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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델라 대통령 새달 방한/6일/김 대통령과 정상회담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 초청으로 오는 7월6일부터 사흘간 우리나라를 방문한다고 윤여전 청와대 대변인이 10일 발표했다. 국빈으로 방한하는 만델라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민주화투쟁과 개혁문제등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양국간 우호증진방안에 대해서도 폭넓게 협의 할 예정이다. 윤 대변인은 『만델라 대통령의 방한은 지난 92년 수교이래 남아공 국가원수로서는 첫 방문이며,이를 계기로 양국간 실질협력이 증진되고 우리의 대아프리카지역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윤 대변인은 『투옥을 당하는등 27년에 걸친 험난한 투쟁 끝에 3백42년간 지속돼온 인종차별을 종식 시킴으로써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이 된 만델라 대통령과 40여년의 정치역정을 한국의 민주발전에 헌신해온 김 대통령의 만남은 민주주의를 향한 세계 지도자들의 역사적 만남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역사도 수치도 모르는 와타나베/일본 아사히신문 사설

    ◎「조잡한 발언」으로 한일 우호 해쳐 슬프다 자민당 실력자의 인식수준이 이 정도라면 과거를 반성하는 국회결의를 논할 계제가 못된다.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의 발언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그의 발언을 요약하면 일본은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지만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히 맺어진 국제조약이므로 법률적으로 식민지배가 아니며 전후 50년 국회결의에 「식민지」와 「침략」이란 문구는 필요없다는 것. 여기엔 초보적인 오류가 있다.한일합방은 한 나라가 독립을 잃고 이웃나라에 의해 정치·경제·군사·문화적으로 지배당한 역사적 사실이다.이러한 상태를 통상 「식민지」라고 부른다. 합방조약이 원만히 맺어졌다는 주장도 비상식적이다.일본은 1895년 민비를 살해,한국지배권 확립을 노렸다.합방까지는 몇단계를 거쳤지만 가장 악명높은 것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다.조약체결을 거부한 대한제국 황제에게 이토 히로부미는 『거부하면 더 곤란한 불이익을 각오해야 한다』고 협박했다.일본군의 감시 아래 열린 각의에서 이토는 황제의 조인이 없는 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다.합방 과정은 「원만」과는 거리가 멀다.와타나베가 이런 경위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원래 함부로 말하는 정치가로서 이번에도 「원만」이란 표현만은 나중에 취소했지만 외상까지 지낸 사람의 발언치고는 조잡하다. 한·일 국교정상화 기본조약이 조인된지 이달 22일로 만 30년이 된다.걸핏하면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일본인의 의식도 점차 변해 최근에는 피해자의 기분을 헤아리는 겸손과 여유도 생겨나고 있다. 93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당시 총리의 발언은 그런 추세를 상징했다.한국으로부터도 『과거보다 미래를 지향하자』는 말이 자주 들려오게 됐다.그로부터 2년도 못돼 정치가들의 문제 발언과 국회결의 반대로 인해,잘 진행되던 양국간 우호기운이 엉망이 됐으니 슬프고 분하다. 아시아와의 우호를 진지하게 고려해 역사를 정확히 바라보는 능력을 갖추지못한 정치가가 아직까지 활개치고 있다.이게 바로 전후 50년을 맞는 일본의 부각된 모습이다.
  • 와타나베 전일 외상 만언을 듣고/신희석(기고)

    ◎일 신보수주의의 한심한 역사왜곡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일본외상이 일본에 의한 한반도 강점의 근거가 되었던 한·일합방조약은 평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체결되었다고 발언하여 또 다시 물의를 빚고 있다.파문이 커지자 「평화적」이라는 발언을 취소하고 사죄의 뜻을 표명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의 발언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역대 일본의 총리나 각료,국회의원등 지도급 인사들은 한·일 국교 정상화 전후를 비롯해 최근에 이르기까지 간헐적으로 이런 발언을 되풀이해 왔다. 그들의 발언양상은 마치 휴화산과도 같다.조용해질까 하면 또 다시 우리를 슬프게 하는 발언을 되풀이함으로써 한·일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한·일 우호협력관계의 중요성,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견지에서 한·일관계를 가일층 발전시켜나가야 할 시점임을 감안할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와타나베전외상의 발언은 세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시기적 문제점이다.일본정부가 전후청산을 위해 노력해왔고 일본국회가 중·참 양원에서 부전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같은 발언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그런 의미에서 한국정부가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일본에 의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이에 강력히 대처하기로 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하겠다. 전후 50주년을 맞이해 부전·사죄결의를 하자는 일본 연립정권의 노력이 진행되는 시기에 이런 도발성 발언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하겠다.더구나 일본과 북한의 수교교섭 재개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발언의 진의를 의심하게 한다.왜냐 하면 일본의 경제협력과 자본,기술,그리고 쌀을 필요로 하는 북한의 입장으로서는 시기적으로 와타나베 발언에 강력 대응하기에는 불리한 입장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둘째,발언내용의 문제다.일본은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으나 「식민지 지배」를 한 적이 없다니 도대체 와타나베전외상의 역사인식과 양식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일본의 보수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애국주의적인 감상주의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뿐만 아니라 최근 일본 국내에 신보수주의 내지는 신민족주의 사조가 있음을 알고 있다.하지만 이같은 일본 국내의 사상사적 흐름과 배경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와타나베 발언은 한·일관계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매우 한심한 노릇이다.한·일합방은 전전의 일본이 제국주의 대륙침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책략으로 이루어진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강화도수호조규 을사보호조약등의 불평등조약 역시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상까지 지낸 일본의 지도급 정치인이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경솔한 발언을 한 것은 당연히 규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다케시타,가이후,호소카와등 역대 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일본의 기존 자세로부터도 크게 후퇴하고 있다.이같은 여건 속에 미래지향적으로 한·일 우호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셋째,상황적으로도 적당하지 못하다.와타나베전외상이 도치기현 자민당지구대회라는 공식 장소를 빌려서 이런 발언을 경솔하게 한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소양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향후 일본 수상을 바라고 있는 지도자가 이같은 상황 판단을 한다면 대국 일본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라고 한다.아·태 협력시대에 제일 중요한 동반자는 한·일 양국이다.이같은 상황 속에서 일본 지도급 인사의 경솔한 발언은 우리를 다시 슬프게 하고 있다.우리는 두 민족 모두를 위해 오로지 평화스러운 한·일관계를 바라고 있을 따름이다.
  • 모­김 북경 비밀회담(모스크바 새 증언:7)

    ◎모택동,김일성에 남침 세부작전 일일이 지도/모택동/“평화통일 불가능… 무력침공 밖에 없다”/미 개입땐 중국 지원병력 파병 재확인 □모 충고사항 장병에 구체적 임무 부여 모든 작전 신속하게 전개 대도시는 우회공격 할 것 적의 군사력 파괴에 주력 스탈린이 모택동앞으로 보낸 전문은 스탈린·김일성 두사람이 무력남침을 결행키로 합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소련군총참모부 제8국·전문번호N8600·1950년 5월14일). 『모택동 동지앞.조선동지들과의 회담에서 필리포프 동지와 그의 친구들은 국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조선인들의 통일제의에 동의했음.이와 함께 최종 결정은 중국과 조선동지들이 공동으로 내려야 한다는 데도 합의했음.중국동지들이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최종결정은 새로운 논의가 있을 때까지 미루어야 함.조선동지들이 이번 회담의 상세한 내용을 귀하에게 통보할 것임.­필리포프』 ○스팔린 가명 사용 스탈린은 김일성과 남침계획을 확정지은 뒤 이같이 모택동에게 뒤늦게 통보,그의 체면을 살려 주는 체하면서 개전의공범으로 만들려고 했다.재미있는 것은 남침결정 사실을 문서화한 이 전문에서부터 스탈린은 「필리포프」라는 가명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이후 그는 필리포프외에 「환시」라는 가명도 사용했다. 이보다 이틀전인 5월12일 평양의 슈티코프대사는 본부에 다음과 같은 보고전문을 띄웠다.『5월12일 김일성의 요청으로 그와 박헌영을 면담.김일성은 북경주재 대사 이주연이 김일성의 중국방문을 주재로 모택동·주은래를 만났다고 했음.주은래는 이 방문을 공식방문으로 하자고 주장.반면 모택동은 언제 북조선이 통일작전을 개시할 계획이냐고 묻고는 답도 기다리지 않고,군사작전을 곧바로 시작할 계획이라면 비공식 방문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함. 모택동은 또 평화통일은 불가능하며 무력에 의한 통일밖에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함.미국의 개입가능성에 대해서도 모택동은 미국이 그런 작은 나라에서 3차세계대전을 시작할 리 없기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함.김일성은 이에 덧붙여 이주연대사는 자기와 모택동간의 회담을 논의할 권한이없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그래서 그를 소환해 견책한 뒤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음.5월10일 이주연대사는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 모택동을 만나 정식으로 김일성의 접견승인을 받았다고 함.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5월13일 아침 출발예정임.김일성은 그때까지 자신이 타고 갈 비행기를 준비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음.이에 대해 본인은 비행기는 이미 준비돼 있다고 답했음.김일성은 모택동과의 회담문제를 당중앙위에서 토의하지 않고 김책(정치국원)과만 의논했다고 함』 여기서 엿볼 수 있듯이 김일성은 모택동과의 회담을 추진하면서 스탈린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크게 신경을 썼다.이주연 대사를 소환해 견책한 것도 스탈린을 의식한 쇼였다.모택동과의 회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모택동과의 회담에서 다룰 의제를 다음과 같이 슈티코프 대사에게 통보했다.다음은 슈티코프가 보낸 보고전문의 계속.『김일성은 모택동과 다음의 문제들을 토의할 계획이라고 함. 1,무력통일 의향을 알리고 모스크바 회담 결과를 통보. 2,조만간 북조선과 중국간 무역협정체결과 통일 후 양국간 우호조약체결을 희망.3,중국공산당과 북조선노동당 중앙위간 교류문제.4,북조선 수력발전소 건설,중국거주 조선인문제등 상호관심사 논의』 이와 함께 김일성은 중국거주 조선인군 부대가 갖고 있는 일본제 및 미제 무기에 쓸 탄약공급을 중국측에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총참모장과 이야기를 나눈 뒤 김일성은 이 물건들은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전군이 사용할 3벌 분량의 탄약이 이미 비축돼 있다는 것이었다.김일성은 모스크바 회담에서 이미 필요한 원조는 다 받기로 합의됐기 대문에 실제로 모택동으로부터 원조받을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5월13일 김일성은 박헌영을 대동하고 예정대로 북경으로 날아갔다.도착 당일 저녁늦게 모택동과의 1차회담이 이루어졌다.그리고 주은래는 로신 북경주재 소련대사를 불러 회담결과를 설명했고 로신대사는 이를 곧바로 스탈린에게 보고했다.다음은 로신대사가 보낸 5월13일자 전문. 『1,김일성과 박헌영이 중국에 도착했음.2,조선지도자들은 모택동과의 회담에서 상황이 바뀌어 북조선이 작전을 시작할 수 있다는 필리포프 동지의 지시사항을 설명했음.이 문제는 조선지도자들과 중국,특히 모택동과 의논해야 된다는 필리포프 동지의 지시도 전달됐음.3,조선지도자들은 이틀간 북경체류예정임.…중략…모택동 동지는 이 문제에 관해 필리포프 동지가 직접 설명해주기를 원함.중국동지들은 신속한 답을 원함』 ○개전땐 승리 보장 이튿날인 5월 14일 로신대사는 스탈린·김일성의 모스크바 회담결과에 대해 본국에서 보낸 전문을 받아 모택동에게 전달했다.그리고 로신 대사는 같은 날 모택동의 반응을 본국으로 타전했다.이 전문내용에 의하면 모택동은 신속한 군사적 방법으로 한국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하며 승리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그는 북한지도부가 내린 현 남북한 정세와 남북한 군사력 균형에 대한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모는 또한 통일 뒤 중소조약과 유사한 우호동맹조약 및 상호원조조약을 북조선과 체결할 것을 북조선지도자들에게 제의했다고 밝혔다.물론 이같은 조약체결은 스탈린동지의 의견을 들은 뒤에 추진할 것임도 덧붙였다. 5월15일 2차회담에서 모택동은 김일성·박헌영과 무력남침에 대해 상세한 입장교환을 했다.회담 뒤 로신대사는 양측(주은래·박헌영)으로부터 별도 브리핑을 통해 회담결과를 전해 들었다.회담결과의 대한 양측의 설명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다음 사항은 양측 브리핑내용이 일치한다.김일성이 먼저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합의한 남조선 침공계획을 모에게 설명했다.즉 1단계 준비 및 병력집중배치.2단계 북조선이 수차례 평화통일 공세를 펼칠 것.3단계 남측이 이 평화통일제의를 거부하는 즉시 군사작전 개시.모택동은 이 3단계 작전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모택동은 작전과 관련,몇가지 중요한 충고를 덧붙였다.우선 모든 병사와 지휘관 개개인에게 구체적인 임무를 부여할 것.작전은 신속하게 진행돼야 하며 대도시는 우회할 것.대도시 점령에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됨.작전의 최우선 목표는 적의 군사력을 파괴하는 데 두어야 함.이미 알려진 대로 후일 김일성은 모택동의 이 「귀중한」 충고를 제대로따르지 않아 작전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3단계 계획」 동의 그 다음 모택동은 일본의 개입가능성에 대해 물었고 김일성은 그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답했다.다만 미국이 2만∼3만의 일본군을 파병할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는다고 김일성은 말했다.하지만 그 경우 북조선군은 더욱 열심히 싸울 것이기 때문에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김일성은 자신했다. 주은래가 로신 대사에게 브리핑한 내용에 따르면 이 말을 듣고 모택동은 김일성에게 『일본군의 개입은 전쟁을 장기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진짜 개입위험이 큰 쪽은 일본보다 미국이라고 모택동은 말했다.그러나 김일성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미국은 극동에 군사적 개입의사가 없다』고 미의 개입 가능성을 부정했다.『미국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중국에서 물러 났으며 한국에서도 이같이 신중한 입장을 지킬 것』이라는 주장이었다.후일 전쟁발발 직후인 50년 7월2일에도 주은래는 로신 대사에게 미군의 개입가능성에 대해 같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반면 김일성은 끝내 미국의개입가능성을 과소 평가했다. 박헌영이 로신 대사에게 브리핑한 내용은 주은래의 것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다음은 로신이 본부에 보고한 박헌영의 브리핑부분.『50년 5월16일.박헌영의 발언.모택동은 일본군의 개입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음.미군개입시 중국이 병력을 보내 북조선을 지원하겠음.모택동은 또 소련은 미국과 38도선 분할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전투행위에 참가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했음.반면 중국은 그같은 의무규정에 얽매이지 않아 북조선에 대한 지원을 쉽게 확대할수 있음』 5월15일 저녁 공식일정을 끝낸 김일성 일행을 위해 모택동은 만찬을 베풀었다.만찬시작 전 김일성은 모택동에게 이렇게 말했다.『모택동 동지와의 회담은 매우 순조로웠다.모동지는 해방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했다.모동지는 모스크바에서 있은 스탈린동지와 본인사이의 합의사항을 모두 지지했다』 이튿날 5월16일 스탈린은 모택동앞으로 전문을 보내 통일 뒤 중국·북한간 우호동맹 및 상호원조조약 체결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우여곡절끝에 김일성·스탈린·모택동 3인간 무력남침에 대한 합의는 이렇게 마무리됐다.이제 남은 것은 공격개시의 택일뿐이었다.
  • 미군 범죄(임춘웅 칼럼)

    최근 미군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건 유감스러운 일이다.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녀자가 희롱을 당하고 적지않은 시민들이 술취한 미군병사들에 의해 폭행을당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런일로 국민감정이 심히 불편한 터에 미군대변인이란 사람이 국방부 기자실에 불쑥 나타나 미군이 오히려 희생자라고 주장하고 나섰다.그는 피해를 당했다는 한국인이 치료를 요할만큼 상처를 입었다는 증거가 없고 지하철에서 미군이 성희롱을 한일도 없거니와 미군이 오히려 한국인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항변했다.이 대변인은 더 나아가 『우리는 주한미군이 관련되면 사소한 사건이라도 부정적인 견해로 사건을 확대시키려는 그룹이 있다는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그는 또 『이런 불공정하고 악의에 찬 견해에는 참을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참으로 곤혹스러워지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한국의 신문들이 고의적으로 「악의에 찬」 오보를 하고있는지,미군대변인이 사실을 잘못 알고있는지 알 길이 없게 돼버린 상황이다.둘중의 하나는 잘못돼있는데 사실을 가릴 길이 막연하다.한국에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를 수사할 방도가 한국에 없는 것이다.이런일은 어느쪽이 진실인지 밝히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이런 사소한 일로 한국인의 반미감정을 유발시킬 수도 있고 한국과 미국의 우호관계에 적지않은 상처를 안겨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이유는 간단하다.「한·미행정협정」때문이다.미군범죄자는 미국측의 요구가 있으면 한국은 언제나 피의자를 미국측에 인도해야 된다.미군은 범죄를 저질러도 미군부대로 피신하면 한국의 수사권이 미치지 못하게 돼있다.공무상 일어난 범죄에는 우리정부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한·미행정협정」이 그렇게 돼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협정인 「한·미행정협정」이 개정되지 않으면 시정이 안될 성질의 것들이지만 이번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행정협정상의 규정 이전에 한·미 양국이 나서서 사건의 전말을 공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어느 집단,어느 조직에나 범법자가 있게 마련이다.주한미군도마찬가지일 것이다.4만여명이나 되는 미군에 범죄자가 없을수 없다.통계를 보아도 매년 한국에서 일어나는 미군범죄는 2천여건을 상회하고 있다.대부분이 단순범죄들이다.한국과 미국,국가간의 문제도 아니고 양국간 국가이익이 걸린 문제도 아닌 것이다.그런데 이런 단순범죄들이 「한·미행정협정」으로 해서 국가간의 문제로 확대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이런일들이 행정협정으로 은폐되고 호도되는 것은 사태를 더욱 나쁘게 만들 뿐이다. 이번 문제만이라도 양국은 합동조사반을 구성해서 사태의 진상을 밝혀야 옳다.그렇지 않으면 한·미간에 국민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더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될지도 모른다.
  • 사진 일 국제메세나회의 발표 요지

    ◎“영상미학으로 동방문화 빛내자”/중국의 문화수요 급증… 영화시장 전망밝아 일본기업메세나협회가 창립 5주년 기념으로 22일부터 3일동안 도쿄에서 개최한 국제메세나회의에 10여개국에서 1백여명에 이르는 문화인·기업인이 참석,21세기를 앞둔 보다 효율적인 예술지원의 방향을 탐색했다.다음은 「부용진」 「유천촌의 아들」등 중국영화의 새로운 전개를 상징해온 걸작을 잇달아 발표,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중국 영화감독 셰진의 발표문 요약. 나는 1950년대부터 중국영화와 운명을 함께 해왔다.40여년이 순식간에 흘러갔지만 나는 먼 길을 돌아왔다.승리의 기쁨도 맛보았고 고통의 시기도 있었다.과오도 범했지만 이 모든 것은 예술가로서 귀중한 경험이었다. 나의 영화인생은 문화혁명을 앞뒤로 두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앞단계에서 중국의 인민대중은 나라를 새로 건설하려는 무한한 열정으로 충만했지만 곤란과 곡절·곤혹을 경험하고 있었다.어떤 시대에도 한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는 곤란과 과오를 직시하지 않았다.대중이 싫어하는 허풍·거짓말·공허한 이야기 등으로 「분식」하고 있었다.싸우면 곧 이기고 병사의 옷은 언제나 멋있다고 말하는 등 전쟁을 경솔하게 묘사하고 있었다.사실 이것은 젊은이에게 유해하다.전면성·진실성을 결여해 아름다운 면만 보이려 하는 사회는 병이 침입할 때 저항력을 발휘 못해 무너지고 만다. 중국은 이제 위대한 발전의 시대다.영화예술가에게도 때가 왔다고 말할 수 있다.역사의 격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인간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올해부터 미국의 일부 영화작품이 매상분배방식으로 상영되고 있다.첫시도는 「도망자」라는 작품으로 최초공개에서 1천만위안(원)이상의 매상을 기록했다.중국은 12억의 인구가 있다.60%만 계산해도 관객의 수는 7억2천만명이나 된다.사람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문화적 소비수요도 늘어나고 있다.중국에는 민간경영의 프로덕션도 출현하고 있다. 일본영화도 중국에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었다.중국인민은 일본영화를 통해 일본인의 생활·사상·사회통념을 이해하게 되고 이것이 양국 인민의 경제·문화교류의 발전,전통적 우호관계의 심화에 이바지한 것은 다른 분야 교류에 못지않다.하지만 유감인 것은 최근 일본TV에 방송되는 대부분의 영화는 유럽의 영화라는 점이다. 중국 고대 당나라가 훌륭한 문물을 발전시킨 것은 대외적으로 경제교류를 하는 것과 함께 문화교류를 중시해 동방문명을 선양시켰기 때문이다.이제 우리에게 동방문화를 다시 전세계에 빛나도록 해야 하는 역사적·인류문명적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가. 올해는 영화탄생 1백년되는 해다.5년 뒤에는 새로운 세기를 맞는다.세계경제의 발전은 이미 동쪽으로 옮겨오고 있다.우리 동양은 유구한 역사,풍부한 문화를 갖고 있다.아시아경제의 발흥에 따라 동방문화번영의 서광이 우리의 눈앞에 비추고 있다.평화·발전·교류·번영은 전인류의 공통된 희망이다. 영화는 「쇠상자속의 문화대사」라고 불린다. 일본의 친구와 손을 함께 잡고 아시아영화의 진흥과 동방문화의 선양을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하고 싶은 것이 나의 마음으로부터의 바람이다.
  • 「한·미행협」개정돼야 한다(사설)

    한국과 미국 사이에 아직도 한·미행정협정(주한미군 주둔및 지위에 관한 한·미 행정협정·SOFA) 같은 불공정한 협정이 존재함으로써 한·미 우호에 역기능적 작용을 하고 있음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잇따라 일어난 미군범죄가 그것을 말해준다.문제의 한·미행정협정보완,개정론이 또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66년 체결된 이 협정은 당시만해도 양국관계의 한 진전으로 평가됐었다.그 이전에는 대전협정(50년)과 마이어협정(52년)에 따라 주한미군은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는 냉전적 대결구도가 극에 달하던 한반도상황도 협정내용의 결정에 적지아니 작용했다.이 협정은 91년 1차개정을 거쳤으면서도 불평등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독소조항은 ▲한국의 전속적 재판권을 제한하고 있는 22조2항 ▲한국의 구속수사권을 제한하고 있는 동5항 ▲형집행권을 제한하고 있는 동7항 등이다.이 협정은 미군범죄가 발생해서 한국이 수사권을 행사해도 미국이 신병인도를 요구하면 언제든 넘겨주어야 하는 반주권적 조항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이 91년 개정에서도 이러한 불공정한 협정을 관철할 수 있었던 것은 양국간의 법인식의 차이,한국사법제도를 믿을 수 없다는 명분등을 내세웠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한국의 사법제도 또한 어느 기준에서나 크게 발전했다. 어느 집단에나 단순한 범죄자는 있게 마련이다.이런 단순범죄가 행정협정 같은 불공정한 협정으로 해서 부당하게 비호되고 그것이 한국인의 반미감정을 유발하는 사태는 양국에 다같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우리정부가 이 협정의 개정작업을 서두르고 이양호국방장관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이번 미군범죄사건과 관련,항의서한을 보낸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차제에 양국정부는 기본적으로 불평등협정인 이 협정을 상호주의와 호혜평등의 원칙에 따라 과감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그것이 양국관계의 앞날을 위한 최선의 길임을 아울러 강조해둔다.
  • 호 키팅 총리와 통화/경협강화 방안 논의

    김영삼 대통령은 23일 상오 호주의 폴 키팅 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두 나라의 우호협력강화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등 역내 경제협력 강화방안을 비롯한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김 대통령은 키팅 총리가 일본방문을 앞두고 캔버라에서 걸어온 전화를 받고 한·호 두나라 관계에 만족을 표시하면서 앞으로 양국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고 말했다고 박진청와대공보비서관이 전했다.
  • 한국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사설)

    그라초프 러시아국방장관이 한국을 다녀갔다.북한군을 만들고 보호해온 옛 소련군의 후예인 러시아군 최고책임자의 첫 방한이었다.이미 민주화된 러시아의 군최고 책임자지만 그의 방한은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큰 것이었으나 그는 군사교류·협력등 그보다 더중요한 합의와 약속들을 하고 갔다.한·러관계의 새로운 발전과 긴밀화를 예고하는 내용들로 환영할 일이다. 양국국방장관 회담등을 통해 이루어진 합의와 약속들 가운데 우리가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조소우호협력및 상호원조조약상의 자동군사개입조항 삭제」의 대목이다.92년 옐친대통령 방한 때의 사문화선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그동안 북의 남침 경우는 효력이 없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효력이 있다는등 애매한 유보태도로 우리의 국민적 거부감을 자극해왔다. 주로 러시아군부의 거부태도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것을 러시아군부의 최고책임자인 국방장관이 「현실성없는 낡아빠진 조항이며 그 사실을 오는8월까지 북한에 전달할 것」이라고 다짐한 것이다.냉전종식과 러시아민주화에 비추어 문제조항은 당연히 삭제돼야 한다.그것은 한·러관계의 순조로운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중요한 장애요인의 하나였다.그라초프국방의 다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지 주시할 것이다. 그라초프국방은 정전체제준수및 북핵개발저지등 적극적인 대한지지입장을 밝히는 한편 여러가지 중요한 합의도 남겼다.「군사기밀보호협정」과 「96,97년 군사교류양해각서」서명에 이은 「방산군수협력양해각서」가서명등은 양국군사협력관계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진전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민주러시아가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유도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및 민주평화통일에 기여하는 방향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한반도정책을 추구해주도록 촉구한다.자동개입조항 삭제및 북한에대한 일방적인 무기및 군사장비 판매자제등을 요구하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임을 강조해 둔다.
  • 러,정전체제 지지/「한·소 군사개입」8월 삭제/한·러 국방회담

    방한중인 러시아의 파벨 그라초프 국방장관은 19일 유사시 북한에 러시아군을 자동지원하는 내용의 「조·소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의 「자동군사개입」조항을 삭제할 방침임을 확인했다. 이날 이양호 국방장관과 한·러국방장관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그라초프 장관은 자동개입조항과 관련,『낡은 조항으로 현실에 부합치 않아 8월까지 입장을 정리,북한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의 정전체제 무력화 기도와 관련,『한반도 평화를 위해 현행 정전체제의 유지및 준수와 남북직접대화가 중요하다』고 밝혀 한국의 정전체제 유지 입장을 지지했다. 한·러 양국은 이와 함께 군사협력 증진을 위해 양국 군고위층의 상호방문을 내용으로 하는 「96∼97 군사교류 양해각서」와 군사정보의 상호교환을 내용으로 하는 「군사비밀보호협정」에 서명했다. 「군사비밀보호협정」은 정보관계자 상호방문,제3국 정보제공금지 등을 명시하고 있어 남북간 군사긴장 상황과 관련,주목된다. 러시아측은이밖에 지난 91년 약속한 30억달러 대러시아 경협차관 가운데 미집행분 15억3천만달러에 대해 조속한 집행을 요청하고 러시아무기 및 방산물자 구매확대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라초프 장관은 이날 하오 국방부에 도착,국방부 동쪽광장에서 의장행사를 마친뒤 회담에 들어갔다. 한편 알렉산드르 파노프 러시아 외무차관(아태담당)과 이시영 외무차관간의 양국 외무차관회담에서도 두 나라는 한반도에 새 평화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현재의 정전체제가 유지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러시아측은 특히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나라의 노력을 평가하고 한국의 96­97년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입후보를 적극 지지했으며 이를 계기로 두 나라는 아·태지역과 국제무대에서 경제·안보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 한·러 군사협력 구체화 큰 진전/양국 국방장관회담 안팎

    ◎“한반도 비핵화 미·중과 보증 설수도/「한·소 조약」재검토… 곧 북에 결과 통보”/그라초프 19일 한·러시아 국방장관회담에서 러시아측은 몇가지 현안에서 우리의 구미에 맞는 성의표시를 했다.북한과의 「우호협력및 상호원조조약」에서 「자동군사개입」조항을 삭제할 방침임을 밝혔다.또 북한이 무력화시키려는 한반도정전체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입장을 지지했다.한·러간의 전반적인 관계증진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기대이상의 성과라는 것이 우리측 관계자들의 평가다. 한국군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양호 국방장관과 이날 방한한 그라초프 국방장관의 회담내용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한·미 연례안보회의(SCM)이상으로 이번 회담에 신경을 썼다』고 회담에 나서는 자세를 전했다.러시아도 이같은 우리의 자세에 맞춰 군사부문협력강화는 물론 한반도전쟁억지와 관련한 우리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펼치는 등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에 대해 『러시아는 이번 회담을 통해 지난 90년 한·러수교 이후 「얻고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점검하는 한편 한국과의 관계를 확대하기 위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러시아는 이번 방한을 통해 한국과의 관계를 재평가하고 관계개선을 위해 필요한 부문을 확인,보완하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측은 우선 러시아가 「유사시 북한에의 러시아군 자동개입조항」 삭제에 대해 자국내에서 실무차원의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밝히면서 긍정적 입장을 보인 데 대해 주목하고 있다. 당초 러시아는 지난해 김영삼 대통령의 러시아방문 당시 「삭제」를 약속한 사실을 우리측이 지적하며 문제조항의 폐기를 주장하자 『정치적 발언』이라고 응답하면서 『북한이 남침할 경우 개입하지 않지만 북침시에는 개입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막상 이날 회담에서는 『낡아빠진 조항으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올 8월까지 러시아정부가 실무차원에서 논의,결과를 북한에 통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러 조약」은 61년 체결돼 5년마다 경신,오는 96년9월 시한이 만료되며 조약개정논의는 올해 9월이전 시작돼야 한다. 또한 이번 회담은 당면현안인 정전체제 유지문제를 비롯,북한 경수로 관련사항에 대해서도 한·러 양국의 의견이 대체적으로 같음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러시아는 정전체제와 관련,『남북직접대화가 중요하며 믿음직한 평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53년 체결된 정전체제의 유지와 확실한 협정준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핵문제에 대해서는 『91년 한국이 밝힌 한반도비핵화선언을 절대 지지하고 필요하다면 남북간의 비핵화를 위해 러시아를 비롯해 미국·중국등 3국이 보증을 제공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우리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회담은 이같이 한반도정세와 관련해 의견을 같이 한 것과 함께 군사적 부문에서 크게 진전을 이뤘다. 한·러 양국은 「94∼95 군사교류양해각서」를 체결,양국 군고위층 상호방문을 지속시켜나갈 것을 재확인했다.특히 「군사비밀보호협정」에 서명,서로 정보를 제공하고 이 정보를 제3국에 유출시키지 않기로 하는등 확실한 보안장치까지 마련한 것은 남북간의 군사긴장상황과 관련해 주목되고 있다. 러시아는 우리측의 러시아제 무기구매 등에 깊은 관심을 표명,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 불·독 정상 유럽통합 논의/시라크·콜 첫회담/양국협력 강화 다짐

    【스트라스부르(프랑스) AP 로이터 연합】 자크 시라크 프랑스 신임대통령은 18일 취임후 첫 외교활동으로 헬무트 콜 독일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유럽연합(EU)의 중심에서 양국 협력관계를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모두 보수파인 시라크 대통령과 콜 총리는 이날 유럽의회가 소재한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시에서 실업,통화,EU통합속도 등에 대해 논의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1시간30분동안 진행된 회담이 끝난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불·독우호관계는 전통이며 그 전통은 스스로 강화되고 앞으로도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콜 총리는 프랑스의 정권교체에 있어 『아무런 문제나 위험이 없음을 안다』고 강조했다. 특히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화를 평가절하할 것이라는 르 몽드지의 보도를 부인하면서 프랑스는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따른 유럽통합의 기준에 부합하는 통화정책을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날 환율시장을 강타,프랑화의 폭락을 야기한 르 몽드지의 보도가 『터무니없고 근거도 전혀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시라크대통령은 통화정책과 관련,양국정상이 모두 『마스트리히트조약 틀안에서 EU가 행한 약속들이 실행되길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콜 총리도 『시라크대통령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화답했다.
  • 한­러 안보협력·교류 확대/그라초프 국방 오늘 내한

    ◎북핵·정전체제 논의 국방부는 파벨 그라초프 러시아 국방장관(대장)이 이양호 국방장관의 초청으로 19일부터 21일까지 한국을 첫 공식방문,북한핵문제와 정전체제 등 한반도 안보상황과 방산협력 등 주요현안을 논의한다고 18일 발표했다. 한국측은 이번 한·러 국방장관회담에서 최근 한반도 안보상황과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우리측 입장을 전달하면서 북한 경수로 공급 주체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러시아의 가입을 권유하는 등 러시아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할 계획이다. 또 러시아측은 지난해 제의한 다자간안보협약의 추진 문제와 한·러간 방산협력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은 특히 92년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방한기간중 『사문화된 것』이라고 선언했던 「조·소(북한·러시아)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의 「자동군사개입조항」을 삭제하는 문제도 이번에 심도있게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 “한반도 비핵화 실현 공조”/「무역·교육협력증진」10개항 발표

    ◎한국·카자흐스탄 정상 회담 김영삼 대통령과 카자흐스탄공화국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16일 상오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해 공동 노력키로 합의 했다. 김 대통령과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우리와 카자흐스탄 양국의 핵비확산정책이 지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평화를 증진시킬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두 정상은 또 양국간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2중 과세방지협정,투자보장협정 등 제반협정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또 카자흐스탄의 제철·정유·전자 및 지하자원개발분야에 대해 한국기업의 경영투자를 적극 유도하고 지원한다는데 견해를 함께 했다. 두 정상은 이날 회담이 끝난뒤 10개항으로 된 공동발표문을 통해 『양국간 기존우호관계를 강화하고 무역·투자·문화및 교육교류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 했다. 특히 김 대통령은 회담에서 카자흐스탄이 우리나라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는 공식문서를 보내준데 대한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두 나라 대통령은 회담후 양국간 우호관계 강화와 두나라 국민들간의 긴밀한 협력증진및 평화와 공동번영을 바탕으로 새로운 국제질서 확립을 위해 공동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대한민국과 카자흐스탄간 관계와 협력에 관한 일반원칙 선언」에 서명했다.
  • 한림대과학원 국제학술심포지엄

    12∼13일 한림대 한림과학원(원장 현승종) 주최로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국제학술 심포지엄은 21세기의 한국이 선택할 이념과 정책 및 동북아시대의 한·미·일 3국의 「경쟁과 협조」관계를 집중 조명했다.이번 심포지엄에 참여한 와다 하루키(화전춘수)도쿄대교수와 이정걸중국사회과학원 동구중아연구소 부소장이 각각 「일본의 대한 정책 이념」및 「중국의 대외정책과 한중관계」라는 주제로 발표한 논문을 간추려 본다. ◎전후일본의 대한정책 변화/과거 한반도진출 비판세력 늘어/와다 하루키 일 동경대학교 교수 전후 일본정치의 흐름은 보수와 혁신의 정치조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문제는 보수의 내부,혁신의 내부의 차이를 구별하는 일이다. 전후 일본의 보수본류는 요시다 시게루(길전무)가 개척했다.자유당총재로서 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을 각각 5차례 역임한 요시다는 전후 개혁기에서 부터 강화 독립에 이르기까지 일본정부의 중심이었다.요시다는 재일한국인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요시다의 보수본류는미일관계의 처리에 모든 주의를 집중한 반면 조선 한국 대만에 대해서는 어떤 반성도 없이 낡은 관념에 기초한 나머지 사무적인 대응을 보였다. 보수방류의 대표는 기시 노부스케(안신개)다.기시는 57년 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을 겸직했으며 59년에는 관방장관이 되었다.기시는 구보타(구보전관일낭)발언을 철회했고 한일회담의 재개에 합의했다.기시는 그러나 재일한국인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한국정부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재일한국인의 북한행을 허가했다.기시에 이르러 보수본류는 경제주의로 경도되었다.그리고 보수본류의 경제주의는 시나 에쓰사부로(추명열삼낭)의 아시아주의와 결부해 한일회담을 타결시켰다. 보수본류측에서 생겨나고 있는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으로는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전총리대신을 들 수 있다.미야자와는 82년 관방장관으로 있을 때 일본의 교과서문제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비판에 대한 담화에서 「반성과 결의」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종군위안부에 대한 문제도 미야자와내각에서 비로소 제기됐다.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는 총리대신이 된 뒤 최초의 기자회견에서 「침략전쟁」,「잘못된 전쟁」이라고 발언했다.호소카와는 곧 좌절했으나 그의 위치는 신보수 리버럴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는 또 다른 신보수의 흐름을 대표한다.오자와는 33년에 낸 「일본개조계획」에서 「보통국가가 되자」라는 슬로건을 주창했다.여기에 대해 신당 사키가케(선구)를 창당한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는 일본은 어디까지나 비군사적인 형태로 국제사회에 공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보수적 지식인 가운데서도 도쿄대 문학부장과 총장을 역임한 하야시 겐타로(임건태낭)와 교토대교수를 지낸 이노키 마사미치(저목정도)처럼 과거 일본의 진출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중국 대외정책과 한중관계/선린우호관계 개혁추진에 큰 도움/이정걸 중 사회과학원 부소장 중국의 대외정책은 일정한 이론에 의해 지도돼왔다.이 이론은 중국 지도층의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과 국가이익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결정됐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50년대에는 좌익 일변도의 정책이었고 60년대는 반미반소 정책,70년대는 범세계적 반소 통일정책,80년대이후에는 각국 자주독립 평화 외교정책으로 발전돼왔다. 50년대 중국의 대외정책 이론은 소련을 우두머리로 하는 사회주의 진영의 이익과 승리만을 위한 정책노선이었다. 중국은 이에 따라 50년대초 조선전쟁에 지원군을 파견했으며 이는 자신의 안전 확보는 물론 미국의 「전쟁정책과 침략정책」을 반대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중국의 이같은 정책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련패권주의에 반대한다는 기치 아래 제3세계와 함께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으로 전환됐다. 당시 중국은 한국을 제3세계로 분류했으나 조선반도의 특수한 정세와 한국·대만간 외교관계 때문에 양국관계는 정상화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새로운 외교노선이 수립된 이후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적개심은 분명히 감소되기 시작했고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견해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중국은 80년대들어 다시 대외정책을 조정,중국 외교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국내의 개혁과 발전을 위해 국제환경특히 주변환경을 평화스럽고 안정되게 창조하고,사회제도나 이데올로기의 같고 다름을 이유로 우적관계를 논하지 않으며,평화공존의 원칙위에서 모든 국가와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키고,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가 이룩해낸 모든 선진문명의 결과를 흡수·이용하는데 적극적인 입장을 취한다」는데 두었다. 이제 한국이 중국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살펴보면 최소한 다음 3가지를 확언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은 중국의 중요한 인접국이기 때문에 양국이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국으로 하여금 국내개혁을 도모하고 평화적이고 안정된 주변환경을 조성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두번째는 한국은 신흥공업국가로서 경제·과학기술상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중국의 대외개방추진에 있어 중요한 합작대상이 되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문화·역사·전통등이 중국과 유사해 한국 현대화의 성공은 중국에 특수한 귀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중양국이 선린우호관계와 상호협력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전망에는 전혀 변화가 없을것이다.
  • 중 전인대/“대한·일 우호협력 강화”/교석 순방보고서 채택

    【북경=이석우 특파원】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10일 중국은 앞으로 한·일 양국과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관계의 안정적이며 건전한 발전을 더욱 촉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끝난 제8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13차 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교석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최근 한·일 순방결과 보고서를 채택했다고 밝혔다.
  • 등이후 한·중 협력의 긴요성(사설)

    한·중 우호협력관계가 착실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김영삼 대통령 방중과 이붕 총리 방한에 이어 이홍구 총리가 중국을 방문중이다.강택민 중국공산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첫 방한도 확정되었다.수교전 이붕총리는 「물이 흐르면 개울이 생긴다」(수도거성)고 한 적이 있지만 지도자들의 빈번한 교류가 양국관계의 꾸준한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홍구총리 방중은 양국 관계가 경제협력차원을 넘어 정치·외교·군사협력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한반도 정전체제의 존속에 대한 중국의 확고한 지지를 확인받았으며 고위장성을 포함하는 군사교류의 실질적 확대 합의도 이루어졌다.한국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지지약속을 받았으며 원자력공동위 설치도 합의했다. 단순한 우호협력차원을 넘는 양국 관계의 긴밀화를 보여준다.남북 등거리에서 한국 근거리로 다가오는 중국을 느끼게 한다.이붕총리도 지적했듯이 한중 관계는 바야흐로 최적의 시기에 돌입했다고 할 수 있다.중국의 북한특파원 추방과 국경경비강화,북한의 중국어선 나포 및 대만전세기 평양취항 등 사사건건 부딪치는 최근의 북중 관계의 소원함과는 대조적이다. 중국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존재다.작년 교역량 1백17억2천만달러에 한국기업의 대중투자가 4천5백40건 39억8천8백만달러에 달하고 있는 경제관계 때문만은 아니다.물론 중국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우리 경제파트너가 될 것이 틀림없지만 통일안보 차원에서도 우리는 중국의 협조를 필요로 한다.중국을 우리 통일의 후원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중국은 한반도 안보통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의 그것과도 직결된다.그런 점에서 중국의 평화와 안정은 우리의 중대 관심사이기도 하다.등소평이후의 중국도 현재와 같은 평화와 안정을 누리는 동시에 한중협력도 더욱더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나가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 “한·중 가장 좋은 관계 돌입”이붕/이홍구·이붕 총리 회담 스케치

    ◎국가원수급 환영… 양국우호 반영/“방한땐 공부하는 자세로 가겠다”강택민 중국을 공식방문중인 이홍구 국무총리는 10일 북경 천안문광장 인민대회당 동편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곧바로 이붕총리와 단독 및 확대회담을 갖고 북한핵문제,양국간 경협확대방안 등을 논의했다.이 총리는 이어 하오에는 중난하이(중남해)로 강택민국가주석을 예방,두나라의 우호를 다지는 한편 김영삼 대통령의 안부를 전했다. ○…이 총리는 이날 하오 중국지도자들의 집무실이 있는 중난하이(중남해)로 강택민 국가주석을 예방,김영삼 대통령의 안부를 전하고 강주석의 한국방문의사를 전달받는등 우호협력관계를 거듭 확인했다. 이날 상오 모스크바 방문을 끝내고 북경으로 돌아온 강주석은 이총리의 방문을 거듭 환영한뒤 50여분간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환담을 했다고 배석했던 강형석 총리공보비서관이 전했다. 이 총리는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데도 오래전부터 와 본곳 같다』면서 『두나라가 수교 이후 급속히 가까워진 것도 많은 부분 역사와 전통을 같이 할수 있었기 때문인 것같다』고 인사했다. 강 주석은 9일 중국방문 첫날 62회 생일을 맞은 이 총리에게 인사를 건넨뒤 『어제 이붕 총리가 보낸 생일축하 케이크에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축하했다. 또 강 주석은 『한국의 경제발전,특히 반도체등 집적회로분야의 발전은 놀랍다고 들었고 올해 한국을 다녀온 이붕 총리도 한국의 발전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얘기했다』면서 『이제 한국에 가게되면 많이 배우고 공부하겠다는 자세로 가겠다』고 말했다. ○…이홍구 총리와 이붕 총리는 인민대회당 동대청에서 약 20분간 단독회담을 한뒤 이어 1시간남짓 실무관계자들을 배석시킨 확대회담을 가졌다. 단독회담에서는 한반도의 정전체제 유지등 한반도문제가 주로 거론됐으며 확대회담에서는 경제협력 및 환경·과학기술분야 협력증대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이총리는 회담에서 자동차·항공기·원자력 등 5개 산업분야의 구체적 사업추진과 환경 및 과학기술등 3분야에서의 협력사업추진을 제의했고 이붕 총리는 한·중간 무역불균형 해소를 한국측에 요청했다고 한 배석자가 전했다. ○…10일 상오 9시부터 20분동안 인민대회당 동편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행사는 중국측이 국가원수급에 준하는 예우로 진행,양국간 우호관계의 농도를 반영했다. 이붕 총리의 안내로 행사장에 입장한 이 총리내외는 화동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이어 두나라 총리가 단상에 오르자 군악대는 애국가와 중국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을 연주했고 이어 19발의 예포가 울려 이 총리를 환영했다. 이 총리는 이붕 총리와 나란히 인민해방군의장대를 사열한 뒤 공식수행원들과 함께 곧바로 회담장으로 떠났다.
  • 불 새대통령에 시라크/조스팽 꺾고 14년만에 우파집권

    ◎대선 결선서 52.6% 득표 【파리=박정현 특파원】 7일 실시된 프랑스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우파의 자크 시라크 후보가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후보를 누르고 프랑스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에따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사회당 집권은 14년만에 끝나고 우파집권 시대가 열리게 됐다. 시라크 당선자는 대통령선거에 3번 도전한 끝에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의 주인이 됐다. 시라크 당선자는 투표율 79.65%를 보인 대통령선거 2차 결선투표에서 총 유효투표수의 52.64%를 얻어 47.36%를 얻은 조스팽 후보를 물리친 것으로 최종집계 됐다. 시라크 당선자는 당선 직후 『모든 프랑스인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며 『실업문제와의 싸움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조스팽 후보는 『시라크 당선자에게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시라크의 승리는 1차투표에서 그와 맞섰던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를 비롯한 우파의 전례없는 강한 결집력에다 좌파 집권 14년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헌법위원회는 시라크당선자에 대한 절차 등을 거쳐 오는 15일을 전후해 대통령당선을 확정,공고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립선암을 앓고 있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오는 20일까지의 임기를 앞당겨 물러날 희망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시라크당선자의 취임은 빨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시라크 당선자는 취임 직후 총리를 임명하는 등 조각을 단행할 예정인데 신임총리로는 르네 모노리 상원의장,필립 세겡 하원의장,알렝 쥐페 외무장관 등이 임명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축하전문 김영삼 대통령은 8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당선자에게 축하전문을 보냈다. 김 대통령은 축전에서 『각하의 이번 승리는 프랑스의 계속적인 번영과 영광을 바라는 귀국민들이 각하의 탁월한 지도력과 높은 경륜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결과』라면서 『앞으로 각하의 탁월한 영도하에 귀국이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발전을 계속해 나가리라 확신하며 한·프랑스 양국간의 우호협력관계도 더욱 증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일총리,오늘 방중

    【도쿄=강석진 특파원】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총리는 2일부터 6일까지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한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번 중국방문 기간중 강택민 국가주석,이붕 총리 등과 회담을 갖고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우호관계 발전을 모색하는 한편 북한에의 경수로 제공에 따른 중국의 협력요청 등 북한 핵개발 의혹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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