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양국 우호
    2026-04-29
    검색기록 지우기
  • 집값 안정
    2026-04-29
    검색기록 지우기
  • 기자회견
    2026-04-29
    검색기록 지우기
  • 대만 통일
    2026-04-29
    검색기록 지우기
  • 시민 후보
    2026-04-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920
  • 미­일/장관급 항공회담/양국 의견차 커 전망은 어두워

    ◎LA서 20일부터 【도쿄 연합】 미국과 일본은 20일부터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양국간 항공분쟁 해소를 위한 장관급 회담을 갖는다고 가메이 시즈카 일본 운수상이 18일 발표했다. 가메이운수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페데리코 페나 미 교통장관과의 회담개최합의 사실을 밝히면서 『회담 타결전망은 어두우나 양국 우호관계 유지의 관점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불평등한 양국 항공협정에 기초한 미국의 일방적인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미·일 두나라는 장관급회담과 아울러 차관급 회담을 현지에서 병행,미화물항공사의 일본경유 아시아 노선 신설을 둘러싸고 팽팽히 맞서고 있는 항공분쟁에 대한 최종타결을 시도할 예정이다. 양국간의 구체적인 회담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 미­베트남 수교/동아시아에 미칠 파장

    ◎냉전 마감… 미 영향력 대폭 증대/아세안과의 경제·안보협력 가속화/또다른 전략축 미북 관계에도 영향 미국과 베트남간의 국교정상화는 인도차이나반도에도 마침내 냉전의 잔해가 사라지고 동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됨을 의미한다. 양국의 국교정상화는 냉전의 이념적 대결 시대가 막을 내리고 경제가 중심이 되고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경제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정치·안보적 측면도 중요하다.국교정상화가 아시아주둔 미군의 감축을 둘러싼 국내의 많은 논란과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서둘러졌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냉전후 세계적인 군축흐름에 따라 아시아주둔 미군도 감축시켜 왔다.그러나 클린턴 정부내에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 미군의 아시아주둔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조셉 나이 미국 국방차관보는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에서 『미군의 아시아주둔은 국익을 위해 필요하며 걸프지역에서의 미국 이익도 보호할 수 있는신속한 대응을 가능케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군의 아시아주둔은 이 지역에서의 패권주의 세력의 부상을 억제한다』고 지적하고 『미국은 아시아에서 계속 지도력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미국은 아시아에서 힘의 공백상태가 생길 경우 일본과 중국간에 지역 패권쟁탈전이 전개될 것으로 우려해 왔다. 정치평론가들은 중국과 역사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던 베트남과 국교정상화를 서두른 것은 중국을 견제하며 크게 포위하려는 전략도 포함돼 있다고 분석한다.중국은 경제·군사적으로 강대국이 되고 있으며 더욱이 지금은 양국관계가 극도로 악화돼 있다.양국의 국교정상화는 이 때문에 중국을 자극,단기적으로는 미·중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도 있다. 미국은 그러나 중국을 당장 봉쇄한다든가 하는 강경책은 유보할 것으로 보인다.비록 지금은 관계가 악화돼 있지만 미국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베트남과의 국교정상화는 중국을 견제하는 유효한 카드라 할 수 있다.베트남도 미국과의 우호관계가중국을 견제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더욱 활발한 외교를 펼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베트남은 또 28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 정식 가입한다.베트남의 아세안가입은 미국과 아세안과의 경제·안보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미­베트남 국교정상화를 클린턴대통령의 최대 결단이라고 평가한다.클린턴 대통령의 이러한 결단은 아시아전략의 또다른 중요한 축인 북한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 고지­경제실리 확보 “양면전략”/적대관계 청산 배경/관계악화 “중국에 압력” 포석도 12일(한국시간)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미국과 베트남간의 국교재개 발표는 1975년 베트남 전쟁의 종전이후 양국간 20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역사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양국관계는 미국이 이미 지난해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었고 또 금년초에는 연락사무소까지 개설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로는그 발표시기만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었다.따라서 중요한 것은 양국의 외교관계 정상화 자체보다도 서둘러 결정된 수교 시점의 선택에 있다. 그같은 측면에서 현재는 클린턴이 대내외적으로 「베트남카드」를 가장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시점으로 분석되고 있다. 먼저 대내적으로는 1년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에서 재선을 향해 뛸 클린턴 대통령이 경제적인 실리를 얻고 또 그동안 미국행정부들을 줄곧 괴롭혀온 실종미군(MIA)문제등 베트남전의 망령들을 청산해버리자는데 있다. 미국 국무부의 번스 대변인은 10일 정례브리핑에서 베트남과의 국교재개의 첫번째 이유를 양국간 경제관계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로 수교를 통한 양국간의 경제적 실리는 크다. 또한 그동안 베트남 관계에 있어 가장 큰 짐이 되어온 MIA문제등을 공식적인 외교문제로 격상시키고 보수세력들이 문제삼고 있는 자신의 베트남전 반전운동 경력등을 희석시킴으로써 재선가도를 출발하려는 클린턴 행정부의 각종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최근 이등휘 대만총통의 방미 이후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차제에 베트남카드를 이용,중국 길들이기를 본격화 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미국시민권자인 중국인권운동가 해리 우(중국명 오홍달)에 대한 중국정부의 전격 구속과 그 과정에서의 국제관례 무시로 미·중관계가 긴장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남사군도의 영유권분쟁등 역사적으로 중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베트남과 국교를 정상화 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우회적인 압력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략은 특히 최근 깅그리치 미국하원의장이 중국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대만과의 관계정상화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것과 함께 중국측에 상당한 압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의 이같은 베트남카드 사용에는 신중할 것을 촉구하는 의견들이 많다.그동안 베트남의 태도가 아직 수교에 이를만큼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차기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유력시 되고 있는 돌 상원의원등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베트남이 MIA문제를 해결하는데 협조적이지 않을 경우 외교관계 수립에 따른 각종 자금지원을 봉쇄토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해놓고 있기도 하다. ◎워싱턴­하노이 경협 전망/항공·인프라분야 협력 본격화/「낙후된 산업시설」 미 기업에 “기회”/베트남,최혜국지위 획득 발판 마련 20년만에 미국과 베트남이 국교를 재개함으로써 양국 경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이번 조치로 대중시장과 동남아 시장 공략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으며 베트남은 미국 시장 진출에 필요한 최혜국지위 획득에 유리한 고지를 점유했다. 양국 관계정상화는 또 이중과세방지협정등 미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위한 안전판을 마련,미 기업 진출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아시아의 새끼 호랑이 경제로 발돋움하려는 베트남은 이번 조치를 계기로 연쇄적인 외국인투자가 이뤄질 경우 멀지 않아 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신4룡」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양국간 경제협력은 지난해 2월 미국이 20년동안 베트남의 목을 죄어온 경제제재(엠바고) 해제를 계기로 전환기를 맞이했다.코카와 펩시 등 미국의 두 음료회사는 엠바고 해제발표와 거의 동시에 베트남의 주요 도시에서 치열한 판촉전을 벌여 미국 기업이 베트남에 대해 가진 높은 관심을 반영했었다. 현재 양국간 교역규모는 극히 미미하다.베트남은 미국에 약간의 섬유를 수출하는 것이 고작이다. 파상적인 시장개방 공세를 펴 아시아 시장 대부분에 진출한 미국은 「국교정상화」라는 걸림돌에 봉착,베트남 진출이 늦었지만 곧 빠른 속도로 자기몫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대만,홍콩,싱가포르 등은 대만을 대중투자의 전초기지로 인식,일찍부터 집중적인 투자를 해왔다.한국과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투자규모면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을 훨씬 앞지른다. 투자 순위 1위인 대만이 총 1백76건에 20억달러를 투자하는 것과는 지극히 대조적으로 미국은 36개 프로젝트에 불과 5억5천만달러를 투자하고 있을 뿐이다. TV와 각종 전자제품은 한국과 일본이 점령했고 자동차는 일본의 마츠다,도요타를 비롯,독일의 BMW,다이믈러 벤츠 등이 이미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대부분은 베트남 내수용이 아닌 수출용이다.장거리 통신은 이미 호주의 수중에 넘어간것과 다름없다. 뒤늦게 인도차이나 반도에 상륙한 미국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노린 베트남의 배려덕에 에너지,항공 및 인프라스트럭쳐 분야에서 사업권을 따냈다. 캐터필러와 제너럴 일렉트릭은 고속도로 재건에,모빌은 석유탐사에,유나이티드 항공사는 베트남의 국제노선에 취항해 있다.이밖에 IBM,시티뱅크,비자,AT&T등 미국 굴지의 기업이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투자지로서 베트남은 월평균 35달러남짓한 임금과 각종 세제혜택과 기업에 우호적인 외국인투자법 등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잘살아보자」는 부자의 꿈으로 똘똘뭉친 7천4백만의 인적자원을 빼놓을 수 없다.어떤의미에서 낙후된 인프라와 산업시설은 그 자체 투자대상이다.그러나 금융·법률제도가 부족한 점이 흠이면 흠이다. ◎미­베트남 30년 일지 ▲64.5=미국,월맹의 월남침공으로 월맹에무역제재 ▲65.3=첫 미군 전투부대 월남 도착 ▲75.4=사이공 함락.월남정권 붕괴.무역제재 확대 ▲79.1=미국,대베트남 금수조치 확대.일본등 서방국가 동조 ▲79.2=중국,베트남 침공 ▲86.12=베트남,6차당대회서 「도이 모이」(쇄신)노선 발표. ▲88.9=베트남,외국인투자법시행령 제정.미국과 첫 합동실종현장조사 ▲91.4=베트남,실종미군수색 위한 미정부 사무실 하노이 개설 허용 ▲91.10=베이커미국무,베트남과 관계정상화 위한 조치 준비 발표 ▲91.11=베트남,중국과 관계 정상화 ▲92.3=솔로몬 미국무 차관보,베트남에 최소한 3백만달러 지원 약속 ▲92.12=부시대통령,미회사베트남사무소 개설 허용.한·베트남 수교 ▲93.7=클린턴,대베트남 IMF차관 1억4천만달러제공 불반대 표명 ▲93.9=클린턴,미국기업의 베트남내 국제개발계획 참여를 허용 ▲94.2=클린턴,대베트남 금수조치 해제 발표 ▲95.1=미·베트남 상호연락사무소 개설 ▲95.6=레둑안 베트남 대통령,유엔행사 참석차 10월 방미발표 ▲95.7.11=클린턴,베트남과 관계정상화 공식발표
  • “한­남아공 협력관계 급진전/양국 우호관계 자랑스럽다”

    ◎만델라 대통령 국회연설… 어제 이한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은 8일 『한국과 남아공의 관계는 초기단계에 불과하지만 멀지 않아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관계가 이룩될 수 있을만큼 협력관계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만델라 대통령은 이날 상오 국회본회의 연설을 통해 『21세기초에는 아·태지역이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라며 『우리가 남아공과 주변지역,나아가 아프리카 대륙의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한국과의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아침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델라 대통령과 조찬을 나누며 양국의 관계증진방안등에 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만델라 대통령은 이날 낮 2박3일간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특별기 편으로 이한했다. ◎만델라 대통령 국회연설 요지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습니다.평화,번영,조화 속에서 살 수 있도록 각국이 협력하고 노력하는 새로운 시대입니다. 미래는 국가간,지역간의 영원한 동반자 관계를 토대로 합니다.21세기초에는 아·태지역이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르네상스를 시작하면서 한국과 우호관계를 돈독히 다지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한국과 같은 경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에 여러분의 성공에 찬사를 보냅니다.우리 두나라의 민주화 투쟁을 지지해준 전세계 국민에 대해서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 어떠한 장애물도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저지할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남아공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이미 많은 진보를 이룩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노력을 보면서 크게 힘을 얻고 있습니다.양국간 경제적 협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두나라 관계가 지금은 초기 단계이지만 멀지 않아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관계가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남아프리카의 13번째로 중요한 무역상대국입니다.비금속과 광물이 남아프리카의 주요 수출품이고 한국은 기계,섬유,의류,각종용품등을 우리나라에 수출하고 있습니다.이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의 과감한 노력으로 광범위한 잠재력을 실현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기업들이 이미 우리나라에서 주택사업 등 기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어제 양국이 서명한 문화협정과 과학기술협정은 공동의 목적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확신합니다. 한국과 같은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균형된 거시경제의 촉매자로서 또한 감독자로서 정부의 관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남아공은 한국이 대외관계에서 새로 채택한 노선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습니다.우리는 아프리카 남부의 인접국들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멀지않아 한국민에게 강요되었던 국토분단이 해소되기를 바랍니다.남아공은 평화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의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먼 나라입니다.그러나 공동의 인간애,공동의 희망,평화와 정의와 민주주의를 향한 공동의 꿈들이 우리를 이웃으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 김일성 사망 1주년/북 대대적 행사 시작

    ◎김정일 참석 어제 중앙추모대회 【도쿄 AFP 로이터 연합】 북한은 6일부터 김일성 사망 1주년을 기념하는 대대적 행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에서 수신된 북한관영 중앙통신은 중국과 쿠바·캄보디아·이란 등을 포함한 각국 외교사절들이 이날 만수대에 세워진 김일성 동상에 헌화했으며 평양과 지방도시의 도로에는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가 내걸렸다고 보도했다. 【내외】 북한은 7일 평양체육관에서 김정일이 참석한 가운데 김일성사망 1주 중앙추모대회를 개최했다. 북한은 이날 하오7시 김일성 사망1주 중앙추모대회를 중계방송하고 조선국방위원장이자 군최고사령관인 김정일을 비롯해 당·정·군 고위간부들이 참석했다. ◎중 “친선불변” 전문 【내외】 중국은 7일 김일성사망 1주기를 맞아 공산당중앙위 명의의 전문을 북한에 보내 김일성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양국간의 친선관계를 변함없이 발전시킬 것을 강조했다. 중국은 이날 북한 노동당중앙위 앞으로 보낸 이 전문에서 김일성이 생전에 『중국의 노세대 지도자들과 함께 노력하여 중­조우호관계를 부단히 발전 추동하였다』면서 앞으로도 양국간의 친선이 『만고에 푸르기를 충심으로 축원한다』고 말했다고 북한의 중앙방송이 보도했다.
  • “검은 대륙” 자원개발 전진기지 구축

    ◎투자보장협정등 매듭… 경협 급속 확대될듯/“북핵·안보리 협력” 대아프리카외교에 큰힘/김 대통령­만델라 회담의 의미 김영삼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회담은 여느 정상회담과는 달라 보였다.물론 양국간 경제·정치협력이 심도있게 논의되었다.그러나 그보다는 민주주의 성취와 인권투쟁으로 평생을 살아온 두 지도자의 만남이라는 점이 더 두드러져 보였다. ○교류확대의 틀 마련 만델라 대통령은 27년간의 투옥등 험난한 투쟁끝에 지난해 4월 3백42년간 지속된 인종차별을 종식시킨 흑인지도자이다.김대통령도 40여년의 정치역정을 민주화를 위해 헌신,정통성을 가진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다. 따라서 두 대통령의 청와대 만남은 그들의 민주화 업적을 국제사회에 새롭게 조명하는 상징적 자리가 됐다는 평가다. 실질적인 쌍무관계에 있어서 이번 정상회담은 아프리카 제1의 경제규모를 가진 남아공과 경제·통상관계를 강화했다는 의미를 갖는다.남아공은 풍부한 부존자원과 커다란 시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대륙에 우리기업이 진출하는데 훌륭한 전진기지 구실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경제재건 본격 참여 특히 이날 회담에서 김대통령은 남아공의 5개년 경제재건개발계획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만델라 대통령의 배려를 당부했다.만델라 대통령은 한국기업 참여에 환영을 표하고 고용증대효과가 큰 분야에 진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두나라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아공의 자원 공동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나라는 또 만델라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이중과세방지협정,투자보장협정,항공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관계 확대를 위한 법적·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양국 정상이 북한핵문제 해결 등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공동노력키로 한 것도 이번 회담의 성과중 하나로 꼽힌다.만델라대통령은 한국이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는데 대해서도 지지의사를 표명했다.이는 우리나라가 유엔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지를 획득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소원했던 관계 복원 남아공은 6·25 참전 16개국의 하나다.이번 정상회담은 남아공에서 인종차별 정책이 심했을 당시 소원해졌던 양국 관계가 완전히 복원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함께 싸운 우방으로서의 옛 우정을 되살려 21세기의 아시아·아프리카 지도국으로 나가자는 결의를 다졌다는 것이 외무부의 분석이다. ◎양국대통령 공동회견 요지/중기진흥에 한국지원 기대­만델라/개도국간 협력모델로 발전­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과 만델라 남아공대통령은 7일 상오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뒤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다음은 기자회견 모두발언 및 일문일답 요지. ▷모두발언◁ ▲김대통령=아프리카와 아시아국가는 과거 식민지배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그런 맥락에서 아프리카국가의 민주화와 번영에 남다른 관심이 있다.오늘도 남아공의 발전을 돕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했다. 만델라 대통령과 내가 나눈 민주주의의 신념과 국가경영철학에 대한 허심탄회 한 의견교환은 우리 두 정상간 우의를돈독히 하고 두나라 국민간의 우호와 협력을 증진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만델라 대통령 취임이래 양국간 인적·물적 교류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하며 앞으로 양국 관계를 개발도상국간 협력의 모범 사례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만델라 대통령=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한국민이 받은 고통에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남아공은 관광진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한국과의 직항로 개설이 남아공의 관광진흥에 도움을 줄 것이다.중소기업진흥도 우리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이다.이 분야에 대한 한국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5백만명에 달하는 실업자가 빈곤에 못이겨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이를 퇴치하기 위해서도 중소기업 진흥이 필요하다.한국은 남아공의 주요 무역상대국의 하나며 교역이 더욱 증대되길 바란다.한국이 과일 및 육류분야의 수입 제한 조치를 완화할 것으로 기대한다.남아공은 2004년에 케이프타운에서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계획하고 있다.88올림픽을 치러 경제성장의 계기를 이룩한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일문일답◁ ­인종차별에 종지부를 찍은 민권대통령으로서 한국의 민주화에 대한 평가는. ▲만델라 대통령=한국에 하루밖에 머물지 않은 상태에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리지만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남아공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고 본다.남아공의 민주주의 추구과정은 모든 시민이 균등한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것이다.흑백인종에 관계없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한국이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되는 의미는. ▲김대통령=우리는 유엔 결의에 의해 국가가 탄생했고 한국전쟁때 유엔군이 참여했다.특히 유엔에 가입한지 얼마되지 않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된다는 것은 우리 국가 위상을 엄청나게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유엔에서 다루는 세계 문제중 80%는 안보리 소관사항이다.
  • 오늘 한­남아공 정상회담/만델라 어제 내한

    김영삼 대통령은 7일 청와대에서 방한중인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우호협력 관계 유지와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김대통령과 만델라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개혁등 관심사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한다. 이에 앞서 만델라 대통령은 공식수행단과 함께 6일 하오 특별기 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만델라 대통령은 공항 환영행사를 마친뒤 국립묘지에 헌화하고 서울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으며,저녁에는 이홍구 국무총리가 주최하는 비공식 만찬에 참석했다.
  •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방한(사설)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공)대통령이 6일 국빈자격으로 우리나라를 공식방문한다.우리는 만델라 대통령의 서울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그의 이번 방한이 한국과 남아공 양국간의 우호협력관계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실질적인 결실을 남기기를 기대한다. 2박3일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그의 방문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무엇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원수의 첫 한국 방문은 남아공의 아시아접근과 한국외교의 남아프리카 지역 본격진출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불과 수년전까지만해도 남아공은 유엔의 경제제재 대상국이었고 우리는 그런 제재조치에 협조하는 멀고 먼 나라사이였다. 우리는 또 양국관계 이전에 만델라 대통령의 개인적인 업적에도 유념한다.외무부가 그의 방한 의미의 주요항목에 『만델라 대통령의 위대한 민주화 위업을 재조명한다』고 밝혔듯이 다른 국가원수들의 방문과는 달리 만델라 대통령의 경우 그의 개인적인 정치투쟁 역정을 높이 사는 뜻도 강조되고 있다.잘 알려진대로 만델라 대통령은 물경 27년간이나 옥살이를 해가면서 남아공의 악명높던 소수백인들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무너뜨리고 다수 「흑인지배시대」를 성취해낸 역사적 인물이다.그런 점에서 30여년에 걸친 반독재 투쟁으로 민주화를 달성한 김영삼 대통령과는 정치적으로 닮은 점이 많다. 두나라간의 경제적 협력기반도 탄탄한 편이다.남아공 경제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기 시작한 91년 양국간교역규모가 3백30만 달러였던 것이 지난해에 10억달러를 넘어선 것만 봐도 알수 있듯이 양국간에는 경제협력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남아공은 우라늄 아연 구리등 풍부한 광물자원 보유국이고 한국은 만델라 대통령이 야심적으로 추진하고있는 5개년 재건개발계획(95∼99)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급격히 성장하고있는 인도양경제권의 핵심국가중 하나인 남아공의 외교적·경제적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이다.끝으로 만델라 대통령의 이번 여정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것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 백인지배 종식시킨 검은대륙의 「빛」

    ◎오늘 방한 만델라 남아공대통령은 누구/흑인해방투쟁 외길… 27년간 감옥생활/취임후 화합·포용정책… 흑백갈등 씻어 흑인의 자유를 찾아 험하고 머나먼 여정을 걸어온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그는 지금 아프리카대륙의 「태양」으로 흑인들에게 밝은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그러한 만델라 대통령이 6일부터 한국을 방문한다. 흑인해방운동의 상징이었던 그는 94년5월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남아공대통령에 취임,3백42년간의 백인지배를 끝내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대통령이 된뒤 펴낸 그의 자서전 「자유를 위한 머나먼 여정」에는 27년간의 감옥생활을 비롯,인종해방투쟁을 향한 그의 신념과 투쟁사가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만델라는 1918년7월18일 케이프타운의 동부 트란스키에서 템부족의 족장 아들로 태어났다.그는 근대적인 교육을 통해 흑인의 지위를 향상시키고자 부족장지위를 마다하고 40년 포트 헤어대학에 진학했다.그러나 학생시위를 주동하다 퇴학을 당했다.그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역사적인 만남을 갖고 비폭력투쟁을 펼쳐 나갔다. 그러나 60년 샤프빌학살사건을 계기로 남아공 흑인운동은 무장폭력투쟁으로 변화했으며 만델라도 본격적인 혁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그는 61년 지하무장투쟁조직 「움콘토 웨 시즈웨」(민족의 창)를 결성해 파업과 게릴라활동을 전국적으로 벌이다가 국가전복기도혐의로 체포되어 64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투쟁은 그러나 케이프타운 앞바다 외딴 로벤섬의 교도소에 수감된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남아공 흑인들도 이 「보이지 않는 영웅」을 따라 투쟁을 계속했다. 그는 80년대 후반부터 백인지도자와 협상을 별였으며 90년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의 5년내 단계적 철폐를 약속한 프레드릭 데 클레르크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전격적으로 석방됐다.감옥에서 나온 만델라는 클레르크와 남아공 역사상 처음으로 전인종이 참여하는 자유총선을 실시키로 합의했으며 9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대통령에 취임한지 이제 1년여.그의 통치는 일단 무난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백인들에 대한 보복조치나 인종간 내전발생등 세간의우려를 씻고 만델라 대통령은 화합과 포용을 먼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아공의 경제적 어려움등은 여전히 만델라와 국민들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만델라는 이러한 경제문제해결을 위한 외국과의 경제협력등을 모색하기 위해 활발한 해외순방을 하고 있다.그의 머나먼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만델라 방한 의미와 양국관계/6·25때 참전국… 수교후 정상회담/자원 풍부…한국기업 적극진출 희망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의 초청으로 6일부터 8일까지 우리나라를 국빈방문한다. 만델라 대통령의 방한은 지난 92년 양국이 수교한 이후 최초의 정상간 교류이다. 우리나라는 남아공과 지리적으로 멀고 남아공 구정권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제재에 참여해왔지만 기본적으로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남아공은 6·25전쟁당시 참전한 16개 국가가운데 하나이다. 또 남아공은 90년대 들어와 그동안 추진해오던 핵개발을 포기한뒤 북한핵관련 국제원자력기구(IAEA)총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에서 우리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왔다. 이러한 우호관계를 기반으로 양국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경제부문에서의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하는데 힘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남아공은 최근 역동적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지역과의 경제,통상의 협력확대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만델라대통령은 남아공의 경제재건개발계획에 우리기업이 적극 진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남아공이 추진하고 있는 「2백만가구 주택건설사업」과 관련,우리의 신도시개발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다. 또 우리측으로서는 남아공에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금,우라늄,아연등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산업기초시설도 발달된 점을 감안,아프리카지역진출의 교두보로 삼을만한 곳이다. 이에 따라 만델라대통령의 방한일정에는 경제단체장공동주최 오찬과 경기도 평택지역의 산업시찰등이 포함돼 있다. 우리와 남아공의 교역량은 93년 9억 달러,94년 10억5천만 달러등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남아공에는 92년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지사가 설치돼있다.또 대우 쌍용 삼성금성 금호등 기업이 진출해있으며 교민수는 4백50명이다.
  • 후쿠다 타계/전 일총리… 향년 90세

    【도쿄=강석진 특파원】 후쿠다 다케오(복전규부) 전일본총리가 5일 낮 12시6분 도쿄도내 도쿄여자의대 아오야마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90세. 후쿠다 전총리는 대장상과 외상 및 자민당 간사장을 역임한 뒤 76년 미키 다케오(삼목무부) 전총리에 이어 67대 총리로 취임해 약 2년간 재임하면서 중국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고 도쿄 국제공항 개항 등 현안을 처리했다. 86년 중의원 14선을 역임한 뒤 후쿠다 전총리는 파벌을 고 아베 신타로(안패진태랑) 의원에게 인계하고 지난 90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음으로써 정계를 은퇴했다. ◎김 대통령 조문 김영삼 대통령은 5일 별세한 후쿠다 전일본총리의 유가족들에게 위로전문을 보내 『우리나라의 오랜 친구인 고인의 서거에 대해 더없이 애석하게 생각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고인은 생전에 총리대신으로,또 전직 정부수반협의회의 명예회장으로서 인류평화와 번영을 위해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면서 『또한 오랫동안 일·한의원연맹회장과 일·한협력위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 진력해온 훌륭한 업적은 양국 국민의 가슴속에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 만델라 대통령 오늘 내한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의 초청으로 2박3일동안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하기 위해 6일 내한한다. 만델라 대통령은 도착 직후 서울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며 7일에는 김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의 전반적인 우호협력관계 증진 방안을 협의한다.
  • 선진국은 「아시아」에 합당한 대우하라/윌리엄 클라크(지구촌 칼럼)

    ◎역동적 성장… 세계 경제력의 중심으로 부상 자유세계의 강대국이던 국가지도자들은 오늘의 세계정세가 과거의 유럽중심적 국제질서와는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럽중심적 사고와 1950년대식 사고에 젖어 오늘날 세계의 현실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 개최된 세계 선진공업국가의 지도자모임인 G7 정상회의는 그같은 전도된 양상을 더욱 심화시켰다.일본을 제외하고는 이들은 옛 백인의 친교모임으로 아직까지 새로운 국가의 가입도 또 더이상 자격요건이 되지 않는 기존국가를 탈퇴시키는 것도 꺼려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나 대만 같은 나라는 교역이나 산업사회의 중요도에 있어 캐나다나 이탈리아를 앞지르고 있다.또 인도·중국·브라질과 같이 세계최대의 경제규모를 이루고 있는 국가도 있다. 이 「옛지도자」들이 최근 멕시코에서 있은 것과 같은 또 다른 경제적 붕괴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것은 아이로니컬하다. 회담 막바지에 그들은 대기성 펀드 마련을 위한 방안에 합의를 이뤘다.이같이 긴요한 합의에 도달하면서 그들은 많은 국가가 G7국가보다 나은 형편에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은 펀드 마련을 위해 아시아의 보다 번영된 국가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같은 양상은 수년동안 지속돼왔고 이제는 기존의 국제관계를 위협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하고 있다.워싱턴의 미국무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같은 현상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새로운 정책이 채택돼 돈이 필요해지면 미국은 일본에 자금지원을 요청하는 방식을 수년간 취해왔다.이같은 현상이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을 포함해 확산돼왔다. 미국과 북한간의 핵협상은 가장 최근에 나타난 또 하나의 두드러진 예가 되고 있다.40억달러이상이 소요되는 협상을 하면서 미국은 전체의 0.5%도 되지 않는 2천만달러만 부담할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이 이 대금의 상당부분을 감당하고 일본이 그 나머지를 부담할 것으로 예상된다.언제 어떻게 분담액이 결정되느냐는 물음에 미국 관리들은 한국과 일본간의 완전한 합의에 의해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불만을 크게 사고 있다.서울에서는 미국이 매번 한국을 참여시키지 않은 채 북한과만 대좌하고 있는 데 대한 정치적 분노가 폭발상태에 와 있다.서울의 이같은 정치적 기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부담액이 얼마냐가 아니고 단지 협상테이블에 한국의 자리를 마련하면 되는 것이다. 일본은 이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을 위한 유럽국가의 부담액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그러나 워싱턴은 현재 이같은 움직임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 무엇이 해결책인가.그것은 오늘날 경제·금융·산업적 힘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를 명확하게 평가하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세계 은행보유금의 40%가 아시아에 있다.외환보유 또한 동일한 지역에 집중돼 있다.심지어는 가장 최근 들어 경제개혁의 길로 접어든 인도까지도 외환보유가 1991년에 10억달러로부터 오늘날 2백억달러로 증가했다. 북아메리카·유럽·일본등이 2∼3%의 성장률로 정체돼 있을 때 아시아는 일괄적으로 7∼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심지어 출발이 가장 늦은 인도까지도 5%를 넘었다. 만일 오늘 어떤 경제지표가 발표된다면 미국·일본,그리고 기타 유럽연합 회원국은 동시에 경기후퇴로 나타나게 될는지도 모른다.이같은 현상이 사실이라면 아시아의 역동적인 경제는 세계경제를 이끄는 위치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따라서 이제 선진국은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국가로부터 의견을 듣기 위해 그들을 테이블로 불러내야 할 때다. 하지만 G7,특히 미국이 과연 자신의 방식을 변화시킬 것인가.불행히도 그들은 그같은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미국과 한국의 협력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있는 시점이다.하지만 핵협상테이블에서 한국을 배제하는등의 현재와 같은 양상은 오히려 우호관계에 방해가 된다.이러한 현상은 양국간의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서울당국은 현재의 행태에 있어 매우 큰 인내를 보이며 미국의 입장에 조화를 이루는 데 필요한 노력을 해왔다.우리는 현재 평양측이 주요적국인 한국과 일본에 쌀제공을 요청할 정도로 북에서의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면 워싱턴 당국에 의해 보다 포괄적인 대북한정책이 채택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 미의 대중정책 일관성 있어야(해외사설)

    중국의 이붕 총리는 지난주 모스크바에서 「으스대는」 미국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의 공동대응을 촉구했다.닉슨 전 미국대통령이 옛소련 억제용으로 대중국 유화정책을 쓴 지 25년만에 중국은 대미 지렛대역할을 하기 위해 삼각외교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이는 한때 미국외교의 자랑거리였던 미·중관계가 매우 껄끄러워졌다는 증거다.클린턴대통령이 미국국익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인내와 단호함이 요구된다. 미국이 북경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에게 확실한 이익이다.중국은 핵강국의 하나이고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경제국이며 세계인구의 5분의 1이 사는 나라다.미국 회사들은 지난 79년이후 70억달러 이상을 중국에 투자했으며 매년 90억달러어치의 상품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또 미국은 4백억달러에 가까운 중국상품을 수입함으로써 중국을 미국의 6대 무역국으로 자리잡게 했다. 그러나 양국관계 유지는 수월하지가 않다.부시 전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의 민감성을 수용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중국 지도자들은 협력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더욱 신랄한 태도를 보였다.현재 그들은 등소평이후를 위한 정치적 기반확장에 몰두,모든 계파가 이념적으로 엄격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미·중 관계는 89년 천안문사태이후 악화됐지만 정확히 말해 워싱턴정부가 이등휘 대만총통에게 모교인 코넬대학 방문을 허용한 뒤 최근 몇주 사이에는 아예 무너져 버렸다.중국은 워싱턴주재 중국대사를 소환하고 미국의 짐 세서 신임 북경대사의 승인을 유보했다.이란·이라크와 두드러지게 관계개선을 추구했다. 닉슨이 냉전시대의 모스크바 대응수단으로 북경과 관계를 맺은 이래 중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변했다.오늘날 미국은 핵확산과 지역분쟁을 억제하고,역동적인 세계최대시장에의 접근을 보호하며,반체제 지식인 및 소수민족등 중국인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를 촉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년동안 중국은 무기판매서부터 교도소 노동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약속과 국제적 합의를 위반했다.워싱턴정부는 중국이 경제개혁에 전념하는데 만족했었다.그러나경제재건은 정치적 억압과,미국이 보다 강하게 항의해야 하는 국제적 호전성을 감추기 위한 위장이었다.북경정부는 최근 남사군도에 대한 자국의 권리를 믿기위한 명목에서 군함을 파견했다.최근 민주적 지식인들의 재구속과 미국시민권자에 대한 영사접근 거부를 비롯한 중국의 인권문제 악화에 대해 미국은 중국이 분명히 원하는 각료레벨의 방문과 양국 정상회담 등의 조치를 보류시키는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이달말 연례 동남아 외무장관회의에서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면 중국이 남사군도에서 무력시위를 함으로써 지역안정에 가해진 위험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시해야 한다. 워싱턴정부는 중국의 외교적 도발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그러나 중국의 민감성에 대한 과도한 우려는 정책의 마비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북경정부의 과도기는 순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미국의 대중국 처리자세는 명확하고 일관돼야 할 것이다.
  • 한·일 국교 정상화 30돌에 생각한다(해외사설)

    일본과 한국의 국교를 정상화한 일·한기본조약이 65년 6월22일 도쿄에서 조인된지 30년이 지났다.일·한기본조약은 북한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북진무력통일 구실을 준다는 일본사회당의 비난과 한국에서는 야당과 학생들의 「굴욕외교」라는 반발속에 조인됐다. 한국에서는 기본조약에 대한 불만이 여전히 남아 있다.하지만 박정희 전대통령이 조약타결의 결과로 일본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활용한 것도 한국 경제발전의 하나의 원인이 됐다.국교정상화는 또 한국시장을 얻은 일본경제에도 이익이 됐다.일본사회당도 결국 일·한기본조약을 인정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양국간의 인적교류는 연간 3백만에 가깝다.한국은 미국·중국에 이어 세번째로 큰 일본의 무역상대국이며 일본은 한국에게 미국 다음으로 두번째의 무역상대국이다.경제면에서의 상호의존관계도 심화되고 있다. 일·한조약 조인후의 공동성명은 「일·한이 평등과 상호존경의 원칙으로 우호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이 아시아 및 세계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양국관계는 그러한 공동성명정신에 따라 움직여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문제가 있다.과연 서로 존경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대답한 일본인은 49.8%였으나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한국인은 29.8%에 지나지 않았다.한국에 이러한 반응은 과거 식민지지배 때문일 것이다. 과거 30년동안 양국관계를 어렵게 한 이러한 것은 역사문제였다. 일본의 역대총리가 과거에 대한 반성을 나타냈지만 「과거청산」이라는 말은 아직 어울리지 않는다.상호역사를 냉정히 보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역사의 교훈을 현재와 미래에 활용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일·한은 지정학적·경제적·역사적·문화적으로 떨어지기 어려운 관계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양국은 21세기 보다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 강택민,일 「역사왜곡」 경고/“중­일 관계 부정적 영향 미칠것”

    ◎방중 가이후 신진당수에 불만 표출 【북경 AFP 연합】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은 24일 일본에 대해 역사왜곡은 그 국가적 이미지는 물론 중국과의 쌍무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주석은 이날 전직 총리를 지낸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신진당 당수가 이끄는 일본 사절단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신세대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부여하는 것이 양국 정치인들의 공동책무』임을 강조했다. 강주석은 이 자리에서 일본이 침략전쟁을 솔직히 반성하느냐 여부가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역사를 왜곡하려는 기도는 중·일 양국간의 장기적인 우호관계에 해로울 것이라고 밝혔다고 관영 신화통신은 전했다. 강주석의 이같은 언명은 최근 일본 의회가 채택한 종전 50주년 결의안에 대한 국 정부의 불만을 재삼 상기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 야마시타 신타로 주한 일대사 인터뷰(한·일수교 30년)

    ◎“한·일 이젠 수평적 협력파트너”/“다수 일본인들 과거 침략행위 깊이 반성/한국서도 일본을 있는그대로 보았으면” 한·일기본조약 체결 3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사는 22일 야마시타 신타로 주한일본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양국관계의 변화와 전망을 들어봤다. ­한·일 양국관계의 30년전과 오늘을 비교해 주십시오. ▲먼저 일본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양국간 우호관계의 가일층의 개선과 강화를 외교정책의 중요항목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일관계는 정상화이후 30년동안에 인적교류·경제교류 등 다방면에서 비약적으로 확대되고 긴밀해져 왔습니다. 일본을 찾은 한국인 여행자수는 작년에 1백23만여명으로 국교정상화가 이뤄진지 얼마 안되는 지난 68년에 비해 30배를 넘어선 한편,한국을 찾은 일본인 여행자수는 1백62만5천여명으로 68년에 비해 66배나 됐습니다.양국간의 교역규모도 94년에 3백89억달러에 이르러 과거 30년사이 1백80배나 늘어났으며 일본정부의 자금협력도 무상자금이 78년까지 1천3백30억엔,유상자금이 90년까지 6천억엔에 달했습니다. 더욱이 양국의 경제관계는 양적 확대만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기술고도화에 따라 대등하고 수평적인 협력 파트너로 질적 발전을 하여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됐습니다.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일본 지도자층의 망언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민주주의 사회인 일본에서는 개개인이 저마다의 견해를 가지고 이를 표명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으며,이는 역사인식면에서도 자신의 체험 등을 바탕으로 한 역사관이 존재하므로 일본정부나 국민 대다수의 의견과는 다른 견해들도 표명되는 적이 있었습니다.나로서는 한국인 여러분의 심정을 일본인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늘 노력해온 터이나,일본에서 이런 한국인의 정서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발언들이 이따금 나오고 있는데 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비록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압도적 다수의 일본국민은 과거 일본의 침략행위나 식민지 지배가 수많은 아시아인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하며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세계평화 창조에 진력해가겠다는 굳은 결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일본정부로서도 이와 같은 대다수 일본국민의 인식을 토대로 깊은 반성과 사죄의 뜻을 거듭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전후청산은 끝났다고 봅니까. ▲자칫 오해가 있는 듯 합니다만,2차대전과 관련된 배상 및 재산청구권 문제에 관해서는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2국간 평화조약 및 기타 관련조약 등에 의거,성실히 대응해 왔으며,한국과의 관계에서도 65년의 기본조약,청구권 경제협력협정 등에 따라 법적으로는 해결이 끝난 상태입니다. 그보다도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이 일본에 던지고 있는 것은 역사인식 문제라고 나는 생각합니다.이와 관련해 무라야마 총리는 역사의 교훈을 미래에 살려나가기 위해 아시아 근린제국과의 과거사를 직시하고 올바로 이를 후세에 전하며 아시아 각국과의 상호이해와 상호신뢰를 증진시켜 간다는 뜻아래 전후 50년이 되는 올해부터 「평화우호 교류계획」을 추진해가겠다는 것을 천명했습니다.이 계획은 역사연구를 지원촉진하고 각국과의 교류를 강화해가는 자주적인 노력이며 이는 곧 한국등 각국의 일본 신뢰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진정한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위해 양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선진국 진입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이제 두 나라만의 협력이나 현안 해결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사회 전체에 관련된 과제를 향한 협력을 지향해야 합니다.환경문제에의 대처,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나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협력이 그 한 예입니다.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는 한·일협력관계의 확충 및 강화가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라는 의미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한편 이러한 협력이야말로 상호신뢰관계를 그 전제로 하는 만큼,양국국민의 상대국에 대한 인식이 실체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일본측으로서는 과거를 솔직히 직시하고 역사인식을 심화시킬 노력이 중요한 반면,한국측으로서도 현재의 일본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줄 압니다. 가령 한국언론에는 여전히 일본이 군사대국화나 핵무장을 지향하고 있는 듯한 논조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그러나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일본을 둘러싼 국제환경을 불안정하고 긴장된 상태에 빠뜨릴 따름으로 각국과의 상호의존 속에서만 살아나갈 수 있는 일본에는 아무런 이득도 되지 못합니다.더구나 핵무장은 NPT체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은 북한의 핵문제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또 양국이 상대국의 실체에 맞는 인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균형있는 정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양국 언론의 책임과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항공·차분쟁 대화로 타결”/미 국무,일에 회담 요청

    【워싱턴 교도 연합】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이 자동차 및 항공화물과 관련한 무역분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희망을 전달하고 안정적인 미·일 관계유지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고노 요헤이 일본 외상과 오는 26일 회담할 것을 요청했다고 미국무부가 20일 밝혔다. 니콜라스 번스 국무부 대변인은 19일 크리스토퍼 장관과 고노 외상이 무역 분쟁과 다른 양국간 문제에 관해 우호적인 전화통화를 나누었다고 전했다. 미국은 19일 일본에 대해 항공화물운송 규제조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오는 28일의 자동차 관련 분쟁 해결 시한을 앞두고 거듭 보복 조치를 다짐하고는 있으나 무역분쟁으로 인해 일본과의 포괄적인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원만한 사태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남·북·일 새 3각관계(한·일수교 30년)

    ◎일의 「남·북 줄타기 외교」 대비해야/대북 수교협상 자세따라 한·일갈등 소지/끊이지않는 「망언」… 선린의 앞날 불투명 국교가 정상화된지 30년,한일양국관계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지난 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에 서명한 이후 양국 관계는 발전과 퇴보를 되풀이하고 있다.지난 30년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측면에서 양국 관계는 양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65년 2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간 무역액은 그동안 2백배 가까이 늘어 지난해에는 3백89억 달러를 기록했다.양국간 인적 교류도 65년 1만명에서 지난해 2백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양국이 이웃국가로서 결속력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한국쪽에선 「동반자」보다는 「반일감정」이나 「망언」이,일본쪽에선 「혐한」「추한 한국인」이란 단어가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한다. 지난 연말 한국 외무부와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이 여느해 보다 강하게 새해를 맞는 흥분을 느낀다고 털어 놓는 것을 본 일이 있다.광복 50년(일본에는 종전 50년이다),국교정상화 30년이라는 1995년의 역사성이 양국관계를 다루는 당국자들에게는 팔을 걷어붙일만한 의욕을 촉발하는 계기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몇차례 천명했듯 95년을 과거를 극복,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원년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당국자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의욕은 국민감정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일본과의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것 같은 공식행사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우리 국민의 평균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기념행사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이를 반민간 단체로 볼 수 있는 한일의원연맹(회장 김윤환/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으로 넘겼다.그러나 연맹측이 계획했던 행사조차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경북 예천 출신으로 「일본의 이미자」로 불리는 재일동포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서울,부산 공연은 문화체육부의 불허로 무산됐으며,한일청소년회관의 건립계획도 변경됐다.이달 일본에서,오는 12월 우리나라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것 정도가 확실히결정됐을 뿐이다. 의원연맹측이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문화재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 정도가 계속 기대를 걸만한 사업이다. 양국 관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차원에서 시각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우선 한일 관계를 양자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자간 관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 내에서라면 한일 양국의 이익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양국은 자유무역체제를 지향하고 그 안에서 국가발전 전략을 꾀하고 있으며,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의 기본 이념도 같다. 일본 관계를 다루는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선출과정에서 김철수후보를 적극 지원하거나,우리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양국의 이해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국익이 일치하는 구조 속에서도 양국 국민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지적이다.일본인들 스스로의 지적처럼 『괴롭지만 과거를 바로 보지 않으면,미래는 없다』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실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죄,군대 위안부문제,사할린동포 문제등은 양국이 해결해야 할 오랜 현안이지만,일본측은 어느것 하나 진심으로 반성하며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의원연맹의 지철민 사무총장은 올해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등 여당연합과 신진당이 추진하던 일본 국회의 과거사죄와 부전결의가 결국 신진당이 불참한 채 반성과 평화추구라는 용두사미로 끝나고,때를 맞춰 터져나온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전외무장관의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이 아직 한일관계의 미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일본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의 대북 쌀 제공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 정부의 미묘한 자세는 우리 국민과 정부 당국자들이 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원초적 우려감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한반도 전략은 무엇인가.일본은 과연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가.한국민은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를 이끌어낸뒤 한반도의 남북 양쪽을 저울질하는 줄타기 외교를 전개하며 이문을 챙기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레 갖게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올해가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이라서가 아니라,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본격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에,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일본 태도에 따라 한일 관계는 또 한차례 갈등하며 후퇴의 시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한국측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1월 고베 대지진 때 한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구호물자를 보낸 바 있다.전문가들은 광복후 50년이 지나고 양국을 움직이는 세력이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 교체되면서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양국관계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신세대들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한다는 인식을 전세대보다는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또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낮에는 반일,밤에는 친일」이라는 식의 일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은 있다」의 저자 서현섭씨(외무부 외교정보관리관)는 『한일관계의 지난 50년은 두나라 국민이 무시(DISREGARD)→불신(DISTRUST)→혐오(DISLIKE)라는 3D를 만들어온 세월』이라고 말했다.그는 『앞으로의 50년은 세 단어에서 부정을 의미하는 「DIS」 세글자를 떼어버리고 상호인정(REGARD)→신뢰(TRUST)→선린(LIKE)의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일관계 30년 일지 ▲1965년 6·22=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서명 ▲8·28=한일협정 반대 학생 데모 및 위수령 발동 ▲12·18=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발효 및 주한·주일대사관 상호개설 ▲1966년 1·17=한일간의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발효 ▲5·27=일본 문화재 2천3백28점 반환 ▲19 67년 6·30=사토 에이사쿠 일본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취임식 참석 ▲1970년 6·16=한일 정기여객선(부관페리호) 취항 ▲1971년 2·5=일·북 재일교포 북송합의서 조인 ▲1973년 8·8=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1974년 8·15=조총련계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 ▲1975년 9·15=조총련계 동포 성묘단 모국 방문 ▲1982년 7·26=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외교 문제 비화 ▲1983년 1·11=나카소네 일총리 첫 공식 방한 ▲1984년 9·6=전두환 대통령 첫 공식 방일 ▲1986년 5·18=일,대한 2백해리 어업수역 선포 ▲7·24=후지오 문부상 교과서 왜곡관련 망언 ▲1990년 5·24=노태우대통령 방일 ▲9·24=가네마루 자민당부총재 등 3당 대표 방북,일북수교 원칙 합의 ▲1991년 1·9=가이후 총리 방한,한일 우호협력 3원칙 발표 ▲1992년 7·6=일본정부 종군위안부 조사결과 발표,정부관여 인정 ▲11·8=노태우 대통령 실무 방일 ▲1993년 10·4=사할린 동포 관련,한일 실무협의회 ▲11·6=호소카와총리 실무 방한 ▲1994년 3·24=김영삼대통령 방일 ▲7·23=무라야마 총리 방한 ▲1995년 1·19=한국정부,고베지진에 구호품 전달 ▲6·5=와타나베 전외상 한일합방 관련 망언 ▲6·14=일본의회 과거 반성,평화 추구 결의 ◎지표로 본 양국관계/교역규모 급속 증가… 1백85배 늘어/경기둔화·국민감정 악화… 90년초 주춤/대일 누적적자 1천억불 시정 과제로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80년대 말까지 교역과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다가 90년대 초 국내 경기둔화와 노사분규 여파로 잠시 주춤했다.그러다 엔고에 힘입어 지난 해부터 기계류와 부품을 중심으로 산업협력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그러나 30년간 누적돼 온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65년 국교정상화 당시 대일 수출은 4천4백만달러였다.이것이 지난 해에는 1백35억2천만달러로 늘었고,대일 수입도 1억6천만달러에서 2백53억9천만달러로 커졌다.교역규모만 1백85배 신장한 셈이다. 반면 교역확대속에 65년 1억2천만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가 86년 50억달러를 넘은 데 이어 지난 해에는 1백억달러 돌파(1백18억6천만달러)라는 반갑지 않은 기록까지 남겼다.그간의 누적적자만 이미 1천억달러를 넘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국교정상화 이후 계속 늘던 대일 수출은 89년 1백35억달러를 고비로 줄기 시작,92년 1백16억달러로 떨어졌다.수입도 91년 2백11억달러에서 92년 1백95억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의 대한투자가 전체 외국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92년 건수기준 30.5%,금액기준 17.3%로 82∼86년 평균(건수 47.7%,금액 49.6%)에 못미쳤다.고임금으로 한국의 투자매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과거사 문제로 국민감정이 악화돼 소원한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93년 초 양국 모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국 경제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국민감정과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로 문제를 풀기로 양국 정상이 합의한 뒤 우리 정부가 먼저 수입선다변화 품목을 해제하는 등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교역액이 92년 3백11억달러에서 지난 해 3백89억달러로,일본의 한국투자는 92년 72건,1억5천달러에서 지난 해 1백32건,4억2천만달러로 각각 늘었다. 교역형태도 기계류와 부품·소재를 일본에서 들여다 경공업제품을 생산,제3국에 파는 「산업간 교역형태」에서 반도체와 철강 등 중화학제품을 서로 주고받는 「산업내 교역」으로 바뀌었다.일본으로서도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부품과 소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일본기업들의 투자도 저임금을 겨냥한 해외 생산기지화 전략에서 전략적 제휴형태로,기술협력도 한국의 일방적 기술이전 요구가 아닌 경제논리에 기초한 교류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엔고 지속과 세계경제의 지역주의화,미국과의 협상실패에 따른 무역마찰로 일본은 우리와 산업협력의 끈을 단단히 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일본기업을 적극 유치,대일역조를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그렇게 되면 기술이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양국관계가 호혜와 동반의 관계로 성숙돼 갈 것이다.
  • 예브게니 바자노프 러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지구촌 칼럼)

    ◎미­러 밀월관계 깨지고 있/러­“경제개혁 실패는 미국탓”/미­국제문제 독자행보는 배신” 미국과 러시아 두나라간의 밀월관계는 확실히 끝났다.그리고 갖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이 두 나라의 밀월을 해치고 있다.관계를 해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그리고 앞으로 이 두나라 관계는 어떻게 발전될 것인가. 이 문제를 따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들의 국내정치적 요인들을 체크해봐야한다.러시아에서는 소위 「쇼크요법」식 급진경제개혁이 실패함에 따라 크렘린내 권력핵심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보수주의,전통주의 정치인들이 진출해있다.물론 이들은 과격 반대파 정치세력에 의해 점차 많은 압력을 받고 있다.극단주의자들은 소연방의 해체,강대국 지위의 상실,그리고 친서방 일변도의 정책에 대해 크렘린내 민주세력을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이들은 지난 10년간 러시아가 겪은 재난들이 모두 미국에 의해 계획되고 저질러진 것으로 믿는다.사회,경제,민족문제등에 시달리는 국민들은 이러한 선동에 쉽게 휘말린다.이런 분위기에 과감히 제동을 거는 정치인도 없고 대외정책도 점차 보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역시 러시아에 대해 점차 덜 우호적으로 돼간다.이는 부분적으로는 러시아국내 문제 탓이지만 크게는 미국내 사정 탓이다.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민주·공화 두 세력간 경쟁관계가 첨예화된데서 파생되는 현상이다. 두나라 관계를 해치는 또다른 요인으로는 수년에 걸친 협력관계 모색이 별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실망을 들 수 있다.처음 러시아 민주세력들은 미국을 러시아의 개혁을 도와줄 이념,정치적 동맹관계로 보았다.미국 지도자들 역시 러시아의 개혁을 지지했다.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대내외 정책 기조가 변하면서 미국의 관심은 급격히 퇴조했다.그러자 러시아 정치인들은 이를 미국의 배신으로 받아들였다.양측 모두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원조문제만 해도 그렇다.1992년에 미국은 러시아를 주 원조대상국으로 간주했다.새 러시아에 필요한 물품,재정적 지원을 베풀 태세가 돼있는 듯했다.하지만 지금 러시아는 미국의 차관,원조가 불충분하다고 욕한다.투자 역시 미미하다.필요한 투자 대신 미국은 쓸데없고 유해한 물품(예를들면 껌·담배등)들만 러시아에 실어나른다.법적 제약 때문에 기술이전도 되지 않고 미국은 러시아가 제3국에 기술을 팔아 돈을 버는 길마저 막고 나선다.러시아와 이란간 핵기술 판매협정 건이 바로 그런 예이다. 러시아가 미국에 대해 쏟아내는 이런 불평불만이나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갖는 불만들 모두 합당한 논리를 갖지 못한다.러시아에 주는 차관·물품은 관료,범죄조직의 주머니로 사라진다.러시아의 투자환경은 너무 열악하다.그리고 러시아 수입업자들 스스로가 그런 무익한 물품들만 골라서 사간다.그리고 극단적인 나라들에 대한 러시아의 기술판매는 세계의 평화와 안보에 위험을 초래한다. 러시아 역시 미국 모델을 따라 보겠다고 한 개혁이 실패로 끝난 데 대해 실망감을 느낀다.이들은 미국인 경제학자들이 자기들에게 잘못된 처방을 해주었다고 욕한다.물론 미국학자들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새로운 개발모델을 소화할 능력을 못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양자 관계를 해치는 또하나의요인은 국제무대에서 양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한다는 점이다.시간이 갈수록 러시아는 안보·경제·민족문제등 여러 면에서 옛소련방 공화국들이 반드시 다시 뭉쳐야한다고 믿는다.러시아는 소위 「가까운 외국」으로 일컫는 옛연방 공화국들도 이에 동감한다고 말한다.하지만 미국은 이를 러시아제국주의의 재등장 조짐으로 해석한다.그래서 미국은 이들 옛소련 공화국들에게 소련의 영향권을 벗어난 독자적인 정책을 펴고 다른 외국과의 관계강화를 추구하라고 부추긴다. 동구에서도 양국간 이해는 충돌한다.러시아가 보기에 과거 자기의 동맹국들이 나토에 가입한다면 이는 유럽대륙에서 자기들만 고립돼 러시아의 평화,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한다.하지만 미·러 관계가 악화되고 러시아의 장래가 불안해질수록 미국은 동유럽국들의 희망대로 이곳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지금 러시아에서는 미국이 자기들을 2등 파트너로 대한다는 불만이 높아간다.주요 국제문제들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면서도 러시아의 대내외 문제에사사건건 간섭한다.그리고 러시아국민들의 미국여행에 온갖 제약을 다 가하면서 저질 팝 문화로 러시아를 오염시키고 또한 러시아의 언론들을 마음대로 주무른다.강대국 러시아의 옛영광을 되찾자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미국의 이러한 횡포를 도저히 참지 못한다.이제 더이상 미국의 입장을 무조건 추종하지 말자고 이들은 주장한다.그래서 이들은 최근 들어 모든 주요 국제분쟁에 개입해 독자적 입장을 제시하려고 한다. 미국은 러시아의 이런 태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미국은 러시아를 손 아래 파트너로 취급하는데 익숙해 있다.우선 크렘린은 국내정적과의 투쟁에서 번번히 미국의 지원에 신세를 졌다.그리고 미국은 경제원조를 제공했고 러시아는 사회,교육,행정,환경등 거의 모든 문제에서 미국의 도움과 자문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독자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은 미국이 볼 때는 일종의 배은망덕이다. 이런 여러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가 완전 회복불능은 아니다.최악의 시나리오로 설사 러시아에극우 민족주의 독재정권이 등장하더라도 양국관계가 완전 끝장나지는 않을 것이다.우선 러시아가 군사적,지정학적으로 그런 대결을 감당할 힘이 없다.그리고 아무리 독재정권이라도 군사력,나아가 국민생활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경제협력이 필수적이다.그리고 무엇보다 양국관계를 떼놓을 이념대결이 없다.러시아가 현대사회를 건설하는데 미국·서유럽 모델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그리고 어떤 독재자가 나와 세계강대국이 되겠다고 호언해봤자 러시아국민들이 이를 지지할 리가 없다.러시아국민들은 이미 그런 슬로건에 식상해있고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보다 나은 삶뿐이다.미국 역시 오랜 냉전대결로 힘이 소진돼 새로운 냉전대결을 벌일 입장이 아니다.따라서 미·러 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지만 완전히 판이 깨지지는 않는 미묘한 관계가 계속될 것이다.
  • 대한민국의 출범(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3)

    ◎첫 행정부 11부·4처로 구성… 총리에 이범석/국호·헌법전문에 상해임정 법통 승계 명확히 1948년 8월15일 상오10시쯤 중앙청(현 국립중앙박물관)앞 광장에 마련된 정부수립 선포식장.7월24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승만이 모습을 나타내자 세종로와 태평로를 꽉 메운 독립국가의 백성들은 손에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단상에는 이대통령 부부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신익희 국회의장,김병로 대법원장이,왼쪽엔 맥아더 태평양지구연합군사령관,하지 주한미군사령관,외국사절들이 나란히 자리잡았다. ○「한」·「태한」 등도 거론 이대통령은 『이 정부가 변함없이 민주주의에 기초를 둔 모범적 정부임이 세계에 표명되도록 매진하겠다』는 말로 경축사를 끝맺었다.일제의 강점으로 끊겼던 민족국가의 맥이 되살아나는 한편 이땅에 민주주의 정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새로 출발하는 대한민국의 성격을 제헌국회 의원들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었을까.이는 국호를 제정한 과정에서 잘 나타나 있다.헌법 기초위원회는 6월7일 나라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잠정 결정하고 이를 본회의에 넘겼다.본회의 토론에서 몇몇 의원들이 그 의의와 근거를 물었고 일부는 「한」,또는 「태한」으로 하자거나 국민 총의를 모아 참신한 새이름을 짓자는 의견들을 냈다. 이에 대해 헌법기초위원회 서상일 위원장등은 『「대한」이란 국호는 청일전쟁 당시 이미 사용했으며 일제에 의해 빼앗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켰다.이와 함께 「3·1운동」을 계기로 상해에서 수립한 임시정부에서도 그 이름을 썼다는 점을 강조했다.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최종 결정했다.상해임정에서 쓴 「대한민국」을 국호로 인정하고,헌법 전문에도 상해임정을 이어받는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새 국가는 그 법통을 명확히 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또 행정·입법·사법의 3권분립을 확실히 해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웠다.첫 행정부는 11부,4처,66국으로 짜여졌다.이대통령은 국무총리에 처음 이윤영을 내정하고 국회에 승인을 요청했으나 거부되자 이범석으로 교체해 인준을 받는다.이어 8월 1∼7일에 걸쳐 장관과 처장들을 임명했다.입법부에서는 이승만의 뒤를 이어 신익희가 국회의장이 됐으며,부의장은 김동원과 김약수가 선출됐다.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은 김병로가 맡았다. 11부의 장관과,4처의 처장 명단은 다음과 같다. ▲내무 윤치영 ▲외무 장택상 ▲국방 이범석 ▲재무 김도연 ▲법무 이인 ▲문교 안호상 ▲농림 조봉암 ▲상공 임영신 ▲사회 전진한 ▲교통 민희식 ▲체신 윤석구 ▲총무 김병연 ▲공보 김동성 ▲법제 유진오 ▲기획 이교선 그러나 조각 결과는 제헌국회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 한민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조각 과정에서 소외된 한민당은 8월8일 『본당은 시시비비주의로 임할 것이며 정부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야당 세력임을 자처했다.따라서 한국 정치에 여·야 개념이 이때 비로소 발생했으며 한민당 계열은 이후 야당의 뿌리로 자리잡는다. 대한민국 수립에 앞서 미 군정의 정권이양도 순조롭게 진행됐다.먼저 「5·10 선거」실시 열흘만에 군정은 입법기구 노릇을 하던「남조선과도입법의원」을 문닫았다.이어 6월1일에는 군정재판을 폐지함으로써 입법·사법 두 기능을 마감했다. 신생 대한민국 정부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다른 나라들로부터 정통·합법국가임을 인정받는 것이었다.아직 출범하지 않은 정부에 대해 필리핀이 7월4일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사실상」승인한다.8월13일에는 미국과 자유중국도 정부를 「사실상」승인했고 특히 미국은 무초를 외교대표로 임명했다. ○유엔총회 압도적 지지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유엔의 승인이었다.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5·10 선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데다 유엔에서 주도권을 쥔 미국이 새 정부를 강력히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엔에서의 승인」이 사실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그럼에도 새 정부는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을 위해 외교적 총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그해의 유엔총회는 9월21일 파리에서 막을 올렸다.이 자리에는 한국임시위원단의 보고서가 제출됐다.위원단은 「5·10선거」를 『전체 한국민의 3분의2를점하는 선거민들이 자유롭고 정당하게 의사표시를 했다』고 밝혔다.선거결과 구성된 제헌국회의 입법활동과 정부형성 과정도 자세히 소개했다.보고서는 『미군사령부가 한국정부에 이미 정권을 이양했으며 한국정부는 정상적인 정부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총회의 끝 무렵인 12월7일부터 한국문제가 정식의제로 다뤄졌다.12일 총회는 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에 있어 유일한 그러한 정부」(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라는 결의를 통과시켰다.찬성 41,반대 6,기권 1이라는 압도적인 지지였다.이 결의문은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역에 걸친 전국적 정부라는 선언을 조심스럽게 피하긴 했으나,대한민국 정부가 실질상 한반도에 있어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함축한 것이었다.더욱이 국제적 뒷받침이 거의 없었던 북한정권에 비해 대한민국 정부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확실하고 충분한 국제정치적 근거가 됐다. 유엔총회의 승인으로 자유우방 국가들과의 외교관계가 잇따라 수립됐다.1949년 1월1일 미국이 대한민국 정부를 정식 승인한 것을 시작으로 4일에는 자유중국이,18일 영국,2월5일 프랑스,3월3일 필리핀이 뒤를 따랐다.1950년 「6·25」가 일어날 때까지 수교국가는 30개국 가까이로 늘어났다.이에 견줘 북한정권을 인정한 나라는 소련권에 한정됐다.더욱이 「6·25」가 발발하자 유엔군 참전의 명문을 제공하는등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은 한국의 국제관계에 초석이 되었다. ◎영 소장 「미 한국승인 성명서」/미 “대한민국은 유엔결의로 세운 합법정부”/“카이로선언 연장선상서 탄생” 천명/이 대통령,즉각 “무쵸파견 환영” 답신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대한민국 출범을 3일 앞둔 1948년 8월12일(한국시간 13일)미국 국무부가 새 한국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이를 승인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영국 런던의 공기록보존소에서 찾아냈다.이 성명서는 비록 장문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 대한 당시의 미국측 입장이 잘 요약돼 있다. 이 성명서에서 미국은 먼저 한국정부 수립이 1943년 12월 미국·영국·중국등 3국이 합의한 카이로선언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했다.또카이로선언의 원칙은 포츠담선언과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재확인됐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소련과의 협상 끝에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미 정부는 1947년 11월14일 유엔총회 결정에 의해,정당한 과정을 통해 수립된 새 정부를 한국의 합법정부로 간주한다고 선언했다.이와 함께 대한민국 정부 및 유엔한국임시위원단과 협상할 대통령 특사로서 로드 아일랜드 출신인 존 무초(John J Muccio)를 파견하겠다는 내용을 공표한 이 성명은 무초가 초대 주한 미대사를 맡게 될 것임을 일찍 명시해 놓았다. 그리고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이승만 대통령이 이 성명에 대한 답신을 통해 미국이 대통령 특사로 무초를 파견하겠다는 계획에 대해 즉각 찬성한 답신 내용도 런던에서 발굴했다.8월17일 미국에 보낸 답신에서 이승만대통령은 『일제에 의해 훼손된 한·미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조치』라고 치하했다.
  • 한반도 통일여건 진단과 전망/한·러·일·중 4개국의 시각

    광복 50주년을 맞아 지난 50년을 뒤돌아 보고 한국통일의 현단계와 전망을 짚어 보는 국제학술회의가 지난 12∼14일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과 프레스센터 공동주최로 서울 호텔신라에서 열렸다.한국을 비롯,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의 학자와 언론인들이 참석,「한반도 분단의 역사적 재조명」「한반도 통일여건의 진단과 전망」「세계속의 통일한국 위상」등 3개 주제로 나누어 주제발표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이 세미나의 「한반도 통일여건의 진단과 전망」주제 회의에서 발표된 한반도 통일에 대한 미국·러시아·일본·중국의 시각을 요약 소개한다. ◎미국/북한은 계몽적 협상대상/대화로 평화적 해결 희망/톰 레이드 워싱턴포스트 동경지국장 미국인들이 한국 통일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를 일반 대중과 학자,그리고 관리나 공무원들의 입장으로 구별해 말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선 일반인들은 대부분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부지런하고 검소한 한국인 이민자들을 단지 한국인들로 알 뿐 남한인으로 알고 있지 않다.이것은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즉 이들은 한반도의 분단이 일시적인 상태로 언젠가는 통일될 것으로 믿고 있으며 통일을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학자들은 대개 통일방식과 통일 후의 형태와 관련해 대개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국을 바라 본다.그럼에도 양측 모두 남한은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만한 국가이며 합법적인 정권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선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는 측과 무모한 독재국가로 보는 측으로 양분된다.전자의 경우 북한이 통일 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며 후자는 한반도 통일이 독일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국가가 더 크고 부유한 민주국가로 흡수 통일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편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은 대부분 이 민감한 한국통일 문제에 대해 통일은 불가피하며 바람직한 것이라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미국의 관리나 외교관 가운데 한국의 영구분단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한국문제에 대한 논쟁은 대 북한관계에서 시작된다.현재의 클린턴 정부처럼 북한을 이란과 쿠바처럼 계몽적인 협상이나 강·온 정책을 병행해야 할 나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과 적으로 간주하는 주장이 그것이다.이들 관리나 공무원들은 대부분 학자들의 주장을 따르는 편인데 클린턴 정부측의 견해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측이고 또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는 측은 독일처럼 흡수통일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에 경도돼 있는 분위기다. ◎러시아/파격적인 경제계획 수립/안정된 국제환경 조성을/세르게이 곤차로프 역사학자 러시와와의 관계에 있어서 남한은 북한보다 빠른 발전상황을 보여왔다.현재 러시아와 남한은 연대관계에서 민감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그 예는 한국전쟁에 대한 소련 문서자료들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시하는 것과 관련한 신사협정이다. 러시아와 남한간의 관계수립과 발전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을 주었지만 기대했던 것이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남북한과 러시아의 관계에 있어서 러시아는 혁명적이고 폭력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이고 평화로운 과정을 택한다.북한과의 정상관계를 유지하고 남한과의 연대를 진척시킴으로써 러시아는 한반도에서의 상황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극동아시아의 다른 주요세력들과는 달리 한반도 통일의 결과에 대해 우려할 것도 잃을 것도 없다.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통일한국이 경제·군사적인 면에서 이 지역에서의 일본의 경제 군사적인 역할에 도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또 남북한 경제교류가 빠르게 발전한다면 중국에 행해지는 남한 투자의 몫이 북한쪽으로 기울게 된다.미국에 있어서도 한반도 통일은 남한내 군사주둔의 문제를 해결하는 어려운 과업을 제기하고 그것은 불가피하게 일본과 미국간의 안보 유대의 재평가를 필요로 할 것이다.그러나 러시아는 그 모든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형편이다. 한반도 통일의 전개는 무엇보다도 남북간 정치·안보 대화를 비롯한 경제 문화 인도주의적 교환에서부터 남북한과 지역내의 주요국들을관련시키는 파격적인 경제 사회적 계획들을 이행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또한 한반도 주위의 안정적인 국제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북동아시아에서의 다각적인 안보계획을 점진적으로 전개하는 조치가 동시에 진행돼야만 한다. ◎일본/남한 여유자본 많지 않아/통일후 재건비 준비해야/다오카 순지 아사히신문 아에라지 부편집인 일본이 한반도 통일에 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대체로 독일 통일에 대한 것과 비슷하며 일본의 안보 이해관점에서 볼 때 그런 형태의 한반도 통일은 3가지의 긍정적 측면이 있다. 우선 일본이 결코 무관심할 수 없는 이웃국가의 전쟁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 날 경우 일본의 고도로 조직화된 운송 시스템이 상당한 부담과 혼란을 겪게 되고 한·일 합동전쟁 노력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 특공대의 공격을 예상해야 하며 일본으로 이주하는 한국민들의 처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일본내 미군에 상당량의 재정적 지원을 제공해왔다는 측면에서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은 두번째 한국전쟁의 가능성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에겐 훨씬 더 반가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통일을 독일과 비교할 때 통일 후 한국이 더 어려운 측면이 많을 것으로 점쳐진다.우선 통일후 남한인 2명이 북한인 1명을 부양해야 할 정도의 인구비율이 큰 문제점으로 작용할 것이며 남북의 극심한 빈부격차도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 뻔하다.이와 함께 가장 심각한 문제랄 수 있는 것은 남한이 북한을 재건립하는데 이용가능한 여분의 자본을 적게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는 통일전 서독이 세계 최대의 차관 대여국이었던데 비해 남한은 현재 1백억달러가 넘는 채무가 있음을 볼 때 심각성을 더해 주며 일본 투자가와 금융가들이 통일 한국이 겪어야만 할 경제적 난관에 대해 가장 우려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만일 한국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한다면 수백만의 북한 주민들은 북한의 산업이 남한의 산업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에 불평많은 실직자가 될 것이므로 통일직후 북한내에서 신속한 경제발전 프로그램을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또 일본 측에서도 통일후 거대한 양의 원조와 차관을 제공하기는 어려운 형편으로 일본이 얼마나 「과거의 북한」을 돕기 위해 부담을 질 것인가는 두 국가간의 우호적 관계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미 북 핵타결 긍정적 효과/신뢰 쌓아 점진적 교류를/구오시민 인민대 명예교수 중국은 한반도와 가까운 이웃이다.북한과는 국경이 맞닿아 있으며 한국과는 서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양국 국민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긴 역사를 갖고 있다.한때는 파시스트와의 전쟁에서 서로를 지원했다. 한국과 중국은 완전한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지난 3년동안 모든 측면에 있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경제분야에서는 서로 매우 보완적이며 광범위한 협력을 하고 있다.양국 교역량은 지난 92년 50억6천만 달러에서 94년 1백17억2천만 달러로 늘어났다.이제 중국은 한국에 있어 3번째,한국은 중국에게 6번째로 큰 무역 상대국이 되었다.또 한국이 중국에 투자한 액수는 17억 달러,투자종목은 2천개가 넘는다.중국은 한국의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한 국가가 되었다.양국 국민간 교류나,문화·교육·과학·기술 분야의 협력과 교류도 빠르게 늘어 났다. 한반도에서 핵이 사라지고 평화 및 안정을 실현하는 것은 중국의 꾸준한 입장이다.중국은 한반도 국민들과 선린관계 및 우호관계를 오래 갖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중국 인민은 반세기 전의 분단 때문에 한반도 국민들이 겪은 고통을 이해하며 그들의 자체 노력으로 통일이 실현되기를 원한다.중국은 양쪽이 참을성있고 진실한 대화와 조언을 통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현존하는 문제를 해소하기를 바란다.또 양쪽이 과거의 증오심을 버리고 서로 신뢰를 향상시킴으로써 스스로 주도권을 갖고 평화통일 이루기를 희망한다.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에 대한 기초적 합의에 서명한 뒤 한반도 상황은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비록 큰 차이가 몇가지 남아 있긴 하지만 모든 관련 당사자들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임을 인식하게 되었다.현재 남북 양쪽도 평화통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주변국들은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싶은 공통 희망을 갖고 있다.한반도 상황은 완화된 상태로 유지될 것이며 점진적 통일은 시대의 추세가 될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