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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도 성적순인가요” 그들의 좌절과 분노

    “꿈도 성적순인가요” 그들의 좌절과 분노

    “중고등학생 8명 중 1명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2009년 청소년 통계, 통계청) “학원에서 새벽 1시에 들어온 아이들 47.6%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2008년 한국사회조사연구소) “청소년들 중 스트레스를 ‘종종 받는다’가 50.9%, ‘항상 받는다’가 23.4%이며, 스트레스 요인 1위는 시험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74.8%로 가장 높다.”(2007년 서울시청소년상담 지원센터 조사) 청소년 관련 통계들은 우리의 교육현실이 얼마나 깊고 심각하게 병들어 있는지, 그리고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를 가끔, 아주 가끔씩 환기시킨다. 이런 통계가 나올 때마다 교육전문가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시스템을 비판하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10대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청소년들만 골병이 든다. 자, 그럼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공부 잘하는 애한테 질문해서 답을 말하면 좋다고 하고, 나같이 못하는 애들한테 질문해서 대답을 못하면 막 나무라는 선생님들이 싫어요. 얼버무리거나 모른다고 하면 수업시간에 넌 뭘 했냐고….그런 말을 들으면 서운하죠. 같은 반 학생인데 걔하고 나하고 차별하는 거니까요.” ●공부 잘하는 학생과 차별 심해 “한 반에서 같이 생활해도 알고 보면 다 따로 놀아요. 한번은 선생님이랑 반 회식을 한 적이 있어요. 테이블마다 앉는데 거기서 확 갈리는 거예요. 진짜 공부만 하는 애들이 딱 모여서 먹고, 공부 하나도 안 하는 애들이 모여서 먹고, 어중간하게 하는 애들이 모여서 먹고….그걸 보면서 위화감을 느꼈어요.” “학원은 중학교 때부터 다녔어요. 요즘도 많이 다니지만. 저도 그 조류에 휩쓸린 거죠. 처음에는 혼자서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공부하자니 두려웠어요. 나는 혼자 하는데 딴 애들은 학원에 가서 더 중요한 걸 배우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저만 억울하잖아요.” ●지난 3년간 강남·북, 지방학교 르포 르포 작가 김순천이 지난 3년간 서울 강남과 강북, 지방, 인문계와 실업계, 대안학교, 자퇴생 등 다양한 유형의 학교와 사회에서 만난 10대들은 기성 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더이상 학교를 믿지 않는다. 한결이는 학교 안에서 성장할 수 없다고 말하고, 총희는 학교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불평한다.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빈부의 격차에 좌절한다. 혜원이는 지방 학교에 다니는 자신이 너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담양에서 실업계 학교를 다니는 동준이와 근태는 빨리 자격증을 따서 취직을 하는 게 목표다. 작가는 강남권에 사는 아이와 강북, 지방에서 사는 아이들의 교육 환경에 차이가 많이 난다고 지적한다. 강남권 아이는 독서와 여행을 하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공부를 할 수 있는 반면 강북과 지방권 아이는 그런 기회조차 잘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을 키워주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 아이들은 자신들의 꿈을 키워주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예지는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묻는 어른에게 “아저씨는 커서 된 게 그거예요?”라고 거침없이 쏘아붙인다. 작가는 사회가 변해야 10대들의 현실도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동녘 펴냄)에 실린 14명의 육성에 이제라도 기성 세대가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1만 3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아이와 함께한 시간 단 3일… 애아빠도 말없이 떠나” ☞연예계 비리근절 특별수사팀 떴다 ☞[주말화제]20~30대 전문직 귀향바람 ☞“어째 안주가 눅눅했어…” ☞‘명가녀’ 동영상 정체가 밝혀졌다 ☞이름뿐인 일반고교 조기졸업제
  • [여행가방]

    ●신종플루 퇴촌스파 한방탕으로 이겨볼까 신종플루가 한창이다. 퇴촌스파그린랜드에서 홍삼, 도라지, 모과, 국화를 우려낸 한방 스파를 선보인다. 모두 면역 기능 강화와 피로회복, 기침 예방 등 감기 증상에 효과를 자랑하는 약재들이다. 몸만 담근다고 신종플루를 퇴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심리적 안정효과는 있겠다. (031)760-5700. ●롯데월드·서울랜드 핼러윈 축제 매년 10월31일은 서양에서의 핼러윈 데이다. 호박머리(잭 오랜턴)로 상징된다. 꼬마 아이들이 도깨비, 마녀 등으로 분장한 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을 주지 않으면 심술을 부리겠다.’고 말하며 과자, 사탕, 초콜릿 등을 얻는다. 어른들 역시 자기들 나름대로 귀신, 마법사 등으로 분장하고 핼러윈 파티를 연다. 일종의 ‘코스프레’라고도 볼 수 있다. 약간 어색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있다. 롯데월드에서는 4일부터 11월1일까지 매일 핼러윈 파티를 연다. 대형 호박 등을 만들고, 입장객과 함께 참여하는 ‘해피 핼러윈 퍼레이드’를 펼친다. 어른들을 위해서는 ‘비어 패키지권’을 만들어 생맥주 2잔을 제공하기도 한다. (02)411-2000. 서울랜드에서도 12일부터 11월8일까지 핼러윈 매일 저녁 8시30분 펼쳐지는 레이저쇼와 불꽃놀이는 떠나 버리는 여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 준다. (02)509-6000. ●성우·하이원 리조트 시즌권 특가 판매 현대성우리조트는 인터넷 쇼핑몰 G마켓(www.gmarket.co.kr)을 통해 09~10시즌권을 특가 판매한다. 1차 판매는 37만원으로 6일까지, 2차는 39만원으로 21일부터 30일까지 판매한다. (033)340-3000. 하이원리조트 또한 3일부터 12일까지 09~10시즌(패스)권을 판매한다. 정해진 횟수 안에서 무기명으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실속형 횟수 패스권 (40회권 16만원, 70회권 26만원)과 시즌 기간 내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즌권(35만원, 여성은 17만 5000원), 겨울시즌 하이원스키장뿐 아니라 롯데월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즌권+롯데월드 시즌권(38만원, 여성은 24만 5000원)으로 구성됐다. G마켓(02-2052-3232), 인터파크(02-3484-3890), 11번가(1599-0110)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 데미 무어 “전신 성형수술? 절대 아냐”

    데미 무어 “전신 성형수술? 절대 아냐”

    불혹이 넘어서도 변치 않는 미모를 자랑하는 데미 무어(47)가 세간에 불거진 전신 성형설을 “말도 안되는 루머”라고 일축했다. 2003년 무어가 영화 ‘미녀삼총사’에서 군살 없는 몸매와 전성기 시절과 변하지 않은 얼굴로 등장하자, 할리우드 연예 매체들은 앞다퉈 그녀가 출연 전 약 40만 달러(한화 4억원)를 들여 전신에 성형수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한 무어는 프랑스 패션잡지 ‘마리 끌레르’와 한 인터뷰에서 “전신 성형을 했다는 소문은 말도 안 된다.”면서 “얼굴과 몸 어디에도 칼을 대본 적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 이어 성형에 대한 의견도 털어놨다. 무어는 “성형으로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다는 점은 좋다. 하지만 세월을 막으려 수술하고 싶진 않다. 나이에 어울리는 미모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무어는 영화배우 애쉬튼 커처(31)와 16세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에 빠졌고 4년 전에는 정식 부부가 됐다. 현재 전남편인 브루스 윌리스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 3명을 함께 키운다. 세대차이를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견고한 관계에는 나이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게다가 애쉬튼이 또래에 비해 책임감이 강하고 어른스러워서 나이 차이를 못 느낀다.”고 무어는 설명했다. 결혼 4년 차 행복함을 드러낸 무어는 커처의 아기를 낳을 생각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녀는 “앞으로 살 날이 더 많기에 아기가 생기면 낳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다리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사진설명=15년 전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오른쪽)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현장 행정] 마포구 망원동 ‘주민 참여 상상 놀이터’ 화제

    [현장 행정] 마포구 망원동 ‘주민 참여 상상 놀이터’ 화제

    “늑대가 나타났어요~” 1일 마포구 망원1동 한마음 어린이공원. 회색빛을 띤 검은색 털에 뾰족한 주둥이를 가진 늑대 한 마리가 등장하자 꼬마들이 소리를 질러댄다. 물론 ‘진짜 늑대’는 아니다. 하지만 쫑긋 선 귀와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늑대 분장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이 때문에 어딜 가나 시선집중이다. 인형처럼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늑대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에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신기해하며 재미있는 표정으로 늑대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닌다. ●월~수요일 재래시장·골목길 누벼 지난 8월부터 망원동 일대에서 목격되기 시작한 이 늑대는 월~수요일만 되면 재래시장과 골목길을 누빈다. 노인들에게 다가가 깍듯하게 인사도 올린다. 동네 주변을 청소하기도 한다. 특히 늑대가 즐겨 찾는 곳은 마포구 한마음 어린이 공원의 정자. 이곳에서 책도 읽고 어린이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마포구는 비행 청소년들의 집합장소로 인식되던 동네 놀이터가 상상력이 꿈틀대는 동심의 나라로 변신했다고 1일 밝혔다. 이같은 변신은 망원1동 동네 예술가들로 구성된 ‘동네놀이공작단’과 망원1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주관하는 ‘주민참여 상상 놀이터 만들기 사업’으로 시작됐다. 이 사업은 지난 3월 서울문화재단의 ‘우리동네문화 가꾸기’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재단에서 지원받은 3500만원의 예산은 재료비 등으로 활용됐다. 지역주민 스스로 동네 놀이터를 창의적 공동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동네놀이공작단 단원이자 늑대 분장의 주인공인 조호연(32)씨는 “놀이터는 어린이뿐 아니라 세대 간의 만남과 통합의 장”이라면서 “주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놀이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상 놀이터 만들기 프로젝트 중 가장 인기있는 것은 바로 ‘책 읽어주는 늑대’. 이 늑대는 놀이터 한편에 있는 정자에 작은 도서관도 운영한다. 책은 100여권에 불과하지만 꼬마들은 늑대가 읽어주는 동화 속 세상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각종 공연과 생활속 공공미술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재활용 장난감 워크숍’도 호응이 높다.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진행된다.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어른과 어린이가 상상 속의 장난감을 만든다. 버려진 나무 조각을 활용해 상상자전거로 꾸미고, 형형색색의 빈 페트병을 모아 기상천외한 가면도 만든다. 공작단이 밑그림 그리기부터 톱질까지 제작법을 상세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주민 누구나 참여하고 만들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의 사연을 재구성해 만드는 인형극 공연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 공연은 오는 18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4~6시 진행된다. 우리동네공작단은 3년째 망원동에서 공공미술을 통해 주민들에게 동네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화장실에 벽화를 그리고 마을 어귀에 텃밭을 만드는 등 동네 곳곳에 주민들과 함께 특별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모두가 놀이를 통한 예술활동이다. 하영호(42) 단장은 “놀이터라는 일상 공간에서 어린이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이를 매개로 주민들끼리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것도 예술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2030] 직장인 여름 휴가 후유증 & 극복기

    [2030] 직장인 여름 휴가 후유증 & 극복기

    여름휴가가 끝났다. 일상으로 돌아온 직장인들의 눈꺼풀은 자꾸만 감기고 정신은 멍하다. 아직도 짜릿하고 달콤했던 휴가의 기억을 부여잡고 놓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2030 직장인들의 휴가 후유증과 극복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여름 입사한 은행원 정모(30)씨는 극심한 휴가 후유증을 앓고 있다. 시차적응이 안 된다거나 휴식을 끝낸 뒤 밀려드는 무기력증 혹은 우울증이 아니다. 김씨를 괴롭히는 건 좀 더 현실적인 문제다. 바로 바닥난 통장이다. 졸업 후 1년 넘게 취업준비를 하다가 뒤늦게 회사에 들어간 김씨는 올해 제대로 된 휴가를 처음으로 떠났던 터라 계획도 거창하게 세웠다. 가난한 백수생활 내내 자신을 지켜준 대학생 여자친구에게 ‘호화여행’으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호주로 떠난 5박6일 간의 여행에서 김씨와 여자친구는 최고급 호텔에 머물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오랜만에 나온 해외인 만큼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에게 줄 선물도 한아름 준비했다. 문제는 뒷감당이었다. 휴가비용을 500만원 넘게 쓴 탓에 넉넉했던 김씨의 통장 잔고는 어느덧 바닥을 드러냈다. 휴가는 끝났지만 9, 10월에 이어질 경조사가 걱정이었다. 결혼을 앞둔 친구만 5명이 넘었고 두 달 전부터 선물타령을 시작한 쌍둥이 조카 녀석의 생일도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김씨는 하는 수 없이 지난 주말부터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연일 이어지는 격무에 주말만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돈 들어갈 일을 생각하면 넋놓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처음 맞는 휴가라 너무 계획 없이 돈을 쓴 것 같다. 앞으로 3개월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휴가를 다녀온 직장인 김모(27)씨는 요즘 ‘이중고’를 겪고 있다. 휴가지였던 프랑스 파리의 모습이 하루에도 몇번씩 떠올라 업무에 집중이 안 될뿐더러 얼마 전 날아온 신용카드대금 청구서에 찍힌 액수만 생각하면 심란하다. ‘쇼핑 천국’인 파리에서 기분에 취해 이것저것 산 것이 화근이었다. 7월엔 샹젤리제 거리를 비롯한 파리 대부분 지역에서 빅 세일을 하는 탓에 이것저것 사다보니 쇼핑비만 1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이 때문에 김씨는 요즘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 김씨는 “지난달 큰 프로젝트를 끝내놓고 몸도 마음도 지쳐버려서 쉬고 싶은 마음에 무조건 휴가를 내고 떠난 거였거든요. 휴가를 다녀오면 기분전환도 되니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다녀오고 나니 달콤한 휴식의 추억 때문에 더 일하기가 싫어지네요. 평소의 두 배가 넘는 카드 대금도 골칫거리고요.”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힘든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김씨가 찾아낸 방법은 추억을 회상하며 인터넷 블로그에 여행사진을 올리는 것. 사진을 정리하면서 좋았던 기억을 회상하고 기분전환도 꾀하기 위함이다. 김씨는 “퇴근하자마자 블로그에 사진을 업데이트한다. 그러다 보면 그때의 분위기, 날씨, 기분이 고스란히 느껴져 우울한 기분이 풀린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공무원 박모(29)씨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휴가 후유증을 극복했다. 친구들과 주말을 이용해 짧은 휴가를 한번 더 다녀온 것. 박씨는 “얼마 전에 친구들끼리 저녁을 먹으면서 휴가를 다시 한 번 가고 싶다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그럼 더 다녀오지 뭐.’라고 바람을 넣어서 지난 주말 2박3일 일정으로 강원 인제 내린천에 짧은 휴가를 한 번 더 다녀왔다.”고 설명했다. 즉흥적인 제안이라 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않았지만 펜션 예약을 하고 나니 나머지는 힘들이지 않고 해결됐다고 한다. 대학 친구 4명과 함께 승용차 한 대를 몰고 가 고기를 구워먹고, 물놀이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물론 정기휴가 때처럼 느긋하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는 됐다. “스트레스에 마냥 시달릴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하는 게 더 나은 방법 같다.”며 박씨는 웃었다. 지난해 겨울, 은행에 입사해 올 여름 생애 첫 휴가를 다녀온 장모(30)씨의 휴가 후유증 극복 비법은 ‘내년 휴가 계획 세우기’다. 장씨는 이달 초 남도 일대 사찰 5개를 둘러봤다. 송광사, 화엄사, 내소사 등 명승지를 두루 훑어본 그는 알짜배기 휴가였다며 회사에 자랑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 역시 휴가 후유증을 피해갈 수 없었다. 고심 끝에 장씨가 내놓은 해결책은 ‘2010년 휴가계획 먼저 짜기’였다. “준비는 아무리 일찍 해도 늦지 않잖아요. 내년 휴가 땐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미리 계획을 짜놓는 거죠. 상상만 하고 있어도 마음이 흐뭇해져서 휴가가 끝났다는 우울함을 날려버릴 수 있어요.”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근사하게 만든 휴가계획서 파일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장해두고 짬날 때마다 들여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는 일본 사찰 답사와 티베트 고지 트레킹을 생각하고 있다. 제주 올레길 탐방도 선택지 가운데 하나다. 장씨는 고즈넉한 사찰에서 녹차 한 잔을 마시고, 땀 흘리며 길을 걷다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을 자신을 상상하면 일하는 것도 즐거워진다고 전했다. 회사원 하모(33)씨도 마찬가지다. 3주 전 태국 푸껫으로 다녀온 휴가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 우울하다는 하씨는 요즘 퇴근 후에 내년도 휴가 계획을 짜고 있다. 올해의 경험을 밑바탕 삼아 ‘청출어람’ 휴가를 계획 중이다. “동남아시아로 휴가를 떠난 건 올해가 처음이었는데 다녀보니 꽤 괜찮았던 것 같아요. 내년에는 필리핀에 도전해보려고 해요. 올해 휴가계획을 짜면서 모르는 게 참 많았는데, 이제 한 번 해봤으니 내년에는 호텔이나 비행기를 훨씬 좋은 조건으로 예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년 계획을 짜면서 여행사 사이트에 들락거리고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도 얻다 보면, 다시 한 번 여행을 가는 기분이 나서 설레요.”라며 벌써부터 들떴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3년차 직장인 박모(32·여)씨는 지난달 말 뉴질랜드로 휴가를 다녀왔다. 뉴질랜드와 한국의 시차는 3시간밖에 나지 않지만 3주 가까이 여독이 풀리지 않은 탓에 한낮에도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보름 뒤에 있을 계약을 앞두고 김씨의 부서는 최종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한창이지만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라 좀처럼 집중하기 어렵다. “밤에 술을 마시고 일찍 잠들어보라.”는 동료들의 조언을 따라 저녁식사와 함께 와인 한 병을 혼자 마시고 잠을 청해보기도 했지만 다음날 더한 피로가 찾아올 뿐이었다. 아침에는 집 근처 공원을 1시간 동안 달리고 사우나에서 땀도 빼 봤지만 이 또한 효과가 없었다. 결국 ‘약’의 힘을 빌리기로 한 박씨는 퇴근 뒤 매일같이 홈쇼핑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피로회복 효과가 있는 비타민 제품만 나오면 구매 전화를 돌리기 바쁘다. 사흘 동안 비타민 구입비용에 쓴 돈만 30만원 정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혀를 끌끌 차지만 매일 피로에 지쳐 있는 남편이 안쓰러워 핀잔을 주지는 못한다. 박씨는 “이러다 약값이 휴가비용만큼 들겠어요. 병이라도 걸린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4년차 직장인 이모(29·여)씨는 올 여름 2년만에 꿀맛 같은 휴가를 다녀왔다. 지난해 이맘때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휴가를 제대로 가지 못했던 것. 때문에 올해 맘먹고 5일 정기휴가를 내고 앞뒤 주말까지 붙여 9일 일정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체코 프라하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보낸 7월 마지막 주는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사무실로 복귀하니 예기치 않은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불면증과 무기력증이다. 한국보다 9시간 느린 유럽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오니 시차 극복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특히 푹푹 찌는 서울 날씨 때문에 업무시간에도 몸이 축 늘어져 좀체 기운을 차릴 수 없었다. 일해야 할 낮에는 머리가 몽롱하고 밤이 될수록 정신이 맑아졌다. 열흘 넘게 프라하 야경이 눈앞에 어른거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만사가 심드렁해질 무렵 그는 일상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인터넷을 뒤적여 여행 전문블로거의 ‘시차적응 극복기’를 참고했다. 이씨는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미지근한 물에 몸을 담가 반신욕을 하고 숙면에 좋다는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틈틈이 휴가의 추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럽에서 찍은 사진을 컴퓨터 폴더에 정리하면서 휴가일기를 썼어요. 소소한 여행 추억들을 다시 꺼내보면서 마음 정리도 하기 위해서였죠.”라고 말했다. 이씨는 휴가 다녀온 지 보름이 지나자 화려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오달란 유대근기자 dallan@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롯데 초강수’ 정수근 결국 퇴출 판피린걸·뽀삐도 성형 해운대 달맞이길이 왜 문텐로드? 장마저축·펀드 올해까지만 납입 강남 고급음식점 카드깡 성행
  • 괴물·유령보다 무서운 건 도시화 된 미디어 사회

    괴물·유령보다 무서운 건 도시화 된 미디어 사회

    벽장 문을 열고 나타나는 괴물이나 유령에 부들부들 떨었던 어린 시절을 돌아 보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어른이 돼 무분별한 도시화로 파괴되는 환경 속에서, 후기 정보화 산업사회에서 유통되는 정보와 미디어의 가공할 만한 힘, 그리고 이기심으로 가득찬 개인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하는 공포와 비교할 때 그때의 공포란 천진난만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동연 작가는 어린 시절 느꼈던 괴물과 유령에 대한 공포를 차라리 ‘아름다운 공포’라고 부른다. 김 작가는 그의 상상 속의 공포의 대상들은 통통하고 몽실몽실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 괴물의 일상은 인간과 똑같다. 휴식을 취하다가, 광목으로 된 흰 의상을 입고 외출하면 유령이 된다. 인간을 잡아다가 가두는 업무시간(Working Time)이 있는가 하면, 때때로 프리티켓으로 공연을 보기도 한다. 이들이 활기차게 돌아 다닐 때 인간은 쇠창살이 달린 감옥 같기도 한 대형 저택(파놉티콘-panopticon)에서 그림자처럼 매달려 있다. 인간들이 사는 도시가 마치 유령도시 같기도 하다. 파놉티콘은 정보기술로 구축된 감시체제의 결정판으로, 21세기 인류가 처한 현실과 인식을 보여 주고자 했다. 신관 1층에 설치된 이상을 논한 플라톤과 현실을 논한 소크라테스 조각은 원뿔 형상 위에 놓여 있는데, 이 원뿔은 뒤집어 놓은 지식의 호수다. 호수의 깊이를 채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현실을 꼬집었다고 한다. 라파엘의 그림 ‘아테나 학당’에서 형상을 따왔다. 김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1995년 토탈미술관 개인전에 이어 14년 만에 열리는 전시로, 작품 활동은 1988년 유학을 떠났던 독일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2005년 경희대 미술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독일과 한국에서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 전관에서. 27일까지. (02)739-4937.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코스모스 피어있는 하동으로

    코스모스 피어있는 하동으로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으로 오세요.” 전국 최대 규모의 코스모스·메밀꽃 단지가 조성돼 있는 경남 하동군 북천면 직전·이명 마을 일대에서 오는 18일부터 10월4일까지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열린다. 북천면 꽃단지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하동군과 북천면이 후원한다. 올해로 3회째다. ●전국 최대 코스모스 단지 축제가 열리는 곳은 지리산 자락의 전형적인 시골마을로 경관직불사업을 통해 올해 40㏊의 면적에 코스모스·메일꽃 단지를 조성했다. 지난해보다 9㏊ 늘었다. 경관직불사업은 경관을 좋게 하기 위해 논에 화초를 심고 소유자들에게 소득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축제가 열리는 꽃단지 옆으로는 경전선 철도와 국도 2호선이 지나가 교통이 편하다. 500m쯤 떨어진 곳에는 북천역이 있어 가을 기차 여행을 하며 꽃축제를 즐길 수 있다. 행사주최측은 “꽃구경뿐 아니라 어른들은 옛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고 어린이들은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우리가락 한마당, 전통혼례, 영화상영, 간이역 시낭송회 등 각종 문화행사와 메밀묵 만들기, 꽃그림그리기 대회 등이 열린다. 옛 농기구 전시, 조롱박 터널, 가을꽃 백화점 등 다채로운 전시행사도 마련된다. 주최측은 세계 각지의 희귀한 호박과 뱀오이, 수세미 등을 심어 조성한 덩굴터널과 코스모스 꽃밭 속의 미로 등이 추억의 볼거리로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직접 재배한 메밀로 만든 메밀묵, 메밀국수 등을 맛볼 수 있는 전문 음식점 30여곳도 운영된다.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는 대박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경전선 옆에 전국 최대 규모의 코스모스·메밀꽃 단지를 조성해 시골의 가을 정치에 흠뻑 젖도록 한 아이디어가 관광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것. 각양각색의 코스모스와 눈꽃처럼 하얗게 핀 메밀꽃은 장관을 연출한다. 2007년 제1회 때는 40만명이, 지난해에는 70만명이 찾아와 조용하던 시골마을에 난리가 났다. ●작년 휴일 10만여명 몰려 지난해 축제기간 평일에는 하루 3만여명, 휴일에는 10만여명이 몰렸다. 진주~하동 국도는 휴일 차량 정체도 빚어졌다. 평소 하루 이용객이 10명 안팎이던 북천역도 축제기간에는 하루 2000~4000명이 급증, 유명한 관광역이 됐다. 북천역은 이 축제가 유명해지자 지난해 역 이름을 아예 북천코스모스역으로 바꾸었다. 하동군과 행사주최측은 올해에는 관광객 100만명을 예상하고 있다. 올해 2억여원을 들였다. 북천역은 임시열차를 늘리는 등 관광객 수송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동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빌 게이츠 “아버지는 내 역할모델”

    세계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왼쪽·53)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아버지는 나의 역할 모델’이라고 치켜세우며 존경심을 표현했다. 미국 일간 유에스에이(USA) 투데이는 28일(현지시간) 빌 게이츠, 아버지 게이츠 시니어(오른쪽·83)와 시애틀 인근 후드 커넬에 있는 가족 별장에서 공동 인터뷰를 갖고 두 부자의 애틋한 정을 피처스토리로 구성해 보도했다. 게이츠 시니어는 유명 변호사 출신으로 1999년 아들이 세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아들 게이츠는 최근 출간된 아버지의 자서전 서문에서 “아버지야말로 진정한 빌 게이츠”라면서 “그는 사람들이 모두 되고 싶어하는 요소를 갖춘 분이라는 점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썼다고 말했다. 특히 아들 게이츠가 어렸을 때 독서광이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들 게이츠는 어릴 적 무척 반항적인 아이였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엄마에게 대들다가 화가 난 아버지로부터 물컵 세례를 받았던 일화도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상담사에게 데려갔을 정도다. 상담사는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아들을 내버려두라.”고 말했으며 아버지는 이를 실행, 오늘날 빌 게이츠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게이츠는 “우리 집만 엄격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면서 “어려서부터 어른들을 접하고, 특히 건축에서부터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버지의 직업을 보면서 일찍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소프트웨어 개발업무는 내 삶에 정말 즐거운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자만심이 생길 수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 주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납치됐다 18년 만에 두 딸의 엄마로 돌아온 그녀

    18년 전 의붓아버지 눈앞에서 납치됐던 딸이 스물아홉 숙녀가 돼 나타났다. 그런데 그녀는 납치범이 아버지인 두 딸을 키우고 있었다.납치된 지 3년째인 열네살 때 첫 딸을 낳아 지금 15세이고 둘째는 11세였다.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를 납치하고 이들 가족을 감금하는 데 납치범 아내도 힘을 보탰다는 것.  희대의 납치극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이크 타호 근처에서 1991년 6월10일 아침 시작됐다.당시 11세였던 제이시 두가드는 학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가던 중 괴한이 몰고온 회색 세단 차량에 납치됐다.차가 갑자기 서더니 눈깜짝할 새 두가드를 태우고 사라진 것.아이는 발길질을 하면서 소리를 질러 저항했지만 힘센 어른들을 이길 수 없었다.의붓아버지 칼 프로빈(60)은 자전거를 타고 쫓아갔지만 따라잡을 수 없었다.경찰도 차량의 행방을 좇는 데 실패했다.  어머니 테리는 딸이 살아있을 것이란 희망을 접은 채 살아왔으나 지난 26일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두가드라고 주장하는 이가 콩코드 관할 경찰서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딸과 상봉했다.프로빈에 따르면 엄마가 만나본 두가드는 전혀 그 나이 답지 않게 앳된 얼굴이었다고 했다. 두가드를 납치한 이들은 필립 가라도(58)와 낸시(55) 부부.가라도가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교정에서 종교 홍보지를 배포하다 경찰에 체포되면서 이들 부부의 범죄 행각도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가라도가 교정에서 두 어린이에게 접근하는 것을 우연히 본 경찰이 신원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성범죄 전력이 드러나 붙잡혔다.가석방 상태였던 가라도는 지난 26일 부인과 두가드네를 데리고 가석방 심사소에 출두했고 두가드가 18년 전 납치된 그 소녀란 사실을 털어놓게 됐다.  두가드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고향에서 273㎞ 떨어진 샌프란시스코 근처 안티오크의 외딴 사유지 뒷마당에서 천막과 창고에 갇혀 지금까지 지내왔다.뒷마당에는 납치 당시 이용됐던 차량과 비슷한 차량이 숨겨져 있었다.  이 천막은 가라도 부부가 사는 집에서는 눈에 띄지 않도록 덤불 등에 의해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밖을 내다볼 수도 없었고 외부 사람이 찾아와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여건이었다고 경찰은 전했다.두가드 딸들은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가라도는 “두가드가 첫 딸을 낳은 뒤 내 인생이 확 바뀌었다.”며 “우리 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들어보면 누구라도 감명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등 엉뚱한 말을 늘어놓았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딸과 18년 만에 전화로 통화한 테리는 “그애가 매우 정상적이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말했다.현재 DNA 조사가 진행 중이다.  먼 발치서 의붓딸의 납치를 지켜보아야 했던 프로빈은 결국 테리와 갈라서야 했다.범인이 나타나지 않자 의심의 눈길이 자신에게로 쏟아졌기 때문.”납치 사건 때문에 파경을 맞았다.지옥과 같은 나날이었다.나는 (그 애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어제까지 용의자였던 것”이라고 말했다.테리는 딸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프로빈에게 전화해 둘은 2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누가 벽에 낙서한 거야?(윤아해·최경 지음, 이갑규 그림, 한우리북스 펴냄) 낙서대장 나는 남의 집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야단을 맞는다. 그런데 울산에 가봤더니 누군가 커다란 바위에다 낙서를 실컷 해놓았다. 커다란 고래, 사슴, 호랑이, 거북이, 마녀까지. 국보 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체험해 본다. 8800원. ●나는 학교에 갑니다(노경희 지음, 박영미 그림, 여원미디어 펴냄)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난 아이. 학교는 처음엔 중증장애인인 그를 거부했다. 하지만 어른들의 걱정과는 달리 오토다케와 그의 친구들은 학교에 잘 적응한다. 오토다케가 사회에 나와서도 잘 살까? 탄탄 피플 인 피플 시리즈 55권 중 한권. 전집 32만 3000원. ●미리 가 본 북한유물박물관(전호태·유경희 지음, 유형식 기획, 한림출판사 펴냄) 남과 북이 분단된 한국에서는 고구려의 유물을 구경할 기회가 거의 없다. 고구려의 영토가 북한에 위치했기 때문. 경주와 부여만으로 삼국시대를 이해할 수는 없다. 만주를 주름잡았던 고구려의 문화유산을 살펴보며 웅지를 키울 수 있겠다. 1만 7000원. ●동물도 이빨을 닦나요?(헤닝 비스너· 발리 뮐러 지음, 귄터 마타이 그림, 박정희 옮김, 소년한길 펴냄) 꽁무니에서 빛을 반짝이는 개똥벌레는 비를 맞으면 감전될까? 고슴도치의 가시는 몇 개나 될까? 하루살이는 진짜 하루만 살까? 이런 엉뚱한 궁금증을 쫙 풀어준다. 글 옆 삽화가 낭만적이다. 1만 4000원. ●물귀신 구출작전(김달님 글·그림, 행복한 만화가게 펴냄) 학습만화가 아닌 순수 창작만화. 초등학교 2학년인 배동이는 최고로 잘생겼지만 어려운 문제만 보면 똥이 마렵다. 이 학교에는 책읽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물귀신 엘렐레가 있는데 친구들의 숙제도 도와준다. 하지만 어느날 엘렐레가 ‘삐딱선’을 탔다. 왜 그럴까?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8500원. ●즐거운 놀이 세상(레이 깁슨 지음, 아만다 발로·미카엘라 케나드 그림, 김미혜 옮김, 가문비어린이 펴냄) 아이에게 그리고 자르고 붙이는 일이 정서와 두뇌 발달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펴볼 것. 다양한 종류의 미술재료로 아이와 즐겁게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100여가지 담았다. 1만 5000원.
  • 케네디家 구심점 지다

    케네디家 구심점 지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정치의 ‘큰 별’이 졌다. 악성 뇌종양으로 1년 넘게 투병해온 에드워드 케네디 미국 상원의원(민주·매사추세츠주)이 25일(현지시간) 밤 사망했다. ●뇌종양 투병중 사망… 77세 케네디가(家)는 26일 새벽 성명을 통해 “케네디 의원이 25일 밤 하이니스포트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케네디 가족 명의의 성명에서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족의 구심점이자 삶의 빛을 잃었지만 그의 신념과 낙관주의, 인내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케네디 의원의 별세로 1960년대 이래 반세기 가까이 미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을 미쳐온 케네디 가문의 역사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테드’, ‘테디’로 불려온 케네디 상원의원은 1932년 2월22일 보스턴에서 아일랜드계 이민 3세 백만장자인 조지프·로즈 케네디 부부의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형들과 마찬가지로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으나 친구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했다 적발돼 퇴학당한 뒤 재입학해 졸업했다. 둘째 형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셋째 형인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의 그늘에 가려 있던 케네디 상원의원은 1962년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으로 공석이 된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나서 30세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이어 1964년 6년 임기의 상원의원에 재선된 뒤 47년간 상원의원으로 활동해온 미 현대 의회 역사의 산 증인이다. 건강과 교육, 노동, 인권, 외교 등에서 괄목할 만한 족적을 남겼으며 ‘상원의 사자’로 불리며 진보 진영의 거목으로 미 정계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암살된 뒤 미 최고의 정치명문인 케네디가의 최고 어른으로 고비 때마다 집안을 이끌어왔다. ●민주당 거목… 오바마 당선 일등공신 지난 1980년 지미 카터 대통령에 맞서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으나 1969년 여비서의 익사사고와 관련된 사실이 불거지면서 패배했다. 4년 뒤 대선에 재도전할 계획을 세우다 결국 여비서 익사사고에 발목이 잡혀 대통령의 꿈을 접고 상원의원 활동에 전념하며 형들보다 더 큰 족적을 미 현대 정치사에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일찌감치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지,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케네디 의원의 개인사는 비극으로 점철돼 있다. 맏형인 조지프는 스물아홉의 나이에 2차대전 중 전사했고, 둘째와 셋째 형은 모두 40대에 암살됐다. 누나들 중에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지거나 정신지체로 특수시설에서 평생을 보낸 이도 했다. 조카 세 명을 사고로 앞세우는 아픔도 겪었다. 케네디 의원도 1964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음 문턱까지 갔다 기사회생했다. 아들이 골수암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했고, 1981년 첫 부인과 이혼한 뒤 1992년 현재의 부인과 재혼했다. 지난해 5월 뇌종양 판정을 받은 뒤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을 해왔으나 결국 15개월만에 운명을 달리했다. 케네디 의원은 얼마 전 타계한 김대중 전 대통령 등 한국의 민주화 인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kmkim@seoul.co.kr
  • [길섶에서] 실종/김성호 논설위원

    변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아니 사라졌다고 할까. 상전벽해라더니. 여기엔 키 큰 느티나무가 섰었는데. 저 모퉁이엔 연탄집이 있었고. 건너편 점방 앞 나무의자엔 항상 혹부리 할머니가 앉아 졸고 있었지. 그 모든 것들, 모든 사람들은 사라지고. 너른 4차선 도로만 휑하니 저문 기억들을 삼키고 있네. 오랜만에 달려 보는 고향길. 어른들은 신작로라 불렀었지. 신작로라야 반포장의 울퉁불퉁한 좁은 길이었는데. 결혼하고 등졌으니 22년이 흘렀네. 논밭은 오간데 없고 아파트 숲만 울창한데. 죽마고우들은 어디서 뭘 하는지. 하기야 변하고 없어지는 것들이 하나 둘인가.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무거울까. 차를 되돌려 옛날의 그 신작로를 천천히 다시 가본다. 잃어버린 22년을 되살리려 애를 써봐도 기억은 가물가물. 실종이다. 어리고 푸른 눈에 세상은 넓기만 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지금 나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사라져 버린 것들은 되돌릴 수 없고. 아니 사라진 것은 고향, 신작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닐까. 실종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어린이찻집/신지영

    [엄마와 읽는 동화] 어린이찻집/신지영

    옛날 옛날이 아니라 미래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어린이찻집이 있습니다. 어린이가 적은 동네일수록 작고, 많은 동네일수록 큽니다. 어린이찻집은 넓고 넓은 운동장 가운데에 있습니다. 지붕은 초콜릿 무늬에 초콜릿색이고, 벽돌은 비스킷 무늬에 비스킷 색입니다. 찻집 안 탁자는 하트 모양도 있고, 꽃 모양도 있습니다. 푹신한 의자는 잘 구워진 빵 같습니다. 메뉴판에는 온갖 마실 것, 먹을 것이 가득합니다. 우유, 레몬차, 딸기차, 코코아, 바나나주스……. 과자, 샌드위치, 고구마케이크, 초콜릿케이크……. 모두모두 공짜입니다. 나라에서 돈을 들여 마련해 주니까요. 과자집, 달콤한 커피, 배탈 안 나는 아이스크림, 이를 안 썩게 하는 콜라도 있습니다. 소질학교 요리반 어린이들이 개발한 특별 메뉴입니다. 어린이들은 학원 대신 소질학교에 다닙니다. 화요일, 목요일마다 소질학교에서 각자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를 배웁니다. 평소 어린이찻집을 지키는 건 로봇들입니다. 심부름 로봇은 아침마다 대문 밖으로 나가 배달된 음식 재료를 받아 옵니다. 요리 로봇도 있고 청소 로봇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어린이들은 주문 받고 음식 내다주는 일을 좋아합니다. 어린이들은 일주일 중 하루를 골라, 학교 끝난 뒤에 어린이찻집으로 갑니다. 넓고 넓은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배가 푹 꺼질 때쯤 어린이찻집으로 뛰어듭니다. 마실 것과 간식을 한 가지씩 골라 여기저기 둘러앉습니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달콤한 간식을 먹습니다. 재잘재잘 이야기 나누다가, 몸이 근질거리면 언제든 운동장으로 뛰쳐나갑니다. 빵빵했던 배가 꺼질 때까지 실컷 뛰어놉니다. 어른은 어린이찻집에 드나들 수 없습니다. 그건 나라에서 정한 법입니다. 음식이 깨끗한지, 시설이 고장 났는지 살피는 등 몇 가지 경우만 빼고요. 처음 어린이찻집이 생겼을 때에만 해도 대부분의 어른이 ‘어른출입금지법’에 찬성했습니다. 어른 도움 없이 지내다 보면 어린이 스스로 하는 습관을 기를 거라고요. 하지만 점점 그 법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어른이 늘어났습니다. 어린이찻집 1호점이 생기고 1년쯤 지나자 모임까지 생겼습니다. 어른출입금지법 반대 모임. 회원은 모두 어른이었습니다. 그들은 인터넷, 신문 등에 글을 실어 생각을 알렸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찻집에서 차를 마시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려는 거지요.” 얼마 뒤, 그에 맞서는 모임이 생겼습니다. 어른출입금지법 지킴 모임. 그 모임의 어린이들도 인터넷, 신문 등에 글을 실었습니다. “우리는 이대로가 좋아요. 아이들한테도 아이들만의 장소가 필요하다구요.” 양쪽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가 나빠지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편리한 로봇들을 많이 발명해 온 로봇 발명가 할아버지가 새로운 로봇을 발명했습니다. 바로 동심탐지 로봇이었습니다. “동심이란 어린이의 마음을 뜻하지요. 이 동심탐지 로봇은 동심을 가진 사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말을 듣거나 행동을 보고 말이지요.” 발명가 할아버지는 “이 로봇을 이용해 동심을 갖고 있는 사람만 어린이찻집에 들여보내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어른출입금지법 반대 모임, 지킴 모임 모두 찬성했습니다. 나라에서는 우선 로봇을 시험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동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을 모집했습니다. 많은 어른들이 면접을 치렀고 마침내 세 사람이 뽑혔습니다. 신인 동화작가, 자식을 아홉 명 둔 아저씨,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동심탐지 로봇 시험 날, 어린이찻집 1호점 앞에는 사람들이 와글와글했습니다. 동심탐지 로봇은 대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방송국에서 나온 사회자도 있었습니다. “첫 번째 도전자 나와 주세요.” 사회자가 카메라를 보고 말했습니다. 긴 머리 동화작가가 나섰습니다. 손에는 커다란 가방이 들려 있었습니다. “문이 열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제 마음속엔 어린이가 들어 있답니다. 로봇이 그걸 알아본다면 문이 열리겠죠?” “찻집 안에 들어간다면 뭘 하고 싶으십니까?” “뱃속의 음식만큼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죠. 저는 어린이찻집을 책세상으로 꾸미고 싶어요. 시간 날 때마다 들러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 줄 거예요.” 작가는 로봇을 보고 힘차게 걸어갔습니다. 와글거리던 사람들이 조용해졌습니다. 로봇이 스르르 한 팔을 들자 박수가 터졌습니다. 작가는 사람들을 보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로봇은 대문을 열지 않고 작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작가의 가방을 홱 낚아챘습니다. 로봇은 작가의 가방에서 동화책을 꺼내어 함부로 내팽개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 얘가 왜 이래?” 작가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책들을 주웠습니다. 그 사이, 로봇은 동화책 한 권을 자기 머리 위에 올리고 사뿐사뿐 걸어 다녔습니다. 아이들이 킥킥거렸습니다. 작가는 붉으락푸르락해져 로봇에게 다가갔습니다. 로봇은 머리 위에서 책을 내려 손에 들었습니다. 작가가 책 한쪽을 붙들었고, 둘은 줄다리기하듯 책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로봇이 책에서 손을 떼었습니다. “엄마야!” 작가는 엉덩방아를 쿵 찧었습니다. 사람들이 와하하 웃었습니다. 작가가 식식거리며 일어났습니다.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가 내쉬고는 애써 나긋나긋 말했습니다. “얘, 로봇아. 네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난 동화 작가라구. 늘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단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문을 열어 줘.” 하지만 로봇은 대문에 손끝 하나 갖다 대지 않았습니다. “이것 참 안타깝네요. 발명가께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이 로봇은 실패작이 분명합니다. 모두 시간 낭비 말고 돌아가시죠.” 작가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작가뿐이었습니다. “두 번째 도전자 나와 주십시오.” 자식을 아홉 명 둔 아저씨가 나섰습니다. 한 손에는 충전식 청소기가, 다른 손에는 기다란 무언가를 싼 보따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로봇이 청소를 해 봤자 얼마나 하겠습니까? 우리 애들 방을 생각하면 찻집도 분명 돼지우리 같을 텐데……. 들어가면 구석구석 쌓인 먼지부터 없앨 겁니다.” 아저씨가 청소기를 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그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흠칫 청소기를 내려놓고 두 팔로 보따리를 감싸 안았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제 짐일 뿐입니다.” 그때 로봇이 다가와 청소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아저씨는 깜짝 놀라 보따리를 내려놓고 로봇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로봇이 보따리에 청소기를 갖다 대는 걸 막지 못했습니다. 청소기는 윙 소리와 함께 보따리를 빨아들였습니다. 놀란 아저씨가 보따리를 거칠게 잡아챘습니다. 보따리 매듭이 풀리면서 둘둘 말린 뭉치들이 와르르 쏟아졌습니다. 로봇이 재빨리 뭉치를 펴 보였습니다. 넓고 두꺼운 종이에 영어 단어, 한자와 그 뜻이 빼곡했습니다. 위에는 벽에 걸 수 있게 끈이 달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된 김에 한마디 하겠습니다. 예전 어린이들은 공부를 끼고 살아 영어 박사, 한문 박사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소질학교니 어린이찻집이니 하는, 쓸데없는 시설이 생기면서, 애들 머릿속이 텅텅 비어 가고 있잖습니까?” 아저씨가 말을 이었습니다. “빈둥거리기만 하면 뭐 합니까? 차도 마시고 공부도 하면 얼마나 보람찹니까?”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로봇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아저씨는 씁쓸한 얼굴로 물러났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도전할 차례였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부랴부랴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가방에는 나무 막대가 들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찻집에서 삐딱하게 앉아 있는 아이를 찾아 혼내 줄 작정이었습니다. 한 번 말로 해서 듣지 않으면 손바닥을 때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앞선 두 사람이 망신 당하는 걸 보고 자신 없어졌습니다. 왠지, 로봇이 매를 빼앗아 들고 자기를 때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선생님을 찾아 두리번거릴 때였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걸어왔습니다. 할머니의 눈은 떴는지 감았는지 모르게 게슴츠레했습니다. 방금까지 할머니는 낮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할머니는 어린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친구들이랑 술래잡기하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갑자기 할머니는 스르르 일어나 집을 나왔습니다. 그러곤 여기 어린이찻집 앞으로 온 겁니다. 할머니에게는 몽유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잠이 덜 깬 채 갑작스러운 행동을 하곤 했습니다. 할머니가 불쑥 다가오자 사회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할머니, 무슨 일이십니까?” 할머니는 대답 없이 대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어어, 할머니! 그러다가 부딪치십니다!” 사회자가 할머니를 쫓아가는데 삐걱 대문이 열렸습니다. 동심탐지 로봇이 열어 준 것이었습니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이 비쳤습니다. 할머니는 유유히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뒤따라간 사회자가 할머니의 옷자락을 붙들려는 순간, 로봇이 사회자의 손목을 덥석 붙들었습니다. 사회자가 그만 대문 안에 발을 디뎠던 것입니다. 로봇은 사회자를 밖으로 끌어낸 뒤, 대문을 닫았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엉터리 로봇이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할머니를 들여보내다니.” “그나저나 그 할머니, 앞을 못 보시는 걸까? 눈이 감긴 것처럼 보이던데.” 시간이 흘러도 할머니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체 저 안에서 뭘 하고 계신 거지?” 사람들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나 담이 높아 누구도 안을 넘볼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 여럿을 안에 들여보내기로 했습니다. “할머니를 보면 곧바로 모시고 나와야 한다.” 아이들이 다가가자 로봇은 순순히 대문을 열었습니다. 사회자를 비롯한 몇몇 사람은 아이들을 줄 세워 들여보냈습니다. 그러곤 그 틈에 운동장을 들여다봤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 눈을 의심했습니다. 믿지 못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뛰어노는 아이들 틈에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할머니는 나비처럼 가벼워 보였습니다. 허리는 언제 꼬부라져 있었냐는 듯 꼿꼿했습니다. 할머니와 아이들은 대문에서 볼 수 없는 저편으로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방금 들어간 아이들까지 와아 소리 지르며 뒤쫓아 갔습니다. 남은 건 뿌옇게 일어난 흙먼지와 내팽개쳐진 지팡이뿐이었습니다. ●작가의 말 선생님들의 커피타임이 부러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어린이 신문에서 읽은 적 있어요. 그 아이가 부러워한 건 커피 한 잔보다 여유로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날, 찻집에서 친구랑 수다를 떨다가 그 아이가 떠올랐어요. 그러면서 동화도 그려졌어요. 아이들만의 달콤한 쉼터, 어린이 찻집. ●약력 1981년 충북 음성 출생. 2009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책 너머 세상’으로 당선되면서 등단.
  • 고나은 “‘보석비빔밥’은 내겐 로또 같은 작품”

    고나은 “‘보석비빔밥’은 내겐 로또 같은 작품”

    ‘아현동 마님’에 이어 ‘보석비빔밥’(극본 임성한ㆍ연출 백호민)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며 ‘임성한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고나은이 출연 소감을 밝혔다. 고나은은 극 중 궁가네 첫째 딸 비취 역을 맡아 차분하면서 지적인 면모를 드러낼 예정. 다음은 일문일답. - ‘아현동 마님’ 이후 임성한 작가와 두 번째 만남이다. 임성한 작가는 내 연기생활의 은인이다. 큰 역할을 맡아 부담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 - 비취는 어떤 캐릭터? 비취의 최종 목표는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 잘 가는 것이다. 속물적인 면도 있다(웃음). 하지만 솔직하고 호불호가 확실하며 실제 내 성격과 많이 닮았다. - 비취 캐릭터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극 중 첫째인 만큼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원래 하이 톤인 목소리를 차분하게 내고 있다. - 그룹 ‘파파야’로 가수활동을 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고생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 때 다양한 경험을 통해 빠른 적응력을 키웠다. 호기심이 많아 궁금하면 직접 경험해보데 이런 부분이 극 중 비취와 비슷한 것 같다. - 상대역 이태곤의 첫 인상은? 과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멋있다. 촬영장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준다. - 첫 주연이라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욕심이 많이 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는다. 사진제공 = MBC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이후 한국사회’ 각계 인사의 제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각계에서는 고인이 평생을 두고 노력해온 민주화, 국민 대통합과 화해, 지역주의 극복, 남북통일 등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각계에서 듣는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 화해정신 담을 헌법개정 필요 민주주의의 선봉과 지식인들 사이에 반복된 반목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문병과 조문을 통해 대승적 차원에서 해소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전두환 전 대통령, 영원한 경쟁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방문은 그 자체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를 계기로 화합과 화해의 정신을 국민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이 평생 몸바쳤던 민주화가 후퇴하고 있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국민적 대통합과 화해의 정신을 담은 헌법 개정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본다. 특히 대통령이 우리사회의 ‘큰 어른’이자 ‘지식인의 본보기’로서 권위를 세우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고민할 때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국가발전에 온 국민이 힘써야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국가적으로 힘든 시기에 원로를 잃게 됐다는 점에서 큰 불행이자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정착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고 외환위기 때 우리의 경제체질을 강화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업적을 남기셨다. 이제 고인이 남긴 큰 뜻과 업적을 기리면서 국가 발전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특히 고인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지역주의 극복이 이뤄지고 국민통합의 새 시대를 앞당겨야 한다. 온 국민이 새 마음 새 뜻으로 새 출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제 막 어둠의 터널을 지나기 시작한 경제가 완전히 회복돼 많은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것을 고인이 가장 바랄 것이다. ●김창국 초대 국가인권위원장·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장 보복 않는 화합정신 계승을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공은 ‘보복을 하지 않는 화합의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또 이같은 사회통합 정신을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철학으로 계승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할 때 김 전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당부했다. 김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탄압을 극복하고 보복 대신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승인한 점에서 우리가 키울 자산을 찾아야 한다. 남북화합, 동서화합도 자산이다. 이를 위해 김 전 대통령이 싹틔운 ‘과거사 창산’을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역사 인식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결코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 미완의 과제 노사선진화를 김 전 대통령은 수출증대정책을 통해 무역수지 흑자를 늘려갔고, 외국인직접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빠르게 유입된 달러화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상환해 갔다.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으로 유수의 기업과 은행이 문을 닫고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뼈를 깎는 고통을 주었지만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우리 기업과 금융회사가 버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4대 부문 개혁 중 특히 노동부문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 선진경제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국민, 기업, 정부 모두가 지혜를 모아 노사관계의 선진화에 나서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한국문화의 비전 숙제로 평생 추구했던 민주화와 통일, 세계 평화의 뜻을 채 이루지 못해 가시는 마음도 편치 않으셨을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 역대 대통령 중 문화에 대한 식견과 애정이 대단하신 분이었다. 문화 산업 정책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셨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철저히 지켜내셨다. ‘문화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분이었기에 문화인으로서 더욱 아쉬움이 느껴진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한국 문화의 비전에 대한 숙제는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고, 나 개인에게도 남겨진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나라의 큰 어른들을 연이어 보내는 슬픔이 남아 있다. 이것이 슬픔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분들의 뜻을 이어받아 모두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천석 울산동구청장 해묵은 지역감정 뿌리뽑자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망국적인 지역감정 해소와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만큼 고인의 큰 뜻을 받들어 이제 해묵은 지역감정을 완전히 뿌리뽑을 때가 왔다. 영호남 지역감정은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노력과 대통령직 당선으로 상당히 해소됐지만 여전히 선거철만 되면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영호남은 다양한 교류와 공동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벌이면서 지역감정 해소에 노력해 왔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자칫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되살아나지 않도록 국민들의 성숙한 견제 의식이 필요하고 정치권도 선거제도 개선 등을 통해 지역감정의 불씨를 사전에 잡아야 한다. ●소설가 공지영 민주화의 후퇴 없었으면… 원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뭐라고 말하기는 딱히 그렇지만 소설을 쓰면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업적을 알게 됐다. 2004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쓰기 위해 취재에 들어가면서 사형수들을 많이 만났다. 이때 구치소와 교도소 등의 시설과 상황을 새삼 보게 됐는데 일본보다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변화는 김 전 대통령 재임시절 대부분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사회가 대체적으로 약자와 소외자, 장애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생각을 평소 가졌는데 김 전 대통령은 이런 곳에 많은 관심을 가졌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더 있어야 하고 또 민주화의 후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장현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역사의 계승 발전 동기 찾을때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게 사회통합이다. 남북문제든 내부문제든 간에 사회통합이 절실하다. 현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폄하하는 지난 역사도 겸손하게 평가하고 계승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파도 속에 휘말린 나머지 정치·경제·사회·계층적으로 통합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단절시키고 새로 쓰는 게 역사가 아니다. 남북 문제나 민주주의 문제 등 역사를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할 동기와 전환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사회통합은 통합위원회 등 기구나 제도의 차원이 아니다. 용산참사나 비정규직, 노사문제 등 우리가 당면한 각종 현실에 진정성을 갖고 함께 아우르는 자세로 나아갈 때 이것들은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 [도시와 산] (21) 강릉 제왕산

    [도시와 산] (21) 강릉 제왕산

    백두대간 마루금 대관령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강원 강릉으로 내달린 한줄기 산맥의 봉우리에 제왕산(帝王山)이 있다. 해발 841m의 그다지 높지도 낮지도 않지만 수천년 역사를 간직한 강릉을 오롯이 지켜온 유서 깊은 산이다. 제왕산은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왕과 관련해 지명이 유래됐다. 정상에는 고려말 우왕(禑王)의 한이 서린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산부리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옛길에는 험준한 대관령을 오르내리던 숱한 사람들의 얘기가 전설처럼 살아 전해진다. 더구나 뒤로는 우뚝한 백두대간을, 앞으로는 망망히 펼쳐진 동해를 조망하고 있는 강릉의 진산이다. 웅장하고 선이 굵은 제왕산의 풍광은 시원하기까지 하다. ●우왕의 애환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620여년전 고려 제32대 왕인 우왕이 이성계에 의해 유배 길에 올라 두달 동안 강릉에 머물렀는데 이때 제왕산 정상에 산성(제왕산성)을 쌓아 근거지로 삼았다고 전해온다. 전설처럼 구전돼 오는 설화의 한 토막이지만 현지에는 실제 허물어진 산성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산성 주변에는 깨진 기왓장까지 발견되면서 역사가들은 우왕에 얽힌 얘기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유배길에 오른 우왕은 원주와 고성, 강릉에 머물다 지금의 삼척 살해재에서 살해됐다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 우왕이 머물던 곳은 지금 지명으로 남아 있다. 강릉 구정면 학산의 왕고개는 왕이 머물렀던 곳이고, 인근의 왕산리 큰골은 큰 어른(왕)이 살았던 곳이고, 살해재는 왕이 살해된 곳이라 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불려지고 있다. 김기설(61) 강릉민속문화연구소 소장은 “제왕산과 우왕에 얽힌 전설은 산 9부 능선쯤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산성이나 기왓장 흔적, 지명 속의 이름 등으로 미루어 실제 있었던 사실임이 증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풍수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온다. 제왕산 초입의 인풍비와 샘물은 강릉시민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샘물이다. 예부터 제왕산과 인접한 능경봉의 계곡물이 영동으로 흘러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따라 거북이 모양의 돌과 함께 비석을 세우고 샘물을 만들어 물길을 동으로 두었다는 것이다. 대관령 정상쯤에서 제왕산을 오르는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능선을 따라 임도와 바위가 어우러진 소나무 숲을 1시간쯤 가면 정상이다. 정상을 따라 이어지는 산행이 능선길이다 보니 사방이 탁 트여 주변 풍광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눈을 멀리 두고 뒤를 돌아보면 백두대간 능선이 지척에서 등뼈를 꿈틀거리며 남북으로 용틀임한다. 북으로는 해발 1000m가 넘는 대공산성과 새봉이 있고 남으로는 능경봉이 우뚝하다. 등산객이 용을 타고 잠시 하늘을 나는 환상 속에 빠지게 한다. 소나무숲을 두르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더듬이처럼 하얗게 솟아 있는 풍력발전용 풍차들과 버짐처럼 펼쳐진 양떼목장 풍경이 이국적이다. 눈을 돌려 동해를 조망하면 바다가 지척이다. 금방이라도 동해의 파도가 흰 포말을 일으키며 산쪽으로 달려들 것만 같다. 영동 제일의 도시 강릉도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아른거리는 시야 속에 정상 가까이는 강릉의 젖줄인 강릉저수지가 있고 멀리는 경포호수가 도시를 엄호한다. 산 정상에는 족히 300~400년은 됐을 노송(松)과 금강송 군락지가 펼쳐져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광화문 복원을 위한 대들보도 인근에서 베어냈을 만큼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용틀임하는 백두대간… 동해가 한눈에 정상쯤에서 만난 강릉 토박이 함영호(64)·박제선(62)씨는 대관령과 제왕산, 강릉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예향(藝鄕) 강릉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둘은 “강릉은 바다에 사는 용이 산으로 올라오는 모양을 띠고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며 구수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길손의 지루함을 달래준다. 정상에서 강릉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다. 곳곳에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구불구불 긴 내리막이 수월치 않다. 그러나 30분쯤 내려오면 맑은 계곡물이 반긴다. 어디에서 발원됐는지 두 줄기 물길이 만나 암반을 타고 시원스레 흘러내린다. 물이 폭포수를 이루며 지나는 등산객들의 땀을 식혀준다. 기운찬 물길이 잠잠해지는 곳에 이르면 산행의 끝을 알리는 상제민원과 복원된 대관령 옛길의 주막집을 만난다. 다양한 얘기를 간직하며 웅장한 풍광을 자랑하는 제왕산은 강릉의 관문으로 또 그렇게 수천년을 우뚝하게 지켜줄 것이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제왕산 숲길따라 옛길따라 길섶 곳곳 주막·물레방아… 발길마다 추억이… 강원 강릉 제왕산 기슭에는 험준한 대관령을 오르내리던 영동과 영서를 잇는 옛길이 나 있다. 옛길은 숱한 애환과 얘기를 간직하고 지금도 강릉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요 관광자원으로 계속 개발되고 있다. 옛길은 흙길이다. 수백년 동안 영동과 영서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사람들의 발길에 파여 우묵한 골짜기를 이룬다. 길옆으로는 우렁찬 물소리가 어우러진 계곡이 흐른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울창한 원시림도 장관이다. 길섶 곳곳에는 옛 주막과 물레방아를 복원했고, 길의 절반을 알리는 반정(半程)에는 전망대를 만들었다. 곳곳에 의자를 놓아 쉼터를 만들었고 신사임당이 대관령을 넘으며 지었다는 사친시(思親詩)와 지방하급관리의 은혜를 기리는 비도 있다. 대관령 너머 평창의 횡계역과 강릉의 구산역을 잇는 옛길은 많은 얘기를 담고 있다. 동해안 해산물을 한양으로 올리던 짐꾼들 얘기부터 양반이 눈길을 걸을 때 앞서 눈을 다져주던 답설꾼들 얘기까지 길을 따라 걸었던 70~80대 노인들의 얘기 보따리는 끝이 없다. 우선 하제민원에서 대관령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원울이고개’에 얽힌 얘기는 흥미롭다. 한양에서 700리길을 걸어 강릉부사로 부임하던 원님들이 강릉의 막바지 고개에 이르러 힘들어서 울었고 임기를 마친 원님들이 강릉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을 뒤로하고 돌아가기가 섭섭해 두번 운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옛 관리들이 정상쯤에 있는 국사성황당 앞을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지방 하급관리가 힘든 옛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과 숙소를 제공해 고마움의 표시로 세운 공덕비도 있다. 제왕산은 이렇게 한양과 강릉을 이어주는 관문으로 많은 얘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LAT “韓, 평범한 학생들 해병대 체험”

    LAT “韓, 평범한 학생들 해병대 체험”

    미국 LA타임스(LAT)가 한국 ‘해병대캠프’를 자세히 보도했다. 특히 부모들이 아이들을 해병대캠프에 보내는 이유에 주목했다. LAT는 22일 인터넷판에서 해병대캠프 청룡훈련단 캠프 모습을 ‘한국 아이들이 군대를 체험한다’는 제목으로 전했다. LAT는 먼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를 악문 얼굴 위로 물이 흐른다. 곧 울 것만 같은 표정”이라고 훈련에 참여한 청소년의 모습을 묘사했다. 이어 “훈련을 받는 학생들은 약물에 중독됐거나 법적인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아니다.”라며 “이와 비슷한 캠프에 불량학생들이 보내지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평범한 아이들이 대상”이라고 양국을 비교했다. 또 청룡훈련단 박경훈 단장의 말을 인용해 “요즘 청소년들은 정신과 육체가 약하고, 컴퓨터 게임때문에 살이 쪘다. 또 부모에게도 버릇없이 군다.”고 청소년캠프 훈련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신문은 청소년들이 나약한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LAT는 “한국전쟁 이후 어려운 시기에 자란 이들은 자식에게 자신들이 못했던 것들을 모두 해주려 노력해왔다.”며 “그러나 아이를 더 좋은 학생,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려면 (원하는 대로 해주기보다)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고 세대에 따른 교육 모습으로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신문은 “자신감을 갖게 됐다. 삶이 모두 내 맘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캠프 참가 학생의 말을 전했다. 또 “이 캠프에서 가장 힘든 것은 낮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고된 훈련이 아니라 ‘휴대전화 금지’ ‘컴퓨터 사용 금지’ ‘가족들과 통화 금지’ 등의 규정이라고 덧붙였다. 사진=LAT 인터넷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와 애증의 20여년 광주·전남 추모위원장 지선스님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와 애증의 20여년 광주·전남 추모위원장 지선스님

    “그 분을 영원히 떠나 보내야 하니 마음이 아프고, 만감이 교차합니다.”‘김대중 전 대통령 광주·전남추모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된 지선 스님(백양사 주지)은 20일 “그가 평생 추구해온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화해 등의 정신을 이어 받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며 “장례일까지 매일 저녁 그를 기리는 추모문화제를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겠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산승(山僧)’에서 ‘투사’로 변신해 20여년 동안 광주지역 재야운동을 이끈 지선 스님은 DJ와 불가에서 말하는 ‘억겁의 세월’을 거친 ‘인연’을 맺는다. 지선 스님은 1980년대 이후 ‘반독재 투쟁’이란 기치 아래 대학생들과 섞여 매일 거리 최루탄 공방전의 선봉에 섰고, 이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았던 그는 이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으나 6·29 선언 다음달인 7월 초 석방된다. “석방되던 날 DJ와 YS가 교도소 앞에 찾아와 처음으로 두 거물 정치인을 동시에 만났다.”며 “이후 두 분 사이를 오가며 후보 단일화를 강력히 촉구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두 분으로부터 선거 전까지는 꼭 단일화될 거란 말을 들은 뒤 각 대학에서 강연이 있을 때마다 ‘민주진영의 후보 단일화는 반드시 이뤄진다.’고 역설했으나 그 것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가장 가슴 아팠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광주에서 재야활동에 열중이던 지선 스님은 DJ가 1987년 대선 패배 이후 평민당을 이끌던 때도 여러번 부딪쳤다. “DJ는 당시 ‘비 폭력, 비 반미, 비 용공’이란 3대 원칙을 끝까지 강조하며 우리 재야운동가와는 일정 거리를 두려 했던 현실 정치가였다.”며 “이런 점 때문에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 자주 빚어졌다.”고 말했다. 지선 스님은 1989년 ‘조선대생 이철규 변사 사건’을 한 예로 들었다. 그는 지역 재야인사인 고 조아라 선생 등과 함께 동교동을 방문했다. 보기에도 흉측한 모습이었던 이철규씨 사진의 일간지 게재를 건의하기 위해서였다. DJ는 당시 “공안 당국에 탄압의 빌미만 제공할 뿐”이라며 일거에 거절했다. 지선 스님은 “5·18 이후 수많은 대학생과 열사들의 죽음을 외면하려면 정치를 그만 두라.”고 맞섰다. DJ역시 “법복을 입고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든 대학생을 선동하면 되느냐.”며 질책했다. DJ와 지선 스님은 이 때부터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DJ가 집권한 이후부터 그는 10여년 동안 ‘산방’에서 지냈고, 최근 3개월 간 하안거를 마친 뒤 DJ추모행사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어른은 가셨지만 우리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계실 그 분을 되새기고, 그의 정신을 계승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지선 스님에겐 애증의 20여년이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세계 최연소 ‘비행기 위에서 나는 소년’

    ‘윙-워크’(Wing-Walk·비행기에 몸을 묶고 비행하는 것)에 성공한 세계 최연소 도전자가 영국서 탄생했다. 올해 여덟 살 된 소년인 타이거 브루어는 스턴트와 퍼포먼스를 생업으로 삼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도전에 익숙한 피를 물려받은 브루어는 최근 어른들도 하기 힘든 ‘윙-워크’에 성공해 ‘가문의 영광’을 이룩했다. 브루어는 그의 할아버지가 직접 운전하는 복엽비행기 날개에 몸을 묶고 섰다. 수 백 m 상공에서 안전장치 하나 없이 비행기에 매달려 하늘을 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브루어는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결국 무사히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8년 전 당시 11세 소년이 세운 ‘최연소 윙-워크’ 기록을 깨는데 성공했다. 브루어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경험이었다. 내가 세상의 꼭대기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면서 “낙하산도 매지 않은 채 단지 고글하나만 가지고 도전했다. 성공해서 매우 기쁘다.”고 전했다. 브루어의 아버지 콜린은 “아이가 비록 여덟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 큰 어른처럼 침착했다.”면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단지 무사히 성공하길 기도했다.”고 말했다. 브루어는 현재 ‘세계 최연소 윙-워크에 성공한 사람’으로 세계기네스 기록에 등재 신청한 상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 전대통령 서거]박근혜·이재오 홈피도 추모

    [김 전대통령 서거]박근혜·이재오 홈피도 추모

    한나라당 각 계파 수장들이 홈페이지 등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회고하며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19일 싸이월드 미니홈피 대문에 흰색 정장 차림으로 묵념하는 사진을 내걸었다. 사진 아래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홈페이지에도 애도의 글과 함께 손을 흔들며 웃고 있는 고인의 사진을 팝업창으로 올렸다. 전날에는 “우리나라 정치사에 큰 어른이 서거하셨다.”고 말했다. 이재오 전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정치 복귀 시기를 묻는 질문에 “때가 오지 않겠느냐. 때가 안 오면 기다릴 줄 아는 것도 정치인이고, 돌아가신 김 전 대통령도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일생 하신 일이 민주화와 통일인데 아직 민주주의도 성숙하지 못했고, 통일도 접점을 못 찾고 있는데 돌아가셔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며 애도를 표했다. 그는 민주화 투쟁 시절 감옥에서 고문을 당한 자신에게 고인이 웅담을 선물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군사독재 시절 모든 사람이 침묵을 강요 당하던 무렵 야당 정치인으로서 어두운 길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줬다.”고 돌아봤다. 이 전 의원은 홈페이지에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온몸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과 조국의 평화, 통일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셨다.’고 적었다. 그는 이날 오후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의 임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상득 의원 쪽은 “조만간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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