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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품들 점·선·면으로 향수 부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품들 점·선·면으로 향수 부르다

    “뉴욕에 계실 때였어요. 편지를 보내셨는데, 그 내용이 참…. ‘낮엔 햇볕이 아까워 그림을 그리고, 밤엔 전깃불이 아까워 그림을 그린다’고 하시더군요. 하루에 16~18시간 정도 그림만 그리셨던 거 같아요.” 딸 금자(75)씨에게 김환기(1913~1974)는 대가 이전에 아버지다. 남들은 모두 3000여 점의 작품을 그렸고 구상과 추상을 한데 아울렀으니 ‘한국의 피카소’라고 부른다지만, 낮이나 밤이나 그림만 그리는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구상·추상 넘나드는 한국의 피카소 더구나 후기 추상에 접어들면 본격적으로 점으로만 작업한 작품들이 줄을 잇는다. 남들은 아버지 작품에 등장하는 무수한 점이 뿜는 색깔과 기기묘묘한 배치를 보고 예쁘다, 좋다 했지만 딸 머릿속엔 ‘저 많은 걸 다 그리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뿐이었다. “이번에 전시한다고 해서 다시 작품들을 보니 참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저거 그리느라 그렇게 돌아가셨나 싶고 그래요.” 김환기의 작품 세계를 더듬어 보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 김환기’ 회고전이 6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과 신관에서 열렸다. 2010년 박수근, 2011년 장욱진에 이어 갤러리현대가 기획한 ‘한국근현대미술의 거장전’ 세 번째다. 5월쯤엔 유영국(1916~2002)을 조명한다. 이번에는 모두 60여 점의 작품이 걸렸다.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700여 점의 유화들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70여점을 추려냈고, 그 가운데 60여 점을 전시했다.”면서 “작가의 일생에 걸친 작품 경향과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앞으로도 다시 보기 어려운 전시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전시작 가운데 유족이나 화랑 소유 작품은 없다. 1년여의 준비과정을 거치면서 소장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하고 부탁해 받아온 작품들이다. 박 회장은 “다행히도 1984년 국립현대미술관과 10주기 기념전시를 공동으로 열면서 소장자들을 파악해 뒀는데, 그게 참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있다. ‘메아리’(1964년작), ‘귀로’(1950년대), ‘항아리와 꽃 가지’(1957), ‘무제’(1964~65) 등 4개다. ●우리 정서 반복적 구현으로 시선 끌어 전시는 크게 본관과 신관으로 나뉘어 있다. 본관은 한국과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1963년까지의 작품들이다. 한국전쟁의 참혹함이 끼여 있었던 시기였던 만큼 헐벗고 가난했던 시절들에 대한 구상화들이다. 자그마하면서도 어두운 느낌이 드리워져 있다. 신관에는 흔히 ‘뉴욕시대’라 불리는 본격 추상화 작업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점, 선, 면으로 이뤄져 단순하면서도 울림이 큰 대작들이다. 워낙 유명한 현대미술의 대가였던 만큼 문외한의 눈에도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 작품들이 많다. 그런데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고, 서울과 파리와 뉴욕을 오갔다지만 작품 경향이 단박에 알아챌 정도로 크게 변화했다고 느끼긴 어렵다. 오히려 오밀조밀한 기하학적인 요소들, 여백을 둔 공간배치, 깊숙하게 우러나오는 듯한 색감, 우리 땅 어디선가 한번은 본 듯한 바다와 하늘과 산의 느낌, 그리고 산·달·학·매화·백자 같은 주요 소재들이 일정한 차이는 있다지만 반복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프랑스에서 물 한 잔만 마시고 와도 작품이 확 바뀌는데 김환기만은 변하지 않아 좋다.”던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의 평, 그리고 그 평을 가장 좋아했다는 김환기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부대행사도 준비했다. 10일 오후 2시에는 신관 지하 전시장에서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특강이 열린다. 2월 20일에는 유홍준의 안내로 김환기의 생가를 둘러보는 ‘신안 김환기 생가 투어’도 준비됐다. 유홍준은 서양적 기법에다 한국적 정감을 담아냈다는 의미에서 김환기를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아왔다. 특강과 생가투어 문의 (02)2287-3500. 전시는 2월 26일까지. 3000~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씨줄날줄] 담배 이야기/우득정 수석논설위원

    “담배는 일본에서 생산되는 풀인데 그 잎이 큰 것은 7, 8촌(寸)쯤 된다. 가늘게 썰어 대나무통에 담거나 은, 주석으로 통을 만들어 담아 불을 붙여 빨아들이는데 맛은 쓰고 맵다. 가래를 치료하고 소화를 시키지만 오래 피우면 간의 기운을 손상시켜 눈을 어둡게 한다.” 인조실록에 나와 있는 담배 기록이다. 담배는 병진년(1616) 일본에서 전파되어 신유(1621), 임술년(1622)에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흡연인구가 급속히 확산됐다고 한다. 차나 술 대신 담배로 손님을 접대해 연다(煙茶), 연주(煙酒)라는 말도 생겨났다. 당시 인구 1839만명 중 360만명 이상이 담배를 피웠다고 하니 흡연율이 요즘과 비슷한 20% 이상인 셈이다. 조선 중기 학자 장유(張維)가 지은 수필집 ‘계곡만필’(谿谷漫筆)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자가 천명, 백명 중 한명”,하멜표류기에는 “조선에는 4, 5세 때부터 담배를 시작하여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남녀를 보기 드물다.”라고 기록돼 있다. 효종의 장인인 장유는 조선 최고의 골초로 꼽힌다. 그는 “담배를 피우면 취한 사람은 술이 깨고 배 고픈 사람은 배가 부르게 된다.”고 강변했다. 열렬한 애연가였던 정조는 “담배는 더위를 씻어주고 추위를 막아준다. 식후에는 소화를 시켜주고 변을 볼 때 악취를 막아주며 잠 안 올 때 잠을 자게 해준다.”고 왕의 어록(일득록·日得錄)에 기록됐을 정도다. 정조는 “여러 식물 중에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남령초(南靈草·담배)만한 게 없다.”며 흡연을 장려하는 책문을 내리는가 하면, 금연 상소는 모조리 물리치고 시험 주제로 담배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는 ‘청정관전서’에서 어른들 몰래 숨어서 피우는 어린아이들의 흡연 실태를 개탄했다. 이익은 흡연이 가래와 소화불량 해소 등 5가지 장점이 있는 반면 정신과 눈·귀, 혈색을 흐리게 하는 등 해악은 10가지라고 지적했다. 조선 말기 흡연으로 인한 피해가 연간 1260만냥이라는 기록도 있다. 흉년 때 온 백성을 구제하고도 남을 액수라고 한다. “벼는 지대가 높고 건조한 곳에서 가꾸고 좋은 땅엔 담배를 심는다.”고 할 정도로 담배의 해악은 컸다. 보건복지부가 성분·광고·판매·가격 등 담배와 관련한 포괄적 규제를 담은 ‘담배안전관리 및 흡연예방제(가칭)’ 입법을 통해 담배 첨가제의 성분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성분 공개가 금연 분위기 조성에 어느 정도 기여할지 기대된다. 우득정 수석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내 행복을 위해 먼저 남을 존중하자

    [김병일 사람과 향기] 내 행복을 위해 먼저 남을 존중하자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흑룡의 해이자, 임진왜란 7갑 주년(420년)이 되는 의미 깊은 해이다. 매년 연초가 되면 우리는 올 한 해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염원을 담아 소망을 빌기도 한다. 새해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지내고 있다. 지난날에 대한 반성 없이는 가치 있는 새것을 만들어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공자 같은 성인도 ‘논어’에서 옛것을 익혀야 새로운 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에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지난해 우리가 이룬 성취도 적지 않았으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건들 역시 꼬리를 물고 연속적으로 발생하였다. 고3 수험생이 부모를 살해하고 방안에 8개월 동안 방치하면서도 태연하게 학교생활을 했던 사건, 왕따당한 여중학생이 자살한 사건, 친구들의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폭력 앞에 목숨을 끊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중학생 자살 사건 등을 접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가슴 아파했다.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이러한 가슴 아픈 현실들을 보면서 먼저 태어나 앞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기성세대도 가난과 전쟁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하였지만, 이처럼 비인륜적인 극한 상황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왜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요즘 우리는 성과 지상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면 언제나 허둥대며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해법을 찾는다. 친구들의 가혹 행위로 인한 중학생 자살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걱정과 관심이 커지자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런 관심들이 학교에서 시작된 학생들 간의 문제라는 생각 때문인지 학교교육에만 시선이 모아지는 감이 있어 아쉬움을 준다. 문제의 본질을 다루지 않고 ‘가해학생을 전학시켜야 한다.’든지, ‘가해학생 부모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든지, ‘교사의 관심을 더욱 환기시키기 위해 교사평가에 반영하여야 한다.’는 식으로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지면 유사한 사건이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을까? 잇달아 발생하는 이러한 문제들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의 이익과 욕구의 충족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과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사회 풍토가 주범이 아닐까? 이 아이들이 태어날 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자라면서 그렇게 되었다. 부모와 교사, 어른들의 언행이나 세태를 보고 듣고 느끼면서 그리되었음이 틀림없지 않겠는가? 남을 존중할 줄 알아야 나도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있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나이가 많고 높은 지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존경받을 수는 없다. 먼저 남을 배려하고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어 주고 솔선수범할 때 존중받을 수 있다. 우리가 걱정하고 우려하는 청소년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인 방법도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혹은 주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서부터 찾을 수밖에 없다. 잘못이 가정에 있다거나, 학교와 당국에 있다거나 하는 식의 책임 떠넘기기로는 해결방안을 찾을 수 없다. 가해 당사자나 당국만의 잘못이 아니라 나 중심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가정에서는 부모님들이,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사회에서는 어른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 사람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먼저 솔선수범하고 작은 약속이라도 실천하는 모습, 학교에서는 스승이 어린 제자들을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 사회에서는 서로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아낄 줄 아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즐겁고, 그렇게 더불어 사는 삶이 즐거워야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지고 온 사회가 사람의 향기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 인기 웹툰 ‘와라! 편의점’ 안방서 만난다

    인기 웹툰 ‘와라! 편의점’ 안방서 만난다

    지난 3년간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되면서 고정독자 수 200만명, 평균 조회 수 500만건, 누적 조회 수는 7억건을 기록한 웹툰이 있다. 빵빵 터지는 건 아닌데, 보고 있으면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4일까지 369회를 연재 중인 지강민의 ‘와라! 편의점’ 얘기다. 어린이채널 투니버스는 오는 17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7시에 자체 제작한 24부작 애니메이션 ‘와라! 편의점’을 선보인다. 스크롤을 조금씩 내려가면서 보는 웹툰의 재미를 TV에서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와라! 편의점’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TV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된 ‘와라! 편의점’은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삶의 소소한 일화들을 소시민의 눈으로 재치 있게 풀어낸 시트콤 형식이다. 까칠한 오전 아르바이트생 김혜연(성우 이명선), 귀여운 오후 아르바이트생 임은아(성우 윤여진),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든든한 야간 아르바이트생 강민준(성우 최승훈), 4차원의 매력이 넘치는 점장(성우 신용우) 등의 좌충우돌 일상이 웃음과 감동을 안겨 준다. TV판 ‘와라! 편의점’은 편의점 중심이었던 원작의 틀을 확장한다. 마을 학생들과 인기가수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10대 학생 간의 갈등과 인간관계를 재현한다. 본 편 일화를 1분 만에 간략하게 정리해 보여 주는 이색 코너 ‘편의점 뉴스’도 색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지난해 대세였던 아이돌그룹 인피니트가 주제곡 ‘올웨이스 오픈’을 직접 불렀다. 한지수 투니버스 국장은 “어린이 시청자뿐 아니라 어른까지 전 연령대가 폭넓게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데 의의가 있다.”면서 “높은 수준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제작해 ‘애니메이션은 일본’이라는 공식을 깨고 한국이 아시아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부산, ‘착각의 늪’에 풍덩

    부산, ‘착각의 늪’에 풍덩

    “온천도 하고 트릭아이미술관에서 재밌는 그림도 감상하세요.” 호텔농심에서 운영하는 부산온천의 명소 ‘허심청’이 온천과 문화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도심 휴양형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된다. ●나이트클럽 있던 자리, 문화공간으로 호텔농심은 오는 11일 허심청에서 ‘트릭아이미술관’ 개관식을 연다고 4일 밝혔다. 트릭아이미술관이 들어서는 허심청 지하 1·2층 6600여㎡는 지난해 1월까지 유흥시설인 나이트클럽이 있던 자리다. 호텔농심은 허심청을 가족단위 온천 휴양시설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나이트클럽을 없애고 이곳에 트릭아이미술관을 마련했다. 별도 전시 갤러리도 설치된다. 국내 최대 규모인 허심청 트릭아이미술관에는 명화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옵아트(Optical art), 할리우드 작가들의 홀로그램 등 200여점의 트릭아이작품이 상설 전시된다. 트릭아이미술관은 역사관, 명화관, 일상관, 서커스&마술관, 홀로그램관, 아쿠아리움관, 사파리관, 거인관, 거울미로관 등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역사·명화관 등 테마로 200점 전시 개관기념으로 작가 임성훈씨의 ‘올림푸스 12신을 찾아라’가 전시된다. 호텔농심은 개관을 기념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2억원상당의 입장티켓을 기부해 2만여명의 사회적 취약계층을 미술관에 초대하는 문화나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서울 ‘트릭아이’ 年 25만명 방문 호텔농심 관계자는 “서울 홍익대 앞에 있는 트릭아이 미술관은 젊은이와 외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년 방문객이 25만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트릭아이란 ‘눈속임 그림’(trompe loeil·trick eye)을 뜻하는 것으로 그 기원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근법과 착시효과로 만들어내는 트릭아이미술은 현실과 환영의 경계에서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만질 수도, 손댈 수도 없는 딱딱한 미술전시와 달리, 명화 속 주인공이 되어 ‘보고 만지고 사진 찍으며’ 미술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호텔농심 최병두 상무는 “최근 로비 리노베이션과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픈 등 호텔의 격을 한층 높였다.”며 “이번 체험형 미술관 개관을 계기로 예술과 먹을거리 문화, 레저시설이 한 공간에 펼쳐지는 부산의 대표적 휴양시설로 거듭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릭아이미술관은 오전 10시∼오후 8시 문을 연다. 관람료는 어른 1만 2000원,어린이(청소년) 1만원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지관스님 법구 해인사로… 6일 영결·다비식

    지관스님 법구 해인사로… 6일 영결·다비식

    지난 2일 입적한 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법구가 3일 경남 합천 해인사로 운구됐다. 이날 오후 해인사 스님들은 스님의 법구가 도착하자 절 입구부터 500m가량 줄지어 맞이하고 보경당에 설치한 분향소에 법구를 모셨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이 가장 먼저 분향하고, 이어 해인사 스님과 사부대중들이 금강경 독송을 하며 지관 스님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MB “높은 인품·학문 오래오래 기릴 것” 해인사를 비롯해 조계사와 전국 교구 본사에 설치한 지관 스님의 분향소에는 대표적 학승(學僧)으로 불린 지관 스님을 애도하는 각계 인사와 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정릉 경국사 문수원을 찾아 조문하고, 조문록에 “높은 인품과 학문은 오래오래 기릴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지관 스님이 불교대백과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시리즈를 완성하지 못하고 입적한 점을 언급하며 “(출가하지 않았으면 역사학의) 대가가 되셨을 것”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한명숙 전 총리,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도 지관 스님의 법구가 해인사로 이운되기 직전 경국사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정진석 추기경 “모든 국민에게 큰 슬픔” 지관 스님이 총무원장 시절 종교 화합을 이끌어 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평생 학문에 정진하면서도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많은 위로와 사랑을 주셨던 지관 스님의 입적은 불자들뿐만 아니라 큰어른을 잃은 모든 국민에게 큰 슬픔”이라면서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 회장인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도 “불교의 발전과 종교 간 화합에 크나큰 기여를 하신 스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데 대하여 많은 불자와 슬픔을 함께한다.”는 내용의 조전을 조계종에 보냈다. 한편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은 종무회의를 열고, 지관 스님의 장례를 조계종 종단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총무원 관계자는 “기존 종령에 따르면 역대 종정, 현 종정, 현 원로회의 의장, 현 총무원장이 종단장의 대상인데 이날 종무회의에서 종령을 개정해 전 원로회의 의장과 전 총무원장까지 범위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장례는 5일장으로, 영결식은 6일 오전 11시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열고, 이어 다비식을 진행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10세 전 운동·식습관 중요한 이유

    운동을 해도 살이 잘 빠지지 않거나 쉽게 폭식을 하게 되는 등, 다이어트로 고민하고 있는 이들은 의지가 약한 자신을 비난하기 전에 어린시절 생활을 떠올려 보자. 어쩌면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과거의 생활 습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최근 한 과학자가 인간의 식사와 운동에 대한 의식은 10세때 결정된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영국 뉴캐슬대학 헤더 브라운 교수는 어린 시절의 생활 습관이 성장한 뒤 얼마나 유지되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미국에 사는 100쌍 이상의 형제자매 정보를 수집했다. 형제자매라 하면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고 거의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강한 식사 습관을 갖고 있거나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등, 10세 무렵까지 익힌 습관은 성인이 돼도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으며 지속된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참가자들은 현재 여전히 부모와 살고 있거나 이미 독립해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등 다양한 생활 형태로 나타났지만, 과거 같은 생활 습관에 대한 의식은 계속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이에 대해 브라운 교수는 “매일 아침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 습관은 대체로 10세 때까지 인간의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따라서 부모는 아이에게 아주 중요한 본보기가 된다. 부모가 건강에 해로운 생활을 하면 아이도 그대로 본받아 어른이 돼도 무의식 적으로 건강을 해치는 생활을 할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조사 결과는 영국 네이처지의 비만 저널에 상세히 실렸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오늘의 눈] 왕따가 돼 본 적이 있는가/박건형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왕따가 돼 본 적이 있는가/박건형 사회부 기자

    그날, 수능 성적표를 받으러 학교에 갔다가 들었다. “정훈(가명)이가 죽었대.” “왜?” “자살했대.” 정훈이는 ‘왕따’였다. 근거도 없는 뜬소문이 나돌았고, 다들 그를 외면했다. 장례식에도 반장만 억지로 참관했다. 1995년 겨울의 일이었다. 몇년 전 동창회에서 누군가 정훈이 얘기를 꺼냈다. 그가 왕따가 된 이유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부담은 느끼고 있었다. 얘기는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가해자들이 계속 거론하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 대책이 쏟아진다. 청와대, 교육당국, 심지어 경찰까지 나섰다. ‘발본색원’할 태세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쏟아내는 대책들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가 앞섰다. 1995년 한 고등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자살하자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이 나왔다. 1997년, 2001년, 2004년, 2005년에도 사건과 대책은 이어졌다. 그러나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접근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탓이다. 대책마다 ‘처벌과 지도’는 넘친다. 그러나 학생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모색과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당장은 처벌이 무서워 몸을 사리겠지만 언제든 독버섯처럼 솟아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16년 전, 친구들이 정훈이를 마치 벌레 보듯 따돌릴 때, 주변의 어른들 누구도 그런 사실을 몰랐다. 무심히 정훈이에게 침을 뱉고 손가락질을 해대는 우리를 누군가 나무랐다면, 또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를 환기시켜 줬더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왕따나 학교폭력 피해자가 돼 신음하기 전에, 또 누군가를 그렇게 만들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진정한 대책이라면 누구도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당사자가 되어 그들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정책도 그래야 한다. 학생들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하고 서서히, 지속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대책을 빨리 내놓는 게 결코 선일 수는 없다. kitsch@seoul.co.kr
  •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35)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동물들…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35)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동물들…

    죽음에도 색깔이 있을까. 억지 같지만 무수한 죽음을 지켜봐 온 나로서는 분명한 색깔을 느끼기도 하고, 예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면서 신체 내부에도 많은 변화들이 일어난다. 그것을 지켜보는 내 마음속에도 체념 같은 공허한 감정들이 물밀 듯 다가온다. 이렇게 하나하나의 죽음을 마주하다 보면 역설적으로 죽음을 통해서 분명한 삶의 빛깔을 알게 된다. 죽음에 비해 삶의 빛깔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한 무지갯빛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식물원에 갑자기 새가 떨어져 있다기에 가 보니 부화된 지 채 1주일도 안 됐을 성싶은 작은 새 두 마리가 땅바닥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차라리 안 봤으면 모를까, 보고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새 두 마리를 소중히 안고 내려왔다. 이런 어린 생명들을 대하면 부담감이 더 커진다. 구조된 것들 중에서 살아나는 것이 극히 드물어 또 하나의 죽음을 예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굉장히 두려운 일이다. 다행히 이 새는 먹을 것을 달라고 입을 쫙쫙 벌리는 폼이 삶의 의지가 강한 것 같았다(보통은 두려움 때문에 이런 최소한의 동작조차 못한다). ‘그래 한 번 해 보자!’ 그 순간부터 열심히 벌레를 잡아 먹이기 시작했다. 책에서 본 것처럼 이 새도 먹을 것이 어느 정도 위장에 차자 갑자기 뒤를 돌아 하얀 똥을 쭉 내밀었다. 처음에는 입에서 뭔가 튀어나온 줄 알고 놀랐는데 금세 내가 닦아 주어야 할(어미는 다 먹는다)똥이란 걸 알았다. 그렇게 열심히 먹이면서 사흘째 되는 아침, 출근해서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새가 차갑게 죽어 있었다. 온 몸이 회색빛으로 윤기를 잃은 상태였다. ‘모모’란 동화책에서 사람들의 시간을 훔쳐가는 시간도둑들이 회색빛이듯 주검 역시 회색 톤이 강하다. 또 이렇게 하나의 죽음과 마주설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직면할 땐 직업 탓인지 나도 모르게 더 담담해지게 된다. 누가 나처럼 부담을 가질까 봐 얼른 내 손으로 모든 걸 처리하려고 한층 더 덤비게 된다. 매장을 하든지 화장을 하든지 어떻게든 안 보이게 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안정된다. 남들은 그런 나를 참 무정하고 침착하다고 하지만, 그 순간 내 낯빛도 그 죽음의 빛깔에 전염된 듯 하얗게 질려 있음을 감지하는 이는 드물다. 이런저런 수많은 죽음과 맞닥뜨릴수록 더욱더 깊어지는 건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이다. 보통 사람들은 삶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으려고 매일 낑낑대다가 가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면 생을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원초적인 삶에 집착하는 동물들을 지켜보며, 또 이런 죽음의 허무함을 늘 대하며 난 지극히 단순해져 버렸다. 삶이란 그저 이 빛나는 생명의 빛깔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소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최종욱 광주우치동물원 수의사 lovnat@hanmail.net
  • [3일 TV 하이라이트]

    ●세상사는 이야기(KBS1 밤 11시 40분) 내 이름은 김영희. 한때 대한민국 초등학교 여자아이의 대명사로 흔하고 평범한 이름처럼 인생도 그랬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집안 어른의 주선으로 착하고 성실한 회사원을 만나 아들과 딸을 둔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내 인생은 5년 전, 막내딸 고은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1대 100(KBS2 밤 8시 55분) 원조 아이돌 그룹 H.O.T의 리더 문희준, 한국인 최초 세계 여자랭킹 1위를 기록한 골프선수 신지애가 각각 1인에 도전한다. ‘연예인 퀴즈 군단’, ‘복학생 제일 잘나가’, 정겨운 우리집 ‘충남 하숙’, ‘2012 예비부부·예비부모’, 월드 베스트 ‘세마스포츠 마케팅’, 그리고 69인의 예심통과자들이 함께하는 불꽃 튀는 승부가 펼쳐진다. ●아침드라마 위험한 여자(MBC 오전 7시 50분) 유라에게 자신이 친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동민. 그리고 서주는 동민에게 자신이 서훈 오빠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밝히겠다고 말한다. 소라는 25년 만에 만난 아빠를 잃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일을 절대 비밀로 해달라며 사정한다. 한편 소라는 도희에게 유라를 회사에 복직시켜 달라고 말한다. ●아침연속극 태양의 신부(SBS 오전 8시 30분) 강로의 집에서 진혁은 효원에게 결혼한 이유를 캐묻는다. 효원은 진혁의 행동에 조마조마해진다. 영철은 이렇게 분노하는 진혁의 모습에 지금껏 준비해 온 계획들을 망칠까 봐 걱정이 된다. 한편, 유산 상속을 위한 2차 심사 기준표가 발표되자, 네 명의 후보자들은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승리를 결심한다.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품 안의 티베트 불경 이곳은 바로 중국의 3대 초원 중 하나이자, 쓰촨성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루얼카이 초원이다. 해발 3400m를 넘나드는 루얼카이 초원에서도 하늘을 향해 끝없이 놓인 나무계단을 한참 올라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 황하구곡제일만은 마치 땅을 가로질러 승천하려는 한 마리의 용을 떠오르게 하는데…. ●가족(OBS 밤 11시 10분) 경상북도 문경시에는 78세의 숙희 할머니가 낡은 가방을 손수레에 싣고 집을 나선다. 그저 발길 따라, 마음 따라. 정처 없이 한참 걷다가 눈에 띄는 한 집으로 무작정 들어가는데…. 할머니의 직업은 그 이름도 낯선 ‘화장품 방문 판매원’이다. 세월이 흘러 ‘화장품 아주머니’가 아닌 ‘화장품 할머니’가 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녀석이 톱밥 속으로 숨어들었다. 녀석은 밀크셰이크처럼 어감이 달콤한 밀크스네이크 종이다. 먹이 줄 것과 따뜻하게 해 줄 것, 간단한 러시아 단어로 적어 놓은 메모지를 들여다보았다. 이반이 출항하기 전 남긴 글이다. 이반은 녀석의 등을 쓰다듬고 마지막 선물처럼 케이지를 앞에 내려놓았다. 한국 사람과 러시아 사람은 닮은 구석이 많아, 이반은 러시아 사람들도 개나 고양이, 새 같은 애완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뱀이라니, 나는 검정 바탕에 노랑, 빨강 줄무늬가 있는 이국의 낯선 뱀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러시아에서 뱀은 집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다고 생각해. 녀석을 보고 놀란 나에게 위로라도 하려는지 이반은 한국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는 걸 어디선가 들었다고 했다. 명자, 이반은 내 이름을 부르고 입으로 휘이휘이 휘파람 부는 흉내를 냈다. 그러면 집안이 텅 비게 돼, 녀석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종종 휘파람을 불던 내게 이반은 러시아 속담을 빗대 말했다. 나는 멀찍이 녀석을 내려다보며 이반의 익살에 웃음을 내보였었다. 이반을 만난 것은 클럽 로즈에서였다. 로즈는 P시에서 속칭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외국인 거리에 있었다. 예전에는 주로 미군들이 드나들었는데 미군이 철수하고 러시아 선원과 상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날도 나는 로즈에서 맥주를 마시며 립스틱이 번지지 않았는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젊은 러시아 청년 하나가 보드카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마담 장 앞에서 한국 얘기를 듣던 선원 중 하나였다. 술을 마실 때 거울을 보면 안 돼요, 아름다움까지 먹어버리거든요, 귓불에 입술을 갖다 대며 그가 속삭였다. 흔한 작업멘트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의 나긋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반이라고 했다. 그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처음 출발하는 곳이 고향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베리아 열차가 끝없이 달리는 드넓은 숲과 초원을 떠올렸다. 그에게 러브 오브 시베리아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양손을 허공에 올려 내 얼굴을 길게 그려보였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왼쪽 손목에 새겨진 푸른색 돛이 펄럭였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내가 여주인공과 닮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그린 얼굴이 허공에 그대로 떠 있는 것처럼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러시아 사람과 첫 대면을 할 때 영화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영화 속 여주인공을 만난 것처럼 이국의 여자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대개 영화 속 지명이나 주인공의 이름을 들먹이는 선에서 끝이 났다. 러시아말로도, 한국말로도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순간에 이르면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가 턱을 괴고 조용히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여행지처럼 나를 설레게 했다. 음악이 흘렀고, 클럽 로즈는 마치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을 품고 있는 대합실 같았다. 그의 손목에 새겨진 푸른 돛 때문이었을까, 나는 문득 그라면 함께 여행을 떠나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같이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월요일만 아니라면 언제라도 좋아요, 월요일 여행은 불행하거든요, 러시아 속담이에요. 느닷없는 제안이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나는 벽면에 붙은 러시아 달력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마치 오래 전에 만난 사람처럼 손을 잡고 아무 손님도 잡지 못한 나타샤를 지나쳐 거리로 나왔다. 밤하늘에는 만국기가 꽃잎처럼 나풀거렸고 만국기의 행렬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입을 맞추었다. 두 블록 떨어진 내 숙소로 걸어올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도 이반이 러시아 속담을 말하며 내 입술에 입을 맞출 것만 같다. 시계가 밤 아홉시를 넘겼다. 녀석은 원색의 몸을 감춘 채 아직 기척이 없다. 나는 열선을 펴서 케이지 크기만큼 접었다. 그 위에 타월을 깔고 케이지를 얹었다. 사람 옷 입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판매원이 열선 까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겨울철, 스스로 온도 조절을 하지 못하는 녀석에게 열선은 생명줄과 다름없다고 했다. 녀석에게 25도의 체온으로 이국의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불행일 수 있었다. 나는 콘센트에 코드를 꽂고 케이지에서 멀찍이 물러섰다. 거실의 불을 낮추고 이반이 남긴 메모지를 냉장고에 붙였다. 주방 창가로 가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북향으로 나 있는 주방에서 밖을 보면 아래층에 있는 중국집 ‘홍루’의 뒤꼍이 훤히 보였다. 홍루 뒤꼍에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새들었다. 쥐라도 쫓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담자락을 타고 지나간다. 지난봄, 가게의 주인이 바뀌면서 홍루(紅樓)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홍루는 붉은 다락방이라는 뜻이지만 이곳에 사는 화교들은 늙은 기생의 방이라는 별칭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변두리 사거리의 허름한 중국집 이름 홍루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거리는 스산할 정도로 빛이 꺼져 가고 휑하니 바람만 몰아 불었다. 멀리 텍사스 거리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등 뒤로 손을 넘겨 자주색 민소매 드레스의 지퍼를 올렸다. 목선이 등 뒤로 깊게 파인 드레스였다. 이반을 만났을 때 이 드레스를 입었다. 이반이 긴 허리를 굽히고 마른 등에 입술을 댈 때면 나는 수줍은 소녀처럼 간지러움을 참아내곤 했다. 나는 거울을 보며 빨강 립스틱을 덧바르고 귓불 뒤에 향수를 뿌렸다. 구제를 구입해 수선한 밍크를 꺼내 걸치고 자투리로 만든 밍크 모자를 머리에 비스듬히 얹었다.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장갑을 꼈다. 은색 스팽글이 촘촘하게 박힌 카우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텍사스촌에 접어들자 겨울 내내 공중에 걸려 있던 해진 만국기가 바람에 나풀댔다. 그 아래, 술에 취한 러시아 선원 두 명이 러시아 혁명가 스텐카 라진을 부르며 지나갔다. 나는 시애틀 노래주점을 지나고 캄차카 노래방을 지나 클럽 로즈로 걸음을 옮겼다. 로즈에는 러시아 민요인 백만 송이 장미가 흐르고 있었다. 낮고 고혹적인 중년 여가수의 목소리가 담배 연기와 흐린 불빛에 섞여 들었다. 손님이라고는 한국 선원 두 명과 러시아 선원 두 명이 전부였다. 마담 장이 표정 없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반을 만났던 자리에 앉아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얹었다. 한국 선원과 함께 있던 나타샤가 다가와 서툰 한국어로 언니, 마셔? 라고 물었다. 나는 보드카와 러시아 닭 꼬치인 샤실릭을 시켰다. 담배를 피워 물고 천천히 로즈 안을 둘러보았다. 마담 장이 무료하게 하품을 해댔다. 필리핀에서 온 구잘은 러시아 선원과 섞여 백만 송이 장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나타샤가 보드카와 샤실릭을 내왔다. 나는 담배를 끄고 보드카를 한 잔 따랐다.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시자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목까지 치닿았다. 이반은 보드카를 마시는 순간이면 고향을 떠났다는 것도, 추운 바다 위를 떠돈다는 것도 모두 잊는다고 했다. 나는 열기가 되뿜어져 나오는 목을 진정시키기 위해 샤실릭 꼬치에서 닭 가슴살 한 점을 빼 마요네즈에 찍어 입에 넣었다. 내가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미군이 철수하고 나서였다. 러시아 선원들이 골목을 차지하고 거리의 젊은 여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짐을 꾸려서 떠났다. 고작 러시아 선원의 비위나 맞추며 살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마담 장도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갔던 여자였다. 나는 미군 대신 러시아 선원을, 맥주 대신 보드카를, 영어 대신 러시아어를 몸에 익혔다. 이 거리에 나타샤와 구잘이 찾아들었다. 나타샤는 러시아에서 발레리나였고 구잘은 필리핀에서 가수였다고 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꿈을 찾아 이곳을 떠났고 또 누군가는 또 다른 꿈을 좇아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텍사스촌으로 되돌아 온 사람들은 좀체 이 거리를 다시 벗어나지 못했다. 마담 장이 러시아 민요 대신 빠른 행진곡으로 음악을 바꾸었다. 선원들이 경쾌한 해군의 노래에 맞춰 무릎과 팔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드카 병이 순식간에 비어 갔다. 시계는 벌써 열한 시를 넘겼다. 한국 선원이 나타샤의 뺨을 비비며 등줄기를 훑었다. 선원 하나가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순간 그녀가 마담 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담 장이 전화를 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아가씨가 클럽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는 여자였다. 계산을 마친 그들이 클럽 안을 빠져 나갔다. 손님은 이제 러시아 선원만 남았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밤이었다. 살집이 많은 러시아 선원 하나가 보드카를 마시며 계속 나를 주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선원은 보드카 병을 쥐고 일행을 벗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구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틀거리는 선원보다 구잘이 먼저 내 테이블 앞에 와 선다. 러시아 선원이 들으라는 듯 러시아말로 이번에도 손님을 채 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선원이 멈칫거리는 사이 구잘이 밖으로 나갔다. 선원이 내 앞에 앉는다. 그는 잔에 보드카를 따르며 자신의 고향 이야기로 말을 건넸다. 나는 그에게 이반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깨를 추켜올리며 자신이 이반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주색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며 슬쩍 어깨를 감싸 쥐었다. 해군의 노래가 끝나고 러시아 혁명가가 시작되었다. 구잘이 필리핀 친구와 함께 나타났다. 구잘의 친구가 러시아 선원의 팔을 꿰찼다. 멍청이! 저 언니 나이 많아, 주름 많아, 구잘이 선원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구잘의 말에 선원이 내 앞에 앉은 선원에게 손짓을 보냈다. 동료가 만류하는 손짓을 무시하듯 선원이 지갑을 꺼내 보드카와 샤실릭 값의 두 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지켜보고 있던 구잘이 거칠게 다가왔다. 언니 년 나빠! 그녀가 내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놀란 선원이 성급히 일어났다. 그리고 테이블의 돈을 챙겨 일행 쪽으로 가버렸다. 망할 년! 어린 년이! 마담 장이 구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언니 년, 나빠! 구잘이 악다구니 끝에 손을 풀었다. 그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샤실릭 꼬치가 꾸들꾸들 말라갔다. 러시아 혁명가가 끝나고 경쾌한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밤이었다. “이 짓도 이제 지긋지긋해, 러시아 년들을 한국 놈들에게 붙이고 필리핀 년들은 러시아 놈에게 붙이고, 이렇게 갈보 년들 불러대는 것도 신물이 난다구!” 그녀가 보드카를 마시며 넋두리를 해댔다. 쿨럭쿨럭, 천식 때문인지 잔기침이 뒤따랐다. “그래도 옛날에 이 바닥에서 명자, 하면 알아줬는데, 사내들을 홀리는 묘한 매력이 있었지, 그 시절에는 먹물 튄 년이 드문 때였으니…….” 그녀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흐릿한 불빛을 타고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거에 혹해서 사내놈들이 많이 찝쩍댔지…… 그때 한 놈 잡아 떠나지, 무슨 미련이 있다구…….” 그녀의 목소리는 무대 위에 홀로 앉은 재즈가수의 독백처럼 한없이 낮았다. “너나 나나, 진즉에 이 바닥을 떴어야 하는데……, 사나운 팔자는 이래도 저래도 막히니…….” 그녀는 마치 거울을 보듯 나를 보고 있었다. 손님은 더 이상 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코트를 걸쳤다. 카우치 백을 열어 계산을 마치고 조용히 로즈를 나왔다. 홍루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나는 홍루 앞에서 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기고 모자를 반듯하게 썼다. 보드카 때문인지 속에서 열이 올랐다. 어두운 계단을 지나 2층 현관문을 열었다. 녀석은 아직도 톱밥 속에 파묻혀 있다. 녀석에게 다가가 케이지 밑에 조심스럽게 손을 갖다 댔다. 따뜻했다. 월요일에 길을 떠나면 여행이 불행하게 된다고 했던 이반은 정작 월요일에 떠났다. 이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건 단순히 그가 월요일에 떠났기 때문이리라. 나는 욕실로 들어가 화장을 지우고 드레스를 벗었다. 거울에 깡마른 몸이 드러났다. 이반이 명자, 라고 이름을 부른 뒤 커다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그려 보이면 나는 러시아 회화 책을 뒤지듯 그가 허공에 그려낸 그림을 꼼꼼히 살폈다. 이반은 종종 그렇게 자신이 탈 배가 지나갈 곳을 손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이반의 손목에 새긴 푸른 돛이 허공에서 움직였다. 이반은 지금 어느 바다를 지나고 있을까, 나는 깡마른 몸에 샤워기의 물을 뿌렸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것은 녀석 때문이었다. 문득 녀석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반이 떠나고 녀석을 제대로 본 적도 없다. 나는 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나갔다. 케이지에서 멀찍이 떨어져 톱밥 위를 보았다.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반이 떠나고 녀석은 줄곧 톱밥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일까, 나는 케이지 안을 살폈다. 톱밥의 곡선이 흐트러짐 없이 처음 그대로였다. 나는 냉동실 문을 열고 이반이 사 놓은 먹이를 하나 꺼냈다. 먹이는 알루미늄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개수대에 따뜻한 물을 받아 포장된 먹이를 그대로 담갔다. 재스민 차를 우려내 창가로 간다. 눈이 흩날렸다. 홍루 지붕에는 엘피 가스통 4개와 물탱크,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작업복과 면장갑, 깨진 그릇이 나뒹굴었다. 그 낡은 지붕 아래 자장면과 짬뽕 옆으로 적힌, 익숙하나 한 번도 맛을 본 적 없는 횡서 끝자락의 낯선 메뉴를 떠올린다, 어쩌면 남자가 만들어 본 지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감조차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그 메뉴 밑으로 삐뚤삐뚤하게 적힌 러시아 음식들. 흑빵과 함께 홍루의 남자는 육개장과 비슷한 쌀단까나 빈대떡과 비슷한 블린 같은 러시아 음식도 만들었다. 종종 러시아 사람들이 중국 음식 중에 끼어 있는 러시아 음식을 주문하였다. 눈이 내려앉는 홍루 뒤꼍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가 등을 보이고 양파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내가 보는 것은 언제나 남자의 등이다. 남자는 마치 그림 속에 들어 있는 사람처럼 묵묵히 앉아 양파를 깠다. 넓은 고무 대야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물에 붇고 있는 양파 껍질을 벗겨 낸다. 인조털이 달린 두툼한 점퍼에 가려진 남자의 양 옆 어깨가 끊임없이 움직인다. 나는 껍질과 뒤섞인 혼탁한 물에 한 쪽 손을 깊숙이 집어넣고 남은 양파 알을 찾는 남자의 기울어진 어깨를 본다. 언뜻언뜻 삐져나오는 남자의 붉고 물에 불은 손. 남자는 허리를 펴고 위를 올려다보는 법이 좀체 없다. 남자의 등 뒤로 살금살금 나타샤가 다가간다. 그녀는 고양이처럼 허리를 익살스럽게 굽히고 남자의 등 뒤에 몰래 다가섰다. 나타샤가 두 손으로 남자의 눈을 가린다. 남자가 양파 껍질이 묻은 젖은 손을 차마 나타샤 손에 포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나타샤가 손을 풀었다. 나는 뒤돌아보고 멋쩍어하는 남자의 표정을 바라보며 식어가는 찻잔을 볼에 대고 눌렀다. 나타샤가 남자 앞에 턱을 괴고 앉는다. 분홍색 털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클럽에서와는 달리 앳돼 보였다. 남자가 양파 껍질을 벗기는 일을 멈추었다. 나타샤가 일어서더니 뒤꿈치를 모으고 양발을 벌려 발레의 폴리에 자세를 취한다. 두 팔을 뻗어 머리 위로 올리고 천천히 발 앞굽을 세워 잔걸음으로 뒤꼍을 옮겨 다녔다. 한눈에 봐도 그녀가 백조의 동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타샤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총총걸음으로 뒤꼍을 돌아 남자 앞에 섰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동그랗게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남자를 향해 웃고 있는 나타샤를 보며 식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개수대에 던져놓은 녀석의 먹이가 녹았다. 먹이를 건져서 접시에 담고 알루미늄 포장지를 벗겨냈다. 손가락 한 마디를 좀 넘긴 연한 핑크색 먹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나는 숨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쥐가 녀석의 먹이라니. 처음 기지촌에 왔을 때처럼, 처음 러시아 선원을 만났을 때처럼 무섭고 낯설었다.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집게로 새끼 쥐를 집어 올려 녀석에게로 갔다. 톱밥 위는 아직도 텅 비어 있었다. 케이지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고 먹이를 내려놓았다. 휘파람을 분다. 녀석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휘파람을 분다. 어릴 적 나는 늘 혼자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아무도 없는 집 마루에 앉아 허공을 향해 휘파람을 불어대곤 했다. 설령 어른들의 말처럼 뱀이 나온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휘파람을 불면 곁에 누가 있는 것처럼 무서움이 가셨다. 이반의 말대로 휘파람을 불어서 집이 비었는지 집이 비어서 휘파람을 불었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케이지에서 시선을 거두고 소파에 앉아 여행자를 위한 러시아 회화 책을 폈다. 90쪽 ‘거리’에서부터 120쪽 ‘모자 가게’까지는 이반이 떠나기 전 러시아어로 읽어주었다. 151쪽 기차여행 편을 한글로 따라 읽는다. ‘그제야 마구 쎄스츠 나 보예즈제?’ 어느 기차에 타야 합니까? 홍루 뒤꼍으로 함박눈이 쌓였다. 나는 눈을 밟으며 홍루로 갔다. 홍루에는 나타샤와 한국인 두 명만이 앉아 있었다. 주방 안으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종업원에게 이반이 즐겨 먹었던 쌀단까와 흑빵을 주문했다. 종업원 대신 나타샤가 내 쪽을 힐금거리며 주방 입구로 갔다. 그리고 주방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주문을 받아 전해준다. 나는 낮은 선반 위에 펼쳐진 러시아 회화 책을 잠시 쳐다보았다. 남자도 틈틈이 회화 책을 뒤지며 러시아 말을 익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폴리에 자세로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나타샤의 뒷모습이 왠지 서글퍼서 고개를 돌렸다. 쌀단까와 흑빵이 나왔다. 이반은 홍루의 쌀단까 맛이 고향의 맛과 같다고 했지만 홍루의 쌀단까 맛은 육개장과 별반 다름없는 맛이었다. 천천히 흑빵을 뜯어 입에 넣었다. 흑빵이 입안에서 거칠게 씹혔다. 나는 반쯤 뜯어 먹은 흑빵을 남기고 홍루를 나왔다. 케이지 안에 먹이가 그대로 있었다. 녀석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나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케이지의 뚜껑을 열고 먼지떨이를 거꾸로 찔러 넣어 천천히 톱밥을 휘저었다.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막대기로 커다랗게 원을 그은 뒤 안으로 조금씩 좁혀가며 톱밥을 감아 올렸다. 녀석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반이 곁에 있었다면 아마도 내가 휘파람을 불어 모든 게 텅 비어버린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녀석은 어디로 간 것일까. 눈이 녹고 있었다. 녀석이 사라진 지 일주일째, 부두에 배가 들어왔다. 텍사스 거리는 러시아 선원들과 보따리 상인들로 붐볐다. 나는 클럽 문을 열었다. 로즈도 러시아 선원들로 북적였다. 여전히 러시아 음악 백학이 흘러나왔고 조명은 더 흐려 있었다. 나는 이반을 만났던, 거울이 걸린 자리에 앉았다.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리고 카우치 백에서 담배를 꺼냈다. 언니 머? 구잘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는 보드카와 샤실릭을 주문했다. 마담 장이 새로운 선원들을 앞에 두고 예전 텍사스 거리에 몰려들었던 미군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선원들이 이야기를 채근하듯 마담 장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 시절 마담 장의 사랑을 구하려는 한 미국 병사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백만 송이 장미를 사다가 거리에 뿌렸노라고 말하자 선원들이 속았다는 듯 몸을 털며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러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백만 송이 장미에 얽힌, 가난한 화가의 슬픈 사랑이야기란 것을 이내 알아챈 모양이었다. 마담 장은 배가 들어올 때마다 선원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곤 했다. 선원들은 이국의 낯선 이야기에 자신들 나라의 이야기가 섞여 든 것을 알아채자 긴장이 풀렸는지 보드카를 연거푸 마셨다. 마담 장이 의자를 돌려 몸을 반쯤 틀고 있는 러시아 선원들을 달래듯 두 손을 들어 허공을 다독였다. 선원들이 다시 마담 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타샤는 한국인 선원들 사이에 섞여 있었고 이미 취해 보였다. 한국인 선원이 길고 곧은 나타샤의 등줄기를 더듬어 내려가다 허리를 감싸 안고 일어섰다. 마담 장이 재빠르게 나타샤와 눈길을 주고받았다. 나타샤와 한국인 선원이 계산을 마치고 클럽 밖으로 나갔다. 홍루의 남자가 클럽에 들어선 것은 내가 두 번째 담배에 막 불을 붙일 때였다. 남자는 이곳이 처음인 듯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소 들뜬 표정으로 구잘에게 주문을 했다. 그의 테이블에 맥주와 마른안주가 올려졌다. 나는 보드카를 한 모금 마셨다. 마담 장이 음악을 바꿨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었다. 러시아 선원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러시아인들의 춤은 마치 목각 인형이 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것처럼 무릎과 팔이 절도 있게 꺾어졌다. 격렬하면서도 율동 사이사이에 강한 매듭이 있는 러시아 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정신이 맑아졌다. 춤이 격렬하면 할수록 더 그랬다. 나는 선원들이 원무를 이뤄 추는 가팍을 보며 이반을 떠올렸다. 이반도 어디선가 함성을 지르며 저들처럼 가팍을 추고 있을까, 나는 보드카를 마시고 샤실릭을 한입 베어 물었다. 바에 앉아서 계속 몸을 흔들고 있던 마담 장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육중한 그녀의 몸이 빠른 리듬에 맞춰 민첩하게 움직였다. 선원들의 함성이 추임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음악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들의 춤은 자정까지 계속될 것이다. 구잘이 나타샤가 없는 빈자리를 대신하여 분주히 움직였다. 마담 장은 점점 술에 취하고 흥에 취해갔다. 가끔 이렇게 마담 장이 흥에 취해 선원들과 춤을 추면 그녀가 어김없이 해 오던 일, 러시아 아가씨를 한국 선원에게 붙이고 필리핀 아가씨를 러시아 선원에게 붙이는 일을 잊었다. 더불어 나의 존재도 잊었다. 그녀가 잊는 것은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천식처럼 오래된 이 거리의 모든 것들, 그녀를 되돌아오게 만들었던 익숙한 모든 것들, 그녀의 생 모두를 잊을 것이었다. 이반의 말대로 휘파람을 불면 무언가 텅 비게 되는 것처럼 그녀도 텅 비어가는 것이리라. 원무에 끼어 점점 격렬하게 몸을 흔들 때마다 그녀가 한줌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기라도 할 듯 깡마른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홍루의 남자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남자는 무릎 사이에 손을 찔러 넣고 눈은 줄곧 나타샤를 찾았다. 나는 마지막 보드카를 입에 털어 넣었다. 남자가 취했는지 점점 고개를 떨궜다. 녀석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문득 잊고 있던 녀석을 떠올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남자가 고개를 든다. 거짓말처럼 녀석을 찾은 것은 소파 밑에서였다. 환전소에 가기 위해 러시아 동전을 지갑에 넣는 중이었다. 소파 밑으로 굴러들어간 동전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누렇게 바랜 벽지에 노랑 빨강 검정 색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소파 안쪽 벽 틈에 일자로 붙어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가만히 녀석을 지켜보았다. 녀석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먹이를 꺼내 따뜻한 물에 담근 다음 물기를 닦아 소파 입구에 놓았다. 집게를 들고 소파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녀석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숨을 삼켰다. 먹이 앞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간 녀석이 고개를 들며 혀를 날름거렸다. 녀석의 여린 혀가 재빠르게 입속을 반복해서 드나들었다. 녀석이 먹이 앞으로 다가가 먹이를 덥석 무는 순간 집게로 녀석을 집어 케이지에 넣었다. 녀석의 입에는 삼키다 만 새끼 쥐의 여린 몸이 반쯤 물려 있었다. 로즈 앞에는 며칠째 클로즈라는 안내판만 달려 있었다. 겨울이면 도지는 마담 장의 천식 때문에 잠시 문을 닫았다고 했다. 나타샤도 가끔씩 목욕탕이나 환전소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한국 선원을 따라 이곳을 떠났다는 말도 있었고 임신을 해서 로즈에서 쫓겨났다는 소문도 있었다. 텍사스 거리는 다 해진 만국기를 걷어내는 상인들로 분주했다. 나는 만국기가 끝나는 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이반을 처음 만났던 날, 이반의 달콤한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던 순간, 나는 내 여행이 이대로 끝이 나길 간절히 바랐었다. 이반은 지금 어느 바다를 지나고 있을까? 나는 만국기가 걷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블라디보스토크 행 비행기표 판매소를 지나 환전소로 갔다. 마지막 남은 먹이를 녀석에게 넣어주었다. 녀석이 조심스럽게 먹이에 다가간다. 잠시 목을 추켜세우더니 슬그머니 방향을 틀었다. 또 먹이를 먹지 않을 모양이었다. 온수에 목욕을 시키면 좀 도움이 될 겁니다. 수의사는 전화로 간단하게 처방을 내렸다. 소화불량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정상적으로 탈피를 하기 힘들어진다고도 했다. 대야에 온수를 받아 케이지 옆에 놓았다. 케이지 뚜껑을 열고 널브러지듯 몸을 길게 풀고 있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집게를 들다가 내려놓았다. 녀석의 외피에 손을 조심스럽게 갖다 댔다. 녀석의 차가운 체온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천천히 선을 그으며 머리 쪽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녀석의 입을 지나 턱쯤에 손가락이 닿았을 때 녀석이 감미로운 몸동작으로 손에 감겨든다. 소름인지 전율인지 무언가 몸속으로 울려들었다. 나는 녀석을 안듯 들어올려 온수에 담갔다. 녀석이 천천히 물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물끄러미 녀석을 보다가 물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미끄러지듯 내 손을 비켜나가는 녀석의 꽁무니를 따라가며 손을 저어 작은 물보라를 일으켰다. 녀석이 점점 생기를 찾은 듯 작은 원을 그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뒤 작은 수건으로 민첩하게 손아귀를 벗어나는 녀석을 떠내 마른 수건을 깔아놓은 그릇에 옮겨 담았다. 녀석을 재빨리 수건 위에 굴린 뒤 케이지 안으로 털어 넣었다. 명자, 아주 잘했어, 이반이 보았더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홍루를 지나고 로즈를 지나 도로 건너편에 있는 수족관으로 갔다. 파충류 먹이 있음. 간판 옆에 적힌 글씨를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점원이 햄스터 케이지를 열다가 내 쪽을 본다. “뭘 드릴까요? 손님.” 점원이 케이지 안에서 햄스터를 꺼내며 물었다. “밀크스네이크 종인데……먹이 좀 사려고요.” 나는 나무토막을 기어오르는 비단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뱀을 키운 지 오래되셨나 봐요. 처음 키우는 사람은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거든요.” 점원이 손에 쥔 햄스터를 비단뱀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이렇게 한창 클 때는 녀석도 산 먹이를 찾아요, 그래야 탈피를 제대로 할 수 있거든요.” 나무막대를 기어오르던 녀석이 슬그머니 방향을 틀며 혀를 날름거렸다. 케이지에 던져진 햄스터가 꾸물꾸물했다. 움직임을 감지한 녀석도 먹이를 견준 채 꼼짝 하지 않다가 입을 벌리고 먹이를 물어 삼켰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점원에게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는 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 속담이 있었나요?” 점원은 손에 묻은 햄스터 털을 털어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 냉동 쥐로 드릴까요?” 점원이 물었다. 나는 햄스터의 하얀 몸이 비단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점원은 케이지에서 꿈틀거리는 분홍색 새끼 햄스터 한 마리를 꺼냈다. “녀석들이 종종 냉동 먹이를 먹지 않는데…… 그건 아마도 탈피를 하려고 그럴 겁니다. 제대로 크고 있다는 증거죠.” 나는 점원에게서 새끼 햄스터를 받아 골목으로 돌아왔다. 날이 풀리고 있었다. 곧 부두에 배가 들어온다고 했다. 나는 문이 닫힌 로즈를 지나 홍루에 들러 쌀단까와 흑빵을 시켰다. 남자는 여전히 등을 보이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탁자 위에는 너덜너덜해진 러시아 회화 책과 비닐도 뜯지 않은 발레 슈즈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흑빵을 뜯어 쌀단까에 적셔 먹었다. 맞은편 거울에 흑빵을 씹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밥을 먹을 때 거울을 보면 안돼요, 아름다움까지 먹어버리거든요, 이반이 내 귓불 뒤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속삭일 것 같았다. 홍루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 용산구, 청소년상담지원센터 개원

    “최근 아동·청소년대상 범죄가 증가하고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아이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 주는 건 어른들의 의무입니다.” 2일 용산구 효창동에 문을 연 청소년상담지원센터 개원식에 참석한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지원센터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문을 연 지원센터는 지역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청소년 상담과 위기 지원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전 효창동 주민센터를 리모델링한 건물 1층에 들어선 지원센터는 청소년 문제 전문 클리닉 기관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대면상담과 전화상담, 온라인 상담 등 상담 업무와 함께 심리검사, 긴급구조, 자활, 치료 업무를 지난달 21일부터 이미 수행해 오고 있다. 전문 상담사 등 5명이 상주하며 성적 비관이나 게임 중독, 최근 이슈가 된 학교 폭력 등에 시달리는 위기청소년들을 주로 돌보며, 학교 현장에 직접 찾아가는 상담 서비스도 진행한다. 또 같은 건물 4층에는 주민 학습공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수렴해 ‘효창 청소년 공부방’을 함께 신설했다. 이 공부방은 독서공간 55석과 별도 열람실 및 어린이·청소년, 일반 신간 도서 400권을 비치해 두고 있다. 성 구청장은 “지원센터는 힘들고 지친 청소년들의 충전소이자 에너지 발산의 장이 될 것”이라며 “통합적이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효창 청소년 공부방과 함께 청소년 복지의 중심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길섶에서] 마지막 전화/최광숙 논설위원

    시어머니께서 “생일 축하한다.”며 거신 전화는 사랑이었다. 그때 시어머님은 암투병 중이셨다. 오래 사시지 못할 걸 예감하셨는지, 어머님은 일부러 생일을 며칠 앞둔 며느리에게 전화를 하셨던 것 같다. 한창 일하다가 전화를 받아 좀 경황이 없었다. 고마운 마음을 살갑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최근 돌아가신 친정 작은아버지도 지난해 전화를 하신 적이 있다. 작은아버님이 내게 직접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신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것저것 챙기셨다. 지나고 보니 그 전화도 작은아버님의 사랑이다. 떠나시기 직전까지 조카들을 걱정하셨던 집안의 마지막 어른이던 작은아버님의 깊은 사랑…. 사람은 참 어리석어 현재 눈앞에 일어나는 일들을 그냥 스쳐 지나간다. 늘상 일어나는 일인 듯하지만 드라마의 복선(伏線)과도 같은, 소중한 의미와 사랑의 행간(行間)을 읽어내지 못한다. 가족 간에 오고가는 많은 대화 속에 우리는 오늘 또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한나라 용퇴논쟁] ‘경계’에 선 박근혜

    “우리는 모두 쇄신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쇄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29일 하루 종일 쇄신 주체와 객체를 정의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비대위에서 정치·공천개혁 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가 전날 공개적으로 정권실세였던 이상득·이재오 의원과 당 대표로서 설화를 겪었던 안상수·홍준표 의원, 친박(친박근혜)계 중진 의원들을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한 것에 대한 박 위원장의 반응이기도 했다. 이 비대위원이 섣불리 문제를 제기한 측면이 있지만, 결국은 맞서야 할 ‘뜨거운 감자’이기에 논란은 심화됐다. 박 위원장은 일단 진화에 주력했다. 그는 이날 의원총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 비대위원의)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의총에서도 “쇄신 과정에서 누구는 쇄신 주체이고, 누구는 대상이 돼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이 비대위원의 개인 의견이 비대위의 전체 의견이 될 수 없고, 공정한 기준을 마련해 ‘시스템 공천’을 하면 기준에 미달하는 이가 자연스럽게 쇄신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박 위원장은 그동안 줄곧 “인위적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계속 ‘시스템 공천’만 얘기할 수는 없다. 공천 기준은 결국 비대위가 만들고, 이 비대위원이 박 위원장과 함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도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친이계가 이날 “비대위가 5공 국보위냐.”며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이 교수 개인 의견이 아닐 것”이라면서 “비대위가 이명박 대통령을 완전 부정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박정희 전 대통령도 부정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쇄신의 칼날을 가만히 앉아서 맞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친이계의 반발에 비대위는 완강했다. 김종인(전 청와대 경제수석) 비대위원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비대위원이 제대로 쇄신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개인적인 소신을 피력했는데, 일부 의원들이 어른스럽지 못하게 대응하고 있다.”면서 “정치인이 자기 확신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비대위원이 친이계가 의심하는 것처럼 박 위원장과의 ‘교감’ 속에서 인적 물갈이를 주장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하지만 문제 의식 자체에 공감하는 이들은 많다.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박사는 “당 지도부 일원인 이 비대위원이 어설프게 발언을 했다.”면서도 “박 위원장이 이 비대위원의 거친 방법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다 인정하는 문제인 만큼 방향은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사평론가인 김종배씨도 “이상득·이재오 의원 얘기를 너무 빨리 꺼낸 측면이 있지만, 언젠가는 얘기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면서 “결국 속도와 강약은 ‘경계’에 선 박 위원장이 조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데스크 시각] 결국 어른들이 문제다/박상숙 산업부 차장

    [데스크 시각] 결국 어른들이 문제다/박상숙 산업부 차장

    연일 쏟아지는 극에 달한 학교폭력의 실상에 세밑이 더욱 울적하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이나 내년 살림살이 걱정마저 쏙 들어가게 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왕따’가 단순한 ‘성장통’ 수준이 아니라 자살을 부르는 중범죄로까지 악화·확산되고 있어서다. 미래를 짊어질 꿈나무들이 이렇게 밑동부터 썩고 있으니 안보나 경제 문제보다 앞으로 이 나라가 제대로 유지될지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앉는 자리마다 한결같이 “우리 땐 안 그랬는데….”라고 한다. 또래들끼리의 싸움은 늘 있었지만 철없는 아이들의 짓이라고 보기엔, 폭력의 수준이 독재정권의 고문기술자나 조폭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러면서 연이어지는 “요즘 아이들은 이렇대.”하는 기막힌 이야기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시켜 놓고 앉아서 세 명의 아이들이 수다를 떠는데 가만 보니 둘만 먹고 나머지 한 명은 그 둘이 먹는 모습만 멀뚱히 보고 있단다. 왜? 돈이 없어서다. 둘도 없는 단짝에게도 어느 학원에 다니냐고 묻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다. 시험을 치른 직후의 교실은 수업 시간보다 더 조용하다. 예전엔 답을 맞추려 삼삼오오 모이는게 다반사였는데 요즘은 친구 대신 휴대전화를 찾는다고 한다. 한 엄마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사연은 더 기가 차다. 늘 차로 딸아이를 데리러 학원에 갔는데 그날따라 일이 생겨 아이에게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다. 유독 추웠던 그날, 아이는 40분이 넘어서야 볼이 빨개진 채 집에 도착했다. 용돈을 다 써서 걸어왔다는 것이다. 항상 붙어다니던 아이의 친구들은 빈자리가 있는데도 같이 타자는 한마디 없이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며 이 엄마는 울분을 터뜨렸다. 요즘 아이들이 관계 맺기에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핵가족화로 형제도 없고, 조기교육으로 놀이터에서 같이 놀 친구도 빼앗겨 버린 아이들은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서 자란다. 여기에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입시교육이 사정을 더욱 사납게 만든다. 대학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되면서 친구는 없고 경쟁자만 있다. ‘엄친아‘ ‘엄친딸’이 대변해주듯 늘 비교하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친구보다 밟고 일어설 경쟁자로 또래를 인식할 뿐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붕괴된 미국 공교육 개혁을 외칠 때마다 한국 교육의 우수성을 거론한다. 고교 졸업률이나 대학 진학률 등 숫자만 보면 충분히 부러워할 만하다. 그가 만약 뚜껑을 열고 사교육 광풍과 성적에 목숨 거는 아이들의 실태를 안 뒤에도 똑같은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경쟁이 미덕인 사회이니 부모들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열공’ 지상주의는 옳고 그름의 가치관을 위태롭게 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폭력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목소리가 큰 ‘윤리 도착’의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여자 동기생을 성추행한 고려대 의대생 중 한 명은 피해자를 인격장애자로 몰고 가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를 주도한 이가 그의 엄마라니, 그 후안무치에 몸이 다 떨린다. 또 대전에서 장애 여중생을 성폭행한 고등학생들이 수능시험을 볼 수 있도록 법원이 편의를 봐줬다니 과연 ‘기네스북’감 아닌가. 아이를 가르칠 때 ‘된사람 든사람 난사람’ 순서로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식이 많고 똑똑해 출세하더라도 됨됨이가 갖춰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인격은 바닥인데 의사가 되고 명문대생이 되기만 하면 그만일까.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은 그저 평범한 학생들이었다고 뉴스는 전한다. 겉으론 멀쩡하지만 무시무시한 폭력성을 지닌 ‘괴물’을 기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결국 아이들을 ‘괴물’로 만든 건 어른들이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란 말이 요즘처럼 큰 울림을 가진 적이 또 있을까. alex@seoul.co.kr
  • [영화프리뷰]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영화프리뷰]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부패 재벌 베네르스트룀을 폭로하는 기사를 썼지만, 증거가 없는 탓에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시사잡지 ‘밀레니엄’의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재판에서 패하던 날, 전화가 걸려온다. 스웨덴 재벌 방예르 그룹의 큰 어른 헨리크가 40년 전 고립된 섬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형의) 손녀 하리에트의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 것. 40년간 풀리지 않은 사건을 맡게 된 미카엘은 보안전문업체 밀턴시큐리티의 유능한 조사원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함께 방예르 집안의 추악한 비밀을 파헤친다. 평생을 일상의 폭력에 대해 투쟁해온 스웨덴 기자 스티그 라르손이 쓴 ‘밀레니엄’ 시리즈(그는 10부작을 구상했지만 3부까지 탈고한 뒤 숨졌다)는 2005년 출간 후 46개국에서 6500만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침 흘린 매력적인 원작은 ‘세븐’(1995) ‘파이트클럽’(1999)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소셜네트워크’(2010)로 흥행과 평단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낸 데이빗 핀처 감독의 손에 떨어진다. 그는 “20여년 동안 영화를 하면서 어른들을 위한 해리 포터, 성인용 프랜차이즈를 꿈꿔왔다.”라고 밝혔다. 게다가 ‘쉰들러 리스트’(1993) ‘갱스 오브 뉴욕’(2002) ‘아메리칸 갱스터’(2007) ‘머니볼’(2011)의 스티븐 자일리언이 각본을 맡았다. 새달 12일 개봉하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3부작의 첫 편인지라 캐릭터를 소개하는 데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미카엘과 리스베트는 홈즈와 왓슨처럼 환상의 짝꿍이다. 아슬아슬한 연애 감정까지 가진 새 유형의 콤비인 만큼 관객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한 건 당연해 보인다. 핀처는 두 인물을 수평적으로 끌어가는 대신, 무게 중심을 리스베트에 뒀다. ‘007 시리즈’의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하는 정의감 넘치는 기자(미카엘)는 이미 많은 영화에서 ‘우려먹은’ 전형적인 인물형. 반면 거식증 환자처럼 마른 몸매에 정신병력 탓으로 법적 후견인의 감시를 받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어느 순간 모터사이클을 타고 질주하는 펑크 여전사로 변모하는 입체적인 인물형인 리스베트를 공들여 세공한 건 영리한 선택이었다. 스칼렛 요한슨과 내털리 포트먼, 엠마 왓슨,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을 제치고 리스베트 역을 따낸 루니 마라는 중성적인 매력을 발휘하면서 단박에 할리우드의 블루칩으로 올랐다. 최근 발표된 제69회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2시간 30분이 훌쩍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촘촘한 서사와 긴장감 있는 편집, 캐릭터의 매력이 쏠쏠하다. 단, 크레이그에게 제임스 본드의 육탄 액션을 기대하면 실망할 터. 지난 21일 먼저 뚜껑을 연 북미에서 호의적인 평을 받았다. 비평가들의 평을 계량화하는 영화전문사이트 로튼토마트닷컴은 신선도 지수 85%(좋은 평을 던진 평론가 비율), 평점 7.6(10점 만점)을 주었다. 겨울 영화 중 ‘미션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신선도 지수 93%, 평점 7.6)과 더불어 가장 높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장난/임태순 논설위원

    “도깨비 장난같다.”는 속담이 있다. 하는 일이 사리가 분명하지 않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쓰는 말이다. 도깨비만 해도 어지러운데 장난까지 더했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장난은 ‘어지러움을 만든다.’는 한자 ‘작란’(作)에서 유래됐다. 일반적으로 어린이들이 재미 또는 심심풀이로 하는 짓을 장난이라고 한다. 장난처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하며 노는 것을 보면 그렇게 진지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장난이 아이들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호이징가의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이라는 말처럼 어른들도 장난을 좋아한다. 빡빡한 세상에 장난이라도 쳐 한바탕 웃고 나면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거짓말을 해도 면죄부가 주어지는 만우절을 만든 것도 1년 중 한 번은 웃어 보자는 뜻이 담겨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장난도 도를 넘으면 화를 부른다.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도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한 번만 했으면 그냥 웃고 넘길 수 있었겠지만 두세 번 되풀이하다 진짜 늑대가 나타나자 양을 모두 잃었다. 이젠 소방서에 불이 났다고 허위신고하는 것도 처벌받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됐다. 얼마 전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은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부산저축은행 외압과 관련, 공방을 벌이다 장난으로 얼버무리려다 망신을 톡톡히 샀다. 사태 수습차 “형님 이 건 공개 안 할 거죠.”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장난 말라는 박 전 원내대표의 말에 혼쭐이 났다. 장난 끝에 살인 나고 장난이 아이 된다는 말처럼, 우습게 보고 한 일이 큰 사고를 일으키고, 별 뜻 없이 한 일이 엉뚱한 결과를 빚는 법이다. 폭력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김모군 사건을 계기로 집단따돌림(왕따)이 다시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김군을 괴롭힌 서모군과 우모군은 경찰에서 “그저 장난으로 그랬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물고문에 전깃줄을 목에 감고 끌고 다녔다는 가혹한 행동치고는 동기가 너무 어처구니없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연못의 물고기가 죽는다는 서양속담처럼 가해자는 장난이었지만 피해자에게는 치명타였던 셈이다. 이 정도라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일반적으로 장난에 대해 관대하다. 장난에 대해 화를 내면 사람이 왜 그리 소심하냐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장난도 이젠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장난하는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장난으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여행가방]

    ●롯데월드 한겨울의 꽃축제 롯데월드(www.lotteworld.com)가 내년 1월 1일~3월 4일 ‘플라워 페스티벌’을 연다. 실내 어드벤처 전역을 튤립, 수선화 등 50만 송이의 꽃과 허브로 장식한다. 네덜란드에서 튤립 구근 10만개를 6개월 전부터 수입하는 등 1년 가까이 축제에 공을 들였다. 공중곡예 애크러배틱 퍼포먼스 ‘꽃의 요정 플라잉 쇼’와 ‘카르마, 꽃의 사계’ 등 완성도 높은 공연도 준비됐다. ●여행서 ‘책과 여행과 고양이’ 출간 경향신문에서 15년 동안 여행을 담당했던 최병준 기자가 여행서 ‘책과 여행과 고양이’(컬처그라피 펴냄)를 냈다. 저자는 여행이 시작되는 공항에서부터 전 세계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경과 미술관, 건축, 사진, 교통편과 음식 등을 화두 삼아 세련되고 웅숭깊은 지적 편력을 선보인다. 1만 5000원. ●에버랜드 ‘뉴 하모니 2012’ 이벤트 에버랜드는 오는 31일 오후 11시 50분부터 음악과 불꽃놀이가 어우러진 카운트다운 이벤트 ‘뉴 하모니 2012’를 진행한다. 난타 공연단의 축타 연주에 이어 새해 첫 순간 약 10분 동안 6300발의 불꽃 축포가 터진다. 눈썰매장인 ‘스노우버스터’도 개장했다. 올해는 특히 ‘튜브 리프트’를 신설해 편의성을 높였다. 자유이용권으로 이용할 수 있다. ●키자니아, ‘임진년’씨 무료 입장 키자니아(www.kidzania.co.kr)는 내년 1월 1일~31일 ‘임진년(연)씨를 찾습니다!’ 이벤트를 진행한다. ‘임진년(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키자니아 방문 시 동반 어른, 어린이 포함 총 4인까지 무료 입장할 수 있다. ●필리핀 관광 정보 앱 하나면 끝! 필리핀관광청이 숙박, 레스토랑, 관광명소 등 필리핀 관광 정보를 담은 안드로이드용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마켓을 통해 ‘필리핀 관광 정보’ 검색 후 내려받을 수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0)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0)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네덜란드 출신의 그림책 작가 레오 리오니의 작품 중에 ‘잠잠이’(최근 ‘프레데릭’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가 있다. 주인공인 새앙쥐 잠잠이는 봄부터 가을까지 햇살 좋은 양지 녘에 쪼그리고 앉아 낮잠만 즐긴다. 일은 안 하고 졸기만 하는 잠잠이를 모두들 불만스러워하지만 잠잠이는 끈질기게 잠만 잔다. 그리고 새앙쥐 마을에 겨울이 찾아왔다. 대지에 찬란하던 빛깔도 요란하던 소리도 모두 사라지고 침묵에 들었다. 새앙쥐들도 지루하게 이어지는 권태를 견디기 힘들었다. 잠잠이가 그때 모두의 앞에 나섰다. 봄부터 가을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모아두었던 빛깔과 소리를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잠잠이는 결국 침묵과 권태의 계절인 겨울에 모두에게 봄의 희망, 생명의 노래를 전해 주는 아름다운 시인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느티나무 사람의 마을에 매운 바람이 불어오면 세상은 침묵으로 잦아든다. 하얀 눈까지 소복이 쌓이는 날이면 시골 들녘은 적막이 감돌 만큼 고요해진다.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찾아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들녘이 꼭 그랬다. 찬바람 맞는 게 결코 좋을 수 없는 노인들만 사는 마을이어서 대문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아예 불가능했다. 눈 내리는 단전리 마을에는 들녘의 커다란 느티나무만 홀로 겨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키 20m, 줄기 둘레 10.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느티나무다. 사람 없는 들녘에서 나무는 하얗게 침묵으로 잦아드는 겨울의 권태와 적막을 덜어 내기 위해 가물가물 잊혀 가는 옛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림책 속의 새앙쥐 ‘잠잠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도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줄기 안에 켜켜이 쌓아 두었던 많은 이야기를 서리서리 펼쳤다. 나무 이야기는 이곳 단전리에 처음으로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던 400년 전의 옛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단전리는 임진왜란 직후에 도강김씨(도강은 전남 강진의 옛 이름) 가문이 삶의 터전으로 일구고 살아온 오래된 집성촌이다. 마을을 일으키는 중심 역할을 한 이 마을의 입향조(入鄕祖)는 김충로라는 분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자리에 보금자리를 근사하게 일구긴 했으나 그에겐 견디기 힘든 아픔이 있었다. 함께 하지 못한 형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충로의 형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무공을 세우고 전장에서 산화한 김충남이라는 장군이다. 보금자리를 이루기는 했으나 함께해야 할 가족을 잃은 김충로는 설움을 달래지 못했다. ●단전리 입향조가 처음 심고 키운 나무 그가 마을 들녘에 나무를 심은 건 그래서였다. 물론 마을을 처음 일으킨 기념으로 마을 어귀에 나무를 심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오랫동안 크게 자라서 마을에 들고 나는 악한 기운을 막겠다는 뜻도 있고, 마을 상징으로서의 의미도 있었다. 김충로라고 그런 뜻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가 나무를 심을 때에는 전사한 형, 김충남 장군의 넋을 기리자는 생각이 더 컸다. 집성촌인 이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가문의 선조이기도 했으니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무를 심은 김충로도 전쟁터에 나가서 형처럼 목숨을 잃었다. 전사한 형제를 나라에서 선무원종공신으로 제수한 게 그나마 가문의 한을 위로할 뿐이었다. 장군으로 불리던 사람도 그를 기리기 위해 나무를 심은 그의 동생도 장군이 되어 똑같이 전쟁터에서 사라졌다. 들녘의 나무만 주인을 잃은 아픔을 안고 무럭무럭 자랐다. 장군 형제의 넋이 담긴 들녘의 느티나무를 사람들은 그때부터 ‘장군 나무’라고 불렀다. 마을 사람들은 적어도 한 해에 한 번은 나무 앞에 모였다. 장군 형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해마다 음력 정월 초닷샛날 치른 당산제가 그것이었다. 단전리 당산제는 유난히 즐거웠다.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사람들은 우마제(牛馬祭)를 지냈다. ●애국 충정의 찬란한 기억으로 살아남아 농사의 동반자인 소와 말의 먹이를 나무 뿌리 주위에 가지런히 내려 놓고 소와 말의 건강을 빈 것이다. 우마제 뒤에는 나무가 바라다보이는 공터에 나무를 쌓고 불을 피웠다. 이글거리는 불 가장자리에서는 농악대가 풍물을 쳤고, 뒤따르는 사람들은 흥에 겨워 춤을 췄다. 사람의 풍경을 바라보는 나무도 따라서 즐거웠다. 평화롭게 세월이 흐르던 1950년, 장군의 넋과 장군 나무가 지켜 주는 단전리에 다시 전쟁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마을을 떠났다. 참혹한 전쟁의 폭풍이 지나고서야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멀리 떠난 뒤였다. 그때부터 누가 결정하지도 않았건만 우마제도 풍물놀이도 당산제도 모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단전리에는 전쟁 전에 70가구가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20가구와 일흔 고개를 넘나드는 노인들만 남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입향조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젊은 시절에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한 많은 어른들이다. 여전히 멈추지 않는 세월은 마치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리는 하얀 눈처럼 세상살이의 흔적을 하나둘 덮을 것이다. 노인들만이 알고 있는 마을의 기억도 종작없이 사라질 것이다. 마을에는 하릴없는 적막감이 찾아오고, 견디기 힘든 권태감이 휩쌀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어도 나무는 옛 마을의 영화를 온전히 기억하고 우뚝 서서 찬란했던 옛 마을의 평화로운 빛깔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은 사람들에게 전할 것이다. 마치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에 나오는 새앙쥐 주인공 잠잠이처럼. 글 사진 장성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291. 호남고속국도의 백양사나들목으로 나가서 백양사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호남선 백양사역을 조금 지나면 사가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백양로를 타고 5㎞쯤 가면 장성호 관광지에 닿는다. 장성호를 끼고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을 3㎞ 가면 북하면 소재지인 약수리에 들어서게 된다. 이 길을 따라 계속 3.5㎞쯤 고갯길을 넘어가면 처음으로 나오는 주유소 맞은편에 나무가 있다. 주유소 근처의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한다.
  • “도시학교 폭력 사태 무관심이 부른 비극 음악으로 하나되길”

    “도시학교 폭력 사태 무관심이 부른 비극 음악으로 하나되길”

    “오케스트라가 창단된 후 학생들끼리 우애가 돈독해졌습니다. 교사와 부모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서 그렇겠지요.” 경남 하동 옥종 초·중·고교생 47명으로 구성된 ‘옥종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단장을 맡은 신대생(61) 옥종초등학교 교장은 28일 “학교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지고 마을에도 훈훈한 인심이 돈다.”고 말했다. 신 교장은 “처음에는 시골 학생들에게 정서함양에 도움을 주려고 했을 뿐인데, 창단 1년도 안 돼 이렇게 여러 효과가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기뻐했다. 그는 “최근 도시학교 학생들의 폭력은 교사와 부모의 무관심이 부른 비극”이라면서 “학생들 탓만 하지 말고 어른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범죄를 막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음악 활동은 마른 정서를 부드럽게 하고, 또 연주회와 같은 잔치도 열 수 있어서 좋은 대안교육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 교장은 학생들이 악기를 다루면서 물건을 아끼고 관리하는 마음 자세를 갖게 되고 단합과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 2월 정년퇴직으로 교문을 나서는 신 교장은 “우리 학생들이 졸업 후 도시에 나간 뒤에도 후배들의 연주회가 열리면 마을을 다시 찾는 아름다운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동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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