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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 칼럼] 곡척으로 세상을 재면

    어떤 자(尺)로 재느냐에 따라 척도가 달라진다.바른 자로 재면 바른 척도가나오고 굽은 자(曲尺)로 재면 엉터리 척도가 나타난다.파스칼은 자오선이 진리를 결정한다면서 피레네산맥의 이쪽에서는 진리인 것도 저쪽에서는 오류라고 주장했지만 곧은 자(直尺)냐 굽은 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세상사의 혼란은 곧은 잣대가 기준이 되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그것은 잣대를 쥔 사람들이 편의대로 잣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굴원(屈原)이 멱라수에 몸을 던진 것도 굽은 자로 재단하는 세속에 절망한때문이었다.그는‘이소(離騷)’에서 말한다. 아! 간교한 세속의 재주여 법규를 무시하고 멋대로 바꾸고 먹줄 없애고 굽은 길 따르며 외양만 꾸미고 표본으로 삼으네. (固時俗之工巧兮 面規矩而改錯 背繩墨而追曲兮 競周容而爲度) 목수가 재목을 다듬을 때면 먼저 먹줄(繩墨)을 쳐서 곧고 바르게 만든다.굽은 목재로는 좋은 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굴원의 시대에도 곡척으로 원이나 사각형을 그리고‘먹줄’은 배척되었다. 그래서 훗날 사마천은 전목(錢穆)이평한‘가히 다시 없는 최고의 사서(爲千古無匹之史書)’라는‘사기(史記)’에서 굴원을 찬(讚)하는‘회사부(懷沙賦)’를 통해 이렇게 읊었다. 백이 흑으로 변하고 상이 하로 둔갑한다 봉황은 조롱에 갇히고 계치만 하늘을 난다. (變白而爲黑 兮例上而爲下 鳳凰在노兮 유稚翔舞) 요즘 여야 정당이 공천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시민단체들의 부적격자 명단 발표와 함께 새 인물을 갈망하는 민심이 분출하면서‘물갈이’의 파고는갈수록 높아진다. 각 정당이 마련한 공천 기준이 얼마만큼 엄격하게 적용되는지,아니면 또다른 잣대가 작용하는지 국민은 주시한다.세상사를 먹줄 긋듯이 두부 자르듯이 재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국회의원 후보 공천이나 주요 공사기관의 책임자 선발은 엄격한 기준과 공정한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이것이‘시민혁명’으로 불리는 국민의 뜻이고 시대정신이다.이백(李白)은‘만분사(萬憤詞)’에서 읊었다. 가시나무를 심고 계수나무를 뽑아버린다 봉황새를 가두고 닭 따위를 귀히 여긴다. (樹榛拔桂 囚鳳寵鷄)‘고풍(古風)’이란시도 썼다. 제비나 까치 같은 하찮은 새들은 오동나무 같은 좋은 나무에 살고 원앙과 같은 새들은 탱자나무나 가시나무에 산다. (梧桐巢燕雀 척속棲鴛鴦) 세상이 이리 되면 불행해진다.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태평사회는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함으로써 가능했다.헌팅턴이 독재정권이 실패한 원인을‘저급 인물의 요직 기용’이란 분석은 예리하다. ‘곡척’의 잣대가 어찌 정치권력이나 정당만의‘금기사항’일까.그야말로진실과 이성을 본질로 하는 언론인·지식인·정치인·법조인이 가장 배척해야 할 금기의 대상이다. 지난날 얼마나 많은 언론·지식·법조·정치인들이 군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먹줄을 없애고 굽은 자를 따라 원이나 삼각형을 그렸던가.백을 흑이라 말하고 하(下)를 상(上)으로 둔갑시켰던가.봉황을 가두고 까막까치들이세상을 누비도록 곡필을 쓰고 법복을 휘날렸던가.그리고 계수나무 뽑힌 자리에 가시나무를 심었던가. 반대로 양심적 인사들은 감옥에 가거나 직장에서 쫓겨나고‘탱자나무’와‘가시나무’에 찔릴 때 까막까치는‘오동나무’에 깃을 사리며 봉황인 양 행세하지 않았던가. 정치인의 곡척과 지식인의 곡필은 일란성 쌍둥이다.한나라당 정형근 의원과일부 언론이 보여주듯이 시기에 따라 장소에 따라 이중삼중의 잣대를 적용하면 기강이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해진다.진실이 설 땅을 잃고 정의가‘멱라수’를 찾게 된다.
  • 올 곧은 元老 12人의 인생과 학문

    흔히 우리사회에는 원로가 없다고 한다.왜 없을까마는 배우고 닮을만한 표상이 많지 않다는 뜻일게다.그러나 이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학문적 업적은 물론 왜곡된 현실모순 속에서도 올곧은 삶을 살아온 원로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다만 이들은 남앞에 나서기를 자처하지 않았고 더러는 질곡의역사속에서 폄하돼 가려져 왔던 탓이 크다. 역사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계간지 ‘역사비평’은 우리사회에서 학문적 성과와 ‘행동하는 양심’으로 존경받고 있는 원로 12명의 인터뷰기사를 묶어‘학문의 길 인생의 길’(역사문제연구소 엮음)을 출간하였다.주요 면면을보면,한국사 전공자로 이우성(민족문회추진회 회장)·임창순(전 태동고전연구소 소장)·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조동걸(국민대 명예교수),서양사 전공자로 민석홍(서울대 명예교수)·차하순(서강대 명예교수),경제사 전공자로최호진(한국경제학회 명예 회장)·주종환(동국대 명예교수),언론학 전공자로송건호(전 한겨레 신문 회장)·리영희(한양대 명예교수)·이상희(전 서울대교수협의회장),그리고 여성학(사회학)전공자로 이효재(정대협 명예공동대표)등.이들 가운데 임창순 선생은 지난해 작고하였고,송건호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현재 투병중이다.나머지 인사들도 대개 일선에서는 은퇴하였으나 연구·사회활동의 열정은 아직도 여전하다.정년퇴임 이후 더 바쁘고 노후가 ‘아름다운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2인은 해방후 척박한 우리 사회·학계를 특별한 관심과열정으로 주도하고 개척해온 선구자들로 우리 ‘지성사의 기록’이나 마찬가지다.특히 개인사적 기록을 넘어 학자로서의 삶,온몸으로 맞서싸운 시대상황과 그 이면사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도 담고 있어 우리 ‘동시대사의 생생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선비로 불리는 이우성은 식민사학 극복과 민족사학 성립에 기여한 역사학자로,최호진은 1942년 ‘근대조선경제사’출간을 계기로 한국경제학 연구에 이정표를 남긴 한국경제의 산 증인으로 평가받는다. 또 민석홍은 프랑스혁명 연구와 한국민주주의 연구에 큰 성과를 남겼으며,임창순은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후학양성에 일생을 바쳤고 4·19 당시 교수단데모를 주동하였다.사재를 모두 재단에 기부하였으며 ‘화장유언’을 남기기도 했다.학자보다는 언론인으로 유명한 송건호는 일생을 반독재 언론투쟁에바쳤으며 한겨레신문 창간의 주역이기도 하다.강만길은 식민사관 극복과 민족해방운동사·분단문제에 천착해온 실천적 지식인으로 ‘분단시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주도적으로 창립한이효재는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타파에 앞장서는등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적 활동을 해왔다.언론인 출신이자 언론학자인 리영희는 분단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 등사회비평서를 통해 시대를 앞에서 이끌었으며 수 차례 대학에서 쫓겨나 감옥생활을 했다.차하순은 한국의 서양사학을 반석 위에 올린 공로자이며,주종환은 농업경제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이상희는 비판적 언론학의 선구자로 언론개혁을 처음 주장했다.끝으로 조동걸은 한국독립운동사와 현대사학사 개척자로,특히 의병연구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이이화 역사문제연구소 고문은 “주로 진보적 학문 분위기를 지닌 인물로현실의 모순에 타협하지 않고 뚜렷한 자기 주견을 내세우며 치열한 삶을 산
  • [사설] 법률서비스 차질없게

    대법원이 자체 의견을 수렴해 4개월 만에 마련한 ‘21세기 사법발전 계획’은 수요자 중심의 법률 서비스 향상에 초점이 모아져 호감을 준다.피고인의청구가 없어도 모든 피고인에게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한 것과 피고인에게 검찰이 확보한 공판조서열람권을 보장한 증거개시(開示)제도의 도입은 인권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증거개시제도 도입은 특히 피의자의 혐의를 조사하고 재판에 넘겨 공소를유지하는 검찰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있는 피고인에게 조서의 열람,복사뿐만아니라 모든 증거에의 접근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형사심리 절차 개선안의핵심이라 하겠다.‘약자’인 피고인도 검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공격과 방어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검찰은 공소유지의 어려움을 들어 반대할것으로 보이나 미국과 일본에서도 효과를 거두고 있는 만큼 검토를 거쳐 도입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민사사건의 경우 재판 전에 분쟁을 조정토록 의무화하는 소송전치제도의 도입이 돋보인다.본안 소송사건만 연간 100만건이 넘는 우리 나라국민들의 재판 선호 정서상 분쟁을 소송 전 조정으로 해결,재판건수를 크게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문제다.법관의 업무를 획기적으로 줄여 본안 소송을 충실히 심리토록 하는 것은 바로 재판의 질을 높이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법관 단일호봉제와 법관 전문화제도의 도입 등 제도개선도 법률 서비스의확대와 무관하지 않다.법관의 직급·직책에 대한 부담이 법과 양심에 따른판결에 영향을 준다면 이는 법률 수요자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법관에게 전공 분야를 선택토록 하고 전문재판부를 확대키로 한 것도 시의적절하다.사회가 다양화·전문화되는 데 따른 법관의 전문화가 요구된다. 그러나 발전안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법률 서비스의 향상이 시대적 요청에 따른 것이나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도록 하기위해서는 구체적인 예산과 인력 확보책이 요구된다.이와 함께 법조의 3개 축인 법원·검찰·변호사계가 어느 정도 수준의 개혁 의지를 가지고 협조하는가도 중요하다.이번 발전안은 축 상호간에 이해가 상충하는 부분도 다수 있어 시행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절충과 보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법권 독립을 위한 제도나 의지가 제시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아닐 수 없다.사법권의 독립은 법의 권위를 확립하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데 절대적 요소이다.이와 함께 법관의 독립성을 해치는 파면제도라는 비판을들어온 법관 재임명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미비점들을 보완해가면서 발전안을 확실하게 제도화하길 바란다.
  • 민주당 ‘권노갑고문 불출마’의미

    민주당 권노갑(權魯甲)고문의 ‘16대 총선 불출마 선언’에 대해 정치권은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중진 물갈이론이 불거져 나오는 미묘한 시점에 예상을 깨고 전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한보사건에 연루돼 시민단체의 ‘공천 부적격자’명단에 올랐지만 그것만으로 불출마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그는 성명에서 한보사건에 대해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받을 행위를 하지 않았다.한보로부터 받은 돈은 뇌물이 아니라 순수한 정치자금이었다”고 강조했다. 그의 불출마 선언에는 보다 깊은 배려가 함축돼 있다고 보여진다.성명에서“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무엇이든 희생할 각오가 돼있다”고 밝힌 대목에서 그 일단을 읽을 수 있다.신진인사들에게 길을 열어줘 그들로 하여금 정치개혁의 과업을 완수케 하겠다는 것이 권고문의 뜻이라고 측근 인사들은 설명한다. 권고문의 불출마 선언은 일반의 정서와 상관 없이 출마를 강행하려는 일부당 중진들에게 상당한 무게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자진 불출마’ 분위기를 강하게 압박할것이라는 관측이다.대폭 물갈이로 이어지는 신호탄으로여겨지고 있다. 그의 불출마 선언은 김대통령과 사전교감 속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아침 김대통령이 서영훈(徐英勳)대표,이인제(李仁濟) 선대위원장,장을병(張乙炳)공천심사위원장,정균환(鄭均桓)총재특보단장을 불러 ‘엄정한 공천’을 당부한 데서도 이같은 기류를 읽을 수 있다.당 주변에서는 “권고문이 불출마 선언을 해 당 중진들의 2선 후퇴를 압박할 것”이라는 추측이 이미 나돌았다. 앞으로의 정치 행보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그는“당 고문으로 당무에 충실하고 총선 승리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만 말하고 있다.그의 위상에 걸맞는 자리가 당장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 결단으로 ‘무관(無冠)의 실세’라는 그의 위치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강동형기자 yunbin@ *'權고문 불출마' 파장 민주당 권노갑(權魯甲)고문의 8일 16대 총선 불출마 선언이 던진 당내 파장은 무척 컸다.특히 물갈이 대상으로 강한 위협을 받고 있는 중진그룹들이 심했다.혹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의중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정황 파악에 여념이 없었다.중진들은 한결같이 ‘권노갑 한파(寒波)’에 따른 ‘물갈이’ 추위에 떨고 있는 형국이다. 반면 총선 승리를 위해 수도권과 호남권 현역의원의 대폭적인 물갈이를 적극 검토중인 여권 핵심부와 당지도부,그리고 현역들의 ‘빈자리’를 노리는386세대를 비롯한 정치신인들은 권고문의 ‘용단’을 반기고 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중진들의 자진 불출마 선언이 이어질 가능성과관련,“당에서 아픔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을 것”이라면서 “어떻게 하는것이 정치개혁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컨센서스가 이뤄져 있으므로 스스로현명하게 판단,자연스럽게 자기들 문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묘한 기류 속에서 중진들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수도권의 중진 J의원은 “권고문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아무 할 말이 없다”면서 “노 코멘트”라고 굳게 입을 닫았다.K의원도 “우리 갈 길도 바쁜데 그 사람 생각까지 하고 싶지 않다”면서 “386세대만 전진배치되지 않도록 당이 알아서 잘처리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공천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또다른 K의원은 386을 겨냥,“젊다고 다 깨끗하고,장년이라고 다 더러운 것은 아니다”라면서 “어떤 조직도 노·장·청의 조화가 있어야 정상”이라고 주장했다. 호남권의 대표적 중진인 K의원도 “남(권고문)의 생각을 어찌 알겠느냐”면서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수도권 출신 원외중진 L전의원측은 “권고문의 불출마선언이 중진들의 물갈이 단초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권고문은 다른 중요한 역할이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반응에도 불구,권고문의 뒤를 이어 조만간 1∼2명의 중진들이 지역구 포기를 선언할 것이라는 추측이 당주변에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
  • ‘기억과 망각’ 獨·日 전후청산 차이점 비교

    2차대전후 독일과 일본은 여러가지로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패전과 전범처단을 위한 국제군사재판,황폐와 혼란속에서 이룬 경제부흥과 고도성장,그리고 경제대국에서 정치대국으로의 용틀임 등등.그러나 ‘과거사 극복’과 관련해서는 두 나라가 판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외신보도에 따르면 일본정부가 극우단체의 ‘난징대학살’ 부인 집회를 허가,중국과 외교분쟁이 우려된다는 것이다.같은 날짜 기사에서 독일정부는 나치 강제노역피해자 배상금으로 100억마르크(6조원) 규모의 기금마련을골자로 하는 법안을 승인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독일이 과거사를 ‘기억’하면서 반성해 왔다면,일본은 ‘망각’과 부인으로 전후 50년을 일관해 왔다. 이처럼 일본과 독일이 과거사 청산에서 양 극단의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최근 나온 ‘기억과 망각’(다나카 히로시 외 지음,이규수 옮김)은이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내놓고 있다.이 책은 지난 92년 일본 도지샤(同志社)대학 인문과학연구소가 개최한 공개심포지엄 ‘과거 극복과 두 개의 전후-일본과 독일’의 발제와 토론을 정리,단행본으로 묶은 것으로 필자는 일본내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인사들이다. 전후청산에 관한 일본과 독일의 극명한 차이점은 두 나라에서 행해진 전범재판에 뿌리를 두고 있다.나치전범을 재판한 뉴른베르크재판(1946.5∼48.11)은 전범 처단과정에서 ‘인도(人道)에 대한 죄’라는 새로운 국제법상의 개념을 도출,독일을 ‘반성의 길’로 유도했다.반면 도쿄재판(1946.5∼10)은최고 전쟁책임자인 일황을 면책하고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를 면죄하면서도 군 위안부와 강제연행 등 비인도적 행위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않았다. 도쿄재판을 주도한 미국은 일본의 침략전쟁 책임을 일본 육군수뇌부에게 돌리고 아시아권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억압하였다.일본은 미국의 지원하에 일황을 위시해 천황제를 지탱해낸 궁중그룹과 해군·관료·재벌을 살리기 위해모든 전쟁책임은 육군에 있다는 왜곡된 ‘역사상’을 조작, 육군을 희생시키면서 ‘자기보존’의 길을 택하였다. 독일(구서독)은 뉴른베르크재판 뿐만 아니라 자국의재판소를 통해 현재까지 9만여명의 나치 관계자들을 재판에 회부,7,000건 정도의 유죄판결을 내렸다.반면 일본은 도쿄재판 등 타자에 의한 재판 이외에 스스로에 대해 판결을내린 적이 없다. 독일은 52년 유태인 피해자에게 34억여 마르크를 배상한 것을 시작으로 인종·신앙·세계관 등에 구애없이 90년까지 총 864억여 마르크를 지불했다.그러나 일본은 자국민 중심으로 배상원칙을 세워 외국 국적자는 배상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일본군의 잔학행위는 주로 해외에서 자행되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대부분은 그 실상을 거의 모르고 있다. 지난 87년 독일의 저널리스트 랄프 졸타노는 ‘제2의 죄-독일인 됨의 부담’이란 책에서 “히틀러시대 독일인이 범한 죄가 ‘제1의 죄’라면,‘제2의죄’는 1945년 이후 ‘제1의 죄’를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부정한 것을 말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일본은 ‘제2의 죄’는 커녕 ‘제1의 죄’조차 부인하고 있는 셈이다.삼인 펴냄 값 8,500원. 정운현기자 jwh59@
  • [대한시론] 새 정치질서 창출을 위해

    시민단체들의 낙천 낙선운동의 합법성과 정당성 여부에 관한 논의가 무성하고 이 운동이 몰고 올 파급효과에 관하여도 견해가 분분하다.기본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정치변혁운동’의 성격을 띤 이러한 움직임은 환경이 크게 변했는데도 제도권 정치가 이에 부응하는 변화를 추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다.제도권 정치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지 못했으므로 제도권 밖에서 일어나는 변혁운동은 비록 실정법에 어긋날지라도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장외의 변혁운동이 모두 정당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경우에 따라서 집단이기주의의 과격한 표현일 수도 있고,사회가 넓게 수용한 가치와 이념에서 벗어날수 있기 때문이다.어디까지나 변혁운동의 정당성은 역사적 흐름에 부합하는 가치를 추구한 것이어야 한다. 제1공화국의 권위주의 체제를 붕괴시킨 4·19 학생혁명,신군부 등장에 저항했던 5·18 광주민주항쟁,그리고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신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던 6·10 국민대회는 모두 순수하게 민주정치를 추구한 운동이었으므로그 정당성을부인할수 없다.총선연대의 낙천 낙선운동도 합법성 여부에 관한 철학적 논쟁의 여지는 있으나 민주정치의 확장을 목표한 것이므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사회의 각 부문이 크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만은 답보상태에 머물렀다.낡은 중앙집권적 정당구조,지역감정 조장,정당간 소모적 대립,무책임한 의혹제기나 폭로 등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고착된 구조와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정치불신과 냉소주의가 만연해 있다. 그렇다면 정치변화를 향한 국민들의 기대와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정당들의 독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정당구조와 인적 구성,정당간 세력분포,정치문화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기본적으로 수도권 외의각 지역이 다분히 특정 정당에 독점되어 있고,전국적으로는 기존 정당에 과점되어 있는 정치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정치시장이 독과점 체제라면 소비자인 유권자는 제한된 선택을 할 수밖에없다.따라서 공급자인 정당은 정치의 품질개선이나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낡은 기성정치인의 퇴출운동은 독과점 시장의 문제중 일부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는 성공한 듯하나 선거법 불복종운동으로 전개될 경우 정치적 파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아래로부터의 변혁운동의 한계점을 근거하여 대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 먼저 현재 전개중인 낙천 낙선운동은 여기에 투입하는 비용에 비하여 효과는 상대적으로 미미하리라 전망된다.우리 정치는 변해야 하고 정치개혁은 정당구조와 행태,그리고 정치시장의 구조와 환경의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그러나 소수를 대상으로 한 낙선운동은 정치개혁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않는다. 반면에 낙선운동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우려되고,사실에 근거하지 않은의혹이나 음모설에 정치권 전체가 휘말릴 수 있으며,정당의 지역주의가 강화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또한 불복종 운동의 합법성 여부가 정치쟁점으로부각되면서 공권력의 행사가 뒤따른다면 양심수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결국 정치불안이 조장되고,정치민주화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들은 한국 정치개혁의 내용을 모색하고 여론을 조성함으로써 정치권이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안정적인 개혁을추구하는 방법으로 보인다.시민단체 활동이 정책의 문제나 대안제시에 초점을 맞출 때 민주주의는 공고화된다. 현재 전개중인 정치변혁운동은 아직도 정치의 틀과 절차가 제도화되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광범위한 국민적 합의에 근거한 정치질서의 창출이당면 과제임을 우리 모두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 /류승남 국민대 교수 .행정학
  • [대한시론] 새천년의 화두는 생명

    생명이란 무엇인가? 새천년기의 화두는 특별히 생명과 생명운동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우리는 일상적으로 인간생명,자연생명,도덕생명,정치적 생명,심지어는 민족생명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그러면서도 생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생명이 일회적인 것,역동적인 것,체험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따라서 초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 문제는 이제 모든 학문의 관심사로서 중요한 연구대상이 돼있다. 산업 선진국은 이미 수십년 전에 생태계위기,공해와 관련해서 이 문제의 연구에 착수했다.국내에서도 미진하긴 하지만 생명에 관한 연구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시민운동단체도 증가하고 그 활동도 점점 활발해져 가고 있다.생명에 관한 전체적인 이해는 쉽지 않지만,생명현상에 관해서는 특히 생명과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에서 이러저러하게 해명하고 있고,‘생명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으로서 여러가지 이론 혹은 학설이 제시되고 있으며 각 종교에서도 나름대로의 해명을 하고 있기는 하다.‘생명’을 한가지 의미로 정의할 수 없다고 해도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사태들은 쉽게 열거할 수 있다.세계적인 현상으로서 빈곤,기아,풍토병,폭력,전쟁을 들 수 있을 것이고,온갖 종류의 살인,집단학살,낙태,안락사 등 인간의 생명 자체를 거역하는 모든 행위,육체와 정신의 고문,심리적 탄압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도 들 수 있다.나아가서 노예화,인신매매,노동의 악조건 등과 같은 반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인 행위와 현상을 들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과거 경제 일변도의 정책과 급속한 산업화의 추진으로 인해 자연파괴가 극심하고 공해가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또 전통적인 가치관이 그 효용성을 잃게 되어 결과적으로 물신주의와 인명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가 팽배해 있다.사고와 사건의 종류도 각양각색이고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형이고 잔인하다.인간생명을 보호하고 돌보아야 할 사명을 지닌 의료종사자들의 무책임하고 반인륜적인 행위도예외가 아니다. 이렇게 인간생명을 위협하는 여러 현상들의 배후에는 근본적인 문화의 위기가 자리잡고 있다.현대 문화에는 일종의 프로메테우스적 태도가 자리잡고 있어서,인간이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도 좋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병통이다.이러한 사고방식에 의한 행동은 죽임의 문화를 잉태하게 된다. 죽임의 문화에서는 인간끼리의 연대성,나아가서는 자연과의 연대성,타인에대한 열린 태도 따위는 무시되며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나 이기적인 이익추구와 변덕만이 생각과 말과 행위의 기준이 된다. 이렇게 생명존중의 의식이 실종됨으로써 사람들은 실천적 유물론에 빠지게되고,이 유물론은 실용주의,쾌락주의를 낳게 된다.그래서 소유가치가 생명가치의 자리를 차지하고,개인의 물질적 안락만이 삶의 유일하고 중요한 목표로서 간주된다.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른바 ‘삶의 질’도우선 효율성,무절제한 소비주의,쾌락 등으로 해석되어 인간 상호간의 영적,종교적 차원과 같은 실존의 심오한 측면이 무시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비리와 반생명적 의식은 개인의 양심과도관련되지만 사회윤리의식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사회가 생명에 반하는 행위들을 용인하고 조장하는 죽임의 문화를 고무하지는 않는지 모두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죽임의 문화 대신에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야 한다.지금은 인간끼리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모두가 서로 손상하지 않고,만물의 존재의의를 인정함으로써 상생(相生)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생명문화의 드높임에모두가 투신해야 할 때이다.이러한 방안으로는 개인적인 실천뿐만 아니라 생명사상,문화의 공동 연구와 보급,국내외의 생명운동단체,환경단체,문화단체끼리의 연대활동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박종대 서강대교수·철학 생명문화연구원장
  • [21세기는 깨끗한 정치 시대] 지구촌 부패정치인 ‘바꿔’열풍

    지구촌이 ‘정치 부패’와의 싸움으로 뜨겁다.정치 부패에 대한 척결은 새천년을 맞아 지구상의 새로운 명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썩은 정치인들의 자기합리화를 더이상 용납하지 않고 발붙일 틈을 주지 않겠다는 국민적 자각이 지구촌 곳곳에서 커가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각국의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잘못,특히 정치분야의 부정부패에는 눈감아줄 수 없다는 국민의식을 키우고 있다.‘피플 파워’로 정치인 교체까지 요구하고 있는 시점이다. 그 좋은 예를 독일과 이슬라엘은 말해준다. 냉전의 결과 45년이 넘게 분단됐던 독일을 다시 하나로 만들며 통독의 영웅으로 부상했던 헬무트 콜 독일 전 총리는 불법 정치자금 모집으로 부패 정치인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아랍인들과의 오랜 영토 분쟁 및 척박한 자연환경과의 힘겨운 싸움속에서 오늘날의 풍요로운 국가를 가꿔온 이스라엘의 정치지도자들도 불법자금 수수에 관련된 혐의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공직자들의 비리 개입 및 권력 남용도 국민의눈을 벗어난 ‘사각지대’가 될 수 없다. 고위 공직자들이 대거 포함된 사상 최대의 밀수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21세기 ‘거룡(巨龍)’ 중국이 공직자들의 직위남용을 근절하겠다고 나선것도 국민을 의식한 조치임이 틀림없다. 독일·이스라엘의 정치부패 스캔들과 중국의 대규모 밀수사건은 ‘피플 파워’가 정치 및 공직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주체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세진기자 yujin@ *중국 중국의 부패스캔들은 초대형 권력형 비리의 전형이다.엄청난 규모에다 권력 핵심부까지 연루됐기 때문이다. 최근 드러난 중국 건국 이래 최대규모인 푸젠(福建)성 샤먼(厦門)시 밀수사건이 대표적 사례.샤먼사건은 정치적 비리를 단속하는 중앙기율검사위가 지난해말 도산한 샤먼의 위안화(遠華)그룹이 100억달러(약 11조2,500억원)의자동차·전자제품과 총기류·석유 등을 밀수한 혐의를 잡고 수사를 시작하면서 비롯됐다.대상자만도 장쭝쉬(張宗緖)부시장,양첸셴(楊前線)세관장 등 무려 200여명에 이르렀다. 당초 초대형 밀수·독직사건으로 치부돼오던 이 사건은 기율위 관리들이 자신들의 전화를 샤먼 국가안정국이 도청했다는 사실을 밝혀내 권력층이 개입한 부패스캔들로 비화됐다.조사결과 사건의 배후에 권력핵심인 정치국위원의 부인과 전(前) 군 지도부 아들이 관련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권력형 비리로 바뀌었다. 현재 베이징시 당서기이며 정치국 위원인 자칭린(賈慶林)의 부인 린요우팡(林幼芳)과 류화칭(劉華淸) 전 군사위 부주석의 아들중 1명이 조사를 받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지난 60년대 제1기계공업부 근무중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친분을 쌓아 베이징으로 발탁돼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자 베이징시 당서기가 사건에 연루됐음이 드러나면 장 주석으로서는 큰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된다. 이에 앞서 류 전 군사위 부주석의 며느리와 사돈 등이 부패스캔들에 연루돼 피소됐다.류 전 부주석의 둘째 며느리 정샤오리(鄭曉麗)가 여동생 샤오옌(曉燕) 부부와 함께 투자사로부터 약 1,500만홍콩달러(약 22억5,000만원)를빌려 홍콩 증시에 투자했다가 날리는 바람에 피소됐다고 홍콩의 명보(明報)가 보도했다. 중국이 부패근절에 나서는 이유는 만연해 있는 국가 부패구조를 타파하지않고서는 21세기 강대국 도약을 보장할 수 없다는 우려감 때문.지난해 공안부 산하 밀수범죄 조사국을 신설,주룽지(朱鎔基) 총리의 지휘로 총력전을 벌여 이번 사건의 꼬리가 잡혔다. 김규환기자 khkim@ *독일 독일 정가를 쑥대밭으로 만든 헬무트 콜 전총리의 비자금스캔들은 한 정당의 문제를 넘어 정경유착과 불법자금이 유럽정치의 관행이었음을 폭로한 셈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사건은 통독영웅 콜 전총리에 정치적 사망선고를안겼고,윤리주의 이념을 표방해온 기민당측에 재기 불능의 치명상을 입혔다. 사건은 지난해 11월30일 당시 콜 기민당 명예총리가 티센 군수업자로부터정치자금을 수수했음을 인정,소문으로만 떠돌던 비자금의 실체를 확인하며비롯됐다.당시 콜총리가 200만 마르크라고 밝힌 비자금 규모는 이후 당내부의 고발,양심선언 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2,000만마르크에 이른다는 기민당 관계자 주장까지 나왔다.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는데도 콜 전총리가 비자금 출처에 대해 굳게 입을다물자 지난 18일 기민당은 긴급 지도부 회의에서 콜에게 탈당을 권유했고결국 콜은 명예총재직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19일 92년 동독 로이나 정유회사가 프랑스 엘프아키텐사에 매각되면서 8,500만 마르크에 달하는 리베이트가 사실상콜 전 총리와 미테랑 전 프랑스대통령 사이에서 오갔다는 충격적 보도가 나오자 전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국제커넥션 의혹은 독일 검찰이 공소시효 만료를 선언해 덮어지게 됐지만 정치적 이해에 따라 유럽 정권간 음성적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을 남겼다. 비자금 스캔들의 파급력은 지난 두달간 독일 의사당을 정정(政情) 중단의위기로 몰아넣었다.의회,언론을 불문한 폭로전의 와중에 집권 사민-녹색당연합의 비리를 까발리는 기민당 반격도 잇달았다.한 은행으로부터 상습 비행기 이용의 편의를 불법 제공받은 혐의로 집권 사민당측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재무장관이 사임하기도 했다. 이처럼 독일 정치권 전체가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이 확인되면서 후유증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정가 일각에서는 구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환멸로 여야를 막론,엄청난 물갈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하지만 이번 스캔들의 가장 큰 피해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독일 국민들이다. 손정숙기자 jssohn@ *이스라엘 에제르 바이츠만 대통령은 수뢰,에후드 바라크 총리는 선거법 위반,베냐민네타냐후 전 총리는 공금 유용….속속 드러나는 이스라엘의 거물급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혐의에 이스라엘 국민들이 분노가 폭발 일보 직전이다.끝없는부패 스캔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이미 바이츠만 대통령에게 강력한 퇴진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바라크 총리도 안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스라엘 감사원은 27일 지난해 5월 총선에서 바라크를 후보로 내세운 ‘하나의 이스라엘 동맹’이 선거자금법을 위반해 1,300만 세켈(33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당연히 바라크 총리에게도 혐의가 쏠리고 있다. 바라크 총리는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그는 “비영리기관도 모르며 당의 모금운동에 대해 아는 바 없다”면서 “며칠내로 대법원에 항소하는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야킴 루빈스타인 검찰총장은 감사원의 이같은 수사 내용을 넘겨받고 경찰에 ‘하나의 이스라엘 동맹’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 수사에서 감사원의 조사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 바라크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총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국민들의 신뢰 없인 불가능한 골란고원 반환 등 중동평화협상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의원 및 장관 재직시절이던 88∼93년 사이 프랑스 사업가로부터 4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바이츠만 대통령은 돈을 받은 사실은인정하면서도 개인적 친구의 사적인 ‘선물’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국민들의 격분을 불렀다.이같은 주장에 여론은 그에게 등을 돌려 국민의절반 이상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베냐민 네타냐후도공금유용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이밖에 아리예 데리전 내무장관,타치한네그비 전 법무장관도 수뢰 혐의로 기소되는 등 이스라엘 정가의 부패 스캔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부패 정치인들을 심판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분노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박희준기자 pnb@
  • [4·13총선 시민혁명](3)시민운동 좌표 확고히

    낙천·낙선운동으로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는 시민단체가 ‘유권자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흔들림 없이 양심과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 시민과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특히 정치권의 ‘음모론’ 등 거센 반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덕성과 조직정비,단체간 횡적인 연대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박영신(朴永信) 교수는 “시민단체가 계속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정치적 외풍을 차단하고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해야 한다”면서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음모론에 대해서는 단호하지만 원칙에 따라 조급하지 않게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교수는 특히 “시민단체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현재 음모론 등을 제기하고 있는 일부 정치권과 언론 등 수구세력들이 시민운동의 본질을 훼손해 가까스로 시작된 ‘유권자 심판운동’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면서 “시민단체들은 보다 치밀한 계획 아래 긴밀하게 공조하고 단체 내의 불건전한 의도를 가진 세력 등을 제외해 수구세력들에게 빌미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당정치연구소 박상병(朴庠秉) 연구기획실장은 “정치권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라면서 “시민단체는 끝까지 공정성과 투명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실장은 “‘음모론’은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주의에 기대겠다는 음모일뿐”이라고 지적하고 “정치권이 시민단체가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받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는다면 공멸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이 아직 지역주의의 사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만큼 시민단체가 정치권의 공세에 말려들면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생 류제철(柳濟喆·32)씨도 “시민단체의낙선운동은 정당하고 시의적절하다”면서 “정치권의 ‘음모론’과 한국정치의 해악인 지역감정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순수성과 운동의 방향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명섭(金明燮·38)씨는 “일부 단체의 독자행동과 계속되는 부적격의원 명단 공개는 국민에게 혼란과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면서 “도덕성과 연대강화를 통해 단합된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PC통신 하이텔 이용자 정창원씨(JCW70)는 “낙천·낙선운동이 결코 ‘마녀사냥식’의 책임전가가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과거의 부패 정치와 잘못된시민 의식을 정화해 새천년의 새정치를 건설해 나가는 발판으로 삼아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연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30대 남자는 “기득권의 저항과 수구세력의음모에 대해 원칙과 소신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라”고 주문하고 “4·13총선까지 두달여동안 시민의 힘을 결집할 수 있도록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고 적었다. 총선연대 김기식(金起式)사무처장은 “일부 정치권에서 당리당략에 따라 아전인수격으로 낙천·낙선운동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면서 “경실련 등 다른 단체와의 공조를 통해 정치권의 반발에 대응해 나가는 한편 대대적인 조직정비를 통해 ‘정치개혁’이라는 대의를 이뤄나가겠다”고 말했다. 조현석 이창구기자 hyun68@
  • [대한시론] 낙선운동과 정보화

    한국인의 정치의식은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특히 조선시대에는 ‘학문과덕을 닦고 집안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나라 안이 평안해진다(修身齊家 治國平天下)’는 주자의 어록이 절대시되었다.그런데 어느 틈엔가 이 내용이 고학력의 좋은 집안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미신으로 뿌리내리게 되었고,정치인 사이에 병적인 엘리트 의식을 조성했다. 해방 당시 한글조차도 깨우치지 못한 사람이 전 국민의 80%나 되었던 상황에서 대부분의 국민이 기대한 정치인 상은 첫째가 고학력으로,일제시대의 독립운동에 참여한 지사(志士)적인 풍모가 있는 사람이었다. 요컨대 정치가는 일반 백성들과는 격이 다른 특별한 인사라는 것이다.그러나 현실적으로 해방 이후 우리가 목격해온 수많은 정치인들의 행각에서 그들이 결코 덕이 높고,나라와 겨레를 생각하는 사람만은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오랜 독재정권 하에서 정치가들의 현실적인 행동은 선거공약과는 전혀 관계없는 ‘지역차별,색깔논쟁’,그리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는 ‘오기’뿐이며,실질적으로 조선시대 당쟁의식과 하나도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IMF 체제를 국난으로 여기고 있는데 그 극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국민적 일체감 형성에 힘쓴 바 있는가? 안타깝게도 이 물음에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현 국회의원이 극히 적음을 알고 있다. 하나의 제도가 일단 정착하면 실력과 경륜보다도 그 제도를 잘 이용하는 인사가 배출된다.국민적 요망을 저버린 정당 내의 역학구조에서 반국민적·반민주적 행동을 일삼고,오직 지역민의 감정에 영합하여 눈앞의 소수집단 이익을 위해 나라의 앞길을 망치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다. 요즘 한국은 고등학교 졸업자의 약 80%가 대학에 진학하는,세계에서 보기드문 고학력사회가 되었다.정치인들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는 높은 지식수준과 충분한 경륜을 지닌 수많은 시민층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이 독재적 권력에 아첨하고 반민주적인 행동을 일삼아온 정치가에게 혐오감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하다. 또 정치인의 비양심적 행위에 대해서 적극 경고하고,나아가서는 부정적 인사의 국회진출을 막는것은 민주국가 국민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그간 국민은 기존의 정치기구에 기생하며 자신의 이익추구에 급급해온 정치인이나,그런 패거리의 보호만을 일삼는 정당에 대해서 직접 경고하는 효과적인 수단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국민은 참을대로 참았다.이제 정보화(인터넷)로,정당이나 국회의사당을 거치지 않더라도 필요하다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실력도 충분히 갖추게 되었다.전 국민은 하나의 의제에 대해서 자기의 찬반 의지를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도 있다. 낙선운동은 새로운 힘을 지니게 된 국민이 정치권의 울안에서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착각하며 단잠을 즐기는 자에 대한 중대한 경고인 것이다. 정보화는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고,Inter(際)적인 요소를 강하게 내세운다.국경이나 학문분야의 경계를 희미하게 하여 국제간·학제간의 폭을 넓히고 있는 것도 그 보기이다. 이 흐름 속에서 정당과 시민단체의 경계도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앞으로의 시민운동은 정치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날뛰는 언론,경제계 등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시할 것이다. 정보화에 의한 카오스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데,이 시대적 양상은 더욱 더 가파르게 진행되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는 새 질서 형성에 적극 참여하고 스스로 시대착오적인 자세에서 탈피하는 일이다.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수학
  • [대한광장] 기억과 망각

    21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아주 짧지만 흥미있는 기사 하나를싣고 있다. “스웨덴이 전쟁 당시의 잘못을 인정하다”라는 제목의 이 기사가 전하는 바는 간단하다.스웨덴 총리인 고란 페르손이 지난 19일 스웨덴 거주 유대인연합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스웨덴의 잘못을인정했다는 것이다. 지난 60여년 동안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공식입장은 2차대전 동안 스웨덴은중립적 입장을 취했을 뿐이라는 자기변호적인 것이었다.그러나 스웨덴은 전쟁기간 동안 중립을 지킴으로써 전화를 피해갔을 뿐 아니라 나치의 군수공장에 철광석을 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사실 일부 현대사가들은 다른 나라에는 엄청난 비극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스웨덴에게는 부국으로 발돋움하는계기였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기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스웨덴 정부는 비단 이뿐만 아니라나치군대가 핀란드와 노르웨이를 침공하기 위해 스웨덴 영토를 가로지르는데 동의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스위스의 엄정중립과는 달리,자의든 타의든나치에호의적인 중립을 지켰다고 볼 수 있다.페르손 총리는 이번 주에 열릴홀로코스트에 대한 국제학술대회를 앞두고 고위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스웨덴의 이런 잘못을 시인한 것이다. 유럽의 많은 사회민주당들이 국제문제에서는 지극히 자국 중심적인 입장을취하는 데 반해,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비교적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원칙을고수했다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당시의 잘못을 시인하는 데는 인색했던 모양이다.따라서 페르손 총리의 발언은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현실정치에 대한 양심정치의 작은 승리라고도 하겠다.그것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승리이기도 하다. 이 작은 기사가 유독 내 눈길을 끈 것은 바로 그 직전의 일본 방문에서 받은 인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일본의 진보적 잡지 편집자들과 역사가들을 몇만났는데, 최근 일본의 우익단체에서 낸 ‘국민의 역사’라는 책이 자주 화제에 올랐다.지하철 전동차에 붙은 광고는 발매 한달 만에 벌써 62만부를 돌파했다고 자랑이다.일본 친구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아사히신문조차 호의적인 서평을 실었고 우익단체의 집회에 가면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 정부가 쓰라린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 내 미래를 지향하는 반성의 기회로 삼는 것과는 대조적으로,‘국민의 역사’는 일본의 전쟁책임과 침략사실을 부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지난 23일 오사카에서는 극우단체의 지지자들과 역사가들이 ‘남경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부정하는집회를 열어 중국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부활시킨 지난해의 조치와 호흡을 같이 하는 움직임이다.아시아 민중들에게 그것이 주는 끔찍한 의미를 일본은 이미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본사회의 역사의식이 이렇게 기억보다는 망각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개인이든 집단이든 기억보다는 망각이 편할 때가 많다.과거의 악몽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그러나 쓰라린 기억보다는 편한 망각을 택함으로써,일본사회는 스스로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차고있는 셈이다.용서는 망각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전제로 하기때문이다. 스웨덴과 일본의 이 차이는 유럽연합과 동아시아 민중연대 사이의 메울 수없는 간격을 드러내준다.지성사적 관점에서 볼 때 유럽연합이 가능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민주독일이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의 끈을놓지 않고 집요하게 과거와 미래의 대화를 시도했다는 데 있다.동방정책 당시 폴란드를 방문한 브란트 당시 총리가 바르샤바의 게토 봉기 기념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했을 때 독일과 폴란드 양국 간의 아픈 과거는 미래의연대를 단단하게 만드는 끈이 된 것이다. 한·중·일 3국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주창하는 동아시아 민중연대 역시 망각이 아니라 기억을 딛고 설 때,어렵게 첫 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실천적연대에 앞서 공동의 역사적 기억을 드잡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도여기에 있다. 임지현 한양대교수·사학
  • [매체비평] 알권리 외면한 언론

    지난 24일 총선시민연대는 낙선운동 대상자 67명의 명단을 공개하며,그들이어떤 비리를 저질렀는지 자세히 유권자들에게 알려주었다. 이후 신문지면은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의 정치적 파장에 관한 기사로 가득 채워졌다.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에 폭발적인 힘을 부여한 것은 두말할 나위없이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축적된 혐오와 분노이다. 그러나 총선시민연대로 쏟아지는 국민들의 성원은 우리 언론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기도 하다.걸핏하면 국민들의 알권리를 내세우는 언론이지만,과거고스톱 국회의원 명단의 공개를 거부한 것처럼,비리 정치인들의 ‘알량한’명예를 지킨다며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하기 일쑤였다.언론이 정치인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외면해왔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제공하는 정보가 엄청난 국민적 호응을 받는 것이다. 물론 언론도 정치권을 질타해왔다.그러나 실질적으로 정치개혁에 필요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지는 않았다.특히 우리 언론의 선거보도는 저질 후보자와 양질의 후보자를 가릴수 있을 만한 정확하고 상세한 뉴스제공을 거부했다.그러다 보니 전과자,비리혐의자,저질욕설과 상습도박을 일삼는 자,특정기업의 하수인이나 다름없는 자들이 정당의 공천을 받고 버젓이 국회의원으로당선이 된 것이다.그 결과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는 늘 혼수상태 아니면 난장판이 되곤 했다. 지난해에 드러난 일부 정치부 기자들의 행태는 국민들로 하여금 왜 우리 정치가 그 모양인지 이해할수 있게 해주었다.언론인들이 겉으로는 국민의 편에서서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실제로는 정치인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즉 우리 언론이 겉으로는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있지만,실제로는 국민의 편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편에 서서,기득권 수호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언론이 정치인들의 무능과 비리를 못본체 하고 감춰주고 있을 때,시민단체들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앞장섰다.그들은 중앙선관위에 행정소송까지제기하면서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시민단체의 실무자들은 최저생계비에 미치지도 못하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양심과 정의를잃지 않고 시민의 편에서 일해왔다.시민운동단체의 성실성과 공정성에 대한국민들의 신뢰가 바로 낙선운동에 대한 국민적 지지의 원천인 것이다. 한편 일부 언론은 반성은 커녕,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선거법 위반이라며딴죽을 걸기도 했다.물론 시민단체도 법을 지켜야 한다.그러나 민주주주의원칙에 어긋나는 악법에 불복종하는 것도 시민의 권리이다.현재 우리 언론이누리는 언론의 자유가 지난 87년 6월 수많은 국민들이 집시법을 어기면서거리로 뛰쳐나와 독재정권에 항거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 언론만 모르고 있는가?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이 보여주는 것은 진실의 위력이다.정치인에 대해 혐오하고,정치보도에 무관심하던 국민들이 낙선운동에 커다란 관심을 갖는 것은 지금까지 감춰졌던 진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도덕성과 신뢰성을 갖추지 못한 언론,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해온 언론이 만들어낸 우리의 서글픈 정치적 현실인 것이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 육군, 군판사 윤리강령 제정 독립·청렴성 강조

    육군은 19일 군사법원 독립을 계기로 군 판사 19명을 임명하고,군 판사의직무윤리를 강화하기 위해 전문과 본문 9개조로 된 ‘군 판사 윤리강령’을제정했다. 윤리강령은 군사법원의 독립과 군 판사의 명예를 지키고 청렴성,공정성 등의 직업 엄격한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1조는 ‘군 판사는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군사법원의 독립을 지키며 헌법과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서 독립하여 재판한다’고 규정하고,2조는 ‘군판사는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공정성을 다룬 3조는 ‘군 판사는 공정성에 관한 의심을 초래할 염려가 있는 경우 채권·채무관계의 설정 등 경제적 거래행위를 하지 아니하며 증여기타 경제적 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했다.4조에는 진행중인 사건과 관련된 변호인,피고인 또는 그 가족 등을 사적으로 접촉하지 않도록 했으며 6조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지키고 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노주석기자 joo@
  • [대한포럼]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

    우리의 젊은 청년들이 베트남전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내내 떠돌았던 하나의 신화가 있었다. 한국군은 너무나 용감하고 잘 싸우기 때문에 베트콩은 한국군 이야기만 들어도 도망을 가고 만다는 것이었다.그때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척자랑스러워 했었다.그런데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베트콩이 한국군을 피했던진짜 이유가 다른데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토록 감격해 마지 않았던 한국군의 신화는 어찌되는가. 노근리에서 미군은 한국 양민을 학살했지만 베트남에서는 우리 군이 베트남 양민을 학살했다는 증거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베트콩이 달아났던 진짜 이유는 한국군이 너무나 무서워서였다는 증언들이 나오고있다. 이제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앉아 버텨볼 것인가,아니면 한국군은 언제나 명예롭게 싸웠으며 지금와서 양민학살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요 사실이 아닌 조작된 것이라고 우겨볼 것인가. 고민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지난해 노근리 사건이 표면화된 이래 기회만있으면 미국에 노근리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를 보상하라고 사설을 쓰고 있다.이제 베트남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1965년 12월12일,한국군 2개 대대가 빈딩성 턴지앙촌에 500여발의 대포를 발사한 뒤 ‘깨끗이 죽이고,깨끗이 불태우고,깨끗이 파괴한다’는 구호 아래 수색소탕작전을 펼쳤다.그들은 이 마을에서 어린이,여성,임산부 등 50명이 넘는 양민을 학살했다” “66년 1월23일부터 2월26일까지 한달여동안 빈딩성 일원에서만 1,200명의 주민이 한국군에 의해 살해됐다.그 중에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 가족이 8가구나 됐으며 1,535채의 집과 649마리의 물소가 불태워졌거나 총탄에 쓰러졌다”. 이 기사는‘한겨레21’이 베트남에서 취재한 자료와 현지 증언을 토대로 지난해 5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보도한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 제하 기사의 일부분이다.우리는 이 기사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는가. 베트남전을‘전선없는 전쟁’이라고 했다.베트콩은 어디에도 있었고 어린이도 여자도 베트콩에 협력하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군은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구는 양민을 향해서도 열려 있었고 학살은 미리부터 예정돼 있었는지도 모른다고‘한겨레 21’은 쓰고 있다. 베트남 문화통신부는 불완전한 통계임을 전제로 베트남전동안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양민수가 5,000여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피해자의 주장들이 얼마간 과장됐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있었던 이런 이야기들을 통째로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노근리 사건의 잔학상이 한국전에서 자유를 위해 싸웠던 미군의 총체적전적을 손상시키지 않듯이 우리군의 일부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잘못이 베트남에서 싸웠던 한국군의 빛나는 전공을 말살하지도 않으려니와 그곳에서 목숨을 바친 5,000여 원혼들의 명예를 더럽히지도 않을 것이다. ‘한겨레21’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말’지 등이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시 담아내려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노근리 사건을 한국인 아닌 미국의 AP통신이 파헤쳤듯이 한국의 언론이 베트남에서의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찾아내고 있는 것은 그나마 한국언론의 양심이라 할 수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언론·사회단체,필요하다면 정부가 나서서라도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밝혀내야 한다.그리고 우리가 미국에 주장하듯이 진상을 밝힌 후 필요하다면 적정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그렇지 않고 우리가 노근리 사건등을 얘기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스스로 밝히는 일은 용기이지 치부가 아니다.그것이 한국인의 양심이고 한국의 희망이다. 임춘웅 논설위원limcw@
  • [김삼웅 칼럼] 지역주의는 반역이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정치인들이 꿈틀대고 있다. 능력이나 비전이 없는 정치꾼일수록 ‘약발’이 잘 먹히는 지역주의에 불을지피고 반사이익을 챙긴다. 한국정치를 움직이는 핵심적 요인은 대통령의 권력이나 국회 정당 시민단체 또는 검찰이 아니라 지역주의다. 지역주의라는 괴수(怪獸)는 송도 말년의불가사리처럼 종횡무진하면서 닥치는대로 짓밟는다. 이 괴수 앞에는 이성이나 정의, 양심이 살아남지 못한다. 이성을 눈멀게 하고 정의를 절름발이로만들고 양심을 멍들게 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이성이 머물다 간 밤중에 나타나 행동한다지만 이 괴수는 한낮에 활보하며 이성과 정의와 양심을 먹어치운다. 지역주의란 이름의 괴수가 나라를 조각내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역사를 후퇴시킨다. 개혁도 사정도 정치발전도 국민통합도 가로막는다. 어떤 이념,어떤사상,어떤 정책보다 우선하고 압도하며 눈먼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역사적 진실도 인재등용도 국토개발도 선거도 이 괴수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 만병의 근원이고 만악의 발원지이고 망국병이다.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은 예로부터 ‘조선8도’로 나뉘었다. 조선조 태종 13년(1413년)에 전국행정구역을 새로 조정하면서 설정한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를 말한다. 8개 행정구역은 조선말기까지 이어진다. 해방후 분단과 함께 남북이 각각 행정구역을 조정, 변경하여 오늘에 이른다. 그렇지만 여전히 ‘조선8도’식의 지역의식이 강하고 지역주의는 이 도계(道界)를 중심으로 나타난다. 8도의 도(道)는 무슨 심오한 철학적 의미가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나가는길’이란 뜻이다. 경상도의 경우 경주·상주쪽으로 나가는 길이요, 전라도는전주와 나주쪽으로 나가는 길이라 함이다. 8도에는 각기 이칭(異稱)도 있었다. 경기에는 원래 도(道) 자(字)를 붙이지 않는 것이 정칙이고(중심지이기에) 따라서 이칭도 없다. 호서(湖西)는 충청도로서 충북 제천 의림지호(義林池湖)의 서쪽이란 뜻이고, 호남(湖南)은 전라도로서 전북 김제 벽골제호(碧骨堤湖)의 남쪽이란 뜻이며, 영남(嶺南)은경상도로서 조령·죽령의 남쪽을 말하고, 강원도를 영동·관동이라 함은 대관령 동쪽이란 뜻, 해서(海西)는 황해도로서 경기해의 서쪽, 관북(關北)은 함경도로서 철령관의 북쪽, 관서(關西)는 평안도로서 이 또한 철령관의 서쪽이란 뜻이다. 고려시대에는 몇 차례 행정구역이 바뀌었지만 오래동안 준행된 것은 5도양계(五道兩界)라는 것이었다. 즉 5도는 양광(楊廣:현 경기)·경상·전라·교주(交州:현 강원)·서해(西海:황주)를 말한다. 양계는 동계(東界:함경방면),서계(西界:평안방면)이다.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에 걸쳐 비로소 동북에서는 두만강까지와 서북에는 압록강까지를 우리 국경선으로 하여 그 이남을 8도로 나눠 함경 평안 황해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이라 했다. 전라 경상은 고려이전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고, 나머지는 새로 정한 것이다. 8도의 구획은 조선조 500년 동안 준용되다가 고종시대에 지역이 넓은 함경·평안·충청·전라·경상 다섯도를 각각 남북으로 쪼개어 쓰는 13도 제도가생겼다. 한반도를 지리적으로 구분하는 명칭도 있었다.인천에서 원산에 이르는 가도로 생겨 있는 곡창을 경계로 그 이북은 북선(北鮮), 이남을 남선이라 하고, 황해 평안을 양서(兩西), 충청 전라 경상을 3남(三南)이라 불렀다. 이렇게 이어져온 행정구역이 근년에 갈등과 감정의 분계선이 되고 패권과 소외로갈리게 된 것은 순전히 군사독재의 지역차별을 통한 ‘분리지배’책략 때문이었다. 이제 지역주민과 시민단체가 나서서 이성과 정의와 양심을 집어삼키는 괴수를 박멸해야 한다. 성호 이익(李翼)은 ‘성호사설’에서 임진왜란때 서북 3도는 의병은 커녕오히려 왕자를 붙잡아 왜군에 넘긴 것은 서북 차별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바 있다. 정부도 어떤 형태의 지역차별이나 역차별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지만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도 총선을 앞두고 지역주의에 불을 지피는 짓은 말아야한다. 지역주의는 반역행위다. 김삼웅 주필
  • [사설] 개혁 외면한 정치개혁입법

    무려 13개월의 우여곡절끝에 내놓은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정치개혁법안들이과연 무엇을 개혁했는지 모르겠다는 국민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3당이 철저한 나눠먹기를 했다는 지적속에 개혁이아니라 개악(改惡)을 했다는 비난마저쏟아져 나오고 있다. 개혁법안들을 이처럼 누더기로 만들어놓고도 야당의원들의 의장공관 앞 농성이란 해괴한 해프닝이 있었고 자기 선거구 획정에 불만이 있는 일부 의원들의 반발로 15일 통과마저 무산됐다.이제 18일까지 이틀의 시간이 있다고하지만 무엇하나 건설적으로 손질되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여야는 당초 의원 정족수를 30%정도 줄이겠다고 공언했다가 나중에는 10%로 좁히더니 끝내는 한명도 줄이지 않고 말았다.의원 정족수문제는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나 문제는 개혁의지이고 국민과의 약속의 문제다. 여야는 또 상향 조정키로 했던 선거구 인구 상하한선도 현행대로 두었고 지역구 의석수는 현재보다 오히려 5석을 늘려 놓았다.각당이 자당 의석확보를위해 기득권중시의 입장을 고집한 결과이다. 특히 인구수 산정기준시점을 지난해 11월이아니라 9월말로 잡아 부산남 갑·을의 통합을 막고 전남의 곡성구례와 경남의 창녕 선거구를 유지시키는 등 게리맨더링의 극치를 보였다.경주 원주 군산등지에서는 상한선 30만 아닌 25만을 특별히 적용,분구를 지속시키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했다.위헌논란을 일으킬 대목들이다.반면에 선거보조금은 유권자 1인당 현재의 800원을 1,200원으로 50%나 올려 국민세금부담을 늘렸고 선거사범에 대한 공소시효는 현행 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시켰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 임명동의를 요하는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제도를 도입한 것은 그나마 성과를 거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정치권 이기주의는 그렇지 않아도 선거법 87조를 무시하고 의원후보의 낙천,낙선운동을 강행하겠다고 벼르고있는 시민단체들에게 ‘양심적 반대’의 명분을 주어 16대 총선이 자칫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대립을 심화시키는 불행한 사태를 부르게 될 지 모를 일이다. 시민운동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이런때에 정치권이 오히려 시민운동을 격화시킬 이번 정치개악 작업은 총선과정은 물론 선거가 끝나고도 정치권이 시위,위헌소송 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소지를 만들어 놓았다. 불과 이틀의 짧은 시간이지만 여야는가능한 범위에서라도 개혁의 본래 취지를 살리고 시민단체들과의 마찰을 피하는 쪽으로 법안 손질을 해주기 바란다.정치파괴의 극한 상황은 피해야 한다.
  • [대한광장] 선거법 87조가 ‘전가의 보도’인가

    시민단체들의 공천반대 운동,낙선운동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경실련이무려 164명이나 되는 ‘공천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했다.400개가 넘는 시민단체들이 모여서 만든 ‘2000년 총선시민연대’도 곧 ‘문제 정치인 리스트’를 발표할 것이다. 정치권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정치테러라고.그러나 정작 정치 테러를 당한 것은 국민이다.98년에 국회는 296일이나 문을 열었지만 회의가 열렸던 날은 54일 뿐이다.정치개혁 특위는 7차례나 활동시한을 연장했지만 아무 성과도 없었다.특위에 상정된 44개 법안 가운데 4건이 폐기되고 2건만이 통과되었다.나머지 38건은 손도 대지 않은 것이다.통과된 법안의 내용은 중앙당 및 지구당 후원회 기부한도액을 2배로 늘리는 것이다.일하지 않고 싸움만 일삼으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챙기는 정치가 바로 국민에 대한 테러인 것이다.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이 법치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불법행위라고 정치권은 목소리를 높인다.그러나 정치인들은 입이 열 개라도 말을 해서는 안된다. 작년 4월까지 선거구를 획정지어야 한다는 선거법을 해가 바뀌도록 어기고 있는 것은 불법행위가 아닌가. 정치인들은 말한다.지나치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면 안된다고.이게 무슨말인가.지금 국민과 시민단체가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하다.부정부패 저지르지 말고,의정활동 열심히 하고,지역감정 자극하지 말고,인권을 잘지키고,정치개혁 열심히 하고,선거법 잘 지키고,이 당 저 당 옮겨다니지 말고,자신이 선거에서 내세운 공약 잘 지켜 달라는 것이다.이게 도저히 지키지 못할 높은 도덕적 요구인가.국민의 대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이다. 상당한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들에게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것은 당연하다.이 기준을 지킬 수 없다면 국회의원을 하지 않으면 된다.하기 싫은 것을 국민이 억지로 시킨 것은 아니지 않은가. 후보 검증은 시민의 기본권이다.그러나 바른 투표를 하려고 해도 유권자에게는 후보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가 없다.따라서 ‘문제정치인’들을 가려내유권자에게 알려주는 것은 시민단체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정치권이 시민단체에게 들이대는 것은 선거법 87조이다.시민단체들의 명단발표가 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87조를 어겼다는 것이다.87조는 시민단체들이 오래 전부터 폐지를 요구한 조항이다.선거의 주체를 정당과 후보자로한정해 주권자인 국민과 시민단체의 권리나 의무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변단체나 불법 유령단체의 선거개입을 막으려는 입법취지는 옳다.그러나결과적으로 이 조항은 올바른 선거문화를 정착시키려는 건전한 시민단체의활동을 위축시키고 말았다.시민단체는 후보자에 대한 지지 및 반대는 물론이고 후보자의 정책평가마저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87조는 시민단체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금지함으로써 위헌적 성격을 안고 있으며,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일반원리에도 크게 어긋나는 독소조항이다. 87조가 위헌여지가 있다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기본권인 참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헌법은 국민 개개인의 양심과 정치적 지향 등의 사유로 불이익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양심의 자유 등을 비롯해 참정권을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87조는 후보자와 그 정책에 대한 시민단체의 견해 발표까지 금지함으로써 참정권을 침해하고 있다. 또 87조는 기존 정당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어 선거운동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한 헌법조항도 침해하고 있다.정치권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에 반발할 것이 아니라 87조를 폐지하고 정치개혁을 이루는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다. 손혁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정치학 박사
  • [21세기형 행정서비스] 반부패 활동 구체계획

    정부는 반부패기본법의 국회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부패방지교과목을 공무원 교육의 정식 교과목으로 편성운영하는 등 올해부터 ‘반부패 원년 선언’을 구체화시켜 나가기로 했다. 이와함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강화된 반부패 교육내용을 담기로 했다. 행정자치부는 10일 공직사회에 남아있는 부패친화적인 의식을 탈바꿈시키기위해 신임 공무원 기본교육과정에 부패방지 교과목을 정식 교과목으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또 교과목표 달성에 지장을 주지않는 범위안에서 전문교육과정에서도 부패방지 교육을 포함시키고 직장교육 때도 반부패 교육을 강화한다. 행자부 관계자는 “그동안 직장교육 및 교육훈련기관의 정신교육 때 부패방지 관련 교육을 부분적으로 실시해왔으나 미흡한 것으로 판단돼 올해부터 정식교과목으로 편성 운영하게된다”고 설명했다. 행자부는 각급 기관의 부패방지교육 추진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보완할방침이다. 공무원 복무를 관장하는 행자부는 이와함께 공직주변의 부정부패 척결과 관련,공직자 10대 준수사항등 네거티브 중심의 접근방식은 부패를 고도화·은밀화시킬 우려가 높다고 보고 규제완화,공직자 사기진작,주민감사청구 등 포지티브 중심의 접근으로 낡은 관행과 의식을 개혁한다는 입장이다. 또 올 1월부터 초등학교 1·2학년 교과과정에 부정부패 추방을 위한 내용이대폭 강화되어 실린다. 교육부 관계자는 “부정부패 방지교육은 교과 활동에 반영되어야 한다”면서 “올해에는 초등학교 1·2학년의 바른생활 과정을 중심으로 부정부패 내용을 언급하고 내년에는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과정으로 이를확대,반영하게 된다”고 밝혔다. 한편 제2건국위원회는 오는 4월부터 공직부패 척결을 위한 각 부처별 노력지수를 외부전문가와 함께 측정하기로했다. 또 반부패 국민연대는 지자체와 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통한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올해안에 16개 광역지자체와 100대 대기업의 윤리시스템을 측정한다는 계획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尹亨燮 반부패특위 위원장 “반부패기본법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되기를 기대합니다”반부패특별위원회 윤형섭(尹亨燮)위원장은 10일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서이같이 밝히고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처리되기를 낙관합니다”라고 말했다. 연세대 교수·교육부 장관·건국대 총장·옛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사장등의 화려한 경력을 가진 윤위원장은 “반부패특위에 그동안 100여건의 고발이 접수됐지만 반부패기본법이 제정되지 않아 감사원·검찰·지방자치단체같은 기관으로 넘겨주고 있습니다”라고 특위의 한계를 설명했다. ●국회가 반부패기본법을 처리할 의사가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 반부패기본법안이 안 만들어질 수 없으며,국회의원들이 법안을 처리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고 본다.만약 통과되지 않으면 15대 국회의 책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야가 법안을 합의 처리할 가능성은 있는가. 여야가 제출한 법안은 모두 부정부패를 뿌리뽑자는 같은 목적에서 나왔다. 여야가 단일안을 만들어 만장일치로 통과되기를 바란다. ●일부 특위 위원들이 사퇴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반부패기본법에 대한 열망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본다.정기국회에 이어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면 위원들의 실망감은 대단할 것이다.그럼에도 모두 희망을 갖고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올해 특위의 주요한 활동 계획은. 공공 행정기관별 부패정도를 평가 발표해 기관들의 반부패 노력을 유도해갈것이다. 부패 신고자에게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신고자의 인사교류도 청구할 계획이다.부패 신고로 공공기관이 경제적인 수입이 있다면 일정비율을 보상금으로 지급하도록 할 것이다.특히 정치부패 방지활동을 하는 관계기관·단체들과 연대해서 부패방지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나갈계획이다. ●감사원·검찰등에서는 특위의 권한 강화에 부정적인데. 특위와 감사원·검찰등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공무원 비리만 다루는감사원은 정경유착과 권력형 비리에 손대는데 한계가 있지 않은가.특위는 이런 부분을 다루게 될 것이다.감사원 등의 역할과 권한을 최대한 존중할 것이다. 박정현기자 jhpark@ ** 각종 시민단체 부패 사슬끊기 우리사회 곳곳의 부패척결을 모토로 내건 시민단체들은 연합체인 반부패국민연대를 비롯해 참여연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이 있다. 반부패 국민연대는 사회전반의 부패를 추방하는 것을 목표로 각 단체들이연합한 조직이다.각 부패 사례를 모으기 위해 신문고를 운영하고 광역별 기관별 기업별 ‘부패지수’를 조사 발표한다.또 부패인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부패인사들이 공직에 취임하거나 선거에 나설때 이를 차단할 계획이다.(www.transparency.or.kr,02-708-5858). 참여연대는 맑은사회만들기본부를 통해 부패방지법 제정운동을 추진,그동안국회의원 237명에게 제정 약속을 받아냈다. 본부에서는 부패방지법을 비롯한반부패 정책대안을 연구하고, 내부비리제보를 접수한다.또 정보공개청구사업단을 운영,서울시장 판공비 공개운동 등 정보공개를 청구해 지난해 단체장들의 판공비 공개를 이끌어내기도 했다.(www.pspd.org,02-723-5302) 경실련(www.ccej.or.kr)과 함께하는 시민행동(www.ww.or.kr)은 예산감시운동에 주력하고 있다.정부의 예산에 대한 철저한 감시야말로 부패의 근원을차단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와함께 부경대학교 행정학과의 윤태범교수가 운영하는 사이버 연구소 부패연구센터는 부패문제에 대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연구를 지향하며 네티즌들의 참여를 도모한다. 윤교수의 논문뿐 아니라 부패관련 각종 자료를 사이트에 올려놓고 공유하며장기적으로는 부패문헌센터로서의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www.pknu.ac.kr/∼pkpa/cccr)서정아기자 seoa@*부패지수와 우리의 현주소 공정한 부패지수 산정 문제가 행정 분야의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다.반부패특별위원회도 올해 행정기관별 부패 정도를 평가,발표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부패지수는 선진 각국에서 사회전반의 부패를 막는 ‘소금’구실을 한다.이를 정기적으로 산정,공개함으로써 중앙부처는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의 부패를 억제한다는 차원에서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이 제도를 실험적으로 도입했다.서울시가 지난 4일 관내 25개 자치구의 민생분야 반부패지수를 공개한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나 부패지수는 대상 기관뿐만 아니라 산정 주체의 입장에서도 ‘뜨거운감자’다.산정 방식의 공정성을 둘러싼 파문 때문이다.청렴도가 저평가된 서울시의 해당구청에서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부패지수 산정의 원조 기구는 국제투명성위원회(Transparency International).베를린에 본부를 둔 이 기구는 해마다 국제적 차원에서 각국의 부패지수(The Corruption Perceptions Index,CPI)를 산정 발표해 왔다. 지난해 10월 TI가 발표한 99년 CPI 순위는 조사대상 99개국중 50위였다.조사방법상의 논란 여지가 없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패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감사원에서도 이에 대해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지난 95년 TI본부에 직원을 파견,지수 산정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그러나 감사원은 이후 부패지수를 한번도 산정·발표하지 않았다.공정성 시비를 우려한 탓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TI측의 부패지수는 크게 3가지의 가중치를 둔 자료로 산정된다.즉 여론조사와 현지 언론에 보도된 부패 관련 사건,그리고 다른 기관에서 추정한 부패의 추세 등이 그 기초자료다. 이번에 서울시가산정한 반부패(청렴성)지수의 경우 설문 및 방문 여론조사를 토대로 산정됐다.약 9,000명의 시민과 업체 관계자,구청 실무자등이 조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결과를 둘러싸고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강남·서초구 등 반부패 순위가 나쁘게 나타난 구청들이 지수의 변별력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민원인들의 주관적 느낌을 위주로 한 여론조사에만 의존한 지수산정은문제가 없지 않다. 예컨대 구청 직원의 지역담당제 폐지 등 정책적 노력이나창구직원이 아닌 구청장 등 ‘윗물’의 구조적 비리가 간과된 것이다. 또 강남지역에 룸살롱 등 업소가 밀집한 사실 등 부패와 관련한 환경적 요인도 무시됐다는 지적이다.전문가들은 보다 객관적 지수가 개발되기 전단계에선 부패지수 순위의 평면적 비교보다는 시간적 비교로 해당기관이 스스로부패정화 노력을 기울이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구본영기자 kby7@ **외국의 사례 반부패운동은 국제적인 흐름이다.‘아시아의 네마리 용’으로 불리는 싱가포르와 홍콩 등은 물론 미국에서도반부패운동이 활발하다. 싱가포르는 52년 부정부패조사기관인 ‘부패행위조사국’을 설치한 이후 ‘부패방지법’(60년),‘부정축재몰수법’(89년)을 제정하는 등 꾸준히 부패방지 노력을 기울여 왔다.부패행위조사국은 ●뇌물수수의 원인일 수 있는 불필요한 규제 완화 ●공직자와 배우자의 재산공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부정부패 관련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공직자 부패척결 노력도 그 역사가 깊다.77년 ‘해외부패방지법’을제정한뒤‘정부윤리법’(78년), ‘양심선언자보호법’(89년), ‘자발적 기업윤리강령’(95년) 등을 만들었다. 98년 미의회는 ‘국제뇌물금지협약’을 비준,외국공무원에게 뇌물을 줄 경우 형사처벌할 수 있게 했다.89년 독립기관으로 설치된 ‘정부윤리국’은 행정부의 정부윤리법 준수여부 감시,공무원 재산공개,윤리교육 프로그램 개발,시대에 맞는 윤리법 제·개정 등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홍콩은 70년대 초부터 정부차원의 반부패운동을 시작했다.74년 ‘부패방지독립위원회령’에 의거한 ‘부패방지독립위원회’를 발족시키고 95년 홍콩윤리발전센터를 설립하는가 하면 뇌물방지령과 부패불법행위령 등 부패관련 법령을 제정,끊임없는 반부패 운동을 펼치고 있다. 최여경기자 kid@
  • [대한시론] 평화 정착을 위한 제언

    새 천년의 새날이 밝아왔다.우선 모든 이들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축원하고 싶다.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월은 흘러가게 되어 있고,미래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사람들은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기도 하고,종말론적인 암울한 시대를 예상하기도 한다.그런데 역사가 진보한다는 역사철학 사상과 이에 회의적인 비관주의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인류의 역사에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물음도 이제까지 거듭 제기되어 왔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실존적 삶에서 끊임없이 묻게 되는 문제다. 어쨌든 새날을 의미 있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어차피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의 몫이기 때문이다.길게는 20세기,짧게는 1999년도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다.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내란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아직도 전쟁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구 유고지역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코소보전쟁,러시아의 체첸 침공 등은 이러한 반인간적 사태의몇가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세계에는 계층·세대·민족·지역·종교 사이에 갈등과 대립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 잠정적인 평화만 있을 뿐 폭력과 전쟁의 가능성은 휴화산처럼 남아 있다.뿐만 아니라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추세 가운데 국가간에무한경쟁이 강요되어 경제적 선진국과 후진국의 틈새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형국이다.6·25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한반도는 이제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그래서 이 시대에 우리가 염원해야 할것은 물론 세계평화이기도 하지만,한반도의 평화통일이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인 것이다. 최근 남북한 사이에 예술·체육 분야의 교류가 있게 된 것은 이러한 과제나 소망을 점진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는 희망적이고 고무적인 첫걸음이다. 앞으로도 정부와 시민단체는 동포애에 기초하여 평화통일을 위한 진지한 대화와 화합의 길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단순히 전쟁 없는 상태가 평화는 아니다.평화는 정의·질서·조화의 요소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는 상태이고,그 내실은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공동선의 보장이다.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봉사하며,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은 도덕적 요청이다.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경제위기로 인한 난국을 상당히 벗어난 것처럼 홍보하지만 국민들의 체감은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우리 주위에는 직장을 잃고 헤매는 실업자,노숙자와 그 가족들,병고와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결식 아동과 한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에속하는 시민들이 적지않다.정부는 불우한 이웃을 개인의 인정과 자비심에 맡기거나 시민단체와 종교단체의 자선활동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정책을 확대하여 그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제도의 확립은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는 길이며,사회의 평화를 이룩하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불의한 구석이많이 남아 있다.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재벌의 부정과 비리는 정직하게 근근이 살아가는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을 허탈에 빠지게 하고 분노케한다.정부는 사정의 고삐를 늦추지 말고 정의구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시민 각자의 양심에 의한 결단과 행동이다. 남을 악용하고 지배하려는 폭력적인 인간관계는 청산되어야 한다.이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남을 위해 바치는 일이 평화를 실현하는 것임을 가슴에 되새기며 이웃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때다.이렇게 할 때 새 천년에는 더욱 나은 인간관계와 국제관계가 형성될 것이며 개인의 마음의 평화와 함께 세계평화가 정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박종대 서강대교수 철학
  • 대한매일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I)고봉준

    ◆ 혁명적 담론에서 생성적 담론으로의 넘어서기-백무산論 ◆ [1]90년대는 이른바 포스트-모던 담론의 시대이다.현대 영·미 철학과 프랑스철학의 흐름을 대표하는 이 담론들은 근대 서구 철학의 주춧돌인 합리적 이성과 동일화 논리를 전략적으로 해체시키면서 탈근대적 사유를 정초시킨다. ‘다양성(차이)’의 긍정을 통한 ‘탈근대’적 사유로 공약되는 이들 포스트주의 담론의 격랑은 우리 문학에도 새로운 문제틀을 촉발시켰다.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사회적 주체의 생성을 이미 틀지워진 구조 속으로 몰아 넣거나 이념의 족쇄로부터 풀려난 반사회적 주체들을 양산함으로써 오히려 문학의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90년대적’이라는 사회학적 관용구는 이러한 포스트담론들에 대한 한국적 반향의 일종이다.그리고 이러한 90년대적 사유의 한극점에서 ‘근대성’담론이 새롭게 논의되고 있다.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논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지난 세기와 새롭게 도래하는 밀레니엄의 분별지를 이룬다.보편적인 의미에서 탈근대란 근대적 주체(코기토)의 파산을 선고하는 조종(弔鐘)이며,동시에 서구적 거대 담론의 시효만기를 의미한다.코기토로 표상되는 합리적 이성은 역사의 구조와 과정을 논리화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일상적 경험을 비롯하여 이성으로 인식될 수 없는 사건들을 배제시킴으로써 탈근대적 사유의 법정에서 유죄선고를 받았다.탈근대적 사유란 결국 탈근대적 주체의 발견과 그 주체의 욕망에 대한 문제를 사유하려는 행위와 다름 아니며,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사유를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의 출현과 새로운 세기의 도래를 경험하고 있다.그러나 탈근대적 사유의 한국적 수용은 거대담론이 개인으로부터 강탈해 간 일상성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역사가 축조한 문제의식을 생활세계로부터 퇴출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또한 탈근대성 논의들은 근대와 탈근대를 적대적 모순의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상호배제라는 극단적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근대와 탈근대의 문제의식이 이처럼 화해할 수 없는 관계 속에 놓일 때 결국 그들은 서로의 굴절된 욕망만을 투영하는 거울,즉 일란성쌍둥이 이상의 의미는 아니다.이러한 역설의 질곡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근대를 넘어서려는 담론들이 노자(老子)철학과 불교적 사유를 근간으로 최근 우리 문학에서 시도되고 있다. 백무산의 언어는 근대를 가로지르며 그 너머의 세계로 횡단하고 있다.첫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1988)에서부터 ‘길은 광야의 것이다’(1999)에 이르기까지를 관통하고 있는 그의 시의 핵심은 ‘생성’과 ‘소멸’의 문제이다.80년대라는 정치적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초기 시에서 이러한 대립은 자본주의 체제의 비인간적 현실을 고발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그러나 ‘인간의 시간’(1996)이후 그의 시는 ‘혁명’으로 표상되는 근대적 패러다임에 대한 철저한 자기부정,생태학적·불교적 사유의 탄력적인 수용을 통해 ‘생성’이라는 탈근대적 언어로의 횡단을 모색하고 있다.물론 이때의 ‘생성’담론은 여타의 탈근대적 사유들이 보여주는 탈역사적인 특성들과는 달리 역사성의 대지라는 근대적 지반에 뿌리내리고 있으며,나아가 근대적 산물의 성과를 부정하지도 않는다.그렇기 때문에 백무산의 사유는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를 드러낸다.경계,그것은 80년대와 90년대,근대와 탈근대의 이중적 관계를 가로지름으로써 생성적 사유로 넘어서려는 언어적 전략이다.이 글은 그의 언어가 펼쳐 보이는 사유의 궤적을 따라 근대의 문턱을 조심스레 넘어보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2]백무산의 시는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두 진영의 ‘확연한 갈라섬’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된다.‘갈라섬’이란 곧 배제의 원리이며,그러한 단절을 통해서이들 두 진영은 각자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초기시 ‘만국의 노동자여’와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는 피지배세력의 저항이 모순의 극단적 양태인 적대적 분열을 통해 본질적인 힘을 추동받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그리고 이러한 적대적 분열의 자장은 “밥 가운데서 죽은 밥과 산 밥을 보았다”처럼 ‘밥’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구체화된다. 1)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펄펄 살아 튀는 밥을 먹으리라/먹은 대로 깨끗이 목숨 위해 쓰이고/먹은 대로 깨끗이 힘이 되는 밥/쓰일 데로 쓰인 힘은 다시 밥이 되리라/살아 있는노동의 밥이 -‘노동의 밥’부분2)무슨 밥을 먹는가가 문제다/우리는 밥에 따라 나뉘었다/그 밥에 따라 양심이 나뉘고/윤리가 나뉘고 도덕이 나뉘고 또 민족이 서로 나뉘고//… 그래서밥은 계급적이고//노동자의 가슴에/노동자의 피가 흐르는 것은/밥이 다르기때문이다 -‘만국의 노동자여’부분‘밥’은 곧 현실의 질서를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이다.1)에서 노동자의 밥은 ‘피가 도는 밥’‘펄펄 살아 튀는 밥’‘먹은 대로 깨끗이 힘이 되는 밥’처럼 생명성을 지니는 반면,자본가의 밥은 단순한 소모의 대상 이상으로 의미화되지 않는다.여기서 ‘밥-힘(노동)-밥’으로 연결되는 노동자의 밥은 생성의 힘을 선취하고 있다.표제시 2)에서 ‘밥’은 ‘양심’‘윤리’‘도덕’‘민족’등의 상부구조적인 모든 질서를 나누는 분별지이다.따라서 ‘밥’을 둘러싼 투쟁이란 경제투쟁의 차원을 넘어선 ‘생명’이라는 새로운 문제틀을 함의한다.이제 밥은 단순히 음식과 경제의 표상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이며,동시에 그 진리를 판가름하는 ‘메타-진리’인 것이다.‘밥’을 통한 사물의 재분할은 인간을 ‘죽은 자’와 ‘산 자’로,‘밥’을 ‘죽은 밥’과 ‘산 밥’으로 그리고 ‘역사’를 ‘죽은 역사’와 ‘산 역사’로 새롭게 규정하는 계기가 된다.밥은 곧 세계를 구획짓는 새로운 질서이다.그 새로운 질서에 의해 생명의 계열(산 밥-산 자-산 역사)은 노동(자)의 세계를,그리고죽음의 계열(죽은 밥-죽은 자-죽은 역사)은 자본(가)의 세계를 표상한다. ‘만국의 노동자여’가 ‘밥’을 매개로 한 대립의 세계를 형상화한다면,‘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는 ‘시간’을 둘러싼 대립의 세계를 그려 보인다.여기서 ‘시간’이란 노동의 소외와 물신화라는 정치경제학적인 의미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인간의 역사는 시간을 둘러싼 투쟁이다/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뺏고/되찾는 투쟁의 역사다//…자본가!…자연을 개조하고 한 역사를 개조하고/이윤을 위해 인간의 시간을/이윤의 시간으로 전환해 버리는 힘의 소유자…자본가들은 드디어 세상의 모든 시간을 제압했다…인간의 시간을 제압해 버렸다…그 누구도 어떠한 계급도자본의 시간으로부터/자유로울 수 없는 세계를건설했다…파업에는 혁명이라는 괴물이 숨어 있다고/파업에는 죽어가는 생명을 되살리는/피빛 혁명이 숨어 있다고-‘서시-생존의 경쟁’부분근대적 성격을 띠는 ‘자본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자연의 시간’과 대립적으로 인식된다.이때 ‘인간의 시간’이란 분절되고 선분화된 직선적 흐름이 아니라 생명의 새로운 생성과 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살아 있는 시간’이다.‘살아 있는 시간’만이 ‘움직임’과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그러나 근대 자본주의는 발전의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절대적인 분리를 초래하였다.‘시계’라는 근대적 장치의 등장은 그러한 분리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표상이다.그 과정에서 ‘시계’는 인간의 노동을수량화함으로써 합리적인 노동시간의 분배와 측정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착취하는 기계가 되었다.반면 파업을 통해 구가하는 생명의 되살림이란 결국 자본주의적인 시간 혹은 ‘죽음의 시간’과 대조되는 ‘살아 있는 시간’의 발견이다.그가 ‘자본론’에서 발견한 ‘돈으로 왜곡된 시간’역시 결국 이러한 근대적 시간관으로부터의 탈주 욕망에 대한 역설(力說)적 표현이라 할수 있다. [3]‘인간의 시간’은 90년대가 지난 시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우리의 기억 속에서 80년대는 여전히 ‘불의 시대’이다.80년대는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황홀하게 조응’함으로써 시가 그 자체만으로도 혁명적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지던 뜨거운 시대였다.그러나 그 뜨거운 서사는 결국 ‘패배’라는 단어 뒤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종결되었다.‘인간의 시간’은 시인의 긴 침잠이 자기부정의 여정이었음을 고백하는 낮은 목소리로 시작된다.누가 이런 길 내었나/가던 길 끊겼네/무슨 사태 일어나 가파른/벼랑에 목이 잘린 길 하나 걸렸네//옛 길 버리고 왔건만/새 길 끊겼네/…지난 길 다 버린 뒤의 경계//아,나 이제 경계에 서려네/칼날 같은 경계에 서려네//나아가지도 못하나 머물지도 못하는 곳//아스라히 허공에 손을 뻗네/나 이제 모든 경계에 서려네-‘경계’부분한 시대를 길의 이미지로 표상한다면 90년대란 ‘벼랑’이 아닐까?이때 벼랑이란 “옛 길 버리고 왔건만/새 길 끊긴”참혹한 현실의 상징이다.‘옛 길’과 ‘새 길’이 모두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벼랑에 목이 잘려’위태롭게 걸려 있는 길,그것은 ‘경계’이다.두 길의 이중주가 만들어 놓은 예각으로서의 경계란 일종의 정치적 망명상태이며,‘나아가지 못하나 머물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불분명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임에 틀림없다.시집 도처에서 발견되는 한숨과 자조의 강박적 반복은,그가 ‘경계’위에서 지나온 삶을 허무는 고투를 경험하고 있음을 알려준다.이러한 자기부정을 통해 그는 “그대가 잃은 길도 집도/진작 허물어져야 했던 것이네”“차라리 길이었으므로 갈수가 없었습니다”“이미 난 길은 길이 아니네/이미 지어진 집은 집이 아니네”처럼 ‘무위(無爲)’의 세계를 발견한다. 대지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거역한다/소모와 죽음의 행로를 걸어온,/날로썩어가고 황무지만 진전시켜온/죽은 시간을 전복시킨다/대지는 단절을 꿈꾼다/모든 것이 모든 것에 순응하는 지휘계통/대지는 이렇게 혁명을 하는 것/잠든 씨 알갱이들과 언 땅 뿌리들을/불러내는 것은 봄이 아니다/스스로 자신을 밀어올리는 것/생명의 풀무질을 충만하게 가두고/안으로 눈뜬 초미의 주의력을 늦추지 않는 것/시간과 봄은 생명력의 배경일 뿐//역사가 강물처럼 흐른다고 믿는가/그렇지 않다/단절의 꿈이 역사를 밀어간다-‘인간의 시간’부분 무위의 세계는 곧 조화와 융합,즉 대자연의 세계이다.그 세계에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깃들어 있다.‘배려’란 본질적으로 ‘타자성’에 대한 인정이며,나아가 지난날 인간이 구가해 온 폭력적 이성에 대한 반성이다.“모든것이 모든 것에 순응하는 지휘계통”은 바로 생명의 본원적인 흐름이며,그러한 자연의 질서란 그 속에 어떠한 ‘지휘계통’도 내포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연의 질서란 ‘내재적’사유로서의 ‘생성’을 근간으로 한다.그러나 이때의 ‘생성’과 ‘생명’은 ‘역사’라는 근대적 사유와의 관계장 속에 놓임으로써 근대적 가치 전체로부터 수직적인 초월을 모색하지는 않는다. 즉 생성이란 부르주아와 자본으로 점철된 근대적 시간관의 형이상학적 역사,나아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근대 이성의 부정태에 대한 거역의 차원이지 결코 황금시대를 동경하는 복고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퇴행성 의지는 아니다.이러한 사유에 의해 혁명적 담론은 새롭게 구성된다.생명이 대지의 내부에 존재하듯 혁명이란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는 내부적 사건에서 촉발되는 것이다.‘잠든 씨 알갱이’와 ‘언 땅 뿌리’를 불러내는 것이 결코 ‘봄’이 아니듯이 혁명이란 인간의 외부적 상황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밖으로부터의 변혁이 아닌 안으로부터의 과정이어야 한다.그 내부의 힘이 곧 ‘단절의 꿈’이고 또한 그것이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다.따라서 이제 ‘혁명’이란 대지와 자연의 질서를 닮은 형태여야 하며 그것의 인간적 현상이 곧 노동이다.‘인간의 시간’은 생성으로서의 역사가 언제나 단절의 맹아를 잉태하면서 접힘과 풀림을 반복하는 운동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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