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어둠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35시간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제과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행사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강세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746
  • 「45년의 갈등」 2분만에 “해소”/「이」­PLO평화협정 하던날

    ◎클린턴,“지금은 평화의 위대한 순간”/“성경·코란의 가치를 함께 인정”/3천여명 참석… 백여국에 중계/양측 국기게양·국가연주는 없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3일 백악관 남쪽 뜰에 임시로 설치된 가로 4.8m 세로 7.2m의 단상위에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외무장관인 시몬 페레스와 PLO의 마무드 아바스 민족·국제문제국장(일명 아부 마젠)이 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30년 적대관계를 공식 청산. ○…이스라엘­PLO 평화협정조인식은 13일 상오11시15분(한국시간 14일 상오 0시15분)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아라파트 PLO의장과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함께 백악관 남쪽 뜰앞에 마련된 식장의 단상에 섬으로써 시작됐다. 클린턴대통령은 특별히 초청된 3천여명의 하객들 앞에서 『오늘 우리는 역사의 위대한 순간을 맞고 있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 클린턴대통령은 이어 중동평화정책을 위해 헌신했던 카터,부시 전임 대통령의 노고를 치하한후 『양측은 이제 과거의 적대감을 뒤로 하고 코란과 성경의 가치를 함께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클린턴대통령은 또 이­PLO평화협정이 성사되기까지 중재노력을 기울인 노르웨이의 홀스트총리의 공로에도 감사한다고 언급. 약 10여분간에 걸친 클린턴대통령의 연설은 『오늘은 여러분의 날이다.이제부터는 양측 어린이들의 미래에 반하는 일들을 해서는 안된다.앞으로는 여러분의 땅에 폭력이 찾아들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끝냈다. ○…클린턴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란히 자리한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아라파트 PLO의장은 이날 클린턴대통령의 연설중 상반된 표정을 지어 대조적. 특히 클린턴대통령이 『전세계는 오늘 라빈총리와 페레스장관,아라파트의장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을때 라빈총리가 엄숙한 표정으로 다소 굳은 표정이었던데 비해 아라파트의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를 과시. 서명식이 이뤄진 것은 11시43분(현지시간)부터 45분쯤까지 약 2분만에 끝났는데 45년의 갈등이 해소되는 순간치고는 너무나 짧은 것이었다. ○…이날 조인식행사중 최대 관심사였던 라빈총리와 아라파트의장간의 악수 성사여부는 「협상」없이 아라파트의장의 주도로 수월하게 이뤄졌다. 조인식이 끝난직후 아라파트의장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채 먼저 손을 내밀었고 라빈총리는 이를 맞잡아 흔들었다. 이때 클린턴대통령은 두사람 사이에서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CNN을 비롯한 미 4대TV는 13일 백악관 뜰에서 열리는 중동평화협정 조인식을 일제히 생중계하는 등 지대한 관심을 표명. CNN의 경우 조인식 몇시간 전부터 주요 앵커들을 총동원해 백악관은 물론 튀니지 등에서 소식을 전했으며 CBS,NBC 및 ABC도 간판 앵커들이 대부분 백악관 현장에 나와 키신저를 차례로 인터뷰하는 등 치열하게 경쟁. ○…이날 미백악관에서 거행된 조인식에는 취재진을 포함한 이스라엘 대표단 90명과 팔레스타인 대표단을 제외하고도 3천여명의 각국 대표와 사절단등이 참석. 미의회의원 수백명,미국내 유태·아랍 지역사회의 지도급 인사,카터행정부에서 캠프 데이비드협정 조인을 위해 일했던 관리,부시행정부에서 마드리드 회담에 참여했던 관리등도 초대돼 역사적인 조인광경을 지켜봤다. 또 이날 조인식광경은 전 세계 1백여개국에 TV로 생중계돼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가 역사적인 조인식을 지켜본 셈. ○…이날 서명대로 쓰인 테이블은 지난 1869년 미국의 그란트대통령이 구입해 백악관 조약실에 보관해왔던 것으로 지난 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사이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92년 미국과 구소련 사이의 협정에 각각 사용됐던 호두나무로 된 유물. ○…PLO는 이스라엘과의 역사적인 자치협정 체결을 기념,13일을 국경일로 선포.PLO는 12일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배포한 성명에서 『영웅은 바로 우리의 국민들이며 당신들이 새로운 팔레스타인의 날을 오게했다.이제 어둠은 걷히고 여러분의 국기가 사랑스런 팔레스타인 하늘 높이 자유롭게 휘날리고있다.이 모든 것은 여러분의 피와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역설.
  • 창작극회 「꼭두꼭두」 전국연극제 최우수상

    전북 극단 창작극회의 「꼭두꼭두」(곽병창작·연출)가 대전에서 열린 제11회 전국연극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우수상은 부산 극단 하늘개인날의 「동의보감」(이은성작·손기룡연출),대전 극단 새벽의 「언챙이곡마단」(김상열작·유치벽연출)이 차지했으며 장려상은 광주 극단 드라마 스튜디오의 「만인보」,대구 극단 온누리의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경남 극단 벅수골의 「봄날」,인천 극단 어울림의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등에게 돌아갔다.
  • 윤후명 소설 「여우사냥」(문학월평)

    ◎이 시대 정신의 정황 적실하게 묘파/“삶도 시간도 유예된것” 통찰력 돋보여 우리 문학에서 그려지고 있는 지금 이곳의 현실은,이번 여름의 날씨만큼이나 음울하고 암담하다.뜨거운 열정과 함성으로 가득찼던 광장의 흥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제 그 자리에 메마른 먼지와 휴지만이 나뒹구는 스산한 이 시대의 정경은,체험과 연배에 관계없이 많은 작가들의 붓끝에서 쓸쓸하고 침울한 어조로 그려지고 있다.새로 나온 계간지들에 실린 작품들은 그것을 확인시킨다. 윤후명의 새작품 「여우사냥」(상상 창간호)에서 주인공은,그의 이전작품의 주인공이 늘 그러했듯이 어디론가 떠난다.그곳이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다.윤후명에게 있어 「떠남」이란 언제나 지금 이곳에서의 삶의 되찾음,이 삶 속에서 깊게 뿌리내리기를 확인하고자 하는 과정임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고,이번 작품에서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다.삶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며 그 과정 속에는 무수한 우연만이 존재한다는 작가의 통찰은 그의 소설을 삶의 산문적 「보고서」나 어설픈 에세이의 수준으로 잔락시키지 않는 긴요한 자산이다.되찾아야 할 새로운 삶의 모습이 최소한도라도 그려지지 않고 언제나 그것을 마음 속으로만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또는 그 동어반복)이 나는 늘 불만이긴 하지만,우리의 삶은 유예된 삶이며 이 시간은 유예된 시간이라는 주인공의 쓸쓸한 깨달음은 우리가 처한 이 시대 정신의 정황을 적실하게 묘파하는 바가 있다. 윤후명과는 전혀 다른 삶의 역정을 걸어 온 젊은 작가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같다.공지영은 「꿈」이라는 단편(창작과 비평 가을)에서 『나는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길을 표시해 놓은 표지판 위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는 비통한 고백을 하고 있고,김영현은 「등꽃」(둥지)에서 우리는 이제 그리워 할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실천문학」가을호에 실린 세 시인들의 경우도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신진 시인 최영미는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혁명이 진부해졌다』고 말한다.최영미와 더불어 우리는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고 하던 김수영보다 더 기막힌 시대를 살고 있다.『나는 능욕당했어 내가 속한 시대에/너무 늦게 오거나 너무 일찍 온 게 아닐까』하는 황당한 느낌은 정종목의 시를 쓸쓸함과 외로움으로 채색하고 있다.감옥으로부터 돌아온 백무산의 신작시 11편은 「어둠 한줌을」「두레박으로 건져 올릴 수 없고」저 대중의 바다 「수많은 발길」「사람들 물결속」으로 가야한다는 단호한 의지를 여전히 표명하고 있지만,전체적인 어조는 「운동도 조금씩 꼬여버린 세상」의 변화를 참담하게 바라보는 화자의 정서에 의해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다. 이 작가들이 그려내는 어둠과 절망을 외면하지 말자.그러기는 커녕 더욱 깊이 절망하도록 부추겨야 한다.안이한 희망이나 낭만적 도피가 문학사의 줄기를 이루었던 적은 없다.절망도 양식(양식)이다.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그 길을 가자.끝까지,온몸으로.김철
  • 악의없는 가명도 적지않을 것을(박갑천칼럼)

    초대면의 남녀끼리 잠깐 문학으로 화제를 돌렸던듯하다.「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었느냐는 한쪽의 물음에 대해 상대방이 한 대답인즉­『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미처 못읽었군요』.한자리 우스개치고는 너름새가 있다. 이 우스개의 틀을 그대로 좇아본다면 서화얘기 끝에 이렇게 말한다고 할수가 있겠다. 『예,추사에 대해선 좀 알고 있습니다만 완당은 미처…』 추사나 완당이나 실학자이자 서법의 대가인 김정희의 호가 아니던가.그의 호는 1백가지 가까이나 쓰였다 한다.몇가지 적어보면­ 예당·시암·노과·농장인·천축고선생·노완·금천(금천)·삼십육구초당·고계림인·동방유일사·해당화하희아손·나가산인·소봉래학인·매화구주·묵소거사·승설학인·단파거사·승련노인… 등등. 옛사람들에게는 이름이 많았다.이름의 가짓수부터 그렇다.정식이름이라고 할 항렬에 따르는 관명이 있기 전의 아명이 있고 자가 있으며 호·별호가 있고(그것도 여럿)벼슬이 높을 때는 시호까지 있다.고종황제의 관명은 희이지만 아명은 장수하라는 뜻에서 개똥이또는 명복이라고도 했다.이순신의 자는 여해이고 시호는 충무이다. 호가 여럿인 경우는 김정희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가령 양광의 생육신 김시습 만해도 동봉·매월당·청한자·벽산청은·췌세옹외에도 설잠이라는 법호까지 지니고 있었다.하기야 금강산같이 이름많은 산도 있다.봄은 꽃이 뒤덮여 「금강」이며 여름은 계곡마다 녹음이 깔려 봉래이고 가을은 단풍이 고와 풍악이며 겨울은 뼈만 앙상하기에 개골이 되는것 아니던가.그러고도 열반·지달같은 이름이 더 있다. 실명제라는 것 때문에 시끄럽다.실명이란 곧 관명.그 관명아닌 이름으로 은행거래한 사람들이 가짜이름 많은죄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추사선생이 오늘에 살아있다면 「김정희」란 이름으로만 은행거래를 했을 것인지 어쩐지.본디 「이름명명」자는 어두움과 관계가 있다.어두운저녁(석)에 제이름을 입(구)으로 알려 남을 불러세웠대서 생겨난 글자이니 말이다(설문).숱한 가명은 그 「어둠속의 입」이던가.그렇다 해도 악의없는 가명도 적지않을 것을.
  • “폭우 틈타 폐유 방류”/호남정유

    ◎광양만 일대 오염/관계자 소환조사 【여천=남기창기자】 21일 상오 9시20분쯤 전남 여천시 묘도동 여천공단내 호남정유 여천공장에서 흘러나온 폐유로 광양만 일대 반경 2㎞의 바다가 오염돼 해경이 수사에 나섰다. 여수해경에 따르면 이날 해운항만청 여천출장소로부터 호남정유 여천공장 배수관에서 폐유가 바다로 흘러들어 기름띠를 형성,먼 바다로 번져가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긴급 방제작업에 나섰다. 해경과 여천시청은 이날 하오 8시까지 해경 방제선 1척,호남정유 소속 방제선 3척등을 동원해 폐유처리제를 살포하는등 방제작업을 벌였으나 어둠으로 작업을 중단하고 22일 방제작업을 계속 하기로 했다. 해경은 집중호우가 내린 지난 20일 밤부터 21일 새벽사이에 호남정유측이 배수관을 통해 폐유를 바다로 흘러보낸 것으로 보고 이 공장 관계자들을 불러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폐유 무단방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들을 형사 입건할 방침이다. 한편 호남정유측은 이날 폭우로 넘친 하천수가 폐유 이송라인으로 흘러들어 1백ℓ가량의 폐유가유출됐다고 밝혔다.
  • 막장의 생과 사(외언내언)

    1967년 9월6일 청양 구봉광산에서는 인간의지의 승리가 드러매틱하게 연출되고 있었다.지하 1백25m의 갱속에 갇혔던 광원 양창선씨(당시 37세)가 15일8시간,정확히 3백68시간35분만에 구출되는 순간이었다.갱목과 흙더미에 묻힌채 양씨는 칠흑같은 갱속에서 갱목 껍질과 지하수로 연명하면서 그 긴 기간동안 사투를 벌였다.인간이 전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견딜수 있는 한계는 얼마나 될까.물도 안마시면 10일이내,물만 마시면 50∼60일까지도 버틴다는 게 의학계의 학설이다.시간이 지날수록 허기에 지친 양씨는 외부와 연결된 통화에서 『참기 어렵다.차라리 폭파해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의지로 생명에 대한 초인적 집념으로 기적같이 살아남아 구조되었다.매스컴과 온 국민들은 그를 「인간의지의 화신」,「초인」으로 영웅대접을 했다. 우리나라에는 광산사고가 잦아 해마다 많은 인명을 빼앗기고 있다.갱도가 무너지거나 가스폭발이 주원인이다.79년10월 문경 은성광업소 사고때는 갱내 화재로 42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를 기록했다.탄광의 경우 석탄 1백만t 생산당 사망근로자는 우리나라가 4.9명(91년),미국의 0.1명,독일의 0.2명 등에 비하면 25배,50배나 높은 수준이다.안전시설의 미비때문이라고 한다.안타까운 일이다. 6명의 광원이 매몰되어 구조작업을 벌였던 태백시 한보에너지 통보광업소 사고는 단 한사람의 생존자만 구출되고 나머지 5명은 시체로 발견되었다.나흘동안 밤낮없이 계속된 구조작업을 지켜보던 국민들과 가족들의 애타는 염원이 허무하게 무너진 느낌이다.그러나 유일한 생존자 여종업씨(32)의 극적 구출은 감동적이다.지하 6백m의 막장 깜깜한 어둠속에서 혼자 남은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오줌과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구조반이 도착하기까지 91시간을 버텨낸 것이다.『나는 반드시 살아야겠다고 계속 되뇌었다』라고 구조된 여씨는 말한다.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그를 살려낸것 같다.
  • 한국화가 송수남씨(이세기의 인물탐구:34)

    ◎화폭에 시정 가득… “시인같은 화가”/수묵현대판화 개척… 「남천산수」는 독보적 경지/유연하면서도 예리한 운필로 화력 30년 빛내/가장 한국적인 소재에 집착… “동서양 넘나드는 화격” 꿈꿔 남천은 시인같은 화가다.그는 그림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그의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먼산 먼강 안개 서린 먼동,잔잔한 금강이며 섬진강 얼어붙은 겨울산하까지도 그의 그림속에는 교교한 시정이 담겨있다.공간에 뜬 몇개의 산이 담묵 농묵으로 꿈결같은 원근을 이루거나 또는 보석처럼 빛나는 수묵채색일 때도 아름다운 여백을 살려 화면전체에 서정시가 흐르는 듯한 향수를 품고 있다. 그가 쓰는 먹은 모든 색의 출발이자 모든 색깔을 포함한 색채다.어둠이 흩뿌리는 혼묵,비내리는 잿빛하늘의 회묵일지라도 단순한 검은색인가 하면 전혀 검은 색깔이 아닌 현묘 심묘의 먹색일색이다.그는 눈부시게 하얀 백지위에서 먹으로 백색을 백답게 살리고 먹색을 가장 먹답게 표현할 줄 아는 화가다. 색깔과 색깔을 배합해서 얻어지는 효과와는 달리 물과 먹의 비율은그 농도를 계산할 수는 없으나 모필이 한지에 닿는 순간의 유연성과 날카롭고 경쾌한 선조,그 번짐이 내는 의외의 조형에 흠뻑 빠져든듯 그는 지난 수년간 수묵을 매재로 하는 긴 실험과 모색의 시기를 거쳐왔다. 그리고 수묵추상 발색산수 동양화판화에서 다시 발묵산수로 이어지는 그의 수묵작업은 이제 포만과 방출의 단계를 통과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남천산수」를 이루고 있음을 인정받고 있다. ○충격던진 첫 개인전 그의 이런 실험정신은 그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할 때도 일관되게 지켜지던 그만의 방법이다. 이대입구 신촌 하숙집 골방에 틀어앉아 낙엽이란 낙엽은 모조리 주워다가 수북하게 쌓아놓고는 이를 화면에 이리저리 꼬아 붙이는 나뭇잎 콜라주,켄트지에 유화 한지에 수채화등 그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스스로 모색하고 타진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때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향의 뒷동산」과 「강언덕 버들개지 꽃샘바람에 한바탕 춤추고 나면 온산은 진달래가 물들어」샤갈과 드가를 변주한 듯한 영롱한 색채는 그가 범상치않은 화가로 탄생될 것을 그의 주변에 일찍이 예감시켰다. 화력 30년의 화가로서나 대학교수로서나 그는 이제 중진의 위치다. 그러나 스승의 문하에서 스승의 화풍을 이어받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혼자서 자신의 세계를 암중모색으로 성취한 편에 속한다.이에대해 그 자신도 「누구에게 배운 적도 영향을 받은 바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초기 「한국화」전이란 타이틀로 그가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한지와 먹,탑이나 기와지붕등 동양화재료와 한국적 테마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의 동양화에서의 설채와 운필을 벗어나 서양추상화를 보는듯한 충격을 던졌다. 원로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송수남 한국화는 새로운 공간예술을 실천한 예로서 70년대 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우뚝 설것임』을 다짐했었다. 70년대후반 실경산수가 한창 붐 일때도 그의 산은 진채표현의 중량감을 과시하여 적묵산수의 특징을 강조했고 담백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수묵과는 달리 강렬한 발색산수에서 중성적 느낌을 안겨주는 다채로운 채색과분방한 화풍을 구사해 보였다. 야트막한 구릉과 하천을 부드러운 선과 극도로 절제된 간결한 구성으로 암시하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거대한 산봉은 휘염의 범람인듯 화면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곳에는 시의 빛과도 같은 섬세한 장식이 둥우리를 틀고 우뚝한 삼각형,묵취와 묵광,산정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빨갛고 동그랗고 자그마한 해만으로 먹구름같은 화면에 눈시린 청량감을 뿌렸다. ○동양화서 추상 시도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양화가로서는 드물게 「산」을 주제로한 판화를 제작,목판·석판·실크스크린·모노타입등 4종류를 찍어 수묵화의 수묵현대판화로서의 새로운 화경을 열었고 88년 「자연과 도시」전도 빼놓을수 없는 탁발한 전시로 손꼽힌다. 굵거나 묽은 선으로써 시작과 끝을 흐려뜨리면서 드로잉적인 필선과 발묵의 번짐으로 독특한 도시의 서정을 구현,울창한 잡목숲과도 같은 어지러운 도시의 여러 풍경을 특징적으로 묘사해 냈다. 도시나 산하외에 그가 즐겨 그리는 미루나무는 먹으로 화면을 가득채운 동양화의 현대추상을 시도한 선시리즈와 고향으로 가는듯한 휴식을 살린 첨단과 향수의 두면을 대비적으로 선보여주고 있다. 붓끝에 힘을 주어 사군자를 치는듯한 한계를 자유하여 그는 이제 모필만이 갖는 유연성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만의 화격을 이루는것이 꿈이다. 남천으로서는 어느구석에도 그 겉모습에선 화가의 티는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런 「티」는 그에게는 지난 시절의 치기일지도 모른다.문학과 철학에 빠져 세상을 온통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니힐리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이른바 가난이면 가난, 슬픔이면 슬픔, 외로움이면 외로움이었던 회오리가 한바탕 지난후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훨훨 벗고 「평범」과 「무심」을 과장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굵은테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 그런거지 세상이란 그런거지」털털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지난 날이 흔적없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수류운공이 떠오른다. ○단체활동 개입 안해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어눌하고 치밀하지 못하여 지난 90년 한 신문사가 주는 예술대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상을 제정해주신 신문사에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여러차례 연습까지 해놓고는 막상 단상에 올라 다른 신문사 이름을 들먹이며 중언부언하는 바람에 관계자와 좌중을 난처하게 했었다. 또 두주불사로 학생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사심없이 놀다가도 갑자기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한국적이란 무엇일까.중국하면 도가 떠오르고 인도하면 명상이 떠오르듯이 「한국」하면 뭐가 먼저 생각나지?』심각하게 추궁하여 주위를 당혹케하기 일쑤다.이런 한국적인데 대한 집착은 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전이후 수십차례의 세계미술전에 참가하면서 생긴 징후다. 그는 전북 전주에서 농가 송대석씨의 3남매중 외아들.조부가 쓰던 먹과 벼루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 일찍이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소원은 언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성취하는 일이었다.소원대로 지금은 서교동 그의 집에 마련된 80여평의 드넓은 화실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이를 이루기 위해 그는 끝없이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가족은 부인 백명희교수(이대사대학장·54)와 1남2녀.그림을 그리는 자녀는 없다. 화가친구보다는 옛날 신촌하숙방에서 함께 뒹굴던 소설가 이제하 시인 강위석 등과 즐겨 어울리고 80년대 수묵화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 제자들이 있지만 화단에서의 단체활동등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화가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남천을 소탈하고 소박하다고 말한다.대체로 자신의 일에만 충실할뿐 그는 만사에 서툴고 머뭇거리는 형이다. 그러나 가까이 화단일부에서 그의 후배들이 말하는 남천은 뚝심과 정열,실험정신이 투철하여 기왕에 있어온 타성을 묵살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적 욕망이 꿈틀대는 야심파다.또는 감정이 격하고 제스처가 명확하며 일을 벌이면 끝장을 내고 한번 눈밖에 난 사람은 끝끝내 돌아보지않는 독선적인 면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의 완성을 설계 어느것이나 화가로서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일면일 것이다.사람이 나이들면 환경과 시대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듯이 아마도 남천 역시 그런 여러 측면을 복합적으로 지닐 수도 있다.그래선지 그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미술은 음악처럼 세계도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서슴없이 긍정한다.그리고 한때 지나치게 탐닉했던 화려한 색채를 단순하게 저버린것이 아니라 이를 오채의 먹으로 종합한다는 의지다. 그는 결국 시와 철학으로 살찌운 마음속에다 그의 수많은 붓들을 담가두었다가 어느날 하얀 한지위에 먹만의 조형으로 세계화단에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그는 그림의 완성,그의 그림의 끝을 알고있는 이시대 소중한 화가의 한사람임에 틀림없다. □연보 ▲1938년 전북 전주출생 ▲전주중앙국교 서중­공고졸업 ▲1956년 홍대 서양화과 입학 ▲군복무후 1961년 동양화과로 전과 ▲1963년 홍대 졸업 ▲1962년 국전입선후 신광여고­이대부고교사 ▲1967년 제9회 동경국제비엔날레 출품(동경) ▲1969년 송수남 「한국화」전(신문회관화랑) ▲1970년 인도 트리엔날레 출품(뉴델리) ▲1972년 한국현대작가7인전(샌프란시스코 아시아재단화랑) ▲1973년 송수남 개인전(신세계화랑) ▲1973년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상파울루)한국 동양화10인전(동경) ▲1974년 양지화랑 초대개인전 ▲1974년 현대 화랑 기획전(현대화랑)현대한국동양화전(나고야) ▲19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개인전 ▲1976년 한국현대 동양화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7년 한국 미술대상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8년 맥향화랑 초대전 ▲1978년 뉴욕 한국화랑 초대개인전 ▲1978년 한국미술20연 동향전(국립현대미술관) ▲1979년 한국미술­오늘의 방법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80년 하와이대 한국학센터 개관기념 초대전 ▲1981년 백상미술대전 한국현대작가 드로잉전(뉴욕 브루클린미술관) ▲1983년 송수남전(현대화랑) ▲1983년 초대 송수남 개인전(뉴런던 코네티컷대,뉴욕브루클린대 시카고 스코키시립미술관) ▲1984년 송수남 개인전(뉴욕 한국문화원) ▲1985년 송수남 판화전(조선화랑) ▲1986년 한국화,오늘과 내일 전망(워커힐미술관) ▲1986년 한국화 100연전(호암갤러리) ▲1986년 동양화 초대전(강남현대화랑) ▲1986년 송수남 초대전(부산진화랑) ▲1988년 자연과 도시전(동산방화랑) ▲1989년 남천 판화전(청작미술관)해마다 국립현대미술관 주관 현대미술초대전,한국의자연전,서울미술대전,현대작가초대전 등 단체전 수회출품 동아미술제심사위원,문예진흥원 미술대전심사위원,운영위원 역임〔현재〕서울 미술대전 운영위원,서울시 예술위원,홍대교수(홍대박물관장) 중앙예술대상수상 「수묵화」「동양화」「자연과 도시」「남천사군자(상·하)」
  • 새싹들의 과학캠프 「생명의 나무교실」 성황

    ◎“나무의 소중함 가슴에 새겼어요”/전국서 250명 참가… 나무껴안기 등 행사 다채 『나무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소.숨쉬고 뜻도 있고 정도 있지요.만지고 쓸어주면 춤을 추지만 때리고 꺾으면 눈물 흘리죠』주말인 7일과 8일 1천7백종의 나무들이 울창한 경기도 안양 서울대 관악수목원에서는 서울신문사와 서울방송의 후원(서울대 관악수목원 주최)으로 새싹들의 과학캠프인 「생명의 나무교실」이 열렸다. 92년 브라질 리우환경회의에서 「나무」가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상징물로 제정된 뜻을 널리 고취시키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펼쳐진 「생명의 나무교실」은 자연속에서 인간과 나무가 진솔한 마음으로 교감하는 대화의 광장으로 마련됐다.이번 캠프는 전국에서 온 67가족 2백50여명이 참석,「나무와 노래와 별이 있는 숲속의 밤」「내가 만든 숲속의 우리집」「나무 껴안기」「나무찾기 게임」「생명의 나무에 편지쓰기」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과의 일체감을 새롭게 다졌다. 생명의 나무교실은 먼저 이 캠프교장인 김태욱교수(서울대 농업생명대학)의 『인간에게 무한한 혜택을 주는 나무의 소중함을 일깨우자』는 개회사로 막이 올랐다.이어「숲과 나무와 그리고 인간」을 주제로 한 서울대 이돈구교수의 강의를 들은 뒤 「내가 만든 숲속의 우리집」(김성일교수)강의를 통해 자연과 함께 생활하는 법을 익혔다.또「물의 원천인 숲」특강(우보명교수)및 우리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소개한 슬라이드를 보면서 「은행나무도 꽃이 핀다」는등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진지함속에 관악의 밤이 깊어 가는줄 몰랐다. 특히 각자 준비한 촛불로 3m짜리 현판에 생명의 나무 불꽃을 만드는 「나무와 노래와 별이 있는 숲속의 밤」행사는 첫날 캠프의 절정을 이뤘다.『촛불이 어둠을 밝혀 주듯이 나무는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는 박희정양(서울 상계국6)의 시낭송속에 진행된 「생명의 나무 촛불심기」는 날로 파괴되어가는 지구촌환경을 되살리자는 염원을 담은 작으면서도 매우 간절한 외침이었다. 둘째날 행사는 서울 천일국교 전의식교장선생님의 「나무이야기」로 시작됐다.상오9시 수목원 잔디밭에서 열린 강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자라는 나무는 신갈나무·소나무 순』이며 『달맞이꽃은 미국이 원산지이고 해당화의 꽃말은 온화함』이라는 등의 내용으로 이뤄져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과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대부분이 도회지 출신인 참가자들은 5개반으로 나뉘어 교사를 따라 숲속을 돌아다니며 나무잎을 만지고 꽃잎을 세어 보면서 나무의 고마움과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았다.특히 『북한의 국화는 함박꽃』『일본국화인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일본이 아닌 제주도와 대둔산』이라는 지도교사의 설명에 놀라워 하기도 했다. 1시간30분동안의 나무체험을 끝낸 일행은 다시 잔디밭에 모여 문명의 이기로 죽어가는 지구를 상징한 직경 2m짜리 대형 지구봉에 녹색 스티커를 붙이며 『우리 손으로 지구를 푸르게 가꾸자』고 다짐했다. 『나무야’너는 우리에게 산소와 물을 주는데 우리는 너를 상처내며 괴롭히기만 했구나』『생명의 나무야’너를 죽이는 것이 우리 자신을 죽인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이틀동안의 자연체험으로 보고 배운 느낌을 오색종이에 써서 생명의 나무에 걸어준 참가자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생명의 나무로 지난해 뽑힌 27년생 아그배나무 주위를 맴돌며 이 나무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보살펴 주겠다는 다짐으로 이번 캠프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청주에서 세 식구와 함께 온 지차근씨(42)는 『이번 캠프가 내일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에게 자연의 존엄성과 신비로움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며 『이런 종류의 모임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대전서 24일부터 전국연극제/9월6일까지/14개 시도 대표극단참가

    ◎엑스포 관객들,지역연극의 현주소 한눈에/창작극 1편뿐… 김상열작 「가람」 등 눈길 제11회 전국연극제가 오는 24일부터 9월6일까지 14일동안 「93 엑스포」가 열리는 대전 시민회관에서 열린다.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한국연극협회가 공동주최하고 대전직할시와 연극협회 대전지회가 공동주관하는 제11회 전국연극제에는 지역별 예선을 거쳐 선발된 전국 14개 시도의 대표극단들이 1일 2회씩(하오4시30분 7시30분) 공연을 한다. 「93 대전 엑스포」 장외 문화행사의 하나로 열리는 금년도 전국연극제는 엑스포 관람객들에게 우리나라 지역 연극의 현주소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마련된 행사.23일 국립극단이 극단 사상 처음으로 호평속에 한달간 장기공연했던 창작극 「피고지고 피고지고」(이만희작·강영걸연출)가 전야제 축하공연으로 열려 축제 분위기를 조성한다.이어 24일 대전 대표인 극단 새벽의 「언챙이 곡마단」을 시작으로 열띤 경연에 들어간다. 지역연극의 고른 발전과 함께 극작가를 비롯,지역 연극인들의 발굴의 장이기도 한 전국연극제에 그러나 올해에는 창작극이 1편밖에 안돼 아쉬움을 준다.반면 한 극작가의 작품이 3편씩이나 공연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지역 극단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김상열씨의 경우가 그것으로 그의 작품 가운데 「언챙이 곡마단」(대전대표)과 「치악무대」(강원대표),「가람」(제주 대표)등 3편이 공연된다.이밖에 서울연극제 대상수상작인 극작가 이만희씨의 「그것은 목탁구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대구와 인천 대표들이 공연해 관객들에게는 같은 작품을 비교해 보는 관극의 재미를 더해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무대에 지역작가들의 신작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점과 관련해 연극계 관계자들은 『극단들이 지나친 경쟁의식을 앞세워 서울무대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을 주로 출품하는 안이한 태도는 지역연극의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고 우려했다. 최우수상(대통령상)을 비롯해 7개 단체상과 연출·연기등 7개 부문에 대한 개인상 시상은 오는 9월7일 상오11시에 열린다.최우수상 수상작은 서울연극제에 초청돼 오는 10월6일과 7일 서울공연도 갖는다.
  • 분장미술가 전예출씨(이세기의 인물탐구:33)

    ◎천의얼굴 재현하는 분장의 마술사/작품 철저히 검토,배역에 꼭맞는 “인물 창출”/재료 직접제조… “생명력 깃든 화장기법” 정평/50년대부터 불모지 개척… 골상학 등 관련분야에도 조예 「배우란 한시대의 축소판이자 간결한 연대기지.죽어서 묘비명이야 어떻게 씌어지던 살아 있을 때 구설은 듣지 않는 게 상책이오」 어둠침침한 푸른 조명속에서의 햄릿의 절규는 세상의 끝은 바라보는 듯한 흐느끼는 눈빛으로 인해 더욱이나 관객을 전율케 한다.우수에 찬 눈동자엔 형용할 수 없는 번뇌와 오뇌가 꿈틀거리고 허공에 메아리지는 그의 독백은 메마른 입술에서 터져나오는 검붉은 피와도 같다.머리카락 한올,클로디어스왕을 저주하는 손가락 마디마디에도 주인공의 참담한 절망과 갈등이 흩날린다. 검은 그늘이 짙게 드리운 검푸른 눈동자,검붉은 피를 토해내는 듯한 메마른 입술,증오심과 원망어린 칙칙한 잿빛 금발,허공중에 허우적거리는 야윈 손가락 등등 이를 표현해내는 것이 전예출씨의 예술영역이다. ○눈썹 한올에도 신경 그는 남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귀여운 여인 올렝카가 사샤를 희생적인 모성으로 사랑하고 그리고 늙고 병들어 쭈그러들 때까지,또 「내일은 또 내일의 바람이 불겠지」의 스칼렛 오하라가 오만방자한 얼굴을 퇴색시키고 한사람의 여성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무대위에 재현시키는 바로 천의 얼굴,수만의 표정을 그려내는 분장의 마술사다. 대본을 받으면 배우들이 대사를 외고 동작연습에 임하는 것처럼 그도 똑같이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성격분석,작품에서의 비중과 조화를 세밀하게 파고든다. 몇차례씩 작품을 읽어보고 다시 소리내어 대사를 외어보면서 그 인물이 주변의 인물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연극속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부모와 학교친구,취미와 일상적인 일거일동을 철저히 연구하여 디자인에 들어간다.연극에 등장하지 않는 부모까지 연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만일 「대학교수」일 경우 학자집안에서 나온 교수와 장사꾼의 집안에서 나온 교수는 그 인상과 표정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분장실에서 배우를 분장시킬 때의 그의 열정은 조각가나 화가 못지않게 엄숙하고 진지하다.주름살 하나에도 배우의 피부조직을 살펴 50대의 주름살,60대의 주름살을 어느때는 곱게,어느때는 짙은 골을 파면서 역할이 살아온 성장배경,인생역정,앞으로의 변화를 선명하게 구별해나간다. 또 단순하게 인위적으로 그려진 선이 아니라 분노와 울화,기쁨과 성취,절망과 좌절의 강도에 의한 눈썹 한올에도 생동미와 처절미를 연출해낸다. 조각가가 인체해부학적 측면을 고려하듯이 그는 해부학과 골상학,세포조직과 근육분포,미술에서의 색채학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안목을 지니고 있다.그리고 내가 구상한 비극적·희극적 인물,냉소적이며 초연한 것,모반을 꾀하거나 사색적 인물들이 붉은 조명아래서 당초 시도했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는가,카메라 앵글에 의해 효과적인 신을 이루고 있는가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염두에 둔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고는 누구나 그 일에 파고들 수 없을 것이다.한낱 「분장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분장의 불모지이던 50년대부터 홀로 외롭게 몸부림쳐왔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유별난 편이다. ○일에 강한 긍지지녀 공연작품이나 영상작품에 이르기까지 작품분석 없이는 손댈 수 없다는 시각에서는 「분장」은 연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모든 테크닉이 미술을 동반한다는 점에선 어디까지나 특수한 미술분야에 속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그는 물론 분장이 해야 하는 의상·소도구·조명을 모조리 꿰뚫고 있다.그리고 어떤 대상을 만나도 흑을 백으로,세모를 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으며 분장을 거치지 않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극중인물로 등장할 수 없음을 투철히 믿고 있다.지금 현역에서 뛰고 있는 30대이상의 연기자는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분장에 관한 한 그는 도무지 남의 간섭을 용납치 않는다.「분장을 어둡게 하라」 「밝게 하라」는 주문을 받아들여본 적이 없다.이미 작가·연출가와 모든 의논을 끝낸 뒤 분장기법을 정리한 다음엔 배우가 만일 『여긴 강조하고 볼은 좀 죽이고 싶다』고 말하면 그는 두말없이 『네가 하라』고 붓을 던져버린다.상대방이 극구 사과해도 묵묵부답,두번다시 상대하지 않는다.주문하는 사람은 그때그때 즉흥적인 기분과 감상을 말하지만 그로서는 한달이상 신중한 검토와 구상을 끝낸 마당이다.여러 변명이 필요없었다.전체적인 구도와 조화가 깨지기 때문이다. 아집과 고집,자기주장이 강하다.그런 그의 고집불통으로 인해 주변에서는 간혹 곤혹스러워할 때가 많다.그런 상충된 의견으로 인해 격돌이 오갈 때도 있다.그러나 그의 오랜 경륜과 노련미는 짧은 안목을 묵살시킨다.결국 그가 옳았고 그의 손에 맡기는 것이 완벽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모든 예술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는 다방면에 다재다능한 편이다. 황해도 황주 중농의 아들 3형제중 막내.황주남중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부터 그는 연극반을 조직하여 학생들에게 연극을 지도했다.직접 극본을 각색하여 연출을 맡았고 목재상을 경영하는 형님(전창신씨)가게에서 나무를 얻어다가 세트를 만드는 등 연극에 열을 올렸다. ○다방면에 다재다능 일상적인 평범한 얼굴이 전혀 다른 여러개의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점때문에 분장에매료됐는지도 모른다.「베니스의 상인」이 될 수도 있고 「벚꽃동산」의 트로피모프,또는 라스콜리니코프,레트 버틀러나 애슐리가 될 수도 있다. 아버지를 독살한 삼촌에 대한 복수와 원한,「사느냐 죽느냐」를 외치는 햄릿의 광기에 번뜩이는 눈빛을 그리며 그도 언젠가 무대에 설 날을 기다려 왔다. 6·25가 나기 1년전 그는 형의 친구가 부소장(윤묵)으로 있는 북조선촬영소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부소장은 그에게 교통성산하의 교통성극단에 소개해주었다.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후에 월남해서 영화배우로 활약한 김칠성씨. 「춘향전」으로 데뷔후 50년6월 소련 번역극을 가지고 원산공연,외금강공연이 갑자기 취소되고 함흥공연길에 올랐다가 6·25를 만나 1·4후퇴때 월남했다. 부산 피란지에서 그가 할 것이라곤 연극밖에 없었다.어렵게 극단 「아랑」을 조직하여 분장에 출연까지 겸하면서 경상도일대를 유랑했다.분장을 하다보니 자연 일어로 된 화장품제조에 관한 서적 등을 구해 읽어야 했고 문득 화장품을 만들어 팔면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들었다.립스틱공장을 차렸으나 제품보다 케이스가 조잡스러워 망해버리고 말았다. 서울에 올라와 본격적으로 분장에 손댈 때도 그는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쓰곤 했다.분장에 필요한 화장품이 전무상태인데다가 외국제품들이 우리피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더구나 유럽이나 중국은 창백미를 강조하는 데 비해 우리는 깊고 그윽한 유백화장술이 무대에서 자연스러웠다.지나치게 붉은 터치인 미국 화장품은 무대에서 튀고 조명아래서 겉돌았다. 여러가지 재료를 배합해서 만든 화장품을 피부에 발라 테스트를 해본 다음 다음날 분장에 사용했다.그래서 그만의 독특한,남에게 공개되지 않는 수십여종류의 비법을 비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특수분장중 대표적인 것은 TV문학관 「등신불」 「에바다」에서의 문둥병환자의 이그러진 얼굴이다.출연자의 열굴형을 여러 각도로 본뜬 다음 이를 다시 모자이크해서 흉터를 만들고 여기에 면도거품을 발라 분장,열을 가해 거품이 녹는 것과 동시에 피부가 정상회복하는 화면을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연극·오페라에 집착 거의 매일이다시피 방영되는 TV드라마외에 그가 집착하는 것은 연극·오페라 등 무대분장이다.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배우의 분장한 모습은 또렷한 명암과 윤곽을 드러내면서 서양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그리고 광기어린 배우의 눈빛,외로운 그들의 몸부림은 그가 그려내고 싶던 무대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도 멜방달린 바지에 베레모,아침9시면 동숭동 그의 작업실에 나와 청년같은 정열로 강의와 작업에 임한다.그에게 배우려는 제자·후배들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한가지라도 더 가르치고 싶어서다.그는 겉모습의 분장보다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숨쉬는 생명력 깃든 분장을 지도한다.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동서고금,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든 인간상들이 「분장을 통해서만 극중인물로 재현」되고 「탄생」된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준다.그가 존재하는 한 이 분야에서 단연 선두주자이며 독보적 위치지만 든든한 뒤를 잇는 후배들로 인해 이제 그는 더이상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보◁ ▲1927년 황해도 황주 출생(본명 전윤신) ▲1942년 황주농업중학교졸업 ▲1945년 경성법정대 졸업 ▲1945∼48년 황주남중 교사 ▲1949∼50년 교통성극단 단원 연극 「춘향전」 데 뷔 ▲1951년 부산에서 극단 「아랑」 창단 ▲1953년 극단 「신청년」 단원 ▲1954년 극예술협의회 회원 ▲1955년 영화 「안중근」으로 분장 및 연기 ▲1956년 국립극단 단원(국립극단·드라마센터분장담당) ▲1961년 KBSTV로 입사 ▲1961∼88년 서라벌예대·한양대·동국대 출강 ▲1963년 TBC 입사 ▲1981년 방송통폐합으로 KBS복귀 분장실장역임 ▲1988년이후 프리랜서 독립기념관 임정요인 33인 분장 ▲1989년 개인작업실 아트파워 개업 ▲1993년 개인작업실 동숭동이전 전예출 프로메이크업 설립 ▲현재 영화·연극·TV·CF 및 오페라공연 분장및 한양대음대 특강. 장준옥여사와 1남3녀 국립극단·드라마센터·민중극장 공연작품중 연극­「햄릿」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빌헬름텔」 「죄와 벌」 「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결혼중매」 「대수양」 「베니스의 상인」 「리어왕」 「태양을 향하여」 「산불」 「욕망」 「국물있아옵니다」 「갈매기」 「세자매」 「벚꽃동산」 「파우스트」 「천사여 고향을 돌아보라」 「세인트 존」등 1백50여편. 오페라­김자경오페라·국립오페라·서울오페라·글로리아오페라 공연작품중 「토스카」 「라보엠」 「카르멘」 「춘희」 「나비부인」 「마적」 「돈 조반니」 「돈 카를로」 「아이다」 「사랑의 모약」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 「트란도트」 「피가로의 결혼」 「파우스트」 「심청」 「삼손과 데릴라」 「코지 판투테」 「라 조콘다」 「리골렛토」 「천지창조」 「운명의 힘」 「세빌리아의 이발사」 「펄리아치」등 2백여편. 영화­「황성옛터」 「대지」 「황혼열차」 「고려장」등 40여편,TV드라마(문학관등) 1천여편.
  • 죽은 자의 춤/일 부토 서울 페스티벌

    ◎8월20일∼9월4일 창무극장서 막올려/일 춤의 3대 주류하나… 정상급 13명 출연/사체의 몸부림·영적 에로티시즘에 “전율” 가부키(가무기),노(능)와 함께 일본춤의 주류를 이루는 「죽은 자의 춤」부토(무답)가 한국에 상륙한다.창무예술원초청으로 8월20일부터 9월4일까지 창무포스트극장에서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는 오노 가즈오를 비롯,야마다 세츠코등 13명의 정상급 일본 부토무용수가 참가한다. 지금까지 일본의 몇몇 부토무용가가 개별적인 국내공연을 가진 적은 있었지만 「일본 부토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특히 현대 일본부토계를 대표하는 오노 가즈오(86)가 펼치는 「라아르헨티나용」공연은 부토예술의 진수를 맛볼 흔치 않은 기회다. 부토는 지난50년대말∼60년대초 일본의 전후사회에 대한 비판정신을 바탕으로 히지가타 다츠미(작고)에 의해 시작됐다.이후 30여년의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지난85년부터는 보수적인 일본NHK에서 공연을 중계할 정도로 「일본인에 의한,일본인을 위한,일본인의 춤」으로 자리를 잡았다.일본뿐아니라 미국,유럽등지에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새로운 춤,현대무용의 중요한 한 장르로 대접받고 있다. 하얀 횟가루로 온몸을 분장한 반라의 무용수가 피빛 혓바닥을 내밀며 추는 기괴한 동작,영적인 에로티시즘,반항적 육체언어는 부토를 「어둠의 춤」「침묵의 춤」으로 알려지게 했다.「부토는 일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사체이다」란 경구를 남긴 창시자 히지가타 다츠미의 표현처럼 본디 부토는 죽은 자들의 욕망을 재현하는 몸짓이 주를 이룬다.그래서 「사자와 교감하기 위한 위령곡」이라고 일컬어 지기도 한다. 한여름 공연가를 오싹하게 만들 「일본 부토 페스티벌」은 ▲히지가타 다츠미의 공연기록영화상영(8월20일)을 시작으로 ▲오노 가즈오의 「라아르헨티나송」(21∼22일) ▲우에스기 미츠요의 「그여자」와 다케우치 야스히코의 「중력의 도시」(24∼25일) ▲조쿠조노 다비그룹의 「일촌의 월」(27∼28일) ▲부토사·텐케이그룹의 「무시가시이야기」(29∼30일) ▲오모리 마사히테의 「아모니테의 손톱」,고이테루의 「지하」(9월1∼2일) ▲야마다 세츠코의 「천체의 가을」공연및 전체자유토론(3∼4일)순서로 진행된다.
  • 박살난 기체… 곳곳 “살려달라” 비명/아시아나기 추락 참사의 현장

    ◎널린 파편속 시신 뒤엉켜 아수라장/구겨진 시트속 부상자 탈출 안간힘 「아수라장」「아비규환」­연옥이 바로 거기였고 지옥이 바로 그곳이었다. 순간간에 6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해남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사고현장.박살난 기체의 잔해와 주검들이 널려있는 매봉산중턱엔 희생자들의 비명이 뒤엉켜 인재가 빚은 사고순간의 참혹상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사고소식이 알려지자 즉각 군부대와 경찰 인근주민등 구조반원이 현장에 달려가 생존자들을 옮겼으나 사고발생후 2시간 넘은데다가 사고장소까지 접근이 어려웠고 장마날씨로 어둠이 드리워 밤샘 구조 작업에 애를 먹기도 했다. ▷현장◁ 여객기가 추락한 마산리 매봉산 8부능선 사고현장에는 세조각난 비행기동체로부터 반지름 1백m까지 사체가 널려져 있고 『살려달라』는 생존자들의 아우성이 산속을 메워 추락현장의 참혹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사고현장에 처음 도착해 여자승무원을 헬기로 후송한 해남군청 직원 김명희씨(32)는 『현장주변 나뭇가지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체가 걸려있고어린이 부상자들의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다』고 전했다. 한국전력은 날이 어두워지자 구조작업을 돕기위해 현장에 전기가설을 했으며 주민 3백여명은 군병력 50여명과 함께 마을에서 현장까지 비상도로를 내는 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한편 생존자 44명 대부분은 비행기 뒷좌석에 앉아있다.목숨을 건진 것으로 밝혀져 앞좌석 VIP승객들의 운명과는 대조적 이었다. ▷교통부◁ 황인성국무총리는 이날 하오 10시30분쯤 교통부 상황실에 들러 정종환항공국장으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사고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시설 또는 운항등에 문제점이 발견될 경우 예산을 최대한 활용,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시. ▷사고기◁ 미 보잉사가 지난 90년7월 제작한 쌍발제트기로 지난해 11월 2천7백만달러에 도입한 중고비행기이다. 이 여객기는 ▲무게 31.2t ▲최대 항속거리 5만1천95㎞ ▲최대 항속시간 6시간45분 ▲연료탑재량 3만5천5백83파운드 ▲전장 31m ▲폭 28.9m이며 탑승인원은 1백27명. 사고기는 아시아나 항공이 보유한 26대의 비행기중 가장 작은 기종으로 아시아나측에 모두 4대가 있다. ▷생존자 명단◁ ◆DB 편집자주:명단생략 KHM 9307272306참조 ◎동체 산중턱 받고 7백m 미끄러져 ▷발생◁ 이날 사고여객기는 운항이 비교적 순조로워 예정대로 하오3시15분 목포공항에 도착하는듯 했다.황인기기장은 도착예정시각쯤 관제탑과 교신을 통해 『강풍말고는 기상상태가 양호하다』는 착륙지시를 받고 3시24분쯤 1차착륙을 시도했다.그러나 초속 18m이상의 강풍과 짙은 비구름으로 착륙은 불가능,실패였다. 여객기는 28분쯤 2차착륙도 실패한뒤 3시38분 『다시 연락하겠다”는 교신을 끝으로 통신이 끝으로 통신이 끊겼다. 사고여객기는 목포상공을 벗어나 해남쪽으로 기수를 돌린뒤 3시41분쯤 레이더망에서조차 자취를 감췄고 잠시뒤 비구름에 가린 매봉산 중턱 「절골」에 기체 앞부분이 부딪치면서 추락,7백m남짓 미끄러져 기체는 세동강이 났다. ◎가족들 문의전화 빗발/주민·공무원 헌혈행렬 ▷병원◁ 사고현장에서 경찰과 군·공무원·주민들에 의해 구조된 부상자들은 해남병원과 해남우석병원·목포한국병원·목포기독병원등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부상자들의 얼굴과 다리등은 피로 뒤범벅이 돼 사고당시 처참했던 모습을 실감케 했다. 부상자들이 입원해 있는 이들 병원에는 탑승자 가족들의 생존여부를 묻는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병원주변에는 마을주민들이 몰려들어 환자들의 쾌유를 빌기도. 부상자들은 병원으로 후송된뒤 응급실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은 다음 입원실로 옮겨 입원치료를 받고 있으나 병원측은 수술하는데 필요한 혈액이 크게 부족해 어려움을 겪기도. ▷사고기기장◁ 서울 서초구 방배동 328의2 황인기기장집에는 황씨의 부인(44)과 맏딸 효정양(19),효석군(16)이 문을 굳게 잠근채 일체 외부인과의 접촉을 끊고있다. 황씨의 부인은 남편의 사고소식을 하오6시쯤에야 TV뉴스를 보고 안뒤 실신,자식들의 간호를 받고있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장 황씨는 공군소령출신으로 지난 88년7월1일 아시아나항공에 입사,비행8천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가족주변◁ 박태환 부기장(40)의 집인 서울 은평구 신사동 140의 미성아파트 3동 1505호에는 가족및 동료들이 뜻밖의 비보에 모두 침통한 모습.박부기장의 부인 김은자씨(39)는 남편의 소식을 듣고 실신해 쓰러졌으며 친척과 동료승무원들은 취재진이 방문하자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며 문을 굳게 걸어 잠근채 안에서 통곡하거나 눈물을 삼키기도.
  • 업체 과당경쟁… 수출전망 “어둠”/기술부족·자금난 호소

    ◎무협,1천개업체 조사/“여건은 다소 호전” 수출여건은 나아지고 있으나 해외에서 우리 업체끼리의 과당경쟁 및 기술과 자금의 부족으로 향후 수출전망은 밝지 않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국내 1천여 수출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93수출산업실태」에 따르면 올해 수출환경이 호전될 것이라고 대답한 업체는 45.6%로 지난해 18.4%보다 훨씬 높아졌다.전기·전자·선박 등의 부문에서는 60%이상이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체들은 해외마케팅전략의 미흡,기술개발의 부족,자금조달의 어려움 등이 선결되지 않으면 수출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해외마케팅의 어려움으로 31.8%가 국내 업체끼리의 과당경쟁을 첫번째로 꼽았으며 정보부족(23.1%),마케팅인력의 부족(20.9%) 순으로 지적했다. 기술의 애로는 40.8%가 개발인력의 부족을,37.4%가 개발자금의 부족 등을 각각 꼽았다.자금조달에서는 48.3%가 담보문제를 첫번째로 지적했으며 양건예금(꺾기)도 15.2%나 차지했다.제도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빌릴 때도 53.2%가 13%의 높은금리를 물고 있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대답했다. 때문에 신발·섬유·컨테이너·금속·무기화학 등의 업체는 수출이윤이 2%도 안되는데도 수출가격을 올릴 생각을 못해 채산성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 이만희작 「피고지고 피고지고」/배금주의 세태 통렬히 풍자

    ◎칠순 앞둔 세 노인의 보물탐사 묘사 연극계 화제작인 「불 좀 꺼주세요」와 「돼지와 오토바이」를 쓴 극작가 이만희씨의 또 다른 작품 「피고지고 피고지고」가 오는 20일까지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국립극단은 지난 90년부터 창작극 개발을 위해 중견극작가들에게 작품을 의뢰,공연해오고 있는데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그 다섯번째 무대이다. 이 작품은 나이 칠십을 바라보는 왕오(이문수반),천축(김재건반),국전(오영수반)등 일확천금을 노리는 세노인의 이야기.순탄치않은 인생을 살아온 노인네들의 순진무구한 얘기로 인물성격과 극적 상황에 따른 현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대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 노인은 왕년에 사기,절도,밀수등 한가락씩했던 전과범들.어느날 혜초여사(손봉숙반)로부터 보물이야기를 듣고 신라시대의 값진 유물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골짜기 옛 절터를 몰래 파기로 마음을 정한다.절터가 주요군사시설이어서 삼엄한 경비에 도굴이 쉽지 않자 궁리끝에 산아래에 화원을 만들어 오갈데 없는 노인들이 꽃을 재배하며 연명하는 것처럼 위장한다.그리고 거기서 나온 흙은 서울에서 화원을 경영하는 혜초여사에게 보내 3년동안 감쪽같이 도굴작업을 해왔다.보물이 없는 건 아닐까 의심도 하고 백만장자 꿈도 꾸며 세상과 격리된 생활을 해오던 이들 세노인은 그러나 세상일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에 젖어든다.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불 좀 꺼주세요」등에서 작가 이만희씨와 콤비를 이뤘던 강영걸씨가 연출을 맡았다.이번 공연은 국립극장의 상설공연장화라는 취지에 맞춰 국립극단 공연으로는 처음으로 20일까지 장기공연을 한다.공연시간 하오 7시30분(토·일 하오4시).문의 274­1151.
  • 일선교사들의 현장수기 모음집/「우리반 우리 아이들」(화제의 책)

    전근가는 선생님을 위해 음료수 한통을 사들고 먼 시골 밤길을 달려와 창문을 두드리던 근석이,졸업식장에는 차마 못 나오고 어둠 깔린 교무실로 찾아와 담임선생님 발치에 업드려 그간 온갖 고생을 감수하면서 자기를 졸업시켜 준 것에 눈물로 답하던 사고뭉치,아이들과 함께 야영을 갔다가 부모와 자기의 장래를 걱정하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가난한 반 아이들의 한숨을 지켜보고는 가슴을 친 시골학교교사,『선생님,나중에 저희 술집에 놀러오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퇴학당한 중3짜리가 『사람대접을 받고 싶었다』며 동급생들 보다 한해 먼저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해 찾아온 아이 등.교사들이 쓴 감동적인 50여편의 현장수기 모음.우리교육 5천원.
  • IAEA 일단 안도… 대북사찰 재추진/핵금탈퇴 유보이후

    ◎원자력기구 반응과 움직임/“영월핵사찰 수용” 북서 언질 추측/특별이사회 곧 소집,대북전략 재점검 북한이 12일 미국과의 뉴욕회담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유보키로 함으로써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북한이 NPT탈퇴를 강행했을 경우 IAEA는 출범이후 최초로 존립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은 물론 면전에서 권위와 기능이 유린되는 비참함을 맛보아야 했다. 따라서 IAEA는 북한의 이번 NPT탈퇴 유보를 크게 환영하며 아연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IAEA주변 한켠에서는 북한핵문제가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고는,다시말해 북한으로부터 의혹의 대상인 녕변인근 2개 핵시설물에 대한 특별사찰 수락을 받아내지 않고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내면적으로는 북한이 미국에 이 부분에 대한 모종의 언질도 주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섞인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제 IAEA는 다시 할 일이 생김으로써 크게 두갈래 방향으로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다시 핵안전협정 의무국이 된 당사국 북한에 공식적인 협의재개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북한의 태도변화로 조성된 새 여건에 부응할수 있도록 IAEA의 전략을 수정하거나 재확인하기 위한 내부활동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지난 11일 폐막된 IAEA 정기이사회는 사무국에 대해 북한핵문제에 새로운 진전사항이 있을 경우 이를 신속히 보고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따라서 곧 IAEA 특별이사회가 소집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협의가 재개될 경우 이번 사태의 핵심관건이 돼온 특별사찰 대상이 다시 문제가 될 것은 자명하다.그리고 북한의 NPT탈퇴의 직접적인 원인인 이 부분에 있어 IAEA가 종전처럼 강경한 입장을 보일 경우 사태가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IAEA의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미­북한 뉴욕회담 손익계산/핵합법적 감시·NPT체제 유지 “실리”/미/「안보리제재」 벗고 대미 대화통로 확보/북 11일 폐막된 미·북한 뉴욕회담은 최상의 결과를 얻어낸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양측이 최선을 다한 회담으로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미국으로서는 북한을 NPT에 묶어둠으로써 북한의 핵개발을 합법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됐다.그리고 당장은 북한이 탈퇴를 강행할 경우 안보리를 통해 대북제재를 해야 할 부담을 덜게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은 NPT체제유지라는 커다란 실리를 얻어냈다. 북한은 더 많은 것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우선 안보리의 「제재」라는 올가미를 벗어던졌다.북한은 또 탈퇴카드를 통해 미국과의 직접대화통로를 확보했다.미국과의 직접대화는 북한의 오랜 숙원이었다.그러나 북한이 얻어낸 더 큰 소득은 정치적인 것이다.회담을 끝낸후 강석주 부부장이 거듭거듭 강조한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미합중국공동성명」의 「역사적 중요성」이다.「성명」은 미국이 북한의 자주권을 존중하며 내정에 간섭치 않고 핵위협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다.이는 유엔헌장에 명시된 각국의 기본권개념에 속하는 것이지만 북한으로서는 중요한 문서다.정치적으로,대내용으로 아주 중요하다.자의적으로는 미국이 북한의 체제유지를 인정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회담을 가까이서 지켜본 우리 대표부는 회담결과에 적이 안도하는 모습이다.북한의 NPT탈퇴,안보리제재등 일련의 사태가 초래할 한반도에서의 긴장고조 가능성를 일단 덜었다는 점에서다.또 북한의 NPT복귀가 남북대화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로 해서 우리의 유엔외교 폭이 한결 넓어진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 불 영화제/상영방화 84편 확정

    ◎46년작 「자유만세」서 「서편제」까지/해외서 열린 한국 최대 “영화축제” 오는 10월20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될「퐁피두센터,93 한국영화제」의 상영방화 84편이 확정됐다.46년 작품인「자유만세」부터 최근의「서편제」에 이르기까지 흑백21편,컬러가 63편이다.이들 영화는 영화제 기간동안 세번씩 상영된다. 퐁피두영화제는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가진 해외영화제중 기간과 상영편수면에서 최대규모다.이 영화제는 특히 해방이후 최근까지 한국의 대표작들을 망라해 상영함으로써 프랑스와 유럽전역에 우리영화의 흐름과 발전과정을 소개하고 해외판로도 개척할수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3백50석 규모의 퐁피두센터 갸랑스 영화관의 영화제는 전세계의 평론가들의 관심이 높다. 프랑스 문화성 소속의 국립공공기관 퐁피두센터는 이곳에서 시중의 일반영화는 상영하지 않고 매년 2∼3개국의 외국영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해왔다. 이 영화제를 공동 주관하는 영화진흥공사와 한국영상자료원,주불 한국문화원은 그동안 관계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전작품에 불어자막을 넣었다. 상영작품은 다음과 같다.「자유만세」「마음의 고향」「양산도」「피아골」「자유부인」「시집가는 날」「지옥화」「하녀」「박서방」「로멘스 빠빠」「이생명 다하도록」「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오발탄」「마부」「연산군」「김약국집의 딸들」「쌀」「갯마을」「남과 북」「산불」「안개」「감자」「바보들의 행진」「영자의 전성시대」「삼포 가는 길」「겨울여자」「족보」「장마」「깃발없는 기수」「바람불어 좋은 날」「짝코」「피막」「만추」「어둠의 자식들」「만다라」「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바보선언」「안개마을」「꼬방동네 사람들」「오염된 자식들」「과부춤」「불의 딸」「물레야 물레야」「태」「뽕」「길소뜸」「황진이」「장남」「내시」「티켓」「씨받이」「연산일기」「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칠수와 만수」「안녕하세요 하나님」「기쁜 우리 젊은 날」「아제아제 바라아제」「아다다」「개그맨」「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구로아리랑」「남부군」「수탉」「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우묵배미의 사랑」「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꿈」「청송으로 가는 길」「그들도 우리처럼」「나의 사랑 나의 신부」「장군의 아들」「개벽」「피와 불」「하얀 전쟁」「김의 전쟁」「결혼이야기」「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첫사랑」「벙어리 삼룡이」「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서울 황제」「서편제」.
  • 유흥업소 찬바람(개혁바람… 달라지는 세상:14)

    ◎대형 룸살롱 30%가 휴·폐업/요정 「대하」 스포츠센터 전업 모색/사정·「중과세」 여파… 관광호텔도 썰렁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릴 무렵의 서울 종로구 묘동과 와룡동 뒷골목.「오진암」등 장안 최고급 요정들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몇달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이면 그랜저와 벤츠등 고급 외제승용차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밴드에 맞춰 노랫소리가 길가까지 들려오곤 했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개혁바람이 분 이후 이곳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한때 고위관리·정객등이 몰려 밀실정치의 산실로 알려진 「오진암」의 경우 연초 하루평균 손님이 30∼40명으로 방 12개가 모두 찼으나 최근에는 손님이 한명도 없는 날도 많아 울상이다.이때문에 60여명을 넘던 호스티스도 10여명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줄었다.그나마 찾아오는 손님들도 종전에 이름만대도 알만한 거물들에서 바이어접대를 위한 중소업체 사장등으로 바뀌었다.간혹 대기업체에서 예약을 했다가도 『함께 가려던 손님이 꺼린다』며 예약을 취소한다. ○손님 전혀 없는 날도 이같은 사정은 이 부근 요정들 모두가 마찬가지다. 이웃요정 「대하」는 지난해 한달평균 5백여명 이상의 손님이 찾아왔으나 지금은 간단한 식사를 하러 오는 외국인등이 고작이다.「대하」는 이에따라 밤에만 문을 열던 것을 낮에도 한정식을 파는등 손님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있으나 수지가 맞지않아 아예 업종을 스포츠센터등으로 전환할 것을 궁리중이다. 요정들만이 아니라 강남 일대의 룸살롱·관광호텔·골프연습장과 헬스클럽·고급 외식집등 업종을 가릴것 없이 모든 사치 유흥업소가 개혁 바람에 울상들이다.대형 룸 8개를 갖추고 있는 강남구 역삼동 「귀빈」룸살롱은 술을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줄어 마담 4∼5명이 출근조차 제대로 않고 있다. ○종사원 30만 떠나 유흥업계에 따르면 전국 2천여개의 대형 룸살롱 가운데 새정부 출범후 30%정도가 휴·폐업했으며 나머지도 최근의 영업부진과 정부의 중과세방침으로 전업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유흥업소 종사자 수도 91년말 1백여만명에서 최근 70여만명으로 줄었다. 서초구 팔레스호텔 헬스클럽은 소수의 정회원들만 새벽에 나와 운동을 할뿐 온종일 클럽이 텅 비다시피 돼 썰렁하다.전에는 새벽녘에 남자들이,낮에는 유한부인들로 크게 붐볐던 곳이다.바로 옆 골프연습장은 이같은 현상이 더욱 심하다.주중에는 연습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정이다. ○청부의식 제고돼야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새정부가 추진중인 부패의 고리를 끊는 작업이 주효한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이같은 현상이 정착하려면 제도의 정비와 함께 국민 사이에 청부의식과 건전한 시민윤리가 뿌리내리도록 하는 의식운동이 전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천지창조서 우주시대로”환상의 시간여행/인간과 통신세계…정보통신관

    ◎궤도차로 15분간 9막48장면 체험/북·화살·불 등 고대통신수단도 재현/폭 13m 대형화면 멀티미디어 상영/화상통화­회의 시스템·ISDN 직접조작 기회도 현대를 가리켜 정보화 사회라고 부른다.그만큼 정보통신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고 정보통신의 발달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무한하다.미래 정보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게 될 정보통신관에서는 통신이 인간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를 체험할 수 있다. 「담을 헐고 다리를 놓자」­한국통신이 건설하는 정보통신관의 전시 주제다.개인과 개인,사회와 사회,국가와 국가 사이에 가로 놓인 벽을 정보통신이 허물고 새로운 미래 정보사회를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공사비 5백26억 91년 5월 박람회장에서 가장 먼저 착공된 정보통신관은 외부 공사가 이미 끝났고 현재 전시연출 작업이 한창이다.총 면적 5천6백평으로 대전 엑스포에 참가하는 독립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엑스포 이후에도 정보통신에 관한 상설 홍보관으로 사용되는 만큼 건설비도 다른 전시관의 3배가 넘는 5백26억원이나 된다. 정보통신관은 관람객이 궤도차를 타고 통신의 발달과정 및 다채로운 기능을 보고 즐기는 정보통신 주제관과,첨단 통신기기를 직접 조작해 볼 수 있는 첨단통신 전시관으로 나뉘어진다. 주제관은 텔레콤 플라자,텔레파크,궤도 전시장,멀티미디어 극장으로 구성된다.이 가운데 하일라이트는 4인승 궤도차를 타고 15분간에 걸쳐 천지창조부터 미래의 해저 및 우주 생활까지 정보 통신의 과거·현재·미래를 체험 할 수 있는 궤도 전시장. 보통 성인이 걷는 속도로 움직이는 「거북이 타임머신」을 타고 관람객들은 시공을 초월한 환상의 시간여행을 즐기게 된다.이 여행은 로봇,애니메이션,음악,영상 시스템,조명등으로 더욱 입체감 있고 생생하게 꾸며진다. 관람객들이 첫번째로 통과하는 곳은 스피드 터널.전시장을 나선형으로 두번 돌고 다시 S형으로 돈 뒤 나선을 이루며 하강,일순간에 천지창조의 시간에 도달한다.거꾸로 돌아가는 시계 소리를 뒤로 한 채 강렬한 불빛을 뚫고 들어가면 폭발음이 터지면서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와 함께 별들이 탄생하는 빅뱅이 나타난다. 수십만개의 유성이 쏟아지고 대형 스크린에는 지구·달·태양등 태양계를 비롯한 우주의 형성과 천지 창조의 순간들이 지나간다. ○광섬유 기법 도입 화산 폭발과 함께 원시인들이 손짓 발짓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고대사회가 펼쳐지고 그림문자·북·화살·불등 당시의 통신수단들이 소개된다.이어 궤도차의 무대는 한반도로 옮겨져 전쟁의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연을 띄우는 병사,적군의 동태를 알리는 징소리,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정보를 전달하는 봉화등 고대 통신수단들이 선보인다. 다음 궤도차가 도착하는 곳은 현대 통신수단이 발명된 산업혁명 시대.천둥 소리가 터널 안에 울리면서 번갯불이 어둠의 세계를 내쫓으며 전기가 발명되고 전신·전화·우편·신문등으로 연결된다.인공위성과 해저 광케이블로 전세계가 서로 음성 뿐 아니라 화상 정보를 주고 받는 현대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 다음은 미래의 세계.위쪽에는 통신위성 무궁화호가 띄워져 있고 아래쪽에는 컴퓨터로 농사를 짓고 유전공학을 이용해 사막에 꽃을 피우는 도시 및 해저도시등 다양한 형태의 미래 도시들이 나타난다. 타임머신의 마지막 행선지는 우주시대.별나라 여행으로 안내하는 궤도차 양 옆으로 별들이 스쳐가고 우주에서 헤엄치는 우주인의 모습이 보인다.이렇게 해서 총 9막 48장면의 시간여행이 끝난다. 텔레콤 플라자에서는 천장에 태양계를 중심으로 한 우주 파노라마가 펼쳐지며,대형 주제벽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위성과 해저 광케이블로 세계 각국을 연결하는 통신망이 광섬유 기법에 의해 환상적으로 나타난다. 또 텔레파크에서는 각종 정보통신 서비스가 가능한 텔레토피아를 소개한다. ○텔레토피아 소개 정보통신관의 또 다른 볼거리는 컴퓨터로 제어되는 60대의 고성능 슬라이드 프로젝터와 입체음향 시스템을 갖춘 2백80석 규모의 멀티미디어 영상관.가로 13.5m 세로 7.2m의 대형 화면을 20개로 구분해 멀티미디어 시스템으로 정보와 통신이 이룩한 이상적인 사회상을 10분간 영상으로 즐길 수 있다. 첨단통신 전시관에서는 영상통화 시스템·광통신 원리를 이용한 원격 영상회의·각종 ISDN 서비스(종합정보 통신망)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첨단 통신기기를 만져 보고 익힘으로써 산 교육장의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밖에 옥외광장에는 위성 안테나가 세워져 남극의 세종 과학기지와 화상통신을 할 수 있으며 아마추어 무선실(HAM)도 별도로 마련된다.
  • 「늘푸른…」/「먼동」/장편 역사소설 서점가서 “불티”

    ◎일제시대 배경… 항일정신 담은 교양물/분단작가 대표작가 김원일·홍성원씨 나란히 출간 김원일·홍성원 두 중견작가가 필력을 기울인 장편역사소설 「늘푸른 소나무」와 「먼동」이 최근 나란히 단행본으로 완간됐다. 이들 두 작품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김원일의 「늘 푸른 소나무」는 9권,홍성원의 「먼동」은 6권짜리 분량의 대작이다.두 작품 모두 신문연재소설의 개작판이며,같은 출판사(문학과 지성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완간됐다.제목이 주는 상징성 또한 두 작품 공히 순우리말 조어를 통한 강한 시사성을 풍긴다.홍씨는 1937년생 경남 합천출신이며 김씨 역시 1942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난 5년 터울의 동년배이기도 하다. 특히 「겨울골짜기」「노을」「불의 제전」「마당깊은 집」(김원일),「남과 북」「기관차와 송아지」「디데이의 병촌」「흔들리는 땅」(홍성원)등 6·25전쟁을 소설의 주요 테마로 천착해온 우리 분단문학을 대표하는 두 작가가 마치 손을 맞춘듯이 시선을 해방이전 일제식민지시대로옮겨 쓴 교양역사소설이란 점도 각별하다.이들 작가의 작품은 현재 서점가에서도 경쟁적으로 팔리고 있다. 「늘 푸른 소나무」는 1910∼20년대 중반까지의 일제강점기전반부를,「먼동」의 경우 구한말에서 한일합방을 거쳐 3·1운동이후에 이르는 역사적 격동기를 각각 시대배경으로 다루고 있다.「소설적 꺼리」가 산재한 중복되는 시기를 두 작가가 나란히 배경으로 선택한 셈이다. 줄거리면에서도 두 작품 모두 비극적인 우리 근대사의 새벽에 피어난 항일정신에 창작의 뿌리를 두고 있다.「먼동」이 동트기 직전에 더 어두운 새벽을 헤치고 살아가는 양반·중인·하층민등 3일가가 출신배경에 따라 운명의 반전을 거듭하는 가족사를,「늘푸른 소나무」의 경우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한 젊은이가 피나는 고행을 통해 자아를 형성한뒤 어둠앞에서 초연히 자기 희생으로 삶을 마감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 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의 숨겨진 개인사와 의식을 찾아 내는데 역점을 둔 점도 비슷하다.「먼동」이 의병전쟁에 참가한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과그들의 3세들이 한결같이 3·1만세운동에 연루되는 민중의 삶을 모델로 제시했다면 「늘푸른 소나무」는 1910년대 대한광복회의 활동등 역사적 사실과 맞물리는 국권회복운동을 내세워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김원일씨는 『시대적 변혁기에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을 다룬 교양소설쓰기를 소설가가 되기 이전인 스물살무렵부터 꿈꾸어 왔다』면서 이 소설이 그동안 꾸어온 문학적 지향점의 실현이라고 말했다.홍성원씨 역시 『지난77년 「남과 북」창작을 끝낸이후 역사소설로 방향을 바꾸게 됐다.작가가 해야 할 일은 역사가들이 써놓은 역사를 상상력을 동원해서 문학적으로 읽는 법을 제시하는 것뿐임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