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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정ㆍ민주ㆍ공화 “임무 마감” 이모저모

    ◎“감회와 아쉬움”… 3당 간판 내리던 날/총재들은 모두 불참… 새 출발 결속 다짐/“우린 어떻게 되나” 사무처 요원들 침울 민주자유당으로 합당한 구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은 14일 상하오에 걸쳐 각각 중앙당사에서 당기와 당간판을 내렸다. 민자당은 15일 중앙선관위에 창당등록을 함으로써 4ㆍ26 총선이래 지속된 4당구조를 22개월만에 법률적으로 종지부를 찍고 평민당과 양당체제로 정국을 이끌게 된다. ○…구 민정당은 이날 상오 서울 관훈동 중앙당사의 건물벽에 붙은 「민주정의당」이란 당명과 당마크를 떼낸 데 이어 하오 4시30분 박태준 민자당최고위원대행과 박준병사무총장등 구 민정당 당직자들과 사무처요원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판식과 하기식을 거행. 박대행은 이어 통일관에서 열린 다과회에서 『지난 40여년의 얼룩진 헌정사에서 집권당 스스로가 보다 큰 목표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 스스로 당의 깃발을 내린 것은 초유의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이러한 위대한 결단은 역사가 존재하는한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라며 감회와 아쉬움에 젖은 참석자들을 위로. 박총장도 민정당의 발전적 해체를 강조하며 협력과 결속을 거듭 당부했으나 참석자들은 9년여 만에 당기가 내려진 데 대해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 이날 당해체에 따라 사무처요원들은 그동안 적립한 2백만∼8백만원의 퇴직금과 2개월분의 봉급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수령. 이들은 여의도 민자당 당사의 내부정리가 끝나는 이달말경 전원 민자당 중앙사무처 요원으로 새출발할 예정이나 지자제 선거국ㆍ국방대학원ㆍ국영기업체로의 전출 등을 통해 상당수 정리될 것으로 전망. 이와관련,박총장은 『사무처 직원들의 유출에 있어 강제나 타의에 의한 불이익을 줄 생각은 없다』면서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지방의회 진출,여권 유관단체로의 전출,재정위원회와 후원회의 기구확대 등을 통해 다른 분야로 흡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이들의 처리를 전담할 기구를 신당내에 만들 생각』이라고 피력. 한편 현재의 당사는 일단 신당의 국책연구원이 쓰도록 했으며 추후 제2당사나 신당사로개축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 ○…구 민주당은 이날 상오 9시 김명윤 전고문ㆍ강인섭 전부총재ㆍ김동영 전총장 등 사무처 간부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마포구 공덕동 제일빌딩 현관에 걸려있던 「통일민주당」 간판을 내렸다. 나무로 된 이 당간판은 당시 김영삼총재가 직접 쓴 것으로 김 전총재는 자신의 손으로 간판을 떼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는지 김 전고문과 김 전총장에게 대신해줄 것을 지시하고는 강판식장에 불참. 약 2분간에 걸친 행사를 마친 뒤 김 전총장은 가라앉은 표정으로 『어떻게 만든 민주당인데 마음이 아프다』면서 당시 청부폭력배들의 창당 방해사건인 「용팔이 사건」등을 잠시 회고. 김 전총장은 그러나 이날 강판이 신여당인 민자당의 현판으로 이어짐을 지적하며 『국가의 경제난국을 수습하고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아픔이 뭔지 헤아려 나갈 것』이라고 다짐. 김 전총장은 강판 행사후 정무회의실에서 사무처 요원을 소집,간단한 고별식을 가진 자리에서 『8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평민당이 당을 깨고 나감으로써민주당이 집권의 꿈을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며 『그러나 김영삼 전총재가 구국의 결단을 내림에 따라 새롭게 탄생한 민주자유당에서 국민의 편에 서서 일하자』고 당부. 이날 구 민주당 간판이 내려졌지만 민자당이 아직 사무처를 구성하지 않고 있어 당사 사무실은 폐쇄되지 않은 채 기존 사무처 요원들이 당분간 계속 출근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얼마나 신당에 소화될지가 불투명한 상태여서 매우 침울한 분위기. 구 민주당은 김동주 전사무차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당직자 및 당무요원 대책위」를 구성,이들 사무처 요원들을 개별 면담한 뒤 ▲민자당 흡수 ▲타직장 취업 알선 ▲지방의회 진출 대기자 등으로 분류할 방침인데 대부분 신당 흡수를 희망해 한차례 진통을 겪을 전망. ○…전 공화당도 이날 상오 9시 서울 마포구 중앙당사 및 전국 각 지구당사에서 일제히 「신민주공화당」 간판을 내리는 강판식을 거행. 서울 도화동 성지빌딩 16층에서 거행된 강판행사에는 이병희 전부총재,최각규 전사무총장,이희일ㆍ조부영의원 등 10여명의 전 공화당직자들과 30여명의 사무처 직원 등이 참석,2년3개월만에 내려지는 당간판을 감회어린 표정으로 지켜보는 모습들. 김종필 전총재는 이날 치통으로 강판식에는 불참. 최각규 전총장은 강판식을 끝낸 뒤 『비록 당간판은 떨어졌지만 공화당의 이름은 역사속에 남을 것』이라고 감회를 피력. 최 전총장은 당사로 사용했던 15ㆍ16ㆍ17층의 처리문제와 관련,『5억5천만원의 전세금으로 임대했던 15ㆍ16층은 이미 전세 계약해제 통고를 했다』며 『당 총재 명의로 구입한 17층은 합당등록후엔 공화당 차원의 처분이 불가능하므로 김 최고위원 개인명의로 소유권을 변경,향후 매각해 부채정리등에 사용키로 했다』고 설명. 전 공화당 사무처 직원들은 신당의 인사발령이 내정조차 확인되지 않고있어 일손이 잡히지 않는 분위기. 사무처 직원들은 그러나 『전 공화당의 사무처 직원 80명중 국회소속 당 전문위원 20명을 제하면 60여명에 대한 처리만 문제가 된다』고 지적하고 『민자당의 사무처 조직 규모로 보아 3백여명 정도의 인원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3당의석비율로 사무처 요원을 충원하더라도 공화계는 모두 흡수될 것으로 낙관. 이와관련 최 전총장은 『신임 민자당사무총장과 전공화당사무총장이 협의해서 처리할 것』이라며 원칙론만 언급하고 3당 사무처 요원 전원에 대해 사표를 받은 뒤 선발적으로 수리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함구.
  • 민주자유당 창당/3당 합당대회

    ◎노대통령ㆍ2김 최고위원 선출/15일 등록… 당3역 내주초 임명/2백16의석 확보,여대야소 체제로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은 9일 상오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합당 수임기구 합동회의를 열어 통합신당으로의 합당을 의결,민주자유당이 정식으로 출범했다. 민자당은 민정 1백27석,민주 54석,공화 35석 등 모두 2백16석의 현역의원을 확보함으로써 개헌선인 2백석을 훨씬 넘는 거대여당이 됐다. 이로써 88년 4ㆍ26총선이후 유지돼 온 여소야대의 4당체제는 민자ㆍ평민의 양당구조로 개편된 셈이다. 합동회의는 당헌과 정강정책을 채택하고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민주,김종필공화총재를 공동대표인 최고위원으로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합동회의는 창당선언문을 통해 『민주ㆍ번영ㆍ통일의 새로운 민족사를 위한 중추적 일꾼이 될 것을 다짐하며 민족ㆍ민주세력을 총집결하여 민주자유당의 깃발을 올린다』고 밝히고 「국민에게 드리는 메시지」를 채택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합당대회에서 박태준민정당대표가 대신 읽은 인사말에서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조건없는 합당과 민주자유당의 창당은 단순한 정당체제의 변모가 아니라 한단계 더 높은 나라의 발전을 위한 우리 정치의 질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이라면서 『민족의 소망을 실현하는 거대한 용광로가 되어 갈등과 반목,아집과 편협,구시대의 모든 낡은 유산을 불살라 국민화합과 나라발전을 창출해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삼최고위원은 『이제 우리는 뜻을 같이하는 정치세력의 대통합을 이룩함으로써 새로운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비하고 민족통일의 그날을 준비할 수 있는 굳건한 기틀을 마련했다』고 전제,『우리는 민주화를 위한 개혁의지를 불태워 신 정치시대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필최고위원은 『우리는 무엇보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고 이에 대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국익증대와 국가발전,국민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자당은 이날 저녁 6시부터 서울 삼성동 종합무역전시관에서 노대통령등 3인 최고위원과 3부요인,정부각료,소속의원,각계대표 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당기념 축하연을 가졌다. 민자당은 오는 15일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합당등록을 하고 16일에는 국회에 단일원내교섭 단체등록을 하며 곧 조직강화특위를 구성,지구당조직책 선정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 민주자유당 출범에 바란다(사설)

    온 국민의 주시속에 드디어 민주자유당이 공식 출범했다. 여당인 민정당과 야당이었던 민주ㆍ공화 등 3당이 9일 합당대회를 갖고 신당을 탄생시킴으로써 정국은 과거 여소야대의 4당체제에서 거대여당과 야당의 양당체제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새 여당은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각오와 자세로 참 정치를 구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선 신당이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는 정치의 안정과 발전이다. 정치의 안정으로 경제와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고 민주화와 개혁정책을 시대상황에 맞춰 본격 추진함으로써 발전을 기하는 것이야 말로 많은 국민이 바라는 점이다.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인 정치구도가 내외의 문제에 대처하고 해결방안을 찾는데 맞지 않다는 민자당의 명분론을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정치의 안정이 다수의석의 확보에만 있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일부 국민들은 오히려 원내의석의 3분의2를 넘는 2백16석의 거대여당의 출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혹시 국민 다수의 의사나 이익에 반해 힘으로 밀어붙이는 횡포는 없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과 정치부패의 가능성에 대한 염려 등이다. 민자당은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는 최선의 노력을 보여야 한다. 민자당이 정치의 안정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많겠지만 우선 다양해지는 사회구조에 맞춰 각계의 이해를 표출시키고 조정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계각층의 이해를 대변할 정치적 창구가 아직 없기 때문에 거대의석을 가진 집권당이 이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진보세력이 의회에 진출하여 이 기능의 일부를 담당할 수 있도록 부축하는 방안을 마련하는데도 인색치 말아야 할 것이다. 당장은 평민당등 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가 중요하다. 여러가지 상황으로 보아 평민당의 투쟁적 자세가 예상되나 힘의 과시보다는 논리와 명분의 과시로,감성보다는 이성으로 대응하는 등 건전한 관계정립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의 민주적 체질을 강화해 나가는 문제이다. 우선 정국운영에 있어 편의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이는 개혁의지가 충만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또 이질적인 3당이 통합하는 데서 나올 불협화음을 최소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집안싸움이 정국의 불안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내계보형성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파벌정치가 보여온 정경유착등 부패요인과 단점을 잘살펴 미리 피해나가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현재 우리나라 정당구조가 갖는 취약점인 하향식체제를 과감히 개선하고 당내 민주화를 활성화시키는 획기적 방안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 이와 함께 정치의 안정과 맞물려 있는 경제ㆍ사회적 안정시책을 강력하게 펴나갈 것을 당부한다. 범죄ㆍ교통ㆍ환경ㆍ주택ㆍ교육 등의 문제들을 과감히 해결해나가고 안정위주의 경제시책을 펴 우선 국민이 안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시대상황에 맞춰 정치의 순기능을 높이고 역기능과 부작용을 줄여 참정치의 틀을 만드는 것이야 말로 정치발전과 직결된다. 민자당의 분발을 바란다.
  • 귀금속상 21곳 고발/공진청,함량미달 불량품 팔아

    공업진흥청은 최근 서울지역 2백41개 귀금속상을 대상으로 금반지에 대한 일제단속을 실시,이중 금의 순도와 함량이 미달되는 불량품을 판매한 21개 귀금속상을 적발해 사직당국에 고발했다. 단속결과 이들 업소가운데 13개 업소가 금의 순도에서,4개 업소는 중량에서 각각 불합격판정을 받았고 순도와 중량이 모두 미달된 업소는 4개 업소였다. 특히 적발업소중 소공동 지하상가에 위치한 「서금당」의 경우 금의 함유량이 11.4%까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고 명동에 있는 「사고파」의 경우 중량이 기준치보다 8.2%나 모자랐다. 고발조치된 업소는 다음과 같다. ▲서금당(중구 소공동 지하상가 14의2호) ▲승보(〃 명동2가 52의13) ▲은하당(〃 명동지하상가 마의13) ▲보광사(성북구 길음동 536의30) ▲동양당(영등포 로터리지하상가 19호) ▲티파니(서초구 반포동 398의2) ▲대성당(영등포구 영등포동 2가330) ▲제일백화점 명보사(중구 명동2가 31의1) ▲금강석(〃 남대문로 3가 30의1호) ▲동신사(중구 소공동 지하상가 86호) ▲금홍당(〃 명동지하상가 라의13) ▲예량(강남구 압구정동 224의11) ▲서광당(성북구 길음1동 541의7) ▲서울양행(성동구 자양동 663의21) ▲보광당(동대문구 청량2동 654) ▲백화점 태양의집 B코너(영등포구 대림동 909의2) ▲성금사(서초구 서초동 1445의15) ▲사고파(중구 명동2가 85의2) ▲금보장(신촌상가 2층 가 12의15) ▲63빌딩 귀금속 1호 삼우사(영등포구 여의도동 68) ▲천광(중구 충무로 1가 50의10 회현지하상가 다열 5호)
  • 27개월 만에 간판내린 공화당/여야 넘나들며 4당정국 “조정역할”

    ◎5공청산엔 강경… 3야 결속의 촉매역/중평반대… 평민ㆍ민주 선명경쟁 무력화/영을 재선거 때 한계 실감… “3당통합 산파” 자청 신민주공화당이 통합신당 창설의 삼각파트너인 민주ㆍ민정 양당에 이어 당의 깃발을 내렸다. 공화당은 5일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통합을 의결한 뒤 당정리를 위한 수임기구로 당무회의를 지정함으로써 사실상 당활동을 마감했다. 이른바 「박정희시대」로 상징되는 구공화당 이념과 유업의 계승자로 자임,지난 87년 10월30일 「재건」된 뒤 2년 3개월만에 스스로 당간판을 내린 것이다. 공화당의 짧은 이력은 80년 신군부세력의 등장 이후 7년 동안 「무위와 침묵을 강요당했던」 JP(김종필총재)의 정치재개와 이후 그의 정치적 입지를 확대해나가는 시기로 압축된다. 87년말 대통령선거와 이듬해 4ㆍ26총선이 구공화당시절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통해 지난날을 재평가받는 무대였다면 4ㆍ26총선 이후 1년 9개월의 기간은 새 정치 틀에 대한 JP구상과 당의 활로를 모색한 시험기였던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JP는 87년 가을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공화당을 창당,곧바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1백80만표를 얻음으로써 그의 정치적 앞날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1노2김」에 비해 득표율에서는 크게 뒤졌지만 구공화당의 전력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민주대 반민주」,「독재대 반독재」의 대결논리가 극에 달했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해볼 때 상당한 선전으로 평가됐다. 공화당은 이어 4ㆍ26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의석확보(20석)가 어려울 것이라는 당시 정가의 예상을 깨고 35석(전국구 7석 포함)을 획득,원내입지를 확고히 마련했다. 4당구조하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정당으로서 「시시비비론」을 내세워 때로는 야권공조의 대열에서 민정당을 견제하는 데 동참하고 때로는 여권과의 정책연합 등을 통해 평민ㆍ민주 양당의 투쟁일변도의 선명경쟁을 무력화시키는 「조정역」을 향유해왔다. 88년말과 89년초 정치권의 태풍의 눈이었던 중간평가를 반대했고 ▲전교조 결성반대 ▲서경원 문익환 입북사건 등 공안사건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 요구 ▲통일문제에 대한 과도한 욕구분출 반대와 정부의 신중자세 촉구 등의 입장을 피력했던 부분들을 여권과 인식을 같이했던 현안들로 당관계자들은 분류하고 있다. 또 정호용의원의 공직사퇴와 두 전직대통령의 국회증언요구등 5공청산 방안제시와,경찰중립화법,국민의료보험법,지방자치법 등 쟁점법안처리를 위한 야3당안 마련 등을 통해 야권의 결속력을 과시했다. 요컨대 민주화 과정에서 정책정당의 위상을 확인하면서 여야간 극한대립을 해소,정국안정에 기여한 점 등이 공화당 족적의 밝은 면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출범 당시부터 야당다운 자세를 포기,민주화작업을 더디게 하는데 「상당몫」을 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여권성향을 가진 구성원들의 속성으로,국가보안법,안기부법 등 주요 정치성 법안처리 등에 항상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민주개혁을 그만큼 지연시켰다는 일부 야권의 비난이 그것이다. 공화당은 특히 지난해 여름 공안정국을 겪으면서 정부여당보다 더 보수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고집,평민당과의 틈새가 회복 불능상태에까지 벌어졌고 영등포을 재선거에서의 참패를 통해 말석정당의 한계를 실감했다. 4당구도의 재편이 이뤄지지 않고는 당의 활로를 모색할 수도 정국안정을 기대할 수도 없다는 판단이 JP의 정계재편 추진작업을 가속화시킨 것으로 추론된다. 결국 JP는 지난해 9월 한달동안의 칩거기간을 거쳐 차기 정국구도에서 우선권을 YS(민주당 김영삼총재)에게 양보하는 방안을 민주당측에 제시,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합당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거대여당에 동승한 공화당이 정치적 안정과 민주화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기여했던 정당으로 기록될지 지역간ㆍ계층간의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킨 부정적 이미지의 정치집단으로 평가될지는 앞으로 신당의 정치역량과 밀접한 함수관계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여권인사들과 JP의 구상대로 건전야당이 자리를 잡아 정치적 안정의 틀이 잡힌다면 공화당의 긍정적 역할이 돋보일 것으로 보이지만 정개재편으로 새로운 정치적 격동과 갈등이 심화될 경우 민주화 흐름을 타고 탄생했다가 민주화 완성을 저해시키고 사라진 정당으로 평가절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 「민주구락부」 추진/새 야당결성 앞서 교섭단체 구성 준비

    ◎민주 잔류의원 5명으로 늘어 민주당의 장석화의원은 2일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자유당」(가칭)에 합류치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민주당의 통합신당 불참의원은 이기택ㆍ김정길ㆍ노무현ㆍ김광일의원을 포함,5명으로 늘어났고 아직까지 입장발표를 유보하고 있는 김재광국회부의장,최형우전총무 등 일부의원들도 곧 거취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의원은 2일 『3당통합은 국민을 배신하고 역사를 유린한 파렴치한 작태』라면서 『앞으로 야권통합에 헌신,민주화와 통일을 앞당기고 소외계층의 권익옹호를 위해 일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기택의원은 이날 『정통야당을 바탕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참신한 야당을 만들기 위해 「신야당추진모임」을 결성했다』고 밝히고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양당체제』라고 말해 평민당 김대중총재의 2선후퇴를 전제로한 평민당과의 통합을 시사했다. 또 야권통합을 주도했던 한 중진의원은 『입장표명을 유보했던 많은 의원들이 2∼3일후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면서 『다음주초부터 교섭단체인 「민주구락부」(가칭) 결성을 위해 서명작업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 공화당 해체와 김 총재의 새 역할(“대통합” 신당정국:8)

    ◎“당분간 조연”…과도기 융화 주력할 듯/이질적인 민정ㆍ민주사이 교량역 자임/수적 열세에 중간보스 없어 고전 예상 공화당은 통합신당 창설에 함께 참여하는 민정ㆍ민주 양당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 속에 민주자유당(가칭) 창당작업에 전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통합신당에 반발,이탈움직임을 보이거나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반JP(김종필총재) 기류는 거의 감지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몇몇 소장파 원외지구당위원장들이 이미 신당참여 거부의사를 밝힌 바 있지만 그들의 정치적 비중등을 고려할 때 개의치 않아도 된다는 것이 JP 측근들의 생각인 것 같다. 지난해 가을 공안정국등을 거치면서 소장파의원등으로부터 간헐적으로 터져나왔던 당 지도부에 대한 성토와 같은 불협화음도 비치지 않는 가히 일사불란한 체제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요당직자 및 소속의원 등 당의 상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기득권 그룹은 이번 정계개편이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위상을 격상시켜 주었다는 만족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4당구조 아래에서 말석정당의 구성원으로서의 불안한 「신분」에서 벗어나 일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데 대한 안도의 빛이 역력하다. 최근 JP의 밝은 표정에서도 이같이 고무된 당 주변의 분위기를 쉽게 읽을 수 있다. 당소속 15인 통합추진위 관계자 및 주요당직자들로부터 신당창설 추진과 공화당 정리작업등에 대한 보고만 받고 대부분의 시간을 바둑등으로 소일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정계개편의 산파역을 자임하면서 범여ㆍ구 야권인사 등과의 교제범위등을 넓혀왔던 지난 몇개월 동안 JP의 행보와 견주어 측근들은 반칩거상태라고 비유한다. JP는 신당창설 이후 자신의 역할과 신당운영 등과 관련한 위상정립문제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유보하고 있다. 다만 『또다시 뒤로 들어가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조용히 하겠다』는 표현으로 당분간 「조연역」을 계속 맡을 것을 확인하고 있다. 자신의 몫으로 배분된 최고위원으로서의 입지강화 보다는 신당의 뿌리가 내릴 때까지 이질적인 민정ㆍ민주 양당을 막후에서 접목시키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있은 3당 총재의 합당선언 후 JP가 신당의 지도체제와 관련,노태우대통령이 당총재를 맡고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이 당무를 사실상 관장하는 총재­대표 단일라인을 강조한 것도 자신은 막후조정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JP가 신당운영 과정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 않겠다는 발언속에서는 한시적인 시간설정이 함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즉 정계개편을 내각책임제를 전제로 추진한 그로서는 내각제 개헌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로 시한을 설정,막후에서 당내 지지세력을 확장하면서 장기구도에 대비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계개편 추진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이 충분히 이뤄졌고 집안단속이 잘돼있는 상황에서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큰 과도기에 전면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판단인 듯하다. 13대국회내에 내각제 개헌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만큼 14대국회 들어서는 내각수반등 당과 정부의 최전위 일선에 접근할수 있는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JP가 신당에서 자신이 구상중인 장기구도에 따른 목표점에 도달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분석이 적지않다. 우선 현실적으로 세집이 합가하면서 JP가 데리고 가는 식솔들이 상대적으로 초라한 것을 꼽고 있다. 소속의원 35명(전국구 7명 포함)이라는 숫적 열세 뿐만 아니라 향후 신당의 지구당조직책 선정과정에서도 「공화당 몫」으로 내세울 만한 비중있는 인물이 드문 상황이다. 또 3,4공화국시절 잔뼈가 굵은 테크노크랫 군출신등으로 JP가에 들어온 장년층과 13대총선 직전 공화당에 입당,원내에 진출한 소장파의원들 사이에는 의식구조와 성향등에서 상당한 간격을 노출해 왔기 때문에 이를 이원화된 집단간의 융화 역시 쉽지 않을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신당이 계보관리체제로 들어갈 경우 JP가의 이원화된 소속의원들을 연결할 중간보스가 없는 약점등으로 계보간 이합집산 과정에서 JP가 불리할 것으로 점치는 분석등이 흥미롭게 제기되고 있다. JP계에서 노리는 민정당내의구 공화당출신 및 충청권 인사의 흡수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의 목소리 역시 간과할 수 없다. 6공 말기에 민정당내 신 TK그룹이나 SK그룹등이 실세로 부상,세대교체론을 내세울 경우 구 공화당 출신의 원로그룹의 입지는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민정당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또 당외요인으로 야권이나 재야세력 등이 제기하고 있는 인위적 정계개편의 당위성 및 도덕성 시비를 적절히 방어ㆍ극복해야 하는 어려움도 갖고 있다. 보수연합을 반대하는 그룹들이 또다시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구도로 신당 출연을 몰아붙일 때 정계개편의 분화구인 JP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측이 가장 먼저 포화를 받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정계개편의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게 하고 신당의 민주발전 의지를 구체화할 수 있는 조연역할을 어느정도 무리없이 해나가느냐가 결국 JP의 입지를 확장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 “정중동”의 민주 잔류파ㆍ평민 통합파

    ◎야권재편 「접점찾기」 탐색전/신당참여 유보한 중진의원 세 규합 기대 잔류파/김 총재 「거취」 얽혀 우선 재야 영입에 전력 통합파/교섭단체 구성 여부가 향후진로 좌우할 듯 민주당 김영삼총재는 31일 야당총재로서의 마지막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으로 변신하는 데 대한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 자리에는 30여명의 의원을 포함,당직자와 원외지구당위원장등 60여명이 배석해 김총재와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하는 데 대한 나름대로의 의지를 과시했다. 그러나 김총재 자신을 포함한 이날 회견참석자들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는 못했다. 하루전인 30일 행동을 같이 하기로 약속했던 이기택 총무와 김현규부총재가 돌연 신당불참을 선언했고 이에 따라 그동안 당지도부의 집요한 설득으로 김총재 노선을 따르기로 했던 일부 중진 및 소장파의원들이 다시 동요하는 것이 주된 이유중의 하나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탈 방지대책 부심 아마 신당창당 전까지는 김총재는 야당의 구각을 벗기 위한 한차례의 홍역을 더 치러야 할 것 같으며 경우에 따라 거대여당의 상대편에 설 야권의 전열정비작업은 새 국면을 맞을 조짐이다. ○…민주당내 동요의 새로운 기폭제가 된 사건은 이기택총무와 김현규부총재의 신당불참선언. 야권내에서 차기세대 리더를 거론할 때마다 앞줄에 꼽혀왔던 이총무와 합리적 분석력과 온건한 이미지로 평가를 받아온 김부총재가 김총재와의 결별을 선언함으로써 민주당은 지난 88년 5월 전당대회에서 경선으로 선출된 5명의 부총재중 이미 잔류를 선언한 김상현부총재를 포함,3명을 야당에 남겨두고 민주자유당(가칭)에 합류케 된 셈이다. 이같은 현상은 일단 대세를 따르고는 있으나 심정적 갈등을 겪고 있던 많은 의원들을 흔들리게 하고 있는데 우선 당의 원로격인 김재광국회부의장이 신당합류 여부에 관한 주변의 의견수렴 끝에 불참쪽으로 기울고 있다. 김부의장의 측근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참신한 야당이 결성될 수 있다면 김부의장은 그쪽을 택할 것』이라고 설명,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김재광 의원도 흔들 또 김총재에게 민주ㆍ공화 합당은 따를 수 있으나 민정당과는 곤란하다는 의견을 밝혔던 박종률 의원도 김부의장과 행동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는 후문. 70년대 중반 구 신민당 집단체제시절 이총무와 같은 신우회 계보를 했던 신상우의원은 이총무가 불참선언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함께 깊은 의견교환을 했는데 역시 거취문제를 놓고 망설이고 있으며 야권통합을 적극 추진하다 3당통합을 선언한 22일의 청와대회담 후 유보적 입장으로 선회했던 최형우의원은 민주당 잔류파들에게 30일 『신당에 가지 않고 본격적인 야권복원운동을 벌이겠다』고 부산에서 전화를 했다는 것. ○…평민­민주 양당 중심의 야권통합을 주장해온 소장파의원들도 김정길ㆍ노무현 두 의원을 제외하고는 김총재측의 집요한 설득에 굴복했었으나 최근 다시 흔들린다는 것이 잔류파들의 주장인데 장석화ㆍ유승규ㆍ정정훈의원을 상대로 김총재측과 잔류파가 각각 끈질긴 설득공세를 벌이고 있다는 전문. 또 『명분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총재에게 약속을 해버려 어쩔 수 없다』는 해명을 해온 김광일의원이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신당합류를 밝히는 유인물을 배포하다 중도에 급히 회수하기도 했다고. 김총재의 노선에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았던 김동주의원도 최근 『지금까지는 총재가 하자는 대로 모든 일을 도왔으나 이제는 작게는 개인의 입지,크게는 국민여론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유보적 입장임을 분명히 한 뒤 잔류파와 접촉중인데 일부에서는 민정당 박태준대표와 지역구가 겹치는 것과 함수관계가 있지 않나 하고들 분석. ○…현단계에서 잔류파들이 가장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대목은 교섭단체 구성의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데 있는 듯한 느낌. ○이중재씨등 거론 이들은 지금까지 거명된 의원들이 일단 신당불참쪽으로 결정하면 문준식ㆍ최이호ㆍ김운환의원 등 전국구의원들도 가세하고 평민당의 조윤형ㆍ정대철ㆍ김종완ㆍ박실의원 등이 범야신당 구성의 전단계로 평민당을 나와 무소속의 박찬종ㆍ이철의원들과 함께 비호남 신야당에 참여,20명 이상의 원내의석을 확보할 것이라고 기대섞인 주장. 이들은 자신들의 희망대로 상황이 진전되면 민정당의원 및 공화당의원과 지역구가 겹치게되는 절대다수의 원외위원장들이 김총재로부터 떨어져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대도시출신 및 젊은층을 지지기반으로 갖고 있는 의원들이 뒤따라 움직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강조. ○…평민당은 「범민주세력」의 규합차원에서 민주당 잔류세력들을 흡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이들이 막상 평민당쪽으로 쏠릴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상태. 특히 민주당 잔류파들이 김대중총재의 2선후퇴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데 대해서는 『현시점에서 유연성을 보였다가는 오히려 야권의 더 큰 분열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야권통합파를 포함한 절대다수 의원들이 김총재의 2선후퇴 반대에는 일치된 의견. 이에 따라 평민당은 민주당 잔류파들보다는 재야원로ㆍ중진 정치인 및 지난 대통령선거와 총선과정에서 김대중총재를 지지했던 법조계ㆍ학계ㆍ종교계 인사들에게 더욱 눈독을 들이고 있는 눈치. 현재 거론되고 있는 재야정치인들은 이중재 예춘호 양순직씨 외에 이민우 전 신민당총재도 포함돼 있으며 학계로는 이문영 장을병교수 등.그러나 조윤형부총재와 정대철의원 및 이상수ㆍ이해찬의원 등 야권통합파의원들은 당의 외부인사 영입움직임과는 궤를 달리해 민주당의 잔류세력들과 잦은 접촉을 가지며 야권통합방안 등에 대해 논의. 이들 가운데 조부총재는 민주당 잔류의원들과 무소속의원들을 합쳐 별도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하다면 탈당까지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적극적인 자세. ○조윤형 의원 적극적 이에 비해 정대철 의원은 『별도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야권분열의 인상을 줄 것이 확실한 만큼 바람직한 대안은 아니다』라고 탈당가능성을 배제하고 『현시점에서 야권통합은 먼저 민주당 잔류파인사들의 폭을 넓히는 일이 급선무』라고만 강조. 이상수ㆍ이해찬의원도 민주당 잔류세력과 재야가 각각 분명한 세력을 형성한 뒤 평민당과 합치는 것이 이상적인 야권통합방안이라는 시각에서 민주당 잔류파들과 별도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데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 이상수의원은 『평민당은 물론 민주당 잔류세력과 재야세력이 앞으로 거대여당에 맞서 독자적인 활동을 벌일경우 한계를 느낄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자연스런 통합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
  • 민주「해체이후」 김영삼씨의 정치적 장래(“대통합” 신당정국:7)

    ◎정국안정 YS 기여도가 판가름/“정계개편 이어 여개혁 주도” 자신감/“변절”로 보는 부정시각도 적지않아 민주당 김영삼총재의 3당합당 참여가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인가. 민주투사로서의 30년 야당활동을 정리하고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가칭)에 민정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김종필 공화당총재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음으로써 여당으로 변신한 김영삼총재의 정치적 장래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자유당이 국민속에 뿌리를 내리고 표방한대로 정국및 사회안정,경제발전에 기여하게 되면 김총재의 변신은 그의 말처럼 구국적 결단이었음이 증명되고 김총재 자신은 제2의 정치 황금기를 맞게될 것이며 반대의 경우 그의 합당 결심은 제2야당의 궁지 모면에 급급한 나머지 자충수를 놓은 결과가 되어 정치 생명도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김총재는 민주자유당을 주도하게 돼 있다고 측근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김총재는 민주자유당을 끌고 나가며 구법개폐,민주복지 정책의 구현 등을 통해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5공청산및 민주화 완결을 해냄으로써 집권세력의 도덕적 재탄생을 이룩하겠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김총재는 3당통합을 통한 민주자유당의 출범이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현정치에 대한 위기의식이나 불만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주도한 정계개편이 국민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는 것 같다. 이같은 김총재의 구상은 일단 노대통령과 김종필총재의 적극 지원 아래 당분간 순조로운 행진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민정당으로서는 3당통합이 5공의 승계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탈색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마땅한 차기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한 차선책이 마련되는 만큼 김영삼총재를 어느 정도 부각시키는 것을 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김종필총재는 민주당 세력이 제대로 입지 마련도 못하고 민정당 세력에 흡수돼 버릴 경우 공화당도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김영삼총재를 도울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김영삼총재가 자신의 뜻을 펼쳐볼 수 있는 환경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정치의 지역화ㆍ정당의 사당화 현상을 타파하고 건전한 보혁구도를 정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폭넓게 형성돼 있다는 점도 김총재의 이번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끔 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김총재의 변신을 변절로 보고 그의 민주자유당 내에서의 위상 설정가능성 또한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은 긍정적으로 보는 눈들 못지않게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같은 부정적 시각은 전격 여야합당이라는 충격에서 깨어나면서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같은 흐름은 크게 보아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이미 김총재 스스로가 집권세력의 도덕적 재탄생을 주도할 만한 도덕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은 현시점이 민주화가 완결되지 않은 시점인 만큼 『군사독재 세력의 연장 선상에 있는 현 정권과 유신세력인 공화당 및 민주당의 합작은 야합이며 밀실에서 추진해 온 합당 절차는 민주주의적 과정을 밟지 않음으로써 출발부터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김총재가 보여준 부도덕의 단적인 예로 반대 토론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날치기 통과로 40년 전통야당의 간판을 떼낸 30일의 전당대회를 들고 있다. 둘째는 김총재가 자신의 구상을 펴나가기 엔 민주자유당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자유당의 창당 작업이 마무리 된 후부터는 각파벌의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전개될 것이 분명하고 김총재 역시 이 싸움에 휘말려 발전적 정국운영을 할 여력이 없게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김총재가 자신이 구상하는 제반 민주개혁 조치들을 민주자유당의 당론으로 하려고 할때 노선의 유사성을 갖고 있는 민정ㆍ공화당 세력이 반대,김총재와 민주당세력이 소수 의견으로 몰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부인키 어렵다. 이와함께 30일 이기택총무겸 부총재와 김현규부총재가 신당 불참을 선언,김상현부총재 김정길ㆍ노무현의원 및 20∼30여명의 원외지구당위원장들과 함께 민주당 잔류 세력으로 남은 사실은 민주자유당 내에서의 파워게임을 앞에 둔 김총재에게 부산ㆍ경남 지역의 대표성을손상시키는 등 상당한 타격을 입힌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앞으로 더 많은 이탈자가 나올 조짐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셋째는 민주자유당의 내부 정리가 김총재 뜻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정국 흐름이 민주자유당의 바람대로 진행될지가 의문이라는 점이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라이벌관계에 있던 평민당 김대중총재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함으로써 양당제하의 의회운영에서 야당인 평민당의 협조를 받을 가망은 거의 없게 됐으며 이는 법안의 강행통과,야당의 실력저지등 13대 국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구태를 재등장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호남을 고립화 시킴으로써 지역 갈등의 골을 깊게할 것이라는 우려는 광주 등지의 격렬한 규탄시위 등에서 벌써부터 현실화하고 있는 느낌이며 정국을 민주 대 반민주 대결구도로 파악하고 있는 재야세력과 학생들의 강력한 저항은 신당이 내세우는 정국안정과 정치발전을 공염불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같은 부정적 측면들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김총재는 노대통령이나 김종필총재에 비해 훨씬 심한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며 이는 김총재에 대한 퇴진 압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게 지배적 관측이다. 결국 김영삼총재가 던진 승부수의 성패는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얼마나 얻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으며 이는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의 국정운영 여하에 따라 그 향방이 결정되고 6월로 예정된 지자제선거를 통해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김교준기자〉
  • 김동영 민주 대표간사(15인 통합추진위 3당 대표간사는 말한다)

    ◎당리당략엔 절대 연연 않겠다 『구국적 차원에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정치를 해나가자고 3당의 지도자들이 결단을 내린 만큼 당리당략을 떠나 민주자유당의 창당작업에 임하겠습니다』 24일 민주자유당(가칭)의 15인 통합추진위 민주당측 대표간사를 맡게 된 김동영사무총장은 신당 출범후의 권력승계및 지도체제 문제를 놓고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간에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 신경 쓰이는 듯 『창당 때까지 나름대로의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국민이 이해해야 할 것』이라며 단합을 내세웠다. ­신당창당 과정에서 민주당 나름대로 반영시키고 싶은 의견이 많을텐데. 『그동안 추진해 온 민주화를 완성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정비해야 될 각종 법률을 하나하나 고쳐나갈 것이다. 그러나 대원칙은 3당이 같은 배를 타게된 만큼 대국적 방향에서 협조해 나간다는 점이다』 ­김영삼총재로부터 신당의 권력구조 문제등에 대한 지침을 받았나. 『아직 아무 것도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정치ㆍ경제ㆍ사회 각 분야의 어려운 문제해결이우선이며 군력구조 문제등은 정국이 안정된 다음에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신당의 운영은 13대 국회가 끝날 무렵까지 모든 사안을 협의해 결정하는 체제로 운영되다가 총선을 앞두고 차기정권에 대비하는 문제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측 대표간사는 민정ㆍ공화 양당의 대표간사와 함께 15인위를 공동운영해 나갈 것으로 알려졌는데 운영방침은. 『전원합의체인 만큼 안건을 만장일치로 처리하려면 충분한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 「거대여당」 반작용… 새 야당 추진/통합반발 세력의 움직임

    ◎비호남 보수신당 구상 민주잔류파/“평민해체후 범야결집” 평민통합파/고흥문씨등 구야인사 거취도 관심 「민주자유당」(가칭)의 창당작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그동안 전통야당임을 자임해온 민주당을 중심으로 신당창당 대열에서 이탈하는 일부 인사들의 움직임도 점차 표면화 되고 있다. 이들은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의 출현으로 호남과 서울을 제외한 영남ㆍ충청ㆍ경기ㆍ강원 등의 지역에 야당의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을 지적하며 「비호남권에서의 민주야당 복원」을 기치로 내걸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또 나름대로 합당후의 위상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민정ㆍ공화 양당내의 일부 원외지구당위원장들도 반발하며 신당에서의 확실한 지위보장을 요구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처리문제도 하나의 관심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민주당에서 신당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식입장 표명을 한 의원및 원외지구당위원장은 24일 현재 김정길(부산 경도),노무현(부산 동),유승규(강원 태백)의원과 김상현부총재,김재천 경남진양지구당위원장등 5명. 이들중 김ㆍ노ㆍ유의원 등 3명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김영삼총재는 여당의 부속품으로 변절했다』면서 『양심적 민주야당을 복원시키겠다』고 선언. 이들 의원들은 우선 민주당을 지키는 법적투쟁을 한 뒤 김총재 측에서 합법적 절차를 밟아 합당을 성사시킬 경우에는 비호남권의 범야세력을 결집한 신 보수야당을 창당할 계획. 이들은 무소속의 박찬종ㆍ이철의원,조순형ㆍ홍사덕ㆍ장기욱 전의원 등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야권후보 단일화운동을 벌였던 그룹과도 제휴하여 세를 확장한 다음 이번 정계개편으로 「야당표는 있지만 야당의석이 없어진」 지역을 집중 공략할 경우 평민당에 버금가는 비호남 야당 복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 미리부터 야권통합을 주장해 왔던 이들은 이번 합당으로 김총재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보고 김총재의 몰락은 김대중평민ㆍ김종필공화당총재등 3김 퇴진을 통한 세대교체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장담. 그동안 민주당 부대변인직을 맡아온 김재천 경남진양지구당위원장은 이날 『신당 창당의 야합논리는 매국노들의한일합당,유신독재의 궤변과 맥이 통하고 있다』며 민주당 수호선언을 한 뒤 부대변인직을 사퇴했는데 이신범 서울용산지구당위원장과 김종배 서울구로을지구당위원장도 거취문제를 놓고 고민중이라고. 한편 김총재의 노선에 따를 수 없다고 여러차례에 걸쳐 입장을 표명해온 최형우ㆍ장석화의원에 대해서는 김총재측에서 집요한 설득작업을 벌이는 중인데 이들이 잔류를 선언할 가능성은 50%정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 분석. ○…신 야당 결성 추진움직임과 관련해 새롭게 시선을 모으는 정치세력은 『평민당 간판을 내리고 「민주자유당」 이탈인사와 무소속 재야를 포용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는 조윤형ㆍ정대철ㆍ박실ㆍ이상수ㆍ이해찬ㆍ양성우ㆍ이철용ㆍ김종원의원 등 평민당내의 야권통합파들. 이들 평민당내 야권통합파들의 범야 신당 창당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으나 전제조건인 김대중총재의 2선 후퇴가 이뤄질 가능성이 없어 그 실현 가망은 크게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 또 구야권 중진인사들의 정치일선 복귀문제도 신야당 결성 추진움직임과 관련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는데 이철승ㆍ이민우ㆍ고흥문ㆍ유치송ㆍ이만섭ㆍ고재청ㆍ조연하ㆍ이중재씨 등은 지난해 12월11일에 이어 지난 23일 또 한차례 모임을 가져 눈길. 이들 구야권중진들은 대부분 기회만 마련되면 정치일선에 복귀할 의사를 직간접으로 피력해 왔는데 23일 회동에서는 민주당이 여당으로 변신한데 대한 비난이 주된 화제였다고. ○…민정ㆍ공화당의 경우 신당참여에 대한 이념적 갈등은 보이지 않고 있으나 원외지구당들 사이에는 현역우선의 원칙에 의해 지구당위원장 자리를 내줘야 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팽배. 이들은 자신들이 지위보장을 요구할만한 명분이 마땅치 않은데다 불참할 경우의 대안이 없어 일단 대세를 따르고는 있으나 신당창당을 위한 지구당 결성과정에서 소외되는 원외위원장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설 것이 분명하며 이 와중에서 일부 이탈자가 나올 전망. 이같은 사정은 민주당의 원외지구당위원장들도 마찬가지여서 「민주자유당」의 지구당 결성이 완료되는 시점에서 이탈자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며 이탈자들은 신당 탈당후 이 신당과 보조를 맞춰가며 구성될 비호남 신야당ㆍ평민당 등에 분산 수용될 가능성이 유력. 이처럼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내에서 신당 창당에 불참하는 인사들은 현재로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당분간 더 늘어나지도 않을 전망. 그러나 「민주자유당」이 참여인사들의 욕구를 다 충족시켜 줄 수 없고 호남ㆍ서울을 제외한 야당 공동화지역에 야당 지지성향표가 있는 것이 확실하며 곧 지자제선거가 실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민당과 는 전혀 다른 신야당이 탄생할 주변환경은 충분히 성숙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 극한 투쟁은 안된다(사설)

    통합신당인 가칭 민주자유당의 출현에 대한 반작용으로 평민당이 1천만 서명운동등 장외투쟁을 결의하고 재야와 학원 일부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많은 국민들은 이것이 극한투쟁양상으로 변모하지 않을까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아울러 정계의 지반변동으로 인한 이같은 구조재편에 하루빨리 슬기롭게 적응해 정치의 안정과 새 풍토를 이루기를 국민들은 또한 희망하고 있다. 이는 내외의 격변하는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고 극한투쟁과 당쟁을 일삼는 과거의 정치에 대한 반성속에 새 정치질서를 이룩해나가야 된다는 일종의 당부이기도 하다. 이제는 민자당과 평민당의 양당체제가 불가피해진 상황이므로 양쪽 모두 새 체제에서의 위상과 역할을 똑바로 인식하고 상호 순리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새로운 질서와 안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민자당 쪽은 모든 수단을 다해 이같은 극한투쟁을 막아야 한다. 많은 국민들이 중도보수세력의 통합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정치의 안정과 발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여소야대의 4당구조가 지역성과 특정지도자에 대한 편중성에서 이루어졌고 그 결과 지극히 무능하고 비효율적이었다는 점에서 새 체제에 그런 문제들을 해소해 달라고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새 구도에서조차 정치불안이 계속된다면 국민은 크게 실망할 것이다. 따라서 신당은 통합으로 이룩한 확고한 원내 안정세력을 기반으로 민주화와 개혁조치를 솔선해서 실천해나가야 할 것이다. 또 당면한 경제와 민생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해나가야 한다. 3분의2가 넘는 의석에 대해 뭔가 개운치 않은 인상을 가진 국민에게 믿음을 주려면 이런 일들이 필요하다. 아울러 부패의 소지를 줄이는 자정의 노력을 배가하고 감투나 지분싸움을 극소화시키는 것도 국민의 신임을 키우는 방법이다. 법과 질서의 유지 역시 중요하다. 민주화라는 이름아래 자행되는 일부 극단세력의 비민주적 행태를 이제는 더이상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에는 더 큰 금도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평민당이 신당에 보이고 있는 대응이 매우 감정적인데 대해 크게 우려하지않을 수 없다. 평민당은 이런 상황을 자초한 책임이 있다. 지난 2년간 국민을 불안케한 의정의 무능과 정쟁,지역분파성 등에 대해 평민당의 책임이 적지않다. 따라서 평민당은 이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하여 새롭게 위상을 정립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정국을 주도하던 입장을 더이상 지키기 어렵다고 감정적 대응으로 일관하거나 극한투쟁을 통해 정국을 경색시키고 혼란과 불안을 부채질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하다. 상대방을 극한적으로 몰아 붙여서 반사이익을 얻는 방법은 이제 약효가 적을 뿐만 아니라 국민정당으로 뿌리내리는 데에도 저해요인이 될 것이다. 그만큼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이번을 유일야당으로서 굳건히 자리잡을 수 있는 호기로 보고 비판세력을 영입,지역당 이미지를 줄이는 등 당력을 보강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들은 거대 신당을 견제할 건전한 야당을 원하면서도 소수의 횡포는 외면할 것이다.
  • 난상토론 3시간… 의총 지상중계

    ◎“보혁함정 경계”… 평민 야권 통합 양론/“당기득권 양보 각오 필요” 소장파/“우리당이 구심점이어야” 중진들 평민당은 23일 상오 국회의원회관에서 당무지도 합동회의겸 의원총회를 열어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통합선언에 따른 대응방안과 당의 진로를 놓고 3시간 넘게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합당을 선언한 3당을 성토하고 당의 결속을 다지는 발언이 주조를 이뤘으나 일부 소장파의원들은 「범민주세력」 통합을 위해서는 당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회의의 발언요지는. ▲김대중총재=모든 의원이 총사퇴하고 총선을 통해 정계개편과 내각제가 옳은지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총선에서 우리당은 부통령제와 2차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대통령제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 그러나 다른 3당이 반대한다면 우리당만 사퇴할 필요는 없다. 2월 임시국회후 1천만 서명운동등 범국민운동을 통해 현정권을 굴복시켜야 할 것이다. ▲김원기총무=공안정국때부터 민주ㆍ공화 양당이 민정당에 추파를 던지면서 평민당을 고립시키려는 정보가 있었는데 현실로 나타났다. 국민의 이해나 성원없이 야합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자. ○3인4각의 출발 ▲이찬구의원=보수대연합은 작은 여당이라는 민정당의 콤플렉스와 제2ㆍ3야당이 야합해서 만들어낸 3인4각으로 출발부터 삐걱거릴 것이다. 평민당이 급진ㆍ좌경이라는 오해를 받을 언사나 행동을 할 경우 거대여당에 보혁구도의 구실을 준다는 것을 명심하자. ▲양성우의원=김영삼총재의 변신에는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는 심정이다. 평민당을 중심으로 범민주세력연합의 길이 무엇인지 모색해야 한다. 민주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당풍을 조성해 정치력의 확대재생산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채영석의원=김대중총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 일각에서 야권통합을 주장하며 김대중총재를 2선으로 후퇴시키려는 공작이 있는지를 경계해야 한다. 배밭에서 갓끈을 고쳐 매 오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자. ○사기극으로 판명 ▲이상수의원=평민당을 지역당화시키려는 기도나 반민주세력의 장기집권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당중진들은 단결해야 한다. 그러나 평민당을 중심으로만 범민주세력을 뭉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당의 기득권을 양보해서 신당을 만들 수도 있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박병일인권위원장=3당의 야합을 보면서 6ㆍ29선언이 사기극이라는 것을 국민이 알게 됐다.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국회의원이나 정당이 하루아침에 변절함으로써 주권을 강탈당했다. ▲이협의원=범민주세력의 통합을 주장하다가 자칫 보수대연합구도가 노리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된다. 범민주통합대책위가 이미 우리당에 설치돼 있는 만큼 이를통해 질서있는 야권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당은 공중분해될 것이고 민주세력 결집마저 좌절될 것이다. ○배신자가 사퇴를 ▲최영근부총재=어제 총재단 결의사항을 추인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구체적인 대응방안은 당내 통합대책위에서 논의하도록 하자. ▲한영수당무위원=평민당의원만이 사퇴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의원직 사퇴는 국민주권에 대한 배신행위를 한사람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범민주세력의 단합을 위해서는 구심점이 있어야 하며 그 구심점은 평민당이 돼야 한다.〈구본영기자〉
  • 일본열도에 「2ㆍ18총선」열풍/중의원선거 “초읽기”… 정가의 표정

    ◎과반수확보 겨냥,총력전 돌입 자민/정권교체 노려 연합전략 모색 야당 2월18일 총선거 실시를 위해 일본 중의원이 24일 해산됨에 따라 일본열도는 앞으로 25일동안 선거열풍에 휩싸이게 됐다. 39회째를 맞는 이번 총선거를 위해 여ㆍ야당은 이미 최종적인 후보공천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당수ㆍ간부들의 지원유세일정을 확정,중점선거구에 투입할 것등 선거전략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는 2월3일 공고,18일 투표를 앞두고 벌써부터 선거포스터가 거리에 나붙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를 위해 야당측은 대부분 후보공천작업을 끝낸 상태인데 반해 집권 자민당은 중의원해산 이후로 미루고 있다. 현재 자민당 공천신청자는 3백50여명에 달한다. 자민당으로서는 오는 25일 이 가운데서 현직의원을 중심으로 1차 후보자를 결정하며 최종적으로는 3백20명 정도의 후보자를 내세울 방침이다. 당내에서는 선거후 보수계 무소속 당선자의 추가공인까지 합쳐 중의원의석 5백12석의 과반수인 2백57석을 승패라인으로 보고 이의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야당들은 소비세 폐지 및 리크루트사건을 유발한 금권정치타파,정치개혁을 선거쟁점으로 삼아 자민당의 과반수 획득저지를 「공통의 목표」로 삼고 있다. 사회ㆍ공명ㆍ민사ㆍ사민련 4당은 해산후 빠른 시기에 당수회의를 개최,소비세폐지로 야당측의 결속을 확인하는 한편 연합정권수립을 위한 정지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20일 현재각당의 후보자수는 사회당 공인 1백48명ㆍ추천 10명을 비롯,공명당 공인 58명ㆍ추천 1명,민사당 공인 44명ㆍ추천 3명,공산당 공인 1백31명,사민련 공인6명이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간의 선거협력을 위해 공명ㆍ민사 양당은 17개 선거구에서 바터방식으로 협력할 것에 합의했으나 사회당과 공명ㆍ민사당과의 협력문제는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번 국회해산ㆍ총선거라는 가장 중요한 정치일정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주목되는 점은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가 거의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회해산권은 총리 고유의 대권임에도 가이후 총리의 의사는 반영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가이후 이후를 겨냥하고 있는 자민당실력자의 영향력행사가 돋보였다는 사실을 일본정계에서는 주목하고 있다. 가이후 총리는 국회해산을 자신의 시정방침연설 및 각당대표질문 이후에 단행할 심산이었다. 일정상 이 2가지가 여의치 않다면 적어도 자신의 시정방침연설만은 끝내놓고 국회를 해산시킬 생각이었으나 이것이 통하지 않았다. 유럽 8개국 순방을 끝내고 지난 18일 귀국한 가이후 총리는 19일의 자민당 전국간사장회의등 기회있을 때마다 자신의 유럽방문 성과를 선전했다. 『유럽각국을 방문,세계 신질서조성에 일본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각국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감개무량한 여행이었다』『베를린에서의 연설은 일본의 전략적 외교의 시초라고 평가받았다』는 등 자찬을 거듭했다. 지난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의 자민당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우노(우야)내각의 바통을 이어받은 가이후내각은 일종의 「위기관리」의 산물이었다. 가이후정권 수립에 중심 인물이었던 다케시타(죽하)파회장 가네마루 신(김환신)전 부총리등은 「실적은 없더라도 청신한 맛이 있고 콘트롤이 쉬운」가이후를 총선을 위한 「간판」으로서 총리자리에 앉혔다. 가이후 총리로서는 90년도 예산편성의 내용 및 유럽방문의 성과를 시정방침연설을 통해 최대한 선전함으로써 국민들에게 「가이후 컬러」를 각인하고 선거전에 임한다는 의미에서 「시정방침연설후 국회해산」에 집착했었다. 그러나 당내 수뇌들은 각당 대표질문의 기회를 줌으로써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야당의 자민당비판을 듣게한다며 가이후 총리의 안이한 인식에 차가운 눈길을 보냈었다. 따라서 이번 24일 해산결정은 가이후 총리의 「강한 저항」을 무시하고 여ㆍ야간의 절충끝에 내려진 「대화해산」에 가까운 성격을 갖는다. 이런 사태로 가이후 총리의 위신은 크게 추락했으며 당내 구심력마저 약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정세라고 정계에서는 보고 있다. 여기에 가이후 총리의 유럽순방 기간중 때맞춰 모스크바를 방문,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으로부터 『북방영토 반환주장은 일본의 고유한 권리』라는 답변을 얻어 내는등 큰 외교적 성과를 올린 아베신타로(안배진태랑)전 자민당간사장등이 『입후보예정자들은 벌써 뛰고 있다. 해산은 빠른쪽이 좋다. 연설로 표가 늘지는 않는다』며 몰아붙이는 바람에 가이후 총리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이렇게 볼때 이번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수를 확보하더라도 가이후정권이 안정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는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총선을 앞둔 일본정계의 시각이다.
  • 여야 3당,「신당선언」이 나오기까지

    ◎청와대 결단­JP 중재­YS 앞장 “결실”/「12ㆍ13」 청와대회담 때 「합당」 거의 결정/박철언­황병태­김용환 핫라인으로 활약/부작용 우려,조기개편으로 급선회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통합신당 결성은 「정치혁명」으로 불릴 만큼 모두에게 놀라움을 던졌으나 그 시기가 예상보다 빨랐다 뿐이며 이런 기본구도에 대한 노대통령의 결심은 이미 지난해 12월초 유럽순방에서 귀국하면서 섰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노대통령은 당시 귀국 전용기상에서 기자들과 만나 『초연한 입장에서 국정을 운영하고 싶다』는 심정을 밝혔으며 이때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 통합에 의한 안정세력구축의 결단을 내렸으리라는 관측이다. 즉 몇차례의 개별 혹은 영수회담을 통해 민주ㆍ공화당과 이념적 면에서 근접하는 부분이 많았던 반면 일련의 방북사건,5공청산 과정에서의 태도등을 볼 때 평민당과는 상당한 시각차를 느끼게 됐다고 여권 고위관계자들은 말한다. 노대통령의 「결단」 이후 5공청산 막바지협상 과정에서 「대통합→내각제 개헌」이 민정ㆍ민주·공화당간의 막후협상의 주된 의제가 된 것으로 보여진다. 노대통령이 5공청산 이후 전개될 정국구도에 대한 결단에 따라 김종필 공화당총재가 충실한 「중재자」 역할을 했고 김영삼 민주당총재가 앞장서는 형식으로 3당통합의 하모니가 이뤄져 나갔다는 얘기다. ○88년 7월 신호탄 올라 ○…정계개편 구상의 시발을 보다 근원적으로 따진다면 13대 대통령선거부터라고 볼 수 있다. 노대통령은 당시 후보로서 선거전을 치르면서 생사를 건 대결,지역감정의 악화 등을 경험하고 『다음에는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언급을 해왔다. 이에 덧붙여 4ㆍ26 총선결과 여소야대 정국이 탄생하자 국정운영의 불안을 타개한다는 명제가 커져 다각적 방안이 강구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노대통령의 이러한 생각을 감지한 박준병 당시 사무총장은 보수대연합으로의 정계개편 당위성을 조심스레 거론하기 시작했고 88년 7월 윤길중 당시 대표위원이 마닐라에서 내각제 개헌발언을 통해 「노대통령 재임시 정계개편」의 신호탄을 올렸다. 그러나 5공청산ㆍ중간평가실시 등을둘러싼 논란 때문에 정계개편문제는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지난해 3월 중간평가 유보결정이 난 후 5∼6월쯤 노대통령이 측근들에게 개편방안을 적극 검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에는 정계개편을 위한 특별연구팀이 구성되었으며 ▲중평유보에 있어 호의적 태도를 보인 평민당과의 연정▲공화당과의 연정이나 합당 ▲「헤쳐모여」식의 대연합으로 내각제 개헌달성 등 다양한 방안들이 검토대상에 올랐다. ○빈번한 골프회동 주효 ○…이러한 여권의 구상이 여야간 본격절충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10일 노대통령과 공화당 김총재간의 단독회담부터이다. 김총재는 당시 보수대연합을 공식 제안했고 이에 노대통령이 긍정의 뜻을 표함으로써 양당간 연정 또는 합당문제에 대한 절충이 시작됐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이에 대한 결단을 미루는데다 8월말 이종찬 당시 민정당총장이 『공화당과 합치는 것은 도덕성문제를 야기한다』고 반발,양당 통합추진파를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김종필총재는 이후 9월 한달동안 「칩거상태」에 들어갔으며 이때 민주당과의 연합을 먼저 이룩한 뒤 민정당까지를 포함,대연합을 이뤄보자는 구상을 한 듯하다. 김영삼 민주당총재도 이에 호응,양인간 빈번한 골프회동이 이어졌으며 10ㆍ26사태 10주기 때 김영삼총재가 고 박정희대통령 묘소에 조화를 보내 유신을 「사면」하고부터 양당간 밀월관계가 한층 깊어졌다. ○귀국 기상서 결심한 듯 ○…지난해 12월4일 노대통령이 유럽순방 귀국기상에서 대통합에 대한 결단을 내리고 박준규 당시 민정당대표위원이 이를 야당총재에게 통보함으로써 개편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박 당시 대표는 김영삼총재에게 이원조의원 문제에 대한 양보를 요청하면서 그 대가로 보수대연합 혹은 중도통합에 의한 내각제 개헌 가능성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의원 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양보로 12ㆍ15 청와대회담에서 5공청산에 대한 대타협이 이뤄진 후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 실무진간 통합 또는 연정에 대한 절충이 은밀히 시작됐다. 박철언정무1장관ㆍ황병태 민주총재특보ㆍ김용환 공화 정책위의장이 3당총재의 「분신」으로서 「하트라인」을 구성했다. 이들 3인의 개별접촉을 통해 통합신당의 윤곽이 잡혀나갔고 지난 12ㆍ13일 노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총재간의 개별 청와대회담 때 3당 합당이 거의 결정됐다는 것이다. ○반발ㆍ부작용 최소화 ○…여권은 금년들어 홍성철비서실장ㆍ노재봉정치담당특보ㆍ최창윤정무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들과 박철언정무1장관ㆍ박준병사무총장 등이 안가에서 잦은 당정회의를 갖고 개편문제를 논의,특히 박정무장관은 연일 심야작업을 계속해 그의 주도적 역할을 시사했으며 노특보도 김영삼총재를 몇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주요 관심사는 민정ㆍ민주ㆍ공화가 합당하되 민주ㆍ공화가 먼저 한 뒤 민정이 합류할 것인가 아니면 한꺼번에 뭉칠 것인가등 절차와 시기문제였다고. 결국 반발과 부작용의 최소화를 위해 「조기개편」쪽으로 결론이 왔으며 호남대 비호남 대립,혹은 극우인사 포함 인상을 배제키 위해 보수대연합 대신 「중도연합」의 기치를 내걸기로 결정했다.
  • “이젠 한길로”… 9시간 마라톤 대좌/청와대 통합회담ㆍ각당의 표정

    ◎노대통령 직접설명에 의총,박수로 환영 민정/중진들,신중속 이기택씨 합류 시사 민주/의원 대부분 “국민신뢰 얻는데 주력” 공화/“국민주권에 대한 반란행위” 신랄한 비난 평민 ▷청와대◁ ○…22일 상오 10시 청와대 대식당에서 열린 민정ㆍ민주ㆍ공화 등 3당합당을 위한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총재의 3자회담은 하오 7시까지 합당에 따른 세부문제등을 무려 9시간 동안 진지하게 논의해 청와대회담 가운데 「최장마라톤」 회의를 기록. ○…회담을 마친 노대통령과 두 김총재는 하오 7시 정각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대접견실에 나란히 입장,이날 합의한 「새로운 역사의 항로를 위한 공동선언」을 노대통령이 TV와 라디오로 전국에 중계되는 가운데 낭독. 노대통령이 높이 10㎝의 연단에 올라서서 공동선언문을 읽어가는 동안 김영삼 민주총재는 노대통령의 왼쪽에,김종필 공화총재는 오른쪽에 서 있음으로 해서 공동발표 형식을 취했지만 이날 공동선언문 발표현장의 모습은 3인의 공동대표라기 보다는 노대통령을 좌장으로 「우 YS 좌 JP」의 분위기를 연출. 노대통령은 공동선언문을 통해 『현재의 정치구조가 오늘의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지난 2년간의 결론』이라며 『자유와 민주의 이념을 함께 나누며 정책노선을 같이하는 정치세력이 뭉쳐 정책중심의 정당정치를 실천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역설. 노대통령이 15분간에 걸쳐 공동선언문을 읽는 동안 김종필총재는 두 손을 앞에 모아 경청했고 김영삼총재는 뒷짐을 지고 시종 상기된 표정. 노대통령은 공동선언문을 모두 낭독한 뒤 옆에 서있던 두 김총재의 손을 마주 잡고 사진기자들을 위해 다정한 포즈를 잡기도. ○…공동선언문 발표가 끝나자 최창윤정무수석비서관은 『회담도중 자신이 4차례나 불려들어가 합당세부절차에 따른 세분의 확인사항에 대해 답변을 하거나 관계자료를 제시했다』고 밝혀 3자의 회담이 세부사항에 대한 논의까지도 이뤄졌음을 시사. 최수석은 노대통령이 총재를 맞고 김영삼총재가 대표최고위원을 맞는 안은 논의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지도체제 문제도 깊이 있게 논의됐으나 일단 전당대회까지는 3인이 공동대표로 하되 그 이후의 구체적인 문제는 15인 통합추진위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다소 이견이 있었음을 시사. ○…노대통령은 이날 회담이 끝난 뒤 청와대에서 열린 민정당 의원총회에서 『3당이 통합해 정계개편을 한 것은 우리 헌정사에 있어 처음있는 명예혁명』이라면서 『앞으로는 국민에 부담을 주고 나라발전에 장애를 주는 정치는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 노대통령은 또 『오늘의 3당합당으로 야당도 지역성을 탈피하게 돼 지역성문제는 90년대에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민정당은 낡은 껍질을 깨고 새로워져야 하며 오랜 야당의 길을 버리고 희생적으로 들어오는 새 동지를 포용,새 정치풍토를 이룩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 ○…노대통령과 두 김총재는 회담장인 대식당에서 2시간20분 동안 얘기를 나누다가 회담장을 나와 1백여m 떨어진 한옥연회장인 상춘재로 자리를 옮겨 낮 12시40분부터 하오 2시20분까지 1시간40분 동안 오찬회담을 계속. 노대통령과 양 김총재는 지금까지의 청와대회담과는 달리 피아가 아닌 같은 아군분위기 속에서 얘기를 나눴다고. ▷민정당◁ ○…청와대회담 시작시간에 맞춰 22일 상오 10시부터 중앙당사에서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합당에 따른 당 중진들의 의견을 수렴했으나 이미 전날 자세한 내용을 통보받은 탓인지 합당원칙에는 이론을 제기치 않고 합당에 따른 문제점만을 보완해 줄 것을 요구하는등 당초 예상보다는 조용한 분위기. 민정당은 이날 하오 7시35분 청와대에서 당총재인 노대통령 주재로 의총을 열어 3당합당의 배경과 당위성에 대해 노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었는데 참석의원들은 전혀 이의를 달지 않고 박수로 총재의 뜻에 환영을 표시. 민정당은 이처럼 소속국회의원들에 대한 당차원의 행동통일 「의식」과는 별도로 이날 낮 중앙당사에서 사무처요원들을 소집,박준병총장이 통합추진 경위를 설명한 데 이어 23일에는 상ㆍ하오에 걸쳐 사무처요원과 지구당위원장 결의대회를 잇따라 열어 당의 진로를 설명하기로 하는등 내부결속에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 이에 앞서 민정당은 21일밤 서울 롯데호텔에서 확대당직자ㆍ고문연석회의를 긴급 소집,통합추진과정과 청와대회담 개최배경을 설명하고 곧이어 안가로 자리를 옮겨 통합에 따른 당의 입장을 최종 점검. ▷평민당◁ ○…신당창당이 발표된 이후 평민당은 김대중총재의 표현대로 「비장한 분위기」가 감싸여 있는 가운데 민정ㆍ민주ㆍ공화의 지도부에 대한 성토로 일색. 김대중총재는 22일 의원직 총사퇴와 내각제 개헌을 묻는 총선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는 총재단회의의 결의를 이례적으로 기자들에게 직접 설명하면서 『3당통합은 대의정치와 선거제도에 대한 쿠데타이며 국민주권에 대한 반란행위』라고 비난. 평민당 당직자들은 『오늘부터 사실상 양당체제가 시작된 만큼 앞으로 김영삼ㆍ김종필씨의 상대역은 부총재급이 맡아야 하며 총무ㆍ총장회담에서도 평민당의 상대역은 각 1명씩으로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비아냥. 특히 평민당에서 신당으로 갈 의원이 2∼7명이라는 소문과 관련,가능성이 있는 의원들이 거론되며 설왕설래하고 있으나 김대중총재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일축. 김총재는 하오 4시쯤 『더이상 논평할 것이 없다』면서 당사를 떠나 동교동 자택으로 직행한 뒤 측근인사외의 일체면담을 사절,착잡한 심기를 노출. ▷민주당◁ ○…청와대회담을 마친 민주당 김영삼총재는 22일 하오 7시35분쯤 당사에 돌아와 상기된 표정으로 청와대회담의 경과를 설명. 김총재는 『민주자유당이란 명칭은 내가 제안했고 노대통령과 김종필총재가 좋다고 해서 채택됐다』면서 『약칭을 민주당으로 하자는 얘기까지도 했었으나 이견이 있어 나중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소개. 김총재는 『앞으로 국정전반에 관해 깊이있게 의견을 나누게 될 것이며 3자가 1주일에 최소한 한번은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으며 『이 시간 이후 민주당이 여당이냐』는 질문에는 『국가경영에 책임지는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시인. 김총재는 이날 설명에서 『내각제문제는 잠시 논의했으나 내가 천천히 얘기해도 되는 문제라는 점을 주장,깊이 얘기하지 않았다』고 밝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아무 결론이 나지 않았음을 거듭 강조해 눈길. 김총재는 『거국내각 구성 또는 민주당 입각문제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함께 경영한다는 말에 모든 것이 포함되지 않았느냐』고 말해 부정하지 않는 태도. 한편 이날 이기택총무가 『신당 합류를 적극 검토중』이라고 김총재 노선에 대해 사실상 승복의사를 밝힘에 따라 민주당내에서 신당참여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인사는 최형우 김정길 노무현 장석화 김광일의원과 김상현부총재 정도로 압축되기도. ▷공화당◁ ○…이날 하오 7시45분쯤 마포 당사로 돌아온 공화당의 김종필총재는 당무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부분의 소속의원들과 일부 원외지구당위원장 출입기자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30여분 동안 회담내용을 설명. 김총재는 『특별히 말씀드릴 것은 없고 공동선언문에 담긴 내용이 주요 골격』이라고 운을 뗀 뒤 『9시간의 회담중 신당창당 이후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방법으로 해나가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부분이 가장 길었다』고 소개. 김총재는 지자제실시 연기방안이 제기되고 있다는 보도등에 대해서도 언급,『당초 약속된 대로 시행키로 확인했다』고 밝히고 『거국내각 구성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지적. 김총재는 특히 신당창설 움직임 이후 지역감정이 다시 노골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 『고의로 어느 지역이나 특정인물을 배제한 적도 없고 제한을 둔 적도 없다』고 강조하고 『4당체제 자체가 지역적으로 분할돼 있었던 만큼 이번 신당창설이 단계적 치유방법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해석.
  • 「여대야소」 신 정국의 향방 긴급(대담)

    ◎신당 권력구도 적응,내부통합이 과제/외피적 통합… 대화ㆍ타협으로 극복해야/야 극한투쟁… 정국대립 첨예화 예상/중도 탈피,혁신정당화가 평민 활로/비호남ㆍ호남 대결 우려… 「지역감정 해소책」 기대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ㆍ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22일 청와대에서 긴급회담을 갖고 민정ㆍ민주ㆍ공화당을 주축으로 하는 신당창당에 합의함으로써 앞으로의 정국이 숨가쁘게 돌아가게 됐다. 특히 2년여동안 지속되어 오던 4당체제가 신당의 출현으로 「여대야소」의 2당체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풍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당창당 선언을 계기로 정계개편의 의의와 전망 및 문제점을 송복 교수(연세대) 신희석 교수(외교안보연구원)의 대담을 통해 알아본다. □참석자 송복 신희석 ▲송교수=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을 주축으로 한 신당 출현은 한국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대지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특히 통합신당은 정치지도자들의 담합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정치적 행위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한국정치사의 대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50년대 보수대연합이 이루어졌지만 우리와는 정치적ㆍ사회적 환경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동경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신박사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신교수=3당합당 선언에 따른 정계개편은 한국정치사에 있어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기존정당의 통폐합은 적지 않게 이뤄졌지만 여당,야당세력들만의 통폐합에 불과했습니다. 이번과 같이 정치지도자,이념을 전혀 달리하는 3개정당이 동시 통합한 예는 이웃 일본정치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변혁입니다. 3당통합은 현 4당구조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감정이 탈피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과 함꼐 상당히 빠른 속도로 개편작업이 이루어진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3당통합은 여러모로 일본 자민당창당과 비교됩니다. 일본 자민당은 지난 55년 보수주류와 비주류간의 통합으로 결성된 이래 지금까지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일본 상황과 현재의 우리 사정을 살펴볼 때 크게 3가지 유사점을 발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양측 모두 획기적인 정계개편을 이뤘다는 점이고 둘째 이러한 개편이 국내정치의 전환기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셋째로는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 등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야기된 위기감을 보수정치권이 감지,이를 모면하겠다는 배경을 공통분모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유사점에도 불구,양측간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노정되고 있습니다. 먼저 일본의 통합은 내각책임제하에서 이뤄졌지만 우리의 경우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일본은 당시 보수파간의 통합인 만큼 혁명적인 것으로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전혀 이념을 달리하는 3당간의 통합이기 때문에 가히 혁명적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은 주류와 비주류에 의한 보수통합인 반면 우리의 경우 보수여당과 중도야당간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당시 일본은 2차대전 종전 후의 과도기적 체제였지만 우리는 서울올림픽 개최등 국력향상과 민주화 물결속에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국제정치상황도 50년대는 미소간의 대립냉전기였지만 현재는 신보수주의 물결속에서 경제제일주의를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당시 사회당ㆍ공산당 등 야당의 강력한 등장에 보수세력이 위기의식을 느껴 이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통합을 추진했지만 우리는 민주정치 안정과 효과적인 정국운영이라는 측면에서 3당통합을 추진한다는 데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송교수=2년전 국민들이 만들어준 4당체제를 정치지도자들이 자의적으로 바꾼다는 점이 이번 신당창당을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 시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계개편 추진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첫째 우리의 정치상황은 90년대를 맞았으나 60년대의 초기민주주의 구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역사발전에 맞게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1인당 GNP 80여달러에서 현재 50배가 되는 4천여달러로 급성장했으나 정치구도는 30여년전이나 똑같아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대다수 국민이 정계개편의 필요성에 합의하고 있습니다. 둘째 지금까지의 4당체제는 각당의 이념ㆍ지향ㆍ정책이 다른데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지역성에 기인하고 있어 적어도 인위적이라도 4당구조는 전진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점이고 셋째 평민당이 비교적 선명성을 내세우지만 혁신정당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4당 모두가 보수당이기 때문에 정책과 이념대립보다는 지역성ㆍ감정적 싸움으로 극한상황으로 치닫기 쉽다는 점입니다. ▲신교수=송교수 말씀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정치풍토ㆍ사회구조ㆍ정치문화 등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만큼 일본 자민당 모델에 의한 3당통합은 필요불가결하면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의원내각제ㆍ양원제ㆍ권력분산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중심제ㆍ단원제ㆍ중앙당중심체제로 짜여진 우리 정치상황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또 야당의 존재양상도 서로 다른데 일본의 경우 사회당ㆍ공명당ㆍ민사당 등 야당지도자들이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들 야당은 정책이나 이념을 중심으로 구성됐고 총재직도 순환임기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 야당은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대권도전 의사를 갖고 있으며 정책ㆍ이념이 아닌 인물ㆍ지역에 의해 정당이 만들어져 정당의 인물화ㆍ지역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파벌간 영수에 의해 대권교체가 손쉽게 이뤄지는 일본 자민당 정권모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사실 일본 자민당이 35년 이상 장기안정속에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파벌정치를 통한 견제와 균형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는 이러한 「뿌리」가 없기 때문에 자민당식으로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송교수=신교수 말씀대로 50년대의 일본 자민당과 90년대의 우리 정치환경은 다르지만 이번에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이 합의에 의해 개편하게 된 데는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하겠습니다. 민정당이 집권당임에도 불구하고 「여소」라는 상황에서 정국을 열어가는 데 한계성이 있었으며 민주ㆍ공화당이 야당이라고는 하나 제1ㆍ제2당 싸움에서 제3ㆍ제4당은 정국운영의 뒷전으로 밀려나정치현장서 사라지지 않나 우려하고 있어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고 하겠습니다. 이로 인해 3당은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개헌수준의 정계개편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의 사무엘 헌팅턴이 『양당제는 영국과 미국에서만 잘 운영되어오나 고전적인 이 제도는 정치사적 측면에서는 현대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듯이 2차대전 후 프랑스ㆍ영국ㆍ스칸디나비아제국 등 세계각국의 보편적 정치구도는 거대한 「통합정당」과 이에 대응하는 「0.5정당」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0.5정당」이야말로 「통합정당」이 국정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국민들의 거부로 쫓겨나게 된다는 점을 지적,경고적인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지난 50년 이후 일본에서는 자민당 이외의 여타정당은 경고적인 「0.5정당」이었으며 이번 3당의 할당도 전후 자유주의국가 정당의 보편적인 정당개편 유형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신교수=일본식의 정치구도 도입이 우리 정치상황에서 어떤 문제점을 노출시키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신당내부의 정치질서 재편성인데 지금까지 3당은 여야로 나뉘어 대립과 갈등을 반복했다는 사실을 두고볼 때 과연 외형적인 통합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는지 의문시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도 대립과 갈등이 아닌 대화와 타협에 의한 상호인정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다음으로 그동안 야당지도자로 군림해 왔던 김영삼총재와 김종필총재가 신당내에서 어떠한 지위를 차지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최근 일 자민당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총재와 내각총리대신 분리론과 마찬가지로 신당의 총재와 국정최고책임자를 분리시키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당창당에 이은 내각책임제 개헌은 대통령중심제보다 강력한 리더십이란 측면에서 뒤떨어지는 만큼 남북분단의 현실을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송교수=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3당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이름아래 3세력이 필요시에는 힘을 합치고 평소에는 떨어져 있는 「분권구도」라는 느낌입니다. 신당의 「분권구도」에 우리 정치인들이 얼마나 잘 적응할 지가 앞으로의 문제입니다. 조선조 이후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집권화구도」에 익숙해 왔기 때문에 동업자적 조직운영인 「분권구도」에 정치인들이 얼마나 익숙해질 수 있느냐가 신당운영 성패의 관건입니다. 이에 비해 일본 사회는 분권화에 익숙하며 자민당을 중심으로 이같은 구도가 잘 이어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통합신당의 내부문제로는 그동안 3김이 정치자금의 센터역할을 맡아와 정치집단의 축을 이루고 있었는데 통합후에도 정치자금의 주축역할을 하게 되면 신당이라는 한 우산 아래에서 분열의 소지가 남아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밖에 신당출현이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평민당을 고립시킴으로써 정국을 호남 대 비호남으로 갈라놓을 우려가 있습니다. ▲신교수=기존의 다당화에서 양당화 현상으로 이양돼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또 평민당은 통합신당에 거의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의 3당통합이 자칫 호남세력과비호남세력으로 편가르기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더욱이 신당의 장기집권이 예상되는 만큼 새로운 야당은 만년야당이 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대여투쟁을 전개할 것으로 점칠 수 있습니다. ▲송교수=신당이 나타나면 정계구도도 보혁구도로 탈바꿈되어야 합니다. 평민당은 앞으로 보혁의 양날개에서 탈피,혁신정당으로서의 외모를 보여줘야 하며 국민들도 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평민이 중도 온건으로 남으면 우히려 운신의 폭이 좁고 존재 이유도 명확하지 못합니다. 평민당이 재야세력등 혁신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할 때 평민의 구조도 튼튼해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 「3당통합」소식에 놀라움과 기대

    ◎기습적 「정치혁명」을 보는 시민들 표정/“이제는 「소모적 정쟁」 더 없어야”/지역감정 심화ㆍ일당독주 우려도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이 내각책임제를 전제로 통합창당을 선언한 22일 국민들은 정계구도의 대변혁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앞으로 정국의 추이에 관심을 모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날 하오7시 3당통합 발표문을 듣고 이번 정계개편으로 그동안 소모적으로 운영됐던 여소야대의 4당체제가 보다 안정적이고 능률적인 양당체제를 구축,정치사회의 안정과 국가발전에 기여해 주기를 바랐다. 국민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인들이 개인적인 이해나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국리민복에 힘써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새로 탄생할 거대 신당의 독주나 야당의 극한 투쟁 및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김동현변호사=현재의 4당구조가 「5공청산」을 비롯한 반민주악법개폐 등 여러가지 현안을 원만히 처리하는데 한계점을 드러냄에 따라 도출된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보수대연합에서 국민들이 우려하는 점은 보수대연합에 의한 일당독재로 소외계층의 요구가 묵살되고 반민주악법 등이 그대로 묻혀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지역간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야당이 이같은 극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대아적인 견지에서 2선으로 물러나야 할 것이다. ▲김경오씨(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뭐가뭔지 어리벙벙한 느낌이다. 그러나 국제정세의 격동과 통일이라는 큰 과제를 앞두고 국내정치의 정비는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했던 만큼 이번 정계개편을 통해 정치와 경제가 안정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이로인해 농성과 시위 등 불필요한 집단행동도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 ▲조대현씨(아동문학가)=그동안의 파행적 정치운영형태에 비추어 무엇인가 변화가 오기를 기대한 것은 사실이나 특정지역의 소외감을 가중시킬까 걱정이다. 이왕 정국구도의 변혁이 대세로 확정된 이상 국민들도 역사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신중히 처신해야겠고 정치주역들은 혼란의 극소화를 위해 속히 신당의 구상을 선명히 밝혀주길 바란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든 국민의 뜻을 묻는 절차를 거쳐 주기 바란다. ▲김정규스님(40ㆍ법보신문주필)=우리나라 40년 헌정사를 통해 가장 놀라운 정치적 사건이 바로 이번 여야의 통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3당의 통합은 오늘의 정치구도를 변혁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간의 갈등과 계파간의 이해관계를 극복해야 된다는 난제를 안고있다. 진실로 정재양민의 큰 정치가 펼쳐지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황문호씨(38ㆍ잠실병원 원장)=정파싸움을 지양하고 국민의 복지와 정치민주화를 위해 합당하는 것이라면 일단 환영한다. 그러나 표면상 명분만 그럴듯하게 내걸고 일부 정치인들의 사소한 이익을 위해 뭉쳤다면 국민의 지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한상진교수(서울대 사회학과)=선거에 의해 국민이 만들어준 지금의 4당구도를 정치인들의 의사만으로 깰 수 있느냐는 시각도 있지만 정치성향을 같이하는 정치인들이 이합집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계개편이 긍정적이냐부정적이냐 하는 것은 개편방향이 국민들이 요구하는 민주화의 빠른 진전과 사회변혁을 가능케 하는가의 문제라고 볼때 이번의 보수대연합은 오히려 장애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광우교수(전남대ㆍ정치학)=민의를 무시한 정계개편이다. 야당에 의한 통합이 되지않고 여당 중심으로 통합된 것은 재야 정치세력의 결집을 불러 정치의 양극화에 따른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박상근군(22ㆍ경희대총학생회 부회장ㆍ영문과 4년)=한마디로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복마전의 산물이다. 정치권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민주와 민주와의 대결을 보수ㆍ혁신의 구도로 왜곡시키려는 술수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정계기류로 미루어 어떤 방식이든 개편이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선명야당임을 자처했던 민주당이 공화ㆍ민정당과 밀착했다는데 경악을 금치 못한다.
  • 전후 정국혼란 종식의 주역/“보수대연합의 모델” 일 자민당

    ◎진보파 결집에 자극… 민주­자유 합당/보ㆍ혁체제 형성… 정치안정으로 경제대국 키워 일본의 집권여당 자민당은 1955년 11월 창당,정권을 잡은 이래 35년간 「일당지배」체제를 계속하고 있다. 세계 정당사상 이처럼 오랜기간 일당지배가 지속되고 있는 경우는 서방 자유세계에서는 일본이외에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자민당은 그 정식 명칭 「자유민주당」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결성된 2개의 보수정당 자유ㆍ민주 양당이 통합해 탄생했다. 좌우 양파로 분열됐던 사회당이 합쳐진데 자극되어 자민당으로 결성된 「보수대연합」은 그동안의 다당제에 종지부를 찍고 보수 자민당과 혁신 사회당의 양극체제를 굳혔다. 일본의 「보수대연합」에는 사회당의 강화에 자극을 받은 재계의 압력과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자민당은 자유ㆍ인권ㆍ민주주의ㆍ의회제도의 옹호를 기본적인 강령으로 삼았다. 1955년 11월15일 창당대회에서 채택ㆍ발표된 「입당의 정신」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자민당이 탄생하기까지 전후 10년간의 권력투쟁은 요시다 시게루(길전무)와 하토야마 이치로(구산일랑)의 싸움이었다. 일본 패전후 최초의 총선거였던 46년 5월 선거에서 자유당이 제1당이 됐으나 연합군사령부는 초대 총재인 하토야마를 전쟁협력자로 규정,공직에서 추방시킴으로써 주영대사를 지낸 외교의 명수 요시다가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됐다. 48년 가을부터 6년동안 패전의 그림자를 지우고 부흥의 기반을 닦은 요시다 총리 밑에는 일본을 고도성장으로 이끈 이케다 하야토(지전용인) 사토 에이사쿠(좌등영작)와 당료파인 오노 반보쿠(대야반목) 이시이미 쓰지로(석정광차랑),후임 총재가 된 오가타 다케도라(서방죽호)등 실력자가 즐비했다. 한편 공직에서 추방됐다가 해금된 하토야마 중심의 「반요시다」세력에는 이시바시 단잔(석교담산) 고노 이치로(하야일랑),개진당 총재인 시게미쓰 아오이(중광규) 마쓰무라 겐죠(송촌겸삼) 미키 다케오(삼목무부)와 기시 노부스케(안신개) 등이 집결,민주당을 결성했다. 54년말에는 결국 요시다 총리가 은퇴하고 하토야마 정권이 수립됐으며 55년 가을 미키 다케오의 집념으로 하토야마의 민주당과 오가타의 자유당이 합당,자민당이 탄생했다. 이때 당총재는 소속 중ㆍ참의원과 지방대의원으로 구성되는 당대회에서 공선키로 함으로써 파벌형성의 싹을 틔웠다. 하토야마가 집권한 지 1년만인 56년11월 소련과의 국교를 회복하고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같은해 12월 후임을 둘러싸고 3명이 날카롭게 대립했다. 1차 투표에서는 자민당 발족당시 간사장이었던 기시후보가 수위를 차지했으나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이에대해 2위였던 이시바시와 3위 이시이가 연합전선을 펴는 바람에 결선투표에서는 이시바시가 기시를 7표차로 누르고 역전승했다. 이를 계기로 자민당 파벌 「8개 사단」이 사실상 형성,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시바시 정권은 발병으로 2개월만에 퇴진하고 57년 3월 기시가 단독으로 입후보,자민당의 3대 총재가 됐다. 창당이래 35년간 일관해서 정권을 담당해온 자민당 단일정당내에서 이루어지는 정권교체의 역사는 파벌의 경쟁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자민당내에는 최대 파벌인 다케시타(죽하)파를 비롯,아베(안배)파,미야자와(궁택)파,구 나카소네(중증근)파,고모토(하본)파 등 5개의 파벌과 니카이도(이계당) 그룹이 있다. 자민당은 중의원 5백 12석,참의원 2백52석 가운데 4백3석(중2백94ㆍ참1백9)을 차지하고 있는데,다케시타파가 1백5석,아베ㆍ미야자와ㆍ구나카소네파가 각각 80석내외,고모토파가 25석,니카이도 그룹이 14석을 점유하고 있다. 이같은 파벌주의는 국회를 공동화시키고 밀실ㆍ금권정치를 조장한다는 부정적인 면도 물론 크지만 인사배분 기구로서 또는 정책결정 기구로서의 역할도 크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공개적인 경쟁에 의해 정권을 창출해 낸다는 점에서 민주적인 제도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가가 정치 지도력에 의해 권력을 잡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의 뒷바침이기도 하다. 나아가 오늘의 초일류 경제대국 일본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연합의 일당중심체제에 의한 일관된 정책추진과 정치적 안정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견해도 있다. 현재 일본에는 집권자민당 이외에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여야 역전」을 주도했던 제1야당 사회당을 비롯,공명당ㆍ민사당ㆍ사민련ㆍ공산당 등 수많은 정당이 있으나 그 어느 것이나 정책수립ㆍ인물확보 등 여러면에서 자민당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 민정,지자제선거전 정계개편/고위소식통/설연휴뒤 월말께 본격활동착수

    ◎내각제개헌 14대총선 직전에/평민일부 포함,「3당통합 신당」 검토 민정당은 금주중 정계개편에 대한 여권의 입장을 정리,빠르면 설날연휴가 지난 뒤부터 정계개편작업을 표면화,중도세력대연합 또는 범민주 민족세력 결집을 통한 신당창당을 적극 추진해나갈 방침인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민정당은 또 정계개편을 먼저 마친 뒤 지방의회선거를 실시하고 내각제개헌을 전제로 정계개편을 하되 내각제개헌은 현 13대국회 임기만료 직전에 한다는 방침도 아울러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민정당은 이에 따라 금주 중반에 있을 김영삼민주ㆍ김종필공화당총재의 회동등 민주ㆍ공화 양당간의 합당움직임과 평민당의 대응을 종합평가한뒤 정계개편의 시기와 작업의 속도를 조정하되 정계개편의 분위기가 성숙되었다고 판단되었을때는 지체없이 신당창당을 결행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당은 또 중도세력대연합 또는 범민주민족세력 결집을 위해서는 민주ㆍ공화당뿐만 아니라 평민당 일부까지도 동참시킨다는 복안 아래 대야개별막후절충을 강화할 계획이다. 민정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은 이와 관련,오는 24일 박태준대표위원으로부터 정계개편에 따른 현황분석과 대응책에 대해 보고를 받은뒤 지침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고위소식통은 이날 『구정연휴가 지나면 정계개편에 따른 민정당의 적극적인 활동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하고 『선정계개편 후지자제선거,그리고 정계개편 후 13대국회에서 내각제개헌을 한다는 기본구상을 세워놓고 있다』고 말했다. 박대표위원은 이날 상오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노대통령도 지역감정 완화나 대립정치구조를 해소키 위해 내각제를 고려해왔다』고 밝히고 『정계개편의 속도나 시기는 우리보다 민주ㆍ공화당의 통합진전상황이 더 큰 변수』라고 말해 24일께의 김민주ㆍ김공화총재간의 회동결과에 따라 민정당의 정계개편 작업의 공식추진시기나 구체적인 방향이 결정될 것임을 비쳤다. 박대표는 정계개편방향과 관련,▲민정당이 민주ㆍ공화당과 합치는 3당통합신당결성 ▲민주ㆍ공화 두 당이 먼저 합쳐진 뒤 민정당과 합하는 단계적 통합 ▲이보다 범위를 더 넓혀 보수대연합 등이 검토될 수 있다고 말하고 『이 가운데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는 돌아가는 여러가지 변수를 봐가며 노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으나 소식통들은 평민당 일부를 포함한 3당통합신당창당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전망했다. 여권의 고위소식통은 노대통령의 결단시기에 대해 『정계개편은 대통령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의 권한을 가진 국회(정당)가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만 대통령은 분위기가 성숙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민정당총재로서 중도세력대연합에 동참하는 세력의 범위와 대연합 결성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노대통령의 정계개편에 따른 결단천명은 민정당 차원에서 야3당과의 막후절충이 무르익은 뒤에 할 것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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