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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 & 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 & 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영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대표작 ‘가지 않은 길’에서 갈림길 앞에 선 한 사람의 선택이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노래했다. 인터넷이 일상화된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갈림길 앞에 선다. 묻기만 하면 수백만개의 답을 늘어놓는 인터넷. 정제된 ‘지식의 바다’였으면 좋겠는데 ‘자료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그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말해 주지 않고, 우리는 어떤 검색결과를 선택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때론 엉뚱한 결과와 지식을 가져다 준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순서에서는 이런 네티즌의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Google)의 검색창에 넌지시 그의 고향인 ‘실리콘밸리’를 치고 엔터키를 눌렀다. 실리콘밸리를 소개하는 무수한 글 중에 등장하는 새로운 궁금증을 재차 구글에 묻고 물었다. 1시간가량 검색과 검색결과에 대한 선택, 검색을 반복하자 미국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17세기 유럽 귀족의 유행과 교육법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 와중에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인물들도 등장했다. ‘아이비리그’(동부에 있는 8개 명문 사립대학의 통칭)에 버금가는 서부의 명문대 스탠퍼드는 어떻게 실리콘밸리의 탄생에 기여했으며 19세기 미국 서부를 달궜던 ‘골드러시’(금광이 발견된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든 현상)는 오늘날 ‘옐로 저널리즘’(선정주의 언론)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들을 가르치기 위한 광산 재벌의 유럽여행은 어떻게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노벨 물리학상 수상으로 이어졌을까. 또 경제학의 기본원리로 꼽히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왜 여기에 등장한 것일까. 구글 검색창이 말하는 스스로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방대했다. 다만 검색에 검색을 더한 결과이자 더 이상 묻지 않으면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결과였다. 수많은 검색 결과 중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면 전혀 다른 인물과 사건의 등장으로 이어졌으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구글 검색창은 제자의 대답에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져 결국 ‘진리’에 이르고자 했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 인터넷의 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검색의 순서에 충실한 덕분에 기사는 역사를 거꾸로 올라간다. ☞실리콘밸리 트랜지스터를 발명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스탠퍼드대 교수 윌리엄 쇼클리. 그는 1956년 당시 스탠퍼드대 공대 학장이던 프레드릭 터먼의 제안을 받는다. 부지와 학생을 제공할 테니 ‘쇼클리 트랜지스터 연구소’를 만들어 보라는 것. 파격적인 조건을 받아들여 설립된 연구소는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반도체 연구소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쇼클리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각자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나 둘씩 팔로알토 부근에 창업을 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65개의 정보기술(IT) 회사들이 만들어졌다. 당시 연구원 중에는 1968년 인텔(현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을 창업한 로버트 노이스도 있었다. 터먼 학장은 쇼클리 연구소와 함께 이스트만코닥,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을 유치했고, 과수원 마을에 불과했던 팔로알토는 이후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IT 혁명의 중심지가 되어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프레드릭 터먼 19세기 말 이후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미 서부의 명문으로 떠오른 스탠퍼드대의 고민은 ‘두뇌 유출’이었다. 당시 스탠퍼드대가 자리 잡고 있던 캘리포니아의 주 산업은 광업과 농업이었다. 고급교육을 받은 스탠퍼드대 졸업생은 다들 대기업들의 거점인 동부로 떠났다. 터먼 학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스탠퍼드대 교수들과 졸업생들에게 모교 캠퍼스 안에 회사를 창업하도록 독려했다. 그 결과 팔로알토는 빠르게 산학연구단지로 변모했다. 오늘날 ‘벤처’의 모태다. 초기 설립된 회사 중에 터먼의 제자 윌리엄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1939년 창업한 ‘휼렛패커드’가 있었다. 터먼은 나중에 휼렛패커드의 이사를 지냈다. ☞스탠퍼드 조지 허스트, 헨리 헌팅턴, 릴런드 스탠퍼드 등은 골드러시에 편승해 대륙횡단 철도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1862년 38세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 스탠퍼드는 26세에 결혼했지만 44세(1868년)에야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16세가 됐을 때 온 가족이 유럽으로 ‘그랜드 투어’를 떠나는데, 여행 도중 아들이 갑자기 장티푸스로 죽고 만다. 스탠퍼드 부부는 당대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에 아들을 기리는 건물을 짓기 위해 보스턴을 찾았다. 그러나 총장과 면담을 하다 뜻밖에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재산이면 하버드에 버금가는 대학을 설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부부는 1891년 팔로알토에 ‘릴런드 스탠퍼드 주니어대학’이라는 이름의 대학을 설립했다. 사람들은 줄여서 ‘스탠퍼드대’라고 불렀다. 아들을 기리기 위한 부부의 유지는 ‘캘리포니아의 모든 어린이는 우리의 아들’이었다. 그런 까닭에 개교 초창기에는 모든 학생의 학비가 면제됐다. 스탠퍼드의 첫 입학생 중에는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되는 당시 17세의 허버트 후버가 있었다. 그는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최고의 인기 직업이었던 광부가 되기 위해 지질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골드러시 1800년대 중반 미 서부는 금광을 찾기 위한 골드러시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선택받은 자들만 영광을 누렸다. 이들은 자신의 뿌리인 영국의 귀족 같은 생활을 누리길 원했으며 저택과 자녀교육 등에 ‘신 귀족문화’를 도입했다. 1820년생인 조지 허스트는 이런 ‘골드러시’의 일원이었고 40세가 넘어 은광을 발견해 벼락부자가 됐다. 이후 그는 릴런드 스탠퍼드 등과 함께 대륙횡단 철도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는 42세에 18세 여성과 결혼, 43세에 아들(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을 낳았다. 허스트는 1880년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라는 신문사를 인수했고, 1887년 아들에게 이 회사를 물려줬다. 아버지의 광산사업을 정리한 윌리엄 허스트는 언론사업에 치중했고 1920년대에 30여개의 언론사를 거느린 최초의 언론재벌이 됐다. ‘뉴욕저널’, ‘저널아메리칸’을 운영했다. 그가 조지프 퓰리처의 ‘월드’를 상대로 벌인 치열한 언론전쟁은 부정확한 보도를 양산하면서 ‘옐로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 ☞윌리엄 허스트 19세기 미국에서는 영국에서 유행했던 그랜드투어가 급속히 확산됐다. 윌리엄 허스트 역시 그 수혜자였다. 갑부 아버지를 둔 덕에 그는 10세에 어머니와 그랜드투어를 시작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유럽 골동품 수집이었다. 윌리엄 허스트는 도자기나 귀금속 같은 골동품 대신 거대한 유적에 유독 집착했다.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위치한 중세의 성 등이 수집대상이었다. 실제로 그는 유적의 벽이나 기둥을 통째로 뜯어오는 데 관심이 많았다. 나이가 들자 허스트는 수집품들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 고민에 빠진다. 결국 캘리포니아 샌시메온 일대 25만 에이커(1012㎢·서울 면적의 1.7배)의 땅에 수집품의 일부를 전시했고 이는 미국 최대의 인공공원인 ‘허스트 캐슬’이 됐다. ☞그랜드투어 18세기 영국의 부유층에서는 자제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최고의 지식인을 가정교사로 동행시켜 세계여행을 하게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를 ‘그랜드투어’라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헨리 스콧과 그의 가정교사가 떠난 여행이다. 스콧의 의붓아버지 톤젠드는 1759년 ‘도덕감정론’을 출간해 유명해진 글래스고의 한 교수에게 가정교사 역할을 부탁했다. 톤젠드는 그에게 여행의 모든 경비와 별도로 당시 교수 연봉의 2배에 해당하는 300파운드를 평생 연금으로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스콧은 교수와 함께 유럽의 여러 도시를 다녔고 벤저민 프랭클린, 볼테르 등 당대의 철학가들을 만나며 견문을 넓혀갔다. 이 여행은 1766년 스콧의 동생이 프랑스 파리에서 노상강도에게 살해되면서 어이없이 끝을 맺었다. 가정교사를 맡았던 교수는 평생 연금이 보장됐기 때문에 복직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여행에서 배운 식견을 10년 동안 집대성한다. 이 책이 저 유명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이었고 교수의 이름은 바로 애덤 스미스였다. ☞찰스 톤젠드 찰스 톤젠드는 영국의 귀족이자 정치가다. 네덜란드의 대학과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했다. 아들 하나를 둔 버클루 공작의 미망인 댈키스 백작부인과 결혼했고, 하원의원을 거친 후 재무장관이 됐다. 그는 북아메리카에 중과세를 부과하는 ‘톤젠드 조례’를 만들어 미국 독립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또 의붓아들인 헨리 스콧을 ‘그랜드투어’에 보내면서 현대 경제학의 탄생에도 이바지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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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매일 같은 일만 일어나고 원인과 결과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역사(歷史)란 정말 재미없는 일뿐일 것이다. 뜻하지 않았던 행동이, 뜻하지 않았던 만남이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는 것이 역사의 묘미다. 전 세계 여성들이 열광하는 패션의 탄생도 이런 우연의 힘에 이끌린 경우가 많다. 1984년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한 여성이 탑승했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뒤적이던 그녀, 실수로 모든 내용물을 옆자리 중년 신사 쪽으로 쏟고 말았다. 물건을 함께 주워 주던 신사는 “가방 안에 따로 주머니가 없나요? 그 속에 넣으면 안 쏟아질 텐데요.”라고 말했다. 여성은 “주머니가 있는 에르메스 가방이 있다면 그렇게 했겠죠.”라며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신사가 말했다. “내가 당신을 위해 주머니가 있는 가방을 만들어 주겠소.” 그의 이름은 장루이 뒤마. ‘미스터 에르메스’로 통하던 에르메스 최고 경영자였다. 한달 후 뒤마는 그녀에게 새로운 가방 디자인을 보여주며 가방에 그녀의 이름을 붙여도 되겠냐고 물었다. 여성의 이름은 제인 버킨. 1946년에 태어난 영국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였다. 뒤마가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우연한 사건은 패션사에 한 획을 그은 ‘버킨백’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시대를 아우르는 ‘잇백’(it bag·여성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가방) 버킨백을 발견한 곳은 의외로 서울 논현동의 중고 명품 매장이었다. ‘전 세계 여성들의 로망’은 수많은 명품들 사이에서 수줍고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서울신문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 & What)은 이번 순서 주인공으로 버킨백을 초청했다. 화려하지도 특이해 보이지도 않는 버킨백에 여성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인터뷰는 당초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도도한 태도로 ‘명품의 가치’를 말하던 버킨백이 어느 순간 자기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말로만 듣고 영화나 사진에서만 봤는데, 실물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뭐 그럴 만도 하다. 당신 같은 ‘평민’들은 날 만나는 건 둘째 치고, 운 좋게 길에서 봤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난 악어 가죽으로 만들어진 버킨 30㎝형이고 사각형의 ‘B’ 이니셜을 갖고 있다. 원래 몸값은 2만 8000달러였다. 사각형 B는 내가 1998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6년까지는 삼각형에 그 해를 상징하는 알파벳을 넣었지만 그 이후로는 사각형에 새기고 있다. 1997년 사각형 A로 시작해 지난해 N, 올해 O다. 내년엔 당연히 P다. →당신 친구들은 최소한 차 한대 값을 넘어선다는데, 돈이 있어도 못 산다는 게 사실인가. -한국 돈으로 가장 저렴한 친구가 800만원 정도 할 거다. 크기(25·30·35·40㎝)나 재질에 따라 다르긴 한데 보통 2000만~3000만원 정도고, 1억원 이상 되는 친구들도 가끔 있다. 심지어 홍콩에서 만들어진 짝퉁조차 특A급은 100만원이 넘는다. 무엇보다 우리는 매장에 진열된 상태로 팔려 나가지 않는다. 모든 에르메스 매장에 있지도 않다. 가끔 보이는 친구들 옆에 ‘이미 예약된 제품’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을 거다. 버킨을 갖기 위해서는 예약 목록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1984년에 세상 빛을 처음 본 이후 항상 1년 정도는 기다려야 했는데, 점점 찾는 사람이 늘어나서 지금은 예약하고 2년 이상 걸린다. 워낙 주문이 밀려 있다 보니 당분간은 예약을 받을 계획도 없다. 돈이 있어도 못 산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 거다.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점은 확실한데 그만큼 값어치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루이뷔통이나 샤넬에 비해서도 몇 배 이상인데. 게다가 길에서 봐도 못 알아볼 정도로 평범하지 않은가. -(양옆을 돌아보며) 루이뷔통이나 샤넬 2.55(1955년 2월 샤넬의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의 생일에 탄생한 대표 모델)처럼 흔한 애들과 나를 같은 등급으로 취급하면 곤란하다. 걔들은 솔직히 그냥 ‘적당히 비싸거나’ ‘적당히 잘 만들어진’ 수준에 불과하다. 혹시 에르메스의 마크를 본 적이 있는가. →마차를 세워 놓고 쳐다보고 있는 마부 아닌가. -그게 바로 에르메스다. 고객을 위해 자리를 비워 놓고 기다리는 마차와 충실한 마부. 모든 것을 헌신하고 그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는 진정한 명품이란 뜻에서 그렇게 만든 거다. 우리는 악어나 타조, 소, 도마뱀 등으로 만들어지는데 최고의 바이어들이 전 세계 상위 10% 이내 최고의 가죽만을 골라 온다. 싸운 흔적도 없어야 하고 무늬도 골고루 분포돼 있어야 한다. 현금으로만 대금을 지불하는 데다 ‘에르메스에 가죽을 공급한다’는 명예 때문에 상인들도 최상품은 모두 우리에게 넘긴다. 하지만 우리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매입 자체를 하지 않는다. 완벽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제작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소비자 보상이 없는 이유다. →마이클 토넬로는 ‘에르메스 길들이기’라는 책에서 “에르메스에 대기자 명단 따위는 없고 그저 마케팅 수단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말에 300명이었던 가방 제작 장인 수가 지금 2000명이다. 하지만 가방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그만큼 수요가 늘었다는 것이다. 장인은 가죽학교 2년, 수련 생활 2년을 거쳐야 하고 10년 이상 경험을 쌓아야 버킨을 만들 수 있다. 버킨 하나를 만드는 데 평균 18시간 정도 걸린다. 장인 한 사람이 일주일에 33시간을 일하니까, 한달에 많아야 5~6개 정도 만들 수 있다. 버킨 이외에도 켈리(모나코 왕비였던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들어 유명해진 에르메스의 대표 상품) 등 다른 상품도 만들어야 한다. 마차 안장을 만들던 시절부터 시작된 에르메스의 ‘더블 스티치’(이중 박음질) 제작 공정은 기계나 외주 제작이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특히 우리는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받는다. 아까 얘기했던 이니셜을 포함한 우리의 이름에는 탄생시킨 장인의 이름도 함께 표시된다. 만약 수선을 맡기면 프랑스로 보내져 만든 장인이 직접 고친다. 버킨을 만드는 가죽을 해당 연도별로 모두 보관하고 있어서 완벽한 수선이 가능하다. →그런데 실용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비난도 많다. 주인이 당신을 드는 게 아니라 주인이 당신을 모신다는 푸념이랄까. -편하고 실용적인 것이 명품 가치의 전부라고 생각하나. 페라가모나 발리 구두가 발에 편하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기는 하지만 인체 공학이 지금처럼 발전한 시대에 그보다 싸고 편한 구두는 얼마든지 있다. 수납이 편하고 예쁜 가방은 인터넷쇼핑몰이나 백화점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명품은 원래 특별한 존재다. 그것을 가지는 사람들의 자부심이나 만족을 먹고사는 존재다. 재료비, 공임, 마케팅비, 유통 비용 등을 합치는 단순 개념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차라리 나보다 나일론 쪼가리로 가방을 만들어서 수백만원씩 받는 미우치아 프라다(프라다의 디자이너)부터 욕하는 게 훨씬 타당하지 않은가. 에르메스가 버킨의 몸값을 그렇게 책정했는데도 사람들이 못 사서 안달이라면 그게 적정한 가격인 거다. →그런데 아까부터 궁금한 것이 있는데, 명품 위의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의 얼굴이 왜 중고 매장에 있나. -(한숨을 지으며) 솔직히 말하면 난 이 매장이 두 번째다. ‘명품 신세 뒤웅박 팔자’라고 해야 하나. 똑같은 버킨인데 누구는 빅토리아 베컴이나 레이디 가가한테 가고, 난 한국에 있다. 그나마 한국에서도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같은 여성 최고 경영자(CEO)들의 필수 아이템이라는데, 처음에 날 한국에 데려온 사람은 코스닥 벤처업체 사장이었다. 버킨을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아내 선물이라며 ‘제일 비싼 매장에서 제일 비싼 제품’을 외치더니 덜컥 날 예약했다고 들었다. 정작 선물받은 주인은 동창회에 들고 나갔다가 가짜라는 수군거림을 받더니 3000만원짜리 가방이 부담스럽다며 집에 모셔두기만 했다. 그나마 도둑맞는다고 가방이 금고에 들어가는 수난까지 겪었다. 2008년에 주인 부부가 이혼하면서 이 매장에 처음 나왔고, 단 하루 만에 1700만원에 팔려 나갔다. →당신 몸값을 감안할 때 하루 만에 팔린 것은 대단한 일 아닌가.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런가. -나름대로 명품 매장이다 보니 버킨을 알아보는 사람은 꽤 많았다. 얘기를 들어 보니 1년에 3~4개씩은 나오는 것 같더라. 두 번째 주인은 나를 결혼 예물이라고 애지중지하더니 차를 바꾸겠다고 덜컥 나를 이 악몽의 장소에 다시 데려왔다. 버킨을 사는 외국 사람들은 대를 물려 쓴다는데, 튼튼하게 만들어진 내가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아까 매장 직원한테 들어보니 새 주인이 이미 나타났다고 하던데. -워낙 깨끗해서인지 1800만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언뜻 들었다. 역시 기다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지 가끔 중고 시장에서 새 제품보다 내 몸값이 더 높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에르메스 테크(에르메스+재테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새 주인이 누군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제 버킨이라는 자부심보다는 주인의 손길에 더 목이 마르다. 아무리 비싸더라도 가방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주인의 소중한 물건들을 담고 다니며 함께 추억을 쌓아가는 것 아니겠나. 나 역시 주인 앞에선 사랑받고 싶은 가방일 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버킨백의 아버지 장루이 뒤마는 1980년대 초반 비행기에서 만난 영국의 가수 겸 배우 제인 버킨을 위해 주머니를 갖춘 에르메스백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던 장루이 뒤마. 이 약속은 현존하는 최고의 가방으로 꼽히는 ‘버킨백’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5대 에르메스 최고경영자이자 예술감독을 맡았던 뒤마는 버킨백의 성공과 함께 다양한 소품을 개발해 에르메스의 마케팅 영역을 넓힌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5년 말 은퇴했으며 지난해 숨을 거뒀다.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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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佛 반환 조선왕실·외규장각의궤 비교

    日-佛 반환 조선왕실·외규장각의궤 비교

    왕실의 각종 행사를 상세히 전하는 종합백서이자 뛰어난 기록문화 유산인 조선왕실의궤가 속속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일본 중의원은 28일 열린 본회의에서 조선왕실의궤 등 한국 도서를 돌려주는 한·일 도서협정 비준안을 기립 다수 찬성으로 가결했다. 새달 참의원 의결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외국과의 조약 비준은 중의원 가결 우선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협정이 발효된 셈이다. 일본에서 들어오는 조선왕실의궤는 민간에서 환수 운동을 시작해 정부가 귀환 절차를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프랑스에서 순차적으로 들어오는 외규장각 의궤와 닮았다. 하지만 의궤의 내용, 귀환 형식, 소장 주체 등 다른 점도 많다. ●국내엔 없다! 日 28권 vs 佛 30권 일본 궁내청에서 이르면 다음 달 귀국하는 의궤는 소유권 이전까지 포함한 ‘반환’이다. 일본이 약탈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애써 ‘인도’(引渡)라는 표현을 고집하고는 있지만 귀환 즉시 한국 재산으로 편입된다. 문화재보호법이 적용됨은 물론이다. 문화재 지정 여부, 전시·활용 등 모든 권리를 한국 정부가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귀환이 시작된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외규장각의궤는 5년 단위 임대 형식이다. 우리 정부는 ‘사실상’ 영구 임대라고 주장하지만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에 있다. 국보 등 문화재 지정이 불가능하다. 전시 등 도서 활용 때도 프랑스와 협의해야 한다. 임대 계약도 갱신할 때마다 프랑스 눈치를 봐야 하는 ‘꼬리표 붙은 귀환’이다.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사무처장인 혜문 스님은 “조선왕실의궤는 외규장각 도서와 달리 임대가 아닌 소유권 양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면서 “대대적 환영행사와 국보 지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관은? 국립중앙박물관 vs 불교계 “월정사로” 일본에서 돌아오는 책은 모두 150종 1205권이다. 조선왕실의궤 167권을 비롯해 조선시대 마지막 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 1권과 상고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 문물·제도를 백과사전식으로 편찬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99권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무신사적(戊申事績·1권)과 을사정난기(乙巳定難記·1권), ‘갑오군정실기(甲午軍政實記·10권) 등 6종 28권은 국내에 없는 유일본이다. 외규장각 도서 가운데 유일본은 30권이다. 외규장각 도서는 지난 14일 도착한 1차분과 29일 도착하는 2차분 등 297권 모두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대로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다. 일본에서 오는 조선왕실의궤 167권은 절반 남짓이 원래 강원도 월정사의 오대산 사고에 있던 것이다. 프랑스 사례와 달리 도서 반환운동부터 마무리까지 핵심 역할을 불교계가 거의 도맡았다. 따라서 불교계는 월정사에 보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류춘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장은 “도서 보관 장소를 비롯한 활용 방안은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조선왕실의궤, 오늘 日중의원 본회의 가결땐 새달 귀환

    일본이 조선왕실의궤 등 1205책의 조선 도서를 한국에 반환하는 내용의 한·일도서협정이 27일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중의원 외무위는 일본 정부가 제출한 한·일도서협정 비준안을 심의한 뒤 표결을 통해 다수 찬성으로 가결해 28일 열릴 중의원 본회의로 넘겼다. 표결에서 제1야당인 자민당은 당론으로 반대했지만 민주당과 공명당, 사민당 등의 소속 의원들은 찬성했다. 마쓰모토 다케아키 외무상은 외무위원회에서 “한국도서의 인도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에 도움이 되고 양국 문화교류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본회의 통과하면 사실상 비준종료 28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한·일도서협정이 가결되면 사실상 비준이 종료된다. 다음 달 초에 열릴 참의원 외무·방위 위원회와 13일 열릴 본회의를 통과해야 일본 의회의 비준 절차가 끝나지만 조약의 경우 중의원 가결 우선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참의원에서 반대해도 협정이 발효된다. 한·일도서협정 같은 조약은 중의원이 비준하면 ‘여소야대’인 참의원이 부결하더라도 일본 헌법 61조의 중의원 우선 원칙에 따라 비준된 것으로 간주한다. 참의원이 심의를 하지 않아도 30일 후 자동 발효된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이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의를 위해 도쿄를 방문하는 다음 달 21~22일이나 늦어도 6월 안에 우리 정부에 도서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혜문 사무총장은 일본 중의원 제2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약탈 문화재를 다시 찾아오게 된 것이 무척 기쁘다.”며 “조선왕실의궤가 반환되면 정부가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벌이는 것은 물론 이들을 국보로 지정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李대통령 방일 맞춰 상반기내 귀환 혜문 스님은 “조선왕실의궤 이외에도 불법성을 입증할 수 있는 몇 가지 문화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것인지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간 나오토 총리는 지난해 8월 10일 한일병합 100년 담화에서 “일본의 통치기간 조선총독부를 경유해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를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가까운 시일에 인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정상회의(APEC)가 열린 요코하마에서 한·일도서협정을 맺었고,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임시국회에서 국회 비준을 추진했으나 무산되자 이번 정기국회로 넘겼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조선왕실의궤 새달 돌아오나

    조선왕실의궤 새달 돌아오나

    일본 궁내청에 소장된 조선왕실의궤 81종 167권을 포함한 일제 약탈 도서 1205권의 국내 반환과 관련해 불교계가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불교계에 따르면 약탈 도서 반환 일정이 확정되는 즉시 일본 도쿄에서 한·일 양국의 각계 인사들이 참석하는 ‘환국 기념 축하 연회’ 개최를 시작으로 서울 광화문과 홍릉(고종과 명성황후 합장릉), 강원도 월정사 오대산 사고 등지에서 환국 환영 행사를 잇따라 열 예정이다. 불교계가 이처럼 환영 행사를 서두르는 것은 최근 일본 국회에서의 비준 절차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서다. 약탈 도서는 지난해 11월 이명박 대통령과 간 나오토 일본 총리 간에 체결된 반환 협정에 따라 반환키로 돼 있었지만 야당인 자민당이 정기국회에서 협정 비준을 거부한 데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으로 반환 일정이 지연돼 왔다. 불교계는 그동안 강경하게 ‘반환 반대’ 입장을 지켜온 자민당의 입장이 유연해졌고 다음 달 15일 일본 외무대신의 방한에 이은 20∼22일 이명박 대통령의 방일이 맞물려 있어 조기 반환을 낙관하는 눈치다. 일본 국회는 지난 18·22일 두 차례에 걸친 중의원(하원) 외무위원회 심사에 이어 27일 외무위 표결, 28일 본회의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중의원 의원 30명 중 여당인 민주당이 과반 이상인 20명을 차지하는 만큼 중의원 비준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게 불교계의 관측이다. 지난 22일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운영위원장인 법상 스님, 사무처장인 혜문 스님과 함께 일본 중의원 외무위 심사를 참관한 이상근 실행위원장은 “반환에 찬성하는 민주당 의원이 20명이고 자민당을 뺀 다른 야당도 긍정적이거나 조건부 찬성 의사를 보여 협정 비준 통과를 확신한다.”고 밝혔다. 다음 달 10일 열릴 상원 격인 참의원 국가안보위원회와 11일 본회의 통과도 의원 구성상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게 환수위 측의 전망이다. 환수위 측 전망대로라면 약탈 도서는 참의원 비준 통과 후 양국의 외교·행정 절차를 걸쳐 다음 달 말이나 6월 초쯤 반환될 예정이다. 불교계가 국내외에서 반환 환영 행사를 열기로 계획한 것도 그 무렵과 맞물려 있다. 불교계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방일 후 귀국길에 상징적으로 의궤 한권쯤을 갖고 오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번지고 있다. 불교계의 앞선 기대와 달리 일본 국회의 상황은 섣불리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 22일 중의원 외무위 심사 때 일부 자민당 의원이 독도 영유권과 반환 조건 등을 문제 삼았다는 전언이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자민당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여당인 민주당과 다른 야당 의원들의 이탈이 있을 경우 향후 일정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불교계를 포함한 국민의 기대가 또다시 실망으로 바뀔 것인지는 결국 28일 중의원 본회의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WHO&WHAT] “B형보다 O형이 더 좋다고? 당신 속았어”

    [WHO&WHAT] “B형보다 O형이 더 좋다고? 당신 속았어”

    4월의 화창한 봄날.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4층 서울신문사 편집국. 두 젊은 남자 기자의 푸념이 이어졌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로 나름 ‘킹카’를 자부하는 편집부 김민석 기자와 강신 기자. 두 사람은 솔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봄이라고 부쩍 늘어난 주변의 결혼 소식은 두 사람의 우울함만 부추길 뿐이다. 작심하고 원인 분석에 들어간 두 사람. 이상형과 최근 자신들이 했던 소개팅을 되짚어 보던 그들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B형 남자’라는 것. 소개팅을 하자면 꼭 혈액형부터 물어보는 주선자들. B형 남자라고 대답하면 “성급하고 단순하며 자기중심적”이라며 거부당하기 일쑤다. 두 사람은 B형 남자가 ‘최악’이라는 ‘통념’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솔로를 벗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깨야 할 잘못된 상식이야.” 머리를 맞댄 두 사람은 가장 기자다운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해 보기로 뜻을 모았다. 전문가를 초청해 기자회견을 하자는 것. 하지만 전문가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혈액형과 성격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일본 책을 번역한 것이었고, 상당수 이론들이 출처가 불분명했다.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며 무시하는 과학자도 많았다. 결국 두 사람은 이 모든 사태의 출발점인 ‘혈액형’의 아버지 카를 란트슈타이너(1868~1943·오스트리아 병리학자)에게 직접 따져 묻기로 했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주 주인공은 란트슈타이너다. ABO식 혈액형, MN식 혈액형, Rh식 혈액형을 구분한 란트슈타이너는 그 공로로 1930년 노벨상을 받았다. 유로화 등장 이전 오스트리아 지폐 도안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의학사에서는 그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해 낸 인물”로 표현하고 있다. 과연 란트슈타이너는 ‘인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연구의 산물인 혈액형이 100년 후 성격과 연관 지어질 것임을 짐작이나 했을까. →김민석 아주 기초적인 질문부터 시작하자. 혈액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란트슈타이너 (웃음) 말 그대로 피의 종류, 혈액형(Blood type)이다. 내가 한창 연구활동을 하던 19세기 말에는 수혈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피를 많이 흘려 죽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죄 지은 사람의 피를 바꾸면 악함이 사라진다는 생각도 있었고 심지어 류머티즘이나 결핵이 있는 사람의 피에 특수한 물질이 생긴다는 가설도 있었다. 난 서로 다른 사람의 피를 섞으면 응고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다는 경우가 있다는 데 착안해 피의 종류 자체가 다를 것으로 판단했다. 수많은 실험을 거친 결과 마침내 A 또는 B라는 항원과 이에 대응하는 혈청 속의 항A, 항B라는 응집소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항원의 종류에 따라 A, B, O, AB형 등 네 가지로 나누는 것. 이게 바로 ABO식 혈액형이다. →강신 혈액형이 ABO식만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란트슈타이너 그렇다. 나는 1901년에 ABO식 혈액형을 발견했고, 27년이 지나서 MN식 혈액형을, 1940년에는 Rh형 혈액형도 찾았다. 나의 세 가지 혈액형 구분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혈액형 감별 방식은 150가지가 넘는다. 이것만 조합해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혈액형은 수백조(兆) 가지가 넘는다. 물론 아직도 혈액형의 모든 것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김민석 당신의 원래 의도와 달리 혈액형 이론이 처음으로 널리 활용된 것은 인종 간 우열을 가르는 ‘우생학’(優生學)이었다. -란트슈타이너 ABO식 혈액형이 등장한 이후 1910년대 독일에서 “유럽에 A형이 많고, 아시아에 B형이 많은 것은 백인이 아시아인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몰지각한 백인 우월주의가 내 발견과 맞물리면서 잘못된 인식으로 굳어졌다. 유감이다. →김민석 혹시 ABO식 혈액형이 사람의 성격과 관련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란트슈타이너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는 애초에 발생 자체가 위에 언급한 우생학과 맞닿아 있다. 처음으로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언급한 사람이 우생학이 유행하던 당시 독일에 있던 일본학자 후루카와 다케지였다. 후루카와는 고작 주변 사람 319명을 조사해 지금 유행하는 것과 거의 흡사한 ‘혈액형에 따른 기질 연구’라는 책을 펴냈다. 물론 당시에는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강신 결국 정확한 과학적 근거나 통계학적인 조사가 뒷받침되지 않은 것인가. -란트슈타이너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 주겠다.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학술논문을 찾아봐라. 거의 없을 것이다. 그나마 대부분 일본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에서 유행한 것은 1970년대 일본 저널리스트 노오미 마사히코가 후루카와의 연구로 창작에 가까운 책을 써내면서부터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혈액형과 성격에 대해 별자리 이상의 관심을 보이는 건 일본과 한국뿐이다. →김민석 하지만 과학적으로 혈액형과 성격이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 또한 이뤄진 적이 없지 않은가. -란트슈타이너 주요한 연구 결과는 아니지만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는 심리학 검사인 MBTI 결과와 혈액형별 유형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조사는 있다. 몇 가지 과학적 예도 들어 보자. 인구 분포로 보면 한국은 A형 37%, O형 28%, B형 27%이고 일본 역시 A형 37%, O형 31%, B형 22%다. 비교적 고른 분포다. 반면 프랑스는 A형이 44%, O형이 42%이고 미국은 A형 40%, O형 45%다. 그럼 프랑스는 한국에 비해 소심한 사람이 많고, 미국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는 얘기다. 동북아시아는 다른 지역보다 B형이 월등히 많은데, 그렇다고 다른 곳보다 자유분방한가. 한국이나 일본에서 혈액형과 성격이 유행하는 건 이렇게 혈액형 분포가 다양해서 설명 가능한 성격의 가짓수가 많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특히 혈액형이 성격에 선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면 유전적으로 성격을 규정짓는 유전자와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동일한 위치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강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혈액형과 성격을 믿을 뿐 아니라 상당히 정확하다고 느끼고 있는 건 사실 아닌가. -란트슈타이너 기자에게 묻겠다. 당신은 좋아하는 일에는 적극적이지만, 하기 싫은 일에는 소극적인가. →강신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란트슈타이너 이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더 이상한 거다. 이런 애매한 질문이나 ‘자유분방’,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생각이 많다’, ‘주변 사람들의 일에 관심이 많다’는 식의 모호한 표현을 모은 후에 이걸 각각 ABO식 혈액형에 맞춰 나눠 보자. 그럼 대부분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지 않겠나. 그게 아니라고 주장하면 “당신은 전형적인 그 혈액형 타입이 아니군요.”라고 말하면 그뿐이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바넘효과’(Barnum effect)라고 한다. 일반적이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현상을 정작 듣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딱 맞는 얘기라고 생각하는 거다. →김민석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는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단언해도 되는가. -란트슈타이너 그런 얘기를 계속 듣다 보면 실제로 성격이 바뀌지 않더라도 무의식 중에 비슷하게 행동하게 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결국 성격은 결정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닐까. 당신들도 혈액형과 성격 같은 ‘훌륭한 심심풀이’를 절대적이라고 믿지 않는 현명한 여자를 만나길 기대한다. 성공을 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한규섭 서울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과장 ●권석운 울산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란트슈타이너가 들려주는 혈액형 이야기 저자)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손영우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장(심리학과 교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 운반트럭 사고로 ‘쇠고기 파티’ 벌어진 아르헨

    소를 싣고 달리던 트럭이 사고를 내면서 사고현장에서 쇠고기 파티(?)가 벌어졌다. 성급한 일부 주민들은 길에서 소를 잡았다. 황당한 노상도축사건이 벌어진 곳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아이레스의 라플라타. 지난 23일(현지시간) 소 60여 마리를 싣고 가던 트럭이 급히 커브를 돌다 휘청하며 부분전복사고를 냈다. 트럭과 1호 화물칸은 무사했지만 2호 화물칸은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화물칸에 타고 있던 소들 사이에선 난리가 났다. 이때 하나둘 사고주변에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금세 수는 1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자칫 소 약탈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험악한 분위기. 운전사는 소 주인에게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사고로 다친 소가 많다. 주민들이 몰려드는데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는가?”고 운전사가 묻자 주인은 소를 주민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운전사는 2호 화물칸 빗장을 풀었다. 주민들은 개미떼처럼 달려들어 소를 끌어냈다. 소는 대부분이 다리가 부러지는 등 부상한 상태였다. 길은 순식간에 도살장으로 변했다. 일부 주민들은 소를 트럭에 싣고 집으로 달렸다. 소를 풀기로 한 주인은 인터뷰에서 “사고로 다친 소가 많아 어차피 거래를 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면서 “주민들이라고 배불리 고기를 먹으라고 소를 나눠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MB, 외규장각 관계자 오찬 “해외문화재 환수기구 검토”

    MB, 외규장각 관계자 오찬 “해외문화재 환수기구 검토”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프랑스가 과거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를 임대 형식으로 돌려받는 것과 관련해 “이번 환수를 계기로 해외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외규장각 도서 환수 관계자들과 오찬을 함께하면서 배석한 박범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게 이같이 지시했다고 홍상표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의 국력과 국격이 이제는 해외 문화재 환수에 신경 쓸 정도가 됐고 협상이 필요할 때는 충분한 협상력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 참석자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지금 일본 덴리(天理)대학에 있는데, 당시 일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그것을 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면 사 오면 됐는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또 1978년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최초로 밝힌 재 프랑스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와도 통화를 하고 격려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사설] 145년만의 귀환… 반갑다! 조선왕실의궤

    외규장각 조선왕실의궤가 마침내 우리 품에 안겼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것이니 무려 145년 만의 귀환이다. 어제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이관된 의궤(儀軌)는 전체 297권 중 1차분 75권으로 나머지는 다음 달 말까지 운송된다. 왕실의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의궤는 ‘기록문화의 꽃’으로 불릴 만큼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17년간의 협상 끝에 돌려받은 보물을 맞는 심정은 착잡하다. 반가움과 함께 무거운 교훈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문화재도 국력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 나아가 되찾아 올 수 있다. 우리는 이번에 그 점을 생생하게 확인했다. 프랑스 법원에 외규장각 도서 반환청구소송을 낸 문화연대 측은 약탈당한 문화재를 임대 형식으로 돌려받는 건 부당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우리는 그 원칙론에 공감하면서도 협상엔 상대가 있는 만큼 절충이 불가피하다는 현실론 또한 외면할 수 없다고 본다. 문제는 5년마다 대여 갱신을 해야 하는 번거로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정부는 대여 형식이지만 사실상 반환 혹은 영구 대여임을 강조한다. 문화재를 지키는 데도 실효적 관리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론 완전한 반환을 위해 보다 정교한 총력외교를 펼쳐야 한다. 해외 문화재 찾아오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일본·미국·영국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는 14만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문화재의 해외 유출 경로와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다음 달 문화재청에 신설되는 해외문화재팀의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다. 외규장각 도서 되찾기의 주역인 박병선 박사는 반환이 아닌 대여 형식을 안타까워하며 “내가 책이라면 울면서(서울로) 갈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그런 절절한 마음자세로 해외 문화재 환수작업에 나서야 할 때다.
  • [외규장각도서귀환하던날] 포장~적재~인수인계 전과정 ‘밀착 경호’

    [외규장각도서귀환하던날] 포장~적재~인수인계 전과정 ‘밀착 경호’

    145년 만의 외규장각 의궤 귀환에는 프랑스 측 ‘호송관’ 한 명이 따라붙었다. 로랑 에리세(47)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고문서 총괄 큐레이터(학예사)다. ●왕오천축국전 한국 전시때도 호송 에리세 박사는 프랑스 현지 특수 포장 단계부터 비행기(아시아나항공 502편) 적재, 한국 도착 뒤 국립중앙박물관에 인수인계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근접 경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한국에 대여전시할 때도 호송을 책임지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당시 방한 때 “외규장각 의궤를 한국에 대여하는 방안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이는(대여는) 한국민들에게 잘된 일”이라고 말하는 등 우호적 태도를 보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일부 사서들이 ‘약탈’ 사실을 부인하며 일간지에 ‘의궤 반출 결사 반대’ 광고까지 낸 것과 대조된다. ●3박4일 머물며 의궤 상태 점검 에리세 박사는 3박 4일간 한국에 머물면서 의궤 상태 등을 점검하게 된다. 유물들이 24시간 숙면에서 깨어나는 15일 오후 한국 측 관계자들과 건강 상태 등을 면밀히 체크하는 것이 앞으로의 큰 임무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유물 목록대로 한국에 확실하게 인계됐는지 확인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만에 하나 이상이 발견되면 훗날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분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이 없다고 결론 나면 에리세 박사는 17일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외규장각도서귀환하던날] 1차 도착분 75권, 수장고에서 24시간 숙면 ‘시차적응’

    [외규장각도서귀환하던날] 1차 도착분 75권, 수장고에서 24시간 숙면 ‘시차적응’

    #114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외규장각 의궤는 귀환에 걸린 145년 세월만큼이나 뒷얘기도 많다. 귀환의 첫 단추를 꿴 이는 역설적이게도 친일 사학자로 분류되는 이병도(1896~1989) 전 서울대 교수다. #2이 전 교수는 1955년 프랑스로 유학 떠나는 제자 박병선에게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 비롯해 우리 문화재를 많이 약탈해 갔으니 그것을 찾는 것이 사학도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라며 틈틈이 찾아볼 것을 강력히 당부했다. 20년 뒤 박병선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별관 창고에 처박혀 있던 도서를 마침내 ‘발견’하게 된다. #31차 도착분 75권은 ‘시차 적응’을 위해 상자 5개에 담긴 채로 24시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숙면에 들어갔다. 온도·습도 등 주변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 유물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15일 오후 박물관 관계자들과 에리세 박사가 공동으로 의궤 상태와 목록 등을 점검한다. ‘컨디션 체크’라고 부르는 절차다. #4의궤는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이 두 번씩 번갈아 가며 운송한다. 흥미로운 점은 아시아나(1, 3차분 책임)는 여객기 화물칸, 대한항공(2, 4차분)은 화물기를 동원한다는 사실이다. 대한항공 측은 “국보급 문화재인데 (화물) 전용기로 모셔 와야 한다.”며 은근히 경쟁사를 깎아내렸고, 아시아나 측은 “지난해 ‘고려불화대전’ 때도 여객기 편으로 아무 탈 없이 실어 날랐다.”고 맞섰다. 하지만 실질적인 이유인즉 아시아나는 파리 노선에 화물기가 없고 대한항공은 화물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의궤가) 깨지기 쉬운 도자기류가 아닌 책들이라 충격을 방지하는 완충재 사용 등 포장만 잘하면 화물기냐, 화물칸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판정’했다. 두 항공사는 의궤 귀환의 역사를 의미를 감안해 비행기 티켓을 공짜로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미 정부 예산에 운송료가 책정돼 있어 국립중앙박물관이 비용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대한항공 화물기가 뜰 때는 ‘프랑스 경호원’(학예사)은 어디에 배치될까. 대한항공 측은 “화물기라 하더라도 (승무원 등을 위한) 좌석 8개가 있다.”면서 “프랑스 학예사는 이 좌석을 이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51993년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돌려준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鑑儀軌) 1권은 국립중앙도서관에 거처를 틀었으나 이번 프랑스와의 협상에서 “모든 외규장각 도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한다.”고 합의함에 따라 중앙박물관으로 이사하게 된다. #6당초 정부는 145년 만의 귀환인 만큼 1차분 도착일에 환영행사를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자국 내 반감 등을 들어 난색을 표시했고 우리 정부도 세 차례 귀환 일정이 더 남아 있는 상태에서 프랑스의 심기를 자극해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 따라 ‘없던 일’로 했다. 글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사진 안주영·정연호기자 jya@seoul.co.kr
  • 4차례 운송비용 한국이 전액 부담

    외규장각 도서 296권의 항공 운송비 등 네 차례에 걸친 관련 비용은 어디서 부담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가 전액 부담한다. 올 2월 양국 정부가 서명한 합의문 제6조에 따르면 ‘합의 이행과 관련된 비용은 한국 측 당사자가 부담한다’고 명기돼 있다. 이는 외국 사례와 비교된다. 이탈리아는 1935년 에티오피아에서 약탈해 온 오벨리스크를 70년이 지난 2005년 조건 없이 에티오피아에 반환했다. 유네스코로부터 400만 달러(약 40억원) 지원을 받긴 했지만, 이탈리아는 운송 및 재건립 비용으로 1600억원에 이르는 돈을 에티오피아에 지불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물론, 학계, 종교계 등이 나서서 범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이탈리아와 국제사회를 상대로 여론전을 벌인 끝에 얻어낸 성과물이었다. 이번 외규장각 도서 운송과 관련해 정확한 비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지난달 맺은 실무 약정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제반 비용을 중앙박물관 예산에서 부담하기로 한 것은 맞지만 특수 운송비, 항공료, 보험료, 인건비 등을 합쳐도 비용이 그렇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라면서도 구체적인 액수 공개는 거부했다. 우리 측 학예사가 프랑스에서부터 호송에 참여하지 않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프랑스가 국내 반발 여론 등 난색을 표시해 국제 관행에 따라 우리 측 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공식 인수인계 받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떠나는 순간부터 한국 중앙박물관에 도착하기까지 프랑스 전문 학예사 한 명의 ‘밀착 경호’를 받게 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강산 두번 바뀐 귀환운동 강탈당했던 우리 피붙이 “어서오세요 대~한민국”

    강산 두번 바뀐 귀환운동 강탈당했던 우리 피붙이 “어서오세요 대~한민국”

    20년은 강산이 두번 바뀌는 햇수이다.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운동은 1991년 10월에 규장각 도서를 일괄 소장 관리하고 있던 서울대학교가 우리 외교부에 반환 요청을 의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곡절 속에 강산이 두번 바뀌면서 드디어 귀환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반환을 처음 제기하여 줄곧 관계당국의 자문에 응해온 나로서는 두팔이 절로 벌려진다. 145년 전 늦가을 찬 날씨 속에 이국 군인들의 거친 손길로 낯선 증기선에 실려 수만리 바다를 건너 돌집 어두침침한 서고에 갇혀 지내다 조국의 열띤 구명운동으로 돌아오는 외규장각 의궤 도서. 조국은 그새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항공회사가 둘이나 생겨 서로 모시겠다고 다투었다고 한다. 그들이 내려진 곳은 강제로 실려 떠났던 강화도에서 지척지간인 영종도. 무슨 힘이 한 세기 반 만에 세계 제일의 허브 공항을 만들고 그 먼 곳에 잡혀 갔던 귀중 도서들이 돌아와 내리는 곳으로 만들었던가. 사람이 하는 일에도 신비라는 단어가 동원될 수 있는 것인가. 외규장각 의궤도서의 귀환을 환영하는 온 국민의 힘찬 외침, “대~한민국 차차차차~.”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극동함대 지휘관 로즈 제독이 강화도에서 철수하면서 본국 해군성 장관에게 보낸 편지 한장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편지가 쓰여진 뒤 내가 읽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124년이 걸렸다. 한국교회사연구소의 고(故) 최석우 신부가 1950년대 프랑스로 유학하여 병인양요 연구를 위해 모은 자료 속에 묻혀 들어와 연구소가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해 내놓은 것이 1986년이었다. 120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반출 경위를 알게 된 것이다. 그 편지는 놀랍게도 ‘강화도의 한 건물에 책이 가득한 데 그중에 우리 국립도서관(Bibliotheque Nationale)에 소장할 만한 300여 책은 배에 싣고 나머지는 모두 건물과 함께 불태우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이 책들을 찾아낸 박병선 박사도 이 방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국제법 전공의 백충현 서울대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는 “이것은 명백한 문화재 전시 약탈행위로서 책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반환 요청을 해놓고 봐야 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외규장각 도서 귀환에 걸린 20년은 결코 짧지 않지만 헛되지는 않았다. 이 반환운동으로 우리 국민들의 문화재, 특히 해외 유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그리고 이제 규장각을 모르는 국민도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반환운동이 시작될 즈음, 서울대학교에 견학 온 초등학생 몇이 규장각이라고 쓰인 건물 안내판을 보고 이거 중국집 아니냐고 까르르 웃던 광경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전화번호부를 펼쳐 보았더니 실제로 영등포에 규장각이란 중국집이 있었다. 이제는 TV 사극 드라마에도 규장각이 자주 등장할 정도로 규장각은 온 국민이 문화의 보고로 인식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귀환 외규장각 도서는 외롭지 않다. 강산이 두번 바뀌는 가운데 사람의 일도 많이 바뀌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미테랑 대통령으로부터 1권을 돌려받은 뒤 우리 대통령은 네번, 프랑스 대통령은 세번 바뀌었다. 그분들 중 세분은 고인이 되었다. 나와 함께 반환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백충현 교수도 4년 전에 고인이 되었다. 그는 외규장각 의궤도서처럼 한 나라의 왕실이 국가적 목적으로 생산한 책들은 소유권이 바뀔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프랑스 측은 자기네 국립도서관에 등록하여 국가재산이 되었으므로 돌려줄 수 없다고 하지만 그 등록 자체가 법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다. 반환문제가 난항에 부닥쳤을 때 의논차 아침 일찍 걸려오던 백 교수의 전화 음성이 오늘 아침에 들린다. “이 선생, 우리 정말 큰 거 한건 했어요!” ■이태진 위원장은 1988년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리실장을 맡은 뒤 외규장각 도서가 불법으로 반출된 사실을 알고 환수 운동을 벌여왔다. 한일합병 불성립론을 주장, 지난해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1977년부터 2009년 2월까지 모교인 서울대 국사학과 강단에 섰다. 현재 차관급인 국사편찬위원장을 맡고 있다.
  • “민간차원 반환소송 악영향 우려”

    “민간차원 반환소송 악영향 우려”

    “무조건 박수칠 일은 아닙니다. 프랑스 정부와 맺은 합의문을 뜯어보면 1965년 맺은 한·일 협정과 맞먹는 굴욕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정부가 하루 속히 프랑스어 합의문과 실무 문건을 공개해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시민단체 차원에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에 앞장서 온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또 다른 이유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13일 서울 종로2가 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황 소장은 문서 한통을 보여주며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다른 문화재 요구 사실상 봉쇄 그가 내보인 것은 올 2월 7일 박흥신 주(駐) 프랑스 한국대사와 폴 장-오르티즈 프랑스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서명한 ‘조선왕조 왕실의궤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프랑스공화국 정부 간 합의문’이었다. 황 소장은 “합의문 제4조에 따르면 외규장각 도서를 포함해 프랑스에 있는 약탈 문화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반환을 요구할 수 없게 돼 있다.”면서 “이는 프랑스 법원을 상대로 민간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반환 소송도 사실상 봉쇄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제4조는 ‘프랑스의 한국에 대한 의궤들의 대여는 유일한 성격을 지니는 행위로서, 그 어떤 다른 상황에서도 원용될 수 없으며, 선례를 구성하지 아니한다. 이는 문화재 반환 요청 관련 당사자들을 대립되게 했던 분쟁에 최종적인 답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황 소장은 “프랑스에는 외규장각 도서 외에도 갑옷, 투구, 고지도, 왕실 족보 등 다른 약탈 문화재들이 즐비하다.”면서 “외규장각 도서 대여를 반환으로 바꾸는 것은 물론, 다른 문화재들도 돌려받아야 하는데 이 같은 조항으로 인해 길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시민단체인 문화연대가 2007년부터 프랑스 행정법원을 상대로 진행 중인 외규장각 도서 반환 관련 소송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문화연대는 1심에서 패했지만 프랑스 법원이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 문화재’임을 공식 인정하는 성과를 끌어냈다. 황 소장은 “국민 모금 운동을 통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면서 “결과적으로 정부가 민간의 반환 요구 노력에 오히려 재를 뿌린 꼴이 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5년 단위로 갱신되는 대여임에도 정부가 ‘사실상 반환’ 혹은 ‘영구 대여’ 표현을 쓰며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면서 “임기 내 가시적 성과를 남기려는 정부의 조급증이 또 한번 발동했다.”고 비판했다. 황 소장은 합의문 제5조에 명기된 ‘대중 전시 시에는 동 합의문을 언급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제3기관이 대여를 요청할 경우 양측의 합의에 맡긴다.’ 등도 대표적인 굴욕 조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무 합의문’ 공개해야 그는 “우리 국민들은 자유롭게 외규장각 도서를 볼 수 없는 반면, 프랑스는 언제든지 마음대로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를 들락거릴 수 있게 한 조항”이라며 “이 상태대로라면 (1866년 프랑스가 한국을 침략한) 제2 병인양요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합의문에서도 심각한 번역 오류가 지적되는 마당에 외교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외규장각 관련 합의문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습니다. 국민들에게 굴욕감과 문화적 치욕을 더 이상 안겨주지 않으려면 관련 합의문을 프랑스본과 함께 속히 공개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는 순간까지 계속된 황 소장의 간곡한 당부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온 국민이 힘 모아 대여를 반환으로 바꿔야”

    “온 국민이 힘 모아 대여를 반환으로 바꿔야”

    “너무 기쁘지요. 이런 일이 마침내 일어나는구나 싶어요. 다만 ‘대여’를 ‘반환’으로 바꿔야죠. 온 국민이 힘을 모아서요.” 프랑스 파리 근교 자택에 머물고 있는 박병선(83) 박사. 11일 국제전화로 만난 박 박사의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그도 그럴 것이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지켜보는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 파묻혀 있던 외규장각 도서 존재를 처음 확인한 이가 바로 그다. 첫 확인 뒤 발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어휴, 그 과정을 어떻게 일일이 말로 다 설명해요. 발견한 뒤 10여년 동안 찾아가서 보고 또 보고 했지요. 외규장각 도서 한쪽한쪽마다 내 손때가 안 묻은 곳이 없어요. 볼 때마다 새롭고, 신통방통해서…. 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는 박 박사는 “(내 분신 같은) 그게 정말 한국에 간다니 너무 설레고 행복하다.”며 감개무량해했다. 박 박사는 그럼에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며 이내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반환이 아니라 대여잖아요. 대여라면 소유권이 프랑스에 있는 건데…. 게다가 영구 대여도 아니고 5년 단위로 갱신하는 형태라서…. 5년이면 정권도 바뀌고 담당하는 사람들도 바뀌고 할 텐데, 서류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그때 가서 갱신이 안 되면 어떻게 하지요? 되돌려 줘야 하나요? 물론 우리 정부는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하긴 하지만…. 그러니 온 국민이 힘을 모아서 대여를 반환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게 제일 중요해요.” 프랑스 현지 반응은 어떤가 물어 보았다. “공개적으로 말하긴 곤란하지만 여하튼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거예요.” 박 박사는 외규장각 존재를 한국에 알렸다는 ‘괘씸죄’에 걸려 한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냉대받는 등 심하게 가슴앓이를 했다. 박 박사는 1866년 병인양요에 대한 정리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미 1권은 냈고, 2권은 준비 중이에요. 당시 프랑스 자료들을 보면 함대장이 프랑스 장관에게 1일 보고 형식으로 쓴 편지글도 있고, 병사들이 남긴 기록도 있어요. 그런데 병사들 기록이 참 재밌어요. 프랑스는 조선을 야만인 취급했거든요. 막상 약탈하러 가 보니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집에도 수준 높은 책이 있더라, 조선은 문명국가 같다는 얘기가 나와요. 또 의사가 쓴 기록을 보면 프랑스에서 앓던 병사들이 강화도에 왔더니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더라, 강화도는 천국이다 이런 내용도 나와요. 아마도 당시 조선에 대해 다방면으로 기록해 둔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닐까 싶어요.” 자료를 찾고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 중인데, 연구비를 지원해 준 문화재청을 비롯해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과 홍준기 웅진코웨이 사장에게 감사하다는 얘기를 꼭 전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지금도 도시락 싸들고 주불 한국대사관이 마련해 준 사무실로 출퇴근한다는 박 박사. 건강 문제가 제일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 머물면서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프랑스에서 치료를 계속 중이다. 건강을 묻자 전화기 너머로 팔을 휘휘 내젓는 소리가 또렷히 들릴 정도다. “아유, 그렇게 수술받고도 더 살 수 있다는 건 인생을 덤으로 받은 거지요. 할 일이 있으니 조금 더 살아라 하신 게 아닐까요. 그래서 기쁘게 일하고 있어요.”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외규장각 도서는 국보급… 세계기록유산 등재 가능”

    “외규장각 도서는 국보급… 세계기록유산 등재 가능”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죠. 이것조차 20년 동안 각계의 노력이 있어서 겨우 가능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더욱 지속적이고 더욱 끈질기게 반환 요구를 펼쳐야 합니다.” 지난 2월 문화재청장에서 물러난 이건무(64) 용인대 문화재대학원장은 오는 14일 한국에 들어오는 외규장각 도서를 ‘절반의 성공’으로 규정했다. 불과 두달 전까지 외규장각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그다. 미진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 앞으로 해야 할 과제 등이 더욱 크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11일 서울 상도동 한 찻집에서 만난 이 원장은 “독도 문제에서 흔히 쓰이는 개념인 ‘실효적 지배’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외규장각 도서는 실질적으로 우리의 것이 명백하며, 병인양요 시기의 약탈품이라는 사실이 국제적으로도 분명한 만큼 우리가 잘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외규장각 도서는 국가와 국민 모두의 문화재라는 입장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연구자의 관점에서 학술 자료로만 접근한다면 우리가 국민적 열망 속에 이를 지켜 낼 수 있는 힘도 그만큼 약해집니다. 전문적 지식이 없더라도 누구나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무궁무진한 가치를 알리고 전시도 늘려야 합니다.” 이 원장과 함께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둘러싼 ‘쟁점’ 10가지를 짚어 봤다. ① Q. 외규장각 도서 가치는. A. 국보급 요즘으로 치자면 정부 영상기록물이나 마찬가지다. 세밀한 그림이 있고, 그에 대한 꼼꼼한 기록을 담아 놓았다. 조선 왕조의 우수한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정보 자료다. 예컨대 당시의 복식이나 왕릉 조성 과정·공법 등을 알 수 있다. 역사 속 어느 나라, 어떤 왕조에서도 볼 수 없는 소중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학문 연구자료로서의 가치는 물론, 그 자체가 이미 국보급 문화재이다. ② Q. 국보 지정은 가능한가. A. 어려울 듯 소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보로 지정하는 것은 내부적으로도 법적 논란이 일 수 있다. 프랑스와 외교적 논란도 예상된다. ③ Q. 그렇다면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A. 가능 개인적으로는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미 2007년 조선왕실의궤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지 않았나.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④ Q. 임대 조건은. A. 5년마다 갱신 우리 정부는 조건 없는 반환을 원했으나 아쉽게도 좌절됐다. 5년마다 임대 계약을 갱신하는 형식의 영구 임대다. 반환이 아닌 임대, 그것도 5년마다 프랑스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지라 자존심이 상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중요한 문화재를 일단 확보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각도로 반환 요구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⑤ Q. 대여를 반환으로 바꿀 가능성은. A. 끈질긴 노력 필요 독도의 영토 분쟁을 시도하는 일본에 맞서는 것은 1회적인 이벤트나, 또 다른 독도 개발 같은 것이 아니다.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높이는 방법은 다른 나라 국민들, 세계 지성에 독도의 역사, 현재 등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외규장각 도서도 마찬가지다. 외규장각 도서가 어떻게 프랑스로 가게 됐는지, 대한민국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문화재인지,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반환을 염원하는지 등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지속적이고 아주 끈질기게…. ⑥ Q.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A. 좀 더 많은 국민이 볼 수 있게 이미 서울대 규장각 수장고에 조선왕실의궤가 많이 있다. 조선 왕실의 풍속, 행정, 건축, 미술 등 풍부한 학술적 가치를 담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는 더욱 많은 국민들이 직접 누리고, 감동하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활용이다. 이번에 돌아오는 외규장각 도서를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하다. 7월부터 중앙박물관에서 외규장각 도서 특별전이 열리는데 좀 더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전시해야 한다. ⑦ Q. 다른 문화재 ‘볼모론’ 진실은. A. 어불성설 2015년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외규장각 대신 우리의 다른 문화재가 볼모로 잡힌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불성설이다. 외규장각과 비슷한 가치의 다른 문화재와 바꾼다는 등가 교환설도 낭설이다. 2015~2016년 상징적으로 외규장각 도서 일부가 프랑스로 건너가 전시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와전된 것 같다. ⑧ Q. 문화재 해외 유출 실태는. A. 주먹구구식 파악 약 12만점 정도가 해외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솔직히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 실태 파악이다. 외국 박물관 수장고를 낱낱이 들여다보기 어려우니…. 유출 경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난관이었다. 약탈 문화재인지, 합법적 거래를 통해 나간 것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막혔다. 예전에는 개인들이 선물로도 많이 줬으니까…. 변명하자면 문화재보호법이 만들어진 지 50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⑨ Q. 앞으로 대응 전략은. A. 투 트랙으로 다음 달 문화재청에 해외문화재 환수를 전담하는 부서가 신설될 예정이다. 내가 있을 때 예산 등을 확보했다. 그동안 기존 국제교류과 1.5명 정도가 담당하던 일을 전담 부서가 생김으로 해서 더욱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진행이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해외 문화재 환수재단’ 같은 것을 만들어 민간이 주도하되,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투 트랙(two track) 방식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10 Q. 외국은 유출 문화재 어떻게 다루나. A. 佛·伊는 돌려받아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에 빼앗긴 문화재를 모두 돌려받았다. 당시 1870년 보·불 전쟁 때 프러시아가 약탈한 것까지 소급해 반환받았다. 이율배반적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자국이 보유한 문화재를 해당 박물관에 ‘장기 대여’ 하는 것을 조건으로 지난해 1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미국 각지의 박물관으로부터 총 96점의 문화재를 돌려받았다. 국력의 크기에 비례하는 측면도 있지만 당장은 민·관이 함께 힘을 모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절실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CEO 칼럼] 혼자가 아니기에 희망은 있다/박환규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CEO 칼럼] 혼자가 아니기에 희망은 있다/박환규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세계 경제대국 일본이 대재앙 앞에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 역사상 네 번째로 강한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사망·실종자가 2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전 붕괴로 인한 방사능 공포까지 겹치며 혼란과 두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한때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저치인 76.25엔까지 떨어졌다. 엔고가 지속되면 일본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돼 가뜩이나 어려운 일본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일본이 흔들리면 세계 경제가 입을 타격도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피해 복구도 막막하기만 하다. 복구비용이 최소 1800억 달러(약 203조원)에서 많게는 일본 국민총생산(GDP)의 5%인 250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복구기간도 1995년 한신 대지진 때보다 길어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을 비롯해 일본 전체 국민이 감당해야 할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눈물을 머금은 채 “모든 것을 잃었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그 고통의 크기를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분명 희망은 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꽃은 절망 속에서 더욱 굳세게 피어나기 때문이다. 위기 속에서 빛난 일본인의 시민의식이 절망스럽지만 희망을 품게 하는 이유다. 재난에도 불구하고 사재기, 약탈, 폭동이 없었다. 구호품도 질서를 지켜 받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노약자들을 먼저 배려했다. 차가 다니지 않아도 파란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질서의식은 당연한 듯 보였다. 세계는 “인류정신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며 일본의 선진의식을 극찬했다. 대재앙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각국이 보내는 도움의 손길도 일본에 희망을 더한다. 전 세계 128개국과 33개 국제기구가 일본에 성금과 구호물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했다. 특히 이웃나라인 우리나라는 107명의 구조대를 미야기현 피해지역에 급파, 가장 오랫동안 머무르게 하며 활발한 구조 활동을 펼쳤다. 그뿐만 아니라 한류열풍의 주역들을 포함해 각계각층에서 성금을 전달하는 사랑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촛불 하나하나가 모여 어둠을 몰아내듯 전 세계가 하나라는 글로벌 의식이 절망에 빠진 일본에 큰 힘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안타깝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일본은 지금까지 보여준 선진국으로서의 모습을 통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 국민이 보여준 자발적인 금모으기 운동은 그들이 본받을 만하다. 외채를 갚기 위해 350만명의 국민이 내놓은 결혼반지, 아기 돌반지를 모으니 금이 무려 227t에 달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1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벌은 협동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라고 영국의 철학자 E 허버트는 말했다. 일본이 하나가 되고, 전 세계가 하나가 되어 온 힘을 모은다면 이보다 더 험난한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홀로 떨어져 외롭게 살지 않고, 우리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을 비비며 희로애락을 함께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끝으로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일본처럼 재난에 침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전 학습을 통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이 가스 밸브를 잠그고, 전열기 코드를 뽑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가스안전공사도 지진 시 가스시설 파괴 등 재난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철저한 안전관리실태 점검과 국가재난 위기관리시스템 구축 및 행동 매뉴얼 개발로 재난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 [열린세상] 일본사람을 말한다 /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열린세상] 일본사람을 말한다 /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3월 11일 지진과 쓰나미의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 몇년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본 뉴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일본 기상청이 벚꽃 개화시기 예측이 틀렸다고 대국민 사과를 하는 내용의 뉴스였다. 필자는 ‘일본에 17년 동안 살았지만 일본사람들은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집중호우나 태풍이 아닌 벚꽃 예보가 틀렸다고 대국민 사과를 하다니.’라며 무심하게 지났던 장면이 되살아난 것이다. 쓰나미에 휩쓸려 묻혀 버린 수많은 주검을 보고서야 대국민 사과의 의미가 보다 또렷해지는 듯했다. 벚꽃의 개화시기 예보는 단지 상춘객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 머무는 우리와는 다른 것이다. 벚꽃의 개화시기 예보조차도 단순히 봄의 도래를 알리는 ‘관측’이 아니다. 섬나라 사람인 일본인에게는 우리와 다른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정확한 기상예보, 즉 천재지변에 대한 대비의 염원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원초적인 공포가 있다. 지진, 해일 그리고 원폭이다. 지진을 동반한 쓰나미와 원자력발전소의 연쇄 폭발은 일본인을 공황상태에 빠뜨렸다. 어쩌면 불안과 공포는 더 큰 해일이 되어 일본인들을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침착했다. 그들이 보여준 질서의식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인들을 통해 인류가 진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외신보도에 동감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처럼 참혹한 상황에서도 TV 화면을 통해 통곡하는 일본인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구출되어 대피소로 안내된 80대 노인이 “신세를 졌습니다(오세와니 나리마시타).”라고 인사를 했다. 물론 사재기나 약탈행위조차 찾아볼 수 없다. 불과 10여ℓ의 휘발유를 사기 위해 3~4시간을 기다릴 줄 알았다. 일본인들의 행동양식을 규정하는 말 중에 ‘메이와쿠 가케루나’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을 히진(非人)이라고 한다. 최저의 인간이라는 의미다. 일본 전통사회에서 최저의 인간에 대한 사회교육은 ‘무라하치부’(村八分)라는 ‘규약’을 통해 이뤄진다. 과거 전통농경사회에서 공동규칙을 어겨서 남에게 피해를 끼쳤을 경우 피해를 끼친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배려와 지원만을 했다. 오직 집에 불이 날 때 함께 불을 꺼준다든지 아니면 장례 때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 농사일을 돕는다든지 하는 일은 일절 하지 않았다. 공동체 사회에서 철저하게 따돌림한 것이다. 일본인의 이 같은 행동 양식은 철저한 교육과 전통의 산물인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완벽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수많은 재난을 겪으면서 체험적으로 습득한 집단적 자각일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속임수를 쓸 때 자신에게 더 많은 피해가 닥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익혔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이라면 대재앙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든 일본인의 질서의식 역시 위기에 대한 국민적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상청장의 대국민 사과도 어쩌면 늘 깨어 있기를 바라는 일본 사람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떻든 쓰나미와 원전 폭발로 인해 일본은 총체적 위기를 노출시켰다. 위기관리 부재를 드러낸 정치리더십, 매뉴얼 사회의 맹점(구호물자의 지체된 배급에서 보듯 매뉴얼화되어 있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현저히 떨어지는 대처 능력을 말함), 재건사업에 부담이 되는 누적된 재정적자, 심지어 인명피해의 상당수가 노약자였다는 점에서 노령화 사회의 문제점까지 드러냈다. 이번 지진은 일본 사회가 가진 전반적인 취약성을 세계만방에 낱낱이 알리는 꼴이 됐다. 공교롭게도 지난해부터 일본 방송은 벚꽃 개화시기 예고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같은 수많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하더라도 일본 국민 개개인의 자각이 곧 국가 재건의 에너지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우리의 재난대처능력에 대해서도 다시 꼼꼼히 따져봐야 할 때이다. 거기에는 국민의 질서의식도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
  • 국가직 9급 D-16 과목별 마무리 전략

    국가직 9급 D-16 과목별 마무리 전략

    2011년 국가직 9급 공채 필기시험이 16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9급 공채는 응시원서 접수 결과 역대 최고의 경쟁률인 93.3대1을 기록,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일반행정(전국 일반) 136명 등 모두 1529명을 선발하는 올해 공채에는 14만 2732명이 원서를 냈다. 서울신문이 공무원 시험 전문 에듀스파와 함께 주요 과목별 마무리 학습 전략을 짚어 본다. ●발문-선택지-지문 순서로 문제 살펴라 지금까지 국어는 세부적으로 국어생활, 비문학, 문학 중 국어생활 관련 문제 출제율이 가장 높았다. 특히 올바른 문장 및 언어 예절에 관한 문제가 주로 출제되고 있으며, 이는 올해도 비슷한 경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의 유형이 단순한 반면 사전 학습이 소홀하면 감점 요인이 큰 만큼 암기와 이해를 병행해야 한다. 특히 공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부터는 지금까지 익힌 원리를 예문을 통해 다시 한번 정리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다. 비문학 영역은 지문형 문제의 출제 빈도가 높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정채영 남부행정고시학원 국어 강사는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비문학 문제의 지문을 먼저 읽고 문제를 푸는데, 이는 비효율적인 방법”이라면서 “발문-선택지-지문 순서로 문제를 살펴야 빠른 시간 안에 비문학 독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강사는 문학 영역은 작품 인물에 대한 서술자의 태도, 서술상의 특징 등을 파악하는 연습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경쟁률 상승… 난이도 높아질 듯 영어는 출제 유형면에서 지난해와 큰 차이는 없겠지만, 전체 경쟁률 상승에 따라 문제 난도도 다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문이 길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만큼 독해 문제를 빨리 읽는 연습을 강화해야 한다. 심상대 영어 강사는 고득점 달성 필승전략으로 ‘최근 3개년 시험 출제 방향과 유형 숙지’를 꼽았다. 심 강사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어시험 출제 비중은 문법 10%, 영작 10%, 어휘와 숙어 20% 등으로 모두 동일했다.”면서 “지문이 길어지고 있는 만큼 속독을 통한 빠른 정답 찾기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공부한 기본서 또는 문제집을 빠른 속도로 다시 보는 연습이 속독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출문제 보면서 사료·화보 정리하라 한국사는 역사적 사실 못지않게 최근 이슈가 됐던 사안도 중요한 과목이다. 예를 들어 2010년에 유네스코에 새로 등재된 문화유산, 올해 프랑스에서 반환되는 조선왕조의궤, 일본에서 반환되는 조선왕실의궤와 증보문헌비고, 대전회통 등 도서에 대한 정리와 약탈 당시 시대적 배경 등은 출제 가능성이 높은 만큼 남은 기간 동안 다시 정리하는 것이 좋다. 또 독도에 대한 역사적 접근, 한일협정 내용의 문제점, 아홉 차례의 개헌 내용과 배경, 북한의 1980년대 이후 부분적 개방정책과 핵 관련 문제 등도 출제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선우빈 한국사 강사는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특정 이념에 치우친 문제를 포함해 사회적 논란이 예상되는 문제가 출제되지 않도록 검증과정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해석의 여지가 적은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복습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사검정시험 기출 문제를 통해 다양한 사료와 화보를 정리하는 것도 최종 마무리로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이 밖에 행정학은 주민참여제 청구요건, 재정 조정제도 비율 등은 다시 한번 정리해야 하며, 국가직인 만큼 지방행정 분야도 살펴봐야 한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도움말 에듀스파
  • [열린세상] 쓰나미와 문화/조광 고려대 한국사 명예교수

    [열린세상] 쓰나미와 문화/조광 고려대 한국사 명예교수

    인간이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정리해 나갈 때부터 자연과 문화는 주요한 사색의 대상이었다. 문화에는 수많은 개념이 통한다. 그 가운데 하나로 ‘자연의 도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류의 대응방법’이라는 규정도 있다. 물론 자연은 인간을 향해 도전만을 감행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그래서 고대사회 이래로 사람들은 자연과 문화를 서로 공존하면서 대립되는 존재로 이해해 왔다. 또한 이 도전을 통해 인간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지진은 리히터 규모 9.0의 진도였다고 한다. 이 지진의 여파로 쓰나미(津波)가 뒤따랐고, 지진을 이긴 원자력 발전소도 쓰나미 앞에 무너져 내렸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일본의 자연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드러내준 사건이라면, 이에 대응하는 그들의 태도는 일본의 문화적 특성과 그 수준을 가늠케 한 사건이었다. 지진과 쓰나미라는 인류문명에 대한 자연의 공격 가운데에서도 일본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자 노력했으며, 힘써 평온과 질서를 유지해 나갔다. 처참하게 파괴된 슈퍼마켓 앞에서도 그들은 어김없이 줄을 서서 물건 값을 치렀다. 그들의 이와 같은 태도는 놀라운 것이었다. 특히 지구 다른 쪽에서 자연재해에 뒤따라 일어났던 혼란과 약탈 등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경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본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보면서, 그들의 문화수준을 가늠하게 된다. 이 자연의 재난은 정쟁을 멈추게 했고, 국가적 위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일치된 노력을 드러내 주었다. 피해를 입은 동포들을 돕고자 노력하는 일본인의 진지한 모습들이 도처에서 속속 드러났다. 이 엄청난 자연의 도전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들의 태도는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역사적 앙금이나 현실적 분쟁, 경쟁 등을 뒤로한 채 우리나라나 중국 그리고 미국 등 멀고 가까운 나라들이 일본을 앞다투어 지원하고자 했다. 이번 대지진과 지진해일 사건을 계기로 일본보다 더 가난한 나라들까지도 마음을 열고 일본을 돕기 위해 너도나도 일어섰다.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는다는 일은 빈부의 정도를 떠나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감정의 발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보편적 도움과 격려는 일본의 재난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좌절하고 있을 이와테의 주민들이, 그 아름다운 고향을 상실한 센다이의 시민들이 하루바삐 다시 일어나 새로운 일본을, 새로운 일본 문화를 가꾸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진실은 하늘에 통하고 진심은 얼어붙은 상대를 움직이게 한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것은 진실한 인간성을 드높이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마땅히 이번 지진과 쓰나미의 재난을 입은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도와야 한다. 이는 질서의식과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배려심을 키워주어 우리 문화를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이번에 일어난 자연의 사건을 통해 일본도 우리와 함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관찰자들은 지금 일본인이 보여주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와 연대의식은 일본인 내부에 국한된 일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인 스스로는 자신들 이외에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함을 지적한다. 여기에서 일본문화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이 논의되기도 한다. 일본은 이번 사건을 통해서 많은 친구들을 새롭게 확인하게 되었을 것이다. 미국이 일본을 돕기 위해 전개한 작전명도 다름 아닌 ‘친구들’이었다. 물론 이번 일로 인해서 일본은 많은 것을 잃었다. 그들은 또 이와 함께 새로운 것을 얻었다. 그것은 일본문화에 불행을 통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하는 현명함이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번의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문화의 질을 고양시키고, 폭을 확대할 수 있는 또 다른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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