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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EC] “문화재 환수 체계적 대응 필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중인 외규장각 도서와 일본 궁내청이 소장한 조선왕실의궤 등 대표적인 해외 반출 문화재가 지난 12일 한·프랑스 정상회담, 14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국내 반환이 최종 확정됐다.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297권은 144년 만에, 조선총독부가 1922년 조선왕실도서관인 규장각에 있던 책들을 기증이란 이름으로 일본 궁내청에 넘긴 조선왕실의궤는 88년 만의 귀환이다. ●‘대여’·‘인도’ 형식 수용 한계 외세에 휘둘리고, 나라마저 잃었던 시절 속절없이 빼앗겨야 했던 귀중한 문화재를 뒤늦게나마 되찾아온다는 사실은 감회가 깊다. 문화재청 이경훈 국제교류과장은 “최대 현안으로 논의되던 외규장각 도서와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을 시민 단체와 정부기관이 힘을 합해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외규장각 도서는 대부분 왕이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로 국내에 없는 유일본이 30책이나 되고, 일본 궁내청 도서도 국내에 없는 것들이 많아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학술적 연구에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협상 과정과 절차 등에서 아쉬움도 적지 않다. 명백한 강탈 문화재임에도 우리 정부가 ‘반환’의 형식을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하고 상대국의 ‘대여’와 ‘인도’ 형식을 수용한 점은 뼈아픈 한계로 지적된다. 외규장각 도서의 경우 1993년 방한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김영상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반환을 약속했음에도 단 한 권의 책만 돌려받은 채 17년을 성과없이 흘려보냈다. ●문화재청 “내년 4월 전담부서 발족” 이번 문화재 반환은 해외에 뿔뿔이 흩어져있는 문화재 환수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문화재청이 파악한 해외 유출 문화재는 총 11만 여건에 달한다. 지금까지 해외 문화재 환수가 민간단체의 활약에 의존하는 측면이 컸다면 이제는 정부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문화재청은 내년 4월 문화재 환수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를 발족해 문화재 반환 요구의 선제조건인 출처조사와 국가별 환수전략, 민간과 정부간 공조 등 전문적인 대처에 나설 계획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서울광장] 망각이라는 이름의 혼돈/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망각이라는 이름의 혼돈/김성호 논설위원

    얼마 전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의 대표 유적인 ‘검투사의 집’이 무너졌다는 외신보도가 있었다. ‘검투사의 집’이라면 고대 로마시대 검투사들이 집단 거주한 2000년 역사의 유적이다. 검투사들이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에서 싸우기에 앞서 집결해 훈련한 프레스코양식의 세계유산.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파묻힌 고대도시 폼페이를 상기시켜 한 해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희귀유적이다.이탈리아 대통령까지 나서 ‘국가적 불명예’라며 개탄한 걸 보면 상실의 후유증이 엄청나 보인다. ‘검투사의 집’ 붕괴가 인재(人災) 논란에 휩싸였다. 폭우 탓이라는 발뺌이 안이함에의 책임추궁에 묻힌 듯하다. 5년전 폼페이유적의 70%가 붕괴될 것이란 경고대로 올 초 콜로세움 처마가 떨어져 내린 바 있다.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요구에 이탈리아 문화부장관은 “업무를 잘 수행했다.”며 맞섰단다. 인권위원회 파행과 관련해 “잘 운영되고 있다.”며 사퇴압박을 일축한 우리 인권위원장 발언과 닮았다. 유적 참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장관이나 인권의 가치를 지키라는 몸짓들을 외면한 위원장에게서 본질 망각의 혼돈을 본다. ‘검투사의 집’ 붕괴에 광화문 현판 균열 논란을 한번 얹어 보자. 복원 석달 만에 갈라진 현판에 날씨 탓이라는 발뺌과 무리한 공기단축의 인재란 질타가 팽팽하다. “금강송은 날씨가 추워지면 갈라지기 일쑤”라는 문화재청은 아교·톱밥 땜질과 재단청이란 희한한 복구처방을 내놓았다. 갈라진 현판을 그저 덧칠해 가리겠다는 문화재청은 경복궁 복원사업의 주체가 아닌가. 경복궁·광화문 복원은 일제에 훼손된 조선정궁을 되살려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것이란 본질을 잊었단 말인가. 경술국치 100년의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연초 곳곳에서 무성했던 과거사에 대한 옹골찬 직시며 공과를 제대로 따져 보자는 거센 목소리들도 시간의 흐름에 묻혀가는 듯하다. 동족상잔 6·25전쟁 60주년의 해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국권 침탈의 마지막 단계인 강제병합 100년째 되는 해. 그리고 남북분단의 단초인 전쟁 발발 60년째. 국치와 분열의 아픔 치유며 잔재 청산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고 얼마나 이루었는지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 조선총독부를 통해 일본에 반출된 도서 1205책이 국내에 돌아온다. 1965년 한일협정 조약체결 무렵 우리문화재 1432점 반환 이후 45년 만의 반환이란 사실에 들뜬 기색이 역력하다. 알쏭달쏭한 총리담화에 얹힌 약탈문화재의 반환 아닌 ‘인도’ 양식을 놓고도 말이 많다. 조선총독부를 통해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에 한정한다는 원칙이라면 이번 인도로 6만점에서 많게는 30만점까지 있다는 일본 내 우리 약탈문화재의 반환 길이 막히게 될지도 모른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흔히 문화재는 역사의 거울이라고 한다. 민족혼이 담긴 결정체라고 할 때 문화재며 문화유산은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결정인 것이다. 광화문 현판 복원이나 일제 약탈도서의 반환이 그저 형상의 되돌림이나 빼앗긴 문화재의 원위치 찾기에 머무는 것일까. 조선정궁을 허울만 되살리고 빼앗긴 선인들의 책자 몇 권쯤 돌려받는 복원과 반환이라면 역사의 거울 차원에선 한참 먼 것이다. G20 서울정상회의에 앞서 최근 중국을 방문한 영국 총리가 정상회담 때 양복에 단 양귀비꽃 배지를 놓고 마찰이 있었다. 양귀비는 1차대전 당시 희생된 전몰장병의 혼을 달래기 위해 정한 영국 현충일의 상징이다. 영국 입장에서야 추모와 현충의 상징이겠지만 중국은 영국에 패한 아편전쟁을 떠올리는 치욕의 상징일 터. 한편에선 잊지 말자는 기억의 회생이고 다른 쪽에선 아픔의 망각이 강하니 괜한 마찰이 아니다. 잊어선 안 될 것들을 두고 서로 달리하는 집착이라고 할까. 체코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 썼다. 망각의 늪과 혼돈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kimus@seoul.co.kr
  • 외규장각 도서 144년만에 돌아온다

    외규장각 도서 144년만에 돌아온다

    이명박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12일 프랑스가 보관 중인 외규장각 도서를 5년마다 대여를 갱신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한국에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297권이 144년 만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두 정상은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이같은 내용의 합의문을 채택했다고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이 밝혔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 간에 남아 있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서 “외규장각 문서를 국내법(프랑스) 절차에 따라 5년마다 갱신 대여 방식으로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양국 간에 어려운 문제가 풀리게 된 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실질적인 반환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프랑스는 국내법상 문화재 반출에 ‘영구대여’라는 표현을 쓸 수 없어 5년 단위 갱신 방식으로 한 것”이라면서 “정부로서는 사실상 반환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G20 기자회견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문화유산이 어디에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한국에 있어 외규장각 도서가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굉장히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는 또 사르코지 대통령이 “프랑스는 천안함 사고로 46명의 해군장병이 희생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면서 “북한은 국제적인 공약과 책무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북한이 핵을 표기하는 데 있어 유럽국가의 협력이 필요한데 프랑스가 앞장서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어 G20 서울 정상회의와 관련, “한국의 모범적인 예를 따라 프랑스도 내년도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4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 최빈국과 같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면 민족의 지혜와 근로의욕을 새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사실상 반환조치… 당연히 받아야” “강탈당한 문화재… 대여방식 안돼”

    한국과 프랑스 정부가 12일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를 5년 단위 대여 갱신 형식으로 돌려주기로 최종 합의한 데 대해 국내 학계와 문화계는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대여 형식을 빌려서라도 우선 국내에 들여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실리적 판단에 따라 환영의 뜻을 표하는 의견과 명백히 강탈당한 문화재임에도 반환이 아닌 대여 형식에 합의한 건 원칙과 명분에 어긋난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1991년부터 외규장각 도서 환수운동을 벌여온 이태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사실상 돌려주겠다는 것으로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합의를 반겼다. 그는 “등가교환 방식을 주장해온 프랑스가 대여 갱신을 택한 것은 법적 문제 등 현실적인 요소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오래 걸리긴 했지만 사실상 반환 조치가 이뤄지게 된 것을 보니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지학자인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도 “반환이든 대여든 형식을 떠나 일단 외규장각 도서가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는 것 자체가 기쁘고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도 자국법상 더는 양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우선 받고 나서 추가 협상을 통해 다시 계약할 수 있는 만큼 현실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유전 경기도박물관장은 “강도가 빼앗아간 물건을 돌려주면서 사과는커녕 오히려 주인에게 빌려주겠다는 적반하장격”이라며 “상대국의 입장을 고려해 이렇게라도 돌려받는 것이 실리를 챙겨서 좋다고 한다면 나라의 체면과 국격은 뭐가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프랑스 법원에 외규장각 유물 반환 소송을 진행 중인 문화연대의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영구 반환이 아닌 대여방식은 인정할 수 없다.”면서 이번 합의를 병인양요 당시 외규장각 약탈에 이은 ‘제2의 외규장각 사태’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정부가 임시로 5년간 빌려오는 것은 점유권에 불과하고, 우리는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프랑스의 대여 갱신 약속을 문서화해야 한다며 끝까지 반대하다 결국 합의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진 문화재청 측은 “양국 간에 합의가 이뤄진 만큼 보관 처리와 문화재 지정 추진 문제 등 실질적인 후속 조치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北 G20 반응 언제쯤 나올까

    11일 개막된 G20 서울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 북핵 문제, 천안함 사태 등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면서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측의 진정성과 책임 있는 자세를 강조,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북측이 이에 대한 입장을 언제 어떻게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정부 소식통은 “북측이 G20 정상회의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한 것은 아직 없지만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한·미·일·중·러 등 북측을 제외한 북핵 6자 회담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반도 정세에 대해 논의하게 된 만큼 북측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서방의 원조외교에 각성을 높여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오늘 제국주의자들은 원조를 미끼로 다른 나라들에 경제적 예속과 약탈의 올가미를 씌우려 한다.”고 주장했다. G20 정상회의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우회적으로 비난한 것으로 풀이한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양국 정상이 밝힌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및 천안함 사태에 대한 책임’에 대해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6자 회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난 8월 말 방중 때부터 재개 의지를 보였는데 한·미가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G20 정상회의 자체를 비난하면서 자신들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는데 한·미가 북측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면서 “6자 회담 재개와 함께 평화협정 협상을 다시 들고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안함 사태에 대해 북측이 기존에 주장한 대로 ‘한·미의 대북 적대적 모략극’이라는 입장을 앞세워 보다 구체적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국방위원회가 지난 2일 천안함 사태에 대한 우리 측 민·군합동조사단의 최종 보고서를 반박하는 내용의 ‘검열단 진상공개장’을 내놨는데, 이에 대한 2탄을 내놓을 수도 있다.”며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구체적으로 반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측의 대응은 G20 정상회의 기간 중에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북측이 오는 25일 예정된 남북 적십자회담에 앞서 우리 측으로부터 대규모 지원을 얻어 내기 위해 공세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북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은 이날 통일부에 통지문을 보내 오는 19일 개성에서 금강산관광 재개 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시론] G20 정상이 되새겨야 할 문화재 약탈/황규호 언론인

    [시론] G20 정상이 되새겨야 할 문화재 약탈/황규호 언론인

    서울 용산동 일원에 옹골진 둥지를 튼 국립중앙박물관은 가을이 한창 깊었다. 뒷자락 남산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이룬 단풍으로 물들었고, 앞자락으로 유유한 한강의 물고기는 맹사성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에 나오는 시어처럼 살이 올랐을 터다. 이 가을에 접어들어 마침 G20 정상회의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베풀어질 리셉션을 시작으로 서울에서 개막되는 모양이다. 세계 정상이 한국의 전통 풍수지리야 알 리가 없겠지만, 무르익은 가을과 세계 6대 박물관에 꼽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깊이는 알아차릴 것이다. 정싱회의 리셉션장으로 확정한 중앙홀에는 키가 훤칠한 경천사십층석탑이 붙박이 아이콘으로 들어앉았다. 대리석 돌덩이를 다듬어 목조건축 양식으로 쌓아올린 이 탑파(塔婆)는 누구나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걸작이다. 그러나 영국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그리스의 ‘파르테논 마블스’에 못지않은 비운의 문화재라는 사실을 알면, 감상법이 사뭇 달라질 수도 있다. 신전을 장식했던 파르테논 마블스는 19세기 터키 주재 영국대사였던 엘긴이 주도한 약탈의 손길에 헐려 런던으로 실려갔다. 경천사십층석탑도 1906년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궁내대신 다나카(田中光顯)가 개성에서 허물어 인천을 거쳐 도쿄 자신의 집 정원으로 빼돌렸다. 지난 20세기,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그리스 문화부 장관 멜리나 메르쿠리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영국이 뜯어간 대리석 미술품 반환운동에 평생을 매달렸다. 그러나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경천사십층석탑은 약탈자 다나카와 일제의 몇몇 실력자 사이에 불거진 알력 때문에 만신창이의 몰골로 돌아와 이제야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를 정상들께 경천사십층석탑에 보내는 박수에 앞서, 걸작 미술품 깊숙이 스민 문화재 약탈의 역사를 곱씹어 보기를 간청한다. 유럽을 여행하노라면, 약탈 문화재 위용에 깜짝 놀라기가 일쑤다. 천연덕스럽게 내놓은 약탈 문화재에서는 정복자의 부도덕한 오만과 빼앗긴 쪽의 슬픈 사연이 함께 묻어난다. 세기적 보물 ‘로제타스톤’에는 빼앗고 나서, 다시 빼앗기는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 되풀이한 추잡스러운 권력이 점철되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별칭이 붙은 거대한 석조물 ‘오벨리스크’에 이르면, 유럽은 문화재약탈사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없을 정도다. 한국은 지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에 걸친 외세의 침략으로 숱한 문화재를 빼앗긴 최대의 피해 국가다. 아시아의 후발 제국주의 일본에 빼앗긴 문화재 가운데 돌아오지 못한 한국의 문화재가 6만 1000여점에 이른다. 지난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일본이 국가 소유로 분류한 1432점의 한국 문화재는 돌아왔으나,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민간이 소유한 문화재는 반환을 권고하는 선으로 느슨하게 풀어놓았기 때문에 매듭을 짓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은 국가가 소유한 문화재를 다 돌려주지도 않았다. 이번에 갑작스럽게 돌려주겠다는 문화재도 일본 궁내청 쇼로부(書陵部) 등 국가기관 소장품이다. 그나마 조선왕실의궤 167책을 포함한 1205책이 돌아온다는 소식은 반갑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를 인도한다.”는 말로, 반환이 아니라는 점을 애써 강조한 외교적 수사(修辭)가 씁쓸하다. 서울 도성 바깥의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는 지난 1886년 병인양요 때, 로스 제독이 이끈 프랑스 극동함대가 휩쓸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홀에 내걸린 이인문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만큼이나 아름다운 섬을 포화로 공격하고, 도서 340여책을 프랑스로 실어갔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이들 도서의 반환 협상은 아직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약탈이 분명한 문화재를 원소유국에 일정기간 빌려주겠다는 대여 형식을 고집하는 프랑스의 발상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서울 정상회의에 참석할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기다리는 까닭도 여기 있다.
  • [문화마당] 노인을 위한 나라가 행복한 나라다/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노인을 위한 나라가 행복한 나라다/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가을이 깊어간다. 가을의 꽃인 단풍을 보면서 한해가 저물어 간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 인생무상을 느낀다. 사계절을 몇번 지냈느냐로 사람의 나이가 세어지므로 춘추라는 말이 생겨났다. 나이가 많아지면 늙고, 그러면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의 삶은 모래시계에 비유된다. 모래시계 위에 있는 모래가 밑으로 떨어지듯이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줄어든다. 이처럼 인간에게 시간은 흘러가기보다는 없어진다. 그런데 왜 내게 주어진 시간이 점점 적어지는 것을 나이의 많음으로 표시하는 걸까. 어렸을 때는 세월이 너무 천천히 간다고 불평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점점 적어진다는 걸 느끼는 순간부터 세월의 빠름을 한탄한다. 인간은 어렸을 때는 앞으로 가는 시계를, 늙어가면서는 뒤로 가는 시계를 갖기를 원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세상 이치다. 모든 인간은 늙고 죽는다. 타자의 죽음으로 나의 죽음을 알듯이, 노인을 보면서 나의 늙음을 깨닫는다. 얼마 전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 갔다가 나의 노년에 대해 생각했다. 그야말로 그곳은 ‘노인 공화국’이다. 이 많은 노인들이 어디서 왔고, 밤이 되면 어디로 돌아갈까. 그리고 거기에 계신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왜 할아버지들뿐일까. 통계적으로는 여성 노년인구가 훨씬 더 많은데, 그 많은 할머니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어느 분께 물어보니, 할머니들은 오라는 데가 많지만 할아버지는 갈 데가 없어서 거기로 출퇴근한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아들집이 싫으면 딸집에 가서 집안일도 거들고 애들도 봐 줄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쩌다 세상이 “불쌍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로다.”로 바뀌었는가. 남자와 여자가 상대적인 것처럼, 노년과 상대적인 것이 유년이다. 근대 이후에는 점점 전자에서 후자로 사회적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전통시대 가부장적인 유교는 연장자 중심의 위계질서로 사회를 구성했다. 내가 어렸을 적 온 식구가 밥상에 앉았을 때 할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드셔야 식사가 시작되고 좋은 반찬은 그분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 집안 내에서 할아버지와 자식 가운데 누가 더 귀한 대접을 받는가. 사회가 점점 노령화돼 갈수록 노인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운명이다. 원시시대 원로의 죽음은 공동체의 도서관이 없어지는 상실이지만, 지식정보사회에서 노인은 점점 무용지물이 되어 간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노인이 된다는 걸 각성한다면, 인류는 ‘사회를 위한 노인’이 아니라 ‘노인을 위한 사회’로 문명사적인 전환을 해야 한다. ‘이솝 우화’는 인간에게 노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든다. 태초에 신은 인간과 동물에게 똑같이 30년의 수명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나귀는 그중 18년, 개는 12년, 원숭이는 10년을 없애달라고 신에게 간청했다. 그러자 인간은 그 동물로부터 거둬들인 시간을 자신에게 달라고 해서 70년의 수명을 얻었다. 하지만 인간이 덤으로 얻은 40년은 고통과 노쇠의 시간이었다. 30년을 산 인간은 18년 동안 당나귀처럼 일해야 하고, 12년은 개처럼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마지막 10년은 정신이 혼미해서 원숭이처럼 조롱을 당하며 살아야 했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은 인간 수명을 거의 100세까지 연장시켜 나가고 있다. 이렇게 연장된 인간의 수명은 결국 다시 자연 속의 누군가의 삶을 약탈한 것이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인간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가. 이제 인류에게 필요한 건 오래 살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지혜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지식을 많이 가진 자는 젊은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노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원로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지식이 낳은 갈등을 화해시킬 수 있는 건 지혜이기 때문이다.
  • 中 ‘대장금 약탈’

    中 ‘대장금 약탈’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복을 입은 여자가 나와서 걸어가더라고요. 미국 학생들이 ‘원더풀!’ 이러면서 박수를 치는데, 다들 한복과 아리랑을 중국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대장금 주제곡 ‘오나라’까지 中문화? 미국 볼티모어에서 유학 중인 학생들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주미 중국대사관이 중국 문화를 알린다며 존스홉킨스대 강당에서 개최한 공연에서 한복, 부채춤, 아리랑 등 한국 전통문화는 물론 대장금의 주제곡 ‘오나라’까지 자연스럽게 중국 문화로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2일 존스홉킨스대 유학생들에 따르면 주미 중국대사관과 중국문화원은 지난달 중순부터 존스홉킨스대에 재학 중인 전 학생들에게 중국 문화를 소개하는 ‘다채로운 중국(Colorful China)’이라는 공연 소식을 이메일로 알렸다. 이 과정에서 한국 학생들은 공연 포스터에 조선시대 기녀 차림의 한복을 입은 여성이 제일 먼저 등장한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부제의 이 공연 소개 책자에는 “한민족의 문화는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로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발전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존스홉킨스대의 한 한인학생은 “학생들 중 일부가 한국 전통문화가 중국 것으로 둔갑할까 봐 행사장을 직접 찾았는데, 실제로 우려했던 일이 공연장에서 벌어졌다.”고 전했다. 공연에서는 역대 중국 왕조의 전통 의상을 소개하는 순서에 이어 소수민족의 의상이 잇따라 등장했다. 특히 가야금으로 아리랑을 연주하는 가운데 다양한 종류의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무대에 올랐고, 심지어 인기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 ‘오나라’도 마치 중국 소수민족 음악처럼 별다른 설명 없이 사용됐다. 기녀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부채춤을 추는 순서도 있었다. 무료로 진행된 이 공연에는 온·오프라인 홍보 효과로 1000여명에 가까운 현지인들이 강당을 가득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음식도 무료로 제공됐다. 공연에 참석한 한 한국 유학생은 “공연을 관람한 미국인들이 한국 전통문화를 중국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일부 학생들은 한복 사진을 찍어 가 자신의 홈페이지 등에 ‘아름다운 중국 옷과 음악’이라는 식으로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공연은 지난해 프랑스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대사관 측은 이 공연을 향후 메릴랜드 주를 비롯해 미국 각지를 순회하며 계속할 계획이다. ●존스홉킨스대 한 인 유학생 머리 맞대 존스홉킨스대 한인 유학생들은 현재 공연 주최 측에 ‘조선족 문화’와 ‘한국 문화’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요구하자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또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공연 장면을 편집해 문제를 제기하는 자막과 함께 손수제작물(UCC) 사이트 ‘유튜브’에 올렸으며, 향후 영어판도 제작할 방침이다. 나 연구원은 “한식 등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인식이 심어지고 있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부 당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외규장각 도서 G20 맞춰 돌아올 수도

    정부는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를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돌려받는 것을 목표로 프랑스 정부와 집중 협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프랑스 정부가 반환에 상당한 의지를 갖고 있어 현지에서 집중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G20 때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방한하는 만큼 그때가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 단기적 목표는 G20 때 돌려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 당국자들은 G20 때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기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김 장관의 발언이 양국 간 협상이 급진전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인지 주목된다. ‘대여(영구 또는 한시)’와 ‘완전반환’ 형식 중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날지도 관심거리다. 김 장관은 일본의 조선왕실의궤 반환과 관련 “일본과 실무 과장급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시한이 연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일본도 상당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 최근 일부에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입장 변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북한의 유엔총회 기조연설과 그 이후 언급을 종합해 보면 북한의 기본 입장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말이 아닌 행동을 분명히 보여 줌으로써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면서 “정부는 천안함 사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지속적으로 촉구해 나갈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G20 이후 대화 국면 전환 가능성에 대해서는 “6자회담은 열리면 바로 진전이 있어야 하며, 진전을 전제로 한 여건 조성이 중요하다.”면서 “그 문제는 정부 혼자 결정할 게 아니며, 하노이의 ‘아세안(ASEAN)+3’ 정상회의에서 좀 더 깊숙한 토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에콰도르 軍·警 유혈폭동… 비상사태 선포

    에콰도르 軍·警 유혈폭동… 비상사태 선포

    남미 적도에 위치한 에콰도르의 국민들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하루 비상사태 속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숨막히는 시간을 보냈다. 이날 경찰의 폭력 시위가 대통령 억류로 이어지면서 정변 양상을 보였다. 이어 ‘반란 경찰’들과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의 충돌 속에 군대가 저녁무렵 대통령을 구출해 내면서 사태가 진압국면에 들었지만 유혈 ‘반란’ 후유증은 가시지 않고 있다. 폭력시위로 치안이 불안해진 틈을 타 수도 키도 및 일부 도시에서는 약탈이 자행됐다. 에콰도르 적십자는 충돌과정에서 2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AP는 보너스 등 경찰의 복지혜택을 줄이는 법의 통과가 사태의 발단이 됐다고 전했다. 불만을 품은 경찰과 일부 군 병력은 한때 키토 국제공항과 의사당, 정부 청사 및 주요 도로들을 점거했다. 라파엘 코레아(47) 대통령은 이들을 제지하러 현장에 나섰다가 흥분한 경찰관들에게 둘러싸여 물병과 최루가스 세례를 받는 봉변을 당했다. 코레아 대통령은 키토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경찰관들에게 억류됐다. 이어 정부군이 경찰병원에 진입해 총격전을 벌인 끝에 대통령을 구출해냈다. 사태는 하비에 폰스 국방장관 등 군 지휘부가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밝히면서 수습 국면으로 바뀌었다. 구출된 뒤 대통령궁에 도착한 코레아 대통령은 발코니에 나와 소요 와중에서 지지해준 국내 지지자들과 남미 정상들을 향해 감사를 표시했다. 코레아 대통령은 “시위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을 살해하려 했으며 이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강경 입장을 밝혔다. 이어 “아무도 용서하지 않고 잊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루시오 구티에레스가 이끄는 애국사회당(PSP)을 배후세력으로 지명, 비난했다. 중남미 자원부국인 에콰도르는 지난 10년 동안 10명의 대통령이 바뀌고 그 가운데 3명은 대규모 시위로 물러나는 등 정치혼란을 겪어왔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좌파성향의 경제학자 코레아 대통령은 2006년 친미후보를 누르고 집권하면서 비교적 안정을 유지해 왔다. 한편 경찰이 중심이 된 이번 사태는 우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음모가 배후에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트위터에 “그들이 코레아 대통령을 몰아내려 한다.”는 글을 올렸다. 마리아 이사벨 살바도르 미주기구(OAS) 주재 에콰도르 대사도 군계통의 반대파 및 그들의 연계세력이 이번 사태에 개입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인류의 비극 부른 생태적 몰락

    이스터 섬. 남아메리카 연안으로부터 3500㎞ 떨어진 태평양에 위치한 곳이다. 거대 석상 모아이로 유명하다. 900년 즈음부터 폴리네시아인들이 살았고, 500년 정도 번성했다. 그런데 18세기 토머스 쿡 선장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숲은 완전히 사라지고 사람도 거의 없었다. 거대한 석상들만이 남아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자원을 놓고 치열한 다툼이 있었을 것으로 후대 사람들은 추측했다. 한때 번성했던 이스터 섬의 문화는 카니발리즘까지 포함한 주민들끼리의 약탈과 전쟁으로 그렇게 막을 내렸다. 생태적 몰락이 문화 파멸로 이어진 사례다. 다르푸르. 아프리카 수단의 서부 지역이다. 2003년 아프리카계 농부들로 이뤄진 반군과 북쪽 아랍계 기마 민병대 간의 무력 분쟁이 시작됐다. 학살과 강간, 약탈과 방화가 난무했다. 유엔은 현재까지 적어도 40만명이 숨지고 250만명이 난민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단순하게 인종 갈등이 그 원인이었을까. 독일의 대표적인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는 ‘기후 전쟁’(윤종석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에서 다르푸르의 비극은 기후 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많은 지역이 가물었다. 강우량이 3분의1로 줄었다. 대가뭄이 발생했다. 사막화가 일어났다. 숲은 황폐화 됐다. 목초지가 사라진 북쪽 아랍계의 가축들로부터 들판을 지키기 위해 아프리카계 농부들은 길을 막았다. 목초길을 점령하기 위한 전투가 벌어졌다. 비극의 근본적인 출발점이었다. 기후 변화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비단 다르푸르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바짝 마른 원시림이 화재로 전소되고, 최악의 가뭄으로 수천명이 굶주린다. 어떤 곳에서는 최악의 홍수가, 또 다른 곳에서는 최악의 한파가 덮친다. 사회적 후퇴를 일으킬 수 있는 생태적 몰락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생존 공간의 변화, 체제 변환 혹은 다른 국가들의 자원 확보 필요성 등 때문에 사회가 불안정한 상태로 빠져들면, 폭력적인 형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개연성도 불가피하게 증가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후 전쟁은 현재와 미래에 나타날 폭력의 맥락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기후 재앙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인 서유럽이나 북미의 선진국들은 이런 변화를 가장 미미하게 겪고 있고, 오히려 재난 관리 능력이 취약하고 대처 능력이 없는 가난한 나라들이 가장 심한 고통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가난한 나라들은 이미 기후 전쟁을 겪고 있다. 그로 인한 환경 난민 규모는 현재 2억 5000만명을 넘는다. 2050년 즈음이면 25억명으로 예상된다. 그때가 되면 선진국들까지 영향을 받을 게 자명하다. 기후 전쟁은 인류 공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1만 7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객원칼럼] 다시 생각해보는 추석과 차례(茶禮)문화/박명재 CHA의과학대 총장·전 행정자치부 장관

    [객원칼럼] 다시 생각해보는 추석과 차례(茶禮)문화/박명재 CHA의과학대 총장·전 행정자치부 장관

    우리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이 다가왔다. 추석의 가장 큰 뜻은 가을의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와 함께 무엇보다 돌아가신 조상의 묘를 찾고 차례(茶禮)를 올리는 일이다. 조상에 대한 차례는 불교를 국교로 한 고려시대에는 없었다가 고려 말기 주자학이 들어오면서 제사가 시작되었다 한다. 원시 불교의 기본사상은 윤회사상으로 조상이 죽으면 곧바로 다른 대체물로 환생하므로 제사할 대상, 즉 혼령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조에 유교가 국교화되면서 차례가 조상숭배의 최고의 의식이 되었고, 차례를 모시는 절차와 방법·내용이 주자학의 주된 관심사고 논쟁거리였으며, 여기서 예학(禮學)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었다. 특히 나라에서는 유교의 비조인 공자의 위패와 그 제자 그리고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유교적 학문과 학덕이 가장 뛰어난 유학자 열여덟 분(소위 동방 18현 또는 동국 18현)의 위패를 함께 모신 문묘(文廟)에서 임금이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석전대제(釋奠大祭)를 올리게 되었다. 유교의 조상차례에 대한 기본사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람은 죽어 육체는 소멸하지만 그 영혼은 살아 존재하기 때문에 제사를 효의 연장선상으로 보아 제사를 잘 모시는 것이 효도와 동일시되어 미풍양속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둘째, 죽은 조상을 잘 모시고 섬기는 것은 자손이 복을 받게 된다는 음덕사상과 기복사상이 그 근저에 자리잡고 있어 산 사람 이상으로 조상제사에 치중하게 되었다. 셋째, 조상의 영혼이 살아 있다고 믿는 이상 때에 맞추어 식찬을 갖추어 차례를 올리는 것은 사자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식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기독교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인간사회의 최고의 덕목과 계명으로 강조하면서도 조상에 대한 제사는 우상숭배의 한 형태로 여겨 이를 금지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죽어 천국에 이르러 내세를 이어가기 때문에 죽은 영혼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오직 추도 예배의 형식을 허용할 뿐이라는 게 그 기본사상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죽은 조상을 숭배하고 제사를 중시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 강해수(姜海壽)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런데 그 선비의 계모와 계모 소생의 아우 그리고 그의 아들이 청군에 인질로 잡혀가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청군이 철군하면서 약탈과 폭행은 물론 국왕의 장남, 차남, 대신과 그 부인들 200여명을 포함한 무려 50만명에 달하는 양민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한다. 그런데 포로로 끌고 간 사람들을 심양에 노예시장을 열어 매매하였으며, 조선에서는 피랍가족을 속환(贖還)하기 위하여 가산을 팔아 주로 잎담배를 마련, 이 경매시장에 참가하였다 한다. 강해수는 세 사람을 속환하기 위하여 세 사람 분의 잎담배를 사가지고 심양 시장을 찾아갔으나 담뱃값이 폭락하여 두 사람분밖에 되지 않았다. 여기서 강해수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미 계모는 사망하였는데 청인들은 조선인들이 죽은 부모의 신주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죽은 사람의 신주를 산 사람과 똑같은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결국 강해수는 맨 먼저 죽은 계모의 신주를 선택하고 두 번째로 이복동생을 선택하고 끝내 그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물론 조정에서는 돌아온 이 강해수를 효의 표본으로 삼고 가문에 정문을 지어주기까지 하였다. 이렇듯 뿌리 깊은 조상 숭배 내지 조상에 대한 제사의식은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극진하다 하겠다. ‘신주단지 모시는 듯하다.’는 표현이 이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죽은 부모와 조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숭배보다는 살아계시는 부모에 대한 진실한 섬김과 공경이 몇 배 더 값어치 있는 일이라는 깨달음일 것이다. 추석날 민족의 대이동이 죽은 조상의 차례에 대한 집착보다는 살아계시는 부모님에 대한 더 큰 효도를 향한 발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 이라크, 약탈문화재 환수

    이라크, 약탈문화재 환수

    이라크 정부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전국의 박물관과 유적지들에서 사라졌던 문화재 542점을 돌려받았다고 7일(현지시간) 밝혔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에 돌아온 문화재는 약 4400년 전에 만들어진 수메르 왕조의 에테메냐 왕 동상과 아시리아 왕조의 황금 귀걸이 등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유물들로, 대부분 이라크 국립박물관에서 도난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갖고 있던, 크롬을 입힌 AK-47 소총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후세인의 초상이 새겨져 있는 이 소총은 미국의 한 병사가 기념물로 가져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환수품 대부분은 미국, 시리아, 독일, 터키 등에 퍼져 있었다. 사미르 알 수마이디 미 워싱턴 주재 이라크 대사는 “오늘은 매우 기쁜 날이다. 이라크의 역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있어서 큰 진전을 맞고 있다.”고 환영했다. 앞서 이라크는 지난 4월 해외 약탈 문화재 반환을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해 미국 등 이라크전 주요 참전국들에 문화재를 돌려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 회의에는 한국도 참석해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가 빼앗아 간 외규장각도서와 1910년 한·일 강제병합 때 일본으로 반출된 조선왕실의궤를 반환할 것을 프랑스와 일본 측에 요청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일제강점기 통감·총독 면면을 읽다

    일제강점기 통감·총독 면면을 읽다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는 것은 여러 각도에서 가능하다. 짐승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일본군 위안부의 치욕을 견뎌왔던 할머니들의 생생한 육성을 듣고 삶의 존엄과 일제의 야만성에 새삼 가슴 저려올 수 있다. 아니면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 혹은 이광수의 매국적인 행위를 다시 접하며 공분을 키울 수도 있다. 또는 조선의 청년을 일제의 야만적인 전쟁터의 부속품으로 내모는 시를 쓰며 자신의 천재적 문재(文才)를 악용했던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 혹은 서정주를 돌이키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물론 그리 거창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몇 남지 않았을 장삼이사 평범한 어르신들이라도 당시 일제의 지긋지긋함을 증명할 구체적인 유·소년의 사례 몇 가지씩은 충분히 갖고 있다. 친일문제 연구에 천착해온 서울신문 기자 출신의 재야사학자 정일성(68)씨는 약간 다른 곳에서 일제 강점기의 기억을 돌이킨다. 그는 최근 펴낸 ‘인물로 본 일제 조선지배 40년’(지식산업사 펴냄)에서 당시 식민지 조선 지배의 최일선을 진두지휘했던 일본 제국주의 인물들, 즉 통감과 총독의 면면과 구체적인 행적을 똑똑히 살피고 기록함으로써 일제 식민지배의 야만성과 폭압성, 조선의 백성들이 겪었던 고통의 실체에 접근해 간다. 그는 1910년 이전,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1905년 을사늑약을 실질적인 강점기의 시작으로 본다. 그는 초대 통감이던 이토 히로부미와 그를 이은 두 번째 통감 소네 아라스케를 제외하고 총독을 지낸 8명은 모두 육군, 또는 해군 대장 출신들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조선 지배의 야만성과 폭력성의 또다른 이유라고 분석한다. 지난 2일 정씨를 만났다. 그는 “도대체 일제 시대 통감· 총독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고, 무슨 일을 했는지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 이러한 인물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총독의 얼굴이 모두 군인이었던 만큼 식민통치가 더욱 강경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강점기의 역사를 학문적이기보다는 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접근했다고 덧붙였다. 책은 강제 징용, 창씨개명, 강제 동원, 문화재 약탈, 무참한 학살 등을 어느 시대에, 누가 했는지를 여러 실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실사구시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또한 적극적인 부역자로서 친일파 관료들의 규모와 내용 또한 여러 자료로 뒷받침하고 있다. 초대 통감이자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그랜드 비전’의 틀을 만든 이토 히로부미를 시작으로, 문화재 약탈을 자행한 2대 통감 소네 아라스케, 강제 병합의 주역인 통감으로 초대 총독까지 겸한 데라우치 마사타케, 3·1만세운동을 학살의 장으로 삼은 하세가와 요시미치(2대 총독), 기만적인 문화통치를 펼친 사이토 마코토(3, 5대 총독) 등 10명의 통감· 총독이 일본에서 갖는 정치적 위상과 성장 배경, 개인적 특징 등을 면밀히 조사해 기록했다. 정씨는 특히 제7대 총독이었던 미나미 지로를 ‘조선의 히틀러’라고 불렀다. “모국어를 빼앗아 정신을 말살하려 했으며, 창씨개명을 주도해 민족의 뿌리까지 빼앗으려 했던 가장 악질적인 총독이었다.”고 말했다. 이력을 다시 들여다 보니 그는 30년 가깝게 서울신문사 기자 생활을 했다. 1985년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메이지유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며 관심의 싹을 틔웠다. 그리고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 성과를 쏟아냈다. ‘황국사관의 실체’, ‘후쿠자와 유키치-탈아론을 어떻게 펼쳤는가’, ‘이토 히로부미-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등 ‘인물로 본’까지 포함해 평균 2년에 한 권 꼴로 저서를 냈다. 책 뒤쪽에 일제의 한국 병탄 조약문들을 모아놓았다. 외교권과 사법권을 박탈해가는 일한협약, 한국병합 조약 등을 따라 읽노라면 100년 전 역사 속 우리의 무력함과 치욕감, 그들의 야만적인 폭압에 저절로 얼굴이 붉어진다. 또한 두 번째 부록으로 통감·총독 시절에 도지사를 맡았던 인물들의 실명이 총독(통감) 임기와 맞물려서 나열된다. 당대의 적극적 친일부역자들의 대표쯤이 되겠다. 객관적 사실의 힘은 그 자체로 절대적이고 감정을 뒤흔든다. 2만 3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시론]다문화소통 가능성 보인 ‘다문화꾸러미’/김인회 연세대 명예교수·혜곡최순우기념관장

    [시론]다문화소통 가능성 보인 ‘다문화꾸러미’/김인회 연세대 명예교수·혜곡최순우기념관장

    근대 이후 대부분의 박물관은 유형 문화유산의 수집 보존과 전시업무를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의 명성과 가치는 소장유물의 양과 내용으로 판가름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몇몇 국가의 대표적 박물관은 ‘약탈유물전시관’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기왕에 수집한 유물들에 집착한다. 나와 남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지배하는 국가역량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국민의 마음이 살아 있는 한 박물관들의 유물수집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에 없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째는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박물관을 찾는 젊은 부모세대 인구가 급작스럽다고 할 정도로 많아진 것이고, 둘째는 박물관 이용자의 유물을 접하는 자세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다. 진품 문화유산 앞에서 피동적으로 압도당하거나 감동하거나 경건한 자세를 갖고 감탄하는 옛날의 박물관 모범생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너도나도 문화유산과 어떤 식으로건 접촉해 보고 싶어 안달하는 능동적 태도를 감추려들지 않는 자유분방한 인구가 많아진 것이다.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21세기 나름의 새로운 문화욕구의 발로라고 할 법한 현상이다. 문화유산을 통한 소통과 체험의 욕구이다. 지금 자라나는 어린아이들 세대의 문화욕구인 것이다. 싸우고 경쟁하고, 비교하고 지배하는 것만을 제일로 알던 20세기형 인간들의 문화욕망이 아니라 소통하고 체험하며, 사귀고 즐기면서 공존하려는 21세기 다문화시대 인간들의 새로운 문화욕구가 지금 박물관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한국의 박물관이 이렇듯 관람객의 새로운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만족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데 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도 국내거주 외국인 인구가 100만명이 넘는 다문화사회에 진입했다. 세계 10위권의 무역거래 규모만 보더라도 더 이상 ‘우리끼리’만을 되뇌는 따위의 배타적 자민족중심주의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실제로 단군신화와 주몽신화를 비롯한 우리의 국조신화나 심청전, 토끼전 같은 민담 설화를 보아도 우리의 문화적 전통은 원래가 다문화 친화적 토대 위에서 생명력을 발휘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다문화사회 초기에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야 했을 우리 박물관, 특히 국책 박물관들이 분위기를 주도하지 못한 채 문제의식을 갖는 데 그쳤을 뿐 소극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31일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에서는 관람객의 새로운 문화욕구를 풀어주면서 다문화 갈등이라는 우리 사회의 현안을 동시에 해결하고자 하는 놀랍고 즐거운 행사가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 박물관 100년 역사상 처음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재미와 의미를 겸한 참신하고 창의적인 기획이 돋보인 자리였다. 어린이들이 여러 이웃나라들의 문화를 보고, 듣고, 만지면서 느끼고 놀 수 있는 체험 자료를 담아 ‘다문화꾸러미’라고 이름 붙인 상자를 처음 열어 보이면서 설명하는 이날의 축하행사에서는 몽골과 베트남 두 나라의 문화꾸러미가 열렸다. 금년을 시작으로 어린이박물관은 해마다 다른 이웃나라의 문화꾸러미를 만들어 갈 모양이다. 어린이박물관 학예사들이 몽골과 베트남 현지에 가서 직접 수집해 온 꾸러미의 내용물은 결코 값비싸고 희귀한, 이른바 보물에 속하는 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만지고, 입고, 쓰고, 듣고, 냄새를 맡아가며 놀면서 자라나는 오늘의 우리아이들은 어른세대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다문화시대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날 행사에 참가했던 몽골대사의 덕담처럼 앞으로 수십, 수백 개의 마술상자와도 같은 다문화꾸러미가 나타날 것이 기대된다.
  • ‘高물가’ 모잠비크 유혈사태

    남부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수도 마푸토에서 1일 물가 상승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충돌, 적어도 6명이 사망하는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AP 등 외신에 따르면 시위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시민 수천명이 거리를 점거한 채 타이어에 불을 지르고 차량에 돌을 던지는 등 소요 사태의 양상으로 번졌다. 또 상점들도 일부 약탈을 당했다. 경찰은 과격해진 시위대를 향해 공포탄과 고무탄을 쏘며 강제 해산을 시도하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실탄까지 발사, 사상자가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TV는 학교에서 귀가하던 6살 소녀 등 어린이 2명을 포함, 모두 6명이 총에 맞아 숨지고, 16명이 총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마발라네 국제공항 인근에서 시위 때문에 일부 항공편이 취소되기도 했다. 모잠비크에서는 가뭄 여파로 최근 빵값이 25%나 상승한 것을 비롯 식료품이 크게 오른 데다 전기와 수도 등 공공요금이 두자릿수 단위로 인상되면서 국민 불만이 고조돼 왔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경술국치 100년] ‘과거 100년’ 학계 돌아보다

    [경술국치 100년] ‘과거 100년’ 학계 돌아보다

    학계가 요즘 씨름하고 있는 주제도 경술국치 100년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애국지사 현창(顯彰) 어떻게 할 것인가-역사의 경험에서 배운다’라는 제목의 학술대회를 연 데 이어 한국역사연구회(‘강제병합 100년에 되돌아보는 일본의 한국침략과 식민통치 체제의 수립’), 한국근현대사학회(‘20세기 한국·한국인의 역사와 기억의 변용’), 동북아역사재단(‘1910년 한국강제병합, 그 역사와 과제’) 등도 잇따라 세미나를 열었다. 학술지들도 가세하고 나섰다. ‘역사비평’ 가을호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승렬(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연세대 연구교수의 글을 실었다. 이 교수는 일본의 유명 역사소설가인 시바 료타로가 ‘언덕 위의 구름’에서 침략자인 ‘메이지 일본’을 순진무구한 소년의 이미지로 포장하는 모습을 지적한 뒤 “올바른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해서는 성장에서 공공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 명예교수도 100년 전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로 편입됨)론을 주장한 일본이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동아시아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반년간지 ‘한국사 시민강좌’는 독립운동가 12명을 다뤘다. 한글학계의 거두로 상해임시정부에도 몸담았으나 광복 뒤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의장을 지냈다가 연안파 숙청 때 제거돼 남북 양쪽에서 모두 지워진 김두봉, 광복군 부사령관을 지냈으나 월북해 남한에서는 잊혀진 김원봉 등도 포함시켰다. “이들에게 이념이란 광복을 위한 것이었을 뿐인데, 후대 사람들이 이념의 잣대로 폄하하고 있다.”는 주장이 이채롭다. 계간지 황해문화에 실린 ‘식민지 100년:제국·식민의 기억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가?’ 특집도 눈에 띈다. 뉴라이트 진영이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편집진이 내세웠던 ‘탈근대론’(좁은 의미의 근대비판주의)이 실은 친일옹호론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대목이 특히 시선을 붙잡는다. 우선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연된 정의-두 개의 보고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의 기둥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수탈을 약탈로 제한한 뒤 식민지 수탈을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을 비난하고 있다.”고. 이 교수는 일본이 돈 한 푼 안 주고 조선의 물건을 빼앗아간 것은 아니니 수탈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요즘 대통령까지 나서 비판하는 것이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다. 이영훈식 논리에 따르면 대기업 역시 돈을 아예 안 준 것은 아니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일파 윤치호를 옹호한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에 대해서도 따끔한 질문을 던진다. “한 인간이 택한 정치적 행위가 옳은가 그른가라는 실천적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음에도 굳이 친일행위에 대해서만은 판단을 유보하자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김 연구원은 “행위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있는데 이를 (박 교수 주장처럼) 구조의 문제로 돌리면 우리는 역사와 사회 앞에서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꼬집었다. 탈근대론은 식민주의에 대한 치열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근대 자체가 식민주의를 잉태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 다시 말해 근본적인 책임을 묻는 작업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탈근대론이 책임회피론으로 이용되는 것일까. 하정일 원광대 국문과 교수의 ‘탈근대주의의 과잉 식민성 혹은 신실증주의’란 글에 해답이 숨어 있다. 하 교수는 탈근대론을 일종의 ‘신실증주의’라 부른다. 그는 “탈근대론자들의 신실증주의는 판단 중지 상태에서의 해석을 특징으로 한다.”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비평적 행위는 쓸모없는 일이고 남는 건 해석뿐”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판단을 중지하는 이유는 일제 치하 등과 같은 비상상황이기 때문이다. 탈근대론이라는 서구 최신 모델을 들여와 그럴듯하게 치장했지만 한풀 벗기고 나면 ‘식민 시절엔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그럼 그 시절에 일본에 세금 낸 사람은 모두 친일파란 얘기냐.’라는 식의 어거지로 흐르는 이유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막가는’ 멕시코 마약조직 美 밀입국 72명 집단살해

    ‘막가는’ 멕시코 마약조직 美 밀입국 72명 집단살해

    2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의 국경지역인 멕시코 산페르난도시 근처 목장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시신 72구는 멕시코 마약밀매조직 카르텔이 집단 살해한 불법 이민자들로 확인됐다. 멕시코 정부가 대대적으로 벌여온 ‘마약과의 전쟁’이 실패하면서 멕시코 전역에서 마약 조직의 횡포가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등 외신들은 26일 “마약 밀매를 주요 소득원으로 삼던 멕시코 마약 조직들이 밀입국자들의 쌈짓돈까지 뜯어내기 시작했다.”면서 “지금껏 거리 상인, 성직자 등을 상대로 무차별 갈취 행각을 벌여온 마약조직에게 불법이민자 약탈이 새로운 수입원으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멕시코에서 마약 조직에 의한 집단 살인사건은 최근 간헐적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이번에 희생된 남성 58명과 여성 14명은 모두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브라질 등을 떠나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했던 민간인들이라는 사실에 멕시코 정부가 한층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마약 조직은 불법 이민자들을 납치한 뒤 금품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마구 총을 쐈다. BBC는 “미국 밀입국자들은 브로커에게 줄 돈과 함께 정착에 필요한 목돈을 갖고 있어 마약 카르텔의 표적이 된다.”고 분석했다. 실제 마약 조직들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밀입국자들의 약점을 철저하게 악용하고 있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정부 당국은 이민자들의 피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멕시코 정부가 지난 4년여 동안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엉뚱하게 불똥이 튄 쪽은 이웃 국가들이다. 로이터통신은 “멕시코 정부가 군경 병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남쪽 이웃 국가들로 활동 거점을 옮겨 세력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마약 조직들이 안데스 일대에서 생산된 마약의 수송코스로 활용하던 중미 지역을 최근에는 무기와 마약을 숨겨놓을 아지트로 삼고 있다. 멕시코 마약 조직들이 중미의 토지를 대거 사들이고 있는 것도 같은 배경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파키스탄 대통령 기죽인 ‘기부의 여왕’ 졸리

    파키스탄 대통령 기죽인 ‘기부의 여왕’ 졸리

    세계적인 스타인 안젤리나 졸리가 수해로 고통받는 파키스탄에 1억원이 넘는 기부를 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인 졸리가 수재의연금으로 낸 돈은 10만 달러. 우리돈으로 1억 2000만원 가량 되는 거액이다. 특히 졸리의 기부액수는 아사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이 자국민을 위해 내놓은 기부금의 2배에 달하는 규모로 알려져 그녀의 ‘큰 손’을 실감케 하고 있다. 80년 만의 대홍수로 4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한 파키스탄에서 약탈과 총격전이 끊이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한 그녀는 피트와 상의해 기부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졸리는 “현재 파키스탄에 현금 지원이 부족한 것에 매우 염려를 느낀다.”면서 “파키스탄 외에도 언론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어려운 나라들을 또 찾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르다리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우리는 안젤리나 졸리의 기부에 매우 감사하고 있지만, 기부금은 레이스 경기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안젤리나 졸리의 기부가 화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설립한 ‘졸리-피트’ 기부 재단을 (Education Partnership For Children of Conflict)을 통해 지난 1월에도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티에 1억 원을 기부하는 선행을 베풀었다. 또 전쟁과 내전으로 고통을 겪는 아프가니스탄에는 학교를 짓는 등 수 년 동안 기부활동을 쉬지 않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콩고반군, 한마을 여성 180명 ‘집단강간’ 대참극

    ‘세계에서 가장 빈번하게 성폭행이 일어나는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여성 수백 명과 소년들이 집단적인 강간을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지난달 말부터 4일 간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루분기 마을을 장악한 반군 세력이 여성과 소년들을 상대로 집단적인 성폭행을 자행했다. 이 지역 광물자원을 둘러싼 이권을 두고 정부군과 전투를 벌여온 반군 200~400명은 이 마을을 습격하고 약탈과 조직적인 성폭행을 벌였다. 현재 현지 의료봉사단에 보고된 강간 피해자의 숫자만 여성이 180여 명이며, 소년 4명도 포함돼 있다. 이 마을이 콩고공화국 유엔평화유지군 기지에서 반경 16km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유엔 측은 즉각 조사팀을 파견해 피해 정도와 사건을 확인하는 중이며 미국 정부는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벌어진 반인권적 집단 강간 사태에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에서 5년 간 벌어진 엄청난 규모의 종족 간 인종청소는 2003년 공식적으로 끝났으나 여전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유엔 콩고임무단(MONUC)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여성 8000명 이상이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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