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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신념따른 대체복무 허용] “집총 거부하다 주검으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허용하겠다는 소식이 어찌나 고마운지 몰라요. 앞으로 이들은 우리 사회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하게 될 테니까요.” 18일 정부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하겠다는 소식을 들은 자영업자 김윤태(54)씨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들었다.20여년 전 종교적 신념으로 집총을 거부하다 입대 뒤 하루만에 숨진 동생 선태(당시 22세)씨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1981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사를 시작한 선태씨는 갑작스레 군입대 통지서를 받고 같은 해 8월14일 서울 태릉의 모 사단 훈련소에 입소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던 그는 군사훈련 일체를 거부했고, 다음날 부내 내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입대한 다음날 아침 동생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온 가족이 부대로 달려갔어요. 주검을 보니 온 몸에 타박상 흔적이 나 있고 특히 가슴과 엉덩이에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어요. 유서도 없었는데 군 당국은 이렇다 할 해명 한 마디 없이 ‘자살했으니 확인서에 서명하라.’는 요구만 했어요.” 당시 군 당국은 “자살 확인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당신도 구속해 버리겠다.”며 선태씨와 같은 이유로 군 입대를 기피하던 김씨를 위협했다. 결국 확인서에 서명이 끝나자 동생은 곧바로 화장됐고, 김씨도 석달 뒤 병무청 직원들에게 이끌려 강제 입영된 뒤 병역 거부로 3년 1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동생이 죽은 뒤로 집안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어요. 억울한 사연을 알리고 싶었지만 당시는 군사정권이 들어서 ‘계엄상황’이다보니 함부로 말할 수도 없었어요. 어머니는 화병 때문에 8년 전 돌아가셨고요. 저 역시도 수감 후유증으로 몸도 가누기 어렵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등 괴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어요. 취직도 안 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동안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던 김씨는 지난해에야 동생의 사인 규명을 위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김씨는 이번 정부 방침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전과자가 되지 않고 사회에 온전히 기여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대체복무’ 논란 뜨겁다… “환영” vs “신종 비리 우려”

    ‘대체복무 허용’을 둘러싼 네티즌들의 논쟁이 뜨겁다. 정부가 18일 대체복무 허용을 위해 내년까지 병역법을 비롯해 사회복지 관련법,향토예비군설치법 등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밝힌데 따른 것이다. ‘이동현’이란 네티즌은 “드디어 한국도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는 인권 선진국이 되었다.”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Tech-Adviser’도 “한국사회의 소외 계층을 돌보고 힘든 곳에서 일하면서 대체복무하는 것도 군복무 못지 않게 힘든 것”이라며 “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감옥보다는 나을 듯 싶다.”고 말했다. 네티즌 ‘카스’도 “소수의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게 대체복무라 생각된다.”고 동조했다. 반면 ‘클릭’이란 네티즌은 “국민 대다수의 여론은 무시하고 철저히 자기들 가치관대로만 나라를 망쳐가는 현 정부를 개탄한다.”며 “소수의 인권도 중요하지만,대다수의 가치관을 무너뜨리면서까지 그들을 보호할 명분이 과연 있는가.”라며 반대했다. ‘sonny’ 또한 “국민적 합의가 없는 결정”이라며 “양심적 병역거부는 극히 소수의 맹신적 종교단체 신도들만이 주장하는 것이다.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도외시하는 사람들은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거들었다.‘보글’이란 네티즌은 “앞날이 뻔하다.저런 시설에 권력·부유층 입김 들어갈 것이고 대체복무를 위한 특정 종교인이 늘어날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neoneo’는 “대체복무제 자체에 대해 감정적으로 찬성 또는 반대하기보다는 병역기피자와 병역거부자를 잘 구분해 낼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데 여론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라며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서는 ‘대체복무 찬반’에 대해 온라인 투표를 실시했다.오후 2시 현재 중간집계 결과 ‘다음’에선 찬성(836명·50.7%)이 반대(797명·48.3)를 약간 앞섰으나,‘네이버’에서는 반대(1899명·57.06%)가 찬성(1429명·42.94%)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뉴스부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여성&남성] ‘불륜의 덫’에 빠진 그남자 그여자

    [여성&남성] ‘불륜의 덫’에 빠진 그남자 그여자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유부남을 사랑하는 미혼녀’라는 글에 대한 설전이 벌어졌다.“어떻게 임자 있는 남자한테 꼬리를 치느냐.”는 기혼 여성들의 항의에 미혼 여성들은 “남편 바람난 게 자랑이냐.”는 식으로 응수했다.‘사이버 전쟁’의 이면에는 유부남과의 연애에 당당한 미혼 여성이 늘고 있는 세태가 자리잡고 있다. 당장 주변만 둘러봐도 직장 상사와 연애하는 미혼 여성이나 유부녀와 만나는 미혼 남성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만 해도 수십개에 달한다.‘금지된 사랑’을 찾는 남성과 여성의 마음 속에는 어떤 심리가 자리잡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임일영 류지영기자 argus@seoul.co.kr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유부녀’일 뿐 회사원 박모(28)씨는 두 아이의 엄마인 동갑내기 A씨와 만나고 있다.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이던 이들은 박씨의 군입대로 헤어졌다 지난해 과 동기모임을 계기로 다시 연락이 닿았다. 미남형의 외모와 깔끔한 매너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박씨지만 지금까지 A씨를 완전히 잊지 못했다. 올 초 학교 후배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A씨와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결국 결별하고 말았다. 역술가인 A씨의 남편은 늘 “기운을 받아야 한다.”며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기 일쑤여서 A씨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고. 심지어 주말에 A씨의 집에 찾아가 아이들과 놀아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남들 사생활을 족집게처럼 맞히는 역술가들도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모르나봐요. 남들이 저에게 어떤 비난을 쏟아부을지 모르겠지만 전 사실 유부녀라서 그녀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유부녀일 뿐이죠.”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모(29)씨는 박사과정 선배인 두 살 연상의 누나 B씨와의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올 초 대학원 술자리에서 “둘이 잘 어울린다.”는 주변의 농담을 재미삼아 응대하다 몇 달 만에 실제 ‘연애’로까지 발전했다고. 문제는 B씨는 이미 남편뿐 아니라 두살배기 아이까지 있다는 것. 김씨는 철저히 자신이 원할 때만 만나주는 B씨를 보며 이기적이라고 느끼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친구들은 “B씨는 조건을 보고 결혼해 남편과 관계가 좋지 않다 보니 대리 만족을 위해 널 만나는 것”이라며 말리지만 ‘콩깍지’가 씐 김씨로서는 그런 경고가 귀에 안 들어온다. “저도 양심은 있어서인지 가끔 B씨를 데리러 오는 남편과 눈을 못 맞추겠더라고요. 어떠한 변명이나 면죄부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은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또래에게 느끼지 못하는 특별한 것이 있다 지난해 말 지방 지점으로 발령이 난 회사원 정모(30)씨는 주말마다 회사 근처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다 얼마 전 여중생 딸을 둔 열두살 연상의 ‘띠동갑’ C씨를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방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볼 요량으로 가끔 전화 연락이나 하며 지냈다. 하지만 재미삼아 한두 번 만나기 시작하면서 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30대에 접어든 자신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마치 늘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콕 집어 조언해주는 C씨의 진지한 태도에 차츰 빠져들기 시작했다. “처음 만날 때부터 C씨와 불륜관계로 나아가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또래 사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배려나 포용성 같은 감정들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정’에 굶주려 있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어요. 지방으로 발령나자 ‘시골에서는 못 산다.’며 떠나간 옛 여자친구와 많이 비교되기도 했고요.” 회사원 조모(33)씨는 7살 연상 직장 상사인 기혼녀 D씨와 2년째 은밀한 관계를 지속 중이다.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조씨는 D씨로부터 엄마에게 받지 못한 포근함을 느껴 첫눈에 반했다.‘이건 안 된다.’는 생각에 억지로 D씨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회식 뒤 술에 취한 D씨를 집에 바래다 주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D씨는 남편과 이혼한 뒤 딸아이와 살고 있다. “가끔 D씨가 ‘우리나라를 떠나서 남들 눈치 안 보고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해요. 저 역시도 지금 제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D씨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점은 말할 수 있어요.” ●책임감 없이 만날 수 있으니까 학원강사 박모(35)씨는 직장에 다니던 5년 전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동갑내기 여성 E씨와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 만날 당시만 해도 E씨는 갓 결혼한 새색시였지만 지금은 이혼한 뒤 지방에 혼자 살고 있다. 예전에는 지방 출장 겸 만나곤 했지만 지금은 E씨를 만나기 위해 KTX를 타고 갈 만큼 만남에 열의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박씨는 한 번도 E씨와 결혼할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어차피 E씨는 아이가 있는 사람이고 나이도 많아서인지 나에게 뭔가를 바라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나를 편하게 만들기도 하고요.E씨는 정말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긴 해도 만약 결혼을 전제로 만났으면 이미 내가 먼저 도망쳐 나왔겠죠. 나 때문에 이혼한 것도 아닌 만큼 E씨의 현 상태에 죄책감 같은 것도 솔직히 느끼지는 않고요.” ●그 사람 말고는 아무 것도 안 보여 회사원 김모(26·여)씨는 지난해 결혼한 회사 동기 H씨를 짝사랑하고 있다.1년쯤 전부터 회식자리에서 늘 김씨의 옆에 앉아 챙겨주던 H씨의 자상함에 반하면서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H씨의 신혼 집들이에 갔던 김씨는 의외로 평범한 외모인 H씨의 아내를 보고는 ‘내가 외모나 능력 어느 것 하나 저 여자에게 달리지 않는데….’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고. 최근 H씨가 이직을 하자 김씨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H씨에게 고백을 했다가 완곡하게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저한테 그 남자의 아내는 존재감이 없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예요. 오직 그 남자 하나만 보인다고 할까요. 그 남자 이혼하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밥 한 번씩 먹고 영화나 볼 수 있는 관계만 돼도 좋을 것 같은데. 유부남이라 그것도 안 될까요. 그래서 가슴이 더 저려요.” 최모(30·여)씨는 4년 전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I씨를 만났다. 잘생기지도 않았고 돈도 별로 많지 않던 열다섯 살 연상의 I씨가 최씨에게 선물공세를 펼 때만 해도 ‘정신 나간 사람’쯤으로 생각했지만 당시 이별의 아픔을 겪던 그에게 I씨의 배려는 큰 힘이 됐다고. 결국 최씨는 ‘기러기아빠’였던 I씨와 동거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I씨는 외박이 잦아지고 변하기 시작했다. 최씨는 I씨가 자신을 폭행하고 또 다른 여자를 만나는 일이 잦아지자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I씨는 곧바로 집을 나갔고 연락 한 번 없다. 지금 최씨에게는 4년을 함께 산 I씨에 대한 그리움뿐이라고. “늘 곁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지니 세상이 온통 빈 느낌뿐이에요. 제가 전화하면 그대로 전화를 꺼버려요. 제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이니 늘 행복했으면 하지만 저를 이렇게까지 마음 아프게 했으니 평생 불행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교차해요.” ●유부남 사랑하는 내 마음 나도 몰라 3년 전 취직한 회사원 정모(27·여)씨는 입사 당시 ‘사수’(일을 직접 가르치는 선임자)였던 상사 F씨와 얼마 전 만남을 시작했다. 처음 입사할 당시 “일 못하는 빵점짜리”라며 혼도 많이 내던 F씨였지만 3년이 지나면서부터는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고. F씨는 정씨에게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불러내서는 고가의 목걸이나 반지 등을 선물하며 애정 공세를 시작했고 정씨 역시 그런 F씨가 싫지만은 않았다.‘내가 원하면 언제든 관계를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정씨였지만 이제는 자신의 의지로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다른 남자가 생기면 언제든 떠나겠다.’며 F씨에게 자신있게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회사에서 저 좋다는 남자들이 아무리 덤벼도 안 끌렸어요. 다른 남자가 좋아지려고 해도 F씨가 ‘그와 만나지 말라.’고 말하면 자연스레 헤어지게 됐어요.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 돼 버린 내 자신이 너무 황당하고 이상해요.” 외국 유학 중인 이모(29·여)씨는 해외 지사 근무 중이던 기혼남 G씨를 알게 됐다. 아침마다 모닝콜을 해주고 먼 거리라도 언제든 이씨의 집으로 달려와주는 G씨에게 남자다운 매력을 느꼈다. 몇 달 뒤 G씨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고 공항에서 그를 바래다주며 ‘이것으로 G씨와의 인연은 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G씨가 돌아간 뒤 이씨가 먼저 연락하게 됐고 지금까지 인터넷 화상채팅 등을 통해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G씨는 이혼할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럼에도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너무도 싫어해요. 쉽게 말해서 ‘난 가정을 지킬 테니 넌 결혼하지 말아라.’라는 심보죠. 하지만 이상한 것은 제가 그런 남자를 사랑한다는 거예요.G씨가 나와 결혼해주길 원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내가 너무 이상해요.” ●서로 좋아하는 현재가 제일 중요하니까 얼마 전 결혼한 김모(27·여)씨는 최근까지 10살 연상의 직장 상사 J씨와 소위 말하는 ‘불륜’관계를 맺었다. 당시 김씨는 미혼이었고 헌칠한 외모의 J씨에게 반해 먼저 프러포즈를 했다고. 그제서야 J씨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보통 연인들과 똑같이 데이트도 하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J씨의 부인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앞으로 둘 간의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J씨와 사랑하고 있는 현재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지요. 철없는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나이에는 그저 누구든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J씨의 집에 집들이 갔다가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서로 좋아하던 거니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어요.” ■심리학으로 본 불륜 진화 심리학에서는 외도가 오랜 기간에 걸친 인류의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인류에게 ‘1부1처제’가 정착된 지 수천년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십만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1부다처’ 혹은 ‘1처다부’의 전통이 아직 상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 쉽게 말해 인간 유전자에 아직 ‘바람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윤리·규범 등을 통해 이를 잘 억제해 왔지만 최근 이러한 규제가 느슨해지면서 외도나 불륜이 다시금 사회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외도나 불륜에는 어떤 심리학적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랑에 장애가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상대를 더 깊이 사랑한다고 지각하게 되는데 이를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고 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불륜 커플의 사랑이 유독 열정적인 이유를 설명해준다. 불륜은 극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인 만큼 들키지 말아야 한다. 조마조마해서 가슴이 뛰게 만드는 상황은 두 사람의 사랑을 실제보다 더욱 큰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콘돔 판매량과 호텔 예약률이 급증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도 불안이 사랑을 더욱 크게 느끼게 만드는 요인임을 잘 보여준다. ‘남들 다 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사회 분위기 또한 외도나 불륜을 조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데 이를 ‘사회규범이론’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처럼 TV나 영화 등 미디어가 외도나 불륜을 미화해 방영할 경우 대중들 또한 이에 관대한 사회적 태도를 갖게 된다.‘남들 다 하는 것인데 나도 하면 안 되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한때 기혼남녀 사이에 불었던 ‘애인만들기’ 열풍 또한 외도나 불륜이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 된 우리 사회의 윤리적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 도움말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 [사설] 변양균 실장이 답할 차례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가짜 학위사건이 진실게임으로 번지고 있다.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의 외압성 의혹을 제기했던 동국대 재단이사 장윤 스님은 그제 대리인인 이중훈 변호사의 기자회견에서 7월8일 변 실장과의 만남에서 “동국대 현안의 하나로 신정아씨 관련 대화가 오갔다.”고 밝혔다. 변 실장이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신씨 문제로 개인적인 부탁을 한 일이 없고, 신씨 문제를 꺼내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던 것과는 상반된다. 장윤 스님이나 변 실장 중 한사람이 진실을 호도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변 실장이 이제 답할 차례라고 본다. 더 이상 진실의 저 편에 숨어있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밝히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30여년간 국록을 먹은 고위 공직자의 떳떳한 자세다.‘깜량’이 되는지 아닌지, 언론이 소설을 썼는지 여부는 그 다음에 판단할 문제다. 장윤 스님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대리인을 내세워 찔끔찔끔 군불만 땔 것인가. 종교인의 양심을 걸고 신정아씨의 가짜학위 파문의 전말을 직접 공개해야 한다. 신씨를 비호한 것으로 적시된 인사들의 해명은 어느 하나 명쾌한 것이 없다. 진실의 변죽만 울리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도 한동안 머뭇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뒤늦게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검찰은 신씨의 학위 위조 및 교수 임용,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정 과정 등에서 외압과 공모가 있었는지, 신용불량자인 신씨의 해외 도피비용은 누가 댔는지 등을 한점 의혹없이 규명해야 한다. 장윤 스님과 변 실장 등 관련 당사자들을 소환조사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검찰은 이 사건을 ‘옷로비 사건’처럼 실체없는 권력형 비리의혹으로 예단해선 안 된다.
  • [Local] 쓰레기 투기예방 ‘양심거울’ 설치

    강원 원주지역 상습 쓰레기 무단투기지역에 6일 일명 ‘양심 거울’이 설치됐다. 설치 지역은 ▲봉산동 이하우 신경외과 앞, 로아노크 광장 ▲명륜2동 새마을지도자 공원, 도영쇼핑 뒤, 가마솥 손두부 앞 ▲은혜마을 입구 ▲창대교회 밑, 원주 구세군 어린이집 입구 ▲제일은행 뒤, 국민은행 옆 ▲대흥아파트 옆 ▲우산동사무소 앞 ▲법원 옆 골목 ▲일산성당 앞, 원주기독병원 뒤 등 모두 15곳이다. 양심 거울은 쓰레기 불법투기 때 자신의 모습이 비쳐지도록 지름 1m의 도로 반사경과 같은 원형 볼록거울 형태로 제작됐다.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 (1) 천주교 前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 (1) 천주교 前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경북 의성군 봉양면 도원리 586-1 봉양마을 주민들에게 두봉(78·본명 렌 뒤퐁) 주교는 ‘웃기는 괴짜 할아버지’로 통한다. 언제나 넉넉한 웃음으로 누구에게나 문을 활짝 여는 맘씨 좋은 푸른 눈의 프랑스 선교사. 목사님이나 스님이나 거리낌없이 방 안에 들어가 허물없이 이야기를 꺼내도 껄껄 웃으며 들어주는 외국인.3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문화마을에 두봉 주교는 없어서는 안 될, 그야말로 ‘분위기 메이커’인 것이다.2004년 11월 이 봉양마을에 왔으니 올해로 4년째.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잘하며 거침없이 ‘나는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는 두봉 주교에게 한국은 ‘하느님이 명령한 선교 임지’에 앞서 어쩔 수 없는 ‘인연의 땅’이다.1954년 11월 한국 땅을 밟은 뒤 53년간 단 한번도 한국 땅을 떠나지 않은 채 서슴없이 ‘한국 땅에 묻히겠다.’는 두봉 주교. 그에게 과연 한국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뜻대로 살다 보니 이곳까지 왔습니다.” 왜 이토록 한국을 고집하느냐는 물음에 ‘능력있을 때까지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라.’는 파리외방전교회의 지침을 따른 선교사일 뿐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어쩔 수 없는 선교사의 사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대답에 ‘한국은 나의 처음이자 끝’이라는 절절한 심중이 읽힘은 왜일까. 프랑스 오를레앙, 그러니까 잔 다르크의 전설로 유명한 그 고장에서도 한참 벗어난 궁벽한 농촌 마을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두봉은 저 멀찍한 한반도의 부름에 이끌려 왔던 것으로 보인다. 다섯 형제, 아니 사촌형제 두 명까지 모두 7형제가 한 집에서 살며 어렵게 어린시절을 보냈던 두봉은 형제 중에 유일하게 ‘성소’의 뜻을 밝혀 신학자, 목회자의 길을 밟았다. 한국이라는 동양 끝 저쪽 나라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한 채 신학교에서 신학수업을 쌓았던 그가 털어놓는 한국과의 인연은 거의 필연으로 다가온다. 오를레앙 신학교 2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 병영생활을 하던 말미에 한국전쟁이 터졌다.“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한 동료들이 거의 다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내가 한국에 가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그였다. 당시만 해도 ‘위험지역에 선교사를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한국은 신학생인 나와는 상관없는 그저 먼 나라일 뿐”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참에 6·25전쟁으로 성직자들이 거의 전멸하디시피 한 상황에서 한국 교회가 파리외방전교회에 지원을 요청해 5명의 신부가 배정됐던 것. 휴전 한 달 전인 1953년 6월 발령을 받아 교육을 받고 일본을 거쳐 인천 땅을 밟은 게 1954년 11월. 처음부터 “한국에 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던 그에게 “한국인으로 한국땅에 묻히겠다.”는 변함없는 소신을 준 것은 과연 믿음일까, 삶일까. 전쟁의 끝자락에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폐허만 눈에 띌 뿐” 어느 한 곳 번듯한 게 없었던 한국 땅. 용산 성심여자고등학교 터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거처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대전교구 대흥동본당 보좌신부를 맡은 게 한국 사목의 시작이다. ‘두봉’(杜峰)이란 이름은 당시 대흥동 본당 주임이었던 오기선 신부가 지어준 이름. 두봉 주교의 프랑스 이름자에 맞춰 지었다고 하는데 두봉 주교는 “중국의 두보와 같은 성씨”라며 은근히 이름 자를 치켜세운다.“두견새가 큰 봉우리에서 우니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 않겠느냐.”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중등학교 시절 ‘가톨릭노동청년회(JOC)’활동을 했던 때문일까,‘눈에 밟히는 가난한 이들’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대전 선화동 다리 밑에 50명쯤 되는 어려운 집 아이들이 집을 나와 움집을 짓고 살았는데 대전 JOC 청년회원들이 1년 넘게 같이 어울리며 살아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일은 지금도 감동으로 남아 있다. 당시 대전 MBC 라디오를 통해 진행한 ‘5분명상’ 프로그램은 대전 지역 가난한 이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대구대교구에서 안동교구가 분리돼 초대 교구장을 맡을 무렵 “바늘방석에 앉는 것 같았다.”고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두달 뒤 주교서품을 받았는데 주교 서품 때 응당 정하는 문장(紋章)과 사목표어를 내세우지 않아 당시 화제가 되었다. 주교라면 12사도 후손의 반열에 오르는 천주교의 큰 명예인데 굳이 문장이며 사목표어를 마다한 까닭은 무엇일까.“문장은 귀족이나 갖는 것이지 서민인 내가 무슨 문장을 가져.” 한사코 문장이며 사목표어를 내세우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외국인 사제는 한국인 뒷바라지만 하면 됐지 뭐 교구장 자리까지 차지하느냐.”며 안동교구장 자리를 고사했지만 교황청의 내리누름에 밀려 할 수 없이 눌러앉았다. 지난 1990년,22년 만에 안동교구장 자리를 내놓을 때까지 “한국인 사제를 교구장으로 임명하라.”며 네 차례에 걸쳐 로마 교황청에 탄원을 낸 인물이다. 전통 문화의 고집이 센 ‘유림의 땅’ 안동에서 22년간이나 큰 탈 없이 천주교 교구장을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안동지역 최초의 문화회관을 만든 것을 비롯, 함창에 상지 여중·고를 세운 일, 한국 최초의 전문대학인 가톨릭상지대학을 설립한 일…. “지금 생각해도 그 의롭고 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유교와 불교의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도 안동은 전통이 살아있는 유별난 지역이었지요. 그런데 유림들은 양심에 따라 인간관계를 아주 중시하는 성격을 지녔더군요. 천주교 교회가 추구하는 것이나 나의 가치관이 잘 맞았지요. 내가 부딪칠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1979년 ‘안동농민회사태’, 이른바 ‘오원춘 사건’은 잊지 못할 큰 사건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영양군이 알선한 불량감자씨를 심은 농민들이 감자농사를 망쳐 피해보상을 받았는데 보상운동에 앞장선 오원춘이 정부기관에 납치되어 폭행당한 사실을 안동교구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들고 일어서 전국에 폭로한 것. 서슬퍼런 군사정권이 교구장 두봉 주교의 출국명령을 내렸지만 로마 교황청이 나서 추방명령이 철회됐다. 두봉 주교에게 ‘한국 농민사목의 대부’라는 별명을 붙여준 역사적 사건이다. “이젠 한국인 사제가 교구장을 맡아야 한다.”는 탄원이 받아들여져 교구장에서 은퇴한 게 1990년. 정년을 15년 앞둔 채였다. 고양시 행주외동의 조립식 가건물인 행주공소에서 능곡성당 신부를 도와 성직자와 수도자 신도들의 피정 지도를 14년간 하다가 지난 2004년 안동교구의 주선으로 이곳 봉양마을로 이주해 살고 있다.“고향격인 안동 지역에서 살게 해달라는 주문이 받아들여져 이곳에서 살게 됐는데 너무 잘 살아서 미안하다.”고 말한다.“사는 집에 따라 마음가짐은 물론 삶을 대하는 자세마저 달라진다.”며 한사코 번듯한 집을 마다했던 그다. “한국 천주교 성인 반열에 오른 103위 중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10명은 나의 모범 선배”라는 두봉 주교. 그 10명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고 강조한다. 사목표어는 만들지 않았지만 마음속 표어는 있지 않으냐는 짓궂은 물음에 마지못해 떠듬떠듬 말한다.“기쁘고 고맙고 떳떳하게….” “기도 많이하고 남과 함께 살다가 주님의 뜻이 뚜렷해지면 주님 뜻대로 하겠다.” 신부로 15년, 주교로 21년 한국에서 40여년을 선교한 끝에 일선에선 물러났지만 지금도 한 달에 절반은 피정에, 강의에 아주 바쁘다. 인터뷰를 마친 뒤 고추며 가지며 텃밭에서 손수 키운 푸성귀들을 주섬주섬 챙긴 주교가 거실 벽에 걸린 문구를 가리킨다. 두봉 주교 은퇴 후에 안동교구 사제들이 뜻을 모아 만든 사목표어란다. ‘우리는 이 터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두봉 주교는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 출생 ▲1949년 오를레앙 대신학교 철학과 졸업 ▲1951년 파리외방전교회 대신학교 신학과 졸업 ▲1954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신학교 대학원 신학과 졸업 ▲1953년 사제 서품 ▲1954∼1955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 ▲1955∼1965년 대전교구 대흥동 본당 보좌신부 ▲1967∼1969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1969년 초대 안동교구장 임명. 주 교 서품 ▲1982년 프랑스 나폴레옹훈장 ▲1990년 안동교구장 사임, 은퇴 ▲1991∼2003년 행주외동 행주공 소 피정 지도 ▲2004년∼ 봉양문화마을 거주
  • ‘뜨거워지는’ 먹는 물 시장

    ‘뜨거워지는’ 먹는 물 시장

    웰빙 바람을 타고 ‘좋은 물’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자금력이 막강한 군인공제회가 샘물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물 시장을 둘러싼 업체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물시장 규모는 올해 3900억원으로 예상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오는 2010년에는 5000억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이마트에서의 생수 매출은 탄산 음료 매출을 추월했다. ●이마트 생수 매출 탄산 음료 추월 군인공제회측은 3일 “내년에 샘물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녹인(綠人)음료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경기 연천 지역에서 심정(深井)을 개발해 물을 생산할 계획이다. 녹인은 군인의 제복을 뜻한다. 군인공제회의 한 관계자는 “연천 지역 심정 개발을 둘러싼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연천군청도 녹인음료가 그 지역에서 물 생산 공장을 설립하도록 해줬다.”면서 “판매는 다른 업체가 대행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인공제회측은 비무장지대(DMZ) 인근인 무공해 청정지역에서 나오는 물이라는 점을 내세워 홍보할 방침이다. 농심의 제주삼다수는 한라산의 화산암반수, 해태음료는 평창 봉평면 청정지역 해발 700m에서 나오는 샘물임을 강조한다. 군인공제회측은 에비앙을 벤치마킹해 업계 1위인 농심 제주삼다수가 긴장할 만한 물을 내놓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농심측은 “샘물 업체가 많고 유통망도 비슷한 데다 지금도 완전경쟁 시장이어서 특정 업체 하나가 들어온다고 판세가 바뀌기는 어렵다.”고 응수했다. ●고급물 휘발유보다 비싸다 현재 먹는 샘물시장은 제주삼다수, 하이트의 석수와 퓨리스, 해태의 빼어날 수, 롯데칠성 아이시스 등이 주도하고 있다. 군소 업체까지 합하면 물 생산 업체는 70여개나 된다. 시장에서 대량 유통되는 일반 지하암반수뿐만 아니라 고급 수입 물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약 40여종의 해외 고가 생수를 수입, 판매하고 있다. 신세계측은 “수입 생수 매출은 해마다 40%가량 늘고 있다.”고 밝혔다. 고급 물은 ▲빙하수 ▲해양심층수 ▲화산암반수 ▲탄산수 등으로 나뉜다. 이들의 물값은 휘발유보다 비싸다. 에비앙이 대표적인 빙하수다.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은 뒤 빙하층을 통과하면서 여과된 물로 500㎖에 900원이다. 도곡동 타워팰리스내 신세계 스타슈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고급물인 마린파워는 해양심층수다.2ℓ에 1만 5000원이다.8월말 현재 서울지역의 평균 휘발유값은 ℓ당 1600원 정도다. 화산암반수로는 일본의 닥터바나가 유명하다.2ℓ에 1만 8000원이다. 마린파워와 닥터바나는 휘발유의 5배나 되는 셈이다. 탄산수로는 이탈리아산 산펠레그리노(250㎖,1500원), 페리에(330㎖,2000원) 등이 인기다. 스위스산 베이비 전용 물인 와일드알프베이비(500㎖,3000원)도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20&30] 이럴때 학력위조 유혹 느낀다

    [20&30] 이럴때 학력위조 유혹 느낀다

    학력 위조 파문이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 위조 이후 학력 위조 파문은 학계, 예술계, 연예계 등 사회 각계 각층을 뒤흔들고 있다. 이러한 학력위조 논란은 자연스럽게 학벌만 중시하는 사회 풍조를 비판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그러나 유명인이냐 아니냐일 뿐이지 학력 위조는 우리 주변에 만연돼 있다. 학력 위조 유혹을 느낄 때는 더 일상적이다. 직장에서 ‘짧은 가방끈’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할 때, 명문대 재학생으로 포장하면 과외 등을 더 쉽게 구할 수 있을 때 학력위조의 유혹을 느낀다.20&30이 직면하는 학력위조 유혹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유혹은 차별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학력 때문에 차별을 받을 때 학력위조 유혹을 느낀다. 최근 불거진 학력위조 논쟁에 대해서도 ‘나도 학력위조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정보통신(IT)분야 벤처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는 정모(32)씨는 창립멤버임에도 고등학교 졸업 학력 때문에 숱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믿는다. 근속연수가 10년에 이르지만 과장 승진 심사에서도 두 번이나 떨어져 창립멤버 중에서 가장 늦게 과장이 됐다. 자기보다 나중에 입사한 사람 중 상당수가 자기보다 직위가 높다. 대학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입사한 동료들 초임이 자기보다 많은 경우도 있었다. “대놓고 말은 안 해도 내가 고졸이라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대졸이라고 속이고 입사했으면 지금보다 대우가 훨씬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모 대학 지방캠퍼스를 졸업한 임모(33)씨는 사회 생활을 하고 나서 자신의 학력 때문에 좌절한 적이 적지 않다.“전에 일했던 회사에서는 동료 50명 중에서 지방대 출신이 5명이 안 됐어요.35살이 되기 전에는 대학원에 가서 석사학위라도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더라구요. 공부를 해야겠다는 게 아니었어요. 오로지 ‘가방끈’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인 거죠.” 모 정당 정책연구원으로 일하는 한모(36)씨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능력도 있고 경력도 있는데 단지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연구책임자가 못 되죠. 정작 일은 제가 다 했는데 보고서에 대표 집필자 이름은 박사학위자로 나갈 때 솔직히 짜증스럽죠.” ●잊고 싶은 학력위조(?) 경험 차별을 피하기 위해, 혹은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실제 학력을 위조해 봤다는 이들도 있다. 학력을 위조해 교수가 된다는 식으로 사회적 지위를 얻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학력을 둘러싼 이중잣대는 오늘도 사람들을 학력위조로 내몰고 있다. 이모(23·여)씨는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A대학 한문학과 수업 시간, 다른 학과 학생으로 보이는 이씨를 향해 담당 교수가 “무슨 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이씨는 이 대학 지방 캠퍼스 출신이지만 이중전공 신청을 본교로 한 학생. “서울 캠퍼스와 지방 캠퍼스는 학과 이름이 달라요. 그런데 지방 캠퍼스에서 온 티가 날 것 같아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결국 서울 캠퍼스에 있는 과 이름으로 얼버무려 말해버렸죠.”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뒤 출석부를 보던 교수가 “우리 학교에 이런 과도 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바람에 지방 캠퍼스 출신인 게 들통나버렸기 때문.“그 때 사람들이 ‘어쩐지’ 하는 표정으로 절 쳐다보던 표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진땀이 나요.” B대학 경제학과에 다니는 정모(24)씨도 비슷한 유혹에 빠진 적이 있다.“복학하면서 용돈도 벌 겸 과외를 구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고민 끝에 정씨는 서울대생이라고 프린트 된 전단지를 뽑아서 인근 아파트에 붙였다.“어차피 철저하게 확인하지 않는 데다 서울대라고 하면 평균 과외비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전단지를 보고 연락이 왔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바쁘니 다른 대학 후배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말을 바꾸긴 했지만 정씨는 과외 시장에서 학벌이 차지하는 위상을 실감했다.“요즘 과외 연결 업체에서 학생증, 재학 증명서까지 요구하는 것도 이런 유혹 때문에 학벌을 속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학력만 좋으면 만사 OK? 직장인 장모(28)씨는 대학시절 학력위조(?)를 한 경험이 있다. 방학 때 돈도 벌 겸 학원강사를 하려고 했지만 대학생을 받아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설령 있더라도 처우가 열악해 벌이가 시원찮았다. 결국 장씨는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도 졸업했다.”고 속여 학원 강의를 시작했다. 장씨는 학원이야말로 ‘학력위조의 천국’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학원에서 명문대 출신을 선호하다 보니 대부분의 동료 선생들이 자신의 대학을 거짓으로 속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선생님들 대부분이 이력서에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나왔다고 써요. 그런데 실제 나온 대학은 그게 아니죠. 학생들을 끌어 모으는 게 목적이니 학원 측에서 알더라도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출신 대학에 관계없이 ‘계급’이 신분을 결정하는 군대에서도 취업준비생 박모(26)씨는 학력 위조의 유혹을 받았다. 자대로 배치되고 행정병을 선발한다는 얘기를 듣고 손을 번쩍 들었지만 Y대학을 나온 동기에게 밀렸던 것. 결국 박씨는 힘들다는 포병으로 군생활 2년을 마쳤다.“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어느 대학 나왔냐.’더군요.” 박씨는 대학 이름을 속일까 망설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사실대로 말했고,Y대학을 다니고 있는 동기에게 행정병 자리가 돌아갔다. 박씨는 이 순간만 생각하면 아직도 억울하다고 말한다.“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차라리 S대학 나왔다고 말할걸. 그러면 행정병으로 뽑힐 수 있었을 텐데….’ 학벌이 중요하지 않다는 군대도 이런데 사회 나가면 어떨까 실감을 많이 했습니다.” ●유학생은 학부 졸업 숨겨 미국에 유학했다 얼마 전 귀국한 한모(35)씨는 미국 대학원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국내 대학(학부) 학력은 밝히지 않는 게 관례라고 말한다. 서로 부담스러우니까 ‘학력 숨기기’를 하는 셈이다. 물론 학부 학력을 드러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서울 강남에서 초등학교를 나왔거나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 얘기다. “일종의 콤플렉스죠. 학력 위조라기보다는 학력 숨기기입니다. 보통 자기가 졸업한 대학을 얘기하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나이도 물어보지 않는 게 불문율이지요.” 한씨는 “그런 와중에도 지방대 출신들은 웬만하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대충 알게 되기 때문에 유학생들 사이에서 지방대 출신은 업신여기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자신이 졸업한 학부보다 석사 학위를 받은 대학이 더 좋은 경우 후자를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같은 명문대를 나와도 서울 강남 출신들은 자기들끼리 반창회를 할 정도”라면서 “미국에서도 학벌 풍조는 그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강국진 이경원기자 betulo@seoul.co.kr
  • 나라 없는 사람/커트 보네거트 지음

    “나는 모든 사람의 머리가 쭈뼛 설 만큼 무시무시한 리얼리티 프로를 구상하고 있다. 제목은 ‘예일대 C학점’이다. 조지 W 부시는 주변에 C학점 상류계급 학생들을 끌어모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1)역사와 지리를 전혀 모르고 (2)백인 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3)이른바 기독교도이며 (4)정말 놀랍게도 정신병자, 즉 영리하고 번듯하게 생겼지만 양심은 전혀 없는 자들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이런 식이다. 웃긴다. 웃기되 ‘실소’가 아닌 ‘블랙유머’다. 목에 착 달라붙어 컥컥대게 하는, 가시뼈가 폴폴 돋은 웃음이다. 그의 유머는 사회적 약자를 위로하나, 강자의 의식은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른다. 읽는 이에 따라 유쾌하고도 불쾌하다. ●마지막 작품이자 유일한 회고록 보네거트는 지난 4월11일에 죽었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기 엿새 전이었고, 여든네 살이었다. 보네거트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반전운동가였으며, 히피의 대항문화를 선도했다. 무엇보다 ‘초거대 제국’ 미국의 광기를 사납게 공격했다. ‘나라 없는 사람’(문학동네)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일한 회고록이다. 그가 수석편집인으로 있던 잡지 ‘인디즈타임스’에 5년간(2000∼2005년) 연재했던 글을 묶었다. 보네거트는 “어떤 웃음은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썼다. 그는 2차대전 막바지였던 1943년 연합군으로 징집됐고, 그 연합군에 의한 독일 드레스덴 폭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나치의 아우슈비츠 학살만큼이나 연합군의 드레스덴 학살(13만 5000명)에 치를 떨었던 사람이 보네거트였다. 살아 남았을 때 터져나온 건 소름끼치는 웃음뿐이었다고 보네거트는 말했다. 그의 유머는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맹렬한 유머다. ●“정신병자·비양심적” 맹공격 그래서다. 전쟁을 일으키는 인물들에게 보네거트는 무섭게 분노한다. 부시 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을 “정신병자들” “양심도 동정심도 수치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라 쏘아붙인다.“베트남 전쟁은 백만장자들을 억만장자로 만들었으나, 오늘날의 전쟁은 억만장자들을 조만장자로 만들고 있다.”고 일갈하고,“미국 지도자들이 권력에 취한 침팬지라고 말한다면 나는 중동에서 싸우다 죽어가는 우리 병사들의 사기를 꺾는 매국노가 되는 걸까?”라며 정색하고 묻는다. 특히 ‘문명’과 ‘지성’의 이름으로 ‘반문명’과 ‘무지’를 타자화하는 식자(識者)들에게 치를 떤다. “‘슈렙널’이라 불리는 유산탄은 ‘슈렙널’이라는 이름의 영국인이 발명했다. 여러분도 그런 발명품에 자기 이름을 붙이고 싶은가? 네이팜탄은 하버드에서 발명됐다. 진리란 그런 것인가?” ‘나라 없는 사람’이란 책 제목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보네거트에게 미국은 “내 나라요.” 외칠 조국이 아니었다.“내가 사랑하는 미국”이 아닌 “내가 사랑했던 미국”이라 말하는 사람. 커트 보네거트는 ‘나라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1999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저무는 20세기의 묘비명을 이렇게 쓰고 싶다 말했었다.“아름다운 지구여! 우리는 그대를 구할 수 있었지만, 너무나 속악하고 게을렀도다.” 95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길섶에서] 불효의 추억/이목희 논설위원

    벌초하러 가자는 부친의 연락을 받고 “죄송하지만 못 간다.”고 했다. 부부동반 모임을 한달 전부터 잡아놓았다고 했지만 부친은 이해하지 않으셨다.“이놈아, 조상이 중요하냐, 사교가 중요하냐.” 점심식사만 하고 벌초에 합류하기로 억지로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낮부터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부친께 연락드렸더니 하는 데까지 해보고 산에서 내려오시겠다고 했다.“이런 비 속에 벌초를 할 수 있겠나.” 지레 짐작하고, 친구 부부의 영화관람 제안에 동의했다. 영화를 한창 보는데 부친에게서 휴대전화가 왔다.“왜 안 오느냐.”고 역정을 내셨다. 그때부터 뒤통수가 따갑고,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부친께 얼굴이라도 비치려고 급히 차를 타다가 얼굴을 차문에 세게 부딪혔다.“불효의 죗값을 하는구나.” 이후 부친은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더이상 벌초에 직접 나서지 못하셨다. 부친은 2년전 돌아가셨다. 추석이 가까워오고, 형제들이 벌초 계획을 잡으면 비, 영화, 얼굴에 흐르는 피가 오버랩되면서 양심의 가책이 가슴을 찌른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데스크시각] 신정아 파문의 교훈/주병철 사회부 차장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가짜 학위 파문이 온나라를 들쑤셔놓고 있다. 뿌리박힌 학벌사회 폐단의 단면이라고 하지만, 파문의 본질은 거짓말이고, 용서할 수 없다는 얘기가 주류를 이룬다. 연일 당사자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고 있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그러던 참에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조선 중기때 과거에 장원급제해 명성을 날렸던 서예가 한석봉(1543∼1605)의 얘기다. 신씨를 한석봉과 대비시키는 것을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 신씨와 한석봉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신씨가 도덕적 양심을 팔아 화려한 위조 학벌을 얻어 한때 지식인사회의 주목을 끌었다면 한석봉은 어머니의 독하고 엄한 가르침 덕분에 빛을 본 인물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문제는 닮은 점이다. 신씨와 한석봉은 시대만 달랐지, 출세 지상주의적인 사회라는 활동 공간은 같았다. 한석봉의 어머니는 절간 공부를 마다하고 돌아온 자식에게 불을 끈 뒤 글씨를 써보게 하고 마음에 들지 않자 엄하게 꾸짖은 뒤 다시 내보냈다. 양반 중심의 출세주의 학문관이 자리잡았던 당시 한석봉 어머니의 처세는 아들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석봉이 살던 시대는 임진왜란(1592년)을 겪으면서 나라가 뒤숭숭하던 때였고, 중국은 한족의 명나라가 힘을 잃고 만주족이 득세해 청나라(1636년)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는 과도기였다. 양반문화와 출세주의에 함몰된 조선사회는 훗날 일본에 강점되는 수모를 당했고, 변화에 둔감한 청나라도 아편전쟁 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즈음 서양에서는 르네상스 시대가 개막되고 있었다. 나침반·화약이 발명되고 활판인쇄술이 생겨났다. 나침반은 신항로 발견에 큰 도움을 줬다. 조선과 중국이 폐쇄적인 봉건문화에 안주한 반면 서양은 이미 인간의 재발견으로 근대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가정이지만, 한석봉의 어머니가 ‘글씨를 비뚤게 쓴다고 나무라지 말고 떡을 고르게 썰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보라.’며 아들에게 역발상을 제의했다면 조선사회는 어떻게 변했을까. 수백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급변하는 글로벌 체제의 물결을 타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옛날식 사고 방식에 집착하고 있고, 학벌 중심과 출세주의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 신씨의 일그러진 자화상도 이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교육은 백년대계’라고 떠들지만, 교육부 장관이 바뀌어도, 교육정책이 바뀌어도 학생들은 학벌과 출세를 위한 성적 채우기에 급급하다. 자식들을 학벌 중심과 출세 지상주의 대열로 몰아넣기 위해 제2, 제3의 한석봉 어머니들의 정성(?)도 한몫하고 있다. 지금의 세태를 한석봉의 조선시대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무작정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답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학력이 낮고 학벌이 처지면 출세하지 못한다고 자식을 다그치고, 출세를 위해 자신의 학위를 위조할 게 아니라 역발상으로 이를 이겨내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실력과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기회를 갖고 경쟁할 수 있는 ‘간판 불문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 이른바 능력이란 용역을 사고 팔 수 있는 ‘능력 시장’이다. 이 시장을 만드는 데는 국가, 기업, 사회, 국민 모두 나서야 한다. 낮은 학력, 시원찮은 학벌을 가진 자들의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 ‘가짜 학위’라는 불량품은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5년 동안 나라를 이끌 지도자로 나선 대선 후보들에게 ‘솔로몬의 지혜’를 구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 듯싶다. 주병철 사회부 차장 bcjoo@seoul.co.kr
  • [사설] 신정아 의혹, 당사자들이 진실 밝혀야

    학력 위조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신정아씨에 대한 권력층의 비호 의혹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변양균 청와대 대통령정책실장 등 여권 실세가 신씨의 임용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동국대 내부비리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조사가 어느 한순간 종료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경제적으로 파산상태였는데도 고급 외제승용차를 몰고, 명품 의류를 구입하는 등 씀씀이가 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의문을 증폭시킨다.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관련된 당사자들이 양심을 걸고 진실을 밝히는 것뿐이다. 신씨가 나서면 가장 빠르고, 정확하지만 그는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 미국으로 도피해 잠적한 상태다. 임용과 관련한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은 홍기삼 전 동국대 총장과 이사장인 영배스님이다. 이들은 불교미술 관련 학과에 서양미술 이력을 가진 신씨를 채용한 이유를 밝히고 학력의혹을 제기한 장윤스님을 재단이사에서 해임한 배경도 밝혀야 한다. 한갑수 전 광주비엔날레 재단이사장은 경력에 대한 논란이 있고, 심사위원 11명 중 단 1명에게서만 표를 얻었는데도 신씨를 예술감독으로 선임한 배경을 공개해야 한다. 변 실장이 장윤스님을 회유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모두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있기 때문에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변 실장은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장윤스님과는 신씨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말을 전했을 뿐이다.27일에는 오영교 동국대 총장이 나서 “변 실장이 신씨 사건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변 실장이 직접 나서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하다. 장윤스님은 검찰의 수사에 응해 진실 규명을 돕는 것이 올바른 종교인의 자세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돼 있다는 것을 당사자 모두가 명심하기 바란다.
  • “日 정부는 할머니들 돌아가시기 전에 사죄를”

    “日 정부는 할머니들 돌아가시기 전에 사죄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지고 공식 사죄해야 합니다.” 22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제755회 수요집회에서 일본인 극단 ‘극단 수요일’이 20분 남짓 공연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공연 제목은 ‘바다를 넘어 연결되는 우리’로 모두 4장으로 구성돼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다뤘다. 원래 1시간 분량이지만 집회 시간을 고려해 20분만으로 짧게 끝냈다. 도쿠다 유키히로(65) 단장은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됐지만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 정부의 빠른 사과와 배상이 있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5년 창단한 이 극단은 “일본 정부는 위안부 제도를 전쟁범죄로 인정하고 그 책임자를 규명, 처벌해 피해 여성들에게 법적 배상을 하라.”며 그동안 일본에서 21차례 공연했다. 전문 극단이 아니어서 각자가 생계를 꾸려가며 시간이 날 때마다 공연을 하고 있다. 도쿠다 단장은 “일본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접하지 못하고 일종의 차별 의식을 가지면서 무지해지는 것을 보고 이를 깨우쳐 주고 싶었다.”면서 “그래서 극단 이름도 수요집회를 의미하는 수요일이라고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공연을 통해 일본인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고 재일교포들과 연대를 하게 된 성과도 있었다.”면서 “이 덕분에 일본내 조선학교에서 한국어 공연을 세 번 했고, 교과서에 없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어린이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는 효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수요집회에는 연극 관람을 위해 강북청소년 수련관 학생 40명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 6명이 나왔다. 극단 수요일의 니시오카 사토루(75) 고문은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참석해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위안부 피해 여성인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 사람들이 와서 우리 문제를 알리는 연극을 공연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면서 “한 손에도 손가락 크기가 다 다르듯이 일본인도 이렇게 양심 바른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한국이 금산분리 가장 약해 자통법도 업계 입장만 대변”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은 21일 “금산분리가 가장 약한 나라는 대한민국”이라며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 등의 금산분리 완화 주장을 강력히 반박했다.또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증권업계의 입장만 반영하고 있으며, 법 제정 과정에서 한국은행이 제 밥그릇만 챙겼다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를 열어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산업자본이 제2금융권을 지배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일부에서 한국이 금산분리에 가장 엄격하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처럼 금산분리가 철저하게 깨지고 있는 나라가 없다.”고 주장했다.그는 세계 100대 은행과 100대 보험사를 조사한 결과 산업자본이 지배하는 곳은 서너개 미만이었으며 이들 기관도 경영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재벌) 세습의 수단으로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데 어떻게 금융기관을 세계적 금융기관으로 키우겠느냐.”고 반문하고 “은행 외에 규제가 완전히 풀려 있는 보험과 증권업계에서 시험을 해보고 세계적 금융기관을 만들어 내는 등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의 삼성전자가 없다고 하지만 삼성전자를 만드는 데 50년이 걸렸다.”면서 “20∼30년 보면서 차근차근 키우면 가능성이 있지만 5∼10년을 목표로 하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이 원장은 “자통법은 증권업계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면서 “증권사의 지급결제 직접 참여를 허용하지 않더라도 수수료 문제 등 증권사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소비자 보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은행이 제동을 걸어 양심의 보루로서 행동해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밥그릇만 챙겼다.”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증권산업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소외받고 있는 잠재적 수요자인 중소기업에 직접 금융과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등 투자은행(IB)분야 서비스를 제공해 실력을 배양하고 국제시장에 나가야 한다.”면서 “IB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은행이든 증권이든 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기관이 다 들어와서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에 대해서는 “엔캐리 청산이 현 상태에서 그렇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금융당국과 정책당국의 역할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도망치려다 깔려 죽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부실 충격의 확산을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현장 행정] ‘말끔 환경’ 양심으로 가꾼다

    [현장 행정] ‘말끔 환경’ 양심으로 가꾼다

    광진구가 쾌적하고 맑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청정광진’을 선언했다. 단순히 청소를 잘하자는 취지가 아니라 주민들이 깨끗한 환경 속에서 양심을 지키고, 보람을 느끼는 일에 동참하도록 행정력을 집중하자는 범구민운동이다. 최근 공표된 ‘청정광진 선언문’에는 ‘내 집앞 청소는 내가 한다.’ 등 5개 실천사항이 담겼다. ●매일 두 차례 골목까지 물청소 20일 새벽 출근시간에 앞서 천호대로의 지하철 아차산역 근처에서는 구청 소속 물청소차 2대가 도로에 물을 뿌렸다. 직원들은 급수차에 달린 호스로 버스중앙차로의 정류장 안내판 등에 시원하게 물줄기를 쏘았다. 노면흡입차가 물청소차에 한발 앞서 도로 귀퉁이의 꽁초나 흙먼지 등을 빨아들이며 나아갔다. 오후에 예정된 물청소는 오전 늦게 내린 소나기 덕분에 취소됐다. 한낮의 물청소는 강한 햇볕에 후끈 달궈진 아스팔트를 식히는 효과도 있다. 광진구는 매일 두 차례씩 폭 12m 이상의 간선도로(55.1㎞)에서 물청소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면도로와 뒷골목(165.1㎞)까지 청소구역을 확대했다. 이에 필요한 차량 6대를 올해 초에 추가로 구입, 물청소차 8대, 노면흡입차 3대 등 차량 11대를 갖췄다. 지하수를 공급하는 급수전도 15곳에서 41곳으로 증설했다. 이날부터 24일까지 ‘을지훈련’ 기간이지만 물청소는 주민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구민참여의 날인 매월 넷째주 수요일에는 정송학 구청장도 직접 나서서 물을 뿌린다. ●환경순찰대는 거리의 해결사 중곡3동에서는 청정광진을 위한 ‘자전거 환경순찰대’가 맹활약 중이다. 통장을 맡고 있는 주민 21명이 자전거를 타고 하루 한번씩 동네를 살핀다. 무단투기 쓰레기가 없는지, 공공시설물이 파손된 곳은 없는지, 승용차 요일제는 잘 지켜지는지 등을 챙기는 게 임무다. 주인 없는 쓰레기가 버려져 있던 중곡역 근처 주택가 전봇대 앞에 ‘양심 거울’과 ‘양심 등불’ 설치를 동사무소에 건의했다. 쓰레기를 몰래 버리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나, 밤에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전등을 보고 양심을 되찾자는 취지다.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능동 등 11곳에 확대해 설치했다. 상가나 학교 등에서 자발적으로 대청소를 하겠다고 미리 알려주면 물청소차 등이 지원되는 ‘물청소 예약제’도 실시하고 있다.‘골목청소 봉사단’은 동네 골목마다 관리번호를 부여하고 담당 주민을 정해 쓸고 치운다. ●양심 청정에서 거리 청정으로 청정광진 선언문을 채택하기 이전에도 청소와 환경정화에 힘쓴 결과, 서울시가 선정한 ‘행정서비스 품질평가’ 환경분야에서 최우수구로 뽑혔다. 지난 3월에는 서울시의 ‘청렴지수 평가’에서 우수구로 선정됐다. 청정광진은 정 구청장이 지난해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7대 혁신전략’ 가운데 하나다. 공무원들의 양심을 다그쳐 잡은 뒤 이제 거리정화에 나선 셈이다. 최종구 중곡3동장은 “자전거 환경순찰대가 깃발을 휘날리며 골목을 누비자 거리도 깨끗해졌지만, 주민들이 가슴에 묻어둔 불편사항을 털어놓는 등 민원행정도 원활하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뉴라이트 전국연합도 ‘대리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인 김진홍 목사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측으로부터 금품지원을 받고 이 후보측에 치우친 행태를 보여 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산하 조직인 청년연합·의사연합 등은 16일 오전 국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목사가 이 후보로부터 2억 8000만원을 받았다는 증언이 있다.”고 주장했다. 뉴라이트 청년연합 장대완 대표는 “뉴라이트 창립 초기부터 특정 후보한테 자금을 받았다는 김 목사의 얘기를 들은 사람이 있다.”며 곧 양심선언이 있을 것임을 밝혔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이 단기간에 전국적 조직으로 성장하는 것이 누군가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는 또 “시민단체의 생명인 중립성을 김 목사가 훼손해 여기까지 왔다.”며 자신들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단체가 아님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제성호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은 “장 대표의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받아쳤다. 그는 장 대표 등에 대해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전국연합과 이명박 후보를 싸잡아 비판하는데 이는 정치공작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또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서를 통해 “박 후보측이 정치공작의 칼을 시민단체에까지 휘두른다.”면서 “전세를 만회하려는 박 후보측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추측한다.”고 박 후보 캠프를 직접 겨냥했다. 박 후보 캠프 이혜훈 대변인은 “의혹에 대한 해명을 할 생각은 안 하고 모든 것을 정치공작으로 몰아가고 있다.”면서 “이 후보 캠프와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의혹에 대처하는 모습까지 똑같다.”고 받아쳤다. 한편 뉴라이트 청년연합·의사연합 측은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의 전국연합 사무실을 점거하고 김 목사의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 목사의 금품수수 의혹이 시민단체 내 이·박 두 후보 지지자들 간의 대리전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태다. 김지훈 한상우기자 kjh@seoul.co.kr
  • 윤송이·이용우씨 등 유명인 ‘마녀사냥’식 피해 확산

    윤송이·이용우씨 등 유명인 ‘마녀사냥’식 피해 확산

    대기업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모(39)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동기들끼리 운영하는 게시판에 누군가가 서울대와 미국 카네기멜론대학을 나온 김씨의 학위가 가짜라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주위 사람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을 느끼고 논문과 학위번호 등을 공개하며 해명을 해야 했다. 김씨는 “유명인도 아니고, 회사에 증빙서류를 제출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며칠간 마음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기업체·학원가도 학위조회 붐 신정아 동국대 교수, 디자이너 이창하씨, 단국대 김옥랑 교수 등 유명인들의 학력 위조 사실이 잇따라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 사회가 ‘학력 괴담’에 떨고 있다. 최근에는 검증 대상이 기업체, 학원가 등으로 확대되고 네티즌 등 일반인들이 검증 대열에 동참하면서 정확하지 않은 소문으로 인해 ‘마녀 사냥’식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천재 소녀’로 알려진 SK텔레콤 윤송이(32) 상무는 허황된 학력 괴담에 어이없어하고 있다. 과학고를 나와 카이스트를 수석졸업하고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윤 상무는 최근 시중 정보지(일명 찌라시)에 “수석졸업이 아니다.MIT 미디어랩 박사가 아니다.”라는 소문이 급속히 확산돼 곤혹스러워 하고있다. ●교수·기업체 임원들 학위·경력 수정 요청 잇따라 윤 상무 측은 “예전부터 음해하는 세력이 있었지만, 대응할 가치를 못 느꼈다.”면서 “계속 확산되면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장 역시 ‘학위와 경력이 가짜’라는 헛소문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체에서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인 P사는 한 직원이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에 대해 ‘학력이 위조됐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자체 조사에 나섰다. 한 대형 인터넷 업체는 직원들의 의견수렴용 게시판에 익명의 허위 제보가 잇따르자 지난 14일 게시판을 폐쇄하고 ‘감사실로 실명제보해 달라.’고 공지했다. 인사팀 관계자는 “경력사원에 대한 일부 제보가 있다.”면서 “명확한 검증이 힘들고, 만약 사실이 아닐 경우 당사자가 문제삼을 수도 있어 고민”이라고 밝혔다. 학력과 경력을 위조하거나 방조했던 사람들은 양심고백을 통해 후폭풍을 줄이거나, 본인의 학력을 몰래 지우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정덕희 명지대 사회교육원 교수는 한 언론을 통해 학력 위조 의혹이 제기되자 ‘위조가 아닌 방조’라며 사과했고, 만화가 이현세씨와 연극인 윤석화씨는 고졸 학력을 고백했다. 이들의 고백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동정 여론을 불러일으키며 면죄부 효과를 누리고 있다. 학원가에서는 스타강사들이 공개된 이력을 고치거나 감추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EBS강사로 활약했던 대형 학원 대표강사 이모씨는 그동안 공개된 이력이나 강의를 통해 영국 유학 경력을 강조해왔지만, 최근 모 지방대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현재 이 학원 홈페이지에는 이씨의 학위 정보가 삭제되고 전공만 표시돼 있다. ●학술진흥재단에 “내 박사학위 삭제해달라” 쇄도 포털과 언론사 인물DB 관리팀에는 학력에 대한 수정을 요청하는 사람도 급증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업체 관계자는 “개인신상인 만큼 정확한 수치를 말할 순 없지만 기업체 임원과 교수들이 학위 또는 경력 수정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해외 박사학위를 관리하는 한국학술진흥재단도 해외 박사학위 삭제를 문의하는 전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당장 삭제해 달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등록에 절차가 있듯이 삭제에도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이대로 검증이 계속되면 국내 대학 교수자리 1000여개는 새로 생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씨줄날줄] 가짜의 경제학/함혜리 논설위원

    중국산 제품의 유해성과 가짜 시비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최신 뉴스는 가짜 계란 이야기다. 얼마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골판지 고기만두’ 보도가 허위로 만든 프로그램인 것으로 밝혀진 만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용인즉 이렇다. 중국 허난(河南)성의 성도인 정저우에서는 흰자위, 노른자위, 껍질까지 가짜인 짝퉁 달걀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고 정저우일보가 보도했다. 가짜 달걀의 제조원가는 1㎏에 0.55위안. 현재 중국에서 시판되는 계란 1㎏이 6.5위안이므로 10배 이상의 폭리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짜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이처럼 비용에 비해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문화예술계 유명인사들의 학력위조 문제도 마찬가지다. 동국대 전 교수 신정아씨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학력을 위조해온 이유를 경제적으로 풀어보면 학력을 위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대이득’이 위조사실이 들통났을 때 감당해야 할 ‘기대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기대이득은 엄청나다. 매스컴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이름이 알려지면서 각종 저술 활동과 강연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교수라는 타이틀까지 얻어 명예까지 거머쥘 수 있다. 이렇게 기대이득이 큰데 안 넘어갈 장사가 있을까. 자신의 학력이나 출신을 속이는 풍토가 만연한 문화예술계에서는 쉽게 학력위조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문화예술계 전공 가운데는 생소한 분야가 많아 학력과 경력을 거짓으로 내세워 대중을 속이기도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학력을 속인 사실이 끝까지 들통나지 않는다면 기대비용은 ‘0’이 된다. 하지만 가짜 학력으로 돈과 명예를 얻었더라도 그들이 속으로 겪었을 괴로움을 생각하면 기대비용이 완전 ‘0’은 아니다. 14일 학력위조 사실을 고백한 연극인 윤석화씨는 “철없던 시절 한 거짓말이 지난 30년동안 양심의 발목을 잡았다.”고 했다. 동숭아트센터 대표 겸 단국대 교수인 김옥랑씨도 방송사 기자에게 “학교 얘기만 나오면 자리를 피했다.”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남은 속여도 자기 자신은 못 속인다고 하지 않았나.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윤석화 “이화여대 다니지 않았다”

    문화계 인사들의 학력위조 파문이 잇따르는 가운데, 연극계 스타로 꼽혀온 배우 윤석화(51·돌꽃컴퍼니 대표)씨도 학력을 속였다고 고백해 충격을 주고 있다. 윤씨는 14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저는 이화여대를 다니지 않았다.”면서 “철없이 했던 거짓말이 30년 동안 양심의 발목을 잡았다.”고 밝혔다. 윤씨는 “부끄럽고 두려웠지만 후련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윤석화씨는 1년간 가족과 외국에서 지내다 며칠 전 서울에 왔다가 김옥랑씨의 학력 위조 사건을 보고 고백하게 됐다고 시인 계기를 밝혔다. 그러나 윤씨가 최근 자신이 대표로 있는 월간 객석 측에 학력 의혹을 제기하는 문의가 잇따르자 압박감을 느껴 양심고백을 했다는 견해도 있다. 월간 객석 측 관계자는 윤씨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기 전날인 13일 전화통화로 “볼 낯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1975년 극단 민중극장의 연극 ‘꿀맛’으로 연극계에 데뷔한 윤 대표는 그동안 1974년 이화여대 생활미술과에 입학했으나 연극의 매력에 빠져 1년 만에 자퇴했다고 말해왔다. 돌꽃컴퍼니 측은 윤씨가 13일 종교행사 참석차 국내에 귀국했다가 15일 아침 출국했다고 밝혔다.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윤석화씨 “전 梨大에 다닌적 없습니다” 고백

    윤석화씨 “전 梨大에 다닌적 없습니다” 고백

    연극인 윤석화씨가 14일 “이화여대를 다니지 않았다.”며 자신의 ‘학력위조’ 사실을 스스로 고백했다. 윤씨는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www.yoonsukhwa.com)에 있는 ‘윤석화의 친구만들기’ 난에 ‘고백입니다’란 제목의 글로 학력위조 사실을 털어놨다. 그는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고백을 드립니다.’라고 게시판에 쓴 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란 첨부파일을 통해 학력위조 사실을 실토했다. 윤씨는 그동안 자신이 1974년 이대 생활미술과에 입학했으나 연극에 몰두하느라 1년여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밝혀왔다. 윤씨는 “1년만에 귀국한 뒤 동숭아트센터 김옥랑 대표의 학력위조로 문화계가 고심하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 때부터) 부끄러워 애써 숨기려 했던 제 양심이 곤두박질쳤다.”고 말했다. 그는 “철없이 했던 거짓말이 30년 세월 동안 양심의 발목을 잡았었다.”며 “용기가 없어 주저하는 사이 지금에 이르게 됐음을 용서해 달라.”고 밝혔다. 윤씨는 이어 “부디 제 고백을 받아주시고 용서해달라.”고 거듭 당부한 뒤 “연극을 향했던 길과 착하게 살고 싶었던 사람으로서의 꿈은 의심하지 않아주기를 기도드린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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