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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일 TV 하이라이트]

    ●사미인곡(KBS1 오후 7시30분) 29살 나이에 간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삶의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이석주씨를 만나본다. 6·25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 3년, 푸른 눈의 사제가 한국 땅을 밟았다. ‘제주도 근대화의 선구자’라 불리는 맥그린치 신부. 제주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려는 제주 사람 맥그린치 신부도 만나본다. ●대결! 노래가 좋다<소녀시대 특집>(KBS2 오후 8시55분) 태연, 수영, 유리, 써니는 ‘트로트소녀’. 티파니, 제시카, 효연, 서현은 ‘댄스소녀’. ‘대결! 노래가 좋다’가 새봄을 맞아 상큼발랄한 이미지의 소녀시대 특집을 마련한다. 소녀시대는 멤버 전원이 도전자로 나서 각각 트로트소녀 VS 댄스소녀로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을 펼친다. ●돌아온 일지매(MBC 오후 9시55분) 월희와의 혼인을 약속한 일지매는 달이 생각에 마음이 혼란스럽다. 또한 벼슬아치들의 악행 때문에 매일 밤 집에도 돌아오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날 위험에 처한 양반가의 아씨를 구해 주게 된 일지매는 월희의 집에 아씨를 부탁하고, 두 여자는 일지매를 사이에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카인과 아벨(SBS 오후 9시55분) 초인이 중국에서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서연은 급히 선우와 함께 중국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외교부 직원이 건넨 여권과 초인의 가방을 연 서연은 카메라의 전원을 켜다가 영지와 함께 있는 초인의 사진을 보게 된다. 한편, 중국노동자 숙소 앞에서 장사를 하던 영지는 보위부 대원을 피해 도망을 친다. ●극한직업(EBS 오후 10시40분) 단속의 어려움 탓에 밀렵꾼이 자주 출현하는 도서지역, 밀렵꾼을 소탕하기 위해 광주지부 대원들이 섬 지역 밀렵단속에 나섰다.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무선 안테나까지 제거한다. 단속 사실이 알려지면 일순간 소문이 퍼지는 섬지역의 특성상 대원들은 민박집에서 해가 질 때까지 작전회의를 하며 대기 중이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세계 금융위기로 독일 실업자가 한 달 새 40만 명이나 급증했다. 특히 경기불황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곳은 독일 대표 산업 자동차 분야다. 세계적인 명차를 생산하는 다임러 벤츠가 직원 5만 명을 대상으로 조업단축에 들어갔고, 폴크스바겐도 당초 3월 예정이었던 조업단축을 앞당겨 시행하고 있다.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대한민국은 든든한 ‘수호천사’를 얻었습니다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대한민국은 든든한 ‘수호천사’를 얻었습니다

    지난해 김수환 추기경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힘겹게 나누어 주신 말씀 가운데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인류의 그것을 바로 우리의 그것으로 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직자는 물론 신자들도 그래야 합니다.” 아직도 가슴 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오래 전, 제가 서울 혜화동 신학교 시절 김 추기경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온후하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곤 하셨습니다. 애숭이 신학생의 눈에는 교수 신부들의 일거수일투족도 하늘의 움직임과 같아 보이는데, 하물며 추기경의 거동 하나 하나는 어떻게 비치었겠습니까. 그의 눈빛과 몸짓에는 깊은 사색과 고뇌와 사람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심이 묻어났습니다. 먼 발치에서였지만 어디에서건 김 추기경이 뜰 때마다 마치 스토커처럼 그에게서 흠모의 시선을 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TV를 보다가 김 추기경이 한 철학자와 대담을 나누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순간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 철학자는 가톨릭과 기독교에 반하는 사상을 거의 독설에 가깝게 펼쳐내고 있던 때였지요. 그러니 “아니 저 양반이 왜 저길 나가셨을까? 봉변을 당하시려고….”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덕(德)이 지(智)를 거뜬히 물리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추기경은 품으심으로써 이기셨던 것입니다. 김 추기경께서 몸소 전화를 주셨을 때를 기억합니다. 사연인즉슨, 미국의 한 고등학생이 영문으로 편지를 보내왔는데 답변을 해 주어야 하니 도와 달라시는 것이었습니다. 편지를 읽어 보니 인터넷을 뒤지거나 책방에 가서 사전을 찾으면 금세 답이 제공될 정도의 물음이었지요. 불현듯 이렇듯 불성실한 질문에 답을 해 주시려는 추기경님의 자비가 확 덮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김수환, 그는 이렇듯 사제이기 앞서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김 스테파노, 그는 노상 고뇌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사제 김수환 스테파노, 그는 천년 미래의 후배들도 닮고 싶어 할 선배였습니다. 김 추기경, 그는 20세기 조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이었다. 오늘 저는 엄청난 공허에 휩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슬픔은 없습니다. 선종 소식을 접하고도 저는 기뻤습니다. “드디어 하느님 품에 안기셨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강의 현장에서 강변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분은 지금 천당에 계십니다. 오히려 그분이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빌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경기도 용인으로 거처를 옮기신 오늘도 김 스테파노는 대한민국을 위해 축복을 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아니 인류는 이제 한 ‘위대한 인간’을 잃은 것이 아니라 든든한 ‘수호천사’를 새로이 얻은 것입니다. 김 추기경님 편안히 쉬십시오. 추기경님의 뜻은 남은 우리들이 이어받겠습니다. 차동엽 미래사목연구소장
  • 최은희 “아직도 연기하고 싶어요, 일흔넷의 캐서린 헵번처럼…”

    최은희 “아직도 연기하고 싶어요, 일흔넷의 캐서린 헵번처럼…”

    여배우는 인터뷰 요청을 정중하게 사양했다. 허리를 다쳐 30분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고, 지팡이 짚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거듭 설득하자 진짜 이유를 댔다. “얼굴이 부어서 흉하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지 않겠다는 약속을 못 미더워했다. 펜만 들고 오는 조건으로 취재방문을 ‘억지춘향’으로 승낙했다. 여배우를 만나기로 한 지난 17일. “혼자 오시는 거죠.”라는 확인전화가 다시 왔다. 요행수를 바라고 한번 밀어붙여 보기로 했다. 사진기자와 함께 서울 방배동 자택 현관에 들어서자 얼굴색이 순간 바뀌었지만 “정말 고우시다.”는 말 한마디에 금세 녹았다. “오늘은 붓기가 조금 빠졌다.”면서 매혹적인 100만불짜리 미소를 흘렸다. 인터뷰가 진행된 3시간 내내 그녀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현관문을 나설 때 물었다.“기사 미리 좀 볼 수 있나요.” ‘안 된다.’는 대답에 “사진이라도 먼저 보여 주세요.”라고 협상이 들어왔다. 신문사로 돌아오는 길과 다음날, 그녀의 철두철미한 확인 공세가 이어졌다. 예쁘게 나온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그녀는 ‘분단국의 여배우’ 최은희다. 올해 79세다. 남과 북을 오가며 모두 130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4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뽑은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첫 순서로 회고전을 연 최고의 명배우다. 그녀를 소개할 때 ‘분단국의 감독’이자 ‘한국영화계의 전설’인 신상옥(1926∼2006)의 분신이자 미망인이라는 사실을 빼먹으면 안 된다. 신 감독은 갔지만 최은희의 망부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74살에 네 번째 오스카상을 거머쥐었죠” →영화 ‘상록수’의 채영신역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어머니역 때문인지 한국의 고전적 여인상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굳어졌는데요. 본인도 만족하시나요. -사실 똑같은 캐릭터에 실증이 나 있었어요. 내 캐릭터가 이것으로 끝나나 하는 생각도 했죠. 신 감독이 만류했지만 ‘로맨스 그레이’에서 바걸 역할을 자청했죠. 머리를 볶고, 얼굴에 점도 찍는 과감한 변신을 꾀했어요. ‘지옥화’에서 양공주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죠. 기회가 닿는다면 로맨스 그레이를 리바이벌하고 싶어요. 요즘 세태에 맞는 영화인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연기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가요. -더 늙기 전에, 풀기가 남아있을 때 하고 싶어요. 주연이 아니라도 내가 의욕을 갖고 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멋있게 할 수 있어요. 이 나이에 예쁘게 보이겠어요? 연기로 승부하면 되죠. 할머니 역할이면 어때요. 영화 ‘황금연못’으로 4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캐서린 헵번은 당시 74살이었어요. ‘어웨이 프롬 허’의 줄리 크리스티는 55살이었구요. 허리 아픈 거 카메라가 돌아가면 다 잊어버려요.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을 ‘난쟁이 똥자루’라고 소개” →4월이면 신 감독 사거 3주기를 맞습니다. ‘신상옥감독기념사업회’일로 바쁘시지요.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주최로 4월8일부터 19일까지 신 감독 작품 회고 행사가 열려요. 본의 아닌 20년간의 공백 때문에 신세대 관객들은 신 감독의 작품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이번 기회에 그의 작품세계가 재조명되고 재평가가 이뤄졌으면 해요. →신 감독의 이름을 딴 영화제와 기념관 건립도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네. ‘공주천마 신상옥청년영화제’가 올해로 3번째 열립니다. 활성화시켜 국제영화제로 확대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괴산에 ‘천마 신상옥기념관’을 짓는 일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우리 부부 필생의 꿈 중 하나가 후진양성이었어요. 영화 만드는 일에 쫓기고, 납북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건 때문에 동료, 후배들에게 베풀지 못한 일이 가장 후회스러웠어요. 더 늦기 전에, 쓰러지기 전에 그동안 받은 분에 넘치는 사랑의 일부라도 갚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팬들의 성원에 감사드려요.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에요. →지난 16일은 선생님의 납북을 지시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7번째 생일이었습니다. 감회가 새로우실 텐데요. -신문기사를 읽고 그 양반이 벌써 그렇게 늙었나 하고 생각했어요. 독재자도 나이는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지요. 내가 납치된 1978년에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난쟁이 똥자루같이 생겼다.’고 소개한 일이 생각나요. 그해 가족들만 모인 자신의 36번째 생일잔치에 난데없이 저를 초대했어요. 그 자리에서 부인 성혜림과 장남 김정남을 만났죠. 포동포동한 아이가 뛰어 들어와서 이름이 뭐냐고 물었죠. 아이의 대답이 “와 남의 이름을 다 물어.”라고 퉁명스럽게 웅얼거렸어요. 그러자 김정일이 “정남아, 어른이 물으면 ‘예, 저는 누굽니다.’이렇게 답하는 기야.”라고 가르쳤어요. 김정일의 부인은 얼굴이 둥글고 잘생긴 편이었는데 부풀어 올린 파마머리에 꽃무늬 홈드레스 차림의 세련된 여자였어요. ●“미국 국적은 신변보호 위한 피치 못할 선택” →몇 년 전 대한민국예술원 입회문제가 거론됐지만 국적문제가 걸림돌이 돼 무산됐다고 들었습니다만. -내 입으로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요. 주위에서 권유했고, 예술원 회원이 되는 것은 영광이지요. 하지만 국적문제는 별개예요. 우리 부부는 신변보호를 위해 미국 국적을 택했어요. 9년을 그곳에 억류됐고, 보복의 실상을 알기 때문에 항상 테러 노이로제에 걸려 살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우리의 망명과 미국국적 취득은 타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아픈 가족사를 갖고 계신데요. 가족들 근황을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양자로 들인 두 아이 중 큰아들 정균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화감독으로 일하고 있구요. 딸 명임이는 시집을 가 청주에서 살고 있어요. 신 감독과 오수미 사이에서 난 아들은 미국서 경찰관으로, 딸은 서울서 평범하게 살아요. 저는 사촌동생과 둘이서 살고 있습니다. ●걸어온 길 ▲1930년 경기 광주 출생 ▲1943년 ‘청춘극장’으로 연극 데뷔 ▲1947년 ‘새로운 맹세’로 영화 데뷔 ▲1964년 ‘공주님의 짝사랑’으로 감독 데뷔 ▲1967년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 취임 ▲1978년 홍콩서 납북 ▲1982년 신상옥 감독과 북한서 재회 ▲198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탈출 ▲1999년 망명지 미국서 귀국 ▲2001년 극단 신협 대표 취임 ▲2002년 안양 신필림 영화예술센터 설립 ▲2007년 회고록 ‘고백’ 발간 ●주요 수상내역 ▲국산영화상 여우주연상(다정도 병이런가·1958,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9, 성춘향·1961) ▲대종상 여우주연상(상록수·1962) ▲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 ▲대종상 여우주연상(민며느리·1966) ▲체코국제영화제 특별감독상(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소금·1985) ▲대한민국영화대상 공로상(2006)
  • 조선왕들 한글 얼마나 썼나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는 ‘뒤쥭박쥭(뒤죽박죽)’ 같은 한글 표현이 들어 있다. 적당한 한문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자 성미 급한 정조가 한글을 그대로 적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글 표현이 익숙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조의 편지첩이 공개된 것을 계기로 조선의 왕과 사대부가 한글을 얼마나 알고 있었고, 실제로 얼마나 썼는지 새삼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조선의 역대 왕은 적지 않은 한글편지를 남겼다. 선조가 1603년 딸인 정숙옹주에게 보낸 편지에는 마마(천연두)를 앓고 있는 동생 정안옹주를 걱정하지 말라는 배려가 담겨 있다. 숙종이 1680년경 누이인 명안공주집에 다니러 가 있는 어머니 명성왕후(현종비)에게 보낸 편지에는 완곡하지만 환궁을 재촉하는 내용이 들어 있고,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인 1641년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가 있을 때 장모에게 보낸 편지에는 함께 끌려간 척화파의 거두 청음 김상헌을 걱정하는 대목이 보인다.  정조의 한글편지는 모두 세 통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조가 왕세자의 맏아들인 원손(元孫)시절 숙모에게 보낸 편지와 세손(世孫·왕위를 이을 왕세자의 맏아들)에 책봉된 뒤 숙모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42세 때인 1793년 홍참판댁에 보내 편지(사진)가 그것이다. 특히 8세 이전으로 추정되는 원손 시절 정조의 한글 필적은 글씨가 아직 익숙지 않은 듯 삐뚤빼뚤하지만, 홍참판댁에 보낸 편지를 보면 정조는 한문 이상으로 한글도 명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왕이 쓴 한글편지는 대부분 여성에게 보낸 것이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당연히 한문을 썼지만 가족 같은 사적인 영역이나 여성과는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다.  양반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부인에게 보낸 40통 남짓한 한글편지가 남아 있다. 또 16세기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성균관 유생들이 만든 ‘한글 커닝페이퍼’도 전해진다. 사서삼경의 핵심적인 한자 문구를 작은 종이에 적은 뒤 한글로 뜻을 풀이해 놓은 것이다. 양반들에게도 한문이 일상화되기는 했지만 한글이 훨씬 쓰기에 편했음을 보여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윤진서, ‘돌아온 일지매’ 1인 2역 연기 ‘눈길’

    윤진서, ‘돌아온 일지매’ 1인 2역 연기 ‘눈길’

    MBC 수목 미니시리즈 ‘돌아온 일지매’의 윤진서가 1인 2역 연기를 선보인다. 해맑고 순수한 성격으로 외롭던 일지매(정일우 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일지매의 첫사랑 ‘달이’역을 맡았던 윤진서는 오늘(4일) 방송분에서 수줍은 양반가의 아씨 ‘월화’로 변신한다. 이날 방송분에서 ‘달이’는 일지매를 찾아 나선 구자명(김민종 분)에게 잡혀 그동안 숨기고 살았던 정체가 밝혀져 처형당하게 된다. 제작진은 “달이를 목놓아 부르는 일지매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윤진서의 표정 연기는 완벽했다. 깊은 표정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힐 것”이라고 전했다. 윤진서는 달이를 잃은 슬픔과 분노에 저잣거리에서 난동을 피운 일지매를 도와주는 양반가의 아가씨 ‘월희’로 다시 등장한다. 월희는 양반가에서 자란 수줍음 많은 처녀이지만, 일지매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져 자신의 이불속에 처음보는 남자를 숨겨주는 대담함을 가진 인물. 앞으로 월희는 일지매의 평생의 연인이 되어 복면 뒤에 살아야 했던 그의 눈과 귀가 되어줄 예정이다. 한편 윤진서의 1인 2역 연기가 공개되는 ‘돌아온 일지매’는 밤 9시 55분 방송된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베리타스 에듀PSAT硏과 함께하는 PSAT 실전강좌]25. 언어논리 【출제 테마1-실학사상〉

    조선후기 실학자를 묻는 문제는 매회 1~2문제씩 출제됐다. 이들 실학자 즉, 박지원·박제가·정약용·홍대용 등은 조선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소중화 사상에 치우치지 말고, 천하사상·천명사상·화이론 등 중국 중심사상의 사대주의를 경계하되, 청의 문화를 배워 이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기 실학은 17세기 후반~18세기 초반에 걸쳐 발전했다. 경세치용학파로, 이익에서 시작해 그의 제자들에게 계승됐다. 사회적 모순이 토지 과점에 있다며 토지개혁 문제에 주력했다. 소농민계층을 대변한 양심적 관료의 사상으로 후에 일부 제자들은 천주교를 도입하기도 한다. 18세기 중반의 중기 실학은 이용후생학파다. 주로 중국을 다녀오고, 청의 문물을 적극 받아들일 것을 주장한 북학파 홍대용·박지원·박제가 등이다. 상업·수공업을 중시, 도시빈민의 생활상을 동정해 중상주의적 사상을 전개했다. 생산력 발전을 위해 중국에 들어온 서구과학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고, 과학적 연구에 몰두했다. 사회적 모순 극복을 위해 양반제 철폐도 주장했다. 이러한 초기, 중기 실학사상은 정약용에 의해 집대성됐다. 2007년에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심세편, 지난해에는 정약용의 여전제가 출제됐다. ☞ [PSAT 실전강좌] 언어논리 이론 및 실전문제 바로가기 <예제 1. 2007 행외시 23번> 다음 글의 주장과 부합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중국에 다녀온 자들 가운데, 다섯 가지 허망한 일이 있다. 문벌로서 서로 뽐내는 것은 애초에 우리나라의 관습이었다.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국내에서도 오히려 양반 이야기를 부끄럽게 생각하거든, 하물며 외국의 토성으로서 도리어 중국의 옛 가문들을 깔보려 하니, 이것이 첫째의 허망이다. 중국에서 지금 쓰는 붉은 모자나 이상한 소매는 비단 한족이 부끄러워할 뿐만 아니라 만주인들도 역시 부끄러워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들의 예의와 풍속이나 문물은 천하의 여러 종족이 오히려 당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과 나란히 걸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만 한 줌만큼 작은 상투 하나로써 스스로 천하에 뽐내려 하니, 이것이 둘째의 허망이다. 이제 중국이 비록 변하여 오랑캐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천자의 칭호는 오히려 고쳐지지 않은 만큼, 그들 각부의 대신들은 곧 천자의 공경이다. 그러니 옛날이라 해서 더 높다든지 또는 지금이라고 해서 더 깎이었다든지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즘 사신들은 제대로 관장을 뵈는 예식은 그만 두고라도, 그들의 조정에서 절하고 인사하는 것을 부끄러워해 문득 모면하기를 일삼아, 드디어 하나의 관습이 되고 말았다. 설혹 그들을 만나더라도 거만하게 대하는 것을 영예스럽게 여기고 공손한 것은 욕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들이 비록 이에 대해 가혹하게 추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찌 우리 쪽의 무례함을 우습게 여기지 않겠는가. 이것이 셋째의 허망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문자를 안 뒤로부터 중국의 것을 빌려 읽지 않는 글이 없었으니, 중국에서 역대로 써온 문장을 본받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에서 쓰지도 않는 공령문의 습속을 가지고 억지로 운도 맞지 않는 시문을 쓰면서, 문득 “중국에는 문장이 없더구먼.”하고는 헐뜯으니, 이것이 넷째의 허망이다. 중국의 선비들은 청나라 강희 황제 이전에는 모두 명나라 유민이었으나, 국가의 제도와 기강이 확립된 강희 이후에는 곧 청나라의 신하와 백성이다. 그렇다면 그 정부에 충성을 다하여 법률을 존중해야 한다. 보통 때 대화에서라도 외국 사람들에게 그 정부를 반대하는 말을 세운다면 이들은 곧 정부의 난신이요 적자다. 그러나 조선 사신들은 중국의 선비를 만난 때에 그들이 한족으로서 청나라 조정의 은택을 칭송함을 보고는 문득 “‘춘추’의 절의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겠어?”하면서 말마다 비분강개한 선비가 없음을 탄식하니, 이것이 다섯째의 허망이다. ① 청나라의 예의와 풍속과 문물은 타국에 비해 앞서 있다. ② 강희제 이후에는 한족도 청나라 조정에 충성을 바쳐야 한다. ③ 중국의 관리들을 만나면 무례하게 대하는 조선 사신들이 있다. ④ 조선 사신들은 청나라 조정의 지배에 분개하는 한족의 선비가 없음을 탄식한다. ⑤ 붉은 모자 등의 의복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만주인들의 풍속과 문물은 그들 자신도 부끄러워하는 것이므로 본받을 것이 못 된다. 정답: ⑤ 여성곤 베리타스법학원 강사
  • 추사도 극찬한 남종 문인화의 진수

    추사도 극찬한 남종 문인화의 진수

    19세기 후반의 화가 둘을 꼽으라면 천재였으나 세상에 얽매이기를 싫어했던 오원 장승업(1843~97)과 이사람이 간혹 거론된다. 몰락한 양반가의 자손으로 그림 솜씨 하나로 왕을 비롯해 당대의 명사들과 인연을 맺고 몽당 붓 한자루에 의지해 전국을 주유한 노력형 화가 소치 허련(1809~92). 추사 김정희(1786~1856)가 각별하게 사랑하고 아끼던 제자로, 우리나라 전업작가의 효시이자, ‘예향 호남’시대를 연 당사자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은 소치 허련 탄생 200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2월1일까지 연다. 소치는 시와 글씨, 그림에 능하다 하여 삼절로 불렸지만 김정희의 제자로 분류되면서, 또한 작품의 편차가 심하다는 이유 등으로 평가절하돼 왔다. 이번 전시는 선비의 내면 세계를 표출하는 남종 문인화의 한국적 수용과 확산에 기여한 소치를 한국 미술사에 제대로 자리잡게 하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의 선조인 허대는 임해군의 처조카다.진도로 귀향간 임해군을 따라왔다가 허대는 그곳에 터를 잡게 된다. 한때 왕가와 혼인의 연을 맺을 만큼 명문가였지만, 허련대에서는 몰락한 양반가에 불과했다. 허련은 28세 초의선사에게 그림을 배운다. 초의선사가 그의 재능을 아껴 동갑내기 친구인 한양 사는 김정희에게 허련을 소개하면서 허련의 꿈같은 인연이 시작된다. 조희룡 김수철 이한철 유재소 전기 등 주요 서화가와 교류했다. 1849년(소치 42세)에는 헌종 앞에서 임금의 벼루에 먹을 갈아 그림을 그리고, 수 차례 대궐에 드나들며 왕실 소장 고서화에 대한 품평도 했다. 헌종이 금 300냥을 하사해 한양에 집을 마련하기도 한다. 말년에도 흥선대원군, 민영익, 정만조 등 당대 명사들과도 교분을 쌓았다.그러나 자신을 후원하던 스승과 정치인들이 모두 돌아가자, 생활을 위해 모란을 많이 그려 팔아 ‘허모란’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정약용의 유배지 중 하나인 강진군 대구면 천개산 백적동을 실경산수로 그린 ‘일속산방도’다. 진경산수면서도 문인화처럼 먹을 아주 적게 묻힌 몽당 붓으로 쓱쓱 그렸다. 한번도 일반인에게 공개된 적이 없던 개인 소장품으로 소치가 46세 때 황상에게 그려주고 초의선사가 교정을 보았다. 김정희는 ‘오늘날 이런 작품이 없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깔깔깔]

    ●아이의 믿음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엄마가 아이에게 뒷마당에 있는 빗자루를 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엄마. 바깥은 캄캄해서 무서워요.” “아가. 밖에는 하느님이 계신데 뭐가 무섭니? 널 지켜주실 거야.” “정말 밖에 하느님이 계세요?” “그럼. 그분은 어디에든 계신단다. 네가 힘들 때 널 도와주신단다.” 그러자 아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뒷문을 살짝 열고 틈새로 말했다. “하느님. 거기 계시면 빗자루 좀 갖다주실래요?” ●고인 바람둥이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갔다. 장례식에 참석한 많은 사람이 부인을 위로했다. 그런데 부인은 오히려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이 양반이 어디서 자는지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요.”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구서/안재승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구서/안재승

    ▶등장인물: 어머니,아들,딸,아버지(1인1역),외교통상부 관계자,무장단체 요원들,기자들,시민들,각 단체 대표들(해병전우회장,기독교단체장,시민단체장),동시통역사(이상 1인다역) ▶시간 및 공간: 현대,대한민국 ▶무대: 이 극은 장면의 전환이 많다.따라서 기본적으로 빈 무대를 사용하며,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의 분위기를 상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품들을 사용한다. 1장 방 세 개짜리 반 지하방의 거실.한밤중.붉은 색,취침등이 켜져 있다.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잠시 후,다시 울리는 전화벨.거실 한 구석에서 토막잠을 자던 어머니,잠에서 깨어 전화기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와 손을 뻗는다.어머니,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인다.전화벨이 끊어진다.잠시 후,다시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딸이 방문을 열고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나온다. 딸 에이 씨! 어머니 그들일까? 딸 시끄러워.빨리 받아. 어머니,쉽게 전화를 받지 못한다.아들,방에서 나온다.어머니,망설임 끝에 전화를 받는다. 어머니 여보세요? 외교통상부 (소리)여기 외교부인데요! 어머니 (말을 자르며)어디요? 외교통상부 외교통상부요! 어머니 무슨 일이시죠? 외교통상부 (소리)조금 전에 주 파키스탄 대사관에 이 전화번호하고,김만수씨를 인질로 잡고 있다는 무장단체의 메시지가 전달됐는데요.저희도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을 해야 해서요.김만수씨 집에 계시면 좀 바꿔주시죠. 어머니 제 남편요?그럼요.지금 방 안에서 자고 있는걸요.잠깐만요. 어머니,남편의 방 문 앞에 가서 문을 두드린다. 어머니 나와서 전화 좀 받아봐요! 정적.아무런,인기척이 없다.어머니,남편의 방문을 다시 두드린다. 딸 그냥 열어! 어머니 항상 잠겨 있잖니. 딸,아버지 방의 문고리를 거칠게 돌린다.쉽게 열린다.어두운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아버지의 방은 파키스탄 어느 민가로 전환된다.환영처럼,어둠 속,눈이 가려지고 양 손이 결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아버지의 뒤로 소총을 들고 얼굴에 복면을 한 무장 단체 요원들.무장 단체 요원 중 한 명이 커다란 아랍 칼을 들어 아버지의 목을 베는 듯한 시늉을 한다.옆에서 다른 요원이 아랍어로 된 성명서를 읽으려 하는 도중,무대 밝아진다.거실,가족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머니 언제 없어진 걸까?(사이)너하곤 종종 얘길 하지 않았니. 아들 옛날 얘기예요. 딸 정확히 3년 전이야!내가 연기학원을 그만둔 날이었으니까. 아들 저녁을 먹는데 느닷없이 ‘난 파산했다.’고 말했죠. 딸 처음엔 장난치는 줄 알았지. 어머니 ‘양심적으로 갚으려고 했는데.이젠 돌려막기도 한계에 다다랐구나.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얘기했어. 아들 침묵.한참 후에 엄만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살죠?’라고 물으셨죠. 어머니 니 아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니?’라고 대답했고. 딸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 아들 그 이후,우리가 있을 땐 절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죠. 어머니 산 입에도 거미줄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딸 우리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을 때도. 아들 절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죠. 딸 어쩌다 가끔 소리는 들려왔어. 아들 아직 살아 있구나를 확인할 수 있는. 가족들의 기억에 따라,아버지의 방 너머에서 다양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어머니 한참을 누군가와 애기하는 듯했지. 아들 알 수 없는 중얼거림. 딸 끙끙 앓는 신음소리. 어머니 다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아들 무서운 비명소리. 딸 귀신이 곡하는 소리. 어머니 깊은 한숨소리. 아들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소리가 시작되었죠.우리가 들어주길 바라는 것처럼. 어머니 아주 서툰 연기였지. 아들 동정을 바랐겠죠.아니면 자기 역시 힘들다는 걸 알리고 싶었거나. 딸 TV 볼륨을 높이면 더 크게 소리를 내.소리를 죽이면 멈추고.마치 우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아들 우리의 일과에 맞춰,늘 정해진 시간에 시작해서 정해진 시간에 끝이 났죠. 침묵.소리,사라진다. 딸 유령 같았어.살아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질 정도로. 아들 방 안에서 도대체 뭘 했던 걸까요? 어머니 시간을 죽였겠지. 딸 바깥의 상황을 살피며 어떡하면 더 불쌍하게 보일까 궁리했든가. 아들 우리가 나가고 나면? 어머니 밥을 먹거나,TV를 보거나.살아 있다는 흔적을 남기듯이. 아들 외출은? 어머니 가끔 신발의 위치가 바뀌어 있긴 했는데.먼지가 그대로인 걸 봐서는 멀리 다녀온 것 같지는 않더라. 침묵. 어머니 신음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였더라? 아들 (사이)이주 전쯤 이었을 거예요.아버진 누군가와 얘길 하고 있었어요.누군가와 비밀스런 대화를 하듯,‘이브라힘!’이라는 말을 반복했죠.미친 게 아닐까 의심했어요.제 인기척이 느껴지자 급하게 전화를 끊더라고요.그러곤 다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죠.늘 그랬던 것처럼.갑자기 짜증이 밀려 왔어요.그래서 제가 한마디를 했죠.(사이)에이! 씨발.조용해지더군요.평화가 내려앉은 것처럼. 어머니 네가 좀 심했구나. 아들 씨발.아버지가 즐겨 내뱉던 단어죠.침묵을 제외한 유일한 단어. 딸 아빤 언제나 화가 나 있었어. 아들 늘 긴장해야 했지요. 어머니 말을 안 하니까 더 불안했지. 딸 그래도 얼굴엔 다 쓰여 있었어.알아서 기어라! 아들 복종과 침묵의 룰.일종의 계약이었죠. 딸 누구 맘대로? 아들 아빠 맘대로. 딸 왜? 아들 그야,이 집의 가장이니까. 사이.어머니,갑자기 하품을 한다. 어머니 이러면 안 되는데….자꾸 졸음이 오는구나. 딸,크게 하품을 한다. 어머니 니 아빠가 지금 잡혀있는 곳이 어디라 했지? 아들 파키스탄요. 어머니 거긴 어떤 곳이니? 아들 끝없는 모래사막 주변으로,깎아놓은 듯한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요. 어머니 경치가 무지 좋겠구나. 딸 이런 홀가분한 기분 정말 오래간만인 것 같아. 아들 신경 써야 할 무언가가 없다는 거. 딸,바닥에 눕는다.하품이 전염된다.아들 역시 하품을 한다.아들도 바닥에 눕는다.어머니도 하품을 한다.어머니,졸음을 참는다.어머니,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진다. 아들 왜요? 어머니 오늘이 이자 내는 날이구나. 딸 에이-씨.기분 잡치게 그딴 소린 왜 해. 어머니 미뤄달라고 사정 좀 해볼까? 아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 하세요! 아들과 딸,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다.어머니,고민한다. 어머니 근데 니 아빠는 왜 거길 간 걸까?(사이)진짜 아버질 죽일까?(사이)이자는 어떻게 마련하지? 무대 천천히 어두워진다.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밝아지는 무대.그 소리에 잠에서 깨는 어머니.조심스럽게 현관으로 걸어가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애쓴다.누군가 밖으로 난 거실의 창문을 열려는 시도를 한다.어머니,아들의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간다.어머니,아들을 앞세워 걸어 나온다.현관문과 거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이번엔 확실하지? 아들 그냥 아무도 없는 척해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딸,부스스한 모습으로 방문을 열고 나온다. 딸 (소리를 지르며)에이-씨!왜 이렇게 시끄러워! 어머니와 아들,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딸을 바라본다.조금 전보다 더 격렬하게 현관문과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딸 뭐야? 어머니 그들. 딸 아빠,파키스탄으로 도망갔다고 해. 아들 그럼 우리가 갚아야 돼. 딸 왜? 아들 가족이니까. 딸 더 이상은 아니라고 해.아버지는 우릴 버리고 떠났다.그래서 우리도 기억에서 아버지를 죽였다.그러니까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딸,현관문을 벌컥 연다.일제히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아들,딸을 밀쳐내고 문을 닫는다.딸,화장실로 뛰어간다. 어머니 뭐였니? 아들 기자들. 어머니 왜? 아들 인터뷰하러. 어머니 뭘? 아들 우리. 어머니 왜? 아들 테러리스트에게 가장을 인질로 잡힌 가족,극적이잖아요. 딸,화장실에서 나온다.세수를 하고 나온 얼굴이다.급하게 화장품을 바른다. 딸 에이 씨,쌩얼이었는데.인터넷에 엽기사진으로 돌아다닐 게 분명해. 아들 이 상황에 그딴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니? 딸 내 미래가 걸린 심각한 상황이니까. 아들 미친년! 어머니 (소리를 지르며)그만. 아들과 딸,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갑자기 굳게 닫혀있던 창문 틈 사이로 머리 하나와 마이크가 불쑥 들어온다. 기자1 김만수씨는 왜 파키스탄에 간 겁니까? 어머니 (당황해서)몰라요. 기자1 짐작 가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어머니 정말 몰라요.한 달 간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으니까. 기자1 암중모색! 기자1의 얼굴이 사라지고,기자2의 얼굴이 들어온다. 기자2 와신상담!그렇다면 어떤 큰 결심이 있으셨단 얘기군요.최근 평상시와는 다른 특별한 말이나 행동은 없었나요? 어머니 늘 신음소리와 한숨소리뿐이었죠. 기자2 고뇌에 찬 인간의 탄식!집에선 주로 어떤 생활을 하셨죠? 어머니 유령처럼 살아있다는 작은 흔적만 남겼어요. 기자2의 얼굴이 사라지고,기자1의 얼굴이 들어온다. 기자1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한 수양!그리고요? 어머니 가끔 TV를 봤어요. 기자1 어떤 프로그램이었죠? 어머니 동물의 왕국. 기자1,안간힘을 다해 버틴다.기자1의 얼굴이 사라지고,기자3의 얼굴이 들어온다. 기자3 저희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이군요.인터뷰를 종합하면 김만수씨는 한 달 동안의 칩거를 통해 생태계의 문제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그 뜻을 펼치고자 파키스탄에 가신 거네요? 기자3의 얼굴이 사라진다.창 밖에서 기자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온다.무대 점점 어두워지고,주변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해 증언한다.증언자의 기억에 따라,아버지의 모습이 다양하게 재현된다. 여성 그 아저씨,특별했어요.전 한 무리의 고양이들이 아저씨네 집 창문 앞에 모여 있는 걸 자주 봤어요.‘야옹!야옹!’고양이들이 선창을 하면,‘야옹!야옹!’아저씨는 화음을 넣었죠.합창하듯이.무언가 교감이 이루어지는 듯했어요.그걸 지켜보는데 온 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청년 마치 축지법을 연마하는 도인 같았어요.매일 아침,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아저씨의 수련이 시작되죠.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걸음으로 제 창문 앞을 스쳐 지나가요.‘사-삭!사-삭!’지면과 발바닥의 마찰이 없는 것처럼.잠시 후 다시 ‘사-삭!사-삭!’제 창문 앞을 스쳐지나,집으로 들어가면 수련이 마무리됐죠.아저씨 손에는 언제나 수련의 징표가 들려있었죠.요 앞 지하철역에서 나눠주는 무가지요. 무대 밝아오면,거실에 심각하게 앉아 있는 가족. 딸 에이 씨!아빠가 무슨 사이비 교주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잖아.내 미니홈피는 온통 악플로 도배야.(엄마에게)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아들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면 되지. 딸 진실이라 해도 안 믿어. 아들 거짓말이라도 해서 믿게끔 만들어야지. 딸 난 결백하다,자살이라도 해야 겨우 믿을 걸? 아들 이런 건 어때?예를 들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파키스탄에 갔다고 하든가,국가적 사명을 가지고 갔다고 하든가.그러면 악플 달 이유가 없는 거잖아. 딸 (비아냥거리며)아빠가 틈만 나면 욕을 퍼붓든 두 가지네. 아들 조작하면 어때?직접 확인할 수도 없는데. 어머니 있잖니….아버지 말이다.예전에 교회를 다녔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구나.결혼하기 전에.해병대에서. 딸 (화를 내며)그게 뭐 어쨌다고! 아들 해병대와 교회!완벽한 알리바이야!(사이,아들 부산을 떤다)엄마는 아빠 서랍장에서 해병대 군복을 찾으세요.그리고 넌 십자가 목걸이 가져오고.빨리!지금부터 우리 집 가훈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예수천국 불신지옥!’아버진,신의 부름을 받고 귀신을 잡기 위해 파키스탄에 간 거야! 무대 점점 어두워진다,해병대 군복을 입은 해병전우회장(이하 해병)이 성명서를 발표한다. 해병 김만수 해병이 왜 파키스탄에 갔느냐?호랑이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잡아요.네!김만수 해병은 귀신처럼 숨어있는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기 위해 스스로 인질로 붙잡힌 겁니다.세계 평화를 위한 김만수 해병의 희생을 우리가 헛되이 하면 되겠습니까?테러리스트를 쓸어버리고 김만수 해병을 구합시다,여러분! 이에 질세라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띠를 두른 한 기독교 단체 대표(이하 기독교)가 성명서를 발표한다. 기독교 할렐루야!김만수 신도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홀로 미개한 땅 파키스탄에 간 것입니다.배고픔과 병으로 죽어가는 파키스탄을 어린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사탄과 악마의 소굴로 몸소 걸어 들어간 것입니다.김만수 신도,죽으면 천국 갑니다.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다 죽은 자,반드시 하나님의 땅에서 영생을 누립니다.하지만 김만수 신도는 반드시 살아 돌아와서,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자는 사탄의 총칼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간증해야 합니다,여러분! 암전. 2장 무대 밝아지면,다시 거실.아버지의 방문에는 빛바랜 해병대 군복이 훈장처럼 걸려 있다.군복엔 반짝이는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다.아들과 딸,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들 아버지는 언제나 해병대 정신과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며 사셨지만,단 한 번도 저희들에게 그것을 강요하시진 않았습니다.저희에겐 언제나 관대하셨죠.그래서 저희 가족은 교회에 나가지 않은 거고,저도 해병대에 가지 않은 겁니다.하지만 자신에게만큼은 엄격하셨습니다.항상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세계평화와 전도에 자기 한 몸을 바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셨죠.(동생에게)그렇죠? 딸 (대답하지 않는다) 아들 감사합니다.여기까지 하죠. 일상의 거실로 되돌아온다. 딸 오빠,거짓말 진짜 잘하더라. 아들 다 우릴 위해서야.(답답하다는 듯)그래,너 연기하고 싶어 했잖아.그냥 지상 최대의 연속극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거라 생각해. 딸 지상 최대의 사기극이겠지. 아들 사기라니?이건 아버지,어머니,그리고 너의 생명이 달린 중대한 문제라고. 딸 그럼 오빤? 아들 나는 예비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팔고 있잖아.법조인으로서의 내 인생은 오늘로 끝이라고.후회는 안 해.가족을 위해 나 스스로 포기한 거니까. 딸 그토록 바라던 게 이루어졌네. 아들 신문에 니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실릴 걸.졸지에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가 되는 거지.넌 그냥 내 계획대로만 따라와.그럼 모든 게 잘 될 테니까. 딸,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아들,자리에 눕는다.TV를 튼다.TV에선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아들,잠시 웃는다.그때,TV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온다. 소리 뉴스 속봅니다.조금 전 파키스탄에 납치된 김만수씨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입수되었습니다.인질범들의 구체적 협상 조건이 담긴 테이프가 몇 시간 전 알 자지라 방송국에 우편으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알 자지라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무대 어두워지면,어둠 속,눈이 가려지고 양 손이 결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아버지의 몸엔 폭탄으로 보이는 물체가 매달려 있다.폭탄을 두른 아버지의 뒤로 소총을 들고 얼굴에 복면을 한,한 명의 무장 단체 요원이 아랍어로 된 성명서를 읽는다.인질 석방을 위한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된다.외교통상부 관계자,해병전우회장,기독교단체장,무장단체 요원이 나온다.동시통역사가 진행자의 역할을 수행한다.과장된 무장단체 요원의 몸짓을 따라하며 통역을 하는 동시통역사.가족들도 토론의 장에 불려 간다.이들은 토론에 참여한 방청객으로,패널의 말을 듣고 반응한다. 동시통역사 우리는 김만수와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탈레반 인질 10명의 맞교환을 요구한다. 외교통상부 인질범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 국제사회의 철칙입니다.테러리스트의 석방이라니요?국제사회의 비난이 불 보듯 뻔합니다. 해병 일단 교환합시다.교환하고 나서 아예 싹쓸이해 버리자고요.해병 1개 연대면 초토화시킬 수 있습니다. 기독교 하나님은 김만수 형제를 사랑하십니다.잘못된 길로 빠진 테러범들도 사랑하십니다.일단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고,테러범들이 하나님 앞에 참회할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무장단체 요원,무언가를 말한다. 동시통역사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몸에 감긴 폭탄을 터뜨리겠다. 기독교 오,지저스!당장에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해병 저런 사지를 찢어죽일 놈들. 외교통상부 인질 맞교환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미국 정부와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기독교 세계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입니다.미국도 하나님의 나랍니다.우리는 형제입니다.형제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면 미국은 어떤 조건도 내세우지 않을 겁니다. 해병 미국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하는 나랍니다.국민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군사작전도 불사합니다.안보문제라면 해병 전우회라도 특공대로 보냅시다.해병대는 예비역도 귀신 잡습니다. 무장단체 요원,황당한 표정이다.한참을 고민한 끝에 무언가를 말한다. 동시통역사 협상시한은 내일 낮 12시! 기독교 자,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김만수씨의 무사 생환을 촉구하는 예배를 올립시다.다 같이 일어나십시오!기도합시다!(손뼉을 치며,찬송가를 부른다.) 해병 전우여,해병의 힘을 보여줍시다.김만수 해병,우리가 구해옵시다.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반동에 맞추어 ‘팔각모 사나이’를 부른다.) 상대에게 질세라,목청 높여 노래한다.무장단체 요원,어이없다는 표정이다.가족들,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아 제지당한다.무장단체 요원,무언가를 말한다. 동시통역사 다만……. 모두 숨을 죽인 채,통역이 되기를 기다린다. 동시통역사 미화 100만달러를 지불한다면,인질을 석방할 용의가 있다. ‘와~’,기독교 단체와 해병전우회가 서로 끌어안고 환호한다. 기독교 기적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해병 저 놈들,겁먹은 거야!해병대의 패기에 얼어버린 거야! 그때,시민단체장(이하 시민단체)이 나타난다.젊은 여성이다. 시민단체 국민의 혈세를 함부로 낭비할 순 없습니다! 해병 지금 사람 생명보다 돈이 중요해! 기독교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명이 중하다 말씀하십니다. 시민단체 도대체 그 많은 돈을 어디서 마련합니까!외교부 예산에서 마련하시겠습니까?아니면 국방예산에서 마련할까요?종교인에게 세금을 거둘까요? 침묵. 해병 솔직히 100만달러면 바가지 아니야? 기독교 목사님들,항상 베풀기 때문에 배고픕니다. 해병 정부가 나서서 협상금 내려야 하는 거 아니야? 기독교 자,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김만수씨의 협상금을 낮추는 예배를 올립시다.다 같이 일어나십시오!기도합시다! 해병 전우여,해병의 힘을 보여줍시다.김만수 해병 협상금,우리 깡으로 깎아봅시다.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시민단체 잠깐!왜 팔각모 사나이죠?여해병도 있는데!이건 남녀 차별이에요! 서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느라 바쁘다.참다 못 한 어머니,토론장으로 뛰어들어 말한다. 어머니 사람 목숨 가지고 지금 뭣들 하시는 거예요!그 돈,우리가 갚을 테니,일단 살리고 봐요! 침묵. 외교통상부 정부는 인질 석방을 위해 미화 100만불을 지불할 용의가 있음을 무장단체 측에 공식적으로 통보합니다.단,추후 김만수씨 가족에게 협상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 일체를 청구하되,도의적 차원에서 이자는 받지 않겠습니다.이상.기자회견을 마칩니다. 가족만 남기고 모두 사라진다.어머니를 노려보는 딸과 아들. 딸 에이- 씨! 아들 도대체 왜 나서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요! 침묵. 아들 젠장 무덤에 들어가서도 청구서 받게 생겼군. 딸 둘이 알아서 잘 해봐.그 돈 갚느라 내 청춘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 아들 니 청춘은 금값이고,내 청춘은 똥값이냐? 딸 오빤 장남이잖아. 어머니 니들은 걱정 말아라.내가 갚으마.일을 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 뭐 생명보험이라도 들어놓은 거 있어? 그때,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아무도 문을 열려 하지 않는다.문을 두드리는 소리.마지못해 딸이 현관문을 연다. 딸 에이 씨!누구야! 얼굴을 내미는 검은 양복의 대부업체 직원. 대부업체 여기가 김만수씨 댁이죠? 아들 인터뷰 안 해요.그냥 가요. 아들,문을 닫으려 한다.대부업체 직원,필사적으로 문을 막아서고 안으로 들어온다. 대부업체 (주머니에서 계약서를 꺼내 들이밀며)하지만 계약서상에는……. 아들 약속 취소합시다. 대부업체 그러면 법적인 문제가……. 아들 기자양반.기자 양반이 양심이 있어야지.아무리 특종이 밥 먹여 준다 해도,당사자가 원치 않는 취재를 하면 쓰겠어! 대부업체 기자라니요?전 희망캐피탈에서 나왔는데요,김만수씨 대출금 관계로. 아들의 표정이 굳어진다.대부업체 직원 얼굴에 미소를 띠고,친절하게 말한다. 대부업체 경황이 없을 줄은 압니다만,국가에서 청구한 돈을 먼저 갚으시느라 연체 이자가 산처럼 불어나는 상황에 처하게 되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돼서 찾아왔습니다.상환일은 앞으로 삼일.만약에 그 기한 내에 갚지 못하시면,김만수씨의 협상금 중 일부를 차압할 계획입니다.뭐,확실히 돈을 갚으시겠다는 약속만 해주시면 도의적인 차원에서 일주일정도 기한 연장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암전. 3장 어머니가 가사도우미를 하는 아파트의 베란다이다.의자 위에 올라가 창과 창틀을 닦는다.매우 힘겨워 보인다.허리가 아파 쉬는 어머니.크게 하품을 한다.어머니,다시 창을 닦는다.창을 닦는 속도가 느려지고 어머니,꾸벅꾸벅 존다.그 모양이 위태롭다.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는 어머니.초겨울 낮의 나른한 햇살에 평화롭게 잠든 어머니.잠시 후,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어머니,그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존다.누군가 현관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그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존다.휴대전화가 울린다.휴대전화 소리에 놀란 어머니,균형을 잃고 창문 밖으로 떨어질 뻔한다.다시 균형을 잡고 전화를 받는 어머니. 어머니 여보세요. 아들,무대 오른쪽에 나타난다. 아들 나예요! 어머니 웬일이니.아침밥은 챙겨먹었니? 아들 지금 그게 중요해요?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 어머니 잠깐만…….누가 왔나보다.조금 있다가 다시……. 아들 문 열면 안 돼요. 어머니 왜? 아들 경찰이에요. 어머니 경찰? 아들 아래를 봐요. 어머니,아래를 내려다본다.무대 왼쪽,고개를 쳐들어 위를 바라보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 어머니 어디 구경거리라도 있니? 아들 엄마. 어머니 나를 왜? 아들 자살하려는 줄 아니까요. 어머니 (큰 소리로)저기요!전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아들 미쳤어요?당장 죽을 것처럼 행동하세요. 어머니 왜 그런 거짓말을 하니. 아들 우리를 살리는 거짓말이니까요.아버지 얘기를 해요.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해서,돈을 모으는 거예요. 딸,무대 왼쪽에 나타난다. 딸 (비명을 지르며)엄마!죽으면 안 돼!내려와 제발! 사람들,딸을 쳐다본다. 어머니 (창 밖을 내다보며)저 아래서 소리 지르는 애,미애 아니니? 딸,실신한다.사람들,딸의 얼굴에 물을 붓고,뺨을 때린다. 어머니 어머,쟤 왜 저래.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들 연기하는 거예요. 어머니 내려가 봐야겠구나. 아들 가만히 계세요.제가 그러라고 시킨 거예요.극적 효과를 위해서.모든 게 제가 짠 시나리오예요.얘기를 시작하세요.더 이상 시간이 없어요.사람들 관심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으니까요.일단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어머니 도대체 이게 뭐하는 건지. 아들 (화를 내며)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좀 하세요.이게 우리에겐 마지막 기회고 희망이에요.(사이)저는! 어머니 (작은 목소리로)저는. 아들 크게!그래서 저 사람들한테 들리겠어요? 어머니 (큰 소리로)저는. 사람들,딸을 내팽개쳐 둔 채,고개를 쳐들어 어머니를 바라본다. 아들 파키스탄에 피랍되어 있는 김만수의 아내입니다. 어머니 (큰 소리로) 파키스탄에 피랍되어 있는 김만수의 아내입니다. 아들 제발 제 남편 좀 살려 주세요. 어머니 (큰 소리로) 제발 제 남편 좀 살려 주세요. 사이.사람들,웅성거린다. 아들 저는 죄인입니다. 어머니 (큰 소리로)저는 죄인입니다. 아들 협상금을 마련할 돈이 없어,차라리 남편이 죽기를 바랐습니다. 어머니 (큰 소리로)협상금을 마련할 돈이 없어,차라리 남편이 죽기를 바랐습니다. 아들 이젠 우세요. 어머니 (큰 소리로)이젠 우세요. 아들 (화를 내며)진짜 울라고요! 어머니의 실수에 사람들 동요한다.실눈을 뜬 채 상황을 지켜보던 딸,갑자기 일어나 소리를 지른다. 딸 (비명을 지르며)엄마!죽으면 안 돼! 사람들,딸을 쳐다본다.어머니,우는 시늉을 한다. 아들 더 크게 울어요. 어머니,대성통곡을 한다.사람들,고개를 쳐들어 어머니를 바라본다. 아들 좋아요.사람들 반응이 오기 시작했어요.자 이번엔 발을 하나 밖으로 빼세요. 어머니,망설인다. 아들 뭐 하세요!빨리요! 어머니,발을 하나 뺀다.중심을 잃고 휘청거린다.사람들 웅성거리며,눈을 가린다. 아들 아주 좋아요!어,잠깐….저게 뭐지?큰 일이에요.옥상에서 구급대원들이 내려와요.(사이)그냥,뛰어내려요.안전 매트 때문에 죽지는 않을 거예요! 어머니 여기서? 아들 여기서 끝나면 해프닝이지만,뛰어내리면 충격이 돼요.남편들은 남편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지려 한 어머니를 보며 잠시나마 사라졌던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을 수 있겠지요.주부들은 가슴 속에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남편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 거고요.그리고 그런 기회를 준 어머니에게 기꺼이 자신들의 지갑을 열겠지요.따지고 보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에요. 어머니,망설인다. 아들 어머니!빨리요!그들이 와요! 어머니,뛰어내린다.딸,비명을 지르며 실신한다.암전. 4장 거실.어둠 속,아들과 딸이 나란히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아들 얼마야? 딸 기다려. 딸,조심스럽게 클릭을 한다. 아들 (손으로 자릿수를 셈하며) 9억 5천 백……. 딸 7십 4만 5천원. 아들 (환호하며)됐어.성공이야. 딸 (아들을 기쁘게 끌어안으며)지금도 계속 들어와. 아들 (감격에 겨워)고생 끝났다. 딸 이게 다 오빠 아이디어 덕분이야. 아들 니 연기가 큰 몫을 했지.(비명 지르며 쓰러지는 흉내를 내며)아! 딸 근데 솔직히 아깝다.협상금을 다 모은 걸 알게 돼도,사람들은 계속 돈을 보내줄까? 아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계좌추적 해 보는 것도 아니고. 딸 더도 말고 한 5억만 더 들어왔으면 좋겠다. 아들 우선 집 한 채 사고,작은 가게 하나 내고,남으면 차 한 대 사고…. 딸 왜 집하고 가게야?그냥 똑같이 반으로 나눠. 아들 가게해서 돈 많이 벌면,너 시집갈 때 한 몫 단단히 챙겨줄게. 딸 그럼 가게는 내가 할게. 아들 널,뭘 믿고. 딸 오빤,뭘 믿고? 어머니,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아들,어머니를 보며 반가워한다. 아들 다녀오셨어요. 딸 다녀오셨어요. 어머니,말이 없다.넋이 나간 사람 같다.어머니,외투를 벗어들고 딸의 방으로 들어간다. 아들 (은밀하게)어머니한테는 돈 얘기 하지마.괜히 신경 쓰시게 하지 말자고. 딸 남은 돈,모두 돌려주라고 할까봐 그러지? 아들 그렇게 되면 어머니나 너한테도 안 좋은 일이잖아. 어머니,옷을 갈아입고 나온다.아들,어머니를 부축해 자리에 앉힌다. 아들 (어깨를 주무르며)피곤하시죠. 어머니 일은 잘 처리됐니? 딸 아직 많이 모자라요. 아들 그래도 협상금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 한 시름 놨구나. 딸,조용히 방으로 들어간다. 어머니 큰일이다.일,그만 나오라는구나.협상금은 해결됐다고 해도,당장 사채 갚을 일이 막막하네. 아들 걱정마세요.이제 일 그만두셔도 돼요.어머닌 이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잖아요.잡지 인터뷰도 줄을 이을 거고,방송출연 요청도 쇄도할 거예요. 침묵. 어머니 남 속이는 일은 그만하자. 아들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마세요. 어머니 나중에라도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떡하니. 아들 용서하겠지요.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이면,모두 용서되는 시대니까요. 침묵. 어머니 뉴스에 니 아버지 소식은 없었냐? 아들 만날 똑같은 뉴스의 반복이죠.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침묵. 어머니 니 아버진 벌써 죽은 게 아닐까? 아들 아버진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에요.의지가 강한 분이잖아요.평생을 자기 뜻대로만 살아오신 분이에요.심지어는 우리들까지도 자기 뜻대로 만드셨죠. 어머니 그래서 걱정되는구나.테러범들한테까지 제 고집 부릴까봐. 아들 걱정하지 마세요.(사이)도장 좀 주세요.일단 돈 좀 찾아서 아버지 협상금부터 보내야겠어요. 어머니 네 침대 밑에 있어. 아들 제 침대요? 어머니 거기가 제일 안전할 것 같아서. 침묵. 아들 그럼 쉬세요. 어머니 법아. 아들 네? 어머니 아니다. 어색한 침묵.아들,자기 방으로 들어간다.어머니,자신의 주머니에서 카드 명세표를 꺼내 본다.한동안 아들 방을 쳐다보다,고개를 푹 숙인다.그때,방문을 열고 뛰쳐나온다. 딸 큰 일 났어. 아들,자기 방에서 뛰어나온다.딸,TV의 전원을 켠다. 소리 다시 한 번 전해드립니다.무장단체에 피랍된 김만수씨와 관련된 새로운 동영상이 유튜브에 게시되었습니다.이 동영상은 알자지라에 의해 공개된 테이프의 원본으로 보이는데요.아마도 누군가가 테러범들의 컴퓨터를 해킹해 인터넷상에 올려놓은 것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무대 어두워지면,눈이 가려지고 양 손이 결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아버지의 뒤로 소총을 들고 얼굴에 복면을 한 두 명의 무장 단체 요원들. 한 명의 무장 단체 요원,커다란 아랍 칼을 들어 아버지의 목을 베는 듯한 시늉을 한다.옆의 다른 요원,아랍어로 된 성명서를 읽는다.아버지의 목에 칼을 대고 있던 무장단체 요원,칼을 떨어뜨리고,성명서를 읽던 무장단체 요원의 말이 꼬인다.그 순간,아버지가 피식하고 웃는다.갑자기,해병전우회장과 시민단체장이 무대 위에 난입해 설전을 벌인다. 해병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순간에 미소라?이게 바로 해병대 정신입니다. 시민단체 돈 뜯어내려고 연기하다 실수하니까,지들끼리 히히덕거리는 거 아닙니까.이건 명백한 대국민 사기극입니다.정부가 얼마나 물러 터졌으면,이런 사기를 칩니까. 해병 해병대는 오로지 악입니다. 시민단체 진실이 명백하게 밝혀졌는데,아직도 사기꾼을 우상화하실 작정입니까? 해병 해병대는 오로지 깡입니다. 시민단체 속아서는 안 됩니다.어젠 김만수 부인이 국민을 상대로 쇼를 벌이더군요.누가 봐도 어설프지 않습니까?실제 자살하려는 사람은 그렇게 말이 많지 않아요!김만수 부인이 떨어진 건 의도된 거라고요.뒷조사를 해봤더니,김만수씨 빚이 조금 있더군요. 해병 그게 뭐요?요즘 은행 빚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시민단체 다 사채빚이라는 게 문제지요.여기 증거자료가 있습니다. 해병 뒷조사는 불법 아니에요?정의니 어쩌니 떠들어 대더니 다 가식이구먼? 시민단체 (당당하게)어쨌든지 결과가 이렇게 나오지 않았습니까!이건 다 정부의 무능 때문이에요.정부가 일을 확실하게 했다면,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뭐,가족은 진실을 알겠죠.내일 12시,외교통상부에 나와서 가족들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할 것을 강력하게 건의합니다. 해병 네,해병대 정신으로 당당하게 진실을 밝히세요. 두 사람,사라진다.가족들,둘러앉아 있다. 딸 에이- 씨.좀 어떻게 좀 해봐.다 오빠가 벌인 일이잖아. 아들 (화를 내며)나도 지금 생각중이야. 어머니 솔직하게 이야기하고,돈 돌려주자. 아들 미쳤어요? 어머니 나쁜 의도로 그런 게 아니니까,용서해 줄 거야. 아들 그럼 나랑 미애는?평생 빚쟁이한테 시달리면서 살라고? 딸 차라리 죽어버리지! 침묵. 아들 일단 아버지가 왜 웃었는지만 밝히면,어머니가 벌인 자살소동에 대한 의심은 사라질 거예요.아버진 도대체 왜 웃었을까? 딸 저번처럼 그냥 모른다고 할까? 아들 오히려 더 의심할걸? 딸 모르는 게 사실이잖아. 아들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거짓을 말해야 믿는 게 사람들이잖아.(사이)이건 어때?아버지는 무서우면 웃는 버릇이 있다. 딸 그러면 해병은 겁쟁이가 아니라고 말하겠지. 아들 그럼 이건?아버지는 지금 납치범들의 행동을 비웃는 것이다.웃음은 의지의 표현이다. 딸 그러면 시민단체에서 의심하겠지.그렇게 의지가 있는 사람이 사채를 끌어다 썼느냐고. 아들 (화를 내며)에이- 씨! 사이,가족들 생각한다.딸,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문갑 위,작은 액자를 들고 온다. 딸 이게 언제지? 어머니 아버지 생일파티 같구나. 딸 여기 날짜가….내가 여덟 살 때네? 아들 난 케이크 자르는 칼을 들고 있고. 딸 난 그 앞에서 편지를 읽고 있고. 아들 아버진 웃고 있어. 어머니 얼마 후,니 아버진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지.그 친구를 잡겠다고 전국을 헤매다가 정작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걸 보지도 못했고. 아들 그때부터였어.아버지가 웃지 않은 건.아버진,그때를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딸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어머니 마지막으로 웃었던 그때를? 그때,아들 휴대전화의 벨이 울린다.아들,전화를 받는다. 아들 여보세요. 무대 한 쪽,이브라힘의 모습이 나타난다.한국어를 제법 구사한다. 이브라힘 안녕하세요. 아들 누구시죠? 이브라힘 이브라힘이다. 아들 (잘 못 알아듣는다)누구요? 이브라힘 만수형님 같이 일하던 이브라힘이다.집에도 몇 번 갔다. 아들 이브라힘? 이브라힘 그래 이브라힘이다.지금 옆에 누구 있냐? 아들 가족들요. 이브라힘 노 폴리스? 아들 네. 이브라힘 만수형님,나랑 같이 있다. 아들 뭐라고요? 이브라힘 걱정 말아라.만수형님 다 좋다. 아들 무슨 소리예요?아버지가 왜 당신이랑 있죠? 이브라힘 믿어라.내가 만수형님 목소리 들려준다. 이브라힘,수화기에 녹음기를 가져다 댄다.아들,전화를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스피커폰으로 전환한다. 아버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모든 건 다 내가 꾸민 일이다.대충 모든 게 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구나.협상금이 전달되면,나는 협상금의 3분의1을 이브라힘 몫으로 떼어주고,나머지를 해외 계좌에 송치해 둔 채 한국으로 들어갈 거다.그 돈이면 내가 진 빚 갚고도 넉넉히 남으니까,사업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듯하다.(사이)일단 이브라힘한테 빌린 돈으로 그럭저럭 지낸다.솔직히 음식도 입에 안 맞고 잠자리도 불편해 죽겠다.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구나.(사이)메시지 받거든,그곳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이브라힘한테 좀 전해라.꼭! 어머니,전화를 끊어버린다.긴 통화대기음,암전. 5장 외교통상부 내의 작은 방.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가족이 앉아 있다.긴 침묵. 어머니 지금 몇 시니? 아들 7분 남았어요. 딸 시간, 뒤로 미뤄. 아들 무슨 꿍꿍이냐고 더 의심할 걸? 딸 그럼 빨리 결정하든가?뭐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난 아까 결정했어. 어머니와 아들,딸을 쳐다본다. 딸 난 우릴 속였다는 게,용서가 안 돼. 아들 그래서? 딸 협상금 주지 마. 어머니 그럼 아빤? 딸 어떻게 되겠지. 아들 이브라힘이 순순히 보내줄까? 딸 알아서 해결하겠지. 어머니 그래도 그럴 순 없다. 딸 왜? 어머니 니들 아버지니까. 딸 아버지다워야 아버지지.다 늙어서 그나마 엄마 대접 받고 살려면,엄마도 결정 잘해.어떡할 거야? 엄마,충격을 받은 듯 무너진다. 딸 에이-씨!시간 없어.빨리 결정해!아니면 나가서 내 맘대로 말한다! 딸,문을 열고 나가려 한다. 아들 아버지가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 딸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가겠지.난 더 이상 그렇게는 못 살아.그나마 아버지한테 빚이 있었으니까,우리가 숨이라도 쉬면서 살았던 거 아니야?아마 빚 갚고 나면 그 빌어먹을 가장의 권위를 내세워서 다시 우리 숨통을 조일 거야.우리가 빚이라도 진 것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청구하겠지. 아들 그래도 아버지는 돈은 잘 벌어 왔잖아.그걸로 우리도 한동안 먹고살았고. 딸 결정적인 순간엔 아버지 편드는 걸 보니까,오빠도 별 수 없는 남자구나. 아들 누구 편을 들어!솔직히 너한테 들어가는 돈이 나보다 몇 배는 많았잖아. 딸 돈을 주니까 그게 사랑인 줄 알았고.하지만 지금은 그게 사랑이 아닌 건 알아.난 그냥 먹이를 주면 반사적으로 꼬리를 흔드는 개랑 다를 바 없었어. 아들 네 허영심을 채우려면 돈이 필요하니까,그래서 꼬리친 건 아니고? 딸 마약이라도 발라 놓으셨는지,끊어버리기엔 너무 달콤하더라고. 아들 그 돈이 아깝다.내가 그 돈을 가지고 장사를 했으면 재벌 됐겠다. 딸 나도 더러워서 진즉에 독립하려 했어.근데 빌어먹을 집구석이 당장에 원룸 마련해줄 돈 한 푼 없는데 어떻게 해!우리 협상금 나눠 갖고,여기서 다 갈라서자.아빠야 그냥 납치범들한테 죽었다고 생각하면 되지.사실 우리한테 아빤 죽은 거나 다름없었잖아.그리고 엄마한테 한 가지 충고하는데,이 새끼한테 밥 얻어먹을 생각 하지도 마.말하는 본새가 아빠랑 똑같아. 어머니,딸의 뺨을 때린다. 아들 그 년 잘 맞았다!계집애가 주둥아리를 함부로 나불대더라고.어디 오빠한테 대들어! 어머니,아들의 뺨을 때린다. 어머니 이놈의 종자들 다 지긋지긋해.애비나 새끼나 다 돈 생각뿐이야.돈이 가족보다 중요해?(사이)그럼 나도 이참에 엄마 딱지 버리고,돈 한 번 밝혀볼까?(사이)앞으로 모든 일은 내가 알아서 해.토 달면 알몸으로 확 내쫓아버리는 수가 있으니까,조심해! 어머니,아들의 전화기를 빼앗아든다.이브라힘에게 전화를 한다. 어머니 여보세요?이브라힘?나야.김만수 아내.남편한테 전해.협상금이고 뭐고 땡전 한 푼 보내 줄 수 없으니까,알아서 오든지 거기서 살든지 맘대로 하라고. 뭐?난 모르는 일이니까,빌려준 돈은 알아서 받아! 무대 한 쪽,단상이 마련되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어머니,아들의 가방에서 협상금이 담긴 통장을 꺼내든다.그리고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다. 어머니 우선 제 남편 일과 관련해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안겨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저희 가족은 남편이 왜 목에 칼이 들어온 순간에 웃었는지 모릅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솔직히 전 남편의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예전에는 먹고사는 게 바빠서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고,먹고살 만하니까 더 잘살아 보겠다고 바빠서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고,욕심 부리다 쫄딱 망해먹고 나선 가족 볼 면목이 없다고 방에서 나오질 않아서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남편이 왜 파키스탄에 갔느냐를 두고 말이 참 많았습니다.듣고 있으면 하나같이 다 그럴듯합니다.근데 자기들 맘대로 사람을 살렸다 죽였다 합니다.하긴 그게 직업이니까,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겠지요.그래도 이건 아닙니다.먹고사는 게 사람 목숨보다 중요합니까?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해서 다 용서가 됩니까?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어머니,통장을 단상 위에 놓는다. 어머니 남편은 지금 무장단체에 붙잡혀 있는 게 아닙니다.같이 일하던 파키스탄 노동자가 임금체불에 대한 대가로 사기극에 가담해 달라고 협박한 모양입니다.네,베란다 사건은 다 쇼입니다.남편이 진짜로 붙잡힌 줄 알고, 사기를 친 겁니다.다들 엄청난 돈을 보내주셨더군요.‘이 끔찍한 땅에도 아직까지 온정이란 게 살아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남편의 협상금에 보태라고 보내주신 돈,여기 그대로 있습니다.한푼도 건드리지 않았으니 다들 찾아가세요.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제가 국민여러분을 기망했으니 책임을 져야죠.저를 사기 미수죄로 처벌하십시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욕 하실 분들,실컷 욕하십시오.하지만 저도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욕 좀 해봅시다.자기만 배불리 먹겠다고 돈 떼어 먹은 최동렬,돈 제때 갚지 못한다고 인질 협상금까지 차압하겠다는 희망캐피탈,니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에필로그 어머니와 가족,거실에 둘러앉아 있다.어머니,상 위에 장부를 펼쳐놓고 있다.그 옆에서 아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딸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검색창을 띄워놓고 있다. 아들 일이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에요.사기 미수죄는 처벌할 수 없다는 거,정말 기막힌 아이디어였어요. 딸 덕분에 떼인 돈도 받아낼 수 있었고,사채이자도 탕감 받을 수 있었고.정말 연기가 죽여줬어요. 어머니 니들만 잘난 줄 알았지?니들이 누구 배에서 나왔는데! 아들과 딸,웃는다.어머니의 표정은 냉담하다. 아들 근데 아버지는 왜 안 돌아오세요? 어머니 그 인간 고생 좀 할 거야.이브라힘한테 돈 부쳐주면서 그랬지.그 인간 정신차릴 때까지 한 달 정도 파키스탄에서 일 좀 시키라고 했거든. 딸 그래도 좀 심한 거 아니에요? 어머니 그 인간이 한 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야.그건 그거고,계산을 마저 끝내 볼까? 아들 근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어머니 사랑을 돈으로 환산하는 거,이게 너희들 사고방식 아니니?싫으면 집 나가시든가. 아들 어디까지 했죠? 어머니 부부생활 항목. 아들 섹스를 하는데 들어가는 노동 비용을 20~24세 도시 근로자 평균 임금……. 어머니 니 아버진,평균에도 못 미쳤다.최저로 계산해. 딸 (자판을 두드리며)시간당 최저 임금은 삼천 칠백 칠십 원이야! 아들 그럼 반올림해서 시간당 사천원.칼로리 소모가 보통 노동의 10배는 될 테니까 시간당 4만원을 잡고……. 어머니 1시간까지 가본 적은 없는데?보통 30분 안에 끝났어. 아들 그럼 최저 임금의 이분의 일인 이만 원에 한 달 평균 20회 정도 관계를 맺는다고 치고……. 어머니 스무 번은커녕 열 번도 채 안 됐어. 아들 그럼 열 번으로 계산하면 40만원,그 대가로 얻게 되는 쾌락의 비용을 성매매를 하기 위해 지불하는 최소비용 회당 7만원……. 어머니 내가 칠만 원짜리밖에 안 돼 보이니?십만 원으로 해. 아들 거기에 엄마가 얻게 되는 쾌락의 비용을 오만 원 정도 더하고……. 어머니 난 절정에 다다른 적이 없었어.기껏해야 다섯 번에 한 번 정도? 아들 그럼 쾌락의 비용을 만원으로 계산하고,모두 더하고 빼면 대략 한 달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지불해야 할 돈이 오십만 원,일 년이면 육백만 원.어머니가 결혼한 지 30년이 됐으니까……. 어머니 솔직히 너 중학교 들어간 이후로는 관계를 안 했다. 아들 그럼 14년치만 계산 하면,총 팔천사백만 원. 어머니,장부에 기재한다. 어머니 자,다음 항목은 가사 노동에 대한 미지급분에 대한 피해보상 청구. 딸 (자판을 두드리며)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은 시급 이만 오천 원에서 5만원 사이래. 어머니 시급 사만 원 정도가 적당하겠구나. 아들 하루 평균 15시간의 가사노동을 했다고 가정하고……. 어머니 깨어 있는 동안은 다 가사노동 아니야?난 평균 5시간도 채 못 잤어! 아들 그러면 계산이……. 어머니 이리 내.넌 대학까지 나온 놈이 뭐 그렇게 계산이 느려.들인 돈이 아깝다.이러다 너랑 미애 청구서는 오늘 안에 만들지도 못하겠네. 암전.
  • “서울 역사 알려드리는 보람에 살죠”

    “서울 역사 알려드리는 보람에 살죠”

    29일 낮 12시30분.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순자(75)씨가 택시에 탄다.행선지는 자택인 서울 염창동의 한 아파트.이씨가 타자마자 운전석에서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손님,염창동이 왜 염창동인지 아십니까.조선시대엔 사대문 안에 사람이 많이 살았지요.세종 재위 10년인 1428년 사대문 안 인구조사를 했더니 10만 3328명이 살았답니다.그런데 음식에 꼭 필요한 소금을 보관할 데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그 장소가 지금의 염창동입니다.소금창고 동네란 뜻이지요.” 이씨는 박수를 치며 깔깔깔 웃는다.“아유,우리 기사님 아니면 누가 이렇게 재밌는 얘기를 해줘.시간 가는줄 모르겠네.” 택시기사 표성환(61)씨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는다.그는 서울 시내 역사를 훑으며 달리는 장애인 콜택시 기사다. ●손님에게 숭례문 유래듣고 공부시작 표씨는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가 출범한 2003년 1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속옷 공장,넥타이 공장 등에서 일하다 호프집을 차렸으나 어려워져 장애인 콜택시 운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역사공부엔 관심조차 없었다.그러다 2003년 한 손님을 만났다.과거 문교부 차관을 지냈다던 그분은 숭례문과 망우리의 유래를 들려줬다.받들 숭(崇),예절 예(禮)자를 쓰는 숭례문은 사대문 안에 사는 양반들이 그 앞을 지날 때 ‘궁궐이 있으니 여기서는 예를 갖춰 행동하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라는 설명이었다.표씨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귀가 번쩍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그분 설명이 너무 재미있었어요.다른 동네는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됐을까,궁금해서 참을 수 없게 됐지요.그래서 혼자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2년간 25개 구청 돌며 자료 구해 표씨는 집이 있는 서대문구청 등 서울시내 25개 구청을 2년간 돌아다니며 동네 지명의 유래에 대한 자료를 하나하나 구했다.구청 주변에서 손님을 모실 때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구청에 들렀다.그 자료를 노트에 옮겨 적은 후 달달 외웠다.3~4번 손님에게 얘기하면 자연스레 입에 붙게 됐다.“저 혼자 알고 싶어 시작했지만 손님들한테 들려주면 좋아하시니 저도 보람있어요.그저 친절하기만 한 서비스보다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란 생각에 자랑스럽기도 하고요.” 표씨의 차를 포함해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는 220대가 운행 중이다.“앞으로도 계속해서 장애인의 손발이 돼주고 싶다.”며 웃는 표씨의 266번 택시는 오늘도 신나게 달린다.“어서오십시오.손님,혹시 서울과 관련된 숫자에 대해서 아십니까? 서울엔 구청이 25개,대학이 43개,전문대가 171개,고등학교가 284개 있답니다.서울의 성곽길이는 총 18.2㎞고요.” 글 사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열린세상] 2008년의 결선투표 결산/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2008년의 결선투표 결산/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7 프랑스 대통령선거의 후보 가운데 하나인 사회당의 루아얄이 선거결과에 불복하고 재투표를 요구했다.2008년 11월21일에 있었던 당대표선거에서 말이다.나는 1958년에 시작된 프랑스 제5공화국 시기의 대통령선거 총 일곱 번 가운데 세 번씩이나 결선투표에서 순위가 바뀌어도 조용히 지나간 정치문화의 성숙함에 매료된 바 있었다.그러나 이번에 결선투표에서 순위가 바뀌고 그 차이가 매우 작자 프랑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게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고 실망했다. 루아얄이 그럴만한 것은 하루 전에 열린 사회당 당대표선거 제1차 투표에서 42.5%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이와 반대로 오브리는 34.7%로 2위에 머물렀다.바로 다음 날 열린 제2차 투표에서는 약 13만 5000명의 당원이 참가한 가운데 불과 42표 차이로 오브리가 1위 자리를 빼앗았다. 제1차 투표에서 3위(아몽)를 지지했던 당원들의 표가 루아얄 대신 오브리에게 향했던 결과였다.11월25일 사회당은 최종적으로 오브리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루아얄이 당의 분란을 잠재우기보다는 오히려 분열을 키울 소지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서양 건너편 미국에서 벌어진 11월4일 총선거 가운데 조지아주의 연방상원의원선거에서는 한 달이 지나도록 승자를 결정할 수 없었다.주법은 상원의원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결선투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11월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챔블리스가 49.8%를 얻었고 민주당의 마틴이 46.8%를 기록했다.한 달 만에 열린 제2차 투표에서도 역시 공화당의 챔블리스가 약 57.5%를 획득한 반면 민주당의 마틴이 약 42.5%에 그치고 말았다. 조지아주의 결선투표에서 순위가 바뀌지 않았으니 괜찮은 것일까.오바마의 열풍에 영향을 입어 11월 조지아주 연방상원의원선거에서는 약 370만명이 투표했으나 12월 결선투표에는 그의 반 토막 정도인 200만명에 그쳤다.상황이 이럴진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과반수 득표율이 당선자의 정통성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태평양 건너편 한국에서도 결선투표가 조용히 치러졌다.12월3일 KBS 노조위원장선거 결선투표에서 강동구-최재훈은 2045표(50.1%)를 얻어 불과 66표 차이로 김영한-김병국을 따돌렸다.그러나 얼마 전 제1차 투표에서는 김영한-김병국이 155표 차로 강동구-최재훈을 제친 바 있었다.프랑스 사회당의 당대표선거와 달리 KBS 노조위원장선거에서는 결과가 불복되지는 않았다.그래도 당선인 최재훈이 “반신불수로 시작한다.”고 소감을 밝힌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결선투표는 투표자의 과반수를 획득한 당선자를 출현시켜 정통성을 향상시키려는 제도이다.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네 가지 가운데 하나에 그친다.두 차례의 투표에서 투표율이 유지 또는 향상되면서 제1차 투표의 1등이 최종당선자로 확정되는 경우이다.그러나 현실사회에는 다른 세 가지 시나리오가 더 자주 발생한다.투표율이 유지 또는 향상되면서 최종당선자가 바뀌는 경우는 그래도 양반이다.그러나 투표율이 낮아지면서 최종당선자의 순위가 유지되는 경우는 결선투표의 효용성을 의심하게 만든다.최악의 시나리오는 투표율이 낮아지면서 최종당선자가 바뀌는 경우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는 이미 다양한 수준의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다.이들 사례를 분석하다 보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장차 한국에서 결선투표제를 대통령선거 등으로 확대해서 도입할 때에 대비해서 그 장·단점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보완장치를 잘 마련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이 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51·끝) 풍속화를 읽어보자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51·끝) 풍속화를 읽어보자

    한 점을 지나는 선분은 무수하다.어떤 방향의 선분이냐에 따라 그 점의 의미도 달라지는 법이다.즉 보는 시각에 따라 사물은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예컨대 갑과 을의 재산이 각각 5억이라 해도,갑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다 까먹어서 지금 5억이 되었고,을은 무일푼으로부터 시작해 자신의 노력을 재산을 계속 불려 지금 5억이 되었다면,그 5억의 의미는 판연히 다를 것이다.즉 외면적으로 동일하게 보이는 현상일지라도 그 현상을 어떤 컨텍스트에 놓고 읽느냐에 따라 그 현상의 의미는 사뭇 달라지는 것이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그림을 한 점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선분을 긋느냐에 따라,즉 어떤 시각에서 보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으레 전문적인 회화사 연구자들이 하는 것처럼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를 그림의 구성과 색채,테크닉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이것이 이제까지 알려진 정통적인 감상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풍속화 감상이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그림을 읽는 선분은 여럿이라고 했다.곧,풍속화는 풍속을 그린 그림이니만큼 ‘풍속’이란 선분 위에 그림을 놓고 그 의미를 읽어내고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신윤복 ‘입맞춤´에 나오는 사내의 정체는? 현재가 시간 속으로 흘러가 버리면,과거가 된다.과거는 다시 복원할 수 없다.요즘이야 사진과 영화,TV 등의 이미지 자료가 흘러넘치지만 지난 세기만 해도 우리는 20세기 전반기의 한국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하물며 조선시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아무리 좋은 문헌이 있어 이렇게 저렇게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해도 결국은 한 장의 그림만 못한 법이다.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은 결코 헛말이 아니다. 그러니 과거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조선후기 결혼식에 대해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것보다 차라리 말을 타고 처가로 가는 신랑의 행렬을 그린 김홍도의 풍속화(그림 1, 신행·新行)를 보여 주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풍속화를 읽는 데는 특별히 좋은 방법이란 없다.말을 달리며 산을 보는 것처럼 그냥 대충 훑어 지나가지 말고 그림 속 인물과 사물,상황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예컨대 신윤복의 ‘입맞춤’(그림 2)을 보자.이 그림은 어떤 사내가 젊은 여자를 바싹 끌어당겨 입을 맞추려 하고 있다.물론 입이 닿지 않았으니 입맞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아무래도 곧 입을 맞닿으려는 장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한밤중에 여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려는 사내의 정체다.어떤 연구자는 이 사내를 양반이라 하지만 딱히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이 사내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것은 사내가 들고 있는 고리가 달린 막대기다.이것은 포도청의 포교가 휴대하는 쇠도리깨다.따라서 이 사내가 포도청 포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포도청 포교가 어떤 여인을 만나고 있는 장면인 것이다.그런데 포도청 포교는 기방을 지배하는 기부(妓夫)가 될 수 있었으니,그림 위쪽에 서 있는 장옷을 걸친 여성이 기생이라는 것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물론 이 다음부터의 그림 해석은 각각 달라질 수 있고,개인의 상상력에 매인 것이지만,그 해석과 상상력이 출발하는 지점이 포교와 기방,기부,기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풍속화 읽기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범상히 지나치지 말고 보잘 것 없이 보이는 것부터 궁금증을 갖고 차근차근 연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참고삼아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둘째 아들 정학유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부분을 읽어보자. “예를 들면 ‘사기’의 자객열전(刺客列傳)을 읽다가 ‘조도제(祖道祭)를 지낸 뒤 길을 떠났다.(旣祖就道)’는 부분을 만나면 ‘조(祖)란 어떤 것인지요?’하고 물어보아라.선생이 ‘전별할 때 지내는 제사’라고 하면,다시 ‘하필 조(祖)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하고 물어보고 선생이 잘 모르겠다고 하면,집에 돌아와 사전을 꺼내 ‘조’ 자의 본뜻을 살펴보고,그것을 토대로 삼아 다른 책에서 널리 ‘조’ 자의 풀이를 조사해서,그 근본을 캐고 지엽적인 사실까지 모두 알아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 뒤 ‘통전’,‘통지’,‘통고’ 등의 책에서 조도제를 지내는 예(禮)까지 조사해 모아서 책으로 엮으면 영원히 전해질 책이 될 것이다.이렇게 하면 전에 한 가지 일도 모르던 네가 그때부터 조도제의 내력을 환히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어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큰 학자라 해도 조도제에 관한 한 가지 일만은 너와 다툴 수가 없을 것이니,어찌 크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정약용이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사소한 것이라 여기지 말고 궁금증이 나면,자신이 완벽하게 이해가 될 때까지 조사해 보라는 것이다.그렇게 하여 흡족할 정도의 조사와 연구가 끝나면 그 분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정통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읽을 수 있는 풍속화 그림도 마찬가지다.사소하고 시시한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같은 부류를 모아보고,다른 것과 비교해 보고,그 유래를 따져보고,또 관련되는 문헌을 찾아보면 어느덧 자신 나름의 주장을 세울 수 있게 된다.또 뜻밖의 수확도 있다.예컨대 나는 한때 조선시대에 개를 그린 그림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개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있지만,대개 개는 그림의 부차적인 제재로 등장하고 있었다.등장하는 개가 어떤 종인지를 따져보기도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김준근의 개장수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쇠사슬을 잡고 버티는 개의 그림을 발견하고는 환호작약하였다.문헌을 통해서 나는 ‘개장수’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그 실제 모습을 본 것은 바로 김준근의 그림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전해지는 옛그림에 등장하는 물고기만 모아서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그것을 조사하면 한국인이 좋아했던,혹은 즐겨 먹었던 물고기의 종류를 알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옷차림이다.사람들이 등장하는 그림을 모두 모아서 그들의 옷차림과 장신구,모자,머리 모양을 비교해 보면,당시의 복색과 유행을 알 수 있을 것이다.이것은 물론 복식사 연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하지만 더 개척할 부분은 얼마든지 있다.누구나 도전해 보면 된다.이처럼 풍속화는 시작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식견 쌓아 주체적 감상자 될 수 있어 ‘전문가주의’라는 말이 있다.모든 것을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전문가는 물론 한 분야에서 오랜 수련을 쌓아 보통 사람보다 깊은 지식과 식견을 쌓은 사람이다.하지만 전문가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또 오류가 없는 것도 아니다.뜻밖에도 전문가는 자신의 영역에 갇힌 나머지 시야가 좁아져서 쉬운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멀쩡한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전문가라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고,오류가 없는 것도 아니다.인터넷과 서적을 통해 정보가 흘러넘치는 세상이다.그림이라 해서 어찌 꼭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만이 연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식견을 쌓아 스스로 주체적인 감상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신윤복의 풍속화에 대해 ‘조선사람들,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란 책을 쓴 이래 조선시대 풍속화 전반에 대해 글을 한 번 써 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해 왔다.우연하게도 서울신문과 인연이 닿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었다.처음에는 조선시대 풍속화 전반에 대해 보다 폭넓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하지만 한 회의 원고 매수가 정해져 있고,그림을 반드시 2장을 넣어야 하는 탓에 구애가 적지 않았다.또 풍속화 자체가 한정이 있어,전에 했던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도 있었다.이리저리 보완하고자 했지만,능력이 모자라 흡족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연재하는 동안 옛 그림을 보면서 늘 즐거웠다.나의 즐거움이 독자 여러분들에게까지 전해졌으면 더할 수 없는 행복이겠다. 1년 동안 즐겨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쇼핑플러스]

    ●한경희생활과학이 오는 31일까지 주부모니터 스팀홀릭 2기 6명을 모집한다.서울·수도권 거주자 20~40대 주부 가운데 이 회사 공식 블로그(www.haanblog.com)에서 다운받은 지원서를 작성해 이메일(monitor@ihaan.co.kr)로 보낸 고객 중에서 선정한다.매달 한 차례씩 오프라인 좌담회에 참석하고,온라인 제품홍보와 시장조사 등의 활동을 하는 모니터 요원은 가전 제품과 활동비를 지원받는다. ●한국인삼공사가 경북 서안동 농협에서 계약 재배한 국산 참깨 100%로 제조한 참기름 호마正을 출시했다.29일 오후 8시35분에 현대홈쇼핑에서 선보이며,출시 기념으로 안동 양반쌀을 증정한다.270㎖ 1병에 3만원. ●27~28일 강원도 영월의 한우직거래 마을 다하누촌(1577-5330)에서는 한우 육회축제를 열고 육회 2접시(300g)를 7200원에 제공한다.온라인쇼핑몰인 다하누몰(www.dahanoomall.com)에서도 100g 기준으로 사골과 꼬리를 1400원,우족을 2000원,잡뼈를 550원에 판매한다. ●롯데칠성음료는 백두산 자연보호 구역에서 중국 길림성 백산시의 천양천 음료유한공사가 취수한 아이시스 백두산 샘물을 출시했다.칼슘과 나트륨,칼륨,마그네슘,불소 등이 다량 함유됐다고 설명했다.600㎖에 800원. ●농심이 면과 국물을 한꺼번에 넣고 끓일 수 있는 후루룩 국수를 출시했다.멸치다시로 국물맛을 내고,계란지단과 호박·다시마채 등 전통 오방색의 고명 플레이크를 넣었다.92g 1봉지에 1000원. ●LG생활건강의 파르텔 향기나는 고양이는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자동분사 방향제를 목표로 개발됐다.다양한 모습의 눈·코 스티커가 들어 있어 원하는 고양이 얼굴을 연출할 수 있다.고양이기기와 스위트만다린 향캔(45일 사용) 1개가 1만 9500원.향캔 2개의 리필 세트가 7900원.
  • “땅을 너무 사랑해서…” 성질 돋운 정가 말말말

    “땅을 너무 사랑해서…” 성질 돋운 정가 말말말

     다사다난했던 2008년도 어느덧 저물고 있습니다.올해도 정치권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이명박 정부 출범에 이어 4·9총선,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미국발 금융위기 등 수 많은 쟁점들을 둘러싸고 무수한 말들이 쏟아졌습니다.’비공감 발언 10가지’를 뽑아봤습니다.  유난히 ‘성질 돋우는’ 발언이 많았던 2008년,여러분이 생각하는 올해의 ‘비공감 발언’은 무엇인가요?    1.”사진 찍지마,XX.성질이 뻗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께서 국정감사장에서 거듭되는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 많이 짜증이 나셨던 모양입니다.지난 10월24일 국감 정회 직후 유 장관을 촬영하려던 사진기자들에게 폭언을 쏟아내시는 장면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혀버렸는데요.이후 유 장관님이 “우발적으로 부적절한 언행 보인 것은 분명하다.”며 대국민사과를 하시면서 상황은 마무리 됐습니다만 네티즌 사이에선 각종 패러디가 등장하면서 꾸준히 ‘사랑’받는 유행어가 됐습니다.  탤런트 출신 장관님께서 사진찍는 것을 마다하신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셨겠죠.또 전쟁터 같은 국감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신 점도 이해합니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엄한 사진기자들에게 눈꼬리를 모으시다니.조금 지나치신 것 아니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죠.일각에서는 유 장관님이 자신을 방어해야할 국감장에서 ‘자폭’하신 것이라고도 말하더군요.    2.오렌지? 아니죠~ 아륀지! 맞습니다  올해 초 이명박 정부의 밑그림을 그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영어 몰입교육이었죠.당시 인수위원장을 맡으셨던 이경숙 위원장님께서는 “미국 가서 오렌지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들어 ‘아륀지’라고 했더니 알아듣더라.”라며 한국인의 영어발음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셨습니다.  이 발언은 가뜩이나 영어 몰입교육에 대한 논란이 커지던 상황에 기름을 부었습니다.이 위원장님의 ‘아륀지 여사’라고 불리면서 네티즌들에게 ‘몰매’를 맞았죠.이후 이 위원장님께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하셨고 영어 몰입식교육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덕분에 아직도 ‘아륀지’를 ‘오렌지’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고개를 들고 살 수 있게 됐답니다.    3.대통령님,정말 주식사면 부자되나요?  전세계를 휩쓴 미국발 경제위기,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었죠.반토막 난 펀드에 눈물흘리던 수 많은 국민들께 ‘경제 대통령’께서 조언을 하셨습니다.이 대통령께서 지난 11월 24일 미국 방문 중 동포 간담회에서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 1년 이내에 부자가 된다.”며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하셨습니다.  어찌보면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는 시점에서 정상적인 발언일 수 있었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투자회사 직원처럼 보였다는 비난이 잇따랐습니다.당장 먹고 살 돈도 없는데 무슨 주식투자냐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또 “대통령의 ‘허언시리즈’”(민주당) “증권 브로커같은 대통령” (자유선진당) “도박사나 할 소리”(민주노동당) 같은 야당의 비난도 이어졌습니다.정상적인 발언도 부적절한 시기를 고르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들리는지를 쓰라린 교훈으로 남기면서 말이지요.    4.李대통령은 마리 앙트와네트?  총선 직후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논란에 휩싸인 와중에 이 대통령께서 주옥(?)같은 발언을 하셨습니다.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들여오기로 한 직후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서 값싸고 좋은 고기를 먹게 되는 것…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라며 민심에 불을 지르셨죠.  비슷한 발언으로는 민동석 당시 농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의 “쇠고기 협상은 미국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 있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민심을 모르셔도 너무 모르셨다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이었습니다.일부 네티즌은 “고기가 없으면 빵 먹으면 되지 않나.”라는 프랑스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를 대통령과 동급으로 떠올렸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이 대규모 촛불시위로 이어지자 이 대통령께서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다.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도 들었다.”고 소회를 밝히셨는데요.청와대에 출입했던 모 선배는 “청와대 뒷산에서 함성소리는 들리지만 노랫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아마 ‘아침이슬’일거라 추측하지 않았을까?”라고 하더군요.  ’아침이슬’을 들으셨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께서 민심을 잘 들으셨는지 아닐까요?    5.정몽준 의원님,버스요금은 1000원입니다.  최근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주가가 많이 떨어져 손해가 막심하시긴 하지만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여전히 정치권 ‘최고 부자’입니다.국민을 위해 불철주야 바쁘신 의원님께서 버스를 타시기엔 너무 시간이 부족하셨나 봅니다.정 의원은 지난 6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 토론회에서 버스 요금을 “한 번 탈 때 70원”이라고 답했다가 빈축을 샀었죠.  현재 시내버스를 타려면 현금 1000원이 드는데,정 의원께서는 언제 버스를 타보신 걸까요?혹시 700원을 잘못 말하신 걸까요?정 의원께서는 “버스는 타봤지만 보좌진이 계산해서 잘 몰랐다.”고 해명하셨지만 워낙 부자로 소문난 정 의원이시다 보니 그다지 여론의 동정을 이끌어내진 못했습니다.  이후 정 의원께서는 지지자가 보내줬다는 교통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가 그 카드가 어른이 쓸 수 없는 청소년용인 것으로 밝혀져 또 한 번 망신을 당하셨죠.가만히 넘어가면 될 일을 ‘긁어 부스럼’으로 만들었다는 후문입니다.    6.나는 그저 땅을 사랑했을뿐이고~  지난 2월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자신의 땅 투기의혹에 대해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하는 것일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해명했습니다.하지만 박 후보자는 이 ‘자폭 발언’으로 인해 비난여론이 더 거세지자 닷새 후 자진사퇴하게 됐죠.차라리 “면목없다.” “잘 몰랐다.”처럼 직접적인 사과나 해명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요?  같은 기간 장관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부부가 교수 25년 하면서 재산이 30억원이면 양반 아니냐”(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 “배우 생활 35년에 140억원의 재산은 벌 수 있다. 배용준을 한 번 봐라.”(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발언이 화제가 됐었죠.  이 같은 해명에 대해 대부분의 국민들은 “나는 얼마나 벌어야 양반이 돼나.” “유 장관도 한류스타?”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7.’발끈’한 강만수 장관,서민 가슴에 ‘대못질’?  한국 경제를 이끌고 계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께 2008년은 ‘잊고싶은 한해’가 될 것 같습니다.최악의 경제위기를 헤쳐나가기도 버거운데 야당은 물론 언론·시민단체·네티즌까지 합세해 ‘강만수 때리기’에 여념이 없었으니까요.  올해 ‘구설수 순위’를 매겨본다면 강 장관은 단연 1위일 겁니다.강 장관은 종부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헌재 접촉” “종부세 일부 위헌”을 발설해 야당의 반발을 사는가 하면 “양극화는 시대의 트렌드다. 세금으로 해소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거나 “집 없는 사람에게 그린벨트는 분노의 숲이다. 그린벨트나 환경문제는 후손들이 걱정할 일이니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해 많은 이를 아연실색하게 만들기도 하셨죠.  지난 7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삼겹살 값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해 곤욕을 치렀던 강 장관은 “삼겹살은 직접 사지 않아서….”라며 민망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공격만 당하던 강 장관께서 마침내 ‘발끈’하셨습니다.조세 전문가인 강 장관은 지난 9월 국회 예산결산특위 회의에서 종부세 완화혜택이 일부 부유층에게만 집중된다는 민주당 양승조 의원의 질책에 “서민에게 대못을 박으면 안 되고 고소득층에게 대못을 박으면 괜찮으냐.”라며 강하게 반박했습니다.네티즌들은 “부유층에겐 시원한 발언이었겠지만 서민들 가슴에는 ‘대못질’을 했다.”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습니다 .    8.안전한 물대포,안 맞아봤으면 말을 하지 말어  지난 여름 촛불집회가 최고조에 이르면서 경찰의 과잉진압과 시위대의 과격시위 논란이 뜨겁게 맞섰습니다.시위대가 쇠파이프 등을 이용해 경찰을 폭행한다는 주장과 경찰이 물대포·최루액을 이용해 폭력진압을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나눠졌는데요.이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경찰의 물대포였습니다.  ”경찰이 물대포 사용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 “물대포에 맞아 고막이 찢어졌다.”는 등 인터넷을 통한 제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물대포는 경찰 장구 중에 가장 안전한 장구입니다.”라고 말해 성난 촛불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방망이보다 안전하다는 물대포.경찰이 직접 시험삼아 맞은 뒤 안전성을 입증했으면 논란은 ‘촛불 꺼지듯’ 사그라들지 않았을까요?    9.’키다리 아저씨’가 줬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돈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이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또 한 번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김 최고위원은 지난 10월 29일 18대 총선을 앞두고 기업인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나에겐 숨겨진 키다리 아저씨가 한 분 있다.”고 해명습니다.하지만 김 최고위원이 그 아저씨로부터 받은 돈은 무려 4억 7000여만원이라고 하네요.또 검찰은 김 최고위원이 또 다른 후원자에게 2억 5000여만원을 받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고 밝혔습니다.  4억 7000만원을 후원해 줄 수 있는 ‘키다리 아저씨’.아무리 낭만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해도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10.기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의 투기지역 해제를 놓고 국토해양부와 엇박자를 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가 해외 출장 등으로 바빠 실무자들과 의사 소통을 제때 하지 못했다.”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투기지역 해제와 같은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담당 과장과 국·실장은 물론 차관조차 모르고 오직 장관만 국토해양부 장관과 논의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죠.  18대 총선 당시 여기자의 뺨을 건드려 성희롱 논란에 휘말린 정몽준 의원의 “며칠 동안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 그랬다.” 발언도 여성계의 반발을 샀습니다.  또 지난 6월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촛불집회를 “천민 민주주의”라고 표현했다가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공감 발언’이 가득한 2009년 되기를  힘겹게 한 해를 넘긴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내년에는 사회지도층과 정치권의 ‘입 단속’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공감 발언’이 지나치게 정부·여당에 몰려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야당의 발언 중 국민들의 뇌리에 남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야당이 잘해서라기보다 그만큼 개성이 없었다는 것이죠.관심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의 생리상 ‘무관심’은 ‘비난’보다 독이 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새해에는 국민들이 “그래 맞아.” “정말 그럴듯해.”라고 말할 수 있도록 ‘공감 발언’들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아륀지’ ‘엄친아’ 등 올해를 휩쓴 유행어와 신조어 [동영상 갤러리]죽기 전에 이 호텔 가볼수 있을까 박계동·원혜영 ‘엇갈린 운명’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50)양반의 기생 놀음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50)양반의 기생 놀음

    몇 해 전 우연히 TV 사극을 보는데,이상한 장면이 나왔다.사극의 배경은 임진왜란 훨씬 이전,곧 조선 전기였다.광통교 부근에 기방이 있었고,그 기방에 고관대작 몇이 모여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쓴 웃음을 지었다.과문한 탓인지 나는 조선 전기의 서울 시정에 기방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앞에서 누차 언급했듯 기방은 기생이 손님에게 가무(歌舞)와 술,그리고 성(性)을 판매하는 공간이다.그리고 기방과 기생은 기부(妓夫)가 지배한다.이런 형태의 기방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끝난 뒤에 서울 시정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물론 기방의 성립 과정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이런 이유로 해서 임진왜란 이전 시대에 고관대작들이 기방에 드나들었다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 것이다.박정희 시대 때의 요정 정치를 조선시대 속에서 애써 찾다 보니,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기방은 역관·의관·서리 등 중간층이 주로 찾아 조선 후기에 기방이 시정에 출현한 뒤에도 양반들은 기방에 출입하지 않는다.기방은 주로 역관이나 의관 등의 중인,각 관청의 하급관리인 서리,시전상인,군교(軍校),별감,승정원 사령,의금부 나장 등 중간층들이 주로 찾는 곳이었다.게다가 전에 소개했듯 기방에는 까다로운 규칙들이 있어서 어길 경우,시비가 벌어지고 때로는 주먹질이 난무하였다.이런 까닭에 양반들은 기방 출입을 꺼렸고,만약 기방 출입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 뒷날 벼슬을 하는데 적지 않은 흠이 되었던 것이다.한데 양반 중 문반만 그렇다는 것이고,무반은 꼭 그렇지도 않다.무과에 합격하여 무반관직을 지내려면 세상 물정을 알아야 하기에 한량으로 무예를 익힐 때부터 기방에 드나드는 것이 허용되었던 것이다.이런 무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양반들은 기방에 출입할 수 없었다.꼭 기방에 들어가려면 어느 집 ‘청지기’라고 말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양반이 기생과 즐기고 싶다면,기생을 불러와야만 하였다.관청에서 부르는 경우도 있고,때로는 개인이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개인이 부를 경우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이제 그 광경을 신윤복의 ‘연못가의 가야금’(그림 1)에서 확인해 보자.이 그림의 화제(畵題)를 보자.“자리에는 늘 손님이 가득하고,술단지는 비어본 적이 없으니,나는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座上客常滿, 尊中酒不空, 吾無憂矣).이 그림에는 술단지가 보이지 않지만,벗이 있고 음악이 있고 아름다운 여성이 있으니 흥겹지 않겠는가. 그림에는 남자 셋,기생 셋이 등장한다.기생 셋을 부른 것이다.남자들은 모두 지체 높은 양반들이다.두 사람은 갓을 쓴,말하자면 의관을 제대로 갖춘 정장 차림이고 맨 왼쪽의 양반은 갓이 없다.이 남자는 원래 갓을 썼던 것이 아니고 정자관을 쓰고 있다가 옆에 벗어 놓고 있다.서 있는 남자와 앉아 있는 두 사람은 도포의 빛깔이 다른데 중국에서 수입한 고급 비단으로 지은 것이 분명하다.갓끈 역시 호사스럽기 짝이 없다.서 있는 사람의 갓끈은 밀화(蜜花),곧 호박으로 만든 것으로 당상관 이상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이 사내의 벼슬은 적어도 정3품 당상관인 것이다.이런 것으로 보아 연못가에 모인 사내들은 모두 고급 관료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금기(琴妓)이고 누가 가기(歌妓)일까 이 그림의 공간은 어디인가? 먼저 오른쪽을 보자.소나무 아래에 기와담장이 보인다.그리고 그림 상단부에는 돌로 축대를 이단으로 쌓아 나무를 심었다.그 너머에 다시 돌각담이 보인다.아래로 오면 단정하게 다듬은 돌로 마무리를 한 연못이 있다.이곳을 관청의 정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18세기 이후 서울의 거대한 양반가문이나,역관이나 상인으로서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의 저택은 사치스럽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이 집은 누구의 집인가? 맨 왼쪽의 정자관을 벗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아마 자신의 집이기 때문에 관을 벗고 풀어진 자세로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당연히 기생이다.담뱃대를 쥐고 있는 여자가 쓰고 있는 것은 가리마다.가리마는 기생들이 큰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오른쪽의 악기는 거문고가 아닌 가야금이다.거문고는 현을 뜯는 짤막한 대나무 막대기,곧 술대가 있어야 하지만,이 그림에는 그것이 없고,직접 손가락으로 현을 뜯고 있다.가야금인 것이다.가야금을 특기로 삼는 기생을 금기(琴妓)라 하고,노래를 특기로 삼는 기생을 가기(歌妓)라고 한다.세 기생 중 어떤 기생은 가기일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에 등장한 3남 3녀 중 가장 웃기는 사람은 맨 왼쪽의 남자다.왼쪽 발을 보건대 남자는 두 다리를 둥글게 벌리고 자신의 몸 위에 기생의 둔부가 올라오도록 앉힌 것이다.그리고 오른손은 기생의 아랫도리에 가 있다.이 양반은 눈동자가 약간 풀린 채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그 일이 정말 어떤 일인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길 뿐이다. 이제 신윤복의 그림 중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 ‘검무(劍舞)’(그림 2)를 보자.기생 둘이 공작 깃털을 단 벙거지를 쓰고 붉고 푸른 화려한 치마 저고리를 입고 옷자락을 날리면서 춤을 추고 있는 중이다.구경꾼들의 면면을 보자.그림의 왼쪽 중간에 있는,왼손에 부채를 쥐고 갓끈을 단정하게 묶고 있는 사람이 이 연회의 주최자일 것이다.아니면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일 것이다.왜냐고? 이 사람이 앉아 있는 돗자리는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훨씬 고급스럽고,죽부인에 기대어 앉아 있는 품이 당당해 보이기 때문이다.이 사람 바로 위의 무릎을 세우고 손깍지를 끼고 있는 사람 역시 양반이다.다시 그 위의 갓을 쓰고 있는 앳된 얼굴은,장가를 간지 얼마 안 되는 이 집안의 자제인가 보다.이 햇병아리의 옆에 기생 둘이 있고,다시 그 오른쪽에 초립을 쓴 장가를 가지 않은 젊은이가 앉아 있다.그림 오른쪽의 담뱃대를 들고 오는 아이는 상노다.담뱃대가 없는 기생에게 가져다 주려는 것인가,아니면 갓을 젖혀 쓴 양반에게 가져다 주려는 것인가? ●검무는 18세기에 가장 인기 있던 춤 춤을 감상하는 양반 관객들은 모두 그림의 상단에 있는데,유독 하단의 악공들이 앉는 줄에 양반 한 사람이 끼어 있다.하단 맨 왼쪽의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사내다.이 사내는 왜 구차하게 악공들과 같은 줄에 앉아 있는 것인가? 이 양반이 왼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 실마리를 제공한다.이 물건은 사선(紗扇) 또는 차면(遮面)이라는 물건으로 남녀가 내외를 하기 위해 얼굴을 가리는 물건이다.상주가 외출할 때 관원이 길을 나설 때 결혼식을 할 때 남성이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무언가 자기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할 사정이 있는 것인데,춤 구경에 그 사정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아래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사선을 쥐고 있는 양반을 제외하면 모두 악공이다.맨 왼쪽은 해금을 연주하고 있고,그 오른쪽 두 사람은 자세를 보아 아마도 피리를 불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그 다음은 젓대,그 다음은 장고,그 다음은 북이다. 조선후기에는 장악원의 악공과 기생들이 팀을 이루어 민간의 초청을 받아 영업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이름이 알려진 팀도 있다.예컨대 노래를 잘 부르기로 유명했던 가기(歌妓) 추월(秋月)과 역시 가곡창(歌曲唱)의 달인이었던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거문고의 명인 금객(琴客) 김철석(哲石),그리고 또 다른 기생인 매월(梅月) 계섬(桂蟾) 등으로 구성된 팀이 가장 유명하였다. 기생 둘이 추는 검무는 아주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더욱이 두 기생의 복색은 색채가 선명하게 대조된다.왼쪽은 청색 벙거지,녹색 저고리,붉은 치마인데,오른쪽은 흑색 전모,청색 저고리,푸른 치마이다.지금 검무는 진주 검무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검무는 18세기에 가장 인기가 있는 춤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 검무는 칼이 작고 또 칼날과 자루가 분리되어 움직이지만,18세기의 검무는 보다시피 그냥 칼이다.어떤 사정이 있어서 바뀌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박제가(1750-1805)는 ‘검무기(劍舞記)’란 글을 써서 검무의 동작을 세밀히 묘사하고,또 밀양 출신 기생 운심(雲心)이가 당시 검무의 제일인자로서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혹 아는가,위 검무를 추는 두 기생 중 하나가 운심인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우리말 여행] 겻불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아무리 궁하거나 다급해도 체면 깎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속담이다.여기서 겻불은 곁에서 쬐는 불? 아니다.‘겻불’은 겨를 태우는 불이다.‘겨’는 벼,보리,조 등 곡식을 찧어 벗겨 낸 껍질을 통틀어 가리킨다.그래서 겨를 태운 불은 기운이 약하다.겻불에는 ‘불기운이 미미하다.’는 뜻도 있다.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9) 춤추는 남녀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9) 춤추는 남녀

    춤을 지나치게 좋아한다거나 그래서 ‘춤바람’이 났다면,무언가 온당치 않은 상태로 보는 경향이 있다.그 이유는 아마도 여성을 가정에 묶어두기 위한 가부장제에 있을 것이다.추측건대 ‘춤바람’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20세기 후반 사교춤이 유행하고 난 이후의 일일 것이다.춤을 즐기는 것은 원래 한국인의 오랜 전통이었다.아니 이 세상 모든 나라의 모든 민족은 모두 춤을 즐긴다고 말할 수 있다. 각설하고,신윤복의 ‘춤’(그림 1)을 보자.그림의 윗부분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고,아래쪽 넓은 공간에 춤을 추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있다.그림 오른쪽에 네 명의 악공이 있는데,장구를 치는 사람이 하나,피리를 부는 사람이 둘,해금을 켜는 사람이 하나다.춤을 추는 여성은 아마도 이 악공과 한 팀을 이루고 있는 기생일 것이다.조선 후기에는 악공과 기생이 한 팀을 이루어 민간의 초청에 응하는 경우가 많았다.여기서 이 악공과 기생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터인데,당연히 지금 춤을 추고 있는 양반과 그 왼쪽의 두 사내다.짙은 나무 잎사귀로 보아,계절은 여름이 틀림없다.어느 여름날 시원한 산그늘을 찾아가 풍악을 잡히고 기생과 춤을 추면서 보내는 한때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양반들이 잔치에서 춤추는 건 흔한 일 그런데 그림 왼쪽에 있는 두 사내의 포즈가 가관이다.한 사내는 갓끈을 풀고 갓을 젖혀 쓰고 있고,아래쪽 사내는 비스듬히 누워 있다.둘 다 검은 갓끈을 하고 있고,또 아주 젊은 얼굴로 보아 벼슬하지 않은 젊은이다.근엄한 양반들이 어찌 갓끈을 풀고 갓을 젖혀 쓰고는 비스듬히 누운 채로 남녀 한 쌍의 춤을 감상하고 또 직접 춤을 출 수 있다는 말인가.조선시대 양반에 대해 지금 사람들은 오해가 많다.즉 양반이면 모두가 예를 지키고 법도를 따라 근엄한 표정으로 행동을 삼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옛날 양반이 지금 사람들보다는 유가가 요구하는 윤리와 도덕,그리고 예를 더 지킨 것은 사실이겠지만,그것이 모든 양반들에게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도 일관되게 관철된 것은 아니었다.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마도 조광조나 율곡이나 퇴계,남명 선생 정도일 것이다.하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이고,이 그림에서처럼 더우면 갓끈을 풀고 비스듬히 기대기도 하고 기생과 어울려 춤도 추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찾아보면 춤에 관한 기록은 결코 드물지 않다.예컨대 ‘실록’에는 그런 자료가 적지 않게 나온다.여기서는 조선 후기의 ‘실록’을 몇 구절 읽어보도록 하자.‘사변록’이란 책에다 주자와 다른 경전 해석을 써서,정적들에게 사문난적으로 찍혀 곤욕을 치렀던 박세당은 1703년 귀양살이가 결정되지만,제자 이인엽이 숙종에게 입이 닳도록 간청하여 겨우 유배를 면하고 곧 세상을 뜬다.그날조 ‘숙종실록’의 사신은 박세당을 비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박세당은 젊은 시절 국구(國舅) 김우명(金佑明)의 집안 잔치에 참석했을 때 일어나 춤을 추기까지 하였으므로,사론(士論)이 비루하게 여겨 그를 전랑(銓郞)에 추천하는 것을 막았다.”박세당이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양반들이 잔치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잔치에서 춤을 추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었음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氏世傳書畵帖)’에 실린 ‘해영연로도(海營宴老圖)’(그림 2·작자 미상)를 보아서도 알 수 있다.1529년 김양진이란 분이 황해도 감사가 되어 감영에서 노인들을 불러 양로연을 베풀었을 때의 광경을 그린 것이다.전문화가가 그린 것이 아니라서 그림은 미숙하지만,기생 두 명의 춤과 노인들이 일어나서 일제히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영조실록’ 49년 8월 9일 기로소 의정부 중추부 주원(廚院)에서 진찬(進饌)하였을 때다.잔치가 무르익자 영조는 영의정 한익모 부자,판서 조영진 부자,조창규 김사목에게 대무(對舞)하라고 명한다.그들은 왕명에 당연히 일어나 춤을 추었다.왕과 신하가 참석한 잔치에서 신하가 일어나 춤을 추는 것은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물론 깐깐한 사신은 한마디 한다.“한익모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소매를 들고 너울너울 악공들 사이에서 춤을 추었다.또 아버지와 아들은 짝을 지어 춤을 출 수 없는 법인데도 경솔하게 일어나 춤을 추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비웃었다.”한익모가 영의정이라서 비난을 받은 것이지 춤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남자는 소매 떨치고 여자는 손 뒤집어 사정이 이러니 조선조의 양반들 역시 당연히 춤을 즐기고,또 여성과도 춤을 출 수가 있는 것이다.‘영조실록’ 18년 9월 3일조를 보면,대간(臺諫)은 함안군수 이휘진이 악기를 쥐고 악공들과 어울려 연주를 하고,기생과 마주보고 춤을 추었다고 하여,대간 후보에 오른 것을 빼 버리라고 요청하고 있다.여성,특히 기생과 춤을 추는 것이 드물지 않았던 것이다.또 영조가 대간의 청을 수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기생과 춤을 추는 것을 부도덕한 것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춤을 어떻게 추었던가.유득공의 ‘경도잡지’는 남녀의 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춤은 반드시 대무(對舞)인데,남자는 소매를 떨치고 여자는 손을 뒤집는다.”대무를 춘다는 것은,춤을 추면 으레 남자와 여자가 같이 춘다는 것을 의미한다.‘경도잡지’는 서울의 풍속에 대해 쓴 책이니, 유득공이 살던 시대,즉 18세기 서울에는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이다.그림(1)이 풍습의 증거가 된다.‘경도잡지’의 “남자는 소매를 떨치고 여자는 손을 뒤집는다.”는 구절의 원문은 ‘男拂袖,女?手’인데,무엇이 소매를 떨치고 손을 뒤집는 것인지,또 이 춤이 어떤 춤인지는 견문이 짧은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하지만 그림(1)을 보면,남자의 옷소매는 손을 감출 정도로 길고,여성은 손을 드러내고 있으니,‘경도잡지’가 말한 바의 춤인 것이다. ●조선전기 여진족의 춤 ‘목후무´ 유행 조선 전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처음 만난 여성과 춤을 춘 경우도 발견된다.남효온(南孝溫·1454~1492)은 이른바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인데,그는 1485년 친구들과 개성 일대를 유람하고 ‘송경록(松京錄)’이란 기행문을 남긴다.그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중양절 날 동서남의 여러 산 곳곳마다 남자 여자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여 자못 태평한 기상이 있었다.…첨성대로 갔다가 우연히 야제(野祭)를 지내는 남녀를 건덕전 터에서 만났다.남녀가 다투어 우리를 맞이했는데,백원(百源·李摠)을 윗자리에 앉히고 우리들은 그 다음 줄에 앉았다.자용(子容)이 맨 처음이었고,정중(正中·李貞恩)이 그 다음,회녕(會寧·宋會寧)이 그 다음,석을산(石乙山)이 그 다음,숙형(叔亨)이 그 다음,내가 그 다음이었다.…백원이 정중을 돌아보며 비파나 금을 타라고 하였다.회녕은 피리를 불고,석을산은 노래를 불렀으며,자용은 일어나 춤을 추었다.비파와 노래와 피리가 각기 그 오묘함에 이르자,자용이 남녀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여자와 마주 보고 춤을 추었다.춤이 끝나자 목후무(沐?舞)를 추었는데,모든 동작이 음악에 맞았다.그것을 보고 주인 남녀가 모두 눈물을 흘렸다.” 목후무란 여진족의 춤이다.성종 당시 공경대부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이 춤을 추었다고 한다.어쨌거나 좋다.남효온 일행은 개성의 첨성대를 찾아갔다가 굿을 하는 한 무리의 남녀를 만났던 것이고,그 자리에 끼어서 같이 춤을 추며 놀았던 것이다.특히 자용이란 사람은 가장 젊은 여자를 파트너로 하여 춤을 추었고,그 춤에 모두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하니,모르는 여자와 춤을 추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 여행을 하다 보니,춤을 추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되었다.공원에서 얼후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대한민국에는 그런 풍경이 없다.생활에 여유가 없어서인가? 춤은 모두 어두운 카바레나 나이트클럽으로 퇴각해 버린 것인가.가무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으로 소문이 난 한국인이 어찌 이리되었는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허본좌’ 그대는 정말 미네르바를 아는가?

    ‘허본좌’ 그대는 정말 미네르바를 아는가?

      지난 12일 오전 ‘허본좌’(본명 허경영)를 경기 의왕시의 서울구치소에서 다시 만났다.지난 달 28일 첫 면회때 ‘10분’이란 짧은 만남에 궁금증을 다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첫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큰 반응에 당시 준비했던 질문지를 다시 끄집어 냈다.   “전에 봤던 분이네.” 그는 첫 면회때나 지금이나 자신감 만큼은 변함 없었다.그는 수감 중이지만 직함은 민주공화당 총재다.   요즘 사회 이슈인 ‘경제 문제’를 먼저 물었다.허씨는 지난 대선때 경제와 관련한 공약을 많이 내놓았다.되돌아온 말은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당황스럽다.   “난세에 필요한 건 영웅이에요.IQ가 430인 나같은 사람이 필요해요.모두 조금씩 노력해 잘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에요,요즘은….이제는 삼성그룹(이 경제를 이끌어 나갔던 것)처럼 한 사람의 천재가 필요합니다.난해하고 괴상한 사람,그런 사람만이 이 시대를 끌고 나갈 수 있어요.”   허씨는 지난해 대선때 거침없이 내뱉었던 것처럼 자기가 ‘난세를 해결하는 영웅’이란다.   그를 만나러 구치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 “허경영씨를 아냐.”며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아 그 양반이 대통령이 됐어야 했는데.” “돈 준다고 했잖아요.요즘 같이 어려운 때에….” 기사는 허씨가 대선때 공약으로 내건 ‘결혼자금 1억 제공’,‘출산수당 3000만원 지급’ 등을 대체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허허,그냥 살기 어려우니까 해보는 소리지.그 사람이 무슨 대통령이야.그릇이 안 되는데….축지법이고 뭐 그런 말들을 늘어놓는데 어떻게 믿어요.”   그는 이처럼 대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에게 재미있기는 했지만 실현되기는 어려운 공약을 쏟아냈었다.   다시 구치소 면회실.“일반인들은 황당해 하고 괴리감을 말한다.”며 말을 이었다.그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러고는 반기문 UN 사무총장(2006년 12월 취임)과 북핵의 예를 들었다.자신의 말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내가 7년 전부터 UN본부를 판문점으로 옮긴다고 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어요.하지만 반기문씨를 보세요.한국 사람이 UN 사무총장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이제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합니다.그러면 중국·러시아·일본 등 정세가 맞물린 이곳 한반도에 UN본부를 설치할 수 밖에 없어요.”   그는 현 정권에 실망한 국민들이 기존 정치인과 무언가 다른 인물을 찾게 돼 결국 자신에게 시선이 몰릴 수 밖에 없게 된다며 톤을 높였다.그 후 차기 대권을 잡은 그는 경제 난국을 타개할 인물이 된다는 주장이다.   경제 문제가 나온 김에 ‘바깥사회’의 화제거리로 말을 돌렸다.그는 지금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네르바’를 안다고 말했다.   “아∼.그 사람은 미국 금융기관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한국 사람이에요.제도권에 있을 때는 그런 얘기를 못 하다가 ‘프리랜서’가 되니까 말할 수 있는 거지.”   참으로 뜬금없는 말 같다.허씨는 미네르바가 인터넷을 통해 유명해질 때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있지 않았는가.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된 상태가 아닌가.하지만 그의 말은 확신에 차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은 기자를 더 놀래킨다.“원래 알던 사람이에요.나하고 교류가 계속 있었어.편지도 보내고….이전부터 내가 내놓았던 ‘경제 공약’을 보고 ‘무언가 통하는 게 있다.’ 싶었던 거지.미네르바는 두명이 있어요.지금 한국에 한명,외국에 한명.”   앞과 뒤가 안맞는다.‘미국 금융기관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한국 사람’과 ‘한국과 외국에 두 명’은 분명 다르다.고개를 갸우뚱하는 기자의 행동에도 그의 눈빛에는 한치의 흔들림이 없다.그의 주장이 정말 사실일까.혹은 상징적인 의미가 숨어있는 것일까.“그럼 미네르바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1차 면회 때와 같이 또다시 ‘10분간 면회’는 끝나고 스피커는 꺼져 버렸다.뭔가 찜찜하단 생각을 머리에 가득 채운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허씨는 최근 일부 언론인이 미네르바의 얘기를 패러디해 써 논란이 된 사실을 신문 등을 통해 잘 알고 있는 것인가.아니면 실제로 미네르바와 친분이 있고,경제에 관한 생각이 통하는 것인가. 얼굴 가린 미네르바에게 묻는다.“당신은 허경영과 아는 사이인가!”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囚人 허본좌’ “서민빚 750조원 무이자로” 허경영 ‘경제공화당’ 사이트 폐쇄…무슨 일이?
  • [Metro&Local] 경북, 15개 브랜드 쌀 집중 육성

    경북도가 2014년 쌀시장 전면 개방에 대비,2013년까지 시·군을 대표하는 고품질 쌀 브랜드 15개를 집중 육성키로 했다.도에 따르면 농림수산식품부가 주관한 ‘2009년 고품질 쌀 브랜드 육성사업’ 대상으로 경주시 안강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의 ‘이사금’과 안동시 서안동농협 RPC의 ‘안동 양반쌀’이 선정됐다.이들 RPC 2곳에는 고품질 쌀 생산기반 확충을 위한 시설 현대화와 벼 계약재배 농가 조직화,쌀 브랜드 홍보 등에 각 22억원이 지원된다.2008년엔 상주시 상주농협 RPC의 ‘명실상주’와 의성군 다인농협 RPC의 ‘의로운 쌀’이 브랜드 육성사업으로 지정됐다.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 풍속사] (47) 기녀와 하룻밤

    [그림이 있는 조선 풍속사] (47) 기녀와 하룻밤

    ‘밤길’(그림 1)은 신윤복의 작품인데,신윤복 풍속화 치고는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나는 조선 후기 풍속화를 논하는 자리에서,혹은 풍속화로 만든 달력이나 기념품 등에서 이 그림을 본 적이 없다.하지만 이 그림은 퍽 꼼꼼히 따져볼 만한 것이다.그림 위쪽에 하현달이 떠 있는 것을 보면 밤이 분명하다.또 담뱃대를 문 기생이 팔에 털토시를 끼고 있는 것을 보면 겨울밤이 틀림없다.참고로 말하자면,조선시대 여자는 몸 전체를 가리는 방한의(防寒衣)가 없었으므로 단지 팔에 털토시만 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된다.여자의 털토시 말고 방한구(防寒具)는 또 있다. ●화려한 옷차림 기방의 운영자 대전별감 등불을 들고 앞서서 길을 인도하는 어린 사내종이 오른쪽 팔에 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털가죽으로 만든 이 물건은 위쪽에 끝을 죄는 줄이 있다.곧 펼친 상태에서 착용하고 끈을 죄어서 오므리는 것이다.끈이 있는 방한구로는 풍차나 만선두리 같은 것이 있지만,이 그림만으로는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어쨌거나 방한구를 착용하거나 들고 나선 추운 겨울밤인 것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왼쪽의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별감이다.이 사람을 순라군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결코 아니다.이 사람은 앞서 ‘기방의 난투극’에서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는,기방의 운영자 대전별감이다.대전별감은 옷차림이 화려하다 했는데,이 그림의 복색을 보아도 과연 그렇다.대전별감만이 입을 수 있는 홍의(紅衣) 안에 푸른 색,분홍색,갈색 누비옷을 겹쳐 입고 있다.신발 역시 가죽신이다.또 초립 아래는 방한구인 털가죽으로 만든 ‘풍뎅이’를 쓰고 있다.과연 서울 시내 복색의 유행을 주도하는 별감답게 잔뜩 사치한 모양이다.  기생과 대전별감 사이에 있는 남자는 양태가 넓은 갓을 쓰고,중치막을 입고,가죽신을 신었다.양반이다.기생과 기부(妓夫)인 대전별감,그리고 이 양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그림 속의 인물이 말을 하지 않으니,알 수가 없다.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물들의 동작을 보자.중치막을 입은 양반은 오른손으로 갓의 양태를 잡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고,대전별감은 왼손으로 앞을 가리킨다.저 쪽으로 가라는 신호로 보인다.기생은 대전별감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양반 왼쪽에 있다.즉 기생은 대전별감과 떨어져 양반과 함께 밤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양반과 기생이 같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은,그들의 앞에 사방등을 든 어린 사내종이 길을 인도하고 있음을 보아서도 알 만하다. 자,그렇다면 어떤 장면인가.이렇게 추측할 수 있다.원래 기부는 기생과 동침을 원하는 손님이 있으면 그날 밤을 손님에게 양보하였다고 한다.나는 이 그림이 기부인 대전별감이 고객에게 기생을 딸려 보내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 생각한다.이의가 없으신지? ●기녀제도 양반들의 성욕 위해 500년 유지 기생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다.하지만 기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다.조선조에 와서 기생을 없애려고 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고 중종 때에는 조광조 일파의 거듭된 요청으로 일시 기생이 없어지지만,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 일파가 실각하자,다시 기생제도가 부활하였다. 전에 언급했듯 기생은 두 가지 목적으로 존재하였다.춤과 노래를 익혀 궁정과 양반들의 잔치에 동원되는 것,그리고 하나는 양반들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즉 조선 양반 체제는 양반-남성의 결혼이란 합법적 방식을 벗어난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갑오경장 때까지 거의 500년 동안 관기제도(官妓制度)를 유지시켰던 것이다.  그림(2) 역시 신윤복의 작품이다.제목은 ‘국화 옆에서’.서정주의 시 제목을 가져온 것이다.그림의 왼쪽에는 국화꽃이 피어 있고,오른쪽에는 사내와 늙은 할미가 있다.그리고 그 앞에는 댕기머리를 늘어뜨린 젊은 처녀가 있다. 사내는 아직 앳된 기운조차 느껴지는 젊은 나이고,여자는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옆모습만 보아도 젊은 처녀임을 알 수 있다.남자가 웃통을 벗고 있는 것으로 보아,조금 전까지 남자는 옷을 벗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그리고 이제 막 대님을 치는 것으로 보아,바지도 벗었다가 이제 다시 주워 입는 것이다.여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그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여자는 부끄러워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남자와 여자는 이미 하룻밤을 지낸 것으로 보인다. 곧 이 사내는 여자의 초야권을 샀던 것이다.흔히 ‘머리 얹어준다.’는 말은,기생의 초야권(初夜權)을 사서 땋은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릴 수 있게 해 준다는 뜻이다.동기(童妓)의 초야권을 사는 사람은 이부자리와 의복과 당일의 연회비를 담당해야만 했는데,아마도 젊은 오입쟁이는 그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기생의 성을 판매하는 조방군 이 그림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늙은 할미다.얼굴이 검고 깡마르고 약간 간교하게 보이는 할미는 입을 가리고 여자에게 소곤대고 있다.내용이야 확인할 수 없지만,여자를 어르고 달래는 말이 아니었을까. 이 할미는 도대체 누구인가?어두운 성의 거래에는 반드시 중개인 역할을 하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수호지’에서 바람둥이 서문경과 유부녀 반금련 사이에 다리를 놓아 간통을 성사시킨 것은 이웃에 사는 늙은 여자 왕파였다. 그렇다면 그런 역할을 하는 여자가 과연 있었던가.19세기의 가사 ‘우부가(愚夫歌)’에 그런 여자가 나온다. ‘우부가’는 세 사람의 어리석은 사내의 행각을 그린 작품이다.개똥이·꼼생원·꾕생원 세 사내는 돈을 펑펑 써대며 온갖 놀이와 황당한 행각으로 결국 재산을 거덜내고 파멸하고 만다.그 중 꼼생원의 행각을 그린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리 모여 노름 놀기,저리 모여 투전질에/기생첩 치가(治家)하고,오입장이 친구로다/사랑에는 조방군이,안방에는 노구할미”   보다시피 꼼생원이 하는 일은 패가망신하는 일이다.맨 끝부분의 조방군과 짝을 이루고 있는 노구할미란 부분에 주목해 보자.조방군이란 기부를 말하는 것으로 기생의 성을 판매하는 역할을 하는 자다.따라서 노구할미 역시 그런 성의 판매를 중개하는 사람임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노구는 한자로 쓰면 ‘?’가 된다.문자 그대로 직역하면,‘늙은 할미’ 뜻이지만,사실은 뚜쟁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노구장이’란 말이 있는데,이것은 뚜쟁이 노릇을 하는 늙은 할미라는 뜻이며,‘노구질’이라고 하면 뚜쟁이 노릇이란 뜻이다. 이해조의 신소설 ‘빈상설(?上雪)’에 장안 계집을 깡그리 노구질하다 못 해서 조카딸까지 팔아먹는 것이로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곧 노구질이란 늙은 할미가 하는 뚜쟁이 노릇을 말하는 것이다.그림(2)의 할미의 정체는 밝히자면 이런 것이다.  물론 뭔가 찜찜한 구석은 있다.나는 그림(2)의 젊은 여성을 기생으로 보았는데,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서울의 기생과 지방의 기생의 출신 성분이 같지만,기생업의 경영 방식에 다른 점이 있다.즉 서울의 기생은 기부(妓夫),즉 남자가 기생을 지배한다.그림(1)에서 등장하는 대전별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하지만 지방의 기생은 기모(妓母),즉 기생의 어미가 지배한다. 기모의 경우는 춘향이와 월매를 떠올리면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기생은 모두 서울의 기생들이다.그렇다면 기부가 나오지 않고 노구할미가 난데없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한 일인 것이다. 물론 젊은 여성이 기생이 아닐 수도 있다.여염집의 가난한 젊은 처녀 혹은 어떤 사정이 있어서 돈이 필요한 여성일 수도 있다.이럴 경우 그림(2)의 할미는 돈 많은 남자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는 역할을 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추측은 가능하지만 어떤 쪽도 확언할 수는 없다.그렇다면 우선 덮어둘 수밖에.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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