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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살 오빠가 여동생 추행범 잡았다

    초등학교 2학년생이 침착하게 대응해 여동생을 성추행한 범인을 잡은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16일 서울 도봉경찰서에 따르면 초등학교 2학년인 김모(8)군은 12일 오후 5시30분쯤 5살짜리 여동생을 데리고 친구들과 함께 동네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골목을 전전하던 노숙자 함모(45)씨가 아이들을 향해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김군의 여동생에게 접근했다. 함씨는 건빵 봉지를 내밀며 “이름이 뭐니? 참 예쁘다.”며 김군 여동생의 엉덩이를 만지며 추행하기 시작했다. 현장을 목격한 아이들은 함씨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다. 김군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고 싶었지만 체격도 왜소해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김군은 학교에서 성폭력 예방교육 때 ‘무조건 주위 어른들이나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라.’고 배웠던 것을 생각해냈다. 조용히 뒤돌아선 김군은 휴대전화로 어머니에게 “어떤 아저씨가 동생에게 나쁜 짓을 한다.”고 다급히 상황을 설명했다. 김군 어머니는 즉시 경찰에 신고한 뒤 놀이터로 달려나왔고 함씨는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돼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함씨는 2002년 7월에도 5세 여아를 성추행해 처벌받았던 아동 성범죄 전과자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들은 대체로 무서워 도망가거나 반대로 무작정 달려들다 화를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김군이 침착하게 대처했다.”며 어린 오빠의 기지를 추켜세웠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24일 제2회 DMZ 트레킹대회

    비무장지대(DMZ)를 걸으며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제2회 DMZ 트레킹대회’가 24일 경기 파주시와 연천군 철책선 구간에서 열린다. ‘휴전선 155마일’이란 의미에서 선착순 1550명을 선발한다. 참가비는 어른 1만 6000원, 학생 1만 2000원이며 단체나 4명 이상 가족 참가시 할인 혜택이 있다. 신청은 인터넷(www.ilovedmz.co.kr)으로 하면 된다.
  • “젊은 여성 연인역… 난 복많은 사람”

    “배우는 나이가 들면 입지가 좁아질 수 있는데, ‘페어 러브’에서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배역을 맡는다고 하니, 가족들이 복도 많은 사람이라고 좋아하더군요.”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상영작인 ‘페어 러브’(The Fair Love)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안성기(57)는 출연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지난 10일 저녁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문화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페어 러브’는 50대 독신 남성과 20대 여대생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 친구의 딸, 아빠의 친구라는 사이로 만난 두 사람은 26살의 나이 차에도 이성간의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면서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아 간다. 안성기와 이하나는 남녀 주인공을 맡아 매력적인 멜로 연기를 선보인다. 안성기는 출연 계기에 대해 “시나리오가 좋아서 선택했다.”면서 “솔직히 나이 차이에 대한 부담감이 없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관객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여질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제가 맡은 캐릭터가 나이만 들었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 같은 인물이에요. 그래서 관객들도 보다 보면 금방 감정이입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원래 좀 순수한 편이라서 크게 어렵진 않았습니다.”(웃음) “사랑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사랑은 구름 같은 것”이라며 “구름처럼 사랑도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고 쉴 새 없이 흘러가며, 잡고 싶어도 쉽게 잡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자리를 함께 한 배우 이하나(27)는 안성기의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춘 것에 대해 “20대란 미성숙한 나이에서는 존경할 수 있고 자신을 어른스럽게 이끌어주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 같다.”면서 “안성기 선배님처럼 지적인 분이라면 나이차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안성기 선배님 같은 멋진 분과 연기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부모님도 좋아하셨다.”면서 “선배님이 배려를 많이 해주어서 전혀 불편한 느낌 없이 연기에 몰두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페어 러브’는 오는 11월 개봉할 예정이다. 제목 ‘페어 러브’에 대해 신연식 감독은 “공정한 사랑이라기보다, 사랑 안에서는 모든 것이 공평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신동 정성하 “기타로 한류 주역 될래요”(인터뷰)

    신동 정성하 “기타로 한류 주역 될래요”(인터뷰)

    그야말로 보통사람이 스타가 되는 시대다. 호기심으로 올린 한 편의 UCC가 몇 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소년, 소녀들에겐 금세 ‘신동’이란 수식어가 따르고, 보통 사람이 아닌 스타 대열에 오르곤 한다. 여기에 기타 연주로 전 세계를 홀린 정성하 군(13)이 유독 눈에 띈다.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넌의 부인 오노 요코가 그의 기타 연주 실력을 크게 칭찬했고, 세계적인 록그룹 미스터빅도 러브콜을 보냈다.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성하 군을 충북 오창에 위치한 자택에서 만났다. “기타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제가 느낀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 좋아요.” 연신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기타 얘기가 나오자 두 눈을 반짝이는 것이 제법 뮤지션 다운 대답이 터져 나온다. 성하 군이 놀이처럼 즐기는 기타 연주는 특별하다. 귀에 익숙한 팝들은 풍성한 기타 연주에 되살아 나고, 고사리 같은 손에서 나오는 현란한 손놀림도 신기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성하 군은 국내에서 연주자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핑거 스타일의 주법을 구사한다. 핑거 스타일이란 기타 하나 만으로 멜로디, 반주, 리듬을 한번에 연주, 하나의 곡을 완성시키는 주법. 보편적으로 반주나 멜로디 하나의 역할을 하는 일렉 기타나 통기타와는 확연히 차이나는 스킬이다. 혼자서 연주하지만 마치 여러 명이 연주하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할 만큼 풍성함을 자랑한다. 기타 한 대만으로도 하나의 곡을 완성해야 하는 만큼 연주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꾸준한 노력도 필요했다. 성하 군은 “일반 통기타 처럼 반주만 했었더라면 금방 포기했을 수도 있는데 다른 핑거 스타일란 장르를 접하고 매력을 느꼈다. 그만큼 하나의 곡을 완성했을 때의 보람은 상당하다. 신기하기도 하다.”고 했다. 현재 성하 군의 블로그에는 하루에도 수십 명이 찾아와 감탄의 댓글을 보내고 있다. 작은 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튕기는 동양의 한 꼬마가 만들어 낸 멜로디는 가히 환상적이라는 평이다. 게다가 연주에 몰입하는 고도의 집중력은 보는 이를 숨죽이게 만들 정도다. 온라인에서 성하 군을 주목하는 이들은 무려 20만명. 유튜브 동영상 블로그에 등록된 단골 손님의 수만 전세계 26위에 달한다. 미국의 유명 아이돌 밴드 ‘조나스 브라더스’의 회원 수가 1위이며, 메탈리카의 유튜브 회원수가 성하 보다 하위 순위에 랭크되어 있을 정도면 그 인기는 상당한 수치임이 틀림없다. 이처럼 성하 군이 전하는 ‘기타의 힘’은 대단했다. 폭발적인 기타 속주는 아니지만 기타 여섯줄의 마법은 부드럽고 때론 강하게 완벽한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연주 실력에 매혹된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 기타리스트 토마스 리브는 제자로 삼고 싶다고 제안했고, 프랑스 연주자 미셜 오몽 역시 성하 군의 실력을 극찬했다. 더불어 오노 요코가 ‘존 레넌도 자신의 곡을 이렇게 훌륭하게 연주한 것을 알았더라면 무척 행복했을 거예요.’라고 한 것도 이미 유명한 일화다. 이 같은 반응을 두고 성하 군은 머쓱해 한다. 그러면서도 “더 열심히 해서 세계적인 분들과 협연이나 잼(즉흥 연주) 형식의 공연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성하 군이 기타를 잡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린 시절부터 본격적인 기타 수업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기타를 잡게 된 것은 평소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쩌다 가르쳐본 기타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고, 이후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됐다. 정우창 씨는 “어린 나이에 손가락이 아플 법도 한데 끈기있게 끝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고 마냥 신기했다. 무엇보다 뛰어난 곡 해석력을 지녔다. 이렇게 재능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들의 매니저 겸 프로듀서 역할까지 해내는 정 씨는 자신이 품고 있던 기타에 대한 열정을 아들을 통해 대신 느끼곤 하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영어의 필요성을 체감한 아버지의 권유로 올해 성하는 국제 중학교로 학교를 옮겼고,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하루 일과는 여느 어른들 만큼이나 타이트하다. 오전 6시에 기상해 영어로 진행되는 학교수업, 그리고 저녁에는 일본 유명 기타리스트로부터 2-3시간씩 기타 레슨을 받는다. 이처럼 매일 반복되는 기타 연습에 질릴 법도 하지만 성하에게 ‘기타’는 이제 생활이자 꿈이 됐다. 오는 24일에는 90년대를 풍미한 세계적인 록 그룹 미스터빅의 내한공연 무대에 오른다. 또 태국에서 열리는 기타 페스티벌에도 초청받았다. 마지막으로 취재진 앞에서 성의있게 기타 연주를 들려준 성하 군은 “기타가 너무 좋아요. 공부도 열심히, 기타 연습도 열심해 해서 언젠가 훌륭한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라며 두 눈을 반짝였다. 서울신문NTN 박영웅 기자 hero@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엄마와 읽는 동화] 슬픈 숨바꼭질/이붕

    [엄마와 읽는 동화] 슬픈 숨바꼭질/이붕

    동민이 할머니는 꾸꾸기와 숨바꼭질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꾸꾸기는 할머니를 위해 숨어야 할 때면 살짝 숨곤 했습니다. 꼭꼭 숨었다가 찾아지지 않으면 더럭 겁이 날 테니까요. 참, 꾸꾸기는 동민이네 텔레비전 리모컨의 이름입니다. 이름을 지은 사람은 할머니입니다. 리모컨이란 발음이 어려운 할머니는 채널을 바꾸거나 소리를 키울 때 꾹꾹 누르는 것이라서 그렇게 불렀습니다. “꾸꾸기 어딨냐?” 맨 처음 할머니가 이렇게 물었을 때 식구들은 물론 꾸꾸기도 누구를 부르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땐 꾸꾸기 이름이 꾸꾸기란 걸 누구도 몰랐으니까요. 거실 탁자 밑에서 리모컨을 집어든 할머니가 함박 웃으며 말했습니다. “꾸꾸기 이 녀석, 나랑 숨바꼭질 하자는 게구나!” “꾸꾸기요? 할머닌 이름도 잘 지으시네요.” 동민이가 재미있어하자 아빠가 말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이름 잘 짓는 거 이제 알았구나. 큰아빠가 아들 낳으니까 형민이라 지으시더니 네가 태어나자마자, 동생이니 동민이라 부르자고 하셨단다.” 동민이 아빠가 이번에는 할머니께 물었습니다. “어머니, 형민이 이름 지으실 때 동민이 이름까지 미리 지으셨던 거예요?” 아빠 말에 할머니께서는 칭찬 받은 아이처럼 좋아하며 대답했습니다. “내 손자들 이름 모르면 안 되니까…, 헷갈리지 않으려고 그랬던 거지.” 할머니는 이 말 끝에 얼굴을 찌푸리며 불평했습니다. “쉽게 지어주면 뭐 하니. 니차진지 내차진지, 어렵게 바꿔버렸다며.” 큰아빠네가 필리핀으로 이민을 간 후, 형민이 이름을 리차드로 부르게 된 걸 두고 하신 말이었습니다. 식구들은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할머니가 그 일을 마음에 담고 있다니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꾸꾸기도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누구나 불리는 ‘리모컨’보다는 자기만의 이름을 갖게 되어 기뻤습니다. 꾸꾸기는 할머니와 숨바꼭질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꾸꾸기 녀석, 또 어디 숨었니?” 할머닌 꾸꾸기가 원래 있던 자리에 있어도 꼭 이름을 불러주며 숨바꼭질 놀이를 했습니다. 꾸꾸기에게는 한 번도 술래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늘 할머니가 술래를 했습니다. “할머니, 나 여기 없어요.” 꾸꾸기가 숨을 죽이고 있어도 할머닌 어느새 찾아내고서 좋아했습니다. “꾸꾸기 너, 여기 숨어 있으면 내가 못 찾을 줄 알았지? 나는 우리 산골에서 찾기 대장이었단다. 고사리를 꺾으러 가도, 버섯을 따러 가도 내 바구니가 젤 먼저 그득 찼지. 나만큼 잘 찾아내는 사람이 없었거든. 뭐든 빨리 잘 했어. 자식을 얼른 못 낳아 구박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 할머닌 집에 혼자 남으면 하루 종일 꾸꾸기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빨래를 널고 와서도 꾸꾸기를 불렀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와서도 말을 걸었습니다. “내가 소화 안 되는 거 꾸꾸기 너도 알지?” “……?” 꾸꾸기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할머니가 소화 잘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면서 아는 체할 수 없었으니까요. 어느 날부터 할머니는 이런 말도 하셨습니다. “나도 꾸꾸기 너랑 같은 신세구나. 식구들 나가면 집안 청소하고, 빨래하고, 혼자 밥 먹고........날마다 정해진 일만 해내니까 말이다. 너랑 이렇게 중얼거리기라도 하지 않으면 심심해서 어찌 살겠니.” 할머니와 꾸꾸기의 숨바꼭질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식구들은 할머니께서 꾸꾸기를 찾는 것은 그냥 입에 달고 사는 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꾸꾸기 어딨냐?” 할머니의 목소리가 다른 때보다 크고 짜증이 섞여 있었습니다. 꾸꾸기는 할머니 기분을 풀어드리려고 얼른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하긴 숨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전날 밤 할머니가 놓아주신 대로 얌전히 있었으니까요. “할머니, 나 여기 있어요.” 할머니의 눈이 꾸꾸기와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방석 옆에 놓인 꾸꾸기를 할머니가 분명 보셨는데 집지 않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꾸꾸기 누가 가져갔냐?” 더 이상한 일은 그렇게 외치면서 꾸꾸기를 방석으로 얼른 덮은 것입니다. “빨리 꾸꾸기 찾아달라니까!” 할머니가 더 크게 외치자 욕실에 있던 동민이 아빠가 나왔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느라 면도기를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만 쓰시는 꾸꾸기를 누가 가져갔다고 그러세요.” 동민이 아빠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두리번두리번 꾸꾸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꾸꾸기를 찾을 생각도 않고 물었습니다. “아범은 오늘도 늦냐? 느이 이모도 나쁘지, 한 번도 안 와보고.” 동민이 아빠는 여기저기 뒤적거리며 무심결에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이모님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드디어 방석 밑에 있는 꾸꾸기를 찾아냈습니다. “여기 있었네요. ‘고향은 지금’ 틀어드릴게요.” 동민이 아빠가 채널을 맞춰드리자 할머니는 밝게 웃으셨습니다. “옛날 우리 집 뒤에도 저렇게 큰 감나무가 있었던 거 잊어버린 거 아니지?” “그런 거 잊어버리면 또 어때요, 바쁜 세상에.” 아빠는 급히 대답하고 다시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그 뒤로도 할머니는 꾸꾸기를 자주 숨겼습니다. 식구들은 할머니께서 관심을 끌려고 그러시는 거라고 짐작해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꾸꾸기의 숨바꼭질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꾸꾸기를 점점 이상한 곳에 숨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꾸꾸기는 냉장고 안에 숨겨져 하루 종일 꽁꽁 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동민이 엄마가 겨우 찾아냈습니다. 다음 날은 세탁기 속에 숨겨놓았다가 회전 목욕까지 당했습니다. 결국 꾸꾸기는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드라이어로 말리고 건전지를 갈아 끼우는 등 야단법석을 떨고서야 겨우 깨어났습니다. 꾸꾸기는 이제 할머니와의 숨바꼭질이 무서워졌습니다. 놀이가 아니라 야단법석이 되었습니다. 이제 꾸꾸기는 할머니가 아니라 식구들과 숨바꼭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숨겨놓고 찾아내라 떼를 쓰면 식구들은 그걸 찾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어머니, 제발 꾸꾸기 좀 숨기지 마세요.” 동민이 엄마가 애원하면 할머니는 이제 시치미까지 뗐습니다. “꾸꾸기가 누구냐?” 할머니는 꾸꾸기를 모른 체했습니다. 꾸꾸기는 너무 슬펐습니다. 할머니가 자기를 모른 체하다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진짜로 꾸꾸기를 잊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할머니는 꾸꾸기를 못 볼 거라도 되는 양 꾹꾹 숨겼습니다. “리모컨 아무 데나 숨기지 마세요, 할머니 제발.” 동민이의 부탁에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느이 이모가 왔다고?” “이모라니요, 할머니. 저한테 무슨 이모가 있어요.” 그러면 또 엉뚱한 말을 했습니다. “느이 이모는 싫어. 내 아들 피리불서 얼른 데려 와!” 하루는 동민이 엄마가 아주 작은 소리로 아빠께 말했습니다. “요즘 어머님 정신이 흐려지셔서 리모컨을 아무 데나 두시는 거예요. 그러니 탁자 다리에 줄로 묶어둬야겠어요.” 이 말을 들은 할머니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습니다. “나쁜 것들, 나를 묶는다고? 아무리 늙은이가 쓸모없어도 그렇게는 못 한다!” 동민이 아빠와 엄마는 할머니가 불쌍해 울먹이면서 탁자 다리에 리모컨을 묶어 두었습니다. “어머니, 꾸꾸기 여기 매달아 놓은 거 보이시지요? 이렇게 잡아당겨 꾹꾹 누르면 텔레비전 켤 수 있어요.” 할머니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끄덕했습니다. 그렇지만 1분도 안 돼 꾸꾸기를 불렀습니다. “꾸꾸가, 꾸꾸가! 얼른 이리 와서 아범을 풀어줘라!” 이렇게 소리소리 지르던 할머니는 기운이 떨어지고 몸도 아주 많이 아팠습니다. 오래도록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아주 슬픈 숨바꼭질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꾸꾸기에게 술래를 시키고 할머니가 꼭꼭 숨었습니다. 꾸꾸기가 영영 찾지 못할 곳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장례를 마친 며칠 후, 동민이 아빠가 묶여 있는 꾸꾸기를 풀면서 꺽꺽 울었습니다. 엉뚱한 소리를 하시더라도 짜증내지 않고 들어드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와 더 슬펐습니다. 함께 있어드리지 못한 일이 죄스러웠습니다. 묶여 있던 꾸꾸기는 풀리면서 울음을 꾹꾹 참았습니다. 할머니와 숨바꼭질을 하고 싶었습니다. 슬픈 숨바꼭질이라도 할 수 있었던 때가 그리웠습니다. 냉장고 속에 갇혀 꽁꽁 얼더라도 숨바꼭질을 하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는 먼 곳에 숨어서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다며 웃고 계실지 모르지만 꾸꾸기는 너무 슬펐습니다. 그래도 꾸꾸기가 안심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할머니처럼 숨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셨다는 점입니다. 할머니 혼자가 아니니 심심하거나 무섭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언젠가는 꾸꾸기도 가게 되는 곳이라니 말이에요. ●작가의 말 요즘 치매 어른이 늘어나면서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런 가족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돌아가시면 슬프고, 그립고, 좀 더 잘 할 걸 하는 후회가 남는 것이므로 동화를 통해 간접 경험함으로써 힘들 때라도 마지막까지 사랑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리모컨 이야기로나마 리얼한 상황으로 꾸며 누구나 겪는 일이니 잘 견디라고 전합니다. 누구나 한 번은 받아들여야 할 죽음에 대하여 어린이도 생각해보며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약력 1987년 동화 ‘요요’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가가 되었다. 제4회 대교 눈높이문학상과 제1회 한우리청소년문학상을 같은 해에 받았으며 ‘아빠를 닮고 싶은 날’ ‘물꼬할머니의 물사랑’ ‘5학년 10반은 달라요’ ‘그래서 행복해’ ‘반디야, 만나서 반가워’ ‘비틀거리는 아빠’ ‘우리 엄마는 걱정대장’외 많은 동화책과 여러 독서논술 교재를 집필했다.
  • “획일적 한국교육 ‘인간 복사기’만 양산”

    “획일적 한국교육 ‘인간 복사기’만 양산”

    한국처럼 교육에 관한 논쟁이 열띤 국가도 없다. 한국 교육은 부모가 기대하는 희망의 근원이 되지 못한다. 공교육은 생각만큼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교육의 미흡한 부분을 부모가 메우려 들면서 사교육 시장만 늘어났다. 한국 정부는 다른 나라 교육 정책을 슬쩍 보고 성급히 교육개혁을 수행했다. 미국 학교에서 범죄와 마약중독 사건이 일어나고 유럽의 일부 교육 시스템은 학업 기준에 못미치는 데도, 서구의 것을 단순 모방하기 일쑤다. 가장 효과적인 처방을 위해서는 우선 ‘좋은 교육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교육 담당자들에게는 이 첫 번째 정의가 명확하게 서지 않은 듯 하다. 그러니 당연히 두 번째,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갈 수 없고 근원적인 치료는 더욱 힘들어지기만 한다. ●청심국제중고 외국인 교사의 조언 청심국제중고에서 종교를 가르치고 작가, 평론가로도 활동하는 마틴 메이어가 신작 ‘교육전쟁’(조재현 옮김, 글로세움 펴냄)의 서문에서 풀어낸 한국 교육의 현실을 요약하면 이렇다. 2000년부터 한국에서 생활하며 한국 교육에 몸담은 그는 실제 아이들의 생활과 그들이 받는 교육, 그 현장의 부조리까지 날것으로 지켜본 경험에 문화적 시각, 예리한 통찰력을 섞어 이 책에 담았다. ‘마틴씨, 한국이 그렇게도 좋아요?’(2005년)에서 한국사회 전반을 훑었다면 이 책에서는 한국 교육에 집중해, 위기의 교육을 구하고자 한다. 저자는 한국 교육 환경에 대해 나름의 장단점을 알고 있다.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친밀한 사제 관계가 강력한 교육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장점이다. 그러나 부모의 교육열은 지나치다. 6~18세 아이들에게 과도한 지식 섭취를 요구하고, 교과서 지식 외에 ‘다른 무언가’를 심어주지 못한다. 어른들이 정한 목표에 맞춰 성장하길 바라고, ‘우월’만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획일적인 교육은 ‘인간 복사기’를 만든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 영어 교육은 부적절하고, 그 시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성교육은 부족하다고 꼬집는다. ●전통윤리·문화 교육 강화해야 저자는 “진정 아이들을 위한다면 지성만 내세워서는 안 된다. 인간 내면의 뿌리가 되는 감성과 의지를 조화롭게 배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학력, 능력을 강조하는 프로필처럼 아이들의 잠재력과 성향을 파악하는 ‘정신적 프로필’을 발굴해야 한다. 아이들을 자발적인 학습으로 이끌고, 인격과 창조성을 기르는 방향으로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장한다. 선행이라는 보편적 기준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 가치와 선·악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아는 윤리의식, 사회에 봉사하는 등의 인성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예의범절’을 지도했던 한국 전통문화를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 책을 읽거나 정보를 접할 때 지식의 습득을 넘어서 ‘이것에 대한 내 생각은 무엇인가.’를 한번 더 생각하고, 이를 토론하는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 저자는 또 “과거 한국은 세계가 놀랄 정도로 풍부한 정신적, 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서 경시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며 선조들의 지혜와 견식 등 긍정적인 조건을 현대사회에 적용하고, 교육에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방인의 독설’이라고 하기에는 저자는 문제점을 너무나 명확히, 제대로 꼬집는다. 우리가 문제점을 직시하고 분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할 거라면 제3의 눈을 통해서라도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 책은 그 역할에 충실하다. 1만 3000원. ●외국인이 쓴 책 두 권 눈길 ‘교육 전쟁’이 교육 현실에 초점을 맞춰 한국사회를 비판한다면 ‘더 발칙한 한국학’(J 스콧 버거슨과 친구들 지음, 은행나무 펴냄)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한 번쯤은 경험할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1996년부터 한국에 정착해 다양한 한국 문화 비평서를 내며 한국의 속살을 꼬집는 데 주저하지 않는 J 스콧 버거슨이 자신과 다른 외국인들의 경험을 모았다. 낯뜨겁고 씁쓸한 이야기가 굴비 엮이듯 줄줄이 이어진다. 감정적인 뒷담화가 아니라 인생과 문화, 사회를 성찰하는 진지함이 녹아있다. 1만 5000원. KBS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로 유명해진 독일인 베라 홀라이터가 한국에서 지낸 1년간을 돌아보며 쓴 에세이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김진아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의 국내판이 나왔다. 독일 출간 당시 독일어로 된 원본을 오역하는 바람에 한국 폄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던 책이다. 물론 마냥 한국 칭찬을 늘어놓은 것이 아니므로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을 바탕에 깔고 읽으면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시각이 보인다. 98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아동성폭력과의 전쟁] 사회적 예방이 최우선

    [아동성폭력과의 전쟁] 사회적 예방이 최우선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폭력은 사후적인 형량 강화보다 사전 예방조치가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지역 상담기관, 경찰 등이 연계해 범사회적인 예방대책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아동 교육을 전담하는 교사들이 먼저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예산확보도 보장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범사회적 사전 예방책 제시돼야 아동 성폭력 예방을 위한 정부 대책은 ‘갈지자 걸음’을 해 왔다는 비판이 많았다. 정부는 지난해 혜진·예슬양 사건 이후 국무총리실 산하에 아동·여성보호대책 점검단을 설치했다. 당시 점검단은 아동대상 성범죄 공소시효 연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법무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법무부는 연초 조직개편에서 여성아동과를 폐지했다. 여성부가 지난해 지원받은 성폭력 피해자 예산 8억여원이 건국 60주년 행사자금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성폭행, 2006년 용산 초등생 성폭행 살인, 지난해 대구의 집단 성폭행 사건 등 심각한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지난 8일 법무부 등 관계부처가 ‘아동 성폭력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았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가해자에 대한 형량 강화보다 범죄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해바라기아동센터 이경희 소장은 “아동 성폭력 예방·심리·법률상담 등 전문가 풀을 육성하고 성 상품화를 부추기는 대중문화를 변화시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단위 예방교육 강화해야 일선 학교의 성폭력 예방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한국 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최김하나 활동가는 “학교 성폭력이 늘고 있지만 교육이나 대응은 초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가정통신문을 보내면서 ‘이상한 짓을 당하면 싫다고 해라.’ ‘늦은 시간에 다니지 말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최김씨는 “성 차이를 충분히 알고 이를 존중하는 성인지적 사고를 갖출 수 있는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교육을 맡은 교사, 학부모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의 한 상담센터 활동가는 “아이들의 성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실제 위기 순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어른들도 잘 모른다.”면서 “교사와 학부모에 대한 교육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박현이 기획부장도 “학교현장에서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야 더 큰 가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학교에선 쉬쉬하며 덮는 경우가 많은데 작은 사건도 공론화시키고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교육과 상담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아이 때부터 ‘내 허락 없이 몸을 만지는 것은 폭력이자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성 호기심을 바람직하게 발산하는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연 오달란기자 oscal@seoul.co.kr
  • [문화마당]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장유정 극작·연출가

    [문화마당]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장유정 극작·연출가

    9살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아버지와 함께 멀리 사는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완행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버스가 간이 터미널에 정차한 사이 아버지는 얼른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내렸고 얼마 되지 않아 한 아저씨가 옆자리에 앉았다. 수줍음이 많았던지라 자리 있다는 말도 못하고 어물거리고 있는데 몇 살인지, 학교는 어디 다니는지 등을 물어보더니 갑자기 무릎에 앉히려고 했다. 별 건 아니었지만 무섭고 불쾌한 기분이 들어 싫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라도 앉히려고 했고 그 와중에 나는 그만 울음보가 터져 버렸다. 사람들이 쳐다보자 그는 귀여워서 좀 쓰다듬은 걸 가지고 과잉반응 한다며 정색을 했다. 그러자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어른이 그럴 수도 있지 애가 너무 잔망스럽게 군다며 혀를 찼다. 어린 나이에도 그 순간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두려웠는지 그 후로 버스에서 낯선 남자가 옆에 앉으면 식은땀이 나고 속이 메스꺼웠다. 그리고 그 증세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10년이 넘게 걸렸다. 요즘 ‘조두순 사건’ 때문에 세상이 떠들썩하다. 슬래셔 무비를 방불케 하는 잔인한 내용과 파렴치한 그의 뻔뻔한 태도 때문에 온 국민이 분노로 들끓고 있다. 하나가 터지자 숨겨져 있던 다른 사건들도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모두 도시괴담에 가까운 천인공노할 일들이다. 심지어 친딸 강간 뉴스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시쳇말로 ‘당신 딸이 당했다고 생각해 보시오.’라는 말이 무안할 지경이다. 얼마 전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를 읽다가 궁금한 마음에 소설의 모태가 되었던 청각장애 아동 성폭력 사건을 다룬 시사다큐를 찾아보았다. 피의자를 인터뷰하는데 그가 하는 말인즉슨 굳이 잘못을 찾아보자면 ‘다정’이 병이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다큐에서 나온, 제자를 추행한 선생의 대답은 더 가관이었다. 어차피 크면 다 할 건데 몇 년 먼저 한 게 뭐 그리 문제가 되냐는 것이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당당하게 만들었을까. 확장시켜 보자면 문제는 성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성폭력은 폭행이나 협박을 통해 강제로 하는 성행위이므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이나 물건을 훔치는 강도와는 달리 강제성이 없다면 행위 자체로만 봐서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다시 말해 잠을 자거나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일상행위가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착각과 오해가 난무해서 가끔 여자가 좋으면 로맨스고 싫으면 성희롱이냐는 억측을 듣기도 한다. 누군가 억지로 밥을 먹인다고 가정해 보자. 감금되어 있고 옷이 벗겨져 있으며 죽지 않을 만큼 맞은 상태에서 더러운 놋쇠 숟가락을 다 터진 입 속으로 욱여넣는다. 그렇게 삼킨 밥이 백공기가 넘는다. 이런 상태에도 ‘밥이야 언제라도 먹는 거잖아.’ ‘배는 불렀겠네.’라는 말이 나올까? 성폭행은 섹스의 한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한 강력 범죄다. 특히 힘없는 어린아이를 상대로 한 경우는 절대로 좌시해선 안 된다. 비단 이번 사건과 같은 참혹한 사고뿐 아니라 크고 작은 추행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애정행각, 이를테면 싫다는데도 귀엽다며 볼에 뽀뽀를 하거나 많이 컸다며 엉덩이를 만지는 것과 같은 일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강제로 하는 애정행각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 애정은 강제성을 띠는 순간 그 빛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치 않는 다정은 병이 아니다. 죄다. 이번 기회에 아동 성폭력에 대한 인식, 더 나아가 성범죄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달라지길 바란다. 장유정 극작·연출가
  • 경남 남해군 요트학교

    경남 남해군 요트학교

    난데없지만, 퀴즈다. 이것은 최근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잠깐 화제에 올랐던 레저 스포츠다. 또한 십수년 전부터 한 개혁적 대통령 후보를 집요하게 공격했던 것이기도 하다. ‘호화 사치스러움, 반 서민적’이라는 이유 등에서였다. 너무 쉽나? 정답은, 바로 요트 세일링이다. 귀족 호사 취미 혐의를 받았던 두 사람 사이에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검찰총장 후보자는 요트가 아닌 다른 숱한 위법, 탈법의 결격 사유들이 총체적으로 작용해 낙마했고, 대통령 후보는 수구 언론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집요하게 ‘개혁을 말하며 호화 요트를 즐기는 이중성’이라며 물고 늘어졌음에도 국민적 지지 속에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점이다. 어쨌든 애꿎은 요트만 중간중간 인구에 회자되며 구설수에 올랐다. 하지만 요트는 단언컨대, 결코 호사 취미가 아니다. 그저 대중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태양은 가득히’나 ‘에덴의 동쪽’같이 진짜 호화 요트가 등장하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봤거나 혹은 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정치적 파당에 요트를 때로는 이쪽, 때로는 저쪽 당원으로 가입시켰을 뿐이다. ●요트, 호화·귀족 레포츠 편견을 깨다 전 검찰총장 후보자와 전 대통령 후보자가 즐겼던 요트는 모두 1~2인용으로 ‘딩기 요트(Dinghy Yacht)’라고 부르는 것이다. 엔진 없이 바람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요트다. 이 요트 1척의 가격은 ‘고작’ 550만원이다. 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초고가의 골프 장비는 말할 것도 없고 등산 장비, 마라톤 장비, 낚시 장비 등을 제대로 갖출 때 역시 수백만원이 훌쩍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보통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전직 대통령 후보에게 요트를 가르치기도 했던 국가대표 요트 선수 출신의 오종렬씨는 “귀족 스포츠니 호화 레저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도 안타까웠다.”고 답답했던 그간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게다가 딩기 요트는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이미 부산에서 요트 관련 교육, 상담 회사(더 위네이브)를 운영하고 있던 오씨는 지난 3월 경남 남해군과 손을 잡고 삼동면 물건리에 요트학교를 열었다. 요트가 얼마나 대중적인 스포츠인지, 세 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에게 요트가 얼마나 적합한 스포츠인지 증명하고, 그래서 사회적 편견에 뒤덮여 있는 요트를 대중 레포츠로서 당당하게 복권시키겠다는 의지였다. 남해군민들은 이곳에서 무료로 요트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일반인들은 4시간 남짓의 교육 및 체험을 하는 데 4만원이면 된다. 3~4인이 함께 세일링할 수 있는 요트는 역시 4시간 교육·체험에 6만원이다. 80시간의 기본교육(56만원)을 이수하면 요트 세일링은 언제든지 무료다. 어쨌든 덕분에 남해군에는 마을별 요트클럽만 벌써 3개가 만들어져 있을 정도로 요트가 널리 퍼지고 있다. ●내일부터 사흘간 보물섬 요트축제 어떤 필설도 체험을 대신하기는 어렵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 스윔슈트, 구명조끼, 슈즈 등을 갖춰 입는다. 그리고 일단 가장 기본적인 테이킹 동작을 반복해서 배운다. 테이킹은 바람을 거슬러서 전진할 수 있는 기술이다. 딩기 요트의 왼쪽 오른쪽에 번갈아 앉으며 돛의 방향을 바꾸면 지그재그로 역풍을 뚫고 나아갈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바람은 초속 1.5~4m 정도. 시속 1~4노트 정도 속력이 나와 초보자들이 딩기 요트를 즐기기에 딱 좋겠다는 오종렬 교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뭍 위에서 반복했던 훈련은 거의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우선 러더(방향을 전환하는 키)를 밀고, 뒷발을 내민 뒤 몸을 요트 가운데로 옮겨 웅크렸다가 돛이 머리 위로 지나가면 반대편 뱃전에 앉는 것을 반복해야 하는데 바다 위에 몸을 띄운 순간부터 순서가 엉키고, 줄을 잡은 손과 러더를 잡은 손이 꼬이며 허둥지둥 제멋대로였다. 나중에는 그저 요트에 퍼질러 앉아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거나 제자리를 맴도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 교장과 강사들이 모터보트를 타고 초보자들 주변을 돌며 요령을 거듭 알려주니 조금씩 익숙해진다. 두 시간쯤 지나 조종이 제법 익숙해졌다 싶으면 드디어 진짜 출항이다. 물건항을 벗어나는 것. 참새떼처럼 늘어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이 있는 방파제 테두리를 벗어나 망망한 바다로 나간다. 군청색 남해 바다는 푸른 하늘의 흰 구름과 어우러져 숨이 턱 막힐 듯한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여기에 해질녘 물건항 뒷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황금빛 햇살이 남해 바다를 물들이면 남해군 딩기 요트 체험의 정점을 찍는다. 이곳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물건항에서는 9일부터 사흘 동안 ‘2009 보물섬 요트축제’가 열린다. 사실상 처음 열리는 이번 축제에서는 제2회 보물섬컵 전국 동호인 요트선수권 대회의 체육행사와 함께 요트 모형 만들기, 해양레저체험뿐만 아니라 숲속음악회, 시월愛 가을 소나타, 바다영화제, 문학기행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문의 남해군 요트학교 070-7755-5278. ●힐튼 남해골프·스파 리조트에서 럭셔리한 하룻밤 요트학교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힐튼 남해 골프&스파 리조트는 국내 최고급 리조트임을 자부한다. 가장 작은 스튜디오형 객실(35평)에서 하룻밤 묵는 비용이 40만원을 훌쩍 넘어서니 엄청 비싸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남해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바라보는 11개홀, 바다에 접한 7개홀 등 환상적 골프코스는 승부에 연연하는 ‘쩨쩨한 샷’을 떨쳐내 주는 호방함을 안겨준다. 이 밖에 골퍼들을 위해 특화시킨 마사지 등 최고급 스파 시설인 ‘더 스파’ 역시 해외 최고 휴양지 리조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힐튼 남해 골프&스파 리조트는 개관 3주년을 맞아 다음달 14일까지 디럭스 스위트에서의 하룻밤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개관 3주년 기념 패키지를 선보인다. 하지만 이 리조트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은 현지와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이다. 생뚱맞은 초호화 리조트가 아닌, 고기잡는 어부의 통통배가 리조트 앞바다를 지나고, 해가 뜨기도 전 농군들은 리조트를 가로질러 논밭을 갈러 간다. 보통 리조트에서 볼 수 없는 ‘자연스러운 낯섦’이 있다. ●여행수첩 ▲먹을 거리 멸치쌈밥의 진짜배기 맛은 오직 남해에서만 맛볼 수 있다. 제철은 4~5월이지만 요즘은 사철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멸치쌈밥은 어른 손가락 두 개를 합쳐 놓은 정도의 굵은 멸치 수십 마리와 우거지를 듬뿍 넣고 자작자작 조린 뒤 초마늘과 함께 상추, 깻잎에 싸먹는다. 퍽퍽한 고등어조림과 차원이 다르며 뼈를 발라야하는 갈치조림의 번거로움도 없다. 우리식당(055-867-0074)이 유명하다. 물건항 근처의 햇살복집(055-867-1320)은 남해 멸치만 한 크기의 졸복으로 팔팔 끓인 졸복탕이 유명하다. 졸복과 미나리, 콩나물을 건져 밑반찬과 함께 비벼 먹도록 큰 대접도 함께 내놓는다. 남해 마늘과 함께 복어 튀김도 아주 맛있다. 글 사진 남해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전문병원 10곳뿐… 속타는 모정

    전문병원 10곳뿐… 속타는 모정

    저체중아 및 선천성 질환을 가진 신생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을 치료할 어린이전문병원이 태부족해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어린이전문병원은 전국에 10개뿐으로 이는 전체 병원급 의료기관(2250개)의 0.5%에 못 미치는 수치다. 어린이병원은 소아과의 규모만 키운 것이 아니라 어른과 다른 어린이의 특수한 질환을 치료하는 전문병원을 말한다. 미국의 경우 전체 4908개 병원 중 약 5%에 해당하는 250개의 어린이병원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27개로 모두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한다. 의학수준이 향상되면서 국내 영아사망률은 OECD 평균(1000명당 5.4명)보다 낮은 5.3명을 기록했지만 각종 신생아 질환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출생 체중이 1.5㎏ 미만인 극소 저체중아는 1993년 929명(0.13%)에서 2008년에는 2341명(0.5%)로 15년사이 무려 4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언청이로 불리는 구순구개열, 육손으로 알려진 다지증, 다운증후군 등 선천성기형아도 2005년 5만 9782명에서 2008년 6만 5176명으로 매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신생아가 겪을 수 있는 분만합병증·호흡기질병(주산기질환)으로 사망하는 영아도 인구 10만명당 약 212명으로 0세 사망원인 1위를 차지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린이병원 진료예약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이마저도 수도권에 몰려 있어 지방에 사는 환자들의 고통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서울대 매년 100억 적자 어린이병원은 질병 치료, 연구, 임상, 재활, 전문인력 양성 등 다양한 기능을 한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소아과 전문의가 어린이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정도로 활성화됐다. 문제는 민간에서 어린이병원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린이환자는 보호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인력의 투입이 많아 인건비가 올라간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의 경우에도 매년 100억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해 이를 일반 병동에서 메우는 실정이다. ●공공의료 한 부분으로 인식해야 정부도 어린이병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05년부터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대어린이병원이 문을 열었고, 내년에는 경북대·전북대·강원대에 어린이병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일회성 지원이 아닌 지속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제대 보건대학원장 이기효 교수는 “어린이병원을 공공의료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어린이진료에 대한 수가를 차등화하거나, 병원 몇 곳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용어 클릭] ●어린이병원 영아부터 청소년까지를 치료하는 전문병원이다. 명확한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신생아질환, 선천성기형아 등 특수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병원을 말한다. 소아혈액투석기, 소아폐기능 검사실, 신생아 집중치료실, 소아응급실 등의 의료장비와 시설을 갖춰야 한다.
  • [길섶에서] 효도 자전거/노주석 논설위원

    추석날 차례상을 물린 뒤 모친을 모시고 일산 호수공원에 가족나들이를 갔다. 걸음이 불편하신 모친이 공원을 둘러보지 못하는 게 안쓰러웠는데 유모차를 뒤에 매단 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수소문 끝에 제2주차장 옆 자전거대여점을 찾았다. 유모차에 어른은 앉을 수 없다기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다른 가게에 가보라는 소개를 받았다. 어른용 좌석을 자전거 앞바퀴 위에 만들어 붙인 경로용 자전거가 있었다. 발명품이라며 자랑을 늘어놓던 주인장은 모친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주민증 보관절차를 면제해 주고, 경로요금이라며 대여비를 50% 깎아주는 선심을 베풀었다. 산책 나온 사람들의 시선을 온몸에 받으며 자전거에 모친을 태우고 4.7㎞ 길이의 호수공원 자전거도로를 한 바퀴 돌았다. 낑낑대며 오르막을 오르다 힘에 부치면 내려서 끌고 갔다. 혼자 걸을 때와는 달랐다. 모친이 온전히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피곤함을 가시게 했다. 이날 하루 모친을 모시는 인력거꾼이 됐다. 모처럼 아들 노릇을 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명량대첩 축제로 영호남 우의 돈독히

    영호남 지역 주민들이 이순신 장군의 구국정신을 기리는 축제를 매개로 우의를 돈독히 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는 6일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전남 진도 울돌목에서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왜군을 대파했던 승리를 기념하는 명량대첩축제 개막식 행사에 통영시 용남초등학교 학생 50여명이 참가해 ‘군점’(軍點)을 공연한다고 밝혔다. 통영 지역 초등학생들이 명량대첩축제에서 군점을 공연하는 것은 지난 4월 명량대첩기념사업회와 통영의 한산대첩기념사업회 측이 두 지역에서 충무공 관련 축제를 할 때 대표 프로그램을 교차 공연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군점은 조선시대 경상·전라·충청의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이었던 통영에서 열렸던 조선수군의 사열행사다. 해마다 통영에서 열리는 한산대첩축제 때 국보 305호인 세병관(洗兵館)에서 건장한 장정들이 수군 장졸복장을 차려입고 무기와 군령을 전달하는 깃발을 쥐고 군점행사를 펼친다. 지난 8월 열렸던 한산대첩축제에서는 어른들의 군점행사와 별도로 어린이들이 수군 복장을 하고 군점행사를 재현해 인기를 끌었다. 앞서 통영에서 열렸던 한산대첩축제에는 전남 명량대첩축제 측에서 ‘강강술래팀’(중요무형문화재 제8호)이 참가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부고]조용한 내조 ‘현대家 맏며느리’ 이정화여사 담낭암으로 별세

    [부고]조용한 내조 ‘현대家 맏며느리’ 이정화여사 담낭암으로 별세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의 부인인 이정화 여사가 5일(한국시간) 미국에서 담낭(쓸개)암으로 별세했다. 70세. 6일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이 여사는 전날 오후 10시50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M D 앤더슨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 사망했다. 이 여사는 최근 담낭에 종양이 발견돼 국내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병세가 악화돼 추석연휴 기간 정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내외 등 가족들과 전세기로 미국으로 출국해 치료를 받아왔다. 정 회장은 이 여사의 임종을 지켜본 뒤 이날 오후 먼저 인천공항으로 귀국했다.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침울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입국장을 떠났다. 이 여사의 시신은 7일 또는 8일 한국으로 운구돼 서울아산병원에 안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발인은 10일쯤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장지는 경기도 하남 창우리 선영이 거론되고 있다. 평범한 실향민 집안의 셋째 딸로 자란 이 여사는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한 뒤 정 회장과 연애 결혼해 범 현대가로 들어왔다. 손위 동서인 이양자씨가 1991년 세상을 떠난 뒤 18년간 현대가(家) 맏며느리 역할을 도맡아왔다. 이 여사는 정 회장의 뒷바라지에 온 힘을 쏟는 ‘조용한 내조’를 통해 현대·기아차그룹의 고속 성장 및 정 부회장의 승승장구에 보이지 않는 큰 역할을 했다. 시어머니인 고(故) 변중석 여사의 조용한 내조를 쏙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어머니가 투병생활을 할 당시 매일 새벽 3시30분에 청운동 자택을 찾아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아침식사를 챙긴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 여사는 시어머니의 병수발도 매우 헌신적으로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여사가 외부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2003년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인 해비치리조트 이사직을 맡으면서부터다. 현재까지 이 여사는 해비치리조트 지분 16%를 보유한 대주주이자 고문을 맡아 왔다.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 일선으로 나선 뒤로는 공식 석상에 참석하는 횟수가 늘었다. 지난해 1월 당시 정의선 기아차 사장과 현대차 제네시스 신차발표회에 함께 참석했고, 정 사장의 ‘디자인 경영’ 첫 결실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모하비 신차발표회장에도 동행해 외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당시 발표회에서 정 부회장은 “어머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 여사는 남편 정 회장과의 사이에 1남3녀를 뒀다. 맏딸 성이씨는 현대·기아차그룹 광고 계열사 이노션 고문을 맡고 있다. 둘째 딸 명이씨의 남편 정태영씨는 현대캐피탈 사장이고, 셋째 딸 윤이씨의 남편 신성재씨는 현대하이스코 사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이 여사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는 큰 슬픔에 잠겼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내는 데 그림자 내조로 큰 역할을 하신 분이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및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도 집안의 큰 어른이 별세한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도 고인에 대해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데스크 시각] 프로야구에도 ‘예능’이 필요하다/손원천 체육부 차장

    [데스크 시각] 프로야구에도 ‘예능’이 필요하다/손원천 체육부 차장

    프로야구 초창기 톱스타였던 박노준 현 SBS 해설위원이 현역으로 활약하던 때 일이다. 경기 시작 전 그는 할 말이 있다는 듯 기자석 앞으로 다가왔다. 들어보니 자신이 출루하게 되면 취재 온 많은 사진기자들을 위해 무조건 2루를 훔치겠다는 호언장담이었다. 쉽게 말해 멋진 ‘그림’거리를 만들어 지면에 박진감 넘치는 사진을 실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뜻. 발빠른 주자들에게 감독들이 부여하는 이른바 ‘그린 라이트’(작전 없이 도루)가 당시에도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박 위원은 안타를 치고 나간 뒤 ‘다이내믹한 자세’로 2루를 훔쳤고, 그 장면은 고스란히 신문에 게재됐다. 뛰어난 경기력에 더해 ‘스타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올 시즌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았다. 삼성 양준혁이 5월9일 통산 최다인 341호 홈런을 쏘아올린 뒤 3루에서 홈까지 ‘문워크 세리머니’를 펼쳤고, 뒤질세라 6월5일 KIA 이종범도 통산 두 번째 500도루 기록을 작성한 뒤 2루 베이스를 뽑아들며 포효했다. 노련한 ‘스포테이너’의 진면목이 한껏 드러난 장면. 관중들이 이들의 팬 서비스에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음은 물론이다. 즉흥적인 세리머니 외에 다양한 형태의 ‘고정’ 세리머니도 관중들에게 각별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포수 강민호가 마주 보며 입을 벌린 채 환호하는 ‘하마 세리머니’와 왼쪽 주먹을 불끈 쥐는 LG 봉중근의 ‘봉 세리머니’ 등은 이들만의 전매특허. 롯데 ‘오버맨’ 홍성흔은 숫제 그라운드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볼거리였다. 선수들의 개성만큼 다양한 세리머니는 관중을 덩달아 춤추게 만든다. 운동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언어, 가장 원초적인 감정 표현법에 관중도 동화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쇼맨십’을 보여주는 선수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시쳇말로 ‘예능’ 감각을 가진 몇몇 선수 외에는 대부분에게서 날선 긴장과 대립구도가 지배하는 ‘다큐’의 그림자만 어른거린다. 각 팀 사령탑들도 마찬가지. 그라운드에서 감독들의 모습을 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조종규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장이 7월 감독들과 만나 살얼음판 승부를 벌이고 있을 경우 선수 교체 때 감독들이 직접 더그아웃 밖으로 나와줄 것을 요청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감독들을 보고 싶어 하는 야구팬들도 많으니 적당한 시점에 말로만 듣던 SK ‘야신’ 김성근 감독이나 KIA ‘조갈량’ 조범현 감독 등이 실제 모습을 드러내 달라는 얘기다.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서 쇼맨십은 아무래도 낯설 수밖에 없다. 훈련은 훈련대로 하고 엔터테이너의 역할까지 해야 하니 선수로서는 죽을 맛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프로와 아마추어가 분명하게 갈린다. 승부와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게 프로다. 선수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팬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킬 비장의 카드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프로야구에 ‘스포테인먼트’(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가 도입된 2007년 SK 사령탑에 오른 김성근 감독은 취임사에서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의 밸런타인 감독에게서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법을 배워왔다.”고 했다. 프로 무대에서 쇼맨십이 더이상 낯선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는 사상 유례 없는 흥행 성공으로 ‘르네상스’를 일궈냈다. 어렵사리 여성과 가족 단위 관중들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눈만 돌리면 짜릿하고 다양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널려 있는 요즘이다. ‘쓰나미’처럼 찾아 온 관중들이 빠져 나가는 것도 순식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경기장에 승부만 있고 볼거리는 없다면 오래지 않아 관중석엔 골수팬들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손원천 체육부 차장 angler@seoul.co.kr
  • [교육 & NIE] 好자 나오면 로미오와 줄리엣 얘기해요

    [교육 & NIE] 好자 나오면 로미오와 줄리엣 얘기해요

    초등학생들의 한자 학습 열기가 뜨겁다. 최근 3년 동안 한자공인시험에 응시한 초등학생의 수는 67% 정도 급증했다. 2005년 2만 5564명에서 지난해 4만 2889명으로 늘었다. 한자시험 열풍에 맞춰 한자교육을 하는 초등학교 비율도 올해 61%(전국 5772개교 가운데 3515개교)나 된다. 일부 특목중·고 및 대학 입시에서 한자관련 자격증에 가산점을 반영하고 있어서다. 한자실력은 단기간에 완성하기 힘들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초등학교 때 일찍 공부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한자도 언어인 만큼 꾸준히 실력을 쌓아야 한다. 초등교육포털사이트 에듀모아의 박해진 연구원은 “무턱대고 외우는 서당식 암기 방법은 한자 학습에 지루함만을 더해줄 뿐 큰 효과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포인트는 “한자의 유래와 부수 등을 이해하고 비슷한 모양과 뜻으로 구분해 익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험 본 후 금세 잊어버리는 한자가 아닌, 장기적으로 활용 가능한 한자 학습법에 대해 알아보자. ●그림카드로 한자 호기심 일깨우기 한자는 기본적으로 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다. 그림카드를 이용해 학습하면 효과적이다. 시각적으로 문자 생성의 원리와 내용을 들려주면 처음 한자공부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줄 수 있다. 해와 나무 등의 자연과 사람의 신체 등이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자. 어떤 특징으로 한자어가 만들어졌는지 설명해주면 아이는 흥미로워한다. 봉우리가 있는 산의 그림에서 ‘뫼 산(山)’을, 뿌리까지 그려진 나무 그림에서 ‘나무 목(木)’을 익힐 수 있다. 이 때 그림을 보여준 뒤 바로 한자를 적어주지 말고 그림이 한자로 탄생하기까지 단계별로 변형된 형태를 잡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면 좋다. 사물을 볼 때마다 한자를 떠올릴 수 있고, 한자어를 보면 본래의 개념을 유추할 수 있는 상호작용이 가능해진다. ●카드놀이로 한자음과 뜻 알기 한자를 자세히 살피면 부수 이외에도 뜻이나 소리에 영향을 주는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칼 도(刀)’를 부수로 하는 ‘나눌 분(分)’, ‘끊을 절(切)’ 등은 모두 칼과 관련 있는 의미이다. ‘밝을 명(明)’은 ‘날 일(日)’을 부수로 하여 해와 관련이 있으며, 달(月)이 더해져 ‘밝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키워드로 유추해 쉽게 한자를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카드놀이를 추천한다. 예를 들어, ‘수풀 임(林)’ ‘쉴 휴(休)’ ‘소나무 송(松)’ 등 ‘나무 목(木)’ 자가 들어간 단어를 찾게 한 뒤, ‘소나무’의 뜻을 가진 단어를 고르도록 해보자. 반대로 한자음이 같은 ‘하늘 천(天)‘ ‘내 천(川)’ ‘일천 천(千)’ 등 음이 ‘천’인 카드를 모두 고르도록 한 뒤, ‘하늘’의 뜻을 가진 카드를 맞춰보게 한다. 간단한 한자 한 글자부터 시작하여 두 단어 이상, 사자성어 등으로 넓혀갈 수 있다. 카드놀이를 응용하여 같은 부수로 이뤄진 한자 찾기, 음은 다르지만 뜻은 같은 한자 찾기, 반대로 뜻은 다르지만 같은 음의 한자 찾기 등을 할 수 있다. 한자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익힐 수 있고, 음과 뜻의 글자 체계에 대해서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생활 속 곳곳에 숨어 있는 한자 찾기 아이가 어느 정도 한자에 흥미를 갖고 익히기 시작했다면 자주 노출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처럼 한자도 많이 듣고 많이 볼수록 감각이 키워지기 때문이다. 어렵고 외우기 힘든 단어를 포스트잇으로 곳곳에 붙여두거나 ‘냉장고’ ‘세탁기’ 등 집안의 사물이름을 한자단어로 표기해두는 것도 좋다. 한자 만화 등과 같이 가볍게 읽어보며 고사성어의 유래라든지, 속담 등을 익힐 수 있는 서적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비치해두도록 한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 자주 쓰지 않으면 쉽게 잊을 수 있으므로 하루에 한 단어라도 시간을 정해 한자를 익히도록 하자. 한자단어를 이용해 일기쓰기, 편지쓰기, 그림 그리기 등 다른 분야의 학습과 연계하는 것이 좋다. 국어 교과서나 신문을 통해 아이가 아는 단어는 한자로 적어보게 하는 것도 성취감을 자극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한자만화, 게임, 온라인 학습 등 활용 몇 번씩이나 쓰고 달달 외워야 했던 기존의 한자공부 방법에서 벗어나 요즘에는 한자를 쉽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는 이러닝 한자 학습이 인기다. 만화, 애니메이션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이용해 한자 학습에 대한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반복적으로 이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암기되는 효과가 있다. 단순한 한자뿐만 아니라 고사 성어, 속담, 명언 등의 장문까지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한자를 소재로 한 온라인 게임도 등장했다. 고지식하고 어렵게 느껴졌던 한자에 온라인 게임의 장점을 접목한 것으로, 초등학생은 물론 어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기존 온라인 게임과 같이 생생한 화면에 다양한 캐릭터 선택이 가능하며 점수에 따라 레벨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괴물을 공격할 때마다 한자 한 자의 훈음이 반복되어 자연스럽게 듣기에 노출된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도움말:에듀모아
  • [Movie | 하재봉의 영화읽기] 디스 이즈 잉글랜드

    [Movie | 하재봉의 영화읽기] 디스 이즈 잉글랜드

    소년에서 갑자기 어른이 될 수는 없다. 누구나 질풍노도의 청년시절을 거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세계는 안개 자욱한 저편에서 몸을 웅크리며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혼돈기의 청년시절이 지나고 난 뒤, 그 시절에 대해 생각하면 누구나 애틋한 감정을 느낀다. 그때는 아직 세상을 몰랐다고, 그때는 너무나 어렸다고, 하지만 순수했고 지금은 그 순수함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시절이 그립다고. 일반적으로 성장영화는, 개인적 자아에서 사회적 자아로 성숙해 가는 성장통의 주인공을 바탕으로, 개인사적 이야기와 가정이나 학교 등과 다른 소집단을 중심으로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개 같은 내 인생>이나 <정복자 펠레>처럼 뛰어난 성장영화들은 단지 주인공의 개인사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집단과 세계를 함께 볼 수 있는 폭넓은 시선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한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그 소년이 살고 있는 세계의 인종적·사회적·계층적 갈등을 표현하고 있는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마치 <트레인스포팅>이 1990년대 영국 사회의 심장부를 총알처럼 관통하며 뜨거운 충격을 주었던 것처럼, 모순과 혼돈으로 뒤덮인 1980년대 영국 사회를 표현하고 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12살 소년 숀이 가정과 학교를 벗어나 더 큰 세계와 부딪치는 혼돈과 함께, 개인적 상처가 어떻게 집단화 되는가에 대한 문제도 섬세하게 추적하고 있는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대처 수상이 집권하고 있던 1980년대 초반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초등학생 숀(토머스 터구스)의 아버지가 포클랜드 전쟁에서 전사한 것으로 설정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포클랜드섬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진 이 전쟁은, 대처 정권 당시 영국 내 국수주의자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영국인들을 내적으로 단결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타민족 타문화에 대한 배타적 시선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민족적 동일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이민족에 대한 배타적 시선, 가정과 학교로 둘러싸인 작은 사회에서 더 큰 세계와 부딪치는 과정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1983년 어느 여름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던 숀은 집으로 돌아가다가 길거리에서 20대 전후의 청년들로 구성된 우디(죠 길건) 패거리를 만난다. 숀은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그들에게서 동료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우디의 친구인 콤보(스티븐 그레이엄)가 감옥에서 출소하면서 우디와 콤보 사이에 갈등이 형성되고 기존의 우디 패거리들은 각각의 성향에 따라 우디와 콤보 쪽으로 갈라지게 된다. 숀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킨헤드족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포클랜드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이 들어 있다. 숀이 국수주의적이고 폭력적인 민족주의자로 변해가지는 않지만 상처 입은 그의 어린 마음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감독은 머리를 빡빡 깎고 스킨헤드족으로 변신해가는 숀의 일상 사이에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나 유품을 배치해서 그의 심리적 내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1980년대 초반의 영국 사회,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갈등을 배경으로 유색인종에 대한 강한 거부의식, 가진 자들, 즉 유산계급에 대한 공격적 자세, 그리고 집단의 대의적 목표와 개인적 욕망이 부딪치면서 극대화되는 갈등을 세인 메도스 감독은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성장 영화가 갖고 있는 꿈과 판타지보다는 뒷골목 시궁창 같은 더러운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면서도 역사와 현실에 대해서 균형감각을 발휘하는 미덕을 발휘한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12세 소년 숀의 성장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주제의식은 날이 서 있지만 표현방법은 따뜻해지는 미덕이 있다. 숀에게도 첫사랑이 찾아온다. 상대는 우디 일행 중 한 명으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뻘이지만 숀은 의젓하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키스도 한다. 가슴 설렘 가득한 첫 키스, 그리고 따뜻한 동료애로 뭉쳐 있던 소집단 내에 균열이 생기고 갈등이 증폭되면서 숀은 혼란을 느낀다. 우디 일행들처럼 자신도 머리를 빡빡 깎고 스킨헤드족의 일원이 된 숀. 그들은 영국기를 앞에 두고 조국에 대한 사랑을 맹세한다. 파키스탄 이민자들의 가게에 들어가 폭력을 행사하고 동료이지만 유색인에게는 이유 없는 무차별 폭력으로 분풀이를 한다. 반인종적 집단이라는 점에서 스킨헤드나 신나치주의자들, KKK단들은 일맥상통한다. 그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민족적 동일성을 회복하고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어려워진 경제적 조건 아래서 반인종주의자들은 이민족들이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더욱 극성을 부린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 역시 80년대 초반 대처정권 시절 어려운 영국 경제의 위기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영화 내적으로는 우디와 콤보의 갈등, 외적으로는 스킨헤드족과 기성세대와의 갈등이라는 이분법적 큰 축이 형성되어 있다. 12세 소년 숀의 일상을 중심으로 그가 가정과 학교라는 소집단에서 스킨헤드족이라는 사회의 또 다른 소집단으로 행동반경을 넓혀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균형감을 발휘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무게중심을 잡으며 통합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실제로 소년시절 스킨헤드족의 일원이었다고 고백한 세인 메도스 감독은, 자신의 소년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사실적인 스킨헤드족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군더더기 설명 없이, 그렇다고 지나친 비약이나 생략도 없이, 한 소년의 성장기를 그리면서 당대의 사회적 삶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는 인종적 편견과 폭력 뒤에 숨겨진 그들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함으로써,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비난이 아니라 모든 행동 뒤에 숨겨진 원인과 상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시선을 확보한다. 대표적인 스킨헤드족으로 등장하는 콤보의 경우만 해도, 그의 폭력적 행동 이면에 감춰진 복잡하고 나약한 인간성을 드러냄으로써 한 인간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특히 12세 소년 숀 역의 토머스 터구스의 힘 있는 연기는, 새로운 가능성의 발굴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아 마땅하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힘 있게 상처 받은 한 소년의 내면을 연기하는 터머스 터구스는, 그 자체가 진짜 숀이다. 글_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 네살 꼬마의 카리스마 넘치는 명연설 장면[동영상]

    좋아하는 영화를 150번쯤 본다고 누구나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조시 사코란 미국의 네살배기 꼬마는 아직 제대로 글을 읽을줄 모른다.그런 그가 1980년 미국 올림픽대표 아이스하키팀이 옛소련을 물리친 극적인 순간을 담은 영화 ‘미러클’에서 미국팀의 감독 허브 브룩스로 열연한 커트 러셀의 명연설 장면을 그대로 본떠 하는 동영상이 이번 주 누리꾼들의 호평을 받았다고 야후! 스포츠의 아이스하키 블로그 ‘퍽 대디’가 3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의 주장 마이크 에루지오네의 별명을 따 ‘릿조’로 통하는 조시의 동영상은 일간 ‘USA Today’의 블로그는 물론,TV쇼 ‘엘런’에 출연할 정도로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연기학원에서 체계적인 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편집 기술도 동원되지 않았으며 대본을 놓고 읽은 것도 아니다.이 꼬마는 러셀의 명연설 장면을 그대로 뇌에 빨아들인 셈. 어떻게 그의 동영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됐을까.테니시주 내시빌 외곽의 스프링 힐이란 곳에 살고 있는 사코는 아빠 짐이 보스턴 브루인스의 하키팬이었던 이유로 함께 하키를 하며 놀았다.브룩스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지금으로부터 29년 전,핀란드의 레이크 플레이시드에서 열린 겨울올림픽에서 옛소련 팀에 역사적인 첫 승리를 따냈을 때 짐의 나이 13세였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게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어른이 됐을 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난 그 정신을 매일 되살려 살고 있다.” 그는 아들과 함께 이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직접 레이크 플레이시드까지 여행 가 그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지쳐보게도 했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브룩스 감독이 선수들을 독려했던 그 라커룸의 벤치에도 앉아보게 했다.그리고 2004년 제작된 영화 ‘미러클’을 함께 봤다.무려 150번 가까이, ”영화가 끝나면 그애는 ‘다시 틀어봐.’라고 합니다.”라고 소개한 짐은 “하루는 계단 위에서 침실을 겨냥해 퍽을 날리는 연습을 하는데 그애가 ‘휴지스!’ ‘로스!’ ‘오지!’라고 외치는 거예요.근데 생각해보니 그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들이었던 거지요.”라고 말했다. 짐은 아들이 26개의 장면들을 모두 제각각 이름붙여 영화 순서 그대로 외고 있음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다른 대화 장면도 꼼꼼히 확인해보니 이미 아들의 머릿속에는 대화 내용은 물론,그 어투까지 살려 저장돼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잭 오캘러헌이란 사람을 특히 조시는 좋아했는데 그의 보스턴 억양을 살려 조시가 연기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고 아빠는 전했다. 해서 둘은 함께 그 역사적인 승리를 일궈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명연설 장면을 본뜨기 시작했는데 아빠가 아들을 가르쳐준 게 아니라 아들이 아빠가 잘못 기억하고 있던 내용을 교정해줄 정도였다. 처음엔 친구와 친척들끼리 돌려보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렸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핫 클릭스’에 올라간 다음 ‘USA Today’ 사이트,라디오 방송 등에 나간 뒤 ‘엘런 쇼’까지 진출하게 된 것. 두 부자는 미네소타 대학의 아이스하키팀 ‘미네소타 와일드’로부터 다시 한번 연설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8일 프로팀 ‘내시빌 프레데이터’의 홈 개막전 도중 전광판을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을 들려줄 예정이다.조시의 꿈은 선수가 되는 것이었지만 당장은 명연설 마스코트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이 블로거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또다시 러시아와 맞붙게 되면 이 ‘꼬마 브룩스’로 하여금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투지에 불을 댕겨보게 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짐은 “그앤 하려고 할 겁니다.만약 해낸다면 기적같은 일이 되겠지요.”라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방탄 에쿠스/육철수 논설위원

    1989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 뉴욕에서 유엔총회 연설을 마치고 존 F 케네디 공항으로 이동 중이었는데, 노 대통령이 탄 의전용 벤츠 리무진의 뒷바퀴 하나가 펑크났다. 아찔한 순간에 수행 경호원들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리무진은 요동도 없이 시속 80㎞ 속도로 계속 달려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사고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이 리무진은 바퀴 4개가 모두 펑크나도 시속 80㎞로 한 시간 이상 주행할 수 있게 제작돼 우리 경호 관계자들을 감탄하게 했다.(박찬수 저 ‘청와대 vs 백악관’) 각국 대통령들이 이용하는 차량은 최고의 안전성을 자랑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중기관총 공격을 막을 만한 방탄판 차체에다, 차량 밑에서 수류탄이나 지뢰가 터져도 끄떡없다. 불길을 뚫고 나갈 수 있게 방염처리가 돼 있고, 어른 엄지 길이쯤 되는 방탄유리 두께, 폭발물 탐지장치 등 최첨단 방호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요새’란 별명이 달리 붙은 게 아니다. 미국 대통령이 타는 ‘캐딜락 원’은 GM이 4년마다 첨단 안전기능을 추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GM 직원들은 자국 대통령의 전용차량을 제작한다는 것 자체를 큰 자랑거리로 여긴다고 한다. 며칠전 현대자동차가 방탄 에쿠스 리무진 3대를 대통령 전용차로 무기한 기증해 화제다. 사실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면서 그동안 우리 대통령의 전용차량 하나 만들지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대통령들은 BMW나 벤츠를 주로 이용했는데, 이제야 국산 방탄 차량을 타게 됐으니 만시지탄이다. 방탄 에쿠스는 벤츠급 방탄차의 보안기능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워낙 극비리에 제작된지라, 자세한 첨단 안전·보안·방어 기능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에 제작된 방탄차량의 국산화율이 어느 정도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다만 외제 방탄차량과 성능 및 수준이 비슷하다니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제작 과정에 일화도 꽤 있는 모양인데, 현대차 쪽에서 누구 하나 입도 뻥끗 안 하겠단다. 하기야 대통령 전용차에 비밀이 많아야 신비한 것이지, 죄다 까발리면 누구인들 대통령 하는 맛 제대로 나겠나.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1위’ 포미닛, 9개월만에 첫 포상휴가 “고향 앞으로!”

    ‘1위’ 포미닛, 9개월만에 첫 포상휴가 “고향 앞으로!”

    걸그룹 포미닛이 최고의 한가위를 맞았다. 소속사 측이 데뷔 100일에 맞춰 1위의 영광을 안은 포미닛 멤버들에게 연휴를 겸한 ‘100일 포상 휴가’를 내린 것. ’포상 휴가’는 원래 군대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지만, 데뷔 후 바쁜 활동으로 단 한번도 가정에 돌아가지 못했던 포미닛에게는 상통되는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소속사 큐브 엔터테인먼트는 “포미닛이 데뷔 6개월 전부터 합숙 생활을 시작해 3개월 간 활동해 왔으니 약 9개월이 넘게 가족들과 떨어져 있었다.”며 “최근 좋은 성과도 겹쳐 포상휴가 개념으로 올 추석 연휴는 푹 쉬도록 배려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고향이 수원인 전지윤을 제외한 네 멤버는 모두 서울에 있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포미닛 멤버들은 벌써부터 한껏 들떠 있었다. 가윤은 “웃어른 분들께서 ‘포미닛’은 어려워 하셔도 ‘핫 이슈’ 노래는 다들 알고 계셨다.”며 “집에 돌아가면 멤버들 얘기와 그간 가수 활동했던 얘기들을 마음껏 풀어 놓을 것”이라고 설렘을 드러냈다. 한편 연휴를 마친 포미닛은 타이틀곡 ‘뮤직(Muzik)’의 리믹스 버전을 새롭게 선보이며 다시 한번 인기몰이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큐브 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중국 4살 ‘애연가’ 꼬마…2년 흡연 충격

    중국에서 4살 꼬마가 건강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지나친 흡연을 한 사실이 보도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현지 언론 ‘장화이천바오’가 알린 이 충격적인 소식의 주인공은 안후이(安徽)성 페이둥(肥東)현 인근 마을에 사는 동동. 올해 겨우 네 살인 동동은 능숙하게 담배를 피우는 것은 물론 흡연 욕구를 참지 못해 계속해서 담배를 훔치는 심각한 상황에 빠져있다. 동동을 직접 검사한 안후이성 아동병원 장공 박사는 “매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 담배를 피워온 것으로 보인다.”고 소견을 밝혔다. 동동의 가족과 이웃들이 아이의 흡연을 목격한 것은 2년 전부터다. 동동은 부모 모두 다른 도시에서 일을 하고 있어 조부모가 돌보고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이가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하다가 담배를 배운 것으로 추측했다. 동동의 할머니는 “아이는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가게나 집에서 담배를 훔친다.”면서 “어떻게 몰래 가져가는지 잡을 수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이어 “담배 때문인지 또래 아이들보다 걸음이나 말을 배우는 속도가 더디다.”면서 불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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