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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송파·서초 등 아파트값 심리적 지지선 붕괴

    강남·송파·서초 등 아파트값 심리적 지지선 붕괴

    이모(38·회사원)씨는 요즘 떨어지는 집값 때문에 편두통까지 앓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신당동의 아파트를 팔고 은행 대출을 더해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34평형을 13억원에 장만했다. 주변 환경이 좋아 앞으로 강남의 중심 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다소 무리를 하고 이사를 했다. 중심축으로 거듭날 가능성은 높을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현재로서는 ‘상투’를 잡은 셈이다. 재건축 추진 전망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8일 현재 집값은 10억 2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잠실주공5단지 34평형 13억서 10억2000만원으로 올들어 서울 강남·서초·송파·양천·강동 등 종전의 인기 지역에서는 싼 값에 매물이 나와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오는 6월1일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일 전에 처분을 바라는 매물들이 속출하지만 사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지난해 빚을 내 ‘상투’를 잡고 집을 샀거나 집 늘리기를 감행한 사람들은 특히 좌불안석이다.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 아파트 값은 최근 10억 8500만원에 거래되면서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11억원대가 무너졌다. 이번주 들어서는 10억 2000만원짜리 매물이 나왔다. 지난해 추석 수준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난해 말 거래된 최고가는 13억 5300만원이었다. 인근 주변 단지들은 재건축을 끝내고 입주하고 있지만 이 단지는 지난해 3월 안전진단에서 ‘유지 보수’ 판정을 받은 뒤 사실상 재건축을 포기한 상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부동산 시장까지 위축되면서 아파트 값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16억원을 호가하던 36평형도 지난주 13억 7000만원에 거래됐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형은 8일 현재 급매물은 8억 5000만원에 나와 있다. 지난해 10월 말 ‘인천 검단 신도시’ 발표와 함께 집값이 10억원대로 올랐지만 그 전 수준으로 안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올해 1분기만 해도 12억원을 넘었던 34평형의 경우 현재 10억 5000만원부터 매물을 고를 수 있다. ●세금 중과·금리인상 이중고 목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양모(41)씨는 지난해 12월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27평형을 내놓고 광화문 K아파트 50평형을 은행 대출 등을 받아 12억원에 장만했다. 그러나 로열층인 양씨의 목동 아파트는 아직도 팔리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8억 2000만원이던 이 아파트의 호가를 6억 7000만원으로 낮췄지만 찾는 이가 없다. 그는 조금 더 깎아주더라도 반드시 팔아야 한다. 올해 연말까지 팔지 못하면 ‘1가구 2주택 세금 중과(重課)’를 적용받는데다 내년부터 돌아오는 원금 상환에 대한 압박까지 받기 때문이다. 맞벌이인 양씨 부부가 매달 갚는 대출 이자는 소득의 50% 수준인 월 300여만원. 경기도 일산에 사는 김모(39·회사원)씨는 6년간 보유했던 일산 아파트(20평형)를 최근 1억 6000만원에 겨우 팔았다. 지난해 11월 말 집을 늘려가기 위해 2억 1000만원을 대출받아 4억 5000만원에 산 일산 K아파트(31평형)에 대한 이자 부담(월 120만원)도 문제였지만 연초부터 내놓은 집이 4개월이 넘도록 팔리지 않아 여간 마음 고생을 한 게 아니다. 최근 간신히 매수자를 만나 한시름 놓았지만 지난해 말 구입한 K아파트는 그때보다 1000만원가량 빠진데다 앞으로 집값이 더 빠진다는 전망이 우세해 여전히 뒤통수가 얼얼한 기분이라고 김씨는 말한다. ●강북으로 집값 하락세 확산 최근 서울 집값 하락폭이 커지는 가운데 기존에 하향세이던 강남 등 인기지역뿐 아니라 강북과 경기 지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최근 한 주(4월28일∼5월4일)간 양천(-0.46%), 송파(-0.42%), 강동(-0.30%), 강남(-0.23%), 서초(-0.11%) 등 기존에 빠지던 강남과 인기권역은 물론 광진(-0.11%), 중구(-0.08%), 강서(-0.04%) 등 비(非) 강남권도 떨어지는 곳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올들어 집값이 빠지고 있지만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부실을 우려할 정도는 아직 아니라고 말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강남·서초·송파·양천 등 버블 4구의 지난 한 해 집값은 35.53% 오른 반면 올들어 지난 4개월간 집값은 0.95% 내렸다. 양천구(-2.22%)가 가장 많이 빠졌고, 이어 송파구(-1.51%), 강남구(-0.74) 등 순이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집값은 당분간 전반적인 하향세를 면하기 어렵겠지만 현재의 집값은 모든 정책이 동원됐을 때의 결과여서 최저점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투자상품인 재건축은 호가 위주여서 낙폭이 크지만 일반 중소형 아파트는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병역 거부자와 자원자들의 시각

    대학생 정재훈씨는 지난 2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 1심 공판을 앞두고 있다. 반면 볼리비아 영주권자인 박재록씨는 굳이 안가도 되는 군대에 새달 28일 자원 입대한다. 감옥에 가면서까지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과 갈 필요가 없는 군대를 자처하는 사람들. 왜 이런 선택을 할까? 27일 오후 10시50분에 방송되는 EBS 시사프로그램 ‘시사, 세상에 말걸다’(진행 금태섭 변호사)에서는 군대를 바라보는 두가지 상반된 시각을 조명한다. 병역거부자는 1950년부터 지금까지 약 1만 20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대다수는 집총을 거부하는 교리로 잘 알려진 ‘여호와의 증인’ 신도. 성우 양지운(59)씨도 이 때문에 두 아들이 징집을 거부해 교도소에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2001년 불교신자 오태양씨의 징집거부를 시작으로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이들의 병역거부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교도소를 다녀온 뒤에도 여전히 취업 등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받으며 ‘사회적 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와 반대로 해외영주권자의 자원입대도 늘고 있는 추세다.2004년부터 지금까지 256건에 달한다. 군대에 다녀와야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더라도 취업 등에 불이익을 받지 않고 떳떳한 한국인으로 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군대에 대한 두가지 대립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제공한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문도 안 잠그고 돌아오길 기다렸는데…”

    “어디선가 살아만 있기를 빌고 또 빌었는데….” 학원에서 귀가하다 실종된 양지승양의 시신이 40일 만에 발견되자 지승양의 부모는 넋을 잃은 채 “내딸 지승아, 지승아….”를 울부짖다 끝내 실신했다. 지승양의 아버지 양모(43)씨는 이날 경찰이 집 근처 과수원에서 발견한 시신의 안경과 신발, 바지 등이 실종 당시 지승양이 입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양씨는 “지승이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집으로 돌아올 날만 손꼽아 기다려 왔는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며 비통해했다. 어머니 박모(39)씨는 발견된 시신에서 딸이 입었던 옷가지 등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말을 믿지 못한 채 실신했다. 지승양 부모는 지난달 16일 지승양이 실종된 이후 밤에도 불을 밝히고 아파트 문을 잠그지 않은 채 지승양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지승양이 다녔던 서귀북초 양상홍 교장은 “그동안 경찰이 철저히 수색을 했는데도 흔적이 없어 지승이가 어디엔가 살아 있을 줄 알았다.”면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발견될 줄 어떻게 알았느냐.”며 침통해했다. 인근 주민 고모(31)씨는 “지승이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도했는데 안타깝다.”면서 “딸을 가진 부모로서 매우 슬프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무슨 문제가…” 결혼 4개월만에 이혼한 까닭

    “아주 지극히 정상인 데도 결혼한지 4개월이 지나도 아직 첫날밤을 보내지 못해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했어요.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결혼생활을 계속 해나갈수 있나요?” 중국 대륙에 한 신부가 결혼 4개월동안 신랑과 함께 신혼 초야를 치르지 못했다고 이혼을 요구하는 바람에 시끌벅적하다. 중국 동북부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시 지안(集安)에 살고 있는 왕샤오리(王小麗·가명)씨는 지난해말 결혼했으나 지금까지 지극히 정상인 남편 양쥔(楊軍·24·가명)과 신혼 초야를 치르지 못하는 바람에 이혼을 요구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동아무역신문(東亞貿易新聞)이 11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동네 소꿉친구들인 이들이 결혼한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문구가게를 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는 양씨는 아주 착실했고 왕씨는 늘씬한 몸매와 해사한 모색으로 인기가 높아 주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나.모든 면에서 멀쩡한 이들 두사람은 다른 보통 신혼부부와는 달리 첫날밤을 서로 쳐다보다가 잠이 들어 초야를 치르지 못한 것이다.신부 왕씨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신랑이 부부생활에 너무 부끄러워서 그렇겠거니 하고 일단 넘겨 보냈다.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그녀는 결혼 준비와 결혼식 등 스트레스도 많이 쌓였을 것으로 판단,그럭저럭 1주일을 ‘아무 일 없이’ 보냈다. 이렇게 참는 가운데서도 세월은 쉬지 않고 흘렀다.어영부영 결혼한지 4개월이 지났다.신랑 양씨와 신부 왕씨는 그때까지 첫날 밤을 치르지 않아 여전히 처녀·총각으로 남아 있었다. 신부 왕씨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신랑이 말못할 병에 걸린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해서 더이상 부부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왕씨는 남편 양씨와 함께 일단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양씨는 지린성 성도 창춘(長春)시 비뇨기과건강센터 불임과에서 정밀 진단을 받았다.결과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신부 왕씨는 신랑 양씨와 이혼수속을 밟고 있다. 담당 의사 황광화(黃光華)씨는 “신랑 양씨는 신체 하드웨어 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성지식이 전혀 없으면 성생활에 무관심할 수가 있다.”고 귀띔했다.그는 “양씨처럼 성지식이 없고 부끄러워 초야를 치르지 못하는 신혼부부들은 심리적 질병인 만큼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여성&남성] 그와… 그녀와 …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왜?

    [여성&남성] 그와… 그녀와 …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왜?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수필가 피천득은 아사코라는 여성과의 오랜 ‘인연’에 대해 이렇게 읊었다. 피천득은 태평양전쟁이 일찍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했다면 아사코와 같은 집에서 살 수도 있었을 거란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여자와 남자의 인연이란 어떤 걸까. 내 가슴을 적셔오는 상대의 마음을 알면서도, 정작 그와 약지를 걸지는 못했던 그들의 사연을 들어본다. ■ 완소남(완전 소심한 남자) ●이런 완소남(완전 소심한 남자)을 봤나 회사원 김모(27)씨는 소심한 상대 남자의 1% 성격 결함에 질려 99% 장점을 포기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알게 된 그 남자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김씨를 착실하게 챙겨주는 편안함에다 진한 눈빛으로 나만 바라봐줄 것같은 마음을 표현해준 사람이었다. 호감을 갖고 만나기 시작했지만 그 남자는 정작 둘만 있는 자리에선 긴장 탓에 안절부절했다. 결국 그 남자는 꼭 자신의 친구를 데리고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둘만의 만남을 원하는 김씨를 살짝 실망시켰다. 이후에도 그는 “널 좋아해.”란 한마디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전화나 메신저로 ‘애매모호한 신호’만 보내왔다. “일종의 모멘텀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그 남자에게 끌렸지만 여자는 남자가 자신에게 확신을 주는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사실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굉장히 부담스럽기 때문에 결국 1년 정도 지나 관계가 흐지부지되고 말았어요.” 회사원 서모(26)씨는 부모의 황당한 개입 때문에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과의 관계가 이뤄지지 못했다. 서씨는 대학 1학년 첫 미팅에서 주선자로 나왔던 엄마 친구의 아들을 처음으로 만나 한눈에 쓰러졌다. 타이완 배우 금성무를 닮은 얼굴에 송승헌같이 짙은 ‘숯댕이’ 눈썹을 갖춘 완벽한 외모에다 밥집에 가면 쌀농사 지은 사람들 때문에 밥 한톨 남기길 꺼려하는 진중한 성격까지 갖췄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서씨와 첫눈에 반했고 둘은 호감이 99%까지 차 올랐다. 하지만 2개월 뒤 그가 갑자기 소식이 뜸해져 서씨는 ‘차였구나.’ 생각하며 한동안 눈물로 밤을 지샜다.“나중에 알고보니 우리 엄마가 그쪽 부모의 이혼 경력을 이유로 그 남자의 엄마에게 저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얘기했더군요. 몇년 뒤에야 알고 너무 속이 상했어요.” 취업준비생 김모(27)씨는 남자의 결혼 압박이 맘에 걸려 ‘괜찮았던’ 그에게 결국 손사래를 쳤다. 지난해 소개팅으로 만난 여섯살 위의 그 남자는 젠틀한 매너에 준수한 외모, 신중한 성격까지 갖췄다. 한번 꼬시긴 힘들어도 정작 꼬셔두면 계속 내 남자일 것만같아 마음이 점점 동하던 찰나, 문득 물어본 “올해 목표는 뭔가요.”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 신경을 건드렸다. 그는 “올해 안에는 무조건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마음을 다 잡고 한 번 더 목표를 물었지만 그는 똑같은 답을 ‘한 번 더’ 던져 김씨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만난 지 3∼4번밖에 되지 않았는데 늘 입에서 결혼이야기를 달고 살아 결국 그게 발목을 잡더군요. 머뭇거렸더니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끊었어요.” ●그가 옆에 없음이 두려워서 그만…. 회사원 정모(29)씨는 외로움이라는 장벽이 두려워 놓쳤던 그 사람에게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있다.2년 전 모임에서 알게된 그는 곧 연수를 떠날 계획이었다.“얘기를 하면 할수록 매력적이었고 매일 함께 있고 싶었지만, 한참 사랑해야 할 나이에 2년이나 그를 옆에 두지 못한 채 인내해야 한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죠.” 이후 2년이 지나 그는 돌아왔지만 예전같이 자신을 좋아할 것 같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는 정씨. 그는 “사랑은 타이밍이라는데 혼자일 게 두려워서 놓아버린 날 다시 찾을지 모르겠다.”면서 “2년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며 한숨지었다. 그는 또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으면 소중한 걸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회사원 양모(25)씨는 2년전 여름 한달동안 중국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가서 만난 미국 남자와의 인연을 아직 잊지 못한다. 그 남자는 특별한 외모나 매력이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았지만 함께 있으면 왠지 힘이 되고 마냥 행복하고 계속 같이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도 양씨에게 계속 호감을 표시했지만 둘은 한달 뒤 각자의 나라로 돌아오고 말았다.“만약 한국 사람이고 같은 나라에 계속 있었다면 두말할 것없이 사귀었을 거예요.” 회사원 이모(27)씨는 ‘신분의 장벽’에 막혀 남자와 등을 돌렸다. 몇년 전 만났던 그는 함께 미술관 등을 다니며 취미를 공유할 수 있었고 속상해 울면 득달같이 달려와 밥을 사주며 다독거려줄 줄도 아는 남자였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뭔가가 맞지 않았고 그 이유를 알아보니 그 남자는 법관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신분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그 남자가 자신과 비슷한 레벨의 여자를 찾길 원하는 것 같았고 결국 결혼도 그런 여자와 하더라고요.”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잘난걸(Girl)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져” 남성 대부분이 오래전 사랑했던 혹은 짝사랑했던 여성을 가슴에 담아둔다. 사귀고 싶었지만 인연이 너무 짧았고 고백하고 싶었지만 고백하지 못했기에 마음 아프다. 회사원 유모(40)씨는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인 28살 때 한 여성을 사귀게 됐다. 서로 결혼할 마음까지 있었지만 유씨의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 아가씨는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결혼을 하면 중풍으로 쓰러진 시어머니를 혼자서 병수발해야 한다는 게 엄청난 부담이었겠지요.”부담스럽기는 유씨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 다음 차례는 이별이었다. 벤처기업 사장 최모(33)씨는 첫사랑을 2년 전 서울 영등포역에서 다시 만났다.“한 손엔 애를 잡고 한 손에는 애를 업고 있었죠. 다른 손엔 가방을 들고요. 단발머리만 간직하고 싶었는데 세파에 찌든 모습을 보니 기분이 참 ‘거시기’합디다. 전화번호는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어떻게 지냈느냐는 말만 하고 헤어졌지요. 왜 그 때 잡지 않았느냐고 원망하는 눈빛이 느낌으로 왔는데 여운이 한 달 가더라고요.” 고3때 만났다는 게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재수를 하게 되면서 최씨는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상업고등학교에 다녔던 그 친구는 취업을 했지요.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지더라고요.” 최씨는 가끔 “그 친구가 취직했던 전주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생각해 본다.“그 친구가 데리고 있던 아기들이 내 새끼가 될 수도 있었겠지요.” 염모(30)씨도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 경우다. 군대 동기가 여동생을 소개해줘 1년 넘게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1년 가까이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면서 자연스레 소원해졌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여자친구는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었다. 서로 끌렸는데도 끝내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학생 운동과 시민 운동을 거쳐 지금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는 박모(38)씨는 학내커플을 터부시하는 청교도적 분위기가 연애 전선에 딴죽을 걸어 버렸다.“1학년 때부터 공부를 같이 했던 동기 유모씨와 서로 좋아하면서도 차마 말을 못한 채 3년이 흘러가 버렸어요. 그런데 우리 둘이 동거를 한다는 소문이 난거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그 사실을 부인하면서 화를 냈는데 그게 그 친구에게 상처가 돼 버렸어요.” 그 이후론 겉으로 친구처럼 지내던 것조차 서먹서먹해지고 말았다. 그 후 시간이 지났을 때 그 여학생은 박씨에게 “우린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때론 너무 바쁜 게 원수다. 유모(35)씨는 후배 소개로 어린이집 교사를 만났지만 어렵게 얻은 첫 직장은 일이 너무 많았다. 직장일에 의욕이 넘치던 유씨. 토요일 데이트 약속을 잡을 때마다 꼭 일이 생겼다. 그런 식으로 두 달 가량이 지나가 버리니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것도 까먹을 지경이 돼 버렸고 흐지부지 헤어지고 말았다. 나중에야 그 후배를 통해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그 아가씨는 결혼할 마음까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데이트 때마다 기대를 했는데 번번이 바람맞고, 자존심 때문에 먼저 말하지도 못하고. 결국 지쳐 버린거죠.” 우정이냐 사랑이냐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3때 독서실에 같이 다니던 친구 셋이 한 여자를 좋아해서 고민했던 걸 생각하면 한모(34)씨는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1학기쯤 아주 예쁜 여학생이 독서실에 왔는데 세 명이 동시에 그 여학생에 반했습니다. 모두들 ‘내가 저 여자애 찍었다.’며 경쟁이 붙었지요. 처음엔 넷이서 영화도 보고 재미있게 놀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여학생이 나를 뺀 두 친구를 저울질하는 걸 눈치챘어요.” 한씨는 좌절감에 혼자 술도 먹다가 결국 “나는 원래 걔한테 관심없었다.”며 마음에 없는 소릴 했다. 이제 두 친구가 경합을 벌였다. 물론 승자는 한 명.“선택을 못받은 친구는 많이 마음 아파했죠. 선택받은 친구도 의리 때문에 많이 미안해 하고요. 그래도 그 친구는 그 여학생과 결혼까지 했어요. 선택 못받은 친구만 노총각이죠.”그들은 지금도 친한 친구다. 네명이서 함께 온라인 게임을 하고 술도 마신다. 그래도 한씨 마음 속에선 지금도 그 친구에게 미묘하게 샘을 낸다고 한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만능 엔터테이너 조영남(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만능 엔터테이너 조영남(1)

    가수인 동시에 MC 그리고 화가,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가수 조영남(62). 스스로 ‘변변한 히트곡 하나 없는 가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의외로 히트곡이 많은 가수다. 가수로서 수명 또한 길다.1966년, 서울대 음대 1학년 때 첫 음반 취입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도 여전히 마이크 앞에 서고 있을 만큼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 심지어 군 복무 3년 동안에도 꾸준히 음반을 발표하는 특혜까지 누렸다. ‘보리밭’ ‘마지막 편지’ ‘이일병과 이쁜이’ ‘불 꺼진 창’을 비롯해 ‘동해의 태양’ ‘옛 생각’ 등이 모두 이때 취입한 노래들이다.1973년 제대 후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 공부를 하던 8년간의 체류기간 동안에도 틈틈이 귀국해 음반 취입은 물론 귀국공연을 수시로 가졌기 때문에 긴 외유에도 불구하고 가수로서의 공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제비’ ‘사랑이란’ 등을 이때 발표했다. 방송 진행자로도 여전히 바쁜 그는 가수로서 트로트와 록은 물론 팝과 옛 노래, 민요나 가스펠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이를테면 ‘크로스 오버 맨’인 셈. 또한 ‘애드리브의 귀재’이기도 하다. 원작곡자 입장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새삼 궁금할 정도로 무대마다 노래를 제각각 다르게 구사한다. 심지어 민요를 재즈로, 또 트로트를 타령조로, 심지어 동요를 솔로 변화시킨다. 때로는 같은 노래를 저렇게 부를 수도 있구나 싶어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드는데 특히 ‘최진사댁 셋째 딸’ ‘물레방아 인생’ ‘내 고향 충청도’ 등은 번안곡임에도 우리 노래보다 더 우리 노래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 정도다. 사회 통념을 초월한 듯 보이는 그의 돌발 언행과 돌출 행동으로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었던 탓에 인터넷에서는 팬클럽과 동시에 안티클럽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조영남씨는 1968년, 번안곡 ‘딜라일라’로 처음 데뷔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본인 또한 지금까지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2년 전인 1966년, 그의 목소리를 담은 첫 음반이 발표됐다. 서울대 음대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고철(高哲)’이라는 예명을 쓰며 작사가로도 활동을 시작했지만 당시 자신의 노래가 음반으로까지 발매된 것은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라 했다. “학비 때문에 미8군 무대에 섰지요. 전공인 성악과 팝 사이에서, 순수 음악과 8군 쇼의 틈바구니에서 고민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이 무렵 무대에 함께 섰던 여가수 박일양씨 소개로 작곡가 박선길씨를 만나 아르바이트 삼아 번안곡 몇개를 개사해 건네주었고 또 테스트 삼아 마이크 앞에서 몇곡 불렀던 것 같아요.” 여기에 등장하는 박선길-박일양 부부는 1990년대 ‘오늘 같은 밤이면’의 주인공인 가수 박정운씨의 부모들이다. 성악과 학생이었지만 ‘오페라나 가곡은 재미없어’ 팝을 더 좋아했다는 그는 성악을 기초로 한 가창력으로 1968년, 번안곡 ‘딜라일라’를 비롯해 ‘내 생애 단 한번만’ ‘고향의 푸른 잔디’ ‘물레방아 인생’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인기가수로 급부상한다. 아울러 Bus Stop,Our Town(서울대), 돈키호테(실험극장)의 무대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내 생애 단 한번만’ ‘푸른 사과’ 등에 출연함과 동시에 TV 드라마 ‘너무하셨어’에서도 열연, 탤런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969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가졌던 리사이틀 무대에서 그는 자유분방함과 다재다능한 실력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에는 무대에서 안경을 착용하는 걸 금기시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조영남은 큼지막한 검은 뿔테 안경을 보란 듯이 쓰고 나와 넥타이마저 풀어헤친 채 무대에서 이탈리아 칸초네 ‘카사 비안카(Casa Bianca)’를 ‘하얀 집’이란 제목으로 즉흥적 가사로 바꿔 부르는데 가히 노랫말이 압권이다. ‘시커먼 하얀 집/어쨌든 하얀 집/누가 뭐래도 하얀 집/좌우지간 하얀 집/불이 나면 빨간 집/꺼지면 까만 집/빌려주면 전셋집/팔면은 남의 집/(중략)/닉슨이 사는 The White House.’ 처음엔 지나치게 장난스러운 가사로 시작되지만 끝까지 듣고 나면 그가 지칭하는 ‘하얀 집’은 다름 아닌 당시 ‘미 닉슨 대통령이 사는 백악관’이었다는 익살로 마무리한다. 일종의 풍자송이었던 셈이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2)

    ‘사랑이 깊으면 얼마나 깊어/여섯 자 이내 몸이 헤어나지 못하나/하루의 품삯은 열두 냥 금/우리님 보는 데는 스무 냥이라 (에헤이 엥헤야 에헤이 엥헤야) 네가 좋으면 내가 싫고 내가 좋으면 네가 싫고/너 좋고 나 좋으면 에헤이 엥헤야 에헤이 엥헤야’-‘열두 냥짜리 인생’(김희창 채보, 개사. 블루벨즈 노래.1963년) 당시 60년대 서민들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 부문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던 블루벨즈의 대표곡 중 하나 ‘열두 냥짜리 인생’. 이 드라마가 영화로도 만들어져 국민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그 당시는 속칭 ‘보릿고개’ 시절이었다. 나 역시 중학교 입시를 거친 세대라 집안 형편에 따라 한 교실 안에서도 ‘진학반’ ‘비진학반’으로 나눠 공부했던 서글픈 기억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어 이러한 노래에 쉽게 공감하는지 모른다. 그렇듯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혁명으로 막이 올라 5·16으로 이어지며 시작된 우리의 1960년대는 아직 ‘보릿고개’였다. 느닷없이 적극 장려된 해외 이민으로 ‘브라질 이민선’을 타는 사람도 늘어나고 전 국민의 환호 속에 월남 전선으로 떠나던 맹호·청룡·백마부대 용사, 그 젊은이들. 당시 유년시절을 보내던 이들은 ‘파월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되는 위문편지 숙제 속에 묻혀 있기도 했고,‘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되며 아침저녁으로 스피커를 통해 학교 운동장마다, 동네마다 가득 울려 퍼지던 이 노래와 더불어 당시 구호,‘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다’가 어느새 ‘100만달러 수출 탑을 쌓아올린’ 건설한국을 자랑스러워했다. 이 때 들었던 새마을노래, 그 주인공 또한 블루벨즈였다. 우리나라 가요 최초의 쿼텟, 블루벨즈는 멤버들 개인이 군 입대 등으로 결원이 생기면 쇼무대 등을 위해 임시 멤버로 강수향, 곽규호씨 등으로 대체해 활동했지만 이들 대체멤버가 음반 취입에 직접 참여한 적은 없다. 그러나 1968년, 창단 멤버 현양씨가 정식으로 탈퇴하자 KBS전속가수 7기생인 장세용씨가 가세, 후기 블루벨즈를 이뤄 활동한다. 아울러 ‘블루벨즈’는 또한 스코틀랜드 지방에 서식하는 ‘젊음을 상징하는 꽃’ 이름이기도 하다. 이 꽃말처럼 이들의 노래는 당시 다른 노래들에 비해 비교적 젊다. 소월 시에 김광수씨가 곡을 붙인 ‘엄마야 누나야‘를 비롯,‘부두(장세용 작사, 곡)’ 등이 그렇듯. 아울러 당시에는 유행가 일부를 ‘소리의 공해’라 치부하기도 했고 때문에 건전가요 보급 역시 일종의 국가적 시책이기도 했는데, 특히 ‘싱어롱 Y’의 선구자 전석환씨에 의해 주도되었던 ‘건전가요 부르기 운동’의 최전방에 섰던 첨병 또한 블루벨즈로 ‘정든 그 노래’,‘그리운 고향’,‘냉면’ 등을 이때 발표한다. 블루벨즈, 이들의 노래엔 늘 생동감이 느껴진다. 네 명의 목소리가 합쳐져 같은 화음을 구사하고 있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약간씩 미묘한 차이도 감지되는 것이다. 완벽하고 정확한 멜로디로서가 아니라 절묘하게 이탈된 곡선이 이들 화음에 들어 있어 노래가 살아 있다고도 느껴진다. 특히 ‘잔치잔치 벌렸네, 무슨 잔치 벌렸나’로 시작되는 ‘즐거운 잔칫날(손석우 작사, 곡)’과 ‘고생도 달가와(최요안 작사, 손석우 작곡)’에서의 웃음소리를 표현한 부분 등에서 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화음의 이탈이, 그 흐름을 이어가는 묘한 곡선에서 이들 넷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감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한 멜로디 속에 함께하는 또 하나의 다른 흐름,‘부두’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노래를 휘감는 멋진 휘파람소리 또한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1987년에 재결성, 기념 음반 ‘블루벨즈/내 인생 후회는 없지만’을 발표하는데, 이때는 오리지널 멤버인 박일호·서양훈·김천악·현양씨가 함께했다. 이들 멤버 모두 52세 때였다. 현재 리더 박일호씨는 한국연예협회 이사장을 거쳐 한국대중문화원장으로 활동 중이고, 서양훈씨는 미국 LA복음방송국의 본부장으로 재임 중이다. 장세용씨는 적십자 봉사활동을 그리고 대체 멤버 곽규호씨는 송파실버악단에서 각각 활동하고 있고, 김천악·현양·강수향씨는 타계했다. 1960∼70년대, 궁핍한 시대에 희망을 안겨준 ‘푸른빛의 종소리’ 블루벨즈, 이들의 멋진 하모니를 통해 노래는 지쳐있는 삶, 혹은 인생의 응원가이며, 그로부터 몇 십년이 지난 지금쯤엔 옛 노래가 바로 마음의 고향일 수 있음을 실감한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낚시사랑과 함께 월척 樂漁] 충남 아산 죽산지

    [낚시사랑과 함께 월척 樂漁] 충남 아산 죽산지

    지난주, 예년보다 길었던 꽃샘추위는 밤이면 기온을 영하로 곤두박질치게 했고, 수온 또한 많이 떨어뜨려 놓았다. 산란준비를 하던 붕어들은 화들짝 놀라 숨어 버렸다. 산란특수를 기대하며 물가를 찾은 꾼들은 애간장을 태우지만, 떨어진 수온은 좀처럼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개울가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며 연한 연두색으로 변해가는 요즘, 평지형 저수지의 낮은 수심 수초가엔 온몸을 뒤집으며 산고를 겪고 있는 붕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주춤했던 산란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급격한 기온하락만 없다면 본격적인 산란기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갈수기 때 유난히 좋은 조황을 보여 각광받았던 아산시 선장면 죽산저수지를 찾았다. 잔뜩 흐려 있던 하늘은 봄을 노래하듯 오락가락 가랑비를 뿌리고 있다. 그리 좋지 못한 날씨에도 많은 마니아들이 중상류권 부들과 갈대, 그리고 버드나무 언저리에 채비를 드리우고 있다. 대부분 한두 대의 낚싯대만 편성하고 있었는데, 이런 모습은 산란철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개체수가 많은 곳에서는 잦은 입질로 여러대의 낚싯대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7만여평의 평지형 저수지인 죽산지 수초가에 채비를 드리운 낚싯대가 여기저기서 활처럼 휘어지고 있다. 어자원 많고 깨끗하기로 유명한 죽산지는 토종붕어를 비롯, 떡붕어와 잉어 등이 주어종이다. 포인트는 부들과 갈대가 잘 분포하고 있는 중상류권 일대와 물골자리. 관리인 최경호(47)씨는 “수심이 비교적 낮은 70㎝∼1.3m대를 공략하면 좋은 조과를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주말 떡밥미끼로 70여수의 조과를 올렸다는 서울꾼 양승관(38)씨는 수상좌대에 올라 부들사이로 2.2∼2.8칸까지 네대의 낚싯대를 편성하고 있었다. 양씨는 “월척급 붕어를 낚기 위해 1.2m 정도 수심에 생새우미끼를 사용하고 있다.”며 “영점찌에서 한목 정도 마이너스로 찌맞춤을 하고, 어분계열 떡밥에 섬유질 떡밥, 또는 지렁이를 짝밥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은 조과를 올리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또 “주 입질시간은 해뜨기 1시간 전부터 점심 때까지, 그리고 오후 4시부터 해거름 때까지며 기온차 때문인지 낮조황보다 밤조황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흠”이라고 덧붙였다. 활성도가 좋은 요즘은 찌오름이 환상적일 때. 짧은 낚싯대가 유리한 시기이기도 하다. 죽산지는 120석 규모의 잔교식 좌대와 23동의 수상좌대, 그리고 매점과 식당 등이 잘 갖춰져 있어 단체출조에도 불편함이 없다. 멀지 않은 거리에 온양온천과 아산온천, 도고온천 등이 있어 가족나들이에도 손색이 없다. 입어료 1만원. 좌대 2만∼3만원(입어료 별도).(041)554-3666,(017)421-3666. #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나들목→아산만→아산→예산방향 우회전→신창삼거리(순천향대)→신창방향 우회전→철길건너 직진→죽산지
  • “무슨 말을 했길래…” 20대 남성 동거녀 살해

    “남자에게 할 말이 따로 있지.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중국 대륙에 한 젊은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정력이 형편없다며 성능력을 조롱하는 말을 했다가 살해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 톈허(天河)구에 살고 있는 한 20대 남성은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 친구보다 정력이 떨어진다는 비아냥거리는 말에 격분,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붙잡혀 쇠고랑을 차게 됐다고 북경일보(北京日報) 인터넷신문 천룡(千龍)망이 최근 보도했다. 천룡망에 따르면 사건의 장본인은 돤양즈(段揚志·가명).그는 지난 2005년초 늘씬하고 해사한 간샤오룽(甘小龍·여·가명)씨를 처음 만났다.이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두 사람의 앙가슴에 ‘큐피드의 화살’이 꽂혔다. 첫눈에 반한 이들 두 사람은 곧바로 동거에 들어갔다.하지만 간씨는 6개월쯤 지나자 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급속히 식어갔다.해서 결국 두 사람은 이별을 고했다. 그런데 간씨의 남성 편력도 보통이 아니었다.두사람이 헤어진지 얼마되지 않은 그해말 간씨는 새로운 남자친구 양좡(楊庄·가명)씨를 만나 불꽃같은 사랑에 빠졌다.이들 두남녀는 곧바로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돤은 화가 머리 꼭뒤까지 치밀었다.2006년 2월 14일,그는 간씨에게 연락해 다시 만났다.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옛날로 돌아가 같이 잘 살아보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3일 뒤,돤이 간씨의 집으로 찾아갔을때 간씨는 약속을 파기하겠다고 통보했다.이들 두 사람은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다.화가 난 돤은 핸드폰 충전기의 줄로 간씨의 목을 조르며 “나에게 돌아오라.”고 욱대겼다.하지만 간씨는 “죽었으면 죽었지,절대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더이상 참지 못한 돤은 전선줄로 그녀를 폭행하자,간씨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흐느꼈다.이에 마음이 너누룩해진 그는 부드러운 말로 간씨를 달래며 다독여 ‘태풍’은 지나갔다.마음이 풀린 두 사람은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봤다. 30여분쯤 지났을까.간씨가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그녀는 돤을 보며 “양좡에 비하면 너의 정력은 형편없이 떨어진다.”고 비아냥거린 것이다.이 말을 듣자마자 돤은 화가 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거며 두 손으로 간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돤은 살해 흔적으로 없애기 위해 그녀의 시신의 목에 남은 지문 등을 지우고 시신을 방안으로 옮겼다.주방에서 과도를 가져와 두번에 걸쳐 그녀의 배를 찔러 완전 범죄를 가장했다. 이어 시신을 방 침대 밑으로 밀어넣은 뒤 간씨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달아났다.이후 또다른 남자친구 양씨에게 그녀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문자 메세지를 보내는 치밀함을 보였지만 돤은 끝내 덜미를 잡혀,쇠고랑을 찼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양심적 병역거부자 11명 유엔에 진정키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는 1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1호인 오태양씨 등 병역을 거부했다가 복역한 11명이 ‘한국 정부의 병역 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 규약 18조가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및 종교의 자유에 위반한다.’”며 유엔에 진정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유엔 인권위원회의 ‘재발방지 대책 및 구제조치’ 권고를 받아낸 병역거부자 윤여범씨와 최모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종교적 신념에 따른 경우다. 그러나 오씨 등 11명은 종교적 문제와 무관한 병역 거부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해 말 유엔 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이행 방법 등을 마련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권고 결정 이후 90일 안에 결과를 통보해야 하기 때문에 구제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윤씨 등이 이미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상태라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대체복무제 도입 등 재발방지책과 관련해선 “대체복무제 개선연구회의 논의 결과가 이달 말쯤 나올 예정”이라면서 “위원회의 검토 결과를 기초로 후속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홍성규 이재훈기자 cool@seoul.co.kr
  • 탤런트 최수종·양미경 ‘韓스타일’ 홍보대사로

    문화관광부는 전통문화 콘텐츠의 생활화·산업화·세계화를 위한 ‘한(韓)스타일’ 사업의 홍보대사로 탤런트 최수종(사진 왼쪽)·양미경(오른쪽)씨를 25일 선정했다. 최씨는 KBS 대하사극 ‘대조영’에서 주인공으로 열연 중이고, 양씨는 한류드라마 ‘대장금’에 출연했다.홍보대사 위촉식은 27일 오후 5시30분 W 서울 워커힐 호텔 비스타홀에서 ‘한스타일 시연회’와 함께 열린다. 한스타일 시연회는 주한 외교사절 등을 초청해 국립국악원의 국악공연, 숙명여대 가야금 연주단과 비보이 공연단의 합동무대, 궁중요리 조리장 박영희씨가 엄선한 궁중요리 맛보기, 한복디자이너 김혜순씨의 드라마 ‘황진이’ 패션쇼 등으로 진행된다.
  • 귀환어부 최욱일씨 “아들 세배 받으려니 설렙니다”

    “아들 세배 받으려고 32년을 기다렸습네다.” 1975년 납북돼 지난해 북한을 탈출, 올초 고국으로 돌아온 ‘귀환어부’ 최욱일(68)씨는 설 명절을 앞두고 아들의 세배를 받는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들떠 있다. 가족들과 재회한 이후 몰라보게 건강해진 최씨는 “한달여 만에 8㎏이나 몸무게가 늘어 58㎏이 됐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부인 양영자(67)씨도 같이 웃으며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런 건 처음 먹어보는데.’라고 하는 게 안쓰러워 이것저것 만들어 주다 보니 살이 많이 찌게 됐나 보다.”고 말했다. 최씨 부부는 이번 설을 아들 내외, 손자(7)와 함께 보낼 생각이다. 납북 당시 생후 7개월이던 아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듯 “진짜 우리 아버지가 맞느냐.”고 물을 때 가장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들과 화투도 치며 설을 보낼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면서 “아들 가족과 설 명절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북에 두고 온 가족 얘기에 이르자 가슴이 아픈 듯 “그 얘기는 하지 맙시다. 안 아프면 사람이 아니지….”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과 생활하며 많이 건강해졌지만 북에서 중국으로 건너갈 때 다친 머리가 아직도 욱신욱신 아프다는 최씨는 말소된 주민등록이 회복되지 않아 병원에 다니지 못하는 등 불편함이 많다. 부인 양씨는 “피랍 당시(1975년)엔 납북사실조차 하소연하기 힘들어 서둘러 사망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무엇보다 주민등록증부터 빨리 발부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산 연합뉴스
  • [박성서의 가요X파일](2)‘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

    [박성서의 가요X파일](2)‘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

    ‘삼천만의 연인’이었던 ‘꾀꼬리가수’ 박재란씨는 빼어난 외모만큼이나 당시 옴니버스 음반들의 커버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데뷔 때부터 전성기였던 196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음반 재킷을 장식했던 가수가 바로 박재란씨로 필자가 확인한 것만도 무려 100여종. 아울러 스크린에도 진출,1959년 박종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손석우씨가 주제가를 맡은 영화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에서는 미남, 미성의 가수 손시향씨와 함께 특별 출연해 주제가와 함께 연기를 선보였고 이어 1961년, 영화 ‘천생연분(박성호 감독)’에서는 타이틀 롤을 맡아 열연했다. 또한 1962년 발표된 히트곡 ‘님’은 가사 중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단어를 타이틀로 이듬해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아울러 이 노래 ‘님’은 2001년, 작사가 차경철씨 출생지인 울산의 대운산 입구에 노래비까지 건립됐다. 방송과 영화, 취입과 공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시절, 전국을 누비던 ‘박재란 쇼’는 언제나 몰려드는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폐가 나빠져 약으로 버티면서도 하루에 무려 30곡이나 되는 노래 연습과 취입을 해야 했어요. 젊었을 때니까 가능했던 일이었겠지만 무엇보다 대중들의 환호가 가장 큰 힘이었지요.” 무대에서 생긴 병은 다음 무대에서 치유되었을 정도로 그에게서 노래는 어려움을 이겨낸 치료제이자 면역력을 키워준 힘이었다.‘대중들 앞에서의 삶’이 전부였던 그에게도 비로소 ‘자신만의 인생’이 펼쳐진다.1959년, 영화주제가 ‘장마루촌의 이발사’를 연습하기 위해 작곡가 김광수씨 집에 갔다가 운명처럼 남편 박운양씨를 만난 것. 동갑내기이자 당시 성균관대생이었던 박운양씨는 작곡가 겸 연주인 김광수씨가 출연하는 ‘무학성 카바레’의 단골로 서로 의형제를 맺은 사이. 그와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바로 1989년 ‘한번만 더’로 사랑받았던 가수 박성신씨다. 아울러 남편이 영화제작에 손을 댔다가 결국 사기를 당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시작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함께 쇼 단체를 만들어 전국 공연에 나서기도 했지만 세상일을 모르고 살았던 이들에게 결코 만만치 않았다. 결국 100평 남짓하던 서울 후암동 2층집에서 용산 단층집으로, 또 갈현동 전셋집으로 전락하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부간의 불화로 인해 결국 이혼을 택한 뒤 1973년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LA에 도착한 그는 나이트클럽 ‘타이거’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재기에 안간힘을 썼다. 동시에 한국을 오가며 음반을 발표하며 방송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무렵 미국 시민권을 가진 연예인들이 이따금씩 귀국해 활동하는 것에 대해 ‘국고를 해외로 빼돌린다.’는 투서사건이 발생, 국내 활동이 일체 중단되자 그 역시도 점차 대중들로부터 잊혀져 갔다. 더구나 1979년, 아파트 화재로 모든 걸 잃는다. 밑바닥까지 내려간 그의 생활은 재기에 집착할수록 오히려 그 집념이 병이 되어 심장과 신장에 이상이 오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악성 위궤양으로 발전, 음식물을 삼킬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유년시절 숱한 잔병치레를 통해 강한 면역력을 키운 동시에 어려웠던 시대를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던 가수 박재란. 이제 그는 스스로 ‘긍정적으로 대할수록 긍정적으로 되는’, 이른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듯 여겨졌다.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오히려 밝은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나섰던 그, 스스로의 ‘피그말리온 효과’는 지금에 와서 새삼 그를 지탱해주는 에너지이다. 현재는 선교활동을 통해 ‘노래하는 전도사’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父子가 9년동안 산속 동굴생활을 하는 까닭

    父子가 9년동안 산속 동굴생활을 하는 까닭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번다한 세속을 떠나 산속에서 혈거(穴居)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중국 대륙에 9년째 석기시대 인간처럼 깊은 산속의 동굴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부자(父子)가 등장,‘화제의 주인공’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중국 중남부지역의 구이저우(貴州)성 안순(安順)시 교외의 깊은 산속의 절벽에서 혈거생활을 하고 있는 양위안리(楊元禮·54)·번룽(本龍·22) 부자.이들 부자는 9년전인 1998년 집을 나와 지금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깊은 산중의 동굴 속에서 생활해오고 있다. 중국 귀주도시보(貴州都市報)는 지금부터 9년전 양씨가 ‘성격이 난폭한’아내를 벗어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아들 번룽군을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혈거생활을 해오고 있어 그들 부자의 기인적 삶이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29일 보도했다. 지난 23일 오후 4시쯤,안순시 룽징(龍井)촌 깊은 산속 어느 산허리 절벽에 설치된 동굴 앞. “계세요?” 몇번이나 소리를 친 뒤에야 입성이 너주레한 50대 후반의 사내가 얼굴을 내밀며 절벽 밖으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팔초한 모습에 무착한 몸을 지닌 양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그를 따라 위험천만의 잔도(棧道)를 따라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건너며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동굴의 크기는 길이 3m,폭 1.5m 정도.동굴 중앙에는 깍짓동만한 땔감으로 쓸 나무 묶음들이 놓여 있었으며 주위에는 밥을 해먹는 솥,접시,다 떨어진 운동화 등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어,‘홀아비’ 두사람이 생활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주고 있었다. 아버지 양씨에 따르면 9년전 가정적인 이유로 근무하던 탄광 회사에 사표를 낸 뒤 아들 번룽군을 데리고 가출,이곳 동굴에 정착해 혈거생활을 하고 있다.평소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 거리로 나가 고물을 모아 내다팔아 돈을 벌고,아들은 동굴 속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 양씨는 5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형과 함께 국립 고아원에 맡겨졌다.22살 되던 해인 1975년 정부가 알선해준 탄광에서 광부로 출근하게 됐다.“광부생활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그래서 열심히,그리고 성실하게 일했죠.덕분에 높으신 분으로부터 많은 귀여움을 받았습니다.” 생활에 안정감을 찾은 그는 84년 인근 마을의 처녀 천(陳)모씨와 혼례도 올렸다.결혼 2년이 지나면서 단꿈이 시나브로 사라질 무렵에 아들 번룽군이 태어나는 등 비교적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성격이 난폭해졌다.“아들 번룽을 자주 때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루라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날이 없었죠.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일은 이웃 주민들과 싸우는 거예요.” 진담반,농담반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아들을 데리고 집을 떠나겠다.”고 여러번 ‘협박’했지만 아내의 태도가 변하는 기색이 별로 없었다.말이 그렇지 부부가 헤어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인가. 1998년,아들 번룽군이 13살이 되던 해였다.밖에서 놀다온 아들이 국수가 먹고 싶다고 양씨에게 졸랐다.양씨는 아내에게 국수를 좀 사오라고 했는 데도 가지 않는 바람에 부부싸움을 대판 벌였다.사실 이전까지 아내와 성격 차이로 이혼할 결심을 하고 4차례나 사표를 썼으나,회사측에서 양씨가 워낙 성실한 덕분에 반려된 상태였다. 이제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아버지 양씨는 다시 탄광회사로 찾아가 “사표를 받든 안받든 상관없이 떠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자,회사측에서도 할 수 없이 사표를 받았다.짐을 챙긴 그는 22년 동안 청춘을 바친 탄광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번룽군의 학교로 찾아가 퇴학시킨 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무작정 ‘가출’을 했다.이들 부자는 원래 고향으로 되돌아가 살려고 고향을 찾았으나 옛날 집은 여동생이 이미 팔아버려 머물 곳이 없었다. 이때 갑자기 탄광 생활을 하면서 한 두차례 가본 적이 있는 안순시 외곽의 깊은 산속 동굴이 떠올랐다.안순시에 도착해 아들과 함께 동굴에서 혈거 생활에 들어갔다.하지만 그의 행탁에는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서 아버지 양씨는 아침 일찍 산을 나서 거리를 다니며 고물을 수집해 판 돈으로 아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근근히 연명하면서 살아가고 있다.이렇게 생활해온 것이 자그만치 9년,13살짜리 어린 소년은 22살의 성인으로 성장했다. 아버지 양씨는 “번룽이 다 큰 만큼 결혼을 시켜야 하는데 모아놓은 돈이 없어 걱정”이라며 “앞으로 한푼두푼 모아 번룽이 결혼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서울 자랑거리·옥에 티 찾아라

    ‘서울의 자랑거리, 서울의 옥에 티를 찾아라.’ 서울시는 17일부터 홈페이지(seoul.go.kr)에 자랑할 만한 서울의 멋이나 고쳐져야 하는 서울의 결점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서울의 자랑거리’와 ‘옥에 티’ 코너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이 코너는 지난해 말 서울시가 진행한 ‘천만상상 오아시스’의 시정 아이디어 중 양희순(50)씨가 제안한 ‘옥에 티 찾기’를 보완한 것이다.양씨는 “세계인이 찾는 ‘명품 서울’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울의 결점을 찾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서 “카메라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결점을 찍어 자유롭게 공유하는 코너를 만들자.”고 제안했다.서울시는 여기에 자랑거리를 함께 알리는 콘텐츠를 추가했다. 서울시는 빠르고 정확한 개선이 필요한 ‘옥에 티’ 코너는 전자민원 처리절차에 따라 소관부서,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답변을 처리·공개하고, 신고내용에 대한 처리사항을 이메일, 휴대전화 문자서비스 등으로 통보할 방침이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서울 자랑거리·옥에 티 찾아라

    ‘서울의 자랑거리, 서울의 옥에 티를 찾아라.’ 서울시는 17일부터 홈페이지(seoul.go.kr)에 자랑할 만한 서울의 멋이나 고쳐져야 하는 서울의 결점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서울의 자랑거리’와 ‘옥에 티’ 코너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이 코너는 지난해 말 서울시가 진행한 ‘천만상상 오아시스’의 시정 아이디어 중 양희순(50)씨가 제안한 ‘옥에 티 찾기’를 보완한 것이다. 양씨는 “세계인이 찾는 ‘명품 서울’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울의 결점을 찾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서 “카메라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결점을 찍어 자유롭게 공유하는 코너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서울시는 여기에 자랑거리를 함께 알리는 콘텐츠를 추가했다. 서울시는 빠르고 정확한 개선이 필요한 ‘옥에 티’ 코너는 전자민원 처리절차에 따라 소관부서,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답변을 처리·공개하고, 신고내용에 대한 처리사항을 이메일, 휴대전화 문자서비스 등으로 통보할 방침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탐사보도-법따로 현실따로 (2)] 4000만원 딱지 두달새 두배로… “없어 못팔아”

    [탐사보도-법따로 현실따로 (2)] 4000만원 딱지 두달새 두배로… “없어 못팔아”

    ■ 판교 신도시 ‘묻지마 투기’ 현장 ‘판교 로또’라고 불리면서 지난해 투기 광풍에 가까운 투자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판교의 겨울은 적막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9일 찾은 판교는 제2의 투기열풍이 불면서 내홍을 예고하고 있었다. 판교 신도시는 불법성 거래가 성행하는 투기의 온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상가 딱지는 없어서 못 판다.6월이면 값이 두 배로 뛸 텐데 누가 팔겠느냐.”고 말했다. 판교에서 처음 찾은 A부동산중개업소 이모씨는 “4000만∼5000만원에 거래되던 딱지가 최근 두 달 사이에 8000만원으로 올랐다. 원주민 대상자들 70∼80%가 이미 다 팔아 넘겨 매물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가 딱지를 10여개씩 물건 사듯 싹쓸이하는 사람도 봤다.”고 전했다. 상가 입찰우선권인 상가 딱지는 오는 6월 대상자로 확정되기 전에는 잠재적인 권리일 뿐이다. 그래서 ‘물딱지’라고도 불린다. 이런 허점을 노려 물딱지를 중복해서 팔고, 심지어 이중삼중으로 팔아넘긴 사례도 나온다.B부동산중개업소 오모씨는 “아직 등기를 확인할 수 없으니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딱지 하나를 4명에게 속여 팔았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양도소득세를 편법으로 해결하는 아이디어도 나온다.C중개업소 관계자는 “대부분 상가 딱지를 거래한 값이 8000만원이라면 양도세 부담까지 포함된 것”이라고 말했다. 팔아넘긴 원주민은 차익의 50%를 양도소득세로 내야 하지만 매입자 부담으로 떠넘기는 것이다. 양도세를 얼마나 내야 할지 모르는데도 양도세를 500만원에 해결해 주겠다고 나서는 부동산도 있다.D중개업자는 “매매가격을 1000만원으로 후려치는 ‘다운 계약서’를 작성해 양도세를 500만원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판교 주변의 백현동·궁내동에는 상가조합이 난립해 있다. 거리 곳곳에는 조합원 가입을 권하는 플래카드들로 어지럽다. 조합들은 확성기 차량은 물론 지역신문과 지역 케이블 TV에 광고까지 내면서 치열한 유치전을 벌인다. 딱지를 많이 모아야 대규모 상가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E상가조합은 조합 가입 조건으로 토지매입비와 건축비 대납이란 약속을 내걸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상가 딱지는 말 그대로 분양권일 뿐, 진짜 상가를 분양받으려면 부지도 사야 하고 건물도 지어야 하는데 여기에만 최소 1억 5000만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면서 “부담이 될 테니 추가부담금을 조합에서 부담하겠다.”며 조합 가입을 부추겼다. F상가조합의 얘기는 달랐다. 관계자는 “일부 조합에서 공짜로 주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말도 안 된다.”면서 “비용을 대납하고 8평짜리 상가를 주겠다고 하는데, 자세히 뜯어보면 불리한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을 ‘최대 규모’라고 내세운 G상가조합은 “무조건 조합원이 많아야 좋다.”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조합원 수백명이 모이면 건물을 여러 층 지을 수 있고, 용적률에 따라 이익을 낼 수 있다. 그러면 토지매입비를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다.”며 가입을 권했다.H조합은 16평짜리 상가를 주겠다고 약속했고,I조합은 수익의 50%를 조합원에게 돌려주겠다는 조건을 내거는 등 조합들은 조합원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 ‘상가 딱지’ 중복 계약 확인 사실상 불가능 “정식 계약이 체결되고 나면 피 튀기는 한 판 싸움이 벌어질 거요.” 판교 부근 백현동의 K조합에서 만난 원주민 대상자인 김모씨는 “이 조합, 저 조합에 동시에 가입한 사람도 많고 조합끼리 멱살잡이하는 모습도 가끔씩 목격할 수 있다.”며 판교 상가 딱지가 몰고 올 엄청난 후유증을 우려했다.‘피 튀기는 한 판’이 가시화되는 시점은 오는 6월쯤이 될 전망이다. 그때쯤에는 주택공사·토지공사·성남시 등 3개 공동시행처가 상가 딱지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원주민 상가 딱지 대상자 개인이 아닌 그들로 구성된 조합이 계약 대상이다. 계약을 치르고 나서 원주민 대상자가 상가 딱지를 중복 계약한 게 드러나면 원주민 대상자와 매입자간 분란이 빚어질 게 뻔하다. 한 번 전매를 허용했기 때문에 딱지 매입자들은 원주민 대상자에게 자신의 명의로 이전을 요구할 테고, 이 과정에서 많게는 3중4중으로 중복 판매한 사실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S부동산 관계자는 “조합과 시행처간 정식 계약이 체결되고 나면 실제 권리를 가리려는 법정 분쟁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원주민 대상자들의 조합 중복가입이다. 토공 관계자는 “중복 가입으로 드러나면 조합은 상가 용지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1개 이상의 조합에 중복가입한 원주민 대상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해당 조합은 시행처와 상가 택지 분양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조합들간 무더기 소송은 불 보듯 뻔하다. 조합은 원주민 대상자들로부터 다른 조합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각서를 형식적으로 받고 있기는 하지만 중복 계약 여부를 확인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주민 대상자들과 조합들 간의 분쟁 가능성도 있다. Q상가조합 조합장은 “조합 운영비만 한 달에 3000만원 이상 막대하게 들어간다.”면서 “벌써부터 시행사에서 빌려쓴 빚 독촉으로 잠적한 조합 임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 “불법매매 우린 몰라” 손놓은 공공기관 양모(32·여·회사원)씨는 원주민 대상자인 친척을 대신해 판교 상가딱지 매매가 문제가 없는지를 알기 위해 한국토지공사·성남시와 함께 판교 신도시 개발의 3대 시행사의 하나인 대한주택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주공의 판교사업단 직원 P씨는 판교의 상가 딱지 거래가 불법이 아니냐는 질문에 “지금 권리를 파는 것에 대해서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막말로 우리가 알 바 아니다.”라면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 양씨는 토공의 판교사업단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대답은 마찬가지.“사겠다는 사람과 약속을 해서 돈을 주고 받는 것이 나중에 도움이 될지는 본인 스스로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는 답변을 들었다. 성남시도 “대상자 확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체도 없는 생활대책용지 권리증 불법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문은 몇번 들었고 나중에 사기피해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수사기관이 할 일이지, 행정기관에 문의할 게 아니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 신도시 기획팀 관계자도 문제점을 알고는 있지만 개인간 약속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기획탐사부 이창구 강혜승 유지혜 박지윤기자 tamsa@seoul.co.kr
  • 시민들 맨손으로 ‘흉기강도’ 잡고 지하철선 소매치기 검거 도와

    시민들의 용기로 흉기를 휘두르는 강도와 소매치기단이 잇따라 붙잡혔다. 지난 8일 오후 7시30분쯤 서울 노원구 월계동 한 휴대전화 대리점에 오모(32)씨가 손님으로 가장하고 들어가 주인 왕모(28)씨의 손발을 끈으로 묶고 현금 76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때 길 건너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양모(46)씨와 길을 지나던 권모(48)씨가 200m가량 뒤쫓았고 골목길에 들어선 오씨가 갑자기 돌아서 흉기를 휘두르자 격투가 벌어졌다. 양씨와 권씨는 상처를 입었지만 흉기를 빼앗고 오씨를 제압했다. 오씨는 특수강도죄로 복역한 뒤 작년 8월 말 출소했다. 양씨는 “‘강도야’라는 소리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범인을 쫓아갔다.”면서 “흉기를 휘둘러 겁도 났지만 다른 시민이 함께 강도에 대항하고 있다는 생각이 힘이 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10일 서울경찰청에서 포상식을 열고 양씨와 권씨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시상하고, 각각 100만원씩의 신고보상금을 줄 예정이다. 지하철에서도 시민들이 경찰을 도와 3인조 소매치기단을 검거하는 데 일조했다. 서울지하철 경찰대에 따르면 9일 오전 10시5분쯤 서울지하철 1호선 인천방면 전동차를 탄 배모(32)씨는 노약자석에 앉은 김모(45)씨 등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세며 “돈이 얼마 없네.”라고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배씨는 김씨 등이 꺼낸 지갑이 여성용 손지갑이며 이들이 신문지를 펴 앞을 가린 채 돈을 세는 점을 수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 등이 갖고 있던 지갑은 이들이 지하철에 타기 전 시내버스 안에서 정모(46·여)씨의 가방에서 ‘슬쩍’한 손지갑이었으며, 지갑 안에는 약속어음 180만원과 수표 100만원 등이 들어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김씨 등을 검문하려 하자 이들은 격렬히 저항하며 도망가려 했고, 경찰과 배씨는 주위에 있던 승객 5∼6명의 도움으로 이들과 약 10분간 몸싸움을 벌인 끝에 검거에 성공했다. 경찰은 김씨 등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제2대사관녀’ 파문 번지나

    지난 1975년 동해상에서 납북된 어선 ‘천왕호’의 선원 최욱일(67)씨가 31년 만에 북한을 탈출, 중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씨가 귀국을 위해 중국 선양(瀋陽) 한국총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영사관 직원들이 무책임한 태도로 응대한 것으로 드러나 ‘제2의 대사관녀’ 파문이 일고 있다. 납북자단체 관계자는 4일 “1975년 8월 납북된 천왕호 선원 최씨가 지난해 12월 북·중 국경을 넘어 현재 중국 옌지(延吉)시에 머무르고 있다.”면서 “통일부와 선양영사관에 이 사실을 알려 신변 안전과 조속한 귀환을 요구한 상태”라고 밝혔다. 남편의 탈북소식을 들은 남한에 있던 최씨의 부인 양정자(66)씨는 지난달 31일 중국에서 31년 만에 남편을 만나고 지난 3일 귀국했다. 양씨는 “남편은 함북 김책시 풍년리 농장에서 일했다고 했다.”면서 “남편은 가지고 간 자식들의 사진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으며, 나도 남편과 보낸 사흘 동안 한평생 흘린 것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다.”며 최씨가 조속히 입국하도록 정부가 조치해줄 것을 호소했다. 한편 최씨 부부가 귀국을 위해 선양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영사관측이 불친절한 태도로 일관한 것으로 밝혀져 영사관 직원들의 근무기강 해이가 또다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1998년 탈북 국군포로의 도움 요청을 주중 한국대사관 여직원이 쌀쌀맞게 거절했던 이른바 ‘대사관녀’ 파문 이후 같은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최씨 부부는 지난 2일 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귀국문제를 도와 달라고 했으나 영사관 직원은 “납북자 문제는 다뤄본 적이 없다. 한국 정부에 전화하라.”는 등의 말만 반복하며 수차례 전화를 돌렸으며, 탈북자 담당부서 직원은 “내 휴대전화 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 누가 가르쳐 줬느냐.”며 오히려 최씨를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홈페이지 등에는 “외교부는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 최씨를 빨리 데려 와라.”는 성토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이날 오후 홈페이지에 아태국장 명의의 사과문을 올려 “영사관 직원이 불친절하게 응대해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비슷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재외공관의 업무 태세를 철저히 점검할 것이며, 최씨가 조속하고 안전하게 귀국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전북도, 유령회사와 골프단지 추진 말썽

    전북도와 순창군이 부도와 세금 체납으로 폐업 처리된 ‘유령회사’와 2800억원대의 대규모 골프산업 클러스터 조성 사업을 추진해온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전북도는 지난 10월 골프용품 생산·판매업체 (주)랭스필드와 전주대학교, 순창군이 공동으로 2800억원을 투입, 순창군에 골프장과 골프용품 생산단지, 골프연구소 등이 들어서는 100만평 규모의 골프단지조성사업 협약을 맺었다. 협약에서 랭스필드는 외부 투자자를 유치해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으며 도와 순창군은 행정지원 및 기업유치를, 전주대학교는 연구소 설립을 각각 맡기로 했다. 그러나 이 업체는 2001년 부도가 난 뒤 이듬해 국세청으로부터 직권 폐업된 것으로 밝혀졌다.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시된 체납액만 21억 6200만원이고 전체 체납액은 43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도와 순창군 등은 실체도 없는 유령회사에 사업의 핵심 역할을 맡기고 그동안 일을 추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사의 사업주 양모씨는 지난 2004년 차명으로 아이랭스필드(주)로 상호를 바꿔어 법인을 설립했으나 자본금이 겨우 5억원에 지나지 않고 대규모 투자사업을 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새로운 법인 대표이사로 장인의 이름을 올려놓고 자신은 이사로 등재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양씨가 골프장 건설에 필요한 부지 가운데 일부만 매입하고 인접해 있는 국·공유지를 헐값에 사들여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거창한 사업계획을 발표했고, 자치단체는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순창군 골프장 건설 저지 대책위원회’는 20일 “도와 순창군이 일개 골프사업자에 현혹돼 최소한의 사전 점검도 없이 일을 추진하면서 주민갈등과 불신을 확산시키고 있다.”며 도민들에 대한 사과와 사업 철회를 요구했다. 한편 전북도는 “이 회사의 사장이 이후 5억원의 자본금을 들여 다른 상호로 새로운 회사를 설립, 영업을 하고 있는 만큼 큰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도 관계자는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만 이 회사 및 경영자의 노하우와 열정, 기술력을 높이 평가해 사업 주체로 결정했다.”며 “이 업체는 별도의 법인을 구성, 투자자를 모집하는 역할을 주로 하는 만큼 자본금 규모 등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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