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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현, ‘조선 뱀파이어’?…밤을 걷는 선비 캐스팅 유력

    김수현, ‘조선 뱀파이어’?…밤을 걷는 선비 캐스팅 유력

    김수현, ‘조선 뱀파이어’?…밤을 걷는 선비 캐스팅 유력 외계인에 이어 ‘조선 뱀파이어’? 배우 김수현이 조주희·한승희 작가의 만화 ‘밤을 걷는 선비’의 드라마 버전에 출연한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11일 머니투데이 스타뉴스에 따르면 김수현의 소속사인 키이스트가 자회사 콘텐츠K를 통해 만화 밤을 걷는 선비의 판권을 구입하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밤을 걷는 선비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역모 누명을 쓰고 몰락한 양반가의 딸이 남장을 한 채 책장사에 나섰다가 탁월한 외모의 신비한 선비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밤을 걷는 선비는 이 선비의 정체가 알고 보니 뱀파이어이며, 궁궐에도 사악한 뱀파이어가 존재한다는 특이한 설정으로 인기를 끌었다. 조주희·한승희 작가는 밤을 걷는 선비로 2012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우수만화 글로벌 프로젝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매체는 밤을 걷는 선비 드라마 판권을 확보한 콘텐츠K가 주연배우 후보군을 염두에 두고 제작준비에 한창이라고 전했다. 콘텐츠K가 키이스트 자회사이다 보니 김수현이 차기작으로 ‘밤을 걷는 선비’에 출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김수현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400년 전 조선에 불시착한 외계인으로 출연, 여성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김수현은 영화 ‘도둑들’,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새로운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김수현은 ‘별에서 온 그대’가 종영되고 난 뒤 휴식을 취하면서 천천히 차기작을 고를 전망이다. ‘밤을 걷는 선비’가 후보군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만 아직 구체적인 것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매체는 전했다. 김수현의 소속사 키이스트 역시 한 매체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은 출연 중인 ‘별에서 온 그대’에 집중할 때”라면서 “많은 곳에서 출연 제안을 받았고 지금도 제안이 들어오고 있지만 차기작을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소속사는 “작품을 검토 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드라마를 마친 후에야 (차기작) 윤곽이 나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밤을 걷는 선비’ 드라마화…김수현 ‘조선 뱀파이어’ 되나

    ‘밤을 걷는 선비’ 드라마화…김수현 ‘조선 뱀파이어’ 되나

    ’밤을 걷는 선비’ 드라마화…김수현 ‘조선 뱀파이어’ 되나 외계인에 이어 ‘조선 뱀파이어’? 배우 김수현이 조주희·한승희 작가의 만화 ‘밤을 걷는 선비’의 드라마 버전 출연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11일 머니투데이 스타뉴스에 따르면 김수현의 소속사인 키이스트가 자회사 콘텐츠K를 통해 만화 밤을 걷는 선비의 판권을 구입하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밤을 걷는 선비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역모 누명을 쓰고 몰락한 양반가의 딸이 남장을 한 채 책장사에 나섰다가 탁월한 외모의 신비한 선비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밤을 걷는 선비는 이 선비의 정체가 알고 보니 뱀파이어이며, 궁궐에도 사악한 뱀파이어가 존재한다는 특이한 설정으로 인기를 끌었다. 조주희·한승희 작가는 밤을 걷는 선비로 2012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우수만화 글로벌 프로젝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매체는 밤을 걷는 선비 드라마 판권을 확보한 콘텐츠K가 주연배우 후보군을 염두에 두고 제작준비에 한창이라고 전했다. 콘텐츠K가 키이스트 자회사이다 보니 김수현이 차기작으로 ‘밤을 걷는 선비’에 출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김수현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400년 전 조선에 불시착한 외계인으로 출연, 여성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김수현은 영화 ‘도둑들’,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새로운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김수현은 ‘별에서 온 그대’가 종영되고 난 뒤 휴식을 취하면서 천천히 차기작을 고를 전망이다. ‘밤을 걷는 선비’가 후보군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만 아직 구체적인 것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매체는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수현, 이번엔 ‘꽃미남 조선 뱀파이어’?…밤을 걷는 선비 캐스팅설

    김수현, 이번엔 ‘꽃미남 조선 뱀파이어’?…밤을 걷는 선비 캐스팅설

    외계인에 이어 ‘조선 뱀파이어’? 배우 김수현이 조주희·한승희 작가의 만화 ‘밤을 걷는 선비’의 드라마 버전 출연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11일 머니투데이 스타뉴스에 따르면 김수현의 소속사인 키이스트가 자회사 콘텐츠K를 통해 만화 밤을 걷는 선비의 판권을 구입하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밤을 걷는 선비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역모 누명을 쓰고 몰락한 양반가의 딸이 남장을 한 채 책장사에 나섰다가 탁월한 외모의 신비한 선비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밤을 걷는 선비는 이 선비의 정체가 알고 보니 뱀파이어이며, 궁궐에도 사악한 뱀파이어가 존재한다는 특이한 설정으로 인기를 끌었다. 조주희·한승희 작가는 밤을 걷는 선비로 2012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우수만화 글로벌 프로젝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매체는 밤을 걷는 선비 드라마 판권을 확보한 콘텐츠K가 주연배우 후보군을 염두에 두고 제작준비에 한창이라고 전했다. 콘텐츠K가 키이스트 자회사이다 보니 김수현이 차기작으로 ‘밤을 걷는 선비’에 출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김수현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400년 전 조선에 불시착한 외계인으로 출연, 여성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김수현은 영화 ‘도둑들’,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새로운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김수현은 ‘별에서 온 그대’가 종영되고 난 뒤 휴식을 취하면서 천천히 차기작을 고를 전망이다. ‘밤을 걷는 선비’가 후보군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만 아직 구체적인 것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매체는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어린이 책꽂이]

    곰의 노래(벵자맹 쇼 지음, 염명순 옮김, 여유당 펴냄) 꿀벌을 쫓다 북새통 같은 도시 한복판으로 흘러들어온 아기 곰. 아기 곰의 앙증맞은 엉덩이를 쫓아 오페라극장으로 뛰어든 아빠 곰. 한껏 차려입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혼비백산한다. 극장 지붕 위에서 벌을 치는 프랑스 파리오페라극장을 배경으로 한 섬세한 필치의 유머 넘치는 그림책. 2013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에 선정됐다. 1만 2000원. 번개 머리 선생님(김란주 지음, 황난희 그림, 뜨인돌어린이 펴냄) 아프리카 사람처럼 번개머리를 하고 나타난 2학년 1반 홍두식 선생님. 교장 선생님은 당장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선생님을 자르겠다고 성화다. 하지만 아이들은 진심 어린 사랑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선생님을 위해 교장 선생님의 앞을 막아서는데….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9000원. 야만의 거리(김소연 지음, 창비 펴냄) ‘명혜’, ‘꽃신’ 등 깊이 있는 역사동화를 써온 김소연 작가가 처음 펴낸 청소년 소설. 1920년대, 신분제가 폐지됐지만 양반 아버지와 몸종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방황하는 동천은 소학교 일본인 선생의 격려에 바다 건너 일본으로 향한다. 하지만 새로운 문물과 빛나는 미래를 꿈꾸던 그의 앞에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등 야만의 거리가 펼쳐진다. 1만 2000원.
  • 경북 종가음식 요리책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경북도가 종가(宗家) 음식 요리서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한다. 4일 경북도에 따르면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온주법 등 경북이 보유한 3대 요리서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하기로 했다. 지역 종가문화 명품화 프로젝트의 하나로, 종가문화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도는 올해 종가음식 요리서의 유산적 가치에 대한 학술연구를 진행하고, 국내외 사례 비교 연구 등을 통해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를 작성한다. 내년 하반기에는 문화재청에 등재를 신청할 계획이다. 이어 문화재청이 2016년 상반기쯤 유네스코에 등재를 신청하면 2017년 상반기에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음식디미방은 약 340년 전 장계향 선생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조리서이다. 조선 중~말엽 경상도 지방의 가정에서 실제 만든 면병류, 어육류, 주류, 초류 등 146가지의 손님 접대용 요리비법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수운잡방은 16세기 안동 사대부인 김유가 한문으로 쓴 요리책으로 음식디미방보다 100여년 앞서 발간됐으며 조선시대 양반가의 음식문화를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온주법은 의성김씨 종가에서 내려오는 44종류의 술 제조 기법을 기록한 책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요리서가 세계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린 경우는 없다”면서 “요리서들과 함께 1800년대 말의 문헌으로 상주지방 반가의 조리책을 필사한 ‘시의전서’도 등재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출세 욕구에 엘리트층까지 확산… ‘공부의 신’ 알고 보니 ‘커닝 신’

    [주말 인사이드] 출세 욕구에 엘리트층까지 확산… ‘공부의 신’ 알고 보니 ‘커닝 신’

    1595년(선조 28년) 12월 치러진 문과 과거시험에서 온양에 사는 이응길은 16세로 소년 급제했다. 합격자를 발표하던 날 시험관은 그를 불렀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시험관이 답안지 뜻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설명하지 못했다. 시험 볼 때 초집(抄集·경서 등에서 필요한 부분을 뽑아 만든 요약집)을 옷 속에 숨겨 몰래 가져가 답안지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이에 선조는 이응길의 급제를 취소했고, 시험 감독관이었던 감찰을 파직했다. 이처럼 ‘커닝’(cunning)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든 나타났다. 순조실록을 보면 1818년 성균관 사성 이형하가 유생들의 부정행위 수법을 8가지로 요약한 내용을 담은 상소를 순조에게 올리기도 했다. 술차작(借述借作·남의 글을 베껴 쓰거나 남이 대신 글을 지어 써줌), 수종협책(隨從狹冊·수종이 책을 들고 따라가거나 책을 들고 가 베껴 씀), 정권분답(呈券紛遝·답안지를 바꿔 제출함), 외장서입(外場書入·시험장 바깥에서 답을 미리 써 가져감), 혁제공행(赫蹄公行·시험관이 문제를 응시자에게 미리 가르쳐줌)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폐단 때문에 과거제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양반들의 거센 반대로 개혁은 이뤄지지 못했다.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커닝 수법은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커닝 페이퍼를 OHP(스크린 위에 영상을 확대 투영할 수 있는 광학계 투영기기) 필름에 작성해 몰래 가져가는 건 이미 고전이 됐다. 일명 ‘삐삐’를 이용해 답안을 전송하는 것을 시작으로 휴대전화, 무전기, 초소형 카메라, 해킹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부정한 수법으로 출세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은 셈이다. 아울러 과거엔 꼼수를 부리려는 고만고만한 성적의 대학생이나 수험생들이 커닝을 기웃거렸다면, 최근에는 엘리트층까지 커닝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10일 연세대 법학대학원 1학년 A(25)씨는 교수 연구실에 잠입했다. 교수가 사용하는 컴퓨터에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시험지를 빼내기 위해서였다. A씨는 순찰하던 경비업체 직원에게 붙잡혔고 영구제적 처분을 받았다. 이 학생은 이전 학기에 연세대 법학대학원에서 유일하게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은 ‘공부의 신’으로 유명했다. 비슷한 사건은 제주대 수의학과에서도 발생했다. 이 학교 수의학과 3학년 B(26)씨는 지난해 4월 담당 교수 연구실에 침입해 책상에 놓여 있던 시험지 사본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3학년 본과에 진학한 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던 비결은 커닝이었던 셈. B씨는 교수가 설치한 몰래카메라에 덜미가 잡혀 1년 유급 판정을 받았다. 커닝은 학생들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커닝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한국농어촌공사 승진시험 비리 혐의자가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공기업 승진시험을 내는 한국생산성본부의 직원 엄모(57)씨가 2008년 3차례에 걸쳐 농어촌공사 소속 윤모(54)씨 등 3명에게 수천만원을 받고 승진시험(3급) 문제 등을 넘겨준 것. 문제지를 산 사람들을 포함해 연루된 사람만 32명에 이른다. 커닝이 만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성공을 최우선 가치를 두는 사회 분위기를 꼽는다. 커닝으로 적발됐을 때 처벌에 대한 두려움보단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크다는 의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소위 말하는 ‘스펙’과 1등을 강조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경쟁이 지나치게 가열되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엘리트층의 커닝이 확산된 이유에 대해 “엘리트 집단은 성공에 대한 욕구가 심해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더 완벽해지고자 커닝을 하는 것”이라면서 “화이트칼라 범죄가 일어나는 심리와도 유사하다”고 말했다. 안종배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장도 “우리나라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고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면서 “이익을 위해 범죄를 저질러도 이를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했다. ‘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의 저자인 정구선 성결대 교수는 “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곤장 100대나 군인으로 차출됐지만, 과거급제가 유일한 출셋길이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근절하기엔 역부족이었다”면서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출세 지상주의가 커닝이 만연하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능·첨단화되는 커닝을 막고자 시험출제 기관들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초소형 카메라를 도입해 조직적으로 커닝하는 사례가 빈발하자 YBM 한국토익(TOEIC)위원회는 금속탐지기를 도입했다. 또 정·오답 편차와 답안 유사도를 비교해 사후 적발 시스템도 마련했다. 이 밖에도 ▲부정행위 특별조사팀 운영 ▲고사장 내 휴대전화 수거 ▲전국 고사실 수험자의 무작위 재배치 등 다양한 ‘부정행위 방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역시 금속탐지기를 복도 감독관에게 보급했다. 앞서 2004년 치러진 수능 시험에서 수험생 374명이 집단으로 휴대전화 문자 전송 시스템을 이용해 답안을 공유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2006년부터는 휴대전화를 아예 고사장에 가지고 올 수 없게 했다. 공무원 시험을 관리하는 안전행정부도 수험생이 귀마개, 모자 착용 시 시험감독관이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있다. 전자계산기 허용과목(5급 기술 2차)은 수험생들이 직접 다른 수험생의 전자계산기를 초기화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으로 커닝을 방지하려는 노력도 있다. 강제적인 수법보단 수험생들의 양심에 기대는 것이다. 한동대는 1995년 개교부터 시험 무감독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1~4학년 학생 6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94%가 부정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98%는 앞으로도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답했다. 한동대 관계자는 “학생 스스로 양심을 지키며 무감독 시험을 하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팀 단위 프로젝트 활동 등을 통해 서로 경쟁자라는 인식이 아니라 협력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개천에서 용 나게 한 조선시대 과거제는 왕조 500년 이끈 힘

    개천에서 용 나게 한 조선시대 과거제는 왕조 500년 이끈 힘

    한영우(76) 서울대 명예교수는 조선시대 과거제도에 대해 “개천에서 용을 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주장해 왔다. 조선은 능력을 존중하는 시험제도인 과거로 부단하게 계층의 순환을 이어 갔고, 문벌 독점과 횡포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500년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한 교수는 그 근거랄 수 있는 ‘과거, 출세의 사다리’(지식산업사)를 최근 완간했다. 4권으로 낸 책은 한 교수가 지난 5년간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만 4615명을 분석하고, 200자 원고지 1만 2000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원고로 추려 내놓은 역작이다. 1권은 태조~선조, 2권은 광해군부터 영조, 3권은 정조~철종, 4권은 고종 시대를 조명한다. 한 교수는 “통계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가운데 근거가 박약한 자료를 가지고 양반 특권층이 세습했다고 주장하거나, 최근 전산화된 급제자 명단인 ‘방목’만을 이용해 통계를 제시하면서 조선 사회의 폐쇄성과 경직성을 증명했다”고 꼬집었다. ‘방목’에는 급제자의 이름, 전력, 벼슬, 내외 4대조(직계 3대조와 외조), 성관(본관)이 적혀 있다. 급제자의 일부만 기록한 데다 이마저도 자세히 적은 것이 아니라 자료로서 한계가 크다. 보통 본관에 따라 양반과 중인, 평민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를 급제자의 출신으로 적용하기에는 위험하다. 고관대작에 올랐다가도 왕대가 바뀌면서 평민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중인 가문에서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경우 스스로를 양반이라고 자처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급제자들을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실록’과 ‘족보’, 서얼의 역사를 기록한 ‘규사’, 향리 역사를 담은 ‘연조귀감’,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청구씨보’와 ‘만성대동보’,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낸 ‘전주이씨과거급제자총람’까지 살폈다. 연구 결과 조선 초기만 해도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이 전체의 40~50%에 이르렀다. 16세기 후반 이후부터 양반의 벼슬 세습이 굳어졌지만, 18세기 중반 이후 양반 이외 출신들의 급제 비율이 다시 높아져 정조 53.02%, 순조 54.05%, 헌종 50.98%, 철종 48.19%를 보였다. 고종 대에는 이 비율이 58.61%에 달했다. 양반이라는 특권층이 권력과 부를 세습적으로 독점하고 평민과 노비를 지배했다는 통념을 뒤집는 자료다. “조선 사회는 폐쇄성과 탄력성, 개방성이 교차하는 이중적인 사회였고, 이는 과거제도로 가능했다”는 한 교수는 “과거제도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정승과 판서에 오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던졌다”고 평가했다. 노학자의 공력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옛말이 돼 버린 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씨줄날줄] 퇴계 종가의 초저녁 제사/최광숙 논설위원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 중기만 해도 조상의 제사를 아들과 딸이 돌아가면서 지내는 ‘윤회봉사’(輪廻奉祀)를 했다. 당연히 재산 상속도 아들 딸 구분 없이 균등하게 이뤄졌다. 그러다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신봉한 성리학이 자리잡게 되면서 남녀 차별이 생겼다. 장남이 제사를 계승하고, 재산 상속의 우선권과 독점권을 갖게 된 것이다. 조선 후기 학자인 윤증(1629~1714)의 아버지 윤선거(1610~1669) 남매의 재산상속문서인 ‘윤선거 남매 화회문기’를 보면 “가산의 20분의1을 봉사조(제사를 지내기 위한 별도의 재산 항목)로 따로 떼어놓는다. 제사와 봉사조 재산은 봉사 자손이 주관한다”고 적혀 있다. “남녀 간, 장남과 차남 간 제사의 윤회를 금지하고 종가에서 주관한다”고 했다. 우리 민족은 제사를 중시한다. 일반 가정에서 4대 고조부까지 제사를 지내는 ‘4대 봉사’는 사실 조선시대만 해도 높은 벼슬을 지낸 양반들만 했고, 일반 서민들은 부모 제사만 지냈다.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서민들이 양반 흉내를 낸 것이 4대 봉사라 한다. ‘주자가례’ 등 제례 관련 예서(禮書)에 묘사된 제사상 차림도 그야말로 소박한 제물들로 차려져 있다. 그러던 것이 유교 문화가 정착돼 조상 제사가 가문의 위세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수단으로 여겨지면서 제물과 제사의 절차가 복잡해지고 화려해졌다고 한다. 조선 중기 대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의 종가가 수백년 동안 자정을 넘겨 지내던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초저녁에 지내기로 했다. 불천위는 큰 공이 있거나 도덕성 및 학문이 높아 4대가 지나도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들의 신위를 말한다. 그동안 퇴계 종가에서는 제사 시간 변경을 두고 “예법을 정립한 퇴계 종가에서 이를 저버릴 수 없다”는 주장과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의견이 맞서 왔다. 종가의 맏형 격인 퇴계 종가에서 제사 간소화의 흐름에 적극 나선 만큼 우리의 제사 풍습에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제사 횟수도 줄고 제사상 차림도 간소해지는 추세다. 집이 아닌 절에서 제사를 모시거나 여행지에서 지내는 ‘콘도 제사’와 ‘호텔 제사’도 늘고 있다. 퇴계는 정신이 온전치 않던 두번째 부인 권씨가 제사상 음식에 먼저 손을 대도 “할아버님께서도 손자며느리를 귀엽게 여기실 터이니 노여워하지 않을 거다”며 지혜롭게 수습했다. 짜여진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 중심으로 예를 실천한 분이 바로 퇴계다. 이번 결정에 퇴계는 “이제야 후손들이 내 뜻을 제대로 아는구나”하며 흐뭇해할 것 같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김준의 바다 맛 기행] (1) 매생이 봄을 품다

    [김준의 바다 맛 기행] (1) 매생이 봄을 품다

    제철 해산물은 흔히 보약에 비유됩니다. 영양의 보고인 데다 입맛까지 돋우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제철 해산물만 잘 알아도 식탁은 한결 풍성하고 건강해질 겁니다.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이자 해양학자인 김준(51) 박사가 제철 해산물에 담긴 이야기들과 음식궁합, 맛집 등에 대한 정보를 격주 목요일마다 독자 여러분의 식탁으로 배달할 예정입니다. 섬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엿보고, 바다와 사람의 맛있는 만남을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매생이는 남도의 후미진 선창에 자리를 잡는다. 술꾼들이 옴팡진 단골집에 똬리를 틀 듯 그렇게. 그러고서 북서풍 끝자락을 붙잡고 봄의 불씨를 지핀다. 하지만 살을 에는 추위에 더욱 잘 자라고 입에 척척 달라붙는다. 그렇다고 아무 선창이나 기웃거리지 않는다. 외골수로 단골집만 찾듯 바닷물이 잘 통하고 유속이 느린 청정해역에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바로 뜯은 생생한 이끼’가 아니던가. 동해안은 물론 서해안에서도 보기 힘들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전남 완도, 장흥, 고흥, 강진, 해남 일대의 연안에서 볼 수 있는 녹조식물문의 매생이과에 속하는 일년생 해조이다. 매생이 양식은 김 양식과 달리 큰 목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 먼 바다까지 나가지 않아도 된다. 양식장의 관리부터 채취, 가공을 오롯이 인간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 몸에 좋다는 입소문에 냉장기술까지 발달해 비싸든 싸든 판로를 걱정하지 않아서 좋다. 섬마을 노인들에게 이보다 효자가 없다. 손자보다 반가운 것이 겨울철 매생이다. 그런데 금년에 작황이 심상찮다. “뭔 일인지 모르겠어라. 양은 작년만 못한디. 값은 작년보다 떨어졌응께.” 완도군 고금면 넙도리에 사는 오보선(64)씨는 매생이를 뜯다 말고 이제 대책을 세울 때가 됐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기후 변화와 연안 오염으로 매생이도 ‘안녕’하지 않을 날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매생이는 김이나 미역처럼 인간의 힘으로 포자(씨앗)를 붙일 수 없다. 하지만 매생이가 머물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 준다면 녀석들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욕심을 부리는 것은 어민이고 매생이를 탐하는 인간들이다. ‘자산어보’는 매생이를 매산태(?山苔), ‘신동국여지승람’은 매산(?山)이라 했다. 손암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통해 ‘누에 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빽빽하다. 길이는 몇 자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미끄러우며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적었다. 그런데 유배지 흑산에 남도의 선창처럼 옴팡진 바다가 있었을까. 몇 자(1자 30.3㎝)에 이른다는 것이 아무래도 다른 해조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손암의 정배지였던 흑산도나 우이도에서 매생이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전라도 남쪽 어민들의 겨울 밥상에서나 구경할 수 있던 매생이가 ‘국민음식’으로 자리한 이유가 뭘까. 매생이는 패스트 푸드와 달리 칼로리는 낮고 영양소가 풍부하다. 철분, 칼슘, 칼륨, 엽산, 요오드 등 각종 무기염류와 비타민 A, 비타민 C 등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요소들이 풍부하다. 뼈를 튼튼하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키기 때문에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좋다. 또 피부를 맑게 하고 위나 장의 점막을 강화하기 때문에 여성과 노인에게도 좋다. 결국 가족 모두에게 권할 수 있는 식품이라는 결론이다. 매생이가 서울 사람들 밥상에 오르기 전 한정식집에 먼저 소개됐다는 것이 호사가들의 이야기다. 당시 정치인과 고위공무원들이 즐겨 먹었다고 한다. 입맛 하면 또 ‘공무원 입맛’이 최고 아닌가. 낯선 곳에서 끼니를 해결할 곳을 찾지 못할 때 관공서 주변의 식당을 찾는다면 실패할 확률이 낮다. 어디에 그런 맛과 멋이 숨어 있었을까. 후루룩, 후루룩. 양반이든 상놈이든 그릇에 코를 박고 먹어야 한다. 젓가락질은 사양하고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 담아야 한다. 코가 석 자라도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 맛있게 먹기 어렵다. 입안에서 느끼는 뜨겁고 물컹한 것이 오장육부를 감싸며 몸을 덥힌다. 엄동설한에 바다를 품듯 말이다. 매생이는 국이라 하지 않고 ‘탕’(湯)이라 부른다. 국의 높임말이다. 음식에도 격이 있다. 홍어도 ‘홍어탕’이라고 하듯이. 매생이를 한주먹 쥐고 곱게 빗어 넘기며 ‘재기’(덩이)를 만들던 한 아낙이 “매생이 박사가 뭔 김을 이렇게 붙여 놨당가”라며 오씨를 쳐다봤다. 옆에서 매생이를 씻던 다른 아낙이 “박사니까 그 정도지 다른 집은 김도 매생이도 없당께”라며 말을 받았다. 오씨는 말이 없다. 약산도, 고금도 일대의 옛날 지주식 김양식장은 모두 매생이밭으로 바뀌었다. 특히 오씨가 사는 작은 섬마을은 매생이 덕에 유명해진 마을이다. 마을에서는 그를 ‘매생이 박사’라고 부른다. 그는 객선도 닿지 않는 열댓 가구 사는 작은 섬마을을 매생이 하나로 완도군에서 최고 소득을 올리는 섬으로 바꾸었다. 김양식을 할 때는 매생이가 ‘웬수’였다. 이제 매생이가 주인공이니 김이 ‘웬수’다. 오전 내내 뱃전에 가슴을 붙이고 뜯어온 매생이가 예년 같지 않고 김이 많이 섞였다. 양식시설이 물에 잠기는 정도에 따라 김, 매생이, 파래 등이 각각 붙는다. 사실 김이 약간 섞인 매생이가 맛이 있다. 하지만 도회지 사람들은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어민들이 김발에 약을 쳐서 매생이를 제거하고 시꺼멓고 깨끗한 김을 만들어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젠 반대로 김이 전혀 섞이지 않는 매생이를 원한다. 가슴을 뱃전에 붙이고 엎드려서 바다에 펼쳐진 발을 들어 올려 한 올 한 올 훑어서 채취하는 것이 매생이다. 어민들 가슴에 멍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대한민국에 이보다 가슴 아프게 번 돈이 있을까. 일이 끝나면 아무리 추워도 등에 김이 모락모락, 얼굴에는 땀이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손이 시리고 발은 저린다. 밥상 위 매생이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 고충을 알까. 그런데 사람보다 먼저 매생이를 탐하는 놈들이 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매생이를 사람만 탐하라는 법이 있던가. 오리들이 나누어 먹자고 야단이다. 이들의 먹성을 볼라치면 장난이 아니다. 혼자 독식하겠다고 나온다. 급기야 어민들이 총을 들고 나섰다. 오리와 전쟁이다. 탕! 탕! 탕! 상인에게 넘겨줄 재기를 만드는 내내 총소리가 울렸다. 글 사진 김준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joonkim@jeri.re.kr ◆어떻게 먹을까 →요리 매생이를 흐르는 물에 잘 흔들어 바구니에 건져 낸다. 굴은 소금을 살짝 뿌려 찬물에 씻어 물기를 뺀다. 냄비나 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굴이 익어 갈 때까지 볶는다. 이때 대파 흰 부분을 다져서 넣는다. 물을 약간 넣고 굴을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매생이와 국간장을 약간 넣고 한소끔 다시 끓인다. 매생이탕의 핵심은 ‘덕음’이다. 소금으로 나머지 간을 하고 한 번 더 끓인다. 너무 오래 끓이면 특유의 향이 없어지고 물처럼 녹아 없어지므로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비릿함을 싫어한다면 굴 대신 소고기를 넣기도 한다. 소고기는 넣기 전에 미리 볶아야 한다. 명절에 먹고 남은 떡을 썰어 넣으면 매생이 떡국이 된다. 남녘에서는 매생이탕을 걸쭉하게 끓인다. 매생이영양죽은 쌀죽을 끓이다 마지막에 매생이를 넣고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물이나 육수는 적게 잡아서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노인들에게는 골다공증 예방에 좋은 매생이영양죽과 혈압 안정에 좋은 매생이전이 좋다. 아이에게는 매생이 수제비, 매생이칼국수가 인기다. 이외에도 매생이김치, 매생이무침 등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최근에는 매생이 파스타, 매생이 피자도 등장했다. 남쪽 5일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먹어본 사람이 찾던 매생이는 이제 겨울철을 대표하는 국민음식으로 식탁에 자리하고 있다. →음식궁합 1. 매생이탕을 끓일 때 다시마로 국물을 내면 좋다. 2. 미네랄이 풍부한 청정해역의 매생이와 피부에 좋은 바다의 우유 굴은 환상콤비다. →매생이 선별요령 매생이는 파란색보다는 검푸른 색깔이 나는 것이 좋으며 들어 올렸을 때 끊어지지 않고 길게 매달리는 것이 좋다. →맛집 해태식당(061-43402486) 강진군 강진읍 평화식당(061-867-1090) 장흥군 대덕읍 동산회관(061-532-3004) 해남 송지면 정애네집(062-234-4398) 광주광역시 충장로
  • 엄앵란 폭로, “남편 신성일, 아들 결혼식 땡전 한 푼 안냈다” 분노

    엄앵란 폭로, “남편 신성일, 아들 결혼식 땡전 한 푼 안냈다” 분노

    배우 엄앵란이 남편 신성일과 아들과의 관계에 대해 폭로했다. 엄앵란은 4일 오후 방송된 MBN ‘동치미’에서 “남편 신성일이 아들 결혼에 땡전 한 푼 안 내놓았다”고 밝혔다. 이날 엄앵란은 아들 결혼식에 대해 “아들이 꽤 나이들어 장가를 가게 됐다. 아버지로서 남편에게 결혼비용을 기대했다. 하다못해 10분의 1 이상은 보태줄 줄 알았다”며 “집을 따로 살아서 그런지, 아들 결혼식에 한 푼도 안준 것 같다. 그렇다고 무조건 돈을 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냥 넘어갔다”고 털어놨다. 이에 MC 박수홍은 “(신성일에게) 돈 좀 내라고 이야기는 하셨냐”라고 물었고, 엄앵란은 “나는 남편 말에 따지는 법이 없다. 남편 하는 일은 그냥 일단 패스시킨다.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면 돈을 내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엄앵란은 양택조가 “신성일 씨가 동료 배우들에게는 술을 잘 샀다. 나도 술을 어마어마하게 얻어먹었다”라고 밝히자 “그 양반, 나가면 그래요”라고 받아쳐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또 엄앵란은 “아들과 아버지 사이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친구 같아 보일 때도 있지만, 권위적인 모습을 보일 때는 ‘부자지간에 저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부자사이다”라고 덧붙였다. 엄앵란 폭로를 접한 네티즌은 “엄앵란 폭로..해도해도 너무 했네”, “엄앵란 폭로..엄앵란 말만 들어보면 신성일이 나쁜 사람이다”, “엄앵란 폭로..이렇게까지 폭로 할 필요 있을까?”, “엄앵란 폭로..말도 안되는 가정사”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MBN (엄앵란 폭로)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다산의 ‘목민심서’ 당대에 유통 안된 이유는

    다산의 ‘목민심서’ 당대에 유통 안된 이유는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강명관 지음/천년의상상/548쪽/2만 5000원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의 사상은 한마디로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개혁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표 저작인 ‘목민심서’도, ‘흠흠신서’도 당대에 인쇄돼 유통된 것이 아니었다. 사서오경과 관련된 그의 모든 저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약용의 저작은 참으로 중요하지만 당대 민중에게는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지식인 내부에서도 아주 가까운 극소수 지인들 사이에서만 겨우 읽히는 정도였다. 이게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책의 존재가 중요한가, 책의 유통이 더 중요한가. 책이 확산되려면 일정한 전문적 판매 공간이 필요하다. 중국은 송대에 민간 출판업자와 서적상이 등장했고 명대를 거쳐 청대에는 베이징에 유리창 서점가 같은 거대한 서적 시장이 출현했다. 일본도 임진왜란 때 약탈해 간 조선의 금속활자와 전적(典籍)을 밑천 삼아 도쿠가와 막부 이후 출판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조선에는 서점이 없었다. 조선시대 책의 유통 구조는 그야말로 원시 수준이었다. 가장 수요가 많았던 책은 양반들의 출세 및 교양과 관련된 사서삼경 또는 사서오경이었다. 그 외에 농사서, 의학서 등 실용적인 책들도 꽤 간행됐다. 훈민정음, 곧 한글 서적은 한문을 번역한 형태로만 존재했다. 온전히 한글로만 쓰인 책은 임진왜란 후에나 나타났다. 그때까지 한국어로 사유한 책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한글 창제와 금속활자가 조선의 거창한 문화적 사건이긴 했으나 그것이 국문 서적의 인쇄와 출판, 민중에게 지식을 보급하는 일로 연결되지 못한 주된 원인이 지식의 확산을 경계한 지배계층, 즉 왕족과 양반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책의 확산을 가로막은 다른 요인은 천문학적 수준의 책값이었다. 대학이나 중용 같은 책 한 권을 사려면 상면포(보통 품질의 무명) 3~4필을 주어야 했다. 참고로 오늘날 안동포 1필의 가격은 60만~70만원이다. ‘주자대전’ ‘주자어류’는 오승목(고급 품질의 무명) 50필이나 된다. 비싸도 너무 비싸서 관직을 보유한 양반이나 지주 계층만이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탄생, 유통에 천착한 이 책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등 조선을 대상으로 한 책들을 다수 펴낸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가 썼다. 고려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그것보다 훨씬 앞서 발명됐는데도 왜 한국의 출판과 인쇄, 지식의 역사는 서양에 비해 크게 낙후됐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이 책은 출발했다. 두시언해는 중요한 책이지만 소수 문인들의 시세계에 영향을 준 정도다. 충(忠)·효(孝)·열(烈)을 강조하는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여러 차례 많은 수량이 간행돼 당대에 끼친 영향력을 기준으로 한다면 두시언해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런데 과연 어느 책이 더 중요한가. 저자는 이런 의문들을 품었고, 그에 답하기 위해 조선시대 책의 인쇄와 유통, 국가와 사회의 축조(築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책들에 대한 책 1호를 냈다. 조선의 인쇄·출판 문화와 관련해 앞으로 조선 전기에 대해 한 권, 조선 후기에 대해 두 권, 근대 계몽기(개항~1910년)에 대해 한 권을 더 낼 계획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서울광장] 갑오년 새해, 어떤 원칙과 신뢰를 지킬 것인가/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갑오년 새해, 어떤 원칙과 신뢰를 지킬 것인가/문소영 논설위원

    갑오(甲午)년이 밝았다. ‘갑오’에서 사람들은 120년 전 한반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1894년 2월 갑오농민운동을 떠올리기도 하고, 같은 해 7월 시작된 갑오경장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해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 하나가 더 있다. 6월에 발발한 청일전쟁이다. 세 개의 역사적 사건은 개별적으로 보이지만, 한 타래의 실처럼 연결되어 있다. 갑오년에 긴장하는 사람이 있는 연유는 2주갑을 맞는 120년 전 갑오년이 이후 조선의 운명을 뒤흔든 중요한 계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1894년 2월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에 지친 농민들은 분노해 1차 민란을 일으켰다. 고종은 민란의 원인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다. 농민들은 4월 2차 봉기했다. 외세배격과 탐관오리 응징, 대원군 복귀, 잡세 철회 등 12개의 폐정개혁안을 요구했으나 조정은 토벌하기로 마음 먹고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조선왕조실록에 고종은 영의정 심순택 등의 반대에도 청군을 요청하는 것이 무슨 대수냐는 태도를 취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고종은 갑신정변 이후 청과 일본이 서로 충돌을 막고자 1885년 톈진(天津)조약을 맺어 어느 한 나라에서 조선에 파병하면 다른 한 나라도 자동으로 파병할 빌미를 준다는 점을 간과했다. 청일전쟁으로 한반도는 전쟁터가 되고, 일본이 압승했다. 이에 일본은 1차 김홍집 내각을 세우고 과거제 폐지, 단발령 등 개혁을 강요했다. 그것이 갑오경장이다. 같은 시기에 첨단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은 죽창을 든 농민들을 섬멸했다. 당시 삼남지역의 선비와 양반도 수성대, 민포군 등을 구성해 농민 토벌에 힘을 합쳤다. 120년 전 갑오년이 주는 첫째 교훈은 정부의 결정이 항상 옳지도, 전지전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대 국가가 정부의 오류 가능성을 직시하고 국회와 법원을 두어 시스템으로 삼권 분립을 해놓은 이유다. 둘째 정부가 백성의 삶의 질과 부정부패를 개선하지 못하면 민심 이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셋째 스스로 해결해야 할 내부의 갈등을 외세의 개입을 통해 해결하려고 할 때 심각한 부작용에 직면하게 된다. 넷째 자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읽고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국가적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120년 전의 경장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꼭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성공하는 경장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120년 전 왜 실패했을까. 당시 개혁 드라이브는 단발령에 걸려 민심을 얻지 못한 탓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시대’와 ‘100% 대한민국’을 약속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 진정성을 믿고자 했다. 그러나 ‘내가 대통령이 돼 다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며 후보시절 약속했던 주요 공약들이 1년 만에 벽에 부딪히거나 무산됐다. 국가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공약을 강행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돼 지니계수가 커지고 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5년째 양극화가 진행돼 근로자의 48.8%가 연간 2000만원 미만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다. 대기업을 키워도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가 사라졌다. 삼성전자가 연간 40조원의 영업이익을 내지만, 그 혜택은 5만여명이 나누고 끝난다. 철도원의 연봉 7000만원이 질시와 분노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좋은 일자리가 늘어야 한다. 또한, 국정운영에서 헌법 1조 1항과 2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여론형성의 메커니즘을 설명한 ‘침묵의 나선이론’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면 사람들은 침묵하겠지만, 그 침묵이 정부에 찬성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까지 다 헤아려 정책을 펴는 100%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 symun@seoul.co.kr
  • 김병만 아내 언급, SBS 연예대상 소감 “가장 생각나는 사람”

    김병만 아내 언급, SBS 연예대상 소감 “가장 생각나는 사람”

    김병만 아내 언급이 화제다. 대상을 거머쥔 개그맨 김병만이 아내에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김병만은 지난 30일 서울 상암동 SBS 프리즘타워에서 열린 2013 SBS 연예대상에서 생애 첫 대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마무리했다. 이 가운데 김병만은 아내에 대해 솔직한 사랑 고백을 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만은 수상 소감 마지막 부분에서 “지금 이 순간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마누라다”며 “집에 있는 양반, 우리 행복합시다”라고 말하며 수줍은 사랑 고백을 했다. 수년 동안 대상 수상에 미치지 못했던 김병만이 생애 첫 대상을 차지한 순간 가장 생각난 사람은 아내였다. 김병만 아내에 대한 수상 소감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김병만 아내, 부럽다”, “김병만 아내, 행복한 남편 있어서 부럽다”, “김병만 알고보니 아내 바보네”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한편 이날 시상식에서 이경규와 강호동, 유재석 등 동료 연예인들이 모두 기립해 박수를 치며 김병만의 대상을 축하해 감동을 전했다. 사진 = SBS (김병만 아내 언급) 연예팀 chkim@seoul.co.kr
  • [2014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전당포/김아로미

    [2014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전당포/김아로미

    때 현대 곳 한적한 거리/ 전당포 안 등장인물 남자 40대 여자 30대 후반, 남자의 아내 노인 전당포 주인 손님 1 손님 2 제1장 배경은 한적한 거리이다. 무대에는 사막(絲幕)이 내려와 있고 사막(絲幕) 뒤로 상점의 흐릿한 불빛이 한번 반짝이다가 꺼진다. 남자와 여자가 무대 오른쪽 끝에서 등장한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걷는다. 여자의 시선은 앞을 보고 있으나 초점이 흐릿하다. 남자 길을 잃은 것 같지? 여자 무엇이 보이는지 자세히 말해 봐요. 내가 당신보다 훨씬 길눈이 밝잖아요. 남자 방금 들어선 골목 입구에는 작은 어린이집이 하나 있었지. 아까도 그랬던가? 여자 노란색 미끄럼틀이 있던가요? 남자 글쎄 노란색이었던가. 우리가 이미 지나온 길이지? 여자 아뇨. 이제야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아요. 그곳은 아주 오래된 곳이에요. 어렸을 때 몰래 담을 넘어 들어가선 친구들과 원형 그네를 타고 놀았죠. 남자 원형 그네? 여자 동그란 새장같이 생긴 그네 말이에요. 네 명이 들어가서 두 명씩 마주보고 앉으면 그 안이 꽉 차곤 했죠.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열에 여덟 번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그네를 밀어야 했어요. 남자 그 어린이집은 이제 막 지어진 새 건물이던데. 물론 어두워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말야. 여자 그네를 밀다가 심술이 나면 정글짐에 달려가 거꾸로 매달렸어요. 모든 게 거꾸로 보이곤 했죠. (사이) 아주 재미있었어요. 해본 적 있어요? (남자, 고개를 젓는다) 한참을 매달려 있으면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왔어요. 지나가는 발만 봐도 그게 아버지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죠. 왜냐하면 아버지의 구두는 아주 특별했거든요. (걸음을 멈춘다. 남자 또한 여자가 멈추자 함께 멈추어 선다) 목구멍이 간질거려요. 남자 감기에 걸리면 고생이야.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여자에게 둘러준다.) 여자 아뇨.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단 말이에요. 그게 갈색이었던가, 검은색이었던가. 남자 남성용 구두는 다 비슷하게 생겼지. 여자 아녜요. 그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구두였어요. 남자 그나저나 여기는 우리가 찾던 길이 아닌 것 같아. 점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 여자 좀 더 밝은 곳으로 나를 인도해 줘요. 그러면 뭔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두리번거리다가 왼쪽으로 퇴장.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린다. 사막(絲幕) 뒤에서 갑자기 조명이 밝아지더니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몇몇 사람들의 실루엣도 보이지만 그들은 거의 움직임이 없어 마치 물건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사막(絲幕) 뒤의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진다. 두 사람, 다시 오른쪽으로 처음처럼 입장한다. 남자 다시 그곳이야. 여자 정말요? 남자 응.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그 흔한 택시 한 대 지나다니지 않는군. 여자 원래부터 이 동네는 차가 잘 다니지 않아요.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꽤 오래 걸어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사이) 역시 여전하군요.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에요. 남자 당신 말이 맞다면 그 분식집은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여자 분식집이 아니라 문방구. 남자 그러니까 떡볶이를 파는 그 문방구 말야. 여자 무엇이 보이는지 내게 자세히 말해 봐요. 남자 우리가 들어온 골목 입구에는 어린이집이 하나 있었고. 여자 노란색 미끄럼틀이었나요? 남자 어두워서 보지 못했어. 여자 당신은 너무 쉽게 지나치는 경향이 있어요. 그건 중요한 문제예요. 남자 (여자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날씨가 몹시 쌀쌀해. 여자 목도리를 다시 가져가도록 해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더듬거린다. 여자 캄캄해서 그런지 이 정도도 잘 보이지가 않네요. 남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커튼 뒤의 불빛 하나가 유난히 반짝 들어온다. 사막(絲幕) 뒤에 있던 남자의 그림자는 사라진 뒤다. 남자 (사이) 요즘엔 깔끔한 게 제일이지. 떡볶이도 마찬가지야. 당신이 그렇게 말하던 그 떡볶이, 지금 먹어보면 오히려 실망만 클걸. 나도 어렸을 적 먹던 삼양라면 맛을 잊지를 못하지. 하지만 정작 슈퍼에 가서 사오는 건 나가사끼 짬뽕이라고. 여자 사실 그건 딱히 맛있지는 않아요. 남자 당신은 나가사끼 짬뽕이 아니라 너구리를 더 좋아하지. 여자 떡볶이 말예요. 남자 그래.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어. 여기는 (둘러본다) 아무것도 없어. 여자 떡볶이는 상관없어요. 그저 당신과 함께 와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바로 이곳을 말예요. (사이) 좀 더 밝을 때 왔더라면 흐릿하게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남자 추억이 특별해지는 건 마음에서 잊고 났을 때뿐이지. 여자 그래요. 하지만 나처럼 잊어버릴 일만 남은 사람에게 무엇을 추억한다는 건 말예요.(남자, 말을 자른다) 남자 지금 당신 입장에선 이게 꽤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아. 내가 그걸 이해하려 무척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줬으면 해. 그치만 안타깝게도 여기에 당신이 찾고 있는 거라곤 없어. 이미 우린 같은 자리를 네 번이나 뱅뱅 돌고 있다고. (여자의 손을 잡는다) 꽁꽁 얼었군. 여자 우린 같은 자리를 헤매고 있는 게 아녜요. 당신이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리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라고요. 예를 들면…. (주위를 천천히 둘러본다. 남자 또한 여자의 시선을 따라 둘러본다.) 여자는 남자보다 먼저 그 불빛 가까이로 다가간다. 사막(絲幕)을 손으로 건드린다. 여자 들어가서 물어봐요. 남자 뭘 말이야? 여자 이런저런 것들을요. 남자 그러니까 이런저런 것들이라면? 여자 여기가 입구네요. 제2장 여자가 불빛 바로 앞으로 다가가서 손짓한다. 남자는 하는 수 없이 여자를 따른다. 무대 전체에 내려와 있던 사막(絲幕)이 서서히 올라간다. 사막(絲幕)이 올라가고 하나의 막이 더 설치된 무대의 바닥에는 중앙이 동그랗게 뚫린 철문의 그림자가 있다. 그곳에 노인의 머리통이 어른거린다. 여자 낯설지가 않아요. 뭔가 기억이 날 듯도 한데. 남자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철문뿐인걸. 아주 단단히 닫힌 것 말이야. 여자 (중얼거리며)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철문뿐인걸. 남자 아무도 없어. 여자가 막에 손을 뻗으려고 하는 것과 동시에 막 사이로 한 노인의 손이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도리어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노인 (손을 흔들며) 내 놔! 물건부터 내놓고 시작하지. 남자 뭘요? 여자, 노인의 얼굴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 빤히 본다. 노인 곧 문을 닫을 시간이야. 딱 1분 주지. 1분 안에 물건을 팔아봐. 남자 저희는 단지 길을 잃었기 때문에. 노인 다들 그렇게 핑계를 대곤 하지. 처음부터 여길 찾아올 생각은 아녔어요. 어르고 달래야 그제야 슬쩍. 그런 거 다 생략하자고. 혹시 휴지가 필요한가? 그렇다고 고해성사를 하라는 건 아니야. (여자를 슬쩍 보더니) 기다려. 영 귀찮지만 말이야. 여자 어디로 갔죠? 남자 웬 헛소리를 지껄이는군. 그냥 돌아가자고. 여자 역시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철문뿐이 아니었어요. 남자 여전히 철문뿐이야. 그리고 이 철문 뒤에는 이상한 노인이 하나 있어. 여자 무슨 물건을 내놓으라는 거죠? 남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우리는 길을 물으러 온 것뿐이니까. 여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어요.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생각해 봐요. 남자 당신이 그까짓 떡볶이를 꼭 먹고 싶다고 해서 온 거지. 여자 정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당신 먼저 돌아가요. 노인의 그림자가 다시 어슬렁거린다. 노인 (여자에게 휴지를 건넨다) 아직 필요 없나? 남자 여기 주소를 알 수 있을까요. 지나다니는 택시도 없고, 전화로 부르려고 해도 이곳이 어딘지 설명할 수가 없군요. 노인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외면한다) 여기는 보성당 골목이죠. 남자 보성당이 어디죠? 노인 이미 예전에 없어졌지. 그렇지만 보성당을 기억하는 택시 기사 한 명쯤은 있을 거야. 여자 생각났다. 보성당! 노인 (반가워하며) 내가 말했지. 보성당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거라고. 비록 택시 기사는 아니지만 말야. 여자 아버지가 졸업선물로 손목시계를 사주셨죠. 노인 좋은 아버지를 뒀군요. 여자 벽엔 커다란 괘종시계가 빼곡히 걸려 있고 유리장 속에는 딱딱하고 달콤해 보이는 보석들이 잔뜩 진열이 되어 있었죠. 그 보성당 이름을 어떻게 잊었지? 남자 모든 걸 기억하며 살 순 없는 거니까. 여자 좋겠군요. 당신은 아직 보고 기억할 것들이 많아서. 노인 잠깐 들어오시는 건 어떨까요? (남자에게) 필요하신 건 주소란 말이죠? 남자 보성당 골목이 이곳 주소 아닌가요? 노인 보잘것없이 보여도 저도 명함이란 게 있습니다. 쓸 일이 없어 그렇지. 서랍 어딘가에 있겠죠. 난 무엇이든 버리는 법이 없거든요. (손짓하며) 이쪽입니다. 철문이 열리는 육중한 소리가 들리고 남겨졌던 하나의 막이 천천히 올라가자 물건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는 전당포 내부가 드러난다. 정면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물건의 크기에 알맞게 제작된 조립식 진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열장은 각각 유리로 된 문이 달려 있어 그 내부를 볼 수 있다. 무대 중앙에는 작은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잡다한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무대의 오른쪽에는 스탠드가 놓인 노인의 사무용 책상과 의자가 하나 덩그러니 있다. 노인, 그들을 테이블 앞 소파로 안내하고는 책상 서랍을 뒤지기 시작한다. 서랍을 빼내어 뒤집어서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몽땅 바닥으로 탈탈 턴다. 바닥에는 구겨진 영수증과 편지봉투, 정리되지 않은 크고 작은 메모지와 아이스크림껍질, 비닐봉지 따위가 쏟아진다. 여자 (유리장을 더듬거리며) 여기 안에 이 작고 반짝이는 건 뭐죠? 남자 커다란 유리구슬이네. 여자 스노우볼. 뒤집어서 마구 흔들어 제자리에 놓으면 천천히 눈이 내려오는 것. 남자 참 난잡하게 물건들을 진열해 뒀네. 아무런 체계도 없이 말이야. 여긴 웬 머리고무줄 하나가 덩그러니 있군. 여자 기분이 이상해요. 남자 맞아. 하는 것 없이 지치는 날이군. (노인을 흘끗 본다) 아무래도 저 노인, 몹시 오래 걸리거나 아예 쓸모가 없을지도 몰라. 그저 잠깐 쉬었다가 나가도록 하자구. 여자 (말없이 남자를 이끌고 걸음을 옮긴다) 여기엔요? 남자 구두 한 짝이 들어있군. 여자 (들여다보며) 희미하게 볼 수 있어요. 남자 흔해빠진 남성용 구두. 여자 아버지의 것과 비슷한 것 같아. 남자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 남자 구두는 다 비슷비슷하니까. 여자 아버지의 구두는 단 하나밖에 없는…. 맞아! (말을 멈춘다) 남자 무슨 일이야? 여자 아버지와 함께 여기에 온 적이 있어요. 노인, 그 말을 듣고 물건을 뒤지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일어나 여자 쪽으로 다가온다. 갑자기 모든 조명이 꺼진다. 여자의 목소리만 들린다. 동시에 1장에서 들렸던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들려온다. 여자 여기는. 노인 전당포지요. 유리장 속에서 작은 조명이 반짝 켜진다. 오뚝이 모양을 하고 있는 알람시계이다. 무대 가운데에 핀 조명이 떨어지고 무대 끝에서 손님1이 걸어 들어온다. 손에는 진열장에 진열되어 있는 것과 똑같은 알람시계가 들려져 있다. 손님1 이런 것도 받아 주시나요? 어디가 고장 난 모양인지 약을 갈아도 작동되지 않아요. 하긴 요새 누가 알람시계를 쓰나요. (머리를 긁적인다) 그렇지만 담보가 될 만한 것이 물건에 대한 값진 기억이라고 하셔서 고민 끝에 가지고 왔습니다. 제게 잠시만 시간을 내주세요. (손을 내저으며) 아뇨. 휴지는 필요 없어요. 이 시계는 제겐 정말 의미가 컸어요. 이 시계만 있으면 다른 장난감은 필요 없었어요. 노인이 무대 위로 등장해 손님1 옆에 나란히 선다. 그러고는 손님1을 조금씩 조명 밖으로 밀어낸다. 노인 나는 다른 장난감은 필요가 없었어. 이 녀석만 있으면 충분했거든. 손님1 (사이) 이 녀석의 몸뚱이가 볼록하고 통통한 것이 이걸 이불 속에서 끌어안고 있으면 외롭지 않게 잠들 수 있었어요. 어머니는 (노인이 말을 자른다) 노인 나의 어머니는 귀가가 매일 늦었지. 그래서 (손님1에게 어서 이야기하라고 재촉한다.) 손님1 이 녀석의 배에다가 (노인이 동시에 말하기 시작한다.) 노인 귀를 대고 있으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지. 손님1 (노인에게)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노인 (손님1이 들고 있는 알람시계를 빼앗는다) 여기서 똑딱, 하면 나도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똑딱! 손님1 저기요. 이건 제거예요. 노인 (정색하며) 이게 네 거라고? 확실해? (알람시계의 버튼을 누르자 까르르 웃는 소리가 난다) 손님1 약도 들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된 일이죠? 노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튼을 누른다. 까르르 까르르. 그것을 들으면서 따라 웃는다. 손님1 그래서 값은 얼마를 쳐주신다는 거죠? 조명이 꺼졌다 다시 유리장 속의 조명 몇 개가 차례대로 빛난다. 손님1 퇴장. 남자 요즘에도 이런 곳이 남아 있군요. 쓰던 물건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곳 말이에요. 여자 쓰던 물건을 맡기고 돈을 얻는다니 쓸쓸해지네요. 남자 그 돈을 다시 새로운 물건을 사는 데 쓰고. (사이) 별 다를 것 있나? 노인 아무 물건이나 받지는 않지요. 그 안에 기억할 만한 것이 담겨 있어야 해요. 여자 모든 물건에는 기억할 만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노인 그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지.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여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건을 다시 찾으러 오겠군요. 노인 이곳을 둘러봐요. 이 수많은 물건들을. 지금까지 물건을 되찾으러 온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지요. 여자 어째서요? 노인 요즘 사람들은 제 자신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니까요. 자신이 이곳에 들렀었다는 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걸요. (남자를 본다) 여자 물건을 되찾으러 왔다는 사람이 맡긴 물건은 뭐였나요? 노인 사실 되찾아갔다고 볼 수는 없지요. 용케도 자신이 무엇을 맡겼는지는 기억해냈지만 그 사람이 찾아간 건 엉뚱하게도 다른 사람의 물건이었거든. 비슷하게 생긴 다른 사람의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집어 들기에 그냥 보고만 있었지. 여자 얼마 전에도 남편과 함께 식당에 갔다가 다른 사람이 제 신발을 신고 돌아가 버려서 남의 신발을 신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남자 똑같은 브랜드, 똑같은 사이즈의 신발이었으니까. 여자 그래도 그건 내 신발이 아니죠. 남자 식당 주인이 결국 신발값을 물어주었으니 손해 본 것은 아니지. 그나저나 제 기억에 전당포라고 하면 아주 캄캄한 내부에 차갑고 단단해 보이는 철창뿐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군요. 노인 이전에 전당포에 와 본 적이 있소? 남자 아뇨. 그저 전당포라고 하면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노인 그렇지만 기억 속 전당포라는 말을 했지요. 남자 영화나 티브이 혹은 소설 속에도 전당포는 종종 등장하곤 하니까요. 말꼬리를 잡으시는 군요. 여자 그렇지만 여보. 여기에도 아주 튼튼한 철창이 곳곳에 있어요. 남자 아니, 철창이라곤 없어. 아, 그렇지. 당신은 여기가 확실하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당신이 철창이라고 본 것은 아주 얇은 유리문이야. 여자 제대로 봐요. 당신은 너무 쉽게 지나치고 단정하려고 들잖아요. 남자 내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야? 노인 아주 영리한 아가씨군. 남자 (비아냥거리며) 아가씨라고하기엔 조금 많이 늙었지요. 여자 제가 이곳에 왔던 때에는 아주 어린 꼬마였을 거예요. 아버지가 무언가를 두런두런 이야기하시고 저는 이곳을 둘러보는데 정신이 빠져 있었어요. 노인 아, 기억이 나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왔던 꼬마 숙녀. 여자 저를 기억하세요? 저희 아버지도요? 노인 난 뭐든 잊어버리는 법이 없지. 무대 전체, 조명이 꺼진다. 유리장의 불빛이 하나씩 차례대로 들어온다. 천천히 깜빡깜빡거리는 조명. 그러다 다시 무대 전체가 밝아진다. 여자 저희 아버지가 무엇을 파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노인 물론이지. 그렇지만 그것을 돌려줄 수는 없어. 본인이 아니면. 여자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노인 안타깝군. 인상이 아주 좋은 양반이었는데. 남자 우리는 택시를 부르러 여기에 온 거야 여보. 노인 택시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데에도 그렇게 시간이 걸리다니. 여자 요새 자꾸 깜빡하곤 하더라고요. 노인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거지. 남자 내가 잊어버린 말은 택시가 아니야. 그렇지만 그냥 넘어가도록 해. 내가 제대로 말 한마디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곳에 오고부터 당신이 아주 수다스럽게 내 정신을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자 모든 게 내 탓이군요. 차라리 혼자 오는 것이 더 좋을 뻔했어요. 당신은 내가 이 동네를 찾아오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했어요. 남자 당신이 꼭 이 동네에 있는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했으니까. 내가 비싸고 좋은 선물을 사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지. 노인 오늘이 어떤 특별한 날인가? 생일? 결혼기념일? 프러포즈를 한 날? 여자 제 생일은 오늘이 아니라 이 달의 마지막 날이에요. 남편이 바빠 오늘밖에는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요. 남자 그 귀한 시간을 이곳에서 낭비하는 것보다는 밖에 나가서 그 떡볶이 집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소원이라고 했잖아. 여자 내게 중요한 건 떡볶이가 아니라 아버지와의 추억을 다시 새기는 일이에요. 제가 누누이 말했잖아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고 말예요. 사진을 들여다보려고 해도 눈앞이 흐릿하기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다고요. 노인 눈은 언제부터 말썽이었지? 여자 몇 년 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이제 선명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건 절 불안하게 만들어요. 예를 들면, 초록색이란 것을 떠올리려고 해도 쉽지 않아요. 이제 제 눈으로 볼 수 있는 초록이란 아저씨가 입고 있는 짙은 쑥색의 것밖에 없지요. 그럴 때는 기억 속의 초록을 떠올리는 데 열중해요. 신호등의 눈이 부신 녹색, 이제 막 뜨거운 물에 데친 시금치의 색깔 같은 것. 남자 여보, 이 분이 입고 있는 건 쑥색이 아니라 네이비색이야. 아주 짙고 검은 파랑. 노인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라네. 하지만 이건 쑥색이 맞아. 내가 쑥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쑥색인지 아닌지는 내가 제일 잘 알 수 있어. 남자 어르신, 전 색맹이 아닙니다. 노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남자 그건 분명한 파랑색이니까요. 노인 당신의 기억 속에서 파랑색과 녹색의 체계가 멋대로 흔들리고 섞여버린 거라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내게 설명할 수 있지? 남자 그렇담 어르신 말이 옳다는 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노인 말했듯이 난 뭐든 잊는 법이 없어. 이 옷을 산 지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분명히 나는 쑥색의 옷을 골랐고 종업원은 내게 쑥색의 옷이 아주 잘 어울리시네요, 하고 말했지. 그리고 당신의 부인이 다시 한 번 말해 주지 않나. 남자 말해 봐야 내 입만 아프지. 그나저나 혹시 잊으신 건 아니겠죠. 제가 사장님께 원하는 건 이곳의 주소가 적힌 종이 쪼가리인 것을요. 여자 여보, 제발 그 퉁명스런 태도 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계속 이럴 거면 혼자 돌아가도록 해요. 나는 이곳에서 꼭 찾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건 내게 무척 의미 있는 일이지만 당신에게는 시간낭비일 뿐이라면 말예요. 남자 그저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이 주소를 묻기 위해서였다는 걸 당신이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말이야. 노인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잠시 손님 대접을 했을 뿐이야. 남자 저희는 무엇을 팔러 온 게 아닙니다. 노인 확실해? 그 말을 꼭 기억해 두도록 하지. 노인은 다시 책상으로 가 서랍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때 누군가 문을 급하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노인은 그것을 무시한다.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손님2 사장님! 사장님 안 계세요? 안에 계시는 거 다 알아요. 이번에는 진짜예요. 이번에는 정말 굉장한 것을 가지고 왔어요. 들어보세요. 듣고 계세요? 제3장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 가운데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온 손님2가 등장한다. 그는 가방을 옆에 내려다 놓고 물건 하나를 꺼낸다. 노인은 무대 왼쪽의 책상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소파에 앉아서 그를 쳐다보고 있다. 손님2 이 물건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우선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부터 알아 두셔야 합니다. 아주 가치 있는 물건이죠. 여기 정중앙에 있는 이 마크가 보이시죠? 이건 88올림픽을 기념하여 캐논사에서 스페셜 에디션으로 내 놓은 겁니다. 1988년 그때를 기억하시죠? 굉장했죠. 어마어마하게 넓은 잔디밭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그 소년 말이에요. 노인 그 소년이 자넨가? 손님2 아뇨. 그건 아니에요. 노인 자네는 또 내 시간을 뺏고 있어. 손님2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이 카메라는 제가 어렸을 때에 할머니께서 주신 물건이지요. 할머니는 일수쟁이셨는데 돈을 제때에 갚지 못하면 대신 값나가는 물건을 받아오시곤 했어요. 노인 (하품을 한다) 손님2 이 물건의 진짜 가치에 대해 아직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 카메라는 한 여인에게 정말 귀중한 물건입니다. 이 카메라의 주인은 미군부대 앞에서 몸을 팔던 아주 어린 여자였지요. 몸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순수한 소녀 말이에요. 상상해 보세요. (노인의 눈치를 슬쩍 본다) 그 소녀에겐 정인이 있었죠. 그 사람이 소녀에게 선물한 카메라예요. 노인, 기지개를 켠다. 그러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장부를 뒤적이는 등 딴짓을 한다. 손님2 자신의 정인이라고 생각한 남자가 주고 간 카메라를 일수쟁이에게 빼앗기게 된 거죠. 어쩌면 돈 대신 이 카메라를 내어준 것은 이미 그 소녀는 이곳에 사랑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정말 슬픈 이야기 아닌가요? 제 애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울던걸요. 노인 그 일수쟁이는 정말 비정하군. 그런데 말이야. 자네 애인이 이야기를 듣고 울었단 말이지. 손님2 여자들이란 눈물이 많죠. 노인 그것은 이미 그 여자에게 팔렸군. 손님2 지금 제 손에 들려 있는데요? 노인 이 봐, 그 카메라가 자네의 기억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손님2 누군가의 사연이 담긴 물건이잖아요. 노인 전해 오는 이야기일 뿐이지. 차라리 그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나 가져오면 몰라. 손님2 요즘에 누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요. 저는 그렇게 사진을 잘 찍는 편도 아니고요. 노인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나. 나는 드라마틱한 사연을 원하는 게 아니야. 그런 사연이라면 차라리 방송국에 제보하라고. 자네의 것을 가져오란 말이야. 자네의 기억, 추억거리가 담긴 물건들 말이야. 손님2 그치만 저는 그렇게 물건을 오래 쓰는 성격도 아니고 평소 건망증도 심하기 때문에 그럴 만한 것이 없어요. 노인 그런데도 자꾸 이곳에 찾아오는 이유가 뭐야. 돈이 급하면 나가서 은행을 찾아봐. 사채를 쓰든지 장기라도 팔든지. 손님2 할아버지가 자꾸 이렇게 퇴짜를 놓으시니까 제 삶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종일 멍하고 우울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노인 할아버지? 이 봐. 고해성사는 이곳에서 하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는지. 이제 돌아가게.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났어. 손님2 아직 물건이 많이 남았어요. 제가 모조리 긁어 온걸요. 노인 영업은 끝났어. 이 손님들이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지. 노인은 손님2를 데리고 무대를 퇴장하고 남자는 여자의 손을 끌고 소파에서 일어서려고 하지만 여자는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여자 여보, 저 남자는 담보할 만한 기억이 하나도 없대요. 남자 그럴 수도 있지 뭐. 여자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요. 우리에게도 담보할 만한 기억쯤은 있는 거겠죠? 남자 오늘따라 무척 감상적이군. 아무리 생각해도 저 노인은 수상해. 당신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는 게 말이 돼? 여자 저는 분명히 기억이 나요. 남자 난 저 노인을 말하고 있는 거야. 우린 저 사람에게 휘둘리고 있어. 노인, 다시 무대에 등장한다. 진열장에서 머플러 하나를 꺼내어 목에 두른다. 남자는 그것이 신경 쓰인다는 듯 쳐다본다. 남자 자, 알아들었지?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여자 이제 막 아버지의 물건을 찾아보려고 하는 중이란 말예요. 남자 어차피 당신이 되찾을 수 없는 물건이야. 여자 찾을 수도 있어요. 남자 여기선 아무 물건이나 당신 아버지 것이 될 수도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자, 저기 있는 저 구두 한 짝이 당신 아버지의 구두라고 하자고. 당신은 그저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겠지. 맞아요, 아버지의 것이 확실해요 라고 말할 거야. 아니면 저기 저 덩그러니 진열된 만년필이 당신 아버지 것이라고 한다면 말이야. 여자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아요. 노인,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가 흘러내려 바닥에 질질 끌린다. 남자가 움찔한다. 남자 (사이) 여보. 지나간 건 지나간 거야. 중요한 건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야. 여자 그래요 오늘. 내게 오늘은 제대로 볼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해요. 노인은 머플러를 다시 진열대에 곱게 접어 둔다. 그러고는 서랍을 뒤져 장부 하나를 가지고 온다. 노인, 두 사람 가운데에 선다. 노인 (장부를 여자에게 건네며) 이 전당포를 개업하고부터 지금까지 써 왔던 것이니 아버지의 이름이 분명 여기에 적혀 있을 거야. 한번 찾아보시게. 남자 아뇨. 저희는 이제 가 보겠습니다. 잊으신 게 아니라고 하신 그 주소는 이제 필요 없을 것 같군요. 그리고 또 잊으신 게 아니라면 제 아내는 앞이 잘 보이지 않죠. 여자, 소파에 앉아서 장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잘 보이지 않는 듯 눈 바로 앞에다 가져다 대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것에 열중한다. 노인 굳이 주소가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해서 일부러 기다리고 있던 거였지. 자네는 이미 이곳에 온 적이 있지 않나? 남자 저는 이곳에 처음 왔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노인 길을 잃었다는 건 확실한가? 자네가 이곳을 찾아낸 건 아닌가? 남자 이곳을 발견하고 저를 이끈 것은 제 부인이었죠. 노인 그렇지만 자네 부인의 눈은 영 말썽이지. 남자 말장난은 이제 그만 하세요. 노인 여기에 맡긴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걸 확신할 수 있나? 남자 네. 물론입니다. 노인 잊어버린 것은 아니고? 남자 잊어버린 것이라면 다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 아닐까요. 노인 그래.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그렇지. 돈을 받고 기억을 버리는 것. 여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장부를 들고 뒤의 유리장을 기웃거린다. 남자의 시선이 여자를 살핀다. 여자, 결국 유리장 사이로 들어간다. 남자가 그것을 쫓아가려고 하는데 노인이 남자의 팔목을 잡는다. 남자 (노인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여보, 어디로 가는 거야. 이리 나와. 여자 (목소리) 걱정 말아요. 혼자 찾을 수 있어요. 남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여자 장부에서 분명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본 것 같아요. 적혀진 번호에 따르면 이쯤에. 여보, 여긴 아주 많은 물건이 있어요. 남자 따라서 들어가 봐야겠으니 이것 좀 놓으시죠. 노인 저 안은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비좁아서 둘은 들어갈 수 없어. 한 명이 들어가려면 한 명이 나와야 하고. 한 명이 나오기 위해선 다른 한 명이 들어가서는 안 되지. 두 명이 한꺼번에 들어간다면 둘 다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고. 저 안에선 길을 잃을 염려가 없으니 안심해. 남자 그 안은 캄캄하지 않아? 여자 캄캄해요. 그래도 보일 건 다 보이는걸요. 노인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지. 연도별로 작은 구멍도 없이 완벽하게. 남자는 노인의 손을 뿌리치고는 소파에 가서 앉는다. 남자 대체 이 따위 것들을 사들이는 이유가 뭡니까? 노인 그야 가치가 있으니까. 남자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죠. 물건에 담긴 고유한 기억요? 노인 그렇지. 남자 그렇다면 아까 그 남자의 물건은 왜 값어치가 없다고 돌려보내신 거죠? 노인 불순물이 없는, 아무와도 공유되지 않았던 기억만이 내게 가치가 있지. 남자 이를테면 최초의 고백. 노인 그렇지. 남자 그런 것들을 돈을 주고 사신다고요. 그러니까 대체 왜요. 노인 원하는 것들만을 기억할 수 있는 거야. 프레임 안에 새로운 필름을 끼워대는 것처럼 나는 다채로운 기억 속에서 숨 쉰다고. 매일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말이야. 남자 남의 것들이잖아요.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들의 것들. 노인 깊숙이 숨겨져 있던 기억들이야. 내가 아니었으면 제 자신이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들. 남자 순진하시군요. 노인 무슨 뜻이지? 남자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내재되어 있던 기억을 샀다. 당신이 사 모은 것들은 모두 거짓말이에요. 당신은 사람들에게 속은 거라고요. 여자 (목소리) 당신 거기 괜찮아요? 남자 괜찮아. 노인 난 여태껏 한 번도 속아본 적이 없어. 남자 자신이 기억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기억이라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게 거짓된 말들을 지어낼 수도 있죠. 노인 나는 항상 앞뒤 정황과 맥락을 기억하고 있지. 아까 그 남자도 내게 거짓말을 하려던 걸 귀신같이 잡아낸 걸 보지 못했나? 남자 당신이 사들인 완성된 기억이라는 것. 그건 원래 없었던 것일 수도,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어요. 당신이 끼어들어서 만들어 낸 거겠죠. 노인,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손바닥 위에 올린다. 노인 한 남자가 가져온 머플러지. 냄새를 맡아 보겠나? 아직도 그 여자의 화장품 냄새가 나. (남자는 거부한다) 이게 내 손에 쥐어져 있으면 내 눈 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장면이 있지. 첫사랑과 동정을 떼어버린 날. 그녀의 목을 감싸고 있던 이 부드러운 머플러를 천천히 풀어내는 장면. 그 여자의 머리칼보다 더 부드러운 머플러. 이제 그녀는 없고 그날의 기억들은 이 머플러의 부드러운 결 틈틈이 저장되어 있지. 하나도 막히지 않고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어. 남자, 노인에게 다가가서 머플러를 만져 보려다가 주저한다. 무대의 조명이 한순간에 꺼진다. 진열장에서 차례로 조명이 깜빡거린다. 손님 1, 2가 무대 위로 천천히 등장한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여자 (목소리) 여보! 내가 찾은 것 같아요. 진열장의 깜빡이는 조명의 속도가 느려지더니 꺼진다. 무대 뒤로 사라졌던 여자가 진열장 사이로 걸어 나온다. 여자,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린다. 네 사람은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는 듯 더듬으며 서성거린다. 노인은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다. 진열장 사이로 빛이 쏟아진다. 이제 네 사람은 빛 사이를 헤매 다닌다. 노인 번호 7218. 남성용 정장구두. 남자 머리카락의 엉킴. 여자 딱 맞으면 안 돼. 노인 4684 다시 1번. 한 칸씩 밀려났군. 여자 오른발이 더 커야 해. 남자 축축한 곰팡이 냄새. 여자 왼쪽 구두의 앞코는. 노인 여기도 구멍. 남자 캄캄한 방. 여자 좀 더 밝은 빛이 필요해요. 남자가 서성거리다가 손님1과 부딪혀 넘어진다. 알람시계의 까르륵 소리가 들린다. 손님 1과 2가 동시에 말한다. 손님1 한 번도 필요하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일분이라도 늦게 왔으면. 손님2 그 소녀. 아, 내가 전에도 말한 적 있나요? 손님1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면서, 오락실에서 서둘러 뛰어 오면서, 골목 어귀에서 떨어진 꽁초나 주워 모으면서. 손님2 떠난 정인을 기다리는데 카메라라니요. 이건 처음 말하는 거죠? 손님1 그랬나. 손님2 그랬었지. 손님1 그랬었지. 손님2 그랬나. 말들이 어지럽게 뒤섞인다. 등장인물들 때로는 동시에 말하기도 한다. 여자와 남자는 어둠 속을 더듬으며 서성거린다. 노인은 여자가 떨어뜨린 장부를 주워 자세히 들여다본다. 진열장이 제멋대로 천천히 깜빡인다. 노인 여기가 뻥 뚫렸잖아. 여자 뽕따. 꼭다리만 드시고는 했는데. 남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골목에서 노인 만년필 뚜껑. 여자 어금니로 살살. 남자 몇 번이나 머플러는 노인 시집. 여자 잔뜩 찌푸려지면 남자 질척한 바닥에 손님1 (남자에게) 혹시 저 모르세요? 여자 깊게 파인 주름 때문에 남자 미끄러지는데. 손님2 악! 노인 티켓. 여자 너무 진해서 손님1 (여자에게) 내가 어디까지 말하고 있었죠? 남자 쓸모없는 잔상들. 여자 눈썹이 말이야. 노인 목캔디. 남자 분명히 내가 다 버렸었는데. 손님2 (말없이 긴 한숨을 쉰다.) 여자 두 눈 같았던. 노인 카세트 테이프. 남자 뚫려 있는 구멍에. 여자 간신히 기억난 거야. 손님1 내가 말하고 있는 중이잖아! 남자 그랬지. 여자 미안해. 남자 그렇지만. 여자 이제야. 노인 연두색. 뭐라고 써진 거야. 남자 내 것이 아닌. 손님2 (긴 한숨을 쉰다.) 여자 기억. 남자 악몽의 조각조각. 노인 립스틱. 여자 조각난 것들이. 노인 하이힐. 여자 꿰맞춰지고. 노인 새빨간 색이라는 설명이 빠졌군. 남자 반복되는. 손님1 (더듬더듬 말하려다가 실패한다.) 여자 유영하는. 남자 당신? 여자 잘 보이지가 않아요. 노인 어두우니까. 남자 뭐라고? 노인 무슨 껍질? 여자 당신 거기에 있어요? 남자 당신? 여자 분명히 들었어요. 남자 움직이지 마. 내가 갈 거야. 남자와 여자. 어둠 속을 더듬다가 결국 만난다. 여자 당신이지요. 남자 여기 있었군. 점점 어두워지며 무대 전체에 사막(絲幕)이 천천히 내려온다. 진열장의 불이 차례로 꺼지고 육중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 제4장 사막(絲幕)의 앞쪽이 밝아진다. 남자와 여자가 무대 오른편에서 등장한다. 여자 여기는 어디죠? 남자 처음 들어선 곳인 것 같아. 여자 여전히 아무 간판도 보이질 않죠? 남자 날이 몹시 어두워졌어. 여자 찬찬히 봐요. 스쳐 지나지 말고. 남자 저기에 있는 가게는 내부를 다 뜯어냈군. 여자 매일같이 지나던 거리에 있던 가게 하나가 뻥 뚫리고 없어지면 그 자리에 뭐가 있었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남자 요새는 상점들이 참 빨리도 들어섰다가 없어지곤 하지. 여자 안타까운 일이네요. 남자 저쪽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 같은데. 남자와 여자, 무대를 가로질러 퇴장. 암전.
  • 2014년 영화계 ‘애들은 가라’

    2014년 영화계 ‘애들은 가라’

    갑오년 새해에는 어떤 영화들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까. 올해는 영화 관람객이 2억명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에 대한 안팎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새해 극장가를 호령할 키워드는 뭘까. ‘블록버스터급 사극’과 ‘19금(禁) 영화’다. 내년 영화계에는 제작비 100억원을 웃도는 블록버스터급 사극이 줄줄이 쏟아질 전망이다. 2012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여파다. CJ E&M,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3대 메이저 배급사들은 하나같이 대형 사극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상반기에 선보일 ‘역린’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당쟁이 치열했던 조선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정치 드라마와 액션을 결합한 대작이다. 현빈의 군 제대 이후 컴백작으로 그는 비운의 왕인 젊은 정조 역을 맡았다. 드라마 ‘다모’의 이재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여름 개봉 예정인 ‘명량:회오리 바다’도 눈여겨볼 만하다. ‘최종병기 활’로 2012년 여름 극장가를 강타했던 김한민 감독의 차기작으로 배 12척으로 330여척을 앞세운 왜군의 공격을 막아낸 명량해전을 다뤘다. 최민식이 이순신 장군을, 류승룡이 일본인 장군 구루지마 역을 맡았다. 여름 성수기인 7월 선보일 사극 대작 ‘군도:민란의 시대’는 양반과 탐관오리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후기, 백성들의 편에 섰던 도적들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하정우가 억울한 사연으로 도적 떼에 합류한 돌무치로 출연하고 강동원이 최고의 무술 실력을 갖춘 조윤을 맡아 군 제대 이후 처음 복귀한다. 내년 하반기까지 사극 열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5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고래 배 속으로 들어간 조선의 국새를 찾기 위해 대결하는 산적단과 해적단의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사극이다. 김남길, 손예진이 주연한다. 이병헌, 전도연도 고려시대 민란을 주도한 세명의 검객이 펼치는 애증과 복수를 다룬 ‘협녀: 칼의 기억’으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임성규 팀장은 “사극의 친숙함에 액션, 판타지, 코미디 등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한 장르적 다양화가 특징으로, 다양한 관객층을 흡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쇼박스의 한 관계자는 “소재의 한계를 겪는 현대극에 비해 과거를 배경으로 한 사극은 창작의 여지가 크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현재를 반추하게 한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도 쉽다”고 말했다. 한동안 뜸했던 19금 영화도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과거 19금 영화가 선정성에 크게 기댔던 것과 달리 내년 유행할 영화들은 스토리를 강화해 중장년층 관객에게 호소하는 멜로가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작품은 송승헌, 조여정 주연의 파격 멜로 ‘인간 중독’이다. ‘음란서생’ ‘방자전’ 등을 연출했던 김대우 감독의 작품으로 1969년 베트남전의 전쟁 영웅이었던 대령이 부하의 아내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순수의 시대’는 조선판 ‘색, 계’로 불리며 일찌감치 영화계의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조선 초기 태종 이방원의 ‘왕자의 난’을 배경으로 복수를 위해 한 남자의 첩이 된 여인이 점차 그 남자에게 빠져들면서 빚어지는 이야기다. 한국판 ‘섹스 앤드 더 시티’를 표방해 새해 2월 개봉할 ‘관능의 법칙’도 눈길을 끈다. 일도, 사랑도 화끈하게 즐기고 싶은 40대 여성들의 이야기로 문소리, 엄정화, 조민수가 주연을 맡았다. 이 밖에도 중국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정우성 주연의 ‘마담 뺑덕’도 파격적인 19금 멜로를 예고한다. ‘후궁: 제왕의 첩’을 제작했던 황기성 사단은 이번엔 불륜을 소재로 한 19금 현대극 ‘탐미주의’를 제작 중이다. 서로를 운명이라고 믿었던 연상연하 부부가 각자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다. 19금 멜로의 고전 ‘정사’도 후속편인 ‘정사2’가 기획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관계자들은 내년에 19금 영화가 쏟아지는 이유로 부가 판권 시장의 성장과 4050 중장년층 관객의 확대를 꼽고 있다. ‘관능의 법칙’ 제작사인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올해 IPTV 등 부가 판권 시장의 수익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 시장에서 인기 있는 19금 영화들의 기획이 늘었다”면서 “4050 관객들이 극장가의 핵심 관객층이 되면서 성인 취향의 콘텐츠가 증가한 것도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보통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19금 영화가 많이 제작되는데 사회 경제적인 압박과 불안을 영화를 통해 해소하려는 심리가 이런 트렌드로 연결된 듯하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도쿄박물관 벌서고 있는 한국문화재

    도쿄박물관 벌서고 있는 한국문화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한국의 문인석 2점이 공사용 펜스를 바라보는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방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시대 강원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인석은 당초 박물관 옥외에 전시돼 있다가 지난 9월 말 시작된 공사로 차단 펜스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박물관 측이 옮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인석에 대해 박물관 홈페이지는 “조선시대 왕과 양반의 묘를 지키는 양(羊)과 문관의 석상으로, 정문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설치된 2개의 문관은 가느다란 직육면체 석재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어 오래된 양식으로 여겨진다”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문인석의 문화재 등급은 알려지지 않았다. 문인석의 비정상적 전시를 발견한 것은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이다. 그는 조선시대 고종이 사용한 투구·갑옷 등을 포함한 ‘오구라 컬렉션’이 지난 10월 1일부터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것과 관련, 지난 23일 이곳을 찾았다가 이를 목격했다. 혜문 스님은 29일 “박물관 측에 전시물 위치를 바꿔 달라는 취지의 서한을 지난 27일 보냈다”고 밝혔다. 스님은 서한에서 “매표소 뒤쪽에 있는 한국의 문인석 2점 전시에 문제가 있다”면서 “아마도 공사 중인 관계로 문인석 앞에 펜스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런 형태는 한국 사람들에게 문인석이 마치 벌을 받고 있는 모습으로 오인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님은 “한·일 간 복잡한 문제로 오해가 증폭되는 와중에 박물관이 한국 문화재들을 벌세우는 듯한 모양으로 전시한다면 불필요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된다”면서 전시물의 위치 변경 등을 요구했다. 혜문 스님은 “경위야 어떻든 외국의 문화재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면서 “일본 문화재가 다른 나라에서 그런 대접을 받았으면 큰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물관 관계자는 “석상은 지진에 견딜 수 있게 석상 아래 기초공사가 돼 있는 상태”라면서 “재개발에 의해 석상과 새 건물이 근접하게 돼 있어 공사가 끝난 뒤 석상의 이전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사는 박물관 정문 주변을 재개발하는 것으로 내년 3월 28일 끝날 예정이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日도쿄박물관 벌서고 있는 한국문화재

    日도쿄박물관 벌서고 있는 한국문화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한국의 문인석 2점이 공사용 펜스를 바라보는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방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시대 강원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인석은 당초 박물관 옥외에 전시돼 있다가 지난 9월 말 시작된 공사로 차단 펜스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박물관 측이 옮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인석에 대해 박물관 홈페이지는 “조선시대 왕과 양반의 묘를 지키는 양(羊)과 문관의 석상으로, 정문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설치된 2개의 문관은 가느다란 직육면체 석재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어 오래된 양식으로 여겨진다”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문인석의 문화재 등급은 알려지지 않았다.  문인석의 비정상적 전시를 발견한 것은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이다. 그는 조선시대 고종이 사용한 투구·갑옷 등을 포함한 ‘오구라 컬렉션’이 지난 10월 1일부터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것과 관련, 지난 23일 이곳을 찾았다가 이를 목격했다. 혜문 스님은 29일 “박물관 측에 전시물 위치를 바꿔 달라는 취지의 서한을 지난 27일 보냈다”고 밝혔다. 스님은 서한에서 “매표소 뒤쪽에 있는 한국의 문인석 2점 전시에 문제가 있다”면서 “아마도 공사 중인 관계로 문인석 앞에 펜스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런 형태는 한국 사람들에게 문인석이 마치 벌을 받고 있는 모습으로 오인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님은 “한·일 간 복잡한 문제로 오해가 증폭되는 와중에 박물관이 한국 문화재들을 벌세우는 듯한 모양으로 전시한다면 불필요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된다”면서 전시물의 위치 변경 등을 요구했다.  혜문 스님은 “경위야 어떻든 외국의 문화재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면서 “일본 문화재가 다른 나라에서 그런 대접을 받았으면 큰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물관 관계자는 “석상은 지진에 견딜 수 있게 석상 아래 기초공사가 돼 있는 상태”라면서 “재개발에 의해 석상과 새 건물이 근접하게 돼 있어 공사가 끝난 뒤 석상의 이전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사는 박물관 정문 주변을 재개발하는 것으로 내년 3월 28일 끝날 예정이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고전에 깃든 생태주의 통해 인간중심주의 비판

    고전에 깃든 생태주의 통해 인간중심주의 비판

    ‘재상이 노상 이를 잡는 건/나 아니고서야 또 누가 있겠는가/어찌 타오르는 화롯불이 없기야 하겠냐마는/땅에 던져버리는 것이 나의 자비이다/(중략)/너 역시 붙어살 데 없어서/나를 집으로 삼은 것이네’ 고려시대 문인이자 정치가인 이규보의 시 ‘이를 잡다’의 한 구절이다. 한 나라의 재상이 옷을 벗고 앉아 이를 잡는 모양새도 우습지만, 그렇게 어렵게 잡은 이를 살려주는 건 또 무슨 까닭인가. 한국 문단에 생태주의를 전파해 온 ‘환경 전도사’ 김욱동(65) 서강대 명예교수는 이규보의 이런 모습이 바로 ‘생태주의’라고 감탄한다. 이규보가 남긴 2000여수의 시 가운데 500여수의 시가 이, 벼룩, 파리, 누에, 개똥벌레, 거미 등의 하찮은 벌레나 짐승을 소재로 한 ‘영물시’(살아 있는 동물을 노래하는 시)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 준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2000년 ‘한국의 녹색 문화’부터 2011년 ‘적색에서 녹색으로’까지 환경문제를 다룬 5편의 저서들을 통해 문학가들에게 환경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해 온 김 교수가 이번엔 지구를 살리는 우리 고전에 주목했다. ‘녹색 고전-한국편’(비채)에서다. 김 교수는 서사무가 ‘바리공주’, 일연의 ‘삼국유사’, 조선 실학자 박지원의 한문 소설 ‘호질’ 등 다채로운 고전에 깃든 생태의식을 끄집어내 현재의 우리를 비춘다. ‘호질’은 양반 계층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간중심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녹색 소설’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고 지적한다. ‘산도 물도 자연 그대로이니 그 속에 자란 나도 자연 그대로라’는 송시열의 시조를 통해서는 4대강 사업의 폐해를 꼬집는다. 환경 문제에 대한 저서는 그만 집필하기로 결심했다는 저자를 다시 돌려세운 건 지난여름 동서양을 넘나든 이상기후였다. 김 교수는 ‘저자의 말’에서 “그간 ‘환경 전도사’로서의 내 역할을 총결산하는 책”이라며 “생태주의와 관련한 보석 같은 글을 한데 모은 생태주의의 경전이나, 경전 그 자체보다 의미 해석에 훨씬 더 무게를 뒀다”고 설명했다. 동양편, 서양편은 내년 상반기에 출간될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타오르는 선비의 기상 굽이굽이 지조의 역사

    타오르는 선비의 기상 굽이굽이 지조의 역사

    경북 영주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선비 고을이라 부른다. 목숨과 바꿔 의리와 지조를 지킨 역사에 빗댄 표현이다. 그 올곧은 기상과 만날 수 있는 곳이 영주 북쪽, 그러니까 소백산 자락에 기댄 순흥면 일대다. 오래전 풍기라 불렸던 땅. 더 오래전엔 순흥도호부가 있었다. 선비 고을 영주는 바로 그 시대부터 비롯됐다. 옛 풍기군은 ‘뭍의 삼다도(三多島)’라 불렸다. 제주와 닮아 바람과 돌, 그리고 여자가 많다는 뜻에서다. 소백산과 죽령을 타고 내려온 바람은 늘 세차게 소읍을 할퀴었고, 손바닥만 한 모래톱조차 없었던 남원천 바닥은 세월에 씻긴 둥근 돌로 가득했다. 여자가 많았던 건 ‘풍기 인견’(명주실로 짠 비단) 때문이다. 풍기는 해방 전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특히 명주(明紬)의 본고장이었던 평안도 사람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남하할 때 가져온 ‘족답베틀기’로 인견을 짰다. 이게 ‘풍기 인견’의 시초가 됐다. 해방이 되면서 ‘풍기 인견’은 전국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인견 공장에 다니던 여공들의 숫자만 2000여명을 헤아렸다. 갓 1만 명 넘게 사는 소읍에서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여공들이 우르르 몰려다녔으니 여자 많다 소리 나오는 게 당연했다. 이제 풍기군은 없다. 영주시에 통합됐기 때문이다. 한때 영천과 충북 괴산 등까지 이르렀던 위세도 풍기읍으로 쪼그라들었고, 그 자리를 이제 순흥면 등이 대신하고 있다. 영주는 흔히 선비 고을이라 불린다. 이는 양반 고을과 다소 어감이 다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기상은 선비 정신과 닮았으되 권세가들이 모여 사는 양반 고을은 아니라는 거다. 이런 기질이 잘 살아 있는 곳이 순흥면이다. 순흥면의 으뜸 볼거리는 소수서원이다. 1543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한데 소수서원과 마주한 금성단, 압각수 등도 빼놓지 말고 돌아보는 게 좋겠다. 여기야말로 올곧은 선비 정신이 발현됐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금성단은 조선시대 단종 복위 운동을 벌이다 사약을 받은 금성대군을 모신 제단, 압각수는 1100년 묵었다는 금성단 옆의 늙은 은행나무다. 금성단 앞 게시판이 전하는 내용은 이렇다. 조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동생 금성대군을 순흥으로 ‘위리안치’시킨다. 금성대군은 순흥에서 다시 단종 복위에 나선다. 하지만 계획은 발각됐고, 세조는 금성대군에게 사약을 내린다. 이에 가담한 선비와 주민들도 무차별 참살했다. 1456년의 정축지변이다. 당시 순흥의 청다리 밑을 적신 피는 죽교천을 따라 10여리 떨어진 마을까지 흐른 뒤 사라졌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동촌1리 ‘피끝마을’이다. 이때 오백 살 넘은 은행나무도 불에 타 죽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1683년 단종이 복위됐고, 또 30년 뒤 금성대군 등 선비들도 복권됐다. 죽었던 은행나무도 이때 다시 살아나 잎을 틔웠다는 것. 순흥면사무소는 옛 순흥도호부 자리에 세워졌다. 면사무소 뒤뜰에 봉도각 등 옛 건물과 왕버들 등 수백 년 묵은 고목들로 장식된 정원이 여태 남아 있다. 대한민국 면사무소 가운데 이만한 정취의 뒤뜰 가진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예서 영주의 대표 명소 부석사가 지척이다. 최근 절집으로 드는 회랑을 새로 짓는 등 외형이 적잖이 달라졌다. 부석사는 저물녘 방문하는 게 좋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 앞에서 맞는 해넘이 풍경이 더없이 그윽하다. 영주 문어 이야기도 이채롭다. 바다의 산물이 내륙 중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영주까지 가서 번듯한 명성을 얻게 된 이유가 뭘까. 음식 평론가들은 문어가 오래전부터 영주와 안동 등 경북 내륙지방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름부터 ‘글의 생선’(文魚)인 데다, 비상한 머리와 바위 속에 숨는 은둔적 성격이 선비를 닮았다는 거다. 또 문어의 먹물은 글 쓸 때 먹을 대신했다. 게다가 강력한 빨판은 과거에 제꺽 급제한다는 은유로도 통했다. 한데 현지 주민들의 이야기는 다소 다르다. ‘영주 문어’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게 비교적 근세라는 것이다. 이는 영동선 철도 개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삼박물관의 송준태 관장이 전한 이야기는 이렇다. 영주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경북 북부의 철도교통 요지였다. 씨줄 날줄로 촘촘하게 얽힌 중앙선, 경북선 등 덕에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과 사통팔달로 연결됐다. 현재 영동선으로 통합된 영암선이 1955년 개통되면서 철길은 묵호까지 확장됐다. 귀한 해산물로 여겨졌던 문어가 영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묵호, 삼척 등에서 초벌로 삶은 문어는 기차에 실려 영주로 집결됐고, 곧바로 전국 각지로 확산됐다. 지금도 영주역 앞엔 번개시장이 있다. 문어가 도착하자마자 번개처럼 빠르게 팔려 나갔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영주 문어는 곧 숙성 문어다. 삶은 문어란 얘기다. 문어는 삶은 뒤 하루 정도 물기를 빼내고 먹어야 맛있다고 한다. 묵호 등에서 찐 문어가 완행열차를 타고 영주에 도착할 때쯤이면 가장 맛있는 상태로 숙성됐다. 그 덕에 영주 문어가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비 고을 영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수도리 전통마을, 이른바 무섬마을이다. 내성천이 휘돌아 가며 만든 모래톱 위에 반듯하게 터를 잡은 옛 마을은 자체가 중요민속문화재(제278호)다. 40여 가구 가운데 100년 넘은 집이 열여섯 채에 이르고, 문화재 등으로 지정된 집도 아홉 채나 된다. 대부분의 고택엔 실제 주민이 산다. 그 가운데 일부는 고택 체험을 위한 숙소로 쓰이기도 한다. 마을과 내성천이 만나는 곳엔 태극 모양의 외나무다리가 놓였다. 마을 옆으로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외부와의 연결 통로 노릇을 했던 다리다. 요즘도 강 건너 밭일하러 가는 주민들이 가끔 이용하지만, 그보다는 주로 관광객들이 재미 삼아 오간다. 좁은 나무다리를 따라 맑은 물 위를 자박자박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 여행 수첩 (지역번호 054) →가는 길 부석사, 금성단 등 영주 북쪽의 관광지들을 먼저 보겠다면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으로 나와야 한다. 이어 북영주 방면 931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곧장 가면 된다. 무섬마을은 중앙고속도로 영주나들목이 낫다. 28번국도에 이어 5번국도 영주시청 방면으로 갈아탄 뒤 적서교차로에서 우회전해 수도리 전통마을 표지판을 보고 따라간다. 영주시청 관광산업과 639-6601, 6606. 무섬마을 관광안내소 636-4700. →맛집 순흥 쪽에선 묵밥이 유명하다. 이웃한 봉화, 춘양 등에서 생산된 메밀로 묵을 만들어 낸다. 맛은 순하다. 도회지 묵밥처럼 미끌거리며 입에서 겉도는 듯한 식감도 덜하다. 순흥묵집(632-2028)이 알려졌다. 순흥사거리에서 소수서원 방향 주유소 옆에 있다. 묵밥 7000원. 주전부리는 기지떡이 좋겠다. 기지떡은 흔히 술떡이라 불리는 ‘증편’의 사투리다. 술로 반죽한 멥쌀가루를 찐 뒤 대추 등 고명을 얹었다. 순흥기지떡(631-2929)이 이름났다. 한 상자에 6000원. 순흥사거리 초입에 있다. 문어는 맛볼 곳이 드물다. 대개 결혼식 등의 잔치나 제사에 쓸 용도로 팔기 때문이다. 영주역 번개시장 앞에 문어 파는 집이 세 곳 있다. 여기서 문어를 산 뒤 바로 옆 종로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상차림 비용은 따로 받지 않지만, 별도 음식을 주문해야 한다. 1㎏에 4만~5만원. 4인 가족이 먹으려면 10만원 정도는 써야 한다. →잘 곳 풍기 쪽에선 풍기관광호텔(637-8800), 소백산풍기온천리조트(604-1700) 등이 깨끗하다. 온천만 할 경우 8000원. 시내에선 영주호텔(634-1000)이 넓고 깔끔하다. 글 사진 영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충북 괴산 산막이옛길

    [명인·명물을 찾아서] 충북 괴산 산막이옛길

    대한민국에 걷기 열풍을 몰고 온 제주 올레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내 명품길로 평가받는 시골의 산책로가 있다. 인구가 3만 7000여명에 불과한 작은 농촌 지방자치단체인 충북 괴산군이 조성한 산막이옛길이 주인공이다. 군이 2009년 13억원을 들여 조성한 산막이옛길은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연결됐던 총 10리(4㎞)의 옛길을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며 복원한 산책로다. 산막이는 ‘산의 마지막’, ‘산으로 가로막혔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갔던 피란민들이 산에 막혀 더는 가지 못하고 머물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막이옛길은 1957년 순수 우리 기술로 처음 건립한 괴산댐으로 인해 생겨난 괴산호를 끼고 있다. 이 때문에 산과 물, 숲의 조화로운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게 최대 장점이다. 나무데크와 황토 포장 등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길을 걸으며 싱그러운 산바람과 강바람을 만나다 보면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다. 삼복더위에도 햇빛을 피해 그늘 속에서 시원하게 걸을 수 있다. 산길임에도 경사가 완만해 거친 숨소리 없이 편안하게 남녀노소가 대화하며 걸을 수 있는 것도 산막이옛길의 매력이다. 땀을 흘리고 싶으면 산막이옛길에서 연결된 등잔봉(450m)과 천장봉(437m), 삼성봉(550m) 등산코스로 발길을 옮기면 된다. 곳곳에 볼거리, 즐길 거리도 풍성하다. 괴산호의 푸른 물을 보며 삼림욕을 체험할 수 있는 소나무동산,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은 매의 머리 형상을 한 매바위, 옛날 사오랑 서당이 여름철 무더위를 피해 야외학습장으로 사용했던 고인돌쉼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한 소나무와 소나무를 연결해 짜릿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출렁다리, 40m 절벽 위에 세워져 공중에 떠 있는 아슬아슬함을 느낄 수 있는 고공전망대,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정도의 서늘한 바람이 나온다는 얼음바람골, 산막이를 오가던 사람들이 비를 피해 잠시 쉬어 가던 여우비 바위굴,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을 하고 있어 남녀가 함께 기원하면 옥동자를 잉태한다는 정사목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괴산호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도 운행되고 있다. 산막이옛길을 따라 펼쳐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가면서 이제는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방문객 수가 2011년 88만명을 기록하더니 지난해에는 130만명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14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5월 산막이옛길과 이어지는 양반길이 개장돼 군자산 일대 갈은구곡∼용세골∼덕평 운교리의 비경이 새롭게 선보이면서 관광객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세계적인 명품 트레킹 코스인 제주 올레길의 지난해 방문객은 110만 8000여명이었다.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주말이면 칠성면 소재지부터 산막이옛길 입구까지 이르는 5㎞의 비좁은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군은 개장 초기 주말 방문객을 평균 500명 정도로 예측하고 230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을 마련했는데 6000명까지 다녀가기도 했다. 주차 지도를 위해 주말에 공무원이 배치됐고, 군에는 주차장을 늘려 달라는 민원이 쇄도했다.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자 군이 한때 충북도민들에게 “산막이옛길 방문을 주말에는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는 진풍경까지 연출됐다. 멀리서 오는 외지인들을 우선 배려하기 위한 조치였다. 현재 버스 80대, 승용차 700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을 마련해 주차난이 많이 해소됐지만 단풍철 등 성수기 주말에는 여전히 차량들이 넘쳐 나고 있다. 산막이옛길은 조용한 농촌마을을 생동감이 넘치는 동네로 바꿔 가고 있다. 우선 괴산을 전국에 알리는 홍보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둘레길 열풍이 일면서 벤치마킹하려는 전국 지자체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인천 중구청, 전북 무주군 등 지금까지 다녀간 지자체가 30여곳이 넘는다. 명품길로 소문이 나면서 헌법재판소장, 국회의장 등 유명 인사들이 다녀갔고, 각종 여행잡지에도 수없이 소개됐다. 지역경제 파급 효과도 상당하다. 괴산호를 운항하는 16t급 45인승 유람선과 12인승 황포돛배 두 척의 선박이용료가 올해 들어서만 7억 3600만원의 수입을 기록하고 있다. 주차장 수입도 1억 3000여만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선박을 비롯해 산막이옛길 주변 음식점과 점포, 농특산물 판매와 숙박업소 수입 등이 150억원에 달했다. 차를 타고 2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괴산읍 상권과 매운탕 음식점 12곳이 몰려 있는 인근의 괴강 매운탕 거리 손님도 부쩍 늘었다. 산막이옛길은 칠성면 땅값도 상승시켰다. 올해 초 발표된 지난해 표준지 공시지가를 살펴보면 괴산군 내 1958필지가 전년보다 평균 8.1% 올랐는데, 지역에서 칠성면이 가장 높은 17.91%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군은 전반적인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서도 전국의 관광명소로 인기를 끄는 산막이옛길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산막이옛길에서 유람선을 운항하는 대운선박은 지난해부터 운항수입의 10%를 괴산군민 장학회에 내놓고 있다. 산막이옛길이 탄생하면서 관광객이 몰리고 유람선 손님이 늘어나자 수익금의 일부를 이웃들에게 환원하고 있는 것. 지난해 480만원이 기탁됐고, 올해는 관광객이 늘면서 더 많은 장학금을 기탁할 예정이다. 산막이옛길이 학생들에게 희망까지 심어 주는 셈이다. 이재현 군 관광담당은 “산막이옛길은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과 함께 국내 3대 명품길로 평가받고 있다”면서 “25억원을 들여 강을 건너는 150m 정도의 출렁다리를 2015년까지 건립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광 인프라를 확충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괴산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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