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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게티미술관의 양심

    미국의 ‘석유왕’ 존 폴 게티(1892∼1976)가 죽었을때 그가 남긴 유산은세계인구 1인당 1달러씩 돌아갈 만큼 많았다.따라서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지난 1,000년 동안의 지구촌 갑부 50인 명단에 그의 이름은 쿠빌라이 칸,빌 게이츠 등과 함께 당연히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손님들이 자기집 전화를 쓰는 것이 싫어 자신의 저택에 공중전화를 설치할 만큼 구두쇠였다.그럼에도 로스앤젤레스에 미술관을 세우는 데는 4,200만 달러를 내놓았다.미술관 운영비로 12억8,000여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부자가 세운 미술관이 문화유산의 제자리 찾기에다시 도덕적 모범을 보여 주었다.폴 게티 미술관이 3일 국외에 불법유출된것으로 밝혀진 3점의 고대 예술품을 원소유주인 이탈리아에 반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반환 예술품 가운데는 이 미술관의 대표적 소장품으로 전문가들로부터 현존하는 그리스 꽃병 중 가장 우수한 작품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것도 포함돼 있다.이 꽃병은 기원전 480년에 유프로니우스라는 그리스 도공이 만든높이 45㎝,지름 20㎝의 테라코타 작품으로 오네시모스라는 화가가그린 트로이 전쟁 장면이 채색돼 있다. 게티미술관은 이 소장품들을 믿을만한 미술품 중개상으로부터 합법적으로사들였지만 나중 조사결과 이탈리아에서 불법 반출된 도난품으로 확인됨에따라 자진 반환을 결정한 것이다.게티미술관의 이같은 결정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외국 문화재를 입수해온 이른바 선진국 미술관과 수장가들에게는불편한 소식이 될 듯 싶다. 그러나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18개국에 6만8,000여점의 문화재가 유출돼있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해외 유출 문화재를 모두 반환 받기는 어렵겠지만 ‘문화재의 원산국 반환’이라는 국제적 합의사항의 현실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기 때문이다.지난 1월 유럽의회는 영국이 그리스에서 가져간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즉 ‘엘진 마블’의 반환을 결의하기도 했다. 민간 미술관이 합법적으로 입수한 미술품도 되돌려 주는 마당에 국가간 약탈 문화재의 원산지 반환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병인양요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지난 93년 약속하고도 ‘등가등량의 문화재 상호 교환 임대’라는 구차한 조건을 붙이며 계속 미루고 있다.문화대국을 자처하는 프랑스가 미국 민간미술관 보다 못한 양식을 지니고있음은 부끄러워 할 일이다. [任英淑 논설위원 ysi@]
  • “佛 외규장각 도서점유는 국제법상 불법”

    ◎중앙대 개교 80돌 ‘외규장각 고문서’ 주제 학술회의/정부,시간 걸리더라도 반환협상 벌여야/소학집성·보천가 등 추가 보유 확인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는 과연 반환될 수 있을까. 답은 반환된다는 것.이유는 간단하다.군사를 앞세워 빼앗아간 불법 행위이기 때문. 중앙대학교는 최근 개교 80주년을 맞아 한국과 프랑스의 현안인 ‘외규장각고문서’ 반환문제를 검토·분석하는 학술회의를 가졌다. 이 대학 이보아 교수는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라는 주제발표에서 문화재 반환을 둘러싼 국가간의 알력은 ‘제3차 세계대전’ 또는 ‘문화전쟁’이라고 불린다며 여기에는 ‘문화민족주의’,‘문화국제주의’라는 대립적인 견해가 맞서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민족주의는 민족의 문화유산인 문화재를 보존·계승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이동경위의 적법성을 따져 불법일 경우 원산국으로 반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이들은 또 문화재가 원래 위치나 원소유자에서 이탈하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손상이며 언어에 대한 접근권,역사적 전통 등 학술연구의 측면에서도 원산국에 있는 것이 우선적이라고 말한다. 반면 문화국제주의는 문화재는 인류 공동의 재산이라며 문화재의 원적(原籍)보다는 과학적 보존 및 정보의 원활한 유통을 강조한다.과거에 문화재를 약탈해간 프랑스,영국 등이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문화재 반환은 불법적으로 반출됐을 경우 식민국가와 피식민국가를 중심으로 실제 이루어지고 있다.과거의 역사적 상흔에 대한 도덕적 책임론과 함께 국제정의에도 부합되기 때문이다.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벨기에는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들에 문화재를 돌려줬고 미국은 헝가리 국왕의 대관식에 사용했던 왕관을 반환했다.아이스랜드는 중세문학에 대한 필사본을 250년만에 덴마크로 부터 돌려받았다. 지난 6년동안 관계 부처인 외교통상부,교육부,문화관광부 사이에서 복지부동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의 경우 이동경위가 전시 약탈행위를 통한 불법유출이 명백,법리적 측면에서 우리에겐 유리하다.또 외규장각 도서는 파손도서창고에서 방치된 채 발견됐다.인류 공동의 재산이라는 문화국제주의 국가들의 주장이 헛점이 있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서울대 백충현 교수도 외규장각 도서는 국제법상 불법 점유인 만큼 완전한 반환만이 정의를 회복하는 길이라면서 이교수의 주장에 동의했다.백교수는 과거에 추진되온 고문서의 국내 일시전시 또는 동질의 문화재 교환에 의한 반환 등의 타협책은 이 문제를 미결상태로 놓아두는 것보다 못하다며 정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에 입각,반환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대 이태진 교수는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의 피탈경위와 도서 현황’을 발표하면서 현재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는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191종 297책 외에도 소학집성(小學集成)과 보천가(步天歌),팔세아(八歲兒) 등 32점이 더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새로운 사실을 공개했다. 이밖에 이화여대 홍성필 교수 등은 구체적인 문화재 반환사례를 발표했다.
  • 첫 판매금지 시집 林和의 ‘찬가’(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2)

    ◎美軍政 출판검열 규정 위반 1호/47년 2월 출판… 수록詩 ‘깃발을 내리자’ 문제삼아/“군정반대·불온한 선동” 규정 출판사에 삭제 지시/각계 잇단 항의성명에 해당詩 빼고 출판 결정 내려 질풍노도의 시대에도 시는 존재하는가. 자료에 의하면 미군정기 3년동안 발간된 시집은 90여종. 이중 문학사적으로 검증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불과 50여종이나 될까.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구호와는 달리 미군정은 일제하의 각종 규제에 못지않게 꽤나 까탈스러운 출판검열조항들을 설정했다. 1946년 5월4일 공포된 법령 제72호는 출판물 검열의 기준이기도 했는데,제1조는 ‘군정위반에 대한 범죄는 1945년 9월7일부 태평양 미국군총사령부 포고 제2호 또는 현금까지 공포된 법령외 좌와 여히 규정함’이란 서두아래 82개 항목의 범법사항을 예시하고 있다. ‘전염화류병을 가진 부녀가 주둔군인에 대한 성관계의 유혹’같은 항목에 이르면 화류병이 없는 부녀자는 아무래도 좋다는 해석부터, 대체 그 시절에 적극적인 성적 유혹으로 윤리의식을 혼란시킨 장본인이 어느 쪽이었을까란 어리석은 의문도 생긴다. 이렇듯 까다로운 군정의 검열에서도 합법적으로 출판되었던 시집이 정부수립 이후 납월북 문인이란 이유로 금지조처가 내려진 게 30여종에 이른다. 덧부치자면 미군정 아래서 시집이 판매금지당한 것은 임화의 ‘찬가’가 그 제1호이자 마지막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연극 영화인이요 운동가이며 혁명가에다 조직가,경영인이기도 했던 임화는 8.15 직후 가장 강력한 문학단체 결성에 성공한 뒤 정치적으로는 분명히 북로당이 아닌 남로당 노선을 지지했다. 유진오가 ‘인민의 계관시인’이었다면 임화는 ‘정당의 계관시인’역을 충실히 이행했다. 시집 ‘찬가’는 1947년 2월10일 백양사에서 초판이 발간되어 관례대로 공보부에 납본했었는데 그로부터 두달이 지난 3월말경 말썽이 나기 시작했다. 이유는 이 시집 51쪽에 실린 ‘깃발을 내리자’라는 시의 불온성이었다. ‘노름꾼과 강도를/잡던 손이/위대한 혁명가의/소매를 쥐려는/욕된 하늘에/무슨 깃발이/날리고 있느냐//동포여!/일제이/깃발을 내리자’ 고 화두를 잡은 임화는 이 시에서 ‘가난한 동포의/주머니를 노리는/외국 상관(商館)’과 ‘살인의 자유와/약탈의 신성이/주야로 방송되는’ 것이 당대적 현실이라며 후렴으로 ‘동포여/일제이/깃발을 내리자’ 고 세번이나 반복한다. 문제의 시가 처음 발표된 것은 ‘현대일보’ 1946년 5월20일자 제2쪽이었다. 기존 논문이나 자료들은 이 시가 마치 19일에 발표된 것처럼 쓰고 있는데,그것은 발표 당시 ‘1946.5.19’라는 시 제작 날짜를 명기한데서 연유한 듯 싶다. 그러니까 임화는 이 시를 쓰자마자 당대의 대표적 이론가의 한사람이자 문학평론가였던 박치우(朴致祐)가 발행인이고 작가 이태준이 주간으로 있던 ‘현대일보’(7월1일자로 주필 겸 편집국장에 평론가 이원조,정리위원에 평론가 김병규로 바뀜)로 갖다주었고,신문사측에서는 기사문보다 한 급수 더 큰 활자로 보기좋게 제2면 가운데에 상자로 게재했다. 이 작품은 시집 ‘찬가’에 실린 것을 그대로 인용,연구하고 있는데,원문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원문에는 제목 ‘旗ㅅ 발을 내리자!’에서 보듯이 느낌표가 붙어 있고,‘가난한 동포의/주머니를 노리는/외국 商館의/늙은 종(奴隸)들이’로 되어있으나 시집에서는 괄호 안의 ‘노예(奴隸)’가 빠져있다. 이 시집에는 제1부에 8·15 이후의 작품 15편,2부에는 첫시집 ‘현해탄’(1938)이후 일제하에 쓴 7편이 실려있다. 5월24일 수도관구 경찰청 사찰과가 시집을 출판한 백양사 사장을 호출하여 문제의 시 삭제를 지시하자 이에 항의하는 성명서가 잇따랐다. ‘공보부에 납본된 츨판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군정 반대나 불온한 선동이나 풍기를 교란하는 내용일 때에는 경찰은 적발하여 검찰청으로 고발할 수 있는 것이다’는 것이 기자단을 향한 장택상 경찰청장의 해명이었다. 7월18일 시인과 발행인은 경찰청으로부터 검찰로 불구속 송치되었는데,8월10일 문제의 시만 삭제하고 출판해도 좋다는 결정이 내려지는 것으로 시집 ‘찬가’필화사건은 형식적으로 끝나버렸다.
  • 中美 허리케인 7,000명 사망

    【테구시갈파(온두라스)AP 연합】 중미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미치’로 사망자가 7,000여명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이 칼과 권총으로 무장하는 등 사회혼란이 예상되자 온두라스 당국이 2일 약탈방지를 위해 시민권 제한조치를 취했다. 온두라스에서만 최소 5,000명이 죽고 전체인구의 10%에 해당하는 60만명의 이재민을 낸 허리케인 미치는 인접한 니카라과에서도 산사태를 빚어 1,500여명의 사망자를 냈다.
  • 佛 고교생 “교육 개혁” 시위 확산/27만명 참가

    ◎알레그레교육 “학생요구 수용” 【파리 AFP DPA 연합】 프랑스 전역에 걸쳐 교육 개혁을 요구하는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20일까지 3주째 이어졌다. 의회의 교육예산 논의를 하루 앞둔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모두 27만5,000명의 고교생들이 시위에 참가했다. 경찰은 특히 기차역 등에서 파리로 들어가는 청소년 4,000명을 검문,수상한 물건을 소지했거나 지난주 파리 학생 시위도중 폭력행위나 약탈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 84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알레그레 교육장관은 21일 의회에서 지방정부에 4년간 40억 프랑(7억3천만달러)을 지원,학급당 학생수 35명을 넘기지 않는 등 학생들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 ‘세계 4대 화약고’ 폭발 위기

    ◎이란·아프간­‘외교관 살해’ 불씨… 전면전 조짐/콩고共 내전­주변국 대리전 양상… 전투 치열/알바니아사태­野지도자 피살 계기 내전 치달아/인도네시아­反政시위 격화 무정부상태 우려 지구촌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특히 요즘들어 상황이 악화돼 자칫 세계 평화를 밑바닥부터 흔들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란은 15일 전군에 군사행동 준비령을 내려 이웃 아프가니스탄과의 일전에 대비했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반군과 정부군이 사생결단을 치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알바니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서로 다른 정치 견해 때문에 연일 유혈소요사태가 벌어져 수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란·아프간◁ 이란과 아프가니스탄과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15일 전군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세력에 대한 공격 준비를 명령했다. 이란 지도부는 아프간과의 국경지역에 7만명의 병력과 탱크 등 중무기를 배치하고 공격 임박을 강조,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아프간의 집권세력인 탈레반도 이날 이에 맞서 무력공격이 발생할 경우 이란의 도시들을 공격,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나라 사이의 분쟁은 아프간의 탈레반 군인들이 이달초 9명의 이란 외교관을 살해함으로써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간 북부지역을 장악하면서 점령지에 잔류해 있던 이란 외교관과 기자 11명을 억류하고 이 가운데 9명을 살해한 것이다. 탈레반측은 이란이 반(反)탈레반 연합세력을 지원하고 이미 축출된 부르하누딘 랍바니 전(前)정권을 인정하는 등 적대적 입장을 취하는데 대해 강경반응을 보여왔다. 두나라의 대립에는 회교의 두 종파인 시아파와 수니파사이의 갈등이 깔려 있다. 시아파 이란은 수니파인 탈레반정권이 미국과 수니파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 및 파키스탄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자가 돼 이란의 영향력을 위축시킬 것을 경계하고 있다. ▷콩고민주共◁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이 두달 가까이 계속되면서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군은 15일 반군들이 지난 8월 봉기한 고마시(市) 50㎞ 앞까지 육박했다고 밝혔다. 고마는 콩고 동쪽 르완다와의 접경지역에 위치,내전기간동안 반군세력 운동본부 노릇을 해온 곳으로 정부군이 이 일대까지 진군한 것은 내전 이후 처음이다. 정부군은 한때 파죽지세의 반군에 밀려 지난달 26일 수도 킨샤사를 내주고 카빌라 대통령이 피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잠비아,짐바브웨,앙골라 등 주변국 지원에 힘입어 회복세로 돌아섰다. 고마 사수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반군은 르완다,우간다의 지원을 받고 있어 내전은 ‘아프리카 국제전’ 양상을 띄고 있다. 정부군은 6시간동안 반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고마 점령에는 실패했고 공항과 라디오방송국 등 주요 시설도 탈환하지 못했다. 한편 반군측은 수단이 킨두시(市) 전방기지사령부에 군인 2,000명을 파견하며 정부군측에 가담했다면서 명백한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했다. ▷알바니아◁ 야당 지도자 피살사건으로 촉발된 알바니아의 반정부 시위사태가 자칫 내전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살리 베리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야당 시위대 3,000여명은 15일에도 정부의 시위금지 명령을 무시한채 수도 티라나에서 시위를 계속했다. 이날 시위는 정부가 또다른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일부 무장 시위대들에 무기를 버릴 것을 명령한 가운데 강행했다. 지난주말 발생한 야당지도자 아젬 하즈다리의 피살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파토스 나노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대들이 의사당과 방송국을 점령,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는 등 폭동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최소 8명의 시위자가 사망하고 80명이 부상했다. 한편 나노 총리는 자신의 퇴진보다도 야당측이 먼저,무기를 버릴 것을 요구하며 더이상 사태를 좌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측은 나노 총리가 사임하지 않을 경우 시위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유혈시위 사태가 날로격화되면서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하비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시작된 대학생 등의 반정부 시위가 약탈과 살상으로 이어지며 자칫 무정부상태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곳곳에서는 굶주린 군중들이 쌀과 다른 주식류들을 훔치기 위해 떼지어 몰려 다니며 상점,농장,창고 등을 약탈하는 폭동사태를 연출하고 있다. 수도인 자카르타에서는 15일 군중의 격렬한 소요사태로 상점과 집들이 불탔으며 3명이 사망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남부 셀레베스와 동부 자바에서도 14일과 15일 이틀동안 물가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되면서 약탈행위로 3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보도됐다.
  • 印尼軍 시위대에 경고 사격/3일째 생필품 약탈·폭동

    【수라바야·자카르타 외신 종합】 인도네시아 동 자바주 주도(州都) 수라바야에서 9일 하비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으며,이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보안군이 한때 경고 사격을 하는 사건이 빚어졌다. 4,000여명의 시위대들은 이날 하비비 대통령의 수라바야시 청사 방문을 경호하기 위해 동원된 병력수송 트럭에 돌을 던졌으며,이에 군인들은 공포를 발사하며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한편 서 칼리만탄주 폰티아나크에서는 이날 폭도들이 쌀,설탕 등의 상점을 약탈하고 불을 지르는 등 연 3일째 폭동사태가 계속됐다. 현지 경찰 대변인은 “약탈이 시내 중심가 상점과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 “日 영화 개방 내년초 適期”/삼성경제연구소 경제관점서 주장

    ◎월드컵후 개방하면 인적·물적교류 맞물려/邦畵에 미치는 영향 더 커 일본영화 개방시기는 99년초가 적당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휴종,신현암연구원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경제적 효과 분석’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이는 물론 문화적,정서적 논리가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본 것이다. 문화 유입도 신상품 또는 신기업이 시장에 들어오는 것과 같아 수요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져 시장규모가 커지고 신상품이 기존상품의 영역을 빼앗는 사업약탈 효과가 문화유입에도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일본영화 개방시기는 2002년 월드컵과 전략적 측면을 고려할 때 올해 말 또는 99년이 적합할 것으로 예측했다. 조기개방이 미세하지만 늦게 개방하는 것보다 한국영화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적은 것도 감안했다. 일본영화가 개방되면 한국 영화시장은 2∼3년간 영향을 받고 2∼3%가량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88년 직배영화가 도입된 이후 국내시장이 3∼4년간 6.7%가량 성장한 것을 감안,산출한 것이다. 따라서99년에 일본영화를 개방하면 월드컵 개최전에 일본영화 유입효과가 사라져 충격을 줄일 수 있지만 2000년 이후 개방하면 인적,물적 교류가 늘어나는 월드컵과 맞물려 파급효과가 커진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전략적으로도 99년이 개방에 적기다. 경제의 어려움이 채 가시지 않아 영화수입에 대한 과열경쟁을 자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영화가 개방되면 국내시장의 점유율에도 변화가 온다. 현재 미국영화 64%,유럽·홍콩·기타영화 10.5%,한국영화 25.5%의 비율이 개방후엔 미국영화 62∼63%,유럽·홍콩·기타 6∼7%,한국영화 22∼23%,일본영화 7∼10%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영화가 잠식하는 부분은 주로 유럽과 홍콩영화일 확률이 높지만 한국영화도 일정 부분 잠식당해 연간 40억∼100억원 정도 흥행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 개방을 해도 선정성과 폭력성이 짙은 사무라이나 야쿠자영화,로망포르노 같은 종류는 배제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영화에 대한 호기심과 충격적인 장르의 영화들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돼 파급효과가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일합작영화를 먼저 유입시키고 극영화로 확대하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다고 분석했다. 한편 일본영화의 개방은 반대로 일본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강조했다. 일본시장은 국내시장에 비해 입장객수 기준으로 3배,흥행수입 기준으로 7배가 넘는다. 따라서 정부는 유료 시사회 형태의 이벤트 개최,공동영화제 개최 등을 통해 일본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 테러/종교·민족 갈등 탓/33% 이상 美 겨낭

    테러의 사전적 의미는‘폭력수단을 행사하여 상대를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다.우리는 테러에서 처참하고 무자비한 살상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테러는 우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인류의 공분을 자아낸다.발생 시점 또한 전혀 예측 불가능하다.뿐만 아니다.수단이 대단히 잔인해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분개심을 느끼게 된다. 지구촌에서는 사실 이틀이 멀다하고 크고 작은 테러들이 저질러지고 있다. 최근 250명 가까운 인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5,000여명이 부상한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는 하나의 ‘큰 사건’에 불과하다. 인류가 제1의 공적으로 꼽고 있는 테러.과학기술의 발달로 더욱 치명적이고 대형화,다양화하고 있는 테러를 해부한다. ◎원인과 표적/美 세계 경찰국가 자임 분쟁 개입 많아/이슬람 무장세력 주축 각국서 저항 불러 ‘미국의 모든 것은 사악하다.따라서 우리 이슬람 무자헤딘(戰士)들은 사우디 등 성지(聖地)에 있는 미국의 존재들에 대해 ‘지하드(聖戰)’를 벌여야한다’ 이번 케냐 및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라딘이 올해 밝힌 회교 교령이다.비록 이슬람국가라도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무차별 테러에 대한 확신이다. 문명시대에 자행되는 반(反)인류적인 국제 테러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종교나 종파 갈등에서 민족·인종갈등,영토분쟁,식민지 반대 운동,반정(反政)투쟁 등이 우선 꼽히는 명분들이다. 그러나 국익이 우선시되는 국제사회에선 많은 경우 복합돼 테러로 이어진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한 영토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아랍권 국가내에서 이들 세력에 대한 지지 모습이 제각각인 것이 좋은 예다. 또 지난해 발생한 304건의 테러 가운데 3분의 1이상이 미국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도 한두가지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다.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세계 곳곳에 개입하다 보니 원망을 사는 예도 잦다. 미국이 지목한 테러 국가는 리비아,수단,이라크,이란,쿠바,북한,아프카니스탄 등 7개국.냉전적 대립관계에 있는 국가는 북한과 쿠바뿐,나머지는 이슬람권 국가들이며 지난해 10월 발표한 30개 테러단체 역시 대부분 이슬람 무장세력이었다. 중동 정책에 개입,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이들 테러 국가들에 경제제재를 가한 것 등이 최근 빈발하는 대(對)미 테러의 요인이다. 유나 버머와 같은 반 문명주의자들,미국 오클라호마 연방건물 폭파범과 같은 자생적 극우주의자들도 최근들어 대형 테러 대열에 합류했다.최근에는 특별한 의도없이 대형 테러를 서슴지 않는 사례가 급속히 증가,인류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주요 발생 지역/유럽·중동 등 51개국 ‘핏빛 공포’/유럽­스페인 등에서 독립투쟁… 獨선 극우파 기승/중동­과격파 활동 가장 활발… 휴양지도 안심 못해 종교·인종·이념을 축으로 한 테러단체들은 줄잡아 51개국에서 살상을 일삼는다.피바람이 멈추지 않는 세계 곳곳의 테러 현황을 소개한다. ▷중동◁ 과격 회교근본주의 무장단체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중동에 주둔한 미군 및 공관과 이스라엘에 대항,회교원리주의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피빛 테러를 일삼고 있다.이스라엘에서는 94·95년 텔아비브,휴양지 나타니아에서 버스 폭탄테러가 발생했고 지난해엔 예루살렘 시장 폭탄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사우디 아라비아에선 96년 다란 미 군사기지 폭탄테러가,95년 리야드 미군사령부 차량폭탄가 발생했다. ▷유럽◁ 비교적 안정된 유럽 역시 테러 안전지대는 아니다.스페인의 분리독립 단체인 바스크 독립과 자유당(ETA)의 테러,독일의 우익단체 테러가 기승을 부린다.북아일랜드의 신페인당 무장단체 아일랜드 공화국군(IRA)과 신교도 얼스트의용군(UVF)도 주목받는 테러단체.아일랜드 오마시에서의 차량 폭탄테러는 세계를 경악케 하고 있다. 프랑스도 심각한 상태.95년 잇따른 지하철 폭탄테러로 수십명이 사망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에 시달리고 있다.94년 마르셰이유 공항에서 에어프랑스 납치사건이 유명하다. ▷아시아◁ 스리랑카,필리핀,아프카니스탄에서도 무차별 테러는 끊이질 않는다.회교무장학생단체 탈레반과 현 정부와의 내전이 끊이않는 아프카니스탄은 이란과의 접경지로중동 테러리스트 양성소 역할을 한다.스리랑카에선 자살 특공대 ‘검은 호랑이’의 테러와 박격포까지 동원된 엄청난 규모의 테러로 피냄새가 가시질 않는다.파키스탄도 이슬람 모하지르인의 무장단체(MQM)의 테러로 연평균 1,000명이 사망한다. ▷남미◁ 좌익게릴라들의 반 정부 유정(油井)폭탄 테러및 요인납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콜롬비아에선 7일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대통령 취임에 앞서 일어난 테러에서만 250여명이 사망했다. ▷아프리카◁ 알제리 92년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래 이에 회교근본무장단체들과의 내전으로 6년 동안 8만명이 숨졌다.버스안에 시민들을 가둬놓고 불을 지르는 등 극악한 테러를 자행한다.부녀자 강간도 극에 달했다.,이집트 룩소르 관광지에서 외국인 버스 테러가 잇따르는 등 위험지대다. ◎어떤 수법 있나/납치·폭파서 이젠 사이버테러까지/日선 독가스 살포… 세균탄도 실용화 가능성 높아/러,핵무기 위험성 담보 美에 보안비 요구하기도/컴퓨터 바이러스로 순간에 도시 마비시킬수도 인터넷 등 과학 기술의 발달은 테러수단을 첨단화시켰다. 핵무기를 사용한 테러의 위험성이 대두된지는 이미 오래다.냉전이후 보안이 느슨해진 러시아의 핵무기와 원료는 국제 테러리스트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실제로 레베드 전 러시아국가안보위원회 서기는 미국에 이를 구실로 보안비용을 요구하기도 했다. 비행기 납치 및 폭파는 70년대부터 테러범들이 자주 써온 전형적인 수법. 이제는 세균 덩어리나 포탄을 장치한 소형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모색하고 있다. 최근 미국 기술평가국은 지난 93년 백악관 앞마당에 돌진했던 것처럼 소형 비행기에 100㎏의 탄저병원균을 실어 날려 보낼 경우 300만명이 희생될 수 있다고 밝힌 바있다. 95년 일본 도쿄의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한 오움진리교가 인체에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를 배양하려 했다는 사실도 이러한 세균테러의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가공할 위력을 과시하는 최첨단의 테러는 사이버 테러.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만으로 뉴욕시 전체를 암흑의 도시로 만들 수 있다. 선진국의 산업시설과 군사시설을 제어하는 컴퓨터에도착하기만 하면 그 기능을 마비시키는 바이러스를 담은,이른바 전자우편 폭탄(E­mail bomb)을 한꺼번에 보내 전 도시를 일시에 마비시킨다.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이란,리비아,중국,러시아 등 일부 국가들이 사이버 테러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페루의 투팍아마루혁명운동(MRTA www.blythe.org)과 콜롬비아 인민해방군(ELN www.voces.org) 등 상당수 좌익 테러 단체들은 아예 인터넷에 웹사이트까지 만들어 교리,주장을 전파하며 때로는 모금운동 까지 벌이는 등 첨단 이기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무차별 파괴하고 처참한 결과를 유발하는 폭력성 테러는 고전적이지만 전시효과를 노린 테러범들에 의해 계속 사용될 것이 분명하다. ◎악명 높은 단체/하마스­가자지구 주무대… 지지자 수십만명/헤즈볼라­레바논 회교도 조직… 이란 지원 받아/GIA­알제리에 근거… 잔혹한 학살 일삼아 ▲하마스(이슬람 저항운동)=87년 이슬람 동포단의 팔레스티나 지부가 발전, 조직된 단체. 이스라엘 점령지 가자지구가 주 무대.수만명의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다.지도자이자 창립자는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62).반 이스라엘 테러혐의로 8년간 투옥됐다 지난해 10월 석방됐다. ▲헤즈볼라(신의 당)=레바논의 시아파 회교 근본주의자들.조직원은 5,000여명.79년 이란 회교혁명후 이란 지원을 받아 급성장했다.83년 베이루트의 미국 해병대 막사폭탄 테러와 85년 미국 TWA기 납치 사건을 저질렀다. ▲가마아 이슬라미아=이집트내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중 가장 과격한 단체.무바라크 대통령의 세계주의 노선을 반대하고 있다.지난해 룩소르 관광객 버스 테러를 자행했다. ▲타밀엘람 해방호랑이(LTTE)=스리랑카에서 타밀족의 분리 독립을 위해 83년 조직된 단체.무장이 가장 잘 돼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조직원 1만여명. 자살특공대 ‘검은 호랑이’는 악명이 높다.지도자는 빌루필라이 프란바카란(45). ▲콜롬비아 혁명무장군(FARC)=남미 최대 무장 테러조직.5,0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다.최근에도 전국 42곳에서 동시 다발적인 테러를 자행 230여명을 살해했다. ▲이슬람 무장그룹(GIA)=알제리에본거지를 둔 가장 잔인한 단체.92년 이슬람 구국전선(FIS)이 승리를 목전에 두고 군부정권에 의해 불법화되자 무장투쟁에 나섰다.무자비한 학살과 약탈에 부녀자 강간까지 일삼는다.지도자는 28세의 안타르 주아브리.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멕시코 치아파스에 근거를 둔 게릴라.94년 조직돼 농민폭동을 주도하고 있다.지도자 마르코스는 프랑스어에 유창하며 인터넷을 통해 외부와 연락한다.큰키에 다갈색눈으로 파이프를 물고 다니는 지적인 분위기의 소유자.여성팬들도 많다는 소문이다.
  • 印尼 화교 탈출 러시/17일 대규모 폭동설

    【홍콩 연합】 인도네시아에서 중국계 주민들의 탈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홍콩 신문들은 14일 자카르타를 떠나 홍콩,싱가포르,콸라룸푸르 등으로 향하는 여객기의 좌석 예약이 이미 완료됐으며 자바섬 서부 도시 수라바야 공항엔 수백명의 중국계 주민들이 탑승권을 구입하려 공항으로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최근 서 자바주에서 주민들의 소요사태가 또 다시 발생한데다 17일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에 대규모 폭동이 재연될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중국계 주민들은 지난 5월 인도네시아 폭동 당시 현지인들의 약탈과 강간 등으로 큰 피해를 입었었다. 경제적으로 해외 탈출이 불가능한 중국계들은 가족당 300만루피(30만원)를 경찰에 주고 보호를 요청하는 등 폭동에 대비하고 있다.
  • 대우그룹(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업)

    ◎金宇中의 세계경영/지구촌이 비좁은 ‘타고난 세일즈맨’/창업 32년만에 재계사령탑 맡아 빅딜 주도/“마지막 인생은 국가경제 재건에 바치겠다” 金宇中.그는 ‘타고난 장사꾼’이다. 대우그룹의 모태(母胎)인 대우실업 시절부터,세계경영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지금도 그는 빅 세일즈맨이다.“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며 1년 365일중 260일을 해외에서 보내는 것도 장사꾼 기질의 발로(發露)다.야전사령관식의 현장경영과 뛰어난 담판능력…. 金회장은 요즘 튄다.입만 벌리면 일이 터진다.전경련 회장대행을 맡고부터 더 그렇다.그래서 金회장이 뜨면 대우그룹과 전경련 홍보실엔 비상이 걸린다.그의 휘발성 발언들을 뒷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있었던 관훈클럽 토론회.金회장은 공정거래위의 부당내부거래 조사결과에 무리한 내용이 많아 행정소송하겠다며 공정위를 정면 공격했다. 이 발언이 “전 기업이 행정소송을 해야한다”는 식으로 보도돼 金회장이 “다소 확대됐다”며 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에게 해명하는 소동까지 빚었다.물론 재계는 박수를 보냈다. 그의 언행이 돌발적인가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다. 지난달 20일 제주도 전경련세미나에서는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대기업이 정리해고를 자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파장이 컸다.재계 일각에서마저 ‘돈 것이 아니냐’고 들썩댔다.청와대 비서진조차 노동계를 부추길 소지가 있는 발언이라며 비판적 색채를 띠었다. 문제는 이 언급이 있고 난 뒤 정작 대우자동차가 노조에 임금인상을 철회하지 않으면 2,995명을 정리해고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하면서 불거졌다.金회장이 협상카드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겉다르고 속다른 金회장’을 도마위에 올려놓았다.마침 세미나에 함께 참석했던 鄭世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리해고 불가피론을 펴 金회장의 입지는 몹시 옹색해졌다. 지난 5일 대우자동차 노사협상이 타결됐다.2000년 7월말까지 정리해고를 않기로…. “우리 실업은 역사상 처음이다.실업자 150만명 중에는 정리해고자가 포함돼 있지 않다.86년대 후반 옥포조선소에서 노사문제를 겪었다.사태가 악화되면 근로자 부인까지거리로 나온다.약탈사태가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대우는 1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어떤 업종은 50%까지 자를 수 있다. 자르고 가면 편하다.해고못하는 심정을 헤아려 본 일이 있나.실업을 만들어 놓고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金회장의 해고자제론은 유지됐다. 金회장은 지금 빅딜을 준비 중이다.쌍용자동차를 전격 인수,빅딜의 물꼬를 텄던 그가 이제 대우회장이 아닌,전경련 회장으로서 산업구조 재편이라는 명제아래 중복·과잉투자업종의 사업교환과 인수·합병의 각론들을 챙기고 있다. “회사를 만든지 32년째다.인생을 정리할 때다.그러나 신의 장난인지 전경련 회장을 맡게 됐다.제2의 삶을 전경련을 통해 살겠다” 유일한 창업재벌 1세대인 金회장.5대양 6대주가 좁다며 공격경영을 해온 그가 이제 재계 수장으로서 정부와 재계를 ‘치고 다독거리며’ 마지막 남은 장사꾼의 기질을 한국의 산업구조 재편에 쏟고 있다. ◎한국 해외시장 개척사가 大宇 성장사/67년 창업 수출드라이브 힘입어 급성장/69년 국내기업 최초 해외지사 濠에 설립/88년 동구 진출 세계경영의 교부보 확보 대우 성장사는 우리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사와 궤를 같이한다.일찍부터 ‘세계경영’을 기업경영의 축으로 삼아왔다. 67년 3월22일 30세의 패기만만한 청년 金宇中은 서울 명동의 20평짜리 허름한 사무실에 대우실업이라는 작은 무역회사를 차린다.셔츠 내의류 원단을 동남아시아에 수출하는 업체였다.대우실업은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등에 업고 설립 이듬해 대통령 산업표창을 받으며 무역업계에 돌풍을 일으킨다.69년 호주 시드니에 국내 최초로 해외지사를 세웠다. 71년 미국이 도입한 섬유수출 쿼터제는 대우가 기반을 다지는 전기가 된다.쿼터제에 대비해 우리나라 대미(對美)섬유수출의 40%를 확보,업계를 평정했다.이듬해 국내 무역실적 2위에 오른다.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기업확장에 나선다.창업이 아닌 인수로….73년 한해에만 대우기계 신성통상 동양증권 대우건설 등 10여개의 계열사를 확보했다.76년 한국기계(대우중공업),78년 옥포조선(대우조선),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등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기업들을 속속 인수했다. 82년은 대우의 ‘제2창업 원년’이다.대우실업에서 (주)대우로 바꾸고 명실상부한 ‘그룹’으로 탄생했다.(주)대우는 83년 국내 최초로 단일 상사 월간 수출 5억달러를 달성했다.88년에는 동베를린에 국내 최초의 동구권 지사를 세우고 세계경영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해외 진출과 함께 95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대북협력사업 정부승인을 얻어 첫 남북한 합작투자회사인 민족산업총회사를 설립하는 등 남북경협도 주도했다. ◎金宇中 회장의 어린시절/유복한 유년기… 6·25때 집안 풍비박산/경기고 입학 폭력서클 가입 한때 방황 金宇中 회장은 36년 대구 봉산동에서 서울대 교수와 제주지사를 지냈던 金容河 선생과 이화여전 출신의 엘리트 全仁恒 여사 사이에 태어났다. 소년기는 유복했지만 6·25때 부친이 납북되면서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만다.경기중 1학년때 金宇中은 난리통에 빙수장사와 열무장사를 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야 했다. 경기고에 입학한 뒤 폭력서클에 가입하는 등 한때 방황의 길을걷기도 했으나 당시 독일어 교사였던 李奭熙 전 중앙대 총장의 가르침으로 마음을 고쳐잡고 학업에 정진,연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대학시절 신당동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다녔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주변에서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반 때 매번 등록금을 대주던 무역업체 한성실업의 金容順 사장 밑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탁월한 능력으로 6년만에 이사가 되지만 그는 미국유학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유학 수속중 계획을 바꾼 그는 67년 단돈 500만원을 들고 서울 명동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대우의 뿌리인 대우실업을 세운다. ◎자동차왕국 꿈꾸는 대우/지난 1월 쌍용차 인수… 세계 10대 메이커 목표/2000년 루마니아 등 14개국서 280만대 생산 ‘金宇中 회장의 꿈은 자동차왕?’ 지난 1월 대우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전격 인수,국내외 자동차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대우는 기아자동차 인수의지도 밝히고 있고 제너럴모터스(GM)사와의 글로벌 제휴도 추진 중이다. 金회장이 78년 새한자동차 지분을인수하고 83년 대우자동차를 세운 이후 지금까지 보여온 ‘자동차 사랑’은 유별나다.94년 1월부터 2년 넘게 부평공장에 기거하며 현장경영을 했던 사실이 그렇고 ‘세계경영’의 전진기지를 모두 자동차로 집중시킨 것도 그렇다.金회장은 “연간 250만대 이상을 생산·판매해 반드시 10대 자동차 메이커에 들겠다”고 강조한다. 올해는 이같은 꿈이 절반쯤 이뤄졌다.만년 2∼3위에 머물던 국내 판매가 마티스의 히트에 힘입어 처음 1위로 올라섰다.또 쌍용자동차 인수로 부평 군산 창원 평택 등 4개 공장에서 연 126만6,000대 생산능력을 갖췄다.폴란드 ‘대우FSO’와 우즈베키스탄 ‘우즈대우오토’가 각 20만대,등 해외 14개국 77만7,000대가 더해지면 모두 204만대 규모다. 2000년까지 280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세계경영의 성공비결/사하라에서 시베리아까지 ‘해가지지 않는 대우’ 건설/신흥시장 과감한 투자… 김 회장 현장서 진두지휘/개발도상국 지도자 ‘독대’… 세금·금융지원 얻어내 경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요즘,벤치마킹의 화두(話頭)는단연 대우의 ‘세계경영’이다. 신흥시장 승부론,무국적 기업,인수·합병(M&A)제국 등 세계경영에서 파생된 다양한 수사도 따른다.세계경영은 국제통화기금(IMF)한파를 이겨낼 확고한 안전판으로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대우의 세계경영은 창립 26주년 기념일인 93년 3월22일에 선포됐다.金宇中 회장의 공격적 경영철학과 탁월한 수출·금융 노하우가 밑바탕이 됐다.여기에 ▲냉전시대 종결에 따른 동구권 중국 등 새로운 시장의 출현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동남아국가연합(ASEAN)등 배타적 블록경제의 형성 ▲국내 경쟁격화가 촉매역할을 했다. 세계경영의 현장에는 항상 金회장이 있다.그는 전략거점인 동구권이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계획이 수립되면 곧바로 현지에서 대통령·국왕 등 국가원수와 ‘독대(獨對)’한다.현지 투자 대가로 세금 감면,금융 지원,독과점판매권 등 파격적인 내용들을 요구한다.대신 수천명 규모의 고용 창출과 수익금의 재투자 등을 약속한다.협상이 타결되면 자동차 가전 호텔 등 대우가 보유한 모든 업종이 한꺼번에 투입된다. “개도국 공략의 첨병인 종합무역상사 대우가 골게터로서 문전으로 달려들어가면 자동차와 가전이라는 좌우날개가 볼을 몰고 골문을 향해 치고 들어와 슈팅찬스를 제공한다.그리고 건설 중공업 금융 통신이 미드필드 지역을 장악해 나간다”(‘세계가 열린다,미래가 보인다’에서 徐在明 외대 총장) 대우의 복합 시장진출전략이다.그런 점에서 그룹의 사업다각화는 황금의 라인업이라 할 수 있다. 시장공략에는 金회장의 해외 인맥이 절대적이다.폴란드의 바웬사·그바니예프스키 전·현직 대통령,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 대통령,우크라이나의 쿠즈마 대통령은 물론이고 북한의 金正日도 ‘金宇中 사람들’이다. 해마다 10개 이상의 해외기업을 인수해 온 대우는 현재 해외에 372개 법인,140개 지사,14개 연구소,64개 건설현장 등 590개 사업장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통화위기가 한창인데도 폴란드 루마니아 중국 미국 일본 프랑스 등 21개국에 해외지역본사를 설치했다. 열사의 사하라에서 혹한의 시베리아까지 ‘해가 지지 않는 대우 제국’의 신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계열사 현황(★:상장회사) NO 회사명 설립일 사업 내역 ★ 1.대우무역부문 67. 3.22 종합무역,서비스업 건설부문 73. 8. 1 종합건설업 ★ 2.경남기업 51. 8.29 종합건설업 ★ 3.대우중공업 종합기계부문 37. 6. 4 특수산업용기계 국민차부문 91.11.27 국민차 생산 조선해양부문 78. 9.26 선박건조 및 수선 상용차부문 90. 9. 1 상용차 생산 ★ 4.대우정밀공업 81.12.19 자동차부품 제조 5.대우자동차 72. 6. 7 자동차 제조 6.대우기전공업 84.10.30 자동차부품 제조 7.코람프라스틱 85. 9.30 자동차부품 제조 ★ 8.대우전자 71. 9.30 음향,영상 및 가전 ★ 9.대우전자부품 73.10.13 전자관 및 기타전자 제품 10.대우모터공업 87.10. 5 전기산업기계 및 장치 ★11.오리온 전기 65.11.22 전자관 및 기타전자 제품 12.오리온전기부품 90. 1.15 전자관 및 기타전자 제품 ★13.대우통신83. 9. 1 음향,영상 및 통신 장비 14.대우정보시스템 89. 4.29 사업서비스업 15.대우개발 76. 7. 8 관광호텔업 ★16.대우증권 70. 9.23 증권업 17.대우경제연구소 84. 5.19 사업서비스업 18.대우투자자문 88. 2. 3 투자자문업 19.경남금속 73.12. 7 건설업,조립금속 제품 20.동우공영 78. 4. 1 빌딩관리 및 기술용역 21.한국산업전자 88. 5.25 산업용제어장치 22.대우할부금융 95. 4. 1 금융업 23.한국자동차 94.12.20 자동차부품 제조 연료시스템 24.다이너스클럽 95. 6.16 신용카드업 코리아 25.대우창업투자 96. 2.16 금융업 26.대우레저 89. 2. 4 종합레저산업 ★27.대우자동차판매 93. 1.11 자동차판매 28.광주제2순환도로97. 4.30 건설업 29.대우선물 97. 5. 9 선물중개업 30.대우시멘트 97.10.10 시멘트수입판매업 ★31.한국전기초자 74. 5.23 유리벌브 제조 32.유화개발 77. 6. 9 부동산 임대업 33.경남시니어타운 97.12. 2 실버산업 34.대우전자서비스 97.12.29 종합서비스업 35.대우에스티 98. 2. 5 반도체 설계 반도체설계 36.대우제우스 98. 3.12 스포츠단 운영 ★37.쌍용자동차 62.12. 5 자동차 제조
  • 金宇中씨 ‘입’ 또 폭발/관훈클럽 간담서 거침없는 발언

    ◎“나 속터져”/지금이 과징금을 부과할 때인가/공정거래委에 당할수만은 없다/‘실업따른 약탈’ 누구도 장담못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맞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매번 당하고 만 갈 수 없다. 기업하라고 도와주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과징금을 부과할 땐가” 평소 거침없는 발언으로 설화(舌禍)에 가까운 파문을 일으켰던 金宇中 전경련 회장대행이 또 ‘폭발’했다. 31일 관훈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고(高)수위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기조연설을 끝내고 차분하게 일문일답을 해나가던 金 회장대행은 내부거래 과징금 문제가 제기되자 톤을 높이며 울화 섞인 답변들을 토해냈다. ­요즘같은 위기시대에 적합한 경영과 정부정책의 방향은.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 능력을 5배 정도 키워야 한다. 선진국에 사는 사람처럼 착각해서는 안된다. 우리처럼 취약한 자본시장에서 부채비율을 선진국과 비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공정위의 조사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주)대우가 대우증권의 후순위채권을 결코 비싸게 사주지 않았다. 대우자동차에 파견한 타계열사 직원들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관행을 무시한 처사다. 파견근로자들이 정리해고 됐으면 어떻게 됐겠나. 지금 기업들은 구조조정으로 한장 바쁘다. 은행감독원 감사원 공정거래위 검찰 등 5∼6군데에서 한 트럭분의 자료를 내라고 한다. 한고비 넘겨서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정리해고 자제론을 펴는데,현실적으론 고용감축이 불가피하지 않나. ▲외국은 오랜 기간 실업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왔다. 그러나 우리 실업은 역사상 처음이다. 그래서 아무 대책이 없다. 실업자 150만명 중에는 정리해고자가 포함돼 있지 않다. 86년 후반 옥포조선소에서 노사문제를 겪었다. 문제가 생기면 근로자 부인까지 거리로 나온다. 약탈사태가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달할 수 있나. 대우는 1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해고못하는 심정을 헤아려 본 일이있나. 실업을 만들어놓고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수출을 늘려 실업을 최소화해야 한다. ­내년 말까지 IMF체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는데. ▲비관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안된다. 수출을통해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면 국민들 사이에서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우리에게는 1조달러 상당의 생산시설이 있다. 모두 최근에 만든 시설이다. 가동안하면 고철이다. 왜 안되는가. 노력 안해서 그렇다. 朴正熙 대통령때 모두가 애국자처럼 일했던 것을 생각해보라. ­기아자동차를 인수할 생각인가. ▲지금은 말하기 어렵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 활발한 활동을 하는 동인은 뭔가. ▲회사를 만든지 32년째다. 인생을 정리할 때다. 그러나 신의 장난인지 전경련 회장을 맡게 됐다. 제2의 삶을 전경련을 통해 살겠다. 조금도 부끄럼없이 마무리를 짓겠다.
  • 수하르토 하야 이후 印尼/더딘 개혁속도… 머나먼 새시대

    인도네시아가 갖가지 개혁정책으로 새시대를 여느라 안간힘이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하야한 때는 지난 5월21일. 32년간 깊숙이 뿌리 내린 철권통치의 청산작업이 쉽지가 않다. 인적 청산작업을 시작으로 갖가지 개혁정책을 펴고 있지만 구체제에서 혜택을 누려온 기득권층의 반발과 집단이기주의가 행보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게다가 극심한 경제난과 소수 종족들의 분리독립 요구로 국론마저 갈리고 있다. 개혁의 새시대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현주소를 점검해본다. ◎인적청산/수하르토 일가 ‘퇴출’ 불구 기득권층 입김 여전 인도네시아의 개혁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을 역사의 전면에서 퇴출시키는 데서 시작되고 있다. 수하르토의 32년 철권정치를 떠받치고 때로는 선도해온 그들이 개혁시대에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고 국가사회의 발전보다는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을 앞세웠다는 비판을 받아온 그들이기도 했다. 하비비 대통령은 최근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사위이기도 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중장을 군법회의에 회부할 뜻을 내비쳤다. 32년 철권정치 동안 행방 불명된 14명의 민주 인사들의 실종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프라보워 중장은 한때 최정예 부대를 이끌며 수하르토의 철권정치를 뒷받침해준 핵심 인물. 그에 대한 단죄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적 청산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집권 골카르당도 변신을 위한 몸부림을 시도하고 있다. 22일에는 국민협의회(의회) 의원직을 가지고 있는 7명의 수하르토 일가의 의원직을 박탈하기로 했다. 과거 정권과의 단절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수하르토의 자녀 6명 중 4명을 비롯해 의붓형제,사촌과 며느리 등이 국민협의회 의원이다. 벌써 지난 11일에 아크바르 탄중 국무장관이 새 총재로 선출되면서 수하르토와의 결별은 감지됐다. 총재 경선에서 수하르토를 등에 업은 에디 수스드라자트 후보를 낙선시키는 ‘작은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새시대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선 인적 청산의 폭과 속도가 미흡하기만 하다. 인권단체인 법률구조협회의 한 실무 책임자는 “집권자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기반(개혁 주체)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어쩌면 하비비 정권의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사실 하비비 대통령과 위란토 국방장관 등 현정부의 주요인사 중 주류는 수하르토의 그늘 밑에서 성장한 인물들이다. 집권당의 신임 사무총장에 군 관계자가 임명되는 등 아직도 군부의 입김은 막강하다. ◎물적청산/수하르토 일가 재산 단계적 환수/긍정평가속 “조금 더 지켜봐야”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환수 문제는 인도네시아의 개혁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수하르토가 장기 집권하는 동안 그의 가족들이 각종 특혜와 족벌경영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척,국민들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는 탓이다. 현재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은 국부(國富)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택시회사에서 첨단 정보통신업체에 이르기까지 문어발식 경영으로 끌어 모은 수하르토 일가의 총재산은 무려 460억달러. 인도네시아가 당면한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지원받게 될 구제금융 403억달러를 웃도는 액수다. 새 정부는 수하르토 일가에 대해 일련의 단계적인 청산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들이 누려오던 은행대출 특혜와 독점 판매권,단독 계약 등 각종 특혜를 없애는 한편 이들이 기업 경영에서 손을 떼게 했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당연하다는 인식과 함께 일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새 정부의 개혁적 조치들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수하르토의 장남 시지트와 차남 밤방이 지분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 최대 민간은행 BCA가 파산했다. 자카르타시에 있던 3남 후토모 소유의 빌딩 두채는 건축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유화됐다. 앞으로 수하르토 일가가 경영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갖가지 특혜가 사라질 것이고 이들 일가의 기업들이 속속 구조조정의 길을 걷게 될 것 같다. ◎풀어야 할 과제/분리독립 요구 등 국론분열 양상/경제회생에 국가역량 결집 필요 개혁을 서두르는 인도네시아 새 정부의 갈 길은 아직 멀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개발 독재가낳은 최악의 경제난에다 소수 종족들의 분립독립 움직임이 개혁의 발걸음을 붙들어 맨다. 최근 경제는 새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극심한 수출 부진에다 무역외 수지마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520만명이 찾아와 66억달러의 수입을 올렸던 관광산업마저 바닥을 헤매고 있다. 올 들어서만 물가가 두배 가까이 올랐다. 연말이면 실업자가 전체 인구의 10%인 2,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날로 가중되는 경제난은 빈곤층을 확대시켜 사회안정 기반마저 위험수준으로 몰아간다. 이달 들어 동(東)자바와 자카르타 교외에서는 폭도들이 중국계 상점과 농장,새우 양식장들을 습격해 강탈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군 당국이 약탈자 무조건 발포령을 내릴 정도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여기에다 동(東)티모르와 이리안 자야 등에서는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집회와 시위가 끊이질 않는다. 경제발전에 국력을 집결시켜야 할 판에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 통합이 훼손되면서 개혁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들 지역의 분리독립 욕구를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다양한 종교의 400여 종족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자칫 큰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경제난과 소수 종족들의 요구 충족이 당장의 과제인 셈이다. ◎누가 이끄나/하비비­수하르토 대리인… 개혁 이행 한계/위란토­군부 실세… 위로부터의 개혁 주도/라이스­회교지도자… 인적·물적 청산 요구 ■하비비 대통령(61)=당초 수하르토의 충실한 대리인으로 분류되며 개혁에 소극적인 인물로 투영됐다. 그러나 예상보다는 발빠른 개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상당히 불식시켰다. △정치범 석방 △노조결성 금지조항 철폐 △정당결성권 허용 △대통령 임기 및 연임 횟수 제한 등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수하르토의 축재 사실 자체를 공공연히 부인하고 나서면서 개혁 수행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위란토 국방부장관(50)=군 총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는 군부 실세. 수하르토의 부관을 지내며 충성심을 인정받으며 군 최고실력자가 됐다. 강경 진압을 자제하는 등 지난 5월의 민주화운동에는 묵시적인 동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가와티 전 민주당 당수 등 야당 인사와도 교분을 맺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과거의 계승과 단절을 적절히 조화시켜 가고 있다. 하비비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보완해주며 ‘위로부터의 질서 있는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아미엔 라이스(54)=회교단체 무하마디야의 지도자로 반 수하르토의 선봉장. 이슬람교 학생연맹 대표로 지도자 역량을 발휘해 2천800만명의 이슬람 세력을 결집,수하르토 퇴진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이후 메가와티와 함께 ‘시민평의회’를 구성,수하르토 일가의 재산환수 등 인적,물적 청산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문화재 총목록부터 만들자/李寶我 중앙대예술대학원 객원교수(기고)

    문화재의 반환에 대한 요구는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피식민 국가 및 제3세계 신생독립국가에 의해 팽배해졌다.문화재를 반환해야하겠다는 국가와 문화재를 계속 소유하고자 하는 국가의 근본적인 시각차이는 변함없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문화재 반환 인식 부족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문화재 반환에 대한 논쟁은 한마디로 과거에 대한 소유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과거에 대한 소유권,통제권,사용권 이 3가지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논쟁인 것이다.문화재는 과거의 정신적 역사에 대한 물리적인 증거이다.따라서 문화재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민족의 공공소유이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그 누구에 의해서도 소유권은 양도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또한 이러한 문화재는 일단 원위치나 원소유자로부터 그 위치를 옮기게 되면,물리적인 훼손뿐만아니라 여기에 깃든 정신적인 훼손도 동시에 가해지게 되는 것이다. 문화재 반환의 당면과제는 문화재를 돌려 받는다는 단순한 물리적 상호교류의 문제를 넘어서,당사자간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복합적인 문제를 내포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이는 양국간의 향후 정치적,경제적관계에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현재의 소유국이 진정으로 반환요청국에 대한 신뢰감이나 존경심 없이는 이러한 사항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외규장각 고서의 반환이라는 당면과제를 앞에 놓고,한편에서는 약탈한 전리품이라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반환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정확히 표현하자면,우리는 문화재반환을 둘러싼 전반적인 사항에 대한 교육이나 인식이 결여된 상태다.문화재를 반환할때는 문화재의 원산국에서의 본래 기능과 사회학적,역사적,미학적인 중요성과 가치,현재와 과거의 법적소유권,외국으로 불법유출된 문화재의 이동경위와 전시국제법규 위반사실 등의 모든 사항들이 고려,판단되어 반드시 반환되어야 할 정당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해외소장품 철저 조사 오히려 우리는 문화재반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이 얼마만큼 문화재를 보존하는데 관심을 보이고 심층적인 연구를 했는가에 대해 자문하여야 할 것이다.해외에 흩어진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무려 6만8,135점이나 된다.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동안 문화재가 불법으로 김포세관을 통하여 유출되고 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설령 합법적인 경로는 통해 나갔다 하더라도,적어도 이에 대한 소재지 파악과 이동경위에 대한 기초연구작업은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하나의 통일된 국가적인 문화재총목록 작성 및 해외소장된 문화재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 있지도 않고 있다. ○정부차원 보존 관심을 97년은 문화유산의 해였고 각종 문화행사 및 학술회의가 펼쳐졌지만 이러한 기초작업에 대한 정부 관련기관의 움직임은 별차이가 없는 듯했다. 우리는 문화재보존이라는 시작단계에서,마치 높이뛰기를 한 듯,문화재반환이라는 마지막 단계로 와버렸다.우리에겐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국가정책적인 차원에서 전문인력이 양성되어야 하며,이들로 하여금 문화재에 대한 장기적인 기초연구조사작업이 이루어져야 하겠다.현재에도 끊임없이 행하여지고 있는 문화재의 불법반출을 사전에 예방하고,자라나는 세대들에겐 교육프로그램을 통한 문화재보존에 대한 인식 전파가 시급하다.
  • 궁중의 중상(秘錄 南柯夢:17)

    ◎고종 총애 지극하니 궁궐축출 모략이…/정환덕 상감모시기 10년… 정적들 시기받아 감기로 며칠 쉬는 틈타 지방으로 좌천 공작/“시골군수가 소원” 거짓주청에 임금도 속아 “일주일만 참으라” 했으나 한달넘게 무소식 이튿날 정오 상감 부자께서는 신(정환덕)을 급히 입궐하라 명하시고 말씀하시기를 “鄭가 성을 가졌다해서 모두 나라에 해를 끼쳤다고 할 수 없다.필시 경(卿=정환덕)을 몰아내기 위한 계책이었으니 사퇴하지 말 것이며 정가성을 가진 사람으로 추방당한 모든 사람을 다시 입궐,근무토록 하라”고 분부하시니,환호의 소리가 하늘에 닿고 궁중에 화기가 넘쳐 났다.그러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정치란 반칙투성이의 축구시합이라 했다.권력의 속성 가운데 가장 더러운 부분이 바로 권력투쟁이다.권력투쟁에는 반드시 중상모략이 오가게 마련이라 선비가 권력의 주변에 가까이 가면,온갖 수모를 당하고 물러서게 마련이다. 정환덕 이하 모든 정씨가 궁중에서 숙청당한 사건은 장지동의 군함사건을 계기로 당대의 세도가 길영수(吉永洙)와 말다툼을 한 데서 비롯되었다(남가몽 15회 참조). ○길영수와 말다툼 화근 길영수로 말하면 본래 지관(地官)출신으로 고종의 총애를 받기 시작하더니 1889년 과천군수를 거쳐 일약 13도부상도반수(十三道負商都班首)로 뛰어 올라 전국의 보부상을 지휘하여 황국협회(皇國協會)를 조직,야당인 독립협회의 개혁요구를 몽둥이로 진압한 국가유공자(?)였다.광무정권을 수립하는데 가히 일등공신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거물을 상대로 일개 시종이 싸우기란 벅찬 일이었다. 다행히 1903년 한 선비의 상소로 “육군부령 길영수는 간사한 무리로서 성총을 빙자하여 민재(民財)를 약탈하고 관직을 매매하는 등 나라를 병들게 한자”란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정환덕의 다음 정적은 길영수보다 더 엄청난 거물 이용익(李容翊) 이었다.이용익은 임오군란 때 민비(명성황후)를 도와 매일 서울∼장호원간을 달려서 왕래한 충신으로 고종의 신임을 얻어 광무개혁을 사실상 주도한 인물이었다.그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지방수령(군수) 331명에 대해 일제 수사를 벌였다. 이용익이 탁지부대신(度支部大臣=재무장관)으로서 열읍의 포흠 (浦欠:부정행위)낸 수령을 조사하고 보니 전국 360 고을(郡) 가운데 단 한 면도 온전한 곳이 없었다.이 때문에 포흠을 낸 관찰사(도지사)와 수령들이 도망쳐 피신하였는데,경남 산청의 단성(丹城)군수도 역시 그 가운데 들게 되어 사촌 정환기가 도망치고 말았다. 저번에 이용태(李容泰)의 주선으로 정환기를 내장원(內藏院)의 산림기사(山林技師)로 취직하게 만들어 주었더니 이 꼴이 되고 말았으니 모두 빈 공중의 꽃이 된 것이다.한탄한들 무엇할까. 정환덕이 출세했다 하여 시골에서 일가친척들이 무작정 상경해 한 자리 청탁하는 사람이 많았다.요즘같은 세상에도 상경한 시골의 일가친척을 냉대하였다가는 크게 욕을 먹는데,그때야 더했다.서대문 정환덕의 집에는 쉴새없이 일가친척이 찾아 왔는데,단성군수와 운봉군수를 시켜준 사람은 멀지 않은 사촌들이었다. ○사천군수 재기용 호소 사천(泗川) 군수 정환기(鄭煥琦)는 단성군수로 가게 되었는데 길영수가 들어서서 자기가 추천한 윤치일(尹致日)을 사천군수로 삼았기 때문에 정환기가 좌천된 것이다.얼마 안되어 정환기는 또다시 영양(英陽)군수로 좌천되었다. 그런데 정환기의 군수 자리가 길영수의 훼방으로 이렇게 좌천되게 되니 정환덕이 참다 못해 상감에게 하소연을 했다.그러자 황상께서 물으시기를 “단성군수 정환기가 너에게 4촌이 되느냐” 하시었다.대답하기를 “그러하옵니다”.또 말씀하시기를 “영양군수가 단성군수보다 낫지 않느냐” 하시었다. 대답하기를 “네,그러하옵니다.두 곳의 군수 자리 중 어느 곳이 나은지는 우열을 가리지 못하오나 소신의 천박한 생각으로는 단성군이 사천군만 못하고 영양군이 단성군만 못하오니 본래의 사천군으로 돌려 주시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상감께서 “그렇다면 그렇게 하기로 하라” 하시었다. 이로써 알수 있듯이 정환덕에 대한 고종의 총애는 지극하였다.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정환덕에 대한 모략은 더욱 극성스러워 마침내 궁궐에서 물러나 시골에 가서 군수를 살게 되었다. 간사한 무리들이나를 대궐에서 축출할 계획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차례 실패하고 성공하지 못했으니 다시 무슨 일을 가지고 헐뜯을 것인가. 그런데 그들은 내가 잠시 병들어 누워 있는 동안에 상감에게 아뢰기를 “정환덕은 10년 가까이 상감마마를 지척의 자리에서 모셔 오면서 더 부지런하고 더 힘써서 밤을 낮으로 삼고 공경하고 경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을 하루같이 충성하다보니 지쳐 병이 들었습니다.그러니 이제는 산수 좋은 고을을 택해서 잠시 소풍하듯 고을살이를 하게 하면 어떠하오리까”하고 아뢰었다.황상께서 이들의 말을 옳게 여기시어 드디어 충남 대흥(大興)현감을 제수하시었다.그러나 그것은 내 뜻이 아니었다. 생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정환덕이 잠시 감기로 대궐에 나가지 못한 틈을 타서 길영수 일파로 보이는 정적들이 그를 지방으로 보내려 했던 것이니,눈뜨고 코베어 가는 세상이었다. 하루는 비서장(秘書長) 김하영(金夏榮)이 우리집에 찾아와 문병하고 상감이 나를 충남 대흥군수로 제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물론 이것은 저들의 공작이었다.이튿날 늦게 대궐에 들어가 입대했더니 상감께서 물으시기를 “병은 완쾌되었느냐.그동안 누가 와서 네가 지방의 외읍(外邑)을 맡아 나가는 것이 소원이라 하여 내가 너를 대흥군수로 제수했는데,너의 의향은 어떠한가” 하시었다.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성상의 은총이 이와같이 융성하고 흡족하오니 참으로 송구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그러나 대흥군수로 나가고 싶다는 말은 제가 한 말이 아니옵니다.10년을 하루같이 모셔온 이 몸이 어찌하여 하루 아침에 멀리 귀향가듯이 대궐을 떠날 수 있단 말입니까.신이 비록 보잘 것없는 사람이오나 바라옵건대 해타(咳唾:바로 턱앞)에 두시어 부리신다면 그보다 더 영광이 없겠습니다”고 하였다.황상께서 들으시더니 “내가 한번 더 저들에게 속았구나.그러나 기왕 발령을 냈으니 잠시 내려가 군수로 부임했다가 일주일 이내에 다시 올라오도록 하라고 하시었다. ○“턱앞 두시어 부려달라” 정환덕이 대흥군수로 내려간 것은 1903년 3월7일이었다.일주일 뒤에 다시 올라오도록 하겠다던 말씀을 믿고 임지로 내려갔으나 한달이 넘어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임지에 부임한지 한달이 넘도록 올라오라는 분부는 없고 내부(內部=내무부)로부터 자리를 비우지 말라는 훈시만 날아왔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1­1(정직한 역사 되찾기)

    ◎法의 어제와 오늘/‘正義의 저울’ 국민의 것이었나/잘못된 권력 정당한 도구로 전락/반대세력 제압 反민주악법 양산/마지막 양심 사법부 제역할 못해/法의 타락·불신 심각한 수준 공감 한국의 현대사는 굴절의 역사로 얼룩져 왔다.일그러진 권력에 의해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정의를 지켜야 할 법은 잘못된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의 역할로 전락하기도 했다.제헌절 50주년이 건국 반세기를 자축하는 영광과 함께 역사의 상처가 덧나는 듯한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서울신문은 제헌절 50주년을 맞아 7월 한달동안 시리즈를 통해 헌법과 대한민국 법 반세기의 영욕을 법과 양심,헌법의 발자취,악법의 상처,거듭나야 할 우리 법조 순으로 재조명해 본다.시리즈는 매주 월요일 게재될 예정이다. ‘법은 조직화된 정의다.’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저명한 판사출신 경제평론가 끌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말하는 법의 개념이다.그는 법이 타락하면 정의와 불의에 대한 판단기준이 흐려지고 정치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진다고 경고했다.그의 경고는 20세기에도 진리다.법학은 정의를 지키려고 스스로의 타락을 경계해 왔지만 인류의 역사는 법의 타락으로 얼룩져 왔다.한국의 법도 타락과 불신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다.집권세력의 자의적인 정치논리에 의해 왜곡돼온 우리 법의 역사가 이를 증언하고 있다. 지난 50년동안 법이 본래의 영역 지키기에 충실했다고 할 수만은 없다.법을 둘러싼 많은 왜곡과 의문이 존재해 왔다.정의를 세우고 지켜야할 법이 오히려 이를 질식시키고,타인의 인격과 재산을 약탈하는 일을 정당화시켜주지는 않았나.약탈행위에 대한 방어를 도리어 범죄로 만들어 처벌한 일은 없었나. 법을 더럽힌 장본인들은 역사적인 평가와 심판을 제대로 받은 것인가.잘못된 법과 법의 오·남용으로 명예를 짓밟히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잃어야 했던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명예회복과 경제적 보상이라도 받았을까.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 찾기는 곧 우리 법이 앞으로 가야할 방향모색의 전제가 된다. 그러나 이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金大中 대통령이 대통령후보로 나서 양심수 석방을 거론했다가 벌떼처럼 덤벼드는 사상시비에 곤욕을 치렀던 것이 겨우 반년전 일이다.초등학교 통일교재에 이적성이 담겼다 하여 구속영장이 신청됐다가 기각당하는 등의 공방도 얼마전에 있었다.지난 95년 43년만에 옥문을 나섰던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도 특수한 역사적 환경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법체계가 낳은 민족적 불행의 표식이다. 법의 타락은 헌법의 오염으로부터 시작됐다.헌법은 지난 50년간 9번의 손질을 거쳤다.그러나 그중 실질적으로 민의에 의한 개헌은 얼마나 될까.지난 87년 6월 항쟁에 의해 얻어진 9차 개헌과 4·19혁명 직후 이루어진 3차·4차 개헌이 대체로 민의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들도 혁명의 공을 가로챈 정치세력과 위기에 처한 집권세력이 국민을 이용하거나 회유하려는 측면이 있었다.때문에 사실 엄격하게 따진다면 순수하게 민의만을 반영한 개헌은 없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대부분의 개헌이 소수의 집권세력에 의해 이루어졌고,많은 국민들은 그 과정에서 한발 비켜 있거나,반대편에 서 있었다. 개헌을 통해 권력의토대를 마련한 집권세력은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반대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반민주 악법을 양산했다.남북분단이라는 민족적 아픔을 철저히 이용했고,엄청난 수의 양심적 지식인과 학생들이 그 올가미에 걸려들었다.그러한 법률은 위헌시비 논란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가혹한 형량을 적용해 국내외 인권단체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권력의 이러한 불법적 약탈을 막고 양심을 지켜내야 하는 마지막 보루가 사법부이지만 법원은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해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폭력적 권력에 의해 상처를 입어야 했고,권력에 굴복해 부끄러운 판결을 내려야 했던 것이 바로 우리 사법부는 아니었을까. 검찰도 불법적 수사를 합법화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법원의 판결문이 공소장과 거의 같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권력에 협조해 정치인으로 변신한 법조인들도 많았다.최근에는 뇌물과 관련,판사가 인사조치되고 변호사가 구속되기도 했다.법이 타락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는 사회의 잘못된 법의식 때문이다.법을 바로 세우는 길은이러한 잘못된 법의식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특별취재반 특별기획팀=李昌淳 팀장·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기고/‘陸法黨’등 軍政엘리트 활개/저항 못한 지식인층에 책임/韓相範 동국대 법학과 교수 근대사회의 시민법학은 악법과 폭정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발전했다.원래 고대 로마법시대부터 “법은 정의(正義)와 형평의 기술(技術)”이라 했고 법학은 그러한 정의 추구를 임무로 자처하면서 타락을 스스로 경계해 왔다.그러한 법학이 관료의 통치기술학으로 발달해 온 한국에서는 법학을 배운 사람이 잘났다고 할수록 권세의 법기술자로 팔렸다.육법당(陸法黨)이란 군정의 엘리트가 바로 그들이다.이들이 한 일은 역사적으로 심판되겠지만,당장 그들의 역기능은 차단돼야 사회가 정상화될 수 있다. ○탈 바꿔쓰고 자리 욕심 지식인의 그러한 부패와 타락은 사회 전반의 비판감각을 둔화시키고 윤리 의식을 마비시켜서 사회를 썩고 뒤틀리게 했다.그런데도 이제까지 그러한 작태를 스스로 반성 자숙하는지식인은 한 사람도 없다.오히려 그러한 죄많은 무리들이 탈을 바꿔쓰고 이미 버스를 갈아 타고 있다. 지식인의 허약한 체질의 문제는 어제 오늘에 비롯된 일은 아니다.1961년 5·16쿠데타 세력이 헌법질서 파괴를 정당화하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이란 것을 조작해 내자,일부 학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해설서를 만들어서 무법(無法)을 합법화시켜주는 일에 한몫 거들었다.그리고 관청에서 주는 벼슬자리를 걸신들린듯 달려들어 종노릇을 했다.쿠데타를 한 군인들은 아마도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그래서 지식인이란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노리개가 되어 갔다. 1972년 유신쿠데타가 일어나자,교수란 이름의 직업인이 그들의 나팔수로 온갖 거짓말을 다하고 다녔다.장사꾼의 거짓말은 사기죄가 되는데,이들의 나라 망치는 거짓말은 아직까지 괜찮으니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세상이다.당시 국회권한을 대신한다는 ‘비상국무회의’는 개헌안으로부터 시작해 온갖 악법을 제멋대로 만들었다.그것도 1961년 ‘최고회의’처럼 헌법을 유린하고 만든 기관이었다.그런데 지식인은 그에 대해 반대는 커녕 찬사로 아양을 떨었다. 1980년 박정희 사망후에 등장한 신군부도 5·17쿠데타를 고비로 ‘국가보위입법회의’란 무법적 권력기구를 만들어서 무수한 악법을 양산해 냈다.이때에 어느 누구도 삼청교육대나 군법의 감옥이 무서워 항거하지 못했다.지식인 또는 학자,교수란 사람들이 악법과 폭정에 대해 무기력하게 방관 묵인하고,그러한 피바다의 판국속에 칼부림하는 자들은 ‘정의사회구현’을 외쳤으니,이땅의 정의는 결국 피묻은 칼의 대명사가 되었다. 물론 군정하에서도 미미하지만 법학자들의 약간의 반발은 있었다.법학교수의 체면을 위해서 몇가지 사례나마 적어둔다.박정희 정권이 쿠데타를 정당화하고자 개헌 국민투표를 시도할 때 황산덕은 동아일보 사설에서 ‘국민투표가 만능은 아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하다가 감옥으로 갔다.(그 이후 군정세력 밑에서 장관을 하게 됐지만).1964년 한일협정체결 반대에 나선 교수중 이항녕은 과거 친일행적을 반성하며 앞장섰다가,교수직에서 쫓겨났다.한상범 본인은 1969년 3선개헌에 헌법교수로서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했다.70년대 초 유기천은 박정희 정권의 총통제 음모론을 폭로하고 망명했다. ○日 군국주의 비판 귀감 유신쿠데타 후에도 헌법교수 몇명이 홍보를 거부했다.80년 5·17쿠데타 후에 일부 지식인이 계엄사 합수부로 연행되어 사표를 쓰거나 소추 등 탄압을 받았다.그러나 이런 교수·지식인은 소수이다.대개 부정한 권력에 대해 방관 동조 편승한 실적을 지닌 채 그대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일본제국의 혹심한 탄압하에서도 도쿄대학의 국제법 교수 요코다 기사부로(橫田喜三郞)가 일본군의 진주만공격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의한 것이나,식민정책 교수인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가 군국주의를 비판해 탄압을 받았던 것을 생각한다.그들이 일본의 대학과 지식인의 위상을 지키고 지적 양심과 성실성이 무엇인지 보여줘 일본이 아주 망하지 않게 해준 것이다.우리에게는 그와 비슷한 일도 들수 없다고 하는 지식인의 초라함은 이 시대 우리 자화상이랄까?우리가 역사에서 무엇인가 배운다고 하면이젠 그대로 넘어가선 안된다.
  • 양심수에게 펜과 종이를(金三雄 칼럼)

    金大中 대통령을 국빈으로 맞은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백악관의 정상회담에 앞서 가진 모두발언에서 金대통령의 옥중서신에 있는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않았다’는 구절을 인용, 金대통령의 정치역정에 대한 경탄을 거듭 나타냈다고 국내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클린턴이 인용한 이 시구는 원래 영국 시인 셸리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의 마지막 구절 “if winter comes, can spring de far behind?(겨울이 만일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이다. 金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은 참담한 상황에서도 셸리처럼 언젠가 찾아올‘봄’을 기다리며 희망을 잃지 않고 짧은 지면에 긴 글을 썼다. 옥중의 DJ도 여느 수형자들과 같이 한달에 한번 단 한장의 봉함엽서로 그것도 가족에게만 편지쓰는 것이 허락되었다. 손바닥만한 우편봉함엽서에다 그는 깨알만한 크기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적어보냈고 이것이 후일 「김대중옥중서신」이란 책으로 출판되었다. 당시 양심수에게 집필이 허용되었다면 그는 6년여 동안의 옥살이에서 많은 글을 썼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문화의 값진 자산으로 남았을 것이다. 金대통령 뿐만 아니라 지난날 어두웠던 시절에 옥살이를 한 수많은 양심수들에게 펜과 종이가 주어졌다면 우리의 정신문화는 훨씬 다채로워졌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군사정권에 이어 金泳三정권은 양심수들이 글쓰는 것을 철저히 막았고, 지금까지 이런 규제는 풀리지 않고 있다. 당장 일반 수형자들에게까지 집필을 허용하기가 어렵다면 먼저 양심수들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쓸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우리가 문명사회이기 때문이다. ○옥중에서 쓰여진 명저 지금 인류의 값진 유산으로 전하는 명저 가운데 상당수가 감옥에서 집필되었다. 니체의 표현처럼 그야말로 ‘피로 쓰여진’저작물들이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면서 옥중에서 ‘사기’를 썼고, 볼테르는 왕실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바스티유감옥에 갇혀 ‘앙리아드’를 썼으며, 존 번연은 베드포드 군형무소에서 11년간 옥살이하면서 ‘천로역정’을 집필했다. 세르반테스는 왕실감옥에 갇혀 ‘라만차의 돈키호테’를 쓰기 시작했으며, 마르코폴로는 포로가 되어 ‘동방견문록’을 썼고, 오헨리는 ‘점잖은 약탈자’등 주옥같은 단편을 옥중에서 썼다. 프랑수아 비용은 사형을 선고받고 지하토굴에 갇혀서 ‘유언시’를 지었으며, 오스카 와일드는 투옥되어 ‘살로메’ 등 명작을 남겼다. 인도의 네루는옥중에서 ‘세계사 개설’을 썼으며 정약용은 강진 유배지에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많은 책을 썼다. 그들에게서 펜과 종이를 박탈했을 경우인류의 정신사가 얼마나 황폐했을 것인가 두렵다. ○읽고 쓰는 자유 문명사회의 기본 지금 감옥에는 적잖은 양심수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채 ‘안부편지’정도만 가족과 나눈다. 수백년 수천년 전에 인류는 이미 감옥이나 유배지에서 글을 쓰는 전통이 확립되고, 그 결과물이 값진 유산으로 전하는 터에 문명사회를 자처하는 우리는 언제까지 수인(囚人)들의 붓과 종이를 빼앗을 것인가. 얼마전 출감한 황석영씨가 옥중에서 소설을 썼다면, 신영복 교수가 집필의 자유를 가졌다면, 우리는 보다 풍성한 문학과 사유의 향연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수인의 집필금지는 국력의 손실임을 절감하게 된다. 연장선상에서 박노해씨나 박태웅씨 등이 지금 감옥에서 글을 쓸 수 있다면 후일 값진 문화적 자산을 남기게 될 지도 모른다. 아침햇살에 골안개 사라지듯 하는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신조를 이유로 양심수들의 집필권을 박탈하는 것은 반문명적 시대착오다. 펜 한자루와 종이 한장이 아쉬워 봉함엽서에 5천여자를 썼던 金대통령의 아픔을 이해한다면 새정부는 양심수들에게 펜과 종이를 주는데 인색해서는 안된다.
  • 印尼 중국계 여성 100여명 소요때 집단 性폭력 당해

    ◎NYT紙 보도 【뉴욕 AP 연합】 인도네시아의 약탈·방화사태 때 자카르타 지역에서 100여명 이상의 중국계 여성과 소녀들이 조직적인 폭력과 집단 강간을 당했다고 미 뉴욕 타임스가 1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인권 및 구호단체 직원들의 말을 인용,지난달 13일부터 15일 사이 대규모 인권 유린이 자행됐으며 수하르토 대통령이 21일 사임을 발표하기전까지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범행이 저질러졌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전했다. 인권단체등에 접수된 강간 및 폭력사례에는 여성들이 강제로 공개 나체춤을 추도록 한 사례에서부터 윤간한 뒤 불타는 화염속으로 던져지는 끔찍한 만행이 포함되어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구호단체 직원들의 보고에는 강간자들 일부는 “너희들은 중국계이자 비회교도이기 때문에 마땅히 강간을 당해야 한다”고 말했으며,이들 피해자 대부분은 10세에서 55세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이었다고 기록돼있다.
  • 메트 韓國室/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뉴욕,아니 미국의 자랑이다.대영박물관,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이곳의 소장품은 총 200만점.약탈 문화재가 많은 유럽의 박물관과 달리 구입품과 기증품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깍쟁이로 이름 높은 뉴요커(뉴욕시민)가 ‘메트’로 부르는 이 박물관에 쏟은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뉴욕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이곳을 꼭 찾는다.그래서 한해 관람객이 550만명을 넘는다. 그러나 메트에서 한국인들은 착잡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우리 귀중한 문화재가 2층 복도 난간에 초라하게 전시된 탓이다.어엿한 독립 전시실을 갖추고 제 대접을 받는 일본과 중국 유물을 보고 난 후엔 못난 후손의 부끄러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7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독립된 한국전시실(약 48평 규모)이 문을 열므로써 그 부끄러움은 이제 사라지게 됐다.마침 미국을 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도 이곳을 찾아 문화외교를 펼쳤다.필립 몬테벨로 관장이 말했듯이,메트 한국실은 앞으로 “한국만의 독창적인 예술적 성취를 서구 사회에 재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메트의 한국실 개관 기념전시회에는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을 비롯 한국이 대여한 120여점과 메트 소장 한국유물 20점이 선보이고 있다.이 전시회는 오는 99년 1월말까지 계속된다. 앞으로 메트 한국실이 미국내 공공박물관과 공동으로 한국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전시회를 마련해 순회전시회를 갖는다면 더욱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미국 16개 도시 18개 박물관에 소장된 한국 문화재는 1만5천점 정도로 추산된다.미네소타 박물관과 피바디 박물관에 각각 5000여점,스미소니언 박물관에 3300여점이 있다.보스턴 박물관,하버드대학 포그박물관 등은 수장량은 많지 않지만 질적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메트 소장 한국유물(약 200점)은 도자기(130여점)에 치중해 있으므로 미국내 다른 박물관과 연계해 특별전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개관 기념전을 그렇게 마련했더라면 더욱 뜻 깊었을 것이다.그런 전시회에 보완해야 할 유물이 있어 국내 소장품을 보내야 한다면 우리문화계 인사들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 印尼 경제 換亂 살아날까/아시아 외환위기 오나

    ◎루피아貨 계속 하락… 1弗 1만1,000線/소요사태로 금융기관 거의 마비상태/노동력·자원 바탕 위기탈출 안간힘 금융위기로 시작된 아시아 경제의 기상도가 먹구름이다.각국마다 주가,환율,채권의 폭락으로 지독한 돈가뭄을 겪고 있다. 태국에 이어 인도네시아,그리고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을 받았거나 받아야 할 처지이다.말레이시아가 아직은 혼자 힘으로 살림을 꾸리고 있지만 곳곳에서 동요가 감지된다. 더 큰 문제는 일본.아시아 경제 회복의 견인차가 되어야 할 일본마저 엔화 약세에 시달리며 오히려 아시아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아시아 경제의 앞날에 방향타 역할을 할 인도네시아,태국,그리고 말레이시아의 경제를 진단해 보았다. 휴버트 나이스 국제통화기금(IMF) 아·태국장은 최근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고 갖가지 거시경제 지표들이 전면 수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국으로 치닫던 경제형편이 수하르토가 하야하면서 잠시 주춤하고는 있지만 나이스 국장은 생산성 하락,환율 불안,물가 상승 등이 이전보다 더욱악화됐다고 강조했다. 60대 후반 이후 연평균 7%의 고도성장을 계속해온 인도네시아가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지난해 가을.1,300억달러로 추정되는 외채에 발목이 잡혔다.수하르토 당시 대통령은 IMF의 금융지원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도 개혁요구를 받아들이기 싫어 악화되는 현실을 외면했었다. 요즘 루피아화 가치는 계속 떨어져 1달러당 무려 1만1,000루피아 선을 오르내린다.폭력 소요사태가 있기 전인 5월초에는 8,000루피아이었다. 외환보유고는 100억달러정도.루피아화의 폭락세를 진정시키기엔 어림도 없다.설상가상으로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사(S&P)는 최근 장기 외화차입 등급을 ‘B-’에서 ‘CCC+’로 낮췄다. 또 있다.주가지수가 410선.5월초에는 430선이었다.증권시장은 일찍부터 자본조달의 채널이 되지 못했었다. 5월의 물가상승률을 1년 기준으로 보면 50%에 이른다.20년만의 최고치이다.실업자도 1,300만명으로 늘어나 실업률이 14.5%나 된다. 소요사태로 500개의 은행이 약탈당해 금융기관들이 거의 마비상태에 빠진것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45년 건국 이후 최악의 가뭄까지 겹쳐 쌀 생산량이 급감했고 식료품 공급망을 장악한 화교들이 해외로 탈출해 식량난도 심상치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인도네시아가 이대로 주저앉지는 않을 것 같다.스스로의 피나는 몸부림과 국제금융기관 및 주변국이 힘을 보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싼 임금의 노동력과 풍부한 지하자원도 든든한 밑거름이다. 정부는 IMF나 세계은행(IBRD),그리고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의 금융지원을 겨냥해 수족을 잘라내는 개혁작업을 시작했다. 하비비 대통령은 족벌주의를 척결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동생을 공직에서 끌어내렸다.또 선거를 조기에 실시키로 하고 구체적인 일정도 밝혔다. 국민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정치범을 석방하는 한편 대통령의 연임 제한 등 갖가지 민주화 조치를 속속 발표했다. IMF도 약속했던 430억달러의 지원을 미룰 수만은 없을 것이다.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에 돈을 빌려준 국가들이 파문에 휩쓸리며,아시아 경제,나아가 세계경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도 있기때문이다. 지난 30일 4일간의 방문을 마치고 인도네시아를 떠나면서 “경제가 회복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나이스 국장의 진단은 인도네시아에 희망과 함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충고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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