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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17세기 글씨에서 20세기 추상화를 보다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17세기 글씨에서 20세기 추상화를 보다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질수록 옛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초기의 한자는 3차원인 표현 대상을 2차원으로 묘사한 일종의 구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구상화는 곧 해체와 재조합 과정을 거쳐 진전된 형태의 한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렇게 태어난 한자, 혹은 한자의 배열을 조화롭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서예라고 할 수 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행한 서양미술의 발전 단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문 작은 글씨 하나에도 짙게 배인 창조 정신 강원도 삼척에 있는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를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미수 허목(1595~1682)의 삼척부사 시절 글씨다. 척주는 삼척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전서체(篆書體)로 크게 씌어진 ‘척주동해비’ 다섯 글자는 조형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는데, 20세기 추상화를 보는 듯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긴다. 역시 전서체인 비문의 작은 글씨 하나하나에도 창조 정신이 짙게 배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척주동해비는 글씨의 아름다움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설화를 남기기도 했다. 당시 삼척은 파도가 읍내까지 밀려오고, 오십천이 범람해 피해가 극심했다고 한다. 이에 미수가 동해송(東海頌)을 지어 정라진에 척주동해비를 세우자 바다가 잠잠해졌다는 것이다. 추종자들은 미수의 위민 정신이 천지자연마저 감응시킨 사례로 든다. ‘실제로 그랬다면…’이라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비석에 새겨진 미수의 예술적 성취가 발산한 영기(靈氣)도 천지자연을 움직이는 데 조금은 기여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인의 영수였던 미수는 인조의 계비인 조대비의 상복(喪服) 문제가 발단이 된 이른바 기해예송(己亥禮訟)에서 3년복을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현종이 1년복을 주장하는 서인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좌천된 자리가 삼척부사였다. 동해송과 척주동해비는 미수가 지방관으로 소임에 철저했다는 증거로 종종 제시되기도 한다. 동해송은 동해 큰바다에 대한 찬양의 뜻을 전하고, 바다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희구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허목은 눈썹이 눈을 덮을 정도로 길어 눈썹 미(眉), 늙은이 수(?) 자로 호를 지었다고 자신의 문집 ‘기언’(記言)에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의 초상화도 희고 두터운 눈썹이 남달라 보인다. 화폭 상단에 적힌 채제공의 글에 의하면, 정조는 허목의 인물됨에 크게 감동하여 은거당이 그린 82세의 허목 초상을 당대 최고 화사 이명기에게 재현하도록 했다고 한다. 채제공은 정조시대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 인사다. ●中 상고시대 문자 탐구해 특유의 서체 만들어 미수는 만년에 남인의 핵심 인물로 부상하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정치적 소수파에 머물렀다. 예술가로서 허목은 산림(山林)에 머물던 시절 중국의 상고시대 문자를 탐구해 특유의 서체를 만들었는데 세상은 미수의 전서라는 뜻에서 미전(眉篆)이라고 불렀다. 그의 글씨에 담긴 미래지향적 창조 정신은 당시 사람들에게도 크게 인정받았던 것 같다. 허목의 예술 정신은 오늘날 더욱 각광받는다. 국가 및 지방 문화재만 각각 22건과 26점에 이른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허목수고본’(許穆手稿本)에는 척주동해비의 원본 글씨도 들어 있다. ‘완귀정’(玩亭)은 영천에 있는 완귀 안증(1494~1553)의 정자를 위해 쓴 것이다. 이 글씨에는 미수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즐겁게 바라본다는 뜻의 완(玩)자는 한쪽이 뚫린 듯 허전하다. 미수는 같은 의미를 가진 완(?)자로 과감하게 대체했다. 획이 많아 번다해 보이는 거북이 구(龜)자는 연못에서 헤엄치는 새끼 거북이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변형시켜 조화를 완성해 냈다. 17세기 작업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추상 미술의 경지다. 안동 하회마을의 ‘충효당’(忠孝堂)도 대표작의 하나다. dcsuh@seoul.co.kr
  •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미술관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미술관

    일본 최초의 현대식 공원으로 조성된 도쿄의 우에노 공원은 벚꽃 시즌의 인기 관광지로 꼽힌다. 오래 된 나무들이 안정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곳에는 넓은 호수와 판다곰으로 유명한 동물원 외에 미술관과 박물관, 음악당 등 문화 공간들이 밀집해 있는 ‘우에노 문화지역’으로 도쿄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휴식과 정서함양, 교육의 장으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하고 있다.  예전의 우에노 지역은 도쿠가와 가문의 신사인 간에이사와 그 말사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길하지 않은 북동방향을 다스리기 위해 절을 짓는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에도 막부가 쇠락하고 전쟁으로 사찰들이 파괴되자 메이지정부는 1873년 이 지역을 일본의 1호 공원으로 지정해 현대식 공원으로 조성했고 1882년엔 국립박물관과 부속 동물원을 건립해 일반에 공개했다. 우에노 일대는 1924년 쇼와 천황의 결혼을 기념해 도쿄시에 공원 관리를 양도한 것을 계기로 우에노온시고엔(上野恩賜公遠·주군에게 하사 받은 공원)이라는 명칭을 갖게 돼 오늘에 이른다.  공원으로 들어오면 오른편에 국립서양미술관(國立西洋美術館)이 위치해 있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미술관 건축으로 1959년 6월 완공됐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의미있는 장소임에도 지금까지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일제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우리나라의 국권을 빼앗고 자원을 약탈하던 시기에 조성된 컬렉션이 주를 이루고 있고, 유럽에서 건너온 서양미술 작품을 굳이 일본에서 볼 일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을 고쳐 먹고 지난 5월 하순의 주말을 이용해 찾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국민 품에 안긴 ‘마쓰카타 컬렉션’  국립서양미술관 앞마당에는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지옥의 문’과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과 ‘칼레의 시민’,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가’가 설치돼 있다. 일본은 잘 알다시피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구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유럽 회화, 특히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을 유난하게 좋아해서 많은 일본 자본가들은 20세기 초 유럽 현지에서 작품을 사 모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가와사키 중공업의 전신인 가와사키 조선소 대표이사였던 마쓰카타 고지로(松方幸次?,1865~1950)다. 국립서양미술관이 상설전시하고 있는 걸작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마쓰카타 컬렉션’을 만든 장본인이다. 메이지 시대 정치가의 아들로 태어나 예일대학과 소르본대학에서 수학한 마쓰카타는 1916년부터 1923년까지 유럽미술품과 공예품, 그리고 유럽의 일본 열풍으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우키요에(목판 풍속화) 작품을 수집했다. 프랑스 정부가 국립장식미술관 문으로 쓰기위해 로댕에게 주문했다가 계약 파기로 석고 상태로 방치돼 있던 ‘지옥의 문’을 브론즈로 주조하는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그는 도쿄에 미술관을 세운다는 목표를 갖고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열정적으로 작품을 사모았지만 1927년 세계 대공황 여파로 가와사키 조선이 파산하자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사재를 내놓게 되면서 일본에서 담보로 잡혔던 작품들은 여기저기로 팔려 나갔다. (우키요에 컬렉션 8000점은 일본 황실에 헌상했고 ,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런던 수장고에 보관하던 작품은 1939년 화재로 소실됐고, 프랑스에 보관하던 작품 400여점은 우여 곡절 끝에 제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전범국의 책임을 물어 프랑스 정부에 귀속됐다. 일본정부가 개인의 재산이라는 이유로 1951년부터 반환노력을 펼친 끝에 1959년 반환이 결정됐다. 프랑스 정부는 고흐의 ‘아를의 침실’ 등 주요 작품 몇 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작품들도 공공을 위한 미술관에 공개한다는 조건하에 ‘기증 반환’했다. 회화 196점, 소묘 80점, 판화 26점, 조각 63점, 서적 5점 등 총 370점이 이때 일본으로 돌아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앞둔 근대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일본 정부는 이미 사망한 소유주를 대신해 르 코르뷔지에에게 도쿄의 우에노 공원 내에 환수 작품들을 전시할 미술관 설계를 의뢰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근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속도를 중시하게 된 시대상의 문화와 생황양식이 건축에 반영돼야 한다고 확신했던 그는 콘크리트로 된 고층 공동주거 건물을 파리시내에 건설하는 대단히 파격적인 구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미술관 건축을 꿈꾸며 프랑스 정부에 여러 차례 계획안을 제안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하기만 했던 그에게 뜻하지 않게 기회가 온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단일 건물은 파리 근교 프와시에 있는 빌라 사브와(1928~31년)에서 보듯이 평평한 지붕을 가진 정방형의 건축물이 필로티(건물 하단부에 기둥을 세워 텅비게 하는 구조)로 지탱하는 것이 특징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된 지상 3층, 지하 1층의 국립서양미술관 건물도 필로티로 지탱한 개방적인 공간과 나선형 복도, 재연채광을 이용한 건축양식 등 곳곳에 르 코르뷔지에의 개성이 녹아있다.  무표정한 정방형의 건축물을 필로티로 들어 올리고 그 하부의 입구로 들어가면 중앙홀에 이른다. 높은 천정에 삼각형 창문을 만들어 자연광이 들어오는 중앙홀을 지나 지그재그로 난 경사로를 따라서 2층 전시공간에 이르도록 하는 구조다. 르 코르뷔지에는 평면과 단면의 모든 요소에 ‘모뒬로르’의 치수를 적용했다. 천장이 낮은 경우 유럽 성인 남자가 손을 뻗는 높이(2.26m)로 하고, 높은 경우엔 그 두 배, 더 높으면 그 세배로 했다. 단위 전시공간의 폭은 기둥간격 6.35m의 격자 두 개, 길이는 격자 하나로 하고 자연광과 그늘이 드는 공간을 적절히 배치했다. 고전적인 전시공간과 달리 자유로운 평면 개념을 도입해 가변적인 칸막이로 일정한 넓이와 단면을 가진 공간들을 병치시켰다가 칸막이를 조정해 공간을 자유자재로 확대, 축소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8년 건물 전체를 지반에서 분리해 지진의 진동에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본관건물에 대규모 면진 장치를 설치했고 2007년 일본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했다. NHK 보도에 따르면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이 미술관의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권고했다. 이에 따라 오는 7월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정식등록될 전망이다. 중앙홀의 한 구석에는 미술관의 역사와 건설 당시의 미술관 모습,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들을 알리는 홍보물이 전시돼 있다.  서양미술 전반을 아우르는 방대한 컬렉션  본관의 1층과 2층이 상설전 공간이고, 지하는 기획전시 공간이다.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일본인이 유난히 좋아하는 인상파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쿠르베, 세잔, 마네, 모네, 르누아르, 반 고흐, 폴 고갱 등의 원화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런 명작들 대부분이 기구한 여로를 거쳐 쳤다. 소장 작품 중 모네의 1916년작 ‘수련’은 마쓰카타가 모네의 지베르니 작업실을 직접 방문해 1922년 작가로부터 구입한 작품으로 프랑스 정부에 몰수됐다가 1959년 일본에 돌아왔다. 지오토, 루벤스 등 중세 후기 작품에서 18세기 말 까지의 성서를 주제로 한 종교화도 훌륭한 것이 꽤 많다. 이밖에 피카소, 미로, 뒤뷔페, 폴록 등 20세기 후반의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 전반을 아우르는 컬렉션을 자랑한다. 회화 외에 조각, 소묘, 판화 작품 컬렉션도 알차고 기획전도 매우 수준이 높다. 방문 당시 지하의 기획전시실에서는 일본·이탈리아 수교 150년을 기념해 열리는 ‘카라바죠 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가 본명인 카라바죠(1573~1610)는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다. 치밀한 사실기법과 함께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를 기교적으로 구사하는데 능해 17세기 유럽회화의 선구자로 평가되지만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가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의 ‘박쿠스’, 밀라노 브레라미술관의 ‘ 엠마우스에서의 식사’,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성모의 죽음’, 바티칸궁전에 있는 ‘ 그리스도의 죽음’ 등 걸작을 남겼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현장 블로그] 서울대생 도서관 대여 1위는 日소설이라는데…

    [현장 블로그] 서울대생 도서관 대여 1위는 日소설이라는데…

    최근 서울대에 소설책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올해 들어 5일까지 가장 많이 대여한 책이 59명의 학생이 빌려 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입니다. 또 10위 안의 책 중에 소설이 4권이나 들어 있습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 정유정의 ‘7년의 밤’,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이 각각 7, 8, 10위였습니다. ●장편소설 ‘나미야잡화점의 기적’ 최다 소설책 바람이 신선한 변화로 거론되는 이유는 통상 수업 시간에 다루는 고전문학이나 사회과학 서적의 인기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2005년에는 ‘서양미술사’나 ‘양자역학’과 같은 순수 학술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교양 수업에서 권장한다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2013년과 2014년에 1위였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6위로 떨어졌습니다. 역시 교양 수업에서 사용되는 아우리피데스의 ‘비극’도 지난해 대출 순위 1위였지만 올해는 일본 인기 소설에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밀렸습니다.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인문학 열풍’과 연관 지었습니다. 교과 수업보다 자신의 인생에 필요한 책을 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올해 상반기 대출 순위에서 공동 3위에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와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채사장)이 오른 것도 같은 이유라는 거죠. ●“인문학 열풍·팍팍한 학점 관리 영향” 반면 학생들이 교양 수업 권장 서적마저 잘 읽지 않아서 마니아층이 있는 소설이 대출 1위로 올라간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이 대학의 한 교수는 “취업 전쟁에 학점 관리하기도 힘든 대학 생활에서 제대로 된 책을 읽을 여유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는데요. 소설이라도 읽으면 다행이라는 겁니다. 올해 들어 5개월간 서울대생 1만 6000여명이 중앙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은 7만 6088권입니다. 한 명이 한 달에 평균 0.9권꼴로 약 한 권 가량 읽은 셈입니다. 어쩌면 서울대 학생들은 어려운 책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견일지도 모릅니다. 한 학생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울대생이라고 꼭 어려운 책만 읽나요. ‘꼰대’처럼 학벌 문화를 조장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멘트·석고 미륵불 ‘파격’을 담아낸 불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멘트·석고 미륵불 ‘파격’을 담아낸 불상

    정관 김복진(1901~1940)은 현대적 개념의 조각가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로 미술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는 카프(KAPF)라는 영문 약칭이 더 익숙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한때 불문(佛門)에 귀의했다는 그는 불모(佛母)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오히려 서양미술에 바탕을 둔 조각 작품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50점 남짓한 작품 가운데 동상은 제2차 세계대전 막판 일제의 쇠붙이 공출로 사라졌고, 목조와 소조의 유작도 동생인 팔봉 김기진의 인쇄소 창고에서 6·25전쟁 때 소실됐다고 한다. ●한국 최초 현대 조각가… 불상 10여점 남아 있어 불상으로는 충북 보은 법주사의 미륵대불이 그의 작품이었다. 미륵대불은 김복진이 머리 부분을 완성하고 전체 비례를 잡아 놓은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중단됐다고 한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미륵대불은 1963년에야 완성됐다. 이후 흔한 시멘트 조각이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김복진으로서는 오히려 시멘트라는 새로운 수입 재료를 거대 불상 조성에 이용하는 실험이었을 것이다. 미륵대불은 1990년 금동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두 차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김복진의 체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본존불도 그의 작품이다. 미륵전은 내부가 아래위로 뚫려 있는 3층으로 본존불은 높이가 38척이니 12m가 넘는다. 법주사 미륵대불에 시멘트를 이용한 것처럼 금산사 미륵본존불도 서양조각 재료인 석고를 썼다. 당초의 삼존불은 미륵전을 중창한 인조 13년(1635) 조성한 것이다. 미륵불은 특이하게 커다란 무쇠솥 위에 봉안되어 있다. 참배객들은 삼존불에 배례하고는 무쇠솥과 대좌 사이 공간에 시줏돈을 넣고는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34년 3월 9일 저녁 시줏돈을 거두는 소임을 맡은 동자승이 촛불을 잘못 다루는 바람에 솥 내부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불길은 곧바로 소조상 내부 목재에 옮겨 붙었고 본존불은 무너지고 말았다. 금산사는 미륵본존의 복원불사를 추진했다. 공모에는 김복진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화승들인 보응 문성, 금용 일섭, 이석성이 응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보응, 금용, 이석성은 서울 안양암의 천오백불상도 함께 조성한 적이 있다. 이당 김은호 화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김복진에게 응모를 권유한 것도 이당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옥살이하며 밥으로 불상 만들기도 김복진은 도쿄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뒤 1923년 신극운동 단체인 ‘토월회’를 조직한다. 1924년에는 일본 제국미술원전람회,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각각 나체 조각 작품으로 입선한다. 이듬해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체상 ‘여인’이 특선에 올랐다. 하지만 조선공산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28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6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김기진은 감옥살이 당시 형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참담한 감옥살이 중에도 김복진은 먹지 않고 남긴 밥을 주물러 점토처럼 만들고는 인물상과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솜씨에 놀란 간수들이 김복진을 목공소로 보내 작은 목조불상을 깎게 해서 감옥소 직매장에서 팔게 했다는 것이다. 김복진이 불교 조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 기간이었던 것 같다. 금산사 미륵불 조성에 나선 것은 풀려난 직후가 된다. 남아 있는 김복진의 불상 작품은 10점 남짓이다. 금산사 미륵불과 그의 흔적이 남은 법주사 미륵대불, 서울 영도사 석가모니불입상, 충남 예산 정혜사 관음보살좌상, 충남 공주 계룡산 소림원 미륵입상 등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소림원 불상이다. 소림원의 높이 117㎝ 석고 미륵은 금산사 미륵불을 조성하기 위한 축소 모형이라고 한다. 다만 머리 부분의 비례가 소림원 쪽보다 금산사 쪽이 조금 더 커보인다. 참배객들이 고개를 들어 한참을 높이 올려다봐야 하는 대형 불상인 만큼 의도적인 비례 조정이다. dcsuh@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멘트·석고 미륵불 ‘파격’을 담아낸 불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멘트·석고 미륵불 ‘파격’을 담아낸 불상

    정관 김복진(1901~1940)은 현대적 개념의 조각가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로 미술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는 카프(KAPF)라는 영문 약칭이 더 익숙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한때 불문(佛門)에 귀의했다는 그는 불모(佛母)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오히려 서양미술에 바탕을 둔 조각 작품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50점 남짓한 작품 가운데 동상은 제2차 세계대전 막판 일제의 쇠붙이 공출로 사라졌고, 목조와 소조의 유작도 동생인 팔봉 김기진의 인쇄소 창고에서 6·25전쟁 때 소실됐다고 한다. ●한국 최초 현대 조각가… 불상 10여점 남아 있어 불상으로는 충북 보은 법주사의 미륵대불이 그의 작품이었다. 미륵대불은 김복진이 머리 부분을 완성하고 전체 비례를 잡아 놓은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중단됐다고 한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미륵대불은 1963년에야 완성됐다. 이후 흔한 시멘트 조각이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김복진으로서는 오히려 시멘트라는 새로운 수입 재료를 거대 불상 조성에 이용하는 실험이었을 것이다. 미륵대불은 1990년 금동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두 차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김복진의 체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본존불도 그의 작품이다. 미륵전은 내부가 아래위로 뚫려 있는 3층으로 본존불은 높이가 38척이니 12m가 넘는다. 법주사 미륵대불에 시멘트를 이용한 것처럼 금산사 미륵본존불도 서양조각 재료인 석고를 썼다. 당초의 삼존불은 미륵전을 중창한 인조 13년(1635) 조성한 것이다. 미륵불은 특이하게 커다란 무쇠솥 위에 봉안되어 있다. 참배객들은 삼존불에 배례하고는 무쇠솥과 대좌 사이 공간에 시줏돈을 넣고는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34년 3월 9일 저녁 시줏돈을 거두는 소임을 맡은 동자승이 촛불을 잘못 다루는 바람에 솥 내부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불길은 곧바로 소조상 내부 목재에 옮겨 붙었고 본존불은 무너지고 말았다. 금산사는 미륵본존의 복원불사를 추진했다. 공모에는 김복진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화승들인 보응 문성, 금용 일섭, 이석성이 응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보응, 금용, 이석성은 서울 안양암의 천오백불상도 함께 조성한 적이 있다. 이당 김은호 화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김복진에게 응모를 권유한 것도 이당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옥살이하며 밥으로 불상 만들기도 김복진은 도쿄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뒤 1923년 신극운동 단체인 ‘토월회’를 조직한다. 1924년에는 일본 제국미술원전람회,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각각 나체 조각 작품으로 입선한다. 이듬해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체상 ‘여인’이 특선에 올랐다. 하지만 조선공산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28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6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김기진은 감옥살이 당시 형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참담한 감옥살이 중에도 김복진은 먹지 않고 남긴 밥을 주물러 점토처럼 만들고는 인물상과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솜씨에 놀란 간수들이 김복진을 목공소로 보내 작은 목조불상을 깎게 해서 감옥소 직매장에서 팔게 했다는 것이다. 김복진이 불교 조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 기간이었던 것 같다. 금산사 미륵불 조성에 나선 것은 풀려난 직후가 된다. 남아 있는 김복진의 불상 작품은 10점 남짓이다. 금산사 미륵불과 그의 흔적이 남은 법주사 미륵대불, 서울 영도사 석가모니불입상, 충남 예산 정혜사 관음보살좌상, 충남 공주 계룡산 소림원 미륵입상 등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소림원 불상이다. 소림원의 높이 117㎝ 석고 미륵은 금산사 미륵불을 조성하기 위한 축소 모형이라고 한다. 다만 머리 부분의 비례가 소림원 쪽보다 금산사 쪽이 조금 더 커보인다. 참배객들이 고개를 들어 한참을 높이 올려다봐야 하는 대형 불상인 만큼 의도적인 비례 조정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인문학 듣는 ‘水’…구로, 매주 역사·철학 등 강의

    구로구에서는 다음달부터 수요일마다 인문학 강의가 열린다. 매월 둘째·넷째 주 수요일에는 구로동 꿈나무도서관에서, 셋째 주에는 구청 강당에서 흥미로운 강좌가 줄줄이 준비돼 있다. 구로구는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에 대한 구민들의 지적 호기심을 풀어주려고 다양한 인문학 강연을 진행한다고 25일 밝혔다. 강연은 오는 12월까지 28회에 걸쳐 구청, 구립도서관, 작은도서관 등 곳곳에서 펼쳐진다. 셋째 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구청에서 ‘희망의 구로 인문학’을 마련한다. 독서 컨설턴트로 잘 알려진 저술가이자 강연가 김병완 미래경영연구소 대표(6월 15일),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낸 고전평론가 고미숙(8월 17일) 등 명사들이 줄줄이 강단에 선다. 본격적인 프로그램에 앞서 26일 ‘시골의사’ 박경철 작가가 구청 강당에서 ‘인문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한다. 꿈나무도서관에서는 둘째·넷째 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칼럼니스트 권경률이 역사 인물 이야기를 강의한다. 6월에는 조광조(8일), 이순신(22일)의 숨겨진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아울러 글마루한옥도서관, 작은도서관 등에서는 매월 넷째 주 수요일에 ‘삶이 즐거워지는 인문학 놀이터’를 운영한다. 6월에는 수궁동 작은도서관에서 ‘여름, 여행길에 만나는 책이야기’(이기범)를 듣고, 7월에는 오류2동 작은도서관에서 ‘내 마음대로 서양미술사’(이순)를 만난다. 8월에는 글마루한옥도서관에서 ‘그림책으로 보는 우리 아이 심리’(정유선)를 알아본다. 도서관별 프로그램에는 해당 도서관에서 신청하고, 구청 강당에서 진행하는 강연은 신청 절차 없이 선착순으로 참여하면 된다. 수강료는 무료.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서울 구로의 수요일은 인문학 강의가 있는 날

    서울 구로구에서는 다음 달부터 수요일마다 인문학 강의가 열린다. 매월 둘째·넷째 주 수요일에는 구로동 꿈나무도서관에서, 셋째 주에는 구청 강당에서 흥미로운 강좌가 줄줄이 준비돼 있다. 구로구는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에 대한 구민들의 지적 호기심을 풀어주려고 다양한 인문학 강연을 진행한다고 25일 밝혔다. 강연은 오는 12월까지 28회에 걸쳐 구청, 구립도서관, 작은도서관 등에 곳곳에서 펼쳐진다. 셋째 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구청에서 ‘희망의 구로 인문학’을 마련한다. 독서 컨설턴트로 잘 알려진 저술가이자 강연가 김병완 미래경영연구소 대표(6월 15일),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낸 고전평론가 고미숙(8월 17일), ‘라면을 끓이며’를 쓴 소설가 김훈(9월 21일) 등 명사들이 줄줄이 강단에 선다. 본격적인 프로그램에 앞서 26일 ‘시골의사’ 박경철 작가가 구청 강당에서 ‘인문정신이란 무엇인� ?� 주제로 강연한다. 꿈나무도서관에서는 둘째·넷째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에는 칼럼니스트 권경률이 역사 인물 이야기를 강의한다. 6월에는 조광조(8일), 이순신(22일)의 숨겨진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아울러 글마루한옥도서관, 작은도서관 등에서는 매월 넷째 주 수요일에 ‘삶이 즐거워지는 인문학 놀이터’를 운영한다. 6월에는 수궁동 작은도서관에서 ‘여름, 여행길에 만나는 책이야기’(이기범)를 듣고, 7월에는 오류2동 작은도서관에서 ‘내 마음대로 서양미술사’(이순)를 만난다. 8월에는 글마루한옥도서관에서 ‘그림책으로 보는 우리 아이 심리’(정유선)를 알아본다. 도서관별 프로그램에는 해당 도서관에서 신청하고, 구청 강당에서 진행하는 강연은 신청 절차 없이 선착순으로 참여하면 된다. 수강료는 무료.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미술은 문명 비추는 거울”… 문답으로 풀어 쓴 미술사

    “미술은 문명 비추는 거울”… 문답으로 풀어 쓴 미술사

    “서양 미술의 팔할은 고전 미술이에요.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그 고전 미술을 통시적으로 훑으면서 미술사학자의 뇌 구조를 아낌없이 보여 주고 싶습니다.”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라는 뜻을 지닌 책 ‘난처한 미술이야기’ 1, 2권을 출간한 양정무(49)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교수의 말이다. 출판사 ‘사회평론’이 인문학 분야의 소통을 강화하려는 첫 프로젝트로, 원시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양미술사를 9권 연작으로 톺아 보는 첫 미술 통사다. 양 교수는 1권에선 ‘미술이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인간이 언어를 쓴 지는 5000년이지만 그림을 그린 지는 4만년이 넘었습니다. 미술을 모르고는 인간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1권에선 이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려 했습니다.” 이미 집필 작업이 마무리된 3권 ‘기독교 미술’과 4권 ‘르네상스 미술’은 올해 12월과 내년 6월에 나올 예정이다. 아직 준비 중인 5~9권은 17세기부터 현대 미술까지 시기를 다룬다. 이 책은 기획 단계부터 철저히 대중을 겨냥해 실제 강의처럼 구어체로 쓰였다. 학생이 질문을 던지면 양 교수가 이에 대해 답을 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3만 2000년 전에 그려진 쇼베 동굴 벽면의 곰 그림을 보며 ‘다른 동굴에는 주로 황소가 그려졌는데 왜 쇼베 동굴에는 곰이 그려졌을까요?’라고 질문하면 ‘대표적인 가설은 쇼베 동굴에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나 이 동굴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던 사람들의 집단이 곰을 숭배했다는 겁니다’(1권 83쪽)라고 답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양 교수가 출판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일차적으로 강연을 한 뒤 그 강연을 다시 글로 옮기는 독특한 집필 방식을 택했다. 한 권당 대략 2시간씩 20회분의 강의가 담겼다고 출판사는 소개했다. 마치 현장 답사를 하면서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주고자 각 권마다 수백장의 사진과 일러스트, 지도를 삽입했다. 긴 여정 끝에 4권까지 마무리 짓는 데 3년이 넘게 걸렸다. 그는 “미술은 단순히 한 개인의 작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동굴벽화처럼 모든 작품은 결국 인류 문명을 비추는 거울”이라면서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양식이 시대나 국가를 초월해 미국 링컨 기념관, 덕수궁 석조전, 심지어 국내 예식장이나 백화점에서 나타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야구팬 몰리는 고척동 ‘차 없는 먹자골목’ 변신

    야구팬 몰리는 고척동 ‘차 없는 먹자골목’ 변신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가 맞붙는 오는 15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일대가 차 없는 거리로 변신한다. 구로구는 고척돔 인근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야구 관람객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고척동 먹자골목 800m 구간을 ‘차 없는 거리’(보행전용거리)로 시범 운영한다고 10일 밝혔다. 고척동 먹자골목은 다양한 맛집과 즐길거리가 있는 곳으로, 지역 주민과 동양미래대학 직원·학생들이 즐겨 찾는다. 지난해 11월 고척돔이 개장하고 넥센이 홈구장으로 사용하면서 야구팬들도 먹자골목의 주 소비층으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구로구는 야구 관람객들에게 먹자골목을 알리고 상권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상인회와 뜻을 모아 ‘차 없는 거리’를 기획했다. 우선 인기 구단이 격돌하는 1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보행전용거리를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먹자골목을 걸으면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채운다. 주민 아마추어 동아리와 동양미래대학 동아리가 태권도 시범, 난타, 첼로 연주 등 다양한 무대를 꾸민다. 상인회는 홀몸어르신에게 무료로 식사 대접을 하면서 세대 간 융화의 장을 마련한다. 구 관계자는 “이번 ‘차 없는 거리’ 행사를 계기로 고척동 먹자골목이 야구팬들에게 많이 알려져 활성화되길 기대한다”면서 “안전하고 즐거운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구로, 15일 고척스카이돔 주변 ‘차없는 거리’…먹자골목 살리기

    구로, 15일 고척스카이돔 주변 ‘차없는 거리’…먹자골목 살리기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가 맞붙는 오는 15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일대가 차 없는 거리로 변신한다. 서울 구로구는 고척돔 인근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야구 관람객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고척동 먹자골목(?사진?) 800m 구간을 ‘차 없는 거리’(보행전용거리)로 시범 운영한다고 10일 밝혔다. 고척동 먹자골목은 다양한 맛집과 즐길거리가 있는 곳으로, 지역 주민과 동양미래대학 직원·학생들이 즐겨 찾는다. 지난해 11월 고척돔이 개장하고 넥센이 홈구장으로 사용하면서 야구팬들도 먹자골목의 주소비층으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구로구는 야구 관람객들에게 먹자골목을 알리고 상권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상인회와 뜻을 모아 ‘차 없는 거리’를 기획했다. 우선 인기 구단이 격돌하는 1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보행전용거리를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먹자골목을 걸으면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채운다. 주민 아마추어 동아리와 동양미래대학 동아리가 태권도 시범, 난타, 첼로 연주 등 다양한 무대를 꾸민다. 상인회는 홀몸어르신에게 무료로 식사 대접을 하면서 세대 간 융화의 장을 마련한다. 구 관계자는 “이번 ‘차 없는 거리’ 행사를 계기로 고척동 먹자골목이 야구팬들에게 많이 알려져 활성화하길 기대한다”면서 “안전하고 즐거운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듀오, ‘2016 가족사랑 명예의 전당’ 행복 수기 공모전 개최

    듀오, ‘2016 가족사랑 명예의 전당’ 행복 수기 공모전 개최

    저출산 시대에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고, 더불어 사는 삶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가족 행사가 열린다. 국내 1위 결혼정보회사 듀오(대표 박수경)가 ‘행복한 다둥이 가족’을 주제로 다양한 가족 사진과 사연을 공모하는 ‘제5회 가족사랑 명예의 전당’을 개최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가족의 소중함과 부부 참사랑의 의미를 일깨우고자 기획됐다. 올해 5회째를 맞이한 이번 행사는 다음달 10일까지 진행되며, 다자녀 가족의 행복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사연으로 최종 선정된 부부 3쌍은 타인에 귀감이 되는 대한민국 대표 모범 가족으로서 인정 받아, 듀오 ‘가족사랑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듀오는 이들 세 가족을 본사로 초청해 가족사랑 지원금 총 300만원과 ‘참사랑 실천 가족’ 인증 표창장을 시상할 계획이다. 주변 다둥이 가족을 추천한 지인에게도 풍성한 상품을 제공한다. 심사에 오른 여러 사연 중 10개를 뽑아 해당 응모자에게 총 10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증정한다. 박수경 듀오 대표는 “듀오는 매년 親결혼문화 캠페인의 일환으로 금슬 좋은 부부, 화목한 가족을 대상으로 한 행복 수기 공모전뿐 아니라, 청춘의 사랑을 주제로 한 대학생 UCC공모전 등 여러 이벤트를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다”며, “희망하는 연애, 아름다운 가족의 사례가 혼인 장려에서 나아가 국가적 이슈로 떠오른 출산율 제고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족사랑 명예의 전당에는 4자매의 부모로 빵집을 운영하며 지역 보육원에 나눔을 실천하는 이상민(39), 최양미(37) 부부, 5남매의 양육을 돕는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 최창식(42) 서진희(40) 부부, 3형제를 키우는 대학원생 남편과 ‘워킹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 준 홍성완(40) 김지선(36) 부부가 최종 선발됐다. 참가 신청 및 자세한 문의는 듀오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해 가능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만화 같은 인생…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만화 같은 인생…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지난 1일 서울 도봉구 삼양로 캠퍼스에서 만난 이원복(70) 덕성여대 총장은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의 주인공을 닮아 있었다. 깔끔한 인상이 그랬고, 빠르고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화법이 또 그랬다. 그는 50년 이상 만화를 그려 왔지만, 정해진 마감 시간을 어겨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첫 어린이 신문 연재로부터 55년째를 맞은 그의 만화와 인생 얘기를 들어 봤다. -“원복이라고 했지? 네가 만화를 그렇게 잘 그린다며? 어디 실력 좀 한 번 볼까?” 친구 아버지가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를 탁자 위에 올려 놓으셨다.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찾아간 서울 종로구 중학동의 소년한국일보 편집국. 1962년 당시 나는 경기고 1학년이었고, 친구 아버지는 그 어린이 신문의 주간이셨다. 아들로부터 ‘교내 학보에 만화 그리는 친구’라고 소개받은 그분은 내가 즉석에서 그린 만화를 보시더니 꽤 만족해하셨다. “우리 신문에 만화 연재해 볼 생각 없니?”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나에게 다른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친구 아버지는 당시 유명 언론인이자 수필가, 아동문학가로 활동했던 조풍연(1914∼1991) 선생이셨다. 조 선생은 한국일보에서 문화부장, 사회부장 등을 지내고 이태 전 소년한국일보가 창간될 때 초대 주간으로 왔다. -그때부터 학교 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만화를 그렸다. 솔직히 만화를 ‘그리는’ 것은 아니었고, 미군 부대에서 나와 돌아다니던 명작만화들을 ‘베끼는’ 일이었다. 원본 만화 위에 습자지를 대고 그 아래 비치는 그림의 선을 따라 본을 뜨는 게 나의 일이었다. 내가 작업을 마치면 영어 번역자가 만화 속 말풍선에 한글 대사를 집어넣었다. 나의 첫 연재물은 월터 스콧의 소설을 만화로 만든 ‘아이반호’였다. 이어 ‘엉클 톰스 캐빈’, ‘마르코 폴로’ 등을 차례로 그렸다. -아무리 베낀 그림이라고는 해도 나의 손끝을 떠난 그림들이 많은 학생들이 보는 신문에 실린다는 건 고1 학생에겐 꽤 자부심 가질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를 기쁘게 했던 건 찢어지게 가난한 고등학생의 손에 쥐여진 노란 봉투였다. 처음 받은 돈이 3000원이었는데, 그 돈은 온전히 내 마음대로 처분했다. 1000원을 떼어 형에게 주고, 남은 돈으로 영한사전 한 권 사고 대한극장에서 영화 ‘벤허’를 봤다. 그랬는데도 몇백원이 남았다. 만화가 내 생계수단이 된 출발점이었다. -내가 다섯 살 때 6·25가 터졌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대전에서 꽤 부유하게 살았다. 아버지가 고무신 공장을 운영하면서 시내에 큰 여관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그것들은 모두 폐허가 돼 있었다. 아버지는 이것저것 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되는 일이 없었다. 서울에 가면 좀 나아질까 해서 7남내 중 막내인 내가 열 살 되던 1955년 가족을 데리고 마포에 정착했다. 하루 세 끼를 다 먹을 수 있는 날은 거의 없었다. 코딱지만한 월세방에 부모님과 4형제가 누우면 몸을 뒤집기도 버거웠다. 우리 7남매 중에 큰누나가 결혼해 부산에서 형을 데리고 살고, 둘째 누나가 돈 벌러 지방에 내려가 있지 않았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한데에서 잠을 자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되는 일 없기는 서울이나 대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옷수선으로 생계를 꾸렸는데, 대전의 부유한 가문 출신이 갑작스럽게 고생을 만난 탓인지 서울에 올라오고 얼마 후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셨다. 실의에 빠진 아버지는 몇 년 뒤 낙향하셨고, 내가 스무 살 되던 해 돌아가실 때까지 서울에 올라오지 않으셨다. -부모님은 경제적으로는 7남매에게 물려주신 게 없었지만, 약간의 재능은 주셨다. 대체로 공부 머리가 좋은 편이었고,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그림에 대한 재능까지 내려 주셨다. 어렸을 때부터 내 그림 실력은 유명했다. 너댓 살 때부터 영화 같은 걸 보고 나면 그것들을 똑같이 따라 그리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국민학교 5학년 때 동대문국민학교에 전학했는데, 공부는 늘 1등 아니면 2등이었다. 어렵지 않게 경기중학교에 들어갔는데, 2학년 때 미술반에 가입했다. 부잣집 아이들은 외제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난 그걸 살 돈이 없었다. 얼마 후 미술반을 나왔다. -점심이면 식모 아주머니가 자가용차를 타고 와서 따뜻한 도시락을 전달해 주고 가는 애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점심을 굶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도 불행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절대빈곤의 시대. 내가 사는 동네에 오면 다 우리 집 수준이었다. -고1 때부터 신문에 만화를 연재했으니 학업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전체 석차가 중하위권에 머물렀지만, 내가 경기고 학생이라는 데서 오는 대학입시의 자신감, 이런 것은 좀 있었다. (실제로 우리 경기고 61회 동창 480명 중에 360명이 서울대에 들어갔다) “내가 만화 그리느라고 시간을 빼앗겨서 그렇지, 공부에만 전념하면 서울대 의대는 충분히 갈수 있을 거야.”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정한 목표였다. 하지만, 우연히 병원에서 피투성이가 돼 있는 환자를 보게 됐는데,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바꾼 장래 희망이 건축가였다. 당시 나에게 건축가는 T자와 제도기를 들고 폼 잡고 앉아 ‘언덕 위의 하얀 집’을 그리는 직업이었다.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직업으로서 만화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 자만했던 걸까, 대학에 낙방을 하고 말았다. -재수를 해서 1966년 서울대 건축학과에 들어갔다. 세계의 유명한 거장들처럼 나만의 랜드마크를 하나 만들겠다는 야심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 ‘수업 첫날부터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수학 미적분이라니….’ 의지가 차츰 꺾이더니 얼마 후에는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다. “나는 좀 어려울 것 같아. 오늘 수업 그냥 빠질란다. 대신에 이따가 저녁에 내가 술 한 잔 살게.” 수업에 빠지는 날이 늘어갔다. 하루 종일 기숙사에서 만화를 그리고 빨리 어둠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달디 단 술이 나와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달려나갈 생각뿐이었다. 만화를 그리다 보니 수중에 돈이 좀 있었다. 그 시절, 나와 안 노는 친구는 있었어도, 나를 알면서 내가 사는 술을 안 마신 친구는 없었을 것이다. -대학생이 돼서는 나름 나만의 그림체와 스토리를 갖게 됐다. 순수한 나의 창작 만화를 그려 소년한국일보에 연재했다. 명랑만화, 스포츠만화, 순정만화 등 분야도 다양했다. ‘야망의 그라운드’, ‘미니 바람 꽃구름’, ‘사랑의 학교’, ‘자마곰 삼형제’ 같은 작품이 그 시절 내 대표작인데, 신문사에서 편집국 한쪽에 내 자리를 따로 만들어 줬을 정도였다. 사실 신문사 입장에서는 적당히 인기 있는 원고 넘겨주지, 마감시간 또박또박 잘 지키지, 원고료 많이 줄 필요 없지 나 같은 보물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한창 때는 소년한국일보에 작품 3개를 동시에 싣기도 했는데, 그걸 다 ‘글·그림 이원복’으로 할 수가 없어서 ‘이상권’, ‘성창경’ 같은 친구들 이름을 필명으로 쓰기도 했다. 상권이나 창경이는 자기 이름이 공짜로 신문에 나가는 것도 모자라 나한테 술까지 얻어먹는 호사를 누렸다. -결국 나는 만화가 생활 때문에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장을 따지 못했다. 1972년 군대에 들어가 1975년까지 만화만 그렸는데, 그러는 사이 형들은 ‘형제들의 다짐’을 속속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공부에 관심이 없던 둘째 형을 제외한 우리 형제들은 1966년 첫째 형(이정복·86·전 한양대 교수)이 독일로 철학을 공부하러 간 뒤 약속을 한 게 있었다. 우리도 학비가 무료인 독일로 유학을 하되 먼저 간 형이 바로 아래 동생의 초기 정착금을 위해 1년간 돈을 벌자는 거였다. -셋째 형(이창복·80·전 한국외국어대 부총장)이 쾰른대에 독문학을 공부하러 갔다. 형은 대학 입학을 1년 동안 미루고 식당에서 일해 넷째 형(이정춘·74·전 한국언론학회장)에게 비행기 티켓을 보내 주었다. 넷째 형은 독일 뮌스터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해 나중에 중앙대 교수가 됐는데, 나 역시 그 형의 덕을 보았다. 1975년 뮌스터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했다. -독일에 도착한 날부터 유럽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창작한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을 ‘새소년’에 6년간 연재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전편인 셈이다. 그런데 너무 초기에 그린 만화여서 나중에 보니 오류가 많았다. -여행과 독서는 내 창의력의 밑천이자 큰 자산이었다. 사람들은 내 유학생활이 꽤 어려웠을 것으로 알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유학생들이 5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았다면 난 100만원을 쓰고 살았다. 한국에 그려 보낸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원고료 덕이었다. 폐차 직전의 자동차를 1000달러쯤 주고 사서 1만∼2만㎞ 정도 달리고 버렸다. “내가 여기를 언제 또 올 수 있겠나.” 이곳저곳 다니는 게 즐겁기도 했지만, 내 인생과 내 청춘에 대한 의무감이랄까, 그런 게 느껴졌다. -독일 유학 중에 잠시 한국에 나왔다가 당시 김수남 소년한국일보 사장을 만났다. 그때는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이 끝나 있던 상태였다. 다시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자고 했다. “먼나라 이웃나라 어때?”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제목은 이렇게 탄생했다. 1981년 10월부터 1986년까지 소년한국일보에 5년여에 걸쳐 총 1376회를 연재했다. 이듬해인 1987년 그걸 묶어 책으로 만드니 6권(먼나라 이웃나라 유럽편)이 나왔다. 2012년 전체적으로 새로 그려 재발간을 하고 2013년 스페인편까지 완성했다. -잠시 귀국해 덕성여대 교수 임용을 확정 짓고 1984년 5월에 짐을 싸기 위해 독일에 다시 들어갔는데, 스물세 살의 한국 여학생이 언론학을 공부하기 위해 우리 마을에 와 있었다. 당시 나는 서른 여덟이었다. 3개월간 교제를 했다. 그녀는 유학을 포기하고 15세 연상인 나와 한국으로 돌아와 이듬해 결혼했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국내에서만 1700만부가 팔렸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글로벌화라는 세계적인 기조의 순풍을 잘 탄 것 같다. 우리나라에 유럽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도 책의 인기를 높여 주었다. 유럽편의 내용들은 상당 부분 내 삶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 자체다. 그렇지 않은 중국편과 일본편을 위해서는 공부를 위해 각각 20회와 50회 이상 현지를 다녀왔다. 미국은 1999년 방문교수로 가서 살았던 게 도움이 됐다. -교수를 하는 동안 외부 활동을 주로 했다. 정작 덕성여대를 위해 기여를 못한 게 아쉬워 지난해 3월 총장직을 맡았다. 선거 공약으로 ‘남녀공학 전환’을 내세웠고 장기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젊어서는 ‘기러기 아빠’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지금은 ‘독거 노인’이 됐다. 얼마 전 서울 잠실의 우리 집으로 동사무소 직원이 찾아왔다. 요즘 혼자 살다가 변사하는 노인이 많아서 현황 파악을 하겠다고 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내 현실인 걸 어쩌겠나. 내 건강의 비결은 운동을 전혀 안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가장 정밀한 기계이기 때문에 아껴 쓸수록 오래 쓴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인데, 최대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은 우리나라 교양 만화의 선구자로 불린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글로벌 시대 지구촌 각국의 이야기를 만화로 풀어내 한국인의 국제적 시야를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55년의 만화 경력에 더해 일러스트레이터로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독일 뮌스터시·코스펠트시 초청 개인전을 가졌고, 권위 있는 2009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전에서 한국 일러스트레이터로는 처음으로 심사위원에 선정됐다. ▲1946년 대전 출생 ▲경기중, 경기고, 서울대 건축공학과(수료), 독일 뮌스터대 서양미술사·시각디자인 석사 ▲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 교수, 석좌교수, 제10대 총장 ▲한국 애니메이션 만화학회 회장,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 ▲‘먼나라 이웃나라’, ‘가로세로 세계사’, ‘와인의 세계·세계의 와인’, ‘만화로 떠나는 21세기 미래여행’, ‘세계사 산책’ 등 저서 다수
  • 더민주 우윤근 후보 아내, 유세 현장서 쓰러진 할머니 구해

    더민주 우윤근 후보 아내, 유세 현장서 쓰러진 할머니 구해

    4·13 총선 유세 현장에서 70대 할머니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나 의사인 후보자 부인의 응급조치로 목숨을 구했다.  공식 선거운동 개시 후 첫 주말인 2일 오전 ‘공양미 삼백석 효도대잔치’ 행사가 예정된 전남 곡성군 태안사에는 지역 노인들의 발길이 잇따랐다.  더불어민주당 우윤근 후보(광양·곡성·구례)와 관계자들도 사찰을 찾아 경내로 들어가는 노인들의 손을 붙잡고 인사하며 선거 운동을 펼쳤다. 남편의 손을 잡고 효도잔치에 온 서갑순(76) 할머니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전 10시 40분쯤 갑자기 의식을 잃고 계단에서 굴렀다.  때마침 우 후보의 유세를 돕던 우 후보의 아내 위희욱(53)씨가 달려가 응급조치를 했다. 경기도의 대학병원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인 위씨는 “고혈압약을 먹고 있고 심장이 안좋다”는 서 할머니 남편의 말과 증상을 토대로 환자를 바닥에 눕혀 119가 오기 전까지 다리를 올리고 손발을 주무르기를 반복했다. 할머니는 다행히 15분여 만에 의식을 회복했고 순천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서 할머니의 남편인 오상영(77)씨는 “몸이 약한 아내가 모처럼 잔치에 가고 싶다고 해 오토바이에 태워 왔는데 50m도 걷기 전에 갑자기 쓰러졌다”면서 “암과 갑상선질환 앓은 적이 있고 최근 고혈압에 어지럼 증상으로 약까지 먹고 있어 걱정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바로 도와줘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위희욱씨는 “목요일 밤 당직근무를 마치고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남편을 도우려 내려왔다가 우연히 환자를 발견해 조치했는데 의식을 되찾아 다행”이라며 “의사라면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진영 연구원 美암학회 젊은과학자상

    서진영 연구원 美암학회 젊은과학자상

    서울대는 약학대학 종양미세환경연구센터 서진영(30) 연구원이 다음달 중순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미국암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젊은 과학자상’을 받는다고 21일 밝혔다. 서 연구원은 ‘종양섬유아세포에서 분비되는 FGF2 물질을 통한 암세포의 증식’이라는 연구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 “100세 비결? 나이 말고 그림 얘기 합시다”

    “100세 비결? 나이 말고 그림 얘기 합시다”

    “나는 오늘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현재의 이 세월을 사는 사람으로서 현실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래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화가 김병기입니다.” 한국 추상미술 1세대이자 우리 현대미술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김병기 선생은 1916년 4월 16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올해 만 100세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붓을 놓지 않는 최고령 현역 화가인 그가 오는 25일부터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가나아트센터에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갖는다. 국내 미술계에서 처음 있는 백수(百壽) 개인전의 제목은 ‘백세청풍(百世淸風): 바람이 일어나다’로,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 이후 새롭게 작업한 신작들과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 50여점을 선보인다. 16일 만난 작가에게서는 푸른 바람이 이는 듯했다. 귀가 조금 안 들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 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그에게 여전히 건강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런 건 묻지 말라”면서 “건강 비결보다는 그림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재차 묻자 “부정적으로 의식될 때 오래 두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도록 해야 한다. 부정적인 의식은 필요하지만 오래 두면 병이 된다”고 답했다. 김 화백의 부친은 서양미술 수용 초기에 활동한 김찬영(1893~1960)이다. 그도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의 야수파, 표현주의, 입체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와 같은 미술운동을 접했다. 일본 도쿄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서 김환기, 유영국 등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들과 수학했다. 특히 에콜드파리에서 활동한 후지타 쓰구하루를 통해 파리의 전위적인 미술을 배우면서 추상미술에 눈뜨게 된다. 귀국 후 그는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지냈지만 한국전쟁 직전 월남해 한국문화연구소 선전국장과 종군화가 부단장을 역임했다. 서울대에서 그림을 가르쳤고, 서울예고 설립 당시 미술과장을 지내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1965년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를 맡은 직후 도미했던 그는 50여년 만에 귀국해 작업실을 마련하고 대한민국 국적도 회복했다. 소감을 묻자 그는 “50년을 미국에서 살았지만 잠시도 한국을 잊은 적이 없다”면서 “최후의 날까지 이곳에서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1947년 죽음을 각오하고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그는 “바람이 일어나다, 살아야 한다”는 폴 발레리의 시구절을 끝없이 되뇌었다고 한다. 백수전을 앞둔 그는 “요즘 다시 그 시구절을 떠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강남구, 건전한 발레파킹 문화 만든다

    강남구, 건전한 발레파킹 문화 만든다

    서울 강남구가 무질서한 대리주차(발레파킹) 등 올바른 주차문화 만들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동안 청담동과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지역 음식점 등의 무질서한 대리주차가 주택가 골목까지 파고들면서 주민의 민원이 끓이지 않았다. 강남구는 지난 13일부터 압구정과 청담동을 중심으로 불법 발레파킹 예방활동에 나선다고 14일 밝혔다. 구는 이미 지난달 24일 청담동 주민센터에서 잘못된 대리주차 관행을 개선하는 토론회도 했다. 발레파킹은 용산구 이태원동, 강남구 신사·청담동, 종로구 삼청동 등 주차장이 부족한 서울 도심의 음식점과 카페 등과 계약을 맺고 업소방문객의 차를 1000원에서 1만원의 요금을 받아 1시간에서 2시간 주차를 책임져 준다. 하지만, 이들은 주차공간이 부족해 인도나 이면도로, 거주자 우선주차구역 등에 불법 주·정차해 통행불편을 주고 경쟁 대리주차 요원 간의 보복성 주·정차 단속신고로 행정력 낭비를 일삼기도 한다. 이에 지난달 24일 청담동 주민센터에서 서비스 요금 강요, 주택가 주차질서를 방해하는 등 발레파킹 문제에 대해 연구원, 발레파킹 업소·업체 대표, 주민대표 등 총 11명이 의견을 모았다. 구는 이를 반영해 상반기부터 야간에 업소 인근 건물의 빈 주차장을 확보하고 ▲불법 주·정차 하지 않기 ▲서비스 요금 게시하기 ▲요금 강요 안하기 ▲차를 가지고 오지 않는 고객 우대하기 ▲주차요원 유니폼과 명찰 착용하기 등 홍보활동과 더불어 대리주차 운전자의 자격 요건과 위반 시 벌칙규정 등을 담은 관련 법령 제정을 국토교통부에 다시 건의하기로 했다. 양미영 강남구 주차관리과 과장은 “무질서한 발레파킹 때문에 지역 주민이 눈살이 찌푸리는 일이 없도록 홍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부고]

    ●권정식(전 효성여대 약학과 교수)씨 별세 봉주(제이피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씨 부친상 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410-6905 ●홍명식(울산녹십자약국 대표)씨 모친상 수용(동아일보 논설위원)재용(부산진신경정신과 원장)혜경(연세대 교수)상현(대검찰청 법무관)씨 조모상 6일 대구파티마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53)956-4445 ●신주학(스타제국 대표)씨 모친상 6일 평택 제일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8시 (031)611-1144 ●정동성(서울경제신문 마케팅국 관리부장)동규(토미타코리아 과장)씨 부친상 유용종(동일석유 대표)정윤규(교촌치킨 동양미래대학점 점장)김대영(신한금융투자 신한PWM 프리빌리지강남센터 부지점장)씨 장인상 이명선(금천구보건소 보건의료과 주무관)씨 시부상 6일 안성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31)671-6001 ●김효중(연합뉴스 대구경북취재본부장)씨 모친상 이은경(봉덕초 교사)씨 시모상 6일 대구의료원, 발인 8일 오전 8시 (053)560-9581 ●안수민(전자신문 정보사업국 부국장)씨 장모상 5일 경희대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2)958-9547 ●고정호(양구 용하중 교사)씨 별세 길옥자(춘천 상천초 교장)씨 남편상 고려진(수원지검 성남지청 검사)씨 부친상 심상대(매일경제 편집부 기자)씨 장인상 6일 춘천 강원효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9시 (033)261-4441
  • [부고]

    ●박경희(전 MDM 감사)남희(일산 동그라미산후조리원 원장)미성(광양고 교사)정희(도림초 교사)명희(한미약품 상무)씨 부친상 이창현(샘에어로스페이스 대표)최완근(개포고 교사)임양규(두산 전무)정철근(중앙일보 중앙SUNDAY 사회에디터)씨 장인상 15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7일 오전 6시 (02)2258-5940 ●남종현(그래미 회장)승현(에프엔에스 대표)제현(ST이엔 전무)씨 모친상 14일 강원 철원군 갈말읍 주식회사 그래미 남종현센터, 발인 18일 오전 8시 (033)452-9808 ●황규협(충남도교육청 공보담당관)주현(천안 성환읍 부읍장)씨 모친상 김명숙(예산교육지원청 시설팀장)씨 시모상 15일 순천향대 천안병원, 발인 17일 오전 9시 30분 (041)570-2444 ●김재익(경남신문 논설실장)씨 장인상 15일 경남 창원 정다운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55)290-2083 ●양상태(예비역 육군 소장·전 국방부 차관보)씨 부인상 인원(현대건설 차장)씨 모친상 김지열(의사)씨 장모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전 6시 (02)3410-6914 ●서정철(한국산업기술대 나노·광공학과 교수)씨 별세 15일 홍성장례식장, 발인 17일 오전 10시 (041)631-4414 ●이상열(전 노루표페인트 전무)씨 별세 재무(한화 상무)재설(동양미래대학 교수)정옥(EBS 심의위원)씨 부친상 정세용(내일신문 주필)씨 장인상 15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7일 오전 5시 (02)2258-5940
  • 한국야쿠르트, 신년 맞이 다양한 이벤트로 고객에 감사마음 전해

    홈페이지 댓글 이벤트, 추첨 통해 워터파크이용권, 뮤지컬티켓, 전시회에 베스트셀러까지 한국야쿠르트가 신년을 맞아 홈페이지를 통해 다양한 이벤트를 펼치며 고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플레이,도서,푸드,공연이벤트 등 4가지 컨셉으로 진행되는 이번 이벤트는 2월 17일까지 진행되며, 추첨을 통해 워터파크이용권, 미술전시회, 베스트셀러도서, 뮤지컬관람권 등이 주어진다. 먼저 플레이 이벤트로 진행되는 ‘숨은 야쿠르트찾기’ 이벤트는 테딘패밀리 워터파크의 다양한 시설들 중 한국야쿠르트의 ‘세븐 키즈’가 숨어 있는 시설을 선택하고 함께 하고픈 사람과 사연을 댓글로 남기면 된다. 추첨을 통해 테딘패밀리 워터파크 무료이용권(총 20명, 1인 2매)은 물론, 참여하는 모든 분들께 40% 할인 이용권을 100% 증정한다. 그런가하면 20세기 서양미술의 거장 20인의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피카소에서 프란시스베이컨까지’ 전시회 관람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있다. 홈페이지 이벤트 창에서 전시에 대한 기대평을 댓글로 남기면 총 30명에게 1인 2매 관람권을 증정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신작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도 댓글 이벤트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해당 작품에 대한 기대평을 댓글로 남기면 추첨을 통해 통 30명에게 도서를 증정할 예정이다. 영화와 뮤지컬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뮤지컬 맘마미아’ 관람권도 준비되어 있다. 공연에 대한 기대평을 eotrmff로 남기면 추첨을 통해 총 10명에게 1인 2매 관람권을 증정할 예정이다. 한국야쿠르트는 이 밖에도 매달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고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예정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심폐소생술로 승객 구하고 성추행범 추적해 퇴치한 서울도철 직원 11명에게 감사패

    심폐소생술로 승객 구하고 성추행범 추적해 퇴치한 서울도철 직원 11명에게 감사패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는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직원 11명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고 29일 밝혔다. 유승용 차장은 지난해 4월 7호선 전동차 안에서 갑자기 쓰러진 40대 남성을 심폐소생술로 구했다. 또 6호선 석계역에서 근무했던 정진수 부역장은 대합실에서 쓰러져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은 60대 남성을 응급 처치해 목숨을 구했다. 9월에도 7호선 먹골역의 김지형 과장과 안종수 부역장이 갑자기 쓰러진 30대 남성을 심폐소생술로 살려냈다. 7호선 굴포천역의 김종용 과장은 지난해 4월 늦은 밤 귀가여성을 성추행한 20대 남성을 30여 분의 빗속 추격 끝에 붙잡았고, 7월에는 5호선 청구역의 위경호 부역장과 서석환 역장이 성추행한 60대 남성을 일주일 넘게 추적해 경찰에 인계했다. 시민들의 재산을 지킨 직원들도 이번에 감사패를 받았다. 이달 내방역 양미영 대리는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할 뻔한 시민을 도와 2200만원의 피해를 막았다. 또 내방서비스지원사업소의 강정규 보안관은 지난해 6월 7호선 순회 중 650만원이 든 가방을 습득해 80대 여성에게 돌려줬다. 김태호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은 “올해도 안심하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직원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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