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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균나이 14.8세…英 떨게 한 ‘청소년 갱단’ 충격

    평균나이 14.8세…英 떨게 한 ‘청소년 갱단’ 충격

    아직 미성년자에 불과한 13~16세 사이 청소년들로 구성된 갱단이 영국의 한 주요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외국 이민자 및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흉기를 이용한 무자비한 폭력행위를 저지른 십대 청소년 갱단이 결국 법원에 의해 ‘반사회적 행위 금지 명령(antisocial behaviour order)’ 처벌을 받았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 랭커셔카운티(Lancashire county)의 중심 공업도시로 맨체스터에서 북서쪽으로 약 45㎞에 위치한 프레스턴(Preston)의 주민들은 최근 1년여 간 바깥출입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큰 공포에 시달렸다. 다름 아닌 아직 십대에 불과한 청소년 갱단들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자비한 폭력행위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아직 앳된 어린 티를 채 벗어나지 못한 미성년자들이라는 점이다. 키안 로위(13), 찰리 블래키(15), 라이언 블래키(16), 클로 스캇(15), 토니 오 설리번(15) 등 남자 셋, 여자 둘로 구성된 이 청소년 갱 집단은 평균나이가 14.8세에 불과하지만 웬만한 성인 범죄자 못지않은 무서운 폭력성으로 도시 주민들을 긴장시켰다. 이들의 주된 공격대상은 해당 도시에 갓 이주해온 해외 유학생, 이민자들이었다. 이들은 인종차별적인 적개심과 증오심을 드러내며 반달리즘(vandalism, 타 문화에 대한 배려, 존경심 없이 관련 문화유산을 약탈, 파괴하는 것)적 폭력 행위를 자행했다. 특히 UCLAN(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에 다니는 유학생들이 거주하는 아파트형 학교 기숙사 건물은 이들에 의해 수시로 테러행위를 당했다. 기숙사 주변에 수시로 출몰하며 유학생들에게 돌을 던지고 욕설을 하는 것은 예사며 여성 유학생이 혼자 머무는 방을 밖에서 파괴하려 시도하는 등 공공기물 파손 및 주거 침입과 같은 악질적 범죄 행위도 서슴없이 자행했다. 유학생들은 이들의 각종 방해 행위 때문에 기숙사 밖을 나가는 것 자체가 두려웠고 학교도 출석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겼었다. 이로 인한 피해는 유학생, 이민자 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프레스턴에 거주해온 주민들에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동네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떠드는 등 이웃들이 제대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란을 피웠고 수많은 쓰레기까지 남겨 도시 환경에까지 악영향을 줬다. 결국 주민들은 거금을 들여 자체 CCTV를 설치, 이들의 범죄행위를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뿐만 아니라, 주택 및 아파트의 문을 방범용으로 교체하는 등 주민들은 보안유지를 위해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만 했다. 이들의 폭력행위가 거듭되면서 지역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도시 이미지가 나빠져 대외적 신뢰도가 나빠지고 부동산 가격 형성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체 SNS에 칼, 권총과 같은 흉기를 휴대한 모습을 찍어 올리거나 지폐로 MOB(폭력을 자행하는 집단이라는 의미)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게재하는 등 오히려 이를 즐기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랭커셔 경찰에 따르면, 이들의 폭력행위 때문에 프레스턴 시내의 여러 청소년 클럽이 문을 닫기까지 했다. 결국, 프레스턴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이들은 모두 경찰에 체포됐으며 최근 법원으로부터 2년 간의 ‘반사회적 행위 금지 명령(antisocial behaviour order)’ 선고를 받았다. 이들을 담당했던 레이첼 펑 검사는 “지금까지 맡았던 사건들 중 가장 악질적인 사례였다”고 평했다. 랭커셔 경찰 측은 “이들로 인해 많은 프레스턴 주민들, 유학생이 고통을 겪었다. 심지어 이들과 연관 없는 선량한 청소년 클럽활동까지 강제로 종료당해야 했다”며 “이법 법원의 선고를 기점으로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심도 깊은 노력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앳된 얼굴들에 겁먹은 도시…英 ‘13살 갱단’ 충격

    앳된 얼굴들에 겁먹은 도시…英 ‘13살 갱단’ 충격

    아직 미성년자에 불과한 13~16세 사이 청소년들로 구성된 갱단이 영국의 한 주요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외국 이민자 및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흉기를 이용한 무자비한 폭력행위를 저지른 십대 청소년 갱단이 결국 법원에 의해 ‘반사회적 행위 금지 명령(antisocial behaviour order)’ 처벌을 받았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 랭커셔카운티(Lancashire county)의 중심 공업도시로 맨체스터에서 북서쪽으로 약 45㎞에 위치한 프레스턴(Preston)의 주민들은 최근 1년여 간 바깥출입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큰 공포에 시달렸다. 다름 아닌 아직 십대에 불과한 청소년 갱단들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자비한 폭력행위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아직 앳된 어린 티를 채 벗어나지 못한 미성년자들이라는 점이다. 키안 로위(13), 찰리 블래키(15), 라이언 블래키(16), 클로 스캇(15), 토니 오 설리번(15) 등 남자 셋, 여자 둘로 구성된 이 청소년 갱 집단은 평균나이가 14.8세에 불과하지만 웬만한 성인 범죄자 못지않은 무서운 폭력성으로 도시 주민들을 긴장시켰다. 이들의 주된 공격대상은 해당 도시에 갓 이주해온 해외 유학생, 이민자들이었다. 이들은 인종차별적인 적개심과 증오심을 드러내며 반달리즘(vandalism, 타 문화에 대한 배려, 존경심 없이 관련 문화유산을 약탈, 파괴하는 것)적 폭력 행위를 자행했다. 특히 UCLAN(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에 다니는 유학생들이 거주하는 아파트형 학교 기숙사 건물은 이들에 의해 수시로 테러행위를 당했다. 기숙사 주변에 수시로 출몰하며 유학생들에게 돌을 던지고 욕설을 하는 것은 예사며 여성 유학생이 혼자 머무는 방을 밖에서 파괴하려 시도하는 등 공공기물 파손 및 주거 침입과 같은 악질적 범죄 행위도 서슴없이 자행했다. 유학생들은 이들의 각종 방해 행위 때문에 기숙사 밖을 나가는 것 자체가 두려웠고 학교도 출석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겼었다. 이로 인한 피해는 유학생, 이민자 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프레스턴에 거주해온 주민들에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동네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떠드는 등 이웃들이 제대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란을 피웠고 수많은 쓰레기까지 남겨 도시 환경에까지 악영향을 줬다. 결국 주민들은 거금을 들여 자체 CCTV를 설치, 이들의 범죄행위를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뿐만 아니라, 주택 및 아파트의 문을 방범용으로 교체하는 등 주민들은 보안유지를 위해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만 했다. 이들의 폭력행위가 거듭되면서 지역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도시 이미지가 나빠져 대외적 신뢰도가 나빠지고 부동산 가격 형성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체 SNS에 칼, 권총과 같은 흉기를 휴대한 모습을 찍어 올리거나 지폐로 MOB(폭력을 자행하는 집단이라는 의미)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게재하는 등 오히려 이를 즐기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랭커셔 경찰에 따르면, 이들의 폭력행위 때문에 프레스턴 시내의 여러 청소년 클럽이 문을 닫기까지 했다. 결국, 프레스턴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이들은 모두 경찰에 체포됐으며 최근 법원으로부터 2년 간의 ‘반사회적 행위 금지 명령(antisocial behaviour order)’ 선고를 받았다. 이들을 담당했던 레이첼 펑 검사는 “지금까지 맡았던 사건들 중 가장 악질적인 사례였다”고 평했다. 랭커셔 경찰 측은 “이들로 인해 많은 프레스턴 주민들, 유학생이 고통을 겪었다. 심지어 이들과 연관 없는 선량한 청소년 클럽활동까지 강제로 종료당해야 했다”며 “이법 법원의 선고를 기점으로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심도 깊은 노력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해외여행 | 실크로드를 따라 1,200km를 달리다

    해외여행 | 실크로드를 따라 1,200km를 달리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을 실크로드. 동양과 서양이 만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용광로 같던 그곳. 건조한 바람만이 퍽퍽하게 불어대는 길을 낙타에 비단을 싣고 한 걸음씩 나아갔을 대상들. 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실크로드’는 1877년 독일의 리히트호펜이라는 지리학자가 비단이 오갔던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 실크로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 길을 통해 오간 것은 비단뿐만이 아니다. 각종 물품과 보석, 불교와 이슬람교가 그 길을 통해 흘러가고 흘러들어왔다. 기원전 한무제 때 장건이 사신으로 서역에 다녀온 후 길이 트이기 시작한 실크로드는 세계무역의 중심지였다. 아름다움만큼 약탈 경쟁으로 인한 아픔을 품고 있는 실크로드. 굽이굽이 내려오고 있는 역사와 문화,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며 실크로드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 보자. ●황허의 도시,란저우에서 만리장성의 서쪽 끝, 자위관으로 황토색이 지배하는 간쑤성의 성도 중국 지도를 펼쳐 보면 한가운데에 ‘란저우蘭州’라는 지명이 있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의 출발점은 란저우. 1,40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란저우는 실크로드 문화유산이 풍부한 간쑤성의 성도로 교통과 문화, 역사, 경제의 중심지다. 칭하이성에서 발원한 황허가 처음 만나는 대도시로 중국인들이 ‘어머니의 젖줄’이라는 황허가 도시 가운데를 유유히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란저우에 가면 어디에서든 황토색이 눈에 들어온다. 란저우 시민들과 여행자들은 시내에 있는 물레방아 공원에서 유유히 산책을 하며 황허를 만난다. 란저우를 황토색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황허뿐만이 아니다. 희토류를 비롯한 35종류의 광물이 매장되어 있는 누런 산들이 란저우를 둘러싸고 있다. 황토색 물에 황토색 산, 란저우에 가면 세상이 온통 황토색으로 이루어진 것만 같다. 실크로드의 문화유산이 가득 모여 있는 간쑤성 박물관과 함께 란저우에서 손꼽히는 것 중 하나는 란저우 라멘이다. 중국 다른 지방에 가도 ‘란저우 라멘’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음식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고기를 곁들인 란저우 라멘의 맛은 매콤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네 입맛에도 잘 맞는다. 란저우에서 나와 허시후이랑河西走廊을 따라 달린다. ‘허’는 황허를 뜻하는 단어로 허시후이랑은 황허강 서쪽의 긴 복도라는 뜻이다. 한쪽에는 평균 해발 4,000m의 치렌산맥이, 또 다른 한쪽에는 황무지 같은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900km 길이에 폭은 40~100km. 실크로드 상인들은 이 좁고 긴 평지를 따라 비단을 나르고 전쟁을 하고 오아시스를 찾았을 것이다. 일직선으로 뻗은 허시후이랑에는 허시사군으로 불리는 우웨이, 장예, 주취안, 둔황 같은 오아시스 도시들이 이어져 있다. 먼지를 풀풀 내며 달리고 또 달려도 창밖의 풍경은 변하지 않고 사막은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버스를 타고 있는데도 온몸이 사막으로 변해 가는데, 그 옛날 대상隊商들은 어떠했을까. 이곳을 말과 낙타를 타고 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로 머리가 조아려진다. 자연이 그린 수채화 허시후이랑을 따라가다가 장예를 만난다. 장예는 란저우에서 510km 떨어진 도시로 마르코폴로가 1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장예에서 꼭 가 봐야 할 곳은 자연이 만든 예술품인 치차이산七彩山. 어떻게 흙에서 저런 색이 날까 의문이 들 정도로 빨간색과 노란색이 섞여 오묘한 빛을 내는 산들이 펼쳐져 있다. 정식명칭은 ‘장예단하국가지질공원’으로 ‘단하’는 붉은 노을을 의미한다.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퇴적작용으로 만들어진 치차이산은 계곡을 따라 510km나 이어져 있다. 전체 공원은 4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구역마다 조금씩 다른 맛을 보여 준다. 희게 보이는 곳은 소금 성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이 넓은 곳이 과거에 바다였다는 설도 있다. 치차이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산에서 뿜어내는 색을 가지고 주름치마를 만들어 입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자연의 색이다. 비가 오면 색이 진해져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장예를 찾은 날은 구름만 가득했다. 곽거병의 술샘 치차이산의 감동을 안고 서쪽으로 가다 보니 유인 우주선 발사기지가 있는 주취안酒泉에 닿는다. 주취안이라는 지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무제가 전쟁에 승리한 곽거병 장군에게 승리의 선물로 술을 한 병 내렸는데 곽거병 장군은 이 술을 혼자 마실 수 없다며 앞에 있는 샘에 술을 부어 부하들과 함께 마셨다는 것. 이 정도의 리더십은 있어야 실크로드에서 장군이 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곽거병 장군이 술을 부은 샘이 있는 곳이라 도시 이름이 주취안이 되었고 주취안에 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꼭 들르는 곳이 그 샘이다. 둔황을 향해 허시후이랑을 따라 부지런히 또 달린다. 이번에 나타난 곳은 만리장성의 서쪽 끝 자위관이다. 웅장하고 장엄하다. 자위관은 서역의 침입에 대비해서 1372년 명나라 때 만든 것으로 높이 10m, 둘레 733m의 거대한 성이다. 자위관의 크기만으로 서역의 군사들이 겁을 먹지 않았을까. 자위관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3개의 망루가 있으며 박물관에서는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실크로드의 꽃,둔황 세계 불교 미술의 보고 둔황의 백미는 모가오쿠다. 과거 실크로드를 오가는 이들은 거친 땅과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적들의 침략 속에서 항상 불안했다. 그들은 무사안녕을 빌기 위해 석굴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세웠다. 그리고 벽화를 그려 넣었다. 그렇게 1,000년 동안 무려 1.7km에 달하는 깎아지른 절벽에 735개의 석굴이 만들어졌다. 석굴 하나는 절 하나와 마찬가지. 735개의 사찰이 아파트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고 상상해 보자. 처음 석굴에 들어가 벽화를 보았을 때 소름이 돋고 전율이 흘렀다. 모가오쿠가 처음 생긴 것은 16국 시대인 366년. 낙준이라는 승려가 석산 위에 나타난 부처의 상을 보고 만든 것이 시작이다. 이후 14세기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수많은 승려와 조각가가 석굴을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석굴 안의 불상과 벽화에는 당시의 생활상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놀랍게도 건조한 기후와 빛이 들어가지 않은 굴 속에 자리해 1,000년 전 신비로운 색이 남아 있다. 까맣게 변한 것도 있고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오묘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옥색이나 자주색, 노란색 등 여러 색이 석굴 안을 아름답게 빛내고 있다. 수많은 석굴 중 가장 중요한 석굴은 17호 굴. 16호 굴에 들어가자마자 오른편에 난 문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17호 굴이다. 고대의 불교경전이 쌓여 있던 굴로 장경동이라고도 불린다. 17호 굴이 발견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1900년대 초 석굴을 관리하던 왕원록이라는 노인이 모래를 치우다 우연히 작은 굴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 책이 가득했던 것. 보물창고를 발견한 것이다. 둔황에서 실크로드의 중요한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날아들었다. 영국의 스타인, 프랑스의 펠리오,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 러시아의 올덴부르그, 미국의 워너가 수만 점의 보물들을 각자의 나라로 빼돌렸다. 문서와 유물을 가져간 것에서 그치지 않고 벽화를 뜯어가기까지 했다. 그래서 모가오쿠에 가면 1,000년 전 벽화의 아름다움에 한번 놀라고 약탈 현장의 처참함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둔황이 아니라 프랑스 박물관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호 굴을 보고 난 후에는 61호 굴을 챙겨 봐야 한다. 61호 굴은 현존하는 세계 최대 실사 지도로 꼽히는 오대산지도라는 벽화가 있는 굴로 지도에서 신라 고승의 사리탑으로 추정되는 탑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 220호 굴과 335호 굴에 그려진 벽화에는 새의 깃털을 꽂은 조우관을 쓰고 있는 인물들이 있는데 조우관은 고구려시대에 흔하게 발견되던 모자다. 우리 선조들도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니 실크로드의 이야기들이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모가오쿠 남아있는 석굴은 수백 개에 이르지만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석굴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미리 예약을 해서 가이드와 함께 1시간 동안 10여 개 정도 석굴을 돌아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특별히 보고 싶은 석굴이 있으면 가이드에게 미리 요청을 해 놓는 것이 좋다. 모래로 만들어진 거대한 산 모가오쿠를 본 후에 사막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둔황 시내에서 남쪽으로 5km 위치에 바람이 불면 모래가 노래를 한다는 밍샤산鳴沙山이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크기에 입구에서부터 입이 떠억 벌어진다. 높이 1,600m에 동서로 40km, 남북으로 20km나 이어져 있는 모래산. 실크로드 하면 떠오르는 사막을 가르는 낙타의 행렬이 눈앞에 펼쳐진다. 요즘에는 과거 대상들 대신 여행자들이 낙타 위에 앉아 있다. 초승달 모양의 작은 오아시스인 웨야취안月牙泉을 보기 위해 사막을 오른다. 곱고 부드러운 모래에 발이 푹푹 빠진다. 땀이 흐르지만 건조한 날씨에 금세 증발한다.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는 모래산에 올라 뒤돌아보니 신비로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2,000여 년 전부터 기록에 등장하는 웨야취안은 오랜 시간 동안 사막의 나그네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해 주었다. 모래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수천년간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비롭기만 하다. 연간강수량 39mm에 증발량이 2,800mm라니 더욱 놀랍다. 밍샤산에 오르면 웨야취안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멀리 둔황이라는 또 다른 오아시스가 보인다. 모래산을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 모래 사이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사람들, 곱디 고운 모래로 장난을 치는 사람들, 그윽한 눈으로 멀리 둔황시내를 바라보는 사람들. 같은 밍샤산에 올랐지만 이곳을 느끼는 방법은 사람들마다 모두 달랐다. 끝과 시작이 있는 곳 시안西安을 시작으로 란저우와 장예, 자위관을 거쳐 둔황에 도착한 상인들은 이곳에서 서역으로 갈 채비를 한다. 실크로드는 둔황에서 북로와 남로로 갈라진다. 북로로 가려면 옥문관을 통해, 남로로 가려면 양관을 통해서 길을 떠나게 된다. 둔황 시내에서 80~100km 떨어져 있는 옥문관과 양관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다. 비단을 낙타에 실은 상인들에게 익숙한 곳의 끝, 새로운 서역의 시작을 의미한다. ‘옥’이 오갔다고 해서 이름 붙은 옥문관은 거대한 문 하나만 달랑 남아 있고, 서역 남로 입구인 양관은 높이 4.7m의 봉화대만 남아 있다. 옥문관을 넘어 바라보는 길도 아름답지만 양관의 봉화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더 없이 황홀하다. 높은 곳에서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고비사막을 내려다보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길이 안겨 주는 막막함과 그 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비장함이 함께 느껴진다. 당나라 시인 왕유는 양관에서 ‘그대에게 한 잔의 술을 권하니, 서쪽 양관으로 나가면 옛 벗이 있겠는가’라고 읊기도 했다. 익숙한 것과 이별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가는 두려움. 얼마나 위험한 일이 펼쳐질지,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그 마음. 실크로드 여행을 마무리하는 양관에서 수천년 전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으로 나간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travel info Airline 동방항공이 인천-란저우 노선을 운영하고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3시간이다. 대한항공 특별 전세기는 인천에서 우루무치까지 약 5시간 소요된다. 두 항공편 모두 10월 초까지 주 2회 운영한다. TIP 시차 베이징과 동일하게 서울보다 1시간이 늦지만 서쪽에 위치해 밤 10시가 되어야 해가 진다. 주의사항 건조하기 때문에 물을 잘 챙겨 마셔야 하며 수분크림과 미스트를 준비해 가면 도움이 된다. 선글라스와 모자는 필수. activity 둔황 야시장도 놓치지 마세요 둔황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것은 둔황 야시장. 과일과 견과류, 각종 기념품과 먹거리가 넘친다.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밤을 즐기기 좋은 곳. 여러 먹거리가 있지만 양꼬치가 특히 인기다. 원하는 부위를 고르면 즉석에서 구워 준다. 꼭 맛봐야 할 것이 하미과. 멜론처럼 생겼는데 겉은 노랗다. 둔황에서 세상에서 가장 달달한 메론을 맛보게 될 것이다. 기념품으로 많이 찾는 제품은 밤에도 보인다는 술잔과 실크로드의 아이콘인 낙타인형이다. 그리고 한 땀 한 땀 손으로 파 낸 목판 장식품이 있다. 야시장에서는 낙타의 모습이 담긴 각종 기념품들이 인기다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김문이 만난사람] 30년째 조선사발을 재현하는 사기장 신한균

    [김문이 만난사람] 30년째 조선사발을 재현하는 사기장 신한균

    때론 ‘무미평범’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유명한 민예 연구가였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일본 교토 다이토쿠지(大德寺)에 소장돼 있는 이도다완(井戶茶碗)을 본 후 이렇게 읊었다. “어디를 찾아도 이보다 더 평이한 기물은 없다. 한 군데 꾸민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 더 심상한 것이 없다. 그것은 조선의 밥사발이다. 가난뱅이가 보통 쓰던 사발이다. 전형적인 잡기다. 가장 값이 싼 물건이다. 그것은 평범, 더할 수 없는 범기(凡器)다. 흙은 뒷산에서 파 온 것이다….” 조선의 백자는 요즘으로 치면 반도체 이상의 하이테크 첨단기술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그런 백자를 국부(國富)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반면에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조선에서 얻은 백자기술을 활용, 도자기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특히 ‘막사발’은 일본에서 ‘이도다완’으로 불리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비롯한 다이묘들이 다도에서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겼다. 16세기 중반부터 일본인들은 상거래와 약탈로 조선의 막사발을 호시탐탐 노렸고 임진왜란·정유재란을 일으켜 우리 도공들을 강제로 일본으로 데려가 일본의 상류층과 무사들의 밥그릇과 찻그릇을 만들게 했다. 이들이 만든 그릇 중에는 현재 국보급도 여럿 있다. 사기장 신한균(54)씨는 2008년 ‘신의 그릇’이라는 두 권짜리 소설책을 출간해 주목을 끌었다. 그릇 빚는 사기장이 장편 역사소설을 썼다는 점에서 우선 그랬다. 여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신의 그릇’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뤘다. 그릇을 빚기 위한 사기장들의 처절한 분투와 절망을 심도 있게 표현해 냈다. 황도사발(이도다완)에 얽힌 비밀도 소설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신씨는 ‘신의 그릇’을 일본에서 출판했다. 이보다 3년 앞서 국내에서 펴낸 ‘우리 사발 이야기’를 ‘이도다완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출간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때 “책을 쓰지 않고는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열병을 견딜 수 없었다. 우리 사발의 기구한 운명과 아직도 일본식 미학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 무관심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조선사발은 잡기 아닌 무위적 아름다움 표현한 창조물” 2009년에는 우리 사발에 대한 객관적 시선으로 일본 노무라미술관 관장이자 일본다도문화학회 회장인 타니 아키라와 함께 ‘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를 공저로 출간했다. 우리나라 각 부문에는 장인(匠人)이 많다. 그러나 신씨처럼 많은 책을 펴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의 열정과 도예를 향한 시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학론으로 유명한 야나기 무네요시가 사발 등에 무작위, 우연이란 말을 쓰는 데 대해 반박을 한다. 전형적인 잡기(雜技)가 아닌, 또 우연이 아닌 장인의 철저한 정신에 따라 흙을 골라 만든 무위적 아름다움과 자연미를 표현한 창조성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처럼 일본 학자들이 왜곡시킨 우리 도자기의 본질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일본인 차인들에게 틈틈이 강연도 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활동 또한 활발하다. 1989년 일본 도큐백화점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거의 매년 초대전을 열고 있으며 지금까지 일본 언론에 100회 이상 소개됐다. 그렇게 조선사발의 진정한 혼을 알리고 재현한 지 30년이 됐다. 지난 9일 경남 양산에서 잠시 서울에 온 신씨를 만났다. “도자기는 그릇입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그릇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지요. 특히 차인들이 애용하는 사발은 그 시대 사기장의 정성과 우리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해 왔습니다. 그런 사발들이 임진왜란을 전후해 일본으로 들어가 일본 이름을 가지고 찻사발의 황제로 대접받다가 일본의 국보와 보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신씨는 이런 상황을 떠올리며 일본인들이 우리 사발을 국보와 보물로 지정한 까닭을 찾기 시작했다. 일본의 시각이 아닌 한국적 미학으로 그 진면목을 연구해 나갔다. 이도다완의 원류를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각 지방의 사발을 서로 비교하고 옛 문헌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도자기가 과거의 영광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과 다시 빛을 보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동시에 작용했다. 그러는 동안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의 미가 이도다완에 깊이 녹아 있음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잠시 그의 도력(陶歷)을 살펴보자. 1960년 그는 우리나라 도예계의 거장이자 전통 조선사발 재현의 선구자인 고 신정희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정희 선생은 조선시대 이후 명맥이 끊긴 황도사발을 1968년에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서울 인사동 골동품 상인들이 신정희 선생이 내놓은 작품을 조선시대의 진품이라고 감정하며 어디에서 훔쳤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외가이자 고향인 사천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교육열에 힘입어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 강단에 잠시 서기도 했으나 도자기에 대한 아버지의 열정에 감동을 받아 ‘모태신앙’처럼 자연스럽게 도예 후계자가 돼 현재 양산에 있는 ‘신정희요’에서 생활하게 된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어렸을 때부터 흙을 만지작거렸고 15세에 물레질을 했던 터라 그 뒤를 이어 조선사발을 재현해 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 것은 28세 무렵이었다. 또한 그의 작품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것은 1989년 도큐백화점 미술화랑에서였다. 이후 후쿠오카 이와타야백화점 미술화랑 초대전(1990년), 미쓰코시백화점 미술화랑 초대전(1991년), 도쿄 마쓰야백화점 미술화랑 초대전(1992년), 일본 NHK TV 초대전(1994년), 니혼 TV초대전(1995년) 등을 잇달아 열면서 일본에서 이름을 알린다. 특히 그는 1996년 함경도 회령지방의 도자기를 최초로 재현해 냈는데, 그 과정이 NHK TV를 통해 일본 전역에 방영됐고 KBS TV ‘한국의 미’ 프로그램 등 각종 매체도 ‘신한균 사기장의 작품세계’를 소개했다. 회령도자기 재현 과정과 관련해 그는 일본 후쿠오카 당진소(唐津燒)전시회에서 오고려(奧高麗)라는 이름의 도자기를 보면서 회령지방의 도자기를 수년간 연구하게 된다. 일본에서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을 샅샅이 뒤지다가 놀라운 사실 몇 가지를 발견한다. 임진왜란 훨씬 전에 지금의 북한 땅 회령에서 왜구에게 납치된 사기장들이 ‘오고려, 조선당진’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오고려의 오(奧)자는 오지를 뜻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1989년쯤 일본의 한 미술관에서 개최한 일본 고유의 옛 도자기를 관람할 때였습니다. 그 전시회장에는 아주 특별한 기법의 도자기가 있었고 분류명으로는 ‘오고려(奧高麗·오크코리아), 조선 당진(唐津·가라쓰)’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사발을 고려다완이라고 부르고 있었으며 ‘오고려’란 조선의 오지에서 온 도자기를 뜻합니다. 조선 가라쓰 역시 조선에서 온 사기장이 빚은 도자기를 말합니다.” 임진왜란 전까지 일본은 섭씨 1600도 이상의 불을 지펴 도자기를 굽는 기술이 없었으며, 조선에서 끌려간 도예가가 일본에 그 기술을 전수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메이지유신 이후 문호를 개방한 일본은 도자기를 해외에 팔아 국부를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우리한테 가져간 도자기 기술이 조선을 향한 칼날로 되돌아왔다”고 개탄했다. 신씨는 또 “세월이 지난 지금 일본 국보 기자에몽 이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쳤다는 일화가 있는 일본 중요문화재 쓰쓰이쓰쓰 이도 등의 원산지가 모두 한국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이도는 그저 막사발로 불리며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가 이도다완을 황도사발로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 고유의 진정한 이름을 찾기 위한 문제 제기 차원에서다. 혼자서 분류명을 짓는 것은 무리이며 도자사학자들과 공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달 22일~새달 10일 서울서 달항아리·사발 등 80여점 전시 그는 사발을 만들면서 조선의 달항아리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다. 오는 22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백화점 개점 35주년 기념전을 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백자 달항아리, 분청 달항아리, 회령 달항아리, 그리고 사발과 도판 등 80여점을 선보인다. 한국 여인의 치마곡선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좋은 사발, 좋은 달항아리를 만들고 특히 한국인이 만든 ‘도예백과사전’을 펴내겠다”고 답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신한균은 1960년 경남 사천에서 조선사발을 최초로 재현한 고 신정희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84년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일본 도큐백화점 미술화랑에서의 첫 전시 이후 거의 매년 초대전을 열고 있다. 후쿠오카 이와타야백화점 미술화랑(1990년), 미쓰코시백화점 미술화랑(1991년), 도쿄 마쓰야백화점 미술화랑(1992년), 일본 NHK TV초대전(한큐백화점 본점 미술화랑, 1994년), 니혼 TV초대전(메이데쓰백화점 미술화랑, 1995년), 부산 신세계갤러리(2013년) 등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함경도 회령도자기 국내 최초 재현(1997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도자기 자문위원(2004년), 청와대 귀빈 증정용으로 다기와 항아리 납품(2004~2007년), 차와 도자기 국제세미나 한국 측 대표로 강연(교토 국제교류회관, 2006년), 일본 노무라미술관 초청강연(2007년) 등을 했다. 저서로는 ‘신의 그릇1, 2’, ‘고려 다완’, ‘우리 사발 이야기’, ‘이도다완의 수수께끼’ 등이 있다.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IS 반군에 ‘한국 K-9 자주포’가 넘어갔다고?!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IS 반군에 ‘한국 K-9 자주포’가 넘어갔다고?!

    이라크와 시리아 일대를 휩쓸며 학살과 약탈을 일삼고 있는 이슬람 테러조직 IS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응징이 시작된 지 3주째로 접어들었다. 작전을 총괄 지휘하고 있는 미 중부사령부는 어제까지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의 IS 반군에 대한 공습이 290여 차례에 달했다고 밝혔지만, 국제사회의 이러한 응징에도 IS는 움츠러들기는커녕 오히려 세를 확장하며 바그다드 인근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등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규모 공습에도 불구하고 IS가 점점 세를 불리며 각지에서 파상 공세를 이어 나가고 있는 데에는 그들의 풍부한 자금력과 SNS에서의 능수능란한 선전선동, 그리고 같은 수니파 인구가 다수인 중동 일부 국가들의 은밀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터키, K-9 자주포를 IS에게 제공 미국 CNN이 운용하며 세계 각지의 프리랜서 리포터들이 기사를 송부하는 iReport CNN에 지난 9월 20일, 터키가 IS에 인질로 붙잡힌 자국인 49명을 구하기 위해 인질 1명당 1대 꼴로 49대의 기갑차량과 각종 군수물자를 IS에 제공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시리아 북부 지역 쿠르드족 거주지역인 코반 지역의 리포터가 송부한 이 기사에는 터키-시리아 국경 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차량이 IS와 쿠르드 민병대가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텔 아비야드(Tel Abyad)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며 기갑 차량과 물자가 실린 열차가 이동하는 영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영상 속에는 우리나라가 터키에 기술이전 제공 방식으로 수출한 K-9 자주포의 터키 생산형 T-155 'Fırtın' 자주포가 등장했다. 터키는 지난 2001년 K-9 자주포 300대 면허생산료와 해외수출료로 10억 달러를 지불하고 우리나라로부터 K-9 자주포 부품과 기술인력을 제공받아 터키 모델인 T-155 자주포를 개발한 바 있었다. 터키는 우리나라로부터 구입한 K-9 부품과 도면 등을 가지고 포탑과 차체를 재설계하고, 엔진 등을 바꿔 T-155라는 명칭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개발한 모델을 아제르바이잔에 수출하는 등 수출 시장에서도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K-9 계열의 최초 실전 데뷔 역시 터키에서 이루어졌다. 터키는 지난 2008년 쿠르드족에 대한 무력 탄압을 진행하면서 T-155 자주포를 동원해 쿠르드족 거주 지역을 포격하여 국제사회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 세계적으로 비난받고 있는 극단적인 테러조직 IS에게 이 자주포를 제공해 더 큰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IS에 T-155와 같은 고성능 자주포가 넘어갈 경우 그동안 미국 등 동맹국의 공중 화력 지원을 통해 겨우 승기를 잡아왔던 쿠르드 민병대와 이라크 정부군이 각 전투에서 화력 열세에 처할 우려가 있다. 특히 이라크 정부군은 공중지원을 받는 상황에서도 졸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IS의 T-155 보유는 이라크 정부군을 더욱 곤경에 몰아넣을 것으로 우려된다. 터키 일각에서는 iReport에 등장한 무기 수송 열차가 IS 반군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장면이 아니라 지난 7월 쿠르드 지역에 추가 배치된 터키 육군 전력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이 전력이 해당 지역에 이동된 시기와 IS가 터키 인질을 석방한 시기, 그리고 인도된 기갑차량 수와 인질 수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터키 정부가 인질 석방을 대가로 IS에게 무기와 군수품을 제공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터키의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대통령은 그동안 터키가 견지해 왔던 세속주의 척결에 앞장서면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고 있는데, 독재체제 강화를 위해 시위대를 탄압하고 군부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벌여 그동안 터키에 경제적・군사적으로 상당한 지원을 해 왔던 미국의 우려를 사고 있었다. IS와 같은 수니파인 에르도안은 표면적으로는 IS 격퇴를 주장하고 있지만, IS에게 자국인 인질이 잡혀 있다는 핑계를 대며 국경 지역을 통해 IS에게 상당한 양의 군수품이 넘어가고 있는 사실을 방관하고 있다. 최근 그는 IS 격퇴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상군 투입을 주장하면서 터키 지상군을 시리아 국경 지역으로 증파하는 지시를 내렸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시리아와 이라크의 혼란 사태로 인한 난민과 쿠르드족의 터키 유입을 막기 위한 것이지 터키 지상군이 실제로 시리아 영내로 진입해 IS 격퇴 작전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수니파 비호 아래 더 강해지는 IS 객관적인 전력만 놓고 보자면 IS는 이미 오래 전에 격멸되었어야 정상이다. 실제 전투 병력이 2만 명 안팎에 불과한 IS와 달리 이들에 맞서는 이라크 정규군과 경찰, 보안군, 쿠르드 민병대의 전체 병력은 IS 지상군 병력의 30배가 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IS에 맞서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F-16 전투기를 도입하는가 하면, 우리나라로부터 FA-50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러시아에서 Mi-35 공격헬기와 TOS-1 열압력탄발사기, 판치르(Pantsir)-S1 복합대공무기 등 첨단 무기를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지만, 이들 전력이 어디에서 어떻게 운용되는지, 실제 전과는 얼마나 되는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오히려 미국과 국제사회의 공중 화력 지원을 받으면서도 졸전을 거듭해 지난달 말에는 수도 바그다그 인근 1.6km 지역까지 밀려 바그다드가 함락 위기에 놓이는 등 오히려 수세에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IS가 이토록 위세를 떨쳤던 것은 이들이 장악한 석유 관련 시설을 통해 넉넉한 현금 자산을 가지고 있고, SNS를 통한 선전선동을 통해 세계 각지로부터 지원자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도 한몫 하고 있지만, 중동 지역 이슬람 국가들의 은밀한 지원도 큰 역할을 해 왔다. 사실 이번에 IS에 대한 공습에 나섰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바레인 등의 국가들은 그동안 IS의 자금줄로 의심받아왔던 국가들이었다. 이들은 시아파 세력인 시리아의 아사드(Bashar al-Assad) 정권 전복을 위해 아사드 정부군과 싸워온 IS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해왔다. 이러한 행위는 수니파 비중이 높은 이들 국가의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아 왔으나, 미국 등 서방세계와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IS의 세가 갈수록 커 지면서 이들 왕조국가를 전복하고 칼리프(Caliph)에 의한 정교일치 국가 건설을 부르짖는 IS의 사상이 중동 전역의 수니파 교도들에게 확산될 것을 우려한 왕가와 귀족들을 중심으로 IS와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고, 미국과 NATO의 압력이 점차 거세지면서 이들은 국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IS 공습에 참가했다. 중동 국가들이 IS 공습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IS에 대한 지원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각국의 수니파 단체들로부터 IS에 대한 인적・물적 지원이 계속되고 있으며, 여전히 수니파가 상당히 남아있는 이라크 정부군에서는 IS와의 교전에서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않고 전차와 장갑차, 화포 등 각종 장비를 통째로 빼앗기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중동 지역 이슬람 세력의 단결과 급진주의의 확산은 과거 부시 행정부가 무리하게 밀어 붙였던 이라크 침공과 급격한 세속주의화 시도가 불러온 반사작용이다.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면서 수니파였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과 수니파 지도세력을 순식간에 제거하고 이라크 내에서 소수였던 시아파 세력에게 권좌를 내주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수니파였던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고 과도정부를 세웠지만, 결국 그 때 밀려난 수니파들이 재야에서 결집해 과격 무장단체가 되면서 오늘날의 IS를 만들어냈다. 하늘에서 아무리 공습을 퍼붓는다 하더라도 중동 전역의 수니파 민중에 뿌리를 내려가며 확산되고 있는 IS를 격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NATO가 지상군을 투입해 IS를 궤멸시킨다 하더라도 밀려난 수니파 원리주의 세력은 어딘가에 숨어 또다시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며, 반미・반서방 감정이 격해지면서 지금의 IS보다 더 무자비한 행보를 이어갈 것이다. 이슬람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 서방의 군사적 침공과 이로 인해 발생한 뿌리 깊은 반서방 감정, 나아가 미국과 서방이 세워놓은 정권의 무능력함과 부패함 덕분에 이제 머지않아 우리가 수출한 K-9 자주포의 이복동생인 T-155 자주포가 쿠르드족은 물론 수니파가 이단으로 규정한 타 종파 소수민족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상황이 더 악화되면 우리나라가 이라크에 수출한 FA-50 경공격기에 IS의 마크가 붙어있는 장면도 볼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IS, 이라크 유적 훼손·유물 약탈”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의 점령 지역에서 고대 유적을 훼손하고 유물을 훔쳐 국제 암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AFP통신에 따르면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소속 전문가들은 29일(현지시간) 파리 본부에 모여 “IS가 모술과 티크리트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묘지와 사원, 고대 문서들을 파괴했으며 유물을 국외에 팔고자 유적을 마구 파헤치고 있다”고 밝혔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이를 “문화 청소”라고 개탄하며 세계 주요 박물관과 미술시장, 인터폴, 세계관세기구들이 이라크의 유적에서 나올 유물들에 각별히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그는 IS가 테러활동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면서 “이들에게 어떤 것들이 팔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국제 마피아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코바 사무총장은 이라크 유적들의 추가 훼손을 막기 위해 유네스코는 IS 공습에 참여하는 국가들에 주요 유적지의 지리적 위치를 알려주는 좌표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IS의 격퇴에 드는 미국의 작전비용이 연간 130억∼220억 달러(약 13조 7000억∼23조 2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미 국방분야 연구기관인 전략예산평가센터(CSBA)에 따르면 IS 작전이 본격화된 지난 6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7억 8000만∼9억 3000만 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추정됐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서북청년단 유래는 김구 선생 테러 관련 단체?…서북청년단 세월호 노란리본 철거 논란

    서북청년단 유래는 김구 선생 테러 관련 단체?…서북청년단 세월호 노란리본 철거 논란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이 세월호 노란 리본 철거 소동을 벌이면서 그 유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노란 리본 철거를 위해 모인 극우단체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 의해 저지당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서북청년단 재건위는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 노란 리본을 정리한다는 글을 27일 올린 바 있다. 이날 서울광장에서 서북청년단 5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 리본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노란 리본을 오래 달고 있다 보니 훼손되고 너덜너덜하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은 알지만 리본을 모아서 보관하자, 서울시에 보관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거다”라며 철거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정함철 서북청년단 대변인은 “겨울이 오는데도 진도 앞바다에서는 아무 성과도 없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론 분열의 한 중심에 서서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며 “그래서 이제는 중단시켜야한다. 정부와 서울시도 유가족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노란리본을 담을 상자를 들고 리본 제거를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제지 당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노란리본은 서울시 기록유산이어서 (추모기간이) 끝나면 기록관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 “여러분이 임의로 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경찰 저지로 노란리본 철거가 무산되자 “여기선 못 뗐지만 전국에 있는 구국 청년들이 주변에 있는 노란리본을 떼는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경고’하며 유유히 광장을 빠져 나갔다. 정씨는 “오늘은 철거가 무산됐지만 꼭 노란리본을 회수할 것이다.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서북청년단이 나서서 정리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들 단체 이름의 유래가 된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제주도 4.3 항쟁에서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 세력을 파견하여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으로 삼았다. 이들은 봉급 없는 경찰 보조 기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을 위하여 갈취와 약탈, 폭행을 무수히 진행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간부 출신이었다. 이날 노란 리본 철거에 나선 이들은 과거의 서북청년단을 “구국의 최전선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용사들”로 높게 평가하고 “해방 직후 남로당이 70~80% 민심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공조직도 못한 일을 하려면 다소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적극 두둔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북청년단 도대체 어떤 단체? 허지웅 강력 비판 “창피한 역사”

    서북청년단 도대체 어떤 단체? 허지웅 강력 비판 “창피한 역사”

    서북청년단 도대체 어떤 단체? 허지웅 강력 비판 “창피한 역사”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이 세월호 노란 리본 철거 소동을 벌이면서 그 유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노란 리본 철거를 위해 모인 극우단체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 의해 저지당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이날 서울광장에서 서북청년단 5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 리본을 모아서 보관하자, 서울시에 보관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거다”라며 철거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노란리본을 담을 상자를 들고 리본 제거를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노란리본은 서울시 기록유산이어서 (추모기간이) 끝나면 기록관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 “여러분이 임의로 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 이름의 유래가 된 ‘서북청년단’은 해방 직후 북한에서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다. 좌익이라고 판단하면 무조건적인 테러를 가해 악명이 높았다. 이들은 급여를 받지 않고 경찰의 보조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양민에 대한 갈취와 약탈, 폭행을 일삼았다. 영화평론가 겸 방송인 허지웅은 극우단체 활동을 거세게 비판했다. 허지웅은 28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광복 이후 결성되었던 서북청년단은 한국에서 재현된 독일 나치 SS친위대라 할 정도로 부끄럽고 끔찍하며 창피한 역사”라면서 “은하영웅전설의 우국기사단 같은 존재”라고 지적했다. 또 “선진국과 비교하길 좋아하는 한국이 국제사회 구성단위로서 여전히 지속가능한 사회임을 스스로 증명하려면 저 단체는 심각한 혐오 범죄로 분류되고 관리돼야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허지웅은 “’서북청년단이 뭔데 재건을 하겠다는 거야’하고 그냥 대충 넘어가면 안된다”면서 “고작 수십 년 전의 끔찍하고 창피한 역사다. 저런 이름을 창피함 없이 쓸 수 있게 허용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부끄러워하며 어른이 어른일 수 있는 마지노선을 사수하자”고 덧붙였다. 네티즌들은 “허지웅 서북청년단 비판, 황당한 단체네”, “허지웅 서북청년단 비판, 도대체 저기서 서북청년단이 왜 나와”, “허지웅 서북청년단 비판, 참 부끄러운 역사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북청년단은 김구 선생 테러 관련?…허지웅 “나치친위대 같은 단체, 혐오범죄로 관리돼야”

    서북청년단은 김구 선생 테러 관련?…허지웅 “나치친위대 같은 단체, 혐오범죄로 관리돼야”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이 세월호 노란 리본 철거 소동을 벌이면서 그 유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노란 리본 철거를 위해 모인 극우단체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 의해 저지당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이날 서울광장에서 서북청년단 5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 리본을 모아서 보관하자, 서울시에 보관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거다”라며 철거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노란리본을 담을 상자를 들고 리본 제거를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제지 당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노란리본은 서울시 기록유산이어서 (추모기간이) 끝나면 기록관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 “여러분이 임의로 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 이름의 유래가 된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 사람들에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제주도 4.3 항쟁에서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 세력을 파견하여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으로 삼았다. 이들은 봉급 없는 경찰 보조 기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을 위하여 갈취와 약탈, 폭행을 무수히 진행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간부 출신이었다. 이에 영화평론가 겸 방송인 허지웅이 서북청년단을 거세게 비판했다. 허지웅은 28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광복 이후 결성되었던 서북청년단은 한국에서 재현된 독일 나치 SS친위대라 할 정도로 부끄럽고 끔찍하며 창피한 역사입니다. 은하영웅전설의 우국기사단 같은 존재죠. 최근 ‘서북청년단 재건위’라는 이름의 단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이어 허지웅은 “선진국과 비교하길 좋아하는 한국이 국제사회 구성단위로서 여전히 지속가능한 사회임을 스스로 증명하려면 저 단체는 심각한 혐오 범죄로 분류되고 관리되어야 마땅합니다”라고 말했다. 허지웅은 “서북청년단이 뭔데 재건을 하겠다는 거야, 하고 그냥 대충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고작 수십 년 전의 끔찍하고 창피한 역사”라며 “저런 이름을 창피함 없이 쓸 수 있게 허용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부끄러워하며 어른이 어른일 수 있는 마지노선을 사수합시다”고 덧붙였다. 이날 노란 리본 철거에 나선 이들은 과거의 서북청년단을 “구국의 최전선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용사들”로 높게 평가하고 “해방 직후 남로당이 70~80% 민심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공조직도 못한 일을 하려면 다소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적극 두둔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세월호 노란리본 철거 논란…서북청년단 유래는?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세월호 노란리본 철거 논란…서북청년단 유래는?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이 논란이다. 지난 28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노란 리본 철거를 위해 모인 극우단체 ’서북청년단’이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 의해 저지당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서북청년단은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 노란 리본을 정리한다는 글을 27일 올린 바 있다. 이날 서울광장에서 서북청년단 5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 리본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노란 리본을 오래 달고 있다 보니 훼손되고 너덜너덜하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은 알지만 리본을 모아서 보관하자, 서울시에 보관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거다”라며 철거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정함철 서북청년단 대변인은 “겨울이 오는데도 진도 앞바다에서는 아무 성과도 없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론 분열의 한 중심에 서서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며 “그래서 이제는 중단시켜야한다. 정부와 서울시도 유가족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노란리본을 담을 상자를 들고 리본 제거를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제지 당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노란리본은 서울시 기록유산이어서 (추모기간이) 끝나면 기록관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 “여러분이 임의로 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경찰 저지로 노란리본 철거가 무산되자 “여기선 못 뗐지만 전국에 있는 구국 청년들이 주변에 있는 노란리본을 떼는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경고’하며 유유히 광장을 빠져 나갔다. 정씨는 “오늘은 철거가 무산됐지만 꼭 노란리본을 회수할 것이다.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서북청년단이 나서서 정리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들 단체 이름의 유래가 된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제주도 4.3 항쟁에서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 세력을 파견하여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으로 삼았다. 이들은 봉급 없는 경찰 보조 기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을 위하여 갈취와 약탈, 폭행을 무수히 진행하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북청년단’ 세월호 노란리본 철거 논란…극우 서북청년단 유래는?

    ‘서북청년단’ 세월호 노란리본 철거 논란…극우 서북청년단 유래는?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이 논란이다. 지난 28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노란 리본 철거를 위해 모인 극우단체 ’서북청년단’이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 의해 저지당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서북청년단은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 노란 리본을 정리한다는 글을 27일 올린 바 있다. 이날 서울광장에서 서북청년단 5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 리본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노란 리본을 오래 달고 있다 보니 훼손되고 너덜너덜하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은 알지만 리본을 모아서 보관하자, 서울시에 보관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거다”라며 철거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정함철 서북청년단 대변인은 “겨울이 오는데도 진도 앞바다에서는 아무 성과도 없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론 분열의 한 중심에 서서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며 “그래서 이제는 중단시켜야한다. 정부와 서울시도 유가족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노란리본을 담을 상자를 들고 리본 제거를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제지 당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노란리본은 서울시 기록유산이어서 (추모기간이) 끝나면 기록관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 “여러분이 임의로 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경찰 저지로 노란리본 철거가 무산되자 “여기선 못 뗐지만 전국에 있는 구국 청년들이 주변에 있는 노란리본을 떼는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경고’하며 유유히 광장을 빠져 나갔다. 정씨는 “오늘은 철거가 무산됐지만 꼭 노란리본을 회수할 것이다.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서북청년단이 나서서 정리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들 단체 이름의 유래가 된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제주도 4.3 항쟁에서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 세력을 파견하여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으로 삼았다. 이들은 봉급 없는 경찰 보조 기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을 위하여 갈취와 약탈, 폭행을 무수히 진행하였다. 이날 노란 리본 철거에 나선 이들은 ‘서북청년단’을 “구국의 최전선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용사들”로 높게 평가하고 “해방 직후 남로당이 70~80% 민심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공조직도 못한 일을 하려면 다소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적극 두둔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북청년단’ 세월호 노란리본 철거 논란…극우 서북청년단, 김구 선생 암살과 관련?

    ‘서북청년단’ 세월호 노란리본 철거 논란…극우 서북청년단, 김구 선생 암살과 관련?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이 논란이다. 지난 28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노란 리본 철거를 위해 모인 극우단체 ’서북청년단’이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 의해 저지당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서북청년단은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 노란 리본을 정리한다는 글을 27일 올린 바 있다. 이날 서울광장에서 서북청년단 5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 리본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노란 리본을 오래 달고 있다 보니 훼손되고 너덜너덜하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은 알지만 리본을 모아서 보관하자, 서울시에 보관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거다”라며 철거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정함철 서북청년단 대변인은 “겨울이 오는데도 진도 앞바다에서는 아무 성과도 없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론 분열의 한 중심에 서서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며 “그래서 이제는 중단시켜야한다. 정부와 서울시도 유가족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노란리본을 담을 상자를 들고 리본 제거를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제지 당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노란리본은 서울시 기록유산이어서 (추모기간이) 끝나면 기록관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 “여러분이 임의로 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경찰 저지로 노란리본 철거가 무산되자 “여기선 못 뗐지만 전국에 있는 구국 청년들이 주변에 있는 노란리본을 떼는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경고’하며 유유히 광장을 빠져 나갔다. 정씨는 “오늘은 철거가 무산됐지만 꼭 노란리본을 회수할 것이다.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서북청년단이 나서서 정리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들 단체 이름의 유래가 된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제주도 4.3 항쟁에서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 세력을 파견하여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으로 삼았다. 이들은 봉급 없는 경찰 보조 기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을 위하여 갈취와 약탈, 폭행을 무수히 진행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간부였다. 이날 노란 리본 철거에 나선 이들은 ‘서북청년단’을 “구국의 최전선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용사들”로 높게 평가하고 “해방 직후 남로당이 70~80% 민심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공조직도 못한 일을 하려면 다소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적극 두둔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북청년단’ 노란리본 철거 소동…극우 서북청년단, 김구 선생 암살 관련 단체?

    ‘서북청년단’ 노란리본 철거 소동…극우 서북청년단, 김구 선생 암살 관련 단체?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이 세월호 노란 리본 철거 소동으로 논란이 되면서 그 유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노란 리본 철거를 위해 모인 극우단체 ’서북청년단’이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 의해 저지당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서북청년단은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 노란 리본을 정리한다는 글을 27일 올린 바 있다. 이날 서울광장에서 서북청년단 5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 리본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노란 리본을 오래 달고 있다 보니 훼손되고 너덜너덜하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은 알지만 리본을 모아서 보관하자, 서울시에 보관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거다”라며 철거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정함철 서북청년단 대변인은 “겨울이 오는데도 진도 앞바다에서는 아무 성과도 없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론 분열의 한 중심에 서서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며 “그래서 이제는 중단시켜야한다. 정부와 서울시도 유가족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노란리본을 담을 상자를 들고 리본 제거를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제지 당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노란리본은 서울시 기록유산이어서 (추모기간이) 끝나면 기록관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 “여러분이 임의로 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경찰 저지로 노란리본 철거가 무산되자 “여기선 못 뗐지만 전국에 있는 구국 청년들이 주변에 있는 노란리본을 떼는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경고’하며 유유히 광장을 빠져 나갔다. 정씨는 “오늘은 철거가 무산됐지만 꼭 노란리본을 회수할 것이다.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서북청년단이 나서서 정리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들 단체 이름의 유래가 된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제주도 4.3 항쟁에서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 세력을 파견하여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으로 삼았다. 이들은 봉급 없는 경찰 보조 기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을 위하여 갈취와 약탈, 폭행을 무수히 진행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간부 출신이었다. 이날 노란 리본 철거에 나선 이들은 과거의 서북청년단을 “구국의 최전선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용사들”로 높게 평가하고 “해방 직후 남로당이 70~80% 민심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공조직도 못한 일을 하려면 다소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적극 두둔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북청년단’ 세월호 노란리본 철거 논란…극우 서북청년단, 김구 선생 암살 관련 단체?

    ‘서북청년단’ 세월호 노란리본 철거 논란…극우 서북청년단, 김구 선생 암살 관련 단체?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이 논란이 되면서 그 유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노란 리본 철거를 위해 모인 극우단체 ’서북청년단’이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 의해 저지당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서북청년단은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 노란 리본을 정리한다는 글을 27일 올린 바 있다. 이날 서울광장에서 서북청년단 5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 리본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노란 리본을 오래 달고 있다 보니 훼손되고 너덜너덜하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은 알지만 리본을 모아서 보관하자, 서울시에 보관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거다”라며 철거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정함철 서북청년단 대변인은 “겨울이 오는데도 진도 앞바다에서는 아무 성과도 없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론 분열의 한 중심에 서서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며 “그래서 이제는 중단시켜야한다. 정부와 서울시도 유가족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노란리본을 담을 상자를 들고 리본 제거를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제지 당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노란리본은 서울시 기록유산이어서 (추모기간이) 끝나면 기록관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 “여러분이 임의로 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경찰 저지로 노란리본 철거가 무산되자 “여기선 못 뗐지만 전국에 있는 구국 청년들이 주변에 있는 노란리본을 떼는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경고’하며 유유히 광장을 빠져 나갔다. 정씨는 “오늘은 철거가 무산됐지만 꼭 노란리본을 회수할 것이다.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서북청년단이 나서서 정리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들 단체 이름의 유래가 된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제주도 4.3 항쟁에서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 세력을 파견하여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으로 삼았다. 이들은 봉급 없는 경찰 보조 기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을 위하여 갈취와 약탈, 폭행을 무수히 진행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간부였다. 이날 노란 리본 철거에 나선 이들은 ‘서북청년단’을 “구국의 최전선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용사들”로 높게 평가하고 “해방 직후 남로당이 70~80% 민심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공조직도 못한 일을 하려면 다소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적극 두둔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북청년단 유래는 김구 선생 암살 관련 단체?…서북청년단 재건위 노란리본 철거 논란

    서북청년단 유래는 김구 선생 암살 관련 단체?…서북청년단 재건위 노란리본 철거 논란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이 세월호 노란 리본 철거 소동으로 논란이 되면서 그 유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노란 리본 철거를 위해 모인 극우단체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 의해 저지당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서북청년단 재건위는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 노란 리본을 정리한다는 글을 27일 올린 바 있다. 이날 서울광장에서 서북청년단 5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 리본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노란 리본을 오래 달고 있다 보니 훼손되고 너덜너덜하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은 알지만 리본을 모아서 보관하자, 서울시에 보관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거다”라며 철거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정함철 서북청년단 대변인은 “겨울이 오는데도 진도 앞바다에서는 아무 성과도 없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론 분열의 한 중심에 서서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며 “그래서 이제는 중단시켜야한다. 정부와 서울시도 유가족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노란리본을 담을 상자를 들고 리본 제거를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제지 당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노란리본은 서울시 기록유산이어서 (추모기간이) 끝나면 기록관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 “여러분이 임의로 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경찰 저지로 노란리본 철거가 무산되자 “여기선 못 뗐지만 전국에 있는 구국 청년들이 주변에 있는 노란리본을 떼는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경고’하며 유유히 광장을 빠져 나갔다. 정씨는 “오늘은 철거가 무산됐지만 꼭 노란리본을 회수할 것이다.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서북청년단이 나서서 정리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들 단체 이름의 유래가 된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제주도 4.3 항쟁에서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 세력을 파견하여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으로 삼았다. 이들은 봉급 없는 경찰 보조 기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을 위하여 갈취와 약탈, 폭행을 무수히 진행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간부 출신이었다. 이날 노란 리본 철거에 나선 이들은 과거의 서북청년단을 “구국의 최전선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용사들”로 높게 평가하고 “해방 직후 남로당이 70~80% 민심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공조직도 못한 일을 하려면 다소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적극 두둔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이슬람국가(IS) 응징하는 ‘저승사자’ 미군 A-10C 공격기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이슬람국가(IS) 응징하는 ‘저승사자’ 미군 A-10C 공격기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일대를 휩쓸며 닥치는 대로 살육과 약탈을 일삼아 온 광기어린 테러 집단 IS(Islamic State)를 응징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습이 시작됐다. 미국은 항공모함 전단에서 발진한 F/A-18E/F 슈퍼 호넷을 필두로 F-16과 F-15, B-1B 폭격기는 물론 인류 역사상 최강의 전투기라 평가되는 F-22A ‘랩터’를 공습에 투입했다. 50여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동원된 이번 공습에서 미국은 IS와 알 카에다(Al-Queada) 계열 무장조직 호라산 그룹(Khorasan group)의 시설을 파괴했다. 공습을 당한 시설들은 철저하게 파괴됐고, 수 십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 “이번 공습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한 것처럼 미국은 IS가 F-22A나 B-1B보다 더 두려워할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중장갑 공격기 A-10C 워호그(warthog)였다. 흑멧돼지가 중동으로 날아간 이유 IS는 국가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국가보다는 비교적 조직화가 잘 되어있는 대규모 무장 집단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라크와 시리아 정부군으로부터 노획한 전차와 항공기 등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제대로 된 관청이나 지휘시설 같은 것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과거 미국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공습했을 때 이라크와 탈레반은 정규군이 있었고, 각지에 정규군이 주둔하고 있는 기지와 각종 병참 시설들이 건설되어 있었다. 정규군이었던 이라크군과 탈레반군은 이러한 시설이 파괴되면 작전에 상당한 지장을 받았지만, IS는 다르다. IS는 정규군보다는 ‘마적단’에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에 모든 시설은 임시 시설이다. 기존의 학교나 관공서, 아파트를 빼앗아 그곳에 병력이 머물면 막사가 되는 것이고, 탄약과 물자를 보관해 놓으면 병참 시설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중앙 지도부에서 무기를 구매해 전투부대에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를 통해 약탈하고 노획해 무기와 탄약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 이라크군이나 탈레반군처럼 제대로 된 병참 시설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미군과 동맹국들이 수십여 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정밀 유도 폭탄과 미사일로 표적을 공습한다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 어차피 빼앗은 건물이고, 물자와 인력은 점령지에서 약탈하고 징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B-1B와 F-22와 같은 최첨단 전력은 이러한 테러 조직을 상대하는데 적절하지 않다. 미국도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첩보활동으로 획득한 IS 지도부 은거지를 초정밀 폭격으로 파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IS 격퇴의 핵심은 소위 ‘테크니컬(Technical)’, 즉 무장 트럭을 타고 떼 지어 몰려다니는 IS 병력을 제거하는데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지상에 전투부대를 보내야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장기전의 늪에 빠졌던 미국이 또 다시 자충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의외의 카드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바로 A-10C 공격기의 중동 배치였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 국방부는 인디애나주 주방위공군 제122전투비행단 예하 제163비행대의 A-10C 공격기 12대와 병력 300여 명을 다음 달 초까지 중동 지역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이번 조치가 IS 공습과는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현지 언론은 이번 A-10C 중동 배치의 시기가 미묘하다고 꼬집으면서 이 공격기가 이라크 정부군을 지원해 IS를 격퇴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IS와 같은 ‘마적단’에게 A-10C는 과거 냉전시절 불렸던 별명 그대로 ‘죽음의 십자가’ 그 자체다. A-10C의 주무장인 GAU-8 30mm 기관포는 현존하는 거의 대부분의 전차와 장갑차를 파괴할 수 있는 포탄을 분당 4,200발의 속도로 쏟아 부을 수 있다. 이밖에도 JDAM과 헬파이어 미사일은 물론 각종 정밀유도무기를 최대 7톤까지 탑재한다. 막강한 화력만큼이나 방어력도 대단히 강력하다. A-10C는 IS가 상용 트럭에 얹어 운용하는 23mm 기관포로 쉽게 격추시킬 수 없다. 주요부위가 티타늄 장갑재로 되어 있고, 피격되어 유압 장치가 파괴되더라도 기체 조종이 가능하도록 조종간과 조종면 사이에 강철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다. 이라크 자유 작전 때 23mm 기관포는 물론 57mm 기관포탄 4발에 직격 당하고도 추락하지 않고 기지로 무사 귀환한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중무장・중장갑 공격기가 중동 지역에 배치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지상군 대용’이다.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할 수 없으니 지상전투는 이라크 정부군과 쿠르드 자치정부 민병대가 대신하되, 이들의 실력이 못미더우니 강력한 공격기를 지원해 이라크군의 실력 부족을 화력 지원으로 커버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기사회생할까? 사실, 이번 중동 배치와 IS 격퇴 전쟁 참전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A-10C 자신이다. 퇴역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또 한 번 그 가치를 증명할 기회가 주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A-10은 1970년대 구소련의 대규모 기갑부대를 저지하기 위해 등장한 대전차 공격기였으나, 냉전 붕괴 직후 더 이상 구소련과 동구권의 기갑부대를 상대할 일이 없어지자 조기 퇴역이 추진됐으나 1991년 걸프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후 2000년대 초 또 다시 퇴역론이 대두되었으나, 2003년 이라크 자유 작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며 그 존재 가치를 또 한 번 입증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역할이 끝나자 미 공군은 F-35A 도입을 위해 A-10 퇴역을 추진하고 나섰다. A-10 프로그램을 종료해 여기서 아낀 돈으로 F-35A 프로그램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의회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 하원은 2014년 국방예산안을 심의하면서 미 공군이 A-10 퇴역을 위해 단 한 푼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 버렸다. A-10만큼 근접항공지원에 효과적인 기체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미 공군은 Charles Davis 중장을 의회에 보내 “이제 더 이상 티타늄으로 감싼 기체를 저속으로 비행시킬 필요는 없다”면서 “이미 F-16이나 B-52, B-1B가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예산안은 미 하원의 결정대로 통과되어 A-10C는 내년도 예산안이 집행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이번에 A-10이 IS를 상대로 얼마나 위력을 떨칠 것이며, 그 유효성을 인정받아 또다시 수명을 연장 받을 수 있을지 여부에 과심이 몰리고 있다. A-10C가 IS를 상대로 펼치는 전쟁에서 또 한 번 그 진가를 입증 받는다면 적어도 2020년대 중반까지는 장수할 수 있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거대 비단뱀 참혹하게 죽이는 군대개미떼 포착

    거대 비단뱀 참혹하게 죽이는 군대개미떼 포착

    군대개미 수만마리가 떼지어 거대한 비단뱀을 공격해 죽이는 영상이 포착돼 화제다. 유튜브에 올라온 ‘비단뱀을 죽이는 개미들’이란 제목의 1분 32초가량 영상에는 개미집 인근 물웅덩이에서 이동하는 비단뱀 모습이 보인다. 거대한 비단뱀이 물웅덩이를 가로질러 개미집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자 수많은 개미가 뱀의 몸에 올라타기 시작한다. 뱀의 몸을 다 뒤덮을 만큼의 많은 개미떼가 공격하자 뱀이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꿈틀거린다. 개미떼의 공격에 뱀이 개미집 아래 물웅덩이로 추락한다. 개미떼에 물려 몸이 마비되는 듯 뱀의 움직임이 점점 없어진다. 한편 군대개미는 남아메리카에 주로 서식하며 독침과 강력한 집게 턱으로 상대를 제압해 약탈과 살육을 일삼는 개미로 200만 마리 이상의 개체 수를 유지한다. 군대개미 떼는 ‘수백만 개의 입과 침을 가진 하나의 동물’로 알려질 만큼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곤충으로 잘 알려졌다. 사진·영상= Nicolas Lefou youtube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난징대학살 당시 1000명 성폭행” 수업에 日장관 ‘발끈’

    “난징대학살 당시 1000명 성폭행” 수업에 日장관 ‘발끈’

    ‘난징 대학살’의 ‘진실’을 일본인 학생들에게 가르친 한 현직 교사의 소식을 접한 일본의 교육장관이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시모무라 하쿠분 일본 문부과학상(교육장관)이 19일 내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센다이시(市) 교육위원회에 확인하고 보도내용이 대체로 사실인 것을 알게됐다”면서 “학습지도 요령에 반하는 행위를 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센다이시(市) 시립중학교에서 지도 경력 30년의 베테랑 사회 교사가 지난 7월 난징 대학살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1000명의 여성이 성폭행당했다’, ‘시체인지 죽은 척하는 것인지 옆구리를 발로 차 알아냈다’ 등의 교과서에 없는 자료로 수업을 진행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로 인해 일부 우익 학부모가 학교 측에 항의했고 해당 교사는 학교 측을 통해 단지 “전쟁의 비참함을 전달하려 했다”면서 사과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에 불쾌감을 드러낸 시모무라 문부과학상은 “각 학교는 학습지도 요령에 따라 학생의 발달 단계를 충분히 고려해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만 가르치라는 것. 문제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가 왜곡이 심각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빌미로 대표적 우익 매체인 산케이신문 등은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난징 사건(난징 대학살 사건을 축소해 칭함)이 기술돼 있지만 이 교사가 소개한 성폭행을 기술한 교과서는 없다”고 전했다. 한편 ‘난징 대학살’은 중일전쟁 중인 1937년 12월13일 당시 중화민국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이듬해 2월까지 6주간에 걸쳐 수십 만 명의 중국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희생자 수에 대해 중국 측은 “30만 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일본정부에서는 이같은 사실을 축소하며 “비전투원의 살해와 약탈 행위 등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견해 만을 밝히고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日교사 “난징대학살 당시 1000명 성폭행” 수업 논란

    日교사 “난징대학살 당시 1000명 성폭행” 수업 논란

    일본의 한 교사가 ‘난징 대학살’의 ‘진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가 현지언론의 비판을 받고있다.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센다이시(市) 시립중학교에서 한 50대 남성 교사가 수업 도중 교과서에 없는 자료로 난징대학살을 가르쳤다. 이 자료에는 일본군이 1000명의 여성을 성폭행했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알게 된 일부 학부모가 학교 측에 항의했고 해당 교사는 학교 측을 통해 단지 “전쟁의 비참함을 전달하려 했다”면서 사과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와 시교육위원회에 따르면 해당 교사는 지도 경력 30년의 베테랑으로 수업 중 “일본군이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면서 “시체인지 죽은 척하는 것인지는 옆구리를 발로 차 알아냈다”며 교실의 휴지통을 걷어 차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0명의 남성이 처형되는 것이 목격됐다”, “하룻밤 사이에 1000명의 여성이 성폭행당했다. 어느 딱한 여성은 37번 성폭행 당했다” 등의 내용도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케이신문은 ‘난징 대학살’ 을 ‘난징 사건’으로 칭하며 “존재 여부에도 논쟁이 있는 사건”이라면서 “이 교사가 수업에 쓴 자료는 진위불명으로 잔학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난징 사건이 기술돼 있지만 이 교사가 소개한 성폭행을 기술한 교과서는 없다”고 덧붙였다. 신문의 이같은 주장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 심각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난징 대학살’은 중일전쟁 중인 1937년 12월13일 당시 중화민국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이듬해 2월까지 6주간에 걸쳐 수십 만 명의 중국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희생자 수에 대해 중국 측은 “30만 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일본정부에서는 이같은 사실을 축소하며 “비전투원의 살해와 약탈 행위 등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견해 만을 밝히고 있다. 사진=중국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위키백과)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수입차 수리비용 비싸… 부품가격 조사할 것”

    “수입차 수리비용 비싸… 부품가격 조사할 것”

    정부가 과도한 수입자동차의 부품 가격에 메스를 가한다. 수입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수입차 수리비용이 과도하다는 소비자 불만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31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지난 28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수입차 수리비용이 너무 비싸고 불투명해 소비자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소비자단체와 협력해 9월과 10월에 걸쳐 수입차 부품 가격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국토교통부가 수입차를 포함해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자동차의 부품 가격을 공개하도록 했지만 소비자의 검색 과정이 까다롭고 가격의 사실 여부 확인이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 위원장은 “소비자들이 보고 (부품 가격에 대해) 판단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위원장은 또 영화 산업의 대기업 수직계열화 문제에 대해서는 현장실태 조사를 마무리했으며 확보된 자료를 검토해 법 위반이 확인되면 올해 안에 엄중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영화 산업에서 불공정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업해 9월 중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작업을 완료하겠다고 설명했다. 카카오의 사업영역 확장과 관련해서는 “새로 진출한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경쟁 사업자를 착취·배제하거나 신규 진입을 막는 경우 경쟁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위원장은 “약탈적인 경쟁을 방치하면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고 카카오에 대한 제재를 시사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의 기업 결합에 대해서는 “신고가 들어오면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없는지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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