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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시대] 국민대통합, 문제는 방법이다/나간채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지방시대] 국민대통합, 문제는 방법이다/나간채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몇 달 동안 계속되었던 대통령 선거운동 드라마가 끝났다. 선거운동에서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역동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매우 극적인 전개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 기대 이상의 투표율을 올렸다. 결과에 관계없이 그 연출과 진행에서 이 드라마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선거운동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각종 차이와 균열, 그리고 잠재적 갈등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선거가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로 진전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세대별, 성별, 지역별 차이가 두드러졌다. 예를 들면 선거 결과를 나타내는 지지도 지도에서 전라도는 완전히 섬나라가 되었다. 시·도민들 눈빛이 까칠하고 얼굴에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일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두 후보가 공히 국민대통합을 주창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사실 이제 국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일은 쪼개지고 상처 난 국민정서를 치유하고 전체가 조화롭게 하나의 사회로 통합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통합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그 하나는 위로부터의 통합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통합이다. 전자는 권력자의 강요와 설득에 의한 통합이고, 후자는 국민들 개인의 자발성에 토대한 통합이다. 물론 이러한 분류는 매우 극단적인 것이어서 현실은 항상 이 양극단의 중간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국민대통합이 절실 하기 때문에 권력자가 일방적으로 통합을 강조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선거운동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우려했던 점은 국민대통합을 강조하지만 ‘박근혜 표’ 통합의 형태가 위로부터의 통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불통’이란 별칭이 그와 관련된다. 우리는 상대방의 뜻을 외면한 채 단행된 권력자의 일방적 통합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던가를 세계 역사에서 잘 보고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통합이 실현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주장하고 싶다. 첫째는 참여의 원칙이다. 둘째는 양방향 소통의 원칙이다. 일방적 명령은 건강한 의사소통을 저해함으로써 진정한 통합을 거스르는 일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호 토론을 통한 합의에 이르는 길이 맞다. 셋째는 균형과 호혜의 원칙이다. 국민대통합은 위에서 만들어 주려고 하기보다는 ‘함께 하자’는 자세로 나가는 것이 좋다. 특히 지역 간 통합의 문제를 주목해 볼 때 지방의 참여와 소통 및 균형의 가치가 매우 절실하다.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국가의 자원은 지방의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균형 있게 배분되어야 할 것이다. 그 핵심은 재정과 인사 분권에서 출발해야 한다. 중앙정부에 집중된 인사권과 재정권이 적절한 수준에서 지방정부에 이양되어 분산되는 일이 진정한 민주적 국민대통합의 중요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전 세계적인 추세인 지방자치와 분권의 원리가 이번 새 정부에서 크게 신장되기를 기대한다.
  • [첫 여성대통령 시대] CNN“문제는 경제였다” AFP“독재자의 딸 선택”

    19일 한국 대선을 주요 머리기사로 올린 세계 주요 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우세한 출구조사 결과를 비롯해 개표 상황을 실시간 긴급 타전하며 “한국에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박 당선자가 내년 2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경기 침체, 북한과의 관계 재정립, 일자리 확대, 소득불균형 등 갖가지 난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AP통신은 박 당선자의 승리는 아직도 남성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에서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의 탄생일 뿐 아니라 전직 대통령의 혈연이 당선된 첫 사례라고 전했다. AFP통신도 한국이 잔혹한 야권 탄압과 빈곤 타개 사이에서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독재자의 딸을 첫 여성 대통령으로 뽑았다고 긴급 타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 집권했던 독재자의 딸이자 미혼인 박 당선자가 세계에서 가장 성별 격차가 확고한 나라를 이끌게 됐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박 당선자가 육영수 여사 암살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청와대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가 앞으로 적대적인 북한과의 관계 재정립과 지난 50년간 연평균 5.5%에서 2%대로 떨어진 경제성장률 등의 험난한 과제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서방 언론들은 지난 12일 로켓 발사로 불거졌던 북한 변수는 대선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 반면 경제·일자리·교육 문제 등이 판세를 갈랐다고 지적했다. 홈페이지에 한국 대선을 메인 기사로 띄운 CNN은 지난 11월 미 대선과 마찬가지로 한국 대선에서도 ‘경제’가 유권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현안이었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도 경제와 복지, 일자리 창출 이슈가 한국 대선의 주요 ‘키워드’가 됐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새 정권과 미국·북한의 관계 변화에 특히 주목했다. 박 당선자는 국가 안보와 신뢰를 바탕에 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조건 없는 북한 원조 재개 등을 공약으로 내건 문 후보보다 대북 정책에서 더욱 신중한 입장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었다. 외신들은 박 당선자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강력한 지지자라는 점을 부각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도 하루 종일 한국의 대선 투개표 상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여야 후보 간의 대접전으로 박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한국이 보수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면서 박 당선자가 경제 성장도 고려하면서 온건한 재벌 규제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으로 보수 중장년층의 지지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또 박 당선자의 일대기, 정책, 한·일 외교관계 전망 등의 기사를 잇따라 내보냈다. 일본 언론들은 박 당선자가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독도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지통신은 ‘비극의 딸’인 박 당선자가 고도 경제성장과 민주화 운동 탄압이라는 공과 과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부친이 못 이룬 국민 대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NHK는 이날 매 시간 뉴스를 통해 투개표 상황을 전하면서 ‘복지’가 선거전의 화두가 됐다고 보도했다. 고용 정책, 저출산 및 고령화 문제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들이 이번 선거전에 쟁점이 됐다고 전했다. 중국의 주요 관영 매체들도 일제히 한국의 대선 결과를 예측·분석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신화통신은 오후 9시쯤 박 당선자의 당선이 확실시된다고 전했다. 관영 중국중앙(CC)TV의 뉴스 채널은 투표가 종료된 오후 6시부터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 대선 동향을 상세히 보도했다. CCTV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당사에 파견한 특파원들을 연결해 실시간으로 대선 뉴스를 전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서울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선택 2012 민심탐방-내게 대선은 [ ]다] (6)새내기 유권자에게 듣다

    [선택 2012 민심탐방-내게 대선은 [ ]다] (6)새내기 유권자에게 듣다

    첫 투표는 설렘입니다. 올해 만 19세가 돼 당당히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새내기 유권자들은 대통령을 내 손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뿌듯해집니다. 정말 제대로 뽑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느 후보가 나와 나라에 보탬이 될지 막연하기만 합니다. 공약들을 살펴봐도 정작 내 고민을 해결해 줄 만한 후보는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교 학창시절의 긴 터널을 지나 이제 막 캠퍼스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 만 19세 유권자 3명에게 그들만의 생생한 고민과 대선 후보들에게 바라는 점들을 들어봤습니다. 새내기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을 ‘희망고문’으로 정의했다. ‘희망고문’이란 애매한 태도를 보여 상대방이 희망을 갖도록 해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들에게 정치와 선거는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고려대학교 정경학부 김도유(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임동민, 숙명여자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강윤서(여)씨는 대선을 40여일 남긴 6일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전부 ‘장밋빛’인데, 내 한 표로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가 물거품이 될까 두렵다.”며 기대 섞인 우려를 내비쳤다. ●새내기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20대 젊은 층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얘기하는 일부 기성 세대들이 있다. 실제로 새내기들에게 정치는 먼나라 얘기인 경우가 많은 듯하다. 김씨는 “어떤 친구들은 ‘문재인이 누구야’라고 묻기도 한다.”면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거나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투표하는 날만 ‘주인’ 대접을 받는 게 아니냐는 반문도 따랐다. 강씨도 “일상생활에서 정치가 화두는 안 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치 무관심에 대해 결이 다른 해석도 있었다. 이념적 양극화로 인해 탈정치화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임씨는 “새내기들 간에 이념 양극화가 아주 심하다.”면서 “이념 성향이 다르다 보니, 친구들 간에 정치를 주제로는 대화가 안 통해 정치 얘기를 안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좌우 양극단에 있는 인터넷사이트들이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은 ‘빨갱이’로, 박정희는 ‘히틀러’로 희화화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 영향을 받는 친구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최근 정치권의 화두인 투표시간 연장이 논란이 되는 것에는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했다. 휴일에 쉴 수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들이었다. 임씨는 “학교에 일용직이나 식당 아줌마들이 주말과 쉬는 날에도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까지 일을 한다.”면서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데 왜 투표를 못한다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김씨도 “투표참여율이 저조하면 정당성이 결여된다고 생각한다.”고 동조했다. 강씨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들만의 고민은… 강요받는 진로 새내기들만의 고민은 뭘까. 이들은 캠퍼스에만 들어오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부푼 마음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김씨는 “대학은 선진적인 학문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에서 필수로 들으라고 하는 과목은 시시하다.”면서 “대학생다운 공부를 하기가 힘들다. 학점을 위해, 과제가 적고 출석체크도 잘 안 하는 ‘꿀교양’만 찾아듣는다.”고 말했다. 임씨는 “새내기들 간에도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고, 취업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강씨 역시 “대학 가면 자유롭기만 할 줄 알았는데,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들의 현실적인 고민은 진로 문제였다. 어른들에 의해 강요받는 진로 문제 때문에 꿈을 갖기도 힘들고, 오직 입시와 취업 준비만 해야 하는 처지라고 이들은 하소연했다. 임씨는 “선배들이나 어른들이 항상 앞으로 뭐할 거냐고 물어서, 관심이 별로 없는데도 변호사 할 거라는 말을 달고 산다.”고 했다. 김씨는 “학교 공부가 진로를 위해 어떤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졸업장을 사는 것 같아 회의가 든다.”며 한숨을 쉬었다. 강씨는 전공에 대한 회의감이 친구들 사이에 만연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입시 위주 교육으로 점수 맞춰서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전과 신청을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취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대선 후보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진정으로 공감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임씨는 “정치인들이 ‘요즘 애들 문제의식이 없다’든가 ‘열심히 노력을 안 한다’면서 혼내는 느낌이 많다.”면서 “안철수 후보가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는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 얘기를 듣고 토닥거려주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무줄 잣대’ 입시제도는 불만 고무줄 같은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은 공통적이었다. 입학사정관제의 혜택을 받은 임씨는 강남에서 입학사정관제 토론강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토론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경험 때문에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했다.”면서 “수능이 아닌 학교생활을 바탕으로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가 또 다른 사교육을 조장한다.”고 털어놨다. 입학사정관제에도 빈부격차의 문제점이 투영되는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공약들을 후보들이 제시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김씨 역시 “입학사정관제는 주관적으로 점수 매기는 것”이라면서 “스펙을 쌓을 수 있는 여건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특목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강씨는 “입학사정관제보다는 논술의 객관적인 기준이 좀더 명확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교육을 통해 입시 위주의 교육을 점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공약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사설] 공존 위해 머리 맞댄 진보-중도-보수 운동가들

    진보·중도·보수 시민운동가 25명이 엊그제 한국사회 이념 대립 해소를 위한 ‘시민단체 활동가 그룹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좌우 또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양극단으로 치닫기만 하던 우리 사회에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니 우선 반갑고 보기에 좋다. 공존을 위한 이들의 작은 목소리가 사회 곳곳으로 울려 퍼져 화합과 상생의 길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행동강령은 흥사단, 희망제작소, 공정언론시민연대 등 다양한 성향의 단체들이 지난 2009년 9월부터 머리를 맞대 만든 것이다. 2년 6개월 동안 8차례 토론을 가져 마련한 만큼 진정성이 느껴진다. 행동강령의 내용은 의외로 단순하고 소박하다. 법질서 존중, 색깔 시비와 낙인찍기 자제, 좌우진영 논리 탈피,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주장하기 등이다. 마음만 먹으면 사회구성원들이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들은 올해가 총선과 대선이 있는 만큼 정치인과 언론에 대해 각각 상호비방과 왜곡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정치권과 언론계는 이러한 주문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시민단체의 이런 움직임과 달리 우리 사회는 갈등과 대립, 분열, 편가르기로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 사회통합을 이끌어야 할 정치권은 상대편을 헐뜯고 깎아내리기만 한다. 상대편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화합과 대화의 정치는 발 붙일 틈이 없다. 최근 출범한 민주통합당의 문성근 최고위원은 대통령 탄핵까지 운운하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당한 온갖 수모를 깨끗이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정치 보복을 예고하는 듯해 실망스럽고 걱정스럽다. 언론도 진보, 보수로 나뉘어 갈등을 오히려 증폭시키고 있다. 이들 시민단체는 차기 정부에 사회통합 방안을 제시할 방침이라고 한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이들의 노력이 상생, 공생 사회의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
  • [열린세상] 새해를 여는, 차 마시는 마음/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새해를 여는, 차 마시는 마음/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한강 소설 ‘몽고반점’을 보면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를 거부하는 의미에서 채식을 선언하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런 여주인공에게 ‘베트남 참전 용사 출신’인 아버지는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면서 억지로 고기를 먹인다. 결국 주인공은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런 아버지는 소설에만 등장할 뿐인가. 안타깝게도 연초 어떤 모임에서 그런 폭력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직접 목도하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모여 애 키우는 이야기, 돈 버는 이야기, 건강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대통령 선거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편이 갈라져 대판 논쟁이 벌어졌고, 급기야 삿대질을 하면서 멱살까지 잡는 일이 벌어졌다. 정치에 무관심한 나로서는 양쪽 모두를 비판했고, 결국 회색분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무엇이 우리 세대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생각해 본다. 모두가 자신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우기면서 타인의 의견을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내 편 아니면 적, 그것이 그날 ‘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양극단의 첨예한 대립과 충돌만 있을 뿐, 그 충돌의 완충 지대는 없었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논리적으로 이것저것 따지면서 대안을 찾고 타협하는 문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비단 그날의 모임에서만 일어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올해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다.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보수 골통’, ‘좌파 빨갱이’라고 가차없이 단죄해 버리는 일들이 아마도 도처에서 일어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자신의 의견을 쉽게 드러냈다가는 큰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만큼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문화가 실종돼 버렸다. 사태가 이 지경이라면 나라를 둘로 나누는 게 낫겠다는 상상까지 해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기성세대의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과 갈등, 그리고 폭력이 어린 세대에게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는 점이다.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꿈을 키우면서 올바른 사회성을 배워야 할 어린 학생들마저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측면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특정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집단으로 따돌리고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다. 주검으로까지 내몰린 피해 학생을 보면서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 책임이 교육자에게만 있는 것일까. 이런 모든 불행한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동물적 폭력과 광기를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휘두르는 우리 기성세대 모두에게 있다. 그러기에 최근 일어난 청소년 폭력과 관련된 불행한 사건은 기성세대를 향해 울리는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청준 소설 ‘다시 태어나는 말’을 보면 81세의 나이로 입적한 초의 스님의 ‘차 마심의 마음’이 나온다. 초의 스님에 따르면 진정한 차 마심은 “내가 누구에게 못할 짓을 하였나, 내가 누구를 원망하고 원한을 지닐 일은 해 오지 않았나. 그런 일들을 후회하고 용서하고 속죄하는” 마음, 곧 “남과 자신을 용서하고 그리고 세상사 모든 것을 용서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있는 차 마심이다. 2012년 임진년 새해에 누구나 한두 가지 목표가 있다. 대개는 금연과 금주와 같은 금기 사항부터, 건강을 위한 운동,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 승진, 가정의 화목함 등을 실천 목표로 삼을 것이다. 여기다 초의 스님의 차 마시는 마음처럼 남과 자신을 용서하고 세상사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보겠다는 목표를 설정하면 어떨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립과 갈등의 깊은 골을 메우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는 힘들게 도달한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 것이다. 경제성장이니 분배니 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간절히 필요한 것은 한국 사회를 진정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보수든 진보든, 좌파든 우파든, 그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 용서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서울광장] 솔롱고를 만들자/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솔롱고를 만들자/임태순 논설위원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6·25에 휘말려 포로가 된다. 전쟁이 끝난 뒤 어디로 갈 것이냐는 심문관의 질문에 그는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선택한다. 8·15 해방, 한국전쟁의 격변기를 통해 남과 북을 모두 접해본 그는 민주주의, 공산주의에 모두 실망해 중립지대를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내 바다에 뛰어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아마 중간지대도 피난처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명준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흑백이 뚜렷이 구분된 단선사회이다. 보수와 진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갈라지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른 부문에서도 극명하게 엇갈려 서로 대립하고 싸운다. 이념이나 정치도 따지고 보면 모두 먹고살자는 것인데 도무지 접점이 없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들어 극한투쟁, 선명성만이 최고이고 지고지순한 선이다. 반면 타협과 절충은 배신이고 비굴이고 야합이다. 그러니 흑과 백은 가까워지기는커녕 더욱 멀어져 양극으로 치닫는다. 중간지대, 회색지대라는 완충지대가 없으니 갈등, 분열, 대립, 반목이 있을 뿐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저마다 잘하고 못한 것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 초기 금융실명제 등 개혁, 김대중 대통령의 IMF 금융위기 탈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개혁 등은 모두 치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지지자에 따라 이러한 평가는 180도 달라진다. 김대중 대통령 지지자는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 좋고 반대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다 싫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화되고 고착화돼 골수주의자가 양산되고 중도는 설 자리를 잃는다. 지독한 독선이고 독재다. 외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균형감각을 잃고 편견과 아집만이 남는다. 그러니 중재자이고 조정자 역할을 하는 판사들의 입에서도 ‘뼛속까지 친미’라는 등의 극언이 쏟아져 나온다. 얼마 전 인기작가 공지영은 김연아 선수가 종합편성채널 개국행사에 들러리를 섰다며 “너 참 예뻐했는데, 이제 안녕”이라고 해 물의를 일으켰다. 설령 종편이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무섭게 편가르기를 해야 하는지 섬뜩하다. TV에서 진행하는 토론프로도 그렇다. 자기 이야기만 하고 상대편의 주의, 주장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토론은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난다. 같은 편끼리 나와서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유유상종 동상이몽’의 자리가 되다 보니 생산적 결론은커녕 접점도 찾지 못한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게 양극단으로 흐르니 완충역할을 해야 할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뒷전으로 물러나기만 한다. 발을 잘못 들여놓았다간 한쪽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매도되기 때문이다. 자연적 조정, 절충의 기능은 약화되고 대립, 충돌이라는 사회적 비용만 커진다. 여기에 더해 우리 사회는 유교적 전통에 따라 실리보다는 대의명분을 선호한다. 충성, 절개, 지조 등에는 우호적이고 온정적이지만 대화, 협상, 타협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하지만 수많은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첨단사회에서 대의명분에만 집착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정치·경제적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국제관계에서는 서로 이해를 조정하고 절충하고 양보하는 성숙한 실리문화가 무기처럼 장착돼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양극단에 서서 상대편 보고 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서로 한발짝 내딛고 상대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해하고 포용하고 양보하고 승복해야 한다. 몽골어로 ‘솔롱고’는 무지개를 뜻한다. 몽골에선 우리나라를 ‘솔롱고스’, 즉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는 흑백의 무채색 사회이다. 흑백이 서로 섞여야 여러 가지 유채색이 나오고 유채색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온다. 생물학적으로도 잡종이 순종보다 훨씬 아름답고 강하지 않은가. stslim@seoul.co.kr
  • [사회갈등 현황과 해법] 서울대 교수 5人에게 길을 묻다

    ‘정책’ ‘계층’ ‘지역’ ‘세대’ ‘이념’ 등 한국사회를 갈라 놓은 다섯 가지 갈등 요인의 해법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손댈 수도 없을 만큼 얽힌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정책 결정권자는 어떤 시각으로 갈등에 접근하고, 국민들은 어떻게 이에 참여해야 할까. 서울대 교수 5인에게 갈등 해소 방법을 물었다. 교수들은 “갈등이 서로 연관돼 있으며, 결국 빈부격차 해소와 복지가 처음이자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입을 모았다. ■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 갈등의 핵심은 경제적 갈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과 지방의 갈등, 세대 갈등 등은 결국 경제적인 문제로 귀결된다.”면서 “정부가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갈등을 푸는 열쇠”라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이제까지는 보이지 않는 손이 사회적 부의 분배를 적절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실제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부의 재분배가 이뤄진 측면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이런 법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역갈등에 대해서도 “서울과 지방 간의 격차가 핵심”이라며 “서울에 편중된 경제력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지방의 소외감, 박탈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정치적인 논의보다 우리 삶과 직결된 논의가 사회적으로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과거에는 어떤 정치체제냐가 주요한 선거 이슈였다면 최근에는 실질적으로 우리가 어떤 것을 누리고 어떤 것이 필요하냐가 중요해졌다.”면서 “지난번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에도 복지강화라는 우리 사회의 방향성에 대해 어느 정도 토론이 이뤄졌고, 또 선거과정에서 합의가 이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사회적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만큼 정치권 등도 이에 대한 논의를 확대하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사회적 갈등을 덮어 두려고 하지 말고 계속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토론과 논쟁을 두려워하는 문화가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면서 “모든 갈등을 공론의 장에 내놓고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역 갈등에 대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상당 부분 해소된 상태”라며 “젊은 층일수록 출신 지역에 기반한 정체성보다 개인의 이익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사람들의 지역 간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지역 정체성이 희석되는 데다 계층, 세대 갈등이라는 새로운 갈등 요소가 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선거철만 되면 여전히 지역 표밭만 믿고 유권자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에 소홀하다.”면서 “지역 갈등이 정치에 미치는 악영향은 여전하다.”고 우려했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도 지역 갈등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선거전략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지역 갈등 해소를 내걸고 지역별로 분배정책을 내세우는 정당이 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 교수는 그러면서 “지역별 나눠 먹기식 정책은 지역갈등 해소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한 교수는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돼 호남 지역의 인물을 발탁하고, 호남 지역에 분배를 확대하는 등의 정책을 내세우면 영남 지역의 반대를 불러일으켜 오히려 지역갈등을 더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교수는 지역 갈등이 약화되는 사회적 변화에 정치권이 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면서 기존의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 중심 정치보다 인물 중심 정치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안철수 열풍’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이제 새롭고 참신한 인물을 원한다.”면서 “지역적 정체성에서 벗어난 젊은 세대들이 공감하고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인물을 발탁하고 키운다면 자연스럽게 지역감정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장덕진(45)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 갈등의 해법으로 ‘복지’를 꼽았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이 나눠가질 수 있는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지속돼 온 성장 위주 정책은 ‘분배 없는 성장’으로 이어졌고, 결국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줄여 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기성세대들이 가진 사회적 자원을 나눠 가지려는 젊은 세대의 분노가 커졌고, 기성세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착취하는 형태의 갈등을 발생시켰다.”고 분석했다. 지난 한해 이러한 갈등의 양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것이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에서 나타났던 청년층의 투표 참여라고 장 교수는 지적했다. 장 교수는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세대 차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내다봤다. 장 교수는 “젊은 세대는 그들이 처한 취업난과 ‘살인등록금’ 등의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스스로 세력화해 돌파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면서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앞으로도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복지 확대를 통해 청년들의 일자리나 주거, 등록금 등의 문제를 해결할 때 세대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복지 지출을 늘리는 것은 젊은 세대에게 분배를 통해 기회를 더 준다는 것인데, 그동안 복지에 소홀히 한 것이 젊은 세대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음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10년 후 뭘 먹고 살까’를 고민하며 성장에만 매몰되면 결코 현존하는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고 그는 역설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나 집단이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사회든 이념 갈등을 피할 수는 없다.”면서 “문제는 극좌와 극우의 목소리가 너무 높은 탓에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한 탓에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의식이 남아 있는 것 같다.”면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극단적인 우파와 극단적인 좌파만 존재하고 나머지는 다 회색분자로 취급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또 “대부분의 시민들은 극좌도 극우도 아닌 중간지대에서 생각하고 사고한다.”면서 “결국 우리 사회 이념 갈등의 문제는 이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유럽의 경우에도 이념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게 나타나지만 대부분 중간에서 수렴되는 양상”이라며 “우리 사회도 서로 논의를 통해 의견이 수렴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데올로기가 아닌 이념으로 정책이나 사안을 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념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아이디어로 작용할 수 있지만 이데올로기는 정치적인 목적을 지니고 또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을 밖에서 들여온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SNS 등 새로운 매체와 소통 방법의 등장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넓게 펼쳐진 이념의 스펙트럼을 모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인터넷이나 SNS의 등장으로 말하지 않던 다수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고 본다.”면서 “양극단의 목소리만 들리던 우리 사회에 새로운 목소리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김완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김완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양극화의 해법으로 복지 시스템의 강화와 노동 유연성 강화를 통한 정규직 일자리 창출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성장이 곧 일자리로 이어지는 공식이 깨진 것이 현재 경제 양극화의 주요 원인”이라면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노동 유연성을 강화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정보기술(IT) 분야가 발전하면서 대기업의 성장은 지속되고 있지만 이것이 과거처럼 중소기업과 서민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이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새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 유연성을 강화하는 대신 단기간 실업 상태에 빠진 근로자들이 사회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막을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복지 강화와 함께 사회적 서비스 부분도 발전시켜 이곳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기업이 돈을 벌고 이 돈을 사회에서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어 간접세의 비중을 줄이고 직접세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조세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부가가치세 등 부자와 서민이 똑같이 내는 세금을 줄이고 대신 버는 만큼 세금을 내는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일단 세율 조정과 노동 유연성 강화,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해 기업이 내놓을 것과 정부가 할 일, 노동계가 감수할 부분에 대해 토론의 장이 마련돼야 하지만 현재 서로 불신이 큰 탓에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동양 지배하는 ‘禮’ 어떻게 이해할까

    예로부터 이 땅이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린 데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중국이 우리를 상대적으로 낮추어 부르는 폄하와 무시의 개념이고 또 하나는 수준 높은 윤리 예의의 높임이자 존중이다. 요즘이야 이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지만 한 사회를 지탱하는 관계와 질서의 높임으로 빛이 난다면 굳이 외면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예(禮). 사전적 정의를 볼 때 이 말은 사회의 질서를 위해 만들어진 유교적 윤리규범을 겨눈다. 본래 고대 사회에서 복을 염두에 두고 신과 절대자를 섬겼던 일에 기원을 둔다지만 그 개념은 다양하게 외연을 넓혀 가며 사회와 조직의 관계를 에두르는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동양의 사상과 세계를 3000년간 지배했다는 이 예를 지금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박종천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이 낸 ‘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글항아리 펴냄)는 자칫 구시대의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예를 촘촘히 따져 눈길을 끈다. 앞서 말한 대로 기복적 개념의 제사에서 출발해 사회·국가적 조직의 규범 틀이며 개인 관계를 규정짓고 교육으로까지 편입된 예의 점검이다. 저자가 정의한 예의 역사는 책의 부제에서 드러나듯 ‘질서와 억압 사이에 존재하는 삶의 궤적’이다. 적어도 저자의 관점이라면 근본에 보답하는 의례에서 출발한 예의 순기능은 사람끼리의 좋은 관계와 조직·공동체의 원활한 유지며 운영이다. 반면에 규범과 윤리의 틀에 사람과 조직을 가두는 억압은 그 역기능으로 작용한다. 저자가 책에서 일관되게 천착한 예는 역시 순기능과 역기능이 혼합된 기제이다. ‘시(詩)에서 감흥이 일어 예(禮)에서 자립하며 악(樂)에서 완성한다’는 논어의 태백편을 인용한 것도 그런 혼합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를 둘러싼 대립은 오랜 논쟁의 역사를 갖는다. 예를 들어 노자가 예를 상실과 퇴화의 산물로 봤다면 장자는 ‘도를 잃은 뒤에 덕이 있고 덕을 잃은 뒤에 인이 있으며 인을 잃은 뒤에 의가 있고 의를 잃은 뒤에 예가 있다.’며 예를 도의 꽃이요 혼란의 근원이라 여겼다. 그런가 하면 루쉰은 ‘광인일기’를 통해 “예교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비판을 남겼고 순자는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고 했다. 결국 저자는 예에 얽힌 숱한 논쟁을 소개한 끝에 이렇게 매듭짓는다. “우리가 예의 근원을 알고, 그것을 추구한 인간의 사유의 역사를 안다면, 그것이 왜 소통과 억압의 양극단을 왕래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예를 움직이는 주체의 문제이며 동시에 그것을 조절하는 정도의 문제이다. 1만 35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지상좌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29세 청년수령 김정은, 그의 정신세계&리더십

    [지상좌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29세 청년수령 김정은, 그의 정신세계&리더십

    스물일곱 살 청년이 우리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북녘 체제의 뿌리였던 ‘수령’(首領)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북녘 체제의 기둥인 ‘당중앙’이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외모에 아버지의 성정을 닮았다고 한다. 노동신문은 그를 ‘위대한 영도자’라고 칭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 앞에 붙었던 수식어는 이제 그의 것이 됐다. 무려 60여년을 키워 온 권력도 그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남녘에도, 북녘에도 이 ‘27세의 권력’은 낯설다. 과연 김정은은 북한 사회를 영도할 수 있을까. 서울신문은 23일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권준수 서울대 정신과 교수와 통치자들의 리더십을 연구해 온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에게 김정은에 대해 물었다. 두 전문가가 분석한 김정은의 정신세계를 좌담 형식으로 싣는다. →27세 김정은이 정치적 리더십을 갖췄다고 볼 수 있나. -권준수 교수 20대 초가 되면 두뇌의 구조적 성숙은 마무리된다. 27세 정도면 타인에 대한 친밀감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고,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27세가 돼서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이들이 많은 것처럼 정신적 성숙도는 개인 간 차이가 크다. 김정은은 아마도 아버지와 그를 둘러싼 정치적 분위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정치적 리더십을 체득했을 수 있다. 김정은을 평균적인 남성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최진 소장 정치적 리더십 발달과정을 보면 20대 중후반은 ‘정치 입문기’이자 ‘리더십 준비기’다. 협의·조정 능력과 조직 관리 능력이 형성되는 시기다. 질풍노도의 시기로 방향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나이 때 장교가 되고 싶어 만주로 떠났다. 지도자의 자격을 갖추려면 카리스마, 조직 장악력, 판단력, 국정경험이 있어야 한다.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의 후광을 받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외형적 카리스마를 보여 주고 있다. 김정일의 넷째 부인인 김옥이 김정은에게 90도로 머리 숙여 조문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조직 장악력, 판단력, 국정운영능력은 모두 의문투성이다. 중국의 마오쩌둥이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도 젊은 나이에 권좌에 올랐지만, 그들은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 →나이와 리더십은 상관관계가 큰가. -권 교수 나이가 리더의 이미지 형성에 영향을 미치지만, 나이 외에도 교육과 훈련, 사회체제 등 수없이 많은 변수들이 리더십과 관계가 있다. 다만 20대가 지도자가 되려면 여러 세대와 계층이 갖고 있는 ‘20대’라는 인식이 리더십에 대한 의문으로 변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김정은은 어릴 때부터 제왕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행동을 체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젊은 사람들은 충동적인데, 김정은은 심리적 요인에 휘둘리기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의해 계산된 행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최 소장 나이는 단순히 물리적 숫자가 아니라 리더십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앞서 말한 대로 20대는 ‘리더십 준비기’이고, ‘리더십 형성기’인 30대를 거쳐 40대가 돼야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완성하게 된다. 40대가 ‘리더십 완성기’인 것이다. 40대가 돼야 지도자로서 자신감이 형성되고 ‘40대 기수론’처럼 리더로서 ‘깃발’을 세울 수 있다. →김정은은 일찍이 생모를 잃었다. 그의 성장 과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권 교수 김정은이 출생할 때는 퍼스트레이디가 김정남의 친어머니인 성혜림이 아니라 김정은의 친어머니인 고영희였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을 것이다. 고영희는 재일동포 출신이어서 북한 상층부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신분이었고, 1988년부터 유선암으로 고생하다 2004년에 숨졌다. 김정은은 중병을 앓고 있는 재일동포 출신 어머니에게 매우 강하게 집착했을 가능성이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집착에 비례해 심리적 경쟁자인 아버지를 닮아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아버지라는 강력한 존재를 닮는 것이 가장 안전한 상태임을 습득했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의 성격은 김정일과 매우 유사할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는 강하고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유년 혹은 모성에 대한 결핍이 존재할 수 있고, 따라서 그의 사생활은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다. -최 소장 모성애가 결핍된 지도자들은 여성에게 적대감을 갖거나, 극소수 여성에게 빠져드는 양극단의 모습을 보인다. 김정일도 ‘어머니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닮았다는 이유로 여비서와 함께 살았고, 배우 최은희를 납치했다. 더욱이 김정은은 어머니가 한 명이 아니고 여러 명이어서 ‘형제 콤플렉스’를 겪었을 수도 있다. →복잡한 형제 관계도 김정은의 리더십에 영향을 끼칠까. -권 교수 부모 관계뿐만 아나리 형제 관계도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은은 매사에 조용했던 친형 김정철과 달리 경쟁심이 강했다고 한다. 여동생인 김여정이 오빠가 아닌 작은오빠라고 부르자 심하게 화를 냈다고 한다. 김정은이 형에게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 퍼스트레이디가 자신의 친어머니였기 때문에 비록 김정남이 장남이었지만, 이미 권력의 향배는 김정철과 김정은에게 넘어왔을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장자가 세습 구도에서 멀어지면 나머지 아들들의 라이벌 관계가 훨씬 심해진다. 김정철의 성격이 유약했고, 아버지가 김정철에게 뚜렷한 권력승계 의지를 밝히지 않아 김정은은 ‘나에게 기회가 오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경쟁심을 가졌을 것이다. -최 소장 어머니가 여러 명이어서 형제 관계가 복잡하면 형제들 사이에서 서로 중심이 되려는 강한 권력의지가 발동한다. 선의의 경쟁보다는 형제를 제압하고 완벽한 1인자가 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 김정은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만큼 영웅주의와 폐쇄적 신비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폐쇄적 신비주의는 처음에는 사람들을 열광시키지만, 장기화되면 소통 부족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진다. →김정은은 어떤 지도자가 될 것인가. -권 교수 김정은은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북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는 여전히 전쟁을 직접 경험한 군부가 존재하고, 주체사상으로 뭉쳐 있다. 그의 내면에는 서구의 ‘어린아이 시선’과 북한 사회의 ‘성인 시선’이 혼재할 것이다. 이 경우 가장 쉽게 취할 수 있는 방어기제가 바로 ‘분리’(splitting)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는 폐쇄국가의 성격을 유지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서구화된 문명을 향유하는 사생활을 즐길 개연성이 있다. 이 둘을 통합해 사회를 과감하게 변화시키는 길로 나아갈지, 분리된 상태로 놓아둘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최 소장 미국의 정치학자 헤럴드 라스웰(1902~1978)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은은 ‘선동가형’ 리더에 가깝다. 자기 과시욕이 강하고, 극과 극을 오가며, 예측 불가능하지만 변화 지향적이다. 김정일과 비슷한 점이 많다. 영화를 좋아하고, 자동차 광이며, 만능 스포츠맨이다. 선동가형은 기본적으로 속도를 좋아한다. 김정은의 성장과정을 미국의 정치학자 제임스 바버(1930~2004)의 리더십 유형에 대입해 보면 왕성하게 일하면서도 권력욕과 승부욕이 강한 ‘적극(Active)-부정형(Negative)’에 가깝다. 방송 화면을 살펴보면 원로들을 볼 때도 겸손함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의연하고 차분하게 포용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김정은이 ‘청년 리더십’을 보인다면 우리는 ‘아버지 리더십’으로 대응해야 한다. 송수연·이범수기자 songsy@seoul.co.kr ●권준수(52) 서울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의대 방문교수, 서울대 신경정신과 임상교수, 서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부교수,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연구지원실장을 거쳐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학교실)와 의약품심사평가 선진화사업연구단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대한정신분열병학회 이사장과 대한인지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저서 강박증의 통합적 이해(학지사, 2009), 정신분열병 AtoZ(군자출판사, 2003), 뇌와 기억, 그리고 신념의 형성(역)(시그마프레스, 2003), 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올림, 2000) ●최진(51)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희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고려대학교 행정학 연구교수, 미국 남가주대(USC) 초빙교수를 거쳐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다. 참여정부 때는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정책홍보실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주요 저서 대통령리더십 총론(법문사, 2007), 대통령리더십과 국정운영스타일의 심리학적 상관관계(고려대, 2005), 인간 김대중과 새로운 리더십(보림, 2004), 김정일의 정치적 리더십에 관한 연구(고려대, 1995)
  • [최동호 새벽을 열며] 노벨상 시상식에서 바라본 한국

    [최동호 새벽을 열며] 노벨상 시상식에서 바라본 한국

    지난 10일 스톡홀름에서 거행된 노벨상 시상식에 참여했다. 한국 문인으로서는 처음 참여한 이 자리에서 복잡다단하게 뒤엉클어진 한국의 현실을 떠올려 보게 됐다. 먼저 강하게 부딪쳐 온 것은 부의 재분배다. 우선 자신이 축적한 부를 인류문화 발전에 전액 희사한 노벨의 유언을 합리적인 절차와 운영으로 실천한 노벨상이 세계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 됐을 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부의 분배로 스웨덴이 남유럽과 같은 재정 위기를 겪지 않는 복지국가가 됐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부의 양극화 현상이며 이를 완충시켜 줄 중산층의 몰락이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중산층은 점점 몰락해 가고 있으며 자신의 다음 세대도 이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 세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한국 사회의 디지털적인 발전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계층이 느끼는 소외감을 말해 주는 것일 터다. 그로 인한 적대감이 사회 전체에 점증하고 있는데 이를 치유할 복지선진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자원 빈국인 스웨덴이 오늘과 같은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최근 한국 학생들을 가르쳐 본 외국의 석학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한 것은 한국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들 자체가 잠재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진도를 위해 질문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스웨덴의 교육은 기존의 지식을 전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기 위한 질문을 통해 학생들의 지적 성장을 유도한다. 기존의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에 의문을 갖도록 하고 스스로 이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교육의 중심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지식 중심 교육은 일시적으로 빠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창의적 발견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는 데 동적인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스웨덴인들의 정치적 싸움이다. 스웨덴 격언 중에 ‘잘난 척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들도 누가 잘나가는 것을 참고 보지 못하는 질투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과가 나오는 과정에서는 온갖 싸움을 다 걸지만 일단 결과가 나오면 이를 수용하고 협조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정치적인 문제를 막론하고 온갖 문제에서 쉽게 합의하지 못한다. 또 일단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자신과 의견이 다를 경우 이에 불복하고 끝까지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빈발한다. 이는 기득권자들에 대한 소외 집단의 분노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런 분노가 유발하는 행동들은 정의감으로 나타나며, 그것이 때로는 한도를 넘어설 경우에도 너그럽게 통용된다. 어떤 주장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기존 세력의 부당성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호소하느냐가 중요성을 갖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세 가지 요소는 서로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다. 부의 양극화, 질문 없는 지식 교육, 절차적 과정의 정당성 결여 등은 모두 사회질서를 왜곡하고 양극단의 충돌을 심화시키는 요인들이다. 경제적 발전만이 모든 것은 아니다. 사회 발전에 따라 다양한 욕구가 분출하고 이를 충족시켜야 할 필요가 발생한다.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속도주의가 아니라 균형감각을 회복하고 복지 선진화를 위한 속도조절이 요구된다. 정치적 이익만을 위해 복지주의 경쟁을 한다면 한국은 내적 갈등 요인의 심화로 불안정하고 위험한 성장의 엔진을 멈추고 말 것이다. 노벨상은 누가 받고 싶어 외친다고 주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100년 이상 이 상을 주관하면서 세계적 권위를 지켜 온 그들의 신중하고 확고한 자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를 느낀다.
  • 與 가설 ① 박세일 신당설 - 친이 솔깃…중도 영입 관건

    與 가설 ① 박세일 신당설 - 친이 솔깃…중도 영입 관건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추진하는 보수 신당의 ‘영입 1순위’로 한나라당 친이(친이명박)계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친이계가 당 밖에서 불어오는 보수 신당 바람에 솔깃할 수밖에 없는 환경은 이미 조성됐다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절차와 방식이다. 이를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친이계는 이미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과 7월 전당대회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시며 구주류, 비주류로 전락했다. 당내 권력 구도 역시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설 자리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 등 친이계 핵심 인사들이 보수 신당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성 정당에 대한 국민 불신을 ‘보수 대연합’이라는 명분으로 희석시킬 수도 있다. 다만 친이계가 보수 신당의 주축 세력으로 부각될 경우 파괴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보수 진영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은 물론 신당의 간판으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영입론까지 거론되는 이유다. 박세일 이사장이 최근 서울신문을 비롯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극단의 각각 15%를 제외한 중도 70%의 지지를 받는 신당을 만들겠다.”고 밝힌 것도 안 원장 등 중도 인사들을 포섭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친이계 의원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나 이 전 처장 등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결집할 경우 총선·대선 구도에서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수 신당의 1차 목표는 내년 4월 총선이지만 궁극적으로는 12월 대선을 겨냥하고 있다. 신당이 총선에서 존재감을 과시할 경우 보수 진영의 이합집산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우선 신당이 안 원장 영입에 성공할 경우 곧장 대선까지 내달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으로선 안 원장이 이들과 공동 보조를 취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정치판 전체가 요동을 치는 상황에선 연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대로 안 원장 영입에 실패할 경우 친이계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내 ‘반(反)박근혜’ 진영 인사들까지 흡수해 대선에서 독자 후보를 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의 보수 후보 단일화는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이 될 수 있다. 한나라당 내 보수 신당 참여 움직임은 이번 정기국회 최대 쟁점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과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끝나는 대로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친박계 인사들은 보수 신당이 반박(반박근혜) 진영 또는 청와대의 ‘기획 작품’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신당 창당 시나리오 대부분이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견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반박 인사들이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전국 조직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는 얘기도 떠돈다. 이와 관련, 혁신파의 정두언 의원은 최근 “신당의 정책과 인물이 새로운 정당으로 탄생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면서 “어떻게 보면 ‘박근혜 흔들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노무현 정권 키워드는 영남 민주화 세력의 恨”

    “노무현 정권 키워드는 영남 민주화 세력의 恨”

    “노무현 정권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영남 민주화 세력의 한(恨)’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30일 ‘노무현 시대의 명암’이란 부제를 달고 출간한 ‘한국 현대사 산책-2000년대 편’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호남 출신의 진보적 언론학자로 꼽히는 강 교수는 이 책에서 “1961년 박정희 집권 이후 민주화 세력은 늘 영남에선 ‘찬밥’이었다. 반면 호남 민주화 세력은 독재 정권의 모진 탄압은 받았을망정 고향에선 대접받았다. 민주화는 사실상 호남화였다.”면서 “노무현에게 우선적인 건 영남 민주화 세력의 한을 풀고 자신의 고향에서 인정받고 싶은 인정 욕구 충족이었다. 노무현은 그 한풀이에 ‘지역 구도 타파’라는 명분을 동원했다. 노무현은 지역주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나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이어 “노무현이 ‘교묘한 위장술’을 쓴 건 분명하다. 문제는 위장술의 결과다.”라면서 “김영삼은 5, 6공 세력을 지켜줄 것처럼 위장했다가 숙청했고, 김대중은 김종필에게 권력을 줄 것처럼 위장해 DJP 연합으로 집권한 후 오리발을 내밀었다. 노무현도 민주당 죽이기로 처음엔 박수를 받았지만, 손뼉을 오래 치긴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었다. 노무현의 위장술은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주는 대연정으로까지 치달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영남 민주화 세력의 한을 풀기 위해 구사한 3대 이슈는 대북 송금 특검, 민주당 죽이기,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등이었다. 셋째 파격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을 ‘소용돌이 영웅’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2009년 5월 23일 이른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뒷산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서 “죽이기와 살리기의 양극단을 치닫는 한국 사회 특유의 쏠림과 소용돌이가 만들어낸 현상이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은 ‘소용돌이 영웅’이었던 셈이다.”라고 기술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더 높은 사과 따려면 학문간 융합 필요”

    “더 높은 사과 따려면 학문간 융합 필요”

    “동등한 자세로 파트너들을 보지 않는 수직적 구조를 가진 한국의 대기업들은 수평적 비즈니스 모델로 수많은 연합군을 만들어낸 애플의 아이폰이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앞에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융합의 첫 단계는 소프트웨어 업체든 하청업체든 상대방을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쳐다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대기업들, 상대와 동등한 시각 가져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26일 서울 중구 을지로1가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주최로 열린 ‘기초과학연구 포럼’에 기조연사로 나서 “3차원의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개의 눈으로 바라봐야 하고 이것이 바로 융합”이라고 강조했다. 안 원장은 융합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이유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꼽았다. 과거에는 전공이나 학문 분야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봤지만, 이제는 세상과 사회적 문제를 생각하고 이를 풀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안 원장은 “이 때문에 기초학문보다는 응용학문이나 산업현장에서 직접 상업과 연관이 되는 연구가 융합의 핵심분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기 쉬운 사과는 이미 다 땄다.”고도 했다. 또 “좀 더 높은 곳에 있는 사과를 따기 위해서는 전통학문의 접근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면서 “상대방이 사과를 따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서서히 학문 간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 원장은 융합의 아이콘으로 애플의 아이폰을 여러 차례 거론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 마켓플레이스 등 4가지 요소와 이를 묶는 비즈니스 모델로 무장한 아이폰을 국내 대기업들이 손에 쥐는 기계로만 생각하고 ‘좀 더 빠르고, 좀 더 성능 좋고, 좀 더 값싼’ 휴대전화로 대항하다가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는 것이다. ●한국, 수평적 시각·균형감각 배워야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 ‘아웃라이어’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 등 새롭게 조망받고 있는 형태의 석학 역시 융합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안 원장은 “중동지역에 근무하던 기자의 시각으로 월스트리트를 지켜본 프리드먼이나 경영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마케팅을 살펴본 글래드웰은 여러 가지 분야를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라며 “반면 한국에서는 이 같은 사람들은 양쪽 어느 곳에서 속하지 못하며 도태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융합이 한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으로는 ‘수평적 시각’과 ‘균형감각’을 꼽았다. 안 원장은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말을 인용, “진정한 균형감각은 양극단의 정확한 한가운데가 아니라, 양극단을 오고 가면서 두 가지 선택의 장단점을 충분히 파악한 후 최적점을 찾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사설] 일본 대지진 한달… 원전 안전을 생각한다

    일본 도호쿠 지방을 강타한 3·11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한달을 맞았다. 피해가 워낙 커 복구는 아직 시작단계일 뿐이다. 그보다 더 세계인의 눈길을 끈 것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 사고다. 지진 다음 날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에서 수소폭발로 건물 외벽과 지붕이 붕괴된 뒤 3, 4호기도 폭발했다. 이후에도 해결 전망이 안 보여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 방사능 공포를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방사능 위험을 둘러싼 색깔논쟁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일본 국민은 지진 초기에는 남들을 먼저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며, 침착함을 보여 전 세계인으로부터 “인류 정신의 진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반면 일본 정부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채 허둥댔다. 매뉴얼에만 매달려 구호물품 현장 도달이 지연됐고, 방사능 정보 은폐에만 급급하다 초기에 진화하지 못하고 사태를 악화시켰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일본 정부가 통제력을 잃었다는 지적까지 낳았다. 1979년 3월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를 넘어 1986년 4월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버금가는 사태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진으로 인근 도호쿠전력의 오나가와 원전에서도 오염된 냉각수가 일부 유출됐다. 히가시도리 원전도 외부전원이 일시 끊겼고, 롯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시설의 냉각장치도 1시간 정도 가동이 중단됐다. 원전 안전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 원전사태 조사를 위한 전문가 파견을 하루빨리 성사시켜 신속한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방사능 공포를 누그러뜨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최근의 ‘색깔 논쟁’은 당장 멈춰야 한다. 좌파 일각에서 방사능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얄팍한 지식으로 자극하고 부추겨 정권 공격용으로 활용하려는 것은 무책임하다 못해 졸렬한 짓이다. 그렇다고 ‘2008년 광우병사태 때처럼 방사능 괴담을 유포시키는 불순 세력’ 운운하면서 색깔론을 제기한 것 역시 지나치다. 좌·우 양극단의 색깔 논쟁은 방사능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원자력에너지 안전 문제를 재점검하고 보완할 것은 철저히 보완해야 한다. 괴담에 흔들리지 말고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원자력에너지 안전 문제를 진지하게 다잡는 것이 옳은 길이다.
  • [기고] 선(善)의 침묵./지상욱 자유선진당 전 대변인

    [기고] 선(善)의 침묵./지상욱 자유선진당 전 대변인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고가 무겁다. 불어나는 가계 빚더미 앞에 과거는 죽어가고 미래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있다. 중산층이 점점 더 무너져 가고 사회계층이 양극단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가난’ ‘빈곤’ ‘소외’ ‘포기’ ‘자살’이라는 말들이 일상적 사회용어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런 양극화 해결이야말로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이 시대의 정신이고 화두다. 심각한 것은 이 상황이 개선될 기미도 없고, 개선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탐욕에 눈이 먼 기득권층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이기주의와 자기 보신에 사로잡힌 거대자본과 지식인, 그리고 고위공직자는 ‘내려놓음’과 ‘나눔’, ‘긍휼’의 정신을 상실했다. 있다 해도 면피용 생색내기요, 이름 알리기요, 전시적이어서 사랑과 감동이 없다. 올바른 문제해결과 상생의 방안을 제시해야 할 정치인은 자기 성찰의 노력이 없다. 공천과 대권, 지역구의 이익에만 매달려 있다. 정론을 이끌어야 할 언론도 자신의 성향과 구미에 맞는 것에 보도와 편집이 편향돼 보인다. 지금 시민들은 꿈틀거리는 그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 정체가 뭔지 아직은 잘 모를 수 있다. 거대자본과 권력에 줄을 서서 아부하는 지식인들은 우리 사회를 짓누르며 다가오는 그 무엇의 실체와 파괴력을 안다. 그 누구도 해결을 위해 선뜻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무능과 탐욕, 인내의 한계를 넘는 시민들의 불만, 그리고 용기 있는 선비들의 등장과 호소가 일치하는 순간 임계점을 넘어 그 무엇은 빅뱅을 일으키고 말 것이다. 이와 함께 시민들은 이 사회와 역사의 진정한 주인으로 소용돌이를 이끌어 갈 것이다. 과연 보수는 다가올 변혁의 시대를 맞아 눈부신 성공만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보수는 진보와 정면으로 싸우기에는 비겁하고 도망치기에는 너무 뚱뚱하지 않은가? 서민과 중산층에게 포식자(eater)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통합하고 나누는 온전한 미래의 창조자(maker)로 거듭날지를 결단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실종된 정의, 감금된 자유, 그리고 껍데기 평화가 우리 사회에 나뒹굴도록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때를 아끼며 온전한 미래를 위해 맞설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말만 앞세우기보다는 자기부정과 무욕의 결단을 내리는 도덕적 엘리트가 공론과 실천의 최전선으로 나와야 한다. 감세정책으로 회사 청소부들의 과세율이 자신보다 높아짐을 수치스러워한 워런 버핏과 같은 기업가가 감동을 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무엇보다도 가족, 공동체, 종교와 같은 전통적 지혜에 의존하여 정의와 자유를 고취시킨 에드먼드 버크와 같은 지혜와 덕의 신중함이 새롭게 싹터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갈망을 우리는 직시하고 역사를 밀고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을 게을리한다면 역사는 오늘을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라고. 마틴 루서 킹의 이 말이 오싹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 FT “서울G20 환율 주먹싸움 무대될 것”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금융체제 개혁을 논의하려는 한국의 희망과 달리 환율을 둘러싸고 전 세계 주요국들이 주먹싸움을 벌이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넷판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는 “서울의 콘크리트 정글 안에서 한국이 뉴 브레턴우즈 협정(국제 금융체제 개혁) 대신 패싸움을 주재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번 회의에서 각국이 환율 문제로 첨예하게 맞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문은 또 지난주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에서 중국 위안화 절상에 대해 각국이 접점을 찾지 못한 것과 관련, 환율 갈등은 쉽게 조율될 수 있는 단순한 사안이 아니라 근본적인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복잡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율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중국은 세계경제 불균형의 원인을 저평가된 위안화가 아니라 미국의 경상수지 및 재정적자에서 찾고 있는 반면 미국은 아시아의 과도한 저축 때문에 자국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FT는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양극단의 견해차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신흥국들은 위안화 조작이 자국 제조업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하는 동시에 값싼 달러 자본이 몰려드는 상황도 함께 경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中國 ‘반동분자’ 공자를 껴안은 이유는

    中國 ‘반동분자’ 공자를 껴안은 이유는

    문화혁명기 중국의 ‘하방(下放) 운동’ 하면 북한의 아오지 탄광 얘기와 맞물려 부르주아 물이 든 먹물들을 농촌에 보내 시쳇말로 ‘개고생’시키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다른 해석이 나온다. 초기 산업화로 인한 경제적 압력을 농촌사회를 통해 해소한 것으로 보는 긍정적인 평가가 그것이다. 서구 선진국은 경제성장 초기에 발생하는 사회적 압력을 식민지에 전가해 풀었지만, 약 10억명의 인구를 갖춘 농업국가인 데다 외부와의 교역이 원활치 못한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했던 중국으로서는 내부시장, 즉 농촌사회를 통해 해소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성장 따른 불가피한 현상” 최근 나온 반년간지 ‘오늘의 동양사상’ 상반기호는 특집 ‘중국의 사상,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통해 자본주의적 성장을 진행하고 있는 사회주의 중국의 복잡한 내면풍경을 들여다 본다. 키워드는 올해 초 개봉한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다. 사회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유교란 뿌리를 뽑아야 할 낡은 봉건적 폐습이다. 1949년 중국은 이미 공자를 ‘귀족정치를 옹호한 반동분자’로 규정지었다. 잡지에서 박승현 중앙대 교수, 박영미 한양대 강사, 김태용 한양대 교수는 1990년대부터 이어진 중국 내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간의 논쟁을 통해 이 문제를 되돌아 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민주주의가 지지부진한 것은 시장자유의 부족 때문이라고 본다. 반면, 신좌파 이론가들은 이런 신자유주의를 무분별한 서구 추종주의로 보고 거세게 비판한다. ●유교의 현대화 필요성 주장 얼핏 보면 양극단의 주장 같지만 결국 중국 전통, 유교의 현대화를 끌고 들어온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톈안먼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자들은 조금 더 중국적인 자유주의를, 신좌파들은 조금 더 중국적인 좌파를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이 유교자본주의와 마오쩌둥의 복권을 얘기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라고 잡지는 해석한다. 이는 그만큼 성장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이기도 하거니와 강력한 국가 주도 성장과정에서 지식인들이 국가를 직접 비판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체제유지에 도움이 되는 범위내에서…이런 딜레마가 드러난 곳이 바로 영화‘공자’다. 주광호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영화 속에서 공자와 그의 제자 자로가 말했던 대동(大同)은 인격적 완성을 통해서나 가능한 것”이라며 “중국 정부가 필요로 하는 유가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유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자’의 사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중국이 공자의 부활을 얘기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범위 안일뿐. 문화대혁명 때 하방 운동이 불가피했다면 조금 더 성장한 중국에서 공자의 부활도 불가피한 현상이란 해석이다. 결국 성장이 답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파코와 마법 동화책’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파코와 마법 동화책’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정체불명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어수룩한 환자들과 덜떨어진 의사, 흡혈귀 간호사 등이 등장해 아리송한 말을 늘어놓는다. 그중 파코라는 이름의 소녀에겐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소녀는 딱 하루치의 기억을 안고 산다. 병원 사람 모두가 평생 잊지 못할 이야기는 과연 언제 시작됐을까? 아마도 심술쟁이 노인 오누키가 실수로 파코의 뺨을 때리면서부터일 것이다. 파코가 유독 오누키의 손길을 기억하자, 노인은 동화책을 끼고 사는 소녀를 위해 한 편의 연극을 준비한다. 만화의 냄새를 풍기는 일본영화는 이제 흔하디흔한 구경거리다. 근래의 예로 ‘우리들과 경찰 아저씨의 700일 전쟁’,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구성과 전개 방식에 영화의 전통보다 만화의 상상력에 더 많은 걸 빚진 영화다. 기발한 판타지를 펼치자면 그런 성격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영화의 내러티브가 만화의 컷처럼 뚝뚝 끊길 동안 편하게 스크린을 마주하기란 괴로운 일이다. 감정 흐름도 덩달아 식어버릴 테니까 말이다. 만화 스타일의 일본영화가 다른 나라의 관객층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나카시마 데쓰야의 전작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도 얼핏 같은 유의 영화로 보인다. 두 영화는 종잡을 수 없는 장르와 낯선 인물, 반짝이는 스타일로 관객의 얼을 쏙 뽑아버린다. 그런데 나카시마는 지혜롭게도 하나의 주제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도록 하면서 자기 작품을 차별화할 줄 안다. 여타 영화들이 빈말에 치중하며 길을 잃는 것과 반대로, 나카시마는 기이한 우정극과 신파 드라마를 창조해 관객과 평단의 갈채를 받는 데 성공했다. 2008년 작품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죽음을 넘어선 기억과 믿음의 주제를 다룬다. 나카시마는 이번에도 양극단에 인물을 배치한 다음, 그들 사이의 틈이 서서히 메워지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오누키는 세상이 지긋지긋해 누구도 자기를 기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생명의 빛이 가늘게 깜빡이는 소녀는 어떤 기억도 지니지 못한 채 눈을 감을 운명이다. 극중 연극으로 소개되는 ‘개구리 왕자와 가재마왕’의 원작자인 고토 히로히토는 ‘기억 속에 살아남는 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했다. 눈을 감는 순간 소녀가 노인을 기억할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노인이 실낱 같은 믿음 하나로 성실하게 일을 벌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그걸로 족하다고 말한다. 어른들이 소녀에게 바친 연극과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나카시마는 더 요란한 영화를 만들고자 기를 쓴다. 그의 거창한 붓놀림에 따라 미술과 의상은 울긋불긋한 색채의 향연에 빠져들고, 일급 배우들은 그치지 않고 장난기에 취하며, 애니메이션과 CG는 스크린 바깥으로 삐져나올 기세다. 현실에 바탕을 둔 판타지와 결말부의 감동은 여전하지만, 나카시마는 너무 욕심을 부렸다. 그래서 그의 영화와 처음 만나는 관객은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까 싶다. 그에 대한 반영인지, 그는 얼마 전 진지하고 어두운 드라마 ‘고백’으로 돌아왔다. 영화평론가
  • [열린세상]정치인의 주술, 유권자의 미신/임성호 경희대 비교정치 교수

    [열린세상]정치인의 주술, 유권자의 미신/임성호 경희대 비교정치 교수

    주술과 미신이 넘치고 있다. 개인의 복을 비는 소박한 차원이 아니다.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정책 사안들, 합리적 판단을 요하는 공적 사안들을 놓고 그런 일이 집단으로 벌어지고 있다. 신문, 방송, 포털사이트는 정치인의 주술적 언행과 일반국민의 미신적 심리를 잘 반영해준다. 정치인과 주술사의 유사함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권력만을 목표로 하는 정치인이라면 공적 사안을 균형 있게 논하기보다는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 한쪽만 과장되게, 그리고 반복해서 외쳐대려 할 것이다. 그래야 자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전의를 북돋울 수 있고, 지지자들의 맹목적 충성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 지지하지 않던 사람들도 자꾸 똑같은 말을 들음으로써 처음엔 반신반의하다가 차츰 믿게 되거나, 최소한 경쟁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안을 합리적, 균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극단적, 일방적으로 마구 재단하며 유권자를 선동하고 심지어 공포심마저 일으키려 한다는 데서 권력지상주의에 빠진 정치인은 주술사를 연상케 한다. 미국산 쇠고기, 4대강 사업 등을 둘러싼 찬반 진영의 일방적 주장과 공포심 조장이 큰 우려를 자아내더니, 천안함 사태에 와서 그 심각함은 극에 달하고 있다. 가장 객관적인 근거에서 가장 냉철하고 이성적인 자세로 다루어야 할 국가안보 사안에서마저 주관적 소망사항을 사실인 양 주술 부리듯 외워대는 정치인이 많다. 권력을 위해 무조건 상대방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 내 편에 대한 찬성을 위한 찬성을 하는 정치인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미국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 정치인들 간 관계는 그러한 일방적, 편파적, 과장적 성격을 띤다. 집단주의적 양극화로 인한 대립은 근래 미국정치의 고질병이다. 정치인들의 주술사적 행태가 꼭 오늘의 문제만도 아닐 것이다. 과거엔 더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동서고금의 문제가 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특히 심각한 대립과 교착이라는 병폐를 낳고 있을까? 우선 시민사회와 소위 지식인이 정치인의 주술 효과를 완화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더 증폭시키고 있다는 데서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정치인은 권력 유지나 획득을 위해 중용적 교양과 양식을 버리고 양극단의 주술에 매달린다 해도, 시민사회와 지식인 그룹이 흔들리지 않고 중간에서 완충 역할을 하고 균형 잡힌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사회 전체가 그리 심한 갈등과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시민단체 활동가, 교육자, 언론인 중엔 중용, 균형, 합리성, 성찰을 덕목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도리어 한쪽 편의 주장만 맹신·고수·실행하는 것을 ‘행동하는 지성’으로 오해해 일방적 주술 정치에 한몫 끼곤 한다. 상당수 종교인도 온유와 자비가 아닌 독단과 증오를 퍼뜨리는 데 몰두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이처럼 이념의 틀에 사로잡혀 건전한 균형적 중간지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정치인들의 극단적 주술행위에 제동이 걸릴 수 있겠는가. 근원적 책임은 국민 스스로에 있다. 미신으로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이 많을수록 주술사가 번성한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다. 상식과 너무도 동떨어진 괴담, 음모론에도 솔깃해 하는 국민이 많다면 양극단의 정치인은 신이 나서 일방적 과장을 떨고 남에 대한 왜곡과 증오심을 국민에게 더욱 퍼뜨리려 들게 된다. 미신적 심리에 빠진 유권자 스스로 정치인을 주술사, 사이비 교주로 만들고 일부 시민활동가, 교육자, 언론인, 종교인을 종범(從犯)으로 전락시킨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변화가 빨라질수록 국민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막연한 불안감과 불신감에 시달리기 쉽다. 그럴수록 비상식적 미신에 매달려 심리적 위안을 찾으려 든다. 오늘날 정치의 주술화를 가속시키고 있는 우리 유권자의 모습이 이렇다면, 정치권을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도 중용적 교양, 이성적 양식, 반성적 성찰을 향해 변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권력만 생각하거나 이념을 파는 사람들이야 주술로 먹고 살지만 국민은 미신으로 헛된 몽상 외에 무슨 득을 얻겠는가.
  • 식민지 시대 ‘뷔페식’으로 이해하기

    식민지 시대 ‘뷔페식’으로 이해하기

    17개 역사관련 학술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28~29일 고려대에서 열리는 ‘전국역사학대회’는 뷔페다. ‘식민주의와 식민 책임’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관점이 한꺼번에 노출된다. 식민지근대화론 논란을 불렀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글을 실었던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서양 식민주의의 유산’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최근 국내에 도입된 식민주의에 대한 수정주의적 해석을 소개한다.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착취했다는 기존 논의에 대해 수정주의는 제국주의 국가들 간 거래가 식민지와의 거래보다 더 많았고, 문명개화의 사명을 중시했기 때문에 식민지배가 그리 가혹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식민지배 칭송은 아니다. 박 교수는 “탈식민 사회의 성장이나 실패가 식민지 경험 때문이라는 것은 도식화에 불과하고 역사적 진실은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주장한다. 함동주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발표문 ‘일본형 식민주의의 형성과 구조’를 통해 박 교수의 주장을 반박한다. 일본을 식민지 자율성을 허용하는 자치주의 모델을 택한 영국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이 식민지배한 곳 가운데 조선 총독부가 제일 강력했다는 데 주목했다. 1919년 3·1운동 뒤 일본 내부에서도 영국의 자치주의적 모델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모두 거부됐다. 영국은 영국, 일본은 일본이란 얘기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대한 반박으로 2006년 출간된 ‘근대를 다시 읽는다’(식민지근대성론)를 겨냥한다. ‘근대를’은 식민지근대화론이 결과론적 성장만 강조한다면서 근대성 자체가 성장과 수탈, 문명화와 개발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식민지 이중사회론’을 꺼내든다. 민족적·계급적 갈등 같은 근대적 갈등이 식민지적 상황 아래 더 커졌다는 점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다. ‘식민지근대성’에서 방점은 식민지에 찍혀야 한다는 얘기다.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 교수는 조금 다른 차원의 주장을 내놓는다. 식민지 경험이 후대 발전에 도움이 됐느냐 되지 않았느냐를 따지는 기존 논쟁은 별 의미 없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시장과 기업을 뒷받침하는 국가의 역할이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민주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주화의 기초는 당연히 국가주권이다. 식민지배가 아무리 훌륭했어도,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으면서도 경제 성장보다 정치적 자유를 인간다운 삶의 첫째 조건으로 꼽은 아마르티아 센의 주장과 비슷하다. 역사학대회에서는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병합무효 선언 등이 담긴 공동성명서도 채택할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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