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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1)구두공장 사장→환경미화원 홍순철씨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1)구두공장 사장→환경미화원 홍순철씨

    정해년(丁亥年) 새해가 밝았다. 시작은 늘 희망을 동반하듯, 새해를 맞는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행복한 꿈’을 그리고 있다. 하루의 시작인 새벽도 마찬가지다.‘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해, 남들보다 먼저 희망을 품는다. 새해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소박한 꿈과 희망을 시리즈로 싣는다. “지난 한해는 허울뿐인 ‘사장’ 타이틀을 떼 냈다면, 올 한해는 우리 가족의 ‘저축 원년’이 될 겁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조만간 우리 가족을 억눌러 왔던 은행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해년을 하루 앞둔 31일 새벽 5시. 서울 시청 앞 거리에서는 시커먼 어둠 사이로 희망의 ‘빗질’ 소리가 메아리쳤다. 구두 공장 사장이었다가 1년전 환경미화원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서울 중구청 소속 새내기 환경미화원 홍순철(48·중구 신당2동)씨의 희망을 여는 소리다. ●불혹의 나이에 ‘홍 사장’에서 ‘환경미화원 홍씨’로 경력 1년의 중구청 ‘막내 환경미화원’ 홍씨는 마치 전날 돼지꿈을 꾼 것처럼 돼지해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2004년 초까지만 해도 홍씨는 직원 5∼7명을 거느린 작은 구두공장 사장이었다. 사업이 잘 될 때는 매월 500만∼600만원은 거뜬히 벌었다. 그러나 물밀듯이 밀려오는 중국산 저가 구두 앞에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홍씨는 20년 동안 운영하던 구두공장을 2004년 5월쯤 헐값에 넘겼다. 그 뒤 1년 동안 다른 구두공장에서 월 130만원도 채 받지 못하는 하급 기술자로 일해야만 했다. 당시 홍씨 가족은 은행대출금 4000만원과 버겁기만한 카드값·생활비, 고 3 딸아이 학원비 등으로 매일매일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무능한 남편·아빠라는 생각 때문에 1년 동안 술·담배가 엄청 늘었죠. 하지만 인생 나락까지 떨어졌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두려운 것이 없어지더라고요. 우연찮게 환경미화원 모집공고를 봤고, 무조건 지원했습니다.” ●희망을 꿈꾸는 새내기 환경미화원 홍씨가 현재 매월 받는 보수는 230여만원 정도.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3분의1 수준이다. 또 딸아이 뒷바라지까지 생각하면 빠듯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씨의 입가엔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홍씨는 과거 ‘홍 사장’과 현재 ‘환경미화원 홍씨’를 비교하며 “잃은 것은 돈뿐이지만, 얻은 것은 가족·여유·대화·사랑·웃음 등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자랑한다. 사실 아내는 허울뿐인 ‘홍 사장’을 싫어했다. 사장이라는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술과 접대를 해야했고, 그러면서도 항상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후 4시면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는 홍씨는 요새 딸아이와 많은 대화를 하며 젊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인터넷 용어를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규직이라 해고될 염려도 없고 아이들 학자금 대출 지원도 나와 만족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홍씨의 입가에서 나온 미소가 가족들에게도 전파돼 홍씨 집안엔 웃음꽃이 피는 날이 많다.‘홍 사장’시절엔 느껴볼 수 없던 또 다른 행복이다. ●정년 뒤 고향에 내려가 농사짓는 꿈꿔 구두끌 대신 빗자루를 잡으면서, 시민의식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다. 특히 홍씨는 독일 월드컵 축구대회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의 시민의식이 갈 길이 여전히 멀다고 결론 내렸다. “우리팀이 좋은 경기를 펼친 프랑스전에서는 사람들도 흥이 나서 자발적으로 청소에 나섰어요. 그런데 우리가 패한 스위스 전때는 쓰레기도 더 많이 배출됐을 뿐더러 뒷자리를 청소하는 사람도 거의 없더라고요.” 홍씨는 새벽마다 파란색 쓰레기 봉투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게 된다고 한다. 환경미화원 정년인 59세까지 열심히 일해서 고향인 강원도 삼척시에 2층짜리 집을 짓고 감자와 옥수수 농사를 짓는 게 홍씨의 꿈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사장이면 어떻고 환경미화원이면 어떻습니까. 이 직업이 창피하기 시작하면 한 없이 창피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떳떳하게 됩니다.” 글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국제기구 주름잡는 한국인] 유엔 인권판무관실 우종길·난민판무관실 이수진씨

    [국제기구 주름잡는 한국인] 유엔 인권판무관실 우종길·난민판무관실 이수진씨

    |제네바 이종수특파원|국제기구의 도시 스위스 제네바. 이곳에는 바다를 닮은 레만 호(湖)의 넓은 품처럼 국제공무원으로 지구촌을 누비는 한국인들이 있다. 정부 파견 형식이 아니라 유엔기구 국제공무원으로 일하는 한국인은 어림잡아 30명. 세계보건기구·국제노동기구·세계무역기구 등 근무 공간도 다양하다. 그 중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에 근무하는 우종길(36)씨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서 일하는 이수진(36)씨가 지난해 12월21일 만났다. “반갑습니다.”“이렇게 뵙네요.” 인권과 난민 현장이라면 지구촌 어디든지 날아가야 하는 두 사람인지라 2년째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이날 처음 대면했다. 인권담당관으로 8년, 난민 교육관 등으로 10년 동안 일한 두 사람은 그동안의 애환을 징검다리 삼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먼저 국제무대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오지 원주민의 인권이 나아질 때입니다. 특히 2001년 필리핀 원주민 실태 조사 때 만난 50대 아주머니를 잊을 수 없습니다. 한 회사의 개발로 부족의 전통 생활양식과 권리가 파괴되고 있다고 호소하기 위해 200여㎞를 걸어서 왔더군요.”(우종길씨) “난민 캠프의 참상은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성은 겹고통으로 신음합니다.2004년 방글라데시의 소수민족 노힝가 난민 캠프에서 위생·교육 문제 등 그들의 ‘희망’을 찾아주기 위해 땀흘렸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이수진씨) 얼핏보면 화려한 국제공무원. 그러나 고충도 적지 않다. 우씨는 소탈한 성격답게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아무래도 부모님과 가족들을 자주 못본다는 게 힘들죠. 특히 부모님 생신에 못가면 불효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설·추석 때는 외롭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한국 음식, 특히 김치를 자주 못먹어 힘들죠(웃음).” 그러자 이씨가 ‘행복한 고민’이란 듯 ‘고생 보따리’를 풀어놓았다.“2∼4년 간격으로 보직과 근무지가 바뀝니다. 유랑 생활이죠. 게다가 난민 캠프 특성상 치안 불안·의료시설 미비 등에 시달립니다. 동료 중에 말라리아에 걸리거나 습격을 받아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반기문 유엔총장의 선출로 한국의 인지도가 많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전에는 어땠을까? 두 사람이 국제무대에서 본 한국은 어디쯤일까?“강경화 외교통상부 국제기구국장이 6일부터 OHCHR 부판무관으로 부임하는 것도 호재입니다. 그러나 이전엔 가끔 문젯거리로 등장했던 북한보다 (한국이)덜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기 분담금 11위에 걸맞게 많은 자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유엔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면 ‘자발적 부담금’을 늘려야 합니다.”(우) “유엔 전문·산하기구에 내는 자발적 부담금의 위력이 큽니다. 미국·노르웨이·프랑스 등은 고위 직급 인사에도 관여합니다. 또 정부의 지속적 관심도 필요합니다.”(이) 국제공무원이 되는 과정은 크게 네 가지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문’을 거쳤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우씨는 하버드대 법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다가 사우디아라비아 친구가 유엔사무총장실에서 근무하는 것을 보고 ‘역동성’을 느꼈다. 졸업하자마자 96년 유엔 사무국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 군 제대후 99년부터 인권담당관으로 근무했다. 이씨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와 정치외교학과(대학원)를 졸업한 뒤 외교통상부에서 선발하는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 1기생으로 뽑혔다.2년 동안 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일한 뒤 정식 직원이 됐다. 삶의 길목에서 새로운 길을 선택한 이들이 국제공무원이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다. 이씨가 먼저 “환상을 깨야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국제공무원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시작했다가는 후회하기 십상이란 것. 특시 이씨처럼 난민 캠프를 찾아 ‘노마드(유목민) 생활’을 하는 국제공무원에게는 웬만큼 투철한 사명감 없이는 견디기가 쉽지 않다. 우씨도 적극 공감했다.“영어·불어 등 유엔 공식언어 2개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유엔정신에 걸맞은 개인의 신념과 전문 지식입니다.” vielee@seoul.co.kr ■ “메일 답장·보고서 작성… 인권문제면 어디든 가죠” |제네바 이종수특파원|‘인권 문제라면 어디든 간다.’ 많은 국제공무원들이 성탄절 휴가를 떠난 지난해 12월20일 오후 6시. 어둠이 내린 제네바 파키스가(街) 52번지 파키스유엔고등판무관 건물 3층의 우종길씨 사무실을 찾았다. 퇴근 시간이 됐지만 컴퓨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창가로 보이는 레만호를 즐길 겨를도 없어 보였다. 최근 그의 관심은 ‘기업의 인권 책임’이다. “대기업의 해외진출이 늘어나면서 인권 비중이 커졌습니다. 삼성·포스코 등 한국 기업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단순히 해당 국가의 허가가 났다고 방심할 게 아니라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들과의 대화·협력 등이 중요하지요. 세계적 기업은 이미 인권변호사를 고용해 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씨의 하루는 이메일 검색으로 열린다. 아침 9시에 출근하면 밤새 지구촌 곳곳에서 날아온 100통 안팎의 이메일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인권 피해를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개인의 진정서는 특별보호관에 맡기고 큰 이슈만 정리한 뒤 답장을 합니다.”. 평균 15∼20통의 답장을 쓰고나면 오전이 후딱 지나간다. 동료들과 한식이나 피자로 점심을 때우고 사무실에 와서는 국제사면위원회나 유엔라이트리서치 등 비정부기구 보고서도 검색해야 한다. 또 상급자가 출장을 가면 관련 회의를 주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고등판무관이 해외사절단을 만날 경우 해당 국가의 인권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또 1년에 20∼30권의 브리핑 노트 작성도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해외에 파견 나갈 경우 어젠다 설정, 관련 단체 접촉, 행정 업무 등 노동 강도가 곱절로 늘어난다. 퇴근 후에는 체력관리를 위해 수영장을 찾는다.“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각국에서 온 국제공무원들과의 승진 경쟁에서 이기려면 체력이 강해야 하거든요.” 그의 꿈은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직까지 진급하는 것이다.“많은 경험을 살려 민간부문으로 옮기는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사회의 약자에게 따뜻한 시선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싶어요”. vielee@seoul.co.kr ■ “난민캠프가 사무실… 유목민처럼 지구촌 누벼” |제네바 이종수특파원|‘지구촌 난민 캠프가 사무실’ 이수진씨는 지난해 12월21일 오전 9시 사무실에 도착했다. 방학을 맞아 한국에서 엄마를 찾아온 유치원생 아들의 재롱을 뒤로한 채였다. 출근하자마자 난민 훈련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짰다. 물품구입 방법에서부터 재정·서무·계약 체결 등 그의 업무는 전방위에 걸쳐 있다. 또 1주일 단위로 업무 관련 책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를 위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파견 업무 매뉴얼을 작성한다. 그나마 ‘비수기’여서 나은 편이다. 교육관이라는 업무 특성상 난민 캠프 파견이 잦다. 이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8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데요 그 날 일이 정리되지 않으면 휴일이 따로 없습니다.” 지난해에도 4개월 동안 두바이,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의 난민 캠프가 그의 직장이었다. 올해에는 아프리카 가나의 아카라, 케냐의 나이로비, 우간다 등이 그의 사무실로 변한다. 파견 업무는 준비과정부터 할 일이 많다. 현지 상황 파악, 관련 책자 준비, 교육 프로그램 작성 등을 하노라면 파김치가 되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다. 순환 근무라는 특수성으로 ‘유목민 생활’이 불가피하다.1999년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로 첫발을 오스트레일리아(2년)에서 내디딘 이후 태국(3년), 방글라데시(1년9개월) 등을 돌았다. 업무도 매번 바뀐다.‘필드 오피서’ 시절에는 우물 파기, 화장실 설치, 옷·비누 만들기 등 모든 일이 그의 몫이다. “가는 곳마다 문명과 동떨어진 곳입니다. 기온이 33도로 푹푹 찌는데도 선풍기 한 대 없어 땀을 흘리느라 잠을 설친 적도 있습니다.”. 사랑니 4개를 뽑은 지 이틀 만에 솔로몬 제도로 파견을 나가기도 했다. 당연히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난민고등판무관의 이런 고충 때문에 동료들 가운데 노처녀가 많고 이혼 사례도 많다고 귀띔한다. 그러나 그는 지난 10년을 밝게 채색한다.“올해 10년 근속상을 받았습니다.100% 만족할 수야 없겠지만 현재까지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친정 엄마와 남편의 도움이 컸어요” 꿈을 물었더니 “한가족이 모여 사는 겁니다.”라며 웃었다. vielee@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 [책꽂이]

    ●B컷(최혁곤 지음, 황금가지 펴냄) 철 지난 영화를 틀어주는 허름한 동시 상영관을 배경으로 전문 킬러와 그를 쫓는 형사의 치밀한 심리전을 다룬 스릴러. 영화 ‘메멘토’처럼 각 부분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고 마침내 하나로 합쳐져 전체 이야기를 완성하는 독특한 구성방식을 택했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숨겨진 어둠을 잘 그려냈다는 평.8500원.●일곱 빛깔 사랑(에쿠니 가오리 등 지음, 신유희 옮김, 소담 펴냄)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 나오키상 수상작가 가쿠다 미쓰요 등 일본 유명 여성 작가들의 단편소설 모음집. 새콤달콤한 연애담에서 여성들 사이의 우정,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성찰한 작품 등 다종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렸다.9000원. ●동행(후쿠다 미도리 지음, 고성미 옮김, 창해 펴냄) 일본 역사 속에 명멸한 ‘무사’ 영웅담에 매료됐던 사람치고 작가 시바 료타로(본명 후쿠다 데이이치)의 마니아가 아닌 사람은 드물 정도로 그의 인기는 높다. 이 책은 평생의 연인이자 부인인 후쿠다 미도리 여사가 생전의 시바 료타로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회상록 형식으로 잔잔하게 풀어놓은 책이다.1996년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에 따른 상실과 비애가 잘 녹아 있다.9000원.
  • 은유·환상의 유고 詩세계

    전쟁의 포성으로만 기억되는 유고슬라비아. 그들의 문학은 어떤 모습일까. 그동안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던 만큼 유고슬라비아 문학은 우리에게 낯설고 신기하기만 하다. 문학동네에서 펴낸 유고슬라비아 시인 바스코 포파의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오민석 옮김)은 호기심의 한 끝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포파는 현대 유고슬라비아 문학을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시인.‘작은 상자’를 비롯, 그의 대표시 몇편이 국내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시집의 형태로 전모를 선보이기는 처음이다. “…암늑대가 살아 있는 한, 할머니는/리넨 천 같은 왈라키아 발음으로/나를 작은 늑대라고 부를 것이다//늑대는 나에게 비밀스레/날고기를 먹였고 나는 성장하여/언젠가 무리를 이끌 것이었다//나는 내 눈이/어둠 속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할 것을/믿었다…” 포파의 ‘늑대의 눈’이란 시의 한 대목이다. 포파는 세르비아 전통에서 문학의 전범을 찾는다. 이 시집에 실린 ‘늑대 시편’이 그 한 예다. 세르비아 부족신화에서 늑대는 숭배와 경의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세르비아인들은 늑대의 전사적 기질을 동경한다. 죽은 자의 영혼이 늑대로 부활한다고 믿는 그들은 코소보 평원을 자유롭게 누비는 늑대를 자신의 조상으로 여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늑대는 시적 화자의 먼 조상이며 한편으론 시인의 자아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이 늑대는 죽음이라는 절대 폭력과 싸우는 절름발이 늑대다. 시인은 이 실존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세르비아의 애국성인 성(聖) 사바의 존재를 새삼 일깨운다. “별들이 그의 머리 주위를 돌며/그에게 살아 있는 후광을 만들어준다//천둥과 번개가/보리수 꽃 흩뿌려진/그의 붉은 턱수염 안에서 숨바꼭질을 한다…”(‘성 사바’ 중에서) 세르비아 국민이 그토록 추앙하는 성 사바가 보여준 공동체적 삶이야말로 포파가 초현실주의 언어를 통해 닿고자 했던 이상향이 아닐까. 이 시집은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미국 시인 찰스 시믹이 번역한 영역본 선집을 우리말로 옮긴 것. 그가 비록 포파 시의 가장 이상적인 번역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중 번역의 아쉬움은 남는다.8500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이현세 만화경] 드디어 앙코르와트를 보다

    [이현세 만화경] 드디어 앙코르와트를 보다

    지난 11월24일부터 캄보디아의 시엠 리아프에서는 ‘신들의 도시 앙코르와트’와 ‘신라천년의 도시 경주’가 2006문화 엑스포를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때를 맞춰서 ‘고도 경주를 어떻게 보존 복원 발전시킬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는 ‘경주 고도 보존회’는 시엠 리아프를 방문했다. 나 역시 고도 보존회 멤버이고 회장인 이정락씨는 ‘천국의 신화 필화 사건’으로 6년 동안 법정투쟁을 할 때 그 재판을 승리로 이끌어 준 담당 변호사이자 고교 선배이다. 고도 경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선배님이 수장이다 보니 이래저래 앙코르와트 답사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시엠 리아프는 600㎞에 이르는 지역 내에 100개의 사원이 발견된 앙코르 왕국의 근거지로서 9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러 인구 150만명이 살았던 그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이다. 그 중에서도 수리야 바르만 2세(1113∼1150)의 시기에 건립된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칭될 만큼 웅장하고 신비롭다. 내가 앙코르 왕국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40년 전 내 나이 13살 때 소년잡지 ‘새 소년’의 화보에서였다. 거대한 부처님 얼굴 석상을 크고 기괴한 팜나무의 뿌리가 파고들면서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정글속의 고대도시 앙코르와트’에 대한 기사가 그것이었다. 깊고 어두운 열대의 정글 속에 단 한구의 시체도 남기지 않고 어느 날 지도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고대 왕국의 도시이며 어느 때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자극적인 기사는 어린 내게 무한한 상상과 경이로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때 언젠가는 ‘꼭 한번 가고 싶다’라는 동경이 생겼다. 그 다음호 ‘새 소년’에서는 고우영 선생의 ‘정글 300 리’라는 만화가 실렸는데 재빠르게도 그 만화의 소재는 바로 앙코르와트였다. 세상에…! 앙코르와트를 배경으로 한 만화라니. 나는 쿵쿵거리는 가슴으로 그 만화에 매료되었다. 한국의 고고학 박사 부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앙코르 왕국의 유적을 답사하느라 길도 없는 밀림을 경비행기로 날던 중 기관고장으로 불시착한다. 겨우 혼자 살아난 어린소년이 정글속의 원숭이 소년을 만나 우정을 쌓아가며 모험을 하는 이야기였는데 눈빛이 사나운 새까만 원숭이 소년이 원숭이들과 함께 거대한 나무뿌리에 점령당한 고대 사원을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통속적인 이야기였지만 워낙 선생의 이야기 솜씨가 좋은 데다 내 동경이 워낙 컸던 탓에 오랫동안 내 영혼을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40년 만에 기어코 앙코르와트 앞에 서 있었고 내 눈앞에서 새까만 원숭이 소년이 수백의 원숭이 떼와 함께 눈부신 햇살 속의 사원 위로 춤을 추듯이 날아다녔다. 사원의 여러 겹 문 저 깊숙한 어둠속에서 흰 수염을 한 노인의 번쩍이는 지혜로운 눈빛까지…. 그것은 감동적인 만남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인간의 왕이 신의 딸을 배반했던 앙코르 왕국에 신은 세 가지 저주를 주었다. 그 첫 번째 저주는 앞으로 앙코르 왕국은 단 한명의 인간도 살 수 없는 완벽한 멸망을 하게 되리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멸망한 도시는 모든 세상사람들로부터 영원히 잊혀지게 될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 도시를 다시 찾아내는 자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저주다. 실제로 1868년 앙코르와트를 발견한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오는 이 저주를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그 다음해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그 오래된 동경에도 불구하고 신들의 도시 앙코르와트를 답사하는 내내 내 마음은 답답하고 불편했다.‘지자체 문화 이벤트 수출 1호’라는 요란한 홍보와 함께 40억원의 돈을 쓴 이번 행사에서 천년 고도 경주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고, 세계의 기술들이 모여 해체복원을 했다는 앙코르 왕국의 유적들은 가는 곳마다 복원이 잘못되어 사원 천장이 뻥뻥 뚫려있었고 시멘트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치 일제 시대때 경주의 석굴암이 시멘트로 졸속 복원되어 지금까지 그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듯이 앙코르 왕국의 유적 또한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이 졸속 복원의 에피소드 정점에는 일본의 기술자들이 복원을 끝낸 날 ‘만세정종’을 마시던 순간에 탑이 무너져 내려버린 기가 막힌 일화가 있다. 캄보디아는 16세기 이전에는 동남아시아의 최강국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서 지금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이고, 가장 위대한 조상에 가장 초라한 후손이 되어있다. 유적지마다 어린 꼬마들이 팔찌나 피리 등을 들고 서서 호객 행위를 하며 졸졸 꽁무니를 따라다닌다. 말리는 사람도 없고 아이들은 버스에 탈 때까지 지치지도 않는다. 새까맣고 큰 눈동자는 마주치면 물건을 사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맑고 선하다. 나이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키와 황토 흙을 뽀얗게 뒤집어쓴 맨발을 보면 괜히 히죽히죽 웃고 다니는 캄보디아의 운전기사에게 분노가 일어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얼굴.40년도 더 전에 경주의 나와 꼬마들도 반월성의 깨진 기왓장이나 토우들을 들고 일본 관광객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단 돈 10원이 절실했던 그때의 우리들…. 애잔한 마음으로 이 아이들에게서 조잡한 물건이 아닌 사진집을 몇 권 샀다. 현대인의 눈으로 앙코르왕국의 유적을 보면 광인의 흔적이다. 수리야 바르만 2세는 평생을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해서 영토를 넓혔고 잡아온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그 땅에 신의 이름으로 끝없이 사원을 만들었다. 사원에 국고를 몽땅 낭비한 왕국은 힘이 약해졌고, 모든 업보가 증명하듯이 끌려온 노예들의 나라에 의해 왕국은 결국 멸망했다. 돌아오는 날 버스는 어느 금빛 사찰 뒷마당에 있는 작고 높은 유리탑 앞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탑 속에는 해골들이 가득 차 있었다. 1975년, 미국이 사주하고 크메르 루주군이 벌인 ‘3차 킬링필드’의 대학살극은 300여만명의 캄보디아인을 학살했다. 크메르 루주군의 지도자 폴 포트는 적어도 캄보디아의 역사를 40년은 뒷걸음치게 해 놓았고, 국민이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하면 그 결과가 어떤지 유리탑의 해골들은 증명하고 있었다. 이 탑은 그 당시 시엠 리아프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을 모아둔 탑이다. 수리야 바르만 2세는 수많은 노예들의 피로 위대한 앙코르 와트를 남겼고 폴포트는 자국민의 피로 세상에 영원히 남을 해골탑을 남겼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지평선 너머로 붉게 타는 노을이 보였다. 핏빛의 하늘만큼 캄보디아는 내게 전쟁과 피와 가난의 모습으로 남았다. 하지만 나는 유적지에서 본 크고 맑고 선하고 총명해 보였던 그 눈동자들을 더 크게 생각한다.40년 전, 내 어린 꼬마 친구들의 눈동자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듯이 어차피 캄보디아의 미래는 그 아이들의 것이니까. 만화가
  • “가난한 이들에 기쁜 소식을”

    성탄절을 맞아 25일 전국 개신교 교회와 천주교 성당에서는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와 미사가 일제히 진행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25일 0시와 낮 12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를 집전했다. 정 추기경은 성탄미사에서 “가장 비천하고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은 죄의 어둠 속에서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면서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병들고 허약한 이에게 위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신교단체들은 25일 오후 광화문 기독교감리회 본부 앞에서 ‘평택대추리 주민과 함께 하는 성탄절 연합예배’를 진행했다.여의도순복음교회는 7부로 나누어 성탄예배를 진행했다. 이날 설교에서 이영훈 담임목사 서리는 “죄와 절망 중에 있던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태어났다.”면서 “분노와 분쟁을 다 버리고 참 평화를 누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kimu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산동네 ‘40년 연탄배달’ 김성수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산동네 ‘40년 연탄배달’ 김성수씨

    어릴 적, 철부지 꼬마는 차갑게 내리는 눈발에도 아랑곳없이 동네 아이들과 연탄재를 발로 차며 놀았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어둠이 몰려와 등을 떠밀었을 때야 귀가했으므로 몸은 꽁꽁 얼어버렸다. 기다리던 어머니는 야단 대신 얼음장처럼 찬 손을 어루만지며 “얘야, 연탄불에 고구마 올려놨다.”고 하셨다. 이뿐이랴. 겨울은 시계바늘을 과거로 돌려 추억의 창고문을 자주 열게 한다. 문득, 창밖에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면서 ‘도라지 위스키의 낭만’처럼 지금쯤 어디에서 ‘나만큼 늙어가고 있을’ 아련한 첫사랑도 떠오른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찹쌀떡∼, 메밀묵∼’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침을 삼키며 달려나갔던 정겨운 광경이 새삼 그려진다. 또 있다. 요즘 같은 날씨에 가장 생각난다. 힌트, 두 단어로 표현된다. 하숙집 아랫목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애인처럼 정성으로 돌봐주면 활활 불꽃을 피운다. 다 타고 재가 되면 동네 언덕길에 산산이 으깨어져 등꼬부라진 할머니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안전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시 한편이 있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이 연탄재를 통해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속물성과 허위를 준열하게 질타하고 있음이다. 아울러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장 되는 것’이며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이면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는 것’이라고 했다. 맞다.‘연탄’이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온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연탄 한 장은 어떤 보석보다 값진 것이다.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추위란 뼛속까지 에이기에 연탄 한장에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수도 있음이다. ‘연탄배달의 기수’ 김성수(65)씨.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서 40년째 연탄배달로 생활하고 있다. 열아홉 구멍 숭숭 뚫린 시커먼 연탄 수십장씩 지게에 올려놓고 달동네 언덕을 숨이 차도록 오르락 내리락 해왔다. 독거 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결코 지게를 내려놓지 못한 세월이지만, 겨울의 강을 건너야 할 사람에게 스스로 얼음판이 되어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산타’의 길을 걸어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주, 때마침 영하 6도의 추운 날씨였다. 서울 이대 앞 전철역에서 옛날 대흥극장 쪽으로 향했다. 신협건물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서자 가파른 언덕길이 나온다. 휴대전화로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조금만 더 올라오란다. 좁은 언덕길 양쪽에는 구멍가게,00양장점,00상회,00쌀집 등의 간판이 즐비해 1960년대의 흑백필름을 연상케 했다. 언덕 아랫길만 하더라도 외래어간판들로 북적대는 거리가 아닌가.10분여를 더 걸었더니 언덕 꼭대기 한편에 ‘三표연탄’이라는 글자가 전봇대에 메달려 있고 그 옆에 시커먼 판자로 가려진 연탄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때였다. 골목길에서 잠바차림에 모자쓴 아저씨가 걸어나왔다. 직감으로 “김 선생님이시죠?”라고 했더니 씩 웃는다.“배달은 언제 나가세요.”라고 물었다. “오후에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열댓장만 갖다 주면 된다.”고 했다. 만난 시간이 오전 10시여서 혹 아침 식사를 했느냐고 하자 고개를 가로젓는다.“선생님, 시장하신 것 같은데 순대집 가서 막걸리나 한잔 하시죠.”라는 말에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인터뷰 장소를 인근 순대집으로 옮겼다. 막걸리 한잔을 쭉 들이켠 김씨는 “이 동네 누구 집에 숟가락 젓가락 몇개 있는 거 다 알아유.”라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입을 열었다.1980년대까지만 해도 초겨울이면 월동준비 1순위로 집집마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연탄을 들여놨으니 ‘누구집 강아지 이름’까지 손바닥 보듯 했을 터. 올 겨울 연탄 배달량이 얼마나 됐는지 궁금했다.“신수동, 창천동, 염리동 일대에 할머니들만 사는 곳에 2200장을 보냈시유.” 대한적십자사의 주문으로 200장씩 모두 열한 집에 보냈단다. 연탄 한 장당 가격이 370원. 또 장당 이문(利文), 즉 배달료가 70원이라고 하니 올 겨울 14만여원이 주머니에 들어온 셈이다. 작년 이맘때 7000장을 배달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하루 200장은 배달혀야 먹고 살아유.”라며 또 한잔의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점점 시름이 깊어진다. “이 동네에는 연탄 쓰는 집이 30가구 정도 돼유. 그런데 구의원이나 정치인, 여러 단체 등에서 공장에서 연탄을 다량으로 싸게 구입해 없는 집, 있는 집 할 것 없이 다 돌립니다. 어떤 집에는 부모 자식 돈버는 부잣집인데도 쌀이며 연탄까지 갖다 줘유. 진짜 없는 집은 배가 고픈디 말이여유. 정부에서 하는 일이 왜 그런디유?” 김씨는 안양에 있는 연탄공장에서 타이탄트럭 한 대분(1200장)을 받으면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노고산동과 인근 독거노인들이 사는 집 위주로 배달해오며 생계를 꾸려오고 있다. 연탄배달 외에는 주로 라면박스 같은 것을 주워다가 고물상에 내다 판다. 박스 1㎏에 40원을 받으니 리어카 하나 가득해 봐야 겨우 4000원을 받는 셈. 리어카를 채우려면 일주일은 돌아다녀야 한다.“우리 집 말여유? 혼자 세들어 살지유. 외풍도 세고 비도 줄줄 새는 그런 집이여유.” 결혼 얘기가 나오자 잠시 창밖을 응시한다. 빈 속에 막걸리 몇잔 들이켜서인지 어느새 눈이 젖어 있었다.“고생 고생 해서 번 돈, 아이들 엄마가 어느날 훌쩍 다 갖고 도망가 버렸어유. 그때 아내를 찾으려고 1년 동안 실성하다시피 지낸 것 외에는 연탄배달만 줄곧 해왔시유.” 김씨는 충남 천안시 성환읍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많은 식구들이 논농사 12마지기에 의지하기엔 벅찼다. 그래서 대홍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하자 함께 상경했다. 그는 스무살 무렵 곧바로 5사단 현역으로 자원입대했다.3년 동안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서울 신촌 인근의 건재상에서 장당 30원을 받는 벽돌배달 일을 했다. 당시 라면 한 봉지에 16원, 막걸리 한 주전자에 30원 하던 시절이었다. 스물다섯 살 되던 1966년에 지금의 노고산동으로 옮겨 한 기와집 추녀 끝에 조그마한 연탄가게를 마련했다. 이어 리어카를 장만하고 지게를 만들어 본격적인 ‘시커먼(?) 인생길’로 뛰어들었다. 당시에는 동네에서 한달 3만장씩 팔았다. 특히 연대와 이대, 이대부고 등 주변 학교에 배달을 맡아 그럭저럭 돈벌이도 괜찮았다. 박정희 정권 때 정부시책으로 가구당 연탄 50장씩 할당하는 카드제가 실시되던 시기였다. 결혼도 이 무렵에 했다. 하지만 막내딸이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인 1978년 어느날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던 것.“지나가는 버스만 쳐다봐도 아내가 탄 줄 알고 막 쫓아가고 했시유.” 시련을 딛고 다시 연탄배달에 전념했다. 결국 한때 삼표, 삼천리, 대성, 한일연탄 등 여러 연탄집들이 경쟁적으로 있었지만 기름보일러, 가스보일러들이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다들 사라지고 삼표연탄만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오게 됐다. “얼마 전 구청에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자동차가 몇대냐 직원은 몇명이냐고 합디다. 그래서 ‘리어카 한대와 지게 하나.’라구 했지유. 저는 살아오면서 쓸데없는(나쁜) 일은 한번도 안했는데 자꾸 이상한 쪽으로 물어봐유.” 주위에서 속이거나 힘들게 해도 싫증 한번 내보지 않았다는 김씨. 또 매서운 산동네의 겨울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40년 동안 한결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고단한 하루를 시작했다. 딸 둘을 키워 시집보내고 지금은 무자식처럼 외롭게 산다. 워낙 가난해서 누가 버린 옷과 양말을 주워다 입고 신어도,‘연탄 한장 갖다 주세요.’라는 말에 항상 위안을 삼으며 살아왔다. “배고픈 거 하늘이 알겠어유, 땅이 알겠어유.” 침묵이 흘렀다. 잔주름 가득한 이마가 할말 많다는 듯 위아래로 미동한다. 그것도 잠시, 김씨는 또한번 씩 하고 웃더니 손을 툭툭 털며 일어선다. km@seoul.co.kr
  • 70년만에 파리 시내 누비는 ‘21세기 친환경 전차’

    70년만에 파리 시내 누비는 ‘21세기 친환경 전차’

    |파리 이종수특파원|센강엔 ‘바토 뮈슈’(유람선), 육로엔 전차 ‘트람웨(T3)’. 파리 시내에 16일 또 하나의 ‘명물’이 등장한다. 동쪽 13∼15구 7.9㎞ 구간에서 전차가 달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1937년 버스·지하철 등 다른 대중교통 수단에 밀려 사라진 전차가 부활한다.1992년,1997년 파리 외곽에 두 개의 전차 노선 T1,T2가 들어섰지만 파리 시내 운행은 70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12일 오전 9시 파리 15구에 있는 T3 본부. 방문증을 받고 기다리는데 두 기자의 입씨름이 벌어졌다.“교통 혼잡을 고려하지 않은 전시 행정의 전형이다. 나중에 어떻게 하려는지….”(한 잡지사 사진기자).“어차피 차량 통행량을 줄이자는 것 아녜요. 보르도를 보세요. 차츰 나아질 겁니다. 소음 방지와 환경 친화적이라는 장점을 무시하면 안 되죠.”(라디오프랑스 인터나쇼날 기자) ●잔디를 유영하듯 부드럽게 운행 두 사람의 논쟁은 전차에 대한 파리 시민들의 엇갈린 평가를 잘 보여준다. 결론 없는 논쟁을 중단하고 시승식 참가단은 T3 정비실로 향했다. 날렵한 몸매에 세련된 스타일의 전차가 반긴다. 동행한 파리교통공사(RATP) 프레드릭 뒤퓌 팀장은 “현재 17개 도시에 전차를 운행하고 있는데 차차 늘어날 것”이라며 “전차가 21세기 대중교통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한다. 다음은 관제실.6대의 모니터는 17개 정거장의 장면을 번갈아 포착하고 있다. 옆의 컴퓨터 모니터는 시험운행 중인 T3의 상태, 교통 상황 등을 다양한 그래픽으로 보여주고 있다. 10시에 종점인 퐁 뒤 가리글리아노에서 시범 운행에 나서는 전차에 올랐다. 길이 44m, 너비 2.65m의 육중한 ‘철선’은 뜻밖에 조용하게 출발한다. 노선에 깔아 놓은 잔디를 유영하듯 도심을 가로질러 간다. 부드럽고 매끄럽다. 바토뮈슈가 센강을 가로지르는 풍경이 연상된다. 아니 바토뮈슈의 ‘통통’거리는 엔진소리도 안들린다. ●“쾌적한 환경으로 삶의 질 업그레이드” 가능한 한 햇살을 많이 안으려는 듯 넓게 만든 창으로 바깥 풍경이 들어온다. 사람과 사람, 노선을 따라 심어놓은 나무들. 어둠 속에서 질주하는 지하철을 타고서는 맛볼 수 없는 생생한 장면이다. 내외부 디자인을 총괄 지휘한 일본 태생의 가미나가이 요 디자이너는 자부심이 어린 표정이다.“쾌적한 환경으로 시민들의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하고 파리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30분을 달렸을까. 종점인 포르드 디브리에 도착했다. 더 갈 수 없다. 그러나 2011년부터는 북쪽과 서쪽으로 연장 운행한다. 관광객은 T3로 파리를 둘러볼 수 있다. ●일각선 교통체증 유발 우려도 돌아오는 길에는 역방향 좌석에 앉아봤다. 평균 시속 20㎞여서 어지럼증은 없었다. 그러나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좌회전 신호에 걸린 트럭이 레인을 막은 것. 경고음 뒤 급제동…. 출퇴근길 저렇게 얽히면 어떻게 될까? 충돌 위험은? 교통 체증을 해소하려고 구상한 전차가 체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관사 엘리자 베타는 “차량이 밀려 레인을 가로막으면 조심해야 한다.”면서도 “신호 체계가 완벽해 사고 위험은 없다.”고 설명한다. 인근 주민들은 호의적이다. 언론은 러시아워에 얽힌 차량이 뿜는 매연과 소음에서 해방된다고 이들의 반응을 전한다. 전차는 이 지역을 운행하던 버스 PC1을 대체한다. 수송 승객수도 5만여명에서 두 배로 늘어난다. vielee@seoul.co.kr
  • 중앙박물관에 클래식이 흐른다

    중앙박물관에 클래식이 흐른다

    국보 제83호 삼산관반가사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불교조각실에서도 별도의 전시공간에 모셔져 있다. 사라져가는 희망을 상징하는 캄캄한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면, 구원의 손길을 내밀듯 미소를 지으며 관람객을 맞는다. 앞에는 두 사람쯤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 관람석이라기보다는 예배석이라고 해야 할 이 작은 의자의 존재로 전시실은 그대로 법당이 된다. 중앙박물관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용산에 새로 지은 박물관 건물이 아니라, 바로 이 전시공간이 아닐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 만큼 인상적이다. 토요일인 지난 9일 저녁 중앙박물관은 어둠에 잠긴 산사(山寺)처럼 고요했다. 야간개장이 이루어진 이날 오후 6시 이후 박물관 관람객은 모두 149명에 그쳤다고 한다. 불교조각실이 ‘묵언수행’을 하고 있는 동안 박물관 입구의 으뜸홀에서는 목관오중주가 특유의 단아하면서도 빛나는 음색을 뽐내고 있었다. 코리아목관앙상블이 들려주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피치카토 폴카’와 스코트 조플린의 ‘디 엔터테이너’가 흥겨웠지만, 청중은 스물 다섯명을 넘지 않았다. 중앙박물관은 지난달 8일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밤 9시까지 문을 열고 있다. 앞서 지난 3월부터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야간개장’을 했다. 목관오중주 연주회가 포함된 ‘음악이 흐르는 박물관’ 프로그램도 야간개장을 확대함에 따라 관람객을 늘려보겠다는 뜻에서 마련했을 것이다. 지난달 확대 이후 야간개장 관람객은 모두 2332명으로 전체의 0.9%에 머물렀다. 지난 6일 하루의 낮 관람객이 1만 5029명이니, 하루 평균 333명이라는 야간개장 실적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숫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물관의 부담은 커졌지만, 관람객에게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음악이 흐르는 박물관’은 16일과 30일에는 국악실내악단 스케치,23일에는 오아시스현악사중주단을 초청해 오후 6시와 7시30분 미니 콘서트를 갖는다.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의 박물관 입장료만 내면 콘서트도 즐길 수 있다. 더 큰 혜택은 낮이라면 불가능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산관반가사유상은 중앙박물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전시품이지만, 오후 8시를 넘어서면 10분 이상 ‘독대’할 수도 있다. 이번 주말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야간개장이 ‘실패’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보자. 관람객이 차츰 늘어나 야간개장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면 관람객의 즐거움은 훨씬 줄어든다는 역설이 재미있는 중앙박물관이다. 글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거리 미술관 속으로] (9) 산업은행 본점 ‘로코모티브’

    [거리 미술관 속으로] (9) 산업은행 본점 ‘로코모티브’

    여의도 한국산업은행 본점에는 공공미술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조각가 정보원씨의 ‘로코모티브(기관차·9.4×5m, 폭 5m)’다. 작품성은 물론 공공미술품으로서의 기능성, 거기에 주변 환경과의 완벽한 어울림이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선 공공미술의 기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작가 역시 “공공 장소의 미술품은 개인 소장품과는 차별화해야 한다.”며 기능성을 강조한다. 누구나 다가가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작가는 “작품이 만남의 이정표가 돼도 좋겠고, 휴식공간이 돼도 좋겠다. 사람들이 만져 보고 즐길 수 있어야 공공 작품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작품 면면에서도 기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주 재료는 듀랄루민이다. 알루미늄 합금이지만 알루미늄보다 강도가 높고 색이 부드럽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보게 되는 재료다. 정 작가는 “공공 장소에 설치하는 작품은 관리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며 “색을 칠하게 되면 관리가 어려워 색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소재를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용성을 고려한 선택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듀랄루민은 회색빛 도심과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금속성을 띠면서도 차갑고 딱딱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이 강하다. 작품이 설치된 바닥 중앙에는 조명이 설치돼 있는데, 이 또한 기능성을 염두에 둔 장치다. 조명은 어둠 속에서도 작품의 존재성을 드러낸다. 덕분에 이곳 산업은행 앞마당은 밤에도 살아 있는 공간이 된다. 미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작품에선 건축미가 단연 돋보인다. 장식적 요소가 강한 미술품이 아닌 주변 건축물과 어우러진 또 하나의 건축물을 보는 듯하다. 공간해석에 남다른 감각을 자랑하는 작가의 작품답다. 또 고정돼 있지만 강한 역동성도 느낄 수 있다. 전차의 거대한 바퀴가 당장이라도 굴러갈 듯한 위세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힘은 도시의 성장 동력을 상징한다. 심신을 달래고 기운을 얻을 수 있는 휴식공간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열린세상] 시험대에 오른 한나라당 참정치/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원장

    한나라당의 고공행진이 무서운 기세로 이어지고 있다. 지지도가 40%를 넘어 열린우리당보다 3배 이상 앞섰다. 한나라당 대권 후보 빅3의 지지도를 합치면 50%를 넘는다. 더구나 국민의 70%이상이 한나라당 집권 가능성에 동조한다. 이러한 압도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지난 두번의 대선에서 모두 초반 대세를 유지하지 못한 채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나라당 스스로 현재 향유하는 대세를 모래성과도 같이 취약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 대세론을 위협하는 다양한 근거가 감지된다. 예를 들어 국민이 바라는 차기정부의 이념성향은 중도 38.6%, 진보 34.3%로 보수 20.1%를 압도한다. 5·31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우리당 절대 지지층의 22.6%, 수도권 호남 출신 40.0%가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다. 부동산에만 거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 지지도에도 거품이 숨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한나라당은 최근 ‘깨끗한 정치, 새로운 시작’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치·도덕적 쇄신을 추진할 ‘참정치 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도덕재무장과 자기혁신을 통해 정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의지의 소산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참정치란 단순한 구호나 이벤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과 교감하는 심오한 철학과,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지키려는 숭고한 원칙이 살아 숨쉴 때만이 가능하다. 한나라당이 진정성을 갖고 참정치를 제대로 구현하려고 한다면 다음의 원칙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첫째, 정치 정상화의 원칙이다. 참정치의 시작은 정치를 정상화시키는 데에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100일을 끌었던 전효숙 헌법소장 지명을 철회한 만큼 이제는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를 거부만 하지 말고 정치 정상화를 위한 실천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뒤틀린 자세로는 참정치를 실천할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둘째, 민생우선의 원칙이다. 사학법 재개정 등과 같은 정치 쟁점들 때문에 민생과 직결된 법안들이 국회에서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참정치를 하려면 민생 법안과 쟁점 법안을 분리해서 처리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특정 법안과 인사 문제를 볼모로 민생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것은 참정치에 대한 공공의 적이기 때문이다. 셋째, 국익 우선의 원칙이다. 한나라당은 정파적 이익을 넘어 초당적인 입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북 외교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PSI)에 참여해 국가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참으로 위험한 논리이다. 한나라당이 국익을 우선하는 참정치를 구현하기 원한다면 ‘한반도에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한반도 전쟁 불가론’을 강도 높게 주장해야 한다. 넷째, 개혁 우선의 원칙이다. 개혁이란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여당이 아니라 정권을 창출하려는 야당이 주도하는 것이 순리이다. 여당이 주도하는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을 비판만 하지 말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한나라당표 정치개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과거와 같이 반사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어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한나라당의 참정치가 시험대에 올랐다. 한나라당은 참정치가 도대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줘야 한다. 만약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발상으로 참정치를 악용한다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오직 어둠과 파멸뿐이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는 한나라당이 다음 대선에서 세번째 눈물을 흘리는 것을 결코 막지 못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번이 국민이 주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분명히 깨달으면서 진솔하게 참정치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원장
  • 어둠 속의 희망/리베커 쏘울닛 지음

    1963년 강대국들의 제한적 핵실험 금지조약을 이끌어낸 여성들은 한때 비를 맞으며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본인들의 모습이 바보 같고 부질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몇년 뒤 주목받는 반핵문제 활동가가 된 벤저민 스팍 박사는 작은 무리의 여성이 비를 맞으며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고백했다. 한국뿐아니라 세계 진보진영은 현재 암중모색 중이다. 리베커 쏘울닛이 쓴 ‘어둠 속의 희망’(창비 펴냄)은 말그대로 출구를 찾지 못한 변혁 운동가들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책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희망이 거창하진 않다. 서두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미래는 어두운데, 내 생각에는 이것이 대체로 미래가 띨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다.”란 일기를 소개하고 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희망을 품는다면 세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소련이 사라지고, 인터넷이 출현하고, 정치범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세상을 수십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미래뿐아니라 현재마저 어두워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인간이 꾸는 꿈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 현장운동가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온 저자의 주장이다. 대학 시절부터 환경, 반핵, 인권운동에 열렬히 참여했던 저자는 “우리가 꿈을 실현하려는 희망을 품으면 세상은 우리 상상을 넘어서는 뜻밖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말한다. 희망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 막연한 낙관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희망 찾기 노력은 미국의 진보진영이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성공으로 참담한 쓴맛을 맛본 뒤 나온 것이기에 값지다. 저자는 안일하게 절망하기보다 미래에 희망이란 패를 걸고 도박을 하며 운동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자고 한다. 때문에 1990년대 후반 영국에서 떠들썩했던 ‘거리 되찾기’ 운동을 주목한다. 해학적인 계급 투쟁은 고속도로 건설로 나무가 잘려 나가고 지역사회가 파괴되는 것을 막았다. 고가도로에서 떠들썩한 레이브 음악을 틀고 거리파티를 열었다. 콘크리트에 구멍을 뚫고 나무도 심었다. 권위주의적 위계질서와 정치권력의 쟁취 대신 주체적 자발성과 분방한 창의성을 중시하는 것이 변혁운동의 새로운 양상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후세인의 단죄를 요구하면서도 이라크 전쟁은 반대하듯 이분법을 거부하는 것도 이 시대 운동진영의 새로운 덕목이라고 쏘울닛은 덧붙였다.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희망 곶’에서 만난 ‘천상의 정원’

    ‘희망 곶’에서 만난 ‘천상의 정원’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땅’은 아마 검은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가 아닐까. 사자와 기린, 얼룩말 등이 초원을 누비는 환상적 모습이 떠올려진다. 또한 영화 ‘뿌리’의 주인공 쿤타킨테 같은 흑인이 순진한 눈동자를 껌벅이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지난달부터 타이항공이 인천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직항 노선을 띄워 한층 가까워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 다녀왔다. 테이블마운틴, 희망곶, 물개섬 등 천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글 사진 케이프타운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우리나라와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아프리카. 그만큼 멀고 위험하다는 생각에 선뜻 갈 수 없는 곳 또한 아프리카다. 말라리아 등 예방접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날씨는 어떤지, 가면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가슴 가득 설렘과 궁금증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 멀고 먼 아프리카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까지 비행시간만 약 20시간. 인천에서 방콕까지 6시간, 방콕에서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12시간이 걸려야 도착한다. 요하네스버그의 OR 탐보 국제공항에 도착했지만 공항밖의 광경은 보지 못했다. 치안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안내원이 “남아공에서 다른 곳은 몰라도 요하네스버그는 정말 치안이 불안합니다. 대낮에도 강도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라 아무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사실 1990년대부터 주변 다른 국가의 흑인들까지 상업의 중심지인 요하네스버그로 몰려들면서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졌다. 그래서 은행, 무역회사 등은 요하네스버그 중심지를 떠나 외곽에 새로운 타운을 형성해 점점 슬럼화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인 케이프타운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이다. 왕복 12만원선. 주의할 점은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내선에서 기내 서비스는 없다. 혹시 스튜어디스가 콜라나 빵을 권하기도 하지만 거절하는 게 좋다. 비록 우리 돈으로 2000∼4000원이지만 ‘공짜’가 아니기 때문. # 동화 속 나라,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 시내를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꺼내 창밖의 풍경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름다운 쪽빛 바다를 따라 그림 같은 집들이 이어지고 파란 잉크가 묻어나올 듯한 하늘 아래 자리잡은 예쁜 산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유럽의 작은 도시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사진기를 잠시 내려놓고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머더 시티’(어머니의 도시)라고 불리는 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의 발전이 시작된 곳으로 ‘아프리카의 작은 유럽’이다. 남아공 인구의 백인 비율이 15%밖에 되지 않지만 여기만큼은 유일하게 백인들이 더욱 많은 곳이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와 다양한 식물군, 아름다운 쪽빛 바다, 깨끗한 공기로 영국, 프랑스인 등 유럽인들이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도시다. 아프리카의 최남단,1만 4000여종에 달하는 식물들의 보고,1년 내내 서핑을 즐길 수 있는 바다, 기묘한 모양의 테이블 마운틴, 물개섬 등 다양한 볼거리와 수십 개의 특급 호텔로 아프리카 관광의 1번지이다. 그래서 영국의 BBC에서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50선’에서 5번째로 캐이프타운을 올려놓았다. # 신선이 노니는 아프리카의 비경, 테이블마운틴 케이프타운에서는 탁자 모양의 산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형태로 약 5억년 전 바다에서 솟아오른 산이란다. 높이가 1032m. 302m 지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걸어서도 올라갈 수 있지만 3시간가량이 걸린다.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내려다보는 케이프타운은 바다와 어우러져 정말 아름답다. 벤치에 앉아 부서지는 햇살을 맞으며 밀어를 속삭이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달력 속의 그림이다. 테이블마운틴 한 편에서 구름이 쏟아진다. 마치 하얀 테이블보가 바닥으로 떨어지듯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흐르는 구름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케이블카는 수시로 운행한다. 다만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운행하지 않으니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케이블카에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이상하게 바닥이 움직인다. 관광객의 편의를 생각해 정상에 오르는 4분여 동안 케이블카의 바닥이 한 바퀴 돌아 사방을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정상에 오르자 아름다운 항구도시 케이프타운과 대서양의 푸른 물결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또한 대서양의 내음을 가득 머금은 거센 바람에 장시간 비행에 지친 몸의 피로가 사라진다.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보았던 것은 그야말로 ‘밑밥’이었다. 이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평평한 정상에는 동서 3㎞, 남북으로 10㎞가량의 펼쳐진 드넓은 모습에 숨이 멎는 듯하다. 구름이 저만치 발아래에 하얀 강물이 흐르듯 지나가고 형형색색의 꽃과 풀이 가득한 이곳은 ‘천상의 정원’이다. 정상의 산책로 따라 걸었다. 남아공의 국화인 킹 프로테아를 비롯해 핀보스, 에리카, 콘부시, 핀쿠션 등 예쁜 꽃들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재미난 것은 아주 위험한 절벽에도 철조망이나 ‘위험’이라는 표지판이 없다. 테이블마운틴 옆으로 예수의 12제자를 본떠 이름지은 ‘12사도 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진다. 또 케이프타운 남쪽 앞바다에는 외롭게 떠있는 조그만 섬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에 항거하다 18년 동안 정치범으로 수감된 곳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감옥 로빈섬이다. 지금은 국립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1999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섬에는 만델라의 수감 번호가 적힌 감방과 그의 체취가 묻은 담요와 식기가 보존돼 있다. 테이블마운틴을 오를 예정이라면 오후 5시를 넘어 오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아마 해가 진다면 하얀 구름의 바다가 붉은색으로 변하는 또 다른 장관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 아픔이 묻어 있는 바람의 땅, 희망곶 희망곶으로 향했다. 우리에게 익히 ‘희망봉’으로 알려진 이곳의 원래 명칭은 ‘케이프 오브 굿 호프’(Cape of Good Hope)이다. 케이프타운 도심에서 자동차로 40 여분. 해안을 따라 달리는 내내 에메랄드빛 바다가 주는 푸근함에 가슴이 넉넉해진다. 짧은 반바지 차림에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보석같은 은빛 모래가 쪽빛 바다의 물결과 어우러지는 캠스비치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가족들이 모습에서 ‘왠지 늙어서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였다. 쪽빛 바다의 물결이 점점 거세지자 윈드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나타난다. 파도가 거세지자 드디어 희망곶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증거란다. 아프리카의 가장 끝머리로 알려진 이곳은 1488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던 포르투갈인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우연히 인도인 줄 알고 상륙했다가 파도와 바람이 거세다고 해서 ‘폭풍의 곶’이라 불렀고,1498년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것을 기념해 ‘희망의 곶’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의 바람을 헤치며 해안 절벽으로 올라섰다. 탐험가의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자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온도가 낮은 대서양의 바다빛은 검푸르고 온도가 높은 인도양은 에메랄드빛이다. 정말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의 이곳에 ‘희망’을 가져다 주었을까. 수 세기 동안 아프리카인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 거센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듯했다. 그들의 절절한 사연을 말하려는 듯 ‘웅웅’거리는 바람만 휘몰아쳤다. ■ 사람이 만든 작은 천국,선시티 요하네스버그의 OR 탐보 공항에 도착한 여행객들의 대부분은 바로 인근의 남아공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나 리조트 도시인 선시티 등을 찾아나선다. 요하네스버그는 치안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북서쪽으로 187㎞ 떨어진 선시티는 남아공의 대기업 선그룹이 만든 대규모 리조트 도시다.4개의 특급 호텔과 두 개의 골프코스 그리고 강원도 속초의 워터피아 규모의 파도풀, 패러세일링, 제트스키 등 각종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뿐 아니라 카지노까지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휴양지이다. 게다가 리조트가 필레네스버그 국립공원내에 있어 간단한 사파리의 맛(?)을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필레네스버그 국립공원은 전체 면적이 500㎢로 소위 ‘빅5’로 불리는 사자와 코뿔소, 코끼리, 표범, 물소를 비롯한 364종의 동물 1만 200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다.260란드(약 3만 4000원)만 내면 공원 안으로 두 시간짜리 짧은 사파리 투어를 할 수 있다. 오전 11시와 오후 4시 등 두 번 출발을 하는데 아무래도 오후에 타는 것이 동물들을 볼 확률이 높다. 트럭을 개조한 사파리차를 타고 출발해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영양의 일종인 스프링복스. 육중한 몸집의 코뿔소, 호수에서 진흙 목욕을 하는 10여 마리의 코끼리떼와 얼룩말도 보인다. 특이한 것은 자신의 승용차로 직접 사파리를 즐길 수 있는 재미난 곳이다. 해가 산 너머로 자취를 감출 무렵 암사자 10여 마리가 모여 있는 곳에 트럭이 멈춘다. 운전자 겸 가이드가 “지금 암사자들이 숲 안쪽에 있는 얼룩말을 사냥하려 하고 있다.”며 조용히 지켜보란다. 정말 누워서 자던 암사자들이 하나 둘씩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더니 숲 이쪽저쪽으로 사라진다. 일순 사자들뿐 아니라 사파리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자동차를 매일 봐서인지 사자들이 승용차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얼룩말을 포위하기 위해 여기저기로 사라진 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자 숲속에서 ‘후다닥’,‘우∼흥’하는 소리가 긴박하게 들려온다.“조용히 하고 잘 들어보세요.”라는 가이드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으∼응’하며 얼룩말이 마지막 저항을 하다 이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고는 무엇인가 뜯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자들이 얼룩말을 먹는 소리란다. 비록 숲속 안쪽이라 보지는 못했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야생’을 느낄 수 있었다. 이밖에 수천마리 물개떼가 햇볕을 쬐며 한가롭게 휴식을 즐기는 하우트 베이의 물개섬도 볼 만하다. 케이프타운 해안에서 유람선을 타고 15분 정도 바다로 나가면 커다란 바위섬에 한가로이 잠을 자고 장난을 치는 물개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볼더스 비치에 가면 아프리카 펭귄 2000여 마리가 눈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모래가 날릴 만큼 강한 바람이 부는 볼더스 비치에서 서식하는 아프리카 펭귄들이 바위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은 정말 귀엽다. 또 요하네스버그의 레세디 민속촌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민속촌이다. 줄루, 소토, 코사, 페디 등 남아공을 대표하는 4개 종족의 주거 생활양식과 그들의 전통 공연을 볼 수 있다. # 가고 싶어요, 아프리카 ▲가는 길:아프리카 가는 길이 편해졌다. 한국에서 남아공까지는 비행기 탑승 시간만 20시간 정도 생각하면 된다. 지난 10월31일부터 방콕∼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구간의 취항을 시작한 타이항공을 이용하는 것이 가격도 저렴하고 여러모로 편리하다. 이 노선에는 최신형인 에어버스 340-600기종이 투입됐다. 인천에서 방콕을 거쳐 바로 요하네스버그로 간다. 혹시 일정이 허락한다면 돌아오는 길에 하루나 이틀 정도 방콕에서 쉬었다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권 가격은 조건에 따라 90만원부터 152만원까지. 홍콩에서 남아공항공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비행시간이 길고 갈아타므로 짐은 되도록 간단하게 꾸려 기내에 들고 타는 것이 좋다. ▲패키지 여행상품:대부분의 대형여행사들이 아프리카 상품을 팔고 있지만 전문 여행사를 이용하는 편이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클럽아프리카(www.aat.co.kr)는 개조한 트럭을 타고 수영장, 샤워장 등이 갖추어진 캠프 사이트와 도시를 돌아보는 ‘아프리카 트레킹’상품은 220만원이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과 함께 여행하므로 인기다. 또 남부 아프리카 쪽인 남아공, 짐바브웨, 보츠와나, 잠비아 등을 엮은 4개국 8일 상품이 319만원이며 빅토리아폭포와 선시티, 케이프타운을 엮은 8일 상품은 349만원. 아프리카의 3∼4국을 돌며 사파리를 즐기는 8∼9일짜리 상품은 300만원 등이다.(02)772-906. ▲알아두기:남아공의 화폐단위는 란드(R)로 1란드가 원화로 약 130원 안팎. 국내에서 달러로 환전한 뒤 현지 공항이나 은행에서 재환전해야 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이 늦다. 현지시간이 자정이면 한국시간은 오전 7시이다. 남반구에 위치한 남아공은 북반구의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 남아공은 지금 여름의 초입으로 한낮엔 더운 편이지만 테이블마운틴 등은 바람이 심하므로 점퍼와 자외선 차단제인 선블록과 선글라스 등은 필수. 또 크루거 국립공원 등 북부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말라리아 예방접종이 필요없다.
  • 儒林(737)-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8)

    儒林(737)-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8)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8) 꿈에서 깨어났지만 그 내용이 너무나 선연하여 두향은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꿈속에서 치마폭을 벌리고 받은 그 큰 별이 아직도 몸 위에 감촉으로 살아있는 듯하였다. 무슨 꿈인가. 두향은 누운 자세 그대로 꼼짝도 않고 생각하였다. 캄캄한 어둠 속을 맨발로 달려가고 밤하늘에서 별똥별이 흐르고 그 유성을 받으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제자리만 맴돌 뿐, 꿈에서 깨어나는 악몽은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꾸던 꿈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이된 일인가. 이번에는 내가 떨어지는 별을 두손으로 받았다. 치마폭을 벌려 그 별을 분명히 받았으며 행여 그 별이 튕겨져 나갈까 치마폭을 감싸 쥐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을 뒹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두향은 숨죽여 생각하였다.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듯 하늘에서 유성이 흐른다면 지상에서는 큰 인물이 죽는다는 징조가 아닐 것인가. 꿈속에서 보았듯 감히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찬연한 광채를 뿜어대고 있는 별이야말로 단 한사람, 나으리를 가리키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그 큰 별이 그런데 어째서 내가 달려가지도 않았는데 제 스스로 내게로 다가와 떨어져 두손으로 치마폭을 벌리자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는가. 아아, 그렇다면. 순간 두향은 소스라쳐 놀라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나으리께서는 연세하신 것이 아닐까. 이승을 떠나면서 나으리께서는 내게 마지막으로 기별을 전해오신 것이 아닐 것인가. 나으리께서는 그 옛날 헤어질 무렵 치마폭에 써주셨던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더라.’라는 정표의 내용 그대로 이제 소리 없는 죽음으로 이별하게 되었으니, 나으리께오서는 꿈속에서 큰 별로 나타나 두향의 치마폭을 향해 떨어짐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알려 오신 것이 아닐 것인가. 두향은 방문을 열었다. 동지섣달이라 하더라도 아직 유시였으므로 땅거미가 내리지 않은 어둑 저녁이었다. 그새 잠깐 낮잠이 든 모양이었다. 하늘에서는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낮잠을 자는 짧은 순간에 함박눈이 내려 어느덧 설편(雪片)은 온누리를 뒤덮고 있었다. 사방은 소리 하나 없고, 산야는 다같이 깊은 망각 속에 갇혀서 아득한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강물은 지난 며칠 새의 엄동으로 꽝꽝 얼어붙어 있었으나 그 위로 내리는 꿈과 같은 눈발은 난분분 난분분 서로 엉겨 붙어 춤추면서 내려오다 지치고 피로해 한 빛에 만가지 모양을 하고 지붕과 나무, 뜨락이며 장독대 위를 한결같은 손길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 儒林(736)-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7)

    儒林(736)-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7)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7) 똑같은 꿈이 다시 시작되는군, 하고 두향은 생각하였다. 여전히 캄캄한 밤이었다. 먹물을 부어내린 것 같은 어둠이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두향은 그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어서 두향은 그 풍경 속에 던져진 순간 또다시 같은 꿈이 시작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꿈이란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현실감은 한층 더 생생하였다. 악몽이란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두향은 깨어나려는 의식도 없이 꿈속에 자신을 떠맡기고 있었다. 늘 그러하듯이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캄캄한 어둠이었으므로 이따금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고 가시덤불에 찔리기도 하였다. 극심한 고통이었으나 가위에 눌린 꿈은 깨어지지 않았다. 두향은 계속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다. 막상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그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지만 두향은 서둘러 어둠 속을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늘 그러하듯 어둠 속에서 폭죽이 터지듯 갑자기 눈부신 별이 떠올랐다. 그 별빛이 너무나 강렬하여서 두향은 그 별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강렬한 별빛으로 대낮처럼 드러난 풍경은 여전히 중유를 헤매고 있는 유령과도 같은 살풍경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밤하늘에 떠올랐던 별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두향은 그별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내쳐 달렸다. 그러나 가도가도 제자리에 맴돌고 있었을 뿐 그 떨어지는 별을 받아낼 수는 없었다. -안 돼요. 두향은 울부짖었다. -별이 떨어져서는 안 돼요. 그 별을 내가 받아야만 해요. 그래야만 별을 살릴 수가 있을 거예요. 안 돼요, 안 돼요. 거기까지였다. 두향은 꿈속에서 생각했다. 내 꿈은 항상 거기에서 끝나고 소스라쳐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꿈에서 깨어나지 않고 오히려 이번에는 그 별빛이 자신에게 점점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하고 두향은 생각하였다. 항상 꿈속에서는 떨어지는 별을 받으려고 달려가다가 가위에 눌려 기진맥진하여 깨어나곤 하였었는데 어째서 나는 지금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것인가. 그뿐인가. 한번도 받지 못한 그 별이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향은 한가득 두 손을 벌렸다. 눈부신 별은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손을 벌려 받기엔 너무나 큰 별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두향은 치마폭을 펼쳤다. 그 순간 유성은 정확히 두향의 치마폭에 떨어졌다. 행여 별이 떨어질세라 두향은 감싸 쥐고 어둠 속을 뒹굴었다. 그 순간. 두향은 꿈에서 깨어났다. 언제나 그러하듯 온몸에는 식은땀이 흥건하였고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 가족과 떠나는 군산 탐조여행

    가족과 떠나는 군산 탐조여행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에 겨울의 진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다름 아닌 겨울 철새들이다.10월 말부터 시베리아와 몽골 등에서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로 날아들기 시작해 지금은 약 30만∼40만마리의 철새들이 보금자리를 잡았다. 12월 중순에 가장 많은 겨울 철새들이 날아오지만 날씨가 춥고 바람이 많아 탐조 여행을 어렵게 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동반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비교적 날씨가 덜 추운 이맘때가 탐조 여행의 적기다. 지금 전국 유명 철새도래지에는 기러기,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가창오리 등 다양한 철새를 만날 수 있다. 또한 17일부터 21일까지 전북 군산의 금강철새조망대 일원에서 제3회 군산 철새축제도 열린다. 그래서 이번 주는 금강에 다녀왔다. 아름답고 예쁜 새들을 만나러 떠나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새들의 아름다운 군무 오후 5시를 넘은 전북 군산의 금강 하구 둑. 금강을 까맣게 뒤덮고 있는 20여만마리의 가창오리떼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금강대교 너머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즐기는 듯 강물에 몸을 맡기고 흔들흔들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저 속이 타는 것은 오직 ‘나’ 혼자인 것 같다.‘해는 지고 있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저 녀석들이 언제 움직이려나.’‘저 많은 가창오리떼가 일제히 하늘을 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 하는데’ 초조하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가로운 녀석들을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를 1시간여. 이젠 붉은 빛을 토해내던 태양도 사라지고 마음속에 있던 실낱 같은 희망이 ‘에이. 오늘도 틀렸나’하는 실망으로 바뀔 때쯤 ‘퍼득퍼득’하고 몇 마리가 날아오르자 강을 까맣게 덮고 있던 녀석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른다. # 수많은 점들이 만드는 새로운 세계 어슴푸레한 가을밤 하늘에 거대한 ‘돌고래’의 아름다운 비행이 시작된다. 하늘 저쪽에서 이쪽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다니며 ‘부메랑’,‘뫼비우스의 띠’로 변화를 거듭한다. 순간 강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입에선 ‘와’하는 짧은 탄성이 흐른다. 가창오리의 화려한 군무는 이렇게 시작한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모양을 바꾸며 창공으로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강으로 내달리기도 한다. 경쾌한 피카소의 붓놀림처럼 오렌지색으로 변한 하늘에 화려한 그림을 그려낸다. 금강 주변을 몇 차례 맴돈 가창오리떼가 탐조대를 지나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모두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거대한, 살아 있는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자연과 신이 만들어낸 ‘조화’. 아직도 그 감동은 가슴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가창오리는 야행성이다. 그래서 낮에는 강 가운데서 ‘둥둥’떠다니며 쉬고 있다가 해가 지면 먹이 활동을 하러 날아간다. 인근의 호남, 김제 평야에 떨어진 곡식들을 먹으러 다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김없이 해질녘이면 그들이 아름다운 군무를 펼치는 이유다. # 재미가 가득한 군산철새축제 이번 군산 철새축제는 다양한 부대행사가 가득하다. 철새탐조 투어는 기본이고 새둥지 만들기 체험, 철새퍼즐, 천연 새 비누 만들기, 클레이 점토 등 아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이벤트가 열리고 연날리기, 별자리 관측, 윤무부 교수와 함께 하는 철새이야기 등 내실 있는 행사도 많다. 또 인형극, 철새매직공연, 영화상영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곁들여진다. 일정한 문제를 맞추면 상품이나 군고구마 등 먹을거리를 살 수 있는 ‘철새코인’을 주거나 탐방모자 등 선물도 나누어준다.(063)453-7213,www.gunsanbirdfestival.net # 살아있는 체험 학습장 전북 군산에 간다면 꼭 한번 가볼 곳이 금강철새조망대이다.1층의 상설전시장에 들어섰다. 고양이 소리를 낸다고 이름 붙여진 괭이갈매기를 보며 “보통 새들은 둥지에 알을 낳는데 괭이갈매기는 어디에 알을 낳을까요.”라는 학예사의 질문에 아이들은 묵묵부답.“바로 바위틈에 나뭇잎 등을 깔고 알을 낳기 때문에 알이 바위 색깔과 비슷하고요. 자갈과 비슷한 검정색의 알은 꼬마물떼새의 알인데 자갈에 낳기 때문에 이런 색이에요, 새들도 똑똑하지요.”라는 설명에 진지한 눈으로 살피는 아이들. 버튼을 누르면 박제된 새에 불이 들어오며 새소리가 나는 곳, 입체 영상으로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곳, 새가 나는 원리를 자세히 보여주는 해부관 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다.2층에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의 표본과 철새들이 먹는 금강의 물고기들을 모아놓은 수족관이 자리 잡고 있다. 엘리베이터로 11층에 올라가면 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철새 조망대. 무료로 망원경을 볼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야외에도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실내온실에 들어섰다. 순간 ‘파드득’하며 귓가를 스치는 무엇에 깜짝 놀랐다. 아니 살아있는 새들이 꽃과 나무가 가득한 온실을 날아다닌다.“엄마 저것 봐. 새야, 새.”하는 아이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가득하다. 새가 부화하는 과정을 실제로 보여주는 부화체험장. 물새장, 산새장 등이 있는 금강조류공원 등도 볼만하다. 또 금강철새조망대의 자랑은 거대한 가창오리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철새신체탐험관’이다. 거대한 새의 뱃속에 들어선 듯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기낭, 허파 등 각 신체 부위에 모니터가 있어 자세한 기능과 역할을 설명해준다. 구석구석 돌아보는 재미가 가득한 곳이다. 내년 2월말까지 하는 철새탐조투어도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권하고 싶다. # 배고프면 꽃게장 드세요 군산에는 알이 꽉 찬 봄꽃게로 담근 게장을 파는 집이 많다. 그 중에서도 금강철새조망대 인근에 있는 유성가든(063-453-6670)의 맛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5월에 서해안에서 나는 꽃게를 급속 냉동해서 쓰는 집으로 매일 조금씩 게장을 담근다. 죽염 간장만으로 간을 해서인지 ‘게’의 맛과 싱싱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안주인이 큼직한 게를 직접 손질해서 뚜껑에 있는 알과 내장을 접시에 담아준다. 여기에 뜨끈한 밥을 비벼 김에 싸먹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간장게장은 1인분에 2만원. 매콤한 양념게장은 2만 1000원이다. ■ 또다른 탐조명소들 우리나라에서 철새들 만날 수 있는 곳은 100여 곳이 넘는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곳을 소개한다. # 겨울 철새의 1번지 충남 서산시 부석면과 고북면에 걸쳐 있는 천수만은 가창오리의 군무 하나로 세계적인 철새도래지가 됐다. 현대건설이 1980년 이 일대를 간척, 간월호와 부남호 등 2개의 담수호를 조성하면서 철새들의 낙원이 됐다. 간척지에 대규모 농경지가 들어서 철새들의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간월호 인근에서 해질녘이면 가창오리가 떼지어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흑고니, 노랑부리저어새, 황새, 재두루미 등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조들도 눈에 띈다. 서산시 문화관광과(041)660-2498. # 다양한 철새를 만난다 경남 창원시 동읍에 있는 주남저수지는 낙동강의 범람으로 생겨난 자연습지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다양한 찰새들이 날아온다. 큰부리큰기러기, 노랑부리저어새 등 20종에 가까운 천연기념물 철새를 탐조할 수 있다. 창원시 문화진흥계 (055)280-2043. # 두루미들의 최대 월동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 위치한 철원평야는 휴전선 인근의 대규모 곡창지대가 있어 철새들이 겨울나기에 적합하다. 추수를 끝낸 벌판에 버려진 낙곡이 풍부한데다 인적이 드물어 겨울 철새들의 낙원이다. 선비의 상징으로 여겨온 두루미(학)의 최대 월동지로 전 세계에 남아 있는 2000마리의 두루미 중 3분의 1가량이 이 곳에서 겨울을 난다. 또 독수리, 흰꼬리수리, 매 등 좀처럼 보기 힘든 맹금류도 만날 수 있다. 고석정 전적지관리사무소 (033)450-5558. # 물새들의 지상낙원 부산 을숙도를 중심으로 여전히 많은 철새들이 모여드는 탐조 관광지이다. 낙동강하구는 국내 대표적인 삼각주 지형이다. 삼각주가 형성돼 있다는 것은 영양분과 퇴적물이 많아 농사에도 좋지만 새들의 먹이가 풍부하다. 그래서 붉은부리갈매기, 도요새, 가마우지 등 물새들이 모여든다. 을숙도 관리사무소 (051)220-4068. # 철새들의 마지막 둥지 전남 해남군 화산면의 고천암은 둘레 14㎞의 호수로 길이 3㎞에 달하는 갈대밭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영산강 하구의 간척사업으로 생긴 드넓은 농경지에 낙곡이 많아 철새의 보금자리로 자리잡았다. 천수만의 호수가 얼기 시작하는 12월 말쯤이면 철새들은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금강, 주남저수지를 거쳐 이 곳에 마지막으로 둥지를 튼다. 해남군 문화관광과 (061)530-5224.
  • ‘연기 고수’들 연극 무대로

    ‘연기 고수’들 연극 무대로

    요즘 공연계는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다.20·30대 젊은 관객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붕어빵처럼 비슷비슷한 작품이 양산되는 형국. 그런데 올 겨울 연극무대가 중후해진다. 김혜자를 비롯해 정영숙, 사미자, 이순재, 양택조 등 TV에서 주로 활동해온 중견 연기자들이 잇따라 무대 나들이에 나섰다.‘아줌마 바람’을 불러일으킨 뮤지컬 ‘맘마미아’‘메노포즈’처럼 연극동네에도 중장년층의 반란이 일어날지 기대를 모은다. ●김혜자 ‘다우트´로 5년 만에 카리스마 연기 두말이 필요없는 배우, 김혜자는 연극 다우트(12월5∼1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출연한다. 영화 ‘문스트럭’의 작가 존 패트릭 셴리가 쓴 ‘다우트’는 인간 내면에 잠재한 의심과 의혹, 확신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지난해 퓰리처상과 토니상 등을 휩쓸었다. ‘셜리 발렌타인’이후 5년 만에 무대에 서는 김혜자는 극중 냉철한 엘로이셔스 원장수녀 역을 맡아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극단 실험극장이 국내 초연하는 이번 공연에는 연기파 배우 박지일이 엘로이셔스와 대립하는 플린 신부로 분해 극적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킨다.2만 5000∼5만원.(02)889-3561. ●정영숙·박순천 ‘황금연못´ 잔잔한 감동 극단 유의 황금연못(12월1∼31일 유시어터)에는 정영숙, 권성덕, 박순천 등 낯익은 얼굴들이 등장한다.1981년 캐서린 햅번과 헨리 폰다, 제인 폰다 부녀 등 호화 캐스팅과 탄탄한 작품성으로 아카데미상을 휩쓴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겼다. 오랜 세월 등을 돌린 채 살아온 아버지와 딸이 남자친구의 아들을 매개로 소통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캐서린 햅번이 연기했던 에델로 분하는 정영숙은 “연극을 한 지가 30년이 넘어 두렵다. 하지만 언제 또 해볼까 싶어 욕심을 냈다.”면서 “중년 세대와 젊은 세대에게 두루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만족스러워했다. 극단 유의 유인촌 대표는 “어른들이 볼 만한 연극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연출은 유 대표의 친형인 유길촌씨가 맡았다.3만∼4만원.(02)3444-0651. ●양택조·사미자 ‘늙은부부´ 황혼의 재발견 지난 11일 막올린 늙은 부부 이야기(내년 1월14일까지, 코엑스 아트홀)는 노년의 사랑도 청춘의 연애만큼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슴 따뜻한 연극이다. 2003년 초연 이후 매년 배우들을 바꿔가며 재공연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에는 지난해 콤비였던 이순재·성병숙과 함께 양택조·사미자 커플이 번갈아 출연한다. 사별의 아픔을 공유한 노신사와 할머니가 티격태격 말다툼끝에 황혼을 함께 맞이하는 이야기는 중년 관객에게는 공감대를, 젊은 관객에게는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절감하게 한다.2만∼4만원.(02)741-3934. 이 밖에 중견 연기자 연운경은 비구니 스님들의 구도 과정을 그린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14일∼내년 1월14일 제일화재 세실극장)에 출연한다.1만 5000∼3만원.(02)3443-101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12일 TV 하이라이트]

    ●어둠 속의 외침, 감방(YTN 오후11시5분) 민주화운동가들의 옥중투쟁 뒤에는 ‘민주교도관’이 있었다. 지난 70∼80년대 정치범을 보고 독재정권의 부당성을 깨달은 이들은 김지하의 양심선언문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알린 이부영의 ‘비둘기 편지’의 반출을 도왔다. 이들의 육성 증언을 직접 들어본다. ●EBS장학퀴즈(EBS 오후5시) 가톨릭학교인 천안복자여고와 야구의 명문 인천고의 대결편. 천안복자여고의 박지성·김윤옥 팀은 스피드퀴즈에서 종전 최고기록을 갈아치우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고 인천고의 천윤수군은 거침없이 버저를 눌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 두 학교의 대결은 어떤 결말을 맺을까.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SBS 오전7시40분) 이번 주 손님은 날카로운 실명비판으로 유명한 강준만 전북대 교수다. 강 교수가 특별한 것은 글을 쓰는 것 외에는 대외적인 활동을 삼가해온 교수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최근 저서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중심으로 요즘 진보·보수 논란에 대해 말한다. ●누나(MBC 오후7시55분) 승주는 뮤지컬 티켓을 들고 건우를 기다린다. 그러나 건우는 우수논문상을 받으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승주는 홧김에 팩소주를 마시고 건우의 회식장소를 찾아가 행패부린다. 한편 건세는 유순과 결혼을 빨리 진행하려 하지만 가족들은 만류하는데, 이 와중에 건세는 더 잘 살겠다 다짐한다. ●비타민(KBS2 오후10시5분) 한국인의 경제질환 시리즈 가운데 가장 관심이 많을 법한 주제 ‘비만’을 다룬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몸매의 소유자 모델 변정민과 이에 대비되는 탤런트 맹상훈, 가수 정원관·신동 등이 초대손님으로 나와 퀴즈를 풀면서 비만의 문제점과 올바른 다이어트법에 대해 알아본다. ●일요다큐-내장산(KBS1 오후11시50분) 올 가을 단풍은 유난히 즐길 거리가 없었다지만, 그 와중에도 내장산은 빛났다. 예로부터 내장산은 조선8경 가운데 하나로 꼽혔지만 그 숨은 맛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그래서 화가이자 산악인인 이상조 교수와 그의 친구들이 내장산 최고의 절경 입암산성 코스를 보여준다.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5)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사유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5)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사유

    모든 것이 다 환영이고 환상이라고 하면, 언뜻 매우 허무적이고 염세적인 세계관을 풍기는 것처럼 들린다. 모든 것이 환상이니 돈 벌어서 무엇하며, 살아서 무엇하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 동안 세상은 이런 생각을 허무주의적이고 염세적인 도피주의와 통한다고 많이 가르쳐 왔다. 그러나 저 말은 모든 소유를 마치 아침이슬처럼, 번개처럼, 환상처럼, 물거품처럼 여기라는 의미를 가리키지, 존재를 그렇게 무상하게 여기라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일체개환(一切皆幻=모든 것이 다 환상)의 생각을 허무론의 길잡이라고 주장했던 철학은 다 소유론적 지성의 철학이다. 인생을 소유론적 관점에서 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기에, 그 가치가 아침이슬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소유론적 지성의 철학이 받아들일 수 없었겠다. 우리는 일체개환의 사유가 소유론적 인생관을 극복하려는 존재론적 사유의 길잡이라고 보아야 한다. 일체개환의 사유는 패배주의를 자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소유의 상실도 두려워하지 않고 일체존재를 위하여 헌신하는 무사심의 용기가 솟아나게 한다. 우리는 가치라는 개념을 매우 숭고하게 생각하는 그런 교육을 그 동안 받아왔다. 그 가치는 상품이 시장에서 고가의 가격으로 팔리는 것과 유사한 성질을 지닌다. 따라서 가치와 가격은 서로 상통한다. 내 인생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비싼 것을 소유한 것이 가치 있는 인생이라 하겠다. 물론 그 가치가 정신적 가치이지만, 정신적 가치도 시장가격처럼 남들이 우러러보기를 바란다. 따라서 자연히 가치가 있는 인생은 가치가 별로 없는 인생에 비하여 귀중품을 가진 인생처럼 소유론적 평가에 해당한다 하겠다. 가치론은 소유론이고 택일론이다.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을 가려서 전자를 선택하려는 욕망은 가치론의 심리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가치는 인간의 지성이 좋다고 평가하는 값어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값어치가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다 소유하기를 바란다. 그런 값어치는 두 가지로 대별된다. 그 하나는 도구적 값어치고, 또 다른 하나는 목적적 값어치다. 도구적 값어치는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편리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고, 목적적 값어치는 생활의 정신적 목표를 달성케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을 일컫는다. 도구적 값어치는 주로 경제기술적인 차원에서 편리의 가치와 연관되고, 목적적 값어치는 주로 정신적·형이상학적 차원의 가치와 직결된다. 도구적 가치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해서 편리의 혜택을 받기 때문에 그것을 소유하기를 원하고, 목적적 가치는 정신적으로 세상을 그런 가치에로 전향케 하여 사람들이 그런 가치를 갖고 살기를 원한다. 정신이 지향하는 바 그것은 좋은 선이기 때문에, 그 선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지배하기를 원하는 것이 목적의 가치다. 이런 목적의 가치론을 구원주의라고 부르기로 하자. 지금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성의 철학은 이런 가치로서 세상이 구원되어지기를 원했다. 좌우간 가치는 선이다. 그것이 도구적 가치든, 아니면 구원적 가치든 다 선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사유는 이런 가치론에 너무 매달리는 집착의 삶을 풀어주는 해독제의 역할을 한다. 이런 생각은 그 동안의 일반적 교육이념과는 다르다. 그 동안의 일반적 교육론은 소유론적 삶의 방식에 집중된 의미론을 부각시켜왔다. 그러나 가치론에 거리를 두려는 생각은 가치론이 필연적으로 반(反)가치의 배설물을 낳는다는 것과 직결된다. 모든 생명체는 다 타자의 것을 취득해야만 살아간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필연적 법칙이다. 타자의 것을 취득했으니까 배설하는 것은 어김없다. 그러나 자연의 배설물은 자연 스스로가 다 정화시켜 나간다. 이것은 자연의 생태계에서 인간이 저질러놓은 사고를 제외하고, 자연사한 주검이 거의 보이지 않고 스스로 다 청소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세계에는 음식물을 가치로서 먹으면, 반가치의 배설물과 찌꺼기가 필연적으로 쏟아져 나오는데, 이것이 자동적으로 처리되지 않고 남아서 역시 타자들을 괴롭힌다. 가치와 반가치가 자연에서처럼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도구적 가치든, 구원적 가치든 다 반가치의 배설물들을 낳는다. 그 동안 지성의 철학은 이것을 외면해 왔었다. 일체개환의 사유는 가치와 반가치를 다 환상으로 여겨 거기에 너무 목숨을 걸지 말 것을 가르쳐 주는 것과 같다. 이 점을 좀 더 살펴보자. 도구주의의 배설물은 곧 기능주의와 물신숭배사상과 상통한다. 기능주의의 어둠에 대해선 지난 글(44회 글)에서 언급되었기에 여기서 생략하고 물신숭배사상만 언급한다. 물신(物神)숭배주의(fetishism)는 본디 종교인류학의 용어로서 어떤 자연물에 주술적 능력이 있다고 믿는 원시 종교사상의 형태를 가리킨 내용이지만, 마르크시즘이 그 용어를 자본주의에 적용시켜 돈과 돈이 되는 일체에 의하여 주술이 걸려 인간의 존재가 그 물신숭배에 의하여 소외되어버린 상태를 말한 개념으로 변용되었다. 말하자면 인간성이 소유물에 의하여 소외되어 가는 상태를 일컬어 물신숭배화되어 간다고 말한다. 이 물신숭배주의는 곧 배금주의(mammonism)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돈은 인간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의식주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귀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때문에 인간이 돈의 노예가 되어 돈을 물신으로 숭배하는 반가치가 필연적으로 도래한다. 이 도구주의의 반가치로서의 기능주의와 물신주의의 독성을 고발한 사람들은 많다. 이것은 아마도 자본주의의 어둠을 극복하려는 사회주의나 도덕주의의 영향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목적주의로서의 구원주의의 허상을 말하는 이들이 전자에 비하여 희소하다. 그것은 아마도 목적주의적 구원주의가 세상을 정신적 선으로 전회시키려는 이념과 그 사명감에 사람들이 이의를 달기 어려워 생긴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목적주의나 구원주의는 세상이 공동선의 목적으로 지향하게끔 인간의 선의지를 발동한다든지, 아니면 인간의 선의지가 세상의 불의를 씻어내고 정의의 선으로 세상을 재편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고취하고 있다. 구원주의는 꼭 정치적 구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구원도 넓은 의미에서 일종의 정치적 구원의식과 함께 간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이상주의자들이 이 구원주의의 법집(法執)에 빠져 거기에 투신하는 수가 많다. 그래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은 이런 구원주의의 이상을 일컬어 ‘지식인의 아편’이라고 명명했다. 이 세상에는 반드시 정의가 이기는 것도 아니고, 부조리가 역사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 이 세상의 구원이 인간의 가장 성스러운 사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하여 두 가지의 실존적 태도가 있을 수 있다. 그 하나는 카뮈의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사르트르의 것이다. 전자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하여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뾰족한 방도가 없기에 양심의 이름으로 그 부조리에 항거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반항의 철학이다. 부조리를 철저히 의식하면서 죽어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고 카뮈가 그의 저서 ‘반항적 인간’에서 외쳤다. 카뮈는 반항이 철학적 사유의 질서에서 ‘나는 생각한다.’(cogito)에 해당한다고 전제하면서, 이 반항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고독을 벗어나서 모든 인간에게 최초의 가치를 정립하게 하는 공통분모가 되기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항이 부조리한 세상에 공동선의 존재를 정립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르트르의 사상이다. 그는 세상의 부조리와 무의미에 대하여 항거하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적극적 사상을 전개했다. 그래서 그의 만년은 계급적 혁명을 찬양하는 마르크시즘으로 흘렀다. 그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자기 시대를 선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자기 시대에서 스스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외쳤다. 이 말은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상황 II’에서 ‘만든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을 계시한다.’라고 한 말과 상통한다. 카뮈의 반항과 사르트르의 혁명적 행동은 뉘앙스에서 같지 않다. 사르트르가 ‘만들어 간다는 것’은 ‘역사를 만들어 간다.’(making history)는 구원주의를 말한다. 이런 역사 만들기의 작업이 사르트르에게 마르크시즘을 만나게 했다. 목적주의는 역사 속의 구원주의로 나타난다. 카뮈와 사르트르와 마르크스가 다 철학적 무신론자다. 그러나 나는 이들 무신론적 구원주의가 기독교의 역사신학적 구원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신론이든 유신론이든 다 구원주의는 세상을 절대선의 목적의식으로 개조할 것을 발의하고 있다. 그런 구원주의의 어둠과 배설물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투쟁주의라고 생각한다. 투쟁주의는 역사를 철저히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보고 선의 승리를 위하여 투쟁하는 성전을 독려하는 사상이다. 선을 위한 선전 선동가는 곧 투쟁가이다. 카뮈만이 그런 투쟁의 대결구도를 불신했지만, 사르트르나 마르크스나 역사신학은 다 같은 택일적 선택구조 속에서 의미와 선이 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권력의지로서의 강력한 진리의지를 펴고 있다. 마르크시즘은 세속의 역사신학이다. 일체개환(一切皆幻)의 의미는 도구적 아집과 구원적 법집의 어리석음을 알리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선의 혁명을 위한 고집으로 선의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지나간 동서고금의 역사가 말하듯 혁명이 낳은 신악이 구악에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세상을 괴롭힌다는 것을 일체개환의 사유가 알려주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도구주의와 구원주의의 허상을 이제 깨달아야 할 시점이다. 그 동안 지성주의가 이 세상을 만들어 왔으나, 이제 지성의 소유론이 지닌 배설물을 심각히 생각할 때다. 일체가 환상이라는 생각은 허무를 부르지 않고, 바깥의 문제에 집착하는 것이 헛된 꿈에 지나지 않음을 가르쳐준다. 승찬대사가 ‘신심명’에서 언급했다.“일체 두 가지 생각은 사량 짐작에서 나온 것. 꿈속의 환영과 공화(空華=헛 꽃)를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 버려라.” 그 말은 인생을 소유론에서 존재론으로 전향시키는 단초(端初)의 역할을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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