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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치가 약탈한 샤갈·마티스 등 초고가 작품 공개

    나치가 약탈한 샤갈·마티스 등 초고가 작품 공개

    과거 독일 나치 정권이 약탈한 세계 유명 화가의 작품 중 일부가 차례차례 공개돼 관심을 끌고있다. 특히 이중에는 세기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의 미공개 작품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일(현지시간) 독일 당국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티스의 미공개작 ‘앉아있는 여인’(Sitzende Frau) 등 여러 작품들을 자료화면으로 공개했다. 세계에 화제를 뿌린 이 작품들은 지난 1930년~40년대 당시 나치 정권이 유대인 미술상에게서 약탈한 것으로 총 1500여점에 이른다. 현재의 가치로 무려 10억 유로(약 1조 4300억원). 당시 이 작품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퇴폐적 예술품’으로 낙인찍혀 폐기 처분에 놓였으나 미술품 수집가 힐데브란트 구를리트가 몰래 빼돌려 보관해왔다. 이후 작품들은 아들 코르넬리우스에게 넘어갔고 그는 생활비가 부족할 때마다 작품을 야금야금 팔아오다 지난 2011년 독일 세무당국에 걸려 이같은 사실이 만천 하에 드러났다. 이날 공개된 작품들은 마티스 작 외에도 오토 딕스의 ‘담배피는 자화상’(Selbstportrait Rauchend)등 다양한 명작들이 포함됐다. 특히 마티스의 작품은 우리 돈으로 약 1000억원, 샤갈의 작품은 약 250억원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약탈 작품들의 일부는 공개됐지만 그림의 소유권을 놓고 벌일 후폭풍은 지금부터 불어올 기세다. 특히 독일 당국이 소유권 분쟁을 우려해 2년 간이나 이같은 사실을 숨겨온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비 영리조직인 유럽 약탈 미술위원회(The Commission for Looted Art) 앤 웨버 위원은 “독일 당국은 확보한 모든 약탈 미술품의 리스트를 공개해야 한다” 면서 “전세계에 흩어진 많은 유대인 가족들이 자신의 소유 작품인지 알고 싶어한다” 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피카소·샤갈… 나치 약탈 1조 4300억원어치 미술품 찾았다

    독일 나치 정권이 1930~40년대에 약탈한 세계 유명 화가의 작품 1500여점이 뮌헨 소재 한 아파트에서 발견됐다. 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독일 시사주간지 포커스를 인용해 한때 소실된 것으로 알려진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파울 클레, 막스 베크만, 에밀 놀데 등의 일부 미술품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포커스에 따르면 이들 예술 작품의 가치는 10억 유로(약 1조 4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포커스의 보도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전후에 발견된 약탈 예술품 가운데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이들 작품은 2011년 초 독일 세관 당국이 나치 시절 유명한 미술품 거래상인 힐데브란트 구를리트의 아들 코넬리우스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고 포커스는 전했다. 당국은 당시 탈세 혐의를 받고 있던 코넬리우스의 뮌헨 소재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1500여점의 예술 작품을 찾아냈다. 은둔 생활을 해 온 코넬리우스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작품을 한두 점씩 내다 팔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에 발견된 작품 중 일부는 나치가 ‘퇴폐 예술’로 낙인 찍어 압수한 것이고, 다른 작품은 구를리트가 유대인 예술품 수집가들로부터 강탈하거나 헐값에 사들인 것들이다. 발견된 작품 가운데 마티스가 그린 ‘여인의 초상’은 프랑스의 저명한 예술품 거래상인 폴 로젠버그의 소유였다. 로젠버그의 손녀이자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전 아내이기도 한 안 생클레르는 가족과 함께 현재 나치 약탈 예술작품 반환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바이킹, 보스 죽으면 노예 목 잘라 순장했다(노르웨이 연구진)

    바이킹, 보스 죽으면 노예 목 잘라 순장했다(노르웨이 연구진)

    9~11세기 중세시대 유럽 바이킹들은 보스가 죽으면 노예들의 목을 잘라 몸체만 함께 묻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미국 허핑턴포스트와 USA 투데이 등이 노르웨이 연구진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는 이들 해적이 약탈한 사람들을 단순히 부려먹거나 섹스를 위한 노예로 삼았다는 기존의 상식을 넘어 훨씬 더 잔인했음을 보여준다. 보도에 따르면 엘리제 노이만 등 오슬로대학 연구진은 노르웨이 해변인 플락스타트에서 발견된 10여구의 유해를 분석한 결과 이같은 결론을 얻었다. 이 곳은 9~11세기 바이킹이 번성했던 지역으로 수십년 전 그 흔적이 발견되었다. 노이만은 허핑턴포스트에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는 플락스타트에서 무덤 두개가 붙어 있는 형태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다”면서 “이 ‘쌍무덤’엔 둘이나 그 이상의 사람 유골이 나왔지만 두개골은 오직 한개 뿐”이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쌍무덤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연구진은 니트로겐과 탄소 동위원소를 이용한 유골 분석을 실시했다. 이 분석기법은 주인공들의 식습관을 밝히는데 유용하다. 분석 결과 머리 없는 유골들의 식이습관 흔적은 머리가 온전히 있는 유골을 분석한 흔적과 확연하게 달랐다. 연구진은 또 이 유골들의 미코콘드리아 DNA를 조사해 이들이 서로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곧 이들의 지위가 확연하게 다른 것으로 해석됐다. 결국 연구진은 당시 해적들이 그들의 두목이 죽으면 노예들의 목을 잘라 몸체만 죽은 보스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노이만 교수는 “해적들의 노예 순장은 특정 문헌을 통해 예전에도 기록된 적은 있다”고 밝혔다. 이븐 파들란이라는 아랍 여행자의 설명에 따르면 ‘치프틴’이라는 바이킹 무덤에 한 소녀가 죽임을 당해 주인과 함께 묻혔다는 것이다. 임창용 기자 sdragon@seoul.co.kr
  • 서프라이즈, 장제스 목숨 살린 보물에 담긴 비화 소개

    서프라이즈, 장제스 목숨 살린 보물에 담긴 비화 소개

    장제스의 목숨을 구한 그의 보물을 둘러싼 비화가 소개돼 화제다. 3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마오쩌둥과 장제스의 스토리가 소개됐다.당시 공산당을 이끌고 있던 마오쩌둥은 국공협력 관계를 깬 장제스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장제스의 국만당에 비해 턱없이 적은 규모의 병력으로 고전하던 마오쩌둥은 중국 농민들의 민심을 공략하는 계략을 짜낸다.당시 장제스의 국민당은 농민들을 약탈해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농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이에반해 마오쩌둥은 토지개혁을 실시해 지주들의 토지를 빼앗에 농민들에게 나눠줘 농민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해 승리를 눈 앞에 두게 됐다. 하지만 장제스가 배를 이용해 중국을 탈출하자 마오쩌둥은 그의 뒤를 필사적으로 쫓았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장제스 배에 실린 중국 최고의 보물때문에 배를 격침하지 못하고 그를 살려주게 된다.장제스 배에 실린 보물은 3대에 걸쳐 상아를 조각한 상아투화운룡문투, 옥석을 가공해 만든 육형석 등 중국 고대 왕조부터 청나라까지의 것으로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어마어마한 보물 덕분에 무사히 대만으로 피신한 장제스는 국립고궁박물원을 건립하고 중국 왕실 보물을 전시했다. 워낙 보물의 양이 방대해 5천 5백점 씩 돌아가며 전시해 이를 모두 관람하려면 30년이 걸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물까지 약탈” 시위 진압…발포…신장·티베트·네이멍구 지역 준계엄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물까지 약탈” 시위 진압…발포…신장·티베트·네이멍구 지역 준계엄

    신장(新疆)위구르·시짱(西藏·티베트)·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등 중국 3대 민족 갈등 지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중국의 강압 통치와 차별 대우에 반발하는 이들이 공안 당국, 한족과 유혈 충돌함으로써 이들 3개 소수민족 자치 지역은 ‘준(準)계엄’ 상태에 들어갔다. 지난 19일 시짱자치구 나취(那曲)지구 비루(比如)현 샤취(夏曲)진에서 티베트족 100여명은 진(鎭)정부 앞에 모여 전날 체포된 주민 단쩡랑줘(丹增讓卓·34)를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정부 당국은 순박한 티베트족을 반란자의 죄명을 씌워 잡아들이고 있다”면서 “당국은 사법 집행을 공정히 하라”며 한족과의 차별 대우 철폐를 촉구했다. 현지 공안 당국은 이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무차별적으로 구타하며 티베트족 6명을 체포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1일 보도했다. 8일에는 비루현 썬탕(森塘)촌에서 국경절(10월 1일)을 맞아 중국 오성홍기를 게양하는 것에 반대한 티베트족을 체포했다. 이에 주민들이 당국에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공안의 발포로 3명이 숨졌다. 현지 주민 쌍주(桑珠)는 “중국 당국은 200명 이상의 준군사 조직과 경찰차를 마을에 배치하고 주요 도로에 검문소를 설치했다”면서 “공안들은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은 이들을 모두 붙잡아 데려갔다”고 밝혔다고 RFA가 전했다. 이들 지역에 긴급 상황이 발생하자 궈성쿤(郭聲琨) 공안부장은 14~16일 시짱자치구를 급거 방문해 “무장경찰과 민병조직 등 모든 치안 역량을 동원해 순찰을 강화하고 위법 행위를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국가반테러공작영도소조’의 수장인 그의 이 같은 발언은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활동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공안 당국이 지난달 말 이후 위구르족 7명을 테러 혐의로 사살해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6월 26일 투루판(吐番)지구 산산(?善)현 루커친(克沁)진에서 위구르족 30여명이 파출소와 지방청사 등을 습격해 한족과 위구르족 47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사건이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신장 지역에서는 최근 4개월간 위구르족과 공안, 한족 간의 유혈 충돌로 1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9년 7월 5일 우루무치(烏木齊)에서 위구르족과 한족 간의 충돌로 197명이 사망한 ‘7·5사건’ 이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네이멍구자치구에서는 테러 움직임이 포착됐다. 네이멍구 당국은 지난달 30일 퉁랴오(通遼)시에서 ‘2013 안정 임무’라는 암호명으로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반테러 훈련을 실시했다. 공안과 무장경찰, 소방 등 15개 기관에서 1700여명이 참가한 이번 훈련은 불법적인 시위 진압에 초점이 맞춰져 현지 주민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도 이뤄졌다. 앞서 공안국은 “최근 네이멍구 지역에서 실시한 일제 단속에서 폭발물 50t, 12만개의 기폭장치 그리고 총 2000정과 칼 3만 2000개가 압수됐다”고 주장했다. 이들 투쟁에는 한족이 부(富)와 권력을 독점하는 데 대한 불만과 차별 대우에 대한 반감 등이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인구 12억 7318만여명 가운데 한족이 11억 5939만여명(약 91%)이고 55개 소수민족은 1억 1379만여명에 불과하다(2010년 11월 1일 제6차 인구조사). 이들 소수민족 가운데 위구르족(약 839만명)과 몽골족(581만명), 티베트족(542만명)이 한족 통치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저마다 다른 투쟁 이유도 있다. 시짱자치구는 1950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이 침공해 점령했다. 1951년 5월 중국은 ‘티베트의 평화적인 해방’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티베트와 17조 협의를 체결해 강제 합병했다. 1959년 고문과 학살로 강압 통치를 하는 중국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주도한 이후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 라마를 정신적 지도자로 받들고 있다. 1960년대 문화혁명 때는 사찰 3700개 가운데 13개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파괴됐다. 신장 지역 위구르족은 중국 정부에 뿌리 깊은 증오심을 갖고 있다. 위구르는 1759년 청나라 건륭제 때 중국에 강제 합병된 이후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키다 진압당했다. 한족들이 신장 지역으로 물밀듯이 이주해 오면서 위구르족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자치구 내 위구르족 비율이 40.1%로 곤두박질쳤다.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족이 끊임없이 분리·독립 운동을 시도하면서 중국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네이멍구자치구에서는 한족에게 생활 기반을 빼앗기고 있다는 불만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해 이 지역의 석탄을 ‘싹쓸이’하고, 사막화로 물이 부족한 상황인데도 수자원을 독점 이용하고 있는 데 대해 몽골족이 반발하는 것이다. 신장 및 시짱 지역의 투쟁 방식은 네이멍구 지역과는 달리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다. 중국 내는 물론 해외에 지부 또는 망명정부를 구성해 중국 정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다. 위구르족은 ‘세계위구르대표대회’(독일 뮌헨)와 산하조직 ‘세계위구르청년대표대회’,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파키스탄), ‘동투르키스탄 망명정부’(터키) 등의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티베트족은 ‘티베트 망명정부’(인도 다람살라)와 산하 조직으로 ‘티베트 청년대회’ 등을 두고 있다. 중국 정부는 유화 공세도 펴고 있다. 위정성(兪正聲)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티베트를 방문해 티베트 사회 안정 방안을 협의했다. 위 주석은 지난 8월 1일부터 5일까지 티베트 라싸 등 각 지역의 전통 불교 사원과 학교, 기업, 농촌 등을 방문해 각계 대표들로부터 티베트 발전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사회 안정에 협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khkim@seoul.co.kr
  • [씨줄날줄] 심수관과 도자기 역사/서동철 논설위원

    중국 장시성(江西省) 징더전(景德鎭)은 송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는 1000년 가까이 세계 도자기의 메카였다. 징더전의 관요(官窯)에서 생산된 청화백자는 이슬람 세계를 넘어 유럽에 수출돼 왕실과 귀족의 눈을 사로잡았다. 지금도 유럽 고성(古城)에 가면 어디서든 영주들이 쓰던 청화백자 몇 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다지 품질이 좋지 않은 그릇조차 전시관에 애지중지 모셔 놓은 것을 보면 유럽에 불던 청화백자의 열풍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1602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배가 중국산 도자기 수십만 점을 실은 포르투갈 상선 캐슬리나호를 약탈했다. 암스테르담으로 수송된 도자기는 경매에 부쳐졌는데 구름같이 몰려든 응찰자는 대부분 왕족이나 귀족이었다. 프랑스왕 앙리 4세와 영국왕 제임스 1세도 백자 식기를 낙찰받았다고 한다. 청화백자의 명성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징더전의 청화백자는 한동안 명맥이 끊긴다. 1616년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면서 극도의 혼란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 반란이 일어나자 징더전은 1620~1630년대 가마에 불을 지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후금이 건국한 청나라는 한동안 도자기 교역을 금지시킨다. 청화백자의 주문은 넘쳐나는데 공급이 완전히 막히자 유럽 상인들은 대안을 찾아나서야 했다. 혼란의 틈을 파고든 것이 일본 도자기다. 일본의 도자기 역사는 다도(茶道)와 궤를 같이한다. 일본의 차문화는 16세기 중반 선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센노 리큐의 다도가 유행하면서 소박한 조선 막사발이 각광받는다. 자연히 조선 도공의 명성은 높아졌고, 부산과 김해 민간 자기소와의 교역도 시작됐다. 한편으로 일본은 징더전이 청화백자를 수출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징더전 것을 흉내내어 청화백자를 만들기도 했지만 품질은 크게 뒤졌다. 이런 상황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일본의 도자기 기술을 혁신하는 계기가 됐다. 명청 교체의 혼란기에 조선 출신 도공이 주축이 되어 생산을 시작한 일본의 청화백자는 빠르게 유럽시장을 파고들었다. 임진·정유 양난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심수관 도예전이 어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막을 열었다. 알려진 대로 남원 출신의 심수관은 일본의 도자기를 국제화한 조선 도공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존재이다. 이번에는 심수관의 12대부터 15대까지 작품이 선을 보이고 있다. 전시회를 둘러보면서 도자기 역사를 한번쯤 되새겨 보는 것도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서동철의 시시콜콜] 서산 부석사와 영주 부석사

    [서동철의 시시콜콜] 서산 부석사와 영주 부석사

    일본 쓰시마의 관음사에서 도둑이 훔쳐 국내로 들여온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당초 조성하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절은 충남 서산의 부석사다.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이 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글로 더욱 유명한 경북 영주의 부석사와는 다른 절이다. 하지만 관음사의 문화재 안내판조차 불상의 고향을 영주 부석사로 잘못 표기하고 있을 만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한자 이름도 같은 두 부석사(浮石寺)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영주 부석사는 676년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명을 받아 창건했다.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창건 설화는 중국에 유학하고 돌아오는 의상의 뱃길을 선묘라는 낭자가 바다의 용이 되어 보살폈다는 내용이다. 상대적으로 조촐한 서산 부석사에도 677년 의상대사 창건설이 전하는데, 창건 설화도 영주 부석사와 같은 선묘 설화라는 것이 흥미롭다. 실제로 두 절은 닮은꼴이다. 우선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주재한다는 아미타부처를 주존으로 모셨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주는 무량수전, 서산은 극락전으로 큰법당의 이름은 다르다. 하지만 무량수전의 주존인 무량수무량광불(無量壽無量光佛)은 극락전의 주존인 아미타부처를 뜻한다. 그러니 무량수전이 극락전이고, 극락전이 무량수전이다. 서산 부석사는 무량수각을 별도로 지었다. 두 절은 전망 좋은 사찰로도 유명하다.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앞에는 소백산맥 연봉이 바라보이는 안양루가 자리잡았다. 서산 부석사에도 천수만 일대 간척지와 부남호, 그 너머 안면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역시 안양루가 세워졌다. 관음보살이 서산 부석사에서 조성됐다는 사실은 기록으로 확인됐다. 불상 내부에 ‘고려국 서주 부석사 당주 관음’을 주조한 내용을 담은 ‘결연문’이 들어 있었다. 서주(瑞州)는 고려시대 서산의 지명이다. 불상을 조성한 천력 3년은 충선왕 즉위년인 1330년으로, 천력(天曆)은 원나라 문종의 연호이다. ‘당주(堂主) 관음’이라고 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 불상은 높이 50.5㎝ 정도지만, 독립된 법당의 당당한 주존이었다는 뜻이다. 과거 서산 부석사의 큰법당은 극락전이 아니라 관음보살이 주인인 원통전이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서산 부석사에는 ‘충남도지’에 나오는 또 하나의 창건설이 있다. 고려 말의 충신 유금헌이 망국의 한을 품고 은거하다 세상을 떠나자 승려 적감이 절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이 창건 설화가 좀 더 사실에 근접했다고 보면, 의상대사와 연결시켜 아미타도량으로 만든 것은 절의 역사를 좀 더 빛나게 하겠다는 후대의 노력일 수도 있다. 어쨌든 과거 서산 부석사 관음보살상의 지위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적어도 외국의 작은 절에 선물로 줄 만큼 미미한 존재는 아니었다. 한·일 관계는 어려워지겠지만, ‘왜구의 약탈설’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바다의 죽음, 죽음의 바다

    바다의 죽음, 죽음의 바다

    [텅 빈 바다] 찰스 클로버 지음/이민아 옮김/펜타그램/452쪽/2만원 [플라스틱 바다] 찰스무어·커샌드라 필립스 지음/이지연 옮김/미지북스/470쪽/1만 8000원 위기에 처한 해양 생태계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파헤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기업형 어업이 야기한 수산물 남획으로 멸종 위기종이 속출하고, 플랑크톤보다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 먹이사슬을 교란하는 등 턱밑까지 다가온 바다의 재앙에 경고음을 울리는 현장 보고서다. 읽고 나면 식탁에 올라온 참치 캔 한 통과 물병 뚜껑 하나가 얼마나 바다를 위협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텅 빈 바다’는 영국의 환경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전 세계 바다에서 벌어지는 수산물 남획의 실태와 이로 인한 해양생태계 파괴의 실상을 치밀하게 취재해 낱낱이 고발한 탐사 르포다. 지금까지 해양생태계의 문제는 대부분 산업시설의 독성물질이나 핵폐기물 무단 방출 등 해양오염의 측면에서 다뤄졌을 뿐 남획에 관한 문제의식은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구상부터 출간까지 13년이 걸린 이 책에서 저자는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알고 있던 남획의 폐해를 본격적으로 파헤친다. 저자가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취재한 남획의 실태는 실로 충격적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어항으로 꼽히는 뉴잉글랜드의 글로스터 항구는 한때 그물을 펼치면 갑판 위에 물고기 떼가 파도처럼 쏟아지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어획량 감소 탓에 도시 자체가 몰락했다. 세계에서 어종이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서아프리카 대륙붕의 어장은 선진국의 약탈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미지의 보고인 심해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몸에 좋은 ‘오메가3 지방산’을 얻기 위해 번식률이 매우 낮아 멸종 위험이 큰 물고기까지 마구 잡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원인은 인간의 탐욕이다. 대표적인 어업 방식인 트롤 어선들은 대형 그물들을 바다에 던져 주변 물고기를 싹쓸이한다. 현대 첨단기술로 무장한 기업형 어업이 횡행하면서 1950년대 해양에서 살았던 대어의 90%가 사라졌고, 세계의 어획량은 1988년부터 매년 77만t씩 감소해 왔다. 저자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양의 40배에 달하는 어류를 포획하고 있다”면서 “이대로 간다면 2048년쯤에는 어류 자원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경제적 이익에만 급급한 트롤 어선과 선주들뿐만 아니라 무능력한 과학자, 정보를 사실대로 공개하지 않고 국민을 우롱하는 정부기관, 선거 때마다 어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가난한 나라에서 자국 어선이 해적질과 다름없는 불법 어업을 저질러도 눈감아 주는 유럽 원양 대국들의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또한 멸종위기 생선인 철갑상어나 참치 요리를 거리낌 없이 자랑하는 유명 요리사들과 생선을 먹을 줄만 알지 이런 사실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 소비자들도 풍요의 보고이던 바다를 쇠락하게 만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2006년 영국에서 초판이 출간된 이 책은 루퍼트 머리 감독이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2009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책 말미에 보론으로 실린 그린피스 활동가 박지현씨의 글은 세계적인 원양어업 국가인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남획 실태를 돌아보게 한다. ‘플라스틱 바다’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해양오염을 다룬 책이다. 비슷한 종류의 책이 이미 여럿 나와 있어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저자가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를 최초로 발견해 플라스틱 해양오염 문제를 전 세계적으로 환기시킨 찰스 무어 선장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어 선장은 1997년 북태평양을 항해하던 중 아름다운 수면 아래로 플라스틱 조각이 흩뿌려져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가 발견한 것은 훗날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라고 불리게 될, 한반도의 7배 크기에 달하는 지구상 가장 큰 쓰레기장이었다. 이 발견을 계기로 평범한 시민이던 무어 선장은 해양과학자이자 환경운동가로 변모한다. 그가 미국 각지의 환경운동가, 학자, 시민들과 함께 공동으로 연구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실상은 충격을 넘어 공포로 다가온다. 1998년 처음으로 플라스틱 쓰레기양을 계량하기 위해 북태평양 한가운데서 무작위로 표본을 수집, 분석한 결과 플라스틱의 양은 플랑크톤보다 6배나 많았다. 10년 뒤인 2008년 조사에선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이 급증해 무려 46배에 달했다. 석유 추출물로 만든 플라스틱이 환경과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해양 플라스틱 오염은 앨버트로스와 바다거북 같은 동물들이 플라스틱을 즐겨 먹고, 바닷속 물고기들이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면서 해양 먹이사슬을 교란시키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해양 생물과 거의 비슷한 식습관을 가진 극지방의 이누이트족들에게서 화학물질 중독 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은 해양 플라스틱 오염이 인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저자는 더 늦기 전에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를 모두 줄이는 방향으로 경제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유진룡 장관 “부석사 불상 日에 돌려줘야” 발언 논란

    유진룡 문화체육부 장관이 한·일 간 갈등을 빚고 있는 부석사 불상을 일본에 반환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일본 측이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유 장관은 27일 광주에서 열린 시모무라 하쿠분 일본 문부과학상과의 회담에서 서산 부석사에서 제작·보관됐다가 일본에 넘어간 뒤 다시 절도범에 의해 한국으로 반입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이하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교도통신 등이 보도했다. 시모무라 장관은 일본 기자들과 만나 자신이 불상 반환을 요청했고 유 장관으로부터 ‘한국 정부 차원에서 반환을 위해 제대로 대응하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일차적으로 형사재판의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맞다”며 “유 장관이 말한 것은 훔쳐온 문화재라면 상식적인 선에서 돌려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한 것”이라며 일본 언론에 보도된 시모무라 장관의 전언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일본이 과거에 우리 문화재(불상)를 강탈했다는 증거가 나오면 유네스코협약이나 국제법 등을 통해 다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유 장관이 시모무라 장관의 주장과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적절성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유 장관의 발언과 비슷한 견해를 제기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한·일 관계는 물론 일본에 대한 약탈 문화재 반환 요구의 명분 확보 등을 감안해 일단 대승적으로 일본 관음사로 원상복구시키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아직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문화재 주무부처 장관이 당사국 장관과의 회담에서 반환을 거론한 것은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을 스스로 좁힌 처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강화 전등사의 역사·문화적 전통 느껴보세요

    인천 강화 전등사는 ‘제13회 삼랑성 문화축제’를 다음 달 5∼13일 ‘천 년의 기다림, 새로운 시작 원(願)’이라는 주제로 개최한다. 삼랑성 문화축제는 삼랑성의 역사·문화적 중요성을 재조명하고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촉구하기 위해 2001년부터 시작된 문화 행사다. 전등사 주위의 삼랑성과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전등사의 유서 깊은 역사·문화적 전통을 되살린다는 취지다. 전등사 주변의 삼랑성이라는 이름은 단군의 세 아들(삼랑)이 힘을 합쳐 쌓았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자 고종이 궁궐을 짓고 원종이 부처의 가피로 재난을 물리치는 행사를 4개월간 펼친 곳으로 유명하며 정족산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올해 행사는 전국 미술 실기대회와 글쓰기, 전등사의 옛 스님들을 기리는 다례재, 각종 공연이 어우러지는 문화 한마당으로 진행된다. 피아니스트 이루마와 가수 웅산, 한영애, 안치환 등이 출연하는 가을음악회(5일)와 호국 영령을 위한 영산대재(7일), 강화 지역 예술 문화 단체들이 참가하는 지역 문화 한마당(12일), 극단 좋다의 마당극 ‘심청이 놀부를 만났을 때’(13일)를 비롯해 짚풀공예 체험, 특산물장터 등 다채로운 행사로 꾸며진다. 특히 구한말 육군대장 출신으로 전등사 전투에서 일본군을 물리치는 등 강화 곳곳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던 강화 출신 의병장 이능권의 위령대재가 눈에 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어보와 국새/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조선시대의 어보(御寶)와 국새(國璽)는 왕실의 도장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다른 점도 많다. 어보는 왕실의 혼례나 책봉 등 궁중의식이나 시호나 존호를 올릴 때 사용한 의례용 도장을 말한다. 왕과 왕비뿐 아니라 세자와 세자빈도 어보를 받았고, 왕과 왕비의 어보는 사후 왕실 사당인 종묘에 안치했다. 왕과 왕비의 도장은 보(寶), 왕세자와 세자빈의 것은 인(印)이라고 했다. 어보는 금박을 입히거나 은 또는 구리, 옥과 같은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졌다. 국새는 외교 문서나 행정에 임금이 사용하는 도장이다. 국새는 금으로 제작되었다.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국새는 중국에서 받았다. 조선 태조는 명나라에서 ‘朝鮮國王之印’이라고 적힌 옥새를 받았고 청나라가 들어선 뒤에는 이 옥새를 바치고 새 옥새를 받았다. 이 국새는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기까지 유일한 국새였다. 고종은 대한제국 수립 후 국새를 여러 개 더 만들었다. 국새는 옥새(玉璽), 국인(國印), 새보(璽寶), 대보(大寶), 어새(御璽), 금보(寶), 금인(印)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렸으며 상서원이라는 관청에서 도승지의 책임 아래 보관했다. 옥새는 옥으로 제작했고, 금보는 재질이 금이었지만 옥새로 통칭했다. 중국 진시황이 ‘화씨옥’(和氏璧)을 얻어 천자의 인장을 제작한 것이 최초의 옥새다. 대한민국의 국새는 건국 이듬해인 1949년 5월 1대 국새가 만들어졌고, 최근 가짜 파동까지 겪으면서 5대 국새가 제작됐다. 어보나 국새나 관리는 엉망이었다. 언젠가 감사원이 조사했는데 ‘조선국왕지인’ 등의 국새가 1971∼1985년에 분실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 왕조의 국새는 2009년 발견된 대한제국기의 국새 ‘황제어새’(皇帝御璽)가 유일하다. 조선시대 어보는 총 366점이 제작되어 323점이 남아 있다. 43점은 행방이 묘연하다. 대부분 6·25전쟁 때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 남아 있는 어보 가운데 316점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고 나머지 7점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고려대 박물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LA 카운티 미술관에 있는 조선 중종 문정왕후의 어보가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6·25 당시 미군 병사가 종묘에서 가져간 것이다. 문정왕후의 존호(임금이나 왕비가 살아 있을 때 올린 칭호)인 ‘聖烈大王大妃之寶’(성렬대왕대비지보)’란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혼란 통에 약탈당하거나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수십만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반환은 되찾아 오려는 꾸준한 노력이 일궈낸 소중한 성과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금융위, 대형 대부업체 직접 관리… 서민 고금리 대출 잡힐까

    금융위, 대형 대부업체 직접 관리… 서민 고금리 대출 잡힐까

    러시앤캐시, 산와머니 등 중·대형 대부업체들이 사실상 제도권 금융에 편입된다. 지금까지는 지방자치단체의 관할 아래에 있었지만 앞으로는 정부와 감독당국의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또 대부업체에 자본금 충족 요건이 신설된다. 현 상태대로라면 전체 대부업체의 84%가량이 자본금 기준 미달로 퇴출 수순을 밟게 된다. 이와 함께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길도 열렸다. 금융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대부업 제도 개선 방안을 22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채권 추심업체와 2개 이상 시·도에서 영업하는 대부업체, 대부중개업체는 금융위에서 직접 관리·감독을 하게 된다. 여기에 해당하는 업체는 채권 추심업체를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41개에 이른다. 단, 1개 시·도에서 영업하는 대부업체나 대부중개업체는 현행대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등록·검사·제재를 담당하게 된다. 대부업계는 현재 제2금융권(고금리)으로 제한돼 있는 자금조달의 통로를 은행이나 회사채 시장(저금리)으로 다양화해 주는 것을 조건으로 정부에 제도권 금융에 편입시켜 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렇게 되면 서민대출의 금리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정부의 추가적인 조치가 나올지 주목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2002년 대부업법이 시행된 이래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졌지만 이에 대한 관리·감독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금융 소비자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면서 “지자체 중심에서 정부와 감독기관 중심으로 바꿔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감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업의 경우 법인은 1억원, 개인은 5000만원의 자본금이 있어야만 설립이 가능하도록 바뀐다. 지금까지는 이런 제한 없이 수수료를 내고 교육 프로그램만 이수하면 대부업 등록이 가능해 영세업체들이 난립했다. 현재 자본금 요건을 충족하는 업체는 1706개로 전체 대부업체(1만 895개)의 15.7% 수준이다. 나머지 84.3%는 자본금을 확충하지 않으면 간판을 내려야 한다. 소비자 피해 우려가 큰 채권추심업에 대해서는 개인이 아닌 법인 업체로 한정하고 5억원을 자본금 요건으로 정했다. 연체채권을 사들여 추심하는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 최소 3000만원 이상 보증금을 책정하도록 했다. 2개 이상 시·도에서 영업할 경우 보증금은 5000만원으로 늘어난다. 과장광고, 불법 수수료 수취 등 우려가 있는 대부중개업체는 개인은 1000만원, 법인은 3000만원 이상의 보증금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2개 이상 시·도에서 영업하는 대부중개업체는 법인으로 한정하고 5000만원 이상의 보증금이 책정된다. 자기자본 500억원 이상 등 대형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도 가능해진다. 다만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인수하더라도 연 20%대의 이자율을 유지해야 하고 저축은행 고객을 대부업체로 알선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그러나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저축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결국 국민이 부담한 것으로 약탈적 대출로 막대한 이익을 거둬 온 대부업체에 저축은행을 넘기겠다는 정부 방침에 쉽게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있겠는가”라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문정왕후 어보 반환되기까지 과정은(일지 전문)

    문정왕후 어보 반환되기까지 과정은(일지 전문)

    조선시대 문정왕후 어보가 6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미국 LA 카운티 박물관(이하 라크마)이 19일 오후 3시(현지시간) 문정왕후 어보를 조건없이 한국 정부로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박물관 측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안민석 민주당 의원, 문화재제자치찾기 대표 혜문스님과 가진 면담에서 “그동안 제출해 준 증거를 검토한 결과, 한국전쟁 당시 미군 병사가 서울의 종묘에서 절도한 물건임이 충분히 입증된다고 생각한다. 박물관 측은 도난품인 경우 반환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미 우호 차원에서 한국 정부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물관 측은 다음주부터 반환절차에 착수하겠다고도 설명했다. 다음은 안민석 의원 측이 정리한 문정왕후 어보가 반환되기까지의 경과 일지. -1950. 6.25 전쟁중 서울 종묘에서 문정왕후 어보 및 47개의 어보 분실 -1953. 11 . 17 미국 볼티모어 선 ‘종묘 어보 분실사건 보도’ The Baltimore Sun -1956. 5 . 22 주한미국대사 양유찬. 미국 국무부에 분실신고. 국무부 문서에 기록이 남음- Memorrandum Of Coversation (May 22. 1956) -2000. 국립문화재 연구소, LA주립박물관(LACMA)에서 문정왕후 어보 발견 -2009. 1. 혜문스님, 미국 메릴랜느 국가 기록원에서 ‘아델리아 홀 레코드’ 발굴. 한국전쟁중 미군 병사의 문화재 약탈 사건 파일 찾아냄 - 2009. 9.10 문정왕후 어보 LA 박물관 소장 사실 국내 언론에 보도. 연합뉴스, LA카운티미술관 한국관 확대 재개관 보도 - 2010. 10. 21 문정왕후 어보 관련 사실 확인. 반환운동 개시 - KBS.9시 뉴스 어렵게 돌려받은 왕실 문화재 ‘행방 묘연’ 보도. - 2011. 2 혜문스님, 메릴랜느 국가 기록원에서 추가 자료 발견. 양유찬 대사의 분실신고 기록. 볼티모어 선의 기사 등 - 2011. 6. 3 LACMA 박물관에 반환 요청서 발송 -> 답변 없음 - 2012. 3. 혜문스님,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출간. 문정왕후 어보 내용 수록 - 2013. 1. 혜문스님. 뉴욕에서 교민들 상대로 문정왕후 어보 반환 운동 제의 - 2013. 5 LACMA 박물관에 2차 서면 발송 - 2013. 5. 28 KBS 시사기획 창, 문정왕후 어보 관련 방송 - 2013. 6. 안민석 민주당 의원. 문정왕후 어보 반환 촉구 결의안 발의 - 2013. 6 LACMA 박물관 면담 요청 수락 답변 - 2013. 7. 11 LACMA 박물관과 제1차회담. 종묘 소장 기록 확인함 - 2013. 7. 28 LA 카운티 반환 용의 표명. - 2013. 8. 6 백악관 청원을 위한 10만인 서명 운동 개시 - 2013. 8. 30 반환촉구 보신각 타종식(12시) - 2013. 9. 19 어보 반환 결정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정왕후 어보, 62년 만에 돌아온다… “다음주부터 지체없이 반환 착수”

    문정왕후 어보, 62년 만에 돌아온다… “다음주부터 지체없이 반환 착수”

    조선시대 문정왕후 어보가 6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미국 LA 카운티 박물관(이하 라크마)이 19일 오후 3시(현지시간) 문정왕후 어보를 조건없이 한국 정부로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박물관 측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안민석 민주당 의원, 문화재제자치찾기 대표 혜문스님과 가진 면담에서 “그동안 제출해 준 증거를 검토한 결과, 한국전쟁 당시 미군 병사가 서울의 종묘에서 절도한 물건임이 충분히 입증된다고 생각한다. 박물관 측은 도난품인 경우 반환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미 우호 차원에서 한국 정부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물관 측은 다음주부터 반환절차에 착수하겠다고도 설명했다. 안 의원은 회담 직후 라크마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추석날 역사적인 소식을 전하게 돼 기쁘다”면서 “문정왕후 어보 반환을 위해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들과 라크마 박물관, LA 카운티 수퍼바이져 등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 의원은 그러면서 “도난당한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환수 노력과 환수운동가들에 대한 지원이 미진하다”면서 “이번 문정왕후 어보 반환의 결실을 계기로 정부의 지원이 대승적이고 전향적으로 변화되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남북한과 재미교포 등 7000만 겨레가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본다”면서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미군의 절도품이 반환되게 된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보 반환 결정은 민족사적인 쾌거를 넘어 제3세계 국가들의 문화재 반환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문정왕후 어보는 신속하게 반환절차가 진행, 수개월 안에 우리나라로 반환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정왕후 어보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병사가 약탈한 문화재로 추정되어 2010년 이후 문화재제자리찾기 측에 의해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 정전 60주년이 된 올해 본격적인 반환운동이 시작되어 지난 6월 안 의원은 어보 반환을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을 제출했다. 지난 7월 라크마에서 반환을 위한 1차 협상이 있었고 그 뒤 두달간 사회 각계층의 반환요구가 진행되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측은 ‘문정왕후 어보 반환 촉구를 위한 100인위’를 구성하고 백악관 청원운동을 진행, 6128명이 백악관에 직접 접속해 서명하기도 했다. 대검찰청도 문제를 인식하고 지난 8월 채동욱 검찰총장이 미국에 수사요청을 했다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정왕후 어보, 국내 반환이냐 장기 대여냐

    문정왕후 어보, 국내 반환이냐 장기 대여냐

    6·25전쟁 당시 미국으로 불법 반출된 ‘문정왕후 어보(御寶)’가 조만간 국내에 반환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어떤 형식으로 돌아올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보를 소장하고 있는 미 로스앤젤레스(LA)카운티박물관(LACMA)은 오는 18일 예정된 국내 시민단체 관계자와의 2차 면담을 전후해 어떤 형태로든 반환 계획을 발표할 전망이다. 하지만 잇따른 문화재 반환에 부담을 느낀 미 정부와 박물관 측이 막바지에 ‘장기 대여’ 형식을 취할 수도 있어 60여년 만의 완전 반환은 어려울 것이란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2일 시민단체와 검찰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미 국토안보부에 어보 유출 사건을 수사의뢰할 당시 한국 검찰은 문서에 ‘어보가 6·25전쟁 때 미군에 의해 도난된 것’이라고 못 박았다. 어보 반환 운동을 전개해온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미 국토안보부는 올 1월 디트로이트 경매장에서 거래된 ‘호조태환권’ 인쇄 원판에 대해서도 6·25전쟁 당시 미군이 불법 취득한 장물이라는 이유로 경매에서 낙찰받은 이로부터 압수한 전례가 있다”면서 “양국 정부 사이에 충분한 사전 조율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미 연방 장물거래금지법 2314조는 5000달러 이상의 물건이 미국 내에 반입되었을 때 세관기록을 요구하고 있다. 또 정식 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압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정왕후 어보의 경우 미국 유입 경로를 밝혀줄 세관기록이 없어 국토안보부 수사국이 불법 취득한 장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2010년 이후 어보 반환을 요구받아온 LACMA 측은 압박을 느끼고 있다. 국토안보부가 본격 수사에 나서기 전 먼저 어보의 반납을 제안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박물관 측은 그동안 “재단 기금으로 구입한 합법적인 소장품이어서 반환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선회했다. 지난 7월 성사된 국내 시민단체 관계자와의 1차 면담에선 “어보가 도난품이 확실하다면 증거를 제출해 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달 27일 LA카운티의 최고 책임자가 “한국 정부의 공식 요청이 있고, 도난품이란 사실이 입증된다면 돌려주겠다”는 서신을 보내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반환 형태를 놓고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 LACMA 측은 국립고궁박물관 등에 특별전을 통한 대여 전시의 형태를 고수해 왔다.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으로 유출된 대표적인 약탈 문화재인 ‘어재연 장군기’(미 해사박물관 소장)가 2007년 장기 대여 형식으로 국내에 돌아온 것과 비슷하다. 미국은 1943년 ‘런던 선언’에 따라 약탈이 확인된 문화재를 반환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3일 반환되는 호조태환권 인쇄 원판 이외에는 1960년대 이후 이렇다 할 반환품이 없었다. 호조태환권은 경매 단계부터 미 정부가 수사를 벌여왔고, 소장자가 박물관이 아닌 재미교포였다는 점에서 회수가 비교적 수월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LACMA에 어보가 도난된 것이라는 증거를 모두 제출한 상태다. 1956년 당시 양유찬 주미 한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문정왕후 어보를 비롯한 47개의 어보가 도난됐다고 신고했던 녹취록과 미군의 어보 절도사건을 보도한 1953년 미 ‘볼티모어 선’지 기사 등이다. 문정왕후 어보는 조선 11대 임금인 중종의 비인 문정왕후의 인장(印章)으로 가로·세로 10.1㎝, 높이 6.45㎝의 도장에 거북 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어보는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의 행적과 공덕을 담은 것으로 국내에는 모두 324과(顆)가 남아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부동산 가격 올라야 가계부채 해결 가능”

    “부동산 가격 올라야 가계부채 해결 가능”

    “가계부채 문제의 해결은 주택경기에 달렸습니다. 집값이 적어도 물가상승률만큼은 올라야 사람들이 집을 사려고 할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 2% 상승 목표제’와 같은 새로운 발상의 정책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윤창현(53) 한국금융연구원장은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로 ‘가계부채 1000조원’의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주택구입 때문에) 빚을 진 사람들이 집을 처분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가계부채의 절반은 해결될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가 부동산 투기에 대해 갖고 있는 지나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버리고 주택이라는 물건의 가격을 올려주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윤 원장은 2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현재의 경기 및 금융상황 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미국의 양적 완화(경기부양을 위해 시중에 돈을 푸는 것) 축소 움직임에 따른 국내외 금융시장 불안정성에 대해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이 아닌데 시장이 과민반응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양적 완화 축소의 전제는 ‘경기 호전’입니다. 경기가 좋아지는 게 확인되면 돈줄을 조이겠다는 건데 ‘좋아진다’라는 건 생각하지 않고 ‘돈줄 죈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어차피 돈의 힘으로 시장을 지탱하는 것은 계속할 수 없습니다. 양적완화는 언젠간 중단돼야 할 조치였습니다.” 윤 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화두인 ‘창조금융’과 관련해 “창조금융은 미래를 위한 씨앗 뿌리기”라면서 “빨리 열매가 맺어져야 한다며 조바심 내는 것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요즘 기업들을 보세요. 사자가 풀을 뜯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슴(투자)을 찾지 않고 안전 위주로 자기 자리만 지키려 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예요. 사자가 부실하거나 사슴이 없거나. 저는 후자의 영향도 크다고 봐요.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것은 기업들에 과감히 사슴 사냥에 나서라, 투자 위험이 크면 정부가 도와주겠다는 메시지인 셈이죠.” 윤 원장은 하반기 우리 경제를 비교적 밝게 봤다. 그는 하반기 경제 성장률이 3.5%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이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스페인과 그리스 등 유럽권 국가들도 내년이면 바닥을 치고 올라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금융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부정적인 시선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월스트리트 등을 중심으로 생겨난 ‘탐욕적’, ‘약탈적’ 등 부정적 표현들이 원어 그대로 번역돼 국내에 유입되면서 금융에 대한 불신의 이미지가 한층 강해졌다”면서 “금융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윤창현 금융연구원장 ▲1960년 충북 청주 출생 ▲대전고, 서울대 물리학과·경제학과,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명지대 경영무역학부 교수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금융연구원장(2012년)
  • 군부 “이슬람형제단 해산”… EU “관계 재검토”

    군부 “이슬람형제단 해산”… EU “관계 재검토”

    이집트에서 유혈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 지지세력이 18일(현지시간) 예고했던 거리 시위를 보안상의 이유로 취소했다. AFP통신, CNN 등에 따르면 무슬림형제단을 주축으로 한 ‘군부 반대 연합’은 이날 카이로에서 군부의 시위대 무력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열기로 했으나 시위가 열리는 주변 건물에 잠복한 저격수의 공격이 우려돼 시위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카이로 남부 헌법재판소 주변에서 군부 반대 시위가 예고되면서 군인과 경찰병력이 증강 배치되는 등 긴장감이 고조됐다. 이런 가운데 과도정부는 이날 긴급 회동을 하고 이집트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과도정부를 이끄는 아들리 만수르 임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무슬림형제단을 법적으로 해산하는 안건을 제출했다. 앞서 이집트 정부는 무슬림형제단 및 이들 지지세력과는 화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하는 등 강경 대응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군부의 무력 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분노의 금요일’ 시위가 벌어진 지난 16일 군경이 무르시 지지 세력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173명이 사망했다고 보건부가 밝혔다. 이에 따라 나흘간 계속된 유혈 사태에 따른 공식 사망자 수는 800명을 넘겼다. 하지만 AFP통신은 자체 집계를 통해 무르시 정권 퇴진 요구 시위가 시작된 지난 6월 26일 이후 이집트에서 최소 1042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연일 이어지는 유혈사태로 사상자가 급격히 늘면서 이집트 군부를 겨냥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8일 이집트 군부와 과도정부에 대해 유혈진압을 즉각 중단하지 않으면 EU와 이집트의 관계를 “긴급하게 재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발표한 공동 성명에서 “이집트 유혈사태가 더 확산하면 이집트와 주변 국가에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즉각 무력 사용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EU의 이번 성명은 이집트에 대한 제재는 물론 외교적 관계 단절까지 시사한 것으로, EU의 이집트 사태에 대한 강력한 개입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터키와 이스라엘, 알제리, 뉴질랜드 등에서는 이집트 군부의 시위대 강경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이날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신도들에게 “이집트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고 권하면서 이집트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재차 강조했다. 한편 이집트 사태가 혼란을 거듭하면서 무르시 축출에 힘을 보탰던 콥트교(이집트 전통 기독교) 관련 시설들이 ‘분노의 공격’을 당하고 있다. 수도 카이로에서 군부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한 이래 18일까지 나흘간 전국적으로 40곳에 달하는 교회가 불에 타거나 약탈당했고, 23곳은 공격을 받아 극심한 피해를 봤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시라크, DJ에 “외규장각 의궤문제 지긋지긋 신물 나”

    시라크, DJ에 “외규장각 의궤문제 지긋지긋 신물 나”

    “외규장각 의궤 문제가 지긋지긋해 신물이 난다.” 한국과 프랑스의 외규장각 의궤 반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던 2000년 10월 당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뜸 “신물 난다”고 말했다. 그는 “타결 때까지 양국 협상 전문가들을 (청와대) 방에 가둬 두자”는 농담도 건넸다. 프랑스군이 1866년 강화도에서 약탈한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놓고 양국이 얼마나 씨름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양국 협상은 우리 정부가 1991년 11월 프랑스에 공식 반환을 요청한 후 2011년 2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최종 합의안에 서명할 때까지 꼬박 20년이 걸렸다. 유복렬 미국 애틀랜타 부총영사는 14일 펴낸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양국 간의 협상 비화를 공개했다. 유 부총영사는 한·프랑스 정상회담의 통역을 담당했으며 반환 협상에도 참여했다. 1993년 9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했던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도 당초 우리 측에 열람만 허용했던 것을 미테랑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반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양국은 1998년 민간 전문가 협상을 통해 돌파구 마련에 나섰지만 프랑스 여론은 격렬하게 반환에 반대했다. 프랑스 정부는 우리 정부가 작성한 반환 도서 목록에 대해 “서울 인사동에서 수백 프랑이면 구입할 수 있다”고 폄훼하기도 했다. 2001년에 의궤와 다른 도서를 맞교환하는 방식이 논의되자 국내의 반대 여론도 비등했다. 20년간 이어진 협상 끝에 양국은 2010년 5년 단위로 대여를 갱신하는 방식에 합의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마지막까지 주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 부총영사는 영구 반환이 아닌 대여 형식으로 합의한 데 대해 “프랑스가 외규장각 의궤를 돌려주기 위해 자국법을 개정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 군대가 무력으로 빼앗지 않는 한 반환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씨줄날줄] 프랑스 사서의 눈물/서동철 논설위원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한 강화도 외규장각의 의궤 297권은 2011년이 되어서야 모두 돌아올 수 있었다. 외교부가 프랑스 정부에 반환을 공식 요구한 것이 1991년이니 20년에 걸친 협상의 결과였다. 협상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지만, 자칫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비밀에 부쳐졌다. 그런데 최근 출간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에 뒷얘기가 소개되어 눈길을 끈다. 지은이는 15년 동안 도서 반환을 위한 실무협상을 벌인 유복렬 미국 애틀랜타 부총영사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프랑스국립도서관 관계자들의 태도였다. 사서들은 1993년 당시 ‘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한국에 돌려주려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눈물로 가로막아 뉴스를 타기도 했다. 입수 경위야 어떻든, 국립도서관의 귀중한 장서를 나라 밖으로는 절대로 보낼 수 없다며 대통령에게까지 집단행동을 하는 모습은 유럽사람들의 철저한 직업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우리 언론의 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반환에 저항한 대표적 인물이 자크린 상송 국립도서관 사무장. 상송 사무장은 이후 협상 과정에서도 반환의 ‘걸림돌’ 역할을 톡톡히 했던 듯하다. 그의 철두철미함에는 유 부총영사조차 “이런 사람이야말로 결국 그 나라의 힘이고, 그 나라를 지탱하는 자존심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술회했을 정도이다. 물론 프랑스 사서들이 의궤의 가치를 깨닫고 있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가 1975년 외규장각 도서를 발견한 곳은 프랑스국립도서관의 파리 본관이 아닌 베르사유 분관이었다. 그렇게 귀중하게 생각한다는 의궤를 보관하고 있었던 장소는 ‘파손 도서’ 창고였다. 그것도 도서관 장서 관리에서 기본 중의 기본인 도서카드조차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 도서’로 분류해 놓고 있었다. 프랑스 학계가 외규장각 의궤를 해독한 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상 활용 불가능한 상태로 처박아둔 꼴이었다. 철저한 직업정신은커녕 기본적인 직업의식조차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프랑스도서관 관계자들의 눈물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국익을 지키고자 미테랑 대통령과 배역을 나눈 일종의 ‘연기’일 수밖에 없다. 반가사유상의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전시를 불허했다가 다시 허용한 것도 연기여야 했다. 적절한 시나리오만 뒷받침됐다면, 정부 내부의 혼선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값어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고단수 전략이 되지 않았을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1989년 주한 미국 대사관저 점거 국무부 선정 주요 반미 폭력사태에

    미국 국무부가 선정한 역대 전 세계 주요 반미(反美) 폭력사태에 1989년 서울에서 일어난 주한 미대사관저 점거 사건이 포함된 것으로 11일(현지시간) 알려졌다. 국무부는 최근 발간한 ‘2012 미국에 대한 정치폭력’ 보고서에서1987년 이후 미국을 대상으로 한 정치폭력 사건 일지를 발표했다. 국무부는 “모든 사건을 싣지는 않았으며 인명 및 재산 피해와 독특함, 복잡성 등을 근거로 주요 사건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1980년대에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발생한 미대사관 직원 암살 시도를 시작으로 모두 13건이 선정됐다. 특히 1989년 10월 13일 서울에서 발생한 미대사관저 점거 농성도 리스트에 올랐다. 이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반미구국결사대가 농수산물 수입 개방 반대, 불평등한 한·미 관계 개선 등의 구호를 외치며 약 50분간 도널드 그레그 당시 대사 부부가 묵고 있던 대사관저를 점거한 사건이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과격한 학생들이 미대사가 묵고 있던 숙소를 공격, 약탈하고 일시적으로 점령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보고서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미국 시민과 미국 국익을 해친 주요 사건은 모두 98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79건)에 비해 24% 늘어난 것으로, 특히 최근 정치적 격변이 잇따르고 있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등지의 반미 폭력사태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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