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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혼상제 의미 알면 지키기 쉽습니다”

    “관혼상제 의미 알면 지키기 쉽습니다”

    “무엇이든 세월이 가면 변하게 마련입니다. 아니, 변하지 않으면 오히려 사라질지도 모르지요. 혼례나 상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관행적으로 따르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지만, 의미를 알면 격식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시대에 맞게 바꾸어 가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아요. 이 책을 쓴 이유입니다.” 정종수(53)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이 ‘사람의 한평생’(학고재 펴냄)을 내놓았다.‘민속으로 살핀 탄생에서 죽음까지’라는 부제처럼 한국인의 통과의례를 정리한 것이다.16일 창밖으로 인왕산이 내다보이는 명당자리인 경복궁 안 민속박물관 3층의 유물과학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본질 유지하면서 시대에 맞게 바꿔 가야 정 과장은 관혼상제를 다룬 그동안의 책들이 지나치게 딱딱한 규범만을 금과옥조인듯 담아 놓은 것이 불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읽히는 책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민속학자로 25년 남짓 내공을 쌓고서야 이 책을 세상에 펼쳐놓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는 조선시대 상장례가 전공이다. 수십년 동안 상갓집과 무덤만 찾아다니다 보니 주변에서는 그를 ‘저승사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무턱대고 마을을 찾아갔지만, 요령이 생긴 다음에는 이장이나 지관에게 명함을 건네고는 초상이 나면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만큼 ‘사람의 한평생’을 조사하고 기록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 책에는 민속학자로서 연구 결과는 물론 개인적인 경험담도 곳곳에 담겼다. 예를 들어 그는 가끔 지나가는 말로 부인에게 ‘유언’을 한다.‘부의금은 절대로 받지 말 것이며, 매장이고 납골이고 다 부질없는 일이니 화장해 당신 마음대로 뿌리고 싶은 곳에 뿌려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하면 부인은 ‘아직도 살날이 창창한데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고 손사래를 친다며 웃었다. 상장례를 공부하다 보니 나라가 온통 무덤이 돼 가는 땅 문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 초상집에는 가려고 노력하지만, 결혼식은 봉투만 보낼 뿐 애써 찾아가지는 않는다고 했다.3만원,5만원을 넣어 결혼식장에 가서 5만원,6만원짜리 밥을 먹고 나면 폐만 끼칠 뿐이지 그게 어디 잔치를 십시일반 돕는 부조냐는 것이다. 젊은 사원이 사장이나 중역의 혼례나 상례에 눈치를 보며 봉투를 내미는 것도 ‘타 먹지 못하는 보험료’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관례 되살리면 어지러운 풍속 바로 설 것 제사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 역사에서 장남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장자상속이 일반화된 1700년대에 들어서서 시작된 것”이라면서 “최근에는 다시 조선 초기처럼 균등상속으로 돌아간 만큼 제사는 여자 형제를 포함한 형제 모두가 돌아가며 지내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형제간, 동서간 갈등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는 설날이나 추석에 관광지 호텔이나 콘도에서 차례를 지내는 데도 긍정적이다. 사당과 위패를 그린 조선시대의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도 타관에 나가 있을 때 제사를 지내기 위한 대용품이지 않느냐는 것. 이렇듯 제대로 알면 쉽게 바꿀 수 있지만, 모르면 바꾸고 싶어도 되지 않는다. 까다롭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에 충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 과장은 “관혼상제 가운데 사라져버린 관례(冠禮)는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른이 되었다고 주민등록증만 줄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르는 책임도 함께 부여하는 관례를 범사회적으로 살려낸다면 어지러운 풍속도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1만 5000원. 글 사진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 김찬웅 지음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 김찬웅 지음

    “손자가 세 돌 되는/윤 3월27일에/학질이라는 병을 얻었다/먼저 몸이 차가워지고 그 후에 열이 난다(…)/소고기와 생과일이/어린아이에게 병을 잘 일으킨다는데(…)/주고 싶지만 먹으면 비장(脾臟)을 상하게 할 것 같고/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울며 보챈다(…)/손자야, 너도 네 아이를 키워봐야/마땅히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시대가 달랐다고 손자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달랐을까.‘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글항아리 펴냄)는 함의가 다채로운 조선시대 육아해설서이다. ●묵재 이문건의 ‘양아록´을 현대감각으로 재구성 글쓴이는 시나리오, 소설 등을 통해 글맛을 다져온 김찬웅 작가. 하지만 그의 텍스트는 조선 최초의 육아기록으로 알려진 ‘양아록(養兒錄)’이다.‘양아록’의 지은이는 묵재 이문건(1494∼1567).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돼 유배됐고 을사사화에 휩쓸려 다시 23년의 기나긴 유배로 생을 마친 비운의 조선 학자였다.‘묵재일기’를 통해 방대한 시대적 사료를 남긴 주인공이기도 한 그의 육아일기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자식들과 부인을 모두 잃고 그 자신 세상을 뜨기까지 무려 17년 동안 유일한 핏줄인 손자를 키우며 남긴 기록이 ‘양아록’이다. 대부분 한시로 쓰여진 원문을 책은 현대감각으로 재구성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양육방법, 자녀훈육에 대한 당대의 시각을 두루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읽을거리가 됐다. 이문건의 유일한 손자 숙길이 ‘양아록’의 주인공.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초년기,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로 구분지어 서술한다. 풍열, 간질, 두창, 홍역, 이질, 학질 등 온갖 병치레를 달고 사는 손자를 보며 할아버지는 애가 끓는다. 달리 손 쓸 방도가 없어 굿을 했던 시대 정황이 생생히 재현된다. 천연두를 앓은 지 13일 전후, 환부에 딱지가 생기며 병이 끝날 즈음 마마신을 공손이 돌려보내는 ‘마마배송굿’을 약 대신 ‘처방’해야 했다. ●“손자 아플 땐 두렵고 겁 나…” 애틋한 사랑 모두 45편의 글 가운데 질병과 관련된 것이 16편이나 된다. 몇 편의 일기에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점쟁이를 만났던 일, 옥황상제에게 축문을 올린 일 등이 상세히 실렸다. 안타까운 마음이 행간에 절절하다.“두렵고 겁이 나서 침이나 약을 쓸 수 없었는데 얼굴이 여위고 누렇게 뜬 모습이 가엾기만 하다. 그 후로 답답함과 근심을 견딜 수 없어 한가로울 때면 한숨이 새어나온다.” 조선시대 어린아이의 돌잔치 풍경을 옮겨놓은 대목 등은 특히 흥미롭다. 돌상에서 붓과 먹, 투환, 활, 쌀, 도장을 집어올릴 때마다 어른들이 아이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축원했는지 넘겨다볼 수 있다. 커가는 손자에게 ‘소학’‘대학’을 직접 가르치고 숙제를 내주며 때론 매를 드는 모습, 책을 읽지 않는다며 그네를 끊어버리겠다고 으름장 놓는 장면 등도 평범한 선비집안의 훈육과정을 가감 없이 대변해 준다. 조선의 출산, 육아문화 전반을 훑어볼 수 있는 시대의 거울로서 자잘한 정보들이 풍성한 읽을거리이다.1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문화마당] 더티 올드맨 & 앙팡 테리블/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문화마당] 더티 올드맨 & 앙팡 테리블/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어느 시대나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과 충돌은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가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없어 큰일이다.”라는 탄식이었다고 하니, 세대 간의 그 유구한 반목의 역사에 새삼 놀라게 된다. 오랫동안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을 추하고 타락한 인간들이라고 비난해 왔고, 늙은이들은 젊은이들을 버릇없고 건방지다고 비판해 왔다. 예컨대 기성세대의 문화에 반발하는 ‘반문화(counter-culture)’를 만들어낸 19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모토는 ‘30세가 넘은 사람들은 믿지 말자.’였다. 반면, 당시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의 상징적 저항수단이었던 가출과 마약과 프리섹스를 정면으로 비난했다. 세대 간의 충돌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딸의 일본인 친구 모리 도모코가 대학졸업 기념으로 한국에 놀러왔다. 하루종일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귀가하기 위해 퇴근 길 지하철을 탄 두 사람은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남자가 왜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느냐며 호통을 쳤고, 두 젊은 여성들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삽시간에 자리를 빼앗겼다. 그 후, 도모코는 아무 말 없이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짐작컨대 그녀의 눈에 비친 한국은 나이든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횡포를 부리는 후진국이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나이가 많다고 남의 자리를, 그것도 남자가 여자의 자리를 빼앗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한국의 나이든 세대는 지난 정권의 실세였던 젊은 사람들에게 전례 없는 모욕과 수모를 당했는지도 모른다. 운동권 젊은이들은 독재정권에는 순응하면서 아랫사람들에게는 군림했던 나이 든 사람들의 권위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았다. 원래 정치이데올로기 앞에서는 나이나 서열, 또는 부모나 스승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이다. 거기에 한국 특유의 왜곡된 평등의식이 결합되면서, 지난 5년 동안 한국의 나이 든 세대는 조직에서 밀려났고, 직장에서 쫓겨났으며, 가정과 사회에서 힘을 잃었다. 그 결과, 나이 든 사람들에게 젊은이들은 무서운 ‘앙팡 테리블’이 되었고, 젊은 사람들에게 늙은이들은 추잡한 ‘더티 올드맨’이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젊은이들은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연장자들을 보수주의자, 기득권자, 특권향유자로 비난했고, 연령과 신분에 걸맞은 예우를 거부했으며, 노인들의 소중한 경험과 지혜를 무시했다. 필요한 과정을 생략하고 시류를 틈타 하루아침에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된 우리의 젊은이들은 안하무인으로 어른들을 무시했으며, 살벌한 태도로 한국사회를 둘로 갈라놓았다. 그러자 조직의 위계질서가 무너지면서 한국사회는 급격한 혼란에 빠져들어 갔다. 노무현 정권의 치명적인 실수 중 하나는, 젊은 세대의 문화와 기성세대의 문화를 의도적으로 대립하고 반목하게 함으로써, 두 세대 모두에게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혔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를 둘로 갈라놓았던 노 정권은 국민의 심판을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 두 세대 사이의 화해와 신뢰회복이며, 벌어진 상처의 치유이다. 지난 세월의 악몽이었던 세대 간의 불신과 불화는 앞서 말한 지하철 에피소드의 교훈처럼 우리의 인간관계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뿐 아니라, 나라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국제망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 함평 나비엑스포 17일 개막

    2008 함평 세계 나비·곤충 엑스포가 1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6월1일까지 45일 동안 열린다. 16일 엑스포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17일 오후 2시 함평읍 공설운동장에서는 1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미래를 만드는 작은 세계’란 엑스포 주제로 개막식과 축하공연이 이어진다. 이미 엑스포 입장권 예매에서 72만장이 팔려 나갔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7시. 입장료는 어른 1만 5000원, 청소년 1만 1000원, 어린이 9000원, 유아(만 4∼6세) 6000원이다. 주차비는 없다.●동화의 나라 엑스포 공원은 함평천을 중심으로 109만㎡ 규모다. 이곳은 동화에 나오는 신비한 나비와 곤충의 나라로 태어났다. 주 무대인 함평천 생태하천(33만여㎡)에는 습지공원과 100여종의 꽃창포 등 수생식물과 덩굴식물 등 210만 그루로 꽃동산이 꾸며졌다. 주제관에는 엑스포 주제 영상물인 만화영화(아하, 나비구조대)가 종일 상영된다. 국제나비생태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몰포 나비, 왕나비 등 국내·외 나비 39종 33만마리가 살아 군무를 펼친다. 국제곤충관에서는 어른 주먹만한 헤라클레스 왕장수풍뎅이 등 국내·외 곤충 92종 3만 4000마리를 만나게 된다. 황금박쥐생태관에서는 금덩이 162㎏(60억원)으로 제작된 황금박쥐 조형물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엑스포 관람 10경 엑스포 조직위가 관람을 추천하는 10가지가 있다. 주제관에서는 만화영화 ‘아하, 나비구조대’를 봐야 한다. 이 만화는 미국에서 열린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골든 플라밍고상을 수상할 정도로 최고 수준의 입체 영화다. 또 화석전시관, 국제나비·곤충표본관, 한국토종민물고기 전시관, 국제곤충관, 황금박쥐생태관, 숲속의 곤충마을, 친환경농업 전시관, 버드하우스 작품전시관, 나비 음악대, 뮤지컬인 아룸이와 다움이의 대모험 등도 있다. 이밖에 중국 기예단의 자전거 줄타기, 추억의 7080 음악회, 천연 염색 패션쇼 등이 있다. 문의(0505-322-2008).함평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한국에서는 봉사가 가장 쉬웠어요”

    “한국에서는 봉사가 가장 쉬웠어요”

    일상에 치여 사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봉사활동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단 몇 시간이라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에 지친 몸이 쉽게 움직일 리 없다. 봉사활동에 국경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타국살이를 하는 외국인에게 이는 더욱 머나먼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남을 도울 여유를 찾기엔 이방인이라는 꼬리표에서 오는 부담감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시 은평구 ‘나눔의 둥지’에서 만난 중국인 우서횡(于書黌·60)씨와 일본인 하세가와 마사꼬(長谷川 正子·39)씨, 아이자와 구미꼬(相澤 久美子·37)씨는 이런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깨 주었다. 타이완에서 태어난 우씨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왔다. 하세가와씨와 아이자와씨는 각각 93년과 97년 한국인을 만나 결혼하면서 이곳 생활을 시작했다. 세 사람은 현재 은평구 자원봉사센터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나눔의 둥지’에서 첫째·셋째 화요일마다 급식봉사를 하고 있다. 주부와 직장인을 겸임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세 사람은 어김없이 한 달에 두 번, 나눔의 둥지를 찾는다. 이들은 지난해 은평 구청에서 외국인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흔쾌히 지원서를 냈다. “어렸을 때 몸이 약해 병원생활을 오래했는데 그때 봉사자 분들께서 생일파티도 열어 주고 늘 곁에서 힘이 나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늦게나마 감사한 마음을 보답하고 싶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어요.” 아이자와씨가 온화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특히 하세가와씨는 일본에서도 간호 도우미 봉사활동을 했을 만큼 복지와 봉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타국살이에 자원봉사를 결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우씨는 “국적이나 장소는 상관이 없어요. 좋은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어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세가와씨는 “사회나 환경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하지만 주부이고 회사에 다니다 보니 시간이 한정되어 있잖아요. 게다가 봉사활동도 엄연한 약속인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했을 때에는 많이 아쉽고 죄송해요.”라며 도리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씨와는 달리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오랜 세월을 보낸 두 사람에게 한·일의 자원봉사 체계와 인식의 차이점을 물었다. 하세가와씨는 “한국 중·고등학생들은 의무적으로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물론 기쁜 마음으로 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부모님이 대신 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주거나 억지로 하는 학생들도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것은 좀 잘못 됐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일본의 학생들은 유네스코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어요. 대가 없이 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참여하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죠.” 한편 아이자와씨는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들로 이루어진 봉사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한 달에 한번 보육원과 노인정을 찾아 식사준비를 돕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굳이 배식이나 식사준비 등만 맡는 이유를 묻자 “아이들이나 어른들과 재미있게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만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 혹시 실수를 하진 않을까 걱정되거든요.”라고 말했다. 본인은 서투르다고 하지만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매우 유창했다. 한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더니 우씨는 ‘태안 자원봉사’를 꼽았다. “너무 참담하고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에 큰 감동도 받았죠.” 하세가와씨는 자신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을 만났던 경험을 꼽았다. “자원봉사자 중에 서대문 경찰서에 근무하시는 경찰 세 분이 있어요. 야간근무가 끝나고 바로 봉사활동에 오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아이들이 아프거나 몸이 힘들 때에는 흔들리기도 하는데, 더 힘들고 피곤한 상황에서도 열심히 봉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마지막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부탁했다. “자원봉사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쉽게 찾아 할 수 있어요. 마음에서 우러나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진=왼쪽부터 우서횡 씨, 아이자와 구미꼬 씨, 하세가와 마사꼬 씨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40) 아디스 아바바에 등장한 빨간색 2층 버스

    (40) 아디스 아바바에 등장한 빨간색 2층 버스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빨간색 2층 버스가 등장했다. 2006년에 들렀을 때만 해도 보이지 않았는데, 2007년부터 운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빨간색 2층짜리 이 근사한 버스는 아디스 아바바 시내를 일주하는 일종의 시티투어버스로 모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아프리카에서는 세 번째로 에티오피아에서 운행 중이라고 한다. 도시와 영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2층에 앉아 시내를 둘러보면 마치 런던이나 홍콩에 와 있는 착각이 든다. 비록 풍경은 남루하지만 말이다. 이 버스가 등장하기 전에 시내 관광용 차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 차량이었고, 외국인 전용이라기보다는 내국인용에 가까웠다. 아마도 2007년에 밀레니엄 행사를 준비하면서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을 위해 민간기업체가 운영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Habesha Cultural Center and Art Gallery라는 회사가 운영주체인데 버스 외관은 코카콜라가 도배를 했다. 하베샤(Habesha) 혹은 아베샤는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리아 사람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로 민족성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이 들어있다. 이에 반해 검은 피부의 유대인을 이들은 팔라샤(’외지인’ 혹은 ‘이스라엘 가문’을 의미)라고 불렀다. 참고로, 현지에서 외국인은 무조건 ‘파렌지’라고 부른다. 전통 음식과 외래 음식을 구분할 때 앞에 하베샤 혹은 파렌지를 붙여 표현하는데, 단맛이 나는 서양 빵(다보)은 파렌지 다보, 이런 식이다. 빨간버스는 아디스 아바바 시내에서만 운행되지만 세계유산을 비롯해 에티오피아의 역사적인 유적지를 중심으로 한 패키지 투어프로그램을 같은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habeshacenter.com/) 버스는 기온호텔에서 시작해’유다(Judah)의 블랙라이온동상’이 서 있는 곳까지 총 14 개 정류소를 지난다. 가이드가 탑승해 있어 안내를 해주며, 백화점이나 선물가게에서 멈출 때는 쇼핑도 가능하다. 구체적인 행선지를 살펴보면 기온호텔을 출발해 마스칼광장-덤벨시티센터-힐튼호텔-쉐라톤호텔-사자동물원-국립박물관-IES박물관-인또또 일대-Abune Petros 광장-마르카토-승리탑-국립극장-유다의 블랙라이온동상 앞에서 끝난다. 기온호텔은 과거 정부가 운영할 때만 해도 고급호텔로 분류됐다. 그러나 민간으로 운영권이 넘어 온 후에 시설 개보수가 이뤄지지 않아 시설이 아주 낙후하다. 최근에 아디스 아바바를 중심으로 하룻밤에 USD 100가 안 되는 4성급 호텔들이 속속 오픈을 하고 있는데 기온호텔 수준은 여기에도 한참을 못 미친다. 기온호텔은 바하르 다르를 비롯해 지방에도 몇 군데 더 있다. 마스칼광장은 아디스 아바바에서 제일 큰 광장으로 국가 행사가 전부 이곳에서 열린다. 에티오피아 전체에 하나 밖에 없는 메인스타디움에도 전광판이 없는데 마스칼 광장에는 쉐라톤 호텔에서 설치해 놓은 대형 전광판이 있다. 광장에 관광안내 센터가 설치되어 있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국제 공항이 있는 볼레 쪽에 자리 잡은 덤벨시티센터는 아디스 아바바의 랜드마크 빌딩이다. 북 월드(Book World)라는 외서(外書) 전문 서점이 1층에 있어 찾기 쉽다. 힐튼호텔은 아디스 아바바에서 고급호텔의 대명사이다. 아디스 아바바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백패커가 아닌 이상 대개 이곳 아니면 기온호텔에 묵는다. 호텔 바로 맞은 편에 에티오피아 외교부 건물이 있다. 쉐라톤호텔은 에티오피아 전체에서 가장 럭셔리한 호텔로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일반 커피숍에서 3 birr면 마실 수 있는 커피 한잔이 30 birr가 넘는다. 1주일에 3회 정도 오후 7시에서 8시 사이 한 시간 정도 분수쇼를 하는데 볼거리가 마땅찮은 아디스 아바바에서는 이것도 큰 구경거리다. 사자동물원에 가면 구색만 갖춘 놀이시설과 사육되는 사자를 볼 수 있다. 사진촬영은 개인적으로 할 수 없고, 공식적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가 있어 이 사람들을 통해 찍을 수 있다. 굳이 개인적으로 사진을 찍겠다면 입장료 이외에 돈을 더 내야 한다. 입장료는 10 birr. 국립박물관에 가면 상설전시는 물론 기획전시를 볼 수 있는데 아디스 아바바에 이런 전시시설이 제대로 없기 때문에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다. 1974년 에티오피아의 아파르 지역에서 발견된 350만년 전의 화석 유골 ‘루씨(Lucy)’를 볼 수 있다. 모형이긴 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루씨 전시관 앞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IES(The Institute of Ethiopian Studies) 박물관은 에티오피아에서 그나마 제대로 모양을 갖춘 박물관이며 볼 거리도 많다. 이탈리아에서 후원하고 있고, 사진 촬영은 엄격히 제한된다. 외국인 입장료는 20birr. 인또또(Intoto)는 현지에서 ‘은또또(Euntoto)’, ‘엔또또(Entoto)’ 발음들이 제각각이다. 아디스 아바바 대학에서 쉬로메다 방향으로 가면 나온다. 쉬로메다는 에티오피아 판 인사동으로 전통 의상이나 기념품들을 아주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물론 흥정하기 나름이다. 이곳에서 좀더 직진하면 아디스 아바바에서 제일 높은 해발 3,000m 정도 되는 엔또또 산에 오를 수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아이들은 맨발로 축구를 한다. Abune Petros 광장에는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이 추앙하는 Abune Petros 비숍의 동상이 서 있다. 아디스 아바바의 다운타운인 피아사(Piaza)에서 가깝다. 마르카토는 동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시장이다. ‘이곳에 없으면 세상에 없다’고 할 만큼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마르카토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다음 경유지는 굳이 번역하자면 승리탑(Victory Statue)으로 사회주의 시절에 북한에 의해 건립된 주체사상탑이 있는 곳이다. 에티오피아는 쿠바와 여전히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탑 꼭대기의 붉은 별은 여전히 선명하다. 그러나 최근에 주체사상탑 주변으로 입장료가 있는 대규모 바자가 열리는 등 이곳에서 이데올로기는 점점 퇴색되는 느낌이다. 국립극장은 영화나 연극이 상영되는 곳이다. 극장 앞에 벽돌로 만든 대형 사자상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극장 앞 빈 공터에는 노천카페가 들어서 있어, 관광 중 다리쉼 하기에 그만이다. 현지어로 ‘봄볼리노’라고 하는 터널형 도너츠에 마키아토 커피 한잔을 마시면 5.5birr. 마지막 종착지는 유다의 블랙라이온동상 앞이다. 에티오피아 제정 시대에 사용하던 국기에 이 동상과 똑 같은 모양의 사자상이 그려져 있다. 빨간버스 티켓가격은 어른은 ETB 163 birr(USD 1 ≒ ETB 9.10, 2008년 1월 기준), 어린이는 ETB 90 birr이다. 문화시설 입장료에 외국인과 현지인의 이중요금이 적용되는 에티오피아지만 시티투어버스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현지인이나 외국인이나 똑같은 요금을 내야 한다. 티켓은 버스에서 직접 구입하거나 버스회사 사무실이 있는 덤벨빌딩 3층에서 구입할 수 있다.       <윤오순>
  • [글로벌 시대] 함께 살아가는 글로벌 시대/ 전혜경 유니세프 일본사무소 조정관

    [글로벌 시대] 함께 살아가는 글로벌 시대/ 전혜경 유니세프 일본사무소 조정관

    2001년 2월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JPO (Junior Professional Officer, 자세한 내용은 http:///www.unrecruit.go.kr/참조)로 근무하기 시작한 나는 그해 11월 처음으로 난민 캠프를 가게 됐다. 개인적으로 중학교 시절부터 난민, 특히 난민 어린이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며 그들을 위해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잠비아로 향하는 나는 매우 들떠 있었다. 처음 밟은 아프리카 대륙은 매우 아름다웠고 잠비아 사람들은 따뜻하고 친절했다. 수도 루사카의 UNHCR사무소에서 잠비아에 있는 난민들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후 앙골라와 국경이 있는 웨스턴 프로빈스로 출발했다. 이후 몽구라는 도시를 거쳐 낭웨시 난민 캠프에 도착했다. 잠비아의 이웃인 앙골라는 당시 내전 중이었고 내가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하루에 수백에서 수천명의 앙골라인들이 국경을 넘어 잠비아로 피란하는 상황이었다. 수십일을 걸어온 난민들의 모습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노약자들이었다. 그나마 보이는 젊은 남자들의 대부분은 지뢰에 다리를 다친 사람들이었다. 마침 그때가 우기였는데 갑자기 수많은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오는 바람에 창고에 보유하고 있던 텐트, 주방기구 등의 긴급 지원 물품이 동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난민들은 장대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워 놓고 구호 물품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생긴 지 얼마 안 됐던 낭웨시 캠프에는 2만명 정도의 앙골라 난민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캠프가 이미 만원이어서 대부분 난민들은 캠프 밖에서 생활터가 지정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어려서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로부터 6·25전쟁과 피란 생활에 얽힌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50년이 지났지만 그런 비극은 아직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내 눈앞에 고향과 가족 그리고 소유한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고 타지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건소를 가 보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여기저기 심하게 다친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십일을 걸어오느라 극심한 영양실조와 탈진으로 쓰러진 어린이들로 병실이 가득 차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뼈만 앙상하여 만지면 으스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주머니에는 그때 5개월 된 딸아이의 사진이 있었는데 살이 올라 뺨이 터질 것 같은 사진 속의 딸아이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시대와 장소를 잘못 만나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 난민 아이들 때문에 잠비아를 떠날 때까지 딸아이 사진을 다시 볼 수가 없었다. 오늘도 수많은 어린이들이 전쟁뿐만 아니라 가난과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작년 9월 유엔아동기구(UNICEF) 발표에 따르면 5세 미만 어린이 사망자수가 처음으로 연 1000만명 미만으로 감소했다.970만이란 숫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제 사회의 꾸준한 노력으로 인해 얻은 성과이자 새천년 목표 달성을 위한 희망적인 수치다. 이는 또한 서울시 인구에 비견할 수 있는 규모의 5세 미만 어린이들이 도움을 받지 못해 죽어 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이웃이라는 개념을 다시금 생각해 볼 때가 됐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으며 그들을 모른 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제기구에서 봉사하는 한국인으로서, 지구촌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훗날 그들의 기억에 한국이 ‘우리가 어려웠을 때 도와준 고마운 나라’로 기억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우리나라가 어려웠을 때 UNICEF를 비롯한 여러 기구와 나라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한국도 이제 다른 나라에 있는 어려운 어린이들을 이웃으로 생각하고 더욱더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면 한다. 전혜경 유니세프 일본사무소 조정관
  • [4·9 총선 이후] ‘MB 직계’ 親李진영 새 주류로

    [4·9 총선 이후] ‘MB 직계’ 親李진영 새 주류로

    4·9총선 결과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지만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친이(親李·친이명박) 좌장인 이재오 의원과 핵심 측근인 이방호 사무총장의 낙마는 여권의 권력지도를 급속히 재편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양 날개인 두 사람의 공백으로 친이측의 구심점은 급격히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재오 의원은 강력한 당권주자였으나 낙선으로 도전은 기대난망이 되었다. 그의 탈락으로 한나라당은 더욱 치열한 당권투쟁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친이 진영의 ‘큰 어른’인 이 부의장은 막후 조정자의 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친이측 소장파를 형성하며 나름의 입지를 다져온 박형준·정종복 의원의 낙선도 친이측으로서는 뼈 아픈 대목이다. 특히 대운하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해온 이재오 의원과 원내 실무 추진을 전담해온 박승환 의원, 경제학자로서 이론 기반을 제공해온 윤건영 의원 등 ‘대운하 3총사’의 낙선은 대운하 물길놓기에 암초가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낙선한 이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이명박 정부의 신주류로 등장한 인물들도 눈에 띈다.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 출신의 임태희 의원은 3선의 고지를 밟았고, 당선인 대변인을 지낸 주호영 의원은 재선에 성공했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부터 핵심참모 역할을 해온 정두언 의원도 재선 의원이 됐다. 특히 눈여결 볼 대목은 ‘MB직계’그룹의 급부상이다. ‘MB직계’그룹은 참여정부 시절 친노세력처럼 이 대통령의 든든한 후원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영남의 친이들이 몰락한 가운데 이들이 수도권에서 선전을 보인 것도 특징이다. 정태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조해진 전 당선인 부대변인은 여유 있게 승리를 거머줬다. 김효재 전 선대위 언론네트워크팀장과 강승규 인수위 부대변인도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백성운 전 인수위 행정실장의 경우 경기 고양 일산동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친노 중진 한명숙 의원을 꺾는 기염을 토했다. 백 전 실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 의원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왔으나 접전 끝에 ‘금배지’를 달았다. 이 대통령이 공들여 영입한 ‘젊은 전략가’ 권택기 전 인수위 정무기획2팀장도 원내진입에 성공했다. 대선에서 교수 네트워크를 책임진 김영우 전 당선인 비서실 정책기획부팀장도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4) 고누와 나무하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4) 고누와 나무하기

    김홍도의 작품 ‘풍속화’다. 그림 오른쪽에는 상투를 튼 어른이 나무에 기대어 곰방대를 물고 물끄러미 아이들이 노는 장면을 보고 있고, 그림 중앙에는 아이 둘이 웃통을 벗고 놀이에 한창이다. 그리고 그 왼쪽에 아이 둘 역시 구경을 하고 있다. 그림의 위쪽에는 집채만 한 나뭇짐을 얹은 지게 둘을 언덕에 기대어 놓았고, 그 왼쪽에 다시 더벅머리 아이 하나가 나뭇짐을 지고서 오고 있다. ●아무 곳에나 말판 그리고 놀이… 방식도 다양 이 그림은 고누 두는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누는 흙 마당이나 종이 등 아무 곳에나 말판을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많이 잡아먹거나, 상대의 집을 차지하거나,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이기는 놀이다. 지방에 따라 꼰, 고니, 꼬니, 꼬누 등 여러 가지로 부르고, 그 놀이의 방식도 다양해서 우물고누, 네줄고누, 밭고누, 호박고누, 샘고누, 강고누, 줄고누, 팔자고누, 십자고누 등 많은 종류가 있다. 장기와 바둑은 놀이하는 판이 정해져 있지만, 고누는 다양한 이름만큼 말판의 종류도 많고, 노는 방식도 다양하다. 또 말판이 간단하여 언제 어디서나 둘 수 있었다. 필자 역시 어릴 적에 적잖이 즐겼다. 한데 이 그림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 이 그림의 고누판은 둥근 원을 그리고 그 속에 다시 십자를 그리고 있는데 이런 고누판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사실 이 그림은 윷판으로 보인다. 윷가락이 없으니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둥근 원형 안에 작은 물건 넷이 보이는데, 이것이 윷일 수 있다. 윷은 꼭 나무로 길게 만든 것이 아니라도 된다. 나는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이 작은 고동 껍데기를 윷가락 대신 쓰는 것을 보았다. 땅에 살짝 굴려도 도 개 걸 윷 모가 나왔다. 이제 나뭇짐 쪽으로 말머리를 옮기자. 도시에서 나고 자란 50대 이하의 세대는 나무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것이다. 필자 역시 나무를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아버지 세대, 그리고 주변의 시골출신들은 나무 하러 다닌 기억을 종종 떠올린다. 나무가 없으면 취사와 난방을 할 수 없었으니, 나무는 필수적인 생존 수단이었던 것이다. 필자의 직장인 부산대학이 있는 부산 동래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조선조 때부터 있던 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다. 일제시대에 온천장을 소개하는 사진엽서가 만들어졌는데, 사진 속의 금정산을 보면 완전히 민둥산이다. 왜냐고? 땔감 때문에 나무가 남아나지 않았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산이 우거진 것은 연탄을 연료로 쓰면서부터일 것이다. 물론 적극적인 식목정책도 한몫을 했지만. 김홍도가 살던 조선시대는 나무 하기가 쉬웠던가. 조선시대가 지금보다 환경이야 더 깨끗했겠지만, 국토가 온통 나무로 뒤덮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나무를 할 만한 곳은 모두 개인의 소유로 분할되어 있었고, 그 개인 소유지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었다.‘경국대전-공전’을 보면 나무하는 곳, 즉 시장(柴場)이란 곳에 대한 흥미로운 조항이 있다.‘시장’은 땔나무를 하는 곳으로 관청에는 땔나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관청마다 일정한 면적으로 땔나무 하는 곳을 분배해 준다. 예컨대 봉상시·상의원·사복시·군기시·예빈시·내수사에는 모두 사방 20리, 내자시·내섬시·사재감에는 15리, 사포서에는 5리의 ‘시장’을 지급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뒷날 문제를 일으킨다. 명종 9년 12월10일 사헌부에서 올린 상소문의 일부를 보자. 서울 주위 30리의 꼴과 땔나무가 있는 곳은 모두 세도가가 독점하여, 베어가는 것을 금지합니다. 때문에 근방의 나무를 해서 파는 사람들이 그 위세에 눌려 손을 대지 못하고 개울을 건너고 고개를 넘어 가기 때문에 너무나 고생스럽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파는 나무 값이 극히 비쌉니다. ●나무 할 만한 곳은 모두 권세가들이 독점 권세가가 서울 근처의 나무를 할 만한 곳을 모두 독점해 버려 나무 값이 뛰어오른다는 것이다. 이런 권세가를 한 명 밝히자면, 문정왕후의 오라비였던 윤원형이 있다. 박순(1523∼1589)의 상소에 의하면, 윤원형은 수락산 일대를 독차지하여 주민들의 무덤까지 파헤치면서 주민들을 내쫓은 뒤 시장(柴場)을 만들고는 그곳에서 땔나무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중 일부를 세금조로 바치게 했다고 한다. 원래 수락산은 서울에 가깝기 때문에 누구나 땔나무를 하거나 꿩이나 토끼를 잡기 위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산이었는데, 이것을 윤원형이 독점했던 것이다. 한데 이것은 윤원형과 같은 일부 권세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훨씬 전부터 시장의 독점은 있어왔고, 조선후기에도 사정은 동일하였다. 성종 연간의 인물인 서거정의 시에 나무꾼을 둘러싼 꽤나 진지한 시가 한 편 있다.‘토산(兎山)의 시골집에서 농부의 말을 기록하다’라는 제목의 긴 시를 남기고 있는데, 나무꾼의 하소연을 옮겨 적은 것이다. 앞부분을 요약해 보자. 이 농부는 불암산 기슭에서 농사를 지으며 겨우 살아간다. 그런데 뜬금없이 간교한 자의 토지 소유권 소송에 걸려든다. 교활한 아전들의 협잡질로 오막살이 한 채만 남기고 땅을 죄다 빼앗기고, 근근이 남아 있는 묵은 땅을 경작해 보지만, 흉년까지 든다. 세금을 낼 형편이 아니건만 아전들은 날마다 찾아와서 세금을 내 놓으라 닦달이다. 급기야 산속으로 달아나 숨어 있자니, 굶주린 뱃속에 불이 붙는 듯 아리고, 얼굴빛은 날마다 까맣게 타들어간다. 그래서 나무를 해다 팔기로 한다. 이제 나무꾼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땔나무 하러 산 속으로 들어가면 산중에 땔나무 무성하지요 집에 누런 송아지 한 마리 있지만 한 해 내내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해 나뭇짐 나를 수 없기에 한 발짝에 두 번씩 꼬꾸라지며 걸음걸음 내가 지고 이고 나르니 두 어깨살은 벌겋게 부풀어 올랐지요 해 떨어질 녘에야 성으로 들어와서는 길에서 만난 야박한 장사치가 푼전까지 다투며 나무 값 후리치니 쌀값은 비싸고 내 품삯은 헐하기 짝이 없네요 농부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나무를 한 짐 해서 나오는데, 뼈만 남은 몸이라 등에 지고 오자니 그것도 힘이 든다. 시내에 들어와 팔려하지만, 야박한 장사치가 값을 후리치니, 품삯도 안 나온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자신에게 의지하는 가족들이 있다. 그래도 집에 있는 열 명의 식구 밥 달라고 소리치는 걸 생각하면 한 되든 한 말이든 어찌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나마 주린 창자를 달래얍지요 집에 돌아와 마누라 자식놈과 마주 앉아 차츰 죽이라도 먹게 되었지만 이렇게 하여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 삶이 정말 딱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나마 나무를 해 팔아 처자식과 점차 죽이나마 먹게 되었다. 하지만 웬일인가. 사람 고생은 끝이 없다. 얼마 전부터 권세가의 힘이 나무며 돌까지 미쳐 산이란 산은 죄다 제 땔나무 밭으로 차지해 사람들 나무 하고 꼴 베는 것을 막고부터 서쪽 집은 땔나무 한 번 한 죄로 매질 마구 하여 피가 철철 흘렀고 동쪽 집은 소가 밭을 밟은 죄로 아비 아들 나란히 묶여 갔지요 아무런 이유 없이 백성의 재물 약탈해 낫과 도끼까지 모두 빼앗아 갔지요 ●땔나무 한번 잘못하면 가혹한 私刑 힘 있는 권세가의 힘이 나무와 돌에까지 미쳐 산마다 줄을 치고 자기 땔나무 밭으로 삼는다. 만약 그 독점 공간에 들어가 땔나무를 하게 되면, 찾아와서 피를 흘릴 정도로 가혹한 사형(私刑)을 가하고, 낫과 도끼까지 빼앗아 갔던 모양이다. 시를 지은 서거정은 이 비극적 사태를 보고하면서 시의 끝에서 “나는 지금 이 말을 듣고 나서/ 한밤중에 홀로 흐느끼어 우노라”라고 깊은 동정을 표했지만, 조선조 말까지 백성들의 고통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김홍도의 이 한 장의 그림에도 뜯어보면, 사실 조선조 백성들의 삶과 역사가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한국 우주시대 열린다 D-1] 계성초교생들 우주로 띄운 편지

    [한국 우주시대 열린다 D-1] 계성초교생들 우주로 띄운 편지

    “저는 항상 우주 사진을 보면서 ‘우리 한국은 언제쯤 우주에 가보나.’하고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꿈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어요. 제가 직접 우주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대표해서 언니께서 가시잖아요. 부럽기도 하고 언젠가는 저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해요.” “한국 최초의 우주 지배자이신 이소연 언니께…언니 덕분에 우주인은 남자만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도 깨졌어요.” “저는 여태까지 장래희망이 여러 차례 바뀌었어요. 지금까지는 요리사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소연 언니의 기사를 보면서 우리나라를 빛낼 우주인이 될까, 아님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될까 갈등하고 있어요.” 시대를 막론하고 어린 시절 “너 뭐 될래?”라는 질문에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답 가운데 하나가 ‘우주비행사’이다. 어른들에게는 막연하고 먼 꿈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이 꿈은 이제 현실이 됐다.8일 오후 8시16분28초(한국시간), 소유스 우주선에 몸을 싣고 한국인 최초로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이소연씨는 아이들에게 세상에 못 이룰 꿈은 없다는 희망과 용기를 갖게 했다. 한국 최초 우주인 탄생 4일 전인 지난 4일 서울 계성초등학교 5학년 온유반 29명의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편지지만큼 예쁜 마음을 담은 응원의 편지를 이씨에게 띄웠다. 아이들은 우주복을 입은 이씨와 우주선을 서툰 솜씨로 그려 넣거나 우주선 모양으로 편지를 접기도 하고, 자신의 얼굴 사진을 편지지에 붙이는 등 나름의 정성을 다해 편지를 꾸몄다. 전 국민의 관심사인 만큼 아이들 또한 이번 우주비행에 관해 비교적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옷걸이가 없어 불편하다는 소식을 듣고 옷걸이를 보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요.”,“우주에서 먹는 라면!정말 맛있을 것 같네요. 근데 무중력이라 먹기가 조금 불편하겠죠?” 등 귀여운 걱정과 애교스러운 질문에는 순수한 동심이 흘러넘쳤다. 학교에서의 동영상 수업,TV뉴스,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주인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쏟아낸 질문은 뭘까.“어떻게 그 힘든 훈련을 견뎌냈어요?”이다.“언니(누나)가 한 것처럼 우리도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아이들의 편지를 통해 이소연씨가 훌륭한 역할 모델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내려간 사랑스러운 글귀들은 그 어떤 응원가보다 힘이 될 만하다.“많이 떨리시죠? 저도 시험 같은 것을 볼 때 많이 떨려요. 그러다가 시험을 망치기 마련이죠. 그러니 마음 편히 가지시고 잘 다녀오세요. 제가 기도할 게요.”한 어린이는 편지에 한국 최초라는 부담감이 만만찮을 이씨에게 어른스러운 조언(?)을 담기도 했다. 또 다른 어린이는 우주에 갔다온 소감을 꼭 들려달라며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적어 넣기도 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Seoul in ] 11일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공연

    노원구(구청장 이노근) 문화예술회관에서는 새봄을 맞아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어린이 뮤지컬, 악극 등 다양한 공연을 마련했다. 어린이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는 마스크 플레이(캐릭터 마스크를 쓰고 연기) 뮤지컬이다.11일 오후 7시,12일 오후 2시·5시 세 차례에 걸쳐 대공연장에서 공연한다. 소프라노 김인혜의 ‘여자가 행복한 콘서트’는 18일 오후 7시30분, 악극 ‘나그네 설움’은 26일 오후 4시·7시에 선보인다. 노원문화예술회관 3392-5722.
  • [사설] 北의 위협적 언행 남북 모두에 짐 된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를 겨냥해 연일 공세적 언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제는 노동신문이 이 대통령을 ‘역도’(逆徒)라고까지 지칭하면서 새 정부의 ‘비핵·개방 3000’정책을 전면 거부하고 나섰다. 최근 개성공단 남한 당국자 추방, 서해상 미사일 발사에 이어 공세의 수위를 한껏 높인 것이다. 북의 이같은 대남공세는 남북관계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북측은 더는 분별없는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노동당 기관지의 논평은 북한당국의 공식 입장이다. 그런 노동신문이 이 대통령을 실명 비판한 것은 대선 이후 처음이다. 새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선(先)북핵 해결을 요구하자 작심하고 정면 대응한 셈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새 정부의 핵심 대북 정책인 ‘비핵·개방 3000’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표출했다. 노동신문 논평원이 “핵 억제력을 순순히 내놓을 우리가 아니다.”라고 언급한 것은 결국 ‘북핵 해결을 전제로 한’ 남북경협은 곤란하다는 메시지다. 하지만, 북측의 이런 태도는 사리에 어긋난다. 한반도 비핵화 등 기존 남북간 합의는 물론 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에도 어긋나는 자가당착인 까닭이다. 우리는 북측의 일련의 위협적 언행이 남북 모두에 이롭지 않다고 본다. 특히 북측은 “남조선이 우리와 등지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두고 보겠다.”고 추가 강공을 예고했다. 그러나 북측은 더 이상의 공세는 남북경협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남측 여론에 찬물을 끼얹는 일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남측도 북측의 이런 의도적 긴장고조 전술에 강경대응할 필요는 없겠지만, 무시하기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국방부가 어제 북측의 비방에 유감을 밝히면서도 대화 의지를 피력하는 어른스러운 자세를 보인 것은 그래서 다행이다.
  • [Local] 유달산 앞바다 유람선 운항

    목포 유달산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이 10일부터 운항을 시작한다. 전남 목포시는 2일 “시대해운 소속 196t급 스타마리너호(정원 203명)가 식당과 공연장, 선상 분수대, 노래방 등을 갖추고 밤에 운항된다.”고 밝혔다. 주말엔 선상에서 노래와 공연 등 행사가 열린다. 이 유람선은 갓바위공원 앞 평화광장 선착장에서 출발, 문화예술회관∼삼학도∼여객선터미널∼목포수협∼신안비치호텔∼목포해양대∼고하도∼학섬∼대불항∼영산호를 거쳐 선착장으로 1시간 만에 되돌아온다. 목포시는 81억원으로 평화광장 앞 바닷가와 유달산, 고하도 용머리에 야간 경관 조명을 설치해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내고 있다. 또 하당광장 앞바다에는 음악분수대를 만들고 있다. 야간 운항시간은 7시30분,9시 등 두 차례이다. 낮에는 유람선이 시간마다 출발하며 50t급이 운항한다. 뱃삯은 어른 1만 2000원, 어린이와 장애인은 6000원이다.목포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현장행정] 용산 ‘생태복원 실험’

    [현장행정] 용산 ‘생태복원 실험’

    “와, 개구리다.” 인솔 교사가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진정시켜 보지만 한번 봇물이 터진 아이들의 호기심엔 끝이 없다.“저 개구리는 왜 색깔이 노란색이에요?”“왜 개구리가 물속이 아니라 땅에 있어요?” 개구리를 그림책과 동요를 통해서만 접해온 서울 아이들에겐 황토빛의 토종 산개구리가 낯설기만 하다. 관리소 직원이 어렵게 잡아온 개구리 한마리를 내보이자 사내 아이 서넛이 직접 만져보겠다며 호기롭게 나선다. 하지만 소란에 놀란 개구리가 돌연 몸을 솟구쳐 뛰어오르고, 아이들은 이내 “엄마”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줄행랑을 놓기 바쁘다. 2일 용산구 효창공원은 현장학습을 나온 유치원생과 봄 기운을 느끼려 집을 나선 주민들로 활기가 넘쳤다. 산책에 열중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의 시선은 온통 개구리·두꺼비가 살고 있는 습지 주변에 머물렀다. ●도심복판 개구리 소리의 감동 용산구에 따르면 습지와 주변 덤불에는 실잠자리·나비·소금쟁이 등 곤충류와 개구리·두꺼비·도롱뇽 등 양서류, 어치·멧비둘기·박새같은 조류가 피라미드식 먹이사슬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개구리가 활동을 시작한 지난달부터는 주말이면 이를 구경하려는 초등학생들로 106m 길이의 관찰데크가 가득 찬다. 매일 산책하러 공원에 나온다는 양명자(62·효창동)씨는 “2주 전부터 개구리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울어대 녹음기를 틀어놓은 줄 알았다.”면서 “서울 복판에서 개구리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했다. 효창공원은 5년 전만 해도 건기엔 먼지가 날리고 우기에는 진창으로 변하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주민들은 이곳의 변화를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다. 공원에 습지가 만들어진 것은 2003년 4월. 토질이 습해 여름이면 지표면이 마를 날 없던 북측 비탈에 웅덩이를 파고 논흙과 자갈을 깐 뒤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흘려보냈다.4년새 23개의 계단식 습지가 물길을 따라 조성됐다. 2006년부터는 습지 주변에 창포와 갈대, 억새, 기린초와 연꽃, 수련, 부들 등 수생식물을 심고 서울대공원에서 양식하던 개구리 800마리와 두꺼비 200마리를 들여와 방사했다. 공원녹지과 직원들이 직접 강원도 화천에서 무당개구리 100여마리를 잡아와 이곳에 풀어놓기도 했다. 먹이사슬이 형성되도록 양서류의 먹이가 되는 곤충과 지렁이의 서식환경을 만드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습지 주변에 곤충들이 몸을 숨길 갈대와 억새, 산죽 군락을 조성했고, 먹이가 되는 벼도 곳곳에 심었다. ●습지 중심 생태 순환시스템 형성 시간이 흐르자 습지를 중심으로 생태적 순환시스템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김문철 공원녹지과장은 “처음엔 무작정 웅덩이만 파고 동·식물만 집어넣으면 될 줄 알았다.”면서 “방사한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등 적잖은 시행착오 끝에 불안정하나마 소생태계가 정착돼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방사한 다람쥐가 2세대 번식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자신감이 생겼다. 양서류나 설치동물 뿐 아니라 꿩이나 토끼처럼 덩치 큰 동물도 정착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올해 안으로 동물들이 은신할 관목림을 군데군데 조성하고 두더지와 꿩, 토끼를 방사하는 방안도 구상중이다. 도심 복판에 작은 생태낙원을 건설하기 위한 용산의 실험은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벚꽃과 함께하는 봄잔치

    동작구가 4월 한 달 간 풍성한 구민잔치를 벌인다. 1일 동작구에 따르면 사당2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오는 11일부터 15일까지 5일간 ‘제1회 부흥길 벚꽃축제’를 연다. 태평백화점∼우성아파트 3단지 1.5㎞ 구간에서 벌어지는 부흥길 벚꽃축제는 거리 곳곳에 청사초롱을 달아 벚꽃 길의 낭만을 즐길 수 있게 했다. 25일 오전 7시30분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동작구민 걷기대행진’이 진행된다. 구민 1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인 이번 걷기 대행진은 현충관에서 유공자 묘소, 호국지정사 등을 도는 3.7㎞구간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쉽고 편한 코스를 택했다. 22일 노량진배수지에선 자전거 동호회원 200여명이 참가하는 ‘동작구청장배 자전거대회’가 열린다. 같은 기간 동작문화복지센터에서는 생활체조 동호회원 500여명이 참가해 자웅을 겨루는 ‘동작구청장기 생활체조대회’가 열린다. 또 27일 경문고등학교 운동장에선 동작구축구연합회가 주관하는 ‘동작구청장기 축구대회’가 열린다. 15일 오후 3시 구청 5층 대강당에선 1100여명이 참석하는 구민의 날 기념식이 열린다. 특히 이날 기념식에선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구민들이 모은 이웃돕기 성금 40억여 원이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기초생활보호대상자 등에게 전달된다. 모범구민 7명을 표창한다. 김우중 구청장은 “구정운영에 성원을 보내준 동작구민이 주인되는 자리인 만큼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깔깔깔]

    ●나이별로 본 아줌마-남편의 생일날이 되었다. 20대:남편을 위한 선물과 갖가지 이벤트를 준비한다. 30대:고급 레스토랑에서 외식한다. 40대:하루종일 미역국만 먹인다.-모처럼 만에 남편과 외식을 했다. 20대:그냥 들어갈 수 있냐며, 호프집으로 2차 간다. 30대:주부가요열창을 보며 연마한 노래실력을 노래방에서 과시한다. 40대:연속극 할 시간이라며 빨리 집에 가자고 한다.●초인종 어른이 길을 가다가 조그만 아이가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려 애쓰는 것을 보았다. 꼬마가 아무리 발뒤꿈치를 들고 손을 뻗어도 손에 닿지 않자 어른이 나섰다. “내가 눌러줄게.” 어른이 그 집의 초인종을 눌러주자 꼬마가 아주 좋아하며 말했다.“야호. 고마워요, 아저씨. 이제 우리 도망가야 해요.”
  • ‘7세 한자 신동’ 김지우군 1급 자격증 합격

    ‘7세 한자 신동’ 김지우군 1급 자격증 합격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7살 어린이가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한자능력 1급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서울 은평구 은혜초등학교 1학년인 김지우(7) 어린이는 지난달 23일 대한검정회가 실시하는 한자급수 자격검정시험에서 1급 자격증을 따냈다. 지우는 2년여 전인 지난 2006년 6월 어린이용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우연히 한자를 접하고 한자교육 만화를 보면서 한자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우는 혼자서 50자 정도의 한자를 외웠고, 어머니(34)는 한자교육 학습지를 사주며 본격적으로 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6살 때 기초단계인 8급 시험을 시작해 2년여 만에 1급을 따낸 것. 지우 어머니는 “친구들이 한자를 잘 아는 비결을 묻기도 한다는데 그냥 쓰고 외우는 것 외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3·23 쿠데타’ 이후 靑 2題] 박희태 정치특보 검토

    한나라당내 친이(親李·친이명박) 진영의 권력다툼이 ‘3·23쿠데타’로 표출된 직후 청와대에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친이 그룹내 소장파들의 퇴조, 그리고 중진급들의 부상(浮上) 가능성이다. 청와대가 ‘박희태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다. 그를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특보로 임명해 당·청 관계 등 정국 전반을 조율토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8일 “최근 잇따른 한나라당내 파동을 거치면서 중량급 인사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며 이같은 청와대 기류를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나라당 공천자 55명의 이상득 국회 부의장 불출마 요구 파동이나 친박(親朴·친박근혜)진영의 집단이탈 등도 결국 당내 어른이 없기 때문”이라며 “당·청의 중심을 잡을 인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앞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도 3·23쿠데타 직후 대통령 정치특보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다른 관계자는 “현재 청와대 정무기능은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다.”면서도 “총선 이후 정국지형 변화나 한나라당내 당권 경쟁 등을 감안할 때 정치특보의 역할이 막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범죄 예방·대처방안 심층보도를”

    “범죄 예방·대처방안 심층보도를”

    “피의자를 둘러싼 범죄 현상만 나열하는 ‘경마식’ 보도보다는 범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등 예방적 매뉴얼을 심층 보도해야 합니다.”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위원장 최현철 고려대 언론대학원장) 3월 회의가 26일 오전 7시30분 본사 6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강력범죄를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사회적 매뉴얼 구축에 언론의 관심이 돌려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3월 토론주제는 전직 야구인의 네 모녀 피살사건,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사건 등 최근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언론의 범죄보도’로 정했다. 최현철 위원장은 “언론의 범죄보도는 경찰 등 수사기관의 발표를 그대로 옮겨 놓아 천편일률적 느낌이 든다.”며 “사건보도도 신문사마다 색깔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은호(전 한의사협의회 회장) 위원은 “범죄는 범행동기, 범행, 처방(치료) 등 3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면서 “아동범죄 예방에도 기성세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권성자(책을 만들며 크는 학교대표) 위원은 “자녀들에게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유괴사건이 발생하면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가르친다.”면서 “이러한 이중적 상황에서 가정과 학교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조(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수석 부회장) 위원은 “범죄 사실보도도 중요하지만 유괴 어린이의 심리치료 등 사후대책, 처방 등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연수(소방방재청 차장) 위원은 “안양 사건 범인의 어머니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띄었는데 범죄자 가족에 대한 보도는 신중해야 한다.”면서 “강력사건 처방책 제시에 주안점을 주는 것도 언론이 색깔을 찾는 한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용학(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수석전문위원) 위원은 “경미한 도난사건을 파출소에 신고하면 경찰은 찾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서 “작은 범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보니 큰 범죄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겨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범죄기사가 일회성으로 그치기 쉬운데 아이들에 대한 교육적 차원에서 장기적인 대안제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문형(산업연구원 국제산업협력실 연구위원) 위원은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고 등을 통한 대안제시를 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 예방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형준(명지대 정치학 교수) 위원은 “프랑스에서는 끔찍한 사건이 터지면 밤 12시 이후에 보도해서 아이들의 충격을 덜어 준다고 한다.”면서 “영국·미국 등 선진국에서 아이들에 대한 범죄 예방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소개하고 우리나라와 비교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후원 신문발전위원회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3) 사랑의 시튼 수녀회 양노린 수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3) 사랑의 시튼 수녀회 양노린 수녀

    광주광역시 본천동 광신대학 뒷산 중턱에 예쁘게 앉은 아담한 벽돌집 사랑의시튼 수녀원. 사랑의시튼 수녀회에 소속된 국내 43개 수녀원 중 본원으로,40명의 수녀가 기도와 교육사목을 함께 하고 있는 ‘금남의 집´이다. 부활절을 사흘 앞둔 지난 20일 저녁 사랑의시튼 수녀원. 성삼일(聖三日) 미사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수녀들 사이에서 팔순을 넘긴 푸는 눈의 수녀가 눈에 띄었다. 딸 같고 동생 같은 ‘자매´들에게 어머니요, 큰언니인 양노린(81·본명 메리 노린·미국·한국명 양순희) 수녀. 지금은 이곳에서 여생의 평정을 찾고 있는 은퇴 수녀이지만 한국 땅, 전남 강진에서 교사로 평생을 살아온 강진 여성교육의 선구요 산증인이다. 시튼 수녀회는 1809년 미국 메릴랜드주 에미츠버그에서 창립된 미국 최초의 방인(邦人) 수녀회.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인근 그린스버그 시튼힐의 모원을 중심으로 전세계 54개의 분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43개 분원에 212명의 수녀가 몸담아 한길을 걷고 있다. 양노린 수녀는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랑의시튼 외국인 수녀 4명 중 가장 연장자.‘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우선적인 봉사를 드리고 그리스도교적 교육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한다.’는 수녀회 정신을 몸으로 보여주며 살아가는, 뭇 수녀들의 귀감이다. 보청기에 의지해 기자의 말을 조금이라도 더 듣기 위해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한 양노린 수녀는, 불쑥 찾아온 불청객의 물음에 답하면서도 함께 배석한 수녀들에게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조금은 들떠 있었다. “평소의 노린 수녀와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통역을 하던 자매들이 “노린 수녀의 입을 통해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라며 노 수녀의 끊이지 않는 이야기에 귀를 세우는 바람에 인터뷰는 어느 순간 뒷전이 되어버렸다. 매일매일 같은 지붕 아래 숨을 쉬고 살아가는 자매들에게조차도 생소한 지난 이야기들. 푸른 눈의 노 수녀가 그토록 할 말조차 가슴에 묻은 채 이땅에서 지금까지 숨가쁜 나날들을 살아오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 수녀 교수진으로 구성된 대학서 초등교육학 전공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태생. 아일랜드 출신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난 노린은 자연스럽게 천주교 신앙과 삶에 젖어들었던 것으로 보인다.8남매 중 큰오빠와 남동생이 사제 출신. 큰오빠는 파라과이 사목 중 세상을 떠났고 남동생도 군종신부로 사목하다가 은퇴했다. 어릴 적부터 사랑의시튼 수녀회가 운영하는 학교를 줄곧 다녔던 노린이 수녀회에 입회한 것은 고교를 졸업한 바로 그해.“다른 길을 갈 생각 없이 당연히 선택해야 했던 일”이라는 말로 입회 때의 심경을 전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포용하는 교육’에 몸바치겠다는 생각 끝에 진학한 학교도 사랑의시튼 수녀회가 운영하는 펜실베이니아주 시튼힐 여자대학. 모두 수녀들로 교수진이 구성된 이 대학에서 초등교육학을 전공, 졸업한 뒤 5∼6개 중·고교를 돌며 교편을 잡고 있던 무렵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한국의 광주대교구가 미국 사랑의시튼 수녀회측에 교육선교 수녀를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던 것.100명의 지원자 중 뽑힌 정예(?) 수녀 4명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행 화물선에 몸을 실었다. 사랑의시튼 수녀회의 첫 해외 파견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덕이는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로만 알려졌어요. 우리 네명의 한국 파견이 결정되자 수녀회 안팎에서 ‘수녀회측이 수녀들을 모두 사지로 몰아넣으려 한다.’며 수군댔을 정도였으니까요. 정작 우리 수녀들은 한국에 못올까 걱정이 컸는데…. 함께 자원했던 수녀들의 열정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어요.” 피아노, 오르간, 난로를 포함해 생활 용품들을 모두 가져와야 했던 관계로 일반 여객선이 아닌 작은 화물선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으로 가는 메리놀선교회 수녀 3명도 함께 탔는데 일본의 어느 해역에서 태풍을 만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고 결국 선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 1962년 전남 강진서 성요셉여고 문열어 28일 만에 인천에 도착해 처음 짐을 푼 곳은 목포. 원래 목포에서 학교를 시작하려 했으나 당시 강진의 금릉중학교가 재정난으로 폐교 직전에 있다는 소식에 새 학교를 짓는 것보다는 기존의 것을 가꾸자는 뜻을 모아 한달 만에 강진으로 이주해 시작한 게 지금의 성요셉여고다. 여자학교는 물론 여성 교육기관은 단 한 곳도 없던 1962년의 강진. 지역 주민들에게 성요셉여고 간판을 달고 영어와 음악, 무용을 가르치는 푸른 눈의 수녀들이 얼마나 신기하게 비쳐졌을까. “수녀들이 가는 곳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졸졸 따라다녔어요. 교실에서 먹고 자는 힘든 나날들이었지만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과 배우려는 학생들의 열성에 힘든 줄 몰랐어요.” 단 한명의 학생도 빼놓지 않고 일일이 가정방문을 다녔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궁벽한 농촌 살림에 삶은 계란은 손님에게 베푸는 큰 성의. 누군가가 해주었던 ‘학생 집을 방문할 때 성의를 무시하지 말라.’는 말을 의식해 가는 집마다의 ‘삶은 계란 사례’를 거절하지 못해 늘 배탈에 시달렸다며 웃는다. 올해로 개교 46년을 맞는 성요셉고교에서 노린 선생님에게 배우고 졸업한 학생만도 줄잡아 1만 5000명. 지금은 기억력도 떨어지고 거동도 예전 같지 않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웬만한 학생의 ‘어느 해 몇학년 몇반’을 얼추 알아맞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 영어교육에 매진… 제자만 1만 5000명 달해 전 세계에 퍼져 사는 제자들이 보내 오는 편지를 읽고 답장하는 일도 큰일. 강진은 물론 광주며 서울 어디를 가도 먼발치서 ‘양노린 선생님’을 먼저 알아본 ‘아줌마 제자’들이 달려오곤 한다. 줄곧 영어를 가르쳤던 노린 선생님의 정성과 전통 때문일까. 성요셉고교 학생들은 지금도 영어 웅변대회를 비롯해 영어학력 평가에선 정상을 빼앗긴 적이 없다고 수녀들이 귀띔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란히 배에 올라 강진에서 함께 웃고 울며 부대꼈던 일행 네명 중 유일하게 남은 수녀. 두 명은 몸이 아파 적응하지 못한 채 미국으로 돌아갔고 가장 가깝던 동반자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중에서도 지난 1993년 휴가를 맞아 함께 미국에 갔다가 폐암 진단을 받고 결국 미국에서 사별해야 했던 메리 에그너스(토마스 아퀴나스) 수녀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죽을 때까지 강진에서 봉사하고 뼈를 묻자며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는데…. 그렇게 헤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동반자를 잃고 상실감에 휩싸였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강진의 학생들이 눈에 밟혀 돌아왔다. 지난 1992년 은퇴할 때까지 줄곧 영어를 가르쳤고 은퇴 후에도 10여년간 영어회화 교사를 자원해 일하다가 이곳으로 옮겨온 게 지난 2005년 3월. 인연이 닿은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와 축복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랑의시튼 수녀회 고문서 정리와 해외 관련 일들도 노 수녀의 일이다. 건강이 부쩍 안 좋아진 얼마 전 “내가 죽으면 강진에 묻어달라.”는 말을 수녀회에 전했다. “귀가 잘 안 들리고 하체의 힘이 빠져 거동이 불편하지만 지금도 남아 있는 강진의 내 자리로 달려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미국 할머니. 무엇이 그를 그토록 ‘먼 땅’ 강진에 집착하게 했을까.“겸양, 소박, 사랑” 또박또박 세마디의 단어를 입에 올린 노 수녀가 수녀원을 나서며 부활의 의미를 묻는 불청객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선한 사람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요. 선하게 사세요.” 귀가 잘들릴 수 있도록 부활의 기적을 은근히 기대한다는 귀엣말과 함께. 글 사진 광주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양노린 수녀는 ●192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출생 ●1945년 사랑의시튼 수녀회 입회 ●1957년 펜실베이니아주 시튼힐대학 졸업,1960년까지 미국에서 교사 근무 ●1961년 수녀 세 명과 함께 전남 강진으로 이주 ●1962∼1992년 성요셉여고 평교사(영어교사) 근무 ●1992년 평교사로 은퇴 ●1992∼2002년 영어회화 교사 자원 근무 ●2005년 광주 사랑의시튼 수녀회 본원으로 이주 ●현재 기도와 수녀회 자료 정리 등 수도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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