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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어진 가족을 같이 찾읍니다”/「가족찾기 모임」 11일 결성

    ◎어려서 미아·입양 등 생이별 16멸 모여/“혼자힘으론 한계” 신상명세 상호 교환 「어려서 헤어진 가족찾기 모임」.이름 그대로 어려서 입양됐거나 미아가 돼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의 모임이다.생활이 어려워 자식을 양부모나 보육원에 맡겼던 사람들도 회원이다. 지난 11일 상오 서울 동대문구 장안 3동 월간 「보고 싶은 얼굴」사 사무실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지난달 8일 같은 처지의 16명이 처음 모여 결성했고 한달 남짓만에 회원이 1백명을 넘었다. 동창·고향·친구·학창시절 은사 등을 찾아주기 위해 지난해 5월 창간된 「보고싶은 얼굴」의 발행인 정건화씨(46)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어려서 헤어진 혈육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들이 혼자서 발벗고 가족을 찾아 다녀봤자 별 소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회원들이 기억하는 이름과 나이,헤어질 때의 상황,찾는 사람의 신상명세를 적은 자료를 서로 대조해 가족을 찾아줄 생각이다. 회원 가운데는 너무 어린 나이에 입양돼 당시 이름·나이 등을 잘 기억하지 못해 경찰의 컴퓨터 신원조회로는 혈육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이날 모임에는 7살때 경남 울산시 버스터미널에서 헤어진 부모를 찾는 김상진씨(26·공원·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1동 109의 21)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실제 이름이 「강순덕」이라고 기억하는 강혜숙씨(29·여·주부)는 23년전 어머니가 별세한 뒤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헤어진 언니를 찾는다.부산의 섬마을에서 언니와 함께 살았다는 기억만으로 지금까지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헛수고였다.모임 참가를 계기로 꼭 언니를 찾게 되기를 기대한다. 모임이 결성된지 얼마되지 않아 「상봉의 기쁨」을 맛본 사람은 없지만 하루 5∼6통씩 회원 가입을 원하는 전화가 쇄도해 곧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씨는 6개월 뒤에는 회원수가 1천여명으로 늘 것으로 전망했다.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입양된 사람도 회원으로 받으면 상봉자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02­246­2274〈고영훈 기자〉
  • 메말라 가는 사회온정/임창룡 특집기획부 기자(오늘의 눈)

    얼마전 백혈병을 앓고 있는 성덕바우만군을 돕자는 언론의 캠페인이 있었다.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을 통한 대대적인 운동이었다.적지않은 사람이 성금을 보내고 유전자형이 같은 골수를 찾기 위한 혈액검사에 응해 아직도 사회의 따뜻한 사랑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바우만군이 수술하는 데 필요한 골수는 아직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수술에 필요한 30만달러의 수술비도 막막한 상태라고 한다.바우만군을 입양해 키운 그의 미국인 양부모가 10만달러 남짓 나가는 집을 내놓았다는 소식이다. 백혈병 소녀가장인 이유림양의 딱한 사정이 신문·방송을 통해 알려진지도 한달이 지났다.모인 성금은 수술비 7천여만원의 10%도 못되는 6백만원 정도.남의 골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체골수이식 수술이기 때문에 성공확률도 매우 높다고 한다.그러나 엄청난 수술비 때문에 할머니를 부양하는 16세 여고생이 고귀한 생명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사회의 온정이 점차 메말라가고 있다.인정의 메마름의 차원을 넘어 가치관의 위험상태에 도달했다고경고하는 사람들도 있다.매년 연말연시나 명절을 맞을 때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찾는 손길이 줄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거의 전시성 위문행사가 많지만 그나마도 점점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노원구 월계동 월계종합사회복지관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방상균씨(28)는 말한다.『요즘 사람들,특히 젊은 신세대들은 어두운 면 자체를 싫어합니다.외면하고 싶어하죠.타인 때문에 우울해 지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풍요속의 빈곤이라던가.국민소득 1만달러의 풍요속에서 우리는 60년대만도 못한 가난한 마음을 지니고 살고 있다.이혼의 증가,수명의 연장 등으로 버려진 아이들과 갈데 없는 노인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가족이란 개념도 조금씩 희석되는 느낌이다.21세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화려한 부와 첨단과학문명의 뒤편으로 우리의 어두운 구석은 자꾸 늘어만 가고 있다.그 옛날 보릿고개의 인심이 부러워지는 시대다.
  • 사랑의 화신(외언내언)

    6·25를 겪은 세대는 헤스대령을 기억할 것이다.추위와 굶주림속에 죽어가고 있는 전쟁고아 수백명을 미공군 전투기 17대를 동원시켜 인천에서 제주도로 후송했던 은인이다.「전쟁고아의 아버지」로 칭송됐던 그의 행적은 전쟁이 끝난 뒤 「전송가」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해 주었다. 전란후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 고아들의 해외입양이 성행했다.그래서 「고아 수출국」이란 불명예스런 이름까지 얻었다.한때 정상아의 해외입양을 금지시키려 했으나 국내 입양이 원활하지 않아 법안이 폐기된 일도 있다.국외입양은 지금도 해마다 2천명가량 되며 이에 비해 국내입양은 그 절반수준.그것도 친자녀가 없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외국인들의 입양은 친자녀가 있는 경우가 더 많다.또 정상아가 아닌 장애자도 꺼리지 않는다.캔턴시에 거주하는 「한국 입양아의 대부」 와이젠드씨는 15명의 자녀중 둘은 친자식이고 13명이 입양아.이중 5명은 맹아등 신체장애자다.참으로 인간사랑이 무엇인가를 실천하고 있는 고귀한 삶이다. 장애자인 입양아의 치료를 위해 예편하는 주한미군 토머스 소령의 얘기는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다.승진도 보장돼 있으며 2남1녀를 둔 가장이 정들었던 20년의 군복을 벗기로 한 이유가 장애입양아의 치료 때문이라니.더구나 미국에서 외톨박이가 될 양아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누나가 될 여자아이도 입양시켰다니 마치 성자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양아들의 골수백혈병 치료를 위해 전 재산을 다 내놓겠다며 울먹이던 성덕 바우만군 양부모의 며칠전 모습도 떠오른다. 토머스 소령의 인간사랑을 보면서 우리들은 부끄러움이 앞선다.우리가 얼마나 이기심에 가득차 있는가,남을 돕고 사랑하는 일에 얼마나 인색하고 완고한가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그것도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동서양의 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있다.인습과 전통의 차이도 존재한다.그렇다 하더라도 이기심의 충일에 반한 이타심의 실종을 우리는 고쳐야 할 것이다.
  • “백혈병 두 젊은이를 살립시다”/호텔신라 바자…온정의 손길 봇물

    ◎미 입양 김성덕군·국내투병 전승훈군 돕기/6백명 골수기증 약속… 미 양부모와 화상대화 『성덕군과 승훈군을 살립시다』 백혈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두 청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바자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3층 연회장 마로니에룸에서 4일 상오 10시부터 열렸다. 이날 행사는 미국 입양고아 출신으로 백혈병을 앓고 있는 김성덕군(21·미국명 브라어언 성덕 바우만·미국 공군사관학교 4년)과 호텔 신라 객실팀 청소담당 직원 이용순씨(43·여)의 외아들로 지난해 9월 백혈병 판정을 받아 투병중인 전승훈군(20)을 돕기 위해 마련됐다. 호텔 신라는 성덕군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회사 직원의 아들도 같은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가톨릭 의대 골수정보은행의 협조를 얻어 행사에 나섰다. 하오 5시까지 계속된 이날 행사에서 골수기증을 받기 위해 마련한 7곳의 채혈창구에는 호텔 직원 뿐만 아니라 객실 손님 등 일반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6백여명이 골수기증에 참여했다. 또 호텔측이 판매수익금으로 두 청년의 수술비에 보태기 위해 준비한 5백여개의 케익도 불티나게 팔렸다. 특히 하오 5시20분부터 40분간 호텔 5층에 설치된 화상(화상)회의룸에서 가톨릭 중앙의료원 골수이식센터 김동집소장(63)과 전군의 어머니 이씨는 인공위성으로 연결된 화면을 통해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성덕군의 양부모인 스티븐 바우만씨부부와 화상대화를 갖기도 했다. 바우만씨 부부는 성덕군과 골수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은데 대해 『한국민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또 이들은 아직 전군에게 골수를 전해줄 사람을 찾지 못한 이씨를 위로,국경을 넘은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었다. 이 호텔 노사위원회 김성신위원장(32·객실팀 직원)은 『이 행사를 통해 한때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성덕군과 투병중인 승훈군에게 따뜻한 동포애를 전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 양부모 연령기준 강화/25∼55세 사이로 제한/내년부터

    내년부터 입양아의 양친 부모연령이 국내는 25세이상 55세미만,해외는 25세이상 50세 미만으로 각각 제한된다. 또 입양할 가정에 대해서도 사전 조사를 실시해 입양적격 여부를 결정하고 입양후에도 사후관리를 하게 한다. 보건복지부는 17일 이같은 내용의 입양특례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관련기관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절차를 거쳐 내년 1월 6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입양아 양친부모의 자격 요건을 신설,국내 입양은 양친의 연령을 26세이상 55세 미만으로,해외입양은 25세 이상 50세 미만으로 제한을 두되 다만 가정환경이 양자를 잘 양육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자격요건을 완화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입양적격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사전조사 제도를 신설,입양기관에서 입양전에 2차례 이상 직접 방문해 조사를 실시토록 하고 1차례는 사전예고없이 방문해 정확한 조사를 하도록 했다. 또 입양에 대한 사후관리도 신설,입양후 6개월이내에 입양기관이 입양가정을 방문,양친과 양자간의 상호 적응상태를 관찰하고 상담창구를 개설해 전문상담사업을 실시한다.
  • 구멍뚫린 국경(두만강 7백리:13)

    ◎예나제나 북한쪽 변방선 밀수성행/쌀팔아 소금사서 야밤 국경 넘나들고/강변주민 10명중 8명은 밀수로 생활/보초서는 민병도 거들고 북한 요원도 한몫 두만강 7백리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에는 도적골이라고 있다.밀수꾼들이 도둑처럼 그 골짝으로 무리져서 다녔다고 해서 난 이름이다.이름 그대로 선구,배가 들어오는 어귀라서 역래로 밀수가 성행하던 고장이다. 일제시기 선구에는 해관과 일본경찰서가 있었고 곡물수레를 배에 실어 강을 건너 종성으로 넘나들었다.밀수꾼들은 야밤 삼경 도적골에서 도둑 고양이처럼 쌀짐을 지고 살금살금 강을 건너갔다.종성장거리에서 쌀을 팔아 소금을 사서 다시 야밤 도강을 시도했다.선구촌의 같은 패거리들이 소리없는 신호를 강건너로 보내는데 감시가 심할 때는 집 문앞 빨랫줄에 빨래를 널었다.빨래가 없으면 안전하다는 신호로 여기고 강을 건넜다. ○선구촌에 「도적골」 존재 해관을 용케 통과했어도 죽음의 신은 내내 그림자처럼 묻어다녔다.용정시 삼합진 경내에는 재피골이라고 있다.「잡히는 골」이 입에 오르면서 줄어든 이름이다.광복 전에 재피골에는 공안분주소가 있어서 오랑캐령을 넘는 밀수꾼들이 많이 잡혔다.그래서 사람들은 중간 골짜기로 다녔다.그런데 그 골짜기에 중국사람 쑹(송)가가 홀아비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았단다.산중의 외딴 그 집으로 밀수꾼들이 홀로 들어가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쑹가는 사람을 죽여서 뒷산 감자굴에 차곡차곡 쟁여놓았는데 광복후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 용정시 백금향 평정 사람이 조선에 가서 무명 다섯필을 둘러메고 강을 건너 집으로 가는 길에 백금의 김옥래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이튿날 평정으로 떠나갔는데 종무소식이었다.후에 숲속에서 나무에 목을 매고 죽은 시체를 발견했다.그런데 목을 맨 가죽띠가 김옥래의 것이었다.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결국 무사히 풀려났다.그런데 몇십년 후 문화대혁명때 그 일로 다시 잡혀 맞아죽었다고 한다. 운수 좋게도 재피골의 쑹가같은 강도를 만나지 않고 갈리골(오고 가는 길에 그 곳에 당도하면 목이 갈한다,다시 말하면 목이 탄다고 해서 생긴 이름)에 이르러 갈한 목을 축이고 집에 당도했다 해도 수시로 덮쳐드는 집사대의 눈길이 무섭다.집사대가 마을에 들어서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곤 했다.당시 소금은 금물이고 강역의 사람들은 열에 여덟은 밀수로 살아가는 판이라 두근닷근 뛰는 「일곱근」마음은 한시도 시름을 놓지 못했다.일단 발견만 되면 영창에 들어가거나 벌금을 톡톡히 내야만 했다. 내 외할아버지 허영혜는 강원도 내촌면 물레방앗골에서 양부모 시묘 6년을 해온 소문 난 효자였다.20년대 「나라가 망했는데 효자가 어찌 있으랴」고 효자문을 거절하고 오늘의 화룡시 용화향 개사냥골로 이주를 해왔었다.한번은 내 모친(허숙·78세·현재 필자와 동거)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였디.집사대가 오자 아버지가 소금을 옥수수밭에 감추었다 이기야.그런데 세상을 모르는 내가 소곰재(잠자리)를 잡느라고 「소곰재 꽁꽁 앉은 자리 앉아라.먼데 가면 죽는다」라고 하면서 옥수수밭을 뱅뱅 돌지 않았겠니.그 소리를 듣고 집사대가 옥수수밭을 수색해서 아버지를 붙잡았디.집사대 대장이 일본 사람인데 아버지의 상투를 끄잡고 물매를 안겼디 않았갔니.벌금을 내고 무사히 풀리긴 했어도 아버지는 일본놈이 더러운 손으로 상투를 어지럽혔다고 그날 저녁 머리를 잘랐디.목숨보다도 더 귀중히 다루어온 아버지의 상투는 철없는 내 불찰로 없어졌다이』 ○소장사로 떼돈 벌어 광복후 공산당은 청년들로 공안부대를 조직하고 변경을 단속했다.하지만 청년들 역시 밀수꾼 집안의 자손이고 또 그들도 밀수를 밥 먹듯 해왔으니 보초는 허수아비나 다를바 없었다.천중백옹은 대약진 시기 부동촌 촌장으로 사람들을 조직하여 대량 밀수를 하면서 민병들을 거느리고 변경을 순라했다. 무정한 법은 유정한 인정에 진다.이것을 중국 사람들은 앞문을 막으면 뒷문이 열린다고 한다.박길남옹의 부친 박학철의 밀수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광복나서 얼마간 중국에서 조선 돈이 통용되었디요.북흥촌 김영준이라는 사람이 회령에서 온 소련군한테 조선 돈을 받고 소를 팔았거든요.그 돈을 가지고 회령에 가서 소를 사자니 이미 폐지된 화폐였다 이겁네다. 그때 소장사가 좋았다구요.중국에서 소 한마리를 팔아 갖고 가면 소 두마리가 되었디요.우리가 살던 대소가 모두 17호였는데 세집을 내놓고는 모두가 소장사를 해서 한해에 몇백마리가 건너왔습네다.골안에서 잡아서 삼합장에서 팔기도 하고 용정에 갖다 팔기도 했디요.검사잠 잠장은 보고도 못본체 했구만요.그때나 지금이나 고약한 놈은 어디에나 있었습네다.한 마을에서 누군가 고자질을 해서 위에서 공작조가 내려오지 않았갔시요.집집마다 장정들이 잡혀 들어갔디요.이학균이가 공작조 조장이고 간사로 박씨가 있었는데 우리하고 동성동본이라 어찌어찌 하라고 알려주어 아버지는 30만원(지금 돈 30원)을 벌금내고 놓여 나왔디요.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2년,혹은 4년씩 거의 모두가 징역살이를 했구만요. ○53년이후 최고 극성 변강 보초를 강역 민병들이 담당했으므로 녹아나는 것은 면목을 모르는 외지 사람들이었다.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고지식하고 소박했으므로 돈보다 정으로 통했던 것이다.낯선 사람이라 해도 강하게 나오면 방임했다.밀수꾼은 모험을 하는 것이요 보초꾼은 직책일 뿐이라 각박하게 나오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1953년부터 3년동안 밀수는 고조를 이루었다.쌀을 갖고 가서는 암모니아비료며 광목이며 백곰표 크림이며 연필,종이 등을 대량 들여왔다.보초를 서는 민병들도 밀수대열에 끼어들었다.집집마다 밀수를 했으므로 처벌을 준다고 해도 기껏 경고를 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당시 두만강역에서 밀수에 죽은 사람은 단 하나,그것도 공포를 쏜 총알에 재수없게 맞았다.총을 쏜 민병은 당황한 김에 시체를 끌어다가 파묻었다.
  • 장애아 입양 양육보조금/복지부,내년부터

    ◎입양전 「가정위탁보호제」 도입/알선비용 한정,과다징수 예방 보건복지부는 8일 장애아동의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기 위해 입양가정에 양육보조금등을 지원하는 내용의 「입양촉진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시행령개정안」을 마련,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이 개정안은 장애및 미숙아동을 입양하는 가정에 양육보조수당과 의료비등 보조금을 지급하되 보조금액은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예산의 범위 안에서 정하기로 했다. 또 입양대상아동이 입양가정에 들어가기까지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가정위탁보호제도를 도입하고,대상아동을 생활보호대상자로 정해 위탁가정에 기초생활비를 지급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알선기관이 입양부모와 협의해 자율적으로 받던 알선비용도 복지부장관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알선에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비용으로 한정,과다징수의 시비가 없게 했다.
  • 귀순 유학생/전철우씨 양부모 맞았다

    ◎윤화입원 병실찾아 간호 계기/지난달 퇴원후 함께 살며 생활 89년 동독 유학중 귀순한 전철우씨(27·한양대 전자공학과4)가 양부모를 만나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50평짜리 한양아파트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전씨가 양부모 유진영씨(55·건설업)와 고묘자씨(50)를 만난 것은 지난달 3일 새벽 방송을 마치고 승용차로 귀가하던 중 강변도로에서 타이어가 펑크나면서 교통사고가 일어나 중상을 입고 순천향병원에 입원한 직후. 유씨부부는 다음날 신문에 보도된 전씨의 사고기사를 읽고 곧바로 병실을 찾았다.이후 고씨는 매일 전씨에게 환자용 음식과 뼈에 좋다는 칼슘제를 사다주며 사랑을 쏟았다.특히 고씨의 간호는 친자식에 대한 사랑 이상으로 극진한 것이었다. 그렇게 20여일을 간호하던 고씨는 한 사람의 피붙이도 없이 혼자 생활하고 있는 전씨가 퇴원후에 어떻게 생활할지 걱정이었다. 고씨는 남편 유씨와 막내딸 근수양(21)과 의논한 끝에 『양부모가 되겠다』는 말을 꺼냈고 전씨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전씨는 지난달 25일 퇴원하면서곧바로 양부보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전씨는 『어머니와 아버지,동생 모두가 헌신적으로 대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 입양고지(외언내언)

    북구 노르웨이가 한국아 입양을 시작한 지 40년된다.6·25전쟁후 병원선 봉사자들이 전쟁고아 한둘 데려가기 시작한 이래 지난 5월말로 5천명에 이르렀다.한국아이를 기른 양부모들 잔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주 중요한 조사자료가 40년 기념으로 발표됐다. 13세이상 한국입양아출신 3천명과 노르웨이태생 3천명에 대한 사회조사결과다.전문사회조사기관이 1년여에 걸쳐 방대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 적응도·사회비중도·부모기대부응도등 사회생활 전반에 걸친 항목을 조사한 것이다.한국입양아출신이 건강도·적응도등 여러 항목에서 우수하고 학교생활·학업에서는 단연 적극적인 것으로 나왔다. 특히 부모기대부응도에서는 단연 점수가 높았다.십대만되면 일찍 부모곁을 떠나는 노르웨이 아이들에 비해 집 떠나는 것이 늦고 학교 남녀친구문제등 걱정거리를 부모나 조부모에게 말하고 조언을 들어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드는 점에 양부모들이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청소년기 봉사활동참여도 높고 사회직업에서도 남을 돕는 간호직·사회사업직·의료직·법률직등에 많이 진출하여 노르웨이 국가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됐다.미국이나 덴마크·벨기에등 세계 13개국에 입양된 한국아이들이 우수하고 유난히 부모를 따른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이들은 모두 알만한 나이에 입양자라는 것을 알고 큰 아이들이다.양부모들이 잘 키워낸 것이다. 국내서도 입양자라는 것을 알리고도 잘 길러낸 사람들이 많다.홀트양자회가 57년도부터 입양한 국내 입양자명단 1만3천여명속에는 이름대면 바로 알 저명인도 상당하다.개중에는 입양자인것을 알게 된 아이가 가출하거나 반항해서 곤경을 겪은 집도 있지만 적합한 시기에 입양사실을 알게 한 것이 양육성공과 좋은 관계 지속조건이라고 조사됐다.다만 충분한 사랑속에 키우고 소중한 자식이라는 확신을 들게 한 것이 성공의 전제였지만…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는 2명의 국민교 5년 여아사건은 가슴아픈 일이다.
  • 미국서 현대판 「솔로몬재판」 화제/아빠에 양육권 부여 잇달아

    ◎직장에만 매달리는 아기엄마엔 패소 판결/공동양육 방안 대두… 아이탈선 조장 비판 갓난 아기를 두고 서로 친어머니라고 주장하는 두여인 사이에서 진정한 모성애를 확인하는 기지를 발휘,친모를 가려낸 고대 솔로몬대왕의 현명한 판결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그로부터 5천년이 지난 현대 미국 사회에서 「1990년대판 솔로몬 재판」논쟁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근간 뉴욕타임스지는『최근 가정법원에서 이혼한 남녀가 자녀의 양육권을 주장하는 경우 경제력이 있는 여성에게 양육권을 부여했던 관례를 깨고 아버지쪽에 승소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계속 생겨나면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미 상원의회 보좌관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워싱턴의 한 여성과 명문 미시간 대학에서 공부하느라 아이를 탁아소에 맡긴 한 여성의 패소가 대표적인 사례. 미국 법원은 여성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올라간 20세기들어 지난 70년대까지는 여성에게 양육권을 부여하는 판결을 보편적으로 내려왔었다.그러나 최근의 판결변화 배경에는 바로 가정에 보조적인 정도로 직장활동을 하던 여성들이 요즘은 맹렬한 직업인이 되길 원하는데다 기꺼이 육아를 담당하겠다는 남성들이 느는 등 남녀의 성역할이 기본적으로 바뀌어가는데 있다. 일련의 남성승소 판결이후 여론은 들끓기 시작,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시간만으로 양육권을 정할 수 없으며「누가 먼저 아이가 땅에 넘어질때 뛰어나가느냐」는 기본적인 애정으로 판단해야하는 문제라는 주장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돼 미 재판부는 골머리를 앓고있다. 여성주의 법학자들은 『많은 법관들이 남성의 직장생활을 양육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찬양하는 한편,여성의 직장생활은 반모성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여성에게 매우 불리하다』는 입장을 제시하며 이의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반면 부권 옹호론자들은 『과거 여성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과 모성애를 연결,대접을 받았듯이 최근 가정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남성들 역시 부성애로 그 평가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양쪽의 의견이 팽팽해지는 가운데 그 대안으로 양부모의 집을 정기적으로 오가며 아이문제의 중요한 사안은 공동 협의,결정하는「공동양육」방안이 제시되고 있다.워싱턴 소재「어린이 권리옹호 협회」회장 데이비드 레비씨는『이혼한 부모 둘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공동양육이 아이에게 가장 상처를 덜 주고 비교적 바르게 키울 수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공동양육에 따른 부작용 사례도 만만찮게 보고되고 있다.즉 이혼한 부모 사이에 쌓인 「악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경우 이집 저집을 왔다갔다 하는 아이는 탈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 관계와 남녀 성역할이 크게 변모하는 미국 사회에서 훌륭한 부모를 가려주는 역할은 재판부의 결정에 달려있으나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혼한 남성과 여성이 양육권을 주장하며 팽팽하게 대립하는 현상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미국내 사회문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살인집단 「지존파」의 성장 과정

    ◎“가난하고 못배워「가진자」를 증오했다”/학업 중도포기→가출→공장직공 진전/공사판서 만나 “부유층 저주” 의기투합 울산 삼정기계 소윤오사장부부등을 살해한 연쇄납치 살인범 6명은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려운 시골에서 태어나 학업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일찍이 가출,공사판 막일꾼등으로 생활하던중 서로 「의기투합」해 범죄조직인 「지존파」를 결성했다.이들의 학력은 모두 중·고등학교 1∼2년 중퇴의 저학력.강문섭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특수절도·상해등의 전과가 기록돼 있었다. ▷김기환◁ 「지존파」를 만든 장본인이자 두목.김은 2년전 대전·성남·분당등지의 막노동판에서 일하다 알게된 같은 고향 출신의 강동은,김현양,문상록등 3명을 규합,홍콩영화 「지존무상」에서 본뜬 「지존파」를 조직 납치살인 범죄단의 명칭으로 정했다. 3살때 아버지를 여읜 김은 영광 모중학교 2학년을 중퇴한 것이 학력의 전부.지난 6월 불갑면에서 10대 소녀를 추행,경찰에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돼 이달 29일 선고공판을 앞둔 상태.거칠고 잔악한 김에게 조직원들은 무조건적인 충성을 맹세하고 따랐다. 범인들이 합숙하면서 범행장소로 사용한 영광군 외딴 농촌마을에 있는 아지트도 두목 김씨 소유.막노동판에서 각자 번돈을 적립,4천여만원을 만든뒤 그 돈으로 직접 자재를 구입해 지었다는 것이다. 김은 기존의 농촌형가옥을 헐고 지난 3월부터 새집(아지트)을 짓기 시작,7월말쯤 완공했으며 이때 이웃주민들에게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집을 짓는다』고 위장했었다. 그러나 10여년전부터 중풍을 앓아온 그의 어머니 최모씨(65)는 인근 방마리마을에 셋방을 얻어 혼자 살도록 했다. ▷강동은◁ 두목 김이 구속된후 사실상 지존파를 이끌어온 강은 양부모가 생존해 있고 비교적 넉넉한 가정형편에서 자랐으나 형제가 많아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주변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폭력혐의로 구속된 전과경력을 갖고 있는 강은 전과기록을 빼기위해 막노동판에서 모은돈 1천5백만원을 변호사에게 주었다가 몽땅 날린뒤 가진자에 대한 적개심을 싹틔우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4년동안 일정한 직업없이서울등지를 떠돌아 다닌 강은 고향 선배인 두목 김과 친구인 김현양을 만났다. 강의 이웃주민들은 『강이 어렸을때는 착한 모범생이었으나 서울로 떠난 뒤에는 전혀 소식을 모른다』면서 강의 범죄행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강의 집은 이들의 범행아지트에서 불과 5백ⓜ떨어진 지척에 있었다. ▷김현양◁ 주범격인 김도 아버지가 사망하자 본적지인 백수읍의 모중학교를 2학년 중퇴한 전형적인 결손가정 출신. 현재 홀어머니(46)는 영광에서 식당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입대예정인 남동생(19)과 취업준비중인 여동생(17) 등 일가족이 보증금 3백만원짜리 전세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김은 중국집을 경영하던 아버지가 84년 사망한뒤 88년 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가출,뚜렷한 기술이 없어 직장을 잡지 못하고 전기공·공사장잡부 등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이경숙◁ 유일한 여성조직원인 이는 2년전쯤 대전에서 일하다 영광으로 내려와 주점접대부로 일해 왔다.이곳에서 강동은을 만났으며 강은 지난 17일 숨진 소사장부부로부터 몸값으로 받은 8천만원가운데 1천6백만원을 이양이 일하는 주점주인 정모씨(42)에게 『경숙이와 결혼한다』며 돈을 주고 이를 빼냈다는 것. 그녀 역시 여중2년을 중퇴했으며 아버지의 주벽과 교도소생활을 견디지 못해 가출한 전력을 갖고 있다.어머니 신모씨(46)는 온양에서 다방을 운영하고 있으나 딸과는 소식을 끊고 사는 상태다. ▷문상록◁ 본적이 영광읍 남천리로 기록돼 있는 문은 91년 아버지가 사망했으며 이보다 6년 앞서 먼저 형마저 사망해 별다른 생계수단없이 어머니(54)와 남동생(17)을 부양해 왔다. 고교를 중퇴한 문은 92년 성남시로 이사한뒤 공사장에서 막노동으로 가장노릇을 해왔으며 이때 김기환등과 악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문섭◁ 조직원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강(20)은 전북 부안이 고향.아버지(50)와 함께 고향을 떠나 고모집인 충남 논산군 연무읍 안신2리에서 성장했다. 이곳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강은 고교에 진학했으나 누나(24)가 가출하고 아버지 강씨마저 고향으로 돌아가자 혼자 남아 있다가 가출. 이웃주민들은 『아버지가 연무읍에서 공사판을 전전하며 어렵게 생활했다는 것만 알뿐 주위와는 교류가 없어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 국외입양/지건길 국립경주박물관(굄돌)

    간혹 신문 사회면의 한 귀퉁이에 까까머리나 단발머리를 한 어린애의 자그마한 사진과 함께 실린 내용의 기사를 대하게 되면 누구든 잠시나마 측은한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대개는 어렸을 적에 부모와 떨어져 먼 나라로 입양을 떠났다가 어른이 되어 돌아와 그들의 생부모와 혈육을 찾는다는 내용이다.더러 기적같은 상봉의 기사가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전쟁으로 고아가 된 수많은 어린이들이 오갈 데 없이 방황하던 시절,양자회와 같은 사회사업단체의 주선에 의해 혼혈아를 비롯한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외국으로 입양되어 나갔다.당장 먹고 살기조차 어려웠던 나라 형편에 이들을 부양할만한 능력이 모자라 취해진 어쩔 수 없는 대안이었을 것이다.이러한 국외입양은 우리사회가 얼마간 안정되어가던 시기까지도 계속되었고 지금도 많은 수는 아니지만 입양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러한 국외입양이 어떤 부득이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이유 때문에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그러나 외국에 나가서 입양아를 한번이라도 만나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좋은 양부모를 만나 호의호식하고 지내는 경우라도 이역만리에서의 반가운 마음보다 서글픔이 앞서게 될 것이다. 80년대초의 유학시절,지도교수의 소개로 대서양에 면한 프랑스의 한 해변도시에 초청되어 간 일이 있다.교수의 아는 한 분이 한국에서 입양해온 어린 양자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 작은 도시에는 그 밖에도 대여섯명의 한국입양아가 더 있어 그들의 양부모가 한국사람도 만나볼 겸 우리 문화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뭣 모르고 가족과 함께 호기심과 기대를 갖고 그 집에 닿아 막상 입양아를 대했을 때의 너무도 애처러웠던 기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철없는 아내는 솟구치는 눈물을 참아내지 못했고 태연스러웠던 양부모 앞에서 내가 얼마나 민망스러웠던지,지금도 신문에서 입양아 관계기사를 대할 때면 그때의 일들이 떠올라 잠시 숙연해지곤 한다.
  • 대천 피살여아 간일부 없어져

    【대천=이천렬기자】 충남 대천 어린이 연쇄유괴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천경찰서는 18일 숨진채 발견된 김수연양(5)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수연양은 목이 졸려 숨졌으며 간의 일부가 손실되고 하체에 손톱에 의한 상처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수연양의 배에는 12㎝가량의 자상이 있었으며 3×4㎝크기로 간이 잘려 없어졌다. 경찰은 이같은 부검결과와 수연양부모의 주변환경으로 미루어 이번 사건은 원한이나 치정·금품을 노린 범행이라기 보다는 난치병환자나 정신이상자 등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이부분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경찰은 또 수연양의 집 주변에서 사체유기 장소까지 7,8군데의 핏자국이 발견됨에 따라 이 혈흔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키로 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사건 발생 다음날인 17일 새벽 과도와 스타킹 등을 들고 현장 주변을 배회하던 이모씨(27)에 대해 강도예비음모혐의로 구속하고 이 사건 관련여부를 캐고 있다.
  • 해외입양중단 번복 잘했다/임영숙(서울광장)

    애나 킴은 미국 가정에 입양된 한국 아이다.올해 국민학교 3학년인 그 아이에겐 「출생앨범」이 있다.생후 몇개월의 어린아기로 공항에 도착해 양부모 품에 안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모은 것이다. 이 앨범속에서 애나 킴의 양부는 친지들에 둘러싸여 자랑스럽게 시거를 피운다.미국에서는 아버지가 된 기쁨을 시거를 피우는 것으로 표현하는 관습이 있다.양모는 애나 킴을 꼬옥 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의 친정 어머니는 미소를 띤채 그 모습을 지켜본다.그곳이 공항 대합실이 아니라 병원의 분만실이었다면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이를 낳은 부모와 그 가족 친지들의 행복한 모습으로 비칠 정경이다. 애나 킴의 양부모는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이다.아버지 라일리씨는 엔지니어고 어머니 캐시여사는 유치원선생님이다.캐시여사는 애나 킴을 입양하면서 직장에 휴직원을 냈다.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서다.애나 킴이 유치원에 들어가자 복직했는데 또다른 한국아이 제이를 4년전 입양하면서 또 휴직했다가 최근 다시 복직했다. 애나 킴과 제이에겐 할머니·할아버지와 고모가 있다.뉴욕과 뉴저지의 대학 등에서 외국학생 자문역을 맡고 있는 고모 캐시(어머니와 이름이 같다)는 한국학생을 만나면 조카 자랑에 시간 가는줄 모른다.그의 사무실 책상에는 물론 「한국에서 온 조카」의 사진이 놓여 있다.그가 한국유학생에게 특별히 잘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조카의 조국을 위해 한국기업의 주식도 산 그의 꿈은 언젠가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다.또한 예일대학이 있는 뉴헤이븐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는 자원봉사자로 한국유학생과 그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5년전 캐시고모의 생일날 우리 가족은 뉴욕과 코네티컷과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이 가족이 중간지점의 공원에서 마련한 생일파티에 초대받았고 나중 애나 킴의 집에도 초청받았다.입양수속중인 제이가 아직 미국에 도착하기 전이어서 라일리 집안의 유일한 어린이였던 애나 킴은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아이로서 가족 모두에게서 사랑을 흠뻑 받고 있었다. 이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해외입양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한국이 「고아 수출 1위국」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것이다.6·25전쟁이 끝난지 몇십년이 지났고 개인소득이 7천달러에 이르는 나라에서 아직도 2천명이 넘는 아이들을 해마다 해외에 입양시킨다는 것은 사실 창피한 일이다. 그러나 애나 킴의 가족을 만나고 나서 부끄러운 것은 「고아 수출 1위국」이라는 오명이 아니라 내 자신임을 깨달았다.부모를 잃었거나 버림받은 아이들을 스스로 맡아 기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그런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약속해 줄 수도 있는 해외입양의 길을 막는다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하고 비인도적인 일인가. 애나 킴과 제이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따뜻한 가정보다 시설에 수용됐을 가능성이 더 높다.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의 3분의 2 정도가 입양가정을 찾지못하고 시설에 수용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지난 58년 이후 지금까지 해외에 입양된 아이는 약 15만명.국내 입양은 5만명도 채 못된다.국내 입양신청자가 적지는 않으나 혈통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식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 상태다.입양관계자들은 3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입양에 대한 국민의 의식변화가 거의 없어서 국내입양이 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론 해외입양이 애나 킴의 경우처럼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해외입양은 『바닷고기를 담수에 옮기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을만큼 정체성의 위기가 생길 수도 있고 의붓아버지 우디 앨런의 애인이 된 순이 프레빈과 같은 망칙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한 아이들을 시설에 수용하는 것 보다는 가정을 갖게 해주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일이라는 점에서 96년 이후 해외입양 중단방침을 번복한 당국의 최근 결정은 잘한 것이다.국내입양을 활성화하여 궁극적으로 우리 아이는 우리 손으로 잘 길러야겠지만 아직 요원해 보이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해외입양을 허용하는 한편 입양된 아이들과 그 새 가족들에게도 관심을 갖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 입양아 친자입적 허용/보사부/국내입양 촉진방안 마련… 내년 시행

    ◎양부모에 아파트분양 우선권/양육·의료·교육비 국가서 보조/「96년부터 해외입양 금지」 결정은 철회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한 친자입적제가 도입되고 입양가정에게는 국민주택분양 우선권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보사부는 5일 국내입양을 적극 도모하기 위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입양아특례법 개정안을 마련,정기국회상정등 관련 절차를 거쳐 내년 6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법의 명칭을 입양촉진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으로 바꾸면서 종전에는 입양아를 「양자」로만 호적에 입적할 수 있던 것을 양부모의 희망에 따라 「친자」로도 입적할 수 있게 했다.또 국내입양이 촉진되도록 입양가정에 국민주택분양 및 임대시 우선권을 부여하고 입양아의 건전한 양육을 위해 양육·의료·교육비등 양육보조금을 입양가정에 지급키로 했다. 양부모 자격은 현행 입양아 양육을 위해 재산을 충분히 소유해야 한다는 규정외에 양부모의 한쪽이 25세이상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개정안은 특히 의료기관에서 음성적으로 입양을 시키는 현상을 막기위해 반드시 자격을 갖춘 입양알선기관을 거쳐 입양을 하도록 명시하고 입양기관은 입양아가 양부모밑에서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지 입양후 6개월동안 사후관리하도록 했다. 보사부는 입양사업 개선대책과 관련,보육원에서 자라거나 유기된 아이를 데려다 1년이내의 범위에서 양육하는 「가정위탁보호제도」를 도입하고 위탁보호아동을 생활보호대상자로 책정,거택보호에 준하는 생계비등을 지급해줄 방침이다. 또한 96년부터 입양대상아동에 대한 전산관리망을 구축,입양알선기관과 전국 13개 공립아동상담소간에 입양아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 국내입양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보사부는 아동은 집단수용시설보다는 가정에서 양육되어야 한다는 「아동권리에 관한 세계협약」(91년 가입)의 정신을 수용,향후 시설보호대상아동의 국내입양을 유도하고 국내입양,국외입양,시설보호순으로 입양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기로 했다. 보사부는 이에따라 「96년부터 혼혈아와 장애인을 제외한 일반아동의 해외입양을 금지한다」는 89년의 내부결정을 사실상 철회했다. 보사부 관계자는 이와관련,『입양제도가 불우아동이 건전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아동복지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막으면 아동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비인도적인 결과가 초래된다는 국내외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 「세종 캠프」(뉴욕에서/임춘웅칼럼)

    지난달 22일부터 1주일동안 뉴욕주 하버스토로에서는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 하나의 이색 캠프가 열렸다. 노란 머리의 미국인과 검은 머리의 한국계 청소년들이 한데 어울려 한국말을 배우고 농악을 익히며 한국역사와 한국의 풍습을 공부하는 그런 캠프였다.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꽉짜인 스케줄에도 참가자들은 늘 진지했고 조금이라도 지루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한국계 어린이들은 처음엔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어린이가 자기말고도 또 많다는 사실에 놀라는듯 했으나 금방 호기심으로 충만했고 미국인들은 그들의 어린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며 어떻게 적응해 나가는지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세종캠프」라는 이름의 이 모임은 한국어린이들을 입양해 키우는 70여 미국가정이 입양아들에게 그들의 뿌리를 찾아주기 위해 마련한 캠프였다.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펜실베이니아 일대에서 참가한 이들 입양가족들은 한국어린이를 입양했다는 공통점으로 해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또 어떻게 해야 이 애들을 잘 키울수 있는지에 대해 공통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미국 가정에 입양돼 천진난만하게 자라던 어린이들은 사춘기를 맞으면서 자신이 부모들과 생김새가 다르고 친부모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충격으로 해서 대부분이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게된다고 한다.이렇게 고통을 받는 입양아들에게 이를 극복케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들에게 뿌리를 찾게해주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세종캠프」를 준비하는데는 무려 1년여의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뉴저지주 한국어린이 입양가족 모임인 레인보 클럽은 그동안 수백통의 편지와 협조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우선 지리적으로 가까운 뉴욕 일원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 입양가족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캠프에 참가할 의향이 있는지를 알아보았으며 캠프에 드는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자선단체나 기타 관련단체에도 협조문을 보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KIM(Korean Identity Matters)에는 캠프의 프로그램 작성과 지도요원을 보내 주도록 요청했다.KIM은 지난 10년동안 미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입양아들을 집단지도해온 한국계 1.5세와 2세들의 모임이다. 이번 캠프동안 이들 양부모들이 보인 열의와 정성은 실로 눈물겹기까지 했다.한국의 역사와 풍물에 관한 책 몇권 안읽은 사람이 없는듯 했고 한국말을 배우려는 열성이며 윷놀이·한국연의 특징까지 알아두려는 철저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들은 이번 캠프에 후원금외에 한집에 3백50달러씩을 내고 참가했다. 6·25이후 미국에 입양된 한국어린이의 숫자는 무려 35만여명이라고 한다.이들 입양가족들이 「세종캠프」에 참가한 가정들처럼 모두가 모범인 것은 물론 아니다.학대받고 버려둔 부모도 있다.왜 한국어린이를 입양하는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그러나 「세종캠프」는 우리를 숙연케 한다. 이번 캠프를 후원해달라는 협조문을 받은 뉴욕일원의 수많은 한국회사와 단체중 응답을 해온 곳은 L사와 D사 단 두곳 뿐이었다는 사실이며 성장한 입양아들이 참으로 차별을 받는 것은 미국인들로부터라기보다 한국사람들로부터라는 얘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 문제지도 함께 건넸을 가능성/대입 정답유출사건 수사안팎

    ◎핸드폰 호텔반입 사실상 불가능/외부통화 통제·내용 철저히 기록/둘째딸 친구들 “수석합격 발표에 무척 놀라” 이번 후기대 정답유출사건은 그 파장이 교육부의 김광옥 장학사 단독범행일 것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훨씬 커질 전망이다. 우선 학력고사 출제관리의 보안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는 터에 김 장학사 단독으로 그같이 과감한 범행을 저지르는게 쉽지않고 18일 새벼 압수수색에서 찾아낸 91∼93학년도 답안지 및 문제지·주관식 채점기준표 등은 예사로 넘기기에는 석연치않기 때문이다. 검찰은 아직 김장학사 등이 사건 주모자들을 검거하지 못해 정확한 경위를 캐지는 못했으나 정답유출보다 더 확실한 입시부정은 없기때문에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모든 진상을 밝혀낸다는 각오로 전수사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특히 이날 밝혀진 함씨의 맏딸과 둘째딸의 수긍할 수 없는 대입합격도 결국 정답유출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심증을 굳혀주고 있는 대목이다. 이를 방증해 주듯 김장학사의 집에서 91학년도 대학입시 학력고사 정답표등 관련서류가 발견돼 올해 이전에도 김장학사가 정답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함씨의 맏딸과 둘째딸의 의대합격에 대해서는 가족들만 수긍하고 있을 뿐 대학·고교관계자들도 영문을 몰라 허둥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둘째딸의 친구들은 『신문에 난 각 대학 수석합격자중 그 친구가 들어 있어 무척 놀랐다』면서『돈많은 집안의 딸이라 부정입학한 소문이 나돌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검찰은 정답및 문제지의 출제및 관리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유출 방법에 대해 하나하나 검증해 나가는 방식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에따라 ▲내부및 외부공모자여부 ▲다른 대학 응시생에게도 유출됐는지 여부 ▲김장학사가 출제관리부 기획위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89년부터 범행이 있었는지등 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철저히 규명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았다. 검찰이 『다른 요원들이 잠든 틈에 김장학사가 핸드폰으로 함양부모에게 정답을 알려준 것』이라는 교육부의 감사 소견에도 불구하고 교육평가원의 출제관리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팔레스호텔에설치된 출제본부에 들어갈 때는 철저한 소지품검사를 거치도록 돼있어 핸드폰같은 휴대품반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데서 출발한다. 또 출제본부에 외부통화가 가능한 전화는 한대뿐이고 보안요원들이 그 통화내용을 항시 기록하고 다이얼을 열쇠로 잠그고 외부통화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도 의혹을 부풀리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검찰은 이들 보안요원가운데 누군가 통화를 도와줬거나 아니면 정답지자체가 문제지와 함께 빼돌려졌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이에따라 18일 교육평가원의 김장학사가 소속된 사회교과실 이해영실장을 비롯한 관계자 3명을 상대로 정답지등의 관리 과정에 대한 참고인조사를 벌인결과 김장학사가 지난 1월9∼29일 사이의 출제기간 가운데 1월24∼28일 사이에 34쪽의 채점용 정답표(객관식)및 채점기준표(주관식)1백50여부를 만들어 73개 대학등에 보내는 역할을 맡아 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특히 김장학사가 89년부터 91년까지 과학·실업교과실 장학사로 92년도부터 사회교과실 장학사로,출제본부 기획위원직을 맡아 같은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점에서 정답유출이 함양뿐 아니라 다른 학생에게,그리고 92년 이전에도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국내입양법 현실맞게 개정 시급/한국아동복지학회,학술발표회서 논의

    조산소,산부인과등을 통한 불법국내입양알선을 막기위한 대책이 최근 한국아동복지학회가 개최한학술발표회에서 논의됐다. 경남대 배대순(사회복지학과)교수는 「국내입양문제와 관련한 입양법개정 제안」이라는 논문을 통해 현재 국내에 공공연하게 확산돼 있는 입양알선기관외의 제3자에 의한 불법개인입양을 우선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를 위해서는 아동복지차원에서 입양을 입양으로 인정,수용하는 진정한 입양태도조성이 중요하다는 배교수는 입양아동의 2중호적제,입양사후관리규정,가정법원의 국내입양인가 관여,출생에 의한 호적입적시 출생증명서제출강화등 현실에 맞는 법적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배교수는 입양아동수가 86년 2천8백54명에서,89년 1천8백88명,91년 1천2백41명으로 줄어 드는 추이를 보이고 있으나 이같은 감소는 입양이 필요한 아동의 숫자가 준 자연적감소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이는 소위 암시장으로 불리는 조산소및 산부인과병원등에 의한 불법적인 「아동거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이는입양기관을 통해 아이를 받아 들일 경우 기록을 남기게 돼 입양의 비밀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때문에 입양부모들로부터 이같은 아동거래가 선호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같은 불법입양은입양아동의 복지보다는 결국 금전적 보상에만 관심이 두어져 입양아동을 유흥업소에 나가게 하는등 착취·학대하는데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배교수는 입양제도가 시행된 지난30여년 동안 국내입양실태는 입양을 원하는 가정은 적고 대상아동수는 많은 현상때문에 이같은 비밀입양을 정부차원에서 지원보장해주는 입양제도가 적용됐던것으로 분석했다.그러나 지난해의 경우입양아동은 1천2백41명인데 반해 입양가정신청자는 4천5백97명으로 늘어나는등 과거와 달라지고 있기때문에 입양의 본질과 아동복지에 입각한 입양업무로 전환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또정부가 오는 96년부터 해외입양을 전면중단키로 한만큼 현재의 제도만으로는 더욱 늘어날 불법개인입양의 폐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미입양 4남매,18년만에 생모 상봉

    ◎뉴욕등에 흩어져 살다 어렵게 재회/“엄마찾자” 의기투합… 김포서 포옹 『마마(엄마)…』 『은미야.은희야.원형아.원철아…』 18년전 가난에 못 이겨 미국에 입양됐던 윤은미(27)은희(24)원형(23)원철(21)씨 등 4남매가 4일 꿈에 그리던 친어머니 유정희씨(56)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은미양 남매는 이날 하오 4시15분 대한항공051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씨를 보자 처음에는 머뭇머뭇거리다 곧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너희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니만 이렇게 훌륭히 큰걸 보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유씨는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자신들을 버린 생모를 찾아온 4남매의 이름을 번갈아 부르다가 설움에 북받친 나머지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유씨가 이들 남매를 미국에 입양시킨 것은 지난 74년과 75년.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어렵게 지내던 유씨는 남편이 병사하는 바람에 졸지에 가장이 됐다. 그러나 홀몸으로 5남매를 키우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이럴 바에야 해외에 입양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결심,큰딸 순자씨(37)만 남겨두고 홀트아동복지회에 나머지 4남매의 입양을 신청했다. 셋째딸 은희양(당시 6세)과 막내 원철군(당시 3세)은 지난 74년 9월 미국 미네소타주로,둘째딸 은미양과 넷째 원형군은 뉴욕으로 각각 보내졌다. 유씨는 어린 자식들을 떠나보내던 날 훗날 커서라도 고국을 생각토록 지갑속에 10원짜리 동전 몇개와 흙을 담아줬다. 4남매는 그후 뿔뿔이 흩어져 각각 미국인 양부모와 함께 살아왔다.은미씨는 지난 88년 미국인과 결혼해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으며 원형군은 대학에 재학중이고 원철군은 이번 학기에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유씨는 이들 남매를 미국에 보낸뒤 8년동안 혼자 살아오다 지금의 남편 명달산씨(56·노동)를 만나 재혼했다. 미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4남매는 1년에 한번 정도 만나오다 지난해 홀트아동복지회에 친모의 연락처를 수소문,이날 재회에 성공했다. 『기억이 흐려져가는 엄마를 꿈에선 그래도 보았어요.정말 엄마를 만나다니 믿어지질 않아요』 18년만에 친어머니를 만난 4남매는 유씨의 손을 놓지 못했다.
  • “중국 격전지서 위안부로 3년”/대천 노청자할머니

    ◎피맺힌 한 꼭 사과 받을터 『모진 목숨이었지만 악착같이 살아 남아 조선땅을 다시 밟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일본총리앞에서 못하는 일본말이나마 진실을 밝혀 사과를 받아내고야 말겠습니다』 미야자와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종군위안부문제가 한일간의 중대한 현안으로 떠오른 시점에서 정신대의 또 다른 산증인으로 나선 노청자할머니(72·충남대천시 대천동 395의 10).그는 15일 하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을 찾아와 당시의 참혹했던 생활을 되새기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충남 유성이 고향인 노씨는 17세때인 지난37년 처녀동원령을 받았고 치마를 뒤집어쓰고 피해 다니던중 대전 근처에서 헌병에게 끌려갔다. 『낮에는 창고에 갇혀 있으면서 뚜껑 없는 기차에 짐짝처럼 실려 밤에만 장소를 옮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3일 뒤 도착한 곳이 중국 산서성에 있는 오태산이란 곳이었다.이곳에서 그는 끌려온 조선인 여성 38명,일본인 위안부 2명과 함께 3년간 일본군을 상대로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다. 『위안소는 마구간처럼 생긴곳이었고 우리들은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려 나가 하루 40명이 넘는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노씨가 있던 곳은 아침에 나가면 탄피를 한바가지 정도 거둘만큼 격전장에 인접한 곳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곳에서 옷행상을 하는 조선인 내외를 만나 그들의 수양부모가 사는 천진으로 보내는 짐속에 숨어 그곳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천진에서 1년간 숨어살다 해방직전인 1945년 2월쯤 옷장수 수양부모의 연고지였던 충남 강경을 거쳐 부모가 사는 유성땅을 밟았다.부모와 오빠는 당시 살아 있었지만 모두 곧 세상을 떠나고 지금까지 혼자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어려운 생활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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