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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교사 가정방문 학생 위해 필요하다

    학생 생활지도를 위한 교사들의 가정방문을 둘러싸고 교육현장에서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교사 5000여명이 활동 중인 ‘좋은교사운동’은 지난 2001년 이후 담임학급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해 오고 있는데, 일부 학교에서는 갖가지 부작용을 이유로 제동을 거는 모양이다. 가정방문이 필요하다는 교사모임측이나 이를 막는 학교측이나 모두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는 있다. 그렇더라도 교사들이 교재연구나 학사업무의 바쁜 와중에도 학생의 가정환경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교육에 참조하겠다는 것이라면 그 순수한 뜻을 굳이 막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아이들은 교사와 학부모, 나아가 사회의 건전한 성인들의 관심과 애정 속에 자라야 한다. 따라서 교사와 학부모의 만남을 통한 교감(交感)과 상의(相議)는 학생교육에서 꼭 필요하다. 그러려면 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학생의 가정생활에 대한 도움말을 얻을 수 있고, 학부모는 교사로부터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한 귀띔을 받을 수 있다. 지금처럼 학생이 사고를 당하거나 장기결석하는 등의 경우에만 가정방문이 이루어져서는 예방효과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교사들의 의무적 가정방문은 부조리 때문에 오래 전에 없어졌다. 요즘은 교사들조차 오해받으면서 무리하게 가정방문을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일부 교사와 학부모의 부도덕성이 교육자 전체를 매도하고 위축시킨 탓이다. 하지만 가정방문 문제는 교사의 교육적이고 자율적인 판단에 맡길 일이지, 학교나 교육당국이 지나치게 관여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교사들의 양심과 열정을 믿어야 한다.
  • 가정방문…일부 학교 “불허” vs 교사 “강행”

    일부 학교에서 학생 가정방문을 둘러싸고 학교측과 교사들이 마찰을 빚고 있다. 2001년 3월부터 가정방문운동을 펴고 있는 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은 올해에도 학교별로 맡고 있는 학급에서 가정방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교에서 가정방문을 막아 교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 단체는 15일 “일부 학교에서 학교장과 부장급 교사들이 가정방문을 저지하고 있다.”면서 “교사의 양심을 걸고, 교육적 필요에 따라 실시하고 있는 가정방문을 금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좋은교사운동’은 지난 2000년 ‘기독교사연합’에서 이름을 바꿔 재출범했으며,5000여명의 교사가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가 가정방문을 부활시키고 있는 이유는 학생들의 가정을 직접 방문해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보아 학생 지도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학교측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가정방문을 반대하고 있다. 가정방문 과정에서 촌지를 주고 받는 등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고, 여러가지 문제로 폐지된 뒤 공식 제도화되지 않은 가정방문을 학부모들이 꺼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J고 교장은 “가정방문은 촌지 등 여러가지 문제점 때문에 오래 전에 폐지됐다.”면서 “특별한 문제가 있는 학생도 아닌, 반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정방문을 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교사들은 몇년 동안 잡음 없이 하고 있는데도 과거의 잣대로 막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는 “가정방문을 다녀오면 아이들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면서 “가정방문은 아이들과 교사간의 신뢰감 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처음엔 ‘그런 걸 왜 하느냐.’고 말하던 아이들도 가정방문 후에는 좋아한다.”면서 “게다가 희망자에 한해 실시하고 있는데 왜 문제삼는지 알 수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가정방문을 받아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호의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서울 문래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김상숙(41·여)씨는 “처음에는 가정방문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가정방문후 선생님이 편하게 느껴져 앞으로는 아이 문제에 대해 망설임 없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의무적인 가정방문은 80년대 중반∼90년대 초 각종 폐해로 폐지됐다. 현재 가정방문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며 학생 지도에 필요한 경우에는 허용된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 실시하는 가정방문을 막을 이유가 없다.”면서 “가정방문은 교사 교육활동 중의 하나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만중 대변인은 “단순한 상담활동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서 “3·4월 방과 후 시간을 고스란히 투자하면서 순수한 교육적 목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가정방문을 왜 막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률적인 가정방문의 부활은 적절하지 않지만 원하는 교사들이 학교측과 갈등 없이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재갑 대변인은 “가정방문은 순기능뿐만 아니라 역기능이 있는 만큼 교사와 교장 입장 모두 이해된다.”면서 “가정방문은 자율적으로 실시하되 절차나 방법에 대한 것을 일선 학교에 맡기지 말고 교육청 차원에서 정책적인 지침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盧대통령 “독일 과거사 청산방식 존경한다”

    盧대통령 “독일 과거사 청산방식 존경한다”

    독일을 국빈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12일(한국시간 13일 새벽) 독일 하원의 주요 인사 20여명과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독일의 과거사 청산방식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독일은)부끄러운 과거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지하게 반성할 줄 아는 양심과 용기,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실천을 통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했다.”고 독일의 과거사 청산방식을 높이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피해자 배상을 계속하고 있으며 역사교과서 또한 이웃나라들과 협의를 거쳐 편찬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와 대비한 뒤 “독일의 이런 노력이 주변국들과 화해를 이뤄내고 오늘의 유럽연합(EU) 통합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 대통령은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만들어 나가야 할 우리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우회적으로 일본을 비판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 당수와 만나 “우리 국민은 통일 이전이라도 북한의 경제개혁과 개방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비용이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지난 11일 볼프강 티어제 하원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장래에 대해 “궁극적으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정권을 계속 유지하면서 변화해 나가는 방향으로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그래서 우리나라는 경제특구라든지 개성공단이라든지 경제지원 협력을 통해 북한이 산업화되고 시장경제를 경험해서 개방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13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회담을 갖고 북한 핵문제, 중소기업과 산업기술협력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두 정상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동북아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 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디 벨트 등 독일의 3대 일간지는 한·중·일 3국간 외교분쟁과 관련해 일본의 민족주의 발호를 비판하는 논평을 일제히 실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사설] 국민적 관심사된 김형욱 사건

    한 시사주간지는 최신호에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실종사건과 관련, 김씨가 중정 특수공작조에 피랍돼 프랑스 파리 인근 양계장에서 분쇄기로 살해됐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보도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최대 의문사건으로 꼽혔던 김씨 실종사건에 대해 센강에 익사처리됐다거나 서울로 납치돼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에게 살해됐다는 소문은 있었으나 양계장 분쇄기에 의한 살해 주장은 처음 나온 것이다. 시사주간지는 상황 묘사가 치밀한 점을 들어 사실임을 확신하고 있으나 아직은 신빙성이 있는 하나의 가설 정도로 분류돼야 할 것 같다. 국가정보원이 우선적으로 규명해야 할 7건의 과거사 가운데 김씨 실종사건도 포함된 만큼 조만간 사건의 실체가 가려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씨는 회고록을 통해 박 정권의 치부인 ‘김대중 납치사건’이나 ‘인혁당사건’을 폭로하려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과거사의 진실 규명을 위해서도 김씨의 실종 및 사망과정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양계장 분쇄기 살해를 증언한 특수공작원의 주장처럼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면 관련자들의 증언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이에 앞서 관련자들의 자발적인 양심 고백은 역사에 대한 책무라고 본다. 잘못된 과거사를 규명하고 바로잡는 일은 후손들의 의무다. 그래야만 미래도 제 궤도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과거를 규명하는 데 ‘편향성’이나 ‘선정성’이 개입돼선 안 된다.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의 공방에 상관없이 오로지 진실만 추구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국민들은 한 점 의문이 없는 진실을 바라고 있다.
  • ‘계란으로 바위치기’ 의료소송

    ‘계란으로 바위치기’ 의료소송

    “우리나라 법치의 치명적인 사각지대를 아십니까? 바로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 법과 제도가 덤터기 씌우는 부당한 판정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고통입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의료사고 말입니다.”의료사고. 병을 고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더 큰 병을 얻거나 생명을 잃는 경우를 이르는 이 말이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선고’나 ‘파국’의 다른 말쯤으로 각인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렇듯 의료사고는 우리 사회에 비일비재한 일방통행식 폭력의 성향을 갖는다. 이 공공연한 폭력성은 대부분 제도권 내에서 형성된 ‘침묵의 카르텔’이 주도해 왔으며 피해자는 힘없는 ‘개인’들이었다. 그 ‘개인’들이 이제야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그들이 뭉쳐 제도권 내에서 공공연히 빚어지는 의료사고의 가해자 찾기에 나선 것.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는 의료소비자의 주권과 참의료 실현, 의료사고 예방을 위해 결성된 ‘의료소비자 시민연대(의시연)’ 출범식이 있었다. 이 단체는 지난 2001년 몇몇 의료사고 피해자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회 인사들이 모여 만든 ‘의료사고 시민연합’이 모태가 됐다. 이 단체 출범의 산파 역할을 한 강태언(42) 의시연 사무국장을 만났다. 그는 우리 사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이런 폭력이 없어야 하며, 있다면 그 진실이 한 점 의혹없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사고가 갈수록 늘고 있으나 공정한 법적 절차에 의해 피해를 구제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며 “정부에서도 이 사안을 쉬쉬하며 덮으려고만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가 제시하는 우리의 의료사고 현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부와 의료계에서는 설문과 의료소송 관련 감정신청 건수, 의료분쟁 관련 민원을 종합해 연간 5000건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으나, 미국의 경우 2000년 병원 입원환자 중 최고 9만 8000명 가량이 의료 과실로 사망한 점 등을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50만건, 많게는 100만건의 의료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물론 통계는 없다. 의료사고는 병원과 의료인의 부적절한 치료행위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병원 내 감염, 응급의료사고, 약물에 의한 약화사고 등을 모두 포함한 개념인데, 본인이 모르는 경우도 허다해 통계 산출이 어렵고, 그나마 국가기관에서 그런 실태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병원 감염사고만 해도 그렇다. 우리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미국에서도 연간 200만명 이상이 병원에서 감염돼 이중 10% 정도는 목숨을 잃고, 여기에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도 연간 50억 달러를 넘는다. 우리나라도 응급실에서 숨지는 환자 2명 중 1명은 죽지 않아야 될 사람으로 보이는데, 이는 병원들이 수익을 내세워 응급실에 전문의 대신 인턴이나 레지던트를 집중 배치해서 생기는 오진과 응급처치 과실 등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도 지난 95년 의료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6년간의 소송 끝에 본안소송과 의료비 소송을 모두 이겼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더는 되새기고 싶지 않다며 이해를 구했다. 강 국장은 현재의 법원 판결에서 드러난 문제도 지적했다.“재판부가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없어 사안에 대해 외부에 감정을 의뢰하는데, 여기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의사들이다. 그러다 보니 뻔한 사안, 즉 일주일이면 나올 감정의견이 1년 후에 나오기도 하고, 의사들도 대부분 진실 규명에 비협조적이다. 어차피 같은 부류인데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례는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의사조직의 폐쇄성도 의사들의 양심적인 감정을 막는 장애물이다. 게다가 판결에 절대적인 증거도 거의 병원 측이 독점하고 있어 여기에 개인이 맞선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의료분쟁 조정제도가 있지만 이 제도가 병원이나 의사들에 의해 악용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재판 과정에서 병원측 과실이 드러날 상황이면 병원이나 의사들은 기를 쓰고 이 제도를 이용하려고 든다. 재밌는 현상이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례를 만들기보다 차라리 조정안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89년 의료인들이 주축이 되어 제안한 의료분쟁조정법도 16년째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그 법안이 또 웃긴다. 이게 무과실 보상제 등 의료인들 보호에 편중돼 의사와 병원 안전에만 포커스를 맞춰 놨는데, 그러고도 이걸 통과시키지 못해 14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아마 이 법안이 채택됐다면 엄청난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대책이 없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더 이상 의료분쟁의 감정을 같은 부류인 의사들에게만 맡겨서는 안된다. 당연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감정 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의지만 있으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것 말고 공정성을 담보할 대책은 없다. 또 사실상 치외법권 지역인 병원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에도 흔한 CC-TV를 설치해야 한다. 의료분쟁에 있어 사실은 어떤 주장이나 논리보다 중요한 것 아닌가. 이렇게 한 뒤에 의사들이 면책논리를 내세워야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이런 견해도 내놨다.“특히 잦은 분만 사고의 경우 태아 심박동그래프기록만 보면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데, 우리나라는 이의 법정 제출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명백한 의료과실로, 의사가 잘못을 인정한 사안조차도 재판에서는 병원이 이긴다. 의료 사고로 미숙아가 됐는데, 재판부는 미숙아여서 생긴 문제라고 보는 식이다. 이 때문에 가슴을 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더는 우리 사회에 돈과 권력의 ‘카르텔’이 자행하는 의료사고라는 폭력은 없어야 한다는 그는 대부분의 의료사고와 분쟁이 의사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인 만큼 앞으로 이를 바로 잡는데 주력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그는 조카를 의료사고로 잃은 한 젊은 의사의 편지를 소개하며 말을 맺었다. 한사코 공개를 꺼린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소송을 진행해 오면서 의사협회의 제 식구 감싸기식 객관성이 결여된 답변 내용, 피고 의사의 파렴치한 거짓말, 사고 조작 등에 대한 분노가 극에 치달아…. 젊기에 분노했고, 의사였기에 의사의 잘못과 파렴치한 변명을 쉽게 알아채고 더 철저하게 따져왔지만 넘을 수 없는 산을 만난 뒤 오히려 더 쉽게, 더 크게 좌절하고….”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아들 뇌병변 장애 4년소송 패소한 송인주씨 송인주(여·40·가명)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이 제기한 의료분쟁 소송에서 패소했다. 지난 2001년 2월에 낸 아들 유섭(7·가명)의 뇌병변장애가 의료진의 과실이라며 마산 F병원(현재는 창원으로 이전)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병원측 손을 들어줬다. 송씨는 그 판결에 대해 “지금도 죽고 싶을 만큼 억울하다.”며 울먹였다. 종합병원의 수간호사로, 결혼 후 슬하에 1남1녀를 둔 송씨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유섭이를 가진 지 31주 되던 지난 99년 6월 무렵이었다. 갑자기 복통 증세를 느껴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 M씨는 태반 조기박리와 복막염이라며 수술을 권했고, 그는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임신 31주 5일 만에 유섭이를 미숙아로 출산했다. 그는 “내가 간호사였지만 그 때는 의사의 진단을 믿었다.”고 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왔다. 간호사로 차트 읽기에 능숙한 그가 우연히 자신에게 태반조기박리는 없었으며, 복통도 복막염이 아닌 단순한 대장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는 그때까지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인큐베이터에 있던 유섭이에게 산소부족으로 보이는 청색증이 나타났다. 송씨는 “뒤늦게 인큐베이터 산소공급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안 병원측이 무려 2시간 반 만에야 인공호흡을 시켰다.”며 “산소가 2∼3분만 공급되지 않으면 뇌사상태에 빠지는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먼저 태어난 두 아이는 건강하며, 유섭이의 병증을 의심할 만한 어떤 가족력도 없었다. 유섭이는 조기출산한 미숙아였지만 의사들도 걱정하지 말라고 할 만큼 건강이 좋아 출산 직후 신생아의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아프가(APGAR)지수가 정상 범주인 7이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유섭이는 병원에서 정상적으로 퇴원했으나,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여긴 송씨에 의해 이듬해인 2000년 뇌병변장애 판정을 받았다. 송씨는 “지금도 그 때의 청색증과, 청색증 원인인 인큐베이터의 산소공급 중단이 문제라고 믿고 있다.”며 “이런 확신으로 소송을 냈다.”고 말했다. 그 후,4년여를 끌어온 소송에서 패한 뒤 그는 항소를 포기했다. “그 판결 이후 이 나라에서 산다는 게 한없이 고통스럽고 억울하다.”고 털어놨다. 송씨는 “법원은 마땅히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하며, 법원의 양심은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것이어야 한다.”며 “비록 나는 자식을 억울하게 잃은 셈이 됐지만 나같은 억울한 사람이 해마다 수십만명씩 새로 생기는 나라, 그래서 국민들이 의료인과 법조인의 양심을 믿지 못하고, 정부의 존재를 비웃는 나라는 아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잊고 싶으며, 유섭이 같은 아이들이 최소한의 재활훈련과 교육을 받고,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국력에 걸맞은 사회복지 시스템을 갖춰주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얘기하는 동안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승부조작” 심판들 양심선언

    일부 고교야구의 승부조작이 심판들의 양심선언으로 드러나 한국야구 100주년 잔치에 오점으로 남게 됐다. 경북야구협회 소속 심판 3명은 지난달 말 G고와 K고의 경기를 앞두고 이모(55)협회장과 신모 심판장 등이 특정 팀에 대한 승부를 조작토록 지시했다고 11일 폭로했다. 고교야구에서는 전국대회 본선 성적이 대학 진학의 잣대가 되기 때문에 지역 협회 고위층의 특정팀 밀어주기와 학부모들의 치맛바람, 금품수수 등 비리가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심판 당사자들의 양심선언으로 밝혀지기는 처음이다. 파문이 커지자 대한야구협회는 13일 오후 2시까지 해당 심판 3명과 협회장, 심판장 등 5명을 모두 불러 부당 행위에 대한 시비를 가리기로 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일본 그리고 독일의 민족주의/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

    민족주의는 본래 이성적 차원보다는 감성적 차원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물론 ‘문화 민족주의’라는 용어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화 민족주의가 언어·역사·인종과 얽힌 민족주의보다 막강한 힘을 발휘한 적은 역사에서 그 예를 찾기가 쉽지 않다. 민족주의는 본래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흔히 ‘열린 민족주의’를 말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언어적 유희일 뿐이다. 민족주의가 ‘열린’ 상태일 때는 더이상 민족주의라고 불릴 수 없다.‘우리 의식’이 사라진 민족주의는 더이상 자생력과 응집력,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강한 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민족이건 간에 민족주의는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민족의 힘이 약할 때 민족주의는 항상 ‘호혜 평등’을 주장한다. 하지만 민족이 비로소 힘을 갖게 될 때 민족주의는 ‘팽창적 이데올로기’로 변한다. 독일 나치즘을 탄생시킨 독일의 예를 보더라도 그렇다. 독일 근대적 민족주의의 기원이라고 불리는 헤르더는 호혜 평등적 민족주의를 주장했다. 당시 독일은 힘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 민족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호혜 평등이라는 단어는 사라져갔다. 그후 강해진 독일은 인접 국가를 침략하고 집시와 유태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금 독일은 과거사에 대해 나름의 반성을 하고 있다. 인문계 중·고교 교과서에, 과거에 저지른 학살에 관해 가감없이 서술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학살을 보고도 외면했던 독일인과 독일 교회의 침묵에 관해서도 솔직히 서술한다. 지금 독일이 추구하는 과거청산의 현 주소이다. 그런데 독일은 과거청산에서 독일 민족주의의 해체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 추했던 과거가 바로 민족주의의 소산이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철저한 배격을 추구한다. 대부분의 독일 젊은이들은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지 않고 국가도 부르지 않는다. 국기 그리고 국가에 대한 경의 표시가 모두 국가주의의 소산이자 발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럽 연합 창설에 독일이 중요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한 이유도 바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배격하려는 노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요사이 일본 일각에서는 국가인 ‘기미가요’를 크게 부르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배격하기는커녕 강해진 일본을 과거보다 더욱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도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런데 우리 역시 민족주의로 일본 민족주의에 대항하려 하는 것 같다. 물론 ‘눈에는 눈’‘이에는 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런 대응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우리의 불행했던 역사가 일본의 민족주의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인식한다면,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일본 타도’가 아닌 ‘일본 민족주의 타도’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민족주의로 일본에 대항하기보다는 오히려 일본내 양심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민족주의를 앞세운다면,‘우리’와 ‘그들’을 나눈 상태에서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셈이 되고, 그런 상태에서는 일본 내 양심 세력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이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일본내 양심세력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게 하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역사·영토 왜곡을 인정하게 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해법은 없다. 민족주의가 없는 국가나 민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족주의가 한 민족, 혹은 한 국가의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민족에 대한 사랑보다는 인류 보편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킬 때 비로소 전세계 양심세력이 우리편에 있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띠는 그날은, 그리고 종군 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침략 역사가 전세계 역사의 명백한 사실이 되는 그날은, 세계의 보편적 양심이 힘을 얻을 때 더욱 빨리 다가올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
  • [韓·日 교과서 전쟁] (3) 한·일 양심세력에 듣는다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파문을 지켜보는 우리나라 시민운동가들의 분노는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의 일부 ‘양심세력’들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지난 2001년 1차 교과서 파동 이후 한·중·일 시민사회단체들은 일본의 전후 처리방식과 역사왜곡에 저항하며 힘겹게 공동 연대를 구축해오던 터에 파문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올바른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중인 한·일 양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김은식(35) 태평양전쟁 희생자 보상 추진위원회 사무국장과 후쿠도메 노리야키(55) ‘일본의 전후책임을 생각하는 히로시마 모임’사무국장은 이번 파문을 계기로 양국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교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후쿠도메 사무국장은 “4년 전 처음 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보다 일본 사회 전체가 우경화됐다.”면서 “특히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사회화되면서 언론도 하루종일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전달하고 있다.”며 현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일본이 양국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아쉬움을 지적했다. 독도의 경우 “일본인들은 독도가 1905년 전후 한국을 지배하기 이전부터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을 뿐, 역사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많다.”며 ‘이해’를 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자매결연한 일본 지자체간에 친선을 넘어선 도움이 절실하다고 요청했다. 후쿠도메 사무국장은 80년대 중반 대구 계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종군위안부와 근로정신대, 유골봉환 문제 등 한·일 과거사에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최근 일본에서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와 ‘교과서 네트워크’를 구성해 ‘왜곡 교과서 불채택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다. 지난달 18일에는 일제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 1945년 발생한 일본 나가사키현 이키 지역의 ‘조선인 귀국선 해난사고 및 희생자 유골문제’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청했다. 김 사무국장은 “일본에서 역사왜곡을 주도하는 ‘새역모’의 핵심멤버들이 일본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며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한·중·일 연대를 강화해 범 아시아적인 가치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국가주의적인 관점에서 제기되고 있어 자칫 잘못 문제를 제기할 경우 ‘비국민’으로 매도당하는 분위기라 시민단체들도 독도문제를 전면화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일 관계의 갈등과 대결구도가 어려워질수록 민간 차원의 교류를 활성화시켜 일본 사회의 여론이 일방적인 흐름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김 국장은 제안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초등생 일기검사 ‘인권침해’ 논란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어린이의 일기장을 검사하는 관행이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교육계를 설득시키지 못하면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육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결정”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일부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일기 지도도 교육활동의 하나”라며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는 일부 긍정적인 목소리도 없지 않지만 “매일 열의를 가지고 시간을 쪼개 일기장을 검사하는 것을 인권침해라고 하는 것도 인권침해”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인권위는 7일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게 일기 검사 관행을 개선하고 일기 쓰기 교육이 어린이 인권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개선되도록 지도·감독하라는 의견을 표명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7월 서울 S초등학교 교감이 ‘시상을 목적으로 한 학생들의 일기장 검사’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지를 질의함에 따른 것이다. 인권위는 “초등학교에서 일기를 강제로 쓰게 하고, 이를 검사·평가하면 사생활이 공개될 우려 때문에 어린이가 자유로운 사적 활동을 방해받을 수 있다.”면서 “이는 유엔 아동권 규약과 헌법이 보장하는 어린이의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생활의 반성을 통해 좋은 생활습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일기쓰기를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도 “일기쓰기의 교육적 효과에는 동의하지만 검사를 통한 습관화는 사적 기록이라는 본래 의미가 아닌 공개적인 숙제로 인식돼 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인권위 결정이 나오자 교총은 성명을 내고 “교사의 교육적이고 자율적 판단에 따라 시행되는 일기쓰기 지도를 마치 학생의 양심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듯 속단한 것은 교사의 양심과 전문성을 기초로 한 교육활동마저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교조 한만중 대변인은 “학생의 인권에 대한 의식이 부족한 현실을 환기시키는 의미는 있다.”면서도 “교육활동의 하나인 일기검사가 곧 인권침해라는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화랑초등학교 이현진 교사는 “사생활 침해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기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문장력을 기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서 “최소한 저학년들은 아이의 생활태도를 알기 위해서라도 일기 지도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한편 교육부 류영국 학교정책심의관은 “교육적 본질에 맞게 일기쓰기 지도가 이뤄지도록 조만간 학교 현장에 지침을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위의 결정은 ‘의견표명’으로 ‘시정권고’보다 약한 수준”이라고 덧붙여 반드시 인권위 의견대로 따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김재천 이효용 나길회기자 patrick@seoul.co.kr
  • [日 교과서 왜곡 파문] “日, 한국인에 과거사 사과해야”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도쿄대 철학과 교수가 6일 “일본은 역사인식을 확립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카하시 교수는 이날 ‘한ㆍ일 역사교과서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한국학중앙연구원과 도쿄대가 공동 주최한 학술세미나에서 “일본이 언젠가는 (한국으로부터)용서를 받아 두나라가 식민주의 극복과 민주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는 일이 내가 꿈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카하시 교수는 ‘정신의 자유와 일본의 민주주의’라는 주제발표에서 “일본의 평화헌법에 명기된 민주적 가치들이 정치권력과 시민사회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아 ‘개헌’이라는 이름의 개악에 직면해 있다.”며 “일본의 민주주의와 ‘정신의 자유’는 커다란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학교 졸업식과 입학식에서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국가였던 기미가요가 제창되고 일본 국기가 게양되는 것은 헌법 19조에 보장된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유린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다카하시 교수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참배하는 야스쿠니(靖國) 신사의 본질과 관련,“전몰 장병의 죽음을 애도하는 곳이 아니라 죽음을 찬양하는 시설”이라며 “전사자들을 따라 계속 천황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자는 생각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A급 전범이 분사되더라도 천황의 명령으로 만든 ‘천황의 신사’ 야스쿠니의 전쟁책임은 남게 된다.”며 “그 책임은 전쟁을 넘어 일본 근대 식민지주의 전체로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배아의 헌법소원/육철수 논설위원

    종교가 인간에게 정신적 위안을 줄 수 있다면, 과학은 육체적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다. 종교와 과학은 독립적인 동시에 그 중심에는 모두 인간이 자리잡아 서로 겹치는 건 필연이다.19세기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신과 부처는 증명할 수 없다. 증명하면 과학이 된다.”는 말로 종교와 과학이 다른 세계임을 역설했다. 그런가 하면,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라며 상호보완적 관계를 강조했다. 종교와 과학이란 이렇듯 대문호와 대과학자도 시각에 따라 달리 정의할 정도로 알쏭달쏭한 관계이던가. 종교적 관점과 과학적 시각이 충돌해 헌법재판소의 법정으로 비화되는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졌다. 법학교수·윤리학자·의사·대학생 등 11명이 올해부터 시행된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생명윤리법)’의 일부 조항(잔여 배아의 연구범위 인정)이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최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특이한 점은 원고인단에 배아(胚芽) ‘2명’이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원고인단은 “인간은 수정됐을 때부터 생명이 시작되기 때문에 배아는 헌법의 보호를 받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생명공학계가 배아를 단순한 세포군(群)으로 정의해서 연구의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생명공학계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배아연구는 알츠하이머·파킨슨병 등 불치·난치병 치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그런 연구는 국제적 추세라고 맞선다. 일반적으로 정자와 난자의 수정 후 14일 이전에는 ‘전배아’,14일부터 장기(臟器)가 형성되는 8주까지의 상태를 ‘배아’라 하며,8주 후부터는 ‘태아’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배아는 기관분화 마무리 단계의 세포이며, 인간배아복제 논의에서 배아라 함은 대부분 ‘전배아’를 일컫는다. 전배아는 인간이 아니라고 해서 실험을 가능토록 하고, 그 이상은 안 된다는 일부 국가의 배아연구 제한적 허용 때문에 ‘14일 논쟁’이라는 말도 생겼다. 한마디로 배아를 단순 세포조직으로 보느냐, 아니면 생명체로 보느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의학적 발전과 인간의 존엄성은 그 가치의 경중(輕重)을 가리기가 여간 힘들지 않을 텐데, 법은 과연 종교와 과학 중 어느 손을 들어줄까.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日 역사 ‘날조’] 日정부 왜 강수 두나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가 5일 완료된 중학교 교과서 검정에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에 ‘작은 것은 양보하고, 큰 것은 오히려 개악하는’ 꼼수를 썼다는 게 도쿄 외교가의 일반적인 평가다. 일본의 이처럼 강경하고 안하무인격 외교자세는 이미 지난해 예견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올해 일본 외교의 목표를 ‘국익을 지키는 외교’로 못박고 관련 예산도 책정, 힘에 의한 강경외교를 예고한 바 있다. 교과서 검정작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국익을 지키는 외교’를 위해 주변국과의 전면적인 충돌까지 각오하는 모양새다. 이는 공민교과서에 독도(일본명 다케시마) 관련 부분을 확연하게 개악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에는 일본 정부의 전략도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교과서 왜곡 문제로만 한정될 경우 일본내 양심세력이 일본 정부에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크지만, 독도 등의 영유권 문제가 부각되면 일본내 양심세력이 정부를 비판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도쿄 외교소식통은 “교과서 문제가 아니라 영토 문제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한국 정부는 교과서와 영토문제를 분리시키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교묘하게 혼동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이 패전 60주년인 올해를 ‘패전국·전범국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해로 규정, 작심하고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교과서 문제도 정면돌파하고, 이미 지난해 선언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도 추진하는 등 경제대국에 이어 ‘정치외교의 대국’도 되겠다는 야심이다. 하지만 일본의 이같은 강경외교 밀어붙이기는 일본 외교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일본은 현재 한국과 중국·러시아 등 주변국과 영토분쟁으로 대립하고 있다. 북한과는 납치피해자 문제로, 미국과는 쇠고기 수입과 주일미군 재편, 유럽연합(EU)과는 중국에 대한 무기금수조치 해제 문제로 맞서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야당을 중심으로 “일본이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자민당의 ‘마이웨이 외교’는 제동장치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과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이 투톱 형식으로 한국과 중국에 대한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taein@seoul.co.kr
  • “인간배아 세포규정 생명윤리법은 위헌”

    “배아(胚芽)도 헌법이 보호하는 ‘인간’이다.” “난치병 치료목적의 배아 연구는 허용해야 한다.” 뜨거운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킨 배아 연구가 헌법재판소 재판정에 선다. 헌재는 국내 법학교수와 윤리학자, 의사, 대학생 등 11명이 올해부터 시행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생명윤리법)이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지난달 31일 헌법소원을 냈다고 5일 밝혔다. 원고인단에 남모·김모씨 부부로부터 채취된 정자와 난자가 인공수정돼 생성된 ‘배아’도 포함돼 있다. 원고들은 청구서에서 “수정 후 생명이 시작되기에 인간 배아는 헌법의 보호를 받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면서 “인간배아를 단순한 세포군으로 정의, 배아와 체세포복제 배아를 생명공학 연구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생명윤리법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임신 후 남은 잔여 배아 연구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위임, 사실상 제한 없는 인간배아 연구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배아의 생명권 침해에 면죄부만 부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고인단은 또 “불임 탓에 정자와 난자를 제공한 부모도 남은 배아를 연구에 이용하도록 동의할 수밖에 없어 평등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면서 “인공수태 시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연구기관에 노출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아복제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서울대 황우석 교수는 “배아세포 연구는 난치병 치료의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연구자는 실험에 충실할 뿐”이라고 말했다. 민법은 일반적으로 권리 주체인 자연인을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 본다. 어머니 체내에 있는 태아는 물론이고 분만 중인 태아도 온전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반면 형법은 어머니가 진통을 느껴 분만을 시작하면 자연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분만 중인 영아를 살해하면 ‘살인죄’로 처벌받는다. 정은주 홍희경기자 ejung@seoul.co.kr
  • [日 역사 ‘날조’] 시민단체·전문가 반응

    일본 문부성의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해 한국의 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동아시아 평화를 해치는 개악 교과서”라며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들은 일본의 시민단체와 연계해 공동 캠페인과 심포지엄 개최 등 다방면으로 채택 저지 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학계·시민사회·정부 공동 대응으로 역사왜곡을 막아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중·일 “위험한 교과서” 공동성명 역사문제연구소, 교육개혁시민연대,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등 9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일 우호를 파괴하는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교과서의 검정 통과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중·일 공동 성명을 통해 “새역모의 교과서는 ‘두번 다시 침략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국제공약에 명백히 위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이 ‘위험한 교과서’가 아이들 손에 전해지지 않도록 채택 저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침략 미화와 만행 은폐로 그릇되고 편파적인 지식을 전하는 기만적 교과서는 일본인의 양심을 유린하고 선린관례를 해치는 암적 존재”라고 비판했다. 역사교육연대는 또 “일제의 만행에 대한 기술이 삭제·축소된 것은 일본 정부와 문부성ㆍ자민당 의원들이 새역모가 만든 교과서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일본 정부와 새역모의 결탁 의혹을 제기했다. ●시민단체 채택 저지 총력전 선언 시민단체는 이미 검정이 통과된 만큼 오는 8월까지 문제의 교과서 채택 저지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역사교육연대는 이날 ‘역사왜곡 캠페인 사이트’를 개설, 새역모의 역사왜곡 실태와 채택 현황을 실시간 중계하기로 했다. 이달 말 민간·학계 공동으로 수정요구안을 제출하는 한편,5월에는 한·중·일 3국 공동 역사교재인 ‘미래를 여는 역사’를 출간한다.6월에는 공동 대응을 위한 한·중·일 전략회의와 공동 심포지엄을 열고,6∼8월에는 일본을 순회하며 양국 시민단체가 대대적인 불채택 캠페인을 벌인다. 지방자치단체를 통한 직접 불채택 운동에도 나선다. 채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파악해 우리나라 지자체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100여곳의 지자체를 직접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양미강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은 “2001년에도 입증됐듯 자매도시가 구체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면서 “서초구-스기나미구, 평택시-마쓰야마시 등의 모범적인 연계모델을 바탕으로 지자체와 지역 시민단체가 함께 지역 교육위원회에 불채택을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서 왜곡은 일본 우익의 위기 방증”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연구실장은 “역사교과서 왜곡은 역설적으로 일본 우익 세력의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면서 “냉정하게 대처하되 우리 내부에서는 먼저 스스로 과거를 청산해서 일본의 시민단체들에 ‘한국도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반성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역사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므로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경기대 인문학부 김기봉 교수는 “역사의 해석에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기 때문에 일본의 정당성 여부보다는 왜 그렇게 나오는지 먼저 이해하고 한·일 양국이 동의할 수 있는 역사의 객관화 작업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이효용 이재훈기자 utility@seoul.co.kr
  • [사설] 日 교과서 왜곡 국제연대로 맞서야

    어제 공개된 일본 정부의 역사 및 공민교과서 검정결과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역사교과서에서 일부 개선조치를 취하는 듯하면서 더많은 부분을 개악했다. 더구나 우익 후소샤교과서뿐 아니라 채택률이 높은 도쿄서적과 오사카서적이 펴낸 공민교과서에서 독도 영유권을 왜곡하는 내용을 담음으로써 한국에 대한 도발적 태도를 분명히 했다. 후소샤교과서 등은 일제 강점이 조선근대화를 도왔다는 억지주장을 늘어놓고, 군위안부 관련 내용 삭제를 비롯해 과거 침략행위를 감추려는 왜곡을 자행했다. 특히 후소샤 신청본에서 독도를 분쟁영토로 기술했는데, 검정통과본에서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식으로 개악시켰다. 독도분쟁을 부풀림으로써 자국내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일본측의 치졸한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독도와 역사 문제에 분리대응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독도는 영토사안이므로 정부 차원에서 쐐기를 박고, 왜곡교과서는 일본내 민간 양심세력과 연대해 시정 및 채택저지 운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정부 방침이 합리적이긴 하지만, 독도 논란과 역사왜곡을 섞어 판을 흐리려는 일본측의 속셈을 분쇄하려면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단순히 자존심 회복 차원이 아니다. 팽창주의, 군국주의의 길을 다시 가려는 노골적 움직임이다. 독도 등 영토야욕도 그 연장선에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중국·북한 등 아시아 피해국과 먼저 공유하고, 세계로 확산시켜야 한다. 중국 견제에만 신경쓰다가 일본의 군사력을 잘못 키우면 동북아평화가 깨짐으로써 낭패를 볼 수 있음을 미국측이 인식하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중국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미국 LA에 기반을 둔 단체가 벌인 ‘일본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저지’ 서명에 벌써 3000만명 이상이 동참한 것을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 나치의 생체실험·강제노역 피해자 보상에 착수한 독일을 일본이 제발 본받길 바란다.
  • [日 역사 ‘날조’] 역사왜곡내용 항목별 분석

    [日 역사 ‘날조’] 역사왜곡내용 항목별 분석

    중국의 일부로 역사가 시작된, 근본이 박약한 나라…고대 일본도 일찌감치 지배권을 가졌던 나라…그래서 이웃에서 맘대로 깔아뭉개도 거리낄 게 없는 나라….5일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왜곡교과서로 배울 경우, 일본 학생들은 ‘한국=뿌리부터 열등한 나라’라는 편견을 불가항력적으로 주입받게 된다. 그만큼 2005년판 교과서의 왜곡 수준은 가히 가학적이다. 특히 후소샤를 비롯한 출판사와 일본 정부측은 현행 2001년판을 일부 개선시키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보다 교묘하고 지능적인 방법으로 왜곡을 가함으로써 ‘사기(詐欺)성’의 극치와 함께 개전의 정이 전무함을 보여줬다. ●대방군 항목 신설 후소샤의 역사교과서는 2005년판에 ‘대방군은 중국의 왕조가 조선반도에 설치한 군으로 현재의 서울 근처’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2001년판에는 없는 것이다. 현재 한국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대방군을 황해도 일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방군이 서울 근처에 있었다는 것은 일본 학계 일부의 소수학설에 불과한 데도 이를 굳이 채택한 것이다. 결국 한국의 역사가 중국이 설치한 군현에서 시작했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전형적인 개악(改惡) 사례다. ●임나일본부설 유지 숱하게 논란이 돼 온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좀처럼 수정을 가하지 않는 후안무치가 또 반복됐다. 후소샤의 2005년판은 2001년판의 ‘야마토 조정은 반도 남부의 임나라는 곳에 거점을 두었다고 생각된다.’라고 한 내용을 그대로 채용했다. 오히려 검정신청본에서는 ‘신라의 대두와 임나의 멸망’이란 제목으로 별도의 소항목을 새로 설정함으로써 임나일본부설을 보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문부과학성은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반도 남부에 임나를 표기한 지도를 그대로 방치했다. 도쿄서적과 일본서적신사의 검정본에도 같은 지도가 있다. 일본학계에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임나일본부설을 사실상 일본정부가 나서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대방군과 임나일본부설에 입각한다면 한반도 북부는 중국이, 남부는 왜(倭)가 각각 지배한 역사로 학생들에게 각인될 우려가 높다. ●조선 자주성 격하 후소샤는 조선이 ‘중국의 복속국’이라는 표현을 2001년판에서 ‘중국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하에 있었던’이란 문구로 약간 개선시켰었다. 이번에는 다시 ‘중국의 조공국’으로 개악했다. 조선의 자주성을 부정하고 자국의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해 이웃나라를 폄하하려는 파렴치한 유혹을 도저히 떨칠 수 없는 모양이다.2005년판에서는 곳곳에 조공이란 단어가 유달리 많이 나온다. 복속국이란 표현을 대체할 만한 단어가 조공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한반도 위협설 유지 후소샤의 2005년판은 ‘이 일본을 향하여 대륙에서 한 개의 팔뚝과 같이 조선반도가 돌출되어 있다.’고 기술한 2001년판의 ‘한반도 흉기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안전을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해도 좋다는 역사인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줄 우려가 아주 높다. ●한일합방 미화 후소샤 2005년판은 ‘일본은 조선의 개국 후 그 근대화를 돕기 위해’라는 표현을 없앤 대신 ‘조선의 근대화와 일본’이라는 제목으로 별도 항목을 새로 만들었다. 내용을 순화시키는 척하면서 대신 제목과 편집으로 더욱 큰 효과를 노리는 지능적인 수법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 병합이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권익을 방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표현도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을 수탈하고자 한 침략 의도를 왜곡하는 한편,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웃나라를 식민지화할 수도 있다는 위험한 역사의식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려는 의도다. 또 후소샤는 물론 도쿄서적 등 모든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도 양심의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독도 왜곡 2005년 공민교과서의 독도 관련 검정통과본은 2001년판에 비해서뿐 아니라,2005년 검정신청본에 비해서도 왜곡의 정도가 심한 기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극우적이라는 후소샤 교과서의 경우 신청본보다 검정본의 표현이 훨씬 강한 내용으로 드러나, 의혹을 부르고 있다. 그나마 양심적인 출판사로 평가되는 일본서적신사까지 지리교과서의 검정통과본에 독도를 일본의 영해로 명시한 지도를 실었다. 이는 일본 문부과학성이 검정제도를 악용해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임을 기술토록 민간에 요구했다고밖에 해석할 도리가 없다. 시마네현 독도 조례 제정에 대해 지방정부의 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대꾸했던 일본 정부의 논리가 거짓이었음이 사실상 확인된 셈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日 역사 ‘날조’] 日왜곡교과서 남은 절차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은 초·중·고교용 교과서를 정부가 ‘학습지도요령’에 따라 사용 적합 여부만 판정해 주는 검정제도를 택하고 있다. 5일 문부성이 지난해 4월 출판사들이 제출한 검정신청본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1단계 검정과정은 완료됐다. 이제 채택이라는 2단계가 오는 8월까지 계속된다. 역사교과서는 1982년 역사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한국·중국 등 주변국을 배려하라는 ‘근린제국조항’이 중시된다. 교과서 발행자들은 이달 중 교과서 목록과 교과서 견본을 문부성에 제출한다. 출판사들은 6∼7월 교과서 전시회를 열고, 교과서 채택의 결정권을 쥔 일선 교육위원회 등에 견본을 보낸다. 공립중학교의 교과서 채택은 전국 580여개 ‘교과서 채택지구’별로 이뤄진다. 사립·국립중학교는 학교장들에게 교과서 선택권이 있다. 고등학교는 교사가 선택권을 갖고 있다. 2003년 5월 현재 일본 중학교 수는 1만 1134개이고, 그 중에서 공립중학이 1만 358개교로 90% 이상이다. 따라서 향후 채택공방의 초점은 공립중학교에 맞춰진다. 공립중학교 교과서는 구·시·정·촌의 교육위가 선택하나 지역에 따라 몇 개 자치구가 교과서 채택지구로 묶여진 곳도 있다. 교육위나 학교장 등 채택 주체들은 교과서 판형과 내용, 디자인 등을 비교분석한 뒤 7월 말부터 8월31일 사이에 채택을 끝낸다. 채택 과정에서 교사·학부모단체 등이 자체 의견을 교육위에 제출하는 등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2001년엔 일본의 양심적 시민·교사단체의 활약으로 극우 성향의 역사교과서 채택률이 0.039%에 불과했다. 따라서 향후 전개될 일본의 학부모단체나 시민·교원단체들의 왜곡교과서 채택 반대와 추진 운동이 중요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taein@seoul.co.kr
  • [기고] 인권의 사도 요한 바오로 2세/이동익 신부·가톨릭대 교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처음 알현한 때는 1985년 가을이었다. 당시 로마 유학 초창기에 교황님의 숙소 경당에서 교황께서 집전하시는 미사에 참여하면서 가까이에서 뵐 수가 있었고, 그 이후 7∼8차례 직접 알현하는 행운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미사를 위해 한국말 발음을 연습하실 때의 끈기와 열정이라든가, 알현시 필자가 한국 사제라는 것을 아시고는 한국말 인사와 당신이 기억하시는 몇몇 한국 단어로 답해주시는 교황님의 모습에서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과 한국민 전체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지니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1984년 교황님께서 한국을 처음 방문하시고 난 후 지금까지 한국 천주교 신자가 세배로 늘어난 것도 그 분의 한국 사랑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따라다니는 별칭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인권의 사도, 평화의 사도, 진리의 사도, 희망의 사도 등등…. 필자는 이 중 인권의 사도에 대해서만 잠시 회상하려고 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에 선출되고 이틀 후 교황직 수락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순간, 경제, 사회, 정치, 종교적인 모든 불의와 차별로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낼 것입니다.” ‘인권의 사도’로서의 소명을 취임 첫 연설에서 강하게 피력하셨고, 이러한 의지는 교황직 수행 전체에 걸쳐 잘 드러난다.200만㎞를 넘는 130여개 나라의 사목방문은 인권의 사도로서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여러 형태의 억압과 폭정이 있는 나라들을 방문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고 빈부의 격차와 사회 불의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시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어가는 수많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교회와 국가는 늘 깨어있을 것을 촉구하셨다. 인권의 사도로서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는 단연 1989년부터 시작된 소련과 중·동부 유럽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공산권의 붕괴 뒤에는 교황과 미국의 동맹이 있었다고도 말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의 관심은 권력의 붕괴보다는 권력 때문에 희생되는 가난한 사람,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람, 양심과 자유를 제한당하는 사람들이었다. 1991년에 반포한 회칙(回勅)‘백주년’에서 교황은 1989년을 회상하면서 여러 나라의 독재와 압제정권이 붕괴된 원인으로 교회가 지난 100년간 자신의 직무로서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는 것을 피력함으로써 소련을 비롯한 중·동부 유럽의 변화에 당신께서 모종의 역할을 하셨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41년 사랑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님이 묻혀있던 가족묘에 시신을 안치하면서 극도의 고통과 외로움, 절망 속에 그 무덤에서 무려 12시간이나 기도했다고 한다. 이 때 고통받고 외로움에 힘들어하고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 구원의 신비를 전하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고, 사제의 길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사제가 된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이 된 후에도 아버지의 죽음 당시에 느꼈던 비참한 현실을 세계 각처에서 보게 되었고, 구체적인 현실의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희망이라고 여기면서 그 희망을 온 삶으로 보여주신 ‘인권의 사도’로서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인권의 사도’로서의 삶이 주는 메시지는 “인간, 교회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난한 인간, 고통받는 현실의 인간이야말로 교회가 추구해야 할 길이며, 그 이유는 이 세상과 인간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길을 걸어가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이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생전에 그리스도께서 가신 이 길을 걸어가셨다.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교수
  • [교황 서거]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애

    27년간 재임, 가톨릭 사상 세번째로 장수한 교황으로 기록된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사를 완전히 새롭게 쓴 인물이다. 비(非) 이탈리아계 교황의 선출은 1523년 네덜란드 출신 하드리아노 6세 이후 455년 만에 그가 처음이었다. 공산 국가인 폴란드에서 교황이 나온 것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는 선출 당시 58세로 최근 123년 동안 추대된 교황 중 가장 젊은 나이에 취임했다. 교황은 취임 이후 교회 업무뿐만 아니라 세계 문제를 자신의 일로 여겨 104차례에 걸쳐 각국을 방문, 인권문제·이념갈등 해소 등을 위해 노력했다. 그의 사목 순방은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횟수가 많아 거리로 환산할 경우 지구를 27바퀴 돈 것과 맞먹는다.‘행동하는 교황’으로 불린 것은 이 때문이다. 교황은 지난 세기 가톨릭이 저지른 과오를 머리 숙여 사죄하고 다른 종교와 화해를 모색해 성(聖)과 속(俗) 모두에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을 듣고 있다.8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바티칸에 안주하며 바깥 세상과 거리를 두었던 전임 교황들과 달리 뛰어난 친화력을 발휘했다. 수요일마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해온 그의 강론을 듣기 위해 바티칸에 온 순례자는 무려 1780만명에 이른다. ●그늘진 유년기 취임 34일 만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타계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뒤를 이은 그의 발탁은 당시 파격적이었다. 바티칸 내부에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던 그는 추기경들의 8번에 걸친 투표 끝에 78년 10월16일 제264대 교황에 선출됐다. 교황은 1920년 5월18일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군장교 출신의 양복사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름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그의 유년기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9세 때 어머니가,12세 되던 해에는 의사였던 형 에드문트마저 성홍열(猩紅熱)로 각각 사망,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헌신적이었다. 구멍난 옷을 기워 입히고 헝겊 조각으로 만든 공을 차며 아들과 축구를 할 정도로 다정다감했다. 동시에 집중력과 강인함을 길러주기 위해 차가운 방에서 공부를 하도록 하는 엄격한 면도 있었다.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보이티야는 다른 폴란드인들과 달리 반유대주의적 시각을 갖지 않았다. 당시 바도비체에는 2000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거주했다. 보이티야는 이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렸고 이는 훗날 교황이 유대교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는 바탕이 됐다. 그는 교황으로서 유대교 성전과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희생자를 기리는 아우슈비츠 기념관을 최초로 방문해 유대인을 “우리의 형제들이여….”라고 지칭, 가톨릭과 유대교의 오랜 반목에 마침표를 찍었다. ●재능있는 사제 젊은 시절 보이티야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일 뿐 아니라 스키, 산악 등반, 카약, 수영 등 모든 운동에 뛰어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38년 아버지와 함께 크라쿠프로 이주해 야젤로니안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시 낭송, 노래, 연극에도 재능을 보였던 그는 극단에서 활동했으며 한때 전문 배우를 꿈꾸기도 했다.39년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 대학 문을 닫자 강제이주와 징집을 피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40년부터 4년 간 채석장에서 일했고 이어 화학공장 공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41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신의 종으로 살라.”는 부친의 평소 가르침을 따라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46년 사제 서품을 받고 48년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듬해 크라쿠프에서 보좌신부로서 본격적인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제로서의 그의 삶은 탄탄대로였다.58년 크라쿠프 부주교,64년 주교,67년 추기경 자리에 올랐으며 78년 마침내 교황으로 선출됐다. ●‘세계의 양심’ 구심점 그의 교황 선출이 공표되자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유리 안드로포프 의장은 앞으로 상당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고 그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평신부 시절부터 공산주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던 교황은 취임 이후 조국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적극 지지해 공산정권의 붕괴를 가져왔고, 이는 구소련 몰락과 냉전종식의 기폭제가 됐다. 당시 사제들은 교황의 비밀 메시지를 사제복에 숨겨 투옥돼 있던 노조 지도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또 인권 침해를 일삼는 칠레의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같은 독재자들을 공개적으로 비난, 반정부 운동을 고취시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서방국가도 예외는 아니었다.81년 첫 미국 방문에서 교황은 미국 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주의를 강력히 경고하는 한편 제3세계의 빈곤을 외면하는 이기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2년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도 미국의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보수주의의 기둥 교황의 피임과 낙태, 안락사에 대한 거부는 절대적이었다. 그는 산업국가가 이같은 ‘죽음의 문화’를 조장한다고 비판하면서 에이즈 예방을 위한 콘돔 사용에 반대해 원성을 샀다. 성경 교리를 들어 여성의 사제 서품을 허용하지 않아 교회 안팎에서 독재적이라는 비난도 잇따랐다. 81년 3월 바티칸 광장에서 한 터키인으로부터 복부와 양손에 총격을 받아 중태에 빠졌다. 당시 KGB가 배후 조종을 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암살 동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교황은 83년 이 터키인이 복역중인 감옥을 직접 방문, 그를 용서하는 자비를 베풀어 세계인을 다시 한번 감동시켰다. ●쇠약한 말년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두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긴 교황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깨 골절, 대퇴골 교체수술, 종양 제거수술 등을 받았다. 말년엔 암살 후유증에다 파킨슨씨병, 무릎 관절염 등으로 거동은 물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한 세월을 보냈다. 감기에 따른 호흡곤란 등의 합병증으로 고령에도 불구, 기관 수술까지 받아야 했고 빠르게 기력을 잃어갔다. 그리고 건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임설에 시달려야 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법조 일원화] ‘소년 판사’ 줄여 사법부 신뢰회복 기대

    [법조 일원화] ‘소년 판사’ 줄여 사법부 신뢰회복 기대

    ‘소년 판사’라는 말이 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20대의 나이에 곧장 임용되는 법관들을 일컫는 말이다. 재판 당사자들은 사회 경험도 없고 나이도 어린 판사들의 판결에 승복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이는 결국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판사·검사·변호사간 직역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법조일원화이다. 변호사 출신 판사들을 만나 법조 일원화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 사례 1 40대 부부가 이혼소송 때문에 가정법원을 찾았다.30대 초반 미혼의 여판사가 이들을 심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판 도중 부인이 판사를 그만 ‘언니’라고 부르고 말았다. 단순한 말 실수일 수도 있지만 소송 당사자들이 젊은 여성 재판장을 대하는 속마음을 비친 것이었고 결국 그날 재판은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 사례 2 스님끼리 맞소송을 했다. 한 스님이 땅을 파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구치소에 열달 가까이 구금됐다.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감옥에 있었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상대편도 형사적으로는 무죄지만 민사상으로는 사기가 성립한다면서 땅값을 전액 돌려달라는 맞소송을 냈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판사로 임용된 재판장은 재판에서 피고 스님에게 반야심경을 외워달라고 부탁했다. 신도들도 많이 참석한 법정에 반야심경이 퍼졌다. 낭송이 끝난 뒤 재판장은 스님들에게 “출가하신 사람들이 속세의 인연에 연연하지 말고 상대방이 서로 자신의 수행에 도움이 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겠느냐.”며 조정을 권고했다. 결국 양측은 조정에 합의했다. ■ ’소년판사’ 줄여 사법부 신뢰회복 기대 두 사례는 사회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법관과 그렇지 못한 법관의 재판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대법원은 내년부터 오는 2012년까지 변호사·검사 등으로 5년 이상 근무한 사람을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를 단계적으로 실시, 전체 법관의 50%까지 확대키로 했다. 경험 많은 변호사나 검사중에서 판사를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법원에는 전체 1964명의 판사 중에 변호사·검사 출신 판사들이 118명이 있지만 전체 연령은 낮은 편이다. ●법관의 연소화(年少化)와 경험부족 보완 M&A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던 A 판사는 “법조 일원화가 시행되면 가장 크게 달라질 것은 재판의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A 판사는 “소송 당사자들도 아무래도 어린 재판관보다는 경험많고 나이도 많은 법관을 신뢰한다.”면서 “변호사 경험을 오래 쌓은 법관들은 당사자들의 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펌 출신의 B 판사는 “변호사 출신의 판사들은 사실 관계 파악이 빠르다.”고 했다. 변호사 때의 경험으로 변호사가 주장하는 내용을 금방 파악하고 재판을 매끄럽게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관계를 잘 파악하기 때문에 변호사 출신 판사들은 당사자간의 조정도 수월하게 유도한다.”고 말했다. 판사가 갈수록 연소화되고 사회 경험이 부족해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대법원도 인식하고 있다.2003년 12월 현재 판사의 평균 연령은 38.8세.27∼40세의 판사가 전체의 68%나 된다.30세 이하만 108명이다. 대부분의 법관들은 수년간 사법고시 공부만 한 뒤 연수원을 수료하고 바로 판사로 임용된다. 사회 경험이 없어 ‘탁상 재판’,‘조문 재판’을 하게 된다. 또한 성적순으로 임용된 판사들은 엘리트 의식에 빠져 서민들의 실생활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재판 공정성 시비 일 수도 하지만 법조 일원화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변호사의 경력이 오히려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고객이나 동료 변호사, 출신 로펌, 변호사 때 알게된 대기업 등이 관련된 재판을 맡는다면 공정성에 시비가 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0여년간 변호사로 활약한 C 판사는 “변호사 출신 판사라 하더라도 법과 양심이 아닌 다른 것에 영향을 받아 재판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로펌출신의 D 판사는 “변호사가 판사로 임용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의 평판부터 맡았던 사건의 수와 내용, 납세 실적까지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고 말했다.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변호사는 판사로 임용되기 전에 걸러진다는 것이다. 그는 초임 판사 시절 부장판사가 말해 준 예를 들었다. 선고 당일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같은 날 피고인의 가족이 갈비를 사들고 집으로 찾아와 선처를 호소했다. 이미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때 어떻게 선고할 것인가. 만약 다른 사람에게 괜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 피고인에게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을 선고한다면 그것은 평균인의 판결이다. 그러나 판사는 설령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살 여지가 있어도 집행유예를 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바로 임용된 판사들이라도 장점은 있다.C 판사는 “사회 경험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때가 덜 묻었다는 것”이라면서 “연수원을 마치고 바로 임용된 판사들은 그만큼 순수한 법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A 판사는 법조 일원화를 점진적으로 실시하고 그 상한선을 정한 것은 연수원 수료자와 변호사 경력자의 장점을 함께 살리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판사 선발 외국선 어떻게 대법원은 내년에 5년 이상 변호사·검사 가운데 20명을 판사로 임용하는 등 법조일원화를 본격 도입한다. 해마다 변호사·검사 출신 판사를 늘려 오는 2012년부터는 한 해 충원하는 전체 법관의 절반인 75명을 경력자로 채운다. 법조일원화와 경력법관제의 혼합형인 셈이다. 임용심사는 판사 5명과 변호사·교수·언론인 등 외부인사 4명으로 구성된 법관임용심사위원회가 맡는다. 사법시험이나 사법연수원 성적보다 변호사 활동에서 드러난 실무능력을 중점 평가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대한변호사협회나 소속 변호사회, 법무부 등에 임용에 관한 의견도 조회한다. 법조일원화는 미국·영국·캐나다 등 영미법계 국가에서 일반적이다. 반면 독일·프랑스·일본 등의 대륙법계 국가는 경력법관제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40∼50대 변호사 중에서 판사를 선발한다. 대통령이 변호사 활동과 변호사단체의 의견을 듣고 선발한다. 시험은 없다. 판사의 정치견해가 선발의 결정적 기준이 된다. 임기는 종신제. 영국은 경력 15년 이상의 변호사를 대법원장이 면담, 판사로 임용한다. 대부분 50대 초반으로 경력 25년 이상이 뽑힌다. 항소법원 판사나 대법관은 일반 판사 중에서 선발한다. 여왕이 임명하지만, 대법원장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친다. 경력법관제를 채택한 독일은 두차례 국가시험을 통과한 법률가 중 성적상위자 10%를 판사로 임용한다. 처음 임용은 성적순이지만, 승진은 전문분야, 지역, 정당에 따라 결정된다. 프랑스의 경우 국립사법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31개월간 연수를 받으면 판사로 임용된다. 법학교수나 변호사 등도 서류심사를 통과하면 사법관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나 90%는 대학졸업 후 바로 입학시험에 합격한 경우. 일본은 우리와 비슷하다. 사법시험 합격 후 1년 6개월간 사법연수소에서 교육을 받고, 연수원 성적에 따라 성적상위자가 판사보로 선발된다. 판사보로 10년간 활동하면 판사로 임용된다. 2001년 12월 일본변협은 일부 변호사를 판사로 추천하기도 했지만,2003년 판사 7명, 판사보 3명만 변호사 출신이었다. 판사들은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변협에 파견, 변호사 업무를 맡기도 한다. ■ 법조 3륜 경험 최윤희 교수 “검사·변호사·판사를 거치며 드러나지 않은 사건의 뒷모습까지 읽어내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건국대 최윤희(41·사시 30회) 교수는 검사로 8년, 변호사로 6년, 판사로 1년을 일했다. 법조 3륜을 모두 경험한 특이한 이력이다. 최 교수는 1998년 검찰을 떠날 때만해도 이처럼 다양한 삶을 경험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검찰을 떠나며 많이 아쉬워했어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구나 싶어서요.”신임 판사를 경험많은 변호사·검사에서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최 교수가 법무법인 김&장에서 일하던 2003년, 사법연수원에서 민법실무를 강의할 부장판사를 변호사 중에서 모집한 것이다. 최 교수는 “교단에 서고 싶은 마음이 앞서 어렵지 않게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입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남편인 오정돈(45·사시 30회) 부장검사의 전폭적인 지원도 힘이 됐다. 사법연수원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최 교수에게 또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사법개혁위원회가 로스쿨을 도입하기로 합의하면서, 각 대학이 법조인을 앞다퉈 초빙한 것이다. 지난해말 최 교수는 세 대학에서 연락을 받았다.“판사로 재판을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교단이 너무 매력적이라 다시 도전했지요.” 검사와 변호사, 판사를 거치며 최 교수는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을 분석하는 힘을 얻었다고 했다. “권력 앞에선 누구나 움츠러 듭니다. 속마음까지 털어놓고 얘기하지 않지요. 피의자는 검사와 변호사, 판사 앞에서 다른 모습과 말을 합니다. 경험이 다양한 법조인은 그 모습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지요.” 검사·변호사로 피의자를 경험한 판사는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훨씬 유리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입버릇처럼 ‘다시 수사를 하면 정말 잘할 텐데….’라고 말합니다. 사건의 한 쪽면만 보다 다른 쪽을 경험하니까, 이런 탄식이 나오지요.”그의 다양한 경험은 가르치는데도 큰 도움을 줬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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