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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묵은 청첩장/이용원 수석논설위원

    물건을 잘 정리하지 않는 악습이 있어 사무실 책상에는 신문을 비롯한 잡다한 물건이 늘 쌓여 있다. 어제 저녁 큰 맘 먹고 책상을 정리하는데 신문더미 속에서 청첩장이 한장 툭 떨어졌다. 아뿔싸! 10여년 전 퇴사한 선배가 큰애를 여의는 혼사였다. 그러잖아도 그 선배가 딸을 치웠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왜 내게는 청첩을 하지 않았을까 은근히 섭섭하던 차였다. 한편으로는 그 양반에게 내가 실수라도 해서 그런가 걱정도 했다. 그랬는데 청첩장을 챙기지 못해 생긴 일이라니, 다음에 그 선배를 어이 볼꼬 싶었다. 며칠 뒤면 역시 딸을 시집보내는 다른 퇴직 선배가 청첩 범위를 상의해 왔다. 무조건 두루두루 보내시라고, 청첩장이란 게 부담도 되지만 받지 못하면 섭섭하기도 한 물건이라고 권했지만 그 선배는 “회사 떠난 지 오랜데 후배들에게 부담 주기 싫다.”며 고개를 갸웃갸웃하셨다. 바야흐로 청첩의 계절이다. 청첩도 안부의 일종이니, 편지처럼 부담없이 주고받는 건 어떨까. 부조는 못하더라도 소식은 알게끔 말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3) 봄날의 과부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3) 봄날의 과부

    신윤복의 그림 ‘봄날의 과부’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그림을 기법 차원에서만 독해한다면 그림을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사실 이 그림은 사회사적 독해를 요한다. 먼저 그림부터 꼼꼼히 챙겨 보자. 이 그림이 만들어내고 있는 공간. 기와를 얹은 담장이 에워싸고 있는 마당이다. 담장은 장방형의 돌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기와를 덮었으니, 예사 집이 아니다. 권세 깨나 있고 돈 좀 주무르는 그런 집안이 분명하다. 그림 왼쪽 상단에는 담장 너머 흰 꽃, 붉은 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배나무 꽃인가, 벚나무 꽃인가, 배롱나무 꽃인가. 어쨌든 좋다. 이런 꽃으로 계절이 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의 짝짓기 그림에 담은 신윤복의 파천황적 발상 봄은 생명의 계절이고, 생식의 계절이다. 곧 봄은 생명을 잉태하는 계절인 것이다. 하여 그림 아래 부분의 마당에서 개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 그림에 개의 짝짓기라니, 조선시대에 신윤복이 아니면 불가능한 파천황적인 발상이다. 한데 짝짓기를 하는 것은 개만이 아니다. 개로부터 시선을 조금 위로 올려보면 참새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또 그 위로 참새 한 마리가 더 있어 파닥거린다. 바야흐로 봄은 짝짓기의 계절인 것이다. 식물의 꽃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식물의 성기가 아닌가. 꽃이 피고 수정이 되어 열매를 맺는 것은 식물의 짝짓기 행위다. 생명력이 충만한 봄은 어디서 왔는가. 당연히 담장 밖에서 왔다. 담장을 넘어오는 붉고 푸른 꽃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봄은 개구멍에서도 온다. 개 두 마리는 바로 담장 아래의 개구멍으로 들어온 것이다. 참새들이야 저 허공을 통해서 왔을 터이고. 그런데 담장 안은 어떤가. 이제 시선을 오른쪽 두 여인네로 옮겨보자. 두 여자는 비스듬히 누운 나무에 기대어 서 있다. 그런데 그 나무가 문제다. 나무는 소나무로되, 이미 꺾어진 소나무고,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래쪽의 빈약한 잎을 단 가지 둘뿐이다. 소나무는 죽어가고 있다. 집 밖은 생명력이 충만한 봄인데, 여기 돌담 안의 집은 죽어가고 있는 풍경이다. 이제 여자 둘을 보자. 오른쪽 여자는 삼회장저고리를 제대로 차려 입고 있고, 머리를 길게 땋아 댕기를 묶고 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귀한 집의 규수다. 왼쪽 여자는? 구름 같은 가체를 올리고 있는데, 옷은 모두 흰색, 즉 소복이다. 이 여자는 결혼을 한 여자이고, 또 상중에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남편이 죽은 여인이다. 왜 신윤복은 과부를 그림에 배치했는가 궁금하다. 여자 둘의 시선은 개의 짝짓기에 가 있다. 그런데 둘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처녀의 표정은 쌀쌀맞고 차갑고 무심하다. 하지만 과부는 배시시 웃는다. 무언가를 안다는 눈치다. 과부의 웃음에 신윤복의 의도가 있다. 신윤복은 과부의 소외된 성욕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성적 욕망 철저히 억압한 가부장제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여성은 젊어서 남편이 사망했을 경우, 재혼, 곧 개가의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남편이 죽어도 여성은 개가, 삼가(三嫁)할 수 있었고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선 건국 이후 성리학의 가부장적 윤리관은 여성의 재혼을 윤리적 타락으로 규정했다. 성종 때 ‘경국대전’의 편찬을 완료하면서, 남성의 가부장제는 마침내 법으로 여성이 개가해서 낳은 자식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좋은 벼슬자리를 얻을 수 없도록 제한하였다. 이런 판국이었으니, 양반가의 여성은 사실상 재혼의 길이 막혔던 것이다. 이런 조치와 함께 남성의 가부장제는 남편이 죽고도 재혼하지 않은 여성을 절부(節婦)라 부르고, 남편을 위해 자기 신체를 자해하거나, 대신 죽거나, 남편이 죽었을 때 즉시 따라죽은 여성을 열녀라고 불러 정문을 내리는 등 사회적 명예를 부여하였다. 이런 정책이 강하게 추진되어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여성의 수절은 양반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퍼졌다. 양반 상인 할 것 없이 남편이 죽으면 예사로 수절하였고,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는 경우가 속출하였다. 신윤복의 이 그림은 이런 사회적 배경을 깔고 있는 것이다. 젊은 여성이 수절할 경우 그 내면의 성욕을 처리할 방법이 묘연하였다. 조선조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을 출산과 쾌락으로 분리하고, 후자를 음란함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남편이 죽은 뒤 홀로 남은 여성의 성은 출산이 배제된 성이기에 쾌락만이 남았고, 그것은 자동적으로 음란함이 되었다. 홀로 된 여성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발설할 수가 없었으니, 이것은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가한 가장 큰 폭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성은 이와는 반대로 아내가 죽으면 속현(續絃)이란 그럴 듯한 말로 재혼을 할 수 있었고, 기생제도와 축첩제도 등을 통해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사실 개가를 금지하는 것은, 한 남성이 자신이 죽은 뒤에까지 여성의 성을 독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곧 조선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남성의 성적 욕망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욕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변형될 뿐 가부장제가 아무리 여성의 성욕을 억압하는 담론을 유포해도 여성의 성욕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성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변형될 뿐이다.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의 서문은 한평생 밤이면 동전을 굴리면서 지새운 과부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과부는 이렇게 말한다.“무릇 사람의 혈기는 음양에 근본을 두고 있고, 정욕은 혈기에 모이며, 생각은 고독한 가운데서 생겨나고, 아프고 슬픈 감정은 생각하는 데서 우러나겠지. 혈기가 때로 왕성하면 어찌 가부라고 정욕이 없겠느냐? 가물거리는 호롱불 아래 그림자를 조문(弔問)하며 외로운 밤 지새기가 괴롭고, 게다가 처마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든지 창에 달빛이 환히 들어올 때, 오동잎 하나 뜰에 날리고, 외기러기는 하늘에서 울고 가고, 멀리 닭의 울음소리 들리지 않고, 어린 종년은 쿨쿨 코를 고는데 혼자 잠 못 이루는 이 고충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겠느냐?” 어떤가. 과부의 성욕을 억압하는 것이 어떤 형벌인지 짐작이 가는가. 양반가의 이 여인은 자신의 성욕을 억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았고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다. 조선후기의 문헌인 ‘기문’이란 책에는 과부의 이야기가 둘 실려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한 과부가 계집종을 데리고 수절하며 사는데, 계집종 역시 남편을 잃고 수절하였다. 어느 날 동네에 송이버섯 장수가 왔다. 과부는 송이버섯이 남성의 성기와 같이 생긴 것을 보고는 계집종을 시켜 값을 따지지 않고 모두 사오게 하였다. 용도야 뻔하다. 두 여자는 송이를 ‘덕거동’이라 부르고 욕망이 솟을 때마다 덕거동으로 욕망을 달랬다. 이야기는 이어지지만 여기서 멈추자. 또 다른 이야기 역시 과부의 것이다. 어느 날 과부가 이웃에 사는 기생이 잘 생긴 사내와 온갖 성희(性戱)를 즐기는 것을 보고 치솟아 오르는 욕망을 누를 길이 없어 집으로 돌아와 자위 행위에 빠진다. 이게 너무 심하여 마침내 말을 못하게 되었다. 이웃에 사는 할미가 무슨 일로 찾아왔다가 여자가 벙어리가 된 것을 보고는 한글로 필담을 한 끝에 자초지종을 알아내고는 동네의 장가를 들지 못한 사내를 불러와 짝을 맺어준다. 사내와 한바탕 거창한 방사를 치른 후 과부는 다시 말을 하게 되었다. 적지 않게 전하는 이런 이야기의 존재는 과부의 성적 욕망이 은폐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조선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은폐하는 데 성공했을 뿐, 그 내면의 욕망을 소멸시킬 수는 없었다. 신윤복의 그림은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소복을 입은 과부가 개의 짝짓기를 보고 배시시 웃는 그 장면은 그 젊은 과부의 내부에도 성적 욕망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이야말로 조선시대 최고의 그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이 같은 신윤복의 그림을 베낀 모방작도 더러 남아 있다. 신윤복의 그림의 영향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물론 수준은 원작에 한참 못 미친다. 작자 미상의 ‘봄날의 과부 모방작’만 해도 전반적으로 필치가 원작에 비해 자연스럽지 못하고, 개의 짝짓기 장면이 아주 천박하게 느껴지는 등 전반적인 수준이 확연히 떨어짐을 알 수 있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총선 D-22] [총선 격전지를 가다]‘정치 1번지’ 종로 손학규 vs 박진

    [총선 D-22] [총선 격전지를 가다]‘정치 1번지’ 종로 손학규 vs 박진

    “박진 그 양반은 옛날에도 가끔 오셔서 빈대떡도 드셨지.”“한나라당에 다 몰아 줘서야 되겠느냐.”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찾는다는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의 상인들은 “날이면 늘 찾아 오니 이제 하나둘씩 찾아 오겠지.”라며 4·9 총선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터줏대감인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는 친밀감을 표시하면서도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를 지지해야 한다는 당위론까지 내놨다. ●박측 “표밭 다질만큼 다져” 광장시장에서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는 이진옥(가명·52·여)씨는 “손학규 대표는 잘 모르겠고 누가 직접 와야 ‘아, 저분이 그 분이구나.’하지.”라면서 “그래도 박진 의원은 부인도 몇번 봤다.”고 말했다.2002년 16대 국회의원 재선거에 당선된 후 17대까지 6년간 꾸준히 지역구를 관리해 온 박 의원의 성과랄 수 있다. 반면 건너편 옷가게의 양혜자(가명·57·여)씨는 “손 대표를 뵌 적은 없지만 이번에는 절대 한나라당을 찍어 주면 안 된다.”고 손 대표를 옹호했다.4·9총선의 최대 쟁점인 정권 안정론과 정권 견제론의 기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종로구의 주민다운 반응이다. 종로구 숭인동에서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는 김흥영(48)씨는 “손 대표도 한나라당에 있었고 인물도 비슷비슷하다.”며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정인봉 변호사도 나온다고 하는데 손학규, 박진 빼고는 힘든 거 아니냐.”고 덧붙였다. 창신동의 한 미용실에서는 가벼운 설전까지 벌어졌다. 미용실 주인인 이혜정(가명·37·여)씨는 “박 의원은 이 지역에서 일해 왔는데 손학규 그 분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반면 머리를 깎던 오용석(가명·34)씨는 “경기지사 이미지가 강하지만 손 대표도 똑똑한 분”이라고 맞섰다. 박 의원측은 “표밭을 다질 만큼 다졌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박 의원은 “인물론으로는 차세대 리더 박진 대 과거 인물 손학규로 맞서고,‘종로의 자존심’이라는 타이틀로 조직을 다질 것”이라며 전략을 밝혔다. ●손측 “바람은 지금부터” 손 대표측은 ‘바람은 지금부터’라는 반응이다. 핵심 측근은 “본격적으로 뛰면 바닥 정서도 달라질 것”이라면서 “박진 의원과의 대립각이 아니라 전국적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박 의원은 양강구도, 손 대표는 다자구도를 선호하는 형국이다. 자유선진당의 정인봉 변호사를 변수로 보는 전략에서다.17대 총선에서는 0.7%,16대는 8.8%의 근소한 득표율 차이로 당락이 결정됐다. 정 변호사의 활약 여부에 따라 당선자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0) 유혹하는 그림 ‘춘화’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0) 유혹하는 그림 ‘춘화’

    신윤복의 그림 ‘춘화 감상’이다. 그림은 간단하다. 방안이다. 왼쪽 위편에 상이 놓여 있고, 무엇을 담는 그릇인지는 모르지만 그릇 둘이 있고, 아래에는 화로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아마도 요강으로 보이는 물건이 있다. 두 여자가 무언가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왼쪽 여자는 저고리 깃과 고름 곁마기 끝동을 모두 자주색 천으로 댄 삼회장을 갖추어 입고 있으니, 호사스러운 양반가의 여성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저 커다랗게 틀어 올린 구름 같은 가체(큰머리)를 보라. 이런 큰 가체는 여간한 부자가 아니면 하지 못한다. ●춘화첩 보며 욕망 달래는 소복 입은 과부 왼쪽 여자의 입성에 비해, 오른쪽 여자는 확연히 다르다. 이 여자는 아래 위가 모두 흰옷이다. 저고리 깃도, 옷고름도, 곁마기 끝동도 모두 흰색이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짐작했겠지만, 이 여성은 상중에 있는 과부다. 아마도 남편이 죽었을 것이다. 부모, 시부모가 죽은 사람도 소복을 입기야 하지만, 그 경우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소복을 입은 젊은 여인은 바로 과부일 뿐이다. 두 여자의 앞에 놓인 것은 그림책이다. 그림책을 자세히 보면 예사 그림책이 아님을 알 것이다. 사람 둘이 엉켜 있다. 바로 남녀의 성관계를 그린 것이다. 그림은 여러 장으로 만들어져 있고, 한 페이지씩 넘겨보게 되어 있다. 이 그림은 환하게 그려져 있지만, 사실은 어두운 방안이다. 왜냐고? 그림책 앞의 촛불을 보라. 불꽃은 바람에 날려 오른쪽으로 드러눕다시피 하여 꺼질락 말락 하고 있다. 어두운 밤의 방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은밀히 두 여인이 한밤중에 춘화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과부라 해서 성욕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과부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을 춘화첩을 보면서 달래고 있는 것이다. 과부의 억눌린 성적 욕망에 대해서는 이미 말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문제는 춘화의 존재다. 인간의 성적 욕망 내부에는 포르노그래피를 향한 상상력이 존재한다. 성에 관해서는 그 어떤 치밀한 언어적 표현도 시각적 예술을 넘어설 수는 없는 법이다. 어느 고대건 중세건,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성적 상상력을 구체화한 조각과 회화가 존재한다. 오늘날 인터넷에 범람하는 포르노 사이트야말로 인간의 가장 내밀한, 그리고 한없이 복잡하고 한없이 다양한 성적 욕망을 시각화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면 위에 떠오르지 않는 무량한 그 형상물이야말로 슬프게도 인간의 리얼리티일 것이다. ●인조 때 중국서 ‘성행위 조각품´ 들어와 그 포르노그래피의 한국에서의 원조가 바로 그림 속 두 여성이 보고 있는 춘화다. 춘화는 중국, 일본, 한국에 모두 있고, 또 서양의 경우는 더 풍부하게 남아 있다. 다만 한국의 춘화는 조선후기에 비로소 생산된 것이다. 박식하기로 이름난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여러 글에서 춘화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일부분을 읽어 보자. 일찍이 북경에서 온 그림책을 보았더니 그 속에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하는 여러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또 진흙상으로 만든 조각을 상자 속에 넣고 기계장치를 조작해 움직이게 한 것도 있었다. 이름을 춘화도라 했는데, 사람의 성욕을 돋우게 한다 하였다. 대개 북경에서 춘화도가 수입되었고, 때로는 조각품도 있었던 것이다. 특히 진흙으로 만든 조각품 중에는 인형을 상자 속에 넣고 기계장치를 해서 성행위 장면을 재현하도록 하는 신기한 것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규경은 이어서 박양한(1677∼?)의 ‘매옹한록’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책에 의하면, 그런 그림은 춘화라 하고 그런 조각은 춘의(春意)라 한다 하였다. 이규경은 자신은 두견석으로 조각하고 자작나무 갑에 넣은 춘의 조각을 보았는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고 한다. ‘매옹한록’의 기록은 계속된다. 중요한 것이니 직접 읽어 보자. 명나라 말기에 음란한 풍조가 날로 퍼져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 모습을 혹은 조각으로 만들고 혹은 그림으로 그렸는데, 조각으로 만든 것은 춘의라 하였다. 사신이 와서 바친 예물 중에 상아로 만든 춘의 하나가 있었다. 인조가 승정원에 내렸는데, 상아로 남녀의 면목을 새긴 것으로 기계장치를 작동시키면 남녀관계의 동작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하던 것으로 모문룡이 우리를 모욕하려고 보낸 것이라 생각했고, 중국사람들이 평소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까마득히 몰랐다. 인조가 마침내 깨부수어 버리라고 명하였다. 이때 조정 신하들 중에 손에 쥐고 감상하는 자가 있었는데, 조정에서 그 일을 비판해 그 사람의 청로(淸路)를 막아버렸다. 우리나라의 곧고 깨끗한 풍속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 기록을 보면 인조 때 처음 남녀가 성관계를 갖는 조각품이 전해져 상당한 충격을 던졌던 것이다. 또 이 기록을 통해 인조 당시까지는 조선에 전혀 춘화나 춘의가 없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박양한은 춘의를 만지작거리며 감상한 사람의 벼슬길을 막아버린 것을 두고, 조선이 도덕적인 나라라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이런 향락적 문화는 풍요한 경제력 위에서 가능한 법이다. 박양한 자신이 명나라 말기부터 음풍이 번졌다고 하고 있거니와 사실이 그랬다. 중국에서는 춘화나 춘의가 한나라 이래로 지배층 사이에 유행하였다. 다만 그것이 민간의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진 것은 명대 말기에 와서이다. 명대 말기 상품경제의 발달로 도시문화가 꽃피자 자연히 소비와 향락열이 번졌고, 그 중에서도 특히 성적 욕망이 분출되었으니, 춘의와 춘화는 애당초 경제적 풍요 위에 꽃핀 성적 욕망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조차도 에도막부 이후 도시문화의 발달과 함께 춘화가 서민들에게 널리 유행했다. 화려한 채색 판화(우키요에,浮世繪)로 만든 춘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1719년 제술관으로 통신사행에 끼어 일본에 갔다 온 신유한(1681∼?)은 일본 여행기인 ‘해사동유록(海사東遊錄)’에서 일본의 남자는 품속에 반드시 운우도(雲雨圖)를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성욕을 돕는다고 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 일본의 서점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키요에 춘화일 것이다. ●광통교 다리 위에 걸어놓고 팔던 춘화 이규경은 ‘화동기원변증설(華東妓源辨證說)’이란 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요사이 춘화가 북경에서 들어와 널리 퍼졌다. 사대부들이 많이 돌려가며 보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즉 춘화는 북경에 드나들 수 있는, 또 북경 현지에서 춘화를 구입할 수 있는 세력 있는 양반층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김창업(1658∼1721)은 1712년 연행정사로 중국에 파견되었던 형 김창집을 따라 북경에 다녀와서 기행문 ‘연행일기’를 남긴다. 이 책의 12월23일 조에 춘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날 선비 차림의 한 사람이 그림을 팔러 오는데, 소년과 미인이 성관계를 하는 그림이었다. 서장관 노세하가 더 들추어 보려고 하자 김창업은 춘화 같다고 하면서 말린다. 김창업은 그 사람을 보고 선비냐고 묻고 그렇다고 답하자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어찌 춘화를 가져와 남에게 보이냐고 힐책하자 그 선비는 그림을 싸서 달아나고 만다. 이 일화에서 김창업이 정확하게 춘화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김창업은 그야말로 혁혁한 서울의 명문가 안동김씨 집안 사람이다. 형 김창집이 영의정까지 지냈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런 명문가가 되어야 비로소 북경에서 춘화를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비록 춘화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지만, 그 자신이 춘화를 보지 않았다면 과연 단박에 춘화라고 하는 판단이 나올 수가 있었을까? 이렇게 하여 전해진 춘화는 드디어 조선에서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사대부가에서 춘화를 가지는 것은 별반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19세기 중반에 창작된 서울의 풍물을 노래한 ‘한양가’에서는 광통교 다리 위에서 걸어놓고 파는 그림을 잔뜩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 춘화가 들어 있으며,‘춘향전’의 한 이본에도 춘향의 방 안을 묘사하면서 춘화를 꼽고 있다. 춘화를 감상하는 것은 18세기 이래 조선의 성풍속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던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청장 차관급 11명 프로필

    ●남일호 감사원 사무총장 ‘안동 양반’으로 불릴 만큼 원만한 대인관계로 감사원 안팎에서 평이 좋다.‘대학수학능력시험 관리실태’, 황우석사건 관련 ‘국가연구개발 지원관리 실태’ 등 주요 감사를 총지휘, 일찌감치 사무총장감이라는 말을 들었다. ▲55세·경북 안동 ▲안동고, 고려대 법대 ▲행시 23회 ▲감사원 총무과장 ▲사회복지감사국장 ▲기획홍보관리실장 ▲감사교육원장 ●박종달 병무청장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육군 내 인사 전문가로 통한다. 인사사령관 시절인 2007년 사령부 내에 ‘유가족 찾기 특별팀’을 설치, 변사(變死) 등으로 처리됐다가 재심의를 통해 전사·순직으로 인정된 국군장병의 유가족 찾기 운동을 벌였다. ▲59세·경남 창녕 ▲육사 29기 ▲3군사령부 인사처장 ▲50사단장 ▲3군사령부 참모장 ▲3사관학교장 ▲수도군단장 ▲육군 인사사령관 ●양치규 방위사업청장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이다. 육군 중령 시절부터 무기체계 분야의 실무를 쌓았으며 장군 진급 뒤에는 국방부의 통신 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인 백두사업과 한국형 헬기(KHP)사업 등 사업을 도맡았다. ▲58세·제주 ▲제주일고, 육사 29기 ▲국방부 백두사업단장 ▲육본 무기체계사업단장 ▲32사단장 ▲육본 기획관리참모부장 ▲방사청 KHP사업단 체계관리부장 ●최성룡 소방방재청장 소방직 출신으로는 처음 청장에 임명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 서울시 소방방재본부장을 맡아 안정된 업무 수행으로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격은 온화하면서도 꼼꼼하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58세·전남 영암 ▲나주종합고, 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 ▲전남 소방본부장 ▲행정자치부 방호과장 ▲중앙소방학교장 ▲서울시 소방방재본부장 ▲대불대 소방학과 교수 ●이건무 문화재청장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조용하고 꼼꼼한 성격의 선비풍 학자. 청동기시대를 전공한 고고학자로, 평생을 박물관에 봉직한 ‘박물관맨’이다. 국립중앙박물관장 시절 경복궁의 박물관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데 힘썼다. ▲61세·서울 ▲삼선고,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장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문화재위원 ●이수화 농진청장 미국 미주리주립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금융정책의 효과측정연구’,‘피셔가설과 불확실성의 영향분석’ 등을 펴낸 농업경제전문가. 2004년 8월 산림청 차장에 취임, 3년6개월 이상 장수하면서 산림법 체계를 새로 정비했다. ▲53세·경북 청도 ▲경북고·성균관대 행정학과 ▲행정고시 19회 ▲농림수산부 식량정책과장, 농업정책과장 ▲주미대사관 농무관·참사관 ▲식량생산국장 ▲산림청 차장 ●윤여표 식약청장 국내 독성학 분야 권위자로 지난해 국립독성과학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의약품·식품 분야 전문지식을 두루 갖췄으며, 약대 6년제 개편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52세·대전 ▲대전고, 서울대 약학박사 ▲충북대 약대 교수 ▲충북대 약품자원개발연구소 소장 ▲대한약학회 부회장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 부회장 ▲한국환경독성학회 이사 ▲식품의약품안전청 자문위원 ●정옥자 국사편찬위원장 정조, 성리학, 송시열, 진경산수화 등을 주된 연구분야로 삼아온 조선후기사 전문 역사학자.1980년대에는 독재 정권에 저항한 학생들을 보살펴 ‘운동권의 어머니’로 불렸다.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서울대 규장각 관장을 지냈다. ▲66세·강원 춘천 ▲동덕여고, 서울대 국사학과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규장각 관장,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분과위원 ●정장식 중앙공무원교육원장 관선·민선시장을 여러 차례 역임하는 등 행정 경험이 풍부한 정통 엘리트 내무관료 출신이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업무 처리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성격은 유순하고 합리적인 편이다. ▲58세·경북 포항 ▲경북대사대부고, 서울대 경제학과 ▲행정고시 12회 ▲청와대 행정비서관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장 ▲경북 포항시장 ▲대구대 무역학과 객원교수 ●강병규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 지방업무에 밝은 정통 내무관료 출신이다. 친화력이 뛰어나 폭넓은 인간관계가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또 유연한 상황 대처로 주변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신뢰감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54세·경북 의성 ▲경기고, 고려대 법학과 ▲행시 21회 ▲내무부 공기업과장 ▲소청심사위원회 위원 ▲대구시 행정부시장 ▲행정자치부 정책홍보관리실장·지방행정본부장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앞장선 역사학자.‘고대국가 제사’가 전공이지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위원회’를 결성해 고구려사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55세·서울 ▲중앙고, 고려대 사학과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하와이대학 한국학센터 객원연구원 ▲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 ▲한국고대사학회장 ▲고려대박물관장 ▲문화재위원
  • [서울광장] 열심히 일하겠다는데 왜? /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열심히 일하겠다는데 왜? /육철수 논설위원

    정권교체 이후로 왠지 머리가 좀 지끈거린다. 참여정부 땐 변호사 출신 달변 대통령 때문에 그랬다. 대통령의 생각을 따라잡아 글 하나 쓸 요량으로 걸핏하면 팔자에 없는 법전을 뒤적여야 했으니까. 새 정부가 들어서니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겼다. 영어몰입교육이 그 하나다. 그간의 논란은 차치하고, 일부 학교에서는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는 건지, 입학식을 영어로 진행하는 장면에선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한편으론 은근히 조바심도 났다. 해서, 이 참에 영어공부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며칠 전엔 퇴근해서 TV영어강좌를 두어 시간 틀어놓았다. 내 속내를 알 리 없는 아내는 “웬일이야. 영어공부를 다 하고….”라며 핀잔 비슷한 말을 던진다. 머리가 굳었는지 강좌도 신통찮아 사나흘 듣다가 접어버렸다. 대통령이 입만 열면 “변화, 변화”하니까 이 또한 스트레스다. 아내도 모를 정도로 변하고 날마다 바뀌어야 한단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질까 겁난다. 그러잖아도 쳇바퀴도는 듯한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담배를 끊고 술도 줄여야겠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는데, 몇번을 다짐해도 하루아침에 변신이 어디 그리 쉬운가. 국무회의를 앞당기고 밤늦도록 일하겠다는 대통령의 방침도 부담스럽다. 게으름을 피우려 해도, 내가 노는 시간에 나랏일을 맡은 이들은 분주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낙오의 불안감이 엄습한다. 사실 국정에 참여한 사람들과 나는 상관도 없고, 처지도 한참 다르다. 그런데 저들의 변화바람에 휩쓸려 공연히 마음고생한 꼴이니 쓴웃음이 피식 터져나온다. 정부의 분위기에 따라 국민 노릇하기도 때론 이렇게 고달프다. 그래서 하는 소린데, 능력을 인정받아 이명박호(號)에 올라탄 인사들은 매사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다워야 하고, 변혁을 주도한다는 긍지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요즘 일을 열심히, 많이 하겠다는 정부에 대해 여기저기서 수군거린다.4시간 자며 일에 파묻힌 대통령을 걱정하고, 비전제시와 창의를 위해선 머리를 쓰라고 조언한다. 노 홀리데이(No Holiday), 얼리 버드(Early Bird:일찍 일어나는 새) 증후군이란 말이 나오고, 과로정부라고도 한다. 공무원들은 별 보고 출퇴근하는 게 죽을 맛이란다. 어느 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이 오리면, 나는 부지런한 물밑 오리발”이라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 바깥에선 대통령의 부지런함으로 미루어 오리의 몸통도 요란하고 다리도 요동칠까 우려한다. 아니면, 물밑 다리는 가만히 있는데 몸통만 바쁠까봐 걱정하고 있다. 과욕·과속하면 시야가 좁아지는 법이다. 하지만 걱정도 팔자이듯, 세간의 노파심은 기우라는 생각이 든다. 새 정부 인사들의 의욕이 펄펄 넘친들, 아무려면 휴식도 거르고 죽자사자 일에만 몰두할 리는 없을 것이어서다. 그들이 보통 영리한 사람들인가. 염려 안 해줘도 알아서들 대처할 것이다. 대통령은 평생 남보다 2배인 하루 16시간씩 일해 온 양반이다. 그게 천성인 걸 어찌하나. 안온했던 공직자들은 그런 대통령 밑에서 발이 부르트도록 더 뛰어야 한다. 국정의 하루는 25시간이라 여기고 숨은 1시간을 찾아내란 얘기다. 국민에겐 일 욕심 많은 ‘큰머슴’을 가진 게 복(福)이지 근심거리는 아닐 것이다. 대통령으로 뽑아 권력을 쥐어준 것은 잘 부려먹기 위해서다. 멀쩡한 그릇만 깨지 않는다면 일하겠다는 사람들을 말릴 이유가 없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열린세상] 무능이 나을까,부패가 나을까/이해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열린세상] 무능이 나을까,부패가 나을까/이해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무능과 부패,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무엇이 나을까. 노무현 정권 시절 특히 대통령선거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항간에는 이런 담론이 떠돌았다.‘무능보다 부패가 낫다’! 도덕성을 앞세워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권에 대해 갖은 흠집 내기를 즐기던 일부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양산한 담론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국민 다수의 피부에 전혀 다가오지 않는 거시경제 지표를 내세워 ‘지표는 좋다.’고 둘러댔지만,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민초들의 좌절감은 극심한 것이었다. 사실 얼마 전 참여정부 들어 더욱 심각해진 사회 양극화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 소득보다는 자산의 불평등에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런데 바로 이 자산의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원인 가운데 으뜸은 단연 부동산이다. 연구에 따르면 1999년에 부동산이 자산 불평등도에 기여한 비율이 74%인 데 비해,2006년에는 93%로 급격히 높아졌다. 그래서 부동산정책의 실패는 민생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생각은 전사회적으로 퍼져 나갔고, 또 이명박정부의 집권에 유리한 사회심리적 환경을 조성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 무능보다 부패가 나을까. 이명박정부의 초대 내각 후보자들을 놓고 잠시나마 온나라가 떠들썩했다.‘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이라는 신조어에 이어,‘강부자(강남 땅부자)’,‘1억달러 내각’이란 말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급기야 세명의 장관후보가 낙마한다. 그 중 누구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다.’ 하였고, 또 어떤 누구는 진단 결과 암이 아니라서 남편이 오피스텔을 사주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누구는 부부교수 25년에 재산 30억이면 양반이라고도 말했다. 경제부처 장관 후보는 골프회원권이 2개씩이나 된다고 질타하자 ‘싸구려’ 회원권이라고 맞받았고, 어떤 이는 저서에서 ‘IMF는 축복’이라고 설파하였다. 참으로 새정부는 그들의, 그들에 의한, 그들만을 위한 정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일까.‘부자가 천당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이명박정부에서는 가난한 자가 장관되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해야겠다. 이 나라가 적빈의 지경에 있는 것도 아닌 터에, 모든 부를 ‘도둑질’로 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그 부의 축적 과정에 투명성과 정당성의 엄정한 잣대를 여지없이 들이대고 있다. 실패한 부동산정책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일시 ‘차라리 좀 부패는 했지만 유능한 통치자’가 낫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낙마한 장관후보에 대한 전국민의 공분으로 볼 때, 국민의 절대 다수는 결코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국민의 따가운 시선은 단지 후보자들이 돈이 많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새 정부의 신임 각료후보들이 각종 의혹의 해명과정에서 보여준 안이하기 짝이 없는 사회인식에서 아무 희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특히 그 부의 대부분이 바로 부동산이라는 점, 그 부동산이 이 나라 사회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에서 새 내각과 국민 다수 사이에 넘지 못할 벽을 보았기 때문일 게다.‘섬김’을 내건 정부에서 과연 누가 누구를 섬겨야 할 것인가. 흔히 좌파는 분열해서 망하고, 우파는 부패해서 망한다고 했다. 일단 분열한 좌파는 이번 대선에서 망했다 치자. 그러면 이제는 부패한 우파의 차례인가. 과연 언제쯤 우리는 무능과 부패 사이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이해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 [데스크시각] 脫고소영 脫강부자/박대출 정치부 부장

    [데스크시각] 脫고소영 脫강부자/박대출 정치부 부장

    그는 한때 문제아였다. 마약도 했다. 술에 빠져 살기도 했다. 자서전에서 털어놓았다. 부모는 2살 때 이혼했다. 어머니는 6살 때 재혼했다. 인도네시아, 하와이를 전전했다. 의붓아버지,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인종적 차별도 경험했다. 하지만 바락 오바마는 극복했다. 이젠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다. 시골 소년은 끼니조차 어려웠다. 찢어지도록 가난했다. 본인의 표현이다. 노점상 청소부 일용노동자도 해봤다. 샐러리맨 신화도 일궜다. 지난달 대통령이 됐다.‘이명박 세상’이 열렸다. 성공 신화의 주역이다. 둘은 닮았다. 인생 역전과 성공 신화를 창조했다. 화두는 닮은꼴이다.‘변화’다. 오바마의 유세장 플래카드에 어김 없이 등장한다.“변화, 우리는 믿는다(CHANGE,WE BELIEVE IN)” 이 대통령은 연일 변화모드다. 청와대를 바꾸고 있다. 국무회의도 마찬가지다. 취임사부터 ‘변화’가 많았다.“변화를 거스르면 휩쓸리고 만다.”“60년 국운이 변화에 달렸다.” 청와대 일성도 그랬다.“어, 집무실 안 바꿨네.” 오바마는 11연승에서 멈췄다. 힐러리와의 예선 레이스는 길어지게 됐다. 미국은 흥분했다. 뉴욕타임스는 칭송했다. 오바마 자체로 미국이 변했다고 했다. 지금은 차분해졌다.‘검증모드’다. 뉴욕타임스 논조도 냉정하다. 혼혈 대통령 후보의 첫 고비다. 이 대통령 지지율은 하락세다. 당선 직후 80%대를 구가했다. 두달 남짓만에 50%대로 내려갔다. 언론·야당과의 허니문은 끝났다는 자조가 나온다. 고물가는 민생을 고강도 압박 중이다. 경제대통령의 첫 시련이다. 근원은 인선이다. 장관 후보 3명이 낙마했다. 살아 남아도 의혹들에 시달리고 있다. 원인을 짚어보자. 첫째 허술한 검증이 출발점이다. 능력·성과에 더 쏠렸다. 편법·탈법은 덜 신경썼다. 실용에만 치중했다. 국민 감정을 소홀히 했다. 부실 검증이 불을 지폈다. 둘째 황당한 해명은 기름이 됐다.3년간 45건 부동산 거래를 했다. 한달에 한건이 넘는다. 그래 놓고 땅을 사랑한단다. 누구는 배용준과 비교한다. 친구에게 놀러갔다가 땅을 샀다는 이도 있다. 자신은 양반이라는 후보도 나왔다. 국민들이 곱게 볼 리 없다. 셋째 지금은 통합민주당의 야당 적응기다. 견제는 야당의 본질이다. 딴죽이든, 발목잡기든 상관없다. 넷째 ‘탄돌이’들의 강성 주도다. 그들은 4년 전 무혈입성했다. 상당수는 4·9 총선에선 추풍낙엽이다. 일부는 법정에 서야 한다. 순해질 까닭이 별로 없다. 다섯째 여당 정치력의 부족이다. 한나라당은 10년만에 여당이 됐다. 아직 어리둥절한 것 같다. 과거 잣대와 지금 잣대가 다르다. 적에겐 엄하게 굴었다. 동지에겐 관대하다. 민심은 험해졌다. 뒤늦게 알아채고 허둥지둥한다. 해법은 여기에 있다. 순서대로 풀면 된다. 엄정한 검증은 첫째다. 논란의 근원을 차단하면 된다. 뻔한 얘기가 예사롭게 안 들린다. 인사가 만사다. 지나간 정권 평가는 혹독하다. 문민정부는 ‘문맹정부’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국민의 정부는 ‘도민의 정부’라는 불만을 샀다. 참여정부는 ‘코드만 참여’했다는 비판이다. 이명박 정부는 ‘일하는 정부’를 천명한다.‘일만 하는’ 정부가 되면 안 된다. 한데 아울러야 할 게 너무 많다. ‘고소영’‘강부자’가 등장했다. 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 강남 부자를 빗댄 표현이다. 둘을 극복해야 한다. 차관 인사에서 ‘반성’의 싹이 보였다. 호남·충청 출신을 꽤 배려했다. 실용과 선진은 ‘함께’란 토양에서 자란다. 탈(脫)고소영은 모든 학교, 모든 종교, 모든 지역이다. 탈(脫)강부자는 강북도, 지방도, 모두 부자다. 기업만의 실용이 아니라 근로자의 실용도 돼야 한다. 고소영 강부자의 극복이 실용이고, 선진이다. 그게 진정한 변화다. 박대출 정치부 부장 dcpark@seoul.co.kr
  • 시집 ‘찔레’ 다시 펴낸 문정희

    시집 ‘찔레’ 다시 펴낸 문정희

    “상상력과 창조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간단없이 노력해 문학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시인 문정희(60·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씨. 이순의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젊고 솔직하다.“새학기가 시작되면 강의하고, 학생들과 만나 술도 마시고 노래방에도 가고….” 시인의 이런 자연스러움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자연스러운 몸의 욕망과 시를 합일시키려는 노력의 결과로 봐야 할 듯하다. ●대부분 1980년대 초 뉴욕서 고독 속에 빠져 쓴 작품 그가 시집 ‘찔레’(도서출판 북인)를 다시 펴냈다. 최근 미국에서 ‘윈드 플라워(Wind Flower)’라는 제목으로 영역 출간된 것은 기념하기 위해서다. 표제시 ‘찔레’를 비롯해 ‘아들에게’ ‘편지’ ‘보석의 노래’ 등 72편의 시가 실린 이 시집은 고독에 빠진 젊은 날의 감성을 웅숭깊게 그려내고 있다. “1980년대 초 2년간 뉴욕대에 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하루종일 말 한마디 할 기회가 없는 절대 고독 속에 빠져 있었죠. 당시에 쓴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때 그 시절, 시인은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오르는 다종다양한 감정을 그대로 시로 옮겨 적었다. 이 시집은 출간 당시 KBS TV 9시 뉴스가 조사한 청소년들이 사랑하는 한국의 애송시집 가운데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시집 ‘찔레’는 시인이 뉴욕을 떠돌며 쓴 아웃사이더의 노래로 가득하다.“삶은 표류하는 것이죠. 그때 거짓과 폭압으로 시작된 한국의 정치 현실은 암울하기만 했고, 나의 현실은 송곳 위에 선 듯 날카롭기만 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쓴 작품인 만큼 기법상으로 미숙한 점이 적지 않죠. 지금이라면 훨씬 노회하게 썼을 텐데…. 날 것, 그야말로 생 이미지 그대로여서 지금 보면 아찔한 기분마저 들어요.” 당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후유증을 앓고 있던, 무척이나 거칠고 피폐한 시절인지라 시인에게는 유형, 무형의 부담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가을엔 스페인어, 내년엔 불어·일본어판 시집 출간 그래서인지 시집에는 울음의 정조(情調)거 넘쳐난다. 문학평론가 장석주씨는 “시집에 나오는 화자들은 마치 곡비(哭婢·상을 당한 양반집에서 돈을 받고 대신 울어주던 계집종)처럼 울어댄다.”며 “이 울음들은 ‘안’에서 ‘바깥’으로 내쳐진 자, 파편으로 떨어져 나와 떠도는 자, 디아스포라의 울음이다.”라고 말한다. “제가 문학의 중심에 서서 헤쳐나오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어느 한순간도 만만한 적이 없었습니다.” 문학의 승부는 투자한 시간과 비례하는데,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시에 천착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는 얘기다. 이야기는 미당 서정주 선생에까지 미쳤다. 미당의 수제자였던 만큼 그에 대한 마음은 각별한 데가 있다.“고등학교 백일장에 나갔는데, 마침 심사위원을 맡으셨죠. 그때 장원으로 뽑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대학도 선생님을 따라 동국대로 갔죠. 결혼해 아들을 낳았을 때는 이름도 지어주셨어요.” 그러나 미당으로부터 시에 대한 구체적 작법은 배운 적이 없다는 그는 생전에 선생이 선물한 나무 지팡이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지팡이를 보면 든든해지기 때문이란다. “가을에는 스페인어 시집이 나오고, 내년에는 프랑스어와 일본어 시집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러면 모두 9개 언어로 시집이 나오게 되네요. 시집도 12권이나 냈으니 글로벌 시인이라고 불려도 될까요.” 시인은 시집은 한번 나오면 그만인데, 이번 ‘찔레’가 다시 나오게 돼 자신의 시적 생명이 연장된 것 같아 무척 기쁘다고 했다.6000원.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노원구 국내 최초 ‘묘 석인상’ 공원 조성

    조선시대 ‘묘(墓) 석인상(石人像)’ 공원이 국내 처음으로 조성된다. 노원구는 26일 지역에 방치된 문관상(文官像) 9기, 동자상(童子像) 3기, 망주석(望柱石) 5기, 비석(碑石) 1기 등 모두 18기의 석인상을 모아 ‘조선시대 묘 석인상 전시공원’을 만든다. 석인상은 외부 침입으로부터 무덤을 수호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관복차림에 두 손을 모아 홀(笏·제사절차를 기록한 문서)을 잡고 있는 ‘문관상’, 주요 인물을 수행하는 시자(侍者)로서의 의미가 강한 ‘동자상’,2m 높이로 묘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영혼이 자신의 묘를 알아볼 수 있게 안내 역할을 하는 ‘망주석’, 죽은 이의 일대기와 업적을 기록해 세운 ‘비석’ 등이 있다. 묻힌 사람의 지위와 후손의 세력에 따라 제작 여부나 크기, 조각 수준 등이 다르다. 오는 6월 월계동 820번지 일대(8000㎡)에 들어설 석인상 공원은 우선 18기를 배치하고 수락산이나 불암산 등에 흩어져 있는 수십기의 석인상도 추가 발굴해 전시할 계획이다. 전시될 석인상은 높이가 85∼190㎝에 폭 38㎝ 규모다. 또 월계동 사적 제440호로 양반 분묘에서 서민 민묘까지 다양한 계층의 무덤 1000기 이상과 상석, 문인석, 비석, 동자상 등 수백여기의 석물들이 있는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을 발굴해 석인상 야외 전시장도 조성할 계획이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투기해명 어처구니 없다” 거센 역풍

    “투기해명 어처구니 없다” 거센 역풍

    ‘교수 부부가 25년 동안 재산 30억원이면 양반?’ ‘자녀 이중국적’에 이어 지목(地目)변경과 재산 축소신고 등 ‘부동산 논란’에 휩싸인 남주홍 통일부장관 후보자가 이번에는 부적절한 해명으로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서울신문 2월25일자 6면 참조> 역시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한 어이없는 해명으로 공분을 산 박은경 환경부장관 후보자, 이춘호 전 여성부장관 후보자와 함께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공직자가 되기엔 적절치 않다는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남 후보자는 지난 24일 부동산 지목변경을 통한 시세차익 의혹을 해명해 달라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아무 죄 없이 신문당하는 기분이라고 애 엄마(엄미숙 한성대교수)가 사색이 됐다. 저는 양반이다. 부부가 교수 25년 동안 하면서 외부 특강하는 것도 많다. 둘이 합쳐서 재산 30억원은 양반이다. 다른 사람들 봐라.”고 답했다. 누리꾼들은 이같은 해명이 담긴 기사에 수백개의 댓글을 달며 남 후보자의 인식 수준을 비판했다. 아이디 ‘izin4u’는 “아내와 둘이 연봉 5000만원이라 가정하고 30년 동안 1원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한 돈”이라면서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은 장관 제의가 들어왔을 때 거절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douglas00’은 “가치관에서부터 공직자 자격이 결여됐다.”고 한탄했고,‘pig007’은 “해명을 들어보면 도저히 서민의 일반 생활을 모르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썼다. 이명박 내각 후보자의 부적절한 발언은 남 후보자가 처음이 아니다. 김포 땅 절대농지 구입 논란에 휩싸인 박 후보자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24일 자진사퇴한 이 후보자는 “유방암 진단 결과 무사하다는 판정을 축하하는 의미로 남편이 오피스텔을 선물로 줬다.”고 해명해 비난을 가중시켰다. 장관 후보자 가운데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것으로 밝혀진 유인촌 문화부장관 후보자도 “배우생활 35년에 140억원의 재산은 벌 수 있다. 배용준을 한 번 봐라.”고 발언해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공직자는 서민의 생활과 아픔을 구체적으로 따져 보고 국민의 마음을 배려한 발언을 해야 하는데 이번 후보자들의 부적절한 해명은 당혹감과 허탈함, 위화감만 안겨 주고 있다.”면서 “일부 사회적 지도층과 서민 사이의 세계관 격차가 이 정도인가 싶어 씁쓸하다.”고 말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이명진 교수는 “한나라당이 10년 정도 권력에서 배제돼 있다 보니 인재풀이 협소해져 내부 검증 작업이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이뤄졌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창출에 보답하는 인사만 할 게 아니라 좀더 넓은 인재풀을 활용하는 시각을 길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8) 금지된 사랑의 만남 ‘밀회’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8) 금지된 사랑의 만남 ‘밀회’

    신윤복의 그림 ‘밀회’다. 때는 초승달이 뜬 밤. 서정주는 ‘동천’에서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라고 하였다. 초승달은 우리님의 고운 눈썹이다. 해서 초승달은 ‘우리님’의 사랑을 떠올린다. 이 그림 역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그림의 왼쪽에는 기와집이 꼭 반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기와집에 이어서 담이 있는데, 흙담이 아니고 제대로 깎아서 만든 돌담이다. 그리고 그림의 중앙에서 돌담은 꺾이고 있으니, 아마도 도시의 골목길일 터이다. 또 도시의 골목이라면, 필시 서울의 골목일 것이다. 그림의 위쪽에는 초승달이 떠 있고, 그 아래에는 나무를 그려 담을 슬쩍 지우고 있다. 어쨌거나 초승달이 희미하게 비치는 한밤중이다. 그림 오른쪽에는 남녀가 있다. 이 그림의 핵심은 이 두 남녀다. 먼저 여자를 보자. 여자는 쓰개치마를 쓰고 있지만, 얼굴은 다 보인다. 쓰개치마는 여성이 내외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옷이다. 내외를 위해 여성이 뒤집어쓰는 옷은 다양하지만 장옷이 으뜸이고, 장옷보다 간단한 것이 쓰개치마다(장옷은 신윤복의 또다른 그림 ‘장옷 입은 여인’에도 여실히 묘사돼 있다). 한데 여자는 저고리 깃과 소맷부리에 자주색 회장을 대고 있으니, 삼회장으로 제대로 갖추어 입은 차림이다. 그리고 신발을 보라. 맵시 있는 가죽신이다. 여성은 필시 지체 있는, 부유하게 사는 집안의 여성이다. 오른쪽의 남자를 보자. 넓은 갓을 쓰고 중치막을 입었다. 이 남자는 수염도 나지 않았고 또 얼굴이 앳되며, 갓끈이 아무 장식 없는 헝겊으로 만든 것을 보아, 아직 벼슬하지 않은 양반가의 젊은이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가죽신을 신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 젊은이 역시 체모를 차리는, 산다 하는 양반가의 자제가 분명하다. 한데 초승달 희미하게 비치는 한밤중에 이 두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남자가 왼손을 품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떤 물건을 여자에게 건네기 위해 여자를 불러낸 것인가. 아니면 여자를 불러내어 둘이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인가.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그림만으로는 알 길이 없다. 어딜 가고 있는가. 그림 왼편에 있는 화제를 보자.“달빛 어둑어둑한 밤 삼경/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月沈沈夜三更,兩人心事兩人知) 화제처럼 두 사람의 마음속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삼경이랬다. 삼경은, 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다. 알다시피 조선시대에는 통금이 있어서, 초경(밤 8시)에 인경종을 33번 치면 성문이 닫히고 시내의 통행이 금지된다. 인적은 완전히 끊기고 도성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가 5경(새벽 4시)이 되면, 다시 33번 울리는 인경종에 성문이 열리고 통행이 시작된다. 이 그림의 시각은 3경이니, 통행금지 시간에 해당한다. 통행금지 시간에 사방등을 들고 젊은 두 남녀는 조심스러운 얼굴로 어디를 가고 있는가. 두 사람은 부부인가. 부부라면 무엇이 아쉬워서 통행금지 시간에 길거리에서 만나겠는가. 이 두 사람이 부부가 아닌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위에 인용한 시에 바로 이 그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있다. 화제는 이 시기에 유행한 시조에서 따 왔다. 창외(窓外) 삼경 세우시(細雨時)에 양인심사양인지라 신정(新情)이 미흡한데 하늘이 장차 밝아온다 다시곰 나삼을 부여잡고 훗기약을 묻더라 삼경이라 한밤중이다. 창 밖에는 가랑비가 소리도 없이 내린다. 남자와 여자는 빗소리를 듣는다. 위 시조의 중장에 등장하는 신정(新情)이란 말은 새로 사귄 정이란 뜻이니, 이제 막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단계다. 둘은 만나서 하룻밤 내내 사랑을 나누었다. 이내 날이 밝을 것이다. 남자는 떠나려 하니, 여자가 옷깃을 잡고 뒤에 만날 날을 묻는다. 시조는 원래 노래의 가사다. 이 노래는 워낙 인기가 있었다. 조선후기의 웬만한 시조집에는 모두 실려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보다시피 남녀 간의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을 토로하고 있기에 대중의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 지낸 김명원의 일화 한데 이 시조의 사랑은 어떤 금지된 바를 범하고 있다. 삼경은 위에서 말했다시피 밤 11시에서 다음날 새벽 1시까지다. 밤은 밤이지만, 사람들의 활동이 완전히 멈추는 그런 시간은 아니다. 한데 남자는 날이 밝아올 것을 의식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서고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잡고 다시 만날 날을 묻는다. 둘이 부부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금지된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시조는 원래 한시를 다시 풀어 쓴 것이다. 한시는 다음과 같다. 삼경 깊은 밤 창 밖에 가는 비 내리는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환정(歡情)이 미흡한데 하늘이 밝아오니 다시금 나삼 잡고 뒷날 기약을 묻는다 窓外三更細雨時,兩人心事兩人知 歡情未洽天將曉,更把羅衫問後期 어떤가. 시조는 한시를 온전히 풀어서 다시 쓴 것이다. 시조로 풀어 쓴 사람은 알 길이 없지만, 한시를 쓴 사람은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를 지낸 김명원(1534∼1602)의 작품이다. 이 시를 쓴 김명원의 젊은 시절이 이 시의 내용과 관계가 있다. 김명원은 젊은 시절 어떤 어여쁜 기생을 좋아했다. 이 기생이 권세가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기생은 관청에 매인 계집종이기 때문에, 권력을 쥔 자가 예쁜 기생을 차지하고 다른 여자를 계집종으로 대신 넣는 일이 허다하였다. 김명원은 기생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해서 그 권세가의 집 담을 넘어 기생과 만나 통정을 하던 중, 발각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법은, 자신의 아내나 첩이 다른 남자와 통정하는 것을 현장에서 잡았을 경우 즉시 타살해도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죽일 요량으로 묶어 놓고 한참 분풀이를 하고 있는데, 소식을 들은 김명원의 형 김경원이 달려와 자기 아우의 인물을 보라고 말한다. 요컨대 장차 나라에 크게 쓰일 인물이 아닌가, 제발 젊은이의 앞날을 위해 살려만 달라고. 김경원의 호소가 주효했던지, 주인은 망설이다가 포박을 풀고 술대접까지 해서 보낸다. 김명원은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로 공을 세우고 좌의정까지 지냈으니, 과연 형의 말과 같았다. 김명원의 일화가 이 한시와 관계가 있는지는 미상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담장을 넘고, 남편이 오기 전에 떠나야 하는 처지는 위의 한시와 여합부절로 들어맞는다. ●조선시대 남녀도 금지된 사랑을 했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 화제를 볼 때 이 그림의 여자와 남자는 역시 사회적으로 공인된 그런 사이는 아니다. 여자의 표정은 어딘가 수줍어하면서도 조심스럽다. 남자 역시 나직한 목소리로 무슨 말을 건네고 있다. 남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관계, 금지된 사랑을 이 두 남녀는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랑은 합법적인 것일 수도 있고, 합법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합법적인 것이라면 처녀 총각이 만나는 것이겠지만, 신윤복이 살던 시대에 양반가의 젊은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한밤중에 몰래 만나는 것은, 유가의 도덕이 금지하는 것이었다. 불법적인 것이라면, 그야말로 두 사람 다 결혼한 상태이거나, 한 쪽만 결혼한 상태일 것이다. 어느 쪽도 모두 비윤리적인 것이다. 불법적이건 비윤리적이건 사랑은 사랑이고, 연애는 연애다. 자유연애가 금기시되어 있었을 뿐 조선시대 남녀도 사랑을 하고 연애를 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인간이 지구상에 생겨난 이래 변하지 않았다. 다만 사랑의 방식이 지역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달리 나타날 뿐, 사랑하는 감정과 남녀의 만남 자체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금기를 넘는 사랑의 행위는 얼마든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추관지’ 등의 사료에는 금지된 사랑, 곧 간통의 행위가 허다하게 실려 있다. 혜원은 그 금지된 사랑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절묘하게 잡아냈을 뿐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단독]남 통일후보, 이번엔 부동산 논란

    [단독]남 통일후보, 이번엔 부동산 논란

    ‘자녀 이중국적’ 논란에 휩싸인 남주홍 통일부장관 내정자가 최근 지목(地目)변경을 통해 수억대의 시세차익을 올리는 ‘부동산 테크’에 열을 올린 사실이 24일 밝혀져 또다른 논란거리를 낳고 있다. 남 내정자의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남 내정자 부부가 소유한 부동산은 토지 4곳, 주택 2채, 상가 3채 등으로 신고가액이 모두 34억 7847만여원에 이른다. 먼저 인천 강화군 선두리 산515 임야가 도마 위에 올랐다. 남 내정자는 지난해 7월28일 3.3㎡(1평)당 68만여원을 주고 선두리 임야 496㎡를 샀다. 이 땅을 판 김모(70·인천시 부평동)씨는 “남 내정자가 내 땅과 붙어 있는 땅 500㎡를 더 사들여 그곳에 집을 짓고 은퇴하면 와서 쉬겠다고 했다. 하지만 붙어 있는 땅 주인이 팔려 하지 않아 곤란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대로부터 받은 땅이고 근처가 개발되고 있어 팔고 싶지 않았는데, 아들 빚 때문에 넘겼다.”고 덧붙였다. 임야에는 건물을 짓지 못하기 때문에 대지로 지목변경한 뒤 땅값이 뛰는 시세차익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선두리 주민 A(31·여)씨는 “2002년 초지대교가 생기고 4∼5년 동안 땅값이 꾸준히 올랐는데 요즘 임야를 지목변경한 뒤 펜션이나 전원주택을 지으면 땅값이 2배로 뛴다고 해 임야 구입 붐이 일고 있다.”고 귀띔했다. 선두리 G부동산 관계자도 “그 땅은 대지로 지목변경하면 1∼2년 뒤 3.3㎡당 110만원 정도까지 뛸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선두리에는 현재 스키장과 콘도, 골프장 등의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남 내정자의 선두리 땅 매입은 경기 오산시 외삼미동 땅의 지목변경으로 시세차익을 얻은 직후 이뤄졌다. 남 내정자의 부인 엄미숙(54·한성대 교수)씨는 지난해 7월19일 외삼미동 전답 1812㎡와 1302㎡를 대지와 도로로 지목변경해 7억여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이 땅은 2000년 엄씨가 부친에게서 상속받았다. 게다가 서울신문이 확인한 결과 외삼미동 1812㎡ 일대에 창고 2개를 버젓이 지어놓고도 정작 재산신고에는 포함하지 않아 축소 신고 의혹도 사고 있다. 엄씨는 또 2001년 수원시 망포동 상가를 구입할 때 미국 스프링필드에 살고 있다고 등기부등본에 써 국외에 거주하면서까지 ‘부동산 테크’에 열중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남 내정자는 “선두리 임야는 은퇴 뒤 컨테이너로 움막을 짓고 공부방을 만들기 위해 샀는데 지목변경 허가도 제대로 안 나오는 땅이고, 외삼미동 땅은 용도변경하지 않으면 강제수용당한다고 일대가 다 그렇게 하기에 자연스레 지목변경했다.”면서 “부부가 교수를 25년 동안 했는데 둘이 합쳐 재산 30억원은 다른 사람에 비해 양반인 셈”이라고 해명했다. 강화 이재훈·오산 박지윤기자 nomad@seoul.co.kr
  • “독립운동의 완결은 통일”

    “독립운동의 완결은 통일”

    “독립운동사 총서를 쓴다는 의지로 몸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조동걸(77) 국민대 명예교수가 최근 ‘한국 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경인문화사)을 펴냈다. 독립기념관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2005년부터 기획, 총 60권으로 발간하는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 시리즈의 첫 책이다. 학문에의 의지는 무서운 병마저 잊게 했지만, 아픈 몸을 추스르기엔 의지만으론 벅찼다.20일 서울 방학동 자택에서 만난 조 교수는 인터뷰 중에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말은 더뎠고, 한 마디 뱉는 데도 한참을 생각했다. 살집이 넉넉했던 얼굴엔 광대뼈가 가팔랐다. 2004년초 위의 3분의2를 잘라내는 대수술 이후 그는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왔다. 뇌경색으로 우반신 마비가 왔고, 평지낙상으로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집 밖에선 지팡이를, 집안에선 보행기를 사용했다. 일주일에 세 번 병원에서 받는 운동치료가 요즘 그의 주요 일과다. ●독립운동사 연구 한계 극복 작업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 편찬은 모두 84명의 독립운동 전공자가 참여하는 대기획이다.‘한국 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은 제1권 총론격에 해당한다. 조 교수의 말로 “지금까지 쓴 책에 번호를 붙인다면 20번째쯤 되는 책”이다. 위암 수술 후 퇴원한 2004년 가을부터 6개월간 강행군으로 써냈다. 병상에서 끝낸 원고는 애초 청탁 분량인 1500장을 훌쩍 넘겨 1900장에 이르렀다. 힘든 글쓰기를 견뎌낸 것은 이번 편찬 작업이 과거 독립운동사 연구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1949년 ‘6월 사태’(반민특위 해체, 백범 김구 암살) 후 지하로 숨어들었던 독립운동사 연구는 이승만 정권 몰락 후 활기를 되찾았다.1960∼70년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독립운동사’ 5권과 원호처(현 보훈처) 산하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의 ‘독립운동사’ 10권으로 활기는 결실을 맺었다. 조 교수도 독립운동사편찬위에 참여해 책 편찬에 앞장섰다. 두 연구는 그러나 반쪽의 성과였다. 반공 이데올로기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은 배제됐고, 유림과 양반 중심의 의병사에서 평민 의병의 활동은 과소평가됐다. 조 교수 책의 중심 메시지는 “독립운동 이념과 방략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분단과 대립은 남북이 상대방의 독립운동을 앞다퉈 격하시키도록 만들었고, 결국 북에서는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을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 남에서는 김일성을 가짜라며 역사를 왜곡했다.”면서 “사상이 달랐다는 이유로 서로의 독립운동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가 “독립운동의 완결은 통일에 있다.”고 말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평민 의병장 신돌석과 머슴 출신 의병장 안계홍의 활약상을 복원하는 것도 젊은 시절부터 그가 전국을 누비며 이름 없는 이들의 독립운동을 발굴해온 문제의식의 반영이다. ●“공세적 식민지근대화론 우려스럽다” 기능을 잃어가는 몸과 달리 조 교수의 시대 인식은 여전히 일관되게 살아있다.‘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출간과 민족주의 사학계와의 사상투쟁,‘교과서포럼’의 교과서 다시 쓰기 등 일련의 식민지근대화론 공세를 그는 우려했다. 조교수는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근대화의 기초를 다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실증사학의 주장 또한 역사의 이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참여정부의 과거청산 작업이 서툴렀지만 과거사위를 없애는 것은 잘못”이라며 대통령직 인수위의 과거사위 통폐합에도 반대했다. 인터뷰를 마치기까지 그는 담배를 세 대 피웠다. 수술 후 끊었던 담배를 지난해 11월부터 다시 입에 물기 시작했다. 그를 간호하던 부인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사망하면서부터다. 그는 “밤중에 자주 잠을 깬다.”고 했고 “깜깜한 밤에 혼자 앉아 있으면 생각이 천만 갈래로 내달린다.”고 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7) 일 하다 먹는 ‘들밥’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7) 일 하다 먹는 ‘들밥’

    장정이 7명, 젖먹이 어린애가 한 명, 더벅머리 꼬마가 한 명, 그리고 젖을 먹이는 아낙이 한 명이다. 뙤약볕에서 일을 했는지 장정 다섯은 웃저고리를 벗고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큼지막한 밥사발을 들거나 앞에 놓고 먹고 있는데, 가난한 살림이라는 것은 절로 짐작이 간다. 김홍도 그림 ‘들밥’의 왼쪽을 보면 두 사내가 한창 밥을 먹고 있는데, 반찬 그릇은 오직 하나다. 그림 중앙의 사내는 아예 반찬 그릇조차 없다. 모든 밥은 아낙네의 앞에 놓인 보자기를 덮은 방구리에서 나온 것이다. 장정 일곱의 밥이 방구리 하나에서 나오다니, 좀 쓸쓸하다. 방구리는 한쪽이 열려 있는데, 조심스럽게 보면 그릇을 담은 것이 아니라, 단일한 품목의 물건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데, 내 눈에는 보리밥으로 보인다. 아닌가. 하기야 들밥에 무슨 음식의 종류가 있을까. 보리밥에 풋고추와 된장이면 족할 것이다. 하지만 빠질 수 없는 것이 막걸리가 아닌가. 그래서 새참은 동시에 ‘술참’이 된다. ●김 매는 노동뒤에 배불리 먹는 포만감 흔히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하지만, 사실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편안하고 쾌적한 사무실에서 깔끔한 복장으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업무를 보고 월급을 받는 것과, 저 땅 속에서 비지땀을 흘려가며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석탄을 캐는 노동으로 대가를 받는 것이 선택사항이라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양반들은 언필칭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곧 농민이 가장 고귀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식량은 인간의 필수적 생존조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농사가 가장 중요한 것일 뿐, 뙤약볕에 몸을 내맡기고 허리가 끊어져라 김을 매는 노동은 사실상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실 농사일은 엄청난 중노동이다. 농업의 기계화가 이루어지기 전의 농사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인간의 손끝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노동의 강도는 대단히 높고, 칼로리의 소모도 엄청난 것이다. 그 소모되는 칼로리를 공급하는 것이 들밥이고 새참이 것이다. 강희맹이란 분이 있는데, 한국한문학사에 꽤나 이름이 높은 분이다. 그 분의 저술에 ‘금양잡록(衿陽雜錄)’이란 책이 있는데, 농사일에 관한 책이다. 금양은 지금의 과천인데, 그는 한때 과천에서 씨를 뿌리고 채소를 가꾸고 나무를 심는 등 직접 농사일을 하여, 농사 제반에 대해 제법 알게 되었다. 강희맹은 먹물이었으니, 그는 또 먹물답게 거기서 얻은 지식을 ‘금양잡록’이란 책으로 엮는다. 책의 내용은 곡식의 종류, 농사짓는 법, 농민과의 대화 등등이지만, 뜻밖의 것도 있다.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때 노래를 부르는데 듣고 보니, 괜찮다. 그래서 한시로 옮긴다. 이것이 ‘농구(農謳)’ 14편이다. 말이 길었지만, 여기에 ‘들밥을 기다리며’란 시가 있는 것이다.(‘농구’는 모두 14수다. 그 중 여덟 번째 작품이 ‘들밥을 기다리며’이다). 작품을 읽어보자. 큰 며느리 절구질 서둘러 작은 며느리 부엌으로 들어가자 푸른 연기 모락모락 피어나고 주린 창자에선 우레 소리 울린다 들밥 기다릴 때는 호미 들 힘조차 안 남았네 남자들이 들에 나가서 김을 매고 있을 때 집안에서 부녀들은 들밥 준비에 바쁘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 오로지 들밥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한 끼 밥을 즐겁게 먹기 위해 오전의 노동을 견디고, 한 끼 저녁밥을 즐겁게 먹기 위해 오후의 노동을 감내한다. 농사일은 강도 높은 노동이다. 새벽에 나와서 허리를 꼬부리고 계속 일을 하다가 정오 때가 되면 뱃속에서는 우레 소리가 울리고 호미 들 힘조차 남지 않는다. 드디어 들밥이 오고, 배불리 먹는다. 그 다음은 ‘배를 두드리며’란 작품이 이어진다. 광주리 향기로운 보리밥 아욱국 달디 달아 숟갈에 매끄럽게 흐르네. 어른 젊은이 차례로 둘러앉아 왁자지껄 밥 먹는 소리 요란하다. 달게 포식하매 속이 든든하니 배를 북처럼 두드리고 그저 흡족할 뿐 어떤가, 힘든 노동 끝에 배불리 먹고 흡족해 하는 농민의 심정을 느낄 수 있으신지. 전근대 사회는 농업사회이니 당연히 농사에 관한 한시가 많이 남아 있다. 그런 한시 중에서 들밥을 내 가는 여성은 단골로 등장하는 제재다. 성종 때 관료로서 시인으로서 대제학 벼슬까지 했던 서거정의 ‘전가(田家)’란 시를 보자. 고사리나물을 반찬삼아 밥을 먹고 농담을 하며 웃음소리가 낭자하다. 봄비도 넉넉히 내렸다. 굳이 두레박으로 논물을 퍼 올리지 않아도 된다. 여유 있는 풍경이다. 한데 들밥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고려 말 시인인 안축이 삼척 죽서루를 읊은 8수의 한시 중 ‘밭이랑에 들밥을 내어가는 아낙네’란 시를 보자. 아낙은 들밥 차리느라 자기 밥도 아니 먹고 새벽부터 마음이 논밭에 가 있네 점심나절 밭이랑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남편을 배불리 먹인 뒤 신이 나서 돌아오네. 남편은 꼭두새벽에 들로 나갔다. 한여름의 농사일은 너무나 고되다. 아내는 그 남편이 너무나 안쓰럽다. 그것을 생각하고 서둘러 밥을 지으며 정작 자신의 식사는 잊어버린다. 정오가 되어 서둘러 들로 나가 남편이 배 불리 먹는 것을 보고는 그제서야 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앞서 들었던 서거정의 시보다는 현실에 훨씬 더 가깝다. 김홍도의 그림도 그렇다. 김홍도의 그림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성의 표정을 보라. 자식에 대한 따스한 눈길을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무언가를 먹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먹이는 것은 인간의 생명의지를 충족시켜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남편 배불리면 굶어도 흐뭇한 아낙 그런데 이 시에 꼭 맞는 그림이 남아 있다. 역시 김홍도가 그린 ‘들밥 내가는 아낙네’라는 그림이다. 논에서 농부들이 김을 매고 있고, 그 아래에 아낙네가 머리에 밥을 담은 광주리를 이고 있다. 그 앞의 사내는 지게를 지고 있는데, 역시 먹을 것이 담겨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조선후기 가사체 농서인 ‘농가월령가’를 보자.‘농가월령가’는 월령이란 말대로 달마다 농사꾼이 해야 할 일을 열거한다.6월령의 점심 먹는 부분을 인용해 보자. 날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 막히고 맥 빠진 듯 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다 정자나무 그늘 밑에 앉을 자리 정한 뒤에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단술 먼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 없고 주린 창자 채운 뒤에 맑은 바람 배부르니 낮잠이 맛있구나 농부야 근심 마라 수고하는 값이 있네 아마 이 부분은 김홍도의 그림과 흡사할 것이다. 점심밥의 내용물은 무엇인가.5월령을 보면,“보리밥 찬국에 고추장 상추쌈을, 식구들 헤아리니 넉넉히 준비하소”라고 했으니, 보리밥에 찬국에 고추장과 상추쌈이었던가 보다. 논문 실적이 개인 능력에 대한 야박한 평가가 된 요즘, 원고를 내놓으라는 독촉에 시달리며, 뜬금없이 다시 태어나면 들밥을 먹으며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근골을 움직여 나와 내 가족이 먹을 정도로만 수확을 얻는다면, 나머지 시간은 그냥 놀다가 늙어지면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삶 말이다. 욕심이 너무 과한가. 한국의 농업이 무너지고, 수천㎞ 바다를 건너온 식량에 목을 매고 사는 이 시대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 더욱 간절하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예천군, 곤충생태원 조성

    경북 북부지역이 ‘곤충 메카’로 부상하고 있다. 이 지역 시·군들은 상대적 청정지역이란 이점을 십분 활용, 곤충을 테마로 한 생태체험시설 등을 잇따라 만들고 있다. 예천군은 올해부터 오는 2010년까지 3년간 총 100억원을 들여 상리면 고항리 곤충연구소 인근 부지 20만㎡에 야외 곤충 생태원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곤충 생태원에는 난대·온대·한대성 식물과 곤충을 사시사철 관람할 수 있는 대형 체험유리온실과 곤충 관찰원·관찰로, 주제별 식물원·수목원 등이 조성된다. 군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사항인 백두대간 곤충 생태원 조성사업을 유치, 고항리 일원 400만㎡에 전국 최대 규모 ‘곤충 생태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에는 국비 등 총 4000억원 정도가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8년 개관·운영 중인 예천 곤충연구소는 현재 곤충 사육동과 생태 체험관, 관찰로, 대형 체험온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사육동에서는 매개 곤충인 호박벌(연간 4만통, 국내 생산량의 50%)과 머리뿔가위벌(〃 30만마리)을 비롯해 장수풍뎅이(〃 1만마리)와 넉적사슴벌레(〃 5000마리) 등을 사육하고 있다. 군은 올해 곤충연구소가 생산한 호박벌 1500통과 머리뿔가위벌 25만마리 등을 농가에 공급할 계획이다. 울진군도 내년 6월까지 근남면 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 부지 6000여㎡에 총 59억원을 투입,‘곤충생태체험학습관’을 짓기로 했다. 이곳에는 곤충생태 전시관(990㎡)과 생태관, 체험관, 국제산업곤충관 등이 들어선다. 전시관에는 1만 3000여점의 국내외 곤충 표본과 5000여점의 고·중·신생대 곤충화석을 전시하고, 생태관에는 메뚜기·나비·물자라 등 100여종의 살아 있는 곤충을 풀 계획이다. 상주에 있는 경북도 잠사곤충사업장도 오는 5월부터 나비 생태원 및 야외 체험장을 개방한다. 또 황색 누에고치를 만드는 골든 실크잠을 시험 사육한 뒤 누에 사육농가에 보급하는 한편 머리뿔가위벌과 서양뒤영벌 등 유용 곤충 자원화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영양반딧불이생태학교도 올해 사육실에서 1만 3000여마리의 반딧불이를 사육,6월 중순부터 1개월간 걸쳐 매주 1회씩 반딧불이 날려보내기 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예천·울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6) 쌍겨리와 소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6) 쌍겨리와 소

    김홍도의 그림 ‘쌍겨리’다. 그림은 위쪽과 아래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먼저 위쪽을 보자. 남자 둘이 쇠스랑을 들고 일을 하고 있다. 쇠스랑은 주로 두엄을 쳐내고 퇴비를 긁어 올리는 데 사용하며, 드물게는 밭을 가는 데도 사용된다. 쇠스랑은 그림에서처럼 발이 세 개인 것이 일반적이고 이따금 둘인 것도 있다. 자루는 대개 참나무로 만들고 발은 당연히 쇠로 만든다. 그런데 이 그림의 농부 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두엄을 쳐내는지, 퇴비를 긁는지, 아니면 밭을 가는지 그림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지방마다 쟁기 끄는 소의 마릿수 달라 아래쪽의 사내는 소 두 마리로 쟁기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소 엉덩이에 똥이 묻은 것까지 자세하게 그렸으니, 어지간한 관찰력이다. 어쨌거나, 쟁기질이라니, 아마도 봄이리라. 흥미로운 것은, 쟁기를 끄는 소가 두 마리라는 것이다. 소 한 마리에 멍에를 지우는 것을 외겨리, 혹은 독겨리라 하고, 쌍멍에에 소 두 마리를 지우면 쌍겨리라 한다. 대개 논과 밭을 갈 때 땅이 평평하여 쉽게 흙을 팔 수 있으면 외겨리로 하지만, 화전 같은 경사지거나 흙이 단단하거나 돌이 많은 곳은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쌍겨리로 하는 것이다. 대개 쌍겨리는 땅을 깊이 갈기 위해 고안된 방법인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귀양 가서 ‘탐진농가’란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 흥미롭게도 외겨리, 쌍겨리 이야기가 나온다(탐진은 강진의 옛이름이다). 모두 10수인데,7번째 작품을 보자. 게으른 습성은 정말이지 옥토에서 생기는 법 상농(上農)도 해가 중천인데 잠에 빠졌다가 느릅나무 그늘에서 술주정을 부리다 말고 느지막이 소 한 마리 몰고 마른밭을 가는구나 이 시에 주석이 붙어 있는데,“경기 지방의 마른밭은 소 두 마리로 간다.”라고 되어 있다. 곧 전라도 강진에서는 외겨리로 밭을 갈지만, 경기도에서는 쌍겨리로 갈았던 것이다. 우하영의 ‘천일록’은 지방에 따라서 쌍겨리로 밭을 가는지, 외겨리로 가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에 의하면, 관동지방은 영서·영동을 막론하고 쌍겨리로, 황해도 봉산·재령·신천·안악 등도 쌍겨리, 경상도는 대개 쌍겨리로 하고, 남쪽 지방은 외겨리로, 전라도는 산간 지방은 쌍겨리, 평야 지대는 외겨리로 한다는 것이다(주강현,‘두레’). 혼자 소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소란 것이 농민이면 누구나 손쉽게 가질 수 있는 재산이 아니어서, 이웃과 함께 어울려 소 두 마리를 메기도 하였던 것이다. 위의 그림도 그런 사정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쌍겨리로 논밭을 갈면서 부르는 노래를 ‘쌍겨리소리’라 하는데, 경기도 가평의 쌍겨리소리를 들면 이렇다.“어져, 저 소야, 줄 잡아 당겨라. 이랴, 이랴. 먼저 나가지 말고, 두 마리가 잘 잡아 당겨라.” 물론 노래는 소리를 길게 뽑고 후렴구를 넣기도 하여 길게 늘어진다. ●농우 확보위해 도살 금했지만 ‘고려공사 사흘´ 농우는 농사를 짓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에게 소가 언제나 넉넉하게 돌아갔던 것은 아니다. 성종 때 시인이자 관료였던 강희맹이 쓴 농서 ‘금양잡록(衿陽雜錄)’을 보면 농촌에 소가 아주 드물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동리에 100집이 있는데, 가축이 있는 집은 10집 남짓이고, 소는 한두 마리에 불과하다. 거기서 송아지를 제외하고 농사일을 맡길 만한 소는 겨우 몇 마리에 불과하다.100집의 밭을 몇 마리 소가 갈자 하니 힘이 부치기 마련이다.”라고 하고 있으니, 농사지을 소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도둑떼까지 소를 잡아먹어 남은 소로는 경작이 불가능해 하는 수 없이 사람이 쟁기를 끄는데, 아홉 명이 쟁기를 끌어도 소 한 마리를 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농업사회인 조선조에는 소가 늘 부족했다. 소 전염병도 자주 돌았다. 예컨대 인조 15년,16년 두 해에는 소 전염병이 너무 심하여, 성균관에서 공자에게 올리는 봄 가을의 제사, 곧 석전 때도 제물로 소 대신 돼지를 쓰게 했으며, 현종 11년 전국의 소가 거의 다 죽어 사람이 대신 쟁기를 끌었다고 한다. 한데 소가 모자라는 가장 큰 이유는 쇠고기의 소비 때문이었다.‘세종실록’ 7년 2월4일조를 보면 국가에서는 농우의 확보를 위해 소의 도살을 금지하고 있다.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먹는 것은 백성의 근본이 되고 곡식은 소의 힘에서 나오므로 우리나라에서는 금살도감(禁殺都監)을 설치하였고, 중국에서는 쇠고기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령이 있으니, 이는 농사를 중히 여기고 민생을 후하게 하려는 것이다.” 조선조 500년 동안 지속된 세 가지 금령이 있는 바, 소나무의 벌채를 제한하는 송금(松禁), 술을 빚는 것을 금하는 주금(酒禁), 그리고 바로 소의 도살을 금하는 우금(牛禁)이 그것이었다. 조선 정부는 이처럼 소의 도살을 막았지만, 그것이 성공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정책을 수립하는 지배층 자체가 쇠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계층이었기 때문이었다. ●소는 농가 최고 재산… 세금 못내면 끌고가기도 정조 때 박제가가 쓴 ‘북학의’에 의하면 당시 날마다 소 500마리를 도살한다 하였다. 서울에는 쇠고기를 파는 24개의 푸줏간이 있고, 지방 300여 고을 관아에서도 빠짐없이 쇠고기를 파는 푸줏간을 열고 있다 했으니, 실로 쇠고기의 소비량이 대단했던 것이다.‘정조실록’ 17년 9월11일조의 대사간 임제원이 올린 상소문을 보면, 이해 가을 작황을 보니 좋은 날씨로 인해 유례 없는 풍년이 들었는데도, 뜻밖에도 모내기도 못한 곳이 있다면서 그 이유로 농사지을 소의 부족을 들었다. 즉 소를 잡아먹는 일이 최근 너무 심해져 소가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큰 도시에서 쇠고기를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으며, 호서 지방과 호남 지방이 가장 쇠고기를 먹는 데 열중한 나머지 소 값이 올라 논밭을 가는 소가 모자라게 되고, 그 결과 사람이 대신 쟁기질을 하므로 모를 내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요컨대 소를 잡아먹는 것을 금하자는 것이었지만, 고려공사 사흘이라고 아무리 금령을 발동해도 고쳐지지가 않았다. 소는 농사를 짓거나 고기만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짐을 끄는 것도 소가 하는 중요한 노동이었다. 영조 때의 시인인 홍신유가 쓴 시에 ‘우거행(牛車行)’이란 작품이 있다.‘수레를 끄는 소에 대한 노래’란 뜻이다. 서울 한강 근처에 강을 통해 서울에 도착한 양곡이며, 땔나무를 도성 안으로 옮기는 수레를 끄는 소를 제재로 삼은 것이다. 이 작품의 소는 짐을 싣고 도성으로 들어가다가 큰 비로 생긴 웅덩이에 빠졌다가 천신만고 끝에 나오지만, 다시 좁은 비탈길에서 양반네 행차를 만나 놀란 나머지 진흙 구덩이에 빠져 버둥거리다 죽고 만다. 시인은 소를 가엽게 여겨 이렇게 말한다.“한 해 가고 두 해 가면/ 전신은 성한 데 없고/ 가죽은 마르고 살은 쫄아 붙어/ 영락없이 고사목처럼 되고 말지/ 그 소 마침내 푸주로 끌려와서/ 잡아먹히게 되는데/ 수레 끄는 소는 고기 맛이 없다고/ 말들 한다네/ 소의 힘 모두 빨고/ 마침내 그의 고기까지 먹으니/ 사람들 잔인하기/ 어찌 이와 같단 말가?”(임형택 편역,‘이조시대 서사시(상)’) 평생 노동력을 빼앗고, 죽으면 고기까지 먹으니, 인간처럼 잔인한 짐승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소는 농가의 최고 재산이었다. 조선시대 한시를 보면 세금을 내지 못한 농가에 아전들이 들이닥쳐 소를 끌고 가는 장면이 흔히 나온다. 아니,20세기에도 소는 대학생의 등록금이 아니었던가. 위 그림의 소를 부려 농사짓는 사람은 그나마 넉넉한 농민이었던가 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5) 목욕터 풍경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5) 목욕터 풍경

    신윤복의 그림 ‘목욕하는 여인들’. 단옷날 여성의 목욕 장면을 그린 것이다. 왼쪽 아래에 젊은 여인 넷이 시냇물에 몸을 씻고 있다. 네 사람 모두 윗도리를 벗었고, 그 중 맨 왼쪽에 서 있는 여인이 치마를 걷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속옷도 아마 입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고, 씻으러 나온 것이 아닌가. ●조선시대 여성 목욕 장면 담은 유일한 그림 오른쪽 위에는 붉은 치마와 노란 저고리로 한껏 멋을 낸 젊은 여인이 그네를 뛰고 있고, 그 옆의 여성은 참으로 거창한 크기의 어여머리를 풀어 매만지고 있다. 두 여자의 옷은 고급스럽다. 저고리의 끝동, 깃, 곁마기, 고름을 모두 자주색으로 하면 삼회장이라 하여 가장 잘 차려입은 것으로 치는데, 그네를 타는 여자와 어여머리를 만지고 있는 여성은 모두 삼회장이다. 다만 맨 오른쪽의 여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흰 저고리를 입고 있는데,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오른쪽 아래의 보퉁이를 이고 오는 여자는 짚신을 신고 행주치마를 두른 것을 보건대 입성이 초라할 뿐만 아니라, 남들 노는 데 심부름이나 하고 있으니, 계집종임이 분명하다. 이고 온 보퉁이에 술병 모가지가 비쭉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옆에 보이는 물건 역시 안주를 담은 찬합일 것이다. 요컨대 단옷날 시내로 나와 목욕하는 여성들(기생으로 짐작된다)이 마시고 먹을 술과 안주를 날라 오고 있는 참이다. 이 그림은 놀랍도록 충격적이다. 조선조 500년에 걸쳐 유사한 그림은 없다. 그 충격의 이유는 여성의 나신을 드러내 놓고 있다는 것이다. 흰 피부에 진홍의 젖꼭지와 입술은 너무나도 선명하다. 특히 여성의 유방을 보라. 인터넷이 온갖 영상을 퍼 나르는 시대에 여성의 나신은 그다지 별스럽지 않다. 하지만 때는 유가의 도덕이 시퍼런 조선시대다. 어찌 충격이 아닐 수 있겠는가. 여성의 젖가슴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이다. 그것은 성의 두 가지 기능과 관계된다. 인간에게 있어 성은 쾌락이면서 생식이다. 여성의 가슴 역시 그것에 대응한다. 가슴은 성적 쾌락의 도구, 곧 성기일 수도 있고, 또한 자식을 기르는 수유의 도구이기도 하다. 수유의 도구는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과거 여성들이 공개된 공간에서 자신의 가슴을 열어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보고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것은 모성의 가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퉁이를 진 여성의 젖가슴을 보라. 이 젖가슴은 신기하게도 성적 상상을 유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목욕하는 여성의 분홍빛 유두와 흰 가슴은 성적 쾌락을 상상케 한다. 저 숨어서 훔쳐보는 젊은 까까머리 스님들의 시선도 분명 성적 쾌락을 향해 있다. 이 그림이 또한 희한한 것은 여성의 조선시대의 목욕 장면을 형상화한 유일한 시각자료라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회화는 인간의 구체적 일상을 담은 그림이 참으로 희소하거니와, 이 그림 외에는 목욕이라는 재제가 등장하는 그림은 없다. 게다가 목욕 자체에 대한 문헌의 언급도 희소하다. 과거 기록에서 목욕은 온천과 관련하여 주로 등장한다. 눈병으로 고통을 겪었던 세종과 심한 피부병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세조는 자주 온천을 찾았다. 따라서 이들의 온천행과 관련된 목욕이란 어휘가 더러 등장한다.30년도 더 된 예전의 일이다. 나는 창덕궁에 갔을 때 궁궐 안에 있는 목욕탕을 보았는데, 그것은 신식이었다. 과거 사람들은 어떻게 몸 전체를 씻었던 것일까.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목욕재계하라는 말이 허다하게 나오지만, 나는 정작 그 ‘목욕’재계가 이루어지는 공간과 방법, 도구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세종실록’ 7년 7월19일조를 보면, 세종은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습진과 같은 피부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는 보고를 듣고 선공감에 명하여 욕통(浴桶)을 만들어 지급하게 한다. 이 욕통이란 것이 조선시대의 목욕문화의 핵심일 것이다. 지금처럼 대중탕이나 혹은 집안에 따로 욕실을 만들지 않고, 욕통을 만들어 적당한 공간에 비치하고 물을 데워서 목욕을 하는 것이 목욕문화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조차 일반적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보편적이었을 것 같지는 않다. 인구의 대부분이 소작농이거나 극히 적은 농토를 소유한 자작농이었으니, 삶의 수준이란 것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판에 집집마다 욕통을 갖추어 놓고 물을 데워 목욕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20세기에 들어와서도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에는, 단독주택에 욕통을 비치할 공간을 거의 마련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린다면, 조선시대의 목욕문화를 대개 짐작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청결히 했을까 하는 것은 더욱 궁금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헌적 해답은 없다. 상상하건대 아마도 부엌 바닥에 물을 데워놓고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몸을 씻지 않았을까. ●개울에서 목욕하는 것은 오랜 전통 다만 여성이 비교적 자유롭게 몸을 씻을 수 있는 곳은, 개울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을 선택한다. 하기야 늘 그렇듯이 남성의 관음증은 여기서도 멈추지 않아, 훔쳐보는 사람(스님 둘)이 있기 마련이지만. 개울에서 목욕을 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112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은 이렇게 말한다. 옛날의 역사책에 고려에 대해 실어놓은 기록에 의하면, 그 풍속이 모두 다 깨끗하다 하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고려 사람들은 늘 중국 사람들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 그러므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반드시 먼저 목욕을 한 뒤 집을 나선다. 또 여름에는 날마다 두 번 목욕을 하는데, 거개 시내에서 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내외를 하지 않고 의관을 모두 벗어 언덕에 던져두고 물가를 따라 벌거벗되 괴이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위쪽 부분이다. 고려 사람은 청결하고 중국인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는 말을 중국인 스스로 하다니 말이다. 서긍의 말에 의하면, 고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목욕부터 하고 외출을 하고, 여름에 하루 두 번 목욕을 한다 하니, 조선과는 사뭇 다른 풍습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여름철 시내에서 목욕을 하되, 남자 여자가 내외를 하지 않고 나신을 드러내고 목욕을 했다는 것이다. 이 기록을 믿는다면, 고려시대에는 남녀의 분별이 없이 옷을 언덕에 벗어놓고 몸을 씻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위의 엿보는 선비도 이런 유구한 전통을 이어받았는지 모를 일이다. 각설하고, 이렇듯 자유롭던 개울가의 풍경이 바뀐 것은 조선조가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조선조는 알다시피 양반-남성 국가다. 양반-남성의 국가는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을 분할,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양반-남성은 ‘소학’의 규정대로 여성의 역할을 조리와 의복에 제한했다. 조리와 의복 마련은 조선에서도 여성이 맡아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고려와 달라진 것이 있었다. 조선의 국가이데올로기 성리학은 남성과 여성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여성을 오직 가정 내부에 유폐할 것을 요구했다. 여성은 밖으로 나다니지 말아라. 여성은 뜰 밖에 나와서도 안 된다. 이것이 양반-남성의 요구였다. ●감추라 하면 더욱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본능 ‘고려도경’의 언급처럼 고려사회는 시냇가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남자와 여자가 옷을 벗고 목욕을 하는 것을 허락했다면, 조선사회에서는 그와는 정반대의 길로 치달았다. 몸을 가려라. 이것이 여성에 대한 주문이었다. 사대부가의 여성이 외출할 때면 장옷과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렸고, 처녀의 경우 비단보자기를 씌워서 업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지만, 만약 형편이 된다면, 남성의 시선으로부터 여성의 신체를 완벽하게 차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것이 도덕의 명령이었다. 하지만 감춘 것은 더욱 보고 싶은 법이고, 감추라 하면 더욱 드러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양반-남성의 도덕은 여자의 몸을 죄의 근원처럼 여겼다. 과연 그런가. 여성의 몸이 죄의 근원이라면 모든 인간은 죄의 근원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거짓이 어디 있겠는가. 혜원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주말탐방] 설 연휴 택배기사의 24시

    [주말탐방] 설 연휴 택배기사의 24시

    “나랑 한 달만 같이 다니면 20㎏은 빠질 겁니다.” 택배기사 김태민(36·CJ GLS)씨는 동행취재에 나선 기자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등산화를 신은 그가 보통사람보다 큰 보폭과 빠른 걸음으로 치고 나갈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파트 계단도 서너 개씩 뛰어올랐다. 헐레벌떡거리는 기자에게 그가 한마디했다.“요즘은 시간과의 전쟁입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가장 바쁜 직종 중 하나인 택배기사의 하루를 밀착취재했다. ● 1월27일부터 2월13일까지 ‘설 특수´ 김씨를 만난 곳은 CJ GLS의 강서터미널. 김포공항 화물청사가 있는 곳이다.1차로 대전에서 모아진 전국의 택배 물건 중 서울 강서·마포·은평·서대문구와 경기 부천 등지에 갈 물건이 모인다. 지난 28일 오전 8시. 꽤 쌀쌀한 날씨였지만 택배기사들의 얼굴엔 땀이 송글송글 돋아 있었다. 컨테이너 차량에 실린 물건을 내리는 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김씨도 ‘애마’인 1톤 화물차량에 강서구 내발산동으로 배달할 물건을 열심히 고르고 있었다. 그는 “강서구에만 하루에 총 2500∼3000개의 물건이 배달된다.”고 말했다. 이를 22명의 택배기사가 나누어 배달한다. 바빴던 분류작업은 1시간30분 만에 끝났다. 김씨가 오늘 배달할 물건은 70개. 홈쇼핑 반품물품 20개는 별도다. 그는 “그동안 밀리지 않고 배송을 한 덕분에 오늘은 (물건이) 적은 편”이라며 “특히 이번 주엔 바빠서 하루평균 150∼200개를 배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27일부터 2월13일까지가 설 특수”라고 덧붙였다. 이 기간 동안 CJ GLS의 택배물량도 지난해보다 16% 늘었다.18일 동안 이 회사 소속 2000여명이 494만 상자를 배달해야 한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란다. 오전 9시20분쯤 내발산동에 도착했다. 첫 배달지다. 배달할 택배물건도 가지각색이다. 한라봉, 배 등 과일, 분홍보자기에 싼 고등어 선물세트, 한우 선물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김씨는 “오늘은 유독 와인 선물세트가 많다.”고 했다. 은행이 우수 고객들에게 보내는 설 설문이란다. 똑같은 크기와 포장의 와인세트 8개가 배송차 한쪽에 실려 있었다. 설과 추석 중 언제가 더 배송물량이 많은지를 묻자, 그는 “추석 때”라고 답했다.“민족 최대 명절이라 그런 것 같다.”면서 “특히 제철 과일 등 선물 종류도 설보다 다양하다.”고 했다. 김씨는 배송차량을 몰고 내발산동 골목길을 샅샅이 훑었다. 그는 “택배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 따로 있다.”며 “주로 번지수로 집을 확인하지만 같은 집을 여러 번 가는 경우가 많아 이름만으로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 평소엔 홈쇼핑·인터넷쇼핑 물건 가장 많아 설 선물 외에 정과 사랑이 흠뻑 든 물건도 많았다. 경기 강화에서 서울 사는 자식에게 보낸 고구마 한 상자도 있었다. 사무실엔 문구류도 배달했다. 식료품은 중국 음식점으로 갔다. 또 배달 물건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홈쇼핑·인터넷쇼핑 물건이었다. 그는 “평상시에 배달 물건의 70∼80%가 홈쇼핑 물건”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요즘은 홈쇼핑이나 인터넷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한 집에 3일 연속으로 10개 가까운 홈쇼핑 물건을 배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들이 가장 꺼리는 것은 덩치(부피)가 큰 물건. 그래서 부피가 작은 홈쇼핑 물건들을 선호한다. 무게는 둘째다. 김씨는 “택배기사끼리는 부피가 큰 짐을 ‘똥짐’이라고 부른다.”고 귀띔했다. 배달하기 불편할 뿐 아니라 그만큼 다른 물건을 싣지 못해서다. 택배기사 수입은 배달 물건 수에 비례한다. 김씨는 CJ GLS 소속이지만 사업면허증을 가진 엄연한 개인사업자다. 다른 택배기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물건 하나를 배달하면 800원을 받는다.”면서 “60∼70개를 배달하면 5만원 정도를 버는데 여기에 점심값, 기름값을 빼면 실제 수입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배달을 위해 길가에 주차했다가 ‘주차딱지’라도 떼이는 날에는 말 그대로 하루 공치는 셈이다. 그는 “한번은 발산역 사거리 부근에서 하루에, 그것도 5분 사이에 세 번이나 딱지를 떼인 적도 있다.”며 “몇 분 전에 발부한 주차딱지가 앞유리창에 있는데도 그 위에 또 붙여서 황당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오후 2시까지 배달을 마친 김씨는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1시간 남짓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뒤 오후 4시부터는 오전에 다닌 코스를 다시 돌며 택배 물건들을 끌어모았다. 접수된 물건은 모두 60개. 설 연휴 전 마지막 택배물건 접수다. 오후 7시가 지나서야 일이 끝났다. 김씨는 “설 특수기간에는 담배 한 개비 맘 놓고 피울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면서 “설 선물을 전달받은 분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피로를 가시게 한다.”고 따뜻한 인사말을 요청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진화하는 배송 서비스 해를 거듭할수록 설 선물 배송 물량이 사상 최고를 경신하는 가운데 안전하고 품격 있는 배송을 위한 업계의 서비스 수준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선물을 받는 사람이 집에 없을 때 아파트 경비원 등 외부인에게 선물 보낸 사람의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보안 배송시스템을 이번 설부터 적용하고 있다. 선물받는 사람이 직접 개봉하지 않으면 의뢰인의 개인정보를 볼 수 없도록 보안명함봉투를 따로 만들었다. 상품 전표에 선물을 받는 사람의 전화번호 끝 두 자리를 ‘XX’로 처리해 받는 이의 정보 노출도 막았다. GS홈쇼핑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등을 위한 ‘도우미 특별 배송’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주문이 도우미 특별 배송으로 접수되면 상품을 고객이 원하는 지점까지 가져다 주는 것은 물론 제품 설치, 사용법 설명, 포장재 수거 서비스까지 해준다. 특1급 호텔들은 별도로 자체 특판팀을 가동하고 있다. 임피리얼팰리스호텔은 20만원짜리인 LA갈비 세트(2.5㎏)부터 150만원 상당의 모둠 와규 세트(8㎏)까지 모든 구매 상품을 호텔 직원이 직접 배송하고 있다. 배달 전날이나 당일 고객과 전화 연락을 통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은 기본. 배달직원은 인사법부터 접객 멘트까지 배달 교육을 받은 뒤 당일 만들어진 선물 세트만 배달해 제품의 신선도와 격을 유지한다고 호텔측은 설명한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도 매니저 등 직원 30명이 호텔에서 구매하는 모든 설 선물에 대해 매일 서울과 경기 등 일부 지역에 한해 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배달 사고 없는 빠른 직송 서비스로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21일부터 오는 6일까지를 설 선물 특별 배송 기간으로 정하고 콜밴형 차량 8000대를 돌리고 있다. 신세계백화점도 고객이 빠른 배송을 원하면 별도의 배송비를 받고 오토바이 퀵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한편 대한통운, 한진택배,CJ-GLS, 현대택배 등 대형 택배사들은 올해 설 특송기간(1월27일∼2월16일) 처리되는 물량이 지난해 같은 설 특송기간보다 16∼20%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택배 고객 ‘천태만상’ ‘각양각색.’ 택배기사들이 전하는 황당고객 유형은 다양했다.▲협박형 ▲오리발형 ▲안하무인형 ▲폭력형 등이 대표적이다. 택배기사들이 꼽은 황당고객 1순위는 협박형.“택배 물건이 없어졌다.”며 물건값으로 고액을 요구하는 고객들이다. 송장(送狀)에 기재된 물건 가격보다 훨씬 높은 배상금을 요구하기도 한다.A택배회사의 김모(36)씨는 자신이 경험한 협박형 고객에 대해 털어놨다.“택배물건이 분실됐다며 100만원을 물어내라고 해 물건을 찾고 보니까 플라스틱으로 된 1만원짜리 액세서리였다.”고 소개했다. 다음은 오리발형이다. 물건을 전달했는데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물건을 전달한 뒤 받은 사람의 이름이나 사인도 이런 오리발형 고객들 앞에선 무용지물이다.B택배회사 이모(39)씨는 “어떤 고객은 물건을 전달받고 직접 사인까지 했는데도 ‘받은 적도 없고 내 사인이 아니다.’라며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면서 “‘물건값을 물어내라.’고 해서 결국 내 돈으로 15만원을 줬다.”고 말했다. 안하무인형도 적지 않다. 규정상 배달할 수 없는 무게(20㎏) 이상의 물건이나 산 가축 등을 보내 달라며 우기는 경우다. 이들은 “돈을 내는데 왜 배달을 안해 주느냐.”고 욕설을 퍼붓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정도는 ‘양반’이다. 택배기사에게 발냄새가 난다며 거실 현관에도 못 올라오게 하는 사람이 있다. 배달한 과일, 쌀 등을 냉장고나 쌀독에 넣어 달라고 하기도 한다. 또 쓰레기봉투를 건네며 나가면서 버려 달라는 고객도 있다. 신경질형·폭력형 고객도 택배기사들을 힘들게 한다. 오후 9시 이후에 물건을 배달하게 될 경우 ‘한소리’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아침에 배달했다는 이유로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김모(45) 택배지사장은 “아침에 초인종을 눌렀더니 ‘왜 밤 새우고 들어와 자려고 하는데 아침부터 물건을 배달하냐.’며 욕설과 함께 멱살을 잡힌 적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추재기이/조수삼 지음

    ‘‘내 나무’는 나무를 파는 사람이다. 그는 나무를 팔면서 “나무 사시오!” 하지 않고,“내 나무!”라고만 했다.…나무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 틈이 나면 길가에 앉아 품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바로 고본(古本) 경서(經書)였다.’ 이 사람은 몰락한 양반층의 지식인인 듯하다. 그래서 차마 다른 장사꾼들처럼 “나무 사시오!”라고 존대하지 못하고,“내 나무!”라고 하대함으로써 양반 선비의 마지막 체면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추재기이(秋齋紀異·조수삼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는 조선 후기 기이한 언행으로 장안에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인물 71명을 소개한 ‘저잣거리 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추재 조수삼(1762∼1849)은 화가로 유명한 조희룡이 ‘호산외기(壺山外記)’에 실은 ‘조수삼전’에서 그의 복 열두 가지를 들면서, 여덟 번째 복으로 담론을 들었을 만큼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고 한다. ‘내 나무’에서 보듯 ‘추재기이’에는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돈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조선의 거리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하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이상하고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전기(傳奇)를 읽어주는 늙은이를 그린 ‘전기수(傳奇)’의 주인공은 ‘숙향전’,‘심청전’,‘설인귀전’ 등을 외워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초하루는 (청계천의)첫째 다리, 초이틀에는 둘째다리에 앉고, 초사흘에는 이현(梨峴·청계천 4가 배오개다리 일대), 초나흘에는 교동 어귀, 초닷새에는 대사동 어귀, 초엿새에는 종루 앞에 앉는 식이었다. 그는 가장 재미있는 대목에 이르면 잠시 입을 다물었는데, 이때 사람들은 다투어 돈을 던졌다고 한다. 이를 요전법(邀錢法)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원숭이를 구경시켜 빌어먹는 거지와 거리에 앉아 소리를 하여 먹고 사는 장님 악사, 팔뚝만 한 검은돌을 맨주먹으로 깨는 차력사, 안경알을 가는 절름발이 노인 등 조선 후기의 거리 풍경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95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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