. 분명히 귀에 익었다. 다시 한번 비닐이 흔들렸다. 얇은 막이 찢어졌다. 그것이 그르렁거렸다. 나는 알아. 녹원은 생각했다. 나는 이 소리를 알고 있어. 녹원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발뒤꿈치를 들고 돌아섰다. 주택은 엷은 가로등 불빛에 잠겨 있었다. 소리는 조금 더 뒤에서, 가로등 너머에서 들려왔다. 녹원은 천천히 걸었다. 가로등을 지나서 집의 뒤쪽으로 갔다. 뒤뜰에는 지붕을 씌운 분리수거함과 차고가 있었다. 차고의 비상등은 활짝 켜져 있었다. 안쪽의 빨간 지프가 선명히 보였다. 그 옆의 분리수거함을 뒤적거리는 물체 역시도 뚜렷하게 보였다. 녹원은 멈춰 서서 그 물체를 보았다. 검고 큼직한 뒷모습. 몇 해 전보다는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곰은 비닐봉지를 뒤지고 있었다. 검은 발이 노란색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움켜쥐었다. 비닐들이 흔들리고 찢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녹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목이 메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마음은 한 차례 솟구치더니, 도무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녹원은 집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곰의 움직임을 훑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니 부석거리는 털이라거나 바싹 야윈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얘.” 녹원이 말했다. “도돌아.” 곰은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응답하듯이. 자신이 어떻게 불리는지를 알고 있다는 듯이. 녹원은 한 발짝 다가섰다. 다음 걸음은 좀더 가볍게 옮겼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계속 걸어갔을 터였다. 손은 녹원을 꽉 쥐고 뒤로 당겼다. 녹원은 뒤돌아보았다. 노아가 거기 있었다. 비상등의 빛에 새하얗게 질린 채, 녹원을 붙들고 속삭였다. “움직이면 안 돼요. 주사님, 움직이지 마세요.” 녹원도 무엇인가 말하려 했다. 괜찮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는 이미 한 번 이 곰을 만난 적 있다. 그때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곰은 놀랍도록 명민한 동물이라 몇 해 동안 사람을 기억한다. 그러나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곰은 구부정하게 서서 멀뚱히 그들을 보고 있었다. 흰자가 슬며시 드러난 눈은 사람의 것보다 둥글고 검었다. 그 눈동자에서는 어떤 생각도 읽어 낼 수 없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결, 그것들로부터 추측할 수 있는 감정 또한 없었다. 곰은 그와 전혀 다른 구역에, 다른 세계에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에 반응했다니. 우스운 생각이었다. 그들 간에는 무엇도 교차하는 것이 없었다. 녹원은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녹원이 속삭였다. “노아씨. 뒤로 가요. 등 돌리지 말고, 뒷걸음질로요.” 노아는 그의 말을 따랐다. 그들은 기묘한 춤을 추듯, 일정한 리듬에 따라 뒷걸음질을 쳤다. 곰은 그들을 빤히 지켜볼 뿐이었다. 자신의 트럭 옆으로 다가갔을 무렵, 녹원은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냈다. 그것을 차의 앞문에 대고 몇 차례 내리쳤다. 열쇠와 문이 맞부딪치며, 금속이 깨지는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곰이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팍에 모으고 있던 앞발을 바닥에 내딛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달아났다. 산속으로, 그리하여 어둠 너머로 녹아내렸다.        그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곰이 뜯어둔 비닐들을 바라보면서. 창문 안쪽에서는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도근 아니면 란이 깨어난 모양이었다. 녹원은 잽싸게 몸을 돌렸다. 노아는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녹원은 그의 팔을 붙들었다. “노아 씨. 여기에서 다른 거 본 거로 해요. 아무거나 좋아요. 고양이나 멧돼지, 살쾡이. 뭐 그런 게 내려왔다고 그래요. 곰을 봤다고는 하지 마요.” “왜요? 주사님. 방금 보셨잖아요. 곰이에요. 맹수라고요. 제대로 말씀드려야 해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던 눈 한 쌍, 그 눈길이 불에 덴 자국처럼 머릿속에 새겨졌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몇 해 동안 그를 옭아매던 감정들이 이제야 제대로 된 언어로 자리를 잡았다. 곰은 사람과 다르다. 곰은 사람이 아니다. 곰은 사람보다 나은 존재다. 앞뜰에서는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녹원이 낮게 속삭였다. “노아씨. 나는요. 늘 곰에게 산을 주고 싶었어요. 아주 통째로 줘 버리고 싶어요.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다고요. 그게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하겠어요?” 노아가 자신의 팔을 붙든 손을 붙잡아 내렸다. 그는 오래전에 과장이 짓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곧 울음을 터뜨릴 듯 일그러진 얼굴, 여전히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주사님.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우리가 산을 줄 수 있나요? 우린 애초에 산을 가진 적도 없잖아요. 다들 그걸 알아요.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이 저 곰을 찾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찾아서 보호하고, 같이 살려고요. 다들 그걸 위해서 애쓰는 거잖아요.” 노아의 등 뒤로 우도근이 보였다. 그가 집의 벽을 따라 돌아와 가로등 아래 섰다. 그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며 물었다. “뭐 깨지는 소리가 나던데, 무슨 일 있어요?” 노아가 녹원을 올려다보았다. 녹원도 노아를 내려다보았다. 노아씨. 박녹원 주사가 안 무서워? 직원들의 질문이 녹원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쩔 수 없었다. 녹원이 말했다. “노아씨, 먼저 들어가세요. 저도 곧 갈게요.” 노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더니, 이내 포기한 듯 몸을 돌렸다. 우도근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노아를 흘끗 보고서, 녹원에게 다가왔다. 녹원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차 안에서 무엇인가 찾다가 열쇠를 떨어트렸고, 차 문에 부딪힌 열쇠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고. “죄송해요, 주무시는 걸 깨웠네요.” 우도근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녹원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우도근도 집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과장의 눈길이 뜯어진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가 닿는 순간, 녹원이 입을 열었다. “과장님. 여기 족제비 같은 게 있던데요.” 우도근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족제비요?” 녹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열쇠를 찾다가 뒤뜰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다가가니 족제비인지 오소리인지가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중이었다고. 꽤 굶주려 보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장은 분리수거함으로 다가가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봉투를 이리저리 비쳐 보더니 혀를 찼다. “아이고, 이걸 하루 늦게 내놨더니…험하게도 물어뜯어 놨네.” “안에 들여놓으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녹원은 너덜너덜한 봉지를 들어 우도근에게 건넸다. 옛 과장이 그것을 받으며 빙그레 웃었다. “시골은 시골이지요?” 박녹원도 마주 웃었다. 지금은 이 정도의 대응이야,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녹원은 방으로 돌아왔다. 벽을 향해 누웠다. 그의 옆에 누운 노아가 뒤척거렸다. 그는 녹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반대로 돌아눕고,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의 망설임이 애틋한 동시에 힘겹게 다가왔다. 녹원은 반대쪽으로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노아가 움직임을 멈췄다. 녹원은 벽에 드리워진 그늘을 물끄러미 지긋이 보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등 뒤로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울렸다. 노아가 결국 피로에 항복한 모양이었다. 녹원은 몸을 돌려 정면으로 누웠다. 유리창으로 스민 달빛이 천장을 부드럽게 밝혔다. 녹원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불타는 산을 생각했다. 잿빛 산, 폐허처럼 모두 불타버린 산, 잿더미로 뒤덮여 일견 늪처럼 보이기도 하는 산이다. 곰이 그 위를 달리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두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그는 산맥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빠르다. 성체로 자라난 곰들은 사십에서 육십 킬로미터의 속력을 낸다. 그는 타고난 사냥꾼이며 끈기의 화신이다. 바삐 위치를 바꾸는 앞발과 뒷발 너머로 회색 구름이 퍼져 나갈 것이다. 곰은 바위를 뛰어넘고, 나무를 오르고, 강을 건넌다. 어떤 방해도 없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 누구도 그를 쏘지 않는다. 잠든 채로 끌려 나오지도 않는다. 그는 어디든지, 원하는 만큼 간다. 산은 모두 곰의 것이다. 그는 자유롭다. 녹원은 가슴에 양손을 올렸다. 마치 포로처럼.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윽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의 얼굴로 번져 나갔다.
  • 아이들도 규칙 어기는 행동 보면 못 참아요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아이들도 규칙 어기는 행동 보면 못 참아요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2021년 신축년도 겨우 하루 남았습니다. 이맘때만 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올 한 해를 되돌아보고 내년을 계획합니다. 사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한 해 어떤 화두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처럼 지난 1년도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 정의, 안전 등이 화두였습니다. 그런데 공정, 정의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갖게 되는 것일까요. 영국 플리머스대, 포츠머스대, 애스턴대, 독일 베를린자유대, 라이프치히대,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미국 듀크대 공동연구팀은 공정, 정의에 대한 개념은 타고나며 어린아이들도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에 대해서는 처벌과 간섭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 12월 28일자에 실렸습니다. 사람이 공정, 정의, 규범을 언제 인식하게 될까라는 궁금증은 교육학, 심리학, 뇌과학 등 많은 분야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2011년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이 공정심과 이타심, 배려심은 첫 돌이 갓 지난 15개월을 전후해서 확실히 드러난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이에 앞서 ‘네이처’에 “인간의 뇌는 보상체계의 불공정함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공정성이 태생적으로 내장돼 있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연구팀은 독일, 인도, 케냐, 아르헨티나 등 7개국 8개 지역에 거주하는 5~8세 남녀 어린이 376명을 대상으로 행동실험을 했습니다. 실험대상 지역은 도시 4곳, 시골 4곳이었습니다. 연구팀은 아이들에게 색깔과 모양이 다양한 블록을 분류하도록 했습니다. 대신 절반은 블록을 색깔별로 분류하도록 하고 다른 절반의 아이들에게는 모양별로 분류하도록 학습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세 명씩 짝을 지어 둘은 게임을 하고 나머지 한 명은 관찰을 하도록 했습니다. 연구팀은 게임을 하는 아이 중 한 명에게 규칙과 다른 방식으로 블록을 분류하도록 한 뒤 관찰자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실험 결과, 관찰자 아이는 게임이 늦어질 때도 간섭하고 잔소리를 했지만,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 게임을 할 때 더 많이 간섭하고 게임에 실제 개입하기도 했습니다. 문화에 따라 규범위반에 대해 간섭하는 형태는 조금씩 달랐지만 시골 지역 어린이들이 도시 지역 어린이보다 더 많이 항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시골처럼 소규모 지역 사회 어린이들은 이웃들이나 친지들과 함께 지내면서 공동체의 규범 준수에 대해 엄격하게 교육받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해석했습니다. 공정, 정의, 규범준수 같은 개념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하더라도 주변 어른이나 나이 많은 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가치관으로 체화시키게 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어른들이 공정, 정의, 규범준수에 대해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는 너그럽고 타인에게만 엄격한 이중적인 태도를 자주 보이는 것은 사회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편의 이익을 위해 표정도 안 바뀌고 ‘내로남불’하는 모습, 내년에는 안 볼 수 있을까요.
  • [2021 하반기 히트상품] 참존 ‘톤업핏 블랙라벨’

    [2021 하반기 히트상품] 참존 ‘톤업핏 블랙라벨’

    참존의 ‘톤업핏 블랙라벨’(사진)은 4가지 차별화한 색상으로 출시됐다. 우아한 드라이 로즈를 담아낸 ‘드라이 로즈’, 클래식한 트렌치코트에 어울리는 ‘트렌치 베이지’, 럭셔리하고 무드 있는 분위기의 ‘토프 브라운’, 트렌디한 데님룩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데님 네이비’ 등이다. 마스크 안감도 차별화했다. 비건 인증을 받은 안감으로 만들었으며, 어린아이도 믿고 착용할 수 있도록 유럽 섬유제품 품질인증인 ‘OEKO-TEX’ 1등급을 받았다. 또한 피부자극 테스트는 물론 독일 ‘더마 엑설런트 등급’으로 민감 피부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톤업핏 블랙라벨 마스크는 가을·겨울 시즌을 겨냥해 출시한 제품이다. 숨쉬기 편하도록 호흡률은 유지하면서 마스크 형태·볼륨은 변하지 않는 4중 구조로 설계돼 장시간 착용해도 무리가 없고 핏을 살려준다고 한다. 참존 마케팅 담당자는 “톤업핏 블랙라벨 마스크가 올가을·겨울에 압도적인 분위기와 차별화된 안감·디자인으로 새로운 페이스웨어 마스크 시장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 [2021 하반기 히트상품] SPC삼립 ‘삼립호빵’

    [2021 하반기 히트상품] SPC삼립 ‘삼립호빵’

    SPC삼립이 겨울 대표 간식 ‘삼립호빵’의 광고모델로 방송인 유재석(사진)을 발탁하고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했다. MZ세대를 겨냥해 출시한 ‘로제호빵’, ‘민트초코호빵’은 출시 10일만에 40만개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유재석을 활용한 영상도 눈길이다. 로제호빵 출시를 기념해 선보인 ‘따끈화끈’ 콘셉트를 반영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은 일주일 만에 100만 뷰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따뜻함은 커진다’는 콘셉트로 유재석이 소방관, 택시기사, 어린아이 등 다양한 국민에게 호빵을 나누며 호빵이 점점 커지는 모습을 연출한 영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삼립호빵 매출 성장에는 커피 컴퍼니 ‘프릳츠’와 협업해 출시한 한정판 굿즈 ‘호찌머그’가 한몫했다. SPC삼립은 호빵 미니찜기 겸 머그컵으로 사용 가능한 호찌머그와 호빵 제품으로 구성한 세트를 지난달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한편 SPC삼립은 ‘발효미(米)종 알파’를 개발해 호빵 전 제품에 적용했다. 50년간 축적한 호빵 제조 기술력을 바탕으로 특허 받은 토종 유산균과 우리 쌀에서 추출한 성분을 혼합한 ‘발효미(米)종’에 쌀 당화액(쌀과 누룩의 발효로 생성된 당)을 더한 ‘발효미(米)종 알파’로 쌀 특유의 감칠맛은 물론 쫀득하고 촉촉한 식감을 살렸다.
  • “걱정마! 산타 오실 거야”… 부모 5명 중 1명은 크리스마스 선물 스트레스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걱정마! 산타 오실 거야”… 부모 5명 중 1명은 크리스마스 선물 스트레스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이번 주 금요일은 전 세계 어린이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는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그렇지만 지난해 말과 비슷하게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심각합니다. 이 때문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들고 올 수 있을까 걱정하는 어린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올해도 “산타는 전염병에 대한 선천적인 면역성을 갖고 있으며 최근에는 백신 3차 접종까지 마쳤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산타는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에게 옮길 위험도 없기 때문에 평소처럼 선물을 놓고 갈 것”이라고 아이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와 뒤이어 찾아오는 겨울방학을 오매불망 기다리겠지만 부모들은 어떨까요. 미국 미시건대 의대 소아과, 미시건대 의대 모트아동병원 공동연구팀은 많은 부모들이 크리스마스 선물과 아이들의 방학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조사 결과를 22일 발표했습니다. 이 같은 결과는 1~18세 자녀를 둔 부모들 중 2020명을 무작위로 골라 크리스마스와 겨울방학으로 인한 부모의 정신건강 관련 설문조사로 얻은 것입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 6명 중 1명은 크리스마스와 아이들의 방학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밝혔습니다. 또 부모 5명 중 1명은 아이들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다고 느낀다고도 응답했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와 방학에 대한 스트레스는 엄마들이 아빠보다 2배 이상 높았답니다. 그 때문인지 부모들의 3분의1 이상이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자녀가 학교에 가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연구진은 부모들이 자녀로 인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는지도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꼽았고 그다음으로 음악감상, 운동, 종교나 봉사활동을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엄마들과 달리 많은 아빠들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일’을 택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아빠들은 일 자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육아라는 스트레스 환경에서 도피하기 위해 ‘일’을 핑계로 대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런 스트레스는 부모 스스로가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많은 부모들은 크리스마스나 방학 같은 때가 되면 자녀들이 어른이 돼서도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 주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크리스마스는 많은 매체에서 평소와 달리 사랑, 기쁨이 넘쳐나는 때로 묘사되는데 이를 현실로 만들려는 시도는 쉽지 않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즐거운 시간을 만들기 위한 부모의 노력이 스트레스가 된다면 부모의 말과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반영되고 아이들에게 전해지면서 오히려 최악의 시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연구팀은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코로나19 상황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 시기가 길어지면서 아이, 어른 모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지만 크리스마스 때만은 서로에 대한 기대감과 부담감을 조금씩 내려놓고 활짝 웃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 조금 더 몸 만들어요…맘껏 뽐낼 해변이 기다려요

    조금 더 몸 만들어요…맘껏 뽐낼 해변이 기다려요

    여행지에 대한 정보보다 여행 준비를 위한 정보가 더 중요한 시기다. 코로나19 시대라 그렇다. 우리도, 상대국도 감염병 정책이 널뛰듯 급변한다. 그러니 바깥 나라를 돌아보려면 발빠른 적응이 필수다. 변화무쌍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만이 코로나 시대의 유일한 여행법인 셈이다. 얼마 전 다녀온 태국 푸껫에서도 그랬다. 애초 태국행을 결정했을 때는 한국도, 태국도 해외 입국자 무격리였다. 한데 출장을 코앞에 두고 오미크론이 불거졌다. 10일 격리로 돌아선 우리 정부와 달리, 태국은 ‘테스트 앤드 고’ 정책을 고수했다.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음성이 확인되면 제한 없이 여행할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제 태국도 7일 격리로 돌아섰다. 태국 정부는 21일 ‘테스트 앤드 고’를 유보하고 ‘샌드박스’ 제도를 다시 적용한다고 밝혔다. 샌드박스는 지정 장소에서 일정 기간(7일)을 보내면 격리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앞서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한 푸껫이 이번에도 샌드박스 지역으로 재지정됐다.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중요한 나라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 조사에서 늘 선두권을 유지할 만큼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다. 국민 대다수에게 관광이 필수 먹거리인 만큼 격리 정책에 대한 해제 압박 역시 우리보다 거셀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당분간은 보다 꼼꼼한 여행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충’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준비해 갈 필수 서류는 코로나백신예방접종증명서, 영문 PCR 음성 확인서다. 예방접종증명서는 주민센터 등에서 무료로 발급해 준다. 영문 PCR 음성 확인서는 선별검사소가 있는 큰 병원에서 발급해 준다. 검사 방식은 우리도, 태국도 신속(RT) PCR이다. 발급 수수료는 15만원 안팎이다. 본인 이름과 한국 주소의 영문 표기가 서류마다 일치하는지 신경 써야 하고, 현지 숙소 주소 등도 꼼꼼하게 표기하는 게 좋다. 푸껫행 직항편 탑승 시간을 기준으로 72시간 전에 발급된 RT PCR 음성확인서만 유효하다. 방콕행이 아닌 푸껫행 직항편이란 것에 유의해야 한다. 방콕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푸껫으로 가는 직항편은 아직 재개되지 않았다. 예전처럼 싱가포르를 경유해 가는 것이 대안이 될 듯하다.태국에 도착하면 곧바로 PCR 검사를 받는다. ‘테스트 앤드 고’ 때는 공항 외부 병원에서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검사를 받았다. 이 정책이 복원되기 전까지는 공항에서 검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6시간 정도 걸린다. 음성이 확인돼야 비로소 숙소의 방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모차나(Morchana) 앱도 설치해야 한다. 우리의 쿠브(COOV) 비슷한 백신 패스다. 푸껫 경계의 검문소 등에서 이 앱이나 백신접종증명서를 요구할 때도 있다. 태국 내 PCR 검사는 2회다. 도착 즉시 받고, 출국 72시간 전에 또 한 번 받는다. ‘에어텔’ 상품처럼 숙박과 PCR 검사를 합한 상품도 있다. 예를 들어 페닌슐라 방콕 호텔에 투숙할 경우 검사비용은 2400밧(약 8만 5000원)이다. 3900밧(약 14만원)에서 할인된 가격이다. 다른 호텔들도 2000~3000밧 선에서 PCR 검사를 진행해 준다.모든 여행자가 만들어야 했던 ‘타일랜드 패스’는 일시 중단됐다. 이미 패스를 받은 여행자에게만 한시적으로 무격리 입국을 허용할 예정이다. 코로나 여행자보험, 푸껫 샌드박스 전용 입국허가서(COE)도 필수다. 자세한 내용은 태국관광청 누리집(www.visitthailand.or.kr)에서 확인하는 게 좋겠다. 이제 여행지를 말할 차례다. 태국 사람들에게 푸껫은 우리의 제주와 같은 곳이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해도, 높은 물가 때문에 누구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요즘 푸껫은 다시 태국 사람들의 천국이 됐다. 물가도 내려갔고, 외국 여행객 숫자도 확 줄었다. 특히 소란과 무례의 대명사인 중국 관광객이 사라진 것에 만족해하는 눈치다. 푸껫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사멧낭시다. 팡아만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의 언덕’이다. 단순한 전망대를 넘어 ‘답답증’에 걸릴 듯한 시야를 뻥 뚫어 주고 방문객의 심상을 음유시인처럼 만들어 주는 놀라운 곳이다. 행정구역은 짱왓팡아다. 우리 식으로는 팡아도(道)쯤 되려나. 한데 방문객 대부분은 짱왓푸껫에서 온다. 사실상 푸껫과 가깝다는 뜻이다. 현지인의 발음을 우리 식으로 표기하면 ‘사메드 나~앙 시’에 가깝다. 태국관광청의 공식 표기 역시 ‘Samed Nang Chee’다. 한데 구글 지도나 현지인 사이에선 ‘Samet Nang Che’로 표기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여명의 사멧낭시를 ‘영접’하려면 푸껫에서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현지 여행업체에선 ‘푸껫에서 30분 거리’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이 시간 안에 닿으려면 ‘목숨 걸고’ 달려야 한다. 푸껫 중심부 숙소에선 승용차로 최소 1시간 30분, 푸껫 중북부에서도 1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1㎞ 정도. 돈을 내더라도 가급적 사륜 지프차로 오르길 권한다. 제법 된비알이어서 걸어서 오르면 이후 일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사멧낭시로 가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섬이 있다. 돌올하게 솟구친 기상이 어디서 보든 사뭇 당당하다. 현지인이 전해준 전설에 따르면 이 바위 섬은 젊은 남자 스님이 변한 것이다. 전설이 그럴싸해지려면 상대가 있어야 할 터. 이 스님을 만나러 가는 여성 보살이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한데 스님이 있는 곳까지 가는 게 문제였다. 맹그로브 숲을 넘고, 팡아만의 물길을 헤치려면 치맛단을 걷어야 했다. 바로 이 장면, 그러니까 치맛단을 걷어 올린 여성 보살의 모습이 바로 사멧낭시다. 전망대 정상에 오르면 팡아만 일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베트남 할롱베이처럼 대부분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다. 사멧낭시는 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사이에서도 해돋이 명소로 급격히 발돋움하는 중이다. 캠핑을 하며 은하수를 촬영하는 이들도 많다. 은하수가 흐르는 어두운 밤을 지나 해가 뜨는 새벽까지, 사멧낭시엔 늘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캠핑을 원할 경우 주민에게 텐트를 대여할 수 있다. 긴팔원숭이 재활센터(Gibbon Rehabilitation Project의 약자인 GRP로 불린다)도 깊은 인상을 받은 곳 중 하나다. 요즘 태국에서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는 동물권에 대한 각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GRP는 일부 활동가들이 인간과의 경쟁에서 상처받은 긴팔원숭이를 돌보는 곳이다. 이 센터에서만 30년 동안 350마리가 넘는 긴팔원숭이를 구조했다고 한다. 긴팔원숭이는 야생의 곡예사다. 시속 60㎞의 속도로 나무 사이를 오갈 수 있다. 타고난 성악가이기도 하다. 보통 가족 단위로 사는데, 영역을 방어하기 위해 고음의 소리를 낸다.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선율 덕에 태국 사람들은 긴팔원숭이를 ‘숲의 여왕’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서식지가 파괴되고 밀렵이 성행하면서 멸종 위기까지 내몰렸다.GRP에서 생활하는 긴팔원숭이들은 한때 인간들의 노리개였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녀석도 있고, 음식점이나 절집 등의 호객 행위에 동원된 녀석도 있다. 어릴 때는 그나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만, 힘이 세지고 공격적인 나이가 되면 그냥 버려진다. 야생의 생존 방식을 미처 배우지 못한 채 말이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GRP엔 긴팔원숭이 15마리가 살고 있다. 원래 14마리였으나, 최근 구조된 ‘새미’가 합류하면서 수가 늘었다. 이들은 대부분 유무형의 상처를 안고 있다. 실명과 백내장에 시달리고, 손과 발이 절단된 녀석도 있다. 이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GRP에 머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짝에 적응한 몇몇 개체만 야생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GRP에서 300m 정도 올라가면 방패 폭포가 나온다. 이 공원의 유래가 된 유명한 폭포다. 가볍게 산책 삼아 다녀올 만하다. GRP 인근의 무슬림 마을에선 고무농장, 파인애플 따기, 염색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태국도 우리처럼 마을 단위에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내놓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파통 중심부의 방라로드는 푸껫에서 가장 현란한 밤 풍경을 선보이는 곳이다. 출입구 쪽에서 체온을 재고 입장할 수 있다. 주말 무렵엔 관광객들로 북적대지만 평일엔 예전 활기를 되찾지 못한 분위기다. 카타, 카론 등 유명 해변들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다만 ‘해방구’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선지, 외국 관광객 대부분은 관광지 내부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마스크를 쓰는 태국인들과 비교되는 장면이다.코랄섬은 찰롱 부두에서 스피드 보트로 10분 남짓 걸리는 섬이다. 거리가 가까워 시간이 많지 않은 여행자에게 제격이다. 푸껫 일대의 다른 섬처럼 스노클링, 투명 카약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해변은 텅 비었다. 태국인과 몇몇 외국 관광객들이 그 너른 해변을 독차지하고 있다. 자연 회복 등을 이유로 문을 닫았던 크라비의 마야 비치는 내년 초 열릴 예정이다.푸껫 올드타운은 뜻밖에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중국과 포르투갈 양식이 결합된 치노 포르투기스(Chino Portuguese) 양식의 건물 등 독특한 건물들이 많다. 푸껫 올드타운은 1800~1900년대 주석 채굴 황금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노다지를 찾아 태국으로 이주해 온 중국인, 말레이시아인들이 모여 산다. 푸껫 올드타운이 말레이시아 이포, 페낭 등의 올드타운과 판박이처럼 닮은 건 이 때문이다. 푸껫 올드타운의 주민 역시 대부분이 중국계다. 중국 이민자의 후손은 바바()라고 부른다. 이들은 태국인으로 살지만 바바로서의 정체성도 잊지 않는다. 미국 배우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가 영화 ‘비치’(2000) 촬영 당시 묵었던 앙앙(on on) 호텔 화장실처럼, 지금도 오래된 건물의 화장실 벽엔 남자는 바바, 여자는 뇨냐(娘惹)라고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다.고풍스런 건물 일부엔 그래피티도 그려져 있다. 가장 유명한 건 태국 예술가 앨릭스 페이(파타폴 탱루엔)가 그린 ‘빨간 거북이 마디’다. 중국인의 ‘최애’ 색인 빨간색 등껍질을 이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처럼 주인공 이마에 세 번째 눈이 달린 것이 특징이다. 태국의 존경받는 왕 라마 9세의 벽화도 있다. 그를 구름 위의 존재로 표현했다. 태국인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방콕에 왕궁-새벽사원 코스가 있다면, 푸껫엔 빅부다 왓찰롱 코스가 있다. 빅부다는 이름처럼 높이 45m의 거대한 불상이 있는 곳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아 전망도 훌륭하다. 왓찰롱은 푸껫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다양한 형태의 불교 전각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수첩] -우리나라 여행객 대부분이 한번은 들렀을 파통의 쇼핑몰 정실론은 아직도 폐쇄 중이다. 푸껫 시내의 로빈슨 백화점은 문을 열었다. 귀국 선물 등을 살 수 있다. -숙박업체들은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해변과 바짝 붙은 몇몇 리조트는 성수기의 투숙률을 회복해 가는 듯하다. 다만 가격은 여전히 낮게 형성돼 있다. 30만~40만원대의 고급 리조트들도 20만원 대에 묵을 수 있다. 외국 관광객은 태국 정부가 인증한 코로나 안심 마크 ‘SHA+(플러스)’를 획득한 숙소에서만 묵을 수 있다. 대부분 숙박업체들이 인증 마크를 받긴 했지만 가급적 대형 리조트에 묵길 권한다. 푸껫 시내 인터콘티넨털 호텔, 센타라 리조트, 카타타니 리조트 등이 ‘SHA+’급 숙소들이다. 다들 해변을 끼고 있는 고급 리조트이다. 푸껫 공항 위에 있는 살라푸껫 호텔도 권할 만하다. 푸껫 시내에서 30~40분 떨어진 북부에 있는데, 그만큼 한적해서 좋다. 호텔 앞 너른 해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시야를 가리는 섬도 없다. 이 분위기엔 팝송 ‘워터 이즈 와이드’가 딱일 듯하다. -원춘(One Chun) 레스토랑은 꼭 들르길 권한다. 메뉴 하나하나 흠잡을 데 없는 맛을 선사한다. 푸껫 올드타운 초입에 있어 찾기는 쉽지만 주차 공간은 없다.
  • 조금 더 마음 달래요, 눈이 부신 절경이 있잖아요

    조금 더 마음 달래요, 눈이 부신 절경이 있잖아요

    여행지에 대한 정보보다 여행 준비를 위한 정보가 더 중요한 시기다. 코로나19 시대라 그렇다. 우리도, 상대국도 감염병 정책이 널뛰듯 급변한다. 그러니 바깥 나라를 돌아보려면 발빠른 적응이 필수다. 변화무쌍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만이 코로나 시대의 유일한 여행법인 셈이다. 얼마 전 다녀온 태국 푸껫에서도 그랬다. 애초 태국행을 결정했을 때는 한국도, 태국도 해외 입국자 무격리였다. 한데 출장을 코앞에 두고 오미크론이 불거졌다. 10일 격리로 돌아선 우리 정부와 달리, 태국은 ‘테스트 앤드 고’ 정책을 고수했다.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음성이 확인되면 제한 없이 여행할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제 태국도 7일 격리로 돌아섰다. 태국 정부는 21일 ‘테스트 앤드 고’를 유보하고 ‘샌드박스’ 제도를 다시 적용한다고 밝혔다. 샌드박스는 지정 장소에서 일정 기간(7일)을 보내면 격리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앞서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한 푸껫이 이번에도 샌드박스 지역으로 재지정됐다.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중요한 나라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 조사에서 늘 선두권을 유지할 만큼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다. 국민 대다수에게 관광이 필수 먹거리인 만큼 격리 정책에 대한 해제 압박 역시 우리보다 거셀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당분간은 보다 꼼꼼한 여행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충’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준비해 갈 필수 서류는 코로나백신예방접종증명서, 영문 PCR 음성 확인서다. 예방접종증명서는 주민센터 등에서 무료로 발급해 준다. 영문 PCR 음성 확인서는 선별검사소가 있는 큰 병원에서 발급해 준다. 검사 방식은 우리도, 태국도 신속(RT) PCR이다. 발급 수수료는 15만원 안팎이다. 본인 이름과 한국 주소의 영문 표기가 서류마다 일치하는지 신경 써야 하고, 현지 숙소 주소 등도 꼼꼼하게 표기하는 게 좋다. 푸껫행 직항편 탑승 시간을 기준으로 72시간 전에 발급된 RT PCR 음성확인서만 유효하다. 방콕행이 아닌 푸껫행 직항편이란 것에 유의해야 한다. 방콕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푸껫으로 가는 직항편은 아직 재개되지 않았다. 예전처럼 싱가포르를 경유해 가는 것이 대안이 될 듯하다.태국에 도착하면 곧바로 PCR 검사를 받는다. ‘테스트 앤드 고’ 때는 공항 외부 병원에서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검사를 받았다. 이 정책이 복원되기 전까지는 공항에서 검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6시간 정도 걸린다. 음성이 확인돼야 비로소 숙소의 방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모차나(Morchana) 앱도 설치해야 한다. 우리의 쿠브(COOV) 비슷한 백신 패스다. 푸껫 경계의 검문소 등에서 이 앱이나 백신접종증명서를 요구할 때도 있다. 태국 내 PCR 검사는 2회다. 도착 즉시 받고, 출국 72시간 전에 또 한 번 받는다. ‘에어텔’ 상품처럼 숙박과 PCR 검사를 합한 상품도 있다. 예를 들어 페닌슐라 방콕 호텔에 투숙할 경우 검사비용은 2400밧(약 8만 5000원)이다. 3900밧(약 14만원)에서 할인된 가격이다. 다른 호텔들도 2000~3000밧 선에서 PCR 검사를 진행해 준다.모든 여행자가 만들어야 했던 ‘타일랜드 패스’는 일시 중단됐다. 이미 패스를 받은 여행자에게만 한시적으로 무격리 입국을 허용할 예정이다. 코로나 여행자보험, 푸껫 샌드박스 전용 입국허가서(COE)도 필수다. 자세한 내용은 태국관광청 누리집(www.visitthailand.or.kr)에서 확인하는 게 좋겠다. 이제 여행지를 말할 차례다. 태국 사람들에게 푸껫은 우리의 제주와 같은 곳이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해도, 높은 물가 때문에 누구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요즘 푸껫은 다시 태국 사람들의 천국이 됐다. 물가도 내려갔고, 외국 여행객 숫자도 확 줄었다. 특히 소란과 무례의 대명사인 중국 관광객이 사라진 것에 만족해하는 눈치다. 푸껫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사멧낭시다. 팡아만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의 언덕’이다. 단순한 전망대를 넘어 ‘답답증’에 걸릴 듯한 시야를 뻥 뚫어 주고 방문객의 심상을 음유시인처럼 만들어 주는 놀라운 곳이다. 행정구역은 짱왓팡아다. 우리 식으로는 팡아도(道)쯤 되려나. 한데 방문객 대부분은 짱왓푸껫에서 온다. 사실상 푸껫과 가깝다는 뜻이다. 현지인의 발음을 우리 식으로 표기하면 ‘사메드 나~앙 시’에 가깝다. 태국관광청의 공식 표기 역시 ‘Samed Nang Chee’다. 한데 구글 지도나 현지인 사이에선 ‘Samet Nang Che’로 표기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여명의 사멧낭시를 ‘영접’하려면 푸껫에서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현지 여행업체에선 ‘푸껫에서 30분 거리’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이 시간 안에 닿으려면 ‘목숨 걸고’ 달려야 한다. 푸껫 중심부 숙소에선 승용차로 최소 1시간 30분, 푸껫 중북부에서도 1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1㎞ 정도. 돈을 내더라도 가급적 사륜 지프차로 오르길 권한다. 제법 된비알이어서 걸어서 오르면 이후 일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사멧낭시로 가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섬이 있다. 돌올하게 솟구친 기상이 어디서 보든 사뭇 당당하다. 현지인이 전해준 전설에 따르면 이 바위 섬은 젊은 남자 스님이 변한 것이다. 전설이 그럴싸해지려면 상대가 있어야 할 터. 이 스님을 만나러 가는 여성 보살이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한데 스님이 있는 곳까지 가는 게 문제였다. 맹그로브 숲을 넘고, 팡아만의 물길을 헤치려면 치맛단을 걷어야 했다. 바로 이 장면, 그러니까 치맛단을 걷어 올린 여성 보살의 모습이 바로 사멧낭시다. 전망대 정상에 오르면 팡아만 일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베트남 할롱베이처럼 대부분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다. 사멧낭시는 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사이에서도 해돋이 명소로 급격히 발돋움하는 중이다. 캠핑을 하며 은하수를 촬영하는 이들도 많다. 은하수가 흐르는 어두운 밤을 지나 해가 뜨는 새벽까지, 사멧낭시엔 늘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캠핑을 원할 경우 주민에게 텐트를 대여할 수 있다. 긴팔원숭이 재활센터(Gibbon Rehabilitation Project의 약자인 GRP로 불린다)도 깊은 인상을 받은 곳 중 하나다. 요즘 태국에서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는 동물권에 대한 각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GRP는 일부 활동가들이 인간과의 경쟁에서 상처받은 긴팔원숭이를 돌보는 곳이다. 이 센터에서만 30년 동안 350마리가 넘는 긴팔원숭이를 구조했다고 한다. 긴팔원숭이는 야생의 곡예사다. 시속 60㎞의 속도로 나무 사이를 오갈 수 있다. 타고난 성악가이기도 하다. 보통 가족 단위로 사는데, 영역을 방어하기 위해 고음의 소리를 낸다.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선율 덕에 태국 사람들은 긴팔원숭이를 ‘숲의 여왕’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서식지가 파괴되고 밀렵이 성행하면서 멸종 위기까지 내몰렸다.GRP에서 생활하는 긴팔원숭이들은 한때 인간들의 노리개였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녀석도 있고, 음식점이나 절집 등의 호객 행위에 동원된 녀석도 있다. 어릴 때는 그나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만, 힘이 세지고 공격적인 나이가 되면 그냥 버려진다. 야생의 생존 방식을 미처 배우지 못한 채 말이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GRP엔 긴팔원숭이 15마리가 살고 있다. 원래 14마리였으나, 최근 구조된 ‘새미’가 합류하면서 수가 늘었다. 이들은 대부분 유무형의 상처를 안고 있다. 실명과 백내장에 시달리고, 손과 발이 절단된 녀석도 있다. 이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GRP에 머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짝에 적응한 몇몇 개체만 야생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GRP에서 300m 정도 올라가면 방패 폭포가 나온다. 이 공원의 유래가 된 유명한 폭포다. 가볍게 산책 삼아 다녀올 만하다. GRP 인근의 무슬림 마을에선 고무농장, 파인애플 따기, 염색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태국도 우리처럼 마을 단위에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내놓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파통 중심부의 방라로드는 푸껫에서 가장 현란한 밤 풍경을 선보이는 곳이다. 출입구 쪽에서 체온을 재고 입장할 수 있다. 주말 무렵엔 관광객들로 북적대지만 평일엔 예전 활기를 되찾지 못한 분위기다. 카타, 카론 등 유명 해변들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다만 ‘해방구’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선지, 외국 관광객 대부분은 관광지 내부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마스크를 쓰는 태국인들과 비교되는 장면이다.코랄섬은 찰롱 부두에서 스피드 보트로 10분 남짓 걸리는 섬이다. 거리가 가까워 시간이 많지 않은 여행자에게 제격이다. 푸껫 일대의 다른 섬처럼 스노클링, 투명 카약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해변은 텅 비었다. 태국인과 몇몇 외국 관광객들이 그 너른 해변을 독차지하고 있다. 자연 회복 등을 이유로 문을 닫았던 크라비의 마야 비치는 내년 초 열릴 예정이다.푸껫 올드타운은 뜻밖에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중국과 포르투갈 양식이 결합된 치노 포르투기스(Chino Portuguese) 양식의 건물 등 독특한 건물들이 많다. 푸껫 올드타운은 1800~1900년대 주석 채굴 황금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노다지를 찾아 태국으로 이주해 온 중국인, 말레이시아인들이 모여 산다. 푸껫 올드타운이 말레이시아 이포, 페낭 등의 올드타운과 판박이처럼 닮은 건 이 때문이다. 푸껫 올드타운의 주민 역시 대부분이 중국계다. 중국 이민자의 후손은 바바()라고 부른다. 이들은 태국인으로 살지만 바바로서의 정체성도 잊지 않는다. 미국 배우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가 영화 ‘비치’(2000) 촬영 당시 묵었던 앙앙(on on) 호텔 화장실처럼, 지금도 오래된 건물의 화장실 벽엔 남자는 바바, 여자는 뇨냐(娘惹)라고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다.고풍스런 건물 일부엔 그래피티도 그려져 있다. 가장 유명한 건 태국 예술가 앨릭스 페이(파타폴 탱루엔)가 그린 ‘빨간 거북이 마디’다. 중국인의 ‘최애’ 색인 빨간색 등껍질을 이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처럼 주인공 이마에 세 번째 눈이 달린 것이 특징이다. 태국의 존경받는 왕 라마 9세의 벽화도 있다. 그를 구름 위의 존재로 표현했다. 태국인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방콕에 왕궁-새벽사원 코스가 있다면, 푸껫엔 빅부다 왓찰롱 코스가 있다. 빅부다는 이름처럼 높이 45m의 거대한 불상이 있는 곳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아 전망도 훌륭하다. 왓찰롱은 푸껫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다양한 형태의 불교 전각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수첩] -우리나라 여행객 대부분이 한번은 들렀을 파통의 쇼핑몰 정실론은 아직도 폐쇄 중이다. 푸껫 시내의 로빈슨 백화점은 문을 열었다. 귀국 선물 등을 살 수 있다. -숙박업체들은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해변과 바짝 붙은 몇몇 리조트는 성수기의 투숙률을 회복해 가는 듯하다. 다만 가격은 여전히 낮게 형성돼 있다. 30만~40만원대의 고급 리조트들도 20만원 대에 묵을 수 있다. 외국 관광객은 태국 정부가 인증한 코로나 안심 마크 ‘SHA+(플러스)’를 획득한 숙소에서만 묵을 수 있다. 대부분 숙박업체들이 인증 마크를 받긴 했지만 가급적 대형 리조트에 묵길 권한다. 푸껫 시내 인터콘티넨털 호텔, 센타라 리조트, 카타타니 리조트 등이 ‘SHA+’급 숙소들이다. 다들 해변을 끼고 있는 고급 리조트이다. 푸껫 공항 위에 있는 살라푸껫 호텔도 권할 만하다. 푸껫 시내에서 30~40분 떨어진 북부에 있는데, 그만큼 한적해서 좋다. 호텔 앞 너른 해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시야를 가리는 섬도 없다. 이 분위기엔 팝송 ‘워터 이즈 와이드’가 딱일 듯하다. -원춘(One Chun) 레스토랑은 꼭 들르길 권한다. 메뉴 하나하나 흠잡을 데 없는 맛을 선사한다. 푸껫 올드타운 초입에 있어 찾기는 쉽지만 주차 공간은 없다.
  • 새끼 잃은 원숭이, 강아지 250마리 죽였다…‘사람까지 공격’

    새끼 잃은 원숭이, 강아지 250마리 죽였다…‘사람까지 공격’

    새끼 잃은 원숭이, 강아지 대량 살상당국, 원숭이 포획해 서식지에 방생 인도에서 개 250여 마리를 죽인 원숭이 두 마리가 당국에 붙잡혔다. 이 원숭이는 자신의 새끼를 죽인 강아지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학살을 자행해 왔다고 알려졌다. 21일(현지시간) 뉴욕포스트 등 외신은 인도 마하라슈트라주(州) 비드 지역 산림청이 지난 19일 강아지 250여 마리를 죽인 원숭이를 포획했다고 보도했다. 산림 당국은 원숭이들을 ‘살해’ 혐의로 형사 고발은 하지는 않을 것이며, 인근 숲에 풀어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많은 개를 죽인 사건에 연루된 원숭이 두 마리가 포획됐다”면서 “원숭이들은 마을 인근에 있는 숲에 풀어줬다”고 밝혔다. 최근 해당 지역에서 원숭이 무리들이 250여 마리에 달하는 개를 건물과 나무 꼭대기 등으로 끌고 가 떨어뜨려 죽였다. 현지 주민들은 약 한 달 전 떠돌이 개들이 원숭이 새끼를 죽인 후 원숭이들이 ‘피의 복수’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마을 주민 소나웨인는 “공격할 강아지를 찾지 못한 원숭이들이 마을 아이들을 공격하기도 했다”며 “특히 최근 8살 아이가 원숭이에게 끌려가다 마을 주민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주민들조차 원숭이의 ‘복수’ 두려워 적극적인 조처 못해 주민들은 원숭이 무리에게 화를 당할까 봐 선뜻 나서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장에 출동한 산림청 관계자들도 원숭이가 워낙 빠르게 도망쳐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원숭이들이 마을 내 개가 보이지 않자 어린아이를 목표로 삼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공격당하는 일까지 발생하자 산림청 관계자들이 다시 마을을 찾아 무리 중 두 마리를 붙잡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인도에서는 경제 발전에 따른 서식지 파괴로 인해 원숭이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원숭이를 ‘하누만’(원숭이신)의 화신으로 믿고 신성시해 주민들이 원숭이를 도살하는 것을 반대해, 해당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인도가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하면서 서식지를 잃은 원숭이들이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14명 굴비 엮듯 고문하고 살해” 미얀마 군부 40명의 민간인 학살 증언

    “14명 굴비 엮듯 고문하고 살해” 미얀마 군부 40명의 민간인 학살 증언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사정권이 반군부 세력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민간인 40명가량을 학살한 것으로 자체 조사됐다고 영국 BBC 방송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런 잔학한 학살을 저지른 병사들 가운데 17~18세 어린 병사들도 있었고, 늙수그레한 병사도 있었으며, 여군 병사도 한 명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민간인 대량 학살은 지난 7월 중부 사가잉 지역의 반군부 세력 근거지인 카니구(區)에서 네 건의 별개 사건에 걸쳐 이뤄졌다. BBC가 인터뷰한 카니구 주민 11명의 진술과 영국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미얀마 위트니스’가 수집한 이들의 휴대전화 영상과 사진들을 비교한 결과 가장 규모가 큰 학살은 인(Yin) 마을에서 벌어졌다. 이 마을에서는 적어도 14명의 남성이 줄에 몸이 묶인 채 고문을 받거나 구타를 당한 뒤 사망했고, 시신들은 숲이 우거진 도랑에 버려졌다. 당시 형제와 조카, 그녀의 남편을 잃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봤다는 한 여성은 “우리는 살해된 사람들이 고문당하는 것을 지켜보기 힘들어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며 “군인들에게 그만둘 것을 간청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달아나 목숨을 건진 한 남성은 “결박된 남성들은 돌이나 소총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았고, 고문도 당했다”고 증언했다. 지난 7월 말 근처 마을에 있는 무덤들에서는 훼손된 12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들 가운데는 어린아이나 장애인으로 추정되는 것도 보였다. 이 같은 대량 학살이 발생하기 전 사가잉 지역에서는 민주주의 복원을 요구하는 민간 무장세력인 시민방위군(PDF)과 군부와의 충돌이 몇 개월째 이어졌다. 이런 까닭에 BBC 방송은 마을 곳곳에서 벌어진 학살이 보복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놀라운 것은 미얀마 군부가 이런 사실을 애써 부인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조 민 툰 군정 대변인은 BBC에 “시민방위군이 우리를 적으로 취급하면 우리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당당히 말했다. 지난해 11월 총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며,지난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최근까지 강한 저항에 맞닥뜨리고 있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 학살, 고문 등 군경의 잔학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유엔이 미얀마 군부에 의해 자행된 인권 유린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미얀마군과 소수민족 무장단체인 카렌민족연합(KNU)의 교전이 지속돼 최근 주민 수천명이 태국으로 피신한 가운데 이 중 600여명이 미얀마로 송환됐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태국 북부의 딱주 관계자는 국경을 넘어 들어온 미얀마 난민 623명을 미얀마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2094명은 계속해서 태국쪽 접경 지역에 머물고 있다면서 이들이 희망한다면 본국으로 송환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더 많은 난민들이 재산 피해를 우려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 인권단체들은 난민들의 안전을 이유로 송환에 반대하고 있다. 한편 군부는 가택 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무전기 불법소지 혐의에 대한 선고를 다음 주로 연기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미얀마 법원은 이날 열릴 예정이던 수치 고문에 대한 선고 공판을 오는 27일로 미뤘다. 현행 형법에 따르면 두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최대 4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법원이 선고 일정을 미룬 것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온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노벨평화상 위원회를 비롯해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 등은 지난 6일 첫 선고 이후 미얀마 군정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다면서 일제히 비난 성명을 냈다. 수치 고문은 얼마 전 법정에 처음으로 죄수복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 “난 애 아냐” 8세 소녀 몸에 갇힌 英20대 여성의 사연

    “난 애 아냐” 8세 소녀 몸에 갇힌 英20대 여성의 사연

    어린아이 몸속에 갇힌 것처럼 키가 작은 20대 여성의 사연이 세상에 공개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에 사는 22세 여성 쇼네이 레이는 생후 6개월 때 희소 뇌종양을 진단받고 항암 치료를 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부작용 때문에 키가 약 116㎝에서 멈추고 말았다. 이는 8세 아동의 평균 키다.쇼네이 레이의 이 같은 사연은 미 케이블 채널 TLC에서 내년 초 방영하는 리얼리티 시리즈 ‘아이 앰 쇼네이 레이’(I Am Shauna Rae) 예고편에서 소개됐다. 영상에서 레이는 “당신이 날 보면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사실 성인 여성”이라고 밝히면서 “8세 아이 몸에 갇힌 22세 여성”이라고 설명했다.레이는 또 “항암 치료 때문에 뇌하수체가 거의 휴면 상태가 됐다. 이에 의사들은 내게 성장이 끝났다고 했다”고 밝히면서 “내 키는 3피트 10인치”라고 말했다.영상은 레이가 술집에 가고, 몸에 문신을 새기고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는 모습을 담았다. 그때마다 그녀는 미성년자로 오해를 받았다.레이의 동안 외모는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도 어렵게 한다. 현재 남자 친구가 없다고 밝힌 그녀는 “아첨꾼이나 멍청이 또는 재수 없는 남자가 꼬인다”면서 “밖으로 나서는 게 무섭긴 하지만, 행복해지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번은 소개팅에 나갔을 때 자신이 걸어가 소개를 하자 그 남성이 “몰래카메라 인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고 그녀는 회상했다.영상에는 또 레이의 어머니가 출연해 딸이 외모 때문에 사람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고 인정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딸이 평생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다는 점에 죄책감을 느낄 때가 많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딸을 지켜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레이는 부모가 자신을 너무 과잉보호하려 든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레이의 아버지는 딸이 친구들과 술 마시러 가기 전에 어디를 가는지 추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레이는 “가족으로부터 더 독립하고 싶다”고 밝히면서 “가족이 허락해주지 않고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영상은 또 레이가 폴댄스 수업을 받거나 친구들과 술집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술이 살짝 오른 그녀에게 친구들은 수다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레이의 어머니는 “딸이 독립할 준비가 돼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렇게 할 필요는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자 레이는 “올해 안에 꼭 독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 홍콩 길거리에서 무릎꿇고 “죄송해요” 외치는 아이

    홍콩 길거리에서 무릎꿇고 “죄송해요” 외치는 아이

    홍콩에서 한 어린아이가 길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다. 16일(현지시간) 홍콩 매체 hk01 등은 최근 홍콩의 길거리에서 3~4살로 보이는 남자아기가 여성 앞에 무릎을 꿇고 “죄송해요”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아이 앞 여성은 보모로 알려졌다. 홍콩의 한 거리에서 촬영된 해당 영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아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있고, 보모는 그런 아이를 가만히 내려다볼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영상을 촬영한 목격자는 “멀리서 아이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처음에는 아이가 계속 손바닥에 묻은 흙을 털길래 실수로 넘어진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 앞에 있던 여성은 2~3분 동안 무릎을 꿇은 아이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끊임없이 ‘죄송해요’를 외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목격자는 아이에게 직접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하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여성에게 묻자 “(아이가)장난을 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기 위해 거리에 무릎을 꿇는 벌을 줬다”고 말했다. 영상을 접한 네티즌은 “이건 교육이 아니라 학대다”, “아이 엄마가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플 듯”, “명백한 아동학대”, “사람들도 있는데 아이도 얼마나 수치심을 느낄까”등 반응을 보였다.보모는 훈육이라 말하겠지만 아이에게는 굴복이었을 것이다. 훈육은 단호하고 엄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처럼 무섭게 협박하거나 겁주며 냉정하게 하는 것은 훈육이 아니라 정서적 학대다. 잘못된 훈육은 아이에게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절대 어린아이를 타인이 보는 앞에서 꾸짖지 말라”고 조언한다.
  • 학기말 파티 중 날아가버린 놀이기구…호주 초등학생들 참변

    학기말 파티 중 날아가버린 놀이기구…호주 초등학생들 참변

    어린이 4명 사망·5명 중상 호주에서 공기를 주입하는 놀이기구가 돌풍에 날아가 학생 4명이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AFP와 CNN 등에 따르면 16일(현지시간) 오전 10시쯤 호주 북부 태즈메이니아 데본포트에 있는 힐크레스트 초등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학기 말 파티가 한창이었다. 그 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면서 어린이들이 놀던 놀이기구가 돌풍에 날아가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놀이기구는 공기를 넣어 부풀린 뒤 어린이들이 그 위에서 점프하며 노는 인기 있는 기구로, 갑작스러운 돌풍에 약 10m 높이까지 날아올랐다. 이에 기구에서 뛰어놀던 11살가량의 6학년 학생들이 10m 아래로 떨어지면서 4명이 숨졌고 5명이 크게 다쳤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숨진 어린이는 각각 남녀 2명씩으로, 다친 어린이들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대런 하인 현지 경찰서장은 “4명의 어린이가 죽었고 다른 어린이들은 위독한 상태이며 한 명은 위중하다”고 설명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이 사건과 관련해 “어린아이들이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날 외출한 것인데 이것이 끔찍한 비극으로 변했다”며 “충격적이고 가슴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 ‘분노의 질주’ 나온 희귀 차량, 아이들 ‘쾅쾅’ 발길질에도 부모는 모르쇠

    ‘분노의 질주’ 나온 희귀 차량, 아이들 ‘쾅쾅’ 발길질에도 부모는 모르쇠

    어린아이 두 명이 주차된 차량에 발길질을 해 차량을 파손시켰지만 부모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한 차주의 사연이 공개됐다. 파손된 차량은 영화 ‘분노의 질주’에 등장해 중고차 시장에서 높은 값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4일 유튜브 채널 ‘한문철 TV’에는 ‘우리나라에 몇 대 없는 차인데 어린이들이 다 부쉈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들 어떻게 해야 하나요?’란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은 지난 10월 21일 한 지하 주차장에서 촬영된 것으로, 킥보드를 타던 아이 2명이 주차된 차량을 파손하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에서 아이들은 주차된 차 옆에 서서 차를 발로 걷어차기 시작하더니, 차를 빙 돌며 발길질을 이어갔다. 제보자 A씨는 “차를 파손한 아이들은 7살, 8살로 동네 친구 사이인 걸로 알고 있다”면서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어봤지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답도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차가 파손된 것을 확인하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 결과 재물손괴죄 혐의는 인정됐지만 아이들이 형사미성년자여서 처벌이 어려워 사건은 며칠 만에 종결됐다. A씨는 “아이들의 부모를 각각 만나 합의점을 찾고자 얘기했지만 진척이 없었다”며 “한 아이의 아버님은 따로 견적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지하 주차장에 차가 있으니 보시라 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 견적도 안 보시고 광택을 내보자는 소리만 한다. 또 다른 아이의 부모님은 단 한 통의 연락도 없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이어 “저도 편의를 많이 봐줬다고 생각해 전화 통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도, 하지도 않으신다”며 “라이트, 범퍼, 문짝 등 돌아가면서 360도 다 부셔놨다. 이런 무책임한 부모들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답답해했다. A씨에 따르면, 피해 차량은 국내에 몇 대 없는 희귀 차량인 도요타의 80 수프라다. 이 차량은 2001년 개봉한 영화 분노의 질주에 등장해 전 세계적인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어서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희귀 모델이란 게 제보자의 설명이다. A씨는 “80 수프라 차량은 우리나라에 20대도 안 된다”며 “(나온 지) 20년 된 차지만 시세가 5000만 원에서 8000만 원가량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제보자 차는 차체와 라이트, 범퍼, 흙받기, 문짝, 머플러까지 파손돼 수리 견적만 3000만 원이 나온 상태다. 한문철 변호사는 “자차 가입이 안돼 있으면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의 부모를 상대로 민사 소송해야 한다”면서 “다만 수리 견적이 3000만원이라고 하는데, 견적서 가지고는 못 이긴다. 실제 수리 후 수리 비용을 청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판사가 중고차 시세를 감정하라고 한 후, 중고찻값보다 수리비가 더 비싸면 중고차값만큼만 인정할 수도 있다”면서 “판사가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어 마니아층의 실거래가를 인정 안 해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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