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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676)-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2)

    儒林(676)-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2)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2) 여기에서 ‘격물치지’에 대한 주자와 육구연의 해석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비유로 구별되어진다. 즉 주자의 ‘격물치지’가 ‘세밀하게 나누고 쪼개는 변석(辨析)’이라면 육구연의 격물치지는 ‘섬(石)으로 달고 장(丈)으로 재는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이라는 비유였던 것이다. 이러한 육구연의 ‘심성론(心性論)’을 완성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은 바로 왕양명(王陽明). 주자보다 270여년 뒤에 태어난 왕양명은 처음에는 주자의 가르침대로 대나무 앞에 조용히 앉아서 세상의 옳은 이치인 천리(天理)를 찾으려 하였다. 그러나 일주일의 명상 끝에 큰 병에 걸린 왕양명은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마침내 37세 되던 해 돌로 만든 석관(石棺) 속에 들어가 오랫동안 명상한 후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석관 속에서 죽은 시신처럼 누워 수행함으로써 득도한 왕양명은 마침내 마음이 곧 이, 즉 심즉리(心卽理)임을 깨달았으며,‘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되는 것이야말로 천하 만물과 일체를 이루는 길(知行合一 萬物一體)’임을 각성하였던 것이다. 그 후 묘족(苗族)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왕양명은 56세의 병든 몸으로 출전하였다가 진압한 후 돌아오는 길에 피로와 고열로 숨을 거두었는데,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출병 전야에 왕명학의 골수를 논한 다음과 같은 ‘4구결(四句訣)’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마음의 본체는 본래 선과 악이 없는 것이지만 선과 악이 나타나는 것은 뜻(意)의 작용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나타난 선과 악을 구별하여 아는 것이 양지(良知)이며, 선을 행하고 악을 버려 마음의 본체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격물(格物)인 것이다.(無善無惡是心之體,有善有惡是意之動,知善知惡是良知,爲善去惡是格物)” 왕양명의 학설은 육구연의 심성론을 한 단계 끌어올려 완성시킨 것으로, 따라서 중국 철학에서는 이들을 육구연과 왕양명의 이름을 따서 ‘육왕학파’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인 것이다. 말하자면 왕양명은 ‘격물치지’의 ‘격(格)을 정(正:바르다)’으로 ‘물(物)’은 ‘마음의 일(事)’이며,‘치지(致知)’는 ‘양지를 이루는 것’으로 해석하여 격물치지란 ‘우리의 천부적 양질을 마음의 일에서 발휘하여 그 악을 버리고 선을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격물과 치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의, 정심이 일관된 것으로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결국 격물치지의 이러한 해석의 차이 때문에 주자학(朱子學)과 양명학(陽明學)은 갈라지게 되었으며, 오늘까지도 이 격물치지의 해석 중 어느 쪽이 정설인가 하는 결론은 내려지지 않고 오히려 논쟁의 분기점만 심화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무렵 퇴계는 어디까지나 주자의 적자(嫡子). 태생적으로 ‘마음이 곧 이(理)’란 심성론을 주장한 육구연의 도가적 해석이나 돌로 만든 관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불교적 선법에 심취한 것 같은 왕양명의 이론에 퇴계가 본능적으로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왕양명의 이름은 전통 유교사상과 어긋난다는 인식 때문에 그 무렵 사학(邪學)으로까지 간주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 [인사]

    ■ 소방방재청 △과학방재팀장 金大起△예방전략〃 李正述△안전문화〃 전영옥■ 한국토지공사 ◇승진 △부사장 윤석종△택지사업이사 유성도◇전보△경영관리실장 정해동△택지사업처장 김종원△도시사업처장 허련△경기지역본부장 김창연△전북지역본부장 유영일△택지사업처 사업총괄팀장 양명성△국유재산처 국유재산2팀장 봉원익△신도시계획처 용지팀장 한헌△서울지역본부 파주사업단장 신종갑△대전충남지역본부 대전서남부사업단장 김홍기■ 정리금융공사 ◇신규 선임 △사장 鄭長欽■ 한양대 (서울캠퍼스)△부총장 겸 사회봉사단장 尹達善△일반대학원장 盧宗熙△도시〃 元濟戊△국제학〃 겸 국제학부장 李丞哲△공학대학원장 尹德均△교육〃 權勳△언론정보〃 鄭大澈△국제관광〃 李連澤△임상간호정보〃 金芬漢△공과대학장 千炳植△건축〃 朴勇煥△정보통신〃 李丙鎬△인문과학〃 金一坤△사회과학〃 崔炳大△자연과학〃 張鑄燮△법과〃 李哲松△경제금융〃 林陽澤△사범〃 겸 중등교원연수원장 張京姬△체육대학장 吳相德△예술학부장 辛一秀△교무처장 겸 교수학습개발센터장 孟柱星△입학처장 崔在薰△학술연구〃 겸 산학협력단장 李海元△학생〃 겸 사회봉사단 부단장 趙泰濟△총무〃 李永茂△기획조정〃 張錫權△재무〃 吳雄鐸△국제협력실장 李基晶△대학원 부원장 文泳植△백남학술정보관장 任桂淳△국제어학원장 嚴翼相△박물관장 裵基同△사회교육원장 鄭鎭坤△체육위원회 위원장 曺英浩(안산캠퍼스)△산업경영디자인대학원장 李禎淵△공학대학장 全昌浩△경상〃 林德鎬△디자인〃 韓正完△생활체육과학〃 林泰晟△교무처장 겸 교수학습개발센터장 韓彰秀△학생처장 金喜澤△교무실장 文俊淵△여학생〃 康賢淑△정보통신〃 洪承鎬■ 이화여대 △대외부총장 安洪植△대학원장 李惠淑△통역번역〃 金蓉淑△신학〃 李慶淑△인문과학대학장 徐淑△사회과학대학장·정보과학대학원장·정책과학대학원장 宋熙俊△법과대학장 金文顯△의과〃 李順男△교무처장 李相縞△기획〃 겸 감사실장 姜惠連△학생〃 李須美△총무〃 崔錦淑△재무〃 崔恩鳳△연구〃 겸 산학협력단장 鄭俊謨△정보통신〃 李炳旭△대외협력〃 李明善△교무처부처장 李賢惠△입학처〃 朴炅美△재무처〃 겸 자금팀장 申璟植△중앙도서관장 鄭東烈△경력개발센터원장 咸仁姬△출판부장 崔敏淑△사회복지관장 정순둘△기숙사〃 李慶蕙△공학교육혁신센터장 辛永洙△한국문화연구원장 金英美△한국문화연구원 부원장 錢惠英△색채디자인연구소장 金惠娟△기호학〃 金度勳△여성신학〃 鄭熙聖△영미학〃 鄭德愛△의과학〃 겸 의과대학 연구부장 崔璟奎△약학〃 李承晋△국제대학원 교학부장 李仁杓△인문과학부장 洪昔杓△사회과학부장 李尙鏞△언론홍보영상학부장 朱哲煥△자연과학대학 분자생명과학부장 韓素葉△환경ㆍ식품공학부장 朴善基△경영학부장 金正權△의과대학 교무부장 李京恩■ 인하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우제홍△법과대학장 김민배△의과〃 오중협△학생지원처장 정영수△대외협력〃 조병준△정석학술정보관장 박세근△전산정보원장 이규성△평생교육원장 홍영복■ 경기공업대 ◇처장급 △기획실장 朴源圭△학사운영처장 盧周錫■ 한국외대 △통ㆍ번역원장 郭重哲△한국어문화교육원장 許龍△사회과학대학장 李政熙△사범〃 金景旭△용인캠퍼스 도서관장 朴甲成△세계민속박물관장 金成起△일본연구소장 文明載△역사문화〃 潘炳律■ 숙명여대 △대학원장 김종의△학생처장 함은선△생활과학대학장 이재연△약학〃 양기숙△의사소통능력개발센터장 여건종△교육방송국장 강형철△교무처장 한영실△산학협력단장 한영실△사무처장 김영란△홍보실장 유종숙■ 한국기자협회 △편집국장 김신용■ 흥국생명 ◇전보 (상무)△기획·마케팅실장 李仁晳△NC사업부장 黃瑞光■ 동양시스템즈 △상무 李忠桓△상무보 崔鍾樂■ 중앙m&b △쎄씨사업본부 광고디렉터 부장 신휘선△쎄씨광고팀장 차장 김준한△H매거진 제작팀 〃 김세진△레몬트리 광고팀 〃 박주철△여성중앙 광고팀 〃 허준△전략기획파트장 〃 진항수△마케팅파트장 〃 고경희
  • [Book Review] 19세기 조선 전업작가 홍길주의 투명한 일상記

    ‘말없이 지내면서 책을 뽑아들고 베개를 베고 있자니 졸음을 물리칠 방법이 없는 것이 괴로웠다. 문득 벌떡 일어나 붓을 들고 공책에다 떠오르는 대로 적었다.∼현묘한 이치를 깨달을 것도 없고 사물을 널리 상고하여 살펴본 것도 없다.∼하인이 장독 뚜껑을 덮기에나 꼭 알맞지 싶다. 잠시 기록하여 남겨두고 ‘수여방필’이란 제목을 붙인다. 을미년(1835년) 10월 하순. 베개를 벤 채 책을 읽고, 졸음을 쫓고자 무언가 끄적거리는 모습이 18세기 사대부가의 사랑방 풍경이란 게 참 생경하다. 서안 앞에 정좌하고 끊임없이 책을 읽는 ‘선비의 전형’ 대신 입신양명의 욕심을 접은 한량의 모습이 떠올려지기도 한다. 이 글의 주인공은 19세기 전반에 활동한 문인 항해(沆瀣) 홍길주(洪吉周·1786∼1841)다. 한때 과거를 준비했으나, 출세의 꿈을 접고 독서와 글쓰기를 벗삼았던 선비다. 그는 한가로움을 소견하기 위해 생각나는 것들을 그때그때 적기 시작했고, 이를 ‘수여방필’‘수여연필’‘수여난필’이란 제목으로 정리했다. 홍길주의 아들 홍우건은 부친의 또 다른 글을 정리해 ‘수여난필속’을 정리했다. 고전을 발굴해 이를 현대적 사유의 틀에 맞춰 재생산해 내는 데 탁월한 재주를 지닌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이처럼 흥미로운 인물을 놓칠 리 없다. 정 교수는 대학원 제자들과 매주 토요일 모여 홍길주의 네 문집을 완역했고, 이를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생각창고’(정민 등 옮김, 돌베개 펴냄)란 책으로 묶었다. 역자가 보기에 홍길주는 천재다. 그동안 학계에서도 그에 대한 논문이 적지 않게 제출되었지만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천재문인의 진면목을 이번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 한다. ‘방필(放筆)’은 말 그대로 생각나는 대로 붓을 내달린 비망록이란 뜻. 이를 부연한 게 ‘연필(演筆)’이고,‘난필(瀾筆)’은 그 나머지 넘쳐흐른 것을 수습했다는 뜻이다. 책은 19세기 지식인의 내면을 아주 밝고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소한 일상사에서부터 그때그때 스쳐지나간 생각의 궤적, 그리고 당시 지식인들의 구체적인 관심사들을 경쾌한 필치로 스케치하듯 그려내고 있다. 특히 개별 사물의 이치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건져 이를 다양한 일상의 의미로 확산하는 글쓰기가 돋보인다. ‘추위를 막는 옷으로는 면포만 한 것이 없다. 값비싼 비단은 보기에만 아름다울 뿐이다.∼아름다운 문장이나 화려한 문체는 실용에는 합당함이 없다. 재주와 덕은 풍족하여 정치에 베풀 수 있어야 한다.∼천하에서 기이한 보배라고 일컫는 사람이라 해서 진실로 모두 일을 맡길 만한 그릇은 아니다.’(때에 맞는 문장) 옷과 그릇, 문사와 재덕을 비유하며 겉보기에 화려하고 번드르르한 것이 실제로는 쓸모가 없다는 결론을 재치있게 이끌어내고 있다. 책은 19세기 전반 조선의 학계와 문단 흐름을 파악하는 데 긴요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연암 박지원 이후 활기를 띠던 문단은 정조의 문체반정 이후 표면적으로는 정체 보수 국면을 보인다. 하지만 홍길주는 연암의 개성적이고 발랄한 문체와 사고를 선호했으며, 이는 다음과 같은 그의 글 속에 숨김 없이 드러나 있다. ‘나는 청나라 사람 중 정림과 고염무의 시를 좋아한다.∼문장은 당연히 위희와 왕완을 거벽으로 삼는다.∼만약 우리나라 연암 박지원이 중국에서 태어나게 했다면 마땅히 깃발과 북채를 잡고 이들과 나란히 섰을 것이니….’ 이밖에도 직접 겪은 부모 형제의 언행과 당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들, 문학과 인생에 대한 자신의 견해, 소비문화와 관련된 보고, 여가활동의 표방과 실천, 지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 등 예전 문헌에선 볼 수 없었던 내용을 담고 있다. 19세기 조선의 일상을 거대 담론이 아닌 미시적 관점으로 써내려간 천재 선비의 지적 사유와 재치가 돋보이는 책이다.2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물폭탄’ 이번엔 남부지방 비상

    ‘물폭탄’ 이번엔 남부지방 비상

    장마전선이 남하하면서 충청과 호남, 영남 등 남부지역에 비상이 걸렸다. 16일 오후부터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한 남부지역은 중부지역에 비해 피해는 적지만 18일까지 집중호우가 계속된다는 예보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금강, 대청댐 홍수위에 근접 17일 오후 현재 대청댐과 금강하류의 수위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금강하류인 논산 강경지점 수위가 6.26m로 경계수위 7m에 육박하고 있다. 대청댐 수위도 71.1m로 상시만수위 76.5m에 근접했고 계획홍수위 80m를 향해 치솟는 상태다. 충남도는 천안시 입장면 사방공사지대와 태안군 소원면 하천 및 임야 인접지역 등 19곳을 산사태 위험지역으로 지정하고 집중관리하고 있다. 또 논산시 채운면 장화리, 부여군 반산면 등 상습침수지역 45곳에 대해 ‘주민대피계획’을 세워놓았다. 도와 시·군은 금강변인 이곳 배수장을 점검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일부 배수장은 가동중이다. 충남은 이날 오후까지 금산군에 최고 208㎜의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등 평균 80㎜의 비가 내렸다. 예산군 예산읍 발연리, 신암면 탄중·조곡리의 수박재배 비닐하우스 85채가 물속에 잠기는 등 농경지 수백㏊가 침수됐다. ●무주, 진안 호우경보 무주, 진안지역에 호우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전북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1명이 숨지고 하천 제방이 유실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16일 오후 11시쯤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 앞 양학천에서 이모(24)씨가 하천급류에 휘말려 숨졌다. 앞서 오후 10시에는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양명마을 고모(46)씨의 인삼밭 460평이 물에 잠기는 등 이 일대 인삼밭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밤새 내린 집중호우로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 금평마을 진입로 교각이 붕괴위험에 처해 소방당국과 공무원들이 긴급 복구작업을 펼치고 있다. 17일 오전 6시30분을 기해 무주와 진안지역에 호우경보가 발령된 가운데 오후 3시 현재 진안 주천 195㎜를 비롯해 무주 198㎜, 익산 여산 90㎜, 군산 65㎜ 등의 강수량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17일 밤부터 다시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여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무주, 진안지역은 전공무원들이 비상근무를 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재해대책본부는 “밤 늦게까지 집중적으로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니 주민들은 시설과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17일 장마전선의 남하에 대비, 상습침수지역을 점검하는 등 대비태세에 들어갔다. 광주시재해대책본부는 북구 용두동과 광산구 도산동 등 상습침수 피해지역에 대해 일선 자치구와 공동 점검한 데 이어 광주천 주변 하수구와 주택가 배수로 등에 대한 순찰활동을 벌였다. ●농경지 침수피해 잇따라 경북지역에는 이날까지 울진군 온정면에 248㎜의 비가 내려 농경지 32㏊가 침수되는 등 도내 곳곳에서 농경지 침수가 이어지고 있다. 오전 포항시 기북면 당곡저수지의 제방 일부가 붕괴돼 하류 용곡리 주민 43가구 96명이 면사무소로 긴급 대피했다. 이날 새벽 홍수주의보가 발령된 낙동강 상주 낙동지점(주의보 수위 7.5m)의 수위가 시간당 5∼10㎝가량 계속 상승, 낮 12시 현재 7.83m로 높아지는 등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임하댐관리단은 오전 10시부터 초당 500t을 방류, 낮 12시30분 현재 155.15m의 수위를 기록해 잠정 관리수위(154m)를 약간 웃돌고 있다. 특별취재팀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5)공자의 도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5)공자의 도

    나는 공자의 ‘논어’를 여러 번 읽고서 공자의 도는 이 세상을 보는 종합예술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왜냐하면 ‘논어’에는 상충적인 것같이 보이는 공자의 언행들이 여러 군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그의 생각이 일이관지(一以貫之=하나로 꿰뚫고 있음)하다고 그의 제자 증삼(曾參)에게 술회하였다. 공자는 이 일이관지의 내용을 밝히지 않고 그냥 외출했다. 증삼이 되묻지 않고 긍정했다. 다른 제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증삼에게 물었다. 이에 증삼은 그것은 ‘충서(忠恕=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타인들에 대하여 자기를 미루어 생각함)일 뿐이다.’라고 단정했다. 과연 공자의 도를 하나로 종합하면 충서일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증삼의 해석은 공자의 도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구일 뿐이라고 여겼다. 공자의 도는 증삼의 해석보다 훨씬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의 유교사상이 너무 주자학의 창을 통해서 이해된 의리지학적(義理之學的) 공자 보기로 좁혀진 것에 늘 안타까움을 느껴왔다. 공자의 도는 노자나 석가나 예수의 도처럼 이미 스스로 진리에 이른 자의 가르침이 아니고, 부단히 깨닫기를 원하는 자의 정신적 탐구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공자는 인간세상이 ‘어진 마을’(里仁)이 되게끔 끝없이 탐구하고 고뇌하고 모색한 자유로운 영혼의 순례자와 같다. 단정적으로 증삼이 술회한 ‘…뿐이다.’와 같은 그런 표현을 공자는 사용하기를 무척 꺼리는 공부인이라고 여겨진다. 예컨대 정치의 요체를 설명함에서 공자는 ‘족식(足食=경제적 풍족), 족병(足兵=전쟁 억지력), 민신지(民信之=국민의 신뢰)’라고 언급하였는데, 우선순위를 되묻는 제자 자공(子貢)에게 먼저 국방을 버리고, 그 다음에 경제를 버리고, 마지막 남는 것이 국민의 신뢰라고 언급했다. 이 구절은 많이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제자 염유(由)가 인구가 많을 때에는 정치의 우선순위가 무엇이냐 하고 물으니 공자는 먼저 국민을 부지(富之=부하게 만듦)하게 하고, 이어서 교지(敎之=가르침)라고 대꾸했다. 부국강병의 상징인 제나라 재상 관중(管仲)에 대하여 공자는 인자(仁者)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관중이 자기 주군을 죽게 한 제 환공을 따라 벼슬하였기에 공자의 제자들은 지조를 죽음보다 중시해야 할 도덕군자가 아니라고 그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뒤에 맹자는 누가 그를 관중의 인물에 비유하면 화를 냈다. 자기를 부국강병적 패도의 상징인 관중에 비유하는 것은 자기의 왕도사상을 모욕하는 것으로 맹자는 생각했을 정도다. 공자는 관중의 부국강병정책으로 중국이 오랑캐의 말발굽 아래에 점령당하지 않고, 중국문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소인배가 조그만 절개를 지키는 것과 관중의 언행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관중의 소행은 무왕의 은나라 정벌에 항의하면서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백이 숙제의 절개와 다르지 않는가? 백이 숙제의 지조를 높이 산 공자가 관중의 주군 배신과 부국강병을 매우 격찬했다. 공자의 진면목이 무엇일까? 또 공자의 초점 불일치의 사고방식을 하나 더 소개한다. 공자는 자신있게 ‘사람이 도를 넓히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님’을 역설했다. 대단한 인본주의의 신념이다. 그런 그가 은나라 3인의 현자가 비극적 종말을 맞이했음을 침통하게 말했고, 공자의 제자 가운데 가장 덕행이 출중한 안연(顔淵)이 지독한 가난 속에서 요절했고, 염백우(伯牛)는 문둥병에 걸려 괴로움을 당했음을 그는 보았다. 여기서 공자는 비통한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통곡했고, 덕인이 반드시 행운을 받는 것이 아님을 보고 자신만만한 그의 인본주의가 알 수 없는 천도 앞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의 제자들도 다 한가지 사상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증삼은 세상을 인의로 세우기 위한 도덕적 사명감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고, 안연과 자공은 스승의 사상을 전혀 다른 스타일로 이었다. 공자는 안연에 대하여 거의 도를 터득했으며 ‘누공(屢空)’했다고 언명했고, 자공에 대하여는 천명을 받지 않았으나 재산을 불렸고 그의 예측은 현실적으로 자주 적중했다고 기술했다. 저 ‘누공’의 개념을 주자학은 ‘경제적으로 가난하여 쌀 궤가 자주 비었다.’는 뜻으로 풀이했고, 양명학은 ‘마음을 허공처럼 자주 비웠다.’고 읽었다. 이것은 공자의 사상 속에 이미 주자학과 양명학의 두 가지 뿌리가 잠재하여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겠다.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克己復禮=극기하여 예를 회복함)의 의미도 주자학에서는 승기지사(勝己之私=이기심을 이김)로 해석하고, 양명학에서는 진기즉무기(眞己卽無己=참 자기는 자기를 없애는 것)로 읽고 있는 것도 공자사상이 이미 당위사상과 무위사상으로 각각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더구나 자공은 형이상학에는 관심이 없고 현실적 이재능력과 외교능력이 탁월하여 많은 실용적 업적을 낳았으므로 공자도 그를 은나라의 비싼 제기(祭器)인 호련(瑚璉)에 비유할 정도로 귀중하게 여겼다. 이렇게 보면 공자의 도는 쉽게 하나의 개념으로 집약이 잘 안 된다. 공자의 도에는 증삼의 도덕적 당위유학의 흐름이 있고, 안연의 자연적 무위유학의 갈래도 있고, 자공의 실용적 기술유학의 계열도 있다. 전자의 두 가지는 맹자유학에 수렴되고, 후자는 별도로 순자유학으로 이어진다. 공자의 도는 어느 한 곳으로 정의되지 않고 열려 있다. 주자학적 통로인 당위유학으로서만 공자를 읽지 않아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여기에 기원한다. 자극적인 언설을 좋아하는 요사이 사람들은 ‘논어’를 읽으면 너무 싱겁다고 말할는지 모른다. 강력한 메시지도 없고 흔드는 깃발도 없으며 맹물 같은 맛으로 별로 주목이 안 갈 것이다. 그러나 그 맹물 같은 밋밋한 맛이 바로 공자의 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술은 술로서만 쓰이고, 커피는 커피로서만 쓰인다. 그러나 자연수 같은 맹물은 모든 음식 만들기에 다 쓰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공자의 도가 그런 맹물 같은 쓰임새를 지녔다고 여긴다. 도가 자연수 같아야 인간의 생각을 흥분시키지 않고 모든 일에 다 적용되는 지혜를 일군다. 그래서 나는 ‘일이관지’한 공자의 도를 ‘중화’(中和)라고 여긴다.‘중화’의 도를 공자는 ‘군자가 천하의 일에 대하여 꼭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고,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없으며, 의(義)를 따른다.’는 말로써 표현했다. 주희는 이 의를 도덕적 당위로 읽었지만, 나는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본다. 도덕적 당위는 이미 어떤 선의지적 결의로 무장된 상태를 말하므로 ‘중화’의 참 뜻에 맞지 않다. 더구나 공자는 스스로 ‘절사(絶四=네가지를 끊음)’라고 술회하지 않았던가? ‘무의(無意=자기 멋대로 함이 없음), 무필(無必=반드시 관철하겠다는 결의가 없음), 무고(無固=고집이 없음), 무아(無我=아상이 없음)’가 ‘절사’의 내용이다. 이런 ‘절사’의 인품이 어찌 도덕적 당위의 법을 미리 고집하겠는가? 자연수와 같은 맹물의 도가 곧 ‘중화’다. 위의 ‘절사’는 아중심적 사고가 없고, 불변적 최고를 고집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의 것을 도로서 간주한다는 사상이 깃들어 있다. 공자의 도는 주어진 시대적 상황에서 최적의 진리를 발견해 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고(maximum)는 경직되어 있으나, 최적(optimum)은 아주 유연하다. 시대적 상황에 최적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을 맹자는 공자의 정신이라고 불렀고, 그런 정신을 시중(時中)이라고 명명했다. 그렇다. 나는 공자의 ‘일이관지’한 도가 증삼이 지적한 ‘충서’라기보다 오히려 ‘중화’와 같은 ‘시중’이라고 보고싶다.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되는 논어 ‘학이’편의 첫 구절인 ‘배우고 시습(時習)하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學而時習之 不亦悅乎)에서 ‘시습’은 입시 공부하듯이 ‘때때로 익히면’으로 해석되기보다, 오히려 ‘시중’의 지혜를 공부하기 위하여 ‘자기 시대를 익히면’으로 해석돼야 하지 않겠는가? 도를 탐구하는 이가 어찌 입시 공부하듯이 그런 복습을 즐겁다고 했겠는가? 더구나 ‘논어’의 다른 구절들과 뜻이 다 회통되어야 한다. 공자의 유명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의 구절도 이 ‘學而時習’과 연관되어야 한다. 흔히 ‘온고이지신’을 ‘옛 학문을 익히고 새 학문을 안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배우는 모든 학문은 다 옛것이다. 학문의 지식은 다 지나간 것을 정리하는 것이지, 현재진행형의 지식은 이 세상에 없다. 지식은 오래되었건, 근접과거의 것이건 다 지나간 것을 정리하는 것이다. 새 것은 각자가 살고 있는 시대상황이다. 그래서 ‘온고지신’은 옛 지식을 새 시대의 상황에 잘 비추어 어느 것이 새 시대에 최적의 지혜로 적중한지 면밀히 검토하고 숙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겠다. 시대에 적중한 최적의 도가 도덕적인지, 실용적인지, 또는 자연적인지 잘 검토해 보는 것이 ‘학이시습’의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절사’의 공자정신과 부합한다.‘시중’은 시대의 적중한 ‘중화’의 정신문화를 생각하는 것이다. 공자의 도는 한가지만을 외곬으로 고집하는 그런 교조적 원리주의가 아니다. 공자의 도는 매우 자유스러운 사유의 유연성을 도의 생명으로 여겼다. 그래서 중세기적 주자학으로 공자를 읽으면, 지금의 시대에는 안 맞는다. 그는 참으로 학문하는 성인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지나간 학문의 지혜와 새로운 시대의 상황을 늘 동시에 사유하는 길이 도를 공부하는 길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지나간 학문만 골똘히 공부하고 새 시대를 사유하지 않으면 그 학문은 맹목적이고, 시대를 알기 위하여 부단히 사색하되 경험적 학문의 축적이 없으면 그 사색은 대단히 공허해진다고 ‘논어’에서 공자가 설파했다. 나는 주자학을 넘어서 공자의 유교가 한국정신문화의 교조적 업을 반성하게 하는 데 새로운 자양을 줄 수 있으리라 본다. 공자 안에 적어도 세 가지의 도가 있다고 본다. 조선조는 그 세 가지 중에서 유독 한가지만을 부각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그 점에서 우리는 편협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5·31 선택] 광역의원 당선자 명단

    ■서울 종로구1|남재경|(한.45.|기타) 종로구2|나재암|(한.59.|기타) 중구1|안희성|(한.37.|기타) 중구2|최병환|(한.52.|상업) 용산구1|지용훈|(한.45.|기타) 용산구2|이종필|(한.59.|지방의원) 성동구1|이주수|(한.44.|기타) 성동구2|정승배|(한.51.|회사원) 성동구3|최홍우|(한.52.|지방의원) 성동구4|정교진|(한.39.|정치인) 광진구1|이재홍|(한.61.|기타) 광진구2|김귀환|(한.57.|기타) 광진구3|우재영|(한.60.|회사원) 광진구4|김분란|(한.60.|기타) 동대문구1|최병조|(한.63.|기타) 동대문구2|고정균|(한.37.|기타) 동대문구3|박주웅|(한.63.|지방의원) 동대문구4|김충선|(한.58.|지방의원) 중랑구1|윤기성|(한.63.|기타) 중랑구2|채봉석|(한.52.|상업) 중랑구3|민병주|(한.46.|기타) 중랑구4|김철환|(한.43.|기타) 성북구1|나주형|(한.38.|기타) 성북구2|이대일|(한.61.|지방의원) 성북구3|안훈식|(한.58.|약사) 성북구4|안희옥|(한.65.|기타) 강북구1|조천휘|(한.61.|정치인) 강북구2|신기철|(한.51.|지방의원) 강북구3|박종환|(한.58.|기타) 강북구4|김기성|(한.58.|정치인) 도봉구1|정병인|(한.55.|지방의원) 도봉구2|성무원|(한.65.|기타) 도봉구3|김영천|(한.49.|기타) 도봉구4|윤학권|(한.46.|정치인) 노원구1|조달현|(한.45.|기타) 노원구2|박환희|(한.36.|기타) 노원구3|부두완|(한.44.|지방의원) 노원구4|이상용|(한.51.|건설업) 노원구5|김철현|(한.38.|기타) 노원구6|이종은|(한.52.|기타) 은평구1|한기웅|(한.64.|기타) 은평구2|김우태|(한.51.|정치인) 은평구3|최주호|(한.41.|기타) 은평구4|임승업|(한.51.|지방의원) 서대문구1|김정재|(한.40.|기타) 서대문구2|하태종|(한.58.|지방의원) 서대문구3|송주범|(한.43.|교육자) 서대문구4|김수철|(한.36.|공무원) 마포구1|이강수|(한.45.|기타) 마포구2|최상범|(한.51.|기타) 마포구3|윤정용|(한.59.|기타) 마포구4|김혜원|(한.28.|기타) 양천구1|최명렬|(한.45.|정치인) 양천구2|최용주|(한.41.|기타) 양천구3|유관희|(한.44.|정치인) 양천구4|배상윤|(한.40.|기타) 강서구1|김기철|(한.52.|지방의원) 강서구2|이한기|(한.64.|지방의원) 강서구3|정연희|(한.49.|지방의원) 강서구4|김광헌|(한.47.|정치인) 구로구1|이병직|(한.67.|약사) 구로구2|박병구|(한.58.|정치인) 구로구3|김배영|(한.44.|지방의원) 구로구4|이우진|(한.53.|정치인) 금천구1|이종학|(한.58.|회사원) 금천구2|유재운|(한.50.|기타) 영등포구1|박찬구|(한.36.|건설업) 영등포구2|문병열|(한.48.|정치인) 영등포구3|양창호|(한.38.|정치인) 영등포구4|김영로|(한.50.|기타) 동작구1|김동훈|(한.66.|정치인) 동작구2|김황기|(한.49.|정보통신업) 동작구3|박덕경|(한.56.|정치인) 동작구4|이진식|(한.52.|정치인) 관악구1|오신환|(한.35.|상업) 관악구2|김갑용|(한.55.|지방의원) 관악구3|이남형|(한.54.|건설업) 관악구4|현진호|(한.48.|기타) 서초구1|도인수|(한.63.|기타) 서초구2|이지현|(한.30.|정치인) 서초구3|허준혁|(한.42.|정치인) 서초구4|김덕배|(한.42.|정치인) 강남구1|박홍식|(한.47.|정치인) 강남구2|김진수|(한.54.|지방의원) 강남구3|서정숙|(한.53.|약사) 강남구4|김현기|(한.50.|공무원) 송파구1|한응용|(한.62.|건설업) 송파구2|최홍규|(한.50.|건설업) 송파구3|진두생|(한.55.|지방의원) 송파구4|신영선|(한.61.|기타) 송파구5|김원태|(한.43.|기타) 송파구6|천한홍|(한.64.|기타) 강동구1|조상원|(한.61.|정치인) 강동구2|이국희|(한.51.|지방의원) 강동구3|배대열|(한.47.|상업) 강동구4|이지철|(한.48.|지방의원) ■부산 중구1|제종모|(한.59.|정치인) 중구2|구동회|(한.57.|기타) 서구1|권칠우|(한.42.|건설업) 서구2|조양환|(한.43.|지방의원) 동구1|최형욱|(한.48.|공무원) 동구2|박삼석|(한.56.|공무원) 영도구1|안성민|(한.44.|지방의원) 영도구2|김성길|(한.50.|지방의원) 부산진구1|김태문|(한.63.|기타) 부산진구2|김청룡|(한.34.|지방의원) 부산진구3|김석조|(한.59.|교육자) 부산진구4|김영욱|(한.39.|기타) 동래구1|현영희|(한.54.|지방의원) 동래구2|조길우|(한.62.|지방의원) 남구1|김신락|(한.50.|지방의원) 남구2|김선길|(한.48.|공무원) 남구3|성성경|(한.47.|기타) 남구4|이산하|(한.50.|기타) 북구1|손상용|(한.41.|기타) 북구2|천판상|(한.61.|지방의원) 북구3|배문철|(한.59.|정치인) 북구4|허태준|(한.59.|무직) 해운대구1|이동윤|(한.40.|교육자) 해운대구2|권영대|(한.42.|기타) 해운대구3|김영수|(한.49.|기타) 해운대구4|백선기|(한.58.|지방의원) 기장군1|홍성률|(한.59.|지방의원) 기장군2|김유환|(한.56.|기타) 사하구1|박홍주|(한.61.|기타) 사하구2|최대수|(한.46.|정치인) 사하구3|허동찬|(한.61.|기타) 사하구4|이상은|(한.46.|지방의원) 금정구1|백종헌|(한.43.|지방의원) 금정구2|최영남|(한.49.|금융업) 강서구1|이성두|(한.54.|농ㆍ축산업) 강서구2|조용원|(한.58.|기타) 연제구1|김성우|(한.40.|공무원) 연제구2|이해동|(한.51.|지방의원) 수영구1|강성태|(한.45.|정치인) 수영구2|유재중|(한.50.|교육자) 사상구1|송숙희|(한.47.|교육자) 사상구2|신상해|(한.49.|기타) ■대구 중구1|유규하|(한.49.|약사) 중구2|송세달|(한.43.|교육자) 동구1|이윤원|(한.61.|무직) 동구2|권기일|(한.41.|공무원) 동구3|정해용|(한.35.|공무원) 동구4|도재준|(한.55.|금융업) 서구1|김의식|(한.50.|건설업) 서구2|강황|(한.61.|지방의원) 남구1|정규용|(한.60.|정치인) 남구2|차영조|(한.59.|회사원) 북구1|장경훈|(한.60.|기타) 북구2|양명모|(한.47.|약사) 북구3|이재술|(한.45.|지방의원) 북구4|김충환|(한.44.|지방의원) 수성구1|정순천|(한.45.|기타) 수성구2|김대현|(한.35.|기타) 수성구3|김덕란|(한.45.|기타) 수성구4|이동희|(한.52.|지방의원) 달서구1|박돈규|(한.52.|기타) 달서구2|도이환|(한.48.|정치인) 달서구3|박부희|(한.45.|정치인) 달서구4|최문찬|(한.54.|지방의원) 달서구5|지용성|(한.58.|정치인) 달서구6|유병노|(한.51.|건설업) 달성군1|전성배|(한.43.|농ㆍ축산업) 달성군2|김영식|(한.48.|무직) ■인천 중구1|이병화|(한.56.|기타) 중구2|노경수|(한.56.|정치인) 동구1|허식|(한.47.|기타) 동구2|정종섭|(한.53.|정치인) 남구1|박창규|(한.59.|지방의원) 남구2|김성숙|(한.59.|지방의원) 남구3|이근학|(한.54.|정치인) 남구4|김을태|(한.58.|지방의원) 연수구1|이재호|(한.47.|상업) 연수구2|김용재|(한.39.|상업) 남동구1|신영은|(한.56.|지방의원) 남동구2|최병덕|(한.48.|지방의원) 남동구3|강석봉|(한.51.|지방의원) 남동구4|오흥철|(한.48.|상업) 부평구1|강문기|(한.38.|정치인) 부평구2|고진섭|(한.49.|금융업) 부평구3|강창규|(한.51.|지방의원) 부평구4|최종귀|(한.54.|건설업) 계양구1|이은석|(한.33.|정치인) 계양구2|조남휘|(한.54.|정치인) 계양구3|한도섭|(한.53.|운수업) 계양구4|성용기|(한.39.|기타) 서구1|문희출|(한.49.|정치인) 서구2|김용근|(한.53.|정치인) 서구3|윤지상|(한.52.|정치인) 서구4|박승희|(한.54.|정치인) 강화군1|유천호|(한.55.|상업) 강화군2|박희경|(한.52.|공무원) 옹진군1|배영민|(한.41.|건설업) 옹진군2|이상철|(한.61.|상업) ■광주 동구1|서인봉|(민.45.|기타) 동구2|손재홍|(민.46.|지방의원) 서구1|송재선|(민.48.|정치인) 서구2|김동식|(민.68.|지방의원) 서구3|김성숙|(민.51.|기타) 서구4|김월출|(민.46.|건설업) 남구1|서채원|(민.44.|기타) 남구2|나종천|(민.62.|정치인) 북구1|진선기|(민.41.|기타) 북구2|김후진|(민.58.|건설업) 북구3|이상동|(민.44.|기타) 북구4|조호권|(민.45.|회사원) 북구5|이철원|(민.47.|변호사) 광산구1|강박원|(민.69.|지방의원) 광산구2|유재신|(민.46.|약사) 광산구3|이정남|(민.49.|지방의원) ■대전 동구1|김남욱|(한.68.|기타) 동구2|오영세|(한.53.|정치인) 동구3|장문철|(한.55.|정치인) 중구1|김영관|(한.50.|정치인) 중구2|전병배|(한.53.|기타) 중구3|김태훈|(한.38.|정치인) 서구1|김재경|(한.43.|지방의원) 서구2ㅣ곽영교ㅣ(한.47.기타) 서구3|김학원|(한.52.|기타) 서구4|조신형|(한.43.|기타) 서구5|오정섭|(한.47.|정치인) 유성구1|송재용|(한.52.|지방의원) 유성구2|이상태|(한.49.|지방의원) 대덕구1|박희진|(한.43.|상업) 대덕구2|박수범|(한.45.|상업) 대덕구3|심준홍|(한.55.|기타) ■울산 중구1|이죽련|(한.46.|정치인) 중구2|김기환|(한.46.|지방의원) 중구3|김재열|(한.45.|지방의원) 남구1|윤명희|(한.57.|지방의원) 남구2|박순환|(한.50.|정치인) 남구3|서동욱|(한.43.|지방의원) 남구4|박부환|(한.53.|지방의원) 동구1|송시상|(한.59.|지방의원) 동구2|이재현|(노.47.|회사원) 동구3|이은주|(노.41.|정치인) 북구1|박천동|(한.40.|지방의원) 북구2|이방우|(한.44.|회사원) 북구3|윤종오|(노.42.|회사원) 울주군1|홍종필|(한.48.|정치인) 울주군2|천명수|(한.39.|건설업) 울주군3|김춘생|(한.54.|지방의원) ■경기 수원시1|남경순|(한.49.|정치인) 수원시2|최용길|(한.42.|회사원) 수원시3|이유병|(한.47.|상업) 수원시4|차희상|(한.52.|정치인) 수원시5|최규진|(한.44.|기타) 수원시6|한규택|(한.39.|기타) 수원시7|김인종|(한.46.|지방의원) 수원시8|이남옥|(한.46.|지방의원) 성남시1|이병열|(한.44.|건설업) 성남시2|장윤영|(한.46.|정치인) 성남시3|방영기|(한.48.|기타) 성남시4|박문수|(한.53.|상업) 성남시5|장정은|(한.38.|지방의원) 성남시6|이태순|(한.47.|지방의원) 성남시7|신계용|(한.42.|정치인) 성남시8|정재영|(한.51.|지방의원) 의정부시1|김승재|(한.53.|금융업) 의정부시2|신광식|(한.57.|정치인) 의정부시3|김남성|(한.41.|금융업) 의정부시4|윤석송|(한.50.|정치인) 안양시1|장경순|(한.45.|정치인) 안양시2|이천우|(한.41.|정치인) 안양시3|정홍자|(한.47.|지방의원) 안양시4|신보영|(한.39.|정치인) 안양시5|박광진|(한.43.|기타) 안양시6|이성환|(한.48.|정치인) 부천시1|이음재|(한.51.|정치인) 부천시2|유지훈|(한.50.|정치인) 부천시3|서영석|(한.48.|교육자) 부천시4|최환식|(한.47.|정치인) 부천시5|이재진|(한.39.|정보통신업) 부천시6|황원희|(한.58.|정치인) 부천시7|오정섭|(한.46.|기타) 부천시8|송윤원|(한.47.|기타) 광명시1|김의현|(한.52.|기타) 광명시2|백승대|(한.44.|정치인) 광명시3|전동석|(한.44.|정치인) 광명시4|최낙균|(한.49.|정치인) 평택시1|최중협|(한.54.|지방의원) 평택시2|장호철|(한.47.|지방의원) 평택시3|이주상|(한.65.|정치인) 평택시4|전진규|(한.56.|건설업) 양주시1|이항원|(한.49.|기타) 양주시2|유재원|(한.48.|기타) 동두천시1|김홍규|(한.44.|정치인) 동두천시2|박수호|(한.48.|정치인) 안산시1|김수철|(한.54.|지방의원) 안산시2|박선호|(한.52.|상업) 안산시3|이백래|(한.51.|정치인) 안산시4|김제연|(한.41.|정치인) 안산시5|이헌원|(한.54.|정치인) 안산시6|권혁조|(한.59.|기타) 안산시7|엄종국|(한.56.|지방의원) 안산시8|노영호|(한.49.|정치인) 고양시1|신득철|(한.58.|회사원) 고양시2|조선미|(한.38.|정치인) 고양시3|정문식|(한.35.|정치인) 고양시4|진종설|(한.51.|정치인) 고양시5|김현복|(한.41.|기타) 고양시6|김한명|(한.44.|기타) 고양시7|김학진|(한.31.|기타) 고양시8|김인성|(한.40.|기타) 과천시1|이해문|(한.51.|지방의원) 과천시2|한충재|(한.57.|지방의원) 의왕시1|김대원|(한.48.|정치인) 의왕시2|정경모|(한.56.|정치인) 구리시1|박호남|(한.53.|기타) 구리시2|양태흥|(한.61.|지방의원) 남양주시1|이경천|(한.51.|정치인) 남양주시2|이우창|(한.50.|정치인) 남양주시3|이인근|(한.49.|정치인) 남양주시4|이수영|(한.49.|정치인) 오산시1|박천복|(한.51.|기타) 오산시2|임찬섭|(한.44.|정치인) 화성시1|진재광|(한.40.|정치인) 화성시2|최지용|(한.51.|정치인) 시흥시1|황선희|(한.46.|기타) 시흥시2|함진규|(한.46.|지방의원) 시흥시3|임응순|(한.56.|지방의원) 시흥시4|이경영|(한.50.|교육자) 군포시1|임기석|(한.43.|정치인) 군포시2|최진학|(한.49.|정치인) 하남시1|윤완채|(한.44.|기타) 하남시2|김영환|(한.45.|정치인) 파주시1|임우영|(한.45.|기타) 파주시2|김광선|(한.53.|지방의원) 여주군1|권혁산|(한.55.|농ㆍ축산업) 여주군2|김기수|(한.39.|지방의원) 이천시1|이재혁|(한.68.|정치인) 이천시2|이종률|(한.48.|기타) 용인시1|신재춘|(한.39.|정보통신업) 용인시2|조봉희|(한.49.|기타) 용인시3|김기선|(한.52.|기타) 용인시4|조양민|(한.38.|기타) 안성시1|천동현|(한.41.|기타) 안성시2|황은성|(한.44.|지방의원) 김포시1|유영근|(한.51.|정치인) 김포시2|신광식|(한.64.|정치인) 광주시1|이건희|(한.44.|지방의원) 광주시2|강석오|(한.50.|지방의원) 포천시1|이우형|(한.48.|정치인) 포천시2|이주석|(한.57.|상업) 연천군1|박영철|(한.47.|기타) 연천군2|심진택|(한.56.|농ㆍ축산업) 양평군1|이희영|(한.48.|지방의원) 양평군2|정인영|(한.52.|지방의원) 가평군1|김영복|(한.44.|정치인) 가평군2|육도수|(한.47.|상업) ■강원 춘천시1|황철|(한.49.|회사원) 춘천시2|백선열|(한.46.|지방의원) 원주시1|김대천|(한.38.|정치인) 원주시2|이인섭|(한.42.|지방의원) 강릉시1|최재규|(한.45.|정치인) 강릉시2|박호창|(한.46.|건설업) 동해시1|이성기|(한.65.|기타) 동해시2|권순일|(한.48.|상업) 삼척시1|김양호|(한.44.|정치인) 삼척시2|박상수|(한.48.|정치인) 태백시1|심재영|(한.59.|상업) 태백시2|김연식|(한.38.|정치인) 정선군1|홍건표|(한.58.|기타) 정선군2|남경문|(한.43.|기타) 속초시1|이병선|(한.43.|지방의원) 속초시2|김시성|(한.42.|공무원) 고성군1|이강덕|(한.53.|정치인) 고성군2|서동철|(한.62.|지방의원) 양양군1|박융길|(한.61.|지방의원) 양양군2|임용식|(한.45.|상업) 인제군1|이기순|(한.52.|지방의원) 인제군2|정을권|(한.45.|지방의원) 홍천군1|이명열|(한.59.|기타) 홍천군2|김기남|(한.63.|정치인) 횡성군1|진기엽|(한.38.|정치인) 횡성군2|박명서|(한.46.|농ㆍ축산업) 영월군1|고진국|(우.53.|상업) 영월군2|권석주|(한.58.|정치인) 평창군1|이영덕|(한.60.|농ㆍ축산업) 평창군2|이준연|(한.47.|지방의원) 화천군1|장세국|(한.59.|정치인) 화천군2|정충수|(한.53.|정치인) 양구군1|이기찬|(한.35.|정치인) 양구군2|조영기|(한.45.|농ㆍ축산업) 철원군1|김동일|(무.42.|정치인) 철원군2|김영칠|(한.59.|정치인) ■충북 청주시1|오장세|(한.51.|기타) 청주시2|이대원|(한.50.|상업) 청주시3|김법기|(한.38.|기타) 청주시4|박재국|(한.65.|운수업) 청주시5|정윤숙|(한.49.|기타) 청주시6|권광택|(한.49.|기타) 충주시1|이언구|(한.51.|상업) 충주시2|심흥섭|(한.44.|정치인) 제천시1|이종호|(한.51.|기타) 제천시2|민경환|(한.42.|정치인) 단양군1|김화수|(한.47.|기타) 단양군2|이범윤|(한.67.|지방의원) 청원군1|한창동|(한.50.|지방의원) 청원군2|박종갑|(한.47.|농ㆍ축산업) 영동군1|임현|(한.62.|무직) 영동군2|조영재|(한.52.|농ㆍ축산업) 보은군1|김인수|(우.52.|상업) 보은군2|이영복|(한.55.|농ㆍ축산업) 옥천군1|이규완|(한.53.|기타) 옥천군2|박영웅|(한.44.|기타) 음성군1|이기동|(한.46.|지방의원) 음성군2|이필용|(한.44.|지방의원) 진천군1|장주식|(한.48.|지방의원) 진천군2|송은섭|(한.65.|지방의원) 괴산군1|김환동|(무.56.|상업) 괴산군2|오용식|(한.59.|농ㆍ축산업) 증평군1|최재옥|(한.51.|건설업) 증평군2|연만흠|(무.52.|상업) ■충남 천안시1|홍성현|(한.46.|교육자) 천안시2|정순평|(한.48.|정치인) 천안시3|김문규|(한.55.|기타) 천안시4|정종학|(한.51.|지방의원) 공주시1|송민구|(국.48.|정치인) 공주시2|박공규|(국.56.|정치인) 보령시1|김동일|(국.57.|정치인) 보령시2|백낙구|(한.59.|무직) 아산시1|이기철|(한.59.|상업) 아산시2|강태봉|(한.60.|정치인) 서산시1|이창배|(한.71.|정치인) 서산시2|차성남|(국.56.|정치인) 태안군1|유익환|(국.53.|농ㆍ축산업) 태안군2|강철민|(한.48.|수산업) 금산군1|김석곤|(국.54.|기타) 금산군2|유태식|(국.59.|지방의원) 연기군1|유환준|(국.60.|정치인) 연기군2|황우성|(우.55.|농ㆍ축산업) 논산시1|송덕빈|(국.60.|농ㆍ축산업) 논산시2|송영철|(국.46.|회사원) 계룡시1|김성중|(한.60.|기타) 계룡시2|조치연|(한.59.|건설업) 부여군1|홍표근|(국.52.|정치인) 부여군2|유병기|(한.56.|지방의원) 서천군1|송선규|(한.68.|기타) 서천군2|오세옥|(국.56.|상업) 홍성군1|오배근|(한.51.|기타) 홍성군2|이은태|(한.47.|지방의원) 청양군1|이정우|(국.46.|무직) 청양군2|최의환|(한.52.|기타) 예산군1|고남종|(한.50.|정치인) 예산군2|김기영|(한.52.|지방의원) 당진군1|김홍장|(우.44.|정치인) 당진군2|이종현|(한.46.|농ㆍ축산업) ■전북 전주시1|유창희|(우.45.|출판업) 전주시2|김윤덕|(우.40.|기타) 전주시3|심영배|(우.51.|교육자) 전주시4|김호서|(민.41.|지방의원) 전주시5|김성주|(우.42.|회사원) 전주시6|김희수|(우.53.|지방의원) 군산시1|김용화|(우.62.|지방의원) 군산시2|문면호|(우.55.|농ㆍ축산업) 익산시1|배승철|(민.54.|정치인) 익산시2|김병곤|(우.56.|정치인) 익산시3|황현|(민.45.|지방의원) 익산시4|김연근|(민.45.|정치인) 정읍시1|고영규|(민.49.|정치인) 정읍시2|이학수|(우.45.|정보통신업) 남원시1|이상현|(우.37.|교육자) 남원시2|하대식|(우.65.|정치인) 김제시1|최병희|(민.62.|지방의원) 김제시2|조종곤|(우.62.|상업) 완주군1|권창환|(민.55.|정치인) 완주군2|소병래|(우.41.|기타) 진안군1|김대섭|(무.59.|무직) 진안군2|이상문|(우.53.|지방의원) 무주군1|황정수|(무.51.|농ㆍ축산업) 무주군2|송병섭|(우.53.|운수업) 장수군1|장영수|(우.38.|정치인) 장수군2|김명수|(민.59.|건설업) 임실군1|김진명|(우.42.|지방의원) 임실군2|한인수|(우.49.|지방의원) 순창군1|강대희|(우.54.|기타) 순창군2|김병윤|(우.47.|지방의원) 고창군1|임동규|(민.61.|회사원) 고창군2|고석원|(민.59.|지방의원) 부안군1|권익현|(민.45.|정치인) 부안군2|김선곤|(민.57.|정치인) ■전남 목포시1|황정호|(민.43.|정치인) 목포시2|이호균|(민.44.|교육자) 여수시1|김종철|(민.51.|지방의원) 여수시2|송대수|(민.50.|정치인) 여수시3|서일용|(민.42.|정치인) 여수시4|최종선|(민.53.|지방의원) 순천시1|박흥수|(민.52.|정치인) 순천시2|이홍제|(민.58.|정치인) 나주시1|이기병|(민.49.|정치인) 나주시2|김상봉|(민.36.|기타) 광양시1|남기호|(민.48.|기타) 광양시2|김재무|(민.46.|지방의원) 담양군1|강종문|(민.45.|상업) 담양군2|송범근|(민.54.|지방의원) 장성군1|윤시석|(민.44.|정치인) 장성군2|정창옥|(민.54.|정치인) 곡성군1|조상래|(우.48.|상업) 곡성군2|정환대|(민.45.|농ㆍ축산업) 구례군1|고택윤|(우.48.|상업) 구례군2|박인환|(민.55.|지방의원) 고흥군1|이일형|(민.53.|정치인) 고흥군2|신윤식|(민.59.|정치인) 보성군1|황병순|(민.61.|정치인) 보성군2|이탁우|(민.49.|지방의원) 화순군1|구충곤|(민.47.|기타) 화순군2|홍이식|(민.48.|지방의원) 장흥군1|김창남|(민.53.|정치인) 장흥군2|이민우|(민.47.|농ㆍ축산업) 강진군1|황호용|(민.62.|정치인) 강진군2|이종헌|(민.51.|정치인) 완도군1|이부남|(민.61.|정치인) 완도군2|송주호|(민.50.|수산업) 해남군1|김석원|(민.48.|정치인) 해남군2|김병욱|(민.43.|농ㆍ축산업) 진도군1|장일|(민.49.|건설업) 진도군2|이영윤|(민.61.|정치인) 영암군1|강우원|(민.64.|정치인) 영암군2|강우석|(민.51.|농ㆍ축산업) 무안군1|김석원|(민.38.|기타) 무안군2|김철주|(민.48.|기타) 영광군1|이동권|(민.44.|정치인) 영광군2|박찬수|(민.47.|상업) 함평군1|김성호|(민.49.|지방의원) 함평군2|나병기|(민.50.|정치인) 신안군1|임흥빈|(민.45.|기타) 신안군2|강성종|(무.58.|무직) ■경북 포항시1|장세헌|(한.53.|기타) 포항시2|장두욱|(한.52.|기타) 포항시3|장경식|(한.48.|금융업) 포항시4|이상천|(한.56.|기타) 울릉군1|이상태|(한.63.|공무원) 울릉군2|정무웅|(한.65.|정치인) 경주시1|이상효|(한.55.|지방의원) 경주시2|박병훈|(한.41.|기타) 김천시1|백영학|(한.59.|정치인) 김천시2|김응규|(한.50.|지방의원) 안동시1|장대진|(한.46.|지방의원) 안동시2|정경구|(한.43.|정치인) 구미시1|백천봉|(한.49.|정치인) 구미시2|윤창욱|(한.42.|정치인) 구미시3|김영택|(한.43.|회사원) 구미시4|이용석|(한.59.|지방의원) 영주시1|김종천|(한.49.|건설업) 영주시2|손진영|(한.49.|정치인) 영천시1|한혜련|(한.54.|지방의원) 영천시2|김수용|(한.37.|상업) 상주시1|이종원|(한.59.|농ㆍ축산업) 상주시2|이재철|(한.47.|무직) 문경시1|이시하|(한.64.|상업) 문경시2|고우현|(한.56.|기타) 예천군1|이현준|(한.51.|기타) 예천군2|윤영식|(한.47.|건설업) 경산시1|이우경|(한.56.|지방의원) 경산시2|황상조|(한.46.|지방의원) 청도군1|박순열|(한.45.|기타) 청도군2|김동인|(한.54.|농ㆍ축산업) 고령군1|박영화|(한.66.|지방의원) 고령군2|나규택|(한.63.|기타) 성주군1|방대선|(한.48.|지방의원) 성주군2|박기진|(한.60.|무직) 칠곡군1|송필각|(한.56.|상업) 칠곡군2|박순범|(한.48.|공무원) 군위군1|김영만|(무.53.|운수업) 군위군2|장병익|(한.47.|농ㆍ축산업) 의성군1|김만용|(한.54.|기타) 의성군2|안순덕|(한.66.|지방의원) 청송군1|김영기|(한.58.|상업) 청송군2|남종식|(한.46.|농ㆍ축산업) 영양군1|조동만|(한.59.|상업) 영양군2|이상용|(한.46.|농ㆍ축산업) 영덕군1|김기홍|(한.43.|기타) 영덕군2|박진현|(한.46.|상업) 봉화군1|박노욱|(한.45.|농ㆍ축산업) 봉화군2|권영만|(무.47.|상업) 울진군1|전찬걸|(무.47.|기타) 울진군2|방유봉|(한.51.|지방의원) ■경남 창원시1|김상하|(한.50.|건설업) 창원시2|박차봉|(한.57.|지방의원) 창원시3|박판도|(한.52.|지방의원) 창원시4|강기윤|(한.45.|지방의원) 마산시1|강지연|(한.61.|지방의원) 마산시2|김오영|(한.51.|기타) 마산시3|황태수|(한.46.|교육자) 마산시4|이태일|(한.62.|지방의원) 진주시1|공영윤|(한.41.|정치인) 진주시2|배종량|(한.54.지방의원) 진주시3|강갑중|(한.57.|정치인) 진주시4|김진부|(한.49.|정치인) 진해시1|정판용|(한.55.|정치인) 진해시2|배종량|(한.54.|지방의원) 통영시1|김윤근|(한.46.|지방의원) 통영시2|강석주|(한.41.|정치인) 고성군1|정종수|(한.59.|무직) 고성군2|이동호|(한.43.|기타) 사천시1|김주일|(한.58.|무직) 사천시2|박동식|(한.48.|공무원) 김해시1|이유갑|(한.47.|교육자) 김해시2|허좌영|(한.52.|기타) 김해시3|신용옥|(한.49.|농ㆍ축산업) 김해시4|이규상|(한.46.|교육자) 밀양시1|이병희|(한.47.|정치인) 밀양시2|김갑|(한.57.|농ㆍ축산업) 거제시1|권민호|(한.50.|지방의원) 거제시2|김해연|(노.39.|회사원) 의령군1|김진옥|(한.54.|정치인) 의령군2|권태우|(무.56.|정치인) 함안군1|조근제|(한.53.|농ㆍ축산업) 함안군2|이방호|(한.63.|지방의원) 창녕군1|강모택|(한.46.|정치인) 창녕군2|박상제|(한.44.|정치인) 양산시1|성계관|(한.49.|상업) 양산시2|박규식|(한.55.|회사원) 하동1군|이갑재|(한.44.농·축산업) 하동군2|박영일|(한.51.|정치인) 남해군1|김영조|(한.68.|공무원) 남해군2|양기홍|(한.59.|운수업) 함양군1|임창호|(한.53.|지방의원) 함양군2|송경영|(한.58.|농ㆍ축산업) 산청군1|신종철|(한.44.|상업) 산청군2|허기도|(한.52.|기타) 거창군1|백신종|(한.53.|지방의원) 거창군2|김재휴|(한.53.|농ㆍ축산업) 합천군1|문준희|(무.46.|상업) 합천군2|김윤철|(무.41.|건설업) ■제주 제주도1|신관홍|(한.56.|건설업) 제주도2|오영훈|(우.37.|정치인) 제주도3|임문범|(한.49.|건설업) 제주도4|김수남|(무.46.|기타) 제주도5|강원철|(한.43.|지방의원) 제주도6|고동수|(한.44.|정치인) 제주도7|고봉식|(한.56.|지방의원) 제주도8|김병립|(우.52.|정치인) 제주도9|오종훈|(한.49.|금융업) 제주도10|고충홍|(한.58.|기타) 제주도11|하민철|(한.51.|기타) 제주도12|양대성|(한.66.|지방의원) 제주도13|장동훈|(한.41.|건설업) 제주도14|강문철|(한.47.|정치인) 제주도15|양승문|(한.61.|무직) 제주도16|강창식|(우.60.|지방의원) 제주도17|안동우|(노.43.|농ㆍ축산업) 제주도18|김행담|(우.59.|농ㆍ축산업) 제주도19|박명택|(한.44.|기타) 제주도20|허진영|(한.43.|지방의원) 제주도21|한기환|(한.59.|농ㆍ축산업) 제주도22|위성곤|(우.38.|기타) 제주도23|오충진|(우.49.|기타) 제주도24|김용하|(한.54.|지방의원) 제주도25|문대림|(우.40.|교육자) 제주도26|현우범|(무.55.|기타) 제주도27|한영호|(한.51.|농ㆍ축산업) 제주도28|구성지|(한.59.|농ㆍ축산업) 제주도29|김경민|(한.44.|수산업) <비례 당선자> ■서울 조규영|(우.40.|기타) 홍광식|(우.62.|기타) 하지원|(한.37.|교육자) 김인배|(한.39.|정치인) 박희성|(한.50.|정치인) 김진성|(한.67.|교육자) 나은화|(한.39.|약사) 이윤영|(한.44.|회사원) 이금라|(민.54.|정치인) 이수정|(노.34.|정치인) ■부산 하선규|(우.60.|정치인) 이영숙|(한.59.|정치인) 김주익|(한.52.|운수업) 전윤애|(한.46.|기타) 김영희|(노.43.|기타) ■대구 박정희|(우.65.|기타) 유영은|(한.58.|약사) 이경호|(한.45.|약사) ■인천 이명숙|(우.59.|정치인) 김소림|(한.46.|기타) 지정구|(한.40.|상업) ■광주 이명자|(우.55.|정치인) 조광향|(민.61.|기타) 김남일|(민.60.|교육자) ■대전 김인식|(우.48.|교육자) 이정희|(한.57.|정치인) 권형례|(국.42.|정치인) ■울산 서정희|(한.42.|기타) 김철욱|(한.52.|지방의원) 이현숙|(노.41.|정치인) ■경기 조복록|(우.53.정치인) 김형식|(우.73.|기타) 손숙미|(한.51.|교육자) 이용선|(한.45.|회사원) 김옥이|(한.58.|정치인) 임무창|(한.47.|상업) 정금란|(한.47.|지방의원) 김보연|(한.57.|교육자) 박명희|(한.51.|약사) 박덕순|(민.46.|약사) 송영주|(노.33.|기타) ■강원 최경순|(우.53.|정치인) 김동자|(한.54.|교육자) 유순임|(한.59.|기타) 최원자|(노.42.|정치인) ■충북 최미애|(우.55.|정치인) 최광옥|(한.48.|지방의원) 강태원|(한.38.|교육자) ■충남 이명례|(우.61.|정치인) 이선자|(한.62.|정치인) 황화성|(한.49.|기타) 박정희|(국.61.|정치인) ■전북 이영조|(우.65.|상업) 김동길|(우.51.|출판업) 유유순|(민.59.|무직) 오은미|(노.40.|농ㆍ축산업) ■전남 국영애|(우.45.|교육자) 박부덕|(민.63.|교육자) 양승일|(민.62.|농ㆍ축산업) 박해숙|(민.53.|정치인) 고송자|(노.57.|농ㆍ축산업) ■경북 손덕임|(우.57.|기타) 채옥주|(한.61.|정보통신업) 장길화|(한.46.|광공업) 최윤희|(한.50.|교육자) 김숙향|(노.36.|정치인) ■경남 이은지|(우.44.|약사) 임경숙|(한.61.|기타) 백승원|(한.45.회사원) 도난실|(한.45.|기타) 김미영|(노.42.|정치인) ■제주 오옥만|(우.43.|정치인) 좌남수|(우.56.|정치인) 김순효|(한.54.|정치인) 김완근|(한.49.|농ㆍ축산업) 김미자|(한.61.|농ㆍ축산업) 방문추|(민.50.|수산업) 김혜자|(노.39.|농ㆍ축산업) ●(우)열린우리당 (한)한나라당 (민)민주당 (노)민주노동당 (국)국민중심당 (미)한미준 (기)기타정당 (무)무소속 ●직업란의 기타는 기업인·자영업자·사단재단법인 이사장 등임 ●당선자는 지역 이름 정당 나이 직업순
  • 儒林(614)-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50)

    儒林(614)-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50)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50) 물론 유가사상을 낳은 공자도 처음에는 위인주의자처럼 보였다. 공자는 68세 때에 이르러 마침내 13년에 걸친 주유열국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천하의 제후를 만나며 왕도정치를 펼치기 위해 갖은 간난신고(艱難辛苦)의 계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공자는 오로지 제자들을 가르치며, 위기지학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면서도 공자는 ‘병이 들었을 때 임금이 문병 오시면 머리를 동쪽에 두고 조복을 위에 덮고 큰 띠를 그 위에 걸쳐놓고 맞았으며, 임금이 오라는 명을 내리면 수레가 준비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셨다.’는 논어의 기록처럼 군신의 예를 반드시 지켰다. ‘임금이 부르면 수레를 기다리지 않고 바삐 간다.’는 의미의 ‘불사가(不俟駕)’란 말은 바로 이런 공자의 태도에서 비롯된 말. 그러나 48세 때에 풍기군수를 끝으로 죽령을 넘은 이후로 퇴계는 자신의 인생을 ‘앞과 뒤’로 이분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인생에 있어 나아가고 물러감에 있어서 ‘앞과 뒤(前後)’가 다른 듯하다. 전에는 임금의 명령을 듣기만 하면 곧바로 달려갔으나 뒤에는 부르시면 반드시 사양하였으며, 나아가더라도 굳이 머무르지 않았다.” 이에 비하면 율곡은 성리학에 관한 명저들을 저술하였으면서도 또한 평생 동안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특히 율곡이 1584년 49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인 선조16년,‘십년이 못가서 반드시 화란(禍亂)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예언하면서 미구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왜의 ‘흙이 무너지는 화(土崩之禍)’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던 것을 보더라도 율곡은 시대의 징표를 꿰뚫어볼 수 있었던 경세가이자 대정치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새삼스레 이제와서 퇴계의 ‘위기지학’이 옳은지, 율곡의 ‘위인지학’이 더 옳은지 분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일찍이 ‘옛날에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공부하였으나 오늘날 배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 공부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라고 말하였던 것을 보더라도 유교의 학문은 결국 서양철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수양론(Self-Cultivation), 즉 몸과 마음을 다듬어 인(仁)을 완성하기 위한 위기지학인 것이다. 퇴계가 한때 율곡에 대해서 ‘사람됨이 명랑하고 시원스러울 뿐 아니라 지식과 견문도 많고 우리의 학문에 뜻이 있으니, 후배가 두렵다는 전성(前聖:공자)의 말이 나를 속이지 않았다.’고 제자 조목에게 보낸 편지에서 극찬하고 있으면서도 ‘다만 그가 지나치게 사장(詞章)을 숭상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이를 억제하고자 시를 짓지 않도록 당부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은 율곡의 천재성이 학문에 전념하기보다는 지나치게 다방면에 화려하여 결국 공자가 말하였던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 공부한다.’는 사장지학이나 공명지학(功名之學)에 빠질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위인지학은 결국 입신양명의 출세를 위한 학문적 도구로 전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으므로.
  • 儒林 (60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41)

    儒林 (60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41)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41) 그로부터 사흘 뒤. 율곡은 아침 일찍 집을 떠나 성균관으로 향하였다.3일 전에 본 과거시험에 대한 결과를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 무렵 율곡은 한마디로 상심의 계절이었다.1년 전에 결혼하여 한참 꿀맛 같은 신혼생활을 보내야 할 시절이었지만 아내 노씨는 지병인 폐병으로 병약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결혼하던 해 절친한 친구 성혼의 아버지였던 청송선생에게 보낸 율곡의 짤막한 편지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금년 봄에 혼씨(渾氏:성혼)와 함께 공부를 하고자 했건만 아내의 병이 심하여 서울에 올라가지 못하니 한탄할 뿐입니다.” 율곡의 집안과는 달리 처가 노경린의 집안은 비교적 넉넉하여 서울에 있던 집도 처가에서 장만하였지만 그 무렵 율곡의 집은 가세가 기울어 형제들이 모두 굶주림을 면치 못할 정도로 궁핍하였다. 어머니 신사임당이 죽고 나자 무능한 아버지는 더 이상 집안을 돌볼 여력이 없어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율곡이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에 오르는 길뿐이었던 것이다. 그 무렵 얼마나 율곡이 고통스러웠던가는 조익(趙翼)이 상소한 다음과 같은 글을 통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인조실록 13년 조에 실려 있는 상소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율곡의 집이 가난하여 형제들이 모두 굶주림과 추위를 면치 못하였는데, 그의 처가는 재산이 조금 있어서 장인 노경린이 서울에 집을 사주어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형제들의 가난함을 차마 못 보아서 곧바로 그 집을 팔아 무명을 사다 나누어 주었으며, 끝내는 한 고랑의 터전도 없게 되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으므로 형제들을 모두 불러와 같이 살며 죽을 쑤어서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어린시절부터 폐질을 앓았으나 죽을 때까지 예의와 공경을 다하고 죽은 뒤에는 자제들을 불러 모아 예절을 다하였습니다. 집안에서의 몸가짐이 이와 같았으니 인륜을 다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록에 기록된 대로 굶주림과 추위를 면치 못하는 대가족들을 위해 처가에서 마련해준 집까지 팔아 그 당시 물물교환의 척도로 삼던 무명을 나누어 줄 수밖에 없었던 청년 이율곡. 그뿐인가. 율곡은 가족을 위해 반드시 급제했어야 할 과거시험에서 낙방까지 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9번이나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조선 최고의 천재였던 율곡도 과거시험에서 한번 낙방하였다는 사실에서는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스승 퇴계를 만나고 돌아간 직후 그 해 봄에 치르는 과거시험에서 그대로 낙방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퇴계가 율곡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위로의 구절이 있음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젊은 나이에 과거에 오르는 것은 하나의 불행이다.’라고 하였으니, 자네가 이번 과거에 실패하였던 것은 아마도 하늘이 그대를 크게 성취시키려한 까닭인 것 같으니 아무쪼록 힘을 쓰시게나.”
  • 儒林(571)-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7)

    儒林(571)-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7)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7) 그러한 두 사람의 우정은 바로 별시해가 열렸던 성균관의 부문 앞에서 보여준 정철의 따뜻한 배려에서부터 싹튼 것이었다. 눈을 끔쩍끔쩍하면서 율곡의 유건을 벗기는 뛰어난 임기응변을 통해 율곡은 사면초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문장인 천도책(天道策)을 시지(試紙)를 통해 과거시험의 답안지로 써 올림으로써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니,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철은 율곡의 평생 은인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 두 사람은 눈빛만 보고도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우정을 쌓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되었는가. 문묘에 출입하여도 무방하겠는가.” 정철은 크게 웃으며 유생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면서 말하였다. 율곡을 에워싼 유생의 무리들도 이제 더 이상 떼를 쓸 수는 없음이었다. 그러나 패거리의 우두머리였던 파락호는 그냥 물러설 수는 없다는 듯 손으로 먼지를 털며 대답하였다. “좋다. 네 놈이 과장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하겠다. 하지만 현제판이 가까운 앞자리에 앉아서는 아니 된다. 여봐라.” 그는 주위에 진을 치고 있는 선접꾼들을 쳐다보면서 소리쳐 말하였다. “부문이 열리거든 여기서 지키고 있다가 모든 유생들이 출입한 뒤에 이 자를 맨 나중에 들여 보내도록 하거라. 만약 남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들어가려 하거든 당장이라도 태질하여 쫓아내 보내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예에-” 건장한 선접꾼들이 굽실거리며 대답하였다. 원래 계급사회에서 선접꾼과 같은 상민들이 양반집 자제의 행동을 막거나 행패를 부리는 것은 국법을 어기는 엄중한 죄였으나 명령을 내린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삽시간에 살벌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마침내 부문이 열리고 과장이 시작되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유생들이 한꺼번에 부문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문을 지키고 있던 수협관들은 한사람씩 한사람씩 엄격하게 몸수색을 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시험에는 부정부패가 따르는 법. 하물며 입신양명을 향한 절호의 기회가 보장되는 과거시험에 있어서야. 인간이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정한 방법이 총동원되었는데, 예를 들면 예상답안지를 미리 만들어가는 것, 시험지를 바꾸는 것, 채점자와 짜고 후한 점수를 주는 것, 입고 가는 옷 안쪽에 사서삼경의 내용을 깨알같이 적어 커닝페이퍼를 만드는 것, 합격자의 이름을 바꿔치는 것, 출제자와 채점자가 공모하거나 서리를 매수하는 것, 특정 정파가 자파세력에게 의도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거나 친인척을 뽑는 것,…. 특히 재미있는 것은 마치 오늘날 수험생들이 휴대전화와 최첨단 전자 장비를 동원하여 부정시험을 치르듯 과거시험에도 첨단기술이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는 점이다. ‘숙종실록’에는 당시로서는 이러한 부정방법이 나오고 있다. 숙종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성균관 앞 반촌(泮村)의 한 아낙네가 나물을 캐다가 땅에 묻힌 노끈을 발견한다.
  • 儒林(56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

    儒林(56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 1558년 명종 13년 겨울. 성균관의 문묘 뒤쪽에 설치된 명륜당(明倫堂)에서는 별시해(別試解)가 거행되고 있었다. 별시란 정기적으로 3년에 한번씩 열리는 식년과(式年科)라 불리는 과거시험과는 달리 세자의 탄생, 책봉과 같은 나라의 경사가 있거나 10년에 한번 당하관(堂下官)을 대상으로 한 중시(重試)가 있을 때 시행하던 일종의 부정기적인 과거시험이었다. 식년시에는 33명의 인재가 선발되고,10년 만에 한번씩 치르는 중시 때는 조의(朝儀)를 행할 때 당상의 교의(交椅)에 앉을 수 없는 서얼(庶孼)과 같은 특수한 신분의 낮은 계층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었으나 이번의 별시는 주로 성균관 유생에 한정되어 치르는 별시문과(別試文科)였다. 율곡은 이 특별시험에 참석하기 위해서 강릉을 떠나 시험 이틀 전에야 한양의 수진방에 도착하였다. 그해 봄 퇴계를 만나 2박 3일의 짧은 상봉을 끝낸 후 율곡은 줄곧 강릉에 머물며 학문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율곡이 별시에 응시하기 위해서 한양으로 돌아온 것은 거의 10개월 만의 외출이었던 것이다. 율곡으로서는 세 번째의 과거시험이었다. 이미 율곡은 불과 13세의 어린나이로 진사과에 초시로 합격하였다. 두 번째 시험은 금강산으로 출가하였다 환속한 다음해였던 1556년 21세 때의 일이었다. 한성부에서 실시한 것으로 한성시(漢城試)라고 불렸던 초시였다. 이 시험에서 율곡은 장원으로 뽑혀 널리 문명을 떨쳤으나 최고 학부인 성균관에 유학할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것에 지나지 않았을 뿐 여전히 백면서생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율곡에게 있어 세 번째 별시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이제 율곡은 더 이상 홀몸이 아니라 아내까지 거느린 가장이었고, 양반의 신분으로 태어난 율곡이었지만 이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과거에 급제한 뒤 입신양명함으로써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제도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율곡은 스승 퇴계를 만나고 강릉으로 돌아간 10개월 동안 스승으로부터 점지 받은 ‘거경궁리’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율곡이 평생 동안 공부하였던 학문의 양보다 이 짧은 10개월 동안에 더욱 깊이 침잠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율곡의 철학과 지적수준이 이 무렵에 거의 완성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학문에 투자하느냐 하는 사실보다 비록 짧은 기간이더라도 얼마나 집중하고 몰두하느냐 하는 것이 학문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사실을 율곡의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 번째의 과거시험이었던 별시해는 율곡의 학문을 객관적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였던 것이다.
  • [인사]

    ■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양명조 오진환■ SBS △고충처리인 朴永浩■ SBS 방송아카데미 △원장 張東旭■ CBS △보도국 편집부장 李政熙△〃 문화체육〃 겸 노컷뉴스〃 金奎完△〃 해설주간 鄭炳日△〃 보도위원 閔庚仲 李祁種△기술국 기술관리부장 金東仁△〃 기술연구소장 朱鐵△〃 기술연구소 기술위원 安永基△TV본부 카드사업팀장 任哲浩△대전방송본부 총무국장 겸 기술국장 鄭庸敎△부산〃 보도제작〃 權泳喆△춘천〃 〃 河瑾燦■ 한국자산운용협회 △전무이사 최봉환■ 한화증권 (지점장) △신갈 李景煥△반포 朴永壽△석계 文京浩△인천 李鈗坤△청주 徐鍾碩△타임월드 崔德好△공주 朴永圭△예산 鄭萬鍾△천안 李東周△영천 趙泳△울산 李昌煥△부산중앙 安重大■ 한국노동교육원 △국무조정실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지원단 파견 呂相泰△노사교육팀장 직무대리 朴在春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0) 긍정적 사고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0) 긍정적 사고

    우리는 대개 긍정적 사고를 권력과 돈에 아부하는 사고처럼 생각하는 무의식적 관습에 젖어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지식인은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하는데, 긍정적 사고는 지식인의 비판적 사고와 한 자리에 동거할 수 없는 현실 맹종적 사고로 여기기 다반사다. 그런 사고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까닭은 우리의 역사적 업이 그렇게 형성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부터 나라가 백성을 제대로 두루두루 아껴 보살핀 적이 거의 없이 경제적·안보적 위기에서 버림받았다는 기억이 그런 무의식적 업을 낳게 하였던 것 같다. 지금도 살아남기 위해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악착같이 무슨 수를 강구하려는 우리의 행태도 나라정치와 지도층의 인격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집단무의식과 깊은 연고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긍정적 사고는 아첨하는 사고와 다르다. 긍정적 사고는 모든 창조적 사고와 사기진작의 원동력이다. 쉽게 말하면 긍정적 사고는 자기의 운명 팔자를 수용하는 사고다. 예컨대 자기의 타고난 운명팔자가 나쁘다고 부모나 타인을 탓하고 비난한다고 자기의 운명이 개선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일생을 불운 속에서 헤매다가 임종을 맞을 뿐이다. 나쁜 운명의 여건을 좋은 것으로 바꾸는 사람은 그 운명을 사실로서 수용하고 거기서부터 인생의 설계를 세워 운명의 장애를 극복한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은 다르다. 수용성과 수동성의 미묘한 차이를 철학적으로 잘 해명한 이가 20세기 프랑스의 저명한 가톨릭 실존철학자인 가브리엘 마르셀이다. 그는 수용성을 수동성과는 달리 자기 내부정리를 통하여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준비가 된 열린 마음의 자세에 비유했다. 열린 마음은 불운에 임해 마음이 내성적으로 안으로만 접히지 않고, 불운의 사실을 새로운 가능성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불운이 자기의 마음을 접히게 하느냐, 아니면 새롭게 열게 하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마음의 활용에 달렸다. 열린 마음은 불운이 자기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불운에서 ‘너는 좋아지리라.’라고 자기의 마음에 희망의 빛을 예견한다. 그런 예견은 불운을 기회로 활용하는 마음의 자세와 직결된다. 받아들임은 이미 주어진 제약의 굴레를 자유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적극적 사고를 도입하는 자세이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말한 운명애(運命愛=amor fati)가 초인적 창조의 원동력이라고 여긴 것은 창조가 자신의 어려웠던 처지를 오히려 지혜로 되돌리는 마음의 활용과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유신론자 마르셀이나 무신론자 니체가 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진술한 것이겠다. 이처럼 창조적 사고는 긍정적 사고에서 잉태된다. 불운한 운명의 시련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 한 시공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운명과 연관될 때에, 그 시공의 정신문화적 주제로서 등록된다. 대체로 정신문화의 필요성은 공동운명의 시련이 생기하였을 때에 일어난다. 그 공동운명의 시련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가난과 질병에 의한 고통이나 전쟁에 의한 죽음이나, 소외나 무상감이나 억압의 부자유나 박탈의 절망감과 같은 것이 실존적으로 비슷하게 느껴지는 경우, 또는 기존의 사상이나 지식으로 새 미래를 헤쳐나갈 자신이 없는 무지의 자각현상이 강렬한 경우에 생긴다. 고통의 느낌이나 무지의 자각은 전혀 다른 두 개의 문제가 아니고, 동일한 문제의 두 측면이다. 왜냐하면 공동운명으로서의 고통의 느낌은 우리 문화가 과거에 스스로 지은 말과 생각과 행동의 습관이 현재완료진행형으로 쌓여 지금까지 작용하고 있는 자승자박의 굴레를 말하고, 무지의 자각은 그 현재완료진행형 상태에 있는 습기(習氣)의 구속을 풀 수 있는 해방의 새 지혜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마음이 욕망이라고 앞 글에서 늘 말해왔다. 이번에는 그 마음이 습관이라고 말한다. 욕망과 습관은 같은 뜻을 달리 표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욕망의 기호가 반복되면 습관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정신문화는 사회생활을 하는 마음의 욕망이 어떤 습기를 이룩한 결과다. 정신문화는 공동운명이고, 이것은 또 공동습기를 뜻한다. 공동습기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고통을 주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에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한다. 이것이 정신문화의 문제의식이다. 그런데 긍정적 사고를 말하면서 왜 고통과 무지를 말하나? 바로 이 고통과 무지가 우리의 것이기에 그것을 공동운명으로서 감수하고 수용한다는 것이다. 운명애는 우리 것이니까 무조건 좋다는 감정적 편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감정적 편애는 자기 자식이므로 무조건 감싸는 지각 없는 부모의 편애와 다르지 않다. 운명애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가 된 우리의 업장(業障)을 사실로서 인정함이다. 공동사실로서의 공동업장을 수용하면서 그 업장의 방해가 동시에 지혜의 원동력으로 변용될 수 없겠는가 하고 깊이 사유한다.12세기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의 시작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땅으로 넘어진 자는 그 땅을 밟고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다.’는 구절이 운명애의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공동운명의 업장이 우리를 넘어뜨리게 하였다면, 우리가 일어서기 위한 지혜가 다른 곳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현재완료진행형으로 흘러오고 있는 바로 그 공동운명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 긍정적 사고의 의미다. 그런 긍정적 사고에서 우리를 고통과 무지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창조적 사고가 움튼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봐도 자기를 저주하고 학대하는 이에게 우리는 그의 운명팔자가 개선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공동운명의 역사를 분노에 차서 누구의 탓으로만 돌리는 일도 현명한 지혜의 눈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기 것을 무조건 최상의 것으로 치켜세우는 자존망대의 국수주의적 행각도 우스꽝스럽다. 뱀의 독 속에 그 독을 치유할 수 있는 해독약이 있다고 한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게 이중적이다. 이것이 사실의 존재론적 법칙이다. 공동운명의 업장 속에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해독제가 있다는 것이 긍정적 사고의 의미다. 나는 16세기 율곡의 성리학에서 이통기국(理通氣局=理가 비록 보편적이나 특수적인 氣의 상황을 떠나서 실존하는 것이 아님)이란 철학적 언표를 아주 좋아한다. 저 언표 속에서 율곡은 주자학의 보편적 이치라도 조선의 역사적·사회적·자연적 상황을 떠나서 추상적으로 실존할 수 없다는 창조적 사고의 원리를 제창했다고 여긴다. 말하자면 주자학의 조선화를 겨냥한 사유가 거기에 배어있다고 생각된다. 주희도 이 이치를 깨치지 못한 데가 있다고 율곡은 그의 친구 성혼에게 호젓이 고백했다. 나는 율곡의 저 언표가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사상과 매우 닮았다고 여긴다. 이 세상의 어떤 진리도 구체적 살(肉)을 떠난 추상적 본질이 성립하지 않으며, 구체적 날짜와 장소를 여읜 무시공(無時空)의 철학적 사유도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 메를로-퐁티가 ‘의미와 무의미’에서 남긴 말이다. 그런데 율곡이 저 유명한 ‘이통기국’의 언표를 남기고 그에 알맞은 형이상학과 심성론의 원리를 말하고 정책의 면에서 그 시대의 아픔을 혁파할 수 있는 정책방도를 개진했으나, 불행히도 공동운명의 질곡을 희망으로 치환시키는 길을 언명하지 안았다. 우리가 고통과 무지에서 구체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도를 탐색하기 위하여, 율곡의 저 명제가 한 번도 진지하게 심층적으로 자기화되는 길을 가져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해 보지 못한 이유도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운명의 업보가 현재완료진행형으로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거의 예외없이 우리 고통과 무지의 자각으로부터 학문을 창조하지 못한 채 다만 서양의 인문사회과학은 서양의 이론을 소화하지 않고 소개하고, 동양학 내지 한국학은 옛 고전의 생각을 역시 소개하는 정도로 마감해온 것이 아닌가 자성한다. 이 땅의 인문사회과학은 우리의 풍토병과 아픔을 치유하려는 진단처방보다 ‘…에 관한 연구’로서 ‘호모 스펙탄스’(homo spectans=관람자)나 ‘호모 인트로두첸스’(homo introducens=소개자)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지? 그래서 대학의 학문과 현실이 따로따로 헛도는 인상을 주었던 것이 아닌가 자성한다. 나는 자기 것으로 숙성된 학문에 의해 세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가 어떻게 아류의 신세를 면할 수 있는지 모른다. 율곡이 말한 ‘이통기국’은 결국 실사구시(實事求是)와 같겠다. 실사구시는 긍정적 사고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 진선진미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현실의 구체적 인간들은 다 잡석(雜石)이다.8회의 글에서 왕양명의 말을 인용했다. 예컨대 거리의 사람들이 5%,20%,75%의 금을 지닌 잡석과 같은 성인이라는 것이다. 순금의 금괴는 추상적이고 가상적인 존재일 뿐, 자연적으로는 실존하지 않는다. 옥석혼효(玉石混淆)라 하지 않던가? 모든 인간은 다 자기의 장기를 타고났다. 이것이 자연의 존재양식이 아닌가? 각자의 특장(特長)을 잘 살려서 신바람나게 공동운명을 좋게 바꿔놓게끔 힘을 실어주어야지, 보석을 보지 않고 잡석만 자꾸 캐내려 하면 누가 그 인민재판 앞에서 버틸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역설적으로 옛 중국의 전국시대 제나라 정승인 맹상군의 삼천식객(三千食客)과 계명구도(鷄鳴狗盜)를 예사롭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계명구도하는 식객이 맹상군을 위기에서 구출해 냈다. 사법재판은 어느 나라에나 다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만인이 만인에게 사법재판 하듯이 옥석을 가린다고 따진다면, 옥석이 다 타버리는 옥석구분(玉石俱焚)의 손실을 우리가 아니고 누가 입을 것인가? 서로 나쁜 점을 헐뜯는 사회보다 서로 좋은 점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회가 더 좋은 양질의 사회생활을 일구고, 우리를 더 행복스럽게 만들리라. 비밀의 열쇠가 우리 안에 있듯이,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동운명 안에 깃들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노동의 기쁨 가득한 ‘행복일터’

    27일 오전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 30여평의 좁은 일터에는 작업 열기가 넘쳤다. 숙련되지는 않았지만 손끝 하나 하나에 즐거움이 묻어났다. 장애인은 물론 30∼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일하는 이곳은 ‘행복일터’. ‘행복일터’는 대구 월성동 월성주공2단지내에 자리잡고 있다. 대지 1280㎡에 연건평 470㎡의 2층 건물로 달서구청이 저소득층 주민과 장애인에게 일감과 일터를 제공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지난 16일 문을 열어 일하는 사람들이 20여명에 불과하지만 분위기는 어느 기업체 못지않다. 일감이래야 전화케이스 닦기, 에어컨 고무부품 정리하기, 제품포장지 재활용 등 단순한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중 절반가량이 장애인이다. 장애를 이유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던 이모(44·지체장애 3급)씨는 “자동차 부품제조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집 인근에 일할 수 있는 곳이 생겨 기쁜 마음으로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쪽 다리와 손이 불편한 부인 백모(32)씨와 함께 이곳에 나와 일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8시간동안 이들 부부가 전화 케이스를 닦고 받는 일당은 2만여원. 이씨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일한다는 자체에 보람을 느낀다.”며 밝게 웃었다. 황모(72·여)씨는 “요즘 노인들을 고용하는 데가 있나. 소일거리도 되고 용돈도 벌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했다. 달서구 양명채 복지정책팀장은 “아직 처음이라 일거리가 부업 수준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성서공단 등의 업체들로부터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감을 제공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터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10) 不立文字(불립문자)

    儒林(530)에는 ‘不立文字’(아니 불/세울 립/글월 문/글자 자)가 나오는데,佛道(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不’은 나무·풀의 ‘뿌리’를 본뜬 象形字(상형자)였으나 ‘아니다’라는 뜻의 不定詞(부정사)와 發音(발음)이 같아 假借(가차)해 쓰면서 ‘아니다’라는 뜻으로 굳어졌다.‘不知其數(부지기수: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음),不遠千里(불원천리:천리 길도 멀다고 여기지 않음),不朽(불후:썩지 아니함이라는 뜻으로, 영원토록 변하거나 없어지지 아니함)’ 등에 쓰인다.‘立’은 서 있는 사람의 모양이다. 용례에는 ‘立身揚名(입신양명: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침),立錐之地(입추지지:송곳 하나 세울 만한 아주 좁은 땅),竪立(수립:꼿꼿하게 세움)’ 등이 있다.‘文’은 가슴에 文身(문신)을 새긴 사내가 버티고 선 모양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文券(문권:땅이나 집 따위의 소유권이나 그 밖의 권리를 증명하는 문서),文豪(문호:뛰어난 문학 작품을 많이 써서 알려진 사람)’ 등에 쓰인다. ‘字’는 ‘집’이라는 뜻의 ‘ ’(면)과 아이가 본뜻인 ‘子’(자)를 합쳐 ‘집안에서 아이를 기르다.’에서 ‘기르다’라는 뜻을 추출하였다.‘撫字(무자:어루만지듯이 잘 돌보아 기름),衍字(연자:글이나 문장에서,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자리에 군더더기로 들어간 글자),題字(제자:서적의 머리나 족자, 비석 따위에 쓴 글자)’등에서 쓰임을 알 수 있다. 선종(禪宗)은 ‘敎外別傳(교외별전),不立文字(불립문자),直指人心(직지인심),見性成佛(견성성불)’을 宗旨(종지)로 삼는다.敎外別傳은 말이나 문자를 쓰지 않고, 따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하는 일이다.敎外(교외)의 법은 석가의 마음을 직접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전하는 것을 말한다.不立文字(불립문자)는 문자로써 가르침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以心傳心(이심전심) 이루어짐을 의미한다.直指人心(직지인심)은 눈을 외계로 돌리지 말고 자기 마음을 곧바로 잡아서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였음을 파악하라는 것이며,見性成佛(견성성불)은 인간이 본성을 깨치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는 말이다. 直旨人心과 관련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金屬活字本(금속활자본) ‘直旨’에 대하여 살펴보자.‘直旨’는 1372년 白雲和尙이 성불사에서 편찬한 것을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하였다.‘直旨’의 체제는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흥덕사에서 간행된 금속활자본은 현재 상권은 전하지 않고, 하권 1책(총 38장)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전하고 있다.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 플랑시가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수집한 것중 하나였다. 이것을 다시 앙리 베베르가 구입하여 소장하다가 遺言(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직지는 1901년 모리스 쿠랑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으나 실물과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책’전시회에 출품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직지를 알리기 위한 충청북도의 노력으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가치를 세계적으로 公認(공인)받았다. 김석제 경기도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이주일의 어린이책]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이종란 등 지음

    ‘철학’이란 단어를 듣기만 해도 지끈지끈 머리부터 아플 어린이들. 철학을 공부하는 나이는 따로 있다는 편견을 깨주는 시리즈가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자음과모음이 펴내는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는 “철학은 누구나 어디서나 하는 것”이란 명제를 재미있는 화술로 웅변한다. 역사를 빛낸 철학자들의 세계를 들여다봄은 물론, 그들의 사상이 일상 속에 실핏줄처럼 녹아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두루 귀띔해준다. 초등 중학년 수준으로 눈높이를 낮춰 창작동화처럼 엮어가는 이야기여서 아이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플라톤이 들려주는 이데아 이야기’를 1권으로 출발한 시리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들려주는 행복 이야기’ ‘최한기가 들려주는 기학 이야기’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철학자들의 세계를 먼저 소개했다. 최근 추가된 것이 ‘공자가 들려주는 인(仁)이야기’를 포함한 12권. 그러니까 소크라테스, 정약용, 벤담, 헤겔, 그람시, 프로이트 등 12명의 철학자들이 시리즈 목록에 새로 들어온 셈이다. 평범한 생활 모티브에서 이야기의 싹을 틔운 뒤 어린 주인공에게 스스로 ‘왜’와 ‘어떻게’의 해답을 찾게 유도하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양명학을 발전시킨 중국 명나라 철학자 왕수인(1472∼1528)을 조명한 ‘왕수인이 들려주는 양지 이야기’(13권·이종란 지음). 지행합일(知行合一) 사상으로 대변되는 왕수인의 철학세계를, 책은 서울에서 시골 할머니댁으로 막 이사온 초등생 소녀 왕수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에둘러 풀어보인다. 시골분교에서 만난 개구쟁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양명학의 기본개념을 소개하는가 하면, 새엄마의 등장으로 갈등하다 마음을 다잡아가는 과정에 양지(良知)의 의미를 실어놓기도 한다. 평범해보이는 동화책을 읽었는데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철학적 사유를 하게 되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독서 지평을 넓혀 아이들에게 책읽기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데에도 적잖은 역할을 해줄 듯하다. 학습효과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으니 조급증 많은 학부모들에게도 반가울 책. 사물을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이 곧 논술실력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는 100권까지 나올 예정이다. 초등3년 이상. 각권 97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8) 선악의 대결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8) 선악의 대결

    도덕이 얼마만큼 우리의 이기적 마음을 변경시킬 수 있을까? 철학공부를 한 내가 접한 도덕윤리학의 이론이 나의 이기심을 얼마나 변화시켰을까? 그것이 나를 바꿔 놓지 못했다. 그것은 다만 내 안에 이기심의 강력한 충동에 저항하는 반이기적 도덕심의 반작용을 움트게 했을 뿐이다. 젊은 시절에 나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울부짖은 대로 “내가 원하는 바 선을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라는 구절을 무척 좋아했다. 나는 실존적 고뇌를 느꼈으나 마음의 구원을 맛보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공부에 몰입했을 때에, 나는 선악도 시비도 이해관계의 대립도 없이 스스로에 대하여 가장 평화스러웠고, 타인에 대해서도 가장 열려 있는 마음의 변화를 느꼈다. 젊은 날에 나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이어서 주자학에 심취했다. 유신론적 실존주의는 ‘로마서’의 사도 바울이 말한 분위기와 유사한 실존적 자각을 일깨워 주었고, 이어서 나는 주자학을 통하여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기약하는 공부가 진정한 마음의 공부라고 여겼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마음은 선악이 싸우는 장소가 아니라, 생각을 허공처럼 비워야 하는 장소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기심과 도덕심의 이원론적 싸움을 멈추는 곳에서 내 마음이 바뀐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도덕심은 이기심을 지우지 못하는데, 오히려 무심한 마음이 이기심도 지우고 도덕심도 생각하지 않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마음은 자연스러운 기호이지, 억지로 강압해서 되는 당위의 적용장소가 아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필자가 앞 글에서 자주 언급한 마음, 즉 기호를 뜻한다. 마음 즉 기호는 유교경전인 ‘대학’에 나오는 구절처럼 “악취를 싫어하고 좋은 색을 좋아하는” 자연적 마음의 경향을 일컫는다. 이런 마음의 경향을 ‘대학’은 ‘자겸(自謙=스스로 좋아함)’이라고 명명했다. 마음이 하고 싶어 하는 기호에 두가지의 경향이 있다. 그 하나는 본능이 하고 싶어 하는 기호요, 또 다른 하나는 본성이 하고 싶어 하는 기호다. 주자학은 본능이 하고 싶어 하는 기호의 이기적 경향을 거슬려 반본능적 도덕심의 의지로 마음의 기질을 새로 바꾸려 하는 당위적인 수양법이고, 양명학은 마음이 본능의 경향을 제어하는 대신에 오히려 마음에 본디 있는 본성의 자연스러운 경향이 나타나도록 하는 무위적 현성법(現成法=자연스럽게 나타나게끔 하는 법)을 제창한다. 좌우간 위에서 언급된 ‘대학’의 구절에서 말해진 ‘자겸’이 본능적인 기호인지 본성적인 것인지 모호해서 주자학과 영명학의 갈래가 나뉘어진 것처럼 보인다. 주자학은 보통사람들의 기호가 본능적 경향을 띠기에 그것을 억제해서 마음이 본성의 기호를 다시 회복하도록 도덕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이고, 양명학은 마음이 무심의 경지에 이르면 저 본성의 기호가 본능의 기호를 제치고 나타나기에 무위적으로 무선무악의 심정에 이르는 길만 가면 세상은 좋아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잠깐 주자학과 양명학의 사상적 계보를 일별해 볼 필요가 있다. 저 두 계보를 함께 안고 있었던 분이 유교의 교조(敎祖)인 공자고, 그 다음이 맹자였다. 공자와 맹자는 그만큼 거목인 셈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주자학적 수양법을 대표하는 이가 증삼(曾參)이고, 현성법을 상징하는 이가 안연(顔淵)이다. 저 두가지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에서 일차로 수렴되고, 맹자에서 이차로 집약되었다. 맹자는 본성의 화신으로 요순(堯舜)임금과 탕무(湯武)임금을 예시했는데, 전자는 자연스럽게 본성이 현성된 무위적 성인들이고, 후자는 도덕적 당위로 수양하여 본성을 회복한 성인들이다. 주자학은 탕무를 본성회복의 준거로 들었고, 양명학은 요순을 본성의 자연적 존재양식의 표본으로 간주했다. 주자학과 영명학은 어떻게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본성이 되살아나는 길을 터득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에서 갈라진다고 하겠다. 본성이 되살아나서 사회생활이 지선(至善)의 경지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주자학이나 양명학의 공통이념이다. 주자학의 지선은 인간의 도덕심이 이기심을 이겨 도덕적 선의 승리가 천도(天道)의 성선(性善)과 합치하는 것이 지선이겠고, 양명학의 지선은 마음이 무선무악의 무심한 상태에 이르면 그 무념지념(無念之念)의 경지가 바로 본성이 현성하는 지선의 상태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방법이 우리 사회를 행복한 사회로 가꾸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까? 필자의 개인 생각으로는 마음이 선악의 대립으로 긴장되어 투쟁할 때보다 마음이 어떤 일에 몰입되어 무심과 무아의 경지에 있을 때가 더 안온했고 타인들에 대해서도 귀가 더 열렸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지선은 선의 승리가 아니라, 무선무악의 경지에 가까웠다. 모든 세상만사의 존재방식은 작용과 반작용의 동시성적인 원리와 유사하다. 작용이 강하면 반작용도 역시 그만큼 강해진다. 선의 작용이 강하면 악의 반작용도 그만큼 완고해진다. 앞의 글(1·3·4회)에서 약(藥)의 이면이 독(毒)이듯이, 선(善)의 이면에 악(惡)이, 복(福)의 이면에 화(禍)가 이미 코앞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존재의 이중성 법칙을 보았다. 그 까닭은 약과 선과 복이 독립적으로 존립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 반드시 독과 악과 화와 동시적으로 상호의존해야만 발생할 수 있는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이 없으면 약이 생기지 않고, 악이 없으면 선의 생각이 일어나지도 않고, 화가 없으면 복을 좋아할 리도 없다. 이런 존재양식을 불가에서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 부른다. 상호의존적 존재양식이라는 뜻이다. 본능의 기호와 본성의 기호도 서로 의타기적이다. 본능의 기호는 소유론적이고, 본성의 기호는 존재론적이라고 앞의 글(1·2·5·7회)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어 나왔다. 본능과 본성이 아주 유사하기에 사람들은 그 구별을 잘 하기 어렵다. 그리고 소유와 존재의 개념이 서로 모호하여 한국어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언어에서도 소유와 존재가 서로 혼동되어 쓰일 정도다. 이것은 프랑스의 언어학자 벵베니스트가 ‘일반언어학의 문제’에서 밝힌 바이다. 한국어에도 “나는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미 소유와 존재가 뒤섞여 쓰이는 용례다. 소유욕이 존재의 평온을 압도하는 사회생활에서 본성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본성이 잘 현성되는 순간은 내 마음이 선악이나 시비나 이해관계로 갈라지지 않고 고요하고 무심할 때에 잘 드러난다. 이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마음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여 거기에 몰입한 무심무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이 경지를 양명학은 성인(聖人)의 경지라고 일컬었다. 성인의 경지가 아득히 높은 구름 위의 세계가 아니라, 비근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성인의 마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명학의 창시자인 명나라의 왕수인(王守仁)은 ‘전습록(傳習錄)’에서 “거리의 사람들이 다 성인”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예컨대 요순과 공자가 100%의 순금괴라면, 거리의 갑남을녀는 5%,45%,70% 등등의 금함량으로서 잡석과 함께 섞여 있을 수 있다. 잡석 속의 금도 금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다만 100%의 성인은 아니지만,5%,25%,70% 등등의 성인도 성인이다. 왕수인의 이 주장은 매우 중요한 뜻을 함의하고 있다. 비유컨대 주자학처럼 나머지 잡석이 불순하므로 그것을 순금으로 변경시키려고 노력하려는 모든 도덕주의적 순수론은 불가능한 꿈이다. 주자학이 교기질론(矯氣質論)을 내세워 불순한 기질을 교정하여 순수한 좋은 기질로 변화시킬 것을 수양법으로 종용했으나, 그런 교기질(기질교정)은 불가능하다. 마음의 기질을 바꾸는 주자학의 부정적 처방보다 양명학의 가르침대로 각자가 무심으로 일할 때의 그 마음의 기호를 장려하는 긍정법이 좋은 사회를 일구는데 더 유효한 길이겠다. 불가에서 이런 무심의 상태에서 어떤 일에 몰입하는 것을 선기(禪氣)라고 부른다.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이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에서 각자가 자기에 주어진 재성(才性)에 따라 무심으로 일하는 그 몰아(沒我)의 순간이 바로 여래의 지혜광명이 나타나는 순간과 같다고 천명했다. 무념으로 일하면 사람들은 다 성공한다. 본능과 본성의 마음은 다 기호적이라서 이익을 좋아한다. 이것은 악취를 싫어하고 좋은 색을 좋아하는 ‘대학’의 구절과 같다. 다만 본능은 남과 다투어서 이익을 바깥에서 타동사적으로 쟁취하는 이기심(利己心)이지만, 본성은 자기 안에서 본성이 지닌 능력을 자동사적으로 꽃피워 그 이익을 남에게 시여하려는 자리심(自利心)이다. 이것이 두 기호의 차이점이다. 이기심은 배타적이나, 자리심은 이타적이다. 당위적 도덕의식은 사회의 팔자를 바꿔 놓지 못하는 것 같다. 도덕적 심판은 덜 또는 더 오염된 인간들이 자기는 순수하고 상대방은 뭐 묻었다고 비난한다. 그렇다고 법의 심판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법의 심판은 적극적 사회를 일구지 않고,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는 소극적 기능을 맡을 뿐이겠다. 우리는 지금 계속 우울하게 여러 개의 선악으로 사회를 쪼갠다. 도덕적 선악의 뒤에는 심리적 호오(好惡)가 반드시 숨어 있다. 나 중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선이고, 싫어하는 것이 악이 된다. 여러 개의 선악으로 사회가 중층적으로 대립되면, 여러 개의 호오로 사회가 지리멸렬해진다. 결국 만인이 만인을 다 미워하는 결과로 틀림없이 치닫는다. 그보다 너는 10%의 성인, 당신은 50%의 성인, 그대는 80%의 성인 등으로 우리가 서로 긍정적으로 인정하자. 물론 함량은 겉으로 표시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모두가 자기의 타고난 몫대로 이타적인 발심을 할 것이다. 이것이 즐겁고 행복한 사회다. 지금 국민의 60% 이상이 기회가 오면 이민가고 싶어하고, 아기 낳기를 가장 원치 않는 나라가 되었다 한다. 이 심리가 어디서 오는가? “교육비가 비싸고 키우기가 힘들다.”라는 겉 이유보다 더 깊고 깊은 심리적 상처가 우리에게 다 있다. 우리 스스로 만든 업보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코드로 읽는책] 중국 사상의 이단아 ‘이탁오’ 재조명

    “따라 짖는 한 마리 개는 되지 않겠다.”며 유교의 전제에 맞서 사상의 절대자유를 주장한 중국 명대의 지식인 이탁오(1527∼1602, 본명 이지). 그는 그 도저한 자유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시대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2000여년 동안 만세의 사표요 지극히 성스러운 스승으로 추앙받던 공자를 정면으로 비판,16세기 ‘공자의 천하’ 중국을 뒤흔든 것이 그 한 예다.열 두 살 때 이미 공자를 비웃는 ‘노농노포론(老農老圃論)’이란 글을 써 지성의 싹을 보여준 그는 50대 중반엔 “배고픈 사람에게 좋고 나쁜 음식을 가릴 여유가 없듯, 도를 배우는 데도 공자와 석가, 노자를 구분할 여가가 없다.”고 선언하는 ‘경계 없는’ 사상가의 경지에 이른다. 마음과 수양을 중시하는 양명학자들 중에서도 과격한 편에 속해 양명좌파로 분류되지만 그는 사실 유학과 양명학, 불학을 넘나들며 어디에도 정주하지 않은 야생적 사고의 소유자였다. ‘이탁오’(신용철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는 중국 사상사의 이단아 이탁오의 파란만장한 삶과 철학의 자취를 살핀 평전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이탁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경희대 명예교수)가 평생 천착해온 이탁오 사상의 결정판이다. 그동안 ‘분서’(한길사),‘이탁오 평전’(돌베개)등 이탁오에 관한 번역서는 몇 권 나왔지만 그의 삶과 사상을 국내 학자가 본격적으로 조명한 연구서가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중세사회의 어둠을 뚫고 근대의 여명을 밝힌 시대의 횃불. 이탁오는 만세불변의 진리로 통하던 거대한 유교의 허위의식을 깨뜨리고 여성의 해방을 부르짖는 등 과감한 주장을 펼치다 체포돼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300여년이 지난 20세기 초 그는 중국의 5·4신문화운동 당시 ‘타공가점(打孔家店, 공자의 상점을 타도하자)’을 외친 오우 등에 의해 비로소 재조명되기 시작한다.자신의 책을 분서(焚書), 곧 태워버려야 할 책이라고 이름지을 만큼 도도했던 이탁오는 현대 중국에선 ‘비판의 성인’으로 추앙받으며 ‘중국 최초의 근대인’이란 평가를 얻고 있다. 책은 그동안 학계에서 논란이 돼온 이탁오와 동시대 인물인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의 사상적 만남 가능성도 짚고 넘어가 눈길을 끈다. 이탁오가 양명학 좌파인 것처럼 허균은 이퇴계 등 조선 정통유학의 좌파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학자 고 이가원 교수는 허균을 아예 ‘한국의 이탁오’라고 부른다. 저자 또한 ‘홍길동전’이 사회부조리와 여성차별 문제를 다룬 것은 이탁오로부터의 사상적 세례와 무관치 않다는 견해를 밝힌다.국내 학계에서 이탁오가 ‘미치광이’나 ‘정신분열자’ 쯤으로 치부되던 30여년 전 일찍이 그의 사상에 주목한 저자의 이 책은 무엇보다 한국인의 처지에서 이탁오를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2만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오늘의 눈] 유시민, 악덕과 미덕사이/심재억 사회부 차장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0일 오전 취임했다.‘유별난 국회의원’에서 ‘가당찮은 내정자’를 거쳐 ‘걱정되는 장관’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에게 어찌 일말의 소회가 없을까. 그는 “과천 오는 길이 평탄치 않았다.”는 취임 일성으로 이런 심사를 토로했다. 속물들 생각으로야 어차피 ‘사는 게 고해(苦海)’이니 한 몸 입신하고, 양명한 대가로 치면 그런 과정이 오히려 헐값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한번도 좌굴(挫屈)을 허용하지 않았던 그가 정장에 표나는 분장,2대8 가르마를 하고 ‘존경하는’이라는 수사를 남발해야 했던 인사청문회를 거쳐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한 곳은 어디일까. 아직 액면의 진위를 가릴 계제가 아니지만, 유 장관의 취임사는 이런 의문에 대한 하나의 해법일 수는 있다. 그는 먼저 “다른 모든 것을 다 잊으려 한다.”고 운을 뗐다.“국민을 섬기는 일에만 집중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그가 말한 ‘국민’이 포괄적 의미는 아니다. 그는 스스로 섬겨야 할 대상을 ‘어르신’과 ‘병들고 가난한 이웃’,‘장애인’으로 특정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당연한 범주의 설정이지만, 또한 여기에 그의 지남(指南) 의지가 담겼을 것이란 추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확실히 정치인 유시민은 ‘미덕’과 ‘악덕’의 경계를 오갔다. 일부에서는 그의 끊임없는 파괴 의지를 ‘돌출’이라거나 ‘싸가지 없다.’고 매도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그의 파괴적 열정이야말로 구각의 청산이자 창조를 위한 파종”이라고 두둔했다.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를 두고 이렇게 극명한 해석을 낳은 정치인도 흔치 않았다. 그런 유 장관이 ‘사람들’ 속으로 왔다. 보건복지 현장은 정치적 악덕이 혹은 미덕이기도 하고, 그 미덕이라는 게 또한 악덕일 수도 있는 곳이다. 정치판에서는 오로지 악덕으로만 읽혔던 네그라소프의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시구가 민초들에게는 가슴을 덥히는 금언이듯 그의 또 다른 시작이 새삼 관심을 끈다. 그는 다시 미덕과 악덕의 어느 경계를 질주할 것인가. 심재억 사회부 차장 jeshim@seoul.co.kr
  • 안정환 블랙번 테스트 불참

    안정환(30·FC메스)이 블랙번 합동훈련에 불참, 프리미어리그 진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국내 에이전트 양명규씨는 17일 “안정환은 영국으로 가지 않았다.”면서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영국으로 무작정 가는 것을 꺼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지 에이전트는 전날 “오늘 영국으로 건너가 블랙번 구단에서 함께 훈련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안정환이 돌연 영국행에 제동을 건 것은 ‘불확실성’ 때문. 안정환은 합동훈련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테스트에서 탈락했을 경우 그 상처를 이겨낼 자신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여기에는 자존심 문제도 개입됐다. 한·일월드컵과 프랑스리그에서 실력이 검증된 상황에서 실력테스트에 자존심이 상했을 수 있다. 결국 문제는 블랙번 캠프에서 치러지는 훈련의 성격이다. 안정환은 이를 입단테스트로 규정했고, 현지 에이전트는 입단을 90% 전제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통과의례로 보고 있다. 현 상황에서는 입단테스트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유력 선수를 입단테스트 형식으로 합동훈련에 참가하라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면서 “현지 에이전트가 구체적인 협상없이 블랙번에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표암 강세황 추정작 3점 발견

    18세기 조선 문인화의 거두인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91) 선생의 작품으로 보이는 서화 3점이 발견돼 진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충북 청주 백제유물전시관 강민식(39) 학예연구사는 16일 “지난해 3∼6월 열린 ‘과거, 출세와 양명전’에 출품된 보성 오씨 종손인 오병정(68)씨의 소장품 가운데 서화 3점이 표암 선생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청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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