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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촌이 늙어간다] 일부 어촌계 장벽 낮추니 3040 귀어… 젊어지는 바다

    [어촌이 늙어간다] 일부 어촌계 장벽 낮추니 3040 귀어… 젊어지는 바다

    대부분의 어촌이 급속한 고령화로 위기에 처한 반면 과감한 개혁으로 젊어지는 어촌도 일부 생겨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귀어(歸漁) 정책으로 어촌계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나타나는 고무적 현상이다.가장 눈에 띄는 곳은 전남 고흥군이다. 젊은층에 5년간 어장을 무료로 빌려줘 정착시킨 뒤 그 어장을 다른 귀어인에게 물려주는 파격 정책이다. 10일 고흥군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창업 어장 경영인’을 모집한 결과 서울, 광주 등 도시인 65명이 신청했고, 이 중 44명이 선정됐다. 이후 3명이 포기했지만 나머지 41명은 ‘인생 2막’의 꿈에 부풀어 있다. 이들 41명의 나이는 평균 43세이며, 45세 이하가 75%를 차지할 정도로 젊다.군은 불법면허 시설이나 사용하지 않은 양식장 등을 활용해 김 500㏊, 미역 40㏊, 가리비 25㏊ 등 모두 565㏊의 어장을 이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김 양식 25명, 미역 6명, 가리비 10명이 신청했다. 군은 개인별로 김 200책(20㏊), 미역 300줄(6㏊), 가리비 50줄(2.5㏊)씩 배정했다. 군은 이들이 해마다 순수익 5000만원을 올려 5년간 2억 5000만원을 벌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군은 이달 말 양식장을 분배해 이들이 7~8월부터 시설 투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경력 10~30년차 ‘베테랑 어민’ 16명을 어업 교사로 배정해 2개월 동안 귀어인에게 양식 기술을 가르치기로 했다. 벌써 많은 신청자들이 가족을 데리고 귀어했다. 대구가 고향인 박모(32)씨는 지난해 말 고흥으로 이사했다. 그는 “해남·장흥·부산에서 5년 동안 김 관련 일을 했다”면서 “5년이 지나면 어촌계나 청년회에 가입되고 고흥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다만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김 양식에 필요한 어구를 중고로 구입할 생각”이라고 했다. D중공업에 다니던 홍모(35)씨 가족 4명은 지난해 11월 경기 부천에서 내려왔다. 홍씨는 “대기업에 다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할 때 아내가 반대하지 않았다”며 “어업이 힘들긴 하겠지만 차근차근 열심히 배워가겠다”고 했다. 강원도 양구에서 온 최모(50)씨는 “5년이면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을 충분히 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귀어를 포기하고 떠나려다 마음을 바꾼 사람도 있다. 송모(52)씨는 경기 평택시에서 살다 2년 4개월 전 김 사업을 하려고 부인과 자녀 3명을 데리고 고향인 고흥군 도화면으로 왔다. 하지만 어촌계 진입장벽에 마땅한 돈벌이를 못 찾았고, 결국 도시로 되돌아가려 결심하던 순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송씨는 “김 양식장 20㏊를 구입하려면 2000만원 정도 든다. 이걸 공짜로 지원해 준다는데 뭘 망설이겠느냐”며 “올해 김 양식이 대박 나서 40~50㏊ 양식장을 가진 어민이 4억~5억원을 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1년에 5000만원 넘게 벌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들뜬다”고 했다. 반면 김모(28)씨는 확신이 없어 포기한 경우다. 그는 “식구들도 내려와 도와준다고 했는데 5년 후에는 양식장에서 나와야 한다고 하기에 포기했다”면서 “5년 뒤 다른 귀어인에게 어장을 넘겨주면 진로가 불확실해진다”고 했다. 이어 “무료 임대 기간 후 평가를 통해 성과가 좋으면 20~30년 장기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고흥군 관계자는 “한 어촌에서 5년을 살면 어촌계에도 가입되고 진짜 어민으로 충분히 터를 잡을 수 있는 기간”이라고 했다. 물론 일부 어민은 아직 반발하고 있다. 이 정책이 알려진 뒤 일부 어민이 수차례 군청에 몰려와 “어장 면적이 줄어든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군 관계자는 “고흥군에 어촌계가 141개인데 어떻게 일일이 양해를 다 구하겠느냐”면서 “해마다 고흥군 인구가 1000명씩 줄어 30년 후면 어업은 물론 군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판인데 젊은층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충남 홍성군 남당어촌계는 ‘가입비 500만원, 거주기간 6년’의 가입조건을 2년 전 철폐했고, 그 후 20명이 귀어했다. 이흥준(65) 남당어촌계장은 “가입조건을 없애자 서울 등에서 30~40대 젊은 가족이 많이 귀어했고, 20대 젊은이도 있다”고 했다. 충남 보령시 주교어촌계도 2년 전 가입비 500만원을 200만원으로 낮추고 5년 거주조건을 없앴다. 그 후 60여명이 귀어해 어촌계에 가입했다. 진입장벽이 특히 높은 섬 지역도 일부 변화의 조짐이 꿈틀거린다. 김주범(45) 보령시 녹도 어촌계장은 “어릴 적 전교생이 120명이던 이 섬의 초등학교가 지금은 학생이 한 명뿐이니 마을에 무슨 활력이 있겠느냐”며 “아직은 어촌계 어르신들이 진입장벽을 고집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고흥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자녀교육 걱정 없어야 젊은층 귀어…2차 가공·3차 관광 등 맞춤 정책을

    자녀교육 걱정 없어야 젊은층 귀어…2차 가공·3차 관광 등 맞춤 정책을

    서울신문은 10일 어촌 고령화에 대한 해법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박상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어촌 문제는 근본적으로 일자리와 창업 지원이 많아야 풀 수 있다”며 일본을 예로 들었다. 일본은 농촌과 어촌을 한데 묶어 집적화 개발에 집중한다고 한다. 중심 지역에 영화관 등 문화시설과 학교 등 교육시설을 집중시켜 주변 어촌 등 주민들이 불편 없이 모여 살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는 “젊은 부부가 귀어하려면 자녀교육 걱정이 가장 큰데, 이를 불식시켜야 온 가족이 올 수 있다”고 했다. ●제대로 된 귀어 교육 필요 이정열 한서대 국제수산과학연구원장은 “교육을 제대로 받고 현장에 가는 귀어인은 100명에 1~2명이고, 어촌특화지원센터와 귀어 학교도 제 기능을 못 한다”며 “해양수산부가 실적 위주의 생색내기 정책만 벌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귀어 교육을 시켜보면 친환경 양식기술인 바이오플록 등 첨단 어업을 바라는 희망자가 많은데 기술과 돈이 없다보니 손쉽게 낚싯배 운영을 선택한다”며 “낚싯배 사업은 이미 포화 상태여서 훗날 빚쟁이로 전락할 수 있다”고 했다. 김종화 충남연구원 어촌특화지원센터장은 “꼭 어업이 아니고도 2차 산업 수산물 가공, 3차 관광 등 다른 직업으로도 어촌에 살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야 한다”면서 “일단 젊은이들이 어떤 목적으로든 들어와서 어촌에 활기가 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유인 정책 더 적극적이고 정밀해야 이창수 수협 수산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젊은이들이 어촌에 안 오는 가장 큰 이유는 어업이 기본적으로 3D 업종이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젊은층 유인 정책이 더 적극적이고 정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귀어 정책은 지역별 어촌계 특색에 따른 맞춤형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경기도는 어촌 관광이, 충남은 낚시라는 특색을 보고 젊은이들이 많이 귀어하는 만큼 특색에 따라 귀어인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어촌 입장에서도 목공 기술이 있다거나 홍보 솜씨가 좋다든가 하는 귀어인을 원하는 곳이 있으면 그에 맞춰 귀어인을 보내는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어촌 연고자 지원 등 선택과 집중을 김병호 부경대 해양수산경영학과 교수는 귀어 정책의 ‘선택과 집중’을 주장했다. 어촌에 부모나 친인척을 둔 외지인의 경우 어촌에 적응하는 게 훨씬 빠를 수 있는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우선적으로 귀어시키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어업인 연금제 도입도 주장했다. 그는 “정부에서 20여년간 연차적으로 기존 어민의 어장을 사들여 젊은 신규 어민에게 넘기고 이들로부터 사용료를 받아 기금을 만들면 된다”며 “매달 연금으로 30만원만 주면 은퇴할 어민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서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해경 바닷속 불법 조업 특별 단속한다

    해양경찰이 양식장을 노리는 무허가 잠수기 조업에 대해 특별단속을 실시한다. 전북 군산·부안 해경은 “어촌계에서 종패를 뿌린 양식장에 잠수장비를 착용하고 몰래 들어가 수산물을 채취하는 행위에 대해 단속을 벌일 방침”이라고 10일 밝혔다. 해경이 특별단속에 나선 것은 잠수장비를 이용한 불법 수산물 포획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년 동안 30건 54명이 군산해경 관내 64개 마을 양식장에서 불법 조업을 하다가 적발됐다. 이에따라 군산해경은 3개 팀의 전담반을 구성하고 형사기동정과 고속단정을 이용해 해상과 육상에서 입체적인 단속을 벌일 방침이다. 부안해경도 해양레포츠 활동이 증가하는 봄철을 맞아 다음달 말까지 부안·고창 해역 양식장 절취 행위에 대한 특별단속을 실시한다. 잠수기 불법 조업은 ?무허가 잠수기 조업 ?허가 어선의 금지된 해역 조업 ?스쿠버 다이빙을 목적으로 바다에 들어가 수산물을 포획하는 행위 등이다. 현행 수산자원관리법은 비어업인이 수산동식물을 포획,채취하다 적발되면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되고 양식장 절도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관악, 방과후 프로그램 공모

    서울 관악구가 주민을 대상으로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을 공모한다고 9일 밝혔다. 주민이 직접 마을과 연계해 초·중학교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으로 관악혁신교육지구 사업의 하나다. 구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마을강사 231명과 마을 교육 프로그램 108개를 선별해 운영했다. 구는 올해 모두 45개 프로그램에 대해 150만~300만원을 지원한다. 단, 교과과정 등 기본 방과후 교육활동과 겹치는 프로그램은 제외된다. 오는 16일 오후 2시까지 서울서남지역사회교육협의회를 방문하거나 구 홈페이지에서 신청양식을 내려받아 작성한 후 이메일(hakbumo119@naver.com)로 보내면 된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어촌이 늙어간다] 수산업 기반 확보 위해 독점적 연안 관리권… 이권 둘러싼 내부 갈등도

    [어촌이 늙어간다] 수산업 기반 확보 위해 독점적 연안 관리권… 이권 둘러싼 내부 갈등도

    어촌계라는 명칭은 1962년 수산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되면서 통일돼 전국적으로 쓰이고 있다. 두레, 향악 등 전통 민간협동체인 ‘계’(契)를 배경으로 생겨난 이 어민공동체는 조선시대 이전엔 ‘어촌부락’, 조선시대는 ‘어망계·어선계’, 일제 강점기에는 ‘어업계’로 불렸다. 시대에 따라 이름만 달랐지 역사는 무척 유구한 셈이다.어촌계는 전국 연안에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지만 정부는 이들에게 연안에 대한 배타적 이용권을 부여했다. 환경이 거칠어 개인이 못하는 작업이 많고, 어민 소득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점도 고려됐다. 박상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은 9일 “초기에 개인에게도 연안에서 어장 등을 만들 수 있도록 했으나 관리가 안 되는 등 무질서해지고 자본에 잠식되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면서 “어촌계에 우선적으로 갯벌 등 이용권을 준 것은 연안을 제대로 관리하고 생산성을 높여 국가 수산업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촌계에 독점적 연안 관리권을 주다 보니 이권을 둘러싼 내부 갈등도 터진다. 최근 경남 거제시 산달도 어촌계는 굴 양식권을 특정 어민에게 넘겨 위법 시비가 불거졌다. 태종완 해양수산부 주무관은 “계원이 고령화되면서 일부 어촌계에서 마을 어장을 임대하기도 하는데 법상 어업권은 임대할 수 없어 불법”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수익금 분배나 회계 처리 문제로 어촌계 내부 갈등이 터져 진정 등 민원이 자주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개발을 앞둔 어촌에서는 어업보상을 놓고 갈등이 발생하고 어촌계 신규 가입도 힘들다. 오래전 충남 당진 등 공단개발지역에서는 폐선 수준의 배를 구입해 등록한 뒤 보상금을 받아 챙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수협에서 어촌계를 지도감독하고 있지만 어촌계원이 조합원이어서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 감사를 해도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사기 일쑤다. 정부는 수협 비조합원도 어촌계원이 될 수 있게 법 개정을 추진하지만 수협은 거부 반응을 보인다. 이국일 수협중앙회 대리는 “그렇게 되면 조합원 탈퇴가 줄을 이어 수협의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수협은 어촌계의 수산물 위탁 판매·판로 확장을 돕고 어촌계원에 대한 대출 등 농협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정부는 어촌계장에게 활동비를 지원하는 조항을 수협법 개정안에 넣었다. 태 주무관은 “어촌계장의 책임감이 커져 어촌계 회계도 투명해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어촌계장의 활동비는 마을 이장과 달리 계원들이 돈을 모아 매달 20만~5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어촌이 늙어간다] 갈등의 바다… “텃세에 귀어 포기” vs “어촌계 장벽 당연”

    [어촌이 늙어간다] 갈등의 바다… “텃세에 귀어 포기” vs “어촌계 장벽 당연”

    수년 거주 등 어촌계 문턱 높아 가입비 1000만원대 웃돌기도 귀어인, 낚싯배 하다 ‘도시 유턴’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귀어(歸漁) 정책으로 도시 출신 귀어인이 늘면서 어촌 곳곳에서 기존 어민들과의 충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심각한 고령화에도 많은 어촌이 진입장벽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고, 그 장벽을 뚫고 어렵사리 어촌에 정착한 뒤에도 어민과의 마찰을 못 견디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귀어인도 적지 않다. 도시 출신 귀어인은 어민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텃세를 부린다고 비난하는 반면 어민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어촌에 기여한 몫은 무시한 채 귀어인과 똑같이 대접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항변한다. 9일 오후 3시쯤 충남 홍성군 남당리에서 만난 윤모(55·여)씨는 “인천에 살다가 2016년 7월 귀어자금 2억원을 정부로부터 융자받아 보령 오천항에 내려갔는데 어촌계 가입 장벽이 너무 높아 엄두도 못내고 낚싯배를 운영했다”며 “하지만 어민들과 자꾸 부딪히고, 벌이도 시원찮아 4개월 만에 배를 되팔고 여기로 와 낚시가게만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배 경험이 없어 선장과 선원을 고용해 낚싯배를 부렸고 자신은 뭍에 낚시가게를 차렸다고 한다. 하지만 낚싯배 영업은 쉽지 않았다. 홍씨는 새벽 2~3시에 떠나는 낚싯배 손님들을 배웅하고 가게에 있었지만 배 고장이 자주 났다. 그는 “낚싯배를 몰다 어민이 쳐 놓은 그물이 배 밑 스크루에 걸리면 잠수부를 불러야 했는데 한 번에 200만원까지 줘야 했다. 넉달 새 두 번이나 불렀다”며 “가을까지 낚싯배를 해도 선장과 선원에게 인건비를 주면 남는 게 없었다”고 했다. 어민의 텃세도 꼬집었다. 윤씨는 “어민들이 텃세를 부릴 때마다 연방 ‘죄송하다’고 했고, 시비가 붙을까봐 항상 웃는 얼굴로 대했다”면서 “어민 행사가 열리면 기부금 조로 50만~100만을 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귀어인은 낚시 포인트를 몰라 두당 7만~10만원인 뱃삯을 절반가로 ‘덤핑’쳐 손님을 받기도 하는데, 그러면 경쟁하는 기존 어민들이 “그 가격으로는 기름값도 빠지지 않는다”며 출조를 포기하고 귀어인에게 불만을 쏟아냈다고 한다. 윤씨처럼 경험이 없는 귀어인들이 낚싯배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어민공동체인 어촌계의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웬만한 해안은 이미 기존 어촌계들이 빽빽이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외지인은 어촌계 문턱을 낮추지 않으면 계원이 되고 싶어도 되기가 힘들다. 수년간의 거주기간과 많게는 천만원대를 웃도는 가입비 등 가입조건이 까다롭다. 반면 낚싯배는 개인 면허인데다 활동 구역인 바다가 넓어 텃세가 덜하다. 충남도가 2016년 도내 전체 167개 어촌계를 조사해 보니 가입비와 거주기간이 없는 곳은 24개에 그쳤다. 장벽 있는 143곳 중 137곳은 가입비(100만~500만원 93곳) 징수, 91곳은 거주기간(1~5년 63곳)에 제한을 뒀고 두 조건을 모두 적용하는 곳도 85곳에 달했다. 경기 평택에 사는 김모(51)씨는 4년 전 남당리에서 6.3t 어선으로 통발(철사와 그물로 만든 바구니 모양의 어구) 어업을 하다 포기했다. 그는 “당시에는 어촌계 가입비가 비싸 가입을 못하고 배를 사 운영했다”며 “처음에 배 운전을 못해 월급 선장을 고용했는데 그 사람이 밀물 때 고의로 배를 육지 쪽으로 깊숙이 올려놔 썰물 때 뻘에 걸리게 해 배가 못 나가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나중에 배를 직접 몰게 된 뒤에는 선원 부족이 문제였다. 김씨는 “5명이 필요한데 한두 명밖에 못 구했다”면서 “고용노동부에 외국인 노동자를 신청했지만 한 명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2년 만에 귀어의 삶을 포기하고 평택으로 ‘유턴’해 원래 하던 축산물 유통업을 하고 있다. 이들처럼 낚싯배나 어선어업은 고사하고 어촌계 가입마저 안 된 귀어인은 어려움이 더 크다. 서산시 팔봉면에서 만난 70대 귀어 부부는 “겨울에 바닷가에 자생하는 감태를 따 몇 푼 벌지만 바지락은 마을 양식장에 있어 캘 수 없다”며 “이 때문에 여기 온 지 3년이 됐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할 일이 없어 인근 양파, 마늘, 생강 농가에 가서 품팔이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어민들은 어촌계에 대한 비판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양식장 조성·관리는 물론 해산물 도둑을 막는 데도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충남 최서단 유인도인 보령시 외연도의 경우 어민들이 해삼·전복·홍합 양식장에서 24시간 순찰을 돈다고 한다. 관리선 구입에 어촌계 돈 1억원이 들었고, 매년 운영비로 1억원씩 쓴다. 진세민(64) 어촌계장은 “양식장 주변에 폐쇄회로(CC)TV와 레이더 탐지기까지 설치했다”고 말했다. 귀어인의 낚싯배 운행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남당어촌계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달(60) 홍성군 선주연합회장은 “귀어인은 요트 등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만 있으면 필기시험 하나 보고 소형선박 면허를 딴 뒤 낚싯배를 모니 사고를 자주 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옆에 있던 50대 어민 A씨는 “정부가 귀어를 시키려면 배 경험이라도 더 쌓게 한 뒤 보내라”고 언성을 높였다. A씨는 또 “귀어인이 옆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서 우리 배하고 충돌할까봐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작업도 잠시 멈춘다”며 “아무 데서나 낚싯줄을 던지는 바람에 그물을 손질하다가 그물에 걸린 낚싯바늘에 손이 찢어진 적도 많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귀어인 창업어업 자금으로 3억원까지 주는데 어업을 물려받으려는 후계자금은 2억원밖에 융자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글 사진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월요 정책마당] 일자리 보릿고개와 추경/구윤철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월요 정책마당] 일자리 보릿고개와 추경/구윤철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보릿고개라고 하면 대다수 청년들은 “그게 무슨 말이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다. 보릿고개란 지난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보리는 채 여물지 않은 5~6월에 겪는 식량난이다. 보릿고개는 없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 청년들은 지금 ‘일자리 보릿고개’로 고통받고 있다.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 가운데 향후 3~4년 동안 이전 세대보다 무려 39만명이 많은 ‘에코 세대’가 구직 대열에 합류한다. 급히 손 쓰지 않으면 14만명의 실업자가 추가로 늘어날 우려가 있다. 조선·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최근 구조조정 밀집지역 실업률이 2배 이상 상승했다. 재난 수준의 일자리 보릿고개라 하겠다. 우리 조상들은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겼을까. 한 예로 고구려에선 재상 을파소가 봄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줘 보릿고개를 넘긴 뒤 가을에 추수한 곡식으로 되갚게 하는 ‘진대법’(賑貸法)을 제안해 수많은 백성들을 아사(餓死)의 위기에서 구했다. 일자리 보릿고개에 맞닥뜨린 오늘, 정부는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실업이야말로 청년들이 겪는 모든 고통의 근원이며 저출산, 양극화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들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번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은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다행히 우리 국민들이 지난 한 해 열심히 일해 주신 덕택에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는 곡식이 나라 곳간에 쌓여 있다. 빚을 더 내지 않고도 풀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 귀중한 자원을 가장 시급한 청년 일자리와 구조조정 지역·업종의 고용 위기에 즉시 투입하고자 한다. 직접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고 연내에 집행 가능한 핵심 사업 중심으로 한시적으로 추진하는 고강도 대책이다.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추경은 크게 두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청년 일자리 지원이다. 젊고 유능한 인재를 원하는 기업과 일하기를 원하는 청년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려 한다. 청년들이 중소·중견기업에서 일하면 목돈 마련, 교통비 보조 등을 통해 실질소득을 지금보다 최대 1000만원 이상 높여 준다. 청년들이 좋아하는 근무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산업단지에 스마트공장과 보육·문화·체육시설 등도 설치해 준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자금 부족으로 서랍 속에 묻히지 않도록 3000개 창업팀에 최대 2000만원을 지원하는 등 창업 활성화 방안도 담았다.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지방자치단체가 발굴하는 청년 취업·창업 사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다음은 구조조정 지역과 업종의 단기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지원이다.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기보다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고용유지지원금을 확대했다.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하기 위해 생활안정대부 기준을 완화하고 다른 일자리로 조속히 전직, 재취업할 수 있게 지원한다. 더불어 구조조정의 영향이 협력업체와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파급되는 도미노 효과를 막기 위해 긴급경영안정자금과 재창업·전환자금을 확대하고 소상공인 융자자금을 대폭 늘려 저금리로 공급한다. 정부도 이번 추경만으로 모든 일자리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추경 외에도 세제·금융 지원, 규제 완화 등 정책 수단을 함께 하고 혁신성장 등 구조적 대응도 강화할 계획이다. 진대법을 시행해 당장 보릿고개의 극심한 고통을 막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농법 개량과 치수 사업에도 힘쓴 조상들의 지혜와 같은 이치다. 정부가 곳간을 풀어 보릿고개를 넘도록 돕는 동안 청년들은 기업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고 블루오션을 찾아 창업에 도전하는 등 진취적인 기상을 발휘하면 좋겠다. 중소기업도 기술 개발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 구조조정의 파고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추경이 위기 극복을 넘어 값진 미래 투자의 초석이 되기를 희망한다.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숨막히는 현실, 오지 않는 희망… 그래도 나아가라는 거장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숨막히는 현실, 오지 않는 희망… 그래도 나아가라는 거장

    “자, 이제 가자.” “안 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그렇군.” 바짝 마른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빈 무대에 허름한 점퍼를 입은 두 사람이 앉아 구두를 벗으려 애쓴다.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는 고도가 올지 안 올지를 두고 대화한다. 도대체 고도는 누구인지,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싱거운 대화만 몇 번이고 반복한다. 주인과 노예가 잠시 등장하고, 소년이 등장하여 고도가 그날은 오지 않고 내일도 오지 않을 거라고 알린다. 고고와 디디는 왠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린다. 두 사람은 무의미한 대화로 시간을 때운다. 1막에서는 고고가 가자고 하고, 2막에서는 디디가 가자고 한다. 쓸데없는 장난과 엉뚱한 대화를 듣는 관객이 왜 내가 여기 앉아 있어야 하나 고민할 때 막은 내린다.●파리로 온 작가·화가·철학자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에서 태어난 사뮈엘 베케트(1906~1989)는 부유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졸업 후 파리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2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1937년 파리 몽파르나스 언덕에 정착한 베케트는 이듬해 장편소설 ‘머피’를 발표했다. 1938년 1월 6일,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나오던 베케트는 소위 ‘묻지마 폭력’을 당한다. 모르는 청년이 느닷없이 그에게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법정에서 범인이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하자 충격을 받은 베케트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인생을 숙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41년 파리에서 그는 조국도 아닌 프랑스 레지스탕스 친구들을 돕는다. 더블린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부잣집 아들이 어떻게 이런 위험을 결심했는지 모르지만, 1942년 동지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베케트는 시골 농장으로 피신하여 ‘와트’라는 소설을 썼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그는 집중해서 작품을 썼다. 우주의 인연이란 기이한 바, 베케트가 태어나기 5년 전 한 인물이 옆 나라에서 태어났다. 1901년 10월 10일 스위스에서 탄생한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스위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후기 인상파 화가였던 아버지 덕에 자코메티는 거대한 서가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자코메티는 10세 때부터 소묘와 그림을 그렸으며, 14세 때 동생 디에고를 모델로 처음 흉상을 만들었다. 18세 때 자코메티는 제네바 미술 공예학교에 들어갔다. 자코메티는 눈앞에서 몇 번의 죽음을 목격했다. 아이를 위해 제왕절개를 거부했던 여동생의 죽음을 보았다. 어제까지 함께 베네치아 여행을 즐겼던 병든 할아버지 이야기도 황당하다. 아침에 깬 자코메티는 죽어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때 자코메티는 깨닫는다. 죽음이란 늘 곁에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폭격으로 잘린 팔 등 그는 죽음을 목격하고 강제로 성찰해야 했다. 그의 예술은 죽음이라는 한계에서 탄생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베케트처럼 자코메티도 파리에 있었다. 그 무렵에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도 파리에 있었다. 세 사람은 양차 대전을 모두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쟁의 비극으로 아수라장이었던 파리라는 공간을 작가 베케트, 화가 자코메티, 철학자 사르트르는 같은 시기에 체험했다. 세 거장은 죽음의 심연을 극복하는 실존주의 문학(베케트)-미술(자코메티)-철학(사르트르)의 연대를 보여줬다. 이후 1953년 1월 파리 몽파르나스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성공을 거두었다.●기다리는 사람과 걸어가는 사람의 만남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텅 빈 무대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가 있다. 처음 이 연극을 보았을 때 홀쭉이와 빵빵이 같은 개그맨이 나와서 만담하는 줄 알았다. 노숙자 복장을 한 괴이쩍은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고도가 온다는 확신도 없이, 두 사람은 그저 기다리지만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다림 자체가 희망이다. 반세기를 기다렸건만, 고도는 오지 않고 다만 심부름꾼을 보낸다. 디디는 고도의 심부름꾼에게 “나를 만났다고 말해”라고 부탁한다. 두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버티기 위해 구두끈을 풀었다 다시 감기를 반복한다. 두 인물이 대체 몇 번이나 구두끈을 풀고 다시 묶는지 세어보다가 포기할 정도다. 어찌보면 이 한심한 방법이 아우슈비츠의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꿈꾸었던 생명들이 견뎌내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아니 전쟁이 아니더라도 삶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베케트는 고도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영어 ‘신’(God)이 무의식에 있어서 절대자를 생각하고 썼을 수도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희망이란, 숨은 신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이 연극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배경에는 자코메티가 있다. 1961년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려 할 때 베케트는 자코메티에게 무대 디자인을 맡겼다. 두 거장은 밤새도록 나무 하나를 구부려도 보고, 꺾어도 보고, 부수고, 다시 세웠다. 목매달아 죽고 싶어도 매달리면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한 나무를 구상했다. 나뭇잎이 한두 개 달린 앙상한 나무를 석고로 만들어 마치 뼈다귀 같은 느낌을 줬다. 자코메티와 베케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났다. 석고로 만든 이 나무 하나로 자코메티는 열매 맺을 수 없는 죽은 나무의 비극을 미니멀리즘 무대 양식으로 표현했다.베케트가 무대 디자인을 자코메티에게 부탁한 까닭은 자코메티가 1년 전인 1960년에 발표한 ‘걸어가는 사람’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은 사진으로, 모작으로 하도 많이 봐 와서 별 감동이 없었다. 과연 저 삐쩍 마른 철사 같은 존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파리 퐁피두센터 5층에서 저 삐쩍 마른 이상한 작품이 몇 점 있어 한참을 봤지만, 부끄럽게도 모자란 서생은 철사인간의 깊이를 공감할 수 없었다. 뭔 뜻인지 몰랐다. 이번에 예술의 전당 전시회에서 이 작품 하나만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묵상하는 방에서 나는 사십여분을 응시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운명을 쏘아보는 듯 눈알이 크고 둥글었다. 원효의 눈부처를 보듯, 저 둥근 눈에 내 눈을 겹쳐 놓으니 가슴이 떨렸다. 대지를 버티는 두툼한 발, 해골 같은 머리를 촬영하면서 저 철사 같은 인간을 내 삶에 전이시켜 보았다. 183㎝ 키의 철사인간을 자코메티는 비정상적으로 늘어뜨리고 불필요한 것은 다 덜어냈다. ‘덜어냈다’는 표현이 대단히 중요하다. 죽음을 곁에 둔 인간이 덕지덕지 무엇을 품고 걸을 필요는 없었다. 자코메티 이전의 화가들은 ‘본 것’을 만들려 했지만, 자코메티는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려 했다. 동양철학에 깊이 영향을 받은 자코메티는 쓸데없는 것을 다 덜어낸 인간의 모습을 만들었다. 그는 선배 화가 피카소를 향해 엄청난 말도 했다. “난 피카소가 예술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천재더라.” 자코메티의 말은 무서운 자세를 보여준다. 예술은 명성이나 기술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사상에서 탄생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피카소는 기술로만 그리는 천재(기술자)일 뿐, 사상을 가진 예술가는 아니라는 비판이다. 나는 피카소와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라는 자코메티의 생각은 사뮈엘 베케트의 정신과 만난다. “우리는 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걸까요?” “그건 말이야, 인간이 더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리는 인간을 만든 베케트처럼, 자코메티는 걸어가는 인간을 말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걸 포기하는 대신에 계속 걸어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순간을 경험한다. 비록 이것이 하나의 환상 같은 감정일지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걸어나가야 한다.”●걸어가는 고도가 만든 실존주의 철학 희망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음이 앞에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리는 주인공은 베케트 자신이었다. 동지들이 죽어가는 전쟁 속에서 레지스탕스로 숨어 지내면서 그는 끊임없이 글을 썼다. 고독을 벗하며 쓰고 또 쓰면서 사망 전까지 그는 매년 작품을 발표했다. 자코메티, 베케트, 사르트르는 인간의 비극적인 죽음에서 절망하지 않고, 걷는 인간, 기다리는 인간, 실존주의 철학을 만들어냈다. 그들에게 파리는 창조의 공간인 동시에 죽음을 체험하게 한 공간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두 등장인물의 모습은 요즘도 파리에 많은 집시, 난민, 노숙자의 모습이다. 젊은 시절 나치를 피해 도망쳐야 했던 베케트와 자코메티가 한때 저런 처지가 아니었을까.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삶 자체는 무의미요, 전쟁의 아수라와 유사하지 않은가. 세 사람은 뜬구름 잡는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살을 유도하는 염세주의를 자극하지도 않았다. 숨막히는 현실에서 오지 않는 희망을 기다리는 세 거장의 자세는 운명을 견디는 잔혹한 낙관주의라 할 수 있겠다. 이 땅에서는 식민지의 어둠 앞에서 쫄지 말고 “눈 감고 가라”고 했던 시인 윤동주, 독재 시대에 아마득한 혁명을 꿈꾸었던 시인 김수영, 제주도에서는 4·3의 비극에 숨죽이며 지금까지 많은 눈물을 삼켰던 이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 철사인간이 바로 내 모습,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여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베케트는 금욕적인 수도승처럼 살았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글쓰기와 연출에만 전념했던 그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시상식에 가지 않았다. 자코메티와 함께 잔혹한 낙관주의를 가르쳐 준 베케트는 1989년 12월 22일에 조용히 고도가 있는 곳을 찾아 까마득한 여행을 떠났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어촌이 늙어간다] 노인만 남은 바다… 힘없는 80대 어민 조업 포기 수두룩

    [어촌이 늙어간다] 노인만 남은 바다… 힘없는 80대 어민 조업 포기 수두룩

    지난 4일 오후 1시쯤 찾은 충남 서산시 팔봉면 호리 1구 마을 앞 갯벌은 썰렁했다. 마을 안 인적도 뜸했다. 해변과 접한 곳에는 갯마을과 어울리지 않게 세련된 외양의 펜션이 줄지어 서 있었다.이 마을 어촌계장 황기연(63)씨는 “요즘은 (고기)잡이가 없는 때다. 5월부터 바지락 작업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1970~80년대 큰 풍선(돛단배)을 타고 인천 앞바다까지 올라가서 어른 키만 한 (식용)상어를 잡던 동네 형님들이 이제는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것마저 힘겨워한다. 20㎞ 넘게 떨어진 서산읍내까지 지게에 상어를 지고가 팔던 사람들이었는데…”라고 털어놨다.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동화가 어려워 몸을 쓰는 일이 많은 어업은 어민들 사이에서 농사보다 힘든 ‘3D 업종’으로 불린다. 파도치고 바람이 부는 바다 위에서 고기를 잡는 일은 노인한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일하는 것 역시 보통 고된 노동이 아니다. 이 마을 어촌계원은 85명인데 60대 안팎의 계원이 주류다. 황씨는 “어장에서 바지락을 캐 오면 무게를 재는 계근자 4명이 필요한데 서로 안 하려고 해 사정사정한다”고 전했다. 계근자는 계원들이 바지락을 캐 20㎏짜리 그물 망태기에 담아 오면 배에서 내리고,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고, 트럭에 실어야 해 힘이 좋아야 한다. 한 계원이 3~4망태기를 캐 오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 황씨는 “계근자는 하루 1시간 30분 일하고 3만원을 받지만 워낙 힘든 일이라 대부분 꺼린다”고 했다. 이 마을은 5월부터 11월까지 바지락, 겨울에 감태와 굴을 따고 틈틈이 낙지 등을 잡는다. 마을 선창에서 만난 70대 귀어 부부는 “45살 먹은 사위가 마을에 땅까지 사놨다가 지난 겨울 이틀간 감태를 따본 뒤 ‘도저히 못하겠다’며 귀어를 포기하고 땅도 도로 내놓았다”고 털어놨다. 황씨는 “새벽 3시부터 저녁 7~8시까지 종일 서서 작업을 하면 하루 13톳(톳당 100장)을 만드는데 너무 힘이 들어 나도 한 달만에 포기했다”며 “감태는 지난해 톳당 3만 5000원에 팔릴 정도로 수입이 좋지만 못하는 계원이 절반”이라고 전했다. 이 마을은 결국 지난해 4월 귀어 외지인 6명을 신규 어촌계원으로 처음 받아들였다. 이를 위해 1000만원이 넘는 어촌계 가입비를 300만원으로 낮추고 거주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다. 대신 어로작업을 전혀 못하는 고령의 기존 계원 7명을 제명했다. 황씨는 “너무 늙어 바다에 못 나가는 계원이 꽤 있다”면서 “신입 계원도 50대가 많지만 계근자로 나서는 것은 물론 어장의 해양쓰레기와 폐그물을 치우고, 모래를 뿌리고, 갯벌을 갈아주는 등 노인이 하기 어려운 어장관리에 발 벗고 나서줘 활기가 좀 돈다”고 했다. 인근 서산시 지곡면 도성어촌계는 더 심각하다. 정래만(70) 어촌계장은 “5년 전에 어촌계원이 118명이었는데 8명이 죽고 지난해 어업을 못하는 계원 10여명을 제명했다”며 “앞으로 5년 있으면 어촌계원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제명된 계원은 85~86세다. 정씨는 “우리 마을은 65세 어민을 ‘애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늙어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힘이 달려 갯벌로 굴, 바지락, 모시조개, 낙지를 잡으러 가는 날이 한 해에 몇 일 안된다”고 쓸쓸하게 웃었다. 이어 “근처 왕산어촌계는 어촌계장 본인이 80세”라고 심각한 고령화 실태를 전했다. 이 어촌계는 지난해 진입장벽을 과감히 허물었지만 신규 가입이 한 명도 없다. 정씨는 “수입이 적고 힘든데 젊은이들이 왜 어촌에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요즘 이 일대 어촌계장들은 틈만 나면 모여 어민들이 나이가 많아 어로작업을 못하는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다. 정씨는 “의견이 모이면 조만간 해양수산부를 찾아가 어촌이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대책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말 현재 전국의 어촌계원은 13만 3000명인데, 그중 연간 한 달 넘게 어업을 한 만 15세 이상 어민(어업종사가구원)은 8만 8214명에 불과하다. 결국 4만 4786명의 어촌계원이 사실상 어업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어업종사가구원 숫자마저 10년 전인 2007년 12만 2916명에 비하면 크게 감소한 것이다. 이국일 수협중앙회 대리는 “어민 고령화는 국내 수산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어촌의 사회변화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외국산이 우리 식탁 수산물의 절반 이상을 채운 데는 어민의 고령화가 한몫했고,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정부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동티모르, 베트남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외국인 어업 노동자를 공식 도입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20t 미만 어선, 양식장, 염전에 투입할 젊은 외국 노동자 1만여명을 조달했다. 일본, 동중국해 등 먼바다에서 조업을 하는 20t 이상 어선 인력 수입은 2016년 8314명에서 지난해 8400명 이상으로 좀더 늘렸다. 2015년부터 계절근로자 200명도 수입하고 있는 상태다. 이슬 해양수산부 주무관은 “어촌 인력이 크게 달려 매년 고용노동부에 외국 어업 노동자 도입을 늘려 달라는 요청이 어민들로부터 쇄도한다”고 말했다. 서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어촌이 늙어간다] 어업창업 3억 융자·수협법 개정에도 청년층 외면

    [어촌이 늙어간다] 어업창업 3억 융자·수협법 개정에도 청년층 외면

    귀어인 늘지만 대부분 ‘5060’정부는 어촌에 젊은 외지인을 유입시키기 위해 법을 개정하거나 예산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귀어(歸漁) 정책을 벌이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귀어인에게 어업창업자금으로 최대 3억원까지 융자하고 있다. 어촌에 내려가 융자 자금으로 낚싯배 등 어선을 구입하거나 각종 양식업을 하도록 한 것이다. 주택자금도 5000만원까지 연리 2%로 저리 융자해 준다. 올해는 새로운 정책을 도입했다. 만 40세 미만 귀어인이 어촌에 정착해 어선어업이나 양식장 등 창업어업을 하면 3년간 매달 100만원씩 무료 지원하는 것이다. 첫해 100명에게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바지락 등을 채취하는 맨손어업은 제외된다. 또 귀어박람회를 열어 귀어 분위기를 북돋우고 있다. 서울에 있는 귀어귀촌종합센터에서는 귀어 희망자를 상대로 상담을 하고 귀어 교육도 실시한다. 명수한 해수부 주무관은 8일 “귀어센터를 찾는 사람은 주로 40대 이후의 회사원 출신이 많다”고 했다. 정부는 수협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수협 조합원이 돼야 어촌계원이 될 수 있는 ‘이중규제’를 풀어 누구나 계원이 될 수 있도록 바꾸려는 것이다. 상반기 안에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충남도가 처음 도입한 어촌계 진입장벽 완화사업이 눈에 띈다. 2016년부터 진입장벽 완화에 앞장선 어촌계를 선정해 상금을 수여하고 있다. 어민 스스로 외지 귀어인을 적극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취지다. 매년 최우수상 어촌계에 1억원, 우수상 8000만원, 장려상 어촌계에 6000만원씩 지원한다. 귀어인은 전국적으로 2013년 690명에서 이듬해 978명, 2015년 1073명, 2016년 1005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문제는 귀어인도 나이가 적잖다는 점이다. 이 기간 귀어인 중 50대는 1285명으로 34%, 60대 이상 22%로 50대 이상이 절반을 넘어 어촌에 젊은이를 유입시키려는 귀어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정부의 귀어 정책이 어촌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농촌에 귀농할 때 지원하는 융자금이 연리 1%라면 귀어 융자금은 그보다 높고 신청 절차도 까다로워 개선할 점이 적잖다”고 입을 모았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KT, 국내 첫 ‘AI 소설’ 공모전

    KT가 인공지능(AI)으로 쓴 소설 공모전을 국내 처음으로 개최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후원으로 총상금 1억원인 공모전은 참가자가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체 개발한 알고리즘을 이용, 주어진 양식에 맞게 소설을 써 내면 된다. 참가 신청은 다음달 13일까지다. 신청서를 내려받아(https://kt.com/msmx) 이메일 제출(ainovel@kt.com)하면 된다.
  • 두번째 평양공연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은 가수는···레드벨벳 ‘빨간맛’ 안무 낯선듯 

    두번째 평양공연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은 가수는···레드벨벳 ‘빨간맛’ 안무 낯선듯 

    남측 예술단의 두번째 공연이 열린 3일 오후 3시 30분(한국시간) 평양 보통강구역 류경정주영체육관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평양 시민들은 일찌감치 줄을 지어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남성은 대부분 검은 양복 차림이었다. 반면 여성들의 차림새는 화사한 개량한복부터 서양식 투피스에 미니스커트, 레이스 블라우스까지 다양했다. 풋풋한 20대 남녀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공연은 공동 사회를 맡은 소녀시대 서현과 북측 방송원(아나운서) 최효성의 ‘우리는 하나’라는 힘찬 외침과 함께 시작됐다. 1만 2천여 석의 공연장을 가득 북측 관객들의 반응은 우리가 음악을 즐길 때와 다를 게 없었다. ‘가왕’ 조용필과 밴드 YB의 신나는 록 사운드가 나올 때는 열광했다. 최진희와 백지영, 정인, 알리의 애절한 발라드에는 애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벨벳이 히트곡 ‘빨간 맛’을 경쾌한 안무에 맞춰 선보일 땐 관객들의 표정이 다소 다소 낯선듯 보였다. 특히 실향민 부모를 둔 강산에가 함경도 청취가 가득한 ‘라구요’를 부르자 일부 관객은 눈물을 흘렸다. 강산에가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라며 말을 잇지 못하자 큰 박수로 호응하며 그를 격려했다.이선희가 북한 가수 김옥주와 나란히 서서 ‘J에게’를 부를 땐 관객들이 내내 손뼉으로 박자를 맞췄다. 이선희가 객석을 향해 “여러분, 북측에서 ‘가수’라고 하나요?”라고 물을 때 김옥주가 작게 “네”라고 대답했고, 이에 이선희가 “마이크 써 주세요”라고 말하자 객석에서는 화기애애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회자 서현은 지난 1일 공연과 마찬가지로 북한 최고 가수로 꼽히는 김광숙의 ‘푸른 버드나무’를 관객에게 선사했는데, 1절이 끝나기도 전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가장 열렬한 반응이 쏟아진 건 남북 출연진 모두가 무대에 올라 피날레 송으로 ‘우리의 소원’, ‘다시 만납시다’를 부를 때였다. 1만 2000여 관객은 일제히 일어나 머리 위로 손을 흔들었고 우레같은 함성을 쏟아냈다. 박수는 10분여간 계속됐다.한 북한 관객은 “감동적인 순간들이 있었다”며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우린 통역이 필요 없다. 그런데도 만나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고 말한 것으로 연합뉴스가 전했다. 또 다른 북한 관객은 “참 좋았다. 조용필 선생이 잘하시더라. 노래를 들어보긴 했지만 보는 건 처음”이라며 벅찬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장맛비에 무너진 부흥주택/손성진 논설주간

    [그때의 사회면] 장맛비에 무너진 부흥주택/손성진 논설주간

    대한민국 사람치고 내 집에 대한 집착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이른 지금 내 집 마련의 꿈은 수십년 전보다 더 멀어지고 있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 주택 사정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정부는 1955년부터 대한주택영단(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 금융기관 등과 협력해 주택을 지어 공급했다. 서민들을 대상으로 공급한 주택에는 부흥주택(또는 국민주택), 후생주택(또는 재건주택), 희망주택 등의 이름이 붙었다. 최초의 공공주택이라고 할 수 있는 부흥주택이 들어선 곳은 서울의 성북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등 당시로서는 변두리 지역이었다. 많이 헐리고 본모습을 잃었지만 부흥주택은 청량리2동 홍릉 단지, 정릉동 ‘정든마을’, 이화동 낙산마을에 아직 남아 있다.부흥주택 건설에는 육군 공병대가 동원됐다. 유엔한국재건단(UNKRA)의 지원에다 원자재도 원조에 의존했다. 1955년 12월 청량리 부흥주택 완공식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각부 장관, 서울시장이 총출동했다. 그러나 부흥주택은 분양가가 너무 높아 처음에는 신청자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곧 상황이 바뀌었다. 1956년 4월 실시된 청량리와 신당동 부흥주택 입주자 모집에는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 30분 만에 분양이 완료됐다(경향신문 1956년 4월 12일자). 그러나 부흥주택을 둘러싼 말썽은 끊이지 않았다. 청량리의 부흥주택은 공병대가 맨바닥에 집만 지어 처음에는 전기가 없어 촛불을 켜고 살아야 했고 상·하수도도 없어 입주민들의 불만을 샀다. 서울 신촌 100채의 부흥주택은 장맛비에 지은 지 1년도 못 돼 무너져 내렸다.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흙벽돌로 집을 지었기 때문이었다(동아일보 1956년 7월 2일자). 1956년 7월까지 전국에 지어진 흙벽돌 부흥주택 또는 재건주택은 7000여 가구에 이르렀다. 흙벽돌이 문제가 되자 그제야 시멘트로 바꿨다. 1959년에는 입주민들의 집단 청원 사태가 벌어졌다. 융자금 이자가 너무 높고 원금 상환 기간은 짧다는 것이었고, 국회에 특별조사소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했다. 부흥주택의 구조는 흥미롭다. 마루가 깔린 공간과 아동이 머무는 온돌방에 접해 과할 정도로 넓은 테라스가 있었다. 부엌에서 계단을 두 단 올라야 온돌방과 높이가 같아지는 것은 부엌에 취사와 난방을 위한 아궁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변소에는 양변기가 있었고 욕실에는 둥근 설비가 눈길을 끌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목욕을 위해 사용했던 커다란 쇠가마다. 재래식 생활공간 위에 일본풍 생활기기가 담기고 위생설비와 외부 공간은 서구식인 복합 양식이었다. 설거지통과 찬장은 입주자가 마련해야 했다(‘거취와 기억’, 박철수). 사진은 부흥주택 입주 경쟁을 풍자한 만평.
  • [단독] 지역 랜드마크 사업은 ‘空約’…생활밀착형 정책 제시해야

    [단독] 지역 랜드마크 사업은 ‘空約’…생활밀착형 정책 제시해야

    서울신문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1일 민선 6기 전국 시·군·구청장의 공약 이행 상황을 점검한 결과 시·군·구청장도 광역단체장과 마찬가지로 시설 건립, 단지 조성 등 눈에 보이는 랜드마크 사업의 공약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대체로 폐기했다. 특히 민생과 관련이 깊은 기초자치단체가 실적 쌓기용 공약에만 집착한 결과 공약이 삶의 질 개선에 연결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6·13 지방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의 장으로 출마한다면 생활밀착형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아이러니하게도 대규모 개발 행정이 집중적으로 제시된 지역은 면적에 비해 인구수가 적거나 군 기지 이전, 매립 등으로 개발 허가권이 많은 곳이었다. 이광재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런 지역은 청렴성 제고에 중심을 두고 지역 일꾼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유권자 운동으로 제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약 이행률 전국 2위를 기록한 서울시 25개 구는 2265개의 공약이 완료 및 이행됐고 폐기된 공약은 11개였다. 노원구의 중계동 문화복합센터 건립, 송파구의 지하철 3호선 연장 추진(오금역~올림픽공원역), 관악구의 도림천 통수단면 확장사업 추진 등의 공약이 폐기됐다. 성동구의 왕십리오거리 문화예술패션타운 건립은 700억원이 필요했지만 재정 확보 내역이 없었다. 부산시 16개 구의 공약 이행률은 3위로 전국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해운대구의 반송천 일원 워터피아 조성 공약은 폐기됐다. 역시 해운대구의 해운대~송정해수욕장 연안정비사업 시행 공약은 230억원의 재정이 필요했지만 재정 확보 내역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국에서 공약 이행률이 가장 높은 대구시에서는 동구의 안심 율하지역 초등학교 신설 사업이 폐기됐다. 북구의 제일모직 이전 터에 친기업적 문화와 창조적 도시환경을 조성하는 공약은 900억원의 재정이 필요했지만 이 역시 재정 확보 내역은 없었다. 공약 이행률 하위권인 인천시 10개 구에서 폐기된 공약은 옹진군의 영흥 화력 7·8호기 조기 착공 지원 사업과, 덕적 서포리 국제거점형 마리나항만 조성 사업 등 3개였다. 광주시 5개 구에서는 동구의 세계수영선수권 선수촌 유치 공약이 폐기됐다. 또 광산구의 첨단3지구개발(광주연구개발특구) 1조 217억원, 북구의 31사단 이전과 미래형 마을조성사업 8000억원 등은 재정 확보 내역이 없었다. 대전시 5개 구에서는 동구의 국제화센터 운영 개선 공약이 폐기됐다. 동구의 대전 의료원 유치는 1315억원, 서구의 도안동 분동 및 주민센터 건립은 98억 2500만원이 필요했지만 어떻게 재정 확보를 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울산시 5개 구에서는 폐기된 공약이 없었다. 다만 중구의 장현지구 산업단지 조성 16억원, 동구복합문화관 건립 83억 9900만원 등의 재정 확보 내역은 없었다. 경기도 31개 시·군에서는 폐기된 공약 대부분이 대규모 시설 유치 사업이었다. 가평군의 청평생활체육공원 조성과 안양시의 국철 1호선 가칭 ‘안양초교역’ 신설, 파주시의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유치 등이었다. 강원도 18개 시·군에서는 32개 공약이 폐기돼 전국에서 폐기된 공약 수가 가장 많았다. 태백시의 1조 8000억원 규모 LNG 발전소 유치 공약과 속초시의 영랑호 시민 문화생태공원 조성 등이 대표적이다. 공약 이행률 최하위인 충북도 11개 시·군에서는 충주시의 경제자유구역(에코폴리스) 개발 등 공약 3개가 폐기됐고 청주시의 예술의전당 광장 주차장 잔디공원화 등 7개 공약이 보류됐다. 충남도 15개 시·군에서는 홍천군의 광천 대단위 화훼단지 조성과 바다송어 양식 특화지구 육성 등 공약 5개가 폐기됐다. 예산군의 수도권 전철 연장(장항선 복선전철화) 6785억원은 재정 확보 내역이 없었다. 전북도 14개 시·군에서는 임실군의 식생활교육문화연구센터 유치 등 9개의 공약이 폐기됐고 김제시의 새만금 배후 복합물류단지 기반 구축 공약은 보류됐다. 전남도 22개 시·군에서는 여수시의 여수공항 저비용항공 유치 공약 등 공약 21개가 폐기됐다. 함평군의 국도 24호선(함평) 시설개량사업 453억원 등 15개 공약의 재정 확보 내역은 없었다. 경북도 23개 시·군에서는 군위군의 국술원 연수원 유치, 청도군의 군립화장장 건립 등 8개 공약이 폐기됐다. 재정 확보 내역이 없는 공약은 칠곡군의 1067억 100만원 규모의 칠곡농기계 자동화특화 산업단지 조성 등 덩어리가 큰 사업이었다. 경남도 18개 시·군에서는 사천시의 만 65세 이상 어르신 공영버스 무료 이용과 김해시의 남부권 신공항 유치 사업 등 5개 공약이 폐기됐다. 거제시 등의 6조 7907억원 규모 남부내륙고속철도 조기 착공 및 역사 유치 사업 등 도로 건설 등의 공약은 무더기로 재정 확보 내역이 없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서울광장] 대세보다 대의를 좇는 정치를 하라/박찬구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대세보다 대의를 좇는 정치를 하라/박찬구 편집국 부국장

    ‘산화낙진산장재(山花落盡山長在ㆍ산에 핀 꽃이 다 떨어져도 산은 늘 그대로 있고) 산수공류산자한(山水空流山自閑ㆍ계곡물 부질없이 흘러도 산은 여유롭기만 하다)’ 중국 송대의 왕안석(王安石)이 자신의 개혁정책을 지지한 황제 신종을 그리며 지은 시구절이다. 어떤 간난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소신껏 시대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각오와 간절함이 묻어난다. 900여년이나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위정자(爲政者)의 마음가짐과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되새기게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사회 공동체와 민생을 향한 정치와 정책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위정자 본연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말함이다. 새삼 왕안석을 떠올리게 되는 건 최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볼썽사나운 모습 때문이다.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권 행사를 두고 한국당은 “개헌장사”, “3일에 걸쳐 쪼개기식으로 광을 파는 개헌쇼”, “짜고 치는 사기도박단 같은 행위”, “현 여권의 집권 연장용 개헌”이라고 거칠게 비난했다. “야당을 반개헌 세력으로 몰아 6월 지방선거에서 이익을 보려는 정략”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이 같은 한국당의 개헌 주도권 프레임은 정치권력 중심의 개헌 논쟁을 가열시킴으로써 경제와 영토, 환경, 인권, 평화 등 시대 과제를 담은 개헌의 당위성이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와 사람 중심의 개헌 의제를 상대적으로 퇴색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개편이 정치권 개헌 논의의 주된 메뉴로 등장하면서 기업과 노동의 두 바퀴 수레를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끌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헌법 차원의 논의는 상대적으로 묻힐 수밖에 없다. 개헌 문제뿐만 아니다. 한국당 지도부는 자기 당 소속인 울산시장의 측근 비리를 수사한다는 이유로 법 집행기관인 경찰을 두고 “광견병 걸린 정권의 사냥개”니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니 막말을 쏟아냈다. 제1야당이기 이전에 선출직 국회의원으로서 최소한의 양식과 품격을 저버린 실망스런 행태라 할 수 있다. 6월 지방선거에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해 스스로 봉합을 시도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개헌안을 통과시킨 국무위원들을 “권력의 개, 권력의 환관”이라며 몰아세웠다. 이 같은 제1야당의 모습은 정치 상황과 유불리에 따라 조변석개하고 갈지자를 걷는가 하면 눈앞의 선거에만 매몰되는 과거의 구태 정치집단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는 ‘대세(大勢)보다 대의(大義)’라고 했다. 한때 세력이 약해져도 대의를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대세를 잡을 수 있지만 대의를 잃고서는 비록 대세를 형성하더라도 종국에는 패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단순히 승패의 논리에 그치는 게 아니다. 정치의 대의란 곧 민심이며 민생이라 할 수 있다. 위정자가 한때의 술수와 입발림으로 민심을 얻는다 하더라도 진정성이 없다면 민심을 계속 품을 수도, 민생을 살릴 수도 없다는 건 고금의 이치다. 가까이는 지난 10년간 우리가 목도한 두 정권의 부침이 그러했다. 화려한 꽃이 시들고 갖은 시련이 찾아와도 꿋꿋이 대의를 지키며 공동체를 위한 소임을 다하는 게 위정자의 제대로 된 처신이라 할 수 있다. 대의는 원칙과 명분에서 나온다.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총선에서 험지로 뛰어든 정치인은 당장은 패배하더라도 훗날 더 큰 정치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명분도 원칙도 없이 알량한 기득권과 세력에 기대 위세를 부리는 일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반칙과 특권을 물리치고 원칙과 상식을 살려 나가는 게 당장은 불편할 수 있어도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골고루 희망을 나눌 수 있는 길이다.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며 위정자의 당연한 의무라 할 수 있다. ‘만년야당’은 없다. 하지만 당리당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공동체와 사람의 가치를 외면하는 정치집단에 내일이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ckpark@seoul.co.kr
  • 선거 코앞인데… 속 보이는 지자체 준공식

    포항·경주·청도·군위·울릉 등 기관장·주민 수백명 연일 성황 “지자체장 치적 홍보” 논란에 “정상적인 행정행위” 반박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북지역 시·군들의 준공식 행사가 봇물을 이루면서 “선거용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포항시는 이달 들어 북구 기계면 현내리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건립을 비롯해 ㈜포항국제물류센터 냉동창고 신축, 송도 솔밭 도시숲 조성 등 크고 작은 사업의 준공식을 잇따라 가졌다. 행사 때마다 이강덕 포항시장을 비롯해 주민 등 300~700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경주시도 지난 19일과 23일에 감포읍 감포4리 경로당 및 마을회관, 동천동주민센터 신청사 준공식을 했다. 이들 행사에 최양식 경주시장이 모두 참석했다. 30일에는 석장동 화랑마을에서 준공식을 한다. 이날 행사에도 최 시장을 비롯한 지역 기관·단체장, 주민 등 1000여명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선인 최 시장은 지난해 9월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가 올 들어 다시 3선 도전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청도군도 23일과 27일 ‘청도신화랑풍류마을’ 개관식과 화양읍 동천리 새마을회관 준공식을 열었다. 이들 행사에 주민 등 모두 1000여명이 참석했으며 초선인 이승율 청도군수는 잇따라 축사를 했다. 군위군도 27일 군위읍 용대리에서 주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 축복식 및 개장식을 가졌다. 다음달 7일에는 효령면 마시리 ‘Knu 빌리지’(경북대 교직원촌) 마을 잔디광장에서 입촌식을 연다. 울릉군도 27일 울릉항에서 어민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특산물 체험 유통타운’ 준공식을 가졌다. 이를 두고 지역 정가 일각에서는 시장·군수와 시·군 지방의원들이 표심을 얻기 위해 지방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무더기로 치적 홍보성 준공식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 기초단체장 출마 예정자는 “선거에 임박해 주민을 동원해 갖는 시·군의 준공식 행사는 사실상 선거운동”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시·군 관계자들은 “준공 행사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한 사업을 마무리하는 정상적인 행정행위이며, 선거운동 운운하는 것은 억지”라고 반박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국정교과서 朴정부가 기획·감독…교육부는 손발

    국정교과서 朴정부가 기획·감독…교육부는 손발

    “역사 제대로 안 배우면 혼 없어” 朴, 2013년 논설실장들에 피력 2회 여론조사 후 비밀TF 가동 2015년 ‘차떼기 여론조작’까지‘총감독은 박근혜의 청와대, 행동대장은 교육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가 28일 발표한 국정화 추진 과정은 이렇게 요약된다. 검인정 체제로 발행되는 기존 역사 교과서 대부분이 ‘좌편향’이라고 생각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시켜 국정화를 기획했고, 교육부는 별다른 저항 없이 손발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진상조사위의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과정을 재구성했다.“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자라면 혼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7월 10일 언론사 논설·해설위원들을 만나 이런 말을 던졌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의지를 공식적으로 드러낸 순간이다. 다음달인 8월에는 뉴라이트 등 보수 학자들이 쓴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독재 미화라는 비판 속에서 검정 심사를 통과해 논란이 됐다. 조사위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그해 10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교과서를 바로잡으려면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면서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나서야 박근혜 정권 5년 내에 좌파를 척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시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청와대의 시나리오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2013년 10월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이학재 의원은 “국가적 통일성을 위해 역사 교과서는 국정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고, 염동열 의원은 “(역사 교과서를 위한) 중립적 검정위원회를 만들거나 국정교과서로 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2014년부터 노골화됐다. 교육부는 여론 기반을 다질 목적으로 두 차례 여론조사를 한다. 교육부는 산하기관인 한국교과서연구재단과 교육과정평가원에 여론조사를 맡기면서 비용도 지급하지 않았다. 형법상 직권남용 등이 적용될 수 있는 행위다. 청와대는 2015년 실무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했던 김정배 당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장을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임명한 게 신호탄이었다. 비슷한 시기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에게 “교육부 내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교육부 2인자였던 김재춘 전 차관은 교육부 관료인 오석환씨를 단장으로 공무원 21명이 투입된 비밀 TF를 만든다. ‘차떼기’ 여론 조작도 이때 발생했다. 교육부는 2015년 10월 국정교과서 행정예고를 하면서 찬반 의견을 수렴했는데 동일한 양식의 찬성 의견서 1000여장이 트럭에 실려 무더기로 접수됐다. 조사위가 찬성 의견서를 검토한 결과 동일인이 100장 넘게 내기도 했고, 인적사항란에는 ‘이완용’, ‘조선총독부’ 등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 10일 국무회의에서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며 국정교과서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청와대는 국정교과서 편찬 기준(가이드라인)의 세부 내용까지 치밀히 관여했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 기준을 만들던 2015년 9월 청와대 행정관이 21개의 ‘수정 요구’를 담은 문서를 교육부에 전달한다. ‘동학농민운동 관련 내용과 독립협회 활동의 한계를 담은 내용을 삭제해 달라’거나 ‘남북 평화 모색 활동과 관련한 내용도 없애 달라”, “(경제발전 과정과 관련한 항목에서) ‘사회 양극화’와 ‘환경오염’을 삭제해 달라”는 등의 요청이 담겼다. 또 “‘새마을운동 성과와 한계를 서술한다’는 문장에서 ‘한계’를 빼고 ‘의의’를 넣어 달라”고도 요청했는데 실제 편찬 기준에는 ‘새마을운동이 농촌 근대화의 일환으로 추진됐고 이 운동이 최근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음에 유의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청와대 의견 21건 중 18건이 편찬 기준 최종본에 반영된 것으로 조사위는 판단했다. 청와대는 또 우호 여론 조성을 위해 교수 102명의 국정화 지지 선언을 기획했고, 교육부가 시민단체 명의로 국정교과서 홍보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도록 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바지락도 독소 주의

    홍합과 굴, 미더덕에 이어 바지락에서도 식중독을 유발하는 패류독소가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다. 해양수산부는 전국 해안의 패류독소를 조사한 결과 기준치(0.8㎎/㎏)를 초과한 품종과 해역이 추가로 확인돼 패류 채취금지 조치를 했다고 28일 밝혔다. 다만 유통 제품에서 패류독소가 나온 홍합과 달리 바지락은 생산 단계에서 발견돼 직접적인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패류독소 기준치 초과 검출 해역은 기존 25곳에 경남 통영시 진촌과 수우도, 전남 여수시 돌산 죽포리 연안 등 3곳이 추가됐다. 패류독소는 유독 플랑크톤에서 발생한다. 수온이 오르고 육지 영양염류가 바다로 유입되는 3월부터 6월까지 경남 진해만을 중심으로 매년 검출된다. 해수부는 정기 조사를 통해 기준치 초과 해역에는 패류 채취를 금지시키는데 올해는 서울 이마트 수서점 등에서 판매된 생홍합에서도 검출돼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졌다. 해수부는 패류독소로 식중독에 걸리거나 사망에 이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번에 홍합에서 나온 패류독소량(1.1㎎/㎏) 기준으로는 한자리에서 200개 이상 먹어야 사망에 이른다. 정복철 해수부 어촌양식정책관은 “6월까지는 패류 섭취에 주의하고 낚시객 등은 해안에서 직접 채취해 먹는 일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이마트 판매 ‘손질 생홍합’ 패류독소 검출 긴급 회수

    이마트 판매 ‘손질 생홍합’ 패류독소 검출 긴급 회수

    시중에 판매 중인 생홍합에서 식중독 등을 유발하는 패류 독소가 검출됐다.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해양수산부는 경남 창원에 위치한 금진수산이 판매한 ‘손질 생홍합’에서 패류 독소가 기준치(0.8mg/kg)를 초과해 판매 중단 및 회수·폐기 조치 중이라고 23일 밝혔다. 회수 대상은 포장일이 2018년 3월 18일, 20일인 제품이다. 18일 제품에서는 패류 독소가 1.1㎎/㎏, 20일 제품에서는 1.4㎎/㎏으로 기준치의 최대 두 배 수준이 나왔다. 해당 제품은 이마트 수서점 등 서울 이마트 점포 대부분에 납품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는 18일 제품은 생산량 19t 대부분이, 20일 제품은 23.1t 중 9.1t이 유통된 것으로 파악하고 판매 물량을 포함해 유통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패류 독소를 먹으면 30분 안에 입술 주위가 마비되는 증상과 두통, 구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심하면 식중독을 일으키거나 호흡 곤란 등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최근 생굴에서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된 사실을 늑장 공개한 데 이어 수산물 안전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복철 해수부 어촌양식정책관은 “이번에 검출된 농도의 홍합을 먹으면 입이 얼얼한 정도”라며 “다만 같은 자리에서 200개가량 먹으면 사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의상대사 창건 高雲寺, 가운루·우화루 지은 최치원 호 따 孤雲寺로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의상대사 창건 高雲寺, 가운루·우화루 지은 최치원 호 따 孤雲寺로

    1742년(영조 18년) 10월 보름, 임진강 우화정(羽化亭)에서 웅연(熊淵)까지 선상(船上) 연회가 벌어졌다. 참석자는 경기도관찰사 홍경보와 연천현감 신유한, 양천현령 정선이었다. 이날은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1037~1101)가 적벽강에서 뱃놀이를 하며 ‘후적벽부’(後赤壁賦)를 지은 660주년이었다고 한다. 우화정은 경기 연천군 중면 대사리에 있었다. 지금은 임진강댐 상류 북한 땅이다. 청천 신유한이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이라면 겸재 정선은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다. 이 뱃놀이에서 신유한은 ‘의적벽부’(擬赤壁賦)를 지었고 겸재는 배가 우화정에서 떠나는 장면과 웅연에 닿는 모습을 각각 ‘우화등선’(羽化登船)과 ‘웅연계람’(熊淵繫纜)이라는 그림에 담았다. 여기에 창애 홍경보의 서문이 더해진 시화첩을 세 벌 만들어 나누어 가졌으니 유명한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이다.번데기가 날개 달린 나비로 변하는 것이 우화(羽化)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사람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감을 이르는 도교적 표현이다. 소동파의 ‘훌쩍 세상을 버리고 홀몸이 되어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것만 같다’(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는 ‘적벽부’ 구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겸재는 이 구절의 신선 선(仙) 자를 배 선(船) 자로 살짝 비틀어 화제(畵題)로 삼았다. 신유한(1681∼1752)은 집안 배경이 변변치 않은 탓에 늦은 나이까지 지방관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와 문장에서만큼은 일찍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1719년(숙종 45)에는 통신사의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다. 통신사 제술관은 여간 글재주가 뛰어나지 않으면 뽑힐 수 없었다. 신유한의 이름이 역사에 남아 있는 것도 통신사행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는 1719~1720년 일본을 여행하면서 지리·풍속·제도는 물론 자연환경까지 자세히 적었으니 곧 ‘해유록’(海遊錄)이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을 이끈 사명대사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사명대사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자신의 평가를 붙인 ‘분충서난록’(奮忠難錄)을 편찬하기도 했다.●오늘날 고운사 중심은 대웅전… 과거엔 극락전 오늘은 ‘컬링의 고장’으로 떠오른 경북 의성의 고운사(孤雲寺)로 간다. 의성군 동북쪽의 고운사는 안동과 경계를 이루는 등운산(登雲山)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절 이름만으로도 신라의 대문장가 고운(孤雲) 최치원(857~?)에 자연스럽게 생각이 미친다. 신유한을 떠올린 것은 그가 평해군수 시절인 1729년(영조 5) 고운사의 사적기를 썼기 때문이다. 그의 사적기는 1918년 오시온이 지은 또 다른 사적기와 함께 이 절의 역사를 구성하는 결정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고운사는 절의 역사를 이렇게 서술한다.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 해동 화엄종의 시조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연꽃이 반쯤 피어난 부용반개형상의 천하명당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원래 고운사(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유교·도교에 모두 통달해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如智)·여사(如事) 양 대사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고운을 빌려 고운사(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도 도선국사가 조성한 것들이다’. 고운사는 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흩어진 60곳 남짓한 절들을 관장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 지은 산문을 지나 일주문으로 들어서면 역시 최근 조성한 대웅전을 비롯한 30개 남짓한 전각이 규모 있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고운사는 ‘사세(寺勢)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칸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도량이 지금은 교구본사로는 작은 사찰로 전락했다’고 적어 놓았으니 지금보다 훨씬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나 보다. 오늘날 고운사의 중심은 웅장한 대웅전 주변이라 할 수 있지만, 과거의 중심은 극락전이었다. 극락전과 마주 보는 우화루 사이 양옆으로 만덕당과 종무소가 사방에서 마당을 에워싼 일종의 산지중정형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유행한 형태다. 극락전 영역은 소박하기만 하다.●가운루, 구름 탄 누각 의미… 등운산 계곡 가로질러 종교적 의미에서 절의 중심이 어디든, 고운사의 상징은 우화루와 가운루다. 등운산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가운루는 과거 다리 역할을 했다. 가운루란 구름을 타고 앉은 누각이라는 뜻이다. 곧 신선의 세계다. 고운이라는 최치원의 아호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우화루란 이름에서는 곧바로 홍경보, 신유한, 정선의 임진강 뱃놀이가 떠오른다. 사찰의 강당은 부처가 설법하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빌려 우화루(雨花樓)라 이름붙이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은 찻집으로 쓰는 고운사 우화루에도 내부에는 우화루(雨花樓)란 편액이 하나 더 붙어 있다. 우화루와 가운루는 이 절이 최치원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음을 과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화루 명칭은 신선·부처님 가르침 동시에 상징 고운사가 신유한에게 사적기를 청한 것도 청천이 유학은 물론 불교와 도교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청천은 사적기 서두에 ‘1728년 고운사 스님이 찾아와 청하는 것을 서류에 파묻힐 만큼 바빠 응하지 못했는데, 이듬해 사자(使者) 셋이 고운사 주지의 글을 다시 들고 오니 거절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고운사의 역사를 정리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사적기는 신유한이 관련 사료를 엄격히 고증해 서술했다기보다는 스님들이 알고 있는 구전(口傳) 자료를 재구성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런데 청천의 사적기에는 ‘의상대사 창건’ 다음에 최치원이 등장하지 않고 곧바로 ‘고려 건국 초 운주화상 중수’로 넘어간다. 최치원의 고운사 중창설(說)과 이후 절 이름 변경설(說)은 신유한이 사적기를 쓰던 시기에는 아직 널리 보편화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명대사가 고운사를 의승군의 전초기지로 썼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사명대사 전문가’인 신유한은 역시 사적기에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운사와 최치원과의 관계로 국한하면 신뢰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보물로 지정된 고운사 약사전의 석조여래좌상은 최치원이 살았던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미술사학계는 보고 있고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도 신라 후기 양식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유한의 사적기에 왜 최치원과의 관계가 서술되지 않았고 오시온의 사적기에는 왜 들어가게 됐는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극락전이 서쪽에 있는 건 서방정토 상징성 살린 것 가운루의 존재에서 보듯 고운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그 동서쪽에 전각이 있는 사찰이었다. 극락전 영역이 서쪽에 자리잡은 것은 주존(主尊)인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정토의 상징성을 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계곡 동쪽은 모니전(牟尼殿) 영역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전각이다. 흔히 이런 전각을 대웅전이라 부르지만 절의 큰법당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고자 이런 이름을 붙인 것 같다.대웅전은 1992년 가운루 상류의 계곡을 메우고 모니전 영역을 해체해 세운 것이다. 모니전 옛 건물은 대웅전 동쪽의 삼층석탑 위로 옮겨 지었으니 지금의 나한전이다. 조촐함에서 닮은 나한전과 삼층석탑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던 것인 양 자연스러운 조화를 보여 준다. 일주문 밖으로는 화엄승가대학원이 보인다. 산내 암자인 운수암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신유한은 운수암기(雲水庵記)도 남겼으니 이래저래 고운사와는 인연이 깊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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