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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의 어두움 적나라하게 그렸죠”

    “현실의 어두움 적나라하게 그렸죠”

    새하얀 생크림 딸기케이크를 흐뭇하게 음미하다가 갑자기 돌조각을 씹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제2 창비청소년 문학상(2009년) 수상작 ‘위저드 베이커리’가 꼭 그랬다. 위저드(Wizard·마법사)의 판타지를 즐기다가 거지반 읽어갈 무렵 화들짝 놀라며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달콤한 마법의 세계에서 고통스러운 현실로 돌아왔지만 책을 덮을 수도 없다. 이 마법의 책이 마저 읽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제2 창비소년 문학상 수상작 지은이 구병모(본명 정유경)를 만난 느낌도 다르지 않았다. 이름처럼 남자 작가를 기대했는데 귀엽고 깜찍한 기미가 사라지지 않은 서른세 살의 여성이 나타났다. 블랙으로 차려입는 것도 위치(Witch·마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청소년 독자들이 받을 당혹감을 두고 “예상하고 있었다.”면서 “현실의 어둠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줄거리는 이렇다. 열여섯 살인 ‘나’는 아주 어릴 때 친엄마로부터 청량리 역에 버려진 경험이 있다. 그후 엄마는 우울증으로 자살하고,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으로 어린 딸이 딸린 배 선생과 재혼을 한다. 어느 날 ‘나’는 아홉 살 의붓 여동생 무희를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다. 그러곤 폭력을 행사하는 계모와 이를 방관하는 아버지에게 절망해 단골 빵집인 ‘위저드 베이커리’로 피신한다. 빵집의 이름처럼 정말 마법사가 운영하는 빵집 말이다. 이 빵집에서는 평범한 식빵 말고도 100% 화해가 가능한 ‘메이킹 피스 건포드 스콘’이나 실연의 상처를 잊게 하는 ‘브로큰 하트 파인애플 마들렌’, 학교를 대신 가주는 ‘도플갱어 피낭시에’,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망신 주는 ‘악마의 시나몬 쿠키’, 그리고 원하는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타임 리와인더 머랭 쿠키’ 등을 판다. 하지만 이런 환상의 세계에 이어 나타나는 여고생이 자살하는 살벌한 학교생활, 의붓아들에게 저주를 퍼붓기 위해 계모가 부두인형을 주문하는 가정, 의붓여동생을 성폭행한 범인이 ‘나’의 눈에 목격되는 순간 드러나는 혹독한 현실에서 더욱 화들짝 놀라게 된다. ●“청소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쓴 작품” 구 작가는 문제의 대목에 대해 “내 독자인 청소년들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창비측도 수상작 선정에 참여한 청소년심사단이 이 대목에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거들었다. 사실 계모가 독사과로 딸을 죽이려는 ‘백설공주’나 친자식을 둘이나 내다버리도록 방조하는 친아버지가 나오는 ‘헨젤과 그레텔’도 덜하지는 않구나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남다른 미덕도 있다. 청소년들은 각자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가장 혹독한 것이라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견딘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 스스로 선택한 것에는 대가를 치러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 등을 전혀 교훈적이지 않지만 친절하게 이해시키고 있다. 작가는 ‘나쁜 성장 소설’이라고 하지만 ‘친절하고 공감 가는 성장소설’ 같다. 85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포스코의 ‘業·場·動’ 혁신

    포스코의 ‘業·場·動’ 혁신

    포스코가 1일 창립 41주년을 맞았다. 포스코는 31일 경북 포항 본사에서 창립 41주년 기념식을 갖고 제2의 도약을 다짐했다. 이날 정준양 회장은 ‘업(業)·장(場)·동(動)’이라는 3대 혁신 키워드를 제시했다. 정 회장은 “지금은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비장한 마음으로 새로운 각오와 자세를 다져야 할 때”라면서 “더 큰 생각으로 우리의 사명(業)을 생각하고 더 넓은 시야로 새로운 영역(場)을 개척하며,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動).”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쇼트트랙 론’도 강조했다. 그는 “현재 세기적 패러다임 변화는 쇼트트랙 경주의 코너를 도는 것과 같다.”면서 “지금은 속도를 줄이고, 자세를 낮추며, 순간 스퍼트를 위한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순환보직 강화를 통한 ‘혁신 인사’를 단행한다. 정 회장은 “한 부서에서 3년 이상된 직원들은 모두 이동 배치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정체된 조직에 새 바람을 불어넣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오는 13일부터 사무직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자리 이동이 시작된다. 포스코는 이날 ▲비상경영을 통한 경제위기 극복 ▲고객 지향형 마케팅 체제 구축 ▲원료자급도·구매경쟁력 제고 등 위기 극복을 위한 10대 전략과제와 100대 실천과제를 발표했다. 정 회장은 또 ‘스피드 경영’을 강조하면서 위기극복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33개로 압축한 ‘퀵윈(Quick Win)’ 과제를 내놓았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절대 공무원은 안 될 거야

    절대 공무원은 안 될 거야

    추석 전날 저녁이었다. 어머니와 누나, 작은형, 나는 두터운 이불 하나를 나누어 덮고 누워 있었다. 이웃들은 차례 준비를 하느라 부산한 것 같았다. 전 부치고 생선 굽는 냄새가 우리 안방까지 흘러들어 왔다. 우리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당장 저녁 지을 쌀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무원인 아버지가 능력 있다며 취직 시켜준 청년이 감사하다고 쌀 두 가마니를 싣고 온 것이다. 한참을 망설이던 어머니는 결국 쌀가마니를 집안으로 받아들였다. 평소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쌀가마니를 뜯어 곧바로 저녁을 짓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보시면 큰일 나는데’ 나는 조마조마했다. 그때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오셨다. 사실을 알고 놀란 아버지는 “당장 되돌려주라”며 호통을 치셨다. 죄인처럼 서 계시던 어머니는 “죽으러 가자”며 막내인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어둠이 내린 부두는 무서웠다. 어머니는 차마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나를 안고 펑펑 울기만 했다. 그때 “철아~!” 하고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큰형이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없이 울었다. 나는 그날 밤바다의 파도를 아직 잊지 못한다. 어머니와 나는 큰형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다섯 식구는 그날 눈물 속에 저녁을 먹었다. 우리 형제들은 그날 이후 절대 공무원은 안 한다는 무언의 다짐을 했다. 가족들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나는 그 다짐을 깨고 뒤늦게 공무원이 되어 어린 시절 원망스러웠던 ‘공무원 아버지’와 내 모습을 가끔 번갈아 거울에 비춰본다. 그때마다 하늘을 보며 용서를 빈다.“아버지, 아버지는 언제나 옳으셨습니다.” 2009년 3월
  • 숲에서 조난당한 주인 살린 치와와

    왜소증을 앓고 있는 한 여성이 숲에서 조난당했지만 애완견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조돼 훈훈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121cm의 작은 체구를 가진 비버리 버킷(45)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오전 북부 웨일스의 스노도니아 국립공원에서 산책을 하던 중 길을 잃었다. 면적 2170km²의 광활한 숲에서 길을 잃은 그녀는 설상가상으로 휴대폰까지 잃어버렸다. 밤이 되자 어둠이 짙게 내린 고요한 숲에서 공포와 추위와 싸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 여성은 공원 내 반입이 금지된 작은 치와와 종 페블스(Pebbles)와 함께 있었다. 페블스는 작지만 털이 긴 애완견으로 평소 버킷이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개였다. 조난당한 지 하루가 지난 뒤 구조대가 헬리콥터를 이용해 버킷을 찾았을 때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체온저하 등이 우려됐지만 다행히 그녀의 몸은 따뜻했다. 페블스가 밤새 그녀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면서 자신의 체온을 나눴기 때문. 버킷은 “시간이 지날수록 겁이 났고 해가 지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페블스가 기운을 잃어가는 내게 따뜻한 체온을 나눠주고 짖었기 때문에 다행히 정신을 잃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구조대원 크리스 로이드는 “워낙 넓은 지역이고 버킷이 오랜 시간 동안 길을 잃고 헤맸기 때문에 건강이 우려됐지만 생각보다 양호한 상태였다.”며 안심했다. 버킷은 현재 안정을 취하고 있으며 애완견 페블스 역시 건강한 상태다. 그녀는 “페블스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친자식과도 같은 애완견이 나의 목숨을 구해줬다.”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정책진단] 쌀 40만t·비료 30만t 무용지물 될라

    [정책진단] 쌀 40만t·비료 30만t 무용지물 될라

    경색된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 기반 확대 등을 통해 긴장된 남북관계의 매듭을 풀 수 있을까. 금고속에 먼지만 쌓인 채 잠자고 있는 남북협력기금을 어떻게 남북관계의 윤활류로, 개선의 수단으로 활용해 나갈 수 있을까. 북한의 개성공단 왕래 차단 및 미사일발사 임박이란 긴장 속에서 남북협력기금의 현황과 활용 방안 등을 진단해봤다. 지난해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뒤 남북관계는 어둠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남북경색 모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는 무엇일까. 대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지난해 사용된 ‘남북협력기금’을 꼽았다. 22일 통일부에 따르면 남북경색 속에서 지난해 남북협력기금으로 조성된 예산은 총 8467억 7000만원이다. 하지만 실제 집행된 기금은 그해 조성액의 약 24%인 2040억 3800만원이었다. 2007년도에는 조성된 남북협력기금의 약 64%, 2006년에는 조성된 기금의 28%가 각각 사용됐다. 조성된 남북협력기금도 제대로 사용이 되지 않았지만 올해 남북협력기금의 정부 출연금은 지난해(6500억원)보다 3000억원이나 줄었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현정권 출범 이후 북한이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남북협력사업에 제동이 걸려 당초 예상보다 적은 예산이 지출됐다.”면서 “올해 정부 출연금이 줄어든 이유도 지난해 사용하지 못한 예산이 올해 예산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1999년 이후 9년만에 처음으로 우리정부의 대북식량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08년분 대북 쌀 지원 예산 1974억원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정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쌀 차관 지원을 시작한 이후 남북대화가 정체됐던 2001년을 제외하고 매년 쌀을 지원해 왔었다. 2000년과 2002~2005년, 2007년 연간 30만~50만t의 쌀 차관을 제공해 왔다. 북핵 실험이 이뤄진 2006년에도 수해지원 명목으로 쌀 10만t을 무상지원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 3월 현재까지도 대북 식량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의 식량 부족 상황은 심각하다. 정부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는 있다. 통일부 이정주 홍보담당관은 최근 브리핑에서 “정부는 북한이 올해 최소한 100만t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실사를 바탕으로 외부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북한은 183만t 정도가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올해 6537억원을 들여 쌀 40만t, 비료 30만t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냉랭한 남북관계 속에서 지난해 쌀·비료 지원 예산으로 책정했던 3485억원 중 단 한푼도 쓰지 못했다는 점에서 경색 국면이 올해 말까지 지속될 경우 증액된 예산마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도적 지원 예산은 증액됐지만 남북협력기금상의 경협 예산은 2008년 6101억원에서 약 51% 삭감된 3006억원이 편성됐다. 이는 북핵진전, 경제적 타당성, 재정부담 능력, 국민적 합의 등 이른바 ‘경협 4원칙’을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지난해 남북협력기금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은 경색된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남북협력기금은 큰틀에서 평화증진, 남북관계 발전, 평화적 기반 조성을 위해 사용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년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조정기의 시간이었다면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올 한해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남북협력을 증진시켜야 한다.”면서 “집권 2년차인 올해마저 조정기간이 지속된다면 이명박 정부가 끝날 때까지 남북관계는 경색 국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색다른 무용 공연 관람 포인트

    색다른 무용 공연 관람 포인트

    명작과 발레의 만남, 세계적인 안무가의 신작 세계 초연, 봄날에 눈발을 몰고 온 댄스뮤지컬…. 말로만 들으면 궁금증이 더해지고 무용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색다른 무용 공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대담한 안무, 극적 음악, 생생한 심리묘사 러시아 드라마틱 발레의 거장 보리스 에이프만이 발레로 재창조한 ‘안나 카레니나’가 27~29일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에이프만은 대담한 안무, 극적인 음악, 생생한 심리묘사와 장중한 규모의 연출이 특징. 톨스토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 2005년에 초연한 이 작품은 황홀하고 우아한 기교까지 덧붙여져 2006년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안무상을 수상했다. 열정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안나와 그녀의 잔인한 배우자 카레닌, 매력적인 연인 브론스키의 삼각 구도에 초점을 맞췄다. 사랑, 열정과 도덕적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안나는 순수와 어둠, 열정의 솔로로 표현된다. 안나와 카레닌의 듀엣은 억압적이고 구속적이지만 브론스키와의 듀엣은 시적이고 화려하다. 차이콥스키의 삶을 발레로 만들 정도로 그에게 애착을 보이는 에이프만은 이번 작품에도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 ‘교향곡 6번 나단조 비창’ 등 사용한다. 대구오페라하우스(22일), 김해문화의전당(24일), 경기도문화의전당(31일) 등에서도 공연이 예정돼 있다. (02)2005-1004. ●신화적 안무가 에미오 그레코의 세계초연 유럽 현대 무용계의 신화적인 안무가 에미오 그레코와 네덜란드 연극연출가 피터 숄튼의 만남에 ‘세계 초연’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으니 시선이 꽂힐 수밖에. 그레코와 숄튼이 단테의 ‘신곡’을 소재로 진행 중인 4부작 프로젝트의 세번째 작품 ‘비욘드(Beyond)’가 내달 10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세계 초연된다. 무용과 뉴미디어를 종합한 유럽과 아시아 공동 프로젝트로, 한국·인도·일본 등 6개국이 참여하고 무용수도 각국에서 2명씩 선발했다. 무대는 파주시의 픽셀 하우스, 딸기 테마파크 등을 설계한 건축가 조민석이 디자인했다. 앞서 4~5일에 같은 장소에서 첫번째 작품 ‘지옥(Hell)’을 선보인다. 4년에 걸쳐 만들어져 2006년 프랑스 몽펠리에 댄스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이듬해 유럽 비평가와 프로듀서가 뽑은 최고의 무용으로 선정됐다. 지옥은 천국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모든 일이 일어나는 장소라는 것을 8명의 무용수가 몸짓으로 전한다. 이들의 두번째 작품 ‘연옥(Purgatory)’은 지난해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공연돼 주목받았다. (031)783-8000. ●환상적 멜로디·기발한 캐릭터 ·상상력 동화와 만화영화로 익숙한 ‘스노우맨’이 28일부터 내달 12일까지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1978년 출판된 레이먼드 브릭스의 동명 동화가 원작으로, 1993년부터 16년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의 연말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공연으로 선보이는 ‘스노우맨’은 원작의 따뜻한 이야기에 환상적인 멜로디, 기발한 캐릭터와 상상력이 보태졌다. 모두가 손꼽는 명장면은 스노우맨과 소년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 눈이 내리는 조명효과와 배경음악 ‘Walking in the Air(하늘을 걷다)’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눈을 만드는 기계(스노 보이) 4대를 동원해 객석 5열에 앉은 관객까지 실제로 눈을 맞게 되는 부분도 있어 재미를 더한다. 각 나라의 정서를 고려하는 전략에 따라 한국 무대에서는 스노우맨이 색동옷을 입고 상모를 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흥미롭다. 수·금요일에는 낮 시간(3시)에도 공연할 예정이다. 1577-5266.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길 안내서

    ”기회의 문은 사방으로 열려 있다. 우리들이 절망에 갇혀 있는 것은 그 문을 찾지 못해서일 뿐이다.” 차동엽 신부(인천 가톨릭대 교수)가 절망에 갇힌 이들을 위한 길 안내서 ‘뿌리깊은 희망’(위즈앤비즈 펴냄)을 펴냈다. 넘어진 자만이 일어설 수 있고, 실패의 쓴 맛을 본 사람이 성공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누구나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희망은 너무나 멀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차 신부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분명 우리 곁에 존재하는 희망의 가치를 동서고금의 사례와 스스로의 경험담을 통해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차 신부의 희망가가 고담준론에 머물지 않는 건 그의 삶이 곧 희망의 기적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달동네 난곡에서 연탄배달과 쌀배달로 힘든 성장기를 보낸 그는 종종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뿌리깊은 희망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를 모두 달성했다.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1년 사제로 서품됐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쓴 전작 ‘무지개 원리’는 영어와 중국어, 태국어, 타이완어 등 4개 언어로 출간되기도 했다. 사막의 선인장꽃 ‘사브라’는 비 한방울 오지 않는 땡볕 아래서 모진 모래바람을 견디고 힘겹게 싹을 틔운다. “희망은 우리 인생의 사브라” 라고 저자는 말한다.1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책꽂이]

    ●현대정치의 겉과 속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정치과잉, 파벌과 이념, 대중지성 활용 등 10개 이슈로 들여다본 한국 정치의 안팎이다. 한국 정치는 ‘언제나 복마전’이란 말 그대로 난맥상이 얽혀있다. 한국 정치의 문제를 짚어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실용적 정치해설서이자, 현대 정치의 주요한 면을 분석한 정치학 개론서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 책 말미에는 40쪽에 걸쳐 정치 용어 해설을 실었다. 1만 3000원. ●나 홀로 볼링 (로버트 D 퍼트넘 지음, 정승현 옮김, 페이퍼로드 펴냄) 미국 사회의 성격 변화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한다.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들 사이의 연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로,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을 가리킨다. 저자는 20세기말부터 미국인들이 단절되면서 사회적 자본이 빈약해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함께 볼링을 치는 일’로 유대와 연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본다. 3만 8000원. ●신화, 이야기를 창조하다(김용호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비교신화학의 관점에서 전 세계 신화를 분석했다. 우리의 삶과 사회를 움직이는 근본 원리가 신화 속에 있다는 전제로, 그리스·로마, 한·중·일, 인도, 중동 등 여러 지역의 신화들을 함께 모아 소개하고 그 의미를 분석한다. 그리스·로마의 ‘카오스’, 중국의 ‘혼돈씨’, 인도의 ‘어둠의 물결’이 모두 혼돈의 이미지를 가지는 것처럼, 여러 신화 속 흩어져 있는 공통의 시선을 찾고자 했다. 1만 6000원 ●나쁜 것 VS 더 나쁜 것(조슈아 피븐 지음, 비즈니스맵 펴냄) 히틀러와 후세인 중 누구를 사윗감으로 선택해야 할까. 이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덜 나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담은 자기계발서다. 제3의 선택항이 없고 최악의 상황만 남았을 때 글쓴이는 그래도 반드시 정보에 근거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 상황, 장소 등 구체적 사례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선택을 위한 팁을 덧붙인다. 1만원. ●메이저리그 경영학(제프 앵거스 지음, 황희창 옮김, 부키 펴냄) 야구와 경영을 접목한 경영전략서. 100년의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살아남은 구단들에서 찾은 탁월한 경영비법을 담았다. 점수를 내기 위해 네 개의 베이스를 모두 밟는 과정에 빗대 경영기법 모델을 제시한다. 익숙한 메이저리그의 위대한 감독, 스타 선수의 이름들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1만 3000원. ●첫 번째 초대(윤미솔 지음, 떠도는섬 펴냄) 외국에서 외로이 혼자 살던 아버지의 뇌사 소식. 아버지의 영혼이라도 편히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지은이의 선택은 영혼과의 만남이었다. 유체이탈, 신적 경험, 전생 등이 다소 종교적이지만 이를 넘어서는 신비로운 우주의 법칙, 내 삶을 반추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1만 2000원. ●악!법이라고?(강풀 등 14명 지음, 이매진 펴냄) 만화가 14명이 현실의 정치경제 사회를 비판한 책을 펴냈다. 물론 내용은 만화다. 순정만화로 잘 알려진 강풀뿐만 아니라 박재동, 손문상, 윤태호, 최호철 등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만화가들이다. 제목은 ‘악법’이라 읽히기도 하고, 정부가 강조하는 준법정신을 비꼬는 ‘악! 법’이라고 읽히기도 한다. 5000원.
  • ‘바이오하자드5’, 13일 북미와 동시 발매

    ‘바이오하자드5’, 13일 북미와 동시 발매

    기대작 ‘바이오하자드 5’가 13일 북미와 동시에 국내 정식 발매된다. 이 게임은 1996년에 탄생한 이후 호러 액션이란 장르를 확립했다. 전세계 시리즈 누적 판매량은 3,500만장에 이른다. 이번 작품은 온라인 기능을 사용해 시리즈 최초로 협력 진행이 가능하다. 게임 이용자는 1편의 주인공 크리스 레드필드와 새로운 여성 캐릭터인 쉐바 아로마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플레이스테이션3’, ‘Xbox 360’ 등 멀티 플랫폼에서 동시에 게임의 질을 보장 받기 위해 자체 개발툴인 ‘MT 프레임 워크’로 제작됐으며, 빛과 어둠의 극단적인 공포를 사실적으로 제시하는데 주력했다.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재테크 칼럼] “소외된 곳에 관심 역발상 투자할 때”

    [재테크 칼럼] “소외된 곳에 관심 역발상 투자할 때”

    지난달 금에 투자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것들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한 달 사이 국제 금값의 상승과 원·달러 환율 상승이 맞물리며 국내 금값이 많이 올랐다. 모건스탠리는 금값이 지속적으로 올라 2012년에는 온스당 1075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했고, 미국 글로벌인베스터스 투자관리자는 온스당 200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럼 금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까? 얼마까지 금값이 오를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코스피지수가 2000일 때 3000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모든 이의 관심이 고조되는 시점에는 오히려 다른 투자를 고려하는 역발상도 필요하다고 본다. 역발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디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까? 첫째는 러시아다. 최근 러시아의 국가부도설이 기사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가격이 낮게 형성돼 있다. 그만큼 높은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또 만약 부도가 난다고 하더라도 이미 관련 주식이 크게 하락한 상태여서 손실은 적을 것으로 판단한다. 지난해 베트남은 위기설 이후 불과 몇 개월 만에 반등했다. 둘째는 중국이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은 지속적으로 공산품을 생산하는 동시에 미국의 천문학적인 부양책 비용에 대해 미국채권이나, 미국의 기업에 투자해줘야 하는 일종의 공생 관계다. 이런 이유로 위기 극복의 힘도 속도도 남다를 것이라는 판단이다. 셋째는 석유다. 유가는 지난해 배럴당 150달러까지 올랐으나 200달러까지 간다던 골드만삭스의 예측과 달리 최근 30달러 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평균생산단가 수준이 35달러 선에서 바닥을 다지고 있다. 그러나 이 낮은 가격이 장기간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최근 일부 부자들이 유가에 투자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경기가 살아나고 달러가치가 상대적으로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면 50~60달러 선으로 상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00달러를 넘을 때 200달러까지 갈 것이라며 그때 투자하는 것보다, 원가 수준에서 투자하면 단기적으로 25달러까지 갈 수는 있지만 50달러를 목표로 해도 얼마의 수익률인가? 넷째는 한국이다. 국내 모든 기업이 청산할 경우의 가치인 주가지수 1250선 이하에서 투자해 건설사, 조선사와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덕분에 부도 위험이 제거되면 외국인 투자의 증가와 원화 강세 반전, 낮은 예금금리 때문에 주가가 회복될 것으로 판단한다. 부도 리스크가 염려되면 저가 분할매수와 인덱스펀드를 활용하자. 물론 지금이 동이 트기 전 가장 어두운 시기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어둠 속에서도 무언가 끊임없이 답을 찾아야 손실 만회와 이익이 나에게도 오지 않을까? 김수경 신한은행 서초 PB센터 팀장
  • ‘유령사진’ 일까?…진위 판정 사이트 등장

    혹시 유령사진이 있다면 영국 에딘버러(Edinburgh) 과학 축제의 심리학자에게 사진을 보내보라. 그러면 그의 웹페이지를 통해 유령인지 아닌지 진위 판정을 받을 수 있으며 네티즌들의 의견도 들을 수 있다.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은 에딘버러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12년 동안 하트포드셔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교수이자 전문 마술사다. 그는 한달에 한번 꼴로 사진 속 모습이 유령인지 아닌지 진위를 판단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고 한다. 이에 이번 에딘버러 과학 축제를 맞이하여 그는 ‘이 사진을 설명할수 있는가?’라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유령사진의 진위 판정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그에게 보내진 사진은 웹페이지에 올려져 네티즌들의 진위 여부 투표와 의견을 들을 수 있고 그 결과는 과학 축제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그의 웹페이지에 올려진 유령사진 중 화제가 된 것은 거실에서의 가족 사진. 사진 속 가족들의 다리 사이에 아이가 마치 고개를 내밀고 같이 사진을 찍는 듯한 모습이 담겨져 있다. 유령에 존재에 회의적인 와이즈먼 교수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믿기 힘들겠지만 이 아이의 모습은 빛이 만들어낸 형상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빛의 착란은 항상 설명하기 힘든 사진들 중 하나”라고 밝혔다. 또 “우리는 어둠 속에서 사람 얼굴 같은 것을 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구름에서 어떤 형상을 보는 경우와 같은 경우로 우리 뇌의 한 작용” 이라며 “그러나 누군가 정말 이상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그동안 교수에게 네티즌들이 보낸 유령사진은 그의 웹사이트 (http://scienceofghosts.wordpress.com)에서 볼 수 있으며 그에게 유령사진을 보낼 수도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형태(hytekim@gmail.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길잃은 로스쿨](하) 불신의 벽 넘기

    [길잃은 로스쿨](하) 불신의 벽 넘기

    2007년 대학 졸업 후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2년 동안 사법시험에 매달려 왔던 최모(27)씨는 어려운 결심과 노력으로 선택한 로스쿨을 끝내 포기했다. 문제는 학기당 1000만원에 육박하는 학비였다. 학자금 대출 프로그램이 있기는 했지만 로스쿨을 졸업한다고 해서 바로 변호사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최씨는 차라리 사법시험에 매진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최씨는 “내게 로스쿨은 ‘빚스쿨’”이라며 씁쓸해했다. ●타대학들 예비시험제 요구 로스쿨 인가를 받지 못한 전국 50여개 법과대학들이 변호사 시험 응시자격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자만으로 제한하는 것에 반발해 예비시험제 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예비시험이란 로스쿨에 다니지 않은 지원자들이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기 위해 치러지는 시험이다. 전국법과대학장협의회 공동회장인 동국대 정용상 학장은 6일 “로스쿨은 높은 등록금으로 인해 경제적 약자가 진학하기 어렵고 특정 대학 출신이 대거 몰리면서 학벌 편중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로스쿨 졸업자에게만 법조계 진출 관문을 열어둠으로써 헌법상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인 양성이 로스쿨 체제로 전환되면 기존 사법시험 체제가 가지고 있던 신분상승의 기회라는 사회적 기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제 로스쿨이 학기 당 1000만원을 넘어서는 등록금을 책정해 로스쿨이 아니라 ‘돈스쿨’, ‘골드스쿨’ 이라는 오명을 덮어 썼다. 또 3월 개강 이후에도 설립인가 당시 제출했던 장학금 지급 비율을 지키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각 로스쿨들이 공개를 거부했지만 등록금 부담으로 최씨와 같이 등록을 포기한 신입생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로스쿨 출범의 산파역할을 했던 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단장 김선수 변호사는 “사법시험이 지녔던 모든 폐단이 그대로 부활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예비시험은 대안이 아니다.”면서 “소외계층 및 농어촌 특별전형, 지역발전 연계 장학금 등 다양한 방법을 로스쿨 스스로 제시해 귀족화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방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된 뒤 그 지역에서 5년 동안 공익법무를 맡으면 등록금을 면제하는 등의 프로그램으로 귀족화를 막고 지역균형발전의 취지까지 살릴 수 있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법률서비스 관점서 봐야” 로스쿨 및 변호사 시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결국 복잡한 이해득실의 계산 위에서 이뤄진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박근용 국장은 “기존 변호사들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시험을 어렵게, 반면 로스쿨들은 합격자를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목적을 위해 쉽게, 로스쿨 인가를 받지 못한 대학들은 법과대학의 존재근거의 예비시험을 내세우는 형국” 이라면서 “각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대국민 법률 서비스의 제고를 위한 관점에서 문제를 정리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나눔 바이러스 2009] 큰 기업이 내민 손, 작은 파트너를 춤추게 하다

    [나눔 바이러스 2009] 큰 기업이 내민 손, 작은 파트너를 춤추게 하다

    ■ 삼성전자의 기술 지원 “지금 만들고 있는 제품이 탤런트 전지현씨가 선전하는 삼성전자 스타일폰 앞면에 들어가는 터치패드입니다.” 3일 오후 경기 화성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바로 옆에 자리한 아담한 전자부품 공장. 삼성전자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키패드와 터치스크린을 만드는 중견 기업 시노펙스다. 첨단 제품을 만드는 몇 안 되는 중견기업이다. 지금은 휴대전화 부품제조업체로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처음부터 휴대전화 부품을 만들던 회사는 아니다. 이 회사가 삼성전자와 처음 손을 잡은 것은 1980년대 말. 삼성전자에 오디오 스피커를 납품하면서 협력사가 됐다. 이후 10년 이상 스피커를 안정적으로 납품하면서 착실히 성장했다. 그러나 평탄한 경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생산기지 중국 이전 바람을 타고 삼성전자가 2000년 오디오사업부를 중국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납품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1000억대 매출 중견기업 성장 도와 박내성 시노펙스 부회장은 “실의에 공장을 접을까도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어둠 속을 허우적거릴 때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키패드 생산을 제의해 일단 받아들이긴 했지만 막막했다. 사업 분야가 달라 자신이 서지 않았다. 여기서 사업을 접을까 고심할 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삼성전자가 기꺼이 기술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박 부회장은 “당시 키패드를 만드는 기술이 전혀 없어 삼성전자의 기술지원이 없었더라면 새 기회를 붙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키패드 양산에 들어갔고 2007년 삼성전자는 시노펙스에 새로운 제안을 했다. 정전기를 이용한 정전용량방식의 터치스크린 개발을 하자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기술지도를 받아 6개월간 터치스크린을 만들어 수십차례 테스트를 거친 뒤 마침내 그해 말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전용량방식의 터치스크린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경영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김승한 시노펙스 경영지원 이사는 “삼성은 기술지원뿐만 아니라 생산장비 설치비용도 지원했다.”고 덧붙였다. 또 “직원 기술교육 등 전문교육은 물론 회계·경영 등 일반교육과 경영컨설팅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노펙스는 회사가 커지면서 전사자원관리(ERP), 물류시스템 구축 도움도 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바로 옆에 4410㎡에 지하1층 지상4층의 새 공장도 지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휴대전화 부품 공장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반도체 공장처럼 조립장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직원은 방진복과 마스크로 무장하고 먼지와 정전기를 막아주는 특수신발을 신어야만 출입할 수 있다. 에어샤워까지 받은 뒤 들어간 작업장의 청정도는 1ft³내에 0.5㎛ 이상의 먼지가 1000개 이하인 ‘1000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납기단축·조달안정 윈윈” 제품 종류도 늘려 지금은 키패드·터치스크린·액정표시장치 모듈·필터 등을 만들고 있다. 안정적인 판로 확보로 회사도 급성장했다. 2005년 30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이후 500억원, 800억원을 거쳐 지난해에는 10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4년 동안 3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일방적인 퍼주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수입에 의존하던 부품을 국산화해 납기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은 물론 제품 경쟁력도 갖출 수 있었다.”면서 “‘24시간 내 원인 분석 및 48시간 내 문제해결’이라는 대응체계를 갖춰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핵심공정 부품은 자국 내에 유지해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경영이고 이것이 상생경영의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효과”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SK텔레콤의 업무 지원 중소 콘텐츠업체에 비즈니스 센터 무료 개방 SK텔레콤의 서울 을지로 본사 3층에는 3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SK텔레콤 본사인 만큼 SK텔레콤 직원들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은 SK텔레콤의 직원이 아닌 휴대전화 게임 등 이동통신사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중소 콘텐츠회사 직원들이다. 이들은 SK텔레콤의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를 이용하기 위해 SK텔레콤을 찾은 것이다.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는 2005년 4월 SK텔레콤이 대·중기 상생협력을 위해 본사 3층에 231㎡(70평)규모로 만든 중소 협력사 전용 공간으로 사업제안 접수·기술관련 상담·과금 정산 등의 업무지원과 휴식 및 회의 공간 등의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에 대한 인기도 높아 지난달에는 만들어진 지 4년여만에 이용자수가 1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협력사들의 테스트용 단말기 구입비용 및 통신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마련한 무료 단말기 테스트룸의 인기가 단연 높다. 네이트 비즈니스센터는 400여개 기종, 1000대의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다. 이용업체들의 70%는 소규모 벤처나 1인 개발자들이라서 자체적으로 다양한 휴대전화를 확보하기 힘들다. 모바일 게임 개발 및 퍼블리싱 업체 ANB소프트 최동완 대표는 “모바일 게임은 단말기 종류마다 테스트가 꼭 필요하다.”며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의 테스트 룸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SK텔레콤은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 운영에 연간 5억원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중소 콘텐츠업체와의 상생을 통해 좋은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 홍성철 SK텔레콤 NI사업부문장은 “비즈니스 파트너의 경쟁력이 곧 SK텔레콤의 경쟁력”이라며 “중소 협력사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우남건설의 결제 지원 공사대금 현금으로… 협력사 어음 공포 탈출 3년 동안 협력업체 건설 공사대금을 100% 현금으로 주는 업체가 있어 화제다. 우남건설은 300개에 이르는 협력업체 공사대금 등을 현금으로 주는 상생경영을 펼치고 있다. 이 회사의 현금 결제는 2007년 7월부터 시작됐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와 주택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어음결제의 유혹에 빠질 법하지만 여전히 현금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현금 결제를 실천하는 데는 이종국(43) 사장의 ‘고집’도 한몫했다. 이 사장은 1994년 공사현장의 ‘기사’로 입사해 13년 만에 대표이사가 된 ‘샐러리맨’의 신화다. 그 과정에서 하도급 관리, 자재관리, 분양소장, 입주 관리 등 안 거친 자리가 없다. 협력업체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절절히 목격했다. 우남건설이 300여개 협력업체에 지급하는 대금은 연간 1000억원 정도. 중견 업체로서는 엄청난 자금이다. 이 돈을 6개월만 굴린다고 해도 투자를 확대할 수 있고, 이자 수입도 꽤 된다. 하지만 이 사장은 “공사 대금을 모두 현금으로 지급하되 절대 할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우남건설 현금 결제로 협력업체들은 어음 부도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현금결제 소문이 나면서 우남건설은 재무구조가 탄탄한 KT, 한국전력공사, LG전자 등 대기업과 협약하는 KB파트너십론을 2007년 체결할 수 있었다. 우남건설 하청업체는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때 여신규모나 이자율 등에서 혜택을 받게 된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한국 땅에서 독립영화 찾아보는 방법

    한국 땅에서 독립영화 찾아보는 방법

    ‘워낭소리’가 관객 150만을 돌파,흥행을 이으면서 시중의 화제는 단연 독립영화다.이런 와중에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뒤처질 수 없다며 다른 독립영화,다큐멘터리 작품을 찾는 당신.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 않은 법.철 지난 다큐,잊혀진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주위에 물어보려니 대부분 취향이 멜로·에로·액션이다.한국 땅에서 독립 영화,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다.  ●감독에게 조르기  영화를 만든 사람에게 보여달라고 해보자.이 방법이 가장 확실하지 않겠는가.애절하게 조르거나 동정심을 일으키는 ‘연기 소유자’라면 성공 가능성은 100%.하지만 감독의 연락처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아 ‘대략 낭패’.  이래도 방법은 있다.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http://www.indiedb.net · 02-778-0366)에 문의해 보자.배급사·제작사와 연결해 작품의 구매 및 관람을 가능케 해준다.또 지원센터에서는 ‘독립영화 공공라이브러리’ 제도를 통해 싼 비용으로 영화 상영회를 갖도록 지원해준다.친구·동료·지인과 ‘떼로 몰려’ 작품을 감상하는 데 효과적이다.비영리민간단체 및 개인의 경우 10만원의 가입비를 낸 후 장편 5만원,단편 1만원을 내면 작품을 빌릴 수 있다.1년 내내 이용하려면 60만원을 내면 된다.지역마다 있는 상영단체에 대한 정보를 ‘공동체상영네트워크’를 통해 알아볼 수도 있다.  ●소극적으로 관람하기  보고 싶은데 무엇부터 봐야할 지 모른다거나 혹은 직접 챙겨보기가 귀찮다면 각 단체에서 ‘친절하게’ 편성해 주는 영화제를 이용하는 게 좋다.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지난달 말 시작해 3월 1일 프로그램이 끝나기 때문이다.이 영화제에는 감독 박찬욱씨,배우 안성기씨 등이 직접 고른 작품이 포함돼 있다.이곳(http://www.cinematheque.seoul.kr/)에서 남은 일정을 확인해 보자.  기한 내에 못 보겠다면 3월 6~8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여는 ‘서울아트시네마 후원 회원 1000명 모집 캠페인 1탄:시네마테크 필름 라이브러리 무료 상영회’를 기대해도 된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 등 9편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아시아영화펀드 쇼케이스 2009)도 기대를 모은다.서울(3월 13~18일 인디스페이스)과 부산(4월 21~26일)에서 열린다.한국영화 7편 등 총 14편의 작품이 상영될 예정이다.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니지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받은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포진돼 있다는 소식은 ‘호랑이 기운’을 솟게 한다.  3월 26일~4월 1일에는 ‘인디다큐페스티발2009’와 함께 봄을 맞이하자.올해에는 35편의 한국 장·단편이 소개된다.‘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등 개막작은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얘기한 작품들로 ‘완전 리얼’이다.  더불어 타이완 다큐멘터리들도 소개되며 3월 28일에는 타이완 작가 및 감독들이 직접 방한,관객과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통역을 하니 큰 부담은 없다. http://www.sidof.org를 통해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4월 9~16일 열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올해로 11회째다.이번에는 10대 여성을 위한 ‘걸즈 온 필름’, 최근 작품들을 집중 조명한 ‘새로운 물결’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신촌 아트레온에서 상영되며 작품은 ‘두두둥~’.3월10일 공개된다. http://www.wffis.or.kr/wffis2009/teaser/intro.html이 홈페이지 주소다.  이외에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서울 ‘단편 상상극장’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3월의 주제는 ‘학교에서 생긴 일’로 총 5가지의 작품이 상영된다.홈페이지는 http://sangsangmadang.com/CINEMA/ 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문화체육관광부 5층 독립예술영화관에서는 격주 금요일 다양한 독립영화를 만날 수 있다.2개월간의 수리를 끝내고 3월 6일 김종관 감독의 ‘연인들’이란 작품으로 다시 개관한다니 기대해도 좋다. 이곳을 찾고 싶으면 http://www.mfm.kr/를 접속하면 된다.36석의 아담한 공간에서 매회 펼쳐지는 감독과의 대화에서는 진솔한 대화가 오고 간다는 후문이다.   인디스페이스,스폰지하우스,미로스페이스,씨네큐브 등 극장을 찾아가면 수시로 좋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단점은 서울에 몰려있다는 것.다른 지역에 괜찮은 곳이 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적극적으로 찾아 다니기  남이 차린 식단은 만족하지 못하겠다면 한국영상자료원,영화진흥위원회 등을 찾아가 보자.뷔페식으로 맘껏 골라 먹을 수 있다.‘40분 초밥 뷔페’처럼 야박한 시간 제한이 있는 게 아니니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로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http://www.nl.go.kr/)은 11만 5000점의 영상물을 소유하고 있다.영화·다큐 외에 뮤직비디오,드라마도 포함된 수치다.120개의 좌석에서 DVD ,비디오디스크,CD,VOD를 시청할 수 있다.5월 25일 국립디지털도서관이 문을 열면 6~16명이 함께 이용 가능한 복합상영관이 4곳으로 늘어난다.  서울 마포구 상암DMC에 있는 한국영상자료원 영상자료실 본원(http://library.koreafilm.or.kr)은 1만 4000편의 영상자료물을 보유한 곳이다.특히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충실히 돼 있어 1300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1인석 24곳,3~10명이 이용 가능한 다인감상실 1곳이 마련돼 있다.특히 2인 영화 감상석이 7군데 있어 커플끼리 오순도순 즐기기 좋지만 스킨십은 삼가길 바란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에 위치한 영화진흥위원회 영상자료실(http://www.kofic.or.kr/b_movdata/b_09offinfo.jsp)에도 소중한 작품이 많다.이곳에서는 3000편 정도의 영화 DVD와 3000편의 비디오,200편의 수입 DVD를 감상할 수 있다.  원하는 작품이 있나 없나는 각 홈페이지 검색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집으로 빌려갈 수 없어 안타깝긴 하지만 동네 비디오가게가 아님을 명심하자.  ●온라인 이용하기  태양을 피하고 싶은 당신에게 추천하는 방법.이것 저것 다 귀찮다면 클릭질 몇 번으로 작품들을 감상해 보자.불법 다운로드는 권하지 않는다.어둠의 자식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먼저 TV 다큐물의 경우에는 대부분 각 방송사 홈페이지에서 다시 보기가 된다.KBS는 무료로 이용가능하다.MBC,SBS,EBS 등의 작품을 보기 위해선 일부를 제외하고 돈을 내야 한다.해외에서 만든 작품이라면 저작권상 다시보기 서비스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네이버에서는  ‘온라인극장’(http://today.movie.naver.com/section_view.nhn?sectionCode=MOVIE_SAT을 통해 매주 한편의 단편영화를 선정해 보여준다.예쁜 배우 김태희의 주연 데뷔작 ‘신도시인’도 볼 수 있다.  혹시 예스24,인터파크를 뒤져도 없는 ‘마이너한’ 작품이라면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의 웹스토어(http://www.indiedb.net/shop/)를 탐색하자.‘파업전야’를 비롯,그동안 많이 소개되지 못했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개인 제작 혹은 미디액트,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을 위탁판매한다. DVD가 101종,VHS 12종 갖춰져 있다.영화인에게 좀 더 나은 제작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을 취지로 한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사설] 90돌 3·1절에 나라의 장래 다시 생각한다

    해마다 3월이 오면 일제의 총칼에 맞서 자주독립을 외친 3·1운동을 생각하게 된다. 올해는 3·1절 90돌이어서 감회가 한결 새롭다. 하지만 뜻깊은 경축일을 앞두고 우리는 나라와 겨레의 장래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3·1운동이 중국의 5·4운동 등 세계 만방 피압박민족에게 등불이 됐던 것처럼 우리가 수십년 동안 이룩한 민주화와 산업화는 제3세계 국가의 모범이 돼 왔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지난해 말부터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투자위축, 환율 폭등, 취업난, 실질 소득 감소 등으로 인한 고통은 국민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 주고 있고 양극화로 인한 고통이 중·하 계층에 집중되면서 지역간, 세대간, 노사간, 계층간 갈등은 일촉즉발의 상태다. 사회발전의 비전과 방법론은 제시되지 않은 채 보혁갈등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갈등을 수습하기보다는 갈등에 안주하고, 갈등으로 먹고살면서 실망과 분노를 자아 내고 있다. 새로운 편가르기와 편중인사로 국민 통합의 기회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남북한이 힘을 모아 분단을 극복해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남북은 오히려 대결과 긴장의 길로 치닫고 있다. 북은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 움직임으로 주변국의 우려를 사고 있으며 매일 같이 남측을 위협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남에서도 북에 대해 따뜻한 손길을 더 뻗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거니와 종교적, 이념적 차이를 넘어 독립선언을 외쳤던 90년 전의 그날처럼 다시 한번 남북이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와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90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과 새 출발의 힘찬 나팔을 불었다. 우리도 바로 지금 절망과 비탄의 사슬을 끊고 단결과 위기극복의 북소리를 힘차게 울릴 때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도층이 도덕과 법을 지키는 데 솔선수범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도 집단의 논리만 되풀이하지 말고 국민 단합의 자세로 갈등과 위기의 골을 넘어서야 한다. 90돌 3·1절-나라의 장래를 깊이 성찰하면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 한석규ㆍ손예진ㆍ고수, 영화 ‘백야행’ 대박 기원 고사

    한석규ㆍ손예진ㆍ고수, 영화 ‘백야행’ 대박 기원 고사

    한석규, 손예진, 고수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가 순조로운 촬영을 기원하는 고사를 진행했다. 지난 24일 진핸된 고사 현장에는 한석규, 손예진, 고수 등 주연 배우를 비롯해 조연 배우들, 영화 스태프 전원, 영화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했다. 연출을 맡은 박신우 감독은 “힘든 와중에 좋은 작품과 좋은 스태프, 좋은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좋은 영화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로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1년 여 넘는 시간 동안 영화의 시작을 기다려온 배우 손예진은 차분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고사에 임했으며 한석규 역시 엄숙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고사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또 한층 남자다워지고 멋진 모습으로 등장해 많은 사람들을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고수는 제대 후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긴장감과 설렘을 드러내며 시종일관 스태프들과 선배 배우들을 직접 찾아가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는 지난 과거의 실수로 인해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된 ‘미호’(손예진 분)와 ‘요한’(고수 분), 그리고 그들의 뒤를 쫓는 형사 동수(한석규 분)의 질기고 잔혹한 운명을 다룬 스릴러로, 오는 3월 1일 크랭크인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원정사 등 초라해도 “스스로를 등불로 하라” 부처 가르침은 오롯이

    기원정사 등 초라해도 “스스로를 등불로 하라” 부처 가르침은 오롯이

    네팔의 룸비니와 인도의 슈라바스티, 쿠시나가르.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부터 깨달음을 얻은 정각(正覺), 그리고 전법(轉法)후 열반까지의 궤적이 담긴 불교 성지들이다. 비록 옛 모습을 잃거나 많은 부분 훼손됐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신과 철학, 흔적을 더듬어 전세계에서 찾아드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조계종 총무원이 이 성지 순례 프로그램을 마련, 본지 김성호 선임기자가 동행했다. 지난 14일,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의 슈라바스티. 전날 델리발 새벽기차에 몸을 실어 8시간만에 발을 디딘 럭나우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6시간을 더 달려 밤늦게 슈라바스티에 도착한 순례 일행은 잠을 설친 채 첫 순례지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어둠 속 ‘갈 길이 머니 서둘러 버스에 오르라.’는 안내자의 성화에 일행들이 눈을 비비며 오른 버스. 비포장도로나 다름없는 거친 길을 막춤 추듯 덜컹거리며 질주하기 시작하자 스님의 강의가 시작된다. “부처님 재세 당시의 16개 나라 중 가장 강력했다는 코살라국의 수도 슈라바스티(사위성)는 신라의 옛 이름인 ‘서라벌’의 기원이 된 도시”라는 설명에 귀를 세우다보니 어느새 기원정사 입구. 80년을 살았던 석가모니 부처님이 금강경을 비롯, 현재 전하는 경전의 3분의2 정도를 설한 곳이자 24회의 안거를 날 만큼 생전 가장 오래 머물렀다는 곳이 바로 기원정사가 아닌가.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혀 입구를 들어서자니 한국말로 ‘석가모니불’을 외치며 손을 벌려 한푼 적선을 애타게 청해오는 어린 걸인들이 빙 둘러 막아선다. 첫 순례지에 가졌던 부푼 기대와는 달리, 조금 ‘헐렁하다’ 싶은, 일말의 허탈감을 안고 들어서니 붉은 벽돌 더미와 오랜 수령의 나무들이 갇힌 듯 큰 정원에 듬성듬성 서있다. 부처님 아들인 라훌라와 제자 사리불존자의 이름을 딴 스투파(탑)들. 이름만 스투파일 뿐, 붉은 벽돌로 나지막이 쌓아놓은 벽돌더미가 초라하다. 2500년 전엔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석하던 집이며 대중 설법이 줄곧 이어지는 큼직큼직한 승원들이 줄지어 섰을 터이지만 대부분 파괴·훼손된 채 지금은 부분적으로 복원된 조촐한 스투파며 승원터가 순례객들을 무심하게 맞을 뿐. 처음 시작된 그 나라에서 이젠 명맥조차 잇기 힘든 작은 종교로 쇠퇴한 불교의 위상이 그대로 읽힌다. 사위국의 큰 부자인 급고독(수닷타 장자)이 성도(成道)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사위국 기타 태자의 땅을 어렵게 사들여 지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기수급고독원’, 즉 기원정사.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기원정사에선 1년 중 안거철 3개월 동안만 주석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개인 거처이던 향실과 강의가 열리던 거대한 승원 터를 지나 걷다보니 이윽고 금강경을 설한 그 유명한 자리 간다 쿠티. 미얀마를 비롯한 각지에서 찾아온 스님과 신도들이 제각각 터를 잡고 앉아 불교 경전들을 독송하는가 싶더니 한국 순례단의 즉석 법회가 시작된다. 조계종이 가장 중요시하는 소의경전인 금강경 표준본을 최근 완성한 사실을 부처님께 알리는 법회. 금강경을 처음 설한 곳에서 여는 금강경 봉정 법회여서일까.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성지를 찾은 한국 스님, 신도들의 낭랑한 반야심경 독경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기원정사를 나와 1.5㎞쯤 차로 달리다보니 그 옛날 막강한 힘을 자랑했다는 사위국의 너른 영토가 펼쳐진다. 옛 사위국 영토에서 맞닥뜨리는 불교 경전 속 흔적들. 스승 부부의 꼬임에 빠져 99명을 죽여 살인마로 전락한 앙굴리마라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감화되어 개종한 뒤 살았던 굴속 생활, 멸종된 망고 나무를 순식간에 키워내 이교도들을 굴종시킨 기적,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기원정사를 지어준 수닷타 장자의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차례로 머릿속을 스쳐간다. 뭔가 빠진 듯한 허전함을 갖고 국경을 넘어 도착한 네팔 땅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 서둘러 찾은 탄생지 룸비니 동산. 이른 시각인데도 순례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어느 나라인지 모를 옷차림의 순례객 틈에 끼어 걷다 보니 마야부인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낳은 곳에 세웠다는 마야데비 사원이 눈에 든다. 탄생지의 발굴 현장 자체를 사원으로 만든 독특한 기념공간. 신발을 벗고 안에 드니 탄생 직후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며 발걸음을 떼었다는 아기부처의 족적을 보려는 순례객들로 북적인다. 사방에 회랑처럼 두른 관람로를 떼밀리듯 순례객들에 밀려 돌아나오니 마야 부인이 몸을 씻었다는 너른 사각 연못 언저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일본 사람들이 복원을 맡아 엉뚱하게도 이렇게 큰 목욕지를 만들어놓았다.”는 어느 스님의 볼멘 소리. 열반지 쿠시나가르행 버스에 몸을 실어 룸비니 동산을 떠난 지 한참 됐는데도 스님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다시 국경을 넘어 전날 왔던 길을 거슬러 7시간만에 만난 열반의 땅 쿠시나가르. 먼저 다비장을 들르자는 일행의 의견을 모아 찾은 붉은 벽돌 스투파가 황혼의 햇살을 받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장례를 치렀던 역사적 현장. 순례객들의 탑돌이 행렬을 따르다보니 탑 뒤쪽에 8개의 작은 스투파가 눈에 들어온다. 부처님 사후 이곳에서 다비해 수습한 사리를 차지하려 전쟁까지 벌이려 했던 당시 여덟 나라가 사리를 가져가 각각 세웠다는 사리탑의 모형들. “먼 훗날 내 몸이 한 군데로 모일 것”이라 예언했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하나된 몸, 즉 평화로운 정토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 몸을 뉘어 열반에 들었다는 부처님의 열반상을 모신 열반당은 다비장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주말과 공휴일이면 주민들의 가족공원으로 변하는 이곳이 과연 불교 4대 성지인지 의심스럽다.”는 안내자의 귀띔. 열반당까지 이어진 잔디밭 위의 쓰레기들이 눈에 거슬리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 아래 마지막으로 몸을 뉘었다는 사라쌍수에서 위안을 찾는다. 오른 팔로 머리를 괴고 오른쪽 옆구리를 침상에 붙인 채 두 발을 포개어 고요히 누운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당 뒤편엔 열반 길까지 스승을 끝까지 모셨던 제자 아난다 스투파가 서 있다. 결국 열반지가 된 쿠시나가르로 향하기 전 마지막 안거에 든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난다여, 너는 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자신을 집으로 삼아라. 그리고 법으로써 등불을 삼고, 법으로써 집을 삼아 이에 귀의하여야 한다.” 부처님 생전의 모든 말씀을 생생하게 기억해 나중에 불경 편찬의 결정적 역할을 한 아난다 존자. 그는 이렇게 지금도 부처님 뒤에 앉아 묵묵히 스승의 말을 전하고 있다. kimus@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살아있는 목마/원유순

    [엄마와 읽는 동화] 살아있는 목마/원유순

    나는 크고 화려한 놀이공원에 있는 회전목마예요. 반질반질 윤기 나는 갈색 털 대신 하얀 페인트를 온몸에 덕지덕지 바르고 있어요. 처음 목마가 되어 그저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똑같은 길을 끝없이 돌아야 할 때,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크신 이에게 빌고 또 빌었어요. 길 가에 돌멩이, 보잘것 없는 풀, 흐르는 냇물, 저 하늘에 구름을 만드시고, 세상에 모든 것을 만드신 그분, 또한 저를 목마로 만드신 그 분, 제발 저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세요. 끝없이 같은 길을 돌고 도는, 이렇게 죽은 삶은 정말 견딜 수 없어요. 제발 제게 생명을 주셔서 푸른 초원을 맘껏 달리게 해주세요. 아니, 푸른 초원이 아니라도 좋아요. 그저 제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만 해주세요. 나는 동그란 원을 따라 같은 길을 끝없이 돌고 돌면서 빌고, 빌고, 또 빌었어요.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날을 빌었던, 어느 밤이었어요. 놀이공원에 놀러 왔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밤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남아 놀이시설을 점검하던 아저씨, 공원을 청소하던 아줌마들조차 돌아간 깊은 밤이었어요. 시끄러운 소리만 그득하다가 갑자기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 그 적막함이 얼마나 낯선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그렇게 외롭고 쓸쓸한 밤이었지요. 게다가 달도 없는 그믐밤이라 쓸쓸함이 한층 더했지요. 나는 괜히 서글픈 마음이 들어 별빛이 소근대는 밤하늘만 고즈넉하게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마음은 한없이 울고 있었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어요. 슬프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생명을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푸식푸시식…. 하루 종일 밧줄에 묶여 오르락내리락하며 돌고 도는 일에 지쳐 있던 다른 친구들은 낮게 코를 골며 이내 죽음 같은 잠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정말 말답게 살고 싶어서였지요. 그때 낮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렸어요. “얘야, 네가 밤마다 나를 원망하며 불렀느냐?” 소리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처럼 샤악 제 가슴속으로 들어왔어요. 나는 즉각 크신 이의 목소리인 줄 알았어요. “네, 제가 불렀어요. 말답게 살고 싶어요. 제발 저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세요.” “오냐, 네가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간절히 원하니 소원을 들어주겠다. 네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기 위해서는 너를 생명체로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저를 생명체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라고요?” 나는 놀라서 되묻지 않을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런 사람을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 그렇다. 너를 살아있는 말로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 너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크신 이의 목소리는 가느다란 빛이 되어 별빛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졌어요. 그동안 회전목마로 지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등에 태워봤지요. 대부분 어린아이들이었지만, 간간이 아이를 안고 타는 엄마나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있었지요. 그런데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아아! 나는 그만 힘이 쭉 빠져서 길게 한숨을 쉬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모습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니까 분명 그런 사람도 있을 거라는…. 그 생각은 곧 가느다란 희망으로 바뀌었어요. 다음날부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사람들을 살피기 시작했어요. 등에 올라타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애를 썼지요. 등허리를 최대한 나긋나긋하게 만들어 아이가 편안하게 앉아 목마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도 했고요. 두 박자의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 나올 때면 앞발을 들어 겅중거리며 춤을 추기도 했고, 세 박자 왈츠풍의 음악이 나오면 엉덩이를 실룩이며 우아하게 흔들기도 했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까르르 웃기는 했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걸어주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일 년, 이 년…. 셀 수 없는 많은 날이 지났지만, 내가 생명을 가진 말이라는 걸 알아주는 아이는 만나지 못했지요. 나는 지치기 시작했어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열고 손님 하나하나에게 신경 쓰는 일은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기에 나는 더욱 빨리 지쳐갔어요. 크신 이여, 처음부터 안 된다고 하지 그러셨어요? 왜 저에게 희망이라는 실낱을 던져주고 그걸 붙들고 애쓰는 저를 즐기고 계시나요? 나는 크신 이를 원망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실낱 같은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려 했어요. 그러나 크신 이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늦은 가을날, 찬비라도 내리려는지 바람이 스산하게 부는 오후였어요. 너덧 살 먹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햇살처럼 환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어요. 수염이 텁수룩한 중년의 남자도 함께였지요. “아빠, 나 이거 탈래.” 아이 목소리는 탱탱한 고무공처럼 통통 튀었어요. “정민아, 아빠 아이스크림 사가지고 올 테니까 타고 있어.” 남자 목소리는 매우 어둡고 무거웠어요. “알았어, 아빠.” 남자는 아이를 가볍게 안아 내 등에 태웠어요. 그리고 아이의 볼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고 낮은 한숨을 쉬었어요. 나는 왠지 불길한 예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어요. 왈츠 음악이 흐르고,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꺼떡꺼떡 춤을 추었어요. 아이는 내 등에 앉아 까불까불 엉덩이를 흔들었어요. 천천히 두 바퀴를 돌고 나자 음악이 멈추었어요. “어? 벌써 끝났잖아.” 아이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어요. 그때까지 남자는 오지 않았어요. 아이는 내 등에서 내려오지 않고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들썩거렸어요. 마치 한 바퀴 더 돌라는 듯이 말이지요. 나도 그러고 싶었어요. 내가 만일 살아있는 말이라면 아이를 태우고, 저 푸른 들판을 맘껏 달릴 텐데요. 그러면 아이는 이렇게 소리칠지도 몰라요. “야호! 나는 초원의 왕자다. 씩씩하고 용감한 초원의 왕자!” 목마를 조종하는 강씨 아저씨가 작은 창문을 열고 소리쳤어요. “얘야, 손님도 없는데 한 번 더 태워주마.” 이번에는 네 박자 행진곡이었어요. 빰빠라 바암. 병정들의 나팔소리에 맞춰 우쭐우쭐 회전판을 돌았어요. 아이가 다시 들썩들썩 엉덩춤을 추었고요. 두 번째 음악이 끝나도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이는 내 목을 꼭 끌어안고 엎드렸어요. 어느덧 놀이공원 안에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어요. 하얗게 빛나는 목마들만 어둠 속에서 두둥실 떠올라 보였지요. “얘야, 네 아빠는 안 오실 게다. 어서 내려오너라.” 강씨 아저씨가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아이는 더욱 세게 내 목을 끌어안으며 소리쳤어요. “싫어요. 아이스크림 사갖고 울 아빠 꼭 올 거예요. 그렇지? 목마야. 너도 봤지?” 순간 아이의 눈과 내 눈이 딱 마주쳤어요. 아이의 눈이 간절하게 빛났어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봐요, 아저씨. 목마가 봤다고 하잖아요. 우리 아빠, 꼭 올 거란 말이에요.” 아이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 딱딱한 내 갈기 위로 뚝뚝 떨어졌어요. 그러자 내 갈기가 올올이 살아 푸르르 떨렸어요. “안다, 알아. 네 아빠는 언젠가는 오실 거다. 그렇다고 여기서 밤을 지낼 수는 없다.” 강씨 아저씨는 아이를 안아 내렸어요. 아이는 갈기를 쓰다듬으며 속삭였어요. “목마야, 우리 아빠 오면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말해 줘. 내가 꼭 다시 온다고. 알았지?” 아이는 몇 번이고 뒤돌아보았어요. 나는 어둠 속에서 수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지요. 그날 저녁은 찬비가 내렸어요. 달도 별도 없었어요. 다만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어요. 아, 그런데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내 몸속 피가 조금씩 더워지며 혈관을 따라 돌기 시작하고, 불끈불끈 근육이 꿈틀거렸어요. 머지않아 반질반질한 피부에는 보드라운 털이 보풀보풀 돋아날 게 틀림없어요. “히히힝!” 나도 모르게 콧구멍으로 더운 김을 확 내뿜었어요. 가슴이 벅차올라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그때 부드럽고 신비한 크신 이의 소리가 들렸어요. “얘야, 드디어 너도 생명을 얻었구나. 기쁘다.” “아아, 크신 이여, 고맙습니다.” “이제 저 너른 벌판을 네 맘대로 달릴 수 있겠구나. 망설이지 말고 어서 가거라.” 어디선가 후드득, 고삐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오랫동안 나를 옥죄어 왔던 고삐, 날마다 벗어 던지고 싶었던 멍에. 바로 그 줄이 끊어지는 소리였지요. “자…잠깐만요.” 순간 아이의 간절한 눈빛이 반짝 스쳐갔어요. 나도 모르게 다급하게 소리쳤어요. “며칠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크신 이의 목소리는 냉정했어요. 송곳처럼 날카롭고, 얼음처럼 차가웠어요. “그…그래도, 저…저는…지금은 안 돼요. 남자가 오면….” 가슴이 훅 더워지며 울컥 눈물이 솟구쳤어요. 아아,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요, 뜨거운 눈물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눈물이…. “됐어요. 눈물을 흘려봤으니 됐어요. 이제 되었어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온 걸까요? 나는 크신 이의 목소리보다 더 단호하게 말했어요. 날이 밝았어요. 간밤에 내린 비로 축축하게 젖은 낙엽 위로 빛 조각들이 반짝였어요. 어느새 내 등허리에 예쁘장한 계집아이가 올라탔어요. 강씨 아저씨는 3박자 미뉴에트 춤곡을 틀었어요. 나는 우쭐우쭐 우아하게 춤을 추며 앞으로 나아갔어요. 괜찮아. 생명을 얻는 방법을 알았으니 언젠가는 살아있는 말이 될 수 있어. 맞아, 틀림없어. 나는 할 수 있다니까. 나는 춤을 추며 혼잣말을 했어요. ●작가의 말 나이 쉰을 넘기면서 어린애처럼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를 탄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대요. 아, 이렇게 매어 있는 삶은 얼마나 답답할까? 그런 생각으로 목마를 내려다봤는데, 목마는 웃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누구나 고삐에 매어 살아요. 가정이라는 고삐, 직장이라는 고삐…. 그 고삐만 벗어던지면 푸른 하늘로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살 것 같지요. 날고 싶은 갈망을 꼭꼭 숨기고, 때로는 기회가 와도 포기까지 하며 하루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그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사랑이겠지요. 크고 지순한 사랑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사랑일지라도, 사랑은 큰 힘이 되지요. ●약력 ▲1957년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람 ▲경인교대 졸업,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3년 MBC창작동화 대상, 계몽사아동문학상 ▲‘까막눈 삼디기’, ‘열 평 아이들’, ‘얀손 씨의 양복’, ‘색깔을 먹는 나무’ 등 어린이 책을 펴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강사 ▲전업 작가로 활동 중
  • [김수환 추기경 선종] 종교계 “따뜻한 아버지였다”

    한국 천주교 수장의 선종 소식에 종교계 지도자들은 한목소리로 추도사를 쏟아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배태진 총무는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하다 “그야말로 파더(Father), 따뜻한 아버지 같으셨던 한국 천주교계의 큰 기둥이 쓰러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배 총무는 “김 추기경은 1960~70년대 한국 사회에 조명탄과 같은 존재”라면서 “독재의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춰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 인도하셨다.”고 애도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도 애도문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 종교계의 큰 스승이신 김 추기경의 선종에 불교계 모든 사부대중과 함께 애도를 표한다. 스스로를 낮추며 이웃의 고통과 함께하신 김 추기경의 평생 지표가 실현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원불교 경산 장응철 종법사도 슬픔을 함께했다. 장 종법사는 “종교계 큰 어른으로서 온 국민이 존경했던 김 추기경의 선종에 원불교 전 교도와 충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천도교 김동환 교령은 “김 추기경이 북극성과 같이 세상 사람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셨는데 큰 별이 떨어진 것 같다. 남은 이들이 그분의 삶을 교훈 삼아 서로를 공경하고 살아간다면 추기경의 뜻은 세상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임주형기자bckang@seoul.co.kr
  • [대한민국 극&극] 용산구 이태원 고급주택가 사람들-울진군 쌍전리 농가마을 사람들

    [대한민국 극&극] 용산구 이태원 고급주택가 사람들-울진군 쌍전리 농가마을 사람들

    국토해양부와 국세청은 매년 전국의 땅값과 집값을 공개한다. 이변이 없는 한 가장 비싼 곳과 가장 싼 곳의 순위는 변하지 않는다. 가장 비싼 값이 매겨지는 곳을 금싸라기땅으로, 대조적으로 값을 가장 적게 쳐주는 땅을 지푸라기땅으로 이름을 붙여봤다. 금싸라기땅은 이름 그대로 발 한짝 딛기에도 미안할 만큼 비싼 곳이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갑부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반면 지푸라기땅은 비록 값이 가장 싸고 홀대를 받는 땅이기는 했지만, 대궐같은 금싸라기땅에서도 볼 수 없는 자연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곳이었다. 조금 초라하긴 해도 달 한간, 나 한간, 청풍 한간 맡겨두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 이태원동 사람들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서울 명동. 소비의 중심이 강남으로 많이 옮겨갔다고 하지만 명동은 여전히 우리나라 패션의 중심지이자 금융 중심지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산업은행과 국민은행이 여의도로 이사를 가긴 했지만 원래 명동은 금융의 중심지였다.”면서 “명동에 나오면 모든 은행의 본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가장 비싼 땅은 명동 충무로 1가 24-2로 3.3㎡당 2억 1100만원이다. 스타벅스가 비싼 임대료를 내지 않겠다며 나간 자리를 후발업체인 파스쿠찌가 이어 받았다. 충무로 명동 1~2가에는 의류, 신발, 화장품 매장이 빼곡히 들어와 있다. 많은 업체들이 브랜드를 론칭할 때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명동에 매장을 오픈하는 이유는 상징성 때문이다. 명동에 없는 브랜드는 유행을 선도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없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한달이 멀다 하고 명동의 겉모습이 바뀔 정도로 앞다투어 명동에 매장을 내려 했다. 현지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30~40평 점포를 빌리는데 월 임대료만 3000만원을 줘야 한다. 보증금은 8억~10억원 정도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24시간 분주하다. 자주 부딪쳐도 인정이란 찾아보기 힘들고 경쟁은 치열하다. 실리를 따져 이로우면 내편, 그렇지 않으면 그저 남이다. 이곳 사람들의 머릿속은 비싼 땅에서 활동하는 만큼 시간당 매출을 많이 올리고 이익을 많이 남겨야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부자들이 좋아하는 동네는 따로 있다? 진짜 부자들은 강남에 살지 않는다. 국내 100위권내 주식 부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인 54명이 서울 강북에 살고 있다. 그중 용산구가 26명으로 가장 많다. 특히 상위 10명은 대부분 이태원·한남동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고의 부자동네로 알려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 남산 자락을 타고 한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고급 단독주택들이 몰려있다. 풍수지리를 따질 때 길지(吉地)로 꼽힌다. 남산을 따라 강남과 양재동으로 이어지는 금맥(脈)이 지난다고 한다. 그래서 부자들이 많이 모여산다는 얘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단독주택이 있는 용산구 이태원1길. 2006년 국토해양부가 단독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한 이래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단독주택이 있다. 지난해 공시가격이 95억 9000만원. 시가의 80%를 반영한다고 했을 때, 시세는 1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보유세만 해도 1억 8667만원을 냈다. 동네에 들어서면 높은 담에 굳게 닫힌 육중한 대문 때문에 위축감을 느낀다. 대지만 1000평을 넘는 집도 있다. 100m가까운 담벼락을 친 집은 마치 작은 성처럼 보인다. 골목 여기저기 방범용 CCTV가 설치돼 있고, 집집마다 보안장비가 달려 있어 일반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 이것도 부족해 경비초소까지 갖춘 집도 있다. 안마당은 잘 가꿔진 정원과 식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 정원수들이 가득하다. 마침 집수리를 하는 집이 있어 작업인부를 통해 어렵사리 집안 분위기를 들었다. “이런 집은 처음 구경합니다. 최고급 인테리어에 첨단 전자제품, 값 나갈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걸어놓고 비 한방울 맞지 않게 해 놓고 삽니다.” ●“졸부는 사절”… 그들만의 동네 이태원1길 주변 집을 구하려면 얼마나 필요할까.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에 따르면 이 일대의 집은 평당 최고 5000만원에 거래된 적이 있다고 한다. 외국 상사 주재원을 상대로 2~3년치 임대료를 한꺼번에 받고 빌려주기도 한다. 전망이 좋은 집은 월 700만~8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사업가·의사·변호사 같은 전문직업인과 국회의원·검사 등 공직자들도 집주인이다. 돈이 있다고 해서 다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이 직업이나 학벌, 집안을 따져서 ‘아무나’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때문에 부동산중개업소보다는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를 받아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상류층에 끼고 싶어서 들어오려는 사람이 줄을 서 있지만 물건을 내놓는 사람이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동네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 강남으로 넘어간다. 그것도 대부분 가정부나 비서가 하기 때문에 사실상 집밖으로 나올 일은 별로 없다. 당연히 주민들간의 접촉도 없다. 한 주민은 “하얏트 호텔 헬스클럽이 주민들이 유일하게 만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쌍전리 사람들 경북 울진. 손꼽히는 오지다. 서울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로 4시간10분을 달렸다. 36번 국도를 타고 빙글빙글 고갯길을 넘는 것이 지겨워질 때쯤이면 울진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버스터미널은 시골의 여느 터미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어둠침침한 대합실과 간혹 버스기사들끼리 목청높이 실랑이를 벌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 시간에 한두대밖에 들어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버스 시간이 가까워오면 한 구석의 분식집 아주머니의 손만 잠시 바빠질 뿐이다. 서울에 있는 아들, 딸에게 줄 음식거리를 보자기로 싸 양손에 쥐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다. 터미널에서 10분쯤 걸어나오면 금방 읍내다. 울진군청과 울진군의회가 있어서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버스 정류장에는 아주머니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수다를 떠는데, 외지인의 눈에는 마치 싸움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시골 읍내라고 해도 브랜드 옷 가게, PC방, 스포츠용품점, 패스트푸드점 등이 즐비하다. 재래시장에는 주민들이 고로쇠 수액, 배추, 고추 등 집에서 잘 기른 농산물들을 가지고 나와 판다. 하루 매출이라고 해봤자 3만~4만원도 안 된다. 울진은 대게, 송이버섯, 백암온천 등이 유명하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이름으로 잘 팔린다. 올 7월에는 2회 세계친환경 농업엑스포가 열릴 만큼 이곳 사람들의 친환경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집 한채 32만원… 자연 풍경은 셀 수 없는 가치 경북 울진군 서면 쌍전리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싼 집이 있다. 가격은 32만 7000원. 2008년 국토해양부 개별주택가격 조사 결과 가장 저렴한 집이다. 가장 비싼 집 한 채 가격으로 무려 3만여채를 살 수 있다. “서면은 울진에서도 최고 오지지요. 저도 한달에 한번 주택조사나 영세민 조사할 때 아니고는 갈 일이 없습니다.”(서면 면사무소 직원) 비좁은 비포장 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계곡물이 아직 하얗게 얼어 있다. 배추, 무는 올해 값이 폭락해 아예 거두지 않고 밭에서 자연스럽게 거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흑염소 떼가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다가, 차소리에 놀라 종종걸음으로 산으로 올라간다. 집은 파란 슬레이트 지붕에 본채, 별채, 외양간이 마치 한 채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수리, 보수를 한 흔적 때문에 전통 가옥이라 하기에도, 개량주택이라 하기에도 어색한 모습이다. 토지 대장에는 11.2㎡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훨씬 큰 이유도 수시로 개·보수를 했기 때문이다. 쌍전리 주민들은 아직도 나무를 패서 장작을 땐다. 기름보일러를 쓰는 집도 간혹 있지만, 비상용으로 마련해 둔 것일 뿐 대부분은 장작을 지핀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곳에서 어떻게 기름 보일러를 씁니까. 나무 장작을 땐 온돌방이 최고로 따뜻합니다.” 별다른 불편함이 없어 보이는 이 집의 가장 큰 단점은 화장실이었다. 20m쯤 떨어진 곳에 슬레이트를 이어 붙여 만든 물체가 바로 화장실. 나무 판때기를 대충 얹어 재래식 화장실의 모양을 겨우 갖추고 있었다. ●모두가 이웃사촌 “도시보다 편해” 때마침 마을 주민들은 정월대보름을 맞아 경로당에 모여 소박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잔치라고 해봐야 팥떡, 문어 수육, 과일에 소주 한잔씩 나누는 게 전부다. 쌍전2리의 이장님 장형진(69)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외지에서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제가 이 동네 막내입니다. 동네 심부름이라도 하려면 나이 어린 내가 이장을 해야지요.” 쌍전리 주민 대부분은 70·80대. 남자 18명, 여자 17명이 산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이곳에서 농사 지어가며 마을을 지킬 젊은이들은 없는 것이다. 인터넷도 지난해야 겨우 개통됐다. 그래도 우체국 택배는 하루에 한번 들어온다. 해발 800m에서 키운 배추나 무 같은 고랭지 채소나 한약재, 야콘 등을 택배로 배달하면 서울까지 이틀이면 간다. 쌍전리에는 구멍가게 하나도 없고, 장을 보려면 40㎞밖에 있는 읍내로 나가야 한다. 집값보다 교통비가 더 들 수 있다. 마을주민 중 젊은 편에 속하는 사미라(43)씨는 딸 세희(11)양을 30분 거리의 학교에 매일 아침 차로 바래다 주고 있다. 사씨는 11년 전 부산에서 서면으로 이사를 왔다. 사씨는 배추 심고 소를 치는 지금의 생활이 더없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내 일을 자유롭게 하는 이 생활이 너무 좋습니다. 다시 도시로 나갈 생각요? 전혀 없어요.” 글 사진 울진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주사님은 1시간40분째 식사중 보험사건 부실변론 변호사의 굴욕 추락 여객기 지상피해 적었던 이유 ”여덟 쌍둥이 엄마 홍보 못 해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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