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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광산업 규제 더 풀어라/김주영 작가(서울광장)

    모처럼 우리나라를 찾아온 외국 관광객들에게 우리가 자랑삼아 보여줄 수 있고,그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수 있는 관광자원이나 관광자산의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그런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흔히들,우리가 지닌 전통적인 생활문화와 고적을 비롯한 문화유산을 관람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서울을 비롯한 경기 인근에 흩어져 있는 손색없는 고적들과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정체성을 과시할 수 있는 몇몇 공연물과 전시장이 있긴 하다.그러나 막상 가다듬고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나라를 찾아온 외국관광객들이 우리의 무엇을 보고 느끼고 돌아가는지 퍽이나 굼금해지면서 나아가서는 뒤통수가 뜨거울 정도의 당혹감을 느낄 때가 많다.우리 스스로가 냉정한 시선으로 검증해 보면 우리의 관광자원은 극동이나 동남아의 이웃나라들과 비교해서 너무나 보잘 것이 없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물론 그들 관광객들이 우리나라에 당도해서 보름이나 한달을 체류한다면,우리 고유문화의 우수성을 뇌리에 각인하여 돌아갈 수 있는 여지는 있다.그러나 그들이 체류기간이 고작해서 평균 3∼4일 정도라면,자신들이 본국에서도 지겹도록 바라보던 빌딩들과 자동차만 실컷 보고 돌아가게 될 것이란 비관적인 결론과 마주치게 된다.우리가 자랑하던 맑은 하늘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매연에 찌든 경치도 이젠 자랑할 것이 못되고 말았다. ○적자관광 대책 미흡 그래서 그들 외국관광객들이 우리나라에 떨어뜨리고 가는 외화도 중진국의 국민인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쓰고오는 외화의 액수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이처럼 외화가 무더기로 잘려나가는 사태를 두고 양식있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사치관광과 낭비관광을 목청높여 질타하고 개탄한다.그러나 질타와 개탄은 있지만,외화낭비와 적자관광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과 눈을 크게 뜨게 만드는 개선책은 아예 없거나 미흡하기 그지없다.옛날의 어떤 게으른 선비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밖으로 나가서 지붕 고칠 생각은 않고 방안에서 우산만 받고 앉아 날씨를 원망하더란 얘기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외국의 경우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공항만 벗어나면 관광자원이 그대로널려있을 정도여서 구태여 가이드를 따로둘 필요가 없을 정도다.외국에 나가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우리의 관광자원이 바탕부터 매우 취약할 뿐만 아니라,누가 보아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넓은 공감대와 보편성을 가진 관광자원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그러나 관광자원의 개발과 보전이란,10∼20년의 거국적인 노력과 집념으로도 흡족한 성과를 노리기 힘든 문제란 것을 유럽이나 동남아의 문화유산을 돌아본 사람이라면 씁쓰레한 심정으로 느끼게 된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좋아 우리나라의 관광자원이 이처럼 절망적인 상태로 소진되거나 훼손된 것은 물론 일제의 약탈과 참혹한 전쟁,그리고 무분별했던 개발로 우리 고유문화의 정체성이 마모된 탓이다.그러나 좁은 국토에 과부하된 인구,그리고 거론조차 할 수 없는 지하자원의 절대적 고갈은 우리나라 경제의 영원한 숙제이고 극복해야할 과제이다.그러므로 우리는 첨단산업과 관광산업의 육성으로 외화를 벌지 않으면 장차 살아남을 길이 없다해도 심한 말이 아니게 되었다.바로이런 바탕위에서 행정일선에서 규제의 과감한 혁파나 제도개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관광자원 개발에 대한 인식의 혁명적 전환과 다각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그 한 예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대한 규제완화는 일단 관광산업에 대한 인식전환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이러한 인식전환은 크게는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진흥은 물론,당면해 있는 적자관광을 극복하는데도 좋은 처방이 될 것이 틀림없다.또한 카지노 산업의 육성은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일 뿐 아니라,국가가 거둬들이는 세수증대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것이 틀림없다.장차 이 방면의 인재를 길러내 우리나라 관광산업 발전에 노하우를 축적하는데까지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가질 때가 되었다.
  • 인도 함피:상(세계 문화유산 순례:34)

    ◎찬란한 힌두문명의 잔해가 숨쉰다/50만 인구 북적이던 제국의 영화 간곳없고 황량한 폐허… 부서진 사원…/성소 비루팍샤 사원 줄잇는 참배객은 맨발로 해탈의 고행/사자머리에 인간의 몸체 흉몰스런 나라심하상에 머리7개 뱀신 「나가」가… 인도 남부의 거대한 유적도시 함피.14세기 중반 힌두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던 비자야나가르제국의 수도가 함피다.그 도시의 옛 영화를 찾아가는 길은 힌두교의 방랑승려 사두의 고행만큼이나 험난했다. ○비자야나가르제국의 수도 남인도 카르나타카주 호스펫에서 북동쪽으로 13㎞ 거리다.소형 3륜차 뒷부분에 2인용 좌석을 단 오토 릭샤를 타고 어둑 새벽길을 40분 남짓 달렸다.탈탈거리는 오토 릭샤의 운전사 어깨 너머로 황토빛 바위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1336년 텔루구 부족의 두 왕자 하리하라와 북카가 세운 힌두왕국 비자야나가르가 남긴 「환상의 도시」 함피다.한때 르네상스기의 로마 인구에 버금가는 50만명의 사람들이 살았던 함피는 중세 델리의 전성기에 필적할만큼 번성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비자야나가르제국은 1565년 이슬람세력의 침공으로 멸망하고,함피의 영광은 역사의 어둠속에 묻히고 말았다. ○16세기 이슬람침공에 멸망 함피는 지금은 고작 8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적한 시골마을로 변했다.그 전경을 보기 위해 함피에서 제일 높은 마탕가 언덕에 올랐다.비자야나가르제국의 젖줄인 퉁가바드라강이 한가운데로 흘렀다.강 유역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40여개의 부서진 사원과 바위무더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더없이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무려 26㎢에 걸쳐 있는 이 유적군은 지난 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함피의 폐허」를 더듬는 기자의 발걸음은 역사의 무게 만큼이나 경건했다. 먼저 함피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사원으로 꼽히는 비루팍샤 사원으로 향했다.제국시절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들이 달렸던 함피의 옛시장 바자르 길을 따라 한동안 걷자 높이가 52m나 되는 거대한 9층 고푸람(gopuram)이 나그네를 반겼다.고푸람은 도시나 궁궐 또는 사원의 입구에 세우는 층이 있는 힌두교식 탑이다.온갖 형상의 조각들로 뒤덮힌 고푸람을 뒤로 하고 비루팍샤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사원 안에서는 모두 맨발로 다녀야 했다.발을 내디딜 때마다 인두로 지지듯 뜨거운 땅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팜파파티 사원으로도 불리는 비루팍샤 사원은 비자야나가르 왕조 이전 호이살라 시대 말기에 처음 세워졌다.그리고 나서 1510년 툴루바 왕조의 크리슈나 데바 라야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개조됐다.비루팍샤 사원은 전형적인 비자야나가르 건축양식에 따라 널찍한 안뜰을 뒀다.장방형의 경내에는 현란한 만다파(mandapa,홀)와 묘당들이 즐비했다.그중에서 창조의 신인 브라마의 딸 팜파의 결혼을 선포하는 만다파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퉁가바드라강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사원의 노천 베란다를 타고 흘러 들어 부엌을 통해 안마당으로 새나가도록 한 설계솜씨는 신기에 가까웠다. ○비루팍샤 경내엔 묘당 즐비 「비루팍샤」는 파괴의 신인 시바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시바는 브라만교의 경전 「리그 베다」에서는폭풍의 신 루드라의 존칭으로,길상을 뜻하는 형용사였다.그러나 시바는 훗날 토착적 요소와 결합해 대중적 신앙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예배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비루팍샤 사원 안의 지성소에는 시바 링가(Shiva linga)라는 시바신의 남근상을 신주처럼 모셨다.그 주위는 신상에 예배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댔다.그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야자를 그 자리에서 내리쳐 쪼갠뒤 야자 물을 머리에 바르거나 입술에 슬쩍 댔다가 신상앞에 흘렸다.그리고 무언가 간절히 빌고 있었다.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까.그들을 보니 문득 『해탈의 길은 맨발로 면도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수직으로 솟은 시바 링가와 신의 불꽃을 담은 신성한 불판,버터기름 타는듯한 누릿한 냄새….남인도 어느 힌두사원에서나 볼 수 있는 물신숭배 의식이다.하지만 마지막 힌두왕조의 옛 터전에서 베풀고 있는 그 의식은 보는 이들을 한껏 주술적인 신비감의 늪으로 빠뜨렸다.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에서도 신의 현현을느낄수 있는 영혼의 나라 인도.인도는 정녕 신들의 고향이다.인도의 모든 마을에는 사원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다.10억 인도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다.아니 믿는다기 보다는 힌두신에 취해 산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3억이 넘는다는 힌두신들의 어지러운 형상을 머리속에 그리며 햇볕 쏟아지는 광야를 끝없이 걸었다. 광야를 지나 물살 빠르기로 소문난 투루투 수로를 만났다.수로를 지나서 바나나밭을 끼고 돌자 사자 머리에 인간 몸통을 한 흉물스런 나라심하상이 유령처럼 나타났다.나라심하는 보존의 신인 비시누의 네번째 화신이다.1528년 크리슈나 데바 라야의 통치 후반기에 세워진 나라심하상은 높이가 6.7m로 함피에서 가장 큰 조각상이라 했다.마치 연화좌에 올라 요가를 수행하는 요기(yogi)처럼 앉아있는 나라심하의 꼭대기에는 머리가 7개 달린 뱀신 나가(naga)가 버티고 있다.기괴하기 짝이 없었다.나라심하의 왼쪽 무릎위에는 원래 비시누신의 배우자이자 행운과 미의 여신인 락슈미상이 있었다.그러나 무슬림의 약탈로 지금은 여신의 오른쪽 팔 흔적만 남아 있다. □여행 가이드 함피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교통의 요충지」 호스펫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제일 편하다.호스펫에서 함피의 중심지인 함피 바자르까지 가는 버스가 상오 6시30분부터 하오 8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요금은 2.50루피(1루피는 우리 돈으로 30원 정도). 오토 릭샤를 이용하려면 50루피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자전거를 빌리는 것도 경제적이다.호스펫,카말라푸람 등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10루피를 주면 하루동안 사용할 수 있다. 함피의 숙소 사정은 여의찮다.세면시설 정도를 갖춘 게스트하우스가 고작이다.그러나 호스펫에는 냉방장치가 된 초보적 단계의 호텔들이 몇군데 있다.호스펫의 숙소들은 모두 24시간제다.
  • TV모방 범죄(외언내언)

    지난해 검거된 막가파의 두목은 폭력계의 대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보스」를 보고 『나도 거대한 조직을 만들어 전국을 주름잡고 싶었다』고 말했다.3년전 연쇄납치살인을 벌인 지존파일당은 홍콩영화 「지존무상」을 본딴 것이다.미국영화 「폭풍속으로」에 보면 4명의 젊은이들이 아무런 죄의식없이 부시,카터,닉슨 등 전직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일순간에 은행을 터는 장면을 통쾌한 오락을 즐기듯이 보여준다.지난해 뉴욕 브루클린 지하철역 매표소 폭파사건 역시 이 사건 직전에 개봉된 「머니 트레인(money train)을 흉내낸 것이었다. 총을 들이댄채 자루속에 돈뭉치를 담아 신나게 도망치는 은행강도는 아이들에겐 범죄는 쉽고 스릴만점의 오락처럼 보이기 십상이다.더구나 오늘날의 TV폭력은 먹고살기 위해서나 원한때문이 아니라 최소한의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좀더 어떻게 자극적으로 죽일수 있는가에 맞춘 폭력·절도·살인장면을 여과없이 내보낸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남의 집에 들어가 흉기로 위협해서 모자를 전화줄로 묶고 돈을 흠치거나 금품을 빼앗은 사건은 바로 이런 TV절도를 모방한 것이다.소년은 경찰서에서 TV방송프로인 「경찰청 사람들」을 보고 『흉기로 협박하고 전화선으로 손을 묶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이 프로는 각종 범죄의 대역을 통한 현장검증으로 신종범죄에 대한 정보와 경계심을 준다는 것이 취지다.그러나 한 소년에게 폭력과 공격과 절도에 대한 빌미를 주었고 예방효과는 빗나갔다. 전에만 해도 아이들은 「황금박쥐」나 「슈퍼맨」처럼 날기 위해 엄마의 머플러를 뒤집어쓰고 높은데서 뛰어내리는 것이 고작이었으나 이제 이들은 「1백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같은 공상적인 폭력도 현실로 받아들인다.일찍이 웨스팅하우스방송사의 도널드 맥거번은 『무력감을 감추기 위해 아이들은 TV에서 본대로 실천하고 행동해보인다』고 경고한 바 있다.TV는 잠깐 오락을 보여주는 대신 선의의 모든 것을 너무나 많이 약탈해간다.TV가 더이상 해악이 되는 일이 없도록 범죄열기를 식혀줘야겠다.
  • 인니 선거폭력 극심… 136명 사망/총선 D­3

    ◎관공서·쇼핑센터 등 방화·약탈 잇따라 【자카르타 AFP 연합】 인도네시아 총선 유세 마지막 날인 23일 벌어진 대규모 폭동으로 25일 현재 모두 136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총선을 6일 앞둔 23일 전국의 십여개 도시에서 각종 선거 폭력사건이 발생했으며 특히 남칼리만탄주의 수도인 반자르마신에서는 정파간 마찰이 대규모 폭동으로 확대돼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냈다. 반자르마신에서는 23일 집권 골카르당과 회교계 정당인 연합개발당(PPP) 지지자들의 충돌이 빌미가 돼 수천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시장과 백화점·교회·불교사원·호텔·관공서를 방화,약탈하는가 하면 100여대의 차량과 수백채의 가옥을 불태웠다. 이번 폭동 과정에서 이곳의 5층짜리 상가에서는 방화로 인해 최소한 131명이 형테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그을린 시신으로 발견됐고 병원으로 옮겨진 부상자 가운데 4명이 상처의 후유증으로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번 폭동 직전까지 거의 매일같이 선거 폭력이 발생해 이미 126명이 사망했다.
  • 「일제 토지조사」평가 양론/「식민지 수탈론」부정하는 연구서 출간

    ◎일부학자 “근대적 토지소유 확립 계기” 주장/수탈론측선 “식민사관의 또다른 변형” 일축 「1912∼1918년 일제가 벌인 토지조사사업은 전국적인 토지약탈이었다.일제에게 불법탈취당한 토지가 전국 농토의 40%에 이른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고교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일제하 토지조사사업의 성격에 대한 규정이다. 이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학계의 주류 이론이기도 하며 해방이후 식민사관의 극복이 학계의 최대 관심사가 되면서 각고의 노력끝에 정립한 것이다.「식민지 수탈론」으로도 통용되며 서울대 신용하 교수를 대표적 학자로 들 수 있다. 「이미 조선말에 근대적 소유관계가 형성되어 자생적인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걷고 있었다.일제가 강침하면서 자생적 발전의 길이 막히고 말았다」 주류이론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틀로 「내재적 발전론」으로도 불리는 「자본주의 맹아론」으로 경제사분야의 「식민지 반봉건사회론」과도 연관되어 있다. 최근 김홍식(경희대 경제학과 교수)·이영훈(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조석곤(상지대 경제학과 전임강사)·박석두(한국농촌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김재호(성균관대 경제학 강사)·미야지마 히로시(궁도박사·동경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등은 공동연구인 「조선 토지조사사업의 연구」(대우학술총서·민음사 간)을 펴내 이같은 주류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서 학계에 파란이 일고 있다. 주류학계에서는 이들이 대표적인 식민사관의 아류라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맥에 서있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은 구한말 마지막 시기 토지소유관계인 광무양전(1898∼1904)과 일제하 토지조사사업에 대해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6년여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했다.애초부터 주류이론을 깨기위한 공동연구였고 주류이론과는 정반대되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광무양전을 분석한 결과 시주는 임시적 지주로서 국전제의 이념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근대적 토지소유형태라 할 수 없기에 내재적 발전론은 타당성이 부족하다.오히려 일제하에서의 토지조사사업이 근대적 토지소유를 확립한 최초의 계기이며 토지조사사업에서 강제적인 토지수탈이행해졌다는 것은 근거없는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연구결과를 근거로 주류학계에 대해 곧 대규모 토론회를 개최하자고 공식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주류학계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수선한 시대에 나온 식민사관의 또 다른 변형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무시해왔다. 하지만 최근 진보적 논지로 학계에서 정당성을 인정받고있는 계간지 「창작과비평」 여름호가 조석곤 교수의 「수탈론과 근대화론을 넘어서」라는 논문을 게재,주류측은 논쟁을 피할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있다. 조교수는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고 수탈론의 문제의식이 정당함을 인정하지만 사료해석이 독단적』이라면서 『토지조사사업으로 자본주의적 착취관계가 형성되었고 이것이 해방이후 공업화와 연관되어 있다는 새로운 역사인식의 틀을 모색하려는 시도』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주류측도 어떠한 식으로든 대응을 위한 연구를 시작해야할 상황에 놓이고 있다.하지만 젊은 학자들이 이 분야에 관심이 없어 최근 2∼3년동안 별다른 연구성과가 없다는 것이 주류측의 고민이다.
  • 로랑 카빌라는 누구/폭동 실패로 모부투에 의해 축출된 군벌

    자이르의 수도 킨샤샤에 무혈입성,내전을 승리로 이끈 반군지도자 로랑 카빌라는 30년간 모부투에 이를 갈아온 게릴라출신의 군벌이다.64년 게릴라지도자로 자이르북동부에서 폭동을 일으켰다가 벨기에군의 지원을 받은 모부투에 의해 쫓겨난 적이 있으며 남미의 전설적 혁명가 체 게바라와 전투를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까지 자이르 남부 우비라 지역에서 상아,다이아몬드 등을 밀수하는 군벌이었으나 자이르정부가 국경을 넘어들어온 투치족 부룬디·르완다 정부군을 소탕한다며 출군하자 이를 기회로 투치족의 지도자로 나서 오늘날 권력찬탈에 성공했다. 그는 자신이 종족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한다고 내세웠다.그는 반군을 이끌며 약탈행위를 철저히 통제,주민들의 환심을 샀으며 자유선거를 공약으로 내걸어 큰 인기를 얻는데 성공했다.
  • 종족분쟁서 독재몰락으로/자이르 7개월 내전 종식

    ◎모부투 후투족 지원으로 반군저항 불러/부패정권 붕괴불구 평화정착은 미지수 자이르의 국가 명칭이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바뀌게 됐다.7개월 이상 끌어온 내전은 반군지도자 카빌라가 이끄는 반군들의 수도 킨샤샤 무혈입성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으며 모부투는 이미 모로코의 해변으로 망명길을 떠났다. 모부투정권의 종말은 아프리카대륙의 독재정권이 가는 길을 다시 한번 보여준 사건이었다.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모부투는 프랑스의 힘을 등에 업고 민주를 위장한 독재권력을 휘두르면서 자신만 국내외에서 호화판생활을 즐기다 오늘날 자이르를 최빈국 대열에 끼게 했다. 사실 자이르의 내전은 이웃나라들의 종족분쟁에서 발단이 됐었다.이웃한 부룬디와 르완다에서 투치족이 후투족을 박해하자 후투족은 죽음을 피해 자이르에 들어와 난민촌을 형성했고,이들이 게릴라를 형성해 투치족 정권인 두 나라에 반격했다.후투족 게릴라를 소탕한다며 부룬디·르완다 투치족 정부군이 자이르국경을 넘어오자 이를 막기 위해 르완다정부군이 이들 소탕작전을 개시했으나 이것이 카빌라를 지도자로 추대한 투치족 바냐물렝게족 연합의 반군을 형성케 해 모부투에 총격을 가하게 한 것이다. 결국 30여년전 모부투에 의해 쫓겨난 카빌라가 권력찬탈에는 성공했지만 대부분의 시각은 자이르의 내전은 지금부터라고 여긴다.피폐한 나라꼴은 물론이고 내전과정에서 총을 들고 이탈한 군인들의 약탈과 살인이 난무하고 있으며 카빌라 역시 또 다른 독재자의 등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 대북지원 쌀 민간배급 안해/최근 평양·신의주 방문 중국인들 증언

    ◎아사자 거리 방치… 외국관광객에 구걸·약탈 평양과 신의주를 최근 다녀온 중국인들은 날로 악화되는 식량부족으로 북한의 국가 통제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북한을 자주 드나드는 중국의 무역상,여행사및 외화상점관계자,해당지역 공안관계자등 12명에 따르면 북한에는 최근 심한 영양실조로 급성 소화기 전염병인 파라티푸스가 유행하고 있으며 외국 원조식량 분배에 대한 국제기구의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주민들은 외국 지원식량을 구경도 못했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또 외국여행자들을 보면 벌떼처럼 몰려들어 구걸을 하고 있다.과거에는 외국여행자들에 대한 구걸행위는 잘 통제된 북한 사회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신의주에서는 적지않은 아사자들의 주검이 거리에 방치돼 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이들은 대부분 살기가 더 어려운 고향을 떠나 먹거리를 구하러온 사람들이라고 한 신의주 시민은 말했다.예전에는 「통행증」이라는 족쇄로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했었지만 적지않은 지역에서는 이미 통행증이 유명무실해진 상항이다. 북한 여성들중에는 생존을 위해 단동등 중국의 변경도시로 건너와 몸을 파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그들은 중국돈 50위안∼100위안(5천원∼1만원)에 몸을 팔고 있다.중국인이나 조선족 노총각들중에는 5천위안∼1만위안을 주고 북한여성들을 위한 호적을 사서 같이 사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그러한 현상이 증가하자 북한여성들을 사고파는 인신매매조직도 생겨났다. 북한체제 유지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군의 통제력도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일 장군의 전사」라는 군인들이 군수품을 내다가 식료품과 바꾸는 일도 일반화되고 있다.군인들중에는 무기를 사용,주민들을 약탈하는 일까지 나타나고 있다. 교통·통신분야 등도 대부분 마비상태다.편지·전보가 제대로 배달되지않고 신의주­평양구간의 제1호 전기열차는 편도가 원래 5시간 걸렸는데 지금은 2일만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 식량사정의 악화로 아이의 출산이 급격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산부인과병원으로 유명한 「평양산원」은 사실상 개점휴업상태라 한다.장례식도 가족끼리 모여 조촐하게 치르고 사망자들을 관도 없이 묻는 경우가 많다.북한에는 이때문에 직파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북한의 국내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자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김일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는 달리 김정일에 대해서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지난 3월18일 신의주시 제1백화상점 오른쪽 골목에 「김정일을 타도하자」라는 벽보가 나붙었고 「김정일은 망돌을 제가 깔았다」(망할길을 자신이 닦아놓았다라는 뜻)는 말이 돌고 있다. 식량난이 악화되자 모든 직장들은 황무지를 개간,콩과 옥수수를 심는등 자체적인 식량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북한주민들은 「해외에서 지원쌀이 온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지만 우리가 만난 북한사람들 가운데는 지원쌀을 구경했다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국제연합에서 분배를 감시한다고 하지만 수박 겉핥기식이어서 감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북한의 요즘 중요한 구호는 「마지막 고난의 행군을 승리로 이룩하자」이다.그런 가운데 김정일은 「전국민이 군사를 배우라」,「고난의 행군을 통한 통일의 위업을 이룩하기 위해 결속하자」 등의 구호를 강조하는 등 전쟁준비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 “나치의 금세탁 이익 챙겨/스위스는 전쟁 연장 악역”

    【워싱턴 AP AFP 연합】 스위스 등 중립국들은 2차대전중 유태인 대학살 희생자 등으로부터 나치독일이 약탈한 금을 세탁,이득을 취하는 한편 나치의 전비를 지원해 결과적으로 전쟁을 연장시키는 부도덕한 거래행위를 자행했다고 7일 공개된 미 정부보고서가 맹렬히 비난했다. 미국은 이날 스튜어트 아이젠슈타트 상무차관 주도로 정부산하 11개 부처가 7개월에 걸쳐 공동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비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39년1월부터 1945년6월30일 사이 나치독일은 4억달러(현시가 39억달러) 상당의 약탈금괴를 스위스 중앙은행에 팔아 전비를 조달했다.
  • 파키스탄 식량 폭동/국영 식료품점 약탈

    【페사와르(파키스탄) AFP 연합】 극심한 밀가루 부족으로 인한 식량위기로 최악의 소요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시에서 7일 군중들이 식료품 가게와 음식점들을 공격했다고 목격자들이 말했다. 수백명의 군중들은 정부가 운영하는 대형 식료품 가게를 약탈,곡물과 다른 식료품들을 탈취해갔다고 이들은 전했다.
  • 베리샤 대통령 퇴진 거부/알바니아

    ◎이 비상사태 선포… 일부 난민 강제송환 【티라나 AFP AP DPA 연합】 알바니아 사태와 관련,쇄도하는 난민대책에 고심하고있는 이탈리아 당국이 비상사태를 선포한 가운데 알바니아 정부는 19일 무장시위세력이 요구한 살리 베리샤 대통령의 퇴진요구 최후통첩을 거부했다. 사태수습을 맡은 거국내각 바시킴 피노 총리는 이날 국영 TV를 통해 『통첩은 받아들일수 없다.대화로 문제를 풀자』고 무장세력들에게 요구했다.이에 앞서 남부지방을 장악하고 있는 무장세력 지도부는 20일까지 베리샤 대통령이 퇴진하라고 요구했었다. 알바니아 국내의 무법와 약탈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날 하룻동안 13명이 더숨져 지난달말 무장소요 발생이래 사망자수는 모두 100여명을 넘어섰다고 내무부가 밝혔다. 한편 이탈리아는 알바니아 사태와 관련,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한편 일부 난민들의 강제송환에 착수했다.아드리아해에 면한 바리항에는 이날 밤을 틈타 어선편으로 알바니아 난민 370여명이 또 도착,지금까지 이탈리아 서남해안을 통해 들어온 난민수는 모두 9천582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 알바니아 국가기능 마비/일부 군경 시위 합류…공공건물 방화 속출

    ◎대통령집무실·정부청사 외곽초소 무장군 배치/장교들,항공기·군함몰고 망명… 미·EU 개입 꺼려 【티라나 외신 종합】 알바니아의 무장소요로 인한 폭력과 불법이 걷잡을수 없이 확산되면서 베리샤 대통령가족들이 국외로 탈출하는가 하면 수도 티라나를 비롯한 각지에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14일 전해졌다. 티라나 중앙병원의 의료진들은 13일밤부터 이날 상오까지 무장시민들이 탈취한 총기를 공중에 난사하는 가운데 총성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 과정에서 총상으로 9명 이상이 숨지고 70여명이 부상했다고 말했다. 또 티라나에서 북쪽으로 100여㎞ 떨어진 시코더르에서도 지난 밤 사이에 3명이 유탄에 맞아 숨지면서 사망자수가 9명으로 불어났으며 8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시코더르를 장악한 무장시위대는 밤사이에 은행과 경찰관서,법원,라디오방송국 등 정부청사와 공공건물을 모두 불태웠으며 인근 소도시에서도 공공건물에 대한 방화가 잇따랐다. 이처럼 치안체계가 무너지고 국가기능 붕괴상태가 심화된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날무력충돌을 즉각 중단토록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군인과 경찰이 근무지를 이탈해 무장시위대에 합류하거나 보복을 우려해 피신하면서 대통령 집무실과 정부청사 등이 밀집해 있는 시 중심부를 제외한 수도의 치안체계는 사실상 붕괴됐다. 대통령 집무실 주변의 외곽초소와 지붕에는 무장군인이 배치됐으며 중심부의 간선도로는 정부군 탱크가 지나간 자국이 나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티라나를 비롯,알바니아 전역은 조직적 반란의 조짐은 없으나 무장군중들의 난동으로 무법천지화되고 있으며 곳곳에서 총기난사와 약탈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목격자들이 전언. 또 알바니아내 교도소들의 문이 열리면서 탈주한 죄수중에는 공금횡령혐의로 수감중이던 전사회당 당수 파토스 나노와 학살혐의로 복역중이던 마지막 공산통치지도자 라미즈 알리아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알바니아당국의 군사개입요청에 대해 EU측은 사태악화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는 했으나 군사지원제공가능성은 배제했다.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프랑스가주도하고 있는 서구연합(WEU)은 이번 사태를 놓고 긴급회의를 가졌으나 일절 개입의도를 내비치지 않았다.미국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현황조사단파견을 지지했으나 군사개입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 ○…알바니아 군지휘관들은 앞장서 항공기와 군함들을 국외로 끌고나오고 있어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연안에는 알바니아 군함과 항공기들이 다수 넘어와 망명 등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트리탄 셰후 전 국방장관은 『군은 마비돼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평.
  • 알바니아 정부,유럽개입 요청/총리 영 BBC 회견

    ◎소요 확산에 수도티라나 공항 폐쇄 【티라나 AFP 연합】 바시킴 피노 알바니아 새 총리는 13일 자국이 내전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유럽국가들에 개입을 요청했다. 그는 이날 영국의 BBC 라디오방송과의 회견에서 『현실을 직시하자』며 『우리는 내란의 위기에 처해 있다.유럽은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역시 유럽의 일원으로 유럽은 이런 상황이 계속되도록 방관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알바니아 당국은 이날 무장소요가 남부지역에서 수도 티라나 등 북부지역으로 확산되자 티라나의 리나스공항을 폐쇄했다. 공항관계자들은 AFP통신에 알바니아의 유일한 민간공항인 리나스공항이 13일 상오 폐쇄됐다고 밝혔다. 한편 전날 티라나의 사관학교와 시외곽에서 무기고 3곳이 약탈당했으며 북부 스코드라에서는 시민들이 군막사를 점거하는 과정에서 4명이 숨지고 40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관계자들은 사망자 4명중 3명은 민간인,1명은 군인이며 부상자 중 절반 이상은 폭발물이나 유탄에피격됐다고 말했다. 스코드라는 티라나에서 북서쪽으로 110㎞ 떨어진 곳으로 이번 유혈충돌은 남부에서 시작된 반정부 무력시위가 북쪽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 알바니아 소요 수도까지 확산/티라나 시민들,사관학교서 무기 탈취

    ◎북부 친정세력도 무장… 남북대치 양상 【티라나 AFP AP 연합 특약】 알바니아 소요사태가 베리샤 대통령의 거점인 북부지반까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수도 티라나 지역 주민들은 12일 상오(한국시간 12일밤) 사관학교를 약탈,무기를 탈취하는 것을 AFP통신기자들이 목격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관학교는 수도 티라나 중심가에서 약 1㎞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조만간 이곳에서도 총격사태가 우려되는등 소요사대가 걷잡을 수 없는 단계로 치닫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소요사태를 주도하고 있는 남부 10개도시 대표들은 야당인사를 총리로한 거국내각 구성이라는 살리 베리샤 대통령의 타협안에도 불구하고 12일 독자적인 위원회를 결성,베리샤 대통령의 퇴진을 거듭 주장했다. 기로카스터르에서 자칭 「국민구호를 위한 전국위원회」를 결성한 10대도시 대표들은 『베리샤 대통령이 퇴진하지 않는한 무장투쟁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종전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베리샤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는 남부지방의 시위대에 맞서 북부지방의 친베리샤 세력들이 무장을 시작하는 등 소요사태가 오히려 전국적인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편 소요사태가 수도인 티라나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티라나 주재 미대사관이 직원가족들에 대한 소개작업을 시작했다고 대사관 소식통이 이날 말했다.
  • 알바니아 대통령 베리샤(뉴스의 인물)

    ◎민주운동 영웅서 최대 반역자로/심장전문의 출신… 89년 정권비판 앞장/집권직후 총리권한 탈취 등 독선 일삼아 7년전만해도 살리 베리샤 알바니아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대학생 시위의 최대후원자로서 알바니아 공산체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다.그러나 이제 그는 이 나라의 민주정치를 가장 위협하는 인물로 바뀌었다. 자신에 대한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고 비판적인 야당인사들을 투옥하는 등 무자비한 탄압과 독선적이고 오만한 정치행태가 주된 원인이다.그는 집권후 공산주의 시절의 경기침체 타개를 위해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했으나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다.최근에는 수만명의 알바니아인들을 무일푼으로 만든 피라미드식 금융사기 사건이 터져 집권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심장전문의로서 한때 공산당원이기도 했던 그는 서구로 여행갔다 되돌아올 때면 기념품이나 선물 대신 알바니아에서는 금지된 책과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오곤 했다.89년 당시의 라미즈 알리아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쓴 최초의 지식인들중 하나였던 그는 알리아가그를 무마하기 위해 여러 지식인들을 초청,토론을 가졌을때 공산당의 권력독점 종식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1년 뒤 학생시위가 체제를 흔들었고 이때 그는 시위를 격려하는 연설을 함으로써 공산체제에 저항하는 상징적 인물로 부상했다.베리샤는 곧 민주당을 창당,91년 선거에 임했으나 농촌지역에 온존한 친정부적 분위기 때문에 패배를 맛보야야 했다.그러나 도시지역에서의 폭동,약탈,대규모 이민 시도 등 도시에서의 불안정이 격화되면서 정부는 11개월 뒤 새 선거를 치러야만 했고 베리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민주당을 다수당으로 만드는데 성공,공산주의를 추방하는데 성공했다. 92년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는 대통령 취임 후 첫 조치로 각료회의를 소집·주재하는 권한을 총리로부터 빼앗았다.94년에는 파토스 나노 사회당 당수에 대해 기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12년 형을 선고받게 했고 이듬해 비판적 언론인에 대한 유죄판결을 뒤집은 대법원장을 제거했다. 그는 비상사태 선포 아래 지난 3일 의회에서 임기 5년의 대통령에 재선됐으나 야당은 이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그의 반대자들은 무장폭동 사태 해결을 위해 그가 제의한 48시간 군작전 중단 및 새 선거 실시에 대해서도 시간을 벌기 위한 정치적 책략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 알바니아 시위대 수십명 사망설/진압군 배치완료

    ◎희TV,“폭도들 해군기지 1곳 장악”/블로러·사란더 시민 중무장… 충돌 위기고조 【티라나 AFP AP 연합】 초대형 금융사기사건으로 촉발된 반정부 무장소요로 들끓고 있는 알바니아에서는 4일 수십여명 사망설이 나도는 가운데 탱크가 폭동중심지인 남부지역 도시에 진입하는 등 진압군 배치가 거의 완료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소요 중심지인 블로러를 비롯한 남부지역에서는 총기난사와 약탈,공공건물 방화 등 극도의 혼란과 무정부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4살 어린이가 유탄에 맞아 숨지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그리스 민영 SKAI­TV는 소요 중심지중의 하나인 사란더시와 주변에서 민간인 수십여명이 숨졌으며 경찰이 폭도들에게 산 채로 불태워지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을 인용,보도했다. TV는 이날 소요지역의 그리스계 주민지도자를 전화로 연결,사란더 인접 델빈에서 헬기가 목격된 후 총성이 울려퍼졌으며 「수십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목격담을 전했다. 사란더의 SKAI 특파원은 시내로 침투하려던 경찰이 폭도들과 총격전을벌이다 1명이 산 채로 불태워졌으며 1명이 인질로 붙잡혔다고 전했다. 【티라나 DPA 연합】 알바니아 정부가 피라미드 금융사기로 촉발돼 걷잡을수 없이 확산된 반정부 유혈 소요 진압을 위해 탱크까지 동원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인접 그리스가 유사시에 대비해 8개 사단 병력을 접경으로 이동시켰음이 5일 드러났다. 그리스 TV는 알바니아의 반정부 세력이 6척의 무장함정을 탈취하고 해군기지 한 곳도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 알바니아의회 비상사태 선포/내각 총사퇴 불구

    ◎시위대 대통령관저 습격 방화 【티라나 AFP 연합】 알바니아 의회는 2일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상사태 포고령은 이날 하오 5시35분(한국시간 3일 상오 1시35분)부터 즉시 발효됐다. 이에 앞서 살리 베리샤 대통령은 2일 피라미드식 금융사기사건으로 촉발된 6주간의 시위에 굴복해 내각 총사퇴와 새내각 구성을 발표했으나 시위대들이 대통령관저에 방화하는 등 반정부시위가 격화돼 전국이 혼돈상태에 빠졌다. 시위대는 이날 해변에 위치한 대통령관저를 습격,그림과 가구 등을 약탈한뒤 불을 질렀다고 목격자들이 말했다. 또 다른 시위대들은 교도소를 습격해 죄수들을 석방하고 경찰서에서 무기를 탈취했으며 은행과 상점 등에 불을 질렀다고 목격자들은 밝혔다.
  • Little Explorers(활용 인터넷/아동교육 사이트:7)

    ◎알파벳 익히기서 관련지식까지 꿩먹고 알먹는 아동학습교재의 「보물창고」 단순한 영어 알파벳 학습에서부터 인터넷의 링크 기능을 활용하여 관련된 단어와 연계된 분야의 지식까지 총체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학습방법이 아닐까? 게다가 지루할 때쯤이면 곳곳에 복병처럼 숨어있는 게임을 마주치게 돼 흥미를 잃지 않고 몰두할 수 있는 Little Explorers(http://www.EnchantedLearning.com/Dictionary.html)사이트는 아동학습교재의 보물창고라고 일컬어도 흠잡을 수 없는 곳이다. 프레임 기능을 이용하여 제작된 홈페이지는 두개의 창으로 나뉘어 있는데 A에서 Z까지의 알파벳 글자가 나열되어있는 윗 창에서 아무 글자나 골라 클릭하면 그 글자로 시작되는 단어들이 그림과 함께 아래 창에 나타난다. A의 경우 에어플레인,미국 악어,앰블런스,동물,개미,사과 등이 보이는데 일종의 그림사전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 사이트가 알파벳을 공부하는 다른 영어교육사이트들과 큰 차이를 느끼게 만드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단어들과 관련된 또 다른 사이트와 링크되어 있어 깊이있는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림사전의 Airplane을 누르면 시대별로 제작된 비행기 사진과 함께 비행기가 처음 만들어져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비행기 갤러리를 방문하게 된다.A로 시작되는 단어에 Airplane이 있다는 알파벳 학습과 함께 비행기가 개발된 역사까지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유치원 어린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라면 대부분 여러 종류의 자동차 장난감을 수집하거나 갖고 노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Ambulance를 클릭하면 3개의 파트로 나뉘어진 앰블런스 그림이 나오는데 마우스로 그 한부분을 클릭할 때마다 그 부분이 다른 모습의 차량으로 바뀌어 청소차 등 다양한 형태의 차량을 조합해 볼 수 있다.싫증내기 쉬운 아이들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게임으로 즐겁게 만들어 이 사이트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Ant를 누르면 개미에 관한 사진과 정보가 실린 사이트로 옮겨가 붉은 개미,약탈 개미 등 여러 종류의 개미의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나아가 다른 곤충들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이들을 위해 마우스를 한번 누르기만 하면 모든 곤충들의 이름과 사진이 실린 곤충 박물관으로 갈수있게 연결해 준다. 이런 식으로 A에서 Z까지 알파벳을 기반으로 어린이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흥미로운 게임식 교육자료들이 400여가지나 들어있다.
  • 불가리아 “4월 조기 총선”/국가안보평의회 합의

    ◎사회당,정부구성 포기 【소피아 AFP AP 연합】 불가리아 사회당은 조기총선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연 30일째를 맞은 4일 결국 정부 구성 포기와 오는 4월 조기총선 실시에 동의,수도 소피아 도심이 즉각 춤추는 시민들로 만원을 이루고 승리를 자축하는 차량의 경적과 고함 및 휘파람 소리로 가득찼다. 야당 출신의 중도파 페타르 스토야노프 대통령은 2주전 취임한 이후 위기해소를 위한 중재노력을 계속해 왔으며 이날 총리 및 국회의장과 모든 정당 대표들로 구성된 국가안보평의회를 소집,조기총선을 극적으로 성사시켰다. 합의는 야당이 새로 구성된 사회당 내각의 의회 승인 예정일인 이날 의사당을 인간사슬로 봉쇄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지난달 시위자들이 경찰과 무력충돌 끝에 의사당을 장악하고 약탈했던 폭력시위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 타결됐다. 회의가 계속되는 동안 대통령 관저 주변에서 기다리던 시민들은 발표를 마친 스토야노프 대통령을 목마를 태우며 영웅으로 환대했으며 연일 시위가 열리던 의사당 인근 성당 광장에는 10만명이 몰려나와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고 도로봉쇄 시위에 참여했던 차량들도 일제히 경적을 울리며 승리를 만끽했다.
  • 김송죽 소설 「번개치는 아침」(송화강 5천리:17)

    ◎북만일대 조선족 삶과 투쟁 생생히/비적의 약탈에 맞서 결성한 무장지위대/후일 공산군부대 편입… 국민당군 토벌나서/항일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반동으로 찍혀/중국 문혁시기 혹독한 핍박·고초겪어 흑룡강성 화천면 성화향 성화촌에 사는 김송죽 선생(59)은 퇴직교원이다.자식들은 모두 대학을 나와 하얼빈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나가있다.그래서 두 내외가 넓은 한족식 집을 지켰다.그는 80년대 초에 처녀작 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을 발표한데 이어 90년대 초에는 장편실화 「혈전」을 내놓았다.이미 문명을 얻은 그는 요즘 「관동의 밤」이라는 장편소설을 탈고했다. 처녀작 「번개치는 아침」은 그의 부친을 모델로 한 소설이다.광복직후 조선족부대가 비적과 싸운 투쟁의 역사를 그렸다.국민당군 별동대 성격의 비적은 광복직후 북만일대에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공산당을 적으로 싸워야했던 당시 국민당에 북경에서 먼 북만은 사실상 통치지역 밖이었는지 모른다.그런 탓에 국민당을 돕는답시고 나선 별동대속에는 만주국시절 헌병이나 경찰관도끼여있었다는 것이다. ○피땀어린 농토 등지고 유랑 그리고 실제 국민당 비호를 받았다.국민당 제15집단군 총사령 상장 사문동과 제1집단군 총사령 상장 이화당,국민당 동북 정진군 총지휘 중장 장우신이 별동대를 조종했다.당시 그들의 횡포를 고발한 노래말에 「사(사문동),이(이화당),장(장신우)은 불지르고 살인하니」라는 내용이 들어갈 정도였다.북만일대의 주민들은 이들에게 등을 돌렸다.공산당이 일찍 뿌리를 내린 이유도 이들 때문이었다. 이들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마을이 불타버리고 주검이 들판을 덮었다.더구나 조선족은 늘 사냥의 대상이 되어 무참한 죽음을 맞았다.그런 일로 해서 조선족들은 피땀으로 일군 땅을 버리고 다시금 유랑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이 무렵 조선족 선각자들이 일어났다.무장자위대를 만들어 마을을 지켰던 것이다.그러고 나서 얼마있다가 공산당 군부대에 속속 편입되었다. 그러한 무장자위대 가운데 맨 먼저 공산당 군부대에 편입한 조선독립대대는 1945년 11월25일 연안에서 주덕해와 손을 잡았다.조선의용군 제3지대로 개편한 조선독립대대는 다음해 4월28일 하얼빈에서 국민당군과 싸웠다.하얼빈이 국민당군 손에서 떨어져나오자 당기관과 발전소,송화강철교,비행장 경비를 담당했다가 국민당군 토벌에 나섰다.1946년 9월2일 하얼빈시 향방구 사리툰전투에서는 제3지대 소속 조선족 21명이 전사했다. 김송죽 선생의 부친이자 소설 「번개치는 아침」의 모델 김병념은 광복직후 동북민주연군에 참가했다.제1연대 조선족대대인 제2대대 5중대 1소대에 배속되었다.소대에서 3반장 직책을 맡은 그는 1946년 가을 대대를 따라 흑룡강성 화남현 발전소로 이동했다.그해 11월6일 주변정찰을 나갔다가 국민당군 병력과 교전이 붙었다.그 전투에서 김병념은 대대참모 김해정 등과 함께 전사했다.그리고 얼마뒤인 11월20일 국민당 제15집단군 총사령 사문동이 붙잡혔다.사문동은 12월23일 벌리현에서 총살되었다. 김송죽 선생은 소년시절을 부대에서 보냈다.부친 김병념이 전사한 이후에도 모친이 부대 재봉대에서 군복을 짓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냥 영내에서 살았다.그러다 부대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모친과 함께 벌리현에 남았다.할아버지 김석길이 아직 생존해있던 때로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애국계몽운동가이자 교육자요,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엄하게 자랐다. ○소년시절 군부대서 생활 할아버지 김석길은 1884년 평남 수난 태생이었는데,1912년부터 계몽운동에 참여했다.3·1운동에 적극 가담한 연고로 지명수배를 받자 제자 9명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다.집안과 휘남을 거쳐 왕청에 와서 대종교에 입교하고 북로군정서의 일원이 되었다.그리고 1925년 신민부에 들어갔다.1928년에는 김좌진 장군이 파견한 의란현에서 이도강 등에 4개의 학교를 세웠다. 김송죽 선생이 스무살 나던 해인 1958년에 할아버지 김석길은 흑룡강성 화남현에서 세상을 떴다.그러나 독립운동에 참가한 민족의사들은 대접을 못받고 있다.항일운동을 했으면서도 공산당이 이끈 투쟁대열에 서지 않은 사람은 모두가 배제되었다.오늘날 흑룡강성 항일열사 가운데 민족독립운동가는 한 사람도 없다.물론 김석길 같은 분들도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 후손들은 오히려 모진 핍박을 받았다.더구나 문화대혁명시기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겪어야했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김송죽 선생은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이유로 반동민족주의자가 되었다.그의 죄목은 반동민족주의자 말고도 역사반혁명분자의 아들,반혁명집단의 두목,반당분자,반사회주의분자 등 10가지에 이르렀다.부친 김병념이 국민당군과 투쟁한 사실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부친이 광복전 강제로 끌려가 철도경호대에 있었다는 사실만 들추어 혁명열사가 계급의 적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김송죽 선생 자신이 써놓았던 소설 「번개치는 아침」의 원고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비적토벌을 내용으로 한 것까지는 그런대로 넘어갔으나,김동철·김해정이 조직한 조선족부대를 문제로 삼았다.김동철과 김해정은 본래 항일연군 8군에서 일제와 싸웠다.그러다 1939년 군장 사문동이 일제에 투항하자 숨어있다가 광복과 더불어 조선족부대를 창설했던 것이다.그 뒤에 동북민주연군 제1연대 제2대대에 편입되었던 조선족부대가 1949년북한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반동으로 몰았다.문화혁명 당시 중국에서는 북한을 수정주의로 보았던 터라 조선족부대는 반동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 틈틈이 습작 그는 옹골진 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모진 매를 맞고 이른바 돌림투쟁을 숱하게 당했다.그래도 푸른 대나무처럼 곧게 살라는 뜻에서 지어준 자신의 이름(송죽)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감옥생활 4년을 버티었다.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소설 「번개치는 아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1965년 탈고하고 하얼빈 조선족문화관에 원고를 보내놓은 상태에서 날벼락을 맞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출판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내 문학수업은 어떤 의무감에서 이루어졌디요.청소년기를 할아버지와 함께 하면서리 독립운동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서 그걸 언젠가 정리한다는 생각을 했습네다.할아버지 유언도 일제에 대항한 독립운동과 비적의 횡포를 역사로 기록하라는 것이었디요.할아버지한테 듣고,어렴풋하나마 어려서 실제 보아왔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에서 소설을썼던 것이외다.1957년 벌리중학을 나와 농사일 틈틈이 그런 꿈을 키우면서 실제 습작을 해왔디요.할아버지 유언과 내 꿈은 실로 오랜만에 이루어졌습네다』 김송죽의 「번개치는 아침」은 1983년에 출판되었다.원고를 탈고한지 꼭 18년만에 햇빛을 본 것이다.그에게는 물론 가족사를 문학적으로 정리했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안겨주었다.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억속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는 조선족들의 삶과 투쟁을 복원한 대서사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요즘 탈고한 장편소설 「관동의 밤」도 북만의 독립운동사를 형상화한 것이다.자그마치 75만자나 되는 작품을 출판할 길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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