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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 국방 새달 5일 방미/2주간… 외교고위사절단 20명 포함

    ◎양안사태이후 양국관계 개선 추진 【워싱턴 로이터 연합】 지호전 중국국방부장이 다음달 5일 2주간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을 비롯한 미 고위관리들과 회담을 갖는다고 미 국방부가 25일 발표했다.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지장관을 비롯,중국국방부와 외교부의 20인 고위사절단이 위싱턴을 방문하여 페리 장관 및 고위 미관리들과 회담을 갖고 공동관심사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고위사절단의 미국방문은 미·중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징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장관은 당초 지난 3월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중국이 당시 대만에서 실시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대만해협에서 군사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 미국이 그의 방미 일정을 취소시키는 바람에 무산됐었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 정부와 중국지도자들은 최근 양국 관계개선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으며 이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이 최근 중국을 방문한데 이어 클린턴 대통령과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이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과정에서 이루어졌다.페리 장관은 지난 94년10월 중국을 방문한 바 있다. 지장관의 방미 목적은 국제 및 아·태지역 안보상의 상호 관심사들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쌍무 군사관계의 장래 전망 등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국방부 성명은 밝혔다. 이 성명은 중국 인권문제에 대한 미국의 우려와 통상문제및 중국이 파키스탄과 이란에 핵기술을 제공했을지도 모른다는 보도에도 불구,지장관이 수개 미군기지를 방문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방부 성명은 지장관 일행이 12월16∼18일 하와이의 미 태평양사령부에서의 회담을 끝으로 방미 일정을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 “양안 정착촌 늘려 영구거주”/네타냐후 밝혀

    ◎가자지구 방어군도 증강 【예루살렘 DPA 연합】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정착을 확대할 계획이며 이스라엘인들은 이곳에 영구히 거주할 것이라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6일 말했다. 이스라엘인 정착촌 방문에 나선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 당국이 이스라엘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이스라엘정부는 요르단강 서안 정착을 계속 늘려나갈 것이며 이스라엘인들이 분명히 이곳에 영구이 거주토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의 정착촌 봉쇄를 막기위해 가자지구의 네차림 정착촌에 26일 병력을 보강했다고 한 이스라엘군 장성이 밝혔다. 남부 야전사령부의 슐로모 가나이 사령관은 『병력이 이미 네차림으로 이동했으며 추가병력이 파견될 예정이고 필요하다면 탱크도 투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 대만 중화항공사 북경사무소 개설/직항노선 대비

    【북경 연합】 대만 최대의 항공사인 중화항공(CAL)이 중국과의 항공기 직항에 대비,제3국에 설립한 자회사의 사무소를 북경에 개설했음이 중국민용항공총국(CAAC)관계자에 의해 확인됐다고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의 일요판인 비즈니스 위클리가 17일 보도했다. 비즈니스 위클리는 CAL 자회사의 북경사무소 개설에 이어 대만의 에바항공과 포모사항공 역시 양안간 간접 민항교류 증가와 가까운 장래의 양측간 항공편 직접연결 가능성 등을 감안해 본토 사무소설치를 계획중이라고 전했다.
  • 기조연설 요지

    지구환경 악화와 경지면적 확대의 한계는 지속가능한 농업생산을 위협하고 있으며,세계곡물시장의 경직성도 식량안보(식양안보)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불안요인들에 대해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가지 대응방안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한국은 50여년전 대표적인 식량부족 저소득국가로 출발했지만 농촌구조개선과 기술혁신을 통해 70년대 후반부터 주곡자급을 달성했으며,해양 및 산림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꾸준히 제도적 개선을 도모하여 왔습니다.또한 농촌소득원을 다양화하고 지속적인 복지정책을 추진함으로서 도시와 농촌간의 소득균형을 거의 실현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성과들이 한국적 상황에 적합한 정책의 적극적인 개발과 한국민의 일치된 노력에 기인했다는 점에서 개별국가들의 전략선택과 자구노력은 국제사회에서도 존중되고 지원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예방적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이는 특히 식량수입국의 경우 적절한 재고를 확보하고 세계식량시장의 다양한 불안요인에 효과적으로 대처함으로서 안정적 식량공급을 달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식량무역의 확대만으로는 식량안보문제가 충분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국가간 상호의존이 날로 심화되는 가운데 선진국의 개도국에 대한 원조와 협력없이는 적절한 분배와 진정한 식량안보 달성은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식량수출국들은 식량수입국들이 식량에 대한 유용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자의적인 수출제한조치」를 가급적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도 식량안보 달성을 위한 인류의 공동노력에 기꺼이 동참해가고자 합니다.한국은 현재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한 인력지원 및 개발경험 전수 등 개도국의 능력형성을 위한 각종 지원을 행하고 있으며,금년에는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신탁기금」을 새로이 설치할 예정입니다. 또한 한국은 김영삼 대통령이 1995년 3월 사회개발정상회의에서 밝힌 바와 같이 개도국에 대한 공적 개발지원 규모를 우리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계속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회의가 인류를 기아와빈곤으로 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역사적인 이정표로 기록되기를 충심으로 소망하며,나는 이번의 결의가 다가오는 21세기를 풍요롭게 하는 초석이 될 것 임을 확신합니다.
  • 13억인의 미래/문흥호(화제의 책)

    ◎하나의 중국으로 가는 지름길은 중국과 대만 양안관계에 대한 본격 연구서.「하나의 중국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서 출발,중국과 대만의 정치·경제적 현실과 관계개선 가능성을 폭넓게 살핀다.두 나라의 통일정책과 관련,지은이는 『중국은 대만이 현재의 자본주의체제를 지속시키는 하나의 자치구 형태로 남아있길 원하는 반면 대만은 중국과 중앙정부 대 지방정부 차원이 아니라 대등한 정치실체로서의 지위를 갖는 통일을 바라고 있다』고 지적한다. 80년대 후반부터 중국과 대만은 통일정책 관련조직을 대폭 확대·강화했다.이 책은 대표적인 통일정책기구로 중국의 대만공작영도소조,대만의 국가통일위원회 등을 예로 들어 양국의 체제비교를 시도한다.『구동이존,곧 서로의 체제와 이념을 존중하는 정신을 살려나가는 것이 하나의 중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게 지은이의 견해다.당대 9천500원.
  • 중­대만 3통 원칙 합의/연말께 발표

    ◎홍콩서 양안 고위인사 비밀접촉 【홍콩 AFP 연합】 중국과 대만의 고위관리들이 최근 양안간 직항로개설과 통상 및 통신교류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홍콩의 쾌보가 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대만의 한 소식통을 인용,이번 합의가 양안 고위관리들이 최근 홍콩에서 비밀리에 수일간 회동한 후 이뤄진 것이라고 전했다.
  • 중,3통 적극 추진/양안간 직항법 곧 발표

    【홍콩 연합】 중국은 대만과의 3통(통항·통상·통우)을 적극 추진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양안간 화물운송의 연내 실현을 목표로 이달내에 양안간 직항관리법 시행규칙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홍콩의 중국계 신문 문회보가 2일 보도했다. 중국은 또 현재 홍콩 등을 경유해 이뤄지고 양안간 간접무역을 직접무역으로 전환하기 위해 양안무역관리 법안 초안을 작성,각계의 의견을 수렴중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중국 교통부의 조충희 대만판공실 주임(국장급)은 대만기자들의 회견에서 중국은 연내에 양안간 직항을 목표로 복주,하문을 우선 개방하고 대만 해운회사들의 운항 신청을 받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 「국감 과로」공무원 순직 잇따라/해양부 박동규씨·통산부 강춘수씨

    국정감사준비로 격무에 시달리던 중앙 경제부처 공무원 2명이 잇따라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6일 일요일인데도 국감준비를 위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해양수산부 청사에 출근,근무중 뇌출혈로 쓰러진 해양수산부 박동규 해양안전과장(57·서기관)이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19일 상오3시쯤 순직했다. 한편 지난 15일에는 통상산업부 수화력발전과 강춘수 사무관(51)이 업무과로로 순직했다.강사무관은 당일 상오11시45분쯤 과천 종합청사내 통산부 사무실 복도에서 갑자기 쓰러져 청사 의무실 의료요원과 119구급차로 서울시내 삼성의료원으로 이송됐으나 하오1시40분쯤 숨졌다.〈이순녀 기자〉
  • 물의 도시 길림(송화강 5천리:5)

    ◎풍만댐에 뱃길 끊기고 거대한 호수가…/일제 11만명 동원 동북최대 발전소 건립/호반 35만㏊ 자연보호구역 “동·식물 낙원”/“흥학구국”의 본당 육문중에 김일성 황금조상 “눈살” 길림성 길림시는 물의 도시다.장장 5백95㎞를 달려온 송화강이 길림에 이르면 머뭇거렸다.그래서 넓어진 강폭은 도시의 그림자를 담아냈다.고구려의 북강중진이었던 길림을 아직도 강성이라 부르는 까닭도 여기 있다.봄날 강가의 버들이 피어 강심에 투영되면,백거이의 시 한구절이 떠오를듯 아름다운 강변도시였다. 그 길림시에 가면 송화강은 사람들을 늘 강가로 유인했다.그리고 강가 나루터에는 유람선이 나그네들을 기다렸다.유람선이 강 양안의 고층건물을 따돌리고 하류쪽으로 한 시간을 남짓 물살을 갈랐다.민가가 드문드문한 장둔을 지나 아집(아십)에 닿을 무렵 깎아지른 벼랑이 한쪽 시야를 가려버렸다.마애각(마애각)과 아집정이 올라 앉은 벼랑인데,정각안에는 「유청솔병도차」라는 글을 새긴 화강암비석이 서 있다. 이 비문에 나오는 유청은 명나라 연호로 영락15년(1420년)에 송화강의 수상교통을 열기위해 파견한 관리다.명나라 조정은 표기장군요동도사도지휘사 유청을 송화강유역 아집에 보냈는데,그의 임무는 배를 건조하는 일이었다.그는 이듬해부터 선덕7년(1432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송화강유역에 머물면서 배를 만들었다.그 기록이 아집바위벼랑 위에 있는 비석인 것이다. 그로부터 길림은 동북지방의 중요 조선기지가 되었다.당시에 만든 배는 전함과 곡물을 실어나르는 운양선,병정을 싣는 객운선 따위였다.아집에서 송화강 하류를 따라 흑룡강 노아간도에 이르는 물길에는 수십척의 배가 떠서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덩치가 큰 배들은 송화강하류를 떠다녔고,그보다 작은 매생이나 나룻배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그런데 지금은 길림시 삼도나루터에서 24㎞를 올라가면 뱃길이 끊기고 말았다. 배가 상류를 더 거슬러 올가가지 못하는 까닭은 거대한 댐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그 댐은 50년대까지만 해도 동아시아에서 제일을 자랑했던 풍만수력발전소다.1936∼1942년10월까지 7년에 걸쳐 쌓은 이 댐은 길이 1천18m,높이 91m로 동북지방 주전력공급원이 되고 있다.일제가 11만명의 노동자를 동원했는데,사고로 죽은 사람만도 5천1백11명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이는 공식발표한 통계이고,일제는 말을 안 듣거나 병든 노동자들을 산채로 수백명씩 불태워 죽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명관리 유청 수상교통 열어 일제는 비인도적 살생이 천인공로할 비인도적 처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1941년5월 풍만댐에 공인위령탑을 세웠다.일제가 패망한 뒤에는 중국기술자들이 댐을 관리하면서 기술인재들을 키워냈다.풍만에서 배출한 6백명의 기술자들은 중국 전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데 크게 공헌했다.오늘날 중국의 국무총리 이붕도 일찍 풍만수력발전소장을 역임한 바 있다. 풍만수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송화강상류의 지도가 바뀌었다.맑은 구슬이라 하여 동북의 명주로 불리는 송화호가 생겨난 것이다.길이 2백㎞,가장 넓은 구간의 폭은 10㎞,넓이 5백㎦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다.최대 저수량 1백8억㎥나 되는 송화호는 수심도 깊어 75m까지 내려가는 지점이 있다.그러니물 절반에 고기 절반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했다. 송화호 호반 35만4천98㏊는 자연보호구로 지정되었다.호수 양쪽의 산은 물론 송화강상류와 휘발하가 만나는 합수목까지가 자연보호구로 들어가 있다.보호구역 전체의 71%를 차지한 삼림지대는 희귀식물의 군락지이거니와 동물들이 낙원을 이루었다.식물은 99과 5백93종,동물은 1백여종으로 조사되었다.산삼과 같은 진귀한 약초가 자생하는가 하면,곰 사슴 사향노루가 서식하고 있다. 그 경치로 말하면 송화호반이야말로 산자수명하여 동북 제1의 절경을 자랑했다.그래서 자연보호구내 7백㎦라는 광활한 지역이 국가중점풍경구로 지정받았다.이 풍경구 안에는 송화호호텔을 비롯한 각종 위락시설이 들어서 전국 곳곳의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송화호 주변은 점차 공해로 찌들어가는 도시에 비해 아직은 쾌적하기 짝이 없는 선경인지도 모른다. 길림시에서 풍만까지는 뱃길로 24㎞다.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람선은 숨이 차서 2시간40분이 걸렸다.그러나 물길을 따라 내려올 때는 순풍에 돛을 단 듯이 1시간만에삼도나루에 닿았다.길림시지구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전보청사며 천주교회당,은하빌딩 등 많은 고층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강바람에 후련해졌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그래도 우뚝한 북산이 보여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길림시 북산 기슭에는 중국 바깥에까지 널리 알려진 육문중학교가 있다.창문들이 열려 마치 해죽 웃는 것처럼 보이는 4층 교사건물이 시야로 들어왔다.이 학교는 1917년 천진 남개대학출신의 지식인들이 흥학구국을 위해 꾸린 명문 사립학교로 출범했다.제1대 교장 한내경은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학비를 면제해주었다.더구나 항일구국에 뜻을 둔 조선의 열혈청년들을 받아들여 보호하고 키웠다. 육문중학교에는 기라성 같은 교사들이 초빙되었다.중국의 대문호 노신의 후배인 상월 선생이 그런 분이다.1902년 하남성 나산현 태생인 상월선생은 노신의 일기중에 이름이 29번이나 나올 정도다.당대의 중국 엘리트들이 중원을 벗어나 동북 변방까지 와서 교편을 잡은 것을 보면 육문중학교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호텔 등 위락시설 빼곡히 육문중학교에 들렀을 때 북한 김일성주석의 조상 두 구를 만났다.하나는 지금의 4층본관 뒤쪽 구관 단층건물 앞에 있고 또 하나는 구관 건물안에 있었다.그런데 구관 건물안에 있는 그의 청년시절 조상은 진짜 황금을 칠했다는 것이다.금빛의 화학적 도금이 아니고 순금을 녹여 황금물을 발랐다는 사실이 왠지 꺼림칙했다.그가 1927∼30년까지 이 학교에 적을 두었다는 연고로 조상을 세울 수는 있겠으나,화려한 치장은 육문중학 건학정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황금조상은 중국에 사는 조선족 이황이라는 사람이 돈을 대서 만들었다고 한다.그 높이는 몸체가 80㎝,좌대가 15㎝로 되어 있다.몸체 높이는 김주석의 나이 80살을,좌대 높이는 생일인(4월)15일을 뜻했다는 것이 학교측 안내자의 설명이다.다시 말하면 1992년 4월15일 그의 80돌 생일을 기념하여 만든 조상인 것이다.그러나 역사에서 불멸은 없다.그도 가버렸고,또 퇴색하고 있지 않은가….육문중학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다시 바라본 송화강 물길은 여전히 유유했다.
  • 이정환 해양부 해양정책실장(폴리시 메이커)

    ◎“권역별 관리체계 구축… 오염방지 총력” ◎해양환경과 국단위 승격… 심의관제 신설 검토 『해양정책실은 말그대로 바다에 관한 모든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부서입니다.기존의 해운항만과 수산업무는 물론이고 해양개발,해양환경,해양조사,해양안전 등 각 부처에서 이관돼온 해양관련업무를 총괄해 장기발전계획을 세우는 것이 주업무입니다』 지난 8월 부처출범과 함께 신설된 해양정책실은 해양수산부의 「꽃」으로 불린다.21세기 해양대국을 지향하는 현 시점에서 포괄적이고 일관성있는 해양정책을 수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초대 해양정책실장을 맡은 이정환 실장(49·별정1급)은 청단위 시절에 각 부서의 주업무였던 정책집행업무를 축소·이양하고,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정책기획기능을 강화하는데 역점을 둘 방침이라고 했다. 해양정책실은 정책총괄과 해양개발과 해양환경과 해양안전과 해양조사과 등 5개과로 돼 있다.이중 해양안전과만 구해운항만청시절 해상안전관리관업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고 나머지 과는 환경부 통상산업부 건설교통부 과학기술처 등에서 넘어왔다. 『첫 출발이어서 할일이 많습니다.각 과의 업무를 균형있게 추진해야 하고 관련부처와도 업무협조를 해나가야 하는 데 아직 공식적인 채널이 마련되지 않아 의사소통에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느 분야나 정책수립이 시급하지만 특히 해양환경에 관한 정책에 우선순위를 둘 생각이다.권역별 오염원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수용능력에 따른 오염방지 대책을 세울 방침이다.해양오염 방지·방제체제를 강화하고 해양생태계 보호지역도 지정할 계획이다.이를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해양환경과를 국단위로 승격시키고 심의관제도를 두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해양개발분야에서도 지난 1월 「해양개발기본계획」이 만들어질 때와는 정책환경이 많이 달라졌기때문에 이에 대한 수정·보완작업이 필요한 상태.당장 지난 10일부터 배타적경제수역(EEZ)에 관한 법률이 국내법으로 발효됨으로써 이와 관련한 주변국과의 협의가 시급한 과제가 됐다. 『해양수산부라고 해서 해운업계 종사자와 어민만을 위한 정책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전체 국민을 위한 해양수산정책이 되도록 장기적인 안목에서 업무를 추진할 생각입니다』 그는 해양부로 온뒤 일이 너무 많아 취미인 바둑을 제대로 못두고 있다.서울대에서 지리학을 전공했고 대학강사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개발실장을 거쳐 94년2월부터 2년6개월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지냈다.
  • 중 「3통」 협상단 12월 대만 방문

    ◎대북서 중­대만­홍콩 3자회의 개최 【북경=연합】 중국 민간부문의 상공회의소 역할을 하고 있는 중화전국공상업련합회의 경숙평 주석이 대만해협 양안간 3통(통상·통항·통우)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민간기업 대표단을 이끌고 오는 12월 대만을 방문한다.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의 일요판인 ‘비즈니스 위클리’는 15일 경주석이 대북에서 열리는 중국­홍콩­대만의 기업단체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대만을 방문할 예정이라면서 그의 대만 방문은 양안간의 골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보도했다. 지난 49년 공산당정권 수립 이전 상해의 유명한 자본가였던 경주석은 ‘비즈니스 위클리’와의 인터뷰를 통해,“이번 회의의 의제는 본토와 대만간의 특정 경제 분야협력 문제지만 3통 수립에 관해서도 광범위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 대만의 비밀외교 행보/양안관계 악영향 줄것/중 신화통신 경고

    【북경 AFP 연합】 중국은 9일 대만이 장효엄 외교부장을 앞세운 외국 비밀 방문을 통해 국제적 지지를 확산시키려는데 대해 강력히 경고했다. 중국 관영통신 신화는 대만이 이른바 「실용 외교」 전술을 계속 추구한다면 양안관계가 크게 저해되는 것은 물론 대만의 생존과 발전에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은밀히 방문한 바있는 장부장은 앞으로도 이같은 「비공식 외교」를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밝힌 바있다.
  • “선박도입관세 연말께 폐지”/신상우 해양수산장관 취임한달 간담

    ◎원양어선 출어자금·영세어민 지원 대폭 확대 해운·수산업계의 발목을 잡아온 선박도입관세가 빠르면 올 연말부터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또 원양업계와 영세어민에 대한 정부지원이 크게 강화될 전망이다. 신상우 해양수산부장관은 취임 한달째를 맞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신조선이나 중고선을 외국에서 사올때 당국에 내야하는 선박도입관세(선가의 2.5%)를 폐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관세법 개정안이 이달중 국무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며 정기국회에서 개정 법률이 확정되면 연말부터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선박도입관세가 폐지되면 연간 4백50억원의 조세경감효과를 보게되며 그동안 관세부담 때문에 내국인이 소유하고 있는데도 외국에 등록한 편의치적선의 수가 줄어들어 최근의 페스카마호사건과 같은 선상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원양어선 전체 소요액의 31%에 불과한 출어자금지원규모를 20 00년까지 50%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어선을 건조하거나 노후어선을 대체할때 융자하는 자금을 선진국수준인3년거치 10년상환,연이율 5%의 장기저리로 지원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해양부는 내년 출어자금을 올해보다 7백억원 늘어난 3천3백50억원을 확보키로 했다. 또 적조피해 증가와 수입개방 확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어민의 세금부담을 줄이기위해 부가가치세의 영세율이 적용되는 어업용기자재의 범위를 현재 15종에서 58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이를 시행하면 어민부담이 한해에 1백28억원 줄어들게 된다.이와함께 올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어업인후계자에 대한 어선과 어업권 증여세 면제기한을 20 04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신장관은 『이같은 내용의 어민 조세감면규제법개정을 재경원과 협의중』이라고 말했다. ◎신 장관 일문일답/해양사고 대비 「종합상황실」 24시간 운영/가덕도 신항만 민간업자 인센티브 확대 9일로 취임 한달을 맞은 신상우 해양수산부장관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각 부처에서 이관돼온 이질적인 부서를 물리적·화학적으로 융합,일체감을 형성하기위해 간부들을 비롯한 전 직원이 숨가쁘게 보낸 1개월이었다』고 감회를 밝혔다.다음은 신장관과의 일문일답. ­과기처·건설교통부·환경부 등과의 혼선은 없는가. ▲건교부의 공유수면 매립업무와 과기처의 남극기지 개발업무 이관에 관한 협의가 잘 이뤄졌다.다만 해양오염을 일으키는 물질의 80%가 육상에서 나오는 것과 관련,앞으로 환경부와 긴밀한 협조가 있어야 할 것이다. ­페스카마 15호 선상살인사건과 같은 선상사건이나 대형 해양오염사고가 났을 경우에 대비한 해양부의 대응책은. ▲페스카마호 사건당시 국민들에게 알리지는 못했지만 해양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앞으로도 사건·사고의 초기단계에서부터 효과적으로 대응해 신속한 상황파악과 조치가 이뤄지도록 24시간 체제를 갖춘 「해양안전종합상황실」을 설치,운영하겠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부산 가덕도 신항만 개발 백지화주장에 대한 견해는. ▲기존 부산항·광양항 개발이 완공되더라도 시설확보율은 74%수준에 불과하다.정부로서는 민간사업자가 좀더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다양한 인센티브를 줘 가능한 공기를단축할 방침이다.
  • 중­대만 직교역시설 착공/최초로 하문에 컨테이너 부두 3개 포함

    【북경 연합】 대만해협 양안간의 직항과 직무역 실현을 위해 최근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국은 8일 복건성 하문경제특구에 대 대만 무역을 위해 특수하게 설계된 컨테이너부두 건설공사에 착수했다. 하문시 유오점항 건설 계획의 제2기 공정으로 착공된 이 부두는 대대만 직접무역을 주기능으로 한 최초의 시설로써 이를 위해 중국·네덜란드·영국 합자기업인 태시집상마두(컨테이너 부두)유한공사가 2천8백9만달러를 투자한다고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하문시가 야심적으로 추진중인 「대하문개발계획」의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오점항 건설계획 가운데는 1만t급 컨테이너선의 접안이 가능한 3개의 부두 건설이 포함돼 있다.
  • 중 경제사절단 첫 대만 방문/신화통신 보도

    ◎민간 경제교류협력방안 논의 【북경 AP AFP 연합】 중국의 고위급 민간경제대표단이 양안간 경제협력증진을 논의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대만방문에 나선다고 신화통신이 8일 보도했다. 장서무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 부주석이 이끄는 이 사기업및 금융기관 경영자로 구성된 민간경제사절은 9일 대만에 도착,열흘간 머물게 된다고 통신은 말했다. 이 민간대표단은 체류기간중 대만기업의 경영기법과 발전상황을 조사하고 대만 경제인과 민간부문 경제교류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대만은 지난달 고위급 경제대표단을 중국에 보내 경제협력증진을 모색한 바 있다.
  • 한­칠레 「특별 동반자관계」 합의/양국 정상회담

    ◎경협­고위인사 교류 확대/투자보장협정 체결/남극연구 등 공동협력사업 적극 추진 【산티아고=이목희 특파원】 김영삼 대통령과 에두아르도 프레이 칠레대통령은 6일 밤(이하 한국시간) 대통령궁에서 단독 및 확대정상회담을 잇따라 갖고 양국간 우호협력관계를 더욱 확대·심화시키기 위해 「한·칠레 특별동반자 관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키로 하고 이를 위해 양국 정상을 비롯한 정부 고위 인사간 교류를 보다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지난 94년 프레이대통령 방한 이후 양국간 경제협력관계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데 만족을 표시하고 앞으로 두 나라가 태평양 양안의 협력 동반자로서 아시아와 중남미 대륙을 잇는 다리구실을 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한국과 칠레는 정상회담이 끝난 뒤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했으며 김대통령은 양국간에 추진중인 이중과세방지협정도 조속히 체결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칠레간 경제협력과 통상교류확대를 위해서는 민간교류의 활성화가 중요하다는데의견을 같이하고 「한·칠레 민간경협위」를 비롯한 민간경제계의 교류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김대통령은 최근의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우리정부의 노력을 설명했으며 두나라 정상은 양국이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서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해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프레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한반도 4자회담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의사도 표명했다. 김대통령은 또 한·중남미 관계확대를 추구하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강조하고 한국의 미주개발은행(IDB)가입에 대한 칠레정부의 지지를 요청했고 프레이 대통령은 적극적인 협력의사를 밝혔다. 양국 정상은 94년 프레이 대통령 방한시 체결된 과학기술협력협정에 따라 양국간 과학자 교류,원자력및 남극 연구 등의 부문에서의 공동협력사업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7일 새벽 숙소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칠레 민간경협위」연설에서 ▲상호보완성에 바탕을 둔 호혜적인 경제협력관계 발전 ▲자유무역 창달및 개방과 투자자유화 실현을 위한 공동노력 ▲아시아와 남미지역에서의 민주화와 선진화 확산을 위한 공동목표 추구 등을 양국간의 특별동반자관계 구축을 위한 3대 방향으로 제시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지난 5년간 양국간 교역규모가 6억달러에서 16억달러로 늘어남에 따라 한국은 칠레의 다섯번째 수출시장이 됐으며 칠레는 남미에서 한국의 두번째 교역상대국이 됐다』면서 『이런 추세라면 금세기가 지나기 전에 교역규모가 3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상오 과테말라 방문을 마치고 두번째 순방국인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도착해 3박4일간의 칠레 공식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9일까지 칠레에 머물면서 상원의장과 대법원장을 면담하고 프레이대통령 내외가 주최하는 국빈만찬에 참석하는 한편 동포들을 위한 다과회도 베풀 예정이다.
  • “한·칠레 태평양 양안 잇는 다리 되자”(중남미 순방 여로)

    ◎과테말라∼칠레/경협위 연설 칠레 재계대표 대거 참석/칠레육사 방문… 생도 15명과 새벽 조깅/“한국 대통령 첫 방문” 교포들 열띤 환영 김영삼 대통령은 6일 상오(이하 한국시간) 과테말라 방문에 이어 두번째 순방국인 칠레에 도착,공식환영행사등에 참석한데 이어 한·칠레 정상회담을 갖는 등 3박4일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공항행사◁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산티아고의 베니테즈 국제공항에 도착,조명행 주 칠레대사 및 페레즈 칠레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을 내려와 대기중이던 칠레의 인술자 외무장관과 산후에자 공군지역사령관과 반갑게 인사를 교환.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남미국가를 방문한 김대통령은 감회어린 표정으로 군의장대의 환영의식을 받으며 사열대를 통과. 이어 김대통령 내외는 도열해 있던 칠레측 출영인사 및 우리 교민대표들과 인사를 나눈 뒤 환영나온 60여명의 교민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며 격려.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화동 이정규군(8)과 이송희양(8)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고 가벼운 포옹으로 친근감을 표시. 환영식이 끝난 후 김대통령은 취재나온 내외신기자등 보도진에게 손을 흔들어 가볍게 인사한 후 승용차편으로 숙소인 하얏트호텔로 이동. 김대통령은 산티아고로 오는 도중 적도를 통과할 때쯤 특별기안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관계수석으로부터 남미순방과 관련한 제반 보고를 받고 현안을 점검.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이날 새벽 2박3일간의 과테말라 방문을 끝내고 아우로라 공항을 출발. ▷공식 환영식◁ ○…김대통령은 이어 숙소인 하얏트호텔 인근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새벽 조깅을 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 김대통령은 칠레육사생도 남녀 15명과 함께 약 30분간 연병장을 돌며 체력을 다진 뒤 이들과 잠시 환담하고 기념 촬영. 이어 김대통령은 숙소로 돌아와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공식 수행원들과 함께 산티아고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건국영웅 오이긴스장군동상에 헌화하고 묵념. 김대통령은 헌화에 앞서 페레스 요마 국방장관과 외무부 및 군의전 고위관계자의 안내로 의장대를 사열.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김대통령은 건국영웅 동상에 참배한데 이어 광장 지하의 오이긴스장군기념관도 시찰. ○…김대통령은 에두아르도 프레이 대통령과 한·칠레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이날 하오 대통령궁앞 헌법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 김대통령은 페레스 칠레의전장의 안내를 받아 프레이 대통령 내외와 인사를 교환한 뒤 기념촬영. 김대통령은 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산티아고지역 사령관의 안내로 프레이 대통령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 김대통령은 공식 환영식이 끝난 후 대통령궁에 입장해 도열병을 통과한 뒤 방명록에 서명. ▷한·칠레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이어 이날밤 프레이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경제협력증진 및 상호 관심사에 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 환영식이 끝난 뒤 김대통령은 프레이대통령의 안내로 대통령궁 접견실로 이동,양국 외무장관과 통역만을 배석시킨 채 단독회담. 회담이 끝난 후 두 정상은 대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공로명 외무장관과 11명의 공식 수행원 및 칠레 관계자들이 배석한가운데 확대정상회담을 시작. 프레이대통령은 먼저 『각하의 방문이 양국간 경제협력및 우호증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인사했으며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칠레를 최초로 방문한 한국대통령으로서 나의 방문이 양국관계는 물론 한국과 남미간 관계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답례. 김대통령이 지난 94년 프레이 대통령의 방한이후 상호 보완적 경제협력이 확대되고 있는데 대해 만족을 표시하자 프레이 대통령은 『앞으로 양국이 태평양 양안협력의 동반자로서 아시아와 중남미 대륙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자』고 화답. 이어 두 정상은 대통령궁 토에스카 홀에서 공외무장관과 인술사 칠레 외무장관이 서명한 투자보장협정문을 교환했으며 곧 이어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회담결과를 발표. ▷한·칠레 민간경협위◁ ○…김대통령은 한·칠레 정상회담에 이어 7일 새벽 하얏트호텔 리전시볼룸에서 열린 제11차 한·칠레 민간경협위에 참석,「태평양시대의 새로운 특별동반자 관계」란 주제로 연설. 김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칠레 경제는 「중남미의 떠오르는 별」로 부상하고 있으며 남미지역에서 유일한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원국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과 협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면서 『우리 기업의 미주 대륙진출에 있어 훌륭한 거점 국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 김대통령은 특히 『칠레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자원개발 분야에서도 두 나라 기업간의 긴밀한 협조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 김대통령은 다가오는 태평양시대에 아시아와 남미를 연결하는 특별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호혜적 경협관계 ▲개방과 투자자유화 ▲민주화와 선진화 공동노력 등 3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두 나라가 상호 노력해 나가자고 강조해 열띤 박수를 받기도. 이날 경협위에는 리자나 칠레산업진흥협회(SOFOFA)회장과 마리스타니 한·칠레경협위 칠레측위원장,구스만 칠레상공인 연합회장,아보이티즈 시그도 코파그룹회장 등 칠레 경제계를 대표하는 재계인사 1백여명이 참석했으며 한국측에서는 김상하 대한상의회장 등 경제4단체장과 정몽구 현대그룹회장,현지진출 기업체관계자 등 80여명이 참석. 한편 제11차 한·칠레 민간경협위에서는 정보통신과 산림개발·광업·사회간접자본 분야에서의 투자와 교역증대방안이 집중 논의됐으며,특히 한국의 개방정책 설명에 이어 양국간 실질적인 경협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
  • 미주 진출 기반 넓힌 세일즈 외교/한·칠레 정상회담의 의미

    ◎투자보장협정 체결 교역증진 전기될 듯/원자력·남극연구 등 과기협력도 활성화 김영삼 대통령은 6일 한국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남미대륙을 밟으면서 첫 방문지로 칠레를 택했다.칠레가 남미,나아가 미주대륙 전체로 진출하는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고 본 때문이다. 칠레가 중요한 이유는 여러가지로 설명된다.경제발전정도가 높고 최근 역사가 우리와 유사하며,양국 최고지도자간의 친밀도가 남다르다. 칠레는 남미의 선진국이다.지난해 국민소득이 5천달러였지만 생활수준은 그 이상이다.경제제도 또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의 가입도 추진중이다.군사독재의 아픈 경험을 딛고 민주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김대통령과 프레이 칠레대통령은 그동안 94년11월 프레이 대통령의 방한,그리고 95년 유엔 50주년 정상회의와 오사카 APEC회의에서 만났다.2년도 채 안돼 네번째 정상회담을 가진 것이다.한국과 칠레는 이미 「특별동반자관계」를 맺고 있다. 양국은 지난 5년간 교역규모를 6억달러에서 16억달러로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고 있다.칠레측에서 볼 때 한국은 다섯번째 수출시장이다. 김대통령과 프레이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이런 배경을 깔고 우호적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태평양 양안의 협력동반자로서 아시아와 중남미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수행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김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한·칠레 양국은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했다.투자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앞으로 양국간 투자세미나와 산업박람회의 개최도 추진하고 있다. 순방을 수행한 40여명의 수행경제인도 민간차원에서 김대통령의 세일즈외교를 활발히 뒷받침하고 있다.현대는 칠레광업연합회와 3억달러상당의 동제련소건설 투자합의서에 서명했다.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과 농림수산분야에서의 협력도 속속 결실을 할 전망이다. 한국과 칠레는 모두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다.칠레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도 가입했다.국제정치면에서도 양국 협조관계는 돈독하다. 김대통령과 프레이대통령은 과학기술·원자력과 월드컵축구 등 체육분야에서의 협력도 다짐했다.칠레는 한국이 미래자원의 보고인 남극에 진출하는 전진기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한국교류재단이 칠레대학 국제문제연구소의 한국학연구를 지원하고,양국간 문화공동위설치가 논의되고 있는 등 문화교류도 활성화되고 있다.
  • 양안 해운회담 민간차원 추진

    【홍콩 연합】 중국과 대만은 양안간의 통항과 홍콩 주권반환 후의 대만·홍콩간 해운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조만간 민간차원의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4일 보도했다. 대만 해협해운협회의 임성삼 회장은 성명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구체적인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와관련,대만 신문들은 대만의 관련협회와 중국측 파트너가 오는 10월 홍콩에서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양안 당국자들은 이같은 보도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 조선족 마을 지키기(송화강 5천리:3)

    ◎격변기마다 비적·만군·한족들에 수난/재산·식량 약탈표적… 자위대 결성해 저지/최근 이농 늘자 마을규약 만들어 타민족 유입막아/문혁때도 농사에만 전념… 정치적 희생 없어 송화강유역은 한때 비적이 날뛴 무법천지였다.당시 조선에서 소문난 마적이 그들이다.비적들은 떼로 몰려다녔을 뿐 아니라 한 지역을 통치할 만큼 비대해진 적도 있다.이들의 근거지는 사실상 청조의 치외법권지대이기도 했다. 청조는 1682년 오늘의 요령성 개원시로부터 길림성 이수현,이통현,장춘시,구대현을 경유하여 서란현 송화강변에 이르는 구간에다 버들울타리를 쳤다.장장 3백50㎞ 구간의 버들울타리 밖은 변외라 하여 봉금령에 따른 금구로 설정되었다.그러니까 변외의 금구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통행금지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람새지 않는 울타리 없다는 속담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울타리를 넘어들어갔다.특히 가경 연간(1796∼1820)에 더욱 심했다.그 무렵 산동성에서 부모를 따라 길림성에 와서 살던 한종헌은 울타리를 넘어 오늘의 화전현 협피구(겹피구)에 당도했다.비적들이 횡행하던 때라 그들을 설득시켜 금광판에 들어갔다.그러다 도금수령 마문량의 눈에 들어 그가 죽고나서 후계자가 되었다. 한종헌은 협피구에서 나는 황금을 독차지하여 송화강 양안에 세력을 확장했다.아들 수문을 비롯 손자,증손에 이르는 4대에 걸쳐 송화강유역을 물론 목단강 서안,휘발하유역의 광활한 지역을 독립왕국으로 만들었다.이른바 회방이라는 관리기구를 중심으로 각종 조세는 물론 채금업,임업,삼업까지 관할했다.심지어는 개인화폐 금사도 발행했다.그래서 송화강유역 사람들이 한씨는 알아도 청조는 몰랐을 정도로 엄청난 권세를 누렸다. ○송화강 양안 비적떼 세력권 한씨 일가와 같은 그들이 바로 청조가 쇠퇴하는 과정에 일어난 도적의 무리였다.그렇듯 비적들이 대물림하는 가운데 아직도 득실거리고 있을 때 송화강유역으로 이주해온 조선족들은 바늘방석에 앉기나 한 것처럼 늘 좌불안석의 삶을 꾸렸다.연변대 반용해(69) 교수는 어려서 부모들을 따라 길림성에 온 이주민 2세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비적은 떼강도들이었다. 『비적들은 뻑하면 조선족마을을 약탈했디요.조선족들에게는 후원세력이 없다는 거이 약점이었댔습네다.건드려도 뒷 근심이 없었으니끼 걸핏하면 쳐들어왔다 이겁네다.또 논농사를 주로 하니끼리 쌀을 빼앗을 수 있고,아무리 가난해도 이불 한 채는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적들이 잘 알고 있었디요.어느날인가는 비적들이 온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동네사람들이 다 우리집에 모이지 않았겠습네까. 체녀들과 아주마니들은 숯검정을 얼굴에 발라댑데다.얼굴이 반반하면 겁탈을 당하니끼리 그랬디요.또 어떤 아주마니들은 검붉은 피가 묻은 월경대를 소랭이에 담아서리 문밖에 내놓기도 하고….비적들이 피를 보면 재수없다고 돌아간다는 말을 믿은 거디요.그런데 웬걸,우리집으로 들어닥치더니 돈이 될만한 물건은 다 챙겼습네다.심지어는 가축까지 끌고 갑데다.우리집은 얼마 있다가 다시 비적 꼴 안 본다고 장춘으로 이사를 했댔디요』 그 비적의 행패는 만주사변 이후 한 때는 수그러들었다가 광복이 나자 또 극성을 부렸다.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만주국이 무너지자 이번에는 만군들이 비적으로 돌아섰다.그리고 한족들은 그들 나름대로 조선족을 제2의 일본인으로 간주하고 조선족마을을 습격하기 시작했다.이는 일제가 통치수단으로 자행한 민족이간책에서 비롯되었다.한족들은 비적 못지않게 날뛰었다.도끼와 낫으로 수장하고 조선족을 예사롭게 죽이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조선족마을들은 자구책으로 자위대를 조직했다.마을이 똘똘 뭉쳐 스스로를 지켜냈던 것이다.그 단결력은 뒷날 순수한 조선족마을로 살아남는 원동력이 되었다.그래서 광복 이후 송화강유역 조선족마을들은 두만강이나 압록강유역 조선족들보다 정치운동의 풍파를 덜 겪었다.조선족들이 우루루 몰려와 사는 집거구 연변에서는 혁명을 한답시고 동족끼리 때리고 죽인 현실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었다. 길림성 영길현 송화강유역의 조선족마을 아라저촌은 중국대륙을 바람처럼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을 무사히 넘긴 마을이다.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농자천하지대본의 길만을 걸었다.길림시에서 이러저러한 파벌들이 무장을 하고 마을에 와서 당총지 김용구의 매도를 선동했으나,아라저촌의 일은 마을이 알아서 처리한다는 뜻을 끝내 굽히지 않았다.이 마을에서는 문화혁명에서 투쟁을 맞았거나 감옥에 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신화를 창조했던 것이다. ○일제 민족 이간책에 속아 그런데 요즘와서 일부 조선족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들고있다.흑룡강성 학강시 단결향 화춘촌은 2백여가구의 순수한 조선족마을이었다.이 마을은 요 몇년 사이에 사정이 달라졌다.시장경제에 팔려 집과 도급농토를 헐값에 팽개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한족들이 야금야금 마을을 잠식한 것이다.한족이 벌써 30여가구가 마을에 들어와 떠나버린 조선족들 대신 농사를 짓고있다. 흑룡강신문보도에 따르면 흑룡강성 조선족촌에서 외지로 빠져나간 가구는 상당수로 밝혀졌다.한 마을에서 많게는 40%,적게는 20%가 도시로 진출했다는 것이다.어떤 조선족촌에서는 도시로 나간 빈자리를 한족들이 들어와 메꾸는 것을 막기위해 타민족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규약까지 만들었다.그래서 떠나는 사람들은 마을의 뜻을 차마 저버리지 못해서인지땅과 집을 그냥 두고 외지로 나가기도 했다.마을 전체가 1백가구가 채 안되는 화천현 성화향 요신촌에는 현재 여남은 가구가 비어있다. ○한족 30여 가구 들어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공민이면 민족을 불문하고 거주권이 있다고 규정했다.그러고 보면 조선족마을 자체가 만든 한족 이주금지규약은 사실상 헌법위반이다.순수한 조선족마을을 지키려는 노력은 조선족입장에서 보면 가상하나 한족 이주를 막는데는 도처에 장애요소가 깔려있다.나북현 동명향과 같은 조선족 밀집지역에서는 궁여지책의 묘안을 짜냈다.외지에서 들어오는 한족들은 조선족들의 주택을 사들이거나 토지를 양도받고자 할 때는 조선족들 끼리 거래하는 액수의 곱을 내야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조선족들의 마을 지키기는 현명한 발상이었는지 모른다.도시로 나갔다가 거덜 난 조선족들에게 퇴로를 열어준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근년에는 폭락했던 쌀값이 크게 올라 농촌으로 다시 돌아오는 조선족들의 발길이 드문 드문 이어지고있다.이들의 귀환은 도시로 떠나면서 그냥 버려두었던 집과 도급농토를 마을이 지켜주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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