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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신기증 꿈이었는데… ‘쪽방’ 기초수급자 사망 일주일만에 발견

    15년간 쪽방에서 혼자 살아온 50대 기초생활수급자가 숨진 지 1주일여 만에 발견됐다. 부산 중부경찰서는 중구 대청동의 한 다세대주택 쪽방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양모(57)씨가 숨진 것을 지난 15일 발견했다고 20일 밝혔다. 당시 양씨의 시신은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으며 켜진 전기장판 위에 엎드린 채 발견됐다. 시신 상태로 보아 숨진 지 최소 1주일이 지났으며 급성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양씨의 휴대전화에는 1월 19일자로 “설날을 보내기 너무 어렵다. 제발 도와 달라.”며 지인에게 보낸 메시지가 마지막 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양씨의 쪽방 벽에서는 5년 전 작성한 유언장을 겸한 시신기증 서약서가 발견됐다. 유언장에는 ‘그동안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는 저에게 도와주신 것 죽어서도 잊지 않고 가겠습니다. 제가 죽으면 부산대의과대학으로 연락해주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양씨의 시신은 심하게 손상돼 지난 19일 화장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제주 해군기지’ 청문회 입장차만 확인… 22일 재개

    제주 해군기지(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처분에 따른 청문이 20일 제주도청에서 열려 제주도와 해군이 공사 정지 사유 등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제주도는 해군 측의 소명이 부족한데다 검토와 질의가 필요하다며 22일 추가 청문을 열기로 했다. 비공개로 열린 청문에서 제주도는 해군이 ‘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해군기지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 처분을 예고한 사유를 설명하고 해군 측의 소명을 들었다. 제주도는 정부가 지난달 해군기지 건설 추진을 재확인하면서 크루즈선의 안전한 입·출항을 위해 항만 내 서측 돌출형 부두를 고정식에서 가변식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공유수면 매립공사 실시계획의 중대한 변경이 수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2009년 4월 제주도지사와 국방부장관, 국토해양부장관 등 3자가 15만t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는 해군기지를 건설하기로 한 협약에 대한 확실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진행하는 것도 공유수면 관리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해군 측은 돌출형 부두를 고정식에서 가변식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설계변경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공사 정지 사유는 될 수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방부가 실시한 크루즈 선박·조종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하며 15만t급 크루즈선이 입·출항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도 이대영 규제개혁법무과장은 “15만t급 크루즈 선박 2척 동시 접안 여부 등에 대해 해군 측의 추가 소명이 필요하다.”며 “추가 청문을 거쳐 청문 내용과 관련법 등을 검토해 공사 정지 명령 처분을 내릴지 여부를 최종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문에는 해군 측에서 당사자인 해군참모총장을 대리해 해군 전력부 전력부장, 기지발전과장, 군수·시설법제담당 등이 참석했다. 청문이 열리는 동안 강정마을 주민과 반대단체 회원 등은 제주도청 주변에서 해군기지 공사 중단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한편 제주지방법원 형사2단독 김경선 판사는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벌이다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영화평론가 양윤모(56)씨에 대해 보석을 허가했다. 양씨는 지난 2월 7일 제주교도소에 수감된 이후 소금과 물만 마시며 옥중 단식농성을 벌여왔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양반이 된 노비 후손 2세기에 걸친 신분세탁

    양반이 된 노비 후손 2세기에 걸친 신분세탁

    조선시대 양반은 특권유지를 위해 어떤 전략을 썼을까. 하나는 ‘행정실무를 담당한 아전·향리들을 중간신분으로 격하’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자를 차별’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누를 수 없는 게 특권에 대한 열망이다. 재산을 모은 노비가 양반 신분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사학계에서 이를 주로 19세기 멸망사로 연결짓는다. 국가재정의 파탄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지도층의 무능을, 엄격한 신분질서가 흔들렸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사회의 혼란상을 나타내는 징표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욕망이 강렬했던 것으로 본다면 어떨까. 역사비평 2012년 봄호에 실린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논문 ‘양반을 향한 긴 여정-조선 후기 어느 하천민 가계의 성장’은 이 점을 잘 요약해서 보여준다. 권 교수가 이 글에서 규명하는 것은 ‘수봉’이라는 한 사노비의 후손들이 17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을 거쳐 ‘김해 김씨 양반가’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권 교수는 단성현 도산면, 그러니까 지금 경남 산청군의 일부 지역에 살았던 ‘김흥발’에서 시작한다. 1678년 사노비 문건에 수봉이 등장한다. 이때는 성도 본관도 없다. 1717년 족보에는 수봉의 아들로 김흥발이 등장한다. 1678~1717년 사이에 사노비 신분에서 해방된 수봉이 김씨 성을 획득한 것이다. 곡식을 바쳐 면천하는 납속종량(納粟從良)의 방법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수봉은 왜 수많은 본관과 성씨 가운데 김해 김씨를 골랐을까.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인구 수가 많아 익숙한 것’을 골랐으리라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터 잡은 대표적인 양반 성씨가 밀양 박씨와 남원 양씨였다는 점이다. 그들 성을 끌어다 쓰다가는 곤란할 것 같으니 ‘가장 흔하면서도 신분적 장벽이 높지 않았던 김해 김씨를 자신의 성관으로 선택’한 셈이다. 실제 이 시기 단성현 호적 조사 결과를 보면, 김해 김씨는 늘어나는 추세가 뚜렷한데 밀양 박씨와 남원 양씨는 증가세가 딱히 드러나지 않는다. 수봉뿐 아니라 다른 면천 노비들도 두 성씨를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제일 편한 성씨를 골랐다는 의미다. 그러나 아직은 평민이다. 김수봉의 집안은 이후 양반에 도전한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김수봉의 증손자 김광오다. 김광오는 1780년 양반들이 독점했던 ‘유학’이란 호적상 직역에 제일 먼저 진출했다. 그 덕분에 수봉의 부인도 이‘소사’(召史·이름 없는 여염집 아낙네)에서 이‘성’(姓), 다시 이‘씨’(氏)로 자꾸만 높아진다. 김광오는 1783년 다시 중간층의 교생으로 강등되지만 19세기 중엽 이후에는 후손들이 유학 직역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양반되는 데 ‘2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들인 셈인데 이는 ‘그들의 뿌리가 노비로 연결되기 때문에 급속한 성장을 이루기에는 그만큼 시간적 물리적 조건을 충분하게 갖추지 못했던 데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평탄했을 리 없다. 대표적인 예가 김성종이다. 그는 1825년 본관을 김해에서 안동으로 바꾸면서 사는 곳도 도산면에서 신등면으로 옮긴다. ‘안동 김씨가 당시 중앙 집권세력이었다는 점’, ‘신등면이 도산면과 달리 대표적인 양반촌’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성종의 이런 행동은 이제 명실상부한 양반가의 반열에 올라서겠다는 야심찬 도전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은 1831년 도산면으로 되돌아오고 본관도 김해로 환원한다. 쓰디쓴 실패다. 오늘날 양반이라면 엄격한 신분체계로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지역 명망가들의 사교클럽’(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교수)에 더 가까웠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호적상 양반임을 내세워 실제 양반 행세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은 후손들의 족보에서 1831년 양자가 처음 등장한다는 점이다. 양자 입양은 양반 가문에서 부계질서 위주의 가계계승을 위해 썼던 방법이다.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양반층의 문화를 따라하고 베끼는 것을 넘어서 ‘양반층의 문화를 부분적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짐작게 해준다. 이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독일 철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을 통해 문명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계기로 상층계급에 대한 모방과 내면화 과정을 들었다. 마찬가지로 조선이 망하면서 사라졌다고 여긴 양반에 대한 동경과 욕망은, 여전히 우리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권 교수도 “모방행위는 신분적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로부터 시작됐지만, 누구나 양반이 될 수 있었던 근대사회로 서서히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이 그러한 노력을 중단할 수 없게 됐다.”고 결론짓는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라미드서 받은 수임료 중 5000만원 박 의장측 압수수색 직후에 돌려줘

    박희태 국회의장 측이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직전 라미드그룹에서 받은 수임료 2억원 가운데 5000만원을 최근 되돌려준 사실이 확인됐다. 또 조정만(51)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의 가족 계좌에 전당대회 이후 박 의장 지역구의 방산업체가 1억원 상당을 입금한 정황도 포착됐다. 전대 당시 박희태 후보 캠프의 돈 흐름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돈 봉투를 받은 다른 의원들이 밝혀질지 주목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13일 라미드그룹에 대한 압수수색 4일 뒤인 지난달 31일 박 의장의 변호사사무실 사무장인 허모씨가 직접 라미드그룹에 5000만원을 반환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라미드그룹은 2008년 2월 박 의장 측에 소송 수임료로 1000만원짜리 수표 10장을 건넨 뒤 3월에 다시 5000만원짜리 수표 2장을 줬다. 1000만원짜리 수표 5장은 캠프 재정 담당인 조 수석비서관과 회계담당자에게 전달돼 전당대회 직전인 6월 현금으로 인출됐다. 또 허씨는 자신이 보관하던 5000만원짜리 수표 2장 가운데 1장은 지난해 11월 현금으로 바꿔 서랍에 넣어뒀다. 허씨는 검찰조사에서 “결혼식 축의금으로 받은 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허씨가 검찰조사 이후 라미드그룹 측에 돈을 반납한 경위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또 조 수석비서관이 전대 직전인 2008년 6월부터 최근까지 경남 양산의 한 방산업체로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모두 1억원을 받은 정황을 잡고 돈의 성격을 캐고 있다. 이미 조 수석비서관의 동생이 돈이 입금된 즉시 현금으로 찾아간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전대 당시 박 의장의 10층 캠프 사무실 임대료 340여만원을 대납한 사업가이자 한나라당 전 당협위원장 양모(58)씨 등 2명에 대해서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양씨는 검찰에서 “자발적으로 박 의장을 돕기 위해 사무실을 빌린 것일 뿐”이라면 “다른 캠프 인사들과는 무관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중견 탤런트서 경기민요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 변신 양금석

    [김문이 만난사람] 중견 탤런트서 경기민요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 변신 양금석

    국민성과 민족성이 담겨 있다. 어버이에서 자식으로, 다시 손자로 이어진다. 대체로 악보는 없다. 노동과 상여 등 일상의 사설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가락이 향토적이고 소박하다. 하여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문제 1 경기민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답 서울, 경기도, 충청도 등 중부 지역의 민요다. 노랫가락, 경복궁타령, 방아타령, 한강수타령, 창부타령, 청춘가, 양산도, 닐리리야, 노들강변, 태평가 등이 있다. 흥겹고 경쾌한 맛을 풍기며 부드럽고 유창하다. 문제 2 그렇다면 서도민요는? 답 평안도, 황해도 주변 지역에서 불리는 민요다. 황해도의 산염불, 난봉가, 몽금포타령, 해주아리랑과 평안도의 긴아리, 배따라기, 수심가 등이 서도민요에 속한다. 문제 3 남도민요는? 답 전라도, 충청도 남부, 경상도 서남부 지역에서 불리는 민요다. 육자배기, 농부가, 진도아리랑, 화초사거리, 보렴, 새타령, 흥타령, 개고리타령 등이 있다. 문제 4 한 가지 더, 제주도민요는? 답 당연히 제주도 지역에서 불리는 민요다. 오돌또기, 이야홍, 이어도사나 등이 제주도민요에 속한다. 중견 탤런트 양금석씨는 요즘 팔도 민요에 푹 빠졌다. 경기민요는 물론 서도민요, 남도민요, 제주민요까지 열심히 익히고 닦고 있다. 특히 경기민요는 이춘희(중요무형문화재 57호) 선생의 이수자로 인정받을 만큼 전문 소리꾼에 버금가는 실력까지 갖췄다. 연극배우에서 탤런트, 영화배우, 그리고 가수에 이어 우리 전통 민요를 부르는 소리꾼까지 폭넓은 인생을 살고 있다. 특별히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민요가 좋아서 소리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래도 까닭이 있을 터.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찻집에서 양씨를 만났다. 청바지에 검은 재킷 차림이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나이가 30대 후반으로 보인다고 하자 “정말요?” 하며 미소짓는다. 평소 옷차림에 대해 물었더니 “가꾸고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잠시 그의 연기 이력을 생각했다. 1981년 연극배우로 발을 들여놓았으니 올해로 31년 세월을 맞는 셈이다. 1989년 서울연극제 신인상을 받으면서 TV드라마에 출연해 특유의 카리스마를 갖춘 연기자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까지 드라마 50여편, 영화 5편 등에 출연했다. 특히 1997년에는 신곡 5곡을 포함한 첫 음반을 내면서 숨어 있던 노래 실력까지 드러냈다. 최근에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경기민요 이수자로 소개돼 주목을 끌었다. 사실 양씨는 그동안 개인 발표회만 세 차례나 했을 정도로 프로 못지않은 소리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의 스승인 이춘희 선생은 “재주가 남다르다. 얼마든지 무대에 서도 하자가 없다. 숨은 실력을 가지고 있고, 본인이 하기에 따라 더 많이 발전할 것이다. 충분히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그러자 양씨는 “요즘 (스승님을) 뵙지도 못했는데….”라며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어떤 계기로 민요를 배웠는지 궁금증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습니다. 안비취(1926~1997) 선생이 TV에 나와 경기민요 부르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가톨릭 집안인 데다 보수적인 분위기여서 선뜻 소리하고 싶다는 말을 못 꺼냈습니다. 그러던 1997년 김성녀씨와 연극 공연을 같이 할 때 분장실에서 소리하고 싶다는 말을 했더니 그 자리에서 경기민요를 권하더군요. 그래서 무작정 이춘희 선생한테 찾아가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3개월 동안 열심히 배우다가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에 출연하면서 잠시 멈췄다. 이때 그는 삼류 가수 역할을 맡았고 드라마가 끝날 무렵 가수 설운도씨가 작사, 작곡한 ‘파랑새’ 등이 포함된 ‘메모리’라는 제목의 음반을 냈다. 이 가운데 ‘남자의 향기’와 ‘파랑새’는 지금도 노래방에서 불리고 있다. 양씨는 음반을 낸 후 드라마 출연으로 바쁘게 지내다가 2005년 다시 경기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그때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고 어떤 돌파구가 필요했다. 소리가 다시 생각났다.”면서 “잠잘 때에도 민요를 들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술회했다. 하루 5~6시간씩 꼼짝하지 않고 앉아 소리하는 재미에 푹 빠졌던 것이다. “소리를 하다 보니 저절로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마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소리는 끝이 없습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새로움을 느끼고 점점 몰입을 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하나둘씩 찾아가는 재미를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눈뜨면 제가 부른 민요를 듣고, 운전할 때도 듣고, 저녁에 잠잘 때도 귀에 (녹음기를) 틀어놓곤 했지요.” 그러던 2009년 10월 서울 중구 남산국악당에서 처음으로 개인 발표회를 했다. 1시간 30분 이상 경기민요 위주로 꾸며졌던 무대는 당초 걱정했던 것보다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듬해 6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경기민요 12잡가 중 6잡가를 발표하는 무대를 가졌고, 다시 5개월 뒤 남산국악당에서 경기민요와 서도소리를 혼합한 개인 발표회를 열면서 소리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서도소리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씩 명창 김광숙 선생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잠시 망설이더니 “살다 보니 종합적으로 삶의 무게가 무거웠다. 연기를 하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그런 것이 있었는데 소리를 찾고 무대에 서다 보니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소리가 좋다. 경기민요가 내게 맞는 것 같다. 귀가 밝은 편이고 다른 사람보다 (소리 배우는 것이) 빠르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웃는다. 개인 발표회뿐만 아니라 KBS 인기 프로그램 ‘열린음악회’ ‘가요무대’ ‘국악 한마당’ 등에도 출연할 만큼 그를 부르는 곳도 점점 많아졌다. “경기민요는 화려하고 경쾌합니다. 반면 서도소리는 내면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지요. (서도소리는) 경기민요처럼 대중성은 없지만 깊은 맛이 있습니다. 서도소리의 예술성과 경기민요의 대중성이 합쳐지면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루지요.” 소리의 매력을 흠뻑 느낀 그는 내친김에 요즘 남도민요와 제주민요까지 익히고 있다. 말 그대로 팔도 민요를 섭렵하는 셈이다. 이 정도면 제자는 없을까. 양씨는 웃으면서 “아직도 배우는 입장인데요, 뭐.”라고 하더니 “드라마 ‘산 넘어 남촌에는’에서 마을 이장으로 나오는 황범식씨가 소리에 관심이 많아 ‘강원도아리랑’과 ‘정선아리랑’을 부른 녹음테이프를 선물했더니 계속 그것만 듣는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수준, 그러니까 소리 공부를 80%까지 했다고 생각될 때 음반도 내고 공연도 계속하고 그럴 계획입니다. 상업 목적이 아니라 공부의 한 차원으로, 흉보지 않을 사람들만 초청하는 그런 무대이지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입니다. 연기로 버는 돈을 몽땅 소리에 투자하고 있지요(웃음).” 양씨는 민요를 하면서 북을 동시에 배웠다. 처음에는 승무북을, 지금은 삼고북을 익히고 있다. 고요한 승무북과 역동적인 삼고북을 느끼면서 또 다른 국악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올 연말 공연에서는 북춤까지 곁들여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벌써 연기 생활한 지 31년이 됐네요. 연기와 소리 모두 힘든 일이긴 하지만 소리 한 곡엔 책 한 권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무척 재미있습니다. 또 소리를 하다 보면 저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고나 할까요. 소리를 안 했으면 아마 그림을 했을 겁니다. 언젠가는 그럴지도 모르지요.” 연기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KBS 사극 ‘대조영’의 측천무후 역할”이라고 말했다.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 자신의 카리스마를 잘 담아내서 그런 것 같다고 해석했다. 연기자가 꿈이었냐고 묻자 “어렸을 때는 영화배우가 멋있었다. 영화배우랑 결혼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이보다 젊어지는 비결에 대해서는 “가끔 청계산 등산을 하고 복식호흡 하는 것 외에 별다른 운동은 안 한다.”고 했다. 신상에 대해 얘기가 나온 김에 인생의 동반자는 언제쯤 찾게 될 것인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연스럽게 운명적으로 다가오면 좋은 인연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나이가 있는 만큼 멀리 있지 말고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네요(웃음). 이상형이라고 굳이 얘기하자면 존경할 만한 사람, 그리고 저를 지켜봐주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면 되겠지요. 지성과 야성, 유머를 갖춘 사람이면 더 좋겠죠. 주변에서 가끔 소개를 받고 그러긴 하는데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앞으로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소리에 관심이 있었고, 내가 알고 있는 소리의 세계에 어느 정도 근접했을 때 그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전달해주고 싶다.”며 후배 양성에 대한 관심을 내비쳤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양금석은 충남 아산에서 1961년 태어났다. 영화배우와 가수의 꿈을 갖고 자라 1981년 연극계에 입문했고 1989년 서울연극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1년 SBS 드라마 ‘마늘’을 통해 탤런트로 데뷔했다. 그러는 한편 다수의 연극에 출연하며 연기의 깊이를 쌓았다. 특히 1995년 출연한 뮤지컬 ‘넌센스’는 장기간 흥행 기록을 세웠다. 1990년대 후반 들어 많은 드라마에 출연했고, KBS연기대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인정받았다. 1998년 KBS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에서 밤무대 가수로 출연해 평범하지 않은 노래 실력을 자랑했고 드라마가 끝날 무렵 음반을 발표하며 가수 활동까지 했다. 이후 드라마 ‘금쪽같은 내 새끼’와 ‘대조영’ ‘너는 내 운명’ 등에 출연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농촌드라마 ‘산 너머 남촌에는’에서 자신의 일보다 집안을 더 많이 생각하는 며느리 역할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 “장애보다 무서운 폭력… 개학이 두려워요”

    “장애보다 무서운 폭력… 개학이 두려워요”

    뇌병변장애 2급인 경기 D고교 2학년 명환(가명)이는 동급생들보다 3살이나 많다. 장애 탓에 입학도 늦었고 휴학도 잦았기 때문이다. 걷기조차 힘겨웠던 명환이가 꾸준한 재활 치료와 운동으로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기까지 12년이 걸렸다. 일반 고교를 택한 이유도 보다 당당해지기 위해서였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악몽 같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 명환이는 6일 개학일이 오지 않기를 바랄 정도다. 두려워서다. 1학년 때인 2010년 6월, 같은 반 근석이(18·가명)와 현수(18·가명), 옆반의 용훈이(18·가명)가 이유 없이 때렸다. 발걸기, 지팡이 뺏기로 시작된 괴롭힘은 관절을 집중적으로 구타하는 잔인한 폭행으로 이어졌다. 근석이와 현수는 명환이만 보면 주먹을 휘둘렀다. 화장실까지 쫓아와 지팡이를 빼앗았다. 체육시간에 반 아이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면 교실 문을 잠그고 때렸다. “자퇴하라.”고 협박했다. 담임교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선생님께 말해서 혼났다.’며 담뱃불을 손등에 들이대기도 했다. 자폐를 앓고 있는 같은 반 승준이를 윽박질러 명환이를 때리도록 시킨 적도 있었다. 5개월이 지난 11월, 명환이 엄마 양모씨는 얼굴이 노랗게 질려 집에 온 아들을 보고, 설득한 끝에 끔찍한 학교폭력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명환이는 “엄마까지 죽인다고 협박했다.”며 울었다. 뇌진탕, 다발성 타박성 요추부 염좌, 복장뼈 골절 등으로 12주 진단을 받았다. 양씨는 친구들과 교사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다. 명환이가 도움을 요청했던 담임 교사는 “(가해)아이들에게 물어 보니 안 때렸다고 하더라.”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명환이 가족은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의사표현이 서툰 명환이에게 오히려 74건에 이르는 폭행 일부가 “틀렸다.”며 캐묻고, 다그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양씨는 “경찰 측이 ‘무고’를 운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은 폭행사실만 인정하고 상해 혐의는 무혐의 처리했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의 의견과 달리 가해학생 3명에 대한 폭행과 공동 상해 혐의를 모두 받아들여 기소했다. 가해학생들은 지난해 11월 경기 안양시의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서 20일간의 위탁교육과 사회봉사명령을 받는 데 그쳤다. 학교도 가해학생들에게만 너그러웠다. 전학 요구는 묵살됐다. D고 교감은 “가해학생들도 장난 수준의 폭행은 인정했다.”면서 “명환이의 주장에는 과장이 있다.”고 주장했다. 학교로 돌아온 가해학생들은 명환이를 찾아가 “○○, 아직도 자퇴 안 했냐.”며 욕설을 퍼부었다. 명환이 가족은 학교와 가해학생들을 대상으로 손배배상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명환이의 고교생활은 아직 1년이나 남았다. 박건형·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조선왕실의궤·동의보감 등 15만여점 ‘살균소독’

    조선왕실의궤·동의보감 등 15만여점 ‘살균소독’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은 조선왕실의궤, 동의보감 등 장서각에 보관된 고전적(古典籍)이 해충 등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장서각 수장고 전체에 훈증 소독을 실시한다고 29일 밝혔다. 훈증 소독은 2월 6일부터 25일까지 20일간 진행된다. 이에 따라 장서각은 2월 13일부터 17일까지 폐쇄되며, 고문헌 원본 열람도 2월 6일부터 3월 2일까지 중단된다. 연기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자연대기를 하기 때문이다. 훈증 소독은 나무나 종이, 섬유로 된 문화재 소독 방법 중 하나이다. 침투성이 강한 약제를 밀폐된 공간에 가스 상태로 주입해 문화재에는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해충과 세균을 박멸한다. 한중연 대외협력팀 김은양씨는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서고별로 훈증을 한 적은 있지만 수장고 전체에 훈증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한국학자료센터(www.kostma.net)에서 자료열람이 가능하기 때문에 학문연구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장서각에는 조선왕실의궤와 동의보감 등 조선왕실 도서 9만여점을 비롯해 전국 43개 가문에서 기증·기탁한 자료, 수집 고서 등 15만여점에 이르는 조선시대 주요 문헌들이 보관돼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둘이 합쳐 215세…세계 최장수 부부, 비결은?

    두 사람의 합친 나이가 215세에 달하는 중국 부부가 ‘세계 최장수 부부’ 세계기록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광저우 일간지인 양청완바오가 26일 보도했다. 구이저우성 깊은 산골에 사는 양정종·진지펀 부부는 올해 각각 109세·106세에 접어들었다. 두 사람의 나이를 합치면 무려 215세에 달한다. 19세·17세 때 결혼해 89년간 2남4녀를 낳았으며, 큰 아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둘째 아들은 올해 61세이며 손자 14명, 증손자 10명 등 대식구를 이뤘다. 남편 양씨는 현재 거동이 약간 불편하지만, 두 사람 모두 흔한 노인성 질환도 앓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양씨 부부가 말다툼을 하거나 얼굴을 찌푸린 일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실제로 두 사람은 넉넉지 않은 생활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함께 작은 밭을 일구고 적은 음식이라도 나눠먹으려 서로를 위해왔다. 장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부인 진씨는 “그저 매일 일하고, 가족 모두 화목하며, 살면서 맞닥뜨리는 많은 일에 조급해하지 않고 마음을 편히 가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부부지간의 애틋함을 언급하자 “남편은 이제 귀도 어둡고 눈도 어두운데, 싸울 일이 어디 있겠냐.”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어 “사람이 살아있을 땐 일을 해야하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때에는 살 수 없는 것”이라며 힘주어 말한 뒤 “지금도 아침 일찍 일어나 집안일과 밭일 등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노인학회에서는 양씨 부부를 공식적으로 ‘중국 최장수 부부’로 인정하고, 더 나아가 세계 최장수 부부의 기록에도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학회 관계자는 “최근 영국의 105세·99세 부부가 ‘현존하는 최장수 부부’ 기네스 기록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면서 “결혼한 지 90년 가까이 된 데다 이들보다 나이가 많은 양씨 부부에게도 기록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신격호회장 외손녀부부 유통업에

    신격호회장 외손녀부부 유통업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41)씨 부부가 모두 유통업에 종사하게 됐다.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장씨의 남편인 양성욱(44)씨는 지난해 9월 ‘브이앤라이프’(V&Life)를 설립하고 본격 활동에 나섰다. 브이앤라이프는 외국 생활용품을 직수입해 판매하는 업체로 독일 알바트사가 출시한 유아용 고급 물티슈 ‘포이달’의 아시아 지역 독점 판매권을 확보, 새달부터 시중에 유통시킬 방침이다. 후속 제품으로 생리대를 비롯한 여성용 위생용품을 구상 중이다. 브이앤라이프는 우선 롯데마트와 롯데슈퍼 등 롯데 계열사의 유통 라인을 통해 제품을 공급한 뒤 점차 판매망을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유통업에 복귀한 장씨는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의 차녀로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롯데면세점과 백화점 등에서 활동하다 2007년 10월 양씨와 결혼한 후 한동안 경영 일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빵 제조와 유통, 와인 수입, 식당 등의 사업을 하는 ‘블리스’를 설립했다. 블리스는 베이커리 ‘포숑’을 운영하며 전국 롯데백화점 12곳에 매장을 두고 있다. 남편 양씨는 루이비통 아시아 지역 세일즈 담당 이사, 아우디코리아 상무로 재직했으며 한동안 블리스에서 감사로 활동하며 장씨의 일을 돕기도 했다. 한편 신영자 사장의 막내딸 장정안씨도 최근 그룹 계열사인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의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곽노현 교육감 16차 공판…강경선교수 “임무 완수해 기쁘다” 郭측에 문자

    곽노현(57) 서울시교육감의 후보자 매수 혐의 공판에서 강경선(58) 방송통신대 교수의 “임무를 무사히 완수해서 기쁘다.”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공소시효를 염두에 뒀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검찰은 ‘공소시효를 넘기려고 의도했다.’고 주장했지만, 곽 교육감 측은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맞받아쳤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형두) 심리로 열린 16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증인으로 출석한 곽 교육감 측 회계담당자 이모씨와 선대본부장 최갑수 서울대 교수, 박 교수 측의 특보 양모씨를 상대로 대질신문을 벌였다. 특히 공소시효를 알았는지, 이를 염두에 두고 박명기(53) 서울교대 교수를 만났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재판에서는 공직선거법상 공소시효 6개월이 만료된 12월 2일 이후에 강 교수가 곽 교육감 측의 이씨에게 보낸 문자가 논란이 됐다. 강 교수는 12월 5일 “임무를 무사히 완수해서 기쁘다. 나는 이제 손뗐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강 교수는 11월 중순부터 2~5일마다 수차례 박 교수와 만났고, 공소시효 문제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재판장은 “검찰은 ‘(강 교수가) 공소시효를 넘기려고 박 교수를 구스르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의심한다. 공소시효를 넘겨서 기쁘다는 뜻으로 주장한다.”고 곽 교육감에게 물었다. 곽 교육감은 “강 교수는 11월 말부터 박 교수를 도와줘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박 교수의 오해와 불신이 사라져서 사실상 일단락됐다는 뜻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강 교수가) 문자를 보낸 이후에 금액 문제를 협상한 것이 아니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곽 교육감은 “흐름에 따라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강 교수는 “박 교수의 오해는 풀었으니 돈을 전달해 주는 문제를 이씨에게 맡기고 싶어서 문자를 보낸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곽 교육감은 박 교수에게 2억원을 지급한 것에 대해서 “박 교수가 사퇴해서 준 것이 아니라, 사퇴해서 ‘파락호’가 돼 경제적으로 곤궁·궁핍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전 합의가 없었다면 부조 차원에서 진영에서 공개적으로 조직해 도와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 교수 측의 양씨는 “7억원으로 합의했다. 5억원 얘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곽 교육감 측의 이씨는 “5억원으로 합의하다가 마지막에 양씨가 ‘당선되면 7억원입니다’라고 얘기했다.”고 말했고, 박 교수도 “이기면 7억원, 지면 5억원이라고 보고받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재판장은 “이씨와 박 교수가 ‘되면 7억원, 안 되면 5억원’으로 얘기하는 걸로 봐서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고 정리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Weekend inside] 국민참여재판으로 11년 미제사건 매듭

    [Weekend inside] 국민참여재판으로 11년 미제사건 매듭

    2일 오전 10시 서울 동부지법 제1법정.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재판장의 입에 좌석을 가득 메운 피해자 가족들과 방청객들의 시선이 쏠렸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피해자의 소중한 생명을 무참히 빼앗고, 피고인들이 전혀 잘못을 뉘우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엄벌에 처함이 마땅하다.” 정적을 깨는 울림이 퍼지자 방청석에 있던 유족들은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피해자의 형은 “최소한 무기징역은 받아야 하는데….”라면서도 “지금이라도 동생 시신만 찾을 수 있다면 (피고인들에게) 더 관대한 처벌도 감수할 수 있다.”며 울먹였다. 11년간 미제로 남아 있던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의 피고인들은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동부지법 형사 11부(부장 설범식)는 이날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공판을 종합적으로 판단,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인 김모(46), 서모(49)씨에게 각각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사건 당시인 2000년 시행된 형법상 유기징역의 최고 형량이다. 앞서 공판과 동시에 무려 35시간 동안 이뤄진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 측의 치열한 공방을 지켜본 9명의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유죄를 평결했다. 공판과 국민참여재판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살인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을까.’라는 면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법정 공방도 뜨거웠다. 지난달 28일 재판 첫날 검찰과 변호인 측은 10시간 넘게 맞섰다. 29일 역시 밤 12시를 넘겨 다음 날 아침까지 25시간가량 재판이 이어졌다. 2008년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도입된 이래 24시간을 넘겨 재판이 계속되기는 처음이다. 재판부는 “시신과 명백한 살인 증거 없이도 공범자의 자백과 범죄 정황이 명확하다면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대 쟁점은 피고인 김씨와 서씨가 실제 공장 사장 강모(당시 49)씨의 살인 사건에 가담했는지였다. 2000년 11월 강원 평창군에서 비닐제조공장을 운영하던 사장 강씨가 살해된 뒤 11년이 지난 지금껏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 범행을 털어놓았던 공장 경비반장 양모(당시 59)씨도 자백한 지 8일 만인 지난 4월 위암으로 사망했다. 결국 재판은 뚜렷한 물증이나 증언조차 없는 상황에서 열렸다. 검찰은 “김씨와 서씨는 숨진 양씨와 범행을 계획하고 살해 당시 피해자의 양팔을 붙잡는 등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양씨의 우발적 살인일 뿐 피고인들은 양씨의 협박에 못 이겨 시신 처리만 도왔다.”고 양씨의 단독 범행으로 돌렸다. 재판부와 배심원단은 검찰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숨진 양씨가 피해자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칠 때 피고인들은 피해자 강씨의 양팔을 붙잡는 방법으로 범행에 가담하였음이 인정된다.”며 정황 증거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범행을 자백한 양씨가 사망한 것을 알고 자신의 범행을 극구 부인하며 반성의 여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고, 피해자의 처에게 공장에 불을 질러 화재보험금이 나오면 나눠 달라는 제안을 하는 등 범행 후의 정황도 극히 불량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장에게 질문을 적은 쪽지를 건네는 등 열의를 보였던 배심원단 가운데 3명은 징역 15년, 2명은 징역 14년, 3명은 징역 13년, 1명은 징역 12년의 양형 의견을 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영화 ‘의뢰인’ 재판 실제로 열린다

    영화 ‘의뢰인’ 재판 실제로 열린다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오는 28일 법정에 선다. 범인 3명 가운데 유일하게 범행을 자백한 공범도 이미 사망한 상태다. 최근 살해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변호사와 검사 간의 치열한 공방을 그린 영화 ‘의뢰인’과 같다. 20일 서울동부지법에 따르면 2000년 11월 강원 평창군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강모씨가 갑자기 사라졌다.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수사에 나섰지만 범죄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단순 가출로 일단락됐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난해 10월 사건 발생 시 공장 경비반장이었던 양모(당시 59)씨가 느닷없이 강씨의 형에게 전화를 걸어 “유골을 찾아줄 테니 돈을 달라.”고 제의했다. 경찰은 재수사에 나서 지난 4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경기도의 한 요양원에 있던 양씨로부터 ‘참회’의 자백을 받아 냈다. 경찰은 강씨에게 수천만원의 빚을 진 회사 직원 김모(45) 등 2명과 양씨가 짜고 술에 취한 강씨의 머리를 둔기로 때려 살해한 뒤 인근 야산에 시신을 파묻었다는 진술을 근거로 김모씨 등 2명을 검거했다. 그러나 양씨는 자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숨졌다. 경찰은 양씨가 지목한 야산을 파헤쳤지만 유골은 발견하지 못했다. 공범을 구속 기소한 서울동부지검은 죽은 양씨의 진술과 정황증거 등에만 의존해 이들의 살인 혐의를 입증해야 할 판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범 중 한 명이 추가로 혐의를 인정하는 등 수사가 충분히 진행됐다.”며 나름 자신했다. 그러나 피고인 김씨와 변호인 측은 검찰의 정황 증거로는 범죄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치 않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서울동부지법은 피고인 측의 요청을 수용, 28~29일 이틀 동안 형사11부(부장 설범식) 심리로 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평결을 내리는 제도다. 평결과 양형에 대한 의견은 권고적 효력을 지닐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곽노현 “朴, 7억 요구 생떼 아니냐”

    곽노현 “朴, 7억 요구 생떼 아니냐”

    후보 매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곽노현(57)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재판에서 곽 교육감이 증인에게 직접 “(지난해 5월 후보단일화 당시) 7억원을 요구한 것은 과한 것 아니었냐.”고 묻는 등 박명기(53) 서울교대 교수 측에 불만을 드러냈다.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형두)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박 후보 측 선거대책본부장 양모(52)씨는 “이미 계약한 유세차량비와 인쇄비용 등을 계산해 보니 7억원이라 손해보전 차원에서 곽 후보 측에 (7억원을)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곽 교육감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박 후보 측의) 선거비용 3억 2300여만원과 유세차량비용 2억 5000만원 등을 계산해 보면 5억원가량밖에 안 되는데 7억원을 요구한 것은 생떼, 비합리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어 “선거에서 득표율이 15%를 넘으면 선관위가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해 주고, 10%를 넘으면 절반을 보전해 준다.”면서 “증인이 ‘박 후보는 10%를 못 넘을 것이다’고 생각한 것은 결국 본인이 쓴 비용 전부를 상대 후보에게 넘기려고 생각한 거냐.”라고 따져 물었다. 피고인이 증인에게 직접 질문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앞서 양씨는 “곽 교육감이 지난해 5월 18일 서울 중구 정동의 달개비식당에서 박 후보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없도록 성심껏 도와주겠다’고 직접 말했다.”고 법증 진술을 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운전중 차 막힐 때, 책 읽으면 유죄? 무죄?

    운전중 차 막힐 때, 책 읽으면 유죄? 무죄?

    운전하다 차가 막힐 때 책 읽으면 유죄? 책을 보면서 운전을 하는 중국 택시기사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와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중경상보 등 현지 언론의 보동 따르면, 지난 달 28일 충칭시 화신대로를 달리던 한 차량은 옆 차선에서 달리던 택시기사가 운전대 왼쪽에 책을 올려두고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네티즌은 “당시 차가 많이 밀리는 시간이었는데, 옆을 보니 택시기사가 차가 밀리는 틈을 타 책을 보고 있었다.”면서 “택시 안에는 여자 승객 2명이 있었지만 기사가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것 같았다.”고 적었다. 사진은 삽시간에 커뮤니티로 퍼졌고, 네티즌들은 운전 중 독서 허용 여부를 두고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현재 인터넷상에서는 “달리는 와중에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차가 막히는 틈을 타 읽은 것이니 큰 잘못이 아니다.”라며 기사를 옹호하는 주장과 “뒷좌석에 탄 손님과 본인의 안전 뿐 아니라 도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운전중 책을 읽는 것은 나쁘다.”고 비난하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현지 언론의 조사 결과, 올해 27세인 사진 속 운전기사 양(杨)씨는 당시 외국인 여성 2명이 중국어를 거의 못해 목적지가 적힌 노트를 그에게 보여줬고, 잠시 차가 멈춘 틈을 타 이를 보던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노트를 본 시간은 2분 정도에 불과했다. 난 운전 중 안전에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씨의 소속 회사는 “비록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운전 중 사소한 행동이 손님이나 도로의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돼 이번 일을 철저히 조사하기로 했다.”면서 “만약 양씨가 자신의 주장에 맞는 근거를 대지 못한다면 3~7일 간의 특별 안전교육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동진 도봉구청장 “민주화 운동 얼 살려야 ‘씨알 기념관’ 건립 추진”

    이동진 도봉구청장 “민주화 운동 얼 살려야 ‘씨알 기념관’ 건립 추진”

    도봉구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지사나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가들의 흔적들을 되살리는 방안으로 ‘씨알의 소리’ 발행인이자 1960~70년대 민권운동가인 함석헌(1901~1989) 선생이 별세했던 집을 기념관으로 만드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투사 집터, 산업화 과정에 없어져”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12일 “일제 때 독립·민주화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도봉구 내 집터들이 산업화과정에서 다 사라졌다. 보존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한 채 헐어버리기도 하고, 돈이 필요해 팔아버리기도 했고, 무감각하게 부숴버리고 아파트를 올려 흔적을 찾을 길이 없어서 안타깝다.”며 “지역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함석헌 선생이 말년에 살았던 아들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용산구에 기념사업회가 있지만 도봉구민들도 선생의 삶과 철학을 기억하고 기릴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안을 그들과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선생이 오래 살았던 용산구 원효로 집은 기념사업회 발족을 즈음해 기증했다. 이후 선생은 마포에서 온실을 가꾸며 살다가 말년이던 1983년 도봉구 쌍문동 81-78 아들 집으로 건너갔다. 며느리 양영호(74)씨가 정의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어 사들인 집이다. ●거주 중인 며느리 양영호씨 “건립 희망” 이곳에 선생이 마포에서 살 때 보살피던 화초들을 모두 옮겨 왔다. 현관 옆에는 2006년 10월 독립운동가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되기 전 썼던 산소의 묘비도 모셨다. 묘비엔 함석헌의 시 ‘나는 빈 들에 외치는 소리’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이 구청장의 방문으로 ‘기념관’에 대한 뜻을 알게 된 며느리 양씨는 “기념사업회가 원효로의 옛집을 팔아 더 큰 건물을 사는 통에 그 집이 흔적조차 사라져 아쉽다.”면서 “초라하고 조그마한 12평짜리지만 남아 있었더라면….”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양씨는 “불어닥친 개발 바람에 후손들이 선조의 가치를 지키지 못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국문학자 최남선(1890~1957) 선생이 살았던 집을 보존하자는 여론도 일었지만 그 집은 후손들이 헐어버렸다. 함석헌과 원효로에서 이웃으로 지내던 박목월(1916~1978)의 집도 당시 용산구에서 보존계획을 잡았지만,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밀려났다가 결국 후손들이 팔아넘기면서 자취를 잃고 말았다. ●區 “자료수집 중… 장기적 관점서 접근” 이 구청장은 “함석헌 선생이 원래 살던 집은 아니지만 마지막 주소지이자 가족들이 선생을 임종한 곳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구청장이나 양씨 모두 기념사업회가 있고, 현재 쌍문동 집에 후손들이 살고 있어 기념관을 급속도로 만들 수는 없다는 점을 안다. 양씨는 “외국에서는 많은 게 기록으로 남아 부럽다. 기념관 건립을 가족들이 소망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도봉구는 함석헌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가족들과 기념관을 만든다는 최소한의 원칙에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실수로 은행서 10배로 환전 모른 척 해외도박 모두 탕진

    “은행원이 잘못 환전해줬더라도 돈을 곧 되돌려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광주 남부경찰서는 은행원이 인출액 550만원을 현금 5000만원으로 잘못 바꿔 준 사실을 알고도, 이를 써버린 양모(45)씨를 횡령 등의 혐의로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9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양씨의 경우 명백한 횡령 또는 사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되물었다. 양씨는 지난 7월 26일 광주 남구의 한 은행에서 550만원을 홍콩달러(4만 3000여 달러)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인출액보다 10배가량을 더 받아 간 혐의를 받고 있다. 은행 창구 여직원 정모(45)씨는 1000달러 지폐를 43매 지급해야 했지만 403매를 건네주는 실수를 저질렀다. 4600여만원을 더 받은 양씨는 곧바로 은행을 나와서 이튿날 업무차 홍콩으로 출국했다. 은행 측은 뒤늦게 환전이 잘못된 사실을 확인하고 은행에 남은 고객 연락처로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경찰은 은행 폐쇄회로(CC)TV와 남겨진 연락처를 토대로 양씨 신원을 확인, 추궁 끝에 사실을 자백받았다. 양씨는 홍콩에서 도박 등을 하며 환전한 돈을 모두 날렸다. 광주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순수한 열정으로 산 오르는 사람들 그렸죠”

    “순수한 열정으로 산 오르는 사람들 그렸죠”

    관객의 가슴을 움직일 ‘이야기’에 목마른 충무로에 단비가 내렸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가 주최하고 서울신문사가 후원하는 ‘2011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상에 ‘산의 기도’를 낸 양경모(33)씨가 4일 선정됐다. 협회는 ‘산의 기도’를 비롯해 총 8편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꼭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단편영화를 만든 감독이기도 한 양씨는 “너무 큰 공모전이라 기대는 안 했다.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나 같은 신인 감독에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이런 작품을 누가 맡겨 줄까 생각했다. 최우수상을 받게 돼서 꿈만 같고, (누구의 손에 의해서든) 꼭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산의 기도’는 칸첸중가봉 등정을 둘러싼 산사람의 도전과 우정, 경쟁과 갈등, 분노와 좌절을 다뤘다. 탄탄한 구성력은 물론 작가가 직접 칸첸중가에 오른 것처럼 묘사가 살아 꿈틀댄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의 화려한 주목을 받는 여성 산악인과 별다른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남성 산악대장의 이야기가 축을 이룬다. 둘은 한때 연인이었지만, 이제는 깊은 우정을 간직한 채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남성 산악대장의 후원사가 산악팀 존속을 무기로 무리한 등정을 압박하면서 사단이 난다. ‘인재’(人災)가 예고된 상황에서 여성 산악인은 옛 사랑의 목숨을 구하려고 지옥 같은 등반길에 오른다. 양 감독은 “2004년 칸첸중가에서 사고를 당한 계명대 산악부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면서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많은 봉우리에 오르는가를 놓고 경쟁하는 산악계의 풍토가 대세처럼 비춰지지만, 여전히 순수한 열정만으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의대 졸업후 영화로 인생 항로 수정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양 감독은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인생 항로를 수정했다. 공중보건의로 군 복무를 하면서 주말에 한겨레영화제작학교를 다녔다. 2005년 27세의 늦깎이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입학했다. 의사 면허를 가진 그는 이따금 선배들이 경영하는 병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한편 틈틈이 단편 작업을 했다. 단편 ‘시베리안 캥거루’(2009)는 포르투갈과 영국, 루마니아의 국제영화제에 초대를 받는 등 호평을 얻었다. 양 감독은 “의대에서 생사의 경계에서 느껴지는 감정들과 생명의 소중함 등을 배웠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한예종에 다니면서 이쪽이 얼마나 춥고 배고픈 바닥인지 충분히 봤지만 후회는 없다. 앞으로 스릴러·호러 같은 장르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우수상에는 ‘경부고속도로’(서선덕), ‘공항에 부는 바람’(손학렬·김율), ‘자전거 왕-민족의 영웅 엄복동’(최슬기), ‘헤어월드’(손정섭), ‘공무원블루스’(김선자), ‘위 아 더 원’(최종현·임진평), ‘뛰니까 청춘’(한유림) 등 7편이 뽑혔다. 상금은 최우수상 3000만원, 우수상 각각 1000만원이다. 대상 수상작은 내지 못했다. 기성과 신인, 국적·연령 제한 없이 대문을 활짝 연 공모전에는 8월 22~29일 137편의 시나리오가 접수됐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김지헌 원로작가, 차승재 영화제작가협회장, 최용배 청어람(영화 ‘괴물’ 제작사) 대표, ‘박봉곤 가출사건’의 김태균 영화감독, 오희성 롯데시네마 영화마케팅팀장 등 5명의 심사위원이 본심에 오른 15편을 심사했다. 시상식은 오는 14일 오후 5시 서울 인현동 PJ호텔에서 열린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선수 지도하다 허리 수술땐 씨름부 감독도 유공자 인정”

    씨름부 감독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허리 통증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1부(부장 김창석)는 중학교 체육교사 양모(48)씨가 서울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유공자 비해당 결정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학생들을 상대로 시연하는 과정에서 수년에 걸쳐 허리에 상당한 피로가 누적됐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2000년부터는 씨름부 감독직을 맡지 않았으나 일반 체육교사로서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허리 통증이 쉽게 회복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공무상 재해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양씨는 공무수행으로 발병했다며 국가유공자등록신청을 했으나 서울지방보훈청은 추락 등 강한 외상이 확인되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사설] 오늘 검찰에 소환되는 곽노현 교육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오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다. 곽 교육감 측은 지난해 6월 2일 치러진 교육감선거에 앞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와 후보단일화를 하는 과정에서 박 교수에게 사퇴를 조건으로 돈을 주기로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 중앙지검은 어제 곽 교육감의 회계책임자인 이보훈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이에 앞서 중앙지검은 2일에는 박 교수 측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양모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그제는 곽 교육감의 핵심 측근으로 단일화 협상 대리인이었던 김성오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곽 교육감 자택은 물론 소환한 이보훈씨 등의 자택도 압수수색하는 등 곽 교육감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교수의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인) 양씨에게 박 교수를 돕겠다고 약속한 것은 사실”이라고 이면(裏面)합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곽 교육감은 지난해 10월에야 내가 약속한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 교수를 지원하기로 한 이면합의에 곽 교육감은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이씨와 양씨는 동서지간이다. 검찰은 곽 교육감을 상대로 박 교수에게 후보사퇴 대가로 금품과 시교육청의 직책을 주기로 했는지, 이면합의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를 집중 추궁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곽 교육감이 지난 2~4월 박 교수에게 6차례에 걸쳐 건넨 2억원의 출처도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곽 교육감과 박 교수는 지난해 5월 18일 단일화협상을 했으나 결렬됐다. 돈 문제로 결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하루 뒤 곽 교육감과 박 교수는 전격적으로 단일화를 발표했다. 하룻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검찰이 밝혀내야 할 일이다. 곽 교육감은 검찰에서 후보단일화 과정을 숨기지 말고 가감 없이 밝혀야 한다. 법리적으로 빠져 나갈 궁리만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한 이면합의 내용을 곽 교육감이 5개월 뒤인 지난해 10월에야 알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곽 교육감이 이면합의 내용을 몰랐다 해도, 회계책임자인 이씨가 후보자 매수 혐의로 징역형이나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곽 교육감의 당선은 무효가 된다. 서울시 교육 수장의 검찰 소환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 “곽 교육감 이면합의 작년 10월 알아”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곽노현 후보로의 진보진영 단일화 과정에서 “단일화에 동의하고 사퇴하면 돈을 주겠다.”는 내용의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곽 교육감 측 회계책임자였던 이모씨가 2일 언론에 이 같은 내용을 털어 놓았다. 이면합의는 지난해 5월 18일 밤 곽 교육감 측이 박명기 교수 측과의 단일화가 무산됐다고 공식 발표한 직후 이씨와 박 교수 측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양모씨가 19일 새벽에 가진 술자리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곽 교육감 측근에 따르면 이씨와 양씨는 동서지간이다. 이씨는 “협상 결렬 직후 양씨와 만나 박 교수를 (금전적으로) 돕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곽 교육감에게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곽은 합의 사실을 몰랐고, 지난해 10월쯤 박 교수가 약속을 이행하라고 독촉한 뒤에야 약속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을 전해 들은 곽 교육감은 기겁을 했고 큰 정신적 충격에 빠진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당시 곽 교육감이 돈 거래를 통해 단일화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주장이다. 이씨는 “현재 언론보도가 진실의 99% 수준까지 이른 것 같다. 나머지 1%는 검찰에 가서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 ‘동서지간의 이면합의’에 대해 지난해 선거 당시 곽 교육감 측 협상 대리인으로 참여했던 김성오씨는 “공식적인 효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의 이면합의가 효력이 있으려면 곽 후보로부터 공식적으로 위임을 받아 서면으로 합의한 뒤 그 내용이 곽 교육감에게 보고 됐어야 했다.”면서 “동서지간에 술마시면서 구두로 한 얘기가 효력이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은 곽 교육감이 단일화 당시 이 이면합의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곽 교육감이 이씨와 양씨의 회동을 통해 박 교수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후보 단일화 결렬 이후 하루 만에 극적인 단일화를 이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곽 교육감이 이 이면합의를 알고 있었는지와 곽 교육감이 박 교수에게 준 2억원이 이에 대한 대가였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꼬여 있는 이번 사건을 풀어내는 열쇠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이영준기자·연합뉴스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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