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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요영화]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EBS 일요시네마 오후 2시20분) 제임스 웨일 감독의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은 메리 셸리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이후 많은 공포영화들에 영감을 안겨주면서 미국 호러 영화의 효시로 자리잡았다. 영화는 ‘시체를 이용해 인조인간을 만드는 젊은 과학자에 의해 악인의 두뇌를 가진 괴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모티프로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그리고 있다. 오직 조물주만이 생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항거해 스스로 인간을 만들고자 한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오만함과 과학문명의 한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남게 됐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극단적 명암 대조 등 독일 표현주의를 계승한 화면들은 극적인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용은 이렇다. 젊은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콜린 클리브)은 꼽추인 조수 프리츠(드와이트 프라이어)와 함께 시체의 신체부위들을 절단해 괴물 인조인간을 만드는 실험을 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약혼녀인 엘리자베스(메이 클라크)는 프랑켄슈타인이 시계탑 안에서 하는 이 실험을 불안하게 여기면서 실험을 막기 위해 의대 교수인 발드만 박사와 함께 시계탑을 찾아간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벼락을 맞은 괴물(보리스 칼로프)은 생명을 얻게 된다. 엘리자베스의 설득에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시계탑에 가두고 그녀에게 돌아간다. 범죄자의 뇌가 이식된 괴물은 증오와 살인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조수인 프리츠를 살해한 뒤 곧 마을을 위협한다. 그리고 괴물과 프랑켄슈타인이 풍차에서 마주치는데…. 사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남성 중심 문화에 도전장을 던진 급진적 여성주의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여성의 잉태 없이 태어난 괴물은 여성의 존재가 배제된 남성 문화의 구성물로서 결국 본성이 선한 괴물을 흉측한 악한으로 변모시키고 만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러한 여성주의적 의미는 거의 무시됐다. ‘프랑켄슈타인’(1931)의 성공은 곧 속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프랑켄슈타인의 아들’(1939) 제작으로 이어졌으며, 그밖에도 프랑켄슈타인을 주인공으로 한 수많은 영화가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됐다.‘프랑켄슈타인’은 영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의 국립영화보존협회가 뽑는 국가 보존영화로 선정됐다.71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전사자 유족의 품으로 간 강아지 美 전역 감동

    전사자 유족의 품으로 간 강아지 美 전역 감동

    “내 아들이 생전에 함께 한 강아지라서…” 최근 이라크에서 전사한 한 병사가 키우던 강아지를 유족들이 인도 받아 훈훈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초 이라크에 주둔한 미국인 저스틴 로린즈(Justin Rollins)병사는 유기견 한 마리를 발견해 정성들여 키웠다. 그러나 얼마 후 저스틴 병사는 갑작스런 폭탄 테러로 사망해 강아지만이 홀로 남겨졌다. 유족들은 그 강아지를 찾아 달라고 소속부대에 연락, 부대원들은 강아지의 사진을 들고 수색에 나섰다. 부대원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강아지를 찾아 유족들의 품으로 인도했으며 가족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저스틴 병사의 약혼녀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행복을 가져다 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품으로 오길 바랬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유족들은 전사한 아들을 기리는 뜻으로 강아지에게 ‘Hero’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5년 하반신 마비… 아빠될 수 있나

    EBS는 7일부터 5부작 ‘다큐10-불임치료, 그 현장에 가다’(오후 9시50분 방영)를 통해 아이를 갖고 싶어 첨단 불임치료기술을 시도하는 영국 부부들의 이야기를 내보낸다. 매일 1편씩 방송하는 이 프로그램은 아이에 대한 열정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영국 불임부부들의 이야기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드니스는 아이를 갖기 위해 9년이나 노력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지난번에는 임신에 성공했지만 7주만에 유산되고 말았다. 부부는 불임치료 전문가로부터 마지막 방법으로 배아 세포를 떼내 염색체 검사를 거친 뒤 건강한 배아를 착상시킨다. 야스미나·올드윈 부부는 일곱 번이나 체외수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부부는 임상적인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해 전문가들의 비난을 받는 불임전문병원을 찾는다. 면역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에 야스미나는 스테로이드와 혈액제재를 투여받는다. 톰 맥글로린은 ‘낭포성섬유증’이라는 유전질환 때문에 정액에 정자가 없다. 톰의 의료진은 톰의 고환에서 정자를 채취해 아내의 난자와 결합시키는 방법을 쓴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인 만큼 이들이 부모가 될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 15년전 지붕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된 웨인 밀스는 설상가상 림프암까지 앓고 있다. 그는 항암치료 전 얼려 두었던 정자로 약혼녀 마리사와 체외수정을 시도한다. 이들은 모두 위기를 극복하고 원하던 아기를 가질 수 있을까? 이 프로그램은 불임을 극복하기 위한 가족의 눈물겨운 노력을 생생한 수술 장면과 함께 그려내 진정한 가족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재혼탈북자 상속권 어디로…

    북한 평양 출신인 김선호는 만수예술단 호른연주자다. 선호는 남한에 있는 할아버지와의 비밀편지가 발각돼 약혼자인 연화를 남겨두고 탈북한다. 선호는 남한에 정착해 남한 여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약혼자인 연화도 탈북, 남한에 있는 선호를 찾아왔다. 남한에서 결혼한 부인과 북한에서 약혼했던 약혼녀 사이에서 선호는 갈등한다. 차승원 주연의 ‘국경의 남쪽’이라는 영화의 내용이다. 만약 북한에서 선호가 연화와 이미 결혼했었다면 남한에서 한 결혼은 어떻게 될까. 또 자식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단순한 영화 속 상상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을 이탈해 남한으로 들어온 탈북자수는 2002년부터 연 1000명을 넘어섰고 올 2월 1만명을 넘어선 상황에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은 최근 ‘통일사법정책연구’1권에서 대구지방법원 신진화 판사가 쓴 ‘통일 전후의 신분법제 정비방안’이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신 판사는 문제는 북한 가족법에 기초한 신분관계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탈북자가 남한에서 북한 배우자와의 이혼을 청구하거나 이혼절차를 밟지 않은 채 이를 숨기고 남한 여자와 혼인하는 등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신 판사는 이에 대해 “북한법에 의한 신분관계도 인정하는 바탕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대체적 동의가 있다.”면서 “남한 가족법을 일방적으로 적용할 경우 가족관계 등이 인위적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또 상속의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신 판사는 남한 내 상속재산에 대한 북한 거주 주민의 상속권을 인정할지, 통일국가 형성 후 북한 내 토지에 대한 분단 전 소유권을 인정할 것인지 등에 대한 정책적 결단이 현실적으로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사실’의 인용과 ‘의견’의 인용/남재일 한국언론재단 상임연구위원

    지난주는 큰 이슈 없이 고만고만한 기사들로 지면이 채워졌다. 윤장호 병장 사망소식과 베이징발 세계증시 폭락이 그나마 굵직한 사건이었다. 두 기사의 경우 비교적 신속하게 문제의 핵심을 잘 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윤 병장 사망소식의 경우 2월28일자에서 ‘종합’면에 ‘사실’ 중심의 특집을 내보낸 데 이어,3월2일자에서는 후속 소식과 함께 전역병 2인의 인터뷰를 통해 현지 한국국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흔히 이런 사안은 사망자와 유족에 대한 ‘헌사’로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한발 더 나아가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증시 폭락 기사 역시 베이징에 이은 세계 증시의 동반폭락 추이를 적절히 추적했다. 하지만 한 가지 거슬리는 대목이 있었는데, 바로 전문가 인용의 행태이다. 전문가 인용 때 ‘사실’의 인용은 익명이 허용되지만,‘의견’의 인용은 익명이 허용되지 않는 게 일반적인 언론윤리이다. 이는 기자가 익명을 빌려 자신의 주관을 개입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윤리강령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3월1일자 3면 ‘중국 발 나비효과 위력, 지구촌 증시 폭락 도미노’ 기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이 기사에서는 “전문가들은” “경제전문가들” “일각에서는” “중국의 관계자들은” 등 익명 인용이 4차례나 나오고, 인용의 형식도 겹따옴표를 사용한 직접인용이다. 인용내용에 덧붙여진 문장의 술어도 “입을 모았다.”,“분석했다.”,“진단도 내놓고 있다.”,“말하고 있다.” 등으로 대부분이 사실기술이 아닌 의견개진 용이다. 이 경우 굳이 익명인용을 해야 할 사정이라면 겹따옴표를 사용하지 않고 간접인용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3월1일자 7면 ‘도슨 부자 26년 만에 얼싸안아’와 2일자 10면 ‘박찬종 전 의원 인터뷰’는 각각 다른 이유로 의미있는 인물기사였다. 도슨 부자 기사는 극적인 사진편집으로 ‘인간적 흥미’ 요인을 극대화하면서도 차분했다. 특히 도슨의 약혼녀 나이가 열 살 연상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이름 뒤에 붙은 ‘39’라는 숫자로만 된 점, 도슨의 친모가 재가했다는 사실도 매우 건조하게 처리된 점은 기자가 흥미유발을 위한 선정성의 유혹을 자제한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이런 작은 노력이 모여 질 높은 신문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 박찬종 전 의원 인터뷰는 세간의 모든 관심이 대선주자에 쏠려 있을 때 나름의 소신이 있었지만 실패한 한 정치인에게 한 면 전체를 할애해 발언의 기회를 준 것 자체가 신선하고 의미 있다. 발언권의 공정분배와 여론의 다양성이라는 차원에서.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산업분야의 기사들이 광고와 기사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사진과 단신의 경우 더욱 그렇다.2월26일자 15면 사진은 한 침구류 전문업체의 신입사원 시험 중 체력테스트 장면을 담고 있다. 여기서 회사명은 익명으로 처리됐다.27일자 16면 사진은 신세계백화점이 주최한 퍼포먼스 사진이다. 여기서는 회사명이 실명으로 처리됐다.28일자 15면은 GM대우의 신차 발표와 두 생명보험사의 홍보이벤트 사진을 싣고 있다. 물론 회사이름이 실명처리돼 있다. 경제면에 사진을 이렇게 많이 써야 하는지, 사진설명을 실명으로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물론 뉴스가치를 좇았는데 결과적으로 기업홍보가 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기자 수준에서 여과될 수 있는 ‘홍보성’ 성격은 여과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근 공개된 삼성의 홍보전략 문건에서 엿볼 수 있듯, 경제기사는 점점 더 기업의 홍보 전략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기사화할 것인지가 점점 더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는 언론의 자율성도 정권이 아닌 자본과의 관계에 따라 결정될 공산이 크다. 남재일 한국언론재단 상임연구위원
  • “5월 부산서 전통혼례 올릴래요”

    입양아 출신으로 그리던 가족과 26년 만에 상봉한 토비 도슨(29)이 다음달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5월 다시 한국에 돌아와 부산에서 전통 혼례로 식을 올리기로 했다. 도슨은 제주 관광을 마치고 4일 오후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인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만나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됐다.”며 이번에 함께 방문한 약혼녀 리아 헬미(39)와의 결혼 계획을 밝혔다. 그는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 가족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한 게 아쉬웠다.”며 “미국에 돌아가 한국말을 열심히 배워 가족들과 더 많은 경험들을 공유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도슨이 제주 관광을 위해 떠날 때 부산에 내려갔던 친아버지 김재수(53)씨와 동생 현철(24)씨도 이날 다시 공항에서 만나 석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김재수씨는 “아들을 기다릴 때는 하루가 일년 같았는데 막상 아들과 함께 지내니 며칠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에 도슨은 “계속 만날 수 있는 가족들이 있기에 많이 슬프지는 않다. 얼마 안 있으면 돌아와 부산에서 친척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고 말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구레나룻 상봉…도슨父子 26년만에 얼싸안아

    구레나룻 상봉…도슨父子 26년만에 얼싸안아

    “미안하데이. 미안하데이. 내가 잘못했데이.”,“아버지, 너무 오래 기다리셨어요. 오늘은 기쁜 날이에요. 울지 마세요. 강해지셔야 해요.” 서로를 갈라놓았던 26년 세월의 벽은 단 10초도 안돼 무너졌다. 한국계 입양아로 그리던 가족과의 상봉을 기다렸던 토비 도슨(29·부모와 헤어지기 전 김봉석)이 친아버지 김재수(53)씨를 마침내 얼싸안았다. 도슨은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먼저 들어와 있다가 5분쯤 뒤 들어온 김씨를 부둥켜안았다. 김씨는 아들 얼굴이 보이자 감정이 복받친 듯 울음을 터뜨렸고 아들은 친아버지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어루만졌다. 도슨은 회견이 시작되자 “한국말로 ‘아버지 너무 오래 기다리셨어요.’라고 인사했는데 내 말이 서툴러 아버지가 못 알아들으신 것 같다.”며 “아버지를 만나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들과의 상봉이 예정보다 하루 늦어진 데 대해 “1년 넘게도 기다렸는데 그깟 하루는 더 못 견디겠나 하면서 참았다.”며 “이렇게 훌륭하게 아들을 키워준 미국의 양부모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우리가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도슨은 자신이 성장해온 시간이 담긴 선물이라며 스키 스웨터를 선사했고, 김씨는 스웨터를 걸친 채 아들과 나란히 앉아 서로 어깨를 거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도슨은 회견 말미에 한국말로 “동생”이라며 친동생 현철(24)씨를 찾았고 그가 나타나자 악수를 청하며 끌어안았다. 세 부자는 선 굵은 얼굴, 더벅머리에 단단한 체격, 귀 밑까지 내려온 구레나룻까지 빼닮아 한눈에도 ‘붕어빵’이었다. 도슨은 “아버지 생김새에 대해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는데 아버지를 만나니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겠다. 내 구레나룻이 왜 생겼는지 알겠다. 아버지에 비하면 난 ‘아기 구레나룻’”이라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도슨이 전날 친부를 만나 꼭 물어보고 싶다던 ‘왜 날 찾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씨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이유 등으로 찾아내지 못했다.”며 “내가 찾지 못하면 동생이나 그 가족이라도 봉석이를 찾을 수 있도록 호적도 정리하지 않고 놔뒀다.”고 밝혔다. 배석한 임상혁 변호사는 “도슨은 법률적으로 주민등록증 발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오래전 재가한 도슨의 친어머니와의 상봉에 대해 김씨는 “프라이버시도 있고 해서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다.”며 “아들과 상의해 좋은 때를 잡겠다.”고 밝혔다. 세 부자와 함께 시종 눈물로 상봉 장면을 지켜본 도슨의 약혼녀 리아 헬미(39)는 이날 숙소인 롯데호텔에서 밤을 보낸 뒤 2일 홀트아동복지회 방문 전까지 단란한 한때를 갖는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왜 오랫동안 찾지 않았는지 묻고 싶어요”

    “왜 오랫동안 찾지 않았는지 묻고 싶어요”

    “생각보다 유전자 검사를 통한 친아버지 찾기가 쉽고 간편한 데 놀랐습니다.” 한국 입양아 출신인 미국의 스키 스타인 토비 도슨(29·부모와 헤어지기 전 한국 이름 김봉석)이 유전자 검사 결과 친아버지로 밝혀진 김재수(53)씨와 28일 상봉한다.27일 약혼녀 리아 헬미와 함께 입국한 도슨은 한국관광공사에서 홍보대사 위촉장을 받고 친부로 확인된 김재수씨와 28일 오전 11시 숙소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나겠다고 밝혔다. 김재수씨는 이날 오후 서울에 도착했다. 그러나 김씨와 이혼한 친어머니는 상봉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도슨은 “관광공사에서 홍보대사 위촉 요청이 왔을 때 내가 도움을 요청했다.”며 “관광공사로부터 유전자 검사에 관한 도움을 얻어 친부를 찾게 돼 기쁘다.”고 소개했다. 도슨은 친부와의 상봉 소감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 봤는데 대부분 질문들이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왜 잃어버렸으며 그렇게 오랫동안 찾지 않은 이유를 묻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한국에 온 가장 큰 이유가 홍보대사 위촉이기 때문에 오늘 일정을 소화한 뒤 내일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전자 검사를 위해 “피를 보냈다가 수송 과정에 문제가 생겨 머리카락을 대신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매일 밤 뽑은 일도 있었다.”며 “많은 분들이 친부라고 주장해 친부 찾기가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빨리 나와 기뻤다.”고 밝혔다. 도슨은 입양 이후 성장과정을 묻는 질문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양부모와 생김새가 달라 항상 튀는 존재였다.”며 “체조 수업 도중 아이들이 놀려 어머니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코리아헤리티지 입양아 캠프에 참여하면서 한국 문화와 한국 입양아들을 알게 됐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 친부모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도슨은 ‘김수철’이란 이름으로 부산의 한 고아원에서 지내다 세살 때인 1982년 콜로라도주 베일의 스키 강사 부부에게 입양됐다. 지난해 토리노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모굴 스키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은퇴하고 현재 프로골퍼 전업을 준비 중이다. 그는 언론의 조명 덕에 쉽게 친부를 찾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올림픽 동메달을 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에 쉬웠다고만 할 수는 없다.”며 “앞으로 토비 도슨 재단이 한국 입양아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한국 정부나 기관들이 힘을 보태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또 “친부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올 때 감정적으로 힘들었다.”며 “심정적으로 완벽하고 편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아버지를 뵙고 싶었다.”고 밝혔다. 25년 만의 아들 상봉을 손꼽아온 김재수씨는 “오늘 아들을 만나지 못해 실망이 크지만 내일 만나면 함께 회포를 풀고 싶다.”고 아쉬움을 달랬다. 김씨는 “도슨이 부산 범일동 중앙시장에서 잃어버린 맏아들 봉석이가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면서 “지난해부터 내가 모는 버스 운전대 옆에 사진을 걸어놓고, 휴대전화에도 사진을 저장해 항상 봤다.”고 말했다. 임병선·부산 김정한기자 bsnim@seoul.co.kr
  • 백미러 보던 운전사「키스·신」에 車굴러

    백미러 보던 운전사「키스·신」에 車굴러

    지난 6월7일 하오 5시쯤. 정(鄭·23)모씨가 운전하는 「코로나·택시」가 부산시 동래구 재송동 앞길을 신나게 달리고 있었는데…. 마침「백미러」에는 차에 탔던 김모씨(27·부산시 동구 좌천동)와 그의 약혼녀 李모양(19)이 포옹을 하고 열띤「키스」를 하는「신」이 비쳐 운전사 정씨는 그만 정신이 아찔! 하는 순간에「택시」는 높이 2m의 길아래로 돌진,「키스」를 하고 있던 두 남녀는 중상을 입었다고.
  • “슬픔 가슴에 묻고 정상 도전”

    “많이 힘들지만 그 친구를 위해, 내가 좋아했던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다.” ‘슈퍼 코리안’ 데니스 강(29·스피릿MC)은 지난달 말 여자친구를 잃었다. 모델이자 격투기 선수였던 약혼녀 셸비 워커가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숨진 것. 종합격투기 프라이드 웰터급 정상 도전을 준비하던 데니스 강으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데니스 강이 슬픔을 딛고 새달 5일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열리는 ‘프라이드 무사도13 웰터급 그랑프리 파이널’에 도전장을 던졌다. 데니스 강은 30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경기이며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라면서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로 모든 것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모두 알다시피 최근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훈련으로 이겨내고 있다.”면서 “나를 걱정해준 팬들에게 감사한다.”고 덧붙였다.데니스 강은 4강에서 겨룰 고노 아키히로(일본)에 대해 “초반에 체력을 아껴 마지막 순간 폭발을 시키는 위험한 선수”라면서 “초반부터 밀어붙이기보다는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나가겠다.”고 설명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새영화] 스파이크 리 감독의 ‘그녀는… ’ 새달 2일 개봉

    얌전하게, 혹은 도발적으로 사회문제를 끌어내는 스파이크 리 감독이 이번에는 섹시한 풍자를 선사한다. 2일 개봉하는 ‘그녀는 날 싫어해’는 ‘아내가 필요한 남자, 아기만 필요한 여자’라는 카피로 얼핏 로맨틱 코미디인 듯한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실제 정체는 미국 사회 속에 숨어있는 문제를 유머와 뒤섞어 털어놓는 블랙코미디다.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 하버드 MBA 출신의 멋진 흑인남자, 성공한 커리어우먼 등 겉모습은 당당하기 그지 없는 조직이나 인간들이다. 그 본모습은? 에이즈 치료제 개발이라는 역사적 사명은 결국 주가를 높여 이득을 챙기려는 포장이고, 남자는 결국 백인사회에서 ‘실직에 불만을 품은 막 나가는 흑인’으로 전락한다. 커리어우먼들 역시 속은 비주류로 분류되는 여성 성소수자(레즈비언)나 소수민족이다. 이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들은 윤리와 도덕 위에 군림하는 물질만능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풍자한다. ‘성격 좋고 능력 있고 똑똑한 하버드 MBA 출신의 아프로-아메리칸’이라는 수식어를 단 ‘존’은 굴지의 제약회사 부사장으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회사 비리를 양심적으로 폭로했다가 배신자로 낙인 찍혀 해고당하기 전까지는. 고위직 백인들은 그를 백인사회의 위협자로 몰아가고, 그는 생계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든다. 때마침 그-실제로는 그의 우수한 유전자-를 찾아온 전 약혼녀이자 레즈비언인 ‘파티마’의 제안으로 이들의 ‘유전적 아기 아빠’가 되는 나름의 돈벌이를 시작한다. 열려 있는 듯 포장된 미국 사회에 숨어있는 돈, 성, 인종, 계층 등의 갈등요소를 한꺼번에 범벅해놓은 영화는 곳곳에 유머라는 양념을 고루 쳐놓아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존이 ‘유전적 아빠’가 되는 과정, 다양한 국가의 여성들과 거래를 하는 장면 등은 섹시한 코미디답다. 청순한 레즈비언으로 나오는 모니카 벨루치, 배금주의 신봉자 우디 해럴슨도 재미를 더하는 요소.18세 이상 관람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국산·수입 오페라 ‘가을 대전’

    국산·수입 오페라 ‘가을 대전’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초 대작 오페라 두 편이 맞붙는다. 국산과 수입,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VIP석 12만원과 33만원짜리 ‘가격대비 감동’이라는 대결 포인트를 놓고 관객들이 어느 쪽에 후한 점수를 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베르디의 ‘돈 카를로’는 예술의전당이 기획, 제작했다. 한국의 여성 오페라 연출가 1호인 이소영이 연출을 맡았다. 눈길을 끌 스타는 없어도 김재형 리처드 마지슨(돈 카를로 역), 강형규 서정학(로드리고 역), 이화영 조경화(엘리자베타 역) 등 실력 있는 국내외 성악가들이 대거 출연한다.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쉴러의 희곡 ‘스페인 왕자 돈 카를로스’를 원작으로 한 ‘돈 카를로’는 약혼녀를 아버지에게 빼앗긴 스페인의 카를로 왕자 등 5명의 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우정, 슬픔, 배신, 질투 등이 담겨 있다.11월7,8,10,11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2만∼12만원.(02)580-1300. 푸치니의 작품 ‘토스카’는 100년 전 이탈리아 로마의 코스탄치 극장에서 초연됐던 작품을 한국오페라단이 들여온다. 로마의 프로덕션이 내한해 푸치니의 친필 사인이 돼 있는 무대까지 그대로 재연한다. 레나토 브루손(스카르피아 역), 파비오 아르밀리아토(카바라도시 역), 다니엘라 데시(토스카 역) 등 호화 출연진이 눈에 띈다.‘토스카’는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중 하나.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불안에 떨던 로마를 배경으로 가수 토스카와 그의 애인 카바라도시, 토스카를 차지하려는 경시총감 스카르피아 사이의 사랑과 증오, 탐욕 등을 그렸다.11월9,10,11,1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오후 7시30분.3만∼33만원.(02)-587-1950.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가을로’ 제작보고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가을로’ 제작보고회

    올 가을엔 스크린 밖으로 서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감성멜로를 만나게 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오는 26일 개봉하는 ‘가을로’(제작 영화세상)는 ‘번지점프를 하다’‘혈의 누’를 연출한 김대승 감독의 세번째 작품이다. 9일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 김 감독을 비롯해 남녀주인공 유지태, 김지수, 엄지원이 나란히 참석했다.“자잘하게 들끓지 않고 큰 움직임으로 다가가는 멜로를 찍으려 최선을 다했다.”는 감독의 제작소회를 시작으로 배우들과의 문답이 내내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가을로’는 결혼을 앞두고 백화점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은 민주(김지수)와 10년이 지난 뒤에도 죽은 약혼녀를 잊지 못하는 남자 현우(유지태)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 민주가 죽은 뒤 어느 날 현우에게 한 권의 일기가 배달되고, 현우는 민주가 적어놓은 일기 속의 지도를 따라 가을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길에서 만난 여자 세진(엄지원)에 끊임없이 민주의 흔적이 오버랩된다. # 한 폭의 수채화가 된 멜로 임권택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오랫동안 연출수업을 받은 감독의 장기가 빛을 발했다. 김지수·엄지원이 각각 “촬영현장인 소쇄원과 구룡사의 운치 넘치는 풍광을 잊을 수 없다.”고 침이 마르도록 화면의 서정성을 자랑했을 정도. 로드무비 형식의 멜로로 다듬어내기 위해 사계절의 변화를 화면 가득 담아야 했고, 덕분에 촬영기간이 10개월로 늘었다. “내 영화에 조금이라도 장점이 있다면 그건 모두 임권택 감독의 영향”이라고 전제한 김 감독은 “길, 사계의 변화를 스크린에 담아내는 건 아주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했다.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7번 국도는 ‘창(娼)’의 조감독 시절부터 눈여겨봐온 촬영지였다.“(7번 국도는)이후로도 따로 혼자 여행했을 만큼 좋아했던 길”이라며 “어떻게 찍어야 좋을지 임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었는데 끝내 그건 못했다.”며 웃기도 했다. 10개월의 긴 촬영일정에 대한 감회는 엄지원도 남달랐다.“처음 출연제의를 받을 때 감독님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세 배우와 ‘자연’이라고 했었다.”며 “좋은 날씨와 햇살, 구름을 기다리느라 열 달이 흘렀으며 감독에 대한 전폭적 믿음에 그 열 달이 즐겁기만 했다.”고 말했다. # 사회적 메시지 껴안은, 사려깊은 멜로 ‘가을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됐던 작품. 가까운 현대사의 얼룩을 멜로드라마로 껴안은 영화에 배우들의 부담이 없었을 리 없다. 삼풍백화점 붕괴에 대한 배우들의 개인적 기억이 영화에 어떻게 화학반응을 일으켰을까.“어머니가 당시 전화를 해서 ‘어디냐?’고 물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섰다는 사실 자체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일 아니겠어요?”(유지태) “여주인공이 붕괴현장에서 죽어가는 모습이 영화 속에 등장하기도 해요. 아픈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희망을 얘기하는 소박한 영화라서 참여한 작품이에요.”(김지수) # “멜로영화는 줄다리기 같은 것…” 김지수·엄지원은 멜로물의 단골 여주인공들. 특정장르에 묶이는 배경엔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도 같다.“멜로 장르를 워낙 좋아해요. 이번에 처음으로 멜로 아닌 멜로 연기를 하게 됐어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감독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멜로는 줄다리기와 같아서 너무 당기면 과해지고, 너무 느슨하면 긴장감을 잃게 된다고. 그 말을 듣고 ‘가을로’가 좋은 영화가 될 거라고 확신했죠.”(엄지원) “‘가을로’에 이어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감독 변승·11월 개봉)까지 두 편의 멜로로 올 가을엔 관객을 만나게 됐어요. 그러나 두 영화의 색깔과 사랑의 느낌은 전혀 달라요. 앞으로 멜로영화를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하지만 다른 색깔의 멜로가 들어온다면 또 찍고 싶을 거예요.”(김지수)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못기다린다는 약혼녀(約婚女)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56)

    [사연] 29세의 남성이며 현재 월남에 있는 미국 토건회사에 근무하고 있읍니다. 23개월 전 이곳에 오기 전에 10년(年) 연하(年下)의 여인과 약혼을 하고 왔읍니다. 처음 떠나 올때 첫 계약인 18개월만 끝내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가정 사정으로 12개월만 더 있다 가려합니다. 그러나 약혼녀가 말을 들어 주질 않는군요. 15개월 되는 때에 휴가는 다녀왔읍니다. 편지도 약혼녀(約婚女)에게 매일 쓰다시피 하는 2년을 보냈읍니다만 곧 간다고 하고 2개월씩 연장하며 자내다 보니 이젠 편지도 끊어져 버린지 달포가 가까와옵니다. 어떻게 잘 타일러 계획하고 있는 날까지 있다가 가려 하는데 묘안이 없겠읍니까? < 월남에서 「무명씨(無名氏)」> [의견] 돌아오는 것만이 최선 문면(文面)으로만 본다면 당신에게 기간을 단축하고 싶은 의사는 전혀 없는 것 같군요. 그러니 사태는 절망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겠어요. 당신하고 가까이 있는 것 밖에는 원하지 않는 그녀에게 당신 자신이 돌아와 주는 것밖에 다른 묘안이 무엇이겠읍니까? 사람의 등신대(等身大)쯤 되는 장난감 곰이라도 하난 서서 『사랑해!』라는 편지를 가슴에 달아 약혼녀에게 보내 보셔요. 골이 잔뜩난 그녀가 폭소를 터뜨려 버리고 달포 밀린 답장을 쓸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하자면 미봉책에 지나지 않아요. 돈도 좋고 일도 좋지만 귀여운 약혼녀를 영영 잃어 버리지 않으려거든 얼른 귀국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Q> [선데이서울 70년 1월25일호 제3권 4호 통권 제 69호]
  • 신부 저승에 홀로 잠들었건만

    신부 저승에 홀로 잠들었건만

    27세의 젊은 시인이 죽은 약혼녀의 사진을 들고 결혼식을 올렸다. 마침 이 날은 죽은 약혼녀의 4·7제(만 28일째)를 지내는 날이자 두 사람의 결혼식 날로 택일해 두었던 날. 싸락눈이 내리던 1월 10일 서울 신흥사(新興寺)에서 있은 일이다. 독경속에 사진 안고 입장 손님들이 먼저 울어 버려 이 날 하오 3시. 신흥사(新興寺) 대법당은 조촐한 결혼식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신랑 XXX군, 신부 XXX양의 결혼식장이란 알림쪽지도 붙어 있지 않았다. 법당안엔 주례를 맡아 볼 주지스님과 25명 남짓한 하객(?)들이 말없이 앉아 있을 뿐. 이윽고 대법당의 문이 열리고 신랑 성영일(成英一·27·서울성북구)이 검은 띠를 두른 신부의 사진을 들고 입장했다. 「웨딩·마치」대신 주지스님의 독경소리가 낭랑했다. 약 10분간에 걸린 이 산신랑과 죽은 신부의 결혼식은 조용히 진행되었다. 이따금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하객들이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뿐. 식이 끝나기 전에 끝내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신부의 어머니가 터뜨린 울음을 신호로 결혼식장 안은 온통 울음 바다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끝내 울지 않은 단 한사람이 있다. 신랑 成군이었다. 成군은 식이 끝날 때까지 울지 않았을 뿐더러 식이 끝난 다음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장인·장모를 부축해 약1백m 떨어진 피로연 식장까지 모셔갔다. 성급한 놀이꾼들의 장구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열린 피로연 식장서도 신랑은 끝내 울지 않았다. 이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모두 신부쪽 일가친척들. 신랑쪽이라곤 신랑의 절친한 친구 3명밖에 없었다. 신랑쪽 부모는 물론 친척조차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목메이는 울음 참던끝에 신랑은 신부이름을 외쳐 1시간반 남짓한 피로연이 끝나고 하객들이 모두 돌아간 뒤 맨 마지막으로 신랑 成군이 친구들과 함께 눈 길을 내려왔다. 길이 미끄러워서였을까? 신랑 成군은 비탈길을 내려오다 그만 눈구덩이위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신랑의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영아야- 』 두 남녀가 서로 알게 된 것은 두 사람 모두 20세 되던 해 여름이었다. 당시 대학교 2학년생이던 成군은 우연한 모임에서 이영(李映·가명·신랑과 동갑)이란 아가씨를 알게 되었다. E여고를 졸업, E여대 가정학과에 재학중인 아가씨였다. 두 사람은 서로 첫 눈에 사랑을 느껴, 이후 7년동안 한시도 보지 않고선 못견딜 사이가 되었다. 신랑 成군은 H고교를 졸업, 모대학 불문과를 졸업했고 62년도엔 모신문 신춘문예 詩 부문에 당선하기도. 李양은 D철강 사장을 아버지로 둔 6남매의 셋째 딸. 6남매중 가장 똑똑하다하여 온 집안의 귀염을 독차지해온 아가씨였고 成군은 장남. 두 사람의 사랑은 여러 차례 파란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끝내 69년 12월6일 약혼식을 갖게 되었다. 12월6일 약혼하면서 두 집안서 결혼날짜로 택일해 두었던 날이 바로 1월10일. 그러나 죽음의 신이 돌연 덮쳐왔다. 약혼식이 끝난지 나흘뒤인 12월10일, 李양은 원인모를 고열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급히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월12일 병상에서 숨지고 말았다. 정확한 병명은 의사들도 내리지 못한 채 사망진단서엔 급성뇌염으로 적혀 있었다. 장인·장모는 가슴이 아파 훌훌 서울을 떠나버리고 처음엔 成군의 집은 물론 李양의 집에서도 펄쩍 뛰었다. 成군의 장인이 될 李양의 어버지까지도 『내 딸을 잊지 못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젊은 사람이 장래를 생각해야지』 하며 극구 말렸다. 그러나 成군은, 막무가내. 두 집안에서 다 반대하면 혼자서라도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우겼다. 마침내 李양 집에선 成군 부모들을 찾아가 동의를 얻은 뒤 결혼식을 올리기에 이른 것이다. 결혼식이 끝난 뒤 成군의 장인은 成군을 「자네」라고 부르며 하루 빨리 자기딸을 잊고 새 장가를 가라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언제든 우리 집을 찾아오면 사위 대접을 하겠다』고. 죽은 딸에게서 사위를 본 이 장인·장모는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날인 11일 아침 9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떠났다. 가슴에 맺힌 슬픔이 풀릴때까지 서울엔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 그러나 이 날 제주도에 갔어야 할 장본인은 成군과 죽은 李양. 즐거운 신혼여행길에 올라 있어야 할 신랑 成군은 결혼식 올리던 날 밤 윗 동서와 친구들과 어울려 무교동 거리에서 술에 취해 있었다. 술취한 신랑은 친구에게 “그녀는 어엿한 나의 부인” 成군은 친구들에게 『비록 육체는 없어도 영아는 이제 내 본부인이란 말야』 하며 주정을 했다. 그가 굳이 결혼식을 고집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첫째 이유가 李양과의 결혼식을 올려 눈 감지 못하고 죽었을 李양을 위로해 주자는 것. 둘째는 자기자신을 위해서. 결혼식을 올림으로써 자기사랑을 정리하고 싶었다고. 다음이 장인·장모들을 위한 마음. 평소 자기를 친아들 이상으로 잘 대해주던 장인·장모에게 결혼식으로나마 효도를 하고 싶었다고. 아직 27세니까 물론 앞으로 다시 결혼해야 할 젊은이다. 成군 자신도 다시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成군에 의하면 그 결혼은 자신에게 재혼이 될 것이며 李양은, 언제까지나 자신의 조강지처로 있으리라는 것. 『누군들 재혼이야 안하느냐?』는 게 成군의 주장. 결혼식 날 밤 成군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 李양이 생전에 보내온 사랑의 시들을 읽었단다. 이틀 뒤인 12일 월요일 成군은 아침 9시정각, 직장에 출근했다. [선데이서울 70년 1월18일호 제3권 3호 통권 제 68호]
  • ‘피가로의 결혼’ 발레극으로 본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발레로 보면 어떨까. 모차르트의 동명 오페라를 춤으로 형상화한 창작 발레극 ‘피가로의 결혼’이 8·9일 충무아트홀 무대에 오른다.발레 대중화에 앞장서온 서울발레시어터(단장 김인희)가 ‘백설공주’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창작 발레 대작이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아름다운 선율과 개성적인 캐릭터,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꼬집는 경쾌한 유머 등으로 전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모차르트의 대표작. 바람둥이 알마비바 백작이 하인 피가로의 약혼녀 수잔나를 넘보다가 망신을 당한다는 줄거리의 희극이다. 서울발레시어터 상임 안무가 제임스 전은 이번 공연에서 원작의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되 몸의 언어인 무용의 특성을 살려 한층 역동적인 무대를 만들어냈다. 웅장하고 박진감 넘치는 군무와 마술쇼를 보는 듯 화려한 무대 전환은 오페라와는 차별되는 발레극의 매력이다. 원작과 달리 모차르트가 극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식도 새롭다.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는 과정과 오페라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드라마가 강한 탓에 무용수들이 춤만 추지 않고 직접 연기를 하는 것도 이색적인 시도다. 모차르트역은 2004년 입단한 터키 출신 무용수 쿠제이 키히칸이 맡았고, 피가로와 알마비바 백작으로는 정경표와 정운식이 각각 출연한다.8일 오후 8시,9일 오후 3시·7시.2만∼7만원.(02)3442-2637.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쿠바는 지금] (상) ‘피델’ 없이도 차분한 아바나

    [쿠바는 지금] (상) ‘피델’ 없이도 차분한 아바나

    중남미 사회혁명의 전초기지 쿠바는 어디로 가는가.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권력을 일시 이양한 지 20여일이 흘렀지만, 쿠바의 향배는 명확해지지 않고 있다. 미국은 민주화 프로그램을 작동한다고 공언하고 플로리다만의 망명객들은 카스트로 정권의 붕괴를 목하 기대하고 있지만, 쿠바는 여전히 정중동(靜中動)이다.‘포스트 카스트로’의 향배를 아바나 현지 르포로 2회에 걸쳐 살펴본다. |아바나(쿠바) 최병규특파원|“피델은 매우 강한 사람이지요. 우린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닌, 피델주의자입니다.” 지난 8월20일.6시간이나 출발이 지연된 ‘아에로 유로파’의 여객기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바라하스 공항을 떠난 지 꼭 10시간만에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공항에 안착했다. 그렇지 않아도 좁다란 청사가 밤 12시를 넘겨 도착한 250여명의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공항 관리들은 매캐한 담배연기 속에 삼삼오오 TV 앞에 모여 위성으로 방영되는 미국의 쇼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대기만 한다.“사회주의의 맹점은 자본과 물질보다는 시스템 부족에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어디서 왔느냐.”는 확인 질문에 ”코레아 델 수르(Corea del sur·남한)라고 간단히 대답한 뒤 굳게 닫혀진 입국심사대 쪽문을 연다. 공항 도착 2시간만이다. ●쿠바와 피델주의자들, 지금은 ‘정중동’ 후텁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나선 청사 앞에서 마리아 로드리게스(48)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마드리드공항 탑승구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꽤 여러 차례 얼굴을 마주쳤지만 그와 얘기를 시작한 건 아바나 도착 30분 전쯤부터였다. 통로 건너편에 앉아 있던 그에게 넌지시 “피델(카스트로)은 괜찮은 것 같냐.”고 묻자 “피델은 매우 강한 사람”이라면서 “내 자신은 물론 주변의 사람들도 그가 곧 병실을 박차고 나올 것으로 믿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쿠바 사람들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피델주의자’”라고 강조했다. 서울을 떠나기 전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그의 신변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미국 행정부의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러 장의 신문 사진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다.‘사진 조작설’이 나돌자 이번엔 자신의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의 기념사진으로 ‘설’을 일축해 버렸다. 그러나 지금 카스트로의 동향 기사는 종적을 감췄다.‘카스트로 와병’ 이후 비교적 상세하게 그의 근황을 전하던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에 관련 기사는 더 이상 실리지 않는다. 아바나의 숙소에서 어렵게 받아든 ‘그란마’,‘후벤투드 레벨데’ 등 쿠바 공산당 기관지들도 그의 동정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리고 카스트로가 다시 침묵에 들어간 지금 쿠바의 모습은 여전히 지난 47년간의 철권통치에 길들여진 ‘평온함’과 미국의 경제봉쇄 조치 이후 계속된, 그리고 치열한 ‘생존 투쟁’이 뒤섞인 ‘정중동’의 상태다. ●불법, 더 이상 불법 아니다 비행기 안에서 만난 마리아는 쿠바 사회주의 혁명의 발원지인 ‘산티아고 데 쿠바’ 출신이다. 아바나국립대학을 졸업한 뒤 한동안 학교 교사를 했던 그는 지금은 아바나항구 주변 ‘아바나 비에하(올드 아바나)’ 구역에서 기념품 장사를 하고 있다. 의사와 교사 등 전문직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한 달 평균 임금은 많아야 625페소(약 25달러) 정도다. 그래서 차라리 외국 돈을 만질 수 있는 장사를 하기로 했다. 부업도 있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에 살고 있는 외가쪽 먼 친척이 1년에 두 차례씩 초청장을 보내온다. 물론 돌아올 때는 짐이 한 보따리다.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쿠바에서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보따리 장사’다. 세관의 ‘입막음 장치’는 필수적이다. 사실 이같은 불법은 ‘쿠바노’들에겐 더 이상 불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50년 가까운 혁명과정에서 누적된 서민경제의 피곤함이 불러온,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아바나항 입구 ‘모로요새’에서 만난 루이스 알레한드로(44)는 불법택시를 몰고 있다.‘파나택시’와 ‘OK택시’ 이외에는 전부 불법이다. 그러나 칠이 다 벗겨진 그의 54년형 크라이슬러 지붕에는 버젓이 ‘TAXI’ 간판이 달려 있다. 그 역시 한때 정부 기관에서 통계 연구원으로 일하던 공무원이었지만 5년 전부터 ‘불법’에 뛰어들었다. 그는 “퇴직한 2001년 당시 쿠바 가정의 90% 이상이 한 달을 보내기 위해 불법에 의존하고 있었다.”면서 “‘불법의 일상화’는 요즘 사회 전체에 더 만연돼 있다.”고 털어놓았다. 아들과 딸을 포함해 돈을 버는 네 식구 가운데 고급 호텔에서 팁으로 외국 돈을 만지는 아내가 가장 고소득자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말레콘,‘아바노’들의 마음의 고향 새벽의 ‘말레콘’은 쿠바의 앞날과는 관계없다는 듯 평온하기만 하다. 말레콘은 인구 200만명의 아바나시 4개 구역을 연결하는 약 7㎞의 방파제 해안도로다. 서쪽 미국 특수이익대표부(SIEU)에서 시작, 동쪽의 아바나항구까지 이어지는 이 도로는 관광객들에게는 한 번쯤은 걸어야 하는 명소다. 서민들에겐 일상의 피곤을 터는 휴식처이고, 혁명을 겪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겐 둘도 없는 데이트 장소다. 외교관저 밀집지역인 ‘미라마르’를 출발, 동쪽으로 내디딘 새벽 발걸음이 신흥 개발 구역인 ‘베다도’에 이르자 지난밤 흥겨움과 부산함에 들썩이던 ‘아바노’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쿠바 맥주 ‘부카네로’의 빈 깡통이 나뒹구는 널찍한 방파제 위에서는 아직도 젊은 남녀들이 몸을 비비고 있다. 다음달 결혼을 앞두고 있는 카를로스(27)는 “쿠바가 분명 천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옥은 더더욱 아니다.”면서 “그건 우리에게 말레콘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내던진 뒤 구 소련제 소형차인 ‘라다’에 약혼녀를 태우고 떠나버린다. 떠오르는 해를 마주보며 동쪽으로 갈수록 아바노들의 지친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방파제를 따라 인구 밀집 지역인 ‘센트로’ 구역으로 들어서자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아돌프 히틀러의 얼굴을 합성시킨 기괴한 모습의 간판 밑으로 출근 행렬이 이어진다. 건너편 방파제 밑 바닷가에서는 허름한 반바지 차림의 헤수스 파라(66)가 물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그는 지난 1959년 혁명군 소속으로 마에스트라 산맥에서의 게릴라 활동에 이어 아바나 입성까지 카스트로를 따라간 쿠바혁명의 산증인이다. 그는 “미국의 경제봉쇄가 아니었다면 쿠바는 지금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피델과 말레콘이 있는 이상 지금 별다른 아쉬움은 없다.”고 말했다. cbk91065@seoul.co.kr ■ 카스트로 근황은 지난달 31일 장 출혈 증세로 수술을 받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근황은 베일에 가려 있다. 다만 그의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는 주변 인사들의 간접 증언이 있을 뿐이다. AP통신은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형(兄)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동생 라울 국방장관과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의 인터뷰를 인용해 보도했다. 라울 장관은 “형이 점차 회복되고 있고 치료 과정도 매우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14일 그란마 인터넷판에 공개된 두번째 병상 사진이 가장 최근의 모습이다. 전날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카스트로 의장을 방문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라울 장관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창백한 모습에도 밝은 표정을 지으며 차베스 대통령과 웃음을 주고 받는 장면이었다. 국영TV도 같은 날 카스트로 의장이 차베스 대통령과 환담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앞서 13일 공개된 아디다스 운동복 차림의 카스트로 사진도 화제를 모았다. 주먹을 불끈 쥐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일상 생활이 드러나 있다. 카스트로를 방문했던 차베스 대통령이 그러나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표현하는 등 고령의 나이를 감안할 때 회복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집권 47년 동안 “혁명가에게 은퇴란 없다.”며 원기를 자랑하던 카스트로의 만년 와병은 쿠바의 변화를 예고하는 전주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태국 휴양지 안전사고 비상

    한국 관광객이 즐겨 찾는 태국 파타야와 푸껫 등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라 관광객들의 각별한 주의와 함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지난 4일 오전 10시쯤 태국 남부 휴양지인 파타야에서 약혼녀와 함께 바나나 보트를 타던 관광객 이모(27)씨가 다른 보트에 부딪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4시간만에 숨졌다. 약혼녀 김모(25)씨도 다리에 중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있다.현지 대사관에 따르면 이들은 바나나 보트를 타고 물놀이를 즐기던 중 물에 빠졌다가 마침 이곳을 지나던 다른 보트에 부딪힌 것으로 조사됐다. 바나나 보트를 운전하는 현지인들은 재미를 더해준다며 일부러 관광객을 물에 빠뜨리는데, 이씨와 약혼녀도 일부러 뒤집힌 보트에서 떨어져 물에 빠졌다가 변을 당했다. 이들은 11월 결혼을 앞두고 휴가를 틈타 파타야에 놀러왔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방콕 연합뉴스
  • 선우용녀의 “그님은 어디있나, 맹장 아플까”

    선우용녀의 “그님은 어디있나, 맹장 아플까”

    『알리는 말씀-금일 12시 결혼식은 사정에 의하여 취소되었읍니다』 연전 영화 『동경(東京)나그네』 촬영도중 돌연 태국(泰國)으로 증발해 버려 화제를 모았던 여배우 선우용녀(鮮于龍女)양의 결혼식장에 나붙은 쪽지다. 이번엔 결혼식이 증발해 버린 셈이다. 신부 집에선 결혼 전야(前夜)에 신랑의 맹장염 연락받아 11월12일 정오 반도(半島) 「호텔」 「다이너스티·룸」에 모여든 하객들은 이래서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이 날 이후 당사자인 선우용녀(鮮于龍女·24)양과 신랑이 될 예정이었던 김세명(金世明·34)씨는 행방을 감추어 버리고 양가(兩家)는 한결같이 철저한 보안조치를 취해버려 더욱 의아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취소되어 버린 결혼식의 취소사연은 신랑인 김세명씨가 결혼식 2일전인 10일 광주(光州)에 계신 노모(老母)를 모시러 갔다가 돌연 급성맹장염에 걸렸다는 것. 있을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김세명씨의 친동생인 세환(世煥)씨조차 병명(病名)에 대해 아리송한 대답을 하는걸 보면 급성맹장염 같은 단순한 사연이 아닌, 보다 깊은 사연이 숨어있는 듯하다. 신부인 선우용녀양의 집에서는 결혼식 전날인 11일 저녁8시께 신랑쪽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혼사손님 치를 음식장만에 한창 부산할 때 신랑 김세명씨의 외삼촌된다는 이가 용녀(龍女)양의 아버지를 찾아왔다. 어머니를 모시러 고향에 갔던 세명(世明)씨가 급성맹장염에 걸려 결혼식에 참석할수 없으니 식을 연기하자고 했다. 너무 엄청난 소식이라 당황한 용녀양의 아버지는 『본인인 신랑이 나타나거나 전화 연락을 하기 전에는 결혼식을 연기할 수 없다』고 버티었다. 그러나 결혼식장에 신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창피하긴 신부쪽도 마찬가지. 이래서 신부아버지는 『그럼 연기를 하되 손님한테 미안하니 결혼식 올릴 날짜를 미리 정하자』고 제의했다. 신랑은 해남(海南) 출신 사업가 돈번 내막은 자세히 몰라 그러자 신랑쪽은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 신랑이 이번달엔 재수가 없는 모양이니 내달초순께 다시 날을 잡아 식을 올리자』고 했다. 신부 아버지는 『급성맹장염 같으면 1주일이면 회복될 텐데 왜 날짜를 오래 끄느냐?』고 했으나 역시 「신랑의 기분」만을 내세우며 12월초 거식을 주장했다. 다음 날 아침 신랑쪽이 식장에 내붙인 쪽지엔 「연기」아닌 「취소」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자 상심한 선우(鮮于)양은 사람들의 이목을 꺼려 서울 신림(新林)동에 있는 큰 언니네 집에 몸을 숨기고 말았다. 선우양은 결혼식을 위해 현재 출연중인 TBC-TV 연속극 『다모기담(茶母奇譚)』 2회분을 미리 녹화 해두었으나 21일께부턴 다시 연습 녹화에 나와야한다. 『더 이상 남의 입에서 이러쿵 저러쿵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21일께부턴 TBC에 나가겠다는 선우양의 해명이다. 신랑인 김명세씨는 전남(全南) 해남(海南)태생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4남2녀의 장남. 10여년전 서울에 올라와 상당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무엇으로 재산을 모았는지는 아리송하다. 현재 직함은 한국수력(韓國水力)의 대표이사로 되어있으며 을지로(乙支路)2가 일대의 대지관리인이기도 하다. 한때 을지로2가서 3·1도기사를 차렸던 일이 있으나 그후 곧 집어치우고 그자리는 전세를 주어 한국(韓國) 「스테인리스」가 들어앉았다. 한땐 약혼녀와 살림차려 증발은 사업때문일 지도 그를 아는 이웃 친구들의 말을 빌면 여자관계는 좀 복잡한 편. 다음 기사가 이런 사정을 잘 알려준다. 『6일낮 12시30분 서울 동대문(東大門)구 숭인(崇仁)동56 돌산에서 2백「톤」의 거대한 바위덩이가 40여「미터」 언덕으로 굴러 떨어져 아래에 있던 경수현(庚秀鉉·52) 종철웅(宗鐵雄·46)씨집등 4채가 바위에 깔려 완전히 부서져 묻히고 김세명(34)씨집등 4채는 반파됐다. 이 사고로 金씨의 장녀 진오(眞娛·2)양이 깔려 숨지고 金씨의 어머니 오영래(吳英來·56) 여인과 庚씨의 딸등 5명이 경상을 입었다』(서울신문68년1월6일자 사회(社會)면) 당시 金씨는 숭인동서 모여인과 약혼만하고 동거중이었다. 이 낙반사고로 딸이 죽자 김씨는 그 여인과 합의 파혼해 버렸다. 집도 답십리로 옮겼다. 김씨가 선우양을 알게된 건 선우양의 어머니 때문. 중매가 들어와 사귀게된 선우양은 헌칠한 키에 「핸섬」한 김씨의 용모에 반해 버렸다. 답십리 김씨의 집에 놀러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선우양은 『TBC-TV와의 전속계약이 끝나는 내년 8월쯤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밝힌바 있는데 선우양의 아버지는 『이왕 할 혼사인 바에야 시간을 끌 필요가 없지않나해서 서둘렀다』고 말하고 있다. 김씨의 친구들은 이번 결혼식취소에 대해 김씨가 사업상실패로 당분간 몸을 숨겨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가정을 뒷받침해 줄 증거로는 ①김씨가 광주로 내려갔다는 10일 한국 「스테인리스」가 부도(不渡)를 내고 문을 닫았다는 점 ②살고있던 답십리2동242의38에서 10일께 딴 곳으로 이사 ③승용차안에 무선전화까지 갖고 있는 김씨가 광주에선들 처가에 직접 연락을 못하나 하는 점 등이다. 그런가하면 신부 아버지는 딴 여자관계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기도. 그러나 이런 모든 의심은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이상 김씨가 하루 빨리 나타나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는한 알길이 없다.[선데이서울 69년 11/23 제2권 47호 통권 제 61호]
  • [심상덕의 서울야화](16)거지들이 사랑했던 스타 차홍녀

    [심상덕의 서울야화](16)거지들이 사랑했던 스타 차홍녀

    ‘대종상 영화제’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영화의 발전과 함께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도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고요. 그런데 옛날 영화 중 1965년 ‘김지미’와 ‘신영균’이 주연했던 전택이 감독의 ‘홍도야 우지마라’를 알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해도 그동안 연극으로 많이 공연이 됐고, 지난 1950년대에도 같은 제목의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거든요. 또 1930년대 후반에도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였습니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지금으로부터 꼭 70년 전인 1936년 동양극장에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제목으로 연극으로 공연됐던 작품이었습니다. 이 연극에서 홍도 역을 맡았던 배우가 ‘차홍녀’였습니다. 홍도의 오빠역인 경찰관은 그 시절 첫손에 꼽히던 배우 ‘황철’이 맡았고요. 이 작품을 쓴 극작가 ‘임선규’는 처음부터 여자 주인공엔 차홍녀를 생각했었기에 ‘홍도’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 거고, 또 오빠인 경찰관 역엔 황철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철수’라는 등장 인물을 만들어 냈던 겁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의지할데 없는 두 남매. 홍도는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뒤, 오빠의 동창생 청년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 청년은 이미 약혼녀가 있는데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도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거죠. 그러나 홍도는 남편이 유학을 떠나자 소박을 맞고 쫓겨나게 되는 겁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남편은 집안 식구들의 모함만 듣고 홍도를 마치 부정한 여자로 치부하면서, 전 약혼자와 결혼할 생각을 갖게 되고 이성을 잃은 홍도는 본의 아니게 전 약혼녀를 살해하게 돼 경찰관이 된 오빠에게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다룬 작품입니다. 그런데 ‘대종상 영화제’가 있는 오늘.‘서울야화’에서 왜 ‘홍도야 우지마라’라는 연극과 영화 얘기를 하느냐고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홍도야 우지마라’의 주인공 ‘차홍녀’가 인기절정의 여배우였지만 너무나 아까운 나이 25살에 꽃잎을 떨구게 됐던 겁니다. 그 이유가 뭐였는가 하면요. 당시 극단 ‘아랑’에서 지방 순회공연을 돌던 1940년 겨울. 강원도 철원에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기차역에 나갔는데 그날 따라 기차가 한 40분 정도 연착이 되는 바람에 기차역 주변을 서성이고 있을 때, 그 추운 날씨에 역 앞에서 온몸을 웅크리고 덜덜덜덜 떨면서 구걸하는 거지를 발견하게 됐던 거죠. 바로 이 순간 차홍녀가 그 거지 앞을 그냥 지나쳤다면 아무런 탈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평소 인정이 많던 차홍녀는 그 거지에게 적선을 했던 겁니다. 거지는 그 인정이 고마워 손을 내밀었는데 차홍녀가 따스하게 거지의 손을 꼭 붙잡아 줬던 거죠.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 거지와의 접촉에서 그 당시 한창 유행하고 있던 ‘천연두’에 걸려 지방공연을 다녀온 지 며칠 만에 죽어버린 겁니다. 그 당시 ‘천연두’에 걸리면 전염병치료소인 ‘순화병원’에 강제로 수용돼 비참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들은 이같은 사실을 숨기고 한약을 먹이면서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는 겁니다. 차홍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원인에 대해 서울시내에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 당시 동양극장 앞에서 관객들을 상대로 구걸하던 거지들은 물론 서울시내 다른 지역 거지들에게도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차홍녀의 장례식이 있던 그날, 거지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겁니다. 그리고 당시 화장터가 있었던 홍제동까지 거지들이 상여의 뒤를 길게 따라가면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우리에게는 ‘홍도야 우지마라’로 더 잘 알려진 연극을 통해 인기 정상에 올랐던 차홍녀. 그녀는 비록 스물다섯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차홍녀’의 사진을 들여다 볼 때마다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엔 마음씨 고왔던 그 시절의 스타 ‘차홍녀’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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