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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아베 독주에 환멸…70년전 패망직후 ‘민주주의’ 교과서 재등장

    日아베 독주에 환멸…70년전 패망직후 ‘민주주의’ 교과서 재등장

    일본 중·고교에서 1948년부터 1952년까지 사용됐던 ‘민주주의’ 교과서가 복간돼 일선 학교수업에 교재로 사용되는 등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제목 자체가 ‘민주주의’인 이 70년 전의 교과서는 당시 문부성(한국의 교육부)이 제작한 것으로, 일본 패망후 일본에 진주한 연합국총사령부(GHQ)의 지침에 따라 만들어졌다.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부의 서슬 퍼런 강요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일본을 다시는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참화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명감에 불탔던 일본 법철학자들이 현대적 기준에서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교하게 집필했다. 7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대형 출판사 가도카와는 지난해 10월 학술문고본으로 ‘민주주의’를 복간했다. 지금까지 약 8개월 동안 6쇄를 찍으며 2만부를 판매했다. 복간에 참여한 야스다 사에(45) 편집자는 “70년 전 교과서의 복간본이 이만큼 주목되는 사례는 드물다”면서 “현재의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실감하지 못하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전후세대에게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도쿄신문에 말했다. 특히 2015년부터 일본의 투표권 연령이 18세로 낮아지면서 올바른 주권자 교육을 모색하는 교사들이 학교현장에서 채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이 책의 원본은 상·하 2권짜리로 총 450페이지에 달했다. 개인의 존중을 강조한 ‘민주주의의 본질’을 비롯해 학교교육, 노동조합, 헌법 등 총 17장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가도카와 출판사에 앞서 1995년 고미치서방(출판사)이 복간을 했고, 2016년에는 겐토샤가 이 책의 요약본을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에는 일본의 많은 양식있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다수당의 횡포’의 문제점도 다뤄지고 있다. ‘민주정치의 함정’ 편에서 ‘무엇이든 다수의 힘으로 관철시키고, 소수의 옳은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다수당의 횡포’라고 서술돼 있어 현재 일본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쿄 이타바시구의 도립 다카시마고 3학년 담당 오바타 마사토(42) 교사는 올해부터 사회 시간에 복간된 ‘민주주의’를 교과서로 쓰고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실현되는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것을 일깨우려 애쓰고 있다. 오바타 교사는 “젊은이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들 말하지만, 애초부터 학교에서 충분한 주권자 교육을 시키고 있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학생 개개인이 자기 의사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할 말은 하는 권리가 있음을 깨닫도록 하고 싶어 적절한 교재를 수소문하다가 이 교과서를 발견했다”면서 “70년 전 서술이지만, 내용에 보편성이 많아 우리 시대에도 통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트럼프 탄핵 찬성 공화당 유일 의원, 탈당 선언

    트럼프 탄핵 찬성 공화당 유일 의원, 탈당 선언

    미 공화당에서 유일하게 탄핵을 거론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던 저스틴 어마시(미시간) 하원의원이 독립기념일인 4일(현지시간) 전격 탈당했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어마시 의원이 “대통령과 동료 공화당 의원들의 거센 공격을 받고 당을 떠난다”고 선언했다고 보도했다.그는 워싱턴포스트(WP)에 쓴 논평 형식의 탈당 선언문에서 “나는 당파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그 현장에서 본 것들 때문에 겁을 먹게 됐다”면서 “양당제는 미국의 원칙과 제도에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왔다”고 밝혔다. 그는 선언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글이 발행된 지 3시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아마시 의원을 인신공격하며 “의회에서 가장 불충하고 우둔한 사람”이라면서 “그런 사람이 탈당한다는 건 공화당에 가장 좋은 소식”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면서 “어떤 공모도 방해도 없었다. 그는 당연히 위대한 미시간주에서 공천을 받을 수 없을 것을 알았으며, 이미 그 자리는 위협받고 있다”고 비난했다. 어마시 의원은 공화당 내 자유주의자로 우익에서 가장 강력한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자 중 한명이다. 앞서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결과와 관련 “뮬러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구체적 행위들과 행동 양식에 관여했음을 드러낸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우리의 정치는 당파적인 ‘죽음의 소용돌이’ 안에 있다. 그것이 내가 공화당을 떠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권력 분립, 연방주의, 법의 통치라는 헌법적 질서들이 묵살되는 상황이라면서 정당에 대한 충성이 미국 국민에 대한 봉사나 통치 제도에 대한 보호보다 중요하다는 사고방식은 정치 권력의 강화 및 대의 민주주의제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대 정치는 당파적인 죽음의 소용돌이라는 덫에 걸려 있지만 탈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 나는 나의 독립을 선언하며 공화당을 떠난다”며 “우리를 분열시키고 우리의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당파적 충성도와 레토릭을 거부하는 데 있어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 CNN은 어마시 하원의원의 2020년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진귀한 예술이다” NYT도 놀란 국악의 매력

    “진귀한 예술이다” NYT도 놀란 국악의 매력

    “정악(궁중음악)과 민속음악이 국악이라는 한 ‘우산’ 아래 있었다.”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간) 국립국악원이 제작한 ‘꼭두 이야기’의 미국 뉴욕 링컨센터 상영을 이례적으로 집중 조명했다. 지난달 29일 있었던 무대는 국립국악원의 음악극 ‘꼭두’를 영화화한 ‘꼭두 이야기’를 라이브 연주가 곁들여진 필름 콘서트 형식으로 선보였다. 뉴욕 아시안 영화제 특별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무대는 뉴욕 한국문화원 개원 40주년을 기념해 필름 앳 링컨센터와 뉴욕아시아필름재단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NYT는 ‘한국 정악과 민속악을 결합한 진귀한 예술’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정악이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고 악기들도 정교한 반면, 민속악은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음악으로 서로 매우 다른 특징과 역사를 갖고 있다”고 소개한 뒤 두 음악이 함께 연주되는 것이 얼마나 이례적인지를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영화와 국악을 합친 작품이라는 점이 부각됐지만, 해외에서는 ‘제 양식의 종합’이라는 측면이 더 크게 부각된 것이다. 이어 NYT는 방준석 음악감독과 이종길 국립국악원 정악단 악장과의 인터뷰를 소개하며 ‘꼭두 이야기’의 뒷얘기를 함께 전했다. 방 감독은 원래 정악과 민속악을 합친 대안 음악을 작곡하려고 했지만, 결국 두 장르를 섞는 쪽으로 작업 방향을 정했다. 그는 “정악은 감정적인 굴곡이 거의 없는 음악이고, 그 음악이 가진 깊이로 인해 고요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반면 민속악은 극도로 날카로운 부분도 있고, 반대로 굉장히 부드러운 부분도 있다”면서 “두 장르를 교합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악장은 “‘꼭두 이야기’의 창작음악이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친숙하게 들린다”며 “마치 두 마리의 용이 뒤얽힌 것 같다”고 소개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인사] 연천군, 전북도, 경남 창원시

    ■ 연천군 ◇ 4급 △ 투자개발국장 양홍주 ◇ 5급 △ 의회사무과장 이경일 △ 농업정책과장 전덕천 △ 장남면장 직무대리 조주연 △ 통일평생교육원장 직무대리 최재범 ■ 전북도 ◇ 팀장급 △ 감사총괄팀장 이진관 △ 회계감사팀장 조윤정 △ 보조금감사팀장 박상기 △ 조사감찰팀 한병국 △ 균형발전팀장 박순임 △ 재정투자심사팀장 이영란 △ 재정평가팀장 왕복희 △ 법무팀장 손미정 △ 행정심판팀장 김숙영 △ 대도약관리팀장 임다희 △ 인구정책혁신팀장 최덕주 △ 잼버리기획팀장 김도연 △ 잼버리홍보팀장 양승수 △ 안전정책팀장 이광영 △ 생활안전팀장 서문연 △ 경보통제팀장 정성용 △ 사회재난예방팀장 박동우 △ 자연재난예방팀장 김황중 △ 자연복구지원팀장 정영국 △ 기록관리팀장 이관영 △ 민원팀장 양기양 △ 재산관리팀장 이신향 △ 생생마을팀장 정웅 △ 농촌개발팀장 황왕연 △ 친환경농업팀장 고주교 △ 농산물유통팀장 정귀만 △ 농민소득안정팀장 유용렬 △ 동물보호팀장 이병종 △ 양식가공유통팀장 최종년 △ 해양환경팀장 유용훈 △ 예술지원팀장 유봉희 △ 문화콘텐츠팀장 채경임 △ 도서관문화시설팀장 김홍경 △ 관광마케팅팀장 임수택 △ 마이스산업팀장 정영덕 △ 체육진흥팀장 김정철 △ 태권도스포츠산업팀장 백종호 △ 체육시설관리팀장 김원식 △ 종무팀장 조영임 △ 가야백제팀장 배은하 △ 자연환경팀장 장범식 △ 생태관광팀장 안재현 △ 미세먼지대응팀장 한상훈 △ 토양지하수팀장 김형남 △ 숲문화팀장 장성기 △ 산림경영팀장 황인옥 △ 보훈복지팀장 주정희 △ 여성정책팀장 이영란 △ 장애인복지팀장 이동영 △ 보건의료산업팀장 노창환 △ 감염병관리팀장 이정희 △ 식의약안전팀장 문민수 △ 도시계획팀장 윤근배 △ 지역발전팀장 최기만 △ 산단조성지원팀장 이소영 △ 하도급지원팀장 김갑수 △ 대중교통팀장 황병만 △ 도로교통팀장 박정남 △ 도로계획팀장 육완만 △ 도로시설팀장 박성진 △ 하천관리팀장 안종환 △ 도시경관팀장 국철인 △ 공동주택지원팀장 황대연 △ 토지관리팀장 김이종 △ 지적정보팀장 장승규 △ 공간주소팀장 이주심 △ 소방정보통신팀장 이영순 △ 경제정책팀장 조광희 △ 청년정책팀장 박선미 △ 창업지원팀장 라경엽 △ 외자유치팀장 한정배 △ 협동경제팀장 윤미례 △ 혁신산업팀장 최재길 △ 혁신도시팀장 이동현 △ 조선산업팀장 노여림 △ 소프트웨어산업팀장 이경순 △ 수소산업팀장 홍석호 △ 정무기획팀장 김종남 △ 남북국제협력팀장 이규호 △ 대외경제협력팀장 백순금 △ 오염원대책팀장 이현옥 △ 의회사무처 팀장요원 오세훈 최월하 △ 농업기술원 경리팀장 박린 △ 인재개발원 교육기획팀장 강희두 △ 핵심교육팀장 최강영 △ 사이버교육팀장 김종훈 △ 보건환경연구원 감염병검사과장 김천현 △ 농산물검사소장 김윤정 △ 미세먼지분석과장 정상돈 △ 서울사무소 도정협력팀장 허재영 △ 세종분소장 박영철 △ 수산기술연구소 어업기술센터장 송준재 △ 도로관리사업소 안전과장 서기현 △ 도립미술관 교육문화팀장 김현정 △ 어린이창의체험관 총무팀장 강남구 ◇ 파견 △ 한국국토정보공사 라형운 △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박태규 △ 여성가족부 정행란 △ 산림청 송경호 △ 감사원 양희문 △ 국민권익위원회 김평곤 △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손순이 △ 자치분권위원회 김인식 △ 전북연구원 김인숙 △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이혜성 △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이복자 △ 군산의료원 유미경 △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박연화 △ 새만금사업 범도민지원위원회 최미경 △ 전북개발공사 심수용 △ 한국농어촌공사 이종찬 ◇ 파견 요원 △ 김호식 장희준 권병만 류웅렬 이상욱 ■ 경남 창원시 ◇ 4급 전보 △ 성산구청장 이영호 △ 기획예산실장 안병오 △ 스마트혁신산업국장 류효종 △ 환경녹지국장 조현국 △ 문화관광국장 황규종 △ 성산구 대민기획관 차상희 ◇ 4급 승진 △ 경제일자리국장 박진열 △ 복지여성국장 정시영 △ 농업기술센터소장 오성택 △ 하수도사업소장 이연곤 △ 마산합포구 대민기획관 박영화 △ 진해구 대민기획관 강춘명 △ 진해보건소장 정혜정 △ 내서읍장 강병곤 ◇ 5급 전보 △ 안전건설교통국장 직무대리 최영철 ◇ 5급 승진 △ 시민소통담당관실 윤상철 △ 기획관 홍순영 △ 예산법무담당관 김경희 △ 평생교육담당관 정숙이 △ 평생교육담당관 최영숙 △ 자치행정과 서홍석 △ 자치행정과 윤선한 △ 인사조직과 박영미 △ 체육진흥과 박무진 △ 경제살리기과 박동진 △ 미래전략산업추진단 정재윤 △ 일자리창출과 강호권 △ 투자유치과 윤근희 △ 투자유치과 장현 △ 세정과 제정애 △ 환경위생과 유상근 △ 사회복지과 백이라 △ 보육청소년과 이정민 △ 노인장애인과 조희수 △ 문화예술과 우영대 △ 관광과 심동섭 △ 해양항만과 정순우 △ 도시계획과 김종문 △ 주택정책과 윤정근 △ 시민안전과 김성환 △ 세정과 조영완 △ 성산구 세무과 허순규 △ 정보통신담당관 이상문 △ 사회복지과 윤성주 △ 대중교통과 김창수 △ 농업정책과 강종순 △ 시민공원과 김동규 △ 시민공원과 이원기 △ 산림녹지과 조현민 △ 환경위생과 이미숙 △ 문화위생과 한상석 △ 환경위생과 문용주 △ 도시재생과 정회교 △ 해양사업과 이상인 △ 도시계획과 최재호 △ 건축경관과 이종민
  • 아프리카에서도 캐비아가 생산된다고?… 마다가스카르, 阿 최초·유일 생산

    아프리카에서도 캐비아가 생산된다고?… 마다가스카르, 阿 최초·유일 생산

    철갑상어, 수정란 형태로 러시아서 수입…부화·양식“좋은 캐비아? 입 안에서 또르르…신선한 버터향”아프리카에서도 특유한 야생으로 유명한 마다가스카르가 아프리카 최초이자 유일한 철갑상어알(캐비아) 생산지로 명성을 얻게 됐다고 AFP가 3일 보도했다. 캐비아는 거위의 간과 송로버섯과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꼽힌다. 캐비아 생산은 가난에 찌든 이 나라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사업이지만 사업가들은 고급 식재료를 생산함으로서 마다가스카르의 경제를 일부나마 향상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본다. 캐비아 양식이 큰 도박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로바 캐비아 대표 데파이네 다비지스는 “많은 사람이 우리를 비웃습니다”면서도 “마다가스카르 캐비아는 아프리카와 인도양에서 현재 유일하게 생산된다”고 말했다. 모잠비크 연안에서 떨어진 이 섬나라는 캐비아를 전세계 생산 분량에 비교하면 극히 일부를 생산한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340t이 생산됐지만 이곳에선 겨우 1t이 나왔다. 곧 생산을 5t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다비지스는 “우리 모두는 미식가이며, 이런 생각이 우리의 목표가 되었습니다”며 “마다가스카르는 코코아, 바닐라, 새우, 여지와 같은 희귀한 곡물이 생산되는 매우 특별한 환경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캐비아를 추가하고 싶었습니다.”고 말했다. 수정되지 않은 알을 생산하는 철갑상어는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동쪽의 해발고도 1400m에 위치한 만타소아 호수에서 양식한다. 철갑상어 양식과 관련한 전문가들이 해외에서 들어와 직원들을 훈련시켰다. 흰색 장화를 신은 세이 사헴사는 “치사율을 낮추기 위해 수정란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며 먹이를 너무 많이 줘도, 적게 줘도 안된다”고 말했다. 철갑상어는 알을 밴 상태로 러시아에서 수입되며, 특별한 부화시설에서 부화시킨다. 치어가 7g이 되면 담수연못으로 이동된다. 500g에 이르면 커다란 사육장으로 옮겨져 양식된다. 1.5kg이 되면 수컷은 도살된다. 마다가스카르 만타소아 호수에 수입된 수정란이 처음 도착한 것은 2013년이지만 독립기념일인 2017년 6월 26에서야 처음 캐비아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캐비아의 품질은 채취하는 사람의 실력에 달려있다. 한 손에 칼을 든 카스통 소아바니 토마스(23)는 철갑상어의 배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갈라 알을 추출한다. “처음엔 알을 망쳐버리거나 오염시킬까 두려웠습니다만 지금은 모든 게 거의 자동적으로 됩니다”마다가스카르산 캐비아는 100g당 100유로(14만 7000원 상당)로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한 맛 감식가는 “좋은 캐비아는 입 안에서 또르르 구르며, 신선한 버터 향이 난다”고 말했다. 생산한 알이 정상으로 판정받으면 이웃나라 고급 레스토랑과 숍에 비싸게 팔려나간다. 한편 기네스북 세계기록에 따르면 최고가 캐비아는 이탈리아 연안 알비노 철갑상어에서 추출한 것으로 kg에 2만 5000달러를 넘는다고 AFP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산소부족 물덩어리 남해 서부해역으로 확장

    국립수산과학원은 남해 동부 해역에서 발생한 산소부족 물덩어리가 남해 서부 해역까지 확장하고 있다고 3일 밝혔다. 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달 24~28일 경남 고성군 자란만과 한산만,전남 여수 가막만 저층에서도 용존산소(DO) 농도가 리터당 3㎎ 이하인 산소부족 물덩어리가 관측됐다. 산소부족 물덩어리는 5월 31일 경남 진해만 안쪽 일부 해역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통영 연안과 고성만 안쪽을 지나 여수에 이르기까지 서부 해역으로 확산했다. 아직은 세력이 약한 상태이지만,수온이 본격적으로 상승하는 이달부터 규모가 더욱 확대 돼 10월∼11월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산소부족 물덩어리가 가두리 양식장 등에 덮치면 기르는 물고기가 폐사하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수산과학원 관계자는 “ 발생해역 주변의 굴·홍합 등을 줄에 매달아 기르는 패류 양식장의 경우 줄 길이를 짧게 조절하고,어류 양식장은 양식어류 밀도를 낮추고 먹이 공급량도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순종 조문 온 총독 노렸던 ‘금호문 의거’… 6·10 만세 자극제로

    순종 조문 온 총독 노렸던 ‘금호문 의거’… 6·10 만세 자극제로

    1926년 4월 28일 오후 1시 10분쯤 서울 창덕궁 금호문 앞. 사람 무리 속에서 건장한 청년이 자동차 한 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동차에는 일본인 3명이 타고 있었다. 금호문을 빠져나온 자동차는 돈화문 쪽으로 갔다가 길이 막혀 다시 금호문 쪽으로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군중 속에서 누군가 “사이토 총독이다”라고 수군거렸다. 청년은 비호처럼 뛰어올라 왼손으로 자동차 창을 잡고 날카로운 칼로 가운데 앉은 사람을 찌르려 했다. 왼쪽 사람이 저지하기에 그 사람을 공격하고 다시 가운데 사람을 찔렀다. 빠르기가 전광석화와 같았다. 총독 처단에 나선 주인공은 평범한 조선 청년 송학선이었다.불행히도 가운데 사람은 일본 총독 사이토가 아니었다. 송학선 의사(義士)가 사이토로 오인하고 처단한 사람은 생김새가 비슷한 일본인민회 이사 사토였다. 왼쪽 사람은 경성부협의원(국수회조선본부이사) 다카야마였다. 이들은 순종 황제 빈소에 조문하고 나오던 길이었다. 송 의사는 재동 쪽으로 달아났다. 휘문고보 교문 앞까지 달아나자 경찰 수십명이 추격했다. 일경들은 칼을 휘두르고 돌을 던지면서도 감히 근접하지 못했다. 겁에 질린 헌병 두 명이 권총탄을 서너발 쏘았다. 하지만 의사는 “오냐, 쏘아 죽여라”라고 하면서 두 팔을 떡 벌렸다. 결국 의사는 머리에 상처를 입고 일경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의사는 구경하던 학생들에게 “만세를 불러라, 만세를 불러”라고 소리쳤다. 다카야마는 사망했고 총독으로 오인받은 사토는 중상을 입었다. 송 의사가 활극 배우처럼 거사를 일으킨 날은 순종 황제가 굴욕적인 삶을 이어 가다 승하한 13일 후로 백성이 비탄에 빠졌을 때였다. 일제는 송 의사 의거 직후에는 보도를 통제해 5일 후에야 언론을 통해 의거가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송 의사의 의거는 ‘금호문(金虎門) 사건’이라 이름 붙여졌다. 비록 오인으로 실패했지만 순수한 청년의 단독 의거는 6·10 만세운동을 일으킨 자극제가 되었다.의사는 1897년 2월 19일 서울 천연동에서 태어났다. 아우들의 이름도 우학선(又學善·또학선), 삼학선(三學善)이었다. 의사가 보통학교 1학년에 다닐 때 아버지의 사업 파산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의사도 떠돌이 생활을 했고 16세 때 장사를 하러 갔던 아버지가 돌아와서 가족이 다시 모였다. 19세 때 서울 남대문에 있는 농구(農具) 회사에 취직했다. 집안 살림이 조금씩 나아졌고, 1922년 2월 애오개(아현) 마루턱 북아현동에 오막살이 같은 작은 집을 마련해 이사했다. 그러나 의사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급성 각기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는데 치료를 한 끝에 1925년 봄에 완쾌했다. 송 의사는 고등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외유내강의 강직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한다. 의사의 성품과 자질에 대해 송상도의 ‘기려수필’에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과묵하여 일생을 두고 남과 언쟁을 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의사가 반일 감정을 느낀 것은 어렸을 때부터였다고 한다. 어느 날 진고개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았고 본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일본인 회사에 다니며 차별을 받았고, 병으로 강제 해고당하면서 그런 의식이 더 강해졌을 것이다. 그 후 의사는 조선 총독을 목표로 삼아 거사를 계획했다. 의사는 치밀하게 준비했다. 사이토 총독의 사진을 보고 용모를 머리에 담아 두었다. 틈만 나면 집 뒷산에 올라 칼 꽂는 연습을 했다. 막내아우 송삼학선씨는 월간지를 통해 이렇게 회고했다. “형님은 평소에 남한테 싫은 얘기 한마디 않고 지내던 양순한 사람이다. 내가 놀란 것은 형님이 날카로운 비수를 꼬나쥐고 나무 앞에서 찌르는 연습을 하는 일이었다. 나는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형님은 그저 빙긋이 웃기만 했다. 형님의 칼 쓰는 솜씨는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칼은 집수리를 하던 사진관 부엌에서 주운 서양식 고급 과도였다. 의사는 그때 미장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의사는 “하늘이 주신 것”이라고 기뻐하며 예리하게 갈아 놓았다. 기회가 오자 순하고 불우했던 청년은 단호하게 칼을 휘둘렀다. “나는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총독을 못 죽인 것이 저승에 가서도 한이 되겠다.”그해 7월 15일 의사의 제1차 공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법정에는 방청객 500여명이 몰려 재판을 지켜봤다. 의사는 재판장 앞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강경한 태도로 진술했다. 일제는 의거를 궁박한 생활을 못 이긴 강도질로 깎아내리려 했다. 재판장이 강도질을 하려고 칼을 주워다 둔 것 아니냐고 묻자 송 의사는 “총독을 암살할 목적으로 가지고 왔었소. 내가 밥을 굶소? 왜 강도질을 하겠소?”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무료로 변론했던 고 이인 변호사는 “의사의 얼굴에는 의연한 태도, 긍지가 보였다. 조국을 위해서 할 일을 했다는 말뿐이었다”고 회고했다. 일제는 처음에 중국에서 온 독립단원일 것으로 추측하고 배후를 캐려고 했지만, 그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도 몰랐던 일이었다. 1심에 이어 1926년 11월 10일 2심에서도 사형선고를 받은 의사는 태연자약한 태도로 “나를 사형에 처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북아현동 집에서 서대문형무소를 오가며 옥바라지를 하던 모친과 동생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1927년 5월 19일 오후, 비밀리에 사형이 집행됐다. 의사는 교수대에 오를 때도 태연했다.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주고 체포된 지 1년 만에 송 의사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시신은 화장했다. 몸져누운 모친에게는 사형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사후 92년이 지난 지금, 창덕궁 금호문으로 관광객들이 무심히 드나들고 있지만 의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의거 터 표지석도 주변 공사로 어디로 치워 버렸는지 찾을 수 없었다. 북아현동 의사의 집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5층짜리 다세대주택이 들어서 있다. 의사의 집터라는 표식도 없다. 송 의사의 유골은 서울 봉원사에 안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묘소는 가묘다. 장남이던 의사의 사형 집행 후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송 의사는 결혼하지 않아 직계 후손이 없다. 1962년 정부는 송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지만, 동생들과 그 후손들의 행방도 찾지 못하고 있다. 잊힌 의사의 충혼을 기리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03년 ‘송학선 의사 기념사업회’가 결성됐고 송주섭(88)씨가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송 회장은 송 의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송 의사는 은진 송씨인데 송 회장은 근원이 같은 여산 송씨 종중 대표라는 인연뿐이다. 그러면서도 사재를 털어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다.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이 명예회장,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이 법률고문을 맡아 송 회장을 돕고 있다. 사업회는 서울 세검정 상명대 아래에 기념관과 동상을 세울 부지 660여㎡를 마련했고 내년 6월 착공할 계획이다. 시가 6억원가량의 부지는 송 회장이 개인 땅을 기부한 것이며 사업비 10억여원도 지방의 송 회장 개인 토지를 처분해 충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송 회장은 “정부에서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안중근, 김구 선생 같은 분만 지원하려 하지 송 의사 같은 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며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글·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하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50여년 전 걸작들이 쏟아졌다

    하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50여년 전 걸작들이 쏟아졌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중흥기로 명명된다. 아직 텔레비전이 대중화하지 않은 시기, 영화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가장 사랑받는 매체였고 한국의 할리우드라 불린 서울의 충무로3가 일대는 제작자와 지방흥행업자, 감독과 각 분야의 스태프 그리고 스타와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쳤다.‘르네상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1960년대는 무려 1500편이 넘는 한국영화가 만들어졌다. 1962년 113편이었던 제작편수는 1965년 189편을 기록했고 1968년부터는 한 해에 무려 20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됐다. 이러한 양적 성장을 뒷받침한 것은 다양하게 시도된 장르였다. 멜로드라마, 코미디, 스릴러액션 등 대중적 장르영화부터 한국식 작가주의 영화라고 할 문예영화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들이 만들어져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국가 주도의 영화기업화 정책이 가동되고 있었던 것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번 연재는 1960년대 전반기의 한국영화계를 살펴본 후 1960년대 초부터 두각을 나타낸 한국영화사의 거장 신상옥, 유현목 그리고 김기영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기로 한다. ●4·19와 5·16 사이 제작된 ‘오발탄’ 등 시대 반영 1960년 4·19 혁명과 1961년 5·16 군사정변 그리고 1년 7개월간의 군정에 이은 1963년 12월 제3공화국의 출범까지, 영화계 역시 한국 근대사의 정치적 격변기와 연동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4·19와 5·16 사이,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영화계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1960년 8월 영화윤리전국위원회가 만들어져 영화검열 업무가 민간으로 이관된 것이 결정적이다. 위원장 이청기, 부위원장 이진섭, 전문위원 허백년, 최일수 등의 이름에서 당대 문화계 지식인들이 대거 참가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설립된 민간 자율 심의기구는 5·16 군사쿠데타와 함께 해체되고 만다. 그간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작품들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의 주목할 지점이다. 대표적으로 ‘오발탄’(유현목), ‘마부’(강대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삼등과장’(이봉래), ‘현해탄은 알고 있다’(김기영) 등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 1961년의 관객들과 만났다. 이 영화들은 기존의 한국영화를 넘어서는 현실 비판적 주제와 대담한 표현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한편 전통과 근대적 가치가 경합하는 양상을 포착하며 깊은 공감을 끌어냈다. 특히 ‘오발탄’은 5·16 이후 상영 중지 등 정치적 고초를 톡톡히 겪었다. 당시 심의 서류에 따르면 영화 전반의 어두운 분위기 즉 “예술적인 견지에서는 우수하나 5·16 이전의 사회악과 국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 문제가 됐다. ●급격한 근대화에 기반한 성장… 내면은 부실 군사정권은 강력한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추진했고 영화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61년 9월 군소 영화제작사 72개사를 16개사로 통합한 데 이어 1962년 1월 20일 최초의 영화법이 제정·공포됐다. 1963년 3월 영화법 1차 개정은 영화산업의 기업화를 정부가 주도하는 제도적 근거가 됐다. 목표는 안정적인 제작 시스템 구축이었지만 실질적인 체질 개선이 힘들다 보니 정부 주도의 인위적인 정책이 대신했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사 등록 요건의 강화이다. ‘35밀리 이상 촬영기, 조명기, 건평 200평 이상의 견고한 시설로 된 스튜디오, 녹음기, 전속의 영화감독·배우 및 기술자’를 구비해야 영화업자로 등록할 수 있었고 연간 15편 이상의 제작 실적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등록을 취소당할 수 있었다. 이에 1963년 6월 21일 한국의 영화사는 순식간에 극동, 한양, 한국영화, 신필름의 4개사로 정리되고 만다. 국책에 의한 영화기업화는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등록된 영화사들은 등록 유지를 위해 형식적으로만 조건을 채우기 일쑤였고 개인 프로덕션의 자율적인 창작 활동은 원천적으로 봉쇄됐다. 사실 영화법에 의해 등록된 영화사가 서류상 올린 감독, 배우, 기술진은 대부분 허위였고 연간 15편 이상의 극영화 제작 실적은 등록제작사의 자체 제작보다는 군소 프로덕션의 ‘대명제작’으로 채우는 것이 현실이었다. 즉 등록이 힘든 영화사가 등록된 제작사와 계약해 그 회사의 이름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당시 한국영화계의 가장 일반적인 제작 방식이었다. 급기야 영화인협회가 중심이 된 영화법폐기촉진위원회가 1964년 3월 영화법 폐기를 건의하며 나섰고 결국 1966년 8월 영화법 2차 개정 때 가장 현실성이 없었던 녹음시설 및 감독, 배우, 기술자 전속제에 관한 규정만 삭제된다. 이처럼 196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국가 주도의 근대화에 기반하고 있었다. 한국영화계 역시 급격히 확대된 외양에 비해 그 내면은 부실한 상황을 연출하며 이른바 한국식 근대화의 특징적 모습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특히 흑백 시네마스코프(와이드스크린)나 후시녹음 등 기술적인 부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서구영화의 일반적인 기준인 컬러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1960년대 후반에야 정착할 수 있었고 영화 속 인물들의 목소리는 실제 촬영 현장의 배우가 아닌 녹음실 성우들의 후시녹음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이는 당시 한국의 경제 상황에 맞게, 영화계가 가장 합리적인 제작 방식을 모색한 것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이제 1960년대 초에 두각을 나타낸 한국영화사의 특별한 감독 세 명을 살펴볼 차례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업성과 예술성 어느 쪽도 놓치지 않는 대중적 작가주의를 실천하며 1960년대 한국영화계를 주도하게 된다. 바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의 신상옥, ‘오발탄’(1961)의 유현목 그리고 ‘하녀’(1960)를 연출한 김기영이다. 이들은 한국영화사의 걸작들로 평가받는 작품들을 내놓으며 1960년대 르네상스의 폭과 깊이를 두루 만족시키고 있었다.●영화산업의 ‘최전선’에 섰던 감독 신상옥 신상옥(1926~2006)은 영화사 신필름의 대표이자 감독으로 1960년대 한국영화계를 주도한 인물이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외국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던 그는 나운규와 찰리 채플린을 영화적 스승으로 꼽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고 한다.그가 직접 가르침을 받은 감독은 최인규다. 해방 직후 ‘자유만세’(1946)를 보고 감명을 받은 그는 ‘죄없는 죄인’(1947) 등 최인규의 이후 작품에 참가해 영화를 배운다. 감독 데뷔는 6·25전쟁 시기 피란 도시 대구에서 완성한 ‘악야’(1952)였다. 피란지 작가의 암울한 일상을 그린 ‘악야’는 현재 필름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과 장르 영화의 화법을 결합해 전후 사회의 공기를 포착한 그의 1950년대 대표작 ‘지옥화’(1958)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홍성기의 ‘춘향전’과 경쟁한 ‘성춘향’(1961)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신상옥의 ‘신필름’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의 중심으로 당당히 진입했다. 사실 주식회사 신필름은 당시 정권이 제시한 영화기업화 정책에 가장 부합하는 영화사였다. 덕분에 감독 신상옥도 영화제작자로서의 기반을 다짐과 동시에 영화작가로서 이름을 찾는 데 열중할 수 있었다. 1975년 ‘장미와 들개’ 검열 사건으로 정권과 사이가 멀어졌고 신필름 역시 영화사 등록이 취소됐다. 1978년 그의 페르소나이자 부인이었던 최은희가 북한으로 납치됐고 이어 신상옥도 납북됐는데, 그들의 동지적 관계는 1983년 이후 북한 신필름 촬영소에서도 계속됐다. 둘은 ‘소금’(1985) 등 7편의 작품을 함께하다 1986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참석을 기회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할리우드에서 신(Sheen) 프로덕션을 설립해 ‘닌자 키드’ 시리즈를 흥행시키기도 했던 신상옥은 ‘겨울이야기’(2004)를 유작으로 남겼다.●충무로 시스템 속 ‘작가주의’ 감독 유현목 유현목(1925~2009)은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예술영화의 지분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던 감독이다. 특히 ‘김약국의 딸들’(박경리 원작·1963), ‘카인의 후예’(황순원 원작·1968) 등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그의 문예영화는 이 시기 한국영화의 예술성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 태생으로, 동국대 국문과 2학년 때 영화예술연구회를 조직해 ‘해풍’(1948·45분)을 연출했고 ‘최후의 유혹’(1953·정창화)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이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 조감독을 거치는 등 현장 경험을 충분히 쌓은 후 ‘교차로’(1956)로 데뷔했다. 평생의 동반자인 서양화가 박근자와 결혼한 때는 1958년이다. 1950년대 후반 유현목은 ‘그대와 영원히’(1958) 등 그만의 미장센이 뚜렷한 멜로드라마를 선보였고 13개월에 걸쳐 제작한 ‘오발탄’을 공개하며 독보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등극한다. 6·25전쟁 이후 한국의 빈곤한 현실과 정신적 불안을 영상화한 한국영화사의 걸작이다. 그는 1980년대 초반까지 ‘순교자’(1965), ‘막차로 온 손님들’(1967), ‘분례기’(1971), ‘장마’(1979), ‘사람의 아들’(1980) 등의 문예영화를 통해 예술영화 감독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했다. 뿐만 아니라 ‘아낌없이 주련다’(1962) 등의 흥행용 멜로드라마, ‘공처가삼대’(1967) 같은 세련된 코미디, ‘수학여행’(1969) 같은 아동드라마로 장르 불문하고 뛰어난 연출력을 입증했다. 또한 그는 충무로 영화계에서는 드물게 극장 개봉을 위한 실험영화 ‘춘몽’(1965)을 연출해 음화제조 혐의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1970년 ‘한국소형영화동호회’, 1978년 독일문화원을 중심으로 한 ‘동서영화연구회’를 이끌며 실험영화 제작과 영화 연구를 병행하던 그는 1976년부터 1990년까지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감독 김기영 김기영(1919~1998)은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독특한 영역을 개척한 인물이다. 본인이 설립한 영화사에서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그만의 미학과 주제 의식을 놓치지 않았고 이 영화들은 대중 관객과의 소통에도 성공했다. 평양고보 시절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전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1940년 졸업 후 일본 교토로 건너가 독학으로 연극과 영화를 공부하는 ‘문화방랑객’으로 살았다. 해방 후 경성대 의학부에 진학해 이후 서울대 최초의 통합 연극반을 이끌었고, 이때 동창이자 연극반원이었던 김유봉과 결혼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피란지 부산의 미공보원(USIS)에 소속돼 ‘리버티 뉴스’를 만들었고 1955년 ‘주검의 상자’를 연출하며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두 번째 작품 ‘양산도’(1955)로 김기영 영화 세계의 원형을 제시한 후 ‘초설’(1958)과 ‘십대의 반항’(1959)에서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드러냈다. 김기영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영화 세계를 알린 것은 1960년에 발표한 ‘하녀’에서다. 스릴러 장르로 대중성을 취하는 동시에 당시 한국영화의 절대적 가치라 할 리얼리즘 양식을 과감히 거부한 작품이다. 김기영 영화의 진수인 ‘하녀’ 속 인물 구도는 ‘화녀’(1971)와 ‘화녀’(1982)로 변주됐고 또 다른 결인 ‘충녀’(1972)는 ‘육식동물’(1984)로 변형되면서 당대 사회의 불안한 공기를 담아냈다.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심연까지 파헤치는 그로테스크한 세계관, 영화 속 공간으로 계급 구조를 묘사하는 뛰어난 연출력 등 봉준호 같은 후배 감독들이 그를 칭송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을 계기로 젊은 관객들에 의해 재발견된 김기영은 1998년 ‘하녀’ 시리즈의 90년대식 변주인 ‘악녀’의 연출을 앞두고 평생의 지지자 김유봉과 함께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송환법 상징’ 홍콩 의회 뚫렸다… 성난 시위대 유리문 깨고 진입

    ‘송환법 상징’ 홍콩 의회 뚫렸다… 성난 시위대 유리문 깨고 진입

    송환법 완전 철폐·캐리 람 장관 사퇴 요구 홍콩 정부·여당 송환법 통과시키려던 곳 경찰 저지에도 수백명 물리력 동원해 진입 시위대, 의회 마크 훼손·시설 일부 파괴 입법회, 사상 최초로 ‘적색경보’ 발령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 지 22년이 되는 기념일에 홍콩 시민은 더 큰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의회를 점거했다. 1일 AFP통신, BBC, 현지 언론에 따르면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을 맞아 홍콩 시민 수십만명이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 완전 철폐, 캐리 람 행정장관 사퇴 등을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벌인 가운데, 일부 시위대가 물리력을 동원해 입법회 건물에 진입해 의사당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경찰은 건물 밖에서 이들의 접근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밀려드는 시위대가 늘어나면서 건물 안으로 밀려났다가 밖으로 쫓겨났다. 입법회 건물 안엔 시위대 최소 수백명 이상이 진입했고, 건물 밖엔 수천명이 둘러쌌다.주권 반환을 기념하는 국기게양식이 예정된 이날 오전부터 수천명이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도로를 점거한 캐리 람 장관의 사퇴와 법안 완전 철회, 최근 체포된 시위자들에게 제기된 공소 취하 등을 요구했다. 홍콩 정부 관계자들과 중국 정부 대표단 등은 이 때문에 국기 게양식을 실내에서 지켜봤다. 일부 시위대가 철제 카트 등을 이용해 입법회 건물 유리문을 부수는 등 진입을 시도하면서 기념식은 예정된 시간보다 앞서 종료됐다. 저녁 무렵 약 50만명의 시민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거리를 행진하는 가운데, 강경 시위대는 의회 건물 진입을 계속 시도했으며 이날 밤 의사당 진입에 성공했다. 강경 시위대가 인근 정부 청사가 아닌 입법회를 점거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이곳이 홍콩 정부와 여당이 시민들이 반대하는 송환법을 통과시키려던 공간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위대가 스프레이 페인트로 의회 마크를 훼손하고, 곳곳에 중국 송환 반대를 뜻하는 ‘反送中’ 등의 글씨를 적는 등 시설 일부를 파괴하자 입법회는 사상 최초로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AFP통신은 이들이 수년간 주권 반환 기념일에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군중을 동원해 왔지만 중국으로부터 어떤 양보도 얻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홍콩당국은 설상가상으로 송환법을 추진해 지난달 3주간 수백만명이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22년 전 홍콩 주권을 주고받은 영국과 중국은 당시 맺은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 약속을 두고 날 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BBC는 영국이 홍콩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할 것을 중국과 홍콩 당국에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부장관은 30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최근 홍콩 시위들은 우리의 홍콩반환협정에 대한 약속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면서 “반환협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으며, 조인 당시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내정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양국의 연합성명이 규정한 영국의 관련 권리와 의무는 이미 모두 이행됐다”면서 “홍콩에 관한 사무는 완전히 중국 내정으로, 어떤 국가도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영국은 번번이 홍콩과 관련한 일에 간섭을 한다”며 “우리는 이에 대해 강력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한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노트르담 5년내 재건 좌절?…전문가 “회의적” 부자들은 지갑 닫아

    노트르담 5년내 재건 좌절?…전문가 “회의적” 부자들은 지갑 닫아

    지난 4월 화마로 첨탑과 지붕이 소실된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 작업이 순탄치 못한 상황이며 완벽한 복원이 가능할 지조차 불분명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관계자들을 인용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성당 화재 직후 대국민 담화에서 “5년 내 더 아름답게 재건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대성당 복원 프로젝트 담당자인 앙투안느 마리 프레오는 FT에 “성당 내부 아치형 구조물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점들이 남아있다”면서 “성당 외벽을 지탱하는 지지대가 강화되기 전까지 구조물에 비계(임시가설물)를 설치하는 것이 너무 위험해 작업자들이 피해 상황을 그동안 평가할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고딕양식의 건물은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두 개의 벽을 가지고 있는데, 외부의 지지대가 이 벽들을 지탱한다. 내부의 아치형 구조물이 충분히 견고하지 않으면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면서 “지붕이 무너져 내리면서 남쪽으로 향하는 성당의 꼭대기 역시 위태로워졌다”고 설명했다. 화재 이후 대성당 내부로 취재진의 출입이 허용된 것은 처음이라고 FT는 덧붙였다.마크롱 대통령은 화재 다음날인 4월 16일 “5년 안에 노트르담 보수 공사를 마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프랑스 문화부의 수석 건축가인 샤를로트 위베르는 “불행히도 우리들 중 누군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가톨릭 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850년 역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지난 4월 15일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에 휩싸여 나무로 만든 지붕과 첨탑이 붕괴하는 등 큰 피해를 봤다. 화재 직후 프랑스를 비롯한 전세계 곳곳에서는 재계 거물과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기부 서약 행렬이 이어졌으나 실제 지난 두달여 간 모금 실적은 크게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트르담 재단은 이번 주 기준 루이뷔통 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일가가 기부하기로 약속한 3억 유로 가운데 1000만 유로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또 국내외 4만 2000명의 개인과 60개 공공단체가 기부한 금액은 3800만 유로로 집계됐다.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 로레알을 소유한 베탕쿠르 가문은 2억 유로를 내놓기로 약속했으나 실제 기부를 이행하지는 않았다고 FT는 전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대성당 복원에는 8억 5000만 유로(약 1조 1193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프랑스 검찰은 지난 26일 화재 발생 후 처음으로 성명을 통해 방화·테러 등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의 발생 원인으로 볼만한 범죄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직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화재 당시 노트르담 대성당은 첨탑 부근 등에서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내 별명은 하모…먹어 보면 불끈, 원기 회복 후끈

    내 별명은 하모…먹어 보면 불끈, 원기 회복 후끈

    무더위 철이 성큼 다가왔다. 여름을 잘 나려면 고단백 음식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조상들은 예부터 보양식으로 장어를 즐겼다. 갖은 양념을 곁들인 탕 요리를 으뜸으로 쳤다. 요즘은 날것인 회와 ‘샤부샤부’로 즐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장어류는 4종류가 있다. 붕장어, 뱀장어, 갯장어, 먹장어다. 붕장어(일명 아나고)는 횟집 수족관에서 사시사철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양식은 하지 않고 연안과 먼바다를 오가며 통발낚시로 잡는다. 애주가 등이 탕이나 구이, 회 등으로 즐기는 음식이다. 뱀장어는 바다에서 산란 후 민물에서 서식하지만 남획으로 씨가 말랐다. 시중에 나오는 것은 대부분 양식이다. 먹장어(곰장어)는 야행성 연골어류로 얕은 바다의 모래나 펄 속에서 살며 몸체에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있다. 주로 겨울철 술안주용 구이로 이용된다. 이 가운데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은 갯장어(일명 하모)다. 갯장어는 여름 한철 반짝 나왔다가 사라지는 데다 맛 또한 일품이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 참장어, 개장어, 바닷장어로도 불린다. 갯장어는 최고 길이 2m까지 자란다. 등 쪽은 다갈색이며 배는 흰색이다. 이빨은 매우 날카롭다. 수심이 깊은 해역의 모래와 펄이 섞인 지역에 서식하며 야행성이다. 남해안에서도 상대적으로 개펄이 발달하지 않은 완도 해역에서는 거의 잡히지 않는다. 개펄이 광범위하게 분포한 득량만, 여자만 등이 주산지이다. 작은 새우와 게 등 갑각류를 먹고 살며 6~7월쯤 수심이 상대적으로 얕은 연안으로 이동해 산란한다. 서남해와 일본, 대만 등지에도 분포한다.요즘 득량만(고흥·장흥)~여자만(여수·순천)~경남 고성 등 서남해안 어민들은 갯장어 낚시에 한창이다. 어민들은 수백개씩 달린 주낙에 전어 등의 미끼를 달아 하룻밤가량을 바닷속에 놔둔 뒤 낚싯줄을 걷어 올린다. 줄줄이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갯장어는 살아 있는 상태로 지역 수협 등을 거쳐 대도시로 공급된다. 아무나 즐길 수도 없다. 사시사철 잡히지 않는 데다 생산량이 적어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싼 탓이다. 지난 24일 전남 고흥녹동수협 위판장에서는 모두 500㎏가량의 갯장어가 위판됐다. 가격은 ㎏당 4만 5000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30여년간 중매인으로 활동 중인 박휘봉(62)씨는 “지금부터 8월 15일쯤까지 본격적으로 갯장어가 출하된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전라도와 경남도 일부 해안 지역에서만 즐겼던 갯장어가 최근 들어 부산, 서울, 광주 등 대도시로 진출하면서 가격도 폭등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당 가격이 3만원을 넘어서면 국내 소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됐다”며 “갯장어를 즐기는 소비자가 급증하는 바람에 지난해 성수기 가격이 7만 5000원까지 올랐으나 없어서 못 팔았다”고 말했다. 해마다 생산량이 최고에 달하는 8월 15일을 전후해 가격이 크게 내린다. 정약전의 자산어보(1814년)에는 갯장어를 가리켜 “입은 돼지같이 길고 이는 개와 같아서 고르지 못하다. 뼈가 견고해 능히 사람을 물어 삼킨다. 오랫동안 설사를 하는 사람은 이 고기를 끓여 먹으면 이내 낫는다”고 했다.갯장어는 하모라는 별명처럼 공격성이 매우 강하다. 하모는 일본어 ‘하무’(물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어부나 낚시꾼이 갯장어를 선상으로 건져 올려놓으면 뱀처럼 입을 벌려 사람에게 달려들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이 물고기를 매우 좋아하며 주로 샤부샤부(유비키)를 해 먹는다. 우리나라와 일본 간 소득격차가 컸던 1980년부터 2000년 초반만 해도 갯장어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됐다. 실제로 갯장어가 시중에 널리 유통된 것은 10년 남짓에 불과하다. 갯장어가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은 특유한 맛과 풍미에서 비롯된다. 살코기를 발라내 끓는 육수에 데쳐 샤부샤부로 먹거나 날것을 회로 즐기는 방법이 있다. 기호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여수·광주 등 대도시 음식점에서는 회보다는 샤부샤부가 더 인기를 얻고 있다. 샤부샤부는 남녀노소 누구가 즐기며 육수에 따라 풍미는 천차만별이다. 이 지역 갯장어 요리집에서는 다시마와 멸치, 양파, 마늘, 표고버섯 등으로 푹 고아낸 국물이 기본 육수로 나온다. 여기에 양파, 부추, 미나리, 들깻잎 등 각종 채소를 넣어 데친다. 이어 깨끗하게 손질된 갯장어를 젓가락으로 집어 20~30초가량 익힌다. 살코기 색깔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만 익히면 된다. 너무 오래 익히면 살점이 부스러져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떨어진다. 이를 살짝 데친 깻잎, 양파 등에 싸서 잘게 다진 마늘과 버무린 된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 부드러운 살코기와 채소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살코기를 다 먹은 후 남은 육수에는 물에 불린 찹쌀과 잘게 썬 당근, 양파 등을 넣어 푹 끓여낸다. 달짝지근하고 감칠맛이 나는 어죽으로 재탄생한다. 요릿집에 따라 김치와 라면 사리를 넣어 식사 대용으로 내놓기도 한다. 해안가 식당이나 산지에서는 회가 더 인기다. 여름철 일반 생선류가 알이 배어 육질이 퍼석해지는 것과 달리 갯장어는 쫄깃하고 씹히는 맛이 고소해 미식가들의 입맛을 당긴다. 갓 잡은 갯장어의 껍질을 벗긴 뒤 가늘고 길게 썰면 맑고 투명한 살점의 단면에 무지개 빛깔이 돈다. 이는 싱싱함의 척도이다. 갯장어는 다른 장어류와 달리 살 속에 잔가시가 많다. 손질할 때 잔뼈가 씹히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갯장어의 쫄깃한 식감을 능가할 어류는 없다는 게 미식가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전라도에서는 주로 들깻잎이나 상추에 된장으로 쌈을 싼다.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와 간장 소스를 이용해 회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갯장어는 영양도 풍부하다. 특히 8월 15일 이후 잡히는 갯장어는 기름이 꽉 차 있어 노약자 영양식으로 안성맞춤이다. 갯장어를 통째로 고아낸 뒤 믹서에 갈아 국물을 체로 걸러내 끓이면 된다. 양파, 버섯, 호박, 참깨 등을 곁들이면 풍미가 배가된다. ‘동의보감’은 장어를 “오장이 허한 것을 보하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식품”으로 설명한다. 단백질 외에도 여름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A·B가 많이 함유돼 있다. 성인병 예방과 피로회복 기능이 탁월하고 껍질에는 피부탄력성 유지에 도움을 주는 콘도로이틴 성분이 있어 여성들로부터도 인기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닮은 듯 다른 장어의 세계 ① 붕장어: 일명 아나고. 가장 흔한 장어류죠 ② 뱀장어: 바다서 산란 후 민물에서 서식해요 ③ 먹장어: 얕은 바다 모래나 펄 속에 살아요 ④ 갯장어: 날카로운 이빨에 2m까지 자라요
  • 숨은 진주…태풍의 섬…神의 계단

    숨은 진주…태풍의 섬…神의 계단

    ●슈퍼태풍 연간 10번 통과하는 ‘바타네스’ 바타네스는 필리핀 최북단 루손섬과 대만 사이에 위치한 1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제도다. 필리핀보다 대만 쪽에 더 가깝다. ‘필리핀의 땅끝’이라 불리는 곳으로 필리핀 사람들도 가보고 싶어 하는 오지다. 바타네스의 별명은 ‘태풍의 섬’이다. 강한 태풍이 자주 지나가서 이렇게 불린다. 필리핀 태풍 관측 기준으로 슈퍼 태풍에 해당하는 초강력 태풍이 일년에 열 차례 이상 통과한다. 바타네스는 2000년대 초반까지 자급자족을 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물물교환을 하며 살았고 시장이 생긴 건 2005년이다. 바타네스가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태풍 때문이었다. 바타네스는 태평양 연안에서 불어오는 태풍의 길목에 놓여 있다. 바타네스 주변은 수많은 태풍이 만들어지는 진원지이기도 하다. 이곳 사람들은 시속 240㎞ 이상의 강한 바람이 불어야 태풍이라 부른다. 섬에는 ‘레이더 투콘’이라 불리는 레이더 기지가 있다. 미군이 대형 파라볼라 안테나를 세우려 했지만 강한 태풍이 불어 레이더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고 지금은 건물 잔해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태풍이 많다 보니 건축양식도 독특하다. 태풍에 견디기에 알맞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바닥을 깊게 파고 벽을 쌓아 올린다. 석회암으로 지어진 돌집은 벽의 두께가 1m에 달한다. 집 지하실에는 태풍이 불 때를 대비해 가축과 식량을 저장하고 사람이 대피할 수 있는 방공호가 만들어져 있다. 문과 창문이 모두 태풍이 오는 방향을 등지고 난 것도 이채롭다. 바타네스에서는 아주 독특한 고기잡이 방식을 볼 수 있었다. 바닷가에서 기다란 장대 두 개를 든 남자가 파도가 밀려 올 때마다 파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물을 던지는 것이었다. 태풍이 올 때는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작은 그물 낚시로 조업을 대신한다고 한다. 이를 ‘플라잉 네트’라고 부르는데, 그물을 V자 모양으로 만들어 바다를 향해 힘껏 던진 다음 재빨리 걷어 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걸로 작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쥐노래미 같은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 튀겨 먹는다.잦은 태풍으로 조업을 자주 나갈 수 없는 바타네스의 어부들은 생선을 오래 두고 먹기 위해 주로 자연 건조를 한다. 우리네 황태처럼 해풍에 말려 보관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건조하는 물고기는 ‘도라도’라 불리는 만새기다. 말린 고기는 1년 이상 두고 먹을 수 있다. 말린 도라도의 맛은 노가리와 비슷하다. 도라도와 함께 먹어야 하는 요리는 얌이다. 한국의 참마와 비슷하다. 바타네스 사람들은 쌀 대신 얌을 주식으로 먹는다. 거센 해풍 때문에 쌀농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얌은 고구마하고 감자를 합친 맛인데, 얌과 함께 도라도를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 모자람이 없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나빴던 것인지 바타네스에서 태풍과 맞닥뜨렸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슈퍼 타이푼”이라며 창문을 꼭꼭 걸어잠갔다. 태풍은 무시무시했다. 밤새 하늘이 울부짖는 듯했다.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리 사놓은 맥주를 홀짝이며 이 작은 섬이 태풍에 쓸려 나가지 않기를 비는 것뿐이었다. 아침이 되자 태풍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골목은 태풍이 지나간 흔적으로 어지러웠다. 나뭇잎과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몸통이 부러져 있는 나무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태연했다. 모닝빵을 파는 아이는 ‘빵 사세요’를 외치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녔고 빗자루를 든 아낙들이 태연하게 어지러운 골목을 쓸고 있었다.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주변의 나무전봇대는 벼락을 맞아 활활 불에 타고 있었는데 말이다. 바타네스 사람들에게는 태풍도 일상이었던 것이다.●스쿠버다이빙의 성지 ‘보홀’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약 700㎞ 떨어진 보홀. ‘필리핀의 보석’ ‘필리핀의 숨겨진 진주’ 등 별명은 많지만 보홀을 가장 잘 설명하는 별명은 ‘아시아의 홍해’다. 그만큼 다이빙 포인트로 유명하다. 다이버들 사이에선 ‘보홀은 몰라도 보홀 바다는 알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수많은 다이빙 포인트 가운데 팡라오섬 남서쪽에 위치한 발라카삭섬이 가장 뛰어나다. 팡라오섬에서 필리핀 전통배 방카로 약 30분 정도만 나가면 된다. 섬 주변 바다는 수심이 낮지만 조금만 나아가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깊어지는 절벽 지형이다. 물이 맑아 가시거리가 좋은 데다 파도가 잔잔해 수많은 다이버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스쿠버다이빙을 꼭 경험해 보길 권한다. 물 밖 풍경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숨이 멎을 듯 아름답다. 울긋불긋 아름다움을 뽐내는 산호 군락과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는 풍경은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커다란 바다거북이 등을 툭 치며 지나가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고래상어도 만날 수 있다. 스쿠버다이빙이 아니더라도, 스노클링만 경험하는 것으로도 보홀 바다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보홀섬 중앙에 자리한 초콜릿힐도 빼놓을 수 없는 비경이다. 경주의 왕릉처럼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봉우리가 끝도 없이 솟아 있다. 이런 언덕들이 무려 1700여개로 추정된다. 사실 필리핀을 찾기 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필리핀 하면 세부와 보라카이가 먼저 떠올랐고, 이 두 여행지는 누구나 한 번쯤 찾은 흔한 여행지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선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타네스와 보홀에 머문 시간 동안 필리핀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곳은 낙원에 가까운 곳이 아니라 진정한 낙원이었다. 아직도 바타네스와 보홀의 투명한 바다와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눈이 마주쳤던 형형색색의 열대어가 눈앞에 맴돈다. 여행을 갈 때 단 한 곡의 노래만 가져가라면 존 레넌의 이매진을 가져갈 것이고 단 한 곳만 가라면 그곳은 아마도 바타네스와 보홀 둘 중 한 곳일 것이다.●바나웨 계단식 논 길이만 ‘지구 반 바퀴’ 루손섬은 필리핀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필리핀의 중심 섬이다. 수도 마닐라도 이곳에 있다. 바나웨는 루손섬을 덮고 있는 ‘루손섬의 지붕’이라 불리는 최고 높이 2922m의 ‘코르디예라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작은 마을로 행정구역 상으로는 이푸가오주에 속하며 인구는 약 3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바나웨를 찾아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300여㎞ 떨어져 있지만, 해발 2000m급 산들이 줄지은 코르디예라산맥을 따라가다 보니 자동차로는 꼬박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지프니를 타고 포장도 안 된 산길을 덜컹거리며 고역스런 길을 가야 한다. 이 험준하고 작은 산골 마을이 명소가 된 이유는 라이스 테라스라고 부르는 계단식 논 때문이다. 코르디예라산맥의 가파른 산비탈을 깎아 만든 논들이 거대하게 펼쳐져 있는데, 직접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산 하나가 온통 논이라고 보면 된다. 도저히 벼농사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60, 70도의 가파른 경사를 따라 끝없이 층층의 논이 자리잡고 있다. 바나웨를 비롯해 인근 산악 지역의 논둑 길이를 모두 합하면 그 길이가 무려 2만 2240㎞에 달한다. 만리장성의 10배, 지구를 반 바퀴 도는 거리다. 1995년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쌀은 신… 산기슭에 2000년 세월 새긴 이푸가오족 이 장관을 만든 주인공은 이푸가오족이다. 이푸가오는 ‘언덕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2000년 전 코르디예라산맥에 정착했다. 이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산등성이를 일궈 논을 만들었다. 중국의 한족이 만리장성을 쌓고, 로마가 유럽과 지중해를 누빌 때 이푸가오족은 해발 2000m 고지대에 먹고살 방편으로 계단식 논을 조성한 것이다. 맨 아래 논이 가장 먼저 만든 것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최근에 만든 것인데, 나무의 나이테처럼 유구한 세월이 산기슭에 새겨진 셈이다. 게다가 이 논들은 모두 천수답이다. 농사를 전부 빗물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이푸가오족은 이 논 전체에 빗물이 돌아다닐 수 있게 대나무관으로 배수로까지 만들어 놓았다니 더욱 놀랍다. 계단 곳곳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 빗물을 저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물을 빼는 배수로를 연결해 논마다 물이 고르게 흘러갈 수 있도록 했다. 쌀이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보니 보관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이푸가오족 전통 가옥을 ‘발루이’라고 하는데, 3층 구조로 만들어진 목조가옥이다. 1층은 돼지나 닭 같은 가축을 키우는 곳이고, 2층은 원룸 형식으로 만들어진 주거공간으로 부엌과 침실을 갖추고 있다. 제일 중요한 3층은 쌀을 보관하는 창고다. 2층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 연기가 3층으로 올라가 쌀을 자연적으로 건조시켜 썩지 않게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쌀 수확을 마치면 제의를 지낸다. ‘뭄바키’라는 제사장을 불러 술과 고기를 마련해 쌀의 수호신인 ‘불룰’에게 바친다. 사람의 형상을 한 ‘불룰’은 라이스 테라스와 쌀을 지키는 이푸가오족의 수호신이다. 닭을 잡아 피를 빼고 배를 가른 다음 닭 내장을 꺼내어 ‘바일’이라고 부르는 점을 친다. 내장의 색깔과 상태로 길흉화복을 가늠한다. 제사가 끝나면 햅쌀로 지은 밥과 제를 올렸던 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눠 먹는다. 바나웨에서 버스를 타고 낭떠러지나 진배없는 가파른 산길을 하루 종일 달려가면 또 다른 이푸가오족 마을인 바타드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한 시간 정도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300여 가구가 살아가는 작은 마을인 바타드가 모습을 보인다. 워낙 접근하기 힘든 곳이라 마을까지 생필품을 가져다주는 짐꾼까지 있다고 한다. 바타드는 800계단 논으로 유명하다. 맨 아래에서부터 산 정상까지 논의 계단 수가 800개 달한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이 마을 역시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곳인데, 아직도 절구질을 해서 쌀을 빻는다. 키질을 하며 쭉정이를 날리는 것도 옛날 우리나라에서 하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산길 짐 나르던 나무자전거, 아이들 놀이기구로 바나웨와 바타드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아이들이 나무로 만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타는 자전거와 별반 다르지 않게 생겼다. 프레임과 바퀴가 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핸들로 방향 전환도 가능하다. 제동장치 역할을 하는 막대기가 있어 발로 밀면 그 자전거가 멈춘다. 하지만 페달이 없어 오직 내리막길에서만 달릴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쌀 축제 때는 나무자전거 경주대회도 연다고 한다. 이 나무자전거에 대한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짐을 가지고 비탈과 경사가 많은 산길을 걸어갈 일이 아득했던 이푸가오족들이 수고를 덜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처음의 용도를 떠나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놀이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푸가오족은 용맹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사냥을 잘하기로 소문나 있다. 지금도 그 풍습이 남아 있어 머리에 두개골 장식을 즐겨 한다. 노인들 머리 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원숭이 머리뼈나 도마뱀 머리뼈로 장식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입에 껌을 씹듯 뭔가를 질겅질겅 씹고 있다. 이것은 이푸가오족의 기호품이자 전통 약재인 ‘빈랑나무’ 열매로 잇몸을 튼튼하게 해주고 충치를 예방한다고 한다. 열매는 씹고 난 뒤에 침을 뱉듯 뱉는데, 두개골 장식을 한 노인이 빈랑나무 열매 때문에 빨갛게 변한 입술로 씩 하고 웃으면 사실 좀 무서운 생각도 든다. 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여행수첩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필리핀항공 등이 인천~마닐라를 운항한다. 마닐라에서 국내선을 타고 1시간 40분을 가면 바타네스에 닿는다. 세부에서 보홀까지는 배를 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부에서 보홀의 타그빌라란까지는 70㎞ 정도 떨어져 있으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루손섬 북부는 저지대와 산악지대의 기후가 확연히 나뉜다. 저지대는 전형적인 몬순 기후이지만 산악지대(코르디예라)는 겨울철 기온이 10℃ 밑으로 떨어진다. 12~4월은 건기, 6~10월은 우기다. 산악지대 토착민들의 마을을 방문할 땐 반드시 현지인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밑창이 튼튼한 운동화가 필수다.
  • 남해 국도공사현장에서 청동기 무덤과 비파형동검 출토

    남해 국도공사현장에서 청동기 무덤과 비파형동검 출토

    경남 남해군 창선면 지역에서 기원전 4~5세기 청동기시대 묘역시설을 갖춘 지석묘 등 무덤 2기와 비파형동검, 석부 등 다수의 유물이 발견됐다.남해군은 27일 삼강문화재연구원이 지난 5월부터 남해군 창선면 당항리 일원 ‘남해 국도3호선 위험도로 개선공사 건설현장’에서 문화재 발굴조사를 해 청동기시대 지석묘 2기와 구(溝), 집석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호 지석묘는 여러 겹의 덮개돌로 된 지하식 석관(石棺) 구조 위에 무게 23t이 넘는 상석이 올려진 형태다. 무덤 내부에서는 비파형동검이 3조각으로 나누어 부장돼 있었다.문화재연구원측에 따르면 제 행위 등의 풍습에 따라 일부러 3조각으로 파손해 부장한 것으로 보이는 비파형동검은 전체 길이 26㎝쯤으로 남해지역에서는 최초로 출토된 청동제 유물이다. 2호 지석묘는 장방형의 묘역시설을 갖춘 구조로, 인근 사천·진주·여수 등지에서 다수 확인된 남해안 지역의 특징적인 청동기시대 후기 무덤양식이다. 군은 묘역시설을 갖춘 지석묘의 구조와 비파형동검 등으로 미뤄 볼 때 지석묘에 묻힌 사람은 청동기시대 지역 유력자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군 관계자는 “그동안 청동기시대 무덤과 관련된 자료가 부족했던 남해군 지역에서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 유력한 지배집단의 실체를 알려주는 자료가 처음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유격훈련 뒤 먹고 싶은 급식 메뉴…“삼계탕·곰탕·냉면”

    유격훈련 뒤 먹고 싶은 급식 메뉴…“삼계탕·곰탕·냉면”

    군 장병들이 유격훈련 후 가장 먹고 싶은 급식 메뉴로 전복 삼계탕을 꼽았다. 27일 국방일보는 최근 국방부 인트라넷인 국방망을 통해 ‘유격훈련 후 가장 먹고 싶은 급식메뉴’를 주제로 6월 장병 ‘별별랭킹’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참가장병 25.1%가 전복 삼계탕을 꼽았다고 밝혔다. 그 뒤를 이어 ‘오징어 젓갈 곁들인 꼬리곰탕’(9.0%), ‘시원한 냉면’(7.7%)이 각각 2, 3위에 올랐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479명의 장병이 참여했다. 군에서 4∼6월은 ‘유격훈련의 계절’로 체력소모가 많은 훈련이기에 각 부대에서는 급식 메뉴로 다양한 보양식을 준비한다. 돼지고기볶음, 치킨, 삼겹살 구이, 감자탕, 한우 갈비탕, 매운 돼지 갈비찜, 돼지고기 김치찌개의 선호도도 높은 편이었다. 육군 27사단 장민철 병장은 “지난해 유격훈련 후 지친 몸으로 병영식당에 갔다가 전복 삼계탕이 메뉴로 오른 걸 보고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며 “무더위와 피로를 모두 풀어주는,별 5개 이상을 주고 싶은 메뉴”라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태양광을 건축자재로 만들어 재생에너지 산업 선도”

    “태양광을 건축자재로 만들어 재생에너지 산업 선도”

    “태양광사업은 땅, 물, 건물에서 가능합니다. 땅은 영농형 태양광, 물은 수상태양광, 건축물에는 저희가 선도하는 건물 일체형 태양광이 대세입니다” 국내 건물 일체형 태양광사업의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는 비제이파워의 김용식 대표. 그는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에너지는 ‘안보’이기에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태양광산업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는 물론, 미세먼지 없는 도시 에너지공급을 위해 국가는 이를 반드시 책임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에너지는 소비 절감과 소비자 생산이 중요하기에 산업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것 또한 국가의 몫이라 한다. “에너지절약 건축물인 패시브 하우스에 대한 기준이 북한에는 있는데 한국에는 없다는 말을 독일에 출장 갔을 때 들었다”며 이제 한국도 도시재생사업으로 태양광의 신시장이 활짝 열리길 기대한다. 비제이파워의 건물 외장재 태양광은 태양광과 건축자재의 융합산업으로 현재는 물론, 미래시장을 개척하는 선도적 역할이 기대된다.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융합산업은 농경지, 수상, 양식장 태양광은 물론, 도로의 차음판 태양광, 광고판 태양광, 태양광 예술작품(조형물) 등은 김용식 대표의 창의성과 선견지명 능력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경영철학인 ‘홍익’을 실천하여 전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애국 애족 애민의 리더이다. 과거 김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시행했던 ´전 직원 스톡옵션´이나 ‘10% 급여나눔운동’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특히, 후자는 자율적 참여로 급여의 10%를 모아 참여한 직원들이 N분의 1로 나누는 것으로 3년 만에 100% 참여했다고 한다. 사훈인 ‘감사하라’를 실천하는 그에게서 21세기 기업문화와 태양광 융합산업의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편집자 주→20년 동안 사업을 하시면서 리먼 외환위기도 겪으셨고 지금은 태양광산업의 암흑기라고 하는데요. -저는 고향집의 4평짜리 점포에서 1999년 비제이시스템 상호로 창업을 하여 2000년에 한밭대학교 창업보육센터로 회사를 이전했습니다. 그때 개발한 신제품이 상용화에 성공하여 2001년에는 대전 본사보다 규모가 큰 판매법인을 서울에 오픈하였습니다. 2002년 유사한 아이템을 개발한 회사와 M&A하였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그동안 이루었던 모든 것을 잃고 감당할 수 없는 채무까지 안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 시기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기억합니다. 많은 지인의 응원을 자본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던 고향집으로 다시 돌아가 2003년에 맨손으로 다시 창업한 회사가 바로 비제이파워입니다. 2003년 비제이파워를 설립하여 열심히 일해 매출을 늘리고 성장하여 2008년에 이전 회사채무 100%를 상환하였습니다. 그러나 2008년 리먼 외환위기에 태양광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2009년부터 해외 태양광사업의 수주가 늘고 매출이 증가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 국내 태양광산업이 장기불황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으나, 비제이파워는 정부의 지원사업과 타 회사와 차별화된 독자적 핵심기술로 이 시기를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산업계 전반이 어려울 때, 올해 3월에 한국태양광산업협회 감사로 취임하셨는데요. -밝음을 좋아하고 태양광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오랜 시간 태양광산업에 종사한 경험이 한국태양광산업과 협회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0년 대한민국창업대전에 이어 2016년 한국신재생에너지 부분에서 대통령상을 2번째 수상하셨는데요.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각지에 전기가 없거나 부족한 곳에 태양광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필리핀의 코브라도라는 100여 가구가 거주하는 작은 섬에 15㎾ 디젤발전기로 전기가 공급되고 있었습니다. 발전원가가 높아 정부가 전기보조금을 지원해도 주민들은 약 700원/◇의 높은 전기요금을 지불했고, 그것도 하루 6시간 제한적으로 전기를 공급받았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과 산업자원부의 지원으로 태양광 30㎾를 설치해 섬 주민들에게 24시간 약 350원/◇로 전기를 공급해 주민생활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된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되어 대통령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해외사업으로 회사 운영에 도움이 되고,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이기에 보람도 있고, 큰 상도 받으니 기뻤습니다. 더욱 열심히 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해외에 진출을 많이 하셨는데요. -경제성 높은 에너지자립형 태양광시장은 작은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로 전기를 생산하여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필리핀, 몽골, 에티오피아, 카자흐스탄 등의 지역에 가장 많이 시공했고 캄보디아와 베트남에는 태양광충전소를 시공했습니다. 캄보디아의 경우, 60㎾ 태양광을 설치해 100개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충전장치를 통해 주민들은 축전지를 하루 충전으로 일주일을 사용합니다. 방글라데시에는 태양광으로 펌프모터에 전기를 공급해 물을 끌어 올리는 태양광펌핑시스템을 시공했고 르완다에는 통신 중계기용 태양광을 시공했고, 갈라파고스섬에는 기저부하 사용을 위한 디젤발전소 계통연계 1.5㎽ 태양광을 시공하는 등 다양한 사업경험을 하였습니다. →대북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북한은 전기가 절실히 필요한 우리 민족임에도 자유로이 갈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코이카, 에너지공단, 수출입은행을 통하여 대북 태양광사업을 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2011년 북경에 한중합작법인을 설립하여 향후 대북사업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였고, 2014년부터는 전기산업통일연구협의회에 위원으로 참석해 남북 전기규격통일과 더불어 시급한 북한 민생용 전력공급을 위해 먼저 태양광 보급 시범사업을 하자는 제안도 하였습니다. 대북제재가 풀리고 태양광 시스템 구성 물품이 전략물자 품목에서 자유로워지면 남북화합 및 교류에 태양광이 큰 쓰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건물 일체형 태양광사업’은 태양광과 건축자재와의 융합산업으로 보이는데요. -1970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태양광 상업화에 성공한 이래 태양전지의 가격이 과거 40년간 300배, 최근 10년만 해도 15배 이상 폭락했습니다. 태양광 소재 가격이 하락하면 태양광의 활용도가 더욱 커지게 됩니다. 태양광이 건축자재의 소재로 사용되어 모든 건축물에 태양광이 적용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2009년 건물일체형 태양광모듈 생산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발상을 전환해서 건축물에 들어가는 태양광모듈이 아닌 전기 생산기능을 가진 건축자재를 개발하기 시작하여 2010년부터 생산을 시작해 꾸준한 연구와 제품 상용화를 하였습니다. 태양광과 건축자재가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건물외장재입니다. 기존 건축외장재와는 기능과 용도가 달라 경쟁관계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건축물의 에너지 절약계획이 강화되고 녹색건축물조성법 등 친환경에너지를 의무화하는 건축물 관련 법규의 강화와 함께 급속한 태양전지 소재 가격의 하락으로 일반외장재 대비 가격경쟁력이 크게 향상되어 일정 기간 후에는 관련 제품의 시장이 크게 팽창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품의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기존 건물일체형 태양광은 짙은 청색의 일률적인 색상과 전기배선이 보이는 태양광패널 형태로 제작되어 건축물 적용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상용화한 신제품은 태양전지가 보이지 않는 수려한 디자인제품으로,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색상구현이 가능하여 전기 생산기능을 갖춘 고급외장재로 모든 건축물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시장에 유사제품이 있지만 상용화 기술 측면과 경제성 측면에서 우리 제품이 비교우위에 있습니다. →최근 3년 동안 매출신장세가 가파른데 그 비결은. -오랜 시간 꾸준히 준비한 국내외 사업개발들이 실행되고, 개발하여 상용화된 제품의 판매로 매출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매출신장세는 매년 300%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기존 사업개발의 실행과 개발제품의 상용화 확대를 위해 운전자금 확보가 필요하여 작년에 신주발행으로 일부 자금을 조달하였고, 2019년 규모 있는 협력회사와 개발제품의 판매 협력체계 구축 등으로 운전자금 확보가 진행 중입니다. 이를 통해 신제품의 원활한 양산체계를 갖춰 제품의 매출을 크게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국내 시공실적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16년간 다양한 종류의 많은 국내 실적 중에 몇 가지 소개하면 모니터링 사업은 대구 신재생에너지 통합모니터링, 진해 에너지환경과학공원 통합 모니터링, 주택보급사업용 통합모니터링 등이 있습니다. 태양광 주택보급사업은 2005년부터 약 1500가구, 태양광 건물보급사업은 약 100개소를 시공하였으며 대표적으로 잠실롯데타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이 있습니다. 그 외 태양광발전소는 자사 보유 태양광발전소 2개소와 약 20여개 태양광발전소의 시공 사업실적이 있습니다. →2025년까지 정부의 제로에너지빌딩 의무화정책 추진이 사업기회가 될 듯합니다.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재생에너지 3020 정책 제안으로 건물태양광 적용사업 및 태양광과 건축산업의 융합산업으로서의 태양광산업 육성정책을 건의하였습니다. 산업자원부에 건축자재 형태의 태양광산업의 육성정책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건의하여, 2019년부터 건물 외벽 태양광 우선지원 정책과 건물 외벽에 태양광 설치 시 시설비의 70%를 정부에서 무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발표되는 등 제로에너지빌딩 의무화에 맞추어 건물외벽용 태양광 적용시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규정하는 RE100 캠페인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유럽에서는 2020년부터 신축되는 모든 건물을 준 제로에너지빌딩으로 만들자는 ZEBRA2020 정책으로 건축물에 태양광 적용시장이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오래전부터 점차적으로 추진되어온 정책으로, 비제이파워는 건축자재로서의 태양광 미래시장을 대비해 오랜 시간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제품 상용화를 준비해 왔습니다. 지금부터는 준비된 제품과 양산체계를 갖춘 생산공장을 통하여 시장을 선점하고 세계시장에서 선도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합니다. →5G 시대를 맞아 특별히 준비하시는 사업은. -컴퓨터산업이 산업용 컴퓨터 시대에서 퍼스널 컴퓨터 시대를 거처 휴대용 컴퓨터 시대로 진화해 갔듯이 태양광산업도 산업용 태양광 시대에서 퍼스널 태양광 시대를 거쳐 휴대용 태양광 시대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현재는 산업용 태양광 시대와 퍼스널 태양광 시대 진화의 과도기 시기이며, 비제이파워는 5G 시대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공급을 위한 퍼스널 태양광 관련 제품의 연구개발을 차분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1965년 대전 출생 학력 1983년 2월 남대전고등학교 졸업 1990년 2월 한밭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주요경력 2019년 3월∼현재 한국태양광산업협회 감사 2017년 4월∼5월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위원 2014년 11월∼현재 전기산업통일연구협의회 위원 2013년 11월∼현재 한국태양광발전학회 평의원 2011년 1월∼2018년 12월 한국태양에너지학회 이사 2003년 10월∼현재 비제이파워 대표이사 수상경력 2010년 6월 대한민국창업대전 대통령상 2016년 11월 한국신재생에너지대상 대통령상 2019년 3월 한국태양광발전학회 GPVC 특별상
  • ‘아내의 맛’ 자막 논란, 일베 용어 사용에 “앞으로 신중할 것”

    ‘아내의 맛’ 자막 논란, 일베 용어 사용에 “앞으로 신중할 것”

    ‘아내의 맛’ 측이 자막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26일 TV조선 ‘아내의 맛’ 측은 “지난 25일 방송된 ‘아내의 맛’에 일베용어인 전라디언이란 자막이 방송되었습니다. 제작팀은 이 용어가 일베사이트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인지하지 못한 점을 사과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전날 방송된 ‘아내의 맛’에서는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아버지가 딸을 위해 보양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날 송가인의 아버지가 민어를 손질하는 장면에서 제작진은 ‘전라디언’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다. 전라디언은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 이용자들이 호남 지역 사람들을 비하하는 은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 직후 시청자들으 거센 비판이 이어졌고, 제작진은 “앞으로 더 신중하고 주의깊게 방송을 살피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TV조선 ‘아내의 맛’ 제작진, ‘호남 비하’ 일베 용어 자막 사과

    TV조선 ‘아내의 맛’ 제작진, ‘호남 비하’ 일베 용어 자막 사과

    TV조선 프로그램 ‘아내의 맛’이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단어를 써서 논란이 되자 26일 사과했다. 전날 오후 10시 방송된 ‘아내의 맛’에서는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아버지가 콘서트를 앞둔 딸을 위해 보양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때 제작진은 민어를 손질하는 송가인 아버지를 두고 ‘전라디언’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다. ‘전라디언’은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이용자들이 호남 지역 사람들을 비하할 때 쓰는 은어다. 이 말은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호남권을 뺀 전국의 광역단체장 당선자가 한나라당 또는 당시 야권 성향 무소속 후보라는 결과가 나오자, 이를 두고 조롱하듯이 ‘전라도만 한국이 아닌, 별개의 국가 같다’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즉 ‘호남 지역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차별적인 혐오 단어다. 방송 이후 시청자 항의가 폭주하자 ‘아내의 맛’ 제작진은 “이 용어가 일베 사이트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인지하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면서 “앞으로 더 신중하고 주의 깊게 방송을 살피겠다”고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굿네이버스-한국공항공사, ‘두근두근 우리가족 첫 해외여행’ 바우처 지원

    굿네이버스-한국공항공사, ‘두근두근 우리가족 첫 해외여행’ 바우처 지원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회장 양진옥)가 한국공항공사(사장 손창완)와 손잡고 ‘두근두근 우리가족 첫 해외여행’ KAC 국제여행 바우처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경제적 상황으로 여행 기회가 부족한 취약계층에게 해외 가족여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국공항공사의 사회공헌사업이다. 김포국제공항 소음대책지역 취약계층 대상으로 해외여행비를 전액 지원하는 이번 프로그램은 25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지원자를 모집한다. 심사를 거쳐 8월초에 최종 참가자를 발표하며 선정된 가족은 9월~11월 중 중국(북경, 상해), 대만(타이페이), 일본(동경, 오사카) 중 1개 국가를 선택해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왕복 항공, 관광, 호텔, 식사 등이 포함된 바우처 전액을 지원하며 총 61가구, 244명 내외를 선발해 지급한다. 지원대상은 사업은 서울(양천구, 강서구, 구로구), 경기(김포시, 광명시, 부천시), 인천(계양구) 등 소음대책지역에 거주하는 가구로 김포국제공항 인근 소음대책지역의 저소득가정, 고령자, 한부모가정 등 취약계층이라면 누구나 신청가능하다. 지원은 가족단위로만 가능하다. 장호상 한국공항공사 전략기획본부장은 “한국공항공사는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공항인근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황성주 굿네이버스 나눔마케팅본부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가족 간 해외여행의 경험이 없었던 취약계층 주민들에게 문화체험 및 휴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며 “여행을 통해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들고 가족 간의 유대가 강화되는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두근두근 우리가족 첫 해외여행’ 바우처 신청은 굿네이버스 홈페이지에서 양식을 다운받아 작성 후 필수 서류와 함께 메일 또는 우편으로 제출하면 된다. 사업과 관련한 더 자세한 사항은 굿네이버스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순건의 과학의 눈] 사고 능력이 마비된 사회

    [남순건의 과학의 눈] 사고 능력이 마비된 사회

    한국의 대학입시 제도는 매우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수험생들에게는 많은 부담을 주도록 돼 있다. 특히 수학, 과학의 경우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많은 유형의 문제를 2~3분에 하나씩 풀어야 하고 5지선다로 돼 있다. 사고와 논리 추론 과정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반복 연습으로 빨리 답을 찾는 연습을 잘한 사람이 좋은 점수를 받게 돼 있다.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문제를 쉽게 출제하다 보니 실수하지 않는 훈련을 위한 과외는 더 성행하고 ‘진정한’ 창의 인재는 오히려 제도의 피해자가 되고 있으며 부모의 재력에 의해 대학 입학이 정해지는 상황이다.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수학, 과학 교육은 완전히 실패했다. 미래에 꼭 필요한 융합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찾을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정보를 얻기 어려웠던 과거에는 암기가 중요했고, 모방 사회에서는 단편적이고 빠른 반응이 필요한 인력이 많이 필요했다. 한국의 경제 성장에도 많은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21세기 중반을 향해 가는 현재 깊은 사고를 하고 융합적이면서 창의적 인재는 더욱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대학입시 제도는 이런 인재 발굴과는 거리가 멀고 입시 행정의 편의성과 허황된 공정성 때문에 헛된 시간과 돈을 쓰는 청소년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문화, 예술, 과학 등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깊은 역사를 갖고 앞서가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라는 입시 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칼로레아는 합격률이 80% 가까운 대학입학 자격 시험으로 이를 통과한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는 시험으로서 절대평가를 하고 있다. 바칼로레아는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과학 문제도 깊은 사고 없이는 답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과학 분야도 “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와 같이 철학적이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많은 독서를 통해 쌓은 지식이 있어야만 답할 수 있는 문제들이 나온다. 물론 수학은 논술적인 문제가 아니고 주관식 문제들이다. 인간 사회의 진화를 위해서는 깊은 생각을 경험한 사람들이 보다 많이 필요하다. 앞으로 기계적 업무는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에 사고력과 문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수학이란 언어는 사고의 과정을 나타낼 때 의미가 있을 뿐 단지 문제에 대한 답을 빨리 낸다는 것은 이제 덜 중요하다. 온갖 답이 가능한 주관식, 서술식 문제들을 어떻게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신뢰의 문화가 덜 자랐다는 이야기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들을 복합적, 융합적으로 잘 풀어낼 수 있는 사람들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돈이 얼마 더 있고 어떤 음식을 먹느냐도 중요하긴 하지만, 인간과 사회의 깊은 가치를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국민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천박한 부자보다는 품격 있는 문화사회를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나라의 수학, 과학 교육은 대학 입시와 연계돼 완전히 잘못돼 있다는 철저한 자성으로 시작해 이를 다 뜯어고쳐야 한다고 하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이상 묻혀서는 안 되겠다.
  • [단독]서울대vs서강대, 간식 포스터 표절 때문에 신경전

    [단독]서울대vs서강대, 간식 포스터 표절 때문에 신경전

    일부 서울대생, 상대측 ‘잡대’ 비하양측 페이스북에서 댓글 비방전서울대 총학 무분별한 비난 “유감”서강대 총학 “비하발언 서울대 인권센터에 신고”서울대와 서강대 재학생들이 이른바 ‘간식 포스터 표절’ 문제로 격한 신경전을 벌였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재학생 응원 행사를 홍보하고자 만든 포스터를 서강대 총학생회가 베꼈다고 문제 제기한 것이 발단이었다. 서강대 총학은 표절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서울대의 포스터 또한 인터넷 디자인 사이트를 참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서강대 학생들이 집중 비난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일부 서울대생이 서강대를 ‘잡대’로 비하하는 댓글을 달면서 갈등이 커졌다. 서울대 총학은 두 학교 학생들이 필요 이상의 비방전을 벌이는 상황에 유감을 표하며 양측에 자제를 요구했지만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학생들의 댓글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서울대 총학생회 ‘내일’은 기말고사 공부를 하는 재학생을 응원하려고 지난 12일과 13일 샌드위치와 콜팝(콜라와 팝콘) 등 간식을 제공하는 행사를 열었다. 총학 측은 이 행사를 홍보하고자 앞서 6일 포스터를 만들어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같은 달 18일 서강대 총학생회 ‘도래’도 도넛과 커피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간식행사 포스터를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그런데 이 포스터가 서울대 행사 포스터와 매우 흡사해 논란이 됐다. 제공 메뉴만 다를 뿐 문구와 짙푸른 바탕색과 글자양식, 심지어는 강조문구에 흰 바탕을 입힌 모양까지 똑같았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서울대 총학은 이틀 뒤인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강대 총학생회는 저작권 침해 행위에 대해 사과하십시오’로 시작하는 입장문을 올렸다. 서울대 총학은 저작권법 조항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서강대 총학이 창작자 동의 없이 무단으로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실정법 위반 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조치와 대응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요구했다. 법적 대응 가능성도 언급했다.약 1시간 뒤 서강대 총학은 총학생회장 이름으로 저작권 침해에 사과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학교 총학생회장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실정법 위반 행위가 발생했음을 인정한다”며 서울대 총학과 포스터 원작자에게 거듭 사과했다. 서강대 총학은 문제의 표절 포스터를 페이스북에서 지운 뒤 “서강대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실추됐다”며 학교와 구성원에게도 사과했다. 하지만 곧 반전이 일어났다. 서울대의 간식 포스터가 유료 또는 무료로 디자인 이미지를 제공하는 프리픽(freepik)의 디자인을 베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프리픽의 이미지와 서울대 간식 포스터는 바탕색과 글자색, 구도 등이 전반적으로 유사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프리픽의 디자인 모티프를 가져다 쓰려면 유료 결제를 하거나 출처를 표기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의혹을 접한 서강대 학생들은 서울대 총학 페이스북 페이지에 몰려가 항의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특히 일부 서울대생이 서강대 총학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잡대’, ‘유사대학’이라는 비하하는 댓글을 단 것에 대한 분노가 컸다. 일부 유저는 ‘일제 강점기부터 뿌리 깊은 경성제국대학’이라고 서울대를 조롱하기도 했다. 여러 서강대생이 ‘잡대’ 비하 발언에 대해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논란이 일자 서울대 총학은 표절 의혹에 대한 입장문을 게시했다. 총학은 “오픈소스를 참고한 것은 사실이며 프리픽 프리미엄 멤버십을 이용하였기에 출처를 별도로 표기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서울대 총학은 저작권법 등 법적 문제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서강대 총학에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어 총학은 “현재 필요 이상의 비판과 비하적 비난이 오가는 상황에 유감을 표한다”며 “각 대학 학생들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을 자제해주기를 요청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성난 서강대생 등은 이 글에 1000개가 넘는 댓글을 남기며 서울대 총학의 대응을 문제 삼았다. 서강대 총학은 21일 새벽 1시 이번 사태와 관련한 입장문을 올렸다. 총학은 재차 표절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면서 법률자문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서강대 총학은 “저작권 침해 여부를 명확히 정의할 수 없다”는 자문 결과를 받았다며 “실정법 위반 행위라는 서울대 총학의 확정적 언사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다만 “윤리적인 측면에서 사과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학은 또 일부 서울대생이 서강대를 ‘잡대’, ‘유사대학’ 등으로 조롱한 것에 대해 “문제 발언을 서울대 인권센터에 신고하는 등 조치하겠다”면서 자대 학생들을 향해서도 무분별한 비하나 비난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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