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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 킥오프…디오프 대회 첫 골

    21세기 첫 월드컵이 ‘세네갈 돌풍’과 함께 막을 올렸다. ‘테랑가의 사자’ 세네갈은 31일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개막전으로 열린 2002한·일월드컵축구 A조 첫 경기에서 전반 30분 파프 부바 디오프가 터뜨린 선제골을 끝까지 지켜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지네딘 지단이 부상으로 결장한 전대회 챔피언 프랑스를 1-0으로 꺾는 대파란을 연출했다. 지난 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세네갈은 첫 판에서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1위 프랑스를 꺾음으로써 전세계를 경악으로 몰아넣으면서 16강진출의 확실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로써 지난 74년 서독대회 때부터의 전대회 우승팀의 개막전 수난 징크스가 이어졌다.전대회 우승팀이 개막전에 자동 출전하기 시작한 74년 이래 8차례 개막전에서 전대회 우승팀은 2승3무3패를 기록중이다. 오는 6일 프랑스는 부산에서 우루과이와,세네갈은 대구에서 덴마크와 각각 2차전을 갖는다. 이날 오후 7시30분부터는 6만여명이 스탠드를 메우고 전세계 20억명이 TV를 통해 지켜본 가운데 개막식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개막식에는 공동개최국인 한국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비롯해 신생 독립국 동티모르의 사나나 구스마오 대통령,피어 찰스 도미니카 총리,미겔 앙헬 로드리게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조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등 세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개막식은 FIFA기와 한·일 양국기 입장,양국 국가 연주,정몽준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KOWOC) 공동위원장 환영사,블라터 FIFA 회장 대회사,김 대통령의 개막선언 순으로 진행됐다. 김 대통령은 개막 선언문에서 “평화와 축구를 사랑하는 지구촌 가족들과 함께 세계 평화와 인류 화합의 새시대와 한·일 양국간 우호친선의 21세기가 열리기를 기원한다.”고 말한 뒤 “2002 FIFA월드컵의 개막을 선언합니다.”라고 힘차게 외쳤다. 첫 아시아대륙 주최,사상 첫 공동개최 등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번 대회에는 개최국 한국과 일본,전대회 우승국 프랑스,지역예선을 통과한 29개국 등 모두 32개국이 출전했다.다음달 14일까지 한국과 일본의 20개 경기장에서 8개 조별 1라운드를 치러 16강을 가린 뒤 15일부터 토너먼트를 벌여 FIFA컵의 주인을 결정한다. 준결승전은 25∼26일 서울과 일본 사이타마에서,결승전은 30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다. 6번째 본선 무대를 밟은 한국은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과 함께 1라운드 D조에 속해 사상 첫 1승과 16강 진출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박해옥 송한수 김재천기자hop@
  • 선양 탈북자처리 왜 늦나/ 중·일 외교갈등 ‘후유증’

    중국 선양(瀋陽) 일본 총영사관에서 연행된 탈북자 처리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늦어도 이번 주 안으로 중국측이 제3국 출국을 허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으나 ‘주내 출국’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사건 발생(지난 8일)으로부터 2주일 가량 소요되는 늑장 처리임에 틀림없다.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도 19일 이들이 제3국으로 출국하려면 시일이 좀더 걸릴 것임을 시사했다.탕 부장은 “일본정부에 바라는 것은 중·일관계를 고려하고 비우호적인 열기를 식혀 달라는 것”이라고 말해 양국간 외교적 갈등이 해결되지 않아 출국이 지연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동티모르를 방문중인 탕 외교부장은 아울러 “일본 정부는하나의 외교 사건을 둘러싼 갈등이 중·일 관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측은 이들 5명의 출국과 중·일간 갈등의 일괄 타결을 주장하고 있으나,일본측은 길수 친척을 먼저 출국시키고 갈등은 나중에 해결하자는 분리 해결 방안과 길수 친척에 대한 접견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주권에 관계되는 문제로 일본측이 간여할성질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이에 반발하고 있다.중·일간의 날카로운 신경전에는 탈북자 연행에 일본측 동의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어 일본이 요구하는 절차가 생략된 채 제3국 출국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탈북자 처리는 탕 부장이 귀국하는 20일 이후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탈북자 처리가 시일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가 탈북자 기획 망명에 관련된 비정부기구(NGO)단체에 대한 중국 당국의 조사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중국 정부는 탈북자 문제가 중국을 비판하는 국제여론의 새로운 재료가 될 것을 경계해 이번 기회에 NGO 단체와 탈북자간의 연결고리를 분명하게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베이징 김규환·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외국 VIP 잇단 초청…北 ‘안방외교’

    북한이 최근 눈에 띄게 활발한 외교를 펼치고 있다.그러나고위급들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고위인사들을 평양으로 초청하는 ‘안방외교’다. 특히 미국의 입김이 비교적 덜 미치는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이들 국가와 협력을 통해 경제를재건하는 동시에 미국과 관계가 악화될 때에 대비한 ‘보험용 외교’라는 분석도 나온다. 가장 최근 북한에 다녀온 유럽 인사들은 지난 11∼14일 북한 민족화해협의회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 장자크 그로와이사장 등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진이다.박근혜(朴槿惠)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도 이 재단 이사 자격으로 방북길에 나선 바 있다.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6∼7일 평양에 머물면서 북한 인사의 월드컵 개막식 참석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독 의원친선협회 회장인 하르트무트 코시크(기독교사회당) 하원 의원이 이끄는 9명의 독일 의원 대표단은 지난달 30일부터 4박5일 동안 북한에서 김영남 위원장과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등을 만나 교류·협력에 대해 논의했다.코시크 의원 일행은 지난 7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럽연합(EU) 의장국인 스페인과 차기 의장국인 덴마크 등의 대표단이 조만간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최근 유럽연합(EU)과의 관계 강화와 관련,“우리는EU가 하나의 힘있는 극으로 일극 세계화를 반대하고 세계 다극화를 지향하면서 정치·경제·안보·외교 분야에서 독자성을 강화하며 지역문제를 자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미국의 견제세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속내를 비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에서 전통적인 우호관계의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라오스의 분냥 보라치트 총리는 지난 11∼14일 북한을 공식 방문했다.양측의 회담 성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14일 순안공항에 홍성남 내각총리와 이광근 무역상,이영일 외무성 부상 등이 나와 분냥 총리를 전송한 점으로 미뤄 식량 차관 도입 등 ‘경제협력’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분냥총리는 방북기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홍성남 총리 등과 회담을 가졌다. 지난 6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기금 Y세이드 압둘라이 사무총장은 주로 전력문제를 협의했다.OPEC기금은 지난 97년 의료센터 건설자금으로 500만 달러를 북한에 지원했다.압둘라이 사무총장은 홍성남 내각총리,조창덕부총리,강경옥 농업성 부상,장성일 재정성 부상 등과 경제관료들을 잇따라 만났다. 지난 2∼5일 사이에는 트란 둑 루옹 베트남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회담하고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났다.이 자리에서 트란 둑 루옹 주석은 농득만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김 위원장 베트남 초청 의사를 전달했고,이에 대해 김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답방하겠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두 나라는 투자장려 및 보호에 관한 협정과 양국 무역성 사이의 ‘맞바꿈무역’(바터무역)에 관한 합의서 등 6개 경제관련 협정을 맺었다.베트남은 또 북한에 쌀 5000t을 무상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밖에도 지난 3월에는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남북한을 차례로 방문했다. 중국·러시아 등 전통적 맹방들과의 외교에도 힘을 쏟고 있다. 자칭린(賈慶林)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겸 베이징(北京)시 당서기를 단장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 대표단은 6일부터 닷새 동안 평양을 방문,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최고위급을 만나 우의를 다졌다. 지난달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블라디미르 아나톨리예비치 야코블레프 시장과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극동지역 전권대표 일행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한 최고위층과회담을 했다.백남순 외무상은 오는 20∼23일 러시아를 직접방문,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북한 철도 연결 및 전력 지원 등 경제협력 방안과 한반도 정세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백 외무상 방러에 앞서 평양에서 가진 이타르 타스통신과의 지난 인터뷰에서 “조선(북한)의 평화와안전은 러시아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최근 동남아 국가들과과거 비동맹 외교를 통해 맺어진 관계를 복원하고 유럽 국가들과도 교류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고립정책으로부터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들 국가가 북한과의 교류에서 별로 얻을 것이 없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2)오락가락하는 대 한반도 정책

    1884년 조·러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1910년 한일합병전후까지 러시아의 대(對)한반도정책은 현상 유지(독립국가 유지)와 무력점령,38선을 중심으로 일본과의 남북 분할점령 등 3개안을 기본으로 변화해 왔다. 그런가하면 국내외의 정치 상황과 역학관계에 따라 중립국안,완충지대안,만주 및 몽고와의 거래에 의한 양보안까지 오락가락하기도 했다.특히 일본이 1896년 처음 제기한뒤 러시아도 솔깃해진 일본과의 남북 분할점령안은 광복및 6·25전쟁과 함께 남북 분단으로 현실화됨으로써 한국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서울에서 체결한 조·러 수호통상조약문을 동봉한다.외무성은 조선과의 수교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정치적 상황이 여의치 못해 이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나 독일과 영국이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황제 폐하(니콜라이2세)의 윤허를 얻어 서울에베베르(전권위원,초대 대리공사)를 보내 조약을 체결했다.이 조약은 독일과 영국이 체결하지 못한 영사관 설치문제가 제2조에 명문화돼 있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청국 영사관의 불만을 피하기 위해 그곳에 조선영사관을 허용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1884년 10월8일 기르스 외무상이 톨스토이 내무상에게 보낸 조·러 수호통상조약 13조 전문 등23쪽에 달하는 극비문서) 이 문서는 제정러시아 문서보관국에서 찾아낸 방대한 분량의 한국 관련 문서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문서 중 하나로 한국과 러시아의 최초 공식 외교협정인 조·러 수호통상조약의 체결배경에 대한 러시아측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문서를 통해 러시아의 1차적인 관심은 조선의 종주국이었던 청나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데 있다는 사실을알 수 있다.물론 수교불가피론의 근저에는 영국과 독일 등 열강에 뒤지지 않으려는 몸부림과 함께 남하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부동항의 획득에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을 점령하는 것이 러시아에 바람직한가.점령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1888년 4월26일 아무르 총독과 외무부 아시아국장의 특별회의록).러·일간 우호확립에 유일한 방해요인은 대한제국 문제이다.일본 천왕의 총애를 받는 야마가타(山縣有朋) 원수는 대한제국 분할에 관한 러·일간의 협정체결이 양국간의 우호증진을 위한 바람직한 해결책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그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수도를 포함한 남부를 차지하고 동해안과 서해안의 항구와 대부분의 대한제국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할 준비가돼 있다고 한다.그러나 이는 대한제국의 완전독립과 모순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1899년 2월9일 외상이 황제에 상주한 문서). 이들 문서로 미루어 볼 때 러시아는 1896년 로바노프 외무상과 야마가타 특사 사이에 체결된 모스크바의정서는 물론,1898년 로젠-니시협정으로도 대한제국의 독립을 일본측으로부터 완전히 담보받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으며,남북분할점령안을 거부했지만 여전히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당시 일본이 주도한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과 이로 인해 촉발된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아관파천·1896년)으로 곤경에 빠진 일본 대신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조야를 주무르던 때였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의 대한제국 독립국가 유지정책은 조금씩 후퇴하는 조짐을 보인다.여기에는 100만명에 달하는러시아군의 대부분이 유럽지역에 주둔하고 있어 극동지역에서의 군사력 약세를 인정하는 측면도 있었다.병력을 신속히 이동시킬 수 있는 시베리아철도가 완성되기 전까지외교적으로만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원,현상유지시키겠다는 속셈도 작용했다. 만주와 극동에서 러시아가 굳건한 기반을 확립하고 만주를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키는데 25∼30년이 걸릴 것이다.만주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러시아가 일본의 민족적 자존심에 손상을 주지 않고 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는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1902년 12월 뷔테 재무상이 람즈돌프 외무상에게 보낸 러·일 협상관련 비밀문서).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삼아 철도 및 은행 등을 장악하는것은 무의미하다.문제는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장악해야 하는데 대한제국 남부의 점령은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므로 대한제국 전역을 지배할 수 있는 기회를 엿봐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먼저 만주를 지배하지않으면 안된다(1902년 10월8일 도쿄(東京)주재 러시아 공사인 로젠 남작이 니콜라이2세에게 상주한 보고서).황제(니콜라이2세)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북쪽으로는 두만강,서쪽으로는 압록강까지점령해도 좋다는 결심을 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황제는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면 군사충돌을 피할 수 있다고생각한다.(1903년 6월11일 해군제독 아바자가 베조브라조프에게 보낸 전문). 로젠 공사의 보고서에 대해 파블로프 공사도 의견서를 통해 “러시아는 실제적으로 국익에 손상을 입지 않고 대한제국 문제 해결을 명분삼아 일본정부에 대한제국의 행정감독은 물론 철도,우편,전신 등에 유리한 권한을 인정하면서 재정과 군사부문까지 참여를 허용해야 하며 러시아는 만주문제에 대한 일본의 불간섭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니콜라이2세는 문서 상단에 ‘파블로프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친필로 남겼다. 니콜라이2세는 1904년 1월26일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친필서명이 든 전문을 보내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는것보다는 일본이 먼저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일본이 먼저 개전하지 않으면 일본군이 대한제국의 남해안 혹은 동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만약 38선 이북 서해안으로 상륙병과 함대가 북진해오면 적군의 첫발포를 기다리지 말고 공격하라.”고 긴급지시했다. 러시아의 정책이 대한제국의 양보쪽으로 서서히 방향을틀고 있는 가운데 일본군이 38선 이북 서해안으로 상륙하면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마지노선’을 암시하고 있다.1902년 1월 런던에서 체결된 영·일동맹은 러시아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이 시기를 전후해 대한제국의 중립화안이고개를 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러시아 군부는 대한제국 전역 혹은 북부지역의 무력 점령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에서 러시아는 일본뿐 아니라 어떤 국가에게도영향력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러시아가 대한제국을 점령해러시아에 합병시켜야 한다(1900년 두바소프 태평양함대사령관이 니콜라이2세에게 상주한 극동의 정치상황).일본은전 병력을 만주전선에 투입했다.러시아는 대한제국으로 진격해야 한다.현재의 16개 부대로는 병력이 부족하다.진격계획은 8월로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904년 6월 아무르 군관구 참모부에서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 보낸 전문). 일본군이 만주전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틈을 이용해대한제국 영토에서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겠다는 국지전(局地戰) 계획이긴 하지만 점령안을 지지하는 군부의 의사를엿볼 수 있다.무력점령안에 따른 진격계획은 보다 구체성을 띠고 있었다.이들 부대는 러·일전쟁 당시 한반도로 진출했으며 평양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전쟁불사’를 외치는 군부 및 일부 외교라인의 강경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1903년 6월 여순에서 베조그라조프 등 극동정책수립에 전권을 위임받은 수뇌부가 참석한가운데 특별회의를 갖고 한반도정책의 기조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회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전역혹은 북부 일부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이익이 되지 못한다.▲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점령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일본이 점령하면항의는 할 수 있으나 자국군대를 투입해서는 안된다.▲일본의 점령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만주와 대한제국은 별개의 문제임을 선언하고 독립을 지원해야 한다(1903년 7월4일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이 로젠 주일공사에게 보낸 비밀전문). 대한제국 러·일 분할점령안에 따른 중립지대(완충지대)설정에 대한 극비메모도 흥미롭다. 중립지대 설정에 대한 자료는 외무성에 없으며,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니콜라이 1세의 손자) 대공의 1899년 3월6일자 극비메모에는 아무르강 하구에서 원산만까지,그리고 서울과 제물포를 포함하고 있다(1903년 3월11일 외무상이황제에게 보낸 상주서). 다소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뒤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독립국 유지를사실상 포기한 채 이권 챙기기에 주력했음을 다음의 외무성 훈령은 보여준다. 러시아의 이해관계나 대한제국의 심각한 하소연이 없는한 일본 통감부의 지시에 가급적 관여하지 말 것.일본 당국에 대한 한인의 불만에 개입하지 말고 열강의 최혜국 국민으로서 법적인 권리를 사수하라.열강이 영사관을 개설하는 지역에 러시아영사관 개설의 필요성 여부의 의견을 상신하라.특히 러시아제국 정부에 전폭적인 충성심과 믿음을 보인 고종이 실현불가능한 기대를 갖고 러시아에 요구를해올 때 일본과의 사이가 악화되지 않도록 어떠한 약속도자중하라(1906년 외무상이 대한제국에 부임하는 플란손 총영사에게 내린 훈령). 러·일전쟁에서 패배,일본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음으로써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러시아의 비탄과 몸조심은 더욱 두드러졌다.플란손은 1905년 12월 작성한 비망록에서 “러시아는 지난 10년간 대한제국에서 이룩한 외교적 성공을 잃어버렸다.”고 자탄했다.니콜라이2세는 같은해 11월 고종의 계속되는 독립유지 지원 호소에 대해 “고종 황제에게 ‘패전 이후 혁명세력의 확장으로 더이상 도와줄 수 없다.’는 전문을 보내라.”는 칙령을 외무성에 내렸다. 제정 러시아는 신흥 일본제국주의에 패배해 눈물을 흘리며 물러갔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다.로젠 당시 미국대사는 1906년 외무성에 보낸 문서에서 “러시아가 남으로는 우크라이나에서 동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국토를 확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 영향이 이제 대한제국에까지 미쳤으나 러·일전쟁의 패배로 30∼40년 후퇴했을 뿐이다.”라고 기록했다. 이같은 지적은 40년 뒤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러시아)의 38선 이북 점령으로 현실화됐다. 노주석기자 joo@ ■러 당시 외교라인 대한제국 말 러시아의 한반도정책이 오락가락한 이유는무엇일까? 가능하면 일본이나 청과의 전쟁을 피하되 대한제국에서의 정치적·경제적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실리 위주의 외교정책에 1차적인 원인이 있지만 당시 매파와 온건파로 양분됐던 외교라인의 분열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한반도정책의 최고 결정자는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였다.이번에 발굴된 러시아 극비문서에 따르면 그는 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가 “서울에서 개에 물려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으러 도쿄에 왔다.”고 보고하자 “휴가를 줘 충분한 치료를 받게 하라.”는 시시콜콜한 것부터 “일본군이 서해 38선을 월선해 상륙하면 즉각 발포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정도로 모든 사안을 직접 챙겼다. 니콜라이2세가 극동관련 문제에 대해 보고를 받는 공식외교라인은 외무상의 직접 보고,극동총독의 상주서,일본·청·조선주재 공사들이 황제 또는 외무상에게 올리는 보고서 등 크게 세 가지 경로였다.이밖에 황실근위연대 기병장교출신으로 상서(명예 무임소장관)의 직위를 가지고 있던측근 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황족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뷔테 재무상 등 비선(秘線)보고도 영향을 끼쳤다. 니콜라이2세는 모든 보고서를 빼놓지 않고 탐독한 뒤 자신의 의견을 보고서에 남겨 정책에 반영토록 했다.하지만대한제국의 독립국가 유지,일본과의 분할점령안,전역 점령안 등 상황에 따라 바뀌는 외교정책의 큰 틀에 대해서는개인적인 판단은 갔다. 다음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훈령을 통해 각국주재 공사를 통제하고 황제에게 의견을 올린 외무상이었다.기르스,로바노프,람즈돌프 등 역대 외무상들이 대체로 온건파여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자는 주장이 득세한 것으로 드러났다.여기에 뷔테 재무상과 쿠르파트킨 육군상 등이가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과의 일전불사,한반도 무력점령을 주장한 매파로는베조그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과 아바자 극동특별위원회 사무총장,플라베 내무상,알렉세이예프 극동총독,두바소프 태평양함대 사령관 등이 대표적이다.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은 극동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1903년 여순에 설치된 극동총독부는 외교권을포함,극동관련 사무의 1차적인 처리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러·일전쟁 발발 직전까지 러시아의 극동정책은 외무성과 극동총독부가 공동으로 관여하는 2중구조로 돼 있었다.극동총독부의 설치와 권한부여는 당시 러시아의 신(新)극동정책을 주도한 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의 작품이었다. 로젠 주일공사도 일본에서 한반도정책을 원격 조정하는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로젠 남작은 세 차례에 걸쳐 일본주재 공사를 역임했으며 1904년 러·일전쟁 당시에도 일본공사였다.이후 미국대사로 승진,1905년 포츠머스 러·일강화조약 당시 러측 협상부대표를 맡았다. 노주석기자
  • ‘부시 쇼크’와 한반도주변 4强

    공군은 항공우주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8∼9일 충남 계룡대 공군대학에서 제8회 항공전략 국제학술발표회를 열었다.‘한반도 평화과정을 위한 강대국의 협력체제’란 제목으로 발표된 안병준(安秉俊) 연세대 교수의 글을 간추린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지난 4월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특사가 북한과 새로운 협상을 타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의 평화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려면중국과 일본,러시아,미국 등 주변 4대 강국의 협력체제가무엇보다 중요하다. 올해말 또는 내년에 한국은 또 한번의 위기에 처할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이른바 ‘부시쇼크’로 인해 더욱 고조된다고 볼 수 있다.북한은 부시 미 정부가 제의한 핵,유도탄,재래식 전력 등에 대한 통제를 하지 않으면 미국과의대립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중국이 양국의 충돌을 조정하거나,4대 강국의 협력체제가 성립돼야만 북한은 미국과의 대립을 피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해서는 ‘동시성’과‘한국화’의절차를 밟은 남북관계의 구축,유도탄 문제의 ‘국제화’가 필요하다.한반도 문제가 4대 강국간 경쟁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상황을 타개하고,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으며 국가간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신중한 외교가 요구된다.비록 각 국가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지한다고 해도 그들은 한반도에 관해 각각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절차가 필요하다. 다만 한반도 문제에 대해 4대 강국은 한 가지 공통점을갖고 있다.평화적이고 핵과 유도탄이 없는 한반도가 지역안보와 세계적 비핵 확산에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현재 북한은 모든 4대 강국과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다.이는 아시아지역포럼(ARF)과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같은회담에서 동북아의 안보일정을 만들 수 있도록 러시아와일본을 안보회담에 포함시킬 수 있는 기회다.이러한 이상을 현실로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미국은 리더십을 제공하고,중국은 구체적으로 협조하는 등 4대 강국의 공통적인관심이 필요하다. 부시 대통령은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으로 하여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도록 건설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있으리라고 믿고 있다.부시는 지난 2월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북한에 고위급 접촉을 재개하고자 하는 진실된 의사를 전달하는 데 장 주석이 도움을 줄 것을 요청했다.현재 중·미,중·일 관계는 반테러주의 물결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중국의 협력에 대한 기대 등으로 어느 때보다 긍정적으로 개선되고 있다.우리 입장에서 보면 두 개의한국 또는 통일된 한국이 4대 강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다.한반도는 초강대국 사이에 위치해 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완충지대가 된다.남과 북은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를 유지함으로써 가교를 건설하는 역할을수행해야 한다. 미국의 리더십은 평화로운 한국과 아시아를 이루기 위해,모든 관련국의 공익을 위해 요구되고 있다.모든 관련국들은 또다른 한국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다. ◆ 안병준 연세대 교수·국제정치
  • [월드컵 이야기] (13)터키

    터키 국민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광적인 수준이다.터키 국민 모두가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축구다.터키에서 프로축구팀이 처음 창설된 것은 52년전인 1950년.현재 전국적으로 200여개 프로팀이 등록돼 있어 거의 매일 경기가 열리고 있다.모든 국민이 ‘축구로 잠을 깨고,축구를보다가 잠을 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터키는 2002년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되고,조 추첨 결과한국에서 예선전을 치르게 되자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체육·언론계 인사들은 터키가 브라질을 제외하곤 비교적 해볼 만한 상대인 코스타리카·중국과 함께 예선 C조에 배정돼 절호의 예선통과 기회를 잡았다며 흥분했다. 터키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54년 월드컵 이후 48년 만이다.터키는 당시 서독에 1대4로 패한 뒤 한국에 7대0으로 이겼으나 8강전에는 오르지 못했다. 터키의 명문 프로축구팀인 갈라타사라이는 99·2000 유럽축구연맹(UEFA)컵 대회에서 우승,터키의 뛰어난 축구 실력을과시했다.터키 대표팀은 갈라타사라이,페나르바흐체,베식타시등 명문 프로팀 소속 선수들로 구성됐다.터키는 오는 6월3일 브라질과의 첫 경기를 시작으로 9일 코스타리카,13일 중국과 각각 예선전을 치른다.터키 대표팀은 현재 최소한 8강전에는 오른다는 목표 아래 마무리 맹훈련을 펼치고 있다. 터키 국민들은 터키대표팀이 전통적인 우방국가인 한국에서 예선전을 치르게 된 것은 행운이라며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터키와 한국은 터키군의 한국전 참전 이후 혈맹의 우방관계를 유지하고 있다.터키군은 6·25전쟁에서 740명이 전사하고 2100명이 부상하는 등 참전 16개국 가운데 미국·영국 다음으로 많은 인명 피해를 봤다.터키 전몰 장병들은 부산 유엔묘지에 잠들어 있다. 터키 국민들은 이렇듯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는 한국에서 경기를 할 때 한국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응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터키 국민들은 대부분 TV를 통해 이번 월드컵 경기를 관전할 것이다.이때 한국인들의 응원 장면이 TV를 통해 방영된다면 양국의 우호관계는 더욱 증진될 것이다.터키 국민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우리 국민들의 열렬한 응원을 부탁드린다. 김영기 대사
  • CDMA-2000 베트남 수출

    한국이 CDMA(코드분할다중접속이동통신)에 이어 전 세계에서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제3세대 이동통신 ‘CDMA-2000'가 베트남에 수출될 전망이다. 베트남을 공식방문중인 이한동(李漢東) 총리는 9일 하노이에서 판 반 카이베트남 총리와 가진 회담에서 3억 5000달러규모의 CDMA 합작사업의 시스템 공급업체로 LG전자가 선정된 사실을 공식 통보받았다고 배석했던 김태현(金泰賢)정보통신부 차관이 말했다. 이 총리는 이밖에 이날 회담에서 한반도 정세를 비롯,국방·통상분야 등 양국간 우호협력 확대방안을 논의했다. 최광숙기자 bori@
  • 이총리 베트남·中방문 출국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는 베트남과 중국을 공식 방문하기 위해 7일 출국했다. 이 총리는 오는 11일까지 5일간 베트남에 머물며 농 둑 만공산당 서기장,트란 둑 루옹 국가주석 등 베트남 최고지도자들을 만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수교 10주년을 맞는 양국간 우호협력관계 증진방안에 대해 의견을교환할 예정이다. 이어 이 총리는 13일까지 중국 하이난(海南)섬에서 열리는보아오 포럼에 참석, 기조연설을 하고 주룽지(朱鎔基) 중국총리와 회담할 계획이다. 최광숙기자 bori@
  • 訪日리펑 “괴선박인양 협조 용의”

    [도쿄 황성기특파원] 오는 9월 국교 수립 30주년을 맞는 중·일 관계가 리펑(李鵬)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방일을계기로 급진전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일부터 8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리 위원장은 3일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외상과 회담을 가진데 이어 4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예방,경제협력 확대 방안과 북한 공작선으로 추정되는 괴선박 인양 문제를 집중논의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 자리에서 “일본 국민이 관심을 갖는것은 괴선박 문제다.(일본과 중국이)우호적으로 냉정하고신중하게 대화해 나가면 큰 대립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에 대해 리 위원장도 “양쪽이 의견을 교환해 서로 만족스러운 해결 방법을 도출해내고 싶다.”고 답했다. 이같은 리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해 냉각된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해 중국측이 유화적 자세를 보인 것으로 해석되며,일본 역시 침체된 경제회복을 위해 중국과으 협력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양국 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타지 않겠느냐는 추측을부르고 있다. 리 위원장의 일본 방문은 당초 지난해 5월로 예정돼 있었으나 리덩후이(李登輝) 전 타이완 총통에 대한 일본의 여행비자 발급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을 둘러싸고양국 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취소됐다. marry01@
  • 국제예술제 ‘베이징서 만납시다’ 김지현·신풍예술단 한국대표로

    뮤지컬 명성황후 3대 주연 김지현과 신풍예술단(단장 김삼용)이 오는 20일부터 6월2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국제 예술축제 ‘베이징에서 만납시다’ 2002년 행사에한국대표로 참가한다. 이들은 5월17∼18일 베이징 천교극장과 북영역 광장 야외무대에서 퓨전공연 ‘평화야’를 공연한다.이번 공연에서는 특히 조선족 성전환 여자무용수로 중국 최고의 현대무용가인 진싱(金星)이 김지현의 음악을 배경으로 한국의 김삼용단장과 함께 듀엣으로 춤을 춰 양국 우호와 세계평화를 기원하게 된다. 신연숙기자yshin@
  • 양국의원연맹 제주서 친선축구대회 “한·일 노비자 왕래 추진”

    “월드컵을 계기로 두 나라간 노비자 왕래가 더욱 앞당겨질 것입니다.” 한·일의원연맹 소속 국회의원 50여명이 3월의 마지막 주말인 30일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축구를 하며 우정을 다졌다. 지난 98년부터 매년 한차례씩 갖는 모임이지만 이번 만남은 월드컵 개최도시의 하나인 서귀포시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한·일의원간 친선 축구경기를 가짐으로써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공동 개최를 축하하고 성공을 다짐하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그래서인지 한·일 의원들은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이후 두 나라가 더욱 밀접한 관계로 발전할 것으로 낙관했다. 모리 요시로(森 喜朗·63·자민당) 전 일본총리는 “처음에는 과연 두 나라가 함께 월드컵을 치를 수 있을 지 우려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양국은 월드컵을 계기로 더욱 우호적이고 이해가 깊어져 양국 국민이 비자없이 왕래하는 기회도 빨리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연맹 회장인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와 모리 요시로 전 일본총리가 각각 단장으로 참가한 이번 한·일의원 친선 축구는 ▲전·후반 경기시간 각 30분 ▲남녀 혼성 12명씩 경기 ▲선수교체 무한정 ▲휴식시간 20분 엄정화 축하쇼 라는 특별한 룰을 정해 경기를 펼친 결과 한국이 1-2로 졌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외신기자가 본 평양/ “”악의 축은 중상모략”” 反美 여전

    [평양 AFP 연합] 북한을 방문 중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북·미 대화 재개 촉구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뿌리 깊은 반미(反美)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한국 및 미국과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한국의 요청을 북한측에 전달할 예정이라는 것이 관리들의 전언이지만,미국과의 진정한 관계개선은 북한 이데올로기의 기저에 뿌리를 둔 ‘미국은 적’이라는 반미 감정에 부닥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 기자들은 메가와티의 북한방문을 취재하기 위해 동행했으나 정작 메가와티의 방문지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악의 축’ 발언은 가혹한 중상모략이라는 현지인들의 주장을 되풀이해 들어야만 했다. 평양 전승기념관 안내원인 박광숙씨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미국 당국에 달려 있다.”면서 “미국이 최근 우리나라를 ‘악의 축’으로규정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양국의 우호관계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고말했다. 물론 박씨의 주장이 그의 직업으로 볼 때 이해할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견해는 북한 사회의 거의 모든 평민층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자들이 28일 밤 평양의 한 한방병원을 방문하자 안내원들은 반짝이는 장비들이 갖춰진 치료실 몇 곳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그러나 병원 복도의 한 벽면에는 목이 잘리고 불탄 시체들의 모습을 담은 전쟁사진들이 을씨년스럽게 걸려 있었고 그 옆에 이같은 잔학상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선전문구들이 붙어 있었다.
  • “韓日 FTA체결 적극 추진”

    [도쿄 황성기특파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는 19일 “일본과 한국을 합친 인구 1억 7000만은 일·한 양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대단히 매력있는 시장”이라고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방한을 앞두고 주일 한국특파원과 가진회견에서 “한국과의 경제제휴협정을 시야에 넣고 인적 교류,경제협력을 활발히 진행해 나가겠다.”면서 “국내 산업발전에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한국과의 각 레벨에서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북·일 관계와 관련,“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가까이서 만난 적이 없으나 대응이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 “수교협상이 상당히 어렵겠지만 일본은 대화의 문을닫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의혹과 관련,“확실한 증거가 있으나 북한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납치문제를 제쳐놓을 수 없다.”고 말해 납치의혹 해결이 수교협상의 전제조건임을 거듭 확인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올해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여부에대해서는 “시기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해 오는 8월15일 이전 한·일,중·일 관계를 비롯해 국내 정치 상황 등을 고려해 판단할 뜻임을 시사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오는 4월 발족할 한·일 역사공동연구회에 대해서는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반성해 나가면서 우호의 역사로 역사·문화 교류 면에서 건설적인 방향으로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그는 “월드컵을 계기로 정치,경제 등 여러 면에서 협력과 교류를 진행해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시아와 세계에 있어서 중요하다.”면서 “월드컵이 끝난뒤에도 양국 교류의 흐름은 멈추지 않을 뿐더러 멈추게 할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marry01@
  • 고이즈미 日총리 한국특파원 회견

    [도쿄 황성기특파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19일 총리 관저에서 한국특파원단과 회견을 갖고 “지난해 (양국간에)일시적 마찰은 있었지만 현재의 우호협력 관계를 멈출 수 없다.”고 밝혔다.다음은 고이즈미총리와의 일문일답. [올해도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할 생각인가.] 시기를보고 판단하겠다. 지난해 한·일간에 표면적 마찰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젊은 세대,일반인의 교류가 이처럼 활발했던 적은 없었다.그런 흐름을 멈추게 하지 않을것이다.월드컵 후에도 이런 흐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4월 발족하는 한·일 역사공동연구회에 어떤 지원을 할방침인가.]어느 국가도 과거에 대립하지 않은 역사는 없다.대립은 일시적이고 역사의 눈으로 보면 순간이다.의견의상이점은 그대로 다루되 그것이 대립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을 어떻게 규정하나.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부시 대통령은테러에 대한 강한 결의를 표명한 것이다.그것이 곧 북한에대한 적대행위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은 (북한과의)대화의 문을 닫지 않을 것이다.김 위원장은 가까이서 만난 적이 없어 알지 못하나 대화하기 어려운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에서의 일본 역할은.] 일본의 경제발전과 안정이일본뿐 아니라 한국,미국,아세안,중국에도 바람직하다.한국과의 경제제휴협정을 염두에 두고 인적 교류,경제협력을활발하게 진행해 가겠다. 일본의 1억 2000만,한국의 5000만이 합치면 1억 7000만이다.매력있는 시장이 된다. marry01@
  • 고이즈미 ‘불고기 파티’

    오는 21일 한국을 찾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2박3일 방한 주제는 ‘한국문화 체험하기?’.지난해 10월에 이어 두번째로 한국에 오는 고이즈미 총리는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을 방문,대금·단소 등 전통악기 연주법을 익히고 숯불 불고기 파티를 주최하는 등 한국문화를배우는 데 일정의 초점을 맞출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정부 관계자는 17일 “일본측의 요청으로 이같은 일정이마련됐다.”며 “한·일 우호증진에 적극 나서겠다는 제스처로 보인다.”고 말했다.고이즈미 총리는 도착 당일 저녁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일본인 각계대표들과 함께 숯불 불고기와 갈비요리를 맛볼 계획이다.그는 또 방한기간 중 월드컵 공동개최 및 한·일 국민교류의해를 기념해 양국 각계 인사들을 초청,리셉션을 주최하고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도 방문할 예정이다.23일 출국에앞서 신라의 천년고도인 경주를 방문,불국사·석굴암 등 문화유적지도 탐방한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서울 오는 탈북25명/ 北·中 물밑합의 했을까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최병섭씨 일가 등 탈북자 25명의사건이 북한과 중국 사이의 탈북자 문제를 처리하는 ‘완전한 선례’로 자리잡게 됐다.중국 정부가 지난해 6월 장길수군 일가족 탈북 사건의 해결 방법을 준용해 해결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말 장길수군 일가족 탈북 사건을‘이들의 난민 지위를 부여하지 않은 채 불법 입국자로 분류해 제3국으로 추방한 뒤 망명 희망지인 한국으로 보내는방식’을 채택,처리했다. 중국측이 이번 사건을 발생 단 하루만에 신속하게 처리하고,주룽지(朱鎔基)총리가 대언론 공식발표를 했던 점 등은적어도 북한과의 양해하에 이뤄진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이를 두고 북한이 예전에 비해 탈북자 문제를 대범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북한이 탈북자 문제로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깨뜨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중국이 90년대 말부터 유럽연합(EU)과의 인권대화를 시작,국제무대에서의 위상에 걸맞은 행동을 보이려 노력해온 것처럼 북한도 지난해부터EU와의 인권대화에 나서는 등 국제무대와 중국의 입장을 상당히 배려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다만 북한은 앞으로 그간 탈북자 송환의 명분이돼 왔던 ‘변경(국경)협정’의 엄격적용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측에 요구할 수는 있다. 이 경우 중국 당국이 추후 탈북자의 기획망명을 차단하는데 적극 협력키로 양국간 의견이 모아졌을 가능성이 높다.
  • 이총재, 한일 협력증진 방안 논의

    [도쿄 강동형특파원] 일본방문 이틀째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11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만나 양국의 우호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9·11미국 테러사건이후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계속되면서 북한문제와 관련,한·일간 긴밀한 협조와 상호관계 진전이 필요하다.”면서한 ·일 양국간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긴밀한 교류를 강조했다. 이에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문제와 관련,“북한과의 협상은 한국 및 미국과 연계해 가면서 진행시키고자 하며,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햇볕정책을 기본적으로 지지하고,북한 협상 진전을 긴밀하게 협의하기로 했다.”고 화답했다. 이에 앞서 이 총재는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일본 기자클럽초청 오찬 연설회에서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yunbin@
  • 베일벗은 中 차세대 지도자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2일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후진타오(胡錦濤·59) 국가부주석과 처음 공식적으로 대면했다.부시 대통령은 이날 오전 열린 칭화(淸華)대 연설에칭화대 출신인 후 부주석의 직접 영접을 받으며 많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후 부주석은 또한 이날 세계 TV시청자들을 상대로 사상 첫 공개 연설을 해 주목을 끌었다. 올 가을 장 국가주석으로부터 당중앙 총서기직을 물려받을 것으로 확실시 되는 후 부주석은 이날 오전 부시 미대통령을 안내해 본관 앞 건물에 마련된 연설장에 함께 입장,약 10분간 중·미관계 전반에 대해 연설했다. 후 부주석은 지난 80년대 초반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중앙서기처 서기 시절 미국을 방문한 이후 미국 지도자들과 공식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어 미국측은 그에 대한 인적 정보를 얻고 싶어하고 있다.딕 체니 미 부통령의 명의로오는 4∼5월쯤 워싱턴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승낙을 얻어낸 것도 이 때문이다. 후 부주석은 연설에서 21일 개최된“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는 양국간 정치 경제 등 제반 분야 발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양국 인민 상호간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존중하며 공통의 이익을 위해 우호협력을 견지해 나가자.”고 제의했다. 1965년 칭화대 수리공정과를 졸업한 그는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구이저우(貴州)성과 시창(西藏) 티베트 자치구당서기 등을 거치며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1992년 최연소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르며 차세대 후계자로 떠올라 서방을 놀라게 했다. khkim@
  • 정상회담 이모저모/ 中·美정상 “현안 견해차 극복 가능”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장쩌민 (江澤民) 중국 주석은 21일 정상회담과 공동기자회견 내내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대 테러전과 경제협력 등에서 상당한 의견일치를 보여 9·11테러 이후 호전되고 있는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려는 양국 정상들의 의도가 엿보였다. ■부시는 중국의 무기수출, 인권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되도록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모든 국민들이 자유롭게 사는 방식과 종교, 직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부드러운 일침을 가하는 여유를 보였다. ■장 주석은 공동기자회견 도중 가톨릭 주교들의 구금 등 종교의 자유와 이라크에 대한 견해를 묻는 미국 기자들 질문에 즉답을 피해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장 주석은 나중에 “”중국에는 카톨릭 기독교 회교 도교 등 많은 종교가 있으며 구속된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중국이 강대국이 되더라도 다른 나라에 위협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부시 대통령을 은근히 꼬집었다. 뒤늦은 답변에 앞서 장 주석은 “기자회견에 있어서는 부시 대통령이 한수 위”라고 농담을 던지는 등 능숙한 모습을 보였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오전 베이징(北京)에 도착,인민해방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저녁 런민다후이당에서 장 주석이 주최하는 환영만찬에 참석한 뒤 미국계 세인트 레지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22일 주룽지(朱鎔基) 총리와 조찬을 한 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부주석 안내로 주 총리의 모교인 칭화대(淸華大)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설한다. 이어 장 주석 부부와 오찬을 한 뒤 만리장성을 둘러보고 30시간 만에 중국을 떠난다. ■중국 정부는 21일 부시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봉쇄하는 등 철통경계에 돌입했다. 부시의 숙소인 세인트 레지스 호텔 주변에는 수백명의 경찰과 군인들이 ‘인(人)의 장막’을 치는 등 물샐틈없는 경계를 펼쳤다. 호텔측은 수일 전부터 양해를 얻어 투숙객들을 다른 호텔로 이동시켰고,레스토랑·연회장 등의 약속들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중국 정부는부시 대통령 방문 후 ‘호의적 제스처’로 정치범들을 석방할 수 있다고 존 캄 변호사가 밝혔다. 캄 변호사는 “부시 대통령 방중 이후 4∼6주 안에 주요 정치범들이 석방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관계자들과 12∼24건의 사안을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신문들과 TV들 및 인터넷뉴스 사이트들은 21일 부시 대통령의 기자회견 생중계 사실 자체를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타이완과 인권·종교 문제 등에 대해 언급할 부시의 기자회견이 미칠 여파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khkim@
  • 美·日 밀월관계 대내외 과시

    [도쿄 황성기특파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2박 3일간일본 방문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전례없이 우호적인 미·일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한 점을 꼽을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동맹국 일본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 대해 지나칠 만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는다음 방문국인 한국과 중국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일본을첫 방문지로 선택했다고 거리낌없이 말했으며 고이즈미 총리를 ‘위대한 개혁자’라고 추켜세웠다.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때의 ‘론-야스 밀월관계’에 비유될 만큼 돈독한 인간적 우의도 강조됐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양국의 밀월은시기적으로도 미·일의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의손을 번쩍 들어 힘을 실어준 대신 테러와의 전쟁은 물론 날로 힘을 키워가는 중국의 저지선으로서 일본의 안보역할에대한 협력 강화를 이끌어 냈다. 지지율 급락을 겪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로서도 개혁에 대한 미국의 지지라는 정치적 효과에다 안보면에서도 자위대파병같은 경제대국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을 미국의 용인 속에 착착 진행시킬 수 있다는 두 나라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셈이다. ‘악의 축’ 발언으로 빚어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격론 속에 부시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동조도 얻어냈다.지지보다는반대가 많은 그의 발언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가 “이해한다.”고 응대해 줌으로써 부시 대통령의 강경 입장은 한국 방문에서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로서는 경제회생책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지원을동력으로 부실채권 정리 등에 다소 시간은 벌었다. 그러나미국의 지지가 한시적이어서 빠른 시일 안에 개혁의 성과가나타나지 않으면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는 회복불가능의 상태로 추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부시 대통령이 일본을 떠난 19일 도쿄 주식시장의 닛케이 평균주가가 1만엔이붕괴된 점은 ‘부시 효과’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후의 하나이다. marry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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