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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관타나모 포로수용소 공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알 카에다 포로들을 수용할 쿠바동부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내 포로수용소가 공개됐다.미군이 이번 주말 첫 포로를 수용하기에 앞서 9일 공개한 포로수용소는 철조망으로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고 곳곳에 감시 망루가 세워져 있다.순찰대가 공격견과 24시간 순찰을돈다. 포로수용소 건설·보안 책임을 맡은 마이크 레너트 준장은 “100개의 독방이 준비돼 있다”며 “포로들을 인간적으로는 대하겠지만 독방 생활이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미군은 포로들의 과격 행동에 대비,초기 제압훈련을 실시하는 등 철저히 대비해 왔다.포로들은 한 명씩독방에 수감된다. 미군은 220개의 독방을 추가로 짓고 최종적으로 2,000개의 독방을 갖춘다는 계획이다.미군은 현재 364명의 탈레반과 알 카에다 포로들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아이티와 쿠바 난민을 수용했던 관타나모 기지는 미군의 해외기지중 가장 오래된 기지다.면적 115㎢에 2,7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군은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중 관타나모를 점령했으며 1903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쿠바로부터 매년금화 2,000개(약 4,085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임차했다.쿠바는 이번 포로수용소 건설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강물의 대화-정다일(1)

    개자리를 찾아가는 밤길은 온통 어둠뿐이다.먹빛을 겹쳐바르고 곧 쏟아져 내릴 듯 낮게 가라앉은 하늘,그 사이로우쑥우쑥 솟은 산줄기들이 험상궂은 모습을 하고 좁은 산길을 에워싸고 있다.길로 뿌려지는 차 불빛이 어둠을 이리저리 헤집어 보다가 이내 끊어지고 만다.몇 걸음 달려가면이내 길은 먹빛의 산자락 속으로 사라졌다. 실로 오랜만에나는 어두운 세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백미러는 무엇 하나 반사해내지 못했다.어둠만을 담아내는 검은 거울.간혹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어느 막다른 골짜기로 들어가고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하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어둠 속에 20여 년 세월 저쪽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있다. 역시 밤길에 그곳을 찾아가는 것은 잘한 일이다.하지만 그토록 철저하게 잊으려 했던 그곳을 찾아가 무엇을 할 것인가,생각해 보면 막막할 뿐이었다.막막하기로는 여행이 될수 없는 이 번 여정 내내 그랬다.그저 발길 닿는 대로 흐르다,한번쯤은 길 위에 선 나에게 나의 길을 묻고 싶었다. 서해안에서 시작된 여정은 남해안을지나 동해안으로 이어졌다. 포항에서부터 바닷물에 철썩이며 이어지는 7번 국도에 올라섰을 때도 나는 이번 여정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실감되지 않았다.서울을 떠난 지 9일이 지나고 있었다.하루가 남았다.아내는 미련 없이 이 땅을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여기서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어요.통일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진부령을 넘어서울로 돌아가면 아내와 약속한 열흘 안에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이튿날 차를 가지러 온 처제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를 타면 아내의 말대로 만사가 순조로울 것이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삼척항 뒤편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서는데,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부르르 떤다. 아내였다. 어디예요? 삼척? 당신,하루밖에 안 남았다는 거 알고 있죠. 내일 밤 12시까지는 도착해야 되는 거 잊지 말아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요.당신, 괜히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말아요.우리가 당신을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것을 이해해줬으면 해요. 아내가 집어낸 엉뚱한 곳은 마하의 개자리다.아내는 우리라고 말했다.나나도 더 이상 아빠를 기다리지 않아요,아내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내는 항상 우리와 당신으로 나누었다. 나는 식당 문을 열다말고 되돌아선다.차문을 열자 억눌러두었던 멀미가 울컥 올라온다.길에 서서 바닷바람을 마셔본다.겨울바람에 언 비린내가 묻어있다.속이 다시 출렁인다.7번 국도를 타면 통일전망대까지 바다에 젖으며 가야한다.바닷물처럼 출렁여 흔들리며 갈 자신이 없었다.나는삼척에서 7번 국도를 버렸다. 42번 국도를 타고 백복령을 넘었다. 정선 여량에서 잠시길을 멈추었다.오래 전 나는 아내와 함께 이곳에 왔었다. 송천과 골지천이 어우러진다는 아우라지.우리는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살자고 했다. 강변의 민박집에서 나는 아내에게 개자리에서의 내 어린 시절과 홀로 강물에 사무쳐 울던어머니를 이야기했다.지루한 아내는 잠을 청하며 말했다. 피곤해, 옛날은 옛날이지 뭐.나는 밤새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뒤척였다.나는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며,우리는어우러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애써 지우며 새벽을 맞았다. 아우라지 강물은 그 때와 변함 없이 흐르고 있었다.아내와 나의 두 물줄기는 하나가 되어 서로 뒤섞이며흘러보지 못했다.나는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내 기억들을 모두 털어 버리듯 마하까지 한달음에달려왔다. 마하까지 이어지던 포장도로가 끊어졌다.이제부터 동강까지는 개울을 따라 자갈밭 위로 덜컹거리며 가야한다. 옛날 미탄 양조장에서 막걸리 배달차가 드나들던 길이다. 하얀 고무 막걸리 통은 창리천과 동강의 합수머리인진탄나루에서 배에 실려 강 건너 마을로 배달됐다.진탄나루 뾰족바위로 올라서자 상류에서 바람이 밀려온다.차가운강 바람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대며 하류 쪽으로 휩쓸려간다.상류 쪽 강가로는 아까부터 반딧불이 만한 불빛 하나가 기우뚱거리며 강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진탄나루에서 문희마을 쪽으로 희미한 비포장도로가 나 있다. 예전엔 사람 하나 다닐만한 토끼길이 고작이었다. 내심 나는 이곳까지 오면서 강을 만나면 이내 돌아서게될 것이라 짐작했다.이쯤에서 길을 접고 뒤돌아서면 늘가슴 한켠에서 펄럭이던 그곳에 대한 회오리도 멎으리라 여겼다. 그리고 개자리에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지도 모를일이었다.하지만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작은 불빛이 위안이 된다.상류 저 멀리로 기우뚱대며 가물거리던 불빛이 산모롱이를 돌았고,불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문득 강물에 깃드는 불빛의 여운.어둠 속의 손짓처럼 희미하다. 길은 얼어 있었다.바퀴 밑에서 얼음이 버적버적 깨지는소리가 들려온다.나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 황새여울의 자갈밭을 지난다.바퀴 밑에선 쟈그랑쟈그랑 잔자갈 부딪치는소리가 요란하다.황새여울을 지나자 협곡 사이의 무당소가언뜻언뜻 드러난다.길에 선다는 것은 매순간 어디로 갈 것인지를,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갈등의 시간이다.회사에서 밀려나 명예퇴직을 할 때도,아내에 등 떠밀려 이민서류를 앞에 놓았을 때도,이것도 그저 일상이려니했다. 갈등의 시간 앞에 온전히 앉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에몸이 부르르 떨린다. 불빛에 놀라 깨어난 어둠들이 뭉텅뭉텅 잘려 차창을 스치며 뒤로 밀려난다.갑자기 차가 헛바퀴질을 해대며 소리를지른다.어둠 속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백운산 자락이 움찔움찔 놀란다.무당소 앞 자갈밭에 빠져 얼마쯤이나왕왕거리며 헛바퀴질을 해댔던가.랜턴 불빛이 둔덕에서 어둠을 휘휘 내저으며 다가오고 있다. “급할수록 조바심을 놓아야지요.” 남자가 파헤쳐진 모래밭에 마른 쑥대를 깐다.조용한 말소리와는 달리 익숙한 손놀림을 하는 남자를 보면서 나는 차에서 내린다.발을 디디자 살짝 언 모래밭 밑으로 물컹,하는 감촉이 전해온다.무당소 앞까지 가보겠다고 드문드문자갈이 박힌 모래밭으로 차를 들이민 게 잘못이었다.나는하늘을 올려다보며 북극성을 찾아본다.북극성은 바다나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과 세상의 지루하고 번잡한 길을 떠도는 자들이 길을 묻는 별이다.옆자리에 펼쳐놓은 책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다.남자가 그 글귀를 읽었을까? 헛바퀴질을몇 번 해대던 차는 쑥대를 짓이기며 자갈밭을 나온다. 남자가 차안에서 손짓을 한다.남자의 옆자리에 앉은 나는 자연스레 그의 손님이 될 준비를 마친 느낌이다. “여긴막다른 길입니다. 여기서 하룻밤 묵어 가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강가 둔덕의 밭 사이로 길이 나 있다.밭은 묵정밭처럼 쑥대가 우거졌고,두어 채의 집들은 빈집인 듯 불빛이 훑고 지나가기가 무섭게 깜깜해진다. “겨울이면 민박을 치던 이들도 다 떠나고 개자리는 빈동네가 됩니다.” 나는 그가 개자리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개자리,하고 중얼거린다.남자가 흘끔 나를 쳐다본다. 빈집에서 튀어 나온 들고양이 한 마리가 길을 가로질러 산 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흐릿하다.습기가 어린 차창이 뿌옇다. 개자리는 이 강줄기에서 가장 살기 좋은 텃자리다.내가 이곳을떠나겠다고 말할 때마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어머니는 가장 따뜻한 집에서 한 세월을 보냈다.한겨울에도 개가 해바라기를 하며 팔자 좋게 엎드려 낮잠을 즐긴다는 개자리에서. “저도 민박이랍시고 명함을 걸어두었더니,사람들이 저더러 개자리민박집 문씨라 부르더군요.” 개자리집은 옛날 그대로였다.호박돌로 쌓아올린 키 높은봉당이며 울퉁불퉁한 마루며 내가 쓰던 문간방의 아궁이며.마당 한켠에 서 있던 대추나무 자리에 민박 손님을 받기위해 가건물을 들어앉힌 것이 변화라면 변화였다.어머니와살던 옛날 어느 시간처럼 문간방과 안방 아궁이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저 불 속에 사라져버린 나를 던져버릴 수 있다면….내가 짜왔던 삶의 무늬 위에 엎질러진얼룩들을 골라낼 수 있을까.겨울밤 어머니와 화롯가에 앉아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감자 껍질을 까고,감자 한 개를다 먹을 때마다 손바닥을 탁탁 마주치며 미련을 털어 내던어린 나에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낮은 문설주에 머리를 숙이며 들어간 안방도 그대로다.군불에 익을 대로 익어 누렇게 변해버린 아랫목 장판도 옛날의 그것처럼 눈에 익었다.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들려왔고,순간 나는 어머니가 밤참을 만드시는가 하는 헛생각에 웃음을 흘린다.벽에 걸린 투박한 괘종시계가 막 열두 시를 치기 시작하자 갑자기 낯설어져 나는 우두커니 서있다. “올창묵이나 차려봤는데,입에 안 맞으면 옥수수막걸리나한 사발 하시지요.” “조금 전에 들어오신 모양이죠?” 나는 진탄나루에서 상류로 올라가던 불빛을 생각하며 묻는다. “그랬습니다.한잔하시고 문간방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빈방에도 불을 지펴두는 모양입니다?” “가끔,봉두난발의 어수선한 마음으로 천리 먼길 헤집어오는 손이 있지요.” 살얼음이 동동 뜨는 옥수수막걸리는 새큼하면서도 텁텁한맛이 시원스럽게 퍼진다.그는 숟가락 가득 뜬 올챙이묵을후르륵거리며 맛있게 먹는다.심심해서 엊그제 만들어봤는데,옛날 맛은 아닌데요.후르륵거리는 소리에 잘려나가는그의 말은 쥐어짜면 금세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처럼 젖어 있다. 여름철 옥수수가 누릿누릿 익어갈 무렵이면 어머니는 올챙이묵을 쑤었다.옥수수 국수인 셈인 올챙이묵을 어머니도올창묵이라 불렀다.어머니는 마루에 앉아 옥수수 알을 따서 맷돌에 곱게 갈았다.이어 고운 체에 밭아서 가라앉힌앙금을 얻을 때면 허리를 펴고 등허리를 투덕이며 강물을하염없이 바라보았다.솥에 넣고 된죽을 쑤느라 나무주걱으로 휘휘 저을 때까지 강물 바라보기는 그칠 줄 모른다.찬물을 그득하니 받아놓은함지박에 구멍 숭숭 뚫린 묵틀을걸어놓고 나서야 어머니의 쓸쓸한 표정은 조금 가신다.야야,올창묵 먹자.니라두 실컷 먹었음 좋겠구나.느 아부진올창묵이라믄 자다가두 벌떡 일어났다야.찰기가 거의 없는올챙이묵은 찬물에 떨어져 뚝뚝 끊어지며 올챙이가 유영하듯 가닥가닥 흔들렸다.호박나물이며 잘게 썬 김치를 소로얹고 양념간장을 쳐도 내 그릇에서는 올챙이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아버지 생각으로 만드는 어머니의 올챙이묵이 나는 싫었다.올창묵은 야,그저 한 숟갈 가뜩 떠 넣어도어데 우물거릴 새가 있는 줄 아나.후르륵, 후르륵 하민서올창묵을 목구멍에 넘기구 난 다음참에 찾아드는 덤더 무리한 맛을 알어야 올창묵 맛을 제대루다 아는 거여. 니가,언제쯤이믄 이 덤더무리한 맛을 알까. 어머니로부터 개자리집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늘 달 밝은밤이었다.마당 한켠에는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대추나무에 걸린 달 그늘이 덮은 마루는 어둠침침했다.무릎을세워 턱을 고이면 어린 내 등은 새우처럼 휘었고,이미 할머니처럼 늙어버린 어머니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그런 날이면 처마 밑까지 내려온 산자락은 한여름에도 겨울에나어울릴 법한 바람을 쌩쌩 날려보냈고,그바람에 물푸레나무이파리들이 묵정밭 쑥대처럼 서걱이며 마구 흔들렸다. 그런 밤이면 나는 왠지 모를 무섬증에 떨며 어머니의 이야기가 빨리 끝나기를 빌었다.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따사로웠다. “개자리….지낼만하신 가요?” “어디서 꼭 한번은 만났던 분처럼 낯이 익군요.” 가부좌로 앉은 민박집 문씨는 엉뚱한 한마디를 던져놓고는 말이 없다. 그는 몇 번 허허 웃었고,고개를 몇 번 갸웃거린다.나는 그를 전혀 알지 못한다.내가, 이것도 괜한 질문이 되는 모양입니다, 하고 겸연쩍어하자 슬몃 말꼬리를잡는다.
  • 구한말 외교명소 ‘손탁호텔’ 전경 첫 공개

    구한말 독일여성 손탁(Sontag·孫鐸·1845∼1925)이 건립,‘조선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당시 서울 정동(貞洞) 외교가의 대표적 명소였던 손탁호텔의 화려했던 전모가 처음으로 공개됐다.그동안 손탁호텔에 대해서는 건물의 정면일부 사진 정도만 전해질 뿐 구체적인 자료는 전무하다시피 했다.손탁호텔은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지학자인 이종학(李鍾學·74) 사운연구소장이 18일 본지에 단독공개한 자료에 따르면,중구 정동 32-1번지(건립당시는 정동 29번지·현 이화여고 동문 일대)에 위치한 손탁호텔은 러시아풍의 2층 양옥건물로 부지가 1,184평에 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 이번에 이 소장이 공개한 자료는 손탁호텔의 대형 홍보용엽서에 실린 호텔 전경사진을 비롯해 토지대장, 지적도면,그리고 건립자 손탁의 사진 등으로 모두 처음 밝혀지는 것이다.건축전문가들은 한국 근대건축사의 미비된 부분을 보충해줄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국적이 독일인 손탁은 프랑스 태생으로 구한말 주한 러시아공사 웨베르를 따라 1885년 조선에 왔다.손탁은고종이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俄館播遷·1896년) 전후 고종을 측근에서 모신 공로로 고종으로부터 궁궐의 일부를 하사받아 1902년 그 자리에 서양풍의 호텔을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손탁호텔로 명명했다.1905년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 직후 손탁은 호텔을 프랑스인에게 팔았으며,손탁호텔은 1910년 한일병합 후 유럽풍으로 개조돼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1918년 이화학당에 팔려여학생 기숙사로 쓰이던 손탁호텔은 4년뒤인 1922년 새 건물을 짓기 위해 완전 헐리고 말았다.새 건물(‘프라이홀’)도 지난 75년 화재로 소실됐다. 김정동(목원대·건축학) 교수는 “당시 손탁호텔은 일본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로쿠메이칸(鹿明館)과 같은 급의 격조높은 호텔로 건축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나그간 관련자료가 부족해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했다”면서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은 기존 한국건축사를 보완해줄귀중한 자료”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손탁호텔은 화려한 외양에 걸맞게 전체 규모 및 내부·부대시설 또한 당시로선보기 드물게 크고 고급이었다. 우선 토지대장을 보면 손탁호텔의 부지는 이제까지 알려진 184평이 아니라 이보다 1,000평이나 많은 1,184평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또 건물 역시 본관 1개동이 아니라 모두 3개동이었으며,부속건물에는 바와 당구장 등 고급 오락시설도 딸려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배재학당,독립문 등을 시공한 것으로 알려진 심의석(沈宜錫)이 시공한 이 호텔은 2층 벽돌건물로 1층은 보통 객실과 식당,다방으로 사용되었고,2층은 왕과 귀빈들의 특별 객실로 사용되었다.객실 수는 모두 25개. 한편 손탁호텔은 건립 당시에는 ‘정동 29번지’였으나,중구청 지적과에 확인한 결과 현재는 ‘정동 32-1번지’로지번이 바뀌어 있었다. 땅주인 명의도 명치45년(1912년)에손탁에서 ‘감리교회 부인(婦人)외국선교부’로 넘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정운현기자 jwh59@. ■손탁호텔 사연과 인물들. 조선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그리고 손탁은 어떤 내력을 가진 여인인가. 목원대김정동(건축학과) 교수는 “구한말 당시 손탁호텔은 각국 외교사절들과 국내 개화파 인사들의 사교장으로서는 물론 1900년대 서양문물을 소개하는 대표적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시내 유일의 최고급 호텔이었던 이곳에는 외국의 명사들이 종종 투숙하기도 했다.‘톰소여의 모험’으로유명한 미국작가 마크 트웨인이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에들렀다가 이곳에 묵었으며,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따님인 앨리스 루스벨트 양도 숙박한 적이 있다.또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 강제체결에 앞서 1904년 3월,1905년 11월 두 차례 방한했다가 머무르기도 했다.조선 국내 인사로는 친미 개화파들의 모임인‘정동구락부’소속 민영환·서재필·윤치호·이완용 등이수시로 이곳을 찾기도 했다. 한편 손탁호텔의 건립자인 손탁은 당시 서울(한양) 정동외교가의 ‘프리마돈나’라 할 수 있었다.4개국어에 능통했던 데다 조선 황실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1845년 프랑스 알사스 로렌 지방 출신인 그녀는 1885년초대 주한러시아공사로 부임한 웨베르를 따라 한국에 처음왔는데 웨베르의 처제, 혹은 처형이라는 등 신분에 대해서는 설이 엇갈린다. 당시 국내정세는 친러파가 득세하던 시절이어서 그는 황궁을 자주 드나들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고종황제 내외의 총애와 신임을 받게 됐다.‘아관파천’으로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물 당시 그는 고종황제의 수라상을 차리는 등 측근에서 모셨으며,나중에 고종이 덕수궁으로 환궁한 후에는 웨베르의 추천으로 궁궐에서 사용하는 서양 집기 관리업무를 맡기도 했다.이같은 신임으로 1897년 고종으로부터 현 덕수궁 맞은편의 궁궐 땅 일부를 파격적인 값에 할양받은 손탁은 1902년 구옥을 헐고 그 자리에 러시아풍의 2층 벽돌건물을 짓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손탁호텔’로 이름지었다. 그러나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자 손탁은 호텔을 프랑스인 보엘(J.Boher)에게 판 뒤 호텔 주방에서 일하던 이(李)씨 성을 가진 한국 어린이를 양자로 입양,프랑스 니스로 귀국,그곳에서 죽었다.양자로 데리고 간 한국인이씨는 후에프랑스 여인과 결혼,프랑스 이씨의 시조가 됐다. 정운현기자
  • 美, 해병대·육군 출병령

    [워싱턴 백문일·이슬라마바드 강충식특파원] 미국은 19일과 20일(현지시간) 미 본토에서 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를 비롯,총 14척의 항모전단을 중동지역으로 발진시키고 특수작전을 수행할 해병대 2,200명과 미 육군에 대해 출병명령을 내리는 등 본격적인 전투병력 배치에 들어감으로써 빠르면 21일 전후 개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프간 탈레반 정권은 20일 이슬람 지도자 회의를 속개했으나 미국이 제시한 테러 배후 용의자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인도 요청을 거듭 거부하고 미국과의 ‘성전 돌입’을 결의했다.이슬람 지도자들은 그러나 이날 빈 라덴의 자진 출국 촉구를 결의했으며, 탈레반 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가결의 내용을 수용할 것이 확실시돼 미국과의 협상 여지는남겨두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이에 대해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빈 라덴을 ‘책임있는 당국'에 인도할 것과 테러훈련 캠프 폐쇄를 재차 요구,아프간 성직자회의의자진출국 촉구 결의를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미국방부는 19일 이번 작전을 ‘무한 정의 작전'(Operation Infinite Justice)으로 명명하고 본토의 전투기와 전폭기 등을 걸프지역의 기지로 이동하도록 명령,테러발생 이후 처음으로 구체적인 군사조치를 취했다.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대 테러 작전 지원을 위해미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이동이 있을것”이라고 말해 군사적 움직임이 본격화됐음을 시사했다. mip@
  • 美 “여러나라가 테러 지원”

    [워싱턴 백문일·이슬라마바드 강충식특파원]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방장관은 19일 전세계에 걸쳐 여러 나라들이 테러를 지원하고 있으며 테러를 근절하려는 미국의 전쟁은 단순히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려는데 그치지 않고 50∼60개나라들에 분포해 있는 빈 라덴의 테러조직들을 분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럼즈펠드 장관은 이날 CNN과의 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그는 18일에도 “현재 1개 이상의 국가가 테러범들을 지원했으며 그 경로를 파악중이다”고 말해 아프가니스탄 이외의국가로 전선을 확대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럼스펠드는그러나 이라크라는 국명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다. 한편 파키스탄의 이슬람계 정당 결사체는 19일 페르베즈무샤라프 대통령에게 파키스탄이 오사마 빈 라덴을 쫓는 미국과 협력하면 내전에 휩싸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미국 언론들은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여객기를 충돌시킨 납치범 가운데 1명이 금년초 유럽에서 이라크 정보기관 책임자와 접선했다고 일제히 보도하면서 이라크의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면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19일 아프간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에 미국이 군사행동을 취하기까지는 4∼5주 정도의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미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가 19일 버지니아의 노퍽항에서 걸프해역으로 발진했다고 미해군 당국이 발표했다. 루스벨트호와 함께 2척의 미사일 순양함,2척의 유도미사일구축함,2척의 구축함,2척의 대잠함,프리깃함과 보급선 각한척 등 11척의 함대가 함께 출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의 성직자 1,000여명은 19일 카불에서빈 라덴의 인도 여부를 결정짓기 위한 회의를 시작했으며회의는 20일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탈레반 고위관계자가 밝혔다. 유엔은 이날 탈레반에 대해 빈 라덴의 신병을 즉각인도할 것을 촉구했다. mip@
  • 비에케스섬 폭격훈련 美 2003년까지 중단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오는 2003년 5월 푸에르토리코 비에케스섬의 폭격훈련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뉴욕타임스가 14일자로 보도했다. 신문은 부시 행정부가 국방부의 반대에도 불구,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면서 미 해군은 14일 훈련중단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비에케스 폭격훈련을 강행할경우 히스패닉계의 지지도가 하락할 것을 우려,훈련을 중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폭격훈련에 반대해 옥중단식에 나선 미국의 민권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와 함께 투쟁해온 뉴욕시 의원 3명은 성명을 내고 “2003년까지 훈련이 계속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 “부시 행정부는 훈련을 당장 중지시켜야 한다”고주장했다. 미 해군은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오는 18일 섬의 훈련장에서 폭격을 재개할 예정이다.앞서 전투기 조종사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이끄는 전투부대는 13일 비에케스섬 인근해상에서 훈련을 실시했다.국방부 관리들은 부시 행정부의 폭격 중단 결정은 군사적인 필요성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국방부는 비에케스섬은 2차 세계대전 이래 미 해군의 군사훈련에 사용됐으며 대서양함대의 훈련을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주장해왔다. 한편 비에케스섬 주민들은 오는 11월6일 2003년 이후 해군의 폭격훈련 허가 여부를놓고 투표를 할 예정이다.폭격중단을 요구해온 실라 칼데론 푸에르토리코 주지사는 다음달 29일 즉각적인 훈련 중단을 포함하는 주민 투표를 요구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美 위대한 대통령’ 레이건 1위

    [워싱턴 AP 연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에 관한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가장많이 꼽았으며 존 F 케네디,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뒤를 이었다. 19일 발표된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위대한대통령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18%의 응답자가 레이건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케네디와 링컨 전 대통령은 각각 16%와 14%를 얻었다. 이들에 이어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힌 인물은 조지 부시(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의 아버지),시어도어 루스벨트,리처드닉슨,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으로 나타났다. 1년 전의 조사에서는 케네디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으며 링컨,레이건,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뒤를 이었다.2년전 조사에서는 링컨,레이건,케네디,클린턴,조지 워싱턴 순이었다. 워싱턴과 링컨 가운데 어느 쪽을 현직 대통령으로 더욱 선호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62%가 링컨을,28%가 워싱턴을 각각 꼽았다. 국경일인 ‘대통령의 날’을 맞아 발표된 이번 갤럽 여론조사의 표본 오차는 ±5%포인트다.
  • 교황청, 추기경 37명 새로 임명

    [바티칸시티 외신종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1일 37명의 추기경을 새로 임명,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추기경은 5개 대륙별로 분포돼 있으며 이 가운데는 미국의 워싱턴 대교구의 시어도어 E 매케릭 대주교와 뉴욕 대교구의 에드워드 이건 대주교,예수회 신학자인 뉴욕 포덤 대학의 애버리 덜레스 교수 등이 포함돼 있다. 또 교황청 정의평화위원장인 베트남의 프랑수아 하비에르 응웬 반투안 대주교,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호르게 마리오베르고글리오 대주교,영국의 모맥 머피 오코너 웨스트민스트 대주교,카라카스 대교구의 이냐시오 안토니오 벨라스코 가르시아 대주교 등이 임명됐다. 이밖에 리마 대교구의 후안 루이스 시프리아니 토르네 대주교와 리옹 대교구의 루이 마리 벨 대주교,더블린 대교구의 데스몬드 코넬 대주교 등도 포함됐다.
  • 미국 지도자 희로애락 함께 한 ‘하얀집’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의 하나인 미국 대통령 관저 백악관이1일로 2세기의 긴 역사를 자랑하게 됐다.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고어 민주당 후보가 서로 주인이 되려고 혈투를 벌이고 있는 백악관이 워싱턴DC의 펜실베이니아가(街) 1600번지에 웅지를 튼 지 꼭 200년이 된 것. 백악관이 1800년 11월1일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를 첫 주인으로 맞았을 때만 해도 밑동 잘린 나무 그루터기와 우거진 잡목,벽돌 가마,폐석,인부 숙소 등이 널려 있고 회반죽과 벽지의 풀,장작 마르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썰렁한 모습이었다. 백악관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1792년 행정·입법부분리를 상징해 의사당에서 16블럭 떨어진 곳에 초석을 갖다 놓고 아일랜드 출신 건축가 제임스 호번에게 공사를 맡긴 데서 태동됐으나정작 워싱턴 대통령은 준공을 한 해 앞둔 1799년 사망하는 바람에 백악관에서 들어가지 못한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 됐다. 그리스식 복고풍인 이 건물을 ‘인민의 전당’이라고 부른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1805년 취임식 때 일반인을 처음으로 초대해 큰인기를 끌기고 했다. 백악관은 원래 워싱턴의 뜨거운 태양을 고려해 회반죽을 바른 눈부시게 흰 건물이었으므로 처음부터 ‘화이트 하우스(WHITE HOUSE)’로불렸다는 얘기가 있으며 적어도 개관 2년후에는 고유명칭으로 굳어졌지만 100년도 더 지난 1901년이 돼서야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공식 명칭으로 확정됐다. 백악관은 전쟁중이던 1814년 영국군에 의해 한차례 불탔고 1929년허버트 후버 대통령 시절 화재로 서관(웨스트 윙)이 대부분 소실됐었다. 워싱턴 연합
  • 美 NMD실험 실패… 반대론 고조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국가미사일 방어망(NMD) 실험이 어이없는 기술적 허점을 드러낸 채 실패로 끝나면서 계획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이번 실험 결과는 NMD 계획은 명분과 실제 기술,그리고 추진 행정능력면에서 완전히 실패했음을 명백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백악관 P.J.크롤리 대변인은 “대통령이 국방부의 분석과 권고안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혀 백악관내 회의론 시각을 시사했고,민주당 바이런 도건 상원의원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미사일 시스템 추진을 권고할 이유가 없다”고 의회 반론의 톤을 높였다. 미 군수뇌부들은 계획 자체에 대한 개정 또는 폐지 여부는 논하지 않지만이번 실패에 따른 후유증은 국방부 내에서도 NMD 계획에 대한 심각한 재론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애초 기술면에서 미국의 양심있는 과학자들조차 불가함을 들어 반대해왔고노벨상 수상 과학자들이 군축 차원에서 백악관에 계획 반대를 건의하는가 하면 이 계획에 깊숙히 간여했던 시어도어 포스톨 MIT 교수는 “과학적 기만”이라고까지 지적했었다. 발사 이전부터 요격미사일이 교란용 물체를 식별하지 못한다던가 실제 요격체 탑재 로켓이 시험용보다 발사 때 10배 이상의 추진력을 받아 실제에서는충격을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던가 하는 기술적 결함은 누누히 지적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실험의 실패 요인이 요격미사일이 발사체에서 분리되지도 못했기 때문이라는 어이없는 원인임이 밝혀지면서 미국내는 물론 세계의 시각은NMD의 허구성 뿐만 아니라 계획을 추진하는 행정 능력에조차 허점이 있었다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1억달러의 실험을 하면서 보여준 NMD 주도자들의조직력은 미사일 실험에서 기초적인 결함을 해소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일차적 실패 원인은 무리한 계획 추진이다.600억달러의 예산 시행 기점이 지난달이었기에 7월로 넘겨진 실험 결과 보고에 따른 시한경과도 시간에 쫓기게 한 요인이기도 하다. 실험 실패는 러시아,중국 등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개정에 반대하던국가는 물론 군축질서 교란을 우려하던 서구 여러나라들의 반대 목소리를 증폭시킬 것이며,기술결함이란 근본적 문제 지적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실험 실패로 상처받은 것은 날아간 예산 뿐만은 아니다.가장큰 타격은 무엇보다도 미국 우월주의란 상징성에 안겨진 상처일 것이다. 미국은 이란,이라크,파키스탄,인도 등 새로이 무기를 갖기 시작한 국가에의해 미국 안보가 위협받아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NMD를 추진했지만 결국 현실을 무시한 미국 혼자만의 우월감은 실패한 미사일 조각과 함께 태평양에추락했다. hay@
  • “美 NMD 결정적 결함”

    [뉴욕 연합] 미국이 추진중인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는 실제 탄두와 가짜 탄두를 구별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데도 미 국방부가 이를 은폐해왔다고 뉴욕타임스가 9일 폭로했다. 이 신문은 미 MIT대학의 시어도어 A.포스톨 교수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입수한 국방부 내부 보고서를 인용,요격미사일이 적의 핵탄두와 유인장치를 구별해 내지 못하는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군사고문을 지냈던 포스톨 교수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7년과 98년에 실시된 최초 2차례 실험에서 요격 미사일이 핵탄두와 가짜 탄두인 유인장치에서 나오는 미열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요격미사일은 부착된 컴퓨터 센서를 통해 영하 300도 이하 초저온 상태의우주공간에서 핵미사일에서 발생하는 적외선 섬광을 추적해내야 하나 실제탄두와 모의 탄두에서 나오는 적외선 섬광이 비슷해 이를 뚜렷하게 식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이같은 결과가 나오자 실제 탄두와 모의 탄두를 식별하기 쉽도록 인위적으로 차별화하고 유인장치의 수를 대폭 줄여 요격미사일이 실제 탄두를 쉽게 맞힐 수 있도록 조작한 뒤 두 차례 실험을 더 강행했다.
  • [2000 美 大選](1)대통령의 권한

    대통령 후보를 확정짓는 민주,공화 양당의 전당대회가 두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지난 3월 ‘슈퍼 화요일’ 이후 앨 고어 부통령과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민주,공화 양당후보로 일찌감치 결정되면서 선거열기가 다소 시들해진 게 사실이다.하지만 양당이 사실상의 본선 레이스에 돌입하며 전방위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다.미대통령선거의 여러 특징과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43번째 미국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전이 치열하게전개되고 있다.미 대통령은 도대체 어떤 권한을 가지며, 왜 이를 위해 온 나라가 여기에 매달리며 선두다툼을 벌이는 것인가. 4로 나눠 떨어지는 해의 11월 첫일요일 다음 화요일에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다음해 1월 20일 취임하는 미 대통령은 호칭에서 대통령(President)외에최고책임자(Chief Executive Officer)로 불린다.입법,사법,행정의 3권분립체제위에 성립된 미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란 뜻이다. 1700년대 말 32세의 알렉산더 해밀튼과 36세의 제임스 매디슨이 작성한 연방주의 논문에 의해 기초가 다져진 미합중국 대통령직은 말도 많던 13개주분권체제에서 시작한 탓에 강력한 대통령직을 만들어냈다. 취임선서 이후 정오부터 시작되는 대통령의 권한은 행정권한 외에도 입법상권한을 비롯,사법권한,외교권한 등 방대한 권한을 갖는다. 행정권한은 말그대로 행정부내 규칙,규정,지시 등을 내리고 연방기관에 대해 법으로 구속력을 갖는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민병대를 포함한 군최고사령관직을 수행하며,전쟁선포는 물론 비상시국가 경제통제권한과 300여만명의 공무원 가운데 약 3,000명을 임명하는 권한도 갖는다. 1856년 취임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이래 더욱 강화된 외교권한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2차대전중 연합국지도자 회의 등으로확대됐으며,국가원수가 만나 국가간 정치는 물론 경제,법률조인등 방대한 권한을 포함하는 쪽으로 확대됐다. 사법부 쪽으로는 연방판사의 임명을 비롯해 사면권과 함께 형기단축,벌금인하란 강력한 권한도 갖는다.최근 주목되는 권한은 핵 사용 명령권.국가 종식이란 극단적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핵공격명령을 내릴 수 있는 핵가방은 항상 대통령과 함께 동행하며 국가방위의 최초이자 최후의 권한을 담고 있다. 그러나 막강한 미 대통령의 권한은 강력한 만큼 의회의 강력한 견제를 받으며 마찰이 생길 경우 법원으로부터도 제한을 받기도 한다.주정부 공무원이었던 폴라 존스양 성추문 사건과정에서 불거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를 부인,사법방해와 위증죄가 드러났던 클린턴은 의회로부터 탄핵의 궁지에 몰렸듯,대통령은 연방법 제2조 4항에 의해 상하양원 각각 3분의 2찬성으로 탄핵될 수 있다. 또한 모든 법안은 의회입법으로 처리되게 돼있어 클린턴 행정부와 알력을빚은 의회는 모두 3차례에 걸쳐 예산안 처리를 거부,행정부 폐쇄라는 극단현상을 낳았는데 이 역시 견제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지난 49년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의회가 입안한 법률안을 거부했음에도 의회가 3분의 2찬성으로 다시 입법화시킨것이나,이전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베르사이유 조약을 체결했음에도 의회가 비준을 거부,국제연맹에 가입할 수 없다고 밝표한 것 등은 견제의 좋은 본보기다. 막강한 미 대통령의 가장 극단적인 견제는 바로 임기이다.초대 워싱턴이 3기 연임 권유를 물리치고 ‘고별사’를 남긴 채 물러난 이후 3기 이상 연임불가가 불문률로 굳어졌었다. 그러나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2차대전 과정에서 45년 사망시까지 4기를 연임했으며,전쟁이후인 51년 의회는 수정헌법 22조로 법조문에 연임불가를 정식 규정했다. hay@. [워싱턴 최철호특파원]미국 대통령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은 어디일까. 빌 클린턴 대통령이 아칸소주에서 탄생,아칸소주는 그의 기념관을 건립하는등 분주하지만 뉴욕주는 무려 지금까지 8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8대 마틴 밴버렌,13대 밀라드 필모어,21대 체스터 아더,22대 그로버 클리브랜드,26대 테어도어 루즈벨트,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34대 드와이트 아이젠아워,37대 리처드 닉슨이 모두 뉴욕주 출신.오하이오주도 9대 윌리엄 해리슨을 비롯,19대 러더포드 하이스,20대 제임스 가필드,25대 윌리엄 맥킨리,27대윌리엄 태프트,29대 워렌 하딩 등 6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초대 워싱턴을 낳은 버지니아는 3대 토머스 제퍼슨,4대 제임스 매디슨,5대제임스 먼로,12대 제커리 테일러 등 주로 미 역사 초기 5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이어 메사추세츠주가 2대 존 애덤스와 6대 존 퀸시 애덤스,30대 캘빈쿨리지,35대 존 F.케네디 등 4명을 배출했다. 남부지역에서는 대통령이 잘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테네시 주는 7대 앤드류 잭슨을 비롯,11대 제임스 녹스 포크,17대 앤드류 존슨 등 3명의 대통령이 나왔다.인구가 가장많은 캘리포니아에서는 31대 허버트 후버와 40대 로널드 레이건 등 2명이,그리고 일리노이주 역시 16대 애이브러햄 링컨과 18대율리시스 그랜트,그리고 텍사스 주에서도 36대 린든 존슨과 41대 조지 부시등 2명을 배출했다. 이밖에 앨라배마 노스·사우스캐롤라이나,미주리,뉴멕시코,애리조나,오클라호마,와이오밍,노스·사우스다코타,워싱턴,미시건,캔사스,콜로라도,네바다,미네소타,델라웨어,매릴랜드,메인,웨스트 버지니아 등의 주는 단 한명의 대통령도 배출하지 못했다.
  • 힐러리 “상원의원 떼논 당상”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공화당은 10일 뉴욕주 상원의원선거와 관련, 건강과 사생활이 문제가 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56)대신 새로운 인물을 모색하고 있다. 공화당의 후보교체 계획은 줄리아니 시장이 최근 돌출된 문제들로 후보로서의 이미지에 심각한 훼손을 받았다는 판단이 내렸졌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선거 6개월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줄리아니 시장이 다른 후보로 교체될 운명을 맞음으로써,경쟁자인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후보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됐으며 싱거운 낙승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줄리아니 시장은 지난달말 전립선 암 양성진단을 받았는가 하면 주디스 네이던(45)이란 이혼여성과의 관계가 불거져 나온 3일뒤인 10일 마침내 부인도나 하노버와의 별거를 공식발표,유권자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배우겸 방송인인 부인과 16년전 결혼한 줄리아니는 지난 96년부터 사실상 별거해오면서 공식석상에 한번도 동반하지 않았으며 결혼반지조차 끼고다니지 않았다.15세된 딸을 둔 네이던과는 공식 저녁만찬장에까지 동반하는등 반공개적으로 관계를 유지해왔었지만 최근 언론이 다시 이를 주목하면서결국 별거선언이 나왔다. 대체후보로는 롱아일랜드출신 하원의원 릭 나지오와 월스트리트의 백만장자자선사업가 테어도어 프로스트맨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미 뉴욕주내 62개 카운티를 돌며 예비유세까지 마쳐 여론지지도가 상승하기 시작한 힐러리에는역부족일 전망이며,힐러리는 사상 처음으로 영부인 이후 상원의원이 되는 기록을 만들어낼 공산이 크다.
  • 올 겨울옷 ‘솜처럼 가볍고 포근하게’/패션경향을 살펴보면

    “무거운 옷들은 가라.가볍고 부드러운 게 좋다.” 일반적으로 겨울옷 하면 무겁고 투박하다는 생각을 갖지만 올해 선보인 코트나 겨울 옷들은 디자인과 소재선택에서 무게를 줄이기 위한 노력들이 돋보인다.간결한 디자인에 캐시미어와 본딩,폴라플리스 등 가벼운 소재가 강세를보이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을 살펴보면 겨울 코트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커다란 단추나 장식이자취를 감췄다.속단추와 벨크로(일명 찍찍이)로 앞여밈 부분을 처리,깔끔하고 가벼워 보인다.칼라도 없애거나 하이네크로 처리했으며 길이도 발목길이의 긴코트보다는 무릎길이가 많다. 고급소재로 알려진 캐시미어는 산양의 털중 모근 부분만 사용한 것으로 일반 양모보다 털이 가늘고 유연하며 매끄러운 감촉과 윤기가 특징이다.그러나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이 워낙 적어 가격이 비싼 것이 흠. 좋은 것일수록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며 털방향이 가지런하다.손질이 까다로워 매일 입으면 털이 상하고 변형될 염려가 있으므로 하루입고 사흘은 입지않는 옷으로 알려져 있다. 엘지패션서영주대리는 “캐시미어 혼용률은 10∼100%로 혼용률에 따라 가격 차가 많이 나므로 반드시 확인한 다음 구입하라”며 “혼용률이 무조건높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남자 양복바지는 캐시미어 혼용률이 10% 내외의 것을 선택해야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본딩은 폴리에스테르에 특수 코팅처리를 한 것으로 이탈리아 패션브랜드인프라다에서 개발해 일명 ‘프라다 공단’으로도 불린다.바람을 막아 줘 방한복으로 이용되며 이 소재로 만든 프라다 가방은 최근 패션리더들 사이에 필수품목으로 자리잡을 정도로 인기다.수입브랜드에서 많이 볼수 있으며 국내브랜드에서도 몇 품목씩 선보였다. 가죽처럼 보이지만 가죽보다 부드럽고 가볍다.신축성도 좋아 활동에 편하다. 가격은 가죽에 비해 싸며 방수처리가 돼 겨울철 눈비에도 옷이 젖지 않는다. 얼룩이 묻더라도 물수건으로 닦아내면 돼 편리하다. 서영주씨는 “가볍고 실용적인 면들이 부각되면서 본딩소재 코트나 점퍼는벌써 인기품목으로 자리잡았다”며 “여성복에서도 일부 선보였으나 스포츠웨어와 골프웨어에서 더욱 인기”라고 말했다. 찬 느낌을 보완하기 위해 겉감과 안감사이에 보온성 높은 천을 대거나 아예안감으로 폴라플리스를 사용하기도 한다.또 모피를 안감이나 목·팔부분에사용,착용감과 보온성을 높인 것도 있다.현재 코트,투피스,가방,신발 등이나와있다. 스포츠웨어로 많이 사용되는 폴라플리스는 폴리에스테르를 양모느낌이 나도록 가공한 것을 말한다.가볍고 따뜻해 방한복의 안감이나 등산복 등 스포츠웨어에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점퍼,셔츠와 조끼,장갑,모자,머플러,아이들 옷으로 많이 이용된다.마찰에 약해 보풀이 많이 생기므로 손빨래를 하는 것이좋다. 안감으로 사용한 경우 부착형과 분리형으로 나뉜다.분리형은 따로 입어도어색하지 않아 1석3조 효과를 거둘수 있다. 신원의 이선아씨는 “올 겨울 옷은 소재와 디자인 외에 색상도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파스텔톤의 따뜻하고 밝은 색이 유행”이라며 “이는 새로운세기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밖에 솜이나 오리털을 넣어 누빈 패딩은가볍고 따뜻해 올해도 여전히 인기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강선임기자 sunnyk@
  • 클린턴 상원의원 출마설…2002년 고향 아칸소서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옛 친구들은 그가 백악관을 떠난 후 오는 2002년 고향인 아칸소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믿고 있다고 뉴요커지가 28일 보도했다. 뉴요커는 현 아칸소주 상원의원인 팀 허친슨 의원(공화)이 금년 초 클린턴대통령에 대한 탄핵재판에서 찬성표를 던졌을 뿐 아니라 그의 동생 에이서허친슨 하원의원도 탄핵재판 당시 하원에서 주동적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이“특히 클린턴 대통령의 구미를 당기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 잡지는 또 클린턴 대통령이 2001년 1월 백악관을 떠나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최연소 전직 대통령이 되며 상원의원에 당선될 경우 미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재판을 받은 앤드루 존슨 대통령 이후 두번째로 상원에서 봉직하는 전직대통령이 된다고 말했다.
  • 김욱동 교수 펴낸 “문학 생태학을 위하여”

    ◎문학적 관점서 본 환경오염/베어지는 숲들… 오염되는 바다… 아름다운 녹색 자연 문학으로 지킬 수는 없을까… 1980년대가 ‘탈이념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환경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사회생태학·녹색정치학·생태철학·생태윤리 등 사회·인문과학 각 분야에서 불고 있는 ‘녹색 바람’은 이러한 시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그러나 문학쪽에서 만큼은 이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서양문학가들은 자연을 정복이나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온 서구 세계관에 길들여져 있고,동양문학가들은 주로 경제개발의 피해나 정치 이데올로기 문제에 주목해 왔기 때문이다.서강대 영문과 김욱동 교수가 최근 펴낸 ‘문학 생태학을 위하여’(민음사)는 생태파괴와 환경오염 문제를 문학적 측면에서 다룬 책으로 관심을 모은다. ‘문학 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미국의 문학이론가 조셉 W.미커다.그는 이 분야의 고전이 되다시피한 책 ‘생존의 희극’에서 문학이 생태위기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그 중에서도 시는 특히 생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가장 걸맞는 장르라는 것이다.그동안 생태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 시인들로는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문예부흥’을 주도한 비트 시인 게리 스나이더를 비롯,애드리엔 리치,시어도어 로스케,W.S.머윈 등 미국 시인들이 꼽힌다.특히 스나이더의 작품집 ‘신화와 텍스트’에 실린 시들은 생태시의 전형으로 흔히 인용된다. “숲들이 베어진다/잘려나간다/아합의 숲이,큐벨레의 숲이/…제아미의 소나무도,하이다의 히말라야 삼목(杉木)도/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잘려나간다/…루터와 웨이어하우저에 의하여 밀려나간다” 제목이 붙어 있지 않은 스나이더 시의 한 대목이다.이 시는 무엇보다 낯선 고유명사가 많이 등장해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진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요부 이제벨의 남편이고,큐벨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 곡물의 결실과 다산(多産)을 관장하는 신이다.하이다는 캐나다와 미국 알래스카 지방에 살아온 인디언 종족의 이름.또 웨이어하우저는 미국의 유명한 목재 가공업자 이름이고, 제아미는 15세기 일본의 전통극 노(能)의 배우 겸 극작가 그리고 비평가로 활약한 인물이다.스나이더가 이렇게 낯선 이름들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 데는 그 나름의 까닭이 있다.자연파괴나 환경오염이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왔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스나이더는 “숲을 지키는 것이 곧시인의 임무”라고 단언했다. 이 책의 일관된 주제는 ‘문학의 녹색화’다.왜 녹색인가.녹색의 프리즘을 통해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한 마디로 인간 정신의 가장 고귀하고 순수한 영역에 속한다.이를테면 풀 한 포기의 아픔을 걱정하는 마음,대지를 어머니의 가슴으로 여기는 마음,물고기의 물길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우주적 연민의 정조로 모든 존재를 성찰하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다.이런 문맥에서 볼 때 정현종의 “구름은 실로 우리 살의 씨앗/우리 피의 씨앗”(‘구름의 씨앗’)이라는 시 구절은 한층 귀하게 읽힌다. 이 책에서는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생태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룬다.생태 페미니즘은 가부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전통적인 페미니즘의 테두리를 넘어 생태 문제에 눈길을 돌린다.생태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발전 단계에서 볼 때 가장 뒤늦게 태어난 이론이다.물론 테오도르 아도르노나 막스 호르크하이머,허버트 마르쿠제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가들이나 페미니즘의 대모로 불리는 시몬 드 보부아르에게서도 생태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생태 페미니즘은 1970년대 초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생태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도본이다.‘페미니즘이냐 죽음이냐’라는 제목의 책에서 도본은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여성의 잠재력이 매우 유용함을 역설했다.이 생태 페미니즘이 비평담론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들어서다. 문학 생태학이라는 말은 한편으론 모순어법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러나 순종교배보다 잡종교배를 통해 종종 우량한 후손을 얻을 수 있듯이 문학도 자연과학과의 결합을 통해 창조적인 새 이론을 낳을 수 있다.그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은 생태위기 시대에 문학 생태학은 더욱 조명받아 마땅하다.“모든 이론은 회색이다.영원한 것은 저 생명의 나무의 녹색뿐이다”라는 독일 시인 괴테의 말은 무척이나 시사적이다.
  • 세계지도력의 산실 백악관(美國의 대통령 문화:21·끝)

    ◎‘모든 사람의 집’ 백악관 매년 관광객 수백만명 다녀가/1800년 애덤스 첫입주후 40명 거쳐/“정직 현명한 이들만 살게 하소서”/라이브러리룸 등 6개 20분 소요/시대 초월한 국민과의 교감 피부로 【워싱턴=羅潤道 특파원】 미국 대통령문화의 산실인 워싱턴DC에는 미대통령의 체취를 느끼려는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매년 몰려든다.‘펜실베니아 애브뉴1600번지’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진 백악관,스미스소니언 초상화박물관의 대통령실 등은 차치하고라도,워싱턴기념탑,링컨기념관,제퍼슨기념관,프랭클린루즈벨트 기념관,시어도어 루즈벨트 기념관 등 개인 기념관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물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포토맥강과 잔디광장 ‘더 몰’이 어우러져 이뤄내는 아름다움 사이로는 또 케네디센터,윌슨센터,조지 워싱턴 대학,루즈벨트 브릿지,린든 B.존슨 기념공원,제임스 매디슨 빌딩 등 대통령의 이름이 붙은 시설물들도 많아 시내곳곳 어디를 가도 대통령을 만날수 있다.특히 백악관은 미대통령의 권위를 상징함과 동시에 세계 지도력의산실로 역대 미대통령의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이다. 이곳은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누구에게나 개방된다.백악관 남쪽의 ‘방문자센터’에 가서 줄을 서기만 하면 된다.그러나 백악관 방문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한다.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아침 7시부터 선착순으로 줄을 선 사람들에게 3천매,단체관광객에게 1천500매 등 모두 4천500장의 입장권을 나눠준다.대부분의 경우 입장권 분배를 시작,30분이면 동이난다. 입장은 당일 상오10시부터 정오까지만 허용되며 지하1층의 회랑을 통해 첫 방인 라이브러리 룸에서 출발하여 지상1층의 국가만찬장까지 모두 6개의 방만 일반에 공개된다.전체 20여분의 투어다. 백악관은 보통 관광객들이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남쪽에서는 4개층으로,정문쪽인 펜실바니아애브뉴 쪽에서는 3개층으로 보인다.따라서 관광객들은 지하1층 동쪽 회랑의 출입문으로 입장하여 첫방인 ‘라이브러리’만을 본후 지상1층으로 올라가게 된다.지하1층의 다른 방으로는 금도금한 은제품들을 진열한 ‘버메일(금도금)룸’,대통령의 식기 세트를 진열한 ‘차이나룸’,중앙의 ‘외교사절 영접룸’,그 좌측에 2차대전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전황을 체크하기 위해 사용했던 ‘맵(지도)룸’ 등이 있다. 지상1층에는 리셉션이 열리는 가장 큰 방인 ‘이스트룸’,응접실인 ‘그린룸’과 ‘블루룸’,퍼스트레디들의 응접실인 ‘레드룸’,연회실인 ‘국가만찬장’ 등이 있고 이들 5개의 방은 모두 공개된다.또한 이들 방을 연결하는 중앙회랑에는 대통령들의 흉상과 퍼스트레디들의 초상화들로 장식돼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집무실과 침실 등 사적 공간이 있는 2,3층은 공개되지 않는다.중앙의 거실인 ‘옐로 오벌 룸’을 중심으로 양측에 대통령의 서재와 조약체결시 사용하던 ‘트리티룸’이 있고 그 양측 옆으로 대통령의 침실과 손님방으로 사용되는 ‘링컨룸’이 있다.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와 각료회의장인 ‘캐비닛룸’은 서쪽 부속건물에 있다. 1792년 초대 워싱턴 대통령의 임기중 착공된후 1800년 11월,2대 존 애덤스 대통령이 퇴임 2개월여를 남기고 미완성인채로 입주함으로써 시작된 백악관에서의 대통령 스토리는 오는 2000년 200주년에 이르게 된다.그동안 워싱턴을 제외하고 클린턴 대통령까지 40명의 대통령을 거쳐오며 조금씩 증개축되어 오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거주기간은 윌리엄 해리슨(9대)의 1개월부터F.루즈벨트(32대)의 12년까지 다양하다.임기중 사망한 대통령은 모두 8명으로 4명은 암살,4명은 병사로 기록돼 있다. 한편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이듬해 득녀,백악관에서 자녀를 얻은 유일한 대통령이 됐다.자녀수가 가장 많은 대통령은 타일러로 전처와 후처로부터 모두 8남6녀를 얻었다.다음은 윌리엄 해리슨으로 6남4녀를 기록하고 있다.가족대통령으로는 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6대)가 부자관계 였고 윌리엄 해리슨과 벤자민 해리슨(23대)은 조부와 손자 사이로 유명하다. 워싱턴에서 또하나 빼놓을수 없는 대통령문화의 본거지는 국립초상화박물관 이다.2층의 대통령실에는 역대 미대통령들의 사진과 흉상,부조 등이 전시돼 있다.언제라도 대통령의 미소를 접하고 그 숨결을 느낄수 있는 곳이다. 시대를 초월한 국민과 대통령의 교감은 이같이 바로 민주주의의 근원을 이루는 또하나의 현장이기도 하다.백악관 ‘국가만찬장’의 벽난로 위에 새겨진 애덤스의 글귀는 긴 여운으로 남는다.“정직하고 현명한 사람들만이 이지붕 아래 살게 하소서.”
  • 美 소포폭탄 테러범 ‘유나보머’에 종신형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유나보머’로 알려진 미국의 반(反)문명주의 소포폭탄 테러범 시어도어 카진스키(55)에 대해 18일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4회 연속 종신형이 선고됐다.카진스키는 78∼95년 소포폭탄을 보내는 방법으로 3명을 숨지게 하고 여러명을 불구로 만든 혐의로 지금까지 3번이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 중국의 ‘자유’ 전통/윌리엄 시어도어 드 배리 지음(화제의 책)

    ◎동아시아 신유학사상 ‘혁신성’ 조명 동아시아 전통의 중요한 한 부분을 이루는 신유학사상(Neo­Confucianism)을 새로운 각도에서 고찰.서구의 중국학자들은 송대 이후의 근세 유학사상을 일반적으로 신유학이라고 부른다.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이나 주자학이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그러나 이 말은 양명학을 포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송대에서 청대 말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큰 사상 조류로서의 의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미국 컬럼비아대 존 미첼 메이슨 석좌교수인 드 배리(79)는 신유학을 현재의 동아시아가 안고 있는 사상적 전통과 결부시켜 재해석한다.그에 의하면 신유학은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도 반동사상도 아니다.그것은 오히려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에 못지 않은 이념적·실천적 관념을 내포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경향의 ‘혁신사상’이다.이 책에서는 특히 주희와 자유주의 교육,신유학의 개인주의,황종희의 자유사상 등 논쟁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춰 신유학사상의 정수를 보여준다.나아가 신유학사상의 자유주의적인 조류를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일련의 기본 관념들을 분석한다.‘논어’ 헌문(憲問)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 위기지학(爲己之學),도(道)의 전수계보인 도통(道統),극기복례(克己復禮),자득(自得),자임(自任) 등이 그것이다.이런 관념들은 모두 개인의 자율성을 긍정하고 내면지향적인 윤리를 강조한다.최근 IMF사태 이후 동아시아의 경제위기와 관련해 ‘동아시아적 가치’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문제가 새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서양인은 물론 심지어 동아시아인들 조차도 동아시아적 가치란 없다고 단언한다.이러한 정신적 공백상태에서 이 책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의미 있는 텍스트로 평가할 만하다.표정훈 옮김 이산 1만원.
  • 우드로 윌슨(미국의 대통령 문화:13)

    ◎‘민족자결주의’ 제창 국제평화 기본틀 다져/독점기업·세제 등 개혁… 노동자보호 앞장/‘이상주의자’ 평가속 20년 노벨평화상 수상 【스톤튼(미버지니아주)=나윤도 특파원】 민족자결주의로 한국민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는 28대 미국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이른바 ‘버지니아왕조’,즉 버지니아주 출신 대통령 8명중 마지막 대통령 이다. 프린스톤대 총장을 지낸 학자 출신의 이상주의자로 알려진 윌슨 대통령은 1차대전의 와중에서 미국익의 성실한 수호자역을 맡아 국제정치의 무게중심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 놓은 훌륭한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다.대통령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명실공히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그는 온화한 외적 분위기와는 달리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했다. 그의 생가가 있는 스톤튼은 애팔래치아산맥 동부의 빼어난 절경인 셰난도계곡 복판에 위치해 있으며 윌슨의 도시로 유명하다.이 작은 도시에서는 도시 설립 250주년을 기념,지난해 9월부터 올 1월말까지 5개월 동안 생가에서 ‘스톤튼의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가졌다. ‘윌슨시대의 도시(1855­1912)’라는 부제가 붙은 이 전시회에는 윌슨이 이곳 장로교회의 목사관에서 태어나 자라고 대통령이 되어 이 도시를 떠났던 때까지,사진과 각종 유품 등 당시의 생활상을 상세히 진열해 윌슨을 키워낸 이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잘 살펴볼수 있게 했다. ○한국독립 운동에 침묵 이곳의 윌슨 사적지에는 그의 생가가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새로 지은 박물관과 부친 조셉이 시무하던 교회,설립한 대학 등이 시가지 곳곳에 그대로서 있다.우드로 윌슨 재단에 의해 사적지 내에 세워진 박물관에는 윌슨의 존스 합킨스대 박사학위논문을 책으로 펴낸 ‘의회 정부론’를 비롯,‘민주주의 국가론’‘분열과 통합론’‘조지 워싱턴’‘미국 민중사’ 등 그의 명저들을 비롯,1차대전과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프린스톤 총장에 이어 뉴저지 주지사를 역임했던 윌슨 대통령은 총장 당시 리승만 대통령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함으로써 한국과의 인연을 시작했다.그러나 3·1운동 이후 임시정부수반으로조선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리승만의 거듭된 주장에 그는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한국민에게는 섭섭한 감정을 남기고 있다.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미국내 일기 시작한 혁신주의운동은 정당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윌슨에 의해서도 계승됐다.남북전쟁 이후 경제적 사회적 침체와 함께 사회 도처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일소하여 미국을 진정한 민주사회로 개혁하자는 이 운동의 가장 큰 목표는 당시 모든 폐해의 근원이 되고 있던 국내의 독점기업을 타도하는 것이었다. 윌슨이 내세운 정강은 바로 이같은 사회적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 기업의 독점을 와해시켜 시장원리에 따른 자유경쟁을 부활시키자는 이른바 ‘신자유(New freedom)’였다.‘신자유’는 대대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재선을 꾀하던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은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는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대중을 독점기업의 강력한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개개인을 모든 형태의 압제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한 정책을 내세웠고 이를 위해 개혁주의자들을 전면에 포진시켰다.대표적인 정책으로는 관세인하,연방소득세 신설 등 세제개혁과 연방지불준비법 등 은행제도의 개혁이 있었다.루즈벨트 시대의 셔먼법보다 훨씬 강화된 독접 규제법인 ‘클레이턴 트러스트 금지법’도 제정했다. ○전쟁중 경제활황 재선 윌슨 대통령이 이같이 국내문제에 심혈을 쏟고 있는 동안 1914년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인해 발발한 1차대전은 미국에 국제정치의 중심역할을 맡게하는 계기를 가져왔다.초기에 미국은 중립을 선언했고 급증하는 군수수요는 미국의 경제활황을 가져다 주었다.이같은 상황에서 16년 그의 재선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그러나 독일군 잠수함의 집요한 미국 상선 공격은 1917년 4월 마침내 미군의 참전을 불러오게 했다.미해군과 육군의 참전은 전세를 급속히 반전시켰으며 이듬해 1월 윌슨은 1차대전 이후 국제평화의 기본틀이 된 유명한 ‘14개항 원칙’을 발표했다. 자유주의와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에 따라 전후의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가 담긴 이 선언의 주요 내용은 ▲공개외교 ▲평화시나 전쟁시 항해의 자유 ▲군비축소 ▲자유무역의 원칙 ▲식민지 요구에 대한 공정한 판결 ▲영토본전을 위한 국제연맹 창설 등으로 돼있다. 이 선언은 파리평화회의를 가져왔고 이 회의에서는 국제연맹규약이 포함된 베르사이유조약을 도출해 냈다.그러나 집단안전보장을 골자로 하는 국제연맹의 설립은 윌슨에게 뜻하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었다.공화당이 가맹국의 내전에 간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상호 불간섭의 원칙을 표방했던 먼로주의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윌슨은 국민들에의 직접 설득을 통해 이를 돌파하려 애썼지만 국제연맹 가입안은 미상원에서 부결됨으로써 막상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가입을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이같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여러차례 윌슨은 겪어야 했고 이때문에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라는 평을듣고 있다.그러나 그의 이상주의는 1920년 노벨문화상수상으로 보상 받은 셈이 됐다. ◎룰라 브룩스 윌슨박물관 큐레이터/“도덕정치·개혁 실천한 지도자”/“이상주의 추진” 용기와 노력 본받을만/첫부인 앨런과 사별… 재임중 재혼 기록 【스톤튼(미버지니아주)=나윤도 특파원】 ‘스톤튼의 이야기들’전시회를 주관했던 우드로 윌슨 박물관의 엘렌 시아 큐레이터는 “5개월간의 전시기간중 많은 관람객들로 붐벼 윌슨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데 놀랐다”며 말문을 열었다. ­.윌슨 대통령의 성품에 대해 설명해달라. ▲윌슨을 흔히 미국의 마지막 지성인 대통령이라고 한다.그는 높은 도덕정치와 과감한 개혁을 동시에 행한 지도자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이때문에 그는 라이딩스의 대통령 랭킹에서 42명중 6위라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오늘날 생각하면 그의 생각들은 모두 옳은 것이었다.한 예로 그의 세계정부론은 선견지명이 있던 것이다.그러나 당시의 수준에서는 너무 앞선 것이어서 인정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이상을 실현하려는 그의 용기와 노력은 우리가 본받을만 하다.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가. ▲아버지가 장로교회 목사 였기 때문에신앙이 좋고 매우 검소한 분위기에서 성장했다.특히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임지에 따라 남부의 여러곳을 다니며 성장했다.그러나 출생지인 스톤튼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 성장후에도 틈틈이 찾아왔던 기록이 있다. ­.가족관계는 어떠했는가. ▲첫부인인 앨런과 사이에 세 딸을 두었다.대통령 취임 2년만에 그녀가 죽고 불과 9개월만에 에디트 갈트와 재혼,재선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하는 측근들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타일러,클리브랜드와 함께 대통령 재임중 결혼의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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