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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對아세안 경제협력 강화/金 대통령 베트남 방문 의미

    ◎베트남과 우호증진·새 시장 개척에도 무게 金大中 대통령의 베트남 공식 방문은 큰 틀에서 올 정상외교를 마무리짓는 행사다. 지난 4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이후 두차례의 한·미 정상회담,한·일,한·중,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이어졌었다. 이번 방문은 이러한 외형상의 의미와 별개로 두 방향에서 의의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아세안(ASEAN)과 한·중·일(9+3) 정상회의 및 아세안과 한국(9+1) 정상회의이며,다른 하나는 베트남 국빈방문이다. 아세안과의 정상회의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의 연장이라는 측면도 있으나 아시아국가들만 모인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공통적으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고,동아시아지역이라는 지역적 공통분모가 크게 작용하게 되어 있다. 때문에 무엇보다 동아시아지역 국가간 경제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또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아세안 및 중·일과의 협력을 확대 발전시킴으로써 우리 입장이 강화되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 한 관계자도 “아세안은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지역으로 관계발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국빈방문은 투자와 교역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를 한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우리와 역사적·지정학적 유사성을 띠고 있는 베트남은 잠재력이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우리가 경제개발협력기금 제공문제를 협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장쩌민,日皇에 과거 사죄 재촉구/訪日 마치고 귀국

    【도쿄 黃性淇 특파원】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공식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30일 오전 5박6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방일기간중 과거사 문제로 일본측과 신경전을 벌인 장주석은 이날 귀국하면서 다시 아키히토(明仁) 천황에게 전문을 보내 또 한번 일본에 과거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다. 장 주석은 전문에서 과거사 문제를 다시 거론하고 중국과 일본은 “평화와 21세기를 위한 동반자관계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것은 물론 부정적인 경험에 대해서도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공동 인식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장 주석은 지난 25일 일본에 도착한 이후 가는 곳마다 과거사 문제의 중요성을 역설해 일본의 미온적인 사죄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 향후 양국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양국은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20주년을 맞아 이뤄진 정상 회담에서 ‘중일 공동선언’을 발표,72년 국교정상화의 공동성명과 78년 평화우호조약에 이은 ‘제3의 문서’를 남기는 결실을 얻어냈다.특히 양국은 대외적으로도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비확산과 유엔안보리 개혁 등에도 공동 대응키로 약속했다.
  • 美 정계서 立身한 자랑스런 코리안/孫薰(해외기고)

    ◎성실·정직·실력으로 무장/미 정치문화 원리 철저 체득/한인들 권익신장 토대 마련/양국 유대관계 증진 큰 기대 지난 11월3일 미 중간선거에서 60대 한국계 노신사 신호범(미국명 폴 신) 박사가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미국내에서도 백인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인 시애틀에서 인종의 벽을 뛰어넘어 당선됐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신박사는 6개월간 2만7,000가구의 지역구내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선거구민과 악수하는 등 풀뿌리 정치에 심혈을 기울였다.자신이 한국전쟁의 고아였다고 말문을 연 그는 어린 나이인 50년대 미국에 입양돼 어렵게 공부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며 피부색깔을 초월한 인간적인 공감대를 기초로 자신에 대한 지지를 확산시킬 수 있었다. 현재 워싱턴,오리건,아이다호,몬태나주 등 서북미 4개주에는 재미동포 1.5세,2세 정치인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2선 의원이자 20억달러에 달하는 시예산을 다루는 예산위원장인 마사 최 시애틀 시의원,보잉사 엔지니어면서 75%의 압도적 득표로 재선에 성공한 이승영 쇼라인 시의원 등 한인출신 정치인들이 미국 본류사회에 파고들어 재선을 거듭하면서 내일의 유망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또 미 본류사회에서의 한인 권익신장을 위해 정치적으로 참여할 2,3세 예비 정치후보자군이 성장하고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미국사회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이곳 정치문화에 순응해야 한다.정직과 공정을 생명으로 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그대로 적용되는 미국선거와 정치에서 정치인으로 입신하기 위해선 이러한 원리를 철저하게 체득하는 게 선결과제다. 신의원의 승리는 이러한 명제에 충실한 정공법을 선택한 결과다.성실과 정직,겸손과 실력,그리고 전문성과 용기에 더해 유창한 영어로 무장하고 선거자금과 관련한 선거법의 철저한 준수가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 신의원의 당선은 그가 최근 몇년간 연방하원,주·부지사 선거에서 연속 패배한 뒤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신의원의 탄생으로 서북미 한인동포들은 크게 고무돼 있고 어려운 이민생활과 자녀교육에 자신감을 얻고 있다.본류사회에의 정치적 참여를 기초로 한 동포사회의 발전은 우리 정부의 주요한 동포사회정책 목표의 하나기도 하다.동포의 권익보호 및 증진 등 동포사회 발전을 위해선 한국계 정치인의 활발한 미 의회 진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의원이 혈맹으로서 한국과 미국간 우호관계 증진에 기여해 줄 것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서북미지역은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특히 워싱턴주는 미국내 한국전 참전용사가 가장 많은 주 가운데 하나로 우리에게 매우 우호적이다.워싱턴주에게 있어 한국은 제4의 교역대상국으로 상호 통상규모가 연 70억달러에 달하고 있고 한국의 대미 총수출의 약 10%가 이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와같은 워싱턴주와 한국의 관계를 고려할 때 앞으로 제반분야에서의 한국과 워싱턴주의 유대관계 증진을 위한 신의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게리 락 워싱턴주지사는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전북 柳鍾根 지사의 초청으로 내년중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며 신의원은이 방문에 동행,한국과 워싱턴주간의 통상교류 증진에 기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 각료간담회 이모저모/양국 총리 조손도공 후손 심수관씨 집 방문

    ◎김 총리 기자들에 ‘AMF’ 제안 입장 설명 【가고시마 李度運 특파원】 한·일 각료간담회는 양국의 고위관계자들이 처음으로 긴장을 늦추고 만난 자리였다.간담회가 열린 일본 규슈(九州) 남단의 가고시마(鹿兒島)시도 공항에서부터 간담회장인 시로야마(城山)호텔에 이르는 모든 길을 환영 플래카드로 장식했다.또 마침 가고시마에서는 1598년 조선인 도공이 전래한 ‘사쓰마 도자기 4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려 환영분위기를 한층 돋우었다. ●金총리는 29일 오부치총리와 함께 가고시마 현 미야마(美山)에서 개최된 ‘사쓰마 도자기 전래 4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조선도공의 14대 후손인 沈壽官씨의 집과 전시실도 돌아봤다. 金총리와 오부치 총리는 沈壽官씨 조상의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채화해 가로등으로 만든 ‘한·일 우호의 불꽃’을 시찰하고 뒷산에 각각 소나무와 벚나무를 기념식수했다. ●金총리는 이에 앞서 이날 아침 오부치 총리와의 조찬을 마친 뒤 수행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한·일 각료간담회에서 제안한 아시아통화기금(AMF)에 대한 입장을 설명했다. 金총리는 “金大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나카소네(中曾根康弘)·다케시타(竹下登) 전 일본총리가 그 필요성을 얘기하는 등 여러 곳에서 얘기가 나왔다”면서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연구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金총리는 그러나 전날 각료간담회에서 3,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일본이 러시아에 300억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말을 해,‘0이 하나 빠진 것 아니냐’고 농담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아직은 기초적인 생각을 가볍게 말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金총리는 또 30일 규슈대에서 일본어로 연설하는데 대해서는 “학위를 주면 모교가 되니까,신분을 떠나서 모교 학생들과 복잡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주고 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金鍾泌 총리를 비롯한 한국 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한 기간은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중국의 최고통치자로는 처음 일본을 방문한 시기와 겹쳤다.장주석이 일본의 과거사 인식을 놓고 ‘아슬아슬한’ 발언을 계속했기 때문인지,일본의 언론은 상대적으로 장주석 방문보다 오부치총리와 경제각료들이 대거 참석한 한·일각료회담에 비중을 뒀다. ●金鍾泌 총리와 오부치 게이조(小淵慧三) 총리는 28일 만찬,29일 조찬·오찬 등 이틀동안 세끼 식사를 함께하는 등 우의를 다졌다.28일 만찬과 29일 조찬은 당초 예정에 없었지만,오부치 총리가 요청했다. 오부치 총리는 또 당초 각료간담회에 앞서 열린 金총리와의 단독회담 장소를 자신의 숙소에서 金총리의 숙소로 옮겼다.오부치 총리는 “손님의 방으로 가는 것이 예의”라며 장소변경을 요청했다고 한다.오부치 총리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기간중 이틀이나 金총리에게 할애한 것은 각별한 예우라고 주일대사관 관계자는 설명했다.
  • 美 외교력 약화·유럽 좌파지도자 등장/지구촌 多極化시대 돌입

    ◎잇단 정상회담… 견제·협력 외교 전술 선보여/美 중심 中·日 등 각축 ‘一超多强시대’ 지속될듯 【도쿄 黃性淇 특파원·金秀貞 기자】 21세기 다극화(多極化)시대를 향한 강대국들의 외교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다극화’는 냉전체제 붕괴 이후 중국이 부상하면서 대두된 최대의 화두(話頭).최근 미국 외교력 약화와 유럽 좌파 지도자들의 등장으로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이달 내내 이어진 정상회담들과 일련의 외교 신경전은 지구촌이 국익 중심의 다극화 시대로 돌입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30일로 끝나는 중국과 일본의 정상회담은 서로와 미국 독주 견제를 위한 양국의 외교전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장쩌민(江澤民)중국 국가주석은 일본에 오기전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을 만나 21세기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확인했다.97년 11월 미국을 방문한 뒤 지난 6월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을 맞아 극진한 대우를 해준 중국이 다극적 국제역학 관계를 목표로 진력하고 있는 ‘견제와 협력’ 전술이다.일본과는 과거사 문제에서의 ‘불협화음’에도불구하고 처음으로 우호협력 관계임을 확인했다.중국은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을 비판,미·일의 군사적 동맹관계를 견제했고 일본은 가까워진 미·중 관계를 헤집고 들어선 효과를 봤다. 유럽의 움직임도 적극적이다.현안에 따라 ‘함께 또 따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이탈리아가 독일과 일본의 상임이사국 가입을 보장하는 미국의 안보리 확대개편안을 무산시킨 것처럼 유럽국가들 사이에서도 협력과 견제는 이어진다 독일은 나토의 핵전략 수정을 주장,미국에 제동을 걸었다.영국의 조지 로버트슨 국방장관도 미국을 방문,일방적 군사행동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전문가들은 미국이 경제력과 국방면에서 초우위를 지속하고 있는 한 미국을 중심으로,러시아·유럽연합·일본·중국이 각축을 벌이는 일초다강(一超多强) 시대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 장쩌민 “日 올바른 역사인식 필요”

    ◎訪日 사흘째… 과거사문제 앞으로 계속 거론 시사 【도쿄 黃性淇 특파원】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26일 중·일양국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앞으로 과거사 문제를 계속 거론할 것임을 시사했다. 장주석은 간 나오토(菅直人)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대응에 만족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외상은 “(지난 10월)한국은 역사청산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지만 중국은 반드시 그렇지 않았다”며 과거사 사죄를 둘러싼 양국간 이견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에 앞서 장주석은 26일 저녁 아키히토(明人)일황 주최로 열린 만찬에 인민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한편 이날 두 나라 정상은 핵무기 폐지와 확산 반대,정치 경제 및 지구적 차원의 협력 강화,하나의 중국 인정 등을 골자로 한 ‘중일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 서명 없는 ‘中·日 공동선언’ 파문/‘과거사’ 갈등의 불씨 내연

    ◎21세기 동반자관계 ‘삐끗’ 【도쿄 黃性淇 특파원】 도쿄(東京)에서 26일 있은 중국과 일본의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중일 공동선언’에 양국 정상의 서명이 빠져있어 파문을 낳고 있다. 일본측은 “당초부터 서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본측의 미흡한 과거사 사죄에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불만을 느꼈기 때문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중국측은 지난 10월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 때 한·일 정상이 발표한 공동선언에서 일본측이 ‘통절(痛切)한 반성과 사죄’를 명기한 점을 들어 중·일 공동선언도 같은 수준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일본측은 그러나 72년 중·일 공동성명과 78년 우호조약 등 공식문서에 침략의 과거사를 사과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사죄 명기는 곤란하다고 거부했다. 타이완(臺灣) 문제나 경제협력 등 대부분의 외교현안에 합의해 놓았던 두나라는 장주석의 방일 하루 전인 24일에서야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정상회담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구두로 사죄를 표명하되 선언에는 ‘중국침략’과 ‘반성’만을 명기키로 가까스로 절충했다.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이처럼 소극적인 것은 자민당 내 보수세력의 반발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의 한 외교소식통은 “자유당과 연립정권을 수립키로 한 이후 자민당의 보수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이들은 ‘언제까지 사죄를 해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중·일 공동선언에 두 나라 정상의 서명이 없다고 이 선언의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언에서 합의한 일본의 3,900억엔 엔차관 공여나 중국 내륙개발에 대한 일본정부와 민간기업의 지원 등은 선언발표와 함께 효력이 발생한다.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장쩌민(江澤民) 주석을 불러들여 급격히 가까워지는 미국과 중국관계에 제동을 걸려고 했던 일본으로선 과거사 문제로 용을 그려놓고 마지막으로 눈알을 그려넣는 화룡점정(畵龍點睛)에는 실패한 셈이다. ◎중·일 관계 일지 ▲72년 9월=중·일 공동성명 조인 ▲78년 8월=중·일 평화우호조약 조인 ▲88년 5월=오쿠노(奧野) 국토청장관 “중국에 대한 침략의 의도는 없었다”고 망언. 오쿠노 장관 사임 ▲89년 6월=톈안먼(天安門)사건으로 일본 제3차 엔차관 및 각료급 접촉 동결 ▲91년 8월=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총리 방중 ▲92년 4월=장쩌민(江澤民) 총서기 방일 ▲95년 8월=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전후 50년 담화발표,중국 핵실험 ▲97년 9월=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일본총리 방중 ▲97년 11월=리펑(李鵬) 중국총리 방일 ▲98년 4월=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부주석 방일
  • 江澤民 주석 中 국가원수론 첫 訪日/日 “침략 구두로 사죄”

    【도쿄 黃性淇 특파원】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25일 오후 일본에 도착,5박6일간의 공식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20주년을 기념해 이뤄진 장주석의 이번 국빈방문은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이다. 장수적은 이날 전용기편으로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성명을 통해 “중·일 관계의 역사적 경험을 진지하게 총괄하는 것은 미래를 향한 두 나라의 우호협력 발전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지적,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성의있는 대응을 거듭 촉구했다. 장주석은 이날 저녁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베푼 비공식 만찬에 참석한 뒤 26일 오후에는 정상회담을 갖고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양국관계의 청사진을 담은 공동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대 쟁점이었던 과거사 사죄문제에 대해 오부치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구두로 사죄의 뜻을 표명하고,공동선언에는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負市) 총리가 담화문에서 표명한 ‘반성’이라는 표현을 포함시키는 선에서 매듭을 지었다.
  • ‘中 수뇌부와 신뢰 구축’ 값진 수확/金大中 대통령 訪中­결산

    ◎4강 외교 기본틀·토대 마련/협력 동반자 선언… 관계 급진전/경제·산업분야 교류 한층 강화 【상하이 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의 이번 방중 결과는 여러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金대통령은 한반도 주변 4강 가운데 세번째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도출해냄으로써 4강외교의 기본틀과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지난 6월 방미에 이은 9월 방일의 성과를 감안할 때 한국외교는 어느 때보다 호기를 맞은 것으로 평가된다. 실질적 측면에서 볼 때 이번 방중 성과는 크게 4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먼저 정상외교의 참뜻인 중국 수뇌부와의 신뢰구축이다.특히 金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주룽지(朱鎔基) 총리와의 회담 결과는 미·일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된다.金대통령 스스로도 회담·만찬에서 장주석과 솔직한 대화를 통해 인간적 신뢰를 쌓았다고 털어놓았다.“이제 장주석과 못할 얘기가 없다”는 언급 또한 전례없던 일로 한·중 두나라의 장래를 가늠할 수 있는 단초이다.金대통령은 이를 “다 털어놓을 수 없지만 장주석과 맞지 않은 얘기가 없었다”는 말로 표현했다. 두번째는 익히 알려진 대로 양국 교류·협력에 있어 양자 차원을 넘어 핵·군축·마약 등의 국제적 현안을 다루는 것과 함께 그 범위를 WTO,UN 등 국제기구까지 확대했다는 점이다.‘21세기 한·중 협력동반자관계를 위한 공동성명’이 그것이다.경제 분야에 집중된 기존 선린·우호관계를 한 차원 높은 협력동반자로 설정하고,군사교류는 물론 타이완문제·고속철·원전 등 12개항 34개 협력계획을 담은 ‘장전’을 채택했다.이는 96년 중국과 러시아간 합의한 공동성명 이후 처음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세번째는 경제·산업 분야의 협력을 확대 심화시켰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金대통령도 이에 무척 고무된 분위기다.특히 주룽지총리와 회담에서 일궈낸 6개항의 실질적인 성과는 경제협력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는 지적이다.金대통령은 중국의 위안(元)화 평가절하 자제를 비롯,▲수출용 자동차 완성공장 건립 ▲원전건설시 한국 기회 제공 ▲부호 다중저속 분할방식(CDMA)이동전화사업 한·중합작 진출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고속철 건설시 한국 기술 참여 ▲중국 진출 한국 보험사와 은행들의 개방과 위안화 취급 허용이라는 6개 협력사업에 대해 중국측의 긍정적 답변을 이끌어낸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세일즈외교다.상해에서의 일정은 개발이 한창중인 포동지구의 사회간접자본(SOC)건설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요청했고,슈광디 상하이시장과 만나서도 이를 끝없이 요구했다.경제6단체장과 함께 상하이 경제인들과 만나 우리 기업의 우수함과 경험을 강조한 데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 金大中 대통령 訪中­韓·中 공동성명 전문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 협력 강화”/중국,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수립 희망/한국,安徽省 2개 사업 70억원 차관 제공/황사·산성비·황해보호 정부간 연구 강화/中 WTO 가입 지지… 2000년 ASEM 협력 1.대한민국의 金大中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초청으로 1998년 11월11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을 국빈방문하여 중국 정부와 국민의 정중한 환영과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2.방문기간 대한민국 金大中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장쩌민 주석과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회담을 가졌다. 金大中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리펑(李鵬) 위원장,주룽지(朱鎔基) 국무원총리,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과 면담하였다. 회담과 면담을 통해 양측은 한·중관계의 진일보한 발전과 공동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지역 및 국제문제에 관해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하고 광범위한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 3.한·중 양국 정상은 수교 이래 6년여 동안 양국간 선린우호 협력관계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온 데 대해 만족을 표명하고,이러한 발전은 양국 각자의 발전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를 포함한 이 지역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해왔음을 평가하였다. 양국 정상은 UN헌장의 원칙과 한·중 수교 공동성명의 정신 및 수교 이래 발전해 온 양국간 선린우호 협력관계에 기초하여,미래를 바라보면서 21세기의 한·중 협력동반자관계를 구축키로 합의하였다. 4.양측은 아시아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양국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정보 교류와 경제연구기관간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측은 중국의 인민폐 환율 안정과 내수확대를 통한 경제성장 유지정책이 아시아 금융위기를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하였다. 중국측은 앞으로도 능력범위 내에서 이러한 기여를 계속할 것임을 표명하고,동시에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광범위한 경제개혁 및 금융위기 극복과 경제회복을 위한 노력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였다. 5.중국측은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유지를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을 재천명하고,최근 남·북한 민간경제 교류에서 얻어진 긍정적인 진전을 환영하며 한반도 남·북 양측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에서의 자주적인 평화통일 실현을 지지하고,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목표가 하루속히 실현되기를 희망하였다. 양측은 4자회담의 추진을 통해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점진적으로 수립되기를 희망하였다. 6.중국측은 세계에 하나의 중국만이 있으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분임을 재천명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충분한 이해와 존중을 표시하고 지금까지 실행해온 하나의 중국 입장을 견지한다고 하였다. 7.양측은 양국 지도자,정부의 각 부문,의회 및 정당간 교류를 확대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8.양측은 수교 이래 6년여 동안 이룩해온 양국간 경제·무역관계의 발전을 높이 평가하고,21세기에도 계속해서 경제·무역 협력을 확대 심화시켜 양국의 공동 번영과 이 지역의 안정 및 발전에 기여하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양국간 ‘경제·무역 및 기술협력공동위원회’의 수석대표를 차관급으로 격상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현재 양국간 무역 불균형에 대해 유의하고,이러한 무역 불균형현상을 양국간 무역확대를 통해 개선해 나가기 위하여 공동 노력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측은 한·중간 무역 확대를 위한 중국의 한국측에 대한 수출금융 제공 제의를 환영하고 동 수출금융이 양국간 무역 확대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였으며 중국측은 한국 정부의 조정관세 축소 방침을 환영하였다. 양측은 새로운 무역상품 발굴 및 반덤핑제도 등 무역제한조치 완화를 위해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한국측은 중국의 방콕협정 가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고 중국측은 이에 대해 사의를 표시하였다. 한국측은 양국간 경제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중국 안후이성(安徽省)의 2개 사업에 대한 70억원(한화)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차관 제공을 금년 중 결정하기로 하였다. 양측은 금융감독 관리 부문과 금융시장 상호개방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하였다. 9.양측은 산업·과학기술·정보통신·환경·에너지·자원·농업·임업·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사회간접자본 건설,철도 등 부문에서 협력을 가일층 강화하는 데 있어 아래와 같이 인식을 같이하였다. ‘한·중 산업협력위원회’의 협력사업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21세기 양국간 산업협력 관계를 더욱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양측은 ‘한·중 과학기술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양국 정부 및 민간의 과학기술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최근 홍수,가뭄,지진 등 자연재해가 양국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음을 감안하여 양측은 상술한 부문에서의 정보교류 및 조기 예보,연구조사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기초과학 부문에서의 교류를 강화하고 동시에 첨단기술의 산업화 분야에서의 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양측은 초고속 정보통신망 및 전자상거래 등 국가정보화 부문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첨단통신기술 연구개발 분야에서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한·중 환경협력협정’에 기초하여 양국 정부간 환경보호 및 환경산업 협력을 강화하고 양국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황사 및 산성비 등 환경오염,황해 환경보호 등 문제에 대하여 정부간 공동 조사연구를 강화해 나가고 동북아지역 협력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황해 환경보호를 위해 양국 유조선 사고발생시 해상오염 예방을 위해 공동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에너지,자원 등 부문의 공동개발 이용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한국측은 1999년 쿤밍(昆明)세계원예박람회 참가를 결정하고 중국측은 이를 환영하였다. 양측은 이를 계기로 원예 부문에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한.중 시범농장을 공동으로 건립하고 농작물병충해 방지에 대하여 공동연구를 추진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삼림이 자연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삼림의 유지와 합리적 이용이 생태환경 개선,나아가 인류생존 환경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한·중간 임업협력약정’에 기초하여 산림녹화,토사유실 방지 등 분야에서 임업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양국은 ‘한·중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을 위한 협정’에 근거하여 핵 과학기술 및 핵에너지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하였다. 한국측은 호혜의 원칙하에 중국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참가하기를 희망하였으며 중국측은 이를 환영하였다. 양측은 또한 제3국 건설 분야에서 공동진출 협력을 추진하기를 희망하였다. 양측은 ‘한·중 철도 분야 교류 및 협력약정’을 체결하였고 철도 분야에서 과학기술 교류와 교육훈련 분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10.양측은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정부간 교류뿐 아니라 양국 국민간 상호 이해증진과 다양한 교류확대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양측은 양국의 각 분야에서의 문화교류 및 협력을 강화,발전시키기 위하여 한·중 양국 정부간 문화협정에 의거,‘한·중 문화공동위원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키로 하였다. 양측은 양국 각각의 정부수립 및 건국 50주년을 기념하여 금년과 내년에 각종 행사를 개최키로하고 양국 정부는 이를 적극 지원하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1998년 체결된 ‘교육교류약정’을 기초로 교육 및 학술 부문의 교류를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양측은 양국 관광 분야의 교류 및 협력을 강화하도록 장려하고 양국 관광업계의 발전을 공동으로 촉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양측은 양국의 각급 지방정부간 자매결연 등 방식을 통해 경제,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양국이 ‘한·중 형사사법공조조약’,‘한·중 사증발급 절차 간소화 및 복수사증 발급에 관한 협정’ 및 ‘한·중 양국 정부간 청소년 교류 양해각서’등 문서에 서명하고 어업협정을 가서명한 데 대해 환영을 표시하고 상술한 문서가 양국관계 발전과 양국간 교류 및 협력의 확대에 기여하기를 희망하였다. 11.양측은 핵무기 확산 방지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및 생·화학무기 감축,환경,마약,테러,국제조직 범죄 등 국제문제에 있어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 한국측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조기 가입을 지지하는 입장을 재천명하였으며 양측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및 UN 등 국제무대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고 2000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12.양측은 金大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순조롭게 이뤄져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은 중국측의 따뜻한 환대에 대해 사의를 표시하고 장쩌민 주석이 편리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해주도록 초청하였다. 장쩌민 주석은 이에 대해 사의를 표시하고 동 방한 초청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34개 협력사업 ▲아시아경제위기 극복 ­정보교류,경제연구기관간 협력 ▲고위인사 교류 확대 ­양국지도자,정부 각부문,의회,정당간 교류 ▲경제통상분야 협력 ­한중경제공동위 수석대표 차관급 격상 ­중국,對韓수출금융 제공,한국,對中조정관세 축소 방침 ­무역상품 발굴,부역제한조치 완화를 위한 협력 ­중국의 방콕협정 가입 지지 ­한국,對中 대회협력기금 차관 연내 제공 연내 결정 ­금융감독관리 부문과 금융시장상호개방 분야에서 협력 ▲산업·과학기술·정보통신·환경·에너지·자원·농업·임업·원자력의 평화적 이용·SOC건설·철도분야 협력 ­한중산업협력위 활성화 ­양국정부 및 민간의 과학기술협력 강화 ­에너지,자원의 공동개발,이용분야 협력 ­99년 昆明 세계원예박람회 참가 및 원예부문 교류,협력 ­한중 시범농장 공동건립,농작물 병충해 방지 공동연구 ­자연재해 예방을 위한 협력 ­기초과학 및 첨단기술의 산업화 분야 협력 ­초고속 정보통신망 등 정보통신 분야 협력 ­환경오염,황해환경 공동조사 등 환경협력 ­임업협력 강화 ­핵 과학기술 및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 ­한국의 중국내 SOC건설 참여,제3국 건설 분야 공동진출 ­한중 철도분야 교류협력 약정 체결 ▲문화·예술·교육·학술·관광·청소년·유학생 교류·사법협력,각종조약,협정 체결 ­한중 문화공동위의 정기개최 ­양국 각각의 정부수립 50주년 행사 개최 지원 ­교육학술분야 교류협력 ­관광분야 교류협력 ­지방정부간 협력 ­한중 형사사법 공조조약 서명 ­한중 사증발급 절차 간소화,복수사증 발급 협정 체결 ­한중 양국 정부간 청소년 교류 양해각사 서명 ­어업협정 가서명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핵무기 확산방치,생화학무기 감축 등 국제무역 협력 ­중국의 WTO 조기 가입지지 재천명 ­APEC,ASEM,ARF,UN 등에서의 협력 강화 ­2000년 제3차 ASEM 성공적 개최를 위한 협력
  • 金大中 대통령 訪中­이모저모

    ◎김 대통령 부부 ‘도라지’ 열창/강 주석도 중 민요 ‘夕歌’ 불러/격의없는 대화… 회담 1시간 길어져/이 여사,여성교류 확대 기대 【베이징 梁承賢 특파원】 중국 국빈방문 이틀째인 金大中 대통령은 12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분주한 일정을 보냈다. ▷정상회담◁ ●金대통령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이날 오전 인민대회당동대청에서 가진 정상회담은 단독회담과 공식수행원이 모두 참석하는 확대회담으로 나눠 진행됐다. 정상회담은 당초 45분으로 예정됐으나 양국 정상이 흉금을 털어놓고 개인신상에 관한 말까지 주고 받는 바람에 무려 1시간 가까이 늦어지는 ‘마라톤회담’으로 진행됐다. 장주석은 회담에 들어가기 앞서 “金대통령은 연세가 나와 동갑내기인데도 훨씬 젊어보인다”고 金대통령의 건강미를 찬상했다고 林東源 외교안보수석이 전했다.이를 받아 金대통령은 “나는 감옥생활이 6년이고 연금 및 해외망명이 10여년이어서 인생의 단절이 있었다고 볼 때 그 기간만큼은 늙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답,장주석의 웃음을 유도.장주석은 “金대통령은 재야시절 세차례 중국을 방문하는 등 중국사람들의 오랜 벗”이라고 친근감을 표시. ○강 주석 안내 의장대 사열 ▷공식 환영식◁ ●이에 앞서 金대통령은 부인 李姬鎬 여사와 함께 인민대회당 북대청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장쩌민 국가주석의 영접을 받았다. 金대통령이 인민대회당에 도착하자 예포 21발이 발사됐으며 장주석은 현관까지 나와 金대통령을 반가운 표정으로 맞았다.金대통령은 장주석의 안내로 사열대에 올라 의장대의 경례를 받으며 애국가와 중국국가 연주를 들었다. 국가연주가 끝난뒤 金대통령은 중국 의장대장의 우렁찬 사열준비 보고를 듣고 장주석과 함께 붉은 카펫을 따라 이동해 의장대를 사열하는 등 환영식은 약 10분간 진행. ▷친분인사 오찬◁ ●金대통령은 이날 오후 정상회담을 마친뒤 부인 李여사와 함께 숙소인 댜오위타이 18호각으로 중국내 친분인사 13명을 초청,과거 야당시절을 회고하며 오찬을 함께 했다. 金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야당시절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걱정하고 도와준 좋은 친구들을 대통령이 돼서 뵙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고 과거의 ‘은혜’에 감사의 뜻을 표시. 이날 오찬에는 우리측에서 徐錫宰 한중의원외교협회장,李榮一 한·중문화협회장,朴晟容 한·중우호협회장이 배석. ○강 주석 제의 받아 이중창 ▷국빈만찬◁ ●金대통령은 부인 李여사와 함께 이날 저녁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장주석 내외가 주최한 국빈만찬에 참석,장주석과 흥에 겨워 서로 노래를 주고받는 등 보기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만찬도중 金대통령과 장주석은 포도주를 곁들이며 많은 얘기를 나눴고,때로 호쾌하게 웃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고.그러다 한즈핑(韓芝萍)의 노래로 7번째 중국의 민요인 ‘저녁노래(夕歌)’가 연주되자 장주석이 식사를 하다말고 즉석에서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만찬뒤 종업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저녁노래의 마지막 소절은 음이 높아 따라 부르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는 것. 그러자 金대통령은 “여기서 다시 하라”고 청했고,장주석은 즉석에서 노래반주를 요구한뒤 ‘직업가수 수준’에 가깝게 저녁노래를 열창. 이어 장주석은 金대통령에게도 노래를 청하자 부인 李여사와 함께 마이크를 잡고 지휘자에게 “무슨 노래를 할까요”라고 묻고는 지휘자가 청한 도라지를 李여사와 함께 역시 즉석에서 ‘이중창’을 했다. 노래를 끝낸 金대통령은 영어로 작별인사를 한뒤 헤어졌다.金대통령은 “장주석은 훌륭한 분으로 인간적으로도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있는 관계가 정립됐다”고 평가했다. ▷정상회담 양국 평가◁ ●우리측은 정상회담이 끝난 뒤 중국의 외교적 형식이나 수사를 감안할 때 ‘상당한 성공작’이라고 평가. 金대통령과 장쩌민 주석간 회담도 자세히 뜯어보면 ‘총론’만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정상은 큰 원칙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사항은 관계부처나 기관끼리 협의토록 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베이징에서 정상외교 말고 별도의 장관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도 이같은 외교적 스타일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한·중정상회담이 끝나자 주장자오(朱邦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발표문을 내고 “양국관계와 공동관심사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교환을 통해 광범위한 공동인식에 도달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 그는 ‘협력적 동반자관계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양국관계에 진일보한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한 중요한 조치”라고 해석.그는 그러나 “이것이 동맹관계는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대통령 부인 동정◁ ●李여사는 이날 오전 중국의전국 부녀연합회를 방문,펑 페이윈(彭佩云) 주석 등 연합회 간부들과 환담. 李여사는 이 자리에서 “이번 중국방문을 계기로 양국 여성단체와 여성지도자들이 서로 교류를 좀더 활발히 해 우의를 증진하고 공동의 가치를 확대시켜 나가자”고 당부.
  • 金大中 대통령 訪中­정상회담 성과

    ◎한­중 본격 ‘협력교류시대’ 열었다/정치·안보 등 모든 분야 ‘동반자관계’로 격상/대북 포용정책 지지 확보 한반도평화 버팀목 강화 【베이징 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국가주석간 정상회담의 성과는 한·중 관계를 선린 우호관계에서 한차원 높은 협력동반자로 설정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이를 위해 두나라는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 등 12개항 34개의 구체적인 협력계획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지난 96년 중국과 러시아간 합의한 공동성명 이후 처음이라는 林東源 외교안보수석의 설명으로 볼 때 공동성명 자체도 상당한 외교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이번 공동성명은 두나라간 전반적인 현안을 망라하고 있다.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안정을 위한 협력에서 부터 타이완문제,원자력·철도·농업·임업은 물론 국방장관급 군인사교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이제껏 경제분야에 치중해 있던 두나라간 교류협력이 전방위 체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실질적인 증거다. 이는 두나라가 21세기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데 서로 필요한 ‘동반자’라는 인식이 바탕이 됐다.이날 정상회담에서 金대통령이 “협력 동반자관계가 공동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부분이나,장주석이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동반자관계를 설정하는데 노력하자”고 요청한 대목도 이를 반증한다. 양국이 이날 형사사법 공조조약과 사증발급절차 간소화 및 복수사증의 발급에 관한 협정,청소년 양해각서 등 4개 약정에 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정착과 동북아 지역의 안정 및 번영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金대통령은 우리의 대북(對北)포용정책을 고리로 집요하게 파고들었고,장주석도 이에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북한과 동맹인 중국의 처지를 감안할 때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한 관계자도 “수교 6년만에 두나라가 대화채널과 협력체제를 구축한 것은 향후 발전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단초”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두나라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21세기 한·중관계를 총괄할 구체적 협력관계 계획의‘대장전’을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또 양자 차원을 넘어 핵·군축·마약 등 범세계적인 문제와 방콕협정,WTO,UN 등 국제기구까지 협력을 확대했다. 그러나 이것이 한·중 동맹관계의 구축을 의미하지도,또 중국이 대(對)한반도 정책의 변화를 완전히 천명하는 것도 아니어서 여전히 극복해야 할 외교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즉 한반도 주변 4강과의 외교적 조화가 앞으로 성패를 가르는 최대 관건인 셈이다. ◎‘협력 동반자관계’란/‘선린우호’보다 한차원 높아/중 국가관계 단계중 3번째 【베이징 梁承賢 특파원】 한·중 정상이 12일 합의한 ‘21세기의 한·중 협력 동반자 관계’는 많은 산고(産苦) 끝에 탄생했다.중국이 북한과의 전통적 관계를 의식,양국이 동반자 관계 설정에서 부터 공동선언문 발표 형식에 이르기까지 쉽게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통상 국가간 양자관계를 ▲혈맹 ▲전통적 우호협력 ▲동반자 ▲선린우호 ▲단순 수교 등 5단계로 나누고 있다는 게 주중 대사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대국적인 면모를 과시하려는 중국 특유의 외교적 수사(修辭)인 셈이다.동반자관계를 설정한 만큼 한·중 관계는 이전의 선린우호협력관계보다는 한 단계 발전한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동반자관계의 앞에 따라붙는 형용사 때문에 양국은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여야 했다. 당초 우리는 경제분야에 치우친 양국관계를 정치·안보·문화분야로 확대시키자는 의미에서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주장했다.반면 중국은 포괄적이란 용어가 군사·안보협력의 강화를 암시하고 있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면서 ‘선린우호협력적 동반자관계’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동반자관계가 아닌,선린우호와 동반자관계의 중간으로 비치기 쉽다는 게 우리측의 판단이었다.양국이 평행선을 달리자 한국은 형용사 없는 ‘동반자관계’를 다시 타협안으로 제시했으나 중국은 이에 대해서도 반대,결국 양국 주장의 가운데 점인 ‘협력 동반자관계’로 낙착됐다. 북한과 양자관계의 최고단계인 ‘혈맹관계’를 맺었던 중국은 한·중수교이후 수준을 한 단계 내려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또 최근 초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와는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었다.
  • 韓·中‘협력 동반자관계’로/金 대통령,세계경제회복 中 역할 강조

    ◎양국정상회담 교류 확대 12개항 공동성명 합의/강택민 주석,햇볕정책·금강산사업 지지 【베이징 양승현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12일 양국관계를 지금까지의 선린우호관계에서 한단계 높여 ‘21세기의 협력동반자관계’로 설정키로 합의했다. 金대통령과 장주석은 이날 오전 2시간 반동안 베이징(北京)인민대회당에서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잇따라 열어 이같이 합의했다고 林東源 외교안보수석이 밝혔다.한.중 양국은 두 정상이 서명 교환한 공동성명을 13일 발표할 예정이다. 12개항으로 구성된 공동성명에는 ▲양국 정상을 포함한 정부 의회 정당간 교류확대 강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정보교류와 연구기관간 협력강화 ▲양국간 무역확대를 통한 무역불균형 시정 및 한국의 중국에 대한 조정관세 축소 ▲한국의 중국에 대한 차관 한화 70억원 제공 ▲중국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사업에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 등 34개항의 구체적인 협력사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金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양국의 국가이익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양국관계의 격상 필요성을 밝혔으며,장주석은 이에 동의하면서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동반자관계 설정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남북관계와 관련,자신의 대북정책을 설명하면서 북한도 4자회담에서 전진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으며,장주석은 한국의 노력을 평가하면서 “한국이 미.북관계 개선을 지지하는 것은 아주 잘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장주석은 특히 북한에 들어가는 바람이 따뜻한 바람이 아니라 찬 바람일 경우 북한은 옷을 더 여미게 될 것이라며 북한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갖고 자극하지 않으면서 너그러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장주석은 한국의 선양(瀋陽)영사사무소 개설문제와 관련,양국의 관계부처가 협의해서 처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세계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조기 가입과 유엔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의 역내 개도국간 관세인하 혜택을 받게 되는 ‘방콕협정’ 가입을 지지한다고밝혔다. 한편 정상회담 후 洪淳瑛 외교통상부 장관과 탕자쉬앤(唐家璇) 중국 외교부장은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형사사법공조조약,복수사증협정 및 청소년교류양해각서에 각각 서명했으며 李廷武 건교장관은 푸즈환 중국 철도부장과 양국간 건설교통부문 협력을 위한 한중철도교류협력약정에 서명했다.
  • “위안화 가치 유지는 용기있는 결단”/金 대통령 북경대 연설

    ◎기립·환호·15차례 박수/예정 40분 넘겨… TV생중계/조크 해가며 진지한 대화 【베이징 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의 12일 베이징대(北京大) 연설은 비정치적 일정 가운데 압권이었다.1,000석 대강당은 물론 2층 통로까지 교수와 학생들로 가득 메웠고,교정은 ‘와’하는 함성과 박수로 떠나갈 듯했다.金대통령은 이날 들고날 때는 두차례 기립박수로 포함,모두 15차례나 박수를 받았다. 연설과 질의응답은 당초 예정을 40분이나 넘겨 1시간40분동안 계속됐다. 金대통령의 연설은 자신과 베이징대학의 인연으로 시작해 한·중 두나라의 문화·종교적 관계,그리고 이날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합의까지 열거하면서 한·중 두나라의 미래를 담았다.먼저 한국문화가 중국의 영향 속에서 독창적인 문화를 더욱 발전,유지해 왔음을 상기시키면서 “새로운 도약과 번영을 향한 대로를 여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나아가 “중국을 진정한 우방으로 여기면서 이번 방중을 계기로 양국경제가 더한층 굳게 협력하는 기틀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기대한뒤 중국의 위안화 가치유지 방침을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평가했다.연설말미에서는 “두나라 젊은이들은 손에 손을 잡고 전진하라.귀국 지도자들과 나는 그런 다리를 놓는 역할을 기꺼이 다할 것”고 다짐했다. 金대통령은 답변 도중 통역을 칭찬하며 “돌아갈 때 강연은 신통치 않은데 통역만은 참 잘한다고 하지나않을지 모르겠다”고 조크,청중들이 폭소를 자아냈다.또 “여학생도 질문하라”며 지명한 한 한국 유학생은 “기독교 모임 유학생들이 새벽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힘내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연설장에는 단상위와 강당뒤에 ‘韓國總統 金大中 閣下 北京大學 講演會(대한민국 金大中 대통령 베이징대학강연회)’ 등 두개의 환영 플래카드가 내걸렸다.이날 강연은 국내에 TV로 생중계됐으며,중국 CCTV도 이날 저녁 뉴스시간과 별도의 5분짜리 특집으로 다뤘다. 다음은 金대통령과 학생들간의 일문일답 요지. ●한·중간 협력동반자 관계와 중·미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중국은 강대국과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고 있으며,한국과 협력동반자 관계는 선린우호관계를 넘어 한반도 평화 분야까지 협력을 뜻합니다. ●21세기 두나라 청년교류를 위한 구상은 무엇입니까. 양국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고 사회로 부터 각출해 유학생에게 장학금 지급을 늘리고,가족이 딸린 대학원생들을 위해서는 기숙사를 제공할 것입니다. ●베이징대생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을 밝혀주십시오. 20세기에는 평균적 대학생을 대량생산했으나 21세기 정보·지식사회에서는 지적 특색이나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또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만이 행복한 일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21세기 동반 다짐한 한·중(사설)

    중국을 국빈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이 12일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가진 양국 정상회담은 한·중관계를 ‘선린우호협력관계’에서 포괄적인 ‘협력동반자관계’로 높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두 정상은 지난 92년 수교이후 경제·통상분야에 치우쳐왔던 양국의 협력관계를 정치·안보·문화·환경·국민교류 등 모든 분야로 확대하여 21세기를 향한 진정한 동반자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한·중의 협력 동반자관계 구축은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는 길임은 물론이고 앞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더구나 金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새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장주석의 전폭적인 이해와 지지를 받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한의 개혁·개방에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강조한 것은 앞으로의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장주석이 금강산관광을 평가하고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우리로서는 소망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양국 정상이 아시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협력강화 방안을 깊이있게 논의한 것은 두 나라의 역할이 주시되고 있는 시점에서 적절하고도 필요한 것으로 본다. 특히 위안(元)화를 평가절하하지 않겠다는 확인은 아시아와 세계경제를 안심시켜주는 반가운 소식이다. 金대통령이 중국산 농산물의 구매확대와 중국에 대한 투자장려 의사를 밝힌 것은 양국의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기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전반적으로 실리나 명분에서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이제 정상회담의 성과를 구체화해 실질적인 협력 동반관계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정상회담 후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명된 형사사법공조조약과 복수사증협약은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모두가 두 나라 사이의 교류·협력을 넓혀가는 데 필수적인 것들이다. 두 정상이 양국의 정부·의회·정당 고위인사들의 교류 확대에 합의한 것이나 金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5년동안 끌어왔던 한·중어업협정을 타결한 것도 두 나라 사이의 신뢰 구축을 향한 발걸음이라 하겠다. 양국 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을 두 정상이 서명한 공동성명 형식으로 13일 발표키로 한것도 주목된다. 중국과 북한의 특수한 관계를 생각할 때 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겠다. 정상회담의 성과를 문서화한 공동성명은 새로운 한·중 관계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새로운 협력 동반관계가 두 나라와 한반도의 앞날을 밝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
  • 金大中 대통령 訪中­양국 頂上 대화록

    ◎김 대통령­“이웃나라로 가깝게 지내는 것이 시대요청”/강 주석­“대북접촉 너그러운 환경조성이 매우 중요” 【베이징 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12일 오전 인민대회당 동대청 부속실인 북소청에서 단독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은 당초 오전 9시40분(현지시간)부터 10시25분까지 45분으로 예정되었으나 무려 55분을 넘겨 11시20분쯤 끝났다.이 때문에 확대정상회담도 옆 동대청에서 11시25분에 시작돼 낮 12시15분까지 이뤄졌다. 林東源 외교안보수석은 “화기애애하고 허심탄회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런 대화를 나눴다”며 “두 나라와 한반도 주변문제,장기비전 등 전반적인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다음은 단독회담에서 金대통령과 장쩌민 주석이 나눈 현안별 대화를 林수석의 설명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양국일반◁ ●金 대통령=지난 6년동안 한·중 수교후 경제통상분야에서의 발전을 평가합니다.이제 새 세기를 맞이하면서 21세기 협력동반자관계로 더욱 긴밀히 협력해야 합니다.그 이유는 세가지로첫째,경제교류 뿐아니라 문화·환경,인적,청소년 교류 등 모든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국가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둘째,한반도는 분단상태로 군사적 대치상황에 놓여있는데,중국은 한반도 평화유지와 당사자 해결원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앞으로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해야 합니다.셋째,21세기는 세계화시대로 어느 한나라가 고립되어서는 살 수 없습니다. 한·중은 이웃나라로 더욱 가깝게 지내는 것이 시대적 요청입니다.아시아 금융위기는 아시아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 각국에 파급되는 등 세계화의 다른 한 측면을 느낍니다.이런 의미에서도 공동대처가 필요합니다. ●강 주석=동의합니다.金대통령께서는 중국사람들의 오랜 벗입니다.재야시절 세차례 중국을 방문했습니다.그때 만나뵙지 못했지만,金대통령께서 한·중관계에 관심과 기대를 갖고 계신 것에 대해 평가합니다.특히 대통령 취임이후 한·중관계를 중시하고 한·중발전에 상당히 노력하신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우리 두 정상이 높은 산에 올라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동반자관계를 설정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동북아 안정과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양국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북관계◁ ●金 대통령=(대북 3원칙과 포용정책을 설명한뒤) 세계 모든 나라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북한도 우리의 이러한 대북정책에 호응해 나오기를 바라고 있으며 중국의 협조가 중요합니다.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사건과 잠수함 침투사건이 있었으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변화를 위한 노력의 징후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먼저 4자회담에 전진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고,헌법개정을 통해 북한식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요소를 헌법에 반영하고 있습니다.또 남북교류 협력도 종교,문화,언론인 교류를 받아들이면서 현대의 금강산관광 사업을 받아들이고 金正日 군사위원장이 전면에 나서 남북경제 관계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이는 변화로 볼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인내심을 갖고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중국도 적극 협력해주시기 바랍니다. ●강 주석=남북문제를 솔직히 말해줘 감사합니다.세계는 탈냉전과 긴장완화로 가고 있으며,남북관계도 개선되고 있습니다.한국의 남북관계 개선노력을 평가합니다.북한이 민간교류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관계개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징후로 보입니다.한국이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잘한 일이며,중국도 환영하면서 이를 주시하겠습니다.북한에 불어오는 바람이 따뜻한 바람이 아니고 차가운 바람이면 코트를 벗지 못하고 옷을 여미게 될 것입니다.대북접촉은 인내심을 갖고 자제하면서 북한을 자극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너그러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한반도 평화 안정은 중국이 추구하는 정책입니다.남북관계와 미·북관계,4자회담이 잘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랍니다.중국도 나름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대일관계◁ ●강 주석=(金대통령이 최근 일본방문 결과를 설명하자) 일본내 극우세력의 군국주의적 경향 대두에 경계해야 합니다. ●金 대통령=우호협력을 긴밀히 하면서 그런 경향이 대두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타이완문제◁ ●강 주석=하나의 중국원칙을 유지하고 있고,타이완은 우리 영토의 일부분입니다. ●金 대통령=이해하며 존중합니다.우리도 하나의 중국 입장을 견지하겠습니다.
  • 金大中 대통령 訪中­이모저모

    ◎“아시아위기 공동극복 길 모색”/재중 한국인 대표 300여명과 환담 나눠/현지언론 ‘양국 동반관계’ 등 잇단 특집 경쟁 【베이징 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이 11일 중국 국빈방문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金대통령은 베이징에서 현지의 우리 언론특파원과 15분간 간담회를 갖고 한·중관계 발전에 대한 생각의 일단을 밝혔다. ▷재중 한국인 간담회◁ 金대통령은 오후 댜오위타이(釣魚臺) 방비원 연회장 옆방에서 300여명의 재중 한국인 대표들과 10여분간 환담했다. 金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번 방문을 계기로 중국과 한국은 과거와 비교가 안되게 치산치수와 산성비,황사현상,황해오염 해결 등을 비롯,광범위한 교류협력 시대로 들어갈 것”이라면서 “21세기 포괄적인 동반자관계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도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안되면 쉬운 것부터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중국 공산당기관지 ‘人民日報’ 등 중국 현지언론들은 金대통령과 한·중 양국 관계에 대한 특집을 앞다퉈 보도했다. ▷내부 만찬◁ 金대통령은 이어 댜오위타이 18호각에서 수행원들과 비공식만찬을 갖고 12일 인민대회장에서 열리는 한·중정상회담을 점검하면서 가벼운 화제로 환담했다. 金대통령은 林東源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이번 공동발표문에는 한·중관계를 우호협력관계에서 동반자관계로 발전시키고,우리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등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는 보고를 받고 만족감을 표시했다.또 洪淳瑛 외교장관으로부터 러시아 정세를 보고받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집권자가 강력한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항 도착행사◁ 金대통령과 부인 李姬鎬 여사는 예정대로 11일 오후 4시30분 베이징공항에 도착했다.權丙鉉 주중대사와 중국 의전국장의 기내 영접을 받은 金대통령 내외는 트랩에 내려 환영나온 楊文昌 중국외교부장과 악수를 나눈 뒤 중국 소녀로부터 축하 꽃다발을 받았다. ▷출국◁ 서울공항 출국 행사는 10분도 채 안 걸렸을 만큼 ‘초미니’ 행사로 치러졌다.金대통령의 미국,일본방문 등에 이어 계속된 간소한 출국 행사가 새 관행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모습이었다.환송 인사도 金鍾泌 총리를 비롯,20여명에 불과했다. 金대통령은 출국 인사말에서 “이번 APEC회의가 아시아 공동 난관 극복의 장이 되도록 주도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국내 외 저명인사가 보내온 축하전문(대한매일에 바란다:Ⅱ)

    ◎“21세기 이끄는 고급 정론지 돼라”/암울한 시기 민족의 등불처럼 한국민에게 희망과 비전 제시/‘제2건국운동’ 선도적 역할을 제호를 바꾸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대한매일에는 세계 각지에서 축하와 격려가 답지했다. 새출발을 축하하며 국난극복을 주도했던 대한매일의 창간정신으로 돌아가 공익 정론지로 거듭나기를 기원했다. 진실을 밝히는 신문으로 탈바꿈해 달라고 주문하면서 특히 중국의 인민일보 샤오화저 사장은 변화와 개혁의 선도적인 역할을 당부하기도 했다. ◎方相勳 한국신문협회 회장(조선일보사 사장)/국난극복에 중추적 역할을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꾸는 것은 단순한 제호의 변경이 아니라 구국항일 민족지 대한매일신보의 맥을 잇는 높은 뜻을 지닌 것이라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이시대에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기는 쉬우나 과거의 좋은 정신을 계승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서울신문의 제호변경은 더욱 값진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국난에 처한 오늘날 민족의 앞길을 밝히는 공익언론의 무거운 책무를 스스로 걸머지는 각오로 제호와 회사명을 바꾸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대한 매일신보사 가족 모두에게 다시 한번 경의를 보낸다. 아무쪼록 그러한 정신이 지면과 회사의 모든 활동에서 가장 좋은 방향으로 구현되어 대한매일이 이나라 언론발전에,그리고 국난 극복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朴權相 한국방송협회 회장(한국방송공사 사장)/시기적으로 중요한 결단 내려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꿔,구 한말 구국의 선봉에 섰던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시기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적합한 결정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현재 건국이래 최대의 국난이라는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제2의 건국’을 이룩해야 할 시점에서 공익에 입각한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은 해방후 많은 공과(功過)가 있어왔다. 이제 재창간을 계기로 겸허한 자기반성과 함께 국민의 신문으로 거듭남의 자세를 보이고 있어 기대되는 바가 크다. 한말 대한매일신보가 국난극복에 앞장섰듯 새로 태어나는 대한매일이오늘날의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 중심에 서서 큰 역할을해 주길 당부한다. ◎잭 앤더슨(신디케이트 칼럼니스트)/진실 밝히는 강한 신문으로 미국 국부의 한사람인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없는 정부하에서 사는 것보다는 정부는 없더라도 신문있는 나라에서 사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언론이 나라의 힘과 활력을 키우는데 매우 중요함을 설파한 것이다. 한국의 독자들은 그간 서울신문이 언론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데에 대해 발행인,편집인,그리고 일선 기자들에게 찬사를 보낼 것이다. 훌륭한 전통이 대한매일로 이어져 한국이 역경이 닥치더라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정보는 바로 힘이다. 그리고 힘이 되는 정보는 진실을 두려워않는 강한 신문에서 비롯된다. 영원한 발전을 기원한다. ◎더그 하브리흐트(비지니스위크지 사장 겸 내셔널 프레스클럽 회장)/자랑스런 전통 이어나가야 본래의 이름인 대한매일을 되찾아 새 출발을 하는데 대해 미국의 내셔녈 프레스클럽 회원 모두를 대신해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대한매일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기여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바로 그 점은 대한매일신보사 여러분들이 자랑스럽게 느끼기에 충분하다. 앞으로도 건승하시길 빌며 보다 큰 성공이 늘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도널드 P. 그레그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전 주한 미국대사)/대한매일의 정신 되살려야 금세기 초창간되면서 가졌던 본래 이름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꾸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본래의 이름을 되찾으면서 고급 정론지의 대표 매체로서 지금까지의 전통을 이어 승화시켜 나갈 것을 확신한다.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앞으로 대한매일을 성원할 것이다.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일본 외상/韓·日 우호증진에 공헌 기대 대한매일로 다시 창간됨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서울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쌓아온 지금까지의 활동을 기반삼아 대한매일이 신뢰받는 보도기관으로서 한층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또 金大中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한일 두나라가 우호협력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가는데 대한매일이 공헌해 줄 것도 바라마지 않는다. ◎오시마 히로히코(大島宏彦) 일본 주니치(中日)신문사 회장/미래향한 민족의 길잡이로 역사적으로 지극히 유서 깊은 귀사가 제호를 부활함으로써 한국 국민에게 강력한 구심점이 되는 것은 물론 21세기를 향한 중요한 민족적 길잡이가 될 것이다. 金大中 대통령님의 일본 방문으로 한일 두나라사이에 새로운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것과 때맞춰 내린 제호 부활의 결단은 지금까지 우호협력관계를 두텁게 해온 주니치신문사와의 관계에서도 새롭게 빛나는 한 획을 그을 것으로 확신한다. 장도를 내딛는 앞날에 큰 영광과 번영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마이 다카시(今井敬)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회장(신 일본제철 회장)/국민의 위기극복 노력 고무 金大中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한일 양국이 신뢰와 우호를 두텁게하고 보다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가는 역사적인 일보였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강인한 의지와 인내를 갖고 거국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서울신문에서 대한매일로 비약하는 귀 신문이 한국민들의 이러한 노력을 계속 고무시켜 주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덴 히데오(田英夫) 일본 참의원 의원/민족의 숙원 조국통일 기여 대한매일로 제호를 변경,새롭게 출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한 뒤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21세기를 향해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려고 다짐하고 있는 때 민족의 독립을 지키는데 분투해온 멋진 역사를 갖고 있는 귀지가 다시 태어나 민족의 비원인 조국통일에도 공헌할 것을 진심으로 기대한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일본 게이오(慶應)대학 법학부 교수/공익언론으로 소임 다하라 21세기 신시대를 앞두고 90여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서울신문이 과거를 딛고 대한매일로 거듭 태어남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20세기 한국 최초의 민족정론지로 출발,암울한 시기에 민족을 바르게 이끌었던 대한매일은 21세기에도 한국을 힘있게 이끄는 고급 정론지로서 비약하기를 기원한다. 특히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는 한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 민족 최대의 소망인 남북통일에도 선도적 역할을 하는 공익 언론으로서의 소임을 다할것이라고 확신한다. 대한매일로 재창간을 거듭 축하며 무한한 번영을 진심으로 바란다. ◎샤오 화 저 인민일보 사장/‘함께 개혁 동참’ 휘호 보내와 ‘咸與維新’(다함께변화와 개혁에 동참하자)라는 휘호를 보내와 대한매일의 재창간을 격려했다. 지끔까지 써왔던 이름을 천명하는 것으로 해석한것이다. 또 이 시대에 필요한 국가적, 사회적 덕목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주도록 촉구했다. ◎완 윈라이(滿運來) 북경일보사 사장/한국의 언론계 선도 하기를 대한매일로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한데 대해 북경일보사를 대표해 뜨거운 축하를 보낸다. 대한매일은 영광된 전통을 갖고 있는 신문이다. 대한매일의 애국정신을 계승,한국의 언론계를 선도하고 ‘제2의 건국운동’에 커다란 공헌을 해 나가시기를 기원한다. 대한매일신보사와 북경일보사는 우호협조관계를 맺어 왔다. 그리고 계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21세기가 다가오고 있다. 기회와 도전의 가능성이 가득한 이 때에 대한매일과 대한매일신보사가 한국의 국가 발전과 한국과 중국 두나라의 관계증진에 커다란 역할과 공헌을 할 수 있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맥심 보어세스터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자이퉁 신문사 사장/질 높은 기사 신속하게 보도 알게마이너 자이퉁 신문사를 대표해 재창간을 축하한다. 국권 수호의 기치를 내걸고 창간되었던 대한매일의 이름으로 제호를 바꾼데 대해 큰 기대를 걸어 본다. 명실상부한 민족 정론지였던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승화시켜 미래를 내다보는 언론으로 발돋움하리라 확신합니다. 아무쪼록 대한매일이 생활의 질을 높여 주는 기사를 바르고 빠르게 보도하여 한국 언론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아나톨리 유르코프 로시스카야 러시아 가제타신문 편집국장/국제적인 명성 얻기를 기원 대한매일 본래의 이름을 되찾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재출발하는 대한매일은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높은 명성을 얻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앞으로도 가치있는 뉴스전달과 함께 심도높은 분석기사,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지지 등을 실천할 것으로 본다. 가제타신문은 대한매일과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갖고 다양한 변화들을 함께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쁨으로 느낀다.
  • 대한매일 역사성과 새 좌표 세미나­주제발표 내용

    ◎국난때 정론 편 대표적 민족지 오는 11일 ‘대한매일’로 역사적인 새 출발을 하는 서울신문이 3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대한매일의 역사성과 새 좌표’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갖고 그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했다. 이날 발제자들은 대한매일신보가 창간 당시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한 국운을 바로잡기 위해 항일구국의 기치를 드높였던 민족정론지였다고 평가하고 오늘날 또 다른 국난기를 맞아 그 같은 정신의 부활은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새로운 천년,새 세기의 지평에서 공익언론·구국언론으로서 대한매일의 부활은 1세기 전 선각자들이 이루지 못했던 꿈과 도전을 실현시킬 계기가 될 것임을 전망했다. 이날 발표된 ‘대한매일신보 창간 당시의 민족운동과 시대적 상황’(신용하),‘대한매일신보의 논조와 민족 독립운동’(정진석), ‘대한매일의 정체성과 새 좌표’(김삼웅) 세 편을 요약 소개한다. ◎창간 당시 시대적 상황/애국세력 신민회 본부 사내에 설치/국채보상 일어나자 전국적 캠페인/愼鏞廈 서울대 교수·사회학 구한말 ‘을사5조약’의 늑결(勒結)로 외교권 등 국권을 상실한 뒤 가장 과감하게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한 신문이 ‘大韓每日申報’(대한매일신보·이하 대한매일)였음은 학계의 연구에 의해 잘 알려졌다. 그 요인과 조건을,외국인 명의로 발행돼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왔다. 이런 외적 조건은 일면에 불과한 것이어서 대한매일이 과감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할 수 있던 내적 조건을 밝힐 필요가 있다. ○과감하게 언론구국운동 전개 대한매일은 영국인 裵說을 사장으로 고용추대하고 梁起鐸은 총무가 되어 합작으로 1904년 7월18일 창간했다. 원래 대한제국 정부가 한국의 처지와 한국정부의 주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영어를 사용한 신문의 필요성을 절감,궁내부 예식원 관리인 양기탁 등이 배설을 고용해 창간했다. 예식원 영어통역관인 양기탁은 고종의 내탕금과 李容翊·閔泳煥 등의 자금지원을 받아 신문사 시설을 설치하고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지 임시통신원 배설을 사장으로 고용해 신문을 창간했다. 따라서 대한매일은 양기탁의 주도로 창간됐으며,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사의 편집과 업무를 총괄했다. 대한매일이 가장 과감하게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하게 된 내적 조건의 특징은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돼 그 본부를 대한매일 안에다 둔 사실과 직접 관련돼 있다. 신민회는 1907년 4월 초 다섯가지 애국세력이 연합해 창립했는데 그 첫째가 대한매일 집단이다. 양기탁이 총무로,申采浩가 주필로,張道斌(일시 주필)玉觀彬 李章薰 梁寅鐸 金演昶 兪致兼 李晩稙 등이 기자로,林蚩正 姜文秀 등이 회계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신민회 창립 직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이밖에 서울 상동교회,구한국 무관 출신,민족자본가,미주(美洲)에 있는 공립협회(共立協會)등이 참여했다. 신민회에서는 특히 대한매일이 그 핵심세력이 되었다. 신민회 총감독(당수 또는 회장)이 양기탁이었고 본부를 대한매일 내에 두었다. 장도빈은 주도회원에 신민회 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 간부였다. 신민회 조직을 발의한 것은 안창호 중심의 공립협회였으나 미주에서는 효과가없으니 본국에서 설립해야 한다고 판단해 안창호를 파견했다. 안창호는 1907년 2월 귀국 즉시 대한매일로 양기탁을 찾아갔고 두달 후 다시 만나 신민회를 비밀결사체로 조직하기로 합의했다. 신민회 창립 제의는 안창호가 냈으나 창립은 양기탁 중심으로 되었다. 당시 그는 애국계몽운동의 유력한 지도자로서 국내 애국인사들과 긴밀한 유대를 가졌을 뿐아니라 민중에게서도 큰 존경을 받았다. 아울러 양기탁이 신민회 총감독으로 추대된 것은 그가 대표하는 대한매일의 조직과 세력이 중시됐기 때문이다. 신민회는 전국에 지국을 가진 대한매일을 중핵으로 하여 단기간에 비교적 용이하게 지방지회를 설치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신민회 본부는 대한매일에 있었고 대한매일 영업국장인 임치정과 직원 김홍서가 비밀사무를 보았다. ○安昌浩 중심 신민회 조직 발의 1909년 대한매일의 지사 숫자는 51곳으로 일제가 후에 파악한 신민회 지회 세력과 분포가 거의 일치한다. 신민회는 국권회복이라는 목적의 실행방법으로 ‘신문·잡지·서적의 간행’을 최우선으로 설정했는데 창립 후 독자적으로 신문을 간행하지는 않았다. 대한매일이 신민회의 기관지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이는 장도빈,일제 관원,독립운동가의 자료들에서 확인된다. 대한매일이 신민회 기관지로 전화한 1907년 4월 이후 논설·편집·보도는 매우 열렬하고 전투적으로 되었다. 일제는 1908년 4월 ‘신문지법’을 개정해 외국인 명의 신문이 가진 특권을 모두 없앴으며 대한매일을 해체하려고 배설·양기탁을 고소·구속했다. 그럼에도 대한매일은 굴복함 없이 더욱 적극적으로 의병운동을 지원했다. 이는 대한매일 종사자들이 굳게 단결,신민회 노선에 따른 과감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대한매일의 민족운동에서의 애국적 전통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오늘 우리 한국 신문에서도 면면히 계승·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논조와 독립운동/李 침략 본격화 맞서 대항논리 제공/직필 논설 통해 항일의병투쟁 고무/鄭晋錫 한국외대 교수·정책과학대학원장 대한매일신보는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부터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까지 나라 안팎의 정세가 몹시 복잡하던 시기에 발행된 대표적인 민족지였다. 일본과 영국은 대한매일이 창간된 때로부터 한일합방까지 대한매일을 외교적인 현안문제로 다루었다. 따라서 대한매일은 언론사,독립운동사,한국문제에 관한 영·일 양국의 외교사,국제사법사 등의 핵심이 되는 연구과제이다. ○한일합방때까지 6년간 발행 대한매일의 항일 언론이 한국의 언론사와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요약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주목할 것은 이 신문의 발행시기다. 이 신문은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부터 한일합방이 공포되던 날까지 약 6년 동안 발행되었다. 이 시기는 일본이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한반도에서의 독점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침략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던 때였다. 대한매일은 이와 같은 민족사적 전환기에 발간되면서 항일운동의 논리를 제공했고 항일운동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한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이었다. 둘째 대한매일의 외교사적인 중요성이다. 이 신문에는 한국 영국 일본 세나라의 각기 다른 입장이 한반도의정치적 문제와 연관되어 미묘하게 얽혀 있었다. 이 신문은 소유주가 영국인이었으나 한국의 황실과 민족진영이 뒷받침하고 있었으며 논조는 항일이었다. 일본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신문이 침략정책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었다. 일본은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裵說을 한국으로부터 추방하거나 신문을 발행하지 못하게 만들려 했고 그 교섭 상대국은 영국이었다. 영·일간 교섭 과정에서 외교정책,사법 절차상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야기되었음은 물론이다. 셋째 이 신문은 한반도문제에 있어 영국과 일본의 기본적인 입장과 양측의 외교정책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영국이 영일동맹으로 맺어진 우호관계라는 점을 내세워 일본의 대한정책을 방해하는 영국 시민 배설에 대해 만족할 만한 제재를 가해달라고 요구했다. 때문에 영국 정부 자체에서도 이 문제의 처리에 고심했다. 처음에는 영국과 일본이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과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 결국은 영국의 재판에 회부하게 되었다. 다섯째 한국민족운동사에서 본 대한매일의 중요성이다. 이 신문은 소유주가 영국인이었으므로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았다. 이로 인해 일본의 한국 침략정책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고 한국 국민들의 저항운동을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었다. 많은 의병들이 이 신문의 영향을 받아 무장항일투쟁에 가담했으므로 이 신문은 한국 민족독립운동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었다. ○독립운동의 정신적 구심점 여섯째 언론사에 있어서의 중요성이다. 이 신문은 발행되고 있던 기간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는 점만으로도 연구의 필요성은 크다.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 국한문 한글 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대한매일이 벌인 국권수호운동은 1차적으로는 지면을 통해 전개되었다. 대한매일은 일본 침략을 규탄하고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면서 한국 언론사에 가장 빛나는 항일 언론의 역사를 기록했다. 대한매일은 항일의 필봉만으로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었다. 국채보상운동이 온나라에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던 때에 의연금을 수합하는 총본부격인 국채보상의연금총합소가 되었고 梁起鐸 朴殷植 申采浩 등은 논설로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하여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 의병들의 무장항일투쟁도 대한매일의 논조에 고무된 바 컸다. 대한매일은 한국 언론사의 주류를 형성하는 위치를 차지한다. 이 신문이 세운 민족 언론의 전통은 일제 치하를 거쳐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 내려오고 있다. 대한매일은 결국 한일합방 직전에 일본측으로 넘어가 합방 후에는 총독부의 기관지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대한매일 발행 당시의 언론사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언론 연구에도 그 선행연구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정체성과 새 좌표/굴종과 오욕의 역사 치열하게 자성/원래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가 국난극복·21세기의 비전 제시 노력/金三雄 본사 주필 그릇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목소리가 ‘국민의 정부’가 탄생하면서 거세게 일어났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구조화된 적폐들을 청산하자고 정권교체라는 시민혁명을 이룬 국민 절대다수의 요청에 따라 가장 추한 모습을 지닌 우리 언론을 바로잡자는 언론정화운동과 언론개혁시민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이는 역사의 기승전결 법칙을 교과서적으로 무섭게 반영한 결과라고 본다. 서울신문이 제호를 변경하면서 출생의 뿌리를 찾고 그 정신을 새로이 하면서 새 출발의 전기를 확립하려는 의지는 바로 기승전결의 역사법칙이라 할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러한 역사발전의 전기로,국운이 기로에 처한 1900년대 초의 절망적인 시대 상황에서 민족의 긍지를 일깨우고 자주의 주권회복 기치를 높이 들었던 ‘대한매일신보’의 제호를 회복함으로써 우리가 처한 국난을 이기고 새로운 천년의 21세기에 앞장서고자 한다. 제호 변경은 서울신문이 단순히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이었다는 인연만으로 막연히 옛이름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백색독재와 군사독재정권의 홍보지로서 본의 아니게 걸어왔던 갖가지 형태의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원래의 출발점이었던 대한매일신보의 제호를계승함으로써 구국활동·개화운동·애국정신·민족사상·독립정신을 이어받는 제2창간의 역사적 동기를 부여코자 하는 것이다. 서울신문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대한매일신보는 당대의 대표급 애국지사들이 참여하여 만든 민족지였다. 신문 경영의 주체는 배설이지만 실질적 신문 제작은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장도빈 등 민족사상이 투철한 항일 언론투사인 우리 선각자들이 맡았다.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항일운동의 선봉에 선 구국활동의 전위였다.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이 한반도의 영구 식민지화를 꾀하려는 책동임을 지적하면서 그 부당성을 널리 폭로하고,의병 항거를 대서특필했다. 일진회의 합병 주장을 사흘에 걸쳐 통박하고,황성신문과 공동 보조를 취하면서 민족지의 방향을 주도했다. 정간 2회,압수 45회라는 일제의 폭압적 상황 아래서 고종황제의 퇴위 기도를 폭로,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국채보상운동의 실질적 본부 역할을 한 것을 비롯,항일구국운동의 총본산으로서 시대적 사명에 충실했다.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격때는 이들이 반포한 격문을실었으며 군대해산 조치에 저항하여 일제를 통렬히 비난했다. 국권 상실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도 그 정신을 상실하게 되었다. 일제는 1910년 8월29일 한일병합과 함께 눈엣가시와 같았던 대한매일신보를 탈취하여 ‘매일신보’라는 총독부 기관지로 만들었다. 강압에 의한 합병조약이나 을사조약이 원천적으로 불법이기 때문에 무효이듯이 대한매일신보의 강탈도 원천 무효인 것이다. 제작을 처음부터 도맡았던 총무 양기탁은 이 신문의 발행인 명의가 친일 인사로 바뀐 그날부터 자신은 이 신문에서 손을 떼었다는 광고를 게재하고 신문사를 떠났다는 사실에서도 대한매일신보사가 매일신보로 이어질 수 없음을 역사에 밝혀준다. 양기탁 선생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지사들이 매일신보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서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결코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일 수가 없으며, 따라서 새롭게 태어나는 대한매일에서 그 지령을 승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새 대한매일은 대한매일신보의 지령 1651호와 서울신문의 지령을 합산하여 승계하고,창간기념일은대한매일 재창간일인 11월11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서울신문의 제호 변경과 뿌리찾기는 서울신문이란 한 언론사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굴종과 오욕의 역사로 점철된 현대 한국 언론계가 반성,회개하며 거듭나고 기회를 마련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모든 언론이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되새겨 21세기 참언론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대한매일은 ‘대한매일의 다짐’을 통해 다음의 4가지를 지향하고자 한다. 첫째,공공이익을 앞세우는 신문. 둘째,국민복지에 앞장서는 신문. 셋째,민족화합을 앞당기는 신문. 넷째,2000년대에 앞서가는 신문. 대한매일은 1세기 전 대한매일신보가 실천하고자 했으나 미처 이루지 못한 꿈과 비전을 새로운 시대,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국가이성(國家理性)’으로 집약,표현하고자 한다.
  • 韓­러시아 함께 가는 21세기/세르게이 페도로프(해외기고)

    러시아는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상호간의 부정적 이미지 타파와 전분야에 걸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동북아문제 전문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세르게이 페도로프씨는 최근 러시아 2대 일간지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에 기고한 ‘한·러관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라는 글에서 “지금이 모든 분야에서 진일보한 협력관계를 맺어야 할 시기라는 게 러시아정부의 입장”이라고 전제하고 “특히 한국은 냉전사고의 잔재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는 러시아의 변화를 인정하고 생각을 바꿀 때”라고 강조했다. 금융 위기가 몰아닥친 러시아는 경제 회복,국제 기구와의 관계유지 등 국내 문제에 매달려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동반자,특히 건국 50주년을 맞은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결코 소홀할 수 없다. 한국과 러시아가 유대관계를 맺은 지는 매우 짧다. 국교수립 8년째에 불과하다. 올해는 지난 9월30일 국교수립 기념일을 앞두고 외교관 맞추방 사건이 터져 양국관계가 시험대에 오르기도 했지만 러시아 대사와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의 노력으로 잘 수습됐다. 양국의 축적된 외교역량을 입증한 계기가 됐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서명한 한·러 우호조약으로 양국이 외교관계를 맺은 이래 러시아는 양국 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그간 양국간에는 숱한 최고위급,고위급 쌍무협정이 맺어졌다. 이러한 관계는 우선 한반도 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한국은 남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 6개국이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성명을 채택하자고 제안했다. 남북한,미·중만의 4자회담 구도에서 탈피,일본과 러시아의 역할을 인정한 것이다. 한·러간의 교류는 경제 및 문화 유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양국간 연간 교역량이 30억달러를 넘어섰고 한국과 러시아는 100여건의 합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러시아 모두 심각한 금융위기에 처해 양국간 경제협력계획은 조정이 불가피하지만 미래는 낙관적이다. 러시아는 신뢰구축을 위해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8억달러에 달하는 대한(對韓) 부채상환을 거듭 확약해 왔다. 지급계획이 확정된 부채의 일부는 최신 군장비 제공으로대체할 계획이다. 이는 한국정부에도 득이 된다. 한국정부는 군장비 공급선 다변화가 자주외교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는 한국에 대한 군장비 공급이 한반도 세력균형의 와해를 야기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북한에도 이를 항상 강조했다. 러시아가 북한을 내치고 한국과 수교를 맺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한반도정책은 남북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해두고 싶다. 한국과 러시아간의 투자협력은 경제유대의 핵심임에도 아직 미미하다. 한국은 러시아 자유경제지역 ‘나홋카’에의 산업복합단지 건설,이르쿠츠크 가스프로젝트 등 2∼3개 굵직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투자협력을 한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조인트펀드 형태가 좋을 것 같다. 한국은 또 러시아의 몇몇 선진기술에 관심이 많다. 한국기업들은 러시아내의 한·러 합작 과학연구센터에서 러시아 혁신기술을 배워가고 있다. 하지만 즉흥적이어서는 안되며 지적재산권 보호 등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수반되어야한다고 본다. 경제·과학의 기반이 잘 닦인 시베리아와 극동에서 협력 증진의 여지도 아직 크다. 장기적으로는 각자 국내에서 상대국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관계를 한때 소원하게 만들었던 심리적 유산을 청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냉전사고의 잔재로 아직 호전적이고 팽창주의적 이미지로 과장돼 있는 러시아의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양국은 이러한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러시아는 한국과 더욱 깊이있는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한·러 교류확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한국정부의 언급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정부가 말 따로,행동 따로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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