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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영화] ‘킹 아서’

    [새 영화] ‘킹 아서’

    마법사와 기사, 괴물 등은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통해 익숙해진 판타지의 세계관이다.이러한 세계관의 원형은 상당 부분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전설에 기대고 있다. 아서왕은 중세 초반 영국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바위에 꽂힌 검을 뽑아 왕의 혈통임을 인정받은 그가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이상향 카멜롯을 건설하고, 또 원탁의 기사들이 성배를 찾아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는 중세 서양 문학의 근간을 이루기도 했다. 현대에서도 영화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는데, 비극을 진하게 입힌 영국 출신 존 부어맨 감독의 ‘엑스칼리버’(1981)가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킹 아서: 제왕의 검’은 역시 영국 출신인 가이 리치 감독이 특유의 연출 방식으로 재해석한 ‘아서왕 비긴즈’나 다름없다. ‘반지의 제왕’ 같은 장대한 서사시라기보다는 화려한 판타지 액션물에 가깝다. 영화는 어둠의 마법사가 이끄는 악의 군대가 카멜롯을 향해 진격하고, 악과 결탁한 보티건이 형인 우서 팬드래건을 배신하고 왕좌를 차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도입부가 상당히 묵직하게 연출되어 가이 리치 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가이 리치 감독은 삼촌의 마수에서 벗어난 어린 아서가 옛 런던인 론디니움의 길거리에서 생존법을 몸으로 터득하며 왈짜패 우두머리로 성장하는 과정을 현란하게 압축하며 자신의 인장(印章)을 찍는다. 전형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을 비틀고 감각적인 촬영과 스피드 있는 편집으로 영화를 버무린다. 데뷔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에서부터 최근 ‘셜록 홈즈’ 시리즈까지에서 보여줬던 장기들이다. 아서와 보티건의 마지막 대결의 경우 컴퓨터 그래픽(CG)의 힘을 빌려 360도 각도에서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3D 대전 격투 게임처럼 연출됐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를 토대로 한 ‘아서왕’ 모바일 게임도 출시됐다. 등장인물의 관계를 새롭게 각색한 점도 눈에 띈다. 보티건과 아서왕을 혈육으로 연결하거나 아서왕의 부인인 기네비어를 대법사 멀린의 제자로 설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야기가 아서와 보티건, 엑스칼리버에 집중되다 보니 훗날 원탁의 기사가 될 주변 캐릭터들이 밋밋하게 그려진 게 아쉽다. 아서가 엑스칼리버만 손에 쥐면 천하무적이 되는 바람에 판타지를 더 판타지스럽게 만들어 버린 점도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바이크 갱단을 다룬 미드 ‘선스 오브 아나키’와 거대 로봇과 괴수의 한판 승부를 그린 SF ‘퍼시픽 림’의 주인공이었던 찰리 허냄이 엑스칼리버를 뽑는다. 중견 배우 주드 로와 에릭 바나가 각각 보티건과 우서 팬드래건을 맡아 영화의 급을 끌어올린다. 러닝타임 126분 중 30분가량이 CJ CGV에서 개발한, 극장 좌우 벽을 활용해 삼면으로 상영되는 ‘스크린X’ 버전으로 제작된 점도 특기할 만하다. 12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광주항쟁 왜곡에 맞서 진실 담아내”

    “광주항쟁 왜곡에 맞서 진실 담아내”

    “1980년 광주민주항쟁과 지난해 촛불시위는 닮은꼴입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모여 열린 마음으로 민주주의의 가치와 정의를 외쳤죠. 둘 다 우리 국민들의 위대한 민주의식과 정의감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었죠. 그래서 개정판 출간이 꼭 필요했습니다.”(정상용 간행위원장)1985년 출간 당시 광주민주화운동의 민낯을 처음 드러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창비)가 32년 만에 대폭 개정돼 다시 나왔다. 5·18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기록물로 꼽히는 책은 서슬 퍼렇던 5공화국 시절, 집필자들도 ‘첩보작전 하듯’ 숨겨가며 만들었고 대학가에서도 숨죽이며 읽어야 했던 ‘지하 베스트셀러’였다. 당시 집필에는 전남대 3학년이던 이재의·전용호씨도 참여했지만 초판에는 황석영 작가만 저자로 적시돼 있다. 유명 작가라 대중의 눈길을 끌기도 쉽고 함부로 구속하지 못할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1976년부터 10년간 광주 등 전남 지역에서 살았던 황석영 작가는 11일 간담회에서 부채감이 동력이었다고 돌이켰다. “광주항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민족과 역사 앞에 이 기록을 올바로 남겨야 한다는 부채감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평생 광주라는 곳이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어서 덕분에 내 문학도 다른 길로 가지 않고 특성을 유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한 달 반을 여관방에 틀어박혀 원고를 써냈던 작가는 “1984년 10년간 써오던 ‘장길산’을 끝낸 상태였기 때문에 ‘구속돼도 괜찮다’란 생각이었다. 구속되면 광주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가실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초판본이 항쟁에 참여한 시민 당사자들의 이야기였다면, 개정판은 이후 드러난 계엄군 군사작전 문서와 5·18 관련 검찰 수사, 재판 기록, 청문회 자료 등으로 항쟁의 역사적, 법률적 성격을 규명하는 데 주력했다. 이들은 왜 32년 만에 다시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돌이켰을까. 새롭게 밝혀진 역사적 사실들을 정리하려는 의도가 컸지만 근본적 이유는 따로 있다. 정상용 위원장은 “박근혜·이명박 정권 9년 동안 이뤄진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 때문에 국민들에게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심정이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책은 최근 회고록에서 자신이 5·18의 피해자이며 계엄군 투입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들이미는 ‘날 선 증거’이기도 하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조준사격으로 시민 30~50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대낮에 수백명이 보는 앞에서 총을 쏘아놓고도 양민학살, 발포 명령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그렇게 진실을 왜곡하니 꼼꼼히 연구할 기회를 만들어 준 셈이지요.”(공동 집필자 이재의)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10대 인신매매 친아빠 신고한 딸…염산 테러 당해

    10대 인신매매 친아빠 신고한 딸…염산 테러 당해

    인도의 한 20대 여성이 친아빠에게 염산테러를 당해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9일(이하 현지시간)영국 더썬은 10대 소녀를 사고 팔며 성매매에 가담해온 아빠를 신고한 딸 쿠시부 데비(20)가 이튿날 끔찍한 보복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사건은 지난달 30일 우타르 프라데시주에 있는 쿠쉬부 데비의 자택에서 발생했다. 당시 쿠쉬부는 남편 비노드 쿠마르(26), 딸 트리샤(3)와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한밤중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쿠쉬부는 문을 열었고, 문 밖 어둠 속에는 바로 아빠 마닉 찬드라(40)가 서 있었다. 아빠는 딸아이의 이름을 몇 번 부르다가 갑자기 염산이 든 병을 집어던지고는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병이 깨지면서 자고 있던 쿠쉬브의 남편과 딸에게까지 염산이 튀었고, 세 사람은 얼굴과 어깨, 팔과 손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급히 후송됐다. 일가족 모두 생명에 지장은 없으나 쿠쉬보는 화상의 정도가 심해 얼굴에 큰 흉터가 남게 됐다. 쿠쉬보는 “아빠는 수년 동안 어린 소녀들을 사서 높은 가격에 팔아왔다. 나와 여동생은 그 모습을 보며 자라왔고, 자연스럽게 아빠와 모든 것을 공유했다. 어린 딸이 아무것도 모르던 인신매매 및 성매매가 불법이란 사실을 알게 되자 아빠는 내가 죽어야 자신의 비밀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염산 공격을 당하게 된 연유를 밝혔다. 사실 아빠는 성매매 업소에 딸을 팔려다 실패하자 4만 루피(약 70만원)를 받고 쿠쉬보를 억지로 결혼시켰다. 여동생 안잘리(16) 역시 50대 남성에게 팔려다 쿠쉬보의 신고로 경찰에 성매매와 아동학대 혐의로 체포됐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틀 만에 풀려나 30대 남성에게 다시 몰래 시집을 보냈다. 한편, 아빠는 사건 당일 경찰에게 붙잡혀 현재 조사를 위해 경찰서에 수감 중이다. 경찰은 쿠쉬보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쿠쉬보는 “하느님이 아빠에게 엄벌을 내리기 바란다. 아빠가 죽어야 우리 모두가 평화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며 “아동 성매매와 결혼과 같이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아빠의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하겠다. 아빠가 누군가를 보내 또 나를 죽이려 할까봐 두렵지만 나는 살아숨쉬는 한 계속 싸울 것이다”라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사진=더썬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상실의 시대 ‘윤동주앓이’

    상실의 시대 ‘윤동주앓이’

    시대상과 그의 詩 들어맞아…공연·음반·문화행사 신드롬 “부끄러워하는 시인에서 실천·희망 이미지로 변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윤동주 ‘서시’ 중)윤동주(1917~1945)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를 기리는 행사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부끄러움’과 ‘희망’(별)을 따르기라도 하듯, 조용히 그러면서도 또렷하고 단호하게 그를 좇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문단의 그 어떤 거목들에 대한 기림보다도 강렬하다. ‘윤동주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인과 사회학자들은 이를 단순히 탄생 100주년이라서가 아니라 윤동주의 삶과 그의 시가 지금의 시대정신에 들어맞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우리 사회의 윤동주 신드롬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당장 한국 시집 판매량이 2015년에 비해 무려 505.7% 늘었다. 무엇보다 윤동주의 일생을 그린 영화 ‘동주’가 개봉하며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복간 초판본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초판본 찾기 행렬을 낳았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지금도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 10’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윤동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주요 문화예술단체와 지자체 등의 다양한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전석 매진 기록을 이어 간 끝에 지난달 막을 내렸고, 오는 12일에는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고 네오아르떼가 기획한 공연 ‘시인 윤동주를 위하여’가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펼쳐진다. 공연에서는 윤동주의 29년 짧은 생과 그의 주옥같은 시어를 담은 가곡을 드라마 형태로 그려 낸다. 그런가 하면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클래식 음반들이 쏟아지고 있고, 그의 시를 그림으로 펼쳐 낸 시화전도 줄을 잇는다. 문화행사도 다채롭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는 윤동주를 비롯해 1917년생 문인 이기형, 조향, 최석두, 손소희 다섯 작가를 재조명하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심포지엄과 문학의 밤 행사를 지난달 연 데 이어 올 9월부터 내년 1월까지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윤동주와 관련 시·그림전, 일본 문학 기행 행사를 잇달아 연다. 지난달 서울 남산도서관에 이어 서울 서대문도서관은 10일부터 7월 말까지 윤동주 기념행사 ‘윤동주, 읽다·쓰다·걷다’를 진행한다. 윤동주 문학을 20년 동안 분석한 김응교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는 이런 새삼스럽다 싶은 ‘윤동주앓이’에 대해 “과거와 달리 윤동주에 대한 평가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김 교수는 “윤동주 대표 시로 꼽는 ‘자화상’이나 ‘참회록’은 윤동주가 창씨개명과 징용제도 등을 겪으면서 시를 쓰지 않은 침묵기(1939년 9월~1940년 12월) 전에 쓴 시다. 이런 시들이 교과서에 실리고 주목받으며 윤동주에 대해 ‘일본강점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해 부끄러워하는 시인’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지만 침묵기 이후의 시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저항하고 실천하는 시인’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최근 ‘윤동주 하면 떠오르는 단어나 이미지’를 묻는 설문조사(인터넷 이용자 1086명 대상)를 벌인 결과 312명이 ‘별’을 꼽았고 ‘부끄러움’(249명) ‘성찰’(78명)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런가 하면 ‘왜 윤동주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교과서에 나와서’나 ‘기독교인이라서’ 등의 예상 답변을 제치고 ‘시가 좋아서’라는 응답이 첫 번째를 차지했다. 결국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절 몇 줄의 글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무기력한, 그러면서도 하늘의 별을 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청년 윤동주의 모습이 지금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이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김 교수는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자주 쓰였던 ‘쉽게 씌어진 시’(1942년)의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이라는 구절을 들어 “실천의 시대에 대한 답을 윤동주에게서 얻고 싶은 욕구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우리의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이 너무 커져 버린 감이 있다. 대선 이후 들어서는 정부가 이런 희망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윤동주에 대한 인기도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삶의 절반 갇혀 지내…어린 오랑우탄, 자유 되찾다

    삶의 절반 갇혀 지내…어린 오랑우탄, 자유 되찾다

    삶의 절반을 좁고 어두운 곳에 갇혀 지내야 했던 어린 오랑우탄 한 마리가 자유를 되찾았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3일(현지시간) 최근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케타팡 마을에서 오랑우탄 한 마리가 2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되는 순간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코탑’이라는 이름의 이 오랑우탄은 현재 나이가 4살밖에 안 된 새끼로, 0.28㎥밖에 안 되는 밀폐된 나무 우리 속에서 그의 반평생인 2년 동안 갇혀 지내던 끝에 동물보호단체와 정부 기관의 도움으로 마침내 구조될 수 있었다. 이런 코탑을 가뒀던 바코라는 이름의 한 남성은 2년 전 마을을 찾은 어떤 이들에게 오랑우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골판지 상자 안에 새끼였던 코탑을 보고 집으로 데려가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코탑이 크면서 이웃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집 앞에 그런 나무 우리를 만들었고 빵과 밥 등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였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코탑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설탕 음료를 뿌린 조리 안한 인스탄트 면류(생라면)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자원보존청(BKSDA) 공무원들은 최근 코탑이 있는 이곳을 방문해 바코에게 오랑우탄을 보호 센터로 보내라고 말했지만 설득할 수 없었다. 이들은 바코에게 보르네오 섬에 사는 오랑우탄들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과 그런 오랑우탄 중 한 마리인 코탑에게 가장 좋은 게 무언인지, 또한 현재 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킨 끝에서야 코탑을 구조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날 BKSDA 관계자들과 국제 동물보호단체 인터내셔널애니멀레스큐(IAR·International Animal Rescue)의 인도네시아지부 구조 대원들이 함께 바코의 집을 방문해 코탑이 갇혀 있는 우리의 문을 열었다. IAR의 한 수의사가 코탑이 나오도록 손을 내밀었지만, 이 오랑우탄은 오히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깊숙한 곳에 뭄을 숨겼다. 갑작스러운 빛과 소리가 무서웠던 것이었다. 이후 이들 구조대는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안정을 되찾은 코탑을 우리 안에서 꺼낼 수 있었다. 수의사 우위는 “코탑은 자신을 보기 위해 모여든 낯선 모든 사람에 의해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가 불안해하고 공격적으로 변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면서 “따라서 우리는 그를 보호 센터로 데리고 돌아가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의 접근을 제한해 그가 가능한 한 안정을 취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IAR의 책임자 앨런 나이트는 “코탑은 삶의 절반인 2년을 어둠 속에서 혼자 보내 야생에서 생존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다”면서 “원래대로라면 어미와 함께 지내며 숲에서 나무에 오르거나 이동하고 먹을 수 있는 것과 피해야하는 것, 그리고 매일 밤 수면을 위해 나무 위에 둥지를 짓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제 코탑은 검역이 끝나면 보호 센터에서 먼저 구조된 다른 오랑우탄들을 만나고 그가 속해 있던 숲으로 돌아가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IAR은 최근에도 일반 가정집에 갇혀 있던 7살 된 오랑우탄 에이미를 구조하는데 일조했다. 당시 에이미는 쇠사슬에 묶힌 채 삶을 포기한 듯한 슬픈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봐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붉혔다. IAR 인도네시아지부의 오랑우탄 구조 프로그램 담당자 카르멜레 산체스는 “법을 어기면서 오랑우탄들을 잡아 애완동물로 기르거나 파는 것이 이들 오랑우탄을 멸종으로 내몰게 된다는 것을 이제 깨달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사진=IAR 인도네시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광명동굴서 마시는 한국와인 너무 맛있어요”

    “광명동굴서 마시는 한국와인 너무 맛있어요”

    경기 광명시는 지난 2일 동굴테마파크인 광명동굴과 광명전통시장을 외국인 관광객에게 알리는 ‘와인데이’ 행사를 열었다고 3일 밝혔다. 한국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체계)를 배치한 반발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들자 외국인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와인데이 행사에는 주한미군 가족 70명과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 외국인 여행객 120명, 외국인 유학생 100명, 개인 신청 외국인 여행객 52명 등 모두 342명이 참가했다. 외국인 와인데이 행사는 라스코전시관의 ‘미디어아트로 보는 세계명화전’을 시작으로 동굴 관람, 와인레스토랑 광장 오찬 연회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오찬 연회에 광명동굴에서 판매하는 한국와인과 광명시장 전통음식이 선보였다. 전통한복 입어보기와 떡메치기 체험도 곁들여졌다. 양기대 시장은 인사말에서 “광명동굴에는 7만명이 넘는 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하고 있다”며 “여러분이 본국에 돌아가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도약하고 있는 광명동굴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널리 홍보해 달라”고 당부했다. 행사에 참석한 캐런 뉴먼(여·31·미국)은 “광명동굴에서 본 PID(어둠 속 빛의 퍼포먼스) 공연이 너무 기발하고 환상적이어서 놀라웠고 아이들도 매우 즐거워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광명시는 오는 9월 제2차 와인데이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광명동굴서 외국인 340명 와인데이 축제

    광명동굴서 외국인 340명 와인데이 축제

    경기 광명시는 지난 2일 동굴테마파크인 광명동굴과 광명전통시장을 외국인 관광객에게 알리는 ‘와인데이’ 행사를 열었다고 3일 밝혔다. 한국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체계)를 배치한 반발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들자 외국인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와인데이 행사에는 주한미군 가족 70명과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 외국인 여행객 120명, 외국인 유학생 100명, 개인 신청 외국인 여행객 52명 등 모두 340여명이 참가했다.외국인 와인데이 행사는 라스코전시관의 ‘미디어아트로 보는 세계명화전’을 시작으로 동굴 관람, 와인레스토랑 광장 오찬 연회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오찬 연회는 광명동굴에서 판매하는 한국와인과 광명시장의 전통음식이 선보였다. 전통한복 입어보기와 떡메치기 체험도 곁들여졌다. 양기대 광명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광명동굴에는 7만명이 넘는 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하고 있다”며 “여러분이 본국에 돌아가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도약하고 있는 광명동굴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널리 홍보해 달라”고 당부했다. 행사에 참석한 캐런 뉴먼(여·31세·미국)은 “광명동굴에서 본 PID(어둠 속 빛의 퍼포먼스) 공연이 너무 기발하고 환상적이어서 놀라웠고 아이들도 매우 즐거워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광명시는 오는 9월 제2차 와인데이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주말 영화]

    ■와일드번치(EBS1 토요일 밤 10시 55분) 폭력 미학의 거장 샘 페킨파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다. 가장 폭력적인 총격 장면에서 슬로 모션 등 다양한 편집 솜씨를 발휘했던 그는 할리우드의 마틴 스코세이지와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해 홍콩 느와르의 기수 오우삼 등 후배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악당 파이크 비숍(윌리엄 홀든) 일당의 말로를 그린 이 작품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악과 악의 대결을 그리며 서부 영웅의 신화를 무너뜨린 수정주의 서부극으로 평가받는다. ‘마티’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어네스트 보그나인의 중년 시절도 접할 수 있다. 샘 페킨파 감독은 ‘신체강탈자의 침입’ 등으로 유명한 돈 시겔 감독을 스승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대평원’(1962), ‘어둠의 표적’(1971), ‘겟어웨이’(1972), ‘팻 가랫과 빌리 더 키드’(1973) 등이 대표작이다. 1969년작. ■사하라(OBS 일요일 밤 10시 10분) 톱 클래스로 도약하던 시기의 매슈 매코너헤이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호흡을 맞췄던 어드벤처. 전설의 보물을 찾아다니는 세계 최고의 모험가 더크(매슈 매코너헤이)와 전염병을 막으려는 세계보건기구(WHO) 소속 의사 에바(페넬로페 크루즈)가 사하라 사막을 배경으로 남북전쟁 당시 자취를 감춘 철갑전함에 실린 황금의 행방을 쫓으며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다. 흥행의 마술사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TV SF시리즈 ‘테이큰’을 연출했던 브렉 에이즈너 감독은 드라마 인기를 발판으로 ‘사하라’를 통해 스크린으로 진출했다. 2005년작.
  • 세계사 바꾼 탐보라 폭발…잿빛 하늘이 던지는 경고

    세계사 바꾼 탐보라 폭발…잿빛 하늘이 던지는 경고

    세계사를 바꾼 화산 탐보라/길런 다시 우드 지음/류형식 옮김/소와당/432쪽/2만 5000원“1815년 4월 10일 탐보라 화산 폭발 이후 인류 사회는 완전히, 깡그리 변했다.” 환경과 문학의 학제 간 연구 권위자인 길런 다시 우드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교수는 이 문장이 웅변하고 있는 확신을 책 ‘세계사를 바꾼 화산 탐보라’에서 전 지구적 맥락으로 논증한다. 화산 활동에 대한 과학에서 출발해 200년 전 다양하게 변주됐던 예술 작품과 역사 기록을 훑어 묶은 ‘시간 여행기’다.탐보라는 인도네시아 숨바와섬의 화산으로 환태평양 ‘불의 고리’ 지대에 있다. 저자는 노련한 사냥꾼처럼 1만 2000년 이래 최대 규모로 꼽히는 탐보라 폭발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만 좇는다. 삼각뿔 모양의 산 정상 부위 1500m를 통째로 날려 버린 거대한 폭발은 1400㎞ 떨어진 테르나테섬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화산가스를 성층권까지 밀어 올렸고, 연무가 태양을 가리며 전 세계에 극단적인 이상기후를 초래했다. 책에 서술된 여러 기록들을 종합하면 지구 기후와 계절 리듬이 깨진 총체적인 ‘리셋’이었다. 사흘간 지속됐던 발작적인 폭발은 전율할 정도의 도미노식 비극을 낳았다. 인도양 수온이 내려가면서 몬순기후 체계가 무너졌다. 폭우가 사라지자 바닷물이 강을 따라 내륙으로 밀려 들어왔다. 바다 생물을 숙주로 한 콜레라균은 무역로를 따라 유럽에서 아시아로 퍼져 ‘팬데믹’(pandemic·세계적인 대유행 상태)이 됐다. 프랑스 파리의 가장무도회 참석자 수십명은 춤을 추다 콜레라로 쓰러져 무도회 복장째로 매장됐다. 콜레라와 장티푸스의 뒤를 이은 건 대기근이었다. 영국, 아일랜드, 스위스 등 각국에서 부모에게 살해된 아이들의 기록이 전해졌다. ‘여름을 잃어버린 해’라는 유럽 속담은 탐보라 폭발 이듬해인 1816년의 극단적 이상기후와 재앙에 기원을 둔다.저자는 탐보라 폭발 후 감지된 세계 도처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사건들과 인간들의 바뀐 운명을 ‘원격상관’(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의 상관 관계성) 기법으로 추적해 복원했다. 이 책이 탐보라 폭발에 대한 최초의 저서가 아닌데도 수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문학과 예술은 시대적 음산함을 잔뜩 머금었다. 중국 시인 이어양은 대기근의 풍경을 ‘가난한 백성들은 그 돈조차 구하지 못해/아들딸 손을 잡고 거리에 내다 파네/막내는 이별의 한을 알지 못하나/눈치를 챈 큰아이는 부모 붙잡고 통곡하네’라는 애절한 시로 전했다. ‘빛과 색채의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 등 동시대 화가들의 그림에는 잿빛 하늘이 등장했다. 폭풍우 치는 밤의 풍경을 담은 영국 시인 조지 바이런의 ‘어둠’과 SF소설의 선구작으로 꼽히는 여류작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모두 이상기후가 횡행하던 1816년 6월 밤의 파티(바이런과 친구 존 폴리도리, 셸리와 남편 퍼시 셸리 등 참석)에서 잉태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중국의 이상기후는 농민들로 하여금 환금작물인 아편을 재배하게 만들었고, 이는 청 제국 붕괴의 서막이 됐다. 아편 재배술은 미얀마-태국-라오스 산간 주민들에게 퍼져 오늘날 세계 최대 마약 생산지인 ‘골든 트라이앵글’이 됐다. 유럽의 전염병과 대기근은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대규모 이주를 촉발하며 자유주의 사상을 전파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빈곤층 고용 촉진법으로 대변되는 복지국가와 공중보건 개념은 근대 세계의 기초가 됐다. 저자는 탐보라 폭발 이후 힘의 축은 동양에서 서양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 갔으며 그 판도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다. 책은 탐보라가 덮친 유럽 곳곳의 풍경에서 길어 올린 다채로운 이야기도 담아 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이 1783년 영국과의 파리조약 협상장에서 휘갈겨 쓴 ‘기상학적 상상력과 추측’이 화산과 기상이변의 관계를 다룬 최초의 과학 논문으로 둔갑한 뒷얘기도 흥미롭다. 탐보라 재앙은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는 경고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연은 지금도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며 “1815년과 2015년 사이 누적된 기후변화와 우리 손으로 만든 프랑켄슈타인인 탄소 쓰레기 누적과 자연파괴가 불러올 극심한 혼돈은 미래 어느 역사가도 기록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우주를 보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한 점 티끌일 뿐…

    [우주를 보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한 점 티끌일 뿐…

    미국의 유명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1934~1996)은 지난 1994년 저서인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을 저술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지구는 우주에 떠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의 저서에 모티브가 된 '창백한 푸른점'은 바로 지구를 말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철학적인 천체사진'이라 불리는 이 사진은 지난 1990년 2월 미 항공우주국(NASA)의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 카메라를 지구로 돌려 촬영한 것이다. 당시 보이저 1호와 지구와의 거리는 약 60억 km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작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지난 21일, 이번에는 토성탐사선 카시니호가 토성의 고리 사이에 얼굴을 내민 지구의 모습을 보내왔다. NASA가 따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지구는 그저 빛나는 작은 점으로만 보인다. 카시니호와 지구와의 거리는 14억 km로 더 놀라운 점은 사진을 확대하면 지구 왼편으로 달도 보인다는 사실. 1억 2700만 km 떨어진 화성 궤도에서도 지구와 달은 촬영됐다. 지난해 11월 NASA의 화성정찰위성(MRO)이 촬영한 작품에는 왼편의 달과 오른편의 지구가 어슴푸레 얼굴을 드러낸다. 실제 달은 지구보다 훨씬 어둡기 때문에 이 사진은 일부 합성됐다. 보다 진기한 사진도 있다. 화성 땅 위에서 하늘을 본다면 과연 지구가 보일까라는 호기심을 풀어주는 사진이다. 호기심 해결사는 NASA의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다. 지난 2014년 1월 화성 땅 위에서 바라본 지구는 70억 인구가 아웅다웅 싸울 것이라 믿기지 않는 작은 점으로만 빛난다.   칼 세이건 박사는 저서 '창백한 푸른점'에서 다음과 같은 육성 소감을 남겼다. "다시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총량, 수없이 많은 그 강고한 종교들,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최고 지도자들,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햇빛 속을 떠도는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막한 공간 속의 작디작은 무대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 속의 한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장군과 황제들이 흘렸던 저 피의 강을 생각해보라. 이 작은 점 한구석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구석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잔혹함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자주 서로를 오해했는지, 얼마나 기를 쓰고 서로를 죽이려 했는지, 얼마나 사무치게 서로를 증오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라. 이 희미한 한 점 티끌은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의 선택된 장소라는 생각이 한갓 망상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은 거대한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한 점 외로운 티끌일 뿐이다. 이 어둠 속에서,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구는,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에서, 삶이 깃들일 수 있는 유일한 세계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해 살 수 있는 곳은 이 우주 어디에도 없다. 갈 수는 있겠지만, 살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 인류는 당분간 이 지구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천문학은 흔히 사람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인격형성을 돕는 과학이라고 한다.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인간의 오만함을 더 잘 드러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자각을 절절히 보여주는 것이 달리 또 있을까?"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도심, 책을 품다

    도심, 책을 품다

    “‘순화동천’은 책에 대한 내 인생의 헌사이자, 책을 통해 이성적인 담론을 펼쳐 보고 싶다는 꿈을 담은 공간입니다. 책은 물건이 아니라 정신이니까요.”●“인문·예술·담론의 공간이자 독자들의 아지트” 김언호(왼쪽) 한길사 대표가 24일 서울 중구 순화동에 문을 연 복합 문화공간 ‘순화동천’(巡和洞天)에서 한 말이다. 동네 지명인 ‘순화동’과 ‘평화’를 뜻하는 한자음의 중의적 표현에다 주역의 이상향을 가리키는 ‘동천’이 합쳐진 멋들어진 문패다. 김 대표는 하석 박원규 서예가 등 여러 사람에게 이름값을 빚졌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뜻을 풀자면 ‘하늘인 사람들이 무리를 이뤄 평화를 순례하는 이상향’ 정도 되겠다”며 “40년 전 이곳(순화동)에서 출판사를 시작했던 초심을 살려 새로운 인문·예술·담론의 공간이자 독자들의 아지트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순화동천은 서점과 박물관, 갤러리, 인문학당이 합쳐진 공간이다. 김 대표가 애착하는 공간은 60m에 이르는 긴 복도로 이뤄진 ‘책의 길’(한길사를 의미). 한쪽 벽은 미술작품으로, 다른 쪽 벽은 지난 41년간 한길사가 펴낸 책 4만여권이 들어차 있다.유료인 박물관에서는 개관 기념전으로 19세기 영국의 책 장인인 윌리엄 모리스와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북 아트’전과 19세기 프랑스 풍자화가 4인전이 열리고 있다. 갤러리에서는 최은경 이화여대 교수의 조각전 ‘북스’와 목판화가 김억의 ‘국토진경’ 작품전을 볼 수 있다. 인문학당은 ‘퍼스트아트’, ‘한나 아렌트 방’, ‘윌리엄 모리스 방’, ‘플라톤 방’ 등으로 나눠 강연 장소로 쓰인다. ●“디지털 갖고 난리 칠 때 저만은 책을 얘기하고파” 김 대표는 이날 독일 여성 철학자 아렌트의 핵심 사상 ‘악의 평범성’을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을 보며 든 생각이 ‘우리 사회가 평범한 악에 얼마나 둔감한지’였다”며 “아렌트의 사유는 우리 국가·사회 공동체를 회복하고, 변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순화동천의 공식 개관 전인 지난달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독자를 대상으로 ‘아렌트 정치사상 특강’을 연 이유다. “서점은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별빛 같은 존재라고 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활자 매체의 위기를 논하며 디지털 갖고 난리를 치고 있지만 그래도 전 책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퍼블릭 詩IN] 산을 오르며

    [퍼블릭 詩IN] 산을 오르며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 이른 새벽 산에 든다. 새벽의 숲은 밝아지는 세상이 궁금하여 먼저 잠에서 깨서 수런거린다. 밤새 어둠을 호흡한 잎사귀들이 지친 땀방울에 흥건히 젖었다가 새벽바람에 팔랑팔랑 일제히 귀를 쫑긋 세운다. 새 날이 밝아도 산은 여전히 기울어 있고 흙은 어제처럼 거칠은데 나무들의 초록빛은 어제와 다르게 사뭇 싱그럽다. 비탈진 산에도 나무들은 어제보다 더욱 곧다.최병암 산림청 산림보호국장 ■2010년 등단. 산림문학회, 우리시 회원
  • [우주를 보다] 지구 야경 공개한 NASA… 한반도 모습은

    [우주를 보다] 지구 야경 공개한 NASA… 한반도 모습은

    더 선명하게 보이네…南北의 차이태양빛을 받아 지구 전체가 환하게 빛나는 모습을 서구에서는 푸른 구슬을 뜻하는 ‘블루마블’이라 부른다. 우리의 푸른 구슬은 태양계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태양이 지면 또 다른 모습인 검은 구슬, 즉 ‘블랙마블’로 변한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에서 본 지구의 야경을 공개했다. 최신형 지구관측 위성인 수오미 NPP가 촬영한 데이터로 만든 이 사진은 태양이 진 후 인류의 거주 형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 준다. 이를 알 수 있는 관찰 대상은 바로 밤을 환하게 밝히는 인공 불빛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을 따라 빛나는 불빛과 칠흑 같은 어둠의 대비를 통해 인류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블랙마블에 녹아 있다. 특히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은 한반도의 야경이다. 밤이 되면 한반도는 허리가 잘린 하나의 섬이 된다. 서울을 중심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남쪽과 비교해 보면 북쪽은 어둠의 왕국이다. 특히 서울 수도권은 세계 여느 도시보다도 더 환하게 번쩍거린다. 부산 역시 서울에 비해 크기만 작을 뿐 빛을 밝게 내뿜었다. 하지만 북한의 수도 평양이 내뿜는 불빛은 남한의 중소도시만도 못하다. NASA에 따르면 북한의 경우 밤이 되면 불빛이 없어 해안선이 구분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멀리 우주에서 바라본 한반도 모습은 경제와 산업,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남북 사이 많은 차이를 조용히 일깨워 주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빛공해에 찌든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밤이 되면 별 볼 일이 많다는 사실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공포를 잠식한 매력’ 검은색이 써온 역사

    ‘공포를 잠식한 매력’ 검은색이 써온 역사

    인류가 처음 그림 그릴 때부터 사용 기독교 등장으로 ‘부정적 의미’ 전락 근대 거치며 고급·매혹의 상징으로 시대 색채 변화, 문화 생명력 뜻해 이토록 황홀한 블랙/존 하비 지음/윤영삼 옮김/위즈덤하우스/580쪽/1만 8000원20세기 패션을 주도한 디자이너들은 검은색을 찬양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검은색이 당신을 강타한다”고 했고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검은색에 관한 책도 쓸 수 있을 만큼 검은색을 사랑한다”고 했다. 시대의 색을 화폭에 옮겨 유행을 이끈 화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검은색을 ‘색의 여왕’이라 칭송했고 ‘빛의 화가’ 카바라조의 그림은 16세기 말부터 유럽 전역을 휩쓴 검은색 유행의 정점이었다. 검은색만큼 정반대의 극단을 모두 치닫는 색은 없다. 죽음, 슬픔, 우울, 악의 상징이었다가 권력, 부, 매혹, 신성, 세련미, 화려함, 성실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만큼 인류사에서 검은색의 위치와 상징, 의미는 ‘질주하는 롤러코스터’처럼 다양하게 변주됐다.존 하비 케임브리지 이매뉴얼 칼리지 종신석학교수는 이런 ‘블랙의 여정’을 패션, 종교, 인류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탐색해 나간다. 시대와 문화적 맥락에 따라 검은색이 어떤 사회적, 정치적, 미학적 도구가 되었는지 짚어나가는 그의 치밀한 진술은 방대하지만 문화사적으로 가치 있는 지적 체험을 선사한다. 검은색은 인류사의 초기부터 묵직한 존재감으로 자리했다. 인류가 처음 그림을 그릴 때부터 등장한다. 1만 7000여년 전 작품으로 추정되는 라스코 동굴 중앙 벽면에 그려진 거대한 암소는 우아한 검은빛으로 휘감겨 있다. 고대 지중해 사람들이 거래하던 사치품에도 검은 머리카락 등 검은색이 빠지지 않았다.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의 남녀는 모두 눈 주위를 검은 화장먹으로 치장했다. 염료, 잉크, 물감 등으로 사용할 검은 안료를 만드는 방법은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 거의 다 발견됐다고 전해진다.검은색이 부정적인 의미로 전락한 것은 기독교의 등장으로 여겨진다. 고대 인류에게 검은색은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었다. 로마인에게도 검은색은 달콤하고 사치스럽고 관능적인 색이었다. 전쟁과 재복을 관장하는 불교의 신 마하칼라가 산스크리트어로 위대한 암흑을 의미한다는 것, 마하칼라가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음식과 재물을 담당하는 칠복신 가운데 하나인 다이코쿠텐이 됐다는 것, 아즈텍 신화의 신 익스틀릴톤(검은 꼬마라는 뜻)이 지친 아이들을 편히 잠들게 해 주는 치유와 회복의 신이라는 것 등이 검은색에 인류가 부여한 풍요와 긍정성을 엿보게 한다. 하지만 만신 숭배가 유일신 숭배로 바뀌며 검은색의 가치도 근본적으로 전복된다. 기독교에서 ‘죄의 검은색’을 대중들에게 주입시키며 검은색엔 웅장함, 모호함, 불길함, 절망, 악, 신 등 고대에 없던 개념들이 깃들게 됐다. 피부색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던 과거와 달리 유색인종에 대한 경멸, 혐오, 차별 등이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영혼의 죄악이 검은색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반인들의 일상복에 서서히 검은색이 들어온다. 아랍의 검은옷 전통은 스페인의 검은색 유행을 이끌었다. 스페인의 매혹적인 검은색은 16세기 후반 신대륙에서 실어온 황금빛 전리품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통해 17세기 초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9세기는 그야말로 ‘검은색의 시대’였다. 프록코트, 벨벳드레스, 이륜마차, 굴뚝청소부 등 모든 것이 검었다. 와인도 검은 병에 담겨 나올 정도였다. 1926년 코코 샤넬이 발표한 ‘리틀 블랙 드레스’는 이전 200여년간의 의복 트렌드를 완전히 뒤엎은 ‘파격’이자 지금까지 여성들을 사로잡은 ‘매혹’이 됐다.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보석상점 앞에서 진열대를 구경하는 첫 장면은 현대사회에서 검은색이 갖는 위상을 압축한다. 죽음, 공포, 부정을 뜻하던 검은색이 차츰 신념, 예술, 사회적 삶의 구조 속으로 스며드는 이런 변화를 두고 저자는 “검은색의 역사는 인간의 공포를 조금씩 점령해 나간 역사”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시대마다 선호하는 색깔의 팔레트가 변하는 데는 거대한 주기가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국가의 부흥과 몰락, 종교적 계시의 변화, 전쟁과 질병, 기술의 변화, 경제적 호황과 불황, 사회 계급의 변화, 혁명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이렇게 시대의 색이 바뀐다는 느리고 거대한 리듬은 분열된 사회에도 통합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 문화만의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추상화가 이마누엘 사이츠는 칠흑 바탕 위에 청록색, 바다색, 자색으로 그린 자신의 추상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미 검은 하늘은 검은 수평선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눈은 깊은 검은색 안에서 길을 잃는다. 상상은 어둠을 뚫고 돌진한다.” 비옥한 어둠에서 늘 무언가 솟아나듯, 검은색의 이야기는 ‘네버엔딩 스토리’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지구를 보다] 우주에서 본 빛나는 남한, 어둠의 북한

    [지구를 보다] 우주에서 본 빛나는 남한, 어둠의 북한

    태양빛을 받아 지구 전체가 환하게 빛나는 모습을 서구에서는 푸른 구슬을 뜻하는 '블루마블'(Blue Marble)이라 부른다.  우리의 푸른 구슬은 태양계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태양이 지면 또다른 모습인 검은 구슬, 즉 '블랙마블'(black marble)로 변한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에서 본 지구의 야경을 공개했다. 최신형 지구관측위성인 수오미 NPP(Suomi NPP)가 촬영한 데이터로 만든 이 사진은 태양이 진 후 인류의 거주 형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알 수 있는 관찰대상은 바로 밤을 환하게 밝히는 인공 불빛이다. 사람이 살고있는 지역을 따라 빛나는 불빛과 칠흙같은 어둠의 대비를 통해 인류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블랙마블에 녹아있다. 특히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은 한반도의 야경이다. 밤이 되면 한반도는 허리가 잘린 하나의 섬이된다. 서울을 중심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남쪽과 비교해보면 북쪽은 어둠의 왕국이다. NASA에 따르면 북한의 경우 밤이 되면 불빛이 없어 해안선이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또한 평양이 내뿜는 불빛 조차 남한의 중소도시만 못하다. 역설적인 것은 빛공해에 찌든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밤이 되면 별 볼 일은 많다는 사실. 사진=NASA‘s Goddard Space Flight Center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꽃 피는 재래시장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꽃 피는 재래시장

    옥상에 나가 남산을 바라보니 한 폭 파스텔화 같다. 한창 흐드러졌을 꽃을 인 벚나무들이 줄지어진 저 능선은 남산도서관에서 서울타워로 이어진다. 처음 그 길을 걸었던 때는 나도 젊었고 나무들도 젊었다. 가지 여렸던 벚나무들이 늠름한 골격으로 바뀐 30여년 세월. 나의 연례행사인 남산 벚꽃 나들이를 언제부터인가 간간 거르고 산다. 어젯밤에는 집을 나섰다가 어디선가 훅 끼쳐오는 향기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것은 라일락꽃 향기! 그렇다면 벚꽃이 벌써 다 피었다는 거네. 이럴 수는 없어. 벚꽃 아래를 거닐어 보지 않고 봄을 보낼 수는 없어. 그러나 줄줄이 약속과 할 일이 있다. 그래도 케이블카 하우스에서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저 건너편 골짜기는 벚꽃이 늦게 피고 늦게 지니 한 주일쯤은 말미가 있을 것도 같고. 바람은 왜 저리도 부는 걸까. 벚꽃 다 떨어지겠네.남산도서관과 하얏트 호텔 사이의 남산 순환도로에 보성여고 쪽으로 내려가는 비탈길이 있다. 30m쯤의 짧은 그 길 한편에는 이런저런 점포들이 자주 상호가 바뀌며 여전히 조랑조랑 매달려 있는데, 그 건너편은 화단이다. 그 화단의 폭은 저기 어떻게 여인숙이랑 레코드가게랑 밥집 등이 들어 있었나 싶게 좁다. 상호가 아마 ‘멜로디 레코드’였지. 운영자인 젊은 부부는 가게에 딸린 방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림도 살았다. 문화적 감수성과 현실의 간극이 큰 듯했던 그들에게 호시절이 주어져서 그 간극을 대폭 줄였기를! 비탈을 내려가면 바로 해방촌 오거리다. 그 오거리 중 두 거리 사이에 신흥시장이 있다. 내가 해방촌에 산 세월이 30년 훌쩍 넘었는데, 맨 처음 둥지를 튼 곳이 신흥시장 안이었다. 한 층 열 평 남짓의 3, 4층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서 종으로 횡으로 섰고, 이층 높이로 지붕을 이어 전체를 덮었다. 일층은 가게들, 위층들은 살림집들이었다. 나는 한 신발가게 집 3층의 부엌 딸린 한 칸 방에서 8년을 살았다. 거기 사는 동안 거의 밥을 해 먹지 않은 것이, 집주인 며느님이 끼니마다 나를 챙겨주셨던 것이다. 내 또래인 그이는 외로움 많이 타고 정 많은 사람이었다. 가난하고 젊은 내가 그이와 그 가족을 만나 따뜻하고 안전하고, 그리고 자유롭게 8년 세월을 지낸 걸 생각하면 두고두고 고맙다. 그 시장 이름을 나는 오랫동안 해방촌시장으로 알고 있었다. 신흥시장이라고 제대로 안 게 몇 년 안 되는데, 이미 시장이 망가진 뒤다. 지물포도 신발가게도 이불가게도 문을 닫은 지 오래고, 어물전이며 채소가게며 과일가게도 하나하나 사라져 휑하기 짝이 없었다. 가게가 거의 빈 재래시장은 쓸쓸했다. 그런데 한두 해 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장으로 회생한 건 아니지만, 드물게 남은 옛날 시장의 구조와 형태가 젊은이들에게 ‘핫한’ 공간으로 소문나서 공방이나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땅값이 엄청나게 올랐다니, 남은 희망이었던 재개발도 무산돼서 실의에 찼던 건물주들, 특히 내 옛날 집주인을 위해서 잘된 일이다. 부동산으로 부를 쌓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그들 대개가 억척스레 살아오면서 그 작은 땅 하나 지킨 걸 아느니만큼 행운이 그들을 피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인적 없던 시장에 이제 젊은 사람들도 흔히 눈에 띈다. 사람뿐인가. 며칠 전에는 샛길을 통해 시장에 들어서 막 모퉁이를 도는데 어둠 속에서 한 동물의 실루엣이 어른거려 나는 흠칫했다. 그 역시 순간적으로 흠칫했으나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매대였던 낡은 판자때기 위에 흩뿌려진 뭔가를 열심히 먹을 따름이었다. 믿기지 않게도 그것은 나귀였다! 그 목덜미를 한번 쓸어보고 싶었지만 불쑥 만지면 싫어할 것이었다. 지그시 눈을 들여다보면서 “너를 한번 만져 봐도 괜찮겠니?” 양해를 구할 시간은 없었다. 맛있는 거라도 하나 주고 싶었는데 내 보따리에는 반추동물이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고양이 사료뿐이었다. 아, 물이라도 주고 올 걸 그랬네. 그나저나 웬 나귀가 혼자 거기 있을까. 걱정이 되고 궁금하던 차에 평상에 걸터앉은 청년을 만나 물어봤다. 다행히 그가 답을 알고 있었다. 시장에 책방을 냈다는 방송인 노홍철씨의 나귀라고 했다. 아, 예쁜 나귀, 또 보고 싶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더듬다/허은실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더듬다/허은실

    더듬다/허은실 사타구니께가 간지럽다 죽은 형제 옆에서 풀피리처럼 울던 아기 고양이 잠결에 밑을 파고든다 그토록 곁을 주지 않더니 콧망울 바싹 붙이고 허벅지 안쪽을 깨문다 나는 아픈 것을 참아본다 익숙한 것이 아닌 줄을 알았는지 두리번거리다 어둠 쪽을 바라본다 잠이 들어서도 입술을 달싹인다 자면서 입맛을 다시는 것들의 꿈은 쓴가 더듬는 것들의 갈증 때문에 벽을 흐르는 물소리 그림자 밖에서 꼬르륵 거리고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지문이 다 닳는다 어미와 형제를 잃고 애닯게 우는 어린 고양이를 집에 들였다. 낯선 기척에 깨보니 어린 것이 사타구니께에 콧망울을 붙이고 잔다. 이 어린 고양이가 허벅지를 깨문 것은 필시 잠결에 제 어미 품인 줄 착각한 탓이다. 오갈 데 없는 타자를 품고 잠든 이 찰나야말로 생명의 진풍경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한평생을 보내는 존재가 아닌가. 장석주 시인
  • [길섶에서] 노을/손성진 논설실장

    도시에 살면서 잊고 사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푸른 바다, 파란 하늘이며 흙내 나는 땅도 잊고 있다. 바다는 멀고 하늘은 먼지로 뒤덮였으며 땅은 아스팔트로 발렸다. 그러고 보니 노을을 본 지는 또 언제던가. 해는 서산(西山)으로 질진대 도시에서는 서산이든 남산이든 산 능선을 구경하기가 어렵다. 우뚝우뚝 솟은 인공의 건축물이 산과 하늘을 온통 가로막은 탓이다. 종일 세상을 밝히던 햇볕이 진홍색 빛으로 변신해 하늘을 채색한 노을. 어둠이 닥치기 직전의 노을은 그리움으로 먼저 다가온다. 해가 넘어가고 점점 옅어지는 붉은빛은 적막을 느끼게도 한다. 노을을 바라보는 마음은 아쉬움으로 바뀌고 종내는 서글퍼진다. 노을이 지면 굴뚝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밥 짓는 냄새가 온 동네로 퍼져 나간다. 그래서 노을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정의할 수도 있겠다.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하루를 곱게 살았다는 것이고/ 곱게 살지 못한 이들에 대한 위로다/ 해가 진다는 것은 남루한 표현이다/ 결국 노을은 남아있는 햇살을/ 나에게만 퍼붓는 당신 사랑이다(이기철, ‘노을과 나’ 중에서)
  • 평양 르포①/유채색으로 변한 평양과 그 뒷면

    선수단과 취재단은 지난 2일 서울을 출발해 베이징을 경유, 한국보다 30분 느린 북한시간으로 3일 오후 5시30분에 도착했다. 숙소인 양각도국제호텔까지 가는 길은 평양의 변화를 알려주는 쇼케이스 같았다. 취재진을 태운 버스는 곧 개장할 예정인 ‘고층빌딩 숲’ 려명거리를 시작으로 만수대의사당과 김일성-김정일 동상, 김일성 광장, 개선문 등을 휘저은 뒤 미래과학자 거리의 화려한 건물을 마지막으로 거치고 호텔에 도착했다. 익히 들은 것처럼 취재진 사이사이엔 대남관계 전문 기관인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의 참사 6명이 동승, 사실상 감시했는데 그들 중 한 명은 “려명거리 어떻습니까. 선생님들이 믿지 않겠지만 저 건물엔 전부 노동자들이 삽니다. 간부는 안 삽네다”며 “기회가 되면 꼭 가보셔야 할 텐데…”라고 권유했다. 하늘색 연두색 갈색으로 채색된 두 거리의 다양한 모양, 다양한 높이의 건물들은 북한에 대한 선입견을 어느 정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다만 외신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됐기 때문에 ‘억~’하고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남측 일행 중엔 2005년에 평양은 한 차례 방문했던 인사가 있었는데 그는 “천지개벽할 정도로 바뀌었다. 당시 평양은 말 그대로 회색도시였다. 페인트된 건물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거리의 초등학생에게도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학생들 가방이 이쁘다”고 하자 북측 인사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아이들에게 드는 가방 대신 메는 가방을 줘라. 색깔도 분홍색 남색 등 여러 개를 골라 학생들이 선택하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소개했다. 평양 곳곳을 자세히 관찰하면 두 거리 이면에 숨겨진 어둠이 드러난다. 30~40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낡은 아파트에서 화분 하나 내다놓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거리를 촬영할 때면 “선생, 어디에 쓰려고 사진을 찍는 겁니까”란 제지가 이어졌다. 평양을 조금만 벗어나면 어떤가. 순안공항에서 숙소를 오갈 때, 방문 나흘 째 평양 외곽으로 이동할 때가 그랬는데 나이 든 노인들이 호미 하나 들고 길거리에서 나무 심는 모습은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온 나라와 전민이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자’,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유훈 통치’는 한 나라의 중심을 잡아주고 주민들의 결속을 다지는 효과로 연결되지만 평양의 경우는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소개한 문구들이 평양 시내 주요 건물들에 내걸렸는데 정작 지금 북한을 통치하는 김정은의 이름은 잘 보이지 않는다. 평양은 해가 지면 불빛을 찾아보기 힘들다. 북측에서도 “전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아낄 땐 아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곳이 있다.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가 그렇다. 취재진 숙소 앞 대동강 건너편이 바로 북한이 자랑하는 대학, 김책공대인데 캄캄한 밤이 되면 두 부자의 초상화만이 은은하게 빛을 뿜어낸다. ‘유훈 통치’를 넘어 ‘유령 정치’에 가깝다. 4월15일 김일성 생일이 다가오면서 취재진이 평양을 떠날 무렵엔 김일성 광장에도 번쩍번쩍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북측 인사는 생일 관련 경축 행사를 연습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김일성-김정일주의’ 말고 가장 많이 본 단어는 ‘만리마 속도전’과 ‘결사옹위’다. 북측은 “려명거리의 건물이 7시간에 한 층이 올라간다”는 얘기 등으로 ‘만리마 속도전’을 홍보했다. 장비가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주민과 군인들의 고생이 심할 수밖에 없다. ‘결사옹위’는 말 그대로 ‘죽을 힘을 다해 김정은을 지킨다’는 뜻이다.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제일총폭탄이 되자’, ‘강경엔 초강경으로’ 등의 문구에선 남한 및 미국과 초긴장 대치를 이루는 상황 속에서 김정은 정권의 유지를 목숨 걸고 이뤄내겠다는 처절함이 묻어났다. 그래도 코리아는 코리아였다. 지난 3일 중국국제항공을 타고 순안공항에 내린 뒤 가장 먼저 마주친 이는 수화물 찾기 전 복도 끝에서 제복을 입고 서 있는 공항 여직원이었다. 그는 취재진은 보더니 “안녕하십네까”라며 미소를 짓고 인사했다. 수화물 검사는 예상대로 까다로웠지만 출입국 사무소 직원들은 “인천은 서울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네까?”, “평양 날씨가 더 추울 텐데 감기 조심하십시오” 등의 말을 건네며 경직된(?) 남측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려 애썼다. 북한은 이번 여자아시안컵 예선을 국제대회 시리즈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오는 7월 22세 이하(U-22) 아시안컵 예선의 평양 개최가 확정됐고, 10월엔 19세 이하(U-19) 아시아선수권 예선 유치 신청도 해 놓았다. 그런 와중에 남측 인사들이 왔으니 사고 없이 보내면서 최대한 성의를 보여주려 했다. 기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인터넷 문제도 큰 무리 없이 해결됐고, 메신저 서비스나 SNS 등을 통해 기사와 사진 동영상이 송고됐다. 호텔과 김일성경기장,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 개선문 등에서 미소와 친절이 이어졌다. 말이 통하고 음식이 같고, 화제가 비슷하다보니 마음도 금세 통했다. 민화협 젊은 인사들과는 자녀교육 문제 등으로 마음을 터 놓았다. “딸이 세 돌이라 아직 멀었다”는 말을 건네자 민화협의 한 참사도 “저도 아들이 이제 네 살인데 언제 키워서 장가 보냅네까. 우리 둘이 똑같습네다”라며 웃었다. 버스를 탈 때마다 남과 북의 남자들은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순안공항에서 출국하기 직전 취재진과 민화협 인사들은 손을 꼭 잡고 기념촬영을 했다. 한 북측 인사는 “지금 북.남 관계가 너무 팽팽하지만 조만간 나아지지 않겠습네까”라며 꽁꽁 얼어붙은 양측의 교류가 곧 재개되기를 바랐다. 체류 기간 내내 취재진은 달러를 썼는데 잔돈을 거의 대부분 중국 위안화로 받았다. 심하면 껌으로 받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 돈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평양에서 머무는 기간 내내 취재진이 받았던 질문이 있다. 바로 내달 9일 열리는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는가였다. 남측 기자들이 10명이나 오다보니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는 그들의 노력이 이어졌다. 취재진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서 “어떻게 북측 분들이 우리보다 더 잘 압니다”와 같은 말로 받아치곤 했다. 평양 공동취재단
  •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는 수많은 시선들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는 수많은 시선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김탁환 지음/돌베개/352쪽/1만 3000원“끔찍한 불행 앞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참사의 진상이 무엇인지를 찾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목소리와 작은 희망들을 문장으로 옮기고 싶었다.” 지난해 장편 ‘거짓말이다’로 요산김정한문학상을 수상한 김탁환 작가의 수상 소감이다. 작가는 이 바람을 소설집으로 세상에 내보냈다. 세월호를 망각의 늪에 침몰시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8편의 중단편소설로 엮였다. ‘이기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 직접적인 희생의 당사자가 아닌 주변의 관찰자들이다. 사람의 눈동자를 그 사람의 지문만큼이나 선명하게 기억해 내는 눈동자 수집가, 세월호 희생 학생의 책상을 촬영하며 학생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해 주는 사진작가, 세월호 생존 학생들과 상담을 진행한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등의 시점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서사들에 다른 색채를 입힌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참혹함과 분노, 슬픔을 딛고 서로의 어둠을 지키는 방풍림 같은 이들이 있어 우리는 감히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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