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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한옥과 카메라女 /김종면 논설위원

    서울 종로 가회동 31번지. 북촌 한옥마을의 중심이다. 오랫동안 4대문 안에서 살아왔어도 그곳을 가보지 못한 이들이 의외로 많다. 동료 P부장도 그 중 하나다. 점심 나절, 그의 청에 못이겨 가회새싹길 언덕배기를 걸었다. 그런데 마냥 즐거워하던 그의 표정이 왠지 뜨악하다. 그동안 그려온 한옥마을의 로망이 깨지기라도 한 것일까. 양반들이 살던 마을이니 어쩌면 찬란한 솟을대문의 고택 분위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북촌 한옥마을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원주민은 떠나고 ‘외지인의 별장촌’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법도 하건만 그는 사뭇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랬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의 냄새를 맡긴 어려웠다. 고졸한 한옥의 미학을 찾기 힘들었다. 역사도 문화도 거세된 공간. 좀 심하게 말하면 그곳은 삼삼오오 떼지어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는 일본 여성, ‘카메라 조시(カメラ女子)’의 놀이터였다. 누가 ‘한옥 르네상스’를 이야기하는가. 한옥의 복권은 아직 멀었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테마 스토리 서울] (18) 피맛골

    [테마 스토리 서울] (18) 피맛골

    일상에 지치고 삶이 고단해질 때면 한번쯤 숨어 들고 싶은 골목이 있다. 600여년전 선조들도 이곳에서 고관대작들의 ‘지루한 행차’를 피해 잠시 쉬었을 것이다. 피맛골(피맛길)은 종로 1~6가 대로 뒤편의 골목길. 좁은 길을 따라 여러 맛집도 형성됐다. 조선시대 종로 네거리인 운종가를 중심으로 육의전과 시전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늘 북적이는 곳으로 번성했다. ●백성들이 양반 피하던 ‘피마’에서 유래 당시 백성들은 종로를 지나다 말을 탄 양반들을 만나면 머리를 조아린 채 행렬이 다 지날 때까지 예를 표해야 했다. ‘윗분’들의 행차가 잦아지자 눈치빠른 사람들이 하나둘 뒷골목으로 피했고, 서민들만의 사랑방이 조성됐다. 이와 함께 벼슬아치의 말을 피한다는 ‘피마’(避馬)라는 뜻의 피맛골이라는 지명도 생겨났다. 이곳엔 자연스럽게 장국밥 등 끼니를 때우는 맛집과 윗분들의 허장성세를 안주삼아 술 한잔 걸치는 주점들이 가득 들어섰다. 피맛골은 1930년대에 약 220개의 선술집이 늘어선 유흥가로 불야성을 이뤘다. 현재 종로에서 돈화문까지 총 3.1㎞에 이르는 피맛골은 한국전쟁 이후 새로 조성됐고, 세월이 흘러도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의 몸과 마음의 허기를 푸짐하게 채워주는 인심만은 변하지 않았다. 1960~70년대 경제개발시대에는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친 가장들의 회식 장소로, 민주화 시대에는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대학생들의 집합 장소로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피맛골은 1980년대 도심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2000년대 들어 일대 위기를 맞았다. 남측 피맛골의 일부가 사라졌고, 최근 교보빌딩~종로2가 사이 0.9㎞의 일부 구간에 대해 철거 재개발을 완료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피맛골. 최근 ‘서울의 전통을 말살하는 재개발’이라는 비판이 일자 회생의 길을 맞는다. 서울시는 지난 19일 이미 재개발된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종로2가~종로6가의 2.2㎞를 ‘수복재개발구간’으로 지정하고 고유의 분위기를 유지하기로 했다. ●개발로 사라질 위기… 최근 회생 결정 생선구이집으로 유명한 대림식당을 30여년 간 운영해온 석송자(67)씨는 “피맛골이 이미 없어진 줄 아는 사람들도 많아 단골 손님 70%가량의 발길이 뚝 끊꼈다.”면서 “외국관광객들이 역사와 전통이 서린 이 골목을 없애는 것을 더 아쉬워한다.”고 말했다. 수백년간 서민들의 애환을 보듬었던 피맛골에 대한 ‘뒤늦은 대접’이 못내 아쉽고 미안해진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버스타고 떠나는 김포여행

    버스타고 떠나는 김포여행

    김포는 새로운 동네이거나 아주 오래 묵은 동네다. 벼 익어가는 들판 사이를 천둥벌거숭이로 뛰어다니던 아이들도 어른을 만나면 일단 멈칫한 뒤 고개를 꾸벅한다. 모르는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전형적 농경사회의 풍경을 품고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삼십년 동안 온 나라를 휩쓴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이 서울 바로 곁에 있는 김포를 비켜갔을 리 만무하다. 서울과 김포를 잇는 48번 국도 양쪽은 물론 어디든 치솟아 있는 아파트가 김포가 갓 만들어진 새로운 도시임을 말해 준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전히 살고 있는 사람이건, 고향을 떠난 사람이건 어찌 회한이 남지 않았겠는가. 김포에서 나고 자란 ‘김포행 막차’의 시인 박철은 올해 초 펴낸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에서 그곳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이렇게 읊조렸다. ‘70년대 말 김포행 막차는 늘 빈 차로 들판을 건넜다…마지막 승객이 되어 나는 맨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버스 안의 어린 차장이 슬며시 출입문 옆에 걸려 있던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가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젯밤 꿈속에 나는 나는 날개달고…이리저리 나를 찾는 아빠의 얼굴/ 이젠 아줌마가 되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그녀’(‘기록’ 중 부분) 시인처럼 ‘흔들리며 가는 김포행 막차’는 아니라도 아침 일찍 김포행 버스에 몸을 실어보자. 신촌 또는 영등포에서 올라탄 경기버스는 길어야 1시간 남짓이면 성질머리 급한 가을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 마음 넉넉한 주말 나들이로는 물론 희미하게 남은 옛 모습의 일단을 찾는 여행으로도 충분하다. 가을의 절정을 흠뻑 즐기는 것은 덤이다. ●교통 정체도 비싼 숙박비 부담도 없다 김포에서 가까운 일산과 인천 등에서는 무시로 김포행 버스가 오간다. 서울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신촌, 영등포 등에서 교통카드 한 장이면 교통비는 해결된다. 신촌이건, 영등포건 어느 곳에서 문수산을 찾아보자. 주말, 그것도 너도, 나도 자동차 시동 걸며 단풍을 찾아 나서는 절정의 가을 주말에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시내버스를 타고 말이다. 김포의 가을을 만드는 것은 들판과 산, 그리고 바다다. 서해의 첫 바람이 불어오는 한강 끄트머리에 놓인 김포는 추수를 앞두거나 한창인 평야가 맨 먼저다. 그리고 그 벼들이 뿌리박고 있는 황토흙의 빛깔을 닮은 서해바다는 가을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소곤소곤 얘기한다. 모든 것을 제쳐놓고 문수산에 올라섰다. 이곳은 능선마다 벌겋고 누런 것들이 몸을 뒤틀어대고 있다. 이달 말, 다음 달 초면 슬금슬금 산 아래로 기어내려온 단풍이 온 산을 점령할 것이다. 고작 1시간이면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 376m짜리 야트막한 문수산이지만 어떤 이들이든 모두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장 큰 미덕으로 갖고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그만큼의 즐거움이 있다. 주차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산림욕장부터 굴참나무, 신갈나무, 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온갖 것들이 하늘로 치솟은 것들은 치솟은 대로 누렇게, 땅에 납작 엎드린 것들은 또 그것대로 푸름 지워내며 계절의 뒤바뀜을 드러낸다. 하지만 능선과 고갯길을 아기자기하게 갖추고 있어 산 좋아하는 이도 실망할 것은 없다. 산림욕장을 지나면 왼쪽으로 퍽퍽한 계단길이 이어지고, 이어서 시시하지 않을 만큼의 꽤 가파른 능선이 나타난다. 땀이 제법 흐르는 것은 누구도 피하기 어렵다. 그 다음은 시원한 성곽길이다. 강물이 어떻게 바닷물이 되는지, 김포의 들판과 강화의 바다가 황금과 황토의 빛깔을 적당히 나눠가졌음을 똑똑히 확인하며 오르다 보면 정상이다. 내려올 때는 고막리 야영장 방향을 택하면 울울한 산림 속에서 피톤치드의 세례에 흠뻑 젖을 수 있다. 굳이 산을 오르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김포 문수산 근처에 널려 있다. 김포허브랜드와 국제조각공원이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고,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애기봉은 북한 땅이 맨눈으로도 훤히 보인다. 태산가족공원은 넓은 공간에 작은 국화꽃과 과학 원리를 가르쳐 주는 연못의 물, 싱그러운 잔디밭, 도자기 굽기 체험 등 다양한 놀이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모두 입장료가 없다. 애기봉 전망대와 태산가족공원, 조각공원은 각각 2000원, 1000원의 주차료를 받는다. 애기봉 전망대는 해병대 부대 안에 있어 입구에서 출입 확인증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부대 안쪽으로 5분 남짓 들어가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250m 걸어가면 애기봉 전망대다. 예전에야 반공교육의 생생한 현장이었겠지만 지금은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이 바다 건너 저편이 ‘또 하나의 조국’임을 느낀다. 설령 냉전의 시기를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있더라도 큰 흐름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포 허브랜드(031-988-0365) 또한 별 놀이시설이 없지만 놀이공원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다양한 화훼조각물이 있는 토피어리공원과 송어잡기체험 연못, 허브농장, 허브양초 만들기, 허브비누 만들기 체험장 등이 있어 웰빙 체험이 가능하다. 게다가 다하누촌 같은 곳에서 고기를 사와서 구워먹을 수 있는 숯불구이장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그저 즐기면 된다. ●한우가 살려낸 ‘주말 놀이 특구’ 김포 추석이 꽤 지났음에도 한우값이 여전히 강세를 유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버스 타고 김포를 찾았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강화도 입구에 있는 곳이기에 강화로 직행하거나 김포를 들렀다가도 숙박을 감안해 강화로 건너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곳에 지난 5월 다하누촌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왕래도 늘며 경기가 활성화돼 아예 서울 수도권 사람들의 ‘주말 놀이 특구’로 자리잡았다. 강남에서 차로 40분 정도면 올 수 있으니 서울 사람들이 제 동네처럼 드나들고 있다. 아낀 자동차 기름값, 숙박비만으로도 충분히 한우를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저렴한 가격에 꽤 괜찮은 품질의 한우를 맛볼 수 있는 다하누촌이 김포허브랜드, 문수산, 조각공원에 둘러싸여 있다. 근처 관광지 영수증을 보여주면 고깃값을 10% 깎아준다. 육회 한 팩(300g)과 등심, 안심, 차돌박이, 안창살 등이 고루 들어있는 모둠 한 팩(600g) 정도면 3~4명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3만원 남짓이면 충분하다. 월곶면사무소 앞에 있는 다하누촌 본점에서 고기를 산 뒤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가져가서 먹으면 된다. 야채와 반찬 등을 갖춰주는 값으로 한 사람당 3000원씩 받는다. 부족하면 까짓것 적당히 더 사먹어도 좋을 것이다. 양껏 먹어도 삼겹살 먹는 것과 진배 없으니 말이다. 운전 부담도 없으니 소주 한 잔 걸치면 주말 저녁 기분좋게 흥얼거릴 수 있다. 시인 박철과 반대로 ‘서울행 막차 운전수 양반의 흔들리는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오후 9시30분 이쪽저쪽이다. 자세한 시간은 꼭 경기도버스종합상황실(031-120)로 확인하자. 술잔 속 가을에 취해 막차를 놓치게 되면 낭패 아니겠는가. 글ㆍ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1000년 이어갈 한옥마을 만드는 게 목표”

    “1000년 이어갈 한옥마을 만드는 게 목표”

    “푸른농촌희망찾기 운동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함께 포개진 한옥마을을 조성, 앞으로도 1000년 동안 이어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산이 맑은 곳’이라는 뜻의 경남 산청(山淸)군. 지난 16일 찾은 단성면 남사리마을은 500년 전 조선 사림마을(士林村)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을 전체가 전통 가옥과 토담길로 조성돼 있어 영남 지역에서도 안동과 더불어 대표적인 한옥 마을로 손꼽히는 곳이다. 100여채의 전통 가옥과 고택으로 조성된 마을에 28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토담과 한옥 어우러진 전통마을 이곳의 브랜드는 남사예담촌. ‘예를 중시하는 조상의 마음가짐을 이어받는 옛 담 마을’이라는 뜻을 담았다. 남사예담촌의 특징은 같은 성씨가 모여 사는 일반적인 전통마을과 달리 다른 성씨의 사대부들이 한마을을 이뤘다는 점이다. 이는 남사예담촌이 주변 니구산과 남사천으로 둘러싸여 있고(배산임수), 마을 앞으로 두 산이 맞물려 있는(쌍용교구) 등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이곳은 한국전쟁 전 99칸 한옥집이 두 채나 보존돼 있을 정도로 명문 사대부 마을로 명성을 높였다.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과 국악을 집대성한 고 기산 박헌봉 초대 국립국악원장도 이곳 출신이다. 다른 성씨의 마을이라는 성격은 이곳의 자랑인 5.7㎞ 길이의 토담길을 낳았다. 토담길은 2007년 문화재청의 옛담문화재로 지정됐다. 노해윤 남사예담촌 이장은 “마을 사대부들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당나귀를 타고 가도 집 안이 보이지 않도록 높이가 최고 2m 50㎝나 되는 토담을 집집마다 쌓았다.”고 설명했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으로 중흥 하지만 이 마을 역시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을 피해 가지 못했다. 1970년대 한때 600명에 이르던 마을 주민은 2000년대 들어 절반도 남지 않았다. 곳곳에 빈집이 늘어 갔다. 박태진 남사예담촌 사무장은 “아이 울음소리가 마을에서 들리지 않은 게 벌써 9년째”라면서 “양반촌이라는 자부심도 마을이 쇠락하는 현실 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었다.”고 말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사예담촌이 선택한 대안은 농촌진흥청 푸른농촌희망찾기운동의 일환인 농촌전통테마마을 사업. 2003년부터 전통 한옥마을이라는 특징을 살려 체험장과 숙박시설, 향토음식체험관 등 10곳의 관광객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또한 서당과 종이한옥짓기, 전통혼례, 회화나무 염색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2005년부터 매년 10월 전통문화축제를 개최했다. 박태진 사무장은 “불과 3, 4년 전만 하더라도 마을 주민들이 관광객이 길을 물어도 머리만 들어 대충 알려줄 정도로 배타적이었다.”면서 “그러나 요즘은 친절하게 관광객을 맞는 등 마음의 문을 외부로 열기 시작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귀띔했다. 친환경 농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푸른농촌희망찾기운동의 결실이다. 이곳의 주 생산품은 딸기. 쪼그려 앉아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무농약 농법이 매우 힘든 작목이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새로운 농법을 개발, 요즘은 연 2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쌀과 콩 등 친환경 농법으로 수확한 다른 작물 역시 직거래가 아니면 사기 힘들 정도로 인기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실험실까지 갖춘 평생교육장

    평생교육도 실험·실습 기자재를 갖춘 강의실에서 제대로 된 학습을 받을 수 있는 새 모델이 등장했다. 강남구는 수도전기공고와 평생교육 프로그램인 ‘롱런 아카데미’의 연계 협약을 맺고, 학교 유휴시설을 리모델링함으로써 평생교육을 위한 실험실습실로 사용키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관·학 협력을 통해 다양한 기자재가 구비된 교육시설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평생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는 은퇴자는 물론 직장인·주부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롱런 아카데미’는 직업 재교육을 위해 ▲전기기능사 자격증반 ▲e-테스트 자격증반 ▲정보화 기초소양반 ▲수치제어선반(CNC선반) 과정 ▲디지털 앨범제작과정 등을 운영한다. 또 요리교육 프로그램으로 ▲천하제일 비법강좌 ▲사찰음식 특선 ▲요리연구가 박종숙 스페셜 ▲아빠 요리클래스 등 다양한 강좌를 선보인다. 이 밖에 ▲바리스타 따라잡기 ▲생활 속 와인 등 커피와 와인 강좌도 준비돼 있다. 강남구 관계자는 “그동안 평생교육을 위한 대다수 강좌는 변변한 실험·실습실도 없이 이곳저곳 옮겨다녀야 하는 노천강좌나 다름없었다.”면서 “롱런 아카데미는 관·학 협력으로 지역 주민과 직장인들이 최고의 시설을 갖춘 강의실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평생교육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조선시대 그림속 잔칫집 구경갈까

    조선시대 그림속 잔칫집 구경갈까

    신하가 70세가 넘으면 조선의 임금은 궤장(几杖·의자와 지팡이)을 내리며 잔치를 베풀어준다. 이 장면을 그려 모은 것이 사궤장연회도첩(賜?杖宴會圖帖)이다. 또 굽이굽이 흐르는 대동강에 배를 띄우고 부임을 환영하기 위해 일반 백성과 양반들이 모두 모여 으리으리하게 연회를 연다. 이는 평양감사향연도(平壤監司饗宴圖)가 고스란히 보여준다. 평양감사를 마다하지 않은 이유가 짐작된다. 이뿐인가.회혼례(回婚禮)를 치르는 할머니·할아버지는 60년 전 설렘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 연지곤지 찍고, 사모관대를 썼다. 자식, 손자, 증손자들까지 모두 모여 치르는 흥겨운 한판 잔치다. 회혼례첩(回婚禮帖 ·작은 사진)의 노부부, 그 옛날 그 첫날밤처럼 가슴 콩닥거렸을까. 국립중앙박물관이 ‘잔치풍경-조선시대 향연과 의례’를 주제로 그림 및 공예품을 12월6일까지 전시한다. 역사기록화들로, 수 백년 전 언감생심이었을 조선의 궁궐 안에서 벌어졌던 잔치는 물론 사대부 집안의 떠들썩한 잔치도 엿볼 수 있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됐다. 1부와 2부는 왕실의 축하의례와 향연문화를 중심으로, 3부와 4부는 사대부 및 민간의 잔치 문화를 소개하는 식으로 구성됐다. 원자의 탄생, 왕세자 입학, 왕의 등극과 같은 왕실의 축하 의례와 관련된 그림은 물론 보인(寶印)·교명(敎命) 등과 같은 각종 상징물, 잔치에 사용됐던 왕실 공예품 등을 선보인다. 또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의궤(儀軌)도 특별히 출품됐다. 특히 궁중 잔치의 모습을 그린 ‘진찬도(進饌圖)’와 잔치의 전말을 기록한 ‘진연의궤(進宴儀軌)’ 등은 왕실 잔치의 풍경을 여실히 설명해준다. 4부 ‘벼슬길의 기념잔치’에서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관직 생활 중 열렸던 각종 축하의식과 기념 잔치의 모습을 소개한다. 과거에 급제한 후 벌이는 일종의 시가행진 격인 ‘삼일유가(三日遊街)’, 시와 술과 자연을 즐기던 문인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契會圖)’ 등 다양한 모습이 보여진다. 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조선시대 모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고 화합하는 잔치의 분위기를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면서 “흥이 넘치면서도 방탕하지 않은 우리네 전통 잔치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HAPPY KOREA] 경남 함양군 물레방아골 전통양반마을

    [HAPPY KOREA] 경남 함양군 물레방아골 전통양반마을

    국내에 현존하는 전통한옥마을을 꼽으라면 대부분이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을 든다. 그러나 시선을 지리산 자락으로 돌리면 마을 곳곳에 솟을대문이 우뚝 서 있는 또 하나의 양반마을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대와 문화를 이어가는 살기좋은 전통마을을 표방한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물레방아골 전통양반마을’이다. ●한옥형 민박마을 관광객 늘어 마을 중심에는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86호인 일두 정여창 선생 고택과 일제시대 말기 조선 바둑계의 1인자로 군림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국수(國手) 노근영 선생의 고택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2007년 살기좋은 지역 만들기에 선정된 이래 마을의 초등학교 담장을 허물어 공원으로 탈바꿈시키고 벽화와 추억의 거리를 조성하는 한편, 면사무소를 한옥 모양으로 신축해 관광객 유치에 힘써왔다. 전통양반마을이라는 가장 효과적인 관광자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또 돌과 흙으로 만들어진 전통담장을 복원하고 한옥형 버스승강장 설치도 마무리했다. 마을 곳곳에는 전통적인 형태의 우물과 곡식을 찧는 방아, 쉼터인 원두막이 세워졌다. 이밖에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현대적 편리성을 도입하되 전통에 대한 이미지와 개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옥형 민박마을도 마련했다. 과거 방문객이 거의 끊기다시피 한 마을에는 올해부터 하루 40~50명씩 서서히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전통한과·곶감 대표 특산품으로 살기좋은 마을은 단순히 외형적인 부분에 그쳐선 안 된다. 마을 주민들은 갖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소득확대를 꾀했다. 우선 마을 부녀회를 통해 판매하는 ‘전통한과’ 생산을 확대해 연간 1억 2000만원의 소득을 얻었다. 임금님 진상품으로 불렸던 ‘개평두리곶감’의 판로 확대에 집중해 한접에 25만~30만원가량 호가하는 고가 제품을 재고량 없이 판매하는 성과도 이뤘다. 두리곶감은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공동작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마을 주민들은 살기좋은 지역 만들기 사업 추진에 따른 ‘마을자치규약’을 제정하고 매월 ‘마을 가꾸기 날’ 행사를 갖는다.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전통한옥 보존회도 꾸렸다. 마을 주민들은 3억 5000만원을 투자해 마을 인근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립, 연간 300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살기좋은 지역 만들기 팀장인 강경구 이장은 “마을이 아름다워지고 관광객도 늘어 더 살기좋은 마을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함양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강강술래 등 5건 세계무형유산 된다

    강강술래 등 5건 세계무형유산 된다

    강강술래 등 우리 고유의 전통 무형문화재 5건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될 전망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29일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에서 30일(현지시간) 열리는 유네스코 제4차 세계무형유산위원회에서 우리의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 등 5건의 무형문화재에 대해 세계무형유산 등재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라면서 “이들 무형문화재는 무형유산위원회 사전자문회의에서 등재권고를 받았기 때문에 본회의에서의 등재가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오늘 유네스코 본회의서 결정 유네스코에서는 1992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2006년 ‘무형유산보호협약’을 발효시켜 무형유산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형태로 외연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세계무형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는 70개국 90건이 등재돼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년)을 시작으로, 판소리(2003년·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강릉단오제(2005년·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등 3건이 등재돼 있는 상태다. 이번 아부다비 회의에서 5건의 등재가 결정되면 모두 8건의 세계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강강술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로서 주로 전남 진도, 해남 등에서 설, 대보름, 추석 등에 행해지며 노래, 무용, 음악이 삼위일체로 이뤄지는 원시종합예술이다. 남사당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는 조선 후기 남사당패가 양반사회의 부도덕성을 놀이를 통해 비판했으며, 경기도 안성에서 전승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남사당놀이·영산재·처용무 등 등재 권고 받아 영산재(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는 49재의 한 형태로 한국불교 태고종 봉원사를 중심으로 이뤄진 의식으로 영혼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은 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에서 하는 굿으로 영등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 있으며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 굿이다. 처용무(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는 궁중 무용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처용설화를 바탕으로 하며 가면과 의상, 음악, 춤이 어우러진 무용예술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복입고 개교 100년 맞아요”

    “한복입고 개교 100년 맞아요”

    “한복 입고 만나요.” 26일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 입구에 있는 양동초등학교 교정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로 가득 찬다. 25일 맞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다. 이들이 이날 한복을 입고 만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100주년 기념은 물론 조선시대 양반마을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양동마을의 이미지에 걸맞은 한복 차림으로 마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한결같이 기원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날 행사로는 졸업생과 주민 8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학교의 과거·미래 100년을 위한 경축식과 함께 기념 조형물 제막식과 추억의 사진전, 재학생 작품 전시회, 어울림 한마당 등이 마련된다. 양동초교는 조선시대 대소과(大小科)에 116명의 합격자를 배출한 학문과 인재의 요람인 양동마을에 1909년 양좌학교로 처음 터를 잡았고 1913년 양동공립보통학교로 개교했다. 1938년 양동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양동공립국민학교, 1996년 양동초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됐다. 양동초교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인재도 배출했다. 전 국제로터리클럽 회장인 이동건(37회) 부방그룹 회장과 정수성(44회) 국회의원, 한국동서발전 이길구(47회) 사장, 삼성토탈 손석원(52회) 부사장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올해 95회까지 전체 졸업생은 5507명이다. 양동초교는 한때 학생수 34명, 3학급으로 줄어들면서 인근 학교와의 통폐합 위기에 놓였으나 동창회와 지역민, 학교운영위원회, 교직원들의 노력으로 올해 학생수 74명, 6학급으로 늘었다. 총동창회는 장학금 및 통학차량 등 후배들을 위한 다양한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 손수혁(62·46회) 총동창회장은 “농어촌의 많은 학교가 폐교 위기로 내몰리고 있지만 우리 학교는 ‘작은 학교 가꾸기 연구 시범학교’로 지정돼 발전을 기약할 수 있게 됐다.”면서 “그동안 학교 발전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동문들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대표적인 민속마을로 안동 하회마을과 나란히 내년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양동마을은 지난 1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실사단의 의해 현지 실사가 이뤄졌다. 양동마을 등의 세계문화유산 동반 등재 여부는 내년 7월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경주 토종개 ‘동경이’ 보금자리 생긴다

    경주 토종개 ‘동경이’ 보금자리 생긴다

    멸종위기의 경북 경주 토종개인 ‘동경이( 東京犬)’ 사육마을이 생긴다. 경주시와 ㈔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는 21일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서 동경이 사육마을 지정식과 함께 첫 분양식을 갖는다고 20일 밝혔다. 사업은 동경이를 경주의 상징동물로 육성하고,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양동마을은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 중인 곳으로, 조선시대 양반마을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양동마을 10가구에 분양되는 동경이는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한 혈통 고정작업 이후 출생한 3~4대의 우수 혈통을 가진 개체다. 동경이는 1669년 ‘동경잡기’라는 경주의 지리·역사서에 등장하는 등 우리나라 토종개 중 문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개다. 동경이는 고려시대 경주를 동경으로 불렸던 데서 유래된다. 경주지역에서 많이 사육됐다. 꼬리가 없거나 5㎝ 미만으로 매우 짧은 신체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이유로 재수가 없다고 여겨져 많이 희생돼 멸종위기에 처했다. 성격이 온순하고 친화력이 뛰어난 한편 주인에게는 복종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사냥 능력이 매우 탁월한 토종개이다. 동경이는 현재 경주지역 35농가와 보존협회, 서라벌대학 등에서 200여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경주시 등은 동경이 보호를 위해 2005년 11월부터 천연기념물 지정에 나서 동경이의 혈통 고정과 개체 확보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1년까지 혈통 관리를 통해 400~500마리의 개체수를 확보해 천연기념물 지정을 신청한다는 것이다. 최석규 동경이보전연구소장은 “양동마을에 이어 앞으로 경주 최부자집 마을을 동경이 마을로 추가 지정하고, 천연기념물 지정 후에는 일반에도 분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시전 행랑/노주석 논설위원

    종로 일대에 시전행랑(市廛行廊)을 조성하는 공사가 대략 마무리된 것은 조선 태종 14년인 1414년이었다. 태종실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호조가 아뢰었다. 철거해야 할 기와집은 1칸에 저화(楮貨·당시 지폐) 20장, 초가집은 1칸에 10장을 주어야 합니다. 총 보상비는 저화 1만 3600장이 소요됩니다.” 종로 일대에 자리잡고 있던 민가 1486채와 기와집 126채를 헐고 1360칸의 행랑을 새로 짓는 대대적 도심재개발공사의 보상비 내역을 왕에게 보고하는 내용이다. 시전은 조선시대의 관영시장이고 행랑은 상점이다. 나라에서 쓰이는 주요 물품을 조달하던 시장의 가게이다. 종묘에서 흥인지문까지, 종로에서 숭례문까지 두 갈래로 이어 지었다. 갈수록 사전(私廛)이 늘어나면서 난전(廛)화하자 금난전권(禁廛權) 같은 독점적 특권을 주는 육의전(六矣廛)이 중심이었다. 행랑 뒤편에는 말을 피하는 길 즉 ‘피맛길’이라는 골목을 만들었다. 장 보러온 백성이 고관대작이나 양반들과 마주치는 불편함을 없애준 고도의 행정서비스였다. 시전행랑의 유구(遺構), 즉 토목 구조와 건축 양식의 자취가 살아 남은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2003년 12월 청진동 피맛골 일대에서 진행되고 있던 도심재개발 현장을 살펴보던 문화재전문가 황평우씨가 공사장에서 오래된 건물의 기초석을 발견, 문화재청에 신고한 것이 발굴과 보존의 시작이었다. 기록에만 남아 있던 시전행랑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발굴된 시전행랑의 유구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어제 공개됐다. 이전·복원된 유구는 시전행랑이 ‘방-마루-방-창고’의 구조이며, 40평 크기로 지어졌음을 보여준다. 조선 600년의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기록의 나라’ 조선의 섬세한 기록문화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고고학적 흔적이다. 조선 건국 초부터 현재까지 켜켜이 쌓여 있는 6개의 문화층이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임진왜란 시기인 제5문화층에는 30㎝짜리 불에 탄 층이 선연하다. 당시 종로 일대가 화재로 말미암아 완전히 소실됐음을 보여준다. 시전행랑은 조선의 부활이자 재발견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도시와 산] (24) 마산 무학산

    [도시와 산] (24) 마산 무학산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시조 시인 이은상이 고향 마산 앞바다를 떠올리며 지었다는 시 ‘가고파’다. 경남 마산시 무학산(舞鶴山)에 오르면 가고파의 이 애틋한 노랫말이 눈앞에 펼쳐진다. 학을 타고 산·바다·도시의 풍경을 한꺼번에 조망하는 산행 재미도 색다르다. 무학산은 마산의 진산이다. 항구도시 마산을 서북쪽에서 남북으로 길게 병풍처럼 둘러싸고 우뚝 솟아 있다. 해발 761.4m로 백두대간 낙남정맥(南正脈) 기둥 줄기의 최고봉이다. 시민들은 불의에 항거하는 마산 정신이 무학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춤추는 학을 닮은 산 무학산의 옛 이름은 두척산(斗尺山)이었다. 학이 춤을 추는 모습과 같아 무학산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이 군사지도를 만들면서 붙였다는 설도 있다. 문헌 속에 무학산 표기는 조선시대 영남읍지를 발췌해 엮은 ‘영지요선’에 처음 나온다. 정상은 학 몸통의 중심에 해당한다. 서원골 동쪽에 바위로 이뤄진 학봉은 학의 정수리다. 정상 바로 아래 서마지기에서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는 대곡산과 만날고개로 이어져 가포만 바다로 닿는다. 지역 산악인들은 “무학산은 높이에 비해 산세가 험하고 웅장하지만 곡선이 부드러워 편안하고 포근한 어머니 같은 산”이라고 말한다. 겨울 북서풍을 막아주는 무학산 덕분에 41만 마산 시민들은 따뜻하게 겨울을 지낸다. 신라시대 학자 최치원의 발자취가 무학산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산자락 합포만에는 최치원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유서깊은 월영대가 있고 그가 직접 쓴 ‘월영대’ 입석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최치원이 수도하던 고운대가 무학산 정상에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3·15 정신의 발원지 마산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성지이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해 4·19혁명을 촉발시킨 3·15의거와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에서 보듯 마산은 불의에 앞장서 분연히 일어났다. 시민들과 향토사학자 등은 “마산을 어머니처럼 감싸안은 무학산의 거침없는 기개와 정기가 자유·민주·정의를 사랑하는 마산 시민정신의 원류”라고 말한다. 무학산 정상의 표지석 뒤쪽에 새겨놓은 ‘삼월정신의 발원지’라는 글귀와 일년내내 내건 태극기는 무학산에 대한 시민들의 강한 자부심의 표시다. 호수처럼 잔잔한 마산 앞바다, 그 서정적인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무학산은 마산을 문학과 예술의 도시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지역 문인들은 “이은상을 비롯해 아동문학가 이원수, 작곡가 조두남, 무용가 김해랑, 조각가 문신,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제하, 음악가 반야월, 만화가 방학기, 영화감독 강제규 등 뛰어난 문학·예술인이 마산에서 많이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마산문학인 일동이 노랫말을 지은 ‘마산의 노래’를 비롯해 지역 대부분의 학교 교가가 ‘무학산~’으로 시작된다. 대표적인 향토기업인 주류제조회사를 비롯해 ‘무학’이 들어가는 상호도 즐비하다. 국립 3·15민주묘지, 문신미술관 등이 무학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마산시립박물관 송성안(41) 박사는 “무학산은 마산의 상징으로 마산시민들에게는 정신적 지주이며 생활에 활력을 주는 청량제”라고 평가했다. ●학을 타고 가고파를 감상한다 무학산의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며 웅장하고 부드러운 산세, 그 아래 펼쳐진 평온한 도시와 바다, 보석처럼 올망졸망 떠 있는 크고 작은 섬 등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봄의 무학산은 진달래꽃에 덮여 붉은 학으로 변한다. 학봉과 꼭대기, 대곡산 등의 진달래 군락이 절경을 연출해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무학산에 오르는 길은 12가닥이 있다. 남북을 종주하는 코스로는 남쪽 만날고개~대곡산~무학산 정상~북쪽 봉화산으로 이어진다. 북능은 창원시 천주산으로 이어진다. 서원계곡에서 걱정바위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이 거리가 짧으면서 경관도 빼어나다. 정상까지 1.9㎞로 1시간30분 남짓이면 오른다. 서원 계곡은 무학산이 동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울창한 숲 사이에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서원계곡은 조선시대 회원서원이 있었던 데서 붙여졌다. 조선 중기 학자 정구 선생을 추모해 그의 문하생 장문재 선생이 지었다는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 고종 23년(1885년) 중수한 정자인 관해정(觀海亭)이 남아 있다. 서원계곡을 지나 숲 속으로 7부능선쯤 오르면 우뚝 솟아 절벽을 이룬 걱정바위가 나타난다. 확 트인 바위에 서면 온갖 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걱정바위를 지나 나무로 된 365개의 사랑계단을 오르면 정상 바로 아래 널찍한 ‘서마지기’ 광장이 나온다. 서마지기에서 다시 365개의 건강계단을 오르면 무학산 정상이다. 마산만 앞바다에 거북이 모양으로 떠 있는 아담한 돝섬, 마산~창원을 잇는 마창대교, 진해 앞바다…. 낙남정맥의 최고봉답게 마산·창원 시가지를 비롯해 서북쪽까지 사방이 발아래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 이모(53·마산)씨 부부는 “맑은 날에는 지리산 천왕봉까지 보인다.”며 지리산 방향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이곳에도 가보세요] 만날고개 돝섬 전설따라 걸어요 경남 마산 무학산 남쪽 끝자락 만날고개(해발 180m)에는 모녀 상봉의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고려 말 마산포 바닷가에 가난한 양반 이씨 가문의 편모슬하 세 딸과 어머니에 얽힌 이야기다. 세 딸 가운데 맏딸은 동생들과 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려고 돈을 받고 고개 너머 부잣집 윤진사댁의 반신불수에다 말 못하는 외아들에게 시집 간다. 혹독한 시집살이에다 3년 만에 남편까지 자살해 청상과부로 지내던 맏딸은 여러 해가 지난 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친정 소식이라도 들을까 해서 음력 8월17일 살그머니 만날고개로 나갔다. 때마침 친정어머니도 같은 생각에서 고개로 나왔다가 서로 만나게 돼 모녀는 얼싸안고 눈물을 쏟았다는 이야기다. 이 전설에 따라 만날고개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음력 8월17일 이곳에 가면 만나게 된다는 새로운 전설이 더해져 해마다 만날고개에서는 만날제 축제가 열린다. 무학산은 마산 앞바다에 있는 돝섬과 얽힌 전설도 전해진다. 김해 가락왕이 좋아하던 후궁이 어느 날 사라져 왕은 수소문 끝에 마산 앞바다 조그만 섬에 사라진 후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람을 보내 돌아올 것을 간청했으나 후궁은 금빛 돼지로 변해 무학산 큰 바위틈으로 사라진 뒤 밤마다 여자들을 잡아갔다. 왕은 군사들을 동원해 무학산 바위를 공격했더니 후궁이 돼지로 변해 나타났다. 군사들은 칼로 돼지를 내리쳤다. 그 순간 한 줄기 빛이 섬으로 뻗었다가 사라졌다. 바위 속에서는 사람 유골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빛이 뻗었던 섬에서는 밤마다 돼지 우는 소리와 광채가 났다. 합포만 월영대에 머물던 최치원이 이를 보고 섬을 향해 활을 쏘았더니 광채가 없어졌다. 다음날 최치원이 섬으로 가 화살이 꽂힌 자리에 제를 지낸 뒤부터는 기이한 현상이 없어졌다고 한다. 마산항에서 1.5㎞쯤 떨어져 있는 이 섬이 돝섬으로 지금은 해상 유원지가 조성돼 있다. 마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희망 UP 현장을 가다] (13) 국순당 횡성공장

    [희망 UP 현장을 가다] (13) 국순당 횡성공장

    “막걸리로 세계인의 입맛을 홀린다.” 국순당 횡성공장. 막걸리의 유통 기한 문제를 해결하고 전통주의 세계화 희망을 심어주고 있는 현장이다. 이 회사 대표제품인 ‘백세주’에 들어가는 한약재 냄새가 알싸하던 공장에 시큼하고 달콤한 막걸리 냄새도 배어났다. 국순당은 지난 5월 병막걸리를 내놓은 뒤 100일 만에 100만병을 판매하는 저력을 보였다. 단기간에 막걸리 판매를 늘릴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아닌 발효제어기술. 그동안 막걸리 유통기한은 길어야 10일. 그러나 국순당은 국내 최초로 발효제어기술을 도입, 유통기한을 30일로 늘리는데 성공했다. 생막걸리 안에 살아있는 효모의 활성을 조절, 밀봉한 채로 유통시켜도 페트병이 변형되지 않게 한 기술이다. 밀봉을 했으니 유통기한이 길어졌다. 최영환 생산본부장은 13일 “국내 최초로 개발한 발효제어기술을 도입하고, 10도 이하 냉장 시스템을 활용해 유통시킨 덕에 생막걸리가 전국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유통기한을 늘리는 데 성공하면서 수출길도 열렸다. 국순당은 올해 상반기 미국·일본·중국 등지로 39만 9525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유럽과 동남아시아로의 진출도 꾀하고 있다. ●국내 첫 발효제어기술… 유통 30일로 올해 6~8월 막걸리 매출은 18억원으로 지난해의 18배가 될 전망이다. 막걸리 수요증가로 국순당 횡성공장 막걸리 보관용 냉장창고는 4개로 늘어났다. 이달 중으로 생산설비도 증설키로 했다. 국순당의 생막걸리에 쓰이는 쌀은 수입산으로 국산쌀을 쓰는 ‘국순당 쌀막걸리’와 대비된다. ‘막걸리는 저렴하다.’는 등식이 성립된 상태에서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고민 때문이다. 대신 새로운 개념의 막걸리가 국산쌀의 소비 촉진에 기여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 등지로 수출되는 고급화되고 표준화된 막걸리가 그것이다. 교민 위주로 수요가 형성된 미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현지인들의 반응이 좋다. 달콤하고 청량감 있는 맛에 자연발효술이어서 몸에 좋다는 입소문이 났다. 관세청은 올해 상반기 중 막걸리 수출량이 2635t, 213만 4000달러어치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수출액이 13% 늘었다고 집계했다. 수출용 막걸리는 100% 국내산 쌀을 쓴다. 원화로 환산하면 1병당 1만원 안팎의 가격이 형성되는 고급주로 인식돼 있기 때문에 원가를 높이는 데 부담이 덜했다. 2007년 5월 국산쌀과 인삼으로 빚어 개발한 ‘미몽’, 청량감을 줄이고 캔용기에 담은 ‘국순당 쌀막걸리’, 한류스타 배용준과 손잡아 일본 출시 당시 한정판 300세트가 8분 만에 판매된 ‘고시레’ 등이 일본에서 팔린다. 국순당은 고급 막걸리를 국내에서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고려 양반들이 즐기던 막걸리를 복원, 백설기로 빚은 ‘이화주’는 1만원이 넘지만 예약을 해야 맛볼 수 있다. ●수출용은 국내산 쌀 100% 사용 국순당은 밥을 지어 쌀누룩을 만드는 기존 방식과 달리 생쌀을 불려서 갈아 자체 발효시킨 누룩과 효모를 넣어 막걸리를 만든다. 친환경적이면서 누룩과 효모 등을 통제할 수 있는 공정이 품질을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길이고, 이 길이 수출과 국산쌀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다고 국순당은 믿고 있다. 횡성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주목할 만한 공연 | 인디국악이 모였다

    국악을 하며 함께 살기를 꿈꾸는 ‘젊은국악연대’의 <모여놀기 프로젝트 2>가 7월 1일부터 19일까지 문화일보 홀에서 펼쳐졌다. 작년, 국악을 통해 모여놀기를 시도한 이들의 2번째 프로젝트. 첫 번째는 가곡과 줄 풍류 등 전통음악과 새로운 창작음악을 바탕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정가악회의 <정가악회, 중남미 문학과 만나다>. 시조창과 중남미 문학의 낭독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 열기를 이어 판소리를 이용해 국악 뮤지컬을 선보이는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 한국의 전통장단을 토대로 세계인들이 공감할 월드뮤직을 선보이는 이스터녹스의 <한국의 장단 위에 쓰는 새로운 신화>, 세계무대를 향하는 프로젝트 시나위의 신명나는 콘서트 <JOY>, 현대적인 연희극의 창작을 지향하는‘연희집단 The광대’의 <양반 나가신다>, 일렉트로닉 국악을 선보이며 젊은 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키네틱국악그룹 옌’의 <옌’s 라틴아메리카 음악노트>가 관객들을 맞이했다. 퓨전국악, 국악뮤지컬, 음악극, 전통연희, 가야금중주 등 국악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공연이 날짜를 달리하여 펼쳐졌다. 기존에 알고 있는 지루한 이미지를 깨고 새롭고 발랄한 인디국악의 진수를 선보여 지루할 틈이 없다. ‘젊은 국악연대’는 국악을 좋아하는 젊은 국악인들의 모임. 2008년 초부터 모임의 취지에 공감하는 젊은 국악인들이 하나 둘 모여 결성하게 된 이 모임은 정가악회, 키네틱 국악그룹 옌, 국악뮤지컬집단 타루, 연희집단 The광대, 프로젝트 시나위, 이스터녹스, 아우라, 태동연희단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지금 현재 이 땅에서 국악을 하며 자체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는 것이 그것이다. 국악을 통해 함께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은 이들은 ‘모여놀기 프로젝트’ 외에도 각 팀 별 음악작업 교류, 현 시대의 국악계 논단 및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세미나 및 심포지움 개최 등 다양한 방향으로 대중들에게 접근할 예정이다. 또한 관객 개발을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공연 및 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젊은국악연대의 찾아가는 상설 공연과 이들의 문화학교 등을 만들 계획이고 해외공연 유치와 국제공연 문화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국외 활동을 통한 국악의 저변 확대를 실현한다. 마지막으로 젊은 국악지원센터를 마련해 신생되는 국악팀을 위한 운영시스템 및 노하우를 지원하는 계획도 구상 중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모여놀기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모여놀기 프로젝트’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국악팀이 참가한다. 정가악회 <정가악회, 중남미 문학과 만나다> “정가악회, 중남미 문학과 만나다”는 문학, 음악, 춤,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중남미 5개국(멕시코,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문학과 한국의 전통예술이 만나 빚어내는 앙상블은 관객들을 몽환의 세계로 인도한다. 타루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 배꼽 빠지게 웃긴 국악 뮤지컬이다. 옴니버스로 펼쳐지는 타루의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는 독특한 두 색깔의 작품 [과자이야기]와 [조선나이키]로 구성되었다. 꽃게랑과 오감자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을 다룬 [과자이야기]는 여름을 시원하게 해줄 비장의 무기. [조선나이키]는 70년대 나이키 신발을 갖고 싶어 하는 한 아이의 해프닝을 극화시킨 작품이다. 키네틱 국악그룹 옌 <옌’s 라틴아메리카 음악노트> 다양한 인접예술과의 만남 속에 일렉트로닉 국악을 선보이며 젊은 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키네틱국악그룹 옌은 해외 공연 전 과정 (공연 준비 과정, 해외공연, 여행, 공연 중 창작의 과정, 문화교류, 현지인 인터뷰 등)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해 이번 공연을 통해 영화 상영과 더불어 남미의 정서를 담은 옌의 신곡도 발표한다. 이스터녹스 <한국의 장단 위에 쓰는 새로운 신화> 전통장단의 멋과 신명을 보여주는 시간. 전통장단의 위대함을 세계에 전달하고자 기획한 이스터녹스의 공연작품은 기본 장단뿐만 아니라 6채, 7채, 5채, 타령, 화청장단, 우질굿, 좌질굿 등 다양한 민속음악 장단들을 토대로 한 창작음악들을 음악적 구성요소로 하고 있다. 연희집단 The광대 <양반 나가신다> 전통적인 마당극의 플롯 구성과 권선징악의 이야기 속에 현대 사회의 우리 세태를 맛깔스러운 대사로 유희적이고 해학적으로 그려낸 창작 연희극 <양반 나가신다>는 안동 하회별신굿의 이매, 고성오광대의 양반, 봉산탈춤의 사자, 진도 다시래기의 장사치 등 각각의 캐릭터 속에 전통연희의 맛이 느껴져 절로 어깨춤이 난다. 프로젝트 시나위 <JOY> 이 시대의 굿, 이 시대의 전통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신명나는 콘서트. 진도 씻김굿과 경기도 당굿, 동해안 별신굿 등 장단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장단 변화와 성음, 탁월한 연주력으로 이 시대의 굿, 이 시대의 전통을 모색한다. 공연문의: 02-6381-4500 (빵과 물고기 프로덕션)
  • [와인 톡톡] 왜 2009년에도 ‘전설의 고향’ 인가?

    [와인 톡톡] 왜 2009년에도 ‘전설의 고향’ 인가?

    KBS 월화드라마 ‘2009 전설의 고향’이 마지막 2회를 남겨두고 있다. 올해 ‘전설의 고향’은 지난 8월 ‘혈귀’ 편을 시작으로 8회분을 방영했다. 매년 거듭되는 이 드라마는 어느새 한국형 호러물로 자리 잡았다. 1977년 시작된 지 32년만이다. 1989년 종영됐다 재개된 7년 후를 출발점으로 하면 13년만의 일이다. 그러나 이 호러물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올해는 유독 심하다. 8편 대부분이 개연성과 선정성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로부터 이토록 사랑받는 전통 공포물도 없다. 그렇다면 ‘전설의 고향’의 어떤 면이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매력이 있는 것일까? 또 서구형 호러물과는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올해 ‘전설의 고향’의 마지막 방영분인 ‘가면귀’ 편(10회분)의 주인공을 맡은 연기자 지주연(26)에게 물었다. 그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한 후 지난 해 KBS 공채 탤런트가 됐다. 늘 남에 앞서 자신부터 납득시켜야 하는, 연예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이론가 유형의 그에게 물었다. 왜 2009년에도 전설의 고향인가? -촬영이 계속 진행 중인가요? “거의 끝났어요. 문경에서 계속 촬영했는데 벌에 쏘여서 퉁퉁 부었어요. 응급실도 가고요.” -위험한 부분은 대역이 하지 않나요? “보통 많이들 그렇게 하는데 저는 전부 제가 했어요. 물 속에 숨어있는 장면에서는 30kg짜리 쇠를 묶고 촬영하기도 했죠. 마님 살려주세요...라고 대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선 제가 힘들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감독님이 겁 없다고 칭찬해주시는 바람에 힘이 나서 더 열심히 했죠. 부모님께서 문경까지 데려다 주시고 기다려주시고...제 주변분들이 고생 많이 했어요.” -주인공이면 귀신 역할일 텐데 어떤 귀신인가요? “이름이 가섭이예요. 20살.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사당패를 따라다니다 어름산이 돼요. 줄타는 사람있잖아요. 그러다 원님의 눈에 들어서 겁탈을 당해요. 첩으로 살면서 임신을 하는데 원님 부인한테 죽임을 당해서 복수하는 거죠. 진정한 예인이 되고 싶은데 신분이 천해서 양반들의 노리개가 돼야 했던 가섭이라는 여인이죠.” -벌써 주인공과 동화된 듯한 표정인데요? “평범한 대학생에서 연기자가 돼가는 저 자신에게도 많은 메시지를 줬던 역할이었어요. 대학생때 연예인 데뷔 제안을 많이 받아서 한번은 기획사에 미팅을 간 적이 있어요. 조폭같이 생긴 사람이 절 보면서 ‘쟤 상품가치 죽이네’, 이러는 거예요. 무서운 표정으로요. 부모님 말씀이 맞구나, 싶었죠.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그런데 왜 연기자가 됐어요? “아나운서나 기자가 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KBS 공채 탤런트 시험 공고가 뜬거예요. 연기자도 기잔데 한번 넣어볼까, 하는 마음에서 쳤는데 붙었어요. 최종 시험을 앞두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반대가 심하셨죠. 그런데 할머니는 너무 좋아하셨어요. 꿈이 가수셨거든요.(웃음)” (전설의 고향 10회차 주인공 지주연(오른쪽)과 극중 주인공의 어린시절을 연기한 아역배우 김지민(왼쪽). 두사람이 똑같이 닮아 촬영내내 스태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뭐가 전설의 고향 주인공과 닮았다는 거예요? “이런 대사가 있어요. 광대도 무시당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여인도 천것도 무시당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더 대우받고 환희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부분에서 너무 감동받았어요. 공감도 했구요. 얼떨결에 연기자가 됐지만 지금은 이게 제 천직이라 여기게 됐거든요. 스스로의 꿈 앞에 비겁해지게 하는 여러 가지 제약이나 편견이 생길 때마다 이번 역할을 떠올리려고 해요.” -이번 촬영이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오나 봐요? “촬영 자체도 그랬지만 전설의 고향이라는 드라마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어요. 찍으면서 한국형 호러물의 의미에 대해서도 많이 되새겼고요.” -하긴, 2009년에 웬 전설의 고향이냐는 말도 많았잖아요. “서양 호러물들 보면 우연찮게 길 가다가 흡혈귀에게 물리고, 일본 귀신들은 무턱대고 눈 뒤집고 그러잖아요. 촬영하면서 느낀 건데 한국의 귀신들은 굉장히 정적으로 무서우면서도 항상 귀신이 된 유기적 사연들이 있어요. 제가 촬영한 편만해도 내가 왜 귀신이 됐는지를 보여주고 그 한을 푸는 과정을 묘사하거든요. 귀신에게도 이유가 있는 거죠. 게다가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를 적절하게 녹였죠.” -아직도 ‘한’이라는 소재가 먹힌다는 얘긴가요? “네. 그래서 2009년에도 전설의 고향인거죠. 전설의 고향이 가진 핵심 경쟁력은 바로 한이에요. 이유 없는 귀신이 한명도 없죠. 다른 호러물과 달리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아요. 자기 분노를 다른 데다 표출하지 않죠. 어쩔 때는 복수하려고 나타났다가도 죽이지를 못해요. 정과 한이 미묘하게 섞이는 거죠. 한국 호러물은 끝에 가서 왠지 대동단결하는 면이 있어서 훈훈해요. 인간의 욕망과 갈등, 애증 같은 삶의 부분들이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매력이 있어요.” *전설의 고향 주인공 지주연과 마신 와인 핑크(Yellow Glen, Pink) 호주의 돔페리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한 스파클링 와인 브랜드 옐로우글렌. 잔 속에서 정교한 거품을 내는 부드러운 핑크색 발포성 화이트 와인이다. 신선한 레몬향과 함께 라임과 베리의 느낌이 균형감 있게 어우러진다. 빈티지가 없는 넌빈티지 와인으로 시중에서 소매가 3만 5천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여유로운 브런치나 데이트용 식전주, 혹은 디저트주로 어울리며 해산물 요리와 과일, 초콜릿류에 곁들이기 좋다. 서울신문NTN 이여영 기자 yiyoyong@seoulntn.com/ 와인협찬=금양인터네셔날, 장소협조=더 가브리엘(02-322-7167)@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목할 만한 공연|인디국악이 모였다

    주목할 만한 공연|인디국악이 모였다

    국악을 하며 함께 살기를 꿈꾸는 ‘젊은국악연대’의 <모여놀기 프로젝트 2>가 7월 1일부터 19일까지 문화일보 홀에서 펼쳐졌다. 작년, 국악을 통해 모여놀기를 시도한 이들의 2번째 프로젝트. 첫 번째는 가곡과 줄 풍류 등 전통음악과 새로운 창작음악을 바탕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정가악회의 <정가악회, 중남미 문학과 만나다>. 시조창과 중남미 문학의 낭독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 열기를 이어 판소리를 이용해 국악 뮤지컬을 선보이는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 한국의 전통장단을 토대로 세계인들이 공감할 월드뮤직을 선보이는 이스터녹스의 <한국의 장단 위에 쓰는 새로운 신화>, 세계무대를 향하는 프로젝트 시나위의 신명나는 콘서트 <JOY>, 현대적인 연희극의 창작을 지향하는‘연희집단 The광대’의 <양반 나가신다>, 일렉트로닉 국악을 선보이며 젊은 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키네틱국악그룹 옌’의 <옌’s 라틴아메리카 음악노트>가 관객들을 맞이했다. 퓨전국악, 국악뮤지컬, 음악극, 전통연희, 가야금중주 등 국악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공연이 날짜를 달리하여 펼쳐졌다. 기존에 알고 있는 지루한 이미지를 깨고 새롭고 발랄한 인디국악의 진수를 선보여 지루할 틈이 없다. ‘젊은 국악연대’는 국악을 좋아하는 젊은 국악인들의 모임. 2008년 초부터 모임의 취지에 공감하는 젊은 국악인들이 하나 둘 모여 결성하게 된 이 모임은 정가악회, 키네틱 국악그룹 옌, 국악뮤지컬집단 타루, 연희집단 The광대, 프로젝트 시나위, 이스터녹스, 아우라, 태동연희단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지금 현재 이 땅에서 국악을 하며 자체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는 것이 그것이다. 국악을 통해 함께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은 이들은 ‘모여놀기 프로젝트’ 외에도 각 팀 별 음악작업 교류, 현 시대의 국악계 논단 및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세미나 및 심포지움 개최 등 다양한 방향으로 대중들에게 접근할 예정이다. 또한 관객 개발을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공연 및 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젊은국악연대의 찾아가는 상설 공연과 이들의 문화학교 등을 만들 계획이고 해외공연 유치와 국제공연 문화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국외 활동을 통한 국악의 저변 확대를 실현한다. 마지막으로 젊은 국악지원센터를 마련해 신생되는 국악팀을 위한 운영시스템 및 노하우를 지원하는 계획도 구상 중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모여놀기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모여놀기 프로젝트’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국악팀이 참가한다. 정가악회 <정가악회, 중남미 문학과 만나다> “정가악회, 중남미 문학과 만나다”는 문학, 음악, 춤,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중남미 5개국(멕시코,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문학과 한국의 전통예술이 만나 빚어내는 앙상블은 관객들을 몽환의 세계로 인도한다. 타루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 배꼽 빠지게 웃긴 국악 뮤지컬이다. 옴니버스로 펼쳐지는 타루의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는 독특한 두 색깔의 작품 [과자이야기]와 [조선나이키]로 구성되었다. 꽃게랑과 오감자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을 다룬 [과자이야기]는 여름을 시원하게 해줄 비장의 무기. [조선나이키]는 70년대 나이키 신발을 갖고 싶어 하는 한 아이의 해프닝을 극화시킨 작품이다. 키네틱 국악그룹 옌 <옌’s 라틴아메리카 음악노트> 다양한 인접예술과의 만남 속에 일렉트로닉 국악을 선보이며 젊은 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키네틱국악그룹 옌은 해외 공연 전 과정 (공연 준비 과정, 해외공연, 여행, 공연 중 창작의 과정, 문화교류, 현지인 인터뷰 등)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해 이번 공연을 통해 영화 상영과 더불어 남미의 정서를 담은 옌의 신곡도 발표한다. 이스터녹스 <한국의 장단 위에 쓰는 새로운 신화> 전통장단의 멋과 신명을 보여주는 시간. 전통장단의 위대함을 세계에 전달하고자 기획한 이스터녹스의 공연작품은 기본 장단뿐만 아니라 6채, 7채, 5채, 타령, 화청장단, 우질굿, 좌질굿 등 다양한 민속음악 장단들을 토대로 한 창작음악들을 음악적 구성요소로 하고 있다. 연희집단 The광대 <양반 나가신다> 전통적인 마당극의 플롯 구성과 권선징악의 이야기 속에 현대 사회의 우리 세태를 맛깔스러운 대사로 유희적이고 해학적으로 그려낸 창작 연희극 <양반 나가신다>는 안동 하회별신굿의 이매, 고성오광대의 양반, 봉산탈춤의 사자, 진도 다시래기의 장사치 등 각각의 캐릭터 속에 전통연희의 맛이 느껴져 절로 어깨춤이 난다. 프로젝트 시나위 <JOY> 이 시대의 굿, 이 시대의 전통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신명나는 콘서트. 진도 씻김굿과 경기도 당굿, 동해안 별신굿 등 장단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장단 변화와 성음, 탁월한 연주력으로 이 시대의 굿, 이 시대의 전통을 모색한다. 공연문의: 02-6381-4500 (빵과 물고기 프로덕션)
  • [도시와 산] (21) 강릉 제왕산

    [도시와 산] (21) 강릉 제왕산

    백두대간 마루금 대관령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강원 강릉으로 내달린 한줄기 산맥의 봉우리에 제왕산(帝王山)이 있다. 해발 841m의 그다지 높지도 낮지도 않지만 수천년 역사를 간직한 강릉을 오롯이 지켜온 유서 깊은 산이다. 제왕산은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왕과 관련해 지명이 유래됐다. 정상에는 고려말 우왕(禑王)의 한이 서린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산부리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옛길에는 험준한 대관령을 오르내리던 숱한 사람들의 얘기가 전설처럼 살아 전해진다. 더구나 뒤로는 우뚝한 백두대간을, 앞으로는 망망히 펼쳐진 동해를 조망하고 있는 강릉의 진산이다. 웅장하고 선이 굵은 제왕산의 풍광은 시원하기까지 하다. ●우왕의 애환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620여년전 고려 제32대 왕인 우왕이 이성계에 의해 유배 길에 올라 두달 동안 강릉에 머물렀는데 이때 제왕산 정상에 산성(제왕산성)을 쌓아 근거지로 삼았다고 전해온다. 전설처럼 구전돼 오는 설화의 한 토막이지만 현지에는 실제 허물어진 산성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산성 주변에는 깨진 기왓장까지 발견되면서 역사가들은 우왕에 얽힌 얘기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유배길에 오른 우왕은 원주와 고성, 강릉에 머물다 지금의 삼척 살해재에서 살해됐다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 우왕이 머물던 곳은 지금 지명으로 남아 있다. 강릉 구정면 학산의 왕고개는 왕이 머물렀던 곳이고, 인근의 왕산리 큰골은 큰 어른(왕)이 살았던 곳이고, 살해재는 왕이 살해된 곳이라 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불려지고 있다. 김기설(61) 강릉민속문화연구소 소장은 “제왕산과 우왕에 얽힌 전설은 산 9부 능선쯤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산성이나 기왓장 흔적, 지명 속의 이름 등으로 미루어 실제 있었던 사실임이 증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풍수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온다. 제왕산 초입의 인풍비와 샘물은 강릉시민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샘물이다. 예부터 제왕산과 인접한 능경봉의 계곡물이 영동으로 흘러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따라 거북이 모양의 돌과 함께 비석을 세우고 샘물을 만들어 물길을 동으로 두었다는 것이다. 대관령 정상쯤에서 제왕산을 오르는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능선을 따라 임도와 바위가 어우러진 소나무 숲을 1시간쯤 가면 정상이다. 정상을 따라 이어지는 산행이 능선길이다 보니 사방이 탁 트여 주변 풍광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눈을 멀리 두고 뒤를 돌아보면 백두대간 능선이 지척에서 등뼈를 꿈틀거리며 남북으로 용틀임한다. 북으로는 해발 1000m가 넘는 대공산성과 새봉이 있고 남으로는 능경봉이 우뚝하다. 등산객이 용을 타고 잠시 하늘을 나는 환상 속에 빠지게 한다. 소나무숲을 두르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더듬이처럼 하얗게 솟아 있는 풍력발전용 풍차들과 버짐처럼 펼쳐진 양떼목장 풍경이 이국적이다. 눈을 돌려 동해를 조망하면 바다가 지척이다. 금방이라도 동해의 파도가 흰 포말을 일으키며 산쪽으로 달려들 것만 같다. 영동 제일의 도시 강릉도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아른거리는 시야 속에 정상 가까이는 강릉의 젖줄인 강릉저수지가 있고 멀리는 경포호수가 도시를 엄호한다. 산 정상에는 족히 300~400년은 됐을 노송(松)과 금강송 군락지가 펼쳐져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광화문 복원을 위한 대들보도 인근에서 베어냈을 만큼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용틀임하는 백두대간… 동해가 한눈에 정상쯤에서 만난 강릉 토박이 함영호(64)·박제선(62)씨는 대관령과 제왕산, 강릉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예향(藝鄕) 강릉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둘은 “강릉은 바다에 사는 용이 산으로 올라오는 모양을 띠고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며 구수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길손의 지루함을 달래준다. 정상에서 강릉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다. 곳곳에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구불구불 긴 내리막이 수월치 않다. 그러나 30분쯤 내려오면 맑은 계곡물이 반긴다. 어디에서 발원됐는지 두 줄기 물길이 만나 암반을 타고 시원스레 흘러내린다. 물이 폭포수를 이루며 지나는 등산객들의 땀을 식혀준다. 기운찬 물길이 잠잠해지는 곳에 이르면 산행의 끝을 알리는 상제민원과 복원된 대관령 옛길의 주막집을 만난다. 다양한 얘기를 간직하며 웅장한 풍광을 자랑하는 제왕산은 강릉의 관문으로 또 그렇게 수천년을 우뚝하게 지켜줄 것이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제왕산 숲길따라 옛길따라 길섶 곳곳 주막·물레방아… 발길마다 추억이… 강원 강릉 제왕산 기슭에는 험준한 대관령을 오르내리던 영동과 영서를 잇는 옛길이 나 있다. 옛길은 숱한 애환과 얘기를 간직하고 지금도 강릉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요 관광자원으로 계속 개발되고 있다. 옛길은 흙길이다. 수백년 동안 영동과 영서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사람들의 발길에 파여 우묵한 골짜기를 이룬다. 길옆으로는 우렁찬 물소리가 어우러진 계곡이 흐른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울창한 원시림도 장관이다. 길섶 곳곳에는 옛 주막과 물레방아를 복원했고, 길의 절반을 알리는 반정(半程)에는 전망대를 만들었다. 곳곳에 의자를 놓아 쉼터를 만들었고 신사임당이 대관령을 넘으며 지었다는 사친시(思親詩)와 지방하급관리의 은혜를 기리는 비도 있다. 대관령 너머 평창의 횡계역과 강릉의 구산역을 잇는 옛길은 많은 얘기를 담고 있다. 동해안 해산물을 한양으로 올리던 짐꾼들 얘기부터 양반이 눈길을 걸을 때 앞서 눈을 다져주던 답설꾼들 얘기까지 길을 따라 걸었던 70~80대 노인들의 얘기 보따리는 끝이 없다. 우선 하제민원에서 대관령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원울이고개’에 얽힌 얘기는 흥미롭다. 한양에서 700리길을 걸어 강릉부사로 부임하던 원님들이 강릉의 막바지 고개에 이르러 힘들어서 울었고 임기를 마친 원님들이 강릉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을 뒤로하고 돌아가기가 섭섭해 두번 운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옛 관리들이 정상쯤에 있는 국사성황당 앞을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지방 하급관리가 힘든 옛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과 숙소를 제공해 고마움의 표시로 세운 공덕비도 있다. 제왕산은 이렇게 한양과 강릉을 이어주는 관문으로 많은 얘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선글라스·콧수염… 얼치기 라틴밴드 만나보시렵니까”

    “선글라스·콧수염… 얼치기 라틴밴드 만나보시렵니까”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불쏘클)이라는 인디밴드가 있다.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괴짜 밴드로 소문이 자자하다. 선글라스와 콧수염으로 무장한 이들의 라이브를 접한 음악 팬들은 묘한 매력에 빠져들며 즐거워한다. 자칭 얼치기 라틴 밴드라고 하지만 명료하게 이들을 정의하기가 힘들다. 키치적인 B급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하면 막연하게나마 느낌이 전달될 수 있을까. 하나 덧붙이자면 이들은 스스로 마초 밴드라고 힘주어 말한다. 활동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최근 정규 앨범 ‘고질적 신파’를 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음악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주의 국내 앨범’으로 뽑히기도 했다. 제2의 장기하와 얼굴들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그러나 불쏘클의 리더인 조까를로스는 “장기하와는 성향도, 비전도 다르기 때문에 제2의 장기하라는 평가는 과장됐고, 듣기가 거북하다. 좀 특이한 신인 밀어주기의 덕을 본 것 같다.”고 말한다.  밴드 이름은 쿠바의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비틀었다는 의심이 짙다. 하지만 우주 3원소로 여기는 불나방과 스타, 쏘세지를 결합했다고 우긴다. 조까를로스는 “우리는 그 밴드를 잘 모른다. 믿거나 말거나 수 만 개의 단어 가운데 순전히 우연의 일치로 비슷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우주는 신비로운 것”이라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멤버 이름도 유난스럽다. 조까를로스(보컬·기타)는 물론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며 품앗이 왔다가 ‘장기억류’ 당하고 있는 유미(타악기·드럼), 후르츠김(멜로디언·건반), 까르푸황(베이스), 김간지(타악기·드럼·랩) 등. ●4년만에 첫 정규앨범… ‘제2의 장기하와 얼굴들’  김간지를 빼면 모두 조까를로스가 지어줬다고.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란다. 선글라스와, 한편으로는 마초의 상징인 콧수염을 고집하는 것도 마찬가지. “지금이야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초기에는 객기도 많이 부리고 노랫말도 즉흥적이고 더 과격했다. 멤버들이 각자 따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어서 행여나 앞으로의 음악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고, 마초적인 냉정함을 잃지 않기 위함과 동시에 (웃으면 수염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행(修行)의 요소도 있다.”  라틴 음악을 선택하게 된 까닭도 재미있다. 팀을 만든 조까를로스는 애초에 음악을 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이쪽저쪽 이야기하다 보면 창작에 제한이 생긴다. 따로 생각해달라.”며 미술과 관련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어쨌든 록 밴드를 하고 싶었지만 비음악인이었던 탓에 실력이 ‘달려서’ 가장 간단한 악기 편성으로 할 수 있는 라틴 음악을 골랐다는 설명. 조까를로스는 “제가 연주하는 코드가 마이너 계통이고, 뽕짝 아니면 라틴인데 강렬한 멕시칸 분위기를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원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긴다는 조까를로스는 한석봉, 콩쥐팥쥐, 춘향전, 흥부전, 별주부전에다가 들장미 소녀 캔디까지 갖다 붙여 배꼽을 잡게 하는 ‘석봉아’에 대해 ‘아이돌’이 부르는 노래가 재미있어 만든 초절정 후크송이라고 은근히 자랑한다.  원래 마초적이지도 않고 마초적인 것을 싫어하지만, 마초 컨셉트인 것은 음악을 시작할 때 구질구질하고 궁상맞은 주변의 모습이 싫었기 때문. “어떤 커다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극적으로 확대 해석한 것이다. 사실 현대 사회의 진정한 마초는 대개 권력과 재력을 갖춘 사람들이고. 우리가 선택한 마초는 가난하고 배운 거 없고 몸뚱어리만 있는, 사회적 규범에서는 존중받거나 보호받기도 어려운 마초다. 우리의 캐릭터 성향 또한 무대에서 마초도 아니면서 마초인 척하는 허세와 동시에 비굴함을 보여줘 팬들이 거부감 없이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1집 테마를 신파로 잡은 것도 우리나라 정서 자체가 ‘고질적으로’ 신파를 좋아하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했다. ‘원더기예단’, ‘악어떼’, ‘싸이보그 여중생Z’, ‘미소녀 대리운전’ 등 대개 노랫말들은 농담 같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 재미있게 받아들이든지 심각하게 받아들이든지 듣는 이의 자유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쌍팔년도에 유행한 ‘로봇대백과사전’, ‘괴수대백과사전’, ‘건담백과사전’을 꼽는 조까를로스는 “관찰자 입장으로 다른 사람 인생을 지켜보다가 인상적인 장면을 보면 그 앞뒤를 상상하며 과장된 픽션으로 옮긴다.”고 작사·작곡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라이브 무대를 통해 팬들을 차곡차곡 확보해 가면서도 그동안 앨범을 내지 않았던 이유는 번거로워서였다. 단발성 프로젝트로, 취미 생활 삼아 비직업 밴드로 시작했는데 의외로 오래 가다 보니 ‘업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음악이 계속 질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까를로스는 “다른 밴드들은 미래를 위해 앨범을 내지만 우리는 과거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앨범을 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잃을 게 없다 보니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했는데 요즘 알려지다 보니 불편한 점도 조금은 생긴다고 한다. 크고 작은 라이브 무대가 줄을 잇고 있다.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힘들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다음달 25일 상상마당 공연은 고대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을 보여줬다며 존경하는 밴드로 꼽는 황신혜 밴드와 ‘혈맹’으로 함께 서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내일이 어떨지 모르기 때문에 크게 바라는 게 없다는 조까를로스는 “다만 음악이 계속 질리지 않았으면, 계속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김간지가 한마디 한다. “허경영, 그 양반 노래에 피처링하고 싶은데….” 조까를로스가 되묻는다. “어딜 감히 초절정 인기인에게 또 묻어가려고…. 안될 거야 아마.”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붕가붕가레코드 제공 [다른기사 보러가기] ☞대학실습생 “난 잡역부였다” ☞최진실 유골함 도둑 더 선명한 화면 공개하기로 ☞홍일씨 “끝까지 옆에서 모시겠다” 울부짖어 ☞이탈리아 로또 2460억원 당첨자 나와 ☞[굿모닝 닥터] 내몸의 소리없는 침략자 ‘점’ ☞신종플루 휴교 도미노 비상
  • 장혁·오지호, KBS 액션사극 ‘추노’ 출사표

    장혁·오지호, KBS 액션사극 ‘추노’ 출사표

    장혁과 오지호가 액션사극에 출사표를 던졌다. 장혁과 오지호는 지난 13일 경기도 수원의 특수촬영장에서 KBS 2TV 특별기획드라마 ‘추노’ 첫 촬영에 돌입했다. 이날 태하 역을 맡은 오지호는 격렬한 전투 이후 피투성이에 누더기가 된 관복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해 관노로 추락해 쫓기는 신세가 된 장수를 열연했다. 또 장혁은 양반 출신이지만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 노비 때문에 패가망신하고 노비 추격자로 거듭난 대길 역을 맡아 액션 장면에서도 대역 없이 와이어와 고속 촬영 등을 거뜬히 소화했다. 장혁 오지호 외에도 영화 ‘국가대표’의 히어로 김지석과 모델 출신 연기자 한정수 등이 ‘추노’에 캐스팅돼 촬영 일정을 앞두고 있다. 한편 장혁과 오지호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속에 화려한 영상미와 거대한 스케일을 담은 ‘추노’는 올 10월 방송될 예정이다. 사진제공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객원칼럼] 광대를 위한 변명/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객원칼럼] 광대를 위한 변명/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당신하고 당신 딸들은 정말 피붙이인가요? 딸들은 내가 진실을 말한다고 매질을 하려고 대들고, 당신은 내가 거짓말을 하면 매질한다고 으름장을 놓거든요. 말을 안 하면 말을 안 한다고 매 맞을 테지? 그러니 이젠 무슨 짓을 해먹든 바보광대는 면해야겠어.”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 나오는 대사다. 왕에게 이렇게 직설적인 언어를 쏟아부어도 목이 잘리거나 저잣거리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화자(話者)가 바로 광대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대사는 대개 썰렁하다. 그 썰렁함이 객석으로 번져서 관중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관중은 깨닫는다. 광대는 바보나 미치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 비극의 양쪽 끝으로 치닫고 있는 극중 인물들 중에 오직 광대만이 제정신이라는 사실을. 이 시대의 출중한 광대들이 대거 동원된 한 편의 연극이 여름의 한국 논단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유통업자가 “악의적 발언과 MBC ‘PD수첩’의 왜곡 보도로 매출액이 감소한 데 대해 3억원을 배상하라.”며 영화배우 김민선씨와 MBC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이어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광우병과 관련한 연예인의 발언을 문제 삼는다. “김민선의 발언은 과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지 않은 주장이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에 다른 배우가 나타나서 반박을 한다. 이때, 셰익스피어극 광대의 그것처럼 직설적인 대사를 주로 쓰는 보수논객이 갑자기 등장한다. 대사는 이렇다. “지금까지 등장한 배우들은 사회적 의견을 개진할 지적 수준이 안 된다.” 무대 뒤에서 숨죽여 바라보고 있던 또 다른 남자배우가 나선다. 그는 이른바 국민배우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지적수준’ 사행시로 논객의 발언을 풍자한다. 가슴 아프다. 한국 보수의 천박함과 인색함이여. 광대들을 적으로 돌리다니. 너무 둔감한 것인가. 아니면 오버하는 것인가. 언젠가는 미네르바라는 이름의 ‘인터넷 광대’를 단죄한다고 해서 웃음도 안 나오는 희극을 연출하더니, 이제는 진짜 본물(本物) 광대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쇠고기 수입업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 소동은 나라에도 정부에도 보수진영에도 한나라당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헛다리 짚기다. 사법적인 판단은 사법부에서 내릴 일이다. 그러나 이 소동이 촛불집회, 노무현 대통령 서거, 쌍용차 사태 등을 겪으면서 이제 겨우 사회 갈등의 불씨를 수습하고 있는 한국사회에 기름을 확 부어버리는 비극이 될까 걱정이다. 연극에 광대가 필요하듯 사회에도 광대의 역할이 있다. 그들은 우리를 기쁘게 하고, 우리를 쉬게 하고, 우리 대신 부상(浮上)하고 우리 대신 추락한다. 이런 의미에서 광대들이 가지는 표현의 자유는 일반인의 그것보다 훨씬 더 넓게 보장되어야 한다. 광대의 가장 큰 존재 의미가 풍자(諷刺)이기 때문이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풍자를 말하는 자 죄 없으며 이를 듣는 자 훈계로 삼을 가치가 있다.”라고 했다. 안동의 하회탈춤 역시 양반에 대한 광대들의 질펀한 풍자가 압권이다. 하지만 하회탈춤이 지금까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막강한 세도가문 풍산 류씨의 재정지원 덕분이었다. 양반들을 풍자하는 연희(演戱)를 양반 자신들이 지원하는 넉넉한 사회정신을 우리 사회가 계승해야 한다. 광대의 말을 무시하다가 완전히 몰락한 리어왕에게 광대가 말했다. “금관을 줘버린 것은 그대 골통 속에 지혜가 없어서이지.”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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