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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히로시마 가는 오바마] 美 눈치에… ‘원폭 사과 요구’ 못 꺼내는 日

    中은 강화되는 美·日 관계 우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는 27일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발표가 나오자 일본 정부와 국민은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이 사과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일본이 피폭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함께 유일한 피폭 국가라는 희생과 피해를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총리와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 내 반발 등을 고려하면서 미국에 대한 사과 요구와 관련한 언급을 피하는 등 조심하고 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1일 임시 국무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국제적인 기운을 북돋우는 역사적 기회”라면서 “핵무기가 다시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스가 장관은 “일본 정부로서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번 방문은 희생자를 추모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를 발송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대답했다. 앞서 아베 총리도 방문 사실이 발표된 지난 10일 밤 “(오바마 대통령이) 유일한 피폭국 총리인 나와 함께 희생자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는 것은 핵폭탄에 희생된 분들, 지금까지도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결정에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모든 (원폭) 희생자들을 미·일이 함께 추도하는 기회로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지만 일본 정부의 사과 요구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지나갔다. 피폭지인 히로시마시의 마쓰이 가즈미 시장도 “오바마 대통령의 이성과 양심에 따른 영단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피폭의 실상을 접하고 피해자들의 체험과 평화를 바라는 ‘히로시마의 마음’을 공유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한 공식 반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미·일 동맹이 한층 강화되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있는 아베 정권에 오바마 정부가 면제부를 주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다선 의원에게 묻지 말고 본인 양심에 물어보라”

    선배 정치인들 ‘소신·공부’ 강조 “대화하는 국회 모습 되찾자” 제20대 국회에 입성한 초선 당선자 ‘후배’들에게 ‘선배’ 정치인들은 소신, 토론, 공부를 강조했다. 국회 사무처가 1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초선 당선자 132명을 대상으로 개최한 연찬회에는 박관용·김원기 전 국회의장, 이석현 국회부의장 등이 참석해 후배들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동안 각 당 차원에서 초선 당선자를 위한 연찬회가 열린 적은 있지만 여야 초선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먼저 연단에 오른 박 전 의장은 “오랜 구습에 젖어 있는 다선 의원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다”면서 “초선 의원은 비교적 다선 의원 얘기에 순종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다선 의원은 계급이 아니다. 똑같은 국민의 대표이니 합심해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고 소신 있는 행동을 강조했다. 이어 “20대 국회는 대한민국 20번의 선거 중 초선 의원이 두 번째로 많다. 여러분이 이제 주인공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장은 “(과거에는) 독재권력과 싸운다고 시위하면 박수를 받았다. 이제는 정당이 제대로 된 이념과 정책을 갖고 대결해야 할 때”라면서 “야당의 투쟁하는 모습만이 민주주의는 아니다. 대한민국 국회에는 토론이 없다. 대화를 하는 국회의 원래 모습을 되찾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부의장은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으로서 자부심을 꼭 가져야 한다.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계파활동보다 연구활동을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어떤 법안을 내거나 행동을 할 때 고민스러울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다른 곳에 묻지 말고 자기 양심에 물어보라”고 당부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자신이 주재한 오찬에서 “여러분 모두 사람이라 화도 나고 막말도 하고 싶겠지만 꾹 참으면 미래가 밝을 것”이라며 ‘언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국회 초선 당선인 연찬회, 선배 정치인들 공통 조언 “소신 갖고 양심에 따라…”

    국회 초선 당선인 연찬회, 선배 정치인들 공통 조언 “소신 갖고 양심에 따라…”

    국회 사무처는 1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20대 국회 초선 당선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찬회를 개최했다. 각 당 차원에서 초선 당선인을 위한 연찬회가 열렸지만 여야를 통틀어 국회에서 당선인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초선 당선인 132명 중 100여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는 특히 후배 의원들에 대한 선배 정치인들의 조언과 당부가 이어졌다. 연찬회에는 박관용·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선배 정치인을 대표해 연사로 나섰다. 지난 2002년~2004년 16회 국회 후반기 의장을 지낸 박 전 의장(6선)은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밝혔다. 박 전 의장은 “4·13 총선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것이라 언론이 지적하는데 나도 동의한다”면서 “정치권에 대한 대단한 경종이고 이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경고다. 민심을 잘 받아들이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의장은 특히 “20대 국회는 대한민국 20번의 선거 중 초선 의원이 두 번째로 많다. 여러분이 이제 주인공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초선 의원들에 초심과 소신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오랜 구습에 젖어 있는 다선 의원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다”면서 “초선 의원은 비교적 다선 의원 얘기에 순종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다선 의원은 계급이 아니다. 똑같은 국민의 대표이니 합심해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당초 예정에는 없었지만 이석현 국회부의장도 잠시 마이크를 잡고 “어떤 법안을 내거나 행동을 할 때 고민스러울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다른 곳에 묻지 말고 자기 양심에 물어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영란법 시행령 입법예고] 시행령 나왔지만… 헌재 판단 남았다

    언론인·사립교원 제재 포함 등 쟁점 여야 “헌소 결과 봐야” 법 개정 신중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령안을 9일 입법예고했지만 실제 시행까지는 헌법재판소라는 마지막 관문을 거쳐야 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 이 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재는 오는 9월 28일 법 시행 전 위헌 여부를 결론 낸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변협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은 ▲언론인과 사립교원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게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지 ▲배우자 신고의무 조항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등이 핵심 쟁점이다. 하지만 변협은 예외로 인정하는 금품수수의 범위를 시행령에 규정하도록 한 법률 조항 자체가 입법부의 권한을 행정부로 위임하는 것을 막고 있는 ‘포괄위임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변협 관계자는 “헌법소원은 언론인을 처벌 대상에 포함시킨 부분을 주로 지적하고 있지만, 처벌 기준인 금품 액수를 법률에서 정하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헌재가 김영란법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 해당 법 조항은 바로 효력이 사라진다. 때문에 반드시 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헌재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김영란법에 대한 부정적인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여야는 일단 헌법소원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선(先) 헌법소원 판결, 후(後) 국회 논의’ 수순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김영란법의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의 새누리당 간사 김용태 의원은 “헌재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면 국회가 나서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시행령이 제정된 만큼 이 법이 가질 수 있는 긍정성을 극대화해 잘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시행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나중에 보완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도 “일단 (시행을) 하는 거지 그걸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여야 의원 상당수가 김영란법 보완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만큼 경제 현실 등을 감안해 추후 법을 손질하거나 시행령에서 보완할 가능성도 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사설] ‘옥시 수사’에 금역이 있어선 안 된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은 볼수록 어처구니없다. 살균제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의뢰를 받고 독성실험을 담당한 대학교수는 실험 결과를 회사의 요구대로 조작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그런 일을 저지른 회사는 진정성 있는 사과도 없이 지금까지 책임 회피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여기에 옥시를 변호하고 있는 국내 굴지의 로펌은 도덕의식이라고는 없는 옥시 측을 위해 증거를 조작했다는 의혹마저 사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고 나서야 진상 규명에 나서기로 한 정치권은 더 한심하다. 구속된 서울대 수의대 조모 교수는 수사 내용이 맞다면 최소한의 학자적인 양심마저 저버린 인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보고서만 제대로 썼더라도 사건이 이처럼 장기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옥시 측은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반박하려고 조 교수에게 살균제 원료의 독성실험을 의뢰했다고 한다. 조 교수는 생식 독성실험에서 임신한 쥐 15마리 중 13마리가 사산하는 등 치명적인 독성이 확인되자 흡입 독성실험에서는 임신하지 않은 쥐를 실험에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연구비 외에 1200만원을 더 챙긴 것도 보고서 조작과 무관치 않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그러나 조 교수는 옥시를 변호한 로펌 김앤장이 보고서의 앞뒤를 무시하고 짜맞췄다고 새로운 주장을 폈다. 이 주장이 맞는지 검찰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조사하는 게 마땅하다. 검찰은 또 신현우 전 옥시 대표 외에 미국 국적의 존 리 전 대표와 인도 국적의 거라브 제인 전 대표를 소환 조사하기로 했지만 불응하면 마땅한 수단이 없다. 그러나 수사 결과가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이들을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국내 업체들에 대한 수사에도 한 점 의혹이 남아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들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검찰은 “김앤장은 옥시 측 대리인으로 법률적인 도움을 주고 있으며, 이 부분을 처벌할 수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구체적인 법률 위반 혐의가 없는데 수사를 할 근거는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아예 수사 의지 자체를 보여 주지 않는 것이다. 수사에 ‘금역’(禁域)이 있어서는 안 된다. 금역을 검찰 스스로 설정하는 순간 불신을 면치 못할 것이다.
  • [사설] 교수 연구윤리 옥시 상혼보다 더 타락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최대 가해자인 옥시레킷벤키저의 용역 연구서를 조작해 준 의혹을 받는 서울대 교수가 검찰에 붙잡혔다. 사건의 진상이 수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소비자들의 분노는 날마다 커지고 있다. 파렴치 기업들의 작태에 가뜩이나 경악스러운데 대학교수들이 옥시 측의 입맛에 맞춰 연구 자료를 조작해 줬다니 할 말을 잃게 한다. 검찰이 밝힌 의혹이 전부 사실이라면 서울대 수의학과 조모 교수와 호서대 유모 교수의 죄질은 악덕 기업 옥시보다 나을 게 없다. 옥시는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발표하자 두 교수에게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서울대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저농도 실험에서 임신한 쥐 15마리의 새끼 13마리가 죽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랬으면서도 옥시가 유리하도록 엉터리 보고서를 만들어 줬다. 가습기 살균제와 폐 질환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호서대 교수도 옥시에 유리한 실험 환경을 만들어 결과를 은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옥시 측에서 받은 연구용역비 외에 수천만원을 개인 계좌로 받은 사실도 덜미를 잡혔다. 학계에서 두 교수는 독성학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그런 사람들이 뒷돈을 받고 양심을 팔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들이 용역을 맡았을 때는 살균제의 사망 피해가 이미 심각했던 시점이다. 만약 교수들이 도덕성을 바닥에 팽개치지만 않았어도 이번 파동은 훨씬 빨리 수습되고 피해 규모도 줄었을 것이다. 보고서 조작 의혹을 지켜보는 시선이 엄중한 까닭은 분명하다. 국내 최고 대학의 연구 권위자가 100명 넘는 사망자를 낸 중대 사건에 짬짜미 연구를 해 줬다면 학계의 연구용역 뒷거래 풍토가 얼마나 만연했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번 일이 두 교수의 우연한 일탈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대학의 연구윤리가 이렇게까지 타락해 국민의 불신을 받도록 방치할 일이 아니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문제의 대학들도 두 교수에 대한 의혹의 진상을 철저히 파악해 냉정한 처벌을 해야 한다. 연구윤리가 하도 바닥을 치니 지난해 전국의 대학들은 대학연구윤리협의회를 만들었다. 그러고도 무엇이 달라졌는지 대학들 스스로가 책임을 돌아보길 바란다.
  • [단독] 불량식품 수입업자 블랙리스트 만든다

    [단독] 불량식품 수입업자 블랙리스트 만든다

    ‘통관 로비’ 적발 즉시 등록 취소… 우수 업자엔 통관 등 인세티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불량 식품을 상습적으로 수입한 ‘양심 불량’ 식품수입업자를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려 집중적으로 감시하기로 했다. 단순히 제품만 단속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불량 식품을 수입한 전력이 있는 업자를 관리해 불량 식품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을 최대한 막아 보겠다는 것이다. 통관 편의를 대가로 공무원 등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식품수입업자는 다시 영업을 못 하도록 첫 적발 시 영업 등록을 취소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 도입된다. 지금은 고작 영업 정지만 시킬 수 있다. 식약처는 “현재 관련법인 수입식품안전관리특별법 시행 규칙을 손보고 있으며 하반기부터 강화된 단속 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블랙리스트에는 불량 식품 상습 수입자, 허위로 수입 신고를 한 업자 등이 오르게 된다. 단 한 번이라도 이렇게 수입식품안전관리특별법을 위반한 적이 있다면 특별 관리 대상이다. 리스트에 오른 업자는 법 위반 전력의 경중에 따라 적게는 5회, 많게는 30회까지 자신이 수입하는 모든 물품에 대해 식약처의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어느 특정 제품에 문제가 있다면 그 제품만 정밀 검사했지만 앞으로는 특별 관리 대상 업자가 수입하는 물품이 아무리 여러 종류라도 모두 세밀하게 검사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A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고 A 제품만 정밀 검사하면 이 업자는 ‘나머지 수입 물품으로 장사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며 “이러면 다른 물품도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을 수입하거나 불성실 허위 수입신고를 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업자 입장에선 물품을 들여올 때마다 여러 차례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하니 심리적 압박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검사 결과 수입 식품에서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나오면 최대 6개월 이내 영업 정지 명령을 내린다. 3차례 적발되면 영업 등록을 취소시킨다. 반대로 불량 식품 전력이 전혀 없는 우수한 수입식품업자에게는 통관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일종의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단독] 불량식품 수입업자 블랙리스트 만든다

    [단독] 불량식품 수입업자 블랙리스트 만든다

    ‘통관 로비’ 적발 즉시 등록 취소 우수 업자엔 통관 등 인세티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불량 식품을 상습적으로 수입한 ‘양심 불량’ 식품수입업자를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려 집중적으로 감시하기로 했다. 단순히 제품만 단속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불량 식품을 수입한 전력이 있는 업자를 관리해 불량 식품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을 최대한 막아 보겠다는 것이다. 통관 편의를 대가로 공무원 등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식품수입업자는 다시 영업을 못 하도록 첫 적발 시 영업 등록을 취소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 도입된다. 지금은 고작 영업 정지만 시킬 수 있다. 식약처는 “현재 관련법인 수입식품안전관리특별법 시행 규칙을 손보고 있으며 하반기부터 강화된 단속 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블랙리스트에는 불량 식품 상습 수입자, 허위로 수입 신고를 한 업자 등이 오르게 된다. 단 한 번이라도 이렇게 수입식품안전관리특별법을 위반한 적이 있다면 특별 관리 대상이다. 리스트에 오른 업자는 법 위반 전력의 경중에 따라 적게는 5회, 많게는 30회까지 자신이 수입하는 모든 물품에 대해 식약처의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어느 특정 제품에 문제가 있다면 그 제품만 정밀 검사했지만 앞으로는 특별 관리 대상 업자가 수입하는 물품이 아무리 여러 종류라도 모두 세밀하게 검사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A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고 A 제품만 정밀 검사하면 이 업자는 ‘나머지 수입 물품으로 장사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며 “이러면 다른 물품도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을 수입하거나 불성실 허위 수입신고를 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업자 입장에선 물품을 들여올 때마다 여러 차례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하니 심리적 압박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검사 결과 수입 식품에서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나오면 최대 6개월 이내 영업 정지 명령을 내린다. 3차례 적발되면 영업 등록을 취소시킨다. 반대로 불량 식품 전력이 전혀 없는 우수한 수입식품업자에게는 통관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일종의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쓰레기와의 ‘전쟁과 평화’] 태양이 진 후에

    [쓰레기와의 ‘전쟁과 평화’] 태양이 진 후에

    용산구가 ‘쓰레기와의 전쟁’에 나섰다. 도시의 애물단지인 쓰레기의 무단투기를 뿌리 뽑고 배출량을 전년보다 10% 정도 줄여 구민과 관광객이 쾌적함을 느끼도록 한다는 취지다. ●간부급 공무원 65명 골목순찰 구 간부급 공무원들이 ‘쓰레기 전쟁’의 최전선에 섰다. 구의 국·과장과 팀장급 공무원 65명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말까지 오후 1~3시 지역 내 골목 구석구석을 돌며 쓰레기 무단투기 여부 등을 살핀다. 무단투기하는 사람을 적발하면 과태료 20만원을 부과한다. 구 관계자는 “구청 간부들이 지난주에 3일간 골목길을 순찰한 결과 무단투기 39건을 적발했다”고 말했다. 구는 쓰레기 무단투기 등을 한 양심불량자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용산경찰서와 협의해 경찰이 한밤 순찰하다가 주택가 이면도로 등에 쓰레기를 몰래 버리려는 사람을 발견하면 구에 즉시 알리도록 했다. 무단투기자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 없이 과태료를 물릴 계획이다. 구 관계자는 “골목 폐쇄회로(CC)TV 화면을 분석하고 쓰레기의 내용물을 샅샅이 살펴보면 누가 버렸는지 대부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구는 또 구민 중 골목청결지킴이 36명을 뽑아 골목길 청소와 쓰레기 배출방법에 대한 홍보, 무단투기 감시활동 등을 맡기고 있다. 또 후암동에서는 통장단·골목청결지킴이 등으로 구성된 ‘올빼미 무단투기 감시단’을 만들어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행위를 단속할 계획이다. ●내용물 분석해 끝까지 추적 구는 올해 생활폐기물 배출량을 지난해(3만 4181t)보다 10% 줄이는 게 목표다. 배출량이 목표치만큼 줄어들면 처리 비용 등 약 1억 6000만원을 아낄 수 있다. 성장현 구청장은 “용산의 도심 청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다”면서 “집중단속 기간이 끝난 뒤에도 꾸준히 무단투기 단속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In&Out] 국가는 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막지 못했나?/송기호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

    [In&Out] 국가는 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막지 못했나?/송기호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

    아빠는 갓난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면서 가습기를 마련했다. 아기에게 더 빈틈없이 잘하려고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어 줬다. 가습기가 돌아가는 방에서 새근새근 자는 아이를 평화롭게 지켜보던 가장은 뿌듯했을 것이다. 지금은 모두 쉬쉬하지만 병원이나 산후조리원 같은 곳에서도 가습기 살균제를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약 800만명의 시민이 유독 화학물질에 노출됐다. 면역력이 약한 갓난아이와 산모들이 집중적으로 희생됐다. 이 대참사는 그저 옥시레킷벤키저로 상징되는 회사들의 악덕이 낳았는가? 물론 제조사들의 책임이 가장 크기에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특히 독성학 전문가들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신제품이 나올 때 학자적 양심에 따라 행동했는지, 아니면 회사에 유리한 자료만을 각색하는 역할로 전락했는지 수사해야 한다. 수만 가지의 화학물질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전문가들이 회사의 이익과 결탁한다면 소비자는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회사와 그 주변을 수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질병관리본부 백서에 의하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대표적 원인물질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다. 그런데 위 백서마저 얼버무리는 사실로, 국가는 이 두 물질에 대해 유해성 심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차례대로 1997년과 2003년 대한민국 관보에 “유독물질에 해당하지 않음”으로 공인했다. 국가는 제조를 신청한 유공(현 SK케미칼)에 합법적으로 제조할 자격을 줬다. 수입 신청 회사에도 합법적으로 수입할 자격을 부여했다. 그래서 해당 물질들이 옥시와 버터플라이이펙트 등의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됐다. 어떻게 해서 참극의 주원인인 유독물질이 국가의 유해성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을까. 환경부의 공식 해명은 유해성 심사를 신청할 때의 용도가 카펫 제조 첨가 항균제였기 때문에 흡입독성 실험은 유공에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적용하던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규정’을 보면 ‘농업용 이외의 살균제’가 환경에 직접 노출돼 사용되는 경우 독성검사를 위한 추가 자료를 요청하도록 했다. 그래서 다시 유해성 심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은 어떻게 이런 유독물질이 국가로부터 안전하다고 공인을 받았는지 그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 또 공무원들이 왜 유공에 독성검사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는지 밝혀내야 한다. 환경부의 해명 논리가 하나 더 있다. 문제의 유독물질을 애초의 유해성 심사 신청 때와 달리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할 경우 재심사 의무 조항이 없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신청과 다른 용도로 사용하더라도 재심사를 아예 하지 않은 것이 당시의 확고한 업무 방식이었다면 대한민국 관보에 고시할 때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경우에 한해 안전한지를 함께 고시했어야 한다. 당초 용도별 재심사를 하지 않는 구조였다면 대한민국 관보에 그 어떠한 안전용도 단서도 없이 “유독물질에 해당하지 않음”이라고 고시해서는 안 됐던 것이다. 이는 국가가 자초한 참극이다. 당시의 법률에는 이렇게 돼 있다. ‘국가는 유해화학물질이 국민 건강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항시 파악하고, 국민 건강 및 환경 위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경우 재심사가 의무 조항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정부에는 얼마든지 재심사 의무 조항을 만들 법적 근거가 있었다. 만들지 않았을 뿐이다. 유해성 검사 단계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 유독물질의 한국 진입을 막았다면 갓난아이와 산모들은 그 유독물질 가습기로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용기를 내야 한다. ‘공무원·기업·전문가’의 유착을 막는 근본적 성찰을 하지 못하면 제2, 제3의 옥시가 우리 대문 앞에서 기다릴 것이다. ‘늑장 수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이 지금이라도 ‘검은 고리’를 끊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 [세종로의 아침] 기부 문화에 눈뜨는 중국 부자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기부 문화에 눈뜨는 중국 부자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 톈진시 톈진치위안(天津憩園·공원묘지)은 해마다 4월이 되면 추모객들로 붐빈다. 전통 명절인 청명(淸明)을 전후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주인공은 ‘톈진의 양심’으로 불리는 바이팡리(白芳禮·1913~2005). 혁명 열사도, 고위 관료도, 부호도 아닌 자전거에 짐수레를 매단 삼륜차로 생계를 꾸리는 일자무식꾼인 그지만, 온몸으로 기부를 실천한 비범한 인물이다. 1988년 돈이 없어 책을 못 읽는 아이를 위해 엄동설한에 삼륜차를 몰아 번 5000위안을 학교에 쾌척하면서 베푸는 삶에 눈을 떴다. 당시 200위안이면 TV 한 대를 살 수 있는 ‘큰돈’이다. 교장과 교사, 전교생 300명은 충심으로 그에게 경례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배움을 갈망하는 어린 눈빛을 잊을 수 없었던 그는 밤새 고민한 끝에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튿날 자식에게 “교육지원 기업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며칠 뒤 톈진역 옆에 7㎡ 크기의 매점을 차린 그는 ‘바이팡리 교육지원 기업’ 간판을 걸었다. 직원에게 매점 일을 맡기며 “우리가 버는 돈의 성(姓)은 ‘교육’”이라며 “번 돈은 모두 기부한다”고 선언했다. 매점은 기부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지만, 그는 “삼륜차로 굶는 아이 10명을 매일 먹일 수 있는 20~30위안을 벌 수 있다”며 삼륜차 모는 일을 고집했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옷과 신발을 신고, 먹다 버린 만두로 끼니를 때웠다. 1994년부터 5년간 티베트족 학생 200명에게 고교 졸업 때까지 학용품을 지원했고, 난카이(南開)대에 3만 4000위안을 기부해 대학생 200명의 학업도 도왔다. 그의 평생 기부액은 35만 위안이다. 이를 ㎞당 5자오(角·약 88원)로 계산하면 삼륜차로 10년 이상 지구를 18바퀴나 돌아야 벌 수 있는 돈이다. 1999년 톈진역 개발로 매점을 닫을 당시 희수(喜壽·88살)의 나이로 삼륜차를 몰 기력이 없던 그는 남의 차를 지켜 주면서 1자오, 2자오 푼돈을 모아 만든 500위안도 기부했다. 그리고 단 한 푼의 재산도 남기지 않은 채 영면했다. 중국 기업 흥망사를 밀도 있게 다룬 ‘격탕(激蕩) 30년’의 저자 우샤오보(吳曉波)는 “바이팡리는 ‘부자는 죽어서도 치욕’이라고 유언한 카네기보다, ‘상황을 생각하지 말고 항상 도와라’라는 서언(誓言)을 남긴 테레사 수녀보다 더 철저한 삶을 살았다”고 숭앙했다. 중국은 고도성장에 힘입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지만 여전히 기부 최후진국이다. 영국 자선구호단체의 ‘2015 세계기부지수’에 따르면 중국은 145개국 중 144위다. 중국 최고 부자 왕젠린(王健林) 완다(萬達) 회장이 런던의 호화 저택을 8000만 파운드(약 1313억원)에 사들였다는 뉴스는 있어도 그가 거액을 내놓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죽하면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는 ‘자선법’(9월 1일 발효)을 만들었을까. 이런 중국에 정보기술(IT) 부호를 중심으로 기부 문화가 싹트고 있다.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이 180억 위안(약 3조 1700억원)을 쾌척한 데 이어 마화텅(馬化騰) 텅쉰(騰訊) 회장도 140억 위안을 선뜻 내놓았다. 중국의 기부문화는 걸음마를 떼고 있지만, 소득 3만 달러를 넘보는 우리 사회는 물의를 일으켜야만 선심 쓰듯이 사재를 터는 재벌들뿐이다. khkim@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목소리 연금술사… 성우 양지운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목소리 연금술사… 성우 양지운

    그의 평소 목소리는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와 비슷할까, ‘보디가드’의 케빈 코스트너와 닮았을까. 아니면 ‘체험 삶의 현장’ 같은 TV 프로그램에서의 코믹 내레이션에 더 가까울까.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 카페에서 만난 성우 양지운의 목소리는 그가 연기했던 무수한 인물 중 누구와도 닮아 있지 않았다. 50년 가까운 성우 인생의 대부분을 주인공으로만 살아온 그가 실제 인생의 주연으로서 달려온 68년을 들어봤다. -“이봐, 손님한테 그렇게 따지듯이 말하는 웨이터가 어딨나? 그 짧은 대사 하나 제대로 못해서 어떻게 성우를 해.” 1970년 서울 서소문 TBC 사옥의 라디오 녹음실에 성난 PD의 호통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차갑게 나를 보는 선배들의 시선. 성우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대사 한마디를 얻었던 그날, 나는 얼굴이 벌게져 당장이라도 녹음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 돼 있었다. 라디오 드라마 속 내 역할은 레스토랑 웨이터. 대사는 딱 한 줄 “뭘 드시겠습니까?”였다. 주인공에게 정중히 물어야 하는데, 긴장한 탓에 “당신 뭐 먹을 거야. 빨리 말해!”라는 식으로 따지는 것처럼 딱딱한 연기가 되고 말았다. 무수한 NG 끝에 넋이 완전히 나간 상태로 녹음을 마쳤다. ‘기회만 주어지면 신성일이나 찰턴 헤스턴(영화 ‘벤허’의 주연배우) 역할이라고 못 하겠나.’ 평소 가졌던 그 생각은 얼마나 만용이었나. 어쨌든 나의 단독 대사 데뷔전은 그렇게 엉망으로 끝이 났다. 이후로도 녹음실의 ‘고문관’ 노릇은 상당 기간 이어졌는데, 그 와중에 위안거리는 하나 있었다. “신참이 목소리 하나는 괜찮구먼”이라는 선배들의 평가였다. -나는 고등어와 고구마를 아주 싫어한다. 절대로 안 먹는다. 고등어 머리만 모아 끓인 국과 고구마를 먹으며 비린내와 복통에 잠 못 들었던 어릴 적 기억 때문이다. 1948년 내가 태어난 곳은 경남 통영의 두메산골이었다. 바닷가 쪽 어촌이라면 차라리 좀 나았을까. 논도 밭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할 거라곤 고구마 농사뿐이었다.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부두에 나가 손질하고 버려지는 고등어 머리들을 받아와 가마솥에 넣고 끓여 주셨다. 방안을 가득 채운 고등어 비린내는 이불에 스며 들고 옷에 배어 나를 어디든 따라다녔다. -고향이 싫었다. 분명히는 가난이 싫었던 것이지만, 나에게 고향은 곧 가난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님 세 분은 일찌감치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떴기 때문에 어릴 적 우리 집은 부모님과 나, 이렇게 세 식구였다. 부모님은 무학(無學)이시기도 했지만,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상황에서 막내아들의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으셨다. 때가 됐는데도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다. 친구들이 국민학교(초등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남은 나는 산으로 바닷가로 마냥 쏘다녔다. 그러기를 2년. 울며불며 아버지를 졸라 열 살에 처음 학교에 들어갔다. -내 학력은 국졸로 끝날 뻔했다. 친구들이 중학교에 등교할 때 나는 농사를 지으러 갔다. 국민학교 때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아이들이 통영중 교복을 입고 다니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속이 뒤집어졌다. “사범학교 학생들이 가르치는 고등공민학교라는 곳이 있다던데 거기라도 가 볼래?” 마흔둘에 나은 늦둥이가 실의에 빠져 있는 걸 어머니 스스로 견디질 못하셨다. 그때 어머니의 배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 막내 데리고 같이 올라갈게요.”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집을 탈출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차에 서울에 살던 둘째 형님이 같이 올라가자고 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에서 내 표정을 보곤 ‘저 놈을 여기에 계속 두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게 또래들은 고1이던 만 16세, 1964년이었다. -손잡고 올라온 건 작은형이었는데, 어쩌다가 자리를 잡게 된 건 경기도 의정부 큰형님 댁이었다. 형과 함께 의정부중학교에 갔다. “저 통영에서 고등공민학교 1학년 다녔으니까, 여기서는 2학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고등공민학교는 정규과정이 아니니 1학년으로 입학하라고 했다. ‘안 그래도 친구들보다 3년이나 늦었는데….’ 내 한숨이 너무도 깊었던지 교무주임 선생님이 그 전해에 봤던 1학년 기말고사 시험문제지를 갖고 오셨다. “여기 문제들 풀어봐. 잘 보면 2학년으로 해주마.” 다음날 나는 2학년 교실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아니 세 살 어린 동생들을 만났다. -큰형님은 아이가 셋이었다. 가뜩이나 작은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사는데 내가 끼니까 여섯이었다.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밥만 형님 댁에서 먹고 잠은 보급소에서 잤다. 공부는 쉬웠다. 경상도 말씨 심한 시골 형이 순식간에 공부에서 자기들을 따라잡자 아이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공부 좀 한다는 게 알려져 우연히 큰형님이 셋방 사는 주인집 국민학생 아이를 가르치게 됐다. 나한테 배우고 그 아이가 성적이 확 올랐는데, 그 덕에 과외 학생을 많이 소개받았다. 국민학교 5~6학년 15명을 가르친 적도 있었다. 한 달에 최고 5000원도 벌었는데 대졸 직장인 월급 수준이었다. 절반 정도를 떼어 형님 생활에 보탰다. -당시 내 유일한 취미는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집안에 TV가 거의 없던 당시에 라디오 드라마는 최고의 인기였다. 저녁이면 동네 아낙들이 밥상 치우고 삼삼오오 라디오 있는 집으로 몰려들었다. 구민, 고은정, 이창환 같은 성우들은 톱스타였다. 우리 집에는 라디오가 없었지만, 과외 선생의 지위를 이용해 제자의 집에 가서 듣곤 했다. -중3 때에는 유도를 했다.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그때 함께 운동했던 친구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장은경(1996년 별세)이었다. 그런데 운동만 하기엔 학업 성적이 너무 좋았다. 은경이는 유도를 위해 인천 선인고에 갔고 나는 일반고인 의정부고에 진학했다. 의정부고는 학력이 꽤 좋은 편이었는데, 나는 전교 10등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서울대에 대한 꿈 같은 건 없었다. 연기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면 의정부에서 서울까지 차를 타고 와서 명동국립극장과 영화관에 살다시피 했다. 배우들의 대사를 따라했고, 라디오 드라마 대사도 받아 적은 뒤 연습을 했다. 영화배우나 TV 탤런트도 생각해 봤지만 내 외모에 목소리만큼의 강점은 없다는 걸 알곤 빠르게 포기했다. -한양대 토목학과에 들어갔는데 얼마 다니지는 못했다. 대학 1학년 때인 1969년 10월 TBC에 입사(성우 공채 5기)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성우로서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였다. 나는 ‘경제’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갱제’로 알아들었다. ‘쌀’이라고 하는데 사람들 귀에는 ‘살’로 들렸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희화화 유머에도 등장하는 이런 상황은 당시 나에게는 심각한 핸디캡이었다. 그때 방송사에서는 표준어만 써야 한다는 인식이 유난히 강했다. ‘서울말’, 그러니까 표준어를 외국어 배우듯이 익혔다. 퇴근을 하면 매일 서울 사람들만 만났다. 경상도 사람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서울말을 듣고 통으로 외웠다. 그야말로 사투리와의 사투였다. -그러는 중에도 나의 사투리 억양에 대한 지적은 계속됐다. 당시 TBC의 인사 평가 시스템은 매우 가혹했는데, 어느 날 불쑥 해고 통지를 하는 식이었다. “고생 고생해서 성우가 됐는데 결국 사투리 때문에 잘리는 건가.” 불안한 날들이 이어지는데 뜻밖의 기회를 얻게됐다. 당시 ‘광복 20년’이라는 정치 드라마의 ‘이승만 시해미수 사건’ 편에 김시현이라는 분이 나왔다. PD가 경상도 말을 써야 하는 그 역할을 나에게 주었다. 방송이 나간 뒤 반응이 아주 좋았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성우가 누구냐”는 격려 전화가 빗발쳤다. ‘퇴출’ 후보에서 갑자기 ‘TBC의 보물’이 됐다. -그러다 1976년 인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리 메이저스) 역을 맡게 됐다. 입사한 지 6년을 갓 넘겼을 때였다. 원래 ‘600만불의 사나이’는 길게 방영할 게 아니었다. 단발 편성이었다. 그래서인지 PD가 주인공을 나에게 맡겼다. 공군 조종사 출신 대령이 사고로 양쪽 다리와 한쪽 팔, 한쪽 눈을 잃었지만 최첨단 기술로 다시 태어나 차도 한 손으로 번쩍 들고 시속 100㎞로 달린다는 설정은 당시로선 충격이었다. 방송이 나가자 전국에서 난리가 났다. 드라마 자체도 그렇지만 주인공 목소리 성우가 너무 잘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결국 ‘600만불의 사나이’는 장기 편성으로 바뀌었고 나의 역할도 계속됐다. 선후배 기수 개념이 강한 방송국에서 고참들을 제치고 고작 입사 6년에 주인공이라니. -드라마가 인기를 얻자 광고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왔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서 별명이 ‘김밥맨’일 정도였다. 아침에 방송국으로 출근하면 밤 10시는 넘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600만불의 사나이 흉내를 내면서 사고도 많이 났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방송국으로 찾아와 ‘주인공 흉내를 내다가 크게 다쳤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600만불의 사나이’가 인기를 모으면서 ‘두 얼굴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등 비슷한 장르의 미국 드라마가 속속 국내에 들어왔다. -과거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등 주말 외화들이 방송사를 먹여살리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는 더빙이 시원찮으면 “성우 때문에 영화를 망쳤다”고, 반대로 괜찮으면 “성우가 영화를 살렸다”는 편지와 전화가 방송국에 쇄도했다. 로버트 드니로, 멜 깁슨, 해리슨 포드 등의 목소리가 내 단골이었다. TBC 전속에서 풀린 뒤 방송국마다 나를 붙잡기 위해 경쟁이 벌어졌고 내 인기는 그야말로 상한가였다. “극장에서 볼 때보다 더 낫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말은 내게 없었다. -‘맥가이버’, ‘형사 가제트’를 맡았던 배한성 선배는 외부에서 필생의 라이벌로 꼽지만, 우리 둘 사이는 별로 그렇지는 않다. 배 선배는 나이는 두 살 위, 방송국 기수로는 3기 위(TBC 2기)다. 사실 서로 경쟁할 부분도 없었다. 배 선배는 부드러운 콧소리 음성이지만 난 쇳소리에 가깝다. 서로가 서로를 빛나게 해준다. 형사물인 ‘스타스키와 허치’도 함께 했다. 난 냉정한 독일계 형사인 허치를, 배 선배는 다혈질의 유태계 형사 스타스키를 맡았다. -나에게 목소리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목을 잘 관리하려면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 피곤하면 목소리부터 변한다. 감기도 조심해야 한다. 목소리는 지문처럼 타고나는 것이지만, 과음을 하거나 흡연을 하면 망가지기 마련이다. 목소리 관리를 위해 물병을 갖고 다니며 하루에 2ℓ 이상을 마신다. -언제부턴가 ‘성우’보다는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가’로 더 많이 활동한 것 같다. 큰아들이 스무 살이 되던 2000년 입대영장이 나오자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다. 군사법원에서는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그 전까지는 내 종교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아들이 그렇게 되니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된 건 1987년부터다. 주변에서 “왜 하필…”이라는 반응도 나왔지만 “난 그저 내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종교를 강요한 적은 없었지만 자연스레 부모를 따라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아 청와대나 법무부 등을 쫓아다녔다. 세상이 날 싸움꾼으로 만든 셈이었다. 그 이후 광고 출연 요청 등도 완전히 끊겼지만 개의치 않는다. 사정은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데 둘째도 2011년부터 감옥살이를 했고 지금 스물네 살인 셋째는 재판을 받고 있다. 요즘 많이들 물어보는 게 ‘걸그룹 며느리’(‘카라’ 출신 김성희) 얘기다. 그 아이는 나에게 막내딸과 같다. 결혼한 지 5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그렇게 예쁠 수 없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성우 양지운 1970년대 이후 중후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늘 최고의 자리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의 대표 성우다. ‘600만불의 사나이’의 리 메이저스(왼쪽·스티브 오스틴)를 비롯해 해리슨 포드(인디아나 존스, 도망자, 스타워즈), 로버트 드니로(오른쪽·히트, 대부2,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알 파치노(애니 기븐 선데이), 리엄 니슨(테이큰, 쉰들러 리스트), 멜 깁슨(가운데·리썰 웨폰, 브레이브 하트), 케빈 코스트너(보디가드, 워터월드), 러셀 크로(글래디에이터), 숀 코너리·로저 무어(007 시리즈), 크리스토퍼 리브(슈퍼맨) 등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 시청자들을 만났다. 2000년대 이후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로 활동해 왔다. ▲1948년 경남 통영 출생 ▲경기 의정부중·고 ▲한양대 토목공학과 중퇴 ▲TBC 성우 5기 입사(1969년) ▲MBC 라디오 연기대상(1984년), KBS 최우수 외화 연기상(1999년), 한국방송대상 성우상(2010년) ▲한국성우협회 부이사장(2004년),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겸임교수(2005년)
  • [열린세상] 20대 국회 ‘태양의 후예들’을 찾아서/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20대 국회 ‘태양의 후예들’을 찾아서/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최근 한국 대중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아이템이라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평균 시청률 38.8%를 기록한 이 드라마 덕분에 “~하지 말입니다”라는 군대식 말투가 민간에서도 유행하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특히 남자 주인공인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어서 지난 4·13 총선에서 많은 후보가 군복을 입고 그의 말투를 따라 하며 유세를 펼치기도 했다. 많은 대중문화 평론가들은 이 드라마가 받은 폭발적 인기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과학자로서 필자는 이 드라마가 설정한 사회적 ‘상황’과 주인공의 ‘역할’에 주목한다. 강력한 지진이 휩쓸고 간 재난 현장에서, 테러와 납치가 발생한 위기 상황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신과 열정을 아낌없이 발휘한다. 험난한 위기의 순간에 정의감을 불태우면서도 재치와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시청자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어려운 순간에도 그것을 극복하려고 자신의 역할을 결연히 수행하는 인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리더십의 표상이다. 대한민국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 속의 위기 상황은 그저 허구로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연일 전해지는 자연재해와 안전사고의 소식들, 거듭되는 북한의 핵실험이 커다란 위기의 징후는 아닌지 걱정스럽다.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 실업과 줄어드는 수출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면 지난날의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이러한 걱정과 불안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표는 소박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누리는 일상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요구하는 지도자는 야망에 불타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소명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유시진 대위, 태양의 후예다. 국민들은 4·13 총선에서 자신이 뽑은 사람이 국회의원으로서의 소명의식과 책임감으로 무장된 태양의 후예이기를 기원하며 투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파당적인 싸움 대신 국민들의 일상을 보호하는 데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3당 체제는 과반을 차지하는 정당 없이 타협을 통해서만 국정을 수행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놓았다. 20대 국회에서는 과거처럼 수적 우위를 활용한 특정 정당의 독주와 무조건적인 반대를 통한 발목 잡기 전략은 더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의원들은 타협과 상생의 정치를 구사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를 통해 국민들의 일상을 다양한 위협으로부터 지켜 내야 한다. 그러나 4·13 총선 이후 여야 정당의 행태는 여전히 개탄스럽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먼저 챙기겠다고 한 법안은 민생이 아니라 국정 교과서 폐기와 세월호특별법 개정과 같은 정치적 쟁점들이었다. 여태껏 선명성 경쟁을 강화하며 지지자들을 동원해 온 정당들이 단시간 안에 민생을 챙기고 타협의 정치를 구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야 정당은 모두 파벌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계속되는 친박과 비박의 대립 때문에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는 일조차 힘겨워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대표의 당대표 추대 문제가 새로운 갈등의 불씨로 떠올랐다. 국민의당 역시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방안을 두고 안철수계와 호남계가 대립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의원의 소명은 국가 현안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국민들의 소중한 일상을 지켜 내는 것이다.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대한민국이 처한 복합적 위기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민생과 경제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능력을 갖추려면 개인적 욕망과 당리당략의 이해에 빠져 허비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행여 그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내년에 있을 대선에서 민심의 냉혹한 심판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20대 국회의원들은 곧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하며, 직무를 양심에 따라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하게 된다. 그들의 다짐과 약속이 대한민국의 태양 아래에서 지켜져 수많은 유시진 대위, 태양의 후예들이 20대 국회에서 배출되기를 희망한다.
  • 중국, 세균범벅 의료폐기물을 식기, 음료컵으로 재활용

    중국, 세균범벅 의료폐기물을 식기, 음료컵으로 재활용

    중국에서는 최근 병원에서 쓰다 버린 의료 폐기물이 1회용 식기, 음료컵, 장난감 등으로 재활용되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의료폐기물은 일반 생활쓰레기에 비해 세균량이 수십~ 수천 배에 달한다. 또한 의료폐기물에는 전염성 세균, 바이러스, 화학오염물 및 방사능 등의 유해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위험성이 매우 높다. 화롱망(华龙网)의 20일 보도에 따르면, 병원 링거호스, 링거병, 혈액이나 약물이 남아있는 약병, 심지어 주사바늘까지 분쇄기를 통해 플라스틱으로 용해되어 1회용 식기, 각종 음료컵, 장난감, 솜옷 등으로 재활용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한 의료폐기물 처리공장 사장이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언론에 폭로하면서 알려졌다. 폐기물 수거장 사장은 “일반 폐기물로 만들어진 음료캔, 음료병 등은 많아야 한 달에 수천 위안을 벌 수 있지만, 의료폐기물로는 한 달에 3~5만 위안을 쉽게 벌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에서도 의료폐기물은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병원 청소감독은 “돈을 많이 주는 사람에게 의료 폐기물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가공업체 또한 규정에 어긋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링거병 등을 식기원료에 포함해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이렇게 저렴한 원가로 만들어진 제품이 저가에 판매되면서 중국 전역에서 구매자들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료 폐기물로 만들어진 식기 및 음료컵은 육안으로 전혀 구분할 수 없어이미 대량 시장에 유통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의료폐기물에 대한 ‘소각법’ 처리를 규정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의료폐기물 분류목록’에 따르면, 진료 과정에서 환자의 혈액, 체액에 접촉한 오염물 및 링거호스, 주사용품은 모두 의료폐기물에 속해 반드시 규정대로 소각처리 해야 한다. 중국 언론은 중국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 조속히 재발 방지에 힘써줄 것을 당부한다고 촉구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장애인 주차표지 부정 사용 적발시스템 도입

    장애인 주차표지 부정 사용 적발시스템 도입

    복지부, 11월부터 단속 때 활용오늘부터 불법 주차 집중 단속 장애인 주차표지를 위조해 장애인이 아닌데도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하는 ‘양심 불량 운전자’를 현장에서 확인, 적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단속 현장에서 주차표지의 위·변조나 부정 사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폰용 앱을 개발 중이며, 10월까지 완료해 오는 11월부터 도입할 계획”이라고 17일 밝혔다. 지금은 단속 나간 공무원이 사무실에 연락해 주차표지 위조 여부를 일일이 조회해 확인하는 방식으로 단속이 이뤄지고 있다. 장애등록이 말소되면 이를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즉시 반영해 주차표지 불법 사용을 차단하는 시스템 개선 작업도 10월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불법 주차 신고는 2014년 8만 8042건으로 2011년 1만 3178건에 비해 3년 새 무려 6.7배나 늘었다. 과태료 부과 건수도 2011년 1만 2191건에서 2014년 6만 8662건으로 5.6배 증가했다. 복지부는 2015년 한 해 동안 지방자치단체와 총 8776곳의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점검·단속해 1034건의 불법 주차 행위를 적발하고 과태료 7247만원을 부과했다. 이 가운데 주차표지를 위·변조한 사례는 50건에 달했다. 올해도 이달 18일부터 다음달 20일까지 한 달간 고속도로 휴게소와 대형 할인매장, 공공기관 등 전국 6000여곳을 대상으로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불법 주차를 집중 단속한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는 주차 가능 장애인 자동차 표지가 부착된 자동차에 보행상 장애가 있는 사람이 탑승한 경우에만 주차할 수 있다. 주차표지가 있어도 장애인이 차량에 탑승하지 않았는데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했다면 과태료 10만원을 물어야 한다. 주차표지를 위조, 변조하면 과태료 200만원이 부과되며 형법상 ‘공문서 위·변조 및 동 행사죄’에 해당해 형사 고발당할 수 있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물건을 쌓거나 통행로를 가로막아도 과태료 50만원을 내야 한다. 장애인이 주차표지를 비장애인에게 무단으로 양도하면 최대 2년간 주차표지를 발급받을 수 없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기고] ‘태양의 후예’가 착한 이유/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기고] ‘태양의 후예’가 착한 이유/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드라마 ‘태양의 후예’ 덕분에 허리를 조이는 경제와 바닥을 치는 정치에서 잠시 휴식을 찾을 수 있었다. ‘태양의 후예’ 덕분에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조국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달았다. ‘태양의 후예’ 덕분에 정의가 무엇이고 명예롭게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 알 수 있었다. ‘태양의 후예’ 덕분에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목표가 분명해졌다. 물론 드라마니까 가능하지 현실에서 태양의 후예는 없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를 지탱하는 힘은 정의이고, 우리는 정의에 가슴이 뭉클거린다는 기본적 양심을 일깨워 준 것만으로도 그 역할은 충분하다. 이렇게 거대 담론은 아니지만 ‘태양의 후예’는 두 가지 긍정의 캐릭터를 생산했다. 바로 병리과 전문의 표지수와 일병 김기범이다. 표지수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이다. 어쩌다 장애를 갖게 됐는지, 병원 생활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주인공 강모연의 절친으로서 거침없는 말투로 친구에 대한 우정을 쿨하게 보여 주고 있다. 굳이 표지수를 장애인으로 등장시킬 필요가 없었을 텐데 휠체어를 태운 것은 우리 사회 어디에서라도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일반적으로 장애인은 내성적인 우울한 모드로 생각하지만 표지수는 너무나도 터프한 모습을 통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리고 일병 김기범은 국제분쟁과 지진, 전염병으로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에서도 검정고시 준비를 한다. 김일병은 부모도 없고, 학력도 중졸이고, 양아치들과 어울리는 구제 불능의 상태였지만 멋진 특전사 형들을 만나는 바람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김일병은 학력을 갖추기 위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데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심각하게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장난스럽게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비행 청소년의 미래를 너무나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 차별 요인이 되고 있는 학벌과 장애를 이겨 내는 방법을 ‘태양의 후예’가 무겁지 않게 제시했고, 돈과 권력으로 타락한 정의를 되살릴 수 있는 방안까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어서 ‘태양의 후예’는 착한 드라마다. ‘태양의 후예’를 보면서 러시아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의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떠올랐다. 이 작품을 통해 톨스토이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선을 행하는 사랑임을 말해 주고 있는데 사실 톨스토이가 아니어도 선이 정의이고 사랑이 아름답다는 것은 다 안다. 하지만 각박한 삶 속에서 잊어버릴 때쯤 그 사실을 일깨워 주는 드라마가 있고 문학 작품이 있어서 우리는 불의에 완전히 오염되기 전에 정의라는 처방전을 들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사회 속으로 나온다. 마침 4월은 장애인의 날이 있는 장애인의 달이다. 4월에 실천할 사랑은 장애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배려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것, 그것이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정의였으면 좋겠다.
  • 美 “韓국정교과서, 학술 자유에 우려 키워”

    미국 국무부가 13일(현지시간) 발표한 ‘2015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독재 정권이 정치적 탄압을 계속하고 정치적 반대를 금지 또는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 등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지난해 논란을 빚었던 국정교과서 문제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국무부는 보고서에서 북한을 쿠바와 중국, 이란 등과 함께 독재 정권으로 지칭하면서 “북한은 김씨 일가가 60년 넘게 이끌고 있는 독재국가”라며 “주민들은 이런 정부를 바꿀 능력이 없으며 북한 당국은 언론과 집회, 결사, 종교, 이동, 노동의 자유를 부정하는 등 주민들의 삶을 다양한 측면에서 엄혹하게 통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2009년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열악하다’를 시작으로 ‘개탄스럽다’ ‘암울하다’에 이어 지난해 ‘세계 최악’이라고 평가했으나 올해는 이례적으로 평가 자체를 내리지 않았다. 특히 “북한 당국은 생존 조건이 잔혹하고 수용자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며 살아 나올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며 정치범 이외에 일반 시민도 공개 처형을 당한 사실을 추가했다. 한국과 관련해 “주요한 인권 문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보안법과 명예훼손법, 인터넷 접근 제한, 양심적 군 복무 거부자에 대한 처벌, 군대 내 괴롭힘과 (신병) 신고식 등”이라고 지적하면서 국정교과서 문제를 새로 거론했다. 국무부는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해 “중·고등학교가 역사 교과서를 채택할 권리를 끝내려는 정부의 계획은 한국의 학술 자유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게임하듯 살상…살인 로봇, 생화학무기처럼 금지해야”

    “게임하듯 살상…살인 로봇, 생화학무기처럼 금지해야”

    윤리적·법적 문제 새롭게 야기 무기 최종 통제권은 ‘인간의 몫’HRW “금지 국제협약 준비해야” #1.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살인 로봇은 일말의 주저 없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양심의 가책도 신체적 고통도 느끼지 못하기에 기계적인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영화 속에서 살인 로봇에게 목숨을 잃는 사람은 타깃이 된 대상만이 아니다. 임무 수행에 방해가 되는 존재라면 경찰이나 노인, 아이를 가리지 않고 마치 게임을 즐기듯 살상이 이뤄진다. #2. 지난해 6월 독일 폭스바겐 공장에선 ‘로봇에 의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생산라인을 점검하던 하청업체 직원이 거대한 로봇 팔에 떠밀려 타박상을 입고 사망했다. 현지 검찰은 고민에 빠졌다. 기초적인 판단 능력을 갖춘 로봇 팔이 일으킨 사고를 놓고 과연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가 논란이 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로봇이 인간보다 더 똑똑해지면 통제가 가능할지에 대해 두려움을 불러온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지던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살인 로봇의 출현이 임박하면서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11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살인 로봇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 윤리적 문제로 다가온 것이다. 16쪽에 이르는 보고서는 이번 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막하는 유엔 무기회담(CCW)에 앞서 공개됐다. 올해 3회째를 맞는 회담에서 인공지능을 장착한 살인 로봇에 대한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3년 전 시작된 연례 회담에는 현재 122개국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보고서는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시대에도 무기에 대한 최종 통제권은 인간이 가져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누구를 죽이고 살릴 것이냐의 중요한 판단은 인간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니 도허티 HRW 수석연구원은 “인공지능 로봇에게 인류의 생사 여탈권을 맡긴다면 기술과 보안적 측면뿐 아니라 윤리적, 법적 문제를 새롭게 야기할 것”이라며 “생화학무기처럼 이를 금지하는 국제협약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는 현재 60곳 이상의 비정부기구(NGO)가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HRW가 서둘러 조약을 마련하자고 외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미국과 러시아, 영국, 중국, 한국 등이 경쟁적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전투무기 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살인할 수 있도록 고안된 로봇과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 발사하는 탱크 등이다. 이들 국가는 살인 로봇이 전투에서 군인과 민간인 등의 인명 살상을 오히려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무기들이 수년 내에 현실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군은 이라크와 예멘 등에서 살인 로봇에 버금가는 무인기를 운용 중이다. 2010년 12월에는 미군 무인기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한 예멘인의 가족들이 미국 법원에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미 법무부도 최근 무인기를 활용한 공격이 테러행위나 다름없다는 법적 판단을 내렸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1000여명의 유명 인사들이 “자율 무기가 미래의 칼라시니코프 소총이 될 것”이라는 경고 서한을 냈다. 위기감을 반영한 이 서한에는 우주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과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 등이 이름을 올렸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일수 樂山樂水] 유권자는 투표로 말하지요

    [김일수 樂山樂水] 유권자는 투표로 말하지요

    이틀 후면 제20대 총선 투표일이다. 여당과 제1야당 모두 전통적인 표밭이 흔들린다고 야단이다. 지역 민심이 요동치고, 지지층이 이탈한다고 아우성이다. 공천에서 배제돼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들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 민심 앞에 머리를 조아린 여당의 표심 잡기나, 녹색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제1야당의 행보는 얼마 전까지도 예상치 못했던 현상이다. 이번 총선은 결과에 따라 한국 정당사의 판도를 뒤바꿀 광풍이 될지 아니면 미풍에 그칠지 그 향배에 관심이 쏠리는 게 사실이다. 선거 때마다 투표율도 빼놓을 수 없는 관심 사항 중 하나다. 유권자들 다수가 기존 정치세력에 실망을 느끼거나 정치판에 환멸을 느낄 때 일어날 수 있는 사태의 솔직한 반영이 투표율이기 때문이다. 일단의 유권자들은 이 경우 적극적으로 투표장에 나가 지지 정당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부류의 유권자들은 아예 무관심의 표시로 투표장을 외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신장으로 공공성보다 사적인 관심의 영역이 중시되는 현대사회에서 투표권 행사 여부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전적으로 개인의 자기 판단에 일임된 지 벌써 오래다. 그러다 보니 투표율이 저조해지는 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전후해 거대 정당들과 권력이 보여 준 정치 행태는 국민을 철저하게 안중에서 배제한 ‘그들만의 리그’ 그 자체였다. 국민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권력은 멍텅구리가 아니면 독불장군, 그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급기야 정치에 모멸감을 느끼게도 하고, 정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권력은 종이호랑이이거나 모래 위에 세운 성채처럼 부실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이 당연한 원리를 잊어버린 채 종종 권력에 도취해 국민의 품을 배반한 정치세력들의 부침을 우리는 이미 누차 보아 오지 않았는가. 다시 강조하거니와 민주국가의 통치 원리는 철저히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다. 국민의 눈을 두려워할 줄 알고, 그 눈높이에 맞추어 처신을 바로잡는 것, 그것이 민주사회의 정치다. 저잣거리의 필부필부일지라도 그들은 국민이란 이름으로 정치권력을 판단하는 심판자이며 새로운 정치권력을 잉태하는 모태라는 이 엄중한 사실을 모든 정치세력은 아프게 가슴에 다시 새겨 넣어야 한다. 그들이 공중 앞에서 국가의 장래에 관해 사자후를 토하고, 때로는 열광과 찬사를 받는 때라도, 그들 자신보다 국민은 더 현명하며 그 판단력은 한 단계 더 높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국민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국민의 한숨과 눈물과 애환에서 지혜를 배울 줄 알아야 한다. 이제 어떤 경우는 이미 때가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실망 속에 장래의 희망이 싹튼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어디에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게 됐는지 겸허히 잘 헤아려 보면 거기에서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심은 언제나 물 흐르듯 곧고 바르게 흘러간다는 사실 앞에, ‘민심이 천심’이라는 무거운 말 앞에 두려움을 느낄 줄 아는 양심을 새롭게 하자. 이제 주사위가 던져지기 직전이다. 유권자들은 각자 헌법이 맡겨 준 이 주사위를 들고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투표장으로 나가야 할 차례다. 우리에게 부여된 이 신성한 권리를 포기하거나 그 권리를 등지고 잠자는 사람은 정치가 무슨 판이 되더라도 말할 자격이 없다. 현실에 만족하건 불만이건 우리 삶에 중요한 한 부분인 정치가 우리의 현재뿐만 아니라 우리 미래 세대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한다면 주저함 없이 거침없이 투표장으로 나가야 한다. 18세기 프랑스혁명은 자유와 평등 외에 참여를 일깨워 주었다. 오늘날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민주정치도, 자유 평등도 제 길을 바르게 갈 수 없다. 최근 우리는 정당 구조와 정당 정치의 위기를 염려하는 눈으로 지켜봤다. 패권주의와 파당이 판치는 정당은 민주 정당의 본령을 벗어난 것이다. 당신의 한 표로 구태에 찌든 정치를 바로잡아 주길 바란다. 고려대 명예교수
  • [사설] 北 집단탈출 보고도 核 개발 미망 못 벗나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의 지상분출시험 장면을 그제 공개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평북 철산군 동창리 서해미사일발사장에서 진행된 분출시험을 직접 시찰한 뒤 “적대 세력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마련했다”며 신형 ICBM에 보다 위력적인 핵탄두를 장착해 미국 본토 등을 타격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의 엄혹한 제재 국면에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김정은의 아둔함이 안타깝다. 집단탈출 등 심각한 내부 동요조차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의 한국행은 김정은 정권으로선 실로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과거에도 1987년 김만철씨 일가족 탈북 등 집단탈출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변경의 주민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탈북한 것이지 이번처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13명이 ‘한 배’를 탄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잘 알려져 있듯이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들은 부모가 대부분 출신 성분이 좋은 평양 주민들이고, 그들 역시 북한 내에서 김정은의 처 리설주의 모교인 금성학원 등 예능 명문학교를 졸업한 재원들이다.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고 한다. 관계 당국의 심층조사가 필요하겠지만 기득권층, 또는 체제수호 세력의 일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그들이 북한 체제에 등을 돌리고 집단탈출한 것이다.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들은 공동 숙식, 합동 출퇴근 등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근무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한국행을 결심한 것은 그만큼 대북 제재 이후 사정이 절박했다는 방증으로도 읽힌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해외 북한 식당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경영난에 봉착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외화 상납 요구는 가중되고, 충족되지 않으면 문책받을 게 불 보듯 뻔하니 좌불안석 아니었겠나. 대북 제재 이후 김정은 정권은 ‘제2의 고난의 행군’ ‘군자리 정신’ 등을 강조하면서 주민들의 인내를 종용해 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북한 주민의 식량 배급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정도 줄었다.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지는데 핵과 미사일 개발에는 아낌없이 돈을 쏟아붓고 있으니 과연 나라 운영을 책임진 집권자의 양심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김정은의 ‘핵공격 수단 다종화·다양화’ 지침에 따라 핵탄두 기폭장치, 대기권 재진입체 등을 공개하는 등 핵·미사일 능력을 과시하는 데 혈안이 돼 있지 않은가. 해외에서 운영 중인 북한 식당은 12개국에 130여개가 있다. 여기서 근무하는 종업원을 포함해 전 세계에는 5만명 이상의 북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핵·미사일 개발에 쓰이는 외화 벌이에 나서고 있다. 이들도 눈과 귀가 있다. 엄격한 통제 속에서도 한국 TV드라마를 보고 남북의 현격한 국력차와 북한의 폐쇄성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다.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 개발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집단탈출이 도미노처럼 이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핵을 포기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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