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문위원 칼럼] 편견·차별의식 타파 앞장을
얼마 전 택시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민심을 읽으려면 택시를 타거나 시장에 가보라는 말이 있듯이 택시기사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쉴새없이 정치인들과 현 정권을 성토하는 데 열을 올렸다.대부분 공감할 만한 내용인지라 가끔씩 맞장구를 쳐주면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 기사 아저씨 왈,현 정권이 들어선 후 시행한 수많은 정책 중 가장 불만스러운 것이 여성부 신설이란다.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되고,분단된 반쪽이 또 다시 동서로 나뉘어 지역감정이다,뭐다 해서 삿대질하며 싸우는 것도 꼴불견인데 이제는 남성과 여성조차 대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여성에 대한 차별을 막고,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려는 기본적인 노력조차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구나하는 생각에 혼자 씁쓸히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우리 안의 편견과 차별의 뿌리는 무척이나 깊고 질기다.그리고 또다른 모습으로 끊임없이 왜곡되고 재생산된다.이 ‘왜곡된 편견’은 그 전처럼 노골적이지 않아서 우리가 미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7월30일자 대한매일 19면의 ‘난 당당하게 일하고 사랑한다’라는 기사를 보면 ‘(드라마나 문학)작품 속의 여성은 그 시대 여성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맞는 말이다.그리고는 뒤 이어 ‘요즘 드라마 속의 여성들을 살펴보면 이 시대 여성에게 요구되는 상을 발견할 수 있다.’며 여주인공들의 예를 드는데,그 예로 든 여성이 다름 아닌 ‘예쁘고 능력있는 것은 기본이고,드럼을 연주하고,살사도 잘 추는 등 재능과 취미를 갖고’ 있으며,심지어 아버지에게 복수하려고 아버지의 새 부인을 괴롭히는가 하면,이복동생의 약혼자를 유혹해 뺏기도 하는 여성이다.
필자가 보기엔 그것이 결코 이 시대 여성에게 요구되는 상이 아니다.물론 그 기사는 과거처럼 남편에게 순종하고,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현모양처’형 여성을 아직도 선호하는 ‘고루한’ 남성들에게 ‘이제 세상이 변했으니,너희도 변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그러나,‘예쁘지도 않고 특별한 능력도 없으며,살사도 못 추지만’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려는 보통의 여성들에게 이런 글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혹시 암암리에 여성에 대한 또 다른 왜곡된 편견을 갖게 하지는 않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조금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편견과 차별이라고 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단어가 인종이다.
8월2일자 대한매일 국제면 머릿기사의 제목은 ‘팔,외국인도 무차별 테러’였다.그러나 똑같이 무고한 민간인들의 생명을 앗아간 행위일지라도,이스라엘군의 무차별 살상행위는 ‘공습’일 뿐이고(7월24일자 9면),팔레스타인인들의 행위는 ‘무차별 테러’로 표현된다.이러한 작은 표현의 차이가 반복되다 보면 독자에게 이스라엘의 살상행위는 군사작전 중에 일어난 ‘있을 수있는’ 일이고,팔레스타인인들은 곧 테러리스트라는 편견을 무의식 중에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혹자는 너무 지엽적인 것을 문제삼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앞서 말한 대로 우리 안의 편견과 차별의식은 이처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들어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게 된다.
‘작지만 강한’ 신문은 이처럼 작게 느껴지는 부분부터 꼼꼼히 되돌아보고 조금씩 바꿔 나갈 때만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최재훈(인권.평화 국제연대 상임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