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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적 파도에 40시간… 뒤집힌 배 안에서 죽음 뒤집은 사투

    살인적 파도에 40시간… 뒤집힌 배 안에서 죽음 뒤집은 사투

    전복된 어선에 갇혀 있던 선원이 40여 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배가 전복됐지만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고, 에어포켓(뒤집힌 배에 남아 있는 공기층)이 있었기 때문에 선원이 긴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 포항해양경찰서는 21일 오전 10시 23분쯤 경북 경주시 감포항 동쪽 해상에서 전복된 9.77t급 연안통발 어선 거룡호의 선내를 잠수사가 수색하던 중 어획물 창고(어창)에 쓰러져 있던 한국인 기관장 A씨를 구조했다. 지난 19일 오후 6시 46분쯤 거룡호가 전복됐으니, A씨는 40여 시간 동안 차가운 물과 칠흑 같은 어둠, 죽음의 공포와 싸운 것이다. 해경 관계자는 “이날 구조된 기관장 A씨는 저체온증이 심각했지만, 간단한 말 등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상태”라면서 “40여 시간 동안 전복된 선박에서 버틴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A씨가 ‘어선이 전복되기 직전에 승선원 6명 가운데 4명이 구명조끼를 입고 나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면서 “총력을 다해 나머지 실종자를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A씨는 사고가 난 뒤 다른 4명과 같이 탈출을 하려다가 발을 다쳐서 어창으로 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가 뒤집힌 후 어창에는 물이 완전히 차지 않아 공기가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이 덕분에 그는 사고 발생 약 40시간 만에 해경 구조대원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될 수 있었다. 앞서 해경은 이날 오전 9시 20분쯤 사고 선박 인근 바다에서 베트남 국적의 선원 B(37)씨를 발견했다. 그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의식과 맥박이 없는 상태였다. 결국 B씨는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에 해경과 해군 등은 사고 해역 주변에 함정 10척과 항공기 7대 등을 동원해 나머지 선원 4명을 구조하기 위한 수색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날 동해 전 해상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린 상태로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수색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서 포항해양경찰서는 지난 19일 오후 6시 46분쯤 감포항 동쪽 42㎞ 바다에서 거룡호가 침수되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거룡호에는 한국인 2명과 베트남인 3명, 중국 교포 1명 등 모두 6명이 배에 타고 있었다. 경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아이들의 사랑과 인내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아이들의 사랑과 인내

    갑자기 어묵 국물이 먹고 싶었다. 신월동 복개천에 어묵과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어서 무작정 발길을 옮겼다. 만취해서 들어온 나를 보고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어묵 국물을 내놓으셨다. 초등학생 여자아이 셋이 어묵을 먹고 있었는데 가운데 아이는 먹지 않고 양쪽 아이들만 자신 있게 어묵을 건져서 먹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화가 났다. 셋이 나란히 서서 한 아이가 먹지 않는데 양쪽 아이들은 맛있게 먹고 있는 무참한 장면이라니. 양쪽 아이들이 얄미웠다. 국물이라도 좀 떠서 주지 나쁜 녀석들. 아주머니도 나의 모난 눈빛과 어두워진 얼굴을 보고는 어색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았다. 포장마차 안의 침울한 분위기를 깨며 가운데 아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얘야, 너도 먹어. 아저씨가 사줄게. 아저씨 돈 많은 거지야. 자자, 얼른 먹어. 먹고 싶은 만큼 다 먹어.” “저어…. 괜찮은데요, 안 먹어도 돼요.” “이 녀석아, 괜찮아. 먹어. 자아.” 가운데 아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서도 어묵을 먹지 않고 서 있기만 했다. 양쪽 아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저희 먹던 대로 열심히 잘 먹었다. 그중 한 아이가 내 눈치를 조금 보는 것 같기는 했다. 어색한 분위기에 억눌린 가운데 아이가 어묵을 힘들게 하나만 먹고는 더 안 먹겠다며 말했다. “저어, 아저씨, 저 사실 돈 있는데 안 먹고 있었던 거예요.” “응? 무슨 말이야?” “내일 남자친구한테 초콜릿 사주려고 어묵 안 먹은 거예요.” “내일이 뭔데? 남자친구 생일이니?” “밸런타인데인데요.” “그게 무슨 데이야?” “킥킥킥킥, 여자가 남자한테 초콜릿 사주는 날이에요. 죄송해요.” “아, 아, 야야야, 알겠다, 알겠어. 근데 그게 뭐가 죄송하니? 사랑을 위해 현재의 욕망을 참는 거 훌륭한 일이야. 하하하하, 멋진 아이로구나.” “네?” “좋은 일이라고. 난 괜히 너희들 오해했잖아.” 양쪽 아이들은 가운데 아이가 돈이 없어서 못 사서 먹는 게 아니라 사랑을 위해 안 사 먹는 거니까 미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양쪽 아이들은 가운데 아이 보란듯이 현재의 욕망에 충실했던 것이다. 나는 낡은 이분법으로 먹는 아이 못 먹는 아이 나누어 못 먹는 아이는 무조건 불쌍한 아이, 저희끼리만 먹는 양쪽 아이는 나쁜 아이들로 보았다. 어묵을 다 먹은 아이들이 나가려다가 돌아서서 나란히 인사를 했다. 괜히 설레발을 친 게 무안했던 나는 또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하나씩 더 먹어 아저씨가 사줄게.” 그때 가운데 아이가 어묵 두 개 값 1000원짜리를 내게 내밀며 한마디했다. “아저씨, 저 내일 초콜릿 이 돈 빼고도 사줄 수 있어요.” 나는 망설였다. 돈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것도 한 개 값이 아닌 두 개 값을. 아까처럼 거만하게 소리쳤다. “근데 왜 두 개 값이냐?” “아저씨가 불쌍해 보여서요.” “그래? 음…. 알겠다. 그럼 이 돈으로 아저씨는 어묵 두 개 더 먹겠다. 거스름돈은 없다. 잘 가라. 너희들의 욕망, 너희들의 사랑 다 최고다. 얘들아, 그러고 너희들 다음에 여기서 또 만나면 내가 다 쏠게.” “네, 네, 호호호호, 깔깔깔깔.” 가운데 아이는 겸손하고 그윽하게 한번 나를 돌아보더니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친구들 틈에 끼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500원 벌었다.
  • 40분 기다려 술집 입장했지만 턱스크 취객들 탓 ‘불안한 자유’

    40분 기다려 술집 입장했지만 턱스크 취객들 탓 ‘불안한 자유’

    고깃집·감성포차 등 평일에도 ‘북적’‘밤 10시 제한’ 노래주점 등은 한산“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손님, 잠시만 줄 서서 기다려 주세요.”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비수도권의 음식점과 호프집 등의 영업제한이 풀리면서 부산 서면·대학로와 울산 삼산동 일원은 자유를 만끽하려는 젊은이들로 붐볐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는 젊은이들 중 일부는 턱스크 등 개인 방역 수칙을 무시하는 모습까지 확인되면서 방역 당국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 어둠이 짙어지면서 부산 서면과 대학로 일원의 술집 골목에는 몰려든 손님들로 북적였다. 젊은 직장인과 대학생 등 시민들이 음식점 영업제한 해제로 들뜬 모습을 보였다. 김모(26)씨는 “밤 10시까지 영업하는 감성포차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삼겹살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면서 “일부 감성포차는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이 제대로 안 돼 불안하다”고 말했다. 또 부산 전포동의 한 유명 포차는 손님들의 긴 줄 서기로 초저녁부터 붐볐다. 일부 취객은 입장을 위해 줄을 서면서 담배를 피우고 침까지 뱉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예 마스크를 벗고 활보하는 이들도 보였다. 울산 최대 번화가인 삼산동 일원 유흥가 골목도 마찬가지다. 일부 고깃집에는 초저녁부터 손님들이 몰려들면서 북적였다. 반면 노래주점, 룸카페 등은 대체로 한산했다. 노래방 업주 이모(58)씨는 “영업이 오후 10시까지 연장됐지만, 2차를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한숨지었다. 전남 순천의 번화가인 조례동 수산시장 인근 술집과 식당도 이날 밤늦은 시간까지 손님들로 북적였다. 서모(30)씨는 “술집 입장을 40분 정도 기다리고 있다”며 “손님들이 많아 혹시나 하는 불안감도 크다”고 말했다. 영업규제 완화 조치로 손님들이 몰리면서 코로나19의 재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울산의 주부 박모(55)씨는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해 영업규제 완화는 필요하지만, 자칫 코로나 재확산으로 이어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한편 일반 음식점과 달리 유흥주점 등 6종의 유흥시설은 여전히 오후 10시까지 영업을 제한하면서 한산했고, 일부는 아예 문을 열지 않았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오로라·데스밸리… 놀라운 북아메리카의 자연

    오로라·데스밸리… 놀라운 북아메리카의 자연

    EBS 1TV ‘세계테마기행’은 15~19일 밤 8시 50분 5부작 ‘어메이징 북아메리카’를 방송한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만나는 놀라운 자연과 풍경을 담았다. 1부 ‘오로라 판타지, 옐로나이프’는 ‘오로라의 도시’로 널리 알려진 캐나다 옐로나이프를 소개한다. 북위 62도에 자리해 매년 극한의 추위를 기록하는 곳이다. 오로라 관측 명소로 꼽히는 오로라 빌리지에서 전통 신발 설피를 신고 눈밭을 거니는 스노슈잉을 즐기고, 전통 가옥 티피에서 어둠이 내리길 기다린다. 마침내 옐로나이프에 밤이 찾아오고,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본다. 한여름 최고 기온이 50도를 넘을 정도로 북미에서 가장 뜨겁고 건조한 땅으로 불리는 미국 데스밸리와 유타주 국립공원 캐니언랜즈. 2부 ‘시간을 달려서, 데스밸리와 캐니언랜즈’는 오랜 퇴적과 침식의 역사 속에서 독특한 지질학적 아름다움을 가지게 된 이 지역들을 둘러본다.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걸작 ‘신곡’ 속 지옥을 연상케 한다 해서 이름 붙은 단테스 뷰, 데스밸리 최고의 명소이자 자연의 미스터리로 유명한 세일링 스톤, 모래 언덕 메스키트 플랫 샌드 듄, 콜로라도강을 중심으로 거친 협곡들이 장엄하게 늘어선 캐니언랜즈 등 지루할 틈 없는 여정이 이어진다. 3부 ‘환상로드, 옐로스톤 가는 길’에선 세계 간헐천의 60~70%가 밀집되어 있다는 노란 암석지대, 미국 옐로스톤의 풍광이 펼쳐진다. 드넓은 옐로스톤의 도로를 주행하다 보면 죽거나 불에 탄 채 방치된 나무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자연이 스스로 치유하고 재생할 때까지 손대지 않고 기다리는 옐로스톤식의 자연보호 방법이라고 한다. 사람이 함부로 개입하지 않고 오직 자연만이 제 방식대로 살아가는 이곳에선 도로를 막아서는 야생동물들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교통체증도 흔한 일상이다. 4부 ‘나이아가라, 맛있는 가을 속으로’, 5부 ‘가슴 설레는 단풍로드’는 가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캐나다로 향한다. 캐나다에서 처음 크랜베리 농사가 시작된 망소를 방문해 모내기하듯 물을 채우고 열매를 떨어뜨려 걷어내는 독특한 방식의 습식 수확 과정을 직접 경험해 본다.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 도시 세인트캐서린스에선 가을마다 열리는 나이아가라 와인 축제의 흥겨운 거리 퍼레이드를 구경한다. 세인트로렌스만 남부에 자리한 프란스에드워드는 작고 소박한 섬이지만 ‘빨강머리 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매년 열리는 떠들썩한 굴 축제가 관광객의 발길을 붙든다. 엘콘퀸 주립공원의 형형색색 단풍 숲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미술과 문학의 ‘브로맨스’… 암울한 시대 예술로 허기를 채우다

    미술과 문학의 ‘브로맨스’… 암울한 시대 예술로 허기를 채우다

    화가 구본웅이 그린 단짝 친구 시인 이상화가가 되고 싶었던 이상이 그린 삽화들 예술적 동지로 교류한 김용준과 이태준 일제강점·해방기 문학·미술인 관계 조명날카롭게 빛나는 눈, 창백한 낯빛, 파이프 담배를 문 선홍색 입술. 강렬한 색채 대비와 자유로운 필치가 인상적인 화가 구본웅의 대표작 ‘친구의 초상’(1935)이다. 그림 속 주인공은 동네 단짝 친구 시인 이상이다. 이상의 작품에도 구본웅이 등장한다. 소설 ‘봉별기’에서 ‘나와 농(弄)하는 친구’로 묘사한 ‘화우 K군’이 그다. 차분히 아래로 향한 시선과 단정한 입매, 우수 어린 표정. 근원 김용준이 1928년에 그린 근대 대표 소설의 대가 상허 이태준의 청년 시절 모습이다. 이태준은 미술학도를 꿈꿨을 정도로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화가 김용준은 ‘근원수필’을 펴내는 등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일본 유학 시기에 만난 두 사람은 평생 절친한 친구이자 예술적 동지로 자극과 영감을 주고받았다. 서양화를 그리던 김용준이 한국화로 전향한 배경도 전통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이태준의 영향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에도 이들이 있었기에 예술은 빈곤하지 않았다. 식민지 지식인의 비애와 고뇌를 무겁게 짊어진 채 시대정신을 공유하며,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문인과 화가들의 끈끈한 교유와 창조적인 교감은 어둠을 밀어내는 한 줄기 빛처럼 척박한 토양에서도 풍요로운 예술을 꽃피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에서 열고 있는 기획전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이처럼 일제강점기와 해방의 시기에 문학과 미술의 특별했던 관계를 조명한다. 미술 작품 140여점과 서지 자료 200여점을 펼치는 방대한 규모다. 전시는 1930년대 글과 그림을 넘나드는 융합형 예술가들의 실험적 시도를 살펴보는 ‘전위와 융합’, 1920~1940년대 문인과 화가의 만남을 매개한 신문소설과 책에 집중한 ‘지상(紙上)의 미술관’, 예술가들의 남달랐던 우정에 주목한 ‘이인행각’, 그리고 화가이면서 글솜씨도 탁월했던 작가들을 소개하는 ‘화가의 글·그림’으로 짜여졌다. 각각의 전시 공간을 주제에 맞게 구성한 노력이 돋보인다. 이를테면 ‘전위와 융합’ 전시실은 1934년 이상이 경성 종로에 열었던 다방 ‘제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꾸몄다. 이곳에서 박태원, 김기림 등 문인과 구본웅, 길진섭, 김환기 등 화가들은 문학과 미술, 음악과 영화에 대한 담론을 펼쳤다.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지상의 미술관’이다. 그림은 한 점도 없고, 진열대에 신문 자료와 책들이 빼곡하다. 도서관 같은 풍경이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전시 주제를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신문소설의 삽화, 문인과 화가의 공동 작업인 화문(畵文), 아름다운 장정이 매혹적인 책들의 원본을 감상할 수 있다. 원래 화가가 되고 싶었던 이상은 박태원이 ‘소설 구보씨의 일일’을 연재할 때 삽화를 그려 주었다. 시인 정지용은 화가 길진섭과 평양과 안동현 등을 돌며 ‘화문행각’을 연재했다. 신문소설과 화문은 이처럼 문인과 화가를 이어 주는 만남의 장이었다. 백석의 유일한 시집 ‘사슴’은 아무런 꾸밈이 없어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장정으로 꼽힌다.화가 이중섭이 그린 ‘시인 구상의 가족’(1955), 시인 김광균이 사무실에 걸어 뒀던 김환기의 ‘달밤’(1951) 등은 예술적 동지애로 서로를 보듬은 문인과 화가의 절절한 우정을 엿보게 한다. 문학 애호가였던 김환기는 여러 시인들과 교유했는데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구절에서 제목을 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는 캔버스 전체를 점으로 채우는 ‘전면점화’의 완성을 알린 작품으로 꼽힌다. 전시는 5월 30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미얀마 여성 희망에서 ‘인종청소’ 배신자로…아웅산 수치의 삶 [김정화의 WWW]

    미얀마 여성 희망에서 ‘인종청소’ 배신자로…아웅산 수치의 삶 [김정화의 WWW]

    “노벨 평화상은 가택 연금 시절 현실에서 벗어나있던 나를 더 넓은 인간 공동체로 이끌었습니다. 더 중요한 건 국제 사회가 미얀마의 투쟁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2012년, 아웅산 수치(76) 미얀마 국가고문은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군부 독재를 향한 그의 투쟁과 비폭력 저항을 기리기 위해 상을 수여한 지 21년 만에 이뤄진 연설이었다. 1991년 당시 가택 연금 상태였던 수치를 대신해 남편과 두 아들이 수상하는 상징적 장면에 전 세계가 미얀마를 주목했다. 30년이 지난 오늘,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수치와 함께 다시 암흑으로 빠져들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며 수치는 또 구금됐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모든 사람의 타고난 권리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건 행운”이라고 했지만, 군부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결국 자유를 빼앗긴 그의 삶을 돌아봤다.독립영웅 딸에서 민주화 투사로…여성 지도자로 주목익히 알려진 대로 수치는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이다. 영국 식민 통치에서 미얀마를 해방시킨 아웅산 장군은 독립 직전인 1948년 암살당했다. 이후 인도와 영국을 오가며 공부하고, 미국 뉴욕 유엔(UN) 본부에서 일하던 수치가 고국으로 돌아간 건 1988년이다. 미얀마는 1962년 네 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정권이 수립된 뒤 계속 군사 통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군부의 총칼에 스러지는 모습을 보고 그는 일생의 싸움을 시작했다. 독립영웅의 딸로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고, 군부의 가장 큰 위협이 됐다. 1989년부터 2010년까지 15년 가까이 가택 연금으로 탄압받은 게 그 결과다. 민주주의 제도는 물론 인권 의식조차 높지 않은 미얀마에서 수치는 한줄기 빛이었다. 포악한 군부에 대항해 비폭력 투쟁을 이어가며 저항 의식을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힘없는 자의 힘을 보여준 사례”로 칭송받았다.여성 지도자가 흔치 않던 1990년대 국내외 여성에게도 희망이었다.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해 20주년이던 1995년, 유엔 산하기구 여성지위위원회(CSW) 주최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수치는 여성의 세계무대 진출을 강조했다. 그는 “여성은 수천년 동안 타인을 양육하고, 보호하고, 돌보는 일에 헌신했고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갈등 상황에서 가장 많은 고통을 겪은 건 항상 여성과 어린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세상에 빛을 가져오는 건 남성의 특권이 아니다. 동정심과 희생정신, 용기와 인내를 가진 여성은 편협함과 증오, 고통과 절망의 어둠을 없애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밝혔다. 2011년 페미니스트 다수 재단(FMF)의 엘리너 루스벨트 세계 여성인권상을 받았을 때는 “우리 세상에서 여성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여성이 직장에서 일할뿐 아니라 가정의 기둥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 환호를 받았다. 그는 “모든 여성이 잠재력을 발휘할 때까지 협력하고, 자매애를 쌓으며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군부 ‘악마와의 계약’…소수민족 탄압에 비난 쇄도 2015년 총선에서 마침내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이 압승하고, 이듬해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미얀마 시민의 투쟁은 빛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2016년 4월 ‘국가고문’으로 실질적인 지도자가 된 이후 수치의 행보는 과거 몸 바친 인권 운동가의 그것이 아니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군부와 관계를 유지해왔고, 이로 인해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미얀마 내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대대적인 탄압을 묵인한 게 대표적이다. 서부 연안 지역 라카인주에 주로 사는 로힝야족은 수년간 차별받으며 무참히 생명을 짓밟혔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2017년부터 이뤄진 군의 축출 작전으로 로힝야인 수천 명이 학살당했고 수백개 마을이 불탔다. 72만명 이상이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떠났다. 이 같은 학살에도 수치는 나서지 않았다. 국내 여론이 로힝야족에 비판적인 데다가 군부에 정면으로 반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2019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직접 군부의 대량학살 혐의를 부인하는 연설을 하며 세계의 반발을 샀다.지난해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1920년부터 2019년을 빛낸 ‘올해의 여성 100인’을 선정하고 1990년의 인물로 수치를 꼽았는데, 이와 관련해 “로힝야족에 대한 그녀의 반박은 국내에선 환영받았지만 민주주의 아이콘에서 국제적 망령(pariah)으로의 혈통을 확고히 했다”고 했다. 이번 쿠데타로 권좌에서 끌어내려지며 결국 불안한 동거도 산산조각 났다.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의 아시아 국장 필 로버트슨은 뉴욕타임스(NYT)에 “수치는 자신이 인권 운동가가 아닌 정치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국제 사회의 비평을 거부했다”고 했다. 그는 “로힝야에 대한 군부의 잔혹한 행위를 은폐하면서 도덕적 시험에 실패했고, 군부와의 데탕트도 실현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여권 향상도 기대 이하…“가부장 문화 여전”정치 참여 확대 등 여성인권 향상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미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2019년 ‘미얀마 여성의 꺾인 희망’이라는 기사에서 “수치의 정부는 여성의 삶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NLD의 승리로 여성 의원이 더 늘어나면서 가부장 문화와 제도 등 변화를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얀마에서 여성이 의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하원 433석 중 44 석, 상원 224석 중 23 석으로 10%에 그친다. 20%를 웃도는 필리핀 등과 비교하면 아세안 국가 중에서도 낮은 편이다. 디플로맷은 “NLD는 진보적이고 미래 지향적 비전을 제시하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을 비숙련 노동자와 동일시하고 무능한 의사 결정자로 본다”고 지적했다.2018년, 국제앰네스티는 수치에게 2009년 수여했던 최고 영예인 양심대사상을 박탈했다.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오늘 우리는 당신이 더는 희망과 용기, 영원한 인권 수호의 상징이 아니라는 사실에 깊이 실망하고 있다”며 침통함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수치를 향한 국민들의 지지는 여전하다. 마땅한 대안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수치의 동료이기도 한 전 유엔 주재 미 대사 빌 리처드슨은 민주정부가 군부와 권력을 분점한 것을 두고 ‘악마의 계약’이라고 하며 “수치는 군대에게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의 전망은 어둡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군부가 그를 영원히 침묵시키지는 않았으면 한다”며 “NLD는 민주주의 통치자가 무너진 지금 새로운 지도자, 특히 여성을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아웅산 수치는 누구 · Aung San Suu Kyi 1945 미얀마 양곤 출생1985 영국 런던대 정치학 박사1988 귀국해 민주화운동 헌신,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창당1989 가택연금 (총 14년 11개월 가택연금 생활)1991 노벨평화상 수상 (남편과 두 아들이 시상식에 대신 참석)2010 가택연금 해제2012 미얀마 보궐선거 당선2015 총선에서 NLD 압승, ‘국가 고문’직 만들어 역임2020 총선에서 NLD 재집권2021 군부 쿠데타로 구금
  • 포악한 포식자가 된 인간의 민낯

    포악한 포식자가 된 인간의 민낯

    구제역 감염 우려가 있는 돼지들을 살처분하면서 자신이 살처분당하는 듯한 악몽을 꾼다.(‘몰이꾼’) 바닷가에서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면서 오염되기 이전의 자연을 그리워한다.(‘땅끝의 달’) 자신이 낳은 아기를 ‘상품’처럼 대하는 미혼모 대신 아기를 키우면서도 오히려 미혼모에게 돈을 뜯긴다.(‘어둠의 한숨’) 올해 등단 64년을 맞은 정연희(84) 작가의 신작 소설집 ‘땅끝의 달’은 인간의 오만과 탐욕에 희생된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폐를 조명한다. 환경·축산·미혼모 등 다양한 소재로 쓴 작품을 관통하며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인간중심주의와 이기적 인간형을 고발한다. 수록작 ‘땅끝의 달’의 주인공 현서는 사업 실패로 태안 앞바다에서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한다. 어느 날 자신을 찾아와 환경파괴의 심각성과 절망을 이야기하던 여인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전남편의 독점욕으로 상처를 품은 여인은 탐욕이 부른 파멸을 투영하는 듯하다. ‘몰이꾼’은 살처분의 고통을 두고 벌어지는 인간들 사이의 차별과 불평등도 예리하게 다뤘다. 축산 공무원 동주가 살생의 지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동안 서울에서는 젊은이들이 향락의 열기에 빠져 있다. ‘인간은 돼지보다 더한 식탐에 빠졌다’(128쪽)는 동주의 생각은 힘을 극대화한 인간의 존재론적 몰락을 암시한다. ‘어둠의 한숨’은 아기를 귀여워하는 세탁소 주인 심 권사를 등쳐먹는 미혼모를 통해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폭력적 태도를 보여 주면서도, 혈육이 아닌 아기에게 정성을 쏟는 심 권사에게서 인류애를 향한 희망을 찾는다. 정 작가는 “인간이 포악한 포식자가 됐지만, 인간사 곳곳에서 사금처럼 반짝이는 이야기를 외면하지 못해 오늘도 그 사금을 고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작품마다 녹여 낸 치밀한 심리묘사는 문단 원로의 연륜을 실감하게 한다. 암울해 보여도 여전히 인간에 대해 희망을 주는 이 단편들이 반갑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당신은 별 같은 사람” 아이유의 위로 통했다

    “당신은 별 같은 사람” 아이유의 위로 통했다

    신곡 ‘셀러브리티’ 차트 1위 휩쓸어“공감과 위로 되도록 공들여 작업”가수 아이유(본명 이지은)가 세상의 모든 ‘별난 사람’을 응원하는 신곡으로 음원 차트를 석권했다. 아이유가 전날 오후 6시 발매한 ‘셀러브리티’(Celebrity)는 28일 오전 멜론, 지니뮤직, 플로, 벅스 등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 실시간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경서 ‘밤하늘의 별을’, 십센치 ‘이 밤을 빌려 말해요’, 방탄소년단 ‘다이너마이트’, 미란이·머쉬베놈의 ‘VVS’ 등을 단숨에 제치며 음원 최강자 면모를 재확인했다. 특히 멜론의 개편 차트인 ‘24히츠’(hits) 차트에서는 발매 3시간 만인 전날 오후 9시 정상을 밟았다. ‘셀러브리티’는 아이유가 올해 4년만에 발표하는 다섯 번째 정규앨범의 선공개곡이다. 지난해 5월 디지털 싱글 ‘에잇’ 발매 이후 8개월 여 만에 선보인 신곡으로 직접 작사하고 작곡에도 참여했다. “넌 흐린 어둠 사이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야”라는 가사로 “당신은 유일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경쾌한 일렉트로닉 팝 장르로 아이유가 전하는 응원의 느낌을 살렸다. 아이유는 소속사 EDAM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듣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어느 때보다 공들여 작업했다”고 발매 소감을 전했다. 또한 앨범 소개에서 주변 사람으로부터 종종 ‘별난 사람’ 취급을 받아온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가사로 적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 친구를 포함해 투박하고도 유일하게 태어난 이들에게 당신은 별난 사람이 아니라 별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미안해” 먹이찾던 코끼리, 사람이 던진 불덩이 맞고 하늘로 (영상)

    “미안해” 먹이찾던 코끼리, 사람이 던진 불덩이 맞고 하늘로 (영상)

    먹이를 찾아 헤매던 코끼리가 사람이 던진 불덩이에 맞아 죽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인디아투데이 22일 보도에 따르면 인도 경찰은 코끼리에게 불덩이를 던져 죽인 혐의로 주민 2명을 체포하고 달아난 1명을 쫓고 있다. 인도 경찰은 타밀나두주 닐기리스의 한 리조트에서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코끼리가 주민들이 던진 불덩이에 맞아 죽었다고 밝혔다. 닐기리스 마시나구디 지역의 리조트에서 촬영된 영상에는 어둠 속을 배회하던 코끼리가 이마에 불덩이를 맞고 황급히 발길을 돌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당황한 코끼리는 서둘러 숲으로 자취를 감췄지만, 코끼리가 저 멀리 달아날 때까지도 불길은 어둠 속에서 계속 활활 타올랐다.주변 수색에 나선 산림대원들은 19일 숲에서 쓰러진 코끼리를 발견했다. 위독한 상태로 발견된 코끼리는 보호구역 이송 도중 끝내 숨을 거뒀다. 부검 결과 40살로 확인된 코끼리는 이마와 귀, 등에서 심각한 화상이 관찰됐다. 사실상 불에 타죽은 셈이다. 현지언론은 먹이를 찾아 리조트로 내려온 코끼리를 쫓기 위해 누군가 불붙은 타이어를 던졌고, 타이어가 코끼리 왼쪽 귀에 걸렸다고 전했다. 비극적 사건에 대해 경찰은 코끼리를 죽인 남성 3명 중 2명을 붙잡아 조사하는 한편, 달아난 1명을 공개 수배했다.인도코끼리를 포함한 아시아코끼리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멸종위기(EN)종으로 올라 있다. 특히 아시아코끼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도코끼리는 1930년대~1940년대 개체 수가 절반으로 급감해 1986년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됐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 생존해 있는 인도코끼리는 3만8000마리에 불과하다. 그 중 2만7000마리~3만1000마리는 서식지 감소와 환경 파괴로 아사 직전이다. 지난해 인도 서벵골주에서는 쓰레기장을 뒤지며 플라스틱 폐기물을 먹이 삼아 삼키는 코끼리들이 목격돼 충격을 안긴 바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민주주의 승리”… 통합의 미국이 돌아왔다

    “민주주의 승리”… 통합의 미국이 돌아왔다

    ‘민주주의’ 11번… “美 통합에 영혼 걸겠다”“동맹 회복”… 글로벌 리더십 재건 신호탄파리기후협약 복귀… 트럼프 지우기 시동“바로 이 순간, 민주주의가 이겼다.” 조 바이든 46대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전 세계에 미국 민주주의의 회복을 알렸다. 정확히 2주 전인 6일 의회 난입 참사로 미 민주주의가 무너진 곳에 선 그는 사회통합의 힘으로 코로나19·정치적 분열·경기침체 등 내부의 위기를 이겨 내는 한편 글로벌 리더십을 재건하겠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취임사는 민주주의의 승리, 국민단합을 통한 코로나19·극단주의 극복, 동맹의 부활 등으로 요약됐다. 취임사 내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11번이나 쓴 그는 “한 후보가 아닌 민주주의라는 명분의 승리”라며 자부심을 불어넣었다. 또 “역사상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기는 거의 없었다”며 ‘통합’으로 위기를 이겨 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남북전쟁, 대공황, 9·11 테러, 세계대전 등 역사상 위기 국면에서 “함께 행동했을 때 미국은 실패한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 모든 영혼은 미국을 다시 통합시키는 데 있다. 두려움이 아닌 희망, 분열이 아닌 통합, 어둠이 아닌 빛에 관한 미국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것”이라며 희망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동맹을 회복하고 다시 한번 전 세계에 관여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힘의 본보기가 아니라 본보기의 힘으로 이끌 것”이라며 세계의 ‘큰형님’으로 돌아갈 것을 선언했다. 유럽연합(EU)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미국이 돌아왔다. EU는 관계를 재건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환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미국 건국 때부터 다른 국가들에 영감을 준 고귀한 정치, 윤리, 종교의 가치로부터 미국인들이 힘을 얻기를 기원한다”며 축하했다.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바이든 대통령은 무려 17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취소 등으로 트럼프식 고립주의에 종언을 고했고, 불법체류자들에게 시민권 획득의 기회를 주는 방안을 포함한 각종 이민정책으로 사회통합 작업을 시작했다. 이날 새 정부 출범 기대감 등으로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전장보다 257.86포인트(0.83%) 오른 3만 1188.38로 마감하는 등 3대 지수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민주주의 승리”… 통합의 미국이 돌아왔다

    “민주주의 승리”… 통합의 미국이 돌아왔다

    ‘민주주의’ 11번… “美 통합에 영혼 걸겠다”“동맹 회복”… 글로벌 리더십 재건 신호탄파리기후협약 복귀… 트럼프 지우기 시동“바로 이 순간, 민주주의가 이겼다.” 조 바이든 46대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전 세계에 미국 민주주의의 회복을 알렸다. 정확히 2주 전인 6일 의회 난입 참사로 미 민주주의가 무너진 곳에 선 그는 사회통합의 힘으로 코로나19·정치적 분열·경기침체 등 내부의 위기를 이겨 내는 한편 글로벌 리더십을 재건하겠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취임사는 민주주의의 승리, 국민단합을 통한 코로나19·극단주의 극복, 동맹의 부활 등으로 요약됐다. 취임사 내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11번이나 쓴 그는 “한 후보가 아닌 민주주의라는 명분의 승리”라며 자부심을 불어넣었다. 또 “역사상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기는 거의 없었다”며 ‘통합’으로 위기를 이겨 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남북전쟁, 대공황, 9·11 테러, 세계대전 등 역사상 위기 국면에서 “함께 행동했을 때 미국은 실패한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 모든 영혼은 미국을 다시 통합시키는 데 있다. 두려움이 아닌 희망, 분열이 아닌 통합, 어둠이 아닌 빛에 관한 미국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것”이라며 희망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동맹을 회복하고 다시 한번 전 세계에 관여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힘의 본보기가 아니라 본보기의 힘으로 이끌 것”이라며 세계의 ‘큰형님’으로 돌아갈 것을 선언했다. 유럽연합(EU)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미국이 돌아왔다. EU는 관계를 재건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환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미국 건국 때부터 다른 국가들에 영감을 준 고귀한 정치, 윤리, 종교의 가치로부터 미국인들이 힘을 얻기를 기원한다”며 축하했다.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바이든 대통령은 무려 17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취소 등으로 트럼프식 고립주의에 종언을 고했고, 불법체류자들에게 시민권 획득의 기회를 주는 방안을 포함한 각종 이민정책으로 사회통합 작업을 시작했다. 이날 새 정부 출범 기대감 등으로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전장보다 257.86포인트(0.83%) 오른 3만 1188.38로 마감하는 등 3대 지수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르포]바이든 ‘통합’ 일성에 환호… 트럼프 지지자마저 평화로웠다

    [르포]바이든 ‘통합’ 일성에 환호… 트럼프 지지자마저 평화로웠다

    보안 우려·코로나19로 취임식장 일대 완전봉쇄시민들 TV로 보다가 바이든 취임사에 환호성“바이든, 아픔 공감하고 그로부터 화합 시작될 것”행복하자며 거리 서명, 성조기 들고 ‘작은 축제’도무력시위 없었고, 트럼프 지지자도 대결보다 대화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희망, 분열이 아닌 통합, 어둠이 아닌 빛에 관한 미국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것이다.” 조 바이든 제46대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가운데 인근 식당에 걸린 대형TV로 취임사를 듣던 시민들을 두 손을 치켜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지난 6일 의회 난입 참사와 같이 트럼프 지지자들이 무력 시위를 재연할 수 있다는 첩보에 따라 주 방위군 2만 5000명이 내셔널 몰과 의사당 주변을 완전하게 봉쇄하면서 시민들은 대형TV가 있는 곳곳의 식당에 둘러서 함께 취임식을 봤다. 취임사를 듣고 뭉클한 듯한 표정을 지었던 흑인 오크리 모제스(61)는 “이제 미국을 치유하고 통합할 때가 됐다. 흑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바이든은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할 것이고, 그것을 시작으로 화합의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한 히스패닉 여성은 “우리 주에서 상원의원을 했던 첫 여성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의 취임 선서를 보며 내 딸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만난 토마스(41)도 “트럼프는 자기 마음대로 국가를 움직였다. 하지만 바이든은 주류이고 중도파이며 오랜 경륜을 가진 정치인이다. 무엇보다 정상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취임식을 멀리서나마 보고 싶었는데 코로나19와 트럼프 지지자들 때문에 화면으로 보게 돼 아쉽다”고 했다. 워싱턴 시내 중심가에 있는 13개 지하철역이 봉쇄됐지만 시민들은 외곽에 있는 지하철역에서 내려 길게는 1시간을 걸어 중심가에 모였다. 2만 5000명의 주 방위군은 주요 시설은 물론 지하철 플랫폼에서도 총기를 내놓은 채 경계 근무를 하면서 혹시 모를 소요 사태에 대비했다. 대부분의 1층 상점들은 나무 합판으로 유리창을 가렸고, 당국이 바리케이트나 철조망 외에 덤프트럭으로 봉쇄한 도로도 눈에 띄었다.바이든의 취임사가 끝나자 도심 곳곳에서 시민들의 작은 축제가 벌어졌다. 다함께 행복하자며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는 이도 있었고,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를 타고 바이든 지지 깃발을 들고 지나며 환호성을 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한 시민은 트럼프 지지 깃발을 두 손에 든 채 “언론이 트럼프를 너무 괄시했다”며 서운해했지만, 그는 사람들과 다툼을 벌이기보다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고 했다. 바이든 이날 취임사에서 “내 모든 영혼은 미국을 다시 합치고 통합시키는 데 있다”며 “통합이 나아갈 길”이라고 했다. 또 의회 난입 참사를 언급하며 “오늘 우리는 한 후보가 아닌 민주주의라는 명분의 승리를 축하한다. 지금 이 순간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말했다. 역사상 통합은 항상 승리해 왔다며 사례로 남북전쟁, 대공황, 1·2차 세계대전, 9·11 테러 등을 꼽기도 했다. 대외 정책에 대해서는 “우리는 힘의 본보기가 아니라 본보기의 힘으로 이끌 것”이라며 “우리는 평화, 진보, 안보를 위해 강력하고 믿을 수 있는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했다. 동맹을 통해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겠다는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전날 내셔널몰 링컨기념관 앞 리플렉팅풀에서 400개의 불빛을 밝히며 40만명 이상의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것으로 취임식 절차를 시작했던 바이든은 이날 연설 도중에도 이들을 위한 묵념을 청했다. 이날 정오 대통령 직무를 시작한 바이든은 공식 트위터 계정(@POTUS)에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는 데 있어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썼다. 취임날부터 곧바로 백악관 집무실에서 15개 이상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이유를 설명한 셈이다. 이날 취임식에서 팝스타 레이디가가는 미국 국가를, 인기 컨트리가수 가스 브룩스는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열창했다. 제니퍼 로페즈도 참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시대 워싱턴DC를 멀리했던 유명 연예인들이 돌아왔다”고 전했다.이날 거리 풍경 중 가장 달라진 것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취임장에서도 바이든을 포함해 참석자 전원이 마스크를 썼고 연단 뒤쪽 좌석은 6피트(약 1.8m) 간격으로 좌석을 띄우는 등 방역수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바이든 “치유하려면 기억해야”…1호 행정명령은‘마스크 의무화’

    바이든 “치유하려면 기억해야”…1호 행정명령은‘마스크 의무화’

    “해리스 함께 간다” 인종차별 해소 의지암트랙 열차 아닌 비행기로 워싱턴 입성 취임식날 아침 여야 지도부와 미사 엄수15개 행정명령 서명 등 바로 업무 착수어둠이 깔린 19일(현지시간) 오후 5시 30분, 미국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앞 리플렉팅풀 주변에 있던 400개의 조명이 켜지고 워싱턴 내셔널 대성당에서는 400번의 조종이 울렸다. 40만명이 넘는 코로나19 희생자가 발생하기까지 추모는커녕 책임 모면에만 열중했던 ‘치욕의 트럼프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날, 조 바이든 제46대 미국 대통령은 리플렉팅풀 앞에 서서 “우리는 치유하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며 망자를 애도하고 남은 자의 상처를 보듬었다. 아픔을 공유하고 기억하는 것이 ‘하나 된 미국’을 향한 첫걸음임을 피력한 것이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시애틀의 스페이스 니들 등 주요 도시의 유명 고층 건물들도 추모의 불을 함께 밝히는 등 환호 대신 엄숙한 분위기 속에 미 전역이 새 시대를 맞았다.첫 여성으로, 또 첫 흑인·아시아계로 부통령에 오른 카멀라 해리스도 “내 변치 않는 소망은 역경을 계기로 우리가 지혜를 얻는 것”이라며 “소박하게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 서로 마음을 조금 더 여는 것”이라고 통합을 강조했다. 이날 워싱턴행에 앞서 바이든은 암으로 먼저 떠난 장남(보 바이든 전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의 이름이 붙은 델라웨어주 뉴캐슬 공항의 ‘보 바이든 3세 주방위군 사령부’에서 눈물의 고별사를 했다. 그는 우선 아들을 추모하고 60년 터전인 델라웨어주에 감사를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지난 4년 두 동강 난 국가 통합을 염두에 둔 듯 “지금이 암흑기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언제나 빛은 있다”며 “바꿀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희망과 빛,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곳이 미국”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2009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함께했고, 이번엔 최초 흑인 여성 부통령 해리스와 함께한다’는 언급을 통해 해묵은 갈등의 원인인 인종차별 해소 의지도 드러냈다. 오랜 기간 국회의사당에 출퇴근하던 것처럼 암트랙 열차를 이용해 워싱턴에 입성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보안상 이유로 비행기에 올랐다. 새 대통령을 맞이할 워싱턴이 축제의 장보다는 군사기지에 가까울 정도로 경비가 삼엄하기 때문이다. 특히 2주 전 의회 난입 사태 이후 긴장 고조로 2만 5000명의 주방위군이 중심가를 봉쇄해 의사당과 백악관 주변은 적막강산 상태나 다름없다. 버지니아주에서 워싱턴DC로 진입하는 대부분 교량이 폐쇄됐고 의사당을 둘러싼 2m 높이의 펜스에는 날카로운 면도날까지 부착한 레이저 철조망이 칭칭 감겼다. 이날 수사당국은 워싱턴 투입 병력 중 극우활동과 연관된 12명을 색출, 임무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백악관 인근의 영빈관(블레어하우스)에서 취임 전 마지막 밤을 보낸 바이든은 취임식 날인 20일 오전 7시 여야 지도부와 미사를 드리며 ‘통합’ 행보를 이어갔다. 미사에는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공화당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함께했다. 대통령으로서 바이든의 임기는 정오(한국시간 21일 새벽 2시)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 앞에서 127년 된 집안의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한 직후 시작됐다. 단합을 강조한 취임사 후 군 사열을 마친 바이든 부부는 트럼프 부부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 부부와 함께 알링턴 국립묘지 헌화 후 백악관에서 15개 이상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CNN은 바이든의 ‘1호 행정명령’이 트럼프 대통령은 철저히 외면했던 ‘마스크 의무화’라고 전했다. 테러 위협과 거리두기로 사라진 축하 인파 대신 20만개에 달하는 성조기 깃발 앞에서 거행된 취임식은 비상시국답게 많은 일정이 생략되거나 축소됐다. 오찬 취소는 물론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는 가상으로 진행됐고, 취임식 밤을 장식했던 무도회는 저녁 8시 30분부터 배우 톰 행크스의 사회로 진행하는 특별 행사로 대체됐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워싱턴 기념비 바라보는 바이든-해리스 당선인 부부

    워싱턴 기념비 바라보는 바이든-해리스 당선인 부부

    사진 한 장이 모든 역사적 순간을 함축할 수 있다. 제46대 미국 대통령 취임 전날 조 바이든 당선인이 부인 질 바이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과 부군인 더그 엠호프와 나란히 선 채 워싱턴 기념비를 바라보고 있다. 얼굴이 보이는 정면 사진도 많은데 이렇게 뒷모습을 담은 사진을 선택한 것은 이들의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책임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다. 역사적인 취임식을 하루 앞둔 이날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4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듯 워싱턴DC 내셔널몰에 있는 링컨기념관 근처 리플렉팅풀 주변에 등불 400개가 켜져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19일(이하 현지시간)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를 떠나 안전 우려 때문에 평소 이용하던 암트랙 열차 대신 비행기를 이용해 메릴랜드주에 있는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통해 워싱턴 DC에 입성했다. 워싱턴에서의 첫 일정은 내셔널몰에 있는 링컨기념관 근처 리플렉팅풀에서 열린 코로나19 희생자 애도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는 “치유하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면서 “기억하는 것이 때로는 힘들지만 그것이 우리가 치유하는 방식이다. 국가 공동체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날 내셔널몰을 비롯한 전국 명소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이를 애도하기 위해 불을 밝히고 야간 행사를 개최했다. 워싱턴DC 성당에서는 미국인 희생자를 1000명씩 애도하는 의미로 종이 400차례 울려 퍼졌다. 미국인들은 40만명을 표기할 때 400K라고 하는 데 따른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우리는 기억하려고 여기에 있다”며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지는 사이에 신성한 리플렉팅풀을 따라 어둠에 빛을 밝히고 우리가 떠나보낸 모든 이들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해리스 당선인은 “오늘 우리는 비통 속에서 함께 치유를 시작한다”며 “우리 미국인은 정신적으로 함께 뭉쳤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변치 않는 소망과 기도는 우리가 이 역경을 계기로 새로운 지혜를 얻는 것”이라며 “소박한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 서로 마음을 조금 더 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에 추모행사에는 가톨릭 워싱턴DC 교구의 윌튼 그레고리 대주교를 비롯한 내빈이 소수만 참석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어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다음날 정오 의회 의사당에서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한 뒤 백악관으로 이동,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다.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지만 열 살 때 부친의 실직으로 델라웨어주로 이사해 지금까지 60년 넘게 살고 있는 그는 델라웨어주 뉴캐슬의 주방위군사령부 야외에서 펄럭이는 12개의 델라웨어주 깃발을 배경으로 고별 연설을 했다. 연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장남 보 바이든을 돌아보고 델라웨어주에 감사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특히 보를 언급할 때는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금 유일하게 애석한 것은 그가 여기에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가 자신을 대신해 그곳에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날 연설 장소도 보의 이름을 딴 곳이다. 그는 부모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져 델라웨어로 이사했던 때를 떠올리면서도 목이 메었다. 또 자신이 30년 넘게 일했던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기 전 뉴캐슬 카운티 의회 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과정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그것들은 내 감정을 자극하지만, 봐라, 여러분은 좋은 시절부터 나쁜 시절까지 내 인생 전체를 함께 해줬다”며 “정말 감사드리며 우리 가족을 대신해 델라웨어 여러분이 저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말하고 싶다”고 했다. 델라웨어에서의 개인적 삶은 비극으로 점철됐다고 정치전문 매체 더힐은 소개했다. 1972년 교통사고로 첫 아내와 딸을 잃었고,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앞날이 창창했던 아들 보도 2015년 암으로 숨졌다. 이라크에서 복무하기도 했던 보는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지내며 바이든의 정치적 후계자로 꼽혔다. 바이든 당선인이 2016년 대선 출마를 접은 것도 아들 보를 잃은 슬픔이 크게 작용했다. 바이든은 “부모님이 가장 필요로 했던 생계 수단을 줬던 이 주는 내게 기회를 줬고 나를 믿어줬다. 나를 카운티 의회에서 연방 상원으로 보내줬다”며 “델라웨어는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것을 가르쳐줬다”고 언급했다. 이어 “나는 항상 델라웨어주의 아들이 될 것”이라며 “내가 죽으면 델라웨어를 내 가슴에 새길 것”이라고 했다. 고별 연설에는 바이든 당선인의 가족과 주의 선출직 관료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41만명 사망” 워싱턴 도착 바이든…코로나 희생자부터 추모(종합)

    “41만명 사망” 워싱턴 도착 바이든…코로나 희생자부터 추모(종합)

    “치유하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국가가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해”미국, 확진자·사망자 가장 많아바이든, 코로나 방역 의지 강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을 하루 앞둔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도착해 코로나19 희생자를 가장 먼저 추모했다. AP통신, CNN방송 등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워싱턴DC의 공원 내셔널몰에 있는 리플렉팅풀 근처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우리는 치유하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그는 “기억하는 것이 때로는 힘들지만 그것이 우리가 치유하는 방식”이라며 “국가가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날 내셔널몰을 비롯한 전국 명소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이를 애도하기 위해 불을 밝히고 야간 행사를 개최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우리는 기억하려고 여기에 있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지는 사이에 신성한 리플렉팅풀을 따라 드리워진 어둠에 빛을 밝히고 우리가 떠나보낸 모든 이들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가장 많은 국가로 기록되고 있다.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이날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41만 10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루에 10만명 이상이 새로 감염되고 있어 사망자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당분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당선인은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에서 워싱턴DC로 떠나면서 “어두운 겨울에 임기를 시작한다”며 코로나19 방역에 진력할 의지를 강조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20일 정오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대통령직을 물려받는다. 바이든, 터전 델라웨어 떠나며 눈물 앞서 바이든 당선인은 ‘제2의 고향’인 델라웨어주를 떠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바이든의 고향은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이지만, 그가 10살이 되던 해 부친의 실직으로 델라웨어주로 이사해 지금까지 60년 넘게 살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고별 연설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장남 보 바이든을 언급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지금 유일하게 애석한 것은 그가 여기에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안양 출신 시인 고 김대규 문학관 건립 추진

    안양 출신 시인 고 김대규 문학관 건립 추진

    경기 안양 출신 시인 고 문향(文鄕) 김대규를 기리는 문학관이 세워진다. 안양시는 2023년 준공을 목표로 ‘김대규문학관’을 건립을 추진한다고 19일 밝혔다. 김대규문학관은 시인이 태어난 만안구 안양3동 삼덕도서관 옆에 건립되며 내년 6월 착공 예정이다. 작업세계를 감상하는 전시공간과 창작공간이 들어선다. 다양한 문학 서적을 접할 수 있는 작은도서관, 열람실도 마련한다. 문학작품을 창작하고 토론을 벌이는 세미나실과 수장실, 연구실 그리고 휴식공간도 꾸며 주민친화형 문화공간 지역 거점을 삼을 계획이다. 연면적 845㎡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다. 1942년 안양 양지동(현 안양3동)에서 태어난 시인 김대규는 안양이 낳은 국내 대표적 문학인이다. 2018년 작고하기까지 70평생을 시와 함께 안양사랑으로 살아왔다. 고인의 아호인 ‘문향’에서 알 수 있듯 고향 안양과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창작활동에 전념했다. 연세대 국문과와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0년 시집 ‘영의 유형’(靈의 流刑)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대표작으로 ‘이 어둠 속에서의 지향’, ‘흙의 사상’, ‘흙의 노래‘, ‘나는 가을공부 중이다’, ‘살고 쓰고 사랑했다’ 등을 남겼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1989년 발표한 수필집 ‘사랑의 팡세’는 인간 삶을 주도하는 사랑에 대한 면모를 간결한 필체로 담아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이상호 성남시의원, ‘착한 선결제 캠페인’ 동참

    이상호 성남시의원, ‘착한 선결제 캠페인’ 동참

    이상호 성남시의원이 골목상권 살리기 ‘선결제 캠페인’에 동참했다. 이번 캠페인은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골목상권을 살리고자 자주 이용하는 음식점, 동네 가게, 카페 등 소상공인‧자영업 업소에 방문하여 일정 금액을 미리 결제하고 실제 물건이나 음식은 약속을 정한 뒤 나중에 재방문하여 받는 것이다. 이상호 의원은 “선결제 캠페인을 통해 우리 곁에 늘 함께 있는 소상공인이 코로나19라는 긴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자발적 착한 소비자 운동인 만큼 많은 분들의 참여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윤창근 성남시의회 의장에게 지명을 받아 참여한 이 의원은 다음 릴레이 캠페인 참여자로 박영애 의회운영위원장과 남용삼 문화복지위원장을 지목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년 만에 돌아오는 뮤지컬 ‘팬텀’…박은태·카이·전동석·규현 등 화려한 캐스팅

    3년 만에 돌아오는 뮤지컬 ‘팬텀’…박은태·카이·전동석·규현 등 화려한 캐스팅

    3년 만에 돌아오는 뮤지컬 ‘팬텀’의 화려한 캐스팅이 공개됐다. 국내 최정상 배우들이 포진한 라인업으로 지난해 말부터 길어진 공연 중단에 지친 뮤지컬 팬들의 기대를 달구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는 오는 3월 17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팬덤’ 네 번째 시즌에서 팬텀 역으로 박은태, 전동석, 카이, 규현이 출연한다고 13일 밝혔다. 크리스틴 다에 역에는 김소현과 임선혜, 이지혜, 김수가 이름을 올렸다. 극 중 팬텀은 빼어난 재능을 지녔으나 흉측한 얼굴 탓에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오페라극장 지하에 숨어 살아야 하는 슬픈 운명을 지닌 존재다. 깊은 연기력은 물론 뛰어난 가창력과 고도의 성악 테크닉을 구사해야 하는 고난도 캐릭터로 역대 최고 뮤지컬 배우들만 소화할 수 있는 꿈의 배역으로 꼽혔다. ‘믿고 보는 배우’ 박은태가 2016년 시즌에 이어 두 번째로 팬텀에 참여한다. 대작에서 잇따라 주역으로 활약하며 이미 최정상의 실력과 인기를 뽐내온 박은태는 특히 지난해 ‘모차르트!’와 ‘킹키부츠’, ‘젠틀맨스 가이드’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하며 스펙트럼을 더욱 넓혔다. 한층 더 깊어진 팬텀으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카이는 초연과 삼연 이후 세 번째 팬텀을 맡았다. 최근 ‘몬테크리스토’와 ‘레베카’, ‘베르테르’ 등에서 가창력과 짙은 감정 연기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재연 이후 5년 만에 팬텀으로 합류하는 전동석도 눈길을 끈다. 풍부한 성량과 가창력을 바탕으로 ‘드라큘라’, ‘지킬앤하이드’ 등에서 탄탄한 내공을 다진 그가 팬텀에 활력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12년차 뮤지컬배우로 입지를 다진 규현도 특유의 감미로운 음색과 디테일한 연기로 감성 가득한 팬텀을 만들어 낼 예정이다. 사랑스럽고 순수한 여인에서 오페라극장의 디바로 깜짝 성장하는 크리스틴 다에 역의 김소현과 임선혜, 이지혜, 김수도 캐스팅에 정점을 찍었다. 어둠 속 팬텀의 음악 천사이자 빛과 같은 존재인 크리스틴은 뮤지컬 무대에서 보기 어려운 고난도 기교의 넘버를 소화하는 역할로 클래식 성악을 구사하는 배우들이 특히 탐내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국내 뮤지컬 무대 대표적인 디바인 김소현이 올해 특유의 사랑스러운 감성과 수준 높은 테크닉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울릴 예정이다. 2016년 재연 이후 5년 만에 크리스틴으로 돌아왔다. 세계적인 지휘자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소프라노 임선혜의 크리스틴도 돋보인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무대의 격을 한껏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임선혜는 이번 시즌 10여회 스페셜 출연만 확정지어 더욱 귀하고 소중한 무대가 그려질 전망이다. 뮤지컬 디바의 새로운 계보를 잇는 이지혜도 재연과 삼연에 이어 세 번째로 크리스틴이 됐다. 이전 시즌에도 따뜻한 음색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크리스틴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예 소프라노 김수도 크리스틴의 새 얼굴로 처음 뮤지컬에 데뷔한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인 김수는 새로운 크리스틴을 찾기 위해 1년 가까이 진행된 오디션에 참여해 청아한 목소리와 뛰어난 곡 해석으로 당당히 배역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예 성악가의 도전과 활약이 기대를 얻고 있다. 뮤지컬 ‘팬텀’은 가스통 르루의 대표작인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매력적인 스토리와 아름다운 음악, 오페라와 발레 등 다양한 장르를 한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오는 19일 첫 티켓오픈을 앞두고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글로벌 In&Out] 은희경의 ‘빛의 과거’, 시공간을 넘어 배우는 문화/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글로벌 In&Out] 은희경의 ‘빛의 과거’, 시공간을 넘어 배우는 문화/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지난 학기 수업에서 한국 소설 몇 편을 읽었다. 은희경 작가의 장편소설 ‘빛의 과거’(2019)는 가장 최신작으로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주인공 ‘김유경’의 시점으로 2017년과 1977년의 시공을 넘나든다. 김유경은 친구, 즉 김희진이라는 인물의 소설을 읽으면서 신입생으로 기숙사에 처음 입사한 시기인 1977년의 추억을 상기한다. 1977년 신입생인 김유경과 그녀를 둘러싼 룸메이트와 동료들의 이야기, 신입생 환영회, 첫 미팅, 봄 축제, 학보사 경험, 오픈하우스, 연애사건들이 전개됐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김유경과 김희진이라는 인물의 시점으로 그려진 청춘문화이다. 한국에 오기 전 대중매체로 한국 문화를 배우면서 청춘문화 혹은 대학생 문화도 동시에 접했고, 한국 생활에서 그 문화를 직접 경험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1970년대의 청춘문화는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소설 속 당대의 대학생의 생활과 대학생 문화는 특히 눈에 띄었다. ‘빛의 과거’ 속 1977년은 감시와 검열의 시기, 즉 ‘긴급조치 9호’의 시기였지만 그 안에서는 정부와 맞서는 시위 외에 대학생 문화도 상당했다. 이 소설의 주요 인물들이 여대 기숙사생이라서 여성에 집중돼 당대의 대학생 문화를 두드러지게 담았다. 가령 단체 미팅, 연애와 축제와 관련된 대학생 문화가 그것이다. 특히 미팅 이야기는 자주 등장해 당시 대학생의 중요 관심사 중 하나라고 파악했다. 단체미팅을 할 때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이 쓰인 카드를 배부하면서 파트너를 정하자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한국의 대학생들처럼 미팅을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해 지금도 미팅문화가 존재하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소개팅과 같은 문화를 연상했다. 대학생들의 데이트 문화도 흥미로웠다. 1977년대에 주로 다방이나 찻집, 음악감상실 등과 같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데이트 코스로 정했다. 야구대회에서 데이트하는 대목도 발견됐다. 더 나아가 이 소설에서 대학교 축제도 활발했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에 오기 전에 듣고 왔던 대학교 봄 축제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직접 경험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대학교 축제에 대한 궁금증이 더 생겨 자료를 찾아보았다. 봄 축제는 1970년대 이전에도 이미 개최했다. ‘빛의 과거’에서 주인공이 강조한 “PDT(파트너, 드레스, 티켓)라는 항목”이 있다. 여학생들이 축제에 같이 갈 수 있는 파트너를 바쁘게 찾기 시작하고 축제에서 입어야 할 드레스를 맞춰야 되는 대목이 그려졌다. 대학생의 활기차고 다채로운 모습이었다. 1970년대는 검열의 시기이다. 이 소설은 그 같은 엄격한 시대적 배경에서 그 시대 청춘들의 분위기를 동시에 묘사해 ‘어둠’ 속에도 그나마 ‘빛’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았나 싶다. 주인공들의 시점으로 보는 이러한 문화적인 요소에서 제목에 들어 있는 ‘빛’이라는 단어의 뜻을 다시 생각했다. 은희경 작가 스스로 빛이 현재와 과거를 관통하는 이미지라고 언급한 적이 있지만 소설에 나타난 대학생 문화, 즉 청년문화의 묘사가 ‘빛’을 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빛의 과거’로 대학생 문화에 더 관심이 생겼다. 기말과제를 준비하면서 이 소설과 관련한 글들을 읽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는 평가도 읽었다. 아직 ‘응답하라 1994’밖에 보지 못했으나 평가에는 공감이 됐다. ‘빛의 과거’에서 1970년대 대학생의 모습을 엿본다면 ‘응답하라 1994’에서는 1990년대 대학생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국문학 작품에 큰 관심을 두게 두는 이유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재미도 있고 안에 포착된 사회와 문화적인 요소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
  • 검은 숲의 호수 끝엔 인어 아가씨가 할로! 초록 숲의 겨울 끝엔 하얀 구름바다 할로!

    검은 숲의 호수 끝엔 인어 아가씨가 할로! 초록 숲의 겨울 끝엔 하얀 구름바다 할로!

    “독일에선 새해에 뭐해? 한국에선 부모님께 세배하고 아이들은 돈 받고, 큰 자식들이면 부모님께 돈 드리고. 그리고 가족들이 다 모여서 떡국 먹어.” 새해마다 가족과 보내던 아침이 이젠 사무치게 그리운 시간이 됐다. ‘떡국’이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떡국은 또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소고기 반, 물 반일 정도로 푹 넣고 끓인 고기 국물에 혀가 착착 감기던 엄마 표 떡국도 베를린에선 먹을 수 없다. 그래도 육개장 국물로 만든 이상한 떡국 안 사 먹고(작년에), 올해는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은 것만으로도 새해를 두 배는 잘 시작한 기분이다. 할 줄 아는 음식이 늘어갈수록 퍽퍽한 외국살이도 조금씩 야들야들해지는 기분이다.●행운을 가져다주는 새해 도넛, 판쿠흔 “독일에선 특별하게 뭐 하는 게 없는데…. 그냥 산책해.” 그래서 우리는 지난 1년 내내 했던 것처럼, 또 1월 1일부터 공원에 가서 산책을 했다. 오후 4시가 넘으면 도시는 캄캄해지고 한밤중 같은 어둠에 휩싸이므로, 마음은 2시부터 급해진다. 가는 길에 베이커리에 들러 시나몬롤도 하나 샀다. “그러고 보니 베를린에서도 새해에 먹는 게 있긴 해.” 남자친구가 말했다. 도넛같이 생긴 ‘베를리너 판쿠흔’ 이야기가 시작됐다. “베를린에선 이 도넛을 판쿠흔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자란 독일 남부에선 판쿠흔은 그냥 팬케이크를 말하거든? 그래서 이 도넛을 말할 땐 판쿠흔이라 하지 않고 그냥 ‘베를리너’라고 불렀어. 베를린 사람들이야 굳이 ‘베를리너’를 붙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냥 판쿠흔이라고 부르는 거지.” 독일 지방에 따라 베를리너 혹은 판쿠흔이라 부르는 이 도넛은 우리에겐 던킨 도넛과 비슷한 모양새다. 가운데 구멍은 없고, 안에는 과일 잼이 들어 있다. 도넛 위에는 두꺼운 설탕 아이싱이나 파우더가 뿌려져 있다. 판쿠흔은 전통적으로 질베스터(새해 전야)나 로젠몬탁(사순절 전 월요일) 등 카니발 데이에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로 먹었다.(하지만 지금은 1년 내내 먹는다.) 원래는 자두 잼을 넣는 것이 정석인데 요즘은 살구나 딸기, 오렌지 마멀레이드 잼을 넣기도 한다. 여러 개를 사는 경우 겨자가 들어간 판쿠흔도 슬쩍 한 개 끼워 둔다. 이 겨자 잼(?)을 먹는 사람이 최고의 행운을 갖는다는 농담 때문이다. 행운이 찾아온다니, 베를리너들도 아무리 코가 알싸해져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먹지 않을까? 재미 삼아 다음엔 아이들과 함께 먹어봐야겠다.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해서 오래 걸었다. 공원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정초에 산책하는 게 정말 풍습이기라도 한 것처럼 유모차를 끌고 온 아빠,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꼬마, 함께 걷는 커플 등 모두 각자의 산책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베를린에서 살다 보면 알게 된다. 특별한 날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이렇게 많이 걷는다는 걸, 한겨울에도 공원 가는 게 당연한 일상이라는 걸.●검은 숲에서 가장 크고 깊은 호수, 뭄멜제 베를린에 오고 나서 보낸 첫 겨울은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해가 많이 안 나서 그렇지 영하로 내려가는 날도 별로 없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날도 많았다. 겨울 내내 눈은 거의 내리지 않았다. 드물게 한 번인가 왔던 것 같다. 눈은 남자친구 부모님이 사는 카를스루에(Karlsruhe)에 가서 제대로 보았다. 해를 넘겼으니 벌써 2년 전이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그의 가족들과 보내고, 그중 하루는 둘이 여행을 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검은 숲’에 가고 싶었다. ‘블랙 포레스트’(Black Forest)라는 이름에 매혹돼 언제고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독일어로는 슈바르츠발트, 하지만 독일어 발음이 낯선 내게는 ‘블랙 포레스트’라는 이름이 훨씬 신비롭게 다가왔다. 검은 숲은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다. 크게 북부의 검은 숲과 남부의 검은 숲으로 나뉘는데, 카를스루에에서는 북부의 검은 숲이 가깝다. 막연하게 동경하던 그곳을 사랑하는 사람과 가게 되다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쉽게 믿기지 않았다. 검은 숲의 북쪽을 향해 달리는 차 안은 따스하고 아늑했다. 이렇게 달린다면 몇백 시간을 달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위스를 여행하며 흔하게 보았던 샬레(오두막집)들이 독일의 검은 숲에도 똑같이 펼쳐졌다. 12월에도 파릇파릇한 풀들의 초원이 그대로 있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계절을 알 수 없는 초록색 초원을 지나 귀가 점점 먹먹해지는 산길을 달리니 이번엔 50m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우리를 반겼다. 미스터리한 안개들이 몰려왔고, 점점 키가 큰 전나무들이 덩치를 드러냈다. 바덴바덴의 산 중턱에 걸려 있는 안개들을 뚫고 더 높은 데로 오르자 이번엔 새하얀 구름이 산 위에서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말 그대로 구름바다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운해를 본 것이 얼마만인지, 태어나 처음 본 것처럼 감탄했다.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있는 풍경을 내려다보며 산꼭대기에 오르자 이번엔 사방이 한겨울로 바뀌었다. 캐나다 로키산맥을 달리며 보았던 몇십m 되는 전나무들이 이곳에서도 눈을 얹고 있었다. 로키산맥의 마을 재스퍼에서 머물렀던 별장도 떠올랐다. 그런 고요한 별장이 많은 이곳 바덴바덴에서도 하룻밤을 머물며 스파를 해도 좋겠다 생각했다. 바덴바덴은 독일에서 온천 휴양지로 유명하다. 산을 넘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뭄멜제(Mummelsee). 검은 숲의 남북을 잇는 분데스스트라세 500번 도로 옆에 바로 위치한 호수다. 북부에 있는 여러 분지 호수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뭄멜제’라는 이름은 흰 수련을 뜻하는 이 지역 언어 ‘뭄메른’(Mummeln)에서 유래했다. 오래전에는 이 부근에 흰 수련이 많았다는데, 지금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지금은 물고기도 살지 않는다. 인기 관광지답게 주차장이 다 차서 좀 멀리 차를 세우고 푹푹 꺼지는 눈길을 걸어 호숫가로 향했다. 호수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기념품숍을 영혼 없이 둘러보고 곧장 호숫가로 갔다. 계단을 오르니 느닷없이 호숫가가 펼쳐졌다. 호수를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눈 덮인 전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었다. 그리고 흰 숲의 풍경이 고스란히 호수에 투영됐다. 완벽한 데칼코마니. 신비로운 풍경이다. 하얀 눈의 정령들 때문에 해가 없어도 눈이 부셨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크게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인간을 도와준 인어들이 살고 있는 뭄멜제 뭄멜제는 여러 가지 전설을 갖고 있다. 그중 인어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옛적에 이 호수에는 인어들과 인어를 지키는 인어 왕이 살았다. 인간들이 이 지역으로 들어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자, 왕은 특별히 한 인어를 선택해 인간과 같이 살게 했다. 인어는 호숫가에 살면서 밤에 사람들을 돕고,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지냈다. 인어는 양털을 물레에 돌려 좋은 털실을 만들어 인간에게 주었고, 인간들은 이 아름다운 털실로 짠 옷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리고 인어 왕은 매일 새벽 1시가 되면 인어들을 불러 물속으로 데려갔다. 뭄멜제에서 새벽 1시는 인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불행은 언제나 그렇듯 인간들이 불러왔다. 돈맛을 안 인간들이 점점 돈을 버는 데에 혈안이 됐다. 화가 난 인어 왕은 더이상 인간을 도와주지 않고 인어들을 데리고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많은 작가들이 이 인어 이야기를 비롯해 호수에 전해내려오는 여러 전설과 관련된 내용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작품과 조각상들이 호수 곳곳에 설치돼 있다. 물레를 돌리는 인어의 모습이 새겨진 나무 조각상도 있고 호수 한가운데에서 피는 꽃을 손에 넣으면 투명인간이 된다는 마법의 ‘푸른꽃’도 세워져 있다. 호수 중간쯤 가면 베르그 호텔을 바라보고 있는 인어상을 볼 수 있다. 바위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이 인어가 사람들과 함께 살던 인어다. 이 인어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고 서로에 대한 연민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호수와 숲에 살던 인어들과 동물도 보살폈다. 안내판에는 가지고 있는 근심을 호수에 던지고 인어가 속삭이는 말을 들으라고 써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소원을 인어에게 빌라고. 그러면 인어가 웃으며 들어줄 거라고.●눈오는 날 다시 걷고 싶은 둘레 800m 호수 이곳 마을 사람들은 뭄멜 호수를 신성시했다. 호수에 돌을 함부로 던지면 폭풍우가 몰려오고, 반드시 해코지를 당한다고 믿었다. 호수의 깊이는 무려 18m. 저 캄캄한 물속에 지금도 인어가 살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깊이였다. 호수의 둘레는 800m다. 인어상을 지나고 나면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하얀 전나무 숲길과 더 깊은 산책 길로 이어진다. 남자친구의 낮고 얇은 초록색 스니커스는 눈길에 금세 젖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사진을 찍고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젖은 발이 엄청 시렸을 텐데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아서 몰랐다. “발이 점점 얼고 있어.” 짜증이라곤 조금도 섞이지 않은 그의 말이 호숫가의 얼음처럼 고요했다. 그제서야 눈치를 챈 나는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고 서둘러 걸어 나왔다.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와 베르그호텔의 따스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처럼 몸을 녹이고 따뜻한 수프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온기가 가득했던 실내에서 이 지방의 전통 음식을 나눠 먹었다. 사람들로 북적댔던 그 레스토랑도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 그 여행이 마지막이었다. 카를스루에도, 검은 숲도, 부모님도 다시 보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021년을 맞았다.남자친구의 가족들은 메신저로 매일 안부를 주고받는다. 얼마 전 부모님과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눈이 펑펑 내린 검은 숲의 사진을 보내왔다. 그곳에서 썰매를 타는 조카들의 모습도 함께. 다시 눈 덮인 검은 숲으로 가고 싶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마침 베를린에도 눈이 내린다. 지난해에는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눈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이번 주 내내 눈 소식이 있다. 다시 뭄멜제에 간다면, 지난번에 미처 하지 못한 소원을 인어에게 빌고 싶다. 올해는 사람들이 꼭 가족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아무리 힘들어도 앞으로 일 년에 한 번은 한국의 부모님도, 독일의 부모님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이것 하나만 지켜 달라고. 이동미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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