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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위협정」개정 일정부 나서야/마이니치신문 9월28일(해외사설)

    일본의 외상과 방위청장관이 미국을 방문했다.미일 양국의 근간인 안보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그러나 오키나와현에서 일어난 미군병사의 국민학생 성폭행사건과 관련된 지위협정 개정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암만해도 기묘한 일이다.외상은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에게 임시국회에서 협정개정에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주일미군에 특권을 인정한 지위협정이 미일간의 미묘한 밸런스 위에 만들어진 것을 잘 안다.미일안보조약에 따라 미군의 주둔을 허용한 이상 일본은 그 군대에 편의를 봐주지 않으면 안된다.양국간에는 법체계도 관습도 다르기 때문에 상호 타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의 지위협정은 60년의 미일안보조약 개정전의 행정협정을 대부분 이어받은 것이다.그 행정협정은 전쟁직후의 점령군의 지위를 거의 계승했었다.그래서 지위협정은 상당히 고풍스런 점을 지나치게 많이 갖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미군병사의 범죄에 대한 대응조치도 그 하나다.기소까지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할 권리를 미군에부여한 것은 미국의 인권 제1주의를 존중했던 것일게다.그렇게까지 일본 경찰의 취조가 신뢰받지 못한다고 한다면 크게 반성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미군의 신병 확보권은 종종 사건을 유야무야시켰다.2년전 오키나와에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던 미군병사가 기지를 탈주해 미국으로 도망가 버리기도 했다. 지위협정 개정요구는 오키나와현에서만 제기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주일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요코다,이와구니,아쓰기기지 주변지역의 시의회등이 개정요구 의견서등을 채택하고 있고 이러한 목소리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다. 협정의 불합리에 눈을 감으려는 정부의 자세에는 도대체 합격점을 줄 수 없다. 미국은 일본으로서 최대의 우호국이다.미일안보는 일본으로서 대단히 중요하다.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기지를 유지하는 것이 절대적인 것인가.탈냉전을 생각하면서 미일양국은 개정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가.
  • “러시아 제쳐놓고 「유고 해결」 어렵다”(지구촌 칼럼)

    공산주의 시절 소련국민들은 유고를 지상낙원으로 생각했다.유고도 소련처럼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였다.하지만 그들은 소련과는 달리 상점에 물건이 가득했고 높은 임금,자유로운 해외여행의 자유를 누렸으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했고 서방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많은 소련사람들은 유고가 추구하는 길이 본받아야할 유일한 사회주의라고 말했다.제일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바로 유고였고 외교관들은 유고근무를 평생의 꿈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이 지상천국 유고가 생지옥으로 변했다.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련사람들은 말못할 충격을 받았다.그곳에서 진행되는 전화의 불똥이 언제 발칸반도를 넘어 옛소련영토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 이 충격은 증폭됐다.연방국가였던 유고의 시나리오처럼 옛소련도 언제 전장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많은 러시아인들의 뇌리를 짓눌렀다. 러시아가 이 발칸반도의 화약고에 깊은 관심을 갖는 또다른 이유는 러시아의 강대국 야망 때문이다.러시아정부는 미국,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유고문제해결에서 러시아를 동등한 논의 파트너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믿는다.최근에도 나토는 사라예보 인근 세르비아계 거점에 대한 공습을 결정하면서 러시아와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다.옐친행정부는 서방이 러시아의 입장과 이해를 전혀 고려치 않고 공습을 결정했다고 강력하게 항의했다.옐친대통령의 강경한 항의 이유는 야당의 압력 때문이기도 하다.야당 지도자들은 유고사태에 대한 정책실패를 이유로 안드레이 코지레프 외무장관의 경질을 끈질기게 요구한다.서방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과거 러시아영향권 지역에 대한 영향력 상실등이 질책 사유이다. 역사적 요인도 무시할수 없다.18­19세기에 걸쳐 러시아의 차르(황제)들은 오토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우는 세르비아인들에게 절대적인 후원을 보냈다.슬라브족으로 정교회를 섬기는 러시아인들은 인종·종교적으로 형제인 세르비아인들을 회교도 터키족 적들로부터 지켜주어야한다는 도덕적 의무감같은 것을 갖고 있다.같은 슬라브 정교도들을 보호하도록 신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던 러시아제국은 19세기 후반 마침내 세르비아인을 비롯,발칸반도에 살던 민족 대부분을 터키의 지배에서 해방시켜주었다.그곳에서 러시아는 영웅대접을 받았고 발칸반도 전역에는 지금도 당시 세워진 러시아 장군,병사를 기리는 기념비들이 도처에 남아 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독일,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인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손에 암살당하자 오스트리아는 군대를 동원했다.이에 맞서 전러시아사회가 세르비아형제들을 구하자고 일어섰다.이렇게해서 뛰어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는 1천만명의 희생자를 냈고 결국 그 여파로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오랜 역사동안 소비에트 러시아와 세르비아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지냈다.세르비아 왕은 볼셰비키들을 경멸했다.그러다가 30년대 들어 스탈린이 가까스로 유고 공산당 창건에 성공했고 히틀러와의 전쟁중 공산당 유격대원들이 적군을 도와 파시스트들을 물리쳤다.그러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의 새 주인 티토는 크렘린과의 유대를 끊고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스탈린의 지시와 사상을 모두 거부했다.스탈린 사후 소련과 유고의 관계는 다소 개선됐지만 소연방이 와해되기까지 유고는 소련보다는 서방과의 관계유지에 더 비중을 두었다.그런데 지금 와서 갑자기 양국관계의 시계바늘이 19세기로 되돌아간 것같이 됐다.러시아의 야당세력들은 세르비아 지원을 줄기차게 요구한다.이들은 러시아가 형제요,같은 정교도인 세르비아인들을 적의 포위로부터 구해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한다.무기와 돈을 지원하고 의용군을 보내야 한다고 외친다. 처음에 옐친대통령은 세르비아인들에게 특별한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92­93년 사이 크렘린은 오히려 서방정책에 동의,친공산계 세르비아 지도자들이 유고연방에서 독립하려는 크로아티아,보스니아공화국들을 방해하는 것을 비난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최소한 크로아티아,회교도들도 세르비아계 못지않게 책임이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러시아는 지금 세르비아에 대한 국제제재조치가 공평하지 못하며 평화해결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는 세르비아에 대한 나토의 무력사용을 즉각 중지하고 외교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자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크로아티아·회교도들은 러시아를 비우호적인 약소국으로 치부한다.크렘린과 보스니아내 소수 세르비아인들과의 관계도 94년 단절됐다.서방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이해를 존중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러시아의 입장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유일한 동맹자는 세르비아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한사람뿐이다.사실은 그 사람마저도 미국·서방과 직접 담판하기를 원해왔다.그런데도 러시아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옛유고 땅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옐친대통령은 오는 10월 보스니아 관련 국제회의를 개최하자고 얼마전 제의한바 있다.옐친의 의도는 뻔한 것이었다.바로 12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앞에 정부의 위신을 조금이라도 세워보자는 것외에 다른 것은 없다.
  • 2002년 월드컵개최 신청/조사단 새달 서울에…내년6월 최종결정

    ◎FIFA에… 일과 유치전 본격화 【취리히(스위스)=박정현 특파원】 한국이 29일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신청서를 제출,한국과 일본의 유치경쟁이 본격화 됐다.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위원회 구평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한국대표단은 이날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사무국을 방문,조셉 블레터 사무총장에게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 유치신청서를 접수 시켰다. 한국의 월드컵대회 개최능력을 서면으로 보여주는 유치신청서는 대회관련 경기장 시설 및 준비사항을 포함해 교통·통신·숙박시설 등에 대한 설명과 관계부처 장관의 FIFA 요구이행 보장을 위한 보증서,국회의 대회유치 지지결의문 등이 담겨 있다. 특히 신청서 서두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아벨란제 FIFA 회장에게 보내는 월드컵대회 유치협조를 당부하는 친필 서한이 포함돼 있다. FIFA는 한국과 일본이 제출한 월드컵대회 유치신청서 내용을 이행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5명의 조사단을 오는 10월 30일부터 한국에,11월 4일부터는 일본에 각각 4일 동안씩 파견하며 내년6월 1일 열리는 21명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에서 투표로 개최지를 확정한다. 구평회 위원장 등은 이날 유치신청서 제출 후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월드컵개최 수익금 중 대회조직위원회에 배당될 7천8백백만달러(한화 약 5백97억원)전액을 세계추구발전기금으로 회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은 28일 나카누마 겐 일본축구협회장 겸 월드컵유치위원회 부위원장이 블레터 FIFA사무총장에게 월드컵대회 유치신청서를 제출했다. ◎아르헨,월드컵 한국 유치 지원/양국 실질 경협 확대 합의/김 대통령­메넴 정상회담 김영삼 대통령은 29일 하오 청와대에서 국빈방문중인 카를로스 사울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우호관계 증진과 국제무대에서의 협력방안 등에 관해 폭넓게 논의했다. 양국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양국간 교역량을 보다 늘리는 등 실질경제협력을 증진시켜 나가기로 했으며 메넴대통령은 한국기업의 아르헨티나 진출과 투자가 보다 확대될수 있도록 뒷받침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대통령은 국제축구연맹(FIFA)부회장국인 아르헨티나가 2002년 월드컵의 한국유치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이에 메넴대통령은 가능한한 지원을 다짐했다. 김대통령은 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아르헨티나가 참여해줄 것을 요청,메넴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김대통령은 이어 항공협정의 조기체결과 함께 아르헨티나 근해에서 조업중인 우리 원양어선의 활동을 위해 아르헨티나 정부가 적극 지원해주도록 당부했다. 메넴대통령은 김대통령의 아르헨티나 방문을 초청했으며 김대통령은 상호 편리한 시기에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2년 수교 이래 아르헨티나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방한한 메넴 대통령은 이날 저녁에는 김대통령 내외가 청와대에서 주최하는 국빈만찬에 참석했다. 이에 앞서 메넴대통령은 이날 상오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국립묘지에 헌화했다.
  • 메넴 아르헨 대통령 오늘 방한

    카를로스 사울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국빈방문하기 위해 29일 상오 내한 한다. 메넴대통령은 다음달 2일까지 4일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김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우호관계 증진과 국제무대에서의 협력방안등에 관해 협의할 예정이다. 메넴대통령은 또 국회를 방문,황락주 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장단및 여야지도자들과 면담을 갖는 한편 경제4단체장을 비롯한 재계인사들과 만나 양국간 경제협력 증진방안 등 상호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다.
  • 한·러 협력의 새로운 계기(사설)

    러시아의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27일 내한했다.30일의 수교5주년에 맞춘 방한이다.옐친 대통령에 이은 러시아총리의 방한은 양국관계가 차분하고 실무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바람직한 현상이다.러시아의 제2인자이며 가장 강력한 옐친다음 주자인 그의 방한으로 양국관계가 내실있는 발전을 다지는 기회가 되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탈냉전이후 우리가 새로이 얻은 중요한 선린이웃이다.작년의 교역량 22억달러에 금년 30억달러 예상으로,이미 1백억달러를 초과한 중국과의 관계발전에 못미치고 수교당시의 열기도 최근 다소 식은듯한 아쉬움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도 우리에게는 호혜적인 발전의 여지가 대단히 큰 가능성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와 자연자원은 자원공급처로써,제품수출 및 투자시장으로써 러시아의 잠재적가치가 중국의 그것에 못지않는다는 사실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특히 러시아는 첨단기술 선진국이다.그리고 오늘의 세계는 기술경쟁·패권·장벽의 시대다.러시아의 군사첨단기술과 우리민간기술의 제휴내지 협력은 첨단기술의 민간활용에 뒤지고있는 러시아를 위해서는 물론 21세기 기술선진국을 지향하는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다.정치외교적으로도 호혜의 여지는 많다.러시아는 우리의 통일외교와 주변 4강외교를 위해,그리고 우리는 러시아의 아시아태평양외교에 도움을 줄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있다. 수교5주년의 체르노미르딘총리 방한이 이같은 가능성의 양국관계발전을 저해하는 장애제거에 도움되기를 우리는 기대한다.러시아 북한간의 상호원조 우호조약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15억달러 차관상환문제는 여전히 현안으로 남아있다.무기에 의한 상환론도 나오고 있으나 그것은 여건상 불가능한 현실임을 러시아도 알고있을 것이다.자원·기술협력등의 방법은 가능할지도 모른다.이같은 문제 해결지연으로 양국관계가 더이상 불필요하게 왜곡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 체르노미르딘 러 총리 내한/이총리와 회담… 경제공동선언 채택할듯

    빅토르 스테파노비치 체르노미르딘 러시아연방 총리가 이홍구 국무총리의 초청으로 27일 방한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29일까지 머물며 김영삼 대통령을 예방하고,이홍구 국무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수교 5주년을 맞는 양국간의 우호협력관계 증진과 실질적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또 김상하 대한상의 회장등 경제계 인사들도 면담할 예정이며,지방의 산업시설도 둘러본다. 양국 정부는 체르노미르딘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양국간 경제협력 방안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한­러 경제공동선언」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 김 대통령 새달 가·유엔 방문/16∼28일

    ◎22일 유엔연설… 러·불등과 정상회담 김영삼 대통령은 오는 10월 16일부터 21일까지 6일간 캐나다를 국빈방문하고 이어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유엔창설 50주년 기념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한뒤 호놀룰루를 거쳐 10월28일 귀국한다고 윤여전 청와대 대변인이 22일 발표했다. 김대통령은 캐나다 방문중 오타와에서 장 크레티앵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아시아·태평양시대를 맞아 양국의 동반자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키는 방안을 폭넓게 협의한다. 김대통령은 또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캐나다 최대 도시이며 한국교민 밀집거주지역인 토론토와 태평양의 관문이며 21세기 아·태시대의 경제·통상·교통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는 밴쿠버등 2개 도시를 방문한다. 김대통령은 이어 10월 22일 1백50여개국의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이 참석하는 유엔정상회의에서 지난 반세기동안 유엔이 이룩한 업적을 평가하고 21세기 유엔이 지향해야 할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은 유엔방문중 러시아·프랑스·이집트·이스라엘·인도·싱가포르·스페인 정상들과 개별정상회담을 갖는 한편 클린턴 대통령이 주최하는 리셉션에 참석,한·미간 우호를 다질 예정이다. 이와함께 김대통령은 유엔본부 방문중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이 주최하는 오찬에 참석하고 몇개국 정상들과 그룹으로 오찬을 함께 할 계획이다. 김대통령은 뉴욕 체류중 미국 유엔협회가 인류사회발전에 공헌한 지도자에게 수여하는 「세계지도자상」을 받으며 뉴욕대학으로부터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김대통령은 귀로에 한국방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놀룰루의 미 태평양함대 사령부를 방문,한반도 군사정세에 관한 브리핑을 듣고 해군기지를 시찰한뒤 10월 28일 귀국한다.
  • 메넴 아르헨 대통령 29일 방한

    카를로스 사울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 초청으로 오는 29일부터 10월2일까지 4일간 우리나라를 방문한다고 윤여전 청와대 대변인이 15일 발표했다. 메넴대통령은 국빈자격의 방한기간중 김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우호관계 증진과 국제무대에서의 협력방안등에 관해 폭넓게 협의할 예정이다. 지난 5월 재선된 메넴대통령은 라 리오하 주지사 시절인 지난 85년 방한했었으며 이번 방한에 이어 중국도 방문한다.
  • 주뉴질랜드 대사 소환/「문서변조」 최승진씨 송환지연 항의

    정부는 6·27 지방선거를 앞두고 논란이 일었던 외무부 문서변조 사건의 책임을 물어 이동익 주뉴질랜드대사를 문책 소환키로 했다. 이는 뉴질랜드정부가 문서변조 사건의 당사자인 주뉴질랜드대사관 최승진전외신관이 신청한 난민(망명)심사를 늦추는 등 조기송환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한 정부의 불만표시로도 풀이된다. 외무부는 12일 이대사가 이날 매킨논 뉴질랜드외무장관을 예방,자신의 소환 사실과 배경을 통보하고 최씨의 송환과 관련해 뉴질랜드정부의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14일 귀국할 예정인 이대사의 소환으로 한국과 뉴질랜드 사이에 적잖은 외교적 긴장국면이 조성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뉴질랜드,유감 표시 뉴질랜드 정부는 한국정부가 외교문서변조 사건의 책임을 물어 이동익 주뉴질랜드대사를 문책 소환한 것과 관련,우리 정부에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12일 『주한 뉴질랜드대사관의 리들 대사대리가 오늘 하오 외무부로 찾아와 이대사 문책 소환에 대해 안타까운일이라며 유감의 뜻을 전해 왔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우리측은 이에 대해 이대사 소환이 유감이기는 하나 이번 사건으로 양국 우호관계에 손상을 입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면서 『뉴질랜드측도 이점에는 동의했다』고 밝혔다.
  • “이념서 실리로”한반도 역학구도 급변/북·러 군사동맹조약 폐기의미

    ◎“냉전체제 붕괴” 북의 현실인식 유도/남·북 긴장완화에 도움… 우리외교 개가 러·북한간의 군사동맹조약은 지난91년 말을 기점으로 국제냉전체제의 종식과 소연방의 해체로 사실상 사문화된 조약이다.어느 의미에서는 러·북한관계보다 러·한국관계가 더 가까워진 마당에 전쟁발발시(특히 남북한전쟁을 상정)러시아가 북한을 자동적으로 무력지원한다는 조약이 효력을 갖는다고 볼수는 없다.지난해 6월 김영삼대통령의 러시아방문때 옐친대통령이 이같은 맥락에서 조약폐기 약속을 우리측에 했던 것이다. 러정부가 이 조약의 폐기 혹은 수정(군사자동개입을 명시한 제1조)을 그동안 미루었던 것은 경신을 하지 않을 경우 96년9월 이후 자동폐기되기 때문에 굳이 앞당겨 폐기해 북한을 자극치 않겠다는 의도에서였다.이 조약의 경신여부는 조약만료 1년전에 통보하게 돼있기 때문에 늦어도 9월중에 북한쪽에 경신,폐기여부를 통보하게 돼있었다.지난 61년7월6일 모스크바에서 체결돼 같은해 9월10일 평양에서 비준서교환으로 효력을 발생한 이 조약은 조약당사국 어느한쪽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매5년마다 자동연장되도록 규정돼있어 이번 조약은 내년 9월까지 유효하다.이때문에 러시아정부는 오는 10일 이전에 조약의 경신여부를 통보해야할 의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러정부가 조약폐기를 결정하며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역시 북한과의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래서 6일 한태규외무부 구주국장을 외무성으로 불러 조약폐기를 북한에 통보한 사실을 알리면서도 7일 공식발표 때까지는 철저한 「엠바고(보도자제)」를 요청했다.현재 러측은 이미 사문화된 것으로는 보지 않는 것 같다.북한과 군사동맹관계를 배제한 「우호선린조약」을 체결할 경우 양국관계가 정상적인 이웃으로 새출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북한도 이미 효력이 없는 군사동맹관계에 연연하기보다는 결국 새 조약체결에 응해,러시아와 정상적인 선린관계 구축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같다. 한편 북·러간 군사동맹의 공식폐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강국 사이에는 보다 첨예한 이해각축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우선 미국과 일본의 대북접근 템포가 제약없이 가속될 것이라는 게 이곳 전문가들의 분석이다.러시아 역시 과거처럼 이념에 바탕을 둔 관계가 아니라 실익에 바탕을 두고 최소한 남북한과의 관계를 대등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려 할 가능성이 높다.러시아는 북한에 대해 이미 핵개발반대,군사력증강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한국이 외교적으로 그전같은 반사이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높다. 북한 군사력의 「모태」였던 러시아와의 군사동맹관계가 마감됐고 이제 미·일·러등 주변국가들이 정상적인 국가간 이해에 따라 북한과 거래하는 시대가 열리게 됐다.물론 안보면에서 볼때 북한의 대남한전쟁도발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졌다고 할수있게 됐다.그러나 한반도는 이제 수십년간의 냉전시대 동안 겪지 못했던 미지의 도전과 과제에 직면케 됐다. ◎평양·모스크바의 대응은/북,대미 평화협정 공세 강화할듯/러선 다자체제 통한 영향력 유지 추구 북한과 러시아를 동맹국으로 묶는 끈이었던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 원조에 관한조약」이 폐기될 운명을 맞게 됨에 따라 남북관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역학관계의 변화가 예상된다. 물론 옛소련 시절 체결된 이 조약이 그 동안 한­러 관계증진에 실질적인 장애 요소는 아니었다.이 조약은 그 핵심인 「북한이 침략당했을 때 자동개입한다」는 조항에 대해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측이 지난 93년 독자적 해석권을 갖겠다고 선언했을 때 이미 사실상 사문화됐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자동 군사개입 조항은 북한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얼마든지 있었다.따라서 한­러 협력확대에 큰 심리적 장애요인이었다.그래서 지난해 김영삼대통령이 방러 정상회담시 엘친 러시아대통령에게 이 조약의 폐기를 강력히 요청했던 것이다.때문에 이번에 러시아측이 이 조약의 폐기를 북한에 통보했다는 사실은 일단 지난 90년 한­소수교에 이은 우리 외교의 개가로 평가된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완전한 친한노선으로 돌아섰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그 보다는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한국으로부터 경협등 실리를 얻겠다는 현실 노선을 택했다는 것이 올바른 진단일 것이다.이는 러시아측이 북한에 군사동맹조약의 폐기를 통보하는 대신 한국과 맺은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비슷한 우호조약 체결을 제시하고 있는 데서도 짐작된다.러시아측의 이 제안에 대한 북한의 구체적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하지만 북한도 궁극적으로 이같은 변화된 현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다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다소 감소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고립감이 심화된 북한이 핵카드를 이용한 미·일과의 관계개선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점쳐지는 탓이다.이 과정에서 북한이 정전협정을 무실화시키면서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공세를 한층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이는 남북한 및 미·중·일등과 함께 다자간 협의를 통해 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참여,한반도에서 발언권을 유지하려는 러시아의 구상과는 정면 배치된다.따라서 핵문제나 평화협정 문제등을 둘러싼 외교경쟁에서 반드시 우리측이 절대우위를갖게 됐다고 속단키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러 동맹관계의 청산은 북한이 국제적 냉전체제의 붕괴를 현실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러시아가 상징적이나마 「동맹」에서 보통의 이웃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외교무대에서 국제사회 게임의 룰을 존중하도록 강요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장기적인 견지에서 이번 러­북 조약의 폐기가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순기능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한·일 경제마찰땐 정치적 긴장 초래”

    ◎제3차 한·일포럼 주요 논의내용/“왜곡된 민족주의 대두 공동대처/「월드컵 축구」 공동개최 검토할만” 제3차 한·일포럼은 ▲한·일 양국 국내정치·경제·사회 ▲아·태지역에서의 양국 안보 ▲아·태지역에서의 양국 경제 ▲범지구적 문제에 관한 협력 ▲학술·문화교류 등 모두 5개 섹션으로 분과를 나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논의는 비공개가 대원칙이다.이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이 개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그러나 발언은 무기명으로(한국·일본 등 국명만 표기) 빠짐없이 기록돼 추후 회의록으로 작성된다.특히 양측 회장은 토론된 안건 가운데 참석자들이 공감한 내용을 정부에 정책건의 형식으로 전달하게 된다. 각 섹션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양국의 정치·경제·사회◁ 한·일 양국은 똑 같이 커다란 정치적 변혁기를 맞고 있다.한국에는 96년 총선거와 97년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가속화 되고 있다.일본도 중의원 소선거구제 도입에 따라 야당이 통합되고,혁신세력이 뭉치는 등 신당 창당 움직임이 활발하다.이런 상황은 불가피하게 양국에서의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다.이 과정에서 주의할 것은 양국민이 정치인들에 의해 오도된 민족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일본의 과거 반성을 외면하는 일부세력은 왜곡된 민족주의를 표출하는 것이다.양 국민간·사회간 이해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역시 민간의 교류가 늘어야 한다.물론 지난 30년간 민간 교류는 양적으로 크게 늘었다.그러나 이제 이를 질적으로 심화시켜야 한다.이런 취지에서 청소년간의 교류를 위한 특별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지난 30년간 한·일 관계 증진을 반영한 한·일 우호협력조약의 체결도 검토할만 하다. ▷안보관계◁ 냉전이후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반도에 지속적이고 안정된 평화체제를 확립하는 일이다.북한이 동북아 질서에 편입하도록 일본을 비롯한 관계국은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일간의 협조관계는 평가할만 하다.한·일 양국은 또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최근 긴장상태에 있는중국과 대만·미국과 중국 관계가 조속히 정상화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경제관계◁ 무역을 중심으로 양국 경제관계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그러나 수평적인 산업협력관계라는 차원에서 보면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특히 최근들어 한국의 대 일본 무역적자가 확산되고 있다.불균형적인 경제관계는 정치적 장애로 발전할 위험이 크다. ▷범지구적 문제 협력◁ 한국은 국제적인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전환한지 오래다.또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하는 국가다.한·일 양국은 이미 개발원조나 마약퇴치·환경분야에서는 상당한 협력 실적을 쌓고 있다.이제 인구·식량문제·테러·에너지 등에 대해서도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학술·문화교류◁ 편견과 오해가 남아있는 한·일관계에서 굴절된 민족주의는 상당한 긴장요인을 제공한다.따라서 객관적인 역사교육을 통해 전후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한·일간 역사연구위원회를 설치,공동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작업을 해볼만 하다.또 양국이 유치경쟁을 벌이는 2002년 월드컵을 동시에 개최하는 것도 검토할만 하다.
  • 한·일 포럼 개회연설 요지

    ◎배재식 한국측 회장/우호조약 체결… 새관계 모색할때 한·일 양국은 정치적 변혁이 계속되고 있다.한국은 지자제 실시에 이어 각종 선거가 예정돼 있고 일본에는 정계재편이 진행중이다.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민족주의의 대두다.편견과 오해가 남아있는 한·일관계에 있어 굴절된 민족주의는 늘 긴장의 요인을 제공한다. 종전 50년이 지났지만 일본에는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따라서 민족주의의 에너지가 왜곡된 방향으로 발산될 위험이 있으므로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두나라는 지난 30년간 인적,물적으로 비약적인 신장을 했다.그러나 앞으로는 양적인 팽창을 질적으로 심화시켜야 한다.이를 위해 새로운 한·일관계의 틀을 제공할 「한·일우호협력조약」의 체결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한·일관계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공동선」을 창출하는 동반자적 관계임을 알리고 「협조의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이를 위해 2002년 월드컵 공동 걔최 방안을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북한은 멀지 않은 장래에 현행 폐쇄·고립 체제에서 벗어나 일정한 변화를 꾀할 것이다.이같은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려면 북한을 동북아 질서의 일원으로 편입시킬 필요가 있다.동시에 도쿄나 워싱턴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서울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도 일깨워 줘야 한다. 향후 동북아의 탈냉전을 위해 한반도의 휴전체제를 평화제제로 전환하고 최근 긴장상태에 있는 중·미관계도 하루빨리 정상화되도록 한·일 두나라가 힘을 모아야 한다.또 아태지역내에 경제적인 역동성을 유지하면서 정치적·군사적 불확실성을 없애려면 열린 지역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난해 발족한 아세안지역포럼(ARF)이 역내 안보대화체로 자리잡도록 긴밀히 협조하고 한국이 제안한 동북아지역 안보대화(NEASED)도 조기 실현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한·일 양국은 환경등 다양한 문제에 공동대처해야 한다. ◎오와다 히사시 일측 회장/과거 반성… 아태 큰틀서 협력을 올해는 2차대전 종전 50주년이면서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이다.이러한 시점은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보고,그 교훈을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1945년 이후 한·일관계는 그 직전 36년간의 역사가 결정지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36년간의 발자취를 우리들이 스스로의 책임아래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과거사를 명심하는 것은 바로 과거를 반성하는 데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과거에만 얽매여서도 안될 것이다.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해 부의 유산을 극복하고,새차원의 관계를 여는 노력이 필요하다.지난 30년의 역사가 말하고 있는 교훈은 바로 이점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우리는 세번째 맞는 양국간 포럼의 목적과 성격,바람직한 방향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먼저 포럼의 목적은 냉전후 형성된 새로운 국제환경 안에서 양국이 어떤 관계를 구축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양국 관계가 「제로 섬」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양국관계를 경쟁적인 관계로 보면 「마이너스 섬」관계이지만,반대로 양국국민이 경쟁적인 태도를 극복하면 「플러스 섬」의 관계가 될 것으로 믿는다.이제 양국관계는 아시아 태평양이라는,국제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큰 지역의 틀 안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또 포럼의 성격은 한·일 양국민,그리고 사회의 폭을 넓히고 이해를 심화하는 것이 돼야 한다.시한을 두고 보고서를 내는 것이 아니고,구체적인 사고의 교환을 그때그때 정리해나가는 것이 우리 포럼의 성격이 돼야 한다. 한·일포럼의 바람직한 모습을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참석자 각자가 양국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그리고 비판은 건설적인 방향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양국은 관계를 넓혀가면서,한편으로는 심화해야 한다.확장과 심화라는 모순된 일을 조화해나가는 것이 바로 이번 포럼의 과제다.
  • 월드컵 축구/공동개최 논의 제안/한·일 포럼 개막

    ◎양측,미래지향관계 구축 천명 【서귀포=이도운 기자】 제3차 한일포럼이 3일 하오 제주도 신라호텔에서 양측 회장의 개회연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갔다. 개회연설에서 양측 회장은 올해 광복 50주년,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시점에서 양국이 과거에 대한 겸허한 반성을 통해,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천명했다. 한국측 회장인 배재식 서울대교수는 『1965년 맺어진 한·일기본조약은 양국의 국교정상화가 목적이었다』면서 『이제 30년간의 변화를 토대로 앞으로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우호협력조약의 체결,한·일관계를 보완·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배교수는 또 『양국이 경쟁자가 아니라 공동의 이익과 선을 추구하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양국민이 실감토록 2002년 월드컵 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방안을 이번 포럼에서 진지하게 다뤄보자』고 제안했다. 일본측 회장인 오와다 히사시(소화전항)전 외무성사무차관은 『양국 국민이 서로의 관계를 경쟁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을 극복해야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면서 『이제 한·일양국은 아시아·태평양이라는 큰 틀에서 서로의 관계를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은 이날 토론에서 포럼내에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설치,연구결과를 양국 역사교과서에 반영시키는 방안과 문화교류방안 세미나를 공동으로 개최,한국의 일본문화 개방 문제를 다루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월드컵/한일 공동개최 배제/일 가토정조회장 【제주 교도 연합】 한·일관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를 방문한 이본 자민당의 가토 고이치(가등굉일) 정무조사회 회장은 3일 일본과 한국의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가능성을 배제했다.
  • 한·일 안보협력 중점 논의/「한·일 포럼」 개막

    ◎월드컵 축구 공동개최도 한일포럼 제3차 회의가 양국의 각계 지도급 인사 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3일 하오 제주에서 개막된다. 오는 5일까지 서울과 제주에서 열리는 이번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한국과 일본의 정치·경제·사회 상황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한일 안보협력관계 ▲한일 경제관계 ▲범지구적 문제에 관한 양국협력 ▲학술·문화교류등 4개 분과별로 토론을 벌인다. 이번 회의에서는 또 ▲2002년 월드컵의 한일 공동개최 방안과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할 때의 비자발급기준을 완화하는 문제 ▲양국간 인적교류 확대를 위한 대규모 특별기금 조성 ▲청소년 포럼 설치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양국 포럼대표들은 현안에 대한 토론 과정에서 합의가 도출된 사안에 대해서는 문서로 작성,양국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이홍구 국무총리는 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환영 리셉션에서 축사를 통해 『양국간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지만,한국에서 김영삼대통령 정부가 출범한 이후 보다 실질적인 양국 우호관계가 유지·발전되고 있다』면서 『두나라 국민간에 과거를 직시하면서도 미래의 우호협력관계를 확고히 구축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또 개막식에서 이시영외무부차관은 환영사를 통해 『그동안 일본은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사회에 편입되려는 탈아입구의 정책을 추진해 와,선진 7개국의 모임인 G­7에서도 아시아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는 역할등에서 아쉬움이 있었다』고 말하고 『한국과 일본이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한국차 수입규제 조치/브라질 “철폐 검토”

    ◎카르도스 대통령,공 외무에 밝혀 한국자동차에 대한 브라질 정부의 수입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브라질을 방문중인 공로명 외무부장관은 지난 8월31일 카르도스 대통령,1일 바로스 브라질 외무장관을 만나 자동차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가 양국간 건전한 통상관계의 확대발전에 저해되지 않도록 조속한 시일안에 철폐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대해 카르도스 대통령은 『올해 6월부터 브라질의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는등 외환사정이 호전되고 있으므로,양국간 우호협력 차원에서 원만히 해결될 것이 기대된다고 말했다.또 바로스장관도 『조만간 수입규제 조치 철폐가 검토될 예정』이라면서 『세계무역기구보다는 양국간의 협의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정부는 지난 6월13일 국제수지 악화를 이유로 자동차 수입규제 조치를 공표,올 상반기에만 2억7천만 달러의 급신장을 기록한 우리 자동차의 브라질 수출에 타격을 준 바 있다.
  • 「있는지 없는지…」 저자 강성재씨(인터뷰)

    ◎“적대적 대일감정 버려야”/“한·일 상호이해엔 전후세대 역할 중요” 일본에서 개인사업을 하며 「한국 알리기」에 힘쏟고 있는 30대가 일본 비평서 「일본이 있는지 없는지 가봐야 안다」를 냈다(삼진기획 펴냄).지은이는 제목에서 보듯,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일본은 없다」와 「일본은 있다」로 대표되는 양극적인 시각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 책을 쓴 강성재(35·일본 히로시마시 거주)씨는 한마디로 『한국이나 일본이나 고유 문화를 갖고 사는 모습은 똑같다.이제는 적대적인 감정을 버리고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일본에서 「한일문화교류센터」「한국 친구를 사귀는 모임」등을 설립,일본인들에게 한국을 알리기에 분주한 민간 외교관.그는 또 부산시가 임명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일본 홍보위원장」이기도 하다.마치 성공한 재일동포의 표본처럼 보이지만,그가 지난 89년 유학차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남들처럼 「한국인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일본인들의 한국인 차별은 상상보다 더했습니다.그러나 더 참기 힘든 것은 젊은 세대가 한국을 잘 모를 뿐더러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학창생활 동안 만난 일본 친구 가운데는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 나란지」「한국인은 주로 뭘 먹고 사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고 한다.그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히로시마 수도대학교 졸업후에도 그곳에 남았다. 강씨는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은 양국의 젊은이들이야말로 앞으로 진정한 우호관계를 이룩할 장본인』이라고 강조하고,따라서 자신의 책을 우리 청년들이 관심있게 읽어주기를 바랐다.책은 ▲일본에서의 체험기 ▲한국인의 긍지 ▲한일 문화교류의 바람직한 방향 등 크게 세 갈래로 구성했다. 『한일관계가 정부 차원에서 개선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민간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일본인 아내와 가정을 이뤄 히로시마에서 한식당을 경영하고 있으며,각종 단체에서의 활동말고도 신문·잡지 기고,강연활동을 통해 일본사회에 한국을 전파하고 있다.
  • 중국의 해리우 석방 환영한다(사설)

    중국 사법당국이 간첩혐의로 수감중이던 미국국적의 중국인 인권운동가 해리 우(오홍달)씨를 석방해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려보낸 것은 잘한 일이다. 최근 악화일로를 걸어온 미국과 중국간 불편한 관계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만문제와 중국의 패권추구를 경계하는 미국의 우려에서 출발된 것이지 해리 우사건만은 아니지만 이 조그만 돌출사건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조치를 환영하는 것이다. 기초적으로 우리는 미·중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냉전이후 유일한 초강국으로 남아 있는 미국과 아직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미약하다고는 하나 인구 12억의 잠재적 강대국 중국이 대결하는 양상은 세계질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좀더 가까이는 동북아시아의 안보구도를 원천적으로 바꿔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의 양국간 불편한 관계는 다분히 가상예측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중국은 아직 미국의 적수가 아니다.미래의 가능성에 대비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지나친 냉전적 사고일수도 있다.강대해진 중국이 필연적으로 미국과 적대관계를 유지하게 되리란 것은 하나의 가상일 뿐이다. 우리는 중국이 군사력을 강화하고,핵실험을 강행하며 대만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최근 일련의 사태를 다같이 우려해왔다.그러나 그것들이 미·중대결구도로 바로 연결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믿는다. 지난 5월이후 급속히 냉각된 미·중관계는 월초 브루나이에서 열린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미국이 「하나의 중국」원칙을 재확인함으로 해서 가닥이 잡혀 이제 한 고비를 넘긴 국면이다. 미국과 중국은 아직도 경쟁적이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측면이 더 많다.대결보다는 우호가 양국의 이해나 세계평화를 위해 다같이 도움이 되리란 점을 거듭 강조해둔다.그것은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서도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 경협 붐 속 올 50만명 방중 예상

    ◎오늘 한·중수교 3주년… 현황과 전망/경제적 이해 합치… 인적·물적교류 급증/중,북한 의식… 정치관계 발전은 소걸음 한국과 중국이 24일로 수교3주년을 맞았다. 두나라는 92년 수교이후 비약적인 관계발전을 이뤘다는 일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중국은 한국과의 수교를 통해 경제적 실리,대만에 대한 고립외교의 완성,미국·일본에 대한 견제 틀 마련등 일석삼조의 열매를 거두어들였다. 한국도 경제적 이해 뿐 아니라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해소,동북아 긴장완화와 함께 북한문제등과 관련,중국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두나라수교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나 수교직후 관계발전의 원동력은 경제적인 이해관계의 합치로 요약된다.중국은 한국의 기술·자본이 필요했고 산업의 발전단계상·거리상 또 서구국가들과 달리 기술이전을 꺼리지않는다는 측면에서 한국 기업이 필요했다.한국도 미국·유럽시장에서의 한계를 중국이란 시장과 생산기지에서 경제적 돌파구를 찾으려했다. 직접교역액이 지난해말 92년에비해 약 2배에 달하는 1백16억달러로 증가한 것이나 올해말 1백5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관계자들의 전망에서도 두나라의 경제적 이해합치를 확인할 수 있다.3년전만해도 적성국가로 분류되던 중국이 한국의 최대 투자대상국이 된 것에서도 앞으로의 경제협력 발전 속도를 예측할 수 있다.94년말 우리의 대중국 투자는 1천8백건,13억9천만달러였다. 이러한 경제교류 확대를 타고 인적교류도 홍수처럼 늘고 있다.수교전인 90년 9천6백여명에 불과하던 중국방문자는 92년 4만3천명으로 급증한데 이어 지난해말 23만5천명으로 폭발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올해는 상반기 16만명이 중국을 방문,하반기 여행객등을 감안할 때 방문객수가 50만명을 넘을 것이란 관측이다. 정치적인 관계에서도 두나라는 일단 외견상 빠르고 순조로운 관계발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지난해 4월 김영삼대통령을 필두로 이만섭 국회의장(94년5월),이홍구 총리의 방중(95년5월)이 있었고 중국측에선 지난해 이붕총리와 올해 교석전인대 위원장등 당서열 2·3위의 방한에 이어 오는11월 강택민총서기겸 국가주석의 방한이 예정돼있어 두나라의 밀월관계가 더욱 달콤하게 전개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양국간 문화분야의 교류도 크게 늘어났다.문화분야 인사들의 잦은 교차방문외에도 미술전시와 사물놀이,곡예단,발레공연 등 문화교류는 92년 16건에서 지난해에는 30건으로 2배나 늘어났다.특히 지난해 3월에는 문화협정까지 체결돼 문화·예술·학술 분야의 교류를 더욱 확대할 제도적 장치까지 갖추었다. 그러나 한·중관계는 북한이라는 한계를 원죄처럼 안고 출발했다.한반도에 관한 중국의 시각은 이중적이며 급격한 관계발전에도 불구,중국의 정경분리의 축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지난해 9월 북한의 요구에 따라 군사정전위원회를 철수한 것이나 최근 연변에서 납북된 안승운씨(49·순복음교회 목사)송환과 관련된 어정쩡한 중국의 태도,북한을 의식한 심양총영사관의 개설 지연등은 정치적 방면에서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중·조우호협정이 여전히 유효,유사시 중국의 한반도개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에서나 북한 핵개발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에 있어서 중국의 북한감싸기등도 역시 중국의 입지를 읽을 수 있다.한·중수교이후 냉각됐던 두나라 관계도 최근 중국의 북한 감싸안기 노력이 두드러지면서 다시 회복조짐을 보이는 중이다.특히 최근 중·미관계의 약화와 북한의 대미·대일 외교개선노력이 활발해지면서 두나라의 관계 강화가 관측되고 있다.중국이 북한에 대해 연간 1백만t내외의 유류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시사하는 점이다. 중국외교부의 한 차관급 고위관리는 이에 대해 『비가 자주 오다보면 도랑이 생길 것』이란 함축적인 말로 한·중관계의 발전을 낙관했다.그러나 경제 및 인적교류 폭의 증가에도 불구,냉전체제가 가져온 기본틀은 변화하지 않고 잠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또 우리측이 경제적인 이점을 중국과의 외교력으로 충분히 전환하지 못하고 정전위문제,중국핵실험등과 관련,저자세 외교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경제적 이점을 어떻게 외교역량으로 실현시키고 중국과의 기본적인 입장차를 메워가느냐,이점이두나라 수교 3주년을 맞는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일본에선…/주일 한국대사관(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19)

    ◎68만 교민 대변하는 「작은 한국정부」/통상적 외교보다 정치적 업무 비중 커/“일은 한국도움 필요” 외교가서도 중시 일본하늘에 펄럭이는 태극기.그 태극기가 휘날리는 주일 한국대사관은 일본속의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한국대사관은 대일외교의 첨병 역할과 함께 양국을 잇는 가교역을 맡아 오며 국교정상화후 한·일관계 발전에 크게 공헌해 왔다. 한국대사관은 도쿄 중심부의 외교가라 할 수 있는 미나미 아자부에 있다.한국대사관은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1965년에 설치됐으며 그전에는 1949년 1월부터 주일대표부가 있었다.일본에는 대사관 관할아래 오사카 총영사관,후쿠오카 총영사관,요코하마 총영사관등 10개의 총영사관과 가고시마 명예총영사관이 있다. ○양국발전에 공헌 주일 한국대사관과 한국외교사절을 대표하는 주일대사는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교민들을 보호·감독하며 양국간의 우호관계 증진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띠고 있다.김태지 주일대사는 『대사관의 중요한 역할은 한국정부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교민의 이익을 보호하고양국의 우호관계를 통한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일본에는 특히 68만명의 재일동포가 살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관광객과 기업이나 각 기관의 주재원들이 크게 늘어나며 영사업무도 많아졌다. 한국대사관은 그러나 그러한 통상적인 역할과 업무와는 또다른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다.일본은 지난 36년동안 한국을 식민지배했던 굴절된 역사관계가 있는 나라일 뿐 만 아니라 민단과 조총련으로 갈라진 이국땅에서의 민족분단의 비극과 이념적 대결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북의 정보도 수집 정치성이 강했던 한국대사관은 한·일간의 최대 현안인 과거청산문제 해결과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일본의 지원문제 등을 위한 중요한 창구역할을 해왔다.그러나 양국관계가 냉각되거나 일본정치인들의 역사문제에 대한 망언이 되풀이되면서 외교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대사관은 재일동포들의 권익보호와 법적지위향상 등을 위해 민단과 협조하며 일본정부와 계속 접촉하고 있다.대사관은 또 남북대결의 또다른 현장인 일본에서 북한에 대한 정보수집이라는 중요한 임무도 담당해 왔다.한국외교관들은 북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북한을 다녀온 조총련계 재일동포나 일본인들과 직·간접의 접촉을 시도하고 일본정부와도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주일대사관의 이러한 중요한 정치적 임무때문인지 대사도 대부분 정치적 비중이 있던 인물들이었다.초대 김동조 대사를 비롯,2대의 엄민영,3대 이후락,4대 이호,5대 김영선,6대 김정렴,7대 최경록,8대 이규호,9대 이원경등 「거물급」이었다.정치적 현안들이 많았기 때문에 「정치적 대사」가 필요했다고 한 외교관은 말한다. ○90년이후 실무형 그러나 90년대 들어 서며 과거사문제가 어느정도 마무리되고 냉전의 붕괴로 이념적 대결이 약화되며 정치적 비중보다는 양국간의 경제현안등 실무적인 문제들이 중요한 이슈가 되며 대사도 실무형의 전문외교관 출신으로 바뀌었다.그 첫시도가 10대 대사로 부임한 오재희 전외무차관이었다.그 후 11대의 공로명 현외무장관 그리고 현재의 김태지 대사로 이어진다. 주일 한국대사관은일본 외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히 크다.아시아국가중 일본이 가장 중시하는 국가는 물론 중국이지만 일본에 주재하는 외교관중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그 숫자가 많다.미국은 1백35명의 외교관을 일본에 파견하고 있으며 한국이 그 다음으로 78명,중국이 77명 그리고 러시아가 41명의 순이다. 『일본은 과거사문제때문에 한국과 껄끄러운 면도 있지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로 한국을 중시하고 있다』고 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말한다.그는 『일본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에서의 협력을 비롯,대외정책에서 한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미국주재 한국대사관과 함께 외무부에서도 중시되고 있다.그러나 한·일간의 이슈가 많을 때는 외교관이 많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외교관 과잉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는 외교관도 있다. ◎김태지 주일 한국대사 인터뷰/국제무대서 한­일은 중요 파트너/일의 솔직한 과거 반성꼭 있어야 김태지 주일 한국대사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일관계는 경제문제등 현실적인 현안들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으며 일본은 아시아의 협력문제등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복 50주년 한·일국교정상화 30년이 된 오늘의 한·일관계 현주소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일관계의 최대 현안인 과거사문제등 그동안 산적했던 많은 정치적 문제들이 어느정도마무리되고 경제문제등 실무적인 이슈들이 중시되고 있는 느낌입니다.일본은 한국에게도 중요하지만 일본도 한국을 매우 중요한 이웃나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한·일국교정상화 당시의 양국 교역은 2억달러 정도밖에 안됐었으나 지금은 3백90억달러로 그 규모가 커졌습니다.물론 무역역조의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만….그리고 양국간의 인적 교류도 활발하여 지난 해에는 2백70만명(일본인 1백65만명,한국인 1백5만명)이 서로 상대국을 방문했습니다. ­일본은 오늘의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한국의 국력신장에 따라 국제적 위상이크게 높아졌다고 일본사람들은 말합니다.일본정부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등 국제기구와 지역협력을 위해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며 국제무대에서의 양국 협력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사문제의 해결방법은 어떻습니까. ▲일본사회에서는 과거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등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국수주의적 사고를 가진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일본은 아시아국가들이 납득할 만한 과거청산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이나 다른 아시아국가들이 과거사를 보는 시각이 일치되도록 일본은 노력하여야 합니다.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일치하려면 일본의 솔직한 과거청산이 필요합니다.그러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일본이 세계로 진출하여야 좋은 외교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일본의 밝은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의 정치인·관료·지식인 등을 만날 때마다 저의 이러한 생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양국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양국간의 진정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건전한 학술·문화의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양국간에는 또 과거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협력의 폭을 넓혀야 하며 그러한 접근이 과거문제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구조적인 문제인 무역역조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일본기업의 한국유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이를 위해 한국은 투자유치단을 파견하고 홍보를 강화하는 등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북한과의 국교정상화회담 전망은 어떻습니까. ▲북한의 변수가 많기 때문에 전망이 불투명합니다.그러나 일본은 북한과의 접촉과 관련,한국과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습니다.
  • 신세대 시각(21세기 한­일 새 지평:5·끝)

    ◎한일 공존을 위해 풀어야할 숙제들/우월의식·불신 제거로 과거치유를/상호신뢰 넓혀 「갈등 역사」 청산/청년층 격의없이 자주 만나야/김홍진 ▲75년생 ▲서울대사범대 국민윤리교육과 2년 1995년 8월15일.우리는 「광복」이라 하고,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는 「패망」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일어난 지 만 50년이 되는 날이다.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과거책임은 분명 우선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식민지배가 낳은 분단이라는 고통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근대적 민족국가 건설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민족의 불행과 주권상실의 아픔을 하나의 유전형질로까지 간직하게 된 우리는 까닭도 모르는 채 분단이라는 비극도 떠맡아왔다. 그동안 각자의 길을 달려온 남과 북은 이제 민족의 동질성 회복마저 운운해야 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36년간 이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힘겹게 떨치고 난 후에도 아득한 절망과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참된 광복은 통일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타당성을 갖는다. 과거청산도 아직 풀리지 않는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다.한민족의 지난 50년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청산의 역사인 반면 우리에게 빚을 진 일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해져만 갔다.해방 이후 한·일 역사는 마뜩한 뒷풀이가 없었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이처럼 식민지배와 분단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르게 풀어나갈 주체와 방향은 어떤 것일까. 기나긴 역사에 비해 인간의 삶이 제한적인 만큼 식민지배의 고통을 직접 당한 기성세대가 일본의 죄값을 추궁하는 역사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다.이제는 청년학생이 주축이 되어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어나가야 할 때다. 앞으로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갈 청년은 「신세대」로 불린다.일본도 이미 80년대에 기존세대와 가치관의 단절을 고한 「신인류」의 출현을 맞이했다. 신세대 혹은 신인류가 오도된 역사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앞으로의 역사도 알력과 대립으로만 점철돼서는 안될 일이다.다가올 세기는 하나된 한반도의 젊은이와 국제사회의 중추로 자리잡은 섬나라 젊은이의 공존의 시대이어야 한다. ○젊은이 역할 중요 이를 위해서는 두 민족간의 오랜 원한과 그릇된 우월의식,상호신뢰를 허무는 어줍잖은 영웅의식,이를 기반으로 등장하는 극단적 민족주의,공동이익을 저버리는 일방적인 국가행위 등을 극복해야 한다. 한반도와 일본의 정황은 아직도 이같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한반도는 아직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이고 일본도 이같은 긴장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제국주의자의 망언은 최근까지 계속되면서 한·일관계를 이간질하고 있다.최근에는 자위대증강,핵물질보유 등 군사력 신장과 극우파의 창궐로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감정도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았다.일본에서는 얼마전 염한론이 한창 회자됐다.『얼마나 더 사과해야 되나』『이제 한국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소수 일본국민의 반한감정이 드러난 형태였다. 우리 국민도 대일감정을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싫다고 말한다.그것은 과거에 대한 혐오일 수도 있으나 일본이 보여주는 반성의 태도에 수긍할 수 없다는 불만 때문이기도 하다.그들이 보여주는 지나친 민족우월의식은 거부를 넘어 두려움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영웅의식 극복을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고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정부는 좀더 대범하고 적극적인 대일외교를 수행,한국과 일본 양국이 헌법에서 밝힌 바대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역사적 대의에서 주도권을 쥐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제국주의의 꿈을 버리지 않은 채 지역패권을 추구,공존해야 할 이웃국가에게 수고를 끼친다면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 것이다. 아울러 한·일 양국이 다가올 세기의 공존과 번영을 이끌어갈 청년학생에 대한 투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양국의 청년이 바른 역사관을 세우고 양국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꾸준한 만남의 장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참 공영의 미래향한 선결과제/상대 바로알기가 선린우호 첫 걸음/무지·몰이해서 오해·마찰 비롯/교육·문화 등 교류확대 급선무/나카가와 도시히코 ▲71년생 ▲일 무사시대 사회학과 4년 「한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런 나라다」라고 답할 수 있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어느 정도나 될까. 김치,치마저고리,메이드 인 코리아 운동화·T셔츠 등으로 밖에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지식의 모자름.나 자신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먼 나라.왜 그런가.그 답을 찾기 위해 올해 봄 한달 반동안 한국에 단기 유학했다. ○부정적 생각 깊어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그저 누님 내외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관계밖에 없었다.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알지 못한다」.이 한 마디로 집약되는 것이 아닐까. 역사 문화 그리고 말.고대 불교와 유교의 전래,고려청자와 이조백자가 일본의 도예에 기초를 제공했다는 것,도쿠가와 막부와 조선의 교류 등 일본에 문화적 영향을 주어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지고 있는 전쟁책임에 따른 부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까,아무래도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고 말았다. 종군위안부문제 등 전후처리에 관련된 일도 잘 이해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감을 갖지 못한 채 「전후책임」이라는 네글자가 눈 앞을 그냥 지나쳐 「부채」라는 프레셔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한국에 대해서 막연한 혐오감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어와 문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닮았다는 것을 유학에 임해서 처음 알았다. 또 이러한 문제이전에 한국인을 잘 알지 못했고,한국인들이 속마음으로 일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도 몰랐다.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씨의 강연에 찾아가 볼 기회가 있었다.예상이상으로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나는 강연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포기하고 돌아갈까 할 때,입장을 할 수 없었던 한국인은 대단히 사납게 주최자측에 따지고 들어 어떻게 해서든 강연장에 들어가려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문을 향해서 밀려 들고 밀려나오면 또 나아갔다. ○서로의 고민토로 혼잡을 빚는 사람에 시달리면서 나는 한국인의 과격함에 압도당해 강연의 건은 아무렇게 돼도 좋게 됐다. 또 한국에 가기 전 내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혐오감을 받게 되지 않을까하고 내심 불안했지만 그것은 지나친 생각이었다.특히 같은 세대의 한국 젊은이들과 해외의 문화의 유입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서양문화를 모방하는데 지나친 것은 아닐까라고 서로 닮은 고민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 대단히 기뻤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일본어 책을 읽고 있을 때 나이 많은 남자가 일본어로 나에게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어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말해 줄 수가 없었다.그 남자가 너무 유창한 일본어를 말하고 있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 거듭 전쟁책임을 져야한다」등등 가볍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앞으로 서로 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것은 우리들 세대다.서로 알지 못하고 있는데도 알고 있는 듯이 하면서 전후 50년의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문화가 다르면 이런저런 부분은 받아들여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허용하기 어려운 부분을 줄여나가는 것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교육 문화교류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깊은 이해심 필요 다른 나라와의 오해와 마찰은 상대국에 대한 지식부족,무이해로부터 생긴다.일본인도 노력이 부족하지만 한국의 국민들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아주기를 바란다. 한일 양국민은 감정적으로 의미도 없이 서로 혐오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잘 안 뒤에 양자가 이르지 못한 부분을 서로 지적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우호관계를 지속될 수 있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부터 우선 한일관계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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